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화
유준이 심연 왕의 딸에게 다가갔다.
심연 왕과는 다르게 덩치가 크진 않았다.
평범한다크 엘프.
평범하다고는 해도 다크 엘프답 게 그 아름다움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다만, 매우 수척한 모습이다.
마르고 앙상한 몸.
푸르뎅뎅한 입술.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질 듯 가는 숨.
죽지 않은 것이 신기할 정도로 위급한 상태였다.
"어떤 방식으로 치료할 생각이지? 아까 말했지만 엘릭서로도 내 딸의 병은 치유되지 않았다."
"엘릭서로 치유되지 않는 병은 이 세상에 없지. 너도 알지?"
"그래."
"그래서 거의 자포자기하고 있는 거고."
"잘 아는군."
이것 또한 게임의 설정과 딱 맞 아떨어졌다.
문제는 딸의 상태가 그때보다 더 악화됐다는 건데.
사실 살아 있기만 하면 상관없었다.
"딸의 이름이 어떻게 돼?"
"세나. 그건 왜 묻지?"
"그냥 확인해 보고 싶어서."
다행히 이름도 같았다.
그렇다면 더 망설일 것이 없었다.
유준이 인벤토리를 열었다.
최상급 마력 포션 세 개를 꺼냈다.
"마력 포션?"
심연 왕이 의문을 표했다.
유준이 고개를 돌렸다.
"마력 포션을 먹여 본 적 있어?"
"효과는 있었네. 그러나 아주 잠 시 안색이 좋아졌을 뿐 금세 원래 대로 되돌아왔지."
요 "응."
"그대는 마력 포션만으로 내 딸을 치료할 생각인가?"
"그럴 리가."
유준은 대충 대꾸하고 세나의 입을 벌려 마력 포션을 흘려 넣었다.
얼굴에 혈색이 살짝 돌아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다.
세나의 몸에서 마력이 실시간으로 빠져나갔다.
그 마력이 어디로 가는 걸까.
대기 중에 섞이지는 않았다.
유준은 마력이 어디로 갔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
바로 정령계.
지금 심연 왕의 딸은 정령과 연 결되어 있는 상태였다.
그것도 그냥 정령이 아니었다.
'빛의 정령왕이었나?'
물, 불, 대지, 바람.
4대 원소가 아닌 빛의 정령은 무척 희귀한 존재.
동시에 강력했다.
당연히 계약에 따르는 대가가 어 마어마했다.
상상을 초월하는 마력을 필요로 했다.
그나마 심연 왕의 딸이라 지금까
지 안 죽고 버틴 거지.
만약, 일반 다크 엘프였다면 빛 의 정령왕과 계약이 진행되는 순간 목숨을 잃었으리라.
'방법은 두 가지가 있는데...
세나는 현재 계약을 맺기 직전의 상태에 놓여 있다.
그러나 빛의 정령왕에게 '대가'를 주지 않으면 계약을 성공적으로 맺을 수 없었다.
정령왕에게 대가를 주는 것.
그게 첫 번째 해결 방법이고.
두 번째로는 정령왕과의 연결을
끊어 버리는 것.
'웬만해서는 두 번째가 안전하긴 한데.'
지금 당장 세나가 목숨을 구할 수 있는 건 두 번째 방법이다.
"먼저 너한테 물어볼 게 있는데."
"뭐지?"
"두 개의 방법이 있어."
유준은 심연 왕에게 첫 번째 방 법과 두 번째 방법에 대해서 상세 히 설명했다.
끝까지 얘기를 들은 심연 왕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정령? 그런 생각은 못 해 봤군. 확실히 일리가 있어. 그렇다면 두 번째 방법으로 해 주게."
"근데 이건 너 혼자 정해서 될 건 아니고. 일단 물어봐야지."
"뭘 묻는다는 거지?"
심연 왕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네 딸의 의사가 제일 중요하잖아."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내 딸은 몇 년간 의식이 없는 상황이야."
유준이 웃었다.
"정확히 말하면 의식이 없는게 아니야. 몸 하나 까닥 못하고 있을 뿐이지. 정신은 말짱해. 우리 가 하는 말도 듣고 있을 거야."
"그걸 그대가 어떻게...
"상태 확인했잖아."
"이쪽 분야로 유명한 이들도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었다. 그런데 그대는 단번에 알아차렸다고?"
"왜? 돌팔이 같아서 그래?"
"솔직히 의심이 가는 건 어쩔 수 없군."
"일단 기다려 봐. 곧 보여 줄게."
세나의 안색이 급격히 안 좋아져 서 최상급 마력 포션을 하나 더 먹였다.
'아낄 필요 없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아껴야 할 정도로 포션의 재고가 없지는 않았다.
그녀와 대화하기 위해선 또 한 가지의 아이템이 필요했다.
[소울 젬]
등급 : 無
옵션 : 상대방의 영혼을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소울 젬.
언데드나 스펙터 계열의 몬스터들을 상대할 때 자주 쓰던 소모성 아이템이다.
'게임에서 세나를 치료할 때도 이걸 썼었지.'
아이템 설명에는 상대방의 영혼을 들여다볼 수 있다고 나오지만.
사실은 대화까지도 할 수 있었다.
소울 젬을 사용해 텍스트 이미지 로 세나와 대화를 나눴던 기억이 있다.
"그건...?"
"소울 젬. 너도 알지?"
"알고 있다. 그런데 그걸로 내 딸과 대화할 수 있다는 건가?"
"안 해 봤어?"
"의식이 없는 줄 알았으니까."
확실히 세나는 죽은 것처럼 미동 이 없어 의식이 있다고 생각하긴 힘들었다.
슥. 스윽.
유준은 세나의 얼굴 앞에서 소울 젬을 문질렀다.
소울 젬이 가루가 되면서 세나의 얼굴에 스며들었다.
푸르스름하고 희미한 형체 하나 가 세나의 얼굴 위로 나타났다.
_으... 웅?
"세나."
-마, 맞아요. 저랑 지금 대화하고 계신 거 맞죠?네? 대답해 주세 요!
유령처럼 나타난 세나가 다급하게 외쳤다.
"맞아. 네 아빠도 여기 있어. 그런데 일단 내가 질문 하나만 할게."
- 질문요?
"너 지금 정령왕이랑 계약 중이지?"
-그,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그건 중요한 게 아니고. 지금 조건을 만족하지 못해서 계속 이 상태인 거지?"
-맞아요! 저 어떻게 하죠? 곧 죽는 건가요?
세나가 눈에 띄게 우울해했다.
곧 다가올 운명에 체념한 듯 보였다.
"죽지 않아도 돼. 방법은 두 가 지가 있어."
세나는 의식이 있던 터라 이미 알고 있는 듯했다.
그래도 유준은 아까 심연 왕에게 설명했던 걸 똑같이 얘기해 주었다.
정령왕은 얘기를 전부 듣고는 고 민하지도 않고 정했다.
"세나. 두 번째 방법이 좋을 거 같다. 나한텐 그 무엇보다도 네 목 숨이 소중하니까."
-아니요.
세나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저는. 첫 번째 방법이 좋아요. 정령왕과 계약을 맺고 싶어요.
그녀의 말에 충격을 받은 듯 심 연 왕의 몸이 굳었다.
"목숨보다도 소중하단 말이냐? 정령과 계약하는 일이?"
-아버지. 저는 이 일 하나 때문에 몇 년 동안 누워만 있었어요. 억울하잖아요. 그간 고생했던 게 다 없던 일로 되어 버리면요.
"하지만.... 정령왕이라고 하더 라도 네 목숨에 비할 바는 아니다. 어느 것이 더 중요한지 생각해라."
-제 마음은 확고해요. 정령과 계약할게요. 설령 죽는 한이 있더라도.
아무리 심연 왕이라고 하더라도 딸의 고집을 꺾지는 못했다.
" 이보게."
심연 왕이유준을 불렀다.
"꼭 내 딸을 살려 주게. 내 부탁 하지."
"앞서 약속했던 것들을 주면 내가 어떻게든 살릴 거야."
"물론이다. 만약, 내 딸의 상태가 호전된다면 그대를 물심양면 도와
주도록 하지."
"물심양면이라고 하면?"
"힘이 되어 준다는 뜻이지. 그대 가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도와주겠네."
"좋다."
심연 왕이 아군이 된다면.
그것보다 든든한 것이 따로 없다.
"그럼 시작한다."
-전 어떻게 하면 될까요?
"정령과의 연결에 정신을 집중 해. 잡생각은 최대한 지우고. 평소
처럼 정령과 소통하면 돼."
-근데 얘가 말을 잘 안 해요.
"그래도 해. 억지로 말을 붙여서 라도."
그래야 성공률이 더 높아진다.
-알겠어요. 해 볼게요.
유준은 고개를 끄덕이고 아이템 두 개를 더 꺼냈다.
[최상급 정령석]
등급 : 전설
옵션 : 정령과의 친화도를 대폭
증가시킵니다.
최상급 정령석 두 개.
이것도 진짜 귀한 물건이다.
만약 자신에게 정령석이 몇 없었 다면 선뜻 꺼내기가 망설여질 정도 로.
하지만 정령석은 차고 넘치도록 있었다.
유준은 정령석 두 개를 세나의 몸 위에 올려 뒀다.
"정령석의 힘이 느껴져?"
-네. 엄청난 기운이에요....
"그 힘을 온전히 흡수해야 해. 억지로 무언가를 하지 말고 자연스 럽게 있어 봐."
사실 방법은 잘 모른다.
그냥 정령석을 사용하기만 하면 게임에서는 해결됐으니까.
-오, 빛의 정령이 저에게 관심을 가진 거 같아요.
아무렇게나 말한 것이지만, 세 나에게는 도움이 된 듯했다.
다행이었다.
"관심은 원래부터 있었을 거야. 이제 기다림의 시간이야. 좀만 버텨."
정령과의 계약은 쉽지 않다.
그 상대가 빛의 정령왕이면 말할 것도 없지.
여기서부터는 도박에 가까웠다.
세나가 알아서 잘하게 두는 수밖에 없었다.
'나도 게임으로만 접해서 뭐가 뭔지 정확히 모르니까.'
심연 왕이 초조한 얼굴로 주위를 서성였다.
유준이 성을 냈다.
"거, 정신 사납게 돌아다니지 말
고 좀 앉아 있어."
"아, 알았네."
시간이 흘렀다.
심연 왕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그대는 내 딸의 마음을 어떻게 알았지?"
"무슨 소리야?"
"정령과 계약하고 싶다고 한 것 말이네. 내 의견과 내 딸의 의견이 다르다는 걸 미리 알고 있는 듯했어."
"미리 알았다기보다는,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지금 와서 정령을 보내
버리면 지나간 시간이 너무 아깝잖 아? 계약 직전에 놓인 상황이나 다 름없는데. 억지로 떼어 내 버리면 나도 좀 아쉬울 거 같아서. 내 나름 대로 합리적인 추론을 한 거지."
신들의 전쟁 플레이 경험으로 딸이 심정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곧이곧대로 말할 수는 없으니, 이런 식으로 대충 둘러댔다.
"으음..."
심연 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쯤 일어날 수 있는가?"
"그것까진 나도 몰라."
" 확률은?"
"계약에 성공할 확률이 높아. 저 쪽도 세나가 마음에 들어서 계속 머 물고 있던 거거든. 조건이 까다로워 서 계약이 이뤄지지 않았던 거지."
"그 조건이라는게 도대체 뭐지?"
"높은 정령 친화력."
"그게 다란 말인가?"
"그래서 까다로운 거야. 정령 친화력은 노력한다고해서 높일 수 있는게 아니니까. 타고나는 거거 든. 편법이 하나 있다면 정령석인데. 이건 구하기 진짜 힘들지. 구한
다고 해도 하급이나 중하급 정도밖에 없고."
"그대는 최상급 정령석이 있지 않았는가?"
"나야 뭐, 원래 희귀한 물건들 수집하고 다니는 취미가 있어서 그 런 거고."
심연 왕이 다시 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세나는 온몸이 땀범벅이었다.
빠른 속도로 마력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유준은 미리 꺼내 놓은 마력 포 션 하나를 더 먹였다.
"..... 흐아..."
세나의 입이 처음으로 열렸다.
숨에 찬 듯, 고통에 찬 신음이었 지만 이건 청신호다.
심연 왕의 얼굴이 눈에 띄게 밝 아졌다.
5분 정도의 시간이 더 흘렀다.
세나가 눈을 떴다.
"세나!"
심연 왕이 그녀에게 다가갔다.
상반신을 일으킨 세나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진짜 오랜만이에요. 아버지."
"왜 이제야 깨어난 게냐."
"보고 싶었어요."
"나... 도 마찬가지다."
둘의 감동적인 재회가 끝이 나고.
세나가 유준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고마워요. 초면인데 이렇게까지 도와주시다니."
"아빠한테 잘 말해주렴."
유준은 일부러 심연 왕이 다 들 리게 말했다.
세나가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네, 물론이죠! 지크와 성공적으로 계약했어요."
"빛의 정령왕?"
"네."
"부럽네."
정령왕과 계약하는 건 정말 천운 이 닿아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아무리 과금을 해도 불가능했던 게 정령왕과의 계약.
그나저나 이게 중요한 게 아니다.
유준이 심연 왕에게 갔다.
"당신이 주기로 했던 것들. 지금 받을 수 있어?"
"심연초랑 스킬 보석이라고 했던가?"
"응. 상등급 이상으로. 있지?"
"...다 알고 온 건가?"
"심연 왕이라면 당연히 있을 거 아니야."
"심연초는 그렇다고 쳐도 스킬 보석은 나라고 해도 쉽게 구할 수 없는 아이템이라네."
"당연하지. 그런데 넌 가지고 있잖아."
심연 왕이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보석이 아무리 귀하다 해도 어 찌 딸의은인을 앞에 두고 아까워 하겠는가. 바로 주겠네."
심연 왕이 인벤토리에서 보석과 심연초를 꺼냈다.
"오..."
유준은 두 손으로 건네받았다.
무척 공손한 태도.
"갑자기 왜 그러는 건가?"
"대단한 분이 주는데 당연히 이
렇게 받아야지."
"허, 웃긴 친구군."
잔잔한 미소를 짓던 심연 왕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그대에게 부탁하고 싶은 게 있네."
"부탁?"
유준이 고개를 갸웃했다.
심연 왕에게 걱정거리가 더 있던가?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4권 10화
83화
"부탁? 무슨 부탁?"
심연 왕이 잠깐 머뭇거렸다.
"지금 수배되어 있는 자가 있네. 심상훈이라고."
"심상훈?"
들어 본 이름이다.
플레이어가 되면서 기억력이 좋아진 탓일까.
그가 누군지 바로 알았다.
'종족 대항전에서 시스템이 이레 귤러로지정했던 플레이어 이름이 심상훈이었지.'
그리 오래전 일은 아니다.
기간으로 따지면 비교적 최근 일 이었다.
"7계의 한 마을이 그자에 의해 쑥대밭이 되었지. 그때는 그저 그 런 범죄자로 취급을 해 수배만 내 렸네."
"아, 그게 심상훈 짓이었구나."
심연 왕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를 붙잡는 건 결국 성공했네. 재판을 받게 하는 것까지도. 그러나 문제는 거기서 생겼지. 심상훈은 법정에 있는 인물 대부분을 혼 자 힘으로 죽였네. 재판장도 당연 히 휘말렸지."
"재판장이 죽은 거야?"
"그렇다네."
"심상훈은 무력화된 상태 아니었어? 그게 어떻게 가능해?"
"그건 나도 모르겠네. 그저 놈이 어떤 수를 썼고 우린 방심하다가 당한 걸세. 그게 다야."
"그 정도면 고위 사자들로 잡는
건 불가능한 거 아니야?"
"그래서 그대에게 부탁하는 걸세. 심상훈이 보통 플레이어가 아니니까."
"내가 놈을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해?"
"그대에게 느껴지는 힘은 솔직히 말해서 나와 비슷해. 현재 나는 왕 궁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상태. 그러 니 그대밖에 의지할 사람이 없네."
"왜 왕궁을 못 벗어나는데?"
"심상훈이 노리는게 여기에 있기 때문이지."
"그래?"
"감에 불과하지만, 그게 맞을 거 라고 확신하고 있네."
"심상훈이 어디 있는 줄은 알 아?"
"여기 1계 내에 있다네. 이 일을 해결해 주면 스킬 보석보다도 더 좋은 걸 주겠네."
"일단 알았어."
심연을 나가기 전에 일 하나 더 해결하고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스킬 보석보다 더한 걸 준다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위치는 확실하게는 모르는 거지?"
"1계에 있다는 것밖에는...
"근데 이게 하다가 시간이 좀 걸리면 그때는 포기해도 되는 거야?"
"내 욕심으로 부탁하는 거지. 절 대 강요는 아니라네."
"좋아."
유준은 심연 왕과 메신저를 교환 한 후에 일행이 머무는 방으로 갔다.
"왜 이제 나와요? 뭔 일 있었어요?"
"아뇨. 의뢰 하나 받았어요."
"의뢰라면?"
"심상훈이라는 플레이어를 잡는 거요."
"음? 어디서 들어 본 이름 같기 도 하고."
"아까 고위 사자들이 수배자라는 얘기 한 거 같은데요."
주동현이 말했다.
홍예지가 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여튼 그 사람을 잡으러 갑니
다."
"나쁜 사람이에요?"
"예. 마을 하나를 없애 버렸다고 하네요. 1계의 법원에서도 문제를 일으켰다고 하고."
"1계 보상은 언제 받아요, 그 럼?"
"글쎄요. 심상훈을 잡고 난 뒤에 심연을 나간 뒤에나 받을 수 있죠."
"원래 입장하면 주는게 아닌가 보네요?"
"브로커를 사용해서 편법으로 왔 잖아요. 1계를 나가는 순간, 몇 배는 더 쳐서 받을 겁니다."
"그런데 이거까지 손대면 더 손 해 아니에요?"
"심연 왕한테 여러분한테도 보상 주라고 말해 볼게요."
이미은혜까지 입혀 놨으니 망설 일 게 없었다.
심연의 왕.
그는 가진 게 많았다.
보상 몇 개 더 쥐여 주는 것쯤은 어렵지 않으리라.
"그래요?"
"크흠."
주동현과 홍예지가 눈에 띄게 좋아했다.
"그런데 심상훈이 어디 있는 줄 알고 찾아갑니까?"
"1계를 샅샅이 뒤져 봐야죠."
"너무 막막한데요? 1계는 엄청 넓다고 들었어요."
"그래도 찾아봐야죠. 우리랑 같은 한국인이고 하니까, 발견하면 알아 볼 수는 있을 겁니다."
"우릴 제외한 한국인을 찾으면 된다는 거죠?"
"예. 그리고...
유준이 주동현을 바라봤다.
주동현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주동현 씨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제 도움요? 천리안 말씀이십니까?"
"그것도 있고. 미래 예지도요."
"전에 말했지만, 미래 예지는 사용 불가능합니다. 여기 심연에서는요."
"가능하도록 해 보죠."
" 예?"
주동현이 황당하다는 듯 유준을
바라봤다.
"어떻게요?"
"제가 심연 왕에게 부탁해 볼게요. 결국, 1계의 결계 같은 것들은 심연 왕과 관련이 있으니까요. 그 의 권한으로 어떻게든 될 겁니다."
"아, 그렇습니까?"
유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메신저를 열었다.
심연 왕에게 결계에 대해 물었다.
미래를 보는 것으로 심상훈의 위 치를 찾을 수 있다고.
잠시만 결계의 효력을 낮추거나 멈출 수 없냐고.
[칼리테우스 : 가능하네. 장시간 결계를 미작동시키는 건 위험천만 한 짓이지만, 잠깐이라면 어려울 것도 없지.]
[*신유준 : 고마워. 그럼 지금 바로 부탁할게. 되면 말해 줘.]
[칼리테우스 : 그러지.]
미래 예지가 사용 불가능한 건 역시 결계 때문이었다.
"가능하다고 하네요."
"그새 메신저 교환까지 하신 거 예요?"
"예."
홍예지가 헛웃음을 지었다.
그새 심연 왕이랑 친해지다니.
심연 왕이랑 한바탕 싸우고 오나 노심초사했었는데, 다행히 그건 아니었나 보다.
"바로 미래 예지 쓰시면 될 거 같아요."
유준이 말했다.
결계가 뭐가 달라진 건지 느껴지
지는 않았지만, 심연 왕이 메시지를 보내왔다.
"알겠습니다."
주동현이 눈을 감았다.
플레이어의 이름이 심상훈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 미래 예지로 엿보는 건 어렵지 않았다.
"어디에 있는지 알아냈습니다."
"오, 다행이네요."
"의외로 평범하게 생겼더군요."
"평범하게 생겼다는게 정확히 어떻게 생긴 거죠?"
"전형적인 한국 대학생처럼 생겼
습니다. 투 블록 컷에 눈썹을 덮는 앞머리요."
"아."
그 말에 단번에 이해가 갔다.
"어디로 가면 될까요?"
"여기로 오는 통로 있죠? 우리가 브로커를 통해 왔던."
"예."
"땅굴에 숨어 있었습니다."
" 땅굴요?"
확실히 땅굴만큼 고위 사자들로 부터 안전한 곳이 따로 없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고위 사자들은 땅굴로는 잘 돌아다니지 않았으니까.
"문제는 그겁니다. 땅굴의 구조 가 다 그게 그것처럼 보여서 놈의 위치를 정확히 특정할 수가 없습니다."
"뭐, 땅굴에 있다는 걸 알아낸 것만으로도 만족합니다."
"천리안으로 계속 찾아보겠습니다."
"예. 일단 땅굴로 가죠, 그럼."
그때 홍예지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브로커없이 돌아다닐 수 있는 거예요? 길 같은 거 우리는 잘 모르잖아요."
"그죠. 그래도 괜찮아요."
기억력이 좋아진 이후로 한번 지 나간 길은 까먹지 않는다.
계속 돌아다니다 보면 길을 외울 수 있게 되겠지.
"주동현 씨. 심상훈이 있던 곳에 특이한 점은 없었습니까? 있었으면 아주 사소한 거라도 알려 주세요."
"장소적 특징이라기보다는 심연 괴물을 조종하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 조종요?"
유준이 눈을 크게 떴다.
"예. 심연 괴물들이 그의 앞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는 심연 괴물들한테 명령을 내렸고요. 심연 괴물은 당연하다는 듯 따랐습니다."
잠시 생각 좀 해 보자.
심상훈은 7계의 마을 하나를 없 앴고.
법정에서는 재판관을 포함한 관 련 인물들을 죽였다.
최고 등급의 수배를 당했고 현재
그는 도망자의 입장이다.
'심연 괴물을 정찰 용도로 쓰는 건가?'
만약 심상훈이 심연 괴물과 소통 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면, 그 추론은 가능성이 있었다.
'시간제한이 있는 건 아니지만 최대한 빨리 잡는게 좋겠지.'
어떠한 이유로 1계를 못 벗어나는 상황에서 최대한 버티려는 것 같았다.
심연 왕은 심상훈이 왕궁에 침입 할 기회를 노리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수작을 부리기 전에 녀
석을 잡아야 했다.
[* 신유준 : 칼리테우스.]
[칼리테우스 : 뭐지?]
[*신유준 : 만약,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심상훈을 죽여도 돼?]
[칼리테우스 : 으음. 심연은 죄를 저지른 만큼 그 죗값을 치러야 한다. 하지만 제압하는 것이 힘들다 고 판단되면 죽여도 좋다.]
[*신유준 : 오케이.]
여차하면 죽인다.
이게 가능하다면 어려울 것이 없었다.
"찾았어요!"
쉴 새없이 천리안을 사용하던 주동현이 외쳤다.
"안내해 주세요."
"예."
주동현이 앞장섰다.
빠르게 앞으로 나아갔다.
심연 괴물이 등장할 때면 유준 이 고대 마법으로 신속하게 처리 했다.
'설마 내가 방금 죽인 놈도 정찰 병 같은 건 아니겠지?'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하지만 설령 알아차렸다고 해도 늦었다.
유준이 심상훈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는 주동현이 설명했던 대로 전
형적인 한국인이었다.
"누구야?"
심연 괴물들에 둘러싸인 심상훈 이 물었다.
"현상금 사냥꾼."
"하, 우리 같은 한국인이잖아. 왜 그러는 거야?"
무한의 탑에 끌려온 이들이 하는 단골 대사.
유준이 피식 웃었다.
"그래서 나도 참 안타깝다."
무한의 탑에는 셀 수 없을 정도 로 많은 한국인이 있다.
같은 국적 출신이라는 이유로 그 들의 사정을 일일이 봐주는 건 말 이 안 된다.
"날 잡을 수는 있고?"
심상훈은 전혀 초조한 얼굴이 아니었다.
자기 실력에 자신이 있는 듯했다.
"응. 그렇게 생각하는데. 너는 심 연 괴물을 믿고 있는 거야?"
"아니, 얘들은 그냥 심심해서 가 지고 노는 거고. 너무한의 탑에 온 지 얼마나 됐지? 5년 차? 4년 차? 플레이어인가?"
"아니. 1년 차인데?"
"뭐? 1년 차가 심연에 도달해? 사실이라면 대단한데. 당연히 구라겠지만."
"너도 여기 와 있잖아."
유준의 말에 심상훈이 웃음을 터 뜨렸다.
"흐하핫. 크하하하!"
상황에 맞지 않는, 너무나도 호 탕한 웃음에 유준이 입을 꾹 다물었다.
심상훈이 한참을 웃다가 표정을 굳히고 입을 열었다.
"영화에서나 나오는 마법이랑 괴물들이 실제로 있는 이 탑. 이곳에 인간들이 끌려온 게 거의 5년이 되어 가지. 그것도 신기하게 한국인 들만 오더라고? 정확히는 한국 땅에 거주했던 사람들이지."
얘가 뭔 말을 하나 계속 지켜봤다.
"지금 최상위 랭커라고 불리는 것들도 이제 5년이 됐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야."
"뭔 말이 하고 싶은 건데?"
"너한텐 아주 많이 충격적인 사
실 하나를 알려 줄게. 난 9년 전에 무한의 탑으로 왔어."
"내가 이곳에 왔을 땐, 인간이라는 종족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어."
"결국, 네가 남들보다 더 빨리 이곳에 왔다는 얘기지?"
"그래."
"신기하긴 하네. 왜?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
"뭐, 이유는 나도 모르고. 일단 나는 이세계에 왔다는 생각에 무척 들떴었어. 실제로 이곳이 위험하긴 해도 시스템의 도움이 있어서 빠른
속도로 강해질 수 있었다."
음, 설명을 좋아하는 친구인가.
이렇게 자세히 알려주는 것까지는 기대하지 않았는데.
"4년을 더 앞서서 성장했으면 많 이 강하겠네?''
"그래. 그러니까 네 행동이 우스 운 거야. 현상금 사냥꾼? 크홉, 웃 기지마. 넌 그냥 맹수 앞에 놓인 먹잇감에 불과해. 그 먹잇감이 주 제도 모르고 맹수의 입 앞에 얼굴을들이민 거고."
심상훈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보기만 해도 짜증이 나는 표정이었다.
"어우, 엄청 잘난 척하네."
뒤에서 지켜보던 홍예지가 그렇게 말했다.
심상훈과 유준 모두 입을 꾹 다 물었다.
"뭐라고 했냐?"
홍예지의 말에 심상훈이 악귀와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솔직한 언행에 큰 타격을 입은 듯 보였다.
"야. 뭐라고 했냐고."
"아니. 너무 가오를 잡길래. 저기
요. 하나도 안 멋있어요."
홍예지의 말에 분위기가 급격하게 가라앉았다.
유준은 홍예지의 발언에 속 시원 함을 느꼈지만, 심상훈은 당연히 그렇지 못했다.
"내가 넌 꼭 죽인다."
심상훈이 위험한 발언을 했다.
녀석의 손에 붉은 기운이 자리 잡았다.
오로지 홍예지를 죽일 생각으로 가득한 녀석의 눈빛.
유준은 이 기회를 놓칠 생각이 없었다.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4권 11화
84 화
그러나 홍예지를 노릴 거라 생각 했던 것과는 달리 심상훈은 유준부 터 노렸다.
유준은 재빨리 고대 마법으로 실 드 하나를 만들었다.
콰아아앙-!
심상훈의 손에서 뻗어져 나온 붉은 기운이 실드에 부딪쳤다.
엄청난 굉음.
땅굴 전체가 흔들렸다.
그러나 실드는 깨지지 않았다. 심상훈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내 공격을 버틴다고?"
그는 진심으로 놀란 듯 보였다.
본인의 공격력이 어느 정도 수준
인지 알기 때문이다.
유준은 방어만 할 생각이 없었다.
이번엔 강력한 뇌전 마법을 사용 했다.
즈즈즛. 파지지직.
땅굴 전체가 뇌전으로 뒤덮였다.
"뭐, 뭐?"
순식간에 생겨난 방대한 뇌전에 심상훈이미처 대처하지 못했다.
"크..."
뇌전에 그대로 노출된 심상훈이 몸을 비틀거렸다.
아이템을 싹 갈아 치우면서 그의 마법 공격력은 전보다 수십 배는 강해졌다.
'안 죽었네.'
유준이 다시 마력을 끌어올렸다.
아까와 같은 뇌전 공격이었다.
그때 심상훈이 쏜살같이 뛰어왔다.
그의 손에 거대한 기운이 어려 있었다.
뒤로 물러나기엔 이미 늦은 상황.
유준은 검을 뽑아 휘둘렀다.
붉은 기운이 마력을 담은 검에 의해 반으로 갈라졌다.
타닥.
심상훈은 인벤토리에서 검 하나를 꺼내며 유준에게 다시 달려들었다.
'저거. 설마.'
놀랍게도 녀석의 검도 신화 등급 이었다.
400레벨 제한의 용기사의 검.
레벨 제한이 낮기는 해도 신화 등급 검을 심상훈도 가지고 있다는게 놀라웠다.
'9년 동안 있었으면 그럴 수도 있겠네.'
유준은 피하지 않았다.
마주 검을 휘둘렀다.
서걱!
심상훈의 검이 깔끔하게 잘려 나 갔다.
"뭐... 뭣?"
놈이 놀라는 그때 유준의 검이 앞으로 쭉 뻗어졌다.
후웅! 콰앙!
황급히 실드를 펼친 심상훈이 멀 리 튕겨 나갔다.
고대 마법.
아까는 방해를 받아 사용하지 못 했지만, 지금은 틈이 생겼다.
유준이 뇌전을 대량 생성했다.
즈즈즛. 즈즈즛.
뇌전이 한곳에 집중되었다.
심상훈에게로.
콰콰쾅! 콰쾅!
"끄아아악!"
녀석이 끔찍한 고통에 비명을 질 렀다.
자비를 베풀 생각은 없다.
정말 죽일 생각으로 이번엔 불 마법을 사용했다.
화르륵!
매캐한 연기가 땅굴을 장악했다.
유준은 실드를 만들어 일행을 보 호했다.
그 후 수백 개의 불덩이를 심상 훈에게 날렸다.
콰콰콰쾅!
매연이 눈 앞을 가렸다.
"해치웠나?"
유준이 말하자, 주동현이 놀란 눈으로 바라봤다.
"왜요?"
"그런 말은 안 하는게 좋습니다."
"어차피 안 죽었을 겁니다. 그냥 해본 말이죠."
심상훈은 9년이라는 세월을 무한
의 탑에서 보냈다.
그 긴 시간이 마냥 헛되지 않았 다면, 이 정도쯤은 견뎌 낼 거라 생각했다.
그의 예상은 정확히 맞았다.
심상훈은 상처 하나 없는 모습으로 유준에게 달려들었다.
'저 정도 속도로 회복된 거면.'
최소 엘릭서나 최상급 포션을 사용한 게 틀림없었다.
'결국, 내가 바로 죽이지 않는 이 상 소모전으로 가겠군.'
유준과 심상훈의 싸움은 의외로
별것 없었다.
심상훈은 지치지 않는 체력으로 공격했고, 유준은 그 공격에 맞춘 대응만을 했다.
갈수록 심상훈의 표정이 구겨졌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전투가 자기 생각대로 흐르지 않았기 때문.
특히 유준의 절정에 달한 검술이 힘을 발휘했다.
심상훈이 어떤 방향에서, 어느 방식으로 공격을 하든.
유준은 귀신같이 알아채서 공격을 차단했다.
마치 미래 예지라도 하는 듯이.
심상훈이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벼랑 끝에 몰린 초식동물의 표정이 딱 저러할까.
심상훈은 처음의 그 거만한 태도 와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였다.
겁에 질린 듯한 얼굴.
'저런 놈이 마을 하나를 궤멸시 켰다고?'
심연 왕이 골칫거리로 생각한 자 치고는 매우 볼품없었다.
심상훈이유준과의 충돌로 바닥을 굴렀다.
" 계속해?"
유준이 말했다.
심상훈은 자존심이 상한 건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놈은 눈알을 굴리며 방법을 궁리 했다.
마땅한 게 안 떠올랐다.
심상훈은 어떤 방법으로도 유준을 이길 수 없었다.
그건 심상훈 본인이 잘 알았다.
인물이 훤칠한 저 사내는지금 자신을 가지고 놀고 있다.
정확히는 적당히 상대하면서 자 신이 항복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빌어먹을...
그는 이렇게 굴욕적인 상황을 겪은 적이 드물었다.
무한의 탑에 끌려온 지 얼마 안 되었을 시점에 몇 번 그랬을 뿐.
어느 수준 이상으로 강해지고 난 뒤로는 좌절을 겪은 적이 없었다.
'저놈 도대체 정체가 뭐야?'
현재 자신의 레벨은 610.
'조율' 놈들보다도 레벨이 수십 개나 높았다.
'그 괴물 같은 지규태 녀석만 빼 면 조율에서 날 이길 놈이 없을 거 라 생각했는데.'
눈앞의 남자에 대해서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설마 유망주?'
심상훈이 머리를 흔들었다.
유망주한테 지는 건 말이 안 된다.
절대 유망주는 아닐 것이다.
'힘을 숨기고 있던 최상위 랭 커... 정도가 가장 가능성이 있는데.'
솔직히 말해서 도망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어 보였다.
끝까지 맞서 싸우는 건 자살 행 동에 가까웠다.
"잠시만. 할 말이 있어."
심상훈이 말했다.
유준이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바라봤다.
"할 말? 뭔데?"
"나와 거래를 하자. 난 진귀한
아이템이 많아. 현상금 사냥꾼이라고 했지? 인정할게. 넌 나보다 강 해. 내게 걸린 현상금을 얻을 자격 이 있지. 그런데."
심상훈이 슬쩍 미소를 지었다.
"그 현상금보다 더한 걸 내가 주겠다는 거야. 그럼 굳이 나를 잡으 려 애쓸 필요는 없지 않겠어?"
"현상금? 아, 내가 그렇게 말했었지."
현상금은 사실 받으나 마나였다.
워낙 가진 포인트가 많으니.
그래서 심상훈의 제안이 전혀 와 닿지 않았다.
유준이 시큰둥한 표정을 짓자, 심상훈이 다급해졌다.
"내, 내가 가진 아이템들을 보면 깜짝 놀랄걸?"
"9년이라는 세월이 아깝지 않을 정도야?"
"물론이지! 그렇고말고."
"근데 네 무기는 별로던데?"
실제로 유준의 검은 심상훈의 검을 두부 자르듯 절단했었다.
유준이 더 들어 줄 것 없다는 듯 마력을 끌어올렸다.
"자, 잠시만!"
"들어주지 마요. 쟤 어떻게든 뒤 통수치려는 인간이에요."
홍예지가 심상훈 들으라는 듯 크 게 말했다.
심상훈의 얼굴이 붉어졌다.
"아, 그리고. 제가 쟤 약점 극대화시켜 놨어요. 이제 머리나 목 같은 급소 부위를 공격하면 몇 배는 더 강력하게 대미지가 들어갈 거예요."
홍예지의 약점극대화 능력.
그건 확실히 유준이 질투 날 정
도로 사기적인 능력이었다.
이제 위력이 강한 스킬이나 마법을 명중시키기만 하면, 심상훈은 죽은 목숨이라고 보면 됐다.
홍예지가 싱긋 웃었다.
마치 보스 몬스터를 상대할 때나 할 법한 소리를 웃는 얼굴로 잘도 했다.
유준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다 죽어 버리면 곤란한데요."
"지금껏 살았잖아요. 정 그러면 한 번만 위력 약하게해서 공격해 봐요. 꼭 약점만 노릴 필요도 없구요."
강력한 하나의 적을 상대할 때 약점 극대화 능력이 크게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했었는데.
한국인 심상훈이 그 첫 대상이 될 줄이야.
유준이 쓴웃음을 짓고 뇌전 마법을 만들었다.
파지짓. 즈즈즛.
심상훈이 실드 마법을 사용했다.
녀석의 실드는 특이하게도 붉은 색이었다.
콰콰콰쾅!
특이한 실드라고 별다를 바 없었다.
유준의 뇌전 공격에 무참히 깨져 나갔다.
스파크가 곳곳에서 일었다.
"끄아악!"
뇌전 공격에 적중당한 심상훈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아아! 짜증 나!"
심상훈은 포션 하나를들이켜고 바닥에 작은 구슬 하나를 내던졌다.
콰직!
구슬이 깨지면서 시퍼런 독 연기
가 뿜어져 나왔다.
다소 폐쇄적인 땅굴에서 독 연기 가 퍼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유준은 미리 실드로 대비했다.
꽤 강력한 독인 듯했지만, 그의 실드를 뚫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사이에 심상훈이 탈출을 시도 했다.
녀석은 자신의 위를 바라보고 마법을 사용했다.
콰쾅!
그에게는 운이 좋게도 때마침 위에는 새로운 땅굴 길이 있었다.
"파라네트."
"예!"
"저놈 뒤로 공간 이동 사용해."
"알겠습니다!"
"예지 씨와 동현 씨는 잠깐 여기 서 기다리세요."
"네."
실드를 펼쳐 놨으니 그가 없는 사이에 심연 괴물이 와도 문제는 없을 것이다.
유준은 파라네트의 공간 이동 마법으로 심상훈의 뒤를 잡았다.
그가 검이 아닌 주먹을 세게 휘둘렀다.
빠악!
심상훈이 바닥에 엎어졌다.
얼마나 세게쳤는지 녀석의 머리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인정사정 봐줄 것 없다.
유준이 쉬지 않고 주먹질을 했다.
공격력이 막강한 검으로 공격하 면 약점 극대화가 된 심상훈이 즉 사해 버릴 가능성이 있었다.
그래서 무기는 사용하지 않았다. 물론, 검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해서 공격력이 낮은 건 절대 아니었다.
빠악! 빡!
심상훈이 결국 의식을 잃었다.
초인보다도 더한 육체를 가지고 있다고는 해도, 한계는 있었다.
유준이 심상훈을 왼팔로 들었다.
그리고 일행이 있는 곳으로 돌아 갔다.
홍예지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렇게 데리고 가게요?"
"왜요?"
"위험하지 않을까요? 갑자기 정 신이라도 차리면...
"괜찮습니다. 보험은 이미 들어 놨으니까요."
소모성 결박 아이템 하나를 사용 했다.
전설 등급 아이템이니만큼 효과는 확실하다.
고대 마법으로 묶는 것보다도 더.
"그래도 여유를 부릴 수는 없습니다. 빨리 갑시다."
유준은 걸어서 가기보다 공간 이
동을 택했다.
미리 심연 왕에게 메신저로 결계 의 효력을 없애 달라고 부탁한다 음.
파라네트가 공간 이동을 사용했다.
우웅. 우우웅.
막대한 마력이 움직였다.
유준이 눈을 깜빡인 순간, 심연 왕이 갑자기 앞에 나타났다.
정확히는, 유준 일행이 심연 왕 이 있는 곳으로 온 것이었다.
"심상훈을 잡아 온 건가?"
"응."
"빠, 빠르군."
부탁한 지 얼마나 됐다고.
지난 몇 달간 심연을 어수선하게 만들었던 인물을 잡아 왔다.
솔직히 말로만 떠들었다면, 허풍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유준은 직접 심상훈을 제 압해 데려왔다.
심연 왕, 칼리테우스가 허탈하게
웃었다.
"가짜는 아니겠지?"
"내가 그런 짓을 할 거 같아?"
"못할 거야 없지만, 내 그대의 실력을 알고 있으니 추궁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겠군."
"알았으면 됐어. 그나저나 보상은?"
유준은 심상훈의 처우 따위는 관 심이 없었다.
심연 왕이 준다고 했던 보상.
그것에만 관심이 있을 뿐.
"그대는 참 별나군."
심연 왕이 뜬금없이 그런 말을 했다.
"별나다고? 왜?"
"그대는지금도 충분히 강하다네. 심연을 다스리는 나와 비견될 정도로 강해. 아니, 심상훈을 잡아 온 속도를 생각하면 그 이상일 수 도 있지."
"그런데도 계속 강해지고자 하는 욕망이 보여. 끊임없이 무언가를 원하고 갈망하지."
"하고 싶은 말이 뭐야?"
"그대가 강한 이유는 거기에 있다고 생각했네. 강해지고자 하는 욕망."
심연 왕이 확신에 찬 얼굴로 말했다.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리인가해서 계속 듣고 있던 유준이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건 다 소용없어."
"성장 의지나 노력. 그건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거잖아. 근데 좋은 아이템은 누구나 갖출 수 없어. 특 히 전설 등급 이상의 아이템은 더 그렇고. 요지는 아이템이 진짜 중요 하다는 거지. 스킬이나 특성도 물론 좋지만 아이템에 비할 바는 아니야."
유준이 답지 않게 길게 말했다.
심연 왕이 뻘쭘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오늘 처음 본 사람을 너무 믿어 주는데?"
"은인 아닌가. 당연히 신뢰가 갈 수밖에."
"그래서 보상은?"
"그것만 기다리고 있는 거 같으니 바로지급하지."
심상훈은 아직도 깨어나지 못한 상황.
심연 왕이 인벤토리를 뒤적이는 사이에 유준은 한 가지 작업을 시작했다.
그건 바로 전에 착용했던 400레 벨 신화 무기에 붙어 있는, 전능의 돌을 빼내는 것이었다.
그는 현재 전능의 돌이 두 개 있었고 하나는 500레벨 최강 무기에 장착되어 있었다.
나머지 전능의 돌 한 개.
그걸 아끼지 않고 활용할 생각이었다.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4권 12화
85 화
전능의 돌.
아이템에 부착하면 추가 옵션을 달아 주는 귀중한 아이템이다.
그 추가 옵션이 아이템 성능에 따라 어마어마하게 증가하기 때문에, 어떤 아이템에 부착하는지가 매우 중요했다.
'방어구도 좋지만 아무래도 목걸 이가 가장 효과가 좋겠지.'
결정은 빨랐다.
실버 드래곤의 목걸이가 그에게 간택되었다.
[실버 드래곤 목걸이]
착용 제한 : Lv. 400 이상
등급 : 신화
방어력 : 5,000
옵션 : 마력이 100% 증가합니다. 마법의 위력이 200% 증가합니다. 한 시간에 단 한 번, 상대방의 능력을 무효화할 수 있습니다.
* 전능의 돌 : 마력 +70%. 모든 마법의 위력이 180% 추가로 증가합니다.
'미쳤다.'
역시 실버 드래곤 목걸이였다.
전능의 돌이 내는 효과가 장난이 아니었다.
이제 자신이 쓰는 파이어볼 마법 하나가 웬만한 고위 마법 이상의 파괴력을 낼 수 있지 않을까.
지금 여러 아이템에 의해 증폭되는 수치들을 보면 충분히 가능했다.
그때 심연 왕이 다가왔다.
"이걸 주겠네."
유준은 곧바로 아이템 정보를 확 인했다.
[경험치 비약]
등급 : 無
옵션 : 획득하는 경험치가 1.5배 증가합니다. 중복 사용이 불가능합니다.
유준이 눈을 크게 떴다.
모든 상황에서 얻는 경험치를
1.5배로 획득하게 해 주는 비약.
'이걸 준다고?'
무과금즐겜러 캐릭터로도 한 개 밖에 구하지 못했던 아이템.
심연 왕이 이런 귀한 아이템을 내어 줄 거라는 생각은 못 했다.
신들의 전쟁 당시에도 이런 건 주지 않았다.
'게임에서는 심상훈이 없었지.'
유준이미소 지었다.
"고마워. 경험치 비약을 줄 줄은 몰랐네."
"보석보다 더 좋은 걸 준다고 하지 않았던가. 한번 내뱉은 말은 확 실히 지킨다네."
"하여튼 고마워. 이런 선물까지는 안 바랐는데."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다.
경험치 비약은 단번에들이 삼켰다.
'이제 낮은 레벨로 업적 보정을 받는 건 힘들어. 그럴 바엔 하루라도 빨리 레벨을 더 높이는게 이득 이지.'
그토록 원하던 보상을 받고 나니 궁금한 점이 몇 가지 있었다.
"궁금한 거 있는데 물어봐도 돼?"
" 얼마든지."
"심상훈은 뭣 때문에 7계 마을 하나를 없앤 거야? 그냥 미친놈인 거 같지는 않아 보였는데."
그저 조금 오만할 뿐,
아무 이유없이 수백, 수천 명을 죽일 녀석으로 보이진 않았다.
그렇다고 심상훈이 착하다는 건 절대 아니지만.
"이유를 묻는 건가? 흐음. 본인 말로는 마을 사람들이 처음부터 천 대했다고 하더군. 그의 생김새를 보고 깔보고, 우습게 여겼다는 모 양이야."
"그것만으로?"
"내가 아는 건 그게 다라네. 그 래서 심상훈을 심문할 필요가 있는 거고."
유준이 곰곰이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내가 대륙에서 종족 대항전이란 걸 할 때 심연에 입장할 수 있는 문을 발견했어. 그 앞에 문지기 호 리단이 있었고."
호리단이 있다면 확실하군."
"애초에 그때 목표는 심상훈을 구출하는 거였어. 그런데 끝에 다 와서야 시스템은 이레귤러가 발생
했다고 했지."
"심상훈이 이레귤러였다는 뜻인가?"
"대충 그런 거 같아."
"심상훈이 무슨 짓을 꾸미고 다 닌 건 확실하군."
"응. 시스템이 직접 개입해야 할 정도의 짓을 저질렀어. 보통 스케 일은 아니지."
"그 점도 생각하고 심문해 봐야겠군. 알려 줘서 고맙네."
"방심하지 말고."
"만약 일이 잘못되면 또 그대에
게 부탁하지."
"...여기 다시 올 일이 없게 만들어야지. 그게 좋은 거 아닌가?"
"항상 상황은 본인이 원하는 대 로만 흘러가지 않는 법이니까."
심연 왕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뭐, 다 알았으니 난 이만 가 볼게."
"그래."
유준은 심연 왕과 그의 딸, 세나 와 작별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심연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출구를 향해 출발했다.
들뜬 얼굴의 홍예지가 입을 열었다.
"밖으로 나가면 그때 2계, 1계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거예요?"
"예."
한 번에 몰아서 받는 만큼, 그 보상은 어마어마할 것이다.
"설마 이곳에서 보상을 얻고 몸 멀쩡하게 나올 수 있으리라곤 상상 도 못 했어요."
홍예지가 크게 기뻐했다.
그녀는 신들의 전쟁으로 심연을
간접경험한 바가 있다.
그래서 심연의 위험성에 대해서 도 잘 알고 있었다.
"근데 1계는 임무가 따로 없나 봐요? 원래는 임무를 완료해야 다 음 층으로 갈 수 있었잖아요."
"아직 임무가 주어지지 않은 겁니다."
"네...?"
"출구 근처에 도달하면 임무를 줄 겁니다."
"아, 그럼 아직 1계 임무가 남은 거네요?"
"으음, 그건 아닙니다. 우린 이미 임무를 완료했어요."
"완료했다고요? 심연 왕이랑 관 련이 있는 건가요?"
유준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1계의 임무는 고위 사자 이상 직위를 가진 자에게 받은 부탁을 들어주는 것. 우리는 심연 1계에서 가장 높은 심연 왕에게 부탁을 받았고 결국 성공했죠."
한마디로 임무를 받기 전에 이미 임무를 성공시킨 것이었다.
"응? 좀 이상한데요. 그럼 다시 돌아가서 의뢰를 받거나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아니요. 그랬으면 여기로 안 왔겠죠. 임무를 받는 즉시 완료 처리 가 될 겁니다. 보면 알아요."
실제로 심연 출구와 가까워졌을 때, 임무가 나타났다.
그리고 동시에 임무 완료 메시지 가 떠올랐다.
"...진짜네요."
"말했잖습니까. 이제 나가죠."
심연에 들어온 기간은 적지만, 꽤 오래 여기에 있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얻은 게 워낙 많아서 그런가.'
푸른 빛의 포털.
그곳에 유준 일행이 몸을들이밀었다.
화아악-!
* * *
조율과 싸웠던 그 장소에 유준 일행이 모습을 드러냈다.
조율 멤버들 세 명은 역시나 사라지고 없었다.
[심연을 무사히 벗어났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40 증가합니다.]
[전설 칭호 '심연 모험가'를 획득 합니다.]
[불가능한 업적!]
[전설 아이템 박스(선택)]
-심연 모험가(전설) - 미지의 장 소를 발견할 확률이 대폭 증가합니다.
홍예지가 화들짝 놀랐다.
"모든 능력치 40 증가? 이게 말 이 돼요?"
"저한테 묻는 겁니까?"
"네."
"직접 보세요. 실제로 능력치 올 랐잖아요."
주동현도 꽤 놀란 눈치였다.
모든 능력치 40이 올랐다는 건.
총합 능력치 160이 상승했다는
뜻이고,
그 수치는 레벨 50을 넘게 올려 야 얻을 수 있었다.
기연을 얻은 것이다.
유준과 함께 했다는 것만으로.
"칭호 효과도 미쳤어요. 유준 씨 덕분에 전설 칭호도 다 얻어 보네요."
유준이 방긋 웃었다.
"제가 베푼 거 맞죠? 나중에 필 요할 때 꼭 도와주셔야 합니다."
"이번에도 부르셔서 온 거긴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네요. 아, 그리고..."
그때 홍예지가 짓궂은 표정을 지었다.
"유준 씨. 그 세나인가? 그 심연 왕의 딸이랑 메신저 교환했었죠?"
"저요?"
"네."
"했습니다."
"아까 유준 씨를 보던 눈빛이 심 상치 않던데..."
" 예?"
유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누가요?"
"세나요."
"그럴 만도 하죠. 자기 목숨도 구해 준 데다가. 정령왕이랑 계약 도 맺게 해 줘, 또 심연 왕이 부탁 한 것도 단번에 해결할 정도로 능력도 있어. 뭐 하나 빠지는게 없 잖아요."
그녀가 말하는 바를 캐치한 유준 이미간을 찌푸렸다.
"그게 왜 그렇게 됩니까?"
"모르는 척하기예요? 너무 대놓고 바라보던데. 동현 씨도 느꼈죠?"
"예. 맞습니다."
"솔직히 다크 엘프니까 미모도 어디 빠지지 않고. 유준 씨도 혹시 마음 있는 거 아니에요?"
"몰아가지 마세요."
"치. 재미없어."
홍예지가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 전 어때요?"
"농담이에요. 농담. 장난 한번 했 다고 너무 노려보시네."
"다행이네요."
"그게 왜 다행이에요?"
"다행이니까요.''
홍예지가 실망했다는 듯 입을 삐 죽였다.
"그나저나 유준 씨는 이제 어디 로 가실 건가요?"
"글쎄요. 지금 당장 보고 싶은 놈들이 있긴 한데. 어디에 있는지 몰라서요."
"보고 싶은 사람이 있어요?"
"예."
"누구'
"나중에 봅시다."
" 해산?"
"네."
유준은 쿨하게 자리를 떴다.
조율 멤버들 대부분이 모인 자리.
넓은 연회장인 이곳에 짧은 정적이 흘렀다.
- 놓쳤다?
"네. 강하더라고요."
지규태의 말에 반소연이 대답했다.
-세 명이나 보내지 않았던가? 어떻게 놓칠 수가 있지? 내 상식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는군.
"규태 아저씨. 솔직히 말해도 될까? 우리 만약 한 명이나 두 명이
갔으면 진작에 죽었을걸? 그나마 세 명이 같이 싸워서 안 죽고 살아 돌아온 거야."
반소연의 말에 자리에 있는 다른 조율 멤버들이 놀랐다.
"그 정도라고? 이번 대상이?"
"믿을 수가 없군."
"별로 유명하지도 않은 녀석이 아니었나?"
"이제 막 떠오른 유망주가 그 정 도 힘을 지니고 있다는게 사실인가?"
예상했던 반응에 반소연이 쓴웃 음을 지었다.
"뭔가 기묘해. 처음 보는 유형의 플레이어였어. 약점도 딱히 없는 거 같고. 우리가 그냥 레벨로 밀어 붙인 거지. 사실 레벨이 비슷했으면 상대도 안 됐을 거야."
"...좀 충격인데."
"그치? 근데 나랑 시현이, 강민 이는 더했어. 솔직히 자괴감도 들고."
"그 정도면 우리 리더급 아니야?"
누군가의 말에 반소연이 헛웃음을 지었다.
"그건 아니야. 규태 아저씨는 규
격 외야. 알잖아. 넘사벽 괴물인 거."
"아무리 강해도 리더랑 비교하는 건 좀 그렇지."
"응. 그건 아니지."
그때 영상 속에서 다시 지규태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그럼 빨리 싹을 잘라야겠군.
"계속 진행하는 거야?"
-소연이 너의 말을 들으니 더 내 버려 둘 수 없겠다. 처리해야지.
"전보다 더 강해졌으면 어떡해? 세 명으로는 안 될 텐데. 저번처럼
또 도망갈 수도 있고."
-확실히 해라. 내가 지금 그쪽으로 갈 수는 없으니 너희들이 이 일을 맡아 줘야겠다.
"저번에 말했던 보상은?"
-그건 그대로. 놈을 죽이는 자에 겐 아이템을 더 얹어 주지. 신화 등급 방어구로.
"...신화 등급?"
"그걸 뿌린다고요?"
"리더. 무리하는 거 아니야?"
"너네 아직 규태 아저씨를 잘 모르는구나? 저 아저씨 몸에 어떤 아
이템들을 걸치고 있는지 알면 깜짝 놀랄걸. 우리가 걱정할 필요 없다는 거지."
반소연이 웃음을 머금고 말을 이었다.
"나 이번에도 참가해도 돼?"
-상관없다. 하지만 인원이 더 필 요할 것 같군. 두 명 정도 더 있으면 되겠나?
"다섯 명이면 충분하지. 근데 시 현이랑 최강민. 너네도 갈 거야?"
"누나가 가면 난 당연히 가지."
천시현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최강민. 너는?"
" 나는...
최강민이 잠시 머뭇거렸다.
그는 신유준을 상대하다가 목숨을 잃을 뻔했다.
그때 생긴 트라우마가 아직도 목을 죄는 듯했다.
"이대로 도망치면 평생 후회할 거 같다. 나도 갈게."
"좋아. 두 명 더 같이 갈 사람?"
반소연의 말에 정확히 두 명이 손을들었다.
나이가 많은 송태영 그리고 대마
도사 한지윤이었다.
"오. 웬일이래. 태영 아저씨는 그렇다 쳐도, 지윤 언니가 다 나서고?"
반소연의 말에 눈에 띄게 하얀 피부를 지닌 한지윤이 웃었다.
"궁금해서. 어떤 남자인지."
"웅? 언니, 설마.... 그 이상형 찾기 놀이하려고?"
"응."
"하..."
"응. 나보다 강한 사람 찾는 거. 내 소원이잖아."
"규태 아저씨 있잖아."
"리더는 제외. 사람이 아니잖아."
"아니, 죽여야 한다니까?"
"그런 사람을 우리 편으로 만들 면 더 좋은 거 아니겠어? 조율 전 력이 상승하는 거니까."
"하, 마음대로 해. 어차피 뜻대로 안 될 거니까."
반소연이 한숨을 내쉬었다.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4권 13화
86 화
"주인님."
파라네트가 갑자기 불렀다.
유준이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왜."
"이제 정체는 안 숨기실 생각입니까?"
"음."
"왜요?"
"숨길 필요가 없어서."
유준과 파라네트는 거주 구역의 한복판을 계속 걸어 다니고 있었다.
"주인님을 알아보는 사람도 꽤 많습니다.''
"아무래도 그렇지."
종족 대항전으로 보통 유명해진 것이 아니다.
얼굴을 가려 놓고 다니지도 않으니 알아볼 수밖에.
"혹시 누굴 유인하는 겁니까?"
"눈치가 빨라졌는데?"
"크흠. 주인님 덕분이죠. 그런데 어딜 가시는 겁니까? 저까지 소환하시고."
"넌 그냥 심심해서 소환한 거고. 그냥 네 말대로 누구를 좀 부르고 있는 거야."
"아, 조율 그놈들요?"
"오. 알고 있네?"
"이런다고 올까요?"
"무조건 와."
지규태와 영상으로나마 대면했을 때.
그가 어떤 자인지 단번에 알았다.
그는 일이 잘 안 풀렸다고 포기할 위인이 아니었다.
"이제 사람 좀 없는 곳으로 가면 되겠다."
"너무 대충 아닙니까?"
"이미 내 뒤를 쫓고 있는 놈들이 있어."
"버, 벌써요?"
"음."
"어떻게 아셨어요?"
"그냥 느껴지는데."
민첩 능력치가 워낙 높아진 탓이다.
멀리서 주시하는 시선이 따갑게 느껴졌다.
"몇 명이죠?"
"아마도 다섯 명. 그중 세 명이유독 강하네."
"그것까지 알 수 있습니까?"
"그러게. 나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심연에서 얻은 것들이 컸다.
능력치가 높은 폭으로 성장한 것.
"슬슬 준비해야겠다."
유준은 미분배 포인트 '434'를
마력을 제외한 능력치에 골고루 분 배했다.
그리고 순수 능력치만을 확인했다.
[근력 614(557+57)] [민첩 705(628+77)]
[체력 581(524+57)] [마력 803(781+22)]
[미분배 포인트 : 0 ]
만족스러웠다.
퍼센트 증가가 붙지 않은 순수 능력치가 이 정도였다.
이젠 조율 놈들을 상대로 쉽게 승리를 거둘 자신이 있었다.
거주 구역을 벗어나 숲 쪽으로 향했다.
워낙 넓은 곳인 데다가 장애물이 많으니은밀하게 싸우기엔 제격이었다.
빠른 속도로 접근하는 기척 다섯 이 있었다.
"주인님. 저는 어떻게 하면 될까요?"
"넌 뒤에서 지켜보고 있다가, 내가 위험할 거 같으면 그냥 껴들던가."
"먼저 공격을 당하면요?"
"맞대웅해야지. 당연한 거 묻지 마라."
"예. 알겠습니다."
유준과 파라네트는 가만히 서서 적을 기다렸다.
조율 멤버 다섯 명은 금방 모습을 드러냈다.
"오랜만이네."
유준이 먼저 입을 열었다.
반소연이 살짝 긴장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왜 저번처럼 안 도망갔어?"
"그야,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
" 뭐?"
"다섯 명이 끝이야?"
"무슨 자신감이야? 저번엔 우리 셋을 상대로 골골거렸잖아."
"언제 적 얘기야."
유준이 시큰둥한 얼굴로 말했다.
"어이가 없네. 고작 이틀 지났어. 그사이에 우리 다섯 명을 상대할 힘을 길렀다고? 오기도 적당히 부 려야지."
반소연이 말을 속사포처럼 쏘아냈다.
"그 이틀이 나한테 얼마나 긴 시간이었는지 체감시켜 줄게."
유준이 자신감을 내보였다.
최강민이 앞으로 나섰다.
"야. 너 오늘 여기서 죽어. 객기 부린 대가는 당연히 알고 있지?"
두려움을 숨기기 위한 허세.
다 보였다.
유준은 마력을 끌어 올렸다.
아이템을 싹 갈아입은 뒤에 제대 로 된 마법을 사용해 본 적이 없었
그 위력을 한번 확인해 보고 싶었다.
'처음은 가볍게 가자.'
기본 마법이라고 할 수 있는 파 이어볼을 생성했다.
다만, 그 개수가 수백 개에 달했다.
주변 일대를 장악한 화염 구슬들은 그 모습만으로도 장관이었다.
지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나무들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시스템에 의해 금방 재생되는 나 무들.
그러나 일단 한번 불이 붙기 시작하면 화재가 진압되는데는 상당 한 시간이 걸렸다.
"숲에서 화염 마법이라니, 아주 작정했네."
최강민이 먼저 움직였다.
아무리 파이어볼이라고 하더라도 이 정도 규모면 마력을 상당히 소 모했을 것이다.
라고, 최강민은 판단했다.
유준의 무력을 대충이나마 알고 있는 나머지 조율의 네 명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반소연이유준에게서 시선을 떼 지 않고 입을 열었다.
"일단 실드 최대한 많이 만들어 서 대비해. 쟤 검뿐만 아니라 마법 도 잘 다루니까."
"오케이."
"아, 그리고 쉴 틈없이 몰아붙 여야 해. 쟤 최상급 포션 아끼지 않고 쓰더라."
이틀 전 단 한 번 붙었던 것으로 반소연은 유준의 많은 것을 알아냈다.
최강민이유준에게 창을 내뻗었다.
까앙!
창이유준이 만들어 낸 실드에 부딪쳤다.
그러나 창은 튕겨 나갈 뿐, 실드를 꿰뚫지는 못했다.
그러는 와중에 파이어볼이 조율 멤버들에게 날아갔다.
화르륵! 콰콰콰쾅!
엄청난 폭발이 일었다.
제일 간단한 파이어볼 마법.
그러나 그 위력은 간단하다고 경 시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뭐, 뭐야?"
조율의 마법사 두 명이 생성한 실드가 허무하게 깨졌다.
그 뒤 결과는 뻔하다.
반소연과 최강민을 제외한 세 명 이 파이어볼 세례에 적중당했다.
"억!"
"잠깐만 버텨!"
한지윤이 그레이트 힐 스킬을 사용했다.
범위가 넓은 치유 능력이었다.
환한 빛이 불타고 있는 조율 멤 버들을 포근하게 감쌌다.
그들의 몸을 태우던 화염이 감쪽
같이 사라졌다.
몸 상태도 최상에 가까운 상태가 되었고.
"역시 지윤 누나 힐은 장난 없네."
"힐러들 중에선 자타 공인 원 톱 이니까."
반면 최강민과 반소연은 유준의 실드를 쉬지 않고 두드렸다.
"이거 왜 안 깨져? 그냥 평범한 실드가 아닌 건가?"
최강민이 황당한 표정으로 중얼 거렸다.
그때였다.
"물러서!"
반소연이 외쳤다.
그리고 그녀는 그 말을 외치기 전에 이미 행동으로 옮긴 상황.
반면 최강민은 늦었다.
유준이 만들어 낸 빛의 화살.
눈 깜짝할 새에 다가온 화살에 목이 꿰뚫렸다.
푹!
"커헉!"
그게 그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내뱉은 말이었다.
순식간에 최강민이 목숨을 잃고, 잠시 침묵이 맴돌았다.
"뭐야, 안 덤벼?"
조율 멤버들이 가만히 서 있기만 하자, 유준은 다시 마력을 끌어 올렸다.
그제야 송태영과 천시현 그리고 한지윤이 행동을 취했다.
유준 주변 공간이 뒤틀리기 시작 했다.
송태영의 마법이었다.
'공간 장악?'
유준의 눈에 호기심이 어렸다.
공간 장악은 고대 마법 능력이 있어야만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이다.
'저 남자도 고대 마법을 익히고 있는 건가?'
하지만 공간을 장악하는 범위를 보아하니 고대 마법의 스킬 등급이 높지는 않은 듯했다.
유준의 공간이 기괴한 모양으로 뒤틀려 갔다.
이럴 때 해결 방법은 간단하다.
이 공간을 벗어나거나 같은 공간 장악 마법으로 짓이겨진 공간을 원
래대로 되돌려놓는 것.
후자의 방법이 더 까다롭고 귀찮은 방법이지만, 유준은 후자를 택 했다.
송태영이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다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뭐, 뭐야?! 내 공간 장악 마법을 파훼해?"
그는 한 가지 큰 오해를 하고 있었다.
유준이 같은 공간 장악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마법을 파훼하는 능력을 사용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럴 만도 한 게 송태영은 B+등
급의 고대 마법을 자신만의 전유물이라고 여겨 왔다.
유준이 공간 마법을 소유하고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 한 것이다.
송태영이 당황했다.
"마법 파훼 능력까지 있다니. 미 친 재능의 마도사군. 단순히 기연을 많이 얻었다고 보기도 힘들어."
"쟤도 소연 누나랑 같은 마검사야. 검을 더 잘 다뤄."
천시현의 말에 송태영과 한지윤 이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 괴물이잖아."
"어디서 저런 놈이 튀어나왔지?"
"저번보다도 더 강해진 거 같아. 마법의 능력이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어, 원래."
"일단 한 번에 공격해 보자. 개 개인이 나서선 답도 없을 거 같다."
"자존심은 상하지만, 그게 낫겠 군."
최강민을 제외한 조율 멤버 넷.
그들이 본격적으로 합공을 시작 했다.
콰콰쾅! 콰쾅!
연속적으로 폭발이 일어났다.
이런 고레벨 간의 싸움에서는 육 탄전이 쉽게 벌어지지는 않는다.
위력이 강한 스킬 몇 개를 주고 받으며 단순 힘 싸움으로 가게 되는 것이 보통.
특히 공격 능력뿐만 아니라 방어 나 회피 능력이 중요했는데,
유준은 그 어느 것 하나 모자람 이 없었다.
아니, 모자라기는커녕 월등하게 뛰어났다.
콰콰쾅! 콰콰콰쾅!
유준의 폭발 마법 한 번에 조율
멤버들이 크게 휘청거렸다.
한지윤이 그들의 상처를 빠르게 회복시켰다.
"쟤 마검사가 아닌 거 같은데?"
"응?"
"마법만 계속 쓰잖아."
천시현이미간을 찌푸렸다.
"나도 검을 더 잘 쓰는 줄 알았는데 마법이 더 장난 없네."
"그래서 어떡할 거야?"
송태영의 말에 천시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 뭐를?"
"가망이 없어 보여서. 이대로 싸 우는 건 칼로 물 베기... 아니, 바위에다 계란 치기 아니냐?"
송태영의 말에 할 말이 없었다. 현실이 그러했으니까.
그러나 천시현은 변함없었다.
"난 누나가 원하는 대로."
"에휴, 너도 참 어리구나." 송태영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자신 혼자만이라도 대비해
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콰앙!
그때 반소연이 상처 입은 채로 튕겨 나왔다.
몇 번 바닥을 구르다 멈춘 반소 연.
거의 죽기 일보 직전일 정도로 상태가 위급했다.
천시현이 황급히 그녀에게 다가 갔다.
"지윤 누나! 빨리!"
"알았어!"
한지윤의 S등급 힐 스킬이 반소연을 치료했다.
빈사 상태에 놓였던 반소연의 몸 이 급속도로 호전되었다.
"누, 누나! 괜찮아?"
"으... 겁나 아파. 나 방금 죽을 뻔한 거지? 끄응...
반소연이 이마를 부여잡고 몸을 일으켰다.
천시현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 녀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누나, 어떻게 할 거야?"
"뭐가?"
"송태영이 일단 물러나는게 어떻겠냐는데. 최강민도 이미 죽었고."
"이대로 돌아간다고? 그럼 규태 아저씨가 많이 화낼 텐데. 그거 감 당할 수 있는 사람 없잖아."
"그래도 죽는 것보다는 낫지. 뭐, 이러니저러니 해도 난 누나 선택을 따를 거야."
"응."
전투가 잠시 소강상태가 되었다.
유준이 당장 그들을 공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에게 좋은 생각이 있었다.
지금 조율 멤버를 다 죽이는 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어찌 됐든 이미 척을 졌으니, 돌 이킬 수는 없는 상태고. 대화를 들 어 보면 지규태가 핵심인 거 같은데.'
지규태와 결판을 내지 않으면 이 싸움은 끝이 나지 않을 것이다.
'내 괜한 오지랖으로 얽히게 되 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성장에는 큰 도움이 되긴 했지.'
조율은 그의 성장의 원동력이 되어 주었다.
그들이 없었다면 심연에 가는 건
한참 뒤였을 것이다.
"주인님. 저들을 어쩌실 생각입니까?"
전투에 참여하지 않고 가만히 지 켜보던 파라네트가 말했다.
"어쩌다니. 적이잖아. 뭘 당연한 걸 물어?"
"저들에게 도망칠 기회를 주시는 거 같아서요. 아닙니까?"
"오, 눈치 빠른데."
그러나 조율 멤버들은 아직 도망 치지 않았다.
그들로서도 어떻게든 결과를 내
야 하는 상황이다.
지규태에게 호언장담을 하고 왔으니.
유준과 숨 막히는 대치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싸움 결과를 전해 줄 사람이 필 요하니까."
"그 조율의 대빵에게 말입니까?"
"응. 그러려고 했는데."
경고는 제대로 하는 것이 좋다.
"네 명이나 살려 둘 필요는 없겠지?"
후일 조율의 멤버 전원과 싸우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
지금 그 수를 조금 덜어 놓는 것 이 좋으리라.
유준이 마력을 움직였다.
'아까 공간 장악 마법을 사용한 놈이 있었지.'
그는 똑같이 돌려주기로 했다.
조율 멤버 중 나이가 가장 많이 보이는 자.
송태영에게 공간 장악 마법을 사용했다.
우우웅. 우우웅-!
대기가 진동했다.
동시에 일그러졌다.
꽤 멀리에 있었음에도, 공간 장 악은 단번에 송태영이 있는 곳에 도달했다.
송태영이 펼쳤던 공간 장악과는 수준이 달랐다.
규모나, 파괴력, 발현 속도.
모든 면에 있어서 다른 차원에 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
공간 장악.
그걸 인지한 송태영이 경악했다.
"마, 말도 안...
송태영의 몸이 기괴한 방향으로 꺾였다.
우득! 우드드득!
정확히 송태영이 있는 공간만 뒤 틀렸다.
"아, 아...!"
송태영은 뒷말을 이을 수 없었다.
그의 몸은 본래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압축되었으니까.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4권 14화
87화
송태영의 바로 옆에 있던 조율 멤버들이 그 비현실적인 광경에 넋을 놓았다.
송태영이 죽었다는 사실보다도,
"...저거 송태영만 쓸 수 있는 거 아니었어?"
"고유 능력 같은 건 줄 알았는데..."
송태영의 전매특허 스킬이나 마찬가지인 공간 장악에, 본인이 똑
같이 당해서 죽었다는 것.
그것에 중격을 받았다.
반소연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안 도망가?"
유준이 나지막이 말했다.
그리 크지 않은 목소리였지만, 그들에겐 아주 또렷이 들렸다.
한지윤이제일 먼저 정신을 차렸다.
" 가자."
"어,어..."
최강민의 시체를 든 그들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유준은 멀어져 가는 그들의 기척을 느끼며,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 뒤를 돌아봤다.
"어때? 임팩트 좀 있었어?"
파라네트가 뼈밖에 없는 손으로 박수쳤다.
"역시 주인님이십니다. 카리스마 가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주인님의 위엄에 적들이 오들오들 떠는 것이 오히려 안쓰러워 보일 정도더군요. 마지막에 꼴사납게 도망치는 것 또 한 통쾌하기 그지없었습니다."
녀석의 과장된 말투에 유준이 너
털웃음을 지었다.
저번에 작전상 후퇴... 하여튼 심연으로 도망쳤던 치욕은 제대로 갚은 것 같아서,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세 명이 빠르게 달리고 있었다.
반소연과 천시현 그리고 한지윤이었다.
"어때, 언니? 마음에 들었어?"
반소연이 비아냥거리듯 말했다.
한지윤은 쓴웃음을 지었다.
"저 정도일 줄은 몰랐네. 왜 미 리말 안 했어?"
"나도 이제 알았어. 전에는 이렇게까지 강하진 않았거든. 이틀 전 이랑 완전 딴판이라니까. 그 짧은 기간에 저렇게 괴물이 되어있을 줄 누가 알았겠어?"
"누나. 어디 다친 곳은 없어?"
천시현의 시선은 반소현에게만 향해 있었다.
"지윤 언니가 있잖아. 난 괜찮아. 이미 죽은 사람이 문제지."
최강민의 시체를 들고 달리는 반 소연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송태영의 시체는 형태조차 남지 않아 챙기지 못했다.
천시현의 표정도 좋지 않았다.
"우릴 일부러 살려 뒀어."
"자존심 상해?"
"음."
"시현아. 자존심도 상대 봐 가면서 지키는 거야."
"알아. 그래서 더 분해."
천시현은 무한의 탑에 온 뒤로 이런 굴욕적인 패배를 겪은 것은 처음이었다.
남들보다 비교적 어린 나이에 높은 자리까지 올랐기에 더더욱 그러 했다.
"리더한테는 뭐라 말하지?"
어두운 표정의 한지윤이 말했다.
"그냥 리더가 나서야 할 거 같다 고 말해야지, 뭐. 우리로선 방법이 없어. 놈은 그 정도로 강했어."
"리더는지금 마계에서 뭐, 큰일 벌이고 있다고 하지 않았어?"
"그렇긴 한데..."
"하,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그 남자한테 시간을 줬으면 안 됐어."
"이미 지나간 일 후회해 봤자지."
"후우..."
반소연이 또다시 깊은 한숨을 내 쉬었다.
최상위 랭커들 중에서도 꼭대기에 있는 조율치고는 초라한 모습이었다.
유준이 기분 좋은 웃음을 지었다.
심연에서의 일도 해결했고.
조율에게 크게 한 방 먹여 주기 도 했다.
'지금 내 아이템 세팅도 완벽해.'
문제는.
500레벨이 끝이 아니라는 점에
있었다.
또 신화 등급 다음 등급이 있다는 것도.
그의 인벤토리에는 500레벨 신화 아이템까지밖에 없다.
그렇다면 나중에 갔을 때, 남들에게 따라잡힐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었다.
'내가 몇 달 새에 이 정도까지 성장한 것도 말도 안 되는 일이긴 해도.'
아직 안전하다고 할 정도까진 아니다.
'조율을 상대로 승리한다고해서
끝은 아니겠지.'
어쩌면 조율보다도 더한 놈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처음에 500레벨이 넘는 플레이어들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그런데 보란 듯이 500레벨이 넘는 이들만 모인 조율이라는 집단이 있었다.
'내가 아는게 전부가 아니야.'
그렇다면 항상 한 발짝 더 앞서 나가서 생각해야 했다.
'더 강해져야지.'
신화 등급 다음으로 있다는 초월 등급.
초월 등급의 아이템을 얻어야 했다.
남들보다 5년 늦게 시작했으니, 앞서 나가려면 그 정도는 해야 할 것이다.
'초월 등급은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
지금 당장은 모르고 있었다.
초월 등급에 대한 단서를 줬던 마녀 마누엘라.
그녀는 알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유준은 향후 계획을 잡았다.
마녀에게서 초월 등급 아이템에 대한 단서를 얻기로.
당장 레벨을 올리는데 급급해서는 남들과 큰 차이를 벌리긴 힘들 다고 생각했다.
'누구보다도 먼저 초월 등급을 얻는다.'
만약 누가 이미 가지고 있다고 해도 상관없다.
더 많은 초월 등급 아이템을 가 지면 된다.
아이템 수집욕이 그의 마음에 또 한 번 불을 지폈다.
마녀는 마계에 있다.
그렇다면 마계로 넘어가야 하는데.
'조율과의 일은 잠시 보류해 둘까?'
어차피 최종적인 목표는 마신의 침공을 막는 것.
또는지구의 멸망을 막는 것.
그 과정에 조율이 있든 말든 크 게 상관이 없었다.
문제는.
'내가 마계에 대해서 잘 모른다는 건데...
신들의 전쟁에도 마계가 있었지만, 대륙을 돌아다니며 아이템을 모으기 바빠 마계에 간 경험이 적었다.
아예 문외한까지는 아니어도 지 리에 밝다고 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마계 지리나 생태에 빠삭한 사 람. 누가 있을까.'
지금 떠오르는 건 블랙마켓에서 두 차례 만났던 핑크핑꾸토끼.
그녀는게임에서 마계를 자주 갔
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 남아 있던 랭커 중에 그녀 보다 마계를 잘 아는 사람이 없었으니.
'연락해 볼까.'
메신저 교환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녀에게서 일대일 통신이 가능한 영상구를 받았었다.
유준의 행동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곧바로 영상구를 꺼내 마력을 홀 려 넣어 통신을 요청했다.
꽤 오랜 시간 응답이 없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영상구에 빛이 들어왔다.
영상구 화면에 깜짝 놀랄 만큼 아름다운 여자가 나타났다.
그녀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있었다.
-무과금즐겜러 님? 맞죠?
"본명은 신유준입니다."
-유준. 알겠어요. 그런데 얼굴을 가리지 않았네요?
"부탁할 게 있습니다."
-저한테요? 저 누군지는 알죠?
"도지윤 씨잖아요."
-어? 제가 저번에 말했었나요?
"그랬을 겁니다."
-저 엄청 바쁜 사람인데.
" 알아요."
-부탁이 어떤 건지 물어봐도 될 까요?
"같이 마계로 가 주세요."
-...네?
유준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 도지윤이 당황했다.
-지금 마계라고요?
"예."
-무과... 아니, 유준 씨는 거기 가 어떤 곳인지 잘 아시잖아요.
" 그죠."
-그런데도 그곳을 가겠다고요? 심지어 저랑 같이?
"예. 핑크핑꾸토끼 그 캐릭터로 마계를 한 수십 번은 가셨잖아요. 소모성 아이템 하나 얻겠다고. 기 억하고 있습니다."
- 으음.
도지윤이 침음을 삼켰다.
그녀는 무한의 탑에 강제 소환된
이후로 마계에 간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게임에서야 많이 갔지만, 자신이 아는 그대로일 거라는 보장이 없었다.
"꼭 정확하게 알고 있지 않아도 됩니다. 혹시나 하는 상황을 대비 하고 싶은 거니까요."
-유준 씨. 지금 얼마나 강하세요?
"...네?"
자신의 질문이 이상했다는 걸 깨 달은 도지윤이 황급히 말을 바꿨다.
-레벨이 어떻게 되세요?
"352요."
-...몇이라고요?
"352입니다."
-왜 이렇게 낮아요?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는 분명히 강한 사람이다.
블랙마켓에서 봤을 때 몸에서 느 껴지던 기세나, 판매한 아이템의 수 준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런데 아직 레벨이 352라고?
"사정이 있어요."
-무슨 사정요?
"그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하여튼 352레벨이면 지금 당장 마계에 가는 건 위험해요. 유준 씨 가 아무리 강하다고 하더라도요.
" 왜죠?"
-500레벨. 그 레벨을 달성하지 않으면 '격'이라는 것 때문에 아예 전투가 성립이 안 되거든요.
전에 느낀 적이 있었다.
조율 멤버들의 레벨이 500을 넘 겼고.
격의 차이 때문인지 아이템과 능력치가 더 뛰어난 유준이 애를 먹
었었다.
일전의 전투에서는 압도적인 화 력으로 승리를 따냈지만, 확실히 격이라는게 존재한다는 건 알았다.
"전투가 성립이 안 된다는게 정 확히 무슨 말입니까?"
-500레벨이 경계선이에요. 달성 하기 전과 후로 차이가 엄청 크다는 소리죠. 만약 500레벨과 400레 벨 플레이어가 있다고 쳐요.
"예."
-둘 다 동일한 아이템과 동일한 능력치를 가졌다고 상정했을 때. 499레벨 플레이어는 500레벨 플레
이어를 절대 이길 수 없어요. 전투 경험? 무기를 다루는 능력? 그런 게 다 무의미해지죠.
유준은 도지윤이 하는 말을 잠자 코들었다.
-레벨이 다라는 소리예요. 500레 벨 이후부터는 그래도 그 말도 안 되는 힘의 차이가 사라지긴 하지만 그래도 레벨 하나하나가 중요한 건 매한가지죠.
"단순히 능력치의 문제가 아니라. 레벨이 가진 힘이 있다는 겁니까?"
-네. 정확히는 500레벨부터요. 물
론, 500레벨 이후로도 스킬이나 아이템이 중요한 건 매한가지지만요.
"능력치는요? 큰 의미가 없습니까?"
-아뇨. 능력치도 중요하죠. 그런 데 제일 중요한 건 500레벨을 달성 해야 한다는 점이에요.
유준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하는 말은 틀린 것이 하 나도 없었다.
하지만, 500레벨이 아니어도 500 레벨 이상의 플레이어를 이기는 것 이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내가 실제로 경험했으니까.'
그때 도지윤이 다시 입을 열었다.
-뭣 때문에 마계를 가려는 건지는 제가 모르지만, 마계에 가는 건 다음으로 미루는게 어때요?
"도지윤 씨."
_네.
"조율에 대해서 아십니까?"
-...네. 왜요?
"그곳에 속해 있어요?"
-아니요. 사실 그쪽에서 제의하 긴 했는데 솔직히 조율의 행적이 너무 더럽다 보니까, 그냥 거절했
어요.
그럴 것 같았다.
만약 조율에 속해 있었다면 자신을 모를 리가 없겠지.
"저는 조율과 척을 졌습니다."
유준의 말에 도지윤이 화들짝 놀 랐다.
-유준 씨가요? 조율이랑?
"예. 조율의 멤버 두 명을 제가 이미 죽인 상태입니다. 아마도 절 죽이기 위해선 뭐든 하려고 들겠죠."
자, 잠시만요.
"말씀하세요."
-두 명을 이미 죽였다고요? 조 율의 멤버 둘을?
"예. 오늘 그랬습니다."
-유준 씨. 352레벨이라면서요?
"맞습니다. 근데 지윤 씨. 레벨이 다가 아닙니다."
-아까 설명했잖아요. 500레벨을 달성하지 못한 플레이어는 500레벨 이상의 플레이어를 웬만해선 이길 수 없다고. 실제로 조율의 플레이어들은 전부 500레벨이 넘어요.
"레벨이 확실히 중요한 거 같긴
하더군요. 다른 플레이어들과는 차원이 다른 강함이었습니다."
심연으로 도망가서 힘을 기르지 않았다면 죽는 건 자신이었을지도 모른다.
레벨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그때 충분히 깨달았다.
"그런데 조율 놈들보다 제가 더 강합니다."
그의 자신감 넘치는 말.
사실에 기초해서 한 말이니 그 어떠한 과장도 없었다.
실제로 유준은 조율을 손쉽게 죽였다.
도지윤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그녀는 유준이 지금 꾸며낸 이야 기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까 했던 말 사실이에요? 조 율 인원을 죽였다는 거.
"도지윤 씨는 레벨이 어떻게 되 시죠?"
-저는 5()1레벨이에요.
"저와 붙어 보시면 아시겠군요. 제가 허언을 내뱉은 건지, 아닌지."
유준이 표정 변화없이 말했다.
여유로운 얼굴.
근거 없는 자신감은 아닌 것 같았다.
도지윤은 한참 동안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제가 바쁘긴 하지만, 랭킹 1위였던 무과금즐겜러 님의 부탁을 거 절할 수야 없죠. 마계로 같이 갈게요.
"테스트는 안 해도 됩니까?"
-유준 씨는게임을 할 당시에도 한 번도 과장한 적이 없으셨죠. 온
라인 게임을 하다 보면 있는 말, 없는 말 지어내서 자신을 치장하기 바쁜데. 유준 씨는 아니었어요. 그 래서 믿어요.
"감사합니다. 어디서 볼까요?"
-일단 준비부터 할게요.
"준비?"
-조율이랑 척을 지셨다면서요. 그 놈들한테 쫓기긴 싫으니, 제 정체를 숨겨야죠.
"아..."
생각해 보니, 도지윤은 조율과 적대 관계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 자신과 함께 있는 걸 보면 괜한 적을 만드는 셈이 된다.
그리고 그 적은 무한의 탑에서 가장 무서운 놈들이었고.
"어려운 부탁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려운 거 알았으면 됐어요.
도지윤이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4권 15화
88화
유준도 좀 더 치밀하게 몸과 얼 굴을 가렸다.
파라네트를 소환하게 되면 곧바로 들통나겠지만,
일단 외형을 바꾸는게 나으리라는 판단이었다.
'파라네트에게도 큰 망토를 하나 줘야겠다.'
놈의 덩치가 큰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이템은 착용자의 몸집에 맞춰 서 사이즈 조절이 가능하다.
도지윤과의 만남 장소는 외진 곳으로 정했다.
괜히 거주 구역에서부터 만났다 가 이동하면 조율의 추적을 당할 수 있었다.
"주인님."
"왜."
"이 망토 좋긴 한데요. 너무 눈에 띄는 거 아닙니까?"
"넌 벗고 있는게 더 눈에 띄어."
"...아?"
거대한 망토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뒤집어쓴 파라네트.
저 덩치라면 뭘 어떻게 해도 눈에 안 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 출발하죠?"
"기다려. 도지윤 씨가 도착하면 바로 갈 거야."
"예? 도착하면요?"
"응."
"왜요?"
"먼저 출발할 필요가 없으니까."
" 으응?"
"공간 이동. 우리한텐 그게 있잖아."
"또 제가 활약할 차례가 온 겁니까."
요즘 파라네트는 공간 이동으로 만 활용하고 있었는데도 별 불만이 없어 보였다.
다른 이를 공간 이동시킬 때의 쾌감이 너무 좋다나 뭐라나.
'변태 같은 놈.'
유준은 거주 구역 밖으로 나가서 길쭉한 나무들이 우거진 숲으로 들어갔다.
그는 가만히 눈을 감고 감각을 널리 퍼뜨렸다.
자신을 감시하는 기척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소형 동물들의 기척들을 제외하 면 조율로 보이는 기척이 없었다.
그러나 방심할 수는 없다.
'동물들을 매개로 엿보는 방법도 있으니까.'
고대 마법이 아니어도 가능한 방 식이다.
다만, 그 시선을 차단할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해결책은 바로 고대 마법에 있었다.
유준이 마력을 끌어 올렸다.
눈에는 보이지 않는 파장이 그의 몸에서 빠져나왔다.
파앙!
그 파장은 아주 멀리까지 퍼져 나갔다.
" 됐다."
방금의 파장으로 마법이나 마법 아이템과 관련된 수작은 다 무효화 했다.
"마법이 진짜 좋군요."
"그치. 근데스킬 등급이 낮으면 이런 것도 못 해. 그냥 기본적인 마법들만 쓸 수 있어."
"그만큼 스킬 등급이 중요하다는거군요."
"음."
"또 스킬 보석은 언제 쓰실 겁니까?"
파라네트가 중요한 말을 했다.
"아, 맞다. 그걸 까먹고 있었네."
심연 왕에게서 상등급의 스킬 보 석을 받았다.
또, 중등급의 스킬 보석도 있고.
도지윤이 약속 장소에 도착하기 전에 스킬 보석을 쓰는게 나을 것 같았다.
"근데 네가 그걸 어떻게 알고 있 냐?"
"저는 항상 주인님의 일거수일투 족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저번에 야영할 때 휴지가 없어서 나뭇 잎...
"소름 돋으니까 그만해."
"예."
유준이 상태창을 열었다.
스킬 보석 상등급의 사용처는 정 해져 있었다.
-고대 마법 (EX+)
여기에 스킬 보석을 사용하는게 가장 효율적이었다.
유준은 곧바로 고대 마법 (EX+)에 스킬 보석(상)을 사용했다.
화아악-!
환한 빛이 터져 나왔다.
[스킬 '고대 마법 (EX+)'이 '고대 마법(EX++) - 보석(상)'이 되었습니다.]
유준이 실망스러움을 감추지 못 했다.
EX+등급의 다음이 있나 했더니.
그냥 '+'가 하나 더 붙고 끝이었다.
그래도 차이는 있을 것이다.
굳이 고대 마법을 사용해 보지 않더라도 알 수 있었다.
"어떻습니까? 변화가 있어요?"
파라네트가 물어 왔다.
"있긴 한데 큰 변화는 아니야."
"상등급의 보석을 쓰신 거 아닙니까?"
"근데 고대 마법의 등급이 애초에 높잖아. 등급이 조금 올라간 것 만으로도 만족해야지."
등급의 변화는 적지만, 실제로 마법의 파괴력이나 효율성은 눈에 띄게 증가했을 터.
했던 말과는 다르게 사실은 큰 변화였다.
스킬 보석이 하나 더 남았다.
중등급의 스킬 보석.
"이건....."
그가 지금 가지고 있는 스킬이라 곤 고대 마법을 제외하면 A등급 정도의 스킬뿐.
중등급의 스킬 보석을 사용하기 엔 좀 아까운 감이 있었다.
'특히 쾌속 전진이랑 프로즌 필 드가 강해져 봤자 큰 의미가 없지.'
보석은 장착 또는 탈착이 안 된다.
더 좋은 스킬이 생겼을 때를 위 해 남겨 뒀다.
때마침, 도지윤에게서 연락이 왔다.
마력이 남아 있던 통신 영상구에 불이 들어온 것이다.
-도착했어요.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파라네 트."
"예."
미리 준비하고 있었던 파라네트 가 마력을 사용했다.
공간 이동.
화악-!
환한 빛무리가 유준과 파라네트
의 몸을 뒤덮었다.
눈 깜짝할 새에 도지윤의 근처에 도착한 유준이 손을 들었다.
도지윤이 황당해했다.
"왜 안 보이나 했는데, 공간 이 동 마법을 익히셨어요?"
"예. 바로 마계로 갈 수 있을까요?"
"마계로 가려는 이유가 뭐예요? 혹시 조율에게서 벗어나려고?"
"아닙니다. 마계에 있는 누군가 한테 꼭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마계에 아는 사람이 있어요?"
"...음."
함께 가기로 했으니까 숨길 필요는 없겠지.
유준이 입을 열었다.
"마녀를 만나려고 합니다."
"마녀? 제가 아는 그 마녀요?"
"예. 그 마녀가 맞을 겁니다."
"마녀와는 절대로 얽히지 말라는
불문율. 혹시 모르고 있어요?"
"알고 있어요."
"그런데 왜 마녀를...
"말했잖습니까.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고."
"이제 놀라기도 지치네요. 그래 서 마녀 한 명 만나려고 마계까지 가는 거예요?"
"예."
"일단 알았어요. 같이 가기로 했으니까 순순히 따를게요."
"지윤 씨는 마계에 가 본 적이 있어요?"
"실제로는 처음이에요."
"마계로 넘어가는 방법. 그건 알 고 계시죠?"
"게임에서 했던 것과 같지 않을 까요?"
"그랬으면 좋겠네요."
마족들이 마계에서 대륙으로 넘어오기 힘들듯이 그 반대도 마찬가 지였다.
대륙에서 마계로 가기 위해선 상당한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또한, 인간은 마계에서는 본래의 힘을 낼 수 없었다.
마계에 퍼진 진득한 암흑 마기 때문이었다.
암흑 마기.
마족이나 마물이 아니고서는 마 계에서 살아가는 것조차 힘들었다.
그래서 더더욱 위험한 것이었다.
대륙의 플레이어는 마계로 넘어 가는 순간 약해지는데, 그곳에 사는 마족들은 본진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일전에 대륙으로 넘어왔던 마족 들은 반쪽짜리라고 봐도 무방했다.
그래서인지 유준도 살짝 긴장했다.
'마계에 있을 때의 마족은 진짜 어마어마하니까. 쉽게 볼 수는 없지.'
마계.
약육강식.
강자생존의 법칙이 그 어느 곳보 다도 제대로 적용되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약하면 도태된다.
도태 정도가 아니다.
힘을 갖추지 못하면 바로 죽음으
로 직결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 마계에 유준과 도지윤이 발을 딛게 되었다.
도지윤이 푹 한숨을 내쉬고 입을 열었다.
"진짜 마계 한번 오기 힘드네요."
"어떻게 보면 다른 차원으로 가는 거니까요. 대가없이 가는게 더 이상한 일이죠."
마계와 대륙의 왕래를 가능하게 만들어 주는 '게이트'.
그 게이트를 통해 유준은 마계로
넘어올 수 있었다.
게이트라곤 해도 막 거창한 게 아니었다.
우연히 마계와 대륙이 연결된 통 로.
그걸 게이트라고 부른다.
"더러운 키퍼들.... 포인트를 명당 1억씩이나 받네요. 게임에서는 훨씬 더 쌌던 거 같은데."
도지윤이 불평했다.
게이트의 사용을 도와주는 마계 의 희귀 종족이 있다.
워낙 수가 적어 멸족 위기에 놓
인 이들이지만, 그들만이 게이트를 온전하게 유지하고 이용할 수 있었다.
유준과 도지윤은 그 게이트 키퍼에게 포인트를 지불한 것이다.
"아, 돈 아까워."
"제가 드린 거로 냈잖습니까."
먼저 부탁한 입장이니 도지윤의 게이트 입장료는 유준이 대신 냈다.
"그래도 아까워요. 마계 한번 오 자고 총 2억을 날릴 줄은 몰랐어요."
"포인트야 또 벌면 되니까요."
"근데 신화 등급 아이템은 도대 체 어떻게 구하신 거예요?"
"시간으로 샀습니다."
"네? 그게 무슨...?"
"한 가지 확실한 건 공짜로 얻은 건 절대 아니에요."
"당연히 그렇겠죠. 아무래도 말 해줄 생각은 없나 보네요."
"예!"
"...뭐야, 이 당당함."
그때 도지윤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자, 잠깐만요. 유준 씨."
그녀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그 방어구. 파괴 신 세트 아니에요?"
역시 신들의 전쟁에서 최상위 랭 커였던 그녀답게 장비를 알아봤다.
유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전부 모으셨네요?"
"네."
"어, 어떻게 모으셨어요?"
약간의 흥분.
그리고 부러움과 시기가 그녀의
눈빛에 담겼다.
그도 그럴 것이, 파괴 신 세트는 400레벨 세트 아이템 중 최고로 치는 것이었다.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죠. 그 걸 다 설명하려면 족히 5년은 걸릴 겁니다."
"...네? 5년요?"
"그게 말로는 설명하기 힘들어요."
"와, 근데 믿기지 않네요. 파괴 신 세트라니. 경매에 내놓았던 아이템들은 유준 씨에겐 그저 잡템에 불과했군요."
"잡... 템까지는 아니죠. 그래 도 명색이 전설 등급인데."
한참을 유준의 장비를 바라보던 도지윤이 입을 열었다.
"참 신기해요."
"뭐가요?"
"신화 등급 아이템은 많으신데 레벨은 낮고. 근데 또 조율 멤버들을 이길 정도로 강하시잖아요. 그 리고 파괴... 아니, 잠시만요."
"또 왜요."
도지윤이유준의 얼굴을 물끄러 미 바라봤다.
"저한테 거짓말하셨죠?"
" 예?"
"파괴 신 세트는 400레벨 때 착 용할 수 있잖아요. 근데 유준 씨가 레벨 352라고 안 했어요?"
"맞습니다."
"그럼, 말이 안 맞잖아요."
"레인보우 스티커가 있잖습니까."
"...설마 레인보우 스티커가 네 개나 있고 그걸 전부 파괴 신 세트에 사용했다는 건가요?"
"그렇다고 볼 수 있죠."
사실은 태초의 플레이어 특전으
로 50레벨 아이템 제한을 무시할 수 있게 된 거지만.
이걸 그녀에게 곧이곧대로 말해 줄 순 없는 노릇이다.
"와, 도대체 어떻게 구하셨지?"
도지윤은 아직도 반신반의하는 얼굴로 유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화제를 돌리기로 했다.
"마녀가 어디에 있을까요?"
"보통 마녀들은 마계 중심지 근 처에 있어요. 마족들이 많이 돌아 다니는 곳에."
" 왜죠?"
유준은 마녀나 마계에 대해 큰 관심이 없다 보니 전혀 모르고 있었다.
"마족들을 자신의 던전에 끌어들 여야 하니까요. 마녀들은 보통 마 계에서 던전을 관리, 운영하거든요."
"혹시 가진 던전의 개수로 마녀 들의 수준을 판가름할 수 있어 요?"
"반은 맞아요. 소유한 던전의 개 수가 많을수록 마녀가 강할 확률이 높죠. 근데 그게 다가 아니에요. 설 령 던전을 한 개만 가지고 있더라
도 그 던전의 난이도나 수준이 높으면 그만큼 마녀도 급이 높다는 거 거든요."
"음. 그럼 하나 더 물어볼게요. 마녀는 마계가 아닌 곳의 던전도 소유하고 관리할 수 있나요?"
"대부분은 불가능해요. 있다면 순 혈 마녀 정도인데 사실 이런 마녀는 정말 희귀해서 만나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이에요. 만나서도 안 되고요. 마녀 중에서도 순혈 마녀는 특히나 위험하다고 소문이 자자해요. 강하기도 하고 워낙 변덕스러워서....
그녀의 말을 듣는 유준의 표정이
복잡 미묘해졌다.
자신이 만났던 마녀 마누엘라는 순혈 마녀였던 거 같다.
마계가 아닌 대륙에만 두 개의 던전을 보유하고 있었으니까.
어쩌면 그 이상의 던전을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르지.
그런 마누엘라의 던전 두 개를 그가 공략해 버렸다.
' 이건...'
적대 관계 수준을 넘어섰다.
불구대천지원수라고 봐도 무방하다.
유준은 이러한 자신의 과거를 도 지윤에게 솔직히 고했다.
얘기를 들은 도지윤이 넋이 나간 얼굴로 유준을 쳐다봤다.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4권 16화
89화
"유준 씨... 도대체 무슨 짓을 저지르고 다닌 거예요?"
도지윤의 말에 유준이 머리를 긁 적였다.
"그런데 그 마녀를 꼭 만나야 합니다."
"순혈 마녀인데 심지어 사이가 틀 어졌다고 했죠? 마계에서 가시밭길은 이미 확정이네요. 아, 아니다."
도지윤이유준의 손을 잡았다.
"우리. 위기를 기회로 살려 봐요."
"어떻게요?"
"마족과 마녀는 사이가 좋지 않아요. 어떻게 보면서로의 이익을 위해서 싸우는 적이라고 볼 수 있죠. 그 상황을 이용하는 거예요."
"마녀는 던전을 운영하는게 다 아닙니까? 마족을 싫어하는 거라고 볼 수는 없지 않아요?"
유준의 말에 도지윤이 고개를 저었다.
"일단 신들의 전쟁에서는 마녀들이 마족을 지독하게 싫어했어요. 특
히 고위 마족을 증오해요. 백작이나 후작, 이런 작위를 지닌 마족들."
"왜 싫어하죠?"
"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수십 번 죽어 가면서 마녀에게서 의뢰를 받은 적이 있는데, 그때 마녀의 의 뢰 내용이 후작 작위를 지닌 마족을 죽여 달라는 거였어요."
"그건 그 마녀만 그랬던 거 아닙니까?"
"아니요. 대체로 마녀들은 마족을 싫어해요. 주제에 맞지 않게 오 만하다고. 마녀들이 던전을 운영하는 이유도 마족들을 쉽게 모아 죽
이기 위함이죠."
"단순히 싫어해서 그런다고요?"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겠죠."
확실히 자신이 마계에는 문외한 인 것이 느껴졌다.
그냥 마계에 와서 던전을 공략하 거나 했을 뿐, 마족과 마녀의 관계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유준이 입을 열었다.
"좋아요. 마녀들이 마족을 싫어 한다고 했을 때 그걸 우리가 어떻 게 이용해야 할까요?"
"마족들이 마녀들의 던전에 계속 발을 들여놓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 하세요?"
도지윤이 질문으로 받았다.
"던전 공략 보상 때문이겠죠?"
"맞아요. 던전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너무나 달콤하니까 혹할 수밖에 없죠. 특히 마족들은 힘이 강해 진다면 뭐든 하는 족속들이에요. 난공불락의 던전이 있다고 소문이 나게 되면 마족들이 그곳으로 몰려 가죠. 죽는게 확실할 정도로 위험 한 던전이라고 하더라도요."
"설마 마족들을 유인하자는 겁니
까? 마녀랑 편을 먹고?"
"와, 바로 아시네요? 마녀와는 최대한 마주치지 않는게 좋지만, 어차피 만나야 한다면 같은 편이 되는게 좋을 거 같아서요."
"마녀가 우리 말을 들어주려고 할까요?"
"물어볼 게 있어서 만나야 한다면서요. 다른 방법이 있나요?"
"좋습니다."
"먼저 마녀부터 찾아야겠네요. 혹시 마녀의 이름을 알고 계시나요?"
"마누엘라. 그게 그 마녀의 이름
입니다."
"아쉽게도 모르는 이름이네요."
"지윤 씨는 순혈 마녀를 만나 본 적 있습니까?"
"전 게임에서도 못 만나 봤어요."
"막막하네요."
유준이 한숨을 내쉬자, 도지윤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잘도 절 데려오셨군요?"
"혼자보단 둘이 좋죠."
"그리고 둘보단 셋 아니겠습니까?"
조용히 있던 파라네트가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넌 뭐야?"
"주인님. 마녀를 찾는 건 저한테 맡겨 주십시오."
"너한테?"
"마녀의 냄새는 제가 기가 막히 게 잘 맡습니다."
"뭔가 변태 같아...
도지윤이 중얼거렸지만,
파라네트는 못 들은 척 말을 이 어 나갔다.
"하여튼 이 일에는 제가 적임자 라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너 마녀 본 적 있어?"
"제가 연금술사였던 시절...
과거를 회상하는 듯 파라네트가 먼 하늘을 응시했다.
해골 주제에 그 모습이 왠지 모르게 아련하게 느껴졌다.
"연금술 재료를 모으기 위해 마 계에 왔던 적이 있습니다. 당시에 무력이 뛰어나지 않았던 저로선 목 숨을 건 도박이었죠. 절벽을 넘고 바다를 건너... 하늘까지 아니, 사실 마계에 온 건 우연이 몇 번
겹쳐서 가능했었습니다. 재료를 구 하러 왔다는 건 거짓말이에요."
"왜 굳이 거짓말을...?"
도지윤이 황당해하며 묻자,
"재료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 고 마계로 가는 연금술사. 뭔가 있 어 보이잖습니까. ㅎㅎ."
파라네트가 실실 쪼개며 그리 말 하는게 아닌가.
도지윤이 정색했다.
"유준 씨. 유준 씨 소환수 정신 괜찮아요? 좀 이상한 거 같은데."
"원래 저런 놈입니다. 넓은 아량
으로 이해해 주세요."
유준이 파라네트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나저나 그 낮은 레벨에 마계에 온 건 진짜 자살행위인데?"
"맞습니다. 마계에 있는 소형 마 물들조차 저보다 강했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완전히 최약체였어요."
"그런데도 용케 안 죽었구나."
"죽을 고비를 수차례 넘기고.... 천운이 따라 주었죠. 그러다 저는 그분... 이 아니라 마녀를 만났습니다."
"...그분이라고?"
"이제는 남이죠. 제 진정한 주인은 주인님뿐입니다. 어찌 됐든 그 마녀는 제가 마물에게 잡아먹힐 뻔 한 것을 구해 줬습니다."
"마녀가 널 구해 줬어? 왜?"
"예. 그녀는 저를 구해 주고는 던전 안에 있는 큰 저택에 머물게 했습니다. 아무래도 잡일을 대신해 줄 종이 필요했었나 봅니다. 그때 부터 저는 몇 년 동안이나 마녀의 시종 노릇을 했습니다."
"잠깐. 너 실제로 있었던 일 말 하는 거 맞지?"
"예. 처음 했던 말을 제외하면
제 말에 한 치의 거짓도 없습니다. 믿어 주십시오/
레벨 100도 안 되는 연금술사치 고는 꽤 파란만장한 일대기다.
"일단계속 얘기해 봐."
"네? 이게 끝인데요?"
"뭐? 네가 마녀 밑에서 일한 거 랑 마녀를 잘 찾는 거랑 뭔 상관인데?"
"감이죠."
"아까 냄새 뭐시기 했던 건 뭐야?"
"그건 비유적으로 표현한 겁니다."
"그러니까 너는 감으로 마녀를 찾을 수 있다고? 이 넓은 마계에 서?"
"예. 왠지 그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흐음."
파라네트가 이렇게 확신에 차서 말하는 건 드문 일이었다.
유준이 곰곰이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방법도 없으니. 네가 한번 찾아봐 그럼."
"저번에 봤던 그 마녀를 찾으면 되는 거 아닙니까?"
"맞아."
생각해 보니 파라네트도 마누엘 라를 목격한 적이 있었다.
비록 그게 실체가 아니었기는 해 도 아예 허상인 것은 아니다.
"그 마녀의 마력을 추적하면 되겠군요."
"그게 가능해?"
"해 봐야 알 거 같습니다."
"일단 나도 나름대로 찾아볼 테니까. 느낌이 오면 말해."
"예."
유준은 고대 마법을 사용하기로 했다.
고대 마법에 포함되어있는 마법 의 수는 셀 수없이 많았다.
그중에는 탐색 종류의 마법도 여럿 있었다.
유준은 탐색 마법을 활용해서 마 녀를 찾을 생각이었다.
그가 마력을 퍼뜨렸다.
얇은 실로 된 마력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마계에 서식하는 소형 마물들에게 그의 마력을 심었다.
그때 도지윤이 말을 걸었다.
"유준 씨. 마법도 써요?"
"예."
"종족 대항전 때는 주로 검만 사용하시지 않았나요?"
"그때는 마법 스킬이 없었습니다."
당시에 스킬이라고 할 만한 건 프로즌 필드 정도만 있었지.
고대 마법을 얻은 건 비교적 최 근 일이었다.
"제가 탐색 마법 쓰려고 했는데..."
"쓰세요. 한 명보다는 두 명이 낫겠죠."
"그러네요."
유준이 고개를 위로 들었다.
잿빛의 하늘.
마계에는 태양이 없으며, 구름도 없었다.
지구나 무한의 탑 대륙과는 판이 한풍경.
숨을 쉬는 것도 마냥 편하진 않았다.
끈적끈적한 무언가가 폐에 달라
붙는 듯했다.
시시각각 묘하게 불길했다.
마계라는 곳 자체가 자신을 환영 하지 않는 것 같았다.
"확실히 오래 있어서 좋은 곳은 아니네요."
"아,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유준의 말에 도지윤이 공감했다.
게임에서는 그냥 능력치 감소 페 널티를 부여할 뿐.
이렇게 정신적으로지치게 하지는 않았다.
유준은 황무지 한복판에 서서 탐
색 마법을 수시로 사용했다.
그렇게 한 시간이 지났을 즈음.
성과가 있었다.
마녀는 아니지만, 수십 명의 마 족 행렬을 발견한 것이다.
마계는 워낙 방대하다 보니, 마 족을 마주하는게 그리 쉽지는 않았다.
"어쩔까요?"
"죽이죠."
"마차로 움직이는 걸 보면 귀족 작위를 가진 마족이 있는 거 같은데요? 유준 씨. 그냥 무시하면 안 될
까요? 게다가 괜히 마족들을습격해서 우리의 존재를 마계에 알리면 마 녀를 찾는 작업에도 영향이...
"괜찮습니다."
유준이 말했다.
"상대가 마왕이 아닌 이상에 우 리가 겁낼 이유는 없습니다."
마족은 경험치를 상당히 많이 준다.
심지어 대륙이 아닌 마계에서는 그 경험치 증가 폭이 더 커진다.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도지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여기서 기다려요. 혼자 다녀오겠습니다. 파라네트."
"예."
"좌표 불러 줄 테니 공간 이동 부탁해."
"알겠습니다!"
그때 도지윤이 껴들었다.
"저, 저도 그냥 같이 갈게요. 혼 자 있는게 더 불안해서요."
"그러시죠, 그럼."
공간 이동을 사용한 후, 유준은 근처 바위에 몸을 숨겼다.
어딘가로 향하는 마족들의 행렬 이 보였다.
주위를 수시로 경계하는 모습.
아무래도 마계는 길을 지나다습 격당하는 일이 많다 보니 경계가 삼엄할 수밖에 없었다.
"저기에 상급 마족도 몇 끼어 있는 거 같은데요. 저 정도면 최소 자작 이상의 마족일 거예요."
도지윤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유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작이면 레벨이 어느 정도였죠?"
"최소 480일 거예요. 이게 최소 라는 거고 적의 레벨이 대충 500레 벨 이상이라는 걸 상정하고 움직이 셔야 해요."
"그럼 신들의 전쟁에서 유저들은 마족을 어떻게 잡았습니까?"
"마계에 와서 사냥하고 다닌 건 유준 씨밖에 없을걸요? 나머지 유저들은 다 몰래몰래 숨어다녔어요. 애초에 마계에 왔던 유저가 몇 없었고요."
"그중 한 명이 도지윤 씨 아니에요?"
"제가 특이 케이스였죠. 여기라
면 신화 등급 이상의 아이템도 있 지 않을까 하고 계속 파고들었거든요. 소모성 아이템은 핑계였죠."
유준의 얼굴이 잠깐 굳었다.
도지윤도 알고 있나?
"신화 등급 이상의 아이템? 그런 게 있어요?"
"아뇨. 확실한 건 아니에요. 저도 마계에 있다가 우연히 들었거든요. 신화 등급이 끝이 아니라는 것 정 도로."
"그거 때문에 계속 마계와 대륙을 왔다 갔다 한 겁니까?"
"네. 솔직히 말해서 과금으로는
유준 씨를 절대 못 이기잖아요."
"...음."
"그래서 궁금한 건데, 유준 씨는 특전으로 뭘 받았어요? 저만 해도..."
"지윤 씨. 이제 슬슬 준비해야 할 거 같아요."
유준이 도지윤의 말을 끊었다.
자신의 특전을 알리고 싶지는 않았다.
왜냐.
너무 사기적이었으니까.
말해서 좋을 것이 없었다.
"어차피 전 가만히 있으라면서요."
"네. 아, 그리고 우리 파티를 안 맺었네요."
유준이 파티 신청을 걸었고 도지 윤이 받았다.
파티 창을 확인한 도지윤이 눈을 크게 떴다.
"어, 진짜 352레벨...? 진짜였 네요?"
"굳이 레벨을 왜 낮게 말하겠습니까? 거짓말아니라니까."
유준이 마력을 끌어 올렸다.
요즘 검을 잘 안 쓰게 된다.
마법의 편리함 때문이었다.
그 편리함을 잊지 못한 유준은 이번에도 고대 마법을 사용할 생각이었다.
'적은 우리의 존재를 모르고 있다.'
마족들은 꽤 먼 거리에 있었다.
'제대로 된 마법 한번 써 볼까.'
시간적 여유는 있었다.
유준이 마력의 배열을 역으로 돌렸다.
땅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단순히 마력의 발출과 마력 배열 의 역 배치만으로도 주변 환경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잿빛의 하늘이 붉게 물들었다.
엄청난 양의 마력이유준의 몸에 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마족들이 이변을 눈치챘다.
그 순간, 하늘에서 거대한 운석 하나가 빠른 속도로 추락했다.
메테오.
운석 마법이 발현되었다.
파괴력 강한 마법으로 치면 손꼽을 정도의 마법.
원래 메테오는 스킬로 따로 존재 하는 마법이었지만,
고대 마법의 힘을 빌리면 메테오 마법을 쓰는 것도 가능했다.
심지어 여러 아이템과 칭호 효과 로 마법의 효과가 증폭된 상황.
현재 추락하는 운석의 크기는 여 타 메테오 마법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콰콰콰콰쾅! 콰콰콰쾅!
거대한 운석이 지면과 충돌했다.
정확히 마족 행렬이 지나가고 있던 경로였다.
화르륵!
대기와 지면이 크게 진동하고 운 석이 떨어진 일대는 불바다가 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불길이 더 거세 졌다.
보기만 해도 절로 아연해지는 광 경에 도지윤이 입을 떡 벌렸다.
"마계 전체를 적으로 돌릴 생각이에요?"
"아니요."
"근데 왜 저렇게까지...!"
"저도 제 메테오가 저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요."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4권 17화
90 화
유준은 본인이 착용한 아이템의 효과를 간과하고 있었다.
단순하게 무과금즐겜러 캐릭터로 사용했던 메테오 스킬의 위력을 생각하고 사용했는데.
수 배.
아니, 수십 배는 강력한 메테오 가 완성되어버린 것이다.
본래 마계의 풍경과 초토화가 된 땅과 붉은 하늘.
마치 지옥을 연상케 하는 풍경이었다.
불길은 유준과 도지윤이 있는 곳 까지 뻗쳐 왔다.
"이건 진짜 뭐라 할 말이 없네."
도지윤이 순수하게 감탄했다.
저런 위력의 마법을 내는 마법사는 여태 단 한 번도 없었다.
'조율 멤버 여러 명을 상대로 승 리했다고 한 것도 거짓말이나 과장 이 아니었구나.'
운석 마법은 웬만큼 마력이 많지 않은 이상 사용할 수 없었다.
'마력 능력치가 진짜 높나 봐. 아이템이 좋은 건 알고 있었지만.'
압도적인 힘.
그녀 또한 마법에 능통해 불의 여제라고 불리었지만,
눈앞의 남자는 몇 단계 더 높은, 다른 차원에 있다는 걸 여실히 느 꼈다.
그런 그때였다.
운석이 떨어져 초토화가 된 곳에 서 인영 하나가 빠른 속도로 접근 해 왔다.
흑발을 한 장신의 마족이었다.
놈은 한 치의 망설임도없이유준에게 검을 뻗었다.
부지불식간에 다가오긴 했지만, 유준은 이미 대비하고 있던 상태.
두꺼운 실드가 눈앞에 펼쳐졌다.
마족의 검이 실드를 두드렸다.
카가각!
검이 비껴갔다.
실드에 약간의 실금이 그어졌지만, 그게 다였다.
한 번에 뚫지 못한 것이다.
마족이 당황했다.
유준은 재빠르게 검을 뽑아 앞으로 휘둘렀다.
장신의 마족이 황급히 물러나려 했다.
촤악!
검이 마족의 가슴을 베고 지나갔다.
살짝.
아주 살짝 베인 것 같지만, 아니었다.
마족의 가슴에서 피 분수가 터져 나왔다.
마족이 털썩 쓰러졌다.
도지윤이유준을 봤다.
"왜 그렇게 봅니까?"
"자작 작위의 마족이에요."
"그렇군요."
"이제 마계의 한 자작가와 대대 적인 추격전을 벌이겠네요. 그뿐만 아니라 그 가문과 관련된 모든 마 족이 나설 수도 있어요."
"마녀의 눈에 띄기 한결 수월해 진 거 아닙니까?"
"틀린 말은 아닌데... 위험하죠,
아무래도."
사실 자작 작위를 지닌 마족을 죽인 것보다도,
어마어마하게 큰 운석을 떨어뜨 린 것이 더 눈에 띄었을 것이다.
"어차피 여기서 평생 살 것도 아니잖아요. 인간 입장에서 솔직히 마 족이 적이기도 하고."
그래서 마음껏 날뛰기로 했다.
"어, 레벨이 세 개나 올랐어요."
300레벨부터는 웬만해서는 레벨 이 안 올랐었다.
마법 하나 쓰고 이 정도 성과면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후련한 표정의 유준을 본 도지윤 이 헛웃음을 흘렸다.
"지윤 씨는 레벨 안 올랐어요?"
"저 501레벨이에요. 당연히 안 올 랐죠. 500레벨부터는 그냥 사냥 효 율이 극악이라고 보시면 돼요. 그나 마 레벨을 올릴 방법이 있다면 업적을 달성하는 것 정도?"
"그럼 조율 놈들의 레벨도 500 근처라는 거네요?"
"대부분 500 근처는 아니고 더 높을 거예요. 특히 지규태는...
"지규태는요?"
"600레벨이 넘었다는 소문이 있어요."
유준이 눈을 크게 떴다.
"그게 어떻게 가능하죠?"
"그러니까요."
"헛소문 아닙니까?"
"마냥 헛소문이라고 하기엔 지규 태가 상식을 벗어난 괴물이라서요."
"녀석은 어디 있는데요?"
"그건 모르겠어요."
"으음.…"
600레벨이 넘은 게 사실이라면.
지규태는 대단한 놈.이 맞다.
불과 5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그 레벨을 달성하는 건 쉽지 않다.
목숨이 무한인 게임에서도 500레 벨을 달성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 렸는데.
'뭐, 5년이라는 시간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 심상훈처럼 먼저 무한의 탑에 왔을 수도 있고.'
하여튼 600레벨이 넘는다면 지금으로선 경시할 수 없는 적이었다.
"파라네트."
"예."
"어때? 뭐 좀 알겠어?"
"여기서 오른쪽으로 쭉 가면 될 거 같습니다."
"감이야?"
"예."
"아까 그 마족들이 가던 길인데. 확실해?"
"예."
유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 이동하죠."
"소환수 말만 믿고 이렇게 움직
여도 되는 거예요?"
"마땅한 단서가 없잖습니까. 그 리고 이건 제 느낌인데 우리가 죽 인 마족들은 던전을 공략하러 가는게 아니었나 싶습니다. 만약 그렇 다면 이쪽으로 갔을 때 던전을 발견할 거고, 마녀를 만날 확률 또한 높아지겠죠."
"쉽게 말해서 찍어 보자는 거죠?"
"예."
"좋아요."
마계의 던전은 대륙과는 달리 마 녀들이 직접 관리했다.
그가 찾는 마누엘라가 아니더라도 괜찮았다.
일단 마녀를 찾는게 급선무였다.
유준과 도지윤은 빠른 속도로 이 동했다.
탐색 마법은 이동 중에도 계속 사용했다.
운석으로 인한 여파일까.
근처로 다가오는 기척.
마족들의 움직임이 여러 방향에 서 느껴졌다.
"정확히 우릴 노리고 오는 건 아닌 거 같아요."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무시하고 갈까요?"
"예. 쭉 갑니다. 여차하면 공간 이동 마법을 쓰면 되고요."
타다닥!
파라네트는 도지윤과 유준을 따 르면서도 절대 뒤처지지 않았다.
녀석의 육체 능력치는 호리단의 반지로 인해 경이로운 수준.
능력치만 보면 500레벨이 넘는 도지윤보다도 앞서 있었다.
엄청난 근육질의 거구.
마계의 백작, 후르덴의 눈썹이 꿈틀했다.
"내 영역을 침범한 이가 있군."
곁에 있던 상급 마족이 고개를 숙였다.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슬레이만이 죽었다. 너로는 부
족해."
"마족은 아닌 것이... 인간의 냄 새가 진득하게 풍겨 와. 아무래도 무슨 목적을 가지고 대륙에서 마계 로 넘어온 모양이야."
"제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관심 꺼."
" 예?"
상급 마족이 눈에 띄게 당황했다.
마계에서 다른 이의 영역 침범은 무척 중대한 사건이었다.
하물며 다른 차원에서 온 자라면.
상급 마족은 백작의 결정이 이해 가 가지 않았다.
"놈의 목적지가 불분명해. 확실 한 건 마계에 대해서 잘 아는 놈은 아니라는 거야."
"그렇다면 신속하게 처리를...
"그런데."
후르덴이 상급 마족을 똑바로 바 라봤다.
"강해."
"내가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존재다. 섣불리 나서서 좋을 건 없지."
"그 정도입니까?"
"그래. 클레이만 너도 어느 정도 느꼈을 텐데?"
"하지만 우리 마족은 마법사의 천적이 아닙니까?"
"천적도 천적 나름이지. 어느 정 도 경지에 이른 놈은 상성이란 게 의미가 없어. 방금 마계에 온 놈이 딱 그 수준이야."
"...극의에 다다른 마법사라고요?"
"확실해. 방금 그 운석만 봐도 알 수 있잖나."
"전 못 봤습니다만."
"그래서 네가 아직도 그 모양인 거다."
그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백작 후르덴에 비하면 상급 마족 인 자신은 한참 모자랐으니까.
애초에 백작인 그에게 대놓고 반 박하는 말을 꺼냈다간 목숨이 위태 롭다.
상급 마족이 고개를 푹 숙였다.
주변에 몰려드는 마족들.
유준은 속도를 더 높여 마족들에게서 벗어났다.
사실 마족들은 누군가를 쫓는 것 이 아닌, 운석을 확인하기 위해 온 것이다.
추격이라고 하긴 뭐했다.
"던전이 안 보이네요. 꽤 오랜 시간 걸은 거 같은데."
도지윤이 말했다.
"유준 씨는 탐색 마법에 뭐 잡힌 거 없어요?"
"예. 완전히 허허벌판이네요."
"마계가 원래 그렇죠. 그래도 발 전된 도시를 가면 진짜 확 달라져요."
"그래요?"
"몰랐어요?"
"전 마족들이 많이 모인 곳에는 간 적이 없습니다. 이런 황무지에
서 던전만 찾아다녔거든요."
"...사실 마녀가 있는 곳으로 가려면 도시 근처로 가야 해요. 아 까 말해서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가 도시에 가까워지고 있나요?"
"그럴 거 같아요."
"확실하지는 않은 겁니까?"
"저라고해서 마계의 지리를 다 아는 건 아니니까요. 마계는 대륙 만큼이나 넓어요."
"그래도 마족의 수는 더 적죠?"
"네. 무력이 강한 만큼 인간을
포함한 이종족들만큼 수가 많지는 않죠. 하여튼 해골 머리가 걸린 깃 발 수가 점점 늘어나는 걸 보면 청 신호라고 봐도 돼요."
"저거 디버프 역할을 하죠?"
"아, 해골 깃발요?네. 그 수치가 미미하긴 한데, 저게 광범위하게 적 용돼서 여러 개 겹치면 골치 아파요."
"디버프를 해제할 방법은 역시 저걸 부수는 거밖에 없나요?"
"알고 계시네요. 맞아요. 근데 문 제는 저걸 건드리는 순간, 이 구역을 지배하는 귀족에게 우리 위치가
발각된다는 거예요."
"그거 큰일은 아니네요."
"그죠. 어차피 우리, 아니 유준 씨 소환수한테 공간 이동을 부탁하 면 되니까요."
"심연처럼 공간 이동 마법을 방 해하는 결계도 없지 않아요?"
"아마 그러한 종류의 결계는 귀 족이 머무는 성에만 걸려 있을 거 예요."
"잘됐네요."
"애초에 공간 이동 마법을 경계 할 일이 거의 없어요. 그 마법을 가진 사람이 워낙 드물잖아요. 게
다가 마계가 강자 존인 건 알고 계 시죠? 자기들 무력에 자신이 있으니까 더더욱 무신경한 경향이 있어요."
"그럼 망설이지 않고."
유준이 검을 몇 차례 휘둘러 해 골 깃발을 산산 조각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화염 마법까지 사용해 깔끔하게 없애 버렸다.
화르륵!
"빠르네요."
"바로 움직이죠."
운석 마법으로 소란을 피운 시점
부터 이미 귀족에게 발각되었을 확 률이 높다.
이런 디버프 장치들은 미리 제거 해 두는 편이 좋았다.
그 후로도 몇 번 깃발을 발견했고, 도지윤이 화염 마법을 사용해 없애 버렸다.
"이렇게 활개를 치고 다니는데도 저지하러 오는 마족이 없네요."
"우리 뒤를 몰래 쫓는 마족이 셋 정도 있습니다."
"...네? 어디에?"
"좀 멀어요. 이 정도 거리면 관 측 아이템을 통해서 우리를 지켜보
고 있을 겁니다."
"유준 씨는 어떻게 알았어요? 제 탐색 마법에는 아무것도 안 잡혀요."
"저도 탐색 마법으로 안 거 아닙니다. 아이템 덕분이에요."
"아이템요?"
유준은 방긋 웃기만 했다.
도지윤이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유준은 전설 등급의 소모성 아이템을 몇 개 사용했다.
전설 등급인 만큼 가치 높은 아이템들이지만, 아끼지 않았다.
"다시 가요."
그렇게 반나절 가까이 흘렀다.
계속해서 이어진 지루한 던전 탐 색.
'희연이를 데려올 걸 그랬나.'
던전을 찾는 것에 있어선 그녀를 능가하는 이는 없었다.
적어도 그가 아는 사람 중에는 그러했다.
그래도 마냥 죽으란 법은 없는지 유준 일행은 얼마 지나지 않아 던 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던전이 맞을까요?"
도지윤이 염려했다.
그때 파라네트가 입을 열었다.
"여기가 맞습니다."
"여태까지 가만히 있다가 이제 와서?"
"일전에 만났던 그 마녀의 향기 가 이곳에서 느껴집니다."
"향기?"
"향기도 향기지만, 예감이 좋습니다!"
"어유, 그놈의 감."
"그래도 틀린 적은 거의 없잖습니까?"
"그건 맞지."
"주인님. 저를 믿고 가시죠."
"어차피 들어갈 거였어. 일단 아무 마녀라도 만나서 마누엘라에 대해서 물어봐야 하니까."
유준은 던전에 들어가기 전에 아이템 하나를 꺼냈다.
[던전 독점권]
등급 : 영웅
옵션 : 먼저 발견한 던전을 독점 할 수 있습니다. 효과는 일주일간 지속됩니다.
"어? 그거...
던전 독점권을 알아본 도지윤이 눈을 크게 떴다.
"던전 독점권 아니에요?"
"맞아요."
"그거 어디서 났어요? 가지고 있는 사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아니, 애초에 따로 홈페이지에 서만 팔던...
" 그랬나요?"
"네."
"우연히 구했습니다."
말해주기 싫다는 의미였다. 유준은 뜸들이지 않고 던전 독
점권을 사용했다.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4권 18화
91 화
발견한 던전의 외견은 언뜻 평 범해 보였다.
지하로 향하는 통로가 있고 그 곳을 둘러싸고 있는 암석들.
유준 일행이 그리 넓지 않아 보이는 바위 동굴로 진입했다.
마계의 던전이라서 그런 걸까.
처음 마계에 올 때부터 느꼈던 압박감이 더욱 강해진 것 같았다.
기분 탓이 아니라 실제로 몸을
움직이는데도 제한이 생겼다.
그녀를 힐끗 보자, 도지윤이 쓴 웃음을 지었다.
"그나마 제가 500레벨이 넘어서 이 정도지. 평범한 플레이어가 왔으면 걷는 것도 버거워했을 거예요."
"저도 견딜 만합니다."
"유준 씨는 뭐, 워낙 강하니까 예외로 치고요."
도지윤이 이제는 약간 체념한 듯 이 말했다.
"주인님. 저도 멀쩡합니다."
파라네트의 말에 유준이 피식
웃었다.
"넌 언데드잖아."
"예."
"그럼 너 마계에선 오히려 더 강 해지는 거 아니냐?"
"그건 아닙니다."
"그래?"
"마계의 제약을 안 받는 대신에 더 강해진다는 느낌도 없습니다."
파라네트는 불만인 듯이 말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이점이었다.
만약, 마족들이 대륙에서 아무런 제약없이 활동할 수 있었다면.
그럼 진즉에 대륙은 마족들의 손에 넘어갔을 것이다.
그만큼마.족은 다른 이종족들에 비해 특출나게 강한 종족이었다.
던전의 내부는 역시나 어두웠다.
척. 척.
민첩 능력치가 높아서 앞이 잘 보이긴 하지만, 라이트 마법을 사용해 주위를 밝혔다.
상당히 오래된 던전인 듯했다.
벽 여기저기에 금이 가 있고, 먼
지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앞으로 나아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몬스터가 등장했다.
당연하게도 던전에 서식하는 건 마물이었다.
제각기 다른 외형을 지닌 마물들은 성격이 급했다.
바로 유준 일행을 향해 달려들었다.
도지윤이미리 준비한 화염 마법을 사용했다.
파이어 블래스트.
화염이 파도같이 물결치며 마물
들을 덮쳤다.
화아아악-! 콰앙!
넓은 통로가 화염으로 가득 찼다.
끼오오옥-!
마물들이 괴성을 지르며 화염에 서 빠져나왔다.
도지윤의 전매특허 화염 마법에 도 마물들은 한 마리도 죽지 않았다.
그래서 유준이 나섰다.
그는 마법을 사용하지 않고 검으로 마물들에게 맞서 싸웠다.
서걱! 석!
허공에 선이 하나 그어질 때마다 마물의 목이 달아났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네 마리의 마물을 모두 처치하 자, 레벨이 하나 올랐다.
유준이 입을 열었다.
"게임에서 상대했을 때와는 좀 다른가 보죠?"
"저 지금 꽤 센 편이에요. 그냥 평범한 던전이었으면 방금 그 공격
에 죽었어야 해요. 그렇지 않은 걸 보면 여기 던전의 등급이 좀 높은 가 봐요."
"그럼 이 던전. 순혈 마녀가 주인일 확률도 높아지는 거 아닙니까?"
"그렇겠죠?"
아까 도지윤이 말했던 바에 의하 면 던전의 수준이 높으면 던전을 관리하는 마녀의 수준도 높다.
마물이 강하다는 건 쾌조의 상황이었다.
서걱! 석!
마물 무리가 두어 번 더 등장하고 유준이 손쉽게 처리했다.
"근데 저 궁금한 게 하나 생겼어요."
유준이 말했다.
"궁금한 거요? 뭔데요?"
"여기다 운석 마법 쓰면 어떻게 될까요?"
"...농담하는 거죠?"
"그냥 궁금해서요. 지윤 씨는 안 그래요?"
"아니, 확실히 궁금하기는 해도 그걸 실천하기엔 상황이 좀."
"게임에서는 운석 마법 스킬이 사용 불가능한 지역이라고 메시지 가 떴었거든요. 그런데 현실이 된 지금도 그럴까요?"
"...왜 그래요. 저 진짜로 무서 우니까 그만 해요."
"만약 운석 마법 사용이 된다면 던전에 강제로 갇히게 될 가능성 도 있겠네요."
"진짜 무섭다니까요?"
"물론 안 할 겁니다. 저도 제 목 숨은 소중하니까요."
"휴우. 괜히 심장 쪼그라들었잖 아요."
"의외로 겁이 많으시군요."
"유준 씨는 진짜 할 거 같아서 그래요."
"제 이미지가 도대체 어떻길래."
"철면피에 무대뽀?"
"절 너무 띄워 주시는 거 아닙니까? 아까부터 그랬지만 그런 칭찬. 좀 부담스럽습니다."
"칭찬 아닌데..."
콰아앙!
그때였다.
한차례의 진동.
누렇게 변색된 벽이 심하게 흔들렸다.
"뭐, 뭐예요?"
"마물들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얼마나 되죠?"
"너무 많아서 정확히 셀 수가 없 네요. 대충 어림잡아 백은 넘을 거 같은데."
"여태 서너 마리씩만 나왔잖아요. 왜 갑자기...?"
"글쎄요. 마녀 짓 아닐까요?"
유준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우우웅. 우웅.
그가 방대한 마력을 끄집어냈다.
어차피 열 마리든, 백 마리든, 마법 한 방이면 다 쓸어버릴 수 있다.
오히려 이런 식으로 몰려오면 대 환영이었다.
유준이 방출하는 마력량을 본 도 지윤이 입을 벌렸다.
"대규모 마법을 쓰시는 건가요? 그러다 던전이 먼저 무너지는 거 아니에요?"
"걱정하지 마세요. 규모가 크긴 하겠지만, 무너지진 않을 겁니다."
공간 장악.
이 능력이라면 주변에 영향을 끼 치지 않고 원하는 범위를 특정해서 상대를 공격할 수 있었다.
대신 전과는 다르게 이번에는 그 범위가 상당히 클 것이다.
우우웅.
진동이 갈수록 커졌다.
물밀 듯 밀려오는 마물들.
공간 장악 마법으로 모든 마물들을 가뒀다.
쿠웅! 쿵!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기운.
마물들은 그 기운에 부딪혀 더 접근하지 못했다.
" 우와...
도지윤이 자기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마물들이 한곳에 갇혀 괴성을 내 지르는 장면은 쉽게 구경할 수 있는게 아니었다.
유준의 몸에서 마력이 지속해서 빠져나갔다.
그는 공간 장악의 규모를 조금씩 줄였다.
공간이 작아짐에 따라 마물들이
차지하는 공간도 자연스럽게 좁아 졌다.
"끼야아아악!"
"크아아아!"
마물들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토 해냈다.
서로의 날카로운 발톱에 몸이 갈 가리 찢기기도 했다.
길지 않은 시간이 흐르고.
마물들의 몸은 찰흙처럼 압축되었다.
이때가 되어서야 소리를 내는 마 물이 없어졌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위대한 업적!]
[전설 칭호 '마물 학살자'를 획득 합니다.]
-마물 학살자(전설) - 마계에 있을 때 모든 능력치가 10% 증가합니다.
조건이 붙은 칭호인 만큼, 효과 가 뛰어났다.
'마계에서만 적용되는 건 좀 아 쉽네.'
그래도 전혀 예상하지 않던 상황에서 얻은 업적 보상,
불만은 없었다.
'칭호만 벌써 18개. 미쳤다.'
그가 무한의 탑에 온 것이 불과 몇 달 전이었던 걸 생각하면.
현재 칭호의 개수는 말이 안 되는 것이었다.
'칭호 하나 얻자고 마계를 전전 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그때 당시에 던전을 찾아다녔던 건 경험치를 올리고자 하는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등급 높은 칭호 하나를 더 얻고자 했던 게 컸다.
'훨씬 레벨이 낮은 상태로 오니 확실히 칭호 얻기가 쉬워졌어.'
심지어 500레벨 무과금즐겜러보 다 현재 자신이 더 강한 상황.
전설 등급의 칭호를 얻은 건 어 떻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던전에 서식하는 대부분의 마물
들이 한 번에 말살되었다.
도지윤이 입을 열었다.
"이제 어떻게 나올까요?"
"던전의 끝까지 가면 또 만날 수 있을 겁니다."
유준이 다시 걸음을 옮겼다.
던전의 끝자락에 도달할 때까지 덤벼드는 마물은 없었다.
아무래도 던전 내에 있던 모든 마물이 아까의 진동과 함께 모여들었던 것 같다.
그때였다.
유준의 본능이 경종을 울렸다.
위에서 느껴지는 짜릿한 살기에 소름이 돋았다.
온몸의 털이 쭈뼛쭈뼛 솟아올랐다.
마녀.
그것도 그냥 마녀가 아니다.
순혈 마녀인 마누엘라.
그녀는 이번엔 허상이 아닌 실 체로 유준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도지윤의 몸이 얼어붙었다.
"지켜보기만 해요. 제가 대화 좀 해 볼게요."
유준이 조용히 말했다.
마누엘라는 바퀴벌레를 보는 듯 한 눈으로 유준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 눈빛에 유준이 살짝 움찔했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태연한 표정을 유지했다.
"여긴 또 어떻게 찾아온 거야?"
"너한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어 서."
"인간아, 너 양심이란 게 있니? 초월종이 있는 던전을 공략한 건 그렇다 쳐. 근데 내가 그렇게 애걸복 걸하면서 돌아가 달라고 했는데, 마
력의 원천까지 공략해 버렸지? 그거 때문에 내가 입은 손실이 얼만 줄 알아?!"
마누엘라가 속사포처럼 말을 내 뱉었다.
울분.
마누엘라의 눈가에는 눈물이 살 짝 맺혀 있었다.
그동안 쌓인 게 상당히 많았나.
"누가 널 그렇게 화나게 했어? 말해 줘."
유준이 자상한 미소를 지으며 말 했다.
그의 뻔뻔함에 마누엘라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넌 마계에 제 발로 들어온 이 상, 죽은 목숨이야. 살려 달라고 울 고불고해도 용서는 없어. 마력의 원천을 없애 버린 대가를 치러야지."
"마누엘라. 마력의 원천 덕분에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 진심으로 고맙다."
고대 마법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었던 건.
마력 능력치가 어마어마하게 중
가했기 때문이다.
유준은 허공에 떠 있는 마누엘라에게 고개를 숙였다.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현한 것이다.
마누엘라의 눈썹이 꿈틀 움직였다.
"지금 염장질하려는 거야? 마력 의 원천은 내 소유였다니까? 넌 내 소유물을 완전히 없애 버린 거고! 아니, 도둑질한 거지!"
"그건 진심으로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 미안해."
"...그, 그렇게 사과해도 용서
안 해 준다고 했지!"
"용서를 바라고 하는 사과는 아니야. 그냥 너한테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
마녀들의 성격은 제각각.
대체로 변덕스러워서 상대하기 까다롭다는 인상이 강하지만, 의외 로 온순한 마녀들도 꽤 있었다.
파라네트를 구해 줬던 마녀 또한 그런 성격이 아니었을까.
마누엘라가 어쩔 줄 몰라 했다.
방금까지만 해도 자신의 던전을 세 번이나 침입한 인간을 제 손으로 죽이려고 했건만.
진심으로 잘못을 뉘우치는 모습으로 사과를 전해 오니 당황스러웠다.
'아니야. 인간은 특히 거짓말이 능숙한 종족. 녀석을 믿어선 안 돼.'
마누엘라가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내가 너 때문에 얼마나 손해 봤는지 알아? 던전 두 개가 폐쇄되고 이곳 던전은 초토화가 됐어."
"심지어 이곳은 마족들의 무덤이 라고 불리는 인기 많은 던전이야. 내 사랑스러운 마물들을 다 죽여 놓고 네가 그러면 얼마나 가증스러 운지 알아?"
"네 마음. 다 이흐fl 해. 모든 게 내 잘못이야."
"이, 이...그뿐만이 아니야. 나 한테 바보라고도 했었지?"
" 내가?"
"그래! 내 환상을 지우고 나서 네가 나보고 바보라서 다행이라고. 그런 말 했었잖아! 그게 얼마 나 상처였는지 알아?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인간 애송이한테 그런 말을 듣는 심정을 네가 아냐구!"
"미안하다. 그건 진심이긴 했는데. 나쁜 뜻으로 말한 건 아니었어."
"뭐... 뭐? 진심이었다고?"
"응. 그래도 나쁜 뜻은 진짜 아니야. 바보와 순수는 종이 한 장 차이 인 거 알고 있지? 난 네가 순수하 다고 느꼈어. 그건 인간의 기준으로 봤을 때 대단한 칭찬이야."
말도 안 되는 논리로 설득하려 하다니.
마누엘라가 황당함을 감추지 못 했다.
"너... 내 화를 더 돋우려고 하는 거야? 그런 거지?"
"아냐. 난 진지해. 요즘 같이 척 박한 세상에서 순수하다는게 얼마나 큰 장점인데. 너처럼 순수한 마녀가 있어서 세상이 아직 살만 하다는 걸 느꼈어. 고마워."
"사실은 그냥 해본 말이고. 너 랑 거래를 하러 온 거야."
"방금까지 해괴한 말들만 늘어 놓다가 이제 와서 거래라고? 너
제정신이야?"
"일단 들어봐. 너도 구미가 당 길걸?"
아무 말이나 늘어놓는 것이 효과가 있던 걸까.
마누엘라의 표정이 처음보다는 확실히 누그러들었다.
"그 전에 한 가지 물어봐도 될까? 이런 던전을 운영하는 이유는 마족을 불러들이려는 거지?"
갑작스러운 유준의 질문.
마누엘라는 어이가 없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가 체념한 듯 입을 열었다.
"정확히는 놈들의 개체 수를 줄 이는 거야."
" 왜?"
"지금 마족의 수가 너무 많아. 질서와 균형을 그대로 유.... 아니, 내가 여기까지 말해 줄 수는 없지. 너 왜 근데 말을 돌려?"
"근데 마족을 죽이려고, 던전을 운영하면 더 강한 소수의 마족들이 만들어지는 거 아니야?"
"차라리 그게 나아. 마족들의 수 가 많아져서 나중에 단결하게 되면 답도 없을 거야."
"하여튼 너도 마족을 최대한 많
이 죽이는게 목적이라는 거지?"
"으... 웅? 어, 맞아."
"잘됐다. 너와 내 뜻이 같네."
" 뭐?"
"나도 마족들을 사냥하러 온 거거든. 마계."
"...마족을 사냥하러 왔다?"
"응."
"정말이야?"
"그래. 내 말에는 한 치의 거짓 도 없어."
사실은 거짓말이다.
초월 등급 아이템에 대한 단서를 얻기 위해 온 것이지,
마족이나 마계의 정세 같은 것에는 관심이 일절 없었다.
마누엘라는 유준의 말을 믿는 모 양새였다.
"이유가 뭐야?"
"마족을 죽이려는 이유?"
"응."
"얼마 전 일이야. 마족들이 대륙으로 넘어와서 인간을 포함한 여러 이중죽들을 납치해서 제물로 삼았어. 마왕을 대륙에 소환하겠다는 이
유로. 그 계획은 실패하긴 했지만, 피해받은 이들한텐 없던 일이 되는 건 아니겠지."
" 으응..."
"그들을 대신해서 복수해 주고 싶어. 오지랖이지만,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더라고."
"그래서 마계까지 온 거야? 대가 가 상당할 텐데...
"그런 것쯤은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어."
"...그렇구나."
고분고분한 대답.
유준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결 정타를 날렸다.
"네가 나 때문에 입은 피해가 크 다고 했지? 그거 내가 다 복구할 수 있게 도와줄게."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4권 19화
92화
"도와줘? 어떻게? 던전은 쉽게 복구 못 해. 상당한 자본과 노력 그리고 시간이 필요하단 말이야."
그렇게 말하면서도 살짝 기대하는 표정이다.
마누엘라는 유준이 얼마나 강한 자인지 알고 있었다.
"일단 네가 소유하고 있는 던전은 몇 개야?"
"마계에만 4개가 더 있어."
"던전의 규모는 어때?"
"다 비슷비슷해."
"네 개가 전부 이 정도 수준이라고?"
"흠."
"너 순혈 마녀 맞지?"
"어? 그건 어떻게 알았어? 인간 들은 그런 것까지는 모르던데."
"어디서 들은 게 있어서. 던전을 복구하려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 다고 했지? 그럼 마력의 원천 같은 던전을 만들려면 뭐가 필요해?"
"마력의 원천은 내가 만들고 싶
다고 만들 수 있는게 아니야. 자 연적으로 생겨난 지형을 개조해서 내가 던전으로 만들어낸 거지."
"원래 있던 건 복구할 수 없어?"
"응.... 너 때문에 이미 없어졌으니까."
"미안해."
"뭐, 됐어. 이미 지나간 일이니까. 그런데 날 어떻게 도와줄 거야?"
그녀는 피해를 복구시켜준다는 말에 꽂힌 듯했다.
당연했다.
피해가 크다면 그 피해를 어떻게 든 없던 일로 하고 싶을 테니까.
"내 힘을 이용해. 내가 인간인 것도 마족들의 이목을 끌기에는 도움이 되겠지."
"미끼 역할을 하겠다는 거야?"
"그것도 하고. 던전을 난공불락 의 요새로 만드는 것도 할 거야."
"난공불락? 그건 어떻게?"
"내가 던전에 있는 거지."
"넌 던전의 일에 직접 개입 못 하지?"
"응. 던전의 배치를 바꾸거나 마 물들을 조종하는 것 정도가 다야. 내가 직접 나서서 마족들과 싸울 수는 없어."
"근데 난 가능해."
"네가 강한 건 알겠는데 무적은 아니잖아. 만약 난공불락의 던전이 라고 소문이 크게 퍼지면 온갖 강 자들이 다 찾아올 텐데. 전부 상대 할 수 있겠어?"
"응."
"설령 강자들을 다 이긴다고 하 더라도 던전의 악명이 널리 퍼질수 록 더 많은 수의 마족들이 찾아올
거야. 그럼 뒷감당은 어떡해."
"그때까지 머무르지 뭐."
"...진짜로?"
"응."
마누엘라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런데 인간이 마계의 던전에서 마물 역할을 하는 건 좀 이상하지 않을까?"
"음. 그건 좋은 생각이 있어."
"응?"
"잠시만 기다려."
유준은 꽤 오랜 시간 인벤토리를 뒤적였다.
그러다 아이템 하나를 발견하고 꺼냈다.
[언데드 변신 사탕(이벤트)]
등급 : 無
옵션 : 사탕을 섭취하면 언데드 가 될 수 있습니다. 지속 시간 30 일.
언데드 변신 사탕.
할로윈 2주년 차에 나왔던 이벤 트성 아이템이었다.
이 사탕을 먹으면 언데드 몬스터 로 변신할 수 있었다.
특이한 것은 어떤 언데드 몬스터 로 변할지는 정해져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무작위...는 아니지만.
캐릭터의 능력치, 스킬과 특성에 따라 다른 언데드 몬스터가 되었다.
지금 자신은 마법과 검술 모두 극에 이르렀다고 봐도 무방한 상태.
어떤 언데드 몬스터가 될지는 알 수 없었다.
"그건 뭐야?"
"보면 알 거야."
유준은 곧바로 사탕을 삼켰다.
뜨거운 열기가 몸 안에 가득 퍼 졌다.
그의 몸이 바뀌어 가기 시작했다.
"크흡..."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참을 만했다.
플레이어가 되고 나서 얻은 건 육체적 강함뿐만이 아니다.
정신적으로도 더 견고해졌다.
'평정심 특성 덕분이겠지만.'
변신이 끝이 났다.
유준은 팔을 올려다보았다.
뼈밖에 없는 앙상한 팔.
왠지 모르게 초라해진 느낌. 체 격이 작은 건 아니었다.
키와 골격은 그대로였으니까.
그저 뼈를 제외한 모든 것이 다 사라진 것일 뿐이다.
[일시적으로 리치 로드가 되었습니다!]
[마력 능력치가 300% 증가합니다.]
[육체 능력치가 20% 감소합니다.]
[죽음에서 단 한 번 부활할 수 있습니다.]
유준이 눈을 크게 떴다.
단순히 이벤트 아이템이라고 보 기엔 효과가 너무 좋지 않은가.
비록 외견은 별로인 언데드가 되었다고는 해도 목숨을 하나 더 얻은 것은 컸다.
마력 증가치도 미친 수준이고.
육체 능력치가 감소하는 건, 그 리 아깝지 않았다.
리치가 된 것치고는 크게 떨어진 것이 아니었으니.
"뭐, 뭐예요?"
여태 잠자코 있던 도지윤이 놀라 서 외쳤다.
놀란 것은 비단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언데드 그 자체인 파라네트 또한 입을 딱 벌렸다.
마녀 마누엘라가 입을 열었다.
"어떻게 한 거야?"
"아이템 덕분이야."
"너 리치가 된 거야?"
"응. 근데 영구적인 건 아니고. 일시적인 거야. 일정 시간이 지나 면 원래 모습으로 돌아와."
"그런 아이템이 다 있어? 원리가 어떻게 되는 거지?"
"나야 모르지."
"난 내가 모르는 건 거의 없다고 자부해 왔는데... 신기하다."
그때 도지윤이 다가왔다.
"유준 씨. 이거...
"네. 맞아요. 이벤트 아이템."
"그걸 어떻게 갖고 계신 거예요?"
"우연히 얻었어요."
"...애초에 이벤트 아이템이 존재하는 거였어요? 게임에만 있던 거 아니었나요?"
"저도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니더 라고요."
도지윤이 의구심이 깃든 눈으로 바라봤고 유준은 외면했다.
"어때? 마계 던전에 언데드 몬스
터가 있는 건 이상하지 않지?"
"웅. 리치가 있는 던전도 드물지는 않으니까."
"해결됐네."
"아무런 제약없이 그러고 있을 수 있는 거야?"
"음."
"근데 방어구가 사라졌어."
"겉으로만 안 보이는 거야. 실제 로는 효과 적용되고 있어."
"그게 어떻게 가능한 건데? 인식 저하 마법이 걸려 있는 것도 아니고...
"나도 모른다니까."
"...일단 알았어."
"이제 모험가 아니, 마족을 좀 모집해 볼까?''
"좋아."
마누엘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계에 한차례 돌풍이 불었다.
원래 잦은 힘겨루기로 평온한 나 날이 없었지만, 이번에는 좀 달랐다.
플레타 왕국의 외곽 근처에서 엄 청난 난이도의 던전 한 개가 발견 된 것이다.
일명 리치 로드의 던전.
이 던전이 널리 알려진 것은 불 과 일주일 전이었다.
그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많은 수 의 마족들이 도전했다가 목숨을 잃었고,
그럴 때마다 던전의 명성이 더 멀리까지 퍼지게 되었다.
"여긴가?"
'리치 로드의 던전'에 도전하는 마족들 무리가 또 있었다.
이번엔 무려 백작 작위를 지닌 마족의 원정대였다.
여태 던전에 도전했던 마족들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
백작 '요탄'은 심지어 자신의 친 우인 백작 '오르테가'에게 용병 역 할을 부탁했다.
오르테가 또한 마계의 강자.
유명한 던전에 찾아다니는 것을 워낙 좋아했기에 친구의 요청을 들
어주었다.
"겉으로만 봐서는 별것 없어 보이는 던전인데."
"그러게나 말일세. 이런 던전은 보통 널리고 널렸지."
오르테가의 말에 요탄이 동감했다.
요탄이 다시 입을 열었다.
"자네. 이 던전에 대한 정보는 숙지해 뒀나?"
"대충은. 리치 로드가 던전의 주인이라고 들었네. 그리고 좋은 아이템으로 무장한 강력한 데스 나이 트가 있다지?"
"화염 마법을 주로 쓰는 리치도 있다네."
"뭐라? 그건 못 들었네만. 리치 가 둘이라는 건가?"
요탄이 고개를 끄덕였다.
"리치가 둘인 건 맞네. 하지만 리치 로드와 리치일세. 둘을 같은 선상에 놓을 수는 없지."
"다른 언데드 몬스터는 없나?"
"그게 참 특이한 점일세. 살아서 나온 그 누구도 그 셋을 제외한 몬 스터를 본 적이 없다고 하네."
"엘리트 던전이군, 그럼."
"그런 셈이지."
엘리트 던전.
정식 명칭은 아니다.
일반 몬스터와는 궤를 달리하는 엘리트 몬스터들이 소수로 등장하는 던전이 종종 있는데,
그러한 던전을 마족들은 엘리트 던전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엘리트 던전은 공략 난이 도가 높은 만큼 특히나 보상이 좋았다.
"엘리트 던전이라. 느낌이 좋은데?"
"이런 던전을 발견하는게 쉬운 일은 아니지. 아직까지 공략되지 않은 것이 우리에겐 큰 행운이라고 볼 수 있네."
"자네가 발 빠르게 움직인 덕분 이지."
"크하하, 입에 발린 소리를 또 하는군."
오르테가와 요탄.
그 둘은 벌써 던전을 클리어라도 한 것처럼 들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둘은 던전 공략에 한 번도 실패해 본 적이 없었다.
괜히 백작이 아니었다.
마계에서 귀족 작위의 등급은 곧 무력을 상징한다.
백작 작위를 지닌 두 마족은 어 떻게 보면 마계에서 손꼽히는 강자 라고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공략에 도전하는 건 두 백작만 있는게 아니었다.
오르테가와 요탄의 수하 마족들.
그들 대부분이 상급 마족 이상이었다.
이 정도 전력으로 공략할 수 없는 곳은 거의 없다.
그렇기에 원정대는 큰 걱정없이 던전 안으로 발을 들여놓을 수 있었다.
"예상했던 것보다도 더 조용하네."
"마물이 거의 없다잖아. 언데드 셋이 끝이라는데."
"그럼 너무 쉬운 거 아닌가?"
"그렇다기엔 적지 않은 전사들이 이곳에서 싸늘한 시체가 되었지. 방심해서는 안 돼."
"이 규모로 원정을 나선 거 자체 가 이례적인 일이니까, 확실히 위 험하긴 하겠다."
마족들은 적당한 긴장감을 유지 한 채로 앞으로 진격했다.
던전의 내부는 고요했다.
그 흔한 마물의 울음소리조차 들 리지 않을 정도.
원정대가 던전에 발을 들인 지 10분 정도 지났을 때였다.
"끄아아악-!"
"사, 살려 줘!"
가까운 곳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던전이 동굴의 형태를 하고 있기 때문인지 비명이 더 처절하게 울려 퍼졌다.
"무슨 소리지?"
"앞서 출발했던 마족들인가 보군."
"꽤 강한 자들 아니었나? 아무래 도 그들은 실패한 모양이야."
원정대는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여기는 최근 화제가 된 매우 유 명한 던전이었다.
먼저 온 손님이 있는 것이 이상 한 일은 아니었다.
마족들이 던전을 공략하다가 죽는 일이 한두 번 있는 것도 아니고.
마족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반응이 많았다.
허나 두 백작의 반응은 달랐다. 오르테가의 얼굴이 굳었다.
"이 마력..."
"그래. 보통 리치 로드가 아닐세." 이곳까지 느껴지는 마력의 파장. 그것의 세기가 상당했다.
닿지 않았음에도 살이 아릴 정 도.
요탄과 오르테가가 각자 무기를 꺼냈다.
요탄은 거대한 도를, 오르테가는
잿빛의 건틀렛을.
그 둘이 먼저 앞으로 달려나갔다.
앞에는 마족들의 시체가 산을 이 루고 있었다.
이곳 근처에서 죽은 마족들의 숫 자만 얼추 수백, 수천은 넘는 듯했다.
"우리 예상보다 더한 놈인 듯하네."
"처음부터 봐주지 말고 싸우게."
"봐줄 상대가 따로 있지."
피식 웃은 요탄이 도에 마력을 담았다.
우우웅. 우웅-.
막대한 마력이 담기자 도가 크게 진동했다.
"잠깐만. 일단 부하 마족들로 놈의 실력을 확인해 보는 것이 어떤가?"
"그렇게 신중할 필요가 있나? 백 작 둘이 나서는데...
"그래도 알고 상대하는 것이 더 편할 거 아닌가. 만에 하나라도 리치 로드가 까다로운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 상황이 무척 귀찮아질 걸세."
"크흠. 알겠네."
콰콰쾅! 콰쾅!
그때였다.
리치 로드가 쓴 마법에 먼저 도 착해 싸우고 있던 마족들이 휩쓸려 나갔다.
강력한 뇌전 마법이었다.
멀리서 지켜보는 백작 둘의 모골 이 송연해질 정도의 위력.
뇌전 마법 수백 개가 동시에 터 지면 이런 느낌일까.
둘이 동시에 서로의 얼굴을 바라 봤다.
"이거..."
"위험한 녀석이군."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4권 20화
93화
"앞에 있는 마족들이 약한 건 아니겠지?"
"그건 아닐세. 저들도 최소 중급 마족은 되어 보이네. 리치 로드의 힘이 장난이 아니군."
"어쩔 텐가?"
"자네의 말대로 수하들로 리치 로드의 힘을 정확히 파악하는게 좋겠네."
"마력을 적당히 소모시켜 놓기에
도 그게 좋겠군."
오르테가와 요탄이 뒤로 살짝 물 러났다.
그 순간 뒤에서 마족 원정대가 나타났다.
요탄이제1부대에 돌격 명령을 내렸다.
제1부대에 속한 마족들이 용감하게 진격했다.
"와아아악!"
"리치 로드에게 영원한 안식을!"
"업적 보상은 내 거야!"
리치 로드는 달려드는 그들을 보
며 입에서 헛바람을 내뿜었다.
마치 무모한 자들을 비웃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우웅. 우우웅.
리치 로드에게서 방대한 마력이 뿜어져 나왔다.
단순히 마력의 발산만으로 마족 들의 몸이 굳었다.
그리고 그 순간.
콰콰콰쾅! 콰콰쾅!
이번에도 눈부신 뇌전이 던전 안을 가득 채웠다.
굉음과 폭음.
오르테가와 요탄이 침음을 삼켰다.
"뇌전 마법을 주로 쓰는 리치라, 특이하군."
"언데드를 소환하지는 않는 것 같네만."
"왜지? 리치라면 최소 수천의 언 데드 군단을 거느릴 수 있을 터인데. 여기 던전이 입구처럼 협소한 것도 아니고 말일세."
"직접 확인해 보면 알겠지."
수십 명의 마족이 리치 로드에게 희생되었다.
"이 정도면 능력을 측정하고 자 시고가 의미가 없게 되었군. 우리 가 나서야 할 것 같네."
"그래."
요탄의 말에 오르테가가 동의하 며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근접 전투를 주로 하는 육체형 마족이었다.
그리고 백작쯤 되면 마법 저항력 이 웬만큼 높았다.
리치와 같이 근접 전투가 약한 존재에겐 천적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기에 둘은 승리를 장담했다.
오르테가와 요탄이 순식간에 리 치 로드의 앞까지 도달했다.
리치 로드가 실드를 만들어내는 동시에 뇌전 공격을 해 왔다.
" 뻔해!"
오르테가의 신형이 사라졌다.
요탄은 도를 세워 리치의 뇌전 공격을 막았다.
오르테가의 건틀렛이 리치 로드 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얇게 퍼져 있던 실드에 건틀렛이 세게 맞부딪쳤다.
콰직!
실드를 뚫지 못하고 튕겨 나간 것이다.
오르테가가 충격을 받은 듯 움직 임을 멈췄다.
본인의 공격이 막힐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
"어찌 기본 실드로...
암흑 마기까지 듬뿍 담아서 공격 했었다.
그런데 저 얇은 막 하나에 막히 다니?
리치 로드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리치 로드의 몸에서 마력이 대폭 흘러나왔다.
압도적인 기세.
오르테가가 서 있던 공간이 뒤틀 리기 시작했다.
"...설마."
불길함을 느낀 오르테가는 블링 크 스킬을 사용했다.
팍!
방금 그가 서 있던 공간이 기괴 한 모양으로 일그러졌다.
"오르테가! 더 물러나게!"
요탄이 크게 외쳤다.
오르테가가 안도할 새도없이 공간 장악의 범위가 넓혀진 것이다.
오르테가가 재빨리 움직였지만, 한발 늦었다.
몸이 전부 빠져나오지 못한 것이다.
그의 팔 한쪽이 우그러졌다.
"으... 윽!"
리치 로드는 틈을 주지 않았다.
공간 장악의 범위가 확 늘어났다.
타닥!
빠르게 달려온 요탄이 오르테가
의 몸을 붙잡고 몸을 날렸다.
백작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번쩍 하는 순간, 멀리까지 거리를 벌렸다.
" 괜찮은가?"
"포션을 부었어. 괜찮네."
포션은 마족에게도 효과가 있다.
오히려 재생력이 뛰어난 마족들은 인간보다도 포션의 효과를 더 많이 받았다.
그렇기에 오르테가는 금방 팔을 원상 복구시킬 수 있었다.
"아무래도 우리 둘이 한 번에 실
드를 뚫어야 할 것 같네."
"그 정도인가?"
"암흑 마기를 쓰고도 실드가 뚫 리지 않았어. 내가 있는 힘껏쳤는데도 말일세."
오르테가가 분한 듯 입술을 질끈 물었다.
"자존심이 상하는군."
"어쩔 수 없네. 저 리치 로드의 힘이 우리보다 앞서 있으니."
단순 힘 싸움에서 밀렸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컸다.
혼자선 안 된다.
백작 둘이 합을 맞춰서 리치 로 드를 상대해야만 했다.
오르테가와 요탄이 동시에 움직였다.
백작 둘이 순식간에 실드 앞에 도달했다.
이번엔 마음을 단단히 먹고 실드 의 한곳을 노렸다.
거대한 도와 건틀렛이 실드를 타 격했다.
콰아앙! 쾅! 콰직!
실드가 깨졌다.
오르테가와 요탄은 기뻐할 틈도
없이 그 안으로 파고들었다.
저 리치 로드를 처치하기 위해선 잠깐의 틈도 내주어선 안 된다고 판단했다.
"지금!"
리치 로드가 무방비하게서 있는 것이 보였다.
요탄은 거대한 도의 리치를 활용 했다.
쇄도하는 즉시 도를 앞으로 쭉 뻗은 것이다.
리치 로드는 그때까지만 해도 아무런 마법을 쓰지 않은 상태.
'됐다!'
요탄은 리치 로드를 적어도 무력 화 상태로 만들 것이라고 확신했다.
후웅!
도검의 끝이 리치 로드에게 닿으 려는 그 순간.
카앙!
어느새 나타난 휘황찬란한 검이 도검의 중간 부분을쳤다.
도가 허공으로 날아가지는 않았지만, 요탄의 팔이 위로 들리게 되었다.
냉병기를 쓰는 근접 전투에서 가
장 위험한 자세가 바로 이 상태다.
요탄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움직임은 리치 로드 쪽이 더 빨랐다.
리치 로드가 검을 요탄의 왼쪽 가슴을 향해 뻗었다.
푹!
요탄이 황급히 상반신을 틀어 즉 사는 면했다.
그의 겨드랑이 쪽에 리치 로드의 검이 파고들었다.
그사이에 오르테가가 리치 로드 의 몸을 후려쳤다.
콰앙!
엄청난 굉음과 함께 죽음의 기 사, 데스 나이트의 몸이 튕겨 나갔다.
'잠깐, 리치 로드가 아니잖아?'
묵직한 타격감.
체격부터가 차원이 달랐다.
오르테가가 당황한 표정으로 주 위를 둘러봤다.
멀쩡히 서 있는 리치 로드와 벽에 처박혀 있는데스 나이트.
언데드가 두 명이었다.
'...맞아. 언데드는 총 세 놈이었지.'
리치 로드가 워낙 강해 잠시 잊 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서 나타난 거지?'
분명 방금까지만 해도 언데드라고는 리치 로드만이 있었다.
'데스 나이트 따위에게 방해받다 니...
오르테가가 뒤로 훌쩍 물러났다.
그가 있던 공간이 뒤틀리기 시작 했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
그 순간.
"백작... 예상했던 것보다 별것 없군."
리치 로드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기괴하면서도 음침한 목소리였다.
실로 리치다운 음성이라고 해야 할까.
요탄이미간을 찌푸렸다.
"별것 없다고? 우리가?"
"그래. 상대해 보니 확실히 알겠 더군."
깔보는 듯한 말이었지만, 두 백
작은 마땅히 반박할 말을 찾지 못 했다.
실제로 짧게 벌인 전투에서 어느 쪽이 일방적으로 밀렸는지는 확연 했으니까.
"빨리 끝내도록 하지. 너희 말고 도 죽여야 할 놈들이 많다."
그게 두 백작이 마지막으로 들은 리치 로드의 음성이었다.
리치 로드가 지금까지와는 차원 이 다른 양의 마력을 내뿜었다.
공간 장악 마법.
콰직! 콰직!
요탄과 오르테가는 공간 장악을 인지하지도 못한 채 죽음을 맞이했다.
잠깐의 정적.
"뭐야. 백작님이 죽은 거야?"
"말... 도 안 돼."
마계에서 상대할 자가 몇 없다는 백작 작위의 마족 둘을 가뿐하게 처리한 리치 로드.
이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상황을
지켜보던 마족들은 입을 다물지 못 했다.
"도, 도망쳐야 해. 가망이 없어."
"백작님이 당하다니."
"이곳 도대체 정체가 뭐야? 백작 둘이 나서도 안 된다고?"
마족들은 대체로 호전적이지만, 공략이 아예 불가능한 상황에 놓이 면, 후퇴를 결심하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때였다.
상황을 파악한 마족들이 등을 돌 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리치 로드, 즉 유준은 그런 그들
을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화르륵!
이번엔 화염 마법이었다.
뜨거운 열기가 던전 안을 가득 채웠다.
"크아아악!"
불로 온몸이 지져지는 고통.
몰려나가던 마족들의 몸이 불타 올랐다.
마족마다 마법 저항력은 다 다르지만, 그 누구도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일단 던전에 있는 모든 침입자를 제거했다.
벽 구석에 처박혀 있던 파라네트 가 다가왔다.
"주인님. 이번에는 꽤 강한 놈들이었습다요. 최강의 데스 나이트인 제가 이 정도로 밀렸으니 말입니다."
"아무도 널 최강이라고 인정 안 했을 텐데."
"곧 그렇게 될 거잖습니까. 흐흐."
파라네트가 자만에 빠진 얼굴로 말했다.
그러나 마냥 부정할 수도 없는 사실이긴 했다.
파라네트가 착용한 호리단의 반 지는 그만큼 사기적인 옵션을 자랑 했다.
그 반지를 끼고 있는 이상, 파라네트보다 강한 데스 나이트는 없을 것이다.
"일단 백작까지는 왔는데. 그 이 상도 올까요?"
파라네트의 말에 유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대 후작까지는 올 거야."
"공작은요?"
"공작은 거의 마왕과 비견될 만 한 놈들이야. 일개 던전에 직접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을걸."
"예? 공작이 그 정도까지...?"
"마왕을 제외하면 가장 강한 게 놈들이야."
공작의 수는 정확히 모른다.
그가 마계를 정확히 조사한 것은 아니니까.
최소 둘 이상은 된다는 것 정도
만 알고 있었다.
공작이 상대라면 지금의 그라도 승리할 거라는 장담은 못 했다.
마계에서의 공작은 그만큼 강했다.
"그래도 용케 끊겼네."
요 며칠간 매우 바쁘게 지내 왔다.
마족을 상대하느라 대부분 시간을 할애했다.
처음에는 하급, 중급 마족들이 몰려들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강한 마족들이
드문드문 나타났다.
그러다 정점을 찍은 게 바로 오 늘.
백작 작위를 지닌 두 마족이 원 정대를 이끌고 던전을 찾아온 것이다.
그러나 유준의 힘은 그들의 수준을 훨씬 웃돌고 있었다.
'지금 리치 로드 상태면 공작까지도 어떻게 될 거 같은데.'
백작 둘을 죽이고 든 생각이었다.
파라네트가 마족들의 아이템을 하나둘 벗겨 냈다.
이러한 전리품을 수거하는 것도 던전 관리에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그리고 때마침 마녀 마누엘라가 나타났다.
무슨 기분 좋은 일이라도 있는지 짧은 다리를 동동거리며 걸어왔다.
"이것들은 다 뭐야?"
"방금 죽인 놈들."
"저 정도 크기의 뿔이면 백작 아니야? 심지어 둘?"
"소문을 경시하지 않고 제대로 준비하고 온 모양이야."
"나름 무조건 성공할 것이라 여 기고 왔을 거 아니야. 불쌍하게 됐네."
마녀 마누엘라가 배시시 웃었다.
"뭐 기분 좋은 일 있어?"
유준이 물었다.
"아까 던전 등급이 상승했다는 메시지를 받았어."
"여기?"
"응."
"그게 가능해? 던전 소속된 구성 원이 거의 없잖아?"
실제로 유준과 파라네트 그리고
도지윤은 마녀 마누엘라의 던전에 소속되어 있지 않았다.
그냥 던전에 머무르고 있는 것뿐이다.
"맞아. 네가 마물을 전부 죽여 버리는 바람에 구성원은 적지. 이제 막 새로운 마물을 구해 온 정도니까."
"근데 등급이 올랐다며?"
"던전의 등급에는 죽은 마족들의 숫자와 던전의 유명도가 관련이 있어. 최근에 수천은 넘는 마족들을 죽였잖아? 그러니까 당연히 마계 내에 소문이 널리 퍼졌을 테고."
"아, 등급을 상승시키는데에도 여러 요소가 있구나?"
"응! 그리고 암매상들한테 마족 들의 시체와 아이템을 팔아서 돈도 상당히 모였어. 이걸로 마물을 수 십 마리는 더 만들 수 있을 거야."
"수십 마리? 그거밖에 안 돼?"
유준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내가 만들 마물은 최상급이거 든. 난 그 이하는 취급 안 해."
"...알았다."
확실히 순혈 마녀라 그런지 자신 감이 넘쳤다.
그럴 능력을 지녔기도 했고.
마누엘라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짓 고 있었다.
유준은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했다.
마녀에게 초월 등급 아이템을 물 어볼 기회.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4권 21화
94 화
"마누엘라. 혹시 초월 아이템에 대해서 아는 거 있어?"
유준이 넌지시 물어봤다.
그답지 않게 조심스러운 질문이었다.
"응. 아는데."
마누엘라가 대수롭지 않게 대답 했다.
유준이 눈을 크게 떴다.
"알아? 초월 등급 아이템 말하는 건데. 맞지?"
"응. 저번에 내가 알려 줬잖아. 그런 아이템이 있다고."
"...아, 그랬지?"
유준은 애써 몰랐던 척했다.
마누엘라가 의심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유준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 쉬며 입을 열었다.
"혹시 너 초월 등급 아이템을 가 지고 있어?"
"아니."
"그때 네가 상상해서 알았다고 했지?"
"응. 내 예언의 형태는 상상이야."
"네가 대충 있을 거 같다고 상상 하면 그게 예언이 되는 거. 맞아?"
"음."
"..."
솔직히 믿기 어려운 얘기다.
상상이 현실로 이루어진다니. 신도 아니고.
하지만, 마녀의 예언은 늘 그렇
듯 정확하다.
흘려넘길 수 없었다.
그래서 여기까지 온 것이기도 했고.
가까운 미래에 누군가가 초월 등 급 아이템을 얻는다.
'그게 나였으면 좋겠는데.'
이왕 이렇게 된 거 궁금한 걸 다 물어보기로 했다.
"마누엘라. 그럼 초월 아이템을 얻는 방법도 알고 있어?"
"음. 확실한 거 하나는 알고 있어."
"확실한 거? 뭔데?"
"초월 등급 아이템을 얻기 위해 선 어떤 한 아이템이 필요해."
"그게 무슨 말이야?"
"초월의 돌. 그게 있어야만 초월 등급 아이템을 얻을 수 있어. 내가 아는 건 거기까지야."
"...설마 초월의 돌로 아이템의 등급을 올려야 하는 건가?"
"아마도 그렇겠지?"
유준의 눈빛이 변했다.
초월의 돌.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이름.
신들의 전쟁을 플레이할 당시에
는 존재하지 않았던 아이템이다.
아니, 여태 몰랐던 것뿐이었을 수도 있다.
"초월의 돌은 어디서 얻을 수 있는데?"
"그건 나도 몰라. 만약 알았으면 진작 찾으러 갔을걸."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그래도 많은 정보를 얻었다.
대충 추려 보면.
'초월 등급 아이템을 얻으려면 초월의 돌이 필요하고. 그 초월의 돌을 사용할 아이템은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신화 등급 아이템이겠지.'
신화 등급 아이템은 충분히 있었다.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초월의 돌만 구한다면,
원하는 아이템을 진화시킬 수 있는 것 아닌가.
마법 위주의 효과든 근접 전투 위주의 효과든 자기 입맛에 맞게 정하는게 가능했다.
'가령 내 무기라든지...
지금 사용하고 있는 검은 신들의
전쟁에서 최강 무기라고 불리던 것 이었다.
이 검의 등급을 상승시킨다면.
옵션이 얼마나 더 좋아질지 상상 도 안 갔다.
"왜? 초월의 돌을 구하려고?"
마누엘라가 물었다.
유준이 고개를 저었다.
"구하고 싶기는 한데. 방법을 모르잖아. 지금 당장은 힘들 거 같은데."
"초월의 돌은 마계에서 얻을 수 있어."
"왜?"
"내가 상상해서 떠올렸던 곳이 마계였으니까."
"누가 얻었는지는 모르고?"
"응. 그, 잠깐만, 으."
마누엘라가 눈가를 찡그리며 머 리를 부여잡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고급스러워 보이는 성에서 초월의 돌을 사용하는 장면."
"응? 갑자기 뭔 소리야?"
"상상했어. 방금."
"예언? 지금 예언한 거야?"
"웅. 성에 있는 거 같아."
"...그걸 나한테 말해 줘도 되는 거야?"
"날 도와줬잖아. 이 정도는 당연 히 말해 줄 수 있지."
그가 마누엘라에게 준 피해가 얼마인데.
다 잊은 걸까.
그건 아닐 것이다.
마녀의 기억력은 타의 추종을 불 허할 정도였으니까.
어찌 됐든 귀한 정보를 얻었다.
유준은 마녀 마누엘라가 말한 것들을 머릿속에 저장했다.
'초월의 돌. 내가 무조건 얻어낸다.'
백작 마족 둘을 죽이고 나서 이 틀이 지난 시점이었다.
마누엘라가 심각한 얼굴로 달려 오더니 말했다.
"문제가 생겼어."
"문제?"
"마계 암매상한테 사기를 당했어."
"...뭐?"
유준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바라 보자, 마누엘라가 얼굴을 붉혔다.
"그, 그게. 그 암매상이 엄청 유 명했단 말이야. 일 처리도 깔끔하고. 그래서 믿고 맡겼는데...
"맡겼는데?"
"돈을 가지고 튀었어. 지금 이틀
째 연락이 안 돼."
분명 마녀는 수백, 수천 년을 살 아간다.
그래서 지혜롭고 머리가 좋다는 인상이 있었다.
마녀가 암매상한테 사기를 당하 다니.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가는 상황 임은 분명했다.
"마녀 지능 수준 실화냐."
파라네트가 중얼거렸다.
언데드 소환수인 녀석이 그런 말
을 할 정도니 말 다 했다.
"너 그런 말은 어디서...
"어디서 배웠겠습니까."
파라네트가 실실 웃으며 유준을 쳐다봤다.
"욕이야?"
"예? 전 감사 인사를 한 건데..."
"그래?"
하긴, 한국인들이 쓸 법한 단어를 파라네트가 어떻게 알았겠는가.
"하여튼. 네가 그동안 번 돈을 다 잃어버렸다는 거지?"
"음."
마누엘라가 죄지은 얼굴로 고개를 푹 숙였다.
" 전부?"
마누엘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턱대고 암매상에게 돈을 먼저 맡긴단 말인가.
"그게 얼마나 되는 돈인데. 주인 님이 얼마나 고생하며 번 돈인데. 이 모자란 녀석."
파라네트가 험상궂은 얼굴을 가 까이 대며 타박했다.
삿대질까지 했다.
"멍청한 녀석!"
마누엘라가 어깨를 더 움츠렸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는데?"
유준의 말에 마누엘라가 고개를 살짝 들어 눈치를 봤다.
"뭔데. 말해."
"으... 응. 그런데 암매상이 처 음부터 날 노리고 접근한 느낌이었어. 나한테 원한을 가지고 있는 것 처럼."
"암매상은 보통 마계 고위직이랑 많이 연결되어있거든...
"너한테 원한이 있는 사람이랑 관 련되어있을 확률이 높다는 거지?"
"응. 내 돈을 가져가는 방식이 너무 치밀했어. 오랜 세월을 살아온 내가 눈치도 못 채고 당할 만큼."
"그건 그냥 네가 바보라...
유준이 말하다 입을 막았다.
지금은 마누엘라가 제일 충격받는 말을 할 때가 아니었다.
"그럼 암매상을 잡으러 가야겠네."
"여기 던전은 어쩌고?"
"던전 주변을 잠시 공간 왜곡을
해 놓으면 돼."
"게다가 백작이 둘이나 당했다는게 퍼지면 한동안은 조용할 거야. 막 눈에 불을 켜고 찾는 일은 없지 않을까?"
"그럴까?"
"암매상부터 족... 치는게 아니라 찾아보자."
유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누엘라가 눈을 크게 떴다.
"저, 정말로?"
"도와줄게. 너도 선뜻 초월의 돌
에 대해서 알려 줬잖아."
"야호! 고마워!"
마누엘라가 활짝 웃으며 방방 뛰었다.
정말 기뻐하는 듯한 모습.
아무리 봐도 마녀 같지가 않았다.
유준은 마음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뭐, 착해서 다행이지. 만약, 다른 마녀들 같았으면...
이렇게 순조로이 일이 풀리진 않았을 것이다.
암매상에게 돈을 다 뜯긴 시점에 서 순조롭다는 말이랑은 거리가 좀 먼 것 같긴 하지만.
"혹시 너한테 사기 친 암매상이 어디 있는지 힌트 같은 건 없어?"
"주인님. 저 마녀는 문제 출제자 가 아닙니다. 힌트 같은 건 당연히 없지요."
파라네트가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파라네트. 건방지다."
"죄, 죄송합니다."
그때 마누엘라가 중요한 말을 했다.
"아니야. 사실 단서는 있어. 내가 말했던 암매상이 많이유명하거든. 그런 만큼 그에 대해 알려진 것도 적지 않아."
"알려졌다고? 암매상인데?"
"말이 암매상이지, 그자는 큰 상 단을 운영하고 있어. 마계의 후작 이나 공작들도 함부로 못 건드릴 정도로 규모가 커."
"그런데 일개 마녀한테 사기를 쳐? 그 정도 규모라면 오히려 상단 입장에서 엄청난 손해 아니야? 신
뢰가 제일 중요하잖아."
"맞아. 원래라면 상상도 못 할 일이야. 근데 아까도 말했지만, 문 제는 나한테 있어."
"문제가 너한테 있다니?"
"난 지명수배를 당하고 있거든. 마왕이 직접 수배를 내린 거라, 도 망자 신세를 면할 수 없는 상태야."
마누엘라에게선 들으면들을수록 놀라운 얘기만 튀어나온다.
어떻게 하면 마왕한테 직접 수배를 당할 수가 있는 거지?
유준은 궁금한 걸 참는 성격이 아니었다.
"어쩌다 그렇게 됐어?"
"그냥... 마물을 만들 재료가 몇 개 필요해서 무심코 마왕성 비밀 창 고에 있는 아이템 몇 개를 털었었어. 마왕이 좀 소심하긴 해도 이런 사소한 일로지명수배를 내릴 줄은 몰랐거든."
"네가 잘못했네."
"응?"
가뜩이나 마족과 마녀의 사이는 안 좋은 편이다.
그런데 마녀 중에서도 급이 높은 순혈 마녀가 마왕성에 침입해 아이템을 훔쳐 갔다니.
마족 쪽에서는 당연히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근데 너라는 걸 어떻게 알았어? 몰래 훔쳐 가다가 들키기라도 했어?"
"아니. 마왕성에서 파티를 개최했었는데. 마녀들의 영향력이 좀 커지는 거 같으니까 이제 마족과 마녀들 의 화합을 위한 파티라고 했나? 솔 직히 나는 마족을 싫어하긴 하는데, 여기에 참여하면 마왕이 돈을 많이
준다고 약속했거든. 그래서 구색만 맞춰 주려고 갔지."
"그런데?"
"내가 또 상상해 버리고 만 거야."
"무슨 상상?"
"마왕성 아이템 창고에 내가 아 주 필요로 하는 재료 아이템이 있었고 그걸 누가 훔치러 가는 상상."
이 정도면 주동현의 미래 예지와 크게 다를 바가 없는 거 같은데.
마누엘라가 말을 계속 이어 갔다.
"남이 훔쳐서 없어지는 것보다는 내가 가져가는게 낫잖아?"
"그래서 마왕성 창고에 있던 아이템을 훔쳐서 도망간 거야?"
"응."
무슨 어린애도 아니고.
"하여간 지명수배를 당해 쫓기는 몸이 되어서, 그때부터는 정체를 숨 기고 활동하며 다녔어! 근데 암매상 이 내 정체를 어떻게 알았나 봐."
"아, 지명수배인 너를 알고 거액을 꿀꺽한 거구나?"
"음."
"근데 후환이 두려운 일 아니야? 어찌 됐든 순혈 마녀한테 사기를쳤고 그대로 원한을 사는 거잖아."
"그 암매상, 로젠트가 운영하는 상 단은 실체가 없고 워낙 신출귀몰해서 발견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아. 그래서 나한테 원한을 사는 거 자체는 위협이라고 생각 안 할 거야. 그 리고 내 예상인데... 아마도 마왕 과도 어떤 거래를 했을 거 같아."
"마왕한테도 사기를쳤다고?"
"아니, 그게 아니라 나를 잡기 위해서 둘이 힘을 합친 게 아니냐
는 거지. 날 끌어들이기 위한 계 략? 그런 거 아닐까?"
일리가 있었다.
"만약 마왕이 판 함정이면 엄청 위험한 거잖아. 찾으러 가면 안 되는 거 아니야?"
"...그런가?"
마누엘라는 이 일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은 듯했다.
"그럼 가지 말까?"
그녀의 말에 유준이 헛웃음을 홀렸다.
귀까지 얇은 건가.
"그래도 잃은 돈은 찾아야지."
유준의 말에 마누엘라가 고개를 갸웃했다.
"위험해서 안 가는게 좋다며?"
"감수하자는 거야. 설령 마왕이 등장하더라도 도망칠 방법은 있으니까."
게다가 맞서 싸웠을 때 진다는 보장도 없다.
그리고 마왕성.
마누엘라는 분명 고급스러운 느 낌의 성에 초월의 돌이 있다고 했다.
정확히는 초월의 돌을 누군가가 사용하는 모습이지만.
'그게 나였으면 좋겠는데.'
마계에 성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공작급 이상의 마족도 성을 가지 고 있는 이는 드물고.
마왕성에 초월의 돌이 있을 확률 이 높았다.
느낌이 좋았다.
'마왕과 붙는 한이 있더라도 초월의 돌을 얻는다.'
그게 현재 유준의 목표였다.
"어디로 가면 돼?"
"암매상 로젠트가 오늘 갔었던 곳의 위치를 알아. 그에게 표식의 저주를 걸어 놨거든. 그곳으로 가 면 될 거 같아."
"표식의 저주? 그거 상대방의 위 치를 알 수 있는 능력 맞지?"
"응."
"근데 위치를 정확히 알 수는 없는 거야? 너라면 그 이상도 가능했을 텐데?"
"로젠트도 고위 마법사거든. 로 젠트가 알아차릴 확률이 높다고 생각해서 일부러 희미하게 저주를 새
겨 놓았어. 그래서 그의 흔적을 뒤 쫓는 방식으로 추적해야 해."
"그나마 다행인 건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 정도는 아니라는 거네."
상황을 전부 파악했으니, 머뭇거 릴 이유가 없었다.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4권 22화
95 화
암매상을 찾기 전에.
마녀 마누엘라는 던전 주변을 왜 곡시켜 던전의 입구를 숨겨 놓았다.
이곳 던전의 주력이었던 유준이 빠지면 더는 던전으로서 구실을 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었다.
"됐어."
마누엘라가 옅은 숨을 내쉬며 말 했다.
"원래 이렇게 간단한 거야?"
"마법이란 게 그렇지, 뭐."
유준과 파라네트 그리고 도지윤은 정말 오랜만에 던전을 벗어났다.
던전 밖이라고해서 날이 밝은 것은 아니었다.
이곳은 마계였다.
잿빛의 하늘과 탁한 공기가 유준 일행을 맞이했다.
도지윤이 먼저 입을 열었다.
"던전 입구 밖 근처가 완전히 엉 망이 됐네요. 그래도 첨엔 뭔가 운 치 있었는데."
그녀의 말대로 수십 그루나 있던
나무들이 갈라지며 쪼개지고, 풀들 또한 짓밟혀 온전한 형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여기 짧은 시간 동안 마족들 엄 청 많이 왔잖아요. 그럴 만도 하죠."
유준이 그렇게 말했다.
유준 일행과 마누엘라는 뜸 들일 것없이 바로 암매상 로젠트가 있었던 곳으로 갔다.
파라네트의 공간 이동 스킬을 통해서.
마누엘라가 좌표를 불러 주었고, 파라네트가 공간 이동 마법을 사용 했다.
후우웅-!
공간 이동 마법은 확실히 EX+등 급답게 쓸모가 많았다.
공간 이동을 통해 도착한 곳은 어두운 지하실이었다.
퀴퀴한 냄새와 나무판자 위에 쌓 인 먼지들.
알아볼 수 없는 글귀의 종이 서 류들이 여기저기 막 떨어져 있었다.
"로젠트는 없네?"
"불과 두 시간 전까지만 해도 여
기에 있었어."
마누엘라가 진지한 목소리로 말 했다.
"어디로 갔는데?"
"기다려 봐."
그녀가 눈을 감았다.
로젠트가 남긴 마력의 향기.
그 향기가 이어지는 곳.
"좌표 또 불러 줄게."
"이렇게 가서 찾을 수 있긴 한 거지?"
"응. 계속 자리를 옮기지는 않을 테니까."
"그래, 불러 줘."
"17..."
그때였다.
콰아앙! 콰콰쾅!
아무런 전조도없이 바로 옆에서 폭발이 터졌다.
유준이 놀라운 반응속도로 재빨 리 실드를 펼쳤다.
"무, 무슨?"
도지윤이 당황스러운 음성을 내 뱉는 그때.
유준의 감각에 기척이 여럿 잡혔다.
"더러운 마녀가 진짜로 이곳에 올 줄이야..."
"그분 말씀대로야."
"도대체 여길 어떻게 찾은 거지?"
"순혈 마녀잖아. 뭐든 못하겠어?"
"빨리 처리하자고. 마녀는 비교 적 전투 능력이 떨어지는 편이니까 방금 폭발로 정신을 잃었을 거야."
상급 마족 넷.
그들은 겁도없이유준 일행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유준이 마력을 끌어올리려는데 마 누엘라가 그의 손목을 잡았다.
왜 그러냐는 듯 바라보자, 마누 엘라가 속삭였다.
"나한테 생각이 있어."
유준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타닥!
상급 마족 넷이 빠르게 접근해 왔다.
마누엘라의 손에서 시커먼 기운 이 뿜어져 나왔다.
칠흑색의 기운은 상급 마족들이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그들의 코 로 스며들었다.
지척까지 다가왔던 상급 마족 넷 의 움직임이 일시에 멈췄다.
"됐다."
마누엘라가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유준이 물었다.
"뭘 한 거야?"
"그냥 지배 마법이야. 여기 마족 들 넷은 지금부터 내 꼭두각시나
다름없어."
"...그런 사기적인 마법이 있어?"
"응."
마녀는 참 신기한 마법을 많이 다룬다.
그녀가 방금 사용한 지배 마법은 고대 마법으로도 사용할 수 없는 종류의 마법이었다.
약간 부러웠다.
"지배해서 어쩌려고?"
"알아낼 거야. 무슨 생각으로 여 기에 함정을 설치해 놨는지."
"좋네."
마누엘라는 완전히 지배된 마족 넷의 앞에 섰다.
그리고 상급 마족 한 명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그렇게 차례대로 같은 행동을 반 복했다.
마누엘라가 만족스러운 얼굴로 뒤돌아섰다.
"벌써 끝난 거야?"
유준의 물음에 마누엘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로젠트는 우리가 여길 올 걸 알
고 있었어."
상급 마족들이 떠드는 소리를 듣 고 그 정도는 유추했었다.
중요한 건 그다음 마누엘라가 내 뱉은 말이었다.
"그리고 마왕이랑 손을 잡은 것도 맞는 거 같아. 정확히는 로젠트가 마왕의 뜻대로 움직이는 자였어."
"...로젠트가 마왕의 수하라는 거지?"
"응."
"그럼 처음부터 의도를 가지고 너한테 접근한 거 아니야?"
"그건 모르는 일이지만 아마도 그럴 거라고 생각해."
처음부터 예상했던 바다.
로젠트 정도의 위치에 있는 자가 순혈 마녀에게 그깟 돈 때문에 사 기를쳤다는 건 말이 안 된다.
혹막이 있는게 당연했다.
"마왕이 관련되어 있다는 걸 알 아 버렸는데 어떡할까요?"
도지윤이 물었다.
유준은 고민하지 않았다.
"까짓거 한번 붙어 보죠."
" 진짜로?"
도지윤이 아니라 마누엘라가 걱 정스럽게 바라봤다.
"마왕을 상대로 나는 큰 도움을 줄 수 없어. 마왕이랑 상성도 그렇 고 나보다 훨씬 세거든."
"그러면서 잘도 도둑질했다?"
"...음."
마누엘라는 할 말이 없는지 입을 꾹 다물었다.
"하여튼, 마왕성으로 바로 가면 되는 거야?"
"뭐, 뭐? 그... 건 너무 성급한 거 같아."
"왜? 로젠트의 흔적만 뒤쫓아 가 면 놈들의 함정에 계속 빠지게 되 잖아. 그냥 바로 마왕성으로 가는게 효율적인 거 아니야?"
"틀린 말은 아닌데.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 내 돈부터 찾는게..."
"그깟 돈보다. 더 중요한 게 있 잖아. 마왕성으로 갈 거야."
위험한 건 유준도 당연히 알고 있다.
그러나 그런 위험을 감수하지 못 하면 빠르게 성장하는 것이 불가능 하다.
'무엇보다도 초월의 돌이 마왕성
에 있을 확률이 높으니까.'
그러나 마녀는 그의 결심에 초를 치는 말을 했다.
"마왕의 성으로 바로 갈 수는 없어."
"왜?"
"마왕성이 괜히 마왕성이겠어? 마계의 절대자가 머무는 곳인데 경 계가 삼엄할 수밖에 없어. 그리고 온갖 결계를 둘러놔서 성 근처로는 가지도 못해."
"단순히 공간 이동만 안 되는 거야? 아니면 접근하는 것 자체가 안 되는 거야?"
"둘 다야."
"마왕성 근처로도 못 간다고?"
"만약 가려면, 공작의 영토를 침범해야 해."
"마왕성 주변에 공작 영토가 있어?"
"응. 공작의 영토가 둘인데. 한 공작은 마왕의 수하나 다름없어."
"저번에 네가 마계의 공작들은 마왕의 자리를 호시탐탐 노린다고 하지 않았나?"
"대개 그렇긴 한데, 공작 한 명은 지금의 마왕에게 충성을 다하고
있어. 실제로 마왕이 총애하는 공 작이다 보니, 상당한 특혜를 받고 있고."
"공작이 총 몇 명인데?"
"네 명. 그중 한 명이 마왕의 편이라고 보면 돼."
"나머지는 적이고?"
"적... 까지는 모르겠지만, 사 이가 무척 안 좋은 건 맞아."
"으음."
지금 공작과 마왕들의 상황을 잘 만 이용하면.
일이 쉽게 풀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준이 입을 열었다.
"일단 공작령으로 가야 한다는 거지?"
"음."
"마왕의 편이 아닌 공작 땅으로 가는게 좋겠는데?"
"그게 나을걸. 아, 그.리고 지금 마왕은 대륙 침략에 큰 열의를 보이지 않아서 지지가 많은 편은 아니야."
"마계에 지지율 같은 것도 있어?"
"그런 건 아니지만, 현재로서는 반란이 일어날 확률이 높은 상황이야."
"마족들이 일으키는 거야?"
"공작 중 한 명이 마족들을 선동 하겠지. 이미 암암리에 일이 진행 중이라는 얘기도 있어."
"네가 알 정도면 마왕도 알고 있 지 않을까?"
"그럴걸? 근데 내가 보기엔 워낙 태평한 성격의 마왕이라 크게 대비를 하고 있지는 않은 것 같아."
"우리가 가는 공작령의 이름은 뭐야?"
"조나스."
"조나스? 공작의 이름은?"
"공작의 이름이 조나스야. 영토 도 조나스령이고. 땅을 다스리는 자의 이름에 따라 정해지거든."
"조나스가 마왕에게 반기를 들 준비를 하고 있는 공작이지?"
"확신까지는 아니지만, 그럴 가능성이제일 높지. 마왕의 행보에 사사건건 시비를 걸면서 방해하니까."
"그런데 처형 같은 건 안 당해?"
"조나스가 가진 권력과 힘이 그
를 지켜 주는 거야. 심지어 조나스 의 무력은 마왕과 비견될 정도고."
"마왕이랑 비슷하다고?"
"응."
"다른 공작들도 그래?"
"응. 근데 마왕에겐 한 수 뒤처 지는 공작이 바로지금 마왕의 편에 있는 공작이야."
짧은 대화로 상황을 대충이나마 이해했다.
권력 다툼 같은 것엔 큰 관심이 없다.
하지만 상황을 이용할 수 있다면
최대한 이용하는게 좋으리라.
"조나스가 우리 제안을 받아들일 까요?"
가만히 지켜보던 도지윤이 물었다.
"글쎄요. 직접 확인해 보면 알겠죠."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물씬 나는 집무실.
그곳이 공작 조나스가 주로 머무 르는 곳이었다.
그는 마계에 몇 없는 공작 중 한 명이었다.
마족치고는 왜소한 체구를 지닌 그는 뜻밖의 손님을 맞이하게 되었다.
마녀와 언데드 셋.
특이한 조합까지는 아니었다.
다만, 한 언데드에게서 느껴지는 기세가 그조차 긴장하게 만들 정도였다.
그게 놀라웠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그래."
마녀가 아닌 리치가 대답했다.
조나스가 위험한 존재라고 인식 했던 그 언데드였다.
"언데드. 그대는 리치 로드인가?"
"맞아. 반가워."
"흐음. 언데드 같지는 않은 자로 군."
"그런 소리 종종 들어."
보통 죽은 자들, 언데드라고 하 면 말에서 귀기나 음울함이 풍겨 왔다.
그러나 눈앞의 리치는 조금 달랐다.
마치 생자를 대하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무슨 일이지?"
"제의할 게 있어서."
"제의?"
"마왕과 관련된 일이야."
조나스의 눈이 커졌다.
유준이 다시 입을 열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 힘을 합치자. 너랑 마왕이랑 사이가 안 좋다며?"
"지금 반역을 꾀하자는 건가? 어 이가 없군. 난 현재 상황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다. 감히 마왕님께 반 기를 일으킬 생각은 없어."
조나스가 단호한 얼굴로 말했다.
유준은 저 말이 자신을 떠보는 것임에 불과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 거창하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일단은 같은 편이 되자는 거지. 너도 당장 고양이 손이라도 필
요한 거 아니었어?"
언데드 리치, 유준은 이미 조나 스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아보고 온상태.
한동안 정적이 맴돌았다.
그러다 조나스의 입가가 슬쩍 올라갔다.
"잘 찾아왔군. 환영한다."
"오.…"
조나스의 표정이 긍정적으로 바 뀌었다.
이리 수월하게 풀릴 줄이야.
유준도 마주 웃었다.
"그런데 내 그대에게 궁금한 것 이 하나 있다."
"궁금한 거?"
"과연 그대가 내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이미 알고 있을 텐데?"
"느낌은 그렇지. 하지만 한번 그 힘을 시험해 보고 싶군. 괜찮겠는가?"
"내 힘을? 나쁠 거 없지. 오히려 원하던 바야."
"대단한 자신감이군. 마음에 들
어."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말이 있다.
유준 일행과 조나스는 곧바로 성에 마련된 큰 연무장으로 향했다.
"내가 직접 확인해 봐도 되겠는가?"
"물론이지."
"넷 전부가 한 번에 덤벼도 좋다."
"아냐. 나 혼자면 돼."
조나스의 표정이미묘해졌다.
"날 혼자서 상대하겠다?"
"응."
"마계의 공작을 너무 우습게 보는 것이 아닌가?"
"너를 판단하는게 아니라, 나를 믿는 거지."
"그 자신감만큼 실력이 뛰어났으면 좋겠군."
조나스는 마법을 잘 다루기로 유 명한 공작 중 한 명이다.
물론, 마족답게 마법보다는 근접 전투가 더 뛰어나지만, 마법 능력 도 무시 못 할 정도.
...라고 마누엘라가 귀띔해 주었다.
'마법을 잘 다룬다면 잘됐네.'
안 그래도 리치 로드로 변한 상태라 마법에는 자신이 있었다.
공작과 마법으로만 겨뤘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했다.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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