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화
장시간 숙성된 선단.
이 선단을 먹는 걸 참기 위해선 부단한 인내와 노력이 필요했다.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유준의 인내력은 평균 이상이라고 볼 수 있었다.
당장 특성 하나를 늘릴 수 있는데 행운 효과를 받기 위해 지금까지 버텨 온 것이다.
'드디어 이걸 먹겠구나.'
다른 행운 아이템을 더 얻고 나 서 선단을 섭취해도 되지만, 그건 너무 비효율적인 짓이었다.
뜸들이지 않고 바로 장시간 숙 성된 선단을 삼켰다.
입안에 넣은 선단이 침과 섞여 목을 타고 넘어가는 그때 홀로그램 창 메시지가 다시 나타났다.
['장시간 숙성된 선단'을 복용했습니다!]
[특성을 무작위로 한 개 획득합니다.]
['검술(B)' 특성을 획득했습니다.]
'잠...시만. 검술이라고?'
유준이 헛숨을들이켰다.
선단에서는 괜찮은 특성들이 나 오기에, 거기에 행운 반지도 섭취 한 상황이라 나름 기대는 하고 있었다.
그러나 검술 특성이 나올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 미쳤다.'
검술 특성은 이름 그대로 검술 실력을 늘려 주는 특성이었다.
그렇게만 보면 무척 흔한 특성 같지만,
웬만한 S급 이상 특성이나 스킬 들보다도 더 얻기 힘든 것이 바로 '검술'이었다.
'검술이면 진짜 태초의 플레이어 가 된 것 못지않게 대박인 건데.'
검술 특성은 등급이 낮은 게 흠 이었지만, 그 홈을 없앨 방법이 아 예 없는 건 아니었다.
'고룡을 잡고 얻을 보상으로 검술 특성을 진화시키면 된다.'
행운의 반지가 함정 구간 끝에서 나온 걸 보면 고룡이 주는 보상 또
한 신들의 전쟁 때와 마찬가지일 확률이 높았다.
타다닥. 다닥.
유준은 함정 구간을 그대로 돌아 갔다.
한번 돌파한 함정은 다시는 발동 되지 않았다.
그렇게 유준은 편안히 갈림길이 있던 곳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아주 멀쩡한 상태로 돌아온 그를 본 메이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웃었다.
"역시 멀쩡하시네요."
"그럼요."
"고마워요."
그녀의 난데없는 말에 유준이 고 개를 갸웃했다.
"아까 감사 인사를 제대로 못 드 린 거 같아서요."
"했던 거 같은데."
"아뇨. 그때는 경황이 없어서 제 대로 못 했어요. 진짜 감사해요. 덕 분에 제 친구도 목숨을 건졌고... 지금도 다크 엘프들한테 쫓기는 상황에서 또 도움받았고요."
"나중에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 든 말해 주세요. 저뿐만 아니라 제 친구들도 마찬가지로 유준을 도와 줄 거예요. 엘프는 절대은인을 잊 지 않거든요. 아시죠?"
유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엘프나 다크 엘프는은인을 대하는 방식이 인간이나 다른 종족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엘프라는 종족 자체가 대체로 착 하다는게 아니다.
이런은원 관계는 확실하게 한다는 뜻이었다.
"메신저 교환이나 할까요?"
"좋아요! 제가 먼저 부탁드리려 고 했는데...
유준의 첫 이종족 메신저 친구는 엘프 메이가 되었다.
메이가 아까부터 보내는 부담스 러운 눈빛을 피한 유준이 입을 열었다.
"이제 보스를 잡으러 가죠."
"고룡이라고 했죠.... 저는 괜 히 방해만 되지 않을까요?"
"금방 끝낼 거니까 괜찮습니다."
"자신감이 대단하네요. 물론 그럴 만한 실력이시긴 하지만..."
원래는 고룡을 상대로 준비, 즉 아이템을 많이 활용하면서 싸우려 했는데, 검술 특성을 얻으면서 그 럴 필요가 없어졌다.
검으로 하는 모든 것에 상승효과를 주는 '검술' 특성은 현재 사기적 인 성능의 검을 든 유준에게 아주 제격인 능력이었다.
'진짜 마지막 구간이다.'
유준과 메이는 고룡이 잠들어 있는 세 번째 길의 끝으로 한걸음에 달려갔다.
세 번째 길의 끝에 도달하자, 넓
은 공동이 보였다.
그곳엔 넓은 공동의 절반을 채울 만큼의 거대한 드래곤이 있었다.
"헤에엑...
엄청난 거구의 드래곤을 마주한 메이가 화들짝 놀랐다.
"크, 크네요."
"그러게요."
유준도 게임 그래픽으로나 봤지, 고룡을 실물로 본 것은 처음이었다.
크기에서부터 느껴지는 위압감이 장난이 아니다.
보는 것만으로도 온몸에 닭살이
쭈뼛 돋았다.
고룡은 던전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곤히 잠들어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인기척을 느낀 고룡이 흉터가 가득한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인간... 그리고 숲의 축복을 받은 아이로구나."
가래 낀 듯한 음성이 공동 안에 울려 퍼졌다.
그 음성에는 알 수 없는 힘이 실 려 있어 몸이 절로 움츠러드는 기 분이었다.
"내 레어에 발을들이다니...
겁이 없는 건가?"
레어라는 말에 유준이 실소했다.
이런 초라한 레어가 어디 있겠는가.
눈앞의 고룡은 레어를 지킬 힘조 차 없어 이런 동굴 안에서 잠들어 있는 것이다.
'드래곤 레어면 보물이라도 있어 야 하는데.'
당연하게도 보물 같은 건 없었다.
대신 고룡을 잡으면 그 수많은 재화나 보물보다 더 귀한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유준이 고룡의 말에 대답하지 않 고 검을 꺼내 들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뻔하다.
고룡이 분노했다.
"썩 꺼져라!"
화르륵!
고룡이 입에서 붉은 화염을 토해 냈다.
워낙, 브레스의 규모가 커서 피 할 수는 없었다.
뒤에 멀찍이 있는 메이와는 달리 자신은 고룡과 가까이 있었다.
'불의 정수를 사용하기엔 아까우
니 이걸 쓸까.'
유준은 미리 준비해 뒀던 화염 저항의 비약을 꿀꺽 삼키고 고룡의 브레스를 그대로 돌파했다.
브레스라고 하더라도 열기가 전 성기 드래곤 브레스에는 한참 못 미쳤다.
'참을 만해.'
사실 고통이 상당해 얼굴이 있는 대로 찌푸려졌지만, 움직이는데 제한은 없었다.
화상을 입지도 않았고.
유준은 화염 저항의 비약 덕분에 드래곤의 얼굴 바로 앞까지 무혈입
성할 수 있었다.
브레스를 쏘아 낸 이후엔 드래곤은 잠시 무력해진다.
지금이 기회였다.
유준은 참격 (B) 스킬을 사용했다.
안 그래도 검의 성능 때문에 공 격력이 막강한데, 검술 특성의 효과를 받아 공격력이 더욱 증가했다.
날붙이 무기를 있는 힘껏 휘두르는 참격 스킬.
동작은 간결하지만, 그 효과는 놀라웠다.
콰아앙!
유준의 검과 고룡의 미간이 부딪 치고,
귀가 먹먹해질 정도의 폭음이 터져 나왔다.
유준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 후로 고룡을 가격한 부분을 참격 스킬을 발동하고 연이어 강타 했다.
바쥬르의 마력검에 달린 옵션에는 이런 것이 있다.
-검에 실리는 마력이 200% 증폭해서 발현됩니다.
200% 증폭한다는 것은 단순히 검이 내는 위력이 두 배가 되는 것 이 아니다.
대미지가 아닌 검에 주입한 마력 이 200%나 증폭하는 것이다.
마력을 담아 공격했을 때의 위력은 일반 공격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확연히 차이가 났다.
그 말은 즉, 마력의 200% 증폭은 유준의 공격력을 대여섯 배 이 상으로 끌어올려 준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고룡은 육체가 노쇠한 상태.
콰앙! 쾅!
유준이 검을 내리칠 때마다 살점 이 무더기로 파여 나갔다.
"크아아...
저항할 생각도 하지 않고 고룡은 그저 얻어맞기만 했다.
유준의 연이은 공격에 정신을 못 차리고 비틀거렸다.
'그래도 용이라고 좀 잘 버티네.'
그러나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게임으로 사냥했을 때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고룡을 빈사 상태로 몰아넣었다.
게임 캐릭터보다 지금 자신의 무 력이 더 월등하다는 걸 입증한 셈이다.
"당장 내 몸에서 떨어지지 못할까!"
고룡이 격노했지만, 그런다고 상황이 뒤바뀌진 않았다.
유준은 검에 마력을 듬뿍 담아 마지막 일격을 날렸고,
콰아앙
고룡이 죽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전설 칭호 '고룡 살해자'를 획득 합니다.]
[불가능한 업적!]
[근력의 정수를 획득했습니다.]
[전설 아이템 박스(선택)]
[진화의 열매를 획득했습니다.]
[희귀 등급 장비를 획득했습니다.]
[영웅 등급 장비를 획득했....]
보상 메시지를 확인한 유준이 주 먹을 불끈 쥐었다.
'진화의 열매. 진짜로 나왔구나.'
신들의 전쟁 때 고룡을 잡고 얻었던 보상도 '진화의 열매'였다.
기쁨에 벅차 웃음이 절로 나왔다.
'다른 것들은 됐고... 진화의 열매만 있으면 돼.'
전설 아래 등급의 장비들은 알
바가 아니었다.
진화의 열매를 제외하면 그나마 눈에 들어온 것이 근력의 정수.
[근력의 정수]
등급 : 영웅
옵션 : 근력을 영구적으로 15 상승시킵니다.
사실 능력치를 영구적으로 늘려 주는 정수 아이템은 무척 구하기가 힘들었다.
진화의 열매에 가려져서 그렇지,
이것 또한 엄청난 보상이었다.
'일단 칭호 효과부터 확인할까.'
진화의 열매는 다른 보상들을 확 인한 후 가장 마지막에 사용하기로 했다.
-고룡 살해자(전설) - 모든 능력치가 5% 증가합니다.
이번에 얻은 칭호의 효과는 이러 했다.
상당히 좋은 옵션이다.
모든 능력치를 퍼센트로 증가시켜 주는 것.
전설 등급이라는 걸 감안해도 최 상위 옵션이 붙은 건 틀림이 없었다.
'저번에는 고룡 살해자를 못 얻었는데.'
그 이유는 왠지 알 것 같았다.
고룡을 사냥할 당시 무과금즐겜 러 캐릭터의 레벨이 200을 넘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지금 그의 레벨은 그 절 반가량밖에 되지 않는다.
불가능한 업적 보정을 받아 전보 다 더 좋은 칭호를 받은 듯했다.
상태창을 보던 유준은 뿌듯했다.
'벌써 칭호가 8개가 됐네.'
칭호가 이렇게 단시간 내에 많이 모을 수 있던 것이었던가.
심지어 칭호들의 등급도 대부분 이 영웅 이상이었다.
'레벨도 10이나 올랐고...
유준은 근력의 정수를 삼켰다.
단전 아래에서부터 힘이 치솟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 마지막이다.
진화의 열매의 차례.
"유준!"
그때 메이가 달려왔다.
" 괜찮아요?"
"예. 보다시피. 멀쩡합니다."
"휴우.... 다행이네요."
"뭣 좀 얻으셨습니까?"
"레벨만 올랐어요. 희귀 칭호도 하나 얻고요. 멀리서 구경한 것치 고는 과한 보상이네요."
"파티 맺기를 잘했군요."
"...너무 도움만 받는 거 같아 서 왠지 죄송스러운 마음이에요. 진짜 아까 말했던 것처럼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 연락 주세요."
"알겠습니다."
메이는 젊은 나이에 강한 엘프 전사였다.
그녀와 친해져서 나쁠 건 없다.
다시 볼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 돌아갈까요?"
메이의 말에 유준이 고개를 저었다.
"잠시만요."
인벤토리에서 진화의 열매를 꺼 냈다.
그는 진화의 열매의 정보를 정말 오랜만에 확인했다.
[진화의 열매]
등급 : 전설
옵션 : 섭취 시, 보유한 스킬이나 특성 하나를 지정해 특성 혹은 스킬 등급을 상승시킵니다. 또한, 섭취 시에 영구적으로 모든 능력치 가 10 상승합니다.
봐도 봐도 놀라운 아이템이다.
모든 능력치가 10이 올라가는 것
도 전설 등급 값을 한다고 할 정도 인데 능력의 등급까지 상승시킨다 고 한다.
괜히 유준이 진화의 열매를 원한 것이 아니었다.
평정심 특성을 가졌지만, 이때만 큼은 긴장이 되었다.
'제발. 등급 이상만 띄우자.'
검술 특성을 혹 S등급을 달성한다면, 더 바랄 것도 없었다.
그것만으로도 웬만한 SSS급 스킬이나 특성 이상의 힘을 발휘할 테니까.
'행운의 반지 먹은 값만 하면 된다.'
노리는 건 등급.
사실 A등급의 검술 특성도 나쁘 진 않겠지만, 아무래도 등급과 비 교하면 A등급 특성은 많이 뒤떨어 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게 욕심은 아니잖아. 제발. 부탁한다.'
유준은 평생 안 하던 기도까지 한 후에야 진화의 열매를 입안에 넣고 우적우적 씹었다.
달콤한 향이 입안에 맴돌며 머리 가 상쾌해지는 느낌과 함께 홀로그램 창 메시지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진화의 열매를 섭취했습니다!]
[진화시킬 특성이나 스킬을 선택 하여 주십시오.]
유준은 검술 특성을 생각했다.
그러자 눈앞에서 밝은 빛이 터져 나왔다.
[막대한 행운이 플레이어에게 깃 듭니다!]
[검술 특성이 진화합니다.]
[등급 산정 중....]
유준은 두근거리는 마음을 억누 르며 앞의 홀로그램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진화의 열매에 담긴 신력이 몸에 녹아듭니다.]
[검술(B) _ 검술(SSS)]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2권 3화
27화
다크 엘프 장로 스텔른이미간을 찌푸렸다.
"도대체 언제 나오는 거지?"
"일주일 동안 못 들어간다고 했으니... 적어도 일주일은 저 안에 숨어 있지 않겠습니까?"
한다크 엘프의 말에 스텔른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영악한 놈이군. 던전 독점권을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어. 심지어
도망친 곳이 하필 히든 던전이 라.... 운이 참 좋은 녀석이야."
"장로님. 여기서 계속 기다리고 있는 건 너무 비효율적인 거 아닙니까?"
"아니. 그걸 놈이 노리고 있다면? 그럼 놈이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주는 것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곧 엘프들이 나타날 겁니다."
"그게 문제지."
"지원을 요청하긴 했지만... 자 칫했다간 엘프들과 전면전을 벌여 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래야 한다면 하는 수밖에. 녀 석들과는 어차피 돌이킬 수 없는 상황까지 왔다."
스텔른이 말을 마치고 잠깐 침묵 이 맴돌았다.
다크 엘프들의 표정이 밝지 않았다.
상황이 그리 좋지 않은 탓이다.
세계수의 씨앗을 가진 인간은 히 든 던전으로 도망쳤고, 던전 독점권을 사용해 자신들의 추격을 막았다.
몰래 광산에 숨어든 다크 엘프들에게는 일주일이란 시간은 너무나 길었다.
"정찰 쪽이 엘프들 소식을 알려 오면 그때 생각해도 늦지 않다."
"그때는 후퇴하는 겁니까?"
스텔른이 착잡한 얼굴로 애꿎은 단검만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그리고 그때였다.
스텔른과 그리 멀지 않은, 아무 것도 없던 공간에서 그림자 하나가 생겨났다.
그 그림자의 형태를 본다크 엘 프들의 몸이 경직되었다.
스텔른도 긴장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림자였던 무언가의 형태가 잡 히기 시작했다.
짙은 흑발에 근육질의 거구 사내였다.
특이한 점으로는 머리에 두 개의 높은 뿔이 자라 있다는 것이었다.
"이런. 벌써 자포자기할 생각인가? 그건 안 될 소리지."
소름 끼치는 저음.
갑자기 나타난 사내의 말에 모두 가 침묵했다.
"내가 분명 말했을 텐데.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세계수의 씨앗을 가져오라고."
"엘프들과의 전면전이 불가피하게 될 거다."
스텔른의 말에 거구 사내, 피에 르가 냉소를 지었다.
"그걸 누가 몰라? 내 말은 엘프들을 다 죽여서라도 뺏어 오라는 거야."
"우리의 전력과 엘프의 전력은 대등하다. 이대로 맞붙으면...
"그러니까. 내가 도와준다고 했 잖아? 너넨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 면 돼."
"...마족 놈! 주제를 알...
한다크 엘프가 소리치다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어느새 생겨난 그림자가 그의 목을 움켜쥐었기 때문이다.
"으윽...
"너희 여왕의 목숨이 내 손에 달 려 있다는 거 까먹었어? 도대체 뭘 믿고 호통을 치는 거야? 다음엔 경 고로 안 끝내."
"켁! 켁!"
그림자에서 풀려난 다크 엘프가 바닥에 풀썩 주저앉아선 헛구역질을 했다.
그 모습을 보며 비소를 짓던 마 족 피에르가 다시 입을 열었다.
"하여튼 내가 뒤에서 얼마든지 지원해 줄 테니까, 너희 다크 엘프 들은 어떻게든 세계수의 씨앗만 구 해 오면 돼. 알아들었어?"
"세계수의 씨앗을 구하면 약속대 로 여왕님을 풀어 줘라."
"당연하지. 난 약속은 웬만해선 지켜. 웬만해선 말이야. ㅎㅎ..."
그 말을 마지막으로 피에르가 모습을 감췄다.
다크 엘프들이 그제야 불만을 터 뜨렸다.
"마족 주제에..."
"여왕님을 인질로 협박을 하다 니. 더러운 놈."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장로님. 어쩌면 좋겠습니까?"
"여왕님을 포기할 수는 없다."
스텔른이 단호하게 말했다.
카람탄 부족의 여왕은 이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재능을 가졌
다고 알려진 다크 엘프였다.
그런 그녀가 마족들의 계략에 당 해 인질로 잡혀 있다.
다크 엘프들은 자신들의 목숨, 그리고 마을의 안위보다도 여왕의 목숨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자신들이 전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여왕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였다.
스텔른이 긴 침묵 끝에 다시 입을 열었다.
"이곳으로 오는 길을 봉쇄한다."
"알겠습니다."
때마침 열다섯 명에 달하는 다크
엘프들이 지원을 왔다.
그중엔 수준 높은 마법사도 있었다.
다크 엘프들은 대지 정령을 불러 내어서 원래 있던 길을 막아 버렸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스텔른이 아닌 다른 다크 엘프 장로가 나서 결 계까지쳤다.
세계수의 씨앗을 가진 인간은 히 든 던전 안에서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버티려고 하고 있다.
과연 빠져나올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인간이 던전을 클리어하거
나 출구를 찾아 나왔을 때를 대비 해야 했다.
"이제 최소 일주일을 버텨야 한다."
" 일주일...
그런 그때였다.
우웅.
바닥에 뚫려 있던 구멍, 즉 히든 던전의 입구에서 사람의 인영 둘이 갑작스레 나타났다.
그 인영들은 다름 아닌 유준과 메이였다.
"어우, 많이도 모였네."
유준이 태연한 얼굴로 꺼낸 말에 다크 엘프들이 당혹스러움을 감추 지 못했다.
"뭐야? 어떻게 벌써...
"들어간 지 몇 시간 안 되지 않았어?"
"어떻게 된 거야?"
유준과 메이는 던전에 진입하고 나서 2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서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스텔른도 황당하기는 매한가지였다.
"무슨 생각으로 던전을 탈출한
거냐?"
스텔른이 물었다.
그는 유준이 히든 던전을 클리어 한 것이 아니라 던전의 출구를 찾 아 빠져나왔다고 생각했다.
무한의 탑이 아무리 상식을 벗어 난 일들이 가득하다지만,
2시간 만에 던전을 클리어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걸 대답해 줄 정도로 우리 가 친했었나?"
"...됐다. 널 죽이면 그만이지."
스텔른이 단검에 마력을 불어 넣었다.
시퍼렇고 커다란 무형의 기운이 단검에서 뿜어져 나왔다.
타깃 지정 아이템 스크롤은 이미 유준에게 적용된 상태.
협박하거나, 설득할 필요도없이 저 인간을 죽이기만 하면 된다.
타닥!
단검을 쥔 스텔른이 땅을 박차고 앞으로 튀어 나갔다.
유준은 순식간에 바로 앞까지 도 달한 스텔른을 보고도 당황하지 않
았다.
스텔른이 시퍼런 기운, 마력이 담긴 단검을 쭉 뻗어 온다.
이건 허수.
유준은 한 발자국 물러났다.
진짜는 스텔른의 발 쪽이었다.
머리를 향해서 매섭게 날아오는 스텔른의 킥을 유준은 팔꿈치로 막 아 냈다.
콰앙!
유준이 검을 휘두를 때 스텔른이 반동을 이용해 멀리 튕겨 나갔다.
다만, 완전히 피하지는 못했는지
스텔른의 머리카락이 한 움큼 잘려 나갔다.
한순간에 목숨을 잃을 뻔했던 스 텔른이 눈을 크게 떴다.
'이게 어찌 된 일이지?'
분명 검이 날아온다는 것은 인지 했는데, 그 궤적을 전혀 볼 수가 없었다.
미리 뒤로 물러났음에도 머리카 락이 잘린 이유였다.
단 한 번의 겨룸, 충돌로 스텔른은 저 인간이 자신보다 훨씬 강하 다는 것을 깨달았다.
황당했다.
'분명 몇 시간 전에 측정했던 레 벨이 110 근처였을 텐데?'
그런데 저 실력은 도대체 무어란 말인가.
'내가 방심했나?'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그게 아니란 걸 스스로 알고 있었다.
식은땀을 흘린 스텔른이 주위를 둘러봤다.
다크 엘프들이 활을 쏘고, 마법을 인간에게 날리는 모습이 보였다.
근거리 공격에 자신 있는 이들은
단검을 들고 유준을 포위했다.
'안 돼. 저놈에게 덤벼들면...
여러 마법과 속성이 깃든 화살이 인간에게 적중한 것 같은 그때, 단 검을 든 다크 엘프들도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서걱!
유준의 검에 깃든 푸른 기운이 쭉 늘어나더니 주변에서 접근하던 다크 엘프들을 베고 지나갔다.
다크 엘프 다섯 명이 그렇게 목 숨을 잃었다.
"뭐야...
마법이나 화살에 적중당하고도 무사한 건 그렇다 치더라도, 눈으로 보이지 않는 검격이라니?
멀리 떨어져 있던 이들조차 유준 이 어떤 자세로, 어떤 방향으로 검을 휘둘렀는지 알아채지 못했다.
"잠깐!"
스텔른이 앞으로 나서며 입을 열었다.
"웅?"
"우리가 졌다."
그의 말에 유준보다도 다크 엘프들이 더 놀랐다.
"장로님! 무슨 소릴 하시는 겁니까?"
"인간을 상대로 항복이라됴?"
"말도 안 됩니다!"
스텔른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나는 너희가 불길에 뛰어드는 부 나방 신세 되는 걸 지켜볼 수 없다. 그리고 인간을 상대로라니? 강자에는 종족의 구별이 없는 법이다."
그는 이내 유준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그대를 공격하지 않겠다. 그러 니 그대도 자비를 베풀어 줄 수 있나?"
갑작스럽게 항복을 선언한 스텔 른을 보며 유준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대충 이해는 갔다.
전투로 아예 상대가 안 되어 무 의미한 싸움이라고 여긴 거겠지.
유준은 원래 히든 던전에 들어가 기 전까지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검술 특성.'
사실 레벨이 막 증가하거나 능력치가 대폭 상승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검술 특성을 얻은 것이 가장 큰 소득이었다.
'무려 SS등급이니까.'
하여튼 유준의 압도적인 무위에 놀란 다크 엘프 장로가 항복을 선 언했다.
그 말은, 굳이 그들과 싸울 필요 가 없게 되었다는 뜻이다.
'먼저 공격한 건 괘씸하지만..
괜히 다크 엘프들과 척을 질 필요는 없지.'
그들을 죽여서 자신이 얻을 이득 도 없었다.
애초에 인간을 닮은 그들을 죽이는 것도 껄끄러운 일이고.
거기다 그들은 이종족 연합에서 영향력 좀 행사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종족.
차라리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준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공격을 안 하겠다는 거지? 그럼 엘프들한테 제대로 사과도 해야겠네?"
뒤에서 지켜보고 있는 메이를 의
식해서 일부러 엘프 얘기를 꺼냈다.
결과적으로 죽은 건 다크 엘프뿐 이지만, 엘프를 먼저습격한 건 그들이었으니까.
"물론이다."
스텔른이 착잡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세계수의 씨앗은 왜 필요한 건데?"
유준이 질문을 던지자, 스텔른은 침묵을 유지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원거리에서
유준에게 메신저 교환을 요청해 왔다.
" 뭐야?"
뜬금없는 메신저 요청에 유준이 고개를 갸웃했지만, 스텔른의 표정을 슬쩍 본 그는 아무 말없이 메 신저 요청을 수락했다.
'뭔가 사연이 있군.'
슬쩍 다른 다크 엘프들을 보니 그들도 무언가를 두려워하는 듯 불 안에 떨고 있는 모습.
유준은 거기서 이 일이 보통 일 이 아니라는 걸 예감했다.
'하긴... 뭔가 이상했지. 다크
엘프는 이미지랑 달리 그리 호전적이지 않은 종족이니까.'
오히려 엘프 쪽이 더 무언가를 얻고자 하면 적극적으로 나오는 경 향이 더 강했다.
잠시 소강상태가 된 그때 다크 엘프 장로, 스텔른이 메신저로 메 시지를 보내왔다.
[스텔른 : 여왕님이 마족들에게 인질로 잡혀 있다.]
' 인질?'
유준은 놀란 것을 티 내지 않으 려 하며 무표정으로 답장을 보냈다.
[*신유준 : 마족? 마족은 어디에 있지?]
[스텔른 : 여왕님의 거처에.]
약간 황당한 기분이었다.
다크 엘프 여왕의 거처라면 그나 마 그들 마을 중에선 가장 안전한 곳에 있을 텐데.
거기에 마족들이 있다고?
심지어 여왕은 그 마족들에게 볼 모로 잡혀 있다고 한다.
[스텔른 : 그들은 너에게서 세계 수의 씨앗을 가져오면 여왕님을 풀 어 준다고 했다.]
[*신유준 : 여기 광산에는 어떻 게 들어온 거야? 앞에는 엘프들이 지키고 있었을 텐데.]
[스텔른 : 마족들이 통로를 만들 어 줬다. 특정 아이템이 있어야만 드나들 수 있는 통로지.]
'어이가 없긴 한데...'
저 말이 사실이라면 모든 것이 딱딱 들어맞는다.
다크 엘프들이 너무 앞뒤 안 보 고 달려드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저러한 이유가 있었나 보다.
문제는 다크엘프가 방금까지 그를 죽이려 들었다는 것이다.
용서의 문제를 떠나서, 다크엘프의 말이 진짜일까.
일단 녀석들은 싸울 생각이 없어 보였다.
유준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리라.
스텔른의 얼굴을 봤다.
절박한 표정.
유준의 반응 하나하나에 온 신경을 기울이고 있었다.
평정심 특성이 또 효과를 발휘했다.
스텔른의 심리가 훤히 내다보이는 듯했다.
'절박하고...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도 않아.'
실제로 평정심 특성이 있으면 상 대가 진실을 말하는지 거짓을 말하
는지 대강 구분이 됐다.
애매하게 말을 흐리지도 않았다.
유준은 스텔른이 했던 말들이 진 실이라는 걸 알았다.
100%까지는 아니어도,
거의 확신할 수 있었다.
만약 그가 생각한 대로 안 흘러 가더라도 상관없었다.
'여차하면 다 죽이면 되는 거야.'
유준이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마족이라고 했지.'
유준이 눈을 빛냈다.
다크엘프들의 위기.
이건 오히려 기회였다.
'내 레벨이 지금 123이니까...
지금 레벨에 마족을 잡는다면?
전설 칭호는 떼어 놓은 당상이었다.
쌓이면 쌓일수록 그에게 힘이 되어 주는 것이 바로 칭호.
지금 이 시점에서 마족을 만난다는 건 엄청난 기회였다.
그는 입꼬리가 올라가려는 것을 막았다.
'이거 일이 잘 풀리는데.'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2권 4화
28 화
마족.
'마신 추종자'를 얘기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종족이었다.
마신 추종자에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게 그들이었기 때문.
마족은 태어날 때부터 강력한 무 력을 지니고 있으며, 마법, 술식, 결계, 전투 센스 등 모든 것을 타 고난 종족이었다.
'모든 면에서 인간의 상위 호환이지.'
대신, 단점이 하나 있다면 성장 력이 다른 종족들에 비해 많이 뒤 떨어진다는 것.
하지만 그래 봐야 원체 무력이 강한 종족이라 그들이 신들의 전쟁 내에서 차지하는 영향력은 상당했다.
'그런 마족이 이 일에 개입되어 있다는 거지?'
사실 이번 일은 손을 떼는 것이유준의 입장에서 봤을 때 현명한 판단이었다.
마족은 대체로 강한 편이니, 레
벨이 낮은 현재의 그는 위험할 수 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위험한 만큼 큰 보상이 기다리기도 했다.
빠른 성장을 원하는 그는 이 기 회를 놓칠 생각이 없었다.
[*신유준 : 그래서 하고 싶은 말 이 뭔데?]
[스텔른 : ...면목 없지만, 마족을 잡는 것을 도와줬으면 한다.]
정말 면목 없는 짓이긴 하다.
지금까지 죽이려 했던 상대에게 도움을 요청하다니.
보통 사람이라면 화가 났겠지.
사람을 난데없이 공격해놓고, 갑 자기 도와달라니.
화가 안 나면 이상한 거다.
그러나 유준은 속으로 웃고 있었다.
그는 사사로운 감정에 몸을 맡기 기보다는 앞으로 얻을 이익에 더 집중했다.
[*신유준 : 내가 뭘 얻을 수 있지?]
[스텔른 :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모든 걸 다 들어주지.]
[*신유준 : 그래?]
[스텔른 : 부탁이다. 정말 염치없는 짓인 걸 안다. 하지만 우리 부 족뿐만 아니라, 다크 엘프 종족 전 체의 안위가 달려 있다. 여왕님은 대륙에 있는 모든 다크 엘프에게 없어선 안 될 존재니까.]
[*신유준 : 그건 내가 알 바가 아니긴 한데. 그래도 뭐 도와줄게.]
[스텔른 : 고맙다! 그에 상응하는 보답을 무조건 하지.]
스텔른이 고맙다고 했지만,
유준은 본인이 원하는 걸 얻기위해 움직일 뿐이다.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고.
다크엘프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라,
오로지 자신의 선택만이 중요했다.
그게 유준이었다.
[*신유준 :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스텔른 : 뭐지?]
[*신유준 : 날 뭘 믿고 도와 달라고 부탁하는 거야? 내가 마족한테 질 수도 있잖아. 아니, 그럴 확 률이 높은 게 아닌가?]
잠깐 뜸을 들린 스텔른이 다시 메시지를 보내왔다.
[스텔른 : 간단하다. 네가 지닌 레벨에 걸맞지 않은 무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다 우리가 의
지할 존재가 따로 없는 것도 이유였지. 너 같은 강자가 우릴 도와준 다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신유준 : 이종족 연합한테 도움을 요청할 생각은 안 해 봤어?]
[스텔른 : 연합 내에서 우리 다 크 엘프 종족을 질투하는 종족이 얼마나 많은지 아는가?]
스텔른은 그 말만 보내고 부연 설명을 하지 않았다.
대충 상황은 알겠다.
겉으로는 한참 동안을 아무 말도 안 하고 유준이 서 있기만 하자, 다크 엘프들이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세계수의 씨앗이라고 했나? 그 게 필요한 이유는... 단지 세계수 가 아주 귀한 보물이기 때문이지."
스텔른이 생뚱맞은 소리를 했다.
유준은 그의 의도를 단번에 알아 챘다.
'마족이 지켜보고 있구나.'
마족이 그러려면 못할 것도 없었다.
[*신유준 : 근데 만약 네가 실패 했다는 걸 알고 있다면... 마족들은 어떻게 움직일까?]
[스텔른 : 여왕님을 바로 죽이진 못할 거다. 인질이잖나. 그게 그들이 가진 가장 강력한 카드다.]
[*신유준 : 그건 다행이네.]
유준은 검을 거둬들였다.
그리고 뒤를 돌아 메이를 바라봤다.
"괜찮겠어요?"
"네...,네? 뭐가요?"
"다크 엘프를 용서해도요."
"아! 저는 상관없어요. 저뿐만 아니라 제 친구도 지금은 무사하니까요... 유준 덕분에. 그러니 유준 이 하고 싶은 대로 해요."
"알겠습니다."
당연히 그렇게 대답할 줄 알았다.
입꼬리를 올린 유준이 스텔른을 바라봤다.
"하여튼 이제 엘프나 나를 공격 하지 않겠다는 뜻이지?"
"물론이다. 세계수가 탐나긴 해 도 우리 동족들의 목숨이 더 중하니까."
"알겠어. 그럼 우리 먼저 가 본다?"
"그래."
유준은 메이를 데리고 그 자리를 빠르게 빠져나갔다.
일단 마족을 상대하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
어차피 스텔른과 대화를 할 방법 이 있으니 지금 그와 같이 있을 필 요가 없었다.
'메이부터 데려다줘야지.'
길을 전부 외운 유준은 광산을 금방 빠져나올 수 있었다.
동굴을 나오자, 아까보다 훨씬 많아진 수의 엘프들이 보였다.
그를 발견한 엘프들이 한걸음에 달려왔다.
"나오셨군요!"
"다크 엘프들한테 공격을 당했다 고 들었습니다!"
"괜찮으십니까?"
"메이!"
그중 익숙한 얼굴도 있었다.
화리풀 부족의 엘프 장로 요드리였다.
그녀는 이때만을 기다렸다는 듯 유준에게 다가와 말을 걸어왔다.
"어디 다치신 곳은 없나요?"
"다행히요."
"다크 엘프들이 어떻게 그 안으로 들어간 건지는 모르겠어요. 입 구는 철저히 지키고 있었는데.... 하지만 그것 또한 저희 책임이죠. 죄송해요."
"아닙니다. 거기 말고도 다른 통 로가 또 있던 거 같더라고요."
그는 안에서 있었던 일을 모두 떠벌리지는 않았다.
엘프들한테 사실 그대로 알리는 건 좋지 않은 생각이었다.
그들, 그러니까 엘프 중에도 첩 자가 있을지 모르니까.
"아. 그런데 거기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요? 또 왜 이렇게 늦게 나오셨구요?"
"스승님의 물건을 찾는 일이 좀 오래 걸려서요. 결국, 오는 길에 하 나 찾았습니다."
"아, 우리 아이가 다쳤는데 치료 까지 해 주셨다고 들었어요. 정말
감사해요."
"뭘요. 다 잘 풀렸으니까 저도 기분이 좋습니다."
"목적하셨다는 걸 이뤘다니, 잘 됐네요!"
"예."
요드리가 무언가 기대하는 듯한 눈빛을 보낸다.
그 눈빛의 의미를 아는 유준이 쓴웃음을 지었다.
인벤토리에서 세계수의 씨앗을 꺼내 요드리에게 건네주었다.
처음 했던 약속을 지키는 것이다.
요드리의 표정이 급 밝아졌다.
"드, 드디어!"
그녀가 호들갑을 떨며 세계수의 씨앗을 받아 들었다.
"얼른 인벤토리에 넣어요. 누가 채 갈 수도 있으니."
유준의 말에 요드리가 황급히 인 벤토리에 세계수의 씨앗을 넣었다.
"고마워요. 이건 사실 유준이 훨 씬 손해 보는 건데...
"저야 스승님의 물건이 더 소중 하니까요."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그러다 문득 요드리의 표정이 어 두워졌다.
"다크 엘프들은 선을 넘었어요. 티 격태격 싸우긴 했어도 서로 죽이려 고까지 든 적은 여태 없었는데...
"뭐, 사정이 있겠죠. 누군가 단독으로 벌인 짓이 아니라면요."
"네? 뭔가 알고 계시나요?"
"아뇨. 왠지 사연이 있을 거 같 기도해서요. 세계수의 씨앗 하나 때문에 엘프 전체를 적으로 돌릴 것 같지는 않고."
" 으음...
대충 아닌 척 다크 엘프들을 비 호해 주었다.
엘프들이 마족이 아닌 다크 엘프들을 향해 창과 활을 겨누면 상황이 귀찮게 된다.
요드리는 유준의 말을 귀담아듣는 눈치였다.
그 후로 요드리와 별 의미 없는 대화를 주고받은 유준은 엘프들이 없는 나무 근처로 이동했다.
'마족한테 효과적인 아이템을 찾 자.'
곧 마족들과 싸우게 될지도 모른다.
예상했던 것보다 마족들을 더 빨 리 조우하게 되었지만, 이건 오히 려 그에게 행운이 될 것이다.
유준은 인벤토리를 열어 아이템들을 쭉 둘러봤다.
'역시 마족을 사냥할 땐 이거지.'
한 아이템을 발견한 유준이미소를 지었다.
[성스러운 기운이 담긴 망토]
착용 제한 : Lv. 260 이상
등급 : 전설
방어력 : 2,294
옵션 : 암 속성 기운을 지닌 적에게 행하는 모든 공격이 250%의 추가 대미지를 입힙니다.
지금 무한의 탑에선 구할 수 없는 아주 귀한 망토였다.
착용 제한 레벨이 그의 레벨보다 훨씬 높지만, 전설 아이템 박스로 레인보우 스티커를 부착하면 당장 착용할 수 있었다.
옵션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마족
들을 상대하기 위해선 이 아이템은 필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마족은 한 놈도 빠짐없이 암 속 성을 사용하기 때문이었다.
레인보우 스티커를 망토에 부착 한 유준은 곧바로 '성스러운 기운 이 담긴 망토'를 어깨에 걸쳤다.
그리고 엘프들이 있는 곳으로 되 돌아갔다.
'엘프 중에도 첩자가 있을 거 같 긴 한데.'
어찌 됐든 결계가 펼쳐져 있던 장소에서 했던 대화가 순식간에 다 크 엘프들의 귀에 들어갔다.
첩자가 있든지, 그게 아니면 마 족이 결계를 뚫고 엘프들을 염탐하고 있든지 둘 중 하나였다.
그때 메이가 유준을 발견하더니,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유준!"
" 예?"
"저희랑 같이 마을에 가요! 맛있는 식사 한번 대접하고 싶어서요."
"으음."
지금은 다크 엘프 여왕을 인질로 잡은 마족들과 전투를 벌이러 가야 한다.
여유롭게 웃고 떠들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유준은 정중하게 거절했다.
"지금은 안 될 거 같습니다. 해야 할 일이 남아서요. 대신 그 일 이 끝나면 찾아뵙겠습니다."
"아, 일이 있다면 어쩔 수 없죠. 그래도 나중에 꼭 오시는 거예요?"
"물론입니다."
메이가 들뜬 얼굴로 엘프들에게 돌아갔다.
유준은 요드리에게 가서 용건을
전했다.
"다크 엘프들과의 싸움은 미뤄 주세요."
그의 말에 요드리가 눈을 휘둥그 레 떴다.
"그게 무슨 말이죠? 싸움을 미뤄 달라니요?"
"제가 그들과 결판을 내겠습니다."
"아, 아니... 너무 위험해요. 당 신이 강하다는 걸 아이들에게 들어 서 알지만, 그쪽으로 홀로 가는 건...
"괜찮습니다. 저도 죽긴 싫어요.
다 방법이 있어서 혼자 가려는 겁니다."
"방법요? 그게 뭐죠?"
"그건 비밀입니다."
요드리가 불안한 기색을 내보였다.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어차피 위험부담은 제가 지잖아요. 막 다크 엘프들이랑 목숨 걸고 싸우겠다는 건 아니니까 너무 걱정 하지 마세요."
"...알겠어요."
알게 된 지 얼마나 됐다고 이리 걱정해 주는지 모르겠다.
'세계수의 씨앗 때문이겠지?'
엘프들과 대충 작별 인사를 나눈 유준은 적당한 자리를 잡고 메신저 창을 열었다.
그리고 자신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스텔른에게 메시지를 하나 보 냈다.
[*신유준 : 다크 엘프 한 명만 보내 줘. 위치를 모르니까.]
답장은 빠르게 도착했다.
[스텔른 : 알겠다. 지금 어디지?]
유준은 그 후로 스텔른에게 대충 근처 지리 특징을 설명하고 다크 엘프를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순해 보이는 인상의 남성 다크 엘프 한 명이 그에게 접근했다.
"스텔른이 보냈어?"
"예. 맞습니다."
"안내해 줘."
"예."
의외로 공손하다.
눈빛을 보니 아무래도 유준이 무 위를 보였던 그 자리에 있던 다크 엘프 같았다.
다크 엘프의 마을은 광산에서 그 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수많은 다크 엘프들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하나같이 표정에 여유가 없었다.
여왕이 인질로 잡힌 걸 모두가
알고 있는 듯했다.
'하긴 모르는게 더 이상하겠다.'
입구 근처에 스텔른의 모습이 보였다.
스텔른은 유준을 발견했지만, 말을 걸거나 하지는 않았다.
주위에 있는 마족을 의식한 것이다.
유준도 마족의 흔적을 찾기 시작 했다.
'세계수의 씨앗을 알고 있었으니 당연히 내 존재도 알고 있겠지.'
평정심 특성이 있음에도 살짝 긴
장되었다.
마족들의 수준은 그가 상대해 온 그 어떤 종족들보다 높다.
그가 눈을 감고 기감을 널리 퍼 뜨렸다.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2권 5화
29 화
당연하게도 마족의 흔적이나 기 척은 쉽사리 발견하기가 힘들었다.
'아주 꽁꽁 숨어 있네.'
사실 123레벨이 기감을 퍼뜨려 봐야 얼마나 잘 찾겠느냐마는, 그 의 민첩 능력치는 상당히 높은 편이다.
동 레벨대의 플레이어와는 비교 할 수 없는 수준.
그런데도 마족의 기척을 조금이
라도 느낄 수 없는 것은 마족의 수 준이 그만큼 높기 때문이리라.
"후우..."
자신이 괜히 객기를 부린 건 아닌지 걱정이 된다.
적어도 상대방의 정보는 알고 올 걸 그랬나.
후회해도 늦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준비는 모두 마 친 상태.
이제 마족과 붙을 일만 남아 있다.
다크 엘프 여왕의 오두막이 어디
에 있는지는 미리 설명을 들었다.
'마음 같아선 파라네트도 소환하고 싶은데...
다크 엘프들에게 언데드 소환수 가 있다는 걸 들켜서 좋을 게 있을까.
파라네트를 소환하는 건 잠시 보 류하기로 했다.
마을을 걷고 있는데 다크 엘프들 의 시선이 따갑다.
유준은 그 시선들을 가뿐히 무시 하고 걸었다.
이윽고 여왕의 거처, 마을에서 가장 큰 오두막의 앞에 섰다.
그러나 그 오두막에 바로 들어가 진 않고 인벤토리를 열었다.
그냥 무작정 달려가 마족과 싸울 생각은 아니었다.
'만약을 위한 보험은 들어야지.'
헉 소리가 날 만큼 아름다운 여 인이 고급스러운 침대에 누워 있다.
그러나 그녀는 편히 잠든 것이 아닌, 영원히 깨어나지 않는 저주에 걸려 있는 상태였다.
잠들어 있는 그녀가 다크 엘프 여왕이었다.
여왕을 주위로 두 명의 마족이 있었다.
둘은 남성 마족과 여성 마족으로 구별되었다.
시답잖은 얘기를 나누던 그때 그 둘의 표정이 일순 굳었다.
" 인간?"
"인간의 기척이 맞지?"
"그 녀석이군."
"씨앗을 가지고 있던 인간 아 이?"
"그래. 그때 맡았던 냄새야."
"그 아이가 어떻게 여기에?"
"멍청한다크 엘프들이 실패한 거겠지."
"살려서 데려온 거 아니야?"
"살릴 필요가 없는 녀석이다."
"그럼 우리가 처리하면 되겠네."
"쯧. 이럴 거면 진즉에 직접 움직였지."
"한 명은 여길 지켜야 해. 그건 알지?"
"여왕이 저주에 걸려 있다곤 해 도 안심할 수 없으니까. 나머지 한 명이 그녀를 감시해야 하는 건 당 연해."
"쳇. 이번 일이 끝나면 이곳에 있는 다크 엘프들을 전부 처리해야겠네."
"그다음엔 근처 엘프 부락을 노 리는게 어때."
"좋아. 그쪽 엘프 장로도 다크 엘프 여왕처럼 멍청했으면 좋겠는데."
여유롭게 대화를 주고받은 여성 마족이 재차 입을 열었다.
"내가 나갈까? 인간이 들어올 생각을 안 하는데."
"갔다 와."
고개를 끄덕인 여성 마족의 몸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오두막으로 나온 그녀는 눈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인간을 눈을 가 늘게 뜨고 바라봤다.
그에게서 강대한 기운이 느껴지 거나 하진 않았지만.
'...웃고 있어?'
그때였다.
온몸을 뒤덮는 불안감.
여성 마족, 셰이라는 급히 블링 크 스킬을 사용해서 자리를 벗어나 려 했다.
그러나 늦었다.
그녀는 보이지도 않고, 형용할 수도 없는 무언가에 의해 몸을 속 박당했다.
셰이라는 몸에 힘을 줘서 그 무 언가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질끈.
꼼짝도 하지 않는다.
그녀를 묶은 무형의 기운은 너무 나 강력했다.
290레벨 마족인 셰이라를 완전히 속박할 정도였으니.
움직일 수 없게 된 셰이라의 눈에 두려움이 깃들었다.
눈앞에 서 있던 인간이 그제야 천천히 다가온다.
분명히 나약하디 나약한 인간인데.
저항할 수 없는 상태에 놓이니 두려움과 불안감이 온몸을 장악하게 되었다.
"자, 잠깐만!"
셰이라가 시간을 끌고자 말을 걸었다.
다가오던 인간, 유준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 멈추라고!"
셰이라가 다급하게 외친다.
"내가 왜?"
"내 몸에 무슨 짓을 한 거야!"
"글쎄."
"이거 당장 풀어! 죽고 싶지 않으면!"
아무래도 저 마족이 상황 파악이제대로 안 되는 것 같았다.
검을 쥐고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유준은 마음을 조급하게 가지지 않았다.
마족에게 걸린 '영원 속박의 저 주'는 한번 걸린 이상 스스로 벗어 날 수 없었다.
'아니. 누군가가 도와준다고 해도 내가 설정한 패턴 술식을 모르면 풀 수가 없지.'
그가 사용한 소모성 아이템 '영 원 속박의 저주'는 신화 등급 아이템이었다.
'등급값 제대로 했네.'
온갖 아이템을 다 가지고 있는 그로서도 몇 개밖에 없는 물건을 지금 사용한 것이다.
그러니 마족의 레벨이 그보다 월 둥하게 높다고 해도 그 저주를 피 할 방법은 없었다.
'이건 진짜 최대한 아끼려고 했는데.... 첫 마족 사냥이니 안전을 위해서 사용하는게 좋겠지.'
전설 등급 아이템들 덕분에 지금
그의 스펙이 마족에 비해 크게 뒤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확실히 하고 싶었다.
상태 확인 스크롤로 마족의 정보를 미리 살펴봤다.
'레벨이 294.... 딱 평균 정도네.'
진짜 강력한 마족은 아니었다.
오히려 다크 엘프 여왕을 인질로 삼은 것치고는 조금 약한 감이 있었다.
'방심한 틈을 타서 기습한 건가?'
다크 엘프 여왕쯤 되면 이 정도
수준의 마족은 충분히 상대해 낼 수 있었을 텐데.
하여튼 그건 지금 당장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는 셰이라를 처리하기 전에 파라네트를 소환했다.
"주인님!"
꽤 오랜만에 소환된 파라네트가 반갑다는 듯 소환되는 즉시 유준에게로 다가왔다.
"무슨 일입니까? 제가 도와 드리면..."
"잠깐. 기다리고 있어."
" 예?"
"레벨 업 시켜 줄 테니까."
그 말을 내뱉은 후 유준은 망설 이지 않고 셰이라의 목에 검을 찔 러 넣었다.
"아, 안..."
푹!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 차이가 극심한 상대를 일 격에 쓰러뜨렸습니다!]
[불가능한 업적!]
[전설 아이템 박스(선택)]
[전설 칭호 '마족 사냥꾼'을 획득 합니다.]
['마족의 정수'를 획득합니다.]
-마족 사냥꾼(전설) - 마족에게 주는 모든 피해가 15% 증가합니다.
레벨은 11이 오르고 전설 칭호와 전설 아이템 박스를 얻었다.
'좋아. 전설 아이템 박스가 다시 두 개가 됐네.'
레인보우 스티커를 부착한 망토 덕분일까.
아무리 급소를 노렸다고는 해도 마족이 한 번의 공격으로 죽는 건 매우 드문 일이다.
레벨을 떠나서 마족은 매우 질긴 생명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었다.
250%의 추가 대미지는 확실히 무시할 수 없나 보다.
가뜩이나 유준의 공격력이 높은 것도 있었고.
"주, 주인님? 어떻게 된 일인가요? 마족의 향기가 느껴지는데
파라네트가 어리둥절하며 말했다.
"레벨 좀 올랐냐?"
"엄청 많이 올랐습니다..."
"잘됐네."
소환수의 레벨은 높을수록 자신에게도 도움이 된다.
경험치를 나눠 먹는 것도 아니니
파라네트는 상시 데리고 다니며 레 벨을 올려 주는게 좋았다.
'파라네트 상태 좀 볼까.'
유준은 오랜만에 파라네트의 능력치를 확인했다.
[소환수 : 파라네트(성장형)]
□ 레벨 : 162
□ 특성 : 생존 본능(S), 회피(A)
□ 스킬 : 독 포션 제조(B), 시체 폭발 (S)
□ 칭호 : 없음
□ 능력치
[근력 140] [민첩 159]
[체력 111] [마력 121]
[미분배 포인트 : 0 ]
'오... 괜찮은데.'
파라네트의 경우 단순히 레벨이 오를 때마다 3개의 능력치가 주어 지는게 아니었다.
그 이유는 유준이 죽은 자의 축 복을 이용해 파라네트의 잠재력을 대폭 상승시켰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태초의 플레이어 특전
을 받은 유준처럼 4개의 능력치가 주어질 때가 있는 것이다.
그렇기 파라네트의 능력치는 다 른 동 레벨대 플레이어들보다 훨씬 높은 축에 속했다.
거기다 유준이 준 전설 등급 장 비들은 파라네트의 등에 날개까지 달았다.
'어그로용으로 쓰기엔 과분한 능력치네.'
흡족한 미소를 지은 유준은 어느 새 나타난 마족을 보며 검을 들어 올렸다.
"셰이라를 죽였나?"
남성 마족이 무덤덤한 어조로 말 했다.
유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죽였지?"
"검으로."
"그걸 묻는게 아니라는 걸 알 텐데."
"그냥 죽던데?"
"아니. 너의 능력으로는 셰이라를 쓰러뜨릴 수 없다. 다시 한 번 묻지. 어떻게 죽였나?"
"직접 확인해 보시든가."
유준이 땅을 박차 남성 마족, 고
튼에게 달려들었다.
고튼은 등 뒤에서 날개가 솟아나 더니 하늘 높이 올라갔다.
그리고 검에 암흑 마기를 주입하 더니 유준에게로 추락, 쇄도해 왔다.
순식간에 바로 앞까지 도착한 고 튼을 향해 검을 마주 휘둘렀다.
콰아앙-!
유준이 멀리 튕겨 나갔다.
그는 뒤로 튕기면서도 무기의 상태를 확인했다.
'다행히 멀쩡하네.'
그렇다면 무기의 공격력이 밀린 것이 아니었다.
근력에서 차이가 난 모양이다.
유준은 자세를 바로잡고 날아오는 고튼에게로 검을 뻗었다.
이번엔 SS등급의 검술 특성이 힘을 발휘했다.
절묘한 타이밍에 뻗어진 검은 고 튼을 이도 저도 못하도록 만들었다.
고튼이 몸을 비틀었다.
푸욱!
어깻죽지가 유준의 검에 제대로 꿰뚫렸다.
" 감히..."
큰 상처를 입은 고튼은 물러나기 보다는 유준에게 공격을 시도했다.
암흑 마기.
유준이 헛숨을들이켰다.
" 뭐?"
"크하하... 누구의 몸이 더 튼 튼한지 확인해 보자고. 인간."
고튼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칠흑 색의 기운이유준의 바로 앞에서 폭발했다.
고튼이 자폭을 감행한 것이다.
콰콰콰쾅! 콰콰쾅!
엄청난 폭발이 근방 일대를 뒤덮었다.
그리 가깝지 않은 곳에 있던 파라네트도 멀리 튕겨 나갈 정도.
바로 앞에서 직격당한 유준 또한 멀쩡할 수 없었다.
연달아 터진 폭발은 유준의 몸을 쉴 새없이 두들겼다.
유준은 정신이 혼미해짐을 느꼈다.
당장이라도 기절할 것 같았다.
그러나 기절하지는 않았다.
평정심.
그 특성이유준의 정신을 또렷하게 만들어 주었다.
'죽지 않았어.'
왼팔이 너덜거리고, 두 다리가 꺾여 나갔지만, 숨이 붙어 있었다.
스스로 살았다는 것을 인지한 유준은 곧바로 인벤토리부터 열었다.
시야가 흐릿하다.
인벤토리 내에 물건이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럴 때를 대비해서 물약은 가장 가까운 곳에 배치해 두었다.
'맨 앞에서 두 번째...
그곳에 최상급 물약이 있다.
단순히 치유 능력만 놓고 보면 엘릭서와 비견될 만한 효과를 지닌 아이템이었다.
최상급 물약의 뚜껑을 열어 단숨에 삼켰다.
청량한 기운이 목을 타고 넘어갔다.
그리고 그 즉시.
효력이 드러났다.
만신창이가 되었던 몸은 암흑 마 기에 직격당하기 전의 상태로 완전
히 회복했다.
"후우..."
온몸 곳곳에서 느껴지던 고통이 말끔하게 사라졌다.
유준은 멀리 날아간 고튼의 상태를 확인했다.
마기 폭발로 말미암아 생긴 끔찍 한 상처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빨리 처리해야겠다.'
마족은 재생력이 뛰어나다.
저 정도 상처를 한순간에 회복하 진 않겠지만, 시간을 줄 필요는 없었다.
몸이 완벽하게 회복된 유준은 땅을 박차 쓰러져 있는 마족에게로 쇄도했다.
고튼은 정신을 잃어 아무런 저항을 할 수 없는 상태.
유준이 마족의 두개골을 향해 검을 내려찍으려는 그때였다.
파각!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2권 6화
30 화
얇은 막의 실드 하나가 생기더니 유준의 검을 막아섰다.
실드에 쩌적 금이 갔다.
그의 막강한 공격력을 버텨 낼 정도의 실드.
유준은 실드를 만들어 낸 장본인을 찾고자 주위를 둘러봤다.
그러던 그가 무언가를 발견하곤 눈을 휘둥그레 떴다.
오두막 벽에 손을 얹고 힘겹게
서 있는 다크 엘프 하나를 발견한 것이다.
'다크 엘프 여왕인가?'
숨어서 유준과 마족의 전투를 지 켜보던 다크 엘프들이 화들짝 놀라 며 여왕으로 추정되는 인물에게 몰 려들었다.
"여왕님!"
"어, 어떻게 이런 일이...
"장로님들을 불러!"
삽시간에 소란스러워졌다.
유준은 찝찝한 얼굴로 마족 고튼 의 숨을 끊기 위해 검을 위로 올렸다.
그리고 검을 내려치려는 순간.
"잠깐만요!"
다크 엘프 여왕이 소리쳤다.
오랜만에 입을 연 탓인지 잔뜩 갈라진 목소리였다.
유준이 고개를 돌렸다.
"지금 그를 죽여선 안 돼요!"
"그게 무슨 말이죠?"
"그 마족이제 몸에 이상한... 그 기폭 장치를 해 놨어요."
"기폭 장치요?"
무한의 탑에 그런 게 있었던가?
"정확히는 저주예요."
"영원히 잠드는 저주에 걸렸던 거 아닌가요?"
"맞아요. 그런데 제게 걸린 저주는 하나가 아니에요. 두 개죠. 고튼 이 죽으면 저도 죽어요."
한 번에 말을 몰아 내뱉은 탓에 다크 엘프 여왕이 숨을 헐떡였다.
"그럼 어떡합니까?"
이대로 회복하게 둘 수는 없다.
마족이 정신을 차리기만 해도 이 곳을 빠져나갈 방도 한둘쯤은 있을
터.
"적어도 저주를 풀고 죽여야 해요."
"저주는 어떻게 풀고요? 당장 방 법이 있습니까?"
유준의 말에 다크 엘프 여왕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없어요."
"허."
참 대책 없네.
유준이 한숨을 내쉬었다.
확실히 저주를 푸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저주가 강력한 저주일 시에는 상황이 무척 까다로워진다.
"저주가 두 개...라고?"
" 여왕님...
"제가 당장 엘릭서를 구해 오겠습니다! 기다려 주십시오!"
"다들 진정해요. 아직은 괜찮아요. 당장 몸에 큰 이상이 있는 건 아니니까요."
다크 엘프들이 침울해하는 그때였다.
" 일단."
유준이 인벤토리를 열었다.
"저한테 방법이 있습니다."
그의 말에 다크 엘프뿐만 아니라 다크 엘프 여왕도 놀랐다.
"네? 방법이 있다고요? 제게 걸 린 저주는 상위급의 저주예요. 웬 만한 스킬로는 어림도 없...죠."
"그러겠죠."
그러니까 다크 엘프 여왕이 마족 들한테 당한 것이다.
분명 다크 엘프 여왕은 방금 유준이 죽였던 마족 셰이라나 고튼에게 허무하게 당할 정도로 약하지 않았다.
"설마 엘릭서를 가지고 계신 건 가요?"
다크 엘프 여왕의 물음에 유준이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요."
"아... 역시 그렇겠죠."
여왕이 눈에 띄게 실망한다.
사실은 엘릭서를 가지고 있다.
엘릭서는 귀한 물건.
생판 모르는 남을 위해 쓰고 싶 지 않았다.
그러나 곧이곧대로 말할 수는 없는 노릇.
유준은 인벤토리에서 아이템 한 개를 꺼냈다.
"엘릭서는 아닌데, 이것도 효과 가 있을 겁니다."
순백색의 액체가 담긴 플라스크였다.
눈에 띄거나 별다른 특징은 없지만, 깨끗하고 고귀한 느낌을 줬다.
"그건...?"
"확인해 보세요."
유준이 천천히 걸어가자, 다크 엘프들이 경계하는 눈빛을 보냈다.
어느 지점에서 멈춘 유준이 다시
입을 열었다.
"대신 이건 공짜로 드릴 수는 없습니다. 비싼 물건이라."
다크 엘프 여왕에게 걸린 상위급 저주 두 개를 단숨에 해결할 수 있 게 해 주는 아이템이다.
당연하지만 그냥 줄 수는 없었다.
"뭘 원하시나요?"
다크 엘프 여왕이 물었다.
유준은 미리 준비한 대답을 꺼냈다.
"다크 엘프들이 엘프들을 죽이려
고 했던 행동에 대해서 사과를 바 랍니다."
"...그간 무슨 일이 있었죠?"
엘프를 공격했다는 유준의 말에 다크 엘프 여왕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었다.
주변 다크 엘프들이 불안해하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어떡하지...?"
"여왕님은 하나도 모르시는데."
"우리가 먼저 설명을 해 드려야 하나?"
속닥거리듯 말했지만, 그 대화
내용이 대충 예상이 갔다.
거기다 여왕이 연기를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여왕 모르게 일을 진행했던 건 가, 역시.'
그녀는 마족들에게 사로잡혀 있었으니 밖의 상황을 모를 만도 했다.
마족의 감시를 벗어나자마자 여 왕이 깨어난 것은 기막힌 우연이긴 했지만.
어쩌면 마족 고튼이 큰 부상을 당하면서 여왕에게 걸려 있던 저주 의 힘이 약화되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당신을 구하고자, 다크 엘프들이 엘프들을 비롯해저에게까지 공 격을 감행해 왔습니다. 제가 가지 고 있던 세계수의 씨앗을 빼앗으려 고요."
"...저와 세계수의 씨앗이 무슨 관련이 있는 거죠?"
"마족들이 그걸 원했거든요. 씨앗을 가져오면 당신을 풀어 주겠다 고 했고."
다크 엘프 여왕이 한쪽 눈가를 찡그린 채 뒤를 돌아본다.
다크 엘프들, 특히 원로들이 몸
을 흠칫 떨었다.
"여러분은 그걸 믿었나요?"
"방법이 없었습니다!"
"안 그랬으면... 여왕님이 위험 했어요."
원로들의 변명에도 다크 엘프 여 왕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요. 우 리와 우호적인 관계에 있던 엘프들을 공격하진 말았어야죠. 그건 선을 넘어도 한참 넘은 거예요."
단호한다크 엘프 여왕의 말.
광산에 대한 문제로 티격태격하
긴 했어도 그들은 여태 논쟁을 벌 여 왔을 뿐,
실제로 상대방의 목숨을 빼앗고 자 전투를 벌인 적은 없었다.
그래서 다크 엘프 여왕은 예상한 것 이상으로 분노했다.
그녀는 유준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허리를 숙였다.
"동족, 아니 다크 엘프 종족 전 체를 대표해서 사과드리겠습니다. 화리풀 부족에도 마찬가지고요. 그 들에게 직접 사과를 하러 따로 찾 아가겠습니다."
"또 원하시는게 있나요?"
그녀의 말에 유준은 속으로 웃었다.
사실 본론은 지금부터다.
다크 엘프 여왕이 엘프들에게 용 서를 구하는 행위는 그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유준은 내심 기대하며 입을 열었다.
"혹시... 푸른 돌레풀을 가지고 계십니까?"
"돌레풀요?"
"있어요. 항상 마을 내에 한두 개씩은 구비해 놓거든요. 그런데 왜 돌레풀이 필요하시죠?"
다크 엘프 여왕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돌레풀은 다 크 엘프들이미식을 즐기기 위해서 채소 요리에 곁들이는 소스를 만들 때 들어가는 재료이기 때문이었다.
인간은 그 소스의 맛을 느끼기도 힘들뿐더러, 레시피조차 아는 이가 거의 없을 정도.
심지어는 엘프도 그 돌레풀을 활 용할 줄 모른다고 한다.
"그냥요. 제가 대륙을 떠돌면서 온갖 것들을 모으는 취미가 있거든요. 돌레풀도 하나 수집하고 싶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엘프를 제외한 종족은 그 풀을 쉽게 발견 못하잖습니까."
그런 이유가 아니었지만, 일단 그렇게 둘러댔다.
"마족에게서 저를 구해 주신은 혜에 비하면 전혀 어려울 것 없는 요구군요. 알겠어요."
다크 엘프 여왕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유준은 손에 들고 있던 병을 여
왕에게 넘겨주었다.
"이걸로 저주를 없앨 수가 있나요?"
"아이템 설명을 한번 읽어 보세요."
다크 엘프 여왕이 고개를 끄덕이 곤 아이템 정보를 열람했다.
[신성한 해독 물약]
등급 : 전설
옵션 : 섭취 시, 육체에 걸려 있는 상위 등급 이하의 저주를 말끔 히 제거할 수 있습니다.
전설 등급의 소모성 아이템.
그 효과는 굳이 옵션을 보지 않 더라도 보장된 셈이었다.
아이템 옵션을 읽은 다크 엘프 여왕이 눈을 크게 떴다.
"전설 등급...? 이걸 주시는 건 가요?"
"예. 돌레풀을 주시고 아까 했던 약속까지 지켜 주시면요."
이미 물약을 건네줬지만, 유준은 그녀가 약속을 지킬 거라 믿었다.
다크 엘프나 엘프나 웬만해서는
한번 한 약속을 어기지는 않으니까.
"좋아요. 어차피 저희는지금 그 제의를 거절할 수가 없는 상태잖아요."
그런 말을 하는 다크 엘프 여왕 의 표정이 밝았다.
그들이 보면 유준이 손해 보는 장사를 하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에게 돌레 풀은 그리 중요한 아이템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유준은 푸른 돌레풀이 꼭 필요했다.
다크 엘프 마을에서만 구하는 것
이 가능하니 이번 기회에 얻으면 더할 나위 없었다.
"거래 성립한 겁니다."
서로 이득을 보는 거래였다.
유준은 신성한 해독 물약을 아주 많이 소유하고 있었다.
이거 하나 내주는 것쯤은 그에게 아무런 손실이 없었다.
다크 엘프 여왕은 '신성한 해독 물약'을 뜸들이지 않고 바로 삼켰다.
목을 타고 넘어간 물약은 다크 엘프 여왕에게 걸려 있던 상위급 저주 두 개를 완전히 소멸시켰다.
그에 따라 여왕의 안색이 급격하게 밝아졌다.
수척했던 모습에서 고고하며 아 름다웠던 원래의 미모를 되찾았다.
"후아.... 고마워요. 일방적으로 도움만 받은 것 같아서 그런데 원 하시는게 있으면 더 말씀하세요."
저주가 해결되니 다크 엘프 여왕 의 표정이 한결 여유로워졌다.
"혹시 선단 같은 거 있나요? 특 성이나 스킬 얻게 해 주는."
"...음."
다크 엘프 여왕이 잠시 고민했다.
유준이 요구한 것은 무척 가치가 높은 물건.
그러나 저주를 해주하게 해 준 것에 비하면 약소한 보상이라고 할 수 있다.
"줄게요. 마침 제 인벤토리에 하 나 남아 있군요."
엘프도 그렇지만, 다크 엘프는은원 관계를 확실하게 한다.
그녀가 '숙성된 선단'을 내밀었다.
솔직히 창고에서 꺼내 올 줄 알았던 유준은 선단을 얼떨결에 받아
들었다.
"감사합니다."
"뭘요. 제가 더 고맙죠."
[숙성된 선단]
등급 : 無
옵션 : 섭취할 시에 등급 이하 의 특성 하나를 추가로 얻습니다. 이때 얻는 특성은 무작위로 정해집니다.
장시간 숙성된 선단과는 조금 다 른 아이템이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장시간 숙성된 선단'보다는 뒤떨어진다고 볼 수 있었다.
'등급 이하여도 쓸 만한 특성은 많으니까.'
유준은 일단 인벤토리에 선단을 고이 모셨다.
그 후, 아직 몸을 재생하고 있는 마족 고튼에게 다가가 검을 휘둘렀다.
그의 절삭력 높은 검에 고튼의 목이 한 번에 잘렸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마족의 정수를 획득합니다.]
[하급 마족의 뿔을 획득합니다.]
'연금술 재료들이네.'
마족의 정수나 하급 마족의 뿔이 나 매우 좋은 재료 아이템이다.
파라네트에게 부탁하면 꽤 괜찮
은 물건을 만들 수 있으리라.
이제 다크 엘프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눌 차례였다.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네. 이번 일에 대해서는... 거 듭 감사드려요."
다크 엘프 여왕이 진심으로 고마 워했다.
유준은 그들에게 있어 둘도 없는은인.
당연한 반응이었다.
유준은 그렇게 다크 엘프 마을을 떠났다.
'다행이다.'
처음엔 다크 엘프들과는 완전히 척을 질줄 알았다.
그런데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가 더니 두 명의 마족을 잡고 그 문제 가 단번에 해결되었다.
'어떻게 다 잘 풀렸네.'
유준은 무한의 탑 거주 구역으로 돌아갔다.
포인트는 몇 개의 잡템을 상점에 팔아 넘치도록 있으니 여관의 제일 비싼 방을 잡았다.
몸에 묻은 마족들의 피를 말끔히
씻어 낸 유준이 인벤토리를 열었다. 다크 엘프 여왕에게서 받아 낸
'숙성된 선단'이었다.
'이건 아낄 필요가 없지.'
그는 선단을 망설임없이 입안에 털어 넣었다.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2권 7화
31 화
선단을 먹고 눈앞에 바로 홀로그램 창이 나타났다.
[숙성된 선단을 섭취했습니다!]
[등급 이하의 특성을 하나 획득 합니다.]
[특성 '예민한 감각(A)'을 획득했습니다!]
예상한 것 이상의 물건이 나왔다.
유준이 함박웃음을 지었다.
'예민한 감각. 이건 A등급 특성 중에서도 1티어에 가까운 능력이었지.'
숙성된 선단을 먹으면 웬만해선 A등급 특성을 얻기가 힘들다.
그것만으로도 고마운데 감각 계 열 특성이 나와 줘서 더할 나위없이 기뻤다.
'행운의 반지 덕분이겠지?'
그 귀한 걸 먹었으니, 당연했다.
'그나저나... 지금 내가 하급 마족도 손쉽게 상대할 정도인 건가.'
두 명의 마족을 잡고서 이제 145레벨이 되었다.
반면, 마족들의 레벨은 200대 후반.
레벨이 두 배 차이가 나는 적을 이겼다.
그것도 두 명이나.
그는 스스로를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것을 이제 인지했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그에게는 남들은 못 가진 아이템들이 많았다.
'최상급 물약도 수천 개나 있고.'
과금으로 얻었던 최상급 체력 물약.
즉사하지 않고 최상급 체력 물약 만 제때 섭취한다면.
그는 무적이나 다름없었다.
"후우..."
유준은 침대에 걸터앉아 이번 사건에 대해 되짚었다.
'다크 엘프와 엘프 모두에게 도움을 주고받은 셈인가? 나쁘지 않네.'
특히 다크 엘프 여왕을 마족에게서 구했던 건은 다크 엘프들에게는 절대 잊지 못할 일일 것이다.
그들에게은혜를 베풀었다는 건 큰 자산이었다.
그리고 와중에 얻을 건 다 얻었다.
히든 던전을 공략했으며 돌레풀을 받았으며 마지막으로 숙성된 선단까지 받았다.
'돌레풀도 바로 사용하는게 좋겠지.'
유준은 떠날 때 여왕에게서 받은
푸른 돌레풀을 꺼냈다.
이걸 여왕에게 달라고 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돌레풀의 활용법을 자신이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푸른 돌레풀을 잘게 으깨서 어떤 특정한 아이템에 문지르면 완전히 새로운 아이템으로 변모한다.
그는 다행히 그 특정 아이템을 가지고 있었다.
유준은 인벤토리에서 '전능의 돌'을 꺼냈다.
전능의 돌.
전능의 돌은 아무런 효능도 없는, 전능이라는 이름과는 거리가
먼 아주 평범한 돌이다.
그러나 푸른 돌레풀과 만나면 다 르다.
유준은 푸른 돌레풀을 손에 힘을 줘서 으깨기 시작했다.
인간의 범주를 뛰어넘은 압력에 푸른 돌레풀은 죽처럼 흐물흐물해 졌다.
스윽. 슥.
그 상태에서 전능의 돌에 으깨진 푸른 돌레풀을 골고루 발랐다.
돌에서 빛이 나거나 모양이 바뀌는 변화는 없었지만, 아이템의 옵 션이 바뀌었다.
[전능의 돌]
등급 : 신화
옵션 : 무기에 흡수시키면 무기 특성에 따라 다른 효과가 부여됩니다. 전능의 돌은 무기에서 다시 빼 낼 수 있습니다.
신화 등급의 아이템!
옵션 내용만 봐도 왜 전능의 돌 이 신화 등급 판정을 받았는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그는 전능의 돌을 한번 만든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가 왜 또 전능의 돌을 만들었냐 하면.
앞서 만들었던 전능의 돌은 500 레벨 신화 등급 무기에 이미 흡수 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흡수된 걸 다시 빼내기 위해선 그 무기를 착용할 수 있어야만 했다.
한마디로 500레벨 무기에 흡수된 상태인 전능의 돌은 그림의 떡이라는 소리다.
그래서 새로운 전능의 돌이 필요 했고, 만들었다.
유준은 전능의 돌을 자신의 검에 가져다 댔다.
'바쥬르의 마력검에는 어떤 옵션 이 붙을까.'
유준의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길드장님. 이게 그 소문의 영상 입니다."
"그 고대 유적을 들어갔다가 나 왔다는 플레이어?"
"예."
최상위 랭커. 불의 여제라고 불 리는 도지윤.
그녀는 비서가 구해 온 영상을 보다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응?"
잘못 본 게 아닌가 싶어서 재차 확인했다.
그러나 다시 봐도 보이는 광경은 똑같았다.
'저거 광란의 방어구 세트 아니
영상의 남자가 착용한 광란의 방 어구.
도지윤은 그 방어구가 지닌 특이 한 문양을 알아봤다.
'모를 수가 없지.'
광란의 방어구 세트는 150레벨 이상 유저들의 국민 아이템이었다.
과금할 때 크게 비싸지도 않고 옵션의 효과도 무척 뛰어나며, 전 투가 길어질 때의 공격력과 방어력 이 대폭 증가하는 것은 거의 치트 키를 쓰는 것에 가까웠다.
저 아이템을 안 쓰면 호구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그렇기에 과금 아이템이면서도 국민 아이템인 것이다.
'저 세트 아이템을 착용한 플레 이어는 여태 없었어.'
도지윤이 눈을 가늘게 떴다.
'혹시 신들의 전쟁을 플레이했던 유저인가?'
그녀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이제 막 10층을 돌파한 플레이어 가 신들의 전쟁을 플레이했을 가능 성.
거의 없다고 본다.
그 게임을 조금이라도 했던 유저는지금 무한의 탑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 가고 있었다.
이름깨나 날리던 고인물들은 최 상위 랭커까지 되었다.
애당초 신들의 전쟁을 플레이했 던 인물들은 전부 5년 차 플레이어였다.
그 게임을 관리했던 운영자가 내 준 특권 때문에 앞서 시작할 수 있는 이점.
특이하다.
'5년 내내 10층 아래에 있었을 리도 만무하고.'
차라리 그냥 재능이 넘치는 플레 이어가 고대 유적에서 광란의 방어구 세트를 얻었다는 추론이 신빙성 있었다.
'피바람 좀 불겠는데.'
저 플레이어를 영입하려는 거대 길드 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 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지금 성장하는 속도를 보아하니 금방 랭커 자리를 꿰차겠어. 그러 니 거대 길드들이 굶주린 맹수처럼 저놈을 노리고 있는 거겠지.'
성장 속도가 말이 안 되었다.
지금 벌써 15층에 도달했다고 하는데.
10층에서 15층까지 올라간 속도 가 전례가 없을 정도.
그것도 모든 시험을 혼자서 클리 어해 냈다.
그가 만들어 낸 결과만 보면 그 야말로 역대급 재능이었다.
이미 최상위 랭커 중에서도 독보 적인 무력을 가진 도지윤이 질투가 날 만큼.
'도대체 무슨 능력을 얻은 걸까? 고대 유적에서는 광란의 방어구를 얻은 것이 거의 확실해 보이고.'
광란의 방어구 세트를 꼈다는 건
레벨이 최소 150이 넘었다는 뜻.
"EX 급 스킬이라도 가지고 있나?"
문득 내뱉은 혼잣말이 그럴싸했다.
아직 베일에 싸여 있어 그 어느 것 하나 확실한 게 없었다.
그러다 보니 이상한 추측도 하게 됐다.
"설마 무과금즐겜러인 건 아니겠지?"
신들의 전쟁에서 살아 있는 전설 이나 다름없었던 무과금즐겜러.
만약 그가 살아 있었다면 무한의 탑, 대륙의 판도가 완전히 뒤바뀌었을 것이다.
'그 망겜에 수십억을 쓸 생각을 어떻게 했을까. 참.'
돈과 시간이 남아도는 재벌 3세 도 그런 짓은 안 할 것이다.
'그때 마지막까지 남은 유저들은 전부 랭커가 되었는데...
무과금즐겜러만 유일하게 정체가 드러나지 않았다.
튜토리얼 단계에서 죽은 건지, 그게 아니면 아직 정체를 숨기고 있는 건지.
그녀는 무과금즐겜러가 튜토리얼에서 괜히 지옥 난이도에 도전했다 가 목숨을 잃은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뾰족한 송곳은 어떻게든 주머니를 뚫고 나오게 되어 있어. 지금까지 아무런 소문이 나지 않았다는 건 무과금즐겜러는 분명 죽었다는 건데.'
그런데 무과금즐겜러와 이제 막 떠오르는 신예 플레이어가 겹쳐 보이는 건 단순히 기분 탓일까.
"그럴 리가 없겠지."
신들의 전쟁을 플레이할 당시,
닉네임이 '핑크핑꾸토끼'였던 도지 윤이 실소했다.
10층, 11층, 12증, 13층, 14층 시련을 단숨에 클리어한 유준은 15 층에 올라와서야 그 진격을 멈췄다.
'너무 쉬운데?'
층 시련을 겪으면서 느낀 건 이런 하층에 머무를 수준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는 심지어 파티를 맺지 않고 혼자만의 힘으로 모든 시련을 돌파 했다.
그는 이제 단순히 아이템의 덕만 보는 것이 아니었다.
여러 개의 칭호나 높은 등급의 특성 그리고 태초의 플레이어 특전으로 인한 능력치 상승.
이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규격 외의 강자가 되었다.
'적어도 300레벨 이하 플레이어 중엔 적수가 없겠는데.'
어쩌면 그 이상의 플레이어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뭐, 아이템빨이제일 크지만.'
그는 불과 하루 전에 전능의 돌을 흡수시켰던 바쥬르의 마력검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바쥬르의 마력검]
착용 제한 : Lv. 250 이상
등급 : 전설
공격력 : 4,290
옵션 : 모든 능력치 +7%. 마력 +40. 검에 실리는 마력이 200% 증폭해서 발현됩니다.
*전능의 돌 : 모든 능력치 +5%. 마력 +25. 모든 스킬의 위력이 70% 추가로 증가합니다.
15층까지 돌파하면서 레벨도 다 섯 개 올랐다.
거기서 얻은 여러 장비 아이템은 그의 기준으로 잡템에 불과해서 인 벤토리 구석에 처박아 두었다.
'원래 15층도 그냥 쭉 지나가려 고 했는데...
상황이 바뀌었다.
15층에 도착한 그때, 종족 대항 전이 열린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종족 대항전.
반년에 한 번씩 열리는 싸움 축 제 비슷한 것이었다.
다만, 좀 특이한 것은 다양한 종 족이 참가하며 이 종족 대항전이라는 것을 시스템이 주최하고 관리한다는 것이었다.
신들의 전쟁 때는 분명 이러한 제도나 이벤트가 없었다.
종족 대항전이 열린다는 것도 저 번에 메신저를 교환했던 다크 엘프 장로 '스텔른'에게 들어서 알게 되었다.
처음엔 적으로 만났지만, 그와는 자주 연락을 나눴다.
유준이 먼저 연락하지는 않았고, 스텔른이 적극적으로 그와 친하게 지내고 싶다는 말을 했다.
스텔른은 고맙게도 무한의 탑 정 세 같은 걸 수시로 알려 주었다.
'나도 정보통이 생긴 건가.'
유준은 종족 대항전이 열리는, 15층 석상 옆 거대한 탑으로 이동 했다.
그곳 주변에는 수많은 인파가 몰렸다.
이걸 인파라고 해야 할까.
하여튼 온갖 종족이 모여 있었다.
그가 얼마 전에 봤던 엘프나 다 크 엘프는 물론이고 오크나 드워프, 포리탐 같은 종족들까지 보였다.
'포리탐은 진짜 보기 힘든 종족 인데.... 종족 대항전 규모가 진짜 크긴 큰가 보네.'
뭔가 새로웠다.
그리고 즐거운 기분이 들었다.
무한의 탑에서 자신이 모르는 무 언가가 벌어진다는 것이.
특히, 무력이 어느 정도 갖춰진 상태다 보니 이런 이벤트가 달가웠다.
이곳은 전투 불가능한 구역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서로 사이가 나쁜 종 족끼리 붙어 있음에도 싸움이 생기 거나 하지는 않았다.
'인간도 꽤 많이 보이네.'
오크와 엘프, 다크 엘프들 다음으로 제일 많이 보이는 것이 인간들이었다.
전부 지구인들이라고 봐야겠지.
대륙에는 원래 인간이 없었으니까.
'거기다 전부 한국인뿐이구나.'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한국에 거 주하던 이들만 무한의 탑에 끌려왔다.
유준이 인간이 많은 근처로 걸어 가는데 그들의 시선이 일제히 자신을 향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니, 단순히 기분 탓이 아니라 실제로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왜 쳐다보지?'
단순히 좋은 아이템을 착용하고
있어서 보는 것 같지는 않다.
시선을 애써 무시하고 서 있는데 플레이어들이 속삭이며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 사람이 그 플레이어인가?"
"맞는 거 같은데. 저 갑옷... 영상에서 봤던 그거야."
"잘생기긴 했네."
"저게 잘생긴 거야? 그냥 기생오 라비 같구만."
"질투하지마. 추하니까."
"지, 질투 아니야."
"우와. 갑옷 때깔이 곱긴 곱네."
"어느 길드에 들어갈까? 무조건 4대 길드 중 한 곳이겠지?"
예민한 감각(A) 특성 덕분에 대화가 더 또렷이 들린다.
'내 영상을 봤다고?'
영상구가 그렇게 널려 있었나.
'고대 유적에는 무조건 영상구를 설치했겠지.'
그럼 그때습격자들과 전투를 벌였던 영상이 퍼진 걸까.
아마 그럴 확률이 높았다.
상관없었다.
다른 플레이어들이 예상하는 것
보다 자신은 훨씬 강하다.
그리고 더 빠른 속도로 강해질 것이다.
그에게 있어 종족 대항전은 하나 의 발판에 불과했다.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2권 8화
32화
종족 대항전.
무한의 탑에 있는 플레이어들에게 있어 축제에 가까운 대규모 이 벤트였다.
마신의 침공 위협이라는 짐을 잠 시나마 덜 수 있는 그런 이벤트.
종족 대항전이 벌어지는 저 탑에 서는 목숨을 잃어도 실제로 죽지 않는다.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시스템이 힘을 발휘했다고 생각할뿐.
'가상현실 게임이랑 비슷한 거 같기도 하고.'
종족 대항전이 시작하기까지 불 과 한 시간도 남지 않았다.
슬슬 플레이어들의 얼굴에 약간 의 긴장감이 맴돌았다.
종족 대항전에서 활약하면 막대 한 보상이 주어지는 것뿐만이 아니 라 무한의 탑 전역에 이름을 날리게 된다.
좋은 쪽으로 명성이 생기면 길드
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을 수도 있고 길드를 만들어 세를 불릴 수 도 있다.
아니면 이미 길드에 소속되어 있는 자가 길드의 이름을 빛낼 수도 있는 일이고.
그렇게 플레이어들은 각자의 목 적을 가지고 종족 대항전에 임하는 것이다.
'종족 대항전은 같은 종족끼리 팀을 먹는 거라고 했지.'
상대적으로 인원이 적은 종족은 불리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수가 적은 종족의 경우, 다른 소 수 종족과 한 팀이 된다.
오히려 그 경우, 약점이 서로 보 완되어 완벽한 팀이 만들어질 수도 있었다.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플레이어들의 눈앞에 홀로그램 창이 나타났다.
[종족 대항전을 시작합니다!]
[모두 다가올 충격에 대비하여 주십시오.]
시야가 어지럽게 흔들렸다.
하늘과 지변이 서로 뒤죽박죽 섞 이는 듯한 느낌이 드는 그때.
유준은 방금과는 전혀 다른 곳에 서 있었다.
그가 눈을 크게 떴다.
'잠깐... 여기.'
고층 빌딩.
익숙한 건물들이 많이 있었다.
거기에 자동차들도 보였다.
다만, 움직이는 차들은 없었다.
유준은 어안이 벙벙했지만, 침착
하게 주변을 쭉 둘러봤다.
한글로 적힌 간판들이 보인다.
유준은 이곳이 어디인지 잘 알고 있다.
바로 서울.
그것도 강남이었다.
강남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눈앞에 강남역 11번 줄 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상하다.
모든 것이 멈춰 있는 듯했다.
현대 옷을 입은 사람은 한 명도 없고 살아 있는 것이라고는 플레이
어들뿐이다.
유준뿐만이 아니라 한국인 플레 이어들도 놀랐다.
"여기 한국 아니에요?"
"뭐지? 무한의 탑은? 우리 거기 서 빠져나온 거예요?"
"아닐 겁니다. 그렇다고 하기엔 너무 조용하잖아요. 아마 가짜로 만들어진 장소가 아닐까요?"
"여기 누구 저번 종족 대항전을 경험해 본 사람 있어요? 그때도 이 랬나요?"
누군가가 손을 들었다.
플레이어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를 향했다.
"저 해 봤는데.. 그때는 빙하지대였어요."
"흐음.…"
모두가 의아해하는 그때 한 명의 플레이어가 입을 열었다.
"원래 종족 대항전이 시작될 때 의 장소는 매번 다릅니다."
"그건 알고 있는데... 한국이 배경이었던 건 처음 아닙니까?"
"그렇죠."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소름 돋네요. 지금까지 겪었던 게 모두 거짓말 같아요."
종족 대항전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워프된 장소가 서울 그것도 강 남이라는 것에 모두가 당황했다.
"다른 플레이어들은 어디 있을까요?"
"어, 그러고 보니 사람 수가 좀 적은데요?"
"뿔뿔이 흩어져서 워프되는 모양 인데요."
여기에 서 있는 플레이어들의 수 가 50도 채 되지 않는다.
아까 줄지어 서 있던 플레이어들 만 해도 천 명이 훌쩍 넘었던 걸 생각하면 무척 적은 숫자였다.
'이렇게 진행되는 건가.'
종족 대항전은 장소만이 아니라 상황도 매번 바뀌었다.
한번 경험했다고해서 종족 대항 전에서 더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는 없었다.
모두가 주변을 둘러보는 그 순간 이었다.
[첫 번째 단체 임무가 시작됩니다.]
[강시들을 처리하세요.]
[처치된 강시의 수 0/500]
[가장 많은 강시를 처치한 플레 이어에게는 특별한 보상이 주어집니다.]
[강시 처치 순위에 따른 보상이 주어집니다.]
"강시?"
"사냥 임무네요. 그나마 사냥 임 무가 쉬워요. 미로를 탈출하라는 임무를 한 적이 있는데 그때는 단
체로 갇혀서 한동안 못 빠져나왔거 든요."
"근데 우리 이 인원으로 500마리를 잡는게 가능할까요?"
"시스템에서 아예 불가능한 임무는 내려 주지 않습니다. 어떻게든 방법은 있어요. 사냥 임무의 경우 우리 능력이 부족하면 사망자가 많 이 나올 수는 있겠지만요."
한국인들끼리 열띤 토론을 하는 그때 이종족들도 대화를 나눴다.
"여기 배경은 인간들이 잘 아나 본데?"
"다행이야. 좀 편하게 됐군."
"편하다니?"
"아무도 모르는 아예 생오지인 것보다는 낫지 않은가."
"그건 그러네."
"일단 우리도 싸울 준비를 해 보 자고."
플레이어들이 무기를 꺼내는 그때였다.
쿠웅. 쿵.
쿵. 쿵.
쿵쿵. 쿵.
땅이미세하게 진동했다.
그리고 그 진동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더 크기를 키워 나갔다.
"온다!"
"다들 준비해요!"
종족 대항전에 참가할 수 있는 레벨은 그 상한선이 정해져 있었다.
그 레벨의 상한선은 딱 300.
301레벨이 되는 순간, 종족 대항 전에 참가할 수 없게 된다는 소리다.
다소 들뜬 듯한 기색의 유준이 생각했다.
'내 무력이 300레벨에 근접한 마
족 둘을 잡을 정도니까...
이곳 종족 대항전에서 자신의 무 력은 상당히 높은 축에 들 것이다.
어쩌면 최상위권에 있을지도 모 른다.
예민한 감각(A).
그 특성으로 이곳으로 접근하는 강시들의 움직임이 아주 세밀하게 느껴졌다.
강시의 수는 시스템에서 미리 공 지한 대로 500.
'강시를 제일 많이 처치하면 보상이 있댔지.'
보상으로 무엇이 주어질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
그래서 더욱 기대되었다.
보상이 뭔지 모른다는 것.
그것만큼 설레는 일이 없었다.
강시는 전 방위에서 플레이어들을 향해 통통 튀어 오고 있었다.
탓!
유준은 강시들이 가장 많이 밀접 한 곳으로 뛰쳐나갔다.
몇몇 눈치 빠른 플레이어나 실력에 자신 있는 이들도 유준처럼 먼 저 움직였다.
강시는 유준으로서도 처음 보는 종류의 몬스터였다.
'언데드 몬스터 같기도 하고
그러나 언데드와는 다른 느낌이다.
강시와 거리가 가까워지자, 유준 이 세차게 검을 휘둘렀다.
후웅. 서걱!
단단한 외피에 살짝 걸리는가 싶
더니 그의 검은 결국 강시의 몸을 자르고 지나갔다.
'엄청 단단하네.'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유준은 강 시의 특징을 알았다.
여느 때처럼 두부를 가르는 듯한 감각이 아니었다.
슬쩍 주위를 보니 강시에게 공격 이 통하지 않아 당황하는 플레이어들이 있었다.
"조심해! 얘네 날붙이가 안 통하는 거 같아!"
"그럼 뭘로 때려야 되는데요?"
"나도 모르지!"
"일단 마법을 써 보죠!"
플레이어들은 빠르게 대응했지만, 강시들의 물량 공세에 뒤로 물 러나기 시작했다.
때문에 유준은 어느 순간 강시들에게 포위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빨리 처리해야겠는데.'
이대로 넋 놓고 있다간 강시를 가장 많이 처치하기는커녕, 가장 먼저 드러눕는 사람이 될 판이다.
카각! 캉!
워낙 많은 수를 동시에 상대하다
보니 강시의 손톱이 여러 차례 유준을 강타했다.
그러나 높은 방어력을 지닌 방어구는 쉽사리 뚫리지 않았다.
타격으로 인한 약간의 충격이 있을 뿐.
유준은 쉴 새없이 검을 휘둘렀다.
만약을 대비해서 물약도 허리춤에 하나 끼워 놓았다.
캉! 서걱! 서걱! 스윽!
사방이 적이다.
반면, 아군은 없고.
자연스레 난전이 펼쳐졌다.
이때 검술(SSS)의 진가가 드러났다.
서걱! 슥!
검을 한 번 휘두르면 강시 둘이 나가떨어졌다.
빈자리는 새로운 강시가 메꾸며 같은 상황이 계속 반복된다.
유준은 앞과 뒤 그리고 옆에서 몰려드는 강시들을 상대로 고군분 투했다.
고군분투라기엔 그리 위협적인 상황이 연출되지는 않았지만,
수백의 강시에 둘러싸여 있는 것 자체가 위험천만한 것은 틀림없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미분배 능력치가 매우 많이 쌓여 있지만, 지금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미분배 능력치를 아끼고 있는데 도 그리 버겁지가 않아...
그만큼 자신이 강해졌다고 보면 될까.
언제든 능력치를 분배해 강해질 수 있다는 자신감.
그것이유준에게 힘을 더 불어 넣어 줬다.
그렇게 10분여가 흘렀다.
유준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끝이 보이지 않았다.
이대로 가다간 부상이 아닌, 체 력 방전으로 인해 쓰러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파해야 하나?'
지금 그가 이렇게 강시들을 붙들고 있기에 다른 플레이어들의 피해
는 적은 편이다.
그러나 그가 남을 신경 써 줄 필 요는 없지 않은가.
자신의 안위가 그 무엇보다 우선 이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강시도 죽으면 시체가 되잖아.'
유준은 파라네트를 소환했다.
이런 난전에서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 부르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녀석의 스킬이 절 실히 필요했다.
그 스킬이란 다름 아닌 파라네트 가 가진 시체 폭발(S).
괜히 등급이 붙지는 않았을 터.
스킬의 효과는 솔직히 기대해 볼 만했다.
거기다 움직이는 시체인 강시들 한테는 최고의 효과를 보일 확률이 높았다.
"부르셨..."
뻐억!
파라네트는 소환되는 즉시, 강시 의 팔에 얻어맞고 뒤로 쭉 날아갔다.
유준이 소리쳤다.
"파라네트! 시체 폭발을 써!"
파라네트는 유준의 명령을 곧바로 따랐다.
시체 폭발.
콰콰콰쾅!
엄청난 폭발과 굉음이 일대를 울렸다.
파라네트는 마력을 전부 쏟아부 어서 최대한 많은 수의 강시들을 폭발시킨 것이다.
놀라운 점은 멀쩡하게 움직이던 강시들의 몸까지도 터져 나갔다는 것.
강시들의 더러운 살점이 온 사방으로 퍼졌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주인님! 괜찮았습니까?"
"응. 위력 좀 좋네."
시체 폭발로 인해 강시들이 멀리 튕겨 나간 상황.
유준은 그 틈에 파라네트와 함께
그곳을 빠져나갔다.
플레이어들은 120 정도 되는 수 의 강시들과 혈전을 벌이고 있었다.
적어도 플레이어 한 명이, 두 마 리 이상의 강시를 맡고 상대해야 한다는 뜻.
상황은 결코 좋다고 볼 수 없었다.
'저기부터 처리하는게 낫겠네.'
플레이어들 전력을 보존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다음 임무에서 힘 들어질 테니.
"시체 폭발 더 쓸 수 있겠어?"
"마력이 찰 때까지 기다려야해서 시간이 좀 걸릴 거 같습니다."
"음."
언데드인 녀석에게 값비싼 마력 포션을 주어 봤자, 그 효과를 받지는 못한다.
유준이 땅을 박차고 플레이어들을 공격하고 있는 강시들의 뒤 공간을 노리고 덮쳤다.
서걱! 스윽!
플레이어들이 행하는 공격은 강 시들에게 아주 조그마한 피해밖에
입히지 못했지만, 유준은 달랐다.
그가 단순히 검을 휘두를 뿐인 공격을 해도 강시의 움직임이 멎었다.
목이 잘린 강시들의 시체가 점점 더 많아지기 시작했다.
강시들에 맞서 싸우던 플레이어 들의 표정이 시시각각 바뀌었다.
"뭐, 뭐야 저 사람?"
"혼자 학살을 하고 다니는데?"
"고대 유적 클리어한 그 플레이어네."
"아 진짜? 그럼 저 아이템들도
다 유적에서 얻은 건가? 그래서 저렇게 센 거야?"
몇몇 플레이어는 유준에게 부러 워하는 눈길을 주기도 했다.
서걱! 사악!
그리고 어느 순간, 플레이어들과 처음 맞부딪쳤던 강시들이 모두 바닥에 몸을 뉘게 되었다.
이제 남은 강시의 수는 370.
반면에 죽은 플레이어의 수는 그 리 많지 않았다.
5명 정도가 목숨을 잃었고 나머 지 플레이어들은 상태가 양호했다.
'슬슬 지치는데...
침이 바짝 마르며 숨에서는 단내가 풍겨 나왔다.
거칠게 숨을 몰아쉰 유준이 주위를 둘러봤다.
아까보다는 낫긴 하지만, 그의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다.
'미분배 능력치. 그걸 쓰자.'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2권 9화
33화
상태창을 열었다.
[태초의 플레이어. 신유준]
□ 레벨 : 157
□ 특성 : 평정심(S), 검술(SSS), 예민한 감각(A)
□ 스킬 : 참격 (B)
□ 칭호 : 태초의 플레이어(신화) - 모든 능력치 25% 증가 외 8개
□ 능력치
[근력 213(206+7)] [민첩 285(258+27)]
[체력 182(175+7)] [마력 162(115+47)]
[미분배 포인트 : 0 ]
-태초의 플레이어 : 레벨 업 시 미분배 포인트가 4씩 주어집니다. 또한, 태초의 플레이어가 됨으로써 미분배 포인트 80을 획득했습니다.
-태초의 플레이어는 착용 제한 레벨을 50까지 무시하고 아이템을 착용할 수 있습니다.
-언제나 행운이 함께합니다.
204나 쌓인 미분배 능력치.
이걸 지금까지 사용하지 않고 아 낀 것이 용했다.
유준은 능력치를 전부 분배했다.
'이게 157레벨 상태창이야?'
헛웃음이 절로 나오는 능력치.
신들의 전쟁 당시 과금을 수없이 했던 무과금즐겜러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놀라운 점은 태초의 플레이어 칭 호의 25% 능력치 증가도 상태창
에는 적용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유준의 손이 잠깐 멈칫했다가 움직였다.
'역시 능력치는 민첩이지.'
그는 민첩 능력치에 더 많은 분 배를 했다.
지금 상황에서 가장 효율을 볼 수 있는 능력치였기 때문이다.
'이제 슬슬 움직여 볼까.'
아직 300이 넘는 강시들이 남아 있다.
크게 걱정이 되진 않았다.
그는 전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캉! 카앙!
플레이어들이 다시 강시들과 격 돌했다.
강시들의 공세가 무섭다.
플레이어들이 뒤로 쭉쭉 밀려났다.
쉴 새없이 몰려드는 강시들의 파도에 끔살당한 플레이어도 있었다.
"파라네트."
"예!"
"시체 폭발 준비됐지?"
"예!"
"한가운데 있는 강시를 노리고 터뜨려. 아까 보니까 스킬을 너무 비효율적으로 쓰더라. 시체 폭발은 한 번씩 사용하면 돼. 한 번에 너무 많은 강시를 터뜨리려고 하지 말고."
"알겠습니다."
"가운데에서부터 하나씩. 오케 이?"
"예!"
표정이 없으니 말을 알아들은 건 지, 아닌 건지 모르겠다.
그래도 명령은 잘 따르니 잘하겠지.
유준이 땅을 박차는 그 순간, 강 시 한 구가 폭발했다.
콰앙!
강시가 터지면서 조각조각 나뉜 육편은 또 다른 강시들의 몸에 틀 어박혔다.
5초가 지나고, 파라네트는 다시 시체 폭발을 사용했다.
'시체 폭발 진짜 좋은데?'
탐이 날 정도다.
'내 스킬이었으면 더 잘 쓸 자신
있는데.'
서걱! 슥!
유준은 스킬없이 순식간에 강시 셋을 처리했다.
전보다 훨씬 기민해진 움직임.
강시들은 유준이 검을 휘두르는 것조차 보지 못하고 목과 몸이 분 리되었다.
'장난 아닌데.'
몸이 가볍다.
검을 휘두르고자 하면 그의 검은 이미 강시의 목을 베고 있었다.
생각하는 즉시, 그 결과가 나타
나는 느낌.
짜릿한 쾌감이 온몸을 뒤덮었다.
육체 능력치가 뒷받침되자 검술 특성이제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검은 점점 더 빠르게 움직였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그의 주위로 몰려든 강시들은 눈 깜짝할 새에 털썩털썩 쓰러졌다.
유준의 몸이 계속해서 회전했다.
스킬 하나 사용하지 않고 강시들을 대여섯씩 처치했다.
콰앙! 쾅!
파라네트도 시체 폭발로 눈에 띄는 활약을 했다.
마법 스킬을 가진 플레이어들도 꽤 많은 강시들을 쓰러뜨렸다.
문제는 공격력이 부족한 전위들이었다.
그들이 하는 공격은 통하지 않으니 강시들의 공격을 막아 내는데 급급했다.
"여기 지원 좀!"
"지원할 사람이 어디 있어!"
강시는지치지 않는다.
반면, 플레이어들은 초인의 육체를 지녔다고는 해도 결국엔 한계가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불리한 건 그들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플레이어들이 예 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강시들의 수가 무척 빠르게 줄어 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윽고, 전장에 서 있는 강시의
수가 오십 아래로 떨어졌다.
강시들을 상대하기도 벅찼던 플레이어들은 그제야 주위를 둘러봤다.
"응?"
"왜 다 쓰러져 있지?"
"다 목이 잘려 있어요."
" 잠깐...
"저길 봐요."
그들이 그러고 있는 와증에도 유준은 끊임없이 강시들을 사냥하고 있었다.
목숨을 건 대결이나 사투가 아닌
말 그대로 사냥이었다.
그렇게 3분 정도가 더 흐르고.
[축하합니다!]
[첫 번째 임무를 무사히 완료했습니다!]
[강시 처치 목록]
1위. 신유준 - 369
2위. 민유리 - 31
3위. 박철민 - 24
[순위에 따른 보상이 지급됩니다.]
파라네트가 강시를 처치한 건 전 부 유준의 공으로 된 모양이었다.
"..."
"..."
"잠시만... 저거 뭐야?"
"삼백을 넘게 죽였다고? 혼자 서?"
"그게 가능한 거야?"
"허..."
허공에 떠오른 순위 창에 전장이 정적에 잠겼다.
플레이어들이 충격에 빠져 할 말을 잃은 것이다.
그중 2위, 민유리가 받은 충격은 더 컸다.
그녀는 4대 길드에 속해 있으며 A급 화염 마법도 지니고 있었다.
'저 사람. 마법 스킬도 쓰지 않았 던 거 같은데...?'
시스템이 뭔가 잘못 공지한 게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
그러나 주변을 쭉 둘러보면 알
수 있었다.
시스템이 잘못한 게 아니다.
깔끔하게 목이 잘린 강시들이 도 처에 깔려 있었으니까.
'언데드도 저 사람 소환수인 거겠지?'
큰 규모의 폭발을 연달아 일으키 던 스켈레톤이 있었다.
'귀청이 떨어지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까지 활약한 줄은...
300레벨 이하의 플레이어 혼자서 369라는 숫자의 강시를 처치하다 니.
민유리는 오늘 처음으로 보이지 않는 벽을 느꼈다.
[가장 많은 강시를 처치한 '신유준' 플레이어에게는 특별한 보상이 지급됩니다.]
홀로그램 창을 본 유준이 눈을 빛냈다.
'나는 보상을 두 번 받는 건가 그럼?'
열심히 움직인 보람이 있었다.
"아, 나 이번에 희귀 아이템 떴다."
"나도."
"난 일반 아이템이야...
플레이어들은 순위권에 들지 못 해도 장비 아이템이나 무언가를 지 급받았다.
대신 그 아이템의 수준이 순위권에 든 플레이어들보다는 훨씬 뒤떨 어 졌다.
[순위 보상이 지급됩니다.]
[임무 1위 보상이 지급됩니다.]
"없는게 나와야 하는데."
장비 아이템은 필요가 없다.
신들의 전쟁에 존재하는 대부분 의 장비 아이템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러니 소모성 아이템이 나오는게 좋았다.
[민첩의 정수를 획득했습니다.]
[스킬 '프로즌 필드(A)'를 획득했습니다.]
유준이 입을 떡 벌렸다.
'스킬을 보상으로 준다고?'
특성이나 스킬 알약, 선단을 주는 것이 아니라 스킬을 바로 보상으로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스킬의 등급은 A인 데다가 심지 어 마법 스킬이었다.
'이게 1위 보상인가?'
종족 대항전에 참가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첩의 정수는 바로 삼켜서 사용 했다.
"저기요!"
"응?"
5명.
낯익은 얼굴의 플레이어들이유준에게 다가왔다.
아까 강시들과 싸우다가 그가 몇 번 도와줬던 이들이었다.
그중 한 명이 먼저 입을 열었다.
"혹시 대화 가능할까요?"
"예? 예."
다음 임무가 시작될 때까지 어차 피 할 일도 없었다.
"그런데 무슨 대화요?"
"지금 소속되어 있는 길드가 있 으신가요?"
" 없어요."
"그럼 혹시..."
"죄송해요. 아직은 길드에 들어 갈 생각이 없어서요."
"아... 그러시군요."
질문했던 여성이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다시 눈을 빛낸다.
"그럼 혹시 메신저 교환은 할 수 있을까요?"
"으음..."
이건 살짝 고민이 되었다.
메신저 교환을해서 손해를 볼 건 없지만, 아무나 다 받아 줬다간 괜히 번잡해질 것 같고.
'뭐, 아직은 메신저 공간이 널널 하니까.'
유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죠."
"어! 저도요!"
"저도 부탁드려도 될까요!"
뒤에 서 있던 이들도 기다렸다는 듯 메신저 교환 요청을 걸어왔다.
유준은 머리를 긁적이면서 모두 수락했다.
괜히 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삭제하면 되겠지.'
그렇게 한동안 휴식을 취하는 그때 거대한 홀로그램 창 하나가 모 두의 앞에 갑작스레 나타났다.
[두 번째 임무가 곧 시작됩니다.]
[곧 다가올 충격에 대비하여 주십시오.]
' 또?'
극심한 현기증을 동반한 워프가 시작되었다.
우우웅. 우웅.
풍경이 바뀌었다.
해가 뜨겁게 내리쬐던 도심에서, 무척 어두운 미궁으로.
미궁이라는 걸 어떻게 알았냐면, 홀로그램 창이 알려 주었다.
[두 번째 단체 임무가 시작됩니다.]
[미궁 어딘가에 갇힌 '심상훈' 플레이어를 구출하십시오.]
['심상훈' 플레이어를 가장 먼저 발견한 플레이어에게는 특별한 보상이 지급됩니다.]
[미궁에 있는 다른 종족을 처치 할 시에 헌팅 포인트를 획득할 수 있습니다.]
[헌팅 포인트가 높을수록 더 좋은 보상을 받게 됩니다.]
"구출 임무라고? 으음...
확실한 건 그의 특기 분야는 아니라는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니, 이곳엔 자신밖에 없다.
미로 곳곳에 뿔뿔이 흩어진 듯했다.
유준은 파라네트를 다시 소환했다.
"부르셨습니까!"
"오냐."
"뭘 하면 될까요?"
"그냥 같이 걸으면 돼. 아, 그리고 너 길 잘 찾지 않냐?"
"예? 아닙니다."
"저번에 불기둥 나타나는 위치도 잘 찾아냈잖아."
"그건 제 본능이 알려 준 거 라... 길을 찾는 거랑은 또 다를 거 같은데요."
"그럼 이번에 알아보면 되지."
"...너무 기대하시면 부담스러 운데요."
"알았으니까 말해 봐. 우리가 지금 어디로 가야 할까?"
처음부터 길이 세 개나 나왔다.
솔직히 이곳 길을 전혀 모르니 어디로 가야 할지 감이 안 잡혔다.
그래서 파라네트에게 의지하려는 것이었다.
"제 생각엔 맨 오른쪽 길로 가야 할 거 같습니다."
" 왜?"
"바람이 불어서요. 저쪽에서 유 독 많이요."
"응? 그런 게 느껴져?"
민첩이 높은 데다가 예민한 감각 (A) 특성을 보유한 유준도 그런 건 안 느껴졌다.
"예. 느껴집니다. 오른쪽 길은 더 많은 길로 연결되어 있어요."
"그걸 네가 어떻게 아는 걸까? 넌 생존 본능 특성을 가졌잖아. 그 런 감각이랑은 상관없지 않아?"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뭐, 언데드 종족은 느끼는 바가 다를 수도 있다.
"그럼 오른쪽으로 가 보자."
"네? 진짜로 가려고요? 제 말만 믿고 그렇게 하는 건...
"어딜 가든 도박인 건 마찬가지 잖아."
"알겠습니다."
유준은 파라네트를 앞세우고 오 른쪽 길로 쭉 걸었다.
그렇다고 마냥 파라네트만 믿고 걷지는 않았다.
청각과 후각에 최대한 집중한 채 주변에서 느껴지는 모든 것을 살폈다.
'어? 진짜 바람이 여러 군데서 불어오긴 하는 거 같은데.'
파라네트가 했던 말대로 미세한 바람이 느껴지긴 했다.
단순히 기분 탓이라고 하기엔 그
감각이 너무나 생생했다.
매끈한 파라네트의 뒤통수를 보 고 있자니 대견스러웠다.
'은근히 도움이 많이 된단 말이야.'
그렇게 쭉 걷다가 길 두 개가 또 나왔다.
"어디로 갈까?"
"으음... 왼쪽 길에선 왠지 불 길한 예감이 듭니다. 절대로 가면 안 될 거 같은..."
"오."
생존 본능이 발동되었나.
유준은 망설이지 않고 왼쪽 길로 발을들이밀었다.
"거, 거긴 안 된다니까요?"
뒤를 돌아보니 파라네트가 몸이 잔뜩 굳은 채로 서 있었다.
"뭐 해? 안 가고?"
"위험합니다. 죽을 거예요."
"그래서 가는 거야. 안전한 길만 가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어."
"하지만..."
"어차피 넌 죽어도 부활하잖아. 뭘 그리 겁내."
"주인님도 위험하지 않습니까."
"괜찮아. 그리고 네가 위험하다 고 느낀 게 한두 번이냐."
유준은 첫 번째 임무에서 종족 대항전의 난이도를 어느 정도 파악 했다.
물론, 두 번째 임무도 난이도가 똑같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하지만 300레벨 이하의 플레이어 들만 참가할 수 있는 이벤트다.
말도 안 되는 난이도의 임무를 줬을 리가 없다.
유준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파라네트가 어쩔 수없이 그의 뒤를 쫓았다.
"진짜 위험한 냄새가 나는데
녀석이 괜히 중얼거렸다.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2권 10화
34화
파라네트가 위험하다며 보냈던 경고는 제대로 들어맞았다.
실제로 길에 들어선 직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되었으니까.
"잡아! 인간은 손쉬운 사냥감이야. 놓쳐선 안 돼!"
"인간 종족은 전투에 미숙한 놈들이 많아. 놈들을 잡고 빨리 포인트 좀 쌓자."
콰아앙! 콰앙!
연달아 터진 폭발.
유준이 땅을 박찼다.
한 번의 도약으로 앞으로 수십 미터를 날아간 그는 폭발에 휘말리 지 않을 수 있었다.
유준을 향해 끊임없이 공격하는 이들.
마법의 달인이라는 이름으로 유 명한 '세인트' 종족이었다.
'세인트 종족이랑 엮어서 좋을 게 없는데.'
애초에 상황이 이렇게 된 것도 세인트 종족 셋이미리 길에서 기
다리고 있다가 유준을습격했기 때 문이었다.
세인트 종족은 이런저런 이유로 악명이 높았다.
높은 마법 수준도 그렇고 약탈을 상당히 많이 하고 다닐 정도로 그 리 온순한 성격이 아니었기 때문.
'빨리 잡고 가야겠군.'
수가 적은 세인트들을 상대로 도 망칠 생각은 없었다.
'가는 길에 포인트도 쌓고 나야 좋지.'
유준은 확 등을 돌려 마법을 준 비 중인 세인트들에게로 쇄도했다.
인지를 벗어난 유준의 빠른 속도에 세인트들의 몸이 굳어 버렸다.
유준의 검이 움직이고,
털북숭이 종족, 세인트 세 명이 동시에 쓰러졌다.
레벨이 오르진 않았지만, 0이었 던 포인트의 수치가 올라갔다.
[현재 헌팅 포인트 : 380 ]
"야. 별로 안 위험한데?"
유준이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 했다.
"...아직 시작도 안 했습니다. 진정한 위협은 저 끝에 있어요."
"그럼 끝에 가기 전까진 안전하 다는 거 아니냐?"
"잘 모르겠습니다. 이 길이 무척 위험하다는 것밖에요. 지금이라도 돌아가는게 어떻습니까?"
파라네트가 겁을 먹어서 저러는 거 같지는 않다.
아무래도 앞에 진짜 위험한 게 있나 본데.
유준은 그래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
'워프 스크롤이 있으니까.'
그는 이곳을 당장 탈출할 수 있 게 해 주는 워프 스크롤을 가지고 있었다.
아까 아이템을 꺼내 확인해 봤는데 여기서 사용이 안 되는 것도 아니었다.
유준은 우직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그 후로도 다른 종족들이 나타나 유준의 앞길을 막았다.
그러나 그것이 별문제가 되진 않았다.
나타나는 모든 이들이유준의 상 대가 되질 못했으니까.
콰앙! 쾅!
서걱!
유준의 움직임에는 거침이 없었다.
그러자 파라네트도 할 말이 없어 졌다.
다섯 명으로 구성된 무리를 한 번 더 격파하고 나서야 파라네트가 입을 열었다.
"제가 괜한 걱정을 했나 봅니다."
"그치?"
"예."
포인트가 벌써 5천 넘게 모였다.
'지금 헌팅 포인트가 나보다 높은 사람이 있을까?'
굳이 위험하다고 하는 길로 들어 와서 덤벼 오는 플레이어들을 보이는 족족 죽였다.
특히 유준은 혼자 움직였다.
이곳에 있는 플레이어들이 노리 기에는 적당한, 아니 아주 만만한 사냥감.
헌팅 포인트를 올리기에 지금만 큼 적기가 없었다.
"후우. 이건 또 뭐야."
가는 도중에 뻥 뚫려 있는 두 갈 래 길을 발견했다.
유준은 파라네트에게 물었다.
"네가 생각하기에 가장 위험한 곳이 어디야?"
파라네트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건 왜 물어보십니까?"
"그곳으로 가게."
"뭐 해? 이번에도 어딘지 알려 줘야지."
"두 번째 길입니다."
유준은 한 치의 망설임도없이 두 번째 길로 들어섰다.
이제는 파라네트를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포인트를 쌓는 것도 좋지만, 빨 리 목표 플레이어를 찾아야 하는데...
솔직히 이 부분에 대해선 자신은 없었다.
종족 대항전을 진행하는 인원은
많았다.
그런데 구해야 하는 플레이어는 단 한 명뿐.
심지어 미궁은 매우 넓었다.
그냥 운이 좋은 한 플레이어가 심상훈을 발견하고 두 번째 임무가 끝이 날 가능성도 있었다.
'뭐... 시스템이 그리 단순하게 설계하지는 않았겠지.'
노력한 만큼 결과가 따르는 방식 이길 바랐다.
최선의 결과는 어딘가에 갇혀 있는 플레이어를 찾아내는 것.
그 전에 가장 많은 헌팅 포인트를 쌓는 것이 중요했다.
서걱! 석!
유준은 암살자 관련 스킬 혹은 특성을 익힌 이종족 플레이어의 목을 베어 내며 전진했다.
예민한 감각(A)은 앞뒤로 도사리 고 있는 수많은 위협들에 손쉽게 대응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덕분에 파라네트가 활약할 일이 없었다.
생존 본능이 발동해 파라네트가 경고하려고 하면,
"주..."
서걱!
"왜?"
"아, 아닙니다."
유준이 적을 처리했으니.
그렇게 계속해서 포인트를 쌓고 돌파하던 그때였다.
쿠우웅! 쿠웅!
그가 밟고 있는 바닥이 거세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정확히는지면 전체가 흔들렸다.
그와 파라네트가 서 있는지면만
이 밑으로 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마치 엘리베이터를 탄 것처럼 밑으로만 계속 내려가던 바닥이 어느 순간 멈췄다.
"뭐, 뭐지?"
이번엔 생존 본능이 발동하지 않았는지, 파라네트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중얼거렸다.
반면, 유준은 그런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헌팅 포인트 '10,000'을 달성하였습니다!]
[목표 플레이어가 있는 '심연'에 더 가까워졌습니다.]
'심연?'
이 단어를 어디서 들어 본 거 같기도 하다.
'설마 그 심연을 말하는 건가?'
신들의 전쟁을 플레이할 당시에 '심연'에서 겪었던 일이 떠올랐다.
그때 얼마나 오랜 시간 심연에 서 시간을 낭비하고 고생했었는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에이... 이름만 같은 다른 곳 이겠지.'
제발 그래야만 했다.
그가 그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 심연은 400레벨 이후에나 공개되는 콘텐츠, 그중에서도 가장 난이 도 높은 곳 중 하나이기 때문이었다.
'아니겠지.'
하여튼 목표 플레이어에게 가까 워졌다니 다행이었다.
유준이 헛웃음을 지었다.
'그렇다는 건... 미로 같은 구조는 결국 함정이었구나.'
돌아가는 상황을 보아하니, 헌 팅 포인트를 10,000 이상 쌓아야 만 이곳 하층까지 도달할 수 있는 것 같았다.
'여기서부턴 다른 플레이어는 만나기 힘들겠는데?'
자신처럼 포인트를 많이 쌓은 플레이어가 많지는 않을 터.
어쩌면 그 흔자일지도 모른다.
'일단 좀 걸어 볼까.'
여기는 위층보다 오히려 더 밝았다.
거기다 길도 하나밖에 보이지 않는다.
유준은 그 길을 따라 무작정 걸었다.
"그래서?"
" 예?"
조용히 뒤따라 걷던 파라네트가 반문했다.
"결국 위기라고 할 만한 건 하 나도 안 나왔는데?"
"...제 착각이었나 봅니다."
파라네트는 그 위기를 유준이 이미 다 돌파한 상황이라고 차마
말할 수 없었다.
"네 생존 본능도 틀릴 때가 있 구나?"
"...예. 그런 것 같습니다."
"역시 등급 특성이라고해서 너무 신뢰해서도 안 된다는 거네."
"...맞습니다."
"하긴, 뭐든 다 맞힐 수 있으면 그건 전지전능한 거지. 그런 능력 이 있을 리가 없잖아."
파라네트는 무척 억울했다.
허나 마땅히 반박할 말이 떠오 르지 않았다.
애초에 자신이 주인의 무력을 과소평가한 셈이었다.
그가 이렇게 강할 거라고는 생각 못 했다.
매번 소환될 때마다 빠른 속도 로 강해지고 있다는 건 알았지만, 이건 그 정도를 넘어섰다.
"으음..."
유준이 침음을 삼켰다.
아무도 없는 조용한 복도를 걷는 느낌이었다.
15분 동안 몬스터도, 플레이어 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외길을 쭉 걷기만 했다.
"파라네트. 뭐 느껴지는 거 없어?"
"딱히 위험하다고 할 만한게... 없습니다."
"그래?"
그래도 신경을 곤두세웠다.
언제 어디서 공격이 날아올지 모르는 일이니까.
그러나 그런 경계가 무색하게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유준이 우뚝 멈춰 섰다.
막다른 길, 아니 두꺼운 철문이 막아서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문 앞에는 거대한 누 군가가 서 있었다.
신장만 3m는 훌쩍 넘는 듯한 거구의 사내였다.
"그 이상 접근하면 죽이겠다. 돌아가라."
녀석이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 했다.
[심연의 입구를 지키는 수호자,
'호리단'을 마주했습니다.]
[호리단은 아주 강력한 가디언 입니다. 최소 여섯 명 이상의 파 티를 이뤄 도전하는 것을 권장합니다.]
"...호리단?"
그 익숙한 이름에 유준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호리단은 심연을 지키는 수호자 이자, 그가 정확히 405레벨이었던 때 상대했던 녀석이었다.
'그럼... 이게 진짜 심연으로 가는 문인가?'
이게 말이 되는 일인가.
혼란스러웠다.
분명 종족 대항전은 300레벨 이하만 참여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런데 심연으로 가는 문이 있다니?
심지어 고레벨 플레이어들이 모 여도 쉽게 못 잡는 가디언 호리단 까지 있었다.
'지금 이렇게 당황할 때가 아니지.'
유준이 머리를 흔들었다.
지금 눈앞에 놓인 건 현실이다.
그렇다면 이 일을 어떻게 해결 할지에 대해서 생각해야 한다.
'그냥 이대로 싸우면 필패다.'
그가 아무리 레벨에 비해 강하 다고 해도 호리단을 상대로는 역 부족이었다.
객관적인 전력이 그러했다.
유준은 과거의 기억을 더듬었다.
'호리단한테 약점이 있긴 했는데. 그게 뭐였지?'
그때 당시 유준은 신화 등급과
전설 등급 아이템으로 온몸을 도 배했을 때라 편법 같은 건 쓰지 않고 호리단을 잡았었다.
그러나 다른 유저들은 달랐다.
호리단에게는 한 가지의 분명한 약점이 있었고, 유저들은 그것을 공략해서 녀석을 사냥했다.
유준은 일단 호리단에게서 몇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녀석은 일정 범위로 다가가지 않는 이상 절대 선공을 걸어오진 않는다.
그러니 시간은 충분했다.
'금방 떠오를 거야.'
플레이어가 된 이후로 기억력이 말도 안 되게 좋아졌다.
떠올리고자 하면 못 떠올릴 것도 없었다.
"아, 생각났다."
그렇게 호리단을 계속 노려보고 있으니, 약점과 이 상황을 해결할 아이템이 번뜩 떠올랐다.
이마에 커다란 눈이 있는 호리 단.
녀석의 약점은 얼핏 이마의 정 중앙에 있는 눈이 아닐까 생각되지만, 그곳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곳이 신체 중에서 가 장 단단한 부분이었다.
호리단의 약점은 왼쪽 손에 있었다.
구체적으로는 약지에 끼워져 있는은색의 반지.
저 반지가 호리단의 본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물론, 저 반지를 타격해야만 호 리단이 쓰러지는 건 아니었다.
그는 무과금즐겜러 캐릭터로 호 리단의 HP를 전부 깎아서 죽였었으니까.
'부위 타격 시스템이 있는데도 굳이 그걸 쓸 필요가 없었지.'
유준은 당시 온갖 사기 아이템으로 무장한 규격 외의 존재였다.
지금은 아니다.
이번엔 약점을 공략해야만 했다.
'지금 내 레벨이 159... 호리 단을 정공법으로 잡기엔 무리가 있어.'
유준이 인벤토리를 열었다.
인벤토리, 아이템의 힘을 빌릴 때가 또 왔다.
"캬주모! 캬주모의 힘을 빌리는 겁니까?"
파라네트도 그가 인벤토리를 열 때마다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는 걸 반복된 학습으로 알고 있었다.
"뭐? 캬주모가 뭐야?"
"저번에 주인님이 혼잣말하시는 걸 들었습니다. 캬! 주모! 이럴 때 사용하는 말아닙니까?"
"뭐래. 아니야."
스크롤 하나를 꺼냈다.
아이템의 외견은 별다를 것 없는 평범한 스크롤이었다.
그러나 그 옵션은 절대 평범하지 않았다.
[장비 해제 스크롤]
등급 : 전설
옵션 : 상대방의 장비 한 개를 무작위로 인벤토리로 돌려보냅니다.
상대방의 장비를 벗겨 낼 수 있는 아이템.
이건 플레이어뿐만이 아니라 몬 스터에게도 사용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스크롤은 아이템이라 곤 반지밖에 없는 호리단에게는 아주 효과적이었다.
'이건 나도 몇 개 없는데...
귀한 아이템.
그러니 한 번에 성공해야 한다.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2권 11화
35 화
유준이 스크롤을 꺼내 들자, 선 이 굵은 얼굴을 한 호리단이 매섭 게 노려봤다.
".…"뭐야?"
순간 섬뜩했지만, 호리단이 이 스크롤에 대해 알고 있을 리가 없다.
'본능적으로 위기를 감지한 건가?'
척!
스크롤을 쭉 폈다.
준비는 끝났다.
유준은 호리단에게 좀 더 가까이 접근하고 스크롤을 찢고 대상을 놈으로지정했다.
[장비 해제 스크롤의 대상이 '호 리단'으로지정되었습니다.]
가디언인 호리단에게는 인벤토리 가 따로 없었다.
반지가 땅바닥에 떨어졌다.
동시에 호리단에게서 느껴지던
엄청난 양의 기운이 한순간에 줄어 들었다.
' 잠깐...
반지를 본 유준이 눈을 번득였다.
'저거 나도 주울 수 있는 거 아니야?'
신들의 전쟁은 게임이었다.
현실성이 있다고는 해도 저런 식으로 떨어진 반지는 주울 수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게임이 아닌 엄연 한 현실이었다.
'미친...!'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유준이 빠르게 앞으로 쇄도했다.
반지를 잃은 호리단이 황급히 주 먹을 뻗었다.
형편없는 주먹질이 허공을 갈랐다.
반지를 잃은 호리단은 육체의 성 능이 극도로 떨어진다.
슬라이딩까지 한 유준이 호리단 의 반지를 주워 인벤토리에 넣었다.
그 뒤 거리를 벌려 호리단의 상태를 살폈다.
"그...것을 내놓아라."
분노한 듯한 호리단.
당연히 유준이 반지를 내놓을 리 가 없었다.
'다시 반지가 생겨나지는 않는 모양이군.'
유준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게 될 줄은 몰랐다.
'가디언의 아이템을 뺏다니.'
호리단이 인벤토리를 가지고 있 지 않기에 가능했다.
반지 아이템의 정보는 나중에 확 인하기로 했다.
유준이 땅을 박찼다.
반지의 힘을 잃고 쇠약해진 호리 단은 그의 상대가 아니었다.
서걱!
유준이 섬광과도 같은 속도로 검을 휘둘렀고,
호리단의 두꺼운 목이 깔끔하게 절단되었다.
그러자 홀로그램 창 수십 개가 눈앞에 주르륵 떠올랐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불가능한 업적!]
[신화 칭호 '불가능이란 없는'을 획득합니다.]
[전설 칭호 '호리단올 쓰러뜨린 자'를 획득합니다.]
[체력의 정수를 획득합니다.]
['심연 입장권'을 획득했습니다.]
높은 레벨의 호리단이 허무하게 쓰러지며 어마어마한 보상이 주어 졌다.
"심연 입장권. 진짜 심연이었네."
거기다 가디언을 쓰러뜨렸음에도 심연으로 가는 문은 열리지 않았다.
장소적 특징 때문인지 심연 입장 권이 대체한 모양이다.
'체력의 정수는 바로 먹고...
그다음에 새롭게 얻은 칭호 두 개의 효과부터 확인했다.
-불가능이란 없는(신화) - 보유 한 전설 이상 칭호의 수만큼 모든 능력치가 2% 증가합니다. 현재 (14)% 증가
-호리단을 쓰러뜨린 자(전설) -총 방어력이 10% 증가합니다.
신호와 전설 칭호들답게 그 칭호 의 효과가 어마어마했다.
'여기서 신화 칭호를 얻을 줄이 야...
확실히 말도 안 되는 업적을 세 우긴 했다.
159레벨로 450레벨이 넘는 가디 언을 쓰러뜨렸으니까.
그것도 한 방에 말이다.
'신화 칭호인데 모든 능력치 증가 옵션이 붙은 데다가 성장형이기 까지 하네.'
어쩌면 태초의 플레이어 칭호보 다 더 좋은 칭호일지도 모른다.
'좋아.'
호리단에게서 얻은 반지의 정보를 확인하기 위해 인벤토리를 여는 그때였다.
[두 번째 임무의 장소인 '미궁'에 서 심각한 오류가 발견되었습니다!]
[두 번째 임무를 강제 종료합니다.]
만족스럽게 웃고 있던 유준의 표 정이 굳었다.
방금 막 가디언 호리단을 처리한 참이다.
그런데 지금 저런 메시지가 떴다는 건.
임무가 강제 종료된 것이 자신과 관련되어 있을 확률이 높았다.
'설마 호리단... 아니 내 반지를 가져가진 않겠지?'
시스템이 그런 권한까지 가지고 있을까.
괜스레 불안해졌다.
[이레귤러 '심상훈' 플레이어를 추방했습니다.]
[5분 후, 세 번째 임무가 시작됩니다.]
유준이 고개를 기우뚱했다.
'이 레귤러라고?'
심상훈이 이레귤러라니.
애초에 구출 목표였던 그가 어떻 게 이레귤러가 될 수 있는 걸까.
상황이 뭔가 이상하게 흘러가는 듯했다.
'그럼 심상훈이라는 사람이 시스템을 건드렸던 건가?'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는 모르겠다.
하나 확실한 건 심상훈이라는 자 가 어떤 짓을 벌였다는 것.
'맞다. 반지부터 확인해 보자.'
유준은 다시 인벤토리를 열었다.
"휴우.…"
다행히 반지는 그대로 있었다.
아무래도 자신 때문에 임무가 강 제 종료된 것은 아닌 듯했다.
유준은 반지를 꺼내 정보를 곧바로 확인했다.
[호리단의 반지]
착용 제한 : Lv. 1 이상
등급 : 신화
옵션 : 착용자 마력의 수치만큼 모든 능력치가 증가합니다. 플레이어는 착용할 수 없습니다.
호리단의 반지가 이런 옵션이었 나.
말도 안 되는 옵션이다.
착용 제한도 무척이나 낮고.
마력이 높은 마법사를 무적으로 만들어 주는 최강의 아이템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문제는 플레이어는 착용할 수 없 다는 것.
그러면서도 레벨 1 이상은 착용 할 수 있다고 한다.
'누굴 놀리는 것도 아니고...
신화 아이템을 얻었지만, 마냥 좋아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가 쓸 수 없는 아이템.
한참을 반지를 가만히 내려다봤다.
그러다 문득 파라네트가 눈에 들 어왔다.
'잠...깐. 녀석은 플레이어가 아니잖아. 소환수지.'
파라네트는 플레이어처럼 능력치 가 오르고 아이템을 착용할 수 있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플레이어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호리단의 반지도 착용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번에 호리단을 잡으면서 파라네트의 레벨도 많이 오른 상황.
신화 등급의 이 반지를 주면 전 투력도 대폭 향상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 당장 파라네트에게 반지를 전해 주지는 않았다.
'내가 호리단의 반지를 얻은 건 대부분 플레이어들이 다 알고 있을 거야.'
자신의 행보를 생중계로지켜보 고 있는 이들이 많았다.
대신 반지의 가치를 아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대부분 유저라면 문 앞을 막고 서 있던 가디언이 무엇인지도 모를 터.
최상위 랭커였던 이들만이 호리 단을 알고 있었다.
'그래도 최대한 조심하고 다녀야겠지.'
다음 임무가 어떤 건지는 감이 안 잡힌다.
그래서 레벨이 오르면서 얻은 능력치를 미리 분배해 뒀다.
'준비는 끝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세 번째 임 무가 시작되었다.
종족 대항전.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흥미 롭기 그지없었다.
실제로 죽지 않기에 플레이어들
은 보상을 얻기 위해 더 과감하고 용맹하게 움직였다.
그들의 모습을 실시간으로지켜 볼 수 있다는 건 엄청난 행운이다.
...라고.
독고민수가 생각했다.
그는 무한의 탑에서 무척 인기가 많은 플레이어였다.
검 한 자루를 들고 대륙을 돌아 다녔는데, 그는 파티를 맺지 않고 꼭 혼자서만 다녔다.
그러나 그가 단지 그 이유 하나 때문에 유명한 것은 아니었다.
그의 중후하고 멋들어진 외모와 뛰어난 검술 실력도 한몫했다.
검술.
대륙에서는 검으로는 대적할 자 가 없다는 말은 그를 수식할 때 자 주 쓰였는데,
그것만으로도 독고민수의 검술이 얼마나 뛰어난지 알 수 있었다.
"흐으음."
독고민수가 옅은 숨을 내쉬었다.
그는 플레이어들의 시점을 계속 바꾸면서 영상구를 시청했다.
'이번 종족 대항전은 재밌는 놈들이 많군.'
하지만 그가 홍미롭게 지켜보던 플레이어들은 금방 죽어서 종족 대 항전에서 탈락했다.
홀로 다니는 플레이어들만을 관 찰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무리를 짓지 않고 다니는 플레이어는 종족 대항전에서 살 아남기 힘들었다.
그 당연한 사실이 반영된 결과였다.
그러다 15명 이상의 파티가 있는 채널이 나왔다.
독고민수의 표정이 썩었다.
"쯧. 우르르 몰려다니는 꼴이란. 한심해. 눈만 버렸군."
그렇게 채널을습관적으로 돌리 던 독고민수의 손이 어느 순간 멈 췄다.
"음."
혼자 다니는 플레이어다.
다만, 곁에는 소환수로 보이는 언데드 하나가 서 있었다.
'음... 혼자인가?'
소환수는 엄연히 플레이어 본인 의 힘.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
인 독고민수는 스스로 아량을 베 풀었다고 생각하며 채널을 고정했다.
두 번째 임무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된 시점.
시간이 지날수록 독고민수의 놀 라움이 커졌다.
"저놈 뭐지?"
사실 방패도없이 검 하나만들고 있는 것이 처음부터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그가 놀란 것은 그런 것 들 때문이 아니었다.
바로 검술 실력 때문이었다.
공격력과 방어력이 높은 것은 아이템들의 수준을 보고서 이미 알았다.
지금은 존재할 리 없는 광란의 방어구 세트를 끼고 있는 것 또한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러나 검술 쪽은 독고민수가 다르게 받아들였다.
' 고수다.'
영상에서 남자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독고민수 또한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궤적이며, 검을 뻗는 타이밍이 며.
천하의 독고민수도 한 수 접어 줄 정도로 대단한 실력이었다.
'종족 대항전에 참가했다는 건 300레벨이 안 된다는 건데...
보면 볼수록 놀랍다.
가끔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움직임을 보여 주기도 했다.
'내 보는 눈이 저 남자 수준에 못 미치는 건가?'
독고민수가 허탈하게 웃었다.
"우물 안 개구리, 정중지와(井 中之姓)라. 역시 세상은 넓어. 그 래. 나한테 보이는 것이 다가 아
니지. 조선제일검의 칭호를 저 남 자에게 물려주고 싶군."
다소 오그라드는 혼잣말을 한 독고민수는 영상의 시청을 멈추지 않았다.
영상에서 나오는 남자에게서 무 언가를 배우기 위함이었다.
아무런 의미가 없어 보이는 행 동에도 뜻이 있기 마련이다.
특히 위험한 길을 자청해서 가는 것이 인상 깊었다.
'검술의 성장을 위해서 몸을 아 끼지 않는군.'
독고민수가 나름대로 그 행동을
해석하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던 그때였다.
영상 속에서 남자가 밟고 있던 지면이 푹 꺼졌다.
화면의 전환이 이뤄졌다.
채널이 바뀐 것이 아니라 장소 가 바뀐 것이었다.
남자는 별로 당황하지도 않고 하나뿐인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계속 걷던 와증가디언 하나를 발견하는데.
이때부터 독고민수가 숨을 깊게들이 삼켰다.
"호리단?"
영상 속의 남자는 무엇 때문인 지 여태까지의 모습과는 다르게 가디언에게 함부로 덤벼들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거야. 호리단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놈인지."
그런 말을 꺼내고 몇 초 지나지 않아서 호리단의 목이 잘렸다.
한동안 입을 꾹 다물고 영상을 시청하던 독고민수.
그가 고개를 갸웃했다.
"호리단이 아닌가?"
아무래도 영상을 멀리서 지켜보는 것이라 자신이 착각했던 걸 수 도 있다.
진짜 호리단이었으면 이렇게 쉽 게 죽지는 않았으리라.
"내가 착각했군."
그로서는 유준이 호리단의 반지를 줍는 장면은 교묘하게 삭제되었다는 것을 알 수 없었다.
"그나저나... 저 정도 실력에 저런 아이템이라.... 한번 만나
보고 싶군."
정확히는 검을 겨뤄 보고 싶었다.
영상 속의 남자가 검을 휘두르는 걸 보니 몸이 근질거렸다.
당장이라도 저택 밖으로 나가서 검을 세차게 휘두르고 싶었다.
"아니. 굳이 밖에서 그럴 필요 가 없지."
독고민수는 허리께에 있는 검을 뽑아 들었다.
그는 영상 속에 있던 남자가 검을 휘두르는 방식을 떠올렸다.
그 행동을 고스란히 따라 해 봤다.
쉽지 않았다.
검끝이미세하게 흔들리는 것이 느껴진다.
영상 속의 남자와 자신 사이에는 크고 높은 장벽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절망하진 않았다.
오히려 환희했다.
그 벽은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단련하다 보면 언젠가는 허물 수 있을 터.
후웅! 흥!
크고 조용한 저택에서는 한동안 검 휘두르는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2권 12화
36화
종족 대항전 세 번째 임무가 시작되었다.
이번이 마지막일 것이다.
지금까지 종족 대항전은 세 번째 임무까지밖에 없었다.
[세 번째 단체 임무가 시작됩니다.]
[세 번째 단체 임무는 진영 대결 입니다.]
[두 개의 진영이 있습니다. 진영은 종족별로 무작위 배정됩니다.]
[가장 큰 공을 세운 이에게는 특 별한 보상이 지급됩니다.]
[플레이어의 업적이나 공은 진영 의 지휘관이 직접 보거나 들은 것으로 판단합니다.]
유준은 두 번째 임무에서 가장 많은 포인트를 쌓아 큰 보상을 얻었다.
그 보상이란 다름 아닌, 전설 둥 급의 장신구 아이템.
남들이라면 군침을 홀리며 좋아 할 만한 것이었지만,
유준은 매우 불만족스러웠다.
'이미 가지고 있는 걸 줄 줄이야.'
하기야 그는 어떤 장비 아이템이 나와도 만족할 수가 없는 상태였다.
'그나저나... 임무가 좀 독특한데.'
지휘관이 있다는게 신기했다.
'제대로 싸우겠네.'
워프되고 나서부터 높고 거대한 성벽이 보였다.
그간 안 보였던 다양한 종족들도 보였다.
' 아군인가.'
[당신은 '나태' 진영으로 배정되었습니다.]
['오만' 진영에 맞서 싸워 승리하십시오.]
'나태 진영이라...
유준은 주변을 쭉 둘러봤다.
지휘관을 찾기 위함이었다.
이번 임무의 핵심은 지휘관이었다.
그에게 잘 보여야지만, 높은 공을 세우는 것과 다름없었다.
유준과 같은 생각을 했는지 다른 플레이어들도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도통 지휘관이라고 생각 되는 자가 보이지 않았다.
플레이어들을 제외한 병력도 아 예 없었다.
"지휘관은 어디 있는 거야?"
"혹시 우리 중 한 명이 지휘관이 되는 건가?"
"설마..."
"저기요! 계세요? 지휘관! 있으면 좀 나와 봐요!"
모두가 지휘관을 찾았다.
주변 일대가 시끄러워진 탓일까.
허름한 막사에서 조그마한 체구 의 여자아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털이 있는 귀와 꼬리가 특징이라면 특징이었다.
"수인족?"
"어린애잖아?"
"재가 지휘관인 건 아니겠지?"
눈을 비비며 모습을 드러낸 여자 아이가 나지막이 말했다.
"내가 지휘관이 맞다."
"...장난해?"
한 플레이어가 지휘관 가까이 다 가갔다.
"왜 그러지?"
"지휘관이 너 같은 꼬맹이라고? 누가 널 믿고 목숨을 걸고 싸울 수 있겠어?"
그러자 스스로지휘관이라고 한
소녀가 코웃음을쳤다.
"목숨을 걸어? 어차피 실제로 죽 지도 않잖아? 호들갑은."
마치 종족 대항전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은 말투였다.
"그걸 어떻게...
"그나저나 왔으면 좀 조용히 있 어 줄래? 시끄러워서 깼잖아."
"아니...지휘관이면 전쟁에 이 길 생각을 해야..."
"네가 지금 서 있는 곳이 어디지?"
" 뭐?"
"나태 진영이야. 왜 여기가 나태 진영인지 내가 굳이 설명해 줘야 할까? 아니지?"
"난 들어가서 잘 거니까 알아서 들 해."
소녀가 한 말에 플레이어들이 각 기 다른 반응을 보였다.
황당해하거나, 그러려니 하며 지 켜보거나.
그러나 어이없다는 듯한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지휘관이 지휘를 안 하고 자러 간다니?
심지어 플레이어들은 지휘관의 눈에 잘 보여야 공을 세울 수 있는 임무를 하고 있다.
그녀가 막사에서 잠만 자고 있으면 전쟁에서 많은 수의 적을 해치 우든, 적의 지휘관 목을 베든 말짱 도루묵인 것이다.
참다못한 플레이어들 네 명 무리 가 항의를 하기 위해 지휘관에게 접근했다.
무력으로 제압하기보다는 말로
설득하기 위함이었다.
카앙!
그러나 그때였다.
플레이어 네 명은 보이지 않는 벽에 세게 부딪치기라도 한 듯 멀 리 튕겨 나갔다.
"뭐, 뭐야? 방금 뭐였지?"
"결계 같은... 건가?"
큰 부상을 당하지는 않았지만, 압도적인 힘을 느낀 듯 다시 달려 들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나한테 다섯 발자국 이내로 접 근하지마. 다음엔 죽여."
"간다."
막무가내인 말이다.
지휘관이 필요한 임무에서 지휘 관이 파업을 선언하다니.
그렇지만 그 누구도 큰 소리를 내지 못했다.
수인족 소녀 지휘관이 막사로 들 어갔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야?"
"너무 무책임하잖아."
"아니. 저게 말이 돼? 이러면 상 대 진영이 너무 유리한 거 아니냐고."
"애초에 지는 싸움이었군. 잘못 걸려도 한참 잘못 걸렸어."
플레이어들의 불만이 커졌다.
유준도 황당함을 느끼긴 매한가 지였다.
'이번에도 뭐 이레귤러 타령하면서 강제 종료시키는 건 아니겠지?'
종족 대항전은 어떻게 제대로 된 임무가 없는 것 같다.
그나저나 지휘관의 모습이 왠지 낯이 익었다.
신들의 전쟁을 플레이할 때 어디
선가 본 듯한 외형인데.
'수인족이 워낙 많았어야지.'
거기다 그래픽으로 보는 것과 실 사로 보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아마도 자신이 착각한 걸 거다.
" 으음."
유준은 가만히 앉아서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을 했다.
그는 파라네트를 불러 녀석에게 신화 등급 아이템 '호리단의 반지'를 줬다.
"이건 뭡니까?"
" 선물."
" 오오...
파라네트가 반지 아이템의 옵션을 확인하고는 몸이 굳었다.
한참을 가만히 서 있던 녀석이 어깨를 들썩였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주인 님!"
어지간히 기쁜 모양이었다.
'옵션이 사기긴 하지.'
자신이 착용하지 못한다는 것이 정말로 아쉬울 정도.
'파라네트 능력치 좀 볼까?'
호리단의 반지를 착용한 파라네 트의 능력치가 어느 정도일지 궁금 했다.
[소환수 : 파라네트(성장형)]
□ 레벨 : 180
□ 특성 : 생존 본능(S), 회피(A)
□ 스킬 : 독 포션 제조(B), 시체 폭발 (S)
□ 칭호 : 없음
□ 능력치
[근력 271] [민첩 301]
[체력 260] [마력 140]
[미분배 포인트 : 0 ]
유준이 입을 떡 벌렸다.
'나보다... 높아?'
육체 능력치만 보면 그보다도 높았다.
'이거 너무 사기 아닌가?'
대충 사기적인 아이템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직접 능력치를 보니 체감이 확 되었다.
직접 파라네트의 능력치를 분배 할 수 없다는 것이 한스러워질 정 도였다.
'능력치를 마력에만 올인할 수 있었으면 나보다도 훨씬 강했겠는데.'
능력치가 높다고 다는 아니다.
하지만, 높으면 전투에서 많이유리한 건 사실이었다.
'마력 수치 올려 주는 아이템은 다 몰아줘야겠다.'
파라네트의 기쁨은 멈추지 않았다.
"주인님. 감사합니다. 방금 주신 아이템 덕분에 한 단계 더 성장한 것 같습니다."
"한 단계? 내가 보기엔 몇 단계는 건너뛴 거 같은데?"
"...ㅎㅎ. 맞는 말씀이십니다."
솔직히 호리단의 반지는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사기적인 아이템이었다.
만약 이게 게임이었으면, 운영자 가 어떻게든 삭제시키려고 했겠지.
'다행히 시스템이 플레이어 아이템을 뺏거나 하지는 않는 모양인데.'
파라네트의 전력이 두 배, 아니 수십 배 증가한 셈.
그리고 높은 성장 가능성까지 생 겼다.
마음이 든든했다.
이제 세 번째 임무를 어떻게 진 행하느냐가 문제인데.
지휘관의 문제는 당장 해결될 것 같지는 않았다.
"자, 다들 모여 봐요! 어찌 됐든 이겨야 하잖아요, 우리!"
"지휘관이 듣고 보는 것으로만 판단한다면서. 그럼 열심히 싸워
봤자, 무슨 의미가 있지?"
"공이라도 세우면 알아서 시스템 이 판단해 주지 않을까요?"
"시스템이 한 말 못 봤어? 이건 지휘관 눈치를 봐야 하는 임무야. 그런데 지휘관이 잠만 퍼 자고 있으니...
플레이어들이 모여서 대책을 논 의하기 시작했다.
워낙 다양하고 많은 종족들이 있다.
말이제대로 통할 리가 없다.
중구난방인 이야기가 계속 오갔다.
"이거... 답이 안 나오겠는데?"
"제가 쓸어버릴까요?"
파라네트가 자신감 있게 말했다. 전보다도 더 당당한 태도였다.
"아주 신났구만?"
"흐헤헤. 이게 다 주인님 덕분입죠."
"주인님? 이거 당신 소환수인가봐요?"
"예. 맞습..."
파라네트와 잡담을 나누는데 난 데없이 한 여자가 말을 걸어왔다.
붉은색으로 염색된 단발을 한 여 자였다.
"누구세요?"
"아, 저 홍예지라고 해요."
"예.... 그런데요?"
"아까부터 저 해골 기사가 엄청 눈에 띄더라고요. 계속 신경 쓰이는 거 있죠?"
"제 소환수 때문에 그러시는 겁니까?"
"아뇨. 그런 건 아닌데. ...아니, 죄송해요. 솔직하게 말할게요. 사실은 소환수 때문에 온 게 아니
라 당신 때문에 왔어요."
"그게 무슨...?"
"고대 유적 클리어한 플레이어. 그거 당신 맞죠?"
이미 알고 찾아온 것 같다.
숨기려 해 봤자 의미 없겠지.
"맞긴 한데... 왜요? 혹시 길드 가입 권유 같은 거 하시려고요?"
그건 이미 거절한 바가 있다.
그래서 미리 거절을 표하려는데
홍예지가 고개를 저었다.
"길드 가입 권유가 아니에요. 그 냥 당신과 파티를 맺고 싶어서요."
"파티요? 으음... 그것도 좀 곤 란할 거 같은데요."
그는 혼자가 편하다.
애초에 파티를 맺는 목적은 부족 한 전력을 보충하거나, 그게 아니 면 힘을 합쳐서 무언가를 사냥하거 나 하기 위함인데.
유준은 그럴 필요가 전혀 없었다.
파라네트만 있어도 웬만한 일은 다 해결할 수 있으리라.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알 거 같 아요. 하지만 제가 말하는 건 일반 적인 파티가 아니라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파티예요."
"저한테 무슨 도움을 주실 수 있죠?"
유준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다음에 꺼내는 그녀의 말을 듣고 최종적인 판단을 내릴 생각이었다.
"지휘관이 막사 밖으로 나오게 할 수 있어요."
유준이 멈칫했다.
"...그게 가능하다고요? 그리고
그건 우리의 공통된 목표 아닙니까? 제가 이득을 본다고 하기엔 어 려울 거 같은데요."
"맞아요. 그래서 지휘관이 당신 만을 주목할 수 있게 해 보려고요."
"....음."
사실 지휘관이제대로 전쟁에 나 서기만 한다면 눈에 띄는 건 알아서 할 수 있다.
홍예지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어차피 승리하기 위해서 그녀는지휘관을 밖으로 어떻게든 꺼낼 것 이고 그럼 유준은 그때까지 기다리
기만 하면 된다.
굳이 그녀와 파티를 맺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그녀와 파티를 안 맺을 필요도 없었다.
'내가 손해 보는 건 없다.'
그냥 데리고 다니기만 하면 된다.
자기 목숨은 자기가 알아서 챙기겠지.
"좋습니다. 그러죠. 근데 확실한 겁니까?"
"저만 믿어요."
홍예지가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도대체 무슨 방법으로 아까의 지 휘관을 밖으로 끌어낸다는 걸까.
궁금하긴 했다.
그녀는 한동안 아무런 행동도 취 하지 않았다.
유준은 물끄러미 그런 홍예지를 지켜보기만 했다.
그녀가 우물쭈물하다가 입을 열었다.
"저..."
"예. 말씀하세요."
"파티 신청 걸어도 되죠?"
"...네? 거세요."
"네!"
홀로그램 창으로 떠오른 파티 신 청 메시지를 유준이 수락했다.
그렇게 둘의 파티가 맺어졌다.
"와... 레벨이 182? 생각보다 엄청 낮으시네."
"그래서 실망했어요?"
"아, 아니요. 더 놀라운걸요. 그 레벨로 그렇게 강하다는게."
"절 언제 보셨죠?"
"고대 유적에서 나온 직후? 아, 아니다. 여기 종족 대항전 첫 번째
임무에서도 봤었죠. 활약하시는 모습."
"아 그때 계셨어요?"
"네. 뒤에 숨어 있긴 했지만요."
강시들을 잡는 임무.
그때 플레이어 인원이 50도 채 되지 않은 터라 눈앞의 홍예지가 있을 거라곤 생각 못 했다.
"그래서 파티 신청을?"
"네. 당신이 얼마나 강한지 아니까요. 곁에 있으면 적어도 죽지는 않을 거 아니에요."
"오히려 더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괜찮아요. 적어도 적군을 학살하고 있는 사람 옆에 있으면 제 평가도 자연스럽게 올라갈 테니까요."
"그게 원래 목적이죠?"
"...그죠."
적당히 뻔뻔해서 좋았다.
유준이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지휘관을 어떻게 밖으로 데려올 겁니까?"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2권 13화
37화
유준의 질문에 홍예지가 의미심 장한 표정을 지었다.
"혹시 신들의 전쟁이라는게임을 아시나요?"
그녀가 꺼낸 신들의 전쟁이라는 말에 유준이 내심 놀랐다.
그러나 그걸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신들의 전쟁요?"
"역시 모르시겠죠. 1년 차 아니
면 2년 차이실 테니.... 저는 5년 차 플레이어예요."
"그게 왜요?"
"5년 차 플레이어들 중 태반이 그 신들의 전쟁이라는게임을 플레 이했었던 사람들이거든요."
유준은 계속해서 영문을 모르겠 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홍예지는 그의 표정을 유심히 보 다가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고 말을 이어 나갔다.
"엄밀히 말하면 특혜를 받은 거죠."
"특혜요?"
"신들의 전쟁을 한 번이라도 했 던 사람들요."
"게임 하나 했다고 특혜를 준다 고요? 그게 가능한 일입니까? 애초에 그 게임이랑 여기 무한의 탑이 랑 무슨 관계가 있는데요?"
"무한의 탑이라는 장소 자체가 그 게임에 있던 콘텐츠 장소 중 하 나였어요. 상당히 비중이 큰."
"그런데 놀랍게도 그 무한의 탑이 현실이 된 거예요. 우린 여기로 끌려왔고요."
"이 모든 게 그 게임 때문에 벌
어진 일이라는 겁니까?"
"뭐, 어떻게 보면 그렇고요. 그래 서 5년 차 플레이어들이 농담하듯 이 하는 말이 있어요. 신들의 전쟁이라는게임을 범우주적인 존재가 만들지 않았을까 하는...
" 신요?"
"네. 게임의 이름도 그렇고 사실 수상하잖아요."
"듣고 보니 그런 거 같기도 하네요."
"하여튼 말이 길어졌는데 신들의 전쟁과 여기 무한의 탑은 아주 밀 접한 관계가 있다는 거죠."
"예예. 그래서요?"
"신들의 전쟁을 했던 사람들은 미래를 아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왜냐면 이미 같은 상황을 겪었으니까요. 물론, 그때와 달라진 것도 많 지만 전체적인 틀은 비슷해요."
한 번에 많은 말을 쏟아 낸 홍예 지는 물통을 꺼내 물 한 모금 마시 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저는지휘관의 정체를 알고 있어요."
"정체를요?"
유준이 눈을 가늘게 떴다.
신들의 전쟁을 가장 많이 플레이 한 자신이 모르는데 홍예지는 그 정체를 알고 있다고?
살짝 의심이 생기긴 했지만, 일단은 계속 들어 보기로 했다.
"신들의 전쟁에서 제가 히든 던 전을 한번 발견한 적이 있어요. 엄 청 어려운 일이거든요. 히든 던전을 발견하는게. 운이 무척 좋았다 고 볼 수밖에 없었죠."
홍예지는 수다 기질이 있었다.
자꾸 잡담을 하네.
"본론만 말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유준이 답답해서 말했다.
홍예지의 몸이 움츠러들었다.
"까, 깜짝이야. ...알았어요. 제 가 발견한 히든 던전이 수인족과 관련되어 있는 곳이었는데. 거기 던전 보스가 저 지휘관이었어요."
"...확실해요?"
"네. 아까 보니까 확실히 알았어요."
"게임 이미지로만 봤던 거 아닙니까? 어떻게 확신하시죠?"
"생긴 거나, 얼굴의 흉터 같은 특징이 너무 뚜렷하니까요, 그때
봤던 것과 완전히 일치해요. 플레 이어가 되면서 기억력이 좋아졌으니 착각했다고 할 수 없고요."
"근데 장소가 다르지 않습니까? 종족 대항전의 진영 지휘관이랑 히 든 던전 보스는 너무 동떨어져 있는 거 같은데."
"재활용하는 거 아닐까요?"
"재활용?"
"애초에 그 히든 던전 보스로 둥 장한 수인족이 여기 무한의 탑에 존재하는지휘관을 본떠서 만들어 진 걸 수도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다는 거죠."
꽤 그럴싸한 추론이다.
그리고 만약 사실이라면 너무나 무시무시한 얘기이기도 했다.
'재활용이라니...'
그렇다면 신에 범접하거나 신 자체가 존재할 수도 있다는 건데.
그럼 시스템은 뭘까.
유준이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 그것에 대해서 생각할 필요 가 없었다.
"좋아요. 지휘관과 그 히든 던전 보스가 동일 인물이라고 칩시다.
지휘관을 밖으로 꺼낼 방법은 뭔데요? 제 도움이 필요한 일입니까?"
"혼자 해도 상관없어요. 아니, 저 혼자만 되는 일이죠. 거의 도박이 긴 하지만...
"그럼 빨리하세요."
그녀를 만난 지 한 시간도 채 지 나지 않았는데 벌써 지쳐 간다.
말이 너무 많았다.
'뭐, 중요한 얘기도 많이 오가서 불만은 없지만.'
홍예지는 조심성이 없는 건지, 아니면 일부러 자신을 떠보는 건지 신들의 전쟁 관련 얘기를 서슴없이
했다.
홍예지가 막사 근처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이윽고 막사의 바로 앞에 섰다.
주변에 있던 이종족 플레이어들이 화들짝 놀랐다.
"저기 인간이미쳤나 본데?"
"아까 플레이어들 당한 거 못 봤나?"
"아무리 실력에 자신이 있어도 그렇지...
"인간들은 겁이 많다고 들었는데."
"지휘관이 다음엔 죽인다고 했었어. 쯧. 무모한 녀석이군."
홍예지는 그런 플레이어들의 시 선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야! 나와!"
엄청 큰 소리로 외친 그녀의 말에 모두가 경악했다.
심지어 홍예지는 도망칠 생각도없이 막사 앞에 서 있기만 했다.
"미쳤나 봐."
"임무를 포기하는 방식도 가지가 지군."
"자살 방식이 신선한데?"
홍예지가 소리치고 30초라는 시간이 흘렀다.
플레이어들이 침을 꿀꺽 삼키는 소리만이 광장에 맴돌았다.
10초 정도 더 지나자, 막사의 천 이 걷어지며 조그마한 체구의 수인 족 소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지휘관이었다.
그녀는 아무 말없이 홍예지를 바라보기만 했다.
"무슨 짓이지?"
"왜 잠만 자고 있어? 우리랑 같이 상대 진영이랑 싸워야지."
"아까가 마지막 기회였어. 내가 분명 죽인다고 했을 텐데."
"알지〜 알지. 그런데 할 말은 해야 하지 않겠어? 귀염둥아."
"귀, 귀염둥이? 네가 죽고 싶어 서 환장했구나."
지휘관이 분한지 발을 동동굴렀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홍예지를 공 격하거나 하는 행위를 하지는 못했다.
"못 죽이잖아."
홍예지가 지휘관의 귓가에 속삭 이듯 말했다.
"...뭐?"
홍예지가 한 발짝 물러난 뒤 장 비 아이템을 전부 착용 해제했다.
초보자 천 옷 장비만을 입은 그 녀가 두 팔을 벌렸다.
"지금 네가 아무리 날 약하게 때 려도 난 죽고 말 거야. 지금 내 방 어력은 5 정도 되거든? 나 게다가 체력 능력치도 낮아."
"...그래서 어쩌라는 건데."
홍예지가 자신만만한 미소를 짓 고 지휘관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곤 귀에 속삭이듯이 말했다.
"거래하자. 네 비밀을 숨겨 줄게."
지휘관은 아무 말도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뭘 원해?"
"막사에 있지 말고 내가 말하는 사람을 계속 주시해. 기왕이면 긍 정적인 시선으로. 저 남자야."
홍예지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위
치에는 유준이 서 있었다.
지휘관이 슬쩍 그를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면 돼?"
"당연하지! 아, 그리고 나도 좀 좋게 봐줘."
"그건 안 돼. 나는 이미 네가 죽 이고 싶을 만큼 미우니까."
"뭐, 사실 두 번째 말한 건 안 들어줘도 돼. 어차피 저 남자랑 계속 같이 다닐 거니까."
홍예지가 만족스럽게 웃고 지휘
관에게서 거리를 벌렸다.
지휘관은 뚱한 표정으로 한 번의 도약으로 성벽 위에 올라가 버렸다.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이 그 광경을 아연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 뭐야?"
"지휘관을 설득한 거야?"
"무슨 방법을 쓴 거지?"
깔끔하게 지휘관을 막사 밖으로 나오게 한 홍예지가 유준에게 다가 왔다.
유준도 궁금해서 물었다.
"어떻게 한 겁니까?"
"약점을 공략한 거죠."
"약점요?"
"비밀로 하기로 했으니까, 잠시 만요. 메신저 교환으로 얘기를 나 눌까요?"
혹시 엿들으려고 하는 이가 있을 지도 모른다.
그때문에 홍예지는 유준과 메신 저 교환을 했다.
[홍예지 : 저 당신만 믿고 다 말해 주는 거니까 남한테 떠벌리면 안 돼요.]
[*신유준 : 절 뭘 믿고요? 전 아직 당신한테 해 준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홍예지 : 강하니까요. 그리고 제가 사람 보는 눈이 탁월하거든요. 친하게 지내고 싶어요.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그런 사이로.]
[*신유준 : 약점을 공략했다는게 무슨 뜻이죠?]
[홍예지 : 저 지휘관은 실생을 못해요. 저주에 걸려 있거든요.]
[*신유준 : 그런 저주가 있어요?]
[홍예지 : 신기하게도 있더라고요. 저도 사실 도박 수를 던졌던 건데... 그때 던전에서 봤던 수인 족 보스랑 하는 짓이 완전히 똑같 길래 거기서 완전히 확신을 얻었죠. 그때도 계속 저랑 제 파티원을 죽 이지 않고 던전 밖으로 쫓아내기만 했거든요. 그때 알았죠. 저주든 뭐 든 금제가 걸려 있다는 걸. 이번엔 장소도 다르고 게임이 아니라서 약 간 불안한 건 있었는데 그래도 용 케 성공하긴 했네요.]
[* 신유준 : ...당신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했잖아요. 들어 보니
까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아닙니까? 스킬이나 아이템이 필요한 게 아닌 거 같던데.]
[홍예지 : 누가 생전 첨 보는 남 의 말만 듣고 저 지휘관을 상대로 목숨을 걸 수 있겠어요? 그러니 저 만 할 수 있는 일이죠.]
[*신유준 : ...맞는 말이군요.]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여기선 죽어도 실제로 죽는 것이 아니니 가능한 계획이었지만, 참으로 당돌한 사람이었다.
"파티를 맺은 보람이 있네요."
홍예지가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이제부터는 당... 유준 씨가 활약할 차례에요. 저도 옆에서 돕겠지만... 딱 방해만 안 되는 수준일 거예요."
"맡겨 주시죠."
그때였다.
타이밍 좋게도 성벽 밖에서부터 강력한 진동이 전해져 왔다.
두두. 두두두.
무언가가 성벽을 두드리는 소리는 아니었다.
땅이 울리는 소리였다.
플레이어들이 각자의 무기를 꺼 냈다.
오만 진영이 도달한 것이었다.
실제로 성벽 위로 올라가서 확인 하니 수천은 되어 보이는 플레이어 군대가 진격하고 있었다.
그걸 위에서 지켜보니 군대가 가 진 위압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질서도, 규율도 없는 플레이어들 의 집단일 뿐이지만,
그들 모두가 초인의 범주를 벗어 난 이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넓디넓은 들판에서
펼쳐지는 세기말 전쟁 같은 느낌이 물씬 풍겼다.
"와... 엄청 많네. 왜 우리보다 많아 보이지?"
"저쪽은 덩치들이 더 커서 그 래."
"그러게요. 저쪽엔 오크랑 트롤 종족이 많이 보이네요. 둘은 완전 히 상극일 텐데...
"전쟁은 원래 수성하는 쪽이 훨 씬 유리할 텐데. 왜 먼저 공격하려는 걸까요?"
"어. 생각해 보니 그러네?"
이상하게 생각하는 건 비단 이종족 플레이어들뿐만이 아니었다.
홍예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능력이 판치는 전쟁에선 수성 이냐 공성이냐의 차이가 어마어마 하잖아요."
"그렇습니까?"
"네. 그간 무한의 탑에서 전쟁이 라고 할 만한 게 몇 개 없지만, 실 제로 수성하는 쪽이 승률이 압도적으로 높은 것으로 알고 있어요."
"저쪽 진영이 지금 돌격하는 건 명백하게 손해라는거군요."
"그쵸. 오크 비율이 높잖아요. 그 들은 탁 트인 평원에서 큰 힘을 발
휘하는데, 지금처럼 오크들을 앞에 세우고 돌격하는 건 명백하게 하책 이에요. 오크들을 고기 방패로 쓰 려는 걸까요."
"지휘관이미치지 않고는 불가능 한 일이죠."
"무슨 계략이 있는 걸까요? 뭐, 우리의 방심을 유도한다든가..."
유준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아뇨. 말했잖아요. 지휘관이미 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고요."
"네?"
"저쪽 지휘관이 평범하지는 않나 보죠. 우리 지휘관이 그랬던 거처럼."
"..설마?"
"우린 나태였고 저기는 오만 진 영이었으니까... 저쪽 지휘관 성격은..."
유준이 무덤덤한 어조로 말했다.
"안 봐도 뻔하죠."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2권 14화
38화
"도올-격! 돌격하라!"
"성벽을 허물어라! 다 때려 부 숴!"
"적들은 나약한 종족만 모여 있다!"
"강인한 전사들은 마법 따위는 두렵지 않다!"
"나 혼자서도 이 전쟁을 끝낼 수 있다! 하지만 그대들에게 기회를 주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는가! 나
도 모른다!"
이 모든 말들은 놀랍게도 거구의 한 사내가 혼자 외친 것이었다.
그 사내의 정체는 오만 진영의 지휘관, '쿨테룸'이었다.
그는 오크 종족이었다.
그런데 웬만큼 덩치 있는 오크들 보다 그 몸이 서너 배는 더 거대했다.
그러다 보니, 오크들도 그를 따 르게 되었다.
"우와아아!"
쿨테룸은 아무런 계획이 없었다.
그저 눈앞에 성벽이 있고 적이 있으니 때려 부순다.
그 일념으로 여기까지 플레이어 군대를 이끌고 왔다.
몇몇 종족은 쿨테룸의 명령에 반 항했지만,
"나를 따르지 않는 자는 내가 직 접 죽이겠다!"
오만 그 자체.
"대신 활약을 하는 자에겐 내 엄 청난 선물을 주지!"
그 선물의 정체는 쿨테룸이 말해 주지 않았으니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진격에 따라나서지 않으면 진짜로 쿨테룸은 그 자리에서 플레이어를 죽여 버렸다.
오만 진영의 플레이어들은 어쩔 수없이 그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이게 뭐냐고!"
"우리가 너무 불리한 거 아니야?"
"지휘관이 돌았어!"
"나도 같은 오크지만... 지휘관 이 너무 막무가내야."
"오만한 정도가 아니야 이건."
오만 진영의 플레이어들은 불만 이 많았다.
하지만 쿨테룸은 강해도 너무 강 하다.
수십 명의 플레이어가 동시에 덤 벼도 상대가 안 될 정도로.
그래서 오히려 안심하기도 했다.
"저 정도 무력이면... 그냥 공 성 쪽에서 싸워도 이기는 거 아니야?"
"그러게.... 진짜 강하긴 강하다."
"바보들아. 저쪽 지휘관은 그럼
약하겠냐? 우린 지휘관없이 싸울 생각을 해야 해."
"어...? 그럼 지는 거 아니야?"
"지겠지. 지휘관이 멍청하니까."
"아오!"
반면 나태 진영은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다.
수성이 훨씬 유리하다는 건 모두 가 알고 있기 때문.
거기다 마법 쪽 능력을 지닌 종 족들이 이곳 나태 진영에는 다수 포진하고 있었다.
오만 진영 플레이어들이 어느 정
도 가까워지자, 나태 진영의 플레 이어들이 마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하늘을 수놓은 형형색색의 이능들이 오만 진영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콰콰콰쾅! 콰콰쾅! 콰쾅!
마법 수십 개가 연쇄되어 터진 폭발은 앞에서 돌격하던 400가량의 오크를 세상에서 지워 버렸다.
오만 진영은 말할 것도 없고, 나 태 진영 쪽 플레이어들도 놀랐다.
이런 대규모 전쟁을 겪어 본 적이 없기에 그러했다.
"마력 여유 있으면 아끼지 말고 마법 퍼부으세요! 적 전력을 최대 한 깎아 놓는게 우선입니다!"
엘프 중에서 나이가 좀 있어 보이는 자가 외쳤다.
그의 말에 플레이어들이 다시 마법을 준비했다.
우웅. 우우웅!
쿨테룸에 의해 강제로 진격하던 오만 진영이 잠깐 주춤했다.
"멈추는 자는 즉시 척결하겠다!"
이번엔 쿨테룸의 외침이 큰 효과 가 없었다.
마법에 죽으나, 쿨테룸에게 죽으 나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석! 서걱!
"답답한 녀석들!"
쿨테룸은 거대한 글레이브를 높 이 들었다.
성벽 위에서 수십 개의 다양한 마법이 그에게 날아들었다.
쿨테룸은 글레이브에 마력을 주 입하고 그 글레이브를 있는 힘껏 휘둘렀다.
마치 야구 선수가 배트로 공을 치는 듯한 자세였다.
콰아앙!
충돌이 있었음에도 마법은 폭발 하지 않고 그대로 마법이 발사된 곳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무 무슨!"
"미친!"
"피해!"
"실드 마법 준비됐어?"
"공격 마법에 마력을 다 썼습니다!"
마법이 반사되어 올 거라고 생각
하지 못한 나태 진영의 플레이어들은 자신들이 사용한 마법에 고스란 히 적중되었다.
콰콰콰쾅! 콰콰쾅!
성벽의 위쪽이 허물어졌다.
"크하하하하! 모기 같은 놈들! 제깟 것들이 마법을 써 봤자지!"
쿨테룸의 엄청난 위용에 나태, 오만 진영 할 것없이 모든 플레이어가 입을 떡 벌렸다.
오만 진영에서도 마법이나 원거 리 공격 수단이 없는 건 아니었다.
이번엔 오만 진영이 마법과 원거 리 스킬을 사용했다.
콰쾅! 콰앙!
쿨테룸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해 무방비 상태에 놓인 나태 진영은 더 큰 피해를 입게 되었다.
삽시간에 팔백이나 되는 전력을 잃었다.
오만 진영도 피해가 크다지만, 피해가 같다면 수성하는 쪽의 뼈가 더 아플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된 거야? 저 지휘관은 왜 앞장서서 싸우고 있는 건데?"
"우리 지휘관은 뭐 하는 거야! 좀 도와줘!"
나태 진영의 지휘관, '나르샤'는 눈 한 번 꿈쩍 않고 상황을 지켜보 기만 했다.
어떻게 보면 그녀는 자신의 역할에 충실한 것이었다.
프로즌 필드 마법을 수시로 사용 하고 있던 유준이 거친 숨을 몰아 쉬었다.
"역시 마법은 나랑 안 어울려."
가만히 서서 마법만 쓰고 있으니 너무 답답했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성벽 밑으로 뛰어내리기엔 부담이 컸고.
무엇보다 저 쿨테룸을 상대할 자 신이 없었다.
유준이 홍예지를 바라봤다.
"우리 지휘관이 쿨테룸을 상대하게 만들 수는 없나요?"
"음... 거기까지 들어줄지는 모르겠네요. 한번 말은 해 볼게요."
홍예지가 지휘관 나르샤에게 달 려갔다.
나르샤는 누가 다가오자 흠칫했 다가 홍예지인 것을 보고 짜증 어 린 얼굴로 입을 열었다.
"또 왜?"
"또라니? 이번이 두 번째야."
"무슨 용무인데. 용건만 말해."
"도와줘."
"저쪽 지휘관 말하는 거 알잖아."
"...아까 한 약속은 그런 게 아니었을 텐데. 난 지켜보기만 할 거야. 우리가 했던 거래는 딱 그 정 도였어."
"...매정하기는. 내가 네 약점을 퍼뜨려도 상관없어?"
"그러든가. 전부 죽지 않을 정도
로만 패 놓으면 돼. 죽이는 건 저 쪽 진영이 알아서 하겠지."
"...칫."
나르샤의 완고한 태도에 홍예지 가 물러났다.
금방 유준에게 돌아온 홍예지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안 된대요."
"역시 그렇군요."
" 예상하셨나요?"
"예, 뭐."
"음 그런데... 상황이 그렇게 좋지는 않네요."
"그러게요."
"지휘관이 끝까지 안 나설까요?"
"그럴 거라고 생각하는게 편하죠. 괜히 기대하고 있는 것보다는."
"언제 뛰어드실 거예요?"
"지금 하고 있잖습니까."
A등급 스킬인 프로즌 필드.
쩌적. 쩌저적!
그가 사용하는 마법도 오만 진영에게 상당한 피해를 입히고 있다.
"유준 씨는 검을 더 잘 쓰시지 않나요?"
"저쪽 지휘관이 신경 쓰여서요. 솔직히 레벨이 몇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많이 강한 거 같기는 한데."
"...아까부터 투사체 마법을 전 부 튕겨 내고 있는 걸 보면 지니고 있는 마력량도 장난이 아닌 거 같 긴 해요."
쿨테룸의 능력도 만능은 아닌지 디버프 마법이나 바닥에 깔리는 종 류의 마법은 막아 내지 못했다.
오로지 투사체만 막아 낼 뿐.
그렇다고 하더라도 쿨테룸의 기 세는 무섭기 그지없었다.
"돌격! 돌격!"
쿨테룸의 활약 덕분에 오만 진영은 어느새 나태 진영 성벽 바로 앞 까지 도달했다.
천이 넘는 수를 죽였음에도 오만 진영의 플레이어는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그래도 투사체 마법을 최대한 자 제하면서 나태 진영의 피해는 많이 줄어들었다.
전력에서 유의미한 차이가 나는 가 하면 그것도 아니지만.
그때였다.
쿨테룸이 단번에 성벽을 뛰어넘었다.
그는 거대한 글레이브를 휘두르 며 나태 진영의 플레이어를 학살하기 시작했다.
성벽 위로 구축되었던 진형이 무 너졌다.
콰앙! 콰앙!
그 누구도 쿨테룸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의 앞에선 수가 의미가 없었다.
나태 진영 플레이어들이 무더기 로 쓸려나갔다.
유준이 검을 꺼내 들었다.
이제 마법 놀이는 그만할 때가 됐다.
아군의 피해가 더 커지기 전에 쿨테룸을 막아야 한다.
'내가 막을 수 있을까.'
솔직히 쿨테룸이 종족 대항전에 참가한 플레이어들과 싸우는 건 반 칙에 가까운 행위였다.
유준이 쿨테룸의 앞에 섰다.
"응? 안 도망치는 건가?"
쿨테룸은 갑자기 나타난 유준을 흥미로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너 강해?"
유준이 침착하게 물었다.
"지금까지 뭘 본 거냐? 여기 네 놈의 아군들의 시체로 산을 쌓은 것이 안 보이는가?"
"그런데 왜 약한 사람만 골라서 죽이는데?"
"눈앞에 있으니 죽일 뿐이다."
"더 강한 녀석이 있는데 걔랑 안 싸워?"
"그럼 널 죽이고 녀석을 만나러 가면 되겠군."
"어디 있는 줄 알고."
"내가 두려운가? 인간이여, 말이
많구나."
"자신 없나 보네? 우리 지휘관은 저기 있어."
유준이 손가락으로 한 곳을 가리 켰다.
"크하하하... 어리석구나, 어리 석어. 이 나를 자극하려 하다니 기 꺼이 웅해 주지! 나태 진영 지휘 관! 당장 나와 붙자!"
쿨테룸이 갑자기 유준에게서 관 심을 끄더니 나태 진영의 지휘관을 찾아 나섰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방관만 하겠어?'
유준은 지휘관이 있는 곳을 바라 봤다.
성벽에서 가장 높은 곳에 그녀가 있었다.
약속했던 대로 유준만을 바라보 고 있던 나르샤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거기 있구나! 수인족 소녀여! 나와 붙자! 나는 외형만 보고 판단 하지 않는다. 너에게선 강자의 냄 새가 풍기는군!"
그 모습을 본 유준은 안도의 한 숨을 내쉬었다.
'이제 좀 마음 놓고 움직일 수
있겠네.'
쿨테룸 문제가 해결되었다.
그렇다면 이제 그의 적수는 없었다.
유준이 성벽 아래로 뛰어내렸다.
이제 막 성벽을 올라오고 있던 오크들에게선 신경을 껐다.
쿠웅!
안정적으로 착지한 유준에게 수 십 개의 마법이 날아들었다.
유준은 182레벨이 되면서 쌓인 미분배 능력치를 모두 분배한 상태였다.
특히 민첩 위주로.
후웅! 콰앙!
몸놀림이 전과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는 재빠르게 움직여 화 속성과 뇌 속성 마법을 전부 피해 냈다.
어느새 다가온 오크 전사들을 검으로 베었다.
순식간에 목을 잃은 오크 네 명 이 털썩하고 쓰러졌다.
오만 진영의 누구도 유준이 검을 휘두른 궤적을 읽지 못했다.
그 정도로 검이 빨랐다.
서걱! 서걱!
유준은 성벽 밑으로 내려온 이래 쉬지 않고 움직였다.
"저 인간 정체가 뭐야?"
"저쪽 지휘관인가?"
"다 피하는데...
"이 정도면 쿨테룸보다도 빠른 거 아니야?"
"지휘관이면 싸워 봤자 전력만 날아갈 뿐이야! 다들 성벽 위로 올라가!"
오만 진영 입장에서 보면 유준은 적 팀의 쿨테룸 같은 존재였다.
어떤 공격을 해도 통하지 않았고, 그에게 가까이 가는 순간 목숨을 잃었다.
전투 기계.
오만 진영 플레이어들은 지친 기 색 하나없이 아군을 학살하는 그 의 모습에 두려움을 느꼈다.
홍예지는 특기인 화살을 쏘면서 유준을 보조했다.
그리고 홍예지를 노리는 적은 그 녀의 곁에 서 있는 파라네트에게 목숨을 잃었다.
전쟁은 그런 식으로 큰 변화없이 흘러갔다.
혼자 오백이 넘는 플레이어를 사 살한 유준은 슬슬 체력이 떨어져 가는 것을 느꼈다.
그건 적들도 알았다.
성벽을 오르지 않은 플레이어들은 전부 유준에게 달려들었다.
"파라네트!"
"예!"
"시체 폭발을 써! 수 좀 줄이자."
"알겠습니다!"
파라네트의 마력에는 한계가 있기에 시체 폭발은 최대한 아끼고 있었다.
적들이 밀집해 있는지금이 적기였다.
시체는 주위에 널려 있었다.
파라네트에게 이것보다 더 좋은 환경은 없으리라.
콰콰콰쾅! 콰콰콰쾅!
어마어마한 폭음이 귓가를 때렸다.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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