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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1 - 11

- 5권 19화

117화

유준이 무심코 중얼거린 말에 조 수아가 입을 열었다.

"...미리 말을 하고 하시지."

"죄송해요. 주변에도 여파를 미 칠 줄은 몰랐어요."

마력을 전부 뿜어낸 것도 아니다.

그는 그저 적당한 마력을 몸 밖으로 꺼내면서 고대 마법에 속한 한 마법을 사용했을 뿐이다.

그게 그 마법의 특징이기도 했고.

"혼족 두 분이 잠드셨네. 많이 피곤하셨나."

"유준, 네가 한 거야."

마누엘라가 핀잔을 줬다.

"그나저나, 레벨 오른 거 봤어요?"

"메시지는 봤는데 확인은 안 해 봤어요. 조수아 씨는 얼마나 올랐 어요?"

"저는 하나 올랐어요."

"...네? 그거밖에 안 올랐어요?"

"아무래도, 여기에 있던 몬스터 들은 미완성이었나 봐요. 소르툴 숲에서 마주했던 몬스터들이 주는 경험치보다 많이 적어요."

조수아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조금 레벨 이 올랐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그녀의 레벨이 600이 넘는다는 걸 생각해 봤을 때, 결코 조금 오른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고레벨이다.

유준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

몬스터들과의 레벨 차이를 감안 해야만 하는 것이다.

'나는 얼마나 올랐지.'

그의 원래 레벨은 440.

얼마나 올랐을지 기대되었다.

유준이 상태창을 확인했다.

그의 레벨도 예상보다 훨씬 적게 올랐다.

448레벨.

수백 마리의 몬스터를 일격에 처 리했는데 겨우 이 정도라고?

유준의 얼굴에 실망감이 자리 잡았다.

'확실히 400레벨부터는 들어오는 경험치가 훅 줄어들긴 해도.'

이 정도로 안 오를 줄은 몰랐다.

이렇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아마도 그가 처리한 몬스터들의 레벨이 그보다 낮거나 비슷한 것이다.

"쯧, 완전히 강해질 때까지 기다 렸다가 잡을 걸 그랬나."

"네? 아까는 몬스터들이 고통받 지 않게 도와줘야겠다고 하지 않았었..."

요톨반이 의문을 표하자, 유준이 인상을 썼다.

눈치 없냐?

그가 눈으로 말했다.

요톨반이 감히 거역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갇힌 친구들이 또 있는지 확인하러 가 볼까요? 이에르."

"으, 응?"

"이게 다는 아니지?"

유준이 방긋 웃으며 물었다.

"다인데

"그, 근데 연구소가 여기 하나만 있는 건 아닐 거야. 여기보다 규모 가 더 큰 곳이 있다고 들었거든."

이에르가 벌벌 떨면서 말했다.

유준의 표정이 무척이나 살벌했 기 때문이다.

"넌 안 가 봤어?"

"응. 나한텐 권한이 없어서 아쉽 다고 말하더라."

"왜 아쉬워?"

"지들이 더 움직여야 하니까? 난

여기 연구소를 적당히 관리하고 그들이 데려온 몬스터의 잠재력만 알 려 주면 끝이었어."

"그 연구소가 어디 있는지 알 아?"

"여기서 그리 멀지 않다고 들었어. 내가 아는 건 그게 다야."

"일단 알았어."

유준은 연구소를 샅샅이 살피고 다녔다.

아이템이야 당연히 없을 테고, 살아 있는 몬스터가 없나해서였다.

아쉽게도 고통받고 있는 친구가 더 없었다.

아까의 고대 마법 한 번으로 연 구소의 실험체들을 모두 죽인 것이다.

그래도 발견한 것이 하나 있었다.

알 수 없는 문자가 적힌 종이 몇 장이 있었는데, 시스템 덕분에 그 내용이 해석되었다.

대충 소르툴 숲에 거주하던 몬스터나, 다른 곳에서 데려온 몬스터 의 잠재력을 파악한다는 것.

이건 이에르에게 들어서 알고 있던 거다.

잠재력이 조금이라도 낮은 몬스

터는 바로 제거되었다.

반면, 잠재력이 중상급 이상이라면 아까 그 원통 유리에 갇히는 신 세가 되었다.

'그런데 어떤 방법으로 몬스터를 강화하는진 안 나와 있네.'

궁금하긴 했다.

도대체 어떤 아이템을 쓰면 수 백, 수천마리의 몬스터를 강화할 수 있는 걸까.

소모성 아이템이라면, 그 소모성 아이템을 제작할 능력이 있다는 거고.

그게 아니어도 문제였다.

'몬스터를 강화시키는 이유가 뭘까. 마신 추종자 세력의 전력을 늘 리는 거? 만약 그렇다면 강화된 몬 스터를 지배하거나 조종할 방법도 알고 있겠네.'

전부 추측이긴 해도 얼추 맞는 거 같다.

마신 추종자 집단이 이 세상을 멸망시키려고 얼마나 치밀하게 준 비하고 있는지 여실히 느껴졌다.

'목적은 이번에도 같겠지?'

대륙을 지배하고 마신을 강림시 키는 것.

그 둘의 순서가 바뀔 수도 있다.

'마신이 보통 존재는 아닐 테고 만약 지금 바로 강림하면 진짜 답 도 없겠는데.'

하지만 그 가정은 이뤄지지 않을 확률이 높았다.

마신을 강림시키는게 가능했다면 몬스터를 잡아 와 일일이 강화 하고 있을 필요가 없을 테니까.

그들도 뭔가 부족함을 느꼈기에 이런 번거로운 짓을 한 게 분명했다.

콰콰콰쾅!

유준은 계단을 통해 나오면서 연 구소를 고대 마법으로 폭발시켰다.

조수아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바 라봤다.

"원래 증거를 남기면 안 됩니다. 범인은."

"그런 말 하니까 우리가 나쁜 짓이라도 하는 거 같네요."

"마신 추종자들 입장에서 보면 우린 범죄자가 맞죠."

"마신 추종자들이 악당인데요?"

"그렇군요. 그럼 우린 착한 사람들이네요."

그가 방금 한 짓은 선행이었다.

마신 추종자들의 계획을 조금이라도 저지시켰으니까.

"하여튼 입구를 찾든, 다른 연구 소를 찾든 해야겠네요."

시간이 금이었다.

마신 추종자들은 유준 일행을 눈에 불을 켜고 찾고 있다.

그들보다 한발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 중요했다.

*

*

대륙은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걸출한 유망주들이 나타나는 건 이제는 흔한 일이다.

무한의 탑, 대륙에는 인간뿐만이 아니라 온갖 종족들이 다 모여 있었으니까.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그 문제란 다름 아닌 마신 추종자 세력.

대륙의 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이었다.

그들의 존재에 대해 대륙의 많은 플레이어들이 눈치채기 시작했다.

원래 소문이라는 것은 한번 전파 되기 시작하면 놀라울 정도로 빠르 게 퍼진다.

마신 추종자들이 꾸미고 있는 짓을 모르는 플레이어는 이제 없다고 해도 무방했다.

"이대로 두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당연히 해결해야죠. 단, 준비가 필요해요."

최상위 플레이어들, 그중에서 '정 예회'라는 집단이 있다.

많은 인원이 속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정예회에 있는 이들 모두 가 대륙에 유명하거나, 숨은 강자들이었다.

정예회에 속하기 위해선 실력이 가장 중요했다.

그들이 하는 일은, 별것 없었다.

마신 추종자 혹은 마족들과 같은 대륙의 위협이 되는 적들이 나타났을 때를 대비하는 것.

혹은 나타나기 전에 처리하는 것.

그게 그들의 목적이었다.

어떻게 보면 순수하게 정의로운 목적을 가진 이로운 집단인 셈이다.

그런 그들도 행동에 나서기로 했다.

"저 할 말 있어요."

또랑또랑한 눈망울을 가진 여자 가 말을 꺼냈다.

" 뭐죠?"

"최근 일인데 제가 마신 추종자를 마주친 적이 있었어요."

"마신 추종자야 많으니, 이상할 것도 아닌데. 그게 왜요?"

"그냥 마신 추종자면 얘기도 안 꺼냈죠. 아주 강한 마신 추종자였으니까 말한 거예요."

"어느 정도로?"

"우리 중 둘이 나서야 할 정도 로?"

"...그런 놈이 존재해요?"

"없지야 않겠죠. 그런데 그런 놈 이 한두 명이 아니래요."

"그건 어떻게 알아냈죠?"

"대화하는 걸 엿들었어요."

"안 들켰죠?"

"제가은신술 하나는 기가 막히 잖아요."

"...인정하기 싫지만 그렇긴 하죠."

여자, 백효연은은신이나 기척을 숨기는데 있어서 따라갈 자가 없 다는 소리를 듣는 플레이어였다.

그래서 정예회원들은 그녀의 말을 신뢰했다.

"또 들은 거 없습니까?"

"그, 소르툴 숲 있잖아요."

"예."

"거기에 무슨 비밀이 있는 거 같 던데요? 엄청난 짓을 꾸미고 있더 라고요."

"엄청난 짓?"

"소르툴 숲에 같이 들어가진 못

했고, 그 앞까지 따라갔는데…. 잠 시만요."

목이 말랐는지 백효연이 물을 꿀 꺽꿀꺽 삼켰다.

한 회원이 불평했다.

"왜 말을 하다 맙니까."

"아, 사람이 목 좀 마를 수 있지. 재촉하지 마요. 계속 그러면 말 안 해요 저?"

"미안해요."

"하여튼. 얘기할게요. 아, 어디까지 얘기했더라?"

"소르툴 숲 앞까지 따라갔다고..."

"네, 맞아요. 거기서 들었는데 마신 추종자들이 몬스터를 가지고 장 난질하는 거 같더라고요."

"몬스터한테 장난질을요?"

"무슨 비약을 써서 몬스터를 더 강하게 만든다고 했던가? 그러면서 소르툴 숲에 들어가던데요?"

"더 들은 건요?"

"못 들었죠. 그게 끝이에요. 아무리 그래도 소르툴 숲에 들어갈 수는 없으니까요."

"잘했습니다."

아무도 살아 나오지 못했다는 소 르툴 숲.

정예회원 중 한 명이 거길 들어 갔다가 아직 깜깜무소식이었다.

그걸 알기에 백효연도 차마 따라 들어가지 못했던 것이었다.

"마신 추종자들 세력이 힘을 키 우고 있다는 건 다들 알고 있었잖 아요, 그죠?"

"그렇지."

다른 회원이 동의한다.

"몬스터까지 이용할 줄이야. 심지 어 소르툴 숲까지 들어갔다고요?"

"아무 거리낌없이요. 마신 추종자들은 거기 많이 들어가는 거 같 아요."

"…다시 나올 수 있다는 거네요?"

"그렇겠죠, 아무래도?"

정예회원들이 모인 자리가 침묵에 잠겼다.

그들 대부분이 백효연의 말을 곱 씹고 있었다.

"아, 그리고...한 가지 더 들은 게 있어요."

백효연이 또 입을 열었다.

" 뭔데요?"

"마신 추종자들이 주적으로 삼는 플레이어가 하나 생겼다고 하더라고요."

"주적?"

"네. 주적. 최우선으로 제거해야 하는 목표래요."

"그게 누군데요?"

"듣고 놀라지 마세요."

"...누군데."

"...들으면 진짜 깜짝 놀랄걸요?"

"말을 해! 말을!"

"제거 목표가 바로 신유준이래요."

"신유준이면..."

"그 유망주?"

"유망주라기엔 너무 크지 않았나?"

신유준에 대해서 모르는 자는 여 기에 없었다.

그가 제대로 모습을 드러낸 종족 대항전.

그때도 충분히 강했는데 지금은 더 강해졌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그래서 신유준의 정체를 알고 싶

어 하는 이가 한 둘이 아니었다.

"그 플레이어. 신들의 전쟁 때나 존재했던 과금 아이템들을 가지고 있다고 들었는데."

"예. 저도 영상으로 봤는데. 무한 의 탑에서는 절대 구할 수 없는 아이템들을 쓰더라고요. 그래서 좀 조사해 봤는데 나오는게 없어요."

"무슨 소리예요?"

"뒤져도 나오는게 없다구요. 도 대체 그런 아이템들을 어디서 얻었는지 알 수가 없어요."

"고대 유적일걸?"

나이 지긋한 한 정예회원이 말했다.

"고대 유적?"

"그거 몰랐냐? 신유준 고대 유적 클리어했잖아. 아니, 정확히는 들어 갔다 나왔었지."

"고대 유적 그거 절대 못 들어가는 곳 아니었어?"

"세상일을 아예 모르네."

"저 말아직 안 끝났어요!"

백효연이 그들의 말을 끊었다.

"그래서 결론만 말하자면, 신유준이 마신 추종자들의 심기를 거스 른 모양이에요. 아주 제대로 벼르

고 있던데요."

" 왜죠?"

"그건 모르겠어요. 그냥 죽여야 한다고만들어서."

나이 많은 정예회원이 입을 열었다.

"으음.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지?"

"그러니까 요지는 우리는 신유준이라는 플레이어를 지켜야 한다는 거예요."

"...마신 추종자의 적이니까?"

"예."

"하지만 인간을 돕는다는게 왠지 꺼림칙하군."

"저도 인간인데요?"

"자네야 뭐, 성정이 올바르다는게 이미 증명됐으니까 문제는 없지만, 신유준이라는 자는 알려진 게 거의 없잖은가."

"그래도요. 마신 추종자들에게 대항할 수 있는 강자가 한 명 더 늘면 좋잖아요. 증명은 도와주면서 해도 되고요."

" 흐음."

백효연이 드워프 정예회원을 똘 망똘망한 눈으로 바라봤다.

"안 돼요?"

드워프의 굳은 얼굴이 살짝 풀렸다.

"다, 다른 회원들의 의견을 들어 보고 정하는게 좋겠네."

"좋아요!"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5권 20화

118화

"후..."

유준에게서 입김이 뿜어져 나왔다.

소르툴 숲의 한기는 보통이 아니었다.

만약, 플레이어가 아니었다면 진 작 동상에 걸렸으리라.

"이 숲. 참 특이하네요. 이 추위 속에서 꽃들은 또 어떻게 피는 건지."

조수아가 말했다.

확실히 꽃이 피기엔 환경이 악조 건이긴 했다.

그러나 어디 무한의 탑이 상식으로만 돌아가는 곳이던가.

유준은 그러려니 하고 다른 연구 소를 찾기 위해 탐색 마법을 풀 가 동했다.

"조수아 씨. 600레벨이 넘는 몬 스터도 잡아 봤나요?"

유준이 빠르게 걸으면서 물었다.

"아니요."

"그럼 어떻게 600레벨을 달성한 거예요?"

"더 낮은 레벨 몬스터를 잡았죠."

"왜요?"

"그게 더 쉬우니까요."

"더 높은 애 잡으면 경험치 훨씬 많이 주잖아요."

"말이 쉽죠. 목숨이 걸려 있잖아요. 거기다 저보다 레벨이 높은 몬 스터를 발견하는게 어디 쉬운 일 인가요."

"...그럼 그냥 몬스터 많이 잡은 게 다입니까?"

"네. 진짜로 그게 다예요."

유준이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조수아의 레벨은 611.

솔직히 말해서 높아도 너무 높다.

마신 추종자들 또한 레벨이 무지 막지하게 높았다.

그게 비록 본인이 이뤄 낸 것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레벨이 높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었따.

'나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거 같은데.'

600레벨을 언제 달성할 수 있을까.

설령 달성한다고 하더라도.

600레벨에 맞는 아이템을 구할 수는 있을까.

인벤토리에 있는 장비 아이템 중 최고로 좋은 것이 500레벨 제한 아이템이다.

그 이상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약간은 초조한 기분이 들었다.

인벤토리 특전으로 이점을 최대 한 살리고 싶은데, 그게 제대로 안 될 것 같아 불안했다.

'초월의 돌을 더 확보해야 해.'

마녀는 예지, 예언할 수 있다.

마누엘라는 순혈 마녀.

순혈 마녀는 더 중요하거나 비중 이 큰 예언을 할 거고, 혹시나 초월의 돌과 관련된 예언을 또 하기 라도 한다면?

그녀와 함께하는 건 그런 이유가 컸다.

마누엘라는 모르고 있겠지만.

어찌 됐든, 미래에 대한 걱정은 항상 있다.

'너무 앞서서 생각하지 말자.'

지금의 그가 600레벨 플레이어들 보다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건 자명 했다.

너무 초조해하거나 조급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유준은 상태창을 보고 인벤토리에서 스킬 보석(중) 하나를 꺼냈다.

'지금 써 버리자.'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강해져 놓는 것이 중요했다.

더는 아껴서 좋을 것이 없었다.

스킬 보석을 쓸 스킬은 정해져 있었다.

절대지기 (SSS).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상대에게 위압감을 주는 스킬.

단순히, 위압감 정도가 아니라 심각한 디버프 스킬을 부여한다고 보면 된다.

전에도 말했듯, 저주가 아니라 절대지기에 노출되면 어떻게 벗어 날 방도가 없었다.

절대지기를 막거나 피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이 스킬을 가진 플레이어보다 강 한 무력을 지니는 것이다.

'스킬 보석을 쓰기에 아깝지 않은 스킬이지.'

망설임은 없었다.

절대지기에 스킬 보석을 부착했다.

아주 큰 변화는 없겠지만, 최소 한 단계는 등급이 상승했다고 봐도 무방했다.

'효과를 한번 확인해 보고 싶은데.'

마땅한 상대가 없었다.

그래서 몬스터 하나만 나타나 주 길 간절히 바라며 걸었다.

그 소망은 금방 이루어졌다.

3m 정도의 신장에 삐쩍 마른 몸을 지닌 '샤룬'이라는 몬스터가 등 장했다.

샤룬은 이곳 소르툴 숲에서 몇 안 되는 최상위 포식자였다.

샤룬을 마주한 조수아의 얼굴이 굳었다.

그녀의 얼굴을 본 유준이 물었다.

"왜 그래요?"

"...쟤 위험해요."

"알아요. 딱 봐도 최상위 포식자 인데요. 뭘."

"저 몬스터는 차원이 달라요."

"어떻게 알아요?"

"저번에 다른 최상위 포식자가 아무것도 못 해 보고 당하는 걸 봤 거든요. 저는 눈앞에 두고도 그 몬 스터가 어떻게 당하는지, 알 수가 없었어요."

조수아는 긴장했는지 몸에 잔뜩 힘이 들어간 상태였다.

"한마디로 빠르다는 거죠?"

"네."

"일단 알겠습니다."

유준이 검을 내세우며 앞으로 걸 어 나갔다.

"아니, 도망가야...

"저놈 빠르다면서요. 지금 여기 서 어떻게 도망쳐요."

"싸우는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도망치는 건 인벤토리의 아이템을 쓰면 가능했다.

그러나 유준은 싸우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했다.

무엇보다 한시 빨리 레벨을 올려야 했다.

도망친다는 선택지는 그의 안중에 없었다.

그걸 모르는 조수아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술을 깨물고 검을 들었다.

샤룬은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먹잇감을 발견한 얼굴.

저들을 잡으면 레벨을 또 올릴 수 있을까.

샤룬이 혀를 날름거리며 움직이 려는 그때,

유준이 마력을 발산했다.

딱히 마법을 쓰거나, 스킬을 쓴 건 아니었다.

그저 마력만을 내뿜었다.

그런데 샤룬은 다리에 힘이 쫙 풀리는 것을 느꼈다.

"크으으..."

절대지기.

그 스킬이제대로 발동한 것이다.

'절대지기 스킬을 의식하고 있으니 더 효과적인 거 같은데?'

유준이 가만히 서서 생각했다.

샤룬의 상태를 지켜보기만 할 뿐, 다른 행동을 취하지는 않았다.

"...뭐 해? 지금이 기회잖아."

답답했는지 뒤에서 마누엘라가 말했다.

"기다려 봐."

절대지기의 힘이 어디까지 닿나 확인하고 싶었다.

그는 인벤토리를 열어 상태 확인 스크롤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스크롤을 곧바로 찢었다.

유준은 샤룬의 레벨을 확인했다.

'630이라.'

샤룬의 레벨은 600레벨을 넘어 630.

유준에게는 아득할 정도로 높은 레벨이었다.

그런데도 절대지기가 통한다는 건,

자신이 그 레벨의 차이를 훨씬 뛰어넘을 정도로 강하다는 뜻이었다.

유준이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검에 마력을 불어 넣었다.

'일격에 끝낸다.'

상대는 630레벨이지만, 충분히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다.

유준은 빛이 되었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샤룬의 앞까지 이동한 그는, 단순 하게 검을 휘둘렀다.

서걱!

순두부가 잘리듯, 샤룬의 목이 아주 깔끔하게 잘려나갔다.

[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

[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

[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

[ 놀라운 업적! ]

[ 레벨 격차가 심한 적을 일격에 처리했습니다! ]

[ 전설 칭호 '치명적인 일격의'를 획득합니다. ]

치명적인 일격의(전설) - 처음 공격할 때, 공격력이 60% 증가합니다.

"됐다."

압도적인 공격력.

그가 가진 검의 등급은 초월이었다.

심지어 신들의 전쟁 최강 무기라고 불리던 검을 업그레이드시킨 것 이었으니.

이 검에 베이고도 멀쩡한 이가 있을지 궁금했다.W

한 방에 죽였던 보람이 있게 아 주 유용한 칭호가 업적 보상으로 나와주었다.

그리고 450레벨을 넘겼다.

장신구와 방어구를 바꿀 때가 된 것이다.

유준이 입가에 진한 미소를 띠었다.

"...아."

반면 조수아는 싸늘하게 식은 샤 룬의 사체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믿기지 않았다.

저 신유준이라는 자가 강하다는 건 지난 경험으로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그토록 두려워했 던 저 몬스터를 일도양단할 줄이야.

심지어 동네 마실이라도 나온 것 같은 모습이었다.

전혀 긴장하지도 않았다.

'무슨 저런 사람이 다 있지?'

유준은 그녀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강했다.

그런 조수아와 달리 마누엘라나 파라네트는 크게 동요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이런 광경을 수없이 봐 왔다는 듯.

그때였다.

유준이 무언가에 홀린 듯 죽은 샤룬의 사체로 다가갔다.

"아이템."

샤룬이 아이템을 드롭했다.

원래 몬스터가 아이템을 떨구는 건 종종 있는 일.

하지만 유준이 눈을 빛낸 건 다 른 이유가 있었다.

그가 단 한 번도 못 봤던 종류의 아이템이기 때문이었다.

'내가 모른다는 건….'

500레벨 이상 착용 제한이 걸린 아이템일 확률이 높았다.

그리고 그 예상은 딱 들어맞았다.

[요델만의 갑옷]

착용 제한 : Lv. 550 이상

등급 : 영웅

방어력 : 32,000

옵션 : 움직이고 있을 때 방어력 이 20% 증가합니다.

400레벨 제한 신화 등급 아이템 보다 많이 뒤떨어지는 효과.

그러나 550레벨 제한이 걸려 있다는 것에 의미가 있었다.

'역시 아이템도 500레벨이 끝이 아니었군.'

이걸 좋게 받아들여야 할까. 앞으로의 행보가 중요했다.

'아이템 수집을 목표로 하자.' 장비 아이템들을 제외하고, 인벤토리의 소모성 아이템들만 놓고 봐도 그가 압도적인 이점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었다.

생각을 정리한 유준이 입을 열었다.

"다시 출발하기 전에 할 일이 있습니다."

"뭔데요?"

조수아가 물었다.

"정비요."

"아이템 말하는 거예요?"

"네."

"이미 다 돼 있는데."

"장비 좀 교체하려고요."

"…아. 아직 500레벨 이하셨죠."

"예. 금방이면 됩니다."

조수아가 새삼스러운 눈으로 유준을 봤다.

저렇게 강한 사람이 이제 451레 벨이라니.

파티 창을 볼 때마다 아직도 깜

짝깜짝 놀란다.

조수아는 감정 변화가 적은 편이었는데, 이 정도로 놀라는 것은 실 로 오랜만이었다.

'장비를 또 바꾼다는 건 이미 아이템이 준비되어 있었다는 거고. 지금 착용한 신화 장비 아이템보다 좋은 거라는 뜻인데?'

그러고 보니 이상한 것이 있다.

그가 450레벨이 되기 전에 착용 했던 아이템은 450레벨 제한 신화 등급 아이템.

그는 그 아이템들을 어떻게 착용 하고 있었던 걸까.

레인보우 스티커가 붙어 있는 것은 무기뿐이었다.

신들의 전쟁 당시 최강 무기로 유명했던 검을 착용하고 있던 건 진작 알고 있었지만.

방어구까지 전부 착용 제한을 무 시하고 사용하고 있을 줄이야.

타인에게 무관심한 그녀였기에 바로 못 알아봤다.

'어떻게?'

그녀가 모르는 특별한 능력이라도 가지고 있는 걸까.

그럴 확률이 높았다.

유준은 이 위험한 숲 한복판에서 장비를 갈아입기 시작했다.

다행히 가벼운 면티를 갑옷 안에 입고 있었기에 상스러운 광경이 연 출되지는 않았다.

마신 추종자 열 명이 소르툴 숲으로 진입했다.

"좀 짜증 나는데."

붉은 장발을 한 마신 추종자가 말했다.

"뭐가?"

"굳이 열 명이나 모일 필요가 있는 거야? 플레이어 하나 없애는 일에?"

"보통 놈이 아니라잖아."

"아니면 어쩔 건데? 우리 레벨을 생각해 봐. 놈은 500레벨도 안 됐 다며? 격이 두 단계는 차이 나는데

상대가 되겠어? 솔직히 말해서 둘 정도만 나서도 쉽게 해결할 수 있을 수준의 일이야, 이건."

"틀린 말은 아니지만, 방심해서 좋을 건 없다. 코말란."

"시렌. 넌 항상 그래. 뭐만 하면 방심하지 말래."

"그게 효율적이니까. 방심, 자만은 최대의 적이다. 알고 있을 텐데."

"알고 있지. 근데 열 명은 너무 과하지 않냐 이거야."

"상부에서 내려온 명령이야. 우 리가 거스를 순 없어."

"비효율적이지? 네가 생각하기에 도, 응?"

"그만해."

"아니, 인정해, 안 해?"

"성가시게 굴지마."

"인정해, 안 해?"

"안 해. 그러니까 그만."

코말란은 끈질겼다.

시렌이 품속에서 단검 하나를 꺼 내는 순간, 코밀란의 입이 닫혔다.

"미, 미안하다고."

"놈이 지금 어디에 있다고 했지?"

"연구소 하나를 털었다던데."

"그건 들었어. 놈 위치는 추적이 안 되고 있어?"

"그건 바리온이 알 텐데."

"바리온. 어떻게 됐지?"

시렌의 질문에 땅을 바라보며 걷 던 바리온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빠른 움직임이 포착돼서 목적지를 특정하는 중이다."

"어디로 가고 있는데."

"첫 번째 연구소가 있는 곳."

"...놈들이 위치를 알고 가는 거야?"

"일단 방향은 그쪽이야."

"큰일 났네."

"그니까 서둘러야 해. 잡담이나 하고 있을 시간은 없다고."

"그쪽 연구소 지키는 병력이 부 실하던가?"

"상급자 세 명 정도가 있다."

"아, 뭐야. 휴…."

시렌의 말에 코말란이 안도의 한 숨을 내쉬었다.

"그럼 연구소 애들이 알아서 처

리하겠는데?"

"우습게 보지 마라. 벌써 열 명 가까이 당했다."

"그거야, 우리보다 약한 놈들이었고. 그쪽 연구소에 있는 놈들은 차원이 다르잖아."

코말란이 자신감에 찬 얼굴로 말 했다.

그런 그를 시렌이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봤다.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5권 21화

119화

시렌을 포함한 마신 추종자들은 속도를 더 높였다.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하자, 주 변 풍경이 빠르게 바뀌어 갔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몬스터들은 그런 마신 추종자들을 공격하지 않았다는 거다.

오히려 길을 비켜 주거나, 피하기 급급했다.

단순히 마신 추종자들이 강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마신 추종자 집단에서 영향력 큰 연금술사가 만든 비약 덕분이었다.

그 비약만 섭취하면 소르툴 숲의 모든 몬스터들을 조종까지는 아니 어도 같은 편으로 만들 수 있었다.

"하여간, 연구소 녀석들. 알아서 잘 좀 처리할 것이지. 대륙 녀석들 한테 당하기나 하고. 쪽팔리게."

코말란은 마신 추종자 조직에 소 속된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연구소 하나가 폭파당했 다고 했을 때는 화가 났었다.

마신 추종자라는 이름에 먹칠을 한 것 같아서.

"만나면 곱게는 안 죽여야지. 그 신유준이라는 녀석."

코말란이 이를 갈았다.

파라네트가 갑자기 움직임을 뚝 멈췄다.

그러더니 고개를 갸웃한다.

"무슨 일이야?"

유준이 물었다.

"위험합니다."

애또?"

파라네트가 위험하다고 한 게 이 번으로 몇 번째일까.

그러나 유준은 파라네트의 그 말을 결코 우스갯소리로 듣지 않았다.

녀석이 위험하다고 하면 위험한 거다.

종족 대항전에서는 그 능력이 빛 이 바랬지만, 이번에는 다를 것이다.

유준 일행이 있는 장소는 다름 아닌 소르툴 숲이었다.

"왜 위험한 건데?"

"우리를 쫓는 누군가가 있는 거 같습니다."

"기척은 안 느껴지는데."

은신으로 기척을 아무리 숨겨 봤 자, 그의 고대 마법, 탐색 마법 앞에서는 큰 의미가 없었다,

그래서 주변에 몬스터들이 몇 있을 뿐, 마신 추종자가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냥 불안한 예감이 드는 거

유준이 진지하게 물었고, 파라네 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더 빠르게 갈게요. 좀 힘들겠지만, 잘 따라와 주세요."

"잠깐만요."

그때 조수아가 손을 들며 말했다.

"네?"

"소환수 말만 믿고 간다고요?"

"예. 어차피 가던 길이었잖아요. 속도만 높이려고요."

"지금 체력을 낭비했다간 나중에

마주칠 마신 추종자들을 상대하기가."

"괜찮습니다. 포션을 쓰면 되니까요. 게다가 파라네트가 불길하다 고 하면 진짜 뭔가 있는 겁니다."

"감이 좋은 건가요?"

"그런 수준을 벗어났어요. 본인 이 위험한 거 관련된 거로는 뛰어 난 예언가라고 봐도 돼요."

"그, 그 정도인가요."

"예."

그의 표정은 진지했다.

그때 파라네트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주인님."

"왜?"

"절 많이 믿으시나 봅니다."

유준이 달리면서 뒤를 돌아보니, 파라네트가 히죽 웃고 있었다.

희고 곧은 치아.

재수 없는 웃음이었다.

"왜 이래?"

"주인님. 솔직하게 말하십시오. 이 척박한 세상 아래, 믿을 사 람...아니 믿을 언데드는 저뿐이 지요?"

"맞아. 언데드 중에는 너밖에 없지."

"…아니. 질문을 정정하겠습니다. 제가 가장 믿음직스럽죠? 여태까지 본 존재 중에요. 종족 이런 거 다 집어치우고! 말해주십쇼! 어떻습니까! 저!"

"음..."

딱히 부정할 수 없다는게 열이 받았다.

파라네트는 실제로 유준에게 자 잘하게, 그리고 가끔은 큼지막하게 도움을 줬다.

자신에게 해를 끼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고 말이다.

"마, 맞아."

"역시, 주인님! 믿고 있었다고 요!"

기고만장하는 것이 너무 마음에 안 들어서 유준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나저나 파라네트의 신체 능력 이 상상 이상이었다.

녀석은 평온한 얼굴(뼈밖에 없어 힘든지 안 힘든지 알기 힘들지만) 로 유준의 바로 뒤까지 따라오고 있었다.

호리단의 반지 덕분이겠지.

조수아가 경쟁 심리를 느끼는지 파라네트보다 앞서려고 노력했지만, 순수 능력치로는 파라네트가 우위에 있었다.

유준이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반면, 조수아가 느끼는 박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자신이 소환수보다 느리다니.

심지어 그냥 소환수도 아니고 언 데드 소환수다.

속도가 특출나게 빠른 소환수들이 있기야 하지만, 언데드는 그런

종족이 아니었다.

'내가 저런 뼈다귀보다 느리다 니….'

조수아는 유준에게 밀리는 것은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언데드 소환수는 좀 너무 하지 않은가.

조수아는 죽기 살기로 달렸다.

저 언데드에게만은 절대로지고 싶지 않았다.

그때 파라네트가 뒤를 슬쩍 보더 니 비웃음을 지었다.

적어도 조수아는 그렇게 느꼈다.

별 것 없다는 듯 고개를 앞으로 돌리는 파라네트.

"...열 받게 하네."

조수아는 민첩 능력치를 일시적으로 늘려 주는 비약을 사용했다.

정확히 10% 증가하지만, 15분 정도밖에 지속하지 않았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조수아가 파라네트를 앞지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가 유준과 동일 선상에 섰다.

"어? 언제 오셨어요?"

유준이 물었다.

"...그냥 서둘러야 할 거 같아 서요."

절대 자존심이 상해서 파라네트를 앞지르려고 했다는 걸 말할 수는 없었다.

" 그죠?"

유준이 환한 미소를 지었다.

"확실히 속도를 더 늘려야겠는데요."

"...네?"

"조수아 씨까지 불안하다고 느꼈으면 분명 쫓는 자들이 보통이 아닐 겁니다."

플레이어의 감이라는게 무섭다.

특히 고레벨 플레이어.

감.

고작 감이지만, 유준은 사소한 것도 그냥 넘기지 않기로 했다.

"꼬, 꼭 그런 의미로 말씀드린 건 아닌...

"아까 폭파했던 연구소와 비슷한 기운이 느껴져요. 조금만 더 가면 됩니다."

"얼마나 걸리는데요?"

"15분?"

플레이어도 무한정 달릴 수는 없다.

그게 전력을 다한 질주라면 더더 욱.

조수아는 인벤토리를 열어 포션을 꺼냈다.

그리고 마개를 단번에 딴 뒤 꿀 꺽꿀꺽 포션을 마셨다.

사실 체력 포션은 이름과는 달리 지친 체력을 회복하게 하지는 않는다.

부상이나 상처를 치료할 뿐.

그래도 아예 효과가 없지는 않았다.

정말 지칠 때 물 한 모금 먹을 정도의 도움은 됐다.

"나약하구만, 역시 인간이야."

반면, 파라네트는지구력이라는 것이 없었다.

아무리 달려도 속도가 뒤처지지 않았다.

그게 언데드의 장점이기도 했다.

파라네트의 말을 들은 유준이미 간을 찌푸렸다.

"야. 나도 인간이라니까? 말 가려서 안 할래?"

"...앗. 죄송합니다. 주인님이 인간이라는 걸 잊고 있었습니다."

"놀리는 거냐?"

"아닙니다."

"그럼 됐어."

"그런데 말씀 하나만 올려도 되겠습니까?"

"뭔데?"

"그렇게 달리면서도 숨 한 번 거 칠어지지 않는게 확실히 인간답지는 않습니다."

"적당히 속도 조절하고 있으니까."

"...더 빠르게 달리실 수도 있습니까?"

"당연한 거 아니야? 뭘 그런 걸 물어?"

잘난 척을 하는게 아니다.

유준은 실제로 설렁설렁 달리고 있었다.

600레벨이 넘는 조수아가 헥헥거 리고 있는 걸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그는 진짜로 여유가 넘쳤다.

지치는 속도보다 회복되는 속도가 더 빠를 정도로.

유준은 한번 내뱉은 말은 지켰다.

타닥!

그의 속도가 더 빨라졌다.

'저 정도면 비행기 수준 아니야?'

조수아가 생각했다.

발이 보이지 않는 건 그렇다 쳐 도, 어떻게 축지법을 하는 것처럼 저렇게 훅훅 움직일까.

그때 파라네트가 조수아에게 말을 걸어왔다.

" 인간."

"왜? 해골."

"나는 공간 이동이라는 스킬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너보다는 내가 주인님에게 더 쓸모 있다는 뜻이지."

"누가 뭐래?"

파라네트는 진지했다.

"나는 다 알고 있다."

"..뭘?"

"네가 주인님의 마음에 들고 싶 어 계속 알짱거리는 것을 말이다."

조수아의 얼굴에 짜증이 어렸다.

'얘가 뭐라는 거야?'

안 그래도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 파라네트가 엉뚱한 말을해서 더 짜증이 났다.

그러나 일개 소환수에게 화를 내는 것도 쪽팔린 일이었다.

조수아는 입을 꾹 다물었다.

"껄껄껄, 마음속을 간파당해 당 황하는 꼴이란! 귀엽구나!"

파라네트가 조수아에게 자꾸 시 비를 걸자, 유준이 파라네트를 뒷

발로 걷어찼다.

퍼억!

"억!"

뒤로 쭉 날아가는 파라네트.

"조용히 좀 해."

"죄, 죄송합니다."

유준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혼족 분들은 어디 갔지?"

"뒤에서 허겁지겁 쫓아오고 있겠죠."

파라네트가 대답했다.

"왜 안 챙겼어?"

"왜 챙깁니까?"

"말 잘했다. 알아서 와야지. 우리 가 왜 챙겨줘."

혼족 둘이 죽든 말든 이제는 정 말로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그렇게 5분 정도가 더 흐르고,

"잠깐만요."

유준이 한마디 말과 함께 질주를 멈췄다.

" 왜요?"

"연구소의 위치가 바뀐 거 같은 데요."

"네? 분명 위치를 특정하셨다고'

"예. 분명 마누엘라가 예언으로 이 방향이라고 했는데. 으음..."

자신의 감각에는 다른 곳에 잡혀 있었다.

마누엘라가 말한 곳과는 조금 많 이 어긋나 있는 곳.

그가 머리를 긁적였다.

"마누엘라. 네 예언이 틀릴 수도 있어?"

"빗나간 적은 아직 단 한 번도 없어."

"몇 번 동안?"

"수백 번."

"상상을 그렇게 많이 했었어?"

"내가 살아온 세월이 길잖아."

"...맞다. 네가 나이가 좀 있었지."

"나이 얘기는 하지마."

"어쨌든 여기서 막혀 버렸네."

유준은 잠시 고민하다가 마누엘 라가 가리켰던 방향으로 다시 발걸 음을 옮겼다.

"처음 정했던 방향으로 가죠."

"괜찮겠어?"

마누엘라가 물었다.

유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숲에 내 감각을 현혹하는 무 언가가 있을 확률이 더 높아. 네 예언이 틀릴 확률보다는."

" 으응."

시간이 더 홀렀다.

조수아가 탈진에 가까운 상태가 되었을 때, 그제야 일행은 원래 목 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흐억, 하.... 뭐가 없는데요?"

조수아의 말에 유준이 파라네트를 불렀다.

"파라네트."

"예!"

"느껴지는 거 있어?"

"예!"

"어디야."

"이 부근입니다."

"확실히는 모르겠어?"

"아뇨. 저기 끝부터 여기까지 전 부요."

일행이 밟고 있는 땅을 포함해서 꽤 넓은 범위에서 무언가가 느껴진 다는 건가.

유준은 다리에 마력을 싣고 땅을 내려쳤다.

콰아앙!

엄청난 굉음과 함께 땅이 움푹 파였다.

한 번으로는 모자랐다.

유준은 두 번, 세 번 땅에 대고 발길질을 했다.

그러자, 무언가가 보였다.

"왜 이렇게 밑에 뭘 숨겨 놓는 걸 좋아하냐, 얘들은."

"마신 추종자요?"

"네."

"대놓고 드러낼 수는 없잖아요. 숲에서 따로 숨길 곳이 있는 곳도 아니고."

"그렇겠죠."

신기한 건, 보호 결계나 방벽 같은 건 일절 없다는 점이었다.

보통, 숨기려고 한다면 결계를 설치해 두기 마련인데.

마신 추종자들이 능력이 없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아, 그러고 보니 여기서는 공간 이동 마법도 안 써졌지.'

그렇다면 소르툴 숲 자체에 어떠

한 이능 같은 게 작용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공간 마법의 사용이 불가능한 것 만 봐도 확실했다.

"들어가죠."

이번에도 드러난 건 지하로 가는 계단.

유준과 일행은 망설이지 않고 연 구소로 들어갔다.

그리고 5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마신 추종자 열 명이 일행이 있던 곳에 도착했다.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5권 22화

120화

마신 추종자 열 명.

"뭐야, 벌써 들어갔네요."

"왜 이렇게 빨라? 여러 명 있다 고 하지 않았나? 거기다 한 명만 유독 강하다고 들었는데?"

"이동 수단이 있었나 보죠."

"발자국을 봐요."

"어? 그러네."

"그냥 달려서 온 모양인데."

"흔적을 자세히 보면 들어간 지 몇분 안 됐어."

"땅은 또 언제 판 걸까요? 이것도 꽤 시간 걸리는 작업일 텐데."

유심히 주변을 살펴보던 코말란 의 얼굴이 급격하게 굳었다.

"왜 그래?"

옆에 있던 마신 추종자가 그의 표정을 보고 물었다.

"이거 마법으로 한 짓이 아니야."

" 뭐가?"

"땅을 헤집어 놓은 거. 이거 그

냥 마력을 퍼부어서 날려 버린 거 같은데."

"...응? 나는 마법 같은데. 아무리 봐도."

"자세히 봐 봐."

"...모르겠어."

"답답하기는."

코말란이 애써 담담한 척 먼저 연구소로 들어섰다.

"빨리 처리한다음에 쉬러 가죠."

" 예."

"아, 귀찮게 됐네."

그들은 그냥 마신 추종자가 아니다.

조직 내에서 상위권 축에 드는, 일명 엘리트들.

그래서 자신들이 진다는 생각은 일절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해서 방심을 하지도 않았다.

전력 누실을 최소한으로 해야 하는 상황.

이왕이면 한 명의 사망자도없이 목표물을 제거하는게 좋다.

밑으로 가는 계단은 세 개.

그들이 어디로 갔는지는 자명했다.

흔적을 숨길 생각도 없는지 보란 듯이 족적을 남겨 놨었으니까.

마신 추종자들은 일사불란하게 계단을 내려갔다.

거의 미끄러지듯이 내려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소곤거리는 듯한, 두 명이 대화를 나누는 소리.

"앞에 있군."

"다들 준비해요."

마신 추종자들이 각자 스킬을 사용할 준비를 마쳤다.

그 순간.

그들의 앞에 홀로그램 창이 나타 났다.

[정확히 10분 후, 무한의 탑 최 대 규모의 깜짝 이벤트를 진행합니다.]

[해당 이벤트에는 무한의 탑에 있는 플레이어 전원이 참여합니다.]

[플레이어 여러분을 '비밀의 정 원'으로 초대합니다.]

그 메시지가 나타난 건 마신 추종자들뿐만이 아니었다.

그들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유준 일행의 눈앞에도 나타났다.

'이게 뭐야.'

유준이 눈을 가늘게 떴다.

모든 플레이어가 참여하는 이벤 트?

심지어 최대 규모라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이벤트를 시작한다고?'

예고도 없었다.

어떻게 보면 이게 예고이기도 했다.

10분이라는 준비 시간을 주기는 했으니까.

'왜 하필 이때….'

유준의 얼굴이 찡그려졌다.

또 다른 연구소에 도착한 지금.

이벤트를 시작하다니.

시기가 너무 공교롭지 않은가.

그때 홀로그램 창 메시지가 또 나타났다.

[이벤트가 끝나면 모든 플레이어는 원래 있던 위치로 되돌아갑니다.]

'그나마 다행인가.'

기껏 여기까지 왔는데 거주 구역으로 돌아가게 하는 거였으면, 짜 증이 날 뻔했다.

그랬으면 소르툴 숲을 벗어날 수 있었겠지만, 그건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다.

이러한 이벤트는 레벨 업이라는 것에 목마른 유준에게 아주 좋은 기회였다.

"10분 뒤…. 연구소를 쭉 둘러보 기엔 시간이 촉박하네요."

조수아의 말에 유준이 대답했다.

"뒤따라온 마신 추종자들부터 처 리하면 될 거 같습니다."

"...네."

조수아가 살짝 긴장했다.

유준이 강하긴 해도 적의 수는 열.

그에게 모든 걸 맡길 수는 없었다.

그리고 이번에 나타난 마신 추종자들은 전에 싸웠던 이들보다 더

강했다.

느껴지는 기세가 남달랐다.

마신 추종자들이 일행이 있는 방으로들이닥쳤다.

"여기 있었군."

"용케 잘 찾아왔네."

"흔적을 남겼으니까. 일부러 그랬나?"

"응."

"왜지?"

"너희들이 헤매고 있으면 빨리 처리할 수가 없잖아."

"...우릴 상대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나?"

"응."

유준이 검을 들었다.

마신 추종자들도 전투 준비를 마쳤다.

이벤트 메시지가 나타나고 3분이 지난 시점이었다.

마신 추종자 세 명이 쏘아지고,

동시에 온갖 마법이유준을 향해 날아들었다.

파라네트와 조수아도 끼어들었다.

삼 대 십의 싸움이 되었다.

유준은 고대 마법으로 마법들에 대항하고, 접근해 오는 마신 추종자들에게 맞섰다.

파라네트와 조수아가 각각 한 명 씩 맡았다.

근접 플레이어 중 남은 건 한 명.

유준의 상대는 코말란이었다.

코말란은 잘 걸렸다는 듯 미소를 짓고 있었다.

"네가 신유준이냐?"

"예. 맞아요."

"...뭐."

갑자기 존대해서 놀랐는지, 코말 란이 살짝 당황한 것이 보였다.

절대 의도해서 노린 바는 아니지만, 아주 작은 틈이 생겼다.

유준이 움직였다.

"비, 비겁...

코말란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유준의 검이 그의 이마를 스치고 지 나갔다.

아쉽게도 머리나 목을 베지는 못 했다.

그래도 코말란의 간담을 서늘하

게 하는데는 성공했다.

큰코다친 녀석이 거리를 확 벌렸다.

유준이 다가가려는 순간, 수십 개의 마법이 그에게로 날아왔다.

콰콰콰쾅!

고대 마법으로 펼친 실드.

괜히 EX++등급이 아니다.

실드 두 겹으로 마신 추종자들 여덟이 만든 마법을 막아 냈다.

'역시 든든해.'

마검사의 좋은 점은, 온갖 상황, 변수에 대응하기 좋다는 것에 있었다.

전투에 있어선 만능이다.

그 어느 것 하나 모자라면 애매 한 수준이 되겠지만, 유준은 검과 마법 둘 다 잘 다뤘다.

특히 검술은 정점에 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

그 후로도 몇 차례 마법 공격이 이뤄졌지만, 유준이 손쉽게 고대 마법을 사용해 막아 냈다.

코말란만 당황한 게 아니었다.

나머지 일곱 명의 마신 추종자들이 헛숨을들이켰다.

"저놈 도대체 뭐야?"

"그냥 마법이 아닌 거 같은데."

"암흑 마법은 아니야. 그냥 일반 적인 마법도 아닌 거 같고 혹시 고 대 마법은 아니겠지?"

"...설마."

"이대로 두면 코말란이 위험해요."

"최대한 화력 퍼붓자고."

유준은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겨, 주위를 좀 둘러봤다.

조수아와 상대는 막상막하로 싸웠다.

파라네트는 조금씩 밀리기 시작 했다.

능력치는 뛰어나지만, 스킬과 특 성의 부족함 때문이었다.

그래도 시간을 끌 정도는 되어서 유준은 안심하고 남은 8명과 붙을 수 있었다.

'보통 놈들이 아니네.'

자신의 공격력이 뛰어나다는 걸 안 이후로 틈을 주지 않았다.

제대로 된 공격을 펼치기가 어려웠다.

어디서 이런 놈들이 무더기로 나

타난 걸까.

분명, 어떤 방법을 써서 단기간에 강하게 만든 거 같은데.

그가 아는 아이템 중에는 그런 것이 없었다.

그나마 비슷한 게 있다면 '비약' 정도로지속 시간이 매우 짧았다.

마신 추종자들의 강함에는 이해 가 가지 않는게 많았다.

'어찌 됐든 다 처리하면 되는 거지.'

자신이 감당 가능한 수준이다.

문제인 건,

'시간이 약간 촉박하다는 건데.'

남은 5분 내로 저 여덟을 다 죽 일 수 있을까.

아무래도 안 될 거 같았다.

꼭 다 못 죽여도 상관은 없었다.

이벤트가 끝난 후에 즉시 움직여서 처리하면 된다.

그렇게 이벤트 시작까지 2분이 남은 시점이었다.

"아, 안 돼!"

조수아가 마신 추종자 한 명의 목을 베어 버렸다.

그것으로 팽팽하게 유지되던 균형이 깨져 버렸다.

조수아가 코말란을 맡게 되면서, 유준이 멀리서 마법만 사용하던 마신 추종자들에게 공격을 퍼부을 수 있게 되었다.

"막아요!"

"누가 근접전으로 붙들고 있어!"

마신 추종자들이 다급하게 외쳤다.

그러나 그 누가 저 남자와 붙고 싶겠는가.

모두가 머뭇거렸다.

그것은 그들에게 크나큰 악재가 되었다.

서걱!

번쩍, 하는 순간에 마법을 준비 하던 마신 추종자 한 명의 목이 잘렸다.

쾌속 전진.

스킬을 쓰지 않아도 충분히 빠른 유준이었지만, 스킬을 섞으면 더한 속도를 낼 수 있었다.

효율이 극대화되는 것이다.

방금 죽은 마신 추종자가 바로 그 결과물이었다.

"한 명 더 죽었어요!"

"그럼 3태세로 들어간다."

마신 추종자들은 패닉에 빠지거 나 하지는 않았다.

대신 견고한 방어막을 만들고 버 티기 작전으로 돌입했다.

방어적인 마법과 유준의 움직임을 제한하는 마법을 다채롭게 사용 했다.

그중 살상력 높은 마법은 단 한 개도 없었다.

'음.'

난감했다.

차라리 공격적으로 나오면 맞불을 놔서 단번에 처리할 수 있는데.

저런 식으로 시간을 끌어 버리 면, 그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유준은 파라네트와 막상 막하로 붙고 있는 마신 추종자에게 시선을 돌렸다.

녀석은 파라네트와 싸우느라 정 신이 없었다.

유준은 파라네트와 맞붙은 마신 추종자의 뒤를 공격했다.

우우웅! 우웅!

직접 움직일 틈은 없었고, 고대 마법 중, 위력이 강력한 '공간 장 악'을 사용했다.

마력을 듬뿍 부은 만큼 효과는 대단했다.

마신 추종자의 몸이 순식간에 으 스러지며, 흔적도없이 사라졌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그 놀라운 광경에 전투가 잠시 중단되었다.

아무리 방심하고 있었다고는 해 도 멀리서 사용한 마법 하나에 저리 허무하게 죽다니.

남은 건 일곱.

그러나 남은 시간이 얼마 없었다.

'아쉽네.'

한 명이라도 더 처리하고 가고 싶었지만, 상황이 녹록지가 않았다.

무리하게 움직였다간, 되레 당할 판.

유준은 단념하고 이벤트를 기다렸다.

[워프가 곧 시작됩니다. 곧 다가올 충격에 대비하여 주십시오.]

낯익은 메시지다.

유준은 혹시나 워프가 진행되는 동안 무방비 상태가 될까, 그와 일 행에게 견고한 실드를 둘러놨다.

마신 추종자들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그들 주위로도 실드가 생겨났다.

화아악-!

유준은 워프가 끝이 나기 전까지 마신 추종자들의 얼굴을 유심히 살 폈다.

'이벤트에서 마주치면 곧바로 죽 여야지.'

장소가 바뀌었다.

기존의 어두컴컴한 연구소에서 눈 부신 태양이 있는 곳으로.

그리고 다양한 플레이어들이 셀 수없이 많이 서 있거나 앉아 있었다.

"진짜 많네…."

"그러게요."

파티가 맺어져 있던 조수아와 혼족 두 명도 같이 딸려 왔다.

"뭐야? 어디 갔다 오셨어요?"

"계속 달리다가…마신 추종자들에게 따라잡힐 것 같아서 다른 곳으로 이탈했었습니다."

요톨반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대 답했다.

"그랬군요."

한순간에 모이게 된 대륙의 플레 이어들.

온갖 종족이 모인 만큼, 초원에 서는 긴장감이 느껴졌다.

"갑자기 이벤트라니?"

"원래 사전에 공지 같은 거 하지 않았나? 시스템이?"

"웬일이래."

"이 정도 규모면 보상이 장난 아니겠는데."

"왜 그렇게 단순하냐. 그럼 상위 권이 보상은 다 차지하겠지."

"뭐 콩고물이라도 얻어먹으면 이 득 아니냐?"

"그렇긴 해."

다들 크게 당황하지 않고 전투를 준비했다.

무한의 탑이벤트에서는 어떤 일 이 벌어질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유준도 방심하지 않았다.

'내가 모르는 곳. 내가 아무리 강 해졌다고는 해도 세상은 넓어.'

500레벨 콘텐츠.

그 이후부터는 그도 모르는 미지 의 세계였다.

그리고 이런 깜짝 이벤트는 겪어 본 적도 없고, 알지도 못했고.

'살아남았을 때 보상을 준다는 건 여기선 죽어도 실제로 죽지 않는다는 의미겠지.'

종족 대항전 때와 마찬가지다.

그땐 죽어도 죽는게 아니었다.

종족 대항전이 끝나는 즉시 부활 했으니까.

'탈락'이라는 의미가 더 적당했다.

그래서인지 플레이어들의 표정이 막 어둡지는 않았다.

말 그대로 이벤트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대륙 곳곳에 숨어 있던 랭커들 도 여기서 모습을 드러내겠군."

"그러게. 조율에 속한 플레이어

보다 강한 플레이어들도 수두룩하 다고 들었어."

" 진짜?"

"응."

"조율보다 강한 놈들이 있다고? 내가 알기론 그놈들이 최강인데."

"뭐, 떠오르는 신예로 유명한 신 유준만 하더라도 조율 플레이어들 보다 강하다고 하잖아. 이제 1년 차인 그조차 그런데 숨은 기인들이 얼마나 많겠어."

"신유준은 돌연변이나 마찬가지지. 비교 대상으로 삼기엔 좀…."

"놈도 성장 속도 때문에 유명한

거지. 솔직히 진짜 그놈보다 더 강 한 놈도 많지 않을까?"

"뭐, 나도 비슷하게 생각해. 이번 이벤트가 끝나면 누가 최강자인지 진짜 알게 되겠지."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5권 23화

121 화

유준을 언급하는 플레이어들도 종종 있었다.

그만큼 대륙에서 그의 인지도는 높은 축에 속했다.

아니, 높은 정도가 아니라 대단 한 유명 인사에 가까웠다.

그도 그럴 것이, 유준은 1년 차 플레이어인 동시에 최상위 랭커가 되었다.

심지어은연중에 최강자들이라고

불리던 조율 멤버도 그에게 당했다는 사실이 누군가에 의해 널리 퍼 졌다.

그런 만큼 그는 대륙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라고 봐도 무방했다.

플레이어들에게서 언급되는 것이 당연했다.

한동안 새로운 알림 창이 없었다.

플레이어들은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여느 초원과 다를 바 없는 풍경.

다른 것이 있다면,

이렇게 많은 수의 플레이어들이 한자리에 모인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신기하네…."

유준이 중얼거린 말에 조수아가 반응했다.

" 뭐가요?"

"그냥 대륙에 플레이어들이 이렇게 많다는게요."

"...응? 여기 있는게 다가 아닐 텐데요."

"네?"

"아마 여러 지역으로 나눴을 거예요. 플레이어들."

"으웅?"

유준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곳에 모인 플레이어들이 전부 가 아니라는 말인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플레이어들이 있고, 감각에도 정말 수천 만에 가까운 기척이 잡혔다.

"더 많다고요?"

"네. 당연하죠. 대륙이 얼마나 넓은데요. 이 인원의 몇 배는 더 있을걸요?"

"헐."

신들의 전쟁 때는 유저 수가 무척 적었다.

그래서 플레이어들의 수가 그 정 도까지 많을 거라고는 생각 못 했다.

"한국인만 해도 천만 명 가까이 소환됐다고 들었어요."

"...장난 아니네요."

"저도 처음엔 놀랐어요."

"그럼 과학의 발전 같은 건 없었습니까? 지구인 천만 명이면 충분 히 가능했을 거 같은데."

"분명히 시도하려는 사람은 있었

는데 그 숫자가 너무 적었어요."

"플레이어 능력 때문에요?"

"그렇죠."

바로 납득이 갔다.

과학보다 더 뛰어난 이능이 넘치는 세계다.

마법만 있어도 지구처럼 윤택한 생활이 가능한 곳.

굳이 과학을 발전시키려 노력하는 이가 많을까?

유준이 털썩 앉아서 인벤토리를 둘러봤다.

어떤 아이템들이 있는지 수시로 확인해 줘야, 긴급한 상황에서 빠 른 대처가 가능했다.

그의 가장 큰 무기는 아직도 인 벤토리에 있었다.

'아직 사용하지 않은 소모성 아이템들이 많지.'

500레벨 신화 장비도 좋지만, 소 모성 아이템들도 그에 못지않은 것 이 많았다.

유준은 얼마 전 450레벨이 되면서 교체한 장비들을 확인했다.

[전능의 풀 아머(개량)]

착용 제한 : Lv. 500 이상

등급 : 신화

방어력 : 122,000

옵션 : 근력과 민첩이 26% 증가 하고 공격력이 59%, 방어력이 33% 증가합니다.

[전능의 팔 보호대(개량)]

착용 제한 : Lv. 500 이상

등급 : 신화

방어력 : 49,200

옵션 : 근력과 민첩이 20% 증가 하고 공격력이 36%, 방어력이 25% 증가합니다.

[전능의 각반(개량)]

착용 제한 : Lv. 500 이상

등급 : 신화

방어력 : 51,900

옵션 : 근력과 민첩이 22% 증가 하고 공격력이 40%, 방어력이 15% 증가합니다.

[전능의 투구(개량)]

착용 제한 : Lv. 500 이상

등급 : 신화

방어력 : 87,000

옵션 : 근력과 민첩이 31% 증가 하고 공격력이 55%, 방어력이 32% 증가합니다.

세트 효과

2세트 - 공격력 55% 증가, 방 어력 50% 증가

4세트 - 공격력과 방어력 각각 80% 증가. 모든 능력치 25% 상승. 신화 등급 무기를 착용하고 있을 시에 공격력이 두 배 증가합니다.

다양한 방어구들이 있지만, 유준은 능력치를 극대화시켜 주는 장비 아이템을 고집했다.

태초의 플레이어 특혜를 받았으니, 그걸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전능 세트는 파괴 신의 세트보다 훨씬 업그레이드된 아이템 세트라고 볼 수 있었다.

심지어 특수 아이템으로 개량까지 마쳐 놓은 상태라, 비교 불가능 했다.

[검신의 힘이 깃든 반지]

착용 제한 : Lv. 500 이상

등급 : 신화

공격력 : 6,000(검을 무기로 사용할 시, 네 배 증가)

옵션 : 검의 마력 전도율이 400% 증가합니다. 검과 관련된 스킬 혹은 특성의 효과가 대폭 증가 합니다. 모든 능력치가 23% 증가 합니다.

[검신의 힘이 깃든 팔찌]

착용 제한 : Lv. 500 이상

등급 : 신화

방어력 : 12,000(방패를 사용하지 않을 시, 다섯 배 증가)

옵션 : 검의 공격력을 3배로 증가시킵니다. 검과 관련된 스킬 혹은 특성의 효과가 대폭 증가합니다. 모든 능력치가 25% 증가합니다.

[전능의 목걸이(개량)]

착용 제한 : Lv. 500 이상

등급 : 신화

방어력 : 21,000

옵션 : 공격력과 방어력 44% 증가. 모든 능력치 20% 증가. 전능의 방어구 세트를 착용하고 있을 시, '전능의 목걸이' 아이템의 효과가 두 배가 됩니다.

*전능의 돌 : 공격력이 27% 증가합니다. 모든 스킬의 위력이 300% 추가로 증가합니다.

장신구들은 뭐, 말할 것도없이 사기적인 옵션을 자랑했다.

'이러니까 레벨이 무의미한 수준 이지.'

본래 600레벨과 500레벨 이하의 차이는 컸다.

격의 차이가 무려 두 단계.

공격력과 방어력이 400레벨대 플레이어가 더 높다고 하더라도 600 레벨 플레이어와는 싸움이 성립되 지 않았다.

그런데 유준은 600레벨이 넘는 마신 추종자들을 아무렇지 않게 상 대했다.

심지어 방금도 마신 추종자 두 명을 죽였다.

격의 차이를 넘어서는 압도적으로 높은 능력치, 공격력, 방어력 때

문이었다.

'레벨에 따른 격의 차이가 없었으면, 마신 추종자들은 진짜 한주 먹거리도 안 됐을 텐데.'

생각하면 할수록 레벨이 낮은 게 무척 아쉬었다.

'이번 이벤트에서 500레벨만 넘 겼으면 좋겠는데.'

그런 그때였다.

[대난전을 시작합니다.]

[선별 인원은 각 지역에서 1만 명입니다.]

[많은 수의 적을 처치한 이에게는 특별한 보상이 주어집니다.]

플레이어들이 입을 떡 벌렸다. 말도 안 되는 조건이었다.

수천만이 넘는 인원 중에 1만 명만 살아남아야 한다니.

수천 명 중 한 명 꼴이 아닌가. 심지어 서로 죽여야만 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첫 번째 장치가 발동됩니다. 30 분이 지날 때마다 새로운 장치가 발동합니다.]

장치.

시스템이 말한 장치의 규모는 상 상을 초월했다.

땅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곳곳에서 웬만한 빌딩 하 나 크기의 토템들이 솟아나기 시작 했다.

그 위에 서 있던 플레이어들은

재수 없게 목숨을 잃었다.

"와, 쟤들 불쌍해."

"왜 하필 저기에 서 있어서…."

시작하기도 전에 탈락한 플레이어들이 많았다.

[토템이 가진 효과는 제각각입니다. 토템을 잘 활용하여 살아남으십시오.]

"토템?"

"이게 뭔데?"

몇몇 플레이어들이 어리둥절해하는 그때, 메시지가 다시 나타났다.

[현재 붉은 토템 지역에 있습니다. 지역 안에 있는 플레이어의 공 격력이 14% 상승하고, 방어력이 14% 하락합니다.]

"이런 건가."

유준이미소를 지었다.

여기 붉은 토템은 그에게 그리 나쁜 효과가 아니었다.

분명 토템 중에는 디버프를 거는

것도 있겠지.

벌써 싸움이 시작된 곳도 있었다.

콰콰쾅! 콰쾅!

수천만 명이 모인 초원이다.

당연히 난리가 났다.

온갖 곳에서 폭발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고함을 치는 소리.

도저히 피할 수가 없을 정도로 온갖 마법들이 날아들었다.

유준이 두꺼운 실드를 만들어 냈다.

그의 실드를 뚫어내는 마법은 없었다.

콰콰콰콰쾅! 콰콰쾅!

' 미쳤네.'

장관이긴 했다.

세상의 종말을 눈앞에 둔 것 같은 느낌.

"와..."

조수아도 넋을 놓고 눈앞의 풍경을 바라봤다.

스케일이 아무리 큰 영화도 이런 광경을 연출하지는 못하리라.

이건 CG로 처리할 수 있는 영역을 벗어났다.

'시스템이 원하는게 뭘까.'

이번 이벤트도 신이라는 존재들이랑 관련되어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싸움은 끊이지 않았다.

콰콰쾅!

"아아악! 내 팔!"

"죽어!"

"실드! 빨리 실드를 만들어! 뭐 하고 있어?!"

죽는 사람이 셀 수도없이 나왔

지만, 플레이어가 줄어드는 것 같 지가 않았다.

마법의 규모도 가면 갈수록 커졌다.

운석까지 떨어지기 시작했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귀가 먹 먹 했다.

실드가 알아서 마법들을 막아주 긴 했지만, 소리까지 차단하진 않았으니까.

그래서 유준은 소리 차단 결계까지만들어 냈다.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순 없겠네요."

"그죠. 킬 수가 높으면 보상을 더 준다고 했으니까요. 지금 이렇게 쉬고 있을 때가 아니에요. 지금 손해가 쩌는 상태라서."

조수아가 상기된 얼굴로 대답했다.

"그죠. 으응…?"

유준이 고개를 갸웃했다.

'어디서 봤지?'

저런 말투를 어디선가 본 적이 있었다.

누군가에게 들은 것은 아니고 글 로 봤던 거 같다.

플레이어인 그는 바로 기억이 떠 올랐다.

'나만고양이없어가 손해 쩐다는 말을 자주 쓰긴 했지.'

정해진 레이드 시간을 절대 놓치 지 않으며 극한의 이득을 추구하는 유저.

그 사람이 떠올랐다.

' 설마...'

유준이 피식 웃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우연이 있을 리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유준은 마력을 끌어 올렸다.

대량 살상에는 마법만 한 게 없다.

여러 아이템으로 증폭된 그의 능력치는 수천.

당연히 마력도 어마어마한 수준으로 높아졌다.

그런 그의 마법에 어마어마한 공 격력까지 더해진다면.

결과는 안 봐도 뻔했다.

유준은 인벤토리를 열어 아이템 하나를 꺼냈다.

[마법 중폭 비약]

등급 : 전설

옵션 : 단 한 번, 섭취하고 사용 하는 마법의 위력이 3배 증가합니다.

예전에 한 번 사용한 적 있던 소 모성 아이템 '마법 증폭 비약'이다.

귀한 아이템이지만,

유준이 망설이지 않고 비약을 마 셨다.

이로써 이번 마법의 위력은 세 배 증가하게 되었다.

그는 간단하게 운석부터 소환했다.

간단하게.

마력을 전부 쏟아부었다.

거기다 마법 중폭 비약의 효과까지.

당연히 다른 운석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운석이 생 성되었다.

그 운석을 목격한 플레이어들이 경악했다.

"저건 또 뭐야?"

"미, 미친! 행성을 통째로 없앨

셈이야? 정도가 있지!"

"망했다."

대부분 플레이어가 망연자실할 정도로 유준이 만들어 낸 운석은 컸다.

'호들갑은.'

저 정도론 행성이 없어지지 않는다.

다른 운석들이 그리 크지 않아서 유독 커 보이는 것이지.

물론, 유준만 그렇게 생각했다.

운석이 지면과 점점 가까워졌다.

피할 곳도 없었다.

이곳 어딜 봐도 플레이어들로 가 로막힌 전장이었으니까.

콰콰콰콰쾅!

이내 운석이 떨어지고,

"피, 피해..."

엄청난 폭발음과 진동이 초원을 강타했다.

아주 멀리 떨어져 있던 플레이어 들조차 중심을 잡지 못하고 넘어졌다.

메테오의 영향 범위에 든 플레이어 중 살아남은 이는 열 손가락을 꼽았다.

그 지역에 있는 플레이어들은 싹 쓸려나간 것이다.

"오랜만에 메테오 쓰니까 손맛이 나쁘진 않네."

"지금 내가 뭘 본 거죠? 앞에 있는 거 전부 시체…맞죠?"

혼족 요톨반이 넋이 나간 얼굴로 말했다.

"예. 근데 경험치가 전혀 안 오 르네요."

"그럼 아마도 이벤트가 끝난 뒤에 보상으로 정산될 확률이 높습니다."

"괜히 기대했네요. 경험치를 줬으면 단숨에 500레벨은 됐을 거 같은데."

그가 아쉽다는 듯 말하자, 요톨 반이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이 정도만 해도 이미 압도적으로 1위 아닙니까?"

"그렇긴 한데…."

지금 그는 신들의 전쟁이 있던 당시 최강 아이템들로 무장을 한 상태다.

게다가 전설 이상의 칭호도 많이 얻은 데다가 태초의 플레이어 혜택

까지 받았다.

무력이 무과금즐겜러 캐릭터와는 비교도 안 되는 수준이다.

이 정도로 만족할 수 없었다.

높은 상공에 있던 홀로그램 점수 판이 크게 변동했다.

[1 위. 신유준 - 329,908 처치]

[2위. 요만 - 11,290 처치]

[3위. 클레오라 - 8,384 처치]

[4 위....]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5권 24화

122화

순위는 100위까지 나와 있었는데,

그 중 유준이 압도적인 처치 수 로 1위를 차지했다.

점수판의 갱신에 온 전장이 한순 간 조용해졌다.

"32만...뭐야?"

"방금 그걸로 32만 명이 죽은 거 야?"

"1위가 신유준? 신유준이 여기에

있나 봐. 아까 운석 마법도 그 럼...

"신유준이 원래 저렇게 강했어?"

"유명했잖아. 강한 건."

"아니, 이 정도면 인간 중에서 너무 압도적 아니야?"

"애초에 마법사였던 거야"? 난 신유준이 저런 마법도 쓸 수 있다는 건 처음 알았네."

"저 정도면 그냥 신 아니냐?"

단 한 번의 마법으로 32만 명가 량의 플레이어가 죽었다.

남은 플레이어들은 혹시 다음 타

깃이 자신이 될까, 노심초사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유준은 마력을 전부 소모 한 상태.

방금과 같은 마법을 다시 똑같이 사용할 수는 없었다.

유준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역시 대규모 살상에는 메테오만 한 게 없다니까.'

게임에서도 그랬다.

위력이 강하긴 하다.

단점으로는 움직임이 단순하고

발동 시간이 오래 걸려 피하기 쉬웠다.

그러나 운석의 크기가 방금과 같 다면 그런 것들은 다 의미 없는 단 점이었다.

"유준씨..."

조수아가 입을 가까스로 뗐다.

"왜요?"

"진짜 장난 없네요."

"네?"

"이런 메테오는 처음 봤어요."

"그래요?"

"저도 빨리 사냥해야겠어요. 1위는 물 건너간 거 같지만…2위는 제 가 차지하고 싶거든요."

"그러세요."

조수아가 실드로 밖으로 뛰쳐나 갔다.

어디서 공격이 날아올지 모르기에 무척 위험했지만, 그녀는 600레 벨이 넘는 플레이어.

알아서 잘 처신하리라 믿었다.

유준이 실드 안에 서서 턱에 손을 괴었다.

'이대로 가만히 있어도 1등 할거 같기는 한데….'

혹시 몰랐다.

누가 또 치고 올라올지.

마력은 금방 차오르기 시작했다.

유준은 자리부터 옮겼다.

운석이 떨어진 여파로 근처에는 살아 있는 플레이어가 없었다.

플레이어들이유독 많이 모여 있는 곳으로 이동한 유준.

그가 생각에 잠겼다.

'운석 마법은 너무 눈에 띄는 거 같아. 더 적당한 거 없을까.'

고대 마법으로 펼치는 모든 마법 의 위력은 강력했다.

어떤 마법을 써도 살상력이 높다는 의미다.

'범위가 비교적 넓은게...

고민은 짧았다.

아이스 스톰.

원래는 평범한 B급, A급 정도의 범위 마법에 불과했다.

그러나 고대 마법을 통해 펼쳐지 면 다르다.

고대 마법을 통해 발현되면 웬만 한 SS급 스킬들보다도 강한 위력을

내는 것이 아이스 스톰이었다.

마력이 무척 많이 소모된다는 것 이 단점이지만,

유준의 마력 능력치는 넘쳐날 정 도로 높았다.

크게 신경 쓸 필요 없는 요소였다.

유준이 아이스 스톰 마법을 발동 했다.

쩌저적! 쩌적!

주변의 공기가 급격하게 얼어붙 기 시작했다.

초원에 있던 풀들과 피 웅덩이

들, 그리고 플레이어들의 시체들까지.

그대로 꽁꽁 얼어 버렸다.

범위는 메테오와 비슷한 수준.

사실 이것만 해도 상상을 초월하는 범위였다.

"이, 이번엔 또 뭐야?"

"빙결 마법이다!"

"근데 범위가 왜 이...?"

플레이어들은 길게 말을 잇지 못 했다.

엄청난 한기.

어떻게 보면 메테오 마법보다는 더 편하게 보내 줬다.

고통을 느낄 새도없이 다 얼려 버렸으니까.

점수판이 다시 갱신되었지만, 순 위에는 큰 변동이 없었다.

점수가 두 배 가까이 뛰었다.

그는지금 명실상부한 부동의 1 위였다.

'경험치가 안 오르는게 진짜 아 쉽단 말이야.'

유준은 주변을 쭉 둘러봤다.

그의 주위로 아무도 오려고 하지

않았다.

파라네트와 혼족 두 명만이 그의 곁에 남아 있을 뿐.

"너무 쓸쓸한데."

"주인님의 기척을 느끼면 다 멀 리 도망치고 있습니다. 금세 소문 이 퍼진 모양입니다."

"퍼지고말고. 바로 옆에서 썼는데 당연히 알겠지."

너무 조급할 필요는 없었다.

순위가 높은 이들을 보면 마법사 인 이들이 많았다.

'이런 대규모 난전에서는 역시

마법만 한 게 없네.'

검술과 근접전과 관련된 능력에 집중했다면 지금처럼 쉽게 1둥을 차지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어쩌면 순위권 밖으로 벗어났을 수도 있겠지.

물론, 이 모든 건 인벤토리를 활 용하지 않았을 때의 얘기긴 했다.

마법사는 화력이 강한 대신, 이렇게 사방이 탁 트인 공간에서 암 살당할 확률도 높았다.

실제로 본인 실력에 자신 있는 플레이어들 몇이 접근해 오기도 했다.

"아, 안...!"

"어떻게 알았...?"

서걱! 서걱!

귀신같이 알아챈 유준에게 목숨을 잃기는 했지만.

'조수아는 어디로 갔지?'

그와는 꽤 거리가 멀어졌지만, 크게 위독해 보이지는 않았다.

재수가 없어 눈먼 공격에 연달아 적중당하지 않는 이상, 쉽게 죽지는 않을 것 같았다.

'어떤 보상이 주어질까.'

대륙의 모든 플레이어를 대상으로 행해진 이벤트다.

여기서 1등을 하면 보통 보상을 받지는 않으리라.

유준이 기대감 어린 얼굴로 다시 플레이어 사냥에 나섰다.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아무리 서로가 전력을 다해 죽인

다고 하더라도, 플레이어의 수는 많았다.

고작 1만 명만 살아남아야 한다는 이번 이벤트의 목표.

그게 달성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조수아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얼마나 죽였지?'

그냥 눈앞에 보이는 건 닥치는 대로 다 베고 봤다.

막아서는 플레이어들 대부분이 그녀의 일격을 막아 내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다.

'이게 정상이지. 나는 충분히 강 한 편이야.'

사실 신유준이라는 남자를 만나 기 전까지는 그녀는 대륙에 자신의 상대가 될 만한 자가 없다고 생각 했었다.

적어도 플레이어들 중에는.

그러나 그를 만난 이후부터는 달 랐다.

'세상이 넓다고 넘길 만한 수준 이 아니었지.'

그가 생각하기에 신유준은 지금 도 강하지만, 앞으로도 더 강해질 일만 남은, 괴물 중의 괴물이었다.

'500레벨도 되지 않는데 그 정도 무위는 말이 안 돼.'

조수아는 매섭게 날아오는 화살을 검을 뻗어 쳐 냈다.

한눈을 팔아선 안 되는 전장이었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여유가 있었다.

그녀의 주위로 플레이어들의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전부 조수아의 검에 당한 이들이었다.

그녀가 자신감을 되찾았다.

'신유준 그 사람이 특이한 거야.

난 문제 없어. 지금처럼 하면 돼.'

그녀는 휴식을 잠깐 취하고 다시 플레이어들을 찾아 나섰다.

적수는 없었다.

조수아의 순위가 빠르게 올라가 기 시작했다.

그러나 50위 위로는 무슨 짓을 해도 절대 갈 수가 없었다.

'내 위에 순위권은 마법사들이 다 차지하고 있어.'

조수아가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마법사가 훨씬 유리한 종류의 이벤트.

검사인 조수아는 더 부지런히 움직였다.

마법사가 아니라고해서 범위형 스킬이 없는 건 아니다.

그녀는 중간중간에 마법 스킬도 사용하면서 순위를 빠르게 올렸다.

콰콰콰콰쾅!

조금 거리가 있는 곳에서 엄청난 굉음이 들려왔다.

육안으로 살피기 어려운 거리에 서도 이 정도의 진동이라면.

안 봐도 뻔하다.

신유준.

그밖에 없었다.

실제로 굉음이 퍼진 곳으로부터 플레이어들이 빠른 속도로 도망쳐 오고 있었다.

"그놈이야!"

"지금 빨리 최대한 멀어지자고!"

"왜 저런 괴물이 하필 같은 지역에 있는 거야?"

"재수가 없는 거지!"

"저, 저 포션 좀 주세요! 다리 한 쪽이 날아갔어요!"

플레이어들을 보는 조수아의 얼

굴이 복잡했다.

'무슨 자연재해를 상대하는 것도 아니고...

유준처럼 메테오 마법을 쓰는 마법사들도 여럿 있었지만, 운석의 크기와 강도가 차원이 달랐다.

'이 상황을 이용하자.'

그녀는 이쪽으로 밀려오는 플레 이어들을 목표로 잡았다.

혼비백산해서 도망치는 그들은 그녀에게 아주 적당한 먹잇감이었다.

아무래도 순위로 보상이 정해지는 이벤트이다 보니, 큰 무리를 맺는 플레이어들은 없었다.

살아남기만을 원하는 플레이어들 만이 뭉쳤다.

물론 큰 의미는 없었다.

고레벨 플레이어들의 압도적인 화력 앞에서 애매한 수준인 그들이 모여 봤자였다.

그들이 불평했다.

"이럴 거면 왜 전부 다 소환한 거냐고. 레벨 높은 놈들만 이벤트 참여하게 하면 됐잖아."

"그러니까. 괜히 기분 찝찝하게 죽기밖에 더해?"

"그냥 최대한 오래 버텨 봐야지. 그것만으로도 꽤 높은 업적 판정을 받을걸?"

"누가 이런 이벤트를 생각해 낸 거야?"

"시스템이겠지."

"넌 시스템이 자유 의지를 갖고

뭘 했다고 보냐? 난 신들이 배후에 있다고 본다."

"신은 없어."

"있어, 인마."

고레벨 플레이어들이라고해서 안전한 것은 아니었다.

콰콰쾅!

"억!"

"바, 방심했다."

어디선가 날아온 마법 공격에 맞 아 허무하게 목숨을 잃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자신의 몸을 보호할 수단을 가진

플레이어들도 그걸 무한정 지속할 수 있지 않은 이상 살아남기 힘들었다.

생존 난이도 극악.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말이었다.

이벤트가 시작되고 3시간 정도가 지났다.

이제는 눈에 띄게 플레이어들의 수가 줄어들었다.

초원이 플레이어들의 피로 붉게 물들었다.

'다 흩어졌네.'

유준이 혀를 찼다.

이제는 많은 수의 플레이어를 한 번에 쓸어버리는게 어렵게 되었다.

애초에 그의 무력을 알고 있는 플레이어들이 그가 있는 곳에서 최 대한 멀리 벗어나려 했다.

그때부터 유준은 검을 들었다.

서걱!

가끔 그를 몰라보고 덤벼드는 플레이어 혹은 한눈을 팔고 있는 플레이어들의 목을 베었다.

[1 위. 신유준 - 9,353,452 처치]

[2위. 클레오라 - 256,904 처치]

[3위. 제페토르 - 188,344 처치]

[4 위....]

사실 자신이 처치한 플레이어 수를 생각하면, 지금의 행동은 큰 의 미는 없었다.

'1위는 거의 확정이니까 처치 수는 상관없어.'

그의 목표는 검술의 향상이었다.

특성 보석(상)까지 부착된 SSS둥 급의 검술 특성.

등급만으로도 이미 그에게 충분

한 힘이 되어 줬지만",

유준의 기준으로 아직 완벽하다 고는 할 수 없었다.

실전 감각과 경험이 더 필요했다.

특히 이런 난전에서 검술을 제대 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숱한 경험은 필수에 가까웠다.

'가진 힘에 비하면 내 경험이 너무 일천해.'

지금 이때가 아니면 검술을 단련 할 기회가 많이 없었다.

[플레이어의 숫자가 300,000 이 하로 떨어졌습니다!]

[지금부터 순위권에 든 플레이어 의 머리 위로 순위가 표시됩니다!]

"무슨 의미지? 순위가 뜨면 좋은 게 있나?"

당연하지만 시스템에게서 대답은 없었다.

그는지금 혼자였다.

파라네트는 소환수이니까 죽어도 상관이 없어 딴 곳으로 보내 버렸고,

강자 축에 드는 혼족 두 명도 슬 슬 사냥에 나섰기 때문.

뻘쭘해진 유준이 머리를 긁적였다.

'파라네트도없이 혼자인 건 진짜 오랜만이네.'

항상 누군가랑 같이 다녔다.

그 사람이 자신에게 크게 도움이 되지는 않는 사람이었어도.

'나도 외로움을 느끼는 건가?'

그걸 이상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는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게임을 좋아하는,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당연히 그럴 수 있었다.

'그런 것치고는 내가 너무 멀쩡 하긴 하지만...

혼자 다니는 것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속시원한 느낌도 있었다.

유준이 검으로 또 한 명의 목을 베었다.

그의 간결한 동작 하나에 플레이어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쟤 1위잖아! 도망쳐!"

"플레이어를 혼자 90만 명 죽인 괴물을 우리가 어떻게 상대해? 이 건 아니지!"

"재수도 없지. 저런 놈이 왜 하 필 여기로 오는 거야?"

"이번엔 검으로 죽이고 다니네? 저 사이코 새끼!"

"차라리 마법만 써! 그럼 어디 있는지 파악이라도 하지!"

플레이어들이 기겁하며 도망쳤다.

"이런 식으로 순위가 표시되는 건가? 귀찮게 됐네."

유준은 도망치는 자들을 굳이 쫓 지 않았다.

가까이에 있는 적부터 천천히 처 리해 나갔다.

"아오! 왜 하필 날 따라오는 거야!"

유준의 새로운 목표가 된 플레이어가 필사적으로 도망치면서 소리쳤다.

그런데 속도가 좀 빠르다.

아니, 많이.

"좀 봐줘! 1위 친구!"

이런 플레이어는 처음이었다.

유준은 발을 쉬지 않고 놀리면서 상대를 유심히 살펴봤다.

[50위. 예페]

그의 머리 위에는 이런 홀로그램 이 떠 있었다.

"순위권에 드신 분이네."

"마, 맞아! 그러니까 이대로 죽긴 내가 너무 아쉽고 억울하거든? 네 가...아니 당신이 아량 좀 베풀어 주세요! 부탁입니다!"

나이가 지긋한 얼굴의 플레이어

가 저러니 마음이 약해졌다.

"수천만 플레이어 중에 50위면 진짜 대단한 건데, 사실."

"맞습니다! 맞습니다! 제가 운이 좋아서 과분하게 높은 순위에 들었 거든요!"

유준이 순위표를 봤다.

그의 눈동자가 살짝 아래로 움직였다.

[50위. 예페 — 13,221 처치]

[51 위. 조수아 - 13,190 처치]

[52위. 페르시 영 - 12,780 처치]

[53 위....]

"...."

익숙한 이름이 있었다.

조수아.

"50위랑 51위랑은 보상 차이가 클 겁니다! 저 여기서 죽고 싶지 않아요. 부탁입니다. 그만 쫓아와 주십쇼."

"50위랑 51위가 받는 보상은 차 이가 있을 거 같긴 한데."

"예. 그러니까 제발!"

울먹이면서 말하는 예페의 모습.

"마음 약해지니까 그만 해요. 그 리고 안심하세요."

"오, 그럼..."

순식간에 휘둘러진 검.

서걱!

예페는 그렇게 목숨을 잃었다.

밝게 웃는 얼굴 그대로.

'내가 행복하게 보내 줬네.'

유준이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6권 1화

123화

예페에게는 미안하지만, 유준은 조수아를 위해 자비없이 검을 휘 둘렀다.

'아니, 사실 미안하지도 않지만.'

평정심 때문인지는 몰라도, 예페 가 무척 가식적인 인물이라는 것이 한눈에 보였다.

어차피 여기서 죽는다고해서 실 제로 목숨을 잃는 것도 아니고,

그를 죽이는 것에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그가 예페를 죽임으로써 순위가 변동되었다.

조수아의 순위가 50위가 된 것이다.

뿌듯했다.

사실 조수아가 어떻게 되든 큰 상관은 없었다.

그래서 혼자 행동하도록 내버려 둔 것이기도 하고.

그렇다고 아예 남은 아니었다.

이벤트가 끝이 났을 때. 마신 추

종자들을 상대할 때 조수아의 무력 이 눈에 띄게 상승해 있으면 그에게도 좋은 일이었다.

'잠깐만.'

그럼 조수아보다 높은 순위에 있는 플레이어들을 전부 죽이면….

조수아를 최대 2위로 만들 수 있었다.

솔직히 초원이 넓어서 실현 불가능하지만, 노력은 해 볼 수 있었다.

그의 목표가 정해졌다.

순위권에 든 플레이어들을 죽이는 것.

사실 조수아는 핑계에 가까웠다.

'전투 감각을 더 끌어 올리려면 되도록 강한 놈들이랑 싸우는게 좋으니까.'

이 정도 인원이 남은 순간부터는 처치 수를 늘리기 위해 돌아다니는 건 큰 의미가 없었다.

'진작 이럴 걸 그랬네.'

앞으로 남은 플레이어는 수십만 정도.

처음과 비교하면 100분의 1 정 도로 줄어든 셈이었다.

시간이 넉넉하다고는 할 수 없는

상황.

유준이 서둘러 움직였다.

'파라네트.'

그가 속으로 파라네트를 불렀다.

소환수인 파라네트와는 영혼이 연결되어있는 느낌이라 녀석이 어 디에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멀리서도 부르는 것이 가능했고.

파라네트는 역소환을 당해서 죽 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녀석은 곧바로 공간 이동 스킬을 사용해 유준에게 왔다.

"부르셨습니까!"

상당히 신이 난 듯한 모습이다.

오랜만에 제대로 된 전투를 했기 때문일까.

"웅. 너한테 부탁할 게 있어서."

"예! 명령만 내려 주세요!"

"공간 이동 셔틀 좀 해 줘."

"네? 셔틀이라는게 이동수단 아닌...

"평소처럼 하면 돼."

"예."

유준은 파라네트가 의기소침해지 든 말든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초원은 탁 트여 있다.

공간 이동을 활용하기에는 최적 의 장소.

유준은 시력을 극대화했다.

높은 민첩 능력치 덕에 아주 멀 리까지도 선명하게 보였다.

사람 머리 위의 홀로그램 글자까지도.

' 대박이네.'

이렇게까지 잘 보일 줄은 몰랐다.

그럴 만도 했다.

모든 칭호와 아이템들 효과를 계

산하면 민첩 능력치가 2,000을 돌 파하는 수준이었다.

'진짜 신이라도 된 거 같은데.'

멀리까지 내다보는 말도 안 되는 시력.

그리고 파라네트의 공간 이동까지.

"파라네트. 저기."

유준은 목표를 발견한 즉시, 파라네트에게 공간 이동을 지시했다.

"예!"

그곳에는 33위와 41위 플레이어 가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두 명 다 검을 쓰고 있었다.

'유독 무기를 검으로 쓰는 사람 이 많네.'

왜인지는 모르겠다.

33위 플레이어는 한국인으로 보이고, 41위 플레이어는 유준이 잘 모르는 생소한 종족이었다,

둘은 막상막하였고, 그로 인한 여파가 엄청났다.

그들의 살벌한 전투에 끼어들려는 플레이어는 없었다.

유준을 제외하고는.

[1 위. 신유준]

1위라고 적힌 홀로그램을 머리 위에 달고 나타난 그는 플레이어들 의 이목을 끌 수밖에 없었다.

"신유준?"

"아까부터 계속 1위였던 플레이어잖아."

"플레이어도 별로 없는 여길 왜 온 거지…?"

그쯤 되자, 정신없이 싸우던 순 위권 플레이어 둘도 유준을 눈치챘

다.

".…"1 위?"

"미, 미친."

예상치도 못하게 스케일이 확 커 졌다.

플레이어들이 빠른 속도로 흩어 지기 시작했다.

순위권 플레이어 두 명도 마찬가 지였다.

둘은 언제 싸웠냐는 듯, 사이좋 게 도주했다.

안 그래도 순위가 표시된 뒤부터 그만 보면 도망치던 이들이 과반수

였다.

이 정도는 예상했다.

'굳이 더 빨리 움직일 필요는 없지.'

유준은 오랜만에 절대지기(SSS) 스킬을 활용했다.

자신보다 약한 상대에게 아주 강 력한 위압감을 주는 것.

상대가 등을 돌리고 있는 상태여 도 효과는 똑같이 적용되었다.

"어, 엇"

아예 못 움직이는 수준까지는 아니었지만, 발이제대로 움직여지지

않는다.

쿵!

41위, 말릭이 피로 얼룩진 풀밭을 꼴사납게 나뒹굴었다.

33위 플레이어, 장대현도 마찬가 지였다.

넘어지지는 않았지만, 무언가에 붙들린 듯 다리를 놀려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이게 뭐야, 도대체?"

아까 서로를 죽이려 싸웠던 둘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마주 바라봤다.

별안간 이게 무슨 일인지 이해를 못 하겠다.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했던 유형 의 스킬 때문이었다.

포박이나, 상대를 묶는 마법들은 대비할 시간이라도 있지만,

절대지기는 달랐다.

유준이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금세 플레이어 둘이 있는 곳으로 이동한 유준이 주위를 둘러봤다.

'구경하는 플레이어가 열다섯. 순 위권에 든 사람은 없네.'

나머지 플레이어에게는 관심이

크게 없었다.

"자, 잠시만요. 이거 밸런스 붕괴 잖아요. 왜 1위가 여길 오는 건데요?"

한국인 장대현이 소리쳤다.

유준이 황당한 얼굴로 되물었다.

"예? 그게 무슨 개소리…?"

"생각해봐요. 너무하잖아요. 당신 이 나타나면 안 되죠. 애들 싸움에 어른이 낀 격 아닙니까?"

"둘 다 성인인데?"

"아니 말이 그렇다는 거지. 비유 적인 표현…."

"플레이어들끼리 싸우는데, 애 어른이 어디 있어."

유준이 검을 위로 들었다.

"여기서 이리 허무하게 죽을 수 느.."

33위와 41위 플레이어가 허망한 표정을 지었다.

하필 유준의 눈에 띈 것이 그들 의 패착이라고 볼 수 있었다.

서걱! 서걱!

순위권 플레이어 두 명이 그렇게 탈락했다.

조수아의 순위가 48위로 올라갔

다.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플레이어들의 수가 3만에 못 미 치게 남았다.

목표인 1만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점.

유준은 그동안 총 20명의 순위권

플레이어들을 죽일 수 있었다.

플레이어들은 하나같이 억울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럴 만도 했다.

어렵게 어렵게 순위를 올려놨는데, 1위 플레이어가 갑작스레 나타 나 죽이려 들었으니까.

반항하던 플레이어들이 있었지만, 그래 봤자다.

유준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중에는 마신 추종자도 두 명이 있었다.

'이벤트가 시작되기 전에 마주쳤

던 마신 추종자들을 만날 줄은 몰 랐지.'

놈들은 예상했던 대로 높은 순 위, 30위권에 있었다.

'더 강한 놈들도 있다는 거지.'

그 위가 전부 마신 추종자일 것 같지는 않았다.

추측해 보건대 조율 멤버 몇 명 과 숨겨진 고수들이 있는게 아닐까.

'하여튼 확실히 검술이 늘고 있는게 보여.'

전부 다 일격에 죽이고 있기는 하지만, 어떻게 하면 상대를 더 손

쉽게 죽일 수 있을지 알게 된 느낌이다.

그때였다.

콰콰콰콰쾅! 콰콰쾅!

엄청난 폭음이 먼 곳에서 들려왔다.

땅을 거세게 흔드는 진동도 함께였다.

시뻘건 화염이 높이 피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 오?'

유준의 눈이 이채를 띠었다.

보통 화력의 마법이 아니었다.

놀라울 정도로 대규모의 마법.

'이런 마법을 쓰는 플레이어가 있었나?'

그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한걸음에 달려갔다.

그에게 있어 이번 이벤트는 놀이 터나 다름없었다.

순위권 플레이어가 한 명이 보였다.

그를 피해 흔비백산하며 도망가는 몇몇 플레이어들이 보였다.

방금 폭발에서 겨우겨우 살아남은 이들이었다.

유준은 좀 더 가까이 접근했다.

오연한 자세로 서 있는 한 플레 이어가 있었다.

그 플레이어의 주위는 다른 존재 들의 시체로 가득했다.

'혼자 다 죽인 건가.'

강해 보였다.

유준은 자신이 지금껏 만난 어떤 적보다 저 앞의 남자가 강하다는 걸 단번에 알았다.

'처음 보는 종족이야.'

마족과는 정반대의 느낌을 풍기는 사내.

체격이 좀 많이 컸다.

인간과 비슷한 생김새지만, 2m는 될 법한 신장을 지녔고 어마어 마하게 큰 근육들이 온몸을 뒤덮고 있었다.

그 사내의 머리 위 홀로그램에는 이러한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3위. 캐스턴]

'과연….'

이곳 지역에서 3위를 차지할 정 도의 실력이라.

"1 위?"

더 놀란 쪽은 캐스턴이었다.

압도적인 처치 수로 1위 자리를 사수하고 있는 유준.

이번 이벤트에서 캐스턴이 1등 할 방법은 유준을 죽이는 것뿐이었다.

처치 수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었다.

아니, 상황상 불가능했다.

남은 플레이어의 수는 이제 수십 만에 불과하고, 유준의 처치 수는 이미 90만을 넘겼으니까.

캐스턴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긴 했는데.'

캐스턴은 대륙의 정세에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떠오르는 강자인 유준을 알지 못했다.

'90만이라는 수치는 결코 헛된 게 아니야. 나보다 강할 확률이 높다.'

캐스턴의 얼굴에 긴장이 어렸다.

죽이지 못하면 죽는 건 자신이

된다.

3위까지 올라갔는데 허무하게 죽 고 싶지는 않았다.

그 어떤 플레이어라도 같은 마음 이리라.

" 이봐."

캐스턴이 먼저 입을 열었다.

"웅? 왜?"

"제안할 게 있다."

"제안?"

"이벤트가 끝날 때까지 서로를 건드리지 않는 것. 어때? 굳이 서로 불필요한 싸움을 할 필요는 없

지 않은가. 위험부담도 크고."

"위험부담이 큰 건 너겠지."

" 뭐?"

"왜 서로 불필요한 싸움이야? 넌 날 죽이면 2위로 올라설 수 있는데."

"그건 2위든 3위든 보상이 큰 차 이가 없…."

"2위랑 3위랑 보상 차이가 없다고? 진짜로 그렇게 생각해?"

누가 봐도 말도 안 되는 변명이었다.

이 지역에 참여한 수천만 플레이어 중 2위를 차지하는 것과 3위를 차지하는 것.

그에 따라 받는 보상은 급이 다를 것이다.

유준도, 캐스턴도 숱한 경험으로 그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캐스턴은 그저 유준과의 싸움을 피하고 싶을 뿐이었다.

"정녕 나와 끝을 보겠다는 건가?"

유준은 대답하지 않고 주위를 쭉 둘러봤다.

다른 순위권 플레이어는 없었다.

'마음 놓고 싸우면 되겠군.'

사실 누가 있어도 큰 상관은 없었다.

유준이 검을 들었다.

캐스턴이 전에 대규모 마법을 쓰 긴 했지만, 마법사라고 단정할 수 없었다.

등 뒤에는 큰 창이 하나 매여 있었으니까.

'일단 좀 볼까.'

유준이 땅을 박차고 앞으로 튀어 나갔다.

꽤 먼 거리를 단숨에 좁힌 유준 이 검을 단순한 경로로 휘둘렀다.

빠르기만 한 게 다인 공격.

그러나 빨라도 너무 빨랐다.

캐스턴이 헛숨을들이켜며 뒤로 몸을 쭉 내뺐다.

그의 이마에 혈선이 그어졌다.

재빨리 움직인 탓에 얕게 베인 정도에 그쳤다.

간담이 서늘해진 캐스턴이 침을 꿀꺽 삼켰다.

'쾌검을 극도로 단련한 플레이어 인가?'

그렇다고 하기엔, 저 남자의 플레이어 처치 수가 믿기지 않는 수 준이었다.

검을 들긴 했어도 마법사에 더 가까운 존재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1위 플레이어의 무력이 어느 정 도인지 대강은 알았다.

지금부터는 죽지 않기 위해서 움직여야 했다.

캐스턴이 급하게 마력을 끌어 올렸다.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6권 2화

124화

유준은 마음을 급하게 먹지 않았다.

캐스턴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하고 싶었다.

그래서 처음부터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

동네 마실이라도 나온 것처럼 사 뿐사뿐 움직이며 캐스턴을 압박했다.

후웅! 흥!

유준의 검이 연달아 허공을 갈랐다.

그간 그의 검을 제대로 보고 피 한 존재는 많지 않았다.

캐스턴의 회피 능력은 파라네트 이상이었다.

그러나 죽기 살기로 이를 꽉 악 물고 유준으로부터 도망치고 있는 것뿐.

여유롭게 피해내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뭐 이런 괴물이 다 있어!'

캐스턴은 이렇게까지 자신이 내

몰린 적이 있나 생각했다.

없었다.

그 어떤 상대든 간에 그의 우월 한 전투 재능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는 무얼 하든 남들보다 앞서 있었고, 강력한 힘으로 기연도 많 이 얻었다.

'신화 등급 아이템도 두 개나 착 용하고 있는데, 그런데도 밀린다고?'

후웅! 슥!

긴 머리칼이 잘려나갔다.

절묘하게도 관자놀이가 드러날 정도로 깔끔하게 잘렸다.

캐스턴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날 가지고 노는 건가?"

"그건 아니고 그냥 실력 좀 보는 건데?"

"...어이가 없군."

자존심이 상했다.

하지만, 지금은 살아남는 것이 우선이었다.

여기서 죽어도 실제로 죽는 것은 아니지만, 이벤트에서 조기 탈락하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싫었다.

' 인벤토리.'

캐스턴은 이대로는 얼마 못 버틸 걸 알았다.

그래서 인벤토리에서 해결책을 찾기로 했다.

'지금 이 공간만 당장 벗어나면 된다.'

그에게 진정으로 위협이 되는 적은 눈앞의 인간뿐이었다.

칠흑색의 공간이 허공에서 갑자 기 생겨났다.

캐스턴이 손을 뻗으려는 그때였다.

압도적인 양의 마력이유준의 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거기서 끝난 게 아니다.

공간 장악.

유준은 공간 장악을 사용해 캐스 턴이 아예 못 움직일 정도로 적당 하게 압력을 넣었다.

그것으로 전투는 끝이 났다.

공간 장악을 피하지 못하고 범위에 든 이상, 캐스턴이 어찌할 방도는 없었다.

"너 도대체 정체가 뭐야?"

"무슨 질문이 그래? 난 나야."

유준을 모르는 이는 대륙에 거의 없었다.

1년 차 플레이어, 인간이 그 어 떤 플레이어보다 강하다는 소리를 듣고 있으니.

알 만한 이들은 지규태가 더 위 라고 평가했지만, 그 수는 극히 적었다.

유준은 새로운 돌풍.

아니, 돌풍을 넘어서서 폭풍에 가까운 존재였다.

그런 그를 몰라보는 캐스턴이 특

이한 것이었다.

"너 그나저나 무슨 종족이냐?"

유준이 뜬금없이 건넨 질문에 캐 스턴이 입을 꾹 다물었다.

"알 거 없다. 얼른 죽여라."

어차피 살려 두지 않을 걸 안다.

다 잡은 먹잇감.

지금 캐스턴의 처지는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아니. 말하면 안 죽일게."

"...더러운 혓바닥을 놀리는군. 그런 소릴 믿을 성싶은가. 속지 않는다."

"아니. 진짜로."

"아니, 믿어 봐. 내가 널 꼭 죽여 야만 하는 이유는 없어. 이미 1위 잖아 나는. 너 죽여 봤자 경험치도 안 오르고. 기껏해야 처치 수 1이 늘겠지."

"훙. 인간은 거짓말을 능청스럽게 잘한다고 들었다. 너라고 다를 것 같지는 않군."

"아니? 난 아닌데?"

"그 아니라는 단어 좀 그만 쓰면 안 되나? 듣기 싫어 죽겠다."

"아니? 싫은데."

어디서 한국인의 고질적인 버릇을 고치려고.

어림도 없었다.

유준이 단호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내 질문에 대답부터 해. 안 죽 인다니까? 한 번만 믿어 봐. 세상은 그렇게 삭막하진 않아."

어차피 자력으로 도망갈 방법은 없었다.

캐스턴은 그걸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방법은 단 하나뿐이라는 걸 알았다.

그가 깊은 한숨을 내쉬고 입을 열었다.

"난 고대에 멸족됐다고 알려진 용아족이다."

"용아족?"

유준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들어 본 적은 있다.

신들의 전쟁에서가 아니라, 이 무한의 탑 대륙에서.

용아족은 캐스턴의 말대로 이미 멸족된 종족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럼 용아족은 너 하나 남아 있는 거야?"

"모른다. 난 그저 어느 순간 태 어났을 뿐, 누군가에 의해 길러진 것이 아니니까."

"다른 용아족을 만나 본 적은 없어?"

"그래."

신기했다.

용아족이라 하면 드래곤과 다른 종족의 피가 섞인 종족.

'그래서 마법을 잘 다뤘던 건가?'

신화 등급 장비 두 개를 제외한

나머지 아이템이 너무나 부실했다.

그런데도 저 정도 무력이라면.

캐스턴은 확실히 실력 있는 놈이었다.

뭐, 강하다는 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실제로 본 플레이어 중에 제일 강하긴 하니까.'

유준이 검을 들었다.

그는 당장이라도 검으로 내려칠 듯한 자세로 섰다.

"자, 잠깐 안 죽인다며!"

캐스턴이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유준이 방긋 웃었다.

"인간을 믿어?"

"이, 이 비열한 새끼가. 넌 내가 꼭 죽이고 만다."

"어떻게?"

"이벤트가 영영 안 끝나길 바라는게 좋을 것이다."

캐스턴이 분노해서 험한 말을 내 뱉기 시작했다.

유준이 피식 웃었다.

"사실 안 죽일 거야."

".…"응?"

"난 약속은 지켜."

안 지킨 적이 훨씬 많았지만, 일단 그렇게 말은 해 뒀다.

캐스턴의 얼굴이 살짝 밝아졌다.

"미, 믿고 있었다."

"대신에. 한 가지 제안할 게 있어."

"제... 제안?"

캐스턴이유준에게 처음 했던 말 이제안하겠다, 라는 말이었다.

그걸 유준이 그대로 돌려 말한 것이다.

"무슨 제안을 말하는 거지?"

"파티를 맺자. 어때?"

"파티라고?"

"응. 파티. 같이 사냥하는 거. 뭔 지 알지?"

"모를 리가 없지."

"파티를 맺은 경험은? 있어?"

"예전에 한두 번 해 보긴 했다만, 금방 싫증이 나서 혼자 다녔다."

"싫증? 왜?"

"같은 파티가 된 놈들이 날 이용 하려는 심보가 훤히 보였기 때문이다."

"단순히 그거 때문에?"

"내 아이템을 탐내기도 했고. 그 이후로는 파티를 맺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지."

"그랬구나."

유준이 캐스턴을 물끄러미 바라 봤다.

그와 파티를 맺으려는 이유는 두 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

그를 죽여서 자신이 얻을 이득이 거의 없다는 것.

그래 봐야 조수아의 순위가 한

개 더 오르는 정도였다.

두 번째.

캐스턴이 멸족했다고 알려진 용 아족에 무척이나 강한 무력을 지니 고 있기 때문이었다.

유준이 앞으로 상대해야 할 적은 조율뿐만이 아니다.

전력 파악이 안 된 마신 추종자 들도 그의 적이었다.

만약 일이 잘 안 풀리면 마신과 붙어야 할 수도 있었다.

'태초의 플레이어가 했던 일은 약과였지.'

가상 전장으로 간접 경험한 바가 있다.

마신 없는 마신 추종자들.

'내가 그때 태초의 플레이어보다는 확실히 더 강해.'

그러나 지금의 마신 추종자들 또 한 과거와 비교할 수없이 강해졌다.

전만 해도 500레벨이 넘는 마신 추종자가 없었는데,

지금은 심심치 않게 600레벨이 넘는 녀석도 발견되었으니까.

강력한 동료를 만들어 두는 것은

마신을 대비하는 것에 있어 아주 중요한 일이었다.

굳이 동료가 아니어도 좋다.

그때 전력으로 쓸 인원이 한 명이라도 늘면 이득이었다.

"하여튼. 파티를 맺자. 너도 손해는 아니잖아? 이벤트도 3위인 채로 계속 진행할 수 있고."

"확실히 그렇군…."

이만한 기회는 없었다.

유준과의 격차는 짧은 전투로 절 실히 느꼈다.

아니, 그걸 전투라고 할 수 있을

까.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했으니, 전 투라고 하기엔 어폐가 있었다.

믿을 만한 동료.

'솔직히 믿을 만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본 누구보다 강하 다는 건 알겠어.'

캐스턴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파티를 맺지."

유준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당연히 수락할 거라 생각했다. 그가 살아날 길은 그것밖에 없었

으니까.

그리고 그게 둘에게 더 이득이었다.

"이제 난 뭘 어쩌면 되지?"

"그냥 할 일 하고 있어. 나중에 필요하면 부를 테니까."

"...그게 다인가?"

"아, 메신저 교환이나 하면 되겠다."

"그러지."

얼떨결에 서로의 목숨을 노리는 관계에서 파티를 맺고 메신저 교환을 한 사이가 되었다.

캐스턴은 이 급변한 상황에 머리를 긁적였다.

'좋은 게 좋은 거지.'

인간과 파티를 맺는다는게 껄끄 럽기는 하지만, 어찌 됐든 잘 풀리 지 않았는가.

1지역, 2지역,

3지역, 4지역.

모든 지역에서 분쟁이 끝났다.

각 지역에서 목표했던 인원에 도

달했기 때문이다.

오르테안 궁전.

이곳에서는 여러 명의 하급 신들이 모여 있었다.

대부분이 7, 8급 신으로 꽤 유망 한 이들이었다.

"어때?"

"나쁘지 않아. 대체로 예상했던 대로 흘러가고 있어. 근데 문제

"문제는?"

"직접 보고 판단해 봐."

한 하급 신이 영상구에 마력을 불어 넣었다.

그 영상구는 피로 가득 찬 전장, 높은 상공에 있는 홀로그램 창을 송출했다.

[1 위. 신유준 - 9,556,457 처치]

[2위. 클레오라 - 269,235 처 치]

[3위. 캐스턴 - 198,344 처치]

"뭐야, 이게?"

"순위표인데 조금...

"이거 수치가 잘못 나온 거 아니야?"

"아니라는 거 알잖아. 시스템은 실수 안 해."

"그럼 이건 뭔데?"

"보이는 그대로야."

"여기가 몇 지역이지?"

"1지역."

"미쳤네. 신유준이라는 인간. 저 거 신이나 반신이 위장하고 간 거 아니야?"

"그럴 수도 있겠다. 저 수치만 보면...

그들의 말을 듣던 다른 신, 네르 가 코웃음쳤다.

"신이 인간으로 위장해서 얘들 장난에 껴든다고? 농담도 정도가 있지. 그리고 신이라고해서 다 강 한 게 아니잖아."

"그렇긴 한데. 혼자 구백만을 넘 게 죽였다잖아."

"마냥 불가능한 건 아니지. 시스템에 무슨 문제가 생긴 것도 아니 고 그냥 저 플레이어가 유독 강한 거야."

네르가 단언했다.

다들 입을 뻐끔거렸다.

네르는 무한의 탑의 배경이 되는 '신들의 전쟁'을 만든 7급 신.

그녀의 말에는 당연히 힘이 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때 한 하급 신이 딴지를 걸었다.

"근데 네가 특혜 줬던 플레이어 가 저 인간 아니야?"

"맞는데, 왜?"

"그래서 감싸고도는 거였구나?"

"뭘 감싸고돌아? 난 그냥 저 플레이어가 강한 거라고 말한 것뿐이야."

"어떤 특혜를 줬는데?"

"평정심 특성을 줬어. 등급으로. 분명 등급에 비해 좋긴 해도 그다 지 유별난 특전, 특혜는 아니지?"

"그럼 더 이상한 거 아니야? S둥 급 특성 하나 얻고 저렇게 강해진 다고? 불과 반년도 안 돼서?"

"...맞아. 나도 납득이 잘 안 가는데?"

"평정심 특성이 좋은 특성으로 유명하긴 한데. 그것 하나로 저 정 도로 강해질 수 있나?"

다른 하급 신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 듯했다.

네르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저 플레이어 재능이 뛰어난 거겠지. 뭔 의심들이 그리 많아. 혹시 남들 몰래 후원하고 있는 플레이어 가 신유준한테 죽기라도 한 거야? 아니면 순위가 그 아래에 있다던지. 아, 무조건 밑에 있겠구나."

핵심을 찌르는 네르의 말에 궁전에 정적이 찾아왔다.

"그럴 줄 알았어."

"아, 아니 꼭 그런 이유 때문은 아니고...

그때 아까 태클을 걸었던 하급 신이 입을 열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900만이라는 처치 수는 말이 안 돼. 아, 물론 저 숫자가 나올 수야 있겠지. 상황이 좋고 운이 좋고 실력도 매우 뛰 어나면 말이야. 근데 저 신유준이 라는 인간은 플레이어가 된 지 몇 달 안 된 풋내기잖아."

"그래서?"

"네르. 네가 인과율은 생각 안 하고 어마어마한 특전을 준 거 아니야?"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6권 3화

125화

특전.

확실히 어떤 특전을 주느냐에 따라서 플레이어들의 성장 폭이 달라 진다.

그 차이는 매우 컸다.

특전 하나에 어떤 플레이어는 꽃을 피우기도 전에 생을 마감하기도 하고,

어떤 플레이어는 재능이 만개해 대륙에 큰 위명을 떨치기도 했다.

그리고 대부분 하급 신들은 자신이 밀어주는 플레이어에게 몰래 특 전을 하나씩 선물해 줬다.

네르가 무과금즐겜러 캐릭터의 인벤토리를 유준에게 준 것처럼.

하급 신들은 네르가 준 그 특전에 대해서 의심하고 있었다.

네르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왜 자꾸 신유준의 특전에 대해서 왈가왈부하는 건데? 난 너희들이랑 똑같이 했을 뿐이야. 심지어 신유준은 무한의 탑을 만드는데 일조한 사람이야. 더한 보상을 줘 야 마땅하다고 보는데?"

"맞아. 네르 네 말은 틀린 게 없어. 그런데 그 보상이 너무 과하다 고 생각해. 나는 그래. 너희들 생각은 어때?"

"으음... 그냥 우리한테 알려 주면 안 돼? 신유준한테 어떤 특전을 줬는지. 그러면 바로 해결되는 문제잖아."

그 말에 네르는 대답할 수 없었다.

만렙 캐릭터.

그것도 과금을 미친 수준으로 했 던 캐릭터의 인벤토리의 아이템들을 그대로 옮겨 줬다는 걸,

그 사실을 다른 신들이 알면 난 리가 날 것이다.

아니, 신계 전체가 뒤집힐 것이 뻔했다.

곧이곧대로 말할 수 없는 노릇이다.

"특전을 자세히 말하면 경쟁자들 한테 괜한 정보만 뿌리는 거밖에 더 돼?"

하급 신들은 자신이 후원하는 플레이어를 각자 적게는 수 명, 많게는 수십 명씩 두고 있었다.

'누가 누굴 나무라는 건지 모르겠다니까.'

사실 그 어떤 개입도 하면 안 된 다는 규율이 있지만, 플레이어를 후원하는 행위는 신들 사이에서 공 공연하게 벌어졌다.

반면, 네르는 딱히 플레이어를 후원하고 있지는 않았다.

그저 신들의 전쟁을 플레이했던 모든 유저들에게 특전 한 개씩 쥐 여 준 정도.

그녀에게 큰 도움을 줬던 신유준에게도 첫 특전 이후로 무언가를 더 주거나 한 적이 없었다.

그는 알아서 잘 성장했고 강해졌다.

무얼 할 필요가 없었다.

"일정 이상의 특전을 줄 수 없는 건 너희들도 잘 알잖아? 그런데 왜 난리야."

네르의 말대로,

하급 신이 할 수 있는 건 한계가 있었다.

네르가 유준에게 인벤토리 특전을 주는게 가능했던 것도,

무과금즐겜러 캐릭터를 유준 본 인이 직접 육성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네르가 재량껏, 인과율의 간섭을 받지 않고 인벤토리 특전을

주는 것이 가능했던 이유였다.

'이걸 저들한테 말할 순 없지.'

신들의 전쟁이라는게임이 있었 던 건 신들 모두가 알고 있다.

그 게임을 네르가 만들었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그래서 하급 신들은 유독 네르와 관련된 일에 더 크게 반응했다.

"하여튼. 난 찔릴 만한 짓 한 거 없어. 적어도 너희보다는. 신유준도 본인이 재능 있으니까 강해진 거고. 너희들이 후원하는 플레이어들은 그보다 못 미칠 뿐인 거야."

"그러니까 괜히 날 견제하려 하지마. 아무 의미 없는 짓이니까."

그녀는 이미 상급 신들이 눈독들이고 있는 7급 신이다.

암묵적으로 다른 하급 신들보다는 훨씬 높은 위치인 것.

그래서 다들 조심스러운 분위기였다.

네르는 그렇게 할 말만 하고 자 리를 떠 버렸다.

남은 하급 신들의 말문이 터졌다.

"와, 쟤 왜 저렇게 재수 없어졌지?"

"7급 됐다고 너무 우릴 우습게 보는데?"

"짜증 나."

"죽었으면 좋겠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그때 내내 조용히 있던 한 하급 신이 끼어들었다.

"근데 그럴 만도 한 게, 미래가 보장되어 있잖아. 우리랑 다르게."

"공모전 당선된 것만으로도 부러

워 죽겠는데, 점찍은 플레이어가 이번 이벤트에서 1위까지 차지했어. 당연히 기세등등해지지 않을까, 누구라도?"

"…하고 싶은 말이 뭔데?"

"질투 좀 그만하라고. 어차피 네 르는 이제 우리와는 급이 달라졌어. 우리는지금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 면 되는 거야. 그럼 언젠가 네르처 럼 성공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걔는 그냥 운이 좋았을 뿐 이...

"정말 그렇게 생각해?"

"완전한 운은 없어. 기회가 왔을 때 잡는 자가 성공하는 거야. 불평 만 하면 발전은 없어."

"쳇. 잘난 척은. 알았다고."

"알면 됐어."

* * *

지역에서 1만 명씩, 총 4만 명이 첫 이벤트에서 살아남았다.

억 단위가 넘는 플레이어들이 참 여해서 겨우 이만큼 남은 것.

4만 명 안에 든 플레이어들의 표 정은 힘든 전투를 막 끝마쳤음에도 밝은 편이었다.

"이거 보상이 진짜 어마어마하겠는데?"

"그러게. 경쟁률이미친 수준이었잖아."

"우리도 한몫 챙길 수 있겠지?"

"당연하지.야. 나 솔직히 내가 살아남을 줄은 몰랐다. 처음엔 조 금 자존심 상하긴 했는데 도망만 다니길 잘한 거 같아."

"나도 그냥 죽기 살기로 도망쳐 다니니까 어느새 끝나 있더라고. 운도 좀 좋았지."

"우리 좀 웃기긴 하다. 둘 다 400레벨이 넘는데 살아남은 이유가 도망 다녀서라니."

"다른 사람들은 어떤 보상을 받 으려나. 처치 수가 많을수록 이벤 트 보상도 더 커질 텐데."

"특히 순위권에 든 플레이어들은 진짜...

"야, 배 아프니까 그놈들 말도 꺼내지마. 왜 강한 놈들만 더 강 해지는 구조냐고. 조금 불공평한

데?"

"어쩌겠냐. 꼬우면 강해져야지."

"아, 맞다. 그거 봤어?"

" 뭐?"

"모든 지역의 처치 수 스코어가 공개됐잖아."

"그래? 나 못 봤는데."

"저기 하늘에 그대로 떠 있어. 한번 봐 봐."

"어디 보자...

"거기 말고, 저기 1지역 봐."

"1 지역?"

상공에 뜬 홀로그램 창을 쭉 보 던 플레이어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저게 뭐야? 95만?"

"그치? 미쳤지?"

"아니 잠깐만. 950만이잖아."

" 뭐?"

싱글벙글 웃고 있던 플레이어의 얼굴이 싹 굳었다.

"진짜네? 뭐야 그럼, 95만이 아니라 950만이었어?"

두 명이 할 말을 잃고 허망한 눈 길로 점수판을 바라봤다.

"저 신유준이라는 플레이어 혼자 만 단위가 다른 거 맞지?"

"응. 우리 둘 다 눈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저렇게 강한 놈이 우리 지역에 없어서 다행이다."

"재수 없으면 그냥 죽는 거 아니야. 대규모 범위 마법 막 남발하고 다녔을 텐데."

"근데 다음에 만날 거 같은데? 4

만 명 됐으니까 이제 한자리에 모 여도 이상할 거 없잖아."

"…야. 불길하니까 입 다물어."

"미, 미안."

950만이라는 처치 수.

덕분에 전 지역에 있는 플레이어들이 신유준이라는 이름 세 글자를 각인하게 되었다.

*

*

[첫 번째 이벤트 '대난전'이 종료 되었습니다!]

[당신은 총 9,556,457명의 플레 이어를 처치했습니다.]

[플레이어 '신유준'. 1지역에서 1 위를 차지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점수를 환산 중입니다.]

[보유 점수 : 9,556,457]

[보유한 점수로는 이벤트 중 열 리는 '만물상점'에서 여러 아이템을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뭐야. 점수만 주고 끝?'

살짝 아쉬웠다.

지금 당장 어떠한 보상을 주는 줄 알았는데.

심지어 레벨업 보상도 없었다.

하지만 너무 실망할 것도 없었다.

'보상을 뒤로 미룬다는 건 그만 큼 보상이 좋다는 의미니까.'

그거 하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신들의 전쟁을 플레이할 때도 항상 그랬다.

이런 식으로 점수를 매긴다는 것

o

'만물상점'이라는 곳에서 파는 물 건들이 절대 보통 수준이 아니라는 걸 뜻한다.

'오히려 잘됐네.'

무작위로 보상을 받는 것보다 그 가 원하는 아이템을 선택해서 구매 할 수 있는 것이 더 좋았다.

'내가 가진 아이템들을 보상으로 받으면 그것만큼 열불 터지는 일도 없으니까.'

유준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드리웠다.

'그다음 이벤트도 중요하겠지만,

일단 첫 번째 단추는 잘 끼운 셈이네.'

사실 잘 끼운 수준이 아니다.

그는 다른 지역 1위들과 비교해 도 압도적으로 높은 처치 수, 즉 점수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만큼 견제도 많이 들어올 것이다.

유준은 그간의 경험으로 1위가 가지는 무게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그를 죽여서 끌어내리려는 자가 한둘이 아닐 터.

굳이 죽이지 않더라도 어떻게든

방해하려 할 것이다.

'그게 아니면 나한테 빌붙으려고 하거나.'

전자든, 후자든 유준은 그러한 행동을 용납할 생각이 없었다.

'더 강해지려면 보상을 독식해야 해.'

그러면서도 믿음직스럽고 강한 동료도 있어야 한다.

그 혼자서 모든 걸 해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곧 직면하게 될 세상의 멸망 위 기.

그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선 동료는 필수였다.

'내가 만족할 만한 동료가 있느 냐가 문제지.'

아까 만났던 캐스턴이나 고레벨 플레이어인 조수아.

그 둘 정도가 아니면 만족할 수 가 없을 것 같았다.

적어도 마신 추종자는 상대할 수 있어야 하니까.

유준은 점수판을 바라봤다.

순위권에 있는 플레이어 중에 마신 추종자 쪽이 아닌 자는 몇 명이

나 있을까.

마신 추종자들이 비정상적인 방 법으로 강해지고 있는지금.

순위권은 마신 추종자들이 상당 수 차지하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내가 죽인 놈 중에도 마신 추종자들이 있었겠지?'

처치 수를 올리고자, 무차별적으로 마법을 난사했었다.

그가 죽인 950만의 플레이어 중에는 당연히 마신 추종자도 섞여 있었으리라.

'처치 수를 최대한 올려놓기를 잘했지.'

대충 예상은 했었다.

단순히 순위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처치 수도 중요하다는 걸.

'내가 신들의 전쟁을 했던 짬밥 이 있지.'

그리고 이렇게 이득을 봤다.

만물상점.

저기서 제대로 된 걸 얻으려면 이대로 안주할 수는 없었다.

두 번째 이벤트.

거기서 또 1위든 뭐든 해야 했다.

죽어서도 안 된다.

만약, 두 번째 이벤트에서 죽기 라도 한다면.

950만이라는 점수를 쌓은 것이 물거품이 될 공산이 컸다.

그런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됐다.

이제 남은 플레이어의 수는 정확히 39,999명.

마지막에 두 명이 한 번에 죽었는지 생존 숫자가 정확히 4만 명으로 딱 떨어지지는 않았다.

유준은 파티 창을 확인했다.

'혼족 둘이 죽었군.'

30만 명이 남았던 시점에서 둘이

움직였으니, 웬만해서는 살아남기 힘들 거라곤 생각했다.

그때는 주위에 전부 강자들밖에 남아 있지 않았을 테니까.

아쉽지는 않았다.

'지금 남은 전력이 파라네트랑 조수아 그리고 캐스턴 정도인가.'

마누엘라도 있다.

그녀는 이벤트가 시작되자마자, 찾아볼 게 있다면서 유준에게 메시 지만 남기고 홀로 떠나 버렸었다.

'파티에 남아 있는 걸 보니 아직 죽지는 않은 모양이네.'

마누엘라는 도대체 뭘 하고 다니는 걸까.

확실한 건 그녀는 이벤트에 제대 로 된 참여를 하지 않았다.

순위권에 들지 못했으니까.

'마누엘라 정도면 순위권에는 그 냥 들 수 있을 텐데.'

때마침 마누엘라가 상공에서 날 아왔다.

"뭐 하다 왔어?"

"희귀한 재료 아이템들 찾고 다 녔어."

"그런 게 있었어?"

"웅! 엄청 많던데?"

"그래서 그냥 이벤트는 신경도 안 쓰게?"

"이벤트로 얻을 수 있는 보상은 별로…. 여길 돌아다니면서 얻는 재료들이 더 탐났어."

"너도 참 특이하다."

마누엘라는 만족스러운 성과를 얻었는지 무척 밝은 얼굴이었다.

그리고 그때.

두 번째 이벤트의 시작을 알리는 홀로그램 창이 눈앞에 나타났다.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6권 4화

126화

[이번에 진행되는 이벤트는 협동 임무입니다.]

[두 번째 이벤트가 진행되는 동 안에는 파티 상태가 일시적으로 해 제됩니다.]

[첫 번째 이벤트에서 정해진 순 위가 반영된 네 명이 한 팀이 됩니다.]

[같은 팀이 된 네 명의 플레이어는 공통된 목표를 달성해야 합니다.

제한 시간 내에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심각한 페널티가 부여됩니다.]

[10,000개의 팀 중, 다음 이벤트 로 넘어갈 수 있는 건 100개의 팀 뿐입니다.]

[100개의 팀이 남는 그 즉시 이 벤트는 종료됩니다.]

[단, 같은 팀원과는 절대 파티를 맺을 수 없습니다.]

읽어야 할 양이 꽤 많았다.

요약하면,

네 명의 플레이어가 한 팀이 되 고 어떤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팀이라고?'

유준이미간을 찌푸렸다.

이번 이벤트가 벌써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혼자 깽판 치고 다니는 건 자신이 있는데.

누군가와 억지로 어울리면서 다 니는 건 싫었다.

'상황을 봐야 알겠지만.'

[워프가 곧 시작됩니다.]

[곧 다가올 충격에 대비하여 주십시오.]

"나중에 볼 수 있으면 보자. 죽 지 말고."

유준이 마누엘라에게 말했다.

"웅. 나는 그렇다 쳐도 너는 죽을 일 없을 거 같아서 참 안심이 돼."

"칭찬이지?"

"그럼."

약간의 현기증이 찾아왔다.

워프가 순식간에 끝났다.

높게 솟은 석벽과 빛이 들어오지 않는 폐쇄된 공간.

이제는 그만 좀 보고 싶은 미로 가 배경이었다.

유준이 주위를 쓱 둘러보다가 미 간을 찌푸렸다.

자신을 제외한 세 명의 플레이어 가 있었다.

그중 인간은 없었다.

전부 이종족.

사실 그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문제는,

'마신 추종자가 섞여 있군.'

한 명.

마신 추종자가 있다.

그들과 몇 번 붙어 보니 마신 추종자에게서만 풍기는 느낌을 알 수 있었다.

실제로 녀석에게서 암흑 마기보 다 더 짙은 기운이미세하게 흘러 나왔다.

"저기, 자기소개부터 하죠. 같은 팀이 된 거 같은데."

에르거 종족의 플레이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에르거 종족은 오우거와 엘프의 하프로, 대륙에서 그 수가 그리 많 지 않은 종족이었다.

엘프와 오우거의 장점만 따온 종 족이라 강자들만 있기로 유명했다.

큰 덩치를 가졌지만, 매우 날렵 하고 대체로 마법에도 큰 재능이 있었다.

"그럽시다."

파티의 구성원은 대충 이러했다.

남성에르거족, 케요스.

여성 마족, 로테렌.

남성 엘프, 레오나드.

마지막으로 유준까지.

첫 번째 이벤트에서 살아남은 플레이어들이라 그런지 크게 뒤떨어져 보이는 이는 없었다.

유준이 자기 이름을 말하려고 할 때였다.

"마족이랑 한 팀이라…."

"불만 있나?"

엘프 레오나드가 한 말에 마족 로테렌이 그를 쏘아보면서 말했다.

"지금은 싸우고 싶지 않군. 마족이라 힘들겠지만, 그 성질 좀 잠깐 죽여 놓는게 어때?"

"그건 내가 할 말이야. 위선의 종족 엘프가 그러니까 우습기만 하네."

".*.위선?"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싸 울 기세다.

아니, 이미 서로 감정이 많이 상 했겠지.

골머리가 아팠다.

"자, 자. 우리 이럴 때가 아닙니다. 이벤트 시작했어요. 이런 기회 별로 없잖아요? 언제 또 이런 대규 모 이벤트에서 보상 얻어 보겠습니까? 두 분한테 친해지라고 말은 안

하겠지만, 같은 팀끼리 무기 겨누는 건 좀 아니죠."

에르거가 중재했다.

엘프와에르거 종족도 사실 사이 가 그리 좋지 않지만, 레오나드는 이성적으로 판단했다.

"나도 이런 상황에서 바보같이 기 싸움이나 할 생각은 없었다."

«쯔 w

才,.

"그쪽은 이름이 뭐죠?"

에르거가 유준에게 물어 왔다.

유준이 이름을 말하려고 할 때였다.

"혹시 신유준인가?"

레오나드가 놀란 얼굴로 말했다.

"절 아십니까?"

"알고말고.... 엘프들 사이에서 그대의 이름은 꽤 유명하다. 최근에는 그대를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 같긴 하지만."

"아하."

"자, 잠깐만요. 신유준이라고요?"

에르거도 그의 이름을 듣고 놀랐는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예. 맞습니다."

"그 1위 신유준? 이번에 950만?

와, 만나서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미쳤네. 전 지역 통틀어서 1위 아닙니까? 그런 사람이 우리 팀이 라니...

마족 로테렌도 내색은 안 했지만, 매우 놀란 눈치였다.

'마신 추종자면 날 죽이려 들 텐데.'

유준은 그런 로테렌을 곁눈질로 살펴봤다.

만약, 자신의 뒤를 공격할 자가 있다면 가장 유력한 이가 로테렌이었다.

팀원들은 한동안 충격에 잠겨 있었다.

레오나드와에르거의 표정은 밝았다.

4만 명 중에 가장 강한 플레이어 일지도 모르는 인간이 같은 팀이 되었다.

이번 협동 이벤트에서 100팀 안에 드는 것.

희망이 보였다.

반면, 로테렌의 표정은 복잡했다.

마신 추종자 세력에 속해 있는 그녀는 당연히 유준을 알고 있었다.

그를 꼭 죽여야만 하는 것도.

그런데 여기서 뒤통수를 쳐서 그를 운 좋게 죽인다고해서 신유준 이 실제로 죽는 건 아니었다.

반대로 그에게 협력하면 두 번째 이벤트에서 살아남을 확률이 높았다.

그래서 고민이 많았다.

'신유준이 강해지는 걸 막으려면 내가 어떻게든 이번에 그를 죽여야 해.'

대신에 자신 또한 성장할 기회를 잃게 된다.

'일단 상황 보고 결정을 내리자.' 로테렌의 눈빛이 깊어졌다.

그리고 그런 로테렌의 생각을 유준은 꿰뚫고 있었다.

'이따 죽여야지.'

아니면 반쯤 죽여서 못 움직이게 만드는 방법도 있었다.

방법은 많았다.

지금 당장 죽이는 것은 하책이다.

목표가 어떤 것으로 설정될지 모르니.

'시스템이 어떻게 반응할지가 궁

금한데.'

그때였다.

[팀의 이름은 가장 순위가 높은 플레이어의 이름으로 정해집니다.]

[신유준 팀의 목표를 설정해 주십시오.]

[신유준 플레이어가 최종 선택을 한 목표가 설정됩니다.]

[레벨이 높은 목표를 설정할수록 얻을 수 있는 점수가 올라갑니다.]

[목표 설정]

[(Lv. 1) 300레벨 이상의 몬스터 처치 0/50]

[(Lv. 2) 400레벨 이상의 몬스터 처치 0/70]

[(Lv. 2) 플레이어 처치 0/10]

[(Lv. 3) 5m 이상의 골렘 제작 0/3]

[(Lv. 4) 600레벨 이상의 몬스터 처치 0/3]

목표는 수백 개가 넘게 있었고, 난이도 레벨도 10까지 있었다.

"제가 골라야 하는 거 같은데. 어떤 목표로 할까요? 의견 있습니까?"

유준의 말에 잠시 정적이 찾아왔다.

팀원들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적당한 목표를 설정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쉬운 걸 하자니, 보상이 별로일 것 같고 너무 어려운 걸 하자니 달 성하기가 힘들 것 같았다.

유준이 입을 열었다.

"그냥 제 마음대로 합니다?"

"어, 어떤 거로 하시려고요?"

"이거요."

유준이 손가락으로 홀로그램의 끝부분을 가리켰다.

[(Lv.10) 미궁의 지배자 처치 0/1]

"레벨 10짜리 목표로 하시겠다고요?"

" 예."

"...미궁의 지배자 외엔 설명이 없는데요? 5레벨 이상의 목표도 엄 청 버거운 마당에 10레벨 난이도가 가능할까요?"

"해 보면 알겠죠."

유준이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말 했다.

나머지 플레이어들은 저게 근거

없는 자신감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누가 뭐래도, 이번 이벤트에서 명실상부한 최강자가 아닌가.

그래도 불안한 건 어쩔 수 없었다.

10레벨은 설정할 수 있는 목표 중에서 가장 높은 레벨이니까.

"할 겁니다. 반대해도 소용없어요."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의 의견에 반대했다가 좋은 꼴

을 볼 리가 없으니까.

유준은 망설이지 않고 레벨 10 난이도, 미궁의 지배자 처치 목표를 선택했다.

[신유준의 팀의 목표가 '미궁의 지배자 처치'로 설정되었습니다.]

"진짜로 하다니."

에르거가 복잡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왜요? 혹시 불만인 건 아니죠?"

"아뇨아뇨아뇨. 이미 엎질러진

물이죠. 우리 같이 잘해 봅시다."

"...그런데 미궁의 지배자가 어 디 있는지는 안 나오는 건가?"

레오나드가 말했다.

"그런 거 같은데요."

"막막하군."

"이곳이미로잖습니까. 길부터 익혀 놓는 것이 좋을 거 같네요."

콰쾅! 쾅!

그때 다소 가까운 곳에서 폭발음 이 들렸다.

그새 전투가 벌어진 곳이 있었다.

"우린 우리 할 일을 하면 될 거 같습니다."

유준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벽이 부서질까?"

레오나드가 말했다.

"안 될 거 같긴 한데, 시도해서 나쁠 건 없겠네요."

에르거가 건틀렛에 마력을 담아 벽에 크게 휘둘렀다.

콰아아앙!

"크홉!"

그가 주먹을 부여잡으며 주저앉았다.

벽은 먼지만 피어오를 뿐, 흠집 하나 나지 않았다.

"...괜찮나?"

"견딜 만합니다. 아무래도 여기 벽은 힘으로 부술 수 있는게 아닌 가 보네요."

"벽을 뚫거나 부수면서 길을 개 척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얘기군."

" 예."

"다들 기다려 봐요."

유준이 인벤토리를 열었다

지금 상황에 쓸 만한 아이템이 퍼뜩 떠올랐다.

[길잡이 골렘 소환석]

등급 : 신화

옵션 : 길잡이 골렘을 소환할 수 있습니다. 골렘의 레벨은 소환자의 총합 능력치 수치에 의해 정해집니다.

이름하여 길잡이 골렘 소환석 사실 웬만하면 이 아이템은 쓰기

싫었다.

이것 한 개밖에 남지 않은 것도 이유지만, 총합 능력치가 높을수록 골렘의 레벨이 높게 측정되기 때문 이었다.

그러니까 최대한 강할 때 쓰는게 효율적이라는 뜻이다.

'너무 아끼다가 똥이 될 수도 있으니... 지금 써 버리자.'

지금 유준의 총합 능력치는 하늘을 뚫는 수준.

무과금즐겜러 캐릭터와도 비교가 불가능했다.

솔직히 현재 능력치로 골렘 소환

석을 사용하면 어떤 골렘이 나올지 상상조차 안 갔다.

'길잡이라는 이름이 붙긴 했어도 골렘의 파괴력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니까.'

설렜다.

유준은 소환석에 손을 올렸다.

약간의 진동.

소환석에서 뿜어져 나오는 알 수 없는 기운이 그의 몸에 침투했다.

그의 신체에 내재된 힘을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스캔 작업은 순식간에 끝이 났

다.

화아악!

소환석에서 짙은 회색의 기운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 뭐야?"

"위험한 거 같지는 않은데...

유준은 잠자코 지켜봤다.

게임에서 골렘을 소환했던 때와 똑같은 연출이었다.

회색의 기운이 형태를 잡기 시작 했다.

그러나 그 크기가 예상만큼 크지 가 않았다.

'뭐지?'

보통 레벨이 높은 골렘일수록 덩 치 또한 컸다.

그런데 지금 형태 잡기가 완료된 시점에서 골렘의 크기는 기껏해야 고블린 정도의 크기.

이해가 안 갔다.

'지금 내 총합 능력치가 무과금 즐겜러 캐릭터보다 몇 배는 높을 텐데.'

혹시 레벨이 중요한 걸까?

유준이 고개를 저었다.

지금 자신의 레벨은 450을 넘겼

다.

500레벨인 무과금즐겜러와 차이 가 크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격?

격이 낮아서일까?

500레벨이 되면 격이 높아져 능력치 효율 또한 높아진다.

그 차이에서 비롯된 결과인 걸까.

온갖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혼잡 하게 만드는 그때, 골렘이 완전한 모습으로 소환되었다.

무광.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색 광석으로 만들어진 골렘.

무척 단단해 보이긴 하는데, 체 격이 너무 왜소하다.

그때 골렘의 눈이 있는 부분에서 붉은색 빛이 번득였다.

"반갑...습니다!"

골렘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유준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골렘이 말을 해?'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6권 5화

127화

골렘은 본래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명령을 내리는 것도 잘 못 알아 먹을 때가 많았다.

그건 골렘의 대표적인 단점으로 꼽히는 것이기도 했다.

움직임이 둔하다는 것도 있다.

그러나 단순한 파괴력만 놓고 보 면, 웬만한 화염, 폭발 마법보다 500레벨의 골렘이 주먹을 휘두르는

것이 더 강하긴 하다.

"골렘?"

"골렘이라기엔 좀 작은데요?"

"조금이 아니야. 그냥 작다. 근데 말을 하는...군."

팀원 세 명도 이상하게 여겼다.

골렘이 아무리 약해도 이것보다는 크기가 클 텐데.

특히나 직접 제작한 것이 아니라 소환석으로 소환했기에 더 이상하고 기묘한 일이었다.

"명령...만 내려 주십...시오."

골렘은 어설프긴 하지만, 정말.로

말을 하고 있었다.

소통이 가능한 소환수는 여럿 있다.

그러나 골렘이 말을 하는 것은 처음 봤다.

유준이 골렘한테 물었다.

"어떻게 말을 할 수 있는 거야?"

"저... 말입니까?"

"웅. 너."

"모르겠습니다."

"네가 어떻게 말하는지 몰라?"

"예."

"네 이름이 뭐지?"

"주인님께서 정해 주십시오."

파라네트와 달리 정해진 이름이 없나 보다.

보통 제작된 골렘이 아닌 소환수 골렘은 이름이 따로 있을 텐데.

여러모로 정석을 벗어나는 골렘 이었다.

"파라네트투로 할래?"

"...특별한 뜻이 있는 겁니까?"

"응. 내 첫 번째 소환수 이름이 파라네트거든."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닌 거

같습니다."

골렘이 정색하며 말했다.

표정이 없으니 정색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파라네트투가 될 뻔했던 골렘이 다시 입을 열었다.

"무난한 이름이 좋습니다, 저는."

"무난한 이름이라...

유준이 잠시 고민에 빠졌다.

원래 그였으면 골렘 이름 따위 대충 지었겠지만, 이번에 소환한 골렘은 일반적인 골렘이 아니었다.

"추천받습니다."

유준이 팀원들에게 말했다.

"추천요?"

"우리한테 묻는 건가?"

" 예."

유준의 뻔뻔한 얼굴.

골렘조차 황당하다는 듯 바라봤다.

"그건 원래 주인이 정해야 하는 거 아닌가?"

골렘의 생각을 대변하듯 레오나 드가 그렇게 말했다.

유준이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세상에 정해진 게 어디 있습니까. 다 사람 나름이지요."

"...그럼 내가 추천 하나 해도 되겠나?"

"예. 말씀해 보세요."

"레온은 어떻지?"

" 레온요?"

"그래."

"레오나드와 이름이 비슷하군요."

"그래서 레온을 추천하는 거지."

"생각은 해 보겠습니다. 다른 사

람은 없나요?"

1위 순위를 차지한 유준의 눈에 잘 보일 기회다.

에르거가 손을 들었다.

"파워골렘 어떻습니까?"

"...파워골렘요?"

"예!"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인데.

도통 기억이 안 나네.

플레이어라서 기억이 나야 정상 인데.

'기억이 나면 오히려 안 될 것 같고 막 그래.'

"에르거라고 했나요?"

"맞습니다."

"타락파워골렘은 어떻게 생각하 세요?"

"오? 아주 멋집니다. 제가 추천 했던 것보다도 더 세련된 이름으로 바꾸셨네요. 전 진짜 좋은 거 같습니다."

"...진심으로요?"

"예. 얼마나 멋있습니까. 파워골 렘인데 타락까지 하다니. 1위 플레

이어 소환수에 걸맞은, 딱 들어맞는 이름입니다."

"한국인 아니죠?에르거."

"한국...인? 혹시 인간을 말하는 겁니까?"

"아닙니다. 됐어요."

팀원들에게 소환수의 이름을 정 해 달라는 것 자체가 문제인 듯했다.

대륙인들의 작명 센스가 너무나 실망스러웠다.

이대로는 안 된다.

유준은 고심하고 고심해서 이름

을 정했따.

푹 한숨을 내쉰 유준이 입을 열었다.

"너의 이름은 타파골이다."

"타파...골. 마음에 듭니다만, 주인님. 타파골이 정확히 무슨 뜻 인지 알고 싶습니다."

"타락파워골렘의 줄임말이다."

"...예?"

"타파골. 어감이 나쁘지 않지?"

"...예."

유준의 진지한 얼굴에 골렘, 타 파골이 어쩔 수없이 고개를 끄덕

였다.

'능력치 좀 볼까.'

미로에서 길 찾는 용도로 소환하 긴 했지만, 타파골의 능력치가 몹 시 궁금했다.

[소환수 : 타파골]

□ 레벨 : 801

□ 특성 : 견고한 의지(SS), 마법 면역(A+), 괴력(A)

□ 스킬 : 바위 부수기 (S), 광역 도발 (A)

□ 칭호 : 없음

□ 능력치

[근력 1,049] [민첩 733]

[체력 800] [마력 20]

[미분배 포인트 : 0 ]

'801? 미쳤네.'

801이라는 레벨이 존재한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애초에 800은커녕, 700을 넘는 플레이어나 몬스터를 본 적이 없었다.

무한의 탑에는 레벨의 한계라는 것이 없는 건가?

일개 소환수의 레벨이 이렇게 높을 수가 있나 싶었다.

'보통 소환수는 소환한 플레이어 보다 레벨이 낮게 잡히는데.'

소환석으로 소환한 소환수는 플레이어 능력치의 영향을 받는다.

원래라면 플레이어보다 낮은 레 벨로 소환되는데.

타파골은 달랐다.

'그만큼 내 총합 능력치가 높다는 뜻인가?'

그의 능력치 수준이 800레벨을 아득히 넘어서 벌어진 일이었다.

'길잡이에 특화된 골렘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긴 한데.'

그렇다고 레벨이 비례해서 아주 막 강한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레벨이 깡패니까.'

500레벨부터는 100레벨 단위로 엄청난 차이를 보였다.

능력치가 같더라도 격에서 오는 차이.

그걸 극복하려면 레벨이 높은 상 대방보다 압도적으로 강해야만 했다.

'타파골 덕분에 800레벨이 존재

할 수 있다는 걸 알았네.'

이곳 무한의 탑에선 강해지는데에는 한계가 없는 걸까.

'신들의 전쟁' 때와는 다르다.

레벨 제한이 없거나, 아주 높을 가능성이 컸다.

그렇다면.

아이템의 성능이 좋고, 전설 이 상의 칭호들이 많고, 태초의 플레 이어 능력이 있고, 특성과 스킬들 의 효과가 좋다고해서 방심해서는 안 됐다.

'아닌가? 이 정도면 조금은 방심 해도 되겠는데?'

언제 이렇게 상태창이 화려해졌지.

"타파골."

"예."

"이미로에서 탈출할 수 있겠어?"

"어렵지 않습니다."

"그래?"

"예."

"미궁의 지배자를 찾는 건?"

"지배자 말입니까?"

" O "

"지배자...라는 것이 정확히 어 떤 존재인지 설명...해 주셔야 합니다."

"나도 모르는데?"

"아."

"기다려 봐."

유준이 눈을 감고 기감을 널리 퍼뜨렸다.

이것만으로는지배자를 찾기 힘 들었다.

미궁이 워낙 막힌 공간이 많아 서.

그는 마력까지 사용했다.

우웅-!

마력 파장이 얇은 실의 형태로 쭉 퍼져 나갔다.

'역시 넓어.'

그의 높은 마력 능력치로도 드넓은 미로를 전부 탐색하기엔 무리가 있다.

'벽은 무시하고 탐색해야겠는데.'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높은 벽을 부술 수는 없지만, 벽 너머를 엿보는 건 가능했다.

그러나 그 방식을 사용하려면 어 마어마한 양의 마력이 필요하다.

유준이 인벤토리에서 중상급 마 력 포션을 손에 잡히는 대로 꺼냈다.

"저, 저거 마력 포션 아닌가?"

레오나드가 놀라고,

"빛깔을 보면 최소 중급 이상 포 션인데요? 저걸 수십 개나 가지고 있다고...?"

에르거가 경악했다.

신들의 전쟁과 달리 무한의 탑에 선 포션이 상당히 귀했다.

비싸기도 하지만, 포션을 만드는 연금술사들의 수가 적기 때문이었

다.

공급량의 부족.

그런데 포션이 필요한 플레이어 의 숫자는 너무 많았다.

최하급, 하급 정도의 포션은 어 느 정도 여유가 있지만, 중급 이상 부터는 돈이 있어도 구하기가 힘들 정도였다.

특히 체력 포션보다도 마력 포션을 구하기란 하늘에서 별 따기에 가까웠다.

재료도 더 많이 들어가고 연금술 사의 실력이 더 뛰어나야지만 좋은 품질의 마력 포션을 제조할 수 있

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유준이 인벤토리에서 수 십 개의 마력 포션을 꺼냈을 때, 팀원들이 놀라지 않고 배기겠는가.

당연히 난리가 날 수밖에 없었다.

'인벤토리에 넘치는게 포션이야. 아낄 필요가 없지.'

조금 많은 정도가 아니라, 도저 히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유준이 포션을 많이 가지고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신들의 전쟁'에서는 체력 포션과 마력 포션을 과금을해서 구매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수량 제한이 있긴 했지만, 일주 일만 지나면 제한이 다시 초기화되 기에 그때마다 전량(全量) 구매했었다.

최상급 체력, 마력 포션의 경우는 유준도 허투루 쓸 수 없었지만,

중상급 마력 포션 정도는 밥 먹 듯이 써도 문제없었다.

"도대체 저 많은 포션을 어디다 쓰려고요?"

에르거가 물었다.

유준이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지배자 찾는데다 써야죠."

지배자의 위치만 찾는 건 마력만 퍼부으면 어렵지 않았다.

한 지역의 지배자들이 풍기는 분 위기라는게 있으니까.

그걸 찾아내면 되는 것이었다.

"후우..."

마력의 고갈.

워낙 많은 마력을 퍼뜨려 지배자 의 위치를 찾다 보니 금방 마력이 바닥을 보였다.

유준이 중상급 마력 포션을 벌컥 벌컥들이켰다.

순식간에 4병의 마력 포션이 비 워졌다.

그 광경을 넋 놓고 바라보는 나 머지 세 명의 팀원들.

유준은 아랑곳하지 않고 마력 포 션을 계속해서 마셨다.

총 23개의 마력 포션이 사라지는 그 순간.

유준이 눈을 번쩍 떴다.

"찾았다."

"차, 찾았다고요? 정말입니까?"

에르거가 놀란 눈으로 다가왔다.

유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위치는 일단 알았습니다. 문제

느..."

"문제는?"

"그곳으로 가는 길을 알아야 한다는 겁니다, 이제."

"...음. 큰일이군요."

"큰일은 아니죠."

"네?"

"타파골."

"예...

"위치 정보 전송받았지? 안내 해."

"알겠습니다."

길잡이 골렘의 편한 점.

소환자가 알고 있는 위치 정보를 말로 설명하지 않고도 고스란히 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게임에서는 그냥 미니맵에 마우 스 클릭 한 번 하는 식으로 위치를 지정해 줬었다.

방식이 조금 다르긴 해도 길잡이 골렘의 편리성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길을 안내하겠습니다."

"그래."

길잡이 골렘, 타파골이 움직였다.

체격은 골렘답지 않게 왜소하지만, 녀석의 레벨은 유준이 본 그 누구보다도 높다.

그런 타파골이 앞장서서 걷자, 무척 든든한 기분이었다.

그때에르거가 유준의 귓가에 대 고 입을 열었다.

"이대로 무작정 따라가도 되는 겁니까?"

"왜요?"

"소환수 하나만 믿고 미로를 돌 아다닐 수는 없잖습니까."

"아뇨. 쟤만 믿고 가야 합니다."

" 예?"

"쟤 길 찾는 덴 도사거든요. 특 히 미로같이 길이 엉켜 있는 곳에 서는 더요."

"길 찾는 소환수라고요? 그런 게 있습니까?"

"보면 알 겁니다."

길잡이 골렘.

그 존재를 아는 이는 많이 없었다.

신들의 전쟁을 플레이했던 이들이나 알겠지.

타파골은 거침없이 쭉쭉 나아갔다.

길이 막히는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모든 길을 다 꿰고 있는 듯 움직였다.

"저게 어떻게 가능한 거지?"

레오나드가 어이가 없다는 듯 헛 웃음을 홀렸다.

아까부터 입을 꾹 닫고 있던 로 테렌도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

었다.

신기하다.

저 조그만 골렘이 걷는 족족, 길 이 열리는 느낌이었다.

분명 복잡한 미로가 맞는데.

"제, 제대로 가고 있는 거 맞는 거 같은데요."

"그러게."

에르거와 레오나드는 이제 그러 려니 하고 순순히 타파골의 안내를 따르기 시작했다.

애초에 유준 때문에 타파골을 따라가지 않는다는 선택지도 없었지

만.

"어, 저기 다른 팀 있다."

유준 팀을 발견한다른 플레이어 들.

그들은 슬쩍 유준 팀의 견적을 보더니 자기들끼리 쑥덕거렸다.

" o 으2"

"좀 세 보이긴 해. 난 후퇴 추 천."

"우리 목표가 플레이어 킬이었죠? 그것도 300명인가? 그런데 후 퇴를 하자고요? 지금 일분일초가 중요한데 그럴 수는 없어요."

"그럼 정해졌군."

4명으로 이루어진 팀은 곧바로 유준 일행을 공격하려 했다.

선두에서 걷던 타파골이 앞으로 나섰다.

플레이어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뭐야, 이건?"

"골렘?"

"난쟁이 골렘인가? 골렘이 뭐 이렇게 생겼지?"

그때였다.

스으-. 스아아아악-!

타파골의 몸에서 엄청난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 후 모두를 놀라게 하는 광경 이 펼쳐졌다.

고블린 정도의 크기였던 타파골 의 몸집이 어마어마하게 커진 것이다.

보통 큰 게 아니다.

타파골의 몸은 대충 어림잡아 아 파트 10층 높이 정도로 거대해졌다.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