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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3 - 13

- 6권 12화

134화

절대 봉인의 구슬.

유준이 단 한 개 가지고 있는 아이템이다.

장비 아이템은 아니지만, 소모성 아이템도 아니다.

누군가를 살려 두고 영원히 가둬 둘 수 있는 대신에 단 한 명만 가능했다.

절대 봉인의 구슬을 다시 사용하기 위해선 이미 봉인했던 자를 풀

어 줘야만 했다.

그래서 엄밀히 따지면 영구적인 아이템에 가까웠다.

'이건 진짜 안 쓰려고 아끼고 있었는데.'

절대 봉인의 구슬이 진짜로 필요 한 상황은 따로 있다.

드래곤이 라든지 , 마신이 라든지 .

그런 강대한 적들을 만났을 때나 쓸 생각이었는데.

유준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걸 이런 잡벌레한테 쓸 줄은 몰랐네."

얼떨결에 잡벌레 취급을 받은 이 단 심판관이 정신을 차리고 발끈하 려 했지만,

"몸통 박치기!"

쿠웅!

"커헉!"

"주인님! 제가 처리했습니다!"

"잘했다."

"헷. 뭘요. 명령만 내려 주십시 오! 그럼 마계까지 날리고 올 자신이 있습니다."

"그건 너무 갔다."

"...그, 그런가요? 아니면 망망

대해 정도가 적당하려나요?"

유준이 절대 봉인의 구슬을 만지 작거렸다.

아깝긴 하다.

그렇다고해서 지금 안 쓸 상황 도 아니긴 했다.

써야 한다.

격이 달려서 못 죽인다니.

이렇게 억울한 게 어디 있나.

게다가 녀석을 죽이지 않으면 언 제 또 나타나 천사의 눈물을 채 갈 지 몰랐다.

'써야겠다.'

그 전에 할 일이 있었다.

"파라네트."

"예!"

"얘 도망가려고 하면 그때 몸통 박치기해. 알았지?"

"예, 예! 근데 도망가려고 하면이 라됴?"

"그건 이따 알게 될 거야. 타파 골. 너는 천사의 눈물을 찾아."

"알...겠습니다."

타파골이 빠르게 움직였다.

"둘은 제자리에 있어요."

"알겠습니다."

"그러지."

팀원 두 명한테도 천사의 눈물 탐색을 부탁하지 않았다.

혹시나 혹심을 품고 천사의 눈물을 갖고 도망치면 안 되니까.

그런 낌새가 보이면 페널티를 받을 걸 각오하고 죽일 생각도 있었다.

어찌 됐든 모든 준비가 끝이 났다.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이단 심판 관의 머리에 검을 꽂았다.

푹!

"그...만...해 줘."

"그러게 왜 무적이라고 하고 까 불어. 무적도 아니면서."

"억...울하다. 난 그런 말 한 적이 없다...!"

"아니, 넌 했어. 내가 그렇게 들었으니까."

"그게 무슨 억지...

" 일어나."

"...뭐?"

유준은 뒤로 세 발짝 물러섰다.

그 뒤에 이단 심판관의 무기를 던져 줬다.

"그거 들고 일어나라고."

"...무슨 꿍꿍이지?"

이단 심판관의 눈이 가늘어졌다.

아무 이유없이 이러지는 않을 터.

분명 무슨 목적이 있을 것이다.

'설마 지친 건가?'

그렇다고 하기엔 유준의 상태가 지나치게 멀쩡했다.

숨도 거칠어지지 않았고.

무엇보다 지칠 만큼 움직이지도 않았다.

"무슨 의도지?"

"보면 몰라? 정정당당하게 싸우 자는 거지."

"언데드 녀석이 날 잡아먹을 듯 이 바라보고 있다. 정정당당한 게 맞나?"

"그래서 불만이야?"

"기회 줬잖아. 그럼 잡아."

"좋아. 그렇게 나온다면 거절하지 않겠다. 아까는 방심하다 당했

다만... 지금부턴 좀 다를 것이다."

"그래그래."

유준이 일부러 이단 심판관을 놓 아준 이유가 있었다.

그건 바로 검술 특성의 발전 때 문이었다.

이단 심판관은 강하다.

또한, 검을 쓰며 그 실력이 높은 수준에 달했다.

그가 본 플레이어 중에는 가장 검을 잘 다룬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런데 이단 심판관은 죽지 않는

다.

격의 차이라는 것 때문에.

솔직히 처음에는 짜증이 나고 어 이가 없었지만, 잘 생각해 보니 이 건 기회였다.

전투 경험.

그리고 검술을 발전시킬 기회.

SSS라는 것이 등급 중에 매우 높은 축에 속하긴 하지만, 발전의 여 지가 없지는 않았다.

완전히 끝이 아니기에.

갈고닦으면 스킬의 등급이 올라 갈 수 있다고 여겼다.

특히 파라네트의 몸통 박치기 스킬이 생성된 것을 보고.

단순히 게임처럼만 생각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마침 죽지 않는 적이 나타났고... 이건 내가 힘 조절을 할 필 요가 없다는 뜻이지.'

적당히 설렁설렁 싸우는데 실력 이 늘 리가 없다.

특히 상대가 익하면 더 그렇겠지.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이단 심 판관은 유준에게 있어 가장 안성맞 춤인 대련 상대였다.

'이보다 더 좋은 샌드백이 따로 있을까?'

유준의 그런 생각을 파라네트는 바로 알아챈 듯했다.

"주인님... ㅎㅎ, 역시 똑똑하 십니다."

"너 그렇게 웃지마."

"예? 왜요?"

"재수 없어."

"...예."

파라네트의 어깨가 축 처졌다.

저거 연기다.

유준은 파라네트에게서 관심을 끄고 이단 심판관을 바라봤다.

그는 긴장한 얼굴로 유준의 검끝을 보고 있었다.

"뭐 해? 안 들어와?"

유준의 말에 이단 심판관이 쏜살 같이 접근했다.

스킬을 사용한 건지, 주변 공기 가 달라졌다.

뜨거워졌다가, 차가워졌다.

'아까 쓰려다가 파라네트에게 몸 통 박치기당해서 캔슬됐던 스킬이 군. 한번 구경해 볼까.'

그는 '신들의 전쟁'을 플레이하면서 저런 스킬을 본 적이 없었다.

불과 얼음의 조화.

화르륵! 쩌저적!

검신에 맺힌 화염이 급속도로 얼 어붙었다.

'저러면 무슨 의미가 있지?'

화염 속성이 생긴 걸 그대로 얼 려 버리다니?

유준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무한의 탑은 상식으로만 돌아가는 곳이 아니었다.

이단 심판관의 검이유준의 검과

맞부딪치자마자,

콰콰콰쾅! 콰콰콰쾅!

엄청난 폭발이 일대를 뒤덮었다.

이 넓은 공간을 가득 채우는 폭발.

유준은 재빨리 뒤에 있는 세계수 앞에 실드를 만들어 냈다.

덕분에 세계수는 무사했다.

대신에 폭발을 그대로 몸으로 받아 내야만 했던 유준.

"이게 다야?"

그가 웃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이단 심판관이 경악했다.

"그걸 맨몸으로 받고 살아?"

"네 공격력이 낮은 탓이지. 그나 저나 격이 높다고 공격력이 더 세 지는 건 아닌가 봐?"

조롱 가득한 그의 말에 이단 심 판관이 검을 잡았다.

후웅!

유준은 이단 심판관이 이를 악물 고 행하는 공격을 여유롭게 피했다.

검은 사용하지도 않았다.

혹시나 무기끼리 충돌했다가 이 단 심판관의 검이 부서지기라도 할

까봐.

아까 놈이 스킬을 사용할 때는 직접적인 충돌이 없어서 무기가 멀 쩡했지만,

만약 검과 검이 부딪쳤다면 이단 심판관의 무기는 완전히 박살이 났을 것이다.

'능력치는 비등비등한 거 같고. 특성 쪽은 내가 훨씬 앞서는 거 같네.'

유준은 절대지기(SSS) 특성의 효과를 절제했다.

특성이긴 하지만, 사용자의 의지에 따라 효과가 천차만별로 달라지

는게 절대지기다.

절대지기 때문에 이단 심판관이유독 힘을 못 쓰고 있는 것 같아서 내린 결정이었는데.

후웅! 후웅!

확실히 절대지기의 효과가 사라 지니 이단 심판관의 속도가 더 빨 라졌다.

유준이 일부러 그런 줄도 모르고 이단 심판관은 신이 나서 검을 휘 둘러 댔다.

'절대지기의 힘이 컸구나, 여태.'

이단 심판관을 상대하는게 버거 워졌다.

'잘됐어.'

이걸 원했다.

상대가 자신보다 약하면 그건 수 련이나 훈련이 될 수 없었다.

유준은 마력도 사용하지 않고 오 로지 검만을 이용해 전투했다.

후웅! 홍!

회피에 전념하던 유준이 공격하는 빈도가 서서히 늘어 갔다.

스스로에게 페널티를 부여했지만, SS등급의 검술이 알아서 해법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이단 심판관이 다급해졌다.

아까와 같은 경직 상태가 계속 유지된다면 긴 시간 동안 죽지도 못하고 고통을 받아야 한다.

그래서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그러다 어느 순간.

유준의 검이 이단 심판관의 목을 베고 지나갔다.

촤악!

이단 심판관의 몸이 그 자리에서 허물어졌다.

"뭐야, 끝이야?"

이제 막 흥이 달아오르려는데 이 단 심판관이 털썩 누워 버렸다.

김이 샜다.

'이대로는 안 돼.'

검술의 기량이 점점 무르익는 거 같기는 한데.

이단 심판관을 자기도 모르게 너무 빨리 쓰러뜨려 버렸다.

능력치 차이가없이 동등한데 기 술의 차이가 월등해서 벌어진 일이었다.

'내가 좀 더 불리한 상황에서 싸 워야 해.'

보석 상등급을 장착한 검술 특성 의 발전이 너무나 빨랐다.

분명 좋은 일이지만, 이걸로는 부족했다.

유준이 큰 결정을 내렸다.

'전능의 투구'를 벗은 것이다.

세트 아이템 4세트 효과가 사라 지고, 공격력과 방어력 그리고 능력치가 대폭 하락했다.

투구 하나 벗은 것만으로도 엄청 나게 약해진 느낌.

유준은 대신 '이글 아이 스카우 터'를 착용했다.

그가 투구를 벗은 건 능력치가 하락하기를 바란 것도 있지만, 이

글 아이 스카우터를 착용하기 위한 것도 있었다.

[이글 아이 스카우테

등급 : 전설

옵션 : 눈가에 장착할 시에 시력 이 극대화됩니다. 평소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일 확률이 높아집니다. 아이템 효과에 민첩 능력치가 큰 영향을 줍니다.

평소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그 글에 집중했다.

유준은 직접 눈으로 보고 몸으로 겪으며 검술을 체득하고 싶었다.

이단 심판관이 경직 상태에서 풀 려났다.

녀석은 포기할 생각이 없는지 곧 바로 유준에게 달려들었다.

아까와 같은 불과 얼음 속성의 조합이었다.

'이번에 맞으면 큰일 날 수도 있겠다.'

그는 현재 투구를 벗은 상태.

방어력과 능력치가 확 떨어져 있

었다.

이글 아이 스카우터 덕분일까.

화아악-!

시간은 천천히, 세상은 느리게 움직였다.

스킬, 마법의 결이 보이기 시작 했다.

유준은 검을 앞으로 내세웠다.

폭발이 일었다.

콰콰쾅!

화염과 함께 얼음 조각들이유준을 덮쳤다.

'왠지... 전부 다 막을 수 있을 거 같아.'

서걱! 슥!

유준의 검이 빠르게 화염과 얼음을 베어냈다.

일일이 결을 찾아내서 베어냈고, 검과 닿은 모든 것이 소멸했다.

여태까지는 검이제멋대로 움직 이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검을 잡은 손끝의 움직임 까지 자신이 세세하게 관철하고 조 절하는 것 같았다.

새로웠다.

또 즐거웠다.

'평정심 특성이랑 검술 특성 때 문에 계속 게임을 하는 것 같았는데 지금은 달라.'

생동감.

검에서 생동감이 느껴졌다.

유준이 폭발로 인한 마법 잔해들을 베자, 이단 심판관이 뜨악한 표 정을 지었다.

이해는 간다.

몇 분 전의 자신이었어도 이러한 광경을 보면 놀랐을 것이다.

검격이 눈으로 좇기 힘들 정도로

빨라졌다.

이단 심판관은 감히 유준에게 접 근할 생각을 갖지 못했다.

근처에 갔다가 온몸이 난도질될 것만 같았다.

죽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두 려움이 생긴 것이다.

"더!"

"더! 더 날려 봐! 뭔가 될 것 같으니까!"

유준이미치광이처럼 소리쳤다.

눈빛이 이상했다.

"주, 주인님! 머리 괜찮으신 겁니까! 다치신 거죠? 그죠? 머리를 다 치신 거 맞죠? 그러게 투구는 왜 벗으셔서...!"

파라네트가 걱정스러운 눈길로 유준을 바라봤다.

그러거나 말거나 유준은 시뻘게 진 눈으로 이단 심판관을 노려봤다.

"빨리!"

"으, 응! 알겠다!"

이단 심판관이 다시 한번 스킬을 사용했고,

화염과 함께 얼음 조각들이유준

을 향해 날아갔다.

유준은 환희에 젖은 얼굴로 검을 휘둘렀다.

"미, 미친놈이다...

이단 심판관이 질린 얼굴로 유준을 봤다.

이번에도 유준은 잔해물들을 전 부 일도양단했다.

파라네트가 무언가를 깨달은 듯 놀라며 중얼거렸다.

"아, 저것도 훈련의 연장선이었구나. 역시 주인님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절로 웅장...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6권 13화

135화

유준은 무아지경에 들었다.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평정심 특성이 지금은 제힘을 발 휘하지 못했다.

그에게 긍정적인 효과를 주고 있 어서 일까.

뜨거운 열기가 몸과 머리에 가득 찬 것 같아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분명히 육체를 혹사하고 있는데 시원하면서도 짜릿한 쾌감이 일었다.

화염과 얼음의 결을 쳐서 전부 파훼했다.

허나 그것으로도 모자랐다.

유준은 이단 심판관에게 다가가 온몸을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이단 심판관이 저항하려고 했지만, 그는 무아지경에 빠진 유준의 움직임을 읽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천둥 번개에 직격당한 듯 몸이

찌르르했다.

[특성 검술(SSS)의 등급이 상승 합니다!]

[특성 검술 (SSS) 이 검술 (EX) 로 진화했습니다.]

유준이 넋 나간 듯 앞을 바라봤다.

진짜로 특성이 진화해 버릴 줄이야.

그것도 SSS+가 아닌 EX등급으로 두 단계나 상승했다.

솔직히 검술 특성이 EX등급이면 어떤 효과를 낼지 감이 안 왔다.

지금까지도 충분히 사기적이었는데.

"허...

여운이 가시질 않았다.

방금까지 무아지경에 빠졌던 사 실이 꿈만 같았다.

정신이 맑아졌다.

전에도 딱히 잡념 같은 건 없었지만, 지금은 정신이 완전히 순백 의 상태가 된 것 같았다.

유준이 주위를 둘러봤다.

에르거와 레오나드는 얼빠진 얼 굴로 서 있었고,

타파골은 천사의 눈물을 찾기 위 해 방 곳곳을 탐색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이단 심판관은 경직돼서 전혀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고.

파라네트는 흡족한 얼굴로 무어 라 중얼거리며 박수를 치고 있었다.

'쟨 뭐 하냐.'

망 좀 보라고 했더니.

아예 대놓고 구경만 하고 있잖아.

뭐, 어쨌든 잘 풀렸으니 됐다.

유준은 절대 봉인의 구슬을 다시 꺼냈다.

그때 파라네트가 다가오더니 말을 걸었다.

"무언가 얻으셨군요, 주인님?"

" 뭐?"

"얼굴에서 딱 보입니다. 스킬을 얻으셨습니까?"

" 비슷해."

"제 덕도 있는 거지요?"

"...없다고는 안 하겠는데. 너 또 으스대지 마라."

"물론이죠, 허허허."

갈수록 파라네트의 눈치가 빨라 지고 있다.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일단 재수 없다는 것 하나는 확 실했다.

언데드 주제에 너무 표정이 다채 로운 거 아닌가?

'EX등급 검술...

빨리 확인해 보고 싶었다.

유준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이단 심판 관의 모습이 보였다.

이상하다.

분명 일어날 때가 한참 지났는데.

설마, 검술의 등급이 오르면서 자신의 격까지 올라간 걸까?

그래서 이단 심판관이 죽기라도 한 걸까?

그때 이단 심판관의 가슴이 아주 미세하게 오르락내리락했다 .

이글 아이 스카우터를 끼고 있는 유준이 그 광경을 놓칠 리가 없었다.

"누가 기절한 척하래?" 이단 심판관이 움찔했다.

"야, 다 아니까 일어나."

이단 심판관이 서서히 몸을 일으 켰다.

"무슨 용무지? 누구냐?"

"혹시 기억 잃은 척하는 건 아니지? 안 통해."

"...나한테 도대체 왜 그러는 거냐. 내가 그렇게 잘못했나?"

"응. 잘못했지. 천사의 눈물을 가져간다며. 눈 뜨고 코 베일 뻔했는

데 너 같으면 열 안 받겠냐?"

"이만 물러나 보겠다. 천사의 눈 물을 회수하는 건 없던 일로 하지."

"누구 마음대로?"

"...왜 안 놔주는 거냐, 왜!"

"네가 죄를 지었으니까, 나한테. 벌은 받아야지."

"이미 실컷 받았다! 나를 얼마나 더 괴롭혀야 직성이 풀리겠는가?"

"영원히, 영겁."

유준이 검으로 이단 심판관의 머 리를 찍었다.

"크헉!"

그 후 절대 봉인의 구슬에 마력을 넣었다.

구슬에서 빛이 새어 나왔다.

그러다 이단 심판관의 몸이 구슬 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뭐, 뭐야 이건?"

"뭐긴 뭐야. 네가 이제부터 살 집이지."

"...자, 잠깐만! 미안하다! 내가 잘못했어! 어떻게 하면 될까, 내가 아아!"

이단 심판관은 그렇게 봉인되었다.

우우웅! 우웅!

절대 봉인의 구슬이 거세게 진동 했다.

아마 안에서 난리를 치고 있는 모양이지.

"네가 아무리 발버둥을 쳐 봐라. 절대 못 나올걸."

유준이 진득한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에서는 언데드인 파라네 트가 슬쩍 두 발짝 멀어질 정도의 사악함이 느껴졌다.

어찌 됐든 처치 곤란이었던 이단 심판관을 봉인했다.

유준은 흡족하게 웃으며 팀원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대단했습니다."

에르거가 진심을 담아 말했다.

그가 이단 심판관과 싸울 때의 그 광경은 정말 장관이었다.

이단 심판관이 온갖 발악을 하며 유준을 쓰러뜨리려 할 때, 그는 오 로지 검 하나만 사용해서 이단 심 판관을 무찔렀다.

깨달음을 얻은 듯, 무아지경 속에서 검을 휘두르는 그의 뒷모습.

에르거가 유준을 선망의 눈길로

바라봤다.

덩치 큰 남자의 시선이 껄끄러운 유준은 타파골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타파골은 찾으라는 천사의 눈물은 찾지 않고 가만히 눈을 감고 서 있었다.

구석에서 벌 받는 것만 같은 모 양새.

"뭐 해?"

"천사의 눈물이 이 근처에 있습니다."

"근데 왜 멀뚱멀뚱 서 있어? 안 찾고."

"찾을 수가 없습니다. 여기 주변에 있는 건 알겠는데. 정확한 위치가 가늠...이 안 됩니다."

"그래?"

유준이 마력 탐색을 시작했다.

타파골은 천사의 눈물이 이 근처에 있다고 했다.

마력을 아끼지 않고 듬뿍 썼다.

이글 아이 스카우터도 아직 착용 하고 있는 상황.

유준은 금방 천사의 눈물을 찾을 수 있었다.

그가 서 있던 곳에서 몇 발자국

걸음을 옮긴 후 조심스럽게 흙을 파내기 시작했다.

영롱한 자태의 푸른색 보석을 발견했다.

'드디어...

이게 바로 천사의 눈물이었다.

11레벨 목표 달성을 눈앞에 둔 상황.

정확히는 천사의 눈물을 재료로 아이템을 만들어야 달성하는 것이지만,

일단 가장 중요한 천사의 눈물을 찾았다.

유준은 천사의 눈물 정보부터 확 인했다.

이게 진짜인지 아닌지부터 판별 해야 했으니까.

[천사의 눈물]

등급 : 無

옵션 : 섭취 시에 모든 능력치가 레벨의 10분의 1만큼 증가합니다. 암 속성의 위력이 증가합니다.

정말 좋은 소모성 아이템이다.

만약 자신이 먹는다면 소수점 자

리까지 반올림해서 모든 능력치가 46이 증가한다.

이런 아이템은 또 구하기가 힘들다.

'이걸 먹느냐... 아니면 11레벨 목표를 달성하느냐인데.'

솔직히 말해서 난감했다.

천사의 눈물은 그 자체로 완성품 인 아이템이다.

그런데 이걸 재료로 신화 등급 이상의 아이템을 만들었다가는 후 회할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도전해 보자. 천사의 눈물로 더 좋은 아이템을 만들 수도 있어.'

사실 선택은 정해져 있었다.

그는 처음부터 11레벨 목표를 달 성하려고 했었으니까.

천사의 눈물 효과를 오랜만에 보니 아쉬웠을 뿐이다.

"신화 아이템... 만들 수 있겠나?"

레오나드가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유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만 믿으시죠."

사실 천사의 눈물로 어떠한 아이템을 만들어 본 적은 없었다.

당연하다.

누가 저 귀한 아이템을 재료 아이템으로 쓰겠는가.

그도 한 번밖에 구하지 못했던 물건인데 말이다.

유준이 인벤토리를 열어 재료 아이템을 물색했다.

그중, 천사의 눈물과 상성이 좋을 만한 아이템을 몇 개 찾아냈다.

'저번에 심연 왕한테서 받았던 심연초랑... 어둠의 근원도 있군.'

천사의 눈물은 이름과는 달리 암 속성이 듬뿍 담겨 있는 물건이다.

당연히 합성하는 재료도 비슷한 느낌으로 골랐다.

그가 한참을 고민하다가 아이템 세 개를 꺼냈다.

어둠의 근원.

그리고 심연초.

마지막으로는 원래 무과금즐겜러 인벤토리에 있던 고급 단약이었다.

단약은 그 자체로 효과는 없지만, 다른 재료와 합성했을 때 영약으로 만들 확률을 높여 주는 아이템이었다.

그중에서도 고급 단약은 아주 귀

한 축에 속했다.

그리하여 합성할 아이템은 총 네 개가 되었다.

천사의 눈물, 심연초, 어둠의 근 원, 고급 단약.

'솔직히 재료로서 상급에서 최상 급들로만 엄선했다. 실패할 확률은 거의 없어.'

이제 운에 맡긴다고 보면 되는데.

그의 행운은 하늘을 뚫을 정도로 높게 치솟아 있었다.

왜냐, 행운의 반지를 먹었으니까.

그 효과는 영원히 지속할 것이다.

'이래서 행운의 반지는 초반에 먹어 둬야 한다니까.'

신들의 전쟁을 플레이할 때 캐릭 터 육성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이 행운을 높이는 것이었다.

유준은 무한의 탑에 소환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행운의 반지를 섭취했고.

그로 인해 얻은 이득은 입 아프게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후우...

유준이 심호흡을 했다.

처음 전투를 했을 때도 이렇게 떨리진 않았다.

평정심 특성으로 떨림이 억눌러 지지 않는 것은.

유준이 지금 상황을 즐기고 있기 때문이었다.

'뽑기 시스템이랑 비슷하지. 아이템 합성은.'

그가 믿고 있는게 하나 더 있었다.

[최상급 아이템 합성 기계]

등급 : 無

옵션 : 아이템을 합성할 수 있습니다.

아이템 합성 기계는 몬스터를 사 냥하다 보면 드물게 구할 수 있는 소모성 아이템이다.

다만, 그렇게 구해지는 아이템 합성 기계는 전부 최하급이나 하급, 그 이상이라 해도 중하급 정도였다.

그는 어렵게... 아니 쉽게 과금으로 구한 이 합성 기계를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에르거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저기, 신유준."

" 예."

"그거 합성 기계죠?"

"맞습니다."

"그거 한 번 쓰면 사라지지 않습니까? 도움이 많이 못 된 거 같아 서 제 걸 드리겠습니다."

"합성 기계를 준다고요?"

하급이라고 하더라도 합성 기계는 상당히 비싼 가격으로 거래되곤 했다.

그런데 그걸 그냥 준다고?

에르거가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 덕였다.

"물론이죠!"

"한번 보죠."

유준은에르거가 건네는 합성 기 계의 정보를 확인했다.

[하급 아이템 합성 기계]

등급 : 無

옵션 : 아이템을 합성할 수 있습니다.

"응."

"石".

" 왜요?"

"이거 필요 없습니다."

" 예?"

"하급을 누구 코에 붙여요."

"호의는 감사하지만, 그냥 제 거 쓰겠습니다."

"혹시 중급 이상을 가지고 계신 겁니까?"

"예. 최상급요."

"...최, 최상급이라고요?"

" 최상급?"

에르거와 레오나드 둘이 동시에 놀랐다.

그들은 플레이어로 태어난 이들.

당연히 합성 기계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중하급, 중급까지는 이해한다.

하지만 최상급은 다른 세상의 영 역이었다.

한 번도 발견된 적이 없었으니까.

레오나드가 알기론 중상급 합성

기계가 지금까지 발견된 것 중에는 가장 높았다.

그런데 최상급이라니?

레오나드가 허탈하게 웃었다.

"역시 항상 예상을 뛰어넘으시는 군요."

"들어가는 재료들 좀 봐요. 최상 급은 써야 안 아깝습니다."

"그렇군요."

"바로 시도하겠습니다. 멀리 떨 어져 계세요."

"예? 혹시 아이템 합성 도중에 폭발 같은 게 생기기도 합니까?"

"아니요. 그냥 주위에 누가 없는게 마음에 안정이 와서요."

사실은 팀원 둘을 믿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유준은 최상급 합성 기계에 아이템 네 개를 올려놓았다.

그 후에 마력을 주입했다.

우웅! 우우웅!

합성 기계가 요란스럽게 흔들리 기 시작했다.

'이 반응은...

유준의 입가가 올라갔다.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_ 6권 14화

136화

예감이 좋았다.

합성 기계가 이렇게까지 거세게 진동하면 절대 실패는 아니다.

실패는커녕, 최상의 결과물이 나 올 확률이 높았다.

합성 기계를 수십 번은 사용해 봤던 유준이기에 잘 알고 있었다.

'이러면 기대할 수밖에 없잖아.'

파밧!

그때 재료 네 개가 한순간에 사라졌다.

그리고 합성 기계 위에 어떠한 한 아이템이 자리 잡았다.

"주, 주인님! 느낌이 좋습니다! 이겁니다, 이거!"

"나도 알아, 인마. 호들갑 떨지마."

유준이 아이템을 잽싸게 집어 들었다.

그리고 번들거리는 눈으로 팀원 두 명을 노려봤다.

"왜, 왜요?"

"왜 그렇게 쳐다보지?"

"이건 제 겁니다."

유준이 탐욕을 있는 그대로 드러 냈다.

"알아요. 당연히 신유준 당신이 가져야죠. 그러니까 진정해요."

"나도 전혀 불만 없다! 그대에게 고마울 뿐이지!"

둘이 그렇게 말했지만, 유준은 경계를 풀지 않았다.

"마이 프레... 아, 이럴 때가 아니지."

유준은 팀원들이 들어오지 못하

게 결계까지 설치해 놓고 아이템을 확인했다.

[셀리온의 심장]

등급 : 초월

옵션 : 섭취하는 즉시, 새로운

힘을 각성합니다. 모든 능력치가

30 상승합니다.

['(Lv. 11).

무어라 뜨는 메시지 창은 무시했다.

그보다 중요한 게 있었다.

"...신화가 아니라 초월?"

유준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초월 등급 소모성 아이템.

신화가 나올 거라는 예상과 달리 한 단계 위 등급이 나와 버렸다.

그나저나 처음 보는 종류의 아이템이다.

새로운 힘이라니.

무슨 힘을 말하는 걸까.

"주인님! 뭔가요?"

"기다려 봐. 먹어 봐야 알 거 같아."

"...그걸 드신다고요? 심장처럼 생긴 그걸? 언데드인 저도 그런 짓은 안 합니다요."

"넌 언데드니까 못하는 거겠지. 그리고 나라고 먹고 싶어서 먹겠 냐?"

왜 여긴 항상 먹어야 효과가 적 용되는 건가.

저번엔 반지까지 실제로 씹어 먹었었다.

차라리 이 커다란 심장보다는 반 지가 낫다.

이건 많이 징그럽게 생겼다.

씹으면 피가 뚝뚝 떨어질 것만 같은 비주얼.

아무리 강해지는 것에 눈이 먼 유준이라고 해도 약간은 주저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눈 딱 감고 심장을 입안에 넣었다.

'씹어야 하나? 그래야 효과가 적 용될까?'

고민은 길지 않았다.

그냥 삼켰다.

섭취라는 행위만 하면 효과가 적 용될 확률이 높았다.

지금까지 그래 왔으니까.

[세상에 둘도 없는 영약 '셀리온 의 심장'을 섭취했습니다!]

[새로운 힘에 눈을 뜹니다!]

['혼돈'이 몸속에 자리 잡습니다.]

그때 엄청난 고통이유준의 몸을 엄습했다.

전혀 예상 못 했던 통증에 유준 이 허리를 구부렸다.

"꼬윽.…"

평정심으로도 소용이 없었다.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아파서 유준이 몸부림을쳤다.

'혼돈...이 뭐길래!'

이를 악물고 버텼다.

왠지 여기서 정신을 놓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새롭게 얻은 힘이 허무하게 사라 질 것만 같아서.

유준은 허벅지를 주먹으로 세게 내리쳤다.

파라네트가 화들짝 놀라 다가왔다.

"주, 주인님?"

"크홉!"

"머리 괜찮으십니까? 왜 갑자기 자해를...?"

"왜...! 내 머리를 걱정하냐? 지금 가슴 부여잡고 있는 거 안 보 여? 컥...

"아하...

고통이 끊이질 않았다.

아니, 가면 갈수록 더 심해지고 있었다.

인벤토리에서 꺼낸 포션을 마셨지만, 고통이 완화되지 않았다.

애초에 이게 고통인지 아닌지 헷 갈릴 정도로 정신이 혼미해졌다.

"주인...님! 정신을 차리려고 스스로 때리시는 겁니까? 그렇다면 저한테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뭔...데."

파라네트가 자세를 취했다.

마치 축구공이라도 찰 듯 발을 뒤로 젖혔다.

"너... 설마."

"급소입니다! 남자의 급소를 타 격하면 단번에 정신을 차릴 수 있겠죠?"

파라네트가 해맑게 웃으며 발을 움직였다.

'얘가 돌았나?'

유준의 생존 본능은 파라네트보 다 더했다.

그가 황급히 하반신을 뒤로 쭉 빼며 파라네트의 발길질을 피했다.

유준은 악귀와 같은 얼굴을 하고 선 검등으로 파라네트를 힘껏 후려쳤다.

콰아아앙!

그렇게 정신 나간 언데드 한 놈 이 역소환되었다.

"...뭐야."

유준이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리 세게 때렸다지만, 검등으로쳤는데.

그렇다고 역소환이 된다고?

'파라네트도 엄청 단단한 편인데.... 내 공격력이 이 정도였나?'

하여튼 덕분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고통은 여전하지만, 몸 안에 들 어찬 기운을 통제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유준이 마력을 서서히 움직였다.

잠잠했던 마력 로드가 자연스레 바빠졌다.

가슴에 응어리진 알 수 없는 기 운.

'이게 아마도 혼돈 같은데.'

새롭게 얻은 혼돈이라는 기운이 마구잡이로 날뛰었다.

'통제할 수 있어야 내 걸로 만들 수 있다는 건가.'

그냥 먹고 끝날 줄 알았는데.

거저먹을 수는 없나 보다.

유준이 집중했다.

그는 한차례 무아지경을 겪고 나

서 놀라운 집중력을 갖게 되었다.

그때의 느낌을 떠올리면서 몸 내 부를 들여다봤다.

'마력으로 잠재우는게 정석이겠지.'

사실 정확한 방법은 모른다.

이런 일이 벌어진 것 자체가 처 음이기에.

그래서 유준은 최상급 체력 포션 과 엘릭서를 미리 꺼내 두었다.

혹시나 생길 불상사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타파골에게 경호를 맡기기까지

한 후에 유준은 작업을 제대로 시작했다.

가슴을 찢는 듯한 통증.

참았다.

억지로 마력을 컨트롤하며 '혼돈'을 건드렸다.

당연히 혼돈은 거세게 반발했다.

"억!"

순간적으로 정신을 잃을 뻔했다.

처음부터 너무 세게 나갔나.

유준이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다른 누군가의 도움없이 자신

혼자서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천천히.

서두르지 말자.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대 한 순간일지도 모른다.

너무 거창한 거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지만, 거창한 거 맞다.

마력으로 혼돈을 살살 건드렸다.

혼돈이 발끈하며 마력을 집어삼 키려 했다.

하지만 그의 마력 순도는 더할 나위없이 높은 상태.

혼돈에게 쉽게 밀리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혼돈의 크기는 엄지 손톱만 했다.

유준은 압도적인 양으로 밀어붙 이기 시작했다.

물론 너무 거칠게 다룰 생각은 없었다.

천천히 압박했다.

없애려고 들지는 않은 것이다.

그런 마음가짐이 효과가 있던 걸까.

혼돈이 조금씩 마력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마력과 섞인다고해서 혼돈의 성 질이 변하지는 않았다.

그저 공존할 뿐.

지루하면서도 조마조마한 작업을 한참 동안 반복했다.

유준의 표정이 점차 밝아졌다.

날뛰던 혼돈이 아까와 비교하면 훨씬 얌전해졌다.

' 됐나?'

마력이 혼돈을 다 덮어 버렸다.

유준은 마력을 이용해 혼돈을 조 금 움직여 보려 했다.

혼돈이 완강하게 거부했다.

그러나 전처럼 큰 반발은 없었다.

통증 또한 없었고.

'억지로 하지는 말라는 건가?'

유준은 마력과 관계없이 혼돈을 움직이고자 하는 의지를 보였다.

혼돈이 몇 번 튕기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유준의 뜻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살아 있는 거 같아.'

신기하다.

스스로 움직이는 기운이라니.

어찌 됐든 성공했다.

비록 크기는 작지만, 저 작은 기 운이 얼마나 흉포한지 아는 유준은 절대 무시할 수가 없었다.

'혹시 상태창에 변화가 생겼을까?'

궁금한 건 못 참았다.

바로 상태창을 열었다.

[태초의 플레이어. 신유준]

□ 레벨 : 456

□ 특성 : 평정심(S), 검술(EX) - 보석(상), 예민한 감각(A) - 보 석(하), 마법 이해(S)

□ 스킬 : 참격(B), 프로즌 필드 (A), 쾌속 전진 (A), 고대 마법 (EX++) - 보석(상), 절대지기(SSS)

- 보석(중)

□ 칭호 : 태초의 플레이어(신화)

- 모든 능력치 25% 증가 외 20개

□ 능력치

[근력 744(687+57)] [민첩 835(758+77)]

[체력 711(654+57)] [마력 833(811+22)]

[혼돈 20 ]

[미분배 포인트 : 136]

-태초의 플레이어 : 레벨 업 시 미분배 포인트가 4씩 주어집니다. 또한, 태초의 플레이어가 됨으로써 미분배 포인트 120을 획득했습니다.

-태초의 플레이어는 착용 제한 레벨을 50까지 무시하고 아이템을 착용할 수 있습니다.

-태초의 플레이어는 마신 추종자들이 두려워하는 존재입니다. 마신 추종자를 상대할 때 공격력과 방어 력이 각각 50%씩 증가합니다.

-언제나 행운이 함께합니다.

오랜만에 보는 상태창.

도저히 450레벨 플레이어의 상태창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의 수치들이 보였다.

퍼센트 효과가 적용되어 보이지 않음에도 저러했다.

'능력치가 30씩 올랐고, 검술도 EX등급이 됐지. 혼돈이라는 능력치 도 생겼네.'

그리고 하나 더.

모든 능력치 증가 효과는 혼돈에 적용되지 않는 것 같았다.

아이템을 벗고 착용하면서 확인

해 봤는데 변함이 없었다.

만약, 적용되었으면 진작 혼돈의 크기가 더 커졌겠지.

'아쉽긴 하지만, 만족해야겠지.'

혼돈이라는 기운을 사용해 보지는 않았지만, 강력한 기운이라는 건 확실히 알았다.

'혼돈을 마력 대용으로 쓸 수 있나?'

유준은 혼돈 기운을 끌어 써서 기본 마법 '라이트'를 사용해 봤다.

파직!

빛의 구가 생기는가 싶더니 금세

사라져 버렸다.

'왜 되다가 말지?'

생성은 되는데,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마력이랑 느낌이 다르다.

'혼돈... 이름부터 약간 칙칙한 느낌을 풍기니까. 아마도 빛이랑은 맞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겠군.'

그렇다면 다른 마법을 써 보자.

암 속성 계열인 다크 애로우를 생성했다.

이번에는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었다.

그러나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유준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오히려 위력이 반감되는 거 같은데.'

혼돈을 섞으니 마법이 더 불안정 했다.

'아예 속성이 없는 마법을 써 볼까?'

공간 장악.

마력은 전혀 쓰지 않고 혼돈만 사용해서 아무 공간이나 일단 장악 해 봤다.

우웅! 웅!

'됐다!'

공간 장악은 제대로 펼쳐졌다.

아무런 문제없이.

'위력은... 더 강해진 거 같긴 한데.'

굳이 마력을 내버려 두고 혼돈 기운만 사용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혼돈 그 자체는 어떨까.'

유준은 꾹 움켜쥐고 있던 혼돈을 외부로 방출시켰다.

손에서 탁한 기운이 흘러나오더 니, 굳게 닫혀 있는 문으로 날아가

부딪쳤다.

콰아아아앙! 콰아앙!

[격이 낮아 공격이 통하지 않습니다!]

[격이 상승한 뒤에 다시 시도해 주십시오!]

문에 큼지막한 구멍이 생겼다.

뭐야.

'안 통한다며?'

저 문은 안 부서지는 거 아니었나?

잘만 부서지는데?

'혼돈 자체가 위력이 세서 그런 건가?'

아직 확실하지가 않았다.

유준은 다른 강력한 마법을 캐스 팅 했다.

이번엔 혼돈을 섞지 않고 오로지 마력만 사용했다.

콰콰쾅! 콰콰콰쾅!

[격이 낮아 공격이 통하지 않습

니다!]

[격이 상승한 뒤에 다시 시도해 주십시오!]

동일한 메시지.

문은 멀쩡했다.

혼돈이 지나간 구멍만 있을 뿐, 다른 곳이 파괴되거나 하지도 않았 고 금이 간 곳도 없다.

'...설마 격을 무시할 수 있는 건가? 혼돈은?'

그렇다면.

지금 자신에게 딱 필요한 능력이

아닌가.

'단순히 위력이 강해서 문이 부 서진 것 같지는 않아.'

격이라는 것 때문에 내심 스트레 스가 장난이 아니었다.

문이 부서지지도 않았고, 이단 심판관을 죽일 수도 없었다.

격에서 차이가 난다는 이유만으로.

그런데 그 격의 차이를 단번에 줄여 줄 힘을 얻은 것이다.

'더 실험해 봐야 정확히 알 수 있겠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유준이 절대 봉인의 구슬을 꺼내 들었다.

'봉인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상관없었다.

절대 봉인의 구슬이 닳는 것도 아니고.

지금은 이단 심판관이 필요했다.

유준은 망설이지 않고 이단 심판 관의 봉인을 풀어 버렸다.

화아악-!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6권 15화

137화

이단 심판관은 구슬에서 나오고 한동안 넋을 놓고 있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파악하는게 느렸다.

그럴 만도 했다.

유준에게 실컷 괴롭힘을 당한 데 다가 절대 죽지 않을 거라는 확신 이 있었는데 봉인까지 당해 버렸다.

어떻게 보면 심연의 형벌을 받는 것보다 끔찍한 일인 것이다.

"무, 무슨 일이지...

"미안하다. 자는데 꺼낸 거 같네."

애초에 잘 시간도 주지 않았다.

"잠? 잠이라고? 넌 봉인을 안 당 해 본 게 분명하군. 저기선 절대로 잘 수 없어. 온몸을 꽁꽁 얼리는 듯한 추위와 내 몸을 불태울 듯한 뜨거운 열기가 번갈아 가면서 나를 괴롭혔으니까."

"당연한 소리를 하고 있네, 얘가. 보통 살면서 봉인을 당하는 경우는 거의 없지? 그리고 열기랑 추위라 니. 잘됐다. 너 비슷한 스킬 나한테

썼잖아."

"야, 차라리 거기서 스킬 연마나 하고 있으면 되겠다. 아주 최적의 환경 아니냐?"

유준은 이단 심판관이 싫었다.

감히 천사의 눈물을 탐냈기 때문이다.

어쩔 수없이 가져간다는 듯이 말하긴 했는데, 그게 중요한가.

내 물건을 가져가려 했다는게 더 중요하지.

그래서 유준은 이단 심판관을 용

서해 줄 생각이 없었다.

그는 혼돈을 끌어 올렸다.

그 후 손가락 끝으로 혼돈을 쏘 아 냈다.

퓩!

"끄아아아악!"

배에 구멍이 난 이단 심판관이 소리를 지르며 괴로워했다.

'작은 구멍 하나 생긴 것치고는지나치게 아파하는데?'

혼돈에 닿으면 엄청 위험한 건 가, 혹시?

이단 심판관이 연기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한 번 더 해 봐야겠다."

혼돈을 이번엔 좀 더 큼지막하게 만들어서 쏘아 냈다.

푸욱!

"아아아악! 아아아아아, 나 죽어! 그만해, 제발!"

"이미 했는데, 뭘 그만해."

유준은 이단 심판관의 상태를 유 심히 살폈다.

분명히 아무리 공격을 해도 고통 만 느끼고 멀쩡했던 전과는 달리,

이단 심판관의 몸에 생긴 구멍이

메워지지 않았다.

심지어 플레이어가 기본적으로지닌 재생력도 낮추는 듯했다.

이상할 정도로 상처가치유되지 않았다.

'고통도 더 느끼게 하고... 파 괴력도 세고 격까지 무시한다는 거지.'

유준이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이거 사기잖아."

끝이 아니었다.

유준은 인벤토리에서 중급 포션을 꺼내 이단 심판관의 배에 부었

다.

치익-!

포션을 부어도 상처가치료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조금씩 살이 붙기는 하지만 그 속도가 매우 느렸다.

"와... 포션도 안 먹힌다고?"

중급이면 상당히 비싼 포션인데.

이러면 혼돈의 장점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격의 차이를 무시하는 것만으로 도 충분히 만족스러운데...

부가 효과가 너무 많지 않은가.

그야 좋지만.

너무 사기적인 힘이 아닌가 싶어 서 걱정부터 들었다.

'부작용은 없나?'

지금 확인해 본 것만 나열해도 사기적인 것들만 있었다.

분명 이러한 능력에는 대가가 있을 텐데.

아직까지는 부작용이 발견되지 않았다.

그래서 더 불안했다.

'뭐, 수명을 대가로 쓰거나 하는 건 아니겠지?'

유준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에이, 설마. 내가 사신이랑 계약 한 어린 소년도 아니고.'

혼돈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애초에 엄지손톱만 한 크기의 혼돈이었다.

금방 써 버리는게 당연했다.

조금씩 회복되고 있기는 한데, 그 속도가 빠르지는 않았다.

'격이 높거나 까다로운 적을 만 났을 때만 써야겠네.'

혼돈은 아직 양이 적어 남발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어떻게 늘릴 방법을 찾아봐야겠네.'

유준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돌 아섰다.

아직도 고통스러워하는 이단 심 판관이 보였다.

그의 처우를 두고 유준이 고민했다.

'이제 죽일 수 있어. 혼돈 앞에서는 그놈의 격도 의미가 없으니까.'

하지만 잘 생각해 보니 이단 심 판관을 죽이는 건 너무 녀석을 행 복하게 해 주는 것 아닌가.

봉인되어서 오랜 시간 갇혀 있는 것이 이단 심판관에게는 더 큰 불 행일 것이다.

'혼돈 같은 힘을 얻었을 때마다 샌드백 대용으로 쓰면 되겠군.'

이단 심판관의 격이 자신보다 월 등하게 높다는 걸 안다.

그래서 당분간은 이용할 가치가 있다고 여겼다.

'이제는 내게 크게 위협이 되는 존재도 아니니까.'

무엇보다 이단 심판관이 괘씸했다.

절대 안 풀어 줘야지.

유준의 사악한 미소를 본 이단 심판관이 절망에 빠졌다.

미궁.

칙칙한 느낌의 벽에 기댄 조수아 가 생각했다.

'신유준 그 사람 곁에 있는 건,

지금 내게 큰 도움이 안 돼.'

그는 강하다.

압도적으로.

무슨 위기나 난관이 와도 그가 나서면 말끔히 해결된다.

그와 함께하고 있자면 게임에서 나 나오는 치트 키를 쓰는 것만 같았다.

해서는 안 될 짓을 하는 느낌.

불안했다.

'이대로 안주할 수는 없어.'

그와 완전히 친해진 것은 아니지만, 너무 가까이해서도 안 되겠다

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위험한 인물이라서가 아니었다.

신유준은 곁에 있으면 자꾸 의지 하고 싶게 만드는 인물이었다.

같이 있으면 그녀 본인이 나태하게 변할 것만 같았다.

'발전은 스스로의 의지없이는 절대로 이뤄질 수 없어.'

그런데 그 간단한 것을 잊는 플레이어들이 의외로 많았다.

당연하다.

플레이어 능력은 너무나 편하니

까.

몬스터를 사냥하면 레벨이 오르고, 포인트를 얻는다.

거기서 가끔 아이템이 나오기도 한다.

적당한 수준의 강함만 갖춰도 평 탄하게 살아가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실제로 대륙에는 강해지는 것을 포기하고 안정적인 삶을 꾸려 나가는 이들이 무척이나 많았다.

첫 번째 이벤트에서 초반에 사망 한 플레이어 대부분이 그런 부류의 이들이었다.

조수아는 그런 이들을 싫어하지는 않았다.

'대부분이 지구에서 평화로운 삶을 살아가던 사람들이야. 세상이 바뀌었다고 쉽게 적응할 리가 없어.'

이해했다.

자신도 다 포기하고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러나 그래선 안 된다.

조수아가 마음을 굳게 먹었다.

그녀가 이 정도의 무력을 지닐 수 있었던 건 철저하게 자신을 몰

아붙였기 때문이었다.

강해지기 위해서 끊임없이 상기 시키는 것이 있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어떤 보상을 받거나 하는 건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는 걸.

"저기요."

"왜 대답을 안 해주세요?"

"잠시 딴생각 좀 하느라."

조수아는 같은 팀원들이 된 이들 과 말을 별로 섞지 않았다.

묵묵하게 목표 달성만을 위해서

움직일 뿐.

그런 그녀를 아니꼽게 보는 팀원 이 한 명 있었지만, 불만을 대놓고 드러내지는 못했다.

조수아는 강했다.

신유준 옆에 있어서 빛이 바랬을 뿐이지, 그녀는 어딜 내놓아도 손 색없는 강자였다.

녹초가 된 기색의 팀원 한 명이 입을 열었다.

"계속 움직이다 보니 정신적으로 좀 지치는 거 같기도 하고 쉬고 싶은데 이벤트는 언제 종료되려나요."

"그게 중요할까요? 목표를 하나

라도 더 달성하는게 중요하지 않을까요?"

조수아가 무미건조하게 말했고, 말을 꺼냈던 팀원의 표정이 썩어 들어갔다.

"왜 그렇게 보시죠?"

"...아, 아니에요."

*

*

유준은 아까 나타났던 홀로그램 창을 다시 띄웠다.

['(Lv. 11) 천사의 눈물 찾기, 천 사의 눈물을 사용해 신화 등급 이 상의 아이템 제작' 목표를 달성했습니다!]

[목표 달성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신유준' 플레이어에게 10,000,000점이 주어집니다.]

[축하합니다! 가장 먼저 11레벨 목표를 달성했습니다. 추가로 5,000,000점이 주어집니다.]

'천만 점이라. 나쁘지 않네.'

사실 천만 점은 무척 높은 점수다.

그가 950만 명에 달하는 플레이어를 죽이고 얻은 것보다도 많으니까.

다만,

달성하라고 만든 목표가 아닌 것 같았던 11레벨 목표.

그걸 달성했으니 마땅히 받아야 할 보상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추가 점수까지.

원래 있던 점수까지 모두 합산하 면 2,400만 점이 넘는다.

웬만한 순위권 플레이어들이 100 만 점도 못 넘기고 있는 걸 생각하 면, 정말 어마어마한 수치였다.

'일단 점수는 제대로 챙겼다.'

11레벨 목표는 더 갱신되지 않았다.

단 한 번만 달성할 수 있는 건가.

"이제 이벤트 끝날 때까지 10레 벨 목표만 받겠습니다."

"예."

당연하게도 유준의 결정에 반대 하는 이는 없었다.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다.

[이벤트가 종료되었습니다!]

[진행 중인 목표는 앞서 공지했 던 대로 취소됩니다.]

10레벨 목표를 막 달성하고 쉬고 있던 팀원들에게 알림 창이 떴다.

유준이 기다렸다는 듯 몸을 일으 켰다.

"딱 맞췄군요."

"이제 헤어질 때가 왔네요. 아쉽습니다."

"예, 저도요."

거짓말이다.

이들과는 메신저 교환도 나누지 않았다.

이제부터는 진짜 실력이 검증된 이들하고만 메신저 교환을 할 예정 이었다.

'사실에르거와 레오나드도 강한 편이긴 하지만...

마신 추종자들보다는 살짝 모자 라는 것 같았다.

'점수도 3,200만이 넘게 모였네.'

11레벨 목표를 달성하고 그 뒤에 10레벨 목표를 네 개나 더 달성했다.

덕분에 800만 점을 추가로 얻을 수 있었다.

'이 정도면 만물상점에서 못 살 게 없을 거 같은데?'

미궁에서 장소가 변경되었다.

아니, 플레이어들이 워프가 된 것이리라.

[마지막 이벤트입니다.]

[이번 이벤트는 파티를 맺을 수 없습니다.]

[이 무인도에 만물상점이 숨겨져 있습니다.]

[만물상점에는 단 두 명만들어 갈 수 있으며, 물건을 구매할 수 있는 건 한 명뿐입니다.]

[즉, 만물상점에 두 명이 자리하고 있을 시 물건을 구매할 수 없습니다.]

[무인도 곳곳에 점수를 얻을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단, 무인도를 벗어나려 하지 마십시오.]

[섬 끝에는 신의 하수인들이 자 리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섬 밖으로 벗어나려는 플레이어들을 끔찍 한 방식으로 살해할 확률이 높습니다.]

홀로그램 창을 다 읽은 유 주위부터 둘러봤다.

낮은 나무들.

빽빽하게 모여 있지도 않았다.

굽지 않고 고른 땅에 나무와 이 름을 알 수 없는 꽃들이 피어 있었다.

정말 평범한 무인도처럼 보였다.

'무인도치고 좀 넓은 감이 있긴 하지만.'

두 번째 이벤트에서는 죽지만 않으면 탈락할 일도 없었으니, 여기 무인도에 있는 플레이어의 수가 꽤 될 것이다.

'만물상점이 있다고 했어.'

그렇다면 만물상점을 찾는 것이 우선이었다.

이 넓은 무인도에 단 하나 있는 만물상점을 찾는게 쉽지는 않겠지만, 그에게는 타파골.

그리고 불미스러운 일로 역소환 되었다가 다시 소환된 파라네트가 있었다.

"주인님. 만물상점을 찾으면 되는 겁니까?"

파라네트가 말했다.

"응. 찾을 수 있겠어?"

"아직 감은 안 옵니다. 하지만 그것도 시간문제죠!"

"지금은 전혀 모르겠다는 얘기지?"

"예!"

"그럼 그렇게 말해, 이놈아."

"...넵."

파라네트가 머리를 긁적였다.

반면 타파골은 무릎을 꿇고 대기 하고 있었다.

"넌 왜 그러고 있어?"

"명령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만물상점. 어딘지 알아?"

"위치만 알려 주십시오."

"위치 알면 여기선 내가 알아서 찾아갈 수 있는데?"

미로처럼 배배 꼬인 길이 아니라 비교적 탁 트여 있는 무인도였다.

"...죄송...합니다. 무능력한 저를 탓하십시오."

"널 탓할 건 아니지."

무엇이든지 찾아내는 소환수가 있다면 그게 더 기막힌 일일 것이었다.

'그럼 마력 탐색부터 시작해 볼까.'

얼마 지나지 않아서 플레이어들 의 기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내 기감이 이렇게 넓었나.'

과장 좀 보태서 무인도에 있는 모든 플레이어들의 위치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무리 기억력이 좋아졌다고 해 도 그 위치들을 모두 기억하기에는 무리가 있겠지만.

'일단 겉으로 드러난 곳에는 만 물상점이 없는 모양인데.'

그때,

"오오옷!"

파라네트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저길 보십쇼!"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_ 6권 16화

138화

"왜 호들갑....어?"

유준이 파라네트의 시선이 향한 곳을 같이 바라봤다가 입을 떡 벌렸다.

그곳엔 대왕 벌레들이 있었다.

아주 많이.

얼마나 많냐면, 무인도 전체에 그림자가 드리울 정도였다.

웨에엥-! 왜앵!

유준이미간을 찌푸렸다.

'왜 기감에 안 잡히지, 쟤네는?'

분명히 기감을 널리 퍼뜨린 상황.

저 하늘을 가득 메운 벌레들에게 기척을 숨기는 능력이라도 있단 말 인가?

"잠깐만, 저거 생긴 게 좀...

"그렇죠. 모기입니다."

파라네트가 동조했다.

"너 모기를 알아?"

"예. 많잖습니까."

"하긴.…"

그러나 저렇게 큰 모기는 본 적이 없었다.

"그나저나 크네요. 어림잡아 인 간 어린아이 정도 크기는 되는 것 같습니다."

"어우, 혐오스러워."

생김새가 역겨운 건 봐줄 수 있다.

그러나 저 모기 특유의 날갯짓 소리가 묘하게, 아니 너무나도 거 슬렸다.

"한국 열대야를 떠올리게 하는

광경이네. 저 족기 놈들."

"...예? 혹시 욕하신 겁니까?"

"아니. 모.기는 발로 밟아 죽여야 제맛이라서 족기야."

"그, 그렇군요. 그런데 날아다니는 모기를 어떻게 밟아 죽이는 겁니까?"

"...깊이 알려고 하진 마라."

"예, 옙!"

그때 대왕 족..., 대왕 모기들이 일제히 유준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의 피 냄새를 맡은 것이다.

"나 하나에 빨대 꽂겠다고 이렇

게 달려드는 거야?"

스텔스 모드의 대왕 모기들.

대충 눈에 보이는 수만 세도 수 천은 되는 듯했다

눈으로만 식별 가능했기에 정확 한 수는 셀 수가 없었다.

유준은 코앞까지 다가온 모기들을 두고도 쉽사리 대웅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어떤 방법이 가장 고통스럽지?'

모기들을 아주 작살을 내 버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가 얘네 때문에 잠을 얼마나

설쳤는지.'

지금은 아니지만, 현대인일 때의 유준은 모기들에게 유독 많은 괴롭 힘을 당했다.

그의 피가 모기들에게는 매력적 인 음식으로 보였던 걸까.

이제 정말 시간이 없다.

그는 마력을 잔뜩 끌어 올렸다.

그리고 라이트닝 체인을 사용했다.

EX++등급인 고대 마법으로 펼 쳐진 라이트닝 체인.

파직, 즈즈즈즛. 즈즈즛.

번갯불에 콩 구워지듯, 접근해 오던 대왕 모기들이 순식간에 바짝 타 버렸다.

녀석들은 고기 구워지는 구수한 냄새와 함께 재가 되어 흩날렸다.

[점수가 2 증가합니다.]

[점수가 1 증가합니다.]

[점수가 3 증가합니다.]

[점수가 1 증가합니다.]

[점수가 1 증가합니다.]

[점수가 2 증가합니다.]

"아, 상쾌해. 이 맛에 마법 쓰지."

모기가 너무 싫다.

세상의 모든 모기를 박멸시키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나만 그래?"

"뭐, 뭐가 말입니까?"

"됐어. 넌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구나. 어쩔 수 없지. 언데드니까."

파라네트가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유준은 파라네트에게 실 망한 지 오래였다.

"주인님 말을 못 알아듣겠는데, 저 정상 맞죠?"

"이럴 때가 아니야."

유준의 얼굴이 진지해졌다.

"만물상점을 찾아야지."

만약.

만물상점을 찾지 못하고 이벤트를 끝마치게 된다면.

지금까지 해 온 모든 것이 물거 품이 된다.

혼돈을 얻었으니 마냥 얻은 게 없는 건 아니지만.

삼천만이 넘는 점수가 사라지는 건 절대 눈 뜨고 볼 수 없다.

'나보다 먼저 만물상점을 찾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어.'

그건 상관이 없었다.

이벤트가 끝나기 전에 만물상점을 찾기만 하면 된다.

그곳에 누가 있건 쫓아낼 자신이 있으니까.

그때였다.

누가 메신저 메시지를 보내왔다.

유준은 그냥 무시하려다가, 확인 했다.

혹시나 중요한 내용이면 어쩌나 하고.

그리고 메신저를 열어 본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마누엘라 : 만물상점 찾았어? 못 찾았으면 내가 위치 알려 줄게.]

유준은 바로 답장을 보냈다.

[.신유준 : 사랑한다.]

[마누엘라 : 뭐? 무 무슨 소리야 그갭 ni_o]

유준이 고개를 갸웃할 때 마누엘 라의 메시지가 추가로 더 왔다.

[마누엘라 : 무슨 의미야?]

[*신유준 : 위치나 알려 달라는 의미.]

[마누엘라 : ...아 그래]

[마누엘라 : 기다례

마누엘라는 곧바로 만물상점이 있는 곳 근처 풍경을 설명했다.

유준이 감탄했다.

[*신유준 : 이번에도 상상해서 알아낸 거지?]

[마누엘라 : ...으, 웅. 비슷해!]

[마누엘라 : 아, 맞다. 만물상점에 플레이어들이 많이 모여 있었어. 서두르는게 좋을걸.]

[*신유준 : 와, 근데 넌 어떻게 이렇게 딱딱 필요할 때 예언을 하 냐. 운이 진짜 좋네.]

[마누엘라 : 너도 운이 좋은 편 아니야? 나랑 아는 사이인 것만으로도 행운... 그치?]

[*신유준 : 웅그래고맙다]

유준이 메신저를 껐다.

마누엘라.

보면 볼수록 너무 쓸모가 넘치지 않는가.

초월의 돌을 얻게도 해 줬지, 던 전 두 개도 클리어해서 유준을 성장시키게 해 줬지.

만물상점 위치도 물어보지 않았

는데 먼저 나서서 알려 줄 줄이야.

'마력의 원천으로 마력 능력치 얻은 거 생각하면 항상 고맙지.'

"타파골."

"예."

"위치를 정확하게 알려 줄 수는 없고. 그 주변 특징을 말해 줄 건 데 그럼 찾아갈 수 있겠어?"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타파골이제 가슴을 두드렸다.

광석끼리 부딪치는 요란한 소리 가 울려 퍼졌다.

위이이이잉-!

그 소리에 반응한 건지 대왕 모 기들이 또 몰려들기 시작했다.

"도대체 어디 있다가 나타나는 거야, 얘네는?"

스텔스 기능을 기본으로 장착한 모기들.

"물고문이나 시켜 줘야지."

워터 밤.

콰콰콰쾅! 콰콰쾅!

허공에 생겨난 물방울들이 동시 다발적으로 폭발했다.

수많은 대왕 모기들이 물 폭발에 몸이 터졌다.

[점수가 1 증가합니다.]

[점수가 1 증가합니다.]

[점수가 1 증가합니다.]

[점수가 2 증가합니다.]

'점수가 꽤 짭짤한데?'

한 마리당 들어오는 점수는 짠 편이지만, 한 번에 쓸어버리니 무 시 못 할 점수가 쌓였다.

그리고 속이 시원했다.

마법 한 방에 그 성가신 모기들이 전멸하는 꼴이란.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가 싹 다 풀리는 기분이었다.

'이번 이벤트 진짜 마음에 드는데?'

대왕 모기를 죽이는 것이 메인이 고 만물상점이 덤인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물론, 만물상점이 가장 중요하다.

느낌만 그렇다는 거다.

유준은 타파골의 안내를 따라 만 물상점이 있는 곳을 향해 이동했다.

그때 메시지가 하나 더 날아왔다.

이번에도 마누엘라였다.

[마누엘라 : 근데... 아까 했던 말 그냥 농담이야?]

[* 신유준 : 농담? 뭐가?]

[마누엘라 : 그, 사... 뭐라고 했던 거 있잖아.]

[*신유준 : 사? 그게 뭐야.]

[마누엘라 : 됐어바보]

왜 이래.

아까 대충 대답한 것 때문에 화 가 났나?

그래서 똑같이 복수한 거고?

"쯧쯧."

유준이 혀를 찼다.

수천 년을 살아온 마녀니까 변덕 이 좀 심하고 괴상한 짓을 하는 건 이해해 주기로 했다.

만물상점.

허름해 보이는 그 상점 근처에는 수십 명은 될 법한 수의 플레이어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드워프 종족 플레이어 두 명이 소곤소곤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 뭐야?"

"만물상점 한 명만 이용 가능하 다며. 그거 기다리고 있는 모양인데."

"근데 줄도 안 서는데? 순서는

어떻게 기다려?"

"강한 사람이 먼저 가지 않을까?"

"죽은 사람도 있어?"

"저기 나무들 봐. 피 잔뜩 묻어 있지? 이미 한바탕 했던 모양인데."

"살벌하네. 진짜. 이거 점수 기껏 모아 놨더니 쓰지도 못하고 끝나는 거 아니야?"

"...그럼 우리 여태 헛고생한 거네?"

"저기 못 들어가면 그렇지?"

"엿 됐다. 플레이어 더 몰리기 전에 어떻게든 저기 들어가야겠네."

"그게 쉬웠으면... 우리처럼 이 러고 있는 플레이어가 없었겠지. 그런데 봐."

주위를 둘러보니 둘처럼 모두 눈 치만 보고 있었다.

섣불리 나섰다가 가장 먼저 희생 양이 되긴 싫은 것이다.

기묘한 대치 상황이 길게 이어졌다.

현재 만물상점에는 두 명이 이미 들어가 있는 상태.

콰앙!

"컥!"

그때, 한 플레이어가 폭발음과 함께 만물상점에서 튕겨 나왔다.

"저자가 결국 졌군."

"안에 괴물이 있잖아. 당연하지."

"3지역에서 1위를 했던 플레이어 라지?"

"저놈이 있는데 저길 어떻게 들 어가냐고."

3지역의 1위를 했던 플레이어.

그가 만물상점에 있어 누구도 선 뜻 나서지 못했다.

"그것보다도 다들 어떻게 이리 빠르게 만물상점을 찾은 거야? 너무 빠르지 않아?"

"플레이어가 워낙 많잖아, 어떻 게든 찾을 수 있었겠지. 사람이 모 여 있는 곳을 찾아보면 또 그게 단 서가 될 수 있고."

"그 말은 플레이어들이 점점 많 아질 거라는 건가?"

"여기서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을걸."

"그런데 3지역에서 1등 한 플레 이어를 어찌 밀어내게?"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지."

" 나올까?"

"물건 살 거 다 사면 나오겠지."

"그때가 되면 완전 난장판이 되겠네."

" 야단났다."

" 왜?"

"우려하던 일이 일어났어."

시간이 지날수록 만물상점 앞에 도착하는 플레이어들의 수가 기하 급수적으로 늘기 시작했다.

이제는 만남의 장이 되어 버린 만물상점.

누군가 상점에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만신창이가 된 채로 튕겨 나오는 일이 반복되었다.

"진짜 괜히 1위 했던 플레이어가 아니네. 들어가는 족족 뭣도 못 해 보고 당하잖아."

"도대체 뭐 하길래 만물상점에 저리 오래 죽치고 있는 걸까?"

"난들 알겠냐."

벌써 열 명이 똑같은 광경을 연 출하며 죽었다.

그래서 플레이어들은 쉽사리 만 물상점에 들어갈 엄두를 못 냈다.

그때였다.

쿠응! 쿠웅!

지면에서 엄청난 진동이 울렸다.

"뭐, 뭐야?"

"지진?"

"누가 어스퀘이크 마법을 썼나?"

지진이나 마법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저 무척 거대한 괴생명체... 가 아닌 골렘이 그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오고 있는 소리였다.

발을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무 인도에 굉음이 울려 퍼졌다.

"골.…"렘?"

"저렇게 큰 골렘이 있어?"

"나, 나! 저거 본 적 있어! 두 번 째 이벤트 미궁에서 봤던 골렘이야."

미궁의 높은 벽보다 큰 타파골.

얼굴이랑 어깨 부분만 빼꼼 튀어 나왔었는데 그런 타파골을 목격한 플레이어가 적지 않았었다.

대부분이 봤다고 해도 무방할 정 도.

"그게 왜 여기 있어?"

"골렘을 조종하는 플레이어가 근 처에 있나 보지."

"도, 도망쳐야 하는 거 아니에요?"

십수 명에 달하는 플레이어는 고 민도 하지 않고 줄행랑을 놓았다.

웬만한 드래곤들보다도 큰 골렘.

크기에서 오는 위압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아무리 날고뛰는 플레이어들이라고 하더라도 생물로서 당연히 두려 움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타파골. 거슬리게 굴면 다 밟아 서 죽여."

"예. 알겠습니다."

타파골의 굵은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감히 타파골을 향해 덤벼드는 플레이어가... 아예 없지는 않았다.

"내가 크기만 큰 놈들을 얼마나 많이 봐 왔는데. 특색 없는 골렘 따위는 깡통 로봇이나 다름없지."

재빠르기로 유명한 실피 종족의 플레이어가 모습을 드러냈다.

레벨이 500은 훌쩍 넘어 보였다.

장비 또한 등급은 높지 않아도 착용 제한 레벨은 꽤 높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유준이 생전 처음 보는 장비들이었으니까.

실피는 등에 달린 두 쌍의 날개를 활용해 타파골의 주위를 얼쩡거렸다.

몸집에 맞지 않게 거대한 철퇴를 든 실피가 있는 힘껏 타파골을 공 격했다.

콰아앙-!

철퇴와 골렘의 가슴 부위가 부딪쳤을 뿐인데 폭탄 터지는 소리가 났다.

그러나 타파골은 멀쩡했다.

"오오, 제법 단단한데?"

타파골의 주먹이 허공을 가르고 지나갔다.

"느려, 느려! 역시 골렘. 몸집이 크면 뭐 해? 맞히질 못하는데, 낄 낄낄."

실피는 타파골의 어깨 위에 올라 타 있는 유준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있었다.

골렘을 조종하니, 당연히 무력이 뛰어날 거라고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이다.

그 와중에도 타파골의 주먹질은 계속해서 빗나갔다.

'어쩔 수 없지.'

유준이 나서려는 그때였다.

우웅. 우웅!

타파골의 눈에서 레이저가 급작 스럽게 쏘아졌다.

엄청난 열기를 뿜는 레이저가 실 피의 몸을 덮쳤다.

레이저의 두께는 실피의 몸집보 다도 더 컸고,

그로 인해 실피가 흔적도없이 사라졌다.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6권 17화

139화

"타파골. 너 레이저도 쏠 수 있었어?"

"예."

"스킬에는 없던데...

"레이저는 기본으로 탑재되어 있습니다. 이건 아주 기본적인 능력에 불과합니다."

"...그, 그러냐."

" 예."

얘가 길잡이 골렘이 맞는지부터 의심이 갔다.

'단순히 내 능력치가 높다고 이런 놈이 나왔을 리는 없고... 내 행운이 어느 정도 적용된 건가?'

하여튼 타파골이유능하면 자신에게도 좋은 일이었다.

그가 타파골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녀석의 머리 크기와 비교하면 유준의 손은 눈곱 정도.

타파골에게 촉각이 있었다면 개 미가 몸을 기는 것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주인님!"

그때 파라네트가 귓가에 대고 소리쳤다.

"아오, 깜짝이야. 너 내 귀에 대 고 말하지마. 이제부터."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주인 님."

파라네트의 텅 빈 눈이 오늘따라 결연해 보였다.

"무슨 일인데?"

"제 머리는 왜 안 쓰다듬어 주시는 겁니까?"

" 뭐?"

"저 돌덩이 녀석은 애정 어린 눈 길로 바라봐 주시고 왜 저는 항상 찬밥 신세인 거죠?"

"뭐? 왜 이래, 징그럽게. 너 몇 살인 줄은 알아?"

"나이가 중요합니까! 제가 주인 님의 소환수라는게 중요한 거죠!"

"하여튼 저도 저 골렘처럼 해 주 시길. 부탁드립니다. 아니, 그 이상으로 해 주십쇼."

"싫어, 인마. 징그러워."

"너무하신 거 아닙니까!"

"야, 그러다 대머리가 옮기라도 하면 어쩌려...

유준이 황급히 본인의 입을 막았다.

해도 될 말이 있고,해서는 안 될 말이 있다.

파라네트 앞에서 대머리 얘기는 꺼내면 안 되는데.

"파라네트."

파라네트의 턱뼈가 댓 발 튀어나 왔다.

"삐 졌냐?"

"아닙니다."

누가 봐도 토라졌다. 그러나 유준은 단호했다.

"그래도 머리는 안 돼."

머리는 남자의 생명과도 같다.

괜히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가 파

라네트균이 옮기라도 하면,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만물상점에 도착했다.

타파골은 본래 목적을 이루자,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유준이 주위를 쭉 둘러봤다.

몇몇 플레이어를 제외하고는 모 두가 타파골을 피해 멀리 벗어난 상황.

그는 곧바로 만물상점 안으로 들 어갔다.

들어가자마자, 차크람이 날아왔다.

차크람은 평평한 고리 모양 금속으로 만들어진 무기로 쓰는 이가

드물었다.

유준이 보기에 그리 효율적인 무 기는 아니지만, 플레이어 능력과 결합하면 또 다르다.

그는 간결한 동작으로 차크람을 피했다.

그 뒤에 차크람 원에 검을 집어 넣고 땅에 꽂았다.

원래 자리로 돌아가려던 차크람 이제자리에 묶여 버렸다.

"환영 인사가 거창하네."

"제대로 된 놈이 왔군."

날카로운 인상의 미남이었다.

그의 이름은 운도.

운도는 희귀 종족 중 하나인 혼 족이었다.

유준이 바로 알아봤다.

"오, 혼족이네?"

"알고 있나?"

"그럼. 얼마 전에 같이 파티도 했었어."

"그렇다면 자비를 베풀어 주지. 죽이기 전에 이곳을 떠라."

"들어보니까 네가 3지역 1위였다 고 하던데. 맞아?"

"그래."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야?"

"통제."

"왜?"

"네가 알 거 없다."

"더럽게 까칠하네."

유준이 검을 슬쩍 들었다가 차크 람을 향해 내리쳤다.

콰직!

반으로 갈라진 차크람.

그제야 운도의 낯빛이 창백해졌다.

"무기를 부숴?"

"왜? 네 건 안 부서질 줄 알았어?"

".…"감히."

"비싼 거였냐? 미안."

"자비를 베풀려 했더니.... 죽 여 버리겠다."

"내가 봤던 혼족들이랑은 다르게 성격이 좀 화끈하네?"

생각보다 거친 친구였다.

운도는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남은 한 개의 차크람을 손에 끼었다.

그러곤 순식간에 유준이 있는 곳

에 당도해 차크람과 함께 팔을 휘 둘렀다.

후웅-! 서걱!

유준은 제자리에서 단 한 발짝도움직이지 않았다.

그냥 마주 검을 휘둘렀다.

매서운 기세로 뻗어졌던 차크람 이 일도양단 되었다.

"말도 안 돼...

망연자실한 얼굴의 운도.

유준이 바닥에서 발을 떼는 순 간, 세상이 느려졌다.

정확히는, 그만이 혼자 가속된

상태에 놓였다.

운도는 그 속도에 반응하지 못했다.

유준은 망설이지 않고 그의 목을 베어 버렸다.

서걱!

목을 보호하기 위함인지 목까지 가려지는 갑옷을 입었지만,

그의 높은 공격력 앞에서 그 정 도 허술한 방비로는 큰 효과를 발 휘할 수 없었다.

첫 번째 이벤트,

3지역의 패자였던 운도가 그렇게

허무하게 사망했다.

유준은 자신을 물끄러미 보고 있는 한 여성을 마주 바라봤다.

"드디어 손님이 바뀌었네. 옆은 소환수?"

"응."

나이가 꽤 있어 보이는 여성이었다.

그렇다고 늙은 건 아니다.

성숙하면서도 포근한 인상이었다.

"만물상점, 맞지?"

"알고 온 거 아니야?"

"맞으면 됐어. 바로 물건을 살 수 있나?"

"물건을 살 점수만 있다면. 그런 데 보니까 점수 좀 쌓아 놨을 거 같은데."

"웅. 바로 보여 줘."

"정없이 물건만 사고팔면 재미 가 없지. 서로 간단하게 소개나 할까? 난 칸트라야."

"신유준."

상점 주인, 칸트라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네가 마누엘라가 말했던 그 인

간이구나?"

유준이 움찔했다.

"마누엘라? 마누엘라를 알아?"

"알고말고. 네 얘기를 얼마나 많 이 했는데."

"내 얘기? 무슨 얘길 했는데?"

"비밀이야. 다 말해 버리면 내가 마누엘라 그 아이한테 너무 미안해 지거든."

아까 일 때문에 그런가? 뒷담을 얼마나 깠으면 저러지.

순간적으로 기분이 나빠졌다.

유준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됐으니까 물건이나 보여 줘 봐."

덜컥!

그때 만물상점에 들어서는 플레 이어가 있었다.

수인족이다.

방해를 받은 유준이 짜증 어린 얼굴로 뒤를 돌아봤다.

그가 마력을 끌어 올리는 순간이었다.

"시, 신유준. 신유준이다...

"맞는데, 왜."

"미안해!"

수인족이 헐레벌떡 뛰쳐나갔다.

" 뭐야?"

수인족은 만물상점 밖으로 나와 소리를 치고 다녔다.

"신유준이야! 놈이 안에 있에"

매의 눈으로지켜보고 있던 플레 이어들이 수인족의 말에 눈에 띄게 당황했다.

만물상점에 들어갔던 것이유준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던 플레이

어도 몇 있었지만, 대다수는 모르 고 있었다.

"미, 미친."

"신유준이라고? 그 1지역?"

"아아, 1위라면서요. 형님."

"1위 정도가 아니야. 950만 못 봤어?"

"그게 뭡니까?"

"답답하기는. 첫 번째 이벤트가 종료되고 점수판이 하늘에 나왔었 잖아. 그때 녀석 처치 수가 950만을 넘었었어."

"...진짜요? 그 정도예요?"

"그럼 가짜겠어? 너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950만을 어떻게 죽였대요? 보통 1위들도 100만을 못 넘기지 않았어요? 넘긴 사람 있나?"

"없어. 그냥 신유준이 괴물인 거야."

"형님 말만들으면 괴물 수준이 아닌데요."

"유례가 없는 괴물 맞아. 그게 아니면 표현할 말이 따로 없어."

"에이, 신에 빗대면 되죠."

"...그거 신의 하수인들 앞에서

말해 봐라."

"어? 그 여기 무인도에 있다던 신의 하수인이요? 형님은 하수인을 본 적 있어요?"

"전에 들은 얘기가 있는데... 그놈들은 우리랑 같은 플레이어 선 상에 두면 안 돼."

"네? 왜요?"

"격이라는 거 알지? 그 차이가 심하면 공격이 안 먹히거나 하잖아. 그놈들 격은 반신. 그러니까 신까지는 아니어도 피조물들과는 차원 이 다른 위치에 있는 거야. 당연히 우리 공격은 먹히지도 않겠지."

"불공평하지 않습니까, 그거는?"

"야, 격이 동일하다고 해도 우리 가 그놈들을 이길 수 있을 거 같 아? 괜히 신의 하수인이라고 불리는게 아니야. 격 다 떼고 봐도 우 리가 손도 못 댈 정도로 강할걸?"

"...그럼 신유준은 어떨까요?"

"뭐가 어때?"

"신의 하수인이랑 신유준이 붙으면요."

"...글쎄. 아마신의 하수인이 이기지 않을까?"

"허어, 신의 하수인이 그렇게나

셉니까?"

"아니. 격의 차이가 있잖아. 듣기 로 신유준 그 인간은 플레이어가 된 지 1년도 안 됐다며? 당연히 격 이 낮을 수밖에 없지."

"아, 잠깐만요. 1년도 안 돼서 격 이 낮으면 더 이상한 거 아닙니까? 격이 낮은데 어떻게... 3지역 1위를 죽였죠? 운도라는 자는 600레벨을 훌쩍 넘긴 거로 아는데."

"그걸 뛰어넘을 만큼 강한 거겠지."

"그렇다면 신의 하수인도...

"신의 하수인은 플레이어랑 같은

선상에 두면 안 된다니까? 야, 너 내 말 안 들었지?"

"죄, 죄송합니다."

만물상점에 유준이 있다는 걸 안 뒤로 플레이어들의 태도에 큰 변화 가 생겼다.

당장이라도 들어가려고 기회를 엿보고 있던 플레이어들이 슬그머 니 뒤로 물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혹시나 유준이 안에서 나올 때 근처에 있다가 애먼 공격에 휘말려 서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세 번째 이벤트까지 살아남은 플레이어들은 대부분 최상위 랭커들.

그 이상의 알려지지 않은 강자들 도 많았다.

그래서 빠르게 사태를 파악하고 만물상점에서 거리를 벌린 것이다.

"당분간 만물상점 들어갈 생각은 버려야겠군."

"쯧."

"왜 하필 신유준이 지금 온 거야."

모두가 불평을 터뜨리는 그때.

기어코 만물상점에 들어가려는 플레이어가 있었다.

은신 능력에 특히 자신이 있는

'하문타스'였다.

그는 유명한 청부 살인 조직의 일인자였는데 마음만 먹으면 그 누 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목을 딸 자 신이 있었다.

지금까지 그래 왔으니까.

단 한 번도 들키지 않고, 모든 살수 의뢰를 완수해 왔다.

상대가 강해도 상관없었다.

목에 그의 단검이 들어가면 아무리 방어력이 높아도 단번에 절명시 킬 수 있었으니까.

'내가 괜히 공격력 옵션 붙은 아이템에 몰빵한 게 아니지.'

다른 옵션은 다 제쳐 두고.

은신과 관련되거나 공격력을 증폭시켜 주는 아이템만을 착용했다.

이게은근히 효과적이었다.

누구한테 공격을 당할 일이 없었으니.

하문타스가 입가에 미소를 띠고 만물상점 안으로 들어갔다.

신유준이라는 자의 뒤통수가 보였다.

하문타스의 눈이 먹잇감을 바라 보는 맹수의 눈으로 변했다.

5 초.

딱 5초면 죽일 수 있겠다는 견적이 나왔다.

은신을 들키지 않기 위해선 천천히, 그리고 평정을 유지하며 다가 가야 했다.

파밧!

"어어? 주인님. 뭐가 오는 느낌 인데요?"

"나 바쁘니까, 네가 알아서 처리 해."

"몸통 박치기!"

목표물을 향해 천천히 접근하던 하문타스의 몸에 강력한 충격이 가

해졌다.

콰앙!

"커 헉!"

그는 파라네트에게들이박힌 그 자세 그대로 밖으로 튕겨 나갔다.

밖에 있던 플레이어들이 어리둥 절한 표정을 지었다.

청부 살인 조직의 일인자, 하문 타스.

그는 무척이나 유명한 존재이지만, 살수이기에 누구에게도 얼굴을 내보인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그의 행색만 보고 정체

를 아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저놈은 뭐야? 언제 들어갔었 대?"

"그러게?"

"이 구간까지 온 플레이어 중에 도 모자란 놈이 있긴 있구나."

"멍청하기는."

하문타스가 넋을 잃은 얼굴로 허 공을 응시했다.

"뭐였지 도대.... 쿨럭!"

황당한 건 둘째 치고, 부상이 너무 심했다.

갈비뼈가 다 뭉개진 것 같다.

내장이 파열되고 입에서 검붉은 피가 쉴 새없이 흘러나왔다.

언데드에게 단 한 번 충돌당한 것치고는 심각한 상태.

그의 방어력이 레벨에 비해 무척 낮은 탓이었다.

미처 포션을 꺼내기도 전에 그의 숨이 끊겼다.

살인 청부업계를 들썩였던 플레 이어치고는 허무한 최후였다.

신유준도 아닌 그의 소환수에게 몸통 박치기를 당해 사망했으니 말이다.

파라네트가 손을 탁탁 털었다.

"주인님, 별것 아닌 잡놈이었습니다."

"잘했다."

유준은 만물상점 주인, 칸트라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이제 방해할 사람은 없는 거 같은데 물건 좀 보여 주지?"

"좋아. 대신에 플레이어가 들어 오면 그 즉시 거래는 중단되니까 명심해."

유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만물상점 물건을 구매할

때가 왔다.

지금까지 쌓은 점수는 무려,

[32,602,630점]

총알은 충분히 준비되어 있었다.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6권 18화

140화

만물상점의 물건들의 목록이 바로 나타나지는 않았다.

[초월]

[신화]

[전설]

[유일]

그가 고를 수 있는 네 개의 항목

이 있었다.

"하나를 고르면 나머지 등급 아이템은 구매할 수 없는 거야?"

"그건 아니야. 그냥 물건이 너무 많아서 그렇게 분류된 거지, 큰 의 미는 없어."

"아, 그래?"

그 점은 다행이었다.

무조건 초월이 다 좋다고 볼 수는 없었으니까.

"유일부터 보여 줘 봐."

"유일? 흐음... 그러지, 뭐."

이럴 땐 가장 낮은 등급부터 봐

야 한다.

초월부터 봤다간 그다음 등급을 확인할 때 실망스러움이 배가될 테니까.

[유테르의 철 갑옷 - 1,111점]

[유테르의 건틀릿 -1,111점]

[콘살라의 각반 - 1,222점]

[콘살라의 헬멧 - 1,222점]

유준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칸 트라를 바라봤다.

"왜 장비 아이템밖에 없어?"

"여긴 소모품은 따로 취급해. 파는 것도 그리 많지가 않고."

"도대체 왜?"

"소모품을 원해?"

"웅."

"그럼 초월 등급을 골라. 거기에 있을 테니까."

"...만물상점이라면서 물품들이 부실하군."

"장비 아이템은 없는게 거의 없

어. 소모품이 귀할 뿐이지."

유준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유일 등급에서 본 아이템들은 대부분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것들이었다.

영웅보다 높은 유일 등급이니 다 른 플레이어들은 원할지도 모르지만, 유준은 아니었다.

"소모성 아이템이 왜 적지?"

"그걸 나한테 물으면 곤란한데. 만물상점을 만든 작자나 알고 있겠지."

"네가 주인 아니야?"

"난 잠시 판매를 맡은 거지. 원해서 하는 것도 아니야. 신들 장난에 놀아나고 있을 뿐."

"신들 장난? 이번 이벤트는 신들이 주최했다는 건가?"

"그것도 아닌데.... 일단 내가 자세한 건 알려 줄 수 없어. 그 후 환을 감당하기가 싫거든. 아니 못 하지. 난 일개 마녀에 불과하니까."

"전설 보여 줘 봐."

"그 전에... 네가 가지고 있는 점수가 몇이나 돼?"

"3,200만 점 정도."

"...뭐?"

"왜?"

"320만이 아니라 3,200만이라고? 아니 솔직히 320만도 말이 안 되는 수치인데...

"직접 확인해 봐."

"잠시만 기다려."

칸트라가 눈을 감았다.

10초 정도가 지났을까.

그녀가 눈을 뜨더니 입을 떡 벌렸다.

"...진짜네?"

칸트라가 충격을 받은 얼굴로 가 만히 서 있다가 입을 열었다.

"어떻게 모았어?"

"됐고 전설 보여 줘."

"네 점수면 초월부터 보는게 나을 거 같은데?"

"그래도 확인은 해야지."

시간은 넉넉하다.

플레이어들도 감히 만물상점에 들어올 생각을 못 하고 있었고.

마음을 급하게 먹을 필요가 없었다.

"자."

칸트라가 전설 등급 아이템 목록을 보여 줬고, 유준은 쭉 둘러보다 가 고개를 저었다.

"필요한 게 없어."

"그치? 지금 장비들 보니까 전부 신화 등급인 거 같은데. 무조건 초월 봐야 한다니까, 너는."

"신화도 보여 줘."

"음, 알았어."

칸트라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목 록을 갱신했다.

신화 등급 아이템이 홀로그램 형 식으로 허공에 쭉 나열되기 시작했

다.

사실 신화 등급 아이템 목록에 소모성 아이템이 없으면, 이걸 보 고 있을 이유가 없다.

그리고 역시나 유준의 마음에 드는 신화 등급 아이템은 없었다.

다 가지고 있는 물건들이니 마음에 들 리가 없다.

소모성 아이템만 있었어도 훨씬 볼 게 많았을 텐데.

"초월 등급."

"그럴 줄 알았어."

칸트라가 웃으며 말했다.

[용혈석 - 10,000,000점]

[초월의 돌 - 5,000,000점]

[랜덤 룬 박스 - 2,000,000점]

이번엔 장비가 없었다.

소모성 아이템도 세 개뿐이고.

"왜 이것밖에 없어? 소모성 아이템이 적은 건 알겠는데 장비는?"

"소모성 아이템이라고 했잖아."

"소모성 아이템만 있다고는 안 했지."

"초월 등급 장비는 팔 수 없어. 아니, 그냥 물량이 없는 거지."

"넌 강제로 맡은 거라서 그 이유는 모르고?"

"잘 아네."

유준이 침음을 삼켰다.

이 정도로 수량이 적을 줄은 몰 랐다.

"초월의 돌은 내가 가진 점수만 큼 살 수 있는 건가?"

"초월의 돌은 단 한 개만 살 수 있어."

"뭐...?"

칸트라가 기겁하며 뒷걸음질쳤다.

유준의 표정이 살벌했기 때문.

"진정해. 만물상점이라고 재고가 무한정 있는게 아니야. 신화 등급 이하 장비들이야 널려 있지만, 소 모성 아이템은 달라."

"장비랑 소모성 아이템 둘 다 구 하기 힘든 건 매한가지 아닌가?"

"그렇긴 한데, 만물상점을 만든 사람은 소모성 아이템을 더 중요하게 여겼나 보지."

요.으_ »

..

"초월의 돌은 만물상점에 하나만 있어. 살 거지?"

"너도 초월의 돌 효과를 알고 있는 건가?"

"나야 뭐, 여기 맡으면서 아이템 구경하는 거밖에 할 게 없으니까. 자연스럽게 알게 됐지. 그걸 물어 보는 거 보니까 너도 알고 있나 봐?"

"그래."

"귀찮게 설명할 필요는 없겠네. 어차피 옵션에 나와 있으니까 천천히 둘러봐. 세 개뿐이라 금방 끝나겠네."

"랜덤 룬 박스는 뭐지? 설명이 안 나와 있는데."

"아, 그거? 나도 몰라."

"나한테도 정보가 안 나오니까 알 리가 없지."

정체를 알 수 없는 물건.

그러나 초월 등급 목록에 있으니 분명 좋은 아이템일 것이다.

점수도 2백만 점이나 되고.

'용혈석도 궁금한데.'

곧바로 용혈석의 정보를 띄웠다.

[용혈석]

등급 : 초월

옵션 : 고대 용족의 피를 흡수해 용의 힘을 일부 얻을 수 있습니다. 용혈석을 사용하기 위해선 '혈석 추출기'가 필요합니다.

"아, 그거 혈석 추출기 필요해. 신화 등급 목록으로 가서 백만 점 주고 구매하면 돼."

"필요 없어."

"으웅? 왜?"

"이미 가지고 있어."

"...그, 그래?"

"용혈석이나 룬 박스의 수량도 한 개씩인가?''

"음."

흐-

유준이 불만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자, 칸트라가 말을 덧붙였다.

"솔직히 초월 등급 아이템이 팔 릴 거라고 누가 예상했겠어? 만물 상점을 만든 자도 그냥 있어 보이 려고 초월 등급 물건을 올려놓았을 거야. 기껏해야 룬 박스 정도나 팔 렸겠지. 네가 아니었으면 초월의 돌은 어림도 없을걸."

초월의 돌의 가격은 500만 점.

유준을 제외하고 그만한 점수를 가지고 있는 자가... 있었다.

그와 팀을 맺었던에르거와 레오 나드.

그러나 그들은 초월 아이템을 살 수 없었다.

유준이 전부 사 버렸으니까.

"다 산다고?"

"응."

"랜덤 룬 박스도? 그거 효과도 안 나와 있잖아."

"게임 많이 해 봐서 알아. 무조

건 좋은 거야."

"...게임? 그게 뭐야?"

"있어. 빨리 줘."

"알았어. 점수 차감부터 할게."

초월 등급 아이템을 전부 구매하고 남은 점수는 15,602,630.

아직도 많이 남았다.

"남은 건 신화 등급에서 써야겠는데."

"아무래도 그래야겠...

그때였다.

칸트라가 감전된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뭐야? 무섭게 왜 저래?"

파라네트가 기겁했다.

야, 네 얼굴이 더 무섭게 생겼어.

칸트라의 눈이 희번덕거리다가 이내 원래 상태로 돌아왔다.

그녀의 표정이 전보다 진지했다.

"잠깐 결계 만들게. 놀라지마."

"...결계?"

칸트라가 손을 뻗었다.

만물상점에 두꺼운 막의 결계가 생겼다.

"이건 무슨 결계지?"

"그냥 지대하신 분들이 염탐하는 걸 막는 결계야. 물리적인 효과는 따로 없어."

"근데 왜 지금?"

"너한테 할 말이 있어."

" 뭔데."

"널 후원하고 싶다는 분이 계 셔."

"..."

...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릴까.

" 후원?"

"그래, 후원."

"혹시 네르 님에 대해서 알고 있어?"

"그걸 내가 어떻게 알...

잠깐만, 네르?

어디선가 들어 본 이름이다.

'신들의 전쟁 운영자 이름이 네 르였지?'

게임의 서버 종료 소식을 전한 운영자, 네르.

솔직히 갑자기 서버를 종료시켜 원망스럽기 그지없었는데,

인벤토리와 평정심 특전을 받으

면서 네르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 뀌었다.

"알고 있어."

"그렇다면 다행이네. 그분이 너 한테 한 가지 제안을 하시겠대."

"아까는 후원이라며?"

"엄밀히 말하면 후원이긴 한데... 대가가 있어."

"혹시점수를 내라는 건가? 네르는 나한테 아이템을 주고?"

"...뭐야. 어떻게 알았어?"

"척하면 척이지."

"...대단하네."

"이 대화가 다른 누군가한테 새 어 나가면 안 되는 거야? 그래서 결계를 만든 거고?"

" 맞아."

"지켜보는 이들이 혹시 신이야?"

칸트라가 입을 뻐끔거렸다.

자신이 할 얘기를 저쪽에서 다 해 버렸다.

"도대체 어떻게 아는 거야?"

"정황상 그렇잖아."

"그런가?"

"궁금한 거 또 있어. 네르가 왜 나한테 후원을 해 주려는 거야?"

"나도 몰라. 그래서 받을 거야, 말 거야?"

"내가 거절할 수도 있는 건가?"

"웅. 강제는 아니야."

"너랑 네르는 무슨 관계지?"

"알려 줄 수 없어."

칸트라가 단호하게 말했다.

유준은 깔끔하게 포기했다.

캐묻는다고해서 나올 정보가 아니라는 걸 알았기에.

"좋아. 아이템 줘."

"주는게 아니라, 네 점수로 사

는 거야."

"그러니까. 산다고."

"알았어."

나무로 된 탁자 위에 낡은 망토 하나가 생겨났다.

만들어진 건 아니고, 공간 이동으로 전송된 느낌이었다.

"설마... 이게 후원 선물이야? 이건 좀...

"...그러게."

망토의 외견은 너무나 볼품이 없었다.

크게 손상이 간 부분은 없지만,

오래전에 만들어진 망토였다.

"그래도 장난을 친 건 아닐 거야. 한번 옵션 확인해 봐."

유준은 미심쩍은 눈으로 망토를 들었다.

[태초의 허름한 망토]

착용 제한 : 태초의 플레이어

등급 : 신화

방어력 : 10

옵션 : 모든 능력치가 30% 증가 합니다. 행운이 소폭 증가합니다. 모든 저주와 디버프에 완벽히 저항

할 수 있습니다. 착용 시에 블링크

(S) 스킬을 획득합니다.

옵션을 본 유준이 헛숨을들이켰다.

망토는 정말 구하기 힘든 아이템.

애초에 망토라는 아이템 자체가 수량이 몇 없었다.

옵션이 좋은 망토를 얻기란 하늘 의 별 따기 수준.

그런데 이 허름한 망토의 옵션이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말이 안 됐다.

'심지어 레벨 제한이 없고 태초 의 플레이어만 착용할 수 있게 되어 있네.'

착용하는 것만으로 스킬을 획득 하게 해 주는 아이템.

처음이었다.

"이게 얼마라고?"

"네가 가진 점수를 다 줘."

"그래. 다 가져가렴."

유준은 미련없이 점수를 내줬다.

왜 거래가 아닌 후원이라고 했는지 알겠다.

이런 사기 아이템을 공짜로 받는게 더 이상한 거다.

"그분께서 사실 공짜로 주고 싶었는데, 그럼 뒷일을 도저히 감당 하기가 힘들다고. 미안하다는 말을 전해 달라고 하셨어."

"아, 네르가? 착하네."

"...신이 네 친구는 아닌데."

"그럼 내 주인이냐? 내가 굳이 존대할 필요는 없잖아."

"...틀린 말은 아니네. 하여튼 볼일은 다 본 거지?"

"아직. 아이템은 그래도 쓰고 가

야지."

유준은 망토부터 착용했다.

그 후 상태창을 열어 스킬 란을 확인했다.

'생겼다!'

유준은 블링크 스킬이 있는 걸 확인한 후 망토를 벗었다.

상태창에는 블링크 스킬이 그대 로 남아 있었다.

"좋네."

그가 다시 망토를 착용했다.

모든 능력치 30% 증가.

확실히 몸이 달라지는 것이 느껴 진다.

행운까지 증가한다고 했으니... 그의 행운은 거의 맥스 수치에 달 해 있지 않을까.

여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유준은 초월의 돌을 꺼냈다.

'망토에 쓰자.'

그가 생각하기에 검이나 방어구 보다 이 망토에 초월의 돌을 쓰는게 더 효율적이었다.

'태초의 허름한 망토'는 방어력 수치가 낮은 대신에 옵션이 매우

좋았다.

신화 등급 아이템이라고는 믿기 힘들었다.

초월의 돌을 쓸 가치가 있다고 여겼다.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6권 19화

141 화

"주인님. 정비는 나가서 해도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괜히 여기 있다가 다른 플레이어들이 오기라도 하면...

파라네트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뭐 하러? 지금 나가면 남들 좋은 일 하는 건데? 띵킹이라는 걸 좀 해."

"띠... 띵킹요? 그게 뭡니까?"

"생각 좀 하라고."

"그, 그렇군요. 제가 띵킹이 모자 랐습니다."

유준은 초월의 돌을 꺼냈다.

주저하지 않고 초월의 돌을 '태 초의 허름한 망토'에 갖다 대었다.

초월의 돌이 사라지면서 망토에 서 환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태초의 허름한 망토'가 조금은 더 망토 같아졌다.

그래 봐야 도긴개긴이었지만.

'한번 볼까. 얼마나 변했는지.'

[태초의 허름한 망토]

착용 제한 : 태초의 플레이어

등급 : 초월

방어력 : 90,000

옵션 : 모든 능력치가 45% 증가 합니다. 행운이 대폭 증가합니다. 모든 저주와 디버프에 완벽히 저항 할 수 있습니다. 착용 시에 점멸 (SSS+) 스킬을 획득합니다.

"오, 뭐야...

방어력이 10에서 90,000으로 대 폭 증가했다.

이 무슨 개연성 없는 변화인가.

등급 하나 올랐다고 수치가 9,000 배로 뛰다니.

당연히 불만은 없었다.

모든 능력치가 45%나 오르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행운의 증가 폭이 커진 것도 마찬가지고.

그리고 다음이 가장 중요했다.

블링크 스킬이 점멸로 바뀌었다.

SSS+.

그가 가진 스킬 중에서 두 번째 로 높은 등급이었다.

검술은 특성이니 제외하고.

"스킬이 진화한 건가?"

점멸이라는 건 유준도 듣도 보도 못한 스킬이었다.

그는 곧바로 스킬을 사용해 봤다.

번쩍!

유준이 눈을 크게 떴다.

발동 시간이 거의 없었다.

"주인님. 방금... 잠깐 투명해 지셨습니다."

파라네트가 놀란 얼굴로 말했다.

"뭐?"

"방금 2초? 3초 동안 아예 사라 진 것 같았어요. 혹시 밖에 나갔다 가 오신 겁니까?"

"야, 잠깐만."

스킬의 효과는 굳이 써 봐야 아는 것이 아니다.

방금은 점멸의 체감 효과가 궁금해서 무작정 써 봤던 것뿐이었다.

유준은 스킬의 효과를 확인했다.

'점멸 후에 2.5초간 투명 효과를 얻는다...고?'

심지어 민첩 능력치에 영향을 크 게 받는다고 한다.

민첩이 높으면 높을수록 기척과 모습을 잘 감추게 되는 것.

'어, 그러고 보니 저번에 민첩이 오르는 신화 칭호를 하나 얻지 않았나?'

-만능 해결사(신화) - 민첩 능력치가 25% 증가합니다. 마법 공격 이나 저주에 입는 피해가 감소합니다.

이거였다.

타이밍이 어쩜 이렇지.

거기에 망토에 달린 모든 능력치 45% 증가 효과도 있다.

지금 유준의 순수 민첩 능력치는 천 이하이지만, 아이템과 칭호 효과들을 적용한다면,

민첩은 만에 가까운 수치에 도달 한다.

그런 그가 점멸을 썼을 때 그를 발견할 수 있는 플레이어가 과연 있을까.

'아까 그 어설펐던 암살자보다는 내가 훨씬 낫겠는데.'

점멸 스킬.

실전에 적용해 본 적은 없지만, 블링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스킬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초월의 돌을 망토에 쓰길 진짜 잘했네.'

그냥 방어구에 썼으면 얼마나 땅을 치고 후회했을까.

정말, 정말 다행이었다.

자신의 안목이 좋아서.

'그나저나 이런 방식으로 SSS+등 급 스킬을 얻을 거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

심지어 전투에서 활용 가능한 이 동기 스킬이었다.

사실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게 이동기인데.

어떻게 보면 남들보다 한참 늦게 얻은 셈이다.

'결과만 좋으면 됐지.'

어찌 됐든 그는 그가 아는 스킬 증가장 뛰어난 이동기 스킬을 얻 게 되었다.

'SSS, EX'등급의 스킬이나 특성.

그걸 가지고 있는 자가 얼마나 될까.

거의 없다.

가지고 있더라도 한두 개 정도겠지.

그런데 유준은 그런 SS등급 스킬을 아이템 한 번 착용하고 얻었다.

이걸 행운이 아니면 뭐라고 해야 할까.

이제 남은 건 랜덤 룬 박스와 용 혈석.

'이 둘은 이따가 사용하자.'

지금은 몸이 근질거려서 참을 수 가 없었다.

유준이 만물상점 밖으로 뛰쳐나 갔다.

그가 모습을 드러내자, 밖에 있던 플레이어들이 웅성거리기 시작 했다.

"신유준이다."

"저렇게 생겼구나. 인간치고는 잘생겼네."

"넌 얼굴이 보여? 투구 써서 얼 굴 분간도 안 가는데."

"네가 시력이 안 좋아서 그래. 난 잘만 보이는구만."

"일단 사리자. 놈의 눈에 거슬리

면 바로 죽을 수도 있으니까."

유준은 주위를 쭉 둘러봤다.

아는 얼굴은 없었다.

'캐스턴도 없고, 조수아도 없네.'

두 번째 이벤트에서 그와 팀을 맺었던 이들도 보이지 않았다.

만물상점을 찾은 이가 많긴 해도 그래 봐야 수만 명 중 일부일 뿐이었다.

유준이 눈을 빛냈다.

적당히 전투 상대를 물색하는 것 인데, 조건이 있었다.

마신 추종자일 것.

그가 살인에 미친 사람도 아니고 이득이없이는 대량 학살을 할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마신 추종자다.

대륙의 평화를 위협하는 무시무 시한 적들.

명분 세우기에는 더할 나위 없었다.

'아주 싹을 잘라 놔야지.'

유준이 움직였다.

그는 망설일 것없이 바로 점멸을 사용했다.

팟!

서걱!

플레이어 한 명이 목이 잘려 목 숨을 잃었다. 피 분수와 함께 머리 와 몸이 분리되었다.

마신 추종자들을 찾아내는 건 쉬 운 일이었다.

민첩이 높아 감각이 뛰어난 것도 있지만, 그들이 풍기는 기운이 독 특했다.

또 한 번의 점멸.

번쩍하는 순간,

서걱! 서걱! 푹!

순식간에 세 명이 더 쓰러졌다.

"갑자기 왜 저래? 뭔 일이야?"

"누가 죽인 거야?"

"신유준 같은데. 사라졌잖아."

"근데 왜 안 보여?"

"은신 상태겠지요. 뭘 뻔한 걸

묻습니까."

"공격하면 풀려야 되는 거 아니야?은신은? 진짜 뭐야, 이거?"

푹!

검이 목을 뚫고 빠져 나왔다. 그러나 그건 정말 한순간이었다. 흔적도없이 사라진 무기.

"끄윽!"

그 와중에 또 한 명이 죽었다.

믿기지 않는 현상.

은신을 지속한 상태로 무한정 공 격할 수 있다니?

심지어 그 누구도 일격을 버티지 못하고 툭툭 쓰러졌다.

플레이어들은 타깃이 누가 될지 모르니 두려움에 벌벌 떨었다.

여기 모인 이들 중 강하지 않은 이가 없다. 그런데도 누구 하나 맞 서 싸울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왜?

보이지 않으니까.

기척이 느껴지는 것도 아니었다.

어쩔 방도가 없었다.

"신유준한테은신 능력이 있다는 건 못 들었는데?"

"도, 도망쳐야 하는 거 아냐?"

"다 죽일 기세인데, 이거."

"난 간다."

플레이어가 네 명 정도가 더 죽 고 나서야 유준의 암살이 멈췄다.

그가 검을 쭉 늘어뜨렸다.

'점멸. 너무 사기인데...

마력만 충분하면 끊임없이 사용 할 수 있었다.

마력 소모가 무척 크다는 단점이 있지만, 유준의 마력 능력치는 높았다.

점멸을 아껴 쓰긴 해야겠지만, 몇 번 쓰고 지쳐서 헥헥거릴 정도는 아니었다.

"꾜, 끝난 건가?"

"더 안 죽일 건가 본데?"

온갖 종족이 모인 만물상점 앞.

유준이 죽인 플레이어의 종족은 다양했다.

종족을 가리지 않고 죽였기에 플레이어들을 더 헷갈리게 했다.

그러나 그중에는 유달리 예리한 플레이어도 있었다.

한 명이 중얼거렸다.

"설마 마신 추종자...들만 죽인 건가?"

마신 추종자의 정체를 아는 이는은근히 적지 않았다.

"마신 추종자?"

"그러고 보니... 이상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지."

"그럼 방금 죽은 놈들이 전부 마

신 추종자란 말이야?"

"싸한 느낌이긴 했지."

"신유준이 마신 추종자를 적으로 생각하나 봐."

"다행이다. 저 인간이 마신 추종자 쪽에 있었으면…. 어우, 생각만 해도 끔찍해."

"확실한 거지? 마신 추종자들이 랑 적인 거?"

"신유준한테선 마신 추종자들에게서 나는 느낌이 없잖아. 확실해."

" 휴우...

유준은 마신 추종자가 더 없는

것을 보고 자리를 떴다.

그가 멀리 떠나가는 것을 본 플레이어들.

잠깐은 정적이 맴돌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만물상점의 물건을 구매하기 위 한 혈투가 벌어졌다.

'점수도 다 써 버렸고.'

태초의 플레이어만 착용할 수 있는 사기 아이템도 얻었다.

해결되지 않은 궁금증이 많았다.

'네르랑 태초의 플레이어는 무슨 관계가 있는 건가? 그래서 내가 태 초의 플레이어인 걸 알고 망토를 준 거고?'

아니면 그냥 남는 아이템인데 조 건이 맞아서 줘 버린 걸 수도 있다.

하여튼,

망토는 1,500만이라는 점수가 전

혀 아깝지 않은 아이템이었다.

어차피 이벤트가 끝나면 사라질 점수이기도 했으니.

대가를 낸 것치고는 매우 만족스 러웠다.

척.

유준은 만물상점을 벗어나 중간 지점까지 이동한 뒤에 멈춰 섰다.

'여기서 확인하자.'

그는 랜덤 룬 박스와 용혈석을 꺼냈다.

뜸 들일 이유가 없잖은가.

그 둘은 당장 사용할 생각이었

다.

'더군다나 망토 효과로 행운도 대폭 상승했지.'

행운의 반지도 아주 예전에 섭취 한 상태.

용혈석은 관계없겠지만, 랜덤 룬 박스에서는 좋은 물건이 나올 확률 이 높았다.

'보통 게임에서는 룬이 능력치나 스킬 효과를 올려 주곤 했지.'

여기서는 어떨까.

2백만 점이나 하는 룬 박스.

그냥 꽝 같은 게 나오지는 않겠

지.

그럼 다 때려 부술 거다.

정말로.

혹시 몰라서 주먹에 혼돈을 담았다.

"주인님."

"왜?"

"대왕 모기들이 몰...

파지직! 즈즈즈즛!

순식간에 뿜어진 뇌전이 대왕 모 기 무리를 전멸시켰다.

점수가 자잘하게 들어왔지만, 지

금 와서는 큰 의미가 없었다.

파라네트가 엄지를 척 내밀었다.

"역시 주인님! 믿고 있었다고!"

유준은 용혈석부터 쓰기로 했다.

혈석 추출기를 꺼냈다.

'이거 원래 다른 종족 특징을 캐 릭터에 적용하려고 만들어진 아이템인데...

예를 들어, 오크 혈석을 흡수하 면 뛰어난 번식력을 얻을 수 있었다.

애매하다.

정말 애매함 그 자체였다.

게임인데 번식력을 얻어서 어디 다 쓰겠는가.

다른 종족들의 혈석을 얻어 추출 해도 마찬가지였다.

게임에서 효과를 보기 힘든 능력 들만을 추출해 얻게 되었다.

당연히 혈석 추출기는 인기가 없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열다섯 개밖에 없으니까 아껴 써야 하는데. 쯧. 지금은 써야겠지?'

심지어 혈석 추출기는 현금으로 무려 40만 원이나 하던 아이템이다.

비싼 주제에 막상 쓸모가 별로 없어서 구매한 사람이 거의 없다.

애초에 망겜에 과금을 하는 유저 가 적기도 했지만.

'신들의 전쟁을 망겜이라고 표현 하는 거. 기분이 살짝 묘하네.'

그렇게 신들의 전쟁이라는게임을 사랑했는데.

이제는 애정이 식은 걸까.

천만에.

그냥 그 게임이 현실이 되었으니까 신들의 전쟁에 미련을 가질 필 요가 없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유준은 요즘 즐기고 있었다.

목숨이 위험했던 일이 몇 번 있기는 했지만, 전투에서 승리하거나 남들의 우위에 섰을 때의 카타르시 스는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었다.

그리고 강해지는 것에 한계가 없 다는 것.

그게 제일 좋았다.

만렙 캐릭터로 매번 갔던 장소만 다니는 건 무료하기 그지없다.

게임에 대한 애정 때문에 플레이 했던 것에 불과했다.

애정이 없었으면 진작 접었겠지.

그래서 지금이 좋았다.

지구나 대륙의 멸망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

어떻게 보면 놀이였고, 자신만을 위한 역할극 같기도 했다.

재밌다.

인생에서 제일 재밌는 시기를 꼽 으라면 딱 지금.

이 순간이었다.

[용혈석]

등급 : 신화

옵션 : 고대 용종의 피를 흡수해 용의 힘을 일부 얻을 수 있습니다. 용혈석을 사용하기 위해선 '혈석 추출기'가 필요합니다.

"용혈석."

이건 얻어 본 적 없는 아이템이다.

고대 용종의 피라니.

오크나 엘프 그리고 드워프들의 혈석 따위와는 비교가 안 될 것이 자명했다.

유준은 혈석 추출기에 용혈석을 올려놓았다.

이게 다다.

더 이상 무언가를 할 필요는 없었다.

우웅-.

혈석 추출기가 작동하고 용혈석 이 작게 진동했다. 추출기 위로 붉은 액체가 떠올랐다.

액체는 순식간에 응고했다.

방울 모양의 작은 고체가 된 용 혈.

유준이 용혈을 손으로 집었다.

촉감은 별다를 게 없었다.

그냥 비누를 만지는 느낌이었다.

마력을 움직여 혈석을 흡수했다.

용혈이 다시 액체 형태로 되면서 손끝으로 스며들었다.

쿵.

쿵.

쿵.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그의 혈액과 용의 혈액이 섞이기 시작했다.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_ 6권 20화

142화

문득, 얼마 전 캐스턴을 만났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는 자신을 용아족이라 소개했었다.

확실히 다른 플레이어들보다 압 도적인 강함을 가지고 있었다.

유준도 감탄할 정도로 강한 편이었다.

만물상점에서 죽였던 3지역 1위 라는 플레이어보다도 더.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캐스턴이 열심히, 피나는 노력을해서 강해졌다기보다는,

용의 힘이 컸던 게 아닐까 싶었다.

왜 그렇게 느끼냐면.

지금 그가 용의 힘을 제대로 체 감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피가 부글부글 끓는 느낌이었다.

"흐억, 헉!"

몸을 주체하기가 힘들었다.

통증이 있거나 한 건 아니었다.

그저 이 넘치는 힘을 분출하지

못하는 것이 너무나 괴로울 뿐.

'어우, 이걸 어쩌지.'

힘이 샘솟는 정도가 아니었다.

"아아아악!"

고통에 찬 울부짖음이 아니었다.

답답해서 소리를 지른 거다.

그새 울림통이 커졌는지 기함 한 번 우렁찼다.

파라네트가 화들짝 놀랐다.

"주인님! 무슨 일이에요? 귀청 떨어질 뻔했습니다. 혹시 이번에도 제 발차기가 필요한 겁니까?"

"야."

유준이 파라네트를 노려봤다.

"...죄송합니다."

"너는 남자의 그 고통을 모를 테지. 영원히. 평생. 영세, 영겁, 영속, 죽을 때까지. 왜냐? 없으니까."

"주, 주인님? 그렇게까지 말할 필요는...

파라네트의 어깨가 축 처졌다.

정신적으로 큰 상처를 받은 모양 이지만, 위로하지 않았다.

언데드니까 금방 재생하겠지.

'어딜 내 급소를 노리려고. 쯧.'

용혈석을 흡수하고 생긴 문제의 해결법은 간단했다.

시간이 지나길 기다리는 것.

10분 정도가 흐르고 나서 용의 피가 완전히 잠잠해졌고,

유준 또한 혈기왕성함을 억누를 수 있었다.

수차례 거듭된 심호흡.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고 완전히 안정화되었다.

그는 가만히 서서 용혈석으로 인 해 얻은 것들을 정리했다.

'으..'

'司" .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그냥 세졌다.

근력이 강해지고, 날렵해지고 반 사 신경과 동체 시력이 좋아졌다.

마력의 효율이 높아지기도 했다.

무엇보다.

마법에 대한 이해도가 크게 늘었다.

그가 그걸 바로 안 이유는 간단 하다.

[특성 마법 이해(S) → 마법 이 해 (SS)]

홀로그램 창이 알려 줬다.

'이런 식으로도 특성이 진화하는구나.'

마법 이해.

별 볼 일 없어 보일지는 몰라도, 유준이 사용하는 모든 마법에 지대 한 영향을 끼치는 특성이었다.

고대 마법 (EX++) 의 효율을 극대화해 주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었다.

'용의 피를 수혈받았다고해서 이렇게 달라져?'

유준이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용혈석이 괜히 비싼 게 아니었구 나.

초월의 돌보다 두 배나 높은 가 격.

천만 점이나 했다.

그러나 용혈석은 값어치를 했다.

뭐가 바뀐 건지 정확히 알기 위 해 상태창을 연 유준이 눈을 휘둥 그레 떴다.

'능력치가 100씩 증가했잖아, 미 친.'

왠지 몸에서 힘이 넘치더라니.

능력치가 총 400이 증가했다.

그 말은 즉, 100레벨을 공으로 얻은 것과 마찬가지.

심지어 그건 유준의 기준이다.

다른 플레이어들은 미분배 능력치가 3씩 오르니. 133번의 레벨을 올린 것과 같았다.

'잠깐만...

유준은 상태창을 보다가 또 무 언가를 하나 발견했다.

'왜 혼돈 수치가 올라갔지?'

원래 그가 지녔던 혼돈 수치는 20.

그런데 상태창에 적혀 있는 순 수 수치는 80이었다.

네 배나 증가한 것이다.

이유가 뭘까.

용혈을 흡수해서?

그 추측이 가장 일리가 있었다.

증가한 수치를 보면 망토를 착용해서 오른 건 아니었으니까.

'드래곤이랑 혼돈이랑 관련이 좀 있나?'

그렇다면 납득이 간다.

"아, 배부르다."

"어엇, 저만 쏙 빼고 뭘 드신 겁니까?"

파라네트가 금세 기운을 차리고 말을 걸었다.

'거 봐. 얘 언데드 맞다니까.'

평정심이 있는 자신보다 정신적 인 타격에 강한 것 같았다.

"먹긴 뭘 먹어. 눈물 한 방울만 한 거 하나 먹었다, 왜."

"근데 왜 배가 부르십니까?"

"비유적인 표현이잖아. 언데드가 돼서 그런 것도 몰라?"

"...오늘도 한 수 배웠습니다."

"그래. 많이 배워 둬라."

유준은 곧바로 랜덤 룬 박스에 시선을 뒀다.

랜덤이나 무작위라는 말이 참 묘 하다.

듣기만 해도 설렌다.

가슴이 두방망이질을 치고 숨이 가빠 왔다.

유사품으로는 뽑기라는 단어가 있다.

랜덤 룬 박스의 크기는 17인치 노트북만 했다.

'뭐가 들었길래, 박스를 이렇게

크게 만들었으려나?'

유준은 실실 웃으며 룬 박스를 열었다.

덜컥-.

나무로 된 박스엔 의미를 알 수 없는 상형문자가 새겨진 기다란 돌 하나가 있었다.

'이게 룬인가?'

그가 예상한 이미지와 얼추 맞아 떨어졌다.

유준이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왠지 예감이 좋았다.

룬을 조심스럽게 들고 정보를 확

인했다.

[최상급 경험치 증가 룬]

등급 : 無

옵션 : 룬을 신체에 새기면 경험 치 획득률이 80% 증가합니다. 단, 두 팔과 두 다리에만 룬 효과가 적 용됩니다.

설명은 간단했지만, 효과는 놀라웠다.

"경험치 증가?"

경험치 증가율을 높여 주는 룬이

나왔다.

'미쳤네.'

그리고 두 팔과 두 다리에만 효과가 적용된다는 것.

그 말은 룬을 총 네 개까지 사용 할 수 있다는 얘기 같았다.

'룬을 지울 수는 없는 건가?'

만약 삭제하거나 지우는 방법이 없다면 신중해야 했다.

무조건 급이 높은 룬들만 사용해야겠지.

별로인 것들은 쟁여 두거나 팔고.

'레벨이 낮은 게 걱정이었는데, 때마침 경험치 관련 아이템이 나와 주네.'

그의 유일한 단점이라고 할 만한 것은 레벨이 낮다는 것.

그걸 개선할 방법이 생긴 것이다.

당장은 해결하는 것이 불가능할 지라도, 그 속도가 훨씬 앞당겨졌다.

'좋아.'

세 번째 이벤트가 끝나려면 시간 이 꽤 남았을 것이다.

무인도로 워프된 지 아직 한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준비할 건 따로 없고.... 그럼 바로 가야지.'

유준은 목적지를 이미 정해 둔 상태였다.

모두가 사라진 광장에는 적막이 맴돌았다.

그곳에 한 사내만이 덩그러니 남 아 있었다.

'나는... 누구지?'

머리가 복잡하다.

아니, 반대다.

백지 상태가 된 것만 같았다.

분명히 익숙한 공간이다.

그런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런 그의 앞에 반투명한 막이 나타났다.

알 수 없는 글자와 함께.

그렇지만 이상하게도 그 글자를 읽고 이해하는 것이 가능했다.

[자동 부활 스크롤이 소모되었습니다.]

[자동 부활 스크롤이 소진되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부활하실 수 없습니다.]

자동 부활 스크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건 기억이 난다.

말 그대로 자동 부활.

예기치 못한 공격이나 일에 휘말 려 사망했을 때 다시 살아날 수 있 게 해 주는, 그런 스크롤이다.

'이게 왜 기억이 나는 거지?'

자신의 이름도 모르는데 아이템 효과는 어떻게 알고 있는 걸까.

모르겠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기억을 되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는 무작정 발걸음을 옮겼다.

분수대를 지나쳤다.

과일 판매대, 곳곳에 있는 나무로 된 벤치, 잘 꾸며진 화단까지.

자주 봤던 광경...?

알게 모르게 눈에 익었다.

왜지.

"으윽."

기억을 떠올리려 할 때마다 누군 가 머리를 송곳으로 후벼 파는 것 같았다.

그러다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광장에 있는 모든 것들이 생기가 없었다.

살아 있는 것이든, 그렇지 않은 것이든 모두 다 멈춰 있었다.

무기 상점, 방어구 상점, 잡화점, 정육점,은행.

그 앞에 서 있거나 하는 사람들 의 몸이 전부 굳어 있다.

생긴 건 사람이지만, 미동이 없어 인형 같은 느낌을 줬다.

"왜 안 움직이는 거지?"

그는 사람들이 가만히 있는 것에 이상함을 느꼈다.

저들은 인형이나 모형이 아니다.

실제로 살아 움직이는 이들이었다.

그러한 사실을 남자는 알고 있었다.

왜인지는 모른다.

그저 알고 있을 뿐.

남자는 답답함을 느꼈다.

이 답답함을 해소하려면, 한 가 지 방법밖에 없었다.

'내 이름을 떠올려야 해.'

남자는 터벅터벅 걷고, 또 걸었다.

눈에 익은 광경이 계속해서 보였다.

기억을 되찾을 때까지, 단서를 찾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이틀이 지났다.

남자는 이상함을 느꼈다.

'왜 배가 고프지 않지?'

사람이라면 가져야 할 기본적인 욕구가 거세된 것 같다.

아니, 이건 욕구도 아니다.

생존에 필요한에너지.

그걸 보충하지 않고 있음에도 지 치지 않고, 피로하지도 않았다.

'내가 잠을 잔 적이 있던가...?'

하지만, 그 의문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전부 시간이 멈추기라도 한 듯 몸이 굳어 있었으니까.

남자는 하염없이 걸었다.

하루가 또 지났다.

그는 광장뿐만이 아니라, 라테네 스 마을 전체를 돌아다녔다.

마을에서 가장 큰 성당을 발견했다.

전에는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지 나쳤던, 지하로 가는 계단이 있었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계단을 내려 갔다.

지하는 오히려 1층보다 더 밝았다.

천장에 달린 화려한 조명들이 석 상 하나를 오롯이 감싸고 있었다.

"뭐...지?"

석상의 모습이 낯이 익다.

얼마 전 어느 상점가 거울에서 보았던 자신의 모습과 닮아 있었다.

그냥 닮은 게 아니라 판박이 수 준이다.

남자는 천천히 석상에 다가갔다.

자세히 보니 자신과 똑같다는 걸 확연하게 알 수 있었다.

' 어째서?'

그 뒤에는 무어라 적힌 하얀색 판이 있었다.

그가 그 앞에 섰다.

[명예의 전당]

[1 위. 무과금즐겜러 - 500레벨]

[2위. -]

[3 위. -]

[4위. -]

[5위. -]

[6위. -]

무과금즐겜러.

저 여섯 글자를 보는 순간,

남자가 벼락을 맞은 듯, 머리카

락이 쭈뼛 솟는 느낌을 받았다.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잊고 있던 정보들이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이제야 전부 기억이 났다.

"...나잖아."

그는 무과금즐겜러였다.

유준은 무인도의 섬 끝자락에 와 있었다.

무인도 끝 쪽에 어디로 가든 있다는 신의 하수인들.

그들이 지키고 있는 곳으로 온 것이다.

"주인님, 괜찮겠습니까?"

"뭐가?"

"신의 하수인요. 장난 아니라면서요. 플레이어들 말하는 거 들어 보니까 살벌하던데요?"

"말만들어서 어떻게 아냐?"

"시스템도 경고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신의 하수인들 피해서 무인도에 짱 박혀 있자고?"

신의 하수인들은 분명 규격 외의 강함을 갖고 있긴 할 터.

그건 유준도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해서 그들을 두려워하 거나 하지는 않았다.

'이단 심판관도 신격을 지녔다고 했었으니까.'

비록 반쪽짜리인 것 같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신격은 신격이다.

일반 플레이어들이랑 말 그대로 격이 다른 것이다.

신의 하수인들도 이단 심판관과 비슷하지 않을까.

격이 낮다고 공격이 통하지 않을 확률이 높았다.

"저기 때마침 정면 돌파하는 애 들 있네."

유준이 가리킨 방향에 플레이어 두 명이 신의 하수인이 있는 곳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신의 하수인은 단 한 명이었다.

"어엇 그러네요. 도대체 무슨 생각일까요? 죽을 게 뻔한데."

"실력에 자신이 있거나, 아니면 돌파할 방법이 있든가. 둘 중 하나겠지."

유준은 가만히 서서 구경했다.

저들이 어떻게 신의 하수인에게 대항할지 궁금했다.

신의 하수인의 무력도 알고 싶었고.

남자와 여자로 구성된 플레이어 두 명이 동시에 신의 하수인을 향 해 달려들었다.

신의 하수인은 겁도없이 다가오는 플레이어들을 향해 손을 내뻗었다.

지이잉-!

하수인의 손에서 뿜어진 레이저.

남성 플레이어는 블링크를 사용 해 공격을 피하며 오히려 거리를 좁혔다.

"그거 써!"

남성 플레이어가 외치자, 여성 플레이어가 고개를 끄덕이곤 스크롤을 찢으려는 그 순간이었다.

콰직! 콰직!

플레이어 각자의 머리 뒤에 생겨 난 거대한 손 하나.

그것이 그들의 머리를 꽉 쥐어 버렸다.

기세등등하게 등장한 것치고는

허무한 최후.

신의 하수인은 표정 변화없이제자리에 섰다.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아무리 싱거운 상대를 만나더라도 유준은 저런 표정을 짓지 못할 것 같았다.

잔인한 놈.

그는 방금 죽은 두 명의 플레이어에게 동정심을 느꼈다.

"너희들의 최후. 내가 마지막까지 기억해 주겠다."

그때 파라네트가 의문을 제기했

다.

"그럼 오히려 더 싫어하지 않을 까요?"

"응? 왜?"

"너무 굴욕적인 모습이었잖습니까. 그걸 누가 봤다는 걸 알면 수 치스러워서 두 번 죽을지도 모릅니다."

"...그런가?"

"예, 그렇습니다요."

"근데 어떡해. 이미 봐 버렸는데. 기억력이 좋아서 까먹기도 쉽지가 않네."

"...저도요."

"그렇다면 우리 마음속에만 묻어

두자. 누구한테도 말하지 말고."

"예! 알겠습니다!"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6권 21화

143화

"그런데 왜 플레이어들이 무인도를 벗어나려고 했던 걸까요?"

"보상 때문이겠지."

"예? 보상요?"

"괜히 무인도가 배경이겠어? 신 의 하수인들이 빽빽하게 배치된 것 만 봐도 저걸 뚫고 가서 아이템을 쟁취하라는 거잖아."

요..2"

파라네트가 유준을 이상한 눈으

로 봤다.

"얘, 눈을 왜 그렇게 뜨니?"

"주인님! 상식적으로 생각하셔야죠. 그 누가 신의 하수인을 뚫고 무인도를 빠져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하겠습니까?"

"일단 나. 그리고 저길 통과하는게 히든 피스일 수도 있지."

"신의 하수인들을 세워 놓기엔 너무 과하지 않습니까? 설령 귀한 물건이 있다고 하더라도요."

"뭐, 저기 너머에 아이템이나 보상이 없어도 딱히 상관은 없어."

"그럼 왜 가는 거예요?"

"궁금하잖아. 신의 하수인도 얼마나 센지 확인도 하고. 겸사겸사 가는 거지."

"으음-."

유준은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 겼다.

신의 하수인이 어느 정도 거리까지 다가가면 공격을 하는지 확인했지만, 놈은 로봇이 아니다.

언제 덤빌지 몰랐다.

'레이저 공격이랑 뒤에서 거대한 손이 나타나서 공격하는 능력 두 개였지.'

신의 하수인.

고작 하수인일 뿐인데 저렇게 강 하다니.

신들은 도대체 어떤 존재들일까.

무한의 탑에 큰 간섭은 못 하는 것 같던데.

네르가 자신에게은밀히 아이템을 전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심지어 대가도 1,500만 점이나 냈었다. 그렇게까지해서 겨우겨우 망토를 얻은 것이다.

아무렇게나 막 행동하고 대륙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것 같지는 않았

다.

'네르가 운영자일 때... 뭐라고 했더라. 무슨 공모전 같은 거에 당 선됐다고 했었는데.'

운영자 네르는 그가 과금을 많이 한 덕분이라며 인벤토리 특전과 평 정심을 줬었다.

자신에게 태초의 허름한 망토를 후원했던 것도 같은 이유 아닐까.

'잘해 주면 좋지, 뭐. 내가 따로 보답할 필요도 없고.'

신의 하수인은 아직 유준에게 관 심을 주지 않고 있었다.

'일정한 거리 내에 들면 그때 공

격하는 방식인가 본데. 아니면, 무 인도 밖으로 벗어나려고 하거나.'

일반인의 눈으로도 식별이 가능 할 만큼 가까운 위치.

유준이 걸음을 멈췄다.

신의 하수인은 공격해 오지 않았다.

'여기까진 괜찮은 건가?'

그때였다.

신의 하수인이 아주 먼 곳을 향 해 레이저를 쏘았다.

하늘을 날아무인도를 벗어나려 던 플레이어가 레이저를 맞고 추락

했다.

벗어나려고 하는 걸 귀신같이 눈 치채는구나.

가까이 접근하는 건 크게 신경을 안 쓰는 건가?

유준이 마력을 끌어 올렸다.

허름한 태초의 망토.

그 망토에 달린 모든 능력치 45% 증가라는 옵션.

모든 능력치에는 마력도 당연히 포함되어 있다.

고로 현재 그의 마력은 타의 추

종을 불허할 정도로 높아져 있는 상태였다.

우웅. 우웅-!

대기가 일렁이며, 땅이 진동했다.

마력을 한 번에 대거 끌어냈기 때문이었다. 전신에서 엄청난 양의 마력이 뿜어져 나왔다.

먼저 고대 마법이다.

마법 이해 특성이 SS급으로 한 단계 오른 상태에서, 마력까지 45% 늘어났다.

고대 마법의 위력이 얼마나 세졌을지 벌써 기대되었다.

'상대방이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때는 역시...

공간 장악이다.

그가 가장 애용하는 스킬인 동시에 강력한 위력을 자랑했다.

특히 전조 현상이 극히 짧기에 기습 공격으로 사용하기 좋았다.

유준이 끌어 올린 마력으로 공간 장악을 사용했다.

화아악-!

콰직!

하수인의 몸이 깡통처럼 찌그러 지기 시작했다.

[격의 차이가 월등해 피해를 입 힐 수 없습니다!]

[격이 상승한 뒤에 다시 시도해 주십시오!]

[격의 차이가 월등해 피해를 입 힐 수 없습니다!]

[격이 상승한 뒤에 다시 시도해 주십시오!]

[격의 차이가 월등해 피해를 입 힐 수 없습니다!]

[격이 상승한 뒤에 다....]

연속해서 경고 메시지가 떴다.

아니, 이게 경고 메시지는 맞는 걸까.

그냥 공격이 통하지 않는다고 통 보하는 것에 가까웠다.

신의 하수인은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지, 인상 한 번 찌푸리지 않았다.

'이단 심판관이랑은 좀 다른 거 같은데?'

이단 심판관은 큰 대미지를 입으면 경직 상태에 들어갔었다.

신의 하수인은 아니었다.

공간 장악에 묶여 있으면서도 멀 쩡한 정신을 유지했다.

'역시 얘한테도 그냥 공격은 안 통하네.'

이미 알고 있었다.

혹시나 하고 시험해 본 것뿐.

신의 하수인이 공간을 빠져 나왔다.

녀석은 공간 장악 범위를 벗어난 즉시 레이저를 쏘았다.

손에서 발사된 레이저.

유준은 가뿐하게 피했다.

높은 민첩 능력치 덕분일까.

보통 플레이어는 눈으로 볼 수 없을 정도로 빠른 하수인의 레이저를,

유준은 궤적을 보지도 않고 동체 시력과 반사 신경만으로 피해 냈다.

'대박인데.'

망토를 착용하기 전후로 움직임 이 너무나 달라졌다.

'내가 아닌 거 같아.'

신의 하수인이 쉴 새없이 레이 저를 쏘아 냈지만, 유준은 전부 회 피했다.

스치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신의 하수인은 안 되겠다고 생각 했는지, 전에 플레이어 두 명을 죽였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공격했다.

유준의 머리 뒤에서 거대한 손 하나가 생성되었다.

'미리 봐 두길 잘했네.'

물론, 몰랐더라도 그의 반사 신 경으로 피해 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뒤로 돌아 검을 휘둘렀다.

거대한 손이 반으로 잘려나갔다.

레이저가 또 발사되었고 유준이 피했다.

'공격 수단은 이게 끝인가?'

과연 신의 하수인은 이단 심판관 처럼 좋은 대련 상대가 되어 줄 수 있을지 궁금했다.

한동안 같은 상황이 반복되었다.

유준은 간 보듯 대충 공격을 날 렸고, 신의 하수인은 죽일 기세로 공격해 왔다.

그러나 하수인의 공격은 단 한 번도, 유준을 명중시키지 못했다.

녀석에게는 이런 경우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신의 하수인이 공격을 멈추고 입

을 열었다.

"누구지?"

"뭔 소리야?"

"넌 누구지?"

"그게 궁금해?"

"그렇다. 너처럼 강한 플레이어는 본 적이 없군. 그런데 기묘할 정도로 격이 낮아. 왜지."

"왜기는, 레벨이 낮으니까 그러겠지."

"레벨이 낮다…라. 한데 그런 강 함을 가지고 있다고?"

신의 하수인이 감탄한 듯 말했

다.

처음으로 표정의 변화가 생긴 것이다.

표정이 너무 딱딱해서 거의 로봇 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다.

"너 신의 하수인 맞지?"

"알고 온 것 아닌가?"

"여길 왜 막고 있는 거야?"

"그렇게 하라고 명을 받았으니까."

"시키면 시키는 대로 다 하는 종 같은 건가? 그래서 하수인?"

유준이 살짝 도발해 봤지만,

신의 하수인은 코웃음을쳤다.

"그래. 그분들을 모신다는 건 영 광스러운 일. 너는 그 기쁨을 모르겠지."

"몰라. 하고 싶지도 않고. 넌 지금 하는 일에 만족하나 봐?"

하수인이 고민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래…?"

유준이 머리를 긁적였다.

저렇게까지 확고할 줄은 몰랐다.

본인이 좋다면 좋은 거겠지. 이

해는 안 가지만.

"그래서? 안 싸울 거야?"

그의 말에 신의 하수인이 피식 웃었다.

"네 격이 낮은 건 알고 있다. 날 기습해서 공격했음에도 아무런 피해를 못 준 게 그때문인 것도. 그런데 나와 싸우겠다는 건가?"

"원래 하수인들은 입만 살아 있어?"

"너와 나는 태생부터가 다르다. 신격을 지닌 나는 네가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상대가 아...

유준이 점멸(SSS+) 스킬을 사용

했다.

순식간에 신의 하수인의 뒤로 이 동한 유준.

그때까지만 해도 신의 하수인은 눈치채지 못했다.

녀석이 황급히 뒤로 돌아설 때는 이미 늦었다.

혼돈을 담은 유준의 검이 신의 하수인을 위에서 아래로 베어 버렸다.

서걱!

신의 하수인이 정확히 반으로 갈 라졌다.

절단면은 역시나 깔끔했다.

'이거 좋은데?'

검에도 혼돈 속성을 적용하는게 가능할 줄이야.

대충 예상은 했었지만, 실제로 써 보니 효과가 장난이 아니었다.

상식적으로 절대 이길 수 없는 적을 죽인 셈이니까.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반으로 잘린 하수인의 몸뚱이가 흔적도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멀지 않은 곳에서 날아오는 레이저.

유준이 몸을 비틀어 레이저를 피 했다.

'뭐지...?'

고개를 돌려서 확인해 보니 아까 봤던 신의 하수인과 똑같이 생긴 놈이 그대로 있었다.

"주, 주인님. 쟤 부활하는 거 아 닙니까? 제가 봤습니다. 주인님이 죽이자마자 저 경계선에서 다시 모습이 생기는 걸요!"

"봤으면 미리 경고했어야지."

"엇...

그때.

"비겁한 놈! 아깐 방심해서 당했지만, 지금부턴 어림도 없을 것이다!"

신의 하수인이 그런 말을 하며 달려들었다.

유준이 헛웃음을 지었다.

"기습은 자기도 해 놓고. 남 말 O "

유준이 검에 혼돈을 씌웠다.

보고 있자면,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혼돈.

위력도 어마어마한 수준이지만, 다행히 무기에 큰 부담을 주거나 하지는 않았다.

'내가 괜히 초월 등급 검을 쓰는게 아니지.'

그의 검은 공격력만 뛰어난 게 아니었다.

신의 하수인이 겁도없이 접근할 때, 유준이 점멸을 사용했다.

하수인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어떻게 날 죽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잘 가라."

그렇게 말한 녀석에게서 엄청난 폭발이 터져 나왔다.

'...자폭?'

콰콰콰쾅! 콰쾅!

막 점멸을 썼던 터라, 곧바로 이 어서 쓸 수 없는 상태.

유준은 폭발에 그대로 노출되었다.

뜨거운 열기가 온몸을 뒤덮었다.

하수인의 육체가 갈기갈기 찢어 지며 파편이 되어 날아왔다.

자폭 공격인 만큼 위력이 장난이 아니었다.

그것도 바로 앞에서 직격당했으니, 그의 반사 신경으로도 미처 반 응할 수 없었다.

"주, 주인님! 죽지 마세요! 주인

님! 절 두고 어딜 가시는 겁니까!"

파라네트가 통곡을 하며 달려왔다.

아무런 상처도없이 멀쩡히 서 있던 유준이 피식 웃었다.

"왜 호들갑이야. 나 괜찮아."

"오, 오잉...? 괘, 괜찮으십니까?"

"응. 보다시피."

방어력이 워낙 높은 탓일까.

신의 하수인의 자폭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

바로 앞에서, 정면으로 맞았던

것이 무색하게도 말이다.

유준이 입을 열었다.

"타파골."

" 예."

"너 하수인이 부활하는지점 알지?"

"예."

"그곳으로 가서 거대화해. 그리 고 나타나면 딱 붙잡고 있어."

"알겠습니다."

그때 파라네트가 입을 삐죽였다.

"주인님. 그건 저도 할 수 있습

니다."

"넌 작잖아. 안 돼."

사실 파라네트는 웬만한 데스 나 이트나 오크보다도 덩치가 크다.

거대해진 타파골과는 비교할 수 없을 뿐이지.

그걸 알기에 파라네트도 어쩔 수 없다는 듯 수긍했다.

타닥!

신의 하수인이 그새 부활해서 유준에게 달려오고 있었다.

그런데 녀석의 표정이 참 가관이었다.

지금 처한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는 듯,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자폭 공격을 감행하는 모습.

유준의 검에 혼돈이 다시 씌워졌다.

혼돈을 경계한 신의 하수인이제 자리에 섰다.

"도대체 그 기운은 뭐지?"

"궁금해?"

"솔직히 말하면 그래. 신기해. 격 의 차이를 무시하고 상처를 입히는

기운이라니. 본 적도, 들어 본 적도 없어."

"글쎄. 나도 우연히 얻은 거라서 잘은 모르겠네. 넌 근데 몇 번 죽 어야 진짜로 죽냐?"

질문이 좀 이상하긴 한데, 신의 하수인이 계속해서 부활할 수 있는 건 아닐 것이다.

그런 아이템이나 능력, 스킬이 있을 리가 없었다.

애초에 무한정 부활할 수 있는 스킬이 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한 번이나 두 번이면 몰라도.

'그나저나 자동 부활 스크롤은 진짜 어디 갔지.'

자동 부활 스크롤.

도통 그 행방을 알 수 없었다.

분명히 한 개는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

유일하게 인벤토리가 동기화되면서 사라진 아이템이었다.

추측해 보건대, 완벽한 상태로 부활하는 건 밸런스가 맞지 않는다 고 생각해 운영자가 아예 삭제해 버린 게 아닐까?

그렇다기엔 전에 여러번 부활하

기는 하던 마왕이 있긴 했지만.

"몇 번? 몇 번을 죽어야 하냐고? 알려 주면 깜짝 놀랄 텐데."

신의 하수인이 박장대소하며 말 했다.

"오, 너무 궁금해. 몇 번 죽으면 되는데?"

"세 봤자 의미 없다. 수천 번, 수 만 번을 죽여 봐라. 여기서 나는 무적에 가까워. 네가 아무리 진땀을 빼며 노력해 봤자 결과는 정해져 있지."

"무적? 아무리 죽여도 계속 부활

한다고?"

"어때, 절망감이 드나?"

"전혀."

딱 보니까 시스템 덕분에 횟수 제한없이 부활하는 거 같은데. 그 게 녀석이 기고만장한 이유겠지.

실제로 허세를 부리는게 아닐 것이다. 녀석이 말한 무적이라는 말은 진실일 터.

적어도 이 무인도에서는 말이다.

좋은 생각이 떠오른 유준의 입가 가 올라갔다.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6권 22화

144화

신의 하수인.

죽여도 죽여도 부활하는 까다로 운 적이다.

이 무인도에서는 말이다.

녀석을 죽일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확실하지는 않아도 신의 하수인을 처리할 방법을 알 것 같았다.

유준은 먼저 하수인에게 쇄도했다.

'언제가 되든 마지막에는 당연히 자폭이겠지.'

그에게 아무런 피해도 입히지 못 했던 하수인의 자폭.

그럼에도 하수인은 자폭 공격을 감행할 수밖에 없었다.

녀석이 가진 가장 강력한 공격 스킬일 테니까.

'신들의 전쟁'에서는 자폭 종류의 스킬만큼 대미지 효율이 잘 나오는 것은 거의 없었다.

대신에 스킬을 시전한 본인도 큰 피해를 입거나 사망한다는 것이 단 점이었는데.

지금 신의 하수인에게는 무한정 쓸 수 있는 능력에 가까웠다.

유준이 점멸을 사용했다.

동시에 혼돈을 담은 검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그었다.

거기까지 움직이는데 걸린 시간은 찰나에 불과했다.

서걱!

신의 하수인은 자폭하기도 전에 목숨을 잃었다.

"타파골."

"예!"

"바로 붙잡아."

"알겠습니다!"

우렁차게 대답한 타파골의 목소리가 무인도 전체에 울려 퍼졌다.

역시나 신의 하수인은 예상했던 지점에서 부활했다.

타파골이 거대한 손으로 신의 하 수인을 붙잡았다.

엄청난 압력에도 신의 하수인은 전혀 고통스러워하지 않았다.

'혼돈을 담지 않으면 고통도 안 느끼는군.'

이건 이단 심판관과 다른 부분이었다.

유준은 신의 하수인에게 다가갔다.

타파골에 의해 몸이 꽉 움켜쥐어져 있는 하수인.

이러면 자폭 공격을 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타파골의 몸에서 빠져 나올 수도 없었다.

타파골의 레벨은 800.

심지어 압도적인 질량과 부피를 가졌다.

힘은 당연히 셀 테고.

같은 능력치를 가지고 있더라도

작은 체구로 힘을 내는 것과 큰 체 구로 힘을 내는 것은 다르다.

거기다 타파골은 괴력이라는 희 귀 특성도 가지고 있다.

'저 특성 참 탐나네. 뺏고 싶을 정도야.'

타파골의 '괴력'처럼 육체에 직접 적이며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들은 무척 좋은 특성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여튼 괴력과 높은 근력, 타파 골의 어마어마한 덩치까지 합쳐지 니.

아무리 격이 높은 신의 하수인이

라고 해도 타파골의 손아귀에서 벗 어날 수 없었다.

하수인의 얼굴을 본 파라네트가 고개를 갸웃했다.

"형님... 아니, 주인님. 이 새끼 웃고 있는데요?"

"형님?"

파라네트가 뜨악한 얼굴로 두 손을 공손히 모았다.

그리고 허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괜찮아. 실수니까."

딱히 호칭은 상관이 없지만, 파

라네트의 말을 들으니 뭔가 여기서 모든 것이 다 끝나 버릴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이 모든 게 환상은 아니겠지?

그때, 신의 하수인이 웃음을 터 뜨렸다.

유준이 탄식했다.

"왜 웃어? 장기 털리고 싶어?"

그의 말에도 신의 하수인은 미소를 유지하고 있었다.

"우스우니까. 날 잡아서 어쩔 건가?"

"죽여야지."

"소용없다는 걸 알 텐데?"

"과연 그럴까?"

유준도 신의 하수인이 그러는 것 처럼 마주 웃어 주었다.

불길함을 느낀 신의 하수인.

그러나 그는 타파골에게 꽉 잡혀 움직일 수 없는 상태.

그저 흘러가는 상황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타파골."

"예."

"바다로 나가."

"알겠습니다."

쿵! 쿠웅!

타파골이 무거운 몸을 이끌고 이 동했다.

보폭이 넓으니 금방 도착했다.

"좀 더 걸어."

"예."

타파골에 올라탄 유준이 명령했다.

파라네트가 옆에서 입을 열었다.

"주인님. 이대로 무인도를 벗어

나는 겁니까?"

"음."

"저 하수인은 어쩌고요?"

"죽여야지, 뭘 어째. 아, 여기쯤

이면 될 거 같은데. 타파골."

"예."

"멈춰 봐."

유준이 검에 혼돈을 담았다.

신의 하수인이 흔들리는 눈동자

로 유준을 바라봤다.

망설이지 않고 하수인의 목에 검

을 찔렀다.

푸욱!

"컥!"

신의 하수인이 그렇게 절명했다.

유준이 부활 지점을 살폈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뭐야, 진짜 죽어 버리네.

바다에서 죽으니 부활하지도 않는 건가?

여기서 바로 성공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여차하면 봉인되어 있는 이단 심 판관을 꺼내 죽이고 하수인을 봉인 할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섬을 벗어난 것만으로도 부활이 멈추다니.

그때였다.

['???'을 처치했습니다!]

[10,000,000점을 획득합니다.]

"어?"

갑작스럽게 나타난 홀로그램 창. 유준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천만 점? 이걸 지금 줘?"

신의 하수인을 처치하고 받은 점

그는 이미 필요한 아이템을 만물 상점에서 전부 구매한 상황이었다.

점수가 들어와도 크게 쓸데가 없었다.

'그래도 이따 만물상점에 한 번 더 들러야겠는데.'

무려 천만 점이다.

당장 만물상점에서 파는 물건들을 수십, 수백 개나 살 수 있는 점 수다.

이걸 쓰지 않는 건 미련을 넘어 서 바보 같은 짓이었다.

'내가 이미 가지고 있는 아이템이긴 해도 많이 가져서 나쁠 건 없으니까.'

오히려 좋았다.

스킬 서고 같은 곳에 또 들어가 기라도 한다면.

아이템을 제물로 바쳐서 천마신 공 같은 EX+등급의 스킬들을 또 얻으면 되는 것이다.

'물론 스킬 서고를 찾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사실 스킬 서고 위치를 하나 알 고 있긴 했다.

지금도 남아 있을진 모르겠지만.

게다가 스킬 서고를 가려면 더 높은 층으로 가야만 했다.

지금 그는 탑의 공략을 전혀 진 행하지 않고 있는 상태.

탑은 한 번에 공략해 쭉 올라갈 생각이었다.

'어찌 됐든 하수인을 죽이면 점 수를 얻을 수 있다는 거지.'

신의 하수인을 보는 유준의 눈이 탐욕으로 인해 빛났다.

"설마... 주인님?"

"웅. 하수인 사냥하러 가자."

"신의 하수인이라는 놈들, 좀 아니, 많이 강하던데 이번처럼 쉽게 될까요?"

"안 강하던데?"

"그, 그런가요?"

신의 하수인이 했던 자폭 공격도 자신에겐 아무런 타격이 오지 않았다.

그의 높은 방어력이 힘을 발휘한 것이다.

이처럼 공격력과 방어력 수치는 매우 중요하다.

'공격력이야 상대방 격이 높으면 소용없다고 쳐도... 내가 방어력 이 높으면 일단 안전한 상태로 싸 울 수 있으니까.'

보험 몇 개를 들어 둔 것보다도 더 든든했다.

'이 맛에 과금하지.'

압도적인 공격력과 방어력.

게임 콘텐츠 중에는 대규모 전쟁 같은 것도 있었는데, 유준은 거기 서 신에 가까웠다.

어떤 마법에 적중당해도 그에게 들어오는 대미지는 0에 수렴했다.

반면 그의 일격을 받아 내는 이는 없었고, 그가 있는 진영이 항상승리를 거뒀다.

이번에도 비슷했다.

격이 자신보다 월등히 높긴 해도 높은 방어력 수치 때문에 신의 하 수인은 그렇게 위협적인 적이 아니었다.

물론, 언제나 그렇듯 유준에게만 해당하는 얘기였다.

신의 하수인을 사냥하기로 마음 먹은 유준.

그는 무인도를 벗어나는 것이 아닌, 다른 하수인이 있는 구역을 목 적지로 삼았다.

그가 타파골을 이동 수단으로 이 용하며 이동했다.

"타파골. 너 거대화 얼마나 유지 할 수 있어?"

"시간제한은 없습니다."

"...그냥 계속 그 모습으로 있을 수 있다고?"

"그렇습니다."

"사기네."

저 덩치를 무한으로 유지할 수

있다니.

솔직히 부러웠다.

'내가 저렇게 커지면, 그냥 다 쓸 어버리고 다닐 수 있었을 텐데.'

타파골한테는 왜 이렇게 탐이 나는 능력들만 있는 걸까.

"주인님. 어느 방향으로 가면 되겠습니까?"

"돌덩이! 당연히 신의 하수인이 있는 곳으로 가는 거겠지. 주인님 뜻도 단번에 못 알아챈단 말이냐? 띵킹을 안 하니까 그런 거다."

타파골의 말에 파라네트가 그런 식으로 반응했다.

거대 골렘은 해골의 말을 무시했다.

녀석은 오로지 유준의 말만들을 뿐, 일개 언데드의 말은 귓등으로 흘려듣는 시늉조차도 하지 않았다.

파라네트가 화를 냈다.

"어이, 띵킹 안 하냐고!"

"야! 띵킹! 날 무시하는 거냐!" 파라네트의 외침은 결코 타파골

에게 닿지 않았다.

신의 하수인은 무인도 곳곳에 자 리해 있었다.

그렇기에 다음 하수인을 금방 찾 아낼 수 있었다.

파라네트가 입을 열었다.

"근데 왜 신의 하수인들은 혼자 만 있는 걸까요?"

"자가 격리하는 거지. 시국이 시 국이다 보...

"시국요?"

"아니. 혼자 있는게 효율적이니까 그런 걸 거야. 시스템이 일개 플레이어가 신의 하수인을 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겠어? 게다가 간 격도 어느 정도 일정하게 둬야 플레이어들을 감시할 거 아니야."

"...그렇군요. 그런데 주인님한테 점수를 줬지 않습니까? 이벤트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점수를 신 의 하수인을 죽이고 얻었으면 전부 계획된 거 아닐까요?"

"잡으라고 둔 놈들이 아니야."

아까랑은 생각이 바뀌었다.

홀로그램 메시지에는 '???'을 죽였다고 표시되었다.

이벤트를 설계했던 자 또한 예상 치 못했던 변수라는 거다.

타파골의 모습은 무인도 어디에 서 봐도 보일 정도.

일반인들이라면 몰라도 눈이 좋은 플레이어들은 아무리 멀리 있어 도 식별 가능했다.

신의 하수인이라고 다르겠는가.

두 번째 만난 신의 하수인은 방 금 죽였던 신의 하수인보다 덩치가 두 배는 더 컸다.

물론, 타파골과 비교하면 태양 앞의 반딧불이 수준이었다.

신의 하수인, 비텍이 눈을 가늘 게 떴다.

"골렘?"

" 알아보는구나."

유준이 소리치며 말했다.

타파골의 어깨가 하도 높아 조용 조용 말해선 잘 안 들릴 것 같다고 생각한 것.

"물어볼 것이 있다."

하수인, 비텍이 말했다.

"물어볼 거? 뭔데?"

"어떤에너지를 동력원으로 쓰기에 저 큰 골렘이 움직일 수 있는 거지?"

"에너지?"

연금술사나 마법사들이제작하는 골렘이 움직이려면,에너지가 필요 하다.

생명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타파골은 좀 다르다.

길잡이 골렘 소환석에 의해 소환 수가 된 타파골.

심지어 돌연변이처럼 말도 할 줄 알고, 눈에서는 레이저가 나간다.

일반적인 골렘이랑 비교하긴 무 리가 있었다.

사실 유준은 타파골이 어떻게 움직이는지조차 잘 몰랐다.

그냥 말을 할 줄 알고 스스로 잘 움직이니 그러려니 할 뿐.

"몰라."

"...모른다고?"

"응. 난 모르니까 타파골한테 물 어보든가."

"골렘. 넌 어떻게 움직이고 있지?"

녀석은 대답하지 않았다.

질문을 던진 것이유준이 아니었 기 때문이다.

타파골은 남의 말은 신경도 쓰지

않고 오로지 유준의 말만들었다.

좋게 말하면 주인에 대한 충성심 이 대단한 거고, 나쁘게 말하면 융 통성이 없었다.

"타파골."

"예."

"말해 줘."

"실은 저도 모릅니다."

"으웅? 너도 모른다고? 네가 어 떻게 움직이고 있는 건지?"

"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인의 경지에 이른 플레이어들 처럼 마력으로 신체 내부를 관조할 수 있으면 몰라도 일개 골렘이 그 걸 어떻게 알겠는가.

더군다나 타파골은 지능이 약간은 떨어지는 소환수 골렘이었다.

말을 하는 것에 놀라긴 했지만, 그렇다고해서 아주 똑똑하다고 볼 수는 없었다.

"모른대."

유준이 비텍에게 말했다.

놈의 입가가 비틀렸다.

"...그럼 직접 알아내면 되겠

군. 오랜만에 골렘 해부를 해 보겠 군."

비텍이 혀를 날름거렸다.

혹시 골렘을 좋아하거나 막 그런 건가?

아니면 무언가를 해부하는 것을 좋아할 수도 있다.

으, 더러워.

유준은 경멸을 듬뿍 담아서 말했다.

"변태인 네가? 무슨 수로?"

"너의 격은 나와 비교하면 매우 낮...

"그만해, 그만. 그 얘기 너무 지 겨워 이제. 내가 몇 번이나 들었는 줄 알아?"

"뭐라...?"

"이단 뭐시기도 그랬고, 다른 신 의 하수인도 같은 얘길 하는데 귀에 아주 딱지가 앉겠어."

"하여튼. 긴말 말고 덤벼."

매번 하수인을 만날 때마다 귀찮 게 대화를 나누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유준은 타파골에게 신의 하수인

이 부활할 것 같은 예상 지점 근처 로 이동하라고 명령했다.

"알겠습니다."

유준이 타파골의 어깨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그는 신의 하수인과의 전투에서 타파골을 전투 병력으로 쓰지 않을 생각이었다.

녀석의 레벨이 800을 넘는다고 하나, 녀석의 격이 레벨에 맞는 수 준인 건 아니었다.

유준도 안 지 얼마 안 된 사실인 데 소환수의 격은 그 주인의 격에 맞춰진다.

주인의 레벨이 1이라면, 소환수 가 아무리 레벨이 높다 한들 레벨에 걸맞은 격을 지닐 수 없었다.

타파골에게는 그의 존재가 오히 려 걸림돌이 되는 것이었다.

'못난 주인을 둬서 미안하다. 타 파골. 얼른 레벨 올려 줄 테니 조 금만 기다려.'

그래도 신의 하수인을 묶어 놓기에는 타파골만 한 녀석이 없었다.

덩치가 깡패라는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니었다.

유준이 검을 들었다.

"잡아야 할 놈들이 산더미야. 빨 리 끝내자!"

"이 애송이가 주제도 모르고...

신의 하수인은 둘이 다가 아니다.

처음 그가 무인도에 워프되었을 때 기감에 잡힌 것만 해도 여섯.

한마디로 전부 다 사냥하면 육천 만 점수를 얻을 수 있었다.

'얼른 점수 얻고 만물상점 물건 들 내가 다 싹쓸이해야지.'

유준의 얼굴에 탐욕이라는 이름 의 악마가 자리 잡았다.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6권 23화

145화

바닷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이제는 꽤 길어진 유준의 머리칼 이 흩날렸다.

번쩍!

한 번의 섬광.

유준이 휘두른 검에 마지막 신의 하수인의 목이 잘렸다.

점멸 스킬을 사용하지도 않았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높은 민첩

능력치.

이동 스킬없이도 그는 블링크를 쓰는 것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다.

신의 하수인이라는 강력한 상대 도 그 속도를 감당해 낼 수 없었다.

그가 소리쳤다.

"타파골!"

"예."

신의 하수인이 부활했고, 타파골 이 대기하고 있던 위치에서 손을 뻗었다.

되살아남과 동시에 붙잡았기에 신의 하수인이 어떻게 대처할 방법 이 없었다.

그때 하수인이 무어라 중얼거렸다.

"메...신저로 왔던 내용이 이런 의미였나...

"뭐야, 너희도 메신저 쓰냐?"

플레이어만의 특권인 줄 알았는데.

하긴, 플레이어가 아닌 존재가 어디 있겠느냐마는.

신의 하수인이 플레이어일 수도

있지.

"이 골렘이 나한테 무슨 짓을 하는 거지? 이상하게 힘을 줄 수가 없...다."

"무슨 짓이라니, 그냥 힘만 주고 있는게 다야."

"...뭣."

신의 하수인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어떠한 능력도없이 자신이 이렇게 옴짝달싹 못 하게 만든다니.

허망한 얼굴의 하수인을 보며 유준이 웃었다.

이것이 바로 부피와 질량에서 오는 차이 때문이었다.

'타파골... 덩치가 크니까 능력치 이상의 힘을 내고 있어.'

유준이 타파골보다 훨씬 높은 근 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타 파골처럼 할 수 있냐 하면 그건 아니었다.

'내가 공간 장악으로 묶어 놓는 것보다도 더 효율적이야.'

신의 하수인이 안 죽고 버티고 있는 것도 타파골의 격이 더 낮은 게 이유였지, 힘이 모자라서가 아

니었다.

" 끌."

"예. 알겠습니다."

이제는 유준이 입을 열기도 전에 타파골이 알아서 움직였다.

바다 수심이 깊은 곳까지 간 타 파골이 멈췄다.

"처리 부탁드립니다."

"오냐. 잘했다."

그들의 모습을 본 파라네트가 진 심으로 감탄했다.

"와... 가면 갈수록 전문가가 되는 거 같습니다."

"그거 칭찬은 아닌 거 같다?"

"치, 칭찬입니다! 진짜 존경스럽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 위 해선 뭐든 하잖습니까! 저도 훌륭 한 데스 나이트로서 주인님을 본받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언데드한테 본보기가 되는게 꺼림칙한데."

"좋은 게 좋은 겁니.... 억!"

파라네트의 머리를 손으로 한 대 쥐어박은 유준.

그가 검에 혼돈을 담았다.

검을 그대로 신의 하수인의 머리

에 꽂았다.

푹!

당연한 얘기지만, 신의 하수인은 일격에 사망했다.

['???'을 처치했습니다!]

[10,000,000점을 획득합니다.]

"이걸로 여섯 명. 다 끝났네."

무인도에는 하수인이 더 남아 있 지 않았다.

"주인님."

파라네트가 진지한 얼굴로 불렀다.

"왜?"

"주인님은 신의 하수인도 쉽게 잡으시잖습니까. 그럼 이제 신도 넘볼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솔직히 하수인들은 주인님의 상대가 전혀 안 됐잖아요."

유준은 파라네트의 말에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야. 신의 하수인이 신의 바로 밑 단계 강자는 아니잖아. 이름이 괜히 하수인이겠어?"

하수인은 사전적인 단어로는 남

의 밑에서 졸개 노릇을 하는 사람을 의미했다.

졸개.

그래 봐야 졸개다.

신체에 신격이 조금 깃들어 있다 고해서 신과 같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물론 아닐 수도 있다.

추측해 봤을 뿐이다.

"어쨌든, 신을 우습게 볼 수준까 진 아직 아니야, 내가."

"주인님이라면 누구든 다 이길 거 같은데요."

"그렇게 생각해 주는 건 고마운데. 아직 부족해."

유준의 눈빛이 진중하게 변했다.

그는 더 높은 곳을 봤다.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그가 만나는 적들의 무력도 올라갔다.

그가 더 빠르게 강해져 큰 위험 이랄 건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대로 안주하거 나 안심할 수는 없었다.

'먼저 가장 중요한 레벨.'

레벨을 올려야 한다.

낮은 격 때문에 귀찮은 일을 얼

마나 많이 겪었던가.

사실 대륙에서 456레벨이면 상당 히 높은 축이긴 하지만…,

천외천이라고 하던가.

무한의 탑에는 숨은 고수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그래서 약간 황당하기도 했다.

'그런데 유저들이 신들의 전쟁을 플레이할 때보다 무한의 탑 플레이어들 성장이 더 빨라. 여긴 목숨이 여러 개인 게임도 아니고 현실인데.'

그 이유가 뭘까.

이종족이야 예전부터 무한의 탑에 살고 있었으니 그렇다 쳐도, 한 국인인 조율 멤버들은?

그들은 왜 그렇게 레벨이 높은 걸까.

일단 그때 당시의 유저 수가 적은 것이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다.

신들의 전쟁을 플레이했던 유저 라고 해 봐야 처음에만 몇만 명 정 도였고, 나중에는 백 명도 남지 않았다.

동시 접속자 수로 계산하면 열 명.

전부 랭커들이었다.

그러니까 간단하게 말해서, 전체 적인 수가 훨씬 많은 것이다.

무한의 탑의 플레이어들의 수.

그리고 신들의 전쟁을 했던 유저 들의 수.

비교하기가 미안한 차이를 보였다.

당연히 무한의 탑에는 재능 있는 자들이 더 많을 테고, 상식을 벗어 난 괴물들이 탄생할 확률이 높겠지.

그가 실제로 봤던 인물 중, 조수 아만 해도 그렇다.

그녀는 인간이면서도 610레벨을 달성했었다.

5년이라는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말이다.

조율 멤버들보다 확실히 강하고,

부정된 힘으로 강해진 마신 추종자조차 그녀는 어렵지 않게 처치했다.

도대체 어떤 특전을 받았길래?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인벤토리와 평정심 특전 두 개

덕분에 불과 수 달 만에 여기까지 왔다.

'그래도 500레벨은 찍어 두고 싶은데.'

이벤트라는 특별한 장소, 상황에 처해 레벨을 올리지 못하고 있지만, 반대로 이벤트만 끝나면 레벨은 언 제든 올릴 수 있었다.

그가 왼팔에 새겨진 그림을 물끄 러미 바라봤다.

[최상급 경험치 증가 룬]

등급 : 無

옵션 : 룬을 신체에 새기면 경험 치 획득률이 80% 증가합니다. 단, 두 팔과 두 다리에만 룬 효과가 적 용됩니다.

최상급 경험치 증가 룬.

랜덤 룬 박스를 열고 얻은 아이템이다.

행운이 극도로 높아져 있는 상태 여서 그런지는 몰라도,

랜덤 박스에서 나올 수 있는 가 장 좋은 룬이 나온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효과가 좋았다.

무려 경험치 획득률이 80퍼센트 가 증가한다.

안 그래도 그는 전에 얻었던 아이템으로 경험치 증가율이 늘어나 있던 상태.

최상급 경험치 증가 룬은 그런 그에게 날개를 달아 준 격이었다.

유준의 눈이 활활 타올랐다.

'진짜 이벤트 끝나기만 해 봐.'

마신 추종자든, 마누엘라의 재료 찾기든 시간을 허비한다 싶으면 다 제쳐 두고 레벨부터 올릴 생각이었다.

"이제 어디로 가십니까? 목표했 던 신의 하수인은 다 잡았으니…."

"만물상점에 다시 가려고 했는데, 이대로는 못가."

"왜요?"

"분명 무인도를 멀리 벗어나면 뭔가를 줄 텐데. 내가 하수인 잡아 서 남들 좋은 일만 해 주게 됐잖아."

"...그러고 보니, 그러네요."

알면서도 그랬다.

왜냐,

'하수인을 잡고 얻을 점수가 너

무나 탐났거든.'

그러나 이대로 방치를 할 생각은 없었다.

다른 플레이어들이 먼저 이득을 얻기 전에, 재빨리 조치할 생각이었다.

유준은 인벤토리를 열었다.

"주인님. 이번엔 어떤 아이템입니까?"

"기다려. 노진구...가 아니라 파라네트. 보면 알 테니까."

그가 인벤토리에서 아이템 몇 개를 꺼냈다.

발목까지 오는 긴 칠흑색의 망토를 눌러쓴 인물이 있었다.

순혈 마녀인 마누엘라였다.

그녀는 첫 번째 이벤트, 두 번째 이벤트, 세 번째 이벤트 모두 제대 로 참여를 하지 않았다.

대신 워프될 때마다 그곳을 한 군데도 빠짐없이 전부 탐험하며 재

료 아이템을 구하고 다녔다.

실제로 성과는 있었다.

그녀는 원하던 재료 아이템을 세 개나 찾았고, 뜻하지 않았던 아주 귀한 아이템도 구하면서 소위 말하는 대박을 터뜨렸다.

'대륙 어디에도 없는 재료가 이 벤트 장소에 있었을 줄이야.'

마누엘라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생각했다.

'이제야 보답할 수 있겠다.'

그녀는 유준에게 받은은혜를 갚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무척 기뻐했다.

비록 그와는 처음 시작이 안 좋았고 악연이었다고는 하나, 유준은 지금 그녀가 가장 신뢰하는 존재가 됐다.

그 덕분에 던전도 재건할 수 있었고, 마계에 걸려 있던 지명수배 도 완전히 사라졌다.

자유를 되찾은 것도 좋지만, 마 왕을 죽이면서 속이 다시원한 것도 있었다.

매번 신유준에게 너무 고마웠었다.

재료를 모으러 동분서주하고 다 녔던 것도 다 그러한 이유였다.

마누엘라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이상하게 신유준이랑 함께 다니 면 재밌고 즐거워.'

단순히 그가 강해서일까.

그건 아니었다.

그냥 그의 말투가 재밌었고, 행 동이 웃겼고 보고 있자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마누엘라는 수천 년이라는 긴 세 월을 살아왔지만, 누군가와 함께 돌아다닌 적이 거의 없었다.

항상 혼자였다.

그녀는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었고 외롭다는 기분도 든 적이 없다.

그런데 요즘 생각이 바뀌었다.

혼자 있으면 허전하다.

그와 덜떨어진 언데드 소환수가 그리웠다.

'기간으로 보면 그리 오래 떨어져 있던 것도 아닌데. 신기해.'

이렇게 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 했는데.

기분이 썩 괜찮았다.

아니, 아주 좋았다.

그리고 이제 곧 그를 다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마누엘라가 신난 듯 가벼운 발걸 음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