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권 24화
243화
황금 고블린이 하나 더 있다고?
아니, 그럴 수가 있나?
황금 고블린을 찾아 죽이면 이벤 트가 끝난다고 했는데.
혹시 황금 고블린을 먼저 잡는 사람이 승자가 되는 방식인 걸까?
그게 아니면 황금 고블린 둘 중 하나는 환상일 수도 있었다.
유준은 주변에 다른 천족들이 없 다는 걸 알고 있다.
그들과 같은 황금 고블린이 쫓고 있는 것도 아니라는 뜻.
[도지윤 : 유준 씨가 잘못 보신 거 아니에요? 지금 저한테 황금 고 블린이 달려가는 모습도 보이는데.]
[*신유준 : 일단 알겠습니다. 제 가 직접 잡아 보고 연락드릴게요.]
[도지윤 :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으나, 생각 해 보면 그리 놀랄 것도 아니었다.
시스템 메시지에 황금 고블린이
한 마리만 있다는 말은 그 어디에 도 없었으니까.
두 마리, 세 마리, 더 나아가 백 마리가 있어도 뭐라 할 말은 없었다.
'백 마리는 오버고... 최대 다 섯까지는 있을 법한데.'
유준은 시간이 그리 넉넉하지 않 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황금 고블린을 잡아 봉인 구슬에 넣어 둔다고 해도 문제는 있었다.
자리가 없는 건 둘째 치고,
황금 고블린의 수가 두 마리를
넘어서는 시점부터 황금 고블린을 데리고 있는 것부터가 의미가 없는 것이다.
다른 쪽에서 황금 고블린을 잡아 버리면 이벤트가 끝나 버릴 테니까.
'내 계획이 다 물거품이 됐잖아.'
실망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유준은 속도를 최대한으로 높인 후 황금 고블린의 경로를 예측했다.
초집중 스킬.
세상이 느려지는 듯한 효과가 극에 달할 때면, 미래를 예측하는 것 과도 같아진다.
황금 고블린은 변칙적인 움직임으로 유준을 따돌리려고 노력했으 나 전력을 다하는 그에게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오히려 거리만 좁혀질 뿐이었다.
"아, 안 돼."
황금 고블린이 고개를 한 번 돌 렸다가 바로 뒤까지 접근한 유준을 보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
흡사 맹수에게 따라잡힌 초식동 물을 보는 듯했다.
황금 고블린의 목덜미를 손으로 쥐어 잡은 유준이 녀석의 몸을 바닥에 세게 내리쳤다.
콰아앙!
흡사 폭탄이라도 터지는 듯했다.
그의 근력은 십만이라는 수치를 훌쩍 넘었다.
유준이 아차 했다.
죽일 생각은 없었는데.
그러나 황금 고블린은 미약하게 나마 숨을 내뱉고 있었다.
죽지 않은 것이 용할 정도로 몸 이 만신창이가 되긴 했지만.
그래도 살아는 있으니 되었다.
유준은 도지윤에게 바로 상황을 물었다.
[*신유준 : 어떻게 됐습니까?]
[도지윤 : 아직 못 잡았어요. 너무 빨라서요.]
[*신유준 : 빠르다고요?]
[도지윤 : 유준 씨 기준으로는 모르겠지만, 우리한테는 확실히 빠 르죠.]
[*신유준 : 어느 정돈데요?]
"인간! 이것 놔라!"
황금 고블린이 발작을 일으키듯 경련했다.
입에 거품까지 물었지만, 유준은 녀석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도지윤 : 4천사장이 헥헥거리면서 쫓아가는데, 손에 잡힐 듯 안 잡힐 듯 한 정도요.]
[*신유준 : 머릿속에 딱 그려지는 비유군요. 고맙습니다.]
[도지윤 : 유준 씨는 어떻게 됐 어요?]
[*신유준 : 잡았습니다. 지금 발 버둥 치고 있긴 한데, 꽉 눌러 놔 서 못 도망치게 하고 있어요.]
[도지윤 : ...잡았다고요? 황금 고블린을?]
[*신유준 : 예. 상황 해결되면 말해 주세요.]
[도지윤 : 네네.]
유준은 아직도 소리를 박박 지르 고 있는 황금 고블린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인간! 내 말 안 들리냐고! 인간! 인간!"
"나 인간인 거 잘 아니까 그만 강조해."
"귀가 먹었냐? 날 풀어 달라고!"
"내가 왜? 너처럼 맛있는 앨 왜 놔주냐?"
"...뭐? 뭐? 날 잡아먹으려는 건가?"
"설마."
유준은 황금 고블린의 처우를 두고 잠시 고민했다.
황금 고블린이 한 마리만 있는게 아니라면 이 황금 고블린을 살 려 둘 이유가 없었다.
문제가 하나 있다면 여기서 고블 린을 죽이면 황금 꽃을 더 얻지 못
한다는 것.
'도지윤 쪽 황금 고블린이 아니 더라도 다른 곳에서 황금 고블린이 먼저 잡을지도 몰라.'
더 이상 시간을 끌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유준은 망설임없이 황금 고블린 의 머리에 검을 꽂았다.
푹!
시끄럽게 떠들던 황금 고블린의 숨이 끊겼다.
그러고 나서 나타날 홀로그램 메 시지를 기다렸다.
1분이 흘렀다.
"응?"
아무런 메시지도 나타나지 않았다.
레벨이 올랐다는 메시지도, 이벤 트가 종료되었다는 메시지도.
그는 혹시나해서 황금 고블린의 사체를 유심히 살펴봤지만, 녀석은 확실히 죽었다.
황금 고블린은 환상이었던 것도 아니다.
마력으로 몸이 이루어진 환상이
었으면 숨이 끊긴 순간 육체가 사라졌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도 바뀌는 것은 없었다.
시야 상단에 표시되어있는 기여 도도 단 1%도 오르지 않았다.
"뭐지?"
유준은 어이가 없어 자기도 모르 게 헛웃음을 지었다.
바로 도지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신유준 : 잡았어요?]
[도지윤 : 아니요. 왜요?]
[* 신유준 : 방금 황금 고블린을 죽였는데... 놀랍게도 아무런 일 도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도지윤 : 죽였다고요? 분명 시 스템 메시지는 없었는데....]
[*신유준 : 그래서 문제인 거죠. 아, 황금 고블린이 황금 고블린이 아닌 걸까요?]
[도지윤 :네? 그게 무슨..., 혹시 유준 씨가 잡은 게 가짜 황금 고블린이라는 소리예요?]
[*신유준 : 예. 그냥 황금색 고 블린이라서 황금 고블린이라고 우
리가 멋대로 단정 지은 게 아닐까 생각이 들어서요.]
[도지윤 : 그럴 수도 있겠네요. 지금 놓인 상황만 보면....]
[*신유준 : 일단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후..."
시스템한테 제대로 낚인 듯한 기 분이 들었다.
그러나 낙담만 하고 있으면 아무 것도 변하지 않는다.
유준은 파라네트를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공간 이동 부탁해."
"동료분들이 있는 곳으로요?"
"응."
"알겠습니다."
파라네트의 공간 이동으로 일행 이 있는 곳으로 간 유준은 앞서 달 려가고 있는 독고민수를 향해 다가 갔다.
바로 뒤까지 따라붙은 그가 속삭 이듯 말했다.
"그 동기화 구슬을 가지고 있다 던 레반? 그분은 어떻게 됐죠?"
"오, 언제 왔는가? 레반은 여기 황금 정원에 있을 걸세."
"아직 살아 있는 건 맞죠?"
"그렇다네."
"다행이군요."
어차피 이벤트라서 죽어도 상관 없기는 하다.
하지만 동기화 구슬을 어떻게든 얻어 내야 하는 유준으로선 레반이 무사해야 마음이 놓일 수밖에 없었다.
"동기화 구슬이 자네에게 엄청 중요한 아이템인가 보군."
"그때 설명했잖아요. 제 특전과 관련되어있다고."
"그 구슬을 얻게 되면 꼭 자네한테 알려 주도록 하지."
"고맙습니다."
"고맙기는. 서로 돕고 사는게 동료 아니겠나?"
"마음이 든든하군요."
"국밥 같나?"
"예? 그게 뭔 개드립입니까."
"갑자기 든든한 국밥 한 사발이 걸치고 싶어져서 그랬네. 못 먹은 지 5년이 지났으니.... 그립구만."
"저는 반년 전에 먹었습니다. 부 산 가서."
"...약 올리는 건가?"
"그냥 그렇다고요."
"자네도 따지고 보면 5년이 넘게 흐른 것 아니던가? 그렇다면 나와 같다고 볼 수 있겠군."
"아뇨. 전 1년 차 플레이어인데."
"그거야 그렇지. 하지만 자네가 무한의 탑에 오고 실제로 흐른 시간은 5년이 아니던가?"
"그것보다 중요한 건 제가 국밥 맛을 아직도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건 솔직히 부럽구만."
"한국 음식 생각 많이 나죠?"
"당연한 말을 묻는군. 여기서 맛 있다는 음식들을 다 찾아봤네만, 내게는 전부 그저 그랬네."
"저도 맛있는 건 최근에 많이 먹 어서 불만이 아주 크진 않은데, 솔 직히 그립긴 합니다."
"자네는 1년도 채 지나지 않아서 그 그리움을 제대로 체감하지 못할 걸세. 하아...
"언제는 5년을 더하라더니."
"자네가 부정하지 않았는가."
"맞습니다. 젊게 사는게 좋죠."
"자네의 거짓 젊음은 크게 부럽 지 않네."
"거짓 젊음? 제 나이에 5년을 더 해도 아저씨 나이엔 턱도 없는데요?"
"자꾸 나이 공격하기 있나?"
"안 부럽다면서요."
"그 정도 거짓말은 좀 넘어가 주게. 나도 체신이라는게 있는 사람 이야."
"제가 눈치가 없었네요. 그런데..."
"응?"
"4천사장은 저기서 뭘 하는 겁니까?"
"황금 고블린 쫓고 있지 않나. 너무 멀어져서 내 눈에는 안 보이 네만."
"일부러 잡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요? 저한테는?"
" 으응?"
독고민수가 고개를 갸웃했다.
"굳이 그럴 이유가 없지 않은가?"
"있죠. 얻는 것도 있을 테고."
"얻어? 뭘 얻는다는 건가?"
"4천사장은 황금 고블린을 잡아 도 아무런 일도 생기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을 겁니다."
"...잠깐만. 아무런 일도 생기 지 않는다니? 그게 무슨 소린가?"
"그게 황금 고블린이 맞았는지도 의문입니다만... 하여튼 금색 고 블린을 제가 죽였습니다."
"그런데 이벤트는 종료되지 않았고?"
" 예."
"뭐가 문제던가?"
"제가 죽인 건 황금 고블린이 아니었겠죠."
"...자네의 말은 4천사장이 연 기를 하고 있다는 뜻이군?"
"정확합니다."
"4천사장이 우릴 속여서 뭘 얻는 다는 건가?"
"저도 몰라요. 그런데 아무 이득 도없이 헛짓거리할 리 없잖아요."
"그렇긴 하지."
유준이 눈을 가늘게 뜨고 4천사 장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황금 고블린을 가까스로 놓치는 장면이 수차례 연출되었다.
얼핏 황금 고블린이 4천사장을 농락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으나, 유준은 그게 아니라는 걸 단번에 알았다.
사실 그처럼 4천사장을 의심하는 플레이어가 몇 있기는 했다.
"4천사장님 좀 이상하지 않아?"
"이상하다니?"
"원래 저것보단 더 빠르시잖아. 왜 황금 고블린을 못 잡고 계신 건
지 이해가 안 가는데."
"이유가 있겠지."
"이유가 없어 보이니까 문제인 거야."
"황금 고블린이 느린 것도 아니 잖아. 우리가 평생 잡으려고 해도 못 잡을 정도로 빠른데, 4천사장님 이 신도 아니고 안 되는 걸 되게 하겠어?"
그러나 말 그대로 소수일 뿐이라 서 그들의 의견에는 큰 힘이 실리 지 않았다.
"상황이 대충 이러니, 정면 돌파
하는 수밖에 없겠네요."
유준의 말에 독고민수가 눈을 크 게 떴다.
"설마 4천사장을 공격하겠다는 건가?"
"아니... 다들 날 어떻게 보는 거야. 그런 거 아닙니다."
"그럼?"
"황금 고블린을 잡아야죠."
"오, 4천사장이 황금 고블린을 놓고 무언가를 꾸미고 있다고 가정 한다면 황금 고블린을 자네가 잡아 버리는 순간 아주 제대로 훼방 놓는 셈이 되겠군. 아, 내가 너무 설
명충 같았나?"
"아니요. 제 뜻을 알아줘서 고맙습니다."
"그랬다니 다행이군."
유준은 생각을 실천으로 옮겼다.
번쩍-!
땅을 박차고 쏜살같이 뛰쳐나간 그를 눈으로 좇을 수 있는 자는 적 어도 이 무리에 없었다.
그는 순식간에 4천사장을 지나쳐 황금 고블린의 뒤통수를 노리고 검을 뻗었다.
녀석은 황급히 몸을 옆으로 던지
며 뒤에서 날아오는 공격을 피해 냈다.
유준의 눈이 이채를 띠었다.
'아까 죽인 놈보다 더 민첩한 거 같은데?'
어쩌면 눈앞의 녀석이 진짜 황금 고블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점멸을 사용해 땅바닥을 구 르는 황금 고블린의 뒤로 이동했다.
"이잇!"
황금 고블린이 재빨리 몸을 구르 며 유준에게서 벗어나려 했지만, 한발 늦었다.
그가 고블린의 뒤통수를 붙잡고 땅에 세게 내리쳤다.
콰아앙!
역시 이번에도 높은 근력으로 인 해 황금 고블린이 한 번에 기절했다.
그때였다.
"지금 뭐 하는 짓이지?"
어느새 뒤까지 따라붙은 4천사 장.
그가 굳은 얼굴로 물었다.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10권 25화
244화
몸을 일으킨 유준이 무심한 얼굴 로 물었다.
" 왜?"
"왜 허락도없이 황금 고블린을..."
"얘 잡으려고 지금껏 고생한 거 아니었어? 대신 잡아 줬는데 왜 고 마워하지 못할망정 화를 내는 거지?"
그는 분명 틀린 말을 하나도 하
지 않았다.
4천사장이 얼빠진 표정으로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그러다 곧 얼굴을 굳히고 재차 입을 열었다.
"그건 우리 사냥감이었다."
"나도 그쪽 무리 소속이었는데?"
"...뭐? 난 널 본 적이 없다."
"네가 일일이 확인한 적이 없을 테니까. 저기 뒤에 오는 플레이어 들 중에 내 일행이 있다."
"흠."
실제로 유준의 일행이 당도하자,
4천사장은 무어라 따질 수가 없었다.
유준의 손에 붙들린 황금 고블린을 본 천족들이 허탈하게 웃었다.
"신유준이 잡았네."
"언제 나타난 거야? 원래 여기 있었나?"
"그러니까 황금 고블린 머리를 손에 쥐고 있겠지?"
"나도 아까 한번 지나가다 신유준 봤어."
"그래?"
"어? 그런데 기여도가 안 올라가
는데?"
"아직 안 죽였잖아. 기절만 한 상태야."
"그래서? 내가 죽여도 되는 거지?"
유준이 4천사장에게 말했다.
4천사장은 고개를 흔들었다.
부정의 의미였다.
" 왜?"
"네가 잡으면 기여도가 다 너한테 몰릴 테니까."
"그럼 누가 잡아야 하는데?"
"수많은 무리를 이끄는 내가 처 리해야겠지."
"전부 파티 상태는 아닐 거 아니야? 그럼 기여도를 분배하는데 문 제가 생기는 거 아니야? 다른 플레 이어들은 황금 고블린을 쫓아가기 만 했잖아. 그걸로 기여도가 쌓이겠어?"
4천사장이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긴 침묵 끝에 말문을 열었다.
"솔직히 말해서 마무리는 중요한 게 아니다."
"마무리가 안 중요해? 그럼 뭐가
중요한데?"
"우리가 황금 고블린과 전투를 벌여야 한다는 거다."
"기여도 때문에?"
"그래."
유준이미심쩍은 눈으로 4천사장을 바라봤다.
그는 황금 고블린을 죽여도 아무 런 변화가 생기지 않는다는 걸 한 번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물론, 이번에도 그러리라고 확신 할 수는 없었다.
이번 황금 고블린은 전에 잡았던
녀석보다 더 빠르고 기민했었으니까.
생김새는 같아도 그 차이가 진짜 와 가짜를 나눌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 고블린 또한 가짜라고 한다면 4천사장을 의심하는 수밖에 없었다.
'놈은 일부러 황금 고블린을 놓 치고 있었어. 확실해.'
가까이서 보니 4천사장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대충 감이 잡힌다.
그녀는 황금 고블린에게 따돌려 질 정도로 느리지 않았다.
"그럼 한번 해봐."
유준은 황금 고블린의 뺨을 세게 때렸다.
어마어마한 위력의 싸대기에 황 금 고블린의 눈이 번쩍 떠졌다.
"뭐, 뭐지?"
"뭐긴 뭐야. 일어나. 일해야지."
" 일?"
유준은 황금 고블린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녀석의 몸을 4천사장을 향하게 했다.
"싸워."
4천사장이 황당해하는 사이에 황
금 고블린은 그대로 달아났다. 상황 판단이 빠른 녀석이었다.
"쟤는 싸울 생각이 없나 본데?"
"억지로 싸운다고 기여도가 올라 갈까?"
"어엇, 이러다 놓치는 거 아닙니까?"
"4천사장님!"
천족들까지 재촉했다.
4천사장이 깊은 한숨을 내쉬고 날갯짓을 하며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아까보다 더 빨라졌잖아.'
역시 실력을 숨기고 있다.
정확히는 황금 고블린을 붙잡고 싶지 않았던 거지.
이로써 유준이 했던 의심이 무의 미하지 않았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황금 고블린과 가장 연관 높은 이를 꼽으라면 지금으로선 4천사장 이었다.
그때 도지윤과 독고민수를 비롯 한 일행이 다가왔다.
"어떻게 된 거예요? 왜 풀어 줬죠?"
"4천사장이 어떻게 나오나 보려 고요."
"기여도 그것 때문에 결국 놓쳤 네요."
"놓친 게 아닙니다."
"네?"
"황금색 고블린은 황금 고블린이 아니에요. 확실합니다."
"그럼... 4천사장이?"
"이제 확인해 봐야죠."
"자네는 그걸 어떻게 알았나?"
"그냥 의심스러워서요. 4천사장을 바로 앞에서 보니까 알겠던데요?"
"감... 비슷한 거라고 보면 되겠나?"
"맞습니다."
"나도 사실은 4천사장 그녀가 수 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네...
"이 아저씨, 웃기네. 아까는 4천 사장이 절대 그럴 천족이 아니라고 그렇게 떠들어 대더니만."
독고민수의 뻔뻔함에 김요한이 참지 못하고 태클을 걸었다.
"내가 언제 그랬나?"
"증인은 많아요. 아저씨. 부정하
려 하지 마세요. 그럴수록 추해질 뿐이에요."
"크흠... 기억이 잘 안 나는 군."
"하여간 좀만 이쁘다 싶으면 눈 확 돌아가는 거. 그것 좀 고쳐야 해요, 아저씨는."
"이해 좀 해 주게. 내 40년 이상을 연애 한 번 하지 않고 솔로로 살아왔네."
" 진짜요?"
유준이 놀란 눈으로 묻자, 독고 민수가 볼에 홍조를 띠고 고개를 끄덕였다.
"부끄럽네만, 그렇다네."
"역시 그동안 검만 수련하신 거겠죠?"
"아닐세...
"연애가 귀찮긴 하죠. 그만큼 노 력해야 할 수 있는 거기도 하고."
"노력도 했다네."
"..."
"소개팅이라는 것도 수차례 해 봤으나 단 한 차례도 성공한 적이 없었지."
"둘이 서로 안 맞았나 봐요. 아무래도 성격이 맞고 대화가 잘 통
해야 하는게 중요하다 보니 이해합니다."
"일방적으로 차였네."
"소개팅 상대들은 하나같이 내 외견을 지적했네."
"면전에 대고요?"
"주선한 사람에게서 들었지."
"소개팅 주선자도 문제가 좀 있 네요. 그걸 곧이곧대로 말하다 니...
"주선자는 잘못이 없어. 내가 제 발 그 이유 좀 말해 달라고 했네."
"아."
"답답했지. 도통 그 이유를 알 수 없었으니. 허나, 주선자의 내 외 형이 문제라는 말에 난 아무 반박 도, 말도 할 수 없었네."
갑자기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독고민수의 말에는 진득한 설움 이 담겨 있었다.
깐족의 대명사인 김요한도 지금은 입을 다물고 경청했다.
"노력도 했고, 나를 가꾸기도 해 봤다네. 하지만 호박에 줄을 긋는 다고 수박이 되진 않지.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더군."
''허..."
"그런데 아저씨. 혹시 말투를 지금처럼해서 그랬던 거 아니에요?"
김요한의 말에 독고민수가 쓴웃 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내가 그런 간단한 걸 안 고쳤겠 나?"
"한번 보여 줘 봐요."
"뭘 말인가?"
"콘셉트 지키지 말고 소개팅 때 했던 말투로 말해 보라고요."
"여기서 하기엔 부끄럽군. 그것 보다도 황금 고블린을 잡아야 하지
않겠는가?"
"괜찮습니다. 제가 위치는 다 파 악하고 있으니."
파라네트의 공간 이동으로 언제 든 4천사장이 있는 곳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왜 다들 내 연애사를 궁금해하는지 모르겠구만...
"응? 연애사라뇨. 연애를 못 해 봤으니 연애사라기보다는 인생사라고 해야죠."
도지윤의 말에 독고민수의 눈이 급격히 커졌다가 원래 상태로 돌아 왔다.
"...이번엔 좀 아팠네."
"미안해요."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했던 말에 진심을 담아 사과했다.
"하여튼 말투는 그냥 평범하게 했네. 지금은 이 말투가 익숙해져 예전 말투로는 말을 못 할 것 같긴 하지만...
"콘셉트에 잡아먹히셨군요."
"그런 셈이지."
"아저씨. 그런데 아저씨 외모가 절대 뒤떨어지는 것 같지는 않은데요? 솔직히 중후한 매력도 있어서
외모가 문제였다고는 생각이 안 들어요. 빈말로 하는게 아니라 진짜 남자답게 생기셨어요."
유준의 위로 섞인 말에 독고민수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항상 쓰고 있던 챙이 긴 모자를 벗었다.
그러자 드러나는 눈부신 자 태....
아니, 광택....
아니, 빛....
태초의 빛이 거기에 있었다.
김요한이 아연한 얼굴로 중얼거
렸다.
"...없어."
"그렇다네. 왜 내가 가꿔도 소용 이 없다고 했는지 알겠나?"
"왜 가운데만...
"그게 참 야속한 일이지. 머리가 빠지는, 그러니까 탈모가 복구 불 가능한 지경에 이르렀을 땐 세상을 적으로 돌리고 싶은 심경이었네. 정확히는 세상이 내게 악감정을 가 진 게 아니었을까. 그래서 오히려 나는게임과 검술에 좀 더 집중할 수 있었네."
"...너무 슬퍼요."
눈가에 눈물이 맺힌 하프가 훌쩍였다.
"귀여운 신수한테 동정을 받다 니. 기분이 썩 나쁘진 않군."
"어떤 싸움을 해 오신 겁니까, 조선제일검."
"싸움은 무슨. 체념하고 생긴 대 로 사는 수밖에 없네. 너무 동정해 주지 않아도 된다네. 난 지금 무척 행복하니까."
"맞아요. 여긴 이종족도 많고, 머 리카락이 솔직히 중요하다고 보긴 힘들죠."
"네? 한낱 개나 늑대와 같은 짐
승들도 털이 풍성한 애들이 더 인 기가 많다는 연구 결과가...
"넌씨눈."
도지윤이 김요한을 흘겨봤다.
김요한이 황급히 본인의 입을 틀 어막았다.
그는 잘못을 바로잡고자 상황을 수습하기로 했다.
"머리가 빠지는 건 남성 호르몬 과도 큰 관련이 있습니다. 아저씨는 남성 호르몬이 많다는 거고 그 럼 또 남성 호르몬이 많으니 근육 도 빨리 늘어날 거예요. 어떻게 보 면 남들보다 한참 우위에 있는 거
죠. 열성과 우성으로 나누면 우성이라고 볼 수도 있...
"요한. 자네의 말은 전혀 위로가 안 되네, 그만하게."
" 예."
시간이 지날수록 독고민수의 표 정이 더욱 어두워졌다.
그때 조용히 지켜보던 파라네트 가 갑자기 독고민수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거대한 덩치를 지닌 녀석이 인자 하게 웃었다.
"동지."
"..."
"지금부터 넌 나와 동지다."
파라네트의 반짝반짝한 머리를 확인한 독고민수가 헛웃음을 지었다.
"왜 웃지?"
"난 자네와는 다르네."
"뭐가 다르다는 것이냐."
"자네는 머리카락이 한 올도 없 지 않은가? 애초에 탈모도 아니잖은가? 피부 자체가 없는 언데드가 내게 동지라고 하면 내가 얼마나 서글퍼지는지 아는가?"
"...미안하게 됐군."
"됐네."
친구가 될 뻔했던 둘은 결국 친 구가 될 수 없었다.
그럼에도 파라네트는 독고민수에게 친근감을 느끼고 있었다.
저 정도면 마음 절절한 순애보라고 봐도 될 듯싶었다.
"전 슬슬 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유준이 말했다.
"어딜 가요?"
"4천사장 잡으러요. 녀석이 황금
고블린을 쫓는 걸 멈추고 멀리 달 아나기 시작했거든요."
"...그렇다는 건."
"예. 황금 고블린을 잡을 생각이 애초부터 없었던 거죠. 우선 4천사 장을 제압하는게 낫겠습니다. 혹시 모르니 여러분은 황금 고블린을 쫓아가 주세요."
"알았어요."
유준은 파라네트에게 눈짓을 했다.
눈치 빠른 파라네트가 곧바로 4 천사장이 도주하는 경로를 목적지 삼고 공간 이동을 사용했다.
파바밧.
"파라네트, 너 실력 좀는 거 같 다?"
"저, 정말입니까?"
"응. 멀미가 예전보다 덜해. 무엇 보다 공간 이동을 펼치는 속도가 말도 안 되게 빨라졌는데?"
"주인님이 좋은 아이템을 선사해 주신 덕분입니다."
"맞아. 다 내 아이템 덕분이지."
유준은 파라네트와 함께 곧 나타 날 4천사장을 기다렸다.
이윽고 나타난 4천사장.
그녀는 검을 빼 든 유준을 보고는 경악하며 몸을 돌렸다.
유준은 빠르게 따라붙었다.
"어디가?"
"황금 고블린은 어쩌고 혼자 왔어?"
"다 알고 있는 것 아닌가?"
"응? 뭘 알아?"
"인간. 제발 나에게서 신경 좀 꺼라."
"명색이 4천사장인데, 그냥 놔줄 수는 없지."
"날 정말 천사장이라고 생각하면 처음부터 그런 식으로 나오지 않았겠지. 넌 날 처음부터 의심하고 있었다."
"잘 아네."
"내가 황금 고블린이라는 걸 아는 자는 너밖에 없다. 여기서 널 처리하면 다 끝나는 일이지."
"어..어?"
4천사장이 황금 고블린이라고?
유준은 4천사장이 황금 고블린과
관련이 있을 거라고만 생각했지, 4 천사장이 황금 고블린일 거라고 짐 작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그걸 본인 입으로 말해 주다니.
'이게 웬 행운이야.'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11권 1화
245화
아무래도 4천사장은 유준이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 모양이다.
그러니까 스스럼없이 본인이 황 금 고블린이라고 말을 하지.
"근데 날 죽인다고?"
"그래. 목격자는 그 소환수를 제 외하곤 없어 보이는군. 소환수 또 한 너를 해치우면 자연스레 해결될 일이다."
"이야, 똑똑해."
유준은 고대 마법으로 주위에 결 계를쳤다.
아주 강력한 결계라 웬만한 충격에도 끄떡없을 것이다.
당분간은 누가 껴들 수도 없을뿐 더러 4천사장도 도망갈 수 없을 것이다.
결계라는게 사용할 줄만 알면 참으로 편했다.
'고대 마법이 없었으면 꿈도 못 꿨겠지만...
가뜩이나 EX++로 등급이 높은
고대 마법인데 천재 특성으로 효과 가 수배나 강화되어 결계의 위력은 두말할 것이 없었다.
강력한 결계에도 4천사장은 당황 하지 않았다.
"결계? 도망갈 길을 스스로 틀어 막다니, 어리석구나."
유준은 굳이 상대하지 않고 미소 띤 얼굴로 4천사장에게 천천히 다 가갔다.
그의 여유로운 태도는 본인이 승 리할 것이라는, 4천사장의 확고한 믿음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다.
그녀는 고고한 표정을 유지하며 하얀 깃이 달린 긴 창을 쭉 뻗었다.
번개같이 짓쳐들어오는 창이었으 나 유준은 고개를 한 번 젖히며 간 단하게 피했다.
사실 검으로 막을 수도 있었으나, 그랬다간 4천사장의 창이 무참 하게 파괴될 확률이 높았다.
그래선 안 된다.
4천사장이 도망갈 마음을 먹게해서 좋을 것이 없었다.
'일단 생포를 해 두는게 좋겠지.'
유준은 4천사장을 이미 다 잡은 먹잇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4천사장이 혼동을 주기 위해 자신이 황금 고블린이라고 먼 저 자백해 버린 걸 수도 있다.
그래서 쉽사리 죽일 수는 없었다.
죽이더라도 정보를 최대한 캐낸 후다.
그는 검의 사용을 최대한 자중하 며 4천사장의 공격을 피하기만 했다.
'마법으로만 제압해야겠는데...
행성 파괴자의 검은 공격력이 높 아도 너무 높았다.
스쳐도 사망이라는 말이 결코 과 장 표현이 될 수 없을 정도.
'내가 아무리 강해졌어도 그렇지. 적을 배려해 줘야 할 수준까지 온 건가.'
정확히는 아이템의 발전이지.
무기의 성능이 좋아도 적정치라는게 있다.
행성 파괴자의 검은 그 적정치가 없었다.
'공격력 9천만은 선 많이 넘었지.'
공격력이 높아 죽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면 오히려 적을 함부로 공격할 수가 없다.
'상관없어.'
그가 지닌 고대 마법의 위력도 무시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검을 사용하는 것과 비교가 돼서 그렇지, 고대 마법은 EX++등급.
거기에 마력 능력치는 어마어마 하게 높았다.
공간 장악 마법이 펼쳐지자, 4천 사장은 곧바로 몸을 던졌다.
유준이 눈을 크게 떴다.
'전조도없이 펼쳤는데, 피해?'
솔직히 좀 놀라웠다.
그의 마법은 그동안 많은 발전이 있었다.
능력치와 아이템으로 인한 발전 이긴 했으나, 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좋아졌다.
진화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았다.
그런데 4천사장은 불시에 이뤄진 기습 마법을 피해 냈다.
그때 4천사장의 눈에 황금빛이 담겨 있는 것이 보였다.
유준이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저게 능력인가 보군.'
그는 수차례 더 공간을 장악했으나, 4천사장은 귀신같이 눈치채고 먼저 움직였다.
'미래 예지 비슷한 건가?'
그게 아니고서야 아무런 전조없이 펼쳐지는 공간 장악을 피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녀석이 쉴 새없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공간 장악이 나타나는 바로 그 순간 발을 움직였으니까.
4천사장은 날개를 펼쳐 위로 달아났다.
결계에 가로막혀 아주 높은 곳까지는 못 갔으나, 그래도 낮은 위치는 아니었다.
그녀는 빛의 창을 만들더니 창을 던지기 시작했다.
투창.
순식간에 유준의 앞에 당도한 창.
'실드로 막아질 것 같지는 않은데.'
애초에 실드를 펼치기엔 늦은 상황.
그는 어쩔 수없이 검을 썼다.
서걱! 석!
행성 파괴자의 검에 닿은 황금빛 의 창은 흔적도없이 분쇄되었다.
수십 차례 투창이 더 이어졌지만, 단 한 개의 창도 유준의 몸을 스치지 못했다.
그는 일부러 검막을 펼치지 않고 창을 보고 검을 휘둘렀다.
독고민수의 검술을 갈고닦으라는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스킬과 특성에 의존하는 것도 좋지만, 틈틈이 성장을 위한 수련도
빼놓아선 안 되었다.
독고민수와의 대련을 통해 얻은 교훈이라고 할 수 있었다.
'확실히 도움도 좀 되는 것 같기 도 하고.'
저 빠른 창을 눈으로 보고 직접 검으로 막는 건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다.
능력치가 뒷받침되지 않았으면, 창을 검으로 막는 건 불가능했을지 도 모른다.
물론, 초집중 스킬을 사용하지 않았을 때의 얘기다.
4천사장은 지치지도 않는지 투창
을 멈추지 않고 이어 나갔다.
유준도 굳이 4천사장을 내려오게 하지 않고 제자리에 서서 투창을 막아 내기만 했다.
정말로 도움이 되었기에 이 상황을 끝내고 싶지 않았다.
'미쳤네. 이렇게 잘 보인다고?'
아무런 스킬도 사용하지 않고 이 정도 속도에 반응하게 되다니.
과장 하나 안 보태고 예전에 초 집중을 사용했을 때만큼의 반사 신 경과 동체 시력이었다.
그 전과 비교해 능력치가 얼마나 많이 올랐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4천사장도 자기가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자, 당황한 듯 투창을 하는 속도가 빨라졌다.
그에 따라 숨도 거칠어졌다.
그러던 어느 순간, 창을 던지는 행위를 완전히 멈췄다.
유준이 그런 4천사장을 가만히 올려다봤다.
"뭐 해? 더 안 할 거야?"
"네, 네놈! 정체가 무엇이냐?"
"옹?"
"한낱 인간이 어찌...
4천사장의 표정이 가관이었다.
황금빛 눈동자는 온데간데없고, 초췌한 얼굴에 당혹스러움이 묻어 났다.
그녀에게선 더 이상 싸울 의지를 엿볼 수 없었다.
그걸 인지한 유준이 땅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한순간에 4천사장이 있는 곳까지 도약한 그는 4천사장을 밑으로 내 던졌다.
날개를 파드닥거리며 다시 솟아 오르려 했지만, 유준이 어디 보통 근력을 지니고 있던가.
그녀가 빠르게 추락했다.
콰아아앙-!
지면에 거하게 머리를 박은 4천 사장이 잠시 혼절했다가 깨어났다.
다시 내려온 유준은 4천사장의 뒤통수를 주먹으로 세게 후려쳤다.
콰앙!
이번에도 어김없이 폭탄 터지는 소리가 났다.
"어우, 돌머리네."
4천사장의 방어력이 예사롭지가 않았다.
"신화 등급 장비를 세 개를 쓰고
있어? 일단 죽기전에 이것부터 챙 겨야겠는데?"
유준이 4천사장의 장비를 벗기려는 그 순간이었다.
그녀의 모습이 변하기 시작했다.
황금색의 신체.
그러나 기대한 고블린의 모습이 아니었다.
황금색 엘프.
외형이 기존 4천사장과 크게 다 르지 않았다.
색만 황금색으로 바뀌었을 뿐.
"고블린 맞아?"
"나 고블린 아니야! 죽이지마!"
어느새 정신을 차린 4천사장이 다급하게 외쳤다.
"그럼 뭔데?"
"날 죽여 봤자, 이벤트에는 아무 런 영향이 없을 거야."
"그러니까 넌 뭐냐고?"
"나, 난 속임수야."
"아닌 거 같은데?"
"...진짜로!"
살고 싶어 하는 것이 여실히 드 러나는 절박한 표정이었다.
유준이 피식 웃었다.
"어디서 구라를 쳐."
"진짜라니까?"
"네가 천족의 모습으로 변신도 했는데, 엘프로 변신은 못 하겠 냐?"
"아오, 억울해! 진짜라고!"
"응. 안 믿어."
푹!
유준은 망설임없이 4천사장의 머리에 검을 찔러 넣었다.
[황금 엘프를 처치했습니다!]
[황금 고블린의 탄생까지 75% 남았습니다.]
[앞으로 세 명의 황금 종족을 더 쓰러뜨려야 합니다.]
[기여도가 10% 상승합니다.]
" 으응?"
억울하다는 듯 말한 이유가 있었네.
그녀는 황금 고블린이 아니었다.
'녀석이 거짓말하지는 않았구나.'
그렇다고해서 4천사장을 살려 둘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죽여야만 이벤트를 끝낼 수 있었다.
다른 황금 종족의 정보를 얻어 내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굳이 알 아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어차피 금방 찾아낼 수 있을 텐데.
'아직 황금 고블린이 황금 정원 내에 없다는 정보는 나만 알고 있겠군.'
황금 고블린은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다.
어떻게 보면 플레이어들은 지금 삽질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황금 종족이었던 4천사장을 믿고 따랐던 것부터가 애초에 잘못이었다.
'이번 이벤트는 좀 빡센 느낌인 데?'
황금 고블린의 탄생을 막으려는 황금 종족이 무려 넷.
심지어 천족으로 변신하며 플레 이어들을 헷갈리도록 만들었다.
4천사장을 의심하지 않았다면 황 금 고블린을 찾고자 얼마나 오랜 시간을 허비해야 했을지.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유준은 이 사실을 일행에게 메시 지를 보내 알렸다.
그들 중에 굳이 배신할 자가 없는데다가, 설령 배신한다고 해도 크게 뒤통수가 아픈 일은 아니었다.
마지막에 황금 고블린을 찾는 것은 자신이 될 테니까.
'웬만하면 황금 종족도 내가 잡는게 좋긴 하겠지만 이 넓은 곳을 내가 다 뒤져 볼 수는 없지.'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하는 마 당이다.
오히려 유준은 황금 종족에 대한 정보를 알림으로써 일행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알렸다.
'다음 목표는 정해졌네.'
셋 남은 황금 종족을 찾는 것.
솔직히 찾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만약 다른 황금 종족들도 방금 잡았던 녀석과 같이 변신의 귀재라면.
그리고 더 철저하게 숨어 있다면.
날고뛰는 유준이라고 하더라도 별수가 없었다.
직접 돌아다니는 것밖에는 방법 이 안 보였다.
'그래도 제일 앞서 있는 건 분명 하다.'
혼자만의 힘으로 황금 고블린의 탄생을 4분의 1을 앞당겼다.
물론 도지윤이 정보를 주지 않았 더라면 애초에 4천사장을 만날 일 도 없었을 테니, 그녀의 도움이 없었다곤 못 하겠다.
"주인님."
"응?"
"제가 하나 더 찾았습니다."
"뭐?"
"황금 종족 말입니다."
"네가 어떻게?"
"크흠."
파라네트가 의기양양한 얼굴로 헛기침을 했다.
만약 방금 그 말이 사실이라면 저런 태도가 용서될 텐데.
"사실 아까 공간 이동을 사용하기 전에 방금 이놈과 비슷한 향기를 풍기는 놈이 있었습니다요."
"왜말 안 했어?"
"몰랐으니까! 중요할 줄, 몰랐으니까요!"
"꼭 그렇게 가래 끓는 목소리로 말해야겠냐? 하여튼. 어디 있는데?"
"4천사장이 이끌던 무리에 있습니다."
"...뭐야. 한 무리에 둘이라고?"
"얘네 머리 좋죠? 제 기막힌 후 각이 아니었으면 조사를 그쪽은 다시 안 했을 거 아닙니까."
"언데드가 후각이 좋은 건 그렇 다 치고… 맞는 말이야. 네가 없었으면 난 다른 곳들을 우선 찾아봤겠지."
파라네트의 콧대 높아지는 소리 가 여기까지 들려왔다.
유준이 웃으며 파라네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대단하네. 잘했어."
"별것 아닙니다. 헤헤."
"너의 그 능력을 위쳐...가 아니라 파라네트 센스라고 부르면 되겠다. 어때?"
"오오! 뭔가 멋있습니다!"
"마음에 드니?"
"예!"
"파라네트. 그럼 그 파라네트 센 스로 향기를 쫓아가 줘."
"이미 찾아 놨습니다요."
"좋네. 진짜 마음에 든다."
유준의 진심 어린 말에 파라네트 가 감격한 듯 입을 부여잡았다.
"이동해 줘."
"바로 앞으로 가도 상관없겠습니까?"
"응."
공간 이동 직후의 무방비한 상태는 항상 대비하고 있다.
설령 무방비한 상태 그대로 놓인 다고 하더라도 그의 방어력은 보통 높은 것이 아니었다.
그 점에 대해선 크게 걱정할 필 요는 없었다.
"갑니다!"
파박!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11권 2화
246화
파라네트가 황금 종족이라고 지 목한 자의 모습이 특이했다.
이벤트에 참가한다수를 차지하는 천족 플레이어가 아닌, 천계 전 쟁에 용병으로 참전한 드워프였다.
"황금 종족이 과연 드워프로 변 신을 했을까?"
유준이 의구심을 드러내자, 파라네트가 검지를 펴 좌우로 흔들었다.
왜 저래. 때리고 싶게.
"냄새가 아주 똑같은 건 아니지만, 그래 봤자 미미하게 다른 수준 입니다. 저놈.이 맞을 겁니다."
"근데 쟤네는 왜 자꾸 몰려다니는 거냐? 가짜 황금 고블린은 아예 놓친 모양인데."
"단서가 아예 없으니 그럴 수밖에요. 저들은 애초에 저게 가짜라는 것도 모르잖습니까."
"뭐, 잘된 거지."
이벤트에 시간제한은 없다.
다른 플레이어들이 뒤처질수록 유준에게는 좋은 일이었다.
문제가 하나 있다면, 온건파와 강경파 간의 전쟁인데....
세르티프스의 말에 의하면 대천 사장은 그 둘의 대립을 전쟁놀이 정도로 보고 있는 것 같으니, 누구 하나가 기습하는 걸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는 건 대부분의 천족들이 지금 이벤트에 충실해야 하고, 실 제로 그러고 있다는 뜻이 된다.
'여차하면 튀면 되는 거고. 이벤 트 보상만 잘 받으면 그리핀 뇌 정 도는 포기할 수 있어. 그러니 전쟁을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
그러한 생각을 하니 마음이 한결 여유로워졌다.
'파라네트의 말대로 저 드워프가 황금 종족인지 아닌지 확인부터 해 볼까.'
드워프는 어째 다른 용병들과 섞 이지 못하고 동떨어져 있었다.
신장이 작다는 이유로 플레이어들이 종종 업신여기고 말주변이 없는 드워프의 모습이라고 하면 그리 이상할 것도 아니었다.
드워프들은 보통 자존심이 세서 지금과 같은 상황을 용납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지만,
저 드워프는 전혀 불만이 없어 보였다.
유준은 짧은 다리로 빠르게 뛰어 가는 드워프의 목덜미를 잡았다.
"억!"
엄청난 힘은 달리던 관성마저 완 전히 무시해 버렸다.
거칠게 잡아 당겨진 드워프가 땅 바닥을 굴렀다.
"누구냐!"
재빨리 몸을 일으킨 드워프는 주 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유준을 발견 했다.
"...인간?"
"천계에서 인간이 참 희귀하긴 한가 봐. 허구한 날 그 소리 들어 서 지겨워 죽겠네. 귀 딱지가 앉을 지경이야."
그와 동일 선상에서 뛰어가던 플레이어들은 드워프를 신경도 쓰지 않고 앞서 달려나갔다.
졸지에 혼자만 떨어지게 된 드워 프
그의 얼굴에 두려움과 의문이 깃 들었다.
"아까 황금 고블린을 놓쳤던 인 간 아닌가. 그런데 날 왜…? 황금
고블린은 여기에 없다."
"알아. 황금 고블린은 없지. 황금 종족은 있어도."
유준의 말에 드워프가 경악했다.
"그걸... 어떻게?"
"뭐야? 숨기려고 안 해?"
"어차피 숨겨도 의미가 없어 보이는데. 다 알고 온 것 아닌가?"
"맞아. 잘 아네."
그가 검을 꺼냈다.
드워프도 물러서지 않고 도끼를 들고 달려들었다.
결과는 뻔했다.
날카로운 검 날이 드워프의 목에 닿을 듯했다.
드워프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할 말이 있다!"
"다른 황금 종족 위치 아는 거 아니면 안 살려 줘."
"알고 있다! 알고 있다!"
"둘 다?"
"다 알고 있다."
"전혀 안 그렇게 보이는데."
드워프가 한숨을 푹 내쉬더니 땅
바닥에 주저앉았다.
"내가 정보를 줄 테니, 난 최대 한 마지막으로 죽여 줬으면 좋겠다. 나에 대한 내용도 떠벌리지 않는 조건으로."
"넌 어차피 죽어. 지금이 되었든 마지막이 되었든."
" 알아."
"아는데도 그렇게 태연해?"
"이건 플레이어들을 위한 이벤트다. 여기서 죽는다고해서 실제로 목숨을 잃는 것도 아니지. 하지만 플레이어에게 빠르게 잡히면 받을 불이익 때문에 이러고 있는 거야."
"다른 황금 종족들보다?"
"그래."
"제일 마지막에 잡히면 큰 보상 이 주어지나?"
"그렇다."
"위치는 확실히 아는 거고?"
"확실...까지는 아니다."
드워프의 말에 유준이 검을 들었다.
"잠깐만! 너무 성급하게 움직일 필요는 없잖은가! 내가 정보를 준 다니까!"
"확실히 모른다며?"
"이 넓은 곳에서 언제 하나씩 찾을 셈이냐? 내가 주는 단서로 너 정도 되는 강자면 금방 찾을 수 있을 거다."
"그렇다고 해도 내가 널 믿을 수 있어야지."
"좋은 생각이 있어. 네가 같이 다니면 돼."
"...너와?"
"그럼 누구랑 다니게?"
유준은 공간 장악 마법으로 드워 프의 몸을 묶었다.
질끈.
힘을 줘도 소용이 없었다.
한순간에 옴짝달싹 못 하게 된 드워프는 체념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지."
"바로 말해. 다음 황금 종족이 있는 곳."
"현재 위치는 알 수 없다."
"...뭐?"
"자, 잠깐만. 대륙 말은 끝까지 들어야지. 난 녀석들이 어떤 모습으로 변신했는지는 알아."
"오. 그래?"
"한 명은 천족이야. 아주 잘생긴 남자로 변신을 했지."
"그것만 듣고는 모르겠는데. 천 족이 하도 많아야지."
"그, 그래서 내가 필요한 거다. 녀석의 모습을 보면 단번에 알아볼 수 있을 테니까."
"그건 맞는 말이네. 다른 녀석은?"
"황금 고블린...
"응?"
"황금 고블린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해가 안 가는데. 왜 굳이 황 금 고블린으로 돌아다니는 거야?"
"이 황금 화원엔 황금 고블린이 아주 많으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가짜들은 더 늘어날 거다."
"등잔 밑이 어두워, 전법인가."
"그게 뭐지?"
"건 몰라도 되고, 황금 종족은 단 네 명뿐인 거지?"
"그렇다. 그런데 네가 한 놈 잡은 것 아닌가?"
"맞아. 남은 건 셋이고, 널 제외
하면 둘이지."
"날 가장 마지막에 죽여 주겠다 고 약속할 수 있나?"
"네 말이 사실이라면. 아니면 너 부터 죽는다."
"당연하지."
드워프의 얼굴에 그제야 웃음기 가 자리 잡았다.
"어떻게 보면 잘된 일이군. 경쟁자들을 먼저 제거할 수 있는 셈이 니."
드워프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한 모양이다.
우울해하는 것보다는 나으니 간 섭하지 않기로 했다.
"너 이름이 뭐야?"
"돌프다."
"원래 종족도 드워프?"
"그래."
"좋아. 하나 더 물을게. 황금 종 족 네 명은 서로 경쟁을 하는 건가? 서로의 정체를 아무렇게나 까 발려도 상관이 없는 거야?"
"상관없다. 그러나 너무 빠르게 황금 고블린이 탄생하면 우리 넷 모두 강력한 페널티를 받는다. 하
지만 돌아가는 꼴을 보니 그런 페 널티를 받을 걱정은 안 해도 되겠 더군. 황금 종족이 있다는 걸 아는 건 너뿐이고 황금 화원은 넓다. 황 금 고블린이 금방 탄생할 것 같지는 않아."
"두고 보면 알겠지."
유준이 자신감을 내보이자, 돌프 의 얼굴에 불안감이 어렸다.
"만약 너무 빨리 끝날 것 같으면..."
"싫어."
"대답이 너무 빠른 것 아닌가."
"네 사정은 충분히 봐줬다. 더
이상 바라는 건 양심이 없는 거 아니냐?"
유준의 시선이 파라네트를 향했다.
"주인님. 왜요?"
"이번 이벤트에선 네가 많이 필 요할 거 같다."
황금 화원은 공간 이동의 제한이 거의 없는 장소인 데다가 매우 넓었다.
파라네트의 공간 이동이 없다면 수십 배는 더 시간을 낭비해야 할 것이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녀석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해골 기사를 호위나 전투용으로 쓰지 않고 공간 이동 마법용으로 활용한다는게 조금 웃기긴 하지만.
본인도 그 부분이 상당히 불만이었을 텐데, 천마신공을 얻고 난 뒤 로부터는 불만이 싹 사라지는 듯했다.
"주인님께서 저를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주인님의 소환수가 된 이 후부터 쭉 알고 있었습니다."
"아니? 비교적 최근에 그렇게 생각하게 됐는데?"
"...네?"
"처음엔 너 쓸모없다고 생각했어."
"너무 상심하진 말고. 지금은 아니라는 얘기니까."
"그, 그렇죠?"
유준은 다시 드워프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위치는 모르는 거지?"
"우린 무작위로 전송되었다. 서로 어디에 있는지 알 길이 없지."
" 메신저는?"
"우리한텐 그런 게 없다."
"너 플레이어가 아닌 거야?"
"그건 말해 줄 수 없다."
"뭐, 크게 궁금하지도 않았어. 위 치를 모르면 생김새만 보고 판단해야 한다는 건데.... 흐음."
유준은 동료 찬스를 사용했다.
메신저를 열어 여러 명에게 물어 봤고, 소득은 없었다.
'하긴. 시간이 얼마흐르지도 않았는데. 뭘 발견할 리가 없지.'
벌써 황금 종족을 둘이나 발견한 자신은 현재 진도가 무척 빠른 편 이었다.
조급해할 필요가 없었다.
'천천히 찾자.'
유준은 감각을 최대로 활성화해 놓고 파라네트에게도 탐색을 부탁 했다.
"발견 확률이제일 높은 건 플레 이어들이 많이 모인 곳인데…."
드워프 돌프도 유준의 말에 동의 했다.
"아마 그럴 거다. 홀로 있으면 의심받기 쉬우니."
"너랑은 달리 4천사장처럼 중요 한 역할을 맡고 있을 수도 있지."
"그렇다. 잘 아는군."
"넌 왜 외톨이를 자처했지?"
"자처하지 않았다. 플레이어들이 날 대놓고 무시했을 뿐."
"그랬구나. 미안해. 괜한 걸 물어 서."
"알아줘서 고맙다."
유준은 비행 마법을 사용하며 돌 프를 마력으로 끌어 올렸다.
돌프가 불편한지 얼굴을 찌푸렸다.
"굳이... 이렇게 안 해도 나도 날 수 있다."
"날개 없잖아."
"플라이 마법은 익혀 뒀다."
"그래?"
드워프가 쓰는 플라이 마법이라.
특이한데.
무한의 탑에서 '종족'이 가지는 의미는 컸다.
오크와 트롤 같은 종족들은 대부 분이 근접 공격과 관련된 능력을 얻고, 엘프는 민첩하고 활과 정령을 잘 다룬다.
이런 건 고정관념이 아니다.
실제로 그러했기 때문이다.
종족이 무엇이냐에 따라 플레이어가 향후 얻는 능력도 달라질 수 있었다.
그래서 드워프가 비행 마법을 쓰는 건 상당히 드물다고 할 수 있었다.
물론, 플레이어의 레벨이 높을수 록 그런 경향들이 줄어들기는 하지만.
"너도 마법과 검을 잘 다루지 않 던가."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모른다. 그냥 마법을 잘 다루길 래."
"검을 쓰는 건 안 보여 줬는데."
"훙. 검에 대해 무지한 자라면 몰랐겠지만, 나는 아니다. 그 정도 로 성능이 좋은 검을 장식으로 들고 다니진 않겠지."
"눈썰미가 좋네."
"눈썰미가 아니라 원래 장비에 관심이 많다. 흠. 흠."
"너 혹시 제작 스킬이나 특성 갖 고 있어?"
"알아보는군. 넌 어떻게 알았지?"
"네가 계속 알아봐 달라는 식으
로 말하고 있어서."
드워프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말 나온 김에 묻고 싶다. 그 검은 누가 만든 건가?"
"응? 만들다니? 얻었다고는 생각 안 해?"
"그런 검을 얻으려면 신 정도는 잡아야 할 거 같은데 내 말이 틀린가? 차라리 누가 만들었다는게 더 납득이 갈 것 같아서."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런데 누 가 만들어 준 건 아니고… 가져다 줬지."
"얻은 거라고? 공짜로? 그 사기
적인 검을?"
"응. 나를 아주 좋아하는 친구가 있어. 애들 장난감 같은 구슬 두 개만 줘도 아이템 막 퍼 주더라."
"그런 친구가 있다니 부럽군
"너도 노력하면 될 거야."
유준이 방긋 웃으며 드워프에게 헛된 희망을 불어넣었다.
그는 쉬지 않고 비행을 하던 중에 수가 이백은 넘길 것 같은 집단을 발견했다.
쉴 새없이 주변을 탐색하던 유준이 눈을 빛냈다.
'저기 중에 있으면 좋겠는데.'
황금 종족은 파라네트와 드워프 가 알아서 찾아 줄 것이다.
그가 찾는 이는 따로 있었다.
'레반. 이놈 어디 있어.'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11권 3화
247화
유준이 레반을 찾는 이유는 간단 했다.
초조했기 때문이다.
이벤트에서 죽는다고해서 실제 로 죽는 것이 아니기에 급할 필요는 없으나, 그 직후가 문제다.
레반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동기화 구슬이 어디 있는지 알 면서도 손에 못 쥐게 되는 셈이었다.
그래서 레반을 빨리 찾아 놓을 필요성을 느꼈다.
'독고민수한테 레반이 어떻게 생 겼는지는 미리 들었으니까 보고도 지나치는 일은 없겠지.'
어차피 황금 종족은 그의 눈썰미 만으로 알아내기는 힘들었다.
황금 종족을 찾는 일은 파라네트 와 돌프에게 맡기기로 했다.
"저기 중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파라네트의 말에 유준이 돌프를 돌아봤다.
"내가 마지막으로 봤던 녀석들의 모습은 없다."
"그래? 그럼 넘어가자."
돌프는 그렇다 쳐도 파라네트의 감각은 무시할 게 아니었다.
녀석의 감에 도움을 받는 것이 하루 이틀이 아니다.
그래서 유준은 망설임없이 발걸 음을 돌렸다.
비행 마법을 써 상공으로 올라간 그는 마력을 끌어 올렸다.
무리를 찾는 건 유준의 역할.
대규모 범위의 탐색을 시작했다.
황금 화원은 넓지만, 플레이어도 많았다.
600레벨 이상만 참여할 수 있는 이번 이벤트.
플레이어 수가 솔직히 적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중에 황금 종족이 두 명이다.
그런 만큼 황금 종족을 찾아내는게 쉽지는 않았다.
'어쩔 수없이 다 둘러보는 수밖에 없겠구나.'
유준은 시간이 꽤 걸릴 것이라 생각한 그 순간부터 지면에 내려섰다.
"왜? 찾았어?"
돌프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아니. 천천히 달리면서 찾게."
"굳이?"
"이유가 다 있다. 보면 알아."
유준은 황금 꽃들을 캐기 시작했다.
처음과는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매우 빠른 수확이었다.
그동안 많은 황금 꽃들을 수확하 면서 눈부신 발전이 있었던 것.
"...무슨."
돌프가 경악했다.
황금 종족 중 한 명인 그는 황금 화원의 꽃들은 절대 훼손될 수 없는, 파괴 불가능한 물건들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플레이어인 유준은 아무렇지 않게 꽃들을 꺾거나 뽑아내고 있었다.
저게 어떻게 가능한 건지 이해가 안 갔다.
분명 자신이 모르는 어떠한 방법을 쓰는 건 확실한데, 그의 손에는 어떠한 아이템도 들려 있지 않았다.
돌프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유준에게 물었다.
"어떻게 꽃을 꺾은 거지?"
"가업 비밀이야."
"이것 하나만 알려다오. 네가 가 진 능력으로 꽃을 꺾고 있는 것인가?"
"응."
"비법 좀 알려 주면 안 되나?"
"하나만 알려달라며. 선 넘네, 또."
"알려 주면? 써먹으려고?"
"그렇다. 이벤트가 끝나면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는 너와는 달리 난 계속 이곳에 남아 있어야 한다. 그 능력이 탐이 안 난다면 거짓말 이겠지."
돌프는 솔직하게 말했다.
확실히 그에게 황금 꽃을 꺾을 능력이 있으면 황금 화원의 꽃들을 전부 차지하는 것도 꿈은 아니었다.
그만큼의 시간이 돌프에게는 있을 테니까.
반면 유준의 경우엔 단발성이었다.
그가 아무리 노력을 한다고 해도
이벤트 기간 내에 황금 화원의 꽃들을 전부 캐 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아니, 10분의 1 면적의 양만 가져가더라도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미안한데. 너한테 알려 줘도 네 가 쓸 수 있는게 아니야."
돌프를 무시하는 건 절대 아니지만, 그가 혼돈을 사용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높은 등급 치유 의 손길 특성도 필요했다.
굳이 치유의 손길이 아니더라도
될 가능성이 있지만, 중요한 건 '혼돈'이다.
"혹시 모르지 않나. 알려 주면 좋겠다."
"혼돈이라는 기운이 있어. 뭔지 알아?"
"모른다."
"그럼 끝이네. 알려 줘도 의미가 없어."
"내가 나중에 얻으면 써 볼 테니 제발 알려 줬으면 한다. 부탁이다."
돌프는 필사적이었다.
"왜 그렇게 원하는 건데? 황금
화원에서 황금이 가치가 있어? 널 린 게 금인데?"
"너도 알다시피 난 황금 종족이다."
"그렇지. 그런데?"
"내가 갖는 황금은 곧 힘이 된다. 보유한 금으로 내 능력과 힘을 강화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
놀라운 능력이 아닌가.
유준으로서도 탐이 나지 않을 수 가 없었다.
더욱이 그는 이번 기회에 황금을
잔뜩 챙긴 상황.
황금 종족이 금으로 힘을 강화할 수 있다는게 부러울 따름이었다.
그러나 진정 부러워하는 건 돌프 쪽이었다.
그는 갖지 못한 황금을 유준이 산더미로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냥 알려 줄 수는 없지."
"어떻게... 어떻게 하면 알려 줄 텐가? 내 모든 걸 다 주겠다. 제발제발제발제."
돌프가 무릎을 꿇고 빌기 시작했다.
목숨을 위협해도 안 그럴 것 같은 녀석이 자존심을 굽히는 걸 보니 마음이 약해졌다.
"어쩔 수 없지. 알려 주도록 할게. 대신에 네가 나한테 뭘 줄 수 있는지 고심해 봐."
"물론이다! 그런데 어떤 아이템을 원하는지 구체적으로 말해 주면 안 되겠나?"
유준이 고개를 저으며 돌프를 더 애타게 했다.
"그럴 수는 없어."
"왜... 왜! 왜 안 되는 거냐!"
"그 이유는 네가 잘 알 거야. 나 한테 줄 아이템을 잘 생각해 놔."
"뭐든 준다니까! 말만 하라니까!"
"아니야. 너무 성급하게 생각하지 마, 친구."
"준다고! 아오!"
"돌프 친구. 지금 나한테 화내는 거야?"
"아닙니다."
"왜 황금 종족들은 하나같이 다 혈질인 것 같지."
"죄송합니다."
"일단 난 금을 좀 더 얻고 있을
테니까. 인벤토리 잘 살펴보고 있어."
"아, 알겠다. 맡겨 둬!"
돌프가 얼마나 간절한지 잘 아는 유준이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공짜로 아이템 하나 얻게 생겼 군.'
아니지.
하나로 만족하긴 힘들다.
돌프가 엄청 귀한 아이템을 갖고 있지는 않을 테니, 최대한 많은 걸 뜯어낼 생각이었다.
'돌프도 참 순진하지. 그냥 궁금
하다고만 하면 될 걸, 황금으로 강 해질 수 있다고 곧이곧대로 말해 버리다니….'
유준의 미소가 점점 더 사악해졌다.
"아빠!"
유준이 수확 작업에 한창 몰두하 던 그때였다.
단잠을 즐기고 있던 하프가 어느 새 눈을 초롱초롱 뜨고 말을 걸어 왔다.
"응? 왜?"
"멀지 않은 곳에서 신수의 기척 이 느껴져요."
"그래? 난 못 느꼈는데? 근처 맞 아?"
"죄송해요. 사실 좀 멀리 있어요."
"왜 거짓말했니?"
"아빠가 같이 가 줬으면해서요...
하프가 말을 흐리며 말했다.
저 죄지은 강아지 같은 얼굴을 보면 있던 화도 사라질 지경이다.
"그럼 진작 말을 하지."
"같이 찾아 주실 거예요?"
"그럼. 우리 하프 부탁인데."
"고마워요! 사랑해요, 아빠!"
"응...
사랑.
그 두 글자 단어에 가슴이 벅차 올랐다.
평정심으로 인해서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 혹은 무감정한 인간이 되지 않을까 종종 걱정했었는데, 하프를 얻은 뒤부터 그런 걱정이 싹 사라졌다.
'평정심 특성이 감정을 거세시키는 건 확실히 아닌 것 같네.'
오히려 기쁠 때는 순수하게 기쁘
고, 부정적인 상황이 올 때만 극적으로 통제해 주는 느낌이다.
'진짜 평정심이 효자긴 해.'
레벨이 높아지며 높은 등급의 스킬, 특성들을 얻어 가끔 잊기도 하지만 평정심은 등급을 뛰어넘는 종 류의 사기급 특성이었다.
유준은 감각의 범위는 최대 상태 로 해 놓고 신수가 있는 곳을 향해 이동했다.
가면서 황금 꽃을 수확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전처럼 꼼꼼하게 꽃들을 가져가는 건 힘들게 되었지만, 오히려 지
나가는 길의 꽃들만 가져가니 수확 량이 더 늘어난 느낌이었다.
단순히 기분 탓이 아니었다.
실제로 그의 인벤토리에 쌓이는 황금의 양은 시간 대비 많이 늘었다.
'굳이 삥 안 두르고 직진만 하는게 효율이 높구나.'
하프 덕분에 작업 효율도 늘었다.
유준이 대견스러운 하프의 머리를 계속 쓰다듬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황금 꽃을 수확해야 하는 유준의 손은 하프의
머리에서 금세 떨어졌다.
"신수가 계속 움직이고 있니?"
"아니요! 한자리에 계속 머물러 있어요."
"우리 하프가 감이 좋은가 보구 나. 아빠는 전혀 안 느껴지는데."
"헤헤. 땅 깊숙한 곳에 몸을 웅 크리고 있어요. 많이 아픈가 봐요."
"아파? 어디가?"
"그건 모르겠어요. 그런데 괴로 워하고 있어요."
"주변에 어떤 생물체가 있어?"
"그건 모르겠어요."
"신수의 기척만 감지할 수 있는 거야?"
"네!"
"같은 신수끼리는 원래 찾기가 쉽니?"
"네! 그런데 제 감각이 뛰어난 건 아빠 능력을 그대로 물려받아서 예요. 모든 신수가 다 그런 건 아 닐 거예요."
"그렇구나."
확실히 자신이 강해질 때마다 하 프도 눈에 띄게 강해졌다.
매번 볼 때마다 새로울 정도였으니.
"네가 발견한 신수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것 같아?"
"네! 저와 비슷할 거예요!"
"그래?"
그럼 진짜 갓난아기 수준인데.
하프도 알에서 부화한 지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신수가 단 한 번도 플레이어를 못 봤다면 내가 주인이 될 가능성 도 있는 건가.'
신수가 많아서 나쁠 건 없다.
하프가 질투할 수도 있지만, 지금 녀석의 모습을 보면 그럴 것 같 지는 않았다.
'이거 예감이 좋은데.'
신수는 또 다른 신수를 불러들이는 건가.
그렇게 레반을 찾는 건 뒷전이 되었다.
무리를 발견하면 슬쩍 가서 확인은 했지만, 굳이 무리를 찾아다니 지는 않았다.
유준의 마력에 묶인 채로 딸려
오는 돌프가 신음을 흘렸다.
"왜 그래?"
"으, 어지러워. 멀미 난다."
"아까는 안 그랬잖아?"
"흔들리는데 자꾸 인벤토리를 보 다 보니…."
"그럼 어쩔 수 없지. 참아."
"알겠다."
황금 꽃을 따는 비법.
그 인질을 잡힌 돌프는 찍소리도 할 수 없었다.
하프의 말대로 신수는 가까운 곳에 있지 않았다.
아주 멀었다.
유준이 달리는 속도로 꼬박 반나 절이 걸릴 정도였으니.
물론 황금 꽃 때문에 제 속도를 못 내는 것이 컸다.
"하프. 신수가 어디쯤 있어? 땅에?"
"네. 깊은 곳에 있어서... 정확 한 위치를 설명하기 어려우니 제가 직접 팔게요!"
"그래. 아빠는 꽃 따면서 기다릴게."
그때 돌프가 황당한 얼굴로 유준을 쳐다봤다.
" 왜?"
"진짜 잠깐도 쉬질 않는군. 뭣보 다 넌 지치지도 않는 건가? 체력 능력치가 얼마나 높은 거지?"
"야. 지금 지천에 널린 게 황금 인데 어떻게 쉬냐? 너 같으면 쉬겠어?"
"이해한다. 나였어도 그랬을 것 같군."
유준은 사실 돈이 급한 건 아니지만, 금은 언제든 써먹을 데가 있다.
거기다 인벤토리의 크기는 무한 대에 가깝다.
금을 산처럼 쌓아 놔도 손해 볼 일은 없는 것이다.
"존경스럽습니다. 주인님."
파라네트의 말에 유준의 뇌리를 스치는 무언가.
"파라네트."
"네?"
"너 나 따라다니면서 이것 좀 담아."
파라네트라는 좋은 작업 인 력...이 아니라 언데드력을 두고
혼자서 다 하고 있었다니.
유준이 탄식했다.
"저, 저요?"
"너 말고 누구겠냐. 뭐 해? 빨리 안 담고?"
유준은 말하는 와중에도 손을 바 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파라네트가 황급히 그의 곁으로 가서 유준이 건넨 그릇을 받아 들었다.
녀석이 내민 그릇에 황금이 녹아 내리며 담겼다.
"좋지. 잘하네."
"감사합니다!"
"그런데 반 박자 좀 느린 것 같다. 야, 뭐 해? 방금 두 방울 홀렸 잖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거기. 그래. 잘하네."
"허헛.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때였다.
"아빠! 찾았어요!"
멀리서 하프의 외침이 들려왔다.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11권 4화
248화
하프의 부름에 유준은 한걸음에 마중을 갔다.
녀석의 소리가 왜 이렇게 메아리 치며 들리나 했더니, 아주 깊은 땅 속에 있었다.
쌓인 흙의 크기가 어마어마했다.
그 정도로 깊게 판 것이다.
"거기로 가면 돼?"
"제가 데리고 나갈게요!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알았어!"
하프는 금방 빠져나왔다.
등에 업혀 있는 작은 고라니.
"걔가 신수야?"
"네! 근데 많이 아파요. 이대로라면 30분도 견디기 힘들 것 같아요."
"정말 죽어 가고 있었구나. 잘했 어, 하프."
"아빠. 이 아이... 도와주면 안 돼요?"
"당연하지. 우리 하프 부탁인데."
하프가 부탁하지 않아도 어차피
도와줄 생각이었다.
여기서 허무하게 죽기엔 신수는 너무도 귀중한 생명체였다.
고라니도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신수답게 크기가 그리 크지 않았다.
하프한테 업힐 정도니 말 다 했다.
그래서 귀여웠다.
'고라니는 크면 별로 안 귀여운데. 특히 울음소리가...
물론 그저 닮았을 뿐인 거지 진짜 고라니가 아니라서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반면, 하프물범은 세월이 흘러 커져도 귀엽다.
그래서 결론은 하프가 더 귀엽다는 거다.
'귀여움으로 우리 하프를 이기긴 힘들 거야.'
어느새 팔불출이 된 유준이었다.
'이럴 때가 아니지.'
지금은 고라니 신수에게 집중할 때였다.
고라니를 유심히 살펴봤다.
"음."
겉으로 보기엔 뭐가 문제인지 잘 모르겠다.
고라니의 등에 마력을 담은 손을 얹었다.
마력이 신수의 몸에 천천히 흘러 들어갔다.
신수의 상태를 보는 것이 목적이 기에 많은 양의 마력을 주입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고라니 신수의 몸이 워낙 작아서 아주 적은 양으로도 충분했다.
" 흐음..."
고라니의 몸에서 손을 뗀 유준이 침음을 삼켰다.
일단 치유의 손길로는 효과가 없었다.
그의 손에 닿기만 해도 웬만한 저주나 질병 같은 것은 완치될 텐데.
"아빠. 많이 안 좋아요?"
"뭔지 모르겠어. 왜 아픈 건지도. 일단 보기엔 멀쩡해 보이거든? 그렇다고 얘가 아픈 척 연기를 하는 것 같지는 않고...
"저도 모르겠더라고요. 몸이 쇠 약해진 것 같지도 않고."
"혹시 배가 고파서 그런 건 아닐까? 아니지. 그렇다기엔 너무 통통한데."
"여기 땅의 영양분이 풍부해서 잘 먹고 잘 자란 것 같아요."
"아, 혹시 얘도 몸에 약간 금빛 이 도는게 황금 종족처럼 황금 신 수 그런 거 아닐까?"
"그럴 가능성도 있… 아, 아빠 말이 맞는 것 같아요."
고라니가 햇빛을 받으며 더 빛나는 걸 보고 하프가 확신했다.
"그치?"
유준이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뭔가 감이 잡힌다.
이 신수는 어딘가를 다친 게 아니다.
그의 마력으로도 감지를 못할 저 주나 병이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배가 고픈 건 맞는데. 다른 쪽으로 배가 고픈 거 같아."
"그게 무슨 뜻이에요?"
"얘한테 황금 한번 먹여 보자."
"...금은 먹는게 아닌데요?"
하프의 말에 유준은 돌프를 바라 봤다.
"난 왜?"
"너도 황금으로 강해질 수 있다 며? 이 신수도 비슷한 방식으로 살 아날 수 있는 거 아닐까?"
"설마 황금을 먹이려고?"
"응."
"그 아까운 짓을 왜…. 날 주지."
"솔직히 너한테 주는 것보다는 신수한테 주는게 몇 배는 이득 아 닐까? 객관적으로 봐도."
"놈이 황금을 먹는다고해서 상태가 호전된다는 보장이 없잖나. 차라리 날 주면 효과라도 바로 볼 수 있지."
"너한테 황금을 줘서 내가 얻을 이득 또한 없지."
"...그래서 언제 비법을 알려 줄 거지?"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중요한데."
유준은 돌프의 말을 무시하고 고 라니 신수에게 집중했다.
녀석의 생명 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시간을 더 끌면 진짜로 위험했다.
답이 보이지 않는다.
뭐라도 해 보는 수밖에 없다.
유준은 근처에 있던 황금빛 꽃을 손쉽게 꺾고 녹아서 흘러내리는 액 체를 고라니의 입안에 흘려 넣었다.
고라니는 황금이 입에 들어오자 고통스러워하는 와중에도 용케 액 체를 꿀꺽 삼켰다.
유준은 그것을 청신호로 보았다.
그는 가만히 손 놓고 지켜보며 신수의 상태를 확인했다.
"끼잉…."
고라니 신수가 처음으로 큰 소리를 냈다.
하프가 방방 뛰며 기뻐했다.
"아빠! 효과가 있는 것 같아요!"
"그러게."
그러나 신수는 금을 더 요구했다.
유준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설마 황금을 계속 처먹진 않겠지?'
조금 정도야 상관없겠지만 계속 황금을 먹여야 한다면.
'아니지. 욕심부리지 말자. 어차 피 모아 둔 금은 많아. 여차하면
근처에 있는 걸 녹여서 먹이면 되는 거고.'
더군다나 여기서 아꼈다간 하프에게 짠돌이처럼 보일 수 있었다.
녀석이 고라니를 구해 주길 간절 히 바라는 걸 보니, 더 이상 망설 일 수는 없었다.
유준은 고라니 신수에게 황금을 듬뿍 먹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혈색이 점점 좋아지는 것 이 아닌가.
호흡 반응도 정상적이었다.
역시 금을 먹이는 것이 정답이었 나보다.
치유의 손길에도 반응하지 않던 녀석이 황금 조금 먹인 것으로 상태가 호전되었으니.
아니, 사실 조금 먹인 정도가 아니긴 하지만....
"아빠! 깨어났어요!"
하프의 말대로 고라니 신수가 눈을 떴다.
세상의 때라곤 묻지 않은 똘망똘 망한 눈망울.
다 죽어 가던 신수가 맞는지 의 심이 갈 정도로 기운차 보였다.
"누, 누구세요?"
신수, 황금 고라니가 겁먹은 얼 굴로 뒷걸음질쳤다.
하지만 오랫동안 몸이 굳어 있던 탓인지금방 바닥에 고꾸라졌다.
"괜찮니?"
"저, 저한테 왜 이러세요."
"바보야! 왜 아빠한테 그래! 아 빤 널 구해 준 거야!"
하프가 호통쳤다.
녀석의 얼굴을 본 황금 고라니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으응? 신수?"
"웅. 너와 같아."
"우와."
"친하게 지낼...래?"
"좋아."
아기 신수 둘이 나름대로 교감을 나눴다.
그 모습을 흐뭇한 미소를 띠고 바라보던 유준이 뒤를 확 돌았다.
"돌프."
"웅? 불렀는가?"
인벤토리에서 아이템 찾기에 여 념이 없던 돌프가 황급히 몸을 일 으켰다.
"아이템은 골랐어?"
"그렇다."
"마음에 안 들면 그냥 안 알려 줄 거야. 신중히 골라."
"...근데 내가 아이템이 많은 편 이 아니다."
"알아."
"그냥 내가 착용한 아이템을 제 외한 인벤토리의 모든 아이템을 주겠다."
"호오."
그 정도까진 안 바랐는데.
모든 아이템을 주겠다는 말을 들으니 돌프의 간절함이 어느 정도인
지 여실히 느껴졌다.
"네가 혹시 거짓말을 할 수도 있으니 영혼 계약을 맺도록 할까?"
"...영혼 계약?"
돌프의 낯빛이 새파랗게 질렸다.
"왜? 네가 약속만 지키면 아무 문제 없을 텐데."
"하지만 영혼 계약을 악용하면! 난 정말 노예나 다를 바가 없게 된다."
"알아. 그래서 딱 조건을 걸 거야. 인벤토리 아이템을 전부 건네는 순간 영혼 계약은 끝. 그런 조 건이면 할만하지? 앞서 말한 내용
대로지키기만 하면 아무 문제 없어."
"...알았다."
유준은 빠르게 돌프와 영혼 계약을 맺고 아이템을 건네받았다.
"뭐야 이 쓰레기들은."
"마, 말이 심한 것 아닌가. 쓰레 기라니…."
"이런 잡템들을 왜 들고 있는 거야? 이해가 안 가네."
유준도 물론 잡템을 갖고 있긴 하지만, 돌프는 인벤토리에 오로지
잡템만 있다는게 문제였다.
"너 나한테 안 준 거 있지?"
"아니다. 다 줬다. 영혼 계약의 효력도 사라지지 않았는가."
"이런. 속았다."
"마냥 나쁜 아이템만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550레벨 전설 장비 도 있었고."
"그게 제일 좋은 아이템이라는게 문제지."
돌프한테 사기를 당한 느낌이었다.
소모성 아이템은 몇 개 좋은 걸
발견하기는 했지만, 지금의 자신에게는 그리 쓸모 있는 건 아니었다.
사실 유준을 만족시킬 만한 아이템은 몇 없었다.
돌프가 그런 아이템을 가지고 있을 리가 없다.
그래도 화가 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어떻게 선단 같은 아이템을 하 나도 안 들고 있을 수가 있어?"
"그건 얻는 즉시 먹는게 정상 아닌가."
"그치. 그게 국룰이긴 한데...
"물건을 줬으니 약속한 대로 꽃을 꺾는 비법을 알려다오."
"주기 싫어졌는데, 갑자기."
"뭐, 뭐어! 영혼 계약도 맺지 않았는가!"
"그 영혼 계약에 내가 비법을 알 려 준다는 내용은 그 어디에도 없지."
돌프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엎드렸다.
크게 좌절한 듯했다.
"그래도 약속한 건 지켜."
"지, 진짜인가?"
"그래."
유준은 혼돈 능력에 대한 설명을 간략하게 하고 치유의 손길을 얻으 라고 돌프에게 말해 주었다.
"치유의 손길? 꼭 그 능력이어야 만 가능한 건가?"
"아니. 확실한 건 아니야. 내가 가진 치유 능력이 그것밖에는 없어 서 그런 거고. 다른 스킬이나 특성 도 될 확률이 높다고 봐."
치유 능력이야 가진 사람이 적지는 않았다.
그러나 혼돈을 얻는 것이제일 난관일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돌프가 혼돈을 얻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건 귀한 능력이기도 하고, 다 루기도 어렵다.
만약 돌프가 혼돈을 얻고 치유 능력과 결합하는데 성공해 황금 꽃을 꺾을 수 있게 된다고 해도 문 제는 있었다.
혼돈을 얻어도 그 수치를 늘리기 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다른 능력치나 마력처럼 미분배 포인트로 올릴 수 있는 종류의 기 운이 아닌 것이다.
황금 꽃을 꺾다가 몇 걸음 못 가
서 오랜 기간을 혼돈을 보충하기 위해 휴식을 취해야 하리라.
그래서 망설이지 않고 알려 줬다.
"고맙다! 정말 고맙다! 난 이 만…."
"어딜가? 넌 맨 마지막에 죽어 주기로 했잖아."
"아, 맞다."
"안 되겠다. 도망가지 않겠다고 영혼 계약 맺어."
"또... 또 말인가?"
"마음이 너무 급해. 당장이라도
튈 것 같아서 그래."
"당장 혼돈을 구하러 가고 싶기는 하다."
"그게 얻고 싶다고 얻어지는게 아니야. 그냥 체념하고 이벤트 끝 날 때까지는 나랑 붙어 다녀."
"아, 알겠다."
유준은 빠뜨리지 않고 영혼 계약 도 확실히 맺었다.
"아빠! 휴리가 할 말이 있대요!"
어느새 친해진 하프와 황금 고라 니.
"이름이 휴리야?"
"네!"
하프가 대신 대답했다.
황금 고라니는 쑥스러운지 고개를 숙이며 앞발을 가만히 두질 못 했다.
하프가 짧은 팔로 휴리의 등을 툭툭 치며 재촉했다.
그제야 휴리가 입을 열었다.
"저… 고마워요."
"뭘?"
"절 치료해 주셔서요. 고맙습니다."
"널 발견한 것도, 치료해 달라고
한 것도 하프가 부탁한 거야. 하프 한테 고맙다고 해 줘."
"하프, 고마워."
"헤헷
하프가 기쁜지 방긋 웃었다.
"저 보답을 하고 싶은데."
휴리의 말에 유준이 눈을 크게 뜨며 얼굴을 부담스럽게들이댔다.
"보답? 혹시 내 신수가 되어 줄 거니?"
"저... 저는 여기 황금 화원에 묶여 있어서 누군가의 소유가 될 수는 없어요."
"아, 그러니."
아쉽지만, 묶여 있다는데 어쩌겠는가.
"대신에 좋은 정보를 드릴게요. 이곳 근처 지하에 사원이 하나 숨 겨져 있어요."
"사원?"
"네. 저는 태어난 직후에 엄마한테 그곳의 얘기를 들었어요. 엄청 난 보물들이 숨겨져 있는 장소라고…. 그래서 제가 크면 그곳을 지 켜야 한다고 하셨어요."
"네 엄마는 어딜 갔니?"
"돌아가셨어요."
"그렇구나. 그런데 황금 사원은 네가 지켜야 하는 곳 아니야? 나한테 말해 줘도 괜찮겠어?"
"네! 당신이라면 괜찮을 것 같아요. 하프도 착하고 무엇보다 하프 의 주인이라면 절대 해악한 존재가 아닐 거라고 생각했어요."
"휴리. 네가 정확하게 봤구나. 네 말이 다 맞다."
유준이 뻔뻔한 웃음을 지으며 말 했다.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11권 5화
249화
엄청난 보물이 있다는 황금 사 원.
"휴리야. 고맙다."
"아저씨와 하프가 없었다면 전 이미 죽은 목숨인걸요."
"사원에서 얻은 물건들은 좋은 곳에 쓸게. 약속하마."
"네!"
순진한 사슴... 아니, 고라니를 속인 유준의 입가에서는 웃음이 떠
날 생각을 않고 있었다.
"휴리, 너는 이곳에 남아 있을 거니?"
"네!"
"황금 꽃이 주식 아니야? 스스로 도 먹을 수 있어?"
"네! 여기 꽃들은 유일하게 저만 건들 수 있어요. 히."
휴리가 자랑스러워하면서 말했다.
유준은 진실을 말해 줄까 하다가 참았다.
순수한 어린아이의 동심을 깰 수
는 없지.
"다치지 말고 꼭 건강하게 자라 렴."
"알겠어요!"
그 후론 하프와 휴리가 작별 인 사를 나눴다.
유준은 황금 종족보다는 황금 사 원부터 찾기로 했다.
이름부터 심상치가 않은 황금 사 원.
분명 황금 종족을 잡아 기여도를 높이는 것보다 황금 사원을 터는 것이 더 이득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황금 사원은 이벤트를 클리어하는 순간부터 들어갈 방법 이 없었다.
이벤트가 끝나기 전에 사원부터 후다닥 갔다 오는 것이 좋았다.
'어차피 황금 종족이 금방 잡힐 것 같지도 않고...
시간은 충분하다고 여겼다.
황금 사원도 근처에 있으니 찾기 위해서 동분서주할 필요도 없고.
'일이 너무 잘 풀려서 불안하기는 한데.'
언제는 안 풀린 적이 있던가.
그의 행운은 시스템도 인정할 정 도로 높은 수치에 달해 있었다.
"아쉽니?"
유준이 하프에게 물었다.
"휴리요?"
"응."
"아쉽긴 한데, 괜찮아요! 전 아빠 만 있으면 돼요!"
그런 말을 해 주는 하프가 기특 했지만, 녀석이 시무룩한 것이 한 눈에도 보였다.
'나중에 하프를 위해서 친구도 만들어 줘야겠는데.'
발록 친구나 피의 군주 친구 정 도면 하프도 만족하겠지.
유준은 땅에 손을 얹고 마력을 끌어 올렸다.
사원을 찾기 위함이었다.
휴리가 말한 것처럼 사원이 이곳 근처에 있다면 단번에 위치를 파악 할수있을 것이다.
그리고 예상대로 사원을 발견했다.
확실하지는 않다.
그저 감각으로는 돌로 쌓인 어떠 한 구조물이 있다는 것만 알 수 있
었으니까.
'그래도 여기가 사원이 맞겠지.'
검에 마력을 담고 땅에 꽂았다.
그그긍.
웨폰 어스퀘이크.
이 스킬은 땅을 발에 붙이고 있는 상대로도 강력한 효과를 보이지만, 땅을 팔 때도 유용했다.
어찌 됐든 지변을 일으키는 스킬이었으니.
눈 깜짝할 새에 거대한 구덩이가 생겼다.
'마력을 너무 과하게 부었나.'
적당히 땅굴 정도로 파려고 했는데 힘이 과했는지 너무 거대한 입 구를 만들어 버렸다.
"이건 눈에 띄지 않을까요?"
파라네트도 우려했는지 그렇게 말을 꺼낼 정도였다.
"그러게. 조금만 메울까?"
"제가 통과할 수 있는 정도까지만 해 주세요."
"네가 덩치 더럽게 크긴 하지."
"더럽지는 않습니다...
"그 뜻이 아닌 거 알잖아."
"주인님. 저 더 커지고 싶지 않습니다."
" 왜?"
"솔직히 밑도 끝도없이 덩치가 불어나고 있잖습니까."
" 하긴...
녀석의 신장이 벌써 2m 70cm는 되어 보였다.
레벨이 오르고 그만큼 강해진 것 이지만, 파라네트의 덩치가 커지면서 제약도 어느 정도 생긴다는 뜻 도 된다.
울상을 짓는 파라네트였지만, 그 건 유준이 어떻게 해결해 줄 수 없는 부분이었다.
"견뎌."
" ...네."
땅굴을 어느 정도 메운 유준은 그제야 안으로 진입했다.
방금 급조해 생긴 땅굴인 만큼 추락하면 바로 신전에 도달할 수 있었다.
겁이 많은 파라네트가 위에서 살 짝 망설였다.
"뭐 해?"
"전 주인님보다 무겁잖습니까? 괜찮을까요?"
"너 저번에 하늘에서 떨어질 때도 만근추 써서 멀쩡했잖아."
"아..?"
"그리고 정 겁나면 공간 이동을 쓰면 되지, 뭘 망설이는 거야?"
"와, 제가 진짜 멍청했습니다."
"다음부터는 생각하고 말해."
"알겠습니다."
파라네트는 기어코 공간 이동 마법까지 써서 내려왔다.
유준이 물끄러미 바라보자, 녀석 이 민망한 듯 고개를 돌렸다.
파라네트의 겁이 사라졌다는 건 또 옛말이 되었다.
'요즘 싸울 일이 없어서 다시 순 둥이가 됐나?'
아주 깜깜한 굴이었으나, 그의 높은 민첩으로 인해 바로 눈앞이 안 보이는 일은 없었다.
다만, 하프는 조금 불편해했는데 녀석을 위해서 '라이트'를 켜 줬다.
라이트는 기본적인 마법인 만큼 마력 소모는 거의 없다시피해서 상시 발동이 가능했다.
"여기가 입구는 아닌 거 같은데요?"
파라네트의 말에 유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입구야 만들면 되는 거야."
유준은 신전 지붕에 주먹을 꽂았다.
콰아앙
적절하게 힘을 조절했기에 신전 의 천장 전체가 무너지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거대한 구멍이 생겼을 뿐.
"주인님. 점점 과격해지시는 것 같습니다."
"힘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거라고 해 줘."
황금 종족 중 한 명인 돌프도 잊 지 않고 챙겼다.
신전은 그리 크지 않았다.
대형 카페 프랜차이즈 지점 정도 의 크기.
전부 둘러보는데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지는 않았다.
그때였다.
-침입자 발견.
-침입자 발견.
혹시나 했는데 정말 가디언이 있었다.
"이런 곳에 가디언이나 골렘, 석 상이 빠지면 섭섭하지."
가디언은 무려 3m 크기의 고블 린 석상이었다.
"여기 화원이 고블린을 신으로 믿는 곳인가?"
유독 고블린과 관련된 것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벤트 목표도 결국 황금 고블린
을 탄생시켜서 처치하는 것이고.
숨겨진 황금 사원에 들어왔더니 또 고블린 석상 두 개가 그를 반겨 줬다.
유준이 뒤를 바라봤지만, 돌프는 어깨를 으쓱했다.
"알려 줄 수 없다. 금제가 걸려 있어."
"그럴 줄 알았다."
그가 검을 드는 것을 신호로 석 상 고블린 둘이 동시에 짓쳐들어왔다.
' 빠르다.'
유준의 눈이 살짝 커졌다.
이 정도 규모의 사원을 지키는 가디언 석상이 강하면 얼마나 강하겠냐는 생각이었는데.
예상을 벗어난 속도였다.
유준이 황급히 검을 들어 둘의 공격을 막았다.
고블린 석상들은 각자 쌍도끼를 들고 있었다.
즉 네 개의 도끼와 검이 충돌했다.
콰아아앙!
도끼 네 개가 흔적도없이 사라졌다.
아니, 흔적은 있었다.
바닥에 흩뿌려진 돌 조각들이 그 것이었다.
고블린 석상들은 생명체가 아니 니 당황하지는 않았지만, 무기를 잃어서인지 움직임이 어색해졌다.
마치 무기를 들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둘의 공격이유준에게 닿을 리 없다.
어이없이 고블린 석상들을 바라 보던 그는 단 한 번 검을 휘둘러 석상들의 몸을 부쉈다.
전투가 시시하게 끝났으나, 그건 순전히 무기의 차이 때문이었다.
능력치나 스킬 혹은 특성이 개입 할 요소가 전혀 없었다.
"힘이 쭉 빠지네요."
전투를 준비하던 파라네트가 허 무한지 검을 쭉 늘어뜨렸다.
"피해없이 끝났으면 잘된 거지. 허무하기는."
"맞습니다. 그런데 제가 활약한 것이 아주 오래전 일 같아서...
"곧 활약할 날이 오겠지."
"그러겠죠?"
"응."
유준은 석상의 잔해를 검등으로 쓱쓱 치웠다.
어떤 아이템이 떨어져 있거나 하지는 않았다.
레벨도 오르지 않았으니 크게 기 대는 안 했다만.
석상을 처리한 후로 그는 사원을 쉬지 않고 돌아다녔다.
넓지 않아서 천천히, 그리고 꼼 꼼하게 탐색했음에도 금세 끝에 도 달할 수 있었다.
사원의 마지막 방에는 수정 구
슬 하나가 제단 위에 올려져 있었다.
"뭘까요? 수상한데."
"글쎄. 만지라고 있는 거겠지."
유준은 거리낌없이 수정 구슬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그 순간.
[황금 사원의 주인이 되기 위한 시험이 시작됩니다.]
[시험을 무사히 통과하는 즉시, 사원의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필요 없는데… 사원."
다 뒤져 봤는데 아이템 같은 건 없었다.
이 사원의 특별한 점도 잘 모르겠고.
가디언도 쓰러뜨렸다.
사원의 주인이 되어서 좋을 게 없었다.
그런데 시스템 메시지는 사원의 주인이 무슨 대단한 것이라도 되는 양 말하고 있었다.
그다지 내키지 않는 보상이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물러나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혹시 모르니까.'
시험은 사원에서 이뤄지지 않는 듯했다.
그가 서 있는 장소가 바뀌었다.
정확히는 그의 몸이 워프된 것.
그러나 돌프와 파라네트는 전송 되지 않았다.
유준의 몸에 붙어 있던 하프만이 같이 왔을 뿐.
그는 주위에 돌프와 파라네트가 없다는 걸 인지하고 곧바로 파라네 트에게 생각을 전달했다.
돌프를 잘 감시하고 있으라고.
영혼으로 연결되어있는 소환수인 만큼 잘 전해졌으리라.
문제는 이곳의 환경.
용암에서 헤엄치는 것처럼 몸이 타들어 가는 듯했다.
열기를 차단하기 위한 실드를 생 성했다.
워낙 뜨겁다 보니 적지 않은 마 력이 소모되었지만, 이 정도는 감 당 가능한 수준이었다.
숨을 꾹 참고 있었던 하프가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주, 죽는 줄 알았어요."
"미안하다."
"아니에요! 전 괜찮아요!"
여러 겹의 강력한 실드로 인해 한결 여유로워진 유준은 주위를 살 폈다.
땅에서부터 피어오르는 열기에 대기가 일렁이고 있다.
어두운 땅.
확실한 건 사막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아스팔트 바닥도 아니었다.
그냥 칙칙하고 어둡고 보랏빛을
띠는 특이한 땅이었다.
거기에서부터 이 뜨거운 열기가 시작되고 있었다.
"그냥 버티면 통과하는 건가?"
그의 물음에 대답이라도 하듯 또 다른 위기가 찾아왔다.
저 멀리서 큰 해일이 밀려왔다.
물웅덩이 하나 보이지 않는 이 지역에서 갑자기 해일이 닥쳐오니 당황스럽기는 했다.
그러나 저 거대한 해일로 끝이 라면 사실 위기라고 할 것도 없었다.
유준의 실드는 보통 충격으로 절 대 파괴되지 않는다.
파괴는커녕, 실드를 흔들리게 하는 것도 힘들었다.
'실망인데.'
시험이 쉬우면 좋은 보상을 받을 리 만무하다.
차라리 시험의 난이도가 좀 더 어려워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해일은 예상대로 유준에게 그 어 떠한 피해도 주지 못했다.
'여기서 끝은 아니겠지?'
다행히 그건 아닌 듯했다.
그의 감각에 수백의 기척이 느껴 진 것이다.
"자이언트 웜?"
일반 자이언트 웜이 아니다.
초록색, 보라색, 붉은색이 섞인 알록달록한 자이언트 웜이 등장했다.
자이언트라는 이름이 붙은 것답 게 하나같이 덩치가 컸다.
한 마리, 한 마리가 건물 하나 이상의 크기를 지니고 있었으니 말 다했다.
"아빠. 제가 다 쓸어버릴까요?"
"아니. 네가 먼저 지쳐서 쓰러질 걸. 지금 보이는 놈들이 다가 아니야."
더 많은 수의 자이언트 웜들이 땅속에 대기하고 있었다.
하프의 브레스가 어마어마한 위 력을 지니고 있긴 하나, 그에너지 가 무한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단발성에 가깝지.
그래서 유준은 자이언트 웜들을 혼자 힘으로 처리하기로 했다.
어차피 여기엔 자신과 하프밖에
없어 그가 해결하는 수밖에 없기는 하지만.
먼저 신검합일 스킬을 사용했다.
허공에 일곱 개의 검이 생성되었다.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11권 6화
250화
지금까지 이렇게 많은 검을 동시에 다룬 적은 없었다.
그러나 그가 불가능한 걸 하려는 건 아니었다.
이것도 수련의 일종이었다.
신검합일은 매우 좋은 스킬이지만, 단점으로는 활용하기가 까다롭 다는 것이 있었다.
그냥 터놓고 말해서 검이 한 개 늘어날수록 몇 배씩은 어려워진다
고 보면 된다.
신검합일의 가장 기본적인 단계.
이곳 단계에서 정체되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없다.
신검합일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 해선 끝없는 노력이 필요했다.
그리고 지금이 적기라고 생각했다.
수많은 몬스터.
그것도 거대하고 강력한 자이언 트 웜들이다.
보통 자이언트 웜이면 솔직히 마법 한 번만 써도 다 쓸어버릴 수
있겠지만, 이놈들은 조금 다르다.
외피의 단단함부터가 예사롭지 않았다.
단순히 자이언트 웜의 피부 성능이라기보다는... 어떤 시스템적 요인이 간섭한 느낌이다.
물론 느낌이 그렇다는 거지 확실 한 건 없었다.
'자존심 상하긴 하는데 인정할 건 인정해야겠네. 내 마법으로는 놈들에게 큰 타격을 주긴 힘들 것 같아.'
어차피 검을 써야 했었던 것.
유준이 땅을 박찼다.
그와 동시에 허공에 있는 일곱 개의 검도움직였다.
서걱! 서걱!
검들은 일사불란했다.
당연하다.
유준이 직접 조종하는 것이었으니까.
그러나 또 검들이 일사불란하기 만 한 것은 아니었다.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역동적으로 움직였다.
그가 검에 생명을 불어넣은 것도 아닌데 저절로 움직여지는 느낌이
강했다.
효과는 놀라웠다.
자이언트 웜들은 어디서 날아올 지 모르는 빠른 검들에 쉽게 대응 할 수 없었다.
심지어 날카롭기는 얼마나 날카 롭던가.
행성 파괴자의 검 공격력이 무려 8,900만을 넘고, 유준의 전체 공격력은 그 수십 배에 달했다.
알록달록한 자이언트 웜들이 시 스템의 버프를 받아 봐야 그 무지 막지한 공격력을 버텨 낼 재간은 없었다.
검에 베이는 순간, 그 큰 웜들이 허탈할 정도로 쉽게 바닥에 몸을 뉘었다.
이게 공격력이 지닌 힘이었다.
부피 차이가 아무리 심하고, 약 점 부위가 아닌 곳을 공격하더라도 공격력이 압도적으로 높으면 상대 방을 즉사시킬 수도 있었다.
물론 백 퍼센트 확실한 건 아니다.
자이언트 웜은 검에 살짝 긁히기 만 하고 죽는 일은 없었다.
검신이 완전히 자이언트 웜의 몸에 파고드는 그 순간에 놈들의 숨
통을 끊어 놓을 수가 있었다.
순식간에 백 마리가 넘는 자이언 트 웜이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징그럽게도 많네.'
자이언트 웜은 유준의 생각보다 도 훨씬 많았다.
물기 섞인 흙바닥으로부터 끊임없이 나타났다.
'검 일곱을 동시에 활용해도 끝 이 안 보이네...
지금 일곱 개가 자신의 한계다.
정확히 말하면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 수가 일곱이다.
그 이상으로 검을 만들고 다룰 수는 있지만, 불확실성이 너무 컸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생각.
'그래도 발전하고자 수련을 하는 건데 너무 안정적으로만 가면 의미 가 없지 않을까?'
유준은 망설이지 않고 검 한 개를 더 늘렸다.
여덟 개.
여기까진 확실히 벅차다는 느낌은 없다.
그냥 그러려니 한 수준.
한 개를 더 늘렸다.
약간 멀미를 하는 것 같은 기분 이었다.
열 개.
속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아프지는 않다.
그저 기분이 더러웠다.
'이미 무리를 많이 한 것 같기는 한데... 생각보다 통제 자체는 어렵 지 않네?'
유준은 욕심을 냈다.
검을 한 개 더 늘린 것이다.
허공에 생성된 검의 개수가 드디 어 열한 개가 되었다.
이젠 머리가 지끈거렸다.
다행히 평정심으로 인해 집중력 이 저하되는 일은 없었다.
"으윽."
이번에 확실히 알았다.
현재 자신의 한계는 열 한 개였다.
정신은 어떻게든 온전히 유지할 수 있겠으나, 그 이상으로 가면 오 히려 효율이 떨어졌다.
최고의 위력과 효과를 볼 수 있는 건 딱 지금까지였다.
'욕심은 충분할 정도로 냈고 어 떻게 성공했어. 지금 이 상태만 계속 유지하자.'
아쉬운게 있다면, 경험치가 전 혀 오르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유준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와, 이벤트가 아니라 그냥 일반 적인 상황이었으면 저게 다 경험치 인 거잖아...
그렇게 생각하니 아깝지 않을 수 가 없었다.
머리를 수차례 흔든 유준은 눈앞 의 상황에 집중했다.
지금은 딴 데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다.
그만큼 신검합일 스킬로 열한 개 의 검을 다루는 것이 버거웠다.
그는 무한의 탑에 끌려온 이래로 최고로 힘든 싸움을 하고 있었다.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지 치는 전투였다.
사실 급하게 자이언트 웜을 해치 울 필요는 없었다.
그가 굳이 고된 길을 선택한 것
일 뿐이지.
하지만 나중에 가면, 이 경험들이 전부 힘이 되어 줄 것이라 굳게 믿었다.
실제로 유준은 자신이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을 제대로 받고 있었다.
'포션도 아낌없이 쓰자.'
무한하게 나타나는 적들을 상대 할 기회는 몇 없다.
심지어 약한 상대도 아니다.
긴박한 상황이 끊이질 않는 가운 데, 그는 초집중 스킬은 사용하지 않았다.
장시간 이어 나가야 하는 전투에 서 초집중의 사용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었다.
유준은 검 한 개를 더 늘렸다.
이로써 총 열두 개의 검이 만들 어 졌다.
검들은 전장을 누비며 자이언트 웜들을 잔인하게 학살했다.
웜들의 몸집이 너무나도 커서 겉 보기에는 바늘로 찌르는 수준의 광 경이었으나, 검이 몸을 파고들 때 마다 푹푹 쓰러졌다.
자이언트 웜들의 기세가 한풀 꺾 여 갔다.
그는 허공에서 열두 개의 검을 다루며 손에 쥔 검도 휘두르고 다 녔다.
쉬지 않고 땅속에서 솟아나던 자 이언트 웜들이었으나, 끝은 있었다.
더 이상 자이언트 웜들이 나타나 지 않고 필드 위에 남아 있는 자이 언트 웜의 숫자도 한 자릿수에 달 했다.
'얼추 3천은 죽인 것 같은데.'
어마어마한 수였다.
그냥 일반 몬스터도 아니고 크기 가 고층 건물만 한 자이언트 웜들이 3천마리였으니....
남아 있는 자이언트 웜들을 모두 처치한 유준은 허공의 검들을 없애 버렸다.
"드디어 끝인가?"
"앗, 아빠. 그런 말을 하면...
불길한 말을 하는 유준에게 하프 가 태클을 걸었지만, 다행히도 시험은 여기서 끝이었다.
[황금 사원의 시험을 무사히 통 과했습니다!]
[황금 사원으로 전송됩니다!]
돌프와 파라네트는 황금 사원에 무사히 남아 있었다.
"주인님! 제가 꽉 붙들고 있었습니다!"
"그래."
"이놈이 자꾸 도망가려고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제가 몸통 박 치기로 몇 번 혼내 줬습니다."
"잘했다."
유준이 돌프를 가만히 바라봤다.
"자, 잠깐만! 아니다! 모함이다! 난 그저... 그동안 혼돈이라는 것을 찾기 위해...
"그게 도망 아니면 뭐야?"
" 미안하다."
"됐어. 이제 황금 종족 찾아야지."
그 전에 할 일이 있었다.
보상을 확인하는 것.
[축하합니다! '신유준' 플레이어 가 황금 사원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황금 사원의 주인은 언제 어디 서든, 황금 사원으로 워프할 수 있습니다. 원래 있던 장소로 돌아가
는 것도 가능합니다. 단, 전투 상황에서의 워프는 불가능하다는 점. 유의 바랍니다.]
[신화 칭호 '황금 사원의 주인'을 획득합니다.]
[황금 사원의 주인은 그에 걸맞은 능력을 지녀야 합니다. 무력은 한차례의 시험으로 중명되었지만, 아직 한 가지 조건이 남아 있습니다.]
[진정한 황금 사원의 주인이 되 기 위해선 황금 화원의 꽃 만 송이를 얻어야 합니다.]
[695,330/10,000]
[조건을 충족하였습니다!]
[진정한 황금 사원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신화 칭호 '황금 사원의 주인'이 진화합니다.]
[초월 칭호 '진정한 황금 사원의 주인'을 획득합니다.]
[신화 칭호 '황금 사원의 주인'은 삭제되었습니다.]
[기존의 조건을 초과 달성하였습니다!]
[불가능한 업적!]
[장기간 숙성된 선단을 획득합니다.]
"워매. 이게 다 뭐야."
황금 사원의 주인이 된다는 보잘 것없는 보상이라 크게 기대는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욕심 많은 유준조차 과하 다고 생각할 정도의 보상이 쏟아졌다.
'천천히 정리해 보자.'
먼저 황금 사원으로의 워프가 가능하다는 것.
이것만으로도 시험을 치른 보람
이 있었다.
그런데 칭호까지 얻었다.
무려 신화를 넘어서 초월 등급이다.
효과를 확인하지 않고 배길 수가 있겠는가.
유준은 곧바로 초월 등급 칭호의 효과를 살폈다.
-진정한 황금 사원의 주인(초월) : 보유한 소환수의 모든 능력치가 80% 상승합니다. 황금과 관련된 모든 능력의 효과가 100% 증가합니다.
소환수의 모든 능력치가 80% 증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안 그래도 파라네트가 더 성장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던 차였다.
그런데,
'황금과 관련된 능력?'
놀랍게도 보상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진정한 황금 사원의 주인에게만 주어지는 특별한 능력이 있습니다.]
[황금 사원에 있는 수정에 다시 손을 얹어 능력을 획득하십시오. 0/1]
'설마 여기서 황금 능력을 얻는 건가?'
그게 뭐가 될지는 모르겠으나 칭 호를 보면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때였다.
메신저로 메시지가 폭발적으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귀가 아플 정도로 중복된 알림음
에 유준이미간을 찌푸렸다.
내용을 슬쩍 살펴보니, 축하한다는 것과 황금 사원이 뭐냐고 물어 보는 메시지들이었다.
아무래도 황금 사원의 주인이 되었다는 알림이 이벤트에 참가한 플레이어들 모두에게 공개된 듯했다.
"원래 이렇게 멋대로 알리는 건가?"
"경축할 일이잖습니까! 저는 좋습니다! 주인님이 얼마나 대단한 분인지 다들 알게 될 테니."
"그게 무슨 의미가 있냐..."
유준의 핀잔에 파라네트가 성을 냈다.
"아니! 주인님은 지금 과소평가를 당하고 계십니다! 능력치와 아이템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이상 계속 저평가를 받으시겠죠. 왜냐, 1 년 차 플레이어니까! 그건 어쩔 수 없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건 기회예요! 주인님을 쥐꼬리만 큼이라도 알릴 기회!"
"호들갑은."
유준이 피식 웃었다.
황금 사원의 주인이유준인 것이 알려져 오히려 파라네트가 더 신난 느낌이었다.
다른 이들의 반응이 중요한 게 아니다.
아까 시험을 보기 위해 만졌던 수정.
시스템은 그 수정을 만지면 능력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뜸 들일 이유가 없다.
유준은 곧바로 수정 위에 손을 올렸다.
수정에서은은한 푸른 연기가 홀 러나와 손을 감쌌다.
[스킬 '황금만능주의'를 획득합니다.]
[스킬의 등급은 행운 수치의 큰 영향을 받아 정해집니다.]
[스킬 '황금만능주의(SSS)'를 획득했습니다!]
'황금만능주의?'
등급은 무척 마음에 들긴 하지만, 이름이 살짝 알쏭달쏭했다.
정확히 무슨 효과인지 이름만 보 고는 알 수가 없었다.
바로 효과를 확인했다.
-황금만능주의 (SSS) : 제물로 바 친 황금의 양에 따라 마력 수치가 증가합니다.
"...특성 아니야, 이건?"
절대지기와 비슷한 느낌의 스킬이었다.
따로 사용을 안 해도 상시 적용 되는 종류의 스킬.
일단 효과는 마음에 들었다.
그가 황금 화원에서 얻은 황금의 양이 만만치 않았으니까.
지금은 마력 수치에 변화가 없었다.
아직 황금을 제물로 바치지 않았 기에.
유준은 아낌없이 황금을 쓰기로 했다.
아무리 황금이 돈이 된다고 해도 마력 능력치와 비교할 수는 없었다.
황금을 제물로 바치는 방법은 간 단하다.
"재물(財物)을 제물(祭物)로 바친다. 이거 말 되네."
유준은 스스로 생각해도 재밌는 말장난에 혼자 신나 킥킥거렸다.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11권 7화
251화
상태창을 열어 늘어난 마력을 확인했다.
'정확히 270 늘어났네.'
그가 금을 바친 양에 비해 아주 많다고는 생각이 되지 않았다.
천재 특성과 능력을 퍼센트로 강 화하는 칭호들의 효과가 적용되고 이 수치를 얻은 것이었다.
'하긴 비율이 그리 높을 리가 없지.'
그랬다면 끝도없이 강해졌으리라.
지금만으로도 충분히 사기적인 능력이었다.
실망은 안 했다.
황금 화원에는 황금 사원의 주인 이 되어 언제든 올 수 있게 되었고, 황금 꽃을 캘 방법도 이미 알 고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돌프한테 방 법을 괜히 알려 줬는데.'
하지만 크게 걱정되지는 않는다.
돌프가 혼돈을 얻기 전에 자신이
황금 화원의 모든 금을 캐는게 더 빠를 것 같았으니까.
'좋은 일이 또 생겼지.'
황금 사원을 얻음으로써 황금 종 족들의 위치를 알아낼 수 있게 되었다.
그게 가능한 이유는 그가 황금 화원과 동화되었기 때문이다.
'느껴져.'
황금 종족뿐만이 아니다.
황금 화원에 발을 들인 천족들과 이종족 용병들의 움직임까지 세세 하게 느껴졌다.
유준은 황금 사원의 주인이 된다는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새삼 체감했다.
황금 화원을 거의 갖는다고 봐도 무방한 수준.
'황금 종족들은 내가 다 독점하겠는데.'
한 명은 죽였고, 한 명은 데리고 있다.
그리고 나머지 두 명의 위치와 정체까지 알아 버린 순간 게임 끝 이었다.
여기서 어떤 노력을 더 할 필요 가 없었다.
황금 종족과의 전투에서 승리하는 건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물어봤다.
"돌프. 내가 특히 경계해야 할 만한 황금 종족이 있어?"
"전부 나와 비슷한 수준이다."
"오케이."
그럼 문제없다.
이제 황금 종족을 사냥하러 갈 시간이다.
사실 마음 같아선 황금 꽃이나 캐고 있고 싶지만, 그건 나중에 해 도 될 일이다.
우선은 황금 종족부터다.
"아빠... 저 또 강해졌어요."
그때 하프가 기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니?"
당연히 그래야 했다.
그의 순수 마력 능력치가 한순간에 270이 증가했으니까.
말 그대로 순수 마력 능력치가 그렇게 증가한 것이다.
마력은 여러 아이템과 스킬, 특 성에 의해 270에서 수십 배는 증폭 되었다.
강해진 걸 못 느끼면 하프가 둔 한 것이었다.
"진짜 엄청난 힘이에요. 드래곤 도 단번에 녹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네요."
"...응. 그나저나 우리 하프 많이 과격해졌네."
아무리 그래도 드래곤은 무리지.
어스 드래곤이나 드레이크들이라면 몰라도.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그 정도는 될 수도 있었다.
황금만능주의 스킬의 효과를 지
금은 십분 못 살린 상태였으니까.
나중에 시간 날 때 황금 화원에 와서 금을 더 많이 캐면 하프도 쉽 게 범접할 수 없는 강자가 되리라.
이젠 진짜로 이벤트를 끝낼 때가 되었다.
그리고 천계의 전쟁에도 관여하고 난 뒤에나 다시 이곳에 올 수 있겠지.
"바쁘다. 바빠."
드물게 불평하는 유준의 입가가 웃음을 띠고 있었다.
* * *
"자, 잠깐!"
서걱!
유준은 목숨을 구걸하는 이의 목을 단번에 베어 버렸다.
이로써 세 번째 황금 종족을 처 치했다.
남은 건 돌프뿐이다.
자신의 운명을 진즉부터 알고 있던 돌프가 목을 내밀었다.
"안 아프게 보내 줘라."
"당연하."
서걱!
"지."
유준의 반 박자 빠른 공격에 돌 프는 그 어떤 고통도 느끼지 못한 채로 갈 수 있었다.
마지막 황금 종족이었던 돌프까지 죽였다.
이제 황금 고블린이 탄생할 때가 되었다.
"진짜 대단하시네요. 혼자서 황
금 종족 넷을 직접 찾고 끝냈잖아요."
도지윤이 감탄하면서 말했다.
"에이, 너무 띄워 주지 마세요."
"유준 씨 강한 건 알아서 황금 종족을 죽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찾는게 문제였지. 그런데...
유준이 멋쩍은 웃음을 짓고 있을 때, 도지윤이 핵심을 찌르는 질문을 했다.
"아까 그 황금 사원과 관련되었 던 건가요?"
"뭐가요?"
"황금 종족이요."
"황금 종족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사실은 덕분에 더 빨리 찾기는 했으나, 그것까지 말하고 싶진 않았다.
어찌되었든 사원의 정보를 떠벌 려서 좋을 건 없으니.
"하여튼 유준 씨랑 같은 파티라 서 다행이에요."
"지윤 씨가 메시지로 알려 준 게 있어서 앞당길 수 있었죠."
"저나 다른 사람이 없었어도 알
아서 잘 찾아내셨을 것 같은데."
"그래도요. 도움이 된 건 틀림없 잖습니까?"
"...그렇죠."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됩니다."
황금 고블린.
어떤 방식으로 나타날지는 모르겠으나, 손쉬운 상대는 아닐 거라 생각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이벤트는 황금 고블린을 잡는 것이 목표였다.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였다.
물론 시작과 동시에 이벤트가 끝 날 수도 있었다.
황금 고블린의 수준이 생각보다 낮다면.
[곧 황금 정원 어딘가에 황금 고 블린이 탄생합니다!]
[황금 고블린을 죽이십시오!]
간단명료해서 좋았다.
원래는 길게 이어질 이벤트였으나, 유준의 활약에 힘입어 바짝 앞 당겨져 소환된 황금 고블린.
"어디서 나타날까요?"
"한가운데가 아니겠는가?"
"그건 너무 뻔하잖아요."
김요한의 말에 독고민수가 코웃 음을쳤다.
"뻔하다고 해도 상관없을 걸세. 자네는 이 넓은 화원에서 어디가 정중앙인지 확실히 알 수 있겠나?"
"...모르죠?"
"그러니까 다물게."
"또 말 험하게 하신다. 좋은 말, 이쁜 말만 하라고 했죠, 제가?"
"알았네. 닥치게."
"옳지, 착하다."
"독고민수 아저씨 말이 맞습니다."
유준이 말했다.
"가운데에 있네요."
"그걸 어떻게 알아요? 아저씨가 아까 말했잖아요. 어디가 정중앙인 지 알 수가 없다고."
김요한이 이상하다는 듯 묻는다.
"직접 가서 확인해보면 되겠죠. 따라오려면 따라오세요."
그렇게 말한 유준이 먼저 땅을 박차고 뛰어갔다.
"자, 잠깐…."
너무나도 빠른 속도에 뒤쫓아가 려던 김요한이 손만 내뻗었다.
"도대체 어떻게 따라가라고...
팍! 푸슥!
지나치면서 황금 꽃을 따는 건 이젠 패시브가 되었다.
'이게 다 마력인데. 그냥은 못 지 나치지.'
유준과 같은 상황에 놓이면 누구 라도 그럴 것이다.
진정한 황금 사원의 주인이 된 그는 황금 고블린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발걸음에 망설임이 없었다.
'어디 보자. 주위에 몇이나 있으 려나.'
그는 빠르게 질주하면서도 감각은 활성화해 놓은 상태였다.
감지된 천족의 수는 스무 명 정 도.
그들은 황금 고블린이 소환된 곳 근처에 있었으니 운이 좋았다.
하지만 반대로 재수 없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유준이 근처에 있었기에.
황금 고블린의 냄새를 맡은 플레 이어의 수가 적지 않았다.
녀석을 향해 접근하는 플레이어들이유준의 시야에 잡혔다.
확실히 괜히 600레벨 이상의 플레이어들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황금 고블린 소환 장소 근처에
있었다는 행운도 어느 정도 따라 주긴 했지만, 예민한 감각이 뒷받 침되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좀 빠르네.'
만약 황금 사원의 주인이 되지 않아 황금 고블린의 위치를 알지 못했다면, 한참 늦게 도착했을 터.
아무리 생각해도 황금 사원에 들 어간 건 잘한 일이었다.
"하프. 고마워."
"네?"
"네 덕분에 황금 사원을 찾았잖아."
"헤헤. 저도 아빠 덕분에 강해졌는걸요!"
"그럼 우린 공생 관계네."
"맞아요! 그래서 좋아요! 아빠한테 도움이 될 수 있다는게..."
"나도 네가 태어난 이후로 항상 행복했어."
"정말요?"
배시시 웃는 하프의 얼굴에 유준 이 심장을 부여잡았다.
콰아앙-!
그때 엄청난 폭음이 귓가를 강타 했다.
폭음의 진원지는 바로 근처는 아니고, 황금 고블린이 있는 곳 부근 이었다.
"벌써 시작됐나?"
황금 고블린을 발견한 플레이어들이 공격을 시작한 모양이다.
예상보다 빨랐지만, 유준은 서두 르지 않았다.
황금 고블린을 믿었다.
그의 감각에 잡힌 황금 고블린의 힘이라면 어중이떠중이들한테 쉽사 리 당할 것 같지는 않았다.
'괜히 최종 보스가 아니야.'
녀석에게 달려들었던 다섯 명의 플레이어의 기척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목숨을 잃은 것이다.
단 한 번의 충돌이 있었던 것 같은데.
사실 플레이어들이 이렇게 빨리 전멸할 줄은 몰랐다.
아무리 고레벨 이벤트의 보스 몬 스터라지만, 그들도 600레벨이 넘는 플레이어일 텐데.
유준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황금 고블린이 강하면 나야 좋지.'
다른 누군가에게 사냥당하지 않을 테니 마음이 놓였다.
그는 자신이 황금 고블린에게 질 것이라곤 전혀 생각 안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믿는 것이 아니라 행성 파괴자의 검을 굳게 믿고 있었다.
'무려 행성까지 파괴한 자의 검이라는데, 황금 고블린 따위한테 애를 먹겠어?'
유준의 현재 총 공격력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수준이었다.
황금 고블린이 검에 맞고 일격이 라도 버텨 낸다면 그것이 용한 일이다.
일단은 섣불리 판단해서 좋을 건 없었다.
직접 두 눈으로 보고 확인해야지.
유준이 전력으로 달리자, 황금 고블린과의 거리가 급격히 가까워 졌다.
'워... 생각보다 큰데?'
그가 봤던 가짜 황금 고블린들과는 비교 선상에 놓기가 미안할 정 도로 황금 고블린은 덩치가 컸다.
웬만한 데스 나이트 저리 가라 할 수준이었다.
파라네트보단 작기는 해도 고블 린치고는 상당했다.
아주 기다란 황금 검을 손에 쥐 고 있는데 천족들의 피가 잔뜩 묻 어 검끝에서부터 핏방울이 바닥에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황금 고블린의 강렬한 시선이유준에게 꽂혔다.
"많이 모여드는군."
"네 몸이 전부 금으로 되어 있어 서 그래."
황금 고블린은 굳이유준과 말을 섞지 않았다.
검을 들고 쇄도해 단번에 처리하 려 했다.
유준은 타이밍에 맞춰 검을 휘둘 렀다.
검에 실린 힘을 느낀 걸까.
황금 고블린이 마주 검을 휘두르 지 않고 뒷걸음질쳤다.
그러나 그런 황금 고블린의 뒤통 수를 향해 날아오는 검이 있었다.
바로 행성 파괴자의 검.
정확히는 신검합일로 복제해 낸
행성 파괴자의 검이었다.
황금 고블린은 용케 반응하며 뒤 로 검을 휘둘렀다.
카아아앙-!
파각!
복제했다고 해도 행성 파괴자의 검이 지닌 공격력이 어디 가지 않는다.
눈부신 자태를 자랑했던 황금 고 블린의 검이 산산이 조각났다.
허공에 비산한 황금 파편들을 유준이 다급하게 마력을 방출해 한자 리에 모았다.
수십, 수백 개의 금 조각들이 그 의 손아귀로 들어왔다.
"어휴, 이 아까운 걸 놓칠 뻔했네."
황금 고블린은 허망한 눈길로 자 신의 빈손을 바라봤다.
이제 목을 날리기만 하면 이벤트는 끝이다.
그렇게 생각한 그 순간이었다.
"신유준! 그놈을 우리한테 넘겨라!"
".…"응?"
어디선가 외침이 들려서 고개를 돌려 보니 세르티프스가 수백의 천 족들과 함께 날아오고 있었다.
무엇을 넘기라는지는 바로 알겠다.
바로 황금 고블린.
"넘기라뇨. 싫습니다. 거참. 말이 되는 소릴 해야 들어주지."
"우리가 황금 고블린을 처치하면 아이템을 주겠다! 전에 약속했던 그리핀의 뇌를 기억하는가?"
유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보다 좋은 아이템을 세 개
주도록 하지. 어떤가?"
"더 있다고요? 그걸 제가 어떻게 믿죠?"
"내 대천사장님의 명예를 걸고 약속하지."
"대천사장의 명예를 그렇게 막 걸어도 되는 겁니까?"
"내가 2천사장의 자식이니까. 그 럴 권한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내막이 있었군요. 그런데 부모의 명예를 거는 것도 좀 거시 기한데?"
"아이템은 확실히 줄 수 있다. 내가 부하들 앞에서 말을 어길 것
같은가?"
"뭐, 아이템은 그렇다 쳐도..."
황금 고블린의 무기까지 박살 내고, 무력화시킨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다.
그 혼자서 만들어 낸 것인데, 여 기서 아이템 때문에 양보를 하면 솔직히 기분이 더럽지 않겠는가.
그러나 유준은 양보하기로 했다.
"가지세요, 그럼."
"정말인가?"
세르티프스는 정말로 그가 순순 히 황금 고블린을 내어 줄 거라고
생각 못 했는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예. 진짭니다. 잡으세요."
유준은 뒤로 쭉 빠지고 팔짱을 꼈다.
방관하겠다는 태도.
"고맙군. 약속한 대로 사례는 꼭 하겠다."
세르티프스가 처음으로 활짝 웃 어 보이며 천족과 함께 황금 고블 린을 사냥하기 위해 날아갔다.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11권 8화
252화
유준이 세르티프스에게 황금 고 블린을 양보한 것은 이유가 있었다.
전투의 결과를 뻔히 알기 때문이었다.
수십 명의 천족에게 각종 버프를 받은 세르티프스가 순백의 검을 들고 황금 고블린에게로 쇄도했다.
검에는 강한 힘이 담겨 있긴 하나, 그게 다였다.
빠악-!
황금 고블린이 번개같이 내뻗은 주먹에 세르티프스가 혼절했다.
"미, 미친!"
"구해!"
"견제 부탁한다! 셋이 가서 들고 와!"
천족들이 기겁하며 황금 고블린에게 마법을 난사했다.
콰콰쾅!
그사이에 몇 명이 나서 기절한 세르티프스를 들고 뒤쪽으로 물러 났다.
"...어떻게 된 거지?"
세르티프스가 금방 정신을 차리 고 꺼낸 말이었다.
천족들은 말이 없었다.
"어떻게 된 거냐니까?"
"황금 고블린의 주먹이 매서웠다 고밖엔...
"내가 저놈한테 맞아서 기절한 건가?"
" 예."
"아무래도 맨손 격투가 주력인 놈인 듯하군. 손에 무기가 없어 방 심했어."
멀리서 지켜보던 유준이 헛웃음을 흘렸다.
무투가 계열이었으면 건틀릿을 끼고 있었겠지.
방어구는 다 착용하고 있는데 건 틀릿도, 날붙이 무기도 없는 걸 보 고 예측했어야 했다.
세르티프스가 얼마나 성급하게 움직였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리고 방금은 황금 고블린의 육체 능력치가 압도적으로 높았기에 벌어진 참사였지, 녀석의 맨손 전 투 능력이 뛰어나진 않았다.
제3자의 눈으로지켜본 대부분의
천족들이 그 사실을 알고 있으리라.
"다 같이 협동 공격을 해야 할 듯합니다."
한 부하의 말에 세르티프스가 진 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로 세르티프스와 천족들은 무기 하나 없는 황금 고블린과 치 열한 싸움을 벌였다.
콰콰콰콰쾅!
콰앙! 쾅!
그 어떤 공격도 황금 고블린의 육체에 상처를 내지 못했다.
몸이 단단한 것도 있지만, 무엇
보다도 황금 고블린이 날랬다.
너무 빨라서 마법은 다 피해 낼 정도였고, 근접 공격을 위해 다가 갔던 천족들 또한 된통 얻어맞고 기절하거나 즉사하기 일쑤였다.
"뭐죠? 왜 맞아도 꿈쩍도 안 할까요?"
"분명 무기를 못 쓰는 페널티를 가진 대신에 강력한 힘을 얻은 걸 거야. 그런 능력들이 종종 있거든. 근데 단점을 커버하고도 남을 정도 로 사기적이긴 하네. 저렇게 주먹을 잘 쓰는 놈은 첨 봤어."
그들은 황금 고블린이 본래 검을 쓴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다.
그래서 저런 착각을 하는 것이었다.
황금 검의 흔적은 전부 유준의 인벤토리에 있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세르티프스가 분통을 터뜨렸다.
"수백이 나섰는데 고작 한 놈을 상대로 고전해? 이게 말이 돼?"
방심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저 황금 고블린의 힘이 강하고 빠른 것일 뿐이다.
수적 우세로 상대할 수 있는 수 준이 아니었다.
천족들의 수가 확 줄어들었다.
황금 고블린은 지치지도 않는지 오히려 전보다 더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 빨라진 속도에 당황한 천족들은 별다른 수를 내지 못했다.
순식간에 50도 남지 않은 천족 들.
세르티프스가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러다 문득 뒤를 돌아 가만히
구경하는 유준을 봤다.
"도와줬으면 한다."
"언젠 넘겨 달라면서요?"
"내가 황금 고블린을 우습게 알았다. 네 도움없이는 안 될 것 같은데."
"그럼 천족들 다 물리시고 당신 도 뒤로 빠지세요. 황금 고블린은 저 혼자 잡습니다."
"하지만...
"뭘 하지만이에요. 어차피 도움 도 안 되면서 기여도만 얻으려는 거 아닙니까? 이미 몇 대쳤으니 내가 처리해도 기여도는 조금 얻겠
네. 그걸로 만족하고 가세요."
"면목이 없...
"맞습니다. 말 더 안 합니다. 이제."
세르티프스가 고개를 끄덕이곤 천족들에게 후퇴 명령을 내렸다.
더 이상 욕심을 부려서 좋을 게 없었다.
아무리 이벤트라지만, 목숨을 잃으면 지금 쌓아 놓은 기여도까지 다 사라질 것이다.
세르티프스가 굴욕을 느끼며 자 리를 떠났다.
"저기 있다."
"찾았다!"
"잡아!"
그 후로도 사실 몇몇 천족 무리들이 더 찾아왔지만, 황금 고블린에게 순살 당했다.
유준은 주변에 기척이 더 없는 걸 느낄 때쯤에야 황금 고블린의 앞에 섰다.
"또 왔군."
황금 고블린의 입가가 비틀렸다.
비록 상대가 자신의 무기를 부순 인간이기는 하지만,
황금 고블린은 여럿의 천족들을 손쉽게 죽이면서 자신감이 대폭 상승한 상태였다.
그래서 망설임없이 선제공격을 걸어왔다.
먼저 긴 다리로 킥 공격을 시도 했다.
신장이 큰 탓에 미들 킥을 날린 것임에도 발끝은 머리를 향해 날아 왔다.
유준은 초집중 스킬을 사용하고 검을 쥔 손에 모든 힘을 끌어모았다.
서걱—.
섬광과도 같은 속도로 뻗어졌던 다리가 절단되었다.
"크흡...
어마어마하게 단단했던 황금 고 블린의 피부를 뚫은 것도 모자라 다리를 완전히 통과하며 지나간 검.
황금 고블린이 눈에 띄게 당황하 며 뒤로 몸을 던졌다.
한순간에 절름발이가 된 녀석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정말 귀신같은 솜씨로군. 내 눈
으로도 보기 힘든 속검이라니...
황금 고블린이 처음으로 유창하게 말을 했다.
유준도 한마디 했다.
"네 검도 부쉈는데, 네 다리라고 멀쩡하겠냐."
그 말에 일리가 있어 황금 고블 린이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리 잘린 고블린을 물끄러미 바 라보던 유준이 생각에 잠겼다.
'사실 이 정도 강한 놈이면 소환
수로 삼고 싶긴 한데.'
절대 봉인의 구슬에 가둬 뒀다가 잘 길들이면 좋은 소환수가 될 듯 하다.
그러나.
이벤트를 끝내는 조건이 황금 고 블린을 처치하는 것.
그런 조건이라면 황금 고블린을 제압해서 봉인 구슬에 가둬 둔다고 해도 시스템은 인정을 안 해 줄 공 산이 컸다.
그간 게임 경험에 의하면 100%였다.
'뭐 자리도 없으니 욕심내지는 말자.'
발록이나 피의 군주도 충분히 좋은 소환수감이었다.
특히 피의 군주.
그의 권속들까지 부릴 수 있게 되면 천군만마를 얻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발록도 무시할 수는 없었다.
녀석은 세르티프스가 말했던 성장 기댓값이 무척 높은 녀석이었다.
거기다 마신 추종자들을 상대로 발록을 소환수로 내놓으면 어떤 일 이 벌어질지 궁금하기도 했다.
'죽이자.'
그는 다른 플레이어들이 더 몰려 오기 전에 이벤트를 끝낼 생각이었다.
초집중을 사용한 상태에서 그는 거의 무적에 가깝다.
신검합일.
열다섯 개의 검이 허공에 생성되어 황금 고블린에게 겨눠졌다.
퇴로는 물론이고 움직일 공간이 전혀 없을 정도로 빽빽한 포위진이었다.
황금 고블린은 자신의 검을 무자 비하게 파괴한 검이 무려 열 개가 넘어가자,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검들 사이의 빈 곳을 찾아 황급 히 그 틈으로 파고들려고 했던 황 금 고블린.
그 순간 녀석의 육체가 수십 조 각으로 나뉘었다.
촤아악!
수십 점의 살점과 함께 대량의 혈액이 바닥에 흩뿌려졌다.
당연하지만 레벨은 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메시지가 그를 반겨 주었다.
[황금 고블린을 처치했습니다!]
[현재 기여도 : 95.7%]
[불가능한 업적!]
[모든 능력치가 10 상승합니다!]
업적 보상으로 능력치를 얻었다.
'딱 한 번 저런 적이 있긴 했는
아이템으로 주길 바랐지만, 이것도 그냥저냥 나쁘진 않았다.
그는 아이템과 칭호들로 인해 능력치를 수십, 수백 배로 부풀릴 수 있는 상태였으니까.
거기다 아직 제대로 된 보상은 주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방금은 그저 업적 보상만 확인한 것이었을 뿐.
[기여도에 따른 보상을 지급합니다.]
[대량의 황금을 획득합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황금 고블린 처치 보상으로 '초월의 돌'을 획득합니다.]
[황금 고블린 처치 보상으로 '초월의 돌'을 획득합니다.]
[신화 등급 장비를 무작위로 획득합니다.]
유준이 두 눈을 싹싹 비볐다.
설마 중복 메시지가 뜬 건가?
초월의 돌을 얻었다는 메시지를 두 개나 본 것 같은데?
혹시나해서 다시 봤지만, 절대 착각이 아니었다.
인벤토리를 열어서 초월의 돌 두 개가 있는 것까지 확인했다.
'어떻게 같은 아이템을 둘이나 받을 수 있지?'
심지어 그가 간절히 원해 왔던 초월의 돌이었다.
이걸 구하려고 마왕성까지 쳐들 어가서 갖은 고생을 다 했었는데....
유준은 신화 장비도 확인했다.
기대는 안 되지만, 어떤 아이템 인지 일단 보기는 해야 하니까.
'600레벨 제한이 붙은 아이템… 그런데 세트 효과가 없네.'
지금 그가 착용한 방어구는 500 레벨 제한이 걸린 신화 등급 세트 아이템이었다.
세트 효과를 생각하면 바꿔 착용 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아쉽네.'
사실 여기서 더 좋은 방어구를
구할 수 있을까도 의문이었다.
'무과금즐겜러가 좋은 장비를 갖 고 있기를 바라는 수밖에.'
직접 구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구한다고 구해질 것 같지도 않았다.
방금처럼 보상으로 하나씩 모으 거나 해야 하는데, 어느 세월에 다 모은단 말인가.
무과금즐겜러의 도움을 받는 것 이 훨씬 효율적이었다.
'미안하다. 고맙다. 사랑한다. 무과금즐겜러.'
그의 자의적이지 않은, 자의적일 수 없는 도움은 언제나 고마웠다.
보상을 적게 받은 감이 있긴 하지만, 말 그대로 수량만 적을 뿐이다.
질적인 면에서 보면 결코 적다고 할 수가 없었다.
'초월의 돌 두 개에서 이미 끝났지.'
초과 보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초월의 돌 한 개가 가지는 가치는 상상을 초월했으니.
그걸 둘이나 얻었으니 불만이 생 기려야 생길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가 얻은 건 초월의 돌 뿐만이 아니다.
레벨도 대폭 상승했고, 황금도 얻었다.
'금은 좀 실망스럽네. 내가 나중에 캐서 얻는게 훨씬 많겠는데.'
일단 바로 제물로 바쳐서 마력을 올렸다.
상승한 순수 마력 능력치는 30.
공짜로 얻었다고 생각하면 크나 큰 행운이기는 했다.
무엇보다도, 황금 사원의 주인이 된 것이 가장 큰 수확이라고 할 수 있었다.
거의 무한이라고 할 수 있는 황 금 화원의 꽃들.
그걸 소유할 권한을 가졌다.
그는 언제든 황금 화원에 와서 꽃을 딸 수 있었다.
제일 기대하지 않았던 보상이 이런 식으로 좋게 다가올 줄은 몰랐다.
'진짜 오래 살고 볼 일이야.'
초월의 돌은 당장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500레벨 방어구에 사용하기엔 아 까운 감이 있었다.
주력 장비는 전부 초월 등급이기 도 하고.
유준은 이벤트가 끝나자 곧바로 황금 화원에서 쫓겨나 원래 있던 천계로 돌아왔다.
주변을 보니 하나같이 어리둥절 한 표정의 일행이 있었다.
김요한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었다.
"벌써 잡은 거예요? 유준 씨가 끝낸 거죠?"
" 예."
"진짜 미쳤네. 도대체 얼마나 강 해지려고 그래요. 저한테도 좀 나 눠 주는 건 어때요?"
"자네는 아무것도 안 하지 않았는가. 그런 말 할 자격이 없네."
"아저씨는 있어요?"
"나는 유준 군한테 많은 조언을 해 줬지. 그 조언을 적용해 황금 고블린을 무사히 잡아낸 것 아니겠는가?"
"유준 씨보다 훨씬 약하면서 조 언은 무슨.... 지나가던 개가 웃겠다. 솔직히 실제로도 조금 우스웠을걸요?"
"그럴 리가 없네. 그는 날 존중 하고 있어. 그렇지 않은가?"
독고민수가 간절한 눈빛으로 유준을 바라봤다.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11권 9화
253화
유준이 어쩔 수없이 어색한 미 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조언이 큰 도움이 됐 네요."
"보게! 본인이 저리 말하지 않는 가!"
"누가 봐도 강요였는데…."
그때 마누엘라가 유준의 등을 콕 콕 찔렀다.
" 왜?"
"...레반. 찾아야지."
"맞다."
온건파와 강경파가 제대로 한판 붙기 전에 레반부터 찾아야 했다.
그 또한 용병이라고 했으니 언제 휘말려 죽을지 몰랐다.
"까먹을 뻔했네. 알려 줘서 고마 워."
"응."
유준은 천계를 활발히 돌아다녔다.
레반은 포로로 잡히지 않았으니 강경파 진영에 있을 것이다.
아니면 죽었든가.
"레반을 찾으러 가는 건가?"
독고민수가 묻자, 유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강하다네."
"그게 왜요?"
"그만큼 본인의 실력에 자부심이 엄청나거든. 웬만해선 동기화 구슬을 주려 하지 않을 걸세. 그 구슬을 활용하려 혈안이 되었거든. 목 숨을 위협해도 못 얻을 확률이 높 다고 생각하네."
"한마디로 똥고집을 가지고 있다
는 거네요."
" 비슷하네."
"제가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요?"
"레반 그 친구에게는 미안한 일 이 될 수도 있네만..., 속이는게 가장 효율적인 방법일 걸세."
"속이다뇨?"
"레반은 우직하고, 순수하며 강 한 전사라네. 동시에 지능도 일반 적인 플레이어들보다는 살짝 떨어 지지. 그러니 동기화 구슬의 활용 방법을 알려 준다고 하면서 얻어 내는게 어떤가? 내가 아는 레반이 라면 잘 속아 넘어갈 것 같은데."
"그자와 친구가 된 거 아니었어요?"
"같이 있으면 즐거운 말동무였지. 그러나 나한텐 자네가 더 소중 한 동료라네."
"감동이군요."
"유준 씨. 속지 마세요. 저거 다 연기예요. 당신이 강하니까 잘 보이려고 가면을 쓰고 있는 거라니까요."
김요한이 속삭이며 말했다.
"뭐라?"
청각이 예민한 독고민수가 눈을
부라리자, 김요한이 움찔했다.
그러면서도 유준에게 한마디 더 속삭였다.
"전형적인 강약약강이에요. 강한 사람한테는 다 퍼 주려고 하고... 저같이 연약한 사람한테는 쌍욕을 남발하고 하대하고 난리도 아니죠."
"날 이상한 사람으로 몰지 좀 말게. 언제까지 그런 장난을 칠 셈인가."
둘은 진심 반 장난 반으로 말다 툼을 자주 하는 것 같았다.
진심이 더 섞여 있는 것 같기도 하고 ....
유준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언제 전쟁을 시작할지 모르니 얼른 레반을 찾으러 가 보겠습니다."
"알겠네. 우린 여기서 기다리도 록 하지."
"갔다 와요."
유준이 떠날 채비를 하고 플라이 마법을 사용하는데, 그와 같이 날 아오른 이가 있었다.
마누엘라였다.
"넌 왜?"
"같이가."
"...뭐, 상관은 없지. 가자."
마누엘라가 같이 가서 나쁠 게 없었다.
그녀는 그만한 실력이 있었고, 무엇보다도 장시간 숙성된 선단을 한 개 사용해야 하는데, 그녀에게는 행운을 증가시키는 버프가 있었다.
"응!"
같이 가도 상관없다는 말에 마누 엘라가 기뻐했다.
유준은 이왕 마누엘라가 같이 가는 김에 레반을 찾으면서 장시간 숙성된 선단을 섭취하기로 했다.
"버프 걸어 줘."
"왜? 누구랑 싸우게?"
"이번에 얻은 보상이 있어서."
"행운이 목적이구나, 이번에도?"
"응."
"치. 너무 순순히 대답하더니. 이유가 있었네."
"그건 아닌데? 내가 무슨 널 도 구로 취급하는 것도 아니고."
"그, 그래? 그럼 됐어."
마누엘라가 유준의 손을 잡았다.
접촉이 있어야만 가호가 적용된
다더니, 볼을 너무 세게 움켜잡는 것이 아닌가?
그냥 손을 올려놓는 정도만 해도 될 텐데.
의아했지만, 확실한 가호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갔다.
[여신의 가호를 받았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40% 상승합니다!]
[공격력과 방어력이 30% 상승합니다!]
[신체에 걸린 모든 해로운 효과가 제거됩니다.]
[모든 상처가 회복됩니다.]
[행운이 증가합니다.]
그래도 효과는 확실했다.
아니, 미친 수준이었다.
매번 행운을 목적으로 사용해서 넘어갔었지만, 모든 능력치 40% 증가와 공격력, 방어력 30%를 증가시켜 주는 버프는 그 어디에도 없다.
마누엘라는 이 버프 하나만으로 앞으로도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히
부각시킬 수 있을 것이다.
유준은 인벤토리에서 장시간 숙 성된 선단을 꺼냈다.
'이거 진짜 구하기 힘든 건데.'
생각보다 자주 얻는 감이 있었다.
그건 그가 불가능한 업적을 자주 달성하기 때문이겠지.
'그러고 보니 요즘엔 레인보우 스티커는 사용할 일이 별로 없네.'
하긴.
레벨이 벌써 700을 넘어가고 있었다.
태초의 플레이어 특전 효과를 포 함하면 850레벨 아이템은 되어야지 레인보우 스티커를 사용하는 보람 이 있다.
'앞으로도 쓸 일이 거의 없긴 하겠네.'
전설 박스 대신에 장시간 숙성된 선단이 나와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 른다.
아무리 그래도 레인보우 스티커 보다는 특성 한 개를 얻는 것이 더 효율이 높으니.
행운 수치는 더할 나위가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
더 뜸들이지 않고 장시간 숙성 된 선단을 입안에 넣었다.
그리고 입안에서 우물우물 굴리 다가 삼켰다.
['장시간 숙성된 선단'을 복용했습니다!]
[특성을 무작위로 한 개 획득합니다.]
['검술(B)' 특성을 획득했습니다.]
[중복되는 특성을 획득했습니다. 특성을 융합합니다.]
『검술 (EX)' → '검술 (EX++)']
중복이란다.
'이게 웬 횡재냐.'
새로운 특성을 얻지 못하게 되었지만, 유준은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높은 등급 특성 하나를 더 갖는 것보다는 그의 근본이라고 할 수 있는 검술의 등급이 증가한 것이 훨씬 이득이었다.
그리고 한 단계도 아니고 무려 두 단계가 올라갔다.
GX등급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진
것이다.
이제 검술 GX등급을 노리는 것도 꿈이 아니게 되었다.
"좋은 거 나왔어?"
"응. 검술."
"그거 이미 있었던 거 아니야?"
"중복 획득이라고 등급 올려 주 더라."
"잘됐다! 검술은 잘 안 나오는 특성인데 그걸 두 번이나 얻은 거 잖아."
"행운 수치가 큰 영향을 주긴 하 나 봐. 네 덕분이야."
"그, 그럼 나중에 보답해 줘."
" 보답?"
"내가 원하는 곳에 같이 가 준다 든가... 하는 거로. 어때?"
"좋아. 어려울 거 없네. 언제든 말해."
"응! 알았어!"
이번에 검술 특성을 얻은 것은 마누엘라의 가호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나비효과.
아주 조그마한 차이가 큰 변화를 만들어 내는데.
마누엘라는 행운을 대폭 늘려 주었다.
그 행운은 검술 특성을 얻게 하는데 당연히 엄청난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빨리 검 써 보고 싶은데.'
검술 특성은 신검합일과 연관되어 있다.
신검합일의 위력 또한 몇 배는 증가했을 것이다.
거기다 유준은 검술 특성의 등급 이 올라가면서 머릿속에 수많은 전 투 방식이 떠오르고 있었다.
이걸 실전에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
몸이 근질거렸다.
우선은 레반부터 찾는다.
감각의 범위가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넓어졌다.
황금이라는 재물을 제물로 바치 고 마력 능력치가 대폭 오른 덕분이다.
'금방 찾겠는데.'
느껴지는 기척 중 천족은 전부 제외했다.
그리고 이종족들이 다수 모여 있는 곳 위주로 탐색했다.
'찾았다.'
유준이 눈을 빛내며 속도를 올렸다.
머나먼 차원의 멸망한 행성.
그곳에서 특별한 재료를 수집하고 있던 무과금즐겜러의 눈썹이 꿈틀했다.
"...또?"
[인벤토리 동기화가 시작됩니다!]
[현재 동기화율 12.2%]
[인벤토리의 본주인에게 적합한
아이템을 선정 중입니다.]
[동기화율이 16%에 달하는 순간, 아이템이 전송됩니다.]
'이 아이템의 주인은 나다. 그런데….'
저 메시지와 함께 자신이 힘들게 모으거나 만든 아이템들이 사라지 고 있었다.
혹시나해서 인벤토리에서 아이템을 빼놓기도 해 봤다.
그러나 소용없었다.
그 아이템은 인벤토리로 빨려 들 어가며 다른 아이템들과 같이 전송 되어 버렸다.
그 후로도 여러 방법을 시도해 봤지만, 어떤 꼼수도 통하지 않았다.
무과금즐겜러의 미간 사이 골이 더욱 깊어졌다.
'누군진 몰라도... 죽여 버리고 싶군. 저 말은 지금 내 인벤토리의 주인이 따로 있다는게 아닌가.'
힘 빠지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지금도 최강의 아이템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재료를 모으고 있거늘, 그걸 채 가는 이가 있다.
무과금즐겜러의 입장에선 황당무 계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안 쓰는 아이템이긴 하지만, 그가 아이템에 갖는 애정은 무척 각별했다.
아이템이 사라질 때마다 심장에 대못이 박히는 기분이었다.
' 후우...
원하는 재료를 기어코 찾아낸 무과금즐겜러는 휘황찬란한 빛을 뿜어 대는 검을 꺼냈다.
그리고 있는 힘껏 땅에 검을 꽂 아 넣었다.
쿠구구구궁.
지변이 일어났다.
그의 주변이 아니라, 행성 전체에서.
그리고 어느 순간.
삐이이이익—
무과금즐겜러에게는 익숙한 이명
과 함께 행성이 흔적도없이 사라 졌다.
아무리 신의 보호가 없는 멸망한 행성이라지만, 일개 플레이어가 한 행성을 소멸시키는 건 불가능에 가 까운 일이었다.
그런데 무과금즐겜러는 별 감홍 이 없는 듯한 얼굴이었다.
"이번 행성은 맛이 좀 별로군."
공허한 우주를 부유하던 그가 다 른 차원으로 이동했다.
* * *
레반을 찾아내고 유준은 금방 동 기화 구슬을 획득할 수 있었는데, 레반이 생각보다 더 순박한 자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고마워. 잘 쓸게."
"으응? 방법을 알려 준다고 하지 않았는가?"
"거짓말이야."
"그럼 돌려줘라."
"싫어."
"...죽고 싶은가?"
"협박하는 거야?"
"내 구슬을 돌려 달라고 말했다."
"미안하지만 이건 내 아이템이야. 나만을 위한 아이템이기도 하고."
"틀렸다. 내 거다. 내가 주웠다. 내가 쓸 거다."
"레반. 고맙고 잘 지내."
"이 새끼가!"
유준이 땅을 박차고 하늘로 날아 오르는 그때.
레반이 같이 도약하며 그의 머리를 노리고 대검을 휘둘렀다.
어마어마한 근력.
공기를 찢어발기며 대검이 날아 왔다.
유준은 팔에 낀 건틀릿으로 대검을 막아 냈다.
그와는 싸울 마음이 없어 검을 꺼내지도 않았다.
동기화 구슬을 가져가는 것으로 충분히 미안한데, 목숨까지 거둘 수는 없었다.
"뭣..."
자신의 공격이 막힐 줄은 몰랐는지 레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유준이 받은 피해는 전무.
건틀릿에는 흠집 하나 나지 않았다.
"그만 건드려."
"이놈이! 동기화 구슬 내놓으라고!"
"어차피 네가 가져 봤자 아무 쓸 모 없는 물건이라니까."
"내 물건이라고 했잖나! 날 속이 다니!"
"내가 잃어버렸던 물건이야. 그
걸 되찾은 것일 뿐이고. 그러니까 애초에 동기화 구슬이 네 것이었던 적이 없는 거지."
"궤변이다!"
"좋아. 돈으로 줄게. 레반. 어 때?"
"...돈? 포인트를 말하는 건가?"
"응. 포인트야. 괜찮지?"
"하지만... 동기화 구슬은 유물이라는 새로운 등급....
"새로운 등급이면 뭐 하냐고. 네 가 백 년, 천 년을 가지고 있어도 아무런 효력을 못 내는 아이템인데.
이건 내 태생 능력과 관련되어있는 거야."
"인간은 태생 능력이 없다."
어, 뭐야.
그런 것도 알고 있었어?
유준이 살짝 당황했으나 내색하지는 않았다.
그는 당황함을 숨기려 더 강하게 나갔다.
레반의 목을 강하게 움켜쥔 것이다.
"끄윽..."
발을 아등바등 놀리는 레반.
"얼마면 돼? 얼마면 되냐고?"
"오..."
"오?"
"오억!"
"오케이."
유준은 바로 수락하고 오억 포인트를 레반에게 건네주었다.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_ 11권 10화
254화
수백억의 포인트를 지닌 그로선 전혀 아깝지 않은 금액이었다.
반면 레반은 홧김에 부른 포인트를 유준이 망설임없이 줄 줄은 몰 랐는지 놀란 눈치였다.
설마하니 이 거금을 얻을 줄이야.
아무리 600레벨 초반대의 플레이어라지만, 억이 넘어가는 포인트를 쉽게 구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돈을 받은 순간 레반의 불만이 싹 사라졌다.
"잘 써라."
"응. 좋은 데 쓰도록 노력할게."
"그래."
레반은 아무런 미련을 보이지 않고 돌아섰다.
옆에서 지켜보던 마누엘라가 황당해했다.
"이게 돈으로 해결되는 문제였다니."
"몰랐어? 수천 년을 살아온 너라면 잘..."
"알아. 아니까 그만해."
"응."
마누엘라가 째려봤다.
나이 얘기는 정말 민감하구나.
그게 뭐가 중요하다고.
'어차피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것 아닌가?'
다섯 살이나 낮춰서 나이를 얘기 한 유준의 생각이었다.
동기화 구슬을 반강제적으로 받아 냈다.
방법이 어떻든 이걸 얻었다는 것 이 중요했다.
이로써 동기화율이 14퍼센트까지 올라가게 될 것이다.
14퍼센트에서는지금껏 그래 왔 듯이 아무런 변화가 없을 확률이 높았다.
16퍼센트가 되는 순간, 아이템을 전송받을 테지.
동기화 구슬을 모으려고 노력은 하겠지만, 서두를 생각은 없었다.
딱히 뭐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없었다.
동기화 구슬이 억지로 찾는다고 찾아지는 물건도 아니고.
이제 남은 건 강경파와 온건파가치르는 최후의 전쟁.
유준은 마누엘라와 함께 세르티 프스가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그는 항상 천족 무리들을 이끌고 다니기에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신유준..."
유준을 본 세르티프스의 표정이 복잡 미묘했다.
황금 고블린을 처치하는 일을 그 가 가로챘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세르티프스 무리의 능력이 안 따라서 무기를 잃은 황금
고블린을 못 잡았던 거고, 유준은 그 뒤처리만 했을 뿐이지만.
"와, 왔군."
그는 화가 났다기보다는 민망해 하고 있었다.
그럴 만도 하지.
'나였어도 쪽팔려서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을 거야.'
유준은 본론으로 들어갔다.
"아이템 주셔야죠?"
"...어떤 아이템을 말하는 거지?"
"제가 대신 황금 고블린을 잡아
줬잖아요?"
"결국 그대가 잡았지 않은가. 그렇다면 줄 아이템도 없지."
"양보하면 아이템 세 개 준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것 또한 우리가 황금 고블린을 포기하면서 끝난 얘기다."
"그럼 그리핀의 뇌라도 미리 주세요."
"...그걸 주면 도망가지 않을 텐가?"
"누굴 무서워해서 도망가요? 귀 찮아서 떠나는 거면 몰라도."
"그러니까. 그걸 우려하는 걸세."
"안 떠나겠습니다. 끝까지 책임 지고 용병으로 싸울 거니까 빨리 주세요."
"알았다. 한번 믿어 보도록 하지."
[하이 그리핀의 총명한 뇌]
등급 : 신화
옵션 : 신화적인 몬스터 하이 그 리핀의 뇌입니다. 섭취하는 즉시 마력이 '100' 고정 증가합니다.
유준은 세르티프스가 건넨 하이 그리핀의 총명한 뇌를 두 손으로 받았다.
공손하게 받으려는 것이 아니라, 워낙에 뇌의 부피가 큰 탓이었다.
'새대가리 안에 있는 뇌 맞아?'
오죽하면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과연.
'전에 마력 100을 얻었으면 방방 뛰며 기뻐했을 테지만...
유준은 황금 화원의 꽃을 제물로 바쳐 마력을 상승시킬 수 있게 되
었다.
100이라는 수치가 그리 크게 와 닿지는 않았다.
'그래도 이게 어디냐.'
마력 100만큼의 제물을 바치는 것도 다시간이 소모되는 일이었다.
거기다 황금 화원의 꽃은 무한히 재생되지 않는다.
꺾으면 거기서 끝.
능력치는 얻을 수 있을 때 최대 한 얻어 놔야 했다.
일단 그리핀의 뇌를 먹었다.
상당히 역겨웠지만, 마력 100을
올려주는 아이템이다.
참고 먹었다.
체내의 마력이 수천 정도 늘어난 것이 느껴졌다.
순수 마력 능력치 100에 증폭되는 수치가 장난이 아니었다.
이게 다 아이템 덕분이었다.
'역시 템빨망겜이야.'
그리핀의 뇌 효과가 마음에 들었다.
단순 섭취로 마력을 100이나 올 려주는 아이템은 흔치 않다.
'그런데 천사장이나 대천사장급
되는 놈들이면 이 정도 아이템을 기본으로 보유하고 있는 건가?'
2천사장의 아들이라고 했던 세르 티프스도 별것 아니라는 듯 내놓는 아이템이 하이 그리핀의 총명한 뇌였다.
어쩌면 대륙에선 희귀한 아이템이 여기선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박탈감이 생기진 않았다.
오히려 욕심이 생겼다.
'천계에서 빨아먹을 건 다 빨아 먹고 가는게 좋겠다.'
물론 단정 짓는 건 좋지 않았다.
세르티프스가 유독 좋은 아이템을 많이 소유한 걸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에게서 아이템을 얻 어 내면 될 일이다.
'그리핀의 뇌보다 좋다던 그 세 개의 아이템...이 뭘까.'
이벤트는 끝났지만, 세르티프스 가 말했던 그 세 가지 아이템을 유준은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당장은 어려울지 몰라도 천계를 벗어나기 전에 그 세 개의 아이템을 꼭 차지하리라 마음을 먹었다.
"언제 시작합니까?"
"이벤트가 진행되고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았다. 애초 예정되었던 날짜까지 아직 이틀이나 남은 거지. 뭐, 예상보다 일찍 시작될 수도 있기는 하다. 이번 돌발 이벤트에서 플레이어들은 거의 아무것도 얻지 못했으니."
"...미안하지는 않지만, 미안하 다고는 할게요."
"그게 어찌 그대 탓이겠는가. 실 력이 뛰어난 게 죄가 될 수는 없지. 다만, 황금 고블린을 너무 일찍 잡아 버린 게 아닌가 싶기도 하군."
" 예?"
세르티프스의 말에 유준이 황당 한 표정을 지었다.
양심이 있는 건가, 이 양반은?
"우린 제대로 준비를 마치고 황 금 고블린을 잡을 수 있는 상태였네. 하필 그때 그대가 황금 고블린을 죽이면서 이벤트가 끝나 버렸지."
"아..
유준은 세르티프스가 황당무계한 소리를 내뱉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 다가 말속에 숨겨진 진의를 깨달았다.
'자존심 챙기기네.'
건틀릿도 아니고, 무기도 없는 황금 고블린에게 일격에 당해 기절 한 광경을 부하들에게 보였다.
아무리 낯짝이 두꺼운 상급자라도 견딜 수 없을 만큼 쪽팔릴 것이다.
거기다 인간 한 명한테 맡겨 두고 후퇴까지 해 버렸으니.
저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천 족이 있을까가 의문이지만, 유준은 세르티프스의 장단에 맞춰 줬다.
"먼저 잡아 버려서 미안합니다. 다른 이들이 낚아챌까 두려워 서둘렀어요."
유준의 말에 흠칫 놀랐던 세르티 프스가 만족스럽다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한다. 나였어도 그랬을 거야. 그대를 탓하려는 건 아니니 개 의치 말라."
"그렇게 생각해 주시다니. 고맙습니다. 하여튼 전 이틀 뒤에 오면 될까요?"
"앞당겨지면 먼저 연락하도록 하겠다."
"알겠습니다."
세르티프스의 체면을 한차례 세워준 유준이 자리를 떴다.
천계에서는 이번 전쟁을 반기는 부류와 반기지 않는 부류가 있었다.
먼저, 전쟁을 반기지 않는 부류 로 강제 징용된 잡병들이 대표적이다.
즉 다른 이들에 비해 특출날 것 없는 천족들이다.
그들은 대륙의 플레이어들에 비 하면 레벨은 높지만, 남들과 차별 되거나 뛰어난 능력을 보유하고 있 지 않아서 생존 확률이 그리 높지 않았다.
무엇보다 전쟁에서 승리하거나 살아남는다고 하더라도 이득이 없었다.
자신이 지지하는 세력이 이긴다는 것에 만족하고 운이 좋으면 계 급이 상승한다는 것 정도.
반대로 전쟁을 반기는 이들은 뻔 했다.
고위 인사들이나 보상을 받고 참여하는 용병들.
그리고 실력에 자신이 있지만, 저평가되고 있는 천족들 정도가 있다.
여기에 전쟁을 놀이로 생각하는 대천사장도 포함할 수 있겠지.
"으어."
유준이 허리를 쭉 폈다.
황금 화원에서 꽃을 수십만 송이를 딴 것 같다.
어쩌면 그 이상일 수도 있다.
세질 않아서 정확하게는 모르고 있었다.
"이것도 계속할 짓이 못 되는구 나."
처음엔 마력을 얻을 생각에 싱글 벙글 즐겁게 작업을 진행했다.
그러나 지금은 완전히 녹초가 되었다.
체력적인 문제가 아니다.
정신적으로 한계에 달한 느낌이었다.
24시간 넘는 작업을 하면서 5초 이상을 쉬지 않았으니 어떻게 보면 당연했다.
만약 황금을 제물로 마력을 증가
시켜 주는 '황금만능주의 (SSS)' 스킬이 없었으면 유준은 진작 수확 작업을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포인트는 넘치도록 있으니 황금을 필요 이상으로 모을 필요가 없지.'
마력 능력치는 모을 수 있을 때 최대한 모아 놔야 했다.
'점점 할 맛이 떨어지는데.'
유준은 황금만능주의 스킬의 효 율이 사용할수록 떨어지고 있음을 알았다.
황금을 바치는 양이 많아질수록 황금 무게당 오르는 마력의 수치가
점점 낮아지고 있었다.
그 이유로는 황금이 많아지면서 제물로서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이 있었다.
한마디로 황금을 받는 알 수 없는 누군가가 배가 불렀다는 뜻이다.
상당히 편협한 자가 아닐 수가 없었다.
굶주렸을 때와 배때기에 기름이 덕지덕지 꼈을 때 태도가 달라지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낙폭이 너무 크지 않은가.
그래서 유준은 황금을 모으기만 하고, 바치지는 않았다.
계속 모으고, 모았다.
그러면서 제물로 바치지는 않았다.
황금을 제물로 받는 가상 존재의 애간장을 태우는 행위였다.
물론, 유준이 혼자 헛짓거리를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시간이 지나면 효율이 다시 회 복되는지 확인해 봐야 한다.'
종일 뼈 빠지게 모은 황금을 바쳤는데 전보다 훨씬 낮은 마력을 얻는다면....
그보다 억울한 일이 있을까.
"파라네트. 너 또 실수했다. 저기 두 방울 홀린 거 보이지?"
유준은 바구니 용도로 쓴 장비 아이템을 들며 쫓아오는 파라네트에게 타박했다.
" 죄송합니다."
"피곤해? 너답지 않게 왜 그래?"
"주인님. 죄송합니다. 지친 것 같습니다."
"너 언데드잖아. 리치도 아니고 데스 나이트가 지치는게 말이 돼?"
"저 아직 불완전한 데스 나이트 잖습니까."
"어딜 봐서 불완전한데? 너보다 큰 데스 나이트를 내가 본 적이 없어."
"그만할까?"
"네! 네! 네!"
"그렇게 힘들었냐."
"진짜 눈알이 빠질 것 같습니다요. 차라리 인형에 단추를 붙이는게 더 쉽겠습니다."
눈알도 없는 파라네트가 눈알이 빠진다고 할 정도.
작업은 보통 고된 것이 아니었다.
"그래. 그만하고 쉬자."
"좋습니다!"
"이번엔 특별히 쉬는 시간 20분 줄게."
"..네?"
"편히 쉬고 있어."
"...주인님? 완전히 끝내는 것 아니었습니까?"
"파라네트. 너 진짜 혼날래?"
" 예?"
"여기 꽃 널려 있는 거 안 보여?
지금 우리가 작업한 거 황금 화원 전체에서 보면 티도 안 나. 여기서 만족하고 퇴교할 거야?"
" 퇴교요?"
"하여튼. 눈이라도 붙여 두고 있어."
파라네트는 붙일 눈이 없다.
뼈밖에없이 눈이 휑했으니까.
"알겠습니다..."
기운이 없는 녀석의 대답.
유준이 따뜻하게 말을 건넸다.
"지친 건 아는데 조금만 더 힘내 보자. 지금처럼 여유 시간이 주어
질 때가 흔치 않잖아. 나중엔 바빠 서 못 온다니까?"
"그렇다면 조금만... 조금만 더 하면 되는 것이겠지요?"
"맞아. 지금 딱 반 정도 했으니까... 지금 고생한 거 한 번만 더 한다고 생각해."
있던 힘도 싹 사라지게 만드는 유준의 말이었다.
파라네트는 괜히 유준의 어깨 위에서 편안한 자세로 잠을 청하고 있는 하프를 노려봤다.
"하프는요? 하프는 근무 태만 아
닙니까? 일은 하나도 안 하고 잠만 자고 있는데."
파라네트가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자고 있던 하프가 자신의 이름이 나오자 눈을 동그랗게 뜨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 모습을 본 유준이 성을 냈다.
"하프는 어리잖아. 넌 이 어린애 한테 일을 떠맡기고 싶어? 정말 로?"
"더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그래. 잘 생각했다."
그렇게 다섯 시간을 더 황금 꽃을 꺾고 다녔을 때.
메신저에서 알림음이 울렸다.
세르티프스가 보낸 메시지였다.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11권 11화
255화
"소개할 자가 있어 그대를 불렀다."
황금 화원의 황금들을 마다하고 세르티프스에게 갔을 때 그가 꺼낸 말이었다.
"소개라니요? 정략결혼은 사절하겠습니다. 평생을 함께할 사람은 직접 구하고 싶어요."
세르티프스가 유준의 말을 가뿐 히 무시했다.
"이쪽은 아트라데온이라고 한다."
"아트라데온이라고 하네."
아트라데온은 백발과 흰 수염을 지닌,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천족 이었다.
"신유준입니다. 그런데 왜 저한테...?"
"이번에 그가 중요한 역할을 맡았기 때문이지. 아트라데온은 현자 일세."
"그러니까 저랑은 상관이 없는 것 아닙니까?"
"아니지. 그대는 앞으로 아트라
데온과 함께 다니게 될 거다."
"제 의사는요?"
"내가 그대에게 보상을 미리 준 것으로 안다. 그것만으로 그대의 의욕을 고취시킬 수는 없겠지. 그 래서 그대의 활약에 따라 추가 보상을 지급할까 한다."
"...추가 보상."
유준은 이미 '하이 그리핀의 총 명한 뇌'라는 보상을 받아서 막 활 약하거나 할 생각은 없었다.
"추가 보상이란 게 황금 고블린을 앞에 뒀을 때 얘기했던 그 아이템들입니까?"
"맞다."
"...하이 그리핀의 뇌보다 훨씬 좋다고 한 그것들 맞죠? 확실하죠?"
"그래. 훨씬까지는 몰라도 그리 핀의 뇌보다는 좋은 아이템이라는 건 확신할 수 있다."
" 흐음...
유준은 일단 고민하는 척을 했다.
원래 세르티프스가 언급했던 아이템들을 얻어 내기 위해 뭐든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세르티프스가 먼저 제안
을 걸어왔다.
그 아이템 세 개를 주겠다고.
물론 현자 아트라데온과 함께 다 니면서 작전을 수행하고, 무사히 성공했을 때의 얘기다.
"받아들일 건가?"
"제가 물욕이 없는 편이긴 하지만, 그렇게 간절히 원하시니 어쩔 수 없군요. 당신에게 힘을 보태겠습니다."
"그대가 물욕이 없다니? 근래 들 어 본 말 중에서 가장 웃기는 농담 이었다. 남을 웃기는데 재주가 있 군."
"영혼 계약부터 맺죠."
"영혼 계약?"
"혹시 준다고 해 놓고 안 줄 수 도 있잖습니까?"
"내가 그럴 위인으로 보이는가?"
"전 당신뿐만이 아니라 그 누구 도 믿지 않습니다. 여기 있는 하프를 제외하고. 아, 소환수인 파라네 트와 타파골도. 맞다. 마누엘라도 있구나."
"물론 부모님도 믿어요. 저 불효 자식 아닙니다."
"누구도 안 믿는다는 말은 다신 하지 않았으면 좋겠군."
"어찌 됐든, 영혼 계약은 맺어야 합니다. 그거 안 하면 저도 안 해요."
"어차피 약속을 어길 것도 아니었으니 상관없다. 영혼 계약을 진 행하지."
"빠르게 하겠습니다."
유준의 손에서 마력이 뿜어져 나 오고, 계약 내용이 세르티프스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끝났습니다."
"솜씨가 대단하군. 영혼 계약을 단 몇 초 만에 끝내는 건 처음 봐."
"영혼 계약을 맺을 일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을 텐데요."
"그렇긴 하지."
"전 뭘 하면 되는 겁니까?"
"자세한 사항은 아트라데온에게 들으면 된다."
세르티프스는 바쁘다며 자리를 떴다.
"뭘 하고 다니길래 항상 바빠 보이지, 저 양반은."
막사에 단둘만 남게 되었다.
유준과 아트라데온.
아트라데온이 말문을 열었다.
"신유준. 그대의 이름은 익히 들 어 알고 있었네. 실제로 보니 훤칠 하니 잘생겼네그려."
"강하다는 말보단 듣기 좋군요."
"듣자 하니 황금 사원의 주인이 되었다고?"
"시스템이 멋대로 알려 버리던데요. 제가 원한 건 아니었습니다."
"당연히 그렇겠지. 황금 사원. 그 것과 관련해서 자네에게 해 줄 말 이 있네."
"황금 사원... 아니, 애초에 황 금 화원은 돌발 이벤트로 생긴 장 소입니다. 이벤트가 끝나면서 사원 의 주인이 된 건 아무 의미가 없게 됐어요."
"그게 아니라는 건 자네도 잘 알 텐데. 굳이 속이려 하지 말게. 다 알고 있으니."
"뭘 아시는데요?"
아트라데온은 황금 사원에 들어 가 보기라도 한 걸까.
"자네는 황금 사원의 주인이 되었고, 다시 황금 화원에 갈 수 있 게 되지 않았나?"
"시스템이 거기까지 설명했었습니까? 몰랐는데."
"아닐세."
아트라데온이 웃으며 부정했다.
"그저 내가 황금 사원에 대해 미 리 알고 있었을 뿐이지."
"황금 화원과 사원이 이벤트가 생 기기 이전에도 존재했다는 거죠?"
"그건 자네도 알 텐데? 황금 종 족들과 대화를 안 해 봤나?"
"해 봤죠. 그들이 황금을 얻으면 더 강해진다는 것도 압니다."
"호, 거기까지 알려 주다니. 황금
종족과 친해진 건가?"
" 비슷합니다."
"그런데 황금 종족 넷을 자네가 다 죽였다고 들었는데...
"맞습니다."
"친한 친구를 죽인 셈이군."
"사실 친하지도 않았습니다. 목 표를 달성하기 위해 잠깐 데리고 다녔을 뿐이지."
"하여튼 자네에게 해 줄 말이 있네."
" 뭔데요?"
"황금 사원의 주인이 되었다고
다 끝난 것으로 알고 있지? 그게 아닐세. 자네는 특정 조건을 충족 시켜야만 진정한 황금 사원의 주인 이 될 수 있네."
이 아저씨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는 이미 진정한 황금 사원의 주인이 된 상태였다.
덕분에 초월 칭호까지 얻었다.
-진정한 황금 사원의 주인(초월) : 보유한 소환수의 모든 능력치가 80% 상승합니다. 황금과 관련된
모든 능력의 효과가 100% 증가합니다.
파라네트는 물론, 최근에는 불러 내지 않고 있긴 하지만 타파골까지 대폭 강화시켜 주었으며 황금을 제 물로 바칠 때의 효과를 두 배로 늘 려 주기도 했다.
이 초월 등급 칭호는 그가 진정 한 황금 사원의 주인이 되었다는 증거였다.
"진정한 황금 사원의 주인이 되 면 뭐가 좋은데요?"
알면서도 물어봤다.
아트라데온이 어디까지 알고 있 나 궁금해서.
"그건 모르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황금 사원의 주인이 된 것으로 만족하면 안 된다는 것 이지. 자네는 황금 화원에서 어려 운 조건을 충족해 진정한 황금 사 원의 주인이 되어야 하네."
"그래 봤자 남의 일 아닙니까? 저한테 그걸 왜 알려 주시는 거예요?"
"안타까우니까. 황금 사원의 주인이 생긴 것은 이번이 처음 있는 일일세."
"아트라데온, 당신은 왜 안 갔는데요? 이미 알고 있었던 것 아닙니까? 황금 사원에 대해서?"
"황금 사원에 대해 알고 있었기에 나는 탐낼 수 없었네."
유준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이해가 안 가는데."
"내 능력이 가진 장점이자 단점 일세. 남들이 모르는 정보를 선점 할 수 있는 대신에 그 일에 간섭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지."
"근데 지금 간섭하신 거 아니에요?"
"이 정도는 괜찮네. 자네는 이미 황금 사원의 주인이 되었으니까 간 섭이라고 보기도 힘들지. 어차피 자네가 언젠가 깨닫고 진정한 황금 사원의 주인이 되지 않았겠는가? 난 그걸 앞당기고자 자네에게 정보를 준 것이고."
"감사합니다만, 전 이미 그거 됐어요."
"응? 안 하겠다는 말인가? 조건 이 너무 어려워서?"
"아니요. 진정한 황금 사원의 주인이요."
아트라데온이 처음으로 당황한
얼굴을 내보였다.
"...언제? 자네가 황금 사원의 주인이 된 것이 바로 최근 일이었을 텐데."
"당신 말대로 최근에 됐죠."
"허, 내가 잘못 알고 있었던 건가?"
"조건이 쉬웠습니다."
"그건 말도 안 되네. 분명 내 스킬로 얻은 정보라네. 틀릴 리가 없어. 그 조건이 매우 까다로워 황금 사원의 주인이 되어도 진정한 주인 이...
"그나저나 언제 알려 줄 겁니까?
중요한 역할을 맡기로 한 거 아니었어요, 우리?"
"본론으로 들어가라는 건가. 뭐... 알겠네."
아트라데온이 돌돌 말려 있는 양 피지 하나를 꺼냈다.
양피지를 묶은 끈을 푸니 지리와 지명이 적혀 있었다.
" 지도?"
"온건파 놈들이 자리 잡은 최전 선이 여기 코르타 언덕 바로 밑일세. 여기서부터 쭉 놈들의 진영이 라고 보면 되네."
"놈들의 위치를 지도로 보는 것
이 중요합니까? 감각으로 찾아내려 면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을 텐데. 위치가 바뀌었을 수도 있고."
"감각이 뛰어난 자네야 가능할지는 몰라도. 나나 웬만한 이들이 필 요 이상으로 접근하면 저들은 알아 채고 공격해 올 걸세."
"아."
유준은 너무 자신의 기준으로만 생각했다는 걸 깨달았다.
애초에 남에게 들키지 않고 적을 감지한다는 것 자체가 감각이 상대 보다 월등하게 뛰어나야 가능한 일 이었다.
"그리고 이것도 그냥 지도가 아 닐세. 여기 빨간 점들 보이나? 타 깃으로지정된 이들이라네. 여기선 온건파 천족들을 뜻하지. 이들이 움직이면 빨간 점의 위치도 실시간으로 바뀌게 된다네."
"신기하네요. 어디서 구했습니까?"
"어느 작은 유적에서 구했네. 고 대 마법사들이 사용하던 지도라더 군."
"아이템 등급은요?"
"별걸 다 궁금해하는군. 신화 등 급일세."
" 호오..."
"이건 줄 수 없네."
"누가 달랍니까. 그냥 신기해서 보는 거지."
"자네 눈에 탐욕이 그득해서 미 리 못 박아 두는 걸세."
"전혀 아니니 신경 쓰지 마시죠."
"그러길 바라네."
"근데 작전이 이게 다입니까? 적 들의 위치를 알고 나서 그다음은 뭘 해야 하죠?"
"온건파 놈들이 저기서 무얼 하고 있는지 아는가?"
"모릅니다. 뜸들이지 말고 바로 알려 주시죠."
"제단을 만들어 신화 속 존재를 소환하려 하고 있다네. 이번 전쟁에서 완벽하게 승리하기 위함이지."
으응?
어째 비슷한 상황이 있었던 것 같은데.
신화 속 존재라.
마신 추종자들이 신화 생물인 발 록을 소환하려 하지 않았던가.
실제로 발록을 소환하는데 성공 했고.
물론 유준이 잡아서 절대 봉인 구슬에 넣어 두긴 했으나, 그가 나 서지 않고 방치했으면 대륙에 큰 위협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신화 속 존재라면?"
"그 존재가 무엇인지는 나도 모르네. 하지만 전쟁의 판도를 바꿀 만큼 강력한 존재라는 것은 알지."
"정체를 모른다면서요?"
"정체를 몰라도 알 수 있는게 있지. 우리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 소환 의식을 막아야 하네."
"온건파만 그럽니까? 강경파는 따로 소환을 안 하고요?"
"다른 차원의 존재를 소환한다는 것은 천계의 윤리에 어긋나는 일이네."
"완전한 불법은 아니고요?"
"그렇네. 그러나 저들과 똑같이 해야만 승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온건파가 소환 의식에 실패하기만 하면 우리가 손쉽게 승리할 수 있을 걸세. 자네가 있지 않은가."
"절 너무 과대평가하시는 거 같은데."
"자네만 참전하면 우리 강경파가 승리할 수 있네. 내 장담하지."
들어 보니, 작전이랄 게 별것 없었다.
소수 정예 병력들이 소환 의식을 진행하는 곳으로 가서 의식을 막는 것.
여기서 가장 중요한 점은 소환 의식을 막는 것에 실패하거나 늦었을 때, 이를 해결할 자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신화 속 존재를 소환하는데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이곳으로 소환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 라면 충분히 처리하는 것이 가능했다.
소환된 직후에는 그 존재가 온전 한 힘을 낼 수 없기 때문이다.
발록이 그랬듯 말이다.
그래서 유준이 나중에 발록을 소환했을 때 발록은 더 강해진 상태 로 등장했다.
"어쩌면 이미 늦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
"그럼 빼도 박도 못하고 놈과 싸 워야 하는 상황이 오겠군요."
"그러니 빨리 가야 하네."
"왜 진작 안 알려 줬어요? 시간은 있었을 텐데."
"놈들이 소환 의식을 진행한다는 정보를 입수한 것이 얼마 안 되었네. 그래서 급히 자네를 부르기로 한 것이고."
"서둘러 움직여야겠군요. 제 일 행을 데려와도 되겠습니까?"
"물론이네. 하지만 한 명에서 두 명 내지로 하게. 수가 많아지면 온 건파 놈들이 알아차릴 확률이 높아 지니."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11권 12화
256화
유준은 같이 갈 일행을 이미 정 해 놓은 상태였다.
마누엘라.
그녀 단 한 명이었다.
독고민수나 도지윤, 김요한 이 세 명도 믿을 만한 동료이기는 하나, 지금은 가장 필요한 한 명만 데려가야 할 때였다.
그리고 유준이 생각하기에 마누 엘라의 능력은 자신에게 매우 유용했다.
'여차할 때 버프도 받아야 하고.'
그녀는 어차피 유준이 부탁하지 않아도 따라오려 했을 것이다.
"갈 거지?"
"응."
마누엘라가 당연하다는 듯 대답 했다.
유준은 아트라데온에게 가서 준 비가 끝났다고 전했다.
"그럼 바로 출발하겠네."
아트라데온과 유준 그리고 마누 엘라. 거기에 천족 세 명을 더해
총 여섯 명이 온건파 진영으로 떠 났다.
"비행 마법없이 그냥 달려갑니까?"
"그래야지."
"빨리 가야 한다면서요?"
"저들이 우릴 알아채고 결계로 더 틀어막기라도 하면 더 곤란해질 걸세.은밀하고 빠르게 가는 것이 중요하네."
"공간 마법은요?"
"한 명도 아니고 우리처럼 여러 명이 이동하는 것이라면 마력의 파장이 커 당연히 알아차리겠지. 그
것도 안 되네."
"흐음, 무조건 늦을 것 같은데."
"소환 의식은 생각보다 더 오래 걸리는 일일세. 게다가 몰래 진행 하는 일이라면 더욱 그렇겠지. 아무리 늦게 간다고 하더라도 소환된 존재가 완전한 힘을 되찾은 상태일 리는 없을 테니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네."
"그럼 다행이고요."
"들키지 않는게 제일 중요하다는 거네요?"
"그렇지. 내가 기척을 죽이는 마법을 걸어 주겠네."
아트라데온이 손짓을 하자, 싸한 느낌이 온몸을 휘감았다.
유준이미간을 찌푸렸다.
"느낌이 별론가?"
아트라데온의 물음에 그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효과가 미미한 것 같아서요."
"..."
"제가 할게요."
아트라데온이 펼친 기척을 죽이는 마법은 고대 마법에도 포함된 것이었다.
그리고 고대 마법으로 펼치면 그 효과가 월등하게 뛰어나다.
유준의 손에서 마력이 뿜어져 나 오고, 일행 모두에게 마력이 스며 들었다.
그러자, 모든 이들의 기척이 확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각자 본인의 기척까지 못 느낄 정도로 효과는 뛰어났다.
" 됐죠?"
아트라데온이 자존심이 상했는지 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왜 그래요?"
"이럴 거면 자네가 처음부터 쓰 지 그랬나."
"삐졌어요?"
"안 삐졌네. 난 지금 효율의 문 제를 논하는 걸세. 괜히 마력만 낭 비했잖은가."
"예? 이거 마력 소모가 큰 마법 도 아닌데...
"앞으로 자네가 다 하는게 좋겠 군. 아무래도 마법도 자네가 더 잘 다루는 것 같으니."
"삐졌네."
"안 삐졌대도!"
"그럼 빈정 상했네."
어찌 됐든 유준의 마법으로 적에게 들킬 가능성이 급격하게 낮아졌다.
처음엔 시무룩했던 아트라데온이었으나, 마법의 효과를 체감하자 감탄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이런 마법을.... 혹시 고대 마법인가?"
"알아보시는군요."
"일반적인 마법으로는 절대 이런 효과를 못 낼 테니까. 그리고 고대
마법치고도 생각이상이야. 자네. 검뿐만 아니라 마법 실력도 극에 달해 있군."
"...그냥 스킬, 아이템 덕입니다. 제가 아는 건 별로 없어요."
"플레이어가 스킬과 아이템을 가 졌으면 다 가진 것 아닌가? 오히려 스킬과 특성을 터부시하고 진리를 추구하는 마법사치고 제대로 된 놈을 본 적이 없네."
"마법을 공부하는 것이 별 의미 가 없다고요?"
"적어도 현재로선 그렇지. 지금 자네가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솔직히 아트라데온의 말이 크게 와닿지는 않았다.
그는 마법에 대해 아는 것이 많 이 없었고, 오로지 주입받은 지식 만 있을 뿐이다.
아직 주입을 받은 마법 중에 사용해 보지 않은 마법도 많았다.
그러나 그의 말에 공감이 가는게 있다면, 그럼에도 단 한 번도 마법을 실패한 적이 없으며 항상 의도한 대로, 혹은 그 이상의 결과 가 펼쳐졌기 때문이다.
모두가 플레이어인 세상에서 스킬과 특성 등급의 상승만을 꾀하는 것.
불안감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결과가 말해 주고 있다.
그가 불과 반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걸어온 길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다고.
'시스템으로 얻은 능력이 어느 순간 갑자기 사라질 일은 절대로 없어.'
시스템이든, 플레이어든 이러한 것들은 무한의 탑에서 계속 존재해 왔다.
그러니 불안해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슬슬 땅굴로 들어가야 할 것 같네."
"소음이 클 텐데요. 들리지 않을 까요?"
"땅굴은 이미 파 뒀다네. 소음은 걱정하지 않아도 돼."
" 언제요?"
"세르티프스가 부하들을 시켜 미 리 작업해 뒀지. 그리고 그 작업도 특별한 마법과 아이템을 썼으니 적 들은 낌새를 모를 걸세."
"꼼꼼하고 좋네요."
땅굴은 급하게 판 탓인지, 단단 히 굳은 흙의 표면이 매끄럽지는 않았다.
여섯 명의 플레이어가 땅굴을 통 해 빠르게 이동했다.
소환 대상의 힘이 강해지는 것보 다 땅굴이 무너질 듯 말 듯 아슬아 슬해서 더 서둘러야 했다.
그때였다.
콰아아앙-!
폭음과 함께 흙덩이들이 쏟아졌다.
유준과 아트라데온이 재빨리 실
드를 펼쳐 생매장을 당하는 건 막을 수 있었다.
문제는....
"한 놈.이 사라졌네."
같이 왔던 천족 세 명 중 한 명 이 흔적도없이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어딘가에 파묻혔나 싶어서 감각을 활성화시켰다.
파묻히기는커녕, 멀리로 달아나는 천족 한 명의 기척이 감각에 잡 혔다.
유준은 같이 왔던 천족 한 명의 기척이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설명했다.
"한 명이 달아났다고?"
"스파이였나 본데요."
"...그냥 당황해서 도망가는 것은 아닌가?"
"절대 아닙니다. 신호를 기다렸 다는 듯 블링크까지 쓰며 땅굴을 바로 벗어났어요."
"알면서 왜 안 잡았지?"
"실드 쓰고 있었는데요."
"...그렇군."
"안 잡아도 되겠습니까?"
"잡아야지. 그런데 놀랍구만. 선 별된 인원 중에 배신자가 있을 줄 이야."
"현자라면서 그것도 몰랐습니까?"
"현자가 세상 만물을 통달하는 자라고 생각하는가? 아는 것이 좀 더 많을 뿐이지, 모든 걸 다 알 수는 없네. 내가 대현자도 아니고 일 개 현자일 뿐인데 너무 많은 걸 바 라지 말게."
"그래도 바로 옆에 있는 스파이를 모르는 건 좀...
"함께 가는 천족 셋은 고르고 고 른 이들이었네. 절대 온건파의 사
주를 받거나 하는 이들이 아니라고 생각한 게지."
"세르티프스가요?"
"그래. 난 세 명의 천족이 아닌 그를 믿었고. 결국 이렇게 됐군."
"제가 데리고 오...겠다고 하려 고 했는데."
"왜 그러지?"
"이미 포위됐군요."
"위에 있나? 나는 아무것도 느껴 지지 않는데...
"결계를 펼쳐서 기척을 차단해 놨습니다. 적들이 우리의 이동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게 확실해졌군요."
"...잠깐. 자네는 저들의 기척을 어떻게 느낀 거지?"
"민첩 능력치가 높아서요."
"몇이길래?"
"비밀 "
"일단 저들을 따돌릴 수 있겠나?"
"따돌려 봤자 의미가 있습니까? 그냥 다 죽이는게 나을 것 같은데."
"적의 수가 어떻게 되지?"
"직접 나가서 확인합시다."
유준이 마력을 담은 주먹을 위로 올려쳤다.
쿠우웅-!
무겁게 일행을 깔고 뭉개고 있던 흙뭉치들이 단번에 날아갔다.
그러자 드러나는 족히 이백은 될 법한 수의 천족들.
유준의 말대로 그들은 포위를 당 하고 있었다.
"우리 여섯... 아니 다섯을 잡 으려고 이렇게 모였나?"
아트라데온의 중얼거림에 온건파
천족 한 명이 코웃음을쳤다.
"그쪽에 신유준이 있는데 달랑 수십 명만 보내는게 더 이상한 것 아닌가?"
"응? 자네. 이름이 뭐지?"
"유트리아다."
"유트리아..."
아트라데온의 놀란 얼굴을 본 유준이 물었다.
"누구길래 그럽니까?"
"온건파 쪽의 행동대장이라고 보 면 되네. 무력적인 측면에선 따라 잡을 자가 거의 없다고 알려졌지."
"호오..."
행동대장이라는 그녀를 포함해 수백의 천족을 이끌고 왔다는 것에 서 절대로 소환 의식을 방해받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가 보였다.
유트리아의 시선은 계속 유준을 향하고 있었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뭘 봐?"
"네가 그렇게 강하다고 들었다."
"누구한테?"
"알 필요 없다. 넌 오늘 여기서 죽을 테니."
그녀는 유준을 원수 보듯이 보고 있었다.
'내가 죽인 천족 중에 저 여자의 가족이 있었나?'
어쩌면 소환 의식의 방해를 저지 하는 것은 핑계고. 자신을 죽이러 온 것일지도 몰랐다.
유준이 검을 꺼냈다.
그것을 신호로, 그의 등에 손을 대고 있던 마누엘라가 가호를 걸었다.
[여신의 가호를 받았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40% 상승합니다!]
[공격력과 방어력이 30% 상승합니다!]
[신체에 걸린 모든 해로운 효과 가 제거됩니다.]
[모든 상처가 회복됩니다.]
[행운이 증가합니다.]
언제 봐도 든든한 효과였다.
마누엘라는 아트라데온과 천족 두 명에게도 가호를 걸어 줬다.
가호를 받은 셋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게 무슨..."
특히나 아트라데온이 많이 놀랐다.
애초에 가호를 가진 이가 드물기 도 하지만, 이런 효과를 지닌 가호 가 있다는 것도 들어 보질 못했다.
세 명에게 경외의 시선을 받은 마누엘라가 쑥스러운지 망토로 얼 굴을 가렸다.
그 모습에 아트라데온이 얼굴을 붉혔다.
"마녀가 저리도 귀여웠던가."
"늙어서 주책이시군요."
"흠흠. 미안하네. 자네 애인한테 내가 실례를 범했네."
그때 수많은 마법이유준 일행을 향해 날아들었다.
화르륵-!
콰아앙!
뇌전과 화염 마법의 조합은 언제 나 옳다.
파괴력이 어마어마하니까.
문제는 아군도 휘말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인데, 저들이 그것에 대 한 대비도 안 했을 리가 없다.
유준이 만들어 낸 실드에는 금 몇 개만 가 있을 뿐, 별다른 피해는 없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적들의 화력을 인정해 줄 만했다.
그의 실드에 금을 가게 했던 이 가 손에 꼽을 정도였으니.
검에 마력을 담은 유준이 반격에 나섰다.
'신검합일을 다른 식으로 활용해 볼까.'
이전에는 허공에 검을 생성해 자 유자재로 다루는 것이었다면, 지금은 오로지 검 하나에만 집중했다.
사실 다수를 상대로 할 때는 여 러 개의 검을 생성하는 것이 더 효 율적일지도 모른다.
다른 스킬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하지만 유준은 우직하게 신검합 일 스킬만 쓸 생각이 없었다.
웨폰 어스퀘이크(EX). 검술 (EX++).
신검합일 (GX).
일섬 (SSS).
네 가지 능력이 동시에 발동되었다.
또 천재(EX++) 특성으로 모든 스킬과 특성의 효과가 2.7배 중폭 됐다.
유준의 어스퀘이크 스킬에 당한 온건파 천족의 수가 적지 않았다.
그에 대한 정보를 숙지한 천족들이 황급히 날개를 펼치며 하늘로 날아오르려 했다.
그 순간, 유준은 절대지기에 혼돈과 마력을 담아 퍼뜨렸다.
절대지기는 자신보다 약한 자에게 특히나 효과적인 스킬.
천족들 중에 유준과 힘 싸움을해서 이길 자는 단언컨대 없었다.
유트리아를 포함한 강력한 천족 수십 명을 제외한 천족들이 고꾸라 졌다.
그리고 그 순간.
웨폰 어스퀘이크로 인한 강력한 파동이 그들에게 도달했다.
쿠구구구궁! 쿠구궁!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