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 A급 헌터 응우옌 - [4]
Ⓐ BabyBerserker : 애기버섯이 오늘은 섹시한 삼각팬티 입고 등장♡♥♡!!
언니옵바야들 쓰담쓰담 해줘양! 애기버섯이가 이번에도 인천을 지켜냈으니까양!
애기버섯이가 얍삐, 얍삐, 얍삐! 이렇게 조그맣고 앙증맞은 손으로 나쁜 하이에나들을 모조리 때찌하고서 얼음공주 백담비 언니야의 쓰담쓰담을 받으며 쉬고 있었는데양!
마을의 평화를 위협하는 아주 못된 파동이 느껴졌지양!
그래서 보니 무지 큰 멧돼지 아조씨가 마을에 왔던 것이에양! 작고 어린 애기버섯이가 천 송이 늘어서도 쨉도 안 될 만큼 컸어양! 애기버섯이, 무서워서 오들오들 가녀린 몸을 귀엽게 떨었어양······.
이 와중에 오거 아조씨까지 마을에 왔지 뭐예양? 애기버섯이가 시끄러우니까 당장 집으로 돌아가라고 오거 아조씨를 아주 용기 있게 꾸짖었지양!
그랬더니 오거 아조씨가 글쎄, 뒤늦게 애기버섯이의 미모와 귀여움을 보고서는 두 눈이 하트가 돼버린 것이에양!
(///♡o♡/// - 정확히 이런 표정이었어양!)
익명 : 얍삐, 얍삐, 얍삐 했다는 게 게이트에서 나온 괴수들 1분도 안 돼서 싹 다 정리해버렸다는 그 괴수 대학살 말하는 건가······.
Ⓐ syberMagneto : 그만해그만해그만해그만해그만해그만해그만해그만해그만해제발그만해
Ⓐ BabyBerserker : 하트눈 오거 아조씨가 애기버섯이한테 신부가 되어달라며 청혼할 때는 애기버섯이도 띠용했지양!
애기버섯이는 아직 시집가긴 너무 어리다고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는데양!
하지만 이미 애기버섯이의 귀여움에 단단히 사로잡힌 오거 아조씨는 막무가내였어양! 애기버섯이가 거부한다면 보쌈해서라도 신부로 삼겠다며 달려들었지양!
애기버섯이, 정조의 위기!!!
애기버섯이는 순결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웠어양! 그 와중에 애기버섯이의 미모에 혹한 것이 오거 아조씨뿐만이 아니어서 무뚝뚝한 차도남 타입인 줄 알았던 멧돼지 아조씨마저도 애기버섯이를 신부 삼기 위해 쟁탈전에 끼어 들었고양!
오거 아조씨랑 멧돼지 아조씨, 그렇게 애기버섯이를 신부 삼겠다고 서로 싸우다가 둘 다 저승에 가버렸어양 ㅠ
하여간 남자들은 다들 바보예양. 애기버섯이만 보면 애기버섯이의 귀여움에 중독돼버리는 바보······.
애기버섯이, 두 남자를 치명적인 매력으로 홀려서는 죽게 만든 죄 많은 여자가 돼버렸어양. 애기버섯이 이제 나쁜 여자라서 산타 할아보지 선물 못 받게 됐는데, 이미 예전에 힝힝 울어서 선물 못 받게 됐으니까 그건 괜찮아양!
내가 힘써 올린 글의 댓글을 보았다. 생각보다 호들갑 떠는 반응들은 적더라.
5my지저스 : 이 형님의 피 튀기는 분투 덕에 대형 게이트였는데도 사망자 고작 네 명만 나온 데다 비싼 미사일 따위 한 발도 안 쓰고 상황 정리된 거 다들 앎?
Ⓐ 돌머리청년 : 다들 조심해라······ 이번에 유튜브 올라온 그 영상 보고 이 글을 다시 보면 애기버섯한테 반했다고 말하지 않는 놈은 망치로 마구 패다가 눈깔에 30mm 기관포탄 존나 박아서 고통스레 죽여주겠다는 섬뜩한 메시지를 읽을 수 있게 된다······.
익명 : 다들 괴수로 환생하면 사람 함부로 잡아먹지 마라. 사람 함부로 잡아먹었다간 죽고 나서도 이렇게 인터넷에 끔찍한 꼬라지로 묘사되어 박제되고 마는 것이다
익명 : 죽어서도 평온히 쉴 수 없는, 추악하고도 고통스러운 영혼의 죽음이다
Ⓐ 엘마야캐요 : 영상 진짜 멋지더라. 이번 일로 표창식 연다던데, 헌터들 위해서 지자체가 뭔가 의례적으로라도 해주는 건 거의 처음 아니냐? 모든 헌터들 대표해서 잘 참여하고 와라!
이번에도 심약한 몇몇을 제외하곤 다들 담담하게 이번 전과를 분석하고 있었다.
이번에 죽은 두 거대괴수가 호주에서 끔찍하게 날뛴 놈들이었기에 해외에도 이번 사냥 영상이 퍼졌다느니. 덕분에 그 영상이 국뽕 소재로 활용되는 중이라느니.
이번 달에 서울과 인천에 비슷하게 게이트가 열렸는데 서울에 비해 인천쪽 희생자가 말도 안 되게 적었던 것은 다 장한 애기버섯의 덕분이라느니 어쩌느니.
다들 어지간히도 내 글에 적응됐는지 생각보다 담담한 반응을 보여주고 있다. 너무 분한데, 여기서 더 역치를 올려야 할까?
진지하게 고민하며 댓글을 읽어내리자니 성문영이 중얼거렸다.
"형도 지금 기분 좋아 보이는데, 담비 누나는 형보다도 훨씬 기분 좋아 보이네요······. 이번에 보상금 두둑하게 받아서 기분 째지는 건가?"
그 말에 나는 백담비를 보고서 기겁했다.
지금 그녀의 기분이 좋다는 것은 장님이 보아도 알 수 있었는데, 그녀가 지금 스마트폰을 보면서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박자가 엉망인 게 그녀가 예전 아이돌 그룹에서 보컬 담당은 결코 아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확실히, 기분 좋을 만도 했다.
내가 거대괴수들을 사냥하던 중 게이트의 위치를 찾으러 나섰던 백담비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었다. 기어이 게이트를 찾아냈을 뿐만 아니라 그 안 괴수들의 동태를 관찰하고서 보고하는 데 성공했다고.
요새 베헤모스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상황 아닌가. 그러니 이것부터가 대단한 공적인데, 그전에는 자기 빙정 능력을 활용하여 혼절할 위기였던 날 구해내기까지 했다. 제 능력 활용할 기회가 귀한 그녀로선 그마저도 자부심을 충족할 만한 일이었으리라.
그야말로 헌터로서든 각성자로서든 제대로 활약한 셈이니, 저 사이버매그니토께서 기분이 좋은 것도 당연한 일이다.
나 역시 흡족해져서는 계속 커피를 홀짝이던 중이었다.
"김극? 이번에 아주 멋졌어!"
저 억양 독특한 인천말을 이미 들어본 적이 있었다.
과연 고개를 들어보니 응우옌이 내 앞에 있었다.
"아, 응우옌 씨? 이번에 아주 감사했······"
"감사는 내가 감사하지! 앞으로도 이렇게만 해, 응?"
내가 따로 예를 차릴 틈도 없었다. 응우옌은 내 손을 붙잡고 마구 흔들더니 어깨를 툭툭 치고는 떠나갔다. 내가 그 뒷모습을 보며 잠시 멍하니 있자니 응우옌이 거느린 헌터들이 다가와서 대신 사과했다.
"아, 정신없죠? 미안해요."
"아니, 사과할 건 없는데. 저 양반이 왜 저런대요?"
"그게, 응우옌 아저씨가 김극 씨 엄청 좋아해요. 평소에도 김극 씨 칭찬 엄청 하더라구요."
"아니, 왜?"
내가 진심으로 의아해서 묻자 헌터 하나가 말했다.
"김극 씨 덕분에 자기가 엄청 편해졌다나요?"
"그게 또 뭔 소리랍니까."
"원래 일 터지면 외국에서 데려온 A급부터 출동시키잖아요? 딱히 외국인 차별하려는 건 아니고, 외국인 각성자는 몸값이 내국인보다 싸니까······"
"나도 알아요. 죽거나 다쳐도 부담이 덜하니까 일단 외국인 각성자부터 현장 출동시키고 본다더라. 그래서?"
"그래서 위험한 상황이면 자꾸 응우옌 아저씨부터 부르니까 짜증 나고 화났는데, 김극 씨 데뷔한 후론 그런 일이 싹 사라진 거죠."
"어째서?"
"응우옌 아저씨가 출동해서 도착했을 즈음엔 김극 씨가 이미 상황 거의 다 처리한 상황이기 일쑤라서요. 이쪽은 이미 위급한 상황 다 끝난 마당에 데스클로 한두 마리쯤 잡으면 계약서에 적힌 출동 횟수 편하게 채울 수 있어 좋단 거죠."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성문영이 거들었다.
"그러고 보니 김극 형이 게이트 열렸을 때 출동 안 하는 걸 본 적이 없네요. 어쩐지 듣던 것보다 짐꾼 노릇이 바쁘더라니, 이러는 게 특이한 거였구나?"
헌터가 고개를 끄덕이곤 계속 말했다.
"그리고 구급콜······, 저번에 당하셔서 알죠?"
"알죠, 당연히."
"응우옌 아저씨가 구급콜로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인천시에서 초에운 죽은 뒤론 응우옌 아저씨를 부려 먹으려 하던데, 거부하면 자꾸 싫은 소리 하면서 불이익 줄 것처럼 은근슬쩍 협박하니 울화통 터지던 상황이었거든요."
"다 인천에 잠입한 서울 종자 소행이라고 제대로 설명해 주길 바랍니다."
"예? 아, 예. 아무튼 구급콜 문제도 유명하기 그지없는 김극 씨가 대놓고 터뜨려줘서 이젠 못 그런다나요? 덕분에 관련 스트레스가 싹 사라져서 자기가 김극 씨 덕에 여러모로 덕을 본다고······"
그가 계속 말하는 가운데, 나는 웃으며 말을 섞으면서도 온몸이 더워지는 것을 느꼈다.
인터넷에서 억울한 사연을 보면 저도 모르게 울분을 느끼고 체온이 상승하는 그 현상이었다. 정말로 남 일 같지 않은 것이 따로 의식하지 않아도 울화통이 터졌다.
어째서 초인 각성자씩이나 되어서는 저런 대우를 받아야 한단 말인가? 애초에 국적이 중요한 게 아닌데. 사람을 대할 때는 그가 각성했는지 아니면 비각성자 찌꺼기인지가 중요할 뿐 아닌가.
국가에 소속감씩이나 느끼는 저 역겨운 나치 새끼들은 그것도 모른단 말인가? 내가 언젠가 이 역겨운 나라를 뒤엎거든 기필코······.
나는 의식하자마자 곧바로 머릿속 망상을 걷어냈다. 제기랄. 이게 대체 뭐 하는 생각인지 모르겠다.
환각을 겪으면 겪을수록 비각성자 찌꺼기들에 대한 혐오와 이 나라에 대한 울분이 커지고 있다.
이쯤 되면 나도 심각성을 느낄 수밖에 없다. 비각성자들에 대한 선민의식이야 그렇다 쳐도, 국가를 전복시키겠단 망상쯤 되면 슬슬 위험하단 생각이 드는 것이다.
망상 따윈 걷어내고 눈앞의 대화에 집중하고자 애썼다.
헌터가 말했다.
"아,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남자다운 모습으로 끝내주게 싸우는 것도 호감이랍니다. 자기가 베트남은 물론 일본에서도 활동해 봤는데 김극 씨처럼 싸우는 각성자는 본 적이 없다나?"
"그야 공간이동 능력자는 저랑 네덜란드인 한 명밖에 없으니까 그렇겠죠?"
"아니, 공간이동을 말하는 게 아니라 싸우는 방식 자체가 끝내준단 거죠! 이번에 올라온 영상 저도 봤는데······"
그가 계속 말하려던 중이었다. 웬 인천 공무원이 우리를 불렀다.
"김극 씨? 그리고 응우옌 그 양반은 또 어디로 갔대······ 아무튼 다들 슬슬 준비하세요. 곧 시상이니까요······"
그 말대로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우리는 인천시에서 주관하는 표창식에 참여하러 왔다.
이번 달 헌터들이 특히 고생했으므로 그 노고를 위무하기 위한 표창식이라는데, 박미형 씨가 전화로 말해준 바에 따르면 정확히는 날 위한 표창식이라고 했다.
하기야, 내가 생각해도 내 활약이 보통 수준은 아니지 않은가.
저번 게이트 이후, 서울에서 여전히 게이트가 수시로 열리는 와중에도 인천엔 게이트가 드문드문 열리는 상황이다. 덕분에 이런 표창식을 열 여유도 생겼다.
헌트웹 유저들의 주장에 따르면 이마저도 귀여운 애기버섯의 덕일 수 있다고 했다.
게이트에서 빠져나온 자잘한 괴수들이 일 분 만에 떼죽음을 당하더니, 두 거대한 괴수마저도 게이트에서 빠져나온 지 십 분도 되지 않아 모조리 죽고 만 것이 게이트 안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괴수들에게 경계심을 주었으리란 주장이었다.
그들의 주장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내가 이렇게 잘나고도 위대한 놈이란 사실이다.
이 와중에 인천시에 나와 내년에 계약연장을 하려거든 원래라면 상금이라도 두둑이 줘야겠지만, 당장 지자체 예산으로는 망가진 신호등 교체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던가? 그래서 대신 예쁘게 뽑은 상장이라도 주려는 것이라며 박미형 씨가 조소했더랬다.
정확히는 부상으로 주어지는 것이 있기는 한데, 인천 상인회에서만 쓸 수 있는 상품권인데다 그마저도 액수가 적었다. 그래서 성문영을 비롯해 표창식에 참여하러 온 내 헌터팀은 다들 별 감흥 없는 표정이었지만 난 아니었다.
"김극 헌터와 그 헌터팀이 입장합니다! 모두 열렬한 환영을―"
내가 연단에 오르기 무섭게 우레와 같은 박수가 울려 퍼졌다.
"김극! 김극! 김극!" 하고 내 이름 또한 울려 퍼지는 가운데 나는 승천할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나는 엄숙한 미소를 머금은 채, 주먹을 높이 들어 올렸고 모두의 박수가 더욱 커졌다.
"아, 김극 헌터? 저번에 영상에서 나온 것처럼 오 분 내내 그러고 계시려는 건 아니겠죠? 이 자리를 빌려 한 말씀 해주시자면······"
"인천 만세. 존경하는 인천 시민 여러분과 저를 이 자리에 있게 지원해주신 박미형 시의원님. 그리고 또한 이 자리를 마련해주셨으며 인천의 적법한 통치자이신 이률 시장님께 감사의 말씀을······"
내가 근엄한 표정으로 말했더니, 어디에 웃을 만한 요소가 있었는지 몰라도 좌중에서 폭소가 터져 나왔다.
"아, 박미형 시의원님! 죄송한 일이지만 이젠 성함만 들어도 웃음이 나오는데요. 그분께서 아직도 세뇌 안 풀어주셨나 봐요? 인천에는 좋은 일입니다 정말!"
사회자 또한 빵 터졌다는 듯 웃더니 마이크를 도로 가져갔다.
이후로 사회자는 이번 사태에 큰 피해가 없었던 것에 김극 헌터의 공로가 컸다느니 어쩌느니 하며 날 향한 공치사를 쭉 늘어놓다가, 그 시선이 문득 내 옆에 서 있던 내 라운드걸을 향했다.
"그리고 표창을 계속하자면, 여기 백담비 헌터. 이분께서는 수색에 적극적으로 나선 공로가 있으며······"
대충 두 번이나 게이트를 찾아내서는 그 내부 상황을 보고한 공을 치하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날 표창할 때는 사회자가 웃긴 멘트까지 섞어가며 열정적으로 말하더라니, 어쩐지 백담비를 표창할 때는 사회자의 목소리에서 열정이 조금 식은 듯했다. 아무래도 그녀는 내가 주인공인 표창식의 조연에 불과하다고 여겨서 저러는 걸까?
혹시 맘이 상했나 싶어 백담비의 표정을 흘긋 보았더니, 그렇지 않았다.
이 자리에도 기어이 크롭티와 선글라스 차림으로 나온 내 라운드걸은, 신체강화자이기에 시력 또한 초월적인 나만이 알아볼 수 있을 만치 그 입꼬리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보아하니 웃음을 참으려 애쓰는 듯했다. 어째서?
내가 추측하건대, 그녀로선 지금 이 표창을 매우 감격스럽게 여기는 듯했다. 워낙에 인정 받을 기회에 굶주려 있던 그녀라서, 객관적으로 보면 딱히 대단치도 않은 이 상황마저 대단히 가치 있게 여기는 모양이었다.
사회자가 백담비에게 마이크를 돌리자 그녀가 쿨한 척 짧게 말했다.
"영광입니다. 인천 만세."
"오, 그 대사가 또! 여기 계신 김극 헌터한테서 옮았나요?"
"예. 저분이 자꾸 이거 외치라고 강요해요······"
표지의 가채색본이 나왔습니다! 완성본은 다음 주 수요일에 나온다고 합니다!
failose 작가님께서 그려주셨습니다! 저 옥타곤부터 티셔츠의 애기버섯까지 정말 너무너무 훌륭한데요!! 특히 광전사처럼 피투성이인 김극의 모습마저 끝내줍니다!!
아쉽게도 제가 따로 요청드렸기에 완성본에선 혈흔 표현이 처음 팬아트 수준으로 줄어들 듯합니다. 지금 버전이 끝내주게 멋지지만 지나치게 하드코어 한 소설로 보이리란 걱정이 들어서... 그래도 역시나 최고의 표지임은 건 변함이 없으리라 확신합니다!!!
다시 한번 진심 어린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47화 A급 헌터 응우옌 - [5]
내가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러자 사회자가 신난 목소리로 호들갑 떠는 가운데, 나는 나이토 상을 보았다.
저 비각성자 찌꺼기 놈, 인정하기는 싫지만 이번에도 꽤 공을 세웠다. 현장에 제일 먼저 도착해서는 도로에서 날뛰던 데스클로를 세 마리쯤 사살한 데다가 그 멧돼지 괴수를 유인함으로써 인명피해를 크게 줄였다지 아마?
그리 목숨 건 대가로 고작 상장이나 준다는데도 싱글벙글 웃고 있다니. 나이토 상은 저 태도만으로도 자신의 프로정신이 어느 정도인지 증명하고 있었다. 아니면 나중에 방송에서 자랑할 걸 생각하니 좋아서 웃는 걸까?
그렇듯 나름대로 이 자리를 즐기는 헌터들과 달리, 이 표창식에 참여한 또 다른 헌터는 영 지루한 눈치였다.
"Nóng quá đi······."
정확히는 응우옌이 그랬다.
응우옌은 표창식이 한창 진행 중인데도 아까부터 혼잣말이나 자꾸 하고 있더라니, 은근슬쩍 내게 다가와서는 작지도 않은 목소리로 이렇게 물었다.
"김극? 이 재미없는 거 끝나고 같이 술 안 마실래?"
신성한 인천의 행사에 저따위 태도를 보이는 것이 맘에 들지는 않았지만 뭐, 어쩌겠는가?
저 양반이 지자체에 시달린 게 있다는 것을 방금 들어서 안다. 지금 이 자리에 불려온 것마저 짜증 나리란 것을 이해할 만했다.
난 점잖게 고개만 끄덕여 승낙의 뜻을 밝혔다.
그리고 응우옌이 날 맘에 들어 한다는 것은 빈말이 아닌 듯했다. 곧바로 그 빛나는 치아가 드러나도록 씩 웃어 보이는 걸 보니.
그리고 표창이 끝난 뒤, 모금행사를 겸한 상품판매가 시작되었다.
헌터들을 위한 행사답게, 인천시에서는 헌터들의 캐릭터 상품을 만들어서 팔았다.
여기 모인 헌터 중에 특히 유명한 둘의 상품, 그러니까 나와 나이토 상의 아크릴 스탠드였다. 솔직히 퀼리티가 썩 좋진 않아서 차라리 차라리 애기버섯이 그려진 티셔츠나 파는 게 훨씬 낫지 않을까 싶은 물건이었다.
그러나 여기 모인 인파는 다들 나와 나이토 상을 보러온 사람들이라, 준비된 상품들은 순식간에 전부 팔려나갔다.
이것이 백담비로선 몹시 부러웠던 모양이다. 그녀가 슬쩍 내게 다가와서는 말을 걸었다.
"인기 진짜 좋으시네요······?"
내가 위로하듯 대답했다.
"제가 귀여워서 그래요."
음, 내 라운드걸의 누군가를 때리고 싶어 하는 표정은 처음 보았다.
백담비는 어떤 충동을 참으려는 듯 눈을 감았다 뜨더니 말했다.
"귀여우셔서 부럽네요, 정말······."
"부러우면 말끝마다 양 붙여보는 거 어때양? 이러면 분명 천 배는 더 귀여워질 거예양!"
백담비의 누군가를 죽이고 싶어 하는 표정도 이번에 처음 보았다. 그녀가 떨리는 입술로 말했다.
"차라리 죽을게요······!"
난 기분 좋게 웃어주고는 내 라운드걸과 작별했다.
이제 응우옌과 약속한 대로 술이나 마시러 가려던 차였다.
웬 공무원이 날 붙잡았다.
"저기, 김극 헌터님? 표창식 중에 들어보니까, 이따 응우옌이랑 술 한잔하실 예정이라던데 맞습니까?"
"아, 표창식 중에 말 거는 거 받아줘서 미안해요. 그렇다고 무시하기도 좀 그렇더라구요."
"그게 아니라, 따로 부탁드릴 게 있어서 그렇습니다. 번거로우시겠지만 술자리 중에 응우옌이랑 서로 말 나누시다가······ 그 친구한테 무슨 문제가 있는지 좀 여쭤주실 수 있겠습니까?"
나는 한쪽 눈썹을 치켜떴다.
"뭔 문제가 있는지 물어보라뇨?"
내 물음에 공무원이 설명했다.
*******
표창식이 끝난 후 사십 분 뒤, 난 약속했듯 응우옌과 둘이서 술을 마셨다.
내가 술 한 잔 따라주며 말했다.
"이번엔 도와주셔서 여러모로 살았습니다. 죽다 살아났어요, 진짜로."
응우옌은 내가 따라준 술을 쭉 들이켜고는 호탕하게도 말했다.
"왜 이리 예를 차려? 각성자끼리 서로 도와야지!"
"옳으신 말씀."
"애초에 김극이 난처해 보이는데 내가 어찌 무시하겠어? 내가 김극 당신 엄청 좋아하는 거 알지!"
"예. 팀원분들도 그렇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응우옌이 특유의 미소를 지었다.
"내가 말이야, 각성자들이랑 많이 만나고 다녔어! 베트남에서도 잔뜩 봤고 일본에서도 여럿 봤는데 여기 김극만 한 영웅은 없더라고?"
"제가 잘나긴 했죠?"
내가 겸손하게 대답했더니 응우옌은 계속해서 날 칭송했다.
"어, 진짜 잘났어! 힘 세다고 자랑하는 각성자들은 여럿 봤어도 김극처럼 망치 같은 거 들고 직접 괴수 때려잡을 만치 깡다구 좋은 놈은 못 봤고! 나름대로 용기 있어서 괴수한테 무모하게 달려드는 놈은 좀 봤어도 실력이랑 머리가 받쳐줘서 김극 수준으로 성과 내는 놈은 아예 못 봤고······!"
그가 한참이나 내 칭송을 해주길래 나도 그렇게 했다.
"응우옌 씨도 진짜 대단하던데요? 너무 빨라서 달리는 모습이 보이지도 않던데! 워낙에 스펙이 좋아서 계약금도 어마어마하시다죠? 아, 벌써 한 잔 다 비우셨네? 자, 한 잔 더······"
내가 또 술 한 잔을 따라주니 응우옌은 보는 사람이 다 기분 좋을 만치 호탕하게 잔을 비웠다.
그리 서로 술잔을 주고받자니, 나는 멀쩡한 반면 응우옌의 얼굴은 취기로 붉어졌다.
응우옌이 알딸딸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고 보니 김극 당신은 신체강화자인데 술 마셔도 뭔가 느낌이 있나? 간이 너무 강력해서 취할 수도 없는 거 아니야?"
"그렇긴 한데 뭐, 술은 취하려고만 마시는 게 아니라 분위기로도 마시는 거니까."
"그런가? 그럼 나만 취하지 뭐!"
응우옌은 거의 외치듯 말하더니, 이미 술을 잔뜩 마셔 얼굴이 잔뜩 붉어진 상태에서도 계속해서 술을 마시고 또 마셔댔다.
그 영웅호걸다운 모습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저토록 호탕한 양반이 인천시 예산 도둑이라 불릴 만큼 사냥에서는 소심하게 구는 놈이라고? 언뜻 보기엔 그리 보이지 않았다.
공무원이 하소연하기로, 내 눈앞의 A급 헌터 응우옌은 인천시에서 태업하는 놈으로 악명이 높다던가?
당시 그와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계약서에 적힌 출동 횟수는 채워야 하니까 게이트가 열렸을 때 출동하긴 하는데! 막상 출동해서는 A급이 해야 할 제대로 된 일을 하려 들지 않는 거죠!'
'A급 헌터가 해야 할 일이면, 역장체를 도맡아서 처리한다든가 하는 그런 일 말씀하시는 건가요?'
'예, 바로 그런 일 말입니다! 그런데 응우옌은 그런 힘들고 위험한 일은 나서는 시늉만 대충 하고 헌터 라이플이나 몇 발 쏘다가 사냥 참여하긴 했다며 집에 돌아가 버려요.! 거의 말년병장 마인드라 아주 미치겠습니다. 계약기간 아직 2년도 넘게 남은 주제에 저러니까······.'
왜 그리 심각하게 여기는지는 알 만했다.
몸값 비싸게 주고 계약한 스포츠 선수가 대충 뛰고 돈만 벌자는 마음가짐이어도 골치가 아프지만, 지자체가 없는 예산을 짜내어 계약한 A급 헌터가 그러면 더욱 큰일이다. 의욕 없이 굴어도 경기 성적 좀 망치고 마는 스포츠 선수와 달리 A급 헌터의 활약은 그 지역 시민들의 생명에 직결된 중요한 문제기 때문에.
'이번에 응우옌 씨 보니까 안 그렇던데. 바이크까지 얻어타고 재빠르게 현장 도착해서는 거대괴수까지 유인해주던데요? 위험 무릅써가며 말입니다.'
'그랬죠. 무전 들어보니까 이번엔 뭔가 일을 주도적으로 하려 들데? 워낙에 특이한 일이어서 응우옌 그 인간 팀원들 붙잡고 이번엔 왜 그리 적극적이었나 물어보니까, 김극 씨에 대한 개인적인 호감으로 이번에만 유별나게 굴었던 것 같거든요? 그러니까······'
그렇듯 응우옌이 나를 유독 좋아하는 모양이니, 내가 직접 어디가 문제인지 알아봐달라고 공무원은 부탁했다.
응우옌이 왜 그리 태업하는 것이며, 이번처럼 열심히 일하게 만들려거든 이쪽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물어봐 달란 것이었다.
솔직히, 별 대단한 의욕이 들지는 않았다. 내가 보기에는 뭐가 문제인지 뻔했으니까.
'구급콜이며 현장 우선 투입이며, 여러 가지로 혹사하게 만든 탓에 열심히 일할 의욕 사라진 거 아닙니까?'
내가 응우옌의 팀원들이 말해준 내용을 지적했더니, 공무원은 난처한 듯 말을 돌리려 했다.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고······ 다른 문제는 없나 살피고 싶은 겁니다.'
그러니까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진짜 문제는 외면한 채 다른 문제점이나 애써 찾아내 보겠단 셈이었다.
그렇다면 나 보고 어쩌란 말인가? 내게 놀라운 말주변이 있더라도 이 상황을 호전시킬 순 없을 것이었다.
그래도 뭐, 일단 부탁받은 이상 아예 무시할 생각도 없기는 했다.
나는 응우옌을 바라봤다.
원래부터 술을 좋아했던 듯, 그는 술을 마시고 또 마시고 있었다. 슬슬 몸 가누기도 어려워 보였는데, 이 정도로 취했으면 속내를 캐내기도 쉬울 듯했다.
그리하여 내가 물었다.
"현재 대접에 불만이 많으시죠?"
그랬더니 곧바로 대답이 돌아왔다. 응우옌은 주먹으로 탁자를 탁, 하고 치더니 외쳤다.
"불만, 많지!"
"불만이 왜 많으신지?"
"여기 놈들은 날 대충 쓰다 버릴 외노자쯤으로 보니까!"
뭐, 예상했던 대답이라 딱히 놀랍지도 않았다.
그리고 내가 위로하려던 차에 응우옌이 계속해서 말했다.
"그놈들은 날 그따위로 대하면 안 돼······ 내가 원래 뭐 하던 사람인 줄 알아? 내가 헌터 하긴 전엔 베트남에서 뭐 했는지 아냐구?"
"모르겠는데, 궁금하네요. 원래 뭘 하셨죠?"
딱히 궁금해서 물어본 것은 아니었다. '내가 뭐 하던 사람인 줄 아느냐'는 취객의 단골 멘트에 불과하지 않은가.
그러나 응우옌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내 예상을 완전히 벗어난 것이었다.
"나랑 내 동료들은 말이야, 한 개 성(省)을 지배했어!"
나는 눈을 껌벅였다. 이건 또 처음 들어보는 소리 아닌가.
"한 개 성을 지배하다뇨?"
그리고 응우옌이 잔뜩 취한 말투로 소리쳤다.
"말 그대로! 성을 통째로 점령해서 성주 노릇을 했단 말이야!"
"어떻게······"
"게이트에서 괴수들 잔뜩 튀어나온 어느 날에 경찰 놈들이 다 도망쳤거든? 경찰이 없어진 이상 사람들 살리려면 새로운 보호자가 필요한 거 아니야! 날 포함한 각성자 군인 몇몇이 생존자들을 모아서는 거기 살던 나약한 백성들을 통치했단 말이지. 통치, 음! 통치! 단어만 들어도 뭔가 근사하지!"
나는 문득 예전에 본 어느 기사를 떠올렸다. 치안 공백을 틈타 까마우성을 점령했던 베트남의 각성자들.
그 각성자들은 당시 까마우성을 점령한 채, 그곳 주민들을 상대로 보호세를 걷겠다며 재산을 갈취하거나 성 상납을 받는 등의 온갖 범죄를 저질렀다던 내용 또한 기억이 났다.
눈앞의 응우옌이 그들 중 하나였던 모양이다.
난 이후의 일이 대충 짐작되었지만, 모르는 척 물었다.
"그런데 지금은 왜 헌터를 하고 계시죠?"
"정부에서 해산 명령 내리는데 우리가 무시하니, 정부에서 지역을 탈환하겠다고 군대를 끌고 왔는데······ 우리 대장 놈이 포성 몇 번 듣곤 겁먹고 항복해버렸으니까!"
어지간히도 화나는 일이었던 모양이다. 응우옌이 계속해서 소리쳤다.
"등신 새끼! 그곳에 역장 외골격 있는 놈이 아홉이나 있었는데 박격포 따위가 대체 뭐가 무서워? 우리가 얼마나 단단하고 빠른데, 포탄 한두 발쯤 버티고서 쭉 달린 다음 병사들 다 죽여버리면 되지 대체 왜 겁을 내냐구?"
"항복할 때 반대하던 사람이 적었나 봅니다?"
"항복해선 안 된다던 놈들이 있긴 했지! 그런데 서로 옥신각신하던 중에 정부에서 순순히 항복하면 큰돈 받고 헌터 노릇할 수 있게 외국으로 내보내주겠다고 하더라. 거기 모인 등신들이 그 수작질에 또 넘어갔고······ 진짜 등신 새끼들!"
"단순한 수작질이라기엔 일단 약속을 지키긴 지킨 모양이군요. 지금 헌터 하고 계신 거 보니."
"그 약속을 지켰단 사실 자체가 우린 거기서 항복하면 안 됐단 걸 증명하지! 정부도 우릴 제압할 자신이 없으니까 죄다 붙잡아서 처형하거나 노예 병사처럼 부려 먹으려 드는 게 아니라 일단 외국으로 쫓아내서 위험분자들 치우고 본 거 아니야?"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행히 이곳은 VIP룸이어서 우리 둘뿐이었고, 정신적 그물망을 통해 감지되는 엿듣는 사람도 존재하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지금 저 입에서 나오는 말을 누군가가 들었다간 큰일이 날 테니까.
그리고 잔뜩 취한 응우옌은, 제정신이라면 남에게 결코 말해선 안 될 비밀들을 계속해서 토해냈다.
그는 한참이나 그러다가 울먹이며 말했다.
"그때 그 자리에 김극 씨가 있었으면······ 내가 지금 이따위 취급이나 받진 않았을 거야!"
"왜죠?"
"그 자리에 김극 씨가 있었으면 누가 포격 따윌 두려워했겠어? 아무리 바보라도 공간이동으로 잠시 위기 벗어나면 된단 계산쯤은 됐을 테지!
그러니까 김극 씨만 있었으면 항복 따윈 하지 않았을 거야······ 애초에 김극 씨 같은 사나이가 무리를 이끌었다면 고작 비각성자 찌꺼기들이 몰려왔단 이유로 겁먹고서 항복하는 일도 없었을 테고!"
제대로 취한 듯, 응우옌은 이제 반쯤 울기 시작했다.
응우옌은 당시 그 자리에 내가 있었어야 한다며 몇 번이고 말하다가, 그때 그 자기 범행을 아는 베트남인을 한국에서 마주쳐서는 돈을 주지 않는다면 당시 전과를 한국 지자체에 고발해 헌터 계약을 취소시키겠다며 협박당한 나머지 계약금 중 상당한 액수를 날려야 했다며 훌쩍거렸다.
응우옌은 한참이나 그리 울더니, 불현듯 날 보며 말했다.
"김극? 나중에 범죄라도 크게 저질러서 헌터 노릇 더 못 하게 되면 나한테 연락해. 응? 아니면 헌터고 지랄이고, 사냥 따윈 위험하고 힘들어서 못 해 먹겠다 싶어도 무조건 연락하고!"
"헌터일랑 그만두고 같이 베트남으로 돌아가 다시 성 하나 점령해보잔 건가요?"
내 물음에 응우옌이 고개를 끄덕였다. 몇 번이고 끄덕이더니, 그가 계속 훌쩍거렸다.
"그 시절이 진짜 좋았어. 지금이랑 비교할 수 없이 너무 좋았다구······! 그때 나랑 잔 여자가 얼마나 많았느냐면······"
*******
48화 A급 헌터 응우옌 - [6]
다음 날 오전,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받아보니 예상대로 응우옌이었다.
「김극? 시간 돼?」
"예, 응우옌 씨? 말씀하십쇼."
휴대전화 너머 응우옌은 평소와 달랐다. 그는 호탕함이라곤 느낄 수 없는 축 처진 목소리로 조심스레 물었다.
「내가 어제 술 잔뜩 취했잖아? 그래서 이런저런 말을 함부로 한 것 같은데, 혹시······」
"앞으로는 술 좀 자제하셔야겠어요. 너무 취하셨는지 입단속이 안 되시더라. 해선 안 될 말을 잔뜩 하시던데?"
잠시 침묵이 흘렀다.
꽤 오래 뜸 들이고서야 응우옌이 말했다.
「혹시 내가, 김극 입 다물게 돈이라도 주길 바란다면······」
"됐습니다. 나도 돈 많아요."
내 빠른 대답에 응우옌의 목소리가 밝아졌다.
「그렇지? 그래도······」
"누가 때려죽여도 말 안 할 테니까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진짜지? 약속한 거야! 그래도 혹시 내가 해주길 바라는 일 있으면 미리 말해, 응? 내 맘 편해지게 말이야!」
"맘 놓으셔도 된다니까······ 정 불안하면 나랑 같이 사냥할 때라도 저번처럼 열심히 일해주시든가요. 딱히 열심히 사냥 참여 안 한다고 하신 말씀들 까발리거나 하진 않을 거지만, 나랑 친해져서 나쁠 건 없잖습니까?"
응우옌은 이쯤 되어서야 겨우 안심한 듯했다. 휴대전화 너머 응우옌은, 이제야 평소와 같은 호탕하기 그지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역시 내가 사람 하난 제대로 봤어! 그래, 김극 같은 사나이가 사람 비밀 까발리겠다며 협박하고 그리 얍삽하게 굴 리가 없지!」
"그래서, 저랑 사냥하실 때 열심히 나서주실 거예요?"
「당연히 그래야지! 나 진짜 열심히 할 테니까 기대해, 김극!」
목소리만 들어도 그 들뜬 모습이 절로 연상되었다. 아마도 저 너머 응우옌은 특유의 흰 치열을 드러낸 미소를 짓고 있을 테지.
처음 만났을 때 본 그 사람 좋은 미소에 속았다, 제기랄.
통화를 종료한 뒤, 나는 한숨 쉬었다. 그러고는 방금 통화 상대를 속으로 욕했다.
저 씹새끼. 품위라곤 없는 버러지 새끼.
인천시에 그 행적을 고발할 수는 없었다. 그래봤자 인천시에 득 될 것이 없었으니까.
내가 어제 놈에게 계속 술을 먹여가며 정보를 캐냈기로, 응우옌이 인천시에서 받은 계약금의 절반 이상은 이미 비트코인으로 전환된 데다가 입막음 비용 따위로 또 상당액수가 날아간 지 오래였다. 그래서 설령 계약을 파기한들 계약금을 온전히 돌려받을 방법이 없어 보였다.
게다가 한국은 전과가 있더라도 헌터 면허를 발급하도록 법을 바꾼 지 오래 아닌가. 따로 알아본 바로는 이제 과거 행적을 이유로 계약을 취소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니 어쩔 수 없다. 그 맘이 상하지 않게 잘 달래가며, 나 있을 때라도 사냥에 제대로 참여케 만드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런 식으로 이미 받은 돈 값어치라도 하도록 만드는 수밖에.
하여간, 여러모로 복잡한 심정이었다.
강준치는 개인적으로 호감이 가는 인물이었지만 그 소시민적인 행적이 영 맘에 들지 않았는데, 응우옌은 정확히 그 반대였다.
응우옌에 대한 개인적인 호감은 어제 그가 여자를 마음껏 겁탈했느니 어쨌느니 자랑스레 지껄일 때 싹 사라졌지만, 그의 행적 자체는 참으로 맘에 들었다.
그러니까, 그의 반란군 행적 말이다.
베트남은 충분히 부유하지 못한 나라가 흔히 그렇듯 헌터 제도를 인정하지 않는 나라다. 베트남에서는 일반 병사의 몇 배 봉급을 줘가며 각성자들을 군인으로 징집하는데, 그래봤자 국제 각성자 시세에는 한참 못 미치는 돈이라 각성자들의 불만이 상당했다.
그 와중에 까마우성의 게이트 사태를 진압하기 위해 파견된 각성자 군인들이 군의 제어에서 벗어나 까마우성을 점령했다.
그것은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던 각성자들의 봉기인 셈이었다. 그리고 봉기를 일으킨 결과 각성자들이 외국에 나가서라도 큰돈을 벌 수 있게 되었으니, 그것은 어찌 보면 일부 성공한 봉기라 볼 여지가 있다.
각성자로서의 나는 그 반란을 필요한 일이었노라고 느낀다. 그 과정에서 일어났던 사람들의 재산을 갈취하는 등의 추잡한 일들을 무시하자면, 그것은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던 각성자들이 제 권리를 돌려받기 위해 당연히 해야 했던 일이었노라고.
그리고 환각을 거듭 겪은 탓에 뒤틀린 듯한 내 새로운 사고방식은, 아예 저 베트남 각성자를 미래의 동지로 삼기 위해 이제부터 친해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미친 새끼.
물론 안 될 일이다. 망상조차 해선 안 될 일.
난 그따위 망상을 실천에 옮긴 듯한 머저리의 최후를 이미 봤다.
환각 속 나. 그 테러리스트 머저리······.
난 놈처럼 되지 않을 것이다.
놈과 같은 최후를 맞기엔 난 해야 할 일이 많다. 난 인천을 지켜야 하고, 박미형 씨의 선거운동을 도와야 하며, 여동생이 출소했을 때 포르쉐와 아파트를 선물해야 한다. 그리고 또 가능하다면 내 라운드걸이 말끝마다 양, 양 거리게 만들어야 한다.
폭탄 테러 따위나 저질렀다간 할 수 없는 일들이다.
나는 생각을 정리한 뒤, 저번에 만난 공무원에게 연락했다.
그 공무원에게 내가 적절히 편집해낸 이야기를 전했다.
"그래요, 응우옌이랑 대화 좀 오래 나눴습니다······ 역시 외노자랍시고 막 다룬 게 문제인 것 같은데요? 그래서 불만이 넘쳐나는 상태던데, 적어도 절 좋아하긴 하나 봅니다. 제가 잘 다독여 보니까 응우옌이 약속하기론 이제 저랑 같이 사냥할 때만은 열심히 하겠다더군요."
「아······ 일단 김극 씨랑 함께면 열심히 하겠다니 일단 그거라도 다행이네요. 김극 씨가 출동했을 때 위주로 출동 요청하면 되는 셈이니까······」
"그렇죠. 칭찬을 아끼지 않으셔도 됩니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 큰절이라도 올리고 싶네요! 사실 제 요청 들어주실 필요가 없었는데, 이걸 또 들어주시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연거푸 감사를 표하던 공무원에게 내가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제가 부탁 들어드렸으니 저도 부탁 하나 드려도 되겠습니까?"
공무원이 어디 말해보라고 하길래 나는 요구사항을 전했다. 곧바로 승낙의 대답이 돌아왔다.
「아, 그 정도야 뭐. 생각보다 별것 아니라서 죄송스럽기까지 하네요? 그럼 바로 진행하겠습니다. 거듭 감사드립니다, 김극 씨!」
*******
그리하여 다음 날 오후, 나는 박미형 씨의 옆에 앉았다.
나는 저 앞에 모인 사람들을 바라봤다.
근처 상인이며 집주인들······ 희망 가득한 얼굴로 모여든 사람들과 기자들 앞에서 박미형 씨가 말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인천 탈환 프로젝트의 재개를 선언합니다!"
이렇게 굳이 사람들을 잔뜩 모아놓고 발표하는 이유야 뻔하다. 인천시 땅값 회복을 위한 정책 홍보 겸 정치인들이 좋아하는 목소리 낼 기회 잡기.
그리고 박미형 씨는 슬슬 굳이 이런 자리에서 목소리 낼 필요도 없어 보였다.
"세뇌 능력자 박미형 만세!"
"앞으로도 김극 헌터 세뇌 단단히 유지해주세요!"
우레와 같은 박수가 울려 퍼졌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쪽 팔을 하늘을 향해 들어올렸다.
영상에서 5분이나 그러고 있었기에 이제는 내 시그니처 포즈가 되어버린, 내 승리 자세를 취하니 곧바로 호응이 돌아왔다.
"김극! 김극! 김극!"
괴수를 쓰러뜨렸을 때마다 듣곤 하는 저 환호 속에서 나는 눈을 감았다 떴다. 그리고 이미 잘 아는 사실 하나를 새삼 확인했다.
나는 헌터 일이 좋다.
난 헌터로서 인천과 인천 시민들을 지킨다는 사실에 지극한 자부심을 느낀다. 이것이 각성자만이 할 수 있는 신성한 일이라고 느낀다.
그래서 비각성자 찌꺼기 주제에 어지간한 각성자들 이상으로 활약하는 나이토 상을 보면 주제넘은 것 같아 화가 나며, 응우옌을 개인적으로 맘에 들어 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도 바로 헌터 관련이다.
응우옌은 전투에 최적화된 각성자임에도 불구하고 헌터 일을 위험하고 힘든 일이라며 꺼렸다. 성주로 군림하던 시절에 비하면 지금 이 헌터 노릇은 고되고 천한 외노자 일에 불과하다고.
모름지기 영주로 군림하길 원하는 각성자라면 그따위로 생각해선 안 된다.
소월인처럼, 비각성자들을 가축에 불과한 양이라 여기더라도 마찬가지다. 양치기는 곰과 늑대에게서 양을 지킬 의무가 있는 법. 비각성자들을 양으로 보든 사람으로 보든 그들을 지켜낼 생각이 없다면 군림할 자격도 없다.
응우옌은 그 신성한 의무를 내팽개친 채 군림하길 원한단 점에서 정신머리가 틀려먹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소월에 데려가 그 썩은 정신을 고쳐줘야 할 것이다······.
기자회견이 끝난 후에는 저번 표창식에서 그랬듯 인천시 헌터들의 캐릭터 상품을 팔았다.
그리고 이번에 추가된 상품이 둘 있었으니, 하나는 내가 주문한 애기버섯이 그려진 티셔츠(알록달록한 버섯을 쓴 빨간 머리 소녀가 그려진 검은 티셔츠. 앞으로 내가 자주 입고 다닐 계획이다)였으며······.
또 다른 상품을 보며 백담비가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자기가 그려진 아크릴 스탠드를 무시하긴 어려운 노릇 아닌가.
"이게 뭐예요?"
백담비가 묻길래 내가 대답했다.
"뭐긴 뭐예요, 담비 씨 캐릭터 상품이지. 선글라스 끼고 계셔서 잘 안 보이시나?"
"아뇨, 잘 보여요. 하지만 그저께 표창식 끝나곤 안 팔았는데······?"
"그저께는 상품 준비가 안 됐던 거 아니에요?"
정확히는 내가 요구해서 어제 막 마련된 상품이었다.
내가 어제 공무원에게 내 라운드걸의 캐릭터 상품도 팔도록 요구했거든. 응우옌이 특정 조건에서나마 일하겠단 약속을 받아낸 대가였다.
비각성자 찌꺼기 나이토 상의 캐릭터 상품을 파는데 내 라운드걸의 상품이 없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았거니와, 저번에 보니 백담비가 내 캐릭터 상품이 팔리는 걸 매우 부러워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굳이 요구한 것이었는데, 그녀의 반응을 보니 잘한 일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자기 상품을 제대로 보기 위해, 백담비는 사냥 중이 아니라면 거의 언제나 쓰곤 하는 선글라스마저 벗었다.
그녀가 미세하게 떨리는 손으로 자기가 그려진 아크릴 스탠드를 들어 올렸다.
"아······."
그녀는 한참이나 그 물건을 바라보더니 선글라스를 급히 도로 썼는데, 그 눈에 살짝 맺힌 액체를 숨기기 위한 것이 분명했다.
나는 인천 만세, 외치라고 강요하고 싶은 것을 겨우 참았다.
*******
집에 돌아와서 체중을 쟀다. 그리고 저번에 쟀을 때보다 두 배쯤 늘어난 내 체중을 보고서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왜 이렇게 체중이 늘었을까. 근육이 대폭 늘어서? 아니, 내 근육은 이미 관절 가동이 불편할 만치 증량될 대로 증량됐다. 물리적으로 여기서 더 늘어날 수가 없는 구조다.
이것은 신체강화자로서 발전한 영향일 것이다.
같은 부피의 팔뚝이더라도 그 안의 뼈가 훨씬 굵고 단단해지고, 근밀도 또한 대폭 늘어나는 동시에 그 성분마저 바뀌었다는 증거다.
그렇다면 신체강화자로서의 내 근력은 늘어난 중량 이상으로 대폭 늘어났을 것이 분명했다.
학원 헬스장에 가서 확인해보니 과연 그랬다.
내가 평소 들던 무게의 다섯 배나 되는 바벨을 들어 올리자(꽤 무리해서 들기는 했다) 학원 수강생들의 시선이 모조리 쏠렸다. 내 운동을 돕던 양태자가 기겁했다.
"이젠 그 근육에 총알도 잘 안 박히겠는데요? 이게 무슨······."
"양쌤이 보기에도 저 엄청 세진 거 같죠?"
"그렇네요. 같은 괴수 잡아도 각성자마다 능력 향상되는 정도며 한계가 다르다던데 김극 씨는 둘 다 엄청난가 봐요? 팍팍 계속 능력 향상되는 걸 보니······"
"내가 유독 센 괴수들만 잡고 다녀서 그런 건 아니고요?"
"그것도 중요한 원인이겠지만 그래도 김극 씨는 재능부터가 다른 것 같아요. 내 알기로 신체강화자들 대부분은 저번 김극 씨 수준에서 더 향상되질 못하거든. 괴수 아무리 더 잡아도 말이에요. 이러다 김극 씨 진짜 S급 배지 다는 거 아니에요? 그럼 개쩔겠는데······"
그 순수한 감탄을 들으니 기분이 좋아졌다.
문득 이대로 힘을 늘려 미사일에서도 살아남는 몸을 만들어서는 대통령이고 국회의원이고 다 죽여버리잔 생각이 뇌리를 스쳤지만, 바로 머리를 흔들어 떨쳐냈다.
국가 전복을 하더라도 누구와 손잡고 그런단 말인가. 응우옌? 말도 안 되는 소리.
술 먹고 비밀이나 줄줄 누설하고 자빠진 그놈을 어찌 믿고 나라를 뒤엎는단 말인가?
*******
49화 전직 헌터 김석희 - [1]
김석희는 담배를 질겅질겅 씹으며 TV를 노려보았다.
9시 뉴스가 방송 중이었는데, 딱히 자극적인 내용은 아니었다. 뉴스의 자막을 보았다.
- '헌터 김극' 인천 탈환 프로젝트, 이제는 계양구로
저 뉴스 자막이 딱히 충격적인 내용은 아니었지만, 김석희는 눈에 잔뜩 힘을 준 채 예의 자막을 보았다.
저 심심한 내용의 자막을 보아 넘기기 어려웠다. 저것이 김석희의 눈에는 대충 미국이 한국에 선전포고했다는 내용쯤으로 보였으니까.
김석희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기어이 여기로 온단 말이지, 김극 저 새끼가······"
곧이어 TV 영상이 뉴스의 주인공들을 비췄다.
우선 웬 중년 여성, '인천 시의원 박미형'이란 명패가 앞에 놓여있었다······.
그 아줌마의 옆에 앉은 남성이 특히 눈길을 끌었다.
어지간한 보디빌더보다도 우락부락한 체격의 남성이었다. 어깨부터가 말도 안 되게 넓었고, 그 어깨 위에 달린 얼굴마저 험악했다. 그야말로 사람 여럿 때려죽여 봤을 것처럼 생겨 먹은 남자였다.
그 남자 앞에 놓인 명패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인천시 헌터 김극'.
그리고 그 둘의 발표를 듣기 위해 모여든 인파가 TV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김석희가 보기엔 저마저도 눈에 거슬리기 그지없었다.
"저기에 사람들 왜 저리 많이 모인 거냐? 시의원 따위가 저렇게 사람 잔뜩 불러 모으는 게 말이 되나?"
김석희의 물음에 곧바로 대답이 돌아왔다.
"박미형 저 아줌마 인기도 인긴데요, 김극 저 새끼 인기가 진짜 보통이 아니라서요."
"김극 저 새끼가 뭐 어떤데."
"형 전직 헌터였으면서도 몰라요? 저 새끼 인기 진짜 쩔어요!"
"나 헌터 그만둔 지 얼마나 오랜데 어떻게 알아. 설명해봐."
"박미형 저 아줌마는 세트 메뉴 감자튀김 취급이라 덩달아서 인기 확 올랐고요. 저 아줌마 인천 시장 출마할 거라던데 별 큰일 없으면 분명 뽑힐걸요? 사람들이 저 아줌마 이름은 무슨 밈처럼 외우고 다니는 상황이라······ 그게 다 김극이 인터뷰마다 개지랄을 한 덕인데요. 지금 저기에도 아마 팬들이랑 기자들이 잔뜩·····"
영상 속 김극이 소리쳤다.
「인천의 다른 지역들과 마찬가지로 계양구 또한 깨끗이 청소해내겠습니다. 신성한 인천에 발 디딘 괴수 찌꺼기들을 남김없이 사냥하겠습니다! 인천 만세!」
영상 속 인파 또한 '인천 만세!' 하고 외치는 가운데 김석희는 욕설을 지껄였다.
"인천 만세는 니미······ 김극 저 새끼 애미 대가리 확 터뜨려서 죽여버릴라."
그제야 자신의 갱단원들-김석희가 부르기론 담배팔이들-도 자기네 보스의 불편한 심기를 눈치챈 듯했다.
여기 모인 조직원들이 야유하기 시작했다.
"김극 애미 대가리 터뜨려서 죽여!"
"김극 저 새끼도 대가리 터뜨려서 죽여!"
한동안 방 안에는 TV 속 '인천 만세' 구호와 갱단원들의 '김극 죽여!' 소리가 뒤섞여 울려 퍼졌다.
한편 김석희는 TV 속, 김극을 보러 모여들었다는 인파를 보며 계속 인상을 썼다.
정말로, 정말로 좋지 않았다. 저렇게 사람들 사이에 잘 알려진 놈이라면, 이쪽에서 저놈을 건드렸을 때 아주 난리가 날 것 아닌가······.
한바탕 소란이 그친 후, 갱단원 하나가 김석희를 보며 물었다.
"이제부터 김극 저 새끼가 계양구 오면 바로 쫓아내야 한다 이거죠? 여긴 우리 나와바리니까 썩 꺼지라고 지랄하면서요!"
김석희는 보스로서의 카리스마를 유지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담담한 말을 내뱉었다.
"뭐, 고생 좀 하겠네."
그러고서는 속으로 생각했다. 좆같이 힘들겠네.
앞으로 저 근육 괴물이랑 아웅다웅해야 한다고? 진짜로 니미였다.
김석희는 자기 방에 들어가서는 남몰래 스마트폰을 켰다.
김극, 두 글자를 검색했다.
앞서 뉴스에서 본 근육질 남성의 사진이 맨 먼저 보였다. 그리고 그와 관련된 수많은 인터넷 기사와 동영상도.
계속해서 그에 대한 정보를 찾아볼수록 김석희는 제 미간이 좁혀지는 것을 느꼈다.
헌터 김극. 그 모습만 봐도 강해 보이는 체격이요 인상인데, 생긴 그대로 노는 모양이다.
그가 사냥에 나선 영상을 보니 이게 웬걸, 첫인상보다도 훨씬 몬스터가 아닌가.
김석희 본인부터가 전직 헌터였다. 그래서 그 영상 속 내용물들이 얼마나 놀랍고 충격적인 것인지 알 수 있었다.
헌터 시절, 김석희는 데뷔부터 A++ 판정을 받았다. 그만큼 강력한 역장 외골격 능력자이기에 단단한 역장을 믿고서 다른 각성자 헌터들보다 거침없이 사냥에 임할 수 있었는데, 그랬던 자신도 영상 속 김극처럼 괴수들을 도살하지는 못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당시 자신은 영상 속 김극처럼 탄환 한 발마다 괴수 한 마리씩 맞혀 죽여대는 신묘한 사격 솜씨를 보이지도, 근접 병기 따윌 들고서 거대한 괴수와 묘기에 가까운 육탄전을 벌이지도 못했다. 온갖 강대한 괴수며 소월인 각성자 등과 연달아 싸워 이기지도 못했다.
당장 유튜브에 올라온 김극의 사냥 영상은 죄다 조회수가 수백만을 돌파했는데, 헌터 시절 자신의 사냥 영상이었다면 고작해야 조회수 일천도 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야말로 자신의 헌터 시절과 비교하기도 민망한 수준이요, 김극이 영상에서 괴수들과 짜고 치기라도 한 게 아니라면 그놈은 진짜배기 괴물일 것이다.
자신이 헌터를 그만둔 뒤로는 의도적으로 업계 정보들을 접하지 않았더니, 그 사이에 저런 괴물이 새로 나타났을 줄은 전혀 알지 못했다. 조직원 하나가 뉴스 보고서 경고하고서야 겨우 알았다.
그 괴물이 여기 계양구에, 그러니까 자신의 영역에 쳐들어오려 하고 있다. 막아내야 하는데 쉽지 않을 것이다.
김석희는 나약해지려는 맘을 다잡기 위해 속으로 읊었다.
나는 영주다. 이곳 계양구의 남작이다.
내 영지를 지켜야 한다. 이 땅의 새 주인으로서 반드시.
그러지 못할 게 없다. 이제 와서 저지르지 못할 짓도 없다.
내가 이미 사람도 죽여봤지 않은가?
똥통 같은 고교에 다니던 시절, 재미 삼아 밤중에 온갖 가게 창문을 깨부수고 다니던 시절의 자신조차 이토록 잔학한 사내가 자신의 미래이리라고는 미처 상상하지 못했음을 안다······.
영상을 충분히 본 뒤에는 헌트웹에 접속했다. 헌터 활동할 때 사용했던 계정으로 로그인한 뒤, 게시글 하나를 올렸다.
Ⓐ GangStar☆ : 인천시 헌터 김극이 이 사이트에서 활동한다던데 맞나?
예전에도 그랬지만 이 사이트에서는 A배지 하나 달고 있으면 이목을 끌기가 좋다.
순식간에 이쪽을 알아본 사람이 있어서 댓글이 달렸다.
Ⓐ 돌머리청년 : 진짜 김석희냐? 돌아온 거야?
김석희도 저 유저를 기억하고 있었다. 석장실, 강준치와 호형호제하는 놈이었지 아마.
Ⓐ GangStar☆ : 나 기억하나 봐?
Ⓐ 돌머리청년 : 당연히 기억하지. 수배 풀렸나? 다시 헌터 활동이라도 하려고?
Ⓐ GangStar☆ : 그게 아니라, 김극? 그 새끼 계정 좀 알았으면 좋겠는데
Ⓐ 돌머리청년 : 그걸 왜?
Ⓐ GangStar☆ : 연락 좀 하게. 정확한 이유는 묻지 말고 빨리
Ⓐ 돌머리청년 : 닉네임 BabyBerserker 검색 ㄱㄱ
Ⓐ 돌머리청년 : 대충 애기버섯이라 검색해도 나올 거임
김석희는 시키는 대로 했다.
알려준 대로 검색하고서, 가장 먼저 보인 게시글을 클릭했다.
그러고는 심각한 표정으로 글을 읽어내리던 것도 잠시, 자신이 속았단 사실을 알고는 안면이 일그러졌다.
이게 대체 뭔가. 삼각팬티가 어쩌고 하더니 오거가 자신에게 반해 청혼했다며 미친 소리를 하고 자빠졌다.
디시에서 활동할 적 게시글을 잘못 클릭하면 끔찍한 사진을 봐야 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멍청하게 속아 넘어간 나머지 더없이 끔찍한 것을 눈에 담고 말았다.
글을 보고서 이토록 끔찍한 기분이 들기는 난생처음이다. 석장실, 저 돌머리 새끼가?
Ⓐ GangStar☆ : 장난하냐? 바빠죽겠는데 애미 뒤진 새끼가 날 낚아?
Ⓐ 돌머리청년 : 제대로 알려줬는데 왜 화를 내니?
Ⓐ GangStar☆ : 내가 아직도 너 보고 선배님, 선배님 거리던 호구 새끼로 보이나 보네. 너 그러다 진짜 뒤지는 수가 있어
Ⓐ 돌머리청년 : 왜 갑자기 급발진이야 ㅎㄷㄷ 그리고 나 서울에서 활동하는데 네가 퍽이나 서울 오겠다 수배범 새끼가
Ⓐ GangStar☆ : 못 갈 거 같냐?
Ⓐ 돌머리청년 : 와따시의 매콤한 돌주먹을 맛보고 싶으면 와보든가 ㅋ
Ⓐ GangStar☆ : ㅗ
그리고 이후로 달린 댓글도 마찬가지였다.
김극의 계정이 뭐냐고 물었더니 죄다 합심하여 똑같은 댓글만 달았다. 죄다 게시판에 애기버섯을 쳐보라며, 그 끔찍한 글을 보라며 낚시를 시도하길래 김석희는 또다시 인상을 쓰고 말았다.
아무리 내가 사람 죽여 헌터 면허 박탈된 범죄자 새끼라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전직 헌터로서 한때는 이 사이트에서도 활발히 활동하던 놈인데 이렇게까지 이지메를 한단 말인가?
울분과 굴욕감 속에서 한동안 숨만 몰아쉬다가, 예전 헌트웹의 동지들이 단체로 자신을 속이려던 게 아니었음을 깨달은 것은 그로부터 십여 분이 지난 후였다.
*******
Ⓐ 돌머리청년 : 애기버섯이 위기 ㅎㄷㄷ
Ⓐ BabyBerserker : 호에에에? 애기버섯이가 위기라니, 마법소녀 애기버섯이가 주인공인 새 극장판 만화영화라도 촬영하는 건가양? 감독님이 사전에 언급해주신 게 없는데 갑작스러워양!
Ⓐ 돌머리청년 : 그게 아니라 김극 너 이번에 계양구 간다며? 인천 탈환 프로젝트 관련해서 야생 괴수들 사냥하러
Ⓐ BabyBerserker : 맞아양! 뭐 문제라도 있나양?
Ⓐ 돌머리청년 : 계양구에 꼴통 하나가 있어서 그래. 거기서 자기가 계양구 남작입네 영주입네 하는 등신인데······.
갑작스러운 메시지에 의아하던 중이었다.
또 다른 유저의 메시지가 날아왔다.
처음 보는 유저가 보낸 메시지였지만 무시하기는 어려웠다. 그 닉네임 앞의 A배지가 그 또한 각성자임을 알려주고 있었기 때문에.
Ⓐ GangStar☆ : 친구야. 네가 김극 맞지?
Ⓐ BabyBerserker : 김극이 아니라 애기버섯인데양? 작고 귀여운 애기버섯이는 멋진 이름의 아조씨 잘 몰라양!
Ⓐ GangStar☆ : ㅋㅋㅋ
Ⓐ GangStar☆ : 그래 애기버섯아. 곧 사냥하러 계양구 올 거라던데 맞나?
Ⓐ BabyBerserker : 맞아양! 작고 귀여운 애기버섯이가 용기를 내서 계양산이랑 계양구의 납븐 괴수들을 무찌를 것이에양!
Ⓐ BabyBerserker : 갱스타 옵바야도 애기버섯이의 마법소녀 활동을 응원하려는 건가양?
Ⓐ GangStar☆ : 아니
Ⓐ GangStar☆ : 오지 마라
Ⓐ GangStar☆ : 피곤해질 거다. 정말로
Ⓐ GangStar☆ : 딴 데 가
Ⓐ BabyBerserker : ??
Ⓐ GangStar☆ : 경고했다
50화 계양구 남작 김석희 - [1]
요새도 계속 그 꿈을 꾼다. 언제나 핵폭발로 끝나곤 하는 지겨운 꿈이다.
얼마 전부터 그 꿈에서 더욱 선명해진 부분이 있다.
그것은 바로, 내가 소드 월드에서 여행을 다니는 부분이다.
꿈속의 나는 소월을 돌아다니다가 만난 각성자 군주들과 어울린다. 각성자 군주들이 자기네 양들을 어떻게 돌보는지, 양들을 어떻게 통치하는지 지켜본다.
물론 꿈속의 내용은 순식간에 휘발되기 마련이라, 정확히 내가 무엇을 보고 들었는지는 잘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한 가지 사실만은 똑똑히 기억한다.
내가 그곳 각성자 군주들의 삶과 방식에 큰 감명을 받았다는 것······.
어째서인지 그 이유는 모른다. 저번 각성자 우소리와 나누었던 대화가 인상 깊었던 까닭일까? 아니면 환각 속 내가 백담비를 구하기 위해 게이트에 넘어간 뒤로 소월에서 기나긴 시간을 보낸 까닭일까?
아니면 정말로, 지구의 위정자들의 통치방식보다 소월의 위정자들의 그것이 훨씬 우월한 까닭일까?
*******
관용차에 탑승하기 전, 나는 카메라를 든 내 팬에게 말했다.
"나 말고 다른 헌터들한테 카메라 들이대서 귀찮게 굴면 안 됩니다. 방송국에서 촬영할 때 행인들 통제하며 민폐 끼치는 것마냥 사진 찍어야 하니까 누구한테 비켜달라 요구한다든가, 사냥 중에 거치적거리게 방해한다든가 뭐 그러시면 안 돼요."
일찍이 내 사냥 영상을 유튜브에 올린 바 있는 내 팬은 이번 사냥에도 따라와 촬영하길 원했다. 그가 우렁차게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나이토 상 졸졸 따라다니는 카메라맨 보이죠? 딱 저 사람처럼만 해요. 그럼 욕먹진 않을 테니까."
내 팬이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나는 엄지를 들고는 씩 웃어주었다.
그러고서 내 헌터팀들이 탑승한 관용차에 올랐다.
우릴 태운 관용차가 출발했다.
달리는 차 안에서, 성문영은 저 뒤에서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는 중인 내 팬을 흘긋거리곤 중얼거렸다.
"저 인간 존나 귀찮네. 계속 따라오고······ 형이 자꾸 받아주니까 정도를 모르고 저러는 거 아니에요?"
"넌 또 뭐가 그리 불만이야?"
"저 양반이 따라와서 영상 찍어봤자 지 유튜브 수입이나 느는 건데, 우리가 배려해줄 이유가 없잖아요? 그런데도 자꾸 귀찮게 구니까······ 저번에도 형 쉴 때 자꾸 뭐 설명해 달라 요구하질 않나. 데스클로 몇 마리 잡았더니 포즈 취해달라 요구하질 않나 아주 극성이던데 안 귀찮아요?"
나로서는 내가 활약하는 영상이 촬영된단 사실만으로도 만족스럽기에 그 정도 귀찮음은 기꺼이 감수할 수 있다는 말은 굳이 하지 않았다.
난 그저 군자처럼 대답했다.
"그래도 나 말고 딴 헌터들 상대론 귀찮게 안 하던데, 뭐 어때?"
"저 사람이 사실 형 팬이라서 저러는 게 아니라 유튜브 수입 원해서 저러는 걸 수도 있는데?"
"그렇다면 저 사람도 먹고살자고 저러는 셈인데 그냥 내버려 두지 뭐."
내가 딱 잘라 말했더니 성문영이 계속해서 투덜거렸다.
"하여간 형 성격 한번 좋아. 생각해 보니까 되게 이상하네?"
"이상하긴 뭐가 이상해?"
"형 예전 인터뷰에선 무슨 분노조절장애인 것처럼 굴지 않았어요? 학주랑 훈련소 조교 줘패서 장애인 만들었다매요."
"그랬지. 그게 뭐?"
"인터뷰 그따위로 한 것치곤 형 인내심 되게 좋아 보이니까 그렇죠. 지금은 뭐야, 오히려 나보다 성격 좋아 보이는데?"
나는 너보다 성격 나쁜 놈이 있겠느냐 윽박지르려다 말았다. 대충 짜증스레 받아넘기기엔 꽤 민감한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조금 말을 고른 끝에 대답했다.
"그땐 뭐, 그러는 게 멋있는 건 줄 알았어."
"화나면 안 참고 그냥 패는 게요?"
"그래. 꾹 참으면 찌질한 건 줄 알았지. 직접 두들겨 패야 문제가 제대로 해결될 줄 알았고."
"하지만 이젠 개과천선하셨다?"
"그게 아니라 이젠 나한테 시비 거는 놈이 없게 된 거지. 그래서 굳이 주먹 휘두를 필요도 없게 된 거고."
"그러면 또 화나는 일 생기면 그때처럼 사람 두들겨패고 감방 갈 거예요?"
"글쎄······?"
내가 똑바로 대답하지 않고 말을 흐리는 것이 영 불안했나 보다. 평소에도 어른 행세 하기 좋아하는 임형택 씨가 끼어들었다.
"글쎄가 아니라 반드시! 화나도 성질 죽여야 해요! 지금 김극 씨 보면서 기대하는 사람이 몇 명이야?"
그리 일갈하더니 임형택 씨가 훈계를 시작했다. 인천 수호자 김극의 어깨에 임형택 본인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의 삶과 희망이 걸렸다느니, 이대로 사고 쳐서 감방이라도 가면 그 사람들이 얼마나 실망할 것이냐느니 어쩌느니.
이 와중에도 아첨할 기회를 놓치지 않는 임형택 씨라, 나 듣기 좋도록 은근슬쩍 훈계에 칭송을 섞어놨기에 기분 좋게 듣던 중이었다.
저 앞에서 달리던, 헌터들을 태운 차가 멈췄다. 그러자 뒤따르던 차들도 줄줄이 멈췄다.
내가 탄 관용차 또한 멈췄기에 나는 차에서 내렸다.
"뭔 일 있어요?"
내가 물었더니 한 헌터가 대답했다.
"웬 놈들이 도로를 막고 있어요. 도로 점거해서는 안 비켜주는데요?"
그 말에 나는 저 앞을 바라보았다.
방금 헌터가 말했듯, 일단의 무리가 도로를 점거한 채 우리 헌터들이 지나갈 길을 막고 있었다. 보아하니 죄다 껄렁거리게 생겨 먹은 놈들이었다.
대충 뭐 하는 놈들인지 알 만했다.
뒤따라 내린 성문영이 중얼거렸다.
"저놈들 저거, 그놈들 같죠? 계양구 남작인가 하는 놈 따까리들이요."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새삼 당황스럽지는 않았다. 저놈들의 등장을 이미 예상한 바였다.
헌트웹 닉네임 돌머리청년, 서울에서 활동하는 헌터 석장실 씨가 따로 내게 메시지를 보내 경고했지 않은가.
계양구에 웬 각성자 갱단이 있으며 그곳 갱단의 보스인 김석희는 내가 오길 반기지 않는 눈치라고. 아무래도 자기네 영역에 내가 발 디디길 원치 않아서 내쫓으려는 모양이라고 말이다.
그 이유가 뭐라던가. 계양구는 괴수들이 들끓는 나머지 사람들이 다 떠난 지 오래라 그 우월한 교통편에도 불구하고 주거지에 슬럼화가 이루어진 곳인데, 김석희의 갱단은 그로써 생겨난 공권력의 공백을 틈타 계양구에 자리 잡았으며 계양구가 이대로 계속 사람이 없는 슬럼이길 원한다던가?
내가 주도하는 인천 탈환 프로젝트로 말미암아 계양구의 주민들이 돌아오면 경찰들도 복귀할 것이요, 그 밖에도 여러 공권력의 눈길이 쏠릴 테니 지금까지 해온 대로 계양구에서 계속 영주 행세하기 귀찮아지리란 것이었다.
그래서 김석희의 갱단은 내가 계양구에서 사냥하는 것을 막으려는 모양이라고.
당연히도 난 그 말을 듣고서 혼자 해결하겠다며 끙끙 앓지 않았다. 난 바로 박미형 씨에게 전화했으며, 박미형 씨는 박미형 씨대로 시장이며 경찰청장 등에게 연락을 돌려 조치하도록 요구했다.
그리하여 이번 우리 작전에는 헌터들뿐만 아니라 경찰들이 동행하게 되었으니, 이번 실랑이에도 굳이 내가 나서서 주먹이라도 휘두를 필요가 없으리라 예상했다.
자칫 싸움이라도 났다간 법적인 문제가 생기는 우리 헌터들이 아니라, 경찰들이 자기네 선에서 죄다 처리해 주면 될 일이었다.
그러나 내 예상이 틀렸다. 그것도 철저하게.
"경찰 아저씨들?"
내가 함께 온 경찰들에게 정말 그 갱단원들이 나타난 것 같으니 처리해달라고 요구했건만, 경찰들은 바로 나서질 않고 우물쭈물했다.
"가만히 서서 다들 뭐해요?"
보다 못한 내가 독촉하고서야 경찰들은 길을 가로막은 갱단원들에게 접근했다.
그리고 그 경찰들이 하는 것을 보니, 저 양아치들을 물러나게 하려는 건지 아니면 상전에게 굽신거리는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였다.
그러니까, 아파트 경비 할아버지가 잡상인을 내쫓을 때도 저보다는 패기 있을 것이었다.
끝내 경찰들은 갱단원들과 말 좀 섞다가 헌터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이 와중에 갱단원들은 여전히 길을 막은 그대로라, 나는 아연한 마음에 경찰들을 바라보았다.
"저놈들 길에서 안 치워요?"
내 물음에 경찰이 말을 흐렸다.
"그러기가 어렵겠는데요······."
"저 새끼가 국회의원 아들이라도 됩니까? 함부로 손대면 무슨 골치 아픈 일이라도 벌어져서 그러는 거예요?"
"국회의원 아들내미보다 더 무섭죠. 신체강화자예요, 저 새끼."
경찰은 길을 막은 갱단원 중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는데, 납득하지 못한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다들 총 갖고 온 거 있잖아요. 그거 들이밀며 썩 꺼지라고 하면 되잖습니까?"
"신체강화자 근육에 총알이 박히겠어요?"
"신체강화자가 누구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어지간하면 박히겠죠?"
경찰은 뭐라 말하려다 말고 입 다물었다. 신체강화자를 상대로 총알 따위 안 박힌다고 반박하고 싶지만 내 쪽이 신체강화자라 더 잘 알 테니 어쩔 수 없이 입 다문 눈치였다.
물론, 내가 말싸움에서 승리했다고 뭔가 달라지는 일은 없었다. 갱단원들은 여전히 길을 막은 가운데 경찰들은 뒤로 물러나서 사태를 관망할 뿐이었다.
답답했다. 이 사람들이 지금 왜 이러는 거냐?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앞으로 나서며 백담비에게 슬쩍 물었다.
"저놈들 중에 누가 각성자예요?"
그리고 백담비는 눈을 감았다 뜨더니 대답했다.
"저기, 맨 왼쪽에 있는 놈이요."
난 백담비가 가리킨 남자를 바라봤다. 저놈이 신체강화자라고?
언뜻 보기엔 그리 보이지 않았다. 내가 몸의 유연함을 포기해가면서까지 최대한 증량한 반면 저놈은 표범처럼 날렵한 체형이었으니까.
놈은 키도 한 175cm쯤으로 보이는 것이 척 보기에도 나보다 체급이 몇 단계는 낮아 보였지만 안심할 수는 없었다. 저놈이 헌터 생활해본 적이 없는지라 괴수를 죽여 그 능력을 향상시킨 적이 없으리란 사실을 고려해도 마찬가지였다.
강준치는 각성한 순간에 이미 S급이었다. 그렇듯 각성자의 강함이란 시작부터 천차만별인 것이어서, 저놈이 언뜻 보기엔 약해 보여도 나를 한주먹에 때려눕힐 강자인들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닌 것이다.
그래서 난 방심 따윈 하지 않은 채, 이 상황엔 딱히 쓸모가 없을 헌터 라이플을 내려놓고서 맨손으로 갱단원들에게 접근했다.
"아, 이 새끼 김극이다!"
날 알아본 갱단원들이 히죽거렸다. 척 보기에도 시비 걸러 온 게 분명한 표정들, 그 면상에 주먹을 꽂아넣고 싶은 충동이 솟아났다.
그렇다고 대뜸 주먹부터 휘두를 수는 없는 노릇이라, 내가 말없이 그들을 바라보던 중이었다.
"눈씨름 하러 왔냐?"
한 놈이 도발하길래 내가 대답했다.
"눈씨름 말고 진짜 씨름이라도 하고 싶어서 이러냐?"
"아니? 너 같은 새낀 냄새나서 만지기도 싫은데!"
그러면서 또 뭐가 웃기는지 킬킬거렸다.
나는 화를 참는 한편으로 저들의 의도를 속으로 파악해보았다.
뻔했다. 도발하려는 목적이 분명했다. 이러다 내가 주먹이라도 휘두르면 바로 뼈가 부러졌답시고 저 뒤에서 구경 중인 경찰들한테 하소연할지도 모르지.
물론 상황을 이해해도 화나는 건 마찬가지라 심호흡하던 중이었다.
아까 백담비가 각성자라 지적했던 놈, 그 신체강화자가 나한테 접근했다.
놈이 내 가슴을 쿡쿡 찌르더니 말했다.
"친구야. 몸 보니까 보디빌더 같다?"
"어, 그래. 칭찬 고맙다."
"칭찬 아닌데, 병신아?"
또다시 갱단원들 사이에서 킬킬거리는 소리.
신체강화자가 말했다.
"보디빌더 병신들이 지네가 센 줄 알고 깝치다가 복서한테 한 방에 처맞고 저세상 가는 거 아냐? 너 이 씨발 새끼, 태어나서 격투기 경험해보기나 했고?"
이 도발에 내가 화나지 않은 것은 화나기보단 어이가 없어서였다. 내 UFC 경력은 네이버에 내 이름만 쳐도 나오는데, 이놈 집엔 컴퓨터도 스마트폰도 없나?
내가 한창 생각하는 중이었다.
이놈이 말하다 말고 갑자기 주먹을 뻗었다. 내 턱을 노린 어퍼컷.
놈으로서는 번개 같은 기습이라 여겼을 것이다. 실제로도 공기를 가르며 날아오는 주먹의 속도가 대단히 빨랐다.
그러나 총알이나 데스클로가 도약하는 속도에 비하면 그저 그랬고, 그래서 둘의 속도에 반응하는 내가 그 주먹을 놓치기는 어려웠다.
난 여유롭게, 그러나 신속하게 왼손을 턱 밑으로 가져가 내 턱을 보호했다.
다음 순간 놈의 날아든 주먹이 내 손바닥에 감싸여 멈췄다.
그대로, 내 손바닥이 놈의 주먹을 붙잡았다.
갱단원들 사이에서 키득거리는 소리가 멈췄다.
내게 주먹질한 신체강화자 놈 또한 그 표정이 굳었다. 놈이 제 주먹을 회수하고자 힘을 썼지만, 그 주먹은 내 손에서 빠져나갈 수 없었다.
음, 이로써 강약 판단이 끝났다. 아무런 반전 따윈 없이 내가 강하고 이놈이 약했다.
그 사실을 알게 되자 여유로운 상황 판단 또한 가능했다. 내가 이놈 정강이라도 걷어차서 부러뜨렸다간 귀찮아지겠지?
이 상황에 뒤에서 지켜보는 경찰도 있겠다, 직접적인 폭력은 쓸 필요가 없을 것이었다.
"안 놓냐, 새끼야? 당장―"
나는 놈을 붙잡은 그대로 공간이동 했다.
그리하여 약 2.3km 떨어진, 사람들이 죄 떠나고 없는 폐건물의 한 방에 이동했다. 내 손에 붙잡혀 있던 신체강화자 또한 그대로 끌려왔다.
갑자기 시야가 바뀌어서 당황스러울 법도 한데, 이놈도 명색이 각성자라 심신이 우월한 인간이었나 보다. 놈은 자유로운 손으로 또다시 주먹질을 시도하더니 그마저 내 오른손에 막히자 으르렁거렸다.
"오 초 안에 안 놓으면 느 애미 대가리 터뜨려서 죽인다."
저놈이 갱단원인 이상 저것은 가족을 해치겠단 협박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물론 썩 위협적이진 않았다.
"울 엄마 죽이고서 뼈는 나 줘라. 곱게 화장해서 뼛가루 변기에 흘려 넣게."
내 셀프 패드립에 놈은 당황한 눈치였다. 놈이 입을 뻐끔거리더니, 뭐라 말하려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이후로 십 초 넘게 그러고 있었지만 끝내 놈은 내 손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결국 내가 스스로 놈을 놓아주고는 웃었다.
"오 초 지났지? 울 엄마 뼈는 착불로 보내줄 거라 믿는다."
"또라이 새끼가······"
"그런데 친구야. 그리 말 심하게 해도 되니? 여기 우리 둘뿐이잖아."
그리 말하면서 잠시 놈의 눈을 응시했다. 여긴 딱 봐도 보는 사람도 없고 CCTV도 없으니까 여기서라면 내 엄마 대가리 대신 네 대가리를 터뜨려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말을 시선에 담아서.
다행히 놈은 그 의미를 알아듣고서 입 다물었고 나는 만족했다.
웃으며 그 어깨를 두드려준 다음 공간이동 했다.
놈을 저 멀리 내버려둔 채, 나 혼자 원래 있던 장소로 돌아왔다.
여전히 경찰들은 구경만 하던 중이었다. 한심한 그들에게 다가가 말했다.
"신체강화자 친구 치웠습니다. 이제 남겨진 쭉정이들은 아저씨들이 치워줄 수 있죠?"
다행히도 경찰들은 그마저 거부하진 않았다. 경찰들이 남겨진 갱단원들을 도로에서 밀쳐내는 걸 보며 나는 한숨 쉬었다.
대체 이게 무슨 엎드려 절받기란 말인가?
51화 계양구 남작 김석희 - [2]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관용차 안에서 나는 박미형 씨에게 전화했다. 그 아줌마한테 방금 경찰들이 얼마나 꼴불견이었는지 고해바쳤다.
"······말씀드렸다시피 우릴 도우러 온 경찰들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거든요? 아무래도 순 폐급들만 온 모양인데, 시장님이나 경찰청장한테 전화해서 인원 교체 좀 요청해주실 수 없을까요?"
그로부터 수십 분 후, 박미형 씨가 내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고는 매우 면목 없는 목소리로 이렇게 설명하는 것 아닌가.
「현장에서 고생하는 김극 씨한테 이런 말 드리긴 진짜 미안한데요, 내가 따로 알아보니까 다른 경찰들 보내도 똑같을 거 같다네요?」
그건 또 뭔 소리인가?
내가 이야기를 들어보니 대충 이런 소리였다.
자칭 계양구 남작 김석희의 갱단, 그 갱단은 계양구에만 처박힌 조직이 아니라 인접한 부평이며 부천에도 활발히 조직원을 보내 담배를 팔아치운다고 했다.
직접 담배 농사라도 짓는 건지 아니면 담배 공사에서 물량을 빼돌리는 건지 몰라도 요새 만오천 원에 팔리는 담배 한 갑을 반값인 팔천 원에 팔아치우는 것이 그들의 사업이요, 그것은 국가 세수에 악영향을 주는 만큼 당연히 때려잡아야 할 짓거리인데도 경찰들은 그 조직원들에게 손대지 않는다고도 말했다.
각 지역 경찰들이 그 갱단에서 뇌물이라도 두둑이 받아서가 아니라, 자칫 건드렸다간 뒷감당이 안 되기 때문이라고.
"수도권에서 그러는데 내버려 둔다고요? 그게 말이 되나?"
「그게, 그 갱단에 각성자가 한둘이 아니라 여럿인가 봐요. 그리고 외국에서도 각성자들이 모인 갱단 상대로는 대처가 소극적이라네요. 후진국뿐만 아니라 공권력이 막강한 선진국에서도 각성자 갱단은 쉽게 손대지 못한다나요?」
"그러니까 그놈들은 공권력도 안 무서워하고, 경찰들도 그놈들을 겁낸단 건가요?"
「그런가 봐요. 우리 시장님이 현장에서 무슨 일 있었는지 듣곤 엄청나게 화나서 직접 경찰청 쳐들어가셨거든요? 시장님도 인천 탈환 프로젝트 엄청 신경 쓰고 계시잖아. 이 업적 내세워서 금배지 다셔야 하는데······ 그런데 경찰들이 말하는데, 뭐 어쩔 수가 없대요. 경찰력으로 그놈들 상대하려는 건 전차 상대로 죽창 들고 돌격하는 꼴이라나?」
"아니, 그래도 그렇지."
내가 어이없어하는 가운데 박미형 씨는 우물쭈물 말했다.
「다른 곳부터 작전 진행하시는 건 힘들겠죠?」
"그건 말이 안 되죠. 작전 진행할 장소도 얼마 안 남았는데. 일단 계양구부터 제압해야 그 근처로 괴수들이 안 퍼지는 거 아시잖아요? 계양구가 괴수 소굴인데 거길 내버려 두는 건 말이 안 돼요."
결국 박미형 씨는 재차 미안하다고 거듭 말하더니 전화를 끊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유라시아 최고의 명산, 계양산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린 뒤, 나는 이번 작전에 참여한 헌터들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어쩌면 발생할지도 모를 갱단원들과의 충돌에 유의하라 경고한 뒤에야 사냥에 임했다.
사냥 자체는 순조로웠다. 그도 그럴 것이, 난 나이토 상이 고블린의 총격에 당할 뻔했던 그 시절보다 훨씬 더 능숙해지고 강력해진 마당 아닌가.
단순한 능력의 강함은 물론 그 활용까지 대폭 발전했거니와, 총알에 반응하는 훈련까지 거듭해가면서 반응속도 또한 꾸준히 발전시켰다.
여전히 데스클로 놈들의 속도는 빠르게 느껴지지만, 그래도 놈들의 움직임에 대응하기가 훨씬 수월해진 것은 확실했다.
정신적 그물망을 통해 미리 괴수들의 위치를 파악하고서 움직였다. 한 무리씩 차근차근 처리하자니 사망자나 부상자가 발생하는 일도 없이 사냥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그 와중에 나타난 거물 한 마리. 정찰하고 돌아온 백담비가 말했다.
"김극 씨가 직접 나서야겠는데요."
그 말대로 난 망치 한 자루를 쥐고서 저 앞으로 나아갔다.
데스클로 한 무리가 우리의 접근을 눈치챘는지 저 앞에서 우릴 노려보는 중이었다.
그중에서 유독 눈에 띄는 데스클로 한 마리가 있었다.
딱 보기에도 희귀하고 강력한 놈이었다. 추가로 각성하여 바위 정령이 된 놈.
뭐든 베는 칼날을 가진 놈이 총알도 안 통하는 갑옷을 입었단 점에서 끔찍하게 위협적인 놈이었다.
어지간한 A급 헌터라도 이런 괴물을 상대로는 선뜻 나서지 않는다. 따로 준비를 하고서야 저런 놈을 사냥하러 나설 수 있는 법이다.
그러니까 로켓 발사기라도 가져와야 상대할 수 있는 놈인데, 난 그럴 필요가 없다.
망치 한 자루면 충분하다. 예전 같으면 불가능했겠지만, 이제는 가능한 일이다.
"어딜 보냐? 날 봐라!"
내가 포효하며 돌격했다. 데스클로들이 일제히 날 보며 다리에 힘을 주는 가운데, 내 뒤에서 헌터들의 사격이 시작됐다.
총성과 함께 다른 데스클로들이 하나둘씩 쓰러졌지만 온몸이 암석으로 뒤덮인 데스클로는 멀쩡했다.
그 괴물 놈이 날 향해 도약했다.
그리고 내가 공간이동 했다. 전속력으로 돌격하는 중에 시야가 바뀌었다.
있는 힘껏 달려 나가는 내 앞에, 바위에 뒤덮인 하이에나의 꽁무니가 보였다.
그 괴물 놈이 아무도 없는 허공을 휘저으며 지면에 내려선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내 망치가 놈의 바위 갑옷을 후려갈겼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놈을 감싸던 암석들이 모조리 떨어졌다.
이후로 놈이 완전히 조각나기까지는 망치질 두 번이면 충분했다. 처음 맞닥뜨린 암석 정령을 쓰러뜨리기 위해 크게 고생했던 것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놈의 움직임이 멎은 뒤, 옥타곤의 환상과 함께 희열이 찾아왔다.
흘긋 백담비를 보았더니 그녀 또한 죽은 정령의 힘을 흡수한 듯했다. 희열을 참아내려 애쓰는 듯 그녀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내가 신체강화 능력을 지닌 괴수를 쓰러뜨리고서 같은 계열의 힘을 흡수했단 이유로 더욱 강해졌듯, 이로써 내 라운드걸 또한 전보다 강해졌으리라. 이 또한 만족스러웠다.
나는 내면에 늘어난 힘을 만끽하며 생각했다.
더 우월한 존재로 거듭나는 이 과정이 참을 수 없이 좋다. 나 홀로 좋을 뿐만 아니라 내 주변 사람들과 인천의 시민들까지 이로써 이득 본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기껍다.
이 신성한 사냥을 웬 쭉정이들이 방해하겠다고?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
*******
무난하게 오전 사냥을 마치고서 식사하던 중이었다.
휴식을 취하고자 정신적 그물망도 최소한으로 펼쳐둔 상황이었는데, 헌터 한 명이 뭔가를 발견한 듯 소리 질렀다.
"너희 뭐야!"
과연 저 아래 수풀에서 무언가가 반짝이더니, 내가 주변에 펼친 정신적 그물망을 찢고 무언가가 발사되었다.
저 속도, 총알이 분명했다. 이쪽에서 쏜 게 아니었다. 저쪽에서 쐈다.
그래서 누굴 노리고 쐈지?
웬 헌터 하나를 노렸다. 그러나 배나 머리 따윌 노린 게 아니라 발목을 노렸고. 정신적 그물망을 통해 그 궤적을 파악해보니 분명했다.
정말 누구 쏴 죽이려는 게 아니라 부상만 입혀서 여기 헌터들을 위협하려는 모양이지.
그렇다면 굳이 확인해볼 것도 없다. 저격수는 김석희의 갱단원이 분명했다.
그리고 이 와중에 신속히 반응한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나이토 상. 반사신경만 보면 각성자가 아닌가 의심스러운 저놈이 이번에도 재빠르게 반응했다.
총구의 번뜩임을 본 나이토 상이 눈을 부릅떴다. 갱단원의 총알이 막 총구에서 빠져나간 순간, 그놈이 빠르게 움직였다.
나이토 상이 총알에 명중할 위기였던 헌터를 밀쳤다. 그리고 그 헌터가 서 있던 자리의 앞에 놈이 섰는데, 이대로면 총알은 나이토 상의 배에 맞을 듯했다.
저번에도 그랬지만 그런 상황은 내가 주도하는 사냥에서 일어나선 안 될 일이다. 놈이 희생하는 영웅 따위가 되는 꼴은 죽어도 못 본다.
내가 공간이동 했고, 나는 헌터를 밀친 나이토 상의 앞에 섰다. 다음 순간 날아온 총알이 내 가슴을 두들겼지만 그것은 내 피부만 살짝 찢었을 뿐 근육에 박히지 못했다.
뒤이어 총성이 울렸다. '탕!'
경험 많은 헌터들일지라도 사람의 습격을 받는 일엔 익숙하지 못했다. 다들 얼빠져 있는 가운데 나이토 상이 방금 총알이 날아온 장소로 신속하게 샷건을 쏘았다.
맞은 놈이 없는 걸 보니 위협사격인 모양이지? 쫄보 같으니.
그리고 나는 공간이동 했다. 방금 헌터의 발목을 향해 쐈던 놈, 그놈의 옆에 도착했다. 놈이 기겁하기도 전에 그 총을 압수하고 놈의 오금을 걷어찼다.
"악―"
놈이 나자빠진 가운데 그 주변의 갱단원들이 일제히 내게 총구를 겨눴다.
"쏘고 싶으면 쏴보든가."
내가 도발하자 한 놈의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놈이 정말로 쐈다.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양아치들이 뒷일 생각 안 하고 욱해서 저지르는 일이 어디 드문 일인가.
그리고 성문영과의 훈련 성과가 여기서 나왔다. 아직 총알을 손으로 잡기는 어려워도 총알의 속도에 반응하기는 능숙해졌다.
총알이 내 주변 그물망을 돌파한 순간 위기임이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반사적으로 공간이동 했다.
그리하여 나는 내게 사격한 얼간이의 등 뒤에 섰으며, 총알은 내가 서 있던 자리를 스치고 지나갔을 뿐이었다. 그리고 놈마저 걷어차서 자빠뜨리니, 주변에 있던 다른 놈들은 죄다 얼어붙어서 뭔가 할 엄두를 내지도 못했다.
뒤이어 놈들마저 제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놈들의 저항이 완강해서가 아니라, 내가 힘 조절을 잘못하여 제압했다간 어디 부러져 죽을 수도 있겠단 걱정이 들었기 때문에.
뒤늦게 달려온 헌터들이 놈들의 포박을 도왔다.
"김극 씨? 이번에도 정말 진심 어린 감사를······"
나이토 상이 또 내게 감사하려 들길래, 나는 우월감 가득한 속내를 숨기고서 물었다.
"마츠모토 씨, 혹시 각성자 아닙니까?"
영 갑작스러운 질문이었던 듯 나이토 상이 당황했다.
"예?"
"자꾸 총알이 그쪽을 향하잖아요. 이러는 거 보니까 철붙이 끌어당기는 각성자, 뭐 그런 거 아니냐고? 그러고 보니 헌트웹에 사이버매그니토가 뭔 각성자인지 안 밝혀졌는데······ 그 사람이 혹시 나이토 상 아닌가?"
"아닌데요? 저 굿헌터인 거 아시면서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
"부계정일 수도 있잖아요. 남들한테 안 밝힐 테니까 사실대로 말해봐, 응?"
그렇게 잠시 나이토 상을 괴롭히다가 내 헌터팀에 돌아갔다. 성문영이 또 탱커 노릇 했느냐며 항의하려는 눈치길래 그에 앞서 내가 말했다.
"너도 헌트웹 하니까 사이버매그니토 알지? 헌트웹의 나치 말이야. 헌트웹에서 그 사람 작성글들 보니까 은근히 음흉한 인간 같던데, 내 보기에 나이토 상이 사이버매그니토 같아."
백담비가 옆에서 듣고 있단 것을 확인하고는 일부러 큰 목소리로 그리 말했다. 성문영이 어이없어했다.
"예? 그게 뭔 소리래. 근거 있어요?"
"나이토 상 저놈이 음흉하고 사이버매그니토도 음흉하니까. 진짜 명추리 아니냐?"
백담비의 입꼬리가 이번에는 분노로 파들거리는 것을 즐기며, 나는 포박된 갱단원들을 바라보았다. .
이어서 헌터들에게 시선을 보내고는 말했다.
"다들 상황 파악하셨을 텐데, 이제 여러분의 의견을 묻겠습니다. 사냥 나서기 전에 말씀드렸다시피 웬 갱단? 아니, 한국인데 뭔 갱단이야. 웬 조폭 새끼들이 여기 자기네 구역이라며 우릴 쫓아내려는 상황입니다. 여기까진 알고 있었지만 설마 총까지 쏴댈 줄은 몰랐는데요. 위험한 상황 같은데 이만 돌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돌아온 헌터들의 대답은 과연 헌터다운 것이었다.
"아니, 저놈들보단 데스클로가 위험하지 않아요?"
"그렇긴 한데 이대로 쭉 사냥하는 건 위험불감증 아니겠습니까?"
내가 부추기듯 말했더니 또 다른 헌터가 억울하다는 듯 외쳤다.
"위험불감증이고 뭐고 그냥 사냥 계속합시다, 응? 우리 평상시에 게이트 열릴 때마다 출동해서 데스클로들 상대로 총질하는 게 훨씬 위험하잖아요! 김극 형이 맵핵 써주고 사냥하는 지금이 개꿀인데, 살짝 더 위험해졌다고 때려치는 게 말이 돼요?"
그리 외치는 양아치 같은 헌터를 보며 나는 흡족한 마음에 생각했다.
헌트웹 닉네임 갱스타 그 친구······. 이 갱단원들을 보낸 장본인인 김석희는 전직 헌터라고 했지 아마?
그놈은 은퇴한 지 너무 오래된 나머지 헌터들이 어떤 족속인지 잊었던 모양이다. 헌터들은 사냥 중에 옆에 선 동료의 배에서 창자가 줄줄 흘러내렸든, 그 머리통이 목에서 잘려 나갔든 술 한잔 마시고서 다 잊을 수 있는 족속 아닌가.
여기 모인 헌터들에게도 사냥 중의 죽음은 그저 일상이다. 이 와중에 발생한 갱단원의 위협 따윈 그저 데스클로 한 마리만큼도 두렵지 않았다.
결국 김석희는 우리의 사냥을 막지 못했다.
두 번이나 있었던 방해에도 불구하고, 여기 모인 헌터들은 오늘치 사냥을 이어나갔으며 날이 어두워져서야 사냥을 마치고 하산했다.
그리고 산 입구에서 경찰들이 멀뚱멀뚱 서 있는 걸 보며 나는 한 시간쯤 따지고 싶은 걸 참아야 했다. 갱단원들이 딴짓하지 못하게 감시하고 세워놨더니 그냥 서 있기만 했던 건가?
경찰들에게 포박된 갱단원들을 넘겼다.
"이놈들 잡아가시면 됩니다."
그리하여 모든 일을 마치고서 귀가하는 중, 나는 곧 있을 김석희의 보복을 예상했다. 그놈이 내 엄마 무덤이라도 파헤치려 들까? 아니면 어떤 예상 밖의 행동이라도······.
그리고 과연 예상 밖의 일이 일어났다.
그러나 그 예상 밖의 일을 저지른 것은 김석희가 아니었다.
*******
자고 일어나 식사하던 중에 박미형 씨의 전화가 걸려왔다. 성난 목소리로 그녀가 말했다.
「김극 씨, 아침 뉴스 봤어요? 나랑 시장님 지금 너무 화가 나서 말이 제대로 안 나와!」
뭔 뉴스를 보고서 저리 화가 났나, 하고 뉴스를 찾아봤더니 나는 황당해졌다.
계양산에서 헌터들을 상대로 사격했던 갱단원들, 우리가 어제 붙잡았던 그놈들이 모두 풀려났다는 뉴스였다.
뉴스에서 말하길, 가까운 경찰서 유치장에 그들을 가둬놨더니 그날 저녁 갱단원들이 그 경찰서에 들이닥쳤다고 했다.
그리고 그곳 경찰들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서 가둬놨던 갱단원들을 순순히 풀어줬다고.
이게 말이 되나 싶어 잠시 얼빠져 있던 중에 초인종 소리가 났다.
문밖에 나가 보니 기자들이 몰려와 있었다. 기자 중 하나가 내게 마이크를 들이대며 물었다.
"김극 씨? 소식 들으셨습니까? 이번에 아주 분통 터질 일이 있었는데요!"
"분통 터질 일이면, 그놈들 다 유치장에서 풀려난 일이요?"
"예, 그거 맞습니다! 지금 어떤 심정이신지······"
뉴스가 나가자마자 기자들이 죄다 내 집에 몰려온 모양이다. 하기야 억울해하는 내 반응을 인터뷰하고 싶을 만도 하니까······.
"그래서 인터뷰 하자는 거 맞죠?"
내 물음에 기자들의 얼굴에 기대감이 서렸다. 기자들은 나와의 인터뷰를 좋아한다. 하기야 내 인터뷰들이 웃기고 재밌단 이유로 죄다 놀라운 수준의 조회수를 기록한다는 것은 헌트웹 반응만 봐도 잘 아는 사실 아닌가.
"예! 괜찮으시면······"
그리고 기자들은 내가 분노하리라 생각했겠지만, 나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난 웃었다. 억지로 지은 웃음이 아닌, 진심으로 유쾌해서 지은 웃음이었다.
"물론 괜찮죠. 집이 좀 누추하긴 한데, 다들 들어오셔서 바로 시작할까요?"
52화 계양구 남작 김석희 - [3]
Q. 경찰들이 제 역할을 해내지 못해 이번 습격범들이 모조리 풀려났다는 소식 들었나?
- 들었다. 곧 있을 인천 시장 선거에 기호 2번으로 출마하실 박미형 씨가 노발대발하더라. 박미형 씨 시의원 사무실 번호를 방금 말하지 못했는데 지금 말해도 되나?
Q. 안 된다. 박미형 시의원님 사무실 번호 말고, 지금 심정을 말하자면?
- 유쾌하다.
Q. 침통할 줄 알았더니 의외다. 유쾌한 이유는 뭔가?
- 별것 없다. 내가 고등학교 입학했을 적 학주의 다리를 분질렀을 때 날 찾아온 경찰들도 이런 식이었으면 참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다.
Q. 이번 사태에 경찰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게 있다면?
- 경찰들에게 말하고 싶은 건 딱히 없고, 다만 계양구 남작이라 자처하는 김석희 씨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있는데
Q. 말해달라. 김석희에게 뭐라 말하고 싶은가?
- 계양구쯤 되면 일개 남작령이 아니라 백작령이다. 그 땅의 지배자면서 자신을 남작이라 낮추는 건 인천 땅의 격을 낮추는 일이므로 용납하기 어렵다.
Q. 그게 무슨 소리인지?
- 김석희는 자신을 계양구 남작이 아니라 계양구 백작이라 자처해야 옳다. 물론 야만의 땅 서울과 인접한 변경을 지킨단 의미에서 계양구 변경백을 자처해도 좋을 것
Q. 그것 말고 달리 말하고 싶은 바는 없나?
- 없다.
Q. 인천 탈환 프로젝트를 계속 진행할 경우, 경찰들이 이번처럼 무기력하게 대처할 뿐이라면 이후에도 이런저런 충돌이 예상된다. 그 경우 작전을 포기할 생각이 있나?
- 포기할 생각은 없다. 조금도
Q. 이유가 있다면?
- 내가 김석희보다 더 세니까.
Q. 추가로 설명 부탁드린다.
- 난 나보다 약한 자의 말은 듣지 않는다. 김석희가 날 쫓아내고 싶거든 직접 와서 강함을 증명해야
*******
헌트웹에 들어가 보니 순 내 얘기뿐이었다.
이번 내 인터뷰를 보았는지 '애기버섯 상남자 ㅎㄷㄷ' 하고 반응하는 감탄부터 '김극이 받은 돈 이상으로 열심히 하려는데 어떻게 나라에서 이렇게까지 안 도와줄 수 있느냐?'는 한탄까지.
이 와중에 눈에 띈 게시글 하나를 클릭했다.
Ⓐ Justice1994 : 각성자 특채로 경찰 돼서 6년 의무복무해야 하는데 아직 4년이나 남은 놈이다.
현역 경찰로서 지금 김극 씨 관련 상황 설명해 주겠는데, 다들 경찰들 하는 짓 보고 황당해할 이유가 없다.
경찰들이 각성자 범죄자들이랑 목숨 걸고 싸우긴 왜 싸우나?
그럴 만큼 의욕 있는 경찰들은 게이트 열린 지 이 년 안에 데스클로며 무장 강도랑 싸우다가 다 죽었다.
살아남은 경찰들은? 음주 운전자 찾아내서 봐줄 테니 뇌물 달라고 할 생각만 가득한 놈들이야. 경찰 공무원 인기 싹 사라져서 이번에 모집정원 절반도 못 채웠지. 태업해도 잘릴 걱정이 없는데 누가 열심히 하나?
알다시피 이제 인터넷에서 누가 패드립하거나 성희롱했다며 신고해도 경찰들은 개입 안 한다. 무장 강도며 총기 난사 따위가 넘쳐나는 이 시기에 인터넷에서 누가 욕 좀 먹었다고 경찰력 낭비하는 게 말이 되냔 거다.
그렇다고 경찰들이 강력 범죄에는 적극적으로 대응하느냐?
다시 말하지만 열심히 일하던 경찰들은 게이트 열린 지 이 년 안에 다 죽었다!
이제 경찰들은 실종된 사람 찾는 시늉도 절대 안 한다. 요새 실종자가 얼마나 많은데 무슨 수로 찾느냐며, 이 또한 경찰력 낭비란 거지.
가족이 인신매매 당한 것 같다고 누가 신고해도 대충 데스클로가 물어간 것 같으니 못 찾는다며 순찰차도 안 보내준다.
애초에 이 월급 받고 왜 목숨 걸고 일하느냔 마인드인 거야.
알다시피 물가 상승한 건 미쳤는데 공무원들 월급은 그대로거든? 경찰들 사기 확 내려간 상황이야. 이 월급 받으면서 다치기라도 하면 손해란 생각으로 경찰들 모두 단단히 정신 무장했다.
그러니 경찰한테 뭐 대단한 활약 바라지 마라. 역장 외골격 능력자인데 월급 400 받으면서 일해야 하는 나부터가 의욕 없다. 누가 데스클로 나타났다고 신고해도 삼십 분쯤 산책하고선 없네요~ 하고 돌아와서 모바일겜이나 할 생각 만만이야.
익명 : 민중의 지팡이가 시민 위험 무시하는 게 자랑이다, 세금 도둑놈 새끼
Ⓐ Justice1994 : 불만이면 나한테도 헌터 수준으로 돈 주든가 ㅋ 괴수랑 죽고 죽일 자신이 없어서 경찰 됐더니 자꾸 주민 새끼들이 경찰서에다 괴수 출몰 신고하는 것부터 빡치거든? 그딴 신고를 또 무시하지 않고 그때마다 나 출동시키는 것도 개빡치는데 따지지 좀 마라 제발
이걸 보니 세상 살기 참 팍팍해졌다는 실감이 새삼 드는 가운데, 계속해서 헌트웹에 올라온 이런저런 정보들을 읽어내렸다.
그러다 보니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대충 이해되더라.
헌트웹에서 알게 된 바에 따르면, 김석희는 역장 외골격 능력자이면서 신체강화자인 강력한 각성자다.
당연히도 헌터로서 김석희는 승승장구했는데, 그 와중에 그의 헌터 면허가 박탈된 것은 우발적인 살인 때문이다.
김석희는 어느 날 운전 중에 다른 운전자와 시비가 붙었다가 힘 조절에 실패한 나머지 상대방을 죽였다.
당연히도 그 시점에 헌터로서 그의 삶은 끝났다. 김석희는 경찰들의 체포에 불응한 채 도주했다.
이후로 경찰들이 그를 체포하고자 몇 번이고 시도했지만 모두 처참하게 실패했을 뿐이었다. 그럴 수밖에. 그토록 강력한 각성자를 일개 경찰들이 무슨 수로 제압하겠는가?
그리고 수배된 뒤에도 김석희는 제 먹고살 길을 찾았으니, 그것은 바로 여러 이유로 헌터 일을 할 수 없기에 기껏 각성한 능력을 썩히고 있는 각성자들을 끌어모아 폭력조직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 폭력조직을 운영하는 김석희에게 딱히 놀라운 수완이 있었던 것은 아니거니와 어떤 든든한 뒷배가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이 조직은 이 년 넘게 유지되었고 경찰들은 그 조직의 본거지가 어디인지 뻔히 알면서도 예의 조직을 박멸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그럴 수가 없었다. 순수하게 물리적으로 그러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김석희의 조직에는 역장 외골격 능력자만 세 명이다. 게다가 김석희 본인의 역장부터가 평균 수준을 월등히 뛰어넘을 만치 견고한 것이어서, 그 역장을 뚫으려거든 경찰들이 지닌 대물 저격총이나 무반동총 따위로는 어림도 없다.
그 조직의 각성자들을 제압하려거든 건물 한 채를 통째로 날리겠단 각오를 해야한다. 토우 미사일이든 헬파이어 미사일이든 온갖 이름난 미사일을 쏟아붓거나 아예 폭격하여 항공폭탄이라도 터뜨려야 한다.
물론 겨우 깡패들을 때려잡겠다고 할 만한 일들이 아니다. 고작 담배 파는 깡패들을 토벌하겠다고 군대가 전력으로 나서는 상황은 현실적이지 않다.
결국 경찰들은 김석희의 갱단을 상대로 자신들이 뭘 어쩔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며, 무기력한 대처가 지속된 끝에 이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그리하여 이런 상황에 처한 내 입장을 말하자면······.
인터뷰에서 말했듯, 유쾌하다.
강준치의 영상을 봤을 때 느낀 쾌감을 나는 지금도 느끼고 있다.
각성자들이 자기네 힘을 믿고 공권력을 무시하는 상황이라니? 이토록 멋진 일이 또 있나.
그저 짜릿하다. 내 인생에서 좋은 기억이 없던 경찰들이 이토록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다는 점에서 더욱.
Ⓐ GangStar☆ : 지금 있냐?
그래서 김석희에게서 메시지가 왔을 때, 나는 즐거운 마음에 이쁜 말투로 답변해줄 수 있었다.
Ⓐ BabyBerserker : 마을을 지키는 마법소녀 애기버섯을 찾나양? 물론 있어양!
Ⓐ GangStar☆ : 좀 진지해질 순 없나? 심각한 상황 같은데
Ⓐ GangStar☆ : 하기야 인터뷰에서도 존나 센 척하더라. 그러면 쿨한 것 같나?
Ⓐ BabyBerserker : 애기버섯이는 물론 쿨하지 않아양! 작고 어린 애기버섯이의 마음은 따뜻하니까양♡♥♡!!
Ⓐ GangStar☆ : 계속 이 지랄이네······ 애초에 넌 나한테 이따위로 싸가지 없게 굴면 안 돼. 왠지 알아?
Ⓐ BabyBerserker : 어째선가양? 애기버섯 궁금궁금!
Ⓐ GangStar☆ : 너 전과자인데도 저번에 법 바뀌어서 헌터 할 수 있게 됐지? 그거 누구 덕분인지 아냐? 다 내 덕이야
Ⓐ GangStar☆ : 힘센 각성자가 범죄 저질렀답시고 밥줄을 끊어버리면 상황이 악화된다는 걸 정부가 내 덕에 알게 된 거지.
나 같은 각성자한테 유죄 선고를 내려봤자 얌전히 감옥 들어갔다 나와 편의점에서 알바나 하며 소소하게 살아가는 게 아니라 화끈하게 다 때려부수고 새로운 살 길 찾아낸단 걸 내가 높으신 분들에게 알려줬단 말이야. 그래서 전과자든 뭐든 돈 줄 테니까 제발 이상한 짓 말고 헌터나 해달라며 법도 바꾼 거야. 이 선배님 은혜가 참으로 지극하지 않나?
Ⓐ BabyBerserker : 그런가양? 옵바야, 애기버섯이가 너무 고마워양!!
Ⓐ BabyBerserker : 고마운 옵바한테 애정의 키스 쪽♡! 호에에에, 볼에다 뽀뽀한 거지만 애기버섯이는 너무 부끄러워양 ㅠ
Ⓐ GangStar☆ : 아 씨발 진짜
Ⓐ GangStar☆ : 죽여 버린다
Ⓐ GangStar☆ :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돼? 이러다 좆될 거 같단 생각이 안 드냐?
Ⓐ BabyBerserker : 물론 애기버섯이는 두렵지만, 굴하지 않아양! 작고 어린 애기버섯이는 용기가 있으니까양!
Ⓐ BabyBerserker : 애기버섯이가 김석희 옵바야보다 훨씬 세기도 하고양 ㅋ
기껏 도발했건만, 돌아온 반응은 차가웠다.
Ⓐ GangStar☆ : 넌 안 다쳐도 딴 놈들이 다치는 수가 있어
Ⓐ GangStar☆ : 명심해라
어지간히도 화가 났는지, 아니면 더 대화한들 무익하다고 여겼는지 몰라도 거기서 메시지가 끊겼다.
그리고 나는 약간의 쾌감과 약간의 불안감을 동시에 느꼈다.
이놈이 지금 내 주변 사람을 해치겠다고 협박한 건가? 내 가족은 죄 죽었거나 교도소에 있으니 따로 해칠 만한 내 주변인은 정해져 있다.
내 헌터팀.
난 즉시 박미형 씨도 건너뛰고 인천 시장님에게 전화했다.
"시장님? 지금 곤란한 상황입니다. 모쪼록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나는 방금 어떤 협박을 당했는지 말하고는 힘 좀 써달라고 당부했다. 그러니까 제대로 일하지 않는 경찰들을 좀 제대로 움직이게 해달라고.
인천 시장님도 이 상황에 열받았다는 것은 사실인 듯했다.
「저도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알죠. 어휴, 세상이 바뀌니까 고작 조폭들이 시장 속까지 썩이네. 제가 정말 김극 씨 볼 면목이 없습니다」
"그래서, 도와주실 건가요?"
「당연히 그래야죠! 원래 정부에서 이런 각성자 관련 일 뉴스에 내보내기 싫어하는데, 웬일로 뉴스에 이런 일 나온 상황이거든요? 경찰들이 아무리 소극적으로 일하려 한다 해도 이 지경에 저번처럼 굴진 못할 겁니다. 최선을 다하지요. 내가 제대로 인원 배치하라고 닦달할 테니까······」
물론 이 지경에 경찰을 믿으란 건 말이 안 된다는 것을 시장님도 알고 있었다.
그는 내 헌터팀의 집 주변에 공무원까지 따로 배치하겠다고 약속했다. 무슨 일이 터지면 그 공무원이 상황을 막지는 못할 테지만, 최소한 바로 상황을 알릴 순 있게 조치하겠다고.
그리고 과연, 나와 내 헌터팀 주변에 경찰은 물론 공무원들까지 배치되었다.
그 덕인지 밤중에 누군가가 납치되는 일은 없었지만, 여전히 안심되지는 않았다.
53화 계양구 남작 김석희 - [4]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우리는 계양산에 올라 사냥을 진행했다.
그리고 다들 각자 집에 돌아가는 중에 일이 터진 모양이었다.
내가 막 집에 도착해서 씻고 있을 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모르는 번호였지만 불길한 느낌이 들었기에 바로 받았다.
「김극이냐?」
수화기에서 잔뜩 내리깐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누구?"
「저번에 만난 네 친구. 지금 이 아재 이름이······ 임형택? 암튼 네 늙은 쫄따구 한 마리 우리가 데리고 있거든?」
나는 기어이 일이 터졌단 생각에 입술을 깨물었다.
수화기에서 듣기 싫은 목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데리러 올 거지? 혼자 와라. 딴 놈이랑 같이 오면 이 아저씨 뒤진다」
그리 협박하면서 놈이 장소를 말했다. 나는 즉시 그곳으로 향했다.
약속장소에 도착한 나는 눈을 부라렸다.
가뜩이나 죄 벗겨진 머리털이 더 벗겨진 임형택 씨. 그 꼴이 처참하고도 처량했다. 그 옷이 여기저기 찢어진 가운데 얼굴은 다쳐서 피가 시냇물처럼 흘러나왔다.
임형택 씨의 머리털을 움켜쥔 양아치가 말했다.
"왔냐?"
저번에 본 그놈이었다. 길을 막고 있던 신체강화자, 내가 공간이동 하여 딴 장소에 옮겼던 그놈.
저번에 분명 내 앞에서 눈을 내리깔았던 그놈이 기세 한번 당당하게도 말했다.
"저번에 그 일로 내 기분이 좀 안 좋더라. 그래서 리벤지 하러 왔다."
"그 손부터 놓고 말해라, 새끼야."
"그럴까?"
놈은 임형택 씨의 머리털을 놓더니, 풀려나 비틀거리는 임형택 씨를 휙 걷어찼다.
저 멀리 나가떨어진 임형택 씨가 쓰러져 부들거렸다.
그것을 본 나는 두 눈을 부릅떴다. 주먹을 움켜쥔 팔에 혈관이 돋아났고, 더워서 견디기 힘들 만치 체온이 상승했으며, 금방이라도 달려 나가 주먹을 휘두르고 싶은 충동이 내 머리를 잠식했다.
저 새끼를 죽여버리고 싶다, 지금 당장.
그러나 인터뷰를 너무 근사하게 한 바람에 생겨난 사람들의 오해와 달리, 난 분노조절장애가 아니다.
학주를 팼을 때도, 훈련소 조교를 팼을 때도 나는 분노에 휩쓸려 이성이 마비되지 않았다.
당시의 나는 그저 가정에서의 경험을 떠올렸을 뿐이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우며, 폭력이야말로 불쾌한 상황을 해결할 가장 확실한 수단이라는 경험.
그 경험대로 행동한 결과 나는 폭력을 행사했고 몇 년이나 옥살이했다.
그렇듯 결과가 좋지 않았던 탓에 성질대로 살았다간 인생을 낭비할 뿐이라는 교훈을 얻게 됐는데······.
그래서 내가 성문영이 물었듯 개과천선했나?
글쎄, 모르겠다.
다만 이 사실은 알고 있다. 어린 시절의 경험은 오래간다는 사실. 그리고 부모를 폭행함으로써 모든 고난이 사라진 그 어린 시절의 경험은 여전히 내 자아에 뚜렷하게 남아있다는 사실 말이다.
분노가 식지 않는 와중에도 나는 빠르게 생각했다.
이놈은 여기 왜 왔을까?
당연히 김석희가 시켜서 왔겠지.
그런데 이미 나보다 약한 게 확실해진 이놈을 왜 보냈나?
나한테 리벤지 하러 왔다는 말 따윈 믿을 수 없다.
이놈은 나보다 자기가 약한 걸 안다. 이 정도 힘 차이가 나면 붙어도 승산 따윈 없단 것도 잘 알 테고. 그런데 어째서?
이놈은 김석희가 시켜서, 내게 제대로 얻어터지러 왔을 것이다.
나한테 두들겨 맞고 어디 사지가 부러지기라도 하면 이놈은 경찰에 달려갈 것이다. 그러곤 적반하장으로 날 폭행범이라며 고소할 테지.
그러고는 임형택 씨를 폭행한 저마저 잡혀가겠지만, 그 정도는 감내할 것이다. 잃을 것이 딱히 없는 자신과 달리 떳떳하게 양지에서 활동 중인 명성 높은 헌터 김극이 입을 타격이 더 크리라 판단할 것이다. 그리하여 계양구에서 진행되는 사냥을 멈출 수 있길 바랄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분노에 휩싸인 결과 이놈을 마구 폭행하는 것이 김석희가 바라는 일이리라. 내 폭행 전과와 인터뷰를 보면 누구나 내가 욱하는 성격이라 여길 테지. 그리 판단하고서 지금 이 쪼잔한 짓을 계획했으리라 추측하기는 어렵지 않은 일이다.
반면 김석희가 바라지 않을 상황은, 이 와중에도 내가 범생이처럼 구는 것이다.
정부에서 시키는 대로 이웃집 유대인을 신고하여 가스실로 보낸 나치 새끼들처럼, 내가 준법정신을 발휘하여 이놈을 대충 제압만 하고서 경찰에 신고한 다음 사냥을 이어나가는 것이 김석희에겐 원하지 않을 상황이겠지.
나는 내가 불안한 이상으로 그놈이 불안하리란 것을 안다. 이 상황이 뉴스에도 나오는 마당 아닌가. 지금쯤 대단히 쫄릴 것이다.
그리고 나는 김석희 그놈이 끔찍이도 꺼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또 다른 상황을 알고 있다.
그것은 바로······.
"안 오냐? 슬슬 쫄려?"
놈이 도발했고 내가 달려들었다.
놈이 복싱 자세를 취했지만 눈여겨볼 가치도 없었다. 그것은 페더급 아마추어가 무제한급 챔피언을 상대로 한 저항에 불과했다.
과연 놈도 그 사실을 알았다. 내 팔이 뻗어나간 순간 놈의 얼굴에 스친 두려움을 보았다. 내 손에 붙잡힌 놈의 팔에서 전해진 떨림을 느꼈다.
그로써 이놈이 내게 실컷 당하러 왔음을 재차 확신할 수 있었다.
아무런 어려움 없이, 내가 놈을 바닥에 메쳤다.
"억―"
그리고 내가 놈의 등을 짓밟았을 때, 임형택 씨의 목소리가 내 귀에 파고들었다.
"안 돼요!"
"예?"
다쳐서 말하기 어려운 상황인 것 같았는데도 임형택 씨는 굳이 입을 크게 벌려 외쳤다.
"더는 안 된다구! 그 새끼 패지 마! 제압했으니 그걸로 만족해요, 응?"
"아저씨."
"다시 말하지만 그 새끼 패지 마요. 딴 애들이 다친 거라면 모를까 나 다친 걸로 화나서 일 저지르면 안 돼! 그게 김석희 그 졸렬한 새끼가 원하는 거예요. 이놈이야 잃을 거 없어도 김극 씨는 잃을 거 많잖아요, 응?"
내가 한 생각을 이 아저씨도 똑같이 하고 있었군. 자신이 당한 것은 전혀 상관없다는 듯 임형택 씨가 계속 말했다.
"이놈 제압했으니까 이제 경찰서 데려갈 거죠?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해요. 유치장 넣어놔도 하루 만에 풀려날 건 아는데 일단 그렇게 해야 해요. 법대로, 그러니까 절차대로 해야 아무 문제 없는 거 알죠?"
내가 화나서 성질대로 이놈을 마구 두들겨 팰까 봐 걱정하는 모양이다.
그렇게 열변을 토하는 중인 임형택 씨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난 분명히 말하건대 분노조절장애 따위가 아니다.
지금 나는 화난 와중에도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이놈이 왜 하필 임형택 씨를 잡아 왔을까?
그러니까, 백담비가 아니라 왜 이런 추레한 아저씨를?
잘 모르는 제삼자의 시선으로 볼 때, 내 헌터팀 중에 끌려가서 봉변을 당했을 경우 내가 가장 화날 만한 사람은 이 아저씨가 아니라 내 라운드걸 아닌가.
내가 헌트웹에서 그녀를 여러 번 변호한 바가 있다. 그래서 헌트웹에서는 내가 백담비랑 사귀는 게 아니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래서, 왜 납치됐을 때 내가 가장 화날 만한 백담비가 아니라 이 아저씨를 납치했지?
그리고 방금 신체강화자가 걷어찼는데도 이 아저씨는 어떻게 죽지 않고 멀쩡히 살아서 이렇게 떠들 수 있는 것일까? 놈이 힘조절을 했겠지, 분명히.
자칫하면 내가 지나치게 화날까 봐 걱정했을 테니까.
김석희는 내가 분노하길 바랐겠지만, 내가 아예 눈이 뒤집히길 원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너무 지나치게 분노한 나머지, 이놈을 폭행하는 걸 넘어 그 이상의 행동을 하길 원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눈이 뒤집힌 채 행동했을 때, 난 과연 지금 이 헌터 생활을 계속할 수 있을 것인가?
지금 가진 모든 것을 잃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눈을 감고 잠시 생각을 정리해보니 결론이 나왔다.
눈을 떠보니 날 떨리는 눈으로 쳐다보는 임형택 씨가 보였다. 그에게 웃으며 말해주었다.
"괜찮아요. 안심해도 돼."
"정말이죠? 나 믿어도 되는 거지? 다시 말하지만 나 멀쩡해요. 걸을 수도 있는데 너무 화낼 필요 없어, 응?"
다시 한번 웃어준 다음 나는 눈을 감았다 떴다.
그렇게 나는 공간이동 했다.
*******
달라진 시야에 처음 보는 장소가 비췄다.
괴수들이 들끓는 나머지 사람들이 떠나간 계양구의 슬럼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있다.
우선 갱단원들······.
계양구 변경백 김석희의 조직원들이 보였다. 그들도 날 보았다. 날 알아본 듯 그들이 기겁했다.
"어, 김극!"
바로 그들이 여기저기 달려 나갔다. 하나같이 스마트폰을 붙잡고 어딘가에 전화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이 그러도록 내버려 두었다.
계속해서 주변을 살폈다.
내가 제대로 오긴 했군. 대충 설명 들었던 놈들의 본거지가 확실했다.
당장 겁에 질린 갱단원들뿐만 아니라, 그들이 데리고 다니는 부랑자들도 보였다.
워낙에 어려운 세상이라, 돈 없고 먹고살 길 없는 부랑자들은 김석희의 갱단에 보호받으며 연명했다.
갱단의 담배 농사를 전담하면서, 이 지역에 들끓는 괴수들에게 보호받으며 목숨을 이어나가는 것이다.
그러니까, 저 평범한 사람들은 이곳에서 소월의 양들처럼 사는 셈이었다. 김석희 그놈이 괜히 이곳의 영주라 자처한 게 아닌 셈이다.
이 와중에도 역시 그것은 맘에 들었다.
"야, 이 씨발 새끼야! 여긴 왜―"
얼마 지나지 않아 갱단원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이 날 둘러쌌고 난 여전히 신체강화자를 짓밟은 채 인사했다.
"안녕."
그리 말하면서 놈을 짓밟은 발에 힘을 주었다. 아까부터 빠져나가려고 애쓰던 놈이 신음했다.
"이 새끼 너희 친구지?"
갱단원들이 날 노려보았지만 그들의 눈에는 당혹감이 가득했다. 그들로선 내가 자기네 본거지에 바로 쳐들어올 줄은, 아무런 망설임 없이 그럴 줄은 미처 몰랐을 것이다.
내가 계속 말했다.
"지금부터 이 새끼 척추를 세게 밟을 거야. 내가 소싯적에 학주랑 조교 새끼들한테 그랬던 것처럼 이 새끼도 장애인 만들어 줄 생각인데······"
발에 더욱 힘을 주자 놈의 신음이 끊겼다. 난 웃지도, 화내지도 않은 채 놈을 내려다보았다. 놈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게거품을 보니 그제야 만족스러웠다.
"얘 초재생능력 딸린 신체강화자 맞지? 그거 믿고 깝쳤나? 초재생능력에도 한계가 있다던데 척수 으깨져도 재생되나 보자."
다시 고개를 들어 여기 모인 모두를 쳐다보았다. 저놈들 중에 각성자 간부들이 있을까? 그러리라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헌터 라이플 있는 사람?"
"빨리 그 새끼 몸에서 발 치워 씹새꺄! 안 그러면―"
한 놈이 크게 소리쳤지만 난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계속 내 할 말이나 계속했을 뿐이다.
"빨리 가져와. 그거 아니면 내 몸에 기스도 안 나는 거 알지? 딴 놈들은 모르겠는데 김석희? 그놈은 전직 헌터니까 헌터 라이플 있겠다. 그 새끼도 빨리 튀어오라고 해."
내 말대로 놈들이 어디론가 전화를 거는 듯했다. 그와 동시에 몇 놈이 내게 달려들었다.
자신 있게 달려드는 걸 보니 각성자일까? 신체강화자? 아니면 역장 외골격 능력자?
어느 쪽이건 상관없었다. 모두 내 상대가 안 되리란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 모두를 폭행한들 괜찮으리란 것도.
"이 씹새―"
맨 먼저 달려와 도끼를 휘두른 놈, 그놈의 근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관심도 없었다. 너무 느려서 공간이동 해서 피할 가치조차 못 느꼈으니까.
살며시 휘두른 내 주먹이 놈의 턱을 강타했고 놈이 쓰러졌다.
그리고 누군가가 방아쇠 당기는 것이 느껴진 순간, 그제야 나는 공간이동 했다.
이렇게 싸움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 싸움을 저놈들은 매우 심각한 상황이라고, 그러니까 범죄자들이 강력한 헌터를 건드림으로써 일어난 인과응보쯤으로 이해하고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아니다. 난 여전히 공권력을 무시하는 저들이 맘에 든다. 저들의 소월인다운 통치 방식은 감탄스럽고, 저들의 영주인 김석희에게는 잔뜩 화난 지금조차 기꺼이 경탄을 보낼 수 있다.
그리고 난 이 땅의 영주에게서 영지를 빼앗으러 왔다.
놈과 같은 각성자로서, 내게는 그럴 권리가 있다.
54화 계양구 남작 김석희 - [5]
장거리 공간이동 한 나는 내 팬의 집 앞에 도착했다. 문을 두드리니 내 팬이 나와서는 내 얼굴을 보고 놀란 눈치였다.
"어, 김극 씨? 이 시간에 웬일로!"
"내가 지금부터 웬 깡패들이랑 싸워야 하거든요? 누가 영상 촬영 좀 해주면 좋겠는데, 혹시 가능하신지······"
그 영상은 나중에 보복당하거나 방조죄로 처벌당할 염려를 없애기 위해 누가 찍었는지 모르도록 내 유튜브 계정에 올려야 할 것이라고, 대신 수익금은 그쪽에 줄 것이라고 설명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필요 없는 일이었다. 내가 제대로 설명하기도 전에 팬이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깡패들이요? 아, 그 새끼들 드디어 조지나 보네! 바로 카메라 챙길게요!"
성문영은 이 친구가 수익 때문에 날 따라다닌다고 의심하는 모양이지만 내가 보기엔 진정한 팬이 맞다.
나는 그와 사이좋게 웃고서 다시 공간이동 했다. 팬을 촬영하기 좋은 건물 옥상에 내려놓고서 다시 한번 공간이동 했더니 성난 고함이 귀에 파고 들었다.
"손 들어! 뒤지기 싫으면 손들라고, 개새끼야!"
한 갱단원이 소리치고 있었다. 요새는 개나 소나 들고 다니는 K-2를 든 놈. 그놈은 내가 사라진 게 적잖이도 당황스러운지 사방에 총구를 흔들며 마구 고함지르고 있었다.
저 얼간이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나는 대물 저격총을 든, 방금 내게 방아쇠를 당겼던 놈의 등 뒤에 서있었다.
놈의 오금에 발길질 했다.
큼직한 무기를 들고 있길래 신체강화자라도 될 줄 알았더니 아니었다. 고작 발길질 한 방에 놈은 다리가 기괴하게 뒤틀려서는 뒤로 누웠다.
"얽······"
위로 향한 그 면상을 보니 표정이 아주 재밌다.
그 입에서 뭔 소리인지도 모를 괴성이 나오더니, 놈이 부들거리다가 정신을 잃었다.
"이 개새끼가!"
방금까지 손들라며 소리치던 놈이 드디어 날 발견했다. 놈이 내게 총구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조정간은 연발, '탕, 탕탕!' 총성이 연달아 울렸지만 난 신경 쓰지 않았다. 난 팔뚝을 들어 얼굴을 가렸고 날아온 총알들은 가까이서 쏜 탓인지 내 피부에 박혔지만 그뿐이었다.
총알에 맞은 직후, 내 피부에 박힌 총알들은 재생력에 밀려났다. 툭, 툭 하고 내 피부에서 빠져나와 하나둘씩 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어······"
사격했던 놈의 눈이 충격으로 흔들렸다. 그 표정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할 만했다. 대충 '이게 무슨?' 따위로 생각하는 중이겠지.
신기한 것 하나 더 보여줄까?
난 아직 내 피부에 박혀있던 총알을 엄지와 검지로 뽑아서는 그대로 튕겼다.
'탁' 하는 소리를 내며 날아간 총알이 놈의 배에 맞았다. 신체강화자의 힘으로 날려 보낸 총알, 아팠나 보지. 놈이 배를 붙잡고 끙끙대더니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그 광경을 본, 방망이를 들고 덤비려던 놈이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그 자리에 멈춰섰다.
내가 놈에게도 피부에서 끄집어낸 총알을 탁, 튕겨주자 그 역시 재밌는 소리를 내며 나자빠졌다.
피부에서 총알이 다 빠져나갈 때까지, 나는 잠시 같은 짓을 반복했다. 벌써 전의를 잃었는지 도망치는 갱단원들의 종아리며 허벅지에 총알을 튕겨 맞히니 하나둘씩 쓰러지는 꼴이 나름대로 재미있었다.
그러나 대단한 쾌감 따윈 느낄 수 없었다.
양들 사이에서 날뛰는 800kg짜리 회색곰이 된 느낌이었다. 양의 박치기를 거뜬히 버텨낸들, 발톱 한 번 휘둘러 양을 찢어발긴들 회색곰에겐 딱히 자랑스러운 일이 못 되는 법.
"각성자들 없나? 여기 많다던데 당장 한 명도 없어?"
나약한 비각성자들은 그만 내보내라고 내가 외쳤더니 과연 각성자 하나가 덮쳐왔다.
놈이 당당하게 덤벼들진 않았다.
놈은 내 등 뒤에서, '죽어라!' 따위의 대사를 외치는 일도 없이 빠른 속도로 달려왔다. 우사인볼트보다 빠른 달리기 속도를 보아 신체강화자거나 역장 외골격 능력자일 것이었다.
정신적 그물망이 놈이 손에 든 물건까지 무엇인지 알려주었다. 알류미늄 방망이이로군. 실망스러웠다. 저 속도에 저 힘으로 돌격할 거라면 아예 기병창이라도 구해서 저러는 게 나았을 텐데 꼴에 깡패랍시고 저리 창의성 없게 굴다니?
그 방망이질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보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고개를 돌리지도 않은 채 팔만 뒤로 움직여서는 놈의 머리통을 붙잡았다.
손에 대단한 힘을 주지 않았는데도 경악스러웠던 모양이다. 놈이 방망이조차 내버린 채 내 손에서 벗어나고자 팔을 마구 휘저으며 비명 질렀다.
"악! 악!"
그때 내 정면에서 또 한 놈이 달려들었다. 아마도 해외에서 구입했을 법한 서양 중세식 롱소드가 놈의 손에서 아지랑이를 피워냈다.
역장 날붙이 능력. 체급을 무시하고 상대가 누구든 죽일 수 있는 능력이지만 날 긴장케 하진 못했다. 데스클로가 무서운 것은 저 뭐든 가르는 칼날에 말도 안 되는 도약력이 합쳐진 결과인데, 저놈은 가진 능력이 역장 날붙이뿐인 듯했다. 지루할 만치 느려빠졌단 소리다.
내게 머리통이 붙잡혀 있던 놈을 그놈에게 집어던졌다. 놈이 들고 있던 칼날에 그놈이 썰리면 재밌었을 텐데 그렇게 되진 않았다.
"씨발!"
칼잡이가 기겁하여 칼을 옆으로 치웠고 던져진 놈이 놈의 몸통에 가닿았다.
명중.
두 놈이 동시에 나뒹굴었다. 도로 일어나려는 두 놈 앞에 내가 공간이동 했다.
막 일어나려던 놈, 역장 날붙이 능력자의 다리에 내가 발길질했다. 놈의 신체 능력은 일반인의 그것에 불과해서 단 한 번의 발길질조차 견뎌내지 못했다.
인터넷에 올리면 혐오스러운 사진이라며 욕먹을 만치 다리가 뒤틀린 칼잡이는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지껄이다가 내가 또 한 번 다리를 밟아주자 눈이 완전히 뒤집혔다.
그리고 아직 다리가 멀쩡한 또 한 놈, 방금 땅을 나뒹굴었는데도 몸에 아무것도 묻지 않은 걸로 보아 역장 외골격 능력자로 추정되는 놈이 날 봤다.
내가 놈의 다리에 시선을 보냈더니 놈의 눈이 마구 떨리기 시작했다. 마찬가지로 벌벌 떨리던 그 입이 열렸다.
"그만, 그만······ 봐줘요, 제발. 나 장애인 되면 안 돼요. 나 헌터 돼야 하는데······"
수배된 놈은 아니었나 보지. 나는 놈을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말했다.
"인천이랑 헌터 계약하겠다고 약속하면 봐줄게."
"예? 예!"
"인천 시장 기호 2번으로 출마하실 박미형 씨도 꼭 뽑고. 알겠어?"
"예, 약속······"
놈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웃으니 놈이 우는 표정으로 웃었다.
당장 집에 가라고 속삭여주니 놈은 그렇게 했다. 도망치는 놈을 보며 내가 웃던 중에 웬 놈이 저 옆에서 소리 질렀다.
"저 배신자 새끼가!"
그리 외치며 또 한 놈이 내게 달려들었다.
근육질 몸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신체강화자. 키도 190 이상으로 크고 생긴 것도 우락부락한 떡대인 것이 이놈은 꽤 셀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방심할 수 없다.
그래서 떡대가 내게 다가와 주먹을 휘둘렀을 때 난 발을 앞으로 내지르며 공간이동 했다. 그리하여 내가 떡대의 등 뒤에 선 순간, 완전히 뻗어나간 내 발이 놈의 오금을 걷어찼다.
과연 꽤 강력한 신체강화자였다. 떡대는 컥, 소리를 내며 한쪽 무릎을 꿇긴 했지만 완전히 넘어지지 않았다.
심지어 떡대는 무릎 꿇은 채로 몸을 회전시켜가며 날 향해 팔을 휘둘렀는데, 제대로 연습하고 하는 동작 같진 않아서 영 어설펐다.
곧바로 카운터를 먹여줬다. 떡대의 안면에 명중한 내 스트레이트. 놈의 누런 이가 피 묻은 입에서 튀어 나갔다.
그 와중에도 떡대가 필사적으로 뻗은 주먹을 내 단단한 머리로 막아내자 놈이 비명 질렀다.
뒤이어 내가 배 한 번 걷어차니 떡대가 쓰러졌는데, 아직도 놈은 굴복하지 않았다.
"이 씨발 새끼야, 개새끼가, 뒤질라고······"
기세 좋다고 칭찬해주기엔 실력도 없는 놈이 이러니 맘에 들지 않았다.
저보다 강한 이를 만났으면 즉시 무릎을 꿇어야 하는데, 그러질 않고 자존심이나 지키려 들다니? 그것은 약자의 권리가 아니다.
명백한 강자에게 존경을 보여라. 소월에서는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다. 약해빠진 놈아.
교훈을 주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떡대의 몸에 올라타서는 연달아 주먹을 날렸다.
한 번 주먹질에 떡대의 입에서 이빨 몇 개가 더 빠져나왔다. 두 번 주먹질에 놈의 안면이 뭉개졌고, 세 번째 주먹질에 놈이 경련했다.
이 와중에 아직 놈의 다리가 멀쩡했다. 그것이 맘에 들지 않아서 밟아주었다.
초재생능력이 있는 듯하니 훨씬 잘 버티리란 생각에 여러 번, 그 다리뼈가 완전히 으스러지도록 몇 번이고 밟았더니 놈이 끔찍한 소리를 냈다. 놈은 결국 비명지르다가 기절했고 난 만족했다.
그 와중에 누군가가 숨을 집어삼켰다.
그쪽에 시선을 돌리니 또 한 남자가 보였다. 놈은 웬 회칼을 가져왔는데, 그 삐죽한 칼날을 내 몸 어딘가에 찌를 용기가 벌써 사라진 듯했다.
"너도 각성했나?"
그는 방금 쓰러진 떡대를 보고서 겁먹은 듯했다. 그렇다면 이 떡대보다 이놈이 약한 모양이다.
"헌터 라이플 없어? 있을 것 같은데, 기다려줄 테니까 들고 올래?"
내가 물었는데 대답이 없었다. 무시한다기보다는 너무 얼어붙은 것 같았다. 그 다리가 떨렸다. 그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아뇨······"
그 굴복의 태도가 맘에 들었기에 나는 친절해졌다.
"아무리 봐도 가져와야 제대로 싸울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아무도 안 들고 온 거냐? 헌터 라이플 말야. 내가 가지고 오라고 말했잖아."
내가 다가가자 놈이 뒷걸음질 쳤다. 그리고 내가 힘조절해서 내지른 로우킥 한 방에 놈의 몸이 후들거렸다.
"악!"
그러나 비명 지르면서도 몸은 멀쩡해 보였다. 역장 외골격 능력자로군. 아까 내게 머리를 붙잡힌 놈도 아프지 않을 텐데 비명부터 지르더니 이놈도 마찬가지였다.
이 분수를 아는 태도도 맘에 들겠다, 트라우마를 심어주기는 뭐했다. 인천 헌터가 되겠다는 맹세를 놈에게도 받아내고서 놈 역시 집으로 돌려보낸 뒤에야 놈들의 대장이 도착했다.
"김극?"
처음 들어보는 목소리요 얼굴이었지만 누구인지 알 만했다. 나는 놀라울 정도로 평범하게 생긴 남자를 보며 반갑게 말을 걸었다.
"그쪽은 김석희지? 계양구 변경백. 이 변경에 인천 공작이 찾아왔다."
내 귀족적인 인사에 김석희는 대답해주지 않았다.
놈은 이 상황을 살피느라 바쁜 눈치였는데, 나와 지금 이곳의 참상을 번갈아 쳐다보는 듯했다.
놈의 눈동자가 마구 흔들렸다. 아마 놈의 눈엔 다리가 꺾이거나 뒤틀린 놈들, 얼굴이 엉망이 되어 피 흘리는 떡대, 그 밖에 여기저기 쓰러져서 경련하는 부하들이 한꺼번에 담겼을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참상을 내가 만들어냈으리란 걸 알아챘을 것이다.
김석희의 입에서 충격을 받은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어째서······"
뭔 소리인지 알 만하다. 왜 쳐들어왔느냔 거겠지.
김석희가 내가 화나길 바랐어도 이 정도 상황을 바라진 않았으리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모름지기 적이 바라지 않는 행동을 해야 하는 법이라 나는 이렇게 했다.
이내 김석희가 정신을 차렸다. 그 눈에서 전의의 불꽃이 피어올랐다.
이를 악문 놈이 천천히, 손에 들고 있던 거대한 기관포를 들어 내게 겨눴다.
"죽여버린다, 개새꺄."
놈의 손에 들린 55kg짜리 헌터 라이플을 보며 나는 속으로 감탄했다. 맨날 내가 들고 다녀서 잘 체감하지 못했는데 저걸 든 모습을 보니 대단히 근사하군.
"헌터 라이플······ 내가 가져오라고 몇 번이고 말했는데 드디어 가져왔네."
"죽여버린다고, 개새끼야."
놈이 으르렁거렸고 내가 재촉했다.
"그래, 그럼 쏴."
"내가 못 쏠 거 같냐?"
"쏘는 법 안 까먹었으면 물론 쏘겠지? 빨리 쏴. 그래야 정당하게 널 죽일 수 있으니 어서."
나는 그리 말하며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정신적 그물망을 펼친 채, 그 총구에서 30mm 기관포탄이 발사되는 순간 공간이동 할 준비를 하던 차였다.
김석희는 끝내 방아쇠를 누르지 않았다.
김석희는 내가 쏘면 죽이겠단 말에 겁먹은 것일지도 몰랐다. 아니면 정말 그걸 사람에게 쏠 용기가 없었거나. 어쩌면 둘 다 일지도.
김석희는 헌터 라이플을 쿵, 하고 땅에 내려놓더니 날 노려보았다.
"공간이동 하는 새끼 상대로 총 들고 싸우는 게 병신이지."
김석희가 변명하듯 그리 중얼거렸을 때, 나는 크나큰 짜증을 느꼈다. 딱 보니 자신 없는 눈치인데도 맨손으로 싸우려 들다니?
당연한 일이지만 역시나, 이놈은 소월인이 아니었다. 그 사실을 새삼 실감했다.
소월인 우소리가 날 상대로 자기 칼을 내려놓은 데다 역장 날붙이를 두른 손톱 혹은 단검을 휘두르지 않은 것은 내 헌터 라이플을 두려워한 전술적인 선택이었다. 또한 내 근력이 저보다 약하니 그대로 싸워도 이길 수 있으리라 믿었기에 그는 두 주먹만으로 싸운 것일 텐데, 이 친구의 경우엔 아니었다.
김석희는 헌터 라이플을 내려놓는 순간 제 승산이 크게 줄어드는 것을 알면서도 그 무기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기꺼이 열세인 상황에서 나와 싸우려는 눈치였다.
소월인 각성자였다면 자기가 명백하게 열세라고 여기는 상황엔 그대로 헌터 라이플을 쏘거나 아예 도망쳤을 텐데. 아니면 굴복하거나.
하기야 소월인처럼 굴어도 소월인은 아닌 법이다. 힘이 곧 권력이요 지위인 법인데, 지구의 문명인들은 그 당연한 사실을 망각한 나머지 주제넘은 행동을 보인다.
소월에서 저보다 강자를 상대로 고개를 꼿꼿하게 드는 것은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나와 비슷하게 강했던 우소리는 그래도 되었지만 이놈은 그래선 안 됐다.
내가 더 강할 게 분명한데도 날 후려친 학주며 날 상대로 도발했던 훈련소 조교는 그 대가를 치렀다. 이놈도 대가를 치러야 할 테고.
김석희가 덤벼들었을 때, 난 발을 움직여 피해줄 가치를 느끼지 못했다.
"죽어, 개새―"
놈의 등 뒤로 공간이동 하여 놈의 등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내 일격에 놈의 표정이 고통으로 일그러지지는 않았다.
경찰 특공대로선 제압할 엄두도 못 낼 만큼 강력한 역장 외골격 능력자라더니, 과연 딱딱했다. 전혀 타격받지 않은 게 확실한 태도로 김석희가 허리를 돌려 내게 오른쪽 주먹을 휘둘렀다.
그 주먹을 막아낸 내 손이 몹시 얼얼했다. 그리고 난 살짝 웃었다.
역장 외골격에 신체강화 능력까지 있다더니, 생각보다 훨씬 강했다. 그렇다면 고개쯤 뻣뻣하게 들 만하지.
김석희가 또다시 뻗어온 왼쪽 주먹마저 내가 붙잡았다. 그리고 그대로 힘을 주어 놈의 몸 전체를 공중으로 던져버리자 놈이 비명 질렀다.
"씨발―!"
십 미터쯤 떠오른 김석희가 낙하했다.
던져질 때만 해도 수직이었던 놈의 몸은 떨어질 때는 수평이었다.
놈의 복부에 무릎 차기를 먹여준 다음 공간이동 하여 놈의 등을 두 발로 내리찍자 저 멀리서 팬의 환성이 울려 퍼졌다.
"개쩐다, 씨발! 그대로 죽여버려요, 저 씹새끼!"
난 그를 향해 엄지를 들어주며 생각했다.
정말 저 말대로 그러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교훈을 줄 것이다. 소월에서는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하는지 제대로 알려줄 것이다.
이놈을 굴복시킬 것이다. 그리고 굴복하지 않거든, 그때야말로 정말 죽여버릴 것이다.
55화 계양구 남작 김석희 - [6]
내가 정면에서, 김석희의 얼굴에 오른쪽 주먹을 꽂아 넣었다.
충격파가 발생하며 포탄 터지는 소리가 났다. 소리만 요란한 게 아니라 노리던 부위에 제대로 명중했다.
관자놀이에 클린히트. 이 정도로 깔끔하게 펀치가 들어갔다면 아무리 맷집 좋은 격투가라도 휘청거릴 법하건만, 김석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고통스러운 신음 한 마디 내지 않은 채 놈 역시 주먹을 뻗어왔다.
"이 개새끼야! 그―"
하여간 역시나 역장 외골격 능력자구나, 싶은 상황이다.
각성자 시장에서 역장 외골격 능력은 그 가치를 매우 높게 쳐주는 능력이다. 예컨대 사냥에서 비슷한 역할을 수행하는 신체강화자보다도 역장 외골격을 지닌 각성자의 몸값을 더욱 높게 쳐준다.
그도 그럴 것이 어지간한 수준이면 소총탄에도 치명상을 입을 수 있는 신체강화자와 달리 역장 외골격 능력자는 어지간한 수준이어도 소총탄을 가볍게 튕겨낼 수 있다.
맷집부터가 그토록 우월한데, 상처를 입으면 움직임이 둔해지는 신체강화자와 달리 역장 외골격 능력자들은 그 역장이 파괴되기 전까지는 아무리 피해를 받아도 전투 능력이 저하되지 않는다.
HP가 0이 되기까지는 감전되든 중독되든 칼로 베이든 상관없이 멀쩡히 움직이는 게임 속 보스처럼, 그야말로 현실에서 볼 수 없어야 할 전투 수행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일개 경찰들이 역장 외골격 능력자를 소총 따위로 제압하기는 반쯤 불가능에 가깝다. 설령 열심히 총을 쏴 맞혀서 역장 외골격에 착실하게 피해를 주고 있더라도 쏘는 경찰들의 입장엔 그 사실을 알 수 없다. 게임처럼 HP의 잔량이 보이는 것도 아니라, 얼마나 더 피해를 줘야 하는지 몰라 그저 끔찍한 막막함을 느끼게 된다던가?
심지어 출력이 비슷해도 훨씬 가벼운 덕에 신체강화자보다 더욱 빠르게 움직일 수도 있으니, 그야말로 전투를 위해 탄생한 능력이나 다름없다.
과연 김석희는 내게 몇 번이고 두들겨 맞았는데도 아직 역장에 금이 간 기색조차 없었다. 초재생능력이 없었다면 내 주먹이 먼저 깨졌을 게 분명한 일이다.
그렇듯 유리한 상대로도 훌륭하게 싸우고 있는 내가 얼마나 위대한지는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아, 공기를 가르고 날아온 김석희의 주먹이 내 얼굴에 닿으려 했다.
그리고 난 고개를 젖혀 피하려 시도하지도 않았다.
김석희의 주먹을 피해 내가 공간이동 하자 놈이 억울한 듯이 계속 외쳤다.
"―좆같은 공간이동 좀―"
김석희의 옆에 도달한 내가 좌우 펀치를 연달아 날려 놈의 머리를 두들겼다. 이 와중에 용케도 내 위치를 포착해낸 듯, 크게 휘둘러진 김석희의 주먹을 피해 또다시 공간이동 했다.
김석희의 등 뒤에서 그 등에 발길질하여 무게중심을 무너뜨린 다음 연달아 주먹을 날리다가, 자세를 회복한 놈이 반격하려 하자 또다시 그 옆에 공간이동 하여 놈의 옆구리를 두들겼다.
김석희는 아프지 않을 텐데도 부아가 치밀어오른 듯 고함질렀다.
"―작작해, 씨발!"
그리고 살짝 거리를 벌린 나는 웃었다. 슬슬 현기증이 느껴져서 공간이동을 자제하려던 상황인데 잘 됐군.
"그럴까?"
내가 웃으며 손가락을 뚝, 뚝 꺾으니 김석희의 안면이 일그러졌다. 내 여유로운 모습에 수치심을 느끼는 모양이지.
놈이 덤벼들길 주저하는 듯하길래 내가 달려들었다.
잽을 날리다가 곧바로 레벨체인지 했다. 무게중심을 잔뜩 낮춘 채 놈의 발목을 붙잡아서는 둔기를 휘두르듯 놈의 몸뚱이 전체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제 머리통이 바닥에 연달아 쾅, 쾅 충돌하면서도 김석희는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았지만 어지러운 듯했다. 그 허우적거리는 손이 내 몸에 닿지 않았다.
계속 놈을 휘두르자니, 놈이 붙잡히지 않은 다리로 날 걷어차려 하길래 내가 놈을 집어던졌다. 신체강화자의 힘으로 던진 것이라 녀석은 이번에도 저 멀리 날아가 건물 벽에 부딪혔다.
몸을 일으킨 김석희가 몸을 휘청거렸다.
그리고 녀석의 귀에서 흐르는 피를 보며 나는 웃었다.
드디어 역장이 깨졌군.
"으······."
신음하는 놈을 내가 비웃어주었다.
"아프냐?"
그랬더니 녀석이 날 노려보았다. 아직 날 한 방도 때리지 못한 주제에 아직 전의가 남아있는 모양이다. 아니, 싸워 이길 희망이야 없어도 자존심은 남은 것일까?
그렇다면 잘 됐다고 느꼈다. 아직 더 때려줄 수 있으니까.
하기야 역장 외골격이 파괴되었다 하더라도 여전히 놈은 신체강화자이며 강력한 각성자였다.
그래서 더욱 좋았다. 여전히 힘 조절 할 필요가 없는 셈 아닌가.
"이 개새꺄아아!"
전의를 다잡기 위해서일까? 놈이 포효하며 달려들었다.
그리고 나는 놈과 나 사이의 힘 차이를 느끼게 해주기 위해, 피할 수 있었던 놈의 주먹을 맞아주기로 하며 나 역시 왼쪽 주먹을 뻗었다.
서로의 주먹이 교차하며 서로의 머리를 강타했다. 크로스 카운터.
역장을 두르고 있던 방금까지와 달리 이번 펀치에는 감촉이 있었다. 제대로 들어갔다는 것을 그 감촉만으로도 알 수 있었고.
나는 멀쩡했지만 김석희는 그렇지 않았다. 김석희는 피 흐르는 머리를 붙잡은 채, 휘청거리며 필사적으로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나는 녀석의 얼굴을 보며 웃었다.
방금까지 분노로 일그러져 있던 녀석의 표정에 비로소 공포가 떠올랐다. 하기야 역장 외골격 능력자로서는 오랜만에 느껴보는 통증이리라.
내가 움직이려 하자 김석희가 흠칫했다.
"씨발······"
녀석이 거리를 벌리려 했지만 나는 도망치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녀석을 향해 힘껏 달려 나가다가, 놈이 허겁지겁 방어 자세를 취했을 때 나는 놈의 등 뒤로 공간이동 했다.
드러난 놈의 오금에 로우킥을 날리자 김석희가 쓰러졌다. 녀석이 일어나려 하길래 그 옆구리를 걷어찼다.
"억―"
녀석이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며 한 바퀴 옆으로 굴렀다.
그리고 녀석이 나를 보았다.
나도 놈의 얼굴을 보았다. 드디어 두려움이 가득해진 얼굴. 만족스러웠다.
이 와중에 녀석은 내가 쓰지 않기로 한 공간이동을 썼다고 항의하지도 못했다. 내가 녀석의 가슴에 올라탄 채 얼마 전보다 두 배로 무거워진 체중으로 녀석을 짓눌렀기 때문에. 그와 함께 주먹질을 시작하여 녀석의 얼굴을 두들기기 시작했기 때문에.
몇 번 주먹질 하지도 않았건만 녀석의 얼굴은 순식간에 만신창이가 됐다.
한 대 더 때리기 위해 주먹을 들자니 김석희가 필사적으로 손바닥을 뻗어 내 앞을 가렸다.
그 입이 열리더니 힘없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만······"
내가 물었다.
"항복이냐?"
아니었다. 김석희는 이 와중에도 자존심을 챙기려 노력했다. 협박 비슷한 걸 시도하는 걸 보니.
"나, 나 죽으면 너도 좆돼······."
"내가 왜?"
"나, 으, 나부터가, 사람 죽여서 헌터 못 하게 된 건데······"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알 만했다. 자길 죽이면 나 또한 살인자로서 수배되지 않겠느냐 말하고 싶은 모양이지.
계속 뭐라 말하고자 뻐끔거리던 그 입에 내가 펀치 한 방을 더 날려주었다. 그리고 고통스러운 얼굴로 날 쳐다보던 녀석에게 말했다.
"선배야. 헌트웹 안 한 지 오래됐구나?"
헌트웹 헌터 게시판에 약 이 년 전에 올라온 팁 하나가 있다.
자신이 욱하는 성질이거나 음주운전 하길 즐기는 놈이라면, 그러니까 자신이 언제 사고 칠지 모르는 성격이라면 헌터 면허가 박탈될 상황에 대비하라고. 즉 지자체와 계약한 돈을 반환해야 할 상황에 대비해 돈을 미리 죄다 써버리란 조언이었다.
"경찰이 너한테만 조신할 것 같냐? 나한테만 여포일 것 같았어?"
받은 계약금을 통장에 모셔두는 게 아니라 실컷 사치해서 돈을 왕창 쓰든가, 아니면 전자화폐로 전환해서 숨겨두든가 하라던가? 그리하여 범죄를 저질러 계약을 파기할 때 지자체에서 계약금을 돌려받기 어렵게 만들라고 했다.
그리해두면 범죄를 저질러도 처벌 수위가 확 경감되리란 것이었다.
왜냐하면 지자체로선 계약금을 돌려받지 못한 채 각성자 헌터와의 계약만 파기되는 상황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각성자 헌터와의 계약이 파기된 상황에 계약금을 제대로 돌려받지 못한다면 지자체로선 최소 수십억 이상의 예산 펑크가 발생하는 셈인데, 요즘 상황에 지자체가 그 정도 손실을 메우기는 반쯤 불가능에 가까운 일 아닌가.
그래서 이 경우, 지자체는 법원이 각성자 헌터를 강력하게 처벌하지 못하도록 압박한다. 그리하여 계약이 파기되지 않고 지속되도록 만들고는 나중에야 재계약하지 않는 식으로 소소하게 분노를 표할 따름이다.
그리고 내 경우는 상황이 좀 다르지만 비슷하다. 그 점을 믿고 실컷 폭력을 휘두르는 주제에 영상까지 촬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더 할 말 없나? 계속 때린다?"
그리 말하며 주먹을 높이 들었을 때였다. 이미 머리통 전체에서 피를 흘리던 김석희는, 마찬가지로 피 흐르는 입을 열어 말했다.
"그만······ 제발."
거의 애원이었다. 녀석은 그리 말하며 두 손으로 제 얼굴을 가렸다.
난 그 손목을 붙잡아 우악스럽게 치워내고는 윽박질렀다.
"그만 때리세요, 겠지?"
이제 김석희는 씨발거리지도 못했다. 그저 두려움 가득한 눈으로 날 올려다볼 뿐이었다. 내가 계속 말했다.
"다시 말해."
"그만 때리세―"
누운 채로 날 그리 말하길래 난 손바닥으로 녀석의 뺨을 후려쳤다.
무기력하게 날 올려다보는 김석희를 보았다. 이제 놈은 내게 패했고, 전의를 잃었으며, 목숨 구걸까지 하고 있다. 그래서 만족스러운가?
아니, 아직은 아니었다.
나는 완전한 굴종을 원했다. 그것을 놈에게 강요했다.
"누워서 말고, 무릎 꿇고서 공손하게 말하란 말이야, 응?"
그리고 인조가 청 태종한테 삼궤구고두례를 했듯이, 김석희도 그렇게 했다.
놈이 떨리는 몸으로 몸을 살짝 일으켰다. 그대로 내 눈치를 살피며 무릎을 꿇더니 고개를 푹 숙였다.
김석희는 그렇게 굴종의 자세를 취하더니, 청력 좋은 신체강화자인 내가 아니었다면 듣기 어려웠을 만치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제가 졌습니다, 그만해주세요······."
나는 크게 말하라고 강요하려다 그만두기로 했다. 모름지기 영주라면 항복한 적을 관대히 대해야 하는 법.
"항복 잘 받았고, 이제 인천에서 꺼져."
김석희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계속 말했다.
"맘 같아선 서울로 떠나라고 말하고 싶은데······ 서울 갈 자신은 없지?"
내가 경찰들의 추태를 보고 놀라서는 전국이 이 지경인가, 하고 따로 조사해본 바가 있다. 그리하여 지방만 이 모양이요 서울은 오히려 예전보다도 치안이 좋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서울에는 각성자들을 상대하기 위한 각성자 부대도 있겠다, 예산을 비롯한 여러 사정이 나은지라 경찰들 사기도 괜찮아서 이런 각성자 갱단 따위가 맘대로 날뛸 환경이 못 된다나?
"부천 가면 되겠다. 그렇지?"
김석희가 여전히 무릎 꿇은 채 움직이지 않던 그때였다.
여전히 펼쳐두고 있던 내 정신적 그물망에, 어떤 물체의 음속을 넘은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성문영과 훈련할 때 그러는 것처럼, 난 반사적으로 손을 움직였고 다음 순간 내 손에는 12.7mm 탄환이 잡혀 있었다.
손바닥이 까졌긴 한데 그뿐이었다. 완벽하게 잡아냈다.
그리고 내가 총알이 날아온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아까 쓰러진 누군가의 물건을 주워서 쏜 듯 대물 저격총을 든 한 남자가 보였다.
보아하니 어지간히도 충격을 받은 듯했다. 어안이 벙벙한 그 얼굴.
하기야 나도 이게 성공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훈련할 때도 매번 실패하던 것이 운 좋게 성공할 줄이야.
"저놈 인천인이냐? 아니면 서울 종자?"
내가 물었더니 김석희가 힘없이 대답했다.
"인천······"
그렇다면 인권이 있으니 자비롭게 굴기로 했다.
내가 휙 던진 탄환이 대물 저격총을 든 남자의 가슴에 명중했다. 갈비뼈가 부러진 듯, 가슴팍을 붙잡고 몸을 뒹구는 녀석을 보며 난 사람 좋게도 말했다.
"서울에서 흘러온 간악한 기운에 정신이 더럽혀져서 저리 얍삽하게 구나 보다. 혼내줘야겠는데, 너무 혼내진 말고 적당히 혼내줘라. 알겠지?"
자길 위해 마지막으로 발악한 조직원을 벌하라는 요구였건만, 김석희는 감히 거절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녀석에게 내가 마지막으로 웃어주었다.
그러고는 공간이동 하여 내 팬에게 향했다.
아직도 촬영하고 있던 팬과 함께 먼 곳으로 공간이동 하곤 물었다.
"마지막에 그거 찍었어요?"
바로 신난 목소리와 돌아왔다.
"당연히 찍었죠! 진짜 그거!"
잠시 방금 그 장면이 얼마나 쩔었는지, 이 전투가 얼마나 화려하고 멋졌는지, 김석희가 한 대도 날 때리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당하는 모습이 얼마나 꼴불견이었는지 등의 호들갑을 즐기던 중이었다.
신나게 말하다 말고 팬이 걱정스레 물었다.
"그런데 이 영상, 정말 인터넷에 올려도 될까요?"
"왜요, 위험할 것 같아요?"
"예. 제가 아니라 김극 씨가······ 이게 폭행 증거잖아요? 올렸다간 큰일 나는 게······"
"너무 걱정할 것 없어요."
"정말요?"
"그럼요. 내가 아무 생각 없이 이러겠어?"
그래도 불안해 보이는 팬의 등을 툭툭 쳐주었다. 그러고는 집에 돌아와 편집된 동영상을 받고는 처음 계획한 대로 했다.
오늘 촬영한 날것의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렸다.
그리고 그 반응은, 나 역시 예상했듯 열렬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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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공중파 뉴스까지 온통 내 얘기뿐이었다.
TV를 켜보니 역시나 내 관련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다.
계양구에 자리잡았던 각성자 갱단에 대한 얘기부터 경찰의 소극적인 걸 넘어서 황당한 수준이었던 대응······.
그리고 경찰들에게 작전 참여자들을 보호하라 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이루어진 임형택 씨의 납치와 내 갱단 습격까지.
이상의 사건이 세간에 충격을 주고 있다는 아나운서의 말을 한가롭게 들으면서 난 집에 있었다.
그렇듯 난 유치장이나 교도소에 있지 않았고, 수갑을 찬 채 조사받고 있지도 않았으며, 내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문 앞에 경찰들이 굳게 지키고 있지도 않았다.
그 모든 일을 저지르고도, 난 여전히 자유였다.
그 사실이 너무나도 만족스러웠다.
56화 계양구 남작 김석희 -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