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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5 - 15

154화

[소환수 : 파라네트(성장형)]

□ 레벨 : 445

□ 특성 : 생존 본능(S), 회피 (A), 마력 컨트롤(A)

□ 스킬 : 독 포션 제조(B), 시체 폭발(S), 공간 이동(EX+), 몸통 박치기(S+), 만근추(SSS)

□ 칭호 : 뛰어난 죽음의 기사 (전설) - 치명상을 입었을 시에 모든 능력치가 15% 증가합니다.

□ 능력치

[근력 836] [민첩 880]

[체력 915] [마력 560]

[미분배 포인트 : 0 ]

녀석의 레벨과 능력치가 그새 또 많이 올랐다.

이벤트 보상으로 레벨이 오른 건가?

소환수도 적용되는구나.

만근추.

유준은 파라네트에게 새로 생긴 스킬, 만근추에 집중했다.

일단 SS등급이었다.

S등급 이상의 스킬이 나오는 부 여석이니까 등급만 놓고 보면 만족 스러웠다.

다만, 이 스킬은 유준도 신들의 전쟁을 플레이하면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정확한 효과를 몰랐다.

'대충 이름만 보면 무협지에나 나오는 기술인 거 같기는 한데.'

천마신공도 있는 마당에 이상할 건 없었다.

'몸을 무겁게 하는 기술이라고만 나와 있네.'

만근추라는 스킬이 나올 줄 알았으면 타파골에게 줄 걸 그랬다.

아니다.

녀석이 만근추를 사용하면, 땅이 그냥 푹 파일 가능성도 있었다.

'애매하긴 하네.'

언데드에게 만근추라.

감이 잘 안 왔다.

"어떤 거 같아? 지금 한번 써 볼래?"

"예. 흡!"

무거워진 건가?

겉으로 보기에 달라진 건 없었다.

"된 거야?"

"예!"

"움직여 봐."

"예!"

파라네트가 한 발짝 움직였다.

굼벵이가 기어가듯 아주 느릿느릿했다.

"뭐 해?"

"무, 무거워서 제대로 움직일 수 가 없습니다!"

"제 몸도 제대로 가누기 힘들면 어쩌자는 거냐."

"죄, 죄송합니다."

유준이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스킬이랑 결합해서 사용해 봐. 예를 들면, 몸통 박치기나 공간 이동이 있겠네."

"아..."

파라네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이 근처 나무에 대고 몸통 박치기를 사용했다.

콰아앙!

"야. 만근추 적용 안 된 거 같은데?"

"맞습니다! 어렵네요, 이거!"

"타이밍이 중요해. 몸통 박치기 쓰고 충돌 직전에 만근추를 사용해 봐."

유준의 말에 파라네트가 다시 도 전했지만,

콰쾅!

이번에도 만근추는 적용되지 않았다.

"...이게 쉽지가 않습니다."

"당연히 그렇겠지."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 않았던 걸 시도하는 것이 니.

공간 이동과 몸통 박치기 콤보는 파라네트가 종종 사용했지만, 만근 추는 궤를 달리하는 스킬이다.

처음부터 되는 것이 더 이상했다.

그래도 제대로 활용하기만 하면,

아주 강력한 무기를 갖추는 셈.

"계속 연습하고 있어."

유준은 파라네트에게 명령을 내 려놓고 보상부터 정리하기로 했다.

레벨이 오른 것과 초월의 돌은 이미 확인했고 남은 건 EX등급 랜 덤 스킬 북.

가슴이 두방망이질 치면서 목이 간질간질했다.

이 아이템을 앞에 두고도 참는 건 고역이었다.

유준은 뜸들이지 않고 스킬 북을 펼쳐 들었다.

콰콰쾅!

스킬 북에서 난 소리가 아니다.

파라네트가 스킬 콤보를 연습하는 소리였다.

저 정도 소리면 곧 마신 추종자들이 몰려오겠는데.

'빨리 확인해야겠다.'

[스킬 '초집중(EX)'을 획득했습니다.]

EX등급의 스킬이나 특성은 하나 같이 무한의 탑 상식을 가뿐하게

파괴할 정도로 사기적인 효과를 가 지고 있었다.

무과금즐겜러 캐릭터로 얻어 보 지 못한 스킬이지만, 설명만 읽어 도 얼마나 뛰어난지 알 수 있었다.

일시적이긴 하지만, 그의 집중력을 한껏 끌어올리는 스킬.

이것만 보면 별로인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전투에서 집중력은 생각 하는 것 이상으로 매우 큰 부분을 차지했다.

못 피할 공격을 피하게 해 준다 거나, 약점이 없어 보이는 적의 허

점을 찾게 해 준다든가.

집중력 하나만으로 전투의 승패를 뒤바꿀 수 있다.

그런데 그냥 집중도 아니고 초집 중이다.

게임에서 얻었던 '집중(A)'만 하 더라도 전투에 큰 영향을 끼쳤는데, 하물며 EX등급의 초집중은 어떻겠는가.

유준의 입가에서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이 능력을 얻은 것은 그 무엇보 다도 큰 소득이다.

과장 하나 안 보태고 용혈석이

나, 태초의 허름한 망토를 얻었던 때보다 더 기뻤다.

초집중을 전투에 적용하면 다른 능력들과 어떤 시너지를 낼지....

벌써 기대되었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곧바로 초집중을 사용해 봤다.

지이잉-.

귀가 먹먹했다.

세상이 느려지는 감각.

모든 것이 슬로우 모션으로 보였다.

익숙하면서 동시에 낯설었다.

무아지경에 접어들었을 때와는 조금은 다른 느낌이었다.

그때는 몸이 멋대로 움직이는 것에 모든 걸 맡기는 감각이었다면,

지금은 자신의 움직임 하나하나, 손끝의 떨림까지도 제어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초집중은 언제까지 지속되는 거지?'

궁금해서 초집중 상태를 계속 유지했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흘렀다.

유준은 점점 집중력이 흐트러져 감을 느꼈다.

정확히 표현하면, 피로가 몰려오 기 시작했다.

초집중의 효과 자체는 유지되지만, 지친 느낌을 받아 쉬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정신적인 피로감이 상당하다.

그가 초집중 상태를 해제한 후 가쁜 숨을 깊게 토해 냈다.

'얼마 쓰지도 않았는데... 이

정도라니. 제약이 있다기보단 후폭 풍이 심하다고 볼 수 있겠네.'

그러나 실망스럽지는 않았다.

사기적인 능력일수록, 능력에 제 한이 많이 걸리는 법이다.

그만큼 초집중의 효과가 뛰어나 다는 반증이기도 하니, 오히려 기 뻤다.

'실전에 써 보고 싶은데.'

유준이 입맛을 다셨다.

마땅한 상대가 없는 것이 아쉬웠다.

그때, 그의 생각을 누가 읽기라도 한 것일까.

"저기다!"

"코말란이 말했던 놈들, 맞지?"

"봐. 신유준이잖아."

"...먼저 싸웠던 이들은 다 죽었네요."

"어쩌지?"

"뭘 어째? 도망이라도 치랴? 싸 워야지."

마신 추종자 세 명이 추가로 등 장한 것이다.

"기다렸어, 얘들아!"

유준이 산뜻한 미소를 지으며 말 했다.

"뭐, 뭐라는 거야."

"기뻐하는 거 같은데요."

"무서워..."

악명 높은 마신 추종자들이 전의를 상실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유준의 강함은 모두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번 돌발 이벤트를 통해 더욱 널리 그리고 자세하게 알려지게 되었다.

마신 추종자들도 그를 주의 깊게 살피고 있었던 만큼, 모를 수가 없 게 되었다.

유준이 한 발짝 앞으로 갔다.

그가 점멸을 사용할세라 미리 대 비하고 있던 마신 추종자들이 움찔 했다.

그러나 유준은 별다른 행동을 취 하지는 않았다.

"먼저 덤벼."

양보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 봐 도 상대를 우습게 보는 태도였다.

하지만 마신 추종자들은 차마 열을 낼 수 없었다.

그가 자신들보다 강한 건 너무나 자명한 일이었기에.

"지원 불러 놔."

"그런다고 될까요? 그때까지 못 버틸 거 같..."

"누가 살려고 지원 요청 한대?"

"...예, 예? 그럼요?"

"됐어, 내가 방금 보냈다."

"언제까지 떠들기만 할 거야? 안 와? 내가 간다?"

유준의 말에 마신 추종자 둘이

앞으로 뛰쳐나갔다.

'노리는게 내가 아닌데?'

마신 추종자들은 뒤에 서 있는 마누엘라를 노리고 달려들었다.

노림수를 단번에 파악한 그가 초 집중을 사용했다.

목표가 누구든 상관없었다.

어차피 그들의 공격은 절대 닿지 못할 테니.

마신 추종자가 땅을 박차는 즉 시, 유준의 검이 움직였다.

모든 것을 예상한 듯이 절묘한 타이밍에 휘둘러진 검.

서걱!

우회해서 지나치려던 마신 추종자 한 명의 목이 절단되었다.

그 틈에 빠르게 지나치려던 마신 추종자 또한, 유준의 검에 가로막 혔다.

"커헉!"

보통은 동시에 움직이는 마신 추종자들을 마법을 사용하지 않고 한 번에 막기는 힘들었다.

SS등급의 쾌검 특성.

쾌검이 높은 민첩 능력치를 만나 서 완전한 효력을 발휘했다.

거기다 초집중(EX)까지 사용한 상태.

검이 두 개가 되어 휘둘러진 듯 한 기묘한 광경이 연출되었다.

"...저게... 어떻게 가능해?"

뒤에서 지켜보던 조수아가 놀랐는지 입을 떡 벌렸다.

'분명 한 번 휘두른 거 같은

상식의 범주를 넘어섰다.

일격에 두 명의 목이 동시에 달 아났다.

두 눈 똑바로 뜨고 확인했고, 그

래서 더 이해가 안 가는 장면이었다.

그때 남은 한 명의 마신 추종자 가 암흑 마기로 마누엘라를 노렸다.

파악!

그러나 검은색의 진득한 기운은 마누엘라가 만든 실드에 간단하게 막혀 버렸다.

"...왜 항상 나를 최약체로 보는 거야."

마누엘라가 불평했다.

유준이 웃으며 말했다.

"네가 멍하게 있으니까."

"그건 아니야. 그냥 내가 작으니까 우스워 보이는 거지."

"...음."

유준이 자신의 어깨까지도 안 오는 마누엘라를 봤다.

확실히 아예 영향이 없지는 않겠네.

타닥!

남은 마신 추종자가 도주를 선택 했다.

사실 맞서 싸우든, 도망을 가든 결과는 다르지 않다.

마신 추종자도 알고 있었다.

그걸 알면서도 싸움을 포기했다는 건, 그만큼 승산이 없기 때문이었다.

마신 추종자는 블링크를 연달아 사용해 연구소를 벗어났다.

노력이 가상했지만,

그렇다고 그 노력이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지는 않았다.

유준이 점멸을 사용했다.

그의 모습이 완전히 감춰졌고,

어느새 마신 추종자의 바로 뒤까지 이동한 유준이 검을 쭉 내뻗었다.

푸욱!

소리없이 뻗어진 검은 마신 추종자의 목숨을 순식간에 앗아 갔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역시 이벤트가 끝나니까, 레벨이 쭉쭉 오르네.'

그의 레벨이 낮고 마신 추종자의 레벨이 높은 것도 있지만,

최상급 경험치 증가 룬을 왼쪽 팔에 새겨 놓은 게 컸다.

그전에도 경험치 관련 아이템을

얻어 경험치 증가율이 영구적으로 상승한 상태.

한마디로 그는 남들보다 두 배 가까이 더 빠르게 레벨을 올릴 수 있는 셈이었다.

'이제 레벨 좀을려 보자.'

답답해 죽는 줄 알았다.

이벤트로 얻은 게 많기야 하지만, 레벨이 올라가지 않던 게 얼마 나 아쉽던지.

이제는 잡는 족족 경험치로 환산 되니, 금방 고레벨을 달성할 수 있 으리라.

'그러고 보니 벌써 498레벨이네.'

마신 추종자들을 여럿 잡은 덕에 레벨이 많이 올랐다.

이제 격이 한 단계 오르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신격을 지닌 적한테는 여전히 공격이 안 통하겠지만...

그런 놈들은 혼돈을 써서 죽이면 된다.

일단 격이 상승하는 것만으로도 능력치의 효율이 달라지니, 어서 500레벨을 달성해야 했다.

유준은 일행이 있는 곳으로 돌아 갔다.

"시간 더 필요하십니까?"

"아니요. 저는 끝났어요."

"바로 출발할게요, 그럼."

유준은 이제야 제대로 연구소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마신 추종자들의 추격과 돌발 이 벤트로 인해 연구소를 살필 시간이 없었다.

"일단 연구소 안에는 아무도 없는 거 같습니다. 마음껏 돌아다녀 도 되겠네요. 특이 사항 있으면 말 씀해 주시고요."

"네."

이번 연구소는 전에 봤던 곳보다 훨씬 거대했다.

실험체 몬스터들도 많이 있었고 방도 수십 개는 되어 보였다.

복도도 여러 갈래로 있긴 했지만,

다행히 미로처럼 복잡한 것이 아니었고 방의 철문 앞에는 번호도 붙어 있었다.

"번호 순서대로 확인하면 되겠네요. 조수아 씨는 여기 1번 방부터 확인해 주세요. 저는 끝 번호부터 돌게요."

"네."

" 나는?"

마누엘라가 물었다.

"너? 너는 방 말고 복도 길 좀 잘 살펴 줘."

"알았어. 발견하면 바로 메시지 보낼게."

"그래."

그때였다.

탁, 탁!

파라네트가 달려오더니 본인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저, 저는요?"

"넌 저기서 스킬 연습이나 하고 있어."

"..."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7권 9화

155화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다.

무과금즐겜러는 그동안 빠르게 바뀌어 가는 세상에 적응했다.

그러면서 한 가지 깨달은 사실 으

'최소 수년... 아니, 완전히 처 음으로 돌아갔어.'

말 그대로 시대가 바뀌었다.

그가 처음 창조되었던 그 날로.

그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의식이 좀 더 또렷해지고, 인간 플레이어 들의 언행이 바뀌었다는 것.

심지어 외형마저도 큰 차이가 있었다.

'작아졌어.'

새로 나타난 플레이어들의 신장은 전보다 훨씬 작은 편이었다.

'2m가 넘어가는 인간도 엄청 많았는데.'

그런데 5년 전으로 돌아와서 나 타난 플레이어들의 평균 신장은 기 껏해야 170cm 정도나 될까.

무과금즐겜러는 이러한 변화들을 이상하게 생각했다.

'내가 지금까지 겪었던 건 뭐였지?'

생생하게 기억나는 그때의 경험 들.

절대 꿈은 아니었다.

무과금즐겜러는 쉬지 않고 움직였다.

인벤토리에 있던 아이템들이 전 부 사라지긴 했지만, 그는 다른 플레이어들과 달리 혼자 레벨 500부 터 시작하는 셈이었다.

거기에 여러 칭호와 높은 등급의 스킬과 특성들이 있었다.

몇 발자국 앞서 있다고 할 정도 가 아니다.

남들이 이제 막 기어 다닐 때, 그는 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이 아는 정보들을 이용 해 히든 던전들을 독점했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아이템이다.'

능력치와 스킬이 갖춰졌다.

그럼 최대한 그에 걸맞은 아이템들을 구해야만 했다.

어려운 건 없었다.

그는 3달이라는, 길다면 길고 짧 다면 짧은 시간 동안 히든 던전을 클리어하고 아이템을 얻고 다녔다.

질 좋은 아이템을 많이 얻었다고 자부할 수 있었는데, 한 가지 걱정 되는 것이 있다.

'설마 인벤토리에 있는 아이템들이 또 사라지지는 않겠지.'

기껏 모아 놨더니 아이템들이 저 번처럼 모조리 없어진다면... 박 탈감이 장난이 아닐 것이다.

'그런 불행은 한 번으로 족하다.'

무과금즐겜러는 굳은 얼굴로 눈 앞의 몬스터의 목을 베었다.

서걱!

그는 애꿎은 몬스터들을 죽이며 애써 불안함을 털어 냈다.

* * *

유준은 연구소의 끝 쪽으로 갔다.

도중에 몬스터 실험체들을 많이 발견했는데, 보이는 족족 제거해 버렸다.

이게 다 경험치였다.

미완성 상태라 경험치가 많이 오 르진 않았다.

그래도 무시하고 지나치는 것보 다는 훨씬 나았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이런 게 쌓여 언젠가 그에게 도움을 줄 수 있었다.

퓩! 콰앙!

'이거 괜찮네.'

유준은 혼돈을 레이저처럼 쏘아 내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은근히 괜찮았다.

파괴력도 파괴력이지만, 쏘아지는 혼돈의 속도가 장난이 아니다.

'점멸이랑 섞어 쓰면 어떨까.'

본래 레이저 공격은 위력이 무척 강한 대신에 궤적이 단순하고 공격 방식이 단조롭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런데 점멸을 사용한 후 혼돈을 발출한다면?

적 입장에서는 공격이 어디서 날 아올지 모를 수밖에 없다.

'비장의 수로 사용하면 되겠군.'

유준은 빠르게 이동한 덕분에 목 표했던 지점에 순식간에 도달할 수 있었다.

'끝 방이라고해서 별다를 건 없어 보이네.'

철문을 열고 들어갔다.

관리가 잘 안 되어 있는지 매캐 한 먼지가 그를 먼저 맞이해 줬다.

인상을 찌푸린 유준이 적당한 크기의 방을 탐색했다.

연구 일지 몇 장과 초록색 액체 가 담긴 플라스크가 수없이 많이 보였다.

그중 몇 개만 챙겼다.

아이템이 아닌지 인벤토리에 들 어가지 않아서 많이 챙길 수가 없었다.

그 외에는 특별한 것이 보이지 않아, 방을 나가려던 그때였다.

문틈 사이로 들어온 자그마한 빛에 반사되는 무언가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저게 뭐지?'

만지면 위험한 물건은 아닌 거 같아서 주워들었다.

구슬.

투명하고 푸른 빛을 띠고 있었다.

'아이템인가?'

혹시나해서 정보를 띄워 봤다.

[동기화 구슬]

등급 : 유물

옵션 : 정보가 없습니다.

'유물 등급?'

이런 등급도 있었나?

설마, 이게 초월보다 높은 등급은 아니겠지?

별건 없어 보이는데.

심지어 아이템 옵션은 정보가 없 다라는, 약간 어이없는 내용이었다.

유준은 동기화 구슬을 이리저리 살펴봤다.

글자가 적혀 있나해서 봤는데, 아무것도 없었다.

장난감 가게나 문구점에서 파는 평범한 구슬과 다를 게 없었다.

유준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냥 넘어가고 싶지만, 등급이 유물인 게 신경이 쓰였다.

별다른 효과가 없어 그럴 확률은 현저히 낮지만..., 어쩌면 초월 등급보다 높은 등급의 아이템일 수 도 있잖은가.

동기화 구슬에 마력을 불어 넣거 나 혼돈을 사용하거나 부드럽게 만져 보거나 했지만, 아무런 변화도 생기지 않았다.

유준이 낙담하며 인벤토리에 동 기화 구슬을 던져 넣었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동기화가 다시 진행됩니다.]

[인벤토리의 완벽한 동기화까지 남은 시간 총 ???분.]

[현재 동기화율 101.7%]

잠깐.

이게 뭐지?

"동기화라니?"

인벤토리 동기화는 다 끝나지 않았던가.

그가 컴퓨터 앞에서 혼절하고, 눈을 다시 뜬 시점에 말이다.

그래서 무과금즐겜러의 인벤토리를 그대로 가져온 것이고.

'혹시 자동 부활 스크롤 하나 사라진 것 때문에 그런 건가?'

동기화가 끝이 나면 그 자동 부 활 스크롤을 얻을 수 있는 걸까?

유준이 머리를 흔들었다.

뜻밖의 상황에 살짝 정신이 멍했다.

이걸 기연이라고 봐야 할지, 아니면 단순한 시스템 오류일지.

확실한 게 없으니 마냥 좋아할 수가 없었다.

'오류가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그러나 시스템 오류일 확률이 높을 것 같았다.

그 이유는 그가 무과금즐겜러 캐 릭터의 인벤토리의 아이템을 전부 가져왔기 때문이다.

자동 부활 스크롤 하나만 빼고.

인벤토리가 무에서 유를 창조하지 않는 이상, 새로운 아이템을 얻을 가능성은 희박했다.

'그래도 운이 좋으면 자동 부활 스크롤을 얻을 수 있는 건가.'

그게 어디냐.

목숨 하나가 더 생기는 건데.

그때, 시스템 메시지가 나타났다.

[현재 동기화율 102%]

[인벤토리 동기화가 중단됩니다.]

[새로운 동기화 구슬을 찾아 주십시오.]

[근처에 동기화 구슬이 있을 시에, 기존의 동기화 구슬이 진동합니다.]

새로 찾으라고?

유준이 허탈한 한숨을 내쉬었다.

"이걸 줬다가 뺏어 버리네."

뭐라도 주고 중단되든가.

확인해 보니 인벤토리에 추가로 전이된 아이템은 없었다.

'괜히 좋아했네.'

그나저나 새로운 동기화 구슬이라.

동기화 구슬이 이것 말고도 더 있는 거라면, 아무래도 찾아봐야겠는데.

'신들의 전쟁에는 이런 아이템이 없었지.'

일단 유물이라는 신박한 등급의 아이템이니, 흔하지 않다는 건 알았다.

유준은 방을 나와서 다음 옆방으로 이동했다.

'혹시 여기도?'

방마다 동기화 구슬이 있으면 좋겠는데.

히죽 웃으면서 방 탐색을 시작한 유준의 얼굴에 실망감이 자리 잡았다.

결과만 말하면, 동기화 구슬은 없었다.

정말 구석구석 다 뒤져 봤는데도 나오지 않았다.

다음 옆방도 마찬가지였다.

연구 일지들이나 플라스크들뿐, 다른 걸 발견할 수는 없었다.

근처에 있으면 진동한다고 했으니, 확실히 없는 거겠지.

'소르툴 숲을 나갈 단서라도 나 왔으면 좋겠는데.'

방은 많다.

벌써 낙담할 필요는 없었다.

유준은 이글 아이 스카우터까지 착용하고 탐색에 나섰다.

확실히 이글 아이 스카우터를 착 용하고, 안 하고의 차이는 컸다.

없는 걸 만들어서 발견하지는 못 하지만, 빠른 탐색이 가능했다.

시간이 훨씬 단축된 것이다.

그렇게 계속 탐색을 진행하다 보니, 어느 순간 복도에서 조수아를 마주칠 수 있었다.

"성과는 있었습니까?"

"아니요. 여기 연구소가 생긴 지 얼마 안 됐다는 것과 꽤 오래전부

터 계획해 온 일이라는 것 정도만....

"소르툴 숲을 빠져나갈 방법이나 마신 추종자들의 전력에 대한 건요?"

"없었어요. 당신은요?"

"못 찾았습니다."

"이 정도면 다 둘러본 거 같은데. 여기에 더 있는게 의미가 있을까요?"

조수아가 말했다.

유준이 고개를 저었다.

"혹시 모르잖아요. 좀만 더 돌아

다녀 보고 싶어요."

"저도 더 찾아볼게요, 그럼."

그렇게 둘은 다시 헤어졌다.

유준은 조수아가 이미 탐색했던 방들을 들어가 이글 아이 스카우터 로 살펴봤다.

'혹시 조수아가 발견 못 하고 지 나쳤을 수도 있으니까.'

몬스터 실험체들과 연결된 튜브 까지 확인할 정도로 꼼꼼하게 관찰 했다.

마력 증기가 작동하는 소리만이 연구소 내에 울려 퍼졌다.

콰앙! 쾅! 쾅!

사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파라네트가 몸통 박치기하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소리 크기가 일정한 걸 보면 아 직도 성공 못 했나 보네.'

이해는 한다. 파라네트가 부족한 게 아니다.

스킬 콤보는게임으로 조작할 때 도 쉽지 않았다.

직접 몸을 움직여, 스킬을 사용해서 콤보로 만드는 건 비교 불가능할 정도로 어려웠다.

물론, 재능이 뛰어나다면 게임보 다도 더 빨리 응용하는 것이 가능 할 것이다.

유준이 보기엔 파라네트의 재능은 범재.

딱 평균 수준이었다.

'그래도 파라네트가 공간 이동이 랑 몸통 박치기를 섞어 활용하는 걸 보면, 만근추랑 몸통 박치기 조 합도 시간만들이면습득할 수 있을 거 같은데.'

그가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은 파라네트에게 신경 쓸 때 가 아니었다.

유준은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는 동기화 구슬을 찾기 위해 바삐 움직였다.

우창균은 상부로부터 명령을 받고, 소르툴 숲에 진입했다.

솔직히 악명이 자자한 소르툴 숲 이 겁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이번에 성공하면 받을 보상이 막대했다.

그는 마신 추종자들 내부에서 신 흥 강자로 유명한 플레이어였다.

4년 차 플레이어지만, 웬만한 최 상위 랭커들보다 강했다.

압도적인 재능과 능력.

그걸 가진 우창균은 모두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실제로 그는 날이 지날수록 말도 안 되는 속도로 강해졌다.

마신 추종자 집단의 산하 조직이 라고 할 수 있는 '조율'에서도 스카 우트 제의가 왔었다.

그가 강한 것도 이유겠지만, 한

국인이라는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창균은 그 제의를 거절 했다.

'내가 조율에 있을 급은 아니지.'

그는 뛰어난 재능과 실력만큼 자 신감도 하늘을 뚫었다.

그럴 만한 힘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우창균은 조율 멤버 몇 명과 싸 워 본 경험이 있었다.

그때 당시에는 비등비등한 승부를 펼쳤고, 무승부로 끝이 났다.

누가 죽어야만 싸움이 끝날 것

같았으니까.

1년이 지난 지금은 다르다.

최근엔 기연까지 얻으며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진 우 창균.

그는 조율의 그릇으로는 자신을 담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번에 신유준이라는 놈을 죽이 고 전설 등급 영약을 받으면, 더 강해질 수 있다.'

우창균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벌써 몸이 떨려 왔다.

자신이 실패할 거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는 모습.

"괜찮겠습니까? 앞서 싸웠던 이들이 모두 당했다고 들었습니다."

같이 파견된 마신 추종자가 염려 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그런 놈들과 나를 비교하는 건 가, 지금?"

우창균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마신 추종자가 찔끔하며 허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내뱉지마. 난 아군, 적군 안 가려. 잘 알지?"

"...예, 예!"

8명이나 되는 마신 추종자들.

그들 모두 마음 한구석에 불만을 품고 있었지만, 감히 우창균의 심 기를 거스르지는 못했다.

이능력을 얻고 고작 4년.

우창균은 그사이에 손댈 수도 없는 강자가 되었다.

600레벨이 넘는 마신 추종자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의 성장 속도.

무엇보다도 잔혹한 마신 추종자 들 사이에서도 유독 더러운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그의 눈에 거슬리면 당장이라도 목숨을 내놓아야 했다.

심지어 우창균은 마신 추종자 수 뇌부의 마음에 쏙 들어 있는 상황.

그에게 반기를 드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연구소 하나는 완전히 반파됐고, 본 연구소에 놈들이 있다는 거지?"

"그렇습니다."

그때였다.

연구소를 앞에 두고 서 있던 마

신 추종자들의 귓가로 이상한 소리 가 들려왔다.

쿠웅. 쿵. 쿵.

쿠응! 쿵!

일정한 박자의 충돌음.

바로 근처, 밑에서 진동이 일었다.

그 진동을 마신 추종자들이 못 느낄 리가 없었다.

우창균이 눈가를 찡그렸다.

"이게 무슨 소리지?"

"연구소를 부수고 있는 거 아닐 까요?"

"흐음. 원래 있던 놈들은 다 당 했다고 했지.... 나약한 놈들. 근 데 부수는 것치고는 크게 요란스럽 지는 않은데?"

"들어가서 확인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먼저 들어가."

" 예?"

"먼저 들어가라고."

"아, 알겠습니다."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7권 10화

156화

마신 추종자 한 명이 외쳤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좋아. 진입한다."

우창균의 말에 마신 추종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들은 들어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마신 추종자들의 시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의외로 깔끔하게 죽였네요."

"실력 차이가 그만큼 많이 났다는 거야. 손써 보지도 못하고 당한 모양이군."

우창균은 이미 죽은 마신 추종자 들의 시체를 한심하다는 눈길로 바 라봤다.

심지어 대부분이 뒤에서 공격을 당해 목숨을 잃었다.

그야말로 도망가려다 실패한 작 태가 아닌가.

조직의 이름에 먹칠을 해도 정도 가 있지.

우창균이 시체 한 구의 머리를 짓밟았다.

콰직!

화가 났다.

고작 1년 차 플레이어 한 놈한테 이렇게 당한다는게 말이 안 된다.

'강하긴 한 것 같지만... 내 상 대는 아닐 터.'

우창균은 무한의 탑으로 소환된 이후로 한 번도 좌절을 맛본 적이 없었다.

재능이 뛰어난 것도 있지만, 초 창기에 압도적으로 강한 적을 만난 적이 없던 것도 있었다.

그래서 항상승승장구해 왔고,

패배라는 걸 모르고 살아왔다.

그렇기에 겨우 1년 차 플레이어 가 이 정도까지 성장했다는 걸 믿 기가 어려웠다.

그가 다른 플레이어들을 압도하는 증거 영상들을 봤음에도, 우창 균은 그를 인정하기가 싫었다.

아니, 도저히 인정할 수가 없었다.

열등감이 생길 것만 같아서.

'나보다 재능이 더 있을지언정, 녀석은 플레이어가 된 지 반년도 안 됐어. 내가 더 강할 거야.'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우창균이

입을 열었다.

"여기엔 없는 것 같고, 탈출한 흔적도 없으니 안쪽에 있을 거다. 샅샅이 뒤져. 발견하면 즉시 보고 하고."

"예."

"알겠습니다."

콰앙! 콰앙!

그때, 연구소에 들어오기 전에 들었던 충돌음이 다시 들려왔다.

"도대체 뭐야?"

우창균의 얼굴에 짜증이 어렸다.

거슬렸다. 아주 많이.

"저것부터 해결하는게 좋겠군."

우창균은 소리의 진원지를 향해서 빠른 속도로 접근했다.

마신 추종자들이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 그들은 단단해 보이는 벽을 향해 몸을들이받고 있는 언데 드 몬스터를 발견할 수 있었다.

"...언데드?"

"신유준의 소환수입니다. 요즘 유명합니다. 언데드 주제에 꽤 강 하다고...

"언데드가 강해 봤자지."

우창균이 입가에 조소를 머금었다.

파라네트라고 하던가.

덩치가 좀 크긴 하지만 중형, 대 형 몬스터들과 비교하면 그렇게 큰 것도 아니었다.

저번에 전투하는 광경을 영상으로 본 적이 있는데, 움직임이 엉성 하기 그지없었다.

힘만 센 어린아이.

우창균이 보는 파라네트의 수준 이었다.

그래서 아무런 망설임없이 파라네트에게 다가갔다.

"어이."

"응? 뭐냐, 네놈은."

스킬 조합 연습에 열중해 있던 파라네트가 불편함을 드러냈다.

"인간이군? 감히 인간이 본인의 훈련을 방해해?"

"네 주인, 신유준도 인간인데?"

우창균이 어이없다는 듯 말하자, 파라네트가 움찔했다.

"...크, 크흠. 방금 말은 못 들은 거다. 알겠나?"

"떨거지가 오만하네, 아주."

"떠, 떨거지라고? 나보고 말한 것이냐?"

"너 말고 여기 누가 있는데?"

"인간. 정말 겁이 없군."

"그건 내가 할 말이지. 일개 소환수가 뭐 이리 건방진지 모르겠네."

우창균이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파라네트가 허세가 많다는 건 숙 지하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마신 추종자들을 앞에 두고도 저 런 자신감이라니.

"나와 싸우겠다는 건가? 허허, 확실하지 않으면 승부를 걸지 마라. 이런 거 안 배웠어? 뭐 해? 너희 형님 손 안 찍고."

파라네트가 진지한 얼굴로 검을 빼 들며 말했다.

우창균이 고개를 뒤로 돌렸다.

"...쟤가 뭐라는 거야?"

"글쎄요?"

"영화 좀 본 놈.이군."

그때 파라네트가 움직였다.

"몸통 박치기, 만근.... 어엇!"

순식간에 접근한 파라네트의 발 이 엉켰다.

쿵!

꼴사나운 모습으로 바닥에 엎어 진 파라네트.

마신 추종자들도 당황했다.

무한의 탑에서 온갖 상황을 다 겪어 봤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기세 좋게 공격하다 말고 자빠지 다니?

플레이어라면 절대 하지 않을 실수였다.

플레이어 간의 전투에서 바로 죽 음으로 직결되기에.

그런 실수를 파라네트가 저지른 것이다.

"빨리 처리하죠?"

"그래야겠다. 상대할 가치도 없는 놈이었군."

우창균이 너클을 낀 주먹을 파라네트의 머리가 있는 곳을 향해 내 리쳤다.

후웅! 쾅!

파라네트는 생존 본능이 괜히 있는게 아니라는 듯, 공간 이동을 사용해 뒤통수를 노린 우창균의 공 격을 피해 냈다.

"...쯧."

"...타이밍을 잘못 맞쉈군. 다 음은 얄짤없다."

파라네트가 부끄러움을 숨기려는 듯, 자세를 바로잡았다.

당연히 마신 추종자들은 그런 파라네트를 우습게 볼 수밖에 없었다.

"쪽팔리지도 않나?"

"야, 그래도 지능이 떨어지는 언

데드니까 이해해 줘야지."

그들의 조롱을 참다못한 파라네 트가 땅을 박찼다.

우창균은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 며 너클에 진득한 암흑 마기를 불 어 넣었다.

'단숨에 골통을 부숴 주마.'

그 순간,

"몸통만근추!"

파라네트가 돌진하면서 외쳤다.

콰아앙-!

우창균이 파라네트의 몸과 충돌 했다.

"커 헉!"

엄청난 충격과 함께 우창균의 몸 이 멀리 튕겨 나갔다.

압도적인 파괴력 앞에서 격의 차 이는 큰 의미가 없었다.

"어어..?"

" 뭐야?"

마신 추종자들의 눈이 휘둥그레 졌다.

우창균이 당한 건가, 방금?

그럴 리가... 없는데.

우창균은 아무리 방심을 하더라도, 한 번도 적의 기습을 허용한

적이 없었다.

감각 계열 능력이 뛰어난 것도 있지만, 그가 매사에 신중한 스타 일이기 때문인 것도 있었다.

그런데 방금은 아무런 대응도, 방비도 하지 못하고 당했다.

그 사실에 마신 추종자들이 큰 충격을 받았다.

그들이 그러는 사이에 파라네트 가 먼저 움직였다.

"몸통...만근추우!"

콰아아앙!

호리호리한 몸의 마신 추종자는

우창균과 달리 비명조차 지르지 못 하고 절명했다.

파라네트의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이제 좀 감이 잡힌다. 너넨 이제 다 죽었다. ㅎㅎ...

"미...친."

"저놈 뭐야?"

"빨리 죽여!"

마신 추종자들이제각기 다른 능력을 사용하며 파라네트를 공격했다.

파라네트는 재빨리 움직이며 마

법을 회피했지만, 몇 개의 마법은 적중당할 수밖에 없었다.

워낙 궤적이 절묘했기에.

특히 이번에 우창균과 함께 온 마신 추종자들은 정예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한 이들이었다.

결코 만만한 적이 아니라는 것.

오히려 파라네트에게 있어 지금 의 상황은 절체절명의 위기가 찾아 왔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겁 많기로 유명한 파라네 트는 전혀 불안에 떨거나 두려워하지 않았다.

승리를 직감하고 있는 탓이었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 아니다.

이미 두 명이나 처리했고, 남은 마신 추종자들도 두렵지 않았다.

'주인님이 주신 방어구 덕분에 놈들의 공격이 그리 위협적이지가 않다.'

호리단의 반지로 인해 파라네트는 능력치도 매우 높은 편이었다.

거기에 신화 등급 무기와 방어구 들까지 착용했다.

몸통 박치기와 만근추를 결합한, 몸통만근추라는 다소 특이한 이름 의 강력한 무기도 생겼다.

검이랑은 아무 상관 없는 능력이 라는게 흠이긴 하지만....

아무렴 어떤가.

위력만 세면 장땡이었다.

콰아앙!

마신 추종자 한 명이 또 파라네 트와 충돌했다.

이번엔 멀리 날아가는 것이 아니 라, 신체가 완전히 박살이 났다.

만근추와 몸통 박치기 콤보의 위 력이 점점 세지고 있었다.

그 이유는, 파라네트의 기술 숙련도가 가파르게 늘고 있기 때문이었다.

만근추로 인해 무게가 증가했을 때, 몸통 박치기 스킬을 사용하면 제대로 된 위력을 내기 힘들었다.

아니, 아예 상대방에게 도달하지 도 못했다.

그래서 먼저 몸통 박치기를 사용 하고 만근추를 사용해야 하는데, 그 타이밍이 중요했다.

파라네트는 그 타이밍을 제대로 맞출 수 있게 되었고,

새로운 기술을 체득한 파라네트에게 마신 추종자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순식간에 네 명이 전투 불능 상태가 되었다.

행방불명이 된 우창균을 제외하 곤 다 죽었다고 보면 된다.

"말도 안 돼. 신유준도 아니고 고작 소환수한테…."

"어떻게 방법이 없나?"

남은 마신 추종자들이 허탈한 표 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상대는 언데드 소환수다.

거대 골렘과 비하면 다소 부족함 이 있는, 허당으로 유명한 소환수.

그런 놈한테 지금 벌써 네 명이 당한 것이다.

손도 못 써 보고 말이다.

콰아아앙!

"크첩!"

파라네트의 몸통 박치기를 버텨 낸 마신 추종자가 나왔다.

실드를 펼치고, 자세까지 잡고 미리 대비하고 있던 덕분이었다.

그러나 상황은 그리 낙관적이지 않았다.

"쿨럭!"

죽지는 않았지만, 정신을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

마신 추종자들도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파라네트가 기술을 사용한 직후, 두 명의 마신 추종자가 파라네트의 뒤를 노리고 검을 휘둘렀다.

'이건 신유준도 못 피할 공격이다.'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완벽한 합격이었지만, 파라네트는 기다렸다는 듯 공간 이동을 사용해 둘의 공 격을 회피했다.

그리고 어김없이 행해진 몸통 박치기.

콰아앙!

"커 헉!"

체력 능력치가 높은 마신 추종자 라고 무사할 수는 없었다.

만근추와 결합된 몸통 박치기의 위력이 너무나 강했다.

단순히 공격력이 높고 낮다로 판가름할 게 아니었다.

그냥 부딪히는 순간, 숨이 턱 막 히고 정신이 아찔했다.

심지어, 파라네트는 단거리지만 공간 이동까지 사용하기 시작했고,

공격이 어디서 날아올지도 예측 하기 힘들게 되었다.

도주하는 것도 의미가 없었다.

파라네트에게는 공간 이동 스킬이 있었다.

마신 추종자들이 낙담했다.

그때 그들의 귀를 쫑긋하게 하는 파라네트의 말이 들려왔다.

"이런, 마력이 다 떨어졌군."

"..."

마신 추종자들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마력이 없으면 그 무시무시한 몸

통 박치기와 공간 이동을 사용할 수 없으리라.

마신 추종자들이 땅을 박차고 파라네트에게 달려드는 그 순간,

파라네트가 품속에서 마력 포션을 꺼내 마개를 따고 입안에들이 부었다.

"크흐〜 꿀맛이로다!"

그런 파라네트의 눈앞에서 휘둘 러진 검.

파라네트는 옳다구나 하며 몸통 박치기를 시전했다.

콰아앙!

또 한 명의 목숨이 허무하게 사라졌다.

파라네트가 마력을 보충한 이상, 전투의 승패는 이미 정해졌다.

우창균이 눈을 떴다.

"흐억, 헉! 뭐였지?"

그는 정신을 잃기 직전까지의 기 억을 떠올렸다.

분명, 신유준의 소환수인 데스 나이트를 처치하려 암흑 마기를 끌 어 올렸었다.

그 이후로 기억이 없다.

전혀.

"설마 내가 당한 건가?"

그가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럴 리가 없다.

상대는 그가 경계했던 신유준도 아니고 그자의 소환수다.

그것도 매우 보잘것없는데스 나이트.

우창균이 계속 생각하다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연구소에 어떤 수작을 부려 놓았군."

신유준,

무서운 놈이다.

우창균은 정신 방벽과 관련된 능력이 있어 그쪽으로도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도 자신이 꼼짝없이 당할 줄이야.

신유준의 수작에 당할 때까지 전

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환상을 보여 주는 결계인가? 순 혈 마녀가 붙어 다닌다더니, 과연 보통이 아니군.'

뛰어난 자신이 일개 소환수한테 당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환상이 라니.

확실히 정신적으로 어마어마한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 하면 사람이 정신적으로 무너질 수 있는지 아는 놈이야.'

실로 무서운 계략이었다.

만약,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졌 다면 그는 자괴감과 좌절감에 스스

로 목숨을 끊었으리라.

'환상이라는 걸 인지해서 다행이야. 까딱하면 놈의 수작에 넘어갈 뻔했군.'

우창균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머리를 다친 그는 자신이 왜 여 기까지 날아왔는지는 생각지 못했다.

'두고 보자.'

그저 터덜터덜 걸으며 복수를 다 짐하고 연구소에서 멀리 벗어날 뿐 이었다.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7권 11화

157화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유준이 고개를 갸웃했다.

"응?"

아까부터 계속 레벨이 올랐다는 메시지가 나타난다.

"파라네트겠지?"

연구소의 입구 쪽이 소란스럽기는 했다.

그쪽에 파라네트가 있었으니 아 마 녀석이 침입자를 처리했을 가능 성이 컸다.

'레벨 오르는 걸 보니, 마신 추종자들을 죽인 모양인데.'

유준이 헛웃음을 지었다.

파라네트가 그 정도로 강했던가?

마신 추종자가 한두 명은 아니었 던 거 같은데.

솔직히 직접 보질 못해서 믿기가 어려웠다.

'아, 만근추를 제대로 사용하게 된 건가?'

그러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만근추는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가치가 다른 능력.

'제법인데.'

파라네트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마신 추종자들 여럿과 싸워 승리 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아무리 능력치가 높고, 신화 등 급 장비들로 무장을 하고 있다지만, 격의 차이를 극복하기란 힘들다.

파라네트는 그걸 해냈다.

대견스러웠다.

'그나저나 동기화 구슬은 더 없는 건가?'

그는 연구소를 구석구석 다 뒤져 봤지만 원하는 물건을 찾지는 못했다.

심지어 타파골을 불러서 같이 탐 색했는데도, 소득이 없었다.

'힌트가 없으니, 좀 답답한데.'

일단 없는 동기화 구슬을 찾아낼 수는 없으니, 다른 것에 집중하기 로 했다.

소르툴 숲을 나갈 방법과 마누엘

라가 필요로 하는 재료를 찾는 것.

10분 정도가 지나고 모두가 한자 리에 모였다.

소득이 없었다.

아니, 사실 어느 정도는 있었다.

파라네트가 마신 추종자들의 장 비를 벗겨 왔으니까.

"주인님. 전설 등급 장비도 몇 개 건졌습니다."

"잘했다."

"뭘요, 흐흣. 주인님이 주신 장비 덕분입니다."

"그건 맞지. 내 덕분이야."

앗."

유준이 본론을 꺼냈다.

"조수아 씨.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부탁요?"

"마누엘라. 설명해 줘."

그녀가 필요하다고 했던 재료.

보랏빛이 섞인 푸른 꽃.

그 꽃의 외형을 마누엘라가 조수 아에게 자세히 설명했다.

마누엘라의 말을 듣는 조수아의 표정이 복잡 미묘했다.

"저 그거..."

"...?"

"이미 가지고 있어요."

"네?"

"저번에 우연히 구했거든요. 용 도는 알 수가 없는데, 아이템이라 서 그냥 인벤토리에 넣어 뒀었어요."

"혹시 볼 수 있을까요?"

"네. 잠시만요."

조수아가 인벤토리를 뒤적이더 니, 꽃 하나를 꺼내 들었다.

마누엘라가 반색했다.

"그, 그거야! 그거!"

"드릴까요?"

"웅! 응!"

"그러죠."

조수아는 고민하지도 않고 꽃을 건넸다.

"고마워!"

마누엘라가 꽃을 받아 들며 방방 뛰었다.

가만히 지켜보던 유준이 입을 열었다.

"그렇게 쉽게 줘도 되는 겁니까?"

"네. 어차피 당신한테 도움도 받았고, 저한테는 딱히 쓸모가 없는 물건이니까요. 무엇보다도 빚지고는 못 사는 성격이거든요. 저."

"...그렇군요. 고맙습니다."

가장 어려울 거라 생각했던 문제 가 단번에 해결되었다.

이런 것도 높은 행운이 영향을 준 걸까?

일이 술술 풀리는 느낌이다.

"이제 숲에서 나갈 방법만 찾으면 되겠군요."

"쉽지는 않을 거예요. 저도 오래

노력해 봤는데... 탈출하기는커녕 아무런 수확도 없었어요."

유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르툴 숲을 벗어나는게 쉬웠으면, 이렇게 악명이 높지도 않았을 것이다.

누가 살아 나온 걸 목격한 적도 없었다.

그러나 완전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유준은 해답이 마신 추종자들에게 있다고 여겼다.

'놈들이 아무 생각없이 소르툴 숲에 연구소를 지었겠어?'

심지어 마신 추종자들은 거리낌없이 소르툴 숲을 드나들었다.

이곳에 있는 몬스터들의 수준이 높은 건 차치하고서라도, 숲에서 나갈 방법을 알고 있는 것이 틀림 없었다.

어쩌면 숲이미로처럼 되어 있는 것도 놈들의 소행일지도 모르고.

"여기도 부수죠?"

"그러는게 좋을 거 같아요."

"나가 계세요."

유준이 나지막이 말했다.

그의 뜻을 알아들은 조수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연구소 밖으로 나갔다.

파라네트와 마누엘라, 타파골도 눈치를 보다가 슬쩍 걸음을 옮겼다.

연구소에 혼자 남은 유준이 눈을 감았다.

' 가능할까.'

이 연구소를 한 번에 말소시키는 것이 목표였다.

큰 의미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저 힘을 시험해 보고 싶어서지.

연구소는 절대 작지 않았다.

공격 한 번으로 폭파시키는 것이 쉬울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도 해 봐야지.'

그가 마력을 끌어 올렸다.

뜨뜻미지근한 공기가 거세게 일 렁이기 시작했다.

우우웅-! 우웅!

큰 진동.

연구소가 통째로 흔들리기 시작 했다.

"아, 맞다. 파라네트."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오른 그 가 파라네트를 다시 불러들였다.

연구소 밖에 있던 녀석이 부리나 케 달려왔다.

뭐야? 작게 중얼거렸는데 어떻게 알고 온 거지?

"넌 그게 들리냐?"

"전 주인님이 부르면 어디에 있 든 달려올 겁니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그리고 주인 님 말은 제가 듣...

"시끄럽고. 내가 이따가 공간 이 동 써 달라고 하면 바로 써."

"그게... 숲에선 공간 이동이 안 써지잖습니까?"

"아, 그러네?"

"여기 안에서는 이상하게 공간 이동을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근 데 밖으로 나가면 또 안 될 확률이 높습니다."

"그럼 필요 없네. 가 봐."

"...주인님.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 상처받습니다."

"괜찮아. 금방 재생되잖아."

터덜. 터덜.

파라네트가 죽 처진 등을 내보이 며 멀어져 갔다.

"쟤 또 연기하네."

유준이 혀를 찼다.

한두 번이어야 속지.

유준이 마력을 끌어올렸다.

그는 마법을 쓸 생각이었다.

고대 마법의 등급은 EX++등급.

마법의 위력은 입 아프게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어떤 마법을 사용할지 선택해야 하는데, 이것 또한 답이 정해져 있었다.

위력이 강하고 규모가 커야 했다.

그래야 연구소를 흔적도없이 사라지게 만들 테니까.

벌써 마력의 8할이 소모되었다.

이제 마법을 발현하는 일만 남았다.

"스읍..."

깊게 숨을들이마신 유준.

그 후, 공기 중에 퍼져 있던 마 력이 폭발을 일으켰다.

콰콰콰쾅! 콰콰콰쾅!

수천, 수만 개의 마력 입자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폭발하자, 엄청난 폭음이 귓가를 강타했다.

단순히 소리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연구소뿐만이 아니라, 지대가 통 째로 흔들렸다.

폭발은 거듭될수록 연쇄효과를 일으켰다.

뜨거운 열기와 매캐한 연기가 유준을 뒤덮었다.

'적당히 따뜻하네.'

방어력이 높은 그는 본인의 마법으로도 큰 대미지를 받지 않았다.

대미지를 받기는커녕 그냥 멀쩡 했다.

그가 발을 디디고 있는지면이

갈라졌다.

유준은 플라이 마법을 사용해 무 너진 천장을 통해 밖으로 빠져 나 왔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응?"

왜 레벨이 오르지?

유준이 의아한 눈으로 홀로그램 창을 봤다.

연구소에 있는 실험체들은 이미 다 죽였다.

꼼꼼히 확인했고, 숨겨진 공간도 없었다.

그런데도 레벨이 두 개나 올랐다는 건....

"아…."

무언가를 깨달은 유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땅속에 서식하는 몬스터가 몇 죽은 것이 틀림없었다.

소르툴 숲의 몬스터가 땅 위에만 존재하는 건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레벨이 오른 것도 납득이 간다.

'잠깐만. 혹시 땅속으로도….'

좋은 생각이 난 유준은 일행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그들은 꽤 멀리까지 대피해 있었다.

조수아가 유준을 발견하고 말을 걸었다.

"자칫 넋 놓고 있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요."

"왜요?"

"원래는 더 가까이서 대기하고

있었거든요. 근데 저 데스 나이트 가 위험하다고 거리를 더 벌려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 안 들었으면 저희도 휘말렸겠죠."

"아, 파라네트가요?"

파라네트가 생존 본능 하나는 뛰 어나긴 하다.

거의 미래 예지를 하는게 아닌 가 싶을 정도로 곧 다가올 위기를 감지하곤 했었으니까.

파라네트가 의기양양한 얼굴로 팔짱을 끼고 있었다.

본인 딴에는 멋지게 보이려는 것 같은데, 이미 녀석은 허당 이미지

가 많이 굳어졌다.

솔직히 하나도 안 멋있었다.

"조수아 씨. 혹시 땅 밑도 확인 해 보셨습니까?"

"네? 어디 땅요?"

"여기 숲요."

"안... 가 봤어요."

"음."

"혹시, 땅굴을 파서 숲을 탈출하 자는 건가요?"

"대충 그렇습니다."

"그게 될까요?"

"시도는 해 봐야죠."

유준은 타파골을 불렀다.

아담한 몸집의 타파골이 허공에 서 모습을 드러냈다.

"부르셨습니까."

"여기 숲을 나갈 수 있겠어?"

타파골은 안 그래 보이지만, 길 잡이용 골렘이다.

길 찾는데는 도가 튼 것이다.

혹시 녀석이 길을 알고 있다면, 번거롭게 땅을 팔 필요가 없었다.

"애매합니다."

"무슨 뜻이야?"

"현재 숲의 출구 위치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곧 바뀔 겁니다."

"출구 위치가 바뀐다는 거야?"

"예. 정확히는 15초 간격으로 바 뀌는 것 같습니다."

"..."

"15초 안에 소르툴 숲을 직선으로 쭉 가로질러 가지 못하면 탈출 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유준이 허무한 듯 웃었다.

15초 안에 어떻게 출구까지 이동 한단 말인가.

"출구가 외곽 쪽으로만 바뀌는 거야?"

"예. 하지만 일정한 패턴이 없어 예측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럼 한 곳에서 대기하다가 나 가는 건 어때?"

"그 방법도 가능성이 있긴 합니 다만,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일단 가 보자. 외곽 쪽으로 갈 수 있겠어?"

"방향을 정해 주십시오."

"가장 가까운 곳으로."

"예. 안내하겠습니다."

타파골이 발걸음을 옮겼다.

결론만 말하자면, 소르툴 숲을 탈출하지 못했다.

타파골의 안내에 따라 외곽에 도 착했지만, 끝없는 숲이 펼쳐져 있었다.

"잘못 알아본 거 아니야?"

"여기가 맞습니다."

외곽이라고해서 기다렸더니,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소르툴 숲의 출구도 계속 그들과 먼 곳에서만 나타났다.

그렇게 그 위치에서 기다리기만 하고 꼬박 하루를 날렸다.

그동안 포식자 열댓 마리를 잡아 레벨이 오른 것이 수확이라면 수확 이었다.

'그나저나 레벨이 벌써 514가 됐네.'

500레벨을 달성하지 못해 빌빌댔

던 것이 불과 하루 전인데.

파라네트가 마신 추종자들을 잡 고 소르툴 숲에서 몬스터들을 좀 잡으니 레벨이 금방 올랐다.

'최상급 경험치 증가 룬 영향도 있겠지.'

일단 500레벨을 넘긴 것 자체는 만족스러웠다.

격이 한 단계 상승했으니까.

능력치 수백이 한 번에 증가한 것만큼 몸이 가볍고 상쾌해졌다.

단순히 기분 탓이 아니다.

실제로 육체 성능이 그만큼 증가한 것이다.

미분배 포인트를 한 번에 수백씩 올려 본 적이 있는 유준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이래서 그놈의 격 얘기를 항상 꺼내는 거였구나.'

직접 몸으로 겪으니 느낌이 달랐다.

500레벨의 벽.

그걸 드디어 깨부순 것이다.

"출구가 15초마다 바뀌는데, 이 근처로 출구가 한 번도 안 생겼다는 거지?"

"예."

"확률적으로 말이 안 되지, 이 건?"

"예. 다른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최선의 판단이라 사료됩니다."

타파골의 말에 유준이 생각에 잠 겼다.

일단 타파골에게 의지해서 빠져 나가는 건 불가능하게 됐다.

타파골은 유능했지만, 소르툴 숲 이 정신 나간 곳이었다.

녀석의 탓을 할 수는 없었다.

하늘을 날아서 갈 수도 없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방법은 단 하나뿐이다.

땅굴을 파는 것.

그 전에 할 일이 하나 있었다.

유준이 마력을 끌어 올렸다.

지진이 일어난 듯 땅이 거세게 울리기 시작했다.

"또, 또 뭐 하시려는 겁니까?"

파라네트가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

유준이 나지막이 말했다.

"몰이 사냥."

혹시나 땅굴을 파서 소르툴 숲을 나가게 되면, 소르툴 숲을 다시 올 일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런데 소르툴 숲엔 아주 많은 경험치 제물들이 있다.

이대로 떠나기엔 너무 아쉽지 않은가.

유준이 진득한 미소를 지었다.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7권 12화

158화

유준은 하늘 높이 올라갔다.

아무리 높게 올라가도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지점에 도달한 순 간, 그의 몸이 무언가에 붙잡힌 듯 턱, 하고 멈췄다.

아무리 힘을 주거나 마력을 소모 해도 더 높이 올라갈 수는 없었다.

결계는 아니었다.

힘을 줘서 부수려고 해도 막상

주먹을 휘두르면 실체는 없었다.

'뭐, 됐어.'

어차피 날아서 숲을 탈출할 생각은 없었으니까.

그나저나 상공에서 소르툴 숲을 내려다보니 이만한 장관이 없다.

이런 아름다운 곳에 나쁜 짓을 하려니까 괜히 마음 한구석이 티끌 정도만큼 불편했다.

유준은 운석 마법을 준비했다.

메테오 마법은 매번 사용할 때마 다 크기가 커졌다.

메테오의 기본 효과라는게 아니다.

그만큼 그의 성장 속도가 빠르다는 의미였다.

그는 마법을 쓰기 전에 비약 하 나를 먹어 둔 상태였다.

[마법 증폭 비약]

등급 : 전설

옵션 : 단 한 번, 섭취하고 사용 하는 마법의 위력이 3배 증가합니다.

그 비약이란 다름 아닌 '마법 증폭 비약'.

비록 귀한 아이템이지만, 유준은 써야 할 때 쓸 줄 알았다.

그리고 지금은 써야 할 때였다.

유준이 씨익 웃으며 메테오 마법을 완성했다.

화르륵-! 화륵!

운석과의 거리가 상당한데도 소 르툴 숲의 나무에 불이 붙기 시작 했다.

어차피 알 수 없는 이유로 금방 복구되겠지만, 숲의 반이 불타는 듯한 광경이 연출되었다.

아직 운석이 반도 추락하지 않은 시점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포식자들의 고통 섞인 아우성이 곳곳에서 울려 퍼졌다.

뜨거운 열기는 일행에게도 똑같이 전해져 왔다.

화르륵-!

이미 실드를 펼친 상태임에도 마 누엘라가 고통스러워했다.

유준은 고대 마법으로 강력한 실 드를 만들어 줬다.

마누엘라가 만든 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견고한 실드였다.

온몸을 녹여 버릴 듯 뜨겁던 열 기가 유준이 생성한 실드 하나로 완벽하게 차단되었다.

일행의 얼굴이 그제야 편안해졌다.

능력치가 높은 플레이어라고해서, 뜨거움을 완벽하게 견뎌 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하물며 유준의 공격력은 측정 불 가능할 정도로 높다.

운석에 의한 열기만으로도 소르 툴 숲의 포식자들이 녹아 소멸할 정도였으니.

소르툴 숲이 점점 더 불타올랐다.

운석의 추락 속도도 빨라졌다.

이번엔 규모부터가 다르다.

지금까지 유준이 사용했던 메테 오 마법은 정말아무것도 아니었다.

더할 나위없이 강해진 유준이 마법 증폭 비약까지 먹고 사용한 메테오 마법.

화아악-!

운석이 시야를 가득 채울 정도로 가까워졌다.

거리는 멀지만, 운석의 크기가 너무 컸다.

세상의 멸망을 눈앞에 두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비단 유준뿐만이 아니라, 일행들 도 전부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마누엘라가 유준의 등에 손을 댔다.

"유, 유준! 도망가야 하는 거 아니야?"

"내가 쓴 마법인데 왜 도망가?"

어차피 도망가거나 피할 곳도 없다.

소르툴 숲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상.

운석이 크긴 해도 소르툴 숲을 완전히 날려 버릴 정도는 아니었다.

쿠구궁.

콰아아앙-!

마침내 운석이 지면과 충돌하고,

이명이 들려왔다.

온 세상이 붉게 물드는 듯했다.

거센 진동과 지변.

시야로 보이는 모든 것이 일그러 졌다.

그리고 그때 엄청난 충격파가 일행을 덮쳤다.

견고한 실드에 균열이 생겼다.

"어, 어라?"

유준은 황급히 실드를 여러 개 더 생성했다.

그는 본래 실드는 겹칠수록 마력 소모가 배가되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동시에 여러 개 생성하지는 않았었다.

그러나 상황이 상황이다.

정말 위험해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마력을 아끼지 않고 사용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

눈앞에 떠오른 수많은 홀로그램 창들을 보며 유준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좀 살겠네."

"이게 어딜 봐서 몰이 사냥입니까?"

파라네트가 정말 궁금한 듯 물었다.

"4번…이 아니라 파라네트. 너. 인성 문제 있어?"

"네,네? 없습니다만, 이건 아무리 봐도 몰이가 아니라...

"잠깐. 조용히 해 봐."

"옙

유준이 땅에 귀를 가져다 댔다.

분명 방금 무슨 소리가 들렸다.

그들이 밟고 있는 땅 밑에 공간이 있었다.

그 공간을 지나가는 몇몇 생명체 의 기운이 느껴졌다.

소리도 들리고.

"역시, 밑으로 돌아다니는 놈들이 있었네."

그런데 한 가지 의아한 점이 있다.

소르툴 숲에 갇혔던 플레이어 중 땅굴을 통해 숲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을 한 이가 한 명도 없었을까?

생존에 대한 절박함이 있다면, 생각할 법도 한데.

'하긴, 아무 특징 없는 땅굴에서 탈출로를 찾는게 더 힘들긴 하겠다.'

심지어 땅 밑에도 포식자들이 있다.

놈들을 상대하며 소르툴 숲을 탈 출하기란 여간 쉽지 않으리라.

그때였다.

콰앙! 쾅!

멀지 않은 곳에서 폭음이 연달아 울렸다.

메테오 마법으로 인한 것이 아니었다.

온갖 포식자들과 몇몇 플레이어들이 스킬을 사용하며 이쪽으로 달 려오고 있었다.

플레이어의 숫자가 적기는 하지만, 가진 능력들을 활용하며 필사 적으로 포식자들에게서 벗어나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메테오로 생긴 불길을 피하고 있는 것 같았다.

포식자들도 마찬가지고.

"왜 여기로 오는 거야?"

"안전한 곳이 여기밖에 없어서가 아닐까요?"

조수아의 말에 유준이 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이 상대적으로 안전한 곳이 기는 하다.

메테오의 여파를 실드 하나로 막 아 내고 있었으니까.

유준이 마력을 더 끌어 올렸다.

어느 정도 마력이 회복되어 여유 가 있는 상황이었다.

"저, 저희도 좀 도와주세요!"

바로 앞까지 도달한 플레이어들이 다급한 얼굴로 외쳤다.

유준은 가만히 그들을 응시했다.

"같은 플레이어끼리 돕고 살아야 죠, 예?"

"제발 부탁드립니다!"

얼추 여덟은 되는 인원이었다.

종족도 다양했다.

수인족과 유준이 처음 보는 종족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두 명은 약간 외계인같이 생겼네.'

머리에 촉수 두 개가 달려 솔직 히 보기 좋은 외형은 아니었다.

유준이 아무 말도 없자, 플레이

어 한 명이 재차 입을 열었다.

"왜 대답을 안..."

"나한테 도움 맡겨 놓은 거 있 냐?"

"예? 그건 아니지만..."

유준은 헬파이어 마법을 사용했다.

거대한 불덩이가 허공에 생성되었다.

그 불덩이는 순식간에 플레이어 들 여덟을 덮쳤다.

"아악!"

"끄아아악!"

온몸이 불에 타는 고통은 말로 이루 표현할 수 없었다.

플레이어들이 비명을 지르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다짜고짜 그들을 공격한 유준도 정상처럼 보이진 않았다.

조수아가 화들짝 놀라며 유준을 쳐다봤다.

그가 입을 열었다.

"쟤네 마신 추종자예요."

"그 특유의 기운이 전혀 안 느껴 졌는데..."

"갈무리하고 있던데요? 웬만해선 알아채기 힘들 겁니다."

조수아가 더 질문하려다가 말았다.

그가 아무 이유없이 플레이어들을 죽였을 리는 없다.

자신이 눈치 못 챘을 뿐이겠지.

조수아는 그를 믿었다.

유준을 오래 봐서가 아니다.

그의 무력과 안목을 신뢰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 순간이었다.

"허, 어떻게 알았대?"

"네가 연기를 못한 거 아니야? 좀 더 실감 나게 몬스터들한테서 도망쳤어야지."

"그나저나... 무영창 마법치고는 겁나 아프네. 쟤 공격력이 도대 체 몇인 거야?"

헬파이어에 맞고 죽은 줄 알았던 플레이어들이 인상을 찡그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연기가 확 걷어지자 그들의 상태를 볼 수 있었는데,

그을린 자국만 있을 뿐, 신체에 문제가 생긴 플레이어는 없었다.

유준의 눈이 살짝 커졌다.

대충 만들어 내긴 했지만, 헬파 이어에 맞고도 안 죽고 버틸 줄이야.

상처도 거의 없었다.

"저렇게 만든 거. 네 짓 맞지?"

그중 한 명이유준에게 말을 걸었다.

좋은 장비를 끼고 있는 것과는 대조되게 머리가 산발인 사내였다.

입가에는 강자 특유의 여유로운 미소를 띠고 있었다.

'생긴 게 도깨비 같군.'

머리에 달린 한 개의 뿔과 거대한 방망이까지.

한국에서 생각하는 도깨비 이미 지와 비슷했다.

유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데, 왜?"

"너 때문에 귀찮게 됐잖냐. 어떻 게 모으고 만든 몬스터들인데."

"네가 리더야?"

"웅? 여기 중에서라면 맞긴 하다."

"직급이 좀 높은 건가?"

"친구. 궁금한 게 많은 모양인데 몸의 대화부터 나눠 보지 않겠나?"

어느새 친구가 됐네.

유준이 마력을 슬그머니 움직였다.

"내 이름 정도는 알려 주지. 로지. 그게 내 이름이다."

"로지야. 알았으니까 이리 온."

마치 강아지라도 부르는 듯 정감 가득한 말투였다.

유준의 말에 로지의 얼굴이 굳었다.

"기고만장하군. 우연히 얻은 힘에 취한 모습이 아...

"야. 입으로 싸우냐?"

유준은 상대방이 대답할 틈도 주 지 않았다.

다섯 개의 헬파이어를 만들어 발 사했다.

이번엔 마신 추종자들이 대비하고 있던 탓인지 헬파이어를 가뿐하게 피했다.

그리고 역공까지 취했다.

실드를 향해 각각 공격을 퍼부은 것이다.

짙은 암흑 마기가 서린 철퇴와 휘황찬란한 마법들이 실드와 충돌 했다.

콰아아앙-! 쾅!

운석 추락의 여파에도 끄떡없던 실드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실금은 빠른 속도로 번졌고 실드는 이내 산산 조각났다.

마력 파편이 바닥에 채 흩뿌려지 기도 전에 마신 추종자들이 땅을 박차고 쇄도했다.

유준은 전방에 공간 장악을 사용 했다.

그런데 놈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

공간 장악을 우회하며 접근했다.

공간 장악 마법에 당한 마신 추종자가 한둘이 아니다.

그래서 여덟 명의 마신 추종자들은 공간 장악에 대해 이미 숙지하고 있는 상태였다.

세 명은 먼저 투사체 마법을 날렸다.

콰아앙!

유준이 실드를 만들어 막아 냈다.

그때, 홀로그램 창 메시지가 그 의 눈 앞을 가렸다.

[모든 능력치가 8% 증가합니다.]

[모든 마법의 위력이 17% 증가 합니다.]

[공격력과 방어력이 10% 증가합니다.]

그가 슬쩍 뒤를 돌아봤다.

마누엘라가 손을 뻗으며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마누엘라의 버프.

그녀는 저주만 잘 다루는 것이 아니었다.

마법, 저주, 버프 등 여러 방면으로 능통했다.

한층 강해진 느낌에 유준이 흡족 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공간 장악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는 마신 추종자들에게 또 다 른 마법을 선물해 주기로 했다.

빙결, 화염, 뇌전 이 세 가지 속 성의 마법을 동시에 캐스팅, 즉시 생성된 마법이 적들을 향해 날아갔다.

"미, 미쳤네. 다른 속성 세 개를 무영창으로...

마법에 일가견이 있는 마신 추종자 한 명이 입을 떡 벌렸다.

뒤늦게 실드를 만들었지만....

콰콰콰쾅!

실드는 무참히 깨져 나갔다.

속성 마법 세 개가 결합된 투사 체의 파괴력은 전혀 줄어들지 않고 마신 추종자들의 목숨을 노렸다.

"흐읍!"

로지가 투사체 마법에 방망이를 휘둘렀다.

콰아앙!

마법은 그대로 허공을 향해 날아 갔다.

"오..."

유준이 감탄했다.

저 마법을 그냥 튕겨 낼 줄은 몰 랐다.

위력이 약한 마법은 절대 아니었는데.

그의 주위로 다섯 명의 마신 추종자가 접근했다.

각자 무기를 들고 달려드는 그들 의 기세는 매우 위협적이었다.

유준은 주위로 뇌전 속성의 마법을 무더기로 생성했다.

마신 추종자들은 무슨 생각인지 뇌전, 곳곳에서 튀는 스파크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거리를 좁혔다.

'한번 볼까.'

그는 공기 중에 떠도는 뇌전을 일시에 폭발시켰다.

콰콰콰쾅! 콰콰쾅!

바로 앞에서 터져 나온 폭발을 마신 추종자들은 맨몸으로 돌파했다.

실드 하나 두르지 않고.

유준은 거기서 조금 놀랐다.

"크흡!"

"참아!"

다섯 명이 한 번에 덤벼드니, 피 할 공간이 없었다.

그들의 진형이 완벽한 것도 한몫 했다.

유준이 점멸 스킬을 사용했다.

순식간에 거리를 벌린 유준.

뇌전 공격에 적중당했던 마신 추종자들의 상태가 양호했다.

그들은 한술 더 떠서 포션까지 섭취했다.

이로써 상황은 원상태로 돌아갔다.

'마법 저항 관련 아이템을 착용

한 건가? 몇 개 섞여 있긴 해도 풀 세트가 아니라서 저 정도로 멀쩡할 수는 없을 텐데.'

어떻게 했길래, 자신의 마법을 맞고도 큰 타격을 입지 않았는지 궁금했다.

그때 로지가 조소를 머금고 입을 열었다.

"네가 마법을 다룬다는 건 익히 듣고, 봐서 잘 알고 있다. 첫 이벤 트에서 수백만 명을 학살한 그 소 식에 대해서도 지겹도록 들었고. 그런데 우리가 아무런 대비도없이 널 찾아올 거라 생각했나?"

"뭐야. 그럼 내 위치를 알고 찾 아온 거였어?"

"그래."

"미리 말을 하지 그랬어. 손님 대접을 제대로 해 줘야 내 평판이 올라갈 거 아니야."

그렇게 말한 유준이 턱을 매만졌다.

확실히 저들은 평범한 마법만으로는 쉽게 죽일 수 없었다.

거기다 철저하게 자신을 사냥하기 위해서 모인 집단.

그렇다면 대충 상대해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유준이 인벤토리에서 아이템 하 나를 꺼냈다.

우아한 자태.

절대자의 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7권 13화

159화

적은 단순히 마신 추종자들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쿵! 쿠웅!

몬스터 실험체였던 포식자들.

녀석들 또한 마신 추종자의 편이었다.

정확히는 마신 추종자의 명령을 따르고 있었다.

이곳에 집결한 포식자들의 수가 백을 넘어갔다.

"미친...."

엄청 많이도 모였네.

소르툴 숲 전체로 놓고 보면 적은 수였지만, 포식자가 백 마리나 모이니 위압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어떤 방식으로 조종하는 거지?'

유준은 로지에게 집중했다.

포식자들은 한 놈도 빠짐없이 로지의 손짓을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전에 만났던 마신 추종자들이랑은 많이 다른 느낌인데.'

느껴지는 기운이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강했다.

직접 붙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여덟의 마신 추종자들은 강하다.

한 명, 한 명의 힘이 조수아 이 상이었다.

로지가 입을 열었다.

"검을 들었군."

"웅. 내가 먼저 갈까?"

유준은 로지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뛰쳐나갔다.

대머리인 한 마신 추종자가 껴들 며 철퇴를 휘둘렀다.

후우웅!

진득한 암흑 마기가 담긴 철퇴.

무기에 실린 힘이 상당하다.

방어력을 시험하고자 한번 맞아 보고 싶었지만, 그럴 시간이 없었다.

가볍게 움직여 철퇴를 피한 유준 이 검을 쭉 뻗었다.

회피와 동시에 이루어진 공격.

놈의 앞에 실드가 생성되었다.

뒤에 있던 마신 추종자의 짓이었다.

유준은 실드가 있든 말든, 검을 거두지 않았다.

그의 검이 실드를 뚫고 쑥 들어 갔다.

그 직후에 대머리 철퇴의 골통까지 뚫어 버렸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허무하게 죽은 대머리 철퇴.

그의 죽음에 슬퍼하는 이는 아무 도 없었다.

마신 추종자들은 오히려 기회라고 여기며 유준에게 한 번에 달려

들었다.

설상가상으로 로지는 포식자들에게도 돌격 명령을 내려놨다.

백이 넘는 수의 포식자와 일곱의 마신 추종자들.

저기에 맞서는 건 무모하게 보일 수 있었다.

그럼에도 유준은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승리할 거라는 굳은 믿음을 밑바 탕으로 오히려 앞으로 나아갔다.

"타파골."

길잡이 골렘 타파골을 소환했다.

"거대화해서 포식자들이 여기 못 넘어오게 막아."

"알겠습니다."

그그그긍.

타파골이 거대화를 사용했다.

그 컸던 포식자들이 작아 보일 만큼, 타파골의 몸집은 어마어마했다.

마신 추종자를 비롯한 포식자들이 움찔했다.

크기에 압도된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상대는 골렘.

마신 추종자들은 골렘의 공략법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거대한 골렘을 상대하기에 효율 적인 포식자들을 한데 모아 전진시 켰다.

타파골이 아무리 레벨이 높고 크 다지만, 포식자 수십 마리를 혼자 상대할 수는 없었다.

쿵 쿵!

처음에 포식자 두 마리를 밟아 죽인 후로 금세 밀리기 시작했다.

"파라네트. 넌 타파골을 지원해."

"아, 알겠습니다!"

"조수아 씨도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혼자서 되겠어?"

로지가 살짝 긴장한 얼굴로 물었다.

전과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 기 위함인지, 마신 추종자들은 일 곱 명이 같이 왔다.

서 있는 간격이 무척 좁았다.

"충분해."

유준이 나지막이 뱉은 말에 자존 심이 상한 듯, 로지의 입가가 비틀렸다.

"1년 차인데 그 정도까지 강해진 건 진짜 칭찬해 줄 만해. 유례가 없을 정도니까. 그런데 넌 선을 넘었어. 어느 정도 유명해진 것 같았으면 좀 사리고 다녔어야지."

"나쁜 놈들 죽이겠다는데, 그게 잘못된 건가?"

"선과 악, 옳고 그름을 누가 판단하지? 아니, 감히 누가 판단할 수 있지?"

"판단? 내가 하면 되지."

"그럴 힘이 너에게 있을까? 당장 우리를 상대로도 버거울 텐데. 설 령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 세력 전

체를 적으로 돌리는 건 어리석은 짓이야."

"이미 적으로 돌렸는데 뭐 어쩌 라고. 지금이라도 용서를 구하면 봐주겠다고?"

"그럴 리가. 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그래?"

그러면서 무슨 말이 이렇게 많아.

유준이 검에 마력을 불어 넣었다.

초집중(SSS)을 사용했다.

세상이 느려지는 감각이 그를 또 찾아왔다.

온몸에서 힘이 샘솟았다.

몸속의 용혈이 얼른 전투하고 싶 어 미치겠다는 듯이 들끓었다.

'마법은 편하긴 하지만, 손맛이 없어서 그런가, 조금 심심한 느낌 이 있지.'

로지는 신중했다.

먼저 덩치가 큰 마신 추종자 셋을 전면에 내세웠다.

그리고 마력을 끌어 올려 마법을 준비했다.

'마법도 자신 있나 본데.'

방망이를 들고 있어 전혀 그렇게 보이진 않았는데, 아무래도 자신과 비슷한 유형의 플레이어인 것 같았다.

세 명의 마신 추종자를 앞에 두고 유준은 초집중을 발동한 상태로 검만을 움직였다.

짓쳐들어온 세 개의 무기가 유준의 검과 쉴 새없이 충돌했다.

콰앙! 쾅!

분명 세 명이유준을 압박하고 있음에도, 그의 몸에 손도 못 대는 광경이 연출되었다.

심지어 유준의 검과 부딪칠 때마 다 마신 추종자들의 무기가 훅훅 깎여 나갔다.

그들은 어이가 없다는 듯 본인들 의 무기를 보다가 유준의 검을 바 라봤다.

"저 검 도대체 뭐야? 뭔데 저렇게 공격력이 세?"

"그러니까 내 말이. 무기에 파손 율 감소 옵션까지 붙여 놨잖아, 우 리."

"그거 땜에 얼마나 고생했는데.... 의미 없는 짓이었나."

"의미가 없기는. 그 작업 안 했

으면 우리 무기는 한 번, 두 번? 정도 부딪치고 산산 조각났을 거다, 아마."

그런 이유였군.

그들의 대화를 들은 유준이 이제 야 이해가 간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상할 정도로 잘 버틴다 싶었는데, 파손율 감소 옵션이 무 기에 붙어 있는 듯했다.

마신 추종자 쪽에 아이템 옵션 부여 능력을 가진 플레이어가 있나 보다.

소모성 아이템인 인챈트 스톤과는 많이 다른 효과를 부여하는 희귀 능력이었다.

유준도 한 번도 못 얻었던 스킬.

'아이템 옵션 부여'는 분명 좋은 능력이지만, 단점도 무시무시했다.

옵션 부여에 실패하면 아이템이 사라질 확률이 40%를 넘어서니까 말이다.

귀하거나 성능이 좋은 아이템일 수록 옵션 부여를 사용하기가 꺼려 질 수밖에 없었다.

유준이 눈을 감았다가 떴다.

초집중의 효과가 증폭되었다.

방금까지는 초집중을 오래 유지

하기 위해 초집중의 효과를 최대한 억눌렀었다.

그래서인지 그때처럼 지친다거나, 피로한 느낌이 없었다.

오히려 쌩쌩했다.

'이런 식으로도 쓸 수 있구나.'

마신 추종자들이 완전히 멈춘 것 같이 느려졌다.

굼벵이도 이보단 빠르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유준의 발과 검이 동시에 움직였다.

서걱!

눈 깜짝할 새에 마신 추종자 한 명의 목이 날아갔다.

한 발짝 움직이고 검을 뻗은, 일 련의 동작을 취한 유준을 향해 마신 추종자들의 공격이 쏟아졌다.

아무리 몸이 날래도 피할 수 없을 절묘한 합격이었다.

그러나 유준은 그들의 공격을 예 상이라도 한 듯, 점멸을 써서 미꾸 라지처럼 빠져나갔다.

"허...

"말이 되냐."

만약 블링크를 사용했으면 발동

시간 때문에 분명 공격이 먹혀들어 갔을 것이다.

그런데 점멸은 달랐다.

스킬을 시전하는 즉시, 발동이 이뤄졌고 심지어 5초간은신, 투명 상태가 유지되기에 더 까다로웠다.

근처로 다가오지 않으면 유준의 위치를 알 수 없었다.

서걱!

그새 한 명의 목이 또 달아났다.

"모여! 흩어지면 죽는다!"

로지의 외침에 마신 추종자들이 재빠르게 모였다.

'모여 있으면 안전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입가에 미소를 띤 유준이 그들에게 접근했다.

"온다!"

"막지 말고 공격해!"

유준이 또 검을 휘둘렀고, 마신 추종자 한 명의 몸이 무기와 함께 그대로 잘려나갔다.

상반신과 하반신이 정확히 절단 된 모습.

마신 추종자들의 공격이유준을 향해 쏟아졌다.

콰아앙! 카앙! 캉!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하는 전략인 듯했으나, 유준의 방어력은 예사로 운 수준이 아니었다.

마신 추종자들의 공격이 전부 튕 겨 나갔다.

"...뭣!"

그들이 눈에 띄게 당황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분명 엄청난 위력이 실린 공격이 연달아 들어갔다.

그런데 유준은 따로 막거나 한

게 아니라 몸으로 받아 냈음에도 아무런 타격을 받지 않았다.

밀리지도 않고, 그냥 우직하게 버텨 냈다.

온전히 본인의 방어력과 방어구 만을 믿고서.

상황이 그렇게 흘러가니 되레 마신 추종자들에게 틈이 생겼다.

유준이 검을 빠르게 두 번 연달 아 휘둘렀고, 마신 추종자 두 명 이 삽시간에 목숨을 잃었다.

이제 남은 건 로지를 비롯해 세 명.

유준이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강한 놈들을 상대로도 흠집조차 안 날 정도였구나. 내 방어력이 어느 정도인지 대충 감 이 잡히네.'

그는 이번에 나타난 마신 추종자들을 인정했다.

그들은 강하다.

장비 수준도 뛰어난 편인 데다 가 각자 스킬이나 특성의 등급 또 한 높았다.

레벨이나 격은 말할 것도 없고.

다만, 유준과 비교하면 초라한 수준이 된다는 것이 문제였다.

이렇듯 신들의 전쟁, 아니, 이 세계에서 아이템이 가지는 가치는 컸다.

마신 추종자들도 그 점을 충분 히 인지하고 있었지만, 유준의 아이템이 이렇게 터무니없을 줄은 상상도 못 한 것이다.

로지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초반의 여유로웠던 그 표정은 온데간데없었다.

"생각이 좀 달라졌어?"

유준의 조롱에 로지는 아무 말 도 할 수 없었다.

그가 강하다는 건 충분히,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직접 상대해 보니 이 건 차원이 다른 괴물이라는 수식 어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단순히 아이템의 문제만도 아니었다.

유준은 그들보다 스킬과 특성, 능력치 등 모든 면에서 월등하게 높았다.

로지는 그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다.

'이건 승산이... 없어.'

여덟 명인 상태로 다시 싸운다 고 해도 이긴다는 보장이 없다.

하물며 세 명밖에 남지 않은 지금은?

로지가 고민에 빠졌다.

여기서 도망치면 상부로부터 질 타를 받는 것은 물론, 직급이 하 락하거나 더 나아가서 천공의 감 옥에 갇히게 될 수도 있었다.

'그럴 바엔 차라리 죽는게 나아.'

천공의 감옥.

그 얼마나 끔찍한 곳인가.

무슨 일이 있어도 그곳엔 가고 싶지 않았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나머지 두 명의 마신 추종자도 로지와 같은 생각을 한 모양이다.

결연한 눈빛의 세 명이유준에게 달려들었다.

살 가망성이 없으니 죽어서라도 목표 대상인 유준을 데려가고자 하는 것이다.

'적어도 녀석의 동료 하나를 죽 인다면...

로지의 시선이 마누엘라에게 향 했다.

그녀는 포식자들에게 온갖 다양 한 저주를 퍼붓고 있었다.

타파골, 마누엘라, 파라네트, 조 수아 이 넷으로 백이 넘는 포식자들을 상대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매 순간순간이 위기였다.

이곳에 신경을 쓸 만큼 여유로 운 상황은 아니다.

로지가 결정을 내렸다.

'마녀를 노려야겠군.'

그가 메신저로 마신 추종자 둘

에게 자신의 노림수를 짧게 설명 했다.

'먼저 놈의 시선을 끌어야 한다.'

무턱대고 마녀를 노렸다간 신유준이 눈치챌 게 뻔했다.

'알아도 상관없어. 틈을 안 주면 되니까.'

로지가 포식자 열 마리를 불렀다.

각기 다르게 생긴 포식자들이 로지의 앞에 거대한 벽처럼 섰다.

"공격해.

로지의 말에 포식자들이유준에게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크아아아!"

"주..., 죽인다...

"캬아악!"

열 마리가 유준을 둘러쌌다.

로지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순혈 마녀에게로 쇄도했다.

두 명의 마신 추종자는 혹시나 하는 상황을 대비해 그의 옆을 달렸다.

중간 지점을 달릴 때까지만 해 도, 마누엘라는 로지와 마신 추종

자 둘의 접근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여기까지 왔으면 이 계획은 실 패할 가능성이 없었다.

포식자들은 유준을 잘 마크하고 있을....

".…"응?"

로지는 슬쩍 옆을 봤다가 경악 하고 말았다.

촤악!

찰나의 순간.

정말 1초보다도 짧은 그 순간에.

포식자 열 마리의 몸이 정확하게 반으로 갈라진 것이다.

괴물들의 몸이 갈라져 벌어지는 그 사이로 시퍼렇게 빛나는 안광 (眼光)이 있었다.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7권 14화

160화

어떤 마법이나 스킬을 쓴 것이 아니다.

오직 검을 한 번 움직였을 뿐이다.

로지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그런데 그 행동 하나로 열 마리 나 되는 포식자의 숨이 끊겼다.

소름이 돋았다.

그의 압도적인 무력은 오만했던 로지를 공포와 전율에 휩싸이게 했다.

'저, 저게 말이 돼? 신도 아니고 일개 플레이어가 저런 무위를 지니 고 있다고?'

검의 성능이 좋기 때문이라고 치부할 수준이 아니었다.

달리다 말고 멈춘 로지 때문에 마신 추종자들도 그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도대체."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말이 안 나왔다.

"빨리! 빨리 달려!"

아직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

목표로 삼았던 마녀는 죽여야만 한다.

로지가 필사적으로 달렸다.

이제는 마녀가 알아채든 말든 상 관없었다.

신유준이 먼저 당도하기 전에 마 녀를 처리하기만 하면...!

그러나 로지의 바람은 끝끝내 이 루어지지 않았다.

유준이 점멸을 써 그의 앞을 가 로막은 탓이었다.

희망의 끈이 거기서 끊길 법도 한데, 로지는 포기하지 않았다.

마신 추종자 두 명을 미끼로 삼았다.

아니, 정확히는 그 둘이 자처했다.

일말의 고민도없이유준을 향해 달려든 두 명의 마신 추종자.

서걱!

번개같이 휘둘러진 검에 그들의 목이 달아났다.

그들의 희생은 헛된 것이 아니었다.

아주 조금,

시간을 벌 수 있었으니까.

마녀의 바로 앞까지 당도한 로지.

그제야 그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 졌다.

하지만 그것도 한순간의 꿈에 불 과했다.

꽈악-!

어느새 펼쳐진 공간 장악 마법이 로지의 몸을 속박했다.

"아아악!"

마법 저항력이 무척 높아진 상태였음에도, 엄청난 압력에 로지가 비명을 질렀다.

우지끈.

온몸의 뼈가 비틀리고 꺾였다.

살이 뭉개지며 핏물이 우수수 홀 러내렸다.

로지가 쉴 새없이 비명을 질렀다.

아무리 단련되어 있다고 해도 정

신력으로 버틸 수준의 고통이 아니었다.

"바퀴벌레도 아니고. 왜 이렇게 오래 버텨?"

유준이 불만스러운 얼굴로 중얼 거렸다.

마법 저항력이 높은 탓인지 로지는 공간 장악에도 장시간 죽지 않 고 살아 있었다.

'그나저나 레벨 참 많이도 올랐네.'

비단 이곳에 있었던 마신 추종자 들과 포식자뿐만 아니라,

메테오 마법의 여파로 인해 숲에

있던 포식자들이 계속 죽어 나갔다. 그 덕분에 경험치가 실시간으로 쭉쭉 오르고 있다.

'이게 웬 떡이냐.'

운석을 소르툴 숲 한가운데에 떨 어뜨리기로 한 결정이 옳았다.

그로 인해 얻은 것이 너무나 많았다.

마신 추종자들의 질 좋은 장비는 물론이고, 대량의 경험치를 획득했다.

이번 사냥은 성공적이었다.

유준은 아직도 끈질기게 살아 있

는 로지에게 다가갔다.

"야. 하나만 물어보자."

"크아악! 아아아악!"

대답도 못 할 정도로 고통스러워 하는 것 같아 공간 장악의 압력을 잠깐 낮췄다.

"흐억! 헉! 헉!"

죽다 살아난 로지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소르툴 숲에서 어떻게 하면 나 갈 수 있어?"

로지가 대답하려다 검붉은 피를 토했다.

"그걸 내가 말할 성싶으냐. 넌 절대 이 숲을 빠져나갈 수 없을 것이다. 고생 좀 해 봐라. 크하하

"땅굴 파서 가면 되는 거 아니야?"

로지의 눈이 커졌다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순식간의 일이었지만, 미세한 변 화를 감지한 유준이 웃었다.

"맞네."

"...그걸 안다고 다가 아니다.

내가 보기엔 넌 아무것도 모르고 있어."

"맞아. 그러니까 좀 알려 줘 봐."

" 싫다."

이 도깨비는 여간 까칠한 게 아니었다.

절대 말할 생각이 없나 본데.

"너한테도 금제 걸려 있냐?"

"그럴 리가. 그런 건 직급이 낮은 놈들한테나 걸려 있는 거야."

유준의 말에 로지가 실소를 지으 며 부정했다.

"오, 넌 직급이 높아서 다 말할

수 있는 거고?"

"그래."

꽁꽁 묶인 주제에 자랑스럽다는 듯이 잘도 말하네.

로지는 잠시 망각한 듯했다.

본인의 목숨이 누구에게 달려 있는지 말이다.

'아니지. 이미 포기한 건가.'

살아날 가망이 없다고 여긴 것일 수도 있다.

그러니 배 째라는 식으로 나오지.

"아는 거 얘기해. 혹시 알아? 내가 살려 줄 수도 있잖아."

"어린애한테도 안 통할 소리를 하고 있군. 무자비하고 잔혹한 네 성정은 이미 알고 있다. 많은 플레 이어들을 궁지로 몰아넣은 후 말로 꾀어내 원하는 정보를 얻고 죽여 버린다지? 심지어 미성숙하고 어린 아이들까지 꾀여 죽였다고 들었다. 나는 다르다. 네가 원하는 정보를 절대 내뱉지 않을 테니 마음대로 해라."

로지가 악에 받친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아니 내가 언제 그렇게까지 했 다고…소문이 와전이 많이 됐네.'

너무 억울했다.

어린아이를 건드린 적은 없었다.

'날 도대체 얼마나 쓰레기로 만 드는 거야.'

유준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나저나 악당치고는 의지가 확 고하다.

그렇다면 방법이 있다.

금제가 없다고 했으니, 그의 뇌를 지배하면 된다.

마누엘라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간단히 해결되는 일.

그러나 지금 상황이 완전히 끝난

건 아니었다.

아직도 많은 수의 포식자들이 남 아 있었고, 그의 소환수와 동료들을 위기로 몰아넣고 있었다.

으으으으윽.

유준은 고대 마법을 사용해 포식 자들을 정리해 나갔다.

콰콰쾅! 콰앙!

"캬아아아악!"

"크악!"

"아...프다!"

포식자들은 마신 추종자처럼 마법 저항력을 대폭 올려놓은 상태가

아니었다.

당연히 유준의 마법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뜨거운 화염 마법에 온몸이 녹아 내리는가 하면, 극한의 빙결 마법으로 꽁꽁 얼어붙기도 했다.

남은 포식자의 수가 이윽고 20 아래로 떨어졌다.

나머지는 소환수들이 알아서 잘 처리하겠지.

유준은 그제야 마법을 멈추고 로지에게 고개를 돌렸다.

로지가 악귀와도 같은 얼굴로 유

준을 노려봤다.

"뭘 봐."

"우릴 적으로 돌린 걸 후회하게 될 거다."

"그래서 최대한 후회 안 하려고 열심히 죽였잖아."

"혀를 놀리는게 수준급이군. 강 해질 때마다 혓바닥 놀리는 솜씨도 증가하나?"

"넌 약한데 입만 살았고."

로지에게서 지금 당장 무언가를 캐내서 얻을 건 없었다.

좋은 생각이 있었다.

그는 인벤토리에서 구슬 하나를 꺼냈다.

[절대 봉인의 구슬]

등급 : 신화

옵션 : 상대방 한 명을 구슬에 봉인할 수 있습니다. 봉인된 상대는 '절대 봉인의 구슬'을 소유한 자 가 죽거나, 봉인을 풀기 전까지 절 대 빠져나올 수 없습니다.

한 명의 플레이어가 봉인되어 있습니다.

절대 봉인의 구슬.

유준은 망설이지 않고 이단 심판 관의 봉인을 풀었다.

낯익은 얼굴의 이단 심판관이 오 랜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전보다 훨씬 초췌한 상태였다.

눈이 퀭한 것도 그렇고 얼굴에 피로가 찌들어 있었다.

"이단 심판관."

"흐, 흐억! 괴물!"

" 괴물?"

"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제 발 살려 주세요. 저 진짜 저곳에

다시 들어가고 싶지 않아요!"

"알았으니까 뭐 하나만 물어보 자."

"예! 예!"

"얘 알아?"

유준이 로지를 검지로 가리키며 이단 심판관에게 질문을 던졌다.

둘은 같은 마신 추종자 소속.

일면식이 있을 수도 있다.

"어? 쟤 로지 같은데."

"이단 심판관...? 그대는 이단 심판관이 아닌가?"

역시나 서로를 알아봤다.

그나저나 이단 심판관은 이름도 없는 거냐.

갑자기 이단 심판관이 안쓰러워 졌다.

"로지. 네가 왜 여기에 있는 거 냐?"

"그대야말로 왜...

둘 다 이해가 안 가는 듯한 모습 이었다.

그러다 유준을 보더니 납득한 듯 이 고개를 끄덕였다.

"로지. 겁도없이 이 남자에게 덤볐군."

"혹시 이단 심판관, 그쪽도?"

"그래."

둘이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다 그랬소."

"그건 내가 할 말이다."

"나야 뭐, 상부에서 내려온 지시 때문에 그랬지."

"안타깝게 됐군."

유준이 둘 사이에 껴들었다.

"이단 심판관. 여긴 소르툴 숲이다. 어딘지 알아?"

"모를 수가 없지. 알고 있다."

"여길 나가는 방법은?"

"...모른다."

"여기 또 들어가고 싶어?"

유준이 절대 봉인의 구슬을 보여 줬다.

이단 심판관의 낯빛이 파랗게 질렸다.

"그것만은 봐주세요. 제발."

"그럼 말해."

"차라리 죽여 주면 안 되겠나?"

"이단 심판관! 무슨 소리요! 마

신을 숭배하는 자로서 긍지가 사라 진 것이오? 어찌 그리 약한 소리를 하시오?"

"긍지는 개뿔! 나부터 살고 봐야 지! 아니 죽고 봐야지! 그러니까 얼른 죽여 줘. 내 마지막 부탁이다."

로지의 일침에도 불구하고 이단 심판관은 유준의 다리를 붙잡고 애 원했다.

이단 심판관을 묶어 놓지도 않았다.

그런데 공격할 의사를 전혀 내보이지 않았다.

기습해도 소용없다는 걸 몇 번의 경험으로 아는 것이다.

'정말 모르는 모양이군.'

그럼 쓸모가 없었다.

유준은 혼돈이 담긴 검으로 이단 심판관의 목을 베어 버렸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동작.

격이 낮아 대미지를 입힐 수 없 다는 메시지가 떴지만, 이단 심판 관은 그 공격으로 죽었다.

'혼돈'의 힘이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로지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놀랐다.

그도 이단 심판관의 격이 높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데 격이 훨씬 낮아 보이는 신유준이 이단 심판관을 일격에 죽였다.

그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가는 장면을 목격한 것.

"어떻게 한 거지?"

"궁금해?"

"그렇다."

"안 알려 줄 건데."

"너도 말 안 했잖아."

"유치하기 짝이 없군."

"쓰읍. 또 대드네? 너도 들어가 있어."

유준은 절대 봉인의 구슬에 로지를 집어넣었다.

"자. 잠시...

무어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봉인

의 구슬에 갇힌 로지.

그는 결국 천공의 감옥보다도 더 한 곳에 갇히게 되었다.

기구한 운명이 아닐 수 없었다.

로지를 봉인한 유준은 나머지 포 식자들을 일일이 검으로 처리했다.

서걱! 서걱!

"크아아악!"

"괴, 괴물...

마지막 포식자가 그 말만을 남기 고 장렬하게 쓰러졌다.

네가 괴물이잖아.

누구보고 괴물이래.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그렇게 전투가 끝이 났다.

소르툴 숲의 화재는 아직도 진압 되지 않았다.

이 정도면 시스템이 나설 법도 한데, 낌새가 없었다.

오히려 더 심해지고 있었다.

매캐한 연기가 하늘에 자욱하게 피어올랐고, 공기가 뜨겁게 달궈져 숨을 쉬기가 불편했다.

"진짜 인간문화재...가 아니라 인간 자연재해가 따로 없습니다. 주인님."

파라네트가 감탄한 얼굴로 말했다.

"나 말하는 거야?"

"예!"

"칭찬이지?"

"당연지사입니다!"

"다들 다친 곳은 없어 보이네."

"저야 뭐 끄떡없죠!"

"너한테 말한 거 아니다."

"예? 너무합니다."

"넌 다쳐도, 아니 죽어도 상관 없잖아. 소환수니까."

"그, 그렇긴 합니다만... 저도 소중하게 여겨 주셨으면 하는 바 람이 있습니다."

"심사숙고해서 최대한 긍정적으로 검토해 볼게."

"엇, 감사합…아니, 그건 거절을 돌려 말하는 거 아닙니까?"

유준이 입을 꾹 다물었다.

뭐야, 얘 왜 이렇게 똑똑해졌어.

"아 맞다. 주인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뭔데."

"저도 500레벨이 넘었습니다."

"...어? 그래?"

생각보다 빨랐다.

아니지.

파라네트도 유준과 같이 경험치 가 오른다.

그가 레벨이 오른 만큼 파라네 트도 완전히 똑같이는 아니어도 비슷하게 오르는 것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내 레벨이 몇이지?'

유준은 오랜만에 상태창을 열어 레벨을 확인했다.

[태초의 플레이어. 신유준]

□ 레벨 : 550

□ 능력치

[근력 943(886+57)] [민첩 1,035(958+77)]

[체력 909(852+57)] [마력 1,033(1,011+22)]

[혼돈 80 ]

[미분배 포인트 : 512]

'550? 벌써?'

능력치와 레벨만을 확인했는데, 어느새 이렇게 올랐지?

아무리 소르툴 숲의 반을 초토 화시켰다고는 해도,

포식자들이 운석을 정통으로 맞 지 않은 이상 즉사하지는 않았을 텐데?

'아, 맞다. 마신 추종자들이랑 이단 심판관도 죽였지.'

거기다 경험치 증가 효과도 두 개나 중첩해서 받고 있었다.

미분배 포인트도 512나 쌓였다.

사실 크게 절박하거나 위험한 상황이 없으면, 미분배 포인트는 최대한 아껴 두는 것이 좋다.

언제, 어느 상황에서 특정 능력치가 절실하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미분배 포인트를 쌓는 건 위험부담도 조금은 지니고 가는 셈.

미처 미분배 포인트를 사용하지 못하고 죽어 버리면 그만큼 허무

한 일도 없다.

'원래였으면 아꼈겠지만... 무 려 500이 넘었으니 분배해 볼까.'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7권 15화

161 화

근력, 민첩, 체력, 마력.

유준은 마력에는 투자할 생각이 없었다.

근력과 민첩 능력치에 비중을 많 이 둘 생각이었다.

혼돈은 능력치 분배가 안 되니 예외로 뒀다.

마법적인 능력은 지금도 너무나 충분했다.

'근접 능력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가자.'

이번에 마신 추종자들과 전투를 하면서 느낀 바가 하나 있었다.

다수의 적에게는 마법만큼 효율 이 좋은 능력이 없지만, 강한 무력을 지닌 소수의 적에게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상대적인 얘기다.

마법의 위력이 약한 건 절대 아니었다.

그러나 검술과 비교하면 마법의 위력이 다소 떨어지는 것처럼 보일 수밖에 없었다.

'이러나저러나 나는 검을 사용하고 있으니까...'

어느 하나 극에 이르지 못하고 어정쩡한 상태가 된다는 것.

물론 이건 일반적인 플레이어들이 겪는 문제고, 유준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었다.

'앞으로 다수의 적보다는 강한 놈들 몇 명을 상대할 일이 더 많을 거 같은데.'

방금 죽였던 마신 추종자들 같은 존재가 무더기로 나오지 않는 이상, 검술에 집중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 이었다.

그는 근력과 민첩 그리고 체력에

미분배 능력치를 골고루 분배했다.

작업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정신이 아찔해졌다.

눈앞의 시야가 모자이크를 칠한 것처럼 뿌옇게 보였다.

주먹을 꽉 쥐었다.

그의 전신의 힘줄이 내돋치며 꿈 틀거렸다.

그때 미증유의 힘이 신체에 깃들었다.

500이 조금 넘는 능력치를 분배해서 퍼센트 효과로 증폭되는 능력

치는 수천에 달한다.

그로 인한 변화도 평범할 리가 없었다.

"컥!"

벼락을 맞은 듯 유준이 몸을 부 르르 떨었다.

마치 환골탈태라도 하는 듯했다.

아니, 실제로 그의 신체에는 어 마어마한 변화가 생기고 있었다.

우두둑! 두둑!

"홉!"

엄청난 통증이 그를 덮쳐 왔다.

이를 악물고 참았다.

근처에 지켜보는 자가 소환수를 포함해 넷이나 되었다.

여기서 소리를 지르면 혹역사가 하나 거하게 생길 것이다.

특히 파라네트에게 놀림을 받으면 정신적인 대미지가 상당할 터.

여기서 비명을 지르면, 평생 후 회한다.

유준은 그 일념 하나로 고통을 견뎌 냈다.

5분여 정도가 흘렀을까.

더 이상 뼈가 뒤틀리지 않았고

살이 울긋불긋하게 솟아오르는 일 도 없었다.

유준은 그때가 되어서야 숨을 가 쁘게 몰아쉴 수 있었다.

한차례 폭풍이 몰아친 것 같았다.

"하, 살 것 같다."

"좀 괜찮으십니까?"

파라네트가 유준의 몸을 부축하 며 물었다.

"응. 괜찮아."

유준이 눈을 감고 신체 내부를 관조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단순히 능력치 가 한 번에 올라가서 생긴 변화는 아닌 것 같았다.

직접 확인해 봐야 했다.

'일단 힘이 무진장 세진 건 알겠는데.'

능력치가 수천 오르고 끝난 게 아닌 것 같았다.

'능력치 효율이 올라간 건가?'

격이 올라간 것과 비슷한 느낌.

그러면서도 느낌이 약간 다르다.

그때였다.

[육체 개조가 완료되었습니다.]

['혼돈'이 50 증가합니다!]

[불가능한 업적!]

[스킬 보석(중)을 획득합니다.]

"...뭐야."

육체 개조와 혼돈 능력치가 오른 건 그렇다 치자.

업적 보상으로 스킬 보석을 받을 줄은 몰랐다.

그렇게 구하고 싶어도 안 나오던 물건이 스킬, 특성 보석인데.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유준은 스킬 보석(중)을 바로 사용했다.

대상은 '초집중(EX)'.

이번 전투에서 초집중이 진면목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스킬 보석을 사용하자, 초집중이 EX+등급이 되었다.

플러스가 하나 붙은 게 다지만, 유준은 실망하지 않았다.

스킬에 플러스가 붙고 안 붙고의 차이가 숭패를 뒤바꿀 수도 있다.

특히나 초집중과 같은 사기 능력

이라 하면 더더욱 그럴 테고.

설령, 등급이 오르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스킬 보석이 붙은 것만으로 스킬의 효과는 극대화된다.

보이는게 다가 아닌 것이다.

'좋아.'

육체 개조로 인해 몸이 한결 더 가벼워진 느낌이다.

유준은 주먹을 불끈 쥐고 땅을 향해 내리쳤다.

콰아앙-!

땅에 어마어마한 파동이 일었다.

" 엇!"

육체 능력치가 낮은 마누엘라가 벌러덩 넘어졌다.

마력도 싣지 않고 내리친 주먹이 거대한 분화구를 만들었다.

"뭐 하는 거야?"

봉변을 당한 마누엘라가 물었다.

"땅굴 찾는데?"

"...그런 거 같긴 한데 이건 너무 무식한 방법 아니야?"

"아니. 땅굴 있어. 저기에."

"응?"

마누엘라가 의아해하며 분화구의 중심지 쪽을 내려다봤다.

그곳에는 유준의 말대로 통로가 꽤 넓은 굴이 하나 있었다.

"...진짜 있네."

"들어가자."

"지금? 위험할지도 모르..."

마누엘라가 말을 끊었다.

그동안 유준이 위험해 보인 적이 있었던가.

그는 어떤 난관이 찾아와도 단숨에 해결해 버리는 능력과 무력을 지니고 있었다.

거기까지 생각하자, 그에게 토를 달 필요성을 못 느꼈다.

"조, 좋아! 출발하자!"

마누엘라의 말에 유준이 딴지를 걸었다.

"넌 어쩜 성미가 그렇게 급하니. 준비부터 해야지."

"아, 응…."

유준 일행이 땅굴에 들어섰다.

예상했던 것보다 더 큰 굴이 그들을 반겨 줬다.

외길을 따라 걷다 보니 세 갈래 길이 나왔다.

"어디로 가지?"

유준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파라네트를 향했다.

" 예?"

"예는 뭐가 예야. 어디로 가야 될 거 같아?"

"저, 저도 모르겠습니다."

"왜 이래? 평소에는 잘만 찍었잖아."

"그게 말이죠. 느낌이 빡! 빠악! 하고 올 때가 있습니다. 지금은 그 런 게 전혀 없어요. 그래서 함부로 말씀을 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때, 조수아가 입을 열었다.

"저, 유준 씨."

"네?"

"지금부턴 저 혼자 움직일게요. 죄송해요."

"그래요. 알겠습니다."

유준이 곧바로 대답했다.

구태여 이유를 물어보지 않았다.

전에 메신저 교환도 이미 해 놨

고, 혼자 움직이겠다는데 말릴 명 분도 없었다.

"나중에 봅시다."

"...네."

너무나도 쿨한 모습의 유준을 보니 큰마음 먹고 얘기를 꺼냈던 조 수아가 되레 무안해졌다.

"제 도움이 필요하시면 연락 주세요. 언제든 한 번... 아니 몇 번이고 도와 드릴게요."

"네, 그러죠. 근데 어디로 가실 겁니까?"

"저기요."

"아하. 나중에 봅시다."

조수아는 세 번째, 그러니까 맨 오른쪽 길을 선택해서 먼저 출발했다.

'도움 같은 거. 안 받기로 했으니까.'

다짐한 지 얼마나 됐다고 그의 도움으로 수차례 위기를 넘겼다.

마음이 편안하지가 않았다.

그녀는 누군가와 함께 다니는 것 이 불편했다.

정확히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는 것이 불편했다.

이들과 친해지긴 했지만, 오랜 시간 같이하고 정이 들수록 헤어지 기가 어렵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녀가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이다.

지금 상태로는 그에게 도움이 되 긴 어려웠다.

'내가 더 강해져서 보답하면 돼.'

* * *

유준이 골머리를 앓았다.

"어쩌냐. 후우..."

세 갈래 길 중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할까.

짜장면, 짬뽕 중 하나를 고르는 것보다도 어려운 문제에 직면한 것이다.

"맞다, 타파골이 있었지."

"예. 부르셨습니까."

"어디로 가야 좋을까?"

"왼쪽이 좋겠습니다."

"왜?"

"나머지 두 개의 길의 끝이 막혀 있습니다."

"...뭐야. 알고 있었으면서 왜 말 안 했어?"

"물어보지 않으셔서..."

" 뭐?"

이게 말이야, 방구야.

물어보지 않아서 길을 안 알려 주고 있었다고?

확실히 게임에서도 길잡이 골렘을 사용하는 방법이 선택지를 통해

직접 물어보는 것이었다.

그런데 현실에서도 똑같이 적용 될 줄이야.

유준은 타파골의 융통성을 길러 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다음부터는 알고 있으면 미리 말해 줘. 뭐라 안 하니까."

"알겠습니다."

그걸 지켜보던 파라네트가 웃음을 홀렸다.

"후훗."

"넌 또 왜 웃고 있어?"

"타파골 저놈 저거 너무 멍청하

지 않습니까? 아무리 골렘이라지만 저렇게 뇌가 굳어서야 주인님의 소환수 노릇을 어떻게 제대로 하겠습니까? 주인님. 이번 일로 잘 아셨겠지만 한 가지 생각해 주셨으면 하는게 있습니다."

" 뭘?"

"주인님의 제1 소환수는 저라는 것을요!"

"..으음."

파라네트는 타파골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말했다.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유준은 타파골이 당연히 파라네

트의 말에 반응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해골. 인성... 문제 있다...

타파골이 답지 않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뭐, 뭐라고 했냐? 너?"

파라네트가 눈에 띄게 당황했다.

녀석이 이런 식으로 먼저 대꾸한 전례가 없었기 때문이다.

"뭐라고 했냐고! 돌덩이!"

파라네트가 분노하며 외친 말에 길잡이 골렘은 이번엔 침묵을 유지했다.

다만, 타파골의 코에서 콧김이 뿜어져 나왔다.

땅굴이다 보니 그 소리가 울려 퍼졌고 파라네트의 귀에도 들어갔다.

그 소리가 흡사 코웃음처럼 들렸다.

숨을 쉬지 않는 골렘에게서 난데없이 콧김이 나올 리가 만무하다.

타파골은 일부러 그런 것이었다.

파라네트가 또다시 발끈하려는 그때 유준이 입을 열었다.

"야,야. 싸우지 마라. 너네 소리 듣고 몬스터 다 몰려오겠다."

"죄, 죄송합니다."

유준은 타파골의 말을 듣고 왼쪽 길로 움직였다.

나머진 막다른 길이라고 하니, 조수아는 헛걸음만 하게 되었다.

'굳이 말해 줄 필요는 없겠지.'

그녀가 무슨 생각으로 혼자 다니겠다고 했는지 대충은 알고 있다.

폐를 끼치기 싫어하는 성격인 게 딱 보였다.

나만고양이 없어가 그랬었는데.

운이 좋아서 본인이 보상을 더 받거나 하면 굳이 그럴 필요가 있 나 싶을 정도로 다음 보상을 양보 했다.

그게 좀 극단적이어서, 참 특이 한 사람이구나 싶었는데.

'아니, 잠깐. 진짜 맞나 본데?'

생각하면 할수록 나만고양이없어 와 조수아가 겹치는 점이 너무 많았다.

나중에 만나게 되면 직접 물어봐야겠다.

"어?"

왼쪽 길로 쭉 걷던 유준은 하얀 색 털을 지닌 토끼 한 마리를 발견 했다.

그의 기감에 기척이 잡히지 않는 특이한 토끼.

"여기에 토끼가 왜 있지?"

그때 유준을 발견한 토끼가 도망 치려고 했다.

유준은 속박 마법으로 재빨리 토 끼의 몸을 묶고 봤다.

그 후 가까이 다가가서 확인했다.

웬만한 대형견 크기의 토끼였다.

그가 두 귀를 잡고 들어 올리자, 토끼의 큰 눈망울에 눈물이 고였다.

"끽! 끼익!"

"세게 안 잡았어. 엄살 부리지마. 내가 나쁜 놈 같잖아."

"사, 살려 주세요."

"뭐야. 말도 할 줄 알아?"

아무리 봐도 수인족은 아닌데?

그냥 동물이 말을 하다니.

'하긴 골렘도 말을 하는데 하물 며 토끼라고 못하겠어?'

유준이 이상한 부분에서 납득했다.

그는 토끼를 풀어 주기 전에, 인 벤토리에서 한 손으로 아이템 하나를 꺼냈다.

말을 할 수 있다는 건 이 토끼가 플레이어일 확률이 높다는 뜻이다.

[상태 확인 스크롤]

옵션 : 상대방의 스테이터스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단, 상대방과 신체적인 접촉이 이뤄져야 합니다. 레벨이 더 높은 상대에게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상태 확인 스크롤을 찢었다.

[상대방의 레벨이 높아 스테이터 스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 뭐야."

유준의 입에서 실바람이 새어 나 왔다.

이 하얀 토끼의 레벨이 자신보다 도 높다니.

자존심이 상한다기보다는 어이가 없었다.

"이것 좀 놔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저 귀가 예민한 편이에요!"

"으, 응. 알았다."

유준이 귀를 잡은 손에 힘을 풀었다.

그래도 속박은 풀지 않았다.

"끽! 끼익!"

토끼가 벗어나고자 몸부림을쳤지만, 유준의 속박 마법은 그 정도 로 허술하지 않았다.

"너 정체가 뭐야?"

"저...요?"

"응."

"제 이름만 말하면 살려 주시는 건가요?"

"누가 죽인대? 그냥 궁금해서 물 어보는 거야."

"그럼 나 안 죽일 거야?"

토끼가 유준을 올려다보면서 물었다.

긴 속눈썹 아래로 울먹이는 눈망 울.

녀석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절로 약해졌다.

"내가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야. 안 죽일 테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단다."

유준이 다정하게 말했다. 그러다 표정이 변했다.

"그런데 갑자기 왜 반말이니?"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7권 16화

162화

"죄, 죄송해요! 잘못했어요!"

"사실 장난이야. 반말해도 돼. 오 히려 나도 그게 더 편해."

토끼는 유준의 다정다감한 말투에 안심했다.

"내 이름은 시리우스야!"

"시리우스?"

"응. 시리우스."

"무슨 왕자 같은 이름이네."

"어? 어떻게 알았어?"

"웅?"

왕자라고?

저렇게 희고 작은 토끼가?

본인이 왕자라고 말하는 시리우 스의 얼굴은 진지했다.

" 진짜로?"

"웅!"

토끼 왕자의 이름이 시리우스.

뭔가 잘 안 어울린다.

뚠뚠이라는 이름이 더 어울릴 것 같은 생김새인데.

아, 이름이 중요한 게 아니지.

유준이 본론으로 들어갔다.

"시리우스. 너 왜 여기에 있었어?"

"그게, 물건을 하나 잃어버렸는데, 그걸 찾느라고...

게임에서 NPC가 전형적으로 내 뱉는 대사 유형이었다.

듣고 있자니, 시리우스가 뭔가 퀘스트를 줄 것만 같았다.

실제로 그런 건 없겠지만, 유준 이 귀를 쫑긋했다.

"무슨 물건?"

"삼촌이 내 생일에 선물해 주신 구슬이야."

"구슬? 장난감 말하는 거야?"

"맞아, 장난감!"

"구슬이 어떻게 생겼는데?"

"약간 푸른색? 그 색깔을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

" 커?"

"응. 조금 큰 편인 거 같아."

"여기 근처에서 잃어버린 거야?"

"웅!"

"넌 원래 어디 사는데?"

"지하 왕국에 살지, 당연히!"

지하 왕국?

그런 곳이 있었나?

그의 기억에는 없었다.

기억에 없다는 건 신들의 전쟁 당시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

'새로운 맵이 나타났군.'

한 번도 발견되지 않은 지하 왕 국.

물론, 시리우스의 말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지하 왕국을 직접 눈으로 보지 않는 이상 확신할 수는 없었다.

"너 혹시 소르툴 숲을 나가는 길은 알고 있어?"

"몰라!"

"몰라?"

"웅!"

해맑게 대답하는 시리우스.

"시리우스. 지하 왕국은 어디에 있어?"

"여기서 깡충 걸음으로 만 걸음 정도만 가면 돼! 아니, 더 가야 하나? 헤헤. 나도 잘 모르겠어."

"...깡충 걸음이라는게 네 기 준으로 걸었을 때를 말하는 거지?"

"맞아!"

"그곳으로 안내해 줄 수 있어?"

"...그, 그건 어렵지 않은데 나 구슬부터 찾아야 해."

"같이 찾아 줄게."

"정말?"

이응. 종말... 아니, 정말로."

그때 마누엘라가 다가왔다.

"숲을 탈출하려는 거 아니었어?"

"소르툴 숲을 지금 당장 나갈 수 있는게 아니잖아. 방법도 모르고."

"그럼 저 토끼, 따라갈 거야?"

"응. 너도 같이 갈 거지?"

지금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

어쩌면 소르툴 숲 탈출과 지하 왕국이 관련되어 있을 수도 있고, 그게 아니더라도 지하 왕국이라는 것에 흥미가 갔다.

"네가 그렇다면... 뭐."

"타파골. 저 토끼가 말하는 거 찾을 수 있겠어?"

"물건을 찾는 일에는 자신이 없습니다만... 노력해 보겠습니다."

"주인님!"

파라네트가 외쳤다.

녀석의 덩치가 큰 데다 가까이서 소리치니 귀청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 왜?"

"등줄기가 슬슬 간지러운 것이, 제가 활약할 때가 온 거 같습니다."

"네가 뭘 활약해."

"구슬 말입니다. 찾을 수 있을 거 같아서요."

"어떻게?"

"감으로요!"

파라네트가 아무 생각 없는 것처

럼 보이긴 해도 저렇게 자신하고 나올 때는 큰 도움이 되어 주곤 했었다.

녀석은 믿을 만했다.

유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어디에 있을 거 같아?"

"근처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어디."

"모릅니다. 근처에 있다는 것만 알아요."

"...근데 왜 아는 척했어."

"믿어 주십쇼! 진짜 여기 근처에 있을 겁...

그 순간이었다.

"크르륵."

두 팔을 쭉 늘어뜨린 괴물이 앞에서 등장했다.

더 밑에서 땅을 파면서 나타난 몬스터.

'얘도 소르툴 숲 포식자들이랑 비슷한 놈 같은데?'

느껴지는 기운이 포식자들과 흡 사했다.

'실험체였던 건 맞는 거 같은데.'

그렇다면 땅굴을 지나다니던 몬 스터들도 대부분 실험체일 확률이

높겠군.

"저, 저놈입니다요."

파라네트가 손가락으로 포식자를 가리켰다.

" 뭐가?"

"저놈한테 구슬이 있습니다."

파라네트의 말에 유준이 눈을 가 늘게 뜨고 포식자를 조목조목 살펴 봤다.

'특이한 건 없는데...

거대한 두더지 괴물.

구슬도 보이지 않았다.

"설마 먹은 거야? 쟤가?"

"그, 그런 거 같습니다."

만약, 두더지 괴물이 시리우스의 구슬을 먹은 상태라면 그걸 무슨 방식으로 꺼내야 할까.

"크아아악!"

포식자, 두더지 괴물이 누런 침을 질질 흘리며 달려들었다.

으. 더 손대기 싫어졌다.

"파라네트. 네가 상대해라."

"예! 주인님의 믿음에 반드시 보 답하겠습니다!"

파라네트는 신뢰를 받았다고 생각했는지 들뜬 발걸음으로 두더지 괴물을 향해 달려갔다.

"몸통...만근추!"

콰아아앙-!

두더지 괴물은 무얼 해 보지도 못하고 파라네트에게 튕겨 나갔다.

그리고 이내 땅굴 벽에 세게 부 딪치더니 그대로 절명했다.

"주인님, 어떻습니까?"

득의의 미소를 짓고 있는 파라네 트.

유준은 얌전히 칭찬해 주었다.

"잘했다."

"별것 아니었습니다."

채찍만 휘둘러서는 좋을 게 없었다.

적절하게 당근도 섞어서 먹여 줘 야 파라네트가 더 열심히 하지 않겠는가.

'이제 레벨은 쉽게 안 오르네.'

포식자들과의 레벨 차이가 극심 했던 예전과는 달리, 지금은 자신의 레벨이 많이 높아졌다.

포식자를 한 마리 잡아서 얻는 경험치의 양이 매우 줄어들었다.

'이게 정상이긴 하지.'

소르툴 숲에 남아서 계속 포식자들을 사냥한다고 해도, 지금 레벨 과 크게 다르진 않았을 것이다.

"파라네트."

"예!"

"구슬 찾아."

"...네?"

"저기 몬스터한테 구슬이 있다 며. 찾아와."

"저, 저길 뒤져서요?"

두더지 괴물의 몸은 완전히 뭉개져서 새빨간 피와 함께, 누런 진액

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뇌수와 온갖 장기들도 튀어나와 있어 여간 그로테스크한 게 아니었다.

"그래. 너에게 첫 중대 임무를 맡기도록 하겠다."

"왜, 왜 하필 중대 임무가 저런 겁니까?"

"저런 거라니?"

유준이 짐짓 엄한 표정을 지었다.

"넌 지금 내가 심사숙고해서 준 임무를 저런 거로 치부하는 거야? 진심으로?"

"아, 아니 그런 게 아니라요

"중대장...이 아니라 나는 너한테 크게 실망했다. 앞으로 네가 싫 어할 것 같으니 임무 같은 건 주지 않을게. 하긴 나 같아도 귀찮겠다. 네가 그렇게 하찮게 여기는 인간이 주인인데 맨날 이래라저래라 명령 하기만 하고. 그치?"

"...제가 잘못했습니다, 주인님. 얼른 갔다 오겠습니다!"

파라네트가 발등에 불똥 떨어진 듯 빠르게 두더지 괴물이 쓰러져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사체를 한참을 뒤적이던 파라네 트가 팔을 번쩍 들었다.

"찾았습니다!"

"닦아서 가져와!"

"닦을 게 없습니다!"

"네 머리에 닦으면 되잖아."

"...그건 좀."

"혹시 모르지. 저 몬스터의 액체 가 발모제 역할을 할지?"

"발모제가 뭡니까?"

"머리카락 자라게 하는 약!"

"헉!"

파라네트의 손이 떨렸다.

"그 말 사실입니까?"

"그럴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 지 않지 않다는 거지!"

유준이 일부러 말을 모호하게 했다.

"..."

잠시 고민하던 녀석이 이윽고 머 리에 구슬을 문대기 시작했다.

'진짜로 하네.'

파라네트가 구슬을 유준에게 전 해 주었다.

구슬의 아이템 정보부터 확인했다.

[동기화 구슬]

등급 : 유물

옵션 : 정보가 없습니다.

"어?"

유준이 눈을 크게 떴다.

동기화 구슬이 왜 여기서 나와?

연구소에서 그토록 찾아도 더 안 나오던 동기화 구슬.

그걸 여기서 보게 될 줄이야.

"어? 그 구슬 내 거 맞아!"

시리우스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다가왔다.

유준이 손을 내밀었다.

"멈춰."

"왜애?"

"구슬에 독이 묻었는지, 안 묻었는지 이 형이 확인해 줄 거예요. 그러니까 시리우스는 조금만 기다 려 주세요, 알겠죠?"

유준이 최대한 환하게 웃었다.

시리우스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으응."

"말도 잘 듣네. 착하다."

시리우스의 접근을 막은 유준은 심호흡을 하며 콩닥거리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켰다.

동기화 구슬.

이걸 줘야 시리우스에게 지하 왕 국으로 가는 길을 안내받을 수 있다.

아니면 마누엘라에게 부탁해 시 리우스의 뇌를 제압하는 방법도 있다.

그럼 지하 왕국으로 가는 길을

강제로 불게 만들 수 있겠지.

그러나 그건 너무 잔인하지 않은가.

아무리 유준이라고 해도, 순진무 구한 눈을 가진 시리우스에게 그런 짓을 할 생각은 없었다.

애초에 시리우스는 그의 적도 아니었다.

이럴 때 해결책은 언제나 그렇 듯, 인벤토리에 있었다.

그가 인벤토리에서 묵직하고 매 끈한 석판 하나를 꺼냈다.

[아이템 외형 복제 석판]

등급 : 無

옵션 : 장비 아이템을 제외한 모 든 아이템의 외형을 복제할 수 있습니다. 단, 옵션은 복제되지 않습니다.

아이템 외형 복제 석판.

신들의 전쟁에서 고인물 유저가 신규 유저들에게 거래 사기를 칠 때나 쓰이던 아이템이다.

그 당시에는 도대체 무슨 의도로 이런 아이템을 만든 건지 이해가

안 갔었다.

운영자라고 생각했던 네르도 직 접 아이템을 창조한 건 아니라고 하니, 더 알 길이 없게 되었다.

그는 신들의 전쟁을 하면서 적어 도 사기를 친 적은 없었다.

아이템과 돈이 넘쳐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 것도 있지만,

사기를 치면 가뜩이나 없는 유저 가 더 떠나게 될 것이 자명했다.

신들의 전쟁을 끔찍이 아꼈던 유준이 그런 짓을 저지를 리가 없었다.

'그런데 이걸 내가 쓰게 될 줄이야.'

그가 '아이템 외형 복제 석판'을 꺼낸 이유는 간단했다.

시리우스에게 동기화 구슬을 주 긴 너무 아까웠다.

녀석은 동기화 구슬을 그냥 평범 한 장난감으로 알고 있다.

동기화 구슬을 지금 시리우스에게 주면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 수 준을 벗어나게 된다.

그럴 수는 없었다.

이게 얼마나 귀한 물건인데.

동기화 구슬은 그의 본체라고 할

수 있는 인벤토리와 관련된 아이템이다.

"내 구슬 언제 줘...?"

시리우스가 발을 동동 구르며 물었다.

"잠깐이면 돼. 잠깐이면."

유준은 아이템 외형 복제 석판 위에 동기화 구슬을 올려놓았다.

지잉.

석판이 거세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섬광이 한 번 번쩍하더니, 동기화 구슬 한 개가 생겨났다.

' 오오...'

유준이 감탄했다.

나란히 놓인 두 개의 구슬.

겉으로는 절대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복제됐다.

그는 일일이 구슬의 정보를 확인 한 뒤, 아이템 정보가 나타나지 않는 구슬을 시리우스에게 건네줬다.

"자, 여기. 구슬에 독이 묻어 있 더라. 그거 없애느라고 고생 좀 했어."

"진짜...? 정말 고마워!"

"고맙긴 뭘. 네가 착하게 살아서

복 받은 거지."

일부러 등을 돌려 작업해 복제하는 광경은 보여 주지 않았다.

동기화 구슬을 재빠르게 인벤토리에 넣은 유준이 시리우스를 바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제 지하 왕국으로 같이 갈까? 안내해 줄 수 있지?"

"응! 나만 믿어!"

시리우스가 기운차게 대답하고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짧은 팔과 다리로 아장아장 걸어 가는 모습이 귀여웠다.

[동기화가 다시 진행됩니다.]

[인벤토리의 완벽한 동기화까지 남은 시간 총 ???분.]

[현재 동기화율 102.2%]

기다렸던 메시지가 눈앞에 나타 났다.

'몇 개까지 모아야 할진 모르겠지만, 일단 하라는 대로 해 주마.'

시리우스를 따라 땅굴을 10분가 량 걸었을 때였다.

[현재 동기화율 104%]

[인벤토리 동기화가 중단됩니다.]

['무과금즐겜러' 인벤토리의 아이템 일부가 전송되었습니다.]

[새로운 동기화 구슬을 찾아 주십시오.]

눈앞에 떠오른 홀로그램 창을 읽 던 유준의 눈이 커졌다.

'아이템 전송?'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7권 17화

163화

아이템 전송이라.

이게 무슨 말일까.

'내가 받지 않은 아이템이 하나 있긴 했는데.'

자동 부활 스크롤.

단 하나 있던 아이템이 사라져 이상하다고 여기긴 했다.

그걸 지금 받게 된 건가.

'확인해 보자.'

유준이 인벤토리를 확인했다.

쭉 나열되어 나타나는 아이템들.

너무나 많았다.

새로 전송된 아이템을 찾기 위해 선 상당한 시간을 필요로 했다.

"시리우스. 언제쯤 도착해?"

"조금만 더 가면 돼!"

지하 왕국에 도착하기 전에 찾아 야 하는데.

유준은 시간을 아끼기 위해 전능의 투구〈개량)를 벗고 이글 아이 스카우터를 꺼내 착용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유준은 결국 인벤토리 가장 깊은 곳에 열 개의 아이템이 새로이 생 긴 걸 알 수 있었다.

'반지 두 개랑 진짜배기인가.'

나머지 일곱 개의 아이템은 그가 이미 보유하고 있는데다가, 그가 쓸 일이 없는 저레벨 장비 아이템들이었다.

그가 보고 놀란 건 세 개의 아이템이었다.

[공정한 심판 군주의 반지]

착용 제한 : Lv. 600 이상

등급 : 신화

공격력 : 30,000

옵션 : 모든 스킬과 특성의 효과 가 대폭 증가합니다. 광 속성, 암 속성을 지닌 적에게 300%의 추가 피해를 입힙니다. 모든 능력치가 36% 증가합니다.

'공정한 심판 군주의 반지'가 두 개.

그리고,

[무기술 각인서 Ⅲ]

등급 : 無

옵션 : 무기를 들고 있을 때 모 든 스킬과 특성의 효과가 70% 증가합니다. 각인서는 상태창에 각 인되며, 중복되는 효과의 각인서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생전 처음 보는 소모성 아이템도 얻었다.

보기만 해도 화려한, 군침이 싹 도는 아이템이었다.

분명, 좋은 일이긴 한데....

' 어떻게?'

무과금즐겜러 캐릭터가 가지고 있지 않았던 아이템들이 전송되었다.

분명 무과금즐겜러의 인벤토리와 동기화되는 것이 아니었나?

그 캐릭터는 자신이 키웠다.

인벤토리에 어떤 아이템들이 있는지는 그가 제일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신보다 위에 있는 것 같은 시스템이 이런 실수를 저지를 것 같지는 않고...

그렇다면 뭘까.

'혹시 서버가 종료된 뒤에도 게임이 자동으로 진행됐나?'

유준이 눈을 크게 떴다.

그럴싸했다.

아무렇게나 한 생각이지만, 왠지 일리가 있었다.

무과금즐겜러 캐릭터가 인공지능을 가져 움직였다?

아이템도 유준이 얻은 것이 아니 라, 무과금즐겜러 스스로 움직여서 얻은 것이고?

그렇게 생각하니 모든 게 딱 들 어맞는다.

'무과금즐겜러 캐릭터가 막 실제 로 내 눈앞에 나타나거나 하진 않겠지?'

무과금즐겜러는 어디까지나 게임 캐릭터에 불과했다.

실체가 없는 가상의 데이터.

그런데도 불안감이 생긴다.

'무한의 탑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믿기 힘든 것투성이인데... 게임 캐릭터가 살아 움직인다고 해 도 이상할 게 없지.'

만약 무과금즐겜러가 실존한다면.

'날 얼마나 죽이고 싶을까.'

인벤토리에 있는 모든 아이템을 싹 빼 온 것은 물론, 녀석이 직접, 어렵게 구한 아이템들마저 자신이 본의 아니게 가져와 버렸다.

앞으로도 동기화 구슬을 구해서 더 가져갈 예정이기도 하고.

'내가 무과금즐겜러였으면 날 완 전 원수로 보겠지.'

비록 그 캐릭터가 유준에 의해 탄생하기는 했지만, 아이템을 뺏기는 건 별개의 문제였다.

'단순히 가설에 지나지 않지만... 사실이라면 좀 조심해야겠군.'

유준은 만약 자신의 아이템을 누 가 강탈한다고 하면, 지구 끝까지 쫓아가 되찾아 내려 할 것이다.

'아, 여기 지구가 아니구나.'

일단 무기술 각인서부터 사용했다.

이런 소모성 아이템의 사용법은 간단했다.

마력을 불어 넣기만 하면 된다.

무기술 각인서가 가루가 되어 사라졌고, 그의 상태창에도 변화가 생겼다.

무기술 각인서Ⅲ : 무기를 들고 있을 때 모든 스킬과 특성의 효과 가 70% 증가합니다.

그가 맨손으로 전투를 할 리가 없으니, 무기술 각인서의 효과는 상시 적용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유준은 600레벨 신화 반지도 뜸들이지 않고 착용했다.

그 전의 '검신의 힘이 깃든 반지' 도 충분히 좋은 반지이긴 했지만, 역시 레벨 제한이 깡패였다.

'공정한 심판 군주의 반지'를 착 용한 유준이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이게 금수저의 삶인가?'

가만히 있어도 세상이 알아서 다 떠먹여 주는 기분이었다.

생각해 보면 이번에 동기화 구슬을 구한 것도 어떻게 보면 어쩌다 얻어걸린 게 아니던가?

운이 좋아도 너무 좋았다.

5분 정도 더 걸었을 때 시리우스 가 우뚝 멈췄다.

"여기야!"

"여기라고...?"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구멍이 있 긴 했다.

입구가 너무 작아서 문제였지.

"여길 어떻게 통과하라고?"

"아...."

시리우스가 멍한 얼굴로 유준 일 행을 봤다.

"그러네."

"여길 지나야지만, 지하 왕국으로 갈 수 있는 거지? 다른 곳은 없어?"

"으, 응. 내가 아는 건 여기뿐이야."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시리우스에게 악의는 없을 테지만, 저 멍청한 얼굴에 딱밤을 살짝 때리고 싶었다.

'미리 동기화 구슬을 빼돌리길 잘했네.'

동기화 구슬이라도 못 챙겼으면 더 억울할 뻔했다.

"우리는 여길 들어갈 수가 없는데."

"그럼 어쩌지...?"

시리우스가 앞발을 입에 물고는 그런 말을 했다.

"어쩌긴 뭘 어째. 때려 부수면서 가야지."

"그, 그건 안 될걸."

"왜?"

"몇몇 왕국의 고레벨 플레이어들이 여기 입구를 넓히려고 부단히도 노력했었거든. 근데 다 실패했어. 격이 낮다는 메시지가 뜨면서 손상 시킬 수 없다는 거 있지?"

"너보다 레벨이 높은 플레이어가 했는데도 그랬다고?"

"웅!"

저번 이벤트에서의 미로 벽이나 철문 같은 느낌으로 보면 되는 건가?

그때도 그냥 부수려고 하면 격이 낮다는 이유로 방해를 받았지.

"나한테 방법이 있어."

"방법?"

유준이 검에 혼돈을 담았다.

그리고 그 검을 구멍을 향해 휘 둘렀다.

콰아아앙!

거대한 진동과 폭음.

홁먼지가 걷어지며 드러난 광경은 놀라웠다.

시리우스만이 간신히 통과할 수 있을 정도로 좁았던 구멍이 확 넓 어졌다.

거침없는 그의 모습에 시리우스는 물론이고, 마누엘라까지 입을 떡 벌렸다.

"용케 안 무너졌네."

유준이 머리를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구멍이 생각한 것 이상으로 더 커졌다.

아무래도 힘 조절이 안 된 듯했다.

'능력치 1퍼센트씩만 올라도 눈에 띄게 변하는데...

그런데 모든 능력치를 증가시켜 주는 반지를 두 개나 갈아 끼웠다.

거기에 무기술 각인까지 했다.

혼돈이 담긴 일격의 위력이 증폭 되는 것도 당연했다.

유준은 시리우스를 지나쳐 구멍에 가까이 다가갔다.

"뭐야..."

잘못 봤나 싶어서 눈을 비볐다.

하지만 보이는 풍경은 그대로였다.

"시리우스, 이거 맞아?"

" 뭐가?"

"왜 밑에 구름이 보이지?"

"그게 왜?"

시리우스가 뭘 당연한 걸 묻냐는 듯, 갸우뚱했다.

"내가 이상한 거야?"

유준이 마누엘라를 보며 물었다.

그녀도 유준과 같은 풍경을 보고

선 고개를 저었다.

"나도 이런 건 처음 봤어."

"그치?"

구멍 너머에 또 다른 세상이 있었다.

지하 왕국이라고해서 어두컴컴 한 공간에 작은 왕국을 하나 세워 둔 줄 알았더니만.

그런 게 아니었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는 둘째 치고, 저기 아래로 어떻게 내려가는 거지?

시리우스에게 물었다.

"아아, 난 떨어지기 전에 이단 점프를 하면 돼! 이단 점프는 내 스킬인데 이럴 때 유용하게 쓰여!"

"그러냐."

이단 점프라니, 별 신기한 능력 이 다 있네.

"여기 올 때는 어떻게 온 건데?"

"삼촌이 도와줬어."

"삼촌?"

"우리 삼촌은 마법사야. 지하 왕 국의 마법 일인자라고 할 수 있지."

그렇게 말하는 시리우스의 얼굴에서 자부심이 엿보였다.

" 대단하네."

"그렇지, 그렇지! 울 삼촌은 진짜 멋있어."

"너 먼저 가 봐."

"알았어!"

시리우스는 일말의 망설임도없이 구멍을 향해 뛰어내렸다.

빠른 속도로 떨어지는 시리우스.

"그다음은 파라네트."

"네?"

"네 차례라고."

"저, 저요? 저는 비행 능력이 없

습니다만...

"만근추를 쓰면 되겠네."

"그럼 더 빨리 떨어지지 않을까요?"

"공중에서 만근추를 사용하면 어 떻게 될까? 궁금하긴 하다. 그치?"

"...전혀 안 궁금합니다."

"에이, 말로는 그렇게 해도 몸은 솔직한걸?"

파라네트의 몸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녀석도 얼른 자이로드롭을 타는 기분을 느끼고 싶은 거다.

유준은 파라네트의 들뜬 감정을 헤아려주었다.

"만근추 한번 써 봐. 어차피 소환수라서 죽지도 않고 여차할 때는 역소환하면 되잖아."

"...알겠습니다."

파라네트가 결연한 얼굴로 구멍 앞에 섰다.

그가 파라네트를 사지로 내모는 이유가 있다.

만근추의 효과를 제대로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단순히 이름처럼 무거워지는게

다일까?

무겁기만 하면, 나중에 더 단단 한 녀석을 만났을 때 파라네트는 큰 힘을 발휘할 수 없게 된다.

방어력의 차이가 승부를 가르는 것이다.

그런데 만근추가 방어력도 올려 준다면?

더할 나위 없었다.

방어력이 추락 대미지도 경감시 켜 준다는 걸 생각하면, 지금은 만 근추를 시험할 수 있는 둘도 없는 기회였다.

"후욱, 후욱! 여긴 사람이 가장

고, 공포를 느낄 정도의 높이인 거 같은데요. 제가 한번 도전해 보겠습니다. 으아아악!"

파라네트가 비명과 함께 구멍 아 래로 사라졌다.

녀석치고는 대단한 용기를 낸 것에 유준은 순수하게 감탄했다.

"유준. 우리도 가자."

"응."

구멍을 빠져나온 유준과 마누엘 라는 플라이 마법으로 아주 편안하고 안전하게 내려갔다.

파라네트는 보이지 않았다.

정말 만근추를 쓴 모양이다.

애초에 유준이 명령을 내리면 소환수인 파라네트는 거부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울며 겨자 먹기로 만근추를 쓸 수밖에 없었다.

그때였다.

콰아아앙-!

엄청난 굉음이 일대를 강타했다.

상공에 있는 유준의 귀가 아려 올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큰 소리였다.

"웅? 설마..."

듀렉.

그는지하 왕국에서 두 번째로 큰 산채, 죠르헨을 다스리는 수장 이었다.

죠르헨 산채는 왕국에서도 감히 토벌 명령을 내리지 못할 정도로 규모가 커서, 큰 골칫거리로 유명 하다.

거기다 최근 지하 왕국에서는 국 왕파와 귀족파 간에 내분이 일어나, 죠르헨 산채의 영향력은 점점 커져 만 갔다.

"따분하군."

거대 산맥을 다스리는 듀렉이 하 품을 하며 기지개를 켰다.

그가 옆을 쓱 봤다.

지난번에 잡아 온 노예들이 보였다.

"맘에 드는 물건이 없군."

"요즘 왕국의 경계가 삼엄해 민 간인을 납치하는게 쉽지가 않습니다."

부두목, 카림이 말했다.

듀렉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 있지. 이해한다."

사실 지금 확보한 노예 수만 하 더라도 수만에 이른다.

작업 인력으로 쓰이는 노예는 삼 분지 이 정도.

나머지 삼분지 일의 노예는 듀렉 이 가지고 놀거나 욕구를 해소할 때나 쓰였다.

노예들을 심심풀이로 죽이는 일 도 허다했다.

마음에 안 들면 죽이고, 더럽게 생겼다고 죽였다.

기분이 안 좋으면 아끼던 노예도 과감하게 죽여 버렸다.

듀렉은 그만큼 변덕이 심하고, 매우 잔혹한 드워프였다.

"뭐 재밌는 일이라도 일어났으면 좋겠...

그가 중얼거리다 말고 재빨리 몸을 던졌다.

콰아아앙-!

듀렉이 서 있던 자리에 어마어마 한 질량의 무언가가 떨어져 내렸다.

공기의 파동이 거세게 일었다.

그 파동에 근처에 있던 산적들이 우수수 쓸려나갔다.

"뭐, 뭐야!"

"끄아아악!"

산 정상이 초토화가 되었다.

주변 지형, 그들이 지어 놓은 튼 튼한 목제 건물들이 모조리 날아갔다.

처참한 꼴로 있던 노예들도 모두 목숨을 잃었으며, 무력이 비교적 강한 산적들도 최소 중상 상태에 놓였다.

심지어 산채의 두목인 듀렉조차 입에서 피를 흘릴 지경.

만약,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면 듀렉도 허무 하게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그 생각에 듀렉이 식은땀을 흘리는 그때였다.

이 일의 원흉인 파라네트가 상반 신을 벌떡 일으켰다.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7권 18화

164화

"어,어? 안 죽었다!"

죽지 않았다는 사실에 파라네트 가 크게 기뻐했다.

이윽고 춤사위까지 벌였다.

"주인님. 어디선가 보고 계시죠? 저는 이런 사람... 아니, 언데드 입니다. 구름 위에서 떨어져도 살 아남는 끈질긴 생명력을 보십쇼. 솔직히 아무 언데드나 가능한 게 아니잖습니까. 아, 이럴 때가 아니

지. 그분을 불러야 합니다. 캬, 주 모! 여기 막...

"넌, 누구냐."

파라네트의 말을 끊은 자는 다름 아닌 산적 두목, 듀렉이었다.

"...응? 너야말로 누구냐."

"이 땅의 주인이다.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고 있나? 죽을 각오는 되어 있겠지?"

"뭐래, 이 쪼끄만게."

키 혹은 신장, 체격 얘기를 꺼내는 건 죠르헨 산채에서 절대적으로

금지였다.

듀렉의 역린을 건드린 파라네트.

겨우 살아남은 몇몇 산적들의 낯 빛이 새파랗게 질렸다.

"데스 나이트?"

"이미 한번 죽어서 그런가, 겁이 없구나 쟤가?"

"두목님 앞에서 저런 말을 꺼내 다니...

"미쳤군. 왜 갑자기 하늘에서 떨 어진 건지는 몰라도, 한바탕 난리 나겠어."

산적들은 갑자기 나타난 파라네

트를 동정했다.

녀석 때문에 피해를 입었고, 실 제로 죽은 플레이어가 있었음에도 상대를 불쌍하게 여기는 것이다.

듀렉이 얼마나 잔인한 드워프인 지 잘 알기에 나오는 반응이었다.

파라네트는 그 분위기를 읽지 못 했다.

아니, 애초에 읽을 생각조차 없었다.

"주인님은 언제 오시려나..."

주변의 시선은 안중에도 없었다.

파라네트는 자신의 주인인 유준

이 어디에 있는지가 더 중요했다.

"이놈!"

듀렉이 순식간에 파라네트에게 접근했다.

그리 길지 않은 양날 도끼가 파라네트를 향해 휘둘러졌다.

파라네트의 생존 본능이 힘을 발 휘했다.

후웅!

황급히 숙인 고개 위로 양날 도 끼가 지나갔다.

있는 힘껏 무기를 휘두른 듀렉에게서 허점이 드러났다.

파라네트가 몸통 박치기를 사용 하려는 그때, 듀렉의 몸이 온데간 데없이 사라졌다.

" 으응?"

파라네트가 두리번거리는 그때, 강력한 충격이 그를 덮쳐 왔다.

콰아앙!

"컥!"

정신이 아찔해질 정도의 충격과 함께 파라네트가 땅바닥을 굴렀다.

수십 바퀴를 돌고 나서야 멈춘 그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어느새 다가온 듀렉이 그의 머리

통을 쪼갤 듯 양날 도끼를 치켜들고 있었다.

파라네트가 몸을 일으키며 듀렉 의 다리를 걷어찼다.

그러나 짧은 하반신을 지닌 듀렉은 무게중심이 잘 잡혀 있었다.

발길질에 무너지지 않고, 파라네 트에게 공격을 가했다.

다만, 제대로 명중시키지는 못했다.

파라네트의 어깻죽지가 통째로 날아갔다.

공간 이동을 사용해서 거리를 벌 린 파라네트.

듀렉은 그를 놓치지 않았다.

섬광과도 같은 속도로 파라네트에게 따라붙으며 위협적인 공격을 수차례 퍼부었다.

파라네트는 그때마다 높은 방어 력으로 버텼다.

"만근...추!"

까아앙!

양날 도끼가 큰 소리를 내며 튕 겨 나갔다.

그러나 파라네트도 멀쩡한 것은 아니었다.

뼈가 조금씩 갈리고 있었다.

언데드인 만큼 재생력이 뛰어나지만, 재생되는 속도보다 파손되는 속도가 더 빨랐다.

'이대로 가면 위험하다.'

상대가 너무 강했다.

마신 추종자들 여러 명을 상대로 손쉬운 승리를 거뒀던 파라네트.

그는 진정한 강자를 만나며 생각을 다시 하게 됐다.

'난 주인님에 비하면 뭣도 아니었지. 주인님이라면 이런 땅딸막한 놈은 한 방에 보내실 수 있을 텐데.'

자신은 왜 이렇게 약한 걸까.

파라네트가 자책했다.

"몸통...만근추!"

타이밍을 제대로 맞춰, 스킬 연 계를 성공시켰지만, 듀렉은 간단하게 피해 버렸다.

아무리 위력이 세도 맞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듀렉의 양날 도끼가 파라네트의 등을 강하게 두들겼다.

콰아앙!

"크헉!"

파라네트가 이를 악물었다.

속에서 열불이 치솟았다.

'주인님이 주신 방어구가...!'

장비가 파손되면 자동으로 복구 된다는 옵션이 있긴 했지만, 그것도 시간이 필요했다.

이렇게 무차별적으로 공격에 노 출되면, 아이템이 복구 불가능한 수준으로 완전히 파괴될 수 있었다.

파라네트는 역소환이 되는 것보 다 아이템이 파괴되는 것이 더 두 려웠다.

그래서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방어구가 최대한 훼손되지 않도

록, 뼈가 노출된 부위를 가져다 댔다.

그런 파라네트를 상대하는 듀렉 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뭐 이런 놈이 다 있지?'

일부러 죽고자 급소를 무기에 갖 다 대는 전투 방식.

듀렉으로선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결국 끝은 다가왔다.

듀렉의 도끼질에 파라네트의 상 반신과 하반신이 분리되었다.

그렇게 되면 아무리 언데드라고 해도움직일 수 없었다.

파라네트가 분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런 난쟁이한테.... 치욕이다!"

듀렉이 코웃음을쳤다.

"치욕은 무슨, 그런 말은 자신보 다 약한 상대에게나 하는 말이다."

"분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 군.... 내 여기서 찬란한 생을 마 감하게 되겠지만, 곧 주인님이 와 서 너에게 엄벌을 내릴 터. 그러니 각오하는게 좋을 것이다."

"주인? 네놈한테 주인이 있나?"

"그래."

"누구지?"

"너 같은 난쟁이 나부랭이가 감 히 알면 안 되는 존재.... 엇? 주인님?"

파라네트가 어느새 나타난 유준을 보고 목을 까딱였다.

당장 달려가고 싶었지만, 상반신 밖에 남지 않은 상태.

"너 여기서 뭐 하냐?"

"그, 그게...

파라네트가 말을 흐렸다.

그래도 체급 차이가 있는데 눈앞 의 드워프한테 졌다고 하긴 너무

쪽팔렸다.

"아까 만근추를 써서 떨어졌는데, 그게 너무나도 충격이 컸지 뭡니까? 그래서 몸이 이렇게 반으로 부서지게 됐...

"어이, 왜 거짓말을 하는 거지? 넌 나한테 패배해 그 꼴이 됐지 않 나."

파라네트의 말을 듀렉이 잘랐다.

"무, 무슨 소리냐. 나는 분명 추락으로 인해 이 꼴이 된 것이다. 모함하지 마라!"

"...음?"

듀렉이 고개를 갸웃했다.

유준이 피식 웃었다.

"됐고. 살았으면 됐어. 그나저나 만근추가 방어력도 올려 주나 보네?"

"예! 그런 것 같습니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그리고 졌으면 졌다고 솔직하게 말해. 그런 거로는 안 혼내니까."

"...옙"

듀렉이유준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네가 이놈 주인이냐?"

" 맞아."

"인간? 인간은 정말 오랜만에 보는군."

"여기에 인간이 많이 없나 봐?"

"딱 한 번 봤다. 그리고 그게 마 지막이었지."

유준이 음,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만도 했다.

인간 플레이어는 심상훈이라는 이레귤러를 제외하면 나타난 지 불 과 5년밖에 되지 않았다.

거기다 소르툴 숲의 존재를 모르는 이가 태반인데, 땅굴 밑 지하

왕국에 인간이 들어올 확률이 얼마 나 될까.

'저 드워프가 봤다는 인간도 소 르툴 숲을 탈출하려고 했던 플레이어중한 명이겠군.'

혹시 심상훈일까?

그게 아니면 지규태일 수도 있겠 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상훈은 본인 입으로 남들보다 몇 년 더 빨리 무한의 탑에 왔다고 했었고,

지규태도 다른 플레이어들보다 훨씬 앞서 있다는 느낌이 강했다.

유준이 고개를 들었다.

하늘을 바라봤지만, 소르툴 숲의 땅굴로 가는 입구는 보이지 않았다.

'다시 돌아갈 수는 있겠지?'

만약 못 돌아간다면 정말 큰일이겠지만, 시리우스도 소르툴 숲 땅 굴을 마음대로 드나들었다.

그 점에 대해선 크게 걱정되지는 않았다.

"파라네트. 엄살 부리지 말고 빨 리 일어나."

"제 다리만 좀 갖다 주시면... 금방 일어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유준이 흙바닥에 덩그러니 놓인

파라네트의 하반신을 발로 찼다.

놀라운 광경이 연출되었다.

파라네트의 상반신에 유준이 발 로 차 날아간 하반신이 자로 잰 듯 합쳐진 것이다.

한 치의 어긋남이나 오차없이 완벽하게 접합되었다.

"이게 무슨...?"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놀랐다.

아무렇게나 찬 것처럼 보였으나, 그게 아니었단 말인가?

고난이도의 마법을 사용했다고

하더라도, 믿기 어려운 장면이었다.

"주, 주인님! 역시, 대단하십니다!"

"아니... 운인데."

유준도 얼떨떨한 얼굴이었다.

계산해서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

그냥 파라네트의 근처에 떨궈 주 려고 했을 뿐이다.

우연.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다시 해 보라고 한다면 절대 못 할 신기에 가까웠다.

"주인님은 겸손이 넘치신다니까. 하하."

파라네트가 몸을 벌떡 일으키며 말했다.

듀렉도 살짝 경계하는 눈빛으로 유준을 바라봤다.

"우리 산채를습격한 이유가 뭐지?"

"습격? 무슨 소리야, 그게?"

"주위를 둘러봐라. 너를 주인으로 둔 저 언데드가 자행한 짓이다. 이게습격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아, 그랬어?"

파라네트가 만근추로 추락해서 주변에도 여파를 준 건가.

그럼 아까 그 굉음도 역시 파라네트가 땅과 충돌했을 때 난 소리였군.

유준은 주위를 쭉 둘러보다가, 넝마를 입은 이들이 한곳에 모여 쓰러져 있는 걸 목격했다.

그들의 행색과 둘러싼 철창만 봐 도 그들이 강제로 끌려온 노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선량한 플레이어들을 노예로 만들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하다니. 너희 엄청 나쁜 놈들이구나?"

유준의 말에 듀렉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저건 내가 죽인 게 아니...

"변명은 됐다! 이 비겁하고 악독 한 산적 놈. 정의의 집행자인 우리 주인님께서 널 처단해 주실 거다!"

파라네트가 호통을쳤다.

"아니, 내가 죽인 게 아니라 네 놈이...

"이놈! 어디서 입을 놀리느냐! 무력에 자신이 있다면 행동으로 보 여라!"

파라네트의 간사한 말투에 듀렉

이 분노했다.

"둘 다 곱게 죽이진 않겠다."

듀렉이 파라네트가 아닌 유준을 향해 달려들었다.

유준이 검을 꺼내 들었다.

눈 깜짝할 새에 앞으로 다가와 있는 듀렉이 양날 도끼를 한 손으로 가볍게 휘둘렀다.

후웅!

탐색전.

유준은 별다른 능력을 쓰지 않고 회피에만 집중했다.

듀렉이 오른손을 뻗었다.

무기가 아닌 맨주먹.

주먹에 짙은 보라색 기운이 씌워져 있었다.

유준은 거기다 검을 가져다 댔다.

콰아아앙!

"크아악!"

단 한 번의 충돌.

뼈가 훤히 드러날 정도로 듀렉의 주먹이 움푹 파였다.

험상궂은 얼굴의 드워프가 오른 손을 부여잡고 뒷걸음질쳤다.

"무, 무슨'

스킬이나 마력을 사용한 것도 아니다.

그저 검날로 막은 것만으로 이만 한 상처가 생겼다.

육체 내구력에는 무척 자신이 있던 듀렉이 충격을 받았다.

"그 검, 뭐지?"

"뭐긴, 아이템이지."

"그러게 무기 두고 왜 주먹을 휘 둘러. 건달도 아니고."

원래 무기만이 아니라 손, 발, 팔 꿈치, 무릎 등 온몸을 사용해 적을

상대하는 것이 효율적인 전투 방식 이었다.

듀렉은 그렇게 믿었고, 실제로 그의 변칙적인 공격에 많은 플레이어가 목숨을 잃었다.

그래서 유준의 말에 반박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다.

성급하게 주먹을 뻗은 것이 이번 엔 자충수가 되었기 때문.

듀렉은 상급 포션의 마개를 따고 주먹에 통째로 부었다.

그는지하 왕국 최대 규모 산채 의 주인이며, 동시에 대부호였다.

남들은 귀해서 구할 수도 없는

중급 이상의 포션이 차고 넘치도록 있었다.

재생할 수 없을 것처럼 박살 나 있던 손이 상급 포션의 힘을 빌려 금세 회복되기 시작했다.

"준비 끝났어?"

유준이 따분하다는 듯 물었다.

듀렉은 그의 모습에 오히려 홍분을 가라앉혔다.

쉬이 볼 상대가 아니다.

오랜만에 목숨을 걸고 싸울 만한 적수를 만났다.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에 듀렉은

실로 오랜만에 전력을 다하기로 마음먹었다.

듀렉의 전신에서 어마어마한 농 도의 보라색 기운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7권 19화

165화

몰래 듀렉의 뒤를 노리던 파라네 트의 몸이 굳었다.

듀렉에게서 뻗어져 나온 기세.

몸을 절로 얼어붙게 할 정도였다.

듀렉이 파라네트에게 양날 도끼를 던졌다.

머리통이 박살 나면서 파라네트 가 역소환되었다.

양날 도끼가 선회해 다시 듀렉의

손으로 날아들었다.

착!

"다음은 인간, 네놈 차례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듀렉이 발을 떼는 순간, 유준이 점멸을 사용했다.

듀렉이미처 인지하지 못하는 사 이에 검을 휘둘렀다.

서걱!

눈을 부릅뜬 듀렉.

어디서 날아든 건지 알 수도 없고, 보이지도 않는 검격에 그의 머 리가 허공을 날았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

기세등등했던 것과는 달리 허무한 죽음이었다.

싸움을 지켜보던 산적들이 입을 떡 벌렸다.

듀렉의 죽음.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항상 신과도 같은 위용을 보이던 듀렉이었기에, 산적들이 받은 충격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하늘이 두 쪽이 나도 듀렉이 누 군가에게 패배하는 일은 없을 거라 여겼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갑작스레 나타난 한 인간에 의해 머리와 몸이 분리되어 싸늘한 시체 가 되어 버렸다.

오합지졸이었던 산적들이 산채를 체계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가능했 던 이유는, 듀렉이라는 압도적인

절대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절대자가 지금 죽었다.

이 일이 지하 왕국에 끼칠 영향은 실로지대하리라.

'레벨이 왜 이렇게 많이 오르지?'

유준이 뒤통수를 긁적였다.

방금 상대한 드워프의 레벨이 꽤 높았던 모양인데.

솔직히 그리 강하다는 느낌을 받 지 못했다.

파라네트가 당해서 살짝 평가가 올라가긴 했지만, 그게 다였다.

그에게 위협이 되는 적은 결단코 아니었다.

"두, 두목이 죽었다!"

"어쩌면 좋지?"

"부두목님!"

산적들이 멍한 얼굴로 서 있는 부두목을 쳐다봤다.

미동도 하지 않고 굳어 있는 카 림.

산적 중 한 명이 그의 어깨를 잡 고 흔들었다.

"정신 차려요! 부두목!"

"어? 어..."

"이러다 우리 다 죽습니다!"

"마, 맞아! 애들을 모아야지

산적들이 우왕좌왕하며 부산스럽게 움직이고 있는 사이,

유준은 기감을 널리 퍼뜨려 산 전체를 탐색했다.

'방금 잡은 놈이 대빵일 테고... 더 강한 놈은 없겠네.'

이대로 떠나기엔 뭔가 아쉬웠다.

새로운 장소이자, 무한의 탑 대 륙인들은 모르는지하 왕국.

그렇다면 이곳 어딘가에 히든 피

스가 있을 법도 한데.

그때 산적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적은 한 명이다."

부두목 카림은 비록 두목인 듀렉 이 죽긴 했으나, 수적 우세를 점하고 있으니 승산이 있다고 본 모양이다.

수천이 넘는 수의 산적이 정상 부근에 집결했다.

더 많은 수의 산적들이 산채에 있었지만, 공간이 협소해 다 올라 올 수 없는지경에 이르렀다.

"와, 많기도 하다."

유준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나쁜 짓을 하려고 모인 놈들이 뭐 이리 많아?

지하 왕국에 사는 플레이어들을 본 적도 없지만, 안쓰러운 감정부 터 들었다.

대륙에도 산적이나, 해적들이 있 긴 하다.

하지만 모두 각 왕국에서 통제 가능한 수준이었다.

대륙에는 플레이어가 아닌 이가 없어서 토벌대를 꾸리기가 쉽기에 산적이나 해적들이 세를 불리기가 쉽지가 않았다.

지하 왕국도 플레이어만 있겠지만, 산적들이 너무 빠르게 세를 불 린 걸까?

"단번에 처리한다! 마법 퍼부어!"

언제나 느꼈지만, 무한의 탑은 참 특이한 것 같았다.

왕국의 천민 신분을 지닌 자도 플레이어 능력을 갖고 있다.

그 능력이미천하거나, 재능이 없을 뿐 누구에게나 성장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산적들 대부분이 마법을 쓸 줄 안다.

심지어 일개 산적이 대규모 범위 마법도 구사할 줄 알았다.

그들 하나하나가 대마법사인 셈이다.

'여기 플레이어들 수준이 좀 높은 거 같은데?'

듀렉은 일격에 죽어서 체감이 잘 안 됐는데, 산적들 수천 명이 동시에 살벌한 마법을 갈기니 생각이 달라졌다.

'역시 이렇게 나와야지.'

유준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새로운 맵에는 항상 더 강력한

적이나 몬스터들이 존재했다.

비록 게임 얘기긴 해도, 이 세계 가 게임의 세계관 그 자체였다.

성장에 목이 마른 유준에게 지금 과 같은 전개는 언제나 환영이었다.

화르륵! 우우웅! 우웅!

다양한 색채의 휘황찬란한 마법들이 하늘을 수놓았다.

그 마법들이 향하는 곳은 유준이 서 있는 곳.

"마누엘라."

"응?"

"멀리 가 있어."

"알았어."

마누엘라가 연달아 블링크를 사용하며 자리를 벗어났다.

유준은 실드를 정확히 일곱 개를 생성했다.

푸르고 두꺼운 실드가 그의 주위를 감쌌다.

콰콰콰쾅! 콰콰쾅!

수천 개의 마법이 오롯이 그의 실드에 꽂혔다.

폭음이 연달아 터지며 유준의 귓 가를 사정없이 때렸다.

실드는 굳건했지만, 계속되는 마

법 폭격에 조금씩 균열이 일기 시작했다.

푸른 막의 실드를 더 생성하면 해결되는 일이지만, 그러지 않았다.

마법을 준비했다.

'이번엔 다른 것 좀 써 볼까.'

같은 마법을 쓰기만 하면 재미가 없다.

유준이 마력을 끌어 올렸다.

막 거창한 마법을 쓰려는 건 아니다.

누구나 쓸 수는 없지만, 어느 정 도 강자 반열에 든 마법사라면 사

용 가능한 블리자드 스톰.

범위가 넓지만, 빙결 마법이기에 위력이 화염 마법보다는 다소 떨어 졌다.

그러나 그건, 일반적인 마법사들에게나 해당되는 이야기.

마력의 질이 높으면, 블리자드 스톰도 막강한 위력을 자랑했다.

그리고 유준이 사용하는 마법은 그냥 마법이 아니었다.

고대 마법.

고대 마법 자체만 놓고 봐도 무척 좋은 스킬인데, 등급이 무려 EX++다.

유준이 아는 한 최고로 높은 등 급의 스킬이었다.

블리자드 스톰을 그냥 일반적인 마법으로 펼치면, 아무리 마력이 많다고 하더라도 위력이 그저 그럴 수 있다.

고대 마법 (EX++)은 달랐다.

그가 마력을 아끼지 않고 듬뿍 사용했다.

무기를 들고 있으니, 무기술 각 인서의 효과도 적용될 터.

마법의 위력이 어느 정도일지 심 히 기대되었다.

콰콰쾅! 쾅!

그 와중에도 산적들의 마법은 그 의 실드를 쉬지 않고 두들기고 있었다.

튼튼했던 실드가 깨지기 직전 상태가 될 무렵,

유준의 마법이 완성되었다.

쩌적! 쩌저적!

빙결 조각이 땅에 닿기도 전에.

모든 것이 얼어붙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모든 것이다.

예외는 없었다.

주변을 뜨겁게 달구던 화염 마법 조차도 꽁꽁 얼어 버렸다.

산적들이 라고 무사하겠는가.

그에게 공격하던 산적들 전부 얼 어 움직임이 멎었다.

실드를 향해 날아오던 마법들까지도 고드름이 되어 추락했다.

블리자드 스톰의 여파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밑에서 대기하고 있던 산적들까지도 얼어 버린 것이다.

유준이 생각한 것 이상의 위력이 나왔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믿기지 않는 업적!]

[영웅 칭호 '수배자 사냥꾼'을 획득합니다.]

수배자 사냥꾼(영웅) - 자신보다 레벨이 낮은 적에게 8%의 추가 피해를 입힙니다.

한 번의 마법으로 수만 명이나 죽였지만, 레벨은 세 번 오르고 끝 이었다.

산적들의 레벨이 그보다 막 높지는 않은 탓이리라.

그래도 만족스러웠다.

들인 고생에 비하면 많은 보상을 얻었다고 할 수 있었다.

지하 왕국의 큰 골칫덩이였던 산 채 하나가 그렇게 궤멸했다.

유준은 듀렉과 카림의 장비만을 챙기고 플라이 마법을 사용해 하산했다.

검은 망토를 뒤집어쓴 작은 체구 의 마누엘라가 보였다.

"많이 기다렸지?"

"응? 바로 온 거 아니야?"

그러고 보니, 마누엘라를 보내고 불과 5분도 지나지 않았다.

"뭘 어떻게 한 거야? 보니까 그 냥 설산을 만들어 버린 거 같은데?"

"설산이라기보다는 빙산 같은데."

산을 통째로 얼려 버렸으니, 빙 산이라는 말이 적당하리라.

"파라네트가 상심이 클 거 같더라."

"꼴사나운 모습으로 죽었잖아. 가뜩이나 네 관심에 목말라 있던데."

"파라네트가 꼴사납게 죽었다는 말에 더 상처받지 않을까?"

"...앗. 파라네트, 미안."

마누엘라가 뒤늦게 사과했지만, 꼴사납다는 말은 파라네트도 들었을 것이다.

부르지 않아도 제멋대로 나타날

수 있는 놈이니, 엿듣는 것도 가능 하겠지.

"유준."

"왜?"

"시리우스는?"

"어...? 맞다."

생각해 보니 시리우스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어디 간 거지?"

분명 제일 먼저 뛰어내렸으니, 파라네트와 비슷하게 땅에 착지했을 텐데.

설마 죽은 건 아니겠지?

엄습하는 불안감에 유준의 표정이 초조해졌다.

'얘가 죽으면 안 되는데.'

소르툴 숲으로 돌아가기 위해선 시리우스의 도움이 필요했다.

녀석이 죽었다고해서 방법이 아 예 없지는 않겠지만, 그렇게 되면 너무 번거롭지 않은가.

유준은 재빨리 탐색 마법을 발동 했다.

그의 마력 파장이 멀리까지 뻗어져 나갔다.

"시리우스!"

"시리우스!"

유준과 마누엘라가 녀석의 이름을 크게 외쳤다.

메아리가 울리길 수차례.

"앙! 왜!"

시리우스가 곧바로 모습을 드러 냈다.

깡충깡충 점프하는데, 4m 가까 이 뛰어오르는 것을 보고 시리우스 도 플레이어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너 어디 갔었어?"

"위험해 보이길래 도망쳤었지."

"잘했어."

시리우스가 멍하니 구경하고 있었으면, 녀석도 블리자드 스톰에 휘말려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하마터면 내가 죽일 뻔한 거잖아. 식겁했네.'

유준은 인벤토리에서 동기화 구슬을 하나 꺼냈다.

그리고 방어구 안에 잘 끼워 놓았다.

인벤토리를 제외하면 가장 안전 한 곳이라고 해도 무방한 장소.

그가 굳이 동기화 구슬을 꺼낸 건, 또 다른 구슬을 찾기 위함이었다.

기존의 동기화 구슬은 새로운 동 기화 구슬이 근처에 있을 시에 진 동한다.

인벤토리에 있으면 그게 느껴지 지 않으니, 한 개는 꺼낸 상태로 둬야 했다.

'언제 어디 동기화 구슬이 숨겨져 있을지 모르니까.'

그는 이번에 아이템 열 개를 전 송받으면서 동기화 구슬의 위대함을 깨달았다.

무과금즐겜러 캐릭터가 어떻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자신에게는 크나큰 이득이 되어 돌아왔다.

그렇다면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어떤 수를 써서라도 동기화 구슬을 얻어 내야지.

"시리우스."

"응?"

"아까 그 땅굴로 돌아가는 방법. 알려 줘."

"저기 산 보이지?"

자신에 의해 꽁꽁 얼어붙은 산.

그 산을 시리우스가 가리켰다.

유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기 정상에서 하늘로 쭉 올라

가면 땅굴로 가는 입구가 있을 거야."

"그냥 올라가기만 하면 돼?"

"음."

"근데 왜 밑에선 안 보여? 구름에 가려져 있지도 않던데."

"그 이유는 나도 몰라!"

"뭐, 알았어. 고맙다."

"뭘 난 이제 가 볼게!"

"혼자 어디 가게? 같이가."

"으, 응? 왜?"

"왜긴. 우린 여기가 처음이잖아.

네가 안내해 줘야지."

"그건 좀. 나도 내 나름대로지 위가 있는...

유준이 슬쩍 피가 묻은 검을 보 여 줬다.

«.2"

시리우스가 이해를 못 하고 바라 보기만 하자, 유준이 한마디 덧붙였다.

"산적 두목의 목이 베는 맛이 있었는데 너무 빨리 끝나 버려서 뭔 가 아쉽네. 어디 또 벨 거 없나? 이왕이면 살아 있는 생물, 또 기왕이면 동물이 좋겠는데."

"내, 내가 안내해 줄게! 나만 믿 고 따라와!"

시리우스의 말에 유준이 환하게 웃었다.

"그래 줄 수 있어? 고마워! 잘 부탁해."

"...웅!"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7권 20화

166화

시리우스에게 가는 길을 안내해 달라고 하긴 했지만, 지하 왕국은 멀지 않은 곳, 아니 바로 앞에 있었다.

왕국을 둘러싸고 있는 높이 솟은 성벽.

저게 지하 왕국이겠지.

'시리우스가 지하 왕국이라고 칭 한 걸 보면, 여기 사람들도 위에 대륙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다는 건데.'

왜 대륙이 아니라, 이런 지하에 왕국을 만들어 살고 있을까?

궁금했다.

심지어 일개 산적의 무력이 대륙 의 상위권 플레이어 못지않다는 것 이 좀 충격이었다.

"시리우스. 따로 신분증 같은 게 필요한 건 아니지?"

" 필요해."

"없으면 못 들어가?"

"응. 아마도 막아설 거야..."

"그럼 우리는 몰래 들어가야겠네."

사실 막든, 안 막든 상관이 없었다.

그에겐 투명 반지가 있으니까.

"아니지. 우리가 왜 좀도둑처럼 숨어서 들어가."

생각이 바뀌었다.

유준은 동기화 구슬의 외형을 복 제할 때 사용한 '아이템 외형 복제 석판'을 꺼냈다.

[아이템 외형 복제 석판]

등급 : 無

옵션 : 장비 아이템을 제외한 모 든 아이템의 외형을 복제할 수 있습니다. 단, 옵션은 복제되지 않습니다.

"시리우스. 네 신분 패 좀 줘 봐."

"뭐, 뭐 하려고? 이거 삼촌이 아무한테나 주지 말라고 했는데...

"우리가 아무나냐? 친구잖아. 줘 봐."

"미안.... 줄게."

이러니까 자신이 왠지 양아치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난 잠시 빌리는 것뿐이니까 양 아치는 아니지. 음.'

시리우스가 본인의 신분 패를 유준에게 건네줬다.

그런데 신분 패가 무척 화려했다.

신분 패 곳곳에 다이아가 박혀 있는게 아닌가?

"지하 왕국에는 다이아몬드가 흔 해?"

"아니. 엄청 귀해."

"이건 뭔데?"

"왕국에 세 개밖에 없어, 그래 서."

"...아. 너 왕자랬지."

시리우스의 외형이 덩치 좀 큰 토끼에 지나지 않기에 자꾸 헷갈렸다.

다이아 신분 패를 복제하면 바로 들통날 거 같은데....

"음."

유준이 고민에 빠졌다.

아무리 봐도 너무 눈에 띈다.

오히려 신분 패가 없는 것보다 이걸 들고 있을 때 더 의심을 받을

것 같았다.

혹시 모르니 시리우스의 신분 패를 석판으로 복제는 해 뒀다.

신분 패도 아이템이었는지, 무사 히 똑같은 신분 패가 하나 생성되었다.

"근데 그 석판은 독 없애 주는 거 아니었어? 어떻게 똑같은 걸 만 든 거야?"

시리우스의 허를 찌르는 질문.

유준이 식은땀을 흘렸다.

"...어. 그게. 음. 석판의 기능 이 여러 개 있어서 그래. 그리고 한 번 쓰면 사라지잖아. 생각만큼

좋은 아이템은 아니야."

"신분 패 하나 만드는데 그런 아이템 쓴 거는 좀 아쉽다."

시리우스의 말에 유준이 어색하게 웃었다.

'아쉽기는. 이 석판만 육십 개는 넘게 가지고 있는데.'

입이 근질거렸지만, 굳이 말해 줘서 좋을 게 없었다.

유준 일행은 금방 왕국의 정문 앞까지 왔다.

경비를 서고 있는 블랙 오크 두 명이 보였다.

험상궂은 얼굴로 통행자들을 살 펴보는 그들.

"시리우스. 너 혼자 들어가. 우린 알아서 들어갈게."

"그래도 되겠어?"

"같이 들어가면 더 문제 생길 거 알잖아."

"알았어."

시리우스가 나타나자, 경비병 두 명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왕자 저하?"

"헉!"

"소식을 알려라!"

왕국 사람들은 왕자 시리우스가 실종된 줄만 알았고, 실제로 그를 찾아 나선 이가 적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직접 모습을 드러 냈다.

난리가 날 수밖에 없었다.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귀족파의 힘이 날이 갈수록 강성 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하필 이런 시기에 하나뿐 인 왕자가 외출했다가 실종까지 되어 버렸다.

지하 왕국의 국왕, 칼튼이 땅이 꺼질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지하 왕국의 정치 구도는 국왕파 와 귀족파가 1 대 1 정도로 각각 권력을 분점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균형이 무너지는 것도 시간문제가 되어 버렸다.

귀족파에 붙은 의문의 인물들 때 문이었는데, 그 누구도 그들의 정 체를 몰랐다.

귀족파의 최고 권력자인 후세르 덴 공작이나 알겠지.

'아무래도 외부인들을 끌어들인 모양인데.'

결정적인 증거가 없는 이상, 그들을 몰아세울 수는 없었다.

몰아세운다고 하더라도 귀족파의 힘이 너무 막강해졌다.

막무가내식으로 반란을 일으키기 라도 한다면, 지하 왕국에 한바탕 피바람이 불 것이다.

아니.

귀족파는지금도 서서히, 야금야 금 나라를 갉아먹고 있었다.

최근엔 왕국파 귀족 중 한 명이 귀족파로 돌아섰다.

그자는 국왕인 칼튼과 어렸을 때 부터 같이 자라 온 친우와도 같은 존재였다.

그랬기에 충격이 더 컸다.

"후우..."

국왕의 근심이 마를 날이 없는 이때, 희소식 하나가 들려왔다.

시리우스 왕자가 살아서 돌아왔다는 소식이었다.

"아빠!"

"어허, 전하라고 하지 않고."

"보고 싶었어요!"

"어디서 뭘 하다 이제 온 게냐."

두 토끼가 부둥켜안았다.

"삼촌이 밖에 데려다 줬어요."

"...밖? 대륙을 말하는 거냐?"

"네! 그런데. 땅 위로 올라가지는 않았어요. 아빠가 위험하다고 했으니까요!"

"제누스는 어디 있지?"

국왕이 눈에 쌍심지를 켰다.

제누스는 시리우스의 외삼촌 이 름이었다.

"모르겠어요. 절 데려다주고 바 쁜 일이 생겼다면서 먼저 가 버렸어요."

"제누스, 이놈을 그냥.... 어디 다친 곳은 없느냐?"

"네! 멀쩡해요! 그리고 제누스 삼촌이 줬던 구슬을 잃어버렸었는데, 누가 대신 찾아 줬어요!"

"대신 찾아 줘? 누가?"

국왕의 말에 투명 반지를 착용하

고 숨어 있던 유준과 마누엘라가 모습을 드러냈다.

"누, 누구냐!"

국왕 칼튼이 화들짝 놀랐다.

한 나라의 왕인 만큼 그도 상당 한 무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보다 강하다고 할 만한 플레이어는 손에 꼽을 정도.

그런 칼튼이 전혀 눈치를 못 챘 다는 건,

방금 나타난 두 명이 보통 플레 이어가 아니라는 뜻.

국왕 칼튼이 긴장한 기색이 역력

한 가운데, 시리우스가 입을 열었다.

"아빠. 저 사람들이에요."

"저 사람들이라니?"

"저들이제 물건을 찾아 줬어요."

"그건 중요한 게 아니지. 왜 숨 어서 우릴 엿보고 있었는지. 그게 궁금하다."

국왕 칼튼이유준을 응시했다.

유준이 고개를 숙였다.

"불쑥 찾아온 건 미안하게 생각 합니다. 제안하고 싶은 게 있어 숨어 있었어요."

"...무어라? 짐이 잘못 들은 건가? 제안할 게 있는데 왜 숨어 있었다는 거지?"

"아, 그냥 넘어가 줘요.들을 거 예요, 말 거예요?"

칼튼이 헛웃음을 흘렸다.

눈앞의 인간이 하는 말본새가 너무 황당하여 어이가 없었기에.

유준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 어 나갔다.

"지금 왕국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대충은 알고 있습니다. 도와 드리겠습니다."

"상황이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나, 외부인의 도움을 받을 생각은 없네."

"그럼 거래를 하시죠."

"거래라면?"

"서로 필요한 걸 제공하는 거죠."

"그대가 짐에게 무얼 해줄 수 있지?"

"싸워 줄 겁니다."

"...본인의 실력에 자신이 있나보군."

"보여 줄까요?"

유준은 상대가 왕이라고해서 조심성 있게 행동하지 않았다.

일단 자신이 왕궁에 있는 그 누 구보다도 더 강한 데다가, 국왕 또 한 시리우스처럼 평범한 토끼의 외 견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머리 위에 왕 관을 쓰고 있다는 것.

'솔직히 왕관 없었으면 둘을 구 별하는게 쉽지 않았겠지.'

"보여 준다면... 짐과 싸워 증 명하겠다는 건가?"

"어떤 방식이든 상관없습니다. 왕국에서 가장 강한 플레이어를 부 르든, 직접 나서시든 결과는 같을 테니까요."

오만방자한 태도.

한 나라의 왕을 대하는 것치고는 매우 건방졌다.

하지만, 국왕 칼튼은 눈앞의 인 간이 강한 플레이어라는 것을 어느 정도는 인지하고 있었다.

"짐이 직접 판단해 보겠다."

"그러면 좋죠. 시간도 절약하고."

"아빠…."

시리우스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국왕을 바라봤다.

"...저 인간 강해. 조심해."

"시리우스. 우리 서로 죽이려고 싸우는 거 아니야. 그냥 너희 아빠 가 내 실력 좀 보려는 거지."

유준의 말에도 시리우스의 표정은 어두웠다.

'저러니까 내가 나쁜 놈 같잖아.'

그가 대책 없어 보일 정도로 급 발진을 한 것은 이유가 있었다.

마누엘라의 상상 예언 때문이었다.

성문을 몰래 넘어 왕국에 잠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그녀가 우뚝 멈춰 서 눈을 감더 니, 갑작스럽게 예언을 하는게 아닌가.

마누엘라가 한 예언의 내용은 이 러했다.

-왕궁 연회장에 수많은 귀족들이 모여 있는데, 서로 언쟁을 벌이다 가 크게 한번 맞붙어. 그러다가 결 국 귀족파가 승리하거든? 그때 귀 족파에서 망토를 뒤집어쓴 한 명이

국왕에게 초월의 돌을 내놓으라고 말해. 거기서 상상이 딱 끝났어. 어 쩔래? 갈 거야?

유준은 그 내용을 듣고 왕국 내 정에 간섭하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다.

국왕을 다짜고짜 공격해서 초월의 돌을 얻어 내는 방법도 있겠지만, 그건 불확실성이 컸다.

무엇보다시리우스에게 너무 미 안한 짓이었다.

이곳에 올 수 있게 된 것도 시리 우스 덕분이었으니, 보답은 해 줘야지.

"시작하지."

그때 국왕 칼튼이 왕좌에서 일어 났다.

화아악-!

토끼 주제에 몸에서 엄청난 양의 마력이 뿜어져 나왔다.

'명색이 왕이라고 그 산적 두목 보다는 훨씬 세네?'

'직접 싸우겠다고 할 만하네.'

어디서 이런 강자들이 자꾸 나타 나는지.

이번에는 자신이 찾아오긴 했지

만, 세상에는 천외천의 강자들이 생각보다도 더 많았다.

그리고 타이밍 좋게도 항상 찾을 때 있었다.

레벨을 빨리빨리 올릴 수 있도록 누군가 도와주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 맞다. 죽이면 안 되지.'

어느샌가 국왕을 경험치로 생각 하고 있었다.

이래서버릇이 무섭다니까.

유준이 검을 들었다.

"마법사예요?"

"그렇다. 그대는 검을 쓰나 보 군?"

"그런 셈이죠."

국왕 칼튼이 마법을 캐스팅했다.

그때 유준이 움직였다.

척!

그가 검을 내려찍다가 확 멈췄다.

칼튼의 머리 위에 유준의 검 등 이 닿아 있었다.

당장 국왕의 목숨을 거둬 갈 수 도 있는 상황.

칼튼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끝난 거 같은데요?"

"...무슨 수를 쓴 거지?"

"응?"

"블링크 계열의 스킬인가?"

"아닌데요. 그냥 뛰어온 건데?"

"...거짓말이다. 그랬다면 짐이 그대의 움직임을 놓칠 리가 없다."

"그렇게 믿고 싶으면 믿으시든가. 어찌 됐든 진 건 인정하시죠?"

국왕 칼튼이 착잡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게 진 것도 진 것이지만, 아들이 보는 앞에서 패배했다는 것에 상심이 컸다.

"제 실력도 증명된 거고?"

"그래."

"제가 했던 제안도 받아 주시는 거고?"

"짐은 아직 그대가 원하는 걸 듣 지 않았다."

"초월의 돌."

유준의 말에 칼튼이 당황했다.

어떻게 저 인간이 초월의 돌에

대해 알고 있는 거지?

아니, 알고 있는 건 그렇다 쳐도 자신에게 초월의 돌이 있다는 건 어디서 들은 걸까.

제누스를 제외하면 그 누구에게 도 말한 적이 없었는데.

'제누스가 떠벌리고 다녔나? 그 럴 녀석이 아닌데...

당황하는 것도 잠시였다.

국왕은 빠르게 결정을 내렸다.

"초월의 돌을 주겠다. 대신에 일을 확실하게 처리하고 나서다. 그 전에는 초월의 돌을 줄 수 없어."

"당연하죠. 저도 먹튀할 생각은 없습니다."

"먹튀가 뭔가?"

"있습니다. 그런게."

그렇게 거래가 성사됐다.

'초월의 돌을 하나 더 얻으면 그때 반지에 사용하면 되겠군.'

무과금즐겜러 덕분에 600레벨 신 화 반지 두 개를 공짜로 얻었으니, 초월의 돌 사용처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