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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6 - 6

* * *

최상위 랭커.

유독 강한 플레이어들을 지칭하는 단어다.

그러나 보통 최상위 랭커는지구 라는 곳에서 온 인간 플레이어들 증가장 강한 이들을 말했다.

그들 대부분이 상식을 벗어날 정 도로 강했고, 특이한 능력을 지니 고 있었다.

단순히 외지인에 불과했던 그들은 빠른 속도로 강해지며 이종족들을 위협하는 자리까지 올라섰다.

그 최상위 랭커 중에 유명한 이는 많고도 많지만, 그중에는 암암

리에 활동하며 큰 영향력을 떨치고 있는 이가 있었다.

그게 바로지규태였다.

30대 중반의 나이에 접어든 지규 태는 최상위 랭커들 십수 명이 모 여 만들어진 조직 '조율'의 리더였다.

'조율'은 대륙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비밀 조직이었다.

아는 사람만 아는 집단인 동시에 아는 사람 모두가 두려워하는 집단 이기도 했다.

'조율'이 하는 일은 여러 가지였다.

누군가를 암살하기도, 야망이 있는 마족과 손을 잡기도, 대륙에 있는 왕국 하나를 멸망시키기도 한다.

그리고 그 모든 걸 총괄하는게 지규태였다.

" 흐음...

심기가 거슬리는 일이 생겼다.

역병을 퍼뜨리는 역할을 맡은 '어둠의 근원'이 사망한 것이다.

녀석은 본인의 임무를 제대로 완 수했지만, 그가 죽으면서 반쪽짜리 성공이 되어 버렸다.

"요즘 어째선지 일이 잘 안 풀리는군."

지규태가 미간을 찌푸렸다.

저번엔 상급 마족 하나와 큰 계 획 하나를 준비했는데 어이없게도 이종족 연합에게 당해버렸다.

'연합의 전력은 확실하게 파악해서 실패할 가능성이 없다고 봤는데.'

이런 일이 우연히 연달아 벌어졌 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주인님, 무슨 일 있어요?"

그때 그의 곁에 있던 이종족 노

예 하나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어 왔다.

"네가 걱정할 건 아니다."

지규태가 다시 생각에 잠겼다.

'어둠의 근원이 죽었으니 역병을 다시 퍼뜨릴 순 없고... 루카스가 주동현을 데려오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나.'

루카스 후작과 그의 부하들이 시 타헬 왕국에 도착했다.

성문이 허물어진 상황.

그들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왕국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역병에 걸렸던 드워프들은 이제 막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

"쯧."

"저희.... 그분께 처벌을 받는 겁니까?"

부하 중 하나가 불안한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시타헬 왕국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멀쩡했기 때문이다.

"주동현을 데려가지 못하면 받겠지. 어둠의 근원이 죽은 것 자체는 우리의 잘못이 아니야."

"마, 맞죠? 다행입니다...

주동현의 위치는 금방 알 수 있었다.

"저, 뭣 좀 여쭙겠소."

" 뭐죠?"

"우리는 코루나 왕국에서 물자 지원 및 재고 파악을 위해서 왔소. 그러다 주동현이라는 자가 이 시타 헬 왕국에 많은 도움을 줬다는 말을 들었고. 하여 우리 국왕 전하께

서 선물을 전하고 싶다고 하셨소. 그자의 위치를 아시오?"

"아, 그런 거라면. 저기 대피소에 있습니다. 큰 건물 보이시지요."

"고맙소."

대충 지어내서 이유를 대니 드워 프들이 알아서 주동현의 위치를 말 해 줬다.

루카스 후작이 대피소의 문을 벌 컥 열었다.

주동현은 드워프 연인과 함께 있었다.

"주동현."

"누구시죠?"

"여기 있는 드워프들이 전부 죽는 꼴을 보고 싶지 않으면 조용히 따라와라."

주동현은 빠르게 루카스 후작과 그 부하들의 전력을 확인했다.

그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곤 천 천히 걸어 나왔다.

그때 부하 한 명이 입을 열었다.

"어이. 네 애인도 데리고 나와."

"...뭐?"

주동현이 얼굴을 굳혔다.

"그건 안 되겠는데."

"그래?"

루카스 후작이 손을 움직였다.

그의 손에서 뿜어져 나온 마력이 주동현의 연인 크리스티나의 몸을 휘감더니 그녀를 강제로 끌어왔다.

"멈춰!"

"그럼 잠자코 따라와."

주동현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어쩔 도리가 없는 상황.

그는 루카스 후작을 등지고 걷기

시작했다.

"허튼짓할 생각은 하지 마라. 그 즉시 네 애인의 목이 날아갈 테니."

"알았다. 약속하지."

루카스 후작은 별문제없이 코루 나 왕국으로 주동현과 크리스티나를 데려갈 수 있었다.

코루나 왕국으로 들어온 루카스 후작은 외곽 쪽에 있는 높은 7층 건물로 들어갔다.

건물에는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지하 동굴에라도 들어온 것처럼 어두웠다.

"나한테 뭘 원하는 거야."

주동현이 말을 꺼냈다.

"뭘 원하기는. 알면서. 널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

" 누구?"

"기다려."

루카스 후작은 전에 방에서 사용 했던 영상구를 꺼냈다.

그 영상구에 마력을 흘려 넣자, 인간 한 명이 영상에 나타났다.

루카스 후작이 영상의 남자를 향 해 허리를 푹 숙였다.

"네놈도 예를 표하라."

"...나는 저 사람이 누군지 모르겠는데."

-됐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영상의 남자가 말했다.

"나한테 원하는게 뭐지?"

-네 얼굴을 보고 얘기를 나누고 싶었다. 일단, 내 소개부터 하지. 난 지규태라고 한다.

"...지규태라고?"

-들어 본 적 있군?

"당연하지. 성자라고 불리는 사 람을 모를 리가."

- 그래.

"그 성자가 이런 짓을 해도 되는 건가? 납치? 아니, 역병과도 관련 이 돼 있겠네. 만약 이 얘기가 밖으로 퍼지면...

-네 옆에 있는 애인도 죽는 거지.

".…"뭐?"

-이봐. 네가 어둠의 근원을 죽였나?

"어둠의 근원이 뭐지?"

-거짓말을 하고 있군. 넌 어둠의 근원에 대해서 알고 있다.

"...무슨 근거로?"

-난 너의 속마음이 전부 보여. 날 무척 두려워하고 있군. 네가 소 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을 해할까 봐. 겁이 나나? 솔직하게 말해. 내 앞에서 거짓말을 하는 건 아무 의미 가 없어.

주동현이 눈을 감았다가 떴다.

"어둠의 근원을 본 적 있어."

-어디서 봤지?

"골목길. 냄새가 많이 나는 곳이었다. 코루나 왕국 안이었지."

-좋아. 여기까지 거짓은 없군.

누가 죽였지?

이번 질문에는 주동현이 섣불리 말을 꺼내지 못했다.

-누가 죽였냐니까? 모르나?

"그래. 모른다."

-루카스.

"예!"

-저 드워프를 죽여라.

"자, 잠깐!"

주동현이 다급하게 외쳤다.

지규태가 웃음을 터뜨렸다.

-같은 한국인이잖아. 우리끼리는 솔직해져야지. 안 그래?

주동현은 메신저로 유준에게 미 안하다는 말을 먼저 보냈다.

자초지종을 설명할 여건은 아니다.

그래서 이곳의 위치만 보냈다.

- 말해.

지규태가 나지막이 말했다.

루카스 후작이 크리스티나의 목에 단검을 가져다 댔다.

주동현이 고개를 푹 떨구고 입을 열었다.

"유준. 그가 죽였다."

-흐음. 유준이라고? 어디서 들어 본 이름 같기도 한데. 성도 있겠지? 이름을 보니 한국인인 거 같은데. 성은 뭐지?

"주동현. 묻잖아."

루카스 후작이 재촉해 왔다.

주동현이 이를 꽉 깨물었다.

이건은혜를 갚기는커녕, 오히려 뒤통수만 치는 꼴이 아닌가.

이미 뒤통수는 거하게 친 셈이지만, 성까지 말해 버리면 양심이 남 아나질 않았다.

"빨리 말해라! 네 애인이 죽는 꼴 진짜로 보고 싶어?"

루카스 후작이 호통을 치며 단검을 조금 움직였다.

"신유준."

낮게 깔린 목소리.

그 말은 주동현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응?"

"누, 누구야?"

"니들이 찾던 사람."

유준이 손가락에 끼고 있던 반지를 빼고 모습을 드러냈다.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3권 14화

62화

루카스 후작과 그 부하들이 화들 짝 놀랐다.

"어, 어디서 갑자기 등장한 거야?"

"공간 이동 스킬 아닙니까?"

"그럴 리가 없다. 여긴 이동 마법 사용이 불가능하도록 하는 마법 결계가 쳐져 있어."

그때 지규태가 입을 열었다.

-네가 신유준이라고? 그 종족

대항전에 나왔던?

"맞아. 날 아네?"

-인상 깊게 봤으니까.

"어우, 영광입니다. 성자 나리."

-비꼬는 건가?

"명석하기까지! 이야, 단점이 도 대체 뭐야? 성자니까 당연히 성격 도 좋을 거고, 강해 보이기까지 하는데. 루카스 후작을 수족처럼 다 룰 정도니 권력도 장난 아니겠다."

-...나와 척을져서 좋을 게 없다. 신유준. '조율'은 너라는 존재를 하룻밤 사이에 사라지게 할 수 있으니까.

"혓바닥이 참 기네. 어둠의 근원을 누가 죽였는지."

유준이 영상으로 나오는지규태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게 궁금한 거 아니었어?"

-당돌한 녀석이군. 제 수준을 알 지 못하고 기어오르는 꼴이 참 우 스워.

"오, 그래? 나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_ 뭐?

"영상구 안에 숨어서 그렇게 입 만 나불대는게 우습잖아."

-어설픈 도발을 하는구나. 애송아. 넌 내 상대가 될 수 없다.

"그럼 직접 와서 붙어. 쫄리면 뒈지시든가."

유준은 일부러 가벼운 말투를 유 지했다.

지규태와 같이 높은 자리에 있는 인간은 웬만해서는 직접 나서려 하지 않는다.

'엉덩이 무거운 양반을 오게 하 려면 이 정도는 해야겠지.'

그러나 지규태는 코웃음을 칠 뿐, 유준의 도발에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어둠의 근원을 네가 죽였다고 했지.

"음."

- 왜지?

"뭐가 왜야?"

-어둠의 근원을 왜 죽였냐는 거다. 너와 하등 상관없는 일이 아닌가? 네가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다.

"이야, 정보력도 좋아? 나 소속없이 혼자 다녀. 솔로 맞지. 근데 그게 어둠의 근원을 죽이지 않을 이유가 되진 않잖아.?"

-역병을 막는 것으로 네가 뭘 얻었지? 얼마 되지도 않는 돈푼? 아니면 같잖은 정의심?

지규태가 살짝 짜증이 난 듯, 한 쪽 눈가를 찡그리며 말했다.

"내가 뭘 얻었냐고? 뛰어난 능력을 지닌 인맥을 얻었지. 레벨도 올 렸고. 아, 이걸론 부족하나?"

유준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더 진해졌다.

"좀 뿌듯하더라. 대륙이 위험에 빠뜨릴 역병을 내가 막은 거잖아. 내가 영웅이 된 거 같고 막 기분 좋더라고."

-...네 생각은 잘 알겠다. 내 경고 하나 하지. 이건 네가 생각하는 만큼 가벼운 놀이가 아니야. 내가 관리하는 '조율'의 힘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거대하고 강력 하다. 신유준. 너는 내 심기를 거스 른 대가를 곧 치르게 될 것이다.

경고가 아닌 위협.

그러나 유준은 태평했다.

유준이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후 벼 팠다.

"올 거면 빨리 오라 해. 기다리 기 지루하니까."

그가 검을 뽑아 들고 뒤로 돌았다.

영상구의 영상은 아직 연결되어 있는 상황.

쾌속 전진(A)을 사용한 후 루카 스에게 접근했다.

루카스 후작이 홈칫한 그때는 이미 늦었다.

유준의 검이 그의 목을 베고 지 나갔다.

루카스 후작의 머리가 바닥을 굴 렀다.

목의 잘린 단면이 깔끔했다.

쿠웅-!

머리를 잃은 후작의 신체가 지면 과 충돌했다.

"뭐, 뭐?"

"후작님이..."

"저놈을 죽여!"

루카스 후작의 부하들이유준에게 달려들었다.

한 명은 암살자 계열인지 독이 묻은 단검을 투척했다.

유준은 한 발짝도움직이지 않고 제자리에서 검을 여러 차례 휘둘렀다.

접근했던 플레이어 둘이 목숨을

잃고, 날아오던 단검은 반으로 잘렸다.

남은 후작의 부하 한 명은 주동 현이 처리했다.

"감사합니다."

" 뭘요."

"그런데 어디 있다가 갑자기 나 오신 겁니까? 깜짝 놀랐습니다."

처음부터 따라다녔다고 하기엔 좀 그렇겠지.

그와 그의 애인이 납치당하는 걸 두 눈 뜨고 구경만 했으니.

"안 좋은 느낌이 들어서 여기 왕 국을 돌아다니고 있던 와중에 주동 현 씨를 봤습니다."

"예? 그런 우연이...

" 있더군요."

"아…. 어찌 됐든 다시 한번 감 사드립니다."

"고마워요!"

주동현의 연인 크리스티나도 허 리를 푹 숙이며 감사 인사를 표했다.

"이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 지.... 아까 이름을 먼저 말해버

린 것도 정말 죄송합니다."

"뭐 바라고 한 일은 아니라서요. 그리고 그건 뭐 인질이 잡혔는데 어쩔 수 없죠. 뭐 정 그러시면 나 중에 그 천리안이랑 예지 능력으로 도와주세요."

"당연하죠! 언제든 편히 말씀해 주세요."

"그리고…."

유준이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어 나갔다.

"제가 어둠의 근원을 죽였다는 걸 밝혔으니 주동현 씨가 위험에 직접 노출되지는 않겠지만, 솔직히

저와 친분이 있다는 걸 알았으니 완전히 안전하다고는 못 합니다. 조심하세요. 무슨 일 생기면 바로 메신저 보내시고요."

"예. 그래야죠. 일단 남은 일을 끝내고 아버지에게 가 봐야겠습니다. 홍예지 씨와 약속을 했으니."

주동현은 시타헬 왕국으로 돌아 갔다.

원래 이렇게 왕국 간의 왕래가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러나 그는 여러 왕국을 돌아다 닐 수 있는 통행권이 있다고 한다.

'나도 이제 슬슬... 가 볼까.'

유준은 '조율'이라는 조직을 떠올렸다.

지규태가 조율을 언급하며 협박을 했었지.

도대체 어느 정도의 힘을 갖고 있길래 그런 자신감을 내보인 걸까.

궁금했다.

'또 500레벨의 벽은 뭘 말하는 거지'?'

조율이라는 조직보다도 그게 더 신경 쓰였다.

마지막까지 플레이했던 신들의 전쟁은 레벨의 끝이 500으로 정해

져 있었다.

그래서 500레벨의 벽이라는 말이 생소했다.

'설마 최상위 랭커들 몇 명은 500레벨을 넘긴 건가?'

거기부터는 유준한테 있어 미지 의 세계였다.

아까는 여유로운 척했지만, 마냥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조율이 곧 찾아온다고 했지.'

유준은 본연의 무력을 늘려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조율은 아직 내 무력이 어느 정

도인지 파악 못 했을 거야.'

설령 파악한 상태라고 해도 상관 없었다.

지금보다 더 강해지면 되는 일이었다.

그의 레벨은 아직 낮았다.

중견 플레이어 소리를 듣는 300 레벨도 되지 않은 것이다.

'레벨부터 올리자.'

원래는 블랙마켓에 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지규태와 영상으로 대면 하고 생각이 바뀌었다.

유준이 김희연에게 연락했다.

[김희연 : 웅. 당연히 찾아 놨지.]

[*신유준 : 벌써?]

유준이 헛웃음을 지었다.

히든 던전이라는게 찾는다고 바로 찾아지는게 아니다.

그런데 김희연은 무슨 신들린 것 처럼 필요할 때마다 히든 던전을 발견해 냈다.

[김희연 : 사실은 며칠 전에 찾았어.]

[*신유준 : 왜 미리 말 안 했 어'?]

[김희연 : 네가 먼저 연락할 때 까지 기다리고 있었지.]

[* 신유준 : 그래? 지금 바로 가능해?]

[김희연 : 바로? 나야 괜찮은데. 여기 히든 던전이 좀 이상해서.]

[*신유준 : 이상하다니 무슨?]

[김희연 : 갈 때마다 던전 환경 이 변해. 막 사막이었다가, 해변가

였다가, 심해였다가, 용암지대였다 가 그런 식으로.]

[*신유준 : 일정 시간마다? 아니 면 들어갔다 나올 때마다?]

[김희연 : 그것도 잘 모르겠어. 그때는 경황이 없었어. 장소가 바 뀌자마자 죽을 뻔했거든. 호흡 곤 란으로. ]

[*신유준 : 심해에서?]

[김희연 : 웅? 어떻게 알았어?]

[*신유준 : 호흡 곤란이라길래. ]

[김희연 : 맞아. 진짜 깜짝 놀랐 다니까. 내가 플레이어라는 것에 그때 처음으로 감사했지. 나도 내가

10분 이상 바닷속에서 안 죽고 버 틸 줄 몰랐거든.]

[*신유준 : 용케 빠져나왔구나. 살아서 다행이네.]

[김희연 : 웅. 진짜 무서웠어.]

하마터면 히든 던전을 못 갈 뻔 했다.

그녀가 죽으면 유준으로서는 히 든 던전을 찾을 방법이 없다.

돈을 주고 던전을 사는 것도 있지만, 고레벨의 히든 던전을 파는 플레이어는 거의 없을 것이다.

유준은 뜸들이지 않고 김희연을 만나러 갔다.

그녀는 거주 구역에 있었다.

유준은 김희연과 만난 뒤에 히든 던전이 있다는 곳으로 바로 출발했다.

"히든 던전을 찾고 나서는 뭐 하고 있었어?"

"너 기다리고 있었는데?"

" 뭐?"

"혹시 내가 다른 거 하고 있었으

면 히든 던전 같이 못 가는 거잖아. 그건 너무 아쉬워서."

"아니, 굳이 내 시간에 맞춰 줄 필요는 없는데."

"에이, 솔직히 버스 타는 입장에 서 이 정도 기다리는 건 일도 아니지."

본인이 그렇다는데 뭐라 할 수도 없다.

"그나저나... 너 벌써 263레벨 이네? 왜 이렇게 빨라? 비결 좀 알 려 줘."

"별것 아닌데. 알려 줄까?"

"흠."

"나보다 훨씬 레벨 높은 몬스터를 수천 죽이면 돼."

"간단하지?"

"응. 간단하네. 말로만."

김희연이 허탈한 미소를 지었다.

"너도 레벨 좀 올랐구나, 그래 도."

"이게 오른 거야? 이제 153인데."

"아니. 나랑 비교해서 그렇지 너 도 엄청 빠른 편이야. 다른 플레이

어들이랑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이거 너랑 히든 던전 같이 가서 올린 건데. 그 후로는 거의 안 올 랐어."

"아, 그래...?"

"응. 나한테 관심이 없구나."

김희연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 그래도 이번에 또 오르겠네! 잘됐다."

"그래서 너만 기다린 거라니까."

확실히 김희연과 같이 특별한 전 투 능력이 없다면 레벨을 올릴 방 법이 따로 없다.

뛰어난 플레이어와 파티를 맺는 수밖에.

그렇게 생각하니 김희연이 자신을 기다렸다는 것이 이해가 간다.

'나였어도 구명줄이라고 생각하겠다.'

서로 이해관계가 맞으니 잘된 셈이다.

히든 던전은 대륙에 있어 다른 층으로 넘어갈 필요가 없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그치? 신기하지? 거주 구역 바로 근처에 히든 던전이 있을 줄은..."

히든 던전까지 10분도 걷지 않았다.

왜 뛰지 않고 걷나 했더니.

굳이 그럴 필요없이 너무 가까웠던 것이다.

"근데 여기 아무것도 없는 황무 지잖아. 땅을 팔 생각은 어떻게 했어?"

"그냥 여기 지나가다가 좋은 예 감이 들어서 파 봤는데?"

"응?"

"스킬이 시키는 대로 한 거야."

" 편하네."

"웅. 그래서 나는 최대한 많이 돌아다니려고 노력해. 그러다 보면 던전 하나씩 발견되거든. 아, 히든 던전 말고 그냥 던전은 세 개 정도 찾아 놓은 상태야. 하나는 팔았고."

"...너도 장난 아니구나."

"유준이 네가 할 말은 아니지."

김희연이 무력이 약하다고해서 무시할 게 아니었다.

그녀의 던전을 찾는 능력은 무한 의 탑에서 가장 뛰어날지도 모르니까.

'내 선구안이 한 건 했네.'

사실 선구안이라기보다는 상태 확인 스크롤 덕분이었지만.

김희연이 대충 덮어 놓은 흙더미를 파냈다.

좁은 통로 하나가 드러났다.

"여기로 가면 돼?"

"웅. 근데 조심해. 들어가자마자 시작되니까."

"그럼 내가 먼저 들어갈게. 메시 지 보내면 그때 들어와."

"알았어."

유준은 인벤토리에서 희귀 등급

의 수중 호흡기를 꺼냈다.

수심이 깊은 심해를 대비한 것이다.

그 후 통로로 들어갔다.

화아악-!

어딘가로 몸이 빨려 들어가는 듯 한 느낌.

그 느낌은 길게 가지 않았다.

[A급 히든 던전 '마력의 원천'을 발견했습니다!]

용암지대.

뜨거운 열기가 그를 반겼다.

눈에 익은 풍경이다.

'고대 유적 시험에서 한번 경험 했지.'

그때는 곳곳에서 불기둥이 솟아 나서 여간 고생이 아니었는데.

'다행히 여기는 아닌 모양...

화르륵!

콰앙!

불기둥이유준의 바로 옆에서 뿜어져 나왔다.

다행히 비껴가서 몸이 불타지는 않았다.

유준은 말없이 파라네트부터 소환했다.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3권 15화

63화

김희연이 던전에 들어왔다.

그녀는 입장하자마자, 파라네트 가 자신에게 달려드는 광경을 목격 했다.

"뭐, 뭐야? 악!"

김희연을 밀친 파라네트가 안도 했다.

화르륵-!

그녀가 서 있던 곳에서 불기둥이 솟아올랐다.

"휴, 나한테 빚진 줄 알아라, 인 간."

"으, 응. 고마워."

용암지대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 도로 광활했다.

불기둥도 예전 생각이 날 만큼 쉴 새없이 나타나고 있었고.

덕분에 파라네트가 바빠졌다.

"주인님! 왼쪽입니다!"

"오케이."

화르륵!

반면 김희연의 경우엔 말하고 나 서 움직이면 늦었다.

"이랴앗!"

"악!"

항상 파라네트가 직접 움직여서 김희연을 위기에서 구해 냈다.

"살살 밀어!"

"살살 밀면 불에 타 죽는다. 이 게 최선이다."

"아니면 같이 몸을 던지면 되잖아."

"그건 내가 싫다."

"...어쨌든 도와줘서 고마워."

"흥."

파라네트는 유준을 제외한 모든 인간에게 까칠했다.

"던전 환경은 언제 변해?"

"저번에도 말했지만, 경황이 없어서 제대로 못 알아냈어."

"잘 떠올려 봐. 그거 못 떠올리 면 넌 계속 파라네트한테 몸통 박 치기당할 수밖에 없어."

"으으.... 그럼 어떻게든 생각 해 내야겠네."

퍽!

"위험하다, 인간!"

"아악!"

김희연이 눈에 쌍심지를 켰다.

"아니, 왜 밀치고 나서 말하는 건데? 아무 의미 없잖아."

"그건 인간, 네가 느리니까."

어찌 됐든 지금은 불기둥을 피하 며 살아남는게 급선무였다.

파라네트의 역할이 중요했다.

일단은 걸었다.

뭐라도 나오겠지 하면서.

그때였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난데없이 레벨이 올랐다는 메시 지가 눈앞에 나타났다.

" 뭐야?"

"유준이 너도?"

"레벨 올랐어?"

"응. 난 레벨 네 개가 한 번에 올랐어."

"저, 저도 올랐습니다, 주인님."

셋이 어리둥절한 그 순간, 용암 지대였던 던전의 모습이 바뀌기 시작했다.

마녀 '마누엘라'.

그녀가 눈을 크게 떴다.

'내 던전에 누가 또 침입했지?'

마누엘라가 마력을 끌어 올렸다.

대륙에 존재하는 던전의 내부 상황이 그녀에게 실시간으로 전달되었다.

'잠깐, 저기는...

마누엘라가 입을 떡 벌렸다.

"아, 안 돼! 저기는 절대로 안 돼."

마력의 원천.

마누엘라가 가장 아끼는 던전이었다.

누군가가 저 던전을 공략한다면 자신은 상당한 손해를 입게 된다.

'도대체 누구야? 일부러 찾기 어 렵게 땅 깊은 곳에 숨겨 놨는데. 거주 구역에 뭐 지진이라도 일어났나?'

마누엘라는 던전 침입자의 얼굴

부터 확인했다.

침입자의 얼굴을 본 그녀가 화들 짝 놀랐다.

"저번 그놈들이잖아?"

자신이 아끼는 초월종 '토트'를 죽인 장본인.

인간 플레이어 둘과 언데드 소환 수

기가 찼다.

한 번도 모자라서 두 번이나 자 신의 던전에 침입하다니.

그것도 일반 던전이 아닌 히든 던전만 골라서 찾아왔다.

우연이라기에는 너무 기막히지 않은가.

"하필 내가 마계에서 못 벗어나는지금...

마누엘라가 끙끙 앓았다.

분통하고 억울했다.

왜 하필 지금일까.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 너무 답답하다.

당장이라도 초월종 토트를 죽인 인간 놈의 뒤통수를 거하게 후려치 고 싶은데….

"아니지. 진정하자. 어차피 '마력

의 원천'은 공략 불가능한 던전이야. 저놈들이 끝에 다다를 리가 없지."

그렇게 혼잣말을 했지만, 한번 싹튼 불안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마, 만일을 대비한 장치 하나만 더 만들어 둘까...?"

이번엔 사막이었다.

입안이 금세 텁텁해졌다.

김희연이 손으로 부채질을 했다.

"그래도 사막이 용암지대보다는 덜 덥네."

"그렇겠지."

"그나저나 우리 왜 레벨이 올랐 던 걸까?"

"몬스터가 없는 곳이라 그 환경 만 버텨 내면 보상이 주어지는 거 아닐까?"

"일리 있다."

"차라리 몬스터가 나오면 좋겠는데."

그편이유준에게는 더 편했다.

후우웅-. 후웅!

거센 모래바람이 일행을 덮쳤다.

모래 가루가 피부에 덕지덕지 달 라붙었다.

"으에, 퉷 퉷!"

입에 모래가 들어갔는지 김희연 이 침을 뱉었다.

고개를 들어 앞을 본 그녀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저, 저거...

멀지 않은 곳에 높게 솟은 무언 가가 보였다.

모래 폭풍이었다.

방금 덮친 모래바람은 모래 폭풍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어떡해?"

"도망가야지."

"저거 못 없애는 거야?"

"내가 무슨 신이냐? 저게 몬스터 면 없앨 수는 있겠다."

"몬스터일 수도 있잖아."

"...뭐?"

그건 한 번도 못 해 본 발상이다.

어떻게 하면 모래 폭풍을 보고 몬스터라는 생각을 하겠는가.

"실없는 소리 하기는. 일단 뛰 자."

그러나 이상하게 거리가 벌려지 지 않았다.

모래 폭풍은 점점 더 가까워졌다.

"왜 이런 거야? 우리가 더 빠른 거 같은데...

김희연이 의문을 표했다.

유준이 피식 웃었다.

"던전에 무슨 짓을 해 놨으니까. 아마 마법일 거야."

"마법?"

"고레벨의 마법사 짓 같은데. 도 망치는 건 의미가 없겠다."

유준이 달리다 말고 멈췄다.

김희연이 물었다.

"어쩌게? 몬스터가 아니라면 안 된다며?"

"아예 방법이 없는 건 아니야."

모래 폭풍의 위세가 대단하다.

그러나 도망쳐도 소용이 없다면 모래 폭풍에 맞서는 수밖에.

그가 인벤토리를 열었다.

아이템 하나를 꺼냈다.

[지역 결계 구슬]

등급 : 전설

옵션 : 대규모 결계를 설치할 수 있습니다. 한 번 사용하면 사라집니다.

저번 드워프 좀비들과 전투할 때 사용했던 지역 결계 구슬이다.

유준이 구슬을 깨트렸다.

콰직!

얇은 막.

결계가 구슬만 한 크기에서 단숨에 근방 일대를 뒤덮을 정도로 커 졌다.

모래 폭풍이 결계에 부딪쳤다.

콰콰쾅! 쾅! 쾅!

모래 폭풍에 섞인 커다란 돌덩이 가 결계를 쉴 새없이 두드렸다.

"유준아. 괜찮겠지?"

"웬만해선 안 부서져. 걱정하지마."

별것 아닌 것처럼 보여도 지역 결계 구슬은 전설 등급의 소모 아이템이다.

효과 하나는 확실했다.

"문제는 모래 폭풍이 언제까지 여기 머물러 있냐는 건데."

"...다른 곳으로 갈 생각을 안 하는데?"

모래 폭풍이 결계를 삼킨 것 같은 상황이 이어졌다.

이곳에 완전히 정착한 모습이다.

그때였다.

"겁쟁이들아! 나와라! 숨어 있지

만 말고!"

결계 밖에서 크고 웅장한 소리가 들려왔다.

유준이 눈을 가늘게 떴다.

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모래 폭풍에 가려져 안 보이는 걸 수도 있지만....

"나오라니까! 내가 겁나나? 응?"

그건 아닌 것 같았다.

"희연아."

"어, 왜?"

"모래 폭풍이 몬스터일 수도 있

겠는데?"

"으웅? 그게 말이 돼?"

"네가 아까 그랬잖아."

"그냥 우스갯소리로 한 건데...

그 순간, 모래 폭풍이 다시 말을 걸었다.

"나오라고! 언제까지 숨어 있을 셈이냐!"

"계속 부르네. 내가 나가 볼게."

"조심해."

"조심할 것도 없지."

유준이 결계 밖으로 나갔다.

사용자와 파티원은 결계를 마음 대로 드나들 수 있기에 가능한 것 이었다.

결계를 나오자, 거센 바람이유준의 몸을 두들겼다.

높은 방어력 탓인지 타격은 없었다.

다만, 호흡에 문제가 생기니 계속 이러고 있을 수는 없었다.

유준이 예민한 감각(A)을 발동했다.

모래 폭풍은 자연적으로 발생한 게 아니었다.

직접 폭풍 속으로 들어서자, 마 력이 한곳에 모여 있는 것이 느껴 졌다.

그가 땅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강한 바람이 그를 밀쳐 내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주먹만 한 크기의 마력 구체를 발견했다.

검을 휘둘렀다.

서걱!

"크아아악!"

어이없게도 모래 폭풍이 괴성을 내질렀다.

마력 구체가 반으로 갈라졌다.

그것으로는 부족하다고 여겼다.

수차례 검을 휘둘렀다.

횡으로, 종으로.

사선으로.

슥! 슥!

마력 구체가 완전히 산산 조각났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네 개나 올랐다.

유준이미소를 짓는 그때,

결계 안에 있는 김희연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미쳤다! 유준아! 나 레벨 15개 올랐어."

유준이 다시 얼굴을 굳혔다.

레벨 네 개 올랐다고 좋아했던 게 바보 같아졌다.

'레벨 차이가 있으니까... 뭐 어쩔 수 없지.'

"응? 표정이 왜 그래?"

"뭐가?"

"아니 심통 난 거 같은 얼굴...

"전혀 아닌데? 근데 좋겠다. 레 벨 많이 올라서."

환경이 또 바뀌었다.

유준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걸 여러번 반복해야 하는 건가?'

뭐, 나쁘지 않았다.

레벨이 안 올랐다면 모를까, 환

경이 바뀌기 전에는 레벨이 올랐으니까.

그러나 이번에는 전과 같은 극한 의 환경이 아니었다.

넓은 초원.

온갖 이종족들의 시체들이 즐비 했다.

철과 철이 부딪치는 소리와 절규에 가까운 비명이 이곳저곳에서 들 려왔다.

마법 공격도 연이어 퍼부어졌다.

"너, 너무 뜬금없는데?"

김희연이 말했다.

"이거 가짜 아니지?"

유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환상 마법은 확실히 아니야."

중급 튜토리얼 때와는 다르다.

그때는 과거에 있었던 일을 재현 한 것이지만, 이곳 전장의 플레이어들은 모두가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었다.

그때였다.

"저자들을 죽여라!"

"던전을 침입하려는 해악한 자들이다!"

"와아악!"

서로를 향해 싸우던 이들이 갑자 기 유준 일행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 정도는 예상했다.

"파라네트."

"예!"

"시체 폭발 써."

"알겠습니다!"

파라네트는 병사들이 달려드는 길목에 있던 시체를 폭발시켰다.

콰콰쾅! 콰쾅!

선두에서 달리던 병사들이 튕겨 나갔다.

화르륵!

유준 일행을 향해서 마법이 날아 들었다.

여러 속성이 섞인 그 마법은 유준의 검에 완전히 파훼당했다.

마법의 결을 치는 유준의 수준 높은 검술 실력 때문이었다.

'SS등급 검술이 진짜 만능이라니까.'

신들의 전쟁을 플레이할 때도 낮은 등급의 검술 특성을 사용했었다.

SS등급 검술은 확실히 격이 달 랐다.

마법도, 저주도, 근접 공격도 통 하지 않았다.

그에게 달려들던 병사 모두가 목 이 잘려 죽었다.

궤적을 읽을 수도 없는 공격에 그들이 대항할 방법은 없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이번 시련은 이건가.'

찝찝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저들을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죽으니.

유준은 쉬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파라네트는 김희연을 지키며 싸웠다.

김희연의 레벨이 높아지긴 했지만, 여기 병사들의 상대가 되진 못 했다.

콰쾅! 쾅!

전장.

그것도 사람이 아주 많은 전장이다.

파라네트의 시체 폭발(S) 스킬이 큰 효과를 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여기가 진짜 꿀이네.'

파란 피부 트롤을 벤 유준이미 소 지었다.

상대들의 레벨이 대부분 400을 넘었다.

이런 던전이 또 있을까.

그렇게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천이 넘었던 플레이어들이 어느 새 두 자릿수도 남지 않게 되었다.

레벨이 올랐다는 메시지도 주춤 했다.

"저, 저 남자 정체가 뭐야?"

"도망쳐야 하는데... 내 몸이 아닌 거 같아."

플레이어들이 뻣뻣한 움직임으로 유준에게 달려들었다.

유준은 한숨을 푹 내쉬고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남은 이종족 플레이어들은 금방 정리되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이게 마지막이다.

레벨이 288이 되었다.

원래 레벨이 낮았던 김희연과 파라네트는 유준보다 더 많은 레벨을 올렸다.

그리고 던전의 변화가 다시 시작 되었다.

사방에서 피 냄새가 진동하던 황 무지 전장에서 아무것도 없는 백색 의 공간으로.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3권 16화

64 화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온통 흰 것만 보이는 세상.

그곳에 유준과 김희연 그리고 파라네트만이 멀뚱멀뚱 서 있었다.

"이번엔 뭘까?"

"곧 알게 되겠지."

유준은 예민한 감각을 발동했다.

그럼에도 느껴지는 건 따로 없었다.

"파라네트."

"예."

"뭐, 위험하거나 그런 거 안 느 껴져?"

녀석의 생존 본능.

그 특성을 생각해서 물어봤다.

파라네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위험한 거 같지 않습니다."

"확실한 거지?"

"...화, 확신까지는 아니고요."

유준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파라네트가 위험하지 않다고 했으면 진짜로 별일 없을 거다.

녀석이 위험하다고 호들갑을 떠는 건 봤어도 위기를 못 알아차리는 건 본 적이 없으니까.

그 순간이었다.

유준 일행 앞에 회색빛의 가루가 갑작스레 나타났다.

그 가루는 회오리치며 형태를 잡 아가기 시작했다.

후우웅-.

불투명한 회색빛을 띠던 회오리 가 사람의 형태가 되었다.

유준이 눈을 가늘게 떴다.

익숙한 얼굴이다.

"마녀?"

"날 알아보네? 뭐, 잘됐어. 자기 소개는 할 필요 없겠네."

"네가 왜 여기 있어?"

"하, 그건 내가 할 말이지."

마녀 마누엘라가 헛웃음을 홀렸다.

"무슨 말이야?"

"여긴 내 던전이야. 네가 멋대로 침범한 거라고."

"아, 그랬어?"

"그래!"

마누엘라가 성을 내듯 말한다우

"그런데 그게 왜?"

"어?"

"히든 던전은 공략하라고 있는 거 아니야? 여길 오든 말든 내 마음이지."

틀린 말은 아니다.

마누엘라 그녀도 마계에 있는 던 전들을 많이 공략하고 다녔으니.

그러나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인 법.

"안 돼. 당장 나가."

"뭐래. 거의 다 공략해 가는 거 같은데."

"아닌데? 아직도 한참 남았는데? 거의 20년은 더 해야할 걸?"

"...그거 믿으라고 하는 말이 냐?"

"난 거짓말 안 해."

"그럼 우린 더 좋지."

"뭐어?"

"던전을 공략할 때까지 계속 레

벨을 올려 준다는 거잖아."

"...못 나간다니까? 20년이면 인간한테 상당히 긴 시간 아니야? 왜 그렇게 태평해?"

"그럴 거 같으면 그때 나가면 되지. 출구는 어디 있냐? 미리 알아 놓으면 좋을 거 같은데."

"알려 주기 싫어졌어."

"그렇구나. 어쩔 수 없네. 던전의 끝을 봐야겠다."

"왜 항상 날 방해하는 거야? 너 스토커야?"

"뭐라는 거야. 나 네 이름도 몰라."

"마누엘라. 그게 내 이름이야."

유준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의 얼굴을 응시했다.

마누엘라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뭐, 뭘 봐?"

"너...

그녀가 침을 꿀꺽 삼켰다.

"너 또 환상이지?"

어떻게 알았지.

라는 말을 내뱉을 수는 없었다.

그럼 완전히 인정해 버리는 것이 되기에.

그러나 그녀의 표정만으로 이미 다 드러났다.

유준이 비소(非笑)를 지었다.

"내가 뭘 하든 넌 또 지켜볼 수 밖에 없나 보네? 저번과 같이?"

"...진짜 죽이고 싶다."

"하지만 불가능하지. 그치?"

"후우, 원하는게 뭐야. 어떻게 하면 돌아갈래?"

"원하는 거? 딱히 없는데."

굳이 있다면 이 던전을 공략하는

것이다.

"물욕 없어? 아이템 원하는게 있으면 말을 해. 전설 등급 방어구 하나 있는데. 그거 줄까?"

전설 등급 방어구를 준다는 건 마녀에게 있어서도 파격적인 조건 일 것이다.

유준에겐 아니다.

그에게 확 와닿는 선물은 '보석' 정도가 있다.

그걸 마녀가 가지고 있을 리 없으니.

"고작 전설? 신화 등급 아이템이 면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유준의 말에 마누엘라가 기가 차 서 말을 잃었다.

"야."

" 왜?"

"차라리 초월 등급 아이템을 달 라고 하지 그래?"

그녀의 말에 유준이 고개를 갸웃 했다.

"초월 등급? 그게 뭔데."

"신화 다음 등급."

처음 듣는다.

"...그런 게 있었다고? 금시초 문인데."

신들의 전쟁을 몇 년이나 했는데.

심지어 준비된 콘텐츠도 다 끝내 고 레벨도 만렙에 달했었다.

그런데 초월 등급 같은 건 없었다.

"뭐 모를 만도 하지. 내가 상상 해 본 것에 불과하니까."

이번엔 유준이 황당해할 수밖에 없었다.

얘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그뿐만 아니라, 뒤에 있던 김희 연과 파라네트도 어이없다는 듯 웃 고 있었다.

"폰 마누엘라...

유준이 말을 하다 말았다.

마누엘라의 표정이 진지했기 때 문이다.

"아니. 초월 등급은 있어."

"상상이라며?"

"나 마녀인 거 몰라?"

"아는데. 그게 왜?"

"예언."

확실히 마녀는 예언의 능력을 지 녔다.

예언이 발현되는 방식도 여러 가 지고.

그런데 상상으로 예언을 한다고?

무슨 신도 아니고.

유준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마누 엘라가 그 의문을 해결했다.

"나는 평소에는 상상이라는 걸 못해. 그러다 갑자기 번뜩이는 날 이 있지. 그게 어떤 거냐면 나도 모르게 무언가를 상상하고 마는 거

야. 최근엔 아이템 등급에 관한 상 상을 했어. 아이템 등급의 끝이 과 연 신화 등급일까? 숨겨져 있는게 더 있지 않을까?"

마누엘라가 득의의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 결국, 어떠한 방식으로 아이템에 초월 등급이 생길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됐지."

"대단하긴 한데... 그건 예언이 아니잖아."

"왜 예언이 아니야?"

"초월 등급이 숨겨져 있다며? 그 럼 숨겨져 있는 걸 그냥 깨달은 거

에 불과한 거지."

"...해석에 따라 다를 수도 있 지만 난 마녀라니까? 이건 무조건 예지이자 예언이야."

"그렇게 믿고 싶으면 어쩔 수 없고."

"대륙의 누군가가 곧 초월 등급 아이템을 가지게 될 거야. 마계에 있는 누군가가 가질 수도 있고. 만 약 초월 등급 아이템을 소유하는 자가 나타난다면... 대륙이든 천 계든 마계든 그 판도가 바뀌겠지."

유준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래서 너 언제 사라지게?"

"네가 강제로 던전을 멈춰 놓은 거 아니야?"

"무,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는 거지?"

"마력의 흐름이 완전히 멈췄으니까. 정지 상태잖아. 지금."

"네가 사라져야 던전이 다시 재 작동할 거 아니야."

" 맞아."

"얼마나 남았지?"

"지속 시간을 말하는 거야? 너한

텐 아쉽게도 5일은 더 버틸 수 있겠는데? 후후...

마누엘라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유준도 그녀를 따라 웃었다.

"넌 왜 웃...

눈 깜짝할 새에 휘둘러진 검이 마누엘라의 몸을 베고 지나갔다.

환상을 흩뜨린 것이다.

막대한 대미지를 입은 환상은 사라지기 마련.

마녀 마누엘라는 잔상조차 남기 지 못하고 사라졌다.

"어우, 속 시원해!"

뒤에서 지켜보던 김희연이 말했다.

"마녀치고는 엄청 어리숙하네. 다 행이야."

아마도 마누엘라는 마녀가 된 지 얼마 안 된 잔챙이일 것이다.

아무리 인간 앞이라도 저렇게 방 심한 모습을 보이는 건 똑똑한 마 녀답지 않았다.

"휴〜 마녀가 바보라서 다행이야."

분신과의 연결이 끊어졌다.

상당한 상실감이 온몸을 뒤덮었다.

마누엘라가 털썩 주저앉았다.

그녀의 표정이 표독스럽게 바뀌었다.

"감히. 감히... 두 번이나 나를 공격해?"

마누엘라는 마계에서 수백 년을 살아온 노련한 마녀였다.

그런데 인간한테 이리 허무하게 당할 줄이야.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나도 단단 히 났다.

마누엘라는 곧바로 저쪽과 연결 되어있는 영상을 확인했다.

그 순간 그의 환상을 없앤 인간 남자가 입을 열었다.

-마녀치고는 엄청 어리숙하네. 다행이야.

마누엘라가 눈을 부릅떴다.

"뭘 안다고! 네가 뭘 안다고 어리숙하다는...

영상 속의 남자는 한마디로 끝내 지 않았다.

굳이 안 해도 될 말을 덧붙였다.

-휴〜 마녀가 바보라서 다행이야.

덜덜.

화가 나서 몸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어쩔 도리가 없었다.

지금 당장 대륙으로 넘어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저 인간들이 자신이제일 아끼는 던전을 공략하는 것을 눈 뜨고 지 켜봐야만 했다.

자식을 뺏기는 기분이 이러할까.

차오르는 서러움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눈물이 흘러내렸다.

억울하고 분통해서 울음이 터져 나온 것이다.

그녀가 그러고 있는 와중에도 영 상 속의 인간들은 완전히 달라진 환경에도 곧잘 적응했다.

스테이지가 빠르게 바뀌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던전 의 마지막 스테이지에 도달했다.

20년이 걸린다는 마누엘라의 말은 허세며 거짓이었다.

"아, 안 되는데. 진짜 큰일 나는데. 어쩌지... 놈이 마력의 원천을 발견하기라도 하면...

마누엘라가 애꿎은 손톱만 물어 뜯었다.

* * *

꽤 많은 스테이지를 클리어했다.

그동안 297레벨을 달성했다.

레벨이 오르는 속도가 점점 더뎌 졌다.

어쩔 수 없다.

300레벨부터는지금보다 훨씬 더 디게 오를 것이다.

그때부터 진짜 시작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지금도 빨리 올리고 있는 거긴 하지.'

기간으로 따지면, 그는 몇 달도

안 되는 기간에 297레벨에 다다른 것이다.

대륙에 있는 그 누구보다도 빠른 속도며,

그의 진가는 성장 속도에만 있는게 아니었다.

'칭호, 태초의 플레이어, 전설, 신 화 등급 아이템... 든든한 소환수 까지.'

사실상 지규태가 조율을 끌고 와 도 이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걸 게임이라고 생각해도 내 스펙은 말이 안 되는 수준이야.'

이번 배경은 평범했다.

울창한 숲.

하늘이 붉다거나, 나무의 색이 이상하다거나.

그런 것이 전혀 없었다.

소형 동물들의 울음소리가 심심 치 않게 들려왔다.

"그런데 유준아."

"응?"

"진짜 20년 동안 여기에 있을 거야?"

김희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야 레벨이 오르니까 좋긴 한 데 그건 너무 긴 게 아닌가 싶어서....

"진짜로 그러겠냐."

"그치? 적당히 하고 나가는게 내 생각에도 좋을 거 같아."

"아니. 명색이 히든 던전인데. 그 끝은 봐야지."

"그 여자가 20년 걸린다고 했잖아. 우리가 아무리 빨라도 몇 년은 더 걸리는 거 아니야?"

유준이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마녀 말을 진짜 믿은 거야? 당연히 구라지."

"...거짓말이라고?"

"웅. 마녀 말은 믿는 거 아니랬어."

"그럼 그 예언인가 뭔가 했던 말은? 그것도 거짓말이야? 신화 등급 다음이 있다는 거."

"그건 거짓말아니야."

"응? 어째서?"

"자기 능력이 자랑스럽다는 듯 말 했잖아. 마녀들이 자기 자랑할 때는 거짓말 안 해. 과장해서 말하긴 해 도."

"아, 그럼 자랑이 섞이면 거짓말 이 아니고. 안 섞이면 거짓말이 다?"

"그 이론은 대체로 맞아. 마녀랑 관련되면 진리 같은 거지."

"신기하다. 넌 이런 걸 어떻게 다 알아?"

"이게 내 능력이야."

"많이 아는 거?"

"응."

"그런 거치곤. 다른 것도 다 잘 하던데. 만능이잖아. 거의."

"무슨 당연한 소릴 해. 능력이

하나만 있어?"

김희연이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그때였다.

파라네트가 실실 웃기 시작했다.

" ㅎㅎ.

"넌 또 왜 웃고 있냐?"

"곧 초월 등급 아이템을 장착하고 활약할 제 모습이 눈에 선해서요."

"그럴 일은 없을 거다."

" 예?"

"초월 등급이 있으면 그걸 왜 너 한테 주냐. 내가 다 쓰지."

"신화 등급 아이템은 주셨잖습니까...

"파라네트. 입 다물어."

"예."

슬쩍 옆을 보니 김희연이 충격받은 얼굴로 서 있었다.

"유준아. 너 신화 등급 아이템...을 가지고 있었어?"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3권 17화

65 화

"음…."

유준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김희연은 너무 많은 것을 알아 버렸다.

굳이 알아선 안 될 것까지.

"파라네트. 그러게 그 입 좀 조심하라고 했지. 귀찮게 됐잖아."

"죄, 죄송합니다."

유준이 검을 들고 조용히 김희연

에게 다가갔다.

딱딱히 굳은 그의 얼굴.

그걸 본 김희연이 겁에 질린 표 정으로 뒷걸음질쳤다.

갑자기 돌변한 그의 얼굴이 너무 나 무서웠다.

"자, 잠깐만. 왜 그래. 유준아."

"아악!"

김희연이 눈을 질끈 감았다.

"뭐 해? 이거 봐 봐."

"…어?"

유준은 김희연에게 검을 건네줬다.

"이, 이건 왜?"

"아이템 옵션 확인해 봐."

"...응. 알았어."

[빛무리 초월검]

착용 제한 : Lv. 400 이상

등급 : 신화

공격력 : 29,030

옵션 : 모든 능력치 +18%. 검에 광 속성이 담깁니다. 광 속성을 지

니지 않은 적에게 300%의 추가 대 미지를 입힙니다.

* 전능의 돌 : 모든 능력치 +12%. 모든 스킬의 위력이 220% 추가로 증가합니다. 공격력이 20% 증가합니다.

김희연이 입을 떡 벌렸다.

"...이게 뭐야?"

"내 무기."

"네가 쓰던 검...이 이거라고?"

"응."

"너 레벨 300도 안 됐잖아. 이걸

어떻게?"

"방법이 다 있지."

"너 진짜 대단하다.... 괜히 강 한 게 아니었구나."

"맞아. 템빨이야."

"이런 거 나한테 보여 줘도 되는 거야? 나 아직 신화 등급 아이템을 가졌다는 사람 한 명도 본 적이 없어. 그런데 이 사실이 다른 사람들 귀에 들어가면...

난리가 날 것이다.

유준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믿고 있어."

"어...?"

"네가 말 안 하면 아무도 모를 거 아니야."

"웅. 그건 맞지."

유준이 방긋 웃었다.

김희연도 따라서 웃었다.

"고마워. 날 믿어 줘서...

"친군데 당연하지."

"유준아...

김희연이 감격스러운 얼굴로 유준을 바라봤다.

유준이 속으로 생각했다.

'후, 어떻게든 됐네.'

그가 김희연에게 자신의 무기를 보여 준 이유는 간단했다.

아예 배신할 엄두를 못 내게 하는 것이다.

이미 신화 등급 아이템을 가졌다는 걸 알았을 테니 억지로 숨기는 건 의미가 없고.

던전 탐색 능력이 뛰어난 그녀와 연을 끊는 것도 손해 막심한 일이다.

그러니 지금의 방법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파라네트는 그런 유준의 생각을 몰랐다.

"주인님! 저 인간 여자를 죽이려는 거 아니었습니까? 빨리 해치우 죠! 그게 아니면 제가...

빠악!

유준이 파라네트의 뒤통수를 세 게 후려쳤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아까부 터 계속 뻘소리 할래?"

"죄송합니다!"

"희연이는 우리 동료야. 알겠어? 앞으로 그런 말 하지마."

"예!"

"미안해. 희연아. 파라네트가 헛 소리한 거 그냥 흘려 넘겨."

"괜찮아. 파라네트 저거 원래 저 런 놈인 거 이미 알고 있었는걸."

김희연이 배시시 웃었다.

"그래도 어느 정도 인정은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누가 언데 드 아니랄까 봐. 정말 생긴 대로 노는 거 같아."

"실망할 것도 없지, 뭐. 애초에

기대도 안 했어. 파라네트는 우리 와 같은 사람이 아니잖아? 그냥 움직이는 해골일 뿐이지. 애초에 왜 쟤랑 말을 섞었을까, 나는?"

"희연아. 그, 그만해도 될 거 같아. 이미 딜은 충분해."

파라네트의 등이 굽을 대로 굽었다.

예민한 감각.

이 특성은 정말 유용했다.

이런 막막한 지형에서 어디로 나 아가야 할지 대충 감을 잡게 해 줬다.

'몬스터가 있는 곳.'

그곳이유준 일행의 목적지다.

유준은 북동쪽으로 걸었다.

"주인님. 앞에서 위험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응. 나도 느끼고 있어."

미지의 몬스터를 앞에 두고 전신 의 털이 쭈뼛 솟는 느낌이었다.

"강하네."

유준의 입에서 그런 말이 절로

나오는 수준의 몬스터가 근처에 있었다.

'원래 있던 놈인가? 갑자기 난이 도가 확 올라간 느낌인데.'

아니면 마녀가 마지막 발악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 무엇이 되었든.

싸우는 수밖에 없었다.

"희연이 너는 뒤로 가 있어."

"응."

누군가를 지키면서 싸울 수는 없었다.

유준이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강대한 기운을 내뿜던 몬스터의 모습이 보였다.

몸집은 예상외로 막 거대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근육질의 거구이지만, 날렵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거기에 황금색의 전신 갑옷을 입 고 있었다.

심지어 검도 황금빛을 띠었다.

" 왔군."

저음에 무척 듣기 싫은 목소리였다.

"마녀가 불렀냐?"

"마누엘라를 말하는 건가? 그렇 다면 맞다."

"응? 네 주인이 아닌가 봐?"

"웃기는군. 누구도 내 위에 설 수 없다."

"너 뭐 하는 놈인데?"

"마계의 전사다."

"그래? 혹시 마족이야?"

"틀렸다."

유준이 눈앞의 몬스터를 유심히 살폈다.

확실히 마족 같은 분위기는 아니었다.

전에 만났던 초월종 쪽과 좀 유 사하다고 해야 하나.

'뭐, 잘됐네.'

유준은 암 속성을 지닌 적에게 훨씬 강한 대미지를 입힐 수 있었다.

여러 칭호와 아이템들의 옵션 때 문이었다.

"날 보고도 겁먹지 않는군."

"네가 누군지 모른다니까?"

"너 정도 수준의 강자라면 내가 얼마나 강한지 알 텐데."

유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육체적인 스펙만 놓고 보면 자신보다도 위였다.

모든 능력치 퍼센트 증가가 50% 가 훌쩍 넘는데도 능력치로 압도를 당할 정도면.

눈앞의 남자가 보통 강한 게 아니라는 뜻이다.

그래서인지 녀석의 몸짓 하나하 나에서 여유가 흘러넘쳤다.

"카라스. 그게 내 이름이다."

"이름은 갑자기 왜?"

"마계의 암묵적인 룰이다. 자신

이 죽일 상대에게 이름을 알려 주는 것."

"내가 여태 죽인 놈들은 이름 안 알려 주던데?"

"그건 너를 강자로서 존중하지 않았기 때문이지."

"...그래? 괘씸한데."

"그렇기에 너한테 당한 거다. 상 대의 수준도 파악하지 못했으니까."

"너는 다르다는 건가?"

"그래. 네가 강하다는 걸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확실히 인간들은 강 해. 플레이어 능력을 얻은 게 5년밖에 되지 않았다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오..."

적이랑 너무 오래 대화하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지금은 정보를 얻을 기회였다.

"나 말고 다른 인간도 만나 본 거야?"

"그래. 본인을 최상위 랭커라고 하더군. 확실히 강했다."

"죽였어?"

"아니. 내가 졌다."

"용케 살았네?"

"내 목숨은 하나가 아니거든."

카라스가 히죽 웃었다.

보면 볼수록 혐오스러운 얼굴이었다.

"내가 널 죽여도 다시 살아난다는 거야?"

"그렇긴 한데... 그럴 일은 없을 거다. 넌 날 죽이지 못해."

"확인해 보면 알겠지."

유준은 카라스가 저런 자신감을 가진 이유를 안다.

단순히 육체적인 강함이 본인이 더 앞서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겠지.

그건 유준도 인정을 하는 바였다.

'근데 능력치가 다가 아니란 말 이지.'

그때 놈이 움직였다.

카라스의 왼쪽 발이 땅에서 떼어 지는 순간,

유준이 백스텝을 밟으면서 뒤로 물러났다.

카라스가 예상했다는 듯 따라붙는다.

놈이 오는 경로에 검을 휘둘렀다.

카라스가 살짝 고개를 뒤로 뺐다 가 다시 전진했다.

'역시.... 내 움직임을 다 읽고 있군.'

유준이 예민한 감각을 발동했다.

단순히 눈으로 보고 판단했다간 늦는다.

카라스는 자신보다도 더 수준 높은 감각 계열 특성이나 스킬을 익 히고 있는게 분명했다.

그때 파라네트가 카라스에게 달 려들었다.

놈의 시선이 파라네트에게 향하는 그때, 유준이 움직였다.

쾌속 전진(A)을 사용해 순식간에 카라스의 앞에 도달했다.

유준이 검을 쭉 뻗는다.

후웅!

카라스는 앞뒤로 공격이 날아오는 이 상황에서 유준의 공격을 피 하는 결정을 했다.

촤악-!

파라네트의 검이 카라스의 등을 베고 지나갔다.

카라스가 파라네트를 세게 걷어찼다.

콰앙!

"컥!"

파라네트가 탄환 쏘아지듯 뒤로 날아갔다.

유준이 재차 검을 휘둘렀다.

카라스는 맨주먹으로 검에 맞섰다.

콰앙!

녀석이 뒤로 물러났다.

"그 검. 예사롭지 않군."

카라스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놈은 손뿐만 아니라 팔목이 완전 히 날아간 상태.

너덜너덜해졌다는 말조차도 부족 하다.

그러나 카라스의 팔은 금세 재생 되었다.

'뭔 만나는 놈들마다 재생력 괴물들밖에 없어...

유준이 헛웃음을 지었다.

아무리 그래도 트롤보다 높은 재생력은 너무하지 않은가.

상처가 나는 즉시 회복을 하다니?

엘릭서를 몸에 달고 사는 것도 아닐 테고.

그게 끝이 아니다.

방어구의 팔 부분도 파괴되었었는데 그것조차원상태로 돌아왔다.

믿기 어려운 광경이었다.

'그래도 무적은 아닐 거야.'

저러한 재생력이 무한히 지속될 리가 없다.

실제로 카라스의 숨이 약간은 거 칠어 졌다.

미세한 변화였다.

유준의 예민한 감각은 카라스의 부상 전과 부상 후의 차이를 감지 했다.

카라스가 희미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었다.

"너도 최상위 랭커인가?"

"왜? 갑자기 겁나?"

"전혀."

"전에는 졌다며?"

"그자는 단순 능력치부터 나를 앞섰다. 하지만 넌 달라. 여러 잡기 술과 아이템에 의지하고만 있어. 그렇다면 내가 질 이유가 없지."

카라스보다 능력치가 높은 인간이라.

그게 누굴까.

심히 궁금했다.

세간에 알려진 소문으로는 최상 위 랭커들의 레벨이 이제 막 400대 초중반에 달해 있다고 했다.

'하긴... 소문은 소문이지. 정확 한 정보라고 할 수는 없는 거고.'

지규태가 했던 말만 생각해도 당 장 레벨 500을 넘는 이들이 있는 것 같았다.

'규율인지 조율인지 그놈들 레벨

이 그 정도 되겠지.'

유준이 검에 마력을 불어 넣었다.

"그런데 왜 나를 최상위 랭커라고 생각한 거야? 네가 상대했던 사 람보다 약하다며?"

"최상위 랭커라고 다 같지 않다. 그건 너도 알지 않나?"

맞는 말이다.

최상위 랭커라고 전부 비슷한 실 력일 리가 없다.

그저 그런 최상위 랭커가 있는가 하면,

잘 알려진 검신 독고민수만 해도 천외천이라고 불릴 정도로 강했으니까.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카라스가 손실된 체력을 회복시 키기 위해 시간을 끌고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유준이 움직였다.

카라스는 즉각 반응하며 마주 달 려왔다.

SS등급의 검술.

그 특성은 어디로 검을 휘둘러야 할지 정확히 알려 주었다.

카라스는 유준의 검을 피하면서 파고들려 했다.

검의 궤적이 휘어졌다.

카라스가 재빨리 두 팔을 교차했다.

콰아앙!

마력이 담긴 유준의 검이 카라스 의 팔목에 세게 부딪쳤다.

"크읍..."

카라스의 두 팔이 흔적도없이 사라졌다가 다시금 재생되기 시작 했다.

"넌 무기 없어?"

유준이 말했다.

카라스가 입을 비틀었다.

"내 몸이 무기니까."

"팔에 달린 그거?"

"그래."

"그런 것치고는 허무하게 부서지 던데."

유준은 방어력에도 공격력 추가 옵션이 붙어 있다.

전설 등급의 장신구도 있다.

거기에 신화 등급 무기를 사용하

니 카라스의 팔이 멀쩡할 리가 없는 것이다.

카라스가 힘겨워하는 것이 보인다.

'역시 아무 대가가 없는 건 아닌 모양이네.'

카라스의 목을 단번에 베는 것은 어려웠다.

그러니 녀석이 지쳐서 움직이지 못할 때까지 신체가 재생하도록 만 든다.

유준이 땅을 박찼다.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3권 18화

66화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흐억, 헉!"

카라스가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그의 몸은 멀쩡했지만, 멀쩡하다 고 할 수 없었다.

팔과 다리가 부들부들 떨리고, 서 있는 것조차 힘겨워 보였다.

카라스의 얼굴에 짙은 패색이 드 티웠다.

"그 자신감은 다 어디로 갔냐?" "...몰라봤군. 내가 졌다." 카라스는 순순히 인정했다.

"뭣 좀 묻고 싶은데."

"저번에 너를 죽였다던 그 사람 이름이 뭐야?"

"그게 왜 궁금하지?"

"같은 인간이잖아. 이 정도면 이유는 충분하지 않아?"

카라스가 쓴웃음을 지었다.

"이름은 나도 모른다. 다만, 그자

도 검을 썼지. 검을 다루는 기술이 뛰어났다."

" 나만큼?"

"너도 놀라울 만큼 검을 잘 쓰더 군. 그러나 우위는 잘 모르겠다. 난 검에 대해선 문외한에 가까우니."

"그래? 알려 줘서 고맙다."

"빨리 끝내라. 이번이 마지막이다."

"더는 재생 못한다는 거지?"

"그래."

유준이 쾌속 전진을 사용했다.

번쩍-!

카라스의 목이 잘렸다.

그의 말대로 끝이었다.

역시 부활할 수 있으니 카라스는 죽음에 그리 미련을 갖지 않았다.

'그래도 처음엔 비등비등하게 싸 울 줄 알았는데...

생각 외로 싱겁게 끝나 버렸다.

이게 아이템이 가진 힘인가.

"주인님. 결국, 제가 한 건 없었습니다."

"처음에 시선 끌었잖아. 그걸로 충분해. 잘했어."

"홈. 그런가요."

별것 아닌 칭찬을 했는데 파라네 트가 좋아했다.

"유준아! 저기 봐 봐."

그때 김희연이 무언가를 발견했는지 손가락으로 한곳을 가리켰다.

유준이 눈을 크게 떴다.

마력의 소용돌이.

어느새 나타난 푸른 빛이 맴도는 기운이 던전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포털...은 아닌 거 같고."

포털이라기엔 엄청난 양의 마력 이 내포되어 있었다.

"저거 뭘까? 위험해 보이긴 한다."

"기다려 봐."

유준은 가만히 서서 상황을 지켜 봤다.

'마녀는 내가 이곳에 오는 걸 싫 어했지.'

던전에서 나가라 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단순히 던전이 공략되는 것이 싫 어서?

'저번보다 더 절박해 보였어.'

저 마력 덩어리가 원인일 것이다.

그러니 던전 수준에 맞지 않는 '카라스'까지 부른 거겠지.

그런데 문제는 저걸 어떻게 활용 하느냐이다.

'마력의 원천.'

그것에 대해 아는게 없다.

유준이 답답한 한숨을 내쉬었다.

"주인님."

그때 파라네트가 말을 걸었다.

" 왜?"

"제가 한번 가 보겠습니다."

"저기로?"

"예."

"...음"

확실한 방법이긴 하다.

파라네트는 소환수다.

죽어도 다시 유준이 소환할 수

있었다.

"좋아. 한번 가 봐."

"예!"

파라네트가 당당하게 걸어갔다.

'마력의 원천'에 들어간 파라네트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졌다.

'역소환됐나?'

확인해 보니 그건 아니었다.

파라네트는 아직 살아 있었다.

유준은 묵묵히 기다렸다.

시간이 흘렀다.

"죽은 거 아니야?"

김희연이 말했다.

유준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직 안 죽었어."

"그래? 그런데 안에서 뭐 하고 있는 거야?"

"나도 모르지."

그 순간이었다.

파라네트가 마력의 원천에서 뛰 쳐나왔다.

"후우..."

"뭐 하다 왔어?"

"들어갔다가 바로 나왔습니다."

" 뭐?"

" 예?"

"너 거기 꽤 오래 있었어."

파라네트가 고개를 갸웃했다.

"저는 바로 나온 거 같은데...

"그래서 뭐 달라진 거 있어? 몸

이 이상하다거나 어디 아프다거나."

"그런 거 전혀 없습니다. 주인님 도 한번 들어가 보십시오. ㅎㅎ, 깜짝 놀라실 겁니다."

" 왜?"

"들어가면 압니다. 들어가면."

파라네트가 이빨을 보이며 크게 웃었다.

무척 기쁜 듯한 모습이었다.

저렇게 좋아하는 거 보면 마력의 원천이 좋은 효과를 준 듯한데.

'그러고 보니...

마력의 원천의 크기가 조금은 줄 어든 것 같았다.

아니, 줄었다.

여전히 거대하지만, 전보다는 작 아진 게 확연히 보였다.

유준이 파라네트를 봤다.

녀석이 얼른 들어가라는 듯 고갯 짓을 했다.

'분명 좋은 거니까 내게 권하는 거겠지.'

유준도 마력의 원천으로 몸을 들이밀었다.

화아악-!

마력의 원천에 들어가는 순간, 알 수 없는 청량감이 느껴졌다.

육체와 정신이 깨끗하게 정화되는 기분이었다.

약간 있던 피로가 말끔히 풀렸다.

그러나 마력의 원천의 진가는 다 른 곳에 있었다.

['마력의 원천'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마력 - 운명의 주사위가 굴려집니다.]

[결과 '최상']

[마력의 원천으로부터 막대한 마 력을 선사받습니다.]

[능력치 '마력'이 226 상승합니다!]

눈앞에 뜬 메시지.

이걸 꿈이 아닌 현실이라고 봐도 될까.

그때 마력의 원천이유준을 밀어 냈다.

그가 마력의 원천에서 빠져나왔다.

김희연과 파라네트가 한걸음에 달려왔다.

그녀가 입을 열었다.

"무, 무슨 일 난 줄 알았잖아."

"응?"

"너 30분 넘게 안 나왔어."

"어?"

"안에서 뭐 한 거야?"

"그냥 서 있다 나왔는데?"

" 진짜?"

"응."

"너도 갔다 와 봐."

사실 마력의 원천에 다시 한번 들어가고 싶었다.

그러나 유준은 본능적으로 알았다.

마력의 원천은 단 한 번밖에 이 용하지 못한다.

"뭐... 위험한 거 아니지?"

"그랬으면 이렇게 웃고 있지는 않겠지."

"하긴.... 알았어. 다녀올게."

김희연이 마력의 원천으로 들어 갔다.

그녀는 몇 분 뒤에 나왔다.

"우, 우와! 이거 뭐야?"

"마력 얼마나 늘었어?"

"너도, 파라네트도 이거 받은 거야?"

"응."

"나 114나 올랐어. 결과 '상'으로 떠서."

"오, 운이 좋았네."

"그치? 파라네트 너는?"

김희연의 말을 들은 파라네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원래 딱딱하지만.

"...나, 나는 중이다. 70이 올랐지."

"어째 실망한 눈치인데?"

"저 여자보다 낮게 올랐다는게 마음에 안 듭니다. 주인님은 얼마 나 오르셨습니까?"

"난 226."

둘이 어이없다는 시선으로 유준을 바라봤다.

"내가 '상'으로 114가 올랐는데 넌 어떻게 226이 나왔어?"

"최상으로 226 나오던데?"

"...아니, 최라는 단어 하나 붙었다고 두 배가 더 높다고?"

"운이 좋았지, 뭐."

"...부럽다. 난 114밖에 안 올 랐는데...

김희연의 말에 파라네트가 발.끈 했다.

"인간 여자. 날 놀리는 거냐."

"넌 언데드니까 운이 좋을 리가 없잖아. 뭘 실망해."

"열받게 하지 마라."

"열받으세요? 그래도 머리카락이 없으니까 금방 식겠다. 그나마 다 행이네."

"...주인님 명령만 아니었으면 넌 진작 죽였을 것이다."

그 둘을 보며 유준이 웃었다.

"파라네트. 넌 실망할 것도 없지. 모든 능력치가 70 오른 거잖아."

"맞습니다! 제가 가장 이득을 본 거 아닙니까?"

유준이 고개를 끄덕이자 파라네 트가 히죽 웃었다.

'오랜만에 내 상태창이나 볼까.'

[태초의 플레이어. 신유준]

□ 레벨 : 288

□ 특성 : 평정심(S), 검술(SSS)

- 보석(상), 예민한 감각(A) - 보석 (하)

□ 스킬 : 참격 (B), 프로즌 필드(A), 쾌속 전진(A)

□ 칭호 : 태초의 플레이어(신화)

- 모든 능력치 25% 증가 외 13개

□ 능력치

[근력 320(263+57)] [민첩 450(373+77)]

[체력 357(300+57)] [마력 513(491+22)]

[미분배 포인트 : 192]

-태초의 플레이어 : 레벨 업 시 미분배 포인트가 4씩 주어집니다. 또한, 태초의 플레이어가 됨으로써 미분배 포인트 80을 획득했습니다.

-태초의 플레이어는 착용 제한 레벨을 50까지 무시하고 아이템을 착용할 수 있습니다.

-언제나 행운이 함께합니다.

어쩌다 보니 마력이제일 높은 능력치가 되었다.

미분배 포인트를 가장 적게 투자 한 게 마력이었는데.

참 아이러니했다.

'스킬 보석도 써야 하는데.'

그에게는 스킬 보석(중)이 하나 있다.

보석은 얻기 정말 힘든 아이템.

더 좋은 스킬이 나오기 전엔 사용하고 싶지가 않았다.

'내가 진짜 스킬이 부족하긴 하구나.'

순수 마력만 500이다.

여기에 퍼센트 아이템 증가 효과를 더하면.

천에 가까운 수치가 된다.

'등급 이상의 스킬을 얻고 싶은데.'

이렇게 마력이 넘쳐도 쓸 스킬이 몇 없으니.

그때였다.

마력의 원천이 갑자기 사라졌다.

"어 엇?"

파라네트가 마력의 원천이 있던

곳으로 황급히 달려갔다.

"내 마력...

"그게 언제 네 거였냐?"

"...한 번밖에 못한다는게 아 쉽습니다."

"그건 그래. 기왕 줄 거면 다 주 든가."

"실은 저... 한 번 더 들어가려 고 했는데 저 마력의 원천이라는게 저를 밀어냈습니다."

"그럴 거 같았어."

마력의 원천이 다 사라질 때까지 흡수할 수 있다?

그랬으면 운명의 주사위라는 것

이 의미가 없다.

"약간 이벤트성 던전이었나 보네."

"근데 마녀가 주인이라고 하지 않았어? 왜 이런 걸 던전에 둔 걸까? 누가 가져가라고 전시해 둔 거 나 마찬가지잖아."

김희연의 질문에 유준이 고개를 저었다.

"가장 안전한 곳이 여기라고 생각한 거야."

"어? 왜?"

"여기가 쉬운 던전은 아니잖아."

"...아. 그러네."

김희연이 빠르게 납득했다.

극심한 환경 변화.

심지어 심해에 잠겨 그 압력에 정신을 잃을 뺀한 적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유준의 아이템 덕분에 위기를 극복했지.

아무나 이곳 던전의 끝에 다다를 수는 없으리라.

마력의 원천이 사라지고 던전의 출구가 나타났다.

"어? 마력의 원천은 완전히 사라 진 거야?"

"아닐걸."

"그럼?"

"다른 어딘가로 옮겨졌겠지."

"마녀가 한 걸까?"

"그건 모르지."

어찌 됐든 얻을 건 다 얻었다.

유준 일행은 그렇게 히든 던전 '마력의 원천'을 클리어했다.

* * *

'조율'에 소집 명령이 떨어졌다.

조율에 소속된 이들이 워낙 바빠 서 전부가 모일 수는 없었다.

그래도 6명이나 되는 인원이 한 자리에 모였다.

아니, 정확히는 5명이었다.

송태영이 영상 속의 지규태에게 물었다.

"규태 형님. 갑자기 무슨 일이 오? 원래 소집 명령은 잘 안 하시 잖소."

-부탁 하나 하고 싶다.

"형님이 부탁할 일이라고요? 그 걸 우리가 할 수 있습니까?"

-보다시피 나는 현재 마계에 있다. 당분간은 대륙에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야.

"예. 알고 있죠."

"그래서 부탁이 뭔데요? 저희 바 쁜 거 아시잖아요. 본론부터 말해 주세요."

반소연이 시큰둥한 얼굴로 말했다.

"얀마. 형님한테 무슨 말버릇이 냐."

"우리가 언제 예의를 따졌던가요? 신경 끄시죠."

애초에 결속력 강한 집단도 아니었다.

서로의 이익을 위해서 창단되었을 뿐.

그들이 엇나가지 않는 건 어디까지나 지규태의 무력 때문이었다.

-여럿이 나설 일은 아니다. 대신 이 일을 해결하는 사람에겐 큰 보상을 주지.

"보상이라면 어떤...

가만히 구경하고 있던 최강민이 눈을 반짝였다.

-스킬 보석을 주겠다.

"...네? 그거 대륙에 얼마 풀리 지도 않은 거잖아요? 등급은 뭔데 요?"

-상

"상등급요? 그걸 준다고요? 진짜 로요?"

-그래. 내가 허언을 하는 걸 봤나?

"그건 아니지만...

최강민이 다른 조율 멤버의 눈치를 살피다 입을 열었다.

"제가 할게요."

"잠깐. 이 일은 한 명만 맡는 거 예요?"

반소연이 지규태에게 물었다.

-목표를 직접 죽이는 자에겐 상 등급을 주고, 같이 가는 둘에겐 중 등급을 주지.

"아니, 웬일로 이렇게 베푸신대? 게다가 우리 세 명이 필요한 일이 라고? 한 명 죽이는게 목표인데?"

최강민이 놀라워했다.

반소연이 지규태의 말을 정리했다.

"그러니까, 목표 대상을 잡는 사 람은 상, 아닌 사람 둘은 중을 준 다는 거지? 세 개 다 스킬 보석이고?"

-그렇다.

"도대체 마계에서 뭘 하고 다니는 거야? 스킬 보석은 또 어떻게 구한 거고."

-그건 네가 알 필요 없다.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3권 19화

67화

반소연이 입을 삐죽였다.

-최강민. 그리고 또 누구지?

"나도 갈게요."

반소연이 손을 들었다.

-좋아. 반소연. 믿음직스럽군.

"저도요! 누나가 가는 거면 제가 빠질 수 없죠."

18살의 천시현이 번쩍 손을 들었다.

천시현은 13살에 무한의 탑에 끌 려와 지금의 위치로 오른 천재였다.

그의 시선은 처음부터 반소연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반소연이미간을 찌푸렸다.

"야, 넌 그냥 빠져. 어딜 끼려고 해."

"너무해. 난 그냥 누나랑 있고 싶어서 그런 건데...

"그러니까 난 꼬맹이 네가 싫다니까? 다른 일이나 맡아."

"잠깐. 스킬 보석도 받으면 누나 한테 바로 줄게."

보석을 준다는 말에 반소연이 입을 다물었다.

지규태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송태영 너는 가고 싶지 않은 모 양이군.

"조율 멤버 세 명이 필요한 일? 게다가 보석을 세 개나 뿌린다고 했잖소? 너무 위험한 일 같군. 난 빠지겠소."

-그리 위험한 일은 아니다.

"난 형님이 똑똑하고 현명하다고 생각하오. 보통 일이면 보석이 아

무리 남아돌아도 그렇게 뿌리진 않겠지."

지규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정해졌군.

온갖 플레이어들 수천 명이 모이는 곳.

블랙마켓이었다.

유준이 블랙마켓 한가운데 서 있었다.

그가 이곳에 온 이유는 간단했다.

'무슨 아이템을 팔지.'

쓸 만한 아이템이 있나 확인차 온 것이다.

어차피 시간을 많이 쓰는 일도 아니니까.

지금 수억에 달하는 포인트를 지 니고 있지만, 돈은 많을수록 좋다.

'저번엔 방패 하나를 8억에 팔았지.'

요릭에게 수고비 조로 준 것까지 포함해 수수료로 9천만 포인트 정 도 떼이긴 했지만, 매우 유익한 거 래였다.

그는 블랙마켓에서 유랑 기사라는 이름을 썼다.

천막에 들어서려는데 경비병이 앞을 막아섰다.

"패를 보여 주십..."

유준이 슬쩍 금패를 보여 줬다.

경비병들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들어가십시오."

"크흠. 다음부턴 나를 기억하도 록."

"예!"

유준이 천막에 들어서자, 저번에 그를 안내했던 콧수염 남자 요릭이 다가왔다.

"또 오셨군요! 유랑 기사님!"

"날 기억하는'군."

"당연하지요! 유랑 기사님이 어 떤 분이신데! 기억하고말고요."

" 흐음."

"오늘은 어떤 용무로 오셨습니까?"

"아이템 판매. 그리고 좋은 아이템이 있으면 사려고 한다."

"크〜. 오늘 경매에 엄청난 아이템들이 많이 올라왔다고 합니다. 날을 잘 잡으셨네요. 운까지 좋으십니다."

"알고 왔다."

"그, 그러시군요."

"유독 사람이 많더군."

"맞습니다. 소문을 듣고 온 대륙에서 손님들이 몰렸지요."

"많을수록 좋지."

"이건 비밀인데...

요릭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유준의 귓가에 속삭였다.

"대륙에서 수위를 다투는 재력가들이 오늘 이 자리에 왔다고 합니다."

"재력가?"

"이름은 밝힐 수 없는데 하여간 돈이 억수로 많다고 합니다. 그렇 다는 건... 유랑 기사님의 아이템이 비싸게 팔릴 확률이 아주 높단 뜻이지요."

유준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대는 블랙마켓에서 가장 비싸 게 팔리는 아이템이 뭐라고 생각하지?"

"가장 비싼 아이템이라.... 어 려운 질문이군요."

요릭이 침음을 삼켰다.

장비 아이템이 무조건 비싸다고 할 수 없다.

소모성 아이템 중에도, 능력치나 스킬, 특성에 관련된 것들은 어마 어마한 가격에 거래되곤 했으니까.

물론, 가장 수요가 높은 건 장비 아이템이다.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장비 아이템 하나만 좋은 것으로

바꿔도 눈에 띄게 전력이 상승하기 때문이었다.

"유랑 기사님이 어떤 아이템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저는 장비 아이템을 판매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봅니다."

"왜지?"

"장비 아이템은 플레이어들 수준 이 올라감에 따라서 다소 가치가 하락할 수 있습니다. 플레이어들은 레벨이 높아지면 더 좋은 장비를 원하기 마련이니까요."

"음. 일리 있군."

"반면, 소모성 아이템은 가치가

불변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근력의 정수 같은 아이템이 근력 15를 증가시켜 주잖습니까. 플레이어의 레벨이 아무리 올라도 일정한 수치의 능력치가 오르니 가치가 하락할 일이 없는 것이지요. 아니, 오히려 가격은 점점 더 오를 겁니다."

"음. 고맙다."

"뭘요. 도움은 좀 되셨습니까?"

"많이 됐다."

"다행이군요."

요릭이 활짝 웃었다.

안 그래도 소모성 아이템은 판매

할 생각이 없었다.

언젠가 자신이 전부 쓰게 될 테니.

하지만 장비 아이템은 달랐다.

평생이 가도 안 쓸 물건들이 많았다.

"결정되시면 말씀해 주십시오."

"그러지."

어떤 아이템이 좋을까.

저번에 방패로는 큰 이득을 봤다.

'신화 등급 무기를 풀어도 될까.'

그는 아직 다른 이가 신화 등급 의 아이템을 착용한 걸 본 적이 없었다.

'조율이라는 놈들... 그놈들은 신화 등급 아이템이 있을까?'

500레벨이 넘었다고 한다면 있을 법도 했다.

'아이템 두 개만 풀자. 전설 등급 하나랑 신화 등급 하나.'

인벤토리를 열었다.

유준은 전혀 필요 없는 아이템 두 개를 선정했다.

[광휘의 투구]

착용 제한 : Lv. 460 이상

등급 : 전설

방어력 : 3,890

옵션 : 치유 관련 능력의 효과가 110% 증가합니다. 모든 버프 효과 가 120% 증가합니다.

[피를 갈구하는 단검]

착용 제한 : Lv. 400 이상

등급 : 신화

공격력 : 19,890

옵션 : 민첩 능력치 +29%. 전투 가 끝이 날 때까지 적을 처치할수 록 대미지가 소폭 증가합니다. 광 폭화 스킬의 효과가 200% 증가합니다.

효과가 뛰어나다는 말로는 부족 한 아이템 두 개.

동시에 유준에겐 필요 없는 물건 이었다.

그는 400레벨부터는 전부 신화 등급으로 아이템을 맞출 수 있었다.

'단검은 애초에 쓰지도 않고

신화 등급 아이템 하나 정도는 뿌려도 괜찮겠지.

그런 생각을 했다.

유준이 요릭에게 다가갔다.

"정했다."

"이번에는 어떤 아이템입니까?"

"인적이 없는 곳으로 가지."

"알겠습니다."

요릭이 그를 이끌고 2층 건물에 들어갔다.

"엿듣는 사람은 없겠지?"

"여긴 제 소유의 건물입니다. 걱

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좋군."

유준은 미리 정한 아이템 두 개를 꺼냈다.

"확인해 봐라."

"예!"

요릭이 '광휘의 투구'와 '피를 갈 구하는 단검'의 정보를 살폈다.

정보를 확인한 그의 눈이 화둥잔 만 해졌다.

"자, 잠깐만요. 정말 이걸로 결정 하신 겁니까?"

"그래."

"이런 아이템을 소유한 것도 놀 라운데... 이건 너무 과하지 않겠습니까?"

요릭은 처음에 유랑 기사가 자신의 아이템을 자랑하려 내놓은 줄 알았다.

그런데 그는 아이템을 거두지 않았다.

"이 두 개로 부탁하지."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유 랑 기사님. 이건 주제넘은 조언일 수도 있지만... 이번 아이템을 판 매하게 되면 많은 이들이유랑 기 사님의 정체를 밝혀내려 할 겁니다."

"상관없다."

유준이 무덤덤하게 말했다.

"누구도 내게 해를 끼칠 수 없어."

오만한 말투.

유준은 일부러 허세를 부렸다.

유랑 기사라는 가상의 인물을 연 기하는 것이다.

"그럴 거 같습니다."

요릭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경매는 언제 시작되지?"

"저번과 마찬가지입니다만... 아마도 30분 정도 더 늦게 시작할 겁니다. 이번에 등록된 아이템이 많아서요."

"알겠다. 아이템은 지금 맡기면 되나?"

"사실은 그래야 하지만... 이 정도 아이템이면 그냥 경매가 시작 되기 십 분 전에 제게 전달해 주시는게 좋을 듯합니다."

"그러지."

"일단 아이템 관련해서 관리자님에게 말씀드릴 게 있어서 먼저 가 보겠습니다."

"다시 이곳으로 오면 되겠지?"

"예."

유준은 요릭과 떨어져 블랙마켓 내부를 돌아다녔다.

확실히 오늘은 플레이어들의 수 가 많았다.

저번에 왔을 때랑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이 넓은 블랙마켓이유독 번잡하게 느껴질 줄이야.

유준은 전시된 아이템들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경매가 시작되기 30분전.

요릭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려는데 누군가가 유준에게 다가왔다.

"유랑 기사."

" 맞죠?"

"맞는데. 그쪽은?"

"저 토끼 여왕이에요."

유준이 눈을 가늘게 떴다.

익숙한 목소리라고 생각했더니

저번에 봤던 그 여자였나.

베히모스의 피 입찰 경쟁에서 자

신에게 패했던 플레이어였다.

동시에 그와 끝까지 '신들의 전 쟁'을 즐겼던 '핑크핑꾸토끼'이기도 하고.

확정인 건 아니지만, 유준은 확신했다.

그게 아니면 무과금즐겜러에 관해서 그리 캐묻지는 않았을 테니.

"기억나는군. 근데 왜 불렀지?"

"저번에 메신저 교환을 하기로 했잖아요."

"난 한다고 한 적 없는데."

"좀 해 주면 덧나요?"

"내게 이득이 없으니까."

"내 정체를 밝힐게요. 그럼 알려 주시겠어요?"

"저 도지윤이에요. 신전 길드를 이끌고 있어요. 아시죠?"

유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신전 길드는 무한의 탑에서 유명 했다.

그도 그럴 것이 4대 길드 중 하 나였으니까.

그 길드의 길드장이 도지윤이었다.

'그런데 핑크핑꾸토끼가 도지윤 이었다고?'

좀 충격이었다.

물론, 신들의 전쟁을 끝까지 했 던 유저.

핑크핑꾸토끼는 좋은 특전을 받아서 현재 높은 위치에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긴 했다.

그런데 신전 길드의 수장 역할을 하고 있을 줄이야.

'내 예상보다 더 대단한 사람이 됐네.'

도지윤이 한 발짝 더 다가왔다.

"이제 당신 정체를 알려 주세요."

"난 정체를 알려 준다고 한 적이 없다."

"네?"

"그냥 그대가 혼자 신나서 정체를 밝혔을 뿐이지."

"...이러기 예요?"

"미안하지만, 내가 누군진 알려 줄 수 없어."

"무과금즐겜러. 맞잖아요."

"저번에도 그 소리를 하지 않았 던가? 그게 도대체 누구지?"

유준이 더 뻔뻔하게 나왔다.

저번에는 갑작스럽게 캐물어서 살짝 당황했지만, 이번은 다르다.

"그렇게 부정하시면 제가 뭐 할 말은 없지만... 저는 당신이 무과 금즐겜러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좋아. 그렇다 치자고. 그런데 왜 그렇게 무과금즐겜러라는 이름에 집착하는 거지?"

" 그건..."

유준의 말에 토끼 여왕이 입을 다물었다.

"말할 수 없는 건가?"

"아니요. 저는 그를 제 길드로들이고 싶어요."

"그자를 영입하고 싶다?"

"네. 저희 신전 길드 이름의 유 래는 '신들의 전쟁'을 줄여서 만든 거예요. 길드의 임원들 대부분이 그 게임을 플레이했던 이들이죠."

"그렇군."

"무과금즐겜러는 신들의 전쟁에 서 압도적인 일인자였어요. 일대일 승부로는 그를 이길 자가 없었죠. 여러 명이 덤빈다고 해도 결과는 같았고요."

"그곳에서 이름깨나 날렸다고?

그게 다 아닌가?"

"아뇨. 저는 무과금즐겜러라면 저 나 다른 랭커들이랑은 비교도 안 되는 특전을 받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왜지?"

"차원이 달랐으니까요. 게임에 들인 돈이. 저도 천만 원 정도 쓰 긴 했는데 그 정도로 엄청난 보상을 얻었거든요. 저보다 더 쓴 사람은 그에 걸맞은 보상을 얻었고."

토끼 여왕의 입가가 올라갔다.

"무과금즐겜러는 저보다 수십, 수백 배는 많은 금액을 썼죠. 그럼

특전도 그에 준하는 걸 받지 않았겠어요?"

"음. 잘 모르겠지만 어느 정도 이해는 가는군. 그자가 강하니까 영입하겠다는 소리 아닌가?"

"맞아요. 그래서 당신한테 이렇게 왔잖아요."

토끼 여왕이 다 안다는 듯 미소 지었다.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3권 20화

68화

몇 번이나 부정했는데도 저러는 걸 보면 확신한 것이다.

'어떻게 알았지?'

베히모스의 피 때문인가.

그 아이템의 사용법은 아는 사람 이 몇 없긴 했다.

그러나 몇 없는 거지, 자신만 알 고 있는게 아니었다.

홍대패플조솁도 알고 조선제일검 도 안다.

그런데 자신을 의심한다?

'소거법으로 나라는 걸 확신하고 있는 건가.'

도지윤은 나머지 사람들의 정체를 이미 알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유준이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서 더 속이는 건 의미 없는 짓이다.

"어떻게 알았어요?"

"...놀랍네요. 갑자기 존대라니."

"다시 반말해 줘요?"

"아, 아니에요. 조금 어색해서요."

"반가워요. 오랜만이네요."

"네, 오랜만이에요."

"제 목소리를 듣는 건 처음이죠?"

"그죠. 우리는 따로 보이스톡 같은 걸 하지 않았으니."

유준은 궁금한 걸 물어보기로 했다.

"근데 나라는 건 어떻게 알았습니까? 베히모스의 피?"

"그게 힌트가 됐죠. 근데 그것만으로 확신한 건 아니에요."

"그럼요?"

"분위기요."

"그냥 감이 왔어요. 당신이 무과 금즐겜러일 거 같다고."

"거짓말이죠?"

"진짜예요. 제가 언제 거짓말하는 거 봤나요?"

"5년 전 일이긴 한데... 자주 했던 거 같은데요?"

"그, 그때의 저는 어렸으니까요."

"지금 나이가 어떻게 되시죠?"

가면 사이로 보이는 도지윤의 눈 이 매서워졌다.

"여자 나이를 묻는 거예요?"

하긴.

같이 게임을 한 게 5년 가까운 시간이고.

그로부터 또 5년이 지났다.

민감하게 반응할 만도 했다.

"저도 뭐, 나이가 적지는 않은데 요 뭘."

"몇 살인데요?"

"으음... 아직 이십 대 초반입니다."

5년이라는 시간은 없는 셈쳤다.

22살인 김희연과 반말을 주고받 고 있기도 하니까.

"...그렇게 어렸었나? 아니었던 거 같은데.... 아, 일단 메신저 교 환부터 해요."

도지윤의 말에 유준이 고개를 가 로저었다.

"그건 안 될 거 같아요."

"왜요?"

"지금 정체를 밝히긴 좀 곤란해서요."

안 그래도 조율이 자신의 뒤를

쫓고 있다.

무과금즐겜러라는 것이 밝혀져서 좋을 게 없었다.

"좋아요. 대신 영상구로 연락해요."

"영상구. 생각해 보니 그런 방법 이 있었군요."

도지윤이 농구공만 한 크기의 영 상구를 유준에게 건넸다.

"이걸로 연락할 수 있어요."

"예."

"마력은 계속 주입해야 하는 거 아시죠?"

"당연하죠."

"아, 곧 경매 시작하겠네요. 무과 금즐겜... 아니, 유랑 기사님은 오 늘 뭐 하러 오셨어요?"

"여기서 뭘 하겠어요. 그냥 아이템 팔고 돈 생기면 그걸로 사는 거죠."

"저번에 전설 등급 방패 팔고 큰 돈 얻지 않았어요?"

"그걸론 부족할 거 같아서요."

"...하긴. 오늘은 그럴 수도 있겠네요."

"토끼 여왕님도 마찬가지죠?"

도지윤이 입꼬리를 올렸다.

"네. 그리고 오늘은 제가 이길 거 같네요. 아주 많이 챙겨 왔거든요. 포인트."

"그거 기대되네요."

"어머, 시간이 벌써.... 경매 곧 시작하겠어요. 빨리 가야겠는데요."

"저는 먼저 들를 데가 있습니다."

"그럼 이따 경매장에서 봐요."

"예."

"아, 잠깐만요. 유랑 기사님."

"...?"

"그래서 길드에 들어오실 거예요?"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럴 줄 알았어요."

도지윤이 아쉬워하는 얼굴로 떠 나갔다.

유준은 요릭이 있는 건물로 갔다.

요릭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셨군요."

"그래. 아이템은 바로 전달하면 되나?"

"그러면 감사하겠습니다."

유준은 '광휘의 투구'와 '피를 갈 구하는 단검'을 요릭에게 건네주었다.

유준과 요릭은 경매장으로 향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자리에 들어 서 있었다.

판매자 좌석은 다행히 여유가 있었다.

이번에 블랙마켓 자체에서 경매에 내놓은 아이템이 적지 않다고 들었다.

그렇기에 판매자가 그리 많지는 않은 모양이다.

'그럼 다 아이템을 보러 온 사람들이라는 건데...

이번 경매는 규모가 장난이 아니었다.

"자, 아까 얘기했던..."

"예."

요릭이 먼저 귀띔을 해 놓은 까 닭인지 경매 진행자가 자연스럽게 유준의 아이템 두 개를 건네받았다.

"이거... 맨 마지막에 진행하는 그거 맞지요?"

경매 진행자가 말했다.

요릭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조심히 다뤄 주세요."

"물론입니다."

"잠깐."

유준이 그들 사이에 껴들었다.

"네?"

"그거 최대한 빨리 시작할 수 없나?"

"이 물건들 말입니까?"

"그래."

"왜 그러시죠?"

"포인트가 필요해서."

"하지만 마지막에 올라오는 것이

임팩트가 있을 겁...

"사람들 돈 다 떨어졌을 때. 그때 올라가면 무슨 의미가 있지?"

"알겠습니다. 그럼. 바로 첫 번째 아이템으로 내놓겠습니다."

"그게 가능한가?"

"어차피 첫 번째 아이템은 블랙마 켓 자체 아이템입니다. 이 정도 급 의 아이템은 마지막 아니면 첫 번째 가 낫다는 판단을 했습니다. 괜찮으 시겠습니까?"

"그래. 마음에 드는군."

"잠시만요. 더 좋은 생각이 있습니다."

이번엔 요릭이 말했다.

경매 진행자의 얼굴에 약간 짜증 이 어렸다.

"전설 아이템은 첫 번째로 배정 해 놓고, 신화 아이템은 맨 마지막에 등장시키는게 어떻습니까?"

"으음... 나쁘지 않군요. 아니, 아주 좋아요."

"그렇게 진행하지, 그럼."

"알겠습니다. 저는 이만."

경매 진행자는 또 누가 말을 바 꿀까 재빨리 자리를 벗어났다.

신화, 전설 등급의 아이템은 검

은 천이 덮인 상자에 옮겨졌다.

유준은 판매자 좌석으로 이동했다.

요릭이 이번에도 보조 좌석에 앉았는데 그의 옆에 낯익은 한 명이 더 있었다.

"유랑 기사님! 여기서 또 보네요."

도지윤이었다.

유랑 기사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였으면 반갑게 인사를 주고 받았겠지만, 보는 눈이 많다.

도지윤도 그걸 알았는지 별말 하지 않았다.

그때 경매가 시작되었다.

"자, 첫 번째 아이템. 판매자분께 서는 단상으로 올라와 주십시오."

유준이 요릭과 벌떡 몸을 일으켰다.

경매장에 있는 모든 이들의 시선 이 그 둘에게 쏠렸다.

"저거... 저번에 봤던 그 사람 아닌가?"

"아, 유랑 기사인가?"

"전설 방패 판매했던 그 플레이

어 맞는 거 같은데."

"첫 번째로 배정받은 거 보면 또 좋은 아이템 들고 온 거 아니야?"

"보면 알겠지."

요릭이 전설 등급 아이템 '광휘 의 투구'를 두 손으로 잡아 들었다.

"정보를 공유하겠습니다. 아이템 옵션을 다들 눈 제대로 뜨고 확인 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가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플레이어들의 기대감을 올려놓는 말이었다.

[광휘의 투구]

착용 제한 : Lv. 460 이상

등급 : 전설

방어력 : 3,890

옵션 : 치유 관련 능력의 효과가 110% 증가합니다. 모든 버프 효과 가 120% 증가합니다.

첫 번째 경매 아이템의 옵션이 모두에게 공개되었다.

"와, 뭐야?"

"460레벨 방어구인데? 심지어 전 설 등급이야."

"...아니. 그런 것들보다도 옵 션을 봐. 퍼센트 증가 옵션인데 수 치가 장난 아니야. 힐러나 인챈터 용 아이템이네."

경매장이 금세 시끌벅적해졌다.

광휘의 투구는 착용 레벨 제한도 높고 방어력도 준수했다.

거기에 옵션은 퍼센트 증가가 두 개나 붙었다.

당연히 난리가 날 수밖에 없었다.

"1억 포인트!"

처음부터 거액의 금액이 나왔다.

확실히 경매에 참가한 사람이 많으니 액수 단위가 남달랐다.

"2억 포인트!"

"5억 포인트!"

"미, 미친. 가격 올라가는 속도 왜 이래?"

"오늘 좀 심상치 않은데?"

5억 포인트는 절대 적은 수치가 아니다.

일개 플레이어가 평생을 모으려 해도 못 모을 금액이었다.

금액이 높아지면서 일찌감치 포 기하는 이들이 생겼다.

"에라이.... 저런 아이템이 나와 도 마냥 좋아할 수 없는게... 어 차피 있는 놈들이 다 가져가잖아."

"난 어차피 이렇게 될 줄 알고 구경만 하러 왔어. 이런 곳에 돈 쓰는 건 좀 아깝지. 경매장에 올라 오는 아이템에는 거품이 끼기 마련 이야. 돈이 있어도 사기가 꺼려진 다고 해야 할까."

"구라치네. 너 10만 포인트밖에

없다며."

"7억 5천만!"

"이야, 아이템을 자세하게 설명

하기도 전에 벌써 가격이 이 정도

까지 오를 줄은 몰랐네요."

요릭이유준에게 말했다.

유준이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고

개를 끄덕였다.

"얼마까지 오를 것 같나?"

"음. 15억 포인트 정도가 아닐까요."

"겨우 그 정도?"

"사실 15억이라는 액수도 경매장에서 몇 번 나온 적 없을 정도로 높은 금액입니다."

"그럼 더 나오지 않나? 부자들이 많이 왔다며."

"그렇다고 해도 그 액수에 한계 가 있습니다. 보통 포인트가 많은 사람이라고 한다면 사업체를 운영 하고 있을 텐데. 그 사업체가 벌어들이는 모든 돈을 소유하고 있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투자하는데 다시 써서 돈이 없 다? 그 뜻인가?"

"예. 그렇다고 진짜로 포인트가

많이 없는 건 아닙니다. 사실 10억 포인트만 넘게 가지고 있어도 어마 어마한 거죠."

"그래?"

"유랑 기사님이 저번에 워낙 좋은 아이템을 가져와 판매했기에 감 이 안 잡히실 수도 있습니다. 10억 만 나와도 대박인 셈입니다. 전설 등급 아이템들의 평균 가격이 5억에서 10억 내외거든요."

"전설 아이템이 자주 나왔나?"

"간간이 나옵니다. 그나마 옵션 이 특출나진 않아서 크게 화제가 되진 않았죠. 아무래도 좋은 전설

등급 아이템은 플레이어들이 잘 판 매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건 왜지?"

"아이템이 곧 힘이니까요. 여기 서 판매한 아이템이 언제 어떻게 쓰일지 모르는데다가 보통 같은 길드원들에게만 판매합니다. "

"아. 그런 거였군."

단번에 이해가 갔다.

길드 전력 향상을 생각하면.

본인들끼리만 아이템을 물물 거 래 하거나 판매하는 것이 확실히 효율적이다.

"10억!"

그러는 와중에 아이템 가격이 10 억 포인트까지 올라갔다.

거기서 딱 멈추지도 않았다.

"10억 2천만!"

"10억 4천만!"

무려 여섯 명이 경쟁하고 있었다.

10억 포인트 넘게 가지고 있는 사람이 최소 여섯 명이라는 거다.

유준이 헛웃음을 지었다.

'저 사람들이 한 거대 단체의 수 장들이라는 거지...

언뜻 아주 평범한 플레이어들로 만 보이는데.

역시 겉으로만 봐서는 모를 일이다.

요릭의 예상대로 광휘의 투구 가 격은 15억까지 치솟았다.

"15억 4천만!"

"더 없습니까?"

결국, 15억 4천만 포인트에 낙찰 되었다.

"축하드립니다!"

유준은 곧바로 포인트를 지급받았다.

수수료 10%를 제외한 금액.

1,386,000,000포인트를 획득한 것이다.

마음이 절로 풍족해졌다.

전설 등급 아이템을 얻은 플레이어가 웃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고등급 힐 스킬을 가지고 있나 보네.'

힐러들에게 있어 저보다 더 좋은 아이템이 없으리라.

그 후로도 경매는 쉴 틈없이 진 행되었다.

"참여는 안 하십니까?"

요릭이 물어 왔다.

유준이 피식 웃었다.

"마음에 드는게 있어야지."

"꽤 좋은 아이템들이라고 생각되는데요. 전설 등급 아이템도 벌써 두 개나 더 나왔고."

"나한텐 아니야."

"하긴. 그럴 만도 하네요. 신화 아이템을 가지고 계실 정도니...

유준은 오로지 소모성 아이템에

만 관심이 있었다.

그러나 아직 장비 아이템만 올라 올 뿐, 소모성 아이템은 두 눈을 부릅뜨고 살펴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블랙마켓 경매장에 올라올 정도 의 소모 아이템이 적은 것이 그 이유였다.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3권 21화

69화

[민첩의 정수]

등급 : 영응

옵션 : 민첩을 영구적으로 15 상승시킵니다.

경매장에 '민첩의 정수' 아이템이 올라왔다.

19번째가 되어서야 등장한 것이다.

능력치를 영구 상승시키는 정수 아이템은 언제나 수요가 있었다.

"3천만 포인트!"

"6천만 포인트!"

그러나 정수 아이템은 무한정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떤 이는 한 번만 섭취해도 끝 일 수도 있고, 다섯 번, 여섯 번까지 가는 이도 있었다.

플레이어의 잠재력에 따라 횟수 가 정해져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정수를 한계치까지 섭 취한 이들은 이번 입찰 경쟁에 뛰

어들지 않았다.

"3억 포인트!"

유준이 외쳤다.

"무슨 정수를 3억 주고 산대?"

"잘하면 전설 등급 아이템 하나를 살 수 있는 포인트인데...

"돈이 썩어나나 보네, 하...

애초에 1억 포인트도 못 들고 있는 이들이 많다.

결국, 유준이 민첩의 정수를 차

지 했다.

'정수를 최대한 많이 모아야 해.'

그는 태초의 플레이어 능력을 얻었다.

그로 인해 잠재력이 대폭 상승했을 것이다.

정수 효과 한계치가 다른 이들과 비교할 수없이 높은 것이다.

유준은 정수를 얻은 즉시 섭취했다.

'정수 하나만 해도 온 보람이 있지.'

그 후로 유준이 관심을 가질 만

한 아이템은 나오지 않았다.

물론, 다른 플레이어들에게는 좋은 아이템들이라 경매장은 후끈한 열기로 가득 찼다.

"오늘 물이 좋구만!"

"구경하는 맛이 있어."

"돈지랄 진짜 장난 아니네. 그런 데 저기에 우리 길드장님도 있겠 지...?"

"4대 길드에서 영향력 있는 사람 들은 오늘 다 여기 왔을걸?"

그들의 말대로 블랙마켓에 고위 인사들이 모였다.

이종족 연합의 의원들도 와 있을 정도니, 블랙마켓의 영향력은 실로지대하다고 할 수 있었다.

경매의 끝이 다가왔다.

그때까지 자리를 비우는 이는 거 의 없었다.

"자, 대망의 마지막 경매 아이템 입니다. 제가 아까부터 계속 기대 하라는 말을 반복했죠. 그 이유가 궁금하셨을 텐데요."

경매 진행자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판매자분 나와 주세요!"

유준과 요릭이 다시 걸어 올라갔다.

모두가 의아해했다.

"아까 아이템 팔았던 사람 아니야?"

"유랑 기사잖아."

"원래 한 번에 팔아야 할 텐데?"

그들의 의문을 경매 진행자가 풀 어 주었다.

"왜 같은 판매자가 두 번 올라오 셨는지 궁금하시죠? 그 이유는 이 번에 등장하는 아이템이 매우 특별 하기 때문입니다!"

블랙마켓이 예외를 적용할 정도 로 특별한 아이템.

경매장에 있는 플레이어들이 한 껏 기대했다.

"아이템 정보를 공유하겠습니다."

요릭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피를 갈구하는 단검]

착용 제한 : Lv. 400 이상

등급 : 신화

공격력 : 19,890

옵션 : 민첩 능력치 +29%. 전투

가 끝이 날 때까지 적을 처치할수 록 대미지가 소폭 증가합니다. 광 폭화 스킬의 효과가 200% 증가합니다.

경매장에 침묵이 맴돌았다.

"내가 잘못 본 거 아니지?"

"신화 등급...? 그게 진짜 존재 하는 거였어?"

"나도 신화 등급 아이템은 처음 봐. 우와."

"공격력 봐. 저게 어떻게 단검

공격력이야?"

"야, 옵션이 더 미쳤어. 민첩 능력치 29퍼 증가에 대미지 증가가 더 붙는데?"

"와... 저거 진짜 갖고 싶다. 나 광폭화 스킬 가지고 있는데."

당연히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이 아이템은 요릭이 무얼 설명할 것이 없었다.

400레벨 제한에 신화 등급 무기.

그것만으로도 설명이 충분했기 때문이다.

곧바로 입찰 경쟁이 시작되었다.

"3억!"

"4억!"

"7억!"

"10억!"

"15억!"

"17억!"

"20억!"

순식간에 '광휘의 투구' 가격을 넘어섰다.

요릭이 입을 떡 벌렸다.

"다들 저 많은 돈을 어디다 숨겨 두고 있었답니까?"

"그걸 내가 어찌 아나."

가격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경 쟁자가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4명이 남았다.

"30억!"

누군가가 외쳤다.

"자, 자! 다들 잠깐만요. 30억이 나왔습니다. 블랙마켓 역사상 가장 큰 금액인데요. 혹시 지금 입찰을 노리시는 분들의 포인트를 확인해 도 되겠습니까?"

"빨리 진행해!"

"그래요!"

검은 옷을 입은 두 명이 플레이어 네 명에게 다가가 확인 작업을 거쳤다.

"확인되었습니다."

"이건 왜 하는 거야? 누가 저런 아이템을 두고 장난치겠어?"

"그래도 만에 하나를 대비한 거니까 어쩔 수 없죠."

"31 억!"

신화 등급 아이템의 가격이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그 경쟁은 한참이 지나서야 끝이

났다.

"신화 등급의 장비 아이템, '피를 갈구하는 단검'은 122억에 낙찰되었습니다! 와우! 역대 최고가네요!"

"낙찰되신 분 축하드립니다!"

경매장에 있는 이들 대부분이 황 당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122억.

이건 한 번도 나온 적 없는 수치였다.

그 정도 액수는커녕 20억 이상의 가격으로 낙찰된 적이 없다.

신화 등급 아이템이 처음으로 등

장했으니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었지만....

이 소식을 알리기 위해 플레이어 들의 눈과 손이 바빠졌다.

무려 122억에 낙찰된 신화 등급 무기 아이템!

신화 등급의 장비 아이템은 이번 이 처음 공식적으로 등장하는 것이었다.

피를 갈구하는 단검을 얻은 한 여성 플레이어가 진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유준에게 다가왔다.

"고마워요."

"뭘. 그대가 돈이 많은 덕에 차 지한 거지. 당연히 그대가 얻어야 했을 아이템이다."

"제 유일한 약점이 무기가 별로였다는 건데.... 이 아이템 덕분에 이제 누구랑 싸워도 질 것 같지 가 않네요."

대단한 자신감이다.

신화 등급 무기를 얻었으니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해가 갔다.

거기다 122억 포인트를 소지하고 있을 정도라면.

그녀가 어느 정도 위치에 있을지 짐작조차 안 갔다.

"혹시 신화 아이템을 더 갖고 계 신가요?"

"그건 비밀이오."

"...있다는 거네요."

"이만 가 보지."

유준은 요릭과 함께 경매장을 빠져나왔다.

수십 명에 이르는 플레이어들이 그에게 질문 세례를 하기 위해 다 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을 일일이 상대해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요릭."

" 예?"

"수고비다."

유준이 그에게 1억 포인트를 건 네줬다.

그가 번 액수에 비해서 사실 크 다고 할 수 없는 금액이지만....

1억 포인트는 정말 큰 금액이다.

"감사합니다!"

요릭이 환하게 웃었다.

이런 손님은 잘 없었다.

경매장에서 떼 가는 수수료만 해 도 10%다.

거기서 선뜻 포인트를 더 떼어 주기는 아까운 것이다.

이만큼 큰 금액을 실제로 만져 본 것은 처음이었다.

"다음에도 또 오실 거죠?"

"돈이 쌓였으니까. 이건 언젠가 써야지."

"유랑 기사님. 제가 생각하기엔 포인트는 많이 모으면 모을수록 좋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시스템이 정기적, 비정기적으로 든 이벤트를 열기 때문입니다. 그

때 포인트를 알차게 써야 할 상황이 올 가능성도 있습니다."

"전에 얼핏 들었던 얘기군. 정기 적으로 열린다고 했는데. 그건 얼마나 남았나?"

"앞으로 일주일 뒤. 아마 고레벨들을 위한 이벤트가 열릴 겁니다. 얼마 전에 종족 대항전을 했던 것 처럼요."

"레벨 제한이 사라지는 건가?"

"다른 건 그것뿐만이 아닐 겁니다. 종족 대항전은 죽어도 부활할 수 있다는 시스템적 배려가 있었지만, 고레벨들의 이벤트는 다릅니다.

아마도 배려 같은 건 전혀 없겠지요."

"잘 아는군?"

"저도 플레이어니까요. 그때는 블랙마켓도 휴업입니다. 다들이벤 트에 참가하려고 할 테니."

"보상이 큰가 보군."

"ㅎㅎ... 종족 대항전과는 비교 할 수 없을 정도죠. 저도 이번에 유랑 기사님께 크게 팁을 받았으니 정비 제대로 하고 갈 생각입니다."

"응원하지."

"유랑 기사님도요."

유준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자신은 고레벨이 아니다.

어쩌면 이벤트에 참가하지 못할 지도 모른다.

'적어도 300레벨까지는 올려놔야겠는데.'

요릭과 헤어져 블랙마켓을 나서 려는데 황급히 달려오는 이가 있었다.

토끼 가면을 쓴 키 큰 여성.

도지윤이었다.

"유랑 기사님! 아까 못 물어본 게 있어서...

"예."

"그동안 어디에 있었어요? 아무리 찾아도 안 보이던데...

"눈에 띄는 걸 별로 안 좋아해서요."

"그런 것치고는 오늘 눈에 너무 띄던데요?"

"유랑 기사는 제가 아니잖습니까."

"하긴.... 그럼 나중에 영상으로 봬요."

"그러죠."

유준은 빠르게 거주 구역으로 돌아왔다.

마음이 상당히 급했다.

'이벤트가 열릴 때까지 레벨을 올려야 하는데...

어디로 가야 할까.

레벨만 올리는 것이라면 길게 고 민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다른 요소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스킬.'

스킬이 필요했다.

그는 무력과는 어울리지 않게 가 진 스킬이 너무 적었다.

최상위 랭커라는 작자들과 비교 하면 확연한 차이가 날 것이다.

'그곳으로 가 볼까.'

그만이 알고 있는 던전이 하나 있다.

스킬을 확정적으로 얻을 수 있는 그런 던전.

그러나 그곳을 가기 위해선 선행 해야 할 과제가 있었다.

등반 시련을 클리어하는 것.

30층.

목표를 잡았다.

당연하지만, 30층에는 금방 도달 할 수 있었다.

층수를 착각해서 31층까지 올라 와 버렸다는게 유일한 오점이었다.

여기까지 오는데 걸린 시간은 10시간.

사실 파티를 맺었으면 시간이 훨 씬 단축되었을 것이다.

협동이 필요한 시련이 다수 포함

되어 있었기 때문에 시간이 좀 더 걸렸다.

'그 와중에 레벨도 3개나 올랐고.'

목표한 레벨까지 9가 남았다.

'그런데 그 던전이 남아 있으려나?'

5년이 지났다.

이종족들은 더한 세월을 무한의 탑에서 보냈을 테고.

사실 조금은 불안했다.

히든 던전이 아닌 일반 던전이었 기에 이미 클리어되었을 수도 있었다.

유준은 30층으로 돌아갔다.

위치는 기억이 났다.

그곳을 향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남서쪽 방향.

언덕을 내려가서습한 밀림에 들 어갔다.

질척질척한 늪지가 보였다.

유준은 축축하게 젖은 나무 위로 뛰어다녔다.

'여기 인기가 별로 없나?'

사람의 흔적이 거의 없다.

10분 정도를 더 앞으로 나아가고 나서야 원하던 던전을 찾을 수 있었다.

'아직 남아 있네. 다행이다.'

이곳 늪지 환경이 불쾌했기 때문 일까.

어찌 됐든 그로선 좋은 일이었다.

유준은 뜸들이지 않고 던전으로 들어갔다.

[1 인 이벤트 던전 '콜트레인의

던전'에 입장하셨습니다.]

[입장자의 능력치 총합에 따라 던전 난이도와 보상을 정합니다.]

'아, 맞다.'

유준은 재빨리 던전에서 나왔다.

여기는 능력치 총합에 따라서 던 전의 테마, 난이도가 달라진다.

보상까지도.

그래서 유준이 황급히 던전에서 탈출한 것이다.

'미분배 포인트가 있었지. 마력은 충분하니까 육체 능력치에 투자하자.'

상태창을 열어 200이 넘는 미 분배 포인트를 전부 분배했다.

[근력 424(367+57)]

[민첩 515(438+77)]

[체력 407(350+57)]

[마력 513(491+22)]

퍼센트 효과가 더해지지 않은 상태의 능력치였다.

'이 정도면 높게 판정받겠지.'

유준은 다시 던전으로 들어갔다.

[1 인 이벤트 던전 '콜트레인의 던전'에 입장하셨습니다.]

[입장자의 능력치 총합에 따라 던전 난이도와 보상을 정합니다.]

[던전의 등급이 드로 상향되었습니다!]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3권 22화

70 화

'마음에 드는군.'

확실히 그의 능력치 총합은 다른 이들과 비교할 바가 되지 못했다.

웬만한 500레벨 플레이어보다 높았으니.

그만큼 던전을 공략하기가 어려 워진 셈이지만, 상관없었다.

그의 무기는 능력치만 있는게 아니었으니까.

던전 곳곳에 달려 있던 등불이

사라졌다.

첫 번째로는 암막.

시야 차단이 목적인 듯했다.

그러나 어둠이 아무리 그득하다 고 해도 유준에겐 특성 '예민한 감 각'이 있다.

칠흑같이 어두운 던전을 제집처 럼 돌아다니는 것이 가능했다.

'저번엔 A등급이었지.'

신들의 전쟁 때도 레벨이 상당히 높은 상태에서 이 던전에 왔었다.

그렇기에 그가 알던 던전과 다를 확률이 높았다.

유준은 조심스럽게 걸었다.

'처음엔 함정.'

아니나 다를까, 닭살을 쭈뼛 돋 게 하는 파공성이 들려왔다.

유준이 황급히 몸을 구르며 연달 아 날아온 세 개의 화살을 피해 냈다.

던전 기관에서 발사되는 것이라 그런지 속도가 장난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못 피할 정도는 아니지.'

그의 반사 신경은 인간의 범주를 넘어서 있었다.

그리고 화살에 적중당하더라도 높은 방어력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유준은 빠르게 함정 구간을 돌파 했다.

그러자 2m 정도 되는 신장을 지 닌 뚱뚱한 몬스터, 키오츠크가 등 장했다.

하나가 아니었다.

넷 정도가 되는 키오츠크가 유준을 보자마자 입에서 산성액을 내뿜 기 시작했다.

"우억! 워억!"

촤아악! 촤아악!

끔찍한 냄새가 후각을 괴롭혔다.

그래도 워낙 냄새가 강렬해서 금 세 후각 기능이 마비되었다.

유준은 그들의 공격을 가뿐히 피해 내면서 검을 휘둘렀다.

서걱! 슥!

키오츠크 넷이 단번에 목이 잘려 목숨을 잃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고작 네 마리를 잡고 레벨이 올 랐다.

그 이유는 키오츠크의 레벨이 450을 넘기 때문이었다.

'역시 등급 던전이야.'

그 후로도 키오츠크들이 떼로 등 장했다.

유준은 놈들이 입에서 무언가를 뱉기도 전에 먼저 움직여 처리했다.

순전히 위생 문제 때문이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그 어떤 공격도 유준의 몸을 스 치지 못했다.

키오츠크들이 약한 게 아니었다.

유준이 너무 강한 것이었다.

그가 검을 휘두르는 족족 키오츠 크들의 머리가 허공에 날렸다.

'레벨을 걱정할 필요는 없겠군.'

다만, 이제는 어떤 스킬을 얻을 지 기대가 되었다.

* * *

유준은 순식간에 던전의 끝에 도 달했다.

이제 보스 몬스터만을 남겨 두고 있었다.

보스 룸 앞에 섰는데, 고약한 냄 새가 사방에 진동했다.

'키오츠크랑 관련이 있는 놈이 분명하네.'

유준이 한숨을 내쉬었다.

차라리 훨씬 강한 놈이랑 싸우는게 낫지.

더러운 놈은 너무 껄끄럽다.

"파라네트."

"예!"

어느새 소환된 파라네트가 대답 했다.

"먼저 가 봐."

"저만 믿으십시오!"

파라네트가 보스 룸의 문을 열고 안으로 진입했다.

그리고 곧 앓는 소리를 내며 나 왔다.

"으으. 저건 뭡니까."

" 왜?"

"너무 흉측하게 생겼습니다."

언데드가 그렇게 말할 정도면 도 대체 어떻게 생긴 걸까.

바로 보스 룸에 들어갔다.

"어우...."

냄새는 그렇다 치자.

보스 몬스터의 외형은 확실히 파라네트가 깜짝 놀랄 만했다.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오물과 쓰 레기들을 한곳에 모아 둔 것 같은 거대 생명체.

공기마저 탁하고 오염된 것이 여 기 오래 있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빨리 끝내야겠다."

"그러는게 좋겠습니다. 우욱…."

"넌 왜 그래? 도대체. 냄새도 못 맡잖아."

"그냥 너무 징그럽게 생겼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인간이었을 적 의미적 감각이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거 같습니다."

"그러냐."

유준이 쾌속 전진을 사용해 보스 몬스터에게 접근했다.

그때.

"크롸라라라락!"

"아, 귀 아파."

"퀀오오온애애행!"

놈이 뜻 모를 괴성을 질렀다.

그리고 오물 덩어리가 사방에 흩 날리기 시작했다.

보스 방 내부를 뒤덮은 오물들에 파라네트가 두 발 바삐 움직이며 도망 다녔다.

'여기선 도움이 안 되네. 파라네 트가.'

유준은 허공에 날아다니는 오물들을 피해 보스 몬스터의 바로 앞 까지 접근했다.

검을 수차례 휘둘렀다.

보스 몬스터의 살점이 수십 점 떨어져 나갔다.

워낙 몸집이 비대해서 그걸로는 티도 안 났다.

'약점이 어디지?'

머리로 보이는 곳이 안 보인다.

예민한 감각을 사용했다.

녀석이 자신을 주시하는 시선이 어디에 있는지 파악했다.

'배?'

오물이는 자신의 두꺼운 살이 있는 배에 머리 부위를 숨기고 있었다.

뜨거운 열기와 함께 들숨이 뿜어 지는 곳이 그쪽이었다.

'아까도 소리가 왜 먹먹하게 들 리나 했더니 그런 이유였군.'

유준이 오물이의 다리를 밟고 배 쪽으로 올라갔다.

놈은 독성 강한 오물을 계속 뿜어내면서 방해하려 했지만, 그를 막을 수는 없었다.

유준이 검으로 오물이의 배 부위를 푹푹 찔렀다.

그러나 몸의 부피 때문에 검이 녀석의 머리가 있는 곳에 도달할 수 없었다.

그래서 살점을 도려내기 시작했다.

유준이 손목을 몇 번 움직이자, 배에 있는 살점이 잘려나갔다.

"크오오오옥!"

고통을 느꼈는지 놈이 또 괴성을 질렀다.

소리가 매우 가까웠다.

'끝이 머지않았어.'

그의 인생에서 가장 힘든 순간이 지금이 아닐까.

빨리 이 던전을 공략하고 싶었다.

보상 때문이 아니라 오물이의 냄새 때문이었다.

유준은 오물이의 머리가 보이는 순간, 참격 (B) 스킬을 사용했다.

콰아앙!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연달아서 참격 스킬을 사용하자, 오물이의 몸이 눈에 띄게 파였다.

그로 인해 놈의 큰 머리가 완전 히 노출되었다.

검에 마력을 듬뿍 담아 찔러 넣었다.

푹!

"쿠오오오옥! 오애애행!"

"야. 귀청 떨어지겠다. 그만 좀 죽어."

푹! 푹!

끈질긴 생명력이었다.

그래도 완전히 무적은 아니었나 보다.

검을 여덟 번 찔러 넣었을 때쯤에 오물이의 움직임이 멎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단신으로 '오염된 신수'를 처치 했습니다!]

[전설 칭호 '신수를 처치한 자'를 획득합니다.]

[불가능한 업적!]

[전설 아이템 박스(선택)]

뭐야. 얘가 신수였어?"

신수는 보통 신력이 깃든 동물들을 뜻하는데.

'저게 어딜 봐서 동물이야?'

신의 힘이 깃들긴 한 건가?

어찌 됐든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던전의 출구가 열렸다.

여기서 단순하게 출구로 나가면 안 된다.

유준은 보스 방 내부를 샅샅이 뒤졌다.

'그게 안 보이는 걸 보면….'

유준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오물이가 있던 장소.

'설마 저길 뒤져야 하나?'

괜히 S급 던전 판정을 받았나.

갑자기 후회되기 시작했다.

"파라네트."

" 예."

"저기 좀 뒤져 봐."

" 예?"

"알아들었잖아. 못 들은 척하지마."

"...안 하면 안 됩니까?"

"잠깐. 진짜 어이가 없네."

"소환수가 명령을 안 들어? 내가 너한테 해 준 게 얼만데."

"그, 그건 그렇지만."

"싫으면 신화 등급 반지 내놔."

"하겠습니다! 제가 하겠습니다! 저한테만 맡기십시오!"

파라네트가 부리나케 달려가 오 물의 몸을 뒤적거렸다.

"진작 그럴 것이지."

파라네트가 작게 중얼거렸다.

"악마가 따로 없구만."

"뭐라고?"

"아무것도 아닙니다!"

"빨리해."

" 넵."

파라네트가 열심히 해체 작업을 진행했다.

유준도 마냥 놀지만은 않았다.

오물이의 사체가 있는 뒤쪽을 살 펴봤다.

"응? 여기 있네." 원하던 걸 발견했다. 스킬 서고.

괜히 파라네트한테 일만 시켰네.

스킬 서고는 몇몇 이벤트 던전을 클리어하면 등장했다.

서고라고해서 진짜 서고가 있는 건 아니고, 벽 자체가 금으로 이루 어진 방이었다.

여기에 들어서면 시스템에게 안 내를 받고 스킬을 얻을 수 있게 된다.

"파라네트! 이리 와!"

" 예?"

"너도 스킬 좀 얻자."

스킬 서고가 좋은 점은 이거다.

자신 혼자만 스킬을 얻을 수 있는게 아니라는 것.

소환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얻는 스킬도 많아지겠지.

대신 한 개체당 한 개씩이다.

'소환수를 더 만들지 않은 게 아 쉽긴 하네.'

후회해도 늦었다.

유준이 스킬 서고에 들어갔다.

[방대한 스킬 서적이 있는 스킬 서고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당신은 여기서 딱 한 가지의 스킬을 고르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 대가없이 스킬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에 상응하는 아이템을 제물로 바쳐야 합니다.]

[현재 얻을 수 있는 스킬의 등급 : D]

'예전 그대로네. 아주 좋아.'

스킬 서고는 아이템을 대가로 스킬을 준다.

전설 등급 아이템 하나를 바친다 고 해 봐야 A등급의 스킬을 얻는다.

두 개를 바쳐도 등급의 스킬을 얻을 수 없었다.

더 많은 아이템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막 좋다고 할 수는 없는 장소.

그러나 유준은 활짝 웃고 있었다.

'나한텐 아주 최적의 조건이야.'

그만큼 여기를 제대로 이용할 사 람은 없었다.

그의 인벤토리에는지금 평생 쓰 지도 않을 전설 등급 아이템이 널 려 있었다.

'이번에 인벤토리 좀 제대로 비워 보자.'

유준은 스킬 서고 내부에 있는 제단에 아이템을 하나둘씩 올려놓 기 시작했다.

죄다 전설 등급의 아이템이었다.

[전설 등급 아이템을 제물로 바쳤습니다!]

[현재 얻을 수 있는 스킬의 등급 : S]

단번에 등급이 드로 치솟았다.

유준의 미소가 더욱 진해졌다.

'벌써 등급.'

이제 몇 개 올려놨을 뿐이다.

유준이 계속해서 아이템을 꺼내 제단에 올렸다.

그러다 그 넓은 제단이 아이템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유준이 홀로그램 창을 봤다.

[현재 얻을 수 있는 스킬의 등급 : SSS]

전설 등급 아이템 40개를 올려서 만든 결과였다.

여기서 만족해도 된다.

하지만,

'스킬 서고는 진짜 웬만해선 발견하기 힘들어. 그러니 여기서 최 대한 뽕을 뽑고 가야 한다.'

유준은 과감하게 신화 등급 아이템 한 개를 꺼냈다.

블랙마켓 경매장에 팔면 최소 수백억 포인트는 받을 수 있는 방 어구였다.

그것을 제단 위에 올려놨다.

[현재 얻을 수 있는 스킬의 등급 : SSS]

홀로그램 창은 변하지 않았다.

'EX등급을 받을 수 있긴 한 건가?'

유준은 사실 스킬 서고에서 EX 등급의 스킬을 얻어 본 적이 없었다.

아이템이 아까웠으니까.

그때는 워낙 가진 스킬이 많았다.

굳이 아이템을 바쳐 가면서까지 스킬을 얻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그 무엇보다도 스킬이 절실한 상황.

전설 등급 아이템과 신화 등급 아이템을 몇 개든 내놓을 수 있었다.

'EX등급 스킬 하나만 잘 떠도 수만 명이 싸우는 전쟁의 판도를 뒤바꿀 수 있으니.'

무한의 탑에서는 EX등급 스킬이 나 특성을 가진 플레이어를 신에게 선택받은 자라고 한다.

정말로 희귀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스킬의 위력이나 범용 성이 그 밑 등급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웬만해선 EX등급으로 올라가지 않을 테니까.'

유준은 신화 등급 아이템을 하나 더 꺼냈다.

이번에도 방어구 아이템이다.

그러나 변화가 없었다.

유준의 얼굴에 짜증이 어렸다.

"후우…."

아니지. 아니야.

'어차피 신화 등급도 내겐 넘치

도록 있어. 아까워하지 말자.'

그가 제단에 신화 등급 하나를 더 올린 그때였다.

[신화 등급 아이템을 제물로 바쳤습니다!]

[현재 얻을 수 있는 스킬의 등급 : EX+]

"...응?"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3권 23화

71화

유준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신화 등급 아이템을 제물로 바쳤습니다!]

[현재 얻을 수 있는 스킬의 등급 : EX+]

EX등급이 된 건 좋은데.

EX+라니?

'플러스가 붙는 것도 있었나?'

무과금즐겜러가 가진 스킬의 최 고 등급이 딱 EX였다.

'설마 EX등급의 위가 있었던 거야?'

유준이 헛웃음을 지었다.

그걸 이제 와서 알다니.

아니, 아는 건 그렇다 쳐도 지금 시기에 얻을 줄은 몰랐다.

[얻을 수 있는 스킬 등급이 최대 치가 되었습니다.]

[이대로 진행하시겠습니까?]

망설일 것도 없다.

유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허락했다.

[스킬 목록을 공개합니다.]

[천마신공 (EX+)]

[오버 파워 (EX+)]

[슈퍼 아머 (EX+)]

[고대 마법 (EX+)]

[공간 이동(EX+)]

유준이 잠시 눈을 깜빡였다.

"미찬..."

보는 순간, 욕이 절로 나왔다.

다 갖고 싶잖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좋은 것들만 나열되어 있으면 쉽게 결정할 수가 없었다.

특히 공간 이동 스킬.

EX+등급의 공간 이동이라면 제 약도 적고 이동할 수 있는 거리도 엄청날 것이다.

"으음"."

지금 목록에서 가장 원하는 건 두 개로 줄일 수 있다.

바로 고대 마법과 공간 이동 스킬.

'마력이 높아진 나한텐 고대 마법이 엄청 효율적일 거야.'

저거 하나만 익혀도 스킬 수십 개를 가진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압도적인 파괴력 대신에 범용성.

공간 이동도 마찬가지로 유용하게 쓸 수 있다.

한참을 고민하던 유준이 결정을

내렸다.

'일단 고대 마법을 배우자.'

그에게 가장 부족한 것.

스킬의 개수다.

그걸 채우기 위해선 고대 마법보 다 좋은 게 없었다.

"고대 마법을 선택한다."

[스킬 '고대 마법 (EX+)'을 획득 했습니다.]

유준의 머릿속에 고대 마법과 관

련된 방대한 지식이 물밀 듯 들어 왔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러나 금방 괜찮아지고 적응할 수 있었다.

현재 그의 육체는 인간과 한층 다른 차원에 있었으니까.

유준의 눈동자가 더욱 깊어졌다.

'마법이란 게 이런 거였구나.'

현재 플레이어들이 사용하는 마법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좀 더 효율적이고 원래의 형태에 가까운 마법.

'이걸 뭐라고 해야 하지.'

드래곤이 쓸 법한 마법들이라고 해야 하나.

물론, 실제로 드래곤을 본 적은 없다.

게임 이미지로만 봤을 뿐.

그러나 고대 마법을습득한 지금은 알 수 있었다.

이건 그냥 마법과는 비교 불가능 한, 사기적인 능력이라는 걸.

'고대 마법은 특이하게 딱 이름 이 정해져 있지가 않네.'

그저 마력을 사용해서 마법을 어

떻게 발현해 내는지와 마법 술식들 만 유준의 머릿속에 자리 잡았다.

마음만 먹으면 하늘을 나는 것도 가능했고, 삽시간에 대규모의 실드를 펼치는 것도 가능해졌다.

유준이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주인님! 성과 좀 있으십니까?"

"너 마침 잘 왔다."

"네?"

"너한테도 홀로그램 창 나타났지?"

"예. 아이템을 제물로 바치라는.... 그런데 저는 아이템이 없

습니다."

"내가 줄 테니까 걱정하지마. 넌 그냥 받아서 제단 위에 올리기 만 해."

"알겠습니다."

파라네트의 입이 귀에 걸렸다.

유준이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너무 아낌없이 주는 나무 인가? 퍼 주기만 하는 거 같은데."

"아닙니다! 아니, 맞습니다! 하지만 감사합니다!"

파라네트가 횡설수설하며 대답했다.

유준이 웃었다.

녀석이 강해지면 자신이 강해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아이템을 아낄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그가 인벤토리에서 전설 등급 아이템 수십 개를 무더기로 꺼냈다.

"이, 이걸 다 제물로 바칩니까?"

"응."

"너무 많은 거 같은데요."

"많지. 근데 원하는 걸 얻으려면 뭘 못하겠어?"

"… 그렇군요."

전설 등급 아이템만 수천 개를 가진 유준이었다.

앞으로 얻을 스킬을 생각하면 전 혀 아깝지 않았다.

"주, 주인님! SS등급이 됐습니다. 이제 고르면 될까요?"

"아니. 더 해야지."

유준은 신화 등급 아이템 세 개를 줬다.

"하나씩 올려놓고 바뀌나 확인해 봐."

"이거 신화 등급…."

"빨리해."

"알겠습니다."

파라네트가 떨리는 손으로 신화 등급 아이템을 제단에 올려놓았다.

녀석이 화들짝 놀라며 뒷걸음질쳤다.

"흐억!"

" 왜?"

"EX+등급이 됐습니다. 이, 이거 최고 등급 스킬이라는데요?"

"응. 이제 내가 고르라는 거 고 르면 돼."

"어떤 걸 하면 되겠습니까? 저는

천마신공이 마음에 드는...

"공간 이동."

"네?"

"공간 이동 스킬 선택해."

"그건 너무 멋이 떨어지는 거 아닙니까? 데스 나이트라면 천마신공 같은 고급 기술...

"공간 이동으로 해. 나중에 천마신공 같은 스킬 얼마든지 얻게 해 줄 테니까."

"오오, 알겠습니다!"

그렇게 파라네트는 공간 이동 스킬을 배웠다.

"공간 이동이라, 이것도 나쁘지 않은 스킬이군요. 마력만 있다면 대륙 어디로든 이동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입니다."

"단순히 그런 기분이야? 불가능 해?"

"제 마력이 부족해서. 나중에 성장하면 어디든 가능할 겁니다."

"지금도 장거리 가능하잖아? 그 치?"

"예! 대신 좌표를 알아야 합니다. 거기다 거리가 멀수록 공간 이동을 사용하려면 꽤 많은 시간을 소요해야 하는군요."

"그건 어쩔 수 없는 거야. 아무 제약없이 그런 사기 스킬을 남발 할 수 없으니까."

" ㅎㅎ."

"좋냐?"

"예. 그렇습니다."

"나도 기분 좋다."

공간 이동 셔틀이 생겨서.

그 말은 속으로 삼켰다.

"볼일은 끝났고. 이제 나가 볼까?"

"예! 가죠!"

파라네트가 잔뜩 신이 난 모양이다.

알 수 없는 노래를 훙얼거리며 앞서 걷기 시작했다.

"어디 가고 싶은 곳 있으십니까? 제가 데려드리죠."

"오버하지마."

" 예."

무사히 던전을 클리어하고 밖으로 나온 유준은 황급히 파라네트를 잡아끌었다.

파라네트가 원래 있던 자리에 밝은 빛무리가 꽂혔다.

콰앙!

"와, 그걸 알아채? 감이 진짜 좋은데?"

총 세 명의 플레이어.

다 모르는 얼굴이다.

"왜 날 공격했지?"

유준이 물었다.

"크하하. 네가 임무의 목표 대상 이기 때문이지."

포마드 머리를 한 남자가 말했다.

전신을 저릿하게 만드는 강함.

그 강함을 세 명 모두가 가지고 있었다.

'강한 놈들이다.'

유준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가 지금껏 만나 온 그 누구보 다 강한 자들이었다.

심지어 셋 다 한국인인 듯했다.

유준은 어떤 상황인지 대충 눈치를 챘다.

"너희가 조율이냐?"

"...어? 어떻게 알았어?"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여자가 놀 란 얼굴로 말했다.

"지규태라는 놈이 알려 주던데."

"규태 아저씨를 알아? 괜히 목 표 대상이 된 게 아닌가 보네?"

"역시 지규태가 보낸 게 맞군."

"응. 반가워. 죽이기 전에 우리 서로 통성명이나 할까? 난 조율의 반소연이야. 이 꼬맹이는 천시현 이고. 그 옆에 재수 없게 생긴 얘는 최강민."

"야. 내가 왜 재수 없게 생겨? 나 여자들한테 인기 많아."

"확실해?"

"...이종족들은 좋아할걸?"

"잘생긴 건 만국…아니, 만족 공 통이야. 네 외모는 어디서도 안 통해. 내가 확신해."

"그, 그렇게까지 말하기냐?"

"현실 인지는 빠를수록 좋잖아."

"쳇."

여유롭게 만담이나 주고받는 그들을 보며 유준이 검을 꺼냈다.

"빨리 한꺼번에 덤벼."

"뭐? 한꺼번에? 풉...

최강민이 입가에 비웃음을 머금었다.

"우리가 셋이 왔다고해서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아나 본데. 사실 저 꼬맹이 하나만 나서도 넌 아무 것도 못 하고 죽어. 그거 알아?"

"양아치 새끼 참 말 많네."

최강민은 유준의 말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말을 이어 나갔다.

"제일 비참하게 죽는게 새파랗 게 어린놈한테 농락당하다가 서서 히 죽는 건데. 시현아. 네가 한번 상대해 볼래?"

천시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난 소연 누나 지켜야 하니까 네가 상대하지그래?"

"우와. 여전히 버릇없네."

"너보다 강하니까 상관없잖아."

"쯧. 이걸 때릴 수도 없고."

최강민이 다시 유준을 바라봤다.

"일을 너무 빨리 끝내면 시시하니까. 내가 좀 놀아 줄게."

"네가?"

"웅. 혹시 겁나? 너도 느낄 거 아니야. 너와 나의 차이."

확실히 녀석에게서 강대한 힘이 느껴진다.

레벨 500을 넘으면 뭔가가 달라 지긴 하나 보다.

무언가 범접할 수 없는, 보이지 않는 벽이 있었다.

"그럼 빨리 덤벼."

"너 종족 대항전에 참가했었다 며? 이제 300레벨 근처일 텐데. 어 디 나랑 비빌 수나 있겠어?"

"...넌 입으로만 싸우냐? 먼저 들어와."

유준은 절대 먼저 공격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저 셋을 동시에 상대하는 건 무리가 있었다.

최강민을 끌어들여 나머지 둘과

의 거리를 벌리는 것이 중요했다.

얼굴에 있던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어린것들이 더하다니까.야. 이 빨 꽉 깨물고 있어라."

놈의 몸이 사라졌다.

어느새 유준의 바로 앞에 나타난 최강민이 창을 뻗었다.

절묘한 위치에서 뻗어진 창.

피하기가 여간 곤혹스러운게 아니다.

그래서 피하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카앙

최강민의 창 촉이 위를 향했다.

창의 단점은 쳐 내지면 빈틈이 크게 생긴다는 것.

유준은 최강민의 겨드랑이 쪽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후웅!

최강민이 도약 자세없이 번쩍 뛰어올라 유준의 공격을 피했다.

"오, 식겁했네!"

거리를 조금 벌린 최강민이 어색 한 웃음을 지었다.

"내가 방심했나? 하하."

"그러게. 네 무기 좀 봐 봐. 방심 해도 너무 많이 한 거 아니야?"

"뭔 개소리…."

최강민은 자신의 창끝이 완전히 날아간 것을 보고 말을 끝맺을 수 없었다.

"뭐, 뭐야? 내 창 왜 이래?"

"관리 좀 잘하지 그랬어."

"...너무슨 마법을 쓴 거냐?"

"마법? 아, 그런 방법도 있었구 나."

고대 마법 중에는 무기의 내구도를 급속도로 떨어뜨리는 것도 있었다.

그것까지 사용했다면 놈의 무기를 완전히 박살 낼 수 있었을 텐데.

'역시 제때제때 활용하긴 쉽지가 않네.'

능력을 막 얻은 참이라 그럴 것이다.

"뭐, 역시 숨겨 둔 수가 있었네. 그러니 그렇게 당당하지. 이제 안 봐준다. 각오해."

최강민이 인벤토리에서 새 창을 꺼냈다.

유준은 말없이 그를 응시했다.

놈이 빠르게 쇄도해 왔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의 모습이 사라졌다.

냄새도, 기척도.

그 어떤 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은신?'

수준 높은은신 스킬을 사용한 듯했다.

예민한 감각을 발동시켰다.

그럼에도 그를 찾을 수 없었다.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고대 마법.'

그걸 사용할 기회가 찾아왔다.

이름이 딱히 정해져 있지 않다.

은신 스킬을 사용한 자를 탐색하는 마법. 딱 그 정도.

꽤 많은 양의 마력이 몸에서 빠져나갔다.

스윽. 슥.

조심스러운 발길로 천천히 접근 하는 최강민을 발견했다.

그는 자신이 들킨 것을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유준도 검을 전방으로 뻗으며 경계하는 척을 했다.

최강민이 기회다 싶어서 창을 쭉 뻗었다.

유준은 창끝을 비껴가듯 피하며 최강민의 머리를 향해 검을 찔러 넣었다.

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후웅! 푹!

최강민은 간신히 머리를 뒤로 빼 며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다만, 어깻죽지에 검이 꿰뚫리는 건 피할 수 없었다.

제대로 파고든 검.

유준이 손목을 움직여 검날을 비 틀었다.

"끄아아악!"

그 상태로 참격 스킬을 사용했다.

콰아앙!

최강민이 몸이 만신창이가 된 채 멀리 튕겨 나갔다.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3권 24화

72화

'안 죽었나?'

유준은 최강민에게 마무리 일격을 가할 수 없었다.

어느새 반소연과 천시현이 그에게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유준은 오히려 쾌속 전진을 사용해서 앞으로 갔다.

한 차례의 교차.

그로 인해 거리가 오히려 전보 다 더 벌어졌다.

유준은 그대로 바닥에 내팽개쳐 진 최강민을 향해 달려갔다.

순식간에 앞에 도달한 그가 최강 민의 머리를 향해 검을 내려찍는데,

카앙

방해물이 있었다.

어느새 생겨난 실드가 그의 검을 막았다.

콰지직!

대신 실드는 산산조각이 났다.

그 순간 무형의 기운이 날아와 유준의 몸을 세게 강타했다.

"크"

천시현이였다.

녀석은 손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기운을 연달아 발사했다.

눈에 보이지 않아 두 번 더 몸으로 받아 낼 수밖에 없었다.

"왜 안 죽어? 내 공격에 세 번이 나 당해 놓고?"

"그걸 왜 나한테 묻냐."

유준은 비교적 멀쩡한 모습으로 검을 잡았다.

역시.

높은 방어력 덕분에 살았다.

주머니에 꽂아 둔 포션을 마셨다.

보통 플레이어였으면 천시현의 공격에 온몸이 산산 조각났을 터.

'방어구 덕분에 아주 든든하네.'

유준은 그 후로 고대 마법까지 사용하며 조율의 두 명을 상대로 긴 전투를 했다.

그러나 최강민이 눈을 뜨고 포션을 섭취하면서 상황이 안 좋게 흘 러갔다.

'확실히 세 명은 무리인가.'

파라네트가 도와주긴 했지만, 녀 석은 조율 멤버들을 담당하긴 무리였다.

금세 무력화되고 유준 혼자서 세 명을 상대하게 되었다.

유준의 몸이 피칠갑이 되었다.

상처가 생길 때마다 포션을 마시 고는 있지만, 이러다 한순간에 훅 갈 수도 있었다.

최강민은 최약체였다.

반소연과 천시현은 최강민과 비 교하기 힘들 정도로 강했다.

"인정할게. 너 진짜 세구나. 확실 히 일대일로 싸우면 우리가 질 수 밖에 없겠어."

반소연이 말했다.

"웬만해선 조율로 영입하고 싶 지만. 이미 규태 아저씨가 죽이라고 했으니. 그건 안 되겠네."

"그거참 안타까운 소식이네."

유준의 눈이 빠르게 주위를 살폈다.

조력자는 더 없는 듯했다.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불리한 건 자신이었다.

유준의 이마에 식은땀이 흘렀다.

'아끼던 소모성 아이템 몇 개만 사용하면 내가 이길 수도 있지만….'

그건 확실하지 않은 방법이다.

만약 실패라도 한다면.

자신의 목숨이 위험해지는 것이다.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보자.

조율 소속 플레이어 세 명을 동 시에 상대할 방법.

한 명씩 상대하면 금방 죽일 수 있지만, 세 명의 협공은 상당히 매서웠다.

살얼음판을 걷는 느낌.

언제 목이 베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당장 저들을 죽일 방법은 없다.'

자신의 레벨이 낮아도 너무 낮았다.

500레벨의 벽.

그것이 주는 차이는 컸다.

그렇다면 간단하다.

레벨이 더 높아졌을 때 저들을 상대하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돼서 유감이지만, 그만 죽어 줘야겠다."

최강민이 거만스러운 태도로 말 했다.

"아까만 해도 죽은 것같이 누워 있더니 금방 멀쩡해졌네?"

유준이 한차례 도발했다.

최강민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었다.

"결국, 죽는 건 너니까. 기고만 장하지 마라."

"그럴까?"

유준이 인벤토리를 열었다.

반소연이 눈을 크게 떴다.

그녀가 소리치며 다급히 달려들었지만,

"막아!"

이미 늦었다.

유준은 '심연 입장권'을 꺼낸 후 곧바로 찢어 버렸다.

갑작스레 생긴 붉은 빛무리가 유준과 파라네트를 집어삼켰다.

화아악-!

빛이 자리했던 곳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아니…."

"..."

조율 소속 세 명이 허탈한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뭐야? 어떻게 한 거지?"

최강민이 물었다.

"공간 이동 스크롤이 있었나? 그 거 엄청 귀할 텐데."

"공간 이동이 아니야."

반소연이 최강민의 추측을 일축 했다.

"뭐? 공간 이동이 아니라고? 왜?"

"마력의 흔적이 전혀 없어. 공간 이동이라면 그 어디로든 이어져 있 어야 해."

"...어. 그러고 보니. 마력을 사용한 게 아니네? 아이템이라고 해 도 흔적은 남기 마련인데. 공간 추

적은 불가능하겠네, 그럼?"

"누나. 주변 잘 살펴봐야 할 거 같은데.은신 스킬을 사용한 걸 수 도 있잖아."

"은신도 아니야. 그냥 갑자기 사라졌어. 그게 다야."

"말이 돼?"

"실제로 일어났으니 말이 되긴 할걸."

"말장난…은 당연히 아니겠고. 허, 이거 참.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최강민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지금 웃을 때야?"

"그럼 어쩌라고. 놈을 찾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잖아?"

반소연이 처음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하아, 이걸 어떻게 설명하지."

"리더한테?"

"어."

"…그러네. 뭐라 말하지."

"쯧. 혹시 모르니 일단 주변 탐 색부터 해 보자."

"그게 좋겠네."

칠흑 같은 어둠.

그 사이사이에 빛을 내는 작은 벌레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파라네트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여, 여긴 어딥니까?"

"심연."

"심연요? 처음 듣는데…."

"그럴 만해. 많이 알려진 곳은 아니니까."

"아이템을 사용해서 온 겁니까?"

"응."

"그놈들 당황했겠습니다."

"그렇겠지."

"그런데 놈들이 기다리고 있으면 어떡합니까? 우리가 다시 나타날 때까지."

"그래 주면 나야 좋긴 한데. 그 럴 일은 없을 거야."

" 예?"

"우리 여기 나갈 때쯤엔 한참 지나 있을 거거든."

"여기 도대체 뭐 하는 곳인데요?"

유준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심연.

400레벨 이상 유저들만들어올 수 있었던 최고 난이도 콘텐츠.

말 그대로 제한 레벨만 400이었 올 뿐이다.

실제로 400레벨 유저가 여길 오 면 바로 개죽음이다.

당시 만렙이었던 500레벨 고인물

유저들이 모여서 간신히 클리어했 던 곳.

그게 바로 심연이다.

그곳에 지금 유준과 파라네트가 와 있는 것이고.

유준은 그걸 파라네트에게 설명 해 주었다.

"그, 그럼 엄청 위험한 상황 아 닙니까? 놈들 피하자고 더 위험한 곳으로 와 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맞아."

"...왜 그러셨죠?"

"위험해도 그만큼 보상을 주니까."

"보상이라면?"

"레벨이 빠르게 오르는 것도 있고. 스킬이나 특성. 무엇보다도 소 모성 아이템이 많이 나와."

" 으음...

파라네트는 쉽게 납득이 안 가는 모양이다.

녀석이 어찌 생각하건 상관없었다.

유준은 언젠가 심연에 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니, 언젠가도 아니지. 어차피 곧 가려고 했었으니.'

그게 조금 앞당겨졌을 뿐이다.

유준이 예민한 감각을 사용했다.

심연의 탁한 공기.

이곳에서 살아가는 작은 생명체 들의 기척이 느껴진다.

심연은 특정 장소를 뜻하는게 아니었다.

이곳은 그가 있던 곳과 개별의, 완전히 다른 차원의 세계였다.

설명을 들은 파라네트가 자신의 머리를 두드린다.

"마계랑 비슷한 겁니까?"

"웅. 마계랑은 다른 곳이긴 한 데 분위기는 비슷…하다고 할 수 있나? 일단 보면 알아."

유준은 무작정 걸었다.

여기의 분위기가 낯이 익다.

그가 아는 길이라는 뜻.

'다행히 처음 시작은 같군.'

빛을 내는 작은 벌레들.

반딧불이는 아니다.

유준과 파라네트가 말없이 계속 걷던 그때였다.

쿵! 쿵!

땅이 일정한 박자로 크게 울렸다.

"뭐, 뭡니까?"

"문지기 거인이야."

"문지기 거인요? 거인이라면 저 놈 말씀하시는 겁니까?"

파라네트가 뼈 손가락으로 가리 킨 방향.

어둠 속에서도 훤히 보일 정도로 거대한 생명체가 걸어 다니고 있었다.

유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10계 맞네. 제대로 왔어."

"10계요?"

"심연의 가장 초입 부분이야. 여 길 통과하지 못하면 진정한 심연에 입장할 자격이 없다고 하지."

"와, 주인님은 어째 모르는게 없으십니다?"

"아는 것만 알지. 모르는게 더 많을걸?"

5년이라는 시간을 잃었으니까.

아는 것보다는 모르는 것이 더 많을 것이다.

대신에 알짜배기 정보들은 꿰뚫

고 있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수십 년은 더 살았는데도 아무것도 모르잖습니까."

"너는 그냥 옛날 사람이었잖아. 던전에만 갇혀 있었으면서 무슨…."

"으으, 또 뼈를 때리시다니."

"너 때릴 데가 뼈 말고 또 어디 있다고?"

파라네트의 입이 댓발 삐져나 왔다.

"주인님, 그런데 혹시 저 문지 기 거인을 우리가 잡아야 하는 겁니까?"

"응."

"헐."

"이름이 괜히 문지기겠냐?"

" 가능할까요?"

"여긴 고작 10계야. 1계로 갈수 록 더 강한 놈들이 등장하는데 저 문지기 거인은 심연에서 최약체라고 봐도 무방해."

"최약체치고는 진짜 엄청 크네요."

"그런데 그게 다야."

유준은 고대 마법을 사용했다.

그의 몸에서 빠져나온 푸른 실이 멀리 있는 거인의 발을 묶었다.

푸른 실은 점점 두꺼워지며, 커 졌다.

걷고 있던 문지기 거인이 넘어졌다.

콰아아앙! 쿠구궁.

한차례의 굉음.

질량이 어마어마한지 마치 지진 이 일어난 것 같았다.

흙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유준이 앞으로 뛰쳐나갔다.

플라잉 마법으로 거인의 뒤통수에 올라간 유준이 참격 스킬을 사용했다.

콰아앙!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끝이었다.

문지기 거인은 더는 움직이지 못 했다.

뒤에서 달려오던 파라네트가 움직임을 뚝 멈췄다.

"우와…."

"뭘 감탄해. 얘 별것 아니라니까. 조율 그놈들이유별나게 센 거지."

"그런 거 같습니다."

[문지기 거인을 처치했습니다!]

[하층으로 향하는 문이 열렸습니다.]

[문지기가 부활하기 전에 9계로 가는 입구를 찾으십시오!]

9계로 향하는 입구가 생겼다.

'이제 한 걸음.'

1계로 가는 것이 심연에서의 최 종 목표라고 할 수 있다.

그러지 않으면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유준은 입구가 어디에 있는지 알 고 있었고 금방 찾아냈다.

'입구는 바뀌지 않았어. 전과 그 대로야.'

9계로 가는 입구.

보라색의 빛들이 점 한곳으로 빨 려 들어가는 느낌의 공간이었다.

유준은 그곳에 몸을들이밀었다.

시야가 확 밝아졌다.

10계는 어둠과 짙은 연기가 테마였다면, 9계는 드넓은 초원이다.

심지어 햇빛이 쨍쨍했다.

심연이라는 이름과는 어울리지 않는 배경이었다.

[9계에 입장하셨습니다!]

[미분배 포인트 10을 획득합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파라네트가 화들짝 놀랐다.

"주인님? 미분배 포인트가 올랐 다고..."

"알아."

"전부터 알고 계셨습니까?"

"응."

"것 보십쇼. 역시 주인님이 모르는게 없잖습니까."

"미분배 포인트부터 사용해. 심 연에서 방심하면 훅 간다."

"옙!"

파라네트가 기운차게 대답하며 주위를 경계했다.

실제로 유준도 긴장을 늦추지 않 고 있었다.

9계에서는 암살귀들이 등장하기

때문이었다.

은밀하면서도 형체가 존재하지 않는 특이한 몬스터들이었다.

그렇다고 유령이나 망령 같은 것은 아니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투명 슈트를 입은 날렵한 사냥꾼 정도.

물론, 무력도 무시할 수 없다.

9계에서 등장하는 만큼 암살귀들 의 레벨은 430에 다다른다.

"경계 철저히 해."

"후후, 저를 걱정하시는 겁니까? 저 이래 봬도 생존의 달인입

니다. 절 향한 위협은 누구보다도 빨리, 즉각 알아차릴 수 있죠."

"그래. 그걸로 적 위치 좀 알려 줘봐라."

"예. 바로 오른쪽에서 위험이 느 껴집니다."

유준은 망설임없이 오른쪽을 향 해 검을 휘둘렀다.

서걱!

허공에 새빨간 피가 흘러나왔다.

유준을 향해 접근하던 살인귀의 몸이 바닥에 털썩 쓰러졌다.

고블린과 흡사한 외형.

그러나 좀 더 근육질이었다.

암살귀는 이런 식으로 죽어서야 처음으로 형체를 보였다.

유준은 고대 마법을 활용하기로 했다.

최강민을 상대할 때 했던 것처 럼.

근처에 숨어 있는 놈들을 탐색했다.

주위에 잠복해 있는 암살귀들의 형체가 희미하게 드러났다.

'이야. 이 많은 놈들이 근처에 숨어 있었어?'

얼추 세어 봐도 삼십은 넘어 보였다.

이 징그럽게 생긴 놈들이 자신의 목숨을 빼앗기 위해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니.

'여기 세계관으로는, 암살귀들이 플레이어들만 골라서 잡아먹는다 고 했지.'

놈들이 자신을 보자마자 죽이려 했던 이유다.

타닥!

유준이 땅을 박찼다.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3권 25화

73화

서걱!

눈 깜짝할 새에 암살귀 둘이 쓰 러졌다.

유준은 등 뒤로 달려드는 암살귀 셋을 속박 마법으로 묶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묵직한 무언가가 마력의 실에 칭칭 감긴 게 느껴졌다.

허공에서 생겨난 빛의 화살이 암 살귀들의 머리를 꿰뚫었다.

'마법이 진짜 편하네.'

그냥 마법이 아닌 EX+등급의 고 대 마법이다.

확실히 일반 마법과는 그 궤를 달리했다.

파괴력, 마법의 발현 속도, 마력 효율, 범용성.

그냥 마법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게다가 속성 마법도 내 마음대 로 골라서 사용할 수 있지.'

고대 마법을 선택하길 잘한 것 같았다.

'나중에 마법과 관련된 아이템으로 교체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암살귀들은 유준의 털끝 하나 건 드리지 못했다.

그 후로도 그는 고대 마법만을 사용해서 암살귀들을 상대했다.

"완전히 다른 사람 같습니다."

"나?"

"예. 원래는 검을 쓰시는 모습 만 봤었으니까요. 뭔가 새롭습니다."

"왜? 이상해? 검만 써 줘?"

"아뇨, 아뇨. 지금의 모습도 멋지십니다. 그런데 주인님."

"음."

"이곳에서도 공간 이동 마법을 사용할 수 있습니까?"

"쓸 수 있기야 하지. 근데 다른 계층으로 넘어가는 건 안 돼. 여기 가 9계잖아. 그럼 9계 내에서만 이 동할 수 있는 거야."

"아, 그렇군요."

"그래서 8계에서는 네 능력이 필 요해."

"예? 8계에서요?"

"이따 보면 알아."

일단은 덤벼드는 암살귀들을 처 리하는 것이 우선이다.

콰앙! 쾅!

빛의 화살이 몸이 묶인 암살귀들 의 목숨을 끊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쭉쭉 오르는군요."

"얘네 보기와는 다르게 레벨 진짜 높아."

"진짜 약하게 생기긴 했네요."

그렇게 암살귀들을 50마리 처치 했을 즈음이었다.

[8계로 향하는 북쪽 입구가 열렸습니다.]

[10분 안에 8계로 이동하여 주십 시오.]

홀로그램 창이 나타났다.

그나저나 시스템이 왜 1계로 가는 길을 안내해 주는 걸까.

'게임으로 했을 때보다 훨씬 친 절해진 거 같기도 하고. 뭐, 상관없지.'

그로선 나쁠 게 없었다.

"주인님. 10분 안에 도달할 수 있을까요? 여기 꽤 넓어 보이는데."

"길을 아니까 금방 가긴 하는데. 더 쉽게 가는 방법이 있지."

"뭡니까?"

"공간 이동 마법 써."

"저 좌표를 모르는…."

"D1792F20331."

"설마 좌표를 말씀하신 겁니까?"

"응."

"그걸 어떻게 아시는 겁니까?"

"기억이 나니까."

플레이어의 기억력은 범인의 상 식을 초월했다.

"역시 여기 와 보신 적이 있군요."

"웅. 그러니까 빨리해."

"예!"

파라네트의 마력은 충분했다.

유준과 파라네트는 순식간에 9계 의 끝자락으로 이동했다.

바로 앞에 입구가 있었다.

"진짜 있군요."

"내가 그럼 가짜로 말했겠냐."

"근처도 아니고 바로 앞 좌표를 아실 줄은 몰랐습니다."

"와 봤다니까."

"키야, 역시 믿음이 갑니다!"

그가 신들의 전쟁에서 심연에 도 전했을 때도 공간 이동 마법을 사용해서 공략 시간을 단축했었다.

심연을 한 번도 아니고 여러번 도전했으니 좌표를 아는 것이 당연 했다.

[8계에 입장하셨습니다!]

[미분배 포인트 15를 획득합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주인님."

"왜."

"이거 다음 층으로 갈 때마다 미 분배 포인트를 주는 겁니까?"

"점점 더 커지지."

"이만한 포인트를 공짜로 주다니."

"공짜는 아니지. 암살귀들 뚫고 왔잖아."

"아.…"

"C99102T4930."

"좌표야. 마력 남아 있지?"

"예."

" 가자."

화아악-!

환한 빛이유준과 파라네트를 감 쌌다.

[이곳은 미로입니다.]

[7계로 향하는 입구를 찾....]

유준은 곧바로 입구로 들어갔다.

[7계에 입장하셨습니다!]

[미분배 포인트 20을 획득합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미쳤군요."

"이래서 여길 오는 거야."

"근데 미분배 포인트 몇 개 얻는다고 아까 그놈들을 이길 수 있을까요?"

파라네트의 말에 유준이미소 지었다.

"미분배 포인트? 이건 보상 축에 도 안 껴."

"네?"

"진짜 보상은 나중에나 받지."

유준이 주위를 쭉 둘러봤다.

오랜만이다.

7계는 10계, 9계, 8계와는 많이 다른 곳이었다.

"어서 오세요! 두 분. 어디서 오 셨나요?"

유준의 반 정도 되는 신장을 지 닌 생명체.

심연의 마스코트라고도 불리는 '떠돌이 요정'이었다.

7계에서부터 자주 보이는 녀석들 인데, 일종의 안내자 역할이었다.

"대륙에서 왔다."

"대륙이라면 현계요? 이야, 현 계에서 온 손님은 정말 오랜만이 네요. 삼십 년은 된 거 같은데. 물론, 제가 현계인 손님으로 받은 게 삼십 년이 된 겁니다."

"이 일을 오래 했군. 용케 살아 있네."

"저희야 뭐 남들이 하루살이라고 들 하지만, 저는 다릅니다. 오래 살 아남는 비결이 있죠."

"그건 궁금하지 않고. 셰타 마을로 안내해 줄 수 있나?"

"손님. 셰타 마을은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뭐? 사라져? 망했다는 건가?"

"그냥 심연에서 완전히 사라진 마을입니다. 그 사건 이후로 살아 남은 자가 한 명도 없었으니까요."

"그 사건이라니?"

"그건 음. 포인트를 주셔야 제 가 알려 드릴수 있을거 같은데."

"정보 값을 받겠다는 건가?"

" 옙!"

떠돌이 요정이 실실 웃으며 대답 했다.

" 얼마지?"

"크흠. 이건 극비 정보는 아니 니 3백만 포인트만 받겠...

" 자."

유준은 포인트 거래를 통해 떠돌 이 요정에게 3백만 포인트를 전했다.

"...이야, 화끈한 고객님이시네."

"그 사건이 뭔지 설명해."

"어떤 미치광이가 심연에 들어와 서 난장판으로 만들어 놨습니다. 암묵적인 룰 같은 건 개나 줘 버렸죠. 그 미치광이는 셰타 마을에 사는 거주민들을 학살했습니다.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죠."

"강했나 보지?"

"강하기도 했지만, 놈은 치밀했습니다. 남들이 다 자는 시간에 한 명, 한 명씩 죽여 갔죠."

"그놈은 어떻게 됐지?"

"심연의 고위 사자들에게 잡혀서 재판을 받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름을 아나?"

"글쎄요. 거기까지는 저도…."

"놈은 무슨 벌을 받게 되지?"

"그 정도 짓을 저질렀으니 향후 몇백 년은 속죄해야겠죠. 좋지 않은 곳에서요."

유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새롭게 안 사실이다.

심연에 재판 같은 것도 있었구 나.

"좋아. 그럼 어느 마을로 안내할 수 있지?"

유준의 말에 파라네트가 고개를 갸웃했다.

녀석이유준에게 다가와 속삭이 듯이 말했다.

"주인님. 그냥 우리끼리 가면 안 됩니까? 꼭 안내를 받을 필요가 있을지…."

"못가. 여기 지형은 주기적으로 바뀌어. 내가 지나갔었던 길을 아는 것은 무용지물이라는 거지."

"근데 저놈은 알고 있는 건가요?"

"떠돌이 요정은 길을 찾는 능력 이 뛰어나. 그래서 안내자 역할을 하는 거고."

무엇보다 여기서는 길을 모르고 움직이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질 수도 있었다.

'길'이 아닌 곳에 조금이라도 있으면 온몸이 갈기갈기 찢어진다.

등급의 실드 마법도 3초 만에

깨트릴 정도.

그래서 떠돌이 요정의 도움이 꼭 필요했다.

"음. 요즘 압력 결계의 힘이 강 해져서. 흐음."

"하고 싶은 말."

"돈을 좀 많이 받아야 할 거 같은데…."

떠돌이 요정이유준의 눈치를 살 폈다.

무표정하게 놈을 바라보고 있던 유준이 한참 뒤에 입을 열었다.

"선제시."

"네?"

"먼저 가격을 말하라고."

"그럼 큼큼. 오, 오천만 포인트."

"좋아. 안내해."

"예? 바로요? 흥정 안 하세요?"

"그걸 네가 말하면 안 되지. 시간 낭비하기 싫으니까 빨리 가자는 거야. 아니면 협박이라도 할까?"

유준이 검을들이밀었다.

떠돌이 요정의 식겁하며 고개를 저었다.

"죄, 죄송합니다."

"삼천만."

"왜, 왜 줄었죠?"

"네가 나대서."

"...알겠습니다."

유준이 삼천만 포인트를 떠돌이 요정에게 전해 주었다.

"가장 가까운 마을로 안내해 드 리면 되겠습니까?"

"그 마을의 규모는 어떤데?"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고 적당 히 준수합니다. 스타트 지점으로 삼기에 나쁘지 않죠."

"마을 이름은?"

"크록 마을입니다."

"크록이라. 거기로 가지."

마침 아는 곳이었다.

심연 공략을 여러번 시도하다가 한 번쯤 갔던 마을.

안 갈 이유가 없었다.

"출발하겠습니다. 잘 따라오셔야 합니다."

유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떠돌이 요정이 신난 발걸음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저놈.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파라네트가 속삭였다.

"왜?"

"그냥 하는 짓이 마음에 안 듭니다. 힘도 약한 게 자기가 뭐라도 되는 것처럼 행동하지 않습니까?"

"안내자일 뿐이야. 너무 홍분하지마."

"나중에 혼쭐을 한번 내줘야겠습니다."

"그냥 가만히 있어."

"예."

"저 귀 밝습니다. 거기 언데드

분. 언행에 각별히 주의해 주십시오."

"허, 이 난쟁이가 뭐라는 거야?"

떠돌이 요정의 말에 파라네트가 분개했다.

"제가 나쁜 마음 먹고 잘못된 길 로 들어서면 어떻게 될지 눈에 선 합니다. 후우, 저를 자극하지 마세요."

파라네트가 황당하다는 듯 유준을 바라봤다.

"가만히 있으랬지."

"알겠습니다."

"역시 돈이 많으신 분은 현명하 다니까."

" 어우."

파라네트가 씩씩댔다.

"더 거슬리게 하면 죽여버릴 거니까 걱정마."

유준이 슬쩍 속삭였다.

파라네트가 앞에서 걷는 떠돌이 요정의 눈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떠돌이 요정은 역시나 길 찾는 일을 잘했다.

단 한 번도 길을 헤매지 않고 쭉쭉 나아갔다.

"아, 맞다. 제 소개를 안 했군요. 저는 발발누라고 합니다."

떠돌이 요정이 갑자기 뒤돌아보 더니 자기소개를 했다.

"그래. 발발누. 얼마나 남았지?"

"마을까지 반나절 정도만 더 걸어 가면 될 거 같습니다. 사실 걸음을 빨리하면 시간을 단축할 수 있지만. 무엇보다도 안전이 최고니까 이 속도를 유지하겠습니다. 괜찮죠?"

"상관없다."

"여기서부터는 조금 조심해 주세요. 몇 발자국만 잘못 내디뎌도 압 력 결계의 영향권이니까요."

"그러지."

만약의 상황을 위한 임시 대비책을 마련해 두었다.

그래서 유준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렇게 앞으로 나아가던 와중이었다.

"자, 잠시만요. 멈춰 주세요."

떠돌이 요정이 갑자기 당황스러 운 얼굴로 뒷걸음질쳤다.

"왜?"

"지형이 바뀌고 있습니다. 거기에 설상가상으로 7계층 지배자도 있어요."

"지배자? 놈이 근처에 있다고?"

"예. 매우 가깝습니다."

압력 결계 때문인지 지배자의 기 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하필 지형이 바뀔 때 지배자까지 냄새를 맡고 오다니. 재수가 없어도 너무 없군요."

떠돌이 요정, 발발누가 인상을 구겼다.

"그래도 돈 받은 값은 해야지.''

"물론입니다. 제가 오랫동안 살아 남은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바로 돌발 상황에 대처가 빨라서지요. 엘리트 중의 엘리트입니다."

"방법을 말해."

"일단! 가만히 서 계세요. 지형이 완전히 바뀔 때까지 움직여선 안 됩니다."

그때 파라네트가 유준을 바라봤다.

"혹시 여기 좌표는 모르십니까?"

"7계층에선 압력 결계 때문에 공

간 이동 마법을 못 써. 반작용이 엄청 커서. 쓰는 순간 몸이 터져 나갈 수도 있을걸?"

물론, 이건 추측이다.

신들의 전쟁 때는 그랬지만, 여 기서도 그런다는 보장이 없으니까.

'굳이 목숨을 걸 필요는 없지.'

유준이 인벤토리를 열었다.

만약을 위한 대비책.

그건 인벤토리에 있었다.

'떠돌이 요정만 믿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4권 1화

74화

[결계 무효화 구슬]

등급 : 전설

옵션 : 주변에 펼쳐진 결계를 무 효화시키는 반경 10m 결계를 펼칩니다.

이건 웬만해선 쓸 일이 없으면 한다.

그조차도 몇 개 안 가지고 있는 귀한 소모성 아이템이었으니까.

주변 환경이 극심한 변화를 일으 켰다.

그그긍. 그그그긍.

썩은 고목들이 통째로 뽑혀 나갔 으며 큰 바위가 허공을 날아다녔다.

바닥에서 피어오른 모래가 시야를 흐릿하게 만들었다.

"다들 조금만 참아 주세요! 곧 끝나 가요."

"결계가 가까워지고 있는데? 계속 가만히 있어?"

"바로 앞까지 오지 않았으니 괜 찮습니다."

후우웅. 후웅!

거센 모래바람이 얼굴을 세게 치 고 갔다.

떠돌이 요정은 그 바람에 날아갈 듯 위태위태하게서 있었다.

유준은 고대 마법을 사용해서 그 의 몸을 속박했다.

"으응…?"

"위험해 보여서."

"가, 감사합니다."

감사 인사를 한 떠돌이 요정이 갑작스레 눈을 크게 뜨고 뒤돌아봤다.

"고대 마법을 쓰신 겁니까?"

"그걸 어떻게 알지?"

"마력을 사용한 즉시 마법의 발 현이 이뤄졌으니까요."

"예리한데."

"그나저나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계시는군요. 고대 마법은 존재 자체도 모르는 이가 많은데."

"넌 알잖아."

"저야 뭐, 들은 게 많으니."

"우린 언제 움직이면 되지?"

"이제 가면 됩니다. 다행히 압력 결계가 더 좁혀 들진 않네요."

" 지배자는?"

"…아, 맞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던가.

"먹잇감. 찾았다."

7계의 지배자가 바로 앞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지배자는 인간과 닮은 생김새였다.

매우 날렵한 몸매를 지닌 대신에 허리가 심하게 굽혀 있었다.

특별할 것 없는 생김새였지만, 상당한 위압감을 내뿜었다.

"지, 지배자…."

떠돌이 요정이 겁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진짜 재수도 없지. 바로 뒤에 결계를 두고 지배자를 만나네."

발발누가 울상을 지었다.

반면 유준은 그와는 상반되는 표 정을 하고 있었다.

'다행히 나타나 줬군.'

혹시나 지배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어쩌지 하고 걱정했던 것이 무 색 해졌다.

이렇게 제 발로 나타나 주니 고 마울 따름이다.

유준이 검을 들었다.

고대 마법보다 확실한 방법은 역 시 검으로 죽이는 것이다.

먹잇감을 발견한 지배자가 망설 이지 않고 떠돌이 요정을 향해 달 려들었다.

유준이 앞으로 튀어 나가며 검을 쭉 뻗었다.

기가 막힌 타이밍에 등장한 검에 지배자의 팔이 꿰뚫렸다.

"크아아악!"

가래 끓는 비명을 뱉은 지배자가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

꽤 빠른 반응이다.

유준이 검을 뻗었다.

지배자가 다시 물러나려 할 때, 쾌속 전진을 사용했다.

한순간에 거리를 좁힌 유준이 검을 횡으로 휘둘렀다.

서걱!

지배자의 몸이 반으로 잘렸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전설 칭호 '심연의 사냥꾼'을 획득합니다.]

'나왔다!'

심연의 사냥꾼은 심연, 그중 7계에서만 얻을 수 있는 전설 칭호였다.

그는 이것이 단순히 전설 칭호라 서 기뻐하는 것이 아니었다.

칭호의 효과 때문이었다.

-심연의 사냥꾼(전설) - 공격력 과 방어력이 10% 증가합니다. 심

연에 있을 시에 열 배의 효과를 얻습니다.

기본 효과만 놓고 봐도 매우 좋은 옵션이다.

그런데 특정 상황에서 이 효과는 크게 증폭한다.

바로 심연에 있을 때.

그는지금 공격력과 방어력이 각 각 100% 증가한 것이다.

7계의 지배자는 강하기도 하지만, 발견하기가 무척 힘든 존재.

떠돌이 요정이 재수 없다고 했지

만, 지배자를 만난 건 유준에겐 엄 청난 행운이었다.

"으응?"

발발누가 얼빠진 소리를 냈다.

정말 위급한 상황이라고 생각했는데.

지배자가 나타나는 순간 죽어 버렸다.

자신이 길을 안내하는 고객이 단 숨에 처리한 것이다.

"안내해."

"…예, 예."

발발누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다

시 걷기 시작했다.

한참 동안을 걷기만 하던 발발누 가 고개를 휙 돌렸다.

"어떻게 하신 겁니까?"

"뭘?"

"지배자요."

"나타나서 죽였잖아."

"...강하신 분이었군요. 왠지 보 통 인물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이제 와서?"

"하여튼 진짜 놀랐습니다. 감사 합니다."

"길은 더 이상 안 바뀌는 거지?"

"당분간은 괜찮을 겁니다."

"다행이네. 널 죽이지 않아도 돼서."

"예?!"

"농담이야."

발발누의 안내에 따라 마을에 도착했다.

크록 마을.

7계에는 크고 작은 마을이 매우 많이 존재하는데, 이곳도 그중 하 나였다.

떠돌이 요정의 말대로 크록 마을은 딱 무난한 곳이었다.

거주민의 수도 적지 않으며 이방 인에게 그리 배타적이지도 않다.

사실 이방인에게는 관심이 없다는 말이 더 맞으리라.

희귀한 작물들을 재배하는 이곳 주민들의 생김새는 특이했다.

"욜욜욜. 또 손님이 왔구만."

비교적 단신이고, 얼굴에 귀가 없었다.

굵은 털들이 온몸에 삐죽삐죽 솟 아 있었다.

소요르 종족이다.

"반갑네. 난 이 마을의 촌장일세."

"지금 방 빈 데가 있나요?"

떠돌이 요정이 촌장에게 물었다.

촌장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방이야 항상 있지. 돈이 필요할 뿌 "

발발누가 유준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제 역할은 여기까지입니다."

"수고했다."

"아까 일은 감사했습니다."

"그럼 돈 돌려주던가."

"빨리 가볼게요! 이만!"

떠돌이 요정, 발발누가 웃으며 떠나갔다.

이제는 촌장과 협상해야 할 차례다.

" 얼마지?"

촌장이유준의 장비를 쭉 홅어보았다.

"하루에 삼백만 포인트를 내게."

"삼백만? 크록 마을에 머물기 위 해 기본으로 내는 돈은 백만 포인트라고 알고 있는데."

"크흠, 어디서 소문을 듣고 왔나 보구만. 요즘 손님이 부쩍 많아져 서 말일세. 방이 모자라 가격을 좀 올렸네."

"이백만. 그 이상으로 하면 난 다시 떠돌이 요정을 부르지."

은 단호했다.

촌장이 고민도 안 하고 대답했다.

"좋네. 머물 방으로 안내하겠네."

"그 전에. 임무를 줘야 하지 않나?"

"임무를 주고 싶긴 한데 마땅한 게 없다네."

"임무가 없다고? 없으면 만들면 되지."

"사실 지금 플레이어가 많이 필 요한 상황이라네. 아주 위험한 일 이 대기 중이거든. 열 명이나 되는 플레이어들이 아직 시작도 못 하고 기다리는 상황이라네."

"난 거기에 합류하지 않는 건가?"

"자네가 원한다면 넣어 줄 수 있 네만.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지 모르네."

"상관없어. 내가 들어가고 바로 시작하면 되니까."

"...그러면 다른 플레이어들이 개죽음만 당하게 될 걸세."

"정 그러면 나 혼자 갈게."

"제정신인가, 자네?"

"일단 임무나 줘."

"후우, 알겠네."

촌장이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 순간,

[7계 크록 마을의 임무를 받았습니다!]

[#4480. 어스 드래곤 처치]

[어느 날 크록 마을에 어스 드래 곤이 모습을 드러냈다. 크록 마을 의 재배 면적 반을 차지해 버린 어 스 드래곤은 지금도 실시간으로 가 스를 내뿜으며 땅을 오염시키고 있

[어스 드래곤을 처치하거나 쫓아 내어 마을의 안정을 되찾아 주십시오.]

"어스 드래곤?"

"그러게 내가 말했잖은가. 어렵 다고."

"왜 어스 드래곤이 마을 근처에 와 있는 거지?"

지능도 낮고 마법을 전혀 못 쓰지만, 본연의 힘이 뛰어나 상대하기 까다로운 몬스터.

어스 드래곤은 사람 눈에 띄길

싫어하는 드래곤이었다.

"그 어스 드래곤을 상대하기 힘 든 상황이라는 건가?"

"그렇지. 이미 받은 임무는 포기 할 수 없지. 그럼 심연에서 쫓겨나 게 되니까."

"여기 온 플레이어들은 꽤 오래 머물고 있겠다?"

"그렇다네."

"그 덕분에 너는 돈도 많이 벌었을 테고?"

"그, 그렇지."

"돈이 다 떨어진 플레이어의 경우는?"

"빚으로 처리되네. 그 빚을 갚지 못하면 사자들이 와서 고된 노동을 시키겠지. 그 노동의 값은 나에게 지급된다네."

"호오…."

유준이 흥미롭다는 듯 촌장을 바 라봤다.

'촌장은 어스 드래곤을 진정 처 치해 주길 바라는 걸까?'

플레이어들이 이곳에 머물면서 얻는 돈이 상당할 것이다.

무려 열 명이나 되니까.

그 플레이어들은 이러지도 저러 지도 못하는 상황.

강제적으로 돈만 뜯기는 것이다.

그렇다고 마을을 벗어나면 압력 결계가 끊임없이 목숨을 위협한다.

"나도 그 대열에 합류한 건가?"

" 응?"

"어스 드래곤을 이대로 방치하 면 마을에 큰 위협이 되겠군."

"그, 그렇다네. 아주 큰 일일세."

"해결할게."

"...혼자서 말인가?"

"다른 플레이어들은 어디에 있지?"

"어디 한 곳에 모여서 이 일에 대해 의논하고 있을 걸세. 그런다 고 방법이 나오진 않겠지만…."

"일단 방으로 안내해 줘."

"알겠네."

촌장에게 방을 안내받은 유준은 곧바로 다른 플레이어들부터 찾아 나섰다.

그때 파라네트가 입을 열었다.

"주인님. 아무래도 촌장이 수상 쩍습니다."

"왜?"

"강제로 돈을 착취하고 있잖습니까. 어스 드래곤이라는 존재도 꺼림칙하고요."

"그렇다기보다는 위기를 기회로 만든 거 같은데. 어스 드래곤이 부른다고해서 오는 놈도 아니고."

"정말 어스 드래곤을 잡으러 가 실 겁니까?"

"임무를 포기할 수는 없으니까."

"어스 드래곤도 명색이 드래곤 인데 좀 힘들지 않을까요?"

"조율을 상대하는 것보다는 낫지. 어스 드래곤이 엄청 까다롭거 나 한 놈은 아니야."

"아, 하긴 그렇겠네요."

어스 드래곤은 지능이 뛰어나지 않다.

되레 짐승 수준으로 낮았다.

싸워 볼 만했다.

아니, 이길 수 있다고 믿었다.

'그나저나 스킬 보석 하나 있는 것도 써야 하는데.'

지금 가지고 있는 스킬 보석의 등급은 중.

이걸 EX+ 등급 고대 마법에 사용한다?

그건 좀 아까운 짓이었다.

그로서도 처음 얻은 등급의 스킬이다.

고작 중등급의 스킬 보석으로 만족할 수 없었다.

'보석은 일단 좀 더 생각해 보 자. 고대 마법은 지금도 충분히 쓸모 있으니.'

유준은 예민한 감각(A)을 사용했다.

느껴지는 기척이 수백.

그중에 플레이어들이 있는 곳을 찾았다.

다행히 그들은 3층 저택에 모여 있었다.

유준은 아무도 지키고 있지 않은 저택에 들어갔다.

그의 기척을 느꼈는지, 플레이어들 몇 명이 그를 마중 나왔다.

"새로 오신 분이오?"

갯과 수인족이 말했다.

유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 소개를 하기 전에 먼저 애 도를 표하겠소. 끔찍한 곳에 오셨 구려."

"끔찍하다니요?"

"여긴 생살이 뜯겨 나가는 걸 지켜봐야만 하는 감옥이오."

"포인트 때문에?"

"알고 있군. 어스 드래곤 하나 때문에 여기 플레이어들이 벌써 수천만 포인트를 날렸소. 탕진하고 끝나면 다행이지만, 그게 빚이 되니까 문제야. 당신도 곧 그렇게 되겠지."

"그래서 말인데. 어스 드래곤을

잡으려고 합니다."

유준의 말에 상황을 지켜보던 플레이어들이 헛웃음을 지었다.

"그게 되는 일이었으면 우리도 안 이러고 있었지."

"그러니까요. 낙천적인 사람이 네요."

유준이 그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마족, 엘프, 소요르.

다양한 종족이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어스 드래곤을 잡는게 어렵다

면, 심연에서 나가면 되는 일입니다."

"그건 더 곤란해. 심연 입장권을 얻으려고 얼마나 고생했는데…."

"내가 사는 곳은 이미 망했어. 생명체가 살아갈 수 없는 환경이 되었지."

다들 나름대로 사정이 다 있는 것 같았다.

"그럼 방법은 하나뿐이잖습니까. 어스 드래곤. 잡아야죠."

"목숨 소중한 줄 모르고."

"긴말 안 하겠습니다. 전 어스

드래곤을 사냥하러 갈 겁니다. 같이 갈 사람은 따라오세요."

유준이 단호하게 말했다.

여기 느긋하게 앉아서 그들을 설득할 생각은 없었다.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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