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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9 - 180-190

제180화

180.

당연히 카린도 대주술을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

대주술을 저장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기에.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영역에 나타난 괴물은 매우 강했다.

대주술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몸 성히 돌아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설마 누가 영역에 침입했던 겁니까?"

카린의 말에 수아렌이 놀란 목소리로 반문했다.

"응."

"...허어, 대주술을 사용하셨을 정도면 보통 존재가 아니었겠군요. 죽이셨습니까?"

"아니, 못 죽였지. 쫓아낸 게 최선이었어."

카린은 수아렌의 말에 답하며 조금 전 상황을 떠올렸다.

대주술을 공간이동이 아닌 공격에 사용했다면 어땠을까?

오래 생각할 필요 없이 금세 결론이 나왔다.

공격에 사용했다고 해도 괴물을 죽이지는 못했을 것이다.

카린의 답에 수아렌은 잠시 멈칫했다가 이어 물었다.

"...어디로 보내셨습니까?"

"씹어 먹을 X 쪽으로."

"나일 나가족에 보내셨단 말씀이시군요. 그러면...."

말끝을 흐린 수아렌은 지도를 보았다.

"...대족장님이 쫓아낸 게 최선이셨다면 나일 나가족도 죽이지 못할 것이라 봅니다. 언젠가는 충돌하게 될 수도 있는데 어떤 준비를 하면 되겠습니까?"

"음...."

카린은 침음을 내뱉었다.

그러고는 괴물의 기운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아무리 준비해도 잡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은데.'

* * *

동해항.

나일 부족 1군단장 케일의 거처.

"사실인가?"

케일은 의아한 표정과 목소리로 정보단장 에리온에게 물었다.

"예, 제가 직접 확인하고 왔습니다."

그러자 에리온이 한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답했다.

"자일 오우거와 붉은 번개 오크들이 전부 사라졌습니다."

"...."

에리온의 답에 케일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장 2시간 전만 해도 영역 확장을 위해 자일 부족, 붉은 번개 부족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그런데 갑자기 사라졌다.

그것도 두 부족 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이었다.

"후퇴는 아닌 것 같고 어떻게 된 건지도 확인했나?"

일단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후퇴는 아니다.

확신하는 이유는 조금 전 2차 제약이 해제됐기 때문이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2차 제약이 해제됐는데 두 부족이 갑자기 왜 후퇴하겠는가?

바로 그때였다.

스아앗!

탁자 위에 있던 통신 수정구가 빛나기 시작했다.

케일은 바로 통신 수정구에 기운을 주입했고 그러자 허공에 포털이 나타났다.

"...!"

이어 케일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재빨리 예를 취하며 외쳤다.

"1군단장 케일, 여왕님을 뵙습니다."

당연히 통신단장이 연락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포털에 모습을 보인 이는 부족 내 최강의 주술사이자 부족을 이끄는 카라빈이었다.

이내 카라빈이 입을 열었다.

-철수하거라.

"...예?"

그리고 카라빈의 말에 케일은 반문할 수밖에 없었다.

철수하라니?

전혀 예상치 못한 이야기였다.

-크라가 말했다. 당장 철수해야 한다고.

"...!"

이어진 카라빈의 말에 케일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부족 내 최강의 주술사는 분명 카라빈이다.

카라빈보다 주술이 강한 존재는 없다.

그러나 나일 부족의 대주술사는 카라빈이 아니다.

카라빈이 여왕이라서가 아니다.

다른 부족과 달리 나일 부족은 왕과 대주술사의 직책을 겸임할 수 있었다.

최강의 주술사임에도 카라빈이 대주술사의 직책을 겸임하지 못한 이유.

그 이유는 대주술사 크라의 '예지' 능력 때문이었다.

즉, 크라가 철수해야 한다고 말한 것은 '예지'와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모든 자원을 챙겨 철수하면 되겠습니까?"

-아니, 자원을 챙길 시간이 없다고 하더군.

-혹시 2차 제약이 해제된 것 말고 보고할 게 있나?

"그렇지 않아도 보고드릴 것이 생겼습니다. 자일 부족과 붉은 번개 부족이 자취를 감췄습니다."

보고를 마친 순간 케일은 눈을 번뜩였다.

2차 제약이 해제된 것.

그리고 자일 부족과 붉은 번개 부족이 사라진 것.

마지막으로 크라가 철수해야 한다고 했던 것.

이 모든 것을 연결 지어 생각해 보니 한 가지 가정이 떠올랐다.

-...같은 생각을 한 것 같구나. 바로 철수하도록.

카라빈이 케일의 표정을 보고 말했다.

"예."

케일은 정신을 차리고 답했다.

그리고 케일의 답을 끝으로 포털이 사라졌다.

케일은 바로 함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에리온에게 말했다.

"당장 철수 준비하게."

* * *

[던전 '동해항'에 입장하셨습니다.]

[24시간 동안 모든 입구가 봉쇄됩니다.]

[던전 클리어 시 봉쇄가 해제됩니다.]

[퀘스트 '신단 파괴'가 생성됐습니다.]

[퀘스트 '동해항 탈환'이 생성됐습니다.]

강진석은 메시지를 보며 생각했다.

'...뭐지?'

동해시 곳곳을 돌아다니며 오우거와 오크를 정리했다.

남은 것은 동해항과 해변에 자리 잡은 나가뿐이었다.

문제는 오우거와 오크를 정리하고 나니 나가들이 싹 사라졌다는 점이었다.

'눈치챈 건가....'

강진석은 나가들이 사라진 이유에 대해 생각하며 신단으로 이동했다.

'알아서 도망친 게 나쁜 건 아니지만....'

당장 청소하지 않아 시간을 아낄 수 있게 됐다.

더욱 빨리 동해시를 떠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는 충돌할 것이다.

그래서 문제였다.

위험을 눈치채고 도망칠 정도로 머리 혹은 감각이 뛰어난 나가들이 후에 얼마나 큰 위협으로 돌아올지 예측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그때쯤이면 길드원들도 많이 강해졌을 테니까.'

강진석은 나가에 대한 걱정을 떨쳐냈다.

그리고 신단을 향해 지팡이를 겨눴다.

스앗!

파괴 광선이 신단에 작렬했고 신단은 산산이 조각났다.

그리고 메시지가 주르륵 나타났다.

역시나 특별한 메시지는 없었고 강진석은 길드 관리창을 열었다.

그리고 여태까지 그래왔듯 영역에 대한 기본 설정을 마친 뒤 인벤토리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한지윤에게 동해항에 대한 정보를 전하기 위해서였다.

문자를 보낸 뒤 강진석은 다시 핸드폰을 닫았다.

그리고 생각에 잠겼다.

'다른 곳도 마찬가지겠지?'

나가들의 영역 중 가장 큰 곳이 동해항이었다.

그런 동해항이 텅 비어 있었다.

앞으로 들를 나가들의 영역도 텅 비어 있을 확률이 매우 높았다.

즉, 바로바로 탈환할 수 있을 것이고 그만큼 시간도 덜 소요될 것이다.

'정동진까지 얼마나 걸리려나?'

돌아다니며 알게 됐다.

그것도 믿기지 않는 아주 충격적인 사실을.

'적당히 늘어났으면 좋겠는데.'

놀랍게도 땅이 늘어났다.

분명 지도에 따르면 1km 거리인데 실제로는 6km로 6배나 늘어났다.

물론 모든 땅이 6배로 늘어난 것은 아니다.

어떤 곳은 3배, 어떤 곳은 2배 각기 늘어난 정도가 달랐다.

즉, 동해항에서 정동진까지도 20km 정도가 아닐 것이다.

'빨리 출발하자.'

강진석은 영역 밖으로 나왔다.

그러고는 해변을 따라 북상하며 바다를 보았다.

'바다 쪽도 정리를 해야 하는데.'

몬스터들은 육지에만 있는 게 아니다.

바다에도 존재했다.

그래서 문제였다.

시험을 끝내기 위해서는 모든 영역 상징을 파괴해야 한다.

바다 깊숙한 곳에 있는 것들은 어찌 파괴해야 할지 참으로 막막했다.

'일단 할 수 있는 것부터.'

강진석은 이내 고개를 돌렸다.

당장 육지에도 영역 상징이 넘쳐나는 상황이었다.

바다를 신경 쓸 상황이 아닌 것이다.

강진석은 북상하며 해변에 있는 나가들의 영역 마주했다.

역시나 동해항처럼 전부 텅 비어 있었고 강진석은 바로바로 영역을 탈환하며 북상했다.

그리고 얼마 뒤.

[옥계면에 입장하셨습니다.]

[조건이 충족됐습니다.]

[옥계면 내 세계 침공자들의 2차 제약이 조기 해제됩니다.]

[세계 침공자들의 활동 반경이 더욱 넓어집니다.]

.

.

강릉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옥계면?'

강진석은 메시지를 보고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연히 동해시와 마찬가지로 '강릉시' 전역의 2차 제약이 조기 해제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강릉시의 수많은 '면' 중 하나인 '옥계면'만 해제가 됐다.

'무슨 기준이지?'

강진석은 기준에 대해 생각했다.

'규모에 따라 다른 건가?'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규모'였다.

물론 땅 크기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땅 크기만으로 나뉘었다기에는 맞지 않는 부분이 많다.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

강진석은 기준에 대한 생각을 접었다.

그리고 초감각을 통해 옥계면 탐색을 시작했다.

탐색을 통해 강진석은 2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첫 번째로 옥계면은 짙은 어둠 부족 오크들의 영역이라는 것.

두 번째로 생존자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점이었다.

생존자들이 많은 이유는 하나였다.

옥계면에는 강한 오크가 없었다.

놀랍게도 3차 제약 침공자가 한 마리뿐이었다.

'정동진도 그랬으면 좋겠는데.'

강진석은 옥계면 북쪽 경계로 공간 이동했다.

옥계면 북쪽에 위치한 '강동면'.

강동면에 속한 정동진을 탐색하기 위해서였다.

'휴....'

강진석은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혹여 동해시처럼 땅이 늘어나 옥계면에서 부모님이 계시는 웨이브크루즈 호텔을 감지할 수 없으면 어쩌나 걱정했다.

그러나 다행히 끝자락이긴 하지만 웨이브 크루즈를 감지할 수 있었다.

'잘 계시네.'

한지윤의 말대로 웨이브크루즈 호텔은 매우 안전했다.

옥계면을 깨끗이 청소하고 가도 아무런 문제 없을 정도로.

호텔이 안전한 이유는 2가지였다.

첫 번째로 호텔 주변에 있는 오크들의 수준이 옥계면과 비슷했다.

아니, 오히려 조금 더 낮았다.

강동면 전부를 확인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호텔 주변은 옥계면 오크들보다 수준이 확실히 낮았다.

'생각보다 강하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호텔에 강자가 있었다.

다른 이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강한 기운을 가진 존재로 최은지, 최은형의 사촌인 '최서윤'이 분명했다.

'근데 왜 방어만 하는 거지?'

강진석은 고개를 갸웃했다.

최서윤은 강했다.

마음만 먹으면 외부에 있는 오크들을 혼자서도 전부 휩쓸 수 있을 정도로.

그런데 어째서 최서윤은 호텔에서 나오지 않고 방어만 하는 것일까?

'아직 자기가 얼마나 강한지 모르나?'

최서윤은 놀랍게도 초감각을 개방하지 않았다.

즉, 정신력이 40이 되지 않는다.

자신이 얼마나 강한지, 오크들이 얼마나 약한지 몰라 방어에 집중하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바로 그때였다.

"...!"

강진석은 눈을 번뜩였다.

초감각 끝자락에 등장한 강력한 기운 때문이었다.

물론 강진석의 기준에서 강력하다는 것은 아니다.

이번 기준은 최서윤이었다.

'3차 제약 중에서는 약한 편이지만....'

최서윤은 강하다.

그러나 3차 제약 침공자를 홀로 감당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다.

그렇다고 다른 생존자들의 수준이 높은 것도 아니다.

즉, 힘을 합친다고 해도 3차 제약 침공자를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쩔 수 없지.'

옥계면은 안전하다.

당장 생존자들에게 일이 생길 정도는 아니다.

그러나 웨이브크루즈 호텔은 옥계면을 청소하고 가면 늦는다.

아주 큰 피해가 생길 것이다.

결정을 내린 강진석은 3차 제약 침공자가 있는 곳으로 공간 이동했다.

[강동면에 입장하셨습니다.]

[조건이 충족됐습니다.]

[강동면 내 세계 침공자들의 2차 제약이 조기 해제됩니다.]

[세계 침공자들의 활동 반경이 더욱 넓어집니다.]

.

.

이동과 동시에 메시지가 나타났지만 강진석은 신경 쓰지 않았다.

대신 몽둥이를 휘둘렀다.

쾅!

이어 폭음이 울려 퍼졌고 메시지가 나타났다.

[짙은 어둠 부족 침공단장 킬리안이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포인트가 300만 상승합니다.]

[퀘스트 '침공단장 킬리안'을 완료하셨습니다.]

[기여도에 따라 보상이 차등 지급됩니다.]

.

.

* * *

'후....'

최서윤은 속으로 깊게 한숨을 내뱉었다.

얼마 전 나타난 퀘스트 '침공단장 킬리안' 때문이었다.

이제 2시간 뒤 침공단장 킬리안을 필두로 공격이 시작될 것이다.

'단장이면 엄청 강하겠지?'

대장급 오크도 상대하기 버거웠다.

그런데 대장보다 높은 게 단장이었다.

얼마나 강할지 모르겠지만 쉽지 않을 것으로 추정됐다.

'그래도 1시간만 버티면 되니까.'

그나마 다행인 점은 꼭 죽여야 되는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

1시간만 버티면 된다.

그러면 끝이다.

바로 그때 메시지가 나타났다.

[짙은 어둠 부족 침공단장 킬리안이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퀘스트 '침공단장 킬리안'을 완료하셨습니다.]

[기여도에 따라 보상이 차등 지급됩니다.]

.

.

"...응?"

제181화

181.

최서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믿기 힘든 내용의 메시지가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킬리안이 죽어?'

2시간 뒤 공격의 주체가 될 킬리안이 죽다니?

갑자기 킬리안이 왜 죽는단 말인가?

그러나 메시지로 죽음이 언급됐다.

거짓은 아닐 것이다.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킬리안이 어떻게 죽었는지는 모른다.

그래도 킬리안이 죽은 덕분에 2시간 뒤 진행될 침공이 사라졌다.

1시간의 침공을 버티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최서윤은 한결 편해진 표정으로 창가로 다가갔다.

그리고 고블린들의 영역이 있는 전방을 바라보았다.

물론 고블린들은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고블린들의 영역인 '검은색 장막'뿐이었다.

최서윤은 장막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영역에 변화가 없는 걸 보면 다른 몬스터가 죽인 건 아닌 것 같은데.'

만약 킬리안이 다른 몬스터의 손에 죽은 것이라면?

저리 멀쩡할 리 없다.

적어도 소란이라도 나야 했다.

'그래, 그런 거라면 퀘스트가 나타났겠지!'

무엇보다 퀘스트가 나타나지 않았다.

즉, 킬리안의 죽음은 다른 몬스터와 연관 없을 것이다.

'대체....'

생각에 잠겨 있던 그때.

스앗!

검은색 장막이 사라졌다.

'뭐, 뭐야!'

최서윤은 경악했다.

장막이 사라지다니?

갑자기 왜 장막이 사라진단 말인가?

'진짜 다른 몬스터가?'

아닐 것이라 생각했던 다른 몬스터들이 킬리안을 죽이고 나머지 오크들을 죽인 것일까?

바로 그때 장막이 다시 나타났다.

그러나 전처럼 장막의 색은 검지 않았다.

완벽한 하늘색이었다.

그리고 바뀐 장막의 색을 보고 최서윤은 확신했다.

'다른 몬스터다!'

장막의 색이 바뀌었다는 것은 다른 몬스터의 영역이 되었다는 뜻이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최서윤은 뒤로 돌아섰다.

그리고 다급히 방을 나서 1층 로비로 향했다.

지금 상황에 대해 모두와 이야기 나누기 위해서였다.

1층 로비에 도착한 최서윤은 비상벨을 울렸다.

띠리리리!

비상벨이 울렸고 여러 곳에 퍼져 있던 생존자들이 속속 모이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였다.

최서윤은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머릿속에 들려온 목소리 때문이었다.

[안녕하세요. 강진석이라고 합니다. 전부 2층 대강당으로 모여주시겠습니까?]

[은지와 은형이에게 이야기 들었습니다. 사촌 누님이시라고.]

* * *

'이 정도면 됐고.'

영역에 대한 기본 설정을 마친 강진석은 길드 관리창을 닫았다.

그리고 초감각을 통해 웨이브크루즈 호텔을 탐색했다.

예상대로 모든 생존자가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일단 강진석은 모든 이들에게 텔레파시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강진석이라고 합니다. 전부 2층 대강당으로 모여주시겠습니까?]

물론 모든 이들에게 같은 텔레파시를 보낸 것은 아니다.

[은지와 은형이에게 이야기 들었습니다. 사촌 누님이시라고.]

최서윤에게는 최은지와 최은형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당연히 최서윤에게만 다른 텔레파시를 보낸 게 아니다.

[아버지, 저 왔습니다.]

[어머니, 저 왔습니다.]

강진석은 아버지 강현석, 어머니 권영신에게도 따로 텔레파시를 보냈다.

그리고 우선 어머니 권영신이 있는 곳으로 공간이동을 했다.

권영신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

이내 권영신이 강진석을 발견했고 멈칫했다.

"...지, 진석아!"

이어 권영신은 슬픔과 걱정이 가득한 목소리로 강진석에게 달려갔다.

"아이구, 우리 아들."

그리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강진석의 이곳저곳을 살피기 시작했다.

"어디 다친 곳은?"

"없어요. 진즉 모시러 왔어야 했는데 늦어서 죄송해요."

"아니야, 늦기는. 엄마는 너 다친 곳 없는 것만으로도...."

권영신은 중간에 말을 멈췄다.

그리고 이어 놀란 얼굴로 강진석을 보았다.

"지, 진석이 너... 목소리가...."

강진석은 놀란 어머니의 반응에 싱긋 웃으며 답했다.

"네, 나았어요."

* * *

웨이브 크루즈 호텔 2층 대강당.

대강당에는 호텔의 모든 생존자와 강진석이 모여 있었다.

"허어...."

"그런 일이...."

"...."

강진석에게 모든 이야기를 전해 들은 생존자들은 2가지 반응을 보였다.

첫 번째는 놀람이었다.

침공단장 킬리안과 근방에 있던 짙은 어둠 부족의 영역을 혼자 초토화시켰다는데 놀라지 않는 게 이상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불신이었다.

불신 역시 이해됐다.

생존자들은 여태껏 짙은 어둠 부족 오크들과 수없이 충돌했다.

즉, 짙은 어둠 부족 오크들의 힘을 아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 오크들을 혼자서 초토화시켰다는데 어찌 바로 순순히 수긍하겠는가?

스윽.

강진석은 생각에 잠긴 생존자들을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호텔로 접근하는 이들이 있었다.

당연히 적은 아니다.

애초에 적이었다면 도착 전에 강진석이 나서 박살 냈을 것이다.

끼이익!

이내 호텔에 도착한 이들이 대강당에 나타났다.

강진석은 대강당에 나타난 이들을 훑고 생존자들에게 말했다.

"저희 길드원들입니다."

"...!"

"...!"

그러나 생존자들은 강진석의 말에도 길드원들을 경계했다.

생존자들의 경계는 당연했다.

강진석도 100% 믿지 않는 상황이었다.

생존자들이 길드원들을 경계하는 것은 지극히도 당연한 것이다.

물론 모두가 경계하는 것은 아니었다.

"엄마! 아빠!"

"언니!"

강나연과 최은지가 외쳤고 두 사람의 외침에 강현석, 권영신 그리고 최서윤은 더할 나위 없이 활짝 웃으며 반겼다.

최서윤은 생존자 무리의 리더였다.

그리고 강현석, 권영신은 간부는 아니었지만 그 어느 간부보다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그런 세 사람의 반응 때문일까?

나머지 생존자들의 경계심이 빠르게 누그러지기 시작했다.

'맡기고 가면 되겠네.'

강진석은 생존자들의 반응을 보고 마음을 놓았다.

길드원들을 부른 이유는 후속 처리 때문이었다.

상황을 보니 맡기고 가도 될 것 같았다.

'빨리 청소하러 가야지.'

강동면도 그렇고 옥계면도 그렇고 아직 청소할 곳이 수두룩했다.

한시라도 빨리 시작해야 했다.

[나연아 잘 부탁한다.]

[은지 씨 잘 부탁해요.]

강진석은 강나연과 최은지에게 텔레파시를 보냈다.

[걱정 마쇼! 정말 고생했어!]

[네! 완벽히 정리하겠습니다!]

강나연과 최은지가 텔레파시로 답을 보내왔고 강진석은 미소를 지으며 밖으로 공간이동 했다.

그리고 강동면 곳곳을 돌아다니며 탐색을 시작했다.

'다행이네.'

탐색을 마친 강진석은 안도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강동면에는 4차 제약 침공자가 없었다.

3차 제약 침공자도 하나뿐이었다.

'분주한 걸 보니 눈치챘나 보네?'

3차 제약 침공자가 있는 영역은 무척이나 분주했다.

킬리안의 죽음을 눈치챈 것이 분명했다.

'빨리 정리하자.'

* * *

짙은 어둠 부족의 본부.

대족장 킬로아의 거처.

쾅!

킬로아는 탁자를 내리쳤다.

쩌저적!

탁자는 단숨에 산산이 조각 나 부서졌다.

그러나 탁자를 부순 킬로아는 물론 그 누구도 탁자에 관심을 주지 않았다.

그저 킬로아의 눈치를 살필 뿐이었다.

"킬리안이 죽고 영역을 빼앗기다니!"

침공단장인 킬리안이 죽었다.

그리고 영역을 빼앗겼다.

킬로아가 분노한 이유는 '영역'을 빼앗겼기 때문이 아니다.

영향이 없지는 않지만 분노의 근본적인 이유는 막내 동생 '킬리안'의 죽음 때문이었다.

스윽.

킬로아는 고개를 돌려 이번 일을 추진한 정보단장 '제이라'를 보았다.

"제이라, 말해보거라! 킬리안으로 충분하다 했던 것은 네 녀석이 아니더냐!"

"...."

킬로아의 분노 가득한 목소리에 제이라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제이라 역시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대체 킬리안이 왜 죽는단 말인가!'

킬로아의 동생 사랑은 부족 내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했다.

그래서 더욱 철저히 조사했다.

분명 강동면에는 킬리안에게 해를 가할 수 있는 존재가 없었다.

'2차 제약까지 해제됐는데!'

더구나 갑작스레 2차 제약이 해제됐다.

킬리안이 더욱 힘을 낼 수 있는 상태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킬리안이 죽은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잠깐, 설마!'

그러다 문득 한 가지가 떠올랐다.

'2차 제약이 해제된 것과 관련 있나?'

갑작스레 2차 제약이 해제됐다.

부족에서 지배하는 모든 영역이 해제된 것은 아니다.

강동면과 옥계면만 해제됐다.

두 지역만 해제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킬리안이 죽은 것도 그 이유와 관련 있지 않을까 싶었다.

"제이라!"

제이라가 말이 없자 킬로아 분노 가득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리고 제이라가 입을 열었다.

"아무래...."

그러나 제이라는 중간에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킬로아의 반응 때문이었다.

스윽!

갑자기 킬로아가 심각한 표정으로 손을 들었다.

조용히 하라는 뜻이었다.

이어 킬로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아티펙트 '영역 지도' 앞으로 향했다.

"...이게 무슨!"

이내 킬로아가 불신 가득한 목소리로 외쳤다.

"...?"

제이라는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저런 반응을 보인단 말인가?

제이라뿐만이 아니다.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킬로아를 보았다.

'...잠깐, 설마!'

가장 먼저 눈치를 챈 것은 제이라였다.

"호, 혹시 또 당한 곳이 있는 겁니까?"

제이라의 물음에 킬로아가 고개를 돌려 모두를 바라보며 답했다.

"...조금 전 데아스가 죽었다."

"...!"

"...!"

그리고 킬로아의 답에 모두가 경악했다.

데아스가 누구인가?

부족 내 서열 20위의 강자였다.

힘만 강한 게 아니다.

강동면의 관리를 맡길 정도로 두뇌까지 뛰어난, 문무를 겸비한 오크가 바로 데아스였다.

그런 데아스가 죽다니?

"그리고 지금 데아스가 지키고 있던 제단이 파괴됐다. 데아스도 그렇고 킬리안도 그렇고...."

말끝을 흐린 킬로아는 이를 악물며 이어 말했다.

"아무래도 뱀 새끼들이 미친 것 같구나."

동쪽 바다에 자리 잡고 있는 나일 부족.

지금 상황은 아무리 봐도 나일 부족의 짓이었다.

나일 부족이 아니고서야 킬리안과 데아스가 어찌 죽겠는가?

'...방심했다.'

나일 부족은 현재 다른 부족과 전쟁 중이었다.

그리고 강동면에는 나가들의 힘을 약화시키는 마법진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래서 나일 부족이 공격해 올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뱀 사냥을 시작할 것이다."

공격을 받았다.

이대로 나일 부족의 공격이 끝날 것 같지는 않지만 이대로 끝난다고 해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반격을 해야 했다.

"...영역을 침입한 뱀들만 죽이실 생각이십니까?"

제이라가 물었다.

"아니, 그것만으로는 부족하지."

강동면에 나일 부족의 나가들이 얼마나 들어왔는지 모른다.

그러나 얼마나 들어왔든 그들을 전부 죽이는 것으로는 복수를 했다고 할 수 없다.

강동면에 들어온 나가들을 전부 죽이는 것은 지극히도 당연한 것이고, 그 이상의 피해를 주어야 한다.

그래야만 죽은 이들을 기릴 수 있다.

"녀석들의 영역을 공격한다."

* * *

나일 부족의 여왕 카라빈의 거처.

"무어라?"

카라빈은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반문하며 대주술사 크라를 보았다.

크라는 무척이나 핼쑥했다.

핼쑥한 이유를 안다.

미래를 엿보았기 때문이었다.

원래대로라면 당장 안정을 취하라 보냈을 것이다.

그러나 카라빈은 크라를 보낼 수가 없었다.

조금 전 크라가 말한 '미래' 때문이었다.

"갑자기 짙은 어둠 오크들이 왜 우리를 공격해!"

제182화

182.

크라가 말했다.

짙은 어둠 부족 오크들이 공격을 해올 것이라고.

카라빈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짙은 어둠 부족과 우호 관계는 아니다.

그렇다고 적대 관계도 아니다.

거기다 짙은 어둠 부족은 나일 부족과 전쟁 중인 자일 부족, 북쪽에 있는 붉은 대지 부족과 전쟁 중이었다.

이미 두 부족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 공격을 해온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카라빈의 성난 반응에 크라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5지부의 신단을 킬로아가 직접 파괴했습니다."

"...킬로아가 직접?"

크라의 말에 카라빈은 잠시 멈칫했다가 반문했다.

표정에 가득했던 분노도 사라졌다.

킬로아가 직접 움직였다는 것은 그 정도로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그도 그럴 것이 킬로아는 짙은 어둠 부족의 대족장으로 벽을 넘어선 존재였다.

그런데 킬로아가 직접 신단을 파괴했다는 것은 나일 부족의 영역으로 들어온다는 뜻이다.

'...제약을 감수하고 움직일 리는 없는데.'

벽을 넘어선 이들이 지정된 장소를 벗어나면 제약을 받게 된다.

원래라면 가볍게 찍어 누를 수 있는 3차 제약자들에게도 밀릴 정도로 막대한 제약을.

그런데 제약을 받은 상태에서 신단을 파괴했다?

믿기지 않았다.

"설마 제약이 풀리는 건가?"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크라는 자신이 보았던 '미래'에서 킬로아가 보여준 힘을 떠올렸다.

누가 봐도 제약을 받은 상태가 아니었다.

크라의 답에 카라빈은 인상을 구기며 중얼거렸다.

"동해시도 그렇고 무슨 일이...."

바로 그때였다.

"커억!"

크라가 비명을 내질렀다.

곧이어 눈이 뒤집혔다.

그뿐만이 아니다.

크라의 전신에 새하얀 빛이 서렸다.

"...!"

카리빈은 눈을 번뜩였다.

예지의 전조였다.

'대체....'

그렇지 않아도 돌아가는 상황이 심상치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예지라니?

카라빈은 잠자코 예지가 끝나길 기다렸다.

"허억... 허억...."

이내 빛이 사라졌고 크라가 거칠게 숨을 내뱉었다.

"무엇을 보았나?"

카라빈은 크라에게 물었다.

"그, 그게...."

크라는 더욱 핼쑥해진 얼굴로 말끝을 흐리며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킬로아가 죽었습니다."

"...뭐? 누구한테?"

카라빈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킬로아가 죽다니?

"...설마 나한테?"

킬로아는 벽을 넘어선 존재였다.

나일 부족에서 킬로아를 상대할 수 있는 존재는 지금 자리에 있는 카라빈과 크라 둘뿐이었다.

물론 제약을 받은 킬로아라면 상대할 수 있는 이가 더 늘어나긴 하지만 확실히 죽일 수 있는 존재는 다섯밖에 되지 않았다.

대체 누가 킬로아를 죽인 것인지 궁금했다.

"...아닙니다. 일단 저희는 아니었습니다."

킬로아를 죽인 존재는 흐릿했다.

형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럼?"

"확실하지는 않지만...."

말끝을 흐린 크라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이어 말했다.

"인간인 것 같습니다."

* * *

"와...."

강나연은 감탄했다.

방화역의 변화 때문이었다.

'이 정도면 뚫릴 걱정 아예 안 해도 되겠는데?'

방화역은 길드의 첫 번째 거점이기도 했고 연금술, 대장간 등 비전투 본부가 자리 잡고 있어 길드 내 수많은 거점 중에서도 매우 중요한 편이었다.

그래서 방화역은 다른 거점보다 영역도 강력했고 외벽의 방어력도 높았다.

그런데 강현석, 권영신의 스킬 덕분에 그렇지 않아도 강력했던 외벽의 방어력이 더욱 강해졌다.

강나연은 고개를 돌려 강현석과 권영신을 보았다.

그리고 더할 나위 없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엄마, 아빠! 완전 사기 스킬 가지고 있었네!"

강나연의 말에 강현석과 권영신은 싱긋 웃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어 권영신이 걱정 가득한 얼굴과 목소리로 말했다.

"근데 진석이는 괜찮은 거니?"

"아, 오빠 걱정은 안 해도 돼."

강나연은 실실 웃으며 답했다.

"엄청 강하거든."

흔히 볼 수 없는, 몬스터 중에서도 강한 편인 3차 제약 침공자도 강진석에게 한, 두 방에 죽는 상황이었다.

적어도 인근에 있는 몬스터 중 강진석에게 위협이 될 몬스터는 없다.

우웅!

바로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잠시만!"

강나연은 핸드폰을 확인했다.

그리고 헛웃음을 지었다.

'그 짧은 사이에....'

웨이브크루즈 호텔의 생존자들을 서울로 데리고 온 지 1시간도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벌써 옥계면의 정리가 끝났다.

당연히 강진석이 한 일이었다.

'강동면은 길드원들 사냥터로 남겨둔다고 했으니 바로 오려....'

강나연은 눈을 번뜩였다.

그러고는 뒤로 돌아섰다.

강나연의 반응에 강현석과 권영신 역시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강진석을 볼 수 있었다.

"저 왔습니다."

강진석은 환히 웃으며 인사했다.

"어이구, 진석아."

"어디 다친 곳은?"

처음 봤을 때처럼 권영신과 강현석은 강진석에게 다가가 이곳저곳을 살폈다.

"괜찮아요. 마법만 사용했어요."

거짓말이 아니다.

옥계면에 있던 오크들은 수준이 무척 낮았다.

직접 때려죽일 만한 수준의 오크는 없었고 아이스 포그만으로도 충분했다.

"근데 결정은 내리셨어요?"

이어 강진석은 강현석과 권영신에게 물었다.

"아...."

"음...."

강현석과 권영신은 강진석의 물음에 탄성과 침음을 내뱉었다.

그리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시간이 많지 않아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다.

그래도 다행히 서로의 의견이 맞았었다.

문제는 강진석과 강나연의 반응이었다.

강현석이 입을 열었다.

"...전선에 가고 싶구나."

"아빠!"

그리고 강현석의 말에 바로 강나연이 외쳤다.

"위험하게 왜! 전투 스킬도 없잖아. 방화역 같은 주요 거점만 강화해 줘도 길드에 충분히 도움 된다니까?"

모든 길드원이 전투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농사, 제작, 조리 등 전투 말고도 할 일은 많았다.

무엇보다 강현석과 권영신은 전투 스킬이 없다.

그런데 전선에 가겠다니?

"...."

강나연의 말에 강현석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빤히 강진석을 바라볼 뿐이었다.

"엄마! 아빠 좀 말려봐!"

강나연은 강현석이 말이 없자 권영신을 바라보며 외쳤다.

그러나 강나연의 바람과 달리 권영신은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미안, 나연아. 엄마도 아빠랑 같은 생각이야. 진석아, 엄마도 아빠랑 같이 전선에 가고 싶어."

"아니, 엄마까지 왜 이래?"

강나연은 화가 난 목소리로 외쳤다.

"위험하다니까! 오빠가 항상 지켜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항상 지켜줄 수 있는 것도 아니야!"

강진석은 길드를 이끌고 있었다.

강현석, 권영신이 있는 전선에 항상 머물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은 강나연 역시 마찬가지였다.

"엄마랑 아빠가 안전해야 오빠도 마음 편히 움직이지!"

"...."

"...."

강나연의 말에 강현석과 권영신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강나연이 답답한 표정으로 강진석에게 말했다.

"오빠, 말 좀 해봐."

강나연은 알고 있다.

부모님의 고집이 얼마나 강한지.

반응을 보아 쉽사리 결정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

강나연이 보기에 지금 이 선택을 바꿀 수 있는 것은 강진석뿐이었다.

그리고 강나연의 말에 강진석이 입을 열었다.

"혹시 저희 때문에 전선 가시려는 거예요? 뒷말이 나올까 봐?"

강진석의 물음에 강현석과 권영신이 흠칫했다.

그리고 강진석은 자신의 생각이 맞았음을 확신했다.

"그런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돼요. 뒷말은 안 나올 겁니다. 애초에 전투는 지원제니까요."

전투 직업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무조건 전선에 가 전투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비전투 직업이라고 전선에서 배제되는 것도 아니다.

즉, 안전한 곳에 있는다고 해서 뒷말이 나올 일은 없다.

"그리고 전선에 가고 싶으셔도...."

말끝을 흐린 강진석은 싱긋 웃으며 이어 말했다.

"시험 통과 못 하시면 못 가세요."

일정 수준 이상이 되어야 전선에 갈 수 있다.

수준 이하는 오히려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수준은 충분히 되시겠지만.'

강진석과 강나연은 기본 포인트 티켓을 강현석과 권영신에게 양도했다.

양도한 포인트 티켓으로 패시브 스킬을 대거 습득한다면?

전선에 갈 수준은 가뿐히 뛰어넘을 것이다.

강나연이 걱정한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가고 싶다면 갈 수 있기에.

"으음...."

강진석의 말에 강현석이 침음을 내뱉었다.

그리고 강나연이 눈을 번뜩이며 이어 말했다.

"나랑 이야기 더 하고 정해."

강나연의 말에 강진석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도 더 이야기해 보시고 결정하셨으면 좋겠어요. 나연이 말대로 두 분이 안전한 곳에 계셔야 저도 편히 움직일 수 있을 것 같거든요."

"...그래, 생각해 보마."

강현석이 답했고 강나연은 한결 편해진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강진석이 이어 말했다.

"나연아, 이제 제련 시작할 거야."

"...지금?"

"응."

강진석이 방화역에 온 이유는 부모님과 대화를 하기 위해서만이 아니었다.

두 번째 육체 제련을 진행하기 위해서였다.

방화역은 수많은 길드 거점 중 가장 안전한 곳이었다.

즉, 육체 제련을 진행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장소였다.

"혹시나 오래 걸리면 잘 부탁해."

두 번째 영혼 각성 때처럼 오래 걸릴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혹시 모르는 일이었다.

"알겠어."

강나연의 답을 듣고 강진석은 강현석, 권영신에게 인사 후 개인 훈련장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개인 훈련장을 훑으며 생각했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훈련장 상태를 확인한 강진석은 퀘스트창을 열었다.

그리고 퀘스트 '육체 제련'을 보았다.

모든 조건이 충족된 상태였다.

이제 확인만 누르면 제련이 시작된다.

'후....'

강진석은 속으로 깊게 한숨을 내뱉었다.

그러고는 완료 버튼을 눌렀다.

[스킬 퀘스트 '육체 제련'을 완료하셨습니다.]

[스킬 '육체 제련'의 2레벨이 활성화됩니다.]

.

.

메시지가 나타났다.

강진석은 여태까지 그래왔듯 메시지에 관심을 주지 않았다.

육체에 집중했다.

열기 혹은 한기가 들이닥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

"...?"

그러나 강진석은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지나도 열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한기가 느껴지지도 않았다.

제련이 끝난 것은 아니다.

육체에 변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

강진석은 눈을 번뜩였다.

열기, 한기가 찾아왔기 때문이 아니다.

몸이 무거워졌다.

무언가에 짓눌리는 느낌이었다.

위에서 아래로만 짓눌리는 게 아니다.

사방에서 짓눌리고 있었다.

더욱 큰 문제는 압력이 점점 강해진다는 점이었다.

강진석은 전신에 기운을 둘러 압력에 저항했다.

기운을 두른 덕분에 한결 편해졌다.

그러나 평온은 오래가지 않았다.

압력은 끝도 없이 강해졌고 기운을 두른 상태에서도 압박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쩍! 쩍!

이내 무언가 부러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강진석은 이를 악물었다.

부러진 것은 뼈였다.

물론 강진석의 회복력은 보통이 아니었고 부러진 뼈는 바로 붙었다.

그리고 전보다 더욱 단단해졌다.

그러나 단단해진 뼈는 금세 다시 부러졌다.

그리고 다시 붙었다.

그렇게 계속해서 파괴와 회복이 반복됐고 뼈는 점점 강해졌다.

강진석은 고통을 인내하며 생각했다.

'영혼 각성 안 했으면....'

두 번의 영혼 각성 덕분에 강진석의 정신은 무척이나 강해졌다.

만약 영혼 각성을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지금 고통에 정신이 나갔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정신이 나갔다면?

육체 제련도 지금처럼 수월하게 진행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균등히 올리는 게 좋겠어.'

두 번째 영혼 각성 때에도 육체 제련을 하지 않았다면 무척이나 험난했을 것이다.

오래 걸리더라도 하나에 치우치지 않고 균등히 올리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리고 얼마 뒤 압력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 순간 강진석은 느낄 수 있었다.

두 번째 육체 제련이 끝났다는 것을.

'후....'

이내 압력이 완전히 사라졌고 강진석은 제련 시작 때처럼 속으로 깊게 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제련이 끝난 육체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이야....'

확인하며 강진석은 감탄했다.

첫 번째 육체 제련 때에도 육체에 충격적인 변화가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충격적인 변화가 있었다.

첫 번째보다 더욱더 충격적인 변화였다.

'근처에서 확인하면 안 되겠는데.'

전에는 개화역 근처에서 확인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영역 근처에서 확인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전력을 다하면 100% 영역과 요새에 해가 될 것이다.

'어디서 확인할까.'

강진석은 육체의 변화를 어디서 확인할지 생각하며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어?'

그리고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뭐야.'

얼마 걸리지 않은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하루가 지났다고?'

정확히 24시간이 지나 있었다.

그리고 수많은 메시지가 와 있었다.

강진석은 그 중 최근에 도착한 메시지를 확인했다.

[오빠, 동작구에 거대한 나무가 나타났어!]

제183화

183.

'거대한 나무?'

메시지를 확인한 강진석은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거대한 나무가 나타났다니?

'얼마나 거대하길래....'

다른 이도 아니고 강나연이 보낸 메시지였다.

보통 거대한 수준으로 이런 메시지를 보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동작구면 검은 숲 엘프들의 영역인데....'

강진석은 미간을 찌푸렸다.

'설마 세계수?'

확실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상황을 보면 강나연이 말한 거대한 나무는 세계수로 추정됐다.

아니더라도 세계수와 관련이 있을 확률은 매우 높았다.

강진석은 바로 길드장 전용 기능 '영역 이동'을 통해 봉제산으로 이동했다.

그러고는 동작구가 있는 남동쪽 방향을 보았다.

"...!"

강진석은 눈을 번뜩였다.

구름을 꿰뚫을 정도로 거대한 나무가 보였다.

그리고 나무에서 엄청난 기운이 느껴졌다.

기운의 강렬함만 보면 얼마 전 마주했던 사일 부족의 4차 제약 침공자 카린보다 훨씬 강렬했다.

스윽.

강진석은 이어 메시지창을 보았다.

[퀘스트 '세계수 카르실의 열다섯 번째 뿌리'가 생성됐습니다.]

[퀘스트 '영역 침식을 막아라!'가 생성됐습니다.]

혹시나 하고 봤는데 역시나 퀘스트가 생성됐다.

그리고 퀘스트명을 통해 강진석은 2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첫 번째는 세계수의 정확한 정체였고.

두 번째는 현재 상황이었다.

강진석은 퀘스트를 확인하기 위해 퀘스트창을 열었다.

먼저 확인한 것은 퀘스트 '세계수 카르실의 열다섯 번째 뿌리'였다.

<세계수 카르실의 열다섯 번째 뿌리>

검은 숲의 근간인 세계수 카르실의 열다섯 번째 뿌리.

.

.

카르실의 열다섯 번째 뿌리를 파괴하라!

퀘스트 보상 : ???

"...."

퀘스트를 확인한 강진석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스윽.

이내 정신을 차린 강진석은 고개를 돌려 동작구의 거대한 나무를 보았다.

'저게 뿌리 중 하나라고?'

당연히 온전한 세계수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퀘스트 내용에 따르면 동작구의 거대한 나무는 뿌리에 불과했다.

'열다섯 번째가 이 정도면 첫 번째는....'

열다섯 번째 뿌리는 태어난 순서이기도 했지만 크기 순서이기도 했다.

즉, 열다섯 번째 뿌리보다 큰 뿌리가 14개나 더 있다는 뜻이다.

과연 가장 큰 첫 번째 뿌리는 얼마나 클까?

그리고 모든 뿌리의 근본인 세계수 '카르실'은 얼마나 큰 것일까?

생각에 잠겨 있던 강진석은 다시 퀘스트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퀘스트 '영역 침식을 막아라!'를 확인했다.

<영역 침식을 막아라!>

세계수 카르실의 열다섯 번째 뿌리는 자신의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야금야금 주변을 침식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당신의 영역은 잡아먹히고 말 것이다.

영역 침식을 막아라!

퀘스트 보상 : ???

확인을 마친 강진석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파괴 말고도 다른 방법이 있는 건가?'

퀘스트 '영역 침식을 막아라!'는 명확한 완료 조건이 쓰여 있지 않았다.

즉, 뿌리 파괴 말고도 침식을 막을 방법이 있는 게 분명했다.

'파괴하면 그만이지.'

물론 강진석은 다른 방법을 찾을 생각이 없었다.

강진석은 퀘스트창을 닫았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돌려 열다섯 번째 뿌리를 보며 생각했다.

'저기서 확인하면 되겠어.'

두 번째 육체 제련을 통해 얼마나 강해졌는지 확인할 예정이었다.

다만 어디서 확인할지 장소를 고민 중이었는데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 전에 회의부터 해야겠지.'

강진석은 초감각으로 한지윤을 포함한 최고 간부들의 위치를 탐색했다.

한지윤은 봉제산 정상에 있었고 나머지 최고 간부들은 곳곳에 퍼져 검은 숲 엘프들과 대치 혹은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위치 확인을 마친 강진석은 텔레파시를 보냈다.

[다들 봉제산 지휘소로 와주세요.]

* * *

검은 숲의 근간인 세계수 카르실의 열다섯 번째 뿌리 심처.

"뿌리가 자리를 아주 잘 잡았어요."

"잘 잡은 정도가 아니라 성장 속도도 어마어마합니다. 동작구 환경이 이렇게 좋을 줄이야."

"그러게 말입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즉 옮기는 건데."

하나린, 둘리안, 폴리타셋은 흡족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곧 빼앗긴 영역도 수복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동의합니다. 성장 속도를 생각하면 인간들이 펼친 영역 따위야 금세 흡수할 테니까요."

"저도 같은 생각이긴 합니다. 다만...."

폴리타셋이 말끝을 흐렸다.

그러자 하나린, 둘리안의 시선이 폴리타셋에게 향했고 폴리타셋이 이어 말했다.

"벽을 넘어선 존재가 가만히 있는 게 너무 신경 쓰이는군요."

본부를 이동한 지 시간이 꽤 흘렀다.

그러나 벽을 넘어선 존재는 여전히 나서지 않았다.

겁을 먹고 처박힌 것은 아닐 것이다.

애초에 그런 존재였다면 이렇게 일을 벌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분명 어딘가에 숨어 일을 꾸미고 있을 것이다.

바로 그때였다.

"...!"

"...!"

"...!"

세 엘프는 약속이라도 한 듯 눈을 번뜩였다.

그리고 잠시 정적이 흘렀다.

정적을 깬 것은 하나린이었다.

"...움직였군요."

그리고 하나린의 말을 시작으로 둘리안과 폴리타셋이 입을 열었다.

"저희 생각보다 엄청난 녀석인가 봅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뿌리가 이 정도로 떨다니...."

열다섯 번째 뿌리가 벽을 넘어선 존재의 침입을 알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감정을 표출하고 있었다.

극도의 두려움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마중을 나갈까요?"

하나린이 물었다.

"마중을 나가는 것도 괜찮겠군요."

"맞습니다. 기다리기에는 피해가 너무 클 것 같습니다."

"그럼 준비하지요."

* * *

[동작구에 입장하셨습니다.]

[조건이 충족됐습니다.]

[동작구 내 세계 침공자들의 2차 제약이 조기 해제됩니다.]

[세계 침공자들의 활동 반경이 더욱 넓어집니다.]

.

.

입장과 동시에 전에 보았던 메시지들이 주르륵 나타났다.

물론 전과 완전히 같지는 않았다.

단어를 말하는 게 아니다.

[퀘스트 '세계수 카르실의 열다섯 번째 뿌리 파괴'가 생성됐습니다.]

[퀘스트 '하이엘프 하나린'이 생성됐습니다.]

[퀘스트 '하이엘프 둘리안'이 생성됐습니다.]

.

.

수많은 퀘스트가 생성됐다.

메시지 확인을 마친 강진석은 이어 퀘스트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전부 4차 제약일까?'

퀘스트를 확인하던 강진석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검은 숲을 이끄는 엘프들의 수장은 하나린, 둘리안, 폴리타셋까지 총 셋이었다.

퀘스트에는 세 엘프의 수준이 정확히 나와 있지 않았다.

그러나 검은 숲 엘프들이 지배하고 있는 지역의 크기 그리고 열다섯 번째 뿌리의 기운을 생각하면 하나린, 둘리안, 폴리타셋은 전부 4차 제약 침공자일 확률이 높았다.

'동시에 셋을 상대할 수 있을까?'

현재 강진석은 육체 제련과 영혼 각성을 두 번씩 진행했다.

즉, 웬만한 4차 제약 침공자는 어렵지 않게 상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셋을 상대하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다.

'...피하면 되니까.'

만에 하나 상대하기 힘들다면?

물러나면 된다.

어차피 세 엘프는 동작구를 벗어나지 못한다.

준비를 더 하고 다시 잡으러 오면 된다.

세 엘프에 대한 생각을 마친 강진석은 마저 퀘스트를 확인 후 퀘스트창을 닫았다.

그러고는 초감각에 집중했다.

'...아쉽네.'

하나린, 둘리안, 폴리타셋이 어디에 있는지, 수준은 얼마나 되는지 궁금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열다섯 번째 뿌리가 뿜어내는 기운 때문에 제대로 탐색이 되지 않았다.

'청소하다 보면 알 수 있겠지.'

강진석은 혼돈의 구에 기운을 주입하며 전방을 보았다.

이제 두 번째 육체 제련을 통해 찾아온 변화를 확인할 차례였다.

후웅!

강진석은 혼돈의 구를 휘둘러 땅을 내리찍었다.

쾅! 쩌저저저저적!

폭음과 함께 땅이 뒤집혔다.

그것도 시야에 다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범위의 땅이 뒤집혔다.

그뿐만이 아니다.

땅이 뒤집히며 수많은 메시지가 나타났다.

[엘프를 처치하셨습니다.]

[포인트가 3500 상승합니다.]

[엘프를 처치하셨습니다.]

[포인트가 3400 상승합니다.]

.

.

메시지를 보며 강진석은 생각했다.

'두 번째에 이 정도면 세 번째나 네 번째는....'

이제 고작 두 번째 육체 제련을 마쳤을 뿐이다.

아직 세 번 더 제련이 가능했다.

과연 세 번째, 네 번째 그리고 다섯 번째에는 육체가 얼마나 강해질지 추측조차 할 수 없었다.

강진석은 다음 장소로 공간이동을 했다.

그리고 전처럼 다시 기운을 주입 후 땅을 내리찍었다.

쾅! 쩌저저저저저적!

폭음과 함께 땅이 뒤집혔고 이번에도 범위 안에 있던 엘프들이 전부 죽음을 맞이했다.

'계속 이렇게 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아쉽게도 지금처럼 계속해서 공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힘이 모자라 그런 것은 아니다.

오히려 힘은 넘쳐났다.

동작구 뿐만이 아니라 서울 전역을 뒤집어도 지치지 않을 정도로.

그럼에도 지금처럼 공격할 수 없는 이유는 몬스터만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었다.

생존자가 있다.

그것도 한둘이 아니다.

지금 초감각에 감지된 이들만 1000명이 넘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앞서 두 번의 공격으로 끝을 맞이한 것은 엘프뿐만이 아니다.

범위 안에 있던 건물들도 전부 끝을 맞이했다.

즉, 완전히 초토화되어도 상관없는 곳이 아니라면 지금처럼 청소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강진석은 다음 장소로 이동하며 생각했다.

'나중에는 조절할 수 있으려나?'

* * *

검은 숲의 근간인 세계수 카르실의 열다섯 번째 뿌리 심처.

"...."

"...."

"...."

전투 준비를 마친 세 하이엘프 하나린, 둘리안, 폴리타셋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입을 다문 채 서로의 눈치를 살필 뿐이었다.

준비를 마쳤음에도 출발하지 않고 눈치를 살피는 이유는 셋 다 같았다.

바로 영역에 침입한, 벽을 넘어선 존재의 힘이 예상보다 강했기 때문이었다.

벽을 넘어선 존재는 거침없이 영역을 초토화시키고 있었다.

수많은 엘프가 죽었고 파괴된 뿌리 조각이 벌써 5개나 됐다.

뿌리 조각만 파괴된 게 아니다.

뿌리 자체에도 엄청난 피해가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시간이었다.

벽을 넘어선 존재는 너무나도 빠르게 이런 상황을 야기했다.

같은 시간이 주어진다고 해도 세 엘프는 지금의 상황을 만들어 낼 자신이 없었다.

즉, 지금 상황에 세 엘프가 마중을 나간다면?

승리한다고 해도 상처뿐인 승리가 될 확률이 매우 높았다.

"...마중을 보류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끝없이 이어질 것 같던 정적을 깬 이는 하나린이었다.

그리고 하나린의 말에 기다렸다는 듯 둘리안과 폴리타셋이 동조했다.

"좋은 생각입니다. 심처에서 뿌리와 함께 잡는 게 좋을 것 같군요."

"맞습니다. 피해가 좀 있겠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혹시나 두 엘프가 다른 의견을 내면 어쩌나 걱정했던 하나린은 한결 편해진 표정으로 이어 말했다.

"그러면 철저히 준비하도록 하죠. 인간이 이곳에 왔을 때 죽이지 못하면...."

말끝을 흐린 하나린은 침을 꿀꺽 삼켰다.

"다시 기회가 오지 않을 것 같으니까요."

하나린의 말에 둘리안과 폴리타셋도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하나린이 자리에서 일어나 근처에 있는 뿌리의 첫 번째 핵 앞으로 향했다.

스윽.

하나린은 핵에 손을 가져다 댔고 기운을 주입했다.

그러자 회색이었던 뿌리의 색이 점점 검게 변하기 시작했다.

검게 변한 뿌리의 색을 보며 둘리안과 폴리타셋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각자 두 번째 핵, 세 번째 핵 앞으로 향한 뒤 기운을 주입해 뿌리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 * *

"...!"

강진석은 눈을 번뜩였다.

초감각에 감지 된 강렬한 변화 때문이었다.

'찾은 것 같은데.'

형태는 흐릿해 명확히 감지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기운의 강렬함은 명확히 느껴졌다.

하나린, 둘리안, 폴리타셋이 분명했다.

'근데 생각보다 약하네.'

기운이 강렬하기는 했다.

그러나 강진석이 예상하고 있던 만큼은 아니었다.

바로 잡으러 가도 될 것 같았다.

제184화

184.

'문제는 안쪽이라는 건데....'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세 엘프가 자리 잡은 곳이 거대한 나무, 열다섯 번째 뿌리 안쪽이라는 점이었다.

'공간이동은 안 되겠고.'

마음 같아서는 당장 세 엘프가 있는 곳으로 공간이동 하고 싶었다.

그러나 안쪽이 어떤 상황인지 모른다.

수많은 함정이 설치되어 있을 수도 있는 상황에 공간이동을 할 수는 없었다.

'천천히 가야겠네.'

시간제한이 있는 게 아니다.

천천히 정리하며 가도 된다.

결정을 내린 강진석은 나무 앞으로 공간이동을 했다.

그리고 몽둥이에 기운을 주입 후 전력을 다해 휘둘렀다.

콰앙!

폭음과 함께 나무 표면이 대폭 파였다.

콰앙! 콰앙!

강진석은 계속 몽둥이를 휘둘러 나무를 깎아 들어가기 시작했다.

콰앙!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강진석의 앞에 거대한 '숲'이 모습을 드러냈다.

강진석은 시야를 가득 채운, 빽빽이 들어선 나무들을 훑으며 생각했다.

'생각보다 많네.'

많다고 생각하는 것은 나무가 아니다.

나무 사이에 숨어 있는 '나무 괴인'들의 수였다.

'기운도 강하고.'

단순히 숫자만 많은 게 아니다.

숲에 자리 잡은 나무 괴인의 기운은 밖에서 마주한 나무 괴인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했다.

물론 그렇다고 강진석에게 위협이 될 정도는 아니었다.

숲의 모든 나무 괴인이 동시에 달려든다고 해도 강진석에게는 위협이 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가장 강한 나무 괴인이 3차 제약 침공자 수준이었다.

3차 제약 침공자 중에서도 매우 약한 편이었다.

나무 괴인의 수준을 생각하면 지금보다 배 이상이 달려든다고 해도 문제없었다.

단지 청소에 시간이 더 걸릴 뿐.

'엘프들은 신경 쓸 필요 없겠고.'

나무 괴인만 있는 것은 아니다.

검은 숲의 주인은 나무 괴인이 아니다.

엘프들이었다.

나무 곳곳에 엘프들이 은신해 있었다.

그러나 나무 괴인보다 수가 훨씬 적었고 수준도 높지 않았다.

스윽-

강진석은 고개를 돌려 숲 중앙에 자리 잡은, 유독 거대한 검은 나무를 보았다.

거대한 나무 안에 검은 숲을 이끄는 하이엘프 하나린, 둘리안, 폴리타셋이 있다.

'단단히 준비를 한 것 같은데.'

조금 전까지 감지되던 세 엘프의 기운이 감지되지 않았다.

다른 곳으로 도망친 것은 아니다.

감지되지 않는 이유는 세 엘프가 있는 '검은 나무'의 기운이 강렬해져 가려졌기 때문이었다.

'일단 주변부터 싹 정리하는 게 좋겠지?'

검은 나무의 기운을 생각하면 범상치 않은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다.

주변을 먼저 청소하고 진입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생각을 마친 강진석은 혼돈의 구를 지팡이로 변환했다.

그리고 바로 홍염의 숨결을 시전했다.

화르륵!

지팡이에서 불길이 방출됐고 불길은 강진석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며 숲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키이이이익!

[나무 괴인을 처치하셨습니다.]

[포인트가 5000 상승합니다.]

-키이이익!

[나무 괴인을 처치하셨습니다.]

[포인트가 6000 상승합니다.]

불길은 평범한 나무, 나무 괴인을 가리지 않고 불태웠다.

-!%@

당연히 나무에 은신해 있던 엘프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무엇도 불길 앞에서는 살아남지 못했다.

결국, 은신해 있던 일부 엘프들이 불길이 도착하기 전 검은 나무로 향했다.

검은 나무에 숨으려는 것이 분명했다.

"...!"

그러나 이어진 상황에 강진석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검은 나무에서 검은 기운으로 만들어진 뿌리가 튀어나왔다.

그리고 다가오던 엘프들을 꿰뚫었다.

꿰뚫린 엘프들은 순식간에 말라비틀어지더니 먼지로 변해 사라졌다.

검은 나무에 흡수된 것이다.

'...동족을 제물로 삼아?'

당연히 엘프들을 보호하기 위해 튀어나온 것이라 생각했던 강진석은 전보다 더 강렬해진 검은 나무의 기운에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강진석은 숲을 불태우던 불길을 나누어 검은 나무로 보냈다.

'쉽게 불타지는 않겠지.'

검은 나무는 평범하지 않다.

기운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러나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불길이 약한 것은 아니다.

검은 나무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

스아앗!

불길이 도착하기 전 검은 기운으로 만들어진 뿌리들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불길과 마주했다.

화르륵!

불길은 빠르게 사그라들기 시작했고 뿌리의 절반이 사라졌을 때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이 정도구나.'

강진석은 싱긋 웃었다.

'걱정할 필요 없겠네.'

예상보다 많은 뿌리가 불타 사라졌다.

이 정도라면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강진석은 한결 편해진 표정으로 남은 숲을 불태우는 데 집중하기 시작했다.

* * *

봉제산 지휘소.

"으음...."

각지에서 들어온 보고를 취합해 확인하던 한지윤은 침음을 내뱉었다.

'영역이 너무 넓어졌어.'

방화역뿐이었던 처음과 달리 현재 길드의 영역은 매우 넓어졌다.

문제는 안전한 영역이 많지 않다는 점이었다.

얼마 전 강진석이 탈환한 용산구, 광진구 등도 그렇고 동해시와 강릉시 휘하 옥계면, 강동면까지.

영역을 맞댄 몬스터들과 끊임없이 분쟁이 일어나고 있었다.

'수준만 올라오면 괜찮을 텐데.'

해결이 불가능한 문제는 아니다.

길드원들의 수준만 향상되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

바로 그때였다.

우웅!

핸드폰이 울렸다.

강릉시 강동면 개척을 떠난 최은형의 전화였다.

"응, 은형아."

-누나, 큰일 났어요!

전화를 받자마자 최은형이 다급히 외쳤다.

"...무슨 일이야?"

최은형의 반응에 한지윤은 한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북쪽에서 오크들이 내려오기 시작했어요.

-수준이 점점 높아져요.

-3일 뒤에는 단장급 다섯이 공격해 온다고 퀘스트 떴구요.

"...!"

한지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단장급은 3차 제약 침공자였다.

3차 제약 침공자가 1마리도 아니고 5마리나 공격해 온다니?

현재 강동면에 투입된 전력을 생각하면 절대 방어가 불가능하다.

'강동면에 투입할 전력이 없는데....'

그렇다고 추가로 투입할 전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현재 전투가 가능한 길드원은 전부 전선에 투입된 상태였다.

'...그 안에 끝날까?'

한지윤은 동작구가 있는 방향을 보았다.

동작구 전선에 가장 많은 길드원이 투입되었다.

3일 안에 청소가 끝난다면?

강동면에 나타날 3차 제약 침공자 5마리는 아무런 문제 없다.

솔직히 길드원들이 움직이지 않아도 된다.

동작구에는 강진석이 있다.

강진석만 움직여도 3차 제약 침공자 5마리는 조금의 피해도 없이 막을 수 있다.

-누나?

한지윤이 말이 없자 최은형이 재차 물었다.

최은형의 물음에 정신을 차린 한지윤은 입을 열었다.

"지원군 곧 보낼게. 그때까지는 방어에 집중해줘."

-네, 알겠습니다!

-특이 사항 발생하면 연락드릴게요!

그렇게 최은형과의 통화가 끝난 직후.

구궁....

땅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진동은 얼마 뒤 멈췄고 한지윤은 메시지를 확인했다.

아무런 메시지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냥 지진은 아닐 것 같았다.

한지윤은 밖으로 나와 동작구를 바라보았다.

"...!"

그리고 지진의 원인을 알 수 있었다.

동작구에 자리 잡은, 검은 숲 엘프들의 본부로 추정되는 '거대한 나무'.

거대한 나무에 변화가 생겼다.

아까까지만 해도 거대한 나무는 생기를 가득 머금고 있었는데 지금은 나무 한쪽이 썩은 것처럼 바스러져 있었다.

'진석 님이 하신 일인가?'

강진석에게 따로 연락이 온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 나무를 저런 상태로 만들 수 있는 존재는 강진석뿐이었다.

'...3일도 안 걸리겠는데.'

3일 안에 강동면으로 지원군을 보내야 했다.

그런데 3일이 아니라 당장 내일 보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

"...!"

한지윤은 눈을 번뜩였다.

아직 썩지 않았던, 생기를 가득 머금고 있던 부분이 실시간으로 바스러지기 시작했다.

* * *

검은 숲의 근간인 세계수 카르실의 열다섯 번째 뿌리 심처.

"...."

"...."

평소와 달리 심처에는 하나린과 둘리안 둘뿐이었다.

두 엘프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무척이나 착잡한 표정으로 침묵을 지킬 뿐이었다.

바로 그때 폴리타셋이 돌아왔다.

"설치는 잘 됐습니까?"

폴리타셋이 돌아오자마자 하나린이 물었다.

그러자 폴리타셋이 답했다.

"예, 완벽합니다."

폴리타셋이 자리를 비운 이유는 심처에 추가로 마법진을 설치하기 위해서였다.

당연히 평범한 마법진이 아니다.

검은 숲 내에서 폴리타셋만이 설치할 수 있는 강력한 마법진이였다.

그리고 마법진을 추가 설치한 이유는 지금 밖에서 뿌리를 공격하고 있는 벽을 넘어선 존재 때문이었다.

"근데...."

폴리타셋이 말끝을 흐리며 심처 내부를 스윽 훑었다.

"무슨 일이 있던 겁니까?"

뿌리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

자리를 비운 시간이 길지 않았다.

그런데 그사이 뿌리의 상태가 이리 악화되다니?

"...예상보다 강하더군요."

하나린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답했다.

벽을 넘어섰다고 해도 심처에서, 철저히 준비를 마친 채, 셋이 힘을 합치면 충분히 죽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벽을 넘어선 존재가 코앞에 도착한 순간 깨달았다.

아주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을.

벽을 넘어선 존재는 세 엘프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강했다.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다.

시험이 시작되고 오랜 시간이 흐른 게 아니었기에.

그러나 믿지 않는다고 벽을 넘어선 존재의 힘이 약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돌아오셨으니 바로 길을 열지요."

둘리안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뿌리가 완전히 망가지고 말 겁니다. 만에 하나 녀석이 죽더라도 저희 역시 끝나겠지요."

뿌리의 상태는 지금도 실시간으로 악화되고 있었다.

폴리타셋이 돌아왔으니 이제 바로 길을 열어 벽을 넘어선 존재를 끌어들여야 했다.

"그러지요."

하나린은 고개를 끄덕이며 첫 번째 핵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둘리안은 두 번째 핵으로, 폴리타셋은 세 번째 핵으로 다가갔다.

핵 앞에 도착한 세 엘프는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기운을 주입했다.

그리고 뿌리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근데 만약에 말입니다."

바로 그때 눈치를 살피던 폴리타셋이 입을 열었다.

"녀석이 안으로 들어오지 않으면 어떻게 합니까?"

* * *

"...."

강진석은 말없이 검은 나무를 보았다.

현재 검은 나무는 홍염의 숨결에 불타고 있었다.

물론 처음 예상대로 쉽게 불타지는 않았다.

아주 더디게 불타고 있었다.

'살아있지만 않으면 공간이동으로 들어갔을 텐데.'

처음에는 공간이동을 통해 내부로 진입하려 했다.

그러나 검은 나무 코앞에 도착한 순간 생각을 바꿨다.

검은 나무는 살아있는 '생명체'였다.

물론 생명체라고 해서 공간이동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내부 탐색이 힘들었다.

강렬한 기운만 느껴질 뿐 어떤 준비가 되어 있는지 정확히 감지할 수가 없었다.

이런 상황에 내부로 섣불리 진입할 수는 없었다.

바로 그때였다.

스아앗!

검은 나무에 어둠이 서렸다.

그리고 이어 어둠이 서린 검은 나무의 표면이 갈라지며 통로가 나타났다.

'...입구?'

누가 보아도 입구의 형태였다.

강진석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왜 입구가 생긴 것일까?

안에 있는 엘프들이 입구를 만든 것일까?

아니면 일정 이상 피해를 가해서?

'안으로 들어가면 쉽게 파괴할 수 있겠지만....'

어째서 입구가 생긴 것인지 알 수는 없었다.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지.'

강진석은 입구에서 관심을 거뒀다.

그리고 홍염의 숨결에 집중했다.

제185화

185.

홍염의 숨결은 여태까지 그래왔듯 계속해서 검은 나무를 불태웠다.

그리고 검은 나무의 기운은 빠르게 약해졌다.

강진석은 약해지는 검은 나무를 보며 나무 안에 있을 세 엘프 하나린, 둘리안, 폴리타셋을 떠올렸다.

'이대로 그냥 버틸 생각인가?'

이쯤이면 직접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아도 반응을 보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입구가 생긴 것 말고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혹시 도망갔나?'

문득 든 생각에 강진석은 미간을 찌푸렸다.

만약 검은 나무 안에 세 엘프가 없다면?

다른 곳으로 도망친 것이라면?

그런 것이라면 아무런 변화 없는 지금 상황이 설명된다.

'근데 뿌리를 버리고 도망쳤다고?'

검은 나무의 정체는 검은 숲의 근간이자 수많은 퀘스트들의 완료 조건인 '세계수 카르실의 열다섯 번째 뿌리'로 추정됐다.

아니, 추정이 아니라 확실했다.

이대로 검은 나무가 파괴된다면?

검은 숲의 영역은 물론 엘프들의 힘 또한 크게 줄어들 것이다.

그런데 뿌리를 버리고 도망갔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바로 그때였다.

"...!"

강진석은 눈을 번뜩이며 뒤로 훌쩍 물러났다.

쩌저적!

그리고 그 순간 강진석이 서 있던 바닥이 갈라지며 새빨간 핏빛의 뿌리가 솟아났다.

핏빛 뿌리를 확인한 강진석은 고개를 돌려 검은 나무의 입구를 보았다.

그리고 싱긋 웃었다.

'도망친 게 아니었구나.'

검은 나무의 기운에 가려져 감지되지 않았던 세 기운이 감지됐다.

세 기운의 강렬함을 보면 검은 숲 엘프들을 이끄는 하나린, 둘리안, 폴리타셋이 분명했다.

이내 입구에서 세 엘프가 모습을 드러냈고 메시지가 나타났다.

[검은 숲 하이엘프 하나린이 등장했습니다.]

[일시적으로 하나린의 모든 제약이 해제됩니다.]

.

.

[일시적으로 폴리타셋의 모든 제약이 해제됩니다.]

메시지를 통해 세 엘프의 정체를 확실히 확인한 강진석은 혼돈의 구에 기운을 주입했다.

-!@$

-@#%@#%

-!@@@

그사이 세 엘프가 외쳤다.

당연히 알아들을 수 없는 괴성이었고 강진석은 혼돈의 구를 은장도로 변환했다.

그리고 바로 아이스 포그를 시전했다.

시전과 동시에 수많은 눈송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

-@%#

-@%!

세 엘프의 괴성을 들으며 강진석은 눈송이를 움직였다.

물론 눈송이는 큰 피해를 주지 못할 것이다.

세 엘프의 기운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피해 주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강진석이 눈송이를 움직인 이유는 세 엘프의 대처를 통해 스타일을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스아앗!

왼쪽에 있던 유일한 여성 엘프는 보호막을 만들어냈다.

쩌저적!

그리고 그 위로 눈송이가 작렬했다.

보호막의 기운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그뿐이었다.

가운데에 있던 엘프는 전신의 피부가 핏빛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핏빛으로 물든 피부에서 강렬한 열기가 뿜어져 나와 눈송이를 증발시켰다.

마지막으로 오른쪽에 있던, 다른 두 엘프보다 머리 하나가 더 큰 엘프는 자리에서 사라졌다.

공간이동을 한 것이다.

초감각으로 주변 일대를 감지하고 있던 강진석은 오른쪽 엘프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고 있었다.

시야에 보이지 않는, 검은 나무의 뒤쪽 가지에 숨어 있었다.

기운을 끌어올리는 것을 보아 공격을 준비하는 게 분명했다.

'잘됐네.'

강진석은 재차 아이스 포그를 시전해 눈송이를 추가로 만들어냈다.

'그렇지 않아도 따로 떨어지길 바랐는데.'

세 엘프의 수준은 낮지 않다.

강진석이 전력을 다해도 동시에 상대하며 죽이는 것은 쉽지 않다.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래서 따로 떨어지길 바랐는데 이렇게 바로 떨어져 주다니?

절호의 기회라 할 수 있었다.

강진석은 추가로 만들어 낸 눈송이를 두 엘프에게 보냈다.

그리고 혼돈의 구를 몽둥이로 변환하며 공간이동을 했다.

당연히 목표는 검은 나무 뒤쪽 가지에 숨어 있는 가장 큰 엘프였다.

후웅!

가지에 도착과 동시에 강진석은 몽둥이를 휘둘렀다.

-...!

기운을 끌어올리던 엘프는 몽둥이를 보고 경악하며 반사적으로 모아둔 기운을 방출했다.

그러나 완벽히 준비되지 않은 기운은 몽둥이와 마주하자마자 흩어졌고 몽둥이는 그대로 엘프의 머리에 작렬했다.

쾅! 쩍! 쩌저적!

작렬과 동시에 폭음이 울려퍼졌다.

그리고 엘프는 밟고 있던 나뭇가지와 함께 그대로 지상으로 추락했다.

물론 강진석은 추락을 가만히 지켜볼 생각이 없었다.

강진석은 재차 공간이동을 시전해 거리를 좁히며 몽둥이를 휘둘렀다.

쾅!

몽둥이가 작렬했고 지상으로 추락하던 엘프는 그대로 검은 나무 표면을 파고들었다.

'확실히 단단하네.'

두 번의 공격을 통해 강진석은 엘프의 육체가 얼마나 단단한지 알 수 있었다.

'육체를 제련한 건 아닌 것 같은데.'

4차 제약 침공자가 되기 위한 조건은 육체 제련 혹은 영혼 각성이었다.

그런데 강진석이 보기에 지금 나무에 박힌 엘프는 육체를 제련한 것 같지 않았다.

영혼을 각성한 것으로 추정됐다.

그럼에도 육체가 이리 단단하다니?

강진석은 계속 몽둥이를 휘두르며 입구 쪽에 있는 두 엘프를 떠올렸다.

두 엘프는 지금 상대하고 있는 엘프와 달리 육체를 제련한 것으로 추정됐다.

즉, 훨씬 더 단단할 것이다.

'얼마나 때려야 할까.'

강진석은 두 엘프를 잡을 때 얼마나 많은 시간이 소요될지 생각하며 타격에 집중했다.

쾅! 쾅!

몽둥이가 작렬할 때마다 엘프의 기운은 움푹움푹 사라졌다.

그리고 기운이 움푹움푹 사라질 정도의 위력 때문인지 엘프는 저항하지 못했다.

몽둥이가 작렬할 때마다 펄떡일 뿐이었다.

이대로라면 별일 없이 무난히 끝을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게 끝일까?'

생각했던 것보다 상황이 너무나 수월하게 흐르고 있었다.

그래서 의구심이 들었다.

3차 제약 침공자와 4차 제약 침공자는 격이 다르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3차 제약 침공자를 잡을 때와 비교해 시간이 조금 더 걸릴뿐이지 다를 게 없었다.

혹시 뭔가가 더 있지 않을까?

바로 그때였다.

-...!@!@$

엘프가 괴성을 내뱉었다.

무슨 뜻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느껴졌다.

목소리에서 생기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죽음을 받아들인 것이 분명했다.

때마침 기운도 거의 바닥이 나 있는 상태였다.

앞으로 한, 두번이면 끝을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강진석은 몽둥이를 휘두르며 눈송이에 발이 묶인 두 엘프의 상태를 확인했다.

'타이밍이 딱이네.'

눈송이도 얼마 남지 않았다.

엘프를 죽이는 순간 두 엘프의 발도 풀릴 것이다.

쾅!

[검은 숲 하이엘프 폴리타셋이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포인트가 1억 5000만 상승합니다.]

.

.

몽둥이가 작렬했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메시지가 나타났다.

강진석은 메시지를 빠르게 훑었다.

'4차 제약 침공자는 이정도구나.'

보상이 어마어마했다.

그래서 더 기대가 됐다.

'혼력이나 혈력은 얼마나 올랐으려나.'

과연 혼력과 혈력은 얼마나 상승했을까?

'다 잡으면 혼력은 100% 되려나?'

당장 확인하고 싶었지만 확인할 수 없었다.

아직 전투가 끝난 게 아니기 때문이었다.

강진석은 두 엘프가 있는 곳으로 공간이동을 했다.

때마침 마지막 눈송이가 사라졌고 두 엘프와 눈이 마주쳤다.

두 엘프는 상반된 감정을 보였다.

보호막으로 눈송이를 막은 보호막 엘프는 두려움이 가득한 얼굴로 경계를.

열기를 뿜어내 눈송이를 막은 핏빛 엘프는 분노 가득한 표정으로 살의를.

강진석은 두 엘프의 감정을 보고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저 녀석부터 죽여야겠네.'

핏빛 엘프부터 죽이기로.

결정을 내린 강진석은 바로 핏빛 엘프에게 달려들었다.

핏빛 엘프는 괴성을 내뱉으며 양손을 뻗었다.

그리고 양손에서 강렬한 불길이 뿜어져 나왔다.

강진석은 당황하지 않았다.

불길을 피하지도 않았다.

'피할 정도는 아니야.'

불길의 열기는 첫번째 육체 제련 때 겪었던 열기와 비교하면 약했다.

지금 열기 정도는 웃으며 마주할 수 있었다.

이내 열기와 마주한 강진석은 그대로 열기를 파고들어 거리를 좁혔다.

열기를 뚫고 들어올 것이라 생각지 못한 것일까?

핏빛 엘프는 당황했고 강진석은 바로 몽둥이를 휘둘렀다.

쾅!

몽둥이가 핏빛 엘프의 얼굴에 작렬했고 폭음과 함께 핏빛 엘프는 뒤로 날아갔다.

강진석은 바로 따라붙으며 생각했다.

'역시 단단하네.'

핏빛 엘프는 앞서 죽은 폴리타셋보다 확실히 단단했다.

예상대로 죽이는데 꽤나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그래도...'

강진석은 씨익 웃었다.

'이정도면 둘이 동시에 덤벼도 문제없겠어.'

* * * *

'마, 말도 안 돼.'

하나린은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어떻게 벌써.'

인간과 폴리타셋이 잠시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뿌리 뒤쪽에서 폭음이 들려왔었다.

폴리타셋과 인간이 전투를 벌이는 소리가 분명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소리가 멈췄고 인간이 나타났다.

폴리타셋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뿐이었다.

바로 폴리타셋의 죽음.

하나린은 폴리타셋이 얼마나 강한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믿기지 않았다.

이렇게 빨리 폴리타셋이 죽음을 맞이했다는 것이.

그리고 믿기지 않는 것은 폴리타셋의 죽음뿐만이 아니었다.

'육체까지 제련 했으니 당연한 건가...?'

영혼을 각성한 존재라 생각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영혼만 각성한 게 아니었다.

인간은 육체까지 제련했다.

'어떻게 동시에...'

육체를 제련하거나 영혼을 각성하는 것.

무엇 하나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그 2가지를 전부 다 하다니?

'...설마 인간이 아닌 건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기에 당연히 인간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인간의 모습을 한 다른 존재라면?

'용족?'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용족이었다.

용족들은 강함을 타고났다.

육체를 제련하지 않았음에도 제련한 것과 맞먹었고 영혼을 각성하지 않아도 각성한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럴 리가.'

그러나 이번 시험에 참여한 용족들은 전부 특별한 제약을 받았다.

자신들의 영역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즉, 용족일 확률은 0에 수렴했다.

'그러면 대체...'

생각에 잠겨 있던 그때.

콰아앙! 쩡!

전보다 더욱 크게 들려온 굉음에 하나린은 생각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깨졌어?'

폭발음과 함께 울린 소리가 매우 익숙했다.

분명 제련을 마친 육체가 뚫릴 때 나는 소리였다.

스윽

하나린은 고개를 돌려 둘리안과 인간을 보았다.

인간은 쉴 새 없이 몽둥이를 휘두르고 있었다.

그리고 둘리안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계속해서 몽둥이를 허용하고 있었다.

하나린은 기운을 끌어 올리며 두려움을 억눌렀다.

이러고 생각에 잠겨 있을 때가 아니었다.

어서 둘리안을 도와야 했다.

돕지 않으면 둘리안은 죽을 것이다.

그리고 둘리안이 죽으면 그다음은 어떻게 되겠는가?

하나린은 죽고 싶지 않았다.

타앗!

기운을 끌어올린 하나린은 인간에게 달려 들었다.

그리고 거리가 가까워지자 검을 뻗었다.

그러자 검이 쭉 늘어나며 인간의 등으로 향했다.

'...피하지 않아?'

당연히 피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인간은 피하지 않았다.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인지하지 못한 것은 아닐 것이다.

빠르게 공격하기는 했지만 인간이 보여준 힘을 생각하면 인지했을 확률은 100%였다.

즉, 일부러 피하지 않았다는 것인데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제련을 믿는 건가?'

아무리 봐도 제련된 육체를 믿는 듯했다.

하나린은 미소를 지었다.

검에 담긴 기운은 제련된 육체도 뚫을 수 있을 정도로 강했다.

즉, 절호의 기회라 할 수 있었다.

"...!"

그러나 이어진 상황에 하나린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팅!

검이 작렬했다.

그러나 파고들지 못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강력한 반발이 느껴졌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였다.

'...제련을 한 번 한 게 아니야?'

제186화

186.

당연히 제련을 한 번 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두번째 제련은 쉬운 일이 아니기에.

거기다 영혼까지 각성을 했는데 두번째 제련은 당연히 생각지 않았다.

그런데 상황을 보니 제련을 한 번 한 게 아니다.

한 번이었다면 지금처럼 뚫리지 않았을 리 없다.

'그래도 피해가 없는건 아니야!'

뚫지 못했을 뿐이다.

얼마나 피해를 입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피해를 입었다.

하나린은 검을 회수 후 재차 검을 휘두르며 생각했다.

'근데 어떻게...'

영혼 각성과 육체 제련을 한 번씩 한 것도 놀라운 일이다.

그런데 한 번이 아니라 두 번이라니?

'뿌리 안으로 들어왔어도...'

원래 계획은 뿌리 안에서 셋이 힘을 합쳐 죽이는 것이었다.

그런데 상황을 보니 계획대로 뿌리 안에 들어왔다고 해도 죽이지 못했을 것 같았다.

격차가 커도 너무 컸다.

팅!

역시나 두번째 공격 역시 육체를 파고들지 못했다.

그러나 하나린은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육체를 파고들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다.

애초에 지금 하는 공격은 인간에게 조금이나마 피해를 주고 둘리안이 반격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였다.

하나린은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하나린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팅! 팅!

인간은 검을 피하지 않았다.

그리고 검은 계속해서 튕겨 나왔다.

그리고 그사이 둘리안의 상태는 더욱 악화됐다.

'이대로면...'

둘리안이 반격까지는 아니어도 빠져나올 수 있길 바랐다.

그런데 상황은 하나린의 공격 전과 비교해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곧 둘리안은 죽을 것이다.

그리고 그다음 차례는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하나린은 공격을 멈췄다.

'어떻게 하지?'

둘리안의 죽음은 이미 기정사실이다.

더 공격한다고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나린은 어떻게 해야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을지 빠르게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로 그때 인간이 싱긋 웃었다.

그 순간 하나린은 직감했다.

둘리안이 죽었다는 것을.

스아앗!

빛과 함께 둘리안의 육체가 사라졌다.

그리고 인간이 뒤로 돌아섰다.

하나린은 침을 꿀꺽 삼켰다.

* * * *

[검은 숲 하이엘프 하나린이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포인트가 1억 5000만 상승합니다.]

.

.

메시지를 확인한 강진석은 하나린이 남긴 아티펙트들을 수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거 중 강진석은 눈을 번뜩였다.

강진석의 눈을 번뜩이게 만든 아티펙트는 루비가 박혀 있는 검은색 반지였다.

머릿속에 떠오른 반지의 이름은 '세계수 카르실의 열다섯번째 비고 반지'였다.

반지에는 내장된 스킬이 2개 있었다.

첫번째 스킬은 하나린이 만들었던 '보호막'이었다.

그리고 두번째 스킬은 '비고 입구 소환'이었다.

강진석은 반지를 착용했다.

그리고 바로 두번째 스킬 '비고 입구 소환'을 시전했다.

스앗!

시전과 동시에 강진석의 앞에 거대한 나무 문이 나타났다.

강진석은 바로 나무 문을 열었다.

그러나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내부에 무엇이 있을지 모르고 초감각으로도 충분히 탐색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와, 기대 이상인데?'

보석, 아티펙트 등이 가득 진열되어 있었다.

'...있을까?'

강진석은 퀘스트 완료에 필요하지만 상점에서 판매하지 않는 재료들을 떠올렸다.

전부는 아니더라도 몇 개는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빨리 정리하고 확인해야겠어.'

검은 숲을 이끄는 세 하이엘프를 죽였다.

그러나 끝난 게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남아 있었다.

강진석은 흡족한 표정으로 다시 스킬을 시전해 문을 없앴다.

그리고 마저 아티펙트를 회수 후 검은 나무를 보았다.

'이제 들어가도 되겠지?'

외부에서 공격하는 것보다 내부에서 공격하는 게 낫다.

그걸 알면서도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던 이유는 앞서 죽은 세 엘프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 세 엘프가 죽었다.

안으로 들어가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 전에.'

진입 전 확인할 것이 있었다.

강진석은 퀘스트창을 열었다.

<영혼 각성>

조건을 충족하라!

[혼력 : 100%]

.

.

[공허의 결정 리튜렌 : X]

퀘스트 보상 : 스킬 '영혼 각성' 3레벨 활성화

세계 침공자 처치 시 혼력이 자동 수집됩니다.

동족 처치 시 혼력이 자동 수집됩니다.

'역시.'

그리고 확인과 동시에 강진석은 활짝 미소를 지었다.

4차 제약 침공자를 셋이나 죽였다.

그래서 100%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는데 예상대로 100%가 됐다.

물론 혼력이 충족됐다고 바로 완료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재료가 부족했다.

상점에서도 판매하지 않는 재료들이 꽤 있었다.

즉, 완료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추정됐다.

강진석은 이어 혈력을 확인했다.

<육체 제련>

조건을 충족하라!

[혈력 : 60%]

.

.

[알칸데움 : 10 / 10kg]

퀘스트 보상 : 스킬 '육체 제련' 3레벨 활성화

세계 침공자 처치 시 혈력이 자동 수집됩니다.

동족 처치 시 혈력이 자동 수집됩니다.

혼력과 달리 혈력은 100%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전혀 아쉽지 않았다.

이미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예상보다 많이 충족돼 살짝 놀란 상태였다.

'이것도 금방 충족할 수 있겠네.'

앞서 죽인 세 엘프는 전부 4차 제약 침공자였다.

그리고 세 엘프를 처치하며 강진석은 깨달았다.

4차 제약 침공자라 하더라도 육체 제련과 영혼 각성을 2번씩 한 자신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즉, 전에 보았던 사일 부족의 4차 제약 침공자 카린이나 그 외 다른 4차 제약 침공자도 어렵지 않게 죽일 수 있을 것이고 혼력과 마찬가지로 혈력 또한 금세 100%가 될 것이다.

'중요한 건 재료겠지만.'

물론 혈력이 100%가 된다고 바로 세번째 제련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영혼 각성과 마찬가지로 재료가 부족하기에.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강진석은 이어 마지막으로 퀘스트 '찬란한 그날의 영광을(2)'을 보았다.

<찬란한 그날의 영광을(2)>

아래 조건을 충족하라!

[영역 상징 파괴 : 10 / 10]

[4차 제약 침공자 : 1 / 1]

퀘스트 보상 : 찬란한 방패 강화

완료 시 퀘스트 '찬란한 그날의 영광을(3)'이 생성됩니다.

조건은 폴리타셋을 죽였을 때 이미 충족된 상태였다.

완료만 하면 된다.

'어떻게 강화가 되려나.'

강진석은 기대가 됐다.

과연 두번째 강화는 어떤 변화를 가져다줄까?

'단단해지는거 말고 다른 기능이 생겼으면 좋겠는데.'

육체 제련을 두 번이나 한 강진석에게 현재 찬란한 방패는 큰 의미 없었다.

찬란한 방패보다 육체가 더욱 단단했기에.

강진석은 부디 특별한 스킬이나 효과가 생기길 바라며 퀘스트를 완료했다.

[해방 퀘스트 '찬란한 그날의 영광을(2)'를 완료하셨습니다.]

[찬란한 방패가 강화됩니다.]

[해방 퀘스트 '찬란한 그날의 영광을(3)'이 생성됐습니다.]

완료와 동시에 메시지가 주르륵 나타났다.

그러나 강진석은 메시지에 신경 쓰지 않았다.

찬란한 방패에 찾아온 변화 때문이었다.

'허...'

강진석은 속으로 헛웃음을 내뱉었다.

이번에도 첫 강화때처럼 2가지 변화가 생겼다.

첫번째로 방어력이 더욱 강해졌다.

물론 강진석에게는 아무 의미 없는 변화였다.

방어력이 더 강해졌지만 육체보다 약했기에.

중요한 것은 두번째 변화였다.

'공간 운용이라...'

찬란한 방패에 새로운 기능이 생겼다.

공간 운용이라는 기능이었다.

일정 반경 내 공간에 '개입'할 수 있게 됐다.

공간을 비트는 것도 가능했고 비틀어진 공간을 원래대로 복구하는 것도 가능했다.

'공간의 운용이 이런 기능일까?'

강진석은 특별 스킬창에 있는 '공간의 운용'을 떠올렸다.

확실치 않지만 공간의 운용을 습득하면 찬란한 방패 없이도 공간에 개입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어쨌든 그 강제 이동은 걱정 안 해도 되겠어.'

강진석은 자신을 동해시로 보냈던 사일 부족의 4차 제약 침공자 카린을 떠올렸다.

당시에는 저항할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공간 운용을 통해 저항할 수 있게 됐다.

다시 만난다고 해도 문제없다.

'근데 두번째 강화에 이정도면 다음 강화에는...'

두번째 강화가 끝이 아니다.

세번째 해방 퀘스트가 생성됐다.

강진석은 퀘스트를 확인했다.

<찬란한 그날의 영광을(3)>

아래 조건을 충족하라!

[4차 제약 침공자 : 0 / 5]

[5차 제약 침공자 : 0 / 1]

퀘스트 보상 : 찬란한 방패 강화

'마지막이었구나?'

혹시나 네번째 해방 퀘스트도 있을까 했는데 아니었다.

'근데 5차 제약 침공자를 잡아야 된다고?'

이어 조건을 확인한 강진석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4차 제약 침공자 5마리는 이제 어렵지 않다.

금방 충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문제는 5차 제약 침공자였다.

3차 제약 침공자와 4차 제약 침공자의 격차를 생각하면 5차 제약 침공자는 4차 제약 침공자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할 것이다.

'...어떤 기능이 생기려나.'

강진석은 마지막 강화를 기대하며 퀘스트창을 닫았다.

모든 확인을 마쳤다.

이제 검은 숲의 근간을 파괴할 때였다.

강진석은 입구를 지나 검은 나무 내부로 들어갔다.

저벅!

내부에 발을 들인 순간 강진석은 잠시 멈칫했다.

감지할 수 없던 내부가 훤히 감지됐기 때문이었다.

'...제대로 준비하긴 했네.'

곳곳에 마법진이 각인되어 있었다.

마법진만 있는 게 아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아티펙트도 수없이 설치되어 있었다.

'의미 없긴 하지만.'

마법진과 아티펙트를 운용할 세 엘프는 이미 죽었다.

그리고 위치도 전부 파악됐다.

즉, 조금의 위협도 되지 않는다.

내부 탐색을 마친 강진석은 중심부로 공간이동을 했다.

그리고 강진석은 주변을 스윽 훑으며 생각했다.

'저것들만 파괴하면 되겠지?'

탐색 결과 검은 나무 내부에는 '핵'이 존재했다.

그것도 1개가 아니라 3개나.

확실치 않지만 3개를 파괴하면 알아서 무너질 것으로 추정됐다.

강진석은 혼돈의 구에 기운을 가득 주입했다.

그리고 가장 가까이 있는 핵을 향해 휘둘렀다.

쾅! 쩌저적!

몽둥이가 작렬했고 첫번째 핵은 그대로 산산이 조각나 먼지로 변해 사라졌다.

구구궁...

그와 동시에 검은 나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강진석은 바로 두번째 핵으로 다가가 몽둥이를 휘둘렀다.

쾅! 쩌저적!

두번째 핵 역시 산산이 조각나 먼지로 변해 사라졌고.

검은 나무는 전보다 더욱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강진석은 마지막 핵 앞으로 다가갔다.

쾅! 쩌저적!

마지막 핵 역시 앞서 파괴된 두 핵과 마찬가지로 먼지로 변해 사라졌고 강진석은 느낄 수 있었다.

검은 나무의 기운이 급속도로 사라지는 것을.

기운이 사라지는 속도를 보면 20초도 지나지 않아 바닥날 것 같았다.

강진석은 바로 공간이동을 통해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검은 나무를 보았다.

표면이 쩍쩍 갈라져 있었다.

쩌적...쩍...

얼마 지나지 않아 갈라진 표면이 조각조각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떨어져 내린 조각은 땅에 닿기도 전에 먼지로 변해 사라졌다.

그렇게 검은 나무는 점점 먼지로 변해 사라졌고 20초도 지나지 않아 완전히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기다리고 기다리던 메시지가 나타났다.

[세계수 카르실의 열다섯 번째 뿌리가 파괴됐습니다.]

[퀘스트 '세계수 카르실의 열다섯 번째 뿌리'를 완료하셨습니다.]

[영역이 파괴됐습니다.]

.

.

검은 숲의 근간이기도 했고 관련 퀘스트가 많아 나타난 메시지가 워낙 많았다.

강진석은 천천히 메시지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

그리고 확인 중 강진석은 눈을 번뜩였다.

생각지도 못한 내용의 메시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세계수 씨앗을 획득하셨습니다.]

[3시간 내 심지 않으면 씨앗이 사라집니다.]

제187화

187.

'세계수 씨앗?'

메시지를 본 강진석은 바로 인벤토리를 확인했다.

그리고 곧 인벤토리에서 세계수 씨앗을 꺼냈다.

세계수 씨앗은 지름 2cm로 생각했던 것보다 매우 작았다.

그러나 강진석은 크기에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 이유는 씨앗을 꺼낸 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정보 때문이었다.

얼마 뒤 정보 정리를 마친 강진석은 새로운 고민에 빠졌다.

'어디에 심지?'

주어진 시간은 3시간이었다.

그 안에 심어야 하는데 아무 곳에나 심을 수는 없다.

그 이유는 세계수의 효과 때문이었다.

세계수의 효과는 매우 많았다.

그중 하나가 반경 2km 내 모든 식물의 성장 속도 향상이었다.

물론 영원히 2km인 것은 아니다.

세계수가 성장할수록 범위가 늘어난다.

최소가 2km였다.

'...농장쪽에 설치하면 되나?'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얼마 전 개간한 농장 지대였다.

'근데 성장을 생각하면...'

농장 지대 주변에는 건물이 가득했다.

즉, 확장이 힘들다.

세계수의 성장을 생각하면 농장 지대에 심는 것은 손해라 할 수 있었다.

'이야기 좀 해봐야겠네.'

아무래도 한지윤 그리고 농장 관리를 맡은 김민정과 상의를 해봐야 할 것 같았다.

결정을 내린 강진석은 다시 세계수 씨앗을 인벤토리에 보관했다.

* * * *

올림픽 공원 88호수 앞에 자리 잡은 열화 사막 부족 대족장이자 총사령관 아슬렌의 거처.

현재 거처에는 총사령관 아슬렌, 부사령관 엘리타나 그리고 다섯 군단장이 심각한 표정으로 정적을 지키고 있었다.

물론 정적의 이유는 저마다 달랐다.

아슬렌은 짜증 가득한 표정으로 분노를 억누르고 있었고 엘리타나는 의아함이 가득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겨 있었으며 다섯 군단장은 아슬렌과 엘리타나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한없이 이어질 것이라 생각했던 정적을 깬 것은 아슬렌이었다.

"후..."

깊게 숨을 내뱉으며 분노를 어느정도 해소한 아슬렌이 1군단장 오블을 보았다.

"확실한 건가? 검은 숲이 무너졌다는게?"

"...예, 확실합니다."

오블은 침을 꿀꺽 삼키고 답했다.

처음 보고가 들어왔을 때 오블 역시 믿지 않았다.

갑자기 검은 숲이 무너질 이유가 없기에.

그래서 다양한 루트로 확인을 했다.

그리고 확인 결과 확실해졌다.

검은 숲은 무너졌다.

물론 무너졌다는 것이 엘프들과 숲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뜻은 아니다.

전보다 확연히 약해졌을 뿐 여전히 숲은 존재했고 엘프도 존재했다.

스윽

오블의 답에 아슬렌은 엘리타나를 보았다.

"어떻게 생각하나? 함정일 가능성은?"

엘리타나는 아슬렌의 물음에 잠시 생각하다가 답했다.

"...함정일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아슬렌의 말대로 함정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검은 숲에서 이런 함정을 만들 이유가 없다.

"아무래도..."

말끝을 흐린 엘리타나는 북쪽 지역에 나타난 인간 무리를 떠올리고 이어 말했다.

"북쪽의 인간들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

"...!"

북쪽 이야기가 나오자 아슬렌은 물론 모든 군단장들이 눈을 번뜩였다.

열화 사막 부족의 영역 북쪽에 위치한 광진구와 성동구.

광진구는 푸른 바람 부족 고블린들이 지배하고 있는 곳이었고 성동구는 푸른 바람 부족 코볼트들이 지배하고 있는 곳이었다.

두 곳 다 후에 모든 제약이 풀리면 공격할 곳이었기에 주시중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 고블린과 코볼트들이 사라지고 인간들이 나타났다.

한 곳에서만 발견된 게 아니다.

영역을 맞댄 모든 곳에서 인간들이 모습을 보였다.

어떻게 된 것인지 조사대를 보냈고 2가지 사실을 알게 됐다.

첫번째는 광진구와 성동구가 완벽히 인간들에게 넘어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두번째는 두 지역의 2차 제약이 조기 해제됐다는 점이었다.

지금 검은 숲이 약화된 것도 북쪽에 나타난 인간들과 연관된 게 아닐까 싶었다.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니다.

아주 가능성 높은 이야기였다.

검은 숲이 약화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인간들의 영역이 강화됐다.

"그 말은 검은 숲 엘프들이 인간들에게 당했다는 뜻인데..."

아슬렌은 말끝을 흐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예전이라면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광진구, 성동구 상황을 생각하면 검은 숲 엘프들이 당한 것도 아예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아슬렌이 말이 없자 군단장들은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군단장들만 눈치를 살폈다.

부사령관인 엘리타나는 눈치를 보지 않았고 바로 입을 열었다.

"검은 숲에서 끝날 것 같지 않습니다."

"...그렇겠지?"

"예, 분명 공격해 올 겁니다. 그리고 검은 숲의 세 노괴들이 당한 것을 보면 쉽게 봐서는 안될 것 같습니다."

검은 숲을 이끄는 세 하이엘프는 전부 벽을 넘어선 존재였다.

둘은 육체 제련을 하나는 영혼 각성을 해 한쪽에 치우치지도 않았다.

검은 숲이 무너졌다는 것은 그 셋이 죽음을 당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그 말은 인간쪽에 벽을 넘어선 존재가 있거나 혹은 벽을 넘어선 존재를 죽일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었다.

즉, 방심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래, 그 노괴들이 당할 정도라면 보통이 아닐테니."

아슬렌은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근데 지구의 인간들은 다 허약한 줄 알았는데.'

열화 사막 부족 영역 내에도 수많은 인간이 있었다.

인간 중에서도 뛰어난 이들이 있기는 했지만 그래봤자 2차 제약을 받은 부족원보다 못했다.

'지역마다 달랐던 건가?'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지역마다 차이가 나는 게 분명했다.

그것도 아주 큰 차이가.

* * * *

"그럼 심겠습니다."

강진석의 말에 한지윤과 김민정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네!"

"옙!"

두 사람의 얼굴에는 기대감이 가득했다.

하기야 평범한 씨앗도 아니고 세계수 씨앗이다.

오히려 기대하지 않는 게 이상한 상황이었다.

강진석은 땅에 씨앗을 심었다.

그리고 뒤로 훌쩍 물러났다.

쏘옥!

물러남과 동시에 새싹이 튀어나왔다.

아주 푸르른 새싹이었다.

새싹은 계속해서 몸집을 키웠고 5초도 지나지 않아 1m 크기의 나무가 되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계속해서 커지고 두꺼워졌다.

강진석은 10m를 넘어선 뒤에도 계속 성장하는 세계수를 보며 생각했다.

'...언제 검게 변하는 거지?'

완연한 갈색이었다.

검은 부분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이내 50m를 돌파했고 세계수는 성장을 멈췄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수많은 메시지가 나타났다.

[세계수가 성장을 마쳤습니다.]

[세계수 관리창이 활성화됩니다.]

.

.

"..."

그러나 강진석은 메시지에 시선을 주지 않았다.

말없이 세계수를 바라볼 뿐이었다.

'...뭐지? 왜 안 검어져?'

당연히 검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여전히 완연한 갈색이었다.

'뿌리가 아니라서 그런가?'

앞서 본 검은 숲의 세계수는 '뿌리'였다.

그리고 강진석이 심은 것은 '세계수 뿌리'가 아니라 '세계수 씨앗'이었다.

혹시 완연한 갈색인 이유는 뿌리가 아니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와..."

생각에 잠겨 있던 강진석은 귓가에 들려오는 탄성에 뒤로 돌아섰다.

탄성의 주인공은 김민정이었다.

김민정은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도 세계수가 성장을 마치며 나타난 메시지 때문인 듯했다.

강진석은 고개를 돌려 메시지를 확인했다.

그리고 어째서 김민정이 감탄했는지 알 수 있었다.

영역 내에서 스킬 레벨도 오르고 숙련도 상승 속도도 오른다는 메시지가 있었다.

농부인 김민정 입장에서는 감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내 모든 메시지를 확인한 강진석은 세계수 관리창을 열었다.

-세계수 성장

-세계수 효과 강화

목록에는 2가지뿐이었다.

강진석은 우선 세계수 성장을 확인했다.

'...포인트만 필요한 게 아니네.'

세계수 성장에는 놀랍게도 포인트와 여러 재료가 필요했다.

강진석은 이어 세계수 효과 강화를 확인했다.

효과 강화 역시 성장과 마찬가지로 포인트와 여러 재료를 요구했다.

확인을 마친 강진석은 관리창을 닫았다.

그리고 뒤로 돌아 한지윤과 김민정에게 말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식량 걱정은 완전히 버리셔도 됩니다! 맡겨만 주세요!"

김민정이 활짝 웃으며 답했다.

그리고 이어 한지윤이 싱긋 웃으며 답했다.

"저도 바로 출발할 수 있도록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강진석은 다시 서울 곳곳을 돌아다니며 몬스터들을 죽이고 영역 상징을 파괴하며 생존자를 구출할 생각이었다.

물론 구출한 생존자 뒤처리는 전과 마찬가지로 한지윤이 맡기로 했다.

"그럼."

두 사람의 답을 듣고 강진석은 흡족한 표정으로 작별인사를 한 뒤 공간이동을 통해 가장 가까이 있는 영역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이어 '영역 이동' 기능을 통해 신정역으로 이동했다.

신정역으로 이동한 이유는 강진석의 첫 목표가 '차가운 뿌리 부족'의 섬멸이었기 때문이었다.

'매봉산 맞겠지?'

차가운 뿌리 부족의 본부는 원래 봉제산에 위치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차가운 뿌리 부족은 본부를 이동했다.

그리고 강진석은 차가운 뿌리 부족의 새로운 본부가 매봉산에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 생각하는 이유는 매봉산에 펼쳐진 강력한 영역 때문이었다.

'하나일 테니 더 쉽게 끝낼 수 있을테고.'

차가운 뿌리 부족의 2인자였던 밀보닐이 3차 제약 침공자였다.

즉, 4차 제약 침공자는 대족장 메라키오 하나일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그리고 강진석은 조금 전 검은 숲을 이끌던 4차 제약 침공자 셋을 죽였다.

그것도 아주 수월하게.

거기서 강진석은 깨달았다.

4차 제약 침공자도 아무런 문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메라키오가 세 엘프 보다 강하다고 해도 어렵지 않게 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강진석은 신정역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연달아 공간이동을 해 매봉산 영역 앞에 도착했다.

강진석은 무척이나 짙은 장막을 잠시 바라보다가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던전 '매봉산'에 입장하셨습니다.]

[48시간 동안 모든 입구가 봉쇄됩니다.]

[던전 클리어 시 봉쇄가 해제됩니다.]

[퀘스트 '대제단 파괴'가 생성됐습니다.]

[퀘스트 '대족장 메라키오'가 생성됐습니다.]

.

.

수많은 메시지가 나타났고 강진석은 메시지를 확인하며 초감각으로 매봉산 전역을 탐색했다.

그리고 싱긋 웃었다.

'맞네. 하나.'

예상대로 4차 제약 침공자는 하나 뿐이었다.

대족장 메라키오가 분명했다.

기운만 보면 메라키오는 검은 숲 세 하이엘프보다 강했다.

물론 압도적으로 강한 것은 아니었다.

1대1이야 메라키오가 이기겠지만 세 엘프 중 중 둘만 힘을 합쳐도 메라키오가 패배할 것이다.

'금방 끝낼 수 있겠어.'

강진석은 한결 편해진 표정으로 퀘스트창을 열었다.

* * * *

차가운 뿌리 부족의 대족장 메라키오의 거처.

"아..."

메라키오는 나지막이 탄성을 내뱉었다.

침입자가 나타났다.

누가 침입한 것인지, 얼마나 침입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예상은 됐다.

'조금만 더 버텼으면 됐는데...'

시험을 포기할 수 있는 때가 코앞이었다.

시간이 조금만 더 주어졌다면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 있었을텐데 참으로 아쉬웠다.

메라키오는 이를 악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오른쪽에 설치해 둔 마법진으로 다가갔다.

마법진 앞에 도착한 메라키오는 성물 '델칸의 옥반지'를 끼고 있는 오른손을 뻗었다.

스아앗!

옥반지가 빛났고 이어 마법진이 빛나기 시작했다.

빛나는 마법진을 보며 메라키오는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제188화

188.

'이렇게 된 이상 전력을 다해 죽인다.'

피할 수 없다.

그렇다고 가만히 죽을 생각도 없었다.

'그 녀석들과의 전투에서 힘을 썼을테니.'

그리고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조금 전 검은 숲의 근간이 무너졌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그 말은 검은 숲을 이끄는 세 엘프 역시 죽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세 엘프는 전부 벽을 넘어선 존재였다.

즉, 초월의 씨앗 또한 상태가 정상적이지 않을 것이다.

메라키오는 뒤로 돌아섰다.

그리고 때마침 메타킨을 포함한 수뇌부들이 거처로 들어왔다.

"아버지! 갑자기 수호진을 왜...!"

메타킨은 평소와 달리 인사를 건너뛰고 바로 질문했다.

메라키오는 질책하지 않았다.

메타킨의 반응을 충분히 이해했기 때문이다.

조금 전 메라키오가 발동시킨 마법진은 '델칸의 수호진'으로 대대로 대족장들에게만 전해져 내려오는 최후의 비기였다.

아무런 상의 없이 비기를 발동했는데 놀라는 게 당연했다.

"초월의 씨앗이 침입했다."

메라키오는 메타킨과 그 뒤에 있는 수뇌부들에게 말했다.

"...!"

"...!"

초월의 씨앗 이야기가 나오자 메타킨은 물론 수뇌부들은 전부 경악했다.

메라키오는 경악한 이들을 바라보며 힐끔 시선을 내려 부족의 성물 '델칸의 옥반지'를 보았다.

'대화로 해결이 되면 좋겠지만...'

지금 상황에서 최선은 대화였다.

그러나 대화로 해결될 가능성은 메라키오가 보기에 높지 않았다.

애초에 대화로 해결될 것이었다면 본부 이동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스윽

메라키오는 다시 시선을 들며 이어 말했다.

"다들 전투를 준비하거라."

* * * *

<메라키오의 비고 탐색>

매봉산 어딘가에는 메라키오의 비고가 숨겨져 있다.

비고의 위치를 찾아 입장하라!

퀘스트 보상 : ???

'입장해야 완료인거네.'

발견만으로는 완료가 되지 않을 것이다.

입장하라는 단어가 있는 것을 보면 창고에 진입해야 완료가 될 것이다.

'성물이 있어야 입장할 수 있으려나?'

차가운 뿌리 부족의 비고가 아니다.

대족장 메라키오의 비고였다.

비고 입장 시 성물 같은 특별한 물품이 필요할 수 있다.

'일단 발견해도 메라키오 잡고 가는 게 좋겠네.'

그렇게 퀘스트를 보고 생각하던 그때.

"...!"

강진석은 눈을 번뜩였다.

영역에 변화가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강진석은 힐끔 고개를 돌려 메시지창을 확인했다.

[델칸의 수호진이 발동됐습니다.]

[모든 고블린의 능력이 대폭 강화됩니다.]

[모든 마법이 약화됩니다.]

[모든 스킬의 쿨타임이 100% 증가합니다.]

[모든 회복 효과가 50% 감소합니다.]

[던전 내 모든 보상이 대폭 강화됩니다.]

[퀘스트 '섬멸 혹은 탈출'이 생성됐습니다.]

그리고 강진석은 영역에 찾아온 변화가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인지 알 수 있었다.

'이야, 효과가...'

강진석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델칸의 수호진의 효과는 어마무시했다.

마법의 위력 약화, 스킬 쿨타임 증가, 회복 효과 감소.

무엇 하나 무시할 수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반대로 고블린들의 능력은 대폭 강화됐다.

얼마나 강화되는지 쓰여 있지 않았다.

그러나 고블린들의 기운을 보면 적게는 50% 많게는 100%까지 강해졌다.

'길드원들이 왔으면 험난했겠는데.'

만약 길드원들이 매봉산을 공략하러 왔다면?

엄청난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그 정도로 수호진의 효과는 강력했다.

물론 강진석에게는 아무런 해당 사항 없다.

육체를 2번 제련했고 영혼을 2번 각성한 강진석에게 수호진은 큰 의미 없었다.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힘이 약화되기는 했다.

그러나 고작 10% 정도로 지금 상태에서도 메라키오를 포함한 모든 고블린을 손쉽게 상대할 자신이 있었다.

강진석은 수호진에 대한 관심을 거뒀다.

그리고 다시 퀘스트 확인을 이어 나갔다.

얼마 뒤 모든 퀘스트를 확인한 강진석은 퀘스트창을 닫았다.

이제 본격적으로 청소를 시작할 차례였다.

'바로 메라키오부터 잡을까? 아니면 차근차근?'

강진석은 고민했다.

현재 매봉산 정상에는 메라키오를 포함한 수뇌부들이 모여 있었다.

수뇌부들을 먼저 처리할지 아니면 차근차근 정리하며 올라갈지 고민이 됐다.

'...그래, 차근차근 정리하면서 가자. 도망치거나 제물 될 수도 있으니까.'

고민 끝에 결정을 내린 강진석은 바로 근처에 있는 고블린들에게 공간이동했다.

그리고 도착과 동시에 아이스 포그를 시전했다.

쩌저적! 쩌저적!

눈송이가 고블린들을 엄습했다.

스아앗! 스아앗!

[정예 전투 고블린을 처치하셨습니다.]

[포인트가 2500 상승합니다.]

.

.

당연하게도 눈송이를 버티는 고블린은 없었고 빛과 함께 사라지며 수많은 메시지가 나타났다.

순식간에 청소를 마친 강진석은 다음 장소로 공간이동했다.

그렇게 강진석은 계속해서 청소를 이어 나갔다.

그리고 70% 정도 청소를 마쳤을 때.

정상에 새로운 영역이 생성됐다.

그리고 영역 때문에 정상에서 대기하고 있던 메라키오를 포함한 수뇌부들의 기운이 가려졌다.

문득 든 생각에 강진석은 미간을 찌푸렸다.

'설마 도망은 아니겠지?'

처음에는 전투 준비를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도망을 치기 위한 준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한 번 본부 이동을 한 상태였다.

한 번 더 도망치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강진석은 고민했다.

계획대로 차근차근 청소하며 갈지 아니면 바로 정상에 갈지.

'...그래, 이정도면 문제 없을테니.'

이제 남은 고블린은 많지 않다.

30% 정도로 도망을 친다고 해도, 제물로 바쳐진다고 해도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는다.

고민을 마친 강진석은 바로 공간이동을 해 정상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새로 만들어진 영역으로 진입했다.

진입과 동시에 강진석은 몸이 살짝 무거워짐을 느꼈다.

'휴.'

그리고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몸이 무거워졌음에도 안도하는 이유.

그 이유는 메라키오를 포함한 수뇌부들이 영역 안에 그대로 있었기 때문이었다.

수뇌부들은 걱정과 달리 도망칠 준비를 하지 않았다.

새로운 영역을 만든 것은 처음 예상대로 전투 때문이었다.

강진석은 메시지를 확인했다.

[차가운 뿌리 부족 대족장 메라키오를 마주했습니다.]

[차가운 뿌리 부족 후계자 메타킨을 마주했습니다.]

.

.

메시지를 통해 강진석은 고블린들의 정체를 대략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확인을 마친 강진석은 다시 메라키오를 보았다.

메라키오는 경계심이 가득한 얼굴로 강진석을 노려보고 있었다.

주변에 있는 다른 고블린들 역시 두려움 가득한 얼굴로 강진석을 경계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메라키오가 입을 열었다.

어차피 괴성일 것이기에 강진석은 신경 쓰지 않고 혼돈의 구에 기운을 주입했다.

-!@$@(초월의 씨앗이여!)

그러나 이어진 상황에 강진석은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 괴성이었다.

이해할 수 없어야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해가 됐다.

-@$!@$%(대체 우리에게 왜 이러는 것인가!)

강진석은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메라키오를 보았다.

-...

메라키오는 강진석의 시선에 흠칫하더니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강진석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러나 강진석은 메라키오의 반응을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어떻게...'

지금 상황이 당황스러워도 너무나 당황스러웠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상황인 것일까?

어찌 이해가 되는 것일까?

4차 제약 침공자라서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앞서 검은 숲에서 죽인 세 하이엘프들도 전부 4차 제약 침공자였다.

'...찬란한 방패에도 관련 효과는 없고.'

검은 숲 세 하이엘프를 상대할 때와 달라진 것은 찬란한 방패의 강화뿐이었다.

그러나 찬란한 방패에는 지금 상황에 대한 효과가 없었다.

즉, 지금 상황은 순전히 메라키오 때문이다.

'뭐지.'

강진석은 메라키오를 자세히 살폈다.

그리고 이내 눈을 번뜩였다.

신경 쓰이는 물품이 있었다.

강진석은 메라키오에게 물었다.

"...내 말이 이해가 가나?"

-!@$(이해가 간다.)

"어떻게 이해하는 거지?"

메라키오는 잠시 머뭇거렸다.

말 그대로 잠시였다.

이내 메라키오가 손을 들었다.

-!%!%(부족 성물의 힘이다. 지정 대상과 대화를 나눌 수 있게 해주지.)

메라키오의 말에 강진석은 메라키오의 손가락에 끼어져 있는 옥반지를 보았다.

'역시...'

옥반지에 담긴 기운이 워낙 강력해 성물이 아닐까 싶었다.

예상대로 성물이었고 지금 이 상황은 성물의 힘이었다.

'...저것만 있으면.'

강진석은 욕심이 났다.

옥반지만 있다면 다른 이들과도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뜻이기에.

강진석이 말이 없자 메라키오가 눈치를 살피다가 입을 열었다.

-!@$(이대로 돌아가 준다면...)

-!@%!@%(10일 뒤, 시험을 포기하고 우리 세계로 귀환하겠다.)

"...!"

강진석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시험을 포기할 수가 있어?'

당연히 끝장을 봐야 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메라키오의 말에 따르면 시험을 포기하는 게 가능했다.

강진석이 말이 없자 메라키오가 이어 말했다.

-!@#(만약 돌아가지 않는다면...)

-!@%(우리 역시 목숨을 걸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때였다.

"...!"

강진석은 눈을 번뜩였다.

메라키오 때문이 아니다.

강진석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하늘을 본 것은 강진석뿐만이 아니다.

메라키오와 다른 고블린들 역시 하늘을 보았다.

'먹구름?'

하늘에 작은 먹구름이 나타났다.

문제는 먹구름에서 느껴지는 기운이었다.

'위험해.'

강진석의 입장에서도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강력한 기운이 느껴졌다.

'갑자기 왜 생긴거지?'

문제는 먹구름이 왜 생겨났냐는 점이었다.

'메라키오가 만든 건 아닌 것 같은데.'

먹구름이 위치한 곳은 메라키오의 바로 위였다.

그래서 처음에는 메라키오가 만들어낸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메라키오의 반응을 보니 아니었다.

메라키오 역시 무척이나 당황하고 있었다.

자신이 만든 것이라면 어찌 저리 당황하겠는가?

그리고 애초에 메라키오가 만들었다고 하기에는 먹구름의 기운이 강력해도 너무 강력했다.

'일단...'

강진석은 스킬창을 열었다.

그리고 특별 스킬창으로 넘어가 스킬 하나를 습득했다.

[스킬 '전기의 이해'를 습득하셨습니다.]

[스킬 퀘스트 '전기의 이해'가 생성됐습니다.]

바로 스킬 '전기의 이해'였다.

어째서인지 먹구름을 본 순간 전기의 이해를 습득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습득을 마친 그 순간.

구구궁...

먹구름의 기운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스파크가 튀기 시작했다.

벼락이 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쩌저적!

그리고 예상대로 먹구름에서 벼락이 쳤다.

벼락이 향한 대상은 아래에 있던 메라키오였다.

벼락의 속도는 매우 빨랐다.

강진석도 반응하기 힘든 속도였다.

당연히 메라키오는 반응하지 못했다.

벼락이 메라키오를 관통했고.

[차가운 뿌리 부족의 대족장 메라키오가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

.

그렇게 메라키오가 죽음을 맞이했다.

"..."

강진석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멍하니 메라키오의 시체를 바라볼 뿐이었다.

제189화

189.

'...왜?'

강진석은 지금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먹구름을 '누가' 만든 것인지, '왜' 만든 것인지, '어째서' 메라키오를 죽인 것인지 모든 게 다 이해가지 않았다.

강진석은 혹시 메시지창에 그 이유가 있지 않을까 메시지창을 확인했다.

그리고 예상대로 메시지창에 이유가 있었다.

[침공자 규율을 어긴 메라키오에게 천벌이 내립니다.]

[메라키오가 어긴 규율이 주변 고위 침공자들에게 공개됩니다.]

메시지를 통해 강진석은 여러 가지를 알 수 있었다.

먹구름을 만든 것은 '시스템'이었다.

그리고 시스템이 먹구름을 만든 이유는 메라키오에게 '천벌'을 내리기 위해서였다.

천벌을 내리려 한 이유는 메라키오가 '규율'을 어겼기 때문이었다.

'...무슨 규율을 어겼다는 거지?'

강진석은 고개를 갸웃했다.

정확히 어떤 규율을 어겼다는 것인지 쓰여 있지 않았다.

강진석은 곰곰이 조금 전 상황을 떠올렸다.

'으음...'

그리고 속으로 침음을 내뱉었다.

아무리 봐도 별로 한 게 없다.

공격을 주고받은 것도 아니고 대화만 했을 뿐이다.

'...설마 시험을 포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서?'

메라키오는 시험을 포기할 수 있다는 '정보'를 제공했다.

혹시 침공자들에게는 정보를 제공하면 안 되는 규율이 있는 게 아닐까?

'아니면 대화 때문에?'

정보 제공 때문이 아닐 수 있다.

그냥 대화 그 자체가 문제가 된 것일 수 있다.

생각에 잠겨 있던 그때 고블린들이 슬금슬금 물러나기 시작했다.

강진석은 생각을 멈췄다.

'근처에 있는 녀석들이랑 대화 나눠보면 알 수 있겠지.'

주변 고위 침공자들에게는 메라키오가 어긴 규율이 무엇인지 공개됐다.

메라키오의 옥반지를 이용하면 그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

강진석은 아이스 포그를 시전했다.

그리고 도망치는 고블린들에게 눈송이를 날리며 메라키오의 시체 앞으로 향했다.

메라키오가 남긴 아티펙트를 수거하기 위해서였다.

강진석이 가장 먼저 획득한 것은 차가운 뿌리 부족의 성물인 옥반지였다.

옥반지를 집자마자 머릿속에 수많은 정보가 떠올랐다.

당연히 전부 옥반지에 대한 정보였다.

옥반지에 내장된 스킬은 총 9개였다.

그중 액티브 스킬은 무려 5개였다.

첫번째는 '델칸의 의지 번역'이었다.

메라키오가 사용했던, 언어가 달라도 대화를 할 수 있게 해주는 스킬이었다.

두번째는 '델칸의 급속 생장'이라는 식물의 성장을 가속 시키는 스킬이었고 세번째는 '델칸의 식물 폭발'이었다.

말 그대로 식물을 폭발시키는 스킬이었다.

네번째는 '델칸의 늪지대'였다.

일정 지대의 환경을 '늪지대'로 변화시키는 스킬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다섯번째 스킬은 '델칸의 아이스 골렘'이었다.

스킬 확인을 마친 강진석은 흡족한 표정으로 바로 옥반지를 착용했다.

그리고 마저 메라키오가 남긴 아티펙트를 수거하기 시작했다.

'호오.'

아티펙트 수거 중 강진석은 감탄을 내뱉었다.

옥반지와 비슷한 기운을 품고 있는 단검 아티펙트가 있었다.

그래서 혹시 성물이 아닐까 싶었다.

그런데 진짜 성물이었다.

'얼음 스킬들이 많네.'

단검에는 델칸의 아이스 스피어, 델칸의 아이스 볼, 델칸의 아이스 커터 등 얼음 스킬이 6가지나 내장되어 있었다.

'얼마나 강할까?'

파괴력이 궁금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다.

여러 공격 스킬을 얻었다는 것에 흥분하지는 않았다.

'쓸 일이 있으려나.'

얼마나 강한지는 모르겠지만 사용할 상황이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내 모든 아티펙트 수거를 마친 강진석은 고개를 들었다.

도망치던 고블린들은 전부 눈송이에 죽음을 맞이한 상태였다.

시체는 팔찌에 흡수되어 사라졌고 남은 것은 아티펙트 뿐이었다.

강진석은 기운을 방출해 모든 아티펙트를 집어 앞으로 가져왔다.

'확인은 나중에 하자.'

당장 확인하기에는 개수가 많기도 했고 아직 처리해야 할 일이 있었다.

강진석은 스킬 '비고 입구 소환'을 시전했다.

스앗!

시전과 동시에 거대한 나무 문이 나타났고 강진석은 문을 열어 모아둔 아티펙트를 전부 안에 집어넣었다.

그렇게 전리품까지 전부 챙긴 강진석은 퀘스트창을 열었다.

<전기의 이해>

조건을 충족하라!

[전기 인지 : 100%]

[하급 뇌전석 : 0 / 10]

.

.

퀘스트 보상 : 스킬 '전기의 이해' 1레벨 활성화

'이래서였나.'

먹구름을 본 순간 스킬 '전기의 이해'를 습득해야겠다는 느낌이 들었었다.

왜 그런 느낌이 든 것일까 싶었는데 이제야 이해됐다.

'바로 완료 가능하겠네.'

필요 재료를 보니 이미 창고에 대부분 있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없는 것도 상점창에서 판매하고 있었다.

즉, 바로 완료가 가능했다.

강진석은 퀘스트창을 닫았다.

'빨리 마무리하자.'

수뇌부는 전부 죽었다.

그러나 여전히 매봉산에는 많은 고블린과 퀘스트가 남아 있었다.

그리고 몇몇 고블린들은 메라키오의 죽음을 인지했는지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머지않아 도망칠 것 같았다.

강진석은 바로 공간이동을 해 갈팡질팡하는 고블린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아이스 포그를 시전했다.

시전과 동시에 무수히 많은 눈송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렇게 다시 청소가 시작됐다.

* * * *

계양산 정상.

전쟁 바람 부족의 대족장 올라쿤의 거처.

"..."

올라쿤은 멍한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게 대체...'

조금 전 시험을 주관하는 법칙에게서 '경고'가 내려왔다.

경고에는 메라키오가 규율을 어겨 천벌을 내렸다는 충격적인 이야기와 앞으로 규율을 어기지 않게 조심하라는 위협이 담겨 있었다.

'메라키오가 목숨을 구걸했다니...'

메라키오가 어긴 규율은 '목숨 구걸'이었다.

정확히는 '초월의 씨앗'에게 목숨을 구걸했기 때문이었다.

'근데 얼마나 강하기에 목숨을 구걸한 거지?'

메라키오의 모든 것을 아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올라쿤이 알고 있는 메라키오는 쉬이 목숨을 구걸할 존재가 아니다.

대체 얼마나 강하기에 메라키오가 목숨을 구걸한 것일까?

'...시험을 포기해야 하나?'

현재 올라쿤은 초월의 씨앗이 나타날 때를 대비해 전투를 준비중이었다.

그러나 메라키오가 목숨을 구걸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지금 전투를 준비하는 게 맞는 것일까 의문이 들었다.

막대한 손해를 감수하고 이번 시험을 포기하는 게 맞지 않을까 싶었다.

'10일을 버틸 수 있을까?'

물론 포기하고 싶다고 바로 포기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아무리 빨리도 10일 뒤에나 포기할 수 있다.

1군단과 2군단이 괴멸당한 시점과 메라키오가 죽은 시점을 생각하면 당장 내일 초월의 씨앗이 나타나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즉, 10일을 버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바로 그때였다.

올라쿤은 고개를 들어 입구를 보았다.

그리고 올라켄과 마르브가 들어왔다.

두 오크의 표정은 무척이나 어두웠다.

올라쿤은 두 오크의 표정이 어두운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법칙의 경고 때문이 분명했다.

"앉거라."

올라쿤의 말에 올라켄과 마르브는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두 오크가 앉자마자 올라쿤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잡을 수 있겠나?"

"..."

"..."

전과 달리 두 오크는 올라쿤의 물음에 바로 답하지 않았다.

이미 이런 반응을 예상하고 있던 올라쿤은 재촉하지 않고 잠시 기다렸다.

그리고 이내 마르브가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메라키오가 목숨을 구걸할 정도라면 저희 예상보다 더 강하긴 하겠으나 그렇다고 죽이지 못할 정도는 아닐 것 같습니다. 문제는..."

말끝을 흐린 마르브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이어 말했다.

"초월의 씨앗이 끝을 보지 않고 치고 빠지는 방식을 선택한다면 지금 준비로는 부족할 것 같습니다."

"...결국 못 잡는다는 뜻이군."

초월의 씨앗을 직접 본 것은 아니다.

그러나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초월의 씨앗은 멍청하지 않다.

호전적이지도 않다.

끝까지 싸우지 않을 것이다.

즉, 패배할 확률이 100%라고 봐야 했다.

"만약 죽이는 게 아니라 버티는 것이라면 10일 가능하겠나?"

"...형님, 설마 시험을 포기할 생각이십니까?"

잠자코 이야기를 듣고 있던 올라켄이 놀란 얼굴로 반문했다.

놀란 것은 올라켄뿐만이 아니다.

마르브 역시 놀란 얼굴로 올라쿤을 보았다.

두 오크의 시선에 올라쿤은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이어 말했다.

"시간이 더 주어진다고 죽일 수 있겠느냐?"

"..."

올라켄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 * * *

[스킬 퀘스트 '전기의 이해'를 완료하셨습니다.]

[스킬 '전기의 이해'가 활성화됩니다.]

[전기와 관련된 모든 효과가 100% 증가합니다.]

퀘스트 '전기의 이해'를 완료함과 동시에 머릿속에 정보가 떠올랐다.

예상했던 상황이었기에 강진석은 놀라지 않고 정보를 정리했다.

이내 정보 정리를 마친 강진석은 스킬창을 열었다.

[스킬 '전기의 이해'의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스킬 퀘스트 '전기의 이해'가 생성됐습니다.]

그리고 스킬 '전기의 이해' 2레벨을 습득 후 인벤토리에서 돌멩이 하나를 꺼냈다.

당연히 평범한 돌멩이는 아니었다.

지지직!

돌멩이의 명칭은 '상급 뇌전석'으로 주기적으로 전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강진석은 뇌전석에서 발생하는 전기를 지켜보다가 퀘스트창을 열었다.

그리고 퀘스트 '전기의 이해'를 확인했다.

<전기의 이해>

조건을 충족하라!

[전기 인지 : 1%]

[중급 뇌전석 : 20 / 20]

.

.

퀘스트 보상 : 스킬 '전기의 이해' 2레벨 활성화

뇌전석의 전기 덕분에 전기 인지가 0%가 아닌 1%가 되어 있었다.

'...오르는 게 맞는데.'

강진석은 미간을 찌푸렸다.

'시간이나 공간은 왜 안 오르는 거지?'

조금 전 시간 인지와 공간 인지를 올리기 위해 강진석은 시간, 공간과 관련된 물품들을 주시했다.

그러나 전기 인지와 달리 시간 인지나 공간 인지는 상승하지 않았다.

'너무 적게 봤나?'

어째서 오르지 않은 것일까 생각하며 강진석은 퀘스트창을 닫았다.

그리고 바로 그때였다.

우웅!

한지윤에게 전화가 왔고 강진석은 바로 전화를 받았다.

"네, 지윤씨."

-매봉산 정리 완료했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아닙니다!

-근데 바로 가실 생각이신가요?

"네, 바로 출발할 생각입니다. 혹시 무슨 문제가 있을까요?"

이제 강진석은 계양산에 갈 예정이었다.

계양산에 가려는 이유는 전쟁 바람 부족의 본부가 위치해있기 때문이었다.

-아니요! 전혀 문제없습니다!

-뒷정리 준비 때문에 미리 여쭤봤습니다!

"아하, 네. 그럼 정리 끝나는대로 연락 드릴게요."

-네!

한지윤의 답을 듣고 강진석은 통화를 마쳤다.

그리고 연달아 공간이동을 해 계양산으로 이동했다.

[던전 '계양산'에 입장하셨습니다.]

[48시간 동안 모든 입구가 봉쇄됩니다.]

[던전 클리어 시 봉쇄가 해제됩니다.]

[퀘스트 '대제단 파괴'가 생성됐습니다.]

[퀘스트 '대족장 올라쿤'이 생성됐습니다.]

.

.

그리고 영역에 진입과 동시에 수많은 메시지가 나타났다.

강진석은 메시지를 훑으며 초감각으로 계양산을 탐색했다.

'호오? 셋이나?'

탐색하자마자 강진석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4차 제약 침공자가 셋이나 있었다.

물론 걱정되지는 않았다.

검은 숲 세 하이엘프들과 수준이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거기다 구성도 육체 제련 둘, 영혼 각성 하나로 같았다.

스윽

강진석은 시선을 힐끔 내려 옥반지를 보았다.

'대화가 잘 통했으면 좋겠는데.'

제190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