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1권 1화
1 화
신들의 전쟁.
20대 초반의 신유준은 그런 거창한 이름의 게임에 접속했다.
촤라랑!
스피커에서 익숙한 배경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윽고 광활한 초원이 배경인 게임 로그인 화면이 유준을 반겨 주었다.
이 BGM은 묘한 중독성이 있어
그도 모르게 음악에 심취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Lv. 500 무과금즐겜러]
다른 캐릭터들과 비교했을 때 눈에 확 띄는 캐릭터가 하나 있다.
황금빛의 휘황찬란한 장비들을 착용한 캐릭터는 누가 봐도 돈 좀 썼겠다 싶을 것이다.
실제로 돈을 쓰긴 썼다.
액수는 구체적으로 말하긴 좀 그렇고....
다만, 억 소리가 여러번 절로 나올 정도로 큰 금액이라는 건 말 할 수 있었다.
그의 친구들도 그런 유준을 별종 보듯이 봤다.
그중엔 아예 욕지거리를 내뱉는 녀석도 있었다.
당연한 반응이다.
이해한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그는 그 정도로 이 신들의 전쟁이라는게임에 빠져 있었다.
그간 쓴 돈이 아깝지 않을 정도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이 신들의 전쟁이라는게임은 유저 수가 극히 적었다.
서버가 오픈되었을 때도 유저가 많지는 않았지만, 가면 갈수록 유저의 수는 줄어들기만 했다.
그리고 4년 가까이 지난 지금.
동시 접속자의 수는 10명도 채 되지 않았다.
게임에 접속하자, 황금색의 장비들로 무장한 캐릭터가 광장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유준은 친구 창을 열어 목록을 확인한 후 키보드를 두드렸다.
—무과금즐겜러 : 이제 일어남. 어제 너무 달린 듯.
채팅 창에 유준의 글이 올라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글 하나가 더 올라왔다.
—핑크핑꾸토끼 : 어서 와요〜
-무과금즐겜러 : 다들 그동안 뭐 하고 있었어요?
—핑크핑꾸토끼 : 우리끼리 모여서 뭐 할 게 있나요? 그냥 수다나 떨고 있었죠.
-홍대패플조솁 : 오, 무과금 님 왔네요? 근데 어제 접는다고 하지 않았어요? 맨날 말만 그러고 하루 도 빠지는 날이 없네.
-무과금즐겜러 : 그건 님도 마찬가지잖슴.
-홍대패플조솁 : ㅇㅈ 근데 지금까지 키운게 아까워서라도 접을 수가 없죠.
홍대패플조솁.
풀 접속을 유지하는 신기한 유저.
그냥 게임만 켜 놓고 보통 딴짓을 하는 거 같지만, 접속해 있는 시간만 따지면 단연 1등이었다.
물론 다른 유저들도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다들 일은 안 하나?'
저들의 실제 직업은 유준도 잘 몰랐다.
꽤 오랜 시간을 알고 지냈지만, 그들은 여태 적당한 선을 유지하면서 친목을 다져 왔다.
—조선제일검 : 오, 자네 왔는가? 시간을 보니... 일어나자마자 바로 온 모양이군.
— 무과금즐겜러 : ㅇㅇ
조선제일검이라는 유저는 극한의 콘셉트러다.
그는 한 번도 저 말투의 채팅을 벗어난 적이 없었다.
나이가 좀 있다고 들었는데 어떻 게 보면 대단하다.
그런데 실제로도 저렇게 말하고 다닐까?
— 나만고양이 없어 : ㅎㅇ
— 무과금즐겜 러 : ㅎㅇ ㅎㅇ
이번엔 나만고양이없어가 광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나만고양이없어는 유준과 가장 친하다고 할 수 있는 유저다.
그와는 레이드를 가거나 사냥할 때 항상 같이 다녔다.
마음이 맞는 것도 있지만, 유준은 그와 파티 사냥을 할 때 유독 합이 잘 맞았다.
'나만고양이없어'는 그만큼 게임 컨트롤이 좋았다.
—홍대패플조솁 : 그나저나 우리 이제 뭐 함?
—핑크핑꾸토끼 :심심하면 밀린 레이드 숙제도 좀 하죠. 그런데 일단 지금은 하기가 싫긴 하네.
-홍대패플조솁 :아. 레이드 숙제.... 이거 땜에 유저들 다 떠난 거라니까. 숙제 주제에 난이도는 또 더럽게 높고.
-무과금즐겜러 : 떠났다고 하기엔 애초에 이 게임 인기가 없었음
—홍대패플조솁 : 아 맞다ㅋㅋㅋㅋ
—조선제일검 : 이 게임은 서버 가 열린 첫날부터 구닥다리였지. 운영도 개판이었고 말이네
—홍대패플조솁 : 게임 밸런스도 겁나 이상하고요. 첨엔 뭔 이런 게임이 다 있나 했음
—핑크핑꾸토끼 : 아닠ㅋㅋ 다들 그러면서 아직까지 안 접고 남아 있는 거 무엇?
—홍대패플조솁 : ㅋㅋㅋㅋㅋ
—무과금즐겜러 : ㅋㅋㅋㅋㅋㅋㅋ
-홍대패플조솁 : 근데 그래서 하는 거죠. 어려워야 그걸 해냈을 때의 쾌감도 크니까.
— 무과금즐겜러 : ㅇㅈ 게임이 쉬웠으면 진작 접었음.
-핑크핑꾸토끼 : 솔직히 무과금 즐겜러 님 정도면 안 접는 거 인정 함. 글케 키운 캐릭이면 나 같아도 억울해서 못 접음요.
—무과금즐겜러 : ㅎㅎ
—조선제일검 : 아, 맞다. 즐겜러 자네. 비트코인인가 뭐시기로 떼돈을 벌었다는 소문이 있는데 사실인가?
-무과금즐겜러 : 맞음.
—핑크핑꾸토끼 : 조선제일검 님. 몰랐어요? 우린 이미 다 알고 있었는데.
—조선제일검 : 어디서 듣긴 들었는데... 당연히 거짓말이라고 생각했었네. 솔직히 이런 망한 게임에 몇억을 지를 사람이 있다고는 생각 못 했으니까. 내가 결투장에 서 계속 지는 이유가 있었구만.
—핑크핑꾸토끼 : 거거아저씨. 무과금즐겜러 님한테 대전으로 이길 생각 하지 마세요거거거거 괜히 쓸데없이 명예 점수만 내려감. 닉만 무과금이지 완전 사기꾼이야.
—무과금즐겜러 : 너무 그러지 마세요. 전 마음만은 무과금입니다.
—핑크핑꾸토끼 : ??? 님? 양심 어디 감?
-무과금즐겜러 : 그나저나 핑크 핑꾸토끼 님은 부캐 키우신다면서요?
-핑크핑꾸토끼 : 넵. 불마법사 키워 보고 싶어서요. 화력으로 몬 스터 쓸어버리는 재미 좀 느껴 보 게요.
-무과금즐겜러 : 그 재미. 마법사만 느낄 수 있는 거 아닙니다. 검사인 제가 잘 알죠.
—핑크핑꾸토끼 : 어우 재수 없어.
—무과금즐겜러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들이 여느 때와 같이 대화를 나누던 그때였다.
화면에 정중앙에 빨간 메시지가 나타나 자리 잡았다.
[관리자(네르) : 유저 여러분. 처음 뵙겠습니다. 잠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떠들썩하던 광장이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유준의 입가에 머물러 있던 웃음기도 싹 사라졌다.
[관리자(네르) : '신들의 전쟁'이 공모전에 당선되었습니다. 다 여러분 덕분입니다.]
보통이었으면 운영자가 나타났다는 사실에 채팅 창이 빠르게 올라 가야 했다.
채팅 창이 조용했다.
다들 상황 파악하기에 여념이 없는 것으로 보였다.
운영자가 등장한 것은 이번이 처 음이었다.
-홍대패플조솁 : 진짜 운영자 맞아요?
[관리자(네르): 맞습니다.]
-핑크핑꾸토끼 : 혹시 서버 곧 닫아요? 아니죠? 계속 운영하는 거죠?
[관리자(네르) : 핑크핑꾸토끼 님. 정말 죄송하지만 서버는 곧 닫 힐 예정입니다.]
운영자의 글에 광장이 잠시 침묵에 잠겼다.
그러다 채팅이 주르륵 올라오기 시작했다.
— 홍대패플조솁 : ㄷㄷ
—핑크핑꾸토끼 : 헐
-조선제일검 : 허무맹랑하고 황 당무계한 소리구려. 갑자기 서버를 닫는다니.
서버가 닫힌다는 말에 모두가 당 황한 듯 보였다.
채팅만 봐도 유저들의 그러한 감 정이 여실히 느껴졌다.
—홍대패플조솁 : 나야 그렇다 쳐도 무과금즐겜러 님은 어떻게 되
는 거지. 돈 엄청 많이 쓰셨는데. 이 게임 거의 혼자 먹여 살리지 않 으셨나. 억울하겠다....
—무과금즐겜러 : ....
[관리자(네르) : 그 점에 대해선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유료 콘텐츠를 구매해 주신 분께는 그에 걸맞은 보상이 주어질 것입니다. 지금까지 신들의 전쟁을 즐겨 주신 유저분들께도 합당한 보상을 드리겠습니다.]
그 말을 남긴 운영자 캐릭터가 사라졌다.
광장이 오늘따라 유난히 공허해 보였다.
유준은 멍하니 화면만을 바라봤다.
인기가 없거나 돈이 안 되는게임이 서비스 종료되는 것.
망겜이 밟는 당연한 수순이다.
그러나 유준에겐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였다.
그의 표정은 한 가지로 딱 정의 할 수 없었다.
놀람, 짜증, 분노, 아쉬움.
그 모든 것이 뒤섞인 듯한 표정이었다.
그때 채팅 로그가 갱신되었다.
—조선제일검 : 이보게. 운영자. 보상이라니. 어떤 보상을 말하는 건가? 게임이 서비스 종료되는데 보상이 무슨 의미가 있는 거지?
[SYSTEM : 곧 서버가 닫힙니다.]
[SYSTEM : 5분 후에 서버가 닫힙니다.]
[SYSTEM : 4분 55초 후에 서버가 닫힙니다.]
조선제일검의 질문이 무색하게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핑크핑꾸토끼 : 운영도 개떡같이 하더니... 갑자기 서버를 닫아 버리네. 이거 실화야?
-홍대패플조솁 : 지금까지 잘 버틴 거죠. 동접 인원만 보면 진작 서버 닫았을 게임이긴 하니까요.
— 나만고양이 없어 : ????
—홍대패플조솁 : 고양이 님 잠 수하다가 이제 오셨나 보네. 곧 서버 닫힌대요.
—핑크핑꾸토끼 : 아니 도대체 뭘로 보상한다는 거야? 얘기는 해 주고 가야지?
[SYSTEM : 3분 40초 후에 서버가 닫힙니다.]
시간은속하게 멈추지 않고 계속 흘러갔다.
주어진 시간이 줄어들수록 유준의 속도 타들어 갔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어차피 서비스 종료할 게임이다.
끝이 정해져 있었지.
그게 앞당겨졌을 뿐이다.
아주 낙담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자신이 살아오면서 했던 게임 중에 가장 애정을 많이 쏟아부은 게임.
신들의 전쟁.
이 게임을 할 수 없다는 건 분명 슬픈 사실이다.
그러나 알피지 게임이 인생의 전 부는 아니다.
[SYSTEM : 30초 후에 서버가 닫힙니다.]
30초가 남았다.
정말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유준은 눈을 질끈 감았다.
적지 않은 시간이 흐르고,
마음의 정리를 한 유준은 천천히
눈을 떴다.
' 응?'
유준이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화면을 바라봤다.
무과금즐겜러 캐릭터가 광장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다른 유저들은 어디 갔지?
혹시 서버가 종료된다고해서 미 리 로그아웃이라도 한 걸까.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리를 혼잡하게 만들었다.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고 있는데 광장의 분수 옆에 캐릭터 하나가 더 나타났다.
하얀 피부에은색 머리를 가진 여성 캐릭터였다.
"누구지?"
유준이 '신들의 전쟁'을 하면서 한 번도 못 봤던 유저다.
정확히 말하면 유저가 아니었다.
캐릭터명에 '네르'라고 두 글자가 떡 적혀 있었다.
'운영자?'
새로이 모습을 드러낸 건 운영자 캐릭터였다.
유준이 황급히 키보드 자판을 두드렸다.
—무과금즐겜러 : 운영자님 맞아요? 왜 서버 종료 안 됨?
유준이 질문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채팅 로그가 새로 생겼다.
—네르 : 무과금즐겜러 님께는 직접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무과금즐겜러 : 감사 인사요?
—네르 :네. 제가 만든 이 세계에 아낌없이 후원을 해 주셨잖아요.
유준히 잠시 멈칫했다.
운영자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후원이라면 혹시 과금을 말하는 건가?
—무과금즐겜러 : 후원? 제가 여 기다 돈 지른 거요?
—네르 : 맞습니다.
— 무과금즐겜러 : ㄷㄷㄷ
후원 아니, 과금을 많이 하긴 했다.
그가 신들의 전쟁에 쓴 돈으로 웬만한 상가 건물 하나는 살 수 있을 정도니까.
—네르 : 무과금즐겜러 님이 후 원해 주신 덕분에 제 작품이 공모 전 참가 최소 자격을 갖출 수 있었습니다.
공모전이라고?
유준이 바쁘게 손을 움직였다.
—무과금즐겜러 : 아... 그래요? 근데 공모전은 무슨 공모전을 말하는 거예요? 지금 인터넷에 검 색해 보니까 게임 공모전 같은 건 안 나오던데.
채팅을 읽은 운영자는 침묵했다.
정적이 길어 유준이 다시 채팅을 치려는 순간이었다.
—네르 : 무과금즐겜러 님. 그것 과 관련해서 보상, 즉 특전을 드릴
생각입니다.
-무과금즐겜러 : 서버가 닫히는데 보상이 의미가 있긴 해요?
운영자 네르는 대답하지 않고 웃는 이모티콘만을 사용했다.
묘하게 기분이 나빴다.
'아니 게임이 닫히는데 보상이고 특전이고 뭐가 중요하지?'
설마신들의 전쟁 2가 나오기라도 하는 건가.
문득 떠오른 추측이지만 어느 정 도 일리가 있었다.
—무과금즐겜러 : 제 특전이 뭔 데요?
-네르 : 그것도 지금 당장은 말 씀드릴 수 없습니다.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운영자는 떠나지 않았다.
—네르 : 아, 한 가지만 더 말씀 드리겠습니다. 무과금즐겜러 님에게 앞으로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 의심 하려 들지 마세요. 그저 상황에 순
응하고 받아들이세요. 그게 생존에 더 도움이 될 겁니다.
운영자의 채팅을 마지막으로 '신 들의 전쟁'에서 강제로 로그아웃되었다.
'신들의 전쟁'의 초원 배경.
항상 듣던 배경음이 오늘따라 아 련했다.
"...끝이야? 왜 이렇게 쿨해?"
차기 게임 개발작이 뭔지 정도는 알려 줘도 되는 거 아닌가.
보상은 또 무슨 방식으로 주는지도 안 알려 줬다.
게다가 마지막에 의미심장한 글은 또 뭐고.
"괜히 찝찝하네."
유준이 푸념을 하면서 의자에서 몸을 일으킨 그때였다.
[변화가 시작됩니다. 곧 다가올 충격에 대비하여 주십시오.]
반투명한 홀로그램 창 하나가 바로 앞에 생겨났다.
"뭐야, 이건?"
앞에 떠오른 내용을 읽는데 불현 듯 현기증이 일었다.
아찔하다는 표현이 정확할까.
시야가 흐릿해졌다.
모자이크.
작은 점들이 순식간에 불어나며 온 세상을 덮는 것 같았다.
곧 엄청난 충격이유준의 머리를 강타했다.
"아악!"
['????'에게 특전을 선물 받았습니다.]
['무과금즐겜러' 캐릭터의 인벤토리를 획득합니다.]
[인벤토리를 영혼 결속, 동기화합니다.]
[동기화까지 남은 시간 총 5년 8 일 5시간 32분.]
"으으.."
눈앞에 홀로그램 창이 나타났지만, 시야가 흐려진 탓에 그 내용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는 계속된 고통에 이내 정신을 잃고 말았다.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1권 2화
2 화
지구와는 다른 차원에 있는 신계 의, 하급 신들이 머무는 '오르테안 궁전'.
그곳에는 여러 명의 신이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네르. 진짜 비결이 뭐야?"
"고위급 신들도 이번 공모전에 많이 참여했다고 들었는데.... 진짜 대단하다."
"네르는 빽도 없지 않아?"
"그럴걸. 뒷배경없이 당선돼서 더 대단한 거지."
동료 신들의 호들갑을 본 7급 신 네르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원래 그녀는 10급에 불과한 말단 하급 신이었다.
그러나 신계에서 연 최대 규모 공모전에서 당선되었다.
하나의 가상 세계를 만들어 '전장'에 적합한 장소를 선정하는 공모전이었다.
그녀는 놀랍게도 수백 명의 경쟁자를 제치고 1등을 차지했다.
그로 인해 직급도 한 번에 몇 단계나 올라갔다.
'무과금즐겜러... 본명이 신유준이었나?'
네르가 만든 '신들의 전쟁'은 유저가 적고 유료 아이템 구매 조건 이 충족되지 않았다.
공모전 참가 자격에 부합되지 않는 작품인 것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거의 자포자기 하고 있던 상태였다.
'그런데 희망이 찾아왔지.'
'무과금즐겜러' 유저가 2주 전에
수천 개가 넘는 한정판 아이템을 혼자 다 구매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본래 기준에 부합되지 않던 자신의 작품이 가까스로 그 기준에 턱 걸이되었다.
결국, 네르가 만든 '신들의 전쟁'은 수많은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당 선되는 기염을 토해 냈다.
'신유준. 아주 복덩이야.'
그때문에 네르의 입가에서 웃음 이 끊이질 않았다.
그의 인적 사항을 살펴본 결과, 집이 부유한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천애 고아였다.
예전에 사 뒀던 가상 화폐의 가치가 오르면서 비교적 최근 졸부가 됐을 뿐.
그때문에 돈을 함부로 쓴 게 아닐까.
네르는 그렇게 생각했다.
'뭐, 덕분에 내가 이득을 봤으니까.'
절대로 부정이 개입할 수 없는 신계 최대의 공모전의 1등 대상.
'내 능력이 뛰어나서 당선된 거 긴 하지만, 결국 그가 없었으면 애
초에 공모전에 제출도 못했을 거야.'
신유준에게는 아주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무과금즐겜러에게 아주 특별한 보상을 주었다.
'특별한 걸 넘어 과분한 보상이지.'
네르가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지구에 대격변이 일어난 지금, 그 특전은 그에게 아주 큰 힘이 될 것이다.
몸이 굳은 느낌이다.
어째 몸이 쉽사리 움직여지지 않는다.
유준은 슬며시 눈꺼풀만들어 올렸다.
"응?"
항상 보던 방 안이 아닌 낯선 환경이유준을 반겼다.
울창한 숲속 빽빽이 솟아오른 나 무들.
그로 인해 하늘이 가려져 해가 뜬 대낮임에도 주위가 밝지 않았다.
유준이 어안이 벙벙해서 주위를 둘러보는 그때였다.
[동기화가 완료되었습니다.]
[인벤토리가 완전히 전이되었습니다.]
[두 번째 특전을 받습니다.]
[특성 '평정심'을 획득합니다.]
[스테이터스 창을 확인하여 주십시오.]
"이거...
정신을 잃기 전에 방에서 봤던 것과 비슷한 글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신들의 전 쟁'에 나오는 시스템 인터페이스랑 완전히 똑같다.
' 꿈인가?'
게임이 서비스 종료된다는 충격 적인 사실에 이런 이상한 꿈을 꾸고 있는게 틀림없다.
'서버 종료가 그 정도 충격이었나.'
헛웃음을 지으며 주변을 둘러보 던 유준이 눈을 크게 떴다.
"어?"
숲의 구조가 왠지 눈에 익었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워서 제대로 보지 못했다.
분명 어디선가 봤던 풍경이다.
'여기... 튜토리얼 숲 아니야?'
튜토리얼 숲.
처음 캐릭터를 만들고 게임에 접 속하면 나오는 배경.
그래픽으로 봤던 것이라 처음엔 헷갈렸지만, 다시 보니 확실해졌다.
'게임에 너무 빠져 살았나?'
유준이 손등을 세게 꼬집어 봤다.
' 아파.'
고통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꿈이어야 정상인 상황이지만, 아무래도 꿈은 아닌 듯하다.
유준은 홀로그램 창을 다시 살폈다.
'두 개의 특전.... 운영자가 나 한테 특전을 준다고 했던 거 같긴
한데. 설마 이걸 말하는 건가?'
더 유심히 살펴봤다.
동기화가 완료되었다는 내용.
인벤토리가 전이되고,
두 번째 특전으로 특성도 얻었다 고 한다.
"잠깐. 잠깐. 후우."
유준이 심호흡을 했다.
지금 이 상황이 '신들의 전쟁'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라면 스테이터 스도 존재할 확률이 높았다.
실제로 눈앞에 떠 있는 홀로그램에서는 스테이터스 창을 확인해 달
라고 했었다.
그런데 어떻게?
마우스가 있는 것도 아니고 단축키를 누를 키보드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럴 땐 정석으로 가면 된다.
유준은 속으로 스테이터스를 여는 것을 강하게 염원했다.
[Player. 신유준]
□ 레벨: 1
□ 특성 : 평정심(S)
□ 스킬 : 없음
□ 칭호 : 전설의 아이템 수집가 (전설) - 착용한 아이템의 효과 15% 증가
□ 능력치
[근력 5] [민첩 5]
[체력 5] [마력 5]
[미분배 포인트 : 0]
놀랍게도 유준의 눈앞에 익숙한 형태의 스테이터스 창이 나타났다.
그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스테이터스 창이 나타났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S급 특성과 전설 칭호가 떡하니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었다.
'레벨 1인데?'
특성이야 그렇다 쳐도, 전설 칭 호는 500레벨이었던 그조차도 몇 개 없을 정도로 얻기가 힘들었다.
'애초에 내가 가지고 있던 칭호 잖아?'
전설의 아이템 수집가.
무과금즐겜러 캐릭터에 있던 칭호였다.
하도 심심해서 온갖 희귀한 아이템들을 모으고 다녔더니 어느 날 생긴 칭호.
짜악!
꿈이 아닌 걸 알지만, 볼을 세게 한 번 더쳤다.
얼굴이 화끈화끈했다.
예전에 막연하게 이러한 상황을 원했던 적이 있긴 한데.
예를 들면, 신들의 전쟁 같은 게임에 직접 들어가서 체험해 보고 싶다든가.
그런데 그 망상이 실제로 일어날 줄은 몰랐다.
"잠깐."
그렇다면 인벤토리가 전이됐다는 말도 그걸 의미하는 건가?
괜히 아이템 수집가 칭호가 스테이터스 창에 있을 리가 없다.
유준은 아까 스테이터스 창을 열었던 것과 같이 인벤토리를 열었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수의 아이템들이 인벤토리에 자리하고 있었다.
다만, 거의 다 빨간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착용 제한에 걸려 지금 당장은 착용할 수 없다는 표시였다.
'하긴 지금 내 레벨이 1이니까...
그는 결론을 내렸다.
현실이 게임처럼 변했다.
지금의 이 상황은 절대 거짓이 아니고.
영문은 모르겠지만, 서버가 닫힌 줄 알았던 신들의 전쟁의 상태창 이 나타났다.
비록 레벨이나 스킬 그리고 칭호들이 초기화되었지만, 인벤토리는 그대로 유지된 모양이다.
'잠깐. 운영자가 마지막에 했던 말... 의심하지 말고 받아들이라고 했지. 그 말이 이런 의미였나?'
평정심 특성 때문인지 유준은 이 비정상적인 상황을 냉철하게 판단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눈앞에 계속 떠 있던 홀로그램 창이 갱신되었다.
[튜토리얼을 시작하기에 앞서 튜토리얼의 난이도를 골라 주십시오.]
[초보자 / 중급자 / 숙련자 / 전문가 / 지옥]
난이도 설정이 나왔다.
이것 또한 익숙하다.
'신들의 전쟁'은 튜토리얼답지 않 게 난이도 설정이 있다.
유준은 무과금즐겜러가 아닌 새 로운 캐릭터를 만들어서 계속 튜토 리얼을 도전했었다.
초보자를 제외한 중급자, 숙련자,
전문가, 지옥.
이 중에 전문가까지는 클리어한 경험이 있다.
그러나 지옥 난이도는 이름값을해서 튜토리얼의 초입 부분도 넘기 기 힘들었다.
연이은 도전으로 중간 부분까지 한번 간 적도 있지만, 그것도 운이 무척 많이 따라 줘서 가능했던 일이다.
'너무 어려웠지...
그뿐만 아니라, 신들의 전쟁을 플레이했던 유저들 중 그 누구도 지옥 난이도를 클리어하지 못했다.
컨트롤이 압도적이던 '나만고양 이없어'도 지옥 난이도에서 좌절을 맛봤다.
'전문가 난이도만 클리어하더라도 보상이 장난 아닌데.'
난이도가 한 단계 오를 때마다 주어지는 보상이 천차만별인 걸 생각하면....
지옥 난이도를 클리어했을 때의 보상은 상상을 초월하리라.
하지만 이번에는 목숨이 걸려 있다.
어떻게 된 상황인지 모르겠지만, 몸을 직접 움직여서 튜토리얼을 해
야 한다.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
' 어쩌지?'
원래였으면 고민할 것도없이 초 보자 난이도로 튜토리얼을 시작했을 터.
그러나 지금 그에겐 그때와는 차 별되는 특전, 아이템이 있었다.
'생각 좀 해 보자.'
인벤토리를 열어 아이템을 살폈다.
'진짜 어마어마하게 많네. 내가 아이템을 이 정도나 쌓아 뒀었나?'
어떻게 구했는지 기억도 안 나는 것들도 있을 정도.
'찾았다.'
인벤토리를 쭉 둘러보던 유준이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이게 있었지.'
네 개나 되는 아이템.
그것들을 꺼내 일일이 정보를 확 인했다.
[슈퍼 노비스 소드]
착용 제한 : Lv. 5 이하
등급 : 전설
공격력 : 512
옵션 : 파손되지 않습니다.
[슈퍼 노비스 풀 아머]
착용 제한 : Lv. 5 이하
등급 : 전설
방어력 : 450
옵션 : 파손되지 않습니다.
[슈퍼 노비스 슈즈]
착용 제한 : Lv. 5 이하
등급 : 전설
방어력 : 110
옵션 : 파손되지 않습니다. 민첩+10
[슈퍼 노비스 글로브]
착용 제한 : Lv. 5 이하
등급 : 전설
방어력 : 100
옵션 : 파손되지 않습니다. 근력+10
- 세트 효과 -
2세트 : 공격 시 50% 확률로 치명타 발생
4세트 : 공격력과 방어력 각각 200 증가
슈퍼 노비스 세트.
5레벨 이하여야만 착용할 수 있는 조건부 아이템이다.
'신들의 전쟁'에서 두 번째로 높은 전설 등급.
보면 알겠지만, 공격력과 방어력 도 1레벨이 착용하는 아이템이라기
엔 말이 안 되는 수준이었다.
특히 세트 아이템 효과가 미쳤다 고 볼 수 있었다.
치명타 확률의 증가.
이건 웬만한 고레벨 아이템에서도 안 붙는 옵션이었다.
슈퍼 노비스 세트의 단점이라면 거래 불가능하다는 것 정도다.
'이 아이템들만 있으면 지옥 난이도도 클리어할 수 있지 않을까?'
유준이 자신감을 얻었다.
슈퍼 노비스 세트는 그 정도로 규격 외의 아이템이었다.
'지옥 난이도로 가자.'
불안한 감이 아예 없다고 하면 거짓이다.
그러나 유준은 아이템을 믿었다.
'신들의 전쟁'은 아이템으로 시작해서 아이템으로 끝난다고 해도 과 언이 아닌 게임이었다.
슈퍼 노비스 세트 아이템은 유준에게 어느 정도 일리 있는 자신감을 불어 넣어 줬다.
'그런데 이걸 진짜로 쓰게 될 날이 올 줄이야.'
슈퍼 노비스는 계륵과도 같은 아이템이었다.
이미 레벨이 높아져서 착용할 수 없는데다가 거래 불가라는 조건이 붙었다.
'쓸 수는 없고... 버리기엔 아까운 아이템이었지.'
마음을 단단히 먹은 유준이 지옥 난이도를 선택했다.
그러자, 홀로그램 창이 흩어졌다가 다시 나타났다.
[정말로지옥 난이도를 선택하시겠습니까?]
" 뭐야?"
원래 저런 건 없었다.
지옥 난이도를 선택하면 바로 튜토리얼이 시작되었었는데.
'이번에 새로 바뀌었나?'
이쯤 되니 운영자의 정체가 궁금 해진다.
그동안 유저와의 소통이 전혀 없어서 이상하게 생각하긴 했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타났을 때 또한 의미심장한 말을 했었고.
'진짜 신이라도 되는 건가?'
실없는 생각을 한 유준은 피식 웃었다.
일단 튜토리얼을 성공적으로 클 리어하는 것.
그것이제일 우선이었다.
슈퍼 노비스 세트를 전부 착용했다.
풀 아머를 걸친 만큼 몸이 무거 워져야 하지만, 아이템 옵션으로 근력과 민첩이 오르면서 되레 몸이 가벼워졌다.
준비를 마친 유준은 재차 지옥 난이도를 선택했다.
[난이도 '지옥' 튜토리얼이 곧 시작됩니다.]
[무기를 골라 주십시오.]
'아. 무기를 고르는게 있었지.'
그의 눈앞에 다섯 종류의 무기가 쭉 나열되어 허공에 떠올랐다.
검, 도끼, 쇠몽둥이, 창, 화살과 세트인 활까지.
튜토리얼에서 기본 지급되는 무 기들이다.
옵션을 살펴보니 전과 달라진 점
이 없었다.
'지금은 딱히 무기가 필요 없는데?'
그에게는 슈퍼 노비스 소드가 있었다.
1레벨이 사용하기엔 과분한 검.
그렇기에 튜토리얼에서 주어지는 무기들이 전혀 쓸모가 없었다.
그리고 5레벨이 되면 바꿔 낄 아이템도 있기에 튜토리얼 무기는 오 히려 짐만 된다.
인벤토리의 공간이 무한하다지만, 이런 잡템이 한 자리를 차지하는 건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그가 한동안 무기를 고르지 않고 서 있자, 시스템 창의 내용이 변하기 시작했다.
먼지처럼 흩어졌다가 이리저리 움직이던 미세한 입자들이 형태를 이뤘다.
[무기를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지옥 난이도 튜토리얼 클리어 보상이 대폭 증가합니다.]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1권 3화
3 화
' 응?'
보상이 증가한다고?
무기를 고르지 않았다는 것만으로?
이건 그가 몰랐던 사실이다.
애초에 지옥 난이도에서 무기를 고르지 않는 건 미친 짓이었다.
지금이야 슈퍼 노비스 세트가 있으니 고르지 않은 것이지만....
'나야 좋지.'
알아서 보상을 퍼 준다는데 싫어 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뜻밖의 행운에 유준이 히죽 웃었다.
[튜토리얼이 시작됩니다.]
[숲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시간이 지체될 경우 불이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드디어 시작이다.
지옥 난이도 튜토리얼.
떨려야 함에도 이상하리만치 침 착했다.
'평정심 특성 때문인가?'
어쩌면 지금의 그에게 가장 도움 이 되는 건 이 특성이 아닐까.
'좋아. 이걸 게임이라고 생각하 자. 거기다 난 이미 지옥 난이도를 경험해 봤으니까.'
유준은 망설이지 않고 달리기 시작했다.
철컥. 철컥.
풀 아머가 흔들렸다.
그러나 전혀 거슬리거나 불편하지가 않았다.
오히려 일상복을 착용한 것과 같이 아주 편했다.
지옥 난이도를 선택하면 이곳은 지체 않고 통과하는게 좋았다.
끝도없이 밀려드는 굶주린 늑대들을 상대하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벌써 따라붙었네.'
늑대들이 울부짖는 소리가 여기 저기서 들려왔다.
늑대의 수는 수십은 가뿐하게 넘을 것이다.
유준은 앞만 보고 달렸다.
그렇게 꽤 오랜 시간을 질주했다.
플레이어가 된 탓일까.
금방 지치지도 않았다.
우우우.
하울링 소리가 커졌다.
늑대들이 근처까지 왔다는 소리다.
타닥. 타닥.
뒤에서 빠른 속도로 쇄도하는 늑 대들.
슬쩍 뒤를 돌아 거리를 잰 유준은 질주를 멈추지 않았다.
"크르릉...
"컹! 크엉!"
늑대 특유의 짖는 소리와 함께 서너 마리가 한 번에 유준의 등 뒤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등에 쭈뼛 닭살이 돋는다.
유준은 그 타이밍에 맞춰 뒤로 돌았다.
검을 휘둘렀다.
맨 앞에 있던 늑대의 옆구리가 검에 깊게 베였다.
'좋았어!'
늑대가 멀리 튕겨 나갔다.
그러나 늑대는 한 마리가 아니었다.
두 마리의 늑대가 더 남아 있었다.
한 늑대가 유준을 향해 이빨을들이밀고 다른 한 늑대는 달려오는 그대로들이받았다.
그가 자기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은 그 순간,
까앙!
쇠를 두드린 듯한 소리가 숲속에
울려 퍼졌다.
"크앙!"
몸통 박치기를 한 늑대가 되레 튕겨 나간 것이다.
전설 등급 방어구의 힘이었다.
' 멀쩡해.'
유준은 자신의 몸에 아무런 이상 이 없음을 깨닫고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다른 늑대도 상황이 별반 다르지 않았다.
있는 힘껏 유준의 목 쪽을 깨문
늑대의 이빨이 산산이 부서졌다.
'다행이다.... 방어력이 적용되는구나.'
거기다 풀 아머를 장착했기에 맨 살이 노출되는 부위가 거의 없었다.
유준은 늑대들에게 다가가 마구 잡이로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촤악! 촥!
검이 닿는 대로 늑대들의 몸이 그대로 썰려 나갔다.
전설 등급 검이 가진 뛰어난 절삭력.
늑대들이 버텨 낼 재간이 없었다.
그렇게 순식간에 세 마리를 처치 했다.
유준은 얼떨떨한 표정을 짓다가 황급히 땅을 박찼다.
'이곳은 빨리 벗어나야 한다.'
1구역은 늦으면 늦을수록 난이도가 어려워진다.
시간을 끌어서 좋을 것이 없었다.
'그나저나... 첫 전투인데도 긴 장되지 않았어.은근히 잘 싸운 것 같기도 하고.'
무기와 방어구의 성능이 좋은 것도 이유긴 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특성 '평정심' 의 효과가 상당했다.
첫 전투인데도 불구하고 흥분하지 않고 침착하게 늑대들을 상대했다.
솔직히 말이 안 되는 일이다.
'평정심을 얻은 건 진짜 운이 좋다고 할 수밖에 없네.'
그 뒤로도 늑대들 무리가 쉴 틈없이유준의 목숨을 노렸다.
그러나 그의 막강한 공격력과 방
어력 앞에서는 늑대들의 협동 공격 이 소용이 없었다.
게다가 슈퍼 노비스 세트 옵션에 붙은 치명타가 터질 때면.
얕게 베었음에도 갑자기 늑대가 빈사 상태에 빠지곤 했다.
'진짜 게임 같아.'
그러나 늑대들의 사체가 너무 리 얼해서 게임 같다는 생각은 바로 접었다.
유준은 어느 지점에서 딱 멈춰 섰다.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주변을 둘 러봤다.
'제대로 찾아왔네.'
음산한 분위기의 공동묘지.
지옥 난이도 튜토리얼은 이 공동 묘지가 관건이었다.
그를 비롯한 유저들은 항상 여기 구간에서 발목을 붙잡혔다.
[2구역에 도달하셨습니다.]
[이곳 어딘가에 황금 열쇠가 있습니다. 열쇠를 찾으십시오.]
여기까지는 좋다.
그러나 단순히 열쇠만 찾는 것이었으면 지옥 난이도일 리가 없다.
여기 곳곳에서 이제 언데드 몬스터가 등장한다.
머리를 부수지 않으면 끊임없이 되살아나는 언데드 몬스터.
그게 수백 마리다.
평범한 1레벨 유저가 어떻게 감 당할 수가 없는 것이다.
튜토리얼 중에는 레벨이 오르지 않았다.
언데드 몬스터를 사냥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는 뜻.
심지어 열쇠의 위치는 매번 튜토 리얼 때마다 바뀐다.
열쇠가 나오는 위치를 미리 외워 놓았다가 찾아오는 것이 불가능했다.
'뭐, 아예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
언데드들은 아까 상대했던 늑대 들보다는 훨씬 느리다.
빨라 봐야 평범한 성인 남성보다 조금 빠른 정도.
그 말은 즉, 언데드 몬스터들이 아이템 효과로 근력과 민첩이 10씩 증가한 그를 속도로 따라잡을 수
없다는 뜻이었다.
그렇기에 망설임없이 지옥 난이 도에 도전한 것이기도 했다.
"그어어어...
좀비와 스켈레톤들.
놈들이 나타났다.
이 넓은 공동묘지의 4분지 1을 채울 만큼 무척 많은 수였다.
유준은 이제 이 끔찍하게 생긴 괴물들과 죽음의 술래잡기를 해야 한다.
열쇠, 보물찾기를 하는 것도 잊
어선 안 됐다.
'1레벨 캐릭터로는 도저히 놈들을 떨쳐 낼 수 없었는데.'
언데드 몬스터가 방향 전환이 느 리다는 걸 이용해서 어떻게든 따돌 린다고 해도.
놈들의 수는 백이 넘는다.
지옥 난이도가 왜 지옥 난이도이겠는가.
지금은 다르다.
한번 뒤를 잡힌다고해서 목숨을 잃지는 않을 테니까.
'오히려 내가 놈들을 사냥할 수
도 있지.'
유준은 기이한 소리를 내며 다가 오던 좀비의 머리에 검을 꽂아 넣었다.
푸욱!
솜뭉치에 바늘을 넣듯 검은 아주 쉽게 좀비의 피부를 뚫었다.
그 공격 한 번으로 좀비의 몸이 허물어졌다.
좀비의 최대 약점은 바로 머리.
그때 근처까지 온 스켈레톤들이 커다란 돌덩이를 던지기 시작했다.
탁! 타악!
앙상한 팔뼈와는 달리 돌에 실린 힘이 상당했다.
그러나 그게 다였다.
유준은 스켈레톤의 돌팔매질에 조그마한 충격도 느끼지 못했다.
그는 돌 투척을 무시하고 달렸다.
첫 번째 모비가 있는 곳.
그곳에 도착한 유준이 뜀박질을 멈췄다.
열쇠를 찾을 때는 정확하고 꼼꼼 하게.
2구역은 그게 핵심이었다.
언데드 몬스터들이 뒤에서 쫓아 오는 상황에 그 누가 꼼꼼하게 열 쇠를 찾을 수 있겠느냐마는.
'일단 내 눈엔 안 보이는데.'
유준이 묘비를 발로 세게 걷어찼다.
쾅
그의 발길질 한 번에 묘비가 완 전히 박살이 나 버렸다.
매의 눈으로 주변을 샅샅이 뒤진 유준은 두 번째 묘비가 있는 곳에 달려가 냅다 발부터 뻗었다.
쾅
흡사 폭탄 터지는 듯한 소리와도 비슷했다.
그 정도로 유준의 발에는 강한 힘이 실려 있었다.
'역시 아이템빨.'
탁. 타닥. 탁!
그 와중에 강하게 날아오는 돌들은 풀 아머에 부딪혀 허무하게 튕 겨 나갔다.
'이건 뭐 만렙 캐릭터로 저렙 사 냥터에 온 기분인데.'
상황만 놓고 보면 마냥 틀린 말 도 아니었다.
"그어어...
"그억!"
이번엔 좀비들이다.
유준은 뒤로 돌아 강하게 검을 휘둘렀다.
서걱!
검술을 배운 적도 없고 검술에 대한 조예도 전혀 없다.
하지만 검 자체가 가진 절삭력에 좀비들의 목이 깔끔하게 잘려 나갔다.
그렇게 검을 휘두르길 수차례.
꽤 많은 수의 좀비를 잡았다.
산 자에 대한 증오감.
언데드들은 끊임없이유준에게 달려들었다.
'슬슬 좀 지치는데...
숲에서 전력 질주한 것이 컸다.
체력을 의식한 유준은 그 뒤로 검을 휘두르는 동작을 최대한 간결 하게 했다.
그런데 좀비와 스켈레톤은 그의 공격 한 번을 버티지 못했다.
'아... 공격력은 충분하니 몸에 힘을 많이 줄 필요가 없겠구나.'
뒤늦게 깨달았다.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이었다.
끔찍한 외형의 괴물들을 상대로 겁나지도 않았다.
평정심.
몸이 원하는 대로 움직여 줬고, 냉철한 상황 판단이 가능했다.
덕분에 언데드들과 싸우다가 허 우적대는 일이 거의 없었다.
'최대한 간결하게. 힘은 빼고.'
슈퍼 노비스 소드의 공격력을 믿 고 손목만 살짝 비틀어 검을 휘둘 렀다.
서걱! 석!
마치 연극이라도 하는 것처럼, 좀비들은 실 끊긴 인형인 양 툭툭 쓰러졌다.
콰앙!
다섯 번째 묘비까지 박살 낸 유준은 주변을 쭉 둘러봤다.
그가 눈을 크게 떴다.
'뭐야? 벌써?'
도처에 깔린 좀비 시체들.
돌을 주워 던지는 스켈레톤의 팔에서도 점점 삐걱대는 소리가 잦아 졌다.
언데드라 지치진 않겠지만, 뼈가
녹슬어 팔이 뚝뚝 부러지는 녀석들 도 있었다.
상황이 좋다.
확인해야 할 묘비가 아직 25개나 남았다.
'일단 열쇠를 찾아야지.'
그는 좀비들을 검으로 베고 지나 치면서 묘비를 순서대로 파괴하기 시작했다.
다섯이나 되는 좀비들이 한 번에 달려들어 유준의 발목이나 어깨에 매달렸다.
풀 아머를 깨물며 더러운 침을 묻혔다.
좀비들의 무게가 상당해서 유준의 몸이 잠깐 비틀거렸다.
그러나 유준은 근력 면에서도 좀비들에게 월등히 앞서 있었다.
슈퍼 노비스 글로브에 붙은 근 력 옵션 덕분이었다.
유준은 끈질기게 달라붙는 좀비들을 몸을 거칠게 흔들어 떨쳐 냈다.
그리고 바닥을 구르는 좀비들의 머리에 검을 꽂았다.
푹! 푹!
될 수 있으면 미리 처리해 두는
게 낫다.
좀비들은 아무리 움직여도 지치 질 않으니까 말이다.
'신들의 전쟁'은 매우 리얼리티해서 캐릭터나 몬스터에게도 체력 능력치가 엄격하게 적용되었다.
무리하게 스킬을 사용하거나 움직이면 금방 지쳐서 능력치 효율 이 떨어진다.
게임 난이도를 급격히 끌어올리는데 한몫한 시스템 설정이었다.
그 부분에서 자유로운 건 유일 하게 언데드 몬스터들뿐이었다.
지옥 난이도 2구역을 벗어나기
가 힘든 이유가 되기도 했다.
콰앙!
묘비 하나.
콰앙! 콰앙!
묘비 둘.
묘지에서는 한동안 묘비 부서지는 소리만이 크게 울려 퍼졌다.
그렇게 묘비를 파괴하고 다니던 유준은 18번째 묘비에서 황금 열 쇠를 찾았다.
" 역시...
열쇠는 딱 묘비가 박힌 땅 부근에 있었다.
묘비를 부수는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절대로 찾지 못했으리라.
괜히 지옥 난이도가 아니다.
만약 그에게 전설 등급의 장비가 없었다면.
묘비를 최소 여러번, 많으면 열 번 넘게 묘비를 가격해야 했다.
[공동묘지를 벗어나 숲의 중심 부로 이동하십시오.]
[숲의 지배자 '웨어울프'를 제거 하십시오. 0/1]
열쇠를 손에 쥐자마자 뜬 알림 창이었다.
다음 행선지를 알려 주었다.
황금 열쇠를 인벤토리에 넣은 유준이 몸을 우뚝 세웠다.
원래라면 당장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했지만, 유준은 그러지 않았다.
'여기 있는 놈들 전부 처리하고 가야지.'
전투 감각도 익히고 업적 보상도 극대화시킬 생각이었다.
튜토리얼에는 시간제한이 따로 없었다.
유준이 입꼬리를 올렸다.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1권 4화
4 화
푹!
광채가 남다른 검이 좀비의 미간 사이를 정확히 꿰뚫었다.
좀비가 맥없이 쓰러진다.
"흐억, 헉!"
유준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마지막 좀비까지 처리한 그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 죽겠다."
쉴 틈없이 계속 움직였더니 가슴이 타들어 가는 듯했다.
용케 마지막까지 쓰러지지 않고 버텼다.
사람이 이렇게까지 격렬하게, 오 랫동안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당장 숨이 벅차서 죽을 것 같았지만, 결국 죽지는 않았다.
또 쓰러지지도 않았다.
그의 인내심이 좋은 게 아니다.
그냥 평정심 효과였다.
싸움에 문외한인 유준을 그럴싸
한 수준까지만들어 줬다.
'이것도 업적으로 치환되겠지.'
괜히 남아 있는 몬스터를 처리한 게 아니다.
유준은 오랜 시간을 앉아서 쉬었다.
좀비들의 썩은 내가 사방에서 진 동했지만, 이미 코가 마비된 상태.
그러한 점들은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어느 정도 숨을 돌렸다.
유준은 그제야 풀 아머를 쓱쓱 털고 몸을 일으켰다.
'다시 가 볼까.'
[공동묘지를 벗어나 숲의 중심부 로 이동하십시오.]
[숲의 지배자 '웨어울프'를 제거 하십시오. 0/1]
숲으로 가라는 시스템 메시지는 그의 옆에 사라지지 않고 두둥실 떠 있었다.
목적을 달성하기 전까지는 사라 지지 않는 듯했다.
숲의 중심부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길을 잃을 염려도 없었다.
화살표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걷 기만 하면 됐다.
걷기 시작하는데 다리가 부들부 들 떨렸다.
이건 어쩔 수 없었다.
쉴 새없이 달리고 백이 넘는 좀 비와 스켈레톤을 상대했다.
멀쩡하면 그게 더 이상하다.
플레이어가 되고 전설 등급 아이템을 착용하긴 했어도 완전히 초인 이 된 건 아니었다.
적어도 100레벨은 넘어야 초인 반열에 들지 않을까.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아.'
웨어울프의 무력을 정확히 모른 다는게 살짝 걱정되긴 했다.
" 후우..."
슈퍼 노비스 세트.
그 아이템을 믿었다.
좀비들의 억센 이빨 공격도 거뜬 하게 버텨 내지 않았던가.
슈퍼 노비스 덕분에 그는 여태 상처 하나 입지 않았다.
아직 만나지도 않은 상대에게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었다.
'적어도 1레벨이 어떻게든 상대 할 수 있게는 해 놨겠지.'
유준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무 나 수풀이없이 휑한 공터 하나를 발견했다.
'웨어울프는 어디 있지?'
화살표가 가리키는 방향은 이 공 터가 맞았다.
이곳에 분명히 웨어울프가 있을 텐데.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보여야 할 적이 보이지 않는다.
'설마...'
바닥에 거대한 그림자가 지는 것을 본 유준은 몸을 앞으로 던졌다.
쿵! 후웅!
그가 있던 자리에 웨어울프가 착 지 했다.
놈의 날카로운 손톱이 허공을 가 르고 지나갔다.
평정심.
유준은 살짝 놀랐지만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웨어울프의 모습을 빠르게 살폈다.
'네임드는 아닌가? 그나마 다행 이네.'
웨어울프의 레벨은 55 정도.
보통 레벨 40 정도가 되면 여럿 이 모여서 파티 사냥 하는 몬스터였다.
단일 개체지만, 무력이 동 레벨 대의 몬스터들보다 더 강하다.
한마디로 초보자가 절대 상대할 수 없는 규격 외의 몬스터.
웨어울프가 네임드가 아닌 것이유일하게 안도해야 할 부분이었다.
' 가능할까.'
정확히 가늠하기가 힘들었다.
이렇게 레벨이 낮을 때 웨어울프를 상대해 본 적이 없었다.
이건 게임이 아닌 현실이다.
게임처럼 웨어울프를 상대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미지수였다.
'내가 착용한 전설 장비가 네 개. 레벨 차이가 좀 나긴 하지만...
어차피 지금 그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웨어울프가 누런 침을 질질 흘리 며 그에게로 짓쳐들어왔다.
유준의 검이 대각선의 선을 그으 며 휘둘러졌다.
검이 웨어울프의 손톱과 맞닿는 순간,
서걱!
검은 깔끔하게 웨어울프의 손톱 뿐만 아니라 팔까지 깊숙이 파고들었다.
"크허엉!"
절규에 가까운 괴성이 웨어울프 의 입을 타고 흘러나왔다.
놈의 포효에는 낮은 레벨의 상대에게 몸을 살짝 경직시키는 효과가
있다.
그럼에도 유준은 멀쩡했다.
이번에도 평정심(이의 효과였다.
웨어울프가 빈틈을 내보였다.
포효를 하면서 마력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 순간 유준이 공격을 했다.
검이 웨어울프의 옆구리를 깊게 베고 지나갔다.
원래는 가슴 쪽을 노렸는데, 웨 어울프가 놀라운 반사 신경으로 반 응해 피해 낸 것이었다.
그러나 피해 냈다고 하기에는 상
처가 작지 않았다.
웨어울프의 옆구리에서 시뻘건 선혈이 터져 나왔다.
"크륵!"
깊은 상처가 생겼음에도 웨어울 프는 투지를 잃지 않은 모습이었다.
놈의 허벅지 근육이 부풀어 올랐다.
동시에 웨어울프의 신형이 쏜살 같이 쏘아져 왔다.
매우 날랬다.
유준의 동체 시력으로 좇기 힘든 속도.
미처 대응하기도 전에 웨어울프 가 멀쩡한 팔로 유준의 가슴을 세 게 후려쳤다.
콰앙!
망치로 쇠를 두드리는 듯한 소리 가 숲속 공터에 울려 퍼졌다.
"크르륵...
표정이 잔뜩 일그러진 것은 되레 웨어울프 쪽이었다.
녀석의 앞발은 유준의 슈퍼 노비 스 풀 아머를 뚫지 못했다.
날카로운 손톱이 뭉개졌다.
앞발 또한 본래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러지고 망가졌다. 반면 유준은 살짝 충격만 받았을
뿐이다.
상처는 당연히 없고.
'이게 전설급 아이템의 힘인가.'
긴박한 상황에서도 유준이 감탄했다.
'이 정도면 확실히...
웨어울프의 속도는 빠르지만, 그
공격이 통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내가 이긴다.'
웨어울프에게 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유준이 먼저 움직였다.
놈은 상처를 입은 상태에서도 바로 앞까지 다가온 검을 피했다.
'빨라. 속도로는 내가 안 돼.'
민첩 능력치는 녀석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아니, 어떤 능력치든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나마 녀석이 큰 상처를 입어 오래 버틸 수 없다는게 다행이었다.
' 기다리자.'
게임에서도 자주 사용했던 전투
방식이다.
과금을 많이 한 유준은 항상 상 대방보다 공격력과 방어력이 앞서 있었다.
지금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집중. 놈의 발을 봐야 한다.'
웨어울프가 주위를 맴돌며 기회를 노렸다.
다만, 아까와 같이 섣불리 달려 들지는 못했다.
"크르륵..."
웨어울프의 숨이 시간이 지날수록 거칠어졌다.
상처를 제대로지혈하지 못한 탓 이었다.
타닥!
웨어울프는 더 이상 시간을 지체 했다간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허리를 굽힌 놈이 빠른 속도로 돌진했다.
예의 주시하며 보고 있었지만, 순간적으로 움직임을 놓쳤다.
바로 앞까지 온 웨어울프가 이빨을들이미는 모습이 보였다.
웨어울프가 노리는 걸 파악한 유
준이 황급히 팔을 들었다.
그의 머리를 집어삼키려던 웨어 울프가 갑옷의 팔 부분을 물었다.
카앙! 콰직.
이빨이 상당히 단단한 모양이다.
팔 쪽 금속을 있는 힘껏 깨물었는데도 멀쩡해 보였다.
문제는 웨어울프의 그 깨물기 공 격이 아무런 타격이 없었다는 것.
기회를 잡은 유준이 웨어울프의 머리를 노리고 검을 찔러 넣었다.
푸욱!
살기 가득했던 웨어울프의 눈.
웨어울프의 미간에 검이 파고드는 순간 활활 불타오르던 눈빛이 거짓말처럼 꺼졌다.
" 후우...
그 거대한 몸이 바닥에 쓰러지는 것을 본 유준이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위험했다.'
웨어울프는 좀비나 스켈레톤들과는 달리 움직임이 매우 빠르고 전 투 감각이 살아 있는 상대였다.
이제 막 전투에 눈을 뜬 유준이 상대하기 쉽지가 않았다.
슈퍼 노비스 방어구가 아니었다면,
바닥에 누워 있는 건 웨어울프가 아니라 자신이었으리라.
'아, 칭호도 있었지.'
전설의 아이템 수집가 칭호도 한 몫했다.
전설 아이템을 네 개 착용한 상황에서 아이템 효과를 퍼센트로 증가시키는 칭호.
그 효과는 무슨 말로도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대단했다.
1레벨이 40레벨이 넘는 웨어울프
를 잡은 비결이 바로 그러한 것들이었다.
'그래도 내가 아예 몸치는 아닌 가 보네.'
좀비들을 상대할 때도 그러했고, 웨어울프와 전투할 때 큰 실수를 하거나 하진 않았다.
평정심 효과도 있겠지만 단지 그 것뿐인 건 아닐 것이다.
그때였다.
[축하드립니다. 지옥 난이도 튜토 리얼을 무사히 통과하셨습니다. 앞에 생긴 포털로 들어가시면 튜토리
얼이 종료됩니다.]
그 메시지들을 보는 순간 다리에 힘이 탁 풀려 바닥에 주저앉았다.
'진짜로 해냈구나.'
이제야 실감이 난다.
늑대들, 좀비, 스켈레톤.
마지막으로 웨어울프와 싸웠다.
불과 몇 시간 동안 벌어진 일이다.
살아남았고 승리했다.
생초보가 했다고 하면 믿기 어려
울 정도의 성과였다.
뿌듯한 미소가 절로 나왔다.
'한 가지 아쉬운 건... 이제 더 이상 슈퍼 노비스 세트를 사용할 수 없다는 건데.'
튜토리얼을 마치고 보상을 받으면 분명 레벨이 오를 것이다.
그럼 착용 레벨 제한에 걸린다.
슈퍼 노비스 세트는 5레벨 이하 만 착용할 수 있었으니까.
지금 착용한 전설 아이템들의 가치가 한순간에 떨어지는 셈이다.
인벤토리에 자리만 차지하는 아이템으로.
'그래도 아까우니까 버리진 말 자.'
유준은 아쉬움에 입맛을 달래며 포털로 다가갔다.
그가 포털로 들어가려다 말고 움직임을 우뚝 멈췄다.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황금 열쇠가 남잖아. 이건 그럼 어디다 써야 하는 거지?'
인벤토리에 있는 황금 열쇠.
2구역 공동묘지에서 묘비들을 파 괴하며 얻은 목표 아이템.
'이건 그냥 버리는 건가?'
그 누구도 지옥 난이도의 2구역을 성공적으로 통과한 적이 없으니 알 수 없었다.
시스템이 알려 주지도 않았고.
'혹시 모르니까 열쇠를 사용할 만한 곳이 있는지 좀 둘러볼까?'
슈퍼 노비스 세트를 벗는게 아 쉬워서 내린 결정은 아니다.
절대로.
'음. 절대 아니지.'
유준의 게임 경력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다.
그의 본능이 신호를 보내왔다.
황금 열쇠가 쓰일 곳이 있다고.
괜히 황금 열쇠가 아이템 취급을 받지는 않을 것이다.
아이템이 아니면 인벤토리에 넣을 수도 없으니.
'뭐, 없으면 마는 거고.'
여기서 시간을 더 소비한다고 손 해 보는 것도 없다.
유준은 스스로의 감을 믿고 주변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온몸이 여기저기 쑤셨다.
막대기로 몸 구석구석을 찌르는
듯한 고통을 억지로 참고 걷고 걸었다.
시스템이 표시하던 화살표는 사라진 지 오래.
합리적인 추론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여기 공터엔 아무것도 없고... 땅을 파헤친다고 해도 한세월이 걸 릴 거야.'
그렇다면 황금 열쇠를 얻은 장소.
공동묘지로 돌아간다.
결단을 내리니 행동은 빨랐다.
20분 정도 걷자, 공동묘지에 도 착할 수 있었다.
널브러져 있는 좀비들과 가루가 되어 버린 스켈레톤들의 흔적들.
산산이 파괴된 묘비들.
묘지를 샅샅이 뒤졌지만,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 아직 부서지지 않은 묘비들이 보였다.
'저것들도 다 부숴 볼까?'
유준은 과감하게 묘비들을 하나 씩 발로 차서 부수기 시작했다.
쾅 쾅!
무식해 보일지 모르지만, 뭐라도 해 보는게 맞다.
결실이 금방 드러났다.
마지막 묘비.
구덩이에서 아래로 이어지는 계 단이 나타난 것이다.
원래 있던 건 아니다.
묘비가 파괴되어 날아가는 순간 갑자기 계단이 형상을 드러냈다.
'진짜로 있잖아?'
아마도 모든 묘비를 파괴하거나 사라지게 하면 계단이 드러나는 것으로 정해져 있던 거 같다.
'이걸 발견한 것도 내가 최초겠 군.'
애초에 2구역을 통과한 사람이 없으니 당연한 얘기다.
유준이 히죽 웃으며 계단을 내려 갔다.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1권 5화
5 화
계단이 이어진 공간은 매우 협소 했다.
더군다나 발 디딜 틈이 없고 어 누웠다.
유준은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아 갔다.
그러던 와중 바닥에 있는 황금색으로 된 상자 하나를 발견했다.
사실 발견하고 자시고 할 것없이 확 눈에 띄었다.
'황금 상자...'
딱 봐도 황금 열쇠와 연관이 있 어 보이는 물건이다.
인벤토리에서 황금 열쇠를 꺼냈다.
황금 상자의 빈 구멍에 열쇠를 꽂아 넣었다.
철컥!
황금 상자의 구멍이 열쇠와 맞았다.
유준은 자신이 예상한 대로 잘되어서 오히려 당황스러웠다.
'아귀가 이렇게 잘 들어맞을 수
가 있나? 나야 좋지만.'
유준이 열쇠를 오른쪽으로 돌리는 순간, 황금 상자의 윗부분이 열렸다.
"어? 이거..."
안의 내용물을 확인한 유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장시간 숙성된 선단]
등급 : 無
옵션 : 섭취할 시에 특성 하나를 추가로 얻습니다. 이때 얻는 특성은 무작위로 정해집니다.
그가 얻은 건 바로 특성 알약이 라고 불리는 물건이었다.
정확한 이름으로는 '장시간 숙성 된 선단'.
"이게 여기서 뜬다고?"
신들의 전쟁의 고인물인 유준은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특성 알약은 무척이나 구하기 힘 든 아이템이다.
무려 특성을 하나 늘려 주는 옵 션을 가지고 있었으니.
특히 '장시간 숙성된 선단'은 현재 그의 인벤토리에 없는 아이템 중 하나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이 아이템을 얻는 족족 전부 섭취했었다.
당연히 선단이 남아나질 않았다.
" 대박."
그의 한껏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 지 않았다.
잠깐 넋이 나가 있던 유준은 누 가 가로챌까 재빨리 인벤토리에 장 시간 숙성된 선단을 넣었다.
지금 섭취하지 않는 건 이유가 있었다.
장시간 숙성된 선단은 행운 옵션 이 붙은 아이템을 얻고 나서 사용 해도 늦지 않았다.
선단을 섭취하고서 얻는 특성의 등급은 행운의 영향을 조금이나마 받을 테니까.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유준의 눈에 진득한 탐욕이 묻어 나왔다.
'더 없나?'
애초에 황금 상자가 하나 놓이는게 다일 정도로 좁은 곳이었다.
콰앙! 쾅!
혹시 몰라서 유준은 벽을 부숴 봤다.
안타깝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도 선단을 얻은 게 어디냐.'
공동묘지를 빠져나오는 그의 발 걸음이 하늘을 날 듯 가벼웠다.
'이제 보상을 받으러 가 볼까.'
왜 게임에서나 존재했던 것들이 현실이 된 건지는 모른다.
그러나 현재 주어진 상황에 적응 하는 것이 최선이다.
운영자가 마지막으로 했던 의미 심장한 말.
'괜히 그런 채팅을쳤던 게 아니
었어.'
유준은 웨어울프를 잡았던 곳으로 돌아왔다.
포털은 아직도 남아 있었다.
"후우..."
지옥 난이도의 튜토리얼 클리어 보상.
공동묘지에 존재하는 모든 언데 드를 처치하고 웨어울프도 어렵지 않게 사냥했다.
업적 보정을 받은 지옥 난이도의 보상이 어느 정도일지....
심히 기대되었다.
그는 들뜬 마음으로 포털에 몸을들이밀었다.
몸이 허공에 붕 뜨는 감각.
강렬한 멀미가 찾아오는 순간, 흐릿했던 시야가 확 트였다.
유준이 주변을 둘러봤다.
이번에도 낯익은 풍경이 보였다.
순백색의, 단출한 느낌이 나는 풍경.
가구도, 가전제품도 없다.
'무한의 탑? 아니지.'
여긴 확실히 기억난다.
그가 신들의 전쟁에서 수도없이 봐 왔던 무한의 탑 대기실이었으니까.
'라테네스 마을은 없는 건가?'
신들의 전쟁을 접속하고 튜토리 얼을 클리어하면 가게 되는 초기 마을이다.
그러나 지금 그가 서 있는 곳은
무한의 탑 대기실.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바뀐 거야?'
무한의 탑은 마을의 퀘스트를 완 료하고 나서 갈 수 있는 성장 장소다.
'일단 보상부터 확인하자.'
아직 사태 파악이제대로 안 되었지만, 당장 마음이 급하다.
지옥 난이도 클리어 보상.
그걸 확인하고 싶었다.
유준은 아까 전부터 계속 시야를 가렸던 홀로그램 창의 내용을 확인
했다.
[튜토리얼, 지옥 난이도를 최초로 클리어 하셨습니다!]
['중급 튜토리얼'로 입장할 수 있는 권한을 획득합니다.]
[위대한 업적!]
[희귀 칭호 '앞서가는 자'를 획득 합니다.]
[영웅 칭호 '튜토리얼 완전 정복 자'를 획득합니다.]
[숨겨진 보상, 히든 피스를 발견 했습니다.]
[1 구역을 최단 시간 내에 돌파했습니다.]
[2구역의 모든 몬스터를 처리했습니다.]
[3구역의 웨어울프를 최초로 처 치했습니다.]
[무기를 선택하지 않고 튜토리얼을 진행했습니다.]
[불가능한 업적!]
[전설 아이템 박스(선택)를 획득 합니다.]
[튜토리얼에서 얻은 경험치를 환 산합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와, 이게 다 뭐야.'
정신이 없었다.
이렇게 알림 창이 많이 나열되어 있는 건 처음 본다.
그만큼 지옥 난이도를 클리어한 것이 파격적이었던 모양이다.
홀로그램 내용을 쭉 읽던 유준의 눈이 어느 순간 휘둥그레졌다.
'중급 튜토리얼이라고?'
두 개의 칭호와 보상은 어느 정 도 예상했다.
난이도에 따라 그 급만 다를 뿐 이지, 칭호가 주어지는 건 마찬가 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급 튜토리얼이 있다는 건 또 처음 알았다.
'이번에 새로 생긴 건가? 그게 아니면 지옥 난이도를 클리어하면 권한을 얻을 수 있나?'
한 가지 확실한 건, 중급 튜토리 얼 입장 권한은 자신에게만 주어진 거라는 것.
지옥 난이도 최초 클리어 보상이었으니 그럴 확률이 무척 높았다.
'보상부터 정리할까.'
유준은 알림 창 관련된 내용을 다시 읽었다.
먼저 희귀와 영웅 칭호.
앞서가는 자(희귀): 경험치 획득량이 5% 증가합니다.
튜토리얼 완전 정복자(영웅) : 모든 능력치 +7
둘 다 효과가 마음에 들었다.
착용 제한 레벨이 걸려 사기적인 아이템들을 쓰지 못하는 유준이었다.
경험치 획득량 증가는 천고의 보 물과도 같았다.
튜토리얼 완전 정복자 칭호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능력치 증가는 그냥 생각할 것도없이 좋은 효과였다.
앞으로도 큰 힘이 되리라.
다음으로는 '전설 아이템 박스'가 있다.
이 아이템은 전설 등급의 아이템을 선택해서 얻을 수 있게 해 준다.
'이거 얻으려고 한 오백만 원은 썼던 거 같은데...
그 정도로 귀한 아이템이다.
유준이 잠시 고민에 빠졌다.
문제가 하나 있었다.
'지금 내가 전설 아이템을 얻는 다고 해도... 착용할 수는 없어.'
애초에 그에게 전설 장비는 차고
넘치도록 있었다.
그걸 지금 착용할 수 없을 뿐이다.
고로, 전설 등급 장비 아이템을 뽑을 필요가 전혀 없었다.
'이러면 답은 정해져 있지.'
레인보우 스티커.
아이템의 착용 제한을 완화해 주는 스티커다.
스티커를 붙이면 그 아이템의 착 용 제한이 내려간다.
'확실히 레인보우 스티커라면 지금 당장 도움이 되겠네.'
결정을 내린 그는 전설 아이템 박스를 인벤토리에서 꺼냈다.
밝게 빛나는 박스 위에 손을 올 리자 아이템 목록이 쭉 나타났다.
유준은 일말의 망설임도없이 레 인보우 스티커를 선택했다.
[레인보우 스티커 ]
등급 : 전설
옵션 : 원하는 아이템에 부착 시에는 착용 제한의 레벨 조건이 100 이 줄어듭니다.
예전에 봤던 옵션 그대로였다.
유준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레벨 조건이 100이나 줄어든다는 옵션.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전설이란 등급값을 했다.
이제 무슨 아이템에 사용하느냐 인데.
'지금 내 레벨이 몇이지?'
유준은 상태창을 열어 봤다.
[Player. 신유준]
□ 레벨 : 31
□ 특성 : 평정심(S)
□ 스킬 : 없음
□ 칭호 : 전설의 아이템 수집가 (전설) - 착용한 아이템의 효과 15% 증가 외 2개
□ 능력치
[근력 12(5+7)] [민첩 12(5+7)]
[체력 12(5+7)] [마력 12(5+7)]
[미분배 포인트 : 90 ]
" 벌써?"
그는 이번에도 놀라움을 금치 못 했다.
튜토리얼 하나 깼다고 레벨이 30 이나 오르다니?
물론 지옥 난이도인 만큼 클리어 하는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이렇게나 많은 레벨이 오를 줄은 몰랐다.
'업적 때문에 보상의 효과가 증가한 모양이군.'
어찌 됐든 그로선 잘된 일이다.
'이렇게 되면... 130레벨 착용 제한이 걸린 아이템도 착용할 수 있겠는데.'
그는 레인보우 스티커를 아끼지 않고 사용할 셈이었다.
어차피 아이템은 많다.
더 좋은 아이템을 착용하기 위해 선 최대한 레벨을 빠르게 올려야 했다.
'무기를 찾아봐야겠다.'
슈퍼 노비스 세트는 안타깝게 착 용이 해제되었다.
그러나 실망할 필요는 없었다.
착용 제한을 낮춰 주는 레인보우 스티커를 얻었으니까.
'방어구가 없는 건 좀 아쉽지만'
그래도 착용할 방어구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25레벨에 착용하는 영웅 등급 방 어구 세트가 있다.
지금은 그걸 착용하면 된다.
'역시 아이템은 무기부터지.'
사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방어구에 투자하는게 옳은 선택이다.
게임이 아닌 현실이기 때문.
그러나 방어구에 레인보우 스티 커를 사용하고 싶지가 않았다.
'최선의 공격은 방어가 아니라
공격이지. 좋아.'
자기 합리화에 성공한 그는 인벤 토리를 쭉 둘러봤다.
그중 전설급의 무기만을 확인했다.
유독 검이 많이 보인다.
유준이 신들의 전쟁에서 검만을 고집하며 사용해 왔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좀 아쉽네. 무기 들도 이것저것 다 모아 둘걸.'
인벤토리에 제한은 없으나, 정리 하기 귀찮다는 이유로 등급이 낮은 다른 무기들은 정리해 버렸다.
그렇다고 해도 인벤토리에 있는 무기의 수가 적은 건 아니었다.
오히려 영웅 등급 이상의 무기들은 종류를 가리지 않고 수를 셀 수없이 많았다.
'무기 대부분이 영웅 등급 이상이라 착용 제한 레벨이 다 높네.... 쩝.'
유준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딱 알맞은 검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는 우아한 자태를 뽐내는 검의 정보를 확인했다.
[코이헴의 장검]
착용 제한 : Lv. 130 이상
등급 : 전설
공격력 : 1,070
옵션 : 민첩 +20, 공격 스킬 위 력 소폭 증가
코이헴의 장검.
슈퍼 노비스 소드보다는 길이가 좀 더 긴 장검이었다.
공격력이나 옵션 면에서도 슈퍼 노비스 소드보다 훨씬 앞서 있었다.
같은 전설 등급임에도 공격력이 차이 나는 이유는 바로 착용 제한 레벨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레벨이 진짜 중요하다.
'내가 안전해지려면 결국 사냥을 하면서 레벨을 올리는게 맞아.'
만약 신들의 전쟁 세계관까지 그 대로 현실에 재현된다면.
레벨이 낮은 초보자가 절대로 살 아남을 수 없는 세상이 되리라.
보상 정리를 끝낸 유준은 눈앞의 포털에 시선을 보냈다.
대기실 밖으로 나가는 포털이다.
그가 포털 앞에 서자, 선택지가 두 개 나타났다.
[무한의 탑 1충]
[무한의 탑 거주 구역(100레벨 이하)]
튜토리얼에서 너무 격렬하게 움직여 당장 쉬고 싶은 마음이 컸다.
유준은 거주 구역으로 이동했다.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1권 6화
6 화
서양의 중세 시대를 연상케 하는 풍경.
미관이 아름다운 건물들이 자리 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가죽 장비, 철로 된 갑옷, 투박한 철검 등.
장비를 착용한 사람들이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유준은 무한의 탑 대기실에서 거 주 구역으로 이동한 상태였다.
그는 주변을 계속 둘러보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야? 다들 레벨이 높아 보이는데?'
어리둥절했다.
' 이상한데?'
분명 이제 튜토리얼이 막 끝나야 정상이다.
자신이 지옥 난이도 튜토리얼에 서 시간을 꽤 소모했다고는 해도 그래 봐야 하루 이틀이다.
그런데 플레이어들의 장비 수준 이 상당했다.
대부분이 50레벨 이상은 되어 보이는데.
이게 가능한 일인가?
유준의 눈빛이 깊어졌다.
'나랑 같이 시작했다면 저런 장 비를 끼고 다닐 리가 없지.'
그는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려 노력했다.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저들 모두 가 지옥 난이도 튜토리얼을 클리어 했을 리는 없다.
그때, 가까이서 사람들이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번 B급 던전 원정에서 수십 명이 죽었다며? 혹시 들었어?"
"예상치 못한 변수가 있었다던데. 아무리 저레벨 던전이어도 B급 이 붙으면 위험한 건 매한가지라는 건가."
"던전 공략 실패에 사망자만 20 명이야. 원정을 꾸린 책임자는 상당한 타격을 입었겠군."
"웃긴 게 뭔 줄 알아? 원정대를 만들고 이끈 그 남자랑 몇몇 측근 들만 살아남았다는 거야."
"진짜? 어떻게?"
"그야 뻔하지. 위험할 거 같으니
까 원정대원들 버리고 튄 거야. 특 별한 스크롤을 사용했든, 뒤통수를 때렸든가해서."
"와... 인성장난 아니네."
"있는 놈들이 다 그렇지 뭐."
귀를 쫑긋한 유준은 좀 더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근데 뒤가 안 두렵나? 신뢰가 중요한 이 바닥에서 원정대를 버리 고 도망치면.... 그걸 감당할 수 가 없을 텐데."
"증거가 없잖아. 자신들은 운 좋 게 살아남았다고 어떻게든 포장할 거야."
"거짓말인 거 뻔히 알잖아."
"그래도 상관없지. 적어도 이곳에서 그들보다 강한 자는 거의 없으니까. 플레이어 5년 차 놈들은 이미 다 높은 곳으로 가 버렸고 여 긴 이제 1, 2년 차 놈들만 남았으니. 사자가 없으니 여우가 왕 노릇을 하는 거지."
대화를 유심히 듣던 유준이 화들 짝 놀랐다.
'1년 차? 5년 차? 그게 다 무슨 소리지?'
저들이 분명 다른 나라 언어로 대화하는 것도 아니다.
한국말이 맞았다.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일단 더 돌아다녀 보자.'
유준은 정보를 얻기 위해 그 후 로 무한의 탑 거주 구역을 쉴 새없이 나다녔다.
그렇게 3일이 지났다.
"허...
유준이 깊은 한숨을 토해 냈다.
여기저기 알아본 결과, 어이없게 도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고 한다.
대이동이 일어난 이후로 말이다.
그 대이동이란, 플레이어 능력을 각성한 이들이 무한의 탑에 강제로 끌려와 갇힌 걸 말한다.
그리고 대이동은 한 번으로 끝나 지 않았다.
1년에 한 번씩, 새로운 플레이어들이 무한의 탑에 유입되었다.
전부 지구에 살아가던 이들이었다.
유준은 그러한 정보들을 얻고 나 서 의구심이 들었다.
'신들의 전쟁 세계관은 무한의 탑이 다가 아니었는데.'
무한의 탑 비중이 크긴 해도 무한의 탑에 갇힌 적은 없었다.
대륙에서 벌어지는 일을 해결하 거나 악신의 침공을 막아 내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이...
그가 진행했던 신들의 전쟁의 전
개와는 매우 달랐다.
'내가 5년이나 잠들어 있었던 건가? 아니면 지옥 난이도 튜토리얼을 클리어하는데 그만큼의 시간이 걸렸을까.'
그 어느 것 하나 확신할 수 없었다.
딱 하나 확실한 건 5년이라는 시간이 이미 흘렀다는 것.
'5년이나 뒤처졌다고?'
솔직히 김이 팍 샜다.
다른 유저들이 있다는 건 어느 정도 추측할 수 있었지만, 5년이 생략된 건 너무 컸다.
'뭐가 문제지? 왜 나만 늦게 시작한 거야?'
날짜로 따지면 그는 원래 1년 차 플레이어여야만 했다.
그러나 모종의 이유로 그는 이제 막 튜토리얼에서 빠져나왔다.
"후우..."
벌써 막막했다.
다른 이들보다 몇 수는 앞서갔다 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5년이 늦은 상황이라니.
그러나 이대로 침울해 있을 수는 없다.
지금 그가 해야 할 일은 한시 빨 리 강해지는 것.
그리고 그건 '무과금즐겜러'의 인 벤토리가 있는 이상 그리 어렵지 않았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5년. 그래 봐야 5년이야. 나한테는 인벤토리 가 있어.'
그의 인벤토리는 허비한 5년을 충분히 메꾸고 남을 만큼 큰 가치를 가지고 있다.
인벤토리의 아이템들을 쭉 살핀 유준이미소를 되찾았다.
'조급해할 필요 없어.'
그에게는 신들의 전쟁을 플레이 한 경험과 수많은 수의 아이템들이 있었다.
일정 레벨을 달성하면 금방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으리라.
'먼저 해야 할 일부터 정하자.'
지금부터 할 일이란 뻔했다.
레벨을 올리는 것.
그의 최대 장점을 살리기 위해선 레벨을 많이 올려놔야 했다.
50레벨부터는 장신구 부위 아이템도 착용할 수 있다.
그때부터는 부스터라도 단 듯 빠
르게 강해질 수 있으리라.
'중급 튜토리얼에 대한 것도 알 아봐야지.'
어쩌면 자신만 알고 있는 정보일 수도 있다.
누가 알아채기 전에 빨리 중급 튜토리얼을 최초로 클리어해야 한다.
'근데 아무리 봐도 적응이 안 되네.'
사람들이 게임같이 변한 현실을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생활 하고 있었다.
서양의 중세 시대를 연상케 하는
건축 양식의 건물들.
철제나 가죽 방어구를 입고 무기를 든 플레이어들.
몬스터의 사체를 들고 와 상점에 판매하는 이도 있었다.
'한순간에 세상이 변하다니...
보고 있자면, 진짜 판타지 세상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나마 내가 신들의 전쟁 경험 자니 다행이지.'
아무런 정보없이 5년이 지나 있었으면 이리 쉽게 적응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얻었 던 정보들, 그리고 거주 구역을 돌 아다니면서 얻은 정보들을 대조하기 시작했다.
대부분 정보가 들어맞았다.
'무한의 탑에서 시작하는 건 예 상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대체 로 던전들 정보나 스킬 종류 같은 건 내가 알고 있던 것과 동일해.'
유준은 근처에 잡은 여관에서 식 사를 마쳤다.
이곳 무한의 탑에서는 화폐가 포 인트였다.
포인트는 몬스터를 사냥하거나,
퀘스트를 완료하면 받을 수 있는 신들의 전쟁 세계관의 화폐 단위이다.
그는 적어도 먹고살 걱정은 안 해도 되었다.
쓸모없는 장비 아이템 하나 팔고 5만 포인트라는 거금을 손에 거머 쥐었기 때문.
적당한 영웅 등급의 아이템만 해 도 실제로 5만 포인트 근처에서 왔 다 갔다 했다.
5만 포인트는 꽤 큰 금액이다.
여관에 낼 돈은 걱정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일반, 희귀, 영웅, 유일, 초월, 전 설, 신화 등급의 아이템 중에서 세 번째로 낮은 등급인 영웅 등급.
그런데도은근히 영웅 등급의 아이템이 드물다고 한다.
5년이나 지났는데 어떻게 그런지 궁금했는데, 생각해 보니 이건 게임이 아닌 현실이다.
아무렇지 않게 위험한 던전에 도 전했던 그때와는 달리 여기선 아이템을 구하기가 여간 쉽지가 않았다.
'과금도 없다고 했지.'
무엇보다도 과금 시스템 같은 것 이 아예 없었다.
그렇다면 당연히 아이템이 귀할 수밖에 없다.
'덕분에 나도 이득 좀 보겠네.'
인벤토리에 있는 전설 등급 이상 의 아이템들.
그것들만 떠올리면 기분이 좋았다.
씩 웃은 유준은 여관을 나와 잡 화 상점으로 향했다.
상점을 운영하는 건 던전을 공략 하거나 탑을 오르던 중에 큰 부상을 입은 이들이었다.
그 큰 부상이란 엘릭서가 아니면
치료할 수 없는 부상을 의미한다.
"어서 오세요."
짙은 수염을 기른 중년 남성이 상점에 들어선 유준을 반겼다.
"무슨 용무로 찾아오셨습니까."
"최하급 포션 좀 주세요."
"몇 병 드리면 될까요,"
"다섯 병요."
"알겠습니다."
뒤쪽 창고로 들어간 중년 남성은 금방 다시 나와 유준에게 포션을 건넸다.
"500포인트 되겠습니다."
"여기요."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예. 수고하세요."
유준은 무한의 탑에 몇 년 있었 던 것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거래를 마쳤다.
포인트의 거래는 시스템 홀로그램으로 이뤄진다.
그렇기에 포인트는 도둑질을 당 할 염려는 없었다.
강제로 협박을 당해 포인트를 땟 기는 경우가 있기야 하다.
그래도 일반적인 상황에서 사기 당할 걱정을 하진 않아도 되었다.
포션 다섯 병을 인벤토리에 넣은 유준은 잡화 상점을 나와 길을 따라 쭉 걷기 시작했다.
최하급 포션을 구매한 이유는 간 단하다.
'내 인벤토리에 있는 포션을 사용하기엔 너무 아깝지.'
그가 인벤토리에 넣어 둔 포션들은 무척 질이 좋은 것들이었다.
아무리 적어도 200레벨은 넘어서 사용해야 할 만큼 고가의 포션들.
이 100레벨 이하 거주 구역에서는 구경하기도 힘들 정도로 귀한 포션이었다.
큰 상처도 아닌데 이러한 포션을 사용하기엔 너무 포인트 낭비가 아니겠는가.
그러한 생각에 잡화 상점에 들른 것이다.
'뭐, 위급한 상황이면 비싼 것도 아낌없이 쓰겠지만.'
그 무엇보다도 자신의 목숨이제 일 소중했다.
'이제 슬슬 가 볼까.'
그는 레벨을 올리기 위한 던전이 아닌, 다음 층으로 가기 위한 시험을 볼 생각이었다.
무한의 탑에서 더 높은 층으로 올라가기 위해선 시스템의 인정을 받아야 한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시스템이 내린 시련을 극복하는 것이다.
이게 되면 아무런 제약이나 조건없이 바로 위층으로 갈 수 있게 된다.
보통의 플레이어라면 1층에 존재 하는 던전들을 공략하면서 성장한 뒤 다음 층에 도전해야 한다.
유준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이미 레벨이 31에 달했다.
아이템의 수준은 31레벨을 월등 히 뛰어넘었고.
1층에 있는 잡다한 던전을 공략 하러 가는 건 시간 낭비에 가까웠다.
평정심 특성 때문일까.
황당해도 모자랄 상황인데 그는 너무나 당연하게 무한의 탑을 오를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니야.'
다른 플레이어들도 무한의 탑 높
은 곳에 오르고 싶어 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터.
무한의 탑 상층에 가서 레벨이 오르면 거주 구역도 더 고급스러운 곳으로 바뀐다.
더 부유한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두 번째 이유로는 악신의 침공이다.
15년 이내로 탑의 최상층까지 오 르지 못하면 악신의 침공이 시작되는데 그럼 무한의 탑에 있는 플레 이어들은 물론이고 지구가 위험에 빠진다.
그런 상황이 왔을 때 지구는 멸 망할지도 모른다.
아니, 거의 백 퍼센트 확률로 멸 망하겠지.
이건 유준도 거주 구역을 돌아다 니면서 알게 된 정보였다.
최초이자 최후의 퀘스트인 악신 의 침공.
결국, 살기 위해선 무한의 탑 끝 까지 올라야 한다는 것이다.
'무한의 탑은 50층까지일 텐데.'
정확히 말하면 50층까지 있는게 아니었다.
50층 이후로는 더 이상 콘텐츠 개발이 이뤄지지 않아서 올라갈 수 가 없던 것이다.
그렇다고 유준의 기준으로 봤을 때 50층의 난이도가 높은 편은 아니었다.
그렇다는 건.
'51층 이상도 생겼을 확률이 높아.'
당장 5년이 지난 시점에서 40층을 공략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고 했다.
50층이 끝일 리가 없다.
15년 이내로 50층을 클리어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으니까.
그러니 당연히 51층 그 이상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준이 한숨을 내쉬었다.
'악신의 침공이라...
현실이 이렇게 된 것은 신들의 전쟁이라는게임 때문일까.
유준은 운영자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 어떤 일이 일어나도 의심하지 말고 상황을 받아들이라는 말을 했다.
'그 네르라는 이름의 운영자 정 체가 뭔지 궁금하네.'
전에도 생각했지만, 신들의 전쟁을 만들었던 개발자가 사실 신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뭐든 상관없어.'
지금 이대로 있으면 안 된다.
'레벨. 레벨을 올려야 한다.'
다른 플레이어들을 따라잡기 위해서 당분간 강해지는 것에 집중할 생각이었다.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1권 7화
7 화
유준은 레인보우 스티커를 부착 한 코이헴의 장검을 인벤토리에서 꺼냈다.
옵션에 붙은 민첩 +20 효과 때 문일까.
몸이 한결 가벼워졌다.
'하긴... 능력치 20이면 레벨을 7을 더 올려야 얻을 수 있을 정도 니.'
당연히 체감되어야 했다.
코이헴의 장검은 착용 제한이 130이나 되는 검이니만큼 공격력이 어마어마했다.
그는 레벨이 31로 오르면서 얻은 미분배 능력치 90도 사용했다.
근력과 민첩 그리고 체력 능력치에 골고루 분배했다.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유준은 25레벨 제한이 걸린 방어구들도 착용했다.
전신 갑옷과 장갑, 신발, 헬멧까지.
아이템 네 개 모두 희귀 등급이
다.
유준의 인벤토리에 있는 것들 대 부분이 착용 제한 레벨이 높은 아이템이었다.
저레벨 아이템 중엔 등급이 높은 아이템이 많지가 않았다.
그게 아쉬웠다.
지금으로선 희귀 등급의 아이템이 최선이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해.'
그에겐 막강한 공격력의 코이헴 의 장검이 있었다.
사실은.
31레벨에 방어구를 전부 걸치고 있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것이었다.
대부분의 저레벨 유저들은 아이템 한두 개에 의지해서 던전을 공략해야 했으니까.
'과금이 없어졌으니 아이템은 전 부 시련 보상이나 던전 공략으로만 얻을 수 있겠군. 그게 아니면 제작이라든지.'
무과금즐겜러의 인벤토리.
이 인벤토리에는 현재로선 절대 구할 수 없는 것들도 있으리라.
그는 거주 구역 한가운데에 있는 포털을 타고 무한의 탑 대기실로
돌아갔다.
대기실에 들어선 순간 찬 공기가 온몸을 덮었다.
아이템은 전부 착용한 상태.
따로 준비할 게 없었다.
있다면 마음의 준비인데.
시련을 게임이 아닌 실제로 받는 건 처음인데도 전혀 떨리지 않았다.
튜토리얼 때와 마찬가지였다.
'마음이 평온해.'
포털 앞에 선 그의 앞으로 홀로 그램 창이 떠올랐다.
[무한의 탑 1충]
[무한의 탑 거주 구역(100레벨 이하)]
무한의 탑 1층을 선택했다.
시야가 먼지 낀 것처럼 흐려졌다
가 한층 선명해졌다.
그리고 유준은 대기실과 완전히
다른 공간에 서 있었다.
무한의 탑 1층.
마치 새로운 세상에 온 것 같다.
광활한 숲이 쭉 이어져 있고, 깎 아지른 듯한 절벽도 멀리 보였다.
숲 곳곳에는 무수히 많은 던전들이 있다.
유준은 그 던전들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는 던전이 있는 숲 안으로 진 입하지 않고 바로 근처에 있는, 족 히 5m는 될 법한 거대한 석상에 시선을 던졌다.
하늘을 향하고 있는 뾰족한 창을 위로 들고 승리의 자세로 서 있는 거대 석상.
이 석상에 손을 대면 시련이 시
작된다.
유준은 석상의 무릎 부분에 손을 얹었다.
[곧 시련이 시작됩니다.]
[시련 장소로 이동합니다.]
익숙한 메시지다.
유준은 무기를 쥔 손에 힘을 꽉 줬다.
아이템 착용으로 능력치가 증가 했기 때문일까.
알 수 없는 힘이 온몸에서 샘솟는 느낌이었다.
새로운 공간으로 이동된 유준은 주위를 쭉 둘러봤다.
어두운 밀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깜 깜하기만 했다.
찌익. 찍!
찍! 찍!
쥐가 낼 법한 소리가 들려왔다.
'역시 얘네들이 나오는구나.'
시련은 다행히도 신들의 전쟁과 그대로 전개되었다.
자이언트 랫.
웬만한 중형견 크기의 거대 쥐들이었다.
희미하지만 놈들의 형체가 어렴 풋이 보였다.
'진짜 오랜만이네.'
게임 그래픽으로만 봤던 녀석들을 실제로 보니 무척 징그러웠다.
자이언트 랫의 무서운 점은 날카 로운 이빨만이 아니었다.
엄청난 번식력과 활동력.
그리고 악착같음이 있었다.
한번 물면 끈질기게 달라붙어 놔
주지를 않는다.
'민첩이 높아져서 다행이지.'
어둡지만, 앞이 아예 안 보이는 건 아니다.
민첩이 높아진 덕분에 어느 정도 시야 확보가 가능했다.
유준이 허리를 숙여 몸을 낮췄다.
찌익! 찍!
그의 움직임에 반응한 자이언트 랫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유준은 가로로 쭉 검을 그었다.
촤악!
점프해서 달려들던 자이언트 랫 세 마리가 나가떨어졌다.
그러나 검의 궤적에 들지 않은 자이언트 랫도 있었다.
그 자이언트 랫은 유준의 다리 부분을 세게 물었다.
꽉
그곳은 단단한 철로 보호되고 있는 곳.
이빨 자국이 살짝 남긴 했지만, 유준은 아무런 타격을 받지 않았다.
그는 무릎에 달라붙은 자이언트 랫의 머리 윗부분에 검을 꽂아 넣었다.
푸욱!
그 후 허공을 향해 다리를 세게 흔들어 죽은 자이언트 랫을 떨쳐 냈다.
순식간에 네 마리를 처치했다.
원래 자이언트 랫은 목숨이 끈질 기기로 유명했다.
그러나 코이헴의 검 앞에서는 모 두가 평등했다.
남은 자이언트 랫들을 순식간에 처리했다.
유준에게 1층의 시련을 통과하는
건 아주 손쉬운 일이었다.
[시련을 통과했습니다. 2층으로 이동하시겠습니까?]
[2층으로 이동]
[무한의 탑 대기실로 이동]
눈 깜짝할 새에 1층 시련을 통과 한 유준은 곧바로 2층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근처에 있는 석상에 다시 손을 얹었다.
2층 시련이 시작되었다.
촤악! 촥! 서걱!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두 번째 시련을 통과하기까지 걸 린 시간 또한 5분을 채 넘기지 않았다.
순식간에 시련 두 번을 연달아 통과한 유준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확실히... 장비가 있으니 훨씬 수월해.'
오히려 게임으로 시련을 할 때보 다 지금이 더 쉽다는 느낌이 들었다.
단순히 기분 탓이 아니다.
실제로도 그러했다.
30레벨의 쪼렙 유저가 130레벨 전설 등급 무기를 사용하고 있으니.
저레벨 유저를 위한 시련에서 어 려움을 겪을 리가 없었다.
전투를 마친 유준은 검에 묻은 피를 바닥에 흩뿌렸다.
'벌써 3층인가.'
3층에 도착한 그는 이번엔 석상
에 손을 대지 않았다.
세 번째 시련에 도전하기 전에 해야 할 일이 하나 있었다.
바로 히든 던전을 찾는 것이었다.
'문제는 과연 지금까지 히든 던 전이 남아 있겠냐는 건데...
없으면 어쩔 수 없고, 있으면 좋은 거다.
위치는 정확히 알고 있다.
시간을 많이 낭비할 것 같지도 않다.
혹시 모른다.
히든 던전을 찾아보기로 했다.
3층의 배경 또한 울창한 숲이다.
유준은 망설임없이 숲속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모니터 화면으로 봤던 길과 실제 로 걸어가면서 보는 풍경은 많은 차이가 있었지만, 길을 찾는 건 어 렵지 않았다.
히든 던전을 발견했을 때의 기억 이 워낙 강렬했기 때문이다.
유준은 신들의 전쟁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수년 전의 기억을 떠 올렸다.
당시 그는 레벨을 올리기 위해 다른 유저들과 파티를 맺었다.
파티원들은 그보다 레벨이 서너 개씩은 높았다.
사실 유준이 쩔을 받는 느낌으로 파티에 참여한 형태였다.
순조롭게 30분 정도 파티 사냥을 진행하던 도중이었다.
파티장이 갑자기 유준을 파티에 서 추방시켰다.
그 후 곧바로 공격했다.
유준은 그 공격에 반응해서 회피 동작을 사용했다.
'어이가 없었지.'
단순히 재미로 그랬는지, 원한을 가지거나 아이템을 노렸는지는 모 른다.
유준은 그저 살고자 마우스와 키 보드를 사용하여 적들에게서 달아 났다.
유준은 쉬지 않고 한 시간을 도 망 다녔다.
놈들도 포기할 법도 하건만, 오 기가 붙었는지 유준을 끝까지 따라 와 죽이려고 했다.
결국, 유준은 캐릭터가 방향을 꺾을 때 잠깐 경직하는 것을 이용
해서 그들을 따돌렸다.
유저들을 따돌리니 또 다른 난관에 봉착했다.
돌아갈 길을 잃은 것이다.
아니, 정확히는 돌아갈 방법이 없다고 봐야 했다.
혼자서는 숲의 몬스터들을 상대 할 수 없었으니까.
죽음을 택한다고 해도 죽은 지점 근처에서 부활할 뿐.
마을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너무나 황당하고 어이없는 일을 겪은 그는 어쩔 수없이 무작정 걸
었다.
그러던 도중 던전 하나를 발견했다.
그게 하필 또 히든 던전이었다.
'운이 좋았지.'
히든 던전은 돈 주고도 사기 힘 들 정도로 발견하기가 힘들었다.
하여튼 그런 경험이 있었기에 유준은 히든 던전의 위치를 기억해 낼 수 있었다.
'그때 경험 때문에 내가 과금을 하기 시작했지.'
다시는 뒤통수 맞고 싶지는 않았
었다.
그는 히든 던전에 들어가기 전에 상당한 금액을 써서 좋은 아이템으로 무장했다.
그 덕분에 발견한 히든 던전도 무난하게 공략할 수 있었다.
그때의 경험 때문에 지금 자신이 인벤토리로 이득을 보고 있다.
'날 뒤통수친 그놈들한테 오히려 감사해야 하나.'
실없는 생각을 하니 웃음이 나왔다.
유준은 히든 던전이 있었던 근처 지형의 특징적인 부분을 잘 살펴봤
다.
'전부 기억나.'
자신의 기억력이 이렇게 좋았나 싶을 정도로 뚜렷하게 떠올랐다.
'혹시 이것도... 세상이 이렇게 되면서 영향을 받은 건가?'
플레이어가 되면서 능력치가 올 랐다.
육체 능력은 일반인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
지능 또한 발달하면서 기억력 같은 것이 눈에 띄게 좋아진 게 아닐까.
그게 아니면 4년 전의 기억을 고 스란히 기억하고 있는 것이 설명이 안 된다.
'몬스터. 일곱 마리인가?'
리자드맨 무리를 만났다.
리자드맨은 무한의 탑 3층에 등 장하는 몬스터,
성인 남성보다 큰 키에 근육질의 몸을 가지고 있었다.
거기에 둔기 무기를 사용한다.
무리를 짓고 다니는습성이 있 어, 파티가 아닌 혼자서 상대하기 엔 부담스러운 상대.
그런 상대긴 하지만....
서걱! 슥!
유준은 가볍게 리자드맨 일곱 마 리를 처리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너무 쉬운데?"
너무 싱겁게 전투가 끝이 났다.
파티 사냥을 한 것도 아니고.
자신 혼자서 싸운 것인데.
'진짜 내 무기가 사기긴 하구나.'
이게 단순히 게임이 아닌 현실이 기에 더 크게 와닿았다.
남들은 파티를 맺고 힘겹게 사냥 하는 리자드맨들을 그는 혼자 힘으로 사냥했다.
다른 유저가 불공평하다고 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
'혼자서 독식하니까 포인트도 짭 짤하네.'
370포인트가 추가로 들어왔다.
유준은 그 뒤로 몬스터와 마주치 지 않고 던전이 있는 곳까지 도달 했다.
"응?"
목표했던 곳에 도달한 유준이 당 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던전이 보이지 않았다.
이끼 긴 넝쿨로 꼭꼭 숨겨진 동굴의 입구.
원래 있던 던전이 사라져 있었다.
'이미 누가 공략한 건가?'
아마 그럴 것이다.
세계가 이 꼴로 변한 지 5년이다.
그 정도 시간이면 히든 던전이
남아 있을 확률이 오히려 희박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와 보자는 생각이었는데 결국 허탕을 친 셈이었다.
"아쉽네."
그래도 돌아가지 않고 주변을 샅 샅이 뒤져 봤다.
'내가 착각했을 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히든 던전의 입구는커녕 그 흔적조차 발견할 수 없었다.
결국, 헛된 발걸음이었나.
유준은 돌아가기로 했다.
무성하게 자란 잡초들로 덮인 바닥에 그의 발이 닿았다.
훅!
발을 헛디뎠나 생각하는 그때 몸 이 쑥 아래로 추락했다.
[히든 던전 '고위 연금술사의 실험실'을 발견했습니다!]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1권 8화
8 화
퍽!
유준의 몸이 지면에 강하게 충돌 했다.
꽤 높은 곳에서 추락했기에 충격 이 상당했다.
등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유준이 인상을 찌푸렸다.
"응?"
그는 눈앞에 자리하고 있는 홀로 그램 창을 봤다.
[E급 히든 던전 '고위 연금술사 의 실험실'을 발견했습니다!]
'히든 던전이라고?'
심지어 생전 처음 들어 보는 이 름의 던전이었다.
마법사의 연구실이나 실험실 같은 던전은 많이 보긴 했는데.
연금술사가 관련된 던전은 이번 이 처음이었다.
'내가 발견한 곳 근처에 히든 던 전이 또 있었구나.'
히든 던전을 찾는 것이 모래사장에서 잃어버린 바늘을 찾기보다 어 렵다.
그걸 생각하면 참으로 기막힌 우 연이었다.
"잠깐... 그러고 보니."
그는 던전으로 떨어지는 와중에 던전 입구를 막고 있던 수풀과 나 뭇가지들을 봤다.
누군가 일부러 입구를 가려 놓기 위해서 설치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가 알기론 히든 던전의 입구는 항상 절묘한 곳에 숨겨져 있을 뿐.
그런 식으로 입구가 가려져 있지는 않았다.
상황을 유추해 봤을 때 한 가지를 알 수 있었다.
'누군가 이미 발견한 던전이군.'
다만, 입구가 그대로 남아 있는 것으로 봐서는 히든 던전이 클리어 된 상황은 아니었다.
거기서 희망을 봤다.
'이제 막 발견된 건가? 그게 아니면 던전 공략하기엔 무리가 있어
서 나중에 오려고?'
그 무엇이든 유준은 던전 탐사를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히든 던전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모를까.
이미 발견한 이상 포기하고 돌아 가는 건 너무 아까운 짓이었다.
유준은 바닥에 떨어진 검을 줍고 몸을 벌떡 일으켰다.
'던전에 다른 사람이 없길 바라 야지.'
이건 진짜 목숨을 걸고 공략하는 실제 던전이다.
다른 플레이어와 마주치면 실랑 이를 벌이는 정도로 끝나지는 않으 리라.
유준은 하나밖에 없는 길을 걷기 시작했다.
'바깥과 이어진 곳이 입구밖에 없나?'
던전은 어두운 편이었다.
그나마 밝은색의 광석들이 천장에 붙어 있어 앞이 아예 안 보이는 정도는 아니었다.
'연금술사의 실험실이면... 평 범한 몬스터가 등장할 것 같지는 않은데.'
실험실이라고 하지만, 몬스터는 분명 존재할 것이다.
명색이 히든 던전이다.
함정과 기관만 있는 던전은 결코 히든 던전이 될 수 없었다.
유준이 외길을 10분가량 걸었다.
철퍽. 철퍽.
적막이 가득 찬 가운데,
그의 발걸음 소리만이 어두운 던 전 내부에 울려 퍼졌다.
그러던 어느 순간.
"키릭."
"키리릭."
목에 가래 낀 소리가 들렸다.
전방.
유준이 눈을 가늘게 떴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희미했던 형 체가 뚜렷해졌다.
유준은 놈들을 유심히 살펴보다 기괴한 소리를 낸 괴물의 정체를 알아냈다.
' 키메라.'
여러 몬스터의 신체를 강제로 결 합해서 만들어 낸 인공 생명체이다.
연금술사의 실험실이라고 했으니
실험실의 주인이었던 연금술사가 만들었을 확률이 높았다.
'연금술사는 보통 포션이나 아이템을 만들지 않나?'
물론, 그건 자신의 편견일 수도 있었다.
키메라는 신들의 전쟁을 플레이 하면서 많이 상대해 봤던 몬스터였다.
생명력이 높고 공격력과 방어력 도 보통 몬스터들보다 높은 편에 속했다.
단점으로는 낮은 지능이 있다.
이곳 키메라는 오크와 늑대 그리
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몬스터가 섞 인 듯한 생김새였다.
'셋 정도인가?'
많지는 않지만... 쉽지도 않았다.
키메라는 단일 개체의 무력이 뛰 어났다.
살짝 걱정되었다.
'그렇다고 도망칠 수는 없지.'
애초에 도망갈 곳도 없다.
빠져나갈 수 있는 입구가 워낙 높은 곳에 있으니.
유준이 검을 꽉 쥐고 달려드는
키메라들을 기다렸다.
정확한 타이밍.
분명 따로 검을 배운 적이 없다.
그런데 그는 아주 절묘한 타이밍에 검을 휘둘렀다.
서걱!
유준의 목을 노리고 다가오던 키 메라의 팔이 허공을 날았다.
뒤이어 접근하던 키메라에게도 검을 뻗었다.
푹! 푸욱!
검에 닿는 족족 키메라의 신체가 절단되었다.
'100레벨을 넘은 놈들은 아닌가 보네.'
다행이다.
키메라는 대충 50레벨에서 70레 벨 정도 되는 듯했다.
키메라들은 130레벨 전설 검을 버텨 낼 재간이 없었다.
다만 유준이 간과한 것이 있었다.
모든 키메라의 팔이 두 개는 아니었다.
팔 네 개를 지닌 키메라가 두꺼 운 팔로 유준의 가슴 부분을 거세
게 후려쳤다.
콰앙!
팔과 갑옷이 부딪쳤고.
흡사 폭탄이 터지는 소리가 났다.
"컥!"
엄청난 충격에 유준이 뒤로 쭉 날아갔다.
벽에 크게 부딪힌 그는 바닥을 나뒹굴었다.
키메라들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유준은 황급히 상반신을 일으켜
검을 앞으로 쭉 뻗었다.
바로 앞까지 다가왔던 키메라의 머리가 검에 꿰뚫렸다.
그대로 검을 오른쪽으로 그으면서 옆에서 달려오던 키메라의 목까지 잘라 냈다.
서걱!
그것으로 키메라 둘을 처리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남은 건 한 마리.
녀석은 빈틈이 생긴 유준에게 몸 통 박치기를 했다.
쾅
유준은 순간적으로 정신을 잃을 뻔했다.
그나마 머리 쪽을 보호했기에 기 절하지는 않았다.
유준은 몸을 옆으로 내던졌다.
그가 있던 자리에 키메라의 발이 꽂혔다.
"후우..."
간담이 서늘했다.
만약 피하지 못하고 저 자리에 그대로 있었으면?
키메라의 발에 곤죽이 되어 죽었 으리라.
안도의 한숨을 내쉰 유준은 재빨 리 검을 들고 자세를 잡았다.
한동안 대치가 이어졌다.
키메라는 동족이 다 죽고 혼자가 되어 쉽게 달려들지 못했고,
유준 또한 키메라가 가진 힘을 알기에 섣불리 공격을 시도하지 못 했다.
'능력치만 따지면 키메라가 나보다 훨씬 앞서 있어.'
실수 한 번이면 목숨을 잃을 수 도 있었다.
게임 캐릭터처럼 부활할 수가 없으니 신중하게 움직여야 했다.
유준은 인내력 싸움에서 승리를 거뒀다.
키메라가 먼저 움직인 것이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 검을 앞으로 내뻗었다.
키메라의 미간 사이 정중앙에 검 이 탁 하고 꽂혔다.
마지막 남은 키메라의 눈에서 생명의 불이 꺼졌다.
허무한 최후였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또 레벨이 올랐다.
키메라의 레벨이 그보다 매우 높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원래는 이렇게 레벨이 쉽게 오르 진 않는다.
'한 마리당 1레벨씩 올랐다.'
위험천만한 전투였다.
승리했으니 됐다.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평정심 특성이 없었으면 이번에 무조건 죽었을 거야.'
진정한 의미로 목숨을 건 전투를 했다.
그리고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고작 키메라 셋을 처리했을 뿐이다.
앞은 더 위험할지도 모른다.
'지금 내 레벨이 몇이지?'
상태창을 열어 확인해 보니 34 레벨이었다.
착용할 방어구가 없다.
'최소 50레벨은 찍어야 장신구도 착용하면서 스펙을 끌어올릴 수 있는데.'
그래서 더더욱 이 던전을 공략하고 싶었다.
히든 던전은 아이템 보상은 물론 이고 경험치도 무척이나 짭짤했으니까.
괜히 플레이어들이 기를 쓰고 히 든 던전을 찾아다니는게 아니었다.
다른 곳에선 이곳만큼 경험치가 오르지 않을 터.
유준은 계속 던전 공략을 진행하기로 했다.
길은 하나뿐.
뒤를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그 뒤로 유준은 이상하게 키메라를 마주칠 수 없었다.
기이할 정도로.
보통 던전이라면 몬스터가 쉴 새없이 나타나 플레이어를 덮칠 텐데.
'히든 던전이라서 그런가?'
히든 던전은 다른 던전과는 달리 특수한 환경이 많았다.
이번엔 몬스터가 많이 등장하지
않는 종류의 던전인 것 같았다.
그때 유준은 두 갈래 길을 발견 했다.
" 흐음...
이러면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던전의 보스가 존재하는 방은 하 나.
여기서 길을 잘못 선택하면 시간 낭비는 물론이고, 위험한 상황에 놓일 수도 있었다.
'뭐, 지금 알 수 있는 건 없으니까.'
겉으로 보기엔 두 개의 길에 차 이점이 없었다.
도움을 구할 사람도 없다.
말 그대로 운에 맡겨야 하는 상황.
'내 감을 믿자.'
수년간 신들의 전쟁을 플레이했 던 경험을 살리면 된다.
유준은 괜히 랭킹 1위 플레이어 가 된 것이 아니다.
과금만 많이 한다고 랭킹 1위 자 리를 차지할 수 있을 정도로 신들 의 전쟁은 호락호락한 게임이 아니
었다.
유준이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게임의 절대자다운 면모를 보일 때였다.
그는 망설임없이 두 번째 길로 향했다.
'감은 개뿔...
결론만 말하자면, 꽝이었다.
제대로 잘못 골랐다.
화살이 날아오거나 하는 함정은 없었지만, 키메라가 쉴 틈도 안 주 고 연이어 나타났다.
보통 두 개의 갈림길에서 한 곳은 보스 방으로 가는 길이고 한 곳은 몬스터들이 우글거리는게 정석 이었다.
키메라가 이 정도로 분포해 있다는 것은 그가 잘못된 길을 골랐다는 말이 된다.
이곳으로 쭉 가더라도 보스 방이 나오지 않을 확률이 높았다.
'히든 던전이라서 막 함정 길이 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겠지만
예감이 좋지 않았다.
'내 선택이 틀렸군.'
유준이 괜히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서걱! 슥!
"키릭! 킥!"
그는 검을 수차례 휘두르며 접근 하는 키메라들을 베어 냈다.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져서 능 숙하게 놈들을 사냥할 수 있었다.
물론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은 전과 같았다.
촤악! 촥!
그가 검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검붉은 피가 사방에 뿌려졌다.
바닥에 피로 웅덩이가 고일 정도 로 많은 수의 키메라를 처리했다.
유준은 레벨이 오르는 대로 곧바로 체력과 민첩에 능력치를 투자했다.
근력은 당장 필요 없었다.
검의 공격력에 의지해서 검을 휘 두르기만 하면 키메라들이 픽픽 쓰 러졌으니까 말이다.
'차라리 이쪽으로 온 게 다행인가? 얘네 잡고 레벨을 올리면서 갈 수 있으니. 그럼 보스 잡기도 훨씬 수월할 거고...
유준이 생각을 달리했다.
'역시 나는 괜히 1위가 아니었어. 일단 민첩에 투자하자.'
지금의 유준에게는 민첩 능력치 가 제일 중요했다.
'마력은 나중에 아이템으로 보충 하면 되고.'
"키릭!"
"키리릭!"
그때 키메라의 날카로운 손톱이 그의 머리카락을 스치고 지나갔다.
미분배 포인트를 전부 민첩 능력치에 때려 박은 탓일까.
키메라들의 움직임이 이제는 훤 히 보이기 시작했다.
문제는 키메라들의 신체가 일정 하지 않고 전부 제각각이라는 점이었다.
팔이 기형적으로 긴 키메라도 있 고 손톱이 쭉 길어지는 신기한 능력을 쓰는 녀석도 있었다.
그래서 가끔 위험한 장면이 연출 되기도 했다.
콰앙!
유준은 또 한 번의 공격을 허용 했다.
이번엔 복부 쪽이었다.
있는 힘껏 달려온 키메라와 부딪친 것이다.
유준은 헬멧을 벗고 인벤토리에 서 빠르게 포션을 꺼내 섭취했다.
그리고 곧바로 헬멧을 착용했다.
몸 곳곳에 있던 고통이 싹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최하급 포션이지만 꽤 효용이 뛰어났다.
그의 체력이 원체 낮은 탓이다.
부상이 회복된 유준은 벌떡 몸을 일으켜 키메라들을 상대했다.
촤악! 서걱! 슥!
검을 쉬지 않고 휘둘렀다.
하도움직여서 팔이 어깨에서 빠질 듯했다.
그러나 여기서 멈추면 자신의 삶도 여기서 마치게 된다.
유준은 이를 악물고 키메라들과 싸웠다.
그리고 어느 순간.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그토록 고대하고 기다리던 메시 지가 나타났다.
장신구를 착용할 수 있는 레벨 50이 되었다.
유준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1권 9화
9 화
레벨 50.
보통의 유저에겐 크게 의미 있는 수치는 아니었다.
유준은 달랐다.
그의 인벤토리에는 수많은 장신 구 아이템들이 잠들어 있는 상황.
그중에 장신구 부위는 대체로 착 용 레벨 제한이 높았다.
50 미만의 레벨일 때는 넘보기 힘들 정도로.
그러니까 그가 장신구를 착용하기 위해선 최소 50레벨은 되어야만 했었다.
'튜토리얼을 끝내고 3일도 안 되는 시간 만에 레벨 50을 찍은 셈이네.'
사냥한 시간으로 따지면 사실 몇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았다.
유준이 허탈하게 웃었다.
이렇게 빠른 속도라니.
이게 다 히든 던전 덕분이었다.
31레벨부터 히든 던전에 가는 전 례가 과연 있을까.
'일단... 장신구부터 껴야 하는데.'
유준은 어느새 확 줄어든 키메라들을 적당히 상대하면서 기회를 봤다.
끈질기게 목을 노려 오던 키메라를 발로 세게 걷어찼다.
그 뒤 유준은 곧바로 등을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한 박자 빠른 움직임.
키메라들이 뒤늦게 땅을 박차고 유준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유준은 키메라가 올세라 황급히
인벤토리를 열었다.
' 있다!'
당연히 있어야 했다.
이러한 상황을 대비해서 미리 착 용할 장신구들을 한곳에 모아 놨으니까.
반지 두 개와 목걸이 그리고 팔 찌 한 개였다.
50레벨에 착용할 수 있는 장신구는 그게 다였다.
[VIP4 반지]
착용 제한 : Lv. 50 이상
등급 : 영웅
공격력 : 50
옵션 : 모든 능력치 +5, 스킬의 위력이 10% 증가합니다.
[VIP4 반지]
착용 제한 : Lv. 50 이상
등급 : 영웅
공격력 : 50
옵션 : 모든 능력치 +5, 스킬의 위력이 10% 증가합니다.
[그레고리의 팔찌]
착용 제한 : Lv. 50 이상
등급 : 희귀
방어력 : 30
옵션 : 근력 +4
[그레고리의 목걸이]
착용 제한 : Lv. 50 이상
등급 : 희귀
방어력 : 30
옵션 : 민첩 +4
준비한 장신구를 전부 착용했다.
VIP라는 이름이 붙은 반지.
그가 과금 보상으로 받은 장신구들이었다.
보다시피 능력치나 옵션이 무척 좋다.
지금 당장은 스킬이 없어서 장신 구의 효과를 온전히 누리지는 못하겠지만, 이게 어딘가.
유준은 몸에 활력이 도는 느낌을 받았다.
능력치가 대폭 증가한 탓이다.
게다가 칭호의 효과도 있다.
-전설의 아이템 수집가(전설) -착용한 아이템의 효과 15% 증가
그가 착용한 장신구들.
칭호 덕분에 그 아이템들의 효과를 15% 증폭해서 받는 것이다.
상태창에는 그 수치가 적용되진 않지만, 실제 육체에는 고스란히 전 해졌다.
"키리릭!"
"키륵! 키릭!"
때마침 키메라들이유준을 발견 했다.
유준의 입가가 호선을 그렸다.
'이번엔 아까랑은 좀 다를 거다.'
그가 먼저 움직였다.
가장 앞서 있는 키메라에게 검을 쭉 뻗었다.
순식간에 키메라의 이마 정중앙에 닿은 검 끝.
그것으로 키메라 하나가 풀썩 쓰 러졌다.
다른 키메라들이 당황하기도 전에 유준의 검이 다시 한번 움직였다.
전과 확연히 달라진 속도에 키메 라들이 쉽게 반응하지 못했다.
장신구 네 개.
유의미한 변화가 생겼다.
그 변화는 전과는 다른 양상을 만들어 냈다.
지금까지는 유준이 아슬아슬하게 목숨을 건 전투를 펼쳤다면,
이제부턴 일반적인 사냥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촤악! 스적!
유준의 검이 스치기만 해도 키메
라들의 몸에서 검은 혈액이 분수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수월해.'
유준이 감탄했다.
장신구 몇 개 낀 것으로 신기할 정도로 강해졌다.
'신들의 전쟁이 괜히 아이템 전 쟁, 과금 전쟁이라는 별칭이 붙은 게 아니야.'
그때는게임이라서 그러려니 했는데, 직접 몸으로 체감하니 느끼는 바가 컸다.
평정심 때문인지 그는지금 이 살벌한 전투를 게임으로 플레이하
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오히려 다행이었다.
그로테스크한 광경이 쉴 새없이 펼쳐지는 와증.
심적으로 큰 영향을 받지는 않았으니까 말이다.
"키에에엑!"
"키릭!"
서걱! 슥!
유준의 검은 키메라의 단단한 피 부를 순두부 베듯 손쉽게 파고들었다.
순식간에 눈앞에 보이는 모든 키
메라들을 정리했다.
전투를 마친 유준이 주변을 둘러 봤다.
아이템은 떨어진 게 따로 없다.
'키메라라서 그런지 드롭률이 영 별로네. 뭐, 그 대신에 경험치를 많 이 주니까.'
불만은 크게 없었다.
사실 그에게 가장 필요한 건 아이템이 아닌 경험치니.
'목표했던 50레벨도 달성했고.'
키메라들은 더 이상 그의 상대는 아니었다.
유준은 거침없이 앞으로 걸었다.
키메라들은 마지막 전투 이후로 더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그렇게 계속 걷던 도중 막 다른 길에 부딪혔다.
길이 없었다.
'역시나... 돌아가야겠네.'
함정 길에 들었으니 이럴 것이라는 건 예상했다.
다만, 키메라가 또 있으면 레벨을 올릴 수 있으니 돌아가지 않고 쭉 전진했던 건데.
쿵. 쿵.
'잠깐만.'
유준이 걸음을 뚝 멈췄다.
'여기 히든 던전이잖아.'
유준이 자책했다.
막다른 길이라고 돌아갈 생각부 터 하다니.
히든 던전은 어떤 곳에 어떤 아이템이 있을지 몰랐다.
항상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위험해서가 아니라, 히든 던전에 숨겨진 어떤 보상을 놓칠까 봐.
그리고 대체로 히든 던전에서 막 다른 길에는 히든 피스나 보상이
있었다.
'물론, 게임에서 얘기지만.'
그렇다고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유준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가 근처를 유심히 살펴봤다.
특별하거나 이상한 부분은 없었다.
'시간이 촉박한 건 아니니 천천히 찾아보자.'
벽과 바닥을 더듬어봤다.
돌출된 부분이랄 건 없었지만…, 약간의 위화감이 느껴졌다.
유준이 기대감 어린 얼굴로 벽을 건틀릿에 마력을 담고 후려쳐버렸다.
콰앙!
큰 소리가 울려 퍼지며 벽이 움 푹 파였다.
자욱하게 피어오른 먼지가 걷어 지고, 그 안에는 널찍한 공간이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여자 한 명이 밧 줄로 묶여 쓰러져 있었다.
"아, 뭐야 그냥 사람이잖..."
응?
'뭐지?'
아이템이 아니라,
웬 신원불명의 여자 한 명이 벽 안 숨겨진 공간에 누워 있다니.
잠시 황당해하던 유준이 머리를 흔들었다.
'장비를 착용하고 있는 걸 보면 플레이어로 보이는데. 왜 여기 갇 혀 있는 거지?'
함정일 수도 있다.
유준은 몇 발자국 물러난 뒤에 인벤토리를 열었다.
지금 상황에 필요한 아이템이 인
벤토리에 있었다.
'찾았다.'
[상태 확인 스크롤]
등급 : 영웅
옵션 : 상대방의 스테이터스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단, 상대방과 거리가 멀어서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또한 레벨이 더 높은 상대에게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영웅 등급의 소모성 아이템.
상태 확인 스크롤이다.
'현금으로 오천 원 정도 했지.'
오로지 과금으로만 구매할 수 있는 아이템.
현재 이 '상태 확인 스크롤'의 재 고는 넘치도록 있었다.
아낄 필요가 없었다.
그는 이 스크롤을 이 신원미상의 여자에게 쓸 생각이었다.
만약, 자신에게 위협이 될 것 같으면 도와주지 않고 떠나는 선택지 도 염두에 두었다.
유준은 '상태 확인 스크롤'을 찢 고 여자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Player. 김희연]
□ 레벨 : 37
□ 특성 : 탐색 (A)
□ 스킬 : 질주(D), 던전 탐색 (S)
□ 칭호 : 없음
□ 능력치
[근력 27] [민첩 46]
[체력 28] [마력 24]
[미분배 포인트 : 0 ]
"오?"
그녀의 상태창을 본 유준이 눈을 크게 떴다.
'던전 탐색이 등급?'
눈을 비비고 다시 살펴봐도 스킬 던전 탐색(S)은 여전했다.
유준이 놀란 이유는 간단했다.
던전 탐색은 본래 E등급 스킬이 기 때문이었다.
'등급 던전 탐색이 있었구나.'
그조차 몰랐던 정보.
'등급 던전 탐색이면 히든 던전 도 더 잘 찾나?'
히든 던전은 희귀하다.
'스킬의 등급은 거짓말을 하지 않아. 등급 던전 탐색은 효과가... 괜찮겠지.'
E등급 던전 탐색도 쓸모있는 스킬인데 하물며 등급은 두말할 필 요 없었다.
'부럽네. 저 스킬 하나면 등급 높은 히든 던전도 수월하게 찾을 수 있을 거 같은데.'
거기다 전투 스킬이나 특성 같은 게 일절 없었다.
일단 자신에게 위협이 되는 상대는 아니었다.
김희연의 상태창을 보는 유준의 눈이 빛났다.
그때 하필 김희연이 눈을 떴다.
"누, 누구...!"
"조용히 해요. 소리 지르지 말고."
이러니까 완전 악역 같네.
"사, 살려주세요. 제가 잘못했어요."
"뭘 잘못해요?"
"네? 절 죽이시려는 거... 아니었나요?"
"아뇨. 우연히 지나가다 발견한
건데요."
"아...
그의 말에 안도한 김희연이 다시 금 얼굴을 굳혔다.
"그런데 지나가다가 여기를 어찌 보셨어요? 저 보시다시피 이렇게 갇혀 있는데…."
확실히 수상한 상황이긴 했다.
유준이 말을 돌렸다.
"하여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럼요?"
이어진 김희연의 말에 유준은 대
답하지 않았다.
두 눈을 굴리며 파괴된 벽 내부를 샅샅이 살펴봤다.
"저 이것부터 풀어주시면...
"조용히."
한참을 그러던 유준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 없네."
설마 사람만 덩그러니 한 명 놓 여 있고, 숨겨진 아이템이 없을 줄 이야.
유준이 실망스러운 얼굴로 돌아
섰다.
그때 눈치를 보고 있던 김희연이 입을 열었다.
"뭘 찾으시던 건데요?"
"히든 피스요. 이 안에 원래 없었습니까?"
"네... 그런 건 전혀 없었어요. 그리고 이 공간도 절 가둔 사람 중 한 명이 만든 거예요. 던전의 장치 가 아니라."
"어떻게요?"
"대지 정령을 부려서요."
"정령사가 있군요. 대지 마법일
수도 있고."
"당신을 여기 가둔 이유는요?"
"던전 보상 독점이겠죠. 그리고 상대는 남자 셋이었어요."
"음."
무슨 상황인지는 대충 파악이 됐다.
무한의 탑은 따로 법이 없었다.
어느 나라에 속해 있지 않은 이 상에.
그래서 적지 않은 플레이어들이 악행을 저지르고 다녔다.
김희연도 그런 플레이어들에게 희생을 당한 게 아닐까.
"절 살려둔 것만 봐도.... 분명, 노예로 팔거나 아니면 지들이 몹쓸 짓이라도...
김희연이 착잡한 얼굴로 뒷말을 흐렸다.
유준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김희연이 가진 S급 던전 탐색 스킬은 무척이나 탐이 났다.
그러나 남의 스킬을 마음대로 뺏는 건 불가능하다.
'가져올 수 없다면... 이용해야지.'
유준이 최대한 가식을 담아 미소를 지었다.
"이런 곳에 갇혀 계셨다니, 제 마음이 너무 아프군요. 많이 힘드 셨죠?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가, 갑자기요?"
김희연의 반응이 뜨뜻미지근하다.
유준이 얼굴을들이밀며 말했다.
"도와드리겠습니다."
"...네, 네! 도와주세요."
" 고맙죠?"
"네, 네! 고마워요! 정말로요!"
유준이 엎드려 절 받는 듯한 형 세가 되었지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히든 던전.
그걸 찾는 던전 탐색 스킬은 너무나 진귀했다.
심지어 그냥 E급도 아니고 등급이다.
김희연에게 히든 던전으로 보답을 받는다면 그것만큼 좋은 게 없 으리라.
유준은 끓어오르는 욕망을 감추
려 애썼다.
그래도 한마디 말이 튀어나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갚으면 되죠."
"...네! 물론이죠!"
"근데 포인트가 많지는 않으실 텐데요."
"...맞아요."
"그럼 어쩌면 좋을까요?"
"포인트는 정말 없고... 제가 스킬을 하나 가지고 있는데...
"던전 탐색이요?"
"네, 맞... 그걸 어떻게?"
"포인트는 됐어요."
"네?"
"나중에 발견한 던전 위치 알려 주면 좋을 거 같아요. 이곳처럼 히 든 던전이면 더 좋고요."
"네. 아, 그런데 제 스킬은 어떻 게 알아내신 건...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저는 당신을 도와드리고 싶습니다. 같은 한국인이잖아요. 그냥 지나칠 수는 없어요."
"네, 네!"
목숨을 구해주는데 그 정도는 전 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구두 약속이라 불안하긴 한데 제가 믿는 수밖에 없겠죠?"
유준이 무서운 얼굴로 물었다.
"알겠어요…."
김희연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어떻게 된 겁니까?"
"다 설명하기엔 얘기가 좀 긴데."
"알아서 요약해주세요."
"저 밧줄은...
"얘기부터 듣고요."
"네. 일단 제 이름은 김희연이에요. 자기소개가 늦은 거 같아서...
이름은 알고 있었지만, 여기서 또 아는 체했다간 귀찮아진다.
"네. 신유준입니다."
"저는... 던전 탐색 스킬을 가 지고 있어요. 이미 알고 계셔서 이에 대한 설명은 따로 필요 없겠죠?"
"예."
"이 능력을 어떻게 활용할까 생각해보다가 던전을 발견하고, 던전
의 정보, 위치를 알려주면서 돈을 받는 건 어떨까 생각했어요. 실제 로 몇 번 팔기도 했고요. 히든 던 전은 아니었지만, 제법 쏠쏠했어요."
"음... 대충 알겠네요."
"네?"
"던전을 팔다가 악질인 플레이어 들한테 잘못 걸린 거 아닙니까?"
"마, 맞아요."
김희연이 놀란 얼굴로 대답했다.
몇 마디만 듣고 유준이 단번에 알아낸 게 신기했다.
"주도면밀한 사람들... 아니, 놈들이었어요. 저에 대한 소문을 듣고 뒤를 캐고 다녔나 봐요. 대비는 하고 있었지만, 꼼짝없이 당해버렸어요. 제가 싸움은 잘못해서."
"그래 보여요."
"...하여튼. 이번 던전을 판매 하려다가 잘못된 거예요. 하필 또 이 던전을 발견했을 때 그놈들이습격해왔어요."
"그렇군요."
사건이 복잡하게 얽히고 꼬인 것 같지는 않았다.
상황은 간단하다.
해결법 또한 그렇다.
유준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그 세 명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1권 10화
10화
유준의 말에 김희연이 잠시 머뭇 거리다가 말했다.
"아마 던전을 공략 중일 거예요...
"그놈들은 여기까지 어떻게 왔죠? 앞에 키메라들이 있었을 텐데요."
"정확히 자정이 되면 키메라들이 움직임을 멈춰요. 대략 2시간 정도요."
"그래요?"
신들의 전쟁에는 없던 설정이다.
"당신을 가둔 플레이어들은 지금 도 옆길에서 던전을 공략하고 있는 겁니까?"
"며칠 내로 공략하겠다고 하는 건 들었는데 사실 그 후로 시간이 얼마 나 흘렀는지도 모르겠어요...
유준은 김희연을 묶은 밧줄을 검으로 잘라냈다.
"고마워요."
"혼자 돌아갈 수 있죠?"
"...노력해 볼게요."
불안한 표정을 짓는 김희연.
유준이 속으로 웃었다.
"따라오세요. 갈림길까지는데려다 줄게요. 어차피 저도 그쪽까지는 가야 하니까."
"네! 정말 감사해요!"
큰 선의를 베푸는 척 말하긴 했다.
그래야 그녀가 더 고마움을 느낄 테니까.
"앞장서요."
"네?"
김희연이 되물었다.
"바로 뒤에서 따라갈게요."
"...아, 알겠어요."
유준의 말뜻을 이해한 김희연이 후다닥 앞으로 나왔다.
그제야 유준이 편안한 얼굴로 걷 기 시작했다.
'아무리 그래도 뒤를 내줄 수는 없지.'
그녀가 약한 데다가 피해자라고해서 선한 사람이라고 장담할 수 없었다.
'나는지금 무한의 탑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초보자에 가까워.
조심해야지.'
김희연을 꺼내 준 건 노리는 것 이 있어서고.
그 후의 행동은 신중하게 하는 것이 좋았다.
일단 김희연을 벽에서 꺼낸 것은 지금까지는 잘한 행동이라고 생각 했다.
그녀가 던전 탐색에 특화된 인재 라는 걸 알았으니까.
그녀를 잘 이용할 자신도 있었다.
'아이템 몇 개 주면 되겠지.'
아이템 앞에선 누구든 평등하다.
이 불변의 진리는게임이 현실이 된 지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돌아가는 동안 위험한 상황이 연 출되지는 않았다.
길에 있는 키메라들이 모조리 싸 늘한 사체가 되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으니까.
김희연이 눈을 크게 떴다.
"이, 이거... 전부 당신이 한 짓이에요?"
"네."
대수롭지 않다는 듯, 너무나 당 연하게 말하는 유준을 보며 김희연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갈림길까지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푸른 기운이 어린 화살 하나가 날아왔다.
정확히 김희연의 머리를 노리고.
유준은 재빨리 김희연의 어깨를 잡아당겼다.
" 엇!"
화살이 그녀의 옷깃을 스치고 지
나갔다.
유준은 화살이 날아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비릿한 미소를 짓고 있는 세 명 의 플레이어가 보였다.
"쟤 어떻게 빠져나온 거야?"
"저 남자가 구해 줬나 보군."
"그런가? 하여간 운이 좋아. 여 길 도대체 어떻게 발견한 거지?"
플레이어들과 맞서는 건 처음.
그러나 당황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평정심이 있었다.
유준은 빠르게 상대방의 수준을 가늠했다.
'레벨이 어떻게 될까.'
아이템 수준만 봐선 그렇게 높아 보이진 않는다.
이 던전에서 키메라들을 상대로 고전할 정도면 막 레벨이 높은 것도 아닐 테고.
'할 만해.'
동시에 약간은 불안했다.
플레이어와 실제로 싸우는 건 이 번이 처음이다.
게임에서야 피케이를 수도없이
했고 그 강력한 키메라들을 손쉽게 처리하긴 했지만....
'솔직히 사람을 상대하는 건 별 개의 일이니까.'
긴장감이 스멀스멀 올라오려는 찰나, 평정심 특성이 다시 진가를 드 러냈다.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마음이 진정된 것이다.
유준이 상황을 냉철하게 판단했다.
'저들도 나를 경계하고 있어.'
당연하다.
유준은 50레벨을 달성하면서 장 신구만 교체한 게 아니었다.
기존의 방어구들을 영웅 등급의 50레벨 방어구들로 갈아입었다.
당연히 영웅 등급이니 평범한 아이템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고급진 느낌이 났다.
거기다 130레벨 착용 제한의 전 설 등급 검까지.
저 플레이어들이 보기엔 유준이 레벨이 무척 높은 것으로 보일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낮은 건 아니지.'
이곳은 무한의 탑 3층에 있는 히 든 던전이다.
레벨 높은 플레이어가 있을 만한 곳이 아니었다.
그중에 50레벨이면 3층에 있는 이들 중에선 무척 높은 편에 속하 리라.
"야. 욕심부리지 말고 그냥 빠지지?"
턱수염이 난 플레이어가 말했다.
대놓고 위협을 하고 있다.
결국엔 자신들이 우위에 있다고 판단한 듯했다.
확실히 수적 우위라는게 괜히 있는 말은 아니다.
플레이어들 간의 싸움이라면 변수가 많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수가 많은 쪽이유리한 건 자명 했다.
"말 좀 해 봐."
"입에 바늘을 뀄나? 이 새끼가."
"야. 그냥 죽이자. 어차피 저 여 자는 병풍이잖아?"
"그래. 설득하기도 귀찮다."
플레이어 3인조.
그들이 서로 눈짓을 했다.
검을 사용하는 주태환이 먼저 움직였다.
그를 보조하고자 최종훈이 주태 환에게 헤이스트를 걸었다.
이동 속도가 증가하는 마법이었다.
헤이스트를 받은 주태환이 순식 간에 유준의 앞까지 쇄도했다.
예상보다 빠른 속도.
유준은 주태환이 휘두른 검을 막 기 위해 황급히 검을 들었다.
서걱!
"...웅?"
주태환이 얼빠진 소리를 냈다.
위에서 아래로 휘두른 자신의 검 이 그대로 두 동강이 났기 때문이다.
반면 들어올리기만 했던 유준의 검은 멀쩡하기 그지없었다.
주태환에게 틈이 생겼다.
유준이 마음을 굳게 먹고 주태환을 향해 검을 휘두르려 하던 그때였다.
갑자기 큰 바위가 나타나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서걱! 쩌저적!
바위를 그대로 갈라 버렸지만, 주태환은 이미 뒤로 물러난 상태였다.
순간 목숨을 잃을 뻔한 주태환이 헛숨을들이켰다.
"주, 죽을 뻔했어."
"나 없었으면 그랬겠지."
"고맙다."
"방심하지마. 쟤 보통이 아니다."
"근데 무슨 검이 저래? 공격력이 아무리 높아도 저게 말이 되나? 아
니면 스킬 등급이 높은 건가?"
세 명의 플레이어들이 당황했다.
신들의 전쟁이라는게임과 마찬 가지로, 공격력과 방어력은 매우 중요한 요소.
지금까지 보인 것으로는 저 남자 의 공격력과 방어력이 자신들보다 높은 듯했다.
그러나 무를 썰기 위해 이미 검을 뽑은 상황.
여기서 겁을 먹고 물러날 수는 없었다.
상대가 든 검이 무가 아닌 티타 늄이라는게 문제였지만....
"한 번에 공격하자. 어차피 놈은 하나야. 여자는 무시해도 될 정도고."
"오케이."
"저놈 빨리 처리하고 여자도 데 려가자고."
그들은 김희연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당연하다.
그녀는 오히려 유준에게 방해가 될 수 있는 존재.
그걸 알고 있는 유준은 김희연을 뒤로 물러나게 했다.
"뒤로 가 있어요."
"하지만…."
"쓰읍."
"...알겠어요."
유준은 주태환과 한 번의 충돌로 깨달은 것이 있었다.
눈앞의 플레이어 세 명을 상대하는 건,
수십 마리의 키메라를 상대하는 것보다 훨씬 쉬운 일이라는 것.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그들이 키메라를 쉽게 사냥할 수 있는 수준이었으면 히든 던전을 진
즉 공략했을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공략이 지지부진 한 상황인 걸 보면 저 세 명이 그 리 강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문제는.
'내가 저들을 죽일 수 있을까?'
그에게 살인 경험이 전혀 없다는 것에 있었다.
키메라나 웨어울프 그리고 인간 과 비슷한 좀비들을 죽인 적은 있다.
하지만 놈들은 인간이 아니었다.
인간의 생명을 뺏은 적은 없는 것이다.
"후우..."
저 플레이어들은 사람을 아무렇 지 않게 죽이려는 이들이다.
여기서 마음을 약하게 먹으면 당 하는 건 오히려 자신이 되리라.
그 점을 인지했다.
유준은 마음을 스스로 다스렸다.
'어설프게 제압을 하려고 하면 되레 내가 당할 수도 있어.'
그는 최선을 다해서 플레이어들을 죽이기로 결정 내렸다.
유준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
검을 한껏 늘어뜨린 유준은 빠르 게 날아오는 화살을 향해 검을 휘 둘렀다.
슥!
정확히 반으로 갈라지지는 않았지만, 화살이 산산 조각나서 바닥에 홑뿌려졌다.
능력치가 높아지고 인간의 범주를 뛰어넘게 되면서 가능한 행동이었다.
"미, 미친!"
"화살을 막아?"
"저 검 무슨 전설 등급이라도 되는 건가?"
"전설 등급도 저 정도는 아닐 건데...
"단순히 무기가 좋아서가 아닌 거 같은데?"
그들이 당황할 때 유준이 움직였다.
그의 눈빛에서 섬뜩함을 느낀 마법사가 대지 마법을 사용해 벽을 만들어 냈다.
궁수가 달려오고 있는 유준을 향 해 화살을 연달아 쏘아 냈다.
화살 끝이 향하는 방향.
그것을 유심히 본 유준은 방향을 틀며 화살을 간단히 피해 냈다.
그 뒤 벽을 두 발로 걷다시피해서 올라갔다.
벽 위로 올라선 그는 망설이지 않고 궁수의 다리를 향해 검을 휘 둘렀다.
촤악!
"아아악!"
활을 사용하던 플레이어, 고종수 가 추락했다.
밑에서 주태환이 그를 받아 냈을
때 유준도 이미 뛰어내린 상태였다.
서걱-!
검끝이 위에서 아래로 일직선을 그렸다.
유준은 추락하는 힘을 이용해서 파괴력을 더 늘렸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주태환은 물론이고 고종수 또한 몸이 반으로 잘리면서 목숨을 잃은 것이다.
그로테스크한 광경이 연출되면서 유준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동요해선 안 돼.'
세상은 변했다.
아주 냉혹하고 강한 자들만이 살 아남을 수 있는 곳으로.
무한의 탑의 끝에 오르는 것이 최종 목표인 만큼 플레이어들과 최 대한 적대 관계를 맺어선 안 되겠지만,
이런 상황에서 자비를 베푸는 건 더더욱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여기서 흔들릴 순 없었다.
유준은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지 않았다.
"자, 잠시만!"
혼자 남은 마법사 최종훈이 다급 한 얼굴로 외쳤다.
유준은 아무 말없이 앞으로 쭉 걸었다.
"살려 줘! 뭐든 할게! 제발!"
그렇게 빌던 최종훈은 유준이 걸 음을 멈추지 않자, 등을 돌려 도망 가기 시작했다.
유준도 따라 달렸다.
'놓치면 안 된다.'
나중에 어떤 후환이 돼서 돌아올 지 몰랐다.
유준은 전력으로 달려서 최종훈
의 등에 검을 꽂아 넣었다.
푸욱-!
"아악! 아파! 제발 꺼져!"
최종훈이 다시 대지의 벽을 세워 서 유준을 밀쳐 내려 했다.
그러나 가만히 두고 볼 유준이 아니었다.
그는 발로 최종훈의 등을 세게 찍었다.
"컥! 야,야! 너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당장 비켜! 내가 누군지 알 아?"
"몰라. 누군데?"
"나 황금 사자 길드 소속이야. 내가 죽은 걸 알면 그들이 가만히 두고 보고 있을 것 같아? 이 사실 이 알려지면 넌 죽은 목숨이야!"
"틀린 말은 아니네."
"그렇지? 그러니까 당장...
"근데 황금 사자 길드가 내 정체를 어떻게 알까?"
" 뭐?"
"목격자가 없는데."
정확히는 목격자가 한 명 있긴 했다.
멀리서 지켜보고 있는 김희연.
그러나 그녀가 이 일에 대해서 떠벌릴 일은 없으리라.
말해서 좋을 것이 없으니까.
푹!
최종훈의 목젖을 뚫고 들어갔던 검을 거둬들였다.
시뻘건 피가 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유준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첫 살인.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벌어진 것도 아니다.
그가 직접 결정을 내리고 한 행
동이었다.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상황이라고 하지만... 결국 내가 살인
을 한 건 변함이 없어.'
한순간에 바뀌어 버린 세상에 적 응하기 위한 단계라고 생각했다.
'살인이 너무 당연해지지만 않으면 돼.'
의외로 심경에 큰 변화가 오진 않았다.
이것 또한 평정심 때문일 것이다.
유준은 묵묵하게 플레이어들이 죽으면서 남긴 아이템들을 챙겼다.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1권 11화
11화
모든 상황을 현장에서 지켜본 김 희연이 입을 떡 벌렸다.
'말도 안 돼.... 어떻게 혼자서.'
그녀는 유준과 맞섰던 이들이 어 중이떠중이들이 아니라는 걸 잘 알 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자들을 혼자서 해치 우다니?
유준은 플레이어 세 명을 별 힘을들이지 않고 쉽게 죽였다.
플레이어 간의 싸움에는 변수가 많이 창출된다.
워낙 많은 능력들이 오가니까 그 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변수가 나타나기도 전에 전투가 끝이 나 버린 것이다.
한마디로 압도적이었다.
'저 남자. 도대체 정체가 뭐야?'
김희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이 살아난 것은 정말 천운에 가까웠다.
우연히 그녀를 발견한 자가, 크
게 나쁜 사람도 아닌 데다가.
악질 플레이어 세 명을 가뿐하게 처리할 정도로 강자.
'운이 좋았다고 할 수밖에….'
그녀가 유준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정말 고마워요. 아까 끌어당겨 주시지 않았으면 저는...
김희연의 말에 유준이 고개를 끄 덕이며 입을 열었다.
"저 세 명 말고 또 한패가 있나요?"
"없었는데... 혹시 몰라요. 길
드에 연락해 놨을 가능성도 있어요."
"아. 그 황금 사자인가 그거요?"
"네."
"연락 안 했을 겁니다. 길드에 대 한 충성심이 극에 달해 있지 않은 이상 이 귀한 히든 던전 위치를 이 리저리 떠벌렸을 리가 없죠. 만약 아니더라도 뭐 크게 상관없고요."
"그렇군요. 아...
김희연이 한참을 머뭇거렸다.
"제가 같이 다녀도 될까요?"
그녀가 어렵게 꺼낸 말.
유준은 잠시 고민하는 척했다.
'괜찮겠지. 애초에 던전 탐색 덕을 보려고 구해 준 거고.'
안 그래도 김희연과 친하게 지내 려던 생각이었다.
'보스 방에만 같이 못 들어가게 하면 되겠지.'
그가 결정을 내렸다.
생각을 마친 유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같이 가죠."
"정말요? 고마워요!"
유준과 김희연은 보스 방이 있는
곳으로 쭉 걸었다.
두 번째 길도 그랬지만, 첫 번째 길도은근히 키메라들이 많이 등장 했다.
그러니 그 플레이어들도 쉽게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던 거겠지.
반면 유준은 키메라들을 베고 찌 르며 빠른 속도로 전진했다.
그가능력치가 오르고 강해진 것도 무시할 수 없고.
무엇보다 그가 키메라의 전투 방 식에 익숙해진 것이 큰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스스로 모르고 있지만,
유준은 제법 뛰어난 전투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살면서 싸움 한 번 안 해 본 인 간이 이런 살 떨리는 전투에 적응 하는 건 절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피가 튀고 날붙이나 길고 날카로 운 손톱이 그의 목숨을 호시탐탐 노리는 상황.
그러한 상황에서 최적의 움직임으로 키메라의 약한 부분만을 노렸다.
그건 엄연하게 유준의 재능이었다.
'아까 플레이어들이랑 싸울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김희연도 뒤에서 지켜보며 무척 놀란 상태였다.
유준의 진가는 키메라들을 상대 할 때 제대로 드러났다.
그녀는 2년 차 플레이어.
전투 능력이 따로 없어 3층에 머 물러 있는 상태였지만, 여러 파티에 속하면서 재능이 있는 이들을 많이 봐 왔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 본다는 말이 있다.
유독 특출 난 존재들은 바지 안 의 송곳처럼 금방 눈에 띄고 강해
지게 된다.
'솔직히 왜 아직도 3층에 있는지 모를 수준이야...
촤악!
유준이 휘두르는 검에 키메라들이 스스로 몸을 갖다 대는 듯한 광 경이 수차례 펼쳐졌다.
김희연은 감탄했다.
'진짜 천재란 저런 거구나.'
부럽고 질투가 났다.
한편으로는 존경심도 무럭무럭 샘솟았다.
'저런 사람이 날 구해 준 거야.'
이곳은 히든 던전.
보통의 플레이어라면 보상을 독 차지하고 싶은 마음에 자신을 무시 하고 지나치거나 확인 사살을 했을 터.
그러나 그는 달랐다.
영웅... 까지는 아니지만.
선량한 사람인 것 같기는 하다.
'이은혜는 꼭 갚자. 과연 내가 도움이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유준의 흑심을 모르는 김희연으로서는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유준은 스테이터스 창에 적힌 레 벨을 보고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벌써 56레벨인가.'
50이 된 후로는 레벨이 오르는 속도가 전보다 더뎌지긴 했다.
그렇다고 레벨이 오르는 속도가 느린 편은 아니어서 만족스러웠다.
원래 레벨이라는 건 이렇게 쉬이 올릴 수 없었다.
지금의 이 속도는 전례가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보스 방에 다다를 때까지 덤벼드는 키메라들을 전부 처치했다.
보스 방 앞에서 유준이 우뚝 멈춰 섰다.
"이 안에 뭐가 있는지 모르죠?"
"네. 첫 번째 길의 키메라들은 24 시간 내내 움직였거든요. 그래서 저 도 그렇고 아까 그 3인방도 보스 방까지 올 수도, 볼 수도 없었어요."
유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체력은 여유가 있었다.
지칠 만하면 레벨이 올랐기 때문이다.
'장비도 지금이 최선이고.... 꾸 물거릴 이유가 없다.'
곧바로 보스 방의 대문을 밀었다.
굳건하고 두꺼운 철문이 서서히 밀리기 시작했다.
"꼬응.…"
김희연도 문에 착 달라붙어 두 손으로 밀었다.
쿠구궁. 쿠궁.
대문이 활짝 열리는 순간, 뜨거 운 열기가 유준의 몸을 뒤덮었다.
유준이 보스 방을 쭉 살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림이 양각 된 천장.
그리고 그 천장을 받치고 있는 높게 솟은 기둥.
계단으로 이어진 제단까지.
연금술사의 실험실이라는 던전 명칭과 어울리지 않는 장소였다.
'보스 방 맞겠지?'
[데스 나이트가 되고자 했던 고 대의 연금술사 '파라네트'가 잠에서 깨어납니다.]
제단의 의자에 앉아 있던 해골 기사가 눈을 떴다.
붉은 안광이 주위를 쭉 훑었다.
[Lv. 68 불완전한 데스 나이트]
해골 기사의 머리 위에 뜬 홀로 그램 창에 유준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데스 나이트는 아니네. 다행이다.'
일반 데스 나이트는 레벨이 200을 훌쩍 넘었다.
그런 녀석이 여기서 등장하면 밸 런스 붕괴나 다름없었다.
"저 혼자 상대할게요. 밖에서 기 다려요."
"알겠어요."
김희연도 그녀 자신이 도움이 안 될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군말없이 따랐다.
유준이 고개를 돌려 던전 보스
파라네트를 바라봤다.
'데스 나이트가 되려던 연금술사라...
그는 신들의 전쟁 게임 세계관을 떠올렸다.
고결한 기사가 수준 높은 리치에 의해 죽음에서 깨어나 되는 것이 데스 나이트.
연금술사가 데스 나이트가 되려 했다니 어불성설이다.
불완전한 데스 나이트가 될 수밖에 없었다.
"호오... 살아 있는 인간은 정 말 오랜만에 보는구나."
파라네트가 음산한 목소리로 말 했다.
귀기 어린 그 목소리는 듣기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 기분이었다.
'뼈만 있는 해골이 말하니까 좀 이상하긴 하네.'
게임에서는 그냥 텍스트로 적힌 내용을 읽기만 하면 됐는데.
파라네트는 좀비와 스켈레톤들과는 달랐다.
그런 것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느껴지는 기세가 살벌했다.
'보통 히든 던전이든 그냥 던전
이든 혼자서 공략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좀 떨리네.'
같은 레벨이어도 보스는 피통 자체가 다르다.
스킬도 좀 더 위력적이고 다양했다.
무엇보다 지능이 높았다.
네임드급 몬스터나 보스 몬스터들이 가진 특징이었다.
'현실에도 똑같이 적용되는지 한 번 볼까.'
유준이 검을 들고 앙상한 몸을 가진 해골 기사에게 다가갔다.
"겁도없이 내게 다가오는가."
다그닥. 달각.
뼈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어리석구나, 인간! 산 자 주제에 죽음 그 너머를 꿰뚫은 이 나를
"쫑알쫑알... 참 말 많네."
"뭐, 뭐라!"
"덤벼."
유준의 자신감은 극에 이른 상태.
별 볼 일 없는 해골 기사가 무어
라 한들 겁날 리가 없었다.
"더, 더 다가오면 너의 목숨이 위태로울 것이다."
유준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위험하대도! 정녕 죽고 싶은 게 냐!"
"이..., 이! 죽어라!"
불완전한 데스 나이트 파라네트 가 갑자기 플라스크 하나를 유준을 향해 내던졌다.
플라스크가 포물선을 그리며 유준의 근처에 떨어졌다.
깨진 플라스크 주위로 보라색의 독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유준이 황급히 몸을 옆으로 던졌다.
'중독됐나?'
유준이 몸 이곳저곳을 살피며 몸 상태를 확인했다.
다행히 독 연기에 닿지 않게 빨 리 움직인 탓인지 몸은 멀쩡했다.
그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걸 피하다니...
자신의 공격이 통하지 않자, 파
라네트가 당황했다.
실제로 검을 든 해골 기사가 급 작스럽게 포션병을 던져서 얼 타기는 했다.
그걸 노리고 던진 거라면 파라네 트가 똑똑한 거 같기도 하다.
'그나저나 뭔가 좀 엉성한 느낌 인데.'
보스 몬스터치고 너무 허술하다.
플라스크 하나 피했다고 눈에 띌 정도로 당황하는 것과 그 병을 던 지는 자세까지.
'아까 알림 창 뜬 거 보면 보스 몬스터는 맞는데.'
어찌 됐든 레벨은 거짓말하지 않는다.
레벨이 68이라고 했다.
유준은 방심하지 않았다.
저러한 몸짓이나 행동 하나하나 가 전부 계산된 것일 수도 있었다.
유준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어리석구나, 어리석어! 죽음을 자 초하는 무지몽매하고 무식하며 농매 한 인간이여. 지금이라도 패배를 인 정하고 발걸음을 되돌리면 내 자비를 베풀겠다!"
파라네트의 외침이 공허하게 메
아리쳐 여러번 반복해서 울려 퍼 졌다.
"왜 대답이 없지. 인간?"
유준이 파라네트에게 더 다가갔다.
"어허!"
처벅. 처벅.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것으로 충분한 대답이 되었는지 파라네트가 분노했다.
"기어이!"
달각, 달각.
한걸음에 달려온 파라네트가 검을 위에서 아래로 휘둘렀다.
너무나 단순한 검로.
유준은 검을 가로로 틀어막았다.
슥! 파각!
파라네트의 검에 금이 갔다.
용케 부서지지 않은 건 녀석의 검이 나쁘지 않은 성능을 지녔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파라네트는 그것만으로도 화들짝 놀랐다.
"아, 아니!"
유준은 틈이 생긴 파라네트의 머 리를 노리고 검을 쭉 뻗었다.
파라네트가 뒷걸음질 치다가 바닥에 엉덩방아를 세차게 찧었다.
쿵
유준은 다시 파라네트의 머리를 노리고 검을 내려찍었다.
이번에도 용케 파라네트가 몸을 굴리며 유준의 공격을 피해 냈다.
그 뒤로 유준은 몇 번이나 파라네트를 공격했다.
파라네트는 기민한 움직임으로
위기에서 벗어났다.
다만, 녀석의 문제는 도망치기에 급급할 뿐, 변변찮은 공격 한번 못 해 보고 있다는 것.
'내가 어디를 노릴지 아니까 피 하기 쉽겠지.'
유준은 머리를 노리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검을 휘둘렀다.
다리, 팔, 어깨.
부위를 가리지 않았다.
그러자, 파라네트의 몸이 깎여 나가기 시작했다.
'뭐가 이래?'
유준이 헛웃음을 지었다.
이상할 정도로 쉽다.
유준의 공격이 여러번 스치다가 어느 순간, 파라네트의 오른쪽 다 리가 절단되었다.
파라네트의 발버둥은 거기서 끝 이 났다.
"아, 안 돼!"
파라네트가 당황해서 그 말을 내 뱉는 순간, 유준의 검이 녀석의 두개골을 꿰뚫었다.
파각!
[불완전한 데스 나이트 '파라네 트'를 쓰러뜨렸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히든 던전 '고위 연금술사의 실험실'을 클리어했습니다!]
[놀라운 업적! 희귀 칭호 '히든 던전 공략자'를 획득합니다.]
['파라네트의 정수'를 획득합니다.]
['파라네트'의 라이프 베슬을 획득합니다.]
[라이프 베슬에 정수를 주입하면 불완전한 데스 나이트 '파라네트'를 소환할 수 있습니다.]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1권 12화
12화
주르륵 떠오른 보상 알림 창들을 본 유준이 입을 열었다.
"던전 보스를 소환수로 부릴 수 있는 건가?"
확실히 소환수를 부리는 건 엄청 난 메리트다.
수많은 히든 던전을 공략해 왔지만 이러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곳은 드물었다.
그러나,
"얘를 얻다가 써?"
지닌 레벨에 비해 한없이 약한 녀석이었다.
언데드치고는 이상하리만치 겁도 많았고.
솔직히 소환수로 사용해도 방해 만 될 거 같았다.
유준은 일단 새로 얻은 칭호 효과부터 확인했다.
-히든 던전 공략자(희귀) : 아이템 드롭률이 5% 증가합니다.
"예전에게임에서 얻었던 칭호네."
효과도 그때 그대로였다.
히든 던전을 공략하면 주어지는 것이니 막 얻기 어려운 종류의 칭 호는 아니었다.
'그럼 이제 소환 작업 좀 해 볼 까...
인벤토리에서 파라네트의 정수를 꺼내려는 그때 김희연이 다가왔다.
"다 끝난 거예요?"
"예. 저기 출구가 나타났으니 저 기로 나가시면 됩니다."
"저... 메신저에 추가해도 될까요?"
"아, 그러죠."
메신저.
게임에 존재하던 메신저 시스템 이 현실에서도 존재했다.
전자 기기가 없는 무한의 탑에서 메신저가 나름 휴대 전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아... 이름이 신유준. 이름을 이제야 알았네요."
메신저 추가를 마친 유준과 김희 연은 포털을 통해 던전을 빠져나왔다.
그 후 무한의 탑 거주 구역으로 이동했다.
거주 구역에 도착해서야 김희연 이 안심하고 미소를 지었다.
"정말 감사해요! 진짜... 유준 씨 없었으면...
" 뭘요."
"제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연 락 주세요! 제가 쓸모 있을 리가 없지만...
"곧 연락하겠습니다."
"네!"
혼자 남은 유준은 설레는 마음으로 미리 잡아 놓은 여관으로 이동 했다.
방에 올라온 그는 인벤토리부터 열었다.
파라네트의 정수와 라이프 베슬.
어째서 리치가 아닌 불완전한 데스 나이트가라이프 베슬을 갖고 있는 걸까.
그 이유는 모르겠지만, 덕분에 히든 던전의 보스 몬스터를 소환수
로 쓸 수 있게 되었다.
'좋아. 바로 가자.'
웬만한 주전자보다 큰 크기의 라 이프 베슬.
그곳에 파라네트의 정수를 집어 넣었다.
파라네트의 정수가 흐물흐물하게 쭉 퍼졌다.
그러다 라이프 베슬 안에서 거품 이 일기 시작했다.
거품이 계속 생겨나서 라이프 베 슬을 가득 채울 때쯤이었다.
홀로그램 창 하나가 나타났다.
[불완전한 데스 나이트 '파라네 트'가 소환수가 되었습니다!]
[성장형 소환수를 획득했습니다!]
[위대한 업적!]
[영웅 칭호 '명예로운 소환사'를 획득합니다.]
[소환수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 뭐야?'
그가 놀란 이유는 칭호를 받았기 때문이 아니다.
파라네트가 바로 성장형 소환수 라는 점 때문이었다.
소환수의 종류는 여럿 있지만, 성장형 소환수는 쉽게 얻기 힘들었다.
' 미쳤네.'
얼떨결에 성장형 소환수를 얻은 유준이 함박웃음을 지었다.
'언데드 몬스터가 성장형이라니.'
이건 엄청난 행운이었다.
'왜 그렇게 약한가 했더니.'
파라네트에게 불완전한 데스 나 이트라는 다소 굴욕적인 칭호가 붙
은 이유가 있었다.
너무 약해서 사실 소환수로 쓰려는 마음도 없었는데, 성장형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먼저 영웅 칭호 '명예로운 소환 사'의 효과를 확인했다.
'소환수의 능력치를 10% 증가시 킨다라... 꽤 좋은데? 아, 이럴 때가 아니지.'
유준은 들뜬 기분을 가라앉히고 소환수 '파라네트'의 정보를 확인했다.
[소환수 : 파라네트(성장형)]
□ 레벨 : 68
□ 특성 : 생존 본능(A), 회(C)
□ 스킬 : 독 포션 제조(B)
□ 칭호 : 없음
□ 능력치
[근력 39] [민첩 58]
[체력 54] [마력 62]
[미분배 포인트 :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