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reads / MSIDJAIS / Chapter 21 - 21

Chapter 21 - 21

229화

"집에 동기화 구슬이 있다고? 인 벤토리가 아니라?"

"등급도 처음 보는 거고... 뭔 가 들고 다니긴 좀 그래서."

"내놔."

"주기 싫다. 네가 그러는 것 보니까 엄청 귀한 물건 같아서 더 그 래."

"그럼 넌 피의 군주 막다가 장렬 하게 전사하는 거지."

"꼭 그런다는 보장은 없잖아...

"동기화 구슬은 내 능력과 관련 되어있는 거야. 너한텐 전혀 쓸모 없는 물건이고. 그러니까 욕심부리 지 말고 줘. 나 그냥 천계 가 버리 기 전에."

유준의 엄포에도 교도관이 계속 머뭇거리자, 참다못한 라일론이 눈 치를 줬다.

"아, 알았어. 피의 군주 쓰러뜨리 면 줄게."

유준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내가 놈을 상대할 동안 넌 구슬을 가져와. 그때 피의 군주

를 내가 쓰러뜨릴 테니까. 그럼 누 구도 사기당하지 않고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잖아."

"그렇게 하지."

라일론이 대신 대답했다.

"그리고 보상 하나 더."

"동기화 구슬? 그걸로는 부족하 다는 건가?"

"피의 군주를 막아주는 대가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일리 있다. 시간이 없으니 단도 직입적으로 원하는 걸 빨리 말했으면 좋겠군."

"혹시 특성 보석이나 스킬 보석 가진 거 있으면 그걸로 줘. 중급 이상으로."

그 자리에 있던 교도관들이 모두 황당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보석 아이템이 어디 뉘 집 개 이 름도 아니고....

그 귀한 물건을 안 쓰고 보관해 두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유준은 라일론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없으면 나 그냥 동기화 구슬도 안 받고 갈 거야."

"스읍, 이놈이 진짜! 막무가내도 정도가 있지!"

"적당히 설쳐!"

경력이 좀 낮은 교도관들이 호통을 치자, 라일론이 그들을 매서운 눈으로 노려봤다.

그와 눈이 마주친 교도관들이 입을 꾹 다물었다.

"인간. 내게 중등급의 특성 보석

이 있다. 대신 이 보석은 모든 일 이 끝나고 주도록 하지. 괜찮은가?"

"좋아."

여태 왜 안 쓰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유준은 라일론이 보여 준 특성 보석을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부서진 문을 밟고 회의장 밖으로 나갔다.

피의 군주는 죄수들을 이끌고 무 서운 기세로 접근하고 있었다.

더 지체했다간 건물을 통째로 날 려 버릴 가능성이 있어 먼저 마중을 나가는게 낫겠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그 판단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그가 땅에 내려선 순간에 피의 군주를 비롯한 죄수들이 도착한 것이다.

"...뭐냐, 네놈은."

피의 군주가 다짜고짜 하대해 왔다.

"죽여 달라는 거냐?"

유준이 기대했던 반응이다.

악역이 한결같아야지.

조금 선량한 모습을 보이면 괜히 마음이 약해진다.

유준이 한쪽 무릎을 꿇었다.

"위대하신 피의 군주를 뵙습니다."

" 으응?"

그가 갑작스레 예를 표하자, 마르크스가 고개를 갸웃했다.

"내 수하였던가?"

"당연히 아니지."

파박!

그의 신형이 앞으로 뛰쳐나갔다.

무릎을 꿇은 건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

예상이 힘든 그의 행동에 마르크 스가 한발 늦게 대응했다.

피하지 못하고 손을 들어 유준의 검을 막으려 한 것이다.

자신의 신체 내구력을 믿기에 한 것이었겠지만, 유준의 검을 맨몸으로 막으려고 한 것은 크나큰 자충 수가 되었다.

서걱!

측정 불가능한 수준의 공격력을 지닌 유준.

마르크스의 오른팔이 잘려나갔다.

뱀파이어는 높은 신체 재생력을 자랑하는 종족.

마르크스는 금방 팔이 회복될 줄 알았으나, 이상하게도 잘린 팔은 복구되지 않았다.

"어떻게 된 일이지?"

뒤로 훌쩍 물러난 마르크스가 충격을 받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뭘 어떻게 돼. 자연의 섭리를

따르고 있는 거지."

"내 몸에 무슨 짓을 한 거냐."

"잘 알 텐데?"

"...건방진 놈."

"와, 근데 너 진짜 독하다. 어떻 게 참고 있냐?"

유준은 마르크스에게 혼돈을 섞은 고통스러운 일격을 날렸다.

그런데 녀석은 신음 한 번 홀리 지 않고 꾹 버텨 내고 있었다.

이를 꽉 악물고 있기는 하지만, 정말 엄청난 정신력이라고밖에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 부분에 있어선 조금은 존경스 러웠다.

자신이었으면 절대 못 버텼을 텐데.

무력도 그렇겠지만, 발록보다도 더 대단한 놈이 아닌가.

그때 죄수들이 달려들었다.

언제 저렇게 친해졌는지 피의 군 주가 당하고 있는 꼴은 못 보는 모 양이다.

'아니네. 강제로 조종을 당하고 있구나.'

죄수들의 눈을 보고 알았다.

눈의 초점이 흐릿했다.

아무리 봐도 스스로 의지를 갖고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꼭두각시 인형처럼 일제히 움직 이는 것도 그렇고.

그렇다면 저것 또한 피의 군주가 가진 능력이라고 봐야 하는 걸까.

'저만큼 강한 플레이어들을 마음 대로 부릴 수 있는 능력이라니... 탐나는데.'

피의 군주는 본인의 팔이 재생되 지 않는 것이 어지간히 이상한지

연신 팔을 들여다봤다.

"그렇게 궁금해?"

"묘한 기운을 다루는군. 언젠가 한 번 본 적이 있는 기운이다. 그때는 이렇게 순수하고 파괴적이진 않았던 것 같은데..."

"오."

혼돈을 알아보는 플레이어는 몇 없었는데.

물론 정확한 이름을 모르는 걸 보면 피의 군주가 혼돈을 지닌 건 아닌 듯했다.

"대응법도 알아?"

마르크스는 대답하지 않고 혈공을 펼쳤다.

피로 된 안개가 순식간에 불어나 며 주변 일대를 뒤덮었다.

높게 자란 나무가 피 안개에 닿 자 바사삭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신기한 것은 안개에 닿은 죄수들은 아주 멀쩡하다는 점이었다.

'안개의 위력이 약하다기보다는... 피의 군주에게 지배당하면 그 능력에 영향을 안 받는 것 같은데.'

죄수들이 멀쩡하다고 자신도 멀 쩡하리라는 보장이 없다.

유준은 달려드는 죄수들을 공간 장악으로 묶어 버렸다.

방대한 마력이 한순간에 빠져나 갔으나 아까워할 틈이 없었다.

피의 안개가 어느새 그의 앞까지 다가온 것이다.

그는 점멸로 거리를 벌린 후에 초집중과 신검합일 스킬을 사용했다.

그때 하필 교도관들이 도와주기 위해 회의장에서 나왔다.

"들어가 있어! 대피하든지!"

"도와주겠다!"

"방해라고!"

유준의 웃음기 하나 없는 얼굴에 교도관들이 흠칫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그들이 있어서 좋을 게 없었다.

교도관들의 실력은 분명 뛰어났다. 괜히 이 거물급 죄수들을 관리 하는게 아니지.

그래서 더더욱 끼어들면 안 되는 것이다.

교도관들이 피의 군주의 지배에 놓이는 순간 상황이 더 까다로워지는 건 당연한 이치였다.

그냥 애초에 껴들지 않는게 이 로웠다.

유준의 고함이 의미가 있었는지, 교도관들은 그의 근처로 다가올 생각을 안 했다.

'말은 잘 듣네.'

덕분에 유준은 오롯이 피의 군주 와의 전투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신검합일로 생성된 다섯 개의 검.

이전의 그였다면 상당한 무리를 하는 것이었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신검합일 스킬의 숙련도가 꽤 높

아진 지금은 이 정도는 거뜬했다.

천재 특성을 얻은 후로 배움의 속도가 전과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정말 사소한 것부터 많은 것이 바뀌었다.

신검합일도 그중 일부일 뿐이다.

근접 계열의 능력을 지닌 죄수들이 맹공을 퍼붓기 시작했다.

유준은 손에 쥔 검 하나로 그들을 일일이 상대했다.

카강! 캉!

확실히 가장 위험하다는 자들만 수감된다는 천공의 감옥 죄수들답

게 그들 하나하나가 지닌 힘은 마 치 태산과도 같았다.

하지만 그러한 거력들도 유준의 검에 충돌하는 순간, 흔적도없이 사라지는 듯했다.

그의 방어력이 높은 것도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유준이 그들의 공격을 모조리 흘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수준 높은 검술.

그리고 GX등급의 신검합일은 장 식이 아니었다.

검뿐만이 아니라 전투의 전반적 인 부분을 보조해 주었다.

거기에 상대방의 빈틈까지 찾도 록 도와주어서 그는 여럿을 상대하는 것치고는 너무나도 편안한 전투를 하고 있었다.

카강! 촤악!

그러다 죄수 한 명이유준의 검에 베였다.

피격당한 부위는 팔목.

"끄아아아악!"

마르크스에게 정신을 지배당하고 있는데도 죄수는 고통을 참지 못하고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질렀다.

찰나에 불과했지만 한 명이 전투

불능 상태에 빠지자, 형세가 완전 히 역전되었다.

지금까지는 유준이 막아 내고 회 피하는 것에만 집중했다면, 이젠 죄수들이 그의 공격을 피해 내기 급급한 상황에 놓인 것이다.

후웅! 흥! 촤악!

그러다 한 번 그의 검에 긁히기 라도 하는 순간, 어김없이 끔찍한 고통이 찾아왔다.

두 명이 전력에서 이탈되었다.

후웅! 흥!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검들이 움직였다.

그리고 순식간에 죄수 다섯의 목을 베어 버렸다.

죄수들은 알면서도 당할 수밖에 없었다.

홀몸인 유준을 상대하는 것만도 벅찼으니까.

"크하하하하!"

피의 군주 마르크스가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 걸작이로군."

뭐가 그리도 좋은지 한참을 웃었다.

전투에 제대로 임할 생각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피의 안개도 유준이 있는 곳까지 접근하지 않고 있었다.

"뭐야, 안 싸워?"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구나, 인 간. 괴물이 따로 없어."

"아무리 그래도 괴물 취급은 서 럽지. 저기 쓰러져 있는 놈들이 몇 백 배는 더 징그럽게 생겼는데."

유준은 아무렇게나 말을 내뱉으 며 피의 군주의 상태를 살폈다.

'상처를 어떻게 회복시킨 거지?'

혼돈이 담겼던 일격.

분명히 상처 재생이 무척 더뎌지 거나, 아예 진행되지 않아야 하는데.

피의 군주는 얼마나 지났다고 완 전히 회복되었다.

'뭐, 특별한 능력이 있는 거겠지.'

목을 베이거나 심장이 찔려도 멀 쩡하지는 못할 것이다.

마누엘라와 도지윤은 멀리 대피 시켜 놨다.

피의 군주와의 싸움에서 그들이 인질로 잡히거나 하면 그보다 곤란 한 일이 없다.

그러한 변수들을 아예 원천 봉쇄 하기로 작정하고 온 것이다.

파라네트를 부르지 않는 것도 그 이유였다.

혹시나 있을 위기 상황에 대비해 일행의 호위로 세웠다.

녀석은 나중에 필요하면 그때 부 르면 된다.

언제든 자신의 곁으로 복귀할 수 있는 소환수.

죽어도 시간이 지나면 부활할 수 도 있다.

소환수가 괜히 귀하고 좋은 게 아니었다.

성장형 소환수는 구하기도 어렵 고 육성하기도 힘들지만, 일단 키 워 놓으면 편하다.

유준은 허공에 다섯 개의 검을 띄워 놓고 피의 군주와 대치 상태를 유지했다.

피의 군주는 이 상황에서 잔잔한 미소만 짓고 있을 뿐 공격 의사를 보이지 않았다.

"안 싸울 거야?"

유준이 먼저 물었다.

"인간. 우리가 싸워서 좋을 것이 없어 보이는군."

"갑자기?"

"그대와 내가 싸운다면 호각지세. 둘 중 하나만 죽는 건 허용되 지 않는다. 둘 다 죽거나, 둘 다 살 거나...겠지. 그리고 난 죽고 싶 지 않다."

마르크스는 긴 세월 버티며 이제 야 겨우 천공의 감옥에서 나왔다.

그런데 갑작스레 등장한 인간과 의 싸움에 목숨을 걸고 싶지 않았다.

설령 자신이 저 인간을 이긴다고 하더라도 큰 상처를 입을 것은 자 명해 보였다.

그의 재생력은 무한히 지속되는 것이 아니다.

저 인간이 했던 기묘한 기운의 공격을 서너 번 더 받으면 그때부 터는 정말 큰 상처를 달고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마르크스는 유준의 무력보다도 혼돈이라는 기운을 마주하면서 두 려움을 느꼈다.

"그래서 제안하겠다. 나는 이쯤에서 물러날 테니 그대도 나를 뒤 쫓지 않았으면 한다."

"그대와 나는 세상에 큰 영향력

을 행사할 수 있는 존재다. 이런 곳에서 둘 다 허무하게 죽는 결말은 시스템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그대도 살고 싶은 욕망이 있을 터. 어떤가?"

피의 군주가 무슨 소리를 하나 싶어서 계속 지켜봤던 유준이 헛웃 음을 흘렸다.

"뭐라는 거야."

"...음?"

유준의 반응이 예상했던 것보다 미적지근하자, 마르크스가 살짝 당 황했다.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10권 11화

230화

"왜 결과를 네 멋대로 정해? 어 이가 없네."

피의 군주는 유준의 힘을 다 파 악한 것처럼 전투의 결과를 예측하고 평화협정을 맺자고 제안했다.

그래서 황당했다.

'미래라도 읽는 건가?'

아무리 봐도 그건 아닌 것 같다.

피의 군주는 그저 피해가 큰 싸 움을 피하고 싶은 것뿐이다.

당연히 유준은 마르크스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검을 들고 땅을 박찼다.

행동으로 보여 준 유준.

마르크스가 혀를 찼다.

"어리석은 인간! 진정 피를 보길 원하는가!''

"응. 근데 그게 내 피는 아닐걸."

유준은 전투를 길게 끌고 갈 생각이 없었다.

피의 안개가 그의 주변으로 몰려 들었다.

실드를 만들어 놨음에도 피부가

따끔따끔한 기분이 든다.

'실드는 멀쩡한데... 실드를 그 냥 뚫고 들어오는 건가?'

사기적인 능력이었다.

방어력이 지금처럼 높지 않았다면 그의 몸은 진즉에 녹아내렸을 것이다.

지금은 피부가 벌겋게 달아오르는 정도에 불과했다.

'도대체 어떻게 된 몸뚱이지?'

마르크스는 아무렇지 않게서 있는 유준을 보며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피의 안개에 직접적으로 노출되 고도 저리도 멀쩡한 모습이라니?

자신에게 피의 종속을 당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왜 저리도 겁없이 다가왔는지 이제야 이해가 갔다.

'믿는 구석이 있었군.'

마르크스의 얼굴이 다급해졌다.

강력한 범위 기술이 먹히지 않았 다는 것은, 녀석의 방어력 혹은 마법 저항력이 상당하다는 뜻이다.

자신은 그런 상대와 상성이 그리 좋지 않았다.

'지금 천공의 감옥 근처엔 내 강 력한 권속들이 없다...

그가 황급히 혈공과 결합한 마법들을 사용해 유준을 저지했다.

촤아아악!

촥!

그런데도 유준은 조금씩 마르크 스에게 접근하고 있었다.

그는 검으로 못 베는 것이 없었다.

허공에 떠 있는 다섯 개의 검까지 이용해 마르크스의 혈마법을 완 전히 파훼했다.

마르크스로서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의 마법을 이리도 쉽게 막아 내는 자가 그간 있었던가.

천계에서 온 천족들에게 제압당 했을 때에도 자신은 수백이 넘는 천족을 죽였다.

거기다 장장 스무 시간이 넘는 긴 전투 끝에야 잡힌 것이지, 회복 할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으면 그 자리에 있던 천족들을 모조리 죽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이 인간은 자신의 마법이 통하질 않았다.

눈 깜짝할 새에 미간 바로 앞에 도착해 있는 혈마법을 그리 힘들이 지도 않고 베어냈다.

그의 검에 닿은 마법은 어김없이 소멸했다.

어느새 얼굴의 솜털이 보일 정도 로 가까워진 둘.

마르크스의 다급함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그가 소리쳤다.

"인간! 그대에게 내 권속 둘을 양보하겠다! 내가 가진 권속 중에는 나보다 강한 놈들도 더러 있다. 내 제안을 받아들이면 절대 후회하

지는 않을 거다!"

"너보다 강한 권속이 있다고?"

"그렇다."

"그건 구미가 좀 당기긴 하는데...

"오오, 그렇지?"

마르크스가 눈에 띄게 기뻐했다.

처음의 그 포스는 어디 가고 해 맑게 웃는 모습이라니.

유준은 그런 마르크스에게 초를 치는 말을 했다.

"사실 필요 없어."

"...뭐?"

전투를 단번에 끝내기 위해서 그는 초집중 스킬을 사용했다.

'결은 안 보이는군.'

피의 군주가 확실히 만만한 상대 가 아니라는 것이 느껴졌다.

웬만한 상대에게는 다 결이 있었는데 피의 군주에게선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아니, 어려운 수준이 아니라 아 예 보이지 않았다.

이글 아이 스카우터를 착용하면 혹시 모르나, 굳이 결을 찾을 필요는 없었다.

피의 군주를 죽이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다.

사실 처음엔 죽이려고 했으나, 도중에 생각을 바꾸었다.

절대지기를 사용하고, 대량의 혼돈을 끌어 올렸다.

거기에 신검합일까지.

동시에 사용하는 능력이 많아지 면 그만큼 집중력도 흐트러지기 마 련이지만, 유준은 초집중 스킬을 발동한 상태였다.

이 정도로 무리한다고는 할 수 없었다.

물론 이러한 상태를 장시간 유지 할 수 없긴 하다.

하지만 상관없다.

그 전에 끝내면 되니까.

유준은 공간 장악 마법은 사용하지 않았다.

피의 군주가 쓰는 마법과 자신의 고대 마법의 수준이 엇비슷했다.

괜히 마법을 섞어 썼다간 피의 군주에게 시간만 벌어다 주는 셈이었다.

어차피 그의 주력은 마법이 아닌 검이었다.

서걱! 석!

혼돈을 담은 검으로 마르크스의 몸을 난도질했다.

마르크스가 회피 마법을 사용해 벗어났지만, 유준은 끈질기게 따라 붙으며 괴롭혔다.

녀석의 엄청난 재생력도 혼돈이 계속 신체에 침투하자, 처음만큼의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크억!"

유준은 고통스러운 일격도 잊지 않고 틈틈이 사용했다.

'얘도 참 잘 버티네.'

보통 혼돈을 이렇게 먹이면 쓰러 질 법도 한데, 피의 군주는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끝까지 도망치려 고 했다.

녀석에게 불운인 것이 있다면 블 링크를 쓰는 것보다도 유준이 달려 가는 속도가 더 빠르다는 점이었다.

마르크스가 아무리 거리를 벌려 도 유준은 귀신같이 붙어서 밀착 전투를 벌였다.

그나저나 피의 군주가 징하게도 오래 버틴다.

'이래서 천족들도 못 죽이고 가 둬 놓은 건가?'

이러다 어느 순간 갑자기 죽어 버리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불안했다.

피의 군주한테 시도해 볼 것이 있는데.

그가 죽어 버리면 곤란하다.

유준은 이제 마르크스에게 맹공을 퍼붓는 걸 넘어서, 그가 죽지 않도록 적절하게 위력을 조절하기 시작했다.

실력 차이가 크게 나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것이었지만, 유준의 검을 다루는 실력은 마르크스의 힘보다 몇 단계는 위에 있었다.

마르크스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 하고 그의 공격을 피해 내기 급급 한 것은 그 이유였다.

"더 강한 권속이 있다니까!"

마르크스가 절규하듯 외쳤고 유준이미간을 찌푸렸다.

"또 헛소리하네."

저런 소리를 할 정도면 아직 빈 사 상태까지는 안 갔다는 거다.

그는 확실하게 마무리 짓기 위해 점멸을 사용해 마르크스의 앞으로 이동했다.

그 순간 마르크스는 몰래 준비하

고 있던 비장의 수를 꺼냈다.

독성이 강한 피로 가득 찬 자신의 몸을 터뜨려 폭발을 일으키는 기술.

엄청난 위력을 지닌 기술이지만, 이걸 사용하면 마르크스도 당분간은 무력화 상태에 놓인다.

단점이 명확한 기술을 사용한 마르크스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완벽한 기회에 완벽한 타이밍이었다.

그는 당분간 회복에 전념해야 하겠지만, 자폭이제대로 들어갔다는 것에 만족했다.

콰콰콰콰쾅!

엄청난 폭발이 근방 일대를 뒤덮었다.

'뭐지?'

마르크스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점멸로 접근했던 인간이 사라졌다.

점멸을 사용한 직후에 곧바로 다시 사라지는 건 불가능할 텐데.

흔적도없이 사라진 인간.

폭발에 휘말려 가루가 된 건 아니었다.

그 정도로 방어력이 약한 플레이

어는 아니었다.

약하기는커녕, 마르크스가 지금 껏 만나 온 그 어떤 플레이어보다 도 높은 방어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보이지 않는다는 건....

마르크스가 황급히 실드를 생성 하며 뒤로 돌았다.

콰직!

다섯 겹으로 둘러싸였던 실드가 검에 닿는 순간 무참하게 깨져 나 갔다.

그리고 마르크스의 오른쪽을 파 고드는 검.

"흡..."

오른쪽 가슴이기에 심장을 꿰뚫 린 것은 아니었으나 피의 군주 마르크스가 무릎을 꿇어 버렸다.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신체가 허용 가능한 혼돈의 수치를 넘어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어마어마한 양의 혼돈이 그의 몸에 주입이 되었고, 그는 더 이상 재생하는 것이 불가능한 몸이 되었다.

영구적이진 않아도 당분간은 이 러한 상태가 지속될 확률이 높았다.

마르크스가 절망이 담긴 얼굴로 위를 올려다봤다.

손에 구슬 한 개를 들고 웃고 있는 유준의 모습이 마르크스의 시야에 잡혔다.

"나, 나한테 무슨 짓을 할 셈이지?"

"죽이진 않을 거야."

불길함을 느낀 피의 군주가 어떻 게든 움직이려고 했다.

그러나 몸은 무언가에 묶인 듯 꼼짝도 하지 않았다.

공간 장악 마법이 그의 몸을 꽁

꽁 묶은 것이다.

본래다면 공간 장악 마법이 절대 통하지 않았겠지만, 피의 군주는 이미 적정 수치 이상의 혼돈에 노 출된 상태.

유준의 마법에 감히 대응할 수가 없었다.

"일단 들어가 있어."

그가 든 구슬의 정체는 당연히 절대 봉인의 구슬이었다.

유준은 발록과 마찬가지로 피의 군주도 절대 봉인의 구슬에 가둬 놓을 생각이었다.

또, 잘 길들여서 소환수처럼 부려 먹을 생각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마르크스의 제안을 일언 지하에 거절한 것이기도 했다.

피의 군주에게 권속을 양도받는 것보다, 그 자체를 얻는 것을 원했다.

그를 마음대로 부릴 수 있으면 권속까지 얻게 되는 셈.

'문제는 녀석을 길들일 수가 있 냐는 건데...

절대 봉인의 구슬을 잘만 활용하 면 가능할 것도 같았다.

안 되면 나중에 죽이면 그만이다.

절대 봉인의 구슬은 마침 한 자 리가 비어 있었다.

저번에 누군지도 기억 안 나는 자를 죽이고 난 후 절대 봉인 구슬 한 개의 자리가 공석이었다.

그 빈자리를 메꿔 줄 강력한 존재가 바로 피의 군주였다.

본인의 동의없이 마음대로 입주 시키는 것이기는 하나, 피의 군주 가 의외로 마음에 들어 할 수도 있다.

"편하게 쉬고 있어."

"잠...깐..."

피의 군주가 갈라진 목소리로 외 칠 때 절대 봉인의 구슬에서 눈 부 신 빛이 뿜어져 나왔다.

빛무리는 마르크스의 몸을 덮었고, 그렇게 성공적으로 봉인을 완 료했다.

"넌 내 거야!"

구슬을 주먹으로 움켜쥔 유준은 의례적으로 해야 하는 대사도 생략 하지 않았다.

한순간에 평화가 찾아왔다.

숨 막힐 듯한 정적.

사실 그동안 요란하게 들리던 폭발음도 유준이 마르크스의 마법을 막아 내면서 생긴 것이었다.

온갖 소음은 둘이서 다 내고 있던 것이다.

머리를 긁적인 유준은 검을 집어 넣고 뒤돌아섰다.

이제 천공의 감옥에서의 볼일은 끝이 났다.

'피의 군주를 죽이면 경험치가 상당하겠지.'

하지만 그건 앞을 내다보지 못하

는 자들이나 할 짓이다.

피의 군주의 권속들.

정말 녀석의 말대로 권속들이 피 의 군주보다 강하거나, 동급 정도 의 수준만 되더라도 막강한 전력을 얻게 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피의 군주를 정상적으로 테 이밍했을 때의 얘기다.

자존심이 강하고 오랜 세월을 살 아온 그를 길들이는 것은 매우 어 려울 것이다.

발록이 뒤통수를 치지 않게 하는 것보다도 더.

어쩌다 보니까 약속한 동기화 구

슬을 받기도 전에 피의 군주를 제 압해 버렸다.

그러나 그는 보상을 못 받을 걱 정은 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제압한 것이다.

죽인 게 아니라.

여차하면, 그러니까 동기화 구슬을 교도관이 안 주거나 하면 피의 군주를 다시 소환해 버리면 그만이다.

그는 멀찍이 떨어져 있는 교도관들을 향해 날아갔다.

교도관들이 흠칫 놀라며 거리를 벌리려 했지만, 피의 군주가 완전

히 사라진 것을 알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천공의 감옥의 관리자인 소장이 앞으로 나왔다.

"피의 군주를 처치한 건가?"

"보면 알 텐데."

"녀석의 시체는 어디에 있지?"

"흔적도없이 사라졌어."

"..."

유준은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다.

피의 군주가 살아있고 녀석을 봉 인해 둔 상태라고 말해서 좋을 게 없었다.

"난 약속을 지켰고 이젠 그쪽이 지킬 차례야. 우선은 동기화 구슬 부터. 그 교도관 어디 있어?"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10권 12화

231화

동기화 구슬을 집에 뒀다고 한 교도관.

그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물건."

"여, 여기 있다."

유준이 매의 눈으로 구슬을 살폈다.

동기화 구슬이 맞았다.

아이템 정보까지 확인한 그가 웃

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다음."

라일론에게 받기로 했던 특성 보 석도 잊지 않았다.

무려 중등급의 보석이었으니까.

소장 라일론이 특성 보석을 건네 줬다.

"땡큐. 다음에 필요하면 또 말 해."

"...그럴 일은 없을 것 같군."

" 진짜로?"

"그래."

그의 말에 괜스레 피의 군주의 봉인을 풀고 싶어졌다.

하지만 참았다.

나중이라면 몰라도 지금은 아니었다.

유준은 그대로 일행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그래서? 그 후엔 어떻게 됐단 말이냐."

"별거 없어. 그냥 그 사람 혼자 서 다 박살 냈지. 거의 만 명이 넘는 적을 혼자서 도륙했다시피 했으니까."

"오오, 주인님이 활약했던 곳이 신들의 전쟁이라고 했나? 그렇다면 주인님도 신이었겠군?"

"어... 응. 맞아."

"음음. 역시 주인님은 신이었구 나."

파라네트와 도지윤이 그런 식으로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둘이 많이 친해졌네요?"

유준이 도지윤에게 물었다.

그녀가 화들짝 놀라다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얘가 생긴 거랑 다르게은근히

유쾌하더라고요."

도지윤의 말에 유준이 웃으며 고 개를 끄덕였다.

파라네트가 쓸데없이유쾌하기는 하다.

"어? 주인님! 그게 정말 사실입니까?"

"뭐가?"

"신이었다면서요! 주인님이."

유준이 황당한 얼굴로 도지윤을 바라봤다.

그녀가 고개를 돌리며 그의 시선

을 피했다.

시선을 거두지 않고 계속해서 노 려보자, 도지윤이 어쩔 수없이 입을 우물거리듯 말을 꺼냈다.

"신이긴... 했잖아요? 전쟁의 신이라든지, 과금의 신이라든지 그 런 식으로요...

"죄송해요. 제가 잘못했어요."

저 부끄러운 별명들은 그가 원해서 생긴 것이 아니었다.

과장하며 떠들기를 좋아하는 홍 대패플조솁의 짓이었지.

도지윤도 그걸 알기에 입을 꾹 다물었다.

파라네트는 다르게 받아들였다.

"전쟁의 신?! 주인님! 옛날이야 기 좀 들려주시면 안 됩니까? 궁금 합니다!"

"싫어."

그가 단칼에 거절했다.

실제도 아니고 게임에서 일어난 일들이다.

심지어 그 게임을 같이했던 도지 윤이 바로 옆에 있기에 더 얘기하기가 곤란했다.

"천계로 갑시다."

"...다 끝난 거예요?"

" 예."

"피의 군주는요?"

"잡았습니다."

"죽인 게 아니라...?"

"교도관들한테는 죽였다고 해 놨어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안 죽인 거예요, 그럼?"

"봉인 구슬에 가둬 놨습니다."

"나중에 교도관들이 알면 어쩌려 고요?"

"다른 뱀파이어라고 하면 되죠. 그리고 제가 바보도 아니고 천공의 감옥에서 대놓고 피의 군주를 풀어 놓겠습니까?"

"하긴, 들키지만 않으면 상관없겠네요."

"천계는 어떻게 갑니까, 근데?"

"가장 쉬운 방법으로는 소장한테 부탁하는 거예요. 다른 방법도 있 긴 한데, 유준 씨가 귀찮아할 게 뻔해서 추천하고 싶지 않네요."

"아.... 다시 돌아가야겠네요."

진작 천계 가는 방법을 물어볼 걸 그랬다.

괜히 헛걸음한 셈이었다.

유준은 일행과 함께 교도관들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전투의 여파가 큰 탓에, 교도관 들은 뒤처리를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는 소장의 위치를 감각으로 감 지하고 곧장 찾아갔다.

"또 무슨 일이지?"

살짝 지쳐 보이는 듯한 라일론의 모습에 유준은 본론부터 말했다.

"천계로 가고 싶어."

"왜? 힘들어?"

"어려운 부탁은 아니군. 워프게 이트를 바로 열어 주겠다."

라일론이유준을 힐끗 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천계는 무슨 이유로 가 려는 거지?"

"알려 줘야 해?"

"궁금해서 묻는 것일 뿐이다. 굳 이 알려 줄 필요는 없지."

"거기에 동료가 있어서. 위기에 처했다길래 도와주러 가는 거야."

"남을 돕는 성격으로 보이진 않았는데."

"동료는 남이 아니니까."

"...호. 의외군."

"날 어떻게 본 거야."

"이기적인 인간."

놀라운 관찰력이었다.

천계에 도착한 유준은 고개를 갸 웃했다.

대기오염 하나 없는 깨끗한 공기 와 보기 좋은 자연경관.

워프게이트로 오기는 했으나, 천계로 갈 때는 정해진 장소에 갈 수는 없다고 한다.

어디에 워프될지는 알 수 없다는 것.

즉, 랜덤이었다.

"천계가 의외로 별건 없네요?"

"그러게요."

"지윤 씨도 여긴 처음 온 겁니까?"

"네. 조솁한테 얘기만들었지, 직 접 온 건 처음이에요."

천계라고해서 기대했는데 막상 와 보니 대륙과 큰 차이가 없었다.

다른 것이 있다면 주변에서 느껴 지는 힘의 기운 정도가 있다.

천족들은 다른 종족들보다 한 차원 위에 있다고 할 정도로 무력이 뛰어나다.

비교적 강하다고 알려진 마족보 다도 월등한 종족.

그게 바로 천족이었다.

유준의 기감에 그런 천족들의 기 척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잡혔다.

'플레이어들 수준만 보면 딴 세 상이네, 여기는.'

천계와 비교하면 대륙은 어린애 들 놀이터 수준이었다.

"파라네트."

" 예."

"넌 들어가 있어."

"왜요?"

"언데드가 여길 돌아다녀서 좋을 게 없어. 오히려 너 죽이겠다고 달

려드는 놈들만 있을 것 같은데."

"알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천족의 마력은 언데 드에겐 아주 치명적이었다.

파라네트가 강제로 역소환되면 막상 필요할 때 써먹을 수가 없다.

지금 당장은 들어가 있는게 나았다.

"도지윤 씨. 전에 강경파와 온건 파가 있다고 했는데, 그럼 천계는 왕국이 하나만 있는 겁니까?"

"왕국...이라기엔 애매하고 천 계는 하나의 나라라고 보면 돼요. 지금은 강경파인 세력과 온건파인

세력이 나뉘어서 전쟁을 하고 있는 거고요."

"이렇게 넓은데, 하나의 나라라고요?"

"네."

환계랑 비슷하다고 보면 되는 건가.

정신 공격에 방비가 되어있지 않으면 천계보다도 위험한 곳이 환계였다.

환상 마법을 쓰는 자들로 가득했으니 말이다.

반대로 천계는 일개 플레이어들 의 무력이 매우 높은 편이었다.

그게 차이점이라고 볼 수 있었다.

'종족값을 매겨 보면 천족이 가 장 위에 있겠네.'

"조솁과 조선제일검을 만나려면 어디로 가야 하죠?"

"지금 그 둘이 온건파 쪽에 잡혀 있으니까 음, 여길 중심으로 잡으면 동쪽으로 가면 되겠네요."

"온건파와 강경파가 멀리 떨어져 있어요?"

"당연하죠. 둘이 전쟁 중인데. 그

래도 아주 멀리까지는 아닐 거예요."

"조솁이랑 조선제일검 아저씨를 구하면 한쪽을 완전히 적으로 돌리는 거나 마찬가지겠네요?"

"아무래도 그렇겠죠? 포로 둘을 채 가는 것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 둘이 아무래 도 천계에서 보기 힘든 인간이다 보니까...

"응? 인간인 게 중요해요?"

"둘은 본보기예요. 사실 그 둘뿐 만 아니라 다른 종족의 포로들도 있어요. 강경파 쪽에 서면 어떤 종

족이든지 가만두지 않겠다! 뭐, 이런 식의 경고인 거죠. 그리고 본보 기가 누군가에게 구출되면 당연히 온건파 쪽은 어떤 방식으로든 직접 나설 테고."

"빨리 구하러 가야겠습니다."

"그 의견엔 대찬성이에요. 조선 제일검 아저씨가 메신저로 얼마나 귀찮게 구는지...

"길드는 내버려 둬도 괜찮은 겁니까?"

"아, 신전 길드요?"

" 예."

"거긴 어차피 알아서 잘 굴러가

요. 제가 꼭 필요할까 싶을 정도 로."

"...길드 덕분에 돈을 쓸어 담 고 계실 거 같은데?"

"제가 사적으로 쓸 수 있는 포인트는 생각보다 얼마 안 돼요. 그래 서 유준 씨한테 경매장 입찰 경쟁에서 밀렸었구...

"아, 그땐 고마웠습니다. 베히모 스의 피 효과가 아주 기가 막히던 데요."

"어우, 얄미워."

"둘을 구하면 길드에 해가 안 가겠어요?"

"글쎄요. 굳이 대륙까지 내려와 서 제 길드에 훼방을 놓을 것 같지는 않은데...

"혹시 모르니까 얼굴은 가리고 다녀요."

"알겠어요. 조심해서 나쁠 건 없죠. 유준 씨는요?"

"저야 뭐, 가려도 다 알아보던데요."

유준이 하프를 슬쩍 보며 웃었다.

하프가 그를 따라 마주 웃었다.

"헤헤. 아빠 왜요?"

"그냥 귀여워서 봤어."

"아빠도 귀여워요!"

"으, 응? 내가?"

"네!"

"...고맙다."

하프한테 귀엽다는 소리를들을 줄은 몰랐는데.

살짝 부끄러워졌다.

"유준! 나는 어떡해?"

마누엘라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넌 뭐?"

"나도 얼굴 가려야 하지 않을까?"

"네가 왜 가려?"

"나도 대륙인들 사이에서 좀 유 명해지기도 했고.... 혹시 나중에 위험할 수도 있잖아."

약간 서운한 기색을 보이는 마누 엘라.

유준이 몇 마디 덧붙였다.

"넌 나랑 계속 같이 다닐 거잖아. 어차피 내가 얼굴 까고 다니면 너도 같이 공격받는 건데 정체를 숨기는게 의미가 있을까?"

"그, 그렇지? 알았어!"

뭘 알았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마누엘라가 왠지 모르게 기뻐 보여서 구태여 묻지는 않기로 했다.

조솁과 조선제일검을 구하기 위 해 동쪽으로 가는 길.

유준은 부드러운 육포를 뜯어 먹으면서 걷다가 문득 궁금한 것이 생겼다.

"천계에도 마신 추종자가 있을까 요?"

"마신 추종자는 종족 안 가리고

다 있지 않았어요?"

"그렇긴 한데, 천족까지 마신 추종자가 있으면 뭔가 최후의 보루가 무너지는 것 같잖아요."

"...무슨 느낌인지는 알겠는데. 묘한 비유네요. 그런데 천족은 절 대 착한 종족이 아니에요."

"그건 압니다."

"어떤 면에선 마족보다도 더 악 랄하다고도 해요. 직접 겪어 본 적은 없지만."

"어떻게 악랄한데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는 일말의 자비가 없는 거? 다르게 표

현하면 융통성이 없는 거죠."

"그게 악랄하다고 할 만한 수준 인가요?"

"그 천족이 마신 추종자라고 생각해 보세요. 굳이 세뇌를 당하지 않았어도 웬만해서는 본인이 옳다 고 생각할 거 아니에요. 마신 추종자들이 어떤 만행을 저지르고 다니는지는 아시죠? 살아 있는 생물, 그것도 플레이어를 산 채로 제물로 바치기도 하면서 온갖 비윤리적인 행위를 다 하고 다니잖아요."

"맞네요. 천족이 마신 추종자일 때 그만큼 끔찍한 게 없겠어요."

"그리고 그 천족의 고집 때문에 이번 전쟁이 이렇게 길게 유지되는 것이기도 해요. 서로 뜻을 절대로 안 굽혀요. 무슨 일이 있어도. 설득 도 잘 안 통하고요. 가족끼리도 뜻 이 안 맞으면 칼부림이 일어난다고 들었어요."

"누구한테 들었는데요?"

"조솁요."

"상상을 초월하네요."

"이런 세상에서 제정신인 플레이어가 몇이나 되겠어요. 하물며 생 명을 수십, 수백을 넘게 죽이는데 멀쩡하면 그게 이상하죠."

"도지윤 씨도 정신이상자십니까?"

"...정정할게요. 모두가 다 그렇지는 않겠죠. 일단 전 멀쩡한 거 같아요."

"원래 자기 객관화가 제일 어렵 다던데...

"지금 저 디스하시는 거예요?"

"그럴 리가요. 그런데 도지윤 씨."

유준의 표정이 굳어졌다.

"무슨 일이에요?"

"천공의 감옥에 이벤트가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아. 그거요."

"어떻게 된 거죠? 제가 갔을 땐 아무것도 안 하고 있던데."

"죄송해요. 사실은 그 이벤트가 없었던 건 아닌데 유준 씨에게 말 했을 때는 이미 종료된 뒤였어요."

"아니, 왜 거짓말을.

"안 그러면 유준 씨가 안 올까봐요."

놀랍게도 유준을 잘 알고 있는

그녀였다. 다년간 그와 같이 게임

을 플레이한 경험이 있기에 나온 행동이었을 터.

"진짜 미안해요."

도지윤의 사과에 유준이 한숨을 내쉬었다.

"괜찮아요. 동료를 구하는 일인 데 그 정도는 속일 수 있죠. 실제 로 이벤트라는 말이 없었으면 안 왔을 수도 있었어요. 도지윤 씨 덕 분에 천공의 감옥에서 보상을 얻기 도 했고."

"역시 마음이 넓....

"아이템으로 갚아요."

"그냥 넘어가려고 했어요? 어림 도 없지."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10권 13화

232화

유준과 일행은 비행 마법을 사용 해 빠르게 이동했다.

최대한의 속력은 아니고 도지윤 의 속도에 맞춰 줬다.

'그동안 특성 보석이나 사용할까.'

이번에 피의 군주를 제압하고 얻은 특성 보석과 동기화 구슬.

사실 더 기대되는 건 동기화 구슬로 인한 전송 아이템이지만, 아

직 동기화가 끝나지 않은 상태였다.

동기화가 완전히 끝이 날 때까지는 무한정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먼저 특성 보석에 손을 대기로 했다.

'지금 내 특성이...

마법 이해(SS)

쾌검 (SSS)

결 찾기 (S+)

이렇게 세 개의 특성이 있다.

나머지 특성에는 전부 보석이 장 착되어 있었기에 그것들을 예외로 치고 남은 것이 이렇게 세 가지였다.

'최상급이나 상급 정도만 됐어도 아꼈다가 더 좋은 특성을 얻고 썼을 텐데.'

잠깐만.

그러고 보니 환왕의 세계를 클리 어하고 나서 장시간 숙성된 선단을 얻었었지.

그때 당시에 선단을 섭취하지 않은 이유는 행운을 더 높이고서 먹 기 위함이었다.

여신의 가호(EX++) 스킬을 가진 마누엘라가 곁에 없었던 탓에 선단을 곧바로 먹지 않았던 것.

그리고 지금 그녀는 그의 곁에 있었다.

"마누엘라."

"응?"

"네가 필요해."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꺼낸 유준의 말에 마누엘라가 잠시 생각이 많아졌다.

그러나 그녀는 이제 속지 않는다.

유준이 별 의도없이 종종 그런 말을 꺼낸다는 걸 이제는 알았다.

"뭔데?"

"여신의 가호. 그거 써 줘."

"지금?"

"응. 지금."

"일단 알았어."

마누엘라는 이유도 묻지 않고 여 신의 가호부터 사용했다.

[여신의 가호를 받았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40% 상승합니다!]

[공격력과 방어력이 30% 상승합니다!]

[신체에 걸린 모든 해로운 효과 가 제거됩니다.]

[모든 상처가 회복됩니다.]

[행운이 증가합니다.]

이거다.

이걸 기다렸다.

다른 효과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행운이 증가했다는 메시지에 집 증했다.

"고마워."

"행운이 필요했던 거야?"

"역시 척하면 척이네."

행운 가호까지 받았다.

이제 더 이상 머뭇거릴 이유가 없었다.

인벤토리에서 장시간 숙성된 선단을 꺼냈다.

주변을 둘러봤다.

부정을 탈 요소는 모조리 배제되어 있다.

유준은 안심하고 장시간 숙성된 선단을 삼켰다.

꿀꺽-

선단은 삼키는 순간 녹듯이 사라 졌다.

['장시간 숙성된 선단'을 복용했습니다!]

[특성을 무작위로 한 개 획득합니다.]

어떤 특성을 얻을 수 있을까. 사실 너무 큰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았다.

선단으로 얻을 수 있는 특성은 말 그대로 무작위.

막말로 D등급의 특성이 나올 수 도 있다.

그러기엔 자신의 행운이 너무 높 긴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었다.

그때 홀로그램 창이 갱신되었다.

['치유의 손길(SSS)' 특성을 획득 했습니다.]

"오?"

이름만 봐서는 전투와 관련된 특 성은 아닌 것 같았다.

설명을 읽어 본 유준이 침음을 삼켰다.

"아무리 봐도 스킬 같은데? 이게 왜 특성으로 분류된 거지?"

손에 닿기만 해도 저절로 치유하는, 스킬이라고 해도 손색없는 능력이었다.

차이점이 있다면, 치유의 손길의 경우 마력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

유준이 손을 들었다.

'가만히 있기만 해도 치유 효과 가 손에 담겨 있다는 거지?'

마력이 일절 개입되지 않고 치유 가 된다는게 말이 되나?

솔직히 안 믿겼다.

그는 팔 보호구의 틈 사이로 검을 찔러 넣었다.

옆에서 같이 날며 지켜보고 있던 마누엘라가 눈을 휘둥그레 떴지만, 유준은 개의치 않았다.

'뭐야.'

손에 났던 상처가 원래부터 없었 던 것처럼 사라졌다.

'남을 치료할 수도 있나?'

유준이 황급히 주위를 둘러봤다.

마누엘라와 시선이 마주친 그가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질색했다.

"싫어! 안 돼!"

"내가 뭘 할 줄 알고?"

"너 그 검으로 나 찌르려는 거잖아."

"...아니야. 내가 너한테 그런 짓을 어떻게 해."

마누엘라의 눈치가 최고점에 다 다른 듯하다.

그녀에게 사용하는 건 포기했다.

어차피 실험할 생명체는 더 있었다.

유준은 절대 봉인의 구슬을 꺼냈다.

지면이 아닌, 높은 상공에서 발 록을 꺼내는 거라 솔직히 불안한 감이 없지는 않았다.

그래서 대비는 확실히 했다.

"다들 잠깐만 멈춰봐요."

"왜요?"

도지윤이 물었다.

"별건 아니고 3분 정도만 쉬었다

가 갈게요. 할 게 있어서요."

"그래요."

그는 공간 장악 마법을 사용한 후 바로 발록의 봉인을 풀었다.

일행이 놀라는 순간, 유준은 다 짜고짜 검으로 발록의 복부를 찔렀다.

푹!

"커헉!"

고통스러운 일격을 넣지는 않았다.

긴 시간 동안 절대 봉인의 구슬에서 끔찍한 시간을 보내온 발록에

게 그건 너무 미안한 짓이었다.

"가, 갑자기 무슨 짓이냐."

공간 장악에 의해 몸이 포박된 발록은 발버둥조차 칠 수 없었다.

유준은 녀석의 상처 난 부위에 손을 가져다 댔다.

갑옷의 팔 보호대와 맞닿는 것과 다름없지만, 이것 또한 시험해 보 고 싶었다.

'맨손으로 만져야만 치유되면 그 다지 쓸모가 없을 수도 있겠는데.'

다행히 그건 아닌 모양이다.

발록의 상처가 눈에 띄게 빠른

속도로 회복된 것이다.

사실 손을 댄 순간부터 완벽하게 상처가 재생되기까지 10초도 걸리 지 않았다.

단,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 된다.

발록의 기본 신체 재생력이 월등 하다는 점 때문이었다.

'장비를 벗지 않아도 효과는 적 용되는 것 같네.'

유준은 그 후로도 여러 가지 실 험을 했다.

그렇게 알아낸 점에 대해 대충 나열하자면,

1. 팔이나 다리 다른 신체 부위 로는 치유의 손길 효과가 먹히지 않고, 오로지 손으로 접촉해야만 효과가 있었다.

2. 장비를 착용하고 있어도 치유 의 손길 효과가 온전히 적용되었다.

3. 치유의 손길 효과가 예상했던 것 이상이다.

'대박인데.'

마력이나 어떤 기운이 있는 건 아닌데, 그냥 그의 손이 닿는 것만

으로 중상급 이상의 포션을 섭취하는 것보다 더한 치유, 재생 효과를 이끌어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지 원리를 도 통 모르겠다.

천재 특성이 있어서 알 것도 같았는데, 감도 안 잡혔다.

'하긴 원리가 중요하냐, 결과가 더 중요하지.'

치유의 손길이 뛰어난 것에는 역 시 천재 특성의 영향이 없다고 할 수 없었다.

거기다 여러 칭호들의 스킬, 특 성 효과를 증폭시켜 주는 버프들.

그것들이 다 더해져 지금의 치유 의 손길이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었다.

"어때?"

"괘, 괜찮아졌다."

발록이 배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또 확인해 보고 싶은 게 있어."

"...또 날 괴롭히려는 것인가?"

녀석이 경기를 일으켰다.

"나 지금 많이 피곤하다. 하더라도 나중에 해 줬으면 좋겠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데, 쉬지 않고 해야지."

"내가 쉬고 싶다니까!"

"네가 그럴 입장이야?"

세상을 파탄으로 몰아넣으려는 마신 추종자들에 의해 소환된 발록.

녀석은 절대 선량한 존재가 아니었다.

"내가 네 처지까지 생각해 주면서 생체 실험.... 아니, 말이 헛나 왔네. 응. 하여튼. 버텨."

유준이 검을 들었다.

그가 확인하려는 건, 혼돈의 능력까지 무시할 수 있는가였다.

상처의 재생을 완벽하게 막아 내

는 혼돈의 역할을 과연 봉쇄시킬 수 있을 것인가.

내심 안 될 것 같기는 했으나, 시도는 해 보기로 했다.

검에 혼돈을 담고 발록의 피부를 살짝 찔렀다.

발록을 배려해 준 것이다.

그 후 핏방울이 올라오는 발록의 피부에 손을 갖다 댔다.

"오.....?"

더디지만, 착실히 상처가 재생되 기 시작했다.

다만 치유의 손길로 인한 치유라

기보다는 혼돈에 담긴 효능을 지우는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이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다 유준은 무언가가 퍼뜩 떠 올랐다.

발상의 전환.

손에 혼돈을 담았다.

이렇게 되면 치유의 손길과 혼돈 이 나란히 있는 상태.

유준은 손을 쭉 뻗었다.

그의 손에 닿은 발록의 가슴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뭐야..."

"끄아아아악!"

황급히 손을 거둬들였다.

그러자 흐물흐물 녹아내리던 살 이 다시 굳었다.

좀만 더 내밀었어도 발록의 심장을 녹였을 것이다.

유준이 식겁했으나, 더 식겁한 건 발록이었다.

"내게 무슨 짓을 한 거냐!"

"그럴 의도가 아니었어. 미안."

손을 내려다보던 유준이 혼돈을 잠재웠다.

"...그나저나 이거 공격 스킬로 도 쓸 수 있는 거였어?"

애초에 스킬도 아니긴 했다.

그냥 치유 효과가 손에 담기게 하는 특성일 뿐이지.

그런데 혼돈과 섞이니 발록의 몸을 단숨에 녹여 버리는 광경을 연 출했다.

"거참...

이건 혼돈이 이상한 건지, 치유 의 손길이 이상한 건지 모를 지경 이었다.

"아아악! 빠, 빨리! 빨리 치료를...."

"뭐래. 볼일 다 봤으니까 이제 들어가 있어."

유준은 발록을 절대 봉인의 구슬에 집어넣었다.

녀석이 말을 잘 듣도록 길들이는 것이 그의 최종 목표인 만큼, 어설 프게 대해선 안 된다.

지금은 엄격하게, 최대한 채찍을 휘둘러야 할 때였다.

물론 그는 발록을 조련하는 방법 따위는 몰랐다.

"다시 출발하죠."

"방금 뭐 한 거야...?"

"능력 시험."

"나한테 저걸 하려고 했었던 거지?"

"또."

" 으응?"

"또 오해한다. 내가 방금 쓴 건 치유 능력이야. 스킬도 아니고 특 성이라서 너한테 도움이 되면 도움 됐지 해가 될 일은 없어."

"근데 발록이 엄청 아파하지 않았어?"

"걔가 엄살이 좀 심해."

유준이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치유의 손길은 더 연구할 가치가 있었다.

치유뿐만 아니라, 공격으로서도 강력한 면모를 보여 준다면 더할 나위 없다.

'안 그래도 치유 스킬 한 개쯤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잘 나와 줬네. 스킬이 아니라 특성인 게 좀 그렇지만...

일단 성능은 좋았다.

거기다 어떤 능력과 결합해서 사

용하느냐에 따라 효과가 대폭 증가 할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유준은 본격적으로 비행을 시작 했다.

도지윤이 마력이 부족해 지치는 것 같으면 마력을 나눠 주었고, 또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는 것 같으면 치유의 손길로 머리를 매만져 피로 가 말끔하게 날아가도록 해 주었다.

"신개념 고문인가요, 이거...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볼이 홀쭉 해진 도지윤이 말했다.

"고문이라뇨. 도태되지 않도록 도와주는 겁니다."

실제로 유준의 아낌없는지원 덕 분에 목적지까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제 곧 쉴 수 있을 겁니다. 조 금만 더 힘내세요."

"유준 씨는 소풍이라도 가는 얼 굴인데 왜 저만 극한 훈련을 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죠?"

"기분 탓입니다. 도지윤 씨는 아 주 잘 해내고 계세요."

"네.네. 그렇게 생각할게요. 저 도 그게 마음이 편할 거 같아요."

목적지에 도착한 유준은 곧바로 특성 보석(중)을 치유의 손길에 사용했다.

쾌검 (SSS) 과 치유의 손길 (SSS). 두 개의 특성을 두고 고민했으나, 쭉 생각해 본 결과 치유의 손길이 더 낫겠다는 판단을 했다.

치유의 손길이 혼돈과 결합했을 때의 그 광경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었다.

발록의 가슴팍을 녹여 버렸던 충격적인 장면이 그의 선택에 결정적 인 기여를 한 셈이었다.

유준이 특성 보석을 꺼냈다.

[특성 보석(중)을 사용했습니다!]

[치유의 손길(SSS) → 치유의 손 길 (SSS+)]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10권 14화

233화

쾅! 콰앙! 쾅!

철제 벽을 몸으로들이받던 홍대 패플조솁, 김요한이미간을 찌푸렸다.

"꼼짝도 안 하네요."

"그러게 말하지 않았는가. 마력 과 스킬을 쓸 수 없는지금의 몸으 론 탈출할 수 없을 걸세."

"그래도 계속 이렇게 갇혀 있을 수는 없잖아요. 놈들이 언제 우릴

죽이러 올지 모르는데."

"시간이 다 해결해 주겠지...

"속 편한 소리를 잘도 지껄이시 네요."

"자네야말로 그만 찡찡대고 여기 옆에 앉아 궁리나 하는 건 어떻겠나?"

"찡찡? 찡찡? 아오, 이 아저씨를 확... 어떻게 해 버릴 수도 없고."

"그러게 육체 단련 좀 해 두지 그랬나."

"또 이상한 소리 한다. 누가 무한의 탑 와서 육체를 단련해요? 능력치 올리면 알아서 강해지는데."

"에잉, 쯧쯧. 젊은 친구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구만."

조선제일검, 독고민수가 혀를 찼다.

"운동으로 근력이나 근육을 늘린 다고해서 능력치가 높아지지는 않지. 그러나 힘은 세지고 몸의 변화는 확실히 생긴다네. 스킬이나 특 성도 마찬가지야. 심상이든 실전으로든 단련을 하면 시스템상의 변화는 없더라도 강해지는 것이 서서히 느껴질 정도지. 그리고 이러한 특 징은 인간한테서만 나타난다네."

"또 그 얘기다. 지겨워 죽겠네.

아, 그러니까 도대체 그 이유가 뭔 데요?"

"우리는 애초에 플레이어 능력을 갖고 태어난 게 아니야. 이곳으로 끌려오고 나서부터 부여받은 거지. 이제 5년일세. 다른 이종족 플레이어들보다도 레벨이 오르는 속도가 빠르며 레벨의 한계선도 금방 돌파 하는 인간에게 또 특별한 점이 있다고해서 이상할 게 있는가?"

"제게는 도를 믿으라는 것과 크 게 다를 바가 없군요."

"왜 안 믿는게야. 그렇게 설명을 해 줬는데."

"직접 해 봤는데 달라진 게 없다 고요. 아오."

김요한이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툭툭쳤다.

"에잉, 그렇게 쳐서야 쌓인 울화 가 날아가겠는가?"

독고민수가 다가가 간결하게 팔을 뻗었다.

콰아앙!

"커헉!"

김요한이 벽에 크게 부딪치며 차 가운 흙바닥을 굴렀다.

"무슨 짓이야, 영감탱이!"

"말버릇 좀 보게? 나 아직 40대 일세. 여기 이종족들의 평균 나이를 알면서도 날 노인네 취급하는 건가?"

"근데 어떻게 때린 거예요? 저주 때문에 능력치도 쪼렙 수준이잖아 요, 지금."

"내가 말하지 않았나. 단련한 육체와 단련하지 않은 육체의 차이는 무척 크다고. 내 체격을 보게. 어디 자네 같은 비실이보다 힘이 약할 수가 있겠는가?"

"그럼 아저씨가 진작 벽을 두드 렸어야지. 내가 지금껏 한 건 뭐가

되는 거예요."

"운 좋게 벽을 뚫어서 나가면? 그때 포위되면 어쩔 셈인가?"

"번뜩이는 기개와 재치로 위기 상황들을 타다닥, 해결해 버리면 끝!"

"자네가 그 모양이라서 안 나가는 걸세. 자네가 아닌 나 혼자라면 몰라도, 걸리적거리는 자네까지 챙 기면서 탈출을 감행하기엔 위험부 담이 크니까."

"절 뭘로 보시는 거예요. 걸리적이라니."

"특전을 얻고 운 좋게 강해진 애송이?"

"...요즘따라 말에 필터가 없으 시네."

"자네가 하도 시끄러워서."

"좋아요. 아저씨 말대로 가만히 앉아서 생각 좀 한다고 쳐요. 그럼 누가 우리를 구하러 올 수는 있는 겁니까?"

"도지윤에게 계속 말하고는 있네."

"그 사람 혼자서? 길드원들 다 끌고 온대요?"

"그럴 리가."

"그럼 뭔 소용이에요. 혼자 오면 우리랑 똑같이 포로 신세가 될 텐데."

김요한의 말에 독고민수가 진득 한 미소를 지었다.

"혼자는 아닐세."

"응?"

"둘이야."

"...그거 때문에 그렇게 징그럽게 웃은 거예요? 아니, 하나든 둘 이든 무슨 차이가 있어요? 여길 어 떻게 뚫고 우릴 구하러 온답니까?"

"자네. 무과금즐겜러는 기억나는

가?"

"두말할 필요가 있나요. 신들의 전쟁 유저가 무과금즐겜러를 모르 면 간첩이...응? 설마 그 사람이 온다고요?"

"그래."

"언제 알았어요?"

"방금 알았네."

"보게. 앉아서 생각을 정리하니까 결국 좋은 일이 생기지 않았나."

"그게 앉아 있던 덕분은 아닌 것 같긴 한데... 뭐, 소란 안 피우길

잘했네요."

"어른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 이 생긴다는 말을 못 들었는가? 흠 흠."

독고민수의 어깨가 높아졌다.

"이번엔 인정할 수밖에 없겠네요. 그런데요...

"또 뭔가."

"무과금즐겜러 그 사람이 강하다는 보장이 있어요?"

"당연히 강하지 않겠는가. 우리 같은 소과금러들도 말도 안 되는 특전을 받았는데."

"소과금러라니요? 저 천만 원도 넘게 질렀는데요."

"무과금즐겜러, 그 양반과 비교 하면 발톱의 때만도 못한 액수가 아닌가?"

"...그건 그래요."

마지막까지 남아 플레이했던 유저들은 모두 다른 플레이어들과는 차별되는 특혜를 받았다.

이미 신들의 전쟁을 플레이했던 경험만으로도 우위에 있다고 볼 수 있는데, 거기에 특전까지.

독고민수와 김요한은 서로를 대 조하며 과금했던 액수에 따라 차별

되는 특전을 받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다면 수십억의 현금을 쓴 것으로 알려진 무과금즐겜러는 그들 보다 더한 특전을 받았을 터.

과금 액수와 게임에 쏟아부은 시간에 대해선 그와 비교할 자가 없었다.

"지난 5년간 그런데 소식 한번 없었잖아요? 솔직히 죽었다고 생각 했거든요, 저는? 그래서 지금 구출 하러 온다는게 잘 안 믿겨요."

"뭐 꼭 5년 차 플레이어라는 보 장은 없지. 막말로 1년 차 플레이어일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예? 그게 더 이상한데요? 1년 차 플레이어면 특전을 받은 게 아니잖아요. 남들, 아니 그러니까 우 리보다 최소 4년을 늦게 시작하는 건데."

그의 의구심은 타당한 것이었다.

마지막까지 남아 플레이했던 유저들은 전부 5년 차 플레이어였다.

연차가 늦어질수록 남들보다 뒤 처지는 건 당연한 이치.

만약 무과금즐겜러가 1년 차 플레이어라면 그건 절대 혜택을 받은 거라고 할 수 없었다.

"그게 아니면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조용히 지내 왔겠지."

"우리가 그렇게 수소문을 하고 찾아다녔는데 안 들키고요? 뾰족한 송곳은 주머니를 뚫고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 1년 차인 거겠지. 그를 마 지막으로 찾아다닌 게 벌써 1년 전 이 아니었던가? 그럼 발견 못 할 만하겠군."

"에이. 아무리 그래도 1년 차는 아니라니까."

"도지윤이 무과금즐겜러가 확실 하다고 했네."

"좋습니다. 누구 말이 맞나 보자고요."

콰앙! 쾅! 콰아앙!

"뭐, 뭐야?"

귓가를 강타하는 폭음에 김요한 이 화들짝 놀라며 몸을 움츠렸다.

바로 근처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아니었으나, 폭발 소리가 워낙 커 폭발로 인한 진동이 여기까지 여실 히 전해지는 듯했다.

"이거..."

"도지윤과 무과금즐겜러가 온 듯 하군."

"그 많은 천족들을 상대로지금

싸움을 건 겁니까, 설마?"

"그렇겠지?"

"미친 거 아니에요? 몰래 잠입해 도 성공할지 미지수인데, 그냥 정 면 돌파라니...

"그만큼 자신이 있는 걸세."

"왜 그리 태평해요?"

"잘 생각해 보게. 도지윤은 현명 한 플레이어야. 무과금즐겜러가 약 한 데다가 무모하기만 하면 안 말 렸겠나? 그리고 그랬으면 애초에 데려오질 않았을 걸세."

"음... 그럼 우린 어쩌죠?"

"나갈 준비를 하는게 좋겠지."

"진짜 천족들이 아이템 안 뺏어 간 게 천만다행이네요."

"우릴 얕본 게지."

"실제로 맥없이 당했잖아요."

"자네는 그렇지만, 나는 아니라네."

"핑계 오지시네요."

"핑계가 아닐세. 내가 자네보단 훨씬 강하지 않은가? 쥐뿔도 모르 면 그 입 좀 다물게."

독고민수가 오랜만에 성을 냈다.

김요한이 입을 삐죽였다.

"...할 말 없게 만드는데 일가 견이 있다니까."

폭음이 끊이지 않고 들려왔다.

둘은 준비를 끝마치고 구출하러 올 두 명의 플레이어를 기다렸으나,

"저 둘부터 챙겨!"

굳게 잠겨 있던 문이 벌컥 열리 며 천족 두 명이 등장하는 것이 아닌가.

무과금즐겜러와 도지윤을 기다리 고 있던 둘로선 황당하지 않을 수 가 없었다.

"이놈들 그냥 죽이면 안 됩니까?

이런 이종족들 챙겨서 무슨 이득을 얻자고...

"인간은 천계에서 보기 드문 종 족이야. 포로로서 가치가 낮지는 않아."

그렇게 떠든 두 명은 독고민수와 김요한의 팔을 억척스럽게 잡아끌었다.

"어어? 이거 어째요? 우리 기다 려야 되는데...

마력과 스킬을 봉인당한 그 둘은 천족의 힘을 당해 낼 수 없었다.

그들이 가는 대로 이끌려 다닐 수밖에.

그때였다.

푹! 푹!

독고민수와 김요한을 끌고 가던 천족 둘이 실 끊긴 인형처럼 털썩 쓰러졌다.

김요한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주 위를 두리번거리는 그 순간, 플레 이어 한 명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오랜만이네요."

유준이었다.

"어엉?"

"시, 신유준?"

독고민수와 김요한은 유준이 누 군지 이미 알고 있었다.

대륙에 그를 모르는 자가가. 있던

적어도 인간 중에는 없을다. 것이

최근 반년 사이에 그는 그 로 유명해져 있었다. 정도

"신유준이 왜 여기에...

김요한이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러나 그는 눈치가 빠른 인물이다.

이 상황이 의미하는 바를 단번에 알았다.

"설마... 무과금즐겜러?"

"맞습니다."

"당신이 무과금즐겜러였어요?"

" 예."

유준은 굳이 속일 생각을 하지 않고 사실대로 말했다.

어차피 도지윤에게도 알려진 것 이었으니 숨길 이유가 없었다.

"와 이거 진짜 충격인데."

"난 대충 짐작은 하고 있었네."

"또, 또. 이 아저씨 또 현자 흉내 내고 있는 것 봐. 그 컨셉 좀 그만 해요."

"진짜 알고 있었다니까."

"어떻게 알았는데요?"

"1년 차 플레이어인 동시에 인간 중 그 누구보다도 강하다는 소리를 듣는게 바로 신유준일세. 솔직히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도 말이 안 되는 일이었지."

"특전 때문에 가능했다고요?"

"그렇게 생각하네. 어떤가?"

독고민수가 유준에게 물어 왔다.

"제 생각을 묻는 겁니까?"

"그렇다네."

"어떻고 자시고 저는 이미 정체를 밝혔는데요."

"그게 아니라 지금 이 위기 상황에서 어떻게 벗어날지 물어본 거라네."

유준과 독고민수, 김요한을 포위 하는 천족들의 숫자가 점점 늘어나 고 있다.

다만, 섣불리 일정 거리 내로 접 근하지 못하는 이유는 이미 많은 수의 천족이유준의 검에 생을 마 감했기 때문이었다.

그가 센 것만 해도 얼추 삼십.

그 이후로는 세지도 못했다.

"도대체 어떤 짓을 하고 다녔길 래... 이렇게 몰려와요?"

유준이 짐짓 화난 듯한 말투로 물었다.

김요한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저희 둘 때문에 몰린 게 아닌 거 같은데요?"

"이럴 때가 아닙니다. 들키기 전에 빠져나가죠."

"이미 들킨 거 같은데..."

"탈출로는 미리 확보해 놨습니다."

"지윤 씨는요?"

"저 혼자 왔습니다. 도지윤 씨는 여기서 거리가 좀 있는 곳에 뒀으니 그리 위험하지는 않을 겁니다."

"잘한 선택이네요. 그런데 유준 씨. 조용히 잠입해서 올 수도 있던 거 아니에요?"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10권 15화

234화

당연할 수 있는 김요한의 물음에 유준이 고개를 저었다.

"들킬 확률이 높았습니다. 어중 간하게 숨어들어서 두 분을 구출하 려고 했으면 이곳을 벌집으로 만들었을 겁니다."

"엥? 그런가...?"

실은 핑계였다.

이 사달이 난 건 따로 이유가 있었다.

그가치유의 손길과 혼돈을 섞은 공격으로 외곽을 지키던 천족들을 처치하는 것까지는 문제가 없었다.

'이거 암살용으로 괜찮은데?'

그렇게 생각하며 점차 암살하는 숫자가 늘어나기 시작했고 그 수가 여덟이 넘어가자, 천족들이 그의 존재를 알아차리게 된 것.

새로운 능력을 얻고 사용해 보는 과정에 너무 심취한 것이었다.

본래였으면 두셋 정도만 죽이고 빠르게 안쪽으로 침투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다.

엄연하게 유준의 잘못이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그를 기 다리고 있던 둘에게 그 일련의 과 정들을 곧이곧대로 설명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여튼. 시간이 없습니다. 빨리 가죠. 파라네트."

그의 말에 언데드 해골 기사가 마법진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해골 기사라고 하기엔 어마어마 한 덩치를 지녔지만, 생김새는 확 실하게 해골 기사였다.

"...와. 실물로 볼 줄은 몰랐는데."

김요한은 신유준을 알고 있던 터

라 파라네트도 영상으로 본 적이 있었다.

소환수의 덩치가 점점 커지는게 신기했는데, 이렇게 눈앞에서 보니 생각한 것 이상으로 커서 위압감이 들었다.

"파라네트. 밖으로 나가 줘. 최대 한 멀리 나가는게 좋겠네."

"아빠!"

그때 하프가 짧은 팔로 유준의 어깨를 톡톡쳤다.

"응?"

"다른 포로들도 풀어주는게 어 떨까요?"

"왜? 구해 주고 싶어?"

"전부 풀어주면 천족들의 시선이 아빠한테 덜 갈 것 같아서요!"

"...어. 똑똑하네. 우리 하프."

순진한 눈망울을 가지고 있어 순 수하게 포로들을 구하고 싶다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좋은 의견 내줘서 고마워. 그렇게 하자."

"아빠한테 도움이 돼서 기뻐요!"

하프의 머리를 살살 어루만진 유준은 두꺼운 문들을 일일이 발로

차서 다 부숴 버렸다.

마력 하나들이지 않고 쉽게 문을 박살 내는 그 모습에 김요한이 입을 떡 벌렸다.

"미친... 힘이 얼마나 센 거야."

천족들이 얼마나 문을 힘겹게 여는지 그는 그간 줄곧 봐 왔기 때문에 잘 알고 있었다.

김요한은 자신이 잘못 본 게 아닌가해서 유준을 유심히 바라봤다.

콰앙! 쾅!

역시 자신이 착각한 게 아니다.

발출되는 마력이 전혀 없었다.

팔과 다리에 마력이 담기지도 않았다.

그렇다는 건 온전히 육체 능력치 만으로 저런 광경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건데.

그리고 그를 더 경악하게 할 장 면이 바로 뒤에 나왔다.

"파라네트. 너도 구경만 하지 말 고 나처럼 해."

"예!"

쾅 쾅

파라네트의 발길질에 아주 두껍

고 단단한 문이 박살 났다.

유준보다 힘을 더들이는 느낌은 있었지만, 파라네트 또한 마력을 사용하지 않는 건 마찬가지였다.

"아저씨도 할 수 있어요?"

조선제일검, 독고민수에게 물었다.

"당연하지."

"에이, 아저씨 근력 능력치 저랑 별 차이도 안 나잖아요."

"그러니까 내가 말하지 않았는가? 육체 단련을 하고 안 하고의 차이는 크다고. 자네가 나와 근력 이 같아도 실제로 힘을 낼 수 있는

수치는 두 배 이상 차이 날 걸세."

"와, 허세 봐. 아저씨. 여기서 벗 어나면 팔씨름부터 해보죠. 어때요?"

"좋네. 내 제대로 보여 주지."

그들이 그런 식으로 신경전을 벌 이고 있는 와증에 포로를 가둔 문들이 모조리 부서졌다.

" 파라네트."

"옙!"

파라네트가 김요한과 독고민수를 자기 품으로 끌어당겼다.

해골 기사에게 꼭 안긴 김요한은

순간적으로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약간의 현기증과 함께 시야가 전 환되었다.

들 푸른 초원.

마누엘라와 도지윤이 달려왔다.

"오랜만이에요. 조솁, 조선제일검 아저씨."

"이름으로 부르라니까."

"독고민수가 더 닉네임 같은걸요."

"아무리 그래도 조선제일검은 좀...

"맞네. 이름 가지고 놀리지 말게."

독고민수의 진지한 얼굴을 본 도 지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때 김요한이유준에게 말을 걸었다.

"그런데 무과금... 아니 유준 씨."

" 예."

"방금 그거 공간 이동 마법이에요?"

"맞아요. 제가 한 건 아니고 파라네트 능력입니다."

"대박. 무슨 리치도 아니고 해골 기사가 공간 이동 마법을 써요? 마 력 장난 아니게 들 텐데."

"인간. 그건 내가 뛰어난...

파라네트가 의기양양해하며 가슴을 팍 두들길 때, 유준이 껴들었다.

"스킬 등급이 높아서 그래요. 파라네트가 머리가 나쁜 편인데, 높은 등급이 보정을 해 주는 거죠."

"그렇군요."

김요한이 빠르게 수긍하자, 파라네트가 못마땅한 얼굴로 땅을 내려다봤다.

"그럼 우릴 구하러 올 때 공간 이동을 사용할 수 있었던 거 아니에요?"

"안으로 진입할 때는 결계 때문에 어렵습니다. 안에서 밖으로는 가능하더군요."

"...하긴. 그렇게 쉽게 공간 이 동 마법으로 침입할 수 있으면, 진 작 누구든 우릴 구하러 왔겠죠."

"둘은 강경파 쪽에 서지 않았어요? 그쪽에서 도움을 안 줬습니까?"

유준의 말에 김요한이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우린 안중에도 없을걸요? 보상을 걸고 고용한 용병이니까 사실 죽었으면 하는 바람이 더 클 수도 있어요. 물론, 우릴 구하려고 하는 모습은 어느 정도 보여 줘야 대외 적인 이미지도 챙길 수 있겠지만, 말 그대로 그건 보여 주기식에 불 과해요. 하여튼 진짜 고맙고 반가 워요."

"반갑습니다."

유준은 김요한과 독고민수의 얼 굴을 번갈아 가며 관찰했다.

어떻게 이렇게 자신이 예상했던

것과 비슷한 모습일까.

조선제일검이라는 닉네임을 사용 했던 독고민수.

그는 40대로 보였다.

생각보다 중후하고 잘생긴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다만, 장발에 머리를 묶은 모습이라 지독한 컨셉충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홍대패플조솁.

김요한은 자신과 동년배로 보였다.

홍대 거리를 자주 드나들 것 같

은 20대 젊은 청년 같다고 해야 할까.

'나랑 별 차이 안 나겠네.'

"서로 채팅으로 대화는 많이 해 봤는데 이렇게 만나게 된 김에 자 기소개나 해 볼까요?"

도지윤이제안했다.

"나이는 비밀이고. 도지윤이에요. 신전 길드를 운영하고 있어요."

"그거 자기소개 맞나...? 성별 이랑 이름밖에 안 드러났는데."

독고민수가 태클을 걸었으나, 도 지윤은 익숙한지 가뿐하게 무시했다.

" 다음."

"김요한입니다. 26살. 옷을 잘 입 고요, 또... 보다시피 유머 감각 이 뛰어나요."

" 으응?"

모두가 어이없어할 때였다.

"푸핫."

김요한의 말에 하프가 웃음을 터 뜨렸다.

"봤죠? 저 귀염둥이도 웃잖아요."

"어느 부분이 웃겼던 거지

도지윤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반응을 보이자, 하프가 실실 웃으 며 설명해 주었다.

"전혀 유머러스하지 않은 것 같은데 태연하게 유머 감각이 뛰어나 다고 한 게 웃음 포인트였어요. 또 옷도 비렁뱅이처럼 입었는데 잘 입었다는 것도 웃겼네요. 그런 면에 서 보면 확실히 유머 감각이 없진 않은 것 같아요."

"...뭐야."

한마디로 그가 의도하지 않은 부 분에서 웃음이 터졌다는 거다.

촌철살인을 당한 김요한의 얼굴

이 붉게 달아올랐다.

"쟤 뭐예요?"

"제 신수입니다. 자식이기도 하고."

"그래서 아까 아빠라고 한 거예요?"

" 예."

"귀엽긴 한 말이 너무 험한 거 아닙니까?"

"하프가 거짓말을 못 해요.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그거 사과 맞죠...?"

그다음은 조선제일 검이었다.

"독고민수라고 하네. 검을 주로 다룬다네. 그래서 유준, 자네와 한 번 붙어 보고 싶은데 어떤가? 종족 대항전 때의 자네의 모습을 보고 내 깊게 감명을 받았었는데, 그때 이후로 나는 완전히 달라졌다고 자 부하네. 자네에게 내 수련의 결과를 알려 주고 싶군."

"오우〜 쉣! 뿌부부부!"

김요한이 야단법석을 떨었다.

"이건 서로의 자존심이 걸린 문 제! 누가 더 강한지는 자명하니까 순수하게 검으로만 승부 보는 거 어때요?"

"왜 요한 당신이 더 신난 거예

도지윤이 황당하다는 듯 웃었다.

김요한과는 다르게 독고민수는 시종일관 진지한 태도, 얼굴이었다.

유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재밌겠네요. 스킬 쓰지 않고 검으로만 한 번 겨뤄 보죠."

마지막으로 유준 차례였다.

"22살 미필 신유준입니다."

표정 변화 하나없이 자기소개한 유준.

그에 모두가 할 말을 잃었다.

"...네? 뭐라고요?"

"22살?"

"왜 그래요? 괜찮아요? 어디 다 친 데 없어요?"

그들의 격한 반응에 유준이 살짝 당황했다.

사실 시간의 흐름으로 보았을 때 그의 본래 나이는 26 혹은 27이어 야 했다.

그런데 그러면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인벤토리 동기화라는 것 때문에 5년이라는 시간이 통째로 사라진 그였다.

억울해서라도 5년의 세월을 받아 들일 수 없었다.

그래서 나이를 줄여 말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던전 탐색 전문가 김 희연에게도 이미 22살이라 소개한 전과가 있다.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이 어렵겠는가?

"아니... 저도 미필이기는 한 데, 왜 22살이에요?"

모두가 의아해하는 점이었다.

"22살입니다."

"아니, 거짓말하지 말고요. 우리 사이에 이러기 있습니까?"

김요한이 압박해 왔다.

유준이 고민에 빠졌다.

'이들이라면 굳이 숨길 필요가 있을까.'

마신 추종자도 아니고, 눈에 띄는 악인들도 아니다.

거기다 같은 게임을 수년간 플레 이한 경험.

그 경험을 공유하는 이들이었다.

'생각해 보니까 말해도 크게 상 관없겠는데?'

그가 무슨 회귀를 한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 몸에 빙의한 것도 아니다.

믿을 만한 이들에게 숨길 이유가 없었다.

결정을 내린 유준이 입을 열었다.

"제가 1년 차 플레이어라는 건 알고 있죠?"

"안 믿기긴 하지만 1년 차인 건 압니다. 그런데 좀 이상한 게 있어요. 우리 원년 멤버들 전부 5년 차 인데 왜 유준 씨만 1년 차예요?"

"그걸 설명드리겠습니다."

유준은 자신이 어떠한 한 특전을 받았고, 그 특전에 관련된 동기화 때문에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잠들 어 있었다고 설명했다.

대신 인벤토리에 관련된 건 싹다 빼고 말했다.

인벤토리는 그의 비장의 무기에 가깝다.

아무리 친한 이들이라고 하더라도 인벤토리는 숨기는게 낫겠다는 판단을 했다.

"5년이 사라진 거예요, 그럼?"

" 예."

"...와."

세 명 모.두 말이 없었다.

각자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중에 먼저 말을 꺼낸 건 떠들

기를 좋아하는 김요한이었다.

"도대체 어떤 특전을 얻었길래 5 년을 페널티로 줘요?"

"비밀입니다."

"사실 동기화라는 말에서 힌트를 얻기는 했는데, 무과금즐겜러 캐릭 터랑 관련되어있는 거죠?"

"오.…"

유준이 살짝 놀라서 바라보자, 김요한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저도 약간 특전이 그런 비슷한 거였거든요. 유준 씨에 비 할 바는 아니겠지만."

"저 그런데...

유준이 우물쭈물하며 다시 말을 꺼냈다.

"사실 아직 동기화가 끝나지 않았습니다."

"유준 씨요?"

" 예."

"엥? 동기화 진행 중일 때 잠들었다고 하지 않았어요?"

"지금은 돌아다닐 수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동기화가 끝난 건 아니에요."

"그럼 동기화가 끝나기까지 얼마

나 더 기다려야 되는데요?"

"시간이 문제가 아닙니다. 필요 한 게 있어요."

"필요한 거?"

"네."

유준은 일부러 뜸을 들였다.

"동기화 구슬이에요. 아이템인데, 사실 제 전용 아이템이나 다름없어요. 그게 있어야 멈춰 있던 동기화 가 다시 시작되거든요."

"...오호."

"그래서 말인데 동기화 구슬 갖 고 계신 분 없습니까?"

유준이 기대하는 눈빛으로 세 명 의 옛 동료들을 바라봤다.

빌드업은 완벽했다.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10권 16화

235화

처음부터 동기화 구슬을 요구하기 위해 말을 꺼낸 건 아니었다.

그러나 말을 하다 보니 그들이 동기화 구슬을 찾는데에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합리적으로 판단한 것이다.

어찌 됐든 위험에 처해 있던 조 선제일검과 홍대패플조솁을 구해 준 건 사실이니까.

"동기화 구슬요?"

"저는 없는데...

도지윤과 김요한이 그렇게 말했다.

유준이 실망하려는 찰나,

"나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누 가 가지고 있는지는 알고 있네."

"정말입니까? 그게 누구죠?"

"여기 천계에서 봤네. 그 또한 용병으로 참가했었지."

"엥? 누구예요?"

독고민수와 계속 같이 다녔던 김 요한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는 모르는 얘기였기 때문.

"나와 말이 잘 통하는 사내였지."

"그러니까 누구? 내가 본 적 있 어요?"

"자네도 얼굴은 봤을 걸세. 잠깐 야영을 하던 때 그와 많은 얘기를 나눴었지. 레반이라는 자일세."

"아, 레반? 그 금발 머리?"

"그렇다네."

유준이 눈을 크게 떴다.

"레반이라는 자가 동기화 구슬을 가지고 있답니까?"

"그렇다네. 본인 말로는 천계 전

장에서 우연히 구했는데 그 쓸모를 알 수 없어서 여러 곳에 자문을 구 하고 있다고 했지. 나한테 물은 것도 혹시 보기 드문 인간이라면 자 신이 모르는 정보를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모양이야."

"독고민수 아저씨는 알고 있었어 요?"

"몰랐네. 그래서 알려 줄 수 없 다고 했지."

"레반은 어디로 갔죠?"

"글쎄... 그는 포로가 되지 않았네. 죽었을지도 모르고 강경파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 소정의 보

상을 받았을지도 모르지."

"무사하길 바라야겠군요."

"그게 어디 맘처럼 되던가. 그런 데 동기화 구슬은 진짜로 자네한테 만 적용되는 건가?"

"예. 다른 이들은 사용법을 모르겠지만, 저는 다릅니다. 동기화 구슬을 얻는 순간 효과가 나타납니다."

정확히는 '인벤토리에 넣으면'이었지만, 그걸 말하면 그가 받은 특 전을 유추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돌려 말했다.

"혹시 어려운 부탁일 수도 있는

데, 동기화 구슬을 얻게 되면 저한테 파실 수 있습니까?"

"뭐, 나한테 쓸모 있는 아이템은 아닌 모양이니 난 상관없네. 게다 가 팔다니? 그냥 발견하면 자네에게 주도록 하겠네. 우리 목숨을 구 해 줬는데 그 정도도 못 할까."

"저도 마찬가지로 찾게 되면 알 려 주거나 드릴게요."

"둘 다 고맙습니다."

"그나저나 천족들이 추격을 안 하네요?"

"아주 먼 거리로 와서 흔적을 쫓 아오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겁니다.

무려 저기 보이는 숲 하나를 횡단해서 와야 하거든요."

유준의 말에 김요한이 허탈한 듯 웃다가 그의 옆에 껌 딱지처럼 붙 어 있는 마누엘라에게 관심을 보였다.

" 그분은?"

"마누엘라요. 제 동료입니다."

"아, 마녀 맞죠? 영상에서 봤어요. 반갑습니다. 마누엘라."

" 안녕...

마누엘라의 기어들어 가는 듯한

목소리.

아무래도 낯을 가리는 듯했다.

'날 처음 봤을 때는 안 이랬던 거 같은데. 신기하네.'

이렇게 보니 마누엘라의 성격도 많이 바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재회한 네 명의 플레이어는 즐겁게 옛날에 있었던 얘기를 나눴다.

유준도 솔직히 말해서 즐거웠다.

무한의 탑이라는 이 위험천만한 곳에서 언제 또 이런 대화를 나눠 보겠는가.

그러다 자연스럽게 나만고양이없어 유저가 언급이 되었다.

"그 사람이랑 자네가 부동의 투 톱이었는데, 그 둘이 발견되질 않아서 얼마나 의아했는지 모르네."

"그러게요. 하필 캐릭터가 제일 강했던 두 사람이 무소식이었네요."

그때였다.

난데없이 홀로그램 창이 눈앞에 나타났다.

조수아의 답장이 이렇게 빨리 왔 나 싶어서 봤는데, 메신저 메시지 가 아니었다.

[현재 동기화율 112%]

이번엔 유난히 길었던 동기화.

오랜 시간 끝에 인벤토리로 아이템이 전송된 것이다.

"잠깐 쉬는 시간 좀 가져도 될까요?"

유준의 말에 일행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세. 나와 대련하기 전에 충 분히 쉬어 두는 것이 좋지. 괜찮은 판단을 했구만그래."

"예? 아... 예."

인벤토리에 전송된 아이템을 확 인하기 위해서 잠깐 쉬자고 한 것을 독고민수가 오해한 모양이다.

사실 그와의 대련은 안중에도 없었다.

독고민수가 민망할 수 있으니 굳 이 오해를 바로잡지는 않았다.

인벤토리를 열었다.

전송된 아이템은 입구 가장 가까 이에 있어 금방 찾을 수 있었다.

무과금즐겜러의 인벤토리에서 전 송되어 온 아이템은 단 한 개였다.

그 오랜 시간을 기다려서 동기화 가 완료되었는데, 고작 아이템 한 개?

유준이 무척 실망할 뻔했으나, 아이템 정보를 읽어 보고는 생각을 바꾸었다.

[행성 파괴자의 검]

착용 제한 : Lv. 800 이상

등급 : 신화

공격력 : 31,900,000

옵션 : 모든 능력치가 100%, 근 력 능력치가 200% 증가합니다. 모

든 '특성'의 효과가 대폭 증가합니다.

이름부터 어마어마했다.

행성을 파괴하는 자의 검이라니.

800레벨 제한이 붙은 무기.

보통 게임이라면 착용 제한 레벨 이 높고 성능이 좋은, 즉 가성비 아이템을 유저들이 선호하겠지만, 신들의 전쟁에서는 달랐다.

등급도 중요하지만, 착용 제한 레벨에 따라서 성능이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저레벨 무기와 고레벨 무기의 간 격을 높은 등급으로도 웬만해선 좁 히기 힘들었다.

'이 정도면 오래 걸릴 만하지. '

차올랐던 분이 확 가라앉는 느낌이다.

문제는지금 당장 착용할 수 없 다는 것.

그의 현재 레벨은 686.

무려 114가 모자랐다.

그러나 그에겐 태초의 플레이어 특전과 레인보우 스티커가 있다.

총 150레벨을 무시하고 아이템을 착용할 수 있는 것.

전설 아이템 박스에서 골랐던 레 인보우 스티커가 아직 남아 있었다.

바로지금 같은 상황을 염두에 두고 아껴 둔 것이었기에 망설이지 않고 레인보우 스티커를 부착했다.

'그나저나 공격력이 진짜 미쳤네....'

초월 등급 절대자의 검보다 무려 32배가량 공격력이 높았다.

솔직히 어이가 없어서 웃음도 안 나왔다.

이게 게임이면, 밸런스 패치 안 하냐고 항의가 빗발칠 정도로 말도 안 되는 검이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지.'

유준은 인벤토리에서 초월의 돌을 꺼냈다.

이 초월의 돌은 오로지 후일에 나올 무기를 위해 사용하지 않았다.

드디어 초월의 돌을 사용할 때가 온 것이다.

그다음으론 또 전능의 돌이 있다.

유준은 초월의 돌을 사용하고 연

이어서 절대자의 검에서 빼낸 전능의 돌을 부착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역대급으로 떨리는데.'

이렇게까지 진정이 안 되는 건 오랜만이었다.

평정심 특성으로도 억누를 수 없는 기쁨 섞인 떨림이었다.

수차례 심호흡한 유준이 아이템 정보를 확인했다.

[행성 파괴자의 검]

착용 제한 : Lv. 800 이상

등급 : 초월

공격력 : 89,900,000

옵션 : 모든 능력치가 170%, 근 력이 380% 증가합니다. 모든 '특 성'의 효과가 최대폭으로 증가합니다.

* 전능의 돌 : 모든 능력치가 70%, 근력이 180%, 마력이 120% 증가합니다.

"와..."

감탄밖에 안 나왔다.

이 정도면 세계관 최강의 검이 나온 게 아닌가.

솔직히 말하면, 그가 500레벨 검을 쥔 순간부터 무기로 그를 따라 올 자가 없기는 했다.

그래도 행성 파괴자의 검이라면 우주에서 제일가는 무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주는 넓고 세상엔 강자가 수없이 많다.

그럼에도 자신할 수 있었다.

이건 미친 성능이었다.

'전능의 돌에 뜬금없이 마력 능력치가 붙은 게 조금 의외지만

오히려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수 능력치로만 비교하면 몰라도 아이템 효과까지 합산한다른 육체 능력치에 비해 마력이 조금 낮은 것은 사실이다.

근력 능력치가 기괴하게 높아진 것을 논외로 치면, 어느 정도 밸런 스, 즉 균형을 맞췄다고 볼 수 있었다.

'퍼센트까지 합산하면 내 능력치 가 도대체 얼마나 되는 거야?'

수만은 거뜬히 넘기는 수치가 아닐까.

그런 것치고는 확 달라지거나,

진화한다는 느낌은 없다.

아직 그가 전력을 다한 적이 없 기 때문이 아닐까.

잘 생각해 보면 그는 스스로를 한계까지 몰아붙인 적이 없었다.

적어도 최근에는 그랬다.

'다시 보자.'

유준은 행성 파괴자의 검을 천천히 뜯어 살폈다.

그의 입가에서 웃음이 끊이질 않 게 하는 옵션과 공격력이었다.

'이 검 하나만 차고 있어도 모든 능력치가 240% 증가한다는 거지.'

심지어 근력은 모든 능력치 증가 효과까지 합산하면 800%가 오른다.

'이 정도면 확실히 근력은 10만 이 넘었을 것 같은데.'

공격력 9천만.

사실 여기서 게임 끝이라고 보면 된다.

그 어떠한 것도 다 뚫는 창.

이걸 막을 방패는 대륙이든, 천 계든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동기화 구슬 두 개로 맞바꾼 행

성 파괴자의 검.

너무나 만족스러웠다.

유준이 허공에 대고 검을 세 차 례 휘둘렀다.

공기의 저항을 전혀 안 받는 느 낌이었다.

게다가 손잡이가 손에 착 달라붙는 듯했는데, 그가 여태 사용해 왔 던 검들과는 비교가 안 되는 그립 감이었다,

"나와 대련을 하기 위해 몸을 푸는 건가? 좋네. 나도 바로 준비를 하도록 하지."

그가 자리에서 일어서길 기다리

던 독고민수가 귀신같이 다가와 말 했다.

"...아. 그러죠."

유준이 자세를 잡았다.

안 그래도 새롭게 얻은 검을 사용해 보고 싶었던 참이다.

독고민수의 자신감이 어디서 나 오는지 확인도 해야 했다.

'분명 강한 것 같기는 한데...

그가 지닌 힘 자체는 그리 크지는 않은 것 같다.

유준이 지금껏 봐 왔던 발록 같은 괴물들과는 비교가 안 되는 수준.

일단 레벨과 능력치는 그렇다는 얘기다.

스킬과 특성에 따라서 평가가 또 달라질 수 있었다.

힘을 겨루는 것이 아닌, 서로 검술 실력을 보는 것이 의의인 만큼, 유준은 진지하게임하기로 했다.

"검을 섞을 준비가 되었나?"

독고민수가 들뜬 얼굴로 물었다.

유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시작하죠."

더 이상의 대화는 필요 없었다.

독고민수의 자세를 본 유준의 눈 이 이채를 띠었다.

'카운터를 노리는 스타일인가?'

지금 자세는 그렇지만, 확실한 건 아니다.

상대가 자신이라서 스탠스를 다 르게 취하는 것일 수도 있다.

유준은 독고민수가 원하는 대로 먼저 움직였다.

쏜살같이 쇄도하며 휘둘러진 검.

독고민수가 용케 반응하여 검격을 흘리려 했다.

서걱!

그의 검을 아주 간단하게 절단한 유준의 검이 독고민수의 목 바로 앞에서 멈췄다.

"타, 타임!"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10권 17화

236화

"다시 하는게 어떻겠나? 내 방 심을 조금 했네."

"그래요."

사실 독고민수는 실수를 한 것이 없었다.

빠른 속도에 반응하며 정석적으로 검을 흘려 냈고, 원래였으면 자 신이 빈틈을 노출하게 되어 반격을 당했어야 했다.

그러나 검의 공격력이 너무 높은

탓에 흘리기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검과 검이 닿는 순간, 독고민수 의 검이 연한 순두부처럼 잘려나간 것이다.

"검을 바꾸는게 좋겠습니다. 무 기 때문인 것 같으니."

"그, 그럼세."

식은땀을 흘리던 독고민수가 곧 장 찬성했다.

둘은 저레벨용 검을 꺼내 착용하고 마주 섰다.

"좋은 검을 쓰는군. 부럽네."

"템빨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으십니까?"

"그럴 리가. 검사로서 좋은 검을 가지고 있는 건 당연한 일. 어찌 치사하다 여기겠는가. 그저 부러울 따름이지."

그의 말에 유준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게임에선 템빨이라고 엄청 뭐라 했었으면서...

분명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이번엔 독고민수가 먼저 달려들었다.

검의 성능은 동일한 상황.

육체 능력치는 큰 차이가 있다는 걸 인정했다.

그러나 독고민수는 승산이 있다 고 판단했다.

플레이어가 된 이후로 쉴 새없이 육체를 단련해 왔다.

그 덕분에 그는 줄곧 레벨이 훨 씬 높은 적들을 어렵지 않게 처리 해 왔었다.

콰직!

이번엔 독고민수의 검이 절단되 지 않고 완전히 산산 조각났다.

수천 조각의 파편이 허공에 비산

하자, 독고민수가 당혹스러움을 감 추지 못했다.

"...아니."

반면에 유준의 검은 멀쩡했다.

분명 같은 무기로 부딪쳤는데 이런 상반된 결과가 나올 수가 있나?

심지어 상대가 힘을 쓴 것도 아니고, 자신의 공격을 막아 내기만 했을 뿐이다.

근력이 개입되는 요소가 전혀 없 다는 뜻.

그런데 파괴된 건 그의 무기뿐이었다.

이해가 잘 안 갔다.

"...도대체 어떻게 한 건가? 검술의 극의를 체득하기라도 했나?"

" 사실...

유준이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공격력 때문입니다."

"으응? 지금은 같은 무기를 썼지 않은가?"

"무기에만 공격력이 붙는 건 아니지요."

"설마 공격력 옵션이 붙은 아이템을 착용한 겐가? 그것도 한 개가 아니라 여러 개를?"

" 예."

"그냥 장비 다 벗고 붙죠. 그게 낫겠네요."

"좋네."

그때 흥미로운 눈길로 대결을 지 켜보던 김요한이 입을 열었다.

"와, 근데 유준 씨 공격력이 도 대체 몇이에요?"

"모릅니다."

"네? 계산 안 해 보셨어요?"

유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 왜요?"

"계산이 귀찮아서요."

공격력과 관련된 옵션이 너무 많았다.

거기다 공격력을 안다고해서 더 강해지거나 하는 건 아니다.

그래서 굳이 계산해 보려 하지 않았다.

방어구를 다 벗은 유준은 일상복 차림으로 검을 들었다.

방금까지는 공격력이라는 요소가 심하게 개입되어 전투다운 전투를 하지 못했기에 이제부터가 진짜라

고 할 수 있었다.

독고민수는 장비가 아닌 옷으로 요상한 도복을 입고 있었다.

"그 옷은 뭐예요?"

"의뢰 제작해서 만든 옷이라네. 평상시에 입고 다니는 용도지."

"그걸 입고 다녀요?"

"날 아는 사람들은 다 그러려니 하더군."

"이종족들이 신기하게 쳐다보진 않습니까?"

"당연한 소릴."

"...시작할까요?"

"이번엔 제대로 보여 주겠네."

"기대 하겠습니다."

세 번째 결투.

첫 번째와 두 번째처럼 허무하게 무기가 파손되는 일은 없었다.

카앙! 캉!

둘의 검이 쉴 새없이 부딪쳤다.

이제야 대련다운 대련이 이뤄졌다.

유준은 생각보다 독고민수의 근 력이 높아서 놀랐다.

가진 육체 능력치에 비해서 몸이 좀 더 단단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내 근력은 보통 힘으로 못 받아 낼 텐데.'

유준의 힘에 독고민수가 버거워 하기는 했으나, 끝까지 쓰러지지 않고 우직하고 굳건하게 계속 버텨 냈다.

심지어 힘겹게 막아 내다가 번뜩 이는 공격을 날릴 때도 있었다.

'뭔가 특이해.'

독고민수를 상대하면서 그가 자 신과는 무언가가 다르다는 것을 느 꼈다.

검술의 기술이유준보다 뛰어나

거나 하지는 않다.

EX등급의 검술.

GX등급의 신검합일.

그리고 그 두 특성의 효과를 증폭시켜 주는 EX++등급의 천재 특 성까지.

검술의 뛰어남과 기술적인 면에 선 유준이 압도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독고민수의 검술은 특이 했다.

유준이 가지지 못한 걸 가지고 있는 느낌이었다.

' 뭘까.'

계속 검을 섞다 보니 그게 뭔지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다.

자연스러움.

독고민수는 검을 휘두르는 것과 심지어 발을 움직일 때 있어서 시 스템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는 느 낌이 강했다.

몸을 쓰는 것에도 좀 더 능통했다.

같은 성능의 육체를 가지고 있다 고 하더라도 플레이어마다 그 효율 이 다르다.

독고민수는 신체를 이해하고, 힘 이 어떤 방식으로 작용하는지를 알 고 있었다.

그래서 육체를 단련하는 일을 꾸 준히 해 왔고 그 결실이 대련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가볍게 검을 수십 차례 더 주고 받다가 유준이 뒤로 물러났다.

"아저씨. 장난 아니네요."

"...자네가 할 말인가?"

밀리고 있는 건 독고민수.

유준의 칭찬에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요. 아저씨는 진짜 검의 고 수 같아서 그래요. 혹시 무한의 탑에 오기 전에도 검을 다뤘었어요?"

"취미 삼아서 진검을 가지고 놀 긴 했었네. 하지만 절대 전문적이 라고는 할 수 없었지."

"그럼 무한의 탑에 온 이후로 검을 연습한 거예요?"

"그렇긴 하네만, 초반엔 강해지 고자 하는 생각도 없었네. 그저 본 래의 저질스러운 몸뚱이에서 벗어 나고 건강한 몸으로 검을 휘두르는게 너무즐거웠지."

"...신기하네요."

"그 경험 덕분에 시스템에 얽매 이지 않고 진정한 검의 길을 걸을 수 있었네."

"검술 특성은요?"

"갖고 있네. 하지만, 검의 위력을 증가시켜 주는 용도로만 사용하고 있을 뿐, 검술이 날 이끌지는 않아. 내가 주체로 움직인다고 보면 되네."

독고민수의 말에 유준이 = 크 게 떴다.

자신과는 정반대가 아닌가.

그는 검술 특성에 의지하는 경향 이 강했다.

그게 더 효율적인 전투를 가능케 만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런 조언을 할 짬밥은 아니니 주제넘어 보일 수도 있겠네만, 자네도 특성에 너무 의존하기보다는 검에 대해 더 생각해 보게. 그 럼 지금보다도 높은 경지에 이를지 도 모르지."

"맞는 말씀입니다."

"그나저나, 자네 도대체 검술 등 급이 얼마나 높은 건가? 도무지 빈 틈이 안 보이더군."

"좀 높긴 합니다. 그런데 아저씨 랑 겨뤄 보니까 제가 검을 여태 제

대로 활용하지 못했던 것 같기도 하네요."

"굳이 활용할 필요가 없었겠지. 자네가 아까 그 무기만들면 사실 검의 이치를 깨닫거나 할 새도없이 적이 죽어 버렸을 테니. 앞으로 도 그럴 확률이 높고 말일세."

"제가 지금부터 검을 수련하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보십니까? 효과를 볼 수 있을까요?"

"물론일세. 그렇다고 실전을 소 홀히 해도 안 되겠지."

"감사합니다. 좋은 경험이 되었습니다."

"나중에 또 붙지, 어떤가?"

"저야 좋죠."

자신보다 더 약한 독고민수였지만, 그에게 배울 점이 적지 않았다.

그래서 그도 바라는 바였다.

"아, 그리고 푸시업이나 전신을 쓰는 운동도 꾸준히 하는게 좋다네. 내 항상 조솁에게 하는 말이지만, 들은 체도 안 하더군."

"운동요? 근력 운동을 말하는 겁니까?"

"그렇다네. 그냥 우리 플레이어 들은 몸을 많이 쓸수록 좋다네."

"회복이 빨라서요?"

"그것도 있고, 성장 효율이 다르네. 평범한 인간이었을 때를 생각 해 보게. 근육을 늘리고자 운동을 해도 3〜4일의 회복 기간을 가져야 하지 않던가? 그래서 전신 운동보 다는 주로 부위별로 단련을 하는 것이고."

"그렇죠."

"플레이어는 그럴 필요가 없네. 몇 시간이 채 지나기도 전에 파괴 된 근육이 완벽하게 재생되거든."

" 오호..."

"실제로 나처럼 근력 운동을 꾸

준하게 하는 플레이어가 없지는 않네. 아, 여기서 이종족은 예외라네."

"이종족은 왜요?"

"그들은 애초에 플레이어 육체를 지니고 태어났기 때문이지. 우리처 럼 후천적으로 능력을 얻은 게 아니지 않은가."

"그렇죠."

"근 성장 같은 측면에서 이종족은 그 혜택을 전혀 못 받네. 우리 랑 다르게."

"육체를 단련해서 효과를 볼 수 있는 건 인간만 가능하다는 거네요."

"자네 같은 경우엔 강도를 아주 많이 높여야 할 걸세. 이미 능력치 가 많이 높아졌으니... 사실 웬만 큼 운동해선 효과를 보기 힘들 수 도 있네."

"시도는 해 볼게요."

"하여튼 고맙네. 자네 덕분에 또 깨달음을 얻었으니."

"그렇게 쉽게 얻을 수 있는 거였 어요? 깨달음이란 거?"

"뭐, 특성을 하나 얻었다고 시스템이 알려 줬으니 깨달음이 아니고 뭐겠는가."

흡족한 미소를 짓는 독고민수.

왜 저렇게 얄밉지.

'저 양반도 천재 특성 가지고 있는 거 아니야?'

아니면 그냥 천재일 수도 있다.

실은 독고민수를 상대하면서 벽을느꼈다.

그가 강해서가 아니다.

실제 전투였으면 그를 1초 만에 제압하는 것도 가능했다.

다른 부분에서의 벽이라고 해야 할까.

'마인드가 달라.'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수년간 수 행을 해 온 것이 이유일까.

'아이템만 갖춰지면 저 아저씨도 진짜 강해지겠는데.'

"솔직히 이해 가요?"

김요한이 다가와 물었다.

"뭐가 말입니까?"

"독고민수 아저씨가 한 얘기들요. 전 아무리 운동해도 달라지는 걸 전혀 못 느끼겠거든요."

"그건 자네가 성실하게 운동을 하지 않은 탓이지. 하루 이틀 육체를 단련해서 효과를 봤으면 개나

소나 다 강해졌을 걸세."

"아, 왜 또 껴들어요. 그리고 저 랑 운동은 안 맞아요. 전 다른 방 식으로 강해질래요."

"나도 강요한 적은 없네. 자네가 하도 찡찡대서 확실하게 강해지는 방법을 알려 준 것뿐이지."

"또 찡찡이라고 하신다? 제가 그 말 싫어하는 거 아저씨도 알잖아요."

"그래서 더 보람차군."

"...너무하네."

그때였다.

무언가를 느낀 유준이 얼굴을 굳 히며 말했다.

"다들 준비해요."

"설마 천족들 왔어요?"

"예. 어림잡아 삼백은 됩니다."

그는 벗어 뒀던 방어구들을 착용 하고 마력을 끌어 올렸다.

천족 열 명이 한 번에 덤벼도 까 다로운데 이번엔 무려 수백이다.

일행이 모두 전투태세를 취하는 그때, 김요한이 고개를 갸웃했다.

"잠깐만요. 쟤네 온건파 천족들이 아닌데요? 강경파 같아요."

"강경파라고요? 그럼 같은 편이 라고 보면 됩니까?"

"애매하긴 한데 일단 대화를 해 봐야 할 거 같아요."

"그러세요."

떼거지로 몰려온 천족들은 유준 일행에게 그리 적대적이지 않았다.

"아, 저들은 내가 불렀네."

독고민수가 말했다.

"응? 아저씨가요? 언제요?"

"포로로 있을 때였지."

김요한이 황당한 얼굴로 독고민 수를 바라봤다.

"아니. 왜 저한테 말 안 했어요?"

"시끄럽게 떠들 게 뻔해서 일부 러 말 안 했네."

"...와. 날 너무 잘 알아서 더 짜증 나는 거 알아요? 그런데 메신 저 교환은 언제 했어요?"

"동기화 구슬을 가지고 있다고 했던 레반. 그의 누이가 강경파 내에서 입지전적인 존재라고 하더군. 그 도움을 받았네."

유준이 눈을 반짝였다.

"레반이 저기에 있는 겁니까?"

"그도 온다고 했으니 그렇겠지."

그렇다면 동기화 구슬을 또 얻을 수 있는 건가.

레반이 자신에게 동기화 구슬을 준다는 보장은 없다.

그래도 어떻게든 그에게서 동기화 구슬을 얻어 내는게 유준이 해야 할 일이었다.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_ 10권 18화

237화

강경파 세력 천족들은 유준 일행 의 신원을 파악하고자 했다.

"대륙에서 왔다고?"

"그렇다네."

"그쪽과 마찬가지 처지인가? 용 병?"

"김요한과 나와 둘은 용병으로 참여했고, 나머지 인원들은 포로가 된 우릴 구하고자 왔네."

"두 명을 구하려고 천계까지 왔

다고? 심지어 온건파의 철통같은 경계를 뚫고? 확실한가?"

"한 치의 거짓도없이 사실이라네."

"...안 믿기는데."

대표자 격인 세르티프스가 미심 쩍은 눈으로 유준 일행을 훑어봤다.

"뭘 보냐, 천족 나부랭이."

천족의 눈빛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파라네트가 깐깐한 말투로 시비를 걸었다.

"...뭐?"

세르티프스는지금 자신이 잘못

들은 게 아닌가 생각했다.

왜냐면 천계에 있어선 안 될 언 데드가 있었고, 그 언데드가 또 불 손한 언행을 보였기 때문이다.

파라네트가 제대로 천족의 심기를 거스른 것이다.

" 언데드?"

유준이 아차 했다.

천계에 있을 때는 웬만하면 파라네트를 역소환해 놓으려 했는데.

공간 이동으로 써먹고 난 후에도 계속 소환을 유지하고 있었다.

엄연한 그의 실수였다.

"언데드가 왜 이곳에 있지...?"

"제 소환수입니다."

어쩔 수없이유준이 나서 사실 대로 말했다.

"소환수라고? 언데드인데? 그런 경우는 드물 텐데."

"드물 뿐이지, 없지는 않죠."

"흐음... 부정한 존재를 천계에 들여다 놓았다는 자각은 있나?"

"천계 자체도 깨끗하지는 않을 텐데. 그리고 내가 부정하다니? 어 이가 없구나. 혼나고 싶은가?"

파라네트가 세르티프스에게 얼굴

까지들이대며 으름장을 놓았다.

"더러운 얼굴 치워라."

"천족. 더러운 건 너다. 네 피부에 잡티가 얼마나 많은 줄 아는가?"

파라네트는 한마디를 안 지려고 했다.

유준이 녀석의 어깨를 잡아당겼다.

"그만해."

"알겠습니다."

"봤죠. 제 말 잘 들으니까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버릇 좀 고쳐 놓는게 좋겠더 군. 일개 소환수치고는 너무 건방져."

세르티프스는 자존심이 많이 상 했는지, 상당히 꿍한 얼굴이었다.

"쯧. 별 신성하지도 않은 놈들이 선민사상 가진 거 보소. 신도 아니 면서 유세는 유별나게 떠는구만, 아주."

"언데드, 죽고 싶나?"

"난 혼잣말이오만? 그리고 나는 이미 한 번 죽어서 죽음이 두렵지 않지. 아, 이것도 혼잣말."

"푸흡."

흥미롭게 상황을 지켜보던 김요 한이 입가를 틀어막았다.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오 려 했다.

파라네트가 의아하게 쳐다보자, 김요한이 엄지를 척 내밀었다.

"너 나랑 잘 맞을 거 같다."

"인간. 너는 무척 촐랑거리는 유 형인 거 같은데. 엄격하고 진중한 편인 나와는 맞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이야, 말로 사람 패는 솜씨 가 제법인데. 유준 씨. 어떻게 키웠 길래 소환수가 이렇게 훌륭하게 자

란 거예요? 보니까 성장형 소환수 같은데."

김요한이 기가 막하다는 얼굴로 유준에게 물었다.

"전 철저한 방임주의입니다."

"어우, 탐나네, 진짜."

김요한의 끈적한 눈빛을 마주한 파라네트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까 제시했던 조건 그대로 용 병 일을 맡을 것인가?"

세르티프스가 독고민수와 김요한에게 물었다.

"어떡하죠?"

"신유준, 자네는 어쩔 셈이지?"

"합니다. 대신, 조건을 좀 바꿔야겠더군요."

" 응?"

"세계수의 씨앗을 얻으려고 이 임무를 맡으신 거죠?"

"그렇다네."

"일단 알겠습니다."

유준이 세르티프스에게 다가갔다.

"조건... 그러니까 일을 성공적으로 마쳤을 때의 보상을 바꿔도 되겠습니까?"

"기껏해야 용병 일이다. 참전하는 것만으로 그 이상의 보상을 줄 수는 없어."

"그럼 상상하시는 것 그 이상을 하겠습니다."

"인간. 강한 건 알고 있지만, 일 개 플레이어의 무력이 강해 봤 자...

유준은 갈무리하고 있던 마력을 반 정도 밖으로 방출했다.

우우우웅!

그의 근처에 있던 천족들 대다수 가 중심을 잃고 넘어졌다.

세르티프스도 꼴사납게 엉덩방아를 찧을 뻔하다가 재빨리 자세를 잡고 버텼다.

"...뭐 하는 짓이지?"

"실력을 보고 싶었던 거 아닙니까? 지금 충분히 보여준 거 같은데요."

"...확실히 지닌 마력이 보통이 아니군. 마력만 보면 대천사장님 못지않을 정도의 기세였다."

세르티프스는 유준이 마력을 절 반도 안 되는 양을 꺼낸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도 대천사장을 비교 선상

에 놓았다.

유준의 마력 능력치가 순수하게 얼마나 높은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러나 우린 힘만 센 애송이를 원하는게 아니다. 원하는 물건을 얻고 싶다면 결과로 보.여라."

"누굴 상대로?"

"온건파. 그대의 실력을 직접 확 인할 시간이 없다."

"좋습니다."

어차피 보면 세르티프스도 알 것이다.

그의 진가는 마력 따위에 있지 않다는 걸.

유준은 세르티프스에게임무 내 용을 전달받고 일행에게 그대로 전 해 주었다.

"포로를 구출하랍니다."

"이미 다 풀어 주지 않았어요?"

"아니요. 다시 잡혔을 겁니다."

"그걸 어떻게 알아요?"

"저 천족이 말해 주던데요. 메신 저로 이미 상황이 전달된 모양입니다."

"이야, 역시 갓신저네요."

김요한의 말에 유준이 고개를 끄 덕였다.

"온건파 쪽은 당연히 메신저를 의식하고 있을 테니, 아마 함정을 파 놓았을 확률이 높습니다. 우린 그걸 뚫고 가야 하는 거고요."

"할 수 있을까요?"

"해 봐야죠."

한 번 했는데, 두 번이 안 될까.

천족들의 경계가 몇 배는 심해졌겠지만, 상관없었다.

행성 파괴자의 검을 얻은 이후로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패배하는

그림이 안 그려졌다.

'템빨은 위대하니까.'

"저기..."

그때 천족 셋이유준에게 머뭇거 리며 다가왔다.

그중 한 명이 입을 열었다.

"신유준 맞죠?"

"예? 예."

"저 진짜 당신 존경해요."

"저도요!"

뭐야.

천족이 자신을 알아볼 줄은 몰랐는데.

대륙의 일에 원체 관심이 많은 종족이라 그럴 수도 있다.

"감사...합니다."

"메신저 교환 가능할까요?"

"진짜 소원입니다."

"전 그냥 사인만 해 주시면 돼요."

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

"죄송한데 지금 바쁜 상황이라,

모든 일이 끝나면 요청하신 것들 다 들어 드리겠습니다."

"꼭이에요! 꼭?"

" 예."

"고마워요!"

당연히 예의상 한 말이다.

메신저 교환을해서 손해 보는 일은 없겠지만,

메신저에 등록된 플레이어의 수 가 늘어날수록 귀찮아질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리고 그는 귀찮은 걸 싫어하는 성격이었다.

천족들이 물러가고, 김요한이 다 가왔다.

"유준 씨, 많이유명하시네요. 천 계에 있는 천족이 다 알아보고."

"이런 걸 원하시면 다음 종족 대 항전이나 해 보시죠."

"전 레벨부터 이미 참가가 불가능한데요.... 그렇게 생각하니 유준 씨는 미쳤네요."

"...?"

"유준 씨는 300레벨이 되기도 전에 그렇게 강했던 거잖아요. 솔직 히 영상으로 봐도 느껴지더라고요. 아...붙으면 백타 내가 지겠구나."

"지금 레벨이 몇이신데요?"

"650요."

응?

조수아보다 높잖아?

그녀만 하더라도 말도 안 되게 높은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솔직히 좀 놀랐다.

"...높으시네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최상위 랭커들의 레벨이 400 대 후반이라고 들었던 것 같은데. 최근에 만난 플레이어들 레벨이… 장난이 아닌데요? 요한 씨도 그렇고."

"아, 그거 다 뻥이에요. 인간은 성장 속도가 다른 종족들이랑 비교 가 안 되는 수준이거든요? 안 숨기 면 이종족들 견제 엄청 받으니 최 상위 랭커들은 레벨을 숨길 수밖에 없었죠. 근데 웬만큼 높은 위치에 있는 이종족들은 알고 있었을 거예요. 우리가 레벨을 일부러 낮추고 다닌다는 거."

"그런 이유였군요."

"거기다 저희는 특전도 남들이랑 비교도 안 되는 걸 받았잖아요. 그 러니 레벨이 빨리 오를 수밖에. 아, 그런데… 유준 씨는 레벨이 몇이에요?"

"692네요."

"네? 692요? 레알?"

"네."

"...그게 어떻게 가능해요? 1년 차라면서요?"

"과금으로 안 되는게 없죠."

"과금? 여기서 과금은 안 될 텐데. 게임 얘기죠?"

유준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동기화라는 거. 진짜 좋은 특전인가 보네요. 아직 1년도 안 됐는데 그 정도로 강한 거 보면…."

"안 그랬음 여기까지 못 왔죠."

"와, 근데 692? 허, 솔직히 레벨 보다 더 강하신 감이 있긴 한데. 직접 들으니 새삼 놀랍네요."

김요한은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강해서 레벨이 높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벌써 그렇게 되셨을 줄은 몰랐어요. 얼마 전에 종족 대항 전 이벤트에 참여했었다는게 안 믿겨요."

"네네. 이제 그만."

너무 띄워주면 낯부끄러웠다.

300레벨 이하만 참여할 수 있는 종족 대항전.

그 종족 대항전이 개최되고 자신이 참여했던 일이 시간상으로 얼마 안 되긴 했다.

"그런데 저 많은 천족이 한 번에 몰려간답니까?"

본론으로 들어가는 김요한의 말에 유준이 고개를 저었다.

"잠입해서 포로를 구출하는 건 천족 열 명으로 구성한다고 합니다. 우린 거기에 추가로 끼는 거고요."

"그것도 좀 많은 거 같긴 한데...

"어차피 안 들키고 가는 건 불가능에 가깝잖아요. 사실상 정면 돌 파인 셈인데, 열 몇 정도는 많다고 볼 수 없죠."

"으음."

온건파 세력이 주둔하고 있는 곳에 수가 많든 적든 불안한 건 매한 가지였다.

그래서 김요한의 걱정이 큰 것이었지만, 유준은 사실 별생각이 없었다.

'나 혼자서도 가능할 거 같은데.'

아직 분배하지 않은 568의 능력치도 있다.

여차하면 그걸 쓰면 된다.

"다들 모여 주세요!"

유준이 파라네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선발대로 뽑힌 천족들과 유준의 일행들이 손을 잡았다.

이런 식으로 서로 이어지기만 하 면 된다.

"마력이 모자라지 않을까요?"

파라네트가 걱정스러운지 물었다.

"괜찮아. 너를 믿는 나를 믿어."

"아, 알겠습니다."

녀석에게 특별히 마력을 대폭 높 여 주는 반지 한 개를 줬다.

"그거 끼면 확실히 될 거야."

"감사합니다!"

우웅!

엄청난 양의 마력이 폭발적으로 뿜어졌고, 공간 이동이 이뤄졌다.

방금 서 있던 곳과 같은 들판이 펼쳐졌지만, 분명 다른 공간이다.

대규모 공간 이동이 성공한 것이다.

언데드를 경시하는 경향이 심한 천족들이 웅성거렸다.

"저 언데드는 뭔데 공간 이동 마법을 쓸 줄 아는 거지?"

"신유준의 소환수잖아. 역시 소환수도 뭔가 다르네."

"다르다는 수준을 넘어선 것 같은데.... 열 명이 넘는 플레이어를 공간 이동 시킬 수 있는 언데드 가 말이 된다고 생각해? 리치 로드 도 힘들겠는데."

"소환수가 저 정도면 신유준은 얼마나 강한 걸까?"

"곧 알겠지. 세르티프스 님한테

허세를 부린 건지, 아니면 실력에 걸맞은 자신감을 내보인 건지 말이야."

유준은 시험대에 오른 것이나 마찬가지.

그가 앞으로 어떤 결과를 보이느 냐에 따라 세르티프스가 줄 보상도 달라질 것이다.

'희생은 최소화하고 일은 속전속 결로 끝내는게 제일 좋겠지.'

인벤토리에서 행성 파괴자의 검을 꺼냈다.

옵션을 생각하면 절로 흐뭇해지는 아이템.

보기만 해도 배불렀다.

'검의 순수한 위력을 한번 볼까.'

유준이 먼저 땅을 박차고 나갔다.

온건파 천족들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

검으로 일일이 죽이려면 하룻밤을 꼬박 새워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넓은 초원에 빼곡하게 자리 잡은 천족들을 전부 죽일 필 요는 없다.

외곽에 경계를 서고 있는 열둘은 될 법한 수의 천족들.

들키지 않고 안으로 침투하는 것은 아무리 유준이라고 해도 힘들었다.

은신 스킬을 얻지 않는 이상, 아이템의 힘을 빌려도 한계가 있었다.

'그럼 정석으로 가는 수밖에 없지.'

땅을 박찬 그의 신형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_ 10권 19화

238화

온건파는 말이 온건파이지, 자신 들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는 것에 불과했다.

또한, 강경파와 마찬가지로 목적 하는 바를 달성하고자 수단을 가리 지 않았다.

같은 천족의 뒤통수를 치고 목을 베는 것은 기본, 대륙에 있는 이종 족들까지 동원하며 싸움의 판을 키웠다.

천계에서 착한 집단은 없다.

천족들은 강제로 징병하지 않고 뜻이 맞는 이들끼리 모여서 대립했다.

어느 편에 선다고해서 죄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는 것이다.

서걱! 석!

유준은 소리 소문없이 온건파 세력의 천족을 암살하고 다녔다.

대부분의 천족들은 유준의 검에 목이 절단되는 그 순간까지도 본인 의 죽음을 깨닫지 못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유준이 반가운 알림 창을 힐끗 확인함과 동시에 천족 세 명이 동 시에 무기를 들고 짓쳐들어왔다.

이 정도 수를 상대하는데스킬은 따로 필요 없었다.

오로지 능력치와 검의 공격력만으로 천족들 셋을 단숨에 참살했다.

"침입자다!"

"대형을 갖추고 상대해!"

"적이 안 보입니다!"

"범위 마법을 쓰지 말고 처리해

야 한다!"

적진 한가운데에서 학살을 행하는 유준.

그에게는 이러한 환경이 가장 싸 우기 편했다.

상대방이 팀킬을 우려하여 위력 이 강한 대규모 마법을 섣불리 날 리지도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대형.

거기서 그는 미친놈처럼 날뛸 수 있었다.

'어그로 제대로 끌었군.'

천족들 모두가 유준을 찾고자 혈 안이 되어 있었다.

분명 육안으로 희미하게는 보이는데, 기척이 잡히지 않아 매우 답 답할 것이다.

그만큼 유준은은밀하면서도 빠 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다섯의 천족을 더 처리하고 나서 메신저로 일행에게 신호를 보 냈다.

멀리서 대기하고 있던 일행과 강 경파 천족들이 움직였다.

감각을 최대로 활성화했던 터라 주변 플레이어들의 움직임이 한눈에 들어오듯 잡혔다.

'포로 대다수가 다시 잡혔구나.'

온건파 천족들의 시선을 끌 의도 로 그들을 풀어 주기는 했으나, 정 말 그 의도대로 시선만 끌고 잡힐 줄은 몰랐다.

몇 명 정도는 무사히 도망칠 줄 알았는데.

'미안하니까 이번엔 확실히 구해 줘야지.'

유준은 마지막으로 그를 찾고 달 려드는 천족들을 향해 마법을 쓰려 다가 멈칫했다.

그의 마법이 강하긴 하지만, 검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마법 말고 검으로 하자.'

행성 파괴자의 검으로 펼치는 웨 폰 어스퀘이크.

위력이 어떨지 몹시 궁금했다.

푹!

큰 돌들이 움푹움푹 박혀 있는 단단한 지반에 검을 꽂았다.

검은 너무나도 당연히 땅을 쉽게 뚫고 들어갔다.

쿠구구궁!

방대한 마력이 검에서 흘러 나가 기 시작하며, 웨폰 어스퀘이크 스킬이 발동되었다.

그의 웨폰 어스퀘이크의 스킬 등급은 EX.

그그끙-!

스킬의 등급만 놓고 보더라도 깡 패가 따로 없는데, 여기에 천재 특 성 효과와 행성 파괴자의 검이 지 닌 공격력이 더해진다.

웬만한 대규모 범위 마법 못지않 게 공격 범위가 넓은 웨폰 어스퀘 이크였다.

유준의 공격력이 가미가 되니, 상상을 초월하는 광경이 펼쳐졌다.

지면이 푹 꺼지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땅에 발을 대고 있던 대부분 의 천족들이 절명했다.

강력한 파동으로 신체 내부를 공 격하는 스킬.

어스퀘이크 스킬을 모르고 있던 천족들은 무력하게 당할 수밖에 없었다.

"크헉!"

"쿨럭!"

"뭐, 뭐야?"

"왜 이래?"

날개를 펼치고 하늘로 올라가 유준을 찾고 있었던 천족들은 동족들 의 의문사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파동이 한번 휩쓸고 간 자리에

멀쩡히 서 있는 천족은 없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나보다 레벨이 높은 천족이 이 젠 드문가 보네. 속도가 좀 더뎌.'

아직 남아 있는 천족의 수가 그 리 적지는 않았다.

웨폰 어스퀘이크의 범위가 넓긴 해도 천족들이 지은 막사의 크기가 큰 탓에 천족들이 띄엄띄엄 떨어져 있었다.

그래서 아주 많은 수를 죽였다고는 못 했으나....

유준이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파동에 스치기만 했던 천족이 피를 토하며 쓰러지는 것을 보고 어 스퀘이크의 위력이 얼마나 강한지 제대로 체감했다.

'웨폰 어스퀘이크는 진짜 계속 써먹을 수 있겠는데.'

처음 얻었을 당시에는 EX등급 스킬치고는 막 좋다는 느낌을 못 받았다.

그러나 800레벨 초월 검으로 스

킬을 사용하니 달라도 너무 달랐다.

검의 공격력에 큰 영향을 받는 만큼 앞으로 웨폰 어스퀘이크가 쓰 일 일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곧 700레벨도 찍겠는데.'

천족들은 생각이상으로 좋은 경 험치원이었다.

천계에는 600레벨 중후반대의 플레이어들이 많은 듯했다.

'대륙이랑 차이가 좀 크긴 하네.'

게다가 천족은 원체 강력한 종족 이었다.

상태창에 표시된 레벨 이상의 무력을 지녔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좋은 특전을 받은 독고민 수와 김요한도 포로 신세를 면할 수 없었던 거겠지.

포로가 된 이종족 중에도 600레 벨 이하의 플레이어가 드물었다.

애초에 레벨이 낮았으면 천계의 전쟁에 끼어들지도 못했으리라.

유준은 전에 독고민수와 김요한 이 갇혀 있던 그 큰 건물로 들어갔다.

그가 일전에 철문을 다 부숴 버 린 바람에 포로들은 방 한곳에 모여 있었다.

덕분에 이곳저곳 뻘뻘 돌아다닐 필요는 없었다.

방 앞을 지키는 무장한 천족 두 명이 있었지만, 유준이 기척을 죽 이고 다가가 검을 휘둘러 간단하게 처리했다.

"억!"

전에 부쉈던 문보다 더 두꺼운 문을 걷어찼다.

콰앙!

굳게 잠겨 있었던 것 같은데 너무나도 쉽게 열렸다.

'근력이 많이 늘긴 했네.'

무려 800퍼센트의 근력이 늘어난 셈이니 체감이 안 되면 그게 더 이 상한 일이었다.

큰 소음에 갇혀 있던 포로들이 화들짝 놀랐으나, 전에 자신들을 풀어 줬던 인간인 것을 확인하고 기뻐했다.

"우물쭈물하지 말고 빨리 나와 요!"

"저희 묶여 있어서...

유준은 신검합일로 검 다섯 개를 만들고 포로들을 묶은 알 수 없는 소재의 줄을 잘라 냈다.

신검합일로 생성된 가짜 검들도 공격력은 행성 파괴자의 검과 같다.

고로, 600레벨대 플레이어들을 꼼짝 못 하게 했던 줄이 쉽게 잘렸다.

"감사합니다!"

"신유준이죠? 저 당신 알아요."

"고맙다, 인간!"

마족을 제외한 메이저한 이종족 들은 모조리 여기에 있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요즘 마신 추종자 가 안 보이네.'

마신 추종자들이 천계에선 활동 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을 터.

'천족 중에도 마신 추종자가 있을 텐데.'

마신의 축복을 받는 천족이 있다면 그야말로 최종 병기가 아닐까 싶었다.

천족의 수가 확연히 줄어들었기에 포로가 건물 밖으로 벗어나고 있음에도 달려드는 천족이 거의 없었다.

있다고 해도 유준이 재빨리 다가 가 목을 베거나 가슴에 검을 꽂아 넣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경험치 버프를 중첩해서 받으니 확실히 레벨 오르는 속도가 남다른 것이 느껴졌다.

700레벨까지 3레벨 남았다.

서걱!

천족 하나를 더 죽이고 나자, 주 변에 그에게 달려드는 천족이 없었다.

주변에 있던 천족들은 다 죽은 것이다.

유준은 천족들이 죽으며 주인을 잃은, 땅바닥에 나뒹구는 아이템들을 줍기 시작했다.

"아빠! 그거 제가 할게요!"

하프의 말에 그가 고개를 갸웃했다.

"뭘 한다고?"

"아이템 줍는 거요!"

"하프, 너 손 짧잖아."

"이러면 돼요."

하프의 입이 쫙 벌어졌다.

풍선처럼 몸이 커지며 입도 그만 큼 크게 벌어진 것이다.

"여기에 넣으면 되죠!"

"...안 다치고 할 수 있겠어?"

"괜찮아요! 입안을 잠깐 아공간 상태로 만들어 놓으면 되니까요."

"그게 가능해?"

"네! 아마 아빠도 할 수 있을걸요? 혼돈을 활용하면 돼요!"

"혼돈이 참 만능이었구나. 하지만 난 사양할게."

할 수 있다고 해도 그는 굳이 그 럴 필요가 없었다.

인벤토리가 있었으니.

그래도 하프가 아이템을 줍고 다

녀 준다면 매우 편할 것 같긴 하다.

"하여튼 번거로운 작업은 제가 할게요! 어때요?"

"나야 좋지. 고마워, 하프."

"아빠한테 도움이 될 수 있는게 더 감사한 일이죠."

"기특하다."

하프가 빨빨거리며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하얗고 동그란 하프가 열심히 일 하는 동안 유준은 전황을 살폈다.

일행과 강경파 천족들이 얼마 남

지 않은 온건파 천족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아니, 치열하게 치고받고 싸우고 있다는게 정확했다.

' 도와줘야겠군.'

유준은 신검합일로 허공에 띄워 둔 검만 움직여서 일행을 지원했다.

푹! 푹!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날아간 검들이 천족의 뒤통수를 뚫고 지나 갔다.

게임이었다면 엄연한 스틸, 그러니까 비매너 행위였지만 여긴 목숨 이 걸린 전장이었다.

누군가에게 지탄받을 일은 아니었다.

고마움을 느끼면 느꼈지.

유준이 껴들면서 상황이 순식간에 종결되었다.

온건파 천족들과 싸우고 있던 천 족들이 허망한 얼굴로 팔을 늘어뜨렸다.

"끝난... 거야?"

"이럴 거면 우리 왜 온 거지."

"잘됐지. 다치지도 않고 이겼으니까. 어떻게 보면 전술적으로 완

벽한 승리를 거둔 셈이야."

"죽지 않아서 다행이지."

그때였다.

세르티프스가 수백의 천족들을 이끌고 모습을 드러냈다.

늦어도 한참이나 늦은 등장.

하지만 그들을 탓할 수는 없었다.

그들이 늦게 온 것이 아니라, 그 많았던 온건파 천족들이 한순간에 전멸한 것.

그것이 더 상식의 범주를 벗어나는 일이었다.

몇몇 천족들이 세르티프스에게 유준의 활약상을 그대로 전해 주었다.

유심히 듣던 세르티프스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혼자서 그 많은 온건파 놈들을?"

"예. 검을 땅에 한 번 내려찍으니 온건파 플레이어 이백에 가까운 수가 한 번에 전멸했습니다."

"...마법이야?"

"마법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캐 스팅이 전혀 없었어요."

"마법이 아닌 그냥 스킬이겠군."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데 또 신유준은 마법을 잘 다루기로 유명 합니다. 마법과 결합한 능력일지도 모르죠."

"600레벨이 넘는 플레이어들을 일시에 쓸어버렸다.... 확실히 보 통 강자가 아니군."

세르티프스가 유준의 앞으로 걸 어왔다.

한참을 뜸들이던 그가 입을 열었다.

"그대 말이 맞았다. 그대는 더 좋은 보상을 받을 가치가 있어. 이

례적인 일이긴 하지만... 임무 조 건을 수정하도록 하지."

"수정이 중요한 게 아니라, 뭘 줄지가 중요한 거 아닐까요?"

유준의 말에 세르티프스가 처음으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어떤 아이템을 원하지?"

그가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물건은 당연히 그 구슬이었다.

"동기화 구슬을 가지고 계십니까?"

"...동기화 구슬? 아이템인가?"

"하나도 없어요."

"내 일생에 그런 물건이 있다고 들은 적도, 본 적도 없다."

"그렇군요."

크게 실망하지는 않았다.

애초부터 그에게 없을 것 같았으니까.

동기화 구슬을 갖고 있다던 레반을 찾아가면 된다.

그렇다면 다음 선택지.

"장비 아이템이 아닌 소모성 아이템을 원합니다. 제 마음에 들 만 한 것으로 하나 골라 주시죠."

"...오만하게 보이나 그럴 자격

이 있군. 알았다."

세르티프스가 두 개의 아이템을 보여 줬다.

아이템을 확인한 유준이 눈을 크 게 떴다.

고르기 힘들 정도로 둘 다 좋은 아이템이었다.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10권 20화

239화

"둘 다 주는 겁니까?"

"그럴 리가."

"그만한 활약을 했다고 생각하는데요. 소모성 아이템 하나에 천족 수백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대 말이 틀린 건 아니다. 허나, 이건 내 소유 아이템이 아니야. 내 마음대로 정할 수 없다는 얘기지."

"마음대로 정할 수 없는데 한 개는 선택할 수 있게 해 준다고요? 이상한데요."

"메신저로 실시간 보고를해서 허락을 받은 것이다. 두 개는 안 된다고 하는군."

"누가요?"

"총사령관이."

"그게 누군데요?"

"제2천사장님이라고 하면 알아듣겠나?"

"전혀 모르겠는데요."

"하여튼, 두 개는 안 돼."

유준은 입맛을 다시며 아이템 두 개의 정보를 다시 확인했다.

[마법 각인서 Ⅲ]

등급 : 無

옵션 : 모든 마법의 효과가 70% 증가합니다. 각인서는 상태창에 각인되며, 중복되는 효과의 각인서는 사용하실 수 없습니다.

[하이 그리핀의 총명한 뇌]

등급 : 신화

옵션 : 신화적인 몬스터 하이 그

리핀의 뇌입니다. 섭취하는 즉시 마력이 '100' 고정 증가합니다.

'천족들이 강한 이유가 있어. 이런 아이템들을 대천사장도 아니고 저놈이 가지고 있다니.'

세르티프스를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이런 아이템을 사용하지 않 고 인벤토리에 썩혀 두기엔 모자란 실력이었다.

'혹시 강경파 내에서 창고 역할을 맡고 있는 건 아니겠지?'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두 아이템은 귀하고 좋은 물건이었다.

그래서 탐이 날 수밖에 없었다.

하나만 가지고 만족하는 건 유준의 성격상 불가능했다.

"어떻게 하면 두 개 다 받을 수 있겠습니까?"

"한 번 더 활약해 주면 될 것도 같군."

"...솔직히 말해요. 상부한테 허락 안 받아도 되죠?"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그대가 우리에게 얼마나 더 기여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지."

"역시 줄 수 있는 거잖아요."

"어차피 한 번 더 싸운다고해서 그대가 손해 보는 것은 없지 않나?"

"뭐, 좋습니다. 그런데 누구랑 붙 으라는 겁니까? 적은 다 죽였을 텐 데요."

"방금 포로들이 있던 곳은 온건 파의 최전방 주둔 세력일 뿐이고 온건파 천족들 대다수는 후방 쪽에 있다. 그들을 처리하는데 일조하 면 두 개 모두 줄 의향이 있다."

"들어 보니까 한 번 더 싸우는 정도가 아닌데…?"

"내가 틀린 말을 했던가?"

"일단 하나는 먼저 받을 수 있는 거죠?"

"약속했으니까."

유준은 마법 각인서를 채 갔다.

세르티프스는 눈 한 번 깜빡할 사이에 아이템을 가져간 그를 보며 눈을 휘둥그레 떴다.

자신의 인지를 벗어난 속도에 놀 란 것이다.

"왜 그런 눈으로 봐요?"

"방금은 다 가져갈 수 있었던 것 아닌가?"

"에이, 제가 무슨 강도도 아니고..."

사실 세르티프스가 그저 그런 천 족이었다면 두 개를 강탈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나, 그는 강경파 내에 서 상당히 중요한 위치에 있는 자였다.

섣불리 행동할 수는 없었다.

어차피 활약은 보장된 것이고, 그리핀의 뇌도 곧 얻을 수 있겠지.

"손이 상당히 빠르군."

"아무런 희생도없이 온건파 300 명을 넘게 죽였는데 어차피 강경파 가 이기지 않을까요? 그리핀 뇌는

그냥 주면 안 됩니까?"

"안 될 말이지. 전쟁으로 수로 하는 싸움이 아니야. 변수도 많고."

"다음이 마지막 일전이겠죠?"

"그래. 정확히 3일 뒤에 총력전을 펼칠 예정이다."

"왜 그렇게 늦게 해요?"

"여러 복잡한 사건이 얽혀 있어 그렇다."

"온건파 쪽도 알고 있습니까?"

"그래."

"불시에 기습을 하는게 더 효과 적이지 않을까요?"

세르티프스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선 안 돼. 이건 높으신 분 들의 이권 다툼이기도 하지만, 이 일에 전혀 관여하지 않은 대천사장 님이 주관하는 놀이와도 같다."

"...놀이요?"

"뭐, 전쟁놀이지."

"실제로 죽잖습니까? 이벤트도 아니고, 전쟁을 놀이로 한다고요?"

"우리 천족의 개체 수를 감소시 키기 위함이지. 최근 들어 급속도 로 천족의 수가 많아졌거든."

그의 말에 유준은 더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그대가 이해할 수 없는 종류의 얘기인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천계에서 천족의 수는 어떤 방식으로든 일정하게 유지해야 흐II. 그걸 실패 하면 세상에 큰 혼란이 찾아오게 되지."

세르티프스가 덧붙여 설명했다.

"천족의 수가 늘어나면 왜 혼란 이 찾아온다는 겁니까?"

"시스템이 균형을 맞추려 하기 때문이지. 그대도 알고 있겠지만, 우리 천족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오

크나 트롤을 때려잡을 수 있을 정 도로 강력한 종족이다. 천족 하나 가 가지는 힘이 다른 종족과 비교 할 바가 아니지."

"강해서 문제라는 겁니까?"

"그래. 오크가 수백, 수천만으로 늘어난다고해서 크게 문제가 생기 지는 않는다. 그들의 성장 기댓값 이 그리 높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은요? 인간도 겁나 많아졌 잖아요. 그런데 플레이어로서 잠재 력이제일 높은 게 인간이 아니었 어요? 그럼 인간의 수도 조절되는 겁니까?"

그의 말에 세르티프스가 옅은 미 소를 지었다.

"그대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있다. 인간은 잠재력이 높지만, 성장 기댓값은 그리 높지 않아."

일종의 말장난 같았지만, 유준은 세르티프스의 말을 곧장 알아들었다.

"잠재력은 높아도 살아남을 확률 이 천족만큼 높지 않다는 거죠?"

"맞다. 잠재력의 한계가 없으면 뭘 하나. 그것도 목숨을 부지하고 있을 때의 얘기지."

"그래도 인간은 많잖아요. 그중

에 강해지는 사람이 적지 않게 나 올 텐데요?"

"그 강해진다는 것의 기준이 뭐지?"

"글쎄요."

강하고 약하고는 상대적인 것이었다.

기준이 세워질 수 있기는 한지 의문이었다.

"시간이 충분히 주어지고, 성장 할 환경만 마련이 되면 인간들이 천족 못지않게 강해질 수 있다는 건 인정한다. 하지만 그러한 조건들이 붙어야 하는게 문제다."

인간들, 즉 한국인들은 본래 무한의 탑에서 살지 않았다.

그래서 좋은 재능과 능력을 보유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뜻하지 않은 사고로 목숨을 잃는 일이 허다했다.

재능을 꽃피우기도 전에 죽는 사 람이 매우 많은 것이다.

과학이 발전하고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왔던 인간들이 무한의 탑에 서 적응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반면에 무한의 탑에서 나고 자란 종족들은 어렸을 때부터 피를 보는 싸움에 익숙해져 있었고.

그래서 세르티프스는 인간의 잠

재력은 높아도 성장 기댓값이 높지 않다고 말한 것이다.

"방금은 평균을 내서 얘기하는 거고 그대처럼 돌연변이 같은 인간들이 종종 나올 수도 있겠지."

"돌연변이라니...

"욕이 아니라 칭찬을 한 거다. 그대는 내가 본 인간 중에 가장 강 해."

"천족 중에는요?"

"내가 정확히 그대의 실력을 파 악하지 못해 뭐라 말할 수는 없겠 군. 하지만... 천계에는 그대가 상상하는 것 이상의 존재들이 많다."

"그렇군요."

유준이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천계에 강한 플레이어가 많다는 건 좋은 일이다.

최소한 마신 추종자들과 마신에게 대항할 자들이 적지는 않다는 것 아닌가.

강한 천족 중에 마신 추종자들이 많이 포진해 있다면 그건 또 문제 가 되겠지만....

"하여튼 3일 후에 끝을 본다는 거죠? 그때 오면 되는 겁니까?"

세르티프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혹여나 앞당겨진다면 메시지를 보내도록 하겠다."

"좋은 얘기 들려주셔서 고맙습니다."

"뭘. 나중에 시간이 된다면 그대 와 이런저런 얘기를 더 나눠 보고 싶군."

"저야 환영이죠."

대화를 해 보니 세르티프스는 첫 인상과는 다르게 비교적 유순한 천 족이었다.

유준이 강자이기에 대우해 주는

느낌이 있긴 하지만.

그가 세르티프스와 나눈 대화 내 용을 곱씹으며 일행에게 돌아갔을 때였다.

[천계에서 열리는 깜짝 이벤트!]

[황금 고블린을 찾아라!]

[위 이벤트는 600레벨 이상의 상 위 플레이어들만 참여할 수 있습니다.]

[참여하시겠습니까?]

김요한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이벤트? 이거 저만 보이는 거 아니죠?"

"예. 저도 보입니다."

"참가하는게 좋겠죠?"

"이벤트에 참여해서 손해 볼 일은 없을걸요."

"근데 우리 아직 전쟁 안 끝나지 않았어요? 그건 어떡하죠?"

"이벤트가 장시간 진행되었던 건 거의 없었던 거 같은데. 적어도 제 가 참가했던 것 중에는 그래요."

"엄청 길게 하는 것도 있긴 있어요. 딱 한 번이긴 했지만...

김요한의 말에 유준이 고개를 끄 덕였다.

그는 5년을 무한의 탑에서 지냈으니 자신보다 더 많이 알고 있을 것이 당연했다.

" 으음..."

"그래도 황금 고블린을 찾으라는 명확한 목표가 있으니 저것만 찾으면 끝날 것 같기도 한데요?"

"합시다. 그럼."

유준이 도지윤과 독고민수를 봤다.

그와 눈이 마주친 도지윤이미소지었다.

"저야 뭐 다른 선택지가 있나요. 유준 씨가 한다는데."

"나도 마찬가질세. 이벤트를 마 다할 수는 없지."

천족들도 갑작스러운 이벤트에 당황한 듯했다.

그러면서도 들뜬 듯한 분위기였는데 이벤트에 참가하고 싶은 자들이 많아 보였다.

그들의 모습을 본 유준이 중얼거렸다.

"총력전을 한다고 했는데... 어 쩌면 그 총력전의 날짜가 뒤로 미

뤄질 수도 있겠군요."

그는 스스로 말하면서도 그 말에 일리가 있다고 여겼다.

600레벨만 넘으면 모두가 참가할 수 있는 황금 고블린 이벤트.

플레이어라면 전쟁을 미루는 한 이 있더라도 이벤트에 참여하려고 할 것이다.

천계에서만 열리는 이벤트.

이런 기회는 또 없었다.

"마누엘라. 너는?"

유준의 말에 마누엘라가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바라본다.

"네가 가는데 내가 안 하겠어?"

"맞네. 그럼 다들 시간 끌 거없이 바로 갑시다."

['황금 고블린을 찾아라'에 참여 합니다.]

[레벨 조건에 부합되는 플레이어 입니다.]

['황금 화원'으로 전송됩니다.]

워프하면 멀미를 빼놓을 수 없다.

유준은 익숙해졌지만, 하프는 속

이 메스꺼웠는지 헛구역질을 했다.

"하프, 괜찮아?"

"...네! 아주 잠깐 어지러웠을 뿐이에요. 지금은 괜찮아졌어요."

"다행이다."

"유준아. 나도 살짝 어지러웠어."

마누엘라가 관자놀이 쪽을 손으로 짚으며 다가왔다.

"그게 왜?"

"...나도 속이 안 좋아."

"약 먹어."

하프를 대하는 것과는 다른 유준의 태도에 마누엘라가 시무룩해졌다.

"그나저나…."

유준이 확 바뀐 풍경을 확인하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름처럼 모든 게 다 황금이네."

화원이라는 말이 어울리게 꽃들이 즐비해 있었지만, 그 꽃들의 색 이 하나도 빠짐없이 황금색이었다.

게다가 무척 넓어 끝이 보이지 않았고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꽃들이 있었다.

김요한의 눈에 탐욕이 자리 잡았다.

"와, 저거 다 꺾어서 팔면 얼마 나 나올까요."

"조솁. 자네 무한의 탑은 금의 가치가 그리 높지 않다는 걸 잊었는가?"

"아니, 그래도 금이잖아요. 가져 가서 나쁠 게 있어요?"

"그렇다네."

"왜죠?"

"내가 가져가야 하기 때문이라네."

김요한이 아차 하는 순간, 독고 민수가 먼저 움직였다.

"아앗, 비겁하게!"

그도 재빠르게 독고민수를 따라 갔으나, 허리를 숙인 독고민수가 실망한 듯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왜, 왜 그래요?"

"황금 화원을 훼손할 수 없다고 시스템 메시지가 떴네."

"거짓말."

"해 보든가."

"...어, 진짜네."

"쯧."

독고민수와 김요한이 옥신각신하는 사이에 하프를 시켜 몰래 꽃을 따려 했던 유준도 낭패 어린 얼굴 로 혀를 찼다.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10권 21화

240화

황금 화원의 꽃은 어떤 방식으로 도 꺾이지 않았다.

검으로 베도 멀쩡하고, 마법으로 불태워지지도 않았다.

"아쉽게 됐네요..."

도지윤도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황금이 지천에 널려 있는데 가지 질 못한다니.

그림의 떡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유준은 포기하지 않았다.

격에 의해 공격이 통하지 않았던 적도 많지 않았던가?

혼돈을 쓰면 무언가 다를 수도 있었다.

그는 검에 혼돈을 담고 꽃의 줄 기를 베어 봤다.

[황금 화원의 오브젝트는 훼손하 거나 파괴할 수 없습니다.]

그 메시지와 함께 유준의 검이

황금 화원의 꽃을 가르고 지나갔다.

튕긴 것이 아니라 지나갔기에 그 의 얼굴에 환희가 잠깐 깃들었으나, 이내 실망감으로 물들었다.

"진짜 잘리는 줄 알았네."

그가 노렸던 꽃은 멀쩡했다.

그냥 꽃이 실재하지 않고 환상인 것처럼 검이 통과해 버린 것이다.

괜히 기대감만 심어준 셈이었다.

유준은 검을 집어넣고 아쉬운 마음에 손으로 휙휙 저었다.

그러자, 꽃이 흔들리는 것이 아닌가?

"어?"

설마.

되려나?

그가 황금 꽃을 손으로 쥐었다.

힘을 아무리 줘도 뽑히지 않았다.

손날로 베려고 해도 휘청휘청 흔들리기만 했다.

이 현상이 의미하는 바는지금 상태론 황금 꽃을 가져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뜻.

유준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손에 혼돈을 담아 봤다.

그리고 꽃을 손에 쥐고 위로 잡 아당겼다.

푹!

그의 눈이 커졌다.

'됐다!'

절대 뚫을 수 없는 요새와도 같았던 황금 꽃이 뽑힌 것이다.

힘을 별로 주지도 않았는데 뽑혔 다는 건....

'치유의 손길이랑 혼돈이 섞여서 가능했던 건가?'

이유가 뭘까.

그때였다.

유준이 손에 쥔 꽃이 녹아내려 액체로 변하기 시작했다.

질척한 액체가 흘러내리기 전에 유준은 인벤토리에서 바구니 용도 로 쓸 만한 아무 아이템을 집어서 꺼내 액체가 된 황금 꽃을 담았다.

'녹아 버리긴 했어도 결국 금을 얻긴 한 건가? 신기하네...

본래 치유의 손길은 상대에게 해를 입히는 특성이 아니었다.

손을 대고 있으면 급속도로 치유를 하는 능력이지.

그런데 이 치유의 손길이 혼돈과 섞이면 어마어마한 위력으로 상대

를 녹여 버린다.

아마 황금 꽃을 훼손할 수 없다는 규칙 혹은 법을 위배하지 않았 기에 혼돈과 혼합된 치유의 손길 효과가 적용된 듯했다.

유준의 입가가 짜악 찢어졌다.

황금 고블린을 찾는 건 무슨, 황 금 화원의 꽃들만 털고 다녀도 본 전 이상은 뽑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너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하프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전에도 그랬지만, 녀석은 자신의 혼돈 능력을 활용할 줄 알았다.

그러나 하프는 무척 미안한 얼굴 로 고개를 저었다.

"혼돈만으로는 힘들 것 같아요."

치유의 손길을 하프에게 공유해 줄 수 없으니 참으로 답답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전수되면 더 이상한 것이었다.

유준이 꽃을 만지고 액체가 된 황금을 큰 대야 비스무리한 것에 넣고 다니자, 일행이 의아하게 바 라봤다.

"뭐 하시는 거예요?"

도지윤의 물음에 유준이 일행에

게 녹아 버린 황금을 보여 주었다.

"헤엑... 이게 다 뭐야."

"저는 꽃을 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부럽다."

"다들 황금 고블린부터 찾으러 가세요. 전 여기서 금이나 캐다가 나중에 합류하겠습니다."

무덤덤한 얼굴로 말하는 유준.

"진짜 우리끼리만 가요?"

도지윤이 물었다.

유준은 한 치의 망설임도없이 대답했다.

" 예."

"전 여기서 황금 고블린을 끌어들이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겠습니다."

"잠깐만요. 금 캐는 거랑 준비랑 무슨... 상관이에요?"

"황금 화원. 그리고 황금 고블린. 어떠한 연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모르겠는데요...

"화원을 해치고 있으면 황금 고 블린이 알아서 찾아올지도 모릅니

다. 적어도 전 그럴 확률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금이 탐나서 그런 건 아니고요?"

"정확히 보셨습니다. 방금 한 말은 다 개소리였어요. 황금 고블린은 안중에도 없죠."

"다녀오세요."

"알겠어요."

"유준. 자네 말에도 일리가 있네. 황금 고블린이 알아서 찾아올 가능 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서로 찢어 지는게 나을 수도 있겠어."

"역시 그렇죠?"

유준이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 이다가 마누엘라를 바라봤다.

"아, 마누엘라."

"응?"

"넌 여기에 있어 줘."

"어? 응? 왜?"

마누엘라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가호 걸어 줘야지."

"아. 나."

"도지윤 씨랑 독고민수 아저씨한

테도 가호 걸어 주고."

"...알았어."

마누엘라를 제외한 일행이 떠나고, 그는 오로지 황금 꽃 따기에만 열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작업의 효율이 올라서 황금이 쌓이는 속도가 눈에 띌 정도로 빨라졌다.

그의 신형이 번개처럼 스쳐 지나 갈 때마다 황금빛의 꽃들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황금 꽃으로 가득 찼던 화원이 태풍이 지나가기라도 한 것처럼 휑 하게 변해 갔다.

"아빠, 이제 우리 부자 되는 거 예요?"

"그래. 이 정도 금이면 벌레들이 우글거리는 노숙 생활을 벗어나 으 리으리하고 화려한 거대 주택에서 살 수 있겠어."

"좋아요!"

사실 돈이 없어서 노숙하는 건 아니긴 한데.

인벤토리에 두둑이 쌓이는 금을 보니 마음 또한 절로 풍족해지는 느낌이었다.

아직 시작도 안 했다.

황금 화원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었다.

유준이 쓸어 간 면적은 그야말로 조족지혈(鳥足之血)에 불과했다.

'이제 제대로 해 볼까.'

그는 스킬과 특성까지 활용하기 시작하며 작업의 속도를 최대치까지 늘렸다.

여기에 마누엘라의 가호까지 더 해지니 더할 나위가 없었다.

아주 편안하고 신나는 수확 작업 이 장시간 지속되었다.

마누엘라도 수차례 유준과 같이

황금 꽃을 따려 여러 시도를 해 봤지만, 전부 실패로 돌아갔다.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거야?"

"너도 따고 싶어?"

"사실 금에는 크게 관심이 없는데... 그 방법이 더 궁금해. 유준 이 네가 꽃을 따려고 엄청 오래 연 구한 것도 아니잖아."

"꽃을 훼손하지 않는 의도를 갖 고 꽃을 따면 돼."

"...그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야?"

"그러니까, 꽃에 도움을 주려는 선량한 마음을 갖고 꽃을 따면 된

다는 거지."

"모르겠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네가 불순한 의도를 갖는게 문 제라고."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거야?"

"그래."

"꽃을 따려는 것부터가 이미 그 런 생각에서 벗어나기 힘든 거 아 냐?"

"그래서 스킬이나 특성의 힘을 빌려야지."

"넌 그래서 된 거야?"

"응. 운이 좋았어."

"난 안 되는 거야?"

"치유 관련된 특성이나 스킬이 있으면 어떻게 시도해 볼 만할 것 같기는 한데... 마력 소모량이 감 당 안 될 수도 있어."

"그럼 안 할래."

"그래."

황금을 독차지하게 된 유준이 히 죽 웃었다.

'황금 고블린이 오려나?'

꽃을 수확하면서도 그는 감각 범

위를 넓혀 주변을 계속 탐색했다.

아까 일행들에게 했던 말은 결코 빈말로 한 게 아니었다.

황금 화원을 파괴하는 행위를 하고 있으면 황금 고블린이 정말로 찾아올지도 모른다.

유준은 아까부터 떠 있던 홀로그램 창을 다시 띄웠다.

[황금 고블린을 찾으세요!]

[황금 고블린은 황금 화원 어딘 가에 숨어 있습니다!]

[황금 고블린을 처치하는 자에게

는 기여도에 따라 어마어마한 보상 이 주어집니다.]

[현재 기여도 : 0%]

'황금 고블린이면 분명 황금색일 테고... 황금 화원에서 몸을 감추 기엔 제격이겠지.'

자신의 몸을 숨기기에 아주 좋은 환경인 황금 화원.

그런 황금 화원을 해치는 유준을 가만히 두고 볼 리가 없다.

'황금 고블린이 약할까?'

절대 아닐 것이라 확신했다.

어쩌면 황금 고블린을 찾고도 녀 석이 강해 처치하지 못하는 불상사 가 일어날 수도 있었다.

'그러면 나야 좋지.'

황금 고블린을 잡는 건 자신이 되어야만 했다.

'일단 황금 꽃들을 최대한 수집 해 놓자.'

고래를 잡는 미끼.

유준은 그 미끼가 될 생각이었다.

황금 고블린이미끼를 물지 않아 도 상관없었다.

황금 화원의 꽃들을 가져가다 보 면 결국, 녀석의 모습이 훤히 드러 나게 되는 때가 올 것이다.

그때 나서면 되는 일이다.

자기 합리화를 마친 유준은 금을 모으기 위해 더 부지런히 움직였다.

"아빠. 진짜 집 한 채만큼의 금을 모은 거 같은데요?"

"이 정도론 모자라. 아까 으리으 리한 저택에 살 거라고 한 거 못 들었어?"

"그 으리으리한 저택을 금으로 가득 채울 거라곤 생각 못 했어요."

"마음만 먹으면 그 이상도 가능 할 거야."

"전 응원할게요!"

"좋지."

게이머로서의 로망이 있다.

황금빛의 아이템으로 전신을 도 배해 놓는 것.

사실 신들의 전쟁을 할 때 반쯤 실현을 하긴 했었지만, 그건 게임이다.

현실에서 하는 것과는 그 느낌이 다른 것이다.

'이벤트 끝나면 바로 해 보자.'

금이 이만큼 모였으니 현실에서 도 그 로망을 실현할 수 있게 되었다.

천계에서 열린 돌발 이벤트에는 참가하지 않은 플레이어가 드물었다.

물론 600레벨 이상이라는 다소 까다로운 조건에 부합하는 플레이

어들 얘기였다.

이번 이벤트에 대한 천족들의 기 대감은 유독 컸는데, 그 이유로는 레벨 조건이 붙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600레벨이다.

천계에서도 중상위권 이상의 플레이어들만 참가할 수가 있는 수준.

거기다 기여도에 따라 어마어마 한 보상이 주어진다고 했다.

한 명만 보상을 독차지하는 것도 아닌 셈이니 크게 조바심을 낼 필 요도 없고.

천족들은 역시나 온건파와 강경 파로 나뉘어 무리를 지었는데, 그

둘에 속하지 않는 자들, 즉 중립인 자들로 구성된, 소규모 단위의 집 단이 많이 생겨났다.

황금 고블린을 찾는 작업은 몰려 다닌다고 더 유리하지 않았다.

그래서 온건파와 강경파는 여덟에서 열 명에 해당하는 분대를 만들어 탐색 작업을 착수시켰다.

"어? 쟤네 강경파 애들 아니야?"

"맞네."

"일단 죽이자."

황금 고블린을 찾아내는 것이 그 들의 1순위 목표이긴 하다.

그러나 온건파와 강경파 천족들이 만나는 순간 전투가 벌어지는 건 필연적인 일이었다.

황금 화원은 대륙 하나의 크기를 가진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매우 넓었다.

천계의 플레이어들을 상당수 수 용해야 했으니,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그래서 황금 고블린을 찾기가 더 까다로웠다.

황금 고블린을 발견하기 어렵게 만드는 높게 솟은 꽃들을 훼손할 수 없다는 것과,

황금 화원에는 아무런 단서가없이 황금 꽃들만 있다는 것.

그 두 가지가 천족들로 하여금 난항을 겪도록 만들었다.

"이거 며칠은 걸릴 이벤트 같은데."

"그러게 너무 넓어."

소규모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온 건파 천족들이 불평했다.

"이거 가져가는 건 바라지도 않으니까 꽃이라도 벨 수 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면 좀 더 수월하긴 하겠네."

"화원에 있는 거 전부 포인트로 환산하면 얼마나 나올까?"

"돈은 몰라도 가질 수만 있다면 무한의 탑을 통틀어 가장 황금을 많이 가진 존재가 되겠지."

"바보냐? 애초에 훼손시킬 수도 없다는데 뭔 꿈같은 얘길 하고 있어?"

"그러니까 상상으로나마 하는 거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웃으면서 걷던 천족이 말을 흐렸다.

"왜 그래?"

"저, 저기. 저기 봐 봐."

"응? 저게 뭐야..."

온건파 천족들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황금 화원에 빼곡히 자리했던 꽃들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때 천족들의 시야에 실시간으로 꽃들을 수거해가는 플레이어 한 명이 들어왔다.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10권 22화

241 화

"저건 뭔데?"

"...플레이어겠지?"

"인간인 것 같은데? 아니, 마족 인가?"

"마족 특유의 음침한 기운이 없어. 인간이 맞는 거 같아."

"인간이 왜 여기 있어?"

"천계에 우리 종족만 있는 건 아니잖아."

"그 뜻이 아니라... 쟤가 하는 걸 봐. 꽃을 손으로 잡아 뜯고 있 잖아. 저게 어떻게 가능한 거야?"

"난들 알겠냐."

온건파 천족들이 발견한 것은 바로 유준이었다.

그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꽃들을 수거해가고 있었는데. 빠르게 달리 면서도 하나의 꽃도 놓치지 않고 뽑고 있었다.

가히 달인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물어봐야 하는 거 아니야?"

" 뭘?"

"지금 시스템이 정한 규칙을 거 스르고 화원을 훼손하고 있잖아."

"궁금하긴 한데. 알려 주려고 할까?"

"안 알려 주면 어쩔 건데? 고작 인간 따위가. 협박하면 되지."

"하긴.... 그런데 말을 안 들으면?"

"여차하면 죽이면 그만이야."

그들은 불행하게도 유준을 알아 보지 못했다.

사실 웬만한 천족이었다면 알아볼 수도 있었다.

유준은 떠오르는 신예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압도적으로 강한 플레이어가 되었으니까.

그러나 그가 방어구를 전부 황금 색으로 금칠을 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

색이 너무 화려하고 강한 햇빛이 반사되어 눈 뜨고 지켜보기 힘들 정도로 빛이 났다.

그래서 인간인 건 알았지만, 그 의 정체까지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천족 넷이유준에게 성큼성큼 다 가갔다.

"어이!"

"어이?"

유준이 우뚝 멈춰 섰다.

천족들의 기척은 감지하고 있었지만, 이런 식으로 겁도없이 접근 할 줄은 몰랐다.

"인간. 어떻게 화원의 꽃들에 손을 댈 수 있는 거지?"

"방법을 대라."

천족들은 강압적인 태도를 고수 했다.

가까이서 보고 있는데도 유준임을 알아보지 못하는 모습.

인간의 생김새, 즉 동양인들이 비슷비슷하게 보이는 탓에 크게 이 상함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한테 말하는 거야?"

"네놈 말고 여기에 다른 인간이 있던가?"

"아하. 나한테 묻는 거였구나."

유준이 검을 꺼냈다.

그의 행동에 천족들이 뒤로 두 발짝 물러섰다.

"뭐 하는 짓이지? 무기를 들다 니?"

"빨리 무기를 넣어라. 우린 싸우

고 싶은 생각이 없다."

"여차하면 죽인다며? 어이가 없네."

천족 네 명이 동시에 당황했다.

그들이 멀찍이 떨어져서 했던 말을 다 들었단 말인가?

큰 소리로 떠든 것도 아니고 속 삭이듯 말했을 텐데.

"하프. 내가 죽여도 마땅한 놈들이지?"

"맞아요! 아빠에게 나쁜 말을 하 다니 나쁜 놈들이에요! 혼내 주세요!"

하프에게 동의를 받은 유준이 만 족스럽게 웃으며 검을 휘둘렀다.

서걱!

온건파 천족 넷은 유준이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없었다.

뇌가 인지하기도 전에 머리가 먼 저 바닥에 떨어졌기에.

600레벨이 넘는 천족들의 최후라 기엔 허무한 순간이었다.

"뭐야."

거들먹거렸던 것치고는 너무 약 한 것 아닌가.

실력에 자신 있어 보이길래 어느 정도 저항은 할 줄 알았더니.

그렇다고 유준이 전력을 다해 검을 휘두른 것도 아니었다.

정말 가볍게, 대련이라도 하듯 움직였을 뿐이다.

'이 검 때문인가?'

[행성 파괴자의 검]

착용 제한 : Lv. 800 이상

등급 : 초월

공격력 : 89,900,000

옵션 : 모든 능력치가 170%, 근 력이 380% 증가합니다. 모든 '특 성'의 효과가 최대폭으로 증가합니다.

*전능의 돌 : 모든 능력치가 70%, 근력이 180%, 마력이 120% 증가합니다.

행성 파괴자의 검.

레벨 제한 800이 붙은, 경천동지 할 위력을 가진 아이템이었다.

솔직히 전능의 돌을 합산한 옵션 효과가 전혀 안 붙어 있었더라도 사용했을 것 같다.

공격력이 무려 8,900만을 넘었으니까.

물론 옵션도 무시할 수 없었다.

모든 능력치 240%, 근력이 560%, 마력이 120%.

그리고 모든 특성의 효과가 최대 폭으로 증가한다.

그가 지닌 천재 특성이나 검술의 효과가 대폭 증가한다고 생각하면... 그로 인한 상승효과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무과금즐겜러는 이 검을 도대체 어떻게 얻은 거야?'

그가 초월의 돌과 전능의 돌로 강화시킨 덕에 이렇게 사기적인 옵 션을 지니게 되긴 했지만, 원래도 매우 좋은 성능의 아이템이었다.

'무과금즐겜러의 레벨이 최소 800레벨은 된다는 거 같은데.'

우려되는 점은 이제 동기화가 112%에 달했다는 점이다.

150%가 최대치라고 가정해도 도 대체 얼마나 더 좋은 아이템이 전 송될지 감이 안 잡혔다.

슬슬 불안한 마음이 생기기도 했다.

'무과금즐겜러가 적이 되진 않겠지? 그래도 내가 키워 준은혜가 있는데.'

500레벨 만렙 캐릭터로 키워 줬는데 설마 뒤통수를 때리기야 하겠는가.

개나 늑대와 같은 짐승도 낳아 키워 준은혜를 알진대, 게임 캐릭 터라고해서 모를 리가 없다.

'아이템을 강탈하고 있는게 마음에 조금 걸리긴 하는데...'

사실 조금 정도가 아니다.

행성 파괴자의 검을 가져온 이후 로는 아주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일단 나부터가 내 아이템을 가

져간 사람을 가만두지 않을 텐데.'

유준은 작업을 계속 진행하면서 천족들 무리 여럿을 마주쳤다.

그리고 천족들은 일방적으로 유준을 공격하려 들었다.

황금 화원을 훼손하고 있는 그의 행동이 너무나도 눈에 띄었기 때문 이리라.

심지어 그의 뒤로는 허허벌판이 되어 있었으니.

황금 꽃이 사라진 곳에는 검은

흙바닥만이 자리했다.

황금 화원에서 보기 힘든 광경이 다 보니,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나 보다.

유준에게 몰려드는 천족들의 수 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났다.

시끌벅적해진 주위.

그가 얼굴을 찌푸렸다.

'너무 많은데.'

이건 좋지 않다.

황금 고블린이 플레이어들이 이렇게 모인 곳에 모습을 드러낼 리 가 없었다.

드러내기는커녕, 있던 고블린조 차 쫓아낼 정도다.

"신유준이네?"

"장비 아이템이 바뀌었어. 황금 색으로."

"저 꽃을 캐는 이유가 아이템을 도금하려고? 그것 때문인가?"

"설마. 그저 금을 모으는 김에 아이템에 금칠해 놓은 것에 불과하겠지."

모두가 유준을 공격하지는 않았다.

특히 그의 정체를 알아본 천족들

의 경우엔 상황에 전혀 개입하려 들지 않았다.

몇몇 미련한 자들이유준에게 달 려들었다가 순식간에 목숨을 잃는 것을 보고 나서는 아무도 유준을 향해 접근하는 자가 없었다.

다만, 일정 거리를 두고 끈질기 게 따라붙었다.

그래서 유준의 신경이 거슬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대로 가면 황금 고블린도 못 잡을뿐더러... 황금 꽃을 캐는 작 업에도 지장이 생길 확률이 커.'

유준은 한 가지 결심을 했다.

주변에 몰려든 플레이어들을 싹 치워 버리기로.

'온건파든, 강경파든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강경파의 의뢰를 받은 만큼, 강 경파 천족들은 건드리지 않는 것이 이롭겠지만, 그런 걸 가릴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유준이 검에 마력을 담았다.

'혼돈까지는 안 써도 되겠군.'

그의 격도 많이 높아진 상태.

혼돈의 힘을 빌려 격을 극복할 필요가 없었다.

행성 파괴자의 검으로 펼치는 웨 폰 어스퀘이크의 위력은 굳이 설명 할 필요가 없었다.

푹!

그그그긍.

강력한 진동에 아직 수확되지 않은 황금 꽃들이 격하게 흔들렸다.

지면에 발을 대고 서 있던 눈치 빠른 천족들은 다급하게 날개를 펼쳤지만, 늦었다.

유준의 웨폰 어스퀘이크로 인한 파동은 그들이 반응하고 대피할 수 있을 만큼의 시간을 주지 않았다.

"쿨럭!"

"컥!"

내부를 가격당한 천족들이 무릎을 꿇거나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정확히는, 죽었다.

땅에 발을 붙이고 있었던 천족 중에 살아남은 이는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날개를 펼치고 유준을 쫓던 천족들만 살아남게 된 것.

그 수가 많지는 않았다.

대충 어림짐작해서 삼십은 될까.

"미, 미친...

"뭐야, 방금? 무슨 일이...

"다 죽은 거 같은데요?"

"족히 백 명은 넘지 않았어?"

"그랬죠. 불과 5초 전까지만 해 도."

"신유준 짓이지?"

"그의 능력이에요. 저번에 본 적 있어서 잘 알죠."

"그때도 이랬나?"

"네."

운 좋게 살아남은 천족들은 안 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칫하면 뭣도 못 해보고 이벤 트 참가 자격을 박탈당할 뻔했다.

그때 유준이 천족들을 향해 달 려들었다.

비행 마법을 펼칠 수 있는 그였 기에 천족들이 거리를 벌리려 해 도 소용없었다.

서걱!

천족 둘의 목이 잘렸다.

그제야 천족들은 혼비백산하며 달아나기 시작했다.

한 명도 빠짐없이.

"진작 이럴 걸 그랬네."

걸리적거리는 천족들을 모두 치 운 유준은 슬쩍 파티 창을 확인했다.

그의 일행은 다행히 한 명도 빠 짐없이 살아 있었다.

마누엘라가 손에서 투명 반지를 빼며 등장했다.

"끝났어?"

"응."

"근데 황금 꽃을 담을 아이템이 더 남았어?"

"많지."

"그렇게 많이 담았는데도?"

"여차하면 포션병에 담아도 되는 거고.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진짜 너 인벤토리에 뭐가 있는지 확인해 보고 싶어. 너무 궁금 해."

"안 될 말이지. 인벤토리는 내 전부나 다름없는데."

유준도 하나하나 살펴보려면 하 루는 꼬박 날려야 할 정도였다.

그 정도로 아이템이 많고, 다양

했다.

단순히 장비 아이템만 있는게 아니다 보니, 황금 꽃을 담을 물 건도 여유분이 넘쳐 났다.

그때 도지윤이 메시지를 보내왔다.

영상구를 확인하라는 내용이었다.

유준은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인 벤토리에서 영상구를 꺼냈다.

마력을 흘려보내 연결이 된 것을 확인한 그가 입을 열었다.

"왜요?"

-황금 고블린을 발견했다는 플레이어가 있어요.

"아. 확실하대요?"

_네.

"도지윤 씨는 그 말을 믿어요?"

-솔직히 반반이에요.

"반이나 된다고요?"

-그자 말고도 황금 고블린을 근처에서 발견했다는 플레이어들 수십 명이 있었거든요.

"그 근처에 있는 건 확실한가 보네요. 근데 찾은 사람이 그렇게 많은데 아직도 못 잡았답니까?"

-황금 고블린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하대요. 그래서 레이드 할 파티원을 모집하고 있더라고요.

"얼마나 강한 건데요?"

—4천사장이라는 자가 직접 나 섰는데도 큰 상처를 입고 후퇴할 정도였대요.

"혼자서 붙은 겁니까?"

-네. 단독으로 사냥해 보려다가 크게 된통 당한 것 같아요. 그래 서 지금 천족들이 이백 가까이 모였어요.

"황금 고블린 하나 잡자고?"

-기여도가 있으니까 굳이 혼자 잡으러 갈 생각을 안 하는 거죠. 여럿이 모여도 잡을까 말까 할 정 도로 고블린이 강하기도 하니까. 괜한 오기를 부린 자들은 이미 황 금 고블린한테 죽어서 없을 테고요.

"도지윤 씨도 거기에 합류하신 겁니까?"

-일단은 고민 중이에요. 유준 씨가 제대로 결정을 내려 주셔야 할 것 같아서 연락드린 거예요. 어차피 유준 씨도 황금 고블린을 찾으면 넘어올 거잖아요.

"예."

-어떻게 할까요?

유준은 고민하지 않고 대답했다.

"합류하세요."

- 알겠어요.

"그런데 인간도 껴 준답니까?"

-그런 걸 가릴 처지가 아닐걸요? 고양이 손이라도 필요한 마당에.

"하긴.... 알겠습니다. 황금 고 블린을 발견했을 때 메시지 보내 시면 파라네트 불러서 바로 넘어

가도록 하겠습니다."

_네.

그렇게 영상구가 끊겼다.

"황금 고블린 찾으면 이제 황금 꽃도 못 얻겠네."

마누엘라의 말에 유준이 웃었다.

"그럴 리가."

"응?"

"납치해서 봉인 구슬에 넣어 두 면 되지."

"그럼 황금 꽃도 더 얻고, 남들이 황금 고블린을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고. 이벤트도 절대 안 끝날 거고."

마누엘라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악마다."

"악마? 마신 추종자보단 낫네."

유준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10권 23화

242화

일단은 때가 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정확히는, 황금 꽃을 수확하는 작업을 이어서 하는 것이다.

그렇게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도지윤이 메시지를 보내왔고, 메 시지를 확인한 유준이 곧바로 파라네트를 소환했다.

"파라네트. 일행들이 있는 곳으로."

"알겠습니다!"

드디어 할 일이 생긴 파라네트가 우렁차게 대답했다.

"리더가 누구예요?"

공간 이동 마법으로 일행의 옆에 선 유준이 물었다.

"와악! 깜짝이야. 왜 기척도 안 내고 오세요."

김요한이 놀랐는지, 호흡이 가빠 졌다.

"마법이라 마력의 흐름은 느껴졌을 텐데요?"

"제가 감이 좀 둔한 편이라서요. 전혀 몰랐습니다. 아, 리더가 누구 냐고 하셨죠. 저기 바로 앞에 있어요."

김요한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 거대한 드레이크를 타고 있는 플레이어 한 명이 보였다.

"신수? 소환수?"

"소환수래요."

"드레이크 소환수도 있었군요. 몰랐네요."

"우리가 게임 할 때는 없었으니까요. 아니, 그냥 발견을 못 했던 걸 수도."

"그런데 천사장이 드레이크를 타 고 다니는게 좀 이상하게 보이지 않아요?"

유준의 말에 김요한이 고개를 갸 웃했다.

"전혀요."

"더 어울리는 소환수들도 많을

거 같은데...

"에이. 유준 씨. 우리가 무슨 게임을 하는 것도 아니고. 과금해도 구할까 말까 한 고급 소환수를 어 떻게 골라 타요."

"...아."

"그냥 4천사장이라는 플레이어도 드레이크 소환수가 우연히 떠서 사용하는 거겠죠. 소환수의 성능이 좋으니까."

김요한의 말에 유준이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이 맞았다.

신들의 전쟁에서도 소환수를 구

하려면 상당한 돈을 투자해야 했는데, 과금이라는 것이 불가능한 무한의 탑에서 소환수를 얻기란 요원 한 일이다.

초반부터 성장형 소환수인 파라네트를 얻은 유준의 운이 매우 좋은 것이었다.

그때 당시에도 인지는 하고 있었 으나, 천사장이라는 높은 위치에 있는 천족이 드레이크 소환수에 만 족해야만 하는 현실을 보니 새삼 실감되었다.

또 소환수는 얻기도 힘들면서, 성장형 소환수가 아니면 그렇게 크 게 도움이 된다고 보기도 힘들었다.

일단 성장이 정체되어 있으니 일 정 레벨 때만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데, 자신의 레벨보다 높은 소환수를 얻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동 레벨 소환수를 얻는 것도 감 지덕지해야 했다.

'유독 소환수를 부리는 플레이어 가 안 보이긴 했지.'

우연히 성장형 소환수를 얻는다 고 하더라도 직접 육성을 해 줘야 하니 플레이어 본인의 성장이 더뎌 지는 건 필연적인 일이었다.

여러모로 소환수로는 크게 단맛을 보기 힘들었다.

'그래도 저거 보니까... 소환수 하나 더 얻고 싶긴 한데.'

유준은 절대 봉인의 구슬에 봉인 되어있는 발록과 피의 군주를 떠올렸다.

'합법적인 건 아니지만, 둘도 잘 만 길들이면 소환수처럼 쓸 수 있을 거야.'

만약 길들이는데 성공한다고 해 도 단점이 하나 있다.

죽으면 거기서 끝이라는 것.

그리고 완전한 신뢰를 줄 수는 없다는 것.

영혼 계약을 맺어도 마찬가지였다.

언제든 뒤통수를 칠 가능성이 있었다.

"파라네트. 항상 고맙다."

뜬금없이 감사 인사를 받은 파라네트가 화들짝 놀랐다.

"저, 저요?"

"응. 파라네트, 너."

"갑자기요?"

"말 잘 들어서 고맙다고. 내가 계속 부탁만 하잖아."

"...감동입니다, 주인님!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긋지긋한 연구 실 던전을 벗어나도록 주인님께 구 원을 받았고, 질 좋은 장비도 얻어 이렇게 잘 사용하고 있습니다! 고 마운 건 오히려 저죠!"

파라네트가 여태 하지 못했던 고 마움을 전부 말로 표현했다.

반면 유준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그럼 더 열심히 일하도록."

"...으엣."

기대했던 반응이 안 나오자, 파라네트가 순간 당황했다.

" 대답.

"아, 알겠습니다!"

유준이 입가에 웃음을 머금었다.

파라네트가 당황하는 걸 보니 웃 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쟨 진짜 놀리는 재미가 쏠쏠해.'

4천사장의 주도하에 수백에 달하는 무리가 빠르게 진격했다.

"장관이네요. 날개 달린 천족이 몇이야."

유준의 말에 도지윤이 웃으며 고 개를 끄덕였다.

"규모로 치면 세 손가락 안에 꼽을 거예요."

"그래도 온건파와 강경파에 비할 바는 아니지 않아요?"

"아니죠. 여기가 강경파에 속해 있으니까요."

"…아. 맞다. 분대로 나눠서 황금 고블린을 찾게 한다고 했었죠."

"분대치고는 많이 크긴 한데, 황 금 고블린이 너무 강해서 이 정도 가 아니면 찾아도 의미가 없어요."

"도지윤 씨는 황금 고블린을 실 제로 못 본 거 아니에요?"

"전 못 봤죠. 그런데 4천사장이 자기가 봤다는데 믿을 수밖에 없죠."

"전 좀 수상해 보이는데."

"4천사장이요?"

" 예."

"왜 수상해요?"

"얼굴이 수상해요. 분위기도 그렇고."

"...그냥 저 천족이 싫은 거 아니에요?"

"맞습니다. 불길해서 그렇다기보 단 생긴 게 마음에 안 드네요."

"저렇게 이쁜데요?"

"그럼 제 착각이었나 보네요."

" 그죠?"

4천사장은 눈에 띄게 아름다운 외모를 지니고 있었으나, 무언가 이목구비가 조금씩 어긋나 있었다.

그래서 묘한 위화감이 들었던 것 같다.

사실 얼굴의 균형이 딱 맞는 사 람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기분 탓이겠지.'

"그런데 유준 씨. 갑자기 무리를

이탈하거나 그러진 않으시겠죠?"

"그건 왜 묻습니까?"

"그냥 불안해서요."

"상황을 봐야겠지만, 일단은 가 만히 지켜볼 생각입니다."

"다행이네요. 이탈은 해도 되니까 갑자기 4천사장을 공격하거나 그러시면 안 돼요? 알았죠?"

"...지윤 씨가 그동안 저를 어 떻게 생각했는지 잘 알겠습니다."

"오해예요. 그렇게 생각 안 했어요."

"일단은 믿어 드리겠습니다."

유준은 감각을 최대로 활성화해 둔 상태였다.

'황금 고블린이 기척도 잘 숨기나?'

황금 고블린이 황금 화원에 숨으면 육안으로는 발견하기가 힘들다.

그렇다고 또 기척을 숨길 수 있는게 아니면 개나 소나 발견할 수 있을 텐데.

'수십 명이나 발견한 걸 보면... 완벽한은신은 못 하는 것 같고.'

그래서 그는 황금 고블린의 기척을 찾아내는 것이 관건이라고 생각했다.

"아깝네."

주위를 두리번거린 유준이 자기 도 모르게 중얼거린 말에 마누엘라 가 반응했다.

"뭐가 아까워?"

"저게 다 돈인데."

그는 황금 꽃들을 아련한 눈빛으로 보고 있었다.

마누엘라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그렇게 많이 캐 가고도 아직 모 자라?"

"네가 마녀라서 모르나 본데 원 래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는 법이야."

"치. 욕심은 인간만 많나?"

"...응? 아니었어?"

"아니야. 인간보다 더한 종족이 얼마나 많은데."

"뭐야. 누가 날 세뇌한 거야. 인 간은 탐욕의 종족이라고."

여러 미디어 매체를 접하면서 생 긴 선입견일 것이다.

아무래도 판타지 소설이나 영화를 적지 않게 봤으니.

"보는 눈만 없었으면 저거 다 쓸 어 가 버리는 건데. 진짜 아쉽네."

그래서 앞으로의 행보가 중요했다.

황금 고블린을 납치하는데 무사 히 성공한다면 이벤트의 종료를 늦 출 수 있고 그만큼 황금 화원의 꽃들을 더 캐 갈 수 있을 테니까.

'그러려면 운도 좀 따라 줘야 하는데.'

어찌 되었든 황금 고블린을 찾아 야지 뭐든 할 수 있다.

녀석을 발견하지 못하면 말짱 도 루묵인 것이다.

그때문에 남한테 맡길 수가 없었다.

'내 감각 범위가 진짜 커지긴 했네.'

4천사장 무리에 합류한 지 한 시간이 지났다.

성과는 없었다.

전무 (全無).

유준의 인내심이 바닥…나지는 않았다.

애초에 기대도 하지 않았기에.

그는 오로지 그의 감각만을 의 지 했다.

문제는 감각의 범위가 어마어마 한데도 황금 고블린의 기척을 찾 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유준이 도지윤에게 갔다.

"저 잠깐만 어디 좀 다녀올게요."

"어디요?"

"꽃에 물 주러."

"...꺾으러 가는 건 아니고요?"

"들켰다."

머쓱한 표정을 지은 유준의 신 형이 사라졌다.

"정말 바람같이 사라지네."

"또 말도없이 날 두고 갔 어...

쓸쓸한 표정의 마누엘라가 입을 비죽였다.

유준은 비행 마법을 사용했다.

좀 더 높은 곳에서 감각을 활성 화하면 그만큼 넓은 범위를 살필 수 있었다.

'위에 오니까 확실히 다르네.'

그가 눈을 감고 초집중을 사용 했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운데 세상에 혼자만 단절된 것 같은 느 낌이 들었다.

혹시나 지금까지 겪었던 모든 것이 게임 중독자의 망상은 아니었을까?

초집중이 가져다주는 현상 때문 인지 잡생각이 들었다.

본래 전투 상황이었으면 그 전 투에만 집중력이 온전히 쓰였겠지만,

기약 없는 황금 고블린 탐색 작 업에 활용하려니 이상한 생각을 하게 된다.

'아니어야 한다. 제발 빛길 대신에 어둠길만 걷자.'

유준이 머리를 흔들었다.

엉뚱한 생각이나 하고 있을 때 가 아니었다.

그는 전신에 힘을 빼고 감각에 만 집중했다.

그러길 5분.

유준의 눈이 번쩍 뜨였다.

"찾았다."

황금 고블린의 기척은 무척 특 이했다.

강대한 것 같으면서도 황금 꽃 처럼 생물이 아닌 물질 같은 느낌 이 있었다.

무언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묘 한 기운이라고 해야 하나.

하나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여타 몬스터나 플레이어들의 기척 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것이었다.

'황금 꽃에 생명이 있다면 딱 저런 느낌일 거 같다.'

어찌 됐든 황금 고블린의 위치를 알아냈다.

유준은 뜸들이지 않고 황금 고 블린이 있는 곳을 향해 최고 속도 로 날아갔다.

황금 고블린은 이름 그대로 황 금색 몸을 지닌 고블린이었다.

크기도 그리 크지 않고, 일반 고블린만 했다.

'생긴 것만 보면 전혀 강해 보이진 않는데...'

또한, 귀도 밝고 약삭빨랐다.

유준이 다가오는 것을 안 황금 고블린이 황금 꽃들 사이로 숨어 들었다.

다 보이는데.

그가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보통의 플레이어였으면 황금 꽃을 훼손하지 못해 황금 고블린을 발견해도 놓치기 십상이다.

하지만 유준은 다르다.

치유의 손길과 혼돈을 결합하면 황금 꽃을 훼손하는 것을 넘어 뽑아 버릴 수도 있었다.

그가 꽃을 뽑으며 무서운 기세 로 황금 고블린에게 접근했다.

녀석이 헐레벌떡 뛰어가며 거리를 벌렸다.

황금 고블린의 속도가 무척 빠 르긴 하다.

거기에 황금 꽃들의 도움까지 받으니 쉽게 잡기는 어려워 보였다.

"귀엽네."

그래 봐야 부처님 손바닥 안이 요, 뛰어 봐야 벼룩이었다.

유준은 여유롭게 웃으며 황금 고블린을 추격했다.

'황금 고블린이 강하다는 건 다 뻥이었나?'

다가가는 즉시, 도망치는 꼴이 토끼와 다를 바가 없는데.

이러면 4천사장의 말이 거짓이었을 확률이 높았다.

'도지윤 씨가 속은 건가.'

유준은 황금 고블린을 쫓으면서 도 메신저를 열어 메시지를 보냈다.

[* 신유준 : 도지윤 씨. 황금 고 블린을 찾았습니다. 아직까지는 4 천사장이 말한 것처럼 그리 강해 보이진 않아요. 그러니까 그자를 너무 믿지 마세요.]

도지윤의 답장은 한동안 없었다.

설마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걸까.

유준이 다시 메신저를 여는 순간.

[도지윤:네? 저희 지금 황금 고블린을 발견해서 싸우고 있는데요?]

" 응?"

유준이 눈을 크게 떴다.

황금 고블린이 둘?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