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권 24화
48 화
블랙마켓.
암시장이라고 불리는 이곳에서는 온갖 물건들이 거래되었다.
노예나, 일반적인 플레이어들은 구경도 할 수 없는 값지고 귀한 아 이 템들까지.
심지어는 한 왕국의 작위까지 팔 정도였으니.
없는 물건이 없다.
그런 말이 당연하게 쓰일 정도로
블랙마켓의 규모는 거대했다.
입구를 통해 블랙마켓 안으로 들 어온 유준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와... 플레이어가 뭐 이리 많 아?'
심지어 플레이어들 대부분이 장 비 수준이 상당히 높았다.
'영웅 등급은 기본이고... 전설 등급도 종종 보이네.'
물론, 유준처럼 전설 등급 아이템으로 도배한 이는 거의 없었다.
설령 전설 등급 아이템이 많아도 이곳에서 그런 아이템을 착용하고 다녔다가는 이목이 집중되어서 오
히려 부담스러울 듯했다.
그러한 시선을 즐기는 이도 있겠 지만.
'확실히... 안전해 보이진 않네.'
경비병들이 빽빽하게서 있었지만, 그들의 수준이 최상위 랭커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그리고 특이한 점을 하나 더 발견했다.
블랙마켓에는 아무런 아이템도 진열되어 있지 않았다.
도난을 방지하기 위함이리라.
유준은 블랙마켓을 쉬지 않고 돌 아다녔다.
블랙마켓의 규모가 커서 전부 돌 아보는데도 한 세월이 걸렸다.
'아이템 거래는 어디서 하지?'
24시간 운영되는 곳이니 분명 지금 당장 아이템을 사거나 팔 수 있을 것이다.
짐작 가는 곳이 있었다.
큰 천막으로 가려진 건물.
그곳은 다른 곳보다 경비도 삼엄 했다.
그쪽으로 다가서자 아니나 다를까 경비병들이 막아섰다.
"고객님. 무슨 용무로 찾아오셨습니까?"
"아이템을 판매하려고 한다."
"혹시 패를 보여 주시겠습니까?"
유준은 손에 들고 있던 나무패를 뒤집어서 보여 주었다.
경비병이 나무패를 슬쩍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인되었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입장 절차에는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안에 사람이 많아서 그런가?'
유준은 십 분 정도 기다리고 나 서야 천막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내부로 들어서니 밖에서 봤을 때 보다 더 넓은 느낌이었다.
플레이어들이 물건을 두고 흥정 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메신저 대화라는 좋은 방법이 있지만, 암시장이라는 장소 특성상 메신저 교환이 활발하게 이루어지 지는 않았다.
들어서자마자 키 작은 남자가 유준에게 다가왔다.
길게 자란 콧수염이 인상적인 자였다.
"패를 보여 주시겠습니까?"
"여기."
"나무패. 거래 전적이 없고... 이번이 처음이시군요?"
"아이템을 거래하면 패를 바꿔 준다고 들었다."
"물론입니다."
"금액 기준이 정해져 있나?"
"30만 포인트 이상 거래하시면 구리로 된 패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다음 거는?"
"150만 포인트입니다. 청동패이 지요."
"그다음은?"
콧수염 남자가 살짝 눈가를 찡그 렸다가 환하게 웃었다.
"고객님. 일단 정보 등록부터 하겠습니다."
"청동패 다음은 뭐지?"
유준이 우직하게 묻자, 남자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대답했다.
"...은패입니다. 1,000만 포인트 이상을 거래해야 하죠."
궁금한 걸 해결한 유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보 등록은 어떻게 하면 되지?"
"실제 정보를 등록하는게 아니 라, 이곳 마켓을 이용해 주실 때마 다 쓸 가명을 제게 말해 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거래 이력은 저희 직 원들만 확인할 수 있으니 안심해 주세요."
"그러지. 가명은 내 마음대로 정 해도 상관없겠지?"
"그렇습니다."
"그럼 '유랑 기사'로 하지."
"유랑 기사. 알겠습니다."
일부러 오그라드는 이름으로 가 명을 정했다.
가상의 캐릭터를 하나 만드는 것이다.
자신의 평소 성격이라면 저런 이 름을 절대 안 쓸 테니까.
"바로 거래를 진행하시겠습니까?"
"처분할 아이템은 누구한테 보여 주면 되지?"
"유랑 기사님이 정해 주시면 됩니다. 직접 판매를 진행하셔도 되 고 저한테 보여 주시고 대리 판매를 하셔도 됩니다. 대신 판매자 가
명을 비밀로 하실 수는 없습니다."
"그럼 판매를 맡기지."
"알겠습니다. 제게 판매할 아이템을 보여 주시겠습니까?"
유준이 인벤토리를 열었다.
'무기를 파는게 좋긴 할 텐데.'
단일 아이템으로 가장 비싸게 팔 수 있는 것이 무기였다.
그의 인벤토리에는 창. 도끼, 검, 활, 채찍, 도 등 없는게 없었다.
그중 적당한 아이템 하나를 발견 했다.
바로 전설 등급의 방패였다.
방패는 사실 무기라고 보기엔 좀 그렇다.
공격력이 따로 붙어 있는게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기 용도로 쓸 수는 있었다.
상대방을 밀쳐 내거나, 아니면 방패를 휘둘러 타격하거나해서 말이다.
'방패의 장점은 공격 용도로 사용했을 때 드러나는게 아니지.'
신들의 전쟁 때는 죽어도 부활할 수 있는게임이다 보니, 방패를 사용하는 자가 드물었다.
그리고 지금도 드물긴 하다.
방패가 인기가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매물이 없었다.
방패는 사고 싶어도 살 수가 없는 귀한 장비 아이템 중 하나였다.
'한 손 무기랑 같이 쓸 수 있으니까 없어서 난리지.'
다만 유준이 그동안 방패를 사용 하지 않은 건, 기본 방패 아이템들 의 착용 레벨 제한이 높고 익숙하지 않다는 점 때문이었다.
'레인보우 스티커를 사용하면 나
도 이제 방패를 착용할 수 있겠지만...
지금 오히려 방패를 쓰는 건 독
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
검술 특성 때문이었다.
이 특성은 오로지 검만들고 있을 때 최고의 위력을 발휘한다.
그 사실은 유준이 몸으로 알고, 느끼고 있었다.
하여튼 유준은 그 드물다는 방패를 여러 개 가지고 있었다.
그중 하나를 여기 블랙마켓에 내 놓는 것이다.
[견고한 의지의 방패]
착용 제한 : Lv. 350 이상
등급 : 전설
방어력 : 8,490
옵션 : 상태 이상 공격을 일정 확률로 방어해 냅니다. 방패에 충격이 쌓일수록 몸놀림이 가벼워집니다.
상태 이상을 방어하고 누적 효과 가 적용되는 옵션.
사실 전설 등급 아이템치고 특이
하거나 막 좋다고는 할 수 없는 옵 션이었다.
하지만 이게 방패 아이템에 달린 옵션이라면 다르다.
방패는 보통 옵션이 잘 안 붙었다.
이 정도만 해도 감지덕지.
유준은 성인 남성 상반신만큼의 크기를 지닌 방패를 콧수염 남자에게 건네주었다.
"방패? 이거 방패입니까?"
"보시다시피."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콧수염 남자는 황급히 아이템의 정보를 살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의 째진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전설 등급의 방패.... 아주 귀 한 물건을 들고 오셨군요."
"당연하다. 난 수준 낮은 물품은 취급하지 않아."
유준은 가상의 인물을 연기했다.
어떻게 보면 오만하게 보일 말이 지만.
그것이야말로 유준이 노리는 바였다.
'말투 때문에라도 내 정체를 추 측하긴 어렵겠지.'
방패를 요목조목 살펴보던 콧수 염 남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늦었지만, 제 소개를 하겠습니다. 저는 요릭이라고 합니다."
남자, 요릭이 허리를 숙였다.
유준이 무표정을 유지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아무래도 경매 형식으로 판매하는게 좋겠는데... 어떠십니까?"
"뭐든. 포인트만 많이 받는다면
상관없다."
"그럼요. 유랑 기사님의 아이템이라면 경매가 훨씬 이득일 겁니다."
콧수염 남자, 요릭이 잠깐 유준의 눈치를 보더니 뒷말을 이어 붙였다.
"혹시 판매하실 아이템이 더 있 으십니까? 이게, 사실 판매자의 이 름값도 판매가에 영향을 줍니다. 뭐 이 사람이 파는 물건이라면 믿 고 산다. 이런 식으로요."
"더 많은 물건을 내놓는게 좋다는 건가?"
"그건 아닙니다. 시간을 두고 천 천히 하는게 좋기야 하죠. 제가 알고 싶은 건 유랑 기사님의 인벤 토리에 이러한 아이템들이 더 있냐는 겁니다."
요릭의 말을 간단하게 설명하면, 유준에게 아이템을 지속적으로 팔 능력이 있냐고 물어보는 것이었다.
당연히 망설임없이유준은 고개
를 끄덕였다.
"비슷한 정도가 아니라 더 좋은 아이템들이 쌓여 있다. 그러니 자 네는 아이템을 잘 팔아 주기만 하 면 돼."
"알겠습니다."
요릭은 눈앞의 남자가 마냥 허세를 부리는게 아니라는 걸 직감했다.
저 여유는 꾸며 낸다고해서 나 올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VIP 고객 하나가 더 생겼군.'
요릭이 속으로 웃었다.
경매하기 위한 장소로 경매장이 따로 있었다.
블랙마켓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것은 바로 이 경매장.
그 이유는 쉽다.
보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재미를 선사하기 때문이다.
이곳 경매장은 굳이 아이템을 사 거나 팔지 않더라도 값비싼 아이템을 구경하러 오는 이들이 많았다.
경매장은 콜로세움을 연상시키는 큰 건물이었다.
물론, 실제 콜로세움보다는 훨씬 최신식이고 설비가 좋은 편이었다.
"오늘은 뭐 없나?"
"그저께 전설 등급 아이템이 두 개나 나왔헜잖아. 그래서 오늘 유 독 사람이 더 많은 거 같은데."
"너무 기대하진마. 그런 날은 엄청 드무니까."
"그래도 전설 등급 아이템 하나 만 나오면 그날은 좋은 구경 할 수 있잖아."
"그게 어디 흔하냐고. 설령 경매에 나온다고 해도 전설 등급이어도 착용 제한이 낮아서 옵션이 실망스
러운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어."
"하긴... 영웅 등급 장비도 레 벨에 맞춰서 구하려면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해야 하는데."
"레벨에 맞는 장비는 전 재산을 퍼부어도 될 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지."
"오늘 고레벨 장비가 나오기나 할까?"
"자 자, 참고 기다리자고. 곧 진 행자가 나타나서 알려 주겠지."
온갖 플레이어들이 모여서 시끌 벅적했다.
요릭에게 자리를 배정받은 유준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가 앉은 자리가 맨 앞.
그것도 유리 벽으로 차단된 곳이었기에.
"나는 왜 다른 자리에 앉지?"
"물품을 등록한 고객님은 원래 이곳에 앉습니다. 나중에 유랑 기 사님의 물건이 올라오면 그때 저와 같이 단상으로 올라가셔야 하거든요."
"그래서 제일 가까운 곳에 앉아 있는 건가?"
"그렇습니다."
"흐음... 나쁘지 않군."
아이템이 가장 잘 보이는 자리.
그는 마음에 드는 물건이 경매장에 올라오면 곧바로 아이템 경매에 뛰어들 생각이었다.
'아이템을 판매한 뒤에나 가능하겠지만...
지금 당장은 포인트가 부족해서 원하는 아이템을 구매하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그냥 아이템을 더 풀어야 하나?'
유준은 옆 좌석에 앉은 요릭에게 말을 걸었다.
"경매 도중에 추가로 물건을 등 록할 수도 있나?"
"...음. 그건 VVIP 고객님들에게만 허락되는 특권입니다. 유랑 기사님은 아직 나무패를 소유하고 계시기에 불가능합니다."
"VVIP의 기준은?"
"금패로 갱신했을 때 VVIP 목록에 추가됩니다."
"금패라. 그건 어느 정도의 금액을 거래해야 갱신할 수 있는 거지?"
"5억 포인트입니다."
"...상당하군."
금패의 기준이 꽤 높았다.
괜히 VVIP가 아닌 듯했다.
그러나 금패를 얻기가 마냥 어려 운 것도 아니었다.
플레이어들이 원하는 아이템만 있으면 포인트를 무한정 벌 수 있었고.
유준은 그러한 아이템들을 가지 고 있다.
'경매장에 며칠 머물면서 포인트를 모아야겠네.'
VVIP 달성.
그것이 목표였다.
'일단 오늘 아이템들이 어느 정 도 가격에 팔리는지 한번 봐야지. 아이템들의 수준도 좀 확인하고.'
유준이 입가에 여유로운 미소를 띠었다.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3권 1화
49 화
열띤 분위기 속에서 경매가 시작 되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 경매를 진행하게 된 레이예요. 만나서 반가워요."
단상에서 진행자가 모습을 드러 냈다.
진행자는 여우 가면을 쓴 젊은 여성이었다.
겉으로 봐서는 이종족이 아닌 인
간 종족인 듯했다.
'블랙마켓은 뭔가 다 여우랑 관 련되어 있군.'
여우 가면을 쓴 진행자는 긴말하지 않고 바로 경매를 시작했다.
"첫 번째 아이템부터 소개해 드 리겠습니다."
그녀의 말과 함께 수인족으로 보이는 한 명과 가면과 망토로 정체를 숨긴 한 명이 단 위에 올라섰다.
"이야, 첫 번째부터 장난이 아닌 데요? 350레벨 착용 제한이 걸려 있는 영웅 등급의 창이 나왔습니다!"
진행자가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전설 등급이 아닌 이상에 크게 호응이 없는 편이지만, 무기는 수 요가 많은 편이다.
특히 영웅 등급 이상인 데다가 레벨의 착용 제한도 높았다.
경매장의 분위기가 한껏 달아올 랐다.
"경매 시작가는 아시다시피 판매 자가 정합니다! 자, 쇼트렘 님. 가 격을 말씀해 주세요."
쇼트렘이라 불린 고객이 고개를 끄덕였다.
"낮게 시작하죠. 50만 포인트."
"적당한 가격이네요!"
"어차피 훨씬 비싸게 팔릴 테니까. 시작가는 의미가 없지."
쇼트렘이 거만한 태도로 말했다.
그의 태도가 전혀 이상하지 않을 만큼 경매장의 분위기가 뜨거워졌다.
"첫 아이템부터 저 정도라.... 오늘 좀 뭐가 있나 본데?"
"아마도 그럴 거야. 괜히 기대만 잔뜩 끌어올려 놓지는 않을 테니. 아마 좋은 아이템이 많이 대기하고
있나 봐."
"기대되는걸...
첫 경매 아이템의 가격은 순식간에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저게 그 정도야?'
아이템의 최종 가격을 본 유준이 화들짝 놀랐다.
솔직히 영웅 등급의 무기가 저런 가격으로 거래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좀 충격인데. 저건 완전 잡템 수 준이잖아.'
유준의 기준으로 봤을 때 첫 번
째 경매 아이템은 아주 보잘것없는 물건이었다.
'내가 너무 좋은 물건을 내놨나?'
그가 아차 하는 얼굴로지켜봤다.
두 번째 아이템 경매가 시작되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영웅 등급 의 아이템이었다.
대신, 전과는 다르게 무기가 아닌 전신 갑옷이었다.
첫 번째로 나왔던 창과 비교하면 레벨 제한도 낮고 성능도 많이 떨 어졌다.
그래서인지 두 번째 아이템은 큰 인기를 얻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도 상당한 금액이긴 하네...
경매장의 분위기는 들쭉날쭉한 상태를 유지했고 어느새 유준의 아이템 차례가 다가왔다.
열일곱 번째였다.
"드디어."
유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에게 전속되다시피 한 요릭이 들뜬 듯한 발걸음으로 먼저 단상으로 올라갔다.
"이번 아이템은... 자, 여러분. 놀라지 마세요."
경매 진행자가 뜸을 들였다.
"어이! 빨리 말하라고!"
"전설 등급이야? 전설이지?"
"얼른 보여 줘!"
그녀의 드문 반응이 경매장에 있는 플레이어들의 궁금증을 증폭시 켰다.
"맞습니다! 전설 등급의 아이템 입니다!"
진행자는 말을 덧붙였다.
"그것도 그냥 전설 아이템이 아
니에요. 바로 가장 희귀한 부위 아이템인 방패! 그게 이번 열일곱 번 째 경매 아이템입니다!"
그녀의 말에 경매장은 난리가 났다.
"방패? 방패라고?"
"괜히 어그로 끌려는 거 아니야?"
"정직하게 돈 벌어라! 블랙마켓!"
방패 아이템은 낮은 등급의 것이 라도 인기가 무척 많았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다.
없어서 못 구하는게 방패였다.
사실 방패야 직접 제작하거나, 장인들에게 제작 의뢰를 하면 얻을 수 있기야 하다.
다만, 그렇게 만들어진 방패는 아무런 옵션이 달리지 않은, 방어 력도 거의 존재하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
그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심지어 방패 아이템은 몬스터에게서 잘 드롭되지도 않았다.
설령 나오더라도 그 옵션이나 등 급이 하찮았고.
그런데 전설 등급의 방패라니!
모두가 자신의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그러건 말건, 진행자는 방패를 두 손으로 번쩍 들었다.
"아이템 정보. 모두 확인해 주세요."
경매장에 있는 플레이어들에게 전설 등급 방패의 옵션 정보가 공 유되었다.
경매장에는 한동안 침묵이 맴돌았다.
정보를 살피느라 여념이 없는 것
도 있지만, 그 옵션이 가히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허..."
"미쳤구만."
"이런 아이템이 존재한다고?"
"옵션 자체는 특출 나거나 하지는 않아. 하지만 이게 방패라는 걸 생각하면.... 전에 이보다 더 좋은 방패가 있었나?"
"사고 싶다...
반응은 가지각색이었지만, 결론은 하나로 도출된다.
유준이 판매하기로 한 '견고한
의지의 방패'를 모두가 갖고 싶어 한다는 것.
경매를 진행하는 진행자마저 그 런 마음이 들 정도였으니.
말로 더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이 방패는 마법사가 사용해도 되고, 네크로맨서가 사용할 수도 있다.
사실상 직업의 경계가 없으니 전 설 등급의 방패는 누구나 원하는게 당연했다.
"천만!"
"삼천만!"
성질 급한 이들은 가격부터 부르 고 봤다.
"자, 자, 판매자분께서 아직 시작 가를 정하지 않으셨습니다. 시간이 부족한 게 아니니 너무 홍분들 하지 마세요!"
"1 억!"
"1억 5천만으로 하지! 자네들. 돈으로 내게 덤빌 생각 하지 말게. 저 방패는 내 것이라네."
"웃기고 있네. 2억!"
"저거 누가 사게 될까?"
"부럽다...
1억 단위의 포인트를 부른 사람 이 나오자, 대부분 플레이어들은 군 침만 삼키며 경매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거액의 포인트를 소유하고 있는 플레이어들도 적지 않았나 보다.
꽤 많은 수의 플레이어들이 가격을 부르며 끝나지 않는 경쟁에 참 여했다.
돌아가는 상황을 본 요릭의 입이 귀에 걸렸다.
"유랑 기사님. 예상대로 반응이
뜨겁습니다."
"방패가 인기가 많긴 하군."
유준도 놀랐지만, 애써 태연한 척하며 말했다.
"원래 이런 곳일수록 희귀한 아이템에 더 환장하는 법입니다. 방 패는 그야말로 장비 아이템 중에서 가장 희귀한 물건이었으니 이러한 반응도 이상한 게 아니지요."
요릭이 콧수염을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방어력도 눈을 의심할 만큼 높고 옵션도 상당합니다. 저도 돈만 많았다면 진작 저
자리에 서서 저들과 같이 외치고 있었겠지요."
"자네도 레벨이 높은가 보지? 저 방패의 착용 제한은 꽤 높은데."
"경매장에서 경비를 서는 이들보 다는 제가 훨씬 강할 겁니다."
"음. 그래 보이는군."
"하여튼. 미리 축하드립니다. 금 방 VVIP를 달성할 수 있으시겠군요."
유준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방패의 가격은 어느새 4억 포인트를 돌파한 상황.
'다들 돈 많네.'
하긴, 무한의 탑이라고해서 재 벌 비슷한 게 없지는 않다.
오히려 빈부 격차는지구에 있을 때보다도 더 심한 편이었다.
그러니 이렇게 포인트를 많이 쌓 아 둔 이들이 있지.
'어찌 됐든 잘됐네.'
플레이어들은 유준이 내놓은 방 패를 갖고자 가격을 점차 높여 나 갔다.
'레벨들도 꽤 높겠군.'
그들이 착용하고 있는 장비의 수
준이유준도 감탄할 정도로 좋았다.
'전설 장비 두 개, 세 개씩은 착 용하고 있으니.... 설마 4대 길드 장들도 와 있는 거 아니야?'
실제로 블랙마켓에는 유명인들이 많이 찾아온다고 했다.
"자, 5억 5천만 포인트가 나왔습니다! 역대 다섯 번째로 높은 가격 인데요! 이 아이템은 확실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진행자가 말하고 난 뒤 요릭도 방패에 대한 장점을 줄줄이 나열하기 시작했다.
그런 말들이 큰 의미가 있을까
싶었지만, 요릭이 떠들기 시작하자, 경쟁에 불이 더 빨리 붙기 시작했다.
"5억 5천 5백만!"
"5억 6천만!"
액수가 이 정도까지 치닫자, 입 찰 경쟁에 참여하는 사람이 두 명으로 확 줄었다.
거대한 덩치의 남성과 인간으로 보이는 여성 한 명이었다.
"그만 포기하지?"
"그쪽이야말로. 돈으로 날 이길 생각하지마. 오크."
여성이 한번 비웃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6억."
"...미쳤군."
"그럼 포기하든가."
"그만한 돈이 수중에 있다는 건가?"
"당연하지. 그리고 이 아이템엔 그 정도의 가치가 있어."
여성의 말에 요릭이 환하게 웃었다.
"그렇습니다! 이 아이템은 현존 하는 모든 방패 아이템 중 최고라
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뇨! 확실히 최고가 맞습니다! 온갖 아이템을 봐 왔던 저는 이 방패보다 좋은 옵션, 방어력을 지닌 방패를 본 적이 없으니까요."
좌중에 있는 이들이 고개를 주억 거리며 요릭의 말에 동의했다.
방어력이 거의 만이라는 수치에 달했고, 옵션도 좋았다.
이런 성능을 지닌 방패는 여태 없었다.
한마디로지금이 무한의 탑 내에 서 가장 좋은 방패를 가질 기회였다.
"7억."
"8억."
가격을 부른 남성을 여성이 바로 따라잡았다.
"...쯧."
덩치 큰 남성이 혀를 찼다.
"끝이야?"
"더럽게 치졸하군."
"돈 많은 게 왜 치졸한 거지?"
남성은 짜증이 났는지 그녀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자리에 털썩 앉았다.
"더 없습니까?"
진행자의 말에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견고한 의지의 방패는 8억 경매 가에 낙찰되었습니다! 드디어 최강 전설 등급 방패의 주인이 바뀌었군 요! 토끼 여왕님! 축하드립니다."
방패 입찰 경쟁에서 승리한 여 성, 토끼 여왕이 득의의 미소를 지었다.
반면, 유준은 애매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앞으로 받게 될 엄청난 액수의 포인트 때문이 아니었다.
'저 방패... 최강까지는 아닌데.'
저것보다 좋은 전설 등급 방패를 여럿 더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 신화 등급의 방패까지 한 개 더 있다.
그래서 지금의 상황이 조금은 우 스웠다.
'아이템 몇 개 더 풀면 난리가 나겠는데?'
그때 요릭이 다가왔다.
"경매가로 8억이 나왔군요. 역대 네 번째로 비싸게 판매된 겁니다. 경축드립니다."
"고맙다. 내가 수고비를 줘야 하나?"
"아니요. 저희 블랙마켓 규정상 고객에게 따로 돈을 받는 건 불가능합니다."
"규정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들키지만 않으면 되겠군."
유준의 말에 요릭이 아무 말없이 웃었다.
"경매로 저 돈을 온전히 받을 수는 없습니다. 수수료가 있어서요."
"그건 알고 있다."
어느 곳이든 마찬가지겠지만, 블
랙마켓에도 수수료가 붙는다.
아이템을 처분하고 얻는 돈의 10%는 블랙마켓이 가져가게 되어 있다.
아이템을 구매한 여성은 경매 진 행자에게 돈을 지불했고 아이템을 받았다.
그리고 진행자는 다시 유준에게 수수료를 제한 금액을 줬다.
정확히 7억 2천만 포인트가 그에게 들어왔다.
'이 수치는 진짜 오랜만이네.'
사실 신들의 전쟁 때는 조 단위 로 포인트를 가지고 있었다.
'그건 게임 이야기니까... 아무 의미 없지.'
이제부터 자신이 벌 돈이 중요하다.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은 유준은 요릭과 함께 단상을 내려갔다.
그는 포인트 거래를 통해 요릭에게 1천만 포인트를 보내 주었다.
그가 번 돈에 비하면 약소한 돈.
말 그대로 수고비였다.
"감사합니다."
요릭이 무덤덤한 어조로 감사를 표했다.
그러나 기쁨으로 떨리는 얼굴을 주체하진 못했다.
'그나저나 내가 혹할 만한 아이템이 나오긴 할까?'
그럴 확률은 높지 않았다.
웬만한 아이템은 그의 인벤토리 안에 다 있었기에.
그런 그때.
유준의 눈을 크게 만든 아이템이 단상에 등장했다.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3권 2화
50화
"자, 방금 모두를 놀라게 할 아이템이 낙찰되었었죠? 이번 아이템 도 그에 못지않게 좋은... 아니, 희귀한 아이템입니다!"
진행자의 말에 플레이어들의 시 선이 한곳에 쏠렸다.
"저게 뭐야?"
"장비 아이템은 아닌 거 같은데?"
"포션인가?"
검붉은 액체가 투명한 플라스크에 반 정도 담겨 있었다.
포션 같기도 한데, 그렇다고 하기엔 검은빛을 띠었다.
진행자가 아이템 정보를 공유했다.
[베히모스의 피]
등급 : 전설
옵션 : 신화 속 존재, 베히모스 의 피가 담긴 플라스크입니다.
무려 전설 등급의 아이템!
다만, 옵션만 봐서는 용도를 알 수 없었다.
"베히모스의 피? 베히모스가 뭔데?"
"피를 얻다 쓰라고?"
"그냥 전설 등급이면 다냐."
"저런 아이템 많잖아. 뭔가 있어 보이긴 하는데 용도를 알 수 없는 거...
"그냥 관상용 아이템인가? 또 변 태 같은 작자들이 저런 거 사겠구 만."
"희귀하다고만 하면 다 사들이는
녀석들이 있긴 하지...
대부분 플레이어들의 반응은 시 큰둥했다.
올라온 아이템이 전설 등급이긴 해도 사용처를 모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곧바로 입찰을 시작한 사 람이 있었다.
"1천만 포인트."
바로 앞서 유준의 아이템을 구매 했던 여성이었다.
베히모스의 피를 보는 그녀의 눈 이 매섭게 빛났다.
"..저 여자. 아까 그거 사고도
돈이 남은 거야?"
"미쳤구만, 미쳤어. 돈지랄도 정 도가 있지."
그러나 입찰에 참여한 이가 그 여성 한 명만 있는게 아니었다.
"2천만."
유준도 입찰 경쟁에 뛰어들었다.
그의 아이템을 샀던 여성이 고개를 확 돌렸다.
"견제인가요?"
"아니. 나도 저 아이템이 탐나 서."
"포기하시죠."
"나는 저 아이템을 꼭 갖고 싶 군."
유준은 최대한 저음의 목소리를 내며 말했다.
그가 저 베히모스의 피 용도를 알고 있다.
베히모스의 피에 어떤 한 재료 아이템을 섞으면 마력을 영구적으로 늘려 주는 아이템이 된다.
그리고 그 재료 아이템을 유준은 갖고 있었다.
'이건 놓치면 안 돼. 전 재산을
다 쓰더라도 가진다.'
그와 같은 생각을 한 건 입찰 경 쟁을 하는 여성도 마찬가지였다.
"3천만!"
"4천만."
"5천만!"
"1 억."
유준은 초조한 마음이 드러나지 않게, 자신감 있게 말했다.
돈에 여유가 넘쳐 나는 사람인 것처럼.
솔직히 말해서 입찰가가 방금 받은 7억 1천만 포인트 이상으로 넘
어가면 그는 베히모스의 피를 구할 수 없는 상태였다.
이럴 땐 심리전이었다.
여자가 입을 열었다.
"지금 해보자는 거죠? 전 당신을 존중하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난 누구와도 경쟁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 그냥 저 아이템만 얻으면 돼."
불의 여제라고 불리는 도지윤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저게 뭔지나 알고 저러는 거야?'
베히모스의 피.
마력을 영구적으로 증진시킬 수 있는 몇 안 되는 아이템이었다.
그것도 상당한 수치가 증가한다.
신들의 전쟁 당시 최상위 랭커였 던 그녀는 그걸 알기에 저 아이템을 포기할 수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이템을 더 처분해 두는 건데.'
마음에 드는 방패를 샀지만, 그때문에 지금 포인트가 상당히 줄어 들었다.
'저 남자가 7억을 받았을 테 니... 저쪽에서 포기하지 않으면 안 돼.'
지금 그녀의 수중에는 그만한 돈 이 없었다.
"2억 7천만."
확 올라간 숫자.
도지윤은 일단 자신이 가진 돈 전부를 걸었다.
유랑 기사가 알아서 떨어져 나가
기를 기대한 것이다.
그리고 베히모스의 피는 전 재산을 걸 만큼 가치가 높았다.
그러자, 반대편에 있는 유랑 기 사가 미소를 지었다.
도지윤의 허세는 통하지 않았다.
"그게 전부인가 보군."
"2억 8천만 포인트."
도지윤이 이를 꽉 악물었다. 너무나 얄미웠다.
"그거 어떻게 쓰이는지는 알고
있어요?"
"글쎄."
"안다는 거예요? 모른다는 거예 요?"
"알려 줘야 하나?"
"자 자, 여기서 이러지 마시고... 이 절세의 뛰어난 아이템을 원하시는 분 더 없습니까?"
베히모스의 피 판매를 맡은 남자 가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없어! 인마! 뭐가 절세야? 용도 나 알려 주고 팔든가!"
한 플레이어가 외친 말에 대리
판매를 맡은 이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저도 모릅니다. 그걸 알면 제가 미리 설명해 드렸죠."
"근데 왜 저 둘은 저렇게 비싸게 사려는 건데?"
"하하, 그러게요. 그만큼 이 아이템이 구하기 힘들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허, 답답하네."
"부자들의 마음을 우리 같은 평 범한 이들이 어떻게 알겠나. 단순 수집욕이겠지."
결국, 유랑 기사는 2억 8천만 포 인트로 베히모스의 피를 얻었다.
입찰 경쟁에서 패배한 도지윤은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렸다.
가면 때문에 그것이 보이진 않았 지만.
베히모스의 피 사용처를 아는 존재는 진짜 몇 없다.
서버 종료 마지막까지 있던 유저 들 정도나 알까.
한참을 생각에 잠겨 있던 도지윤 의 표정이 굳었다.
'신들의 전쟁을 했던 사람이겠네. 그것도 상당히 오래.'
도지윤은 경매가 한창 진행되는
와중에 상념에 잠겼다.
'조선제일검은 아닐 거야. 일단 그 사람은 말투부터 특이하니까.'
그다음은 홍대패플조솁.
'그 까불이가? 설마. 절대 아니야.'
도지윤은 홍대패플조솁의 정체를 이미 알고 있었다.
직접 만난 적도 있고.
그러니 유랑 기사는 홍대패플조 솁이 아니었다.
'그리고 나만고양이없어가 있었지.'
그 유저일까?
도지윤은 확신할 수 없었다.
그 유저에 대해선 아는 것이 많 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나만고양이없어'와 친했 던 건 '무과금즐겜러'였다.
둘은 항상 같이 다니며 레벨을 올리고 아이템을 구하곤 했다.
'무과금즐겜러.... 차라리 그 사 람이라고 하면 이해가 가긴 하네.'
어떻게 숨어 지냈고, 힘을 키웠 다면 딱 저런 모습이지 않을까.
도지윤이 푹 한숨을 내쉬었다.
'베히모스의 피를 놓친 건 엄청 난 손실이야.... 저걸 판매한 사 람도 참 멍청하네. 용도를 알면 저 걸 경매장에 가져올 리가 없는데.'
그 후로 별다른 아이템이 나오지 않아 경매는 흐지부지하게 끝났다.
도지윤이 주위를 둘러봤다.
유랑 기사가 경매장을 빠져나가 려는 것이 보였다.
그녀는 황급히 뛰어가 유랑 기사를 붙잡았다.
"뭐 하는 거지?"
유랑 기사가 뒤를 돌아보며 싸늘
하게 말했다.
"함부로 손을 대서 미안해요. 묻 고 싶은 게 있어요."
유랑 기사가 아무 말없이 그녀를 응시했다.
"당신... 혹시 무과금즐겜러예요?"
"무슨 소린가. 난 유랑 기사다. 그런 뜻 모를 이름이 아니야."
도지윤이 눈을 가늘게 떴다.
유랑 기사가 태연하게 대답하긴 했지만, 살짝 움찔하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그것만 보고 그가 무과금 즐겜러 그 자체라고 확신할 수는 없다.
하지만,
'최소한 무과금즐겜러를 알고 있는 사람이야.'
소득을 얻은 도지윤이 그제야 환 한 미소를 지었다.
"아까는 성을 내서 미안해요."
"사과하는 건가?"
"네. 제가 아이템에 눈이 멀었었 네요. 아까 일은 사과드릴게요."
"괜찮다. 애초에 신경 쓰지도 않
았으니."
유랑 기사의 냉담한 반응에 도지 윤이 애써 웃었다.
"혹시 메신저 교환이 가능할까요?"
"...갑자기 그걸 왜 하자는 거지?"
"덕분에 전설 방패도 구했고, 무 엇보다 당신이랑 친해지고 싶어서요."
"내 정체를 알아내려는 건 아니고?"
"그럼 제 정체도 알 수 있게 되겠죠."
"별로 궁금하지 않다."
유랑 기사는 그 말만을 남기고 자리를 떴다.
도지윤이 그를 따라가려 했지만, 유랑 기사의 모습은 어느새 사라져 버렸다.
"...뭐야? 유랑 기사가 아니라 유령 기사였어?"
공간 이동과 같은 스킬을 쓴 걸까.
자신의 눈으로 놓칠 정도였으니
그런 종류의 스킬을 사용한 것이 확실했다.
'그나저나 겁나 까칠하네.'
그녀는 4대 길드 중 하나인 신전 길드의 길드장이다.
웬만큼 유명한 플레이어들의 정 보는 다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유랑 기사로 추정되는 인물은 그중에 없었다.
'무과금즐겜러이거나 그와 관련 있는 인물인 건 틀림없어. 빨리 돌 아가서 알아보자.'
도지윤은 황급히 블랙마켓에서 나와 길드 본부 건물이 있는 거주
구역으로 향했다.
유준은 얼굴에서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이런 행운이 다 있나.'
행운의 반지 덕분일까.
하필 블랙마켓에 처음 온 날, 이런 귀한 아이템을 얻게 될 줄은 몰랐다.
베히모스의 피.
유준은 경매가 끝난 후 나무패를 금패로 교환 받았다.
한순간에 블랙마켓의 VVIP가 된 것이다.
'여기 오길 잘했어.'
유준은 블랙마켓에 자주 들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방문에 큰 만족을 했다.
블랙마켓에서 나온 유준은 일단 거주 구역으로 돌아갔다.
최대한 안전한 곳에서 베히모스
의 피를 사용해야 했다.
'그 여자가 날 쫓아올 수도 있으니.'
그 여자란 핑크핑꾸토끼를 뜻했다.
유준은 아까 토끼 여왕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정확히는 자신을 보고 무과금즐 겜러냐고 물었을 때.
'가명도 토끼 여왕이라 쓸 정도였으니 뭐... 거의 확실하지.'
거기다 목소리도 넷상으로 들었을 때와 완전히 같았다.
그리고 핑크핑꾸토끼라면 정보를 선점해서 최상위 랭커가 되었을 것이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운영자에게서 특전도 받았을 것이고.
하여튼 그녀 때문에 간담이 서늘 했었다.
'그래도 안 들켰겠지.'
자신의 정체를 확신하고 물어보는 눈치는 아니었다.
목소리도 최대한 낮게 깔아서 의 심받을 만한 요소가 거의 없었다.
'그 여자가 적이 될지 안 될지
모르니까. 내가 무과금즐겜러라는 건 최대한 들키지 않는게 좋겠지.'
거주 구역으로 금방 돌아온 유준은 침대에 털썩 앉았다.
그리고 베히모스의 피가 든 플라 스크를 꺼냈다.
베히모스의 피는 검붉고 진득했다.
유준은 인벤토리에서 가죽 주머 니 하나를 꺼냈다.
그 후 꽁꽁 싸매진 가죽 주머니를 풀었다.
주머니 안에는 푸른빛을 띠는 가 루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라미네트 꽃가루]
등급 : 無
옵션 : 모든 독을 제거합니다.
베히모스의 피에는 강력한 독이 있다.
그대로 섭취하면 아무리 플레이어라 하더라도 바로 즉사할 정도로 강한 독이었다.
그러나 이 독을 중화시키는 아이템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이 라 미네트 꽃가루였다.
이 꽃가루는 단순히 독만 중화시 키는게 아니라, 베히모스의 피와 만나면 피에 있는 마력을 증폭시키 기까지 한다.
한마디로 베히모스의 피와 최상 의 궁합인 것이다.
그는 먼저 플라스크 하나를 더 꺼내서 베히모스의 피의 반 분량을 부었다.
그가 얻은 베히모스의 피는 마력 증진 아이템이 두 개가 만들어질 양이었다.
그다음부터는 뜸 들일 것이 없었다.
유준은 꽃가루를 베히모스의 피 가 담긴 병에 일정량 투여했다.
끄르륵. 꾸룩.
베히모스의 피가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이윽고, 베히모스의 피 색깔이 푸른색으로 바뀌어 가기 시작했다.
투명하게 느껴질 정도로 색이 연 해졌다.
"됐다!"
유준은 곧바로 색이 바뀐 베히모 스의 피 정보를 확인했다.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3권 3화
51화
[중화된 베히모스의 피]
등급 : 전설
옵션 : 섭취 시에 영구적으로 마 력 60이 증가합니다. 단, 베히모스의 피 섭취 효과는 한 번만 적용됩니다.
"이거지."
이거 하나만 마시면 무려 마력 능력치가 60이나 증가한다.
일반 플레이어가 레벨 20을 올려 야 얻을 수 있는 수치였다.
아쉬운 점은 '중화된 베히모스의 피'는 단 한 번만 그 효과가 적용 된다는 것에 있었다.
'뭐, 상관없지.'
차라리 잘됐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유준은 곧바로 파라네트를 소환 했다.
"주인님! 불러 주셨군요!"
"좀 조용히 말해. 여기 싸움터 아니야."
"예."
"이거 너 줄게."
"이게 뭡니까?"
"확인해 봐."
파라네트가 베히모스의 피 플라 스크를 받아 들었다.
"저, 저... 이걸 주시는 겁니까?"
"그래."
"왜죠? 뭘 바라시는 건가요?"
파라네트는 의심부터 했다.
"야. 내가 언제는 너한테 뭘 바 라고 아이템 줬냐?"
"죄, 죄송합니다."
"하나 남아서 주는 거야."
"알겠습니다!"
파라네트가 크게 기뻐했다.
녀석은 가디언 호리단에게서 얻은 신화 등급 반지를 착용하고 있다.
그 반지에는 마력 수치만큼 마력을 제외한 모든 능력치가 증가하게 하는 옵션이 달려 있었다.
'파라네트한테 딱 맞는 아이템이 라는 거지.'
호리단의 반지 덕분에 녀석이 베
히모스의 피를 섭취하면 남들보다 세 배, 네 배 효율을 낼 수 있다.
그러니까 쉽게 표현하자면, 파라네트는 피를 섭취하고 능력치가 총 240이 오르는 것이다.
'진짜 이러다 얘가 나보다 강해 지는 거 아니야?'
녀석이 스킬을 더 얻고 하다 보 면 그럴지도 모른다.
그나마 태초의 플레이어 능력과 여러 칭호들 그리고 아이템 덕분에 자신이 앞서고 있는 거지.
'신화 등급 아이템은 웬만해선 주지 말아야겠다. 주인 자존심이 있지.'
그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파라네트는 베히모스의 피를 들고 마 냥 좋아했다.
'근데 언데드한테도 효과가 있을까?'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 파라네트는 피를 섭취하고 방방 뛰었다.
"주인님! 힘이 넘칩니다! 당장 싸우고 싶습니다!"
"많이 컸네. 스스로 겁쟁이라고 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음. 과거의 저는 잊어 주십시오."
"하여튼 효과가 있다니 다행이다."
유준도 안심하고 베히모스의 피를 마셨다.
그 후 곧바로 상태창을 열어 확 인해 보니 마력이 정확히 60 상승 했다.
마력이 무려 60이다.
기본 능력치의 중요성은 말로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파라네트 능력치도 좀 궁금한데.'
생각난 김에 파라네트 정보도 살
펴봤다.
[소환수 : 파라네트(성장형)]
□ 레벨 : 197
□ 특성 : 생존 본능(S), 회피(A)
□ 스킬 : 독 포션 제조(B), 시체 폭발 (S)
□ 칭호 : 없음
□ 능력치
[근력 362] [민첩 398]
[체력 353] [마력 220]
[미분배 포인트 : 0 ]
"...미친놈."
" 예?"
"아무것도 아니야. 신경 쓰지마."
"알겠습니다."
파라네트의 능력치가 이상하다.
녀석은 레벨이 오르면 능력치가 4씩 상승할 때가 있었다.
그건 격이 매우 높아졌기에 가능 한 일이다.
거기에 방금 마력 60이 또 증가해서 모든 능력치가 60씩 상승했다.
도무지 200레벨도 안 되는 소환 수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높은 능력 치였다.
'내 퍼센트 추가능력치를 제외 하면 나랑 능력치가 비슷한 정도야.'
헛웃음이 나왔다.
호리단의 반지가 확실히 사기적 인 아이템이긴 했다.
조건이 너무 제한적이라서 자신이 착용할 수 없는게 문제지.
'하여튼 쟤가 강해지는게 나한테 좋은 일이긴 한데...
뭔가 기분이 묘했다.
종족 대항전에서 많은 걸 얻었고, 마족들을 죽여 레벨도 올랐다.
뒤이어 김희연을 만나 히든 던전 도 클리어했고.
블랙마켓에 가서 VVIP가 되었다.
심지어 베히모스의 피라는 희귀
한 재료까지 얻어 마력을 대폭 늘 릴 수 있었다.
'이 모든 게 며칠 사이에 벌어졌 지...
그러나 빠르게 강해졌다고 지금 상황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
'탑의 끝까지 오르지 못하면 지 구가 멸망한다고도 했었어.'
이건 직감에 가까운 추측인데 아 마 마신의 침공을 결국 자신이 막 아야만 할 것 같았다.
지구를 지켜야만 한다는 사명 같은 건 아니고, 진짜로 그렇게 될 것만 같았다.
'그런데 객관적으로 판단해서 지금 내 성장 속도면 마냥 불가능해 보이지는 않아.'
쉴 틈이 없었다.
유준은 레벨을 올릴 사냥터를 찾 기로 했다.
'희연이가 던전을 또 찾았으려나?'
아무리 그래도 하루 사이에 던전을 찾는 건 말이 안 된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메신저 창을 열었다.
"응?"
김희연이 아닌 홍예지에게서 메 시지가 하나 도착해 있었다.
꽤 장문의 메시지였다.
[홍예지 : 유준 씨. 저 기억하시죠? 종족 대항전에서 만난 아주 머 리를 붉은색으로 염색한 이쁘게 생 긴 여자...라고 하면 아실 거라 믿어요. 일단 이렇게 불쑥 메시지를 보내서 죄송하다는 말씀부터 드릴게요. 아, 이건 또 너무 나갔나? 하여튼 용건부터 말해도 될까요?]
결국, 용건은 그 메시지에 적혀
있지 않았다.
다음 메시지도 있었다.
첫 메시지로부터 2분밖에 지나지 않은 메시지였다.
[홍예지 : 제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게 사실 유준 씨는지금 유명 인사잖아요. 메신저를 교환한 플레이어가 엄청 많을 텐데... 제 가 괜히 귀찮게 하는 건 아닌가 싶 기도 하고. 솔직히 말해서 괜히 유준 씨한테 뭔갈 얻으려는 속셈 같 아서 이런 메시지를 보내기까지 고 민이 많이 되었거든요. 괜히 폐만....]
유준은 화가 나서 메신저 창을 닫아 버렸다.
"적당히 해야지."
정도가 있다.
아무리 말이 많은 사람이라고 하 더라도 저렇게 잡담을 길게 써 놓을 수 있는 건가.
홍예지는 종족 대항전에서 나태 진영 지휘관을 협박해서 상황을 지 혜롭게 해결했던 전적이 있다.
그래서 좋게 보고 있었는데.
'역시 사람은 두고 봐야 한다니까.'
유준이 혀를 찼다.
그렇다고 마냥 모른 척하기에는 뒤 내용이 궁금하긴 했다.
안 볼 수는 없겠지.
"에이.…"
유준은 다시 메신저를 켰다.
반투명한 창은 홍예지의 메시지 로 가득 차 있었다.
그 뒤로도 몇 번의 잡담이 있어 가뿐히 넘기고 용건으로 보이는 메 시지를 띄웠다.
[홍예지 : 그래서 말인데요. 100 레벨 거주 구역이 있는 대륙의 시 타헬 왕국으로 와 주실 수 있나요?]
유준은 자신이 중요한 내용을 생 략했나 싶어서 앞 내용을 살펴봤다.
그러나 방금 메시지와 연관되는 내용은 딱히 없었다.
'그래서 왜 와 달라는 건데?'
유준은 속이 터질 것 같았다.
홍예지의 이상한 화법에 말려드
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
홍예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 신유준 : 시타헬 왕국은 왜요? 거기 드워프들 왕국 아닙니까?]
그러자, 곧바로 답장이 왔다.
[홍예지 : 제 메시지를 보셨군요! 제 용건만 말해서 너무 실례가 되 지 않을까 했는데 답장까지 해 주 시고... 정말 고마워요.]
[*신유준 : 아뇨. 제발 용건만
말해 주세요. 사족 좀 그만 붙이고. 속 터져 죽겠습니다.]
유준이 메시지를 보내고 1분간 답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홍예지 : 아, 정말 죄송해요.습 관이 무섭네요. 하여튼 시타혤 왕 국에는 왜 와 달라냐고 물으셨죠? 시타헬 왕국에 역병이 터졌다고 해요. 그 역병의 확산 속도나, 역병에 걸렸을 때 사망률이 엄청엄청 높대요. 게다가 역병에 걸리면 사람들
이 좀비? 언데드처럼 변해서 더 큰 일이라고 하네요.]
[*신유준 : 그래서요? 거기에 왜 제가 가야 하는 겁니까?]
[홍예지 : ...화나셨어요?]
이야기가 또 딴 길로 새려 한다.
유준은 어이가 없어 실소를 터뜨렸다.
[*신유준 : 질문에 대답만 해 주세요.]
[홍예지 : 역병에 전염되면 별
볼 일 없는 능력을 지니고 있던 플레이어들도 강한 언데드 몬스터가 되거든요. 그렇게 언데드가 된 이 들 중에 레벨이 무척 높은 놈이 있 대요. 유준 씨가 그 녀석을 잡는데 도움을 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이렇게 연락을 드리게 된 거 예요.]
[*신유준 : 결론은 몬스터 사냥을 해 달라는 거죠? 같이?]
[흥예지 : 맞아요!]
진즉 그렇게 말하면 될 것을.
유준이 한숨을 내쉬었다.
강력한 언데드 몬스터가 있다고 하니 혹하기는 한다.
언데드나 마족은 상당한 경험치를 주니까.
그러나 역병이라는 것 때문에 살 짝 망설여졌다.
'그 역병에 나도 전염될 수 있는 거잖아.'
거기다 수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아무 이유없이 역병이 돌았을 리 없고, 그 역병에 전염되면 좀비 같이 변한다는 것도 좀...
누군가가 흉계를 꾸미고 있는 걸까.
이번 일에 관련되면 상당히 골치 아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신유준 : 그냥 몬스터 사냥하 러 거기까지 가는 건 저한테 큰 메 리트가 없네요. 심지어 역병까지 돌고 있다니까 더 꺼려지고요.]
[홍예지 : 당연히 그러겠죠! 그런데 제가 왜 시타헬 왕국에 가려 고 하겠어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죠!]
[*신유준 : 뭔데요?]
[홍예지 : 시타헬 왕국은 아까 유준 씨가 말씀했던 대로 드워프들 의 왕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왕족과 귀족들 모두드워프로 구성되어 있죠. 그런 만큼 왕국 창 고나 보고에 얼마나 귀한 아이템들이 있겠어요?]
[*신유준 : 설마 왕국을 털자는 겁니까?]
[홍예지 : 네! 지금 시타헬 왕국은 거의 반은 붕괴되어 가고 있거 든요. 역병 하나 때문에요. 아직 어 떻게든 버티고는 있는데 마땅한 해 결법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 예요. 쉽게 말해서 곧 망할 거란
얘기죠.]
[*신유준 : 위험부담이 너무 큰 거 아닙니까? 드워프들과 척을 지는 건 대부분 이종족들과 척을 지는 것과도 같은데.]
[홍예지 : 유준 씨. 제가 얼마나 사리 분별 잘하는지 아시죠?]
[*신유준 : 모르는데요.]
[홍예지 : 아이, 이럴 때는 그냥 알고 있다고 말해 주시면 돼요. 어 쨌든 저도 많이 알아보고 계획한 일이거든요. 여기에 유준 씨가 낀 다면 절대 실패하지 않는다고 자부 할 수 있어요.]
[*신유준 : 시타헬 왕국의 창고 라고 해 봤자, 기껏 영웅 등급, 전 설 등급 장비들 있는 거 아닙니까?]
[홍예지 :네? 네에? 기껏이라니요? 전설 등급 아이템이 얼마나 비 싼지 알고 계시는 거예요? 블랙마 켓 한번 가 보세요. 전설 등급 아이템이 얼마 정도에 거래되는지 보 시면 깜짝 놀라실걸요?]
안 그래도 어제 갔다 왔다.
그걸 홍예지는 모르겠지만.
[*신유준 : 그게 다라면 저는 안 갈 겁니다.]
[홍예지 : 들어 보니까 무슨 보 석? 능력치 올려 주는 비약 같은 것도 있다고 하던데요.]
그녀의 말에 유준이 멈칫했다.
이어지는 행동은 빨랐다.
[*신유준 : 언제 출발할 예정이죠?]
[홍예지 : 전 지금 준비 다 됐어
요. 유준 씨만 준비하시면 돼요.]
[*신유준 : 우리 둘만 가는 겁니까?]
[홍예지 : 사실은 한 명 더 있어요. 그 사람은 직접 만나면 소개해 드릴게요.]
[*신유준 : 알겠습니다.]
유준은 그 뒤에 홍예지에게 만날 장소를 전해 들었다.
그도 딱히 준비할 게 없어서 바로 나가면 되었다.
' 역병이라...
홍예지에게 무슨 대책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자신은 역병에 전 염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아이템의 힘으로.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3권 4화
52화
이번 일에는 파라네트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생각이었다.
같은 언데드 몬스터를 사냥할 때 더 큰 힘을 발휘하지 않을까 싶어 서.
그리고 애초에 좀비 같은 몬스터들을 목표로는 놈들이 살아 움직일 때도 파라네트의 시체 폭발 스킬을 사용할 수 있었다.
파라네트가 활약하기에는 최상의
무대라는 뜻이다.
'홍예지는 어디 있지?'
약속했던 거주 구역 밖 석상 근 처 벤치에 도착했는데, 홍예지가 보이지 않았다.
유준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그때였다.
검은 망토를 푹 눌러쓴 두 명이 그에게로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유준 씨! 저예요! 우리 정말 오 랜만이죠?"
그중 한 명은 홍예지였다.
"예. 며칠 안 되긴 했는데 오랜
만에 보는 거 같기는 하네요. 그런 데 옆 분은?"
"소개할게요. 2년 전에 던전 같이 공략하다가 알게 된 친구예요."
"아, 안녕하세요! 신지원이라고 해요."
"반가워요. 신유준입니다."
그때 홍예지가 놀란 걸 발견한 듯 눈을 휘둥그레 떴다.
"우와, 둘이 성이 같네! 어떻게 이런 우연이!"
"...신 씨가 드문 것도 아니고 왜 호들갑이야."
신지원은 그런 홍예지가 창피한 듯 얼굴을 붉혔다.
"유준 씨. 지원이 왜 데려가는지 궁금하시죠?"
"예."
"지원이한테 정화 스킬이 있어요. 무려 등급이에요. 거기에 화염 마법 스킬도 있어서 거의 만능이죠."
"아, 역병인지 저주인지를 막을 방법이 그 정화 스킬이군요."
"맞아요. 지원이 없었으면 거기 갈 생각도 못 했을 거예요. 저도 언데드가 되긴 싫거든요."
"음. 계획이 정확히 어떻게 됩니까?"
"...일단 직접 가서 어떻게 돌 아가고 있는지 두 눈으로 봐야겠죠?"
"알겠습니다."
"역병이 두렵지는 않으세요?"
"예."
유준은 말 나온 김에 인벤토리에 서 아이템 세 개를 꺼냈다.
[퍼펙트 인젝션]
등급 : 無
옵션 : 저주와 질병으로부터 몸을 48시간 동안 보호합니다. 단, 최 상급 저주의 경우엔 효력이 없습니
퍼펙트 인젝션.
작은 주사기의 형태를 한 이 아이템은 캐릭터가 온갖 병이나 저주에 걸리지 않도록 하는 효과를 지 니고 있었다.
신들의 전쟁은 이렇듯, 리얼리티 가 상당한 게임이었기에 병에 걸리 지 않도록 계속 캐릭터를 관리해 줘야 했다.
그 덕분에 퍼펙트 인젝션의 재고는 많은 편이었다.
"그건 뭐예요?"
홍예지가 물었다.
"직접 봐서 확인해요."
유준이 인젝션을 둘에게 나눠 주었다.
먼저 신지원이 놀랐다.
"우, 우와.... 이런 아이템이 있 어요?"
"저도 처음 봐요."
신지원이 사용하는 등급 정화 스킬은 이미 병에 걸렸을 때 후속
조치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유준이 꺼낸 인젝션은 애초에 그 역병을 예방할 수 있었다.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안전적 인 부분을 생각하면 그의 인젝션이 정화 스킬보다 더 효율적인 것이다.
"상당한데요? 이거 돈 받고 팔.... 흐흠."
홍예지의 눈빛이 묘했다.
"팔지 말고 시타헬 왕국 들어가 기 직전에 쓰세요. 돈이 목숨보다 소중하지는 않잖아요?"
"그, 그렇기야 하죠."
괜스레 찔린 듯 홍예지가 시선을 딴 데로 돌렸다.
"근데 정화 스킬이 있..."
"쓰세요."
"네."
무안해진 홍예지가 머리를 긁적였다.
"저희를 위해서 주신 아이템을 팔 생각을 하다니... 제가 너무 양아치 같았죠?"
"예."
단호한 말투와 표정.
홍예지가 울상을 지었다.
유준은 아랑곳하지 않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시타헬 왕국은 어떻게 갈 겁니까?"
"일단 시타헬 근처 왕국으로 포 털을 타고 간 다음에 말을 구하려 고요."
"바로 갑시다."
홍예지의 제안은 확실히 나쁘지 않았다.
시타헬은 부유한 왕국이다.
그런 만큼 왕국의 창고에도 장비 아이템을 제외한 희귀 아이템들이
있으리라.
'뭐, 내가 법 지키며 살 필요도 없는 사람이고.'
무한의 탑에 딱히 법이랄 것도 없다.
그가 한 왕국에 정착한 것도 아니지 않은가.
다만, 한 왕국이 지명수배를 내 리면 도망쳐 다녀야 하는 신세가 될 수도 있었다.
'들키지만 않으면 되겠지.'
시타헬 왕국은 최대한 자국의 병 력을 동원해서 역병에 걸린 이들을 막아내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제일 최근에 들리는 소식으로는, 이웃 나라에서 시타헬 왕 국을 위해 플레이어들을 지원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상황이 호전되지는 않겠지.'
신지원의 고등급 정화 스킬.
혹은 유준이 가진 인젝션 종류의 아이템이 없으면 역병에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낮은 등급의 정화 스킬은 아예 소용이 없다고 한다.
유준 일행은 거주 구역으로 돌아 가 마탑에 있는 포털을 이용했다.
포털을 한 번 이용하는데 드는 금액은 50만 포인트.
상당히 비싼 가격이다.
대신에 4명까지 동시에 이용할 수 있기에 파티원 두 명과 분배해서 돈을 냈다.
유준 일행이 코루나 왕국에 도착 했다.
포털 마법진에서 내리자마자, 근 처가 소란스러웠다.
완전무장한 플레이어들이 한곳에
집결해 있었기 때문이다.
"지원 병력인가 봐요."
홍예지의 말에 유준이 고개를 끄 덕였다.
딱 그래 보였다.
"근데 지원하는 플레이어들 숫자 가 그리 많지는 않네요? 바로 옆 나라에서 역병이 도진 거치고는요."
"그러게요. 이곳도 안전하다고 할 수는 없는 거 같은데."
유준이 눈을 가늘게 뜨고 주위를 바라봤다.
어쩐지 불길한 느낌이 드는 왕국
이었다.
"유준 씨는 왜 그런 표정이에요?"
"느낌이 좋지 않아서요."
"네? 왜요?"
"왕국 이름부터가 좀 그래요."
"으웅? 코루나 왕국이 왜요? 귀 엽기만 한데."
"그냥 감입니다."
신지원도 고개를 갸웃했다.
"유준 씨. 장난치지 마요. 괜히
저까지 불안해지잖아요."
"여기서 이러고 있지 말고 빨리 가 보죠. 한시가 급할 수도 있으니."
"그래요."
"아, 그 전에...
유준이 몸을 우뚝 멈췄다.
인벤토리에서 검은 로브 하나를 꺼냈다.
자신의 정체를 숨겨 줄 망토였다.
"우리 달려갑시다."
유준이 말했다.
홍예지가 말을 사자고 했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플레이어가 된 그들은 옆 왕국까지 직접 뛰어가는게 오히려 더 빠 르고 효율적이었다.
그러한 걸 일행에게 설명했다.
홍예지가 고개를 저었다.
"지원이는 육체 능력치가 좀 낮 아요. 말을 타는 거보다 훨씬 느릴 거예요."
"업으면 되죠."
"누가요? 유준 씨가요?"
"아니요. 제 소환수가요."
유준이 파라네트를 소환했다.
엄청난 거구의 파라네트가 갑자 기 모습을 드러내자, 신지원이 화들짝 놀랐다.
"어, 언데드? 데스 나이트인가요?"
"데스 나이트는 아닙니다."
"유준 씨 소환수예요?"
"예."
"...소환수 자체가 드물다고 들었는데 심지어 언데드라니...
"쟤한테 업히세요."
"...무서워요."
신지원이 파라네트를 겁냈다.
"어이, 인간. 빨리 타라. 주인님 이 명령하시지 않았나."
"네.네...
겁에 질린 신지원이 파라네트의 등에 업혔다.
"해결되긴 했네요...
유준이 먼저 땅을 박차고 뛰어나 갔다.
시타헬 왕국의 위치는지도로 봐 놓아서 알고 있다.
애초에 신들의 전쟁 플레이 경험으로 거주 구역 대륙의 지리는 빠
삭하기도 하고.
유준 일행이 시타헬 왕국을 향해 출발한 지 1시간 가까이 지났다.
파라네트의 등에 업힌 신지원은 편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홍예지가 그걸 부럽다는 듯 쳐다 봤다.
"좀 편해?"
"으, 응. 예상외로 안락한데. 나 도 모르게 잠들 거 같아."
분명 빠르게 달리고 있음에도 파라네트의 등에 업힌 신지원의 몸은 흔들리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부럽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 홍예지가 고개를 휙 돌렸다.
"유준 씨."
"안 됩니다."
"...뭔 줄 알고요."
"안 돼요."
"네."
유준은 달리면서 꽤 놀라고 있었다.
자신이 속도를 맞춰 주고 있긴 하지만, 홍예지가 빠른 속도로 달 리면서도 전혀 지친 기색을 내보이
지 않았기 때문이다.
'육체 능력치가 골고루 다 높은 가 본데.'
홍예지의 레벨은 종족 대항전에 참가했으니 막 높지는 않을 것이다.
'칭호가 많나?'
홍예지의 정체도 궁금하긴 했다.
그녀에 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으니.
'뭔가를 숨기고 있는 거 같기도 하고...
3시간을 더 달리자, 시타헬 왕국 이 보이기 시작했다.
"인젝션 사용해요."
"네!"
"으음..."
"거기 일어나시고."
"네? 아! 네!"
인젝션을 투여했으니 모든 준비 가 끝났다.
"그런데 정화 스킬을 사용하면 이미 변질된 플레이어를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습니까?"
"모르겠어요. 시도해 보질 않아서..... 이따 지원이가 정화 스킬 사용하면 알게 되겠죠."
"등급이니까 기대해 볼 만하겠 군요."
"그쵸."
모든 준비가 끝났다.
시타헬 왕국의 높은 성벽.
기묘하면서도 불쾌한 냄새가 풍 겨 왔다.
"이거 무슨 냄새일까요?"
"시체 냄새죠. 정확히는 좀비들 냄새... 같긴 하네요."
성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그러나 들어갈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유준은 성벽을 달려 위로 올랐다.
그는 순식간에 성벽 위까지 도달 했다.
홍예지와 신지원이 입을 떡 벌렸다.
"사람이 저렇게 빠를 수가 있나?"
"...그러게. 저분 진짜 대단하다."
홍예지도 유준을 따라서 성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유준보다 느리긴 해도 그녀 또한 성벽 위로 올라갈 수 있었다.
이제 남은 건 파라네트와 신지원 인데.
이번에도 신지원은 파라네트에게 업혀서 문제를 해결했다.
성벽 아래를 내려다본 유준의 얼 굴이 굳었다.
시타헬 왕국에 펼쳐진 광경 때문 이었다.
"생각보다 더 심각한데."
수천은 될 법한 시체가 곳곳에
깔려 있었다.
걸음걸이가 어색한 이들이 곳곳을 돌아다녔다.
덩치들이 장난 아니게 컸다.
드워프라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 로 기괴한 생김새였다.
팔과 다리는 짧고 뭉툭한데 덩치 만 커진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화재도 심각했다.
온갖 건물에서 연기가 피어오르 고 있었다.
"벌써 망한 느낌인데요?"
"다 도망친 건가? 왜 살아있는 플레이어들이 한 명도 안 보일까요?"
"음."
유준이 알 리가 없다.
직접 저기에 뛰어들어서 보지 않는 이상.
그들이 성벽 위에서 주변을 둘러 보는 그때였다.
타다닷.
밑에서 돌아다니던 드워프 좀비 하나가 유준 일행을 발견하고는 빠 른 속도로 접근해 왔다.
유준이 했던 것처럼 성벽 위를
달려서 말이다.
능력치가 상당히 높지 않으면 불 가능한 일이었다.
드워프 좀비는 성벽 위에 도착하는 즉시, 유준이 휘두른 검에 의해 목이 절단되었다.
"크륵.…"
몸만 남은 드워프 좀비는 몇 번 더 꿈틀거리다가 움직임이 멎었다.
아무리 역병의 힘이라 해도 목이 잘리면 다시 살아나지는 않는 것 같다.
"으으. 너무 끔찍하게 생겼네요."
드워프 좀비를 본 신지원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징그럽긴 하군요. 확실흐]. 몸도 비대하고."
"신체 능력도 장난 아니던데요."
유준의 공격에 한 번에 죽은 것 이 이상할 정도였다.
"얘네 여럿이 달려들면 위험할 거 같습니다."
"...네? 그 정도예요? 방금은 쉽 게 죽이셨잖아요."
"저 말고 두 분이요."
"아…."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3권 5화
53화
"무턱대고 내려가면 안 되겠네요. 어디로 갈지 정하고 가야겠습니다."
유준이 말했다.
시타헬 왕국 도처에 드워프 좀비들이 돌아다니고 있었고 왕궁으로 보이는 곳 근처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렇게나 움직였다간 놈들에게 포위되기 십상팔구였다.
"왕국 안으로 들어가 보죠. 애초
에 우리 목적이 그거니까."
"네. 좋은 생각이네요."
성벽을 따라 걸었다.
최대한 드워프 좀비의 눈에 띄지 않게.
그러나 몇몇 감이 좋은 놈들은 유준 일행을 발견하고 달려들었다.
그때마다 유준이 나서서 드워프 좀비를 처리했다.
"어떻게 저리 쉽게 죽이지?"
"...내가 지금까지 본 사람 중에 제일 강한 거 같아."
그들이 놀라는 것도 당연했다.
무척 강해 보이는 드워프 좀비들이유준에게 뭣도 못 해 보고 목숨을 잃었다.
그를 지켜보고 있자면, 그 혼자 만 다른 세상에 사는 것 같았다.
'역시 내 눈이 잘못되지 않았어.'
홍예지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뭐, 자신만 알아본 것은 아닐 것이다.
그는 종족 대항전 영상으로 어마 어마하게 유명해졌으니까.
솔직히 말해서 자신의 제안을 그 가 수락해 줄 것이라고는 생각 못
했다.
'유준 씨도 나처럼 숨기고 있는 목적이 있는 걸까?'
그건 알 수 없지만, 그냥 아이템 만을 노리고 온 것 같지는 않았다.
성벽을 따라 걸어 왕궁이 있는 근처 성벽에 도착했다.
왕궁을 지키는 마법진이나 결계 같은 건 없었다.
차장!
유준은 곧바로 높은 곳에 있는 창문을 깨부수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일행 두 명과 파라네트도 그를 뒤따라 들어왔다.
왕궁 안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드워프 좀비들이 내는 그 소리마 저 들려오지 않을 정도로.
"그 흔한 시녀들도 안...
" 쉿!"
유준이 입가에 검지를 가져다 댔다.
그의 예민한 감각에 잡히는 기척 이 여럿 있었다.
"조용히 따라와요."
신지원과 홍예지가 아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급 재질의 카펫이 깔린 넓은 복도.
유준은 오른쪽 길로 이동했다.
드워프 좀비나 시체는 보이지 않
았지만,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피 냄새가 풍겨 왔다.
일단 그들은 기척이 느껴지는 곳으로 계속 이동했다.
그러다 어느 문 앞에서 딱 멈췄다.
"여기예요?"
"조용히 해요."
유준의 표정은 진지했다.
홍예지가 입을 삐죽 내밀었다.
손잡이를 조심스럽게 잡아당겼다.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유준과 일행은 그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사, 살려 주세요!"
"잘못했어요!"
방 안에는 어린 드워프들이 부들 부들 떨고 있었다.
수는 셋.
나이가 어려도 플레이어다.
긴장을 늦추지는 않았다.
다만, 드워프들이 이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살짝 안심했다.
"좀비는 아니군. 역병에 전염되 지는 않은 건가?"
"네! 저희 멀쩡해요! 해치지 말아 주세요!"
셋 중에 가장 맏이로 보이는 드 워프가 애걸복걸했다.
"왜 이런 곳에 있지?"
"밖에 괴물들이 돌아다녀서요. 그 나마 안전한 곳이 이곳이라고 생각 했어요."
"너희 부모님은 따로 없나? 보호 자나 그런 이들."
"...다 도망치거나 괴물로 변했
을 거예요."
"너흰 형제야?"
"네. 제가 큰형이고 여긴 제 동 생들이에요."
"여기에 계속 숨어 있을 생각이었어?"
"네.... 밖은 무서워요."
유준이 뒤로 돌아섰다.
" 어쩌죠?"
"어린아이들인 거 같은데 도와줘 야죠."
신지원이 처음으로 자기 입장을 내세웠다.
반면, 홍예지는 그 의견에 반대 했다.
"쟤들한테 이미 병이 옮았을 줄 어떻게 알고? 여기 시타헬 왕국의 역병에 대해서 우리가 제대로 알고 있는 것도 아니잖아. 갑자기 괴물 로 변해서 우릴 덮치면?"
"...그, 그건 유준 씨가...
"머리 뒤에 눈이 달린 것도 아니 고 바로 앞에서 하는 기습에 어떻 게 대응해. 유준 씨. 저는 그냥 저 드워프들을 이대로 내버려 두고 가는게 맞는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두 명의 의견이 갈렸다.
확실히 홍예지의 말이 맞았다.
바이러스 같은 것이 저 드워프들 의 몸에 잠재되어 있을 수도 있다.
괜히 어쭙잖게 도와주다간 자신들이 위기에 처할 수 있었다.
"둘의 의견이 다르니 제가 결정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요."
고개를 끄덕인 홍예지와 다르게 신지원은 약간 불만이 있는 표정이었다.
'연기는 아닌 거 같은데.'
이런 상황에서 드워프들을 도와 주고자 하다니.
천성적으로 착한 사람인 듯했다.
유준은 다시 드워프들에게로 몸을 돌렸다.
"너희들 정체가 뭐야? 왜 왕궁에 있었지?"
"...저, 그건...
첫째 드워프가 말하기를 망설였다.
그런데 그때, 셋째 드워프가 입을 열었다.
"저희 왕자예요! 그러니 구해 주세요! 사례는 할게요!"
"자, 잠깐. 요헨! 어머니가 함부 로 정체를 밝히지 말라고...
"형! 어머니가 사라진 마당에 그 게 뭐가 중요해! 일단 살기부터 해야지!"
"너희가 왕자라고?"
"네."
"맞아요."
"으음."
원래는 그냥 두고 가려고 했는데.
왕자라고 하니까 고민이 된다.
"혹시 너희들 왕궁 창고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어?"
"그건 왜요?"
"거기에 엄청 강한 괴물이 있다 고해서. 우린 그 괴물을 사냥하러 왔거든."
"아! 저 알아요! 자주 그 앞까지 놀러 갔거든요! 시녀장 아주머니가 못 들어가게 했지만...
"어딘지 알려 줄 수 있겠어?"
"물론이죠!"
과연 속을까 했는데, 어린아이들
답게 순진했다.
그때, 첫째 드워프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잠깐만요. 요헨이 가는 건 너무 위험해요."
"왜지?"
"거기 위험한 괴물이 있다면서요. 요헨을 데려가지 마세요. 차라 리 제가 안내할게요."
"좋아. 누구든 상관없어."
"요룬 형. 그러지마. 우리 그냥 같이 가자. 형이 가고 둘만 남는게 더 무서워."
"그냥 셋 다 따라올래? 어차피 그 괴물은 내가 처리할 거니까 크 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저, 정말요? 인간 아저씨 강해요?"
"그래. 드래곤이 와도 문제없을 정도다."
"드, 드래곤이 와도요?! 우와!"
아이들 앞이라 허세 좀 부렸다.
실제로 얼마 전 고룡도 잡아 봤으니 마냥 허세는 아니었다.
뒤에서 어이없다는 듯 신지원과 홍예지가 따가운 시선을 보내왔다.
" 뭐요."
유준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홍예지가 슬쩍 다가와 속삭였다.
"거짓말도 정도가 있죠. 드래곤을 잡는다니.... 드워프들이 순진해서 다행이지."
"잡을 수 있는데요?"
"네?! 진짜요?"
"아니요. 예지 씨도 참 순진하시 네요."
홍예지가 유준을 황당하다는 듯 바라봤다.
그가 잡을 수 있다고 하면 진짜 그럴 것 같아서 순간적으로 믿어 버린 것이다.
"먼저 앞장서면 될까요?"
첫째 드워프의 말에 유준이 고개를 저었다.
"너넨 위치만 알려 줘. 어디서 드워... 아니, 괴물들이 나타날지 모르니까."
"네!"
"아, 그리고 지원 씨는 얘들한테 정화 스킬 좀 써 주세요."
"네! 알겠어요!"
만약을 대비해서 정화 스킬까지 사용한 후에 걸음을 옮겼다.
왕궁 창고는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복도를 쭉 걸어 한 층 올라가니 거대한 철문 하나가 보였다.
마법적인 처리까지 되어 있고 보 통 방법으로는 못 열 거 같았다.
"근처에 방 없나?"
"그건 왜요?"
"너희들 숨어 있을 곳이 있어야지. 같이 들어갈 수는 없어. 위험하니까."
"아, 여기 문 네 개 있는 곳이 다 쉴 수 있는 방이에요. 괴물이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어요...
"그래. 잠깐 기다려라."
유준은 제일 가까운 문을 잡아서 열었다.
"크랴아악!"
그 즉시, 비대한 몸의 드워프 좀 비가 뛰쳐 나와 유준의 목숨을 노렸다.
그러나,
푹!
어느새 뻗어진 유준의 검이 드워
프 좀비의 머리를 꿰뚫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역시 있었네."
방 앞에서 희미한 기척이 하나 느껴졌었다.
드워프 좀비는 영리하게 그들이 문을 열 때까지 = 죽이며 기다 린 것이다.
'아까 드워프 좀비들은 무턱대고 달려들기만 했는데.... 좀비들이 점점 진화하는 건가?'
아닐 수도 있지만, 이 가정이 사 실이라면 상황은 더 심각했다.
유준은 방을 쭉 둘러보고는 입을 열었다.
"여기 들어와서 쉬고 있을래? 우 리 금방 괴물 해치우고 돌아올게."
"아, 알았어요!"
"믿고 기다릴게요!"
드워프들이 눈을 빛내며 유준을 바라보면서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그들은 유준의 놀라운 무위에 반 했다.
그가 아이들을 달래고 방 밖으로
나오자, 홍예지가 말을 걸었다.
"거짓말이 능숙하시네요. 아이들을 상대로."
"말에 뼈가 있네요."
"그래요? 그런 의도로 한 말은 아닌데."
유준은 거대한 철문으로 다가갔다.
"어떻게 여시려고요?"
"부숴야죠."
"부숴요? 그럼 소란을 듣고 드워 프 좀비들이 몰려오지 않을까요?"
"기다려 봐요."
소음을 줄이기 위해 아이템을 써 도 되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
유준이 눈을 감았다.
SS등급의 검술 특성.
심지어 이 검술은 특성 보석(상) 이 부착되어 있다.
한마디로 그의 검 실력은 EX등 급 검술에 필적한다는 뜻이었다.
유준은 자세를 잡고 철문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마력이 실린 검이 철문을 갈랐다.
그렇게 세 번.
철문이 소리없이 잘렸다.
그로 인해 직사각형 모양의 공간 이 생겼다.
"진짜 검 하나로 못 하는게 없 네요."
"플레이어가 다 그렇죠, 뭐."
"어떤 플레이어가 저게 가능하죠? 너무 궁금한데요?"
"일단 저는 됩니다."
"너무 대놓고 잘난 척인데 뭐라 할 수가 없네...
유준은 곧바로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일단 그의 감각에 잡히는 기척은 따로 없었다.
'뭐가 많긴 하네.'
드워프의 왕국의 창고답게 질 좋은 아이템이 많았다.
'희귀, 영웅 등급의 장비가 무더 기로 있어.'
심지어 유일 등급의 아이템도 보였다.
유일 등급은 영웅과 전설 사이에 있는 등급인데, 전설만큼이나 드물 게 발견되는 아이템 등급이었다.
창고 안으로 들어온 홍예지와 신 지원이 입을 떡 벌렸다.
"우와... 아이템 진짜 많네요."
"이거 우리가 다 가져가도 되는 거예요?"
"기껏해야 30~40개 정도입니다. 찾아봤는데 전설 등급은 없네요."
"그래도 이게 어디예요. 이것들 블랙마켓에 다 팔면 몇천만은 벌겠는데요?"
홍예지의 눈이 탐욕으로 물들었다.
어떤 플레이어든 저 아이템을 보
고 욕심이 안 날 수는 없다.
'난 별로 갖고 싶지는 않은데
이미 다 가지고 있는 아이템인 데다가 등급도 그리 높지가 않았다.
"유준 씨 먼저 골라요. 정확히 열세 개 고르면 돼요."
그들은 여기 오기 전에 미리 아이템을 삼 등분해서 가지기로 했었다.
대신, 무력이 가장 강하고 활약 이 뛰어난 유준이 먼저 고르는게 약속이었다.
대충 좋아 보이는 아이템들을 인
벤토리에 넣었다.
그가 전부 고르자, 홍예지와 신 지원이 희희낙락하며 아이템을 주 워 담기 시작했다.
반면 유준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여기가 끝일까 과연? 그래도 드 워프들 왕궁 창고인데.'
그게 아니면 이미 좋은 아이템들을 갖고 도망간 걸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럴 경황이 있었을까.
지금 왕국의 상황을 보면 급작스 럽게 상황이 변한 거 같은데.
부리나케 도망치느라 정신이 없 지 않았을까.
'이런 곳은 숨겨진 장소가 있는게 국룰... 아니 정석이지.'
유준은 희망을 버리지 않고 창고 안을 유심히 살피기 시작했다.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3권 6화
54화
홍예지의 얼굴에선 웃음꽃이 떠 나질 않았다.
'역시 오길 잘했어!'
그녀는 방을 돌아다니고 있는 유준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저 남자... 도대체 정체가 뭘까.'
레벨에 걸맞지 않은 강함.
어떤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는다.
그렇다고 사람이 마냥 딱딱하지 도 않고 부드러운 면도 지니고 있었다.
또한, 그는 적당히 이기적이며 상황에 맞춰 움직이는 경향이 있었다.
살벌한 무한의 탑에서 생존하기에 알맞은 성격이었다.
'나처럼 분명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겠지? 그게 아니면 말이 안 돼.'
종족 대항전에서 봤을 때랑은 비 교가 안 될 정도로 강해진 듯했다.
완전히 같은 편이 됐다고 보기 어려움에도 그와 같이 있으면 마음
이 안정되고 든든했다.
'설마 회귀자 그런 건 아니겠지?'
그녀는 이곳으로 소환되기 전에 장르를 불문하고 웹 소설을 즐겨 봤었다.
웹 소설에서 일어나는 상황이 그 녀 자신에게 그대로 일어났을 때, 덕분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다.
신들의 전쟁을 플레이했던 경험 도 있고.
그래서 엉뚱한 추측을 하게 되었다.
'회귀자일 수도 있어.'
무한의 탑에서 뭔 일이든 못 일 어나겠는가.
회귀자든, 귀환자든 뭐가 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게임이 현실이 된 지금이 더 말 이 안 되는 상황이었으니까.
'하여튼. 절대로 적으로 두면 안 되는 사람이야.'
홍예지는 그 사실을 명심하고, 또 명심했다.
* * *
유준이 방긋 미소 지었다.
역시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작동 가능한 기관 하나를 찾아냈다.
정확히는, 기관이라기보다는 마법 처리가 되어 있는 벽이었다.
"유준 씨. 거기서 뭐 해요?"
"그냥 벽을 좀 살펴보고 있었어요. 역병이랑 관련된 정보가 있나 하고."
"유준 씨,은근히 엉뚱하시네요. 이런 곳에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잖아요."
"제가 잘못 생각했네요. 역시."
유준은 마법 기관의 정체를 일행에게 알리지 않았다.
'이 안에 있는 건 내가 독차지해야지.'
물론, 저 안에 아이템이 있다는 보장은 없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숨겼다.
"그럼 나가 볼까요?"
"먼저 드워프 아이들한테 가 봐요."
유준의 말에 홍예지가 고개를 갸
우뚱했다.
"네? 같이 안 가시고요?"
"여길 무너뜨리게요. 괜히 누가 훔쳤다는 걸 아는 건 좀 그러니까. 증거 인멸해야죠. 먼저 가세요."
"치밀하네요. 역시."
홍예지가 엄지를 척 들었다.
유준은 거짓말한 게 살짝 찔려서 머리를 긁적였다.
"빨리 가요."
"네. 지원아. 가자."
"으응."
둘이 나가는 것을 본 유준은 곧 바로 벽에 손을 댔다.
그의 팔을 타고 흘러나온 마력이 벽에 스며들었다.
스스슷. 스스스.
그끙-. 그그긍.
벽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은 그 속도가 느렸지만, 점 차 빨라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드워 프들이나 통과할 수 있을 것 같은 통로 하나가 나타났다.
'하긴, 이런 숨겨진 공간도 당연
히 드워프 전용이겠지.'
아예 들어갈 수 없는 건 아니었다.
유준은 포복 자세를 하고 통로로 기어들어 갔다.
그래도 드워프들이 옆으로는 부 피가 있는 탓인지 기어서 가니 그 리 좁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높은 능력치를 지닌 유준은 기어 가는 속도도 빨랐다.
'이러고 있으니 벌레가 된 느낌 인데.'
순식간에 통로의 끝에 도달했다.
통로에서 빠져나온 유준이 주위를 둘러봤다.
'별것 없는데?'
짙은 회색의 벽.
축축한 바닥.
공간이 그리 넓지도 않았다.
실망감이 들려는 그때, 유준의 눈에 무언가가 보였다.
'저거...
구석에 자루 하나가 보였다.
낡은 자루에는 루비,에메랄드, 사파이어를 연상시키는 보석들이 담겨 있었다.
'보석이잖아!'
유준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보석이 이렇게나 많다고?
그 귀한 보석이?
유준은 놀란 마음을 애써 진정시 키며 보석들의 정보를 확인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보석들은 아이템이 아니었다.
그냥 잘 세공된 광석 혹은 보석이다.
유준의 얼굴이 일그러지려는 찰나, 아이템 정보가 뜨는 보석이 하 나 있었다.
[스킬 보석(중)]
등급 : 無
옵션 : 특성에 장착할 수 있습니다. 장착한 특성의 위력이 증가합니다.
스킬 보석!
이걸 여기서 발견할 줄이야.
뜻밖의 발견에 유준의 입가가 올라갔다.
'그것도 중등급이라니.'
보석 자루는 인벤토리에 챙길 수 없었다.
아이템이 아니기 때문.
유준은 어쩔 수없이 보석 자루를 땅에 내려놓았다.
벽이나 바닥, 천장을 더듬거리며 살펴봤지만, 이곳에는 뭔가가 더 없었다.
유준은 협소한 통로를 다시 지나 서 왕궁 창고로 돌아왔다.
다행히 홍예지와 신지원의 기척 이 멀리서 느껴졌다.
그가 창고에서 빠져나오자, 홍예
지가 한걸음에 달려왔다.
"부순다면서요?"
"생각해 보니, 그러면 다 몰려올 거 같아서요. 그냥 관뒀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늦게 나오셨 어요?"
"고민 좀 하다가..."
" 거짓말."
"괜찮아요. 우리 원래 목표는 달 성했으니까. 이제 돌아가기만 하면 되는데...
홍예지가 말을 흐렸다.
그녀가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사실 유준 씨한테 드리지 않은 말이 있어요."
" 뭔데요?"
"의뢰를 받았어요. 엄청난 금액을 받고요."
"의뢰요?"
"시타헬 왕국에 있는 누군가를 구출해 달라는 의뢰였어요. 죄송해요. 미리 말씀 안 드려서."
"왜요? 그걸 왜 말 안 하셨죠?"
"솔직히 말해도 돼요?"
"그럼 거짓말하려고요?"
"...의뢰 보상을 나눠야 할까 봐요."
"단순한 이유군요."
"...면목이 없어요."
"괜찮습니다."
자신도 그녀 몰래 스킬 보석이라는 어마어마한 보물을 챙겼으니까.
그걸 모르는 홍예지가 감격했다.
"용서해 주시는 거예요?"
"저 그렇게 속 좁은 사람 아닙니다. 다만, 그런 일이 있으면 미리 말해 주세요."
"물론이에요! 당연히 그래야죠!"
그런데 신지원도 몰랐던 모양이다.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홍예 지의 어깨를 툭툭쳤다.
"나한텐 왜 안 알려 줬어?"
"어... 미안. 같은 이유야."
"자, 잠깐. 너무한 거 아니야? 유준 씨 아니었으면 밝히지도 않았을 거잖아."
"그랬겠지. 의뢰 보상 독차지해야 하니까."
"너 솔직한 것도 정도껏 해. 속
이려면 끝까지 속이든가."
"그러기엔 내 양심이 너무 애매 한 크기였어. 대충 강낭콩 정도?"
"...에휴."
홍예지의 장난스러운 말에 신지 원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요?"
"네? 뭐가요?"
유준이 한 말에 홍예지가 되물었다.
"구출해야 한다면서요. 그게 누 군데요."
"도, 도와주실 거예요?"
"아니요."
"가는 길에 있으면 겸사겸사 해 결하려고요."
"역시, 유준 씨! 믿고 있었어요!"
"도와준다고는 안 했는데."
"그게 그거죠!"
홍예지가 아이같이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유준이 이런 결정을 내린 건, 레 벨을 올리기 위해서였다.
'250레벨 만들기에 이곳보다 좋은 장소는 없지.'
이미 괴물로 변한 드워프에게는 신지원의 정화 스킬이 통하지 않았다.
등급의 정화 스킬이 통하지 않았으니, 드워프가 원래대로 되돌아 갈 확률은 0에 수렴한다.
한마디로 몬스터 취급을 해도 된 다는 것.
'나조차도 마땅한 방법이 안 떠 오를 정도니.'
애초에 무슨 병인지도, 무엇이 원인인지도 모른다.
끔찍한 외형을 한 드워프 좀비들을 안식에 들게 하는 것이 그들을
위한 것이리라.
유준과 일행은 창문을 통해 왕궁을 빠져 나왔다.
드워프 삼 형제가 졸졸 따라왔다.
그들도 플레이어기에 완전한 짐은 아니지만....
'솔직히 드워프 좀비들을 상대하는데에는 도움은 전혀 안 되겠지.'
이제 사냥을 시작해야 하는데 드 워프들의 처리가 곤란했다.
"그런데 드워프들은 다 어디로 도망친 걸까요? 아까 성벽 위에서 봤을 때 좀비들이 많긴 했어도 드
워프 왕국의 전체 인원이라고 보긴 힘들잖아요."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신 지원이 말했다.
유준도 아까 그녀와 같은 생각을 했기에 궁금했다.
그때 드워프 첫째가 유준에게 다 가와 말을 걸었다.
"저, 저기요."
" 왜?"
"귀족들이 어디로 가야 한다고 했던 거 같아요. 그걸 들었었어요."
"어디서?"
"아까 그 방에 숨어 있을 때 복 도에서 그렇게 떠들면서 뛰어가는 걸 들었어요."
"어디로 가야 한다고 했는데?"
"지하라는 말을 들었는데... 그 게 무슨 지하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지하...?"
유준이 눈을 크게 떴다.
그러네.
살아있는 드워프가 유독 안 보여서 이상하다고는 생각했는데.
지하로 숨어 들어갔을 수도 있겠구나.
'왕국 밖으로는 도망갈 생각을 안 하는 건가?'
성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나중에 드워프 좀비들을 일망타 진할 목적으로?'
지금 알 수는 없었다.
"그 드워프들을 만나 봐야겠다."
"지하가 어딘지 아세요?"
"말 그대로지하에 있겠지."
어딘가에 지하로 가는 통로가 있을 것이다.
너무 눈에 띄지 않는 곳.
유준이 곰곰이 생각했다.
"지하 수로에 있는 거 아닐까요? 하수도 같은 거요. 아까지나오면서 철로 된 원판을 봤었어요. 그걸 열고 들어가지 않았을까요?"
홍예지가 말했다.
유준이 고개를 저었다.
"다른 통로가 있습.... 아니 있을 겁니다."
애초에 저 무거운 철 원판을 열 고 드워프들이 지하로 가도록 드워 프 좀비들이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 지는 않았을 것이다.
"네? 있을 거라고요? 유준 씨가 어떻게 알아요?"
"그 통로가 어디에 있을지 대충 짐작이 갑니다."
유준은 신들의 전쟁을 플레이했 던 경험이 있다.
그는 그 누구보다도 고인물에 가 까운 유저였고.
무한의 탑에서 안 해 본 게 거의 없을 정도였다.
무엇보다 그는 드워프 퀘스트를 진행할 때 지하 통로를 가 본 경험 이 있었다.
'잠깐... 그때 지도를 받았던 거 같은데.'
기억이 난다.
드워프 왕이 그에게 지하에 자리 잡은 오염된 괴물을 처치하는 의뢰를 했었다.
그때 지하의 길이 전부 그려진 지하 통로지도를 받았다.
'운이 좋네.'
유준은 인벤토리에서 지도를 찾았다.
그리고 드워프 왕국 지하 통로 길 이 그려진 지도를 찾을 수 있었다.
"일단 따라와요."
"유준 씨... 길 알고 계신 거 맞죠?"
"예. 확실히 압니다."
신들의 전쟁 플레이 당시 드워프 왕국에 역병이 돌았던 적은 없지만, 여기 왕국의 땅은 그대로였다.
지하로 가는 길은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다.
드워프 삼 형제들도 반신반의하 면서 따라왔다.
인간인 유준이 왕자인 자신들도 모르는지하로 가는 길을 알고 있다니.
조금 이상하다고는 생각했지만, 자신들을 구해 준 사람이다.
의심이 들긴 해도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았다.
유준은 정말로지하로 가는 계단을 찾아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왕궁 입구 근처에 그 통로가 있었다.
다만, 교묘하게 천으로 가려져 있어 발견하기 힘들었을 뿐.
"와... 소름 돋네. 이게 통로였
다고요? 전혀 생각도 못 했는데."
"들어가죠."
드워프들을 만나 얘기를 들어 보 고 싶다.
어쩌다 이런 지경이 되었는지.
그러다 이 일을 해결해 주고 보상을 받으면 좋은 거고.
'왕궁 창고를 털어서 보상을 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심지어 숨겨진 공간에 있던 스킬 보석까지 홈쳐 갔다.
유준 일행은 드워프 삼 형제를 데리고 지하 통로로 들어갔다.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3권 7화
55 화
클린스만 백작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니,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거요? 숨어만 있어서 일이 해결되진 않소."
클린스만의 말에 다른 드워프 한 명이 성을 냈다.
"그럼 나가서 다 죽자고?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차라리 그게 낫겠군. 이렇게 쥐
새끼처럼 더러운 지하에 숨어 있는 것보다는."
"자네. 말조심해. 국왕님이 있는 자리일세."
"다 죽을 마당에 무슨...
클린스만은 왕국에서 제일 뛰어 난 전사였다.
작위는 백작이지만, 그 누구보다 도 강했다.
그래서 그 건방진 태도에도 다른 귀족 드워프들도 크게 뭐라 하지는 않았다.
반면, 국왕은 그런 클린스만을 신경 쓸 수 없을 정도로 심란한 상태였다.
"내 귀여운 아이들은 대체 어디 갔을꼬..."
"세 분 다 안전한 곳에 숨어 있을 겁니다."
시녀장의 말에도 드워프 국왕의 얼굴에 서린 근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럴 리가 없다는 걸 잘 알지 않는가. 허어... 무책임한 어른들이 아이들을 버리고 떠났으니... 그 아이들의 상심이 얼마나 크겠나."
"전하. 다른 왕국에서도 지원해 준다고 했으니 능력 있는 플레이어
들이 곧 도착할 거고..."
"그들도 곧 괴물로 변하겠지."
그 괴물들에게 상처를 조금이라도 입는다면 곧바로 전염되어 괴물 로 변했다.
생채기와 같은 상처도 마찬가지였다.
접촉 자체만으로도 전염 위험이 있는 것이다.
"도대체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 길래... 이런 벌을 받아야 하는 겁니까."
한 드워프가 위를 바라보며 탄식 했다.
한순간.
정말 한순간이었다.
눈 깜짝할 새에 괴물로 변한 드 워프들에게 왕국을 점령당하고 왕 족과 귀족 그리고 살아남은 드워프 들은 지하로 도망쳐야 했다.
다행히 괴물로 변한 드워프들은 신기하게도 지하로 쫓아오지 않았다.
어두운 걸 싫어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 추측에 가능성이 있는 것이, 유독 밤에는 좀비들의 활동성이 떨 어졌다.
그렇다고 밤에 싸우러 나갈 수는 없었다.
그때 남작 드워프가 입을 열었다.
"성문을 개방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그건 안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괴물들을 가둬 놓는 건 우리만 피해를 보는 일입니다."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역 병이 전 대륙에 퍼져서 우리한테 좋을 것이 없다. 거기다 성문을 연 다고 하더라도 지금 우리 상황이 나아진다고 보장할 수도 없다."
드워프 국왕은 현명했다.
"차라리 이렇게 한곳에 모여 있을 때 충분한 전력으로 놈들을 일 망타진하는게 그나마 나은 방법이지."
"맞습니다. 지금은 최대한 이 역 병이 퍼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클린스만은 답답한 표정이었다.
"그냥 제가 다 쓸어버리면 안 됩니까?"
그래서 국왕에게 대놓고 말했다.
"자네가 죽기라도 한다면? 그럼 상황은 더욱 암울해지는 걸세."
"그러니까요. 정예 병력 몇 명만 더 붙여 주십시오. 제가 다 알아서 하겠습니다. 저것들 별것 아니라니까요."
"클린스만, 자네한테나 그렇겠지."
실제로 클린스만은 드워프 좀비들을 수십 마리나 혼자 잡아냈다.
그 정도로 강한 플레이어였다.
"자네한테 그 역병을 방비할 대 책이 있다면 나가서 얼마든지 괴물들을 상대해도 좋네."
아주 조그마한 상처라도 생긴다면 클린스만은 감당할 수 없는 괴물로 변하게 된다.
그럼 드워프들에게는 부담이 몇 배는 더 커지는 것이다.
그래서 클린스만이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어휴. 그럼 왕자들을 제가 구해 오겠습니다. 그건 되겠죠?"
클린스만이 꺼낸 말에 국왕의 눈 빛이 흔들렸다.
그는지금 국왕이 가장 원하는 바를 끄집어낸 것이었다.
"...아무리 내 자식에 왕자들이 라고 하더라도 시타헬 국민 전체를 위험에 내몰 수는 없네."
"앞서 말했지만,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클린스만이 울분을 토하듯 말했다.
국왕은 단호했다.
"그래도 허락할 수 없네."
그때였다.
척. 척.
물기 있는 바닥을 걷는 소리가 지하에 울려 퍼졌다.
한두 명이 아니다.
"그 괴물들인가?"
"설마.... 지하에는 못 들어왔 잖아."
"그건 확신할 수 없지."
드워프들이 전투태세를 취했다.
클린스만도 자신의 무기, 철퇴를 들었다.
드워프들 사이에 긴장감이 흘렀다.
정적 속에서 차박, 차박, 하는 발
소리만이 연신 울려 퍼지고.
그 소리를 내는 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인간?"
"인간이 어떻게 여길?"
유준 일행을 본 드워프들이 화들 짝 놀랐다.
그러나 그들을 더 놀라게 할 장 면이 남아 있었다.
"아, 아버지!"
" 아빠아!"
인간들의 뒤에서 드워프 왕자 셋 이 달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국왕이 처음에는 놀랐다가 활짝 웃었다.
달려드는 왕자들을 끌어안은 국 왕이 눈물을 홀렸다.
"어디 있다가 이제 오는게냐
.... 걱정 많이 했다."
"저, 저도 보고 싶었어요!"
"무서웠어요!"
그 모습을 보는 드워프들의 입가에도 호선이 그려졌다.
유준도 따라 웃었다.
'드워프들이은근 정이 많군.'
한차례 재회의 기쁨을 나눈 국왕
이유준 일행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대들은 어쩌다 이곳에 왔는가?"
"시타헬 왕국이 위기에 처했다고해서 도와주러 왔다는 건... 거짓 말이고 역병에 관련해 조사하라고 의뢰를 받았습니다."
물론, 이것도 거짓말이다.
왕궁 창고를 털러 왔다고 솔직히 고하면 아무리 왕자들을 구해 줬다지만, 그들이 안 좋게 볼 것이 분 명했다.
"감사 인사가 늦었군. 내 아이들을 구해 줘서 정말 고맙네."
"뭘요.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며 대충 예의를 차렸다.
"밖의 상황은 어떤가?"
"드좀... 아니 변질된 이들이 무척 많았습니다. 돌아다니기 힘들 정도로."
"역시. 오면서 지원군들을 혹시 봤는가?"
"곧 올 거 같던데요. 아직은 도 착하지 않았습니다."
"이거 큰일이군."
" 왜죠?"
"그들이 오면 오히려 역병만 더 퍼질 걸세. 이 일은 압도적인 강자 한 명이 시간을 들여 괴물들을 천천히 처리하는게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네."
그때 클린스만이 다가왔다.
"그러니까 제가 나서면 된다니까...
"자네. 상처 하나 생기지 않고 그 많은 수의 괴물들을 상대할 자 신이 있나?"
"아니, 뭐 상처 몇 개는 생기겠 지요…."
"자네가 괴물이 되어 버리면?"
클린스만은 차마 부정할 수 없었다.
역병에 의해 괴물이 되면 기존의 무력보다 훨씬 강한 힘을 가지게 된다.
그런데 클린스만이 괴물로 변한다면?
그를 상대할 자가 존재하기나 할까?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역병을 막을 방법이 있습니다."
유준이 그 말을 꺼냈다.
드워프들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역병을 막는다고?"
"그게 가능해?"
"애초에 그걸 저 인간이 어떻게 알고 있는 건데?"
드워프들이 의문을 표했다.
반면, 국왕은 솔깃했는지 유준에게 가까이 갔다.
"방법이라니, 뭔가?"
"모두에게 쓸 수는 없습니다."
유준은 인젝션에 대해서 알려 주었다.
모든 질병을 막을 수 있으며, 기 간이 한정되어 있다는 것.
클린스만이 환호했다.
"그거 나한테 빌려주시오. 내가 꼭 보답하지. 내 무력에는 자신이 있소."
"클린스만은 우리 왕국에서 제일 강한 전사라네."
국왕도 동조했다.
유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왕자들은 맡겨 두고 저와 클린스만이 괴물들 사냥에 나
서겠습니다."
"둘이서 말인가?"
"아니요. 제 일행 두 명도 함께 갑니다. 그들도 인젝션을 사용했거 든요."
그때 클린스만이유준을 보며 입을 열었다.
"역병으로 변한 괴물들을 상대해 봤나?"
"예."
"그대의 실력이 궁금하군."
"곧 알게 될 겁니다."
유준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클린스만의 기대를 한껏 올려놓았다.
"그럼 부탁하네."
"뭐, 보상은 알아서 주시겠죠?"
"...다, 당연하네. 내 준비해 놓도록 하지."
한 왕국의 왕인데 인벤토리에 쓸 만한 아이템 몇 개는 있으리라.
유준은 기대감을 안고 지하 통로 입구를 향해 걸었다.
그는 가면서 아까 역소환해 뒀던 파라네트를 다시 소환했다.
클린스만이 언데드인 파라네트를
보고 놀랐지만, 유준이 서둘러 자 신의 소환수라고 설명했다.
"신기하군. 언데드 소환수라니. 거기다 강한 힘이 느껴져."
"크흠. 이 몸의 힘을 조금이나마 느끼다니. 대단하군, 난쟁이."
파라네트가 거만하게 말했다.
"나, 난쟁이라고? 돌았소? 죽고 싶은 것이오?"
"난 언데드다. 죽인다는 협박은 통하지 않아. 멍청하기는."
파라네트가 클린스만을 비웃었다.
"소환수 주제에 건방지군."
"한낱 역병에 벌벌 떨던 존재 주 제에 건방지구나."
"난 뼈밖에 없는 몸. 역병에 걸리고 싶어도 걸릴 수가 없지."
"대신 털도 없군."
" 엇...?"
파라네트가 기 싸움에서 지고 말았다.
지하 통로를 빠져나온 유준 일행은 드워프 좀비부터 찾았다.
아니, 굳이 찾을 것도없이 근처에 널린 것이 좀비들이었다.
인젝션을 사용한 클린스만이 가 장 먼저 신나서 달려갔다.
클린스만을 발견한 드워프 좀비 가 달려들었다.
콰직!
그는 가만히 서서 철퇴를 휘둘렀다.
좀비의 머리가 박살 났다.
"쉽군!"
소란을 들은 좀비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훨씬 덩치가 큰 좀비들을 상대로 클린스만은 전혀 밀리지 않았다.
오히려 압도했다.
그가 휘두르는 철퇴에 맞은 좀비 들의 몸이 날아가고 박살 나고 난 리가 아니었다.
그러나 좀비의 수가 열이 넘어가는 순간, 클린스만에게도 빈틈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때 파라네트가 끼어들었다.
서걱! 석!
파라네트도 원샷원킬이었다.
녀석이 휘두르는 검에 좀비들이
허무하게 목숨을 잃었다.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 다더니...
"네?"
홍예지의 말에 유준이 고개를 갸 웃했다.
"아니 소환수가 어찌 저리 검을 잘 써요. 단순히 능력치만 높은 게 아닌 거 같은데."
"그래요?"
검술 실력이 극에 달해 있는 유준은 파라네트의 검술이 특별하다는 걸 느끼지 못했다.
눈이 너무 높은 것이다.
'뭐, 공격이랑 반격 타이밍을 잘 맞추기는 하네.'
유준도 전투에 참여했다.
그가 나서자, 빠른 속도로 좀비들이 정리되어 갔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도 쭉쭉 올랐다.
그는 경험치를 독차지하기 위해 클린스만보다 더 빠른 속도로 좀비들을 사냥했다.
"크랴아악!"
"크륵..."
"캬아악!"
서걱! 슥! 서걱!
홍예지와 신지원은 익숙해져서 가만히 있었지만, 클린스만은 황당 했는지 입을 떡 벌렸다.
"이렇게 강한 인간이 존재했다 니..
클린스만은 정말 오랜만에 큰 충격을 받았다.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빠른
검격.
그 궤적 또한 절묘하기 그지없어 서 좀비들이 다가오기도 전에 푹푹 쓰러지는 것 같았다.
온 방향에서 달려드는 좀비들은 유준에게 닿지도 못했다.
어느새 그 많던 좀비가 싹 사라 졌다.
싸늘한 시체가 되어 하나도 빠짐없이 바닥에 드러누운 것이다.
"스킬도 안 쓰는 거 같은데...
"이제 알았나. 우리 주인님 강한 거."
"그래. 인정하지. 내가 본 인간 중에서 제일 강하군. 뛰어난 전사야."
"당연하지. 흐흥."
파라네트가 뿌듯해했다.
"언데드. 너도 마찬가지다. 아주 강해. 플레이어의 일개 소환수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크흠."
녀석은 오히려 본인이 칭찬받을 때 부끄러워했다.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3권 8화
56화
"예지 씨. 어디 있어요?"
유준이 뒤를 보며 말했다.
"네? 저 여기 있잖아요."
"...아니요. 그 구출해야 한다는 사람요."
"아, 맞다! 빨리 찾아야 하는데...
홍예지는 자신의 임무를 이제야 떠올린 듯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사실 어디 있는지는 몰라요. 그 냥 시타헬 왕국 어딘가에 숨어 있다고만들어서...
" 인상착의는요?"
"들었어요. 긴 노란 머리 남자예요. 수염도 기르고 있다고 했는데. 나이는 젊다고 했고요."
"아까지하, 거기엔 없었죠?"
"네. 드워프만 있었으니까요."
"이 왕국을 다 뒤져 봐야 한다는 거네요."
"그래야 할지도 몰라요."
"뭐, 큰 문제는 아니네요."
어차피 레벨을 올리기 위해 좀비들을 전부 처리하려고 했다.
좀비들은 경험치를 꽤 짭짤하게 줬다.
그때였다.
잠깐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어디 선가 비명이 들려왔다.
"들었어요?"
"그렇소."
"가 보죠."
비명은 계속 이어졌다.
그 소리가 어디서 나나 했더니 바로 성문을 부수고 들어온 다른
왕국의 지원 병력들로 인한 것이었다.
"미친. 저런 멍청한 놈들을 봤 나."
클린스만이 자신의 이마를 탁 하고쳤다.
지원 온 플레이어들은 성문을 부 수고 들어와서 드워프 좀비들에게 된통 당하고 있었다.
당연히, 역병이 돌았고 플레이어 들은 괴물이 되어 같은 아군을 공 격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절반의 병력이 사라졌다.
좀비의 수는 늘어났고.
그 수만 수백, 수천에 달했다.
"허... 일을 더 크게 벌이다니."
클린스만이 탄식했다.
외부와 완전히 단절되었기에 벌 어진 일이었다.
드워프 좀비의 힘을 저들이 알 리가 없었다.
유준 일행도 안의 상황을 자세히 몰랐으니 저들의 상황이 아예 이해 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다만, 무지도 죄였다.
'메신저로 충분히 정보를 받을 수
있었을 텐데.... 여기 왕국은 메신 저 번호 교환을 안 하고 다니나?'
한숨을 푹 쉰 유준이 파라네트를 불렀다.
"파라네트."
"예."
"마력 잘 분배해서 시체 폭발 사용해."
"어디다 하면 되겠습니까?"
"저번처럼 하면 된다. 저기 모여 있는 곳에."
"알겠습니다."
파라네트가 시체 폭발 스킬을 사
용했다.
콰콰쾅! 콰콰쾅!
시체들 사이에서 엄청난 폭발이 터져 나왔다.
드워프 좀비들이 있는 한가운데에서 폭발.
그 폭발이 워낙 커서 플레이어들 한테까지 피해가 갔다.
파라네트가 사용한 시체 폭발은 확실하게 효과가 있었다.
드워프 좀비들의 공세가 주춤해 진 것이다.
그곳에 유준과 클린스만이 뛰어 들었다.
홍예지와 신지원은 만약을 대비 해 파라네트가 경호를 섰다.
파라네트는 직접 검을 휘두르지는 않고, 그 둘을 지키며 시체 폭발만 간간이 사용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도움이 되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수십 마리의 드워프 좀비를 베었
을 때 레벨이 하나 더 올랐다.
옆을 슬쩍 보니, 클린스만은 점 점 지치고 있었다.
'아슬아슬한데.'
소란을 듣고 몰려오는 드워프 좀 비가 너무 많았다.
그때 홍예지도 전투에 참여했다.
걱정했던 것과 달리 그녀도은근 히 잘 싸웠다.
얼마 전에 종족 대항전을 했던 플레이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 정 도로.
'힘을 숨기고 있었나.'
그녀는 특이하게 창을 사용했는데 드워프 좀비들에게 그 무기는 효과적이었다.
문제는 신지원인데.
신지원은 전투 능력이 다른 이들에 비해 뒤떨어졌다.
그러나 그녀도 죽으라는 법은 없는지, 드워프 좀비를 상대로 눈에 띄는 활약을 할 기회가 생겼다.
바로 등급의 정화 스킬.
그 정화 스킬을 드워프에게 사용 하면 아주 강력한 위력을 보였다.
정화 스킬에 적중당한 드워프 좀
비가 원래 상태로 돌아오지는 않았지만, 즉시 몸이 불타며 전투 불능 상태가 됐다.
"너 그거 너무 남발하진 말고 너 한테 다가오는 놈들한테만 사용해. 알겠지?"
홍예지가 신지원에게 말했다.
신지원이 잔뜩 긴장한 얼굴로 고 개를 끄덕였다.
그 후부터 유준은 마음 놓고 드 워프 좀비들을 학살했다.
클린스만이 지쳤다는 것이 확연 히 보일 정도였기에 그의 몫까지 싸웠다.
'그나저나 끝이 안 보이네.'
유준은 움직이면서도 전체적으로 돌아가는 상황을 확인했다.
그의 활약에도 상황이 호전되었 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이,
어디 숨어 있었는지 드워프 좀비 들은 계속해서 나타났다.
줄어들기는커녕 처음보다 더 많 아진 느낌이었다.
'차라리 잘됐어.'
유준의 표정이 밝았다.
이보다 좋은 사냥터는 찾기 힘들었다.
'250레벨을 빨리 달성해야 한다.'
400레벨의 신화 등급 검.
그가 더 열심히 움직였다.
서걱! 석!
인젝션을 사용한 데다가 비교적 강한 무력을 지닌 유준 일행과는 다르게 지원 온 플레이어들은 상당 히 곤란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카아악!"
"카악!"
"마, 막아!"
"끄륵…."
이미 많은 수의 플레이어들이 목 숨을 잃었고 괴물로 변했다.
"이, 이런 말은 못 들었다고!"
"고작 좀비들이 왜 이리 강한 건 데!"
"괜히 왔어. 저런 흉측한 괴물이 되고 싶지 않아...
그들의 합류는 오히려 독이 되었다.
그리고 제일 문제는, 성문 밖을 벗어나는 좀비들이 하나둘씩 생기 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 좀비들은 다른 플레이
어를 공격해서 동료를 만들었다.
'곤란한데.'
지금 달려드는 좀비들을 뒤로하고 밖으로 빠져나가는 좀비들을 처 리해야 하는데.
만약 그렇게 하면 클린스만의 부 담이 커진다.
이 좀비로 만드는 역병이 온 대 륙에 퍼지면 곤란한 건 유준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어떻게든 이 상황을 여기 이 자리에서 해결해야 했다.
'그걸 써야겠다.'
답도 안 보일 때는 인벤토리를 활용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무과금즐겜러의 인벤토리는 없던 답도 만들어 주니까.
유준은 전투를 지속하면서 인벤 토리의 아이템을 찾았다.
전투와 아이템 찾는 걸 동시에 하는 건 상당히 어려운 작업이었지만, 그는 가능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원하는 아이템을 찾을 수 있었다.
[지역 결계 구슬]
등급 : 전설
옵션 : 대규모 결계를 설치할 수 있습니다. 한 번 사용하면 사라집니다.
전설 등급의 일회성 아이템.
대신 효과는 확실하다.
유준은 서 있는 자리에서 곧바로 구슬을 깨트렸다.
콰직! 스으으.
구슬에서 나온 마력의 파장이 널 리 퍼지기 시작했다.
얇은 막을 형성하던 마력은 어느
새 성문이 있는 곳 너머로까지 이 동했다.
'범위는 충분해.'
결계의 범위는 넓었다.
좀비들이 빠져나갈 공간은 없다.
목숨을 걸고 싸우던 플레이어들은 정신이 없어 결계가 생성되는 것도 깨닫지 못했다.
결계는 적군 아군을 가리지 않고 가둔다.
한마디로지원 온 플레이어들 또 한 결계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뜻 이었다.
유준은 플레이어들까지 강제로 가둔 셈이었다.
'내가 미안할 건 아니지. 어찌 됐 든 성문을 부숴서 일을 크게 만든 건 저들이니까.'
전혀 미안하지 않았다.
급한 건 마무리했다.
이제 천천히 좀비들을 정리하는 일만 남았다.
그가 좀비를 죽이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좀비들의 패턴을 완전히 파악한 까닭이다.
그는 프로즌 필드(A)를 사용해서 좀비들의 움직임을 더디게 했다.
그 후 체력 포션을 클린스만에게 던졌다.
"이건?"
"먹어요. 도움이 될 겁니다."
상급 포션이었다.
상당히 고가의 아이템.
고마움을 몸으로 표현한 클린스 만이 포션병의 마개를 따고 벌컥벌 컥 포션을 마셨다.
"키야! 이거 좋군. 좋은 포션이야."
상급 포션부터는 육체가 지친 것 조차 회복시켰다.
"그쪽은 포션 따로 없어요?"
"포션이 워낙 귀해야지."
" 하긴..."
그도 게임이 현실이 된 지금 포 션을 구해 본 적이 없었다.
전부 게임을 플레이했을 때 구했 던 포션들만 그대로 가지고 있을 뿐이지.
클린스만은 금방 쌩쌩해져서 다시 좀비들을 상대했다.
'파라네트는 줄 필요 없고...
유준은 홍예지와 신지원에게도 포션을 하나씩 줬다.
포션을 아낄 때가 아니었다.
그의 인벤토리엔 이런 포션이 넘 쳐 날 정도로 있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쉴 새없이 움직인 보람이 있게 벌써 240레벨이 되었다.
'레벨 열 개만 더.'
미분배 포인트는 생길 때마다 계속 분배했다.
유준에겐 지루한 전투가 한동안 이어졌다.
그가 죽인 좀비의 수가 어느덧 삼천을 넘어갔기 때문이다.
유준은 본인에게도 포션을 아끼 지 않았다.
상급 포션을 깔끔하게 비운 유준 이 다시 힘을 내서 사냥에 나섰다.
그렇게 삼십 분이 흘렀다.
시타헬 왕국에 지원을 왔던 플레 이어 중 멀쩡히 살아 있는 자는 거 의 없었다.
'솔직히 적만 늘려 준 꼴이니.'
그냥 민폐만 되었다.
다만, 그들 덕분에 유준은 레벨 250을 달성할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다행인가.'
결국, 끝은 왔다.
드워프 좀비들이 전부 정리된 것이다.
일단 근처에는 움직이는 좀비가 없었다.
기나긴 싸움이 끝이 나자, 일행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아... 진짜 죽는 줄."
"시, 심장이 아직도 빠르게 뛰는게 느껴져요."
홍예지와 신지원은 물론이고, 클 린스만도 그제야 긴장이 풀렸는지 미소를 지었다.
"혼자 나왔으면 큰일 날 뻔했군."
반면, 유준은 주변 경계를 게을 리하지 않았다.
'분명 더 있을 거 같긴 한데.'
왕국은 넓었고, 거주했던 드워프 들의 수는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그들이 처리한 드워프 좀비는 일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도 지금은 쉬어야겠어.'
관자놀이 부근이 살짝 지끈거렸다.
포션을 마시며 억지로 체력을 끌 어 올렸다고는 해도, 계속된 전투에 정신적으로 안 지칠 수가 없었다.
지원을 왔던 플레이어들은 몇 명을 제외하곤 전멸이다.
그 살아남은 몇 명조차 지금의 상황에 아연실색하고 있었고.
유준이 고개를 돌렸다.
"예지 씨."
"네?"
"그 목표 인물은 어디에 있을까
요? 힌트 같은 거 없습니까?"
"저도... 몰라요."
"이미 죽었을 수도 있는 거고."
"아뇨. 저한테 의뢰 맡기신 분은 그 사람이 살아 있다고 했어요. 지금도요."
"어떻게 알죠?"
"지금 메시지로 대화를 나눴거든요."
"그니까요. 목표 대상이랑 메시 지를 주고받은 건 아닐 거 아니에요."
"맞아요. 그런데 저한테 의뢰 주
신 분이 목표 대상과 메신저가 되어 있는 모양이에요."
그럼 더 이상하다.
어디 있는지 물어보면 되는 거 아닌가.
왜 위치를 특정하지 못하지?
"아들이랑 아버지랑 싸웠나 봐요. 아들은 가출했고 아버지와 대화를 섞으려고 하질 않죠."
"...이 위급한 상황에도?"
"네. 아무리 메시지를 보내도 답 장을 안 한다고 하네요. 그런데 메
시지를 보낼 수 있다는 건 그 아들이 살아 있다는 거잖아요."
"잠깐. 잠깐만요. 그럼 인간은 아닌 거 아니에요? 5년 됐잖아요. 인 간이 무한의 탑으로 끌려온지."
"아니죠. 부자지간이 같이 넘어 온 거예요."
"아. 그럴 수도 있겠군요."
아버지와 절연한 아들이라.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런 역병이 도는 왕국에 숨어 있으면서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걸까.
"그러니까지금 그 목표 대상의 위치를 알 수 없다는 거죠?"
"네."
홍예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왕국을 돌아다니며 일 일이 찾아보는 수밖에 없었다.
"목표 대상의 이름이 뭐죠?"
"주동현이래요."
"...주동현?"
유준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홍예지가 되물었다.
"네. 왜요?"
"아는 이름이라서요."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3권 9화
57화
주동현.
그자와 게임 '신들의 전쟁' 당시에 던전 공략을 같이 진행했던 기 억이 있다.
이 이름을 기억하는 이유는 주동 현이 캐릭터의 이름을 본명 그대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 주동현인가, 설마?'
주동현은 유저 랭킹도 상당히 높았었다.
하지만 모종의 이유로 게임을 접었는데, 언질도없이 사라져서 그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동명이인이 아닌 동일인물이라면 좋겠다.
그러면 주동현의 위치 단서가 조 금이나마 주어지는 것이니까.
"아는 사람이라고요?"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그냥 이 름만 같을 수도 있고요."
"주동현이 흔한 이름 같지는 않은데요."
" 그죠."
"그럼 주동현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있어요?"
"제가 도사도 아니고 아는 사람이라고 어떻게 바로 찾아내겠습니까? 그냥 주동현의 이름을 외치면서 찾아다니는 수밖에 없죠."
"아.…"
"다 쉬었죠? 이제 움직입시다."
포션을 아낌없이 사용했기에 다 들 지친 기색은 없었다.
"그 전에."
그때 클린스만이 입을 열었다.
"성문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 거
아니오?"
그러고 보니 지원을 왔던 플레이어들에 의해 성문은 완전히 박살 나 있었다.
그 문제는 유준이 해결했다.
"제가 결계의 범위를 줄이죠. 성 문을 틀어막는 정도로 할게요. 그 럼 지속 시간도 늘어나니까."
"좋네요."
유준 일행은 드워프 좀비들이 가 장 많이 포진해 있는 왕국의 대광 장 쪽으로 이동했다.
시타헬 왕국은 원 형태의 성벽으로 둘러싸인 하나의 대도시에 가까
웠다.
이곳이 무너지면 시타헬 왕국은 그대로 멸망하는 것이다.
간간이 나타나는 드워프 좀비들을 처리하며 유준은 건물 곳곳을 드나들었다.
아직 역병에 걸리지 않은 채로 건물 안에 숨어 있는 드워프들이 많았다.
'그나마 희망이 보이는군.'
그들 드워프에게 주동현의 인상 착의를 말하고 정보를 캐묻고 다녔다.
유준 일행이 드워프 좀비들을 손
쉽게 처리하는 것을 본 드워프들은 본인이 아는 것을 술술 말했다.
"주동현이 많이유명하네요."
저택 대문을 나온 홍예지가 말했다.
"덕분에 찾기는 쉽겠어요."
"지하에는 없었으니 많은 드워프들이 대피했다는 곳으로 가면 될 거 같아요."
유준이 그렇게 말했다.
주동현은 시타헬 왕국에서 많은 입지를 다진 인물이었다.
또한, 이 역병 사태가 벌어지고
나서 드워프들을 보호하고 대피소 로 안내하는 일까지 했다고 한다.
자의로 나서서까지….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걸까?
드워프들은 하나같이 그가 성자에 가까운 인물이라고만 했다.
"말만들어선 천사가 따로 없네요."
"그럴 확률이 높긴 해요."
"네?"
"제가 아는 주동현은 바보같이 착한 사람이거든요."
"오오, 그래요? 그럼 유준 씨가
아는 분일 확률이 높네요."
"예."
유준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게임에서 만났지만, 주동현 의 성격은 잘 알고 있었다.
"일단 대피소로 갑시다."
"저기 저 큰 건물이라고 했죠?"
"예."
"제발 있어야 할 텐데."
사실 드워프 좀비들을 사냥해서 레벨을 올릴 겸 홍예지와 같이 다 니려고 했던 건데.
알고 보니 아는 사람이 얽혀 있었다.
"아, 그리고 괴물들의 기척이 많 이 잡히네요. 대피소로 가는 길에 수시로 나타날 겁니다."
"키랴아악! 캬악!"
"캬아악!"
서걱! 서걱!
"제가 앞장설게요."
끔찍한 냄새를 풍기는 괴물들을 단숨에 처리한 유준이 먼저 움직였다.
대피소 건물은 교회나 성당 같았다.
비슷한 용도로 쓰이던 건물이리라.
수백의 드워프 좀비들을 죽이고 대피소 앞에 도달한 유준이 예민한 감각(A)을 사용했다.
건물 안에 빽빽하다고 느껴질 만 큼 많은 드워프들이 있었다.
'역병에 걸리진 않은 모양이군.'
다만, 저렇게 한곳에 모여 있는 건 역병에 매우 치명적이다.
저곳에 드워프 좀비가 하나라도 들어간다면.
뭐, 아직까지는 괜찮으니 주동현 의 선택이 현명했던 걸 수도 있다.
성당의 문은 당연하게도 굳게 잠 겨 있었다.
유준이 밖에서 소리쳤다.
"주동현 씨! 안에 있습니까!"
그가 소리치자, 다소 불투명한 창문을 통해 주시하는 눈동자가 늘 어났다.
생존자들이었다.
"주동현 씨!"
유준이 크게 한 번 더 외쳤을 때였다.
"...누굽니까?"
문 너머로 중저음의 목소리가 들 려왔다.
유준이 입에 침을 발랐다.
"역병을 해결하기 위해 왔습니다."
"...역병을 해결한다고? 그게 가능하다고 봅니까?"
"노력한다면 안 될 거 있겠어요?"
"긍정적인 분이시군요. 혹시 오는 길에 변종 괴물들은 다 처리하 셨습니까?"
"그러니 이렇게 멀쩡히 서 있죠."
"잠시만요."
그렇게 한참을 기다렸다.
"좋습니다. 들어오세요."
유준 일행이 성당 안으로 들어서 자, 드워프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들을 향했다.
주동현이 정적을 깨고 입을 열었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저는 의뢰를 받고 왔어요."
홍예지가 말했다.
"의뢰라니요?"
"음. 당신 아버지가 당신을 데려 와 달라고 했어요."
홍예지가 살짝 주저하다가 꺼낸 말에 주동현이 입을 꾹 다물었다.
"저는 안 갑니다."
"네?"
"적어도 이 일이 해결될 때까지는 이곳을 벗어날 생각이 없습니다."
"...아."
홍예지가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
"당신이 여기 남아 있어서 역병 이 해결되진 않잖아요."
"저를 설교하러 온 겁니까? 저는 이미 말했습니다. 여기에 남겠다고."
단호한 얼굴.
"아니...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가는데요? 당신한테 치료나 치유 스킬 같은 것도 없다면서요?"
"아버지가 거기까지 말씀하셨나 보군요. 맞습니다. 저한텐 역병에 걸린 드워프들을 치료할 방법이 없죠."
"미련하게 이러지 말고 저희랑
같이 가요."
"약속했습니다. 책임지고 이 왕 국을 지키겠다고."
"...누구랑요?"
"제 연인에게요."
"연... 인? 연인은 어디 있죠?"
"역병에 걸렸습니다."
역병에 걸렸다는 것은, 죽었다는 것과 다름없었다.
"...미안해요."
홍예지가 고개를 푹 숙였다.
주동현은 아무렇지 않은 듯한 표
정이었다.
"아니요. 저는 제 연인을 원래대 로 되돌릴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고요."
"...네?"
주동현이 구석에 있는 관 하나를 바라봤다.
튼튼하게 만들어진 관은 쉴 새없이 들썩이고 있었다.
"저... 기에 있는 거예요?"
"예."
묵묵히 지켜보고 있던 유준이 그때 입을 열었다.
"어떻게 그동안 진척이 좀 있었습니까?"
"예."
주동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클린스만이 화들짝 놀랐다.
"역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말이 오?"
"그건 아닙니다. 다만 이 모든 걸 단번에 해결할 방법이 있습니다. 확신까지는 아니고 추측 정도지만...
"해결할 방법이라는 건?"
"이 역병을 퍼지게 한 장본인을
죽이는 겁니다."
홍예지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녀가 곧바로 물었다.
"역병을 누가 의도적으로 퍼뜨렸 다? 그렇게 말하는 거예요?"
"예. 맞습니다."
"그걸 주동현 씨가 어떻게 아시는데요?"
"...저는 천리안이라는 스킬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동현의 말에 이번엔 유준이 놀 랐다.
유준이 물었다.
"천리안? 천리안이라고요?"
"예."
"그거 등급이 혹시...
"그건 알려 드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이미 알고 계신 거 같군요."
주동현의 말에 유준이 침음을 삼 켰다.
천리안은 등급이 정해진 SSS급의 스킬이다.
단순히 등급이 높은 것에 놀라는게 아니었다.
천리안이 가진 희소성과 그 효과
때문이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천리안은 멀리까지 내다볼 수 있게 해 주는 능력이었다.
다만, 천리안이 닿는 범위는 마 력의 영향을 받는데, 마력이 높을 수록 그 거리는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하여튼. 저는 이 일이 벌어지기 전부터 천리안으로 시타헬 왕국 주 변을 계속 살폈습니다. 그러다 수 상한 자 한 명을 발견했었습니다."
"수상한 자라면...?"
"왕국을 안팎으로 계속 어슬렁거렸죠."
"그것만으로 역병을 퍼뜨렸다고 의심하는 겁니까?"
"당연히 아닙니다. 그때는 그냥 특이한 플레이어라고 생각하고 넘어갔었습니다. 그렇게 3일 정도가 흘렀을 때. 성안에 있는 외곽 마을 들에서 역병이 돌기 시작했다는 소 문이 들려왔습니다."
주동현이 눈가가 미세하게 꿈틀 했다.
"그때부터 쉬지 않고 천리안 스킬을 사용했습니다. 그러다 전에 수상했던 인물을 발견하게 되었죠.
그자는 여기 대피소와 왕궁 이 두 곳과 멀지 않은 곳에서 드워프를 납치했어요. 그 후 납치한 드워프에게 상처를 내고 검은빛을 띠는 마법 혹은 스킬을 사용하더군요."
"그럼 저 괴물로 변하는 역병이 스킬에 의한 거라고요?"
"그럴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그런 스킬이 있다니? 유준으로서도 금시초문이었다 .
"그런데 제가 그를 너무 늦게 발
견했나 봅니다. 그자는 그 후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드워프 국왕에게 병력을 요청하고 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이미 역병은 퍼질 대로 퍼지고 말았어요."
"음."
주동현의 말이 사실이라면 의외 로 해결법은 간단했다.
그의 말처럼 역병을 퍼뜨린 장본 인을 죽이면 된다.
'저주라고 보면 편하겠군.'
저주는 해결법이 여러 개 있지만, 고등급의 저주일 경우 해주하는 것이 상당히 까다로웠다.
그럴 때 보통 저주를 건 당사자를 죽이는 건데.
사실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저는 역병을 퍼뜨린 그 플레이어를 찾을 생각입니다."
"찾으면 죽이고요?"
"예."
"어떻게 찾죠?"
"천리안을 사용해야죠. 어렵겠지만... 장소를 이동하면서 그 숙주를 찾을 생각입니다."
초췌한 얼굴의 주동현이 말을 마쳤다.
천리안은 효과가 좋은 대신 그 대가도 작지 않은 편이었다.
"그 방법으로 갑시다. 그것밖에 답이 없긴 하네요."
등급의 정화 스킬이 통하지 않을 정도면 다른 방법이 없다고 봐 도 무방했다.
성당 내의 분위기는 상당히 침체 되어 있었다.
솔직히 역병을 돌게 한 플레이어를 찾아내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는 이미 이 근처를 벗어나도 한참 전에 벗어났을 테니까.
"근데... 천리안만으로 찾을 수 있을까요?"
신지원이 핵심을 짚는 질문을 했다.
주동현이 고개를 저었다.
"그것만으로는 힘듭니다. 어디에 있는지 특정할 수 없어요. 전 대륙을 뒤져 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럼 어떡해요?"
"그가 어디로 가는지 예측하고 쫓아가야죠."
"거의 불가능하다는 거네요."
"아닙니다. 정확히 13시간 후 역
병을 퍼뜨린 자의 위치를 알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네? 어떻게요?"
홍예지의 물음에 주동현이 손짓 했다.
다른 드워프들이 듣지 못하도록 구석으로 가자는 제스처였다.
유준 일행이 그에게 가까이 다가 갔다.
주동현이 입을 열었다.
"원래는 비밀로 하려고 했지만... 이번 일을 같이하실 분들에게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예."
유준 일행의 시선이 주동현의 입에 집중되었다.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저는 미 래를 볼 수 있습니다."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3권 10화
58화
그의 말대로 믿기 어려운 얘기다.
미래를 볼 수 있다고?
사실은 저 남자는 사기꾼이 아닐까.
무한의 탑에서는 뭐든 일어날 수 있다지만, 미래를 본다는 것은 차원이 다른 얘기다.
유준을 비롯한 일행 모두가 한동 안 말을 꺼내지 못했다.
"...진짜입니다."
주동현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저기요. 그런 능력이 실제로 있다고 해도 당신이 가지고 있을 리 가 없죠. 천리안 스킬을 가지고 계 신다면서요? 근데 거기에 미래 예 측까지 가능하다고요?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실제로 제가 그러니 말이 됩니다."
홍예지가 황당하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그 말을 누가 믿겠어요?"
"그래서 여러분에게만 말씀드리는 겁니다. 이 일을 해결할 수 있 으리라 생각하니까요."
"뭘 믿고요? 우리 생판 처음 보는데."
홍예지가 그러다가 유준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맞다. 유준 씨. 저분을 알고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
홍예지의 질문에 유준이 잠시 머 뭇거렸다.
여기서 아는 사람이라고 했다간 자신이 신들의 전쟁을 플레이했다는 걸 들킨다.
사실 들켜도 문제는 없겠지만, 홍예지는 자신이 신들의 전쟁을 해 보지 않은 걸로 알고 있었다.
"아니요. 제 착각이었나 봅니다."
"아..."
그때 주동현이유준을 바라봤다.
"저는 여러분을 믿는게 아닙니다. 이분을 믿는 거지."
"유준 씨를요?"
"맞습니다."
"...이름도 모르고 계셨던 거 아니에요?"
"그것도 맞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믿죠?"
"저분이 활약하는 미래를 몇 분 전에 엿봤으니까요."
"그새 봤다고요?"
"정확히 말하자면, 제 눈앞에 저 절로 펼쳐졌습니다."
"미래 예측에 제한이 있는 거 아니었나요? 아까는 13시간 뭐라고 하지 않았어요?"
"그건 제가 원할 때 원하는 미래를 볼 수 있다는 얘깁니다. 그거와는 상관없이미래 예지가 발동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홍예지가 머리를 박박 긁었다.
"아, 모르겠다. 유준 씨가 결정해 줘요."
"결국 저한테 미루는 겁니까?"
"아니, 난 솔직히 믿기가 힘들어요. 그런데 저 말이 사실이라면 일 이 수월하게 풀리는 거잖아요? 그 리고 애초에 유준 씨가 없으면 다 의미가 없는 거기도 하고.... 그 러니까 대신 결정해 주세요."
주동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유준을 바라봤다.
"당신이 있어야만 이 계획은 성
공할 수 있습니다."
" 왜죠?"
"역병을 퍼뜨린 플레이어가 상당 히 강합니다. 제가 본 미래에서 그 자를 직접 죽인 건 당신이었고 말 이죠."
"좋아요. 그럼 하나만 물어봅시다. 미래 예지는 만능입니까? 게임 처럼 쿨타임 같은 게 있는 대신에 원하는 걸 원하는 대로 볼 수 있는 거예요?"
"그것도 아닙니다. 본다고 해도 무척 한정적입니다. 만약, 역병 플레이어의 위치를 원한다고 하면 제
가 볼 수 있는 건 말 그대로 그가 어디에 서 있느냐 정도인 거죠. 그 리고 다른 정보를 얻기 위해선 며 칠을 또 기다려야 합니다."
구체적인 정보다.
이렇게까지 말해 준다는 건 주동 현도 이 일을 심각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
게다가 그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일단 메신저 번호를 교환하죠."
"...예?"
"만에 하나를 대비하자는 겁니다."
"알겠습니다."
사실은 주동현과 계속 친분을 쌓 기 위함이었다.
천리안과 미래 예지 능력을 가진 게 사실이라면.
그런 이와 친해져서 나쁠 건 없 지 않은가.
'게다가 내가 아는 주동현은 한 번 친해지면 뭐든 다 해 주려고 했어.'
한마디로 그가 필요할 때 이용하겠다는 얘기다.
"아, 그리고 변종 괴물을 더 이
상 죽이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 예?"
주동현의 말에 유준이 반문했다.
그게 무슨 소린가.
죽이지 말라니?
"그들이 달려들면 어쩔 수 없지만... 직접 찾아다니면서 죽이는 일 말입니다. 그걸 안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니까 왜요?"
"역병을 퍼뜨린 플레이어가 죽으면 그들이 원래 모습으로 돌아올 확률이 높잖습니까. 만약, 그렇게
된다면 좀비 드워프들을 굳이 찾아 서 죽일 필요도 없고요."
"...아.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최대한 노력해 보죠."
주동현은 일이 해결된 그 후를 생각하고 말한 것이었다.
드워프 좀비들이 역병의 저주가 사라졌을 때 이미 죽어 있으면 저 주고 뭐고 다 소용이 없다.
그런데 이미 많이 죽여버렸는데.
좀 미안하네.
"언제 출발하면 되겠습니까?"
"지금요."
" 지금요?"
"예. 한시가 급한 상황입니다. 무 력은 갖춰졌으니 당장 움직이는게 좋겠습니다."
"그런데 어디로 가죠? 위치는 13 시간 후에나 알 수 있다면서요."
"제가 마지막 미래 예지를 사용 했을 때가 3일 전입니다."
"그때 어디 있었죠?"
"코루나 왕국입니다."
"...코루나 왕국요?"
"예. 장면으로 잠깐 봤는데 그곳 이 확실했습니다."
"그곳에서 플레이어들이 지원 왔 던 건 알고 있습니까?"
"도착했습니까?"
주동현의 질문에 흥예지가 대답 했다.
"아니요. 대부분 다 죽었어요."
"성문을 부수고 들어왔는데. 괴물 들한테 무기력하게 당했거든요. 오 히려 민폐만 잔뜩 끼쳤죠. 모르고 한 일이겠지만."
"그랬군요. 무사하신 걸 보니 잘 해결됐나 보군요."
"네. 유준 씨 덕분에."
주동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 끝나면 말씀해 주십시오."
"저흰 따로 준비할 게 없어요."
"그럼 바로 가도 되겠습니까?"
"네."
유준 일행에 주동현이 합류했다.
다만, 클린스만은 남기로 했다.
"나는 이 왕국을 지키고 있겠소."
"그러세요. 그게 낫겠네요. 여길 지켜야 할 사람도 한 명은 있어야
하니."
"그동안 고마웠소. 덕분에 몇 차 례나 위기를 벗어났지. 저주도 꼭 해결해 주시길 바라오."
"최선을 다하죠."
클린스만과도 메신저 교환을 했다.
이렇게 아무나 받아 주면 안 되는데.
클린스만은 아무나가 아니니 괜 찮겠지.
* * *
다행히 드워프 좀비들은 성 밖으로 벗어나지 못했다.
유준이 성문을 결계로 막아 놨기 때문에.
결계 범위를 축소하면서 지속 시간이 길어졌기에 안심하고 시타헬 왕국을 떠날 수 있었다.
코루나 왕국에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다들 능력 있는 플레이어들이고
신체 능력이 가장 떨어지는 신지원 도 파라네트가 업고 뛰었다.
주동현의 눈이 이채를 띠었다.
"보기 드문 언데드 소환수군요."
"예."
"뼈의 광채가 남다른 걸 보니 격 도 상당히 높고. 성장형이네요."
"그걸 알 수 있어요?"
"제가 소환수에 원체 관심이 많습니다. 그리고 데스 나이트도 아니고 단순 스켈레톤이 저렇게 몸이 클 리가 없잖습니까. 당연히 성장 형이겠죠."
주동현은 신들의 전쟁에서도 소환수를 모으는 걸 좋아했다.
'내가 아는 주동현이 맞군.'
코루나 왕국에서는 당장 역병에 걸린 플레이어가 보이지 않았다.
홍예지가 고개를 갸웃했다.
"여기 맞아요? 역병에 걸린 것 같지는 않은데."
"여기에 있었다고 꼭 역병을 퍼 뜨리진 않았을 테니까요. 아니면 천천히 진행 중일 수도 있는 거고요."
"음. 일리가 있네요."
"이제 계획이 어떻게 되죠?"
유준이 주동현에게 물었다.
주동현이 입을 열었다.
"간단합니다. 앞으로 남은 11시간을 기다리면서 이곳 코루나 왕국을 돌아다닙니다. 제가 말한 인상 착의를 발견하면 말씀해 주십시오."
"그 플레이어가 이곳에 있을 확 률이 높다는 건가요?"
"아마 그럴 겁니다. 이곳에도 시 타헬 왕국과 마찬가지로 역병을 돌 게 만들려는 것이라면."
그때 홍예지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동현 씨. 궁금한 게 하 나 있어요."
"뭐죠?"
"혹시 신들의 전쟁을 해 보신 적 있나요?"
"뜬금없는 질문이군요."
"그냥 말 그대로 궁금해서요."
"해 봤습니다. 해 본 정도가 아니라 아예 그 게임에 빠져 살았었죠."
" 역시...
"음?"
"유독 사기적인 능력을 받은 사
람들을 보면 전부 신들의 전쟁을 해 봤더라고요. 단순히 우연이 아닌 거 같아서요."
"그렇군요. 그럼 당신도 해 봤겠 군요?"
"네? 그래 보여요?"
"예. 아주 좋은 능력을 갖고 계 신 거 같습니다."
주동현이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홍예지가 눈에 띄게 당황 했다.
"천리안이 사, 상대방 능력까지 볼 수 있는 건 아니죠?"
"예. 그냥 해 본 말입니다. 당신
도 신들의 전쟁을 했던 거 같아서."
"휴, 휴우...
홍예지도 5년 차 플레이어라고 했지.
그녀도 보통 예사롭지 않은 인물 이었다.
신들의 전쟁에 대해서 신나게 떠 들었던 걸 생각하면 무슨 특전을 받긴 받았을 텐데.
일단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한 명씩 흩어지는 건 좀 그렇고, 우리가 다섯 명이니 세 명과 두 명으로 나눕시다."
유준이 말했다.
"아니다. 세 명이 파라네트랑 같이 다니세요. 저는 혼자 다니겠습니다."
"네? 그냥 다 같이 다니면 안 돼요?"
"아뇨. 너무 비효율적입니다."
"그러세요. 제가 판단하기에도 그게 나은 거 같습니다."
주동현이유준의 의견에 동의했다.
"아니... 그 역병 플레이어가 나타나면 유준 씨만 처리할 수 있
는 거 아니에요? 그럼 흩어지는게 의미가 없는 거 아닌가...
"어차피 발견해도 바로 싸울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리고 부르면 바로 달려가겠습니다. 파라네트가 있으니 그 정도 시간을 끄는 건 어 렵지 않을 겁니다."
"...알겠어요."
"여러분은 외곽 쪽을 조사해 주세요. 저는 안쪽으로 가 볼게요."
어차피 주동현이미래 예지를 사용할 때까지 발견한다는 보장도 없다.
사실 못 찾을 확률이 무척 높기도 하고.
역시나 별것 없었다.
뛰어난 신체 능력을 활용해서 코 루나 왕국의 수도까지 가 봤는데 특이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흥예지 : 여기도 마찬가지예요.
역병에 걸린 사람은 한 명도 못 찾았어요.]
[*신유준 : 알겠습니다. 금방 돌 아가겠습니다.]
주동현의 미래 예지 사용 가능 시간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그 전에...'
할 일이 하나 있었다.
그는 얼마 전에 250레벨을 달성 했다.
고로, 레인보우 스티커를 사용하 면 400레벨 무기를 착용할 수 있게
되었다.
유준이 인벤토리를 열었다.
전에 미리 골라 뒀던 아이템을 꺼냈다.
망설이지 않고 그 아이템에 레인 보우 스티커를 부착했다.
[빛무리 초월검]
착용 제한 : Lv. 400 이상
등급 : 신화
공격력 : 29,030
옵션 : 모든 능력치 +18%. 검에
광 속성이 담깁니다. 광 속성을 지 니지 않은 적에게 300%의 추가 대 미지를 입힙니다.
압도적인 공격력.
그가 사용했던 마력검과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마력검의 공격력은 4,290에 불과 했으니까.
수치만 비교해도 거의 7배나 증가한 것이다.
옵션은 특이한 게 없다는게 흠 이지만.
사실 성능이 워낙 좋아서 흠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지.'
전능의 돌.
저번에 푸른 돌레풀을 통해서 만들었던 '전능의 돌'을 새로운 무기에 껴야 했다.
전능의 돌은 신화 등급에 장착했을 때 더 큰 부가 효과를 준다.
'좋아.'
유준은 기대감을 안고 마력검에 장착되어있는 전능의 돌을 빼냈다.
그 후 빛무리 초월검에 장착했다.
스아아-!
환한 빛이 빛무리 초월검에서 뿜어져 나왔다.
'어떤 효과가 붙었으려나.'
빛무리 초월검에는 전능의 돌을 부착해 본 적이 없다.
애초에 전능의 돌의 사용법을 안 건 신들의 전쟁 서버 종료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었으니.
유준은 빛무리 초월검의 정보를 다시 확인했다.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3권 11화
59화
[빛무리 초월검]
착용 제....
...
* 전능의 돌 : 모든 능력치 +12%. 모든 스킬의 위력이 220% 추가로 증가합니다. 공격력이 20% 증가합니다.
"..."
예상했던 것보다 더 올랐다.
전능의 돌은 분명 사기적인 아이템이지만, 이렇게까지 아이템 옵션을 증폭시켜 주진 않는다.
'행운의 반지 덕분이겠지, 뭐.'
좋은 게 좋은 거다.
빛무리 초월검을 손에 쥐었다.
그립감이 좋았다.
전에 쓰던 검보다 검신이 살짝 더 길어서 마음에 들었다.
유준은 검을 들고 일행이 있는 곳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모든 능력치 퍼센트 증가가 어마
어마하게 높아서 검을 들고 달리는 것이 훨씬 빨랐다.
건물 지붕 위로 달리니 누군가와 부딪칠 염려도 없다.
순식간에 수도를 벗어났다.
일행은 코루나 왕국 외곽 근처 식당에서 유준을 기다리고 있었다.
"금방 왔네요?"
홍예지가 웃으며 몸을 벌떡 일으 켰다.
"주동현 씨는 어디 있어요?"
"아, 미래 예지를 쓰려면 상당한 정신력을 소모한다면서 자러 갔어
요. 이따 시간 되면 깨워 달래요."
아무 말없이 서 있던 파라네트 가 유준의 곁으로 다가왔다.
" 왜?"
"네? 뭐가요?"
"아니야."
파라네트가 히죽 웃었다.
소환수가 주인 곁에 있는 건 어 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유준은 앉아서 장비를 점검했다.
'수리할 건 없네.'
장비 수리 키트를 쓸 일은 웬만해서는 없었다.
그가 레벨을 올리면서 장비를 빠 르게 바꿨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렀다.
주동현은 알아서 일어나 식당으로 찾아왔다.
"미래 예지. 바로 사용하겠습니다."
"예. 그런데 조용한 곳으로 가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럴 필요 없습니다. 어차피 사용하면 아무 소리도 안 들리거든요."
"아. 그런데 미래 예지만으로지금 당장 찾을 수 있는 겁니까?"
"예."
주동현이 눈을 감았다.
엄청난 양의 마력이 그의 몸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주동현이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모두가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러나 걱정이 무색하게 주동현은금방 눈을 떴다.
"찾았습니다."
"오, 어디죠?"
유준이 반색했다.
"지금 수도에 있군요."
"코루나 왕국요? 확실해요?"
"예. 확실합니다. 수도에 있는 왕 궁이 보였습니다. 아, 방금 천리안으로지금 위치도 그대로인 걸 확 인했습니다."
"뭘 하고 있었나요?"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생긴 사람이죠?"
"망토를 두르고 있어 얼굴을 확 인할 수 없었습니다. 다만, 상당한
저음의 목소리였습니다. 덩치도 좀 커서 인간은 아닌 거 같더군요."
"무슨 대화를 나눴는데요?"
"그것까진 알 수 없습니다. 천리 안이든 미래 예지든 소리는 안 들 리거든요."
"일단 주동현 씨. 거기로 안내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일행은 수도로 향했다.
유준으로선 왔던 길을 다시 돌아 가는 셈이었다.
"역병은 왜 안 퍼뜨렸을까요?"
홍예지가 말을 꺼냈다.
"글쎄요. 아직 준비 중인가? 아 까 말했듯이 코루나 왕국 소속 인물이라 시타헬 왕국에만 역병을 퍼 뜨린 걸 수도 있죠."
"음. 그래도 좀 이상하긴 하네요. 왜 퍼뜨렸을까요?"
"누군가의 사주를 받아서?"
"받았다면 코루나 왕국과 관련된 사람일까요?"
"그럴 수도 있죠. 확신할 수 있는 건 지금으로선 없습니다."
유준이 그렇게 말하곤 생각에 잠겼다.
'끝내려면 여기에서 끝내야 하는데.'
역병을 퍼뜨리는 플레이어가 다 른 왕국으로 넘어가면.
그때는 또 추격하기 위해 주동현 의 미래 예지 발동 때까지 기다려 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귀찮아지기 전에 역병 플레이어를 처리하고 싶었다.
"동현 씨. 더 빨리 갈 수 없습니까? 전투 때를 대비해서 체력을 비 축...
"아니요. 그럴 필요 없습니다. 싸
우는 건 저 혼자면 되니까."
약간 건방져 보일 수 있는 말이었지만, 그의 말이 맞았다.
오히려 다른 이가 끼면 방해만 될 수 있었다.
"알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달리도록 하죠."
주동현은 마력 능력치에 상당한 투자를 했는데, 육체 능력치도 그에 못지않게 뛰어났다.
만능이라는 얘기였다.
홍예지도 절대 뒤처지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속도를 늘리면 늘리
는 대로 여유롭게 따라왔다.
'능력을 숨기고 있던 건가?'
그런데 굳이 숨기려고 노력하지는 않는다.
일행의 속도가 확연히 보일 정도 로 빨라졌다.
미래 예지를 사용하고 1시간 반.
쉬지 않고 달린 결과 수도에 도 착할 수 있었다.
"왕궁이 보이는 곳이라고 했죠?"
"예. 곧 도착합니다."
햇볕이 들지 않는 어두운 골목 길.
그곳에 역병의 근원이나 다름없는 플레이어가 있었다.
그의 앞에는 덩치가 큰 수상한 인물이 서 있었고.
역병을 퍼뜨린 플레이어는 놀랍 게도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응?"
그때 역병 플레이어가 유준 일행 의 존재를 눈치챘다.
"누구냐?"
"알아서 뭐 하게."
"암흑가 놈들이야?"
"아니, 알아서 뭐 하려고?"
유준이 삐딱한 태도로 말하자, 역병 플레이어가 인상을 찌푸렸다.
"거참."
"네가 역병 퍼뜨린 거 맞지?"
"잘 알고 찾아왔다. 맞아."
"그래? 다행이다. 헛걸음은 안 했네."
그가 차갑게 웃었다.
"저놈들로 시작해야겠군."
"좋지."
역병 플레이어는 덩치가 큰 의문 의 인물과 한마디씩 주고받고는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의 주위에서 커다란 화염구가 다섯 개 생성되었다.
화르륵!
화염구는 곧바로 유준을 향해 쏘 아졌다.
유준은 검을 몇 번 휘둘러 화염 구를 전부 튕겨 냈다.
"마법을 막아?"
역병 플레이어가 눈을 크게 떴다.
저건 단순히 스킬이 있다고해서 가능한 게 아니었다.
마력이 응집된 부분을 타격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응집된 부분이라는게 무척 작아서 맞히는게 여간 어려 운 것이 아니었다.
애초에 응집된 부분을 찾는 것도 거의 불가능한 일이고.
"실력 좀 있는 놈이군."
역병 플레이어가 비소를 지었다.
"좋아. '매개체'로 만들기 딱 좋
은 놈이야. 네가 상대해."
그러자, 망토를 뒤집어쓴 자가 앞으로 나섰다.
"저건 우리가 상대할까요?"
홍예지가 물었다.
유준이 고개를 저었다.
"둘 다 제가 상대할게요. 위험하니까 뒤로 물러나 있어요."
"네. 알겠어요."
유준의 실력을 잘 아는 홍예지는 군말없이 움직였다.
' 집중해야겠군.'
적 두 명의 무력이 심상치 않아 보였다.
'한 명은 역병, 나머지 한 명은 덩치.'
역병과 덩치 듀오.
그 둘을 상대하기 위해 유준이 땅을 박차고 뛰쳐나갔다.
유준은 순식간에 덩치의 앞까지 쇄도했다.
덩치가 발도하며 유준을 베려고 했다.
서걱!
그러나 유준의 검격은 그가 생각
하는 것보다 더 빨랐다.
덩치의 검이 앞으로 뻗어지기도 전에 유준의 검이 덩치의 상반신을 베고 지나간 것이다.
덩치의 상반신과 하반신이 분리 되었다.
"크아아악!"
그러나 덩치는 죽지 않았다.
'뭐지? 언데드인가?'
그게 아니면 반으로 잘리고도 죽 지 않는 것이 설명되지 않는다.
유준이 뒤로 쭉 물러났다.
그가 있던 자리에 역병의 마법이
꽂혔다.
이번에도 화염 마법이었다.
콰아앙!
"시투람! 뭐 해?"
"미, 미안. 저 녀석 빠르네."
덩치의 상반신이 다시 하반신에 붙었다.
베었던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재생력이 아무리 높아도 저게 가능한 건가?'
두 눈으로 보고도 믿기 어려운 광경이었다.
심지어 포션을 사용하지도 않았다.
'신기하네.'
그러나 감상평은 그게 다였다.
완벽하게 회복한 덩치가 유준에게 달려들었다.
놈의 공격이 보였다.
느렸고, 정직했다.
또한, 검에 실린 힘이 크다고 할 수 없었다.
유준은 위에서 아래로.
검을 쥔 손을 움직였다.
슥!
한차례의 섬광.
말 그대로 빛이 번쩍이는 듯했다.
덩치는 이번엔 머리부터 발끝까지 정확히 이등분되었다.
아까와 비슷한 상황.
그러나 아까처럼 금방 육체가 회 복되지는 않았다.
머리가 잘렸기 때문일까.
한동안 재생할 낌새가 보이지 않았다.
유준은 '역병'을 바라봤다.
역병은 초조한 얼굴이었다.
"자, 잠깐. 할 말이 있다. 내가 왜 저주... 역병을 퍼뜨리는지 궁 금하지 않은가?"
"왜지?"
순수하게 궁금했다.
역병이 협상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입꼬리를 올렸다.
"얼마 전에 코루나 왕국과 시타 헬 왕국 간의 무역 협정에 문제가 생겼다. 나는 무역 협상 카드였지. 시타헬 왕국이 무역 협정을 이어 나가지 않으면 협박할 용도로 쓰는 "
유준은 잠자코 그의 얘기를 듣기 만 했다.
눈치를 살피던 역병이 다시 입을 열었다.
"시타헬 왕국이 그렇게 된 것을 보면 상황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대 충 짐작이 가지? ㅎㅎ. 벌을 받은 거야."
"코루나 왕국이 사주했다?"
"그렇지, 그렇지. 나도 그놈들 갑 질하는게 맘에 안 들기도 했고 말 이야."
"정확히 누가 사주했지?"
"그거까지 알려 주는 건 너무 다 까발리는 건데...
유준은 구태여 묻지 않았다.
검을 든 채로 천천히 역병에게 다가갈 뿐.
"아, 알았다. 다 말하지. 코루나 왕국의 후작 '루카스'다. 그가 나에게 직접 이 일을 부탁했지. 그리고 루카스는 국왕파다. 모든 건 코루 나 국왕의 뜻이겠지."
"손해가 막심한 거 아닌가? 드워 프들의 나라를 멸망시킨다면. 심지 어 지리도 가깝잖아."
"그렇지. 아깝지. 근데 시타헬 왕 국 주변 나라가 어디 한둘인가? 남 줄 바엔 없애는게 낫다는 판단을 한 거겠지."
"아, 그런 거였구나."
유준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시타헬 왕국에 역병이 돌게 된 사연은 다 알게 되었다.
일행도 잘 들었을 테고.
"솔직히 말했다. 살려 주는 거. 가능한가?"
"역병을 없애는게 가능한가?"
"...가, 가능하지! 가능하고말고!"
역병이 당황한 얼굴로 소리쳤다.
"방법이 뭐지?"
"...내가 스킬 캔슬을 하면 된다."
"내가 널 죽이는 것도 방법 아닌가?"
"어, 어림도 없는 소리! 그랬다간 상황만 더 악화될 걸!"
유준이 쾌속 전진(A) 스킬을 사용했다.
삽시간에 역병의 눈앞으로 이동한 유준.
처음으로 스킬을 쓴 것이다.
역병은 당연히 반응하지 못했다.
"아, 안...!"
그렇게 말한 유준은 일말의 망설 임도없이 검을 휘둘렀다.
서걱!
역병의 목이 잘려 나갔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잊힌 종족 '어둠의 근원'을 쓰러 뜨렸습니다!]
[불가능한 업적!]
[전설 칭호 '어둠을 베는 자'를 획득합니다.]
['어둠의 근원'을 획득합니다.]
"응?"
이런 아이템이 있었나?
어둠의 근원을 쓰러뜨리고 어둠
의 근원을 얻다니?
'신들의 전쟁 때 저런 놈을 본 적이 없는데...
인간처럼 생겨서 인간이거나 마 족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종족 이름 자체가 어둠의 근원이 라고 한다.
영문을 모르겠지만, 하여튼 역병 그 자체를 쓰러뜨렸다.
유준이 아까 쓰러뜨렸던 '덩치'도 재생하다 말고 갑자기 멈춰 버렸다.
'어둠의 근원을 죽여서?'
그때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주동 현이 달려왔다.
"끝난 겁니까?"
"예."
"역시... 예지대로 흘러갔군요."
"당신이 봤던 예지가 딱 지금의 상황이었어요?"
"맞습니다. 장면까지 똑같아요."
"그 미래는 절대 빗나가지 않는 겁니까?"
"미래를 들은 당신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갈렸을 겁니다. 만약 당신이제 부탁을 거절했으면
빗나갔겠죠. 물론, 이것도 확실한 건 아닙니다."
"머리 아프네요."
"확정된 미래는 없으니까요. 어 디까지나 몇 개의 가능성 중 한 개를 봤을 뿐이고."
"다 말해 주셔도 되는 겁니까?"
"은인이니까요. 이 정도 말하는 것 쯤은 괜찮습니다. 그리고 다음에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 연락하십시오. 그게 무슨 일이든 도와 드리겠습니다."
주동현이 처음으로 환하게 웃으 며 말했다.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3권 12화
60 화
주동현의 도움이라.
미래 예지에 천리안까지 가진 그는 유능하다고 볼 수 있었다.
아니, 무한의 탑에서 가장 쓸모 있는 플레이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운이 좋네.'
유준은 이번에 얻은 전설 칭호의 효과도 확인했다.
어둠을 베는 자(전설) - 암 속성을 지닌 적에게 80%의 추가 대미 지를 입힙니다. 모든 능력치 5% 증가.
전설 칭호답게 효과는 당연히 마음에 들었다.
"주동현 씨."
"예."
"혹막이 코루나 왕국에 있는 거 같더군요."
"들었습니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코루나 왕국은 큽니다. 지금 당 장 무언가를 도모할 수는 없지요."
"지금 당장은 아니라는 건... 길게 보신다는 겁니까?"
유준의 질문에 주동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홍예지가 입을 열었다.
"동현 씨. 아버지한테 한번 가 주시면 안 돼요?"
주동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아버지와 관련된 얘기만 나오면 저런 얼굴이었다.
"가, 강요는 안 할게요. 하지만 제가 아주 거액을 받고 의뢰를 하겠다고 한 거라서 제 처지가 조금 난처해질 수도...
홍예지가 간절하게 부탁했다.
"알겠습니다. 갈게요. 하지만 당 장은 안 됩니다. 가더라도 크리스 티나의 상태를 확인한 뒤입니다."
"물론이죠! 약속 어길 사람으로 보이진 않으니까, 저 믿을게요?"
"예."
홍예지가 함박웃음을 짓는다.
"도대체 얼마를 받길래 그럽니
까?"
"유준 씨한테도 나눠 줄게요. 지 원이 너한테도 조금... 줄게."
"아냐, 난 됐어. 한 것도 별로 없는데, 뭘."
"아니야. 그래도 목숨 걸고 여기 까지 같이 와 줬는데."
홍예지가 신지원의 어깨를 토닥 토닥 두들겼다.
유준이 껴들었다.
"그러니까 얼만데요."
"1억 포인트요."
"...1억이라."
자신의 첫 경매 아이템보다 훨씬 낮은 수치다.
그렇다고 1억 포인트가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었다.
"저는 포인트 줄 필요 없어요."
"네? 정말 그래도 되겠어요?"
홍예지의 얼굴에 환희가 섞였다.
억지로 감추려 하지만, 유준의 눈에는 그녀가 좋아하는 것이 뻔히 보였다.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뭐, 뭐죠?"
"스킬 쓰는 것 좀 보여 주면 안돼요?"
"스...킬요? 그건 갑자기 왜요?"
"궁금해서요. 예지 씨가 한 번도 스킬 쓰는 걸 본 적이 없기도 하고."
홍예지가 머뭇거렸다.
포인트를 나누긴 싫고, 스킬을 보여 주는 것도 꺼려하는 듯했다.
"좋아요. 스킬 보여 주는 건 어 렵지 않죠."
"대표 스킬로 보여 주세요."
"어차피 저 스킬 하나밖에 없어요. 아니, 정확히는 한 개가 아닌데
두 개를 연달아서 사용해야 효과가 좋죠."
"그래요?"
"네."
거짓말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홍예지 플레이어에게 약점 노출 이 되었습니다!]
[홍예지 플레이어에게 약점 공략을 당했습니다!]
[당신의 약점 부위를 향한 모든 공격이 세 배 강력한 피해를 줍니
"오, 이거예요?"
"네."
"약점을 찾는 능력이라... 좋은 스킬이 네요."
"최상위 랭커들이 보스 레이드 뛸 때마다 항상 저를 불러요. 돈도 많이 주더라고요."
"혹시 제가 불러도 옵니까?"
"네! 물론이죠. 돈만 주시면...
홍예지가 간사하게 웃었다.
그러나 몸집이 작고 아담해서 그 런지 마냥 밉지는 않았다.
"뭐, 어렵지 않네요. 필요하면 부 르겠습니다."
"네〜. 그런데 유준 씨는 돈도 많 으신가요? 포인트도 안 받는다고 하시고...
"많습니다."
"그럴 거 같았어요."
"왜 그렇게 생각했죠?"
"강하잖아요! 강하면 돈은 알아서 따라오거든요. 따로 사업하는 사람 들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사업요?"
"길드 운영이나 상단 같은 거 관
리하는 분들 있어요. 그런 분들은 진짜 천문학적인 금액을 다루죠."
"포인트 그렇게 많이 모아서 어 디에 씁니까?"
"돈이 돈을 부른다고. 포인트를 더 쌓는 거죠. 블랙마켓에서 좋은 아이템을 구할 수도 있고 나중에 시스템이 주관하는 이벤트에서 무 언가를 살 수도 있겠죠."
" 오호...."
확실히 그런 식으로 포인트를 쓸 어 모으면 다른 이들보다 몇 발짝은 더 앞서 나갈 수 있겠지.
무한의 탑, 거주 구역 대륙은 빈
부 격차가 지구보다도 심하다고 했다.
"시타헬 왕국으로 가 봅시다. 역 병이 어떻게 됐는지 확인해야죠."
일행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타헬 왕국에는 한나절 정도 걸 려서 도착했다.
일행이 전력으로 달렸기에 가능 한 일이었다.
"...와."
"진짜 돌아왔네요?"
시타헬 왕국 곳곳에 드워프들이 쓰러져 있었다.
역병으로 인해 변한 괴물의 모습 이 아닌 원래의 모습으로.
홍예지가 안도하며 입을 열었다.
"다행이다.... 우리가 그동안 헛 짓거리를 한 게 아니었네요."
옆을 보니, 주동현은 감격에 찬 얼굴이다.
"저, 저 먼저 가 보겠습니다."
주동현은 그 말만 남기고 성당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유준은 주변을 쭉 둘러봤다.
"이미 죽은 드워프 좀비들은 어 떻게 못 하나 보군요."
"그런 거 같아요."
"역병을 없앨 방법을 좀 더 빨리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지금 이렇게 된 것도 엄청 잘한 거예요. 사실 유준 혼자 일을 해결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동현 씨도 한몫했고. 고생하셨어요."
사실 홍예지와 신지원은 구경만 했다.
드워프 좀비들에게 둘러싸였을 때나 조금 싸웠지.
"지원이 너는 어디 갈 거야?"
"으음... 던전 공략하지 않을까. 파티 구해서."
"조심해. 요즘 강도짓 하는 플레 이어들 많다더라."
"..."
"유준 씨는 어디 갈 거예요?"
"음. 저는 생각 좀 해 보고요. 아 직 못 정했습니다."
"그럼 여기서 해산인가요?"
"예."
"메신저로 연락하시면 바로 칼답 장 가능하니까! 망설이지 말고 연
락 주세요. 알았죠?"
"예예."
"포인트를 준비하는 것도 잊지 마시고!"
유준이 피식 웃었다.
"나중에 봅시다."
일행과 헤어진 유준은 곧바로 코
루나 왕국으로 향했다.
홍예지에게는 거짓말을 했는데, 그는 사실 할 일이 있었다.
바로 역병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는 것.
그때 '역병'이 말했던 걸 전부 믿 지는 않았다.
아니, 역병의 말이 사실이더라도 녀석이 아는게 다가 아닐 수도 있다.
그래서 좀 더 알아보고자 하는 것이다.
'내 이익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인 거 같지만... 아무래도
너무 찝찝하단 말이지.'
아주 거대한 혹막이 있을 것만 같았다.
단순히 무역 협정이 틀어졌다는 이유만으로 역병을 퍼뜨렸다는 건.
'뭐, 그럴 수도 있겠지. 근데 그 이유 하나만은 아닐 거 같은데.'
그는 원래 궁금한 건 못 참는 성 격이다.
'코루나 왕국에 대해서 조사도 했고. 지금 내 무력도 충분해.'
유준은 자신이 있었다.
'역병'과 '덩치'는 상급 마족과
비슷한 무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녀석들이 자신의 공격을 한 번도 버티지 못했다.
심지어 그는 전력을 다하지도 않았다.
그 어떤 위험한 일에 휘말려도 그곳을 벗어날 방법도 있다.
그렇다면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코루나 왕국의 수도에 도착했다.
유준은 인벤토리에서 얼굴 전체를 가리는 가면과 두껍고 큰 망토를 꺼냈다.
그의 정체를 숨겨 줄 물건들이었다.
망토와 가면을 착용한 유준은 왕 궁으로 갔다.
왕궁은 시타헬 왕국의 것과 비교 할 수없이 컸다.
확실히 양국은 국력 차이가 있었다.
'시타헬 왕국은 드워프들의 나라 라서 약간 특별한 위치긴 해도 소 국에 가까운 왕국이라 했지.'
반면, 코루나 왕국은 대국이다.
온갖 종족이 모여 살고 있으며 군사력도 있고 돈도 많은 나라였다.
이곳에 역병을 퍼뜨리도록 사주 한 인물이 있다.
'어둠의 근원... 들어 본 적 없는 이름이었어.'
신들의 전쟁을 오래 플레이했지만, 유준으로서도 어둠의 근원이 뭔지 잘 몰랐다.
지금 인벤토리에 있는 '어둠의 근원'의 사용법도 모른다.
아이템 정보를 확인하는 것도 시 스템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나오고.
어차피 깊게 파고들 생각은 없었다.
만약, 상황이 틀어지면 그냥 도 망갈 생각도 하고 있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고.
'후작 루카스부터 찾아볼까.'
그가 직접 역병에게 사주했다고 했다.
후작을 후벼 파면 뭔가 나오긴 하겠지.
이제 왕국에 들어가야 하는데.
그냥은 못 간다.
'내 레벨이 250을 넘었으니까
유준은 인벤토리에서 아이템 하나를 더 꺼냈다.
[투명 반지]
착용 제한 : Lv. 300 이상
등급 : 전설
옵션 : 몸을 투명하게 만듭니다. 대량의 마력을 지속적으로 소모합니다. 민첩 능력치에 큰 영향을 받습니다.
상당히 유용한 아이템이다.
게임에서 잠복 임무를 할 때 애 용했었지.
레인보우 스티커를 사용하기엔 아까워서 지금까지 쓰지 않았지만, 레벨이 250이 넘은 지금은 아무런 대가없이 착용할 수 있다.
유준은 투명 반지를 끼고 왕궁 안으로 잠입했다.
왕궁을 지키는 그 어떤 플레이어 도 유준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
투명 반지 덕분에 왕궁 안에 무 혈입성한 그는 대회의실부터 찾았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코루나 왕국의 내로라하는 귀족들이 지금 왕궁에 모여 있다고 한다.
시타헬 왕국에 역병이 돌면서 그 게 마냥 남 일이 아니기에 대책 회 의를 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대책 회의는 며칠째 진전 이 없는 상황이다.
유준은 왕궁 내부가 넓어서 대회 의실을 찾는데 애를 먹었다.
그래도 결국, 대회의실이 어딘지 찾아낼 수 있었다.
'안에 루카스 후작이 있나?'
아직 자신을 눈치챈 자는 없다.
그렇다고 안에 들어가면 들킬 확률이 높다.
뛰어난 플레이어들이 많이 모여 있기에 최대한 조심해야 했다.
유준은 회의실 문에 귀를 기울였다.
"통탄할 일이긴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우리라도 방비를 잘해야지."
"그러니까 그 방비를 어떻게 할 거냐는 말입니다."
"어차피 여기까지 역병이 퍼지진 않을 겁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걸 어떻게 확신하지, 루카스 후작? 역병의 전염력은 그대도 잘 알고 있을 텐데?"
"알지만... 지금까지 멀쩡하잖습니까? 시타헬 왕국이 잘 봉쇄하기도 했고요."
"지원 병력들 소식 못 들었는가? 괴물들의 수준이 상식의 범주를 뛰 어넘는다더군."
"그것도 통제 가능한 수준입니다. 우린 시타헬 왕국과 같은 작은 나라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더 문제란 말일세. 작은 나라가 아니기에 역병이 여기까지 흘러오는 순간, 완전 끝장이 나겠지. 회복 불능이야."
루카스 후작이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정 그렇게 불안하시면 잠시 외 부인의 출입을 막죠."
"봉쇄하자는 겐가?"
"예. 그것만큼 확실한 방법이 더 있습니까?"
"괜히 시타헬 왕국처럼 되는 것 아닌가? 역병이 만약 내부에서 퍼 지기라도 한다면...
"그건 염려 마시지요. 그럴 일은 절대 없을 테니."
"루카스 후작. 혹시..."
"자, 자. 오늘 회의는 여기까지 하지."
"예, 예?! 국왕 전하. 아직 제대 로 된 대책이...
"그건 내일 생각하세. 오늘은 여 기까지 하게."
"...알겠습니다."
그렇게 회의가 끝이 났다.
회의장 밖에서 그 대화를 엿듣던 유준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역병이 완전히 거짓말을 하진 않았군.'
대회의실에서 귀족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유준은 거리를 벌리며 나오는 인물들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쥐새끼처럼 생 긴 귀족 한 명이 보였다.
아니, 실제로 설치류과 수인족인 듯했다.
'루카스 후작.'
기다림은 끝이 났다.
유준은 비서와 함께 움직이는 루 카스 후작의 뒤를 쫓았다.
내 인벤토리가 이상하다
- 3권 13화
61 화
루카스 후작은 왕궁 근처에 별장을 가지고 있었다.
'귀족들이 당분간은 왕궁 근처에 머물러 있을 테니까... 잘됐군.'
유준은 후작을 따라서 저택에 같이 들어갔다.
그때까지도 후작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루카스 후작이 비서와 헤어지고 방에 들어갔다.
방문이 닫히기 전에 유준도 재빨 리 그 안에 발을 들여놓았다.
루카스 후작은 방에 들어오자마 자 인벤토리에서 영상구를 하나 꺼 냈다.
그리고 마력을 주입했다.
영상구가 옅은 빛을 발하기 시작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영상에는 한 국인으로 보이는 플레이어 한 명이 자리 잡았다.
흑발의 젊고 잘생긴 남자였다.
' 응?'
유준이 고개를 갸웃했다.
한국인이 보이는 건 그렇다 치고.
요즘 영상구를 쓸 일이 있나?
보통 플레이어들은 연락을 주고 받을 때 메신저를 사용했다.
'일단 보자.'
유준은 눈앞의 광경에 집중했다.
루카스 후작은 영상 속의 남자에게 예를 표했다.
-회의는 어떻게 됐지?
"말씀하신 대로 시간을 끌고 있습니다."
-다들 의심하는 눈치던가?
"예. 하지만 국왕 전하가 제때 도와주셔서 잘 넘어갔습니다."
-루카스.
"예. 말씀하십시오."
-지금 상황이 좋지 않다.
루카스 후작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어둠의 근원이 당했어.
".…"예?"
-그로 인해 시타헬 왕국에 퍼졌던 역병이 흔적도없이 사라졌고.
"아니, 어둠의 근원이 누구한테 당했다는 말입니까?"
-모른다. 다만, 녀석과의 연결이 끊어졌어. 그래서 시타헬 왕국 쪽을 확인해 봤던 거다.
"...설마 이 일을 눈치챈 자가 있는 겁니까?"
-글쎄. 나도 모르지.
"그럼 이번 일은 어찌 되는 거죠?"
-어둠의 근원을 죽인 자를 찾아 야지.
"단서는 있습니까?"
-시타헬 왕국과 관련된 자다.
"...짐작되는 이가 있나 보군요."
-그래. 주강윤의 아들이 아닌가 하고 추측하고 있다.
"주강윤의 아들이면 주동현요? 그자가 왜 이 일에...? 아니, 애 초에 주강윤의 아들이라면 지금 제구에 있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아니. 꽤 오래전에 시타헬 왕국에 와 있었던 모양이다. 거기서 드 워프 애인도 만든 모양이더군. 나 도 방금 알았다.
"드, 드워프 애인? 주동현 그자 제정신입니까?"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녀석이 우리의 일을 방해했다는 것이 중요 하지.
"하지만 주동현은... 주강윤의 아들이 아닙니까."
-그래서?
"주동현에게 무슨 짓을 한다면 그 아비가 당연히 알아채지 않을까요?"
-내가 고작 주강윤을 두려워할 사람으로 보이는가?
"무, 물론 아닙니다!"
루카스 후작이 영상 속의 남자에게 쩔쩔매는 모습이 신기했다.
'대국의 후작이 저럴 정도면...
저 한국인처럼 보이는 플레이어 의 정체가 궁금했다.
-주동현을 데려와라. 기한은 이 틀 주지.
"알겠습니다! 어디로 데려가면 되겠습니까?"
-그때와 같은 장소다.
"예. 알겠습니다. 금방 처리하죠."
-믿고 맡기지.
그렇게 영상이 끊어졌다.
"후우... 간 떨려 죽는 줄 알았네."
루카스 후작이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그는 혼잣말을 더 하지는 않았다.
다만, 이제는 허공을 바라보며 영상구가 아닌 메신저로 연락을 나 누기 시작했다.
아마, 주동현을 데려오기 위해 명령을 내리고 있는게 아닐까.
루카스 후작이 방을 나서자 비서
가 따라붙었다.
"어딜 가십니까?"
"오늘 안에 해결해야 할 일이 있다."
"내일 회의...
"그건 알고 있어."
"예."
유준은 조용히 루카스 후작을 따라갔다.
루카스는 저택에서 여섯 명 정도 되는 플레이어들과 합류하더니 저 택 밖으로 나섰다.
플레이어들은 전부 수인족이었다.
그중 한 명이 슬며시 입을 열었다.
"후작님. 그나저나 사실입니까?"
"뭐 말인가?"
"그, 일이 실패한 거 말입니다."
"사실이다."
"허.... 이 일을 성공시키려고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는데."
"자네들이 한 건 크게 없지."
"크흠. 그건 맞긴 합니다만."
"하여튼. 빨리 진행해야 한다. 우 리가 책임을 물 수는 없으니."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그들은 빠르게 시타헬 왕국으로 이동했다.
유준은 그들을 뒤쫓으며 생각에 잠겼다.
'이들을 계속 따라다니면 최종 흑막이 누군지 곧 알게 되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