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 반어인 변이화 1
"소용없다니? 그게 무슨 소립니까?"
우두머리는 이해가 안 간다는 얼굴로 말했다.
"독성을 제거한 뒤에 힐을 사용하는 건 치료법의 기본입니다."
"그게 기본이긴 하죠...."
이 남자는 힐 만능주의자들과 달리 힐 쓰는 법을 제대로 알고 있었다.
'힐로 치료할 수 없는 독이나 상태 이상은 약이나 다른 치료법을 써서 제거하고, 그 뒤에 힐을 사용하는 게 정석.'
남자의 말대로 어인의 피를 완전히 제거했다면 힐을 사용해서 상처를 회복할 수 있다.
하지만 독성이 제거되지 않은 상태라면?"
"문제는... 이 환자의 팔을 자세히 보세요."
강승현은 병사의 팔을 가리키며 말했다.
피를 전부 닦아냈음에도 불구하고 피부는 계속해서 파랗게 변색되어갔다.
"독이 제거됐다면 변색이 멈춰야 합니다. 하지만 멈추기는커녕 오히려 더 번져가고 있죠."
이 상태에서 힐을 써봤자 증상이 뒤로 미뤄질 뿐이다. 그리고 더 악화된 상태로 다시 나타난다.
"...피부에 묻은 피는 전부 닦아냈는데."
우두머리는 당황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의 말대로 팔에 묻은 피는 전부 지워진 상태다.
"그쪽 말대로 피부에 묻은 어인의 피는 천을 이용해 닦아내면 됩니다. 잘 닦아서 햇볕에 말리기만 하면 되니까 그리 위험하진 않죠."
하지만 피부에 상처가 있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병사의 팔에는 아까 싸움에서 생긴 상처가 남아있었다.
"사, 상처...!"
"만약 어인의 피가 상처를 통해 몸속으로 들어가게 되면...."
강승현은 호숫가로 다가가더니 물 한 컵을 떠 왔다.
촤악!
그리고 환자의 팔에 호숫물을 뿌렸다. 그러자 어인한테 물린 부위에서 비늘 같은 게 돋아나기 시작했다.
환자는 자신의 팔을 바라보며 비명을 질렀다.
"흐...흐아악!"
"이, 이건!"
새파란 피부에 생선 같은 비늘까지. 병사의 팔은 누가 봐도 어인의 팔처럼 변한 상태였다.
"반어인 변이화 증상이 시작됩니다."
반어인 변이화.
인간이 어인의 피에 감염되었을 때, 신체가 어인처럼 변해버리는 질병이다.
처음에는 상처 주변만 변이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전신이 어인의 육체로 변한다.
최후에는 이성을 잃고 완전한 몬스터가 되어버린다.
"그렇게 어인으로 변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공격해 감염시키면 또 다른 어인이 탄생하는 거죠."
"이, 이럴 수가...."
"그럼 저는... 이제 괴물이 되는 겁니까?"
병사가 절망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도저히 인간의 팔이라고 볼 수 없는 자신의 끔찍한 오른팔을 보면서.
"아뇨, 나을 수 있습니다."
시기를 놓치면 희망이 없지만, 초중기 증상일 때는 치료가 가능하다.
"지금 환자분의 상태는 반어인 변이화 초기."
초기 증상일 때는 약만 투여하면 신체를 바로 되돌릴 수 있다.
"이때는 치료제만 있으면 후유증 없이 나으실 수 있습니다."
"치료제요?"
"어인 서식지 주변 도시라면 반어인 치료제 하나쯤은 갖추고 있겠죠. 빨리 카마르 관청으로 가서...."
"그...그것이...."
우두머리 병사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카마르는 지금까지 수십, 수백 년간 마탑의 보호를 받아왔습니다."
피츠타 호수는 대표적인 어인 서식지 중 하나다. 그래서 마탑은 결계를 이용해 어인들이 물 위로 올라올 일이 없도록 막았다.
"가끔 출몰하는 어인들과 전투하다 보면 종종 어인의 피가 묻는 일이 있었기 때문에 대처법은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마법사들이 걸어준 보호 마법 덕분에 어인에게 물린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어인에게 물릴 일은 없다 보니, 그에 대한 대처법은 듣지 못했습니다."
우두머리가 착잡한 얼굴로 탄식했다.
지금까지 카마르는 어인과의 전투가 거의 없었고, 어인의 피에 오염될 일이 없었다.
당연히 치료제가 있을 리 없다.
"피츠타 호수 주변 마을이라면 치료제가 있을 수도 있지만...."
엄청난 수의 몬스터가 몰려온 지금, 다른 마을로 갈 수 있을 리가 없다.
뭣보다 약이 있을 거라는 확신도 없다.
"지금은 다른 마을도 어인의 습격을 받고 있을 확률이 높겠죠."
"혹시 팔을 자른다면...."
반어인 변이화 증상을 보이는 병사가 손을 떨면서 말했다.
"모든 변이화 계열 질병이 다 그렇지만, 사람에 따라 진행 속도가 다릅니다."
같은 병이어도 어떤 사람은 매우 느리게 변하고, 어떤 사람은 매우 빠르게 변한다.
이 병사는 감염 범위가 넓고 변이화 진행 속도가 너무 빨라서, 팔을 자른다고 해도 소용없다.
"안타깝지만 답이 없네요."
"어인으로 변할 거라면...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습니다."
병사가 칼을 집어 들고 말했다. 방법이 없다면 인간으로 명예롭게 죽겠다면서.
주변 사람들은 그를 말리지 못하고 고개를 돌리거나 얼굴을 감쌌다.
탁!
그때, 강승현이 병사의 팔을 붙잡았다.
"답이 없다고 했지, 치료제가 없다곤 안 했는데요."
"네...?"
병사가 놀란 얼굴로 중얼거렸다.
"까짓거, 없으면 만들면 됩니다."
-반어인 변이화의 원인은 어인의 피.
어인의 피가 가진 독성을 제거하면 바로 나을 수 있다.
"반어인 치료제는 생각보다 만들기 까다롭긴 하지만, 일단 재료만 충분하면 못 만들 건 없죠."
반어인 치료제의 핵심은 어인의 잔해.
즉, 어인의 신체 부위가 재료다.
"어인의 피를 해독하기 위해선 어인의 간을 재료로 해독제를 제조해야 합니다."
"어인의 간?"
"네. 나머지 재료는 가지고 있으니, 그것만 있으면 됩니다."
재료를 조합해 해독제를 만들고, 만들어진 해독제를 써서 치료제를 만든다.
참 쉽고 간단한 방법이다.
"아까 건져낸 어인의 사체를 가져와라! 간을 적출해야 한다!"
"알겠습니다!"
우두머리의 명령을 들은 병사들이 서둘러 어인의 사체를 끌고 왔다.
푸욱!
병사 하나가 어인의 몸에 칼을 꽂아 배를 가르기 시작했다.
"윽!"
"엄청난 악취...!"
하지만 죽은 생선이 다 그렇듯, 어인의 내장은 악취와 함께 부패한 상태였다.
"말하는 걸 깜빡했는데, 어인은 물 밖에서 죽으면 부패 속도가 더 빨라집니다."
장기는 뼈와 피부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썩는다. 어인의 간은 벌써 형태를 알아볼 수 없었다.
"반어인 치료제를 만들기 위해선 어인의 신선한 간이 필요하죠."
어인의 잔해를 약재로 쓰기 위해선 신선도를 유지하는 게 중요했다.
시간이 지나면 금방 썩어버리니까.
"그, 그럼 이건 쓸 수 없는 겁니까?"
"이걸로 치료제를 만들 수는 없지만."
강승현은 단검을 꺼내 어인의 부패한 간을 뜯어냈다.
"증상을 늦추는 완화제로는 쓸 수 있습니다."
강승현은 어인의 간과 약초, 각종 포션을 섞기 시작했다.
"우선은 이걸로 증상을 늦추고, 그동안 신선한 재료를 구하면 됩니다."
"신선한 재료를 구한다구요?"
강승현이 피츠타 호수를 가리키며 말했다.
"호수 안에 잔뜩 있잖아요."
지금도 호수 안에는 싱싱한 어인들이 득실거린다. 치료제를 만들려면 간을 뜯어오면 된다.
"보통은 물속에서 간을 적출하자마자 마력으로 감싸서 부패를 늦춥니다. 그러면 신선한 간을 확보할 수 있죠."
"하지만 호수 안으로 들어가는 건 너무 위험합니다."
지금은 호수 깊은 곳에 머물고 있지만, 호수 근처에서 마력을 사용하면 냄새를 맡고 귀신같이 몰려올 것이다.
"어인은 지상으로 나오면 능력치가 떨어지지만, 물속에서는 엄청난 스피드와 괴력을 발휘하는 수중 생물 몬스터."
그러니 놈들을 물속에서 잡을 거라면 들키지 않게 암살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물속에서 숨을 쉬기 위해 수중 호흡 마법을 사용하면 어인에게 들키고, 놈들을 공격하기 위해 스킬을 사용해도 어인에게 들키게 된다.
"결계가 사라진 지금 호수에서 스킬을 썼다간 어인 수십 마리가 달려들 겁니다."
결국, 어인을 잡기 위해선 수중 호흡 마법과 마력을 사용하는 스킬 없이 놈들을 상대해야 한다.
로그의 은신 스킬이라면 해볼 만하겠지만, 정작 로그는 수중전에 취약하다.
"물 위에서 마주할 때도 쓰러트리기 쉽지 않은 상대였습니다. 물속에서 스킬 없이 싸웠다간... 전멸하겠죠."
우두머리가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한탄했다.
병사를 구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한 명을 구하기 위해 수십 명을 희생할 순 없다.
"수십 명이 갈 필요 있나요?"
"예?"
"저 혼자서도 충분합니다."
강승현은 인벤토리에서 휴식 결계 양탄자를 꺼냈다. 양탄자를 바닥에 깔고 그 위에 병사를 눕히자 마법진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프리아의 석궁을 소환합니다.]
'양탄자 위에 눕혔으니 변이 진행 속도가 늦춰지겠지.'
강승현은 석궁을 소환한 다음, 병사의 팔에 겨누었다.
[프리아의 인연 주머니]
[반어인 치료제 실패작 화살을 생성합니다.]
어인의 부패한 간을 사용했더니 실패작이 돼버린 반어인 치료제.
이걸로 병을 치료할 순 없지만, 감염 진행을 조금이라도 늦추는 건 가능하다.
팍, 팍!
날아간 화살이 병사의 팔에 꽂혔다.
화살이 팔에 꽂힌 순간, 팔에 돋아난 비늘이 살짝 녹아내리며 시퍼렇게 변한 피부가 살짝 연해졌다.
"일단 실패작을 써서 진행을 늦추긴 했지만, 한시라도 빨리 제대로 된 치료제를 만들어야 합니다."
강승현은 호수가를 바라보며 말했다.
"제가 가서 어인의 간을 뜯어오겠습니다."
강승현은 병사의 병을 고치기 위해 어인의 간을 구하러 물속으로 향할 생각이다.
별주부가 용왕의 병을 고치기 위해 토끼의 간을 구하러 간 육지로 올라간 것처럼.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우두머리 병사가 불안한 눈으로 말했다.
"수중 호흡 마법이 없다면 보통은 물속에서 3분밖에 버틸 수 없을 겁니다."
"그거라면 걱정하지 마세요."
수중 호흡 마법이 없어도, 마력을 쓰지 않아도 숨을 쉴 방법은 있다.
"바람 포션이 있거든요."
강승현은 바람 포션을 꺼냈다. 바람 포션의 부과 효과 중 하나는 수중 호흡이다.
포션을 사용할 땐 마력 쓸 일이 없으니 어인에게 들킬 일이 없다.
"바람 포션...? 하지만 액체 포션은 물속에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시간을 주신다면 수중 호흡용 고체 포션을 구해서...."
"괜찮습니다."
강승현은 [흡수], [프리아의 인연 주머니] 스킬을 갖고 있다. 덕분에 물속에서도 아무 문제 없이 포션 효과를 받을 수 있다.
"여러분은 여기서 기다리기나 하세요."
-"와, 토끼전 역지사지네. 간을 구하러 물속에 들어가다니."
김호정이 호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게요. 토끼전 리벤지."
육지 출신으로서 용궁 놈들한테 간 뺏기는 고통을 되돌려줄 시간이다.
"좋아! 나도 같이 갈게!"
"아뇨, 김호정 씨는 육지에 남아주세요."
휴식 결계 양탄자는 무척 귀한 물건인 만큼, 옆에서 지키고 있을 사람이 필요했다.
"남아서 양탄자를 지켜주세요."
"환자를 지키는 게 아니고?"
"환자는 병사들이 지키겠지만, 제 양탄자는 안 지켜줄 거 아니에요."
호수 안으로 들어가기 전, 강승현은 마지막으로 인벤토리를 점검했다.
'평범한 화살로는 큰 피해를 주기 어려워.'
수중 생물이 육지로 올라오면 페널티를 받는 것처럼, 지상 생물이 물속으로 들어가면 페널티를 받는다.
물속에선 일부 스킬을 제외하곤, 속도가 느려지고 위력이 떨어지게 된다.
'나름 대처법을 준비해두긴 했지만, 이걸로는 좀 부족하지.'
강승현은 상태창을 열었다.
[누적 포인트 : 6841포인트]
[룰렛 1회 이용 시 20포인트]
[프리아의 룰렛 1회 이용 시 50포인트]
[Q] [5000 포인트를 모아주세요.]
[보상] : [★]
사람들을 열심히 구하고 다녔더니 스킬 포인트가 꽤 많이 쌓인 상태다.
'슬슬 새 스킬을 뽑아볼까.'
81. 반어인 변이화 2
현재 누적 포인트는 6841.
일반 룰렛을 100회 돌려도 4000포인트나 남는다.
'지금 내가 돌릴 수 있는 룰렛은 일반 룰렛과 프리아의 룰렛.'
강승현은 각 룰렛을 10회씩 돌리기로 했다.
'일단 일반 룰렛부터.'
[포인트를 소모합니다.]
타르르르르.
필요 포인트가 소멸하면서 룰렛 돌아가는 소리가 시작됐다.
[※룰렛 결과]
☆[스탯(체력 +1)]
☆[기타(1골드)]
☆[기타(12골드)]
늘 그랬듯, 룰렛 결과는 쓰레기로 시작했다.
룰렛에서 골드 안 나오게 하는 아이템을 판다면 10만 포인트를 내서라도 살 텐데.
☆[기타(스태미나 +2)]
★[스킬(황금손)]
☆[기타(체력 +1)]
이어서 나타난 보상은 이랬다.
[황금손]
[손재주 +20%]
[손으로 하는 세밀한 일의 효율성이 증가한다.]
[제작 스킬과 각종 작업에 추가 효과.]
황금손은 손재주를 올려주는 패시브 스킬이다.
'제작 스킬이나 각종 작업에 추가 효과!'
당연히 전투용 스킬은 아니지만, 아이템 제작이나 요리 같은 비전투 상황에 무척 유용하다.
'이거면 치료 성공률은 물론이고 포션 제조 성공률도 올라가겠는데?'
강승현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나머지 보상을 확인했다.
★[스킬(수중 체온 유지)]
☆[스탯(스태미나 +1)]
☆[기타(1골드)]
★[스탯(재생력 +2)]
'수중 체온 유지?'
강승현은 두 번째로 얻은 스킬을 확인했다.
[수중 체온 유지]
[물속에서 상태이상 '저체온증'을 막는다.]
[수중 스태미나 소모 속도 30% 감소.]
'저체온증 방지 스킬인가. 거기에 스태미나 소모 감소까지!'
물속에선 조금만 헤엄쳐도 스태미나가 팍팍 깎이는 데다, 오래 머물수록 체온이 빠른 속도로 내려간다.
거기다 사람의 체온이 35℃ 밑으로 떨어지면 저체온증이 발생하면서 몸이 약해진다.
'이거면 저체온증 걱정은 없겠어.'
강승현은 새롭게 얻은 두 스킬을 보며 기뻐했다.
'것보다, 마지막 보상은....'
스탯 보상이지만 검은 별이 붙은 레어 보상. 무려 재생력을 올려주는 희귀 스탯이었다.
'재생력이라.'
몸의 상처가 재생하는 속도 스탯. 재생력이 높은 생물은 잘린 팔도 눈 깜짝할 사이에 자라난다.
'이런 것도 룰렛에서 나올 줄이야.
지금까지 한 번도 나온 적 없는 스탯이다. 인간 중에선 오크족이 가진 걸로 유명하다.
'뭐,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
-[프리아의 룰렛 1회 이용 시 50포인트]
'이번에는 이거다.'
강승현은 일반 룰렛 보상을 확인하고 프리아의 룰렛을 10회 돌렸다.
타르르르르르.
[※룰렛 결과]
'기타 잡 보상은 빨리 치우고... 쓸 만한 보상만 확인하자.'
프리아 10연속 룰렛에서 얻은 ★이 붙은 보상은 총 3개. 처음으로 프리아의~ 수식어가 붙지 않은 석궁 스킬이 나타났다.
★[스킬(후크 샷)]
★[스킬(화살 증폭기)]
★[기타(영혼 결정 - 포인트 증가)]
영혼 결정은 전에 한 번 얻은 아이템이다.
사용 시 포인트 획득량을 늘려준다.
'후크 샷은... 갈고리 붕대 화살의 스킬 버전이군.'
사용법은 갈고리 붕대 화살과 같다. 화살처럼 날려서 벽에 매달릴 때 쓰면 된다.
'장점은 갈고리로 물건을 끌어올 수도 있고, 내가 끌려갈 수도 있다는 점이지.'
갈고리로 물체를 끌어당기는 능력은 [후크 샷 - 크레인]. 상대한테 가까이 접근하는 능력은 [후크 샷 - 러시].
정식 스킬인 만큼, 야매보다 훨씬 쓸 만하다.
'마지막으로 화살 증폭기.'
[화살 증폭기]
['화살' 아이템과 스킬 사용 시 모든 추가 효과 +5%]
[화살 공격 속도 +10%]
[화살 대미지 +10%]
이름 그대로 화살을 강화하는 보조 스킬이다.
화살의 기본 능력을 5% 상승시키고 화살 속도와 파워를 올려준다.
프리아의 인연 주머니와 조합하면 어떤 아이템이든 스킬 효과를 받을 수 있다.
'꽤 좋은 스킬을 얻었어.'
화살 증폭기의 효과를 받으면 물속에서의 느릿느릿한 화살 속도를 보완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들로는 좀 부족하지.'
좋은 보조 스킬을 많이 얻었지만 정작 주력기로 사용할 메인 스킬이 없다.
돌 화살은 물속에서 쓸 땐 위력이 크게 떨어지고, 카마르 스피어는 많이 모을 수가 없다.
'확실한 한 방을 먹일 만한 스킬이 필요한데.'
룰렛을 더 돌릴까 생각도 했지만 그만뒀다.
포인트 룰렛 특성상, 정작 필요한 건 더럽게 안 나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건....'
[Q] [5000포인트를 모아주세요.]
[보상] : [★]
강승현의 시선이 퀘스트 창으로 향했다.
상태창 관리자가 생성한 특수 퀘스트.
포인트를 무려 5000이나 잡아먹는 대신, 그 대가로 ★ 스킬을 확정 지급한다.
일반 스킬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강력한 차원이동자 전용 스킬.
'보상은 탐나지만, 관리자와 직접적인 거래를 하는 거라 가급적 안 하고 싶었는데.'
녀석의 정체는 아즐 대륙의 신. 그것도 사람들에게 잊혀진 신으로 추정되는 존재.
그런 녀석과 가까이해서 좋은 일은 없다.
'어차피 지구로 돌아가기 위해선 깨야 할 퀘스트. 그러니 놈에 대한 정보를 모은 다음에 깨고 싶었지만....'
사정이 사정이라 어쩔 수 없지.
강승현은 [퀘스트 완료] 버튼을 눌렀다.
[포인트를 소모합니다.]
[누적 포인트 : 1141포인트]
[퀘스트 달성!]
힘들게 모아둔 5000포인트가 소멸하면서 퀘스트가 클리어됐다.
[퀘스트 달성!]
[※ ★ 스킬 중 하나를 습득할 수 있습니다.]
예상은 했지만 역시 룰렛 보상이었다. 룰렛 돌아가는 악랄한 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여기다 5000포인트나 꼬라박았는데 쓰레기 스킬을 주진 않겠지?"
강승현은 허공을 향해 소리쳤다.
관리자가 들으라는 듯 말이다.
그리고 잠시 후,
★[스킬(작살 화살★)]
강승현은 새롭게 획득한 스킬을 확인하며
미소를 지었다.
'이래야지 그럼.'
-준비를 끝마친 강승현은 피츠타 호수로 다가갔다. 호숫물은 무척 맑고 깨끗했다.
'하지만 사람만 맑은 물을 좋아하는 게 아니지.'
수중 몬스터 역시 맑은 물을 좋아한다. 피츠타 호수에 어인들이 서식하는 이유다.
"강 선생 조심해. 물고기 놈들은 끈질기니까!"
"대어를 낚으려면 고생 좀 해야죠."
강승현은 바람 포션을 사용했다.
[공기 속성 강화 +2.5%]
[지속 시간 15분]
공기 속성이 강화되면서 물속에서 숨을 쉴 수 있게 됐다.
'바람 포션을 넉넉하게 준비했으니 숨을 못 쉴 걱정은 없겠지.'
강승현은 버프와 함께 물속으로 잠수했다.
풍덩!!
전신이 시원한 물에 휩싸이며 물속으로 천천히 가라앉았다.
피츠타 호수는 무척 맑고 깨끗해서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게 잘 보였다. 물고기들은 자유롭게 헤엄쳐 다녔으나 육지생물은 이동하기 쉽지 않다.
'오리발이 있으면 좋았겠지만, 별수 없지.'
강승현은 물 아래로 조심스럽게 헤엄쳐갔다.
헤엄칠 때마다 스태미나가 깎여나갔으나 [수중 체온 유지] 덕분에 소모량이 줄었다.
'찾았다.'
강승현은 아래로 헤엄치던 도중, 어인 한 마리를 발견했다.
'어인 놈들이 물 위로 올라올 준비를 하는 건가?'
본래는 호수 깊은 곳에서 서식하겠지만 정찰을 나온 건지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일단 가까이 보이는 건 한 마리.... 그리고 저 아래쪽에 서너 마리.'
물속이라 움직임이 둔해졌으니 여러 마리가 몰려오면 귀찮아진다.
'내가 가기는 귀찮고.'
[프리아의 석궁을 소환합니다.]
강승현은 어인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네가 와라!'
[후크 샷]
촤르르르르!
갈고리 사슬이 물을 가르고 나아가 어인의 어깨에 처박혔다.
"우라!"
놀란 어인이 어깨에 박힌 사슬을 빼내려는 순간, 강승현은 방아쇠를 다시 한번 당겼다.
[후크 샷 - 크레인]
발사된 사슬이 이쪽으로 감기면서 어인의 몸이 강승현을 향해 끌려오기 시작했다.
푸욱!
강승현은 바로 나이프를 꺼내 끌려온 어인의 목덜미에 찔러 넣었다.
'기습 성공!'
어인은 반항하며 몸부림쳤으나 강승현은 나이프로 어인의 목을 찢었다.
촤아악!
어인의 목에서 시뻘건 피가 뿜어져 나왔다. 기습 공격에 성공한 덕분에 크리티컬 대미지가 폭증한 모양이다.
'한 마리는 기습 공격으로 처리했고....'
죽은 어인의 피가 물에 섞여나가며 호수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이제 곧 냄새를 맡은 동료들이 몰려올 것이다.
'일단 재료부터 손에 넣자.'
강승현은 어인의 시체를 살폈다. 원래 몬스터 특수 부위를 얻기 위해선 실력 있는 약재상들한테 맡기는 게 정석이다.
'[황금손]의 효과로 몬스터 잔해 채취 성공률도 상승하려나?'
강승현은 조심스럽게 간을 떼어냈다.
[어인의 간 획득!]
[손상 없는 A급이다.]
강승현은 어인의 간을 손상 없이 획득했다. [황금손]의 효과로 채취 성공률이 오른 모양이다.
'일단 하나 획득했지만... 혹시 모르니 몇 개 더 구해가야겠지.'
지금 카마르에는 반어인 치료제가 한 개도 없다. 비상용으로 몇 개 만들어놔야 안전할 것이다.
'거기다 실패 확률도 있으니까 재료는 넉넉한 편이 낫지.'
"우르르르르!"
"우라아!"
때마침 피 냄새를 맡은 어인들이 이쪽을 향해 몰려오고 있었다.
'이제부턴 기습 공격이 안 통하겠군.'
아까처럼 후크 샷으로 낚아서 기습하기엔 수가 너무 많다.
'그래서 준비했다.'
강승현은 몰려오는 어인에게 석궁을 겨누었다.
지금 목표는 어인의 간.
장기가 상하면 안 되니, 노려야 할 건 머리.
'작살 화살이다!'
강승현이 방아쇠를 당긴 순간, 석궁에서 검은 작살이 발사됐다.
촤아아아!!
푸욱!!
엄청난 속도로 날아간 작살이 어인의 머리를 단숨에 꿰뚫었다.
본래 화살 스킬은 물속에서 위력이 약해지고 공격력이 떨어지는 너프를 받지만, 이 녀석은 그렇지 않았다.
[작살 화살★]
[관통 확률 +20%] [관통 대미지 +15%]
[수중 필드에서 사용 시 공격 속도 +100%]
[물 속성 타겟 공격 시 크리티컬 대미지 +20%]
작살 화살은 수중전에 특화된 스킬.
물고기 잡기로는 이름값 하는 스킬이다.
'역시 ★스킬은 다르구만.'
거기에 ★효과로 인해 다른 스킬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어마어마한 추가 옵션과 능력을 갖고 있었다.
[물에 젖은 대상한테 추가 대미지 +50%]
[물 속성 스킬은 작살 화살을 막을 수 없다.]
[수중 필드에서 화살에 맞은 대상에게 3%의 확률로 속박 상태이상을 건다.]
[화살 개수가 늘어날수록 확률이 상승한다.]
'이 정도는 되어야 5000포인트 주고 얻은 스킬이지.'
강승현이 방아쇠를 당길 때마다 어뢰처럼 날아간 작살이 어인을 꿰뚫었다.
촤악!
촤아아악!!
잡몹 어인들은 쏟아지는 작살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어인들은 계속해서 덤벼왔으나, 작살에 머리가 무참하게 꿰뚫릴 뿐이었다.
'근데 어인의 수가 생각보다 많은데...?'
강승현은 틈틈이 스태미나를 보충하며 생각했다. 이렇게 몬스터가 무리지어 다닐 땐, 대장 노릇을 하는 녀석이 있는 법이다.
'동족을 부하로 부리는 놈들이라면... 잘 알고 있지.'
강승현은 곧바로 재생 포션 화살을 준비했다.
그 직후, 등 뒤에서 검은 오오라가 퍼져나왔다.
'역시... 이 스킬은 [위압감]!'
지속피해와 함께 피해량을 증가시키는 끔찍한 오오라. 레어 몬스터가 가진 전용 스킬이다.
"우르르르르...."
강승현이 뒤를 돌아보자, 다른 녀석과 달리, 화려한 외형에 손에 무기를 쥔 어인이 다가오고 있었다.
'레어 피츠타 어인!'
저 녀석이 인간을 습격한 어인들의 대장이었다.
82. 반어인 변이화 3
손에 쥐어진 거대한 삼지창. 계급이 높다는 걸 과시하려는 듯 몸에 주렁주렁 매단 장신구.
'레어 몬스터라.... 있을 법도 하지.'
그냥 보기에도 일반 어인과 차원이 다른 존재라는 게 느껴졌다.
'따까리 어인들을 끌고 다니는 것도 그렇고.'
강승현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래에서 난리가 나건 말건, 물고기들은 태평하게 헤엄치고 있었다.
'아공간은 만들지 않는 건가?'
레어 몬스터는 보통 [공간지배]를 사용해 타겟을 아공간에 가둔다.
하지만 물고기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걸 보면 녀석은 스킬을 사용하지 않은 것 같다.
'[공간지배]를 쓸 필요도 없다는 건가.'
굳이 마력 아깝게 스킬을 쓸 필요가 없다. 육지생물이 물속에 들어온 시점에서 어인의 손아귀에 들어온 거나 마찬가지니까.
'레어 몬스터가 상대라면 싸우는 것보단 피하고 싶지만....'
지금 저놈을 쓰러트리지 않으면 물 위로 올라가서 사람들을 공격할 것이다.
'어차피 싸워야 한다면 지금 싸우는 게 낫지.'
강승현은 다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죽은 어인의 시체가 이곳저곳에 널려있다.
물속이라 부패 속도가 느리긴 하지만 빨리 간을 채취하지 않으면 부패한다.
'바쁘지만 일단 저것부터 쓰러트리고 나서...!'
강승현이 석궁을 겨눈 순간, 레어 어인이 삼지창을 휘두르며 울부짖었다.
"우르르르르!!!"
뒤에서 더 많은 어인이 몰려왔다. 레어 어인이 [우월감]을 사용해 동족을 불러낸 모양이다.
"흐우웁!"
"우르르!"
몰려온 어인들은 볼을 크게 부풀리기 시작했다.
'수령포 시전 자세다.'
[수령포]는 물 밖에서도 강력한 스킬이었지만, 물속에서는 더 강력한 스킬이다.
공격력이 증가하는 건 물론이고, 분사 속도가 빨라지기 때문이다.
푸우우우!!!
육지라면 모를까, 느릿느릿한 물속에선 인간의 헤엄으로 피하기 어렵다.
'일단 버프 걸고 시작해볼까.'
강승현은 진홍의 루비를 꺼냈다. 손으로 움켜쥐자 수중에서도 붉은빛이 뿜어져 나왔다.
[정신 집중!]
[일정 시간 동안 '집중력'의 효과를 받습니다.]
[명중률 상승!]
발동된 버프는 명중률 상승이었다.
'회피율이 아니고 명중률 상승? 그래도 뭐 상관없지.'
[후크 샷]
강승현은 가장 가까이 있는 어인을 향해 후크 샷을 발사했다. 명중률 상승 덕분에 쉽게 낚아챌 수 있었다.
'일단 한 마리 잡고.'
촤르르르르!!
갈고리 사슬이 어인의 팔에 꽂힌 순간, 방아쇠를 다시 한번 당겼다.
[후크 샷 - 러시]
촤르르!!
사슬이 다시 감기면서 목표를 향해 빠른 속도로 이동했다.
푸우우!
촤아아악!!
강승현은 후크 샷을 회피기로 사용해 어인들의 수령포를 피했다.
그리고 어인에게 가까이 다가간 순간.
'작살 화살 5연발!'
목에 석궁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촤아아악!!
날카로운 작살이 단숨에 어인의 목을 관통했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녀석의 목이 꺾여나갔다.
'내장은 지켜줘야 하니... 목표는 머리와 팔다리!'
강승현이 날린 작살 화살이 어뢰처럼 날아가 어인들을 공격했다.
'잡몹이야 무서울 게 없지.'
어인들의 사지에 작살이 처박히기 시작했다.
'중요한 건 이런 잡몹이 아니라....'
강승현의 시선이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
"우르라아아아아!!"
잡몹 어인들을 이끄는 레어 어인이다. 녀석은 크게 포효하더니 삼지창을 휘둘렀다.
촤아아아!
그러자 강력한 마력이 담긴 충격파가 날아왔다.
'저건 속도가 좀 빠르네. 회피하긴 어려울 것 같고...!'
강승현은 주위를 둘러보다 가까이 보이는 어인을 향해 후크 샷을 날렸다.
[후크 샷 - 크레인]
촤르르르르!
"우라아!!"
'이걸 방패로... 써먹는 수밖에!'
강승현은 어인을 방패로 써서 날아오는 충격파를 막아냈다.
퍼억!
어인은 레어 어인의 공격을 대신 받고 몸이 으스러졌다.
[작살 화살★]
강승현은 바로 방아쇠를 당겼으나, 레어 어인은 빠른 속도로 헤엄쳐 회피했다.
'역시 레어는 레어라서 잘 도망 다니네.'
어인은 수중 필드에서 최고의 컨디션을 자랑한다.
강력한 파워에 넘치는 마력. 그리고 물속을 엄청난 속도로 이동하는 수영 실력까지.
'안 그래도 수중 페널티 심하게 받고 있는데 말이야.'
지금 강승현은 물 때문에 움직임이 크게 둔해진 상태다. 여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스태미나가 계속해서 감소한다.
'이런 페널티를 극복하고 저 자식을 이겨야한단 말이지.'
강승현은 계속해서 방아쇠를 당겼으나,
촤아아악!
어인은 빠른 속도로 헤엄치며 날아오는 화살을 회피했다.
'작살 화살을 피한다 이거지.'
현재 강승현이 물속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날릴 수 있는 화살은 작살 화살이다.
이걸로 놈을 맞출 수 없다는 건, 다른 화살은 쏴봤자 닿지도 않는다는 뜻이다.
'후크 샷은 쏴봤자 별 소용없겠군.'
후크 샷으로 붙잡을 수만 있다면 놈을 쉽게 맞출 수 있다.
하지만 붙잡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우라아아아!!"
레어 어인은 계속해서 삼지창을 휘둘렀다.
[우월감]을 써서 동족을 부르는 것보단 자신이 직접 나서는 게 낫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푸우우우우!!!
물을 타고 전해지는 충격파와, 강하고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수령포.
두 공격이 강승현을 향해 날아왔다.
[후크 샷 - 러시]
촤르르르!
강승현은 후크 샷을 사용해 공격을 회피하고 방아쇠를 당겨 반격했다.
'하긴, 이 정도는 돼야 레어 몬스터지. 일반 몬스터랑 똑같으면 쓰나.'
촤악!
작살 화살이 물살을 가르고 앞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레어 어인은 보란 듯이 헤엄쳐 작살을 화살을 회피했다.
촤아아아아!
그리고 다시 수령포와 파동 충격파를 날렸다.
'전부 다 내가 피할 수 있는 별거 아닌 스킬....'
녀석은 일부러 결정타를 날리지 않고 멀리서 깔짝깔짝 공격하는 중이었다.
강승현이 공격을 피할 걸 알면서도.
'이 새끼.... 시간을 끄는 건가?'
수중 전투는 시간을 끌면 끌수록 인간에게 불리하다. 언젠가는 물 위로 올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일부러 내 수중 호흡 시간이 바닥날 때까지!'
일부러 인간을 물속에서 가지고 놀다가 천천히 숨 막혀 죽어가는 걸 구경하는 것.
어인들의 수법 중 하나다.
'어인다운 발상이군.'
레어 어인은 강승현이 물 밖으로 도망치려는 순간, 다시는 물 위로 올라갈 수 없도록 [공간지배]를 사용해 아공간에 가둘 생각이다.
그리고 즐거운 얼굴로 강승현이 익사하는 걸 감상할 것이다.
'그렇게 나온다면 이쪽도 생각해둔 게 있지.'
강승현은 인벤토리를 살폈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준비해둔 아이템이 하나 있거든....'
상대방이 가진 의도를 파악했으니, 필살기를 날릴 순간이다.
'장전.'
프리아의 석궁에 먹물 색 화살이 장전됐다.
방아쇠를 당기자 새까만 화살이 나아갔다.
촤아아악!!
이번에도 레어 어인은 아주 가볍게 회피했다. 그런 느린 화살을 쏴서 자길 맞출 수 있겠냐는 듯 웃어대면서 말이다
그 순간,
파스스스스....
먹물 색 화살에서 검은 액체가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우르르르륵!!!"
레어 어인은 갑자기 괴로워하며 날뛰었다.
강승현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작살 화살★]
촤아악!!
빠른 속도로 나아간 작살 화살이 레어 어인의 팔뚝에 처박혔다.
"우륵!!!"
'드디어 성공했네.'
수중 몬스터한테 효과적인 스킬인 만큼 레어 어인에게 강력한 대미지로 들어갔다.
"우르르...."
녀석은 괴로워하면서도 화살을 피해 헤엄쳐 가려 했으나,
촥, 촤악!
강승현은 두 번째, 세 번째 먹물색 화살을 날려 보냈다.
파스스스스...
화살을 계속해서 쏘아 보내자, 호수 곳곳에 검은 액체가 퍼져나갔다.
"우르아아아아!!!"
레어 어인은 괴로운 듯 버둥거렸다.
표정을 보아하니,
'설마 독을 사용한 거냐.'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아, 물속이라 말을 못 하니 설명을 못 해주겠네.'
강승현은 인벤토리에서 병 하나를 꺼냈다. 묘하게 새까만 물체가 담긴 병이었다.
쩌적!
병을 깨트리자 검은 액체가 퍼져나갔지만, 강승현의 몸에는 별문제가 없었다.
'내가 미쳤다고 독 같은 걸 호수에다 풀겠냐.'
피츠타 호수는 어인뿐만 아니라 카마르 사람들도 식수로 사용한다.
어인을 잡겠다고 호수를 오염시켰다간 카마르 사람들도 피해를 입는다.
'이건 그냥 반어인 치료제 실패작 중 하나거든.'
이런 걸 써봤자 물이 오염되진 않고, 사람한테도 아무 문제없다.
실제로 피츠타 호수 물고기들도 아주 멀쩡한 얼굴로 헤엄치고 있었다.
[프리아의 인연 주머니]
[반어인 치료제 실패작 찌꺼기 화살을 생성합니다.]
화살을 발사하자 검은 찌꺼기가 퍼져나갔다. 물고기와 달리 레어 어인은 괴로워하며 몸부림쳤다.
'하지만 어인한테는 좀 다르게 느껴지겠지.'
이 화살에는 약하긴 하지만 어인의 피가 가진 독성을 제거하는 효과가 담겨 있다.
그래서 이걸 쓰면 어인에게 대미지를 입힐 수 있다.
'죽을 정도는 아니겠지만, 좀 고통스럽기는 할 거고.'
어인은 피부로 호흡하는 생물이다. 물에 치료제 찌꺼기가 섞이면 숨쉬기 괴로워질 수밖에 없다.
사람으로 치면 신선한 공기를 마시다가 갑자기 지독한 탄내와 매연을 마시는 기분.
'그 틈에... 작살 화살을 처박는다!'
강승현이 방아쇠를 당기자 엄청난 수의 작살이 쏟아져 나왔다.
촤아아악!!
"우르륵!!"
작살은 녀석의 팔과 다리를 향해 날아갔다.
레어 어인은 헤엄쳐 다니며 작살을 피했으나, 찌꺼기 화살의 효과인지 움직임이 꽤 둔해졌다.
푸욱,
파악!
온몸에 작살이 꽂히기 시작하자 레어 어인은 괴로워하며 물을 뿜어냈다.
푸우우우!!
녀석은 수중포를 날림과 동시에 강승현한테서 멀리 도망치려 했다.
'가긴 어딜 가려고.'
녀석이 도망치려는 순간,
[찔러 잡기!]
[작살 화살의 효과로 상태이상 '속박'이 발동됩니다.]
몸에 박힌 작살이 빛을 내며 레어 어인의 움직임을 봉인했다.
[작살 화살★]이 가진 속박 효과다.
'내가 화살을 괜히 쑤셔 박은 줄 아냐.'
화살에 맞은 상태를 3% 확률로 속박시키는 효과. 화살을 많이 꽂아 넣을수록 효과가 증가한다.
'널 잡아두기 위해서 박은 거다.'
애초에 치료제 찌꺼기 화살은 사용한 진짜 이유는 레어 어인을 고통 주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녀석의 몸에 작살 화살을 꽂아 넣기 위한 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강승현은 다시 한번 루비를 사용했다.
[정신 집중!]
[일정 시간 동안 '집중력'의 효과를 받습니다.]
[손재주 상승!]
손재주 상승 버프는 손으로 하는 각종 작업의 효율 상승. 석궁이나 활을 다룰 때는 크리티컬 성공률을 올려준다.
하지만 아무리 크리티컬 성공률이 올라가도 명중하지 않으면 크리티컬이 발동하지 않는다.
'그러니 움직일 수 없는 지금이 기회지.'
강승현이 방아쇠를 당기자 작살 화살이 어인을 향해 엄청난 속도로 날아갔다.
'레어 유물 내놓고 꺼져!'
83. 반어인 변이화 4
퍼억!
날아간 작살 화살이 레어 어인의 머리를 꿰뚫었다.
[크리티컬!]
크리티컬이 터지면서 레어 어인의 머리는 무참하게 으스러지고 말았다.
"우르륵...우륵...."
녀석은 유언인지 뭔지 모를 울음소리를 내다가 움직임을 멈추었다.
촤아악.
레어 몬스터가 쓰러지자 주위에 퍼져나가던 [위압감]이 사라져갔다.
'어찌어찌 쓰러트리긴 했나.'
강승현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숨통이 끊어진 어인 사체만 있을 뿐, 살아 있는 어인은 보이지 않았다.
'이 녀석이 마지막이었던 모양이군.'
나머지 어인들은 호수 밑바닥에서 얌전히 수초나 뜯고 있는 것 같다.
'더 덤빌 어인은 없는 것 같고, 재료 챙겨서 물 위로 올라가야겠다.'
강승현은 어인을 향해 다가갔다.
죽은 어인의 사체에서 흘러나온 피가 호수 물속으로 퍼져나갔다.
'물에 희석되긴 했지만, 어인의 피를 마시는 건 몸에 좋지 않지.'
이런 걸 마신다고 어인이 되진 않겠지만, 헛구역질이나 구토를 하게 될 확률이 높다.
'기본적으로 어인의 피는 인간과 맞지 않으니까.'
이러한 이유로 어인의 사체는 식용하지 않는다. 맛이 없기도 하고.
'실패작이긴 해도 치료제를 갖고 있어서 다행이구만.'
치료제 실패작으로 반어인 변이화를 치료할 순 없어도, 어인의 피 독성을 살짝 약화시킬 수는 있다.
[프리아의 인연 주머니]
[반어인 치료제 실패작 화살을 생성합니다.]
강승현은 생성한 치료제 실패작 화살을 자신의 몸에 꽂아 넣었다.
프리아의 석궁을 주사기처럼 써먹는 셈이다.
'이거는 이제 됐고. 포션 효과부터 체크할까....'
강승현은 상태창을 확인했다.
[바람 포션 효과]
[공기 속성 강화 +2.5%]
[남은 시간 1분 05초]
현재 물속에서 버틸 수 있는 시간은 약 1분.
인벤토리에 남아있는 바람 포션은 3병.
'한 병당 3분이니까... 10분이면 괜찮겠지.'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다. 강승현은 나이프를 사용해 어인 사체를 해체했다.
[어인의 간 획득!]
[살짝 아쉬운 B급이다.]
[손상 없는 A급이다.]
'몇 개 실패하긴 했지만, 이 정도면 충분해.'
이걸로 반어인 변이화 치료제 준비가 끝났다.
'마지막으로... 레어 몬스터가 갖고 있을 레어 유물.'
레어 어인의 몸을 조사하자 피츠타 호수를 쏙 닮은 푸른 구슬 하나를 발견했다.
'여기 있었군.'
몬스터는 엄청난 힘을 얻고, 인간은 강력한 아이템을 얻을 수 있는 물질.
레어 몬스터가 가진 유물이다.
'유물 감정 스킬이 없어서 그냥 쓸 수가 없다는 게 아쉽네.'
역시 유물 감정사를 찾아가야 할 것 같다.
강승현은 유물을 인벤토리 안에 넣었다.
'좀 더 조사하고 싶지만, 더 시간 끄는 건 그렇겠지.'
이제 남은 호흡 시간도 얼마 안 남았고, 환자가 위에서 기다리고 있다.
'올라가자.'
강승현은 호수 위로 헤엄쳐갔다.
-첨벙!!
"푸하!"
강승현은 물을 뿜으며 수면 위로 올라왔다.
물에 들어간 지 1시간도 안 된 것 같지만, 공기로 숨 쉬는 게 무척 그리웠다.
"사람은 역시 땅을 밟고 살아야지...."
"강 선생!"
"강승현 힐러님! 괜찮으십니까?"
강승현이 호숫가로 헤엄쳐오자 김호정과 병사들이 급하게 다가왔다.
그가 돌아오길 초조하게 기다렸기 때문이다.
"좀 늦길래 혹시 무슨 일 있나 했다구. 강 선생이니까 별일은 없겠지만."
"괜찮습니다. 레어 몬스터가 나타나서 처리하느라 좀 늦은 것뿐이에요."
"레, 레어 몬스터요?"
강승현의 말을 들은 카마르 병사들이 경악했다.
그도 그럴 게, 레어 몬스터는 최소 3~4명이 모여야 쓰러트릴 정도로 강력하기 때문이다.
'나야 뭐, 레어 몬스터 사냥을 한두 번 해본 것도 아니고....'
스킬과 경험이 쌓인 차원이동자에게 있어 레어 몬스터는 유물 뱉는 잡몹일 뿐이다.
"수중에서 어인을 상대한 것도 모자라, 레어 어인을...."
"역시, 힘을 숨긴 마법사...."
"물 위에선 카마르의 안전을 위해 마력을 차단하고 있다가... 물속에서 마력 차단을 해제하신 거야!"
병사들이 존경의 눈빛을 보내왔다.
좀 크게 착각하는 것 같지만 강승현은 굳이 정정하지 않기로 했다.
"어우, 고생깨나 하셨겠어. 귀찮았을 텐데."
"좀비 레어 몬스터보단 낫더라구요."
레어 몬스터가 아무리 빡세도 죽은 동족을 되살리는 놈보다는 낫다.
촤악!
강승현은 몸의 물기를 털어내고 환자한테 다가갔다. 김호정이 잘 지킨 덕분에 양탄자는 무사했다.
"몸은 괜찮으신가요?"
"네.... 아직은 괜찮습니다."
병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치료제 실패작의 효과가 바닥났는지, 환자의 팔에서 다시 비늘이 돋아나고 있었다.
"바로 제작할 테니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강승현은 바로 어인의 간을 꺼냈다.
포션 제조는 재료의 상태에 따라 약효가 결정된다.
'물속에서 채취한 신선한 간을 사용하면, 최고의 치료제를 만들 수 있지.'
간과 기타 재료를 섞기 시작하자 끈적하고 걸쭉한 액체로 변해갔다.
'이때, 부패한 간을 사용하면 액체가 검은색으로 변해 실패작이 되지만....'
신선한 간을 사용하면 회색빛을 내는 제대로 된 치료제가 탄생한다.
'좋았어.'
강승현은 완성된 치료제를 바라보았다.
[황금손]의 효과로 인해 손재주가 올라가서 훌륭한 치료제가 만들어졌다.
"완성했습니다."
강승현이 반어인 치료제를 보여주었다.
"정말 치료제를 만드셨어!"
"세상에.... 힐러에 마법사에 약제사까지 하시는 거야?"
"마법사가 이런 치료제를 만드는 건 쉽지 않을 텐데."
"정말 엄청난 분이시군."
강승현이 야매 힐러라는 걸 모르는 병사들은, 그가 포션 제조도 잘하는 마법사라고 착각하며 감탄했다.
"선생님, 이 은혜는 반드시 갚겠습니다...!"
치료제를 본 환자가 눈물을 쏟으며 소리쳤다.
"은혜는 됐고, 빨리 나아서 카마르나 잘 지켜주세요."
결계가 없는 지금, 카마르를 지킬 방법은 병사와 모험가들뿐이다.
'싸우다 보면 반어인 변이화 환자가 더 나올 지도 모르겠군.'
언제 또 어인이 습격해 올지 모른다. 피츠타 어인 서식지 주변 도시라면 치료제를 넉넉하게 갖춰둬야 한다.
'일단 재료는 넉넉하게 있으니 열심히 만들어서 나머지는 카마르 관청에....'
강승현이 환자한테 치료제를 건네려던 참이었다.
"기다려! 기다리라고!"
"우리도 치료제를 줘요!"
갑자기 나타난 사람들이 아우성치며 다가왔다.
"저 녀석들은?"
"카마르 시민들입니다."
그들은 아까 호수를 건너가게 해달라고 떼쓰던 카마르의 시민들이었다.
[관찰의 눈]
바로 [관찰의 눈]을 사용해 훑어봤지만, 그들한테선 반어인 변이화 증세가 보이지 않았다.
"당신들은 멀쩡한데요. 다친 곳도 없구만."
"우리도 아까 어인한테 공격당했다고!"
"어인이 될지도 모르니 치료제를 내놔!"
역시 진상짓을 벌이던 놈들답게 끝까지 진상을 피우기 시작했다.
시민들은 다치지도 않았으면서, 반어인 치료제를 요구했다.
어인이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사로잡힌 것이다.
"이런 병사보단 우리 같은 시민들을 우선시해야 할 거 아냐!"
"우리한테도 당장 치료제를 주시오!"
저들이 어인의 습격을 받은 건 사실이지만, 앞에서 막던 병사들이 필사적으로 지킨 덕분에 다친 곳 하나 없이 무사했다.
"어, 어쩌죠? 저들 중에는 카마르 도시 귀족분들도 있습니다."
우두머리가 곤란한 얼굴로 말했다. 일반 시민이라면 어떻게든 버텨보겠지만, 귀족의 요구라면 무시하기 힘들다.
'하지만 저것들한테 약을 줬다간... 예비용 치료제가 안 남아.'
이 치료제들은 비상시 환자를 위해 준비한 거지, 저런 겁쟁이들한테 쓰려고 준비한 게 아니다.
'애초에 저 인간들이 호수를 건너겠다고 난리 쳐서 어인들이 습격한 거잖아.'
역시 마법사의 도시 사람들답다.
뻔뻔하기로는 힐러 못지않다.
'그럼 나도 뻔뻔하게 나가도 되겠군.'
강승현이 웃는 얼굴로 치료제를 꺼내며 말했다.
"반어인 변이화 치료제. 필요하시다면 드려야죠."
"나부터! 나부터 줘!"
"아니 나부터!"
사람들이 각자 자신에게 달라고 요구했다.
"한 스푼에 40만 골드입니다."
"4, 40만 골드라고? 한 스푼에?"
"그게 무슨 소리야!"
병을 치료하려면 최소 한 병은 마셔야 한다.
그런데 한 스푼에 40만 골드라면 치료제 한 병에 몇백만 골드라는 소리다.
"가격이 마음에 안 드세요? 그럼 한 스푼에 50만 골드입니다."
"50만 골드? 아까는 40만이라며...."
"60만 골드."
"뭣."
"70만."
그렇게 1분도 안 되는 사이에 치료제 한 스푼 가격이 100만 골드까지 치솟았다.
"가, 가격이 너무한 거 아니오?"
"그깟 돈 못 낼 건 아니지만! 도리가 아니잖아!"
"비싸다 싶으면 호수에 들어가서 재료를 직접 구해오시면 됩니다."
지금 카마르에 강승현 말고는, 반어인 치료제를 만들 사람이 없다.
재료를 구하는 것부터 쉽지 않으니까.
"이걸 얼마에 팔건 제 마음이죠."
만약 혹시 재료를 구한다고 해도, 반어인 치료제를 만드는 것 또한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물론 재료를 가져오셔도 치료제 제작 비용을 받겠습니다. 한... 500만 골드?"
"이보시오! 너무하지 않소?"
"지, 지금 카마르가 어떤 상황인지 알면서!"
"카마르의 위기로 돈을 벌려 하다니!"
당연히 카마르 시민들은 난리를 피웠다.
강승현은 흥분한 사람들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다들 진정하세요. 증세를 보이는 환자한테는 무료로 공급할 생각이거든요."
"나, 나는 증상이 있는 거 같소!"
"내가 더 급합니다! 당장이라도 어인이 될 것 같은...."
카마르 시민들은 손을 들며 자신이 더 심각한 환자라고 소리쳐댔다. 강승현은 사람들을 쭉 훑어보며 말했다.
"지금 봐선 증상이 있는지 없는지를 잘 모르겠네요. 그러니... 이걸 드시죠."
"그건?"
"신선한 어인의 피입니다."
강승현은 인벤토리에서 병 하나를 꺼냈다.
치료제 제작에 쓰인 어인의 피다.
"인간의 몸에 어인의 피를 주입하면 몸이 서서히 어인으로 변해가죠."
강승현이 병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니 이걸 마시는 사람은 변이화 확정인 환자. 치료제를 무료로 드리겠습니다."
"어, 어인의 피를 마시라고?"
"마시면 어인으로 변하는... 피를?"
시민들은 겁에 질린 얼굴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호, 혹시 치료제가 안 먹히면 어쩌지?'
'기껏 먹었는데 치료제를 안 주면?'
'지금보다 더 많은 돈을 요구할 수도 있잖아....'
기껏 반어인 치료제를 준다고 해도 어인이 될 거라고 하니 겁이 나는 모양이다.
"자, 누가 먼저 드시겠습니까?"
강승현은 씩 웃으며 사람들한테 다가갔다.
"나, 나는 됐습니다."
"거기, 어르신! 치료제가 급하다고 하셨던 거 같은데 어서 드시죠."
"아니오! 생각해보니 내 몸은 멀쩡한 것 같소!"
모여 있던 사람들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다들 하나같이 자기는 멀쩡하다면서.
'저, 저 고집불통들을 쫓아내시다니.'
그렇게 강승현은 폭력 한번 쓰지 않고 가짜 환자들을 퇴치했다.
우두머리 병사가 감탄한 얼굴로 말했다.
"정말 굉장하십니다."
"제가 진상 손님 다루는 게 특기라서요."
떨거지들도 쫓아냈겠다, 강승현은 진짜 환자에게 다가갔다.
'여기서 더 지체했다간 뇌까지 어인으로 변하겠는데.'
이제 환자의 몸은 팔 뿐만 아니라 어깨, 가슴을 포함해 다리까지 변이화 증세가 나타나고 있었다.
"시간이 좀 걸렸네요. 부탁하신 반어인 치료제입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병사가 기뻐하며 치료제를 마셨다. 그가 약을 마시자 변이하던 신체가 본 모습을 되찾기 시작했다.
팔에 돋아난 딱딱한 비늘이 녹아내리고, 푸르게 변색된 피부가 본래 색으로 돌아왔다.
"힐러님이 아니셨다면... 정말 끔찍한 일이 벌어졌겠죠. 인간이 인간이 아니게 되다니...."
우두머리 병사가 고개 숙여 인사했다. 강승현은 남은 치료제를 살피며 말했다.
"다른 장소의 병사들도 어인과 대치했을 가능성이 있어요."
호수 남쪽 병사들은 운 좋게 강승현과 만났지만 다른 장소의 병사들은 어찌 됐을지 모른다.
"만약 그쪽도 어인들에게 습격당했다면, 좋은 상황은 아니겠죠.
"바로 확인해보겠습니다!"
우두머리 병사가 곧장 부하를 파견했다.
84. 구제
"보고드립니다!"
잠시 후.
소식을 전하기 위해 떠났던 병사가 급하게 달려왔다.
"상황이 어떤가!"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병사가 가져온 서류를 들이밀며 소리쳤다.
"카마르 동문, 서문 경비대 역시 피츠타 어인놈들의 습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동문에 서문까지?"
"잠깐 좀 볼게요."
강승현은 병사가 가져온 서류를 살폈다.
많은 병사들이 어인의 습격을 받아 부상을 입었다는 내용이었다.
'역시나.'
지금 이곳, 피츠타 호수 남쪽 카마르 남문 경비대는 피해가 적다.
습격해온 어인의 수는 가장 많았지만, 강승현이 죄다 쓸어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지역은 사정이 달랐다.
습격해온 어인의 수는 남문보다 적었지만, 제대로 대처하기 힘들어 피해가 컸다.
'다른 곳도 난리가 났군.'
문서에 따르면 부상을 입은 몇몇 병사들은 피부가 파랗게 변하거나 비늘이 돋아나는 등, 몸이 어인처럼 변해가기 시작했다는 내용도 적혀 있었다.
'전형적인 반어인 변이화 증상.'
강승현의 생각대로 다른 병사들 역시 반어인 변이화 증상이 나타나고 있었다.
"...치료제를 넉넉하게 만들어두길 잘했네."
카마르 남문이 어인 습격을 받은 지 3시간이 지났다.
상처 부위와 체질에 따라 변이화 증세 속도가 달라지는 만큼, 슬슬 변이화 말기 환자가 나타났을 것이다.
'좀 더 빨리 움직였어야 했는데.'
일단 어인으로 완전히 변해버리면 아무리 좋은 치료제도 효과가 없다.
이건 인간도 어인도 아닌 반어인을 고치는 약이니까.
"지금 환자들은 카마르 경비관 의무실에 있습니다!"
"당장 가죠."
"강승현 힐러님을 따라가라!"
강승현은 카마르 병사 몇 명을 데리고 카마르 의무실로 향했다.
-예상은 했지만 의무실은 난장판이었다.
"으, 아아아아악!"
"내 몸이...!"
"우륵, 우라아아아!"
"지, 진정...으악!"
이성을 잃고 어인으로 변해버린 병사 몇 명.
아직 이성은 남아있지만, 동료들의 모습을 보고 겁에 질린 변이화 환자들.
그리고 이 사태를 어쩔 줄 모르는 힐러들까지.
그야말로 혼란 그 자체였다.
쾅!
[프리아의 석궁을 소환합니다.]
문을 박차고 들어간 강승현의 손에 프리아의 석궁이 생성됐다.
[프리아의 인연 주머니]
[반어인 치료제 화살을 생성합니다.]
'치료제를 하나하나 먹여줄 여유가 없어.'
강승현은 치료제를 화살로 만들더니,
파바바박!!
일단 보이는 대로 난사하기 시작했다.
불특정 다수에게 치료제를 먹이기 위해선 석궁으로 쏴버리는 게 가장 빠르고 효과적이다.
"으윽?"
"이...이건...!?"
"몸이 원래대로 돌아가고 있어!"
증상이 심하지 않았던 병사들은 변이화가 멈추며 사람으로 돌아왔으나,
"우르르!"
"우라아아악!"
"끄아아아아아!!"
몇몇 병사들은 치료제 화살을 맞아도 사람으로 돌아오긴커녕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고통스럽게 날뛰어댔다.
그들은 이미 손 쓸 수 없는 몬스터들이다.
"이, 이럴 수가!"
"병사들이...!"
"이미 변해버린 놈들은 어쩔 수 없습니다."
강승현은 석궁을 겨누며 말했다.
일단 어인으로 변한 놈들은 더 이상 환자가 아니다. 환자가 아니라면 자비를 베풀 생각 없다.
"빨리 처리하지 않으면 다른 멀쩡한 사람들도 감염될 겁니다."
과거에 인간이었다 해도 어인으로 변한 이상, 그들의 피는 다른 인간에게 치명적이다.
그냥 놔두면 또 다른 반어인을 만들어 낼 것이다.
"카마르 한복판에서 그런 꼴이 보고 싶은 건 아니겠죠?"
"크으윽...."
"미안하다...."
카마르 병사들은 고통스러워하며 무기를 들었다. 지금은 어인이 되었다곤 하지만, 한때는 같은 카마르 갑옷을 입은 동료였으니까.
'본인들 손으로 죽이는 건 좀 힘들겠지.'
이럴 때 나서는 존재가 모험가 아니겠는가.
강승현은 김호정을 향해 눈짓했다.
김호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혈석을 꺼냈다.
"물고기들은 우리가 해치울 테니, 여러분은 사람들을 대피시키세요."
"험한 일은 모험가한테 맡기쇼."
무기를 꺼낸 두 사람이 앞장섰다.
"치료제 몇 병 줄 테니, 혹시 변이화 증세를 보이는 환자는 알아서 치료하시고."
"아, 알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카마르 병사들은 두 사람의 말을 듣고 사람들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이쪽입니다!"
"다들 조심하십시오!"
"우르아아아!!"
사람들이 밖으로 도망치자 어인들이 추격하기 시작했다.
"어딜!"
[흡혈 충동!]
[일정 시간 동안 공격력이 상승합니다.]
캉!
김호정이 검을 꺼내 어인을 막는 사이, 강승현은 진홍의 루비를 꺼냈다.
[정신 집중!]
[일정 시간 동안 '집중력'의 효과를 받습니다.]
[회피율 상승!]
파각!
무기 박살나는 소리와 함께 김호정의 검이 부러졌다.
"아!! 젠장!! 부러졌어!!"
아까 얼음 다리를 부수느라 검의 내구도가 한계에 다다른 모양이다.
"그거 좀 오래 쓰긴 했죠."
"아까워라."
김호정은 부러진 칼을 바라보며 뒤로 물러났다.
강승현은 석궁을 겨눴다.
[작살 화살★]
방아쇠를 당기자 석궁에서 새까만 작살 형태의 화살이 발사됐다.
'작살 화살은 스킬은 수중전 특화라 물 밖에선 좀 느려지긴 하지만....'
파박!
작살 화살이 어인들의 몸을 꿰뚫었다. 어인이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어인 놈들도 물 밖에선 느려지니 상관없지.'
어인의 몸에 화살이 박힐 때마다 사방팔방으로 어인의 피가 튀었다.
"나 방금 그거 말곤 쓸 만한 무기 없는데.... 강 선생 나이프라도 빌려줘."
"이건 부러트리면 안 되는 거라서요."
"나 그럼 그냥 죽을까...? 그럼 편한데."
"다른 무기를 들면 되죠."
지금 쓰는 청은단검은 빌린 물건이다.
김호정에게 빌려줬다간 십중팔구 부서진다.
'무기로 쓸 거라면 좀 더 튼튼한 걸....'
강승현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의무실 구석, 잡화 도구함이 눈에 들어왔다.
"이거 어때요? 괜찮네요."
"이건... 삽 아녀?"
강승현은 카마르 삽을 던져주었다.
카마르 병사들도 틈나면 삽질하는 모양이다.
"김호정 씨는 솔직히 칼보다는 이런 둔기가 어울려요."
가장 잘 어울리는 건 맨주먹이지만, 굳이 무기를 들어야 한다면 강한 파워를 낼 수 있는 둔기가 낫다.
딱히 칼 실력이 좋은 것도 아니니까.
"삽... 삽...."
김호정은 카마르 삽을 바라보더니 달려가서 휘두르기 시작했다.
"에라 모르겠다!"
삽이 생각보다 성능이 좋아서 훨씬 강한 대미지를 입힐 수 있었다.
"진작 삽 드시지 그랬어요."
강승현은 뒤에서 방아쇠를 당기며 접근하는 어인들을 처리해갔다.
"꾸르륵...."
어인 한 마리가 쓰러지고, 이어서 다른 어인 한 마리도 쓰러졌다.
"이제 몇 마리 안 남았...."
"우르르르르르!!!"
그때, 어인 한 놈이 의무실 침대를 집어 던졌다. 작살 화살은 물고기 잡을 때는 좋지만, 날아오는 침대를 잡을 만한 스킬은 아니다.
'쳇!'
쿵!!
강승현은 방아쇠를 당김과 동시에 날아오는 침대를 피해 옆으로 몸을 회피했다.
침대를 던진 어인은 화살에 맞고 쓰러졌으나,
"우르아아아아!!"
어인 하나가 회피한 강승현을 노리고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탱커 몸빵 간다앗!"
어인이 강승현을 물어뜯으려는 찰나 김호정이 돌진해왔다.
콰악!!
김호정의 팔뚝은 어인의 이빨에 물어뜯기고 시뻘건 핏물까지 끼얹어졌으나,
"난 물려도 별 상관없거든!"
김호정은 전혀 개의치 않다는 얼굴로 삽을 휘둘렀다.
퍼억!
삽에 맞은 어인이 휘청거린 순간, 강승현은 어인의 머리통에 석궁을 겨누었다.
"...."
[작살 화살★]
파아악!!
석궁 방아쇠를 당기자 작살 화살이 어인의 머리를 단숨에 관통했다.
어인은 움직임을 멈추고 그대로 쓰러졌다.
털썩!
"이걸로 대충 정리한 건가?"
"일단은요."
[프리아의 석궁이 소멸합니다.]
강승현은 자신의 몸을 살폈다. 몸과 옷이 어인의 피투성이였다.
'어인과 육지에서 전투하다 보면 이렇게 되는 게 당연하지.'
강승현은 몸에 묻은 어인의 피를 털어냈다.
몸에 들어가지 않아서 치료제를 먹을 필요는 없다.
"김호정 씨는...."
"나는 '다른' 변이화 면역이잖아."
김호정은 물어뜯긴 팔을 바라보며 말했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진작 반어인 변이화 증세가 나타났겠지만, 그의 팔은 멀쩡했다.
"어인 될 일은 없지."
김호정은 본인이 가진 특별한 스킬 덕분에 신체 변이 공격에 면역이다.
"그건 그렇죠."
"하지만 상처 치료는 해줘. 진짜 아파."
어인이 될 일은 없지만, 그렇다고 부상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강승현은 붕대와 약을 꺼냈다.
"씁쓸하구만."
팔을 치료받는 동안 김호정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한때는 인간이었으나 이제는 어인으로 죽음을 맞이한 비참한 것들의 시체가 널려 있었다.
"아즐 대륙 사람들도 참 살기 힘들겠어. 살기 참 팍팍한 동네야."
"안타깝죠. 카마르 도시에 반어인 치료제만 있었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그러게 말야."
카마르는 보호 마법에만 의존하느라, 마법이 무력화된 상황에는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그나마 경비대가 있어서 버틴 거지, 없었으면 카마르는 멸망했겠죠."
두 모험가는 순직한 병사들의 명복을 빌어주었다.
-"나오셨다!"
두 사람이 의무실 밖으로 나가자 카마르 병사들과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던 모양이다.
"저는 카마르 서문 경비대장 세펜이라고 합니다."
"강승현 힐러입니다."
자신의 이름을 소개한 경비대장이 강승현에게 다가왔다.
"그... 상황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구할 사람은 구했지만, 너무 늦은 사람들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렇군요...."
세펜은 착잡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살다 보면 모두를 구할 수 없는 순간도 오는 법이다.
"비록 어인으로 변하긴 했어도 카마르의 병사. 그에 맞는 장례를 치룰 생각입니다."
"뒷일은 그쪽이 알아서 하세요."
모험가가 할 일은 여기서 끝이다.
나머지는 병사들이 알아서 할 일이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강승현이 만든 치료제 덕분에 최악의 사태는 막을 수 있었다. 그가 없었다면 카마르 한복판에서 어인이 출몰했을 것이다.
"환자가 이렇게 많을 줄 알았으면 간을 좀 더 뜯을 걸 그랬네요."
아까 만든 치료제는 전부 다 써버렸다.
또 환자가 생기면 곤란하니, 시간 나면 치료제를 더 만들어야 할 것 같다.
"이번 일은 모험가 조합을 통해 카마르 경비대에서 정식으로 보상을 지급하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모험가님!"
모험가 조합을 통해 보상을 받을 경우 모험가로서의 가치가 올라간다.
수수료는 좀 뜯기겠지만, 그만큼 유명해진다.
"뭐, 보상은 알아서 챙겨주실 것이고... 중요한 건 우리가 오늘 마차를 타고 카마르를 떠날 생각이었다는 건데요."
하늘을 올려다보자, 새까맣게 물들어 있었다.
이제 낮이 아니라 밤이다.
"밖으로 가는 마차가 한 대도 없나요?"
"지금 상황으로선 그렇습니다."
카마르 도시는 마법사들이 필사적으로 지키고 있으나, 도시 바깥은 그렇지 않다.
"몬스터가 마구 들끓는 상황이라...."
"아무래도 그렇겠죠."
아무래도 마차를 타고 밖으로 나가는 건 포기해야 할 것 같다.
정 뭣하면 걸어갈 수도 있지만, 마차도 없이 먼 거리를 다니는 건 피곤하다.
"혹시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연락 주십시오.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서문 경비대장은 고개 숙여 인사하고 병사들과 함께 자리를 떠났다.
김호정이 머리를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그럼 우린 어째?"
"일단 오늘 밤은 카마르에 머물러야겠네요. 포션 보충도 해야 하고."
어차피 밤중에 마을 밖으로 나가는 건 할 일이 없는 바보나 하는 짓이다.
자세한 건 내일 생각하는 수밖에.
"그럼... 밥부터 먹을까?"
"우선 이거부터 처리하죠."
"아, 강 선생 레어 몬스터랑 싸웠댔지?"
강승현이 꺼낸 건 레어 유물이었다.
"피츠타 어인 놈을 잡고 얻은 거니까. 뭔가 쓸 만한 게 나올 것 같거든요."
85. 호수의 유물
강승현은 카마르 시가지로 향했다.
카마르 시가지는 방문객들을 위한 각종 시설이 준비되어 있다.
"사람들이 쓸데없이 많네."
"다들 도시 밖으로 못 나가는 상황이니까요."
카마르 시가지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낮까지만 해도 다들 카마르를 떠나겠다고 시끄러웠으나,
"도시 밖으로 나갔다간 어인이 되어버린다며...."
"끔찍해라!"
"카마르는 안전하다고 하니...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는 여기 있어야겠지."
반어인 변이화 사태가 터진 이후로는 도시를 나가겠다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어인이 무섭긴 한갑네."
김호정이 실실 웃으며 속닥거렸다.
카마르 사람들은 지난 몇십 년간 결계 마법 덕분에 어인과 맞붙을 일이 별로 없었다.
그런 와중에 결계가 소멸하고, 어인으로 변한다는 소리까지 들으니 무서워서 견딜 수 없는 모양이다.
'한심한 새끼들.'
아까 강승현을 찾아온 도시 사람들도 그런 이유였을 것이다.
"직접 상대해보면 그렇게 위협적인 몬스터도 아니건만."
반어인 치료제는 만드는 법도 알려져 있고, 생각보다 진행 속도가 느린 데다 약만 제때 먹으면 나을 수 있다.
그렇게 겁먹을 정도는 아니라는 소리다.
"재료도 구하기 쉽고 말이죠."
"우리 기준으로만 쉬운 거지."
"아무튼 어인하고 계속 싸워왔으면 쫄 것도 아니죠."
강승현은 겁쟁이들의 도시 카마르를 비웃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지금 그가 향하는 곳은 카마르 유물 감정소.
당연하지만 유물 감정사를 만나기 위해서다.
'카마르는 대도시. 굳이 모험가 조합이 아니더라도 유물 감정을 받을 수 있지.'
감정소 안으로 들어가자 아이템 감정소와 새롭게 얻은 아이템을 매매하기 위한 거래소가 있었다.
"어서오세요, 카마르 유물 감정소입니다."
"유물 하나 감정해주세요."
강승현은 가장 가까운 곳의 감정사를 찾아갔다.
얼굴이 뺀질뺀질하게 생긴 게 그냥 봐도 사기 잘 치게 생긴 놈이다.
'헛수작 부리면 바로 손목을 꺾어야지.'
강승현은 테이블에 유물을 올려두고 감정사의 태도를 살폈다.
'이, 이건... 레어 유물!'
감정사가 눈을 빛내며 유물을 살폈다. 그는 강승현이 가져온 유물이 레어 유물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이런 귀한 걸 가져오다니!'
감정사는 실실 웃으며 강승현을 바라보았다.
'마력도 거의 느껴지지 않는 걸 보면 십중팔구 그저 그런 모험가 놈이겠군. 무기도 안 보이는 것 같은데 로그인가?'
감정사들은 만만해 보이는 손님이 비싼 유물을 가져오면 바로 사기 칠 준비부터 한다.
'로그라면 겁낼 것 없어. 이 녀석도 보나 마나 도둑질로 훔쳤을 테니까.'
감정사는 강승현의 눈을 피해 슬그머니 밑장빼기를 시전하려 했다.
'이건 무조건 빼돌려야....'
'분명 사기 칠 준비하겠지.'
강승현은 그걸 예상하고 감정사가 수작 부리는 순간,
[프리아의 석궁을 소환합니다.]
손등에 화살을 처박아줄 생각이었다.
"야!"
그때, 어떤 여자가 달려오더니 감정사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끄아아악!!"
"지금 유물 바꿔치기하려고 했지!"
여자는 감정사의 얼굴에 시원한 잽을 날렸다.
"죄송합니다, 손님! 지금 이 녀석이 유물 사기를...!"
"아, 예...."
파란 머리의 여자는 감정사를 흠씬 두들겨 팼다. 강승현이 나설 필요도 없었다.
"사기 치지 말라고 진짜!"
"크아악!"
"오, 저 여자 초크슬램을 시전했어. 굉장한데?"
김호정이 감탄하는 동안, 강승현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저 자식, 또 수작 부리다 걸렸네."
"쯧쯧, 다른 곳에선 몰라도 우리 감정소에선 소용없다니까."
다른 감정사들은 이쪽을 신경도 쓰지 않고 자기 할 일을 하고 있었다.
반응을 보니 이런 광경이 흔한 모양이다.
-"실례 많았습니다, 손님. 저는 카타르 유물 감정소 2호점의 시옐 카타일러라고 합니다!"
"저는 모험가 힐러 강승현입니다."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마친 시옐이 무척 죄송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비양심적인 감정사가 워낙 많다 보니... 소란을 피운 것에 대해선 사과를...."
"아뇨 괜찮습니다. 덕분에 사기당할 걱정도 덜었고."
유물 감정사 시옐은 격투술을 배운 덕분에 기를 감지하는 스킬을 써서 사기꾼을 감지한다고 한다.
보기 드물게 양심적인 감정사였다.
"동료 감정사들이 사기 치는 걸 볼 때마다 막고는 있는데, 이것들이 저만 없으면 수작을 부리려 해서."
"근데 아무리 유물 감정사라고 해도, 그렇게 동료를 패고 다녀도 되나?"
김호정은 힐러의 집으로 실려 가는 감정사를 보며 말했다.
"괜찮아요. 저도 유물 감정사고, 저희 오빠가 카마르 경비대 소속이거든요."
시옐은 넉살 좋게 웃으며 말했다.
불만 있으면 자신과 싸워서 이기면 된다고.
"아, 유물 감정하러 오셨죠?"
"네. 이겁니다."
"바로 해드릴게요. 시간을 너무 잡아먹었네."
시옐은 바로 유물 감정을 시작했다.
"세상에, 레어 유물이네요? 이런 걸 구하려면 꽤 힘드셨을 텐데."
그녀의 손에 닿은 유물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파아앗!
구슬 형태로 봉인되어있던 아이템이 진정한 모습을 드러냈다.
"축하드려요! 굉장한 아이템이네요!"
"이건...."
"귀걸이인가? 근데 요상하게 생겼네."
유물에서 나온 아이템은 곳곳에 피츠타 호수를 닮은 푸른 빛깔의 보석이 박힌 귀걸이 한 쌍이었다.
"이건 '피츠타 마린 이어커프'예요."
"이어커프?"
김호정이 속닥거리며 물었다.
"강 선생, 이어커프가 뭐야?"
"귀찌의 일종이에요. 귀를 안 뚫고 귀에 걸쳐서 착용하는 장신구."
레어 유물에서 나온 아이템인 만큼, 무척 화려한 형태의 장신구였다.
"이어커프에 박힌 푸른 보석이 피츠타 마린이에요. 피츠타 호수에서만 발견되는 귀한 광물이죠."
"오.... 그럼 비싸겠네."
"아이템 정보부터 띄워드릴게요."
시옐이 스킬을 사용하자 정보가 나타났다.
상태창이 없는 아즐 대륙 사람들은 아이템 정보를 정확하게 확인하기 위해선 감정사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피츠타 마린 이어커프(좌)]
[착용 시 수중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
[체력 +10%] [마력 +2%]
[수중 이동 속도 +50%]
[물 속성 강화 +10%]
[수중 시야 확보]
[수중 전투시 공격력 +20%]
[피츠타 마린 이어커프 세트 효과]
-[수중 호흡 무제한]
-[물 속성 강화 +20%]
-[수중 저체온증 무효]
"역시 세트 효과가 있었군."
귀걸이나 신발 같은 쌍을 이루는 아이템은 두 개를 동시에 착용하면 세트 옵션이 생긴다.
"이어 커프를 양쪽 귀에 착용하면 세트 효과를 받을 수 있어요."
피츠타 마린 이어커프 장신구는 양쪽 다 비슷한 능력을 갖추고 있지만,
'왼쪽은 [수중 전투 시 공격력 +20%].'
'오른쪽은 [수중 전투 시 방어력 +20%].'
라는 차이점이 있다.
"두 옵션을 제외하곤 같은 아이템이니, 두 개 다 착용하면 능력치가 두 배가 되는 셈이죠."
"두 배라...."
강승현은 피츠타 마린 이어커프를 집어들었다.
'레어 아이템인 만큼 성능이 꽤 좋네.'
착용 시 마력을 무려 2%나 증가시켜준다.
강승현에겐 전혀 필요 없는 옵션이지만.
'마력은 필요 없고, 중요한 건 나머지 옵션.'
이어커프를 착용하면 수중에서 움직임이 자유로워지고 이동 속도가 올라간다.
'수중 시야도 넓어지고. 수중전에 특화된 아이템이군.'
시옐의 말대로 정말 엄청난 아이템을 얻은 셈이다. 수중전 페널티를 대부분 없애버리니까.
"혹시... 판매하시겠다면 저희 매장에서 높은 가격으로...."
"아뇨, 직접 사용하겠습니다."
귀한 아이템인 만큼 시옐이 매입 제안을 해왔으나 강승현은 단칼에 거절했다.
'당장 쓸 일은 없겠지만, 갖고 있어서 손해 볼 일은 없지.'
이런 물건은 파는 것보다 직접 사용하는 게 이득이다.
강승현은 이어커프를 인벤토리에 넣었다.
"어머, 착용 안 하시게요?"
"몸에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걸 싫어해서요."
착용한 아이템이 많으면 많을수록 강해지는 법이지만, 강승현은 장신구를 달고 다니는 게 귀찮았다.
치료할 때 거슬리기도 하고.
"아까 직접 사용하신다고...."
"그런 게 있어요."
시옐은 모르겠지만, 차원 이동자 강승현에겐 아이템 슬롯이 있다.
'아이템 슬롯을 이용하면 착용하지 않아도 아이템 효과를 받을 수 있거든.'
[아이템 슬롯]
[1 : 활력의 브로치 +1]
[2 : 키르카라슈텔의 보주]
[3 : 피츠타 마린 이어커프(좌)]
강승현은 비어있던 세 번째 아이템 슬롯에 피츠타 마린 이어커프를 등록했다.
'좋았어.'
슬롯에 이어커프를 등록해뒀으니 이제 물속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
하지만 왼쪽 이어커프만 등록했기 때문에 세트 효과는 받을 수 없다.
'공간이 부족하기도 하고, 뭣보다 세트 옵션이 별 필요가 없어서.'
[피츠타 마린 이어커프 세트 효과]
-[수중 호흡 무제한]
-[물 속성 강화 +20%]
-[수중 저체온증 무효]
여기서 수중 호흡은 바람 포션으로 대체할 수 있고, 저체온증 무효는 [수중 체온 유지] 스킬이 있으니 필요가 없다.
'결국, 실질적으로 받을 수 있는 효과는 [물 속성 강화 +20%] 뿐이라는 건데.'
지금의 강승현에겐 별 필요 없는 옵션이다.
물 속성 모험가도 아니니까.
'저거 하나 때문에 아이템 슬롯을 비울 수는 없지.'
강승현은 하나 남은 이어커프를 김호정에게 던져줬다.
탁!
김호정은 잽싸게 낚아챘다.
"어이쿠! 그러다 잃어버릴라."
"그건 김호정 씨가 쓰세요."
"뭐? 나 주는 거야?"
김호정은 놀란 얼굴로 중얼거렸다.
"한 개만 있어도 충분해요."
"진짜 내가 써도 돼?"
"김호정 씨도 수중전 하려면 있어야죠."
나 혼자 물속에서 고생할 순 없지.
강승현은 동료를 열심히 부려먹기 위해 투자했다.
"이거만 있으면 물속에서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긴 한데, 귀걸이 껴야 해?"
김호정 역시 장신구를 착용하기 껄끄러운 타입이다. 지금 쓰고 있는 안경도 툭하면 부러지고 싸우다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김호정 씨도 아이템 슬롯 있잖아요."
"아 그렇지!"
[아이템 슬롯]
[1 : 월광 토템]
[2 : 피츠타 마린 이어커프(우) ]
[3 : 없음]
김호정도 아이템 슬롯에 이어커프를 등록했다.
"오케이. 등록 완료!"
그렇게 강승현은 [피츠타 마린 이어커프(좌)]를 김호정은 [피츠타 마린 이어커프(우)]를 손에 넣었다.
이걸로 수중전은 아무 문제 없다.
"혹시 더 거래하실 물품 있으세요?"
"이제 더는 볼일 없는 거 같은데. 김호정 씨는요?"
"나도 없음."
"그럼 안녕히 가세요!"
강승현은 시옐의 배웅을 받으며 감정비를 지불하고 감정소를 떠났다.
-"어우 꽤 늦었는데. 우리 일단 잠자리부터 찾아야 하는 거 아냐?"
"이러다 노숙하게 생겼네요."
김호정은 밖으로 나와 카마르 골목을 둘러보았다.
지금 카마르는 갈 곳 없는 모험가들과 외부인들로 인해 숙소가 꽉꽉 들어찬 상황이다.
그나마 나오는 방도 가격이 엄청나게 올라갔다고.
"카마르는 기온이 따뜻해서 다행이야...."
"관청에서 천막을 빌려준대."
결국, 숙소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은 카마르 구석에서 야외 취침을 하고 있다.
김호정은 눈을 돌려 진홍의 마탑을 바라보았다.
"뭐, 우리는 마탑으로 가면 되지 않아? 강 선생 스페셜룸을 쓰자고."
"그게요...."
두 사람이 진홍의 마탑을 떠난 건 오늘 아침이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정말 고마웠네.
-지금은 헤어지지만, 언젠가 또 만날 일이 오겠죠.
이렇게 감동의 이별을 하고 떠났는데 하루 만에 잘 곳이 없어서 돌아오는 건 멋이 없다.
"떠난 지 하루도 안 돼서 돌아가는 건 좀."
"그건 그래."
"슈이레의 말에 의하면 휴식 결계의 양탄자를 사용하면 야외 취침할 때 편하다고 했으니...."
설마 그게 복선이었을 줄이야.
김호정은 한숨을 쉬었다.
"그럼 오늘은 노숙 확정인가...."
"아즐 대륙 모험가 사이에선 흔한 일이죠."
"천막이나 빌리러 가자."
두 사람은 천막을 빌리기 위해 카마르 관청으로 향했다.
"어, 어! 힐러 선생님 아니십니까?"
"응?"
카마르 관청으로 들어가려 찰나, 강승현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를 들었다.
86. 신세 좀 지겠습니다 1
"다시 만나게 돼서 영광입니다!"
"아까 그 환자 병사?"
누군가 했더니 아까 강승현이 치료해준 카마르 병사였다. 병사는 자신의 이름을 밝히며 강승현에게 다시 한번 감사 인사했다.
"저는 카마르 남문 경비대 소속 시릴 카타일러라고 합니다! 아까는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는 어인으로 변할 뻔했지만, 강승현의 치료제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걸요."
"몇 번을 감사 인사해도 부족하지만... 정말 감사합니다!"
"그런데 카마르 병사가 일 안 하고 돌아다녀도 됩니까? 지금 긴급사태일 텐데."
지금 카마르의 모든 병사들은 몬스터의 습격을 막기 위해 호숫가에 배치된 상태다.
카마르 시가지를 한가하게 돌아다니는 병사는 시릴 뿐이었다.
"아, 그것이 말입니다.... 대장님께서 강제로 휴가를 주셔서."
"휴가?"
시릴이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그는 오늘 반어인 변이화 사태로 병가를 받았다. 정신적으로 큰 타격을 입었을 테니 쉬라는 뜻에서.
"집에 가서 푹 쉬고 오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카마르 병사들은 보통 숙소 생활을 하지만, 시릴은 카마르 출신이라 가족들이 카마르에 살고 있다.
"저는 가능하면 동료들과 있고 싶었지만, 푹 쉬고 오지 않으면 쫓아내겠다고 하셔서."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집에 돌아가는 길이었다고.
"오, 카마르 출신이셨어? 보통 카마르 병사들은 외부 출신이 많다던데."
마법사들의 도시인 만큼, 카마르 사람들은 대부분 마법의 길을 걷는다.
시릴처럼 병사가 되는 케이스는 드물다.
"저희 집안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카마르 병사 가문이거든요."
시릴이 뿌듯한 얼굴로 말했다.
그는 다른 형제들에 비해 마력이 적기도 하고, 마법보다 검술에 관심이 많아서 병사가 되었다.
"뭐, 적은 마력과 부족한 마법 재능을 가진 아이는 카마르를 떠나거나 병사가 되는 게 살기 편하거든요."
"마법사들은 인성이 좀 더럽죠."
카마르 마법사들이 병사를 얼마나 무시하는지는 치료제 사태만 떠올려도 알 수 있다.
놈들은 일단 마력이 낮다 싶으면 깔아보는 게 특기다.
"그런데 두 분은 관청에 어쩐 일이십니까? 도움이 필요하다면 제가 돕겠습니다."
"관청에서 천막을 빌려준다고 해서 왔어요."
"튼튼하고 질긴 놈으로 구하러 왔지. 숙소를 못 구했거든."
"아, 아니... 카마르 병사들의 은인이신 강승현 님이 길바닥에서 주무신다구요?"
시릴이 펄쩍 뛰며 소리쳤다.
그런 건 말도 안 된다면서.
"뭐, 빈방이 없으니 어쩔 수 없죠."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죠!"
반어인 변이화 사태를 해결한 영웅이, 잘 곳이 없어서 도시에서 천막 치고 야영이라니.
시릴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어차피 카마르는 따뜻한 동네라 노숙해도 얼어 죽을 일도 없고."
"야외 취침도 익숙해지면 나름 할 만하긴 하지. 마탑에서 산 따뜻한 이불도 있고 말이야."
아즐 대륙 모험가들 사이에선 흔한 일이다.
모든 마을의 여관에 빈방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여관을 빌릴 돈이 늘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러니 천막 치기 좋은 자리 좀 소개해주세요. 카마르 지리는 잘 몰라서."
"등 안 배길 만한 곳으로 부탁 좀 합시다."
"자, 잠시만요!"
시릴은 당장이라도 노숙할 것 같은 두 사람을 말리며 소리쳤다.
"두 분 괜찮으시면... 저희 집에서 묵으시는 건 어떻습니까?"
"시릴 씨의 집이요?"
"더 좋은 곳에서 모셔야 맞지만, 그래도 길거리 노숙보다는 저희 집이 묵기 편할 겁니다."
시릴의 고향 집은 카마르 외곽에 있다.
도시 중심에서 좀 떨어져 있긴 해도 지내기에 큰 문제는 없다고.
"저는 경비대 숙소에서 생활해서 지금 제 방은 비어있습니다. 두 분이 거길 쓰시는 게 어떻습니까?"
그 말을 들은 강승현은,
'혹시 가족들이 불편해하진 않을까요.'
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지금 그런 걸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재워준다면야 나야 고맙지.'
아무리 길바닥에서 자는 게 모험가들의 일상이라곤 해도, 사람인 이상 길바닥에서 자고 싶진 않다.
거기다 지금 카마르 시가지는 사람들이 많이 몰려서 시끄럽기도 하고.
"그럼 신세 좀 지겠습니다."
강승현 일행은 시릴의 집에서 묵기로 했다.
-시릴의 집은 카마르 서쪽 구석에 있었다.
건축 형태는 카마르에 널리고 널린 평범한 가정집이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면, 집 지붕에 감시대 비슷한 시설이 있었다.
"어머니, 아버지! 저 왔습니다!"
"시릴! 너 괜찮은 거니?"
"다친 곳은 없는 거냐?"
집 안으로 들어가자 시릴의 부모님이 달려나왔다. 아들이 반어인 변이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었으니 무척 걱정하고 있었을 것이다.
"걱정 끼쳐서 죄송합니다. 저는 무사합니다!"
"다행이다, 다행이야...."
"네가 어떻게 되는 줄 알았단다."
두 사람은 시릴의 몸을 껴안고 눈물을 쏟았다.
'경비대장이 왜 시릴을 집으로 보냈는지 알겠구만.'
시릴의 정신건강을 위한 것도 있었지만, 가족들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함이었다.
아들이 무사하다는 걸 눈으로 보기 전까진 잠도 제대로 못 잘 테니까.
"이분이 제 목숨을 구해주신 강승현 힐러 선생님입니다!"
시릴이 강승현을 가리키며 말했다.
"당신이 그 힐러님이시군요! 정말 감사합니다!"
"아들놈 목숨을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강승현은 사람 좋게 웃으며 말했다.
이렇게 열렬히 환영해주는 걸 보면 여기서 편히 묵고 갈 수 있을 것 같다.
"힐러 선생님과 선생님 일행분을 집에서 며칠 모실까 하는데, 괜찮죠?"
"당연히 대접해드려야지!"
"지금 카마르가 무척 어수선한 상황이지만, 편히 쉬다 가십시오!"
당연하지만 시릴의 부모님은 강승현 일행이 묵고 가는 걸 승낙했다.
거절하면 사람이 아닐 테니까.
"두 분 식사는 하셨나요? 안 하셨으면 식사부터...."
"나는 방 청소라도 해야겠구만!"
시릴의 부모님은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은인을 깍듯이 모셔야 한다고.
"제 방은 이쪽입니다!"
"감사합니다."
시릴의 방은 2층이었다.
방 주인이 떠나 있어서 방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으나 가족들이 매일 청소하는지 깨끗했다.
"식사 준비가 끝나면 부르러 오겠습니다. 푹 쉬십시오."
시릴은 가볍게 고개를 숙인 뒤 자리를 떠났다.
-"바닥에 이불 깔고 자면 되겠구만. 돌바닥에서 자려나 했는데."
[초급 보온 마법진 담요(빨강)]
[약간의 마력만 주입해도 포근해진다.]
"이거 따땃해서 좋더라고."
김호정은 싱글벙글 웃으며 담요를 깔았다.
어제 마탑에서 산 마법 양탄자다.
'나도 저거 하나 살 걸 그랬나.'
강승현은 아쉬운 대로 휴식 결계 양탄자를 깔았다. 보온 마법 효과는 없지만, 일단은 양탄자라서 깔고 자면 부드럽다.
'일단 한시름 놓겠네.'
강승현은 양탄자 위에 앉은 채 한숨을 쉬었다. 이걸로 사흘 정도는 묵을 곳이 생긴 셈이다.
'정신이 없어서 확인을 못 했는데....'
강승현은 상태창을 확인했다.
'이번에 새롭게 획득한 스킬.'
[황금손] [수중 체온 유지]
[후크 샷] [화살 증폭기]
포인트를 모아서 돌려서 그런가?
스킬이 꽤 많이 나왔다.
'황금손은 늘 그렇듯 야매 힐러 용이고.'
후크 샷과 화살 증폭기를 보면, 프리아의 룰렛에선 '프리아' 접두사가 붙지 않는 일반 스킬도 나오는 모양이다.
'스킬을 많이 퍼준 걸 보면 찔끔찔끔 쓰지 말고 한 방에 팍팍 쓰라는 건가.'
혹시 관리자가 포인트를 걷어갈 때 수수료가 드는 걸지도 모르겠다.
강승현은 상태창 화면을 넘겼다.
'일반 룰렛으로 뽑은 스킬은 그렇다 치고....'
[작살 화살★]
다른 스킬도 상당히 유용했지만, 이번에 얻은 [작살 화살★]은 무엇보다 유용했다.
'내가 가진 화살 스킬은 이게 처음인가?'
지금까진 보유한 아이템이나 포션을 화살로 바꿔 사용했다.
그러니 아이템이 다 떨어지면 석궁 스킬을 쓸 수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하지만 [작살 화살★]은 스태미나만 있으면 발동되는 스킬.
소모품 없이도 자유롭게 쓸 수 있다.
'수중전 한정이라곤 하지만 막강한 위력과 스피드.'
물 밖에선 꽤 느려지긴 하지만, 관통 옵션 덕분에 그럭저럭 주력기로 쓸 수 있다.
'이런 스킬이 하나쯤 있었으면 했는데.'
이제 가진 포션이 다 떨어져도 [작살 화살★]로 발악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스킬이 무엇보다 중요한 건.'
[투척★] 스킬에 이어서 두 번째 ★스킬이라는 점이다.
'그것도 상태창 관리자가 생성한 퀘스트를 클리어해서 얻은 스킬.'
지금은 기존의 퀘스트 창이 사라지고 새로운 퀘스트가 생겼다.
[Q] [10000포인트를 모아주세요.]
[보상] : [★]
보상은 마찬가지로 ★스킬.
조건은 2배 증가한 10000포인트.
'★스킬을 4개 모으면 뭔가 특별한 일이 생긴다고 했지.'
이게 집으로 돌아갈 유일한 힌트지만, 그냥 모으기엔 너무 찜찜했다.
'퀘스트를 클리어하는 건 관리자와 직접적인 거래를 한다는 뜻이겠지.'
관리자의 정체가 아즐 대륙의 신 중 하나라면, 녀석과 거리를 두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
'신의 힘에 집착하면 아일 같은 쓰레기가 되는 법이니까.'
정말 급하지 않고서야 현상 유지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김호정 씨는 룰렛 안 돌려요?"
"짬짬이 돌리고 있긴 한데. 똑같지 뭐."
김호정도 모은 포인트로 룰렛을 돌렸지만 당장 쓸 만한 스킬은 뽑지 못했다.
"나는 퀘스트 안 주나? 나도 별 스킬 좀 얻어보자고."
"눈치 있게 하나 주면 좋을 텐데요."
김호정은 관리자의 메시지를 받은 적이 없다.
추측이지만, 상태창 관리자는 다른 모험가하곤 접촉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래도 업적을 찔끔찔끔 깨다 보니 쓸 만한 스킬이 하나 생기긴 했네."
"어떤 스킬인데요?"
"뭐냐면...."
김호정이 입을 열려던 참에, 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식사 준비가 끝났습니다!"
시릴이 두 사람을 부르러 왔다.
"일단 밥부터 먹고 이야기할까?"
"그러죠."
두 사람은 시릴을 따라 부엌으로 향했다.
식탁은 피츠타 호수에서 잡을 수 있는 신선한 수산물로 차려져 있었다.
"냄새 좋네요."
"하인드 마을에선 먹기 힘든 생선 요리!"
"입에 맞으실지 모르겠지만, 맛있게 드세요."
두 사람이 자리에 앉아 식사하려던 참이었다.
"다녀왔습니다! 집에 손님 왔어?"
현관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지?"
"아, 제 동생이에요. 이제 퇴근하고 왔나 보네요."
시릴이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으로 향했다.
"야, 이제 오냐?"
"엥 오빠가 왜 여기 있어? 기어이 경비대 일에서 잘렸구나...."
"병가 받은 거야!"
"아 그래? 난 또 백수 된 줄 알았네."
현관에서 시끌시끌한 소리가 들리는 걸 보면 지구나 아즐 대륙이나 남매는 다 저런 모양이다.
"지금 시간이 몇 시냐? 일찍 좀 다녀."
"놀다 온 거 아냐! 내가 지금 밖에서 얼마나 고생하고 왔는데.... 이거 좀 봐!"
"알았다 알았어. 밥은 먹었냐?"
"아직 안 먹었어. 지금 밥 먹는 거면 내 것도 같이...."
시릴의 동생이 묵직한 자루를 들고 부엌으로 다가왔다. 피츠타 호수를 닮은 파란 머리카락이 인상적인 여자였다.
"어?"
"어어어!"
심지어 처음 보는 얼굴도 아니었다.
"아까 만났던 유물 감정사!"
87. 신세 좀 지겠습니다 2
"아까 그 손님들 아니세요? 왜 우리 집에...."
그녀는 카마르 유물 감정소의 양심 유물 감정사, 시옐 카타일러.
알고 보니 시릴의 동생이었다.
"내가 초대했어. 혹시 너도 아는 사람이야?"
"어. 방금 가게에서 만났어."
"시릴 씨의 동생이셨군요. 강승현 힐러라고 합니다."
"여기서 이렇게 다시 보네요! 시옐 카타일러입니다!"
시옐은 반가워하며 식탁에 앉았다. 아까는 몰랐지만, 둘이 나란히 서 있는 걸 보니 얼굴이 꼭 닮았다.
"그래서 오빠하곤 무슨 사이에요?"
"이분이 날 치료해주신 분이셔."
시릴은 간단하게 사정을 설명했다.
강승현 덕분에 반어인 변이화를 치료할 수 있었고, 그 보답으로 집으로 초대했다고.
"세상에, 엄청 굉장한 분이셨잖아? 저 소문 들었어요!"
시옐이 밝은 얼굴로 떠들기 시작했다.
"오늘 낮에 호수에서 어인 수십 마리를 혼자 쓸어버린 대단한 힐러가 나타났다고!"
"반어인 치료제를 만들려면 어인의 신선한 간이 꼭 필요하니까요."
"꼭 한 번 만나 보고 싶었는데, 이런 인연도 다 있네요!"
사기당하려는 걸 도와준 손님이 오빠의 목숨을 구해준 은인이었다니.
정말 신기한 인연이 아닐 수가 없다.
"이렇게 된 거, 우리 집에서 한 달쯤 푹 쉬다 가세요. 오빠는 거실에서 자도 되니까."
"누가 계속 거실에서 잔대? 나도 병사 숙소로 복귀할 거야!"
식탁은 금세 시끌벅적해졌다.
"선생님이 신경 쓰실 수도 있으니 빨리빨리 돌아가."
"너나 선생님한테 괜히 레어 아이템 보여달라고 귀찮게 하지나 마라."
두 사람은 쉴 새 없이 티격태격하긴 하지만, 사이좋은 남매였다.
"나 아까부터 궁금했는데, 그 자루는 뭐야?"
남매 싸움을 구경하던 김호정이 시옐이 들고 온 자루를 가리켰다. 뭐가 많이 들었는지 무척 묵직하고 물에 젖어서 축축한 자루였다.
"이거요? 세쿼이아 오징어예요."
우르르르.
시옐이 식탁에 자루를 쏟아내자 안에서 검푸른 오징어 한 무더기가 쏟아져 나왔다.
"세쿼이아 오징어?"
"오, 진짜 오징어네."
그 중엔 어린애 손바닥만 한 녀석도 있었고, 어른 팔뚝만 한 녀석도 있는 등 크기가 하나같이 제각각이었다.
"피츠타 호수에서 사는 민물 오징어 중 하나인데 성질이 무척 더러워서 몬스터로 분류하고 있어요."
세쿼이아 오징어는 적대적인 몬스터에 속한다. 워낙 난폭해서 사람들도 심심치 않게 공격하기 때문이다.
"본래는 마탑 결계 때문에 카마르에 접근도 못 할 놈들이지만, 지금은 결계가 없어서 그런지...."
아까 카마르 호숫가 북쪽에 세콰이어 오징어떼가 들이닥쳤다고 한다.
호수 밖으론 나오지도 못하는 주제에 물속에서 물대포를 쏘아댔다고.
"이것들이 사람들을 공격해대서 모험가 몇 명하고 사냥하고 오는 길이죠."
커다란 세콰이어 오징어는 맛이 없어서 먹지 않지만, 이렇게 작은 사이즈는 식용할 수 있다.
"이 녀석들은 빛만 보면 환장하는 놈들이라 잡기는 쉬웠거든요. 그러니까 내일 아침은 오징어찜!"
세쿼이아 오징어는 밝은 빛에 이끌리는 성질을 갖고 있다.
사냥하려면 불빛을 만드는 게 필수라고.
"근데 많기는 진짜 많다. 작은 사이즈만 한 포대를...."
"결계가 풀린 지 하루 이틀밖에 안 지난 것 같은데 몬스터가 엄청나게 오네요."
카마르에 접근하는 몬스터가 엄청나게 늘고 있다. 도시에서 나오는 강력한 마력 때문이다.
시릴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나마 호수가 있어서 망정입니다."
만약 피츠타 호수가 없었다면 몬스터들이 진작 카마르 성벽을 무너트렸을 것이다.
"호수 속 몬스터들도 위협적이지만, 물 위로 올라올 수 있는 몬스터는 몇 없으니까요."
"수중 몬스터는 육지에서 약해지는 것도 있고."
아직까지는 어인이 가장 위협적인 몬스터라 할 수 있다.
어인들은 육지에서도 꽤 강력하니까.
"원래 어인은 피츠타 호수 북쪽 깊은 곳에 서식하는 몬스터거든요. 호수 남쪽에선 볼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결계가 사라져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지금은 호수 곳곳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제는 언제 어디서 어인의 습격을 받을지 모른다.
"그럼 치료제가 중요하겠네요."
가능한 한 빨리 반어인 치료제를 제작해서 카마르 관청에 보급해야 할 것 같다.
"그럼 내일도 어인 간 뜯으러 가는 거야?"
"그럴까요. 마침 좋은 아이템도 얻었으니."
이제 피츠타 마린 이어커프가 있으니 물속에서 더 쉽고 편하게 움직일 수 있다.
"김호정 씨도 내일은 저랑 같이 어인 사냥하러 가죠."
"좋지!"
김호정 역시 피츠타 이어커프를 갖고 있고, 무엇보다 반어인 변이화 완전 면역이다.
어인 사냥에 이보다 도움 될 동료는 없다.
"아, 근데 그러려면 무기 수리부터 맡겨야겠는데."
지금 김호정의 칼은 고철이나 다름없다.
이런 걸 쓸 거라면 차라리 맨주먹을 휘두르는 게 낫다.
"삽은요? 잘 어울리던데."
"두고 왔지! 내 것도 아니고."
그런 걸 어떻게 무기로 쓰나.
김호정은 투덜거리며 시옐한테 말했다.
"감정사 양반, 혹시 카마르에 괜찮은 대장간이나 무기점 하나 추천해주실 수 있어?"
"무기점? 카마르는 마법사의 도시라 마법무기 말고는 딱히 갈 만한 가게가 없을걸요."
"무기 수리가 필요하다면 경비대로 가시면 됩니다."
마법 무기 이외의 무기 관련 업무는 전부 카마르 경비대에서 처리한다.
평범한 칼을 사고 싶다면 카마르 경비대로 가야 할 것 같다.
"그럼 내일은 카마르 경비대부터 들렀다 가자고."
"그러죠."
강승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멈춘 식사를 이어갔다.
-"그럼 안녕히 주무세요."
"편히 쉬겠습니다."
식사를 마친 강승현 일행은 잠잘 준비를 했다. 시릴한테 빌린 이불을 깔고 눕자 바닥에서 따뜻한 기운이 올라왔다.
"덕분에 오늘 밤은 편하게 보내겠네요."
"방 뜨끈해서 좋다. 역시 마법사들의 도시라 그런가."
김호정은 쓰고 있던 안경을 벗었다.
"이거 없으면 어찌 살아~. 아즐 대륙엔 라식 수술도 없는데~."
그리고 요상한 노래를 부르더니 [가면 수리] 스킬을 사용했다.
"오케이. 안경 수리 완료."
"그 스킬 편해 보이네요."
[가면 수리]는 얼굴 장착 장신구를 수리하는 스킬이다. 덕분에 김호정은 안경이 부러지거나 더러워져도 고쳐서 새것처럼 쓸 수 있다고.
"아즐 대륙 오자마자 스킬창에 등록되어 있더라. 이런 거 말고 시력을 올려주는 스킬을 주면 좋을 텐데."
"왜요. 안경 잘 어울리는데."
"이런 팍팍한 동네에서 안경 쓰고 살면 불편하다구."
김호정은 안경을 잘 접어서 머리맡에 놔두었다.
"내일은 모험가 조합에 들르죠. 이거저거 확인할 것도 있고, 찾아보면 어인 사냥 의뢰도 있을 테니까."
아즐 대륙을 이리저리 떠도는 모험가들은 모험가 조합을 통해 소식을 주고받는다.
다른 마을에 연락할 일이 있다면 모험가 조합을 통하는 게 편하다.
"하긴, 하인드 마을 여관에 연락도 해야겠네. 조만간 갈 거니까 방 빼지 말라고."
"그럼 오늘은 푹 자고... 내일 움직입시다."
"굿 밤."
시릴의 집은 카마르 도심에서 떨어진 곳이라 호수 물소리만 들려올 뿐 아주 고요했다.
두 사람은 그렇게 잠을 청했다.
-"...."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강승현은 한밤중에 눈을 떴다.
'지금 몇 시지.'
[03:57]
마나 워치로 시간을 확인하자 이제 겨우 새벽 4시였다. 한창 잘 시간이지만 뭔가 뒤숭숭한 기분에 잘 수가 없었다.
'뭔가 느낌이 묘한데.'
무언가 기분 나쁜 감각이 접근하는 것 같다.
강승현은 잠들지 못하고 한참 뒤척거린 끝에 몸을 일으켰다.
'물이라도 한잔 마시고 올까.'
거실로 나간 순간, 계단을 내려오던 어떤 남자와 마주쳤다.
"응?"
시옐처럼 파란 머리카락을 가진 걸 보면 카타일러 가문 사람인 것 같다.
"자네는 누구인가?"
"저는...."
그는 경계하는 얼굴로 무기를 꺼내려 했으나,
"아, 큰아버지! 저분이 강승현 힐러님이세요!"
뒤따라온 시릴이 남자를 황급히 말렸다.
"아, 자네가 시릴 녀석을 구해줬다던.... 내가 큰 실례를 저지를 뻔했군."
남자는 황급히 무기를 거두고 사과했다.
"괜찮습니다. 모르는 사람이 집에 있으면 경계하는 게 당연하죠."
"나는 헤카로 카타일러. 이놈의 큰아버지일세."
남자는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했다. 설명 그대로 시릴의 큰아버지였다.
"이런 늦은 시간에 둘 다 무슨 일 있으신가요?"
"그런 건 아니고...."
시릴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카마르 병사들은 아무리 늦어도 새벽 5시 기상이 기본이라서요."
평소 습관 때문에 저절로 눈이 떠졌다고 한다. 두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자는 걸 방해하지 않으려고 자리를 옮기던 중이었다고.
"나도 은퇴한 지 20년이 넘었지만, 습관이 몸에 배서 말이야."
헤카로 역시 카타일러 가문 사람답게 전 카마르 경비대 소속이었다.
그것도 무려 경비대장.
"우리는 감시대로 갈 생각인데, 자네도 괜찮다면 오지 않겠나?"
"그러죠."
어차피 잠도 다 깨버렸겠다, 강승현은 두 사람을 따라 감시대로 향했다.
"...."
집 꼭대기에 설치된 감시대에 올라가자 시원한 새벽 공기가 피부에 닿았다.
헤카로가 자리에 앉아 무기를 손질하며 말했다.
"나는 아침에 눈을 뜨면 호수를 감시하며 하루를 시작한다네."
헤카로는 병사 일에서 은퇴했으나 카마르를 계속 지키고 싶다는 마음에 집에 감시대를 설치했다.
"남들은 마탑의 결계가 있는데 쓸데없는 짓을 한다고 하지만."
하지만 카마르 마법사들은 감시대를 짓고 호수를 감시하던 헤카로를 비웃었다.
어차피 결계가 도시를 보호하는데 시간 낭비 한다고.
"내 힘으로 내 고향을 지키려는 게 뭐가 어떻다고."
"그래서 집 지붕에 감시대가 있던 거군요."
강승현은 감시대를 통해 호수를 내려다보았다.
호수 수면에 짙은 안개가 끼어 있었다.
'안개?'
새벽 호수에 안개가 끼는 건 이상할 게 아니다. 하지만 뭔가 불쾌한 느낌이 들었다.
뭐라 설명할 순 없지만, 묘한 기분.
'안개가 호수 곳곳으로 넓게 퍼져나가는 게 아니라... 한곳에 모여있는 듯한 느낌인데.'
호숫가에서 봤다면 알 수 없었겠지만, 감시대 위에서 보니 안개의 모습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관찰의 눈으로 볼까.'
뭔가 찜찜하다 싶을 땐 [관찰의 눈]이 답이다.
[관찰의 눈]
스킬을 사용하자 강승현의 눈이 푸르게 빛났다.
남들의 눈에는 그냥 평범한 안개로 보이겠지만,
[짙은 안개]
[바람이 불어와도 흩어지지 않는다.]
[작살 화살로 부술 수 있을 것 같다.]
[관찰의 눈]을 사용한 강승현의 눈에는 안개 위로 온갖 정보가 보이기 시작했다.
'...부술 수 있다?'
평범한 안개라면 이런 메시지가 나타나지 않는다. 뭔가 문제가 있다는 소리다.
[프리아의 석궁을 소환합니다.]
강승현은 안개를 향해 석궁을 겨누었다.
"헤카로 씨."
"응?"
"아무래도 쓸데없는 짓이 아닌 것 같습니다."
"뭐가 말인가?"
"감시대를 만든 일이요."
[작살 화살★]
강승현이 방아쇠를 당기자, 검은 작살이 호수 위 안개를 향해 날아갔다.
쫘아악!!
무언가가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안개가 걷히기 시작했다.
'역시 스킬이었군. 물 속성 스킬은 작살 화살을 막을 수 없지.'
작살 화살 중 옵션 중 하나는 [물 속성 스킬은 작살 화살을 막을 수 없다.]가 있다.
작살 화살에 안개가 뚫려버린 걸 보면, 저 안개의 정체는 누군가가 사용한 스킬이다.
'어떤 정신 나간 인간이 호수에 안개를 뿌렸을 리는 없겠지.'
이런 짓을 할 만한 놈들은 하나뿐이다.
강승현은 수면을 가리키며 말했다.
"물 위를 보세요."
"저, 저것들은! 몬스터!"
호수 위에 깔려 있던 안개가 사라지면서 수면을 헤엄쳐 오는 몬스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안개는 경비대의 감시를 피하기 위한 위장이었다.
"놈들이 카마르를 습격하려던 모양입니다."
88. 새벽의 호숫가 1
몬스터 무리는 경비대의 눈을 피해 가까이 접근해왔다. 이대로 놔두면 카마르로 진입할 것이다.
"한두 마리가 아니잖아...!"
시릴은 피츠타 호수를 내려다보며 경악했다.
"눈에 보이는 것만 수십 마리, 물속에 숨은 놈들까지 포함하면...."
"최소 수백 마리입니다!"
"거기다 저기를 좀 봐요."
강승현이 몬스터 무리를 가리켰다. 몬스터 사이에 눈에 띄는 몇몇 놈들이 있었다.
생긴 건 평범한 어인이었으나, 수초로 만든 망토를 두르고 손에 지팡이를 쥔 몬스터였다.
"어인 주술사들입니다."
"뭐라고?"
"저 녀석들이 안개 스킬을 사용한 것 같네요."
어인 주술사. 이름 그대로 마법을 사용하는 어인들이다.
"큰일이네. 어인 주술사들이라면 임시 결계를 부술 가능성이 높아!"
지금 카마르는 마법사들이 펼친 임시 결계 마법으로 도시를 방어하고 있다.
임시 결계는 불안정해서 강한 공격을 받으면 깨져버린다.
"그걸 막기 위해 카마르 병사들이 몬스터의 접근을 막고 있지만, 이대로 접근한다면...."
"쉽게 무너트리겠죠."
결국, 몬스터 무리의 목적은 카마르에 침입하기 위해 성벽을 부수기 위함이었다.
"당장 경비대에 알리러 가야 합니다!"
"그건 너무 늦어요."
강승현이 감시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놈들은 벌써 성벽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여기서 경비대를 부르러 가는 사이에 몬스터의 공격으로 성벽이 무너질지도 모른다.
"저 친구 말이 맞다. 우리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시간을 끌어야 해."
경비대가 올 때까지 손 놓고 구경할 상황이 아니다. 어떻게든 몬스터의 공격을 저지해야 했다.
헤카로는 결심한 얼굴로 강승현에게 말했다.
"손님에게 이런 걸 부탁하려니 미안하군. 자네도 힘을 빌려주지 않겠나?"
"물론입니다."
강승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경비대가 올 때까지 우리끼리 막아보죠."
-"모두 일어나라!! 비상이다!!"
1층으로 내려간 헤카로가 온 집안에 불을 밝히며 소리쳤다.
"빨리, 일어나거라! 어서!"
"무슨 일입니까...."
"아으... 졸려...."
헤카로가 소동을 피우자 자다 깬 카타일러 집안 사람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아니 지금 시간이 몇 신대...."
"아버지... 우리 아침에 이야기해요...."
"아직 해도 안 떴잖아요.... 오늘 비도 온다는데...."
잠옷 차림의 시옐과 그녀의 사촌들도 하품하며 거실로 나왔다.
다들 피곤해서 짜증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몬스터가 카마르로 습격해온다! 우리가 막아야 해!"
하지만 헤카로가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몬스터 놈들이라고?"
"그, 그게 정말이에요?"
"이게 무슨 일이람!"
다들 정신이 번쩍 들었는지 무기와 방어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과연 병사 가문답네요."
이들은 평소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 대비하고 있는 것 같다.
"싸울 수 있는 녀석들은 무조건 나와!"
"전투 능력이 없는 자들은 즉시 경비대로 가서 몬스터 습격 소식을 전해라!"
노약자들은 서둘러 카마르 경비대로 향하고, 싸울 능력이 되는 자들은 이곳에 남았다.
시옐은 전투용 글러브까지 착용하며 의욕을 불태웠다.
"몬스터 놈들.... 기어이 우리 집까지 왔다 이거지?"
"내 이것들을...!"
시옐의 어머니도 무기를 꺼낸 걸 보면, 이 집안 사람들은 병사가 아니더라도 기본적으로 전투 능력을 갖추는 모양이다.
"어서 가자!"
"호숫가로 가는 비상 통로를 이용한다!"
카타일러 가문 사람들은 카마르를 지키기 위해 호숫가로 달려갔다.
-"으... 졸려 죽겠네...."
"이런 상황이니까 우리도 나서야겠죠."
강승현은 김호정을 깨우러 갔다. 자다 깬 김호정이 크게 하품하며 말했다.
"아이고, 몬스터 놈들은 잠도 없나?"
"정 못 싸우겠으면 대피하세요."
카타일러 저택은 몬스터 무리가 몰려오는 호숫가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
몬스터를 막지 못하면 가장 먼저 박살 날 것이다.
"사람일 때는 졸려서 밤에 못 버틴다고...."
김호정은 하품하며 눈물을 닦았다.
그리고 혈석을 꺼내더니,
"하지만 비상사태라니 별수 없지.... 뭣하면 한번 죽든가 할게."
[흡혈 충동!]
[일정 시간 동안 공격력이 상승합니다.]
잠을 깨려는 듯 뾰족한 보석을 꽉 쥐었다.
"일단은 잠부터 깨고!"
통증 때문인지 김호정의 얼굴이 조금 맑아졌다.
"그럼 우리도 출발하죠."
"근데 나 지금 무기가 없어."
김호정의 칼은 쓰레기가 된 지 오래다.
맨주먹으로 싸워도 괜찮기야 하겠지만.
"시옐 씨, 혹시 무기 좀 빌릴 수 있을까요?"
"무기요? 지금 쓸 만한 게... 아, 하나 있어요!"
시옐이 지하로 내려가더니 고급스러운 천에 둘둘 말려진 뭔가를 가지고 나왔다.
스르륵.
천을 풀자 금빛을 뿜어내는 삽 한 자루가 모습을 드러냈다.
"...삽?"
"이건 그냥 삽이 아니에요. 매년, 카마르의 병사 중 가장 뛰어난 자에게 지급되는... 카마르의 영광!"
실제로 평범한 삽과는 다른 엄청난 힘이 느껴졌다. 최소 레어 등급 이상의 아이템이다.
이 [카마르의 영광]은 시옐이 병사 일을 할 때 받았다고 한다.
"그, 그런 엄청난 걸 빌려줘도 돼?"
"우리 집안에는 카마르의 영광이 11개나 있다구요. 그냥 가지세요."
시옐이 아이템 정보를 띄워주었다.
[카마르의 금빛 영광(삽)]
[물리 대미지 보너스 +250%]
[언데드 추가 대미지 +50%]
[손재주 +10%] [땅 속성 강화 +50%]
[패링 대미지 +15%]
[땅, 바위, 금속, 눈 부수기 특화]
-[추가 대미지 +50%]
[채굴 속도 +200%] [신성력 + 100%]
[햇빛 효과 : 모든 상태이상 내성 +30%]
-[절대 부서지지 않는다.]
설명만 보면, 이 삽의 본래 용도는 땅 파고 눈 치우고 돌 깨는 데 쓰라고 만든 것 같다.
무지막지하게 강해서 무기로 써도 문제없지만.
"그리고 이건 강 힐러님이 쓰세요."
시옐이 다음으로 꺼낸 아이템은 은빛을 뿜어내는 작은 모종삽이었다.
[카마르의 은빛 영광(모종삽)]
[근접 전투 대미지 +100%]
[투척 추가 대미지 +100%]
[땅, 나무, 추가 대미지 +30%]
[손재주 +30%][크리티컬 대미지 +10%]
[채굴 속도 +100%][공격 속도 +20%]
[독 저항 +100%]
[오염 상태 추가 대미지 +50%]
[달빛 효과 : 기습 성공률 100%]
-[투척 시 10초 후 손으로 돌아온다.]
"이건...."
"카마르의 은빛 영광. 금빛 영광과 한 세트에요."
금빛 영광과 마찬가지로 뛰어난 병사에게 주어지는 물건이다.
"거기다 카마르의 은빛 영광은 단검 판정을 받아서 로그 스킬도 쓸 수 있거든요!"
'날 로그라고 생각하나 보네.'
강승현은 마력이 워낙 낮고, 무기를 들고 다니지 않아서 로그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시옐 역시 강승현을 로그 힐러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정정할 수도 있지만, 주는 거니까 받아야지.'
거절하기엔 너무 탐나는 성능이었다. 강승현은 고민 없이 은빛 영광을 받았다.
"이렇게 귀한 걸 주셔도 됩니까?"
"카마르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아깝지 않죠. 오빠 목숨도 구해주셨잖아요."
시옐은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목숨값에 비하면 무척 보잘것없는 아이템이라면서.
"그럼 소중하게 잘 쓰겠습니다."
"좋은 무기도 받았으니... 당장 가자고!"
김호정이 금색 삽을 집어 들며 소리쳤다.
-시옐과 함께 저택 비밀 통로를 빠져나오자 단숨에 피츠타 호수로 나올 수 있었다.
"이 망할 놈들!"
"우리 고향에서 꺼져라!"
앞을 바라보자 카타일러 가문 사람들이 몬스터와 싸우는 게 보였다.
"뭐가 이렇게 많아?"
"역시 한두 마리가 아니네요."
몰려온 몬스터는 정말 어마어마한 숫자였다. 만약 카타일러 가문 사람들이 막지 않았다면 성벽이 순식간에 무너졌을 것이다.
"으극!"
"끝이 없구만!"
카타일러 가문 사람들은 힘겹게 몬스터와 대치하고 있었다.
끽해야 스무 명도 안 되는 인원으로 몇백 마리의 몬스터를 막고 있으니 지칠 수밖에 없다.
"일단 회복부터...."
[프리아의 석궁을 소환합니다.]
"해드려야겠네."
강승현이 방아쇠를 당기자 포션 화살이 사람들을 향해 날아갔다.
[프리아의 인연 주머니]
[중형 스태미나 포션 화살을 생성합니다.]
[중형 체력 포션 화살을 생성합니다.]
파박! 파바박!
"몸에서 생기가 느껴진다...!"
"계속 싸우자!"
"감사합니다 힐러님!"
회복된 사람들이 의욕을 불태우며 무기를 휘둘렀다.
강승현과 김호정도 카타일러 가문 사람들과 함께 싸움을 시작했다.
퍼억!
"근데 왜 물고기들이 땅 위를 돌아다니지?"
김호정이 덤벼오는 물고기를 삽으로 박살내며 말했다.
"이놈들은 숨 안 쉬나?"
"그건 아마...."
파바바박!
강승현이 발사한 작살 화살이 물고기 서너 마리를 단숨에 꿰뚫었다.
"육지 호흡 마법 덕분일 겁니다."
사람이 물속에서 숨을 쉬기 위해 수중 호흡 마법을 쓰는 것처럼, 수중 몬스터들은 육지 호흡 마법을 사용한다.
[관찰의 눈]
강승현은 [관찰의 눈]을 발동하고 쓰러진 몬스터들을 바라보았다.
[육지 호흡 상태]
실제로 지금 놈들의 몸에는 육지 호흡 마법이 걸린 상태였다.
[물리 방어 상승]
[이동 속도 상승]
[물 속성 강화]
뿐만 아니라 각종 버프까지.
"아니, 물고기가 버프 스킬도 갖고 있어?"
"그건 아닐 겁니다."
지금 전투하는 몬스터들은 그렇게 지능이 좋진 않다. 본인들이 직접 발동했을 리가 없다.
"이런 건 어인 주술사들의 짓이겠죠."
타인에게 버프 스킬을 걸어주려면 지능이 높아야 한다. 여기서 지능이 가장 몬스터는 어인 주술사들이다.
"#@!(&^%#$@@...."
실제로 어인들은 뒤에 숨어서 알 수 없는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마력을 아끼기 위해 전투는 일반 몬스터한테 맡기고, 본인들은 서포트...."
"짜식들이 생선 대가리 굴려서 머리 쓰네?"
"저 녀석들이 있는 한, 물고기들이 버프를 계속 받겠죠."
결국, 이 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건 어인 주술사 무리라고 할 수 있다.
"놈들만 처리하면...."
강승현은 아까 받은 카마르의 은빛 영광을 꺼냈다.
[달빛 효과 : 기습 성공률 100%]
'달빛 효과, 이름 그대로 달빛을 받는 밤에 받을 수 있는 옵션.'
낮에는 효과를 받을 수 없는 특수 옵션이다.
지금은 해가 뜨지 않은 새벽이니 달빛 효과를 받을 수 있다.
[투척★]
[달빛 효과를 받습니다.]
강승현은 어인 주술사를 향해 은빛 영광을 투척했다.
"잡몹들도 알아서 꺼지겠죠."
밤에 은빛 영광으로 기습할 경우, 달빛 효과로 인해 무조건 성공한다.
퍼억!!
"...!"
강승현이 투척한 은빛 영광이 어인 주술사 한 놈의 이마에 처박혔다.
녀석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사망했다.
"일단 한 놈 잡았고."
89. 새벽의 호숫가 2
철퍼억!
기습 공격에 당한 어인 주술사가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강승현은 쓰러진 어인을 보며 생각했다.
'방패 스킬 하나만 썼어도 즉사는 면했을 텐데. 이 녀석들, [다중 마법]은 없는 건가?'
마법사가 한 번에 여러 마법을 쓰려면 [다중 마법]이라는 스킬이 필요하다.
아무래도 어인 주술사들은 [다중 마법]이 없는 것 같다.
'그거 잘됐네.'
[다중 마법]이 없다면 버프 스킬을 쓰면서 방어 스킬을 동시에 쓸 수 없다.
이제 어인들은 강승현의 공격을 막기 위해 버프를 포기하거나, 목숨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이왕이면 둘 다 포기하는 게 제일 좋고!'
이어서 두 번째 공격.
강승현은 어인 주술사들을 향해 석궁 방아쇠를 당겼다.
[작살 화살★]
화아악!
새까만 작살이 바람을 가르고 나아갔다.
속도는 물속에서 쓰는 것에 비하면 느리지만, 어인들도 육지에선 움직임이 둔해진다.
'[화살 증폭기] 스킬 덕분에 공격 속도가 10%는 올라간 상태!'
여기에 [화살 증폭기] 효과를 받으면 그런대로 해볼 만하다.
파악!
"꾸르륵!"
실제로 어인 주술사는 느려진 작살 화살을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맞았다.
"우르르르르르!!!"
어인 주술사는 어깨를 움켜쥐고 시끄러운 비명을 질러댔다.
'내 스킬도 느려졌지만, 타겟도 느려졌다면 상관없지!'
강승현이 다음 공격을 위해 석궁 방아쇠를 당기려던 참이었다.
[카마르의 은빛 영광이 손으로 되돌아왔습니다.]
그때, 이런 메시지가 나타나면서 강승현의 손에서 은빛이 뿜어져 나왔다.
파아앗!
'10초 뒤에 돌아온다더니.'
뿜어져 나온 빛이 모종삽 형태로 되돌아왔다.
투척하면 이런 식으로 돌아오는 모양이다.
'이거면 투척해도 잃어버릴 걱정은 없겠는데.'
강승현은 은빛 영광을 던졌다 받으며 중얼거렸다.
원래, 기습 공격은 한 번 성공한 이상 상대의 시야를 벗어나지 않으면 쓸 수 없다.
다시 은빛 영광을 투척한다고 해도 기습 공격 자체가 발동하지 않을 것이다.
'로그라면 은신 스킬이 있으니 상관없지만... 나는 야매라서 말야.'
기습 공격은 상대에게 치명상을 입힐 확률이 높아서 좋긴 하나, 은신 스킬이 없다면 굳이 미련 가질 필요는 없다.
'로그짓도 야매로 하지 뭐.'
강승현은 기습을 포기한 대신, 인벤토리에서 포션 하나를 꺼냈다.
어제 만들고 남은 반어인 치료제 실패작이다.
'선물이다!'
[투척★]
강승현은 은빛 영광에 반어인 치료제 실패작을 뿌리고 어인 주술사를 향해 투척했다.
푸욱!
날아간 모종삽이 어인 주술사의 옆구리에 꽂혔다.
"꾸륵!"
어인 주술사가 괴로워하며 몸부림쳤다. 진짜 독에 비하면 죽을 정도는 아니겠지만, 꽤 고통스러울 것이다.
[작살 화살★]
이어서 방아쇠를 당기자,
파바박!!
석궁에서 발사된 작살 화살이 어인 주술사를 무참하게 뚫어버렸다.
털썩!
그렇게 두 번째 어인 주술사가 쓰러졌다.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우르르르!!"
"우라아아아아!!!"
동료들이 쓰러지는 걸 본 어인들이 날뛰며 분노했다.
"^&&*@#%$,,,**^%!!!"
놈들은 손에 쥔 지팡이를 치켜세우고 뭔가 괴상한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어이구, 어인들도 동료애가 있나?"
"눈물겹네요."
저렇게 동료애가 넘친다면 어서 동료 곁으로 보내줘야 할 것 같다.
강승현은 어인 주술사를 향해 석궁을 겨누었다.
'일단 무장 해제부터.'
팍!
날려 보낸 화살 하나가 어인 주술사 한 놈의 손목을 맞췄다.
"끄륵!"
녀석이 쥐고 있던 지팡이를 놓친 순간,
[후크 샷 - 크레인]
촤르르르!
후크 샷을 발사해 지팡이를 낚아챘다.
"나이스 캐치!"
"우라아아악!!"
무기를 빼앗긴 어인이 길길 날뛰었다.
"어인들도 무기를 잃어버리면 화가 나나 보네요."
"무기를 뺏어가면 누구나 화내지 않을까?"
"내 알 바 아니지만요."
강승현은 빼앗은 무기를 바라보았다.
피츠타 윌로우 뿌리 지팡이. 물 속성을 올려주는 마법사용 무기다.
"이왕 받은 거, 잘 쓰겠습니다."
"우르아아!"
어인은 지팡이를 내놓으라는 듯 소리쳤으나 강승현은 보란 듯이 인벤토리에 지팡이를 던져 넣었다.
그 대신 진홍의 루비를 꺼냈다.
'일단 버프부터 걸고.'
루비를 손으로 움켜쥐자 붉은빛이 뿜어져 나왔다.
[정신 집중!]
[일정 시간 동안 '집중력'의 효과를 받습니다.]
[명중률 상승!]
파바바박!!
[작살 화살★]
강승현이 석궁 방아쇠를 당기자 작살 화살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5연발 작살 화살!'
작살 화살이 주술사 무리를 향해 날아갔다.
"우르륵!"
어인 주술사 하나가 급하게 스킬을 사용하려 했다.
촤아아악!!
허공에 거대한 물 덩어리가 생겨나더니 어인 주술사를 보호하듯 가로막았다.
"물의 방패인가?"
어인은 날아오는 화살을 막기 위해 물 속성 방어 마법을 펼쳤다.
주문이 외워질 때까지 어떻게든 시간을 끌 생각인 모양이다.
"쓸데없이 마력만 낭비하셨네."
하지만 강승현은 미소를 지으며 석궁 방아쇠를 당길 뿐이었다.
'작살 화살은 물 속성 스킬로 막을 수 없거든.'
팍!
촤악!
나아간 작살 화살은 물의 방패를 가볍게 관통했다. 일반 마법 방패라면 한 번은 막았겠지만, 물의 방패를 사용한 게 실수였다.
"우르르륵!!!"
방패가 공격을 막지 못했기 때문에 날아간 화살은 그대로 어인 주술사의 몸을 꿰뚫었다.
"빨리 먼저 간 동료 곁으로 가시지."
"우라아아앗!"
어인 주술사는 비틀거리며 지팡이를 치켜들었다. 아직 싸울 기력이 있는 모양이다.
첨벙! 첨벙!
녀석이 지팡이를 휘두르자 호수 뒤에서 물고기들이 고개를 내밀었다.
푸우우우우우!!!!
푸부부부!!!
물고기 떼가 물대포를 쏘아대기 시작했다. 그 중에선 기관총처럼 물을 쏴대는 놈들도 있었다.
강승현은 쏟아지는 물을 피해 뒤로 물러났다.
'슬슬 스태미나 포션 좀 빨아야 하는데.'
물고기 놈들의 집중포화 공격 때문에 스태미나 포션을 쓸 만한 틈이 없었다.
'뭣하면 [살포] 스킬을 써서 마실 수도 있지만, 그럼 적이 공격해올 때 반격을 못 해.'
제일 좋은 건 누가 옆에서 방어 마법을 걸어주는 거겠지만,
'이 주변엔 방어막 걸어줄 사람이 없어.'
강승현은 지금 마법사들의 도시에서 싸우고 있지만, 이 주위에는 마법사가 하나도 없었다.
'...슈이레 씨가 보고 싶네.'
강승현은 슈이레가 그리워졌다.
자칭 천재 마법사답게 마법 발동 타이밍 하나는 기가 막혔으니까.
'어쩔 수 없지.'
강승현은 한참 생선을 썰고 있던 김호정을 향해 소리쳤다.
방패 마법이 없으니 인간 방패를 쓸 수밖에.
"김호정 씨, 틈 좀 만들어 주세요."
"틈?"
"스태미나 채울 때까지만요."
"오케이! 맡겨둬!"
김호정이 금빛 영광을 들고 앞으로 달려나갔다. 평소에는 몸빵으로 공격을 막던 그였지만 오늘은 뭔가 다른 걸 하려는 걸 같다.
'그러고 보니 새 스킬을 얻었다고 했지.'
달려나간 김호정이 금빛 영광을 치켜들고 소리쳤다.
"마법사는 마법으로 방패를 만든다!"
그러더니 갑자기 땅을 파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나 같은 흙수저는... 흙으로 방패를 만들면 된다!"
김호정은 엄청난 속도로 흙을 쌓아 올려 거대한 흙벽 같은 걸 만들어냈다.
"[대지의 기둥]!"
[대지의 기둥]은 빠른 속도로 흙을 퍼 올려서 단단한 방어벽을 생성하는 스킬이다.
일명 흙의 방패 물리 버전.
"그거 꼭 마인크... 같네요."
"그냥 봐선 꽤 허접해 보이지만, 엄청 튼튼하다고!"
김호정은 자신만만하게 소리쳤다.
푸우우우!!!
실제로 물고기 떼가 발사한 물줄기는 거대한 흙벽을 뚫지 못했다.
"그런 물총으로 내 흙벽은 못 뚫지! 강 선생! 포션 마셔!"
"감사합니다."
강승현은 흙벽 뒤에 몸을 숨기고 스태미나 포션을 빨았다.
촤악!
촤악!
벽 너머에서 물고기 떼의 공격이 계속 들려왔다. 열심히 공격하다 보면 부서지기야 하겠지만, 지금 당장은 힘들 것 같다.
"근데 그건 언제 얻은 거예요?"
"아까 삽 들고 어인 잡고 나서."
김호정이 손에 묻은 흙을 털며 말했다.
삽으로 몬스터를 쓰러트렸더니 업적 하나가 해금됐다고.
"좋네요. 안 그래도 방어 스킬이 부족하던 참이었는데."
흙이나 모래만 있으면 기둥을 세울 수 있는 스킬. 이래저래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것 같다.
팍!
타닥!
스태미나 회복을 끝낸 강승현은 단검을 이용해 흙벽 위로 올라갔다.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자,
"*##>;;,,',,[.'|**...."
"&^%&$!!@"
어인 주술사 놈들이 아직도 주문을 외우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 녀석들... 뭔 마법을 쓰려는 거지.'
[관찰의 눈]은 다 좋지만, 주문과 같은 소리까지 분석하지는 못한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주문이 긴 걸 보면 평범한 일은 아닐 것 같다.
"그냥 둘 수야 없지."
강승현은 어인 주술사를 향해 석궁을 겨눴다.
파바바박!!!
방아쇠를 당겨 작살 화살을 날려보내자,
"우르라아!!"
어인이 한 놈이 지팡이를 휘둘렀다.
파악!
호수에서 날아온 물고기 서너 마리가 작살 화살을 몸으로 막아냈다. 물의 방패로는 막을 수 없다는 걸 깨닫더니 고기 방패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고기 방패? 그렇다면 이쪽도 방법이 있지.'
강승현은 김호정을 바라보았다. 김호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뛰쳐나갔다.
"으쌰!"
퍼어억!!
삽을 내려치자 엄청난 충격과 함께 물고기 떼가 으스러졌다.
파바박!!!
몸빵용 물고기 방패까지 부서진 상황. 이제 놈들에겐 화살을 막을 수단이 없다.
강승현은 어인 무리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꾸륵...!"
"끄라악!"
작살 화살에 맞은 어인들이 계속해서 쓰러져 갔다.
첨벙! 철썩!
주술사들이 쓰러지기 시작하자 호숫가 몬스터들은 버프를 받지 못했다.
"슬슬 얼마 안 남았어!"
"우리가 카마르를 지킬 수 있다!"
버프가 사라진 잡몹들은 카타일러 가문 사람들이 가볍게 해치웠다.
이대로만 가면 경비대가 오기 전에 놈들을 전멸시킬 것 같다.
"이거 꽤 쉽게 풀리는데? 곧 이기겠다."
김호정이 금빛 영광을 붕붕 돌리며 말했다.
"아뇨. 잘 보세요."
강승현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우르르."
"끄륵"
주문을 외우던 어인 주술사들이 피를 토하며 쓰러지고 있었다.
작살 화살에 독을 바른 것도 아닌데 말이다.
"제가 마법 지식은 없는 편이긴 한데."
발밑에 펼쳐진 마법진과, 그 위로 쓰러진 어인 주술사들의 시체. 그리고 곳곳에 흩뿌려진 피까지.
마치 제물을 바치는 것 같은 모양새였다.
"이건 제물을 바쳐 발동하는 흑마술 쪽 소환 마법 같네요."
"제물이라고?"
강승현한테 이길 방법이 없다고 판단했는지, 어인 주술사 놈들이 최후의 수단을 발동한 것이다.
"어쩌면 처음부터 이럴 작정으로 온 걸지도 모르겠네요."
자기 자신과 동료들의 육체를 제물로 바쳐 발동하는 강력한 소환 마법.
제정신이라면 절대 사용할 리 없는 스킬이다.
쿠르르르르!!!
이어서 강한 진동과 함께 피츠타 호수에 거대한 물기둥이 솟아났다.
"아무래도 저게 진짜 보스인가 본데요."
물기둥 속에서 나타난 건 언뜻 보면 움직이는 바위섬처럼 느껴지는 몬스터.
거대한 몸과 집게발을 가진 초대형 게였다.
"피츠타 자이언트 크랩."
90. 새벽의 호숫가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