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0화
190.
마주하자마자 죽일 생각은 없었다.
우선 대화를 해볼 생각이었다.
대화의 목적은 2가지였다.
첫번째는 메라키오가 죽게 된 '규율'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두번째는 침공자들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이었다.
강진석은 부디 즐거운 대화가 되길 바라며 탐색에 집중했다.
그리고 얼마 뒤 탐색이 끝났고 강진석은 새로운 고민에 잠겼다.
'천천히 정리하면서 갈까? 아니면 바로?'
매봉산 때처럼 천천히 정리하면서 올라갈지 아니면 바로 4차 제약 침공자들이 모여 있는 정상에 갈지 고민이 됐다.
바로 그때였다.
오크들이 일사불란하게 전열을 갖추기 시작했다.
강진석은 활짝 웃었다.
'도망은 안 치겠네.'
만약 도망을 칠 생각이었다면 이렇게 전열을 갖추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 마음 편히 대화부터 하면 되겠어.'
강진석은 바로 공간이동을 통해 정상으로 이동했다.
[전쟁 바람 부족 대족장 올라쿤을 마주했습니다.]
[전쟁 바람 부족 대전사장 올라켄을 마주했습니다.]
[전쟁 바람 부족 대제사장 마르브를 마주했습니다.]
도착과 동시에 강진석은 메시지를 훑으며 기운을 방출해 보호막을 만들었다.
팅! 팅! 팅!
이어 보호막에 초록색 바람 칼날이 작렬하며 사라졌다.
바람 칼날이 사라졌으나 강진석은 보호막을 없애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바람 칼날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바람으로 만들어진 창, 도끼, 몽둥이 등 수많은 무구들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강진석은 무구를 만들어 보내는 오크를 보며 생각했다.
'저녀석이 마르브겠지.'
영혼 각성을 했으며 유일하게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대제사장 마르브가 분명했다.
강진석은 다른 두 오크를 보았다.
'기운이 큰 녀석이 올라쿤이겠지?'
그리고 옥반지에 기운을 주입 후 기운이 가장 강렬한 오크를 향해 스킬 '델칸의 의지 번역'을 시전 후 입을 열었다.
"이야기 좀 하지."
-!@$(...어, 어떻게!)
"올라쿤 맞나?"
-$#^!(맞다.)
올라쿤은 질문에 답하며 손을 들었다.
그러자 마르브가 공격을 멈췄고 날아오던 바람들이 사라졌다.
그렇게 잠시 소강상태가 찾아왔고 올라쿤이 물었다.
-@#!@$(어떻게 한 거지?)
-#%!%@(법칙들이 대화를 금해놨을 텐데, 이번 시험은 다른 건가?)
올라쿤의 말에 강진석은 눈을 번뜩였다.
'법칙이 대화를 금지해놨다?'
법칙은 시스템을 말하는 게 분명하다.
시스템이 대화를 금지해놨다니?
'그러면 메라키오가 죽은 이유는...'
아무래도 대화를 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강진석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만약 대화 때문이라면 이제 머리 위로 먹구름이 생길 것이다.
물론 강진석은 걱정하지 않았다.
메라키오가 어긴 규율은 '침공자' 규율이었다.
즉, 침공자가 아닌 강진석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먹구름이 나타난다면 올라쿤의 머리 위에 나타날 것이다.
'...아닌가?'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먹구름은 나타나지 않았다.
-#%!53(뭘 보는 거지?)
그리고 올라쿤이 물었다.
올라쿤의 목소리에는 의아함이 가득했다.
'아닌가 보네.'
처음에는 대화 때문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먹구름이 생기지 않는 것을 보니 대화가 아닌듯 했다.
'그러고 보니 애초에 대화였다면 올라쿤이 말을 안 했겠구나.'
메라키오가 어긴 규율이 무엇인지 주변 고위 침공자들은 알고 있다.
즉, 대화 때문이라면 애초에 올라쿤이 대화에 응하지 않았을 것이다.
"...메라키오가 어긴 규율이 무엇인지 알고 있나?"
강진석은 직설적으로 올라쿤에게 물었다.
-...
올라쿤은 바로 답하지 않았다.
대신 복잡미묘한 표정으로 강진석을 빤히 바라보았다.
강진석은 올라쿤의 반응에 반응하지 않았다.
올라쿤과 마찬가지로 빤히 올라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내 올라쿤이 입을 열었다.
-!@$!@(목숨을 구걸했기 때문이다.)
"...!"
올라쿤의 답에 강진석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전혀 생각지 못한 답이었기 때문이었다.
'목숨을 구걸했다고?'
강진석은 메라키오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메라키오는 강진석에게 돌아가 달라고 했다.
그러면 10일 뒤 시험을 포기하고 원래 세계로 귀환하겠다고 했다.
'그 상황을 목숨 구걸로 본 건가?'
직접적으로 살려달라고 말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당시 메라키오가 했던 이야기는 목숨 구걸이라 볼 수 있었다.
'그럼 올라쿤은 구걸할 일이 없겠네.'
메라키오는 규율을 몰랐기에 당했다.
그러나 올라쿤은 규율을 알게 됐다.
즉, 메라키오 때처럼 목숨을 구걸하지 않을 것이다.
강진석은 올라쿤에게 물었다.
"혹시 시험을 포기할 생각이 있나?"
-...
올라쿤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답을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올라쿤은 시험을 포기할 생각이 있다.
이대로 돌아가면 올라쿤은 분명 시험을 포기하고 부족원들과 원래 세계로 돌아갈 것이다.
"앞으로 몇 가지 질문을 할 거다."
강진석은 올라쿤에게 말했다.
"질문에 답을 성실히 해준다면 시간을 주지."
말을 마친 강진석은 올라쿤의 반응을 살폈다.
그리고 이어진 상황에 강진석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빌어먹을!)
올라쿤이 욕을 내뱉었다.
그리고 기세가 변했다.
올라쿤 뿐만이아니다.
올라켄, 마르브는 물론 계양산 내 모든 오크의 기세가 변했다.
당장에라도 공격을 시작할 것 같은 흉흉한 기세였다.
'설마...'
강진석은 미간을 찌푸렸다.
'내가 살려주겠다는 것도 안되는 거야?'
상황을 보니 오크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은 분명했다.
그리고 그런 상황이 온 이유는 시간을 주겠다는 말 때문이 분명했다.
바로 그때였다.
마르브가 지팡이를 흔들었고 그와 동시에 다시 바람으로 이루어진 수많은 무구들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물론 이미 한 번 경험해 보기도 했고 위협적이지 않았기에 강진석은 신경쓰지 않았다.
그러나 움직인 것은 마르브뿐만이 아니었다.
올라쿤과 올라켄도 각자의 무기를 들고 달려들었다.
육체 제련을 한 두 오크의 속도는 빨랐다.
거리는 순식간에 좁혀졌고 두 오크는 보호막을 향해 무기를 휘둘렀다.
강진석은 두 오크의 공격을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보호막을 뚫지 못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대화가 불가능한 건가?"
강진석은 올라쿤에게 물었다.
어차피 상황을 보면 전투는 피할 수 없다.
그렇다고 마냥 죽이는 데 집중할 생각은 없었다.
최대한 정보를 얻어낼 생각이었다.
-!@%!@(닥쳐라! 시간 끌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올라쿤이 성난 목소리로 답했다.
강진석은 올라쿤의 답을 통해 한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시간제한이 있나 보네.'
그렇지 않아도 너무 다급히 공격을 하길래 혹시나 했는데 답을 통해 확실해졌다.
시간 끌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을 보면 올라쿤은 일정 시간 내 지금 상황을 해결해야 되는 것이 분명했다.
'다른 이야기는 못 듣겠네.'
더 질문한다고 해도 답을 할 것 같지는 않았다.
강진석은 아쉬운 표정으로 혼돈의 구에 기운을 주입했다.
그리고 마르브의 뒤로 공간이동을 했다.
후웅!
도착과 동시에 강진석은 몽둥이를 휘둘렀다.
육체 제련을 했다고 해도 피하기 힘들 속도였다.
영혼 각성을 한 마르브는 절대 피할 수 없는 속도였고 몽둥이가 작렬하기 직전 마르브의 몸에서 보호막이 튀어나왔다.
물론 보호막은 큰 의미가 없었다.
쾅! 쩌저적!
몽둥이는 단숨에 보호막을 박살냈고 그대로 마르브의 육체에 작렬했다.
쾅!
그렇게 두번째 굉음이 울려퍼졌고 그와 동시에 마르브는 올라쿤, 올라켄 두 오크에게 날아갔다.
물론 마르브는 두 오크에게 도착하지 못했다.
찬란한 방패가 강화되며 공간을 운용할 수 있게 된 강진석은 두 오크와 마르브 사이 공간을 비틀었다.
그그극!
그그극!
비틀어진 공간 때문에 마르브의 속도가 급격히 줄어들었고 강진석은 마르브에게 다가가 재차 몽둥이를 휘둘렀다.
쾅! 쾅! 쾅!
순식간에 세 번의 몽둥이가 작렬했고 마르브의 기운은 대폭 줄어들었다.
그리고 공간의 비틀림 때문에 순간 멈칫했던 올라쿤과 올라켄이 정신을 차리고 강진석에게 달려들었다.
강진석은 올라쿤과 올라켄이 다가오지 못하게 공간을 비틀며 마르브를 타격 하는데 집중했다.
그리고 올라쿤과 올라켄이 비틀어진 공간을 뚫고 도착한 순간.
[전쟁 바람 부족 대제사장 마르브가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포인트가 1억 3000만 상승합니다.]
.
.
마르브가 죽음을 맞이했다.
강진석은 뒤로 돌아섰다.
이제 남은 것은 올라쿤, 올라켄 뿐이었다.
강진석은 싱긋 웃으며 올라쿤, 올라켄에 의해 원래대로 돌아간 공간을 다시 비틀었다.
그리고 퇴로가 막혀 당황한 두 오크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올라쿤이 튀어 나와 도끼를 휘둘렀다.
강진석은 혼돈의 구를 마주 휘두르며 생각했다.
'왜 성물을 휘두르기만 하는 거지?'
올라켄과 달리 올라쿤은 성물을 2개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올라쿤은 마르브가 죽고 퇴로가 막힌 지금 상황에서도 성물을 사용하지 않았다.
'액티브 스킬이 없는 건가? 조건을 충족하지 못해서? 아니면 페널티?'
갖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쾅!
폭음과 함께 올라쿤이 뒤로 날아갔다.
그리고 비틀린 공간에 부딪히고 땅에 떨어졌다.
올라쿤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
그리고 올라켄이 괴성을 내뱉었다.
의지 번역 대상은 올라쿤이었기에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그러나 올라쿤의 반응을 통해 둘의 의견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시간을 주면 안 될 것 같네.'
직감이 말해주고 있었다.
강진석은 빠르게 거리를 좁혔다.
-!@$!@
그리고 올라켄이 괴성을 내뱉으며 뛰쳐 나와 강진석의 앞을 막아섰다.
스아앗!
앞을 막아선 올라켄의 몸이 빛나기 시작했다.
쾅!
빛나는 올라켄의 몸에 몽둥이가 작렬했다.
그 순간 강진석은 깨달았다.
'오래 걸리겠는데.'
올라켄의 육체가 매우 단단해졌다.
반대로 방어력이 강해진 만큼 공격력은 약해졌다.
그래서 의문이었다.
'역으로 시간을 끈다고?'
한시라도 빨리 이 상황을 마무리 지으려 했던 올라켄이다.
그런데 이제와서 갑자기 시간을 끈다?
스윽
강진석은 올라쿤을 보았다.
눈이 마주친 올라쿤은 움찔했고 강진석은 확신했다.
올라켄이 시간을 끄는 이유는 올라쿤과 관련이 있는 게 확실했다.
바로 그때였다.
올라쿤이 도끼를 하늘로 뻗었다.
'제대로 쓰려는 건가.'
도끼는 평범한 아티펙트가 아니다.
기운을 보면 전쟁 바람 부족의 성물이 분명했다.
그리고 지금 도끼를 하늘로 뻗었다는 것은 성물을 제대로 사용하려는 것이 분명했다.
올라켄을 상대할 때가 아니었다.
강진석은 올라쿤의 앞으로 공간이동을 했다.
정확히는 하려 했다.
그그극!
그러나 올라쿤의 주변 공간이 일그러졌고 강진석은 공간이동을 할 수 없었다.
강진석은 찬란한 방패를 통해 일그러진 공간을 복원하며 올라켄을 지나 올라쿤에게 달렸다.
저벅!
하지만 이어진 상황에 강진석은 이동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스아앗!
도끼에 붉은 빛이 서렸다.
그와 동시에 뒤쪽에 있던 올라켄의 기운이 급속도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올라켄뿐만이 아니다.
계양산 내 3차 제약 이상 오크들의 기운도 줄어들었다.
그리고 그만큼 올라쿤의 기운이 강해지며 메시지가 나타났다.
[전쟁 바람 부족의 부족 비술 '희생의 제'가 발동됐습니다.]
[30분 동안 전쟁 바람 부족 대족장 올라쿤의 모든 능력치가 300% 증가합니다.]
제191화
191.
'이거였구나?'
메시지를 통해 상황 파악을 마친 강진석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30%도 아니고 무려 300%다.
그것도 한 가지 능력치만 강화된 게 아니라 모든 능력치가 강화됐다.
물론 그렇다고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강해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위협이 될 수 있는 수준이 된 것은 확실했다.
'...나갔다 올까?'
영구 강화가 아니다.
지속 시간은 30분이었다.
30분 내 잡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즉, 잠시 피한다고 해도 아무 문제 없었다.
'그래.'
강진석은 고민 끝에 잠시 피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전과 달리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고 있는 올라쿤을 보며 싱긋 웃고는 공간이동을 통해 계양산을 벗어났다.
[던전 '계양산'을 탈출하셨습니다.]
[퀘스트 '대제단 파괴'가 삭제됐습니다.]
.
.
영역을 빠져나오자마자 던전 퀘스트가 우수수 삭제됐다.
그러나 강진석은 메시지창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영역에 온 관심을 집중했다.
혹시나 올라쿤이 뒤따라 영역 밖으로 나올 수 있기 때문이었다.
만약 따라 나온다면?
피해서는 안 된다.
어쩔 수 없이 처리해야 한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3분 뒤 강진석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못 나오나 보네.'
만약 나올 수 있었다면 진즉 나왔을 것이다.
'이러면...'
강진석은 주변을 탐색했다.
강화 시간이 끝날 때까지 가만히 있을 이유도, 생각도 없었다.
탐색을 마친 강진석은 가장 가까이 있는 영역으로 공간이동을 했다.
* * * *
"..."
올라쿤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발생했다.
'...도망을 쳐?'
초월의 씨앗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영역 내 다른 곳으로 간 게 아니다.
그 어디에서도 기운이 감지되지 않았다.
즉, 영역 밖으로 나간 것이 분명했다.
"이런 개자식이..."
올라쿤은 이를 악물었다.
성물을 통해 희생의 제를 발동했다.
희생의 제는 영역 내 고위 간부들의 힘을 제물로 바쳐 힘을 얻는 비술이었다.
비술의 지속 시간은 30분으로 길지 않았다.
그래서 전력을 다해 시간 내 죽일 생각이었다.
그런데 도망을 치다니?
올라쿤은 허공을 향해 도끼를 휘둘렀다.
스앗!
그러자 도끼에 서려 있던 붉은 빛이 방출되었다.
기기긱!
붉은 빛이 지나간 공간은 한 곳도 빠짐없이 '전부' 일그러졌다.
그리고 얼마 뒤 붉은 빛이 사라졌고 일그러진 공간도 시간이 지나며 천천히 복구되기 시작했다.
"후우..."
복구되는 공간을 보며 올라쿤은 깊게 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희생의 제 때문에 쇠약해진 올라켄이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다가와 물었다.
"혀, 형님.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영역 밖으로 도망쳤다."
"..."
올라켄은 충격을 먹은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올라쿤이 이어 말했다.
"일단 쉬거라."
비술 '희생의 제' 때문에 올라켄의 힘은 50% 정도 약화된 상태였다.
한시라도 빨리 휴식을 취해야 했다.
"...알겠습니다."
올라켄의 답을 듣고 올라쿤은 거처로 향하며 상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일단 저주는 해제됐다.'
초월의 씨앗이 시간을 주겠다고 한 순간 법칙이 죽음의 저주를 내렸다.
저주 해제 방법은 6시간 내 초월의 씨앗을 죽이는 것이었다.
그래서 처음 초월의 씨앗이 도망쳤을 때 당황했었다.
그러나 도망이 죽음으로 인정된 것인지 저주가 해제됐다.
물론 저주가 해제됐다고 아무런 피해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일단 대제사장 마르브가 초월의 씨앗에게 죽었다.
부족 내 유일한 영혼 각성자인 마르브는 하는 일이 매우 많았다.
올라쿤이나 올라켄이 대신 할 수 없는 일들도 상당했다.
즉, 부족 운용에 큰 차질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두번째로 비술 '희생의 제' 때문에 올라쿤을 제외한 모든 고위 간부들의 힘이 약화됐다.
지금 상황에서 만약 오르드 부족이나 근처 다른 부족들이 쳐들어온다면?
'잠깐.'
문득 든 생각에 올라쿤은 인상을 구겼다.
'녀석이 다시 나타나면...'
초월의 씨앗은 도망갔다.
그러나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고 도망갔다.
즉, 온전한 상태라 할 수 있었다.
만약 비술의 지속 시간이 끝나고 초월의 씨앗이 다시 쳐들어온다면?
가능성 낮은 이야기가 아니다.
올라쿤이 보기에 가능성이 매우 높은 이야기였다.
'...아니겠지. 아닐거야.'
올라쿤은 거칠게 고개를 휙휙 저었다.
그러나 아니라 생각해도 불안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하지?'
결국 올라쿤은 다시 초월의 씨앗이 나타나면 어떻게 해야할까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타개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비술의 지속 시간이 끝난 뒤 초월의 씨앗이 나타나면 끝이다.
바로 그때.
"...!"
생각에 잠겨 있던 올라쿤은 멈칫했다가 인상을 구겼다.
계양역에 설치한 '제단'이 파괴됐다.
'망할 녀석이...'
어떻게 된 것인지 오래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초월의 씨앗의 짓이 분명했다.
문제는 초월의 씨앗의 짓인걸 알아도 대처할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
얼마 뒤 올라쿤의 표정이 한층 더 어두워졌다.
귤현역 제단이 파괴됐기 때문이었다.
'...올 것 같은데.'
계양역과 귤현역 제단을 파괴하는 것으로 초월의 씨앗이 돌아갈까?
아니, 멈추지 않을 것이다.
비술이 끝나는 순간 초월의 씨앗이 본부에 올 것 같았다.
이내 시간이 흘러 비술 '희생의 제'가 끝났다.
올라쿤은 긴장한 채 영역에 집중했다.
그리고 간절히 바랐다.
부디 자신의 생각이 틀렸기를.
초월의 씨앗이 나타나지 않기를.
'...잘못 생각했나?'
바람이 이루어진 것일까?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초월의 씨앗은 나타나지 않았다.
"후..."
올라쿤은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바로 그때였다.
"...!"
올라쿤은 움찔했다.
한숨을 내뱉자마자 영역에 침입자가 나타났다.
'이런 개 같은...'
순간 분노가 치밀었다.
그러나 분노는 아주 잠깐이었다.
뒤이어 허탈함이 가득 치솟았다.
"하아..."
올라쿤은 나지막이 한숨을 내뱉었다.
* * * *
[던전 '계양산'에 입장하셨습니다.]
[48시간 동안 모든 입구가 봉쇄됩니다.]
[던전 클리어 시 봉쇄가 해제됩니다.]
[퀘스트 '대제단 파괴'가 생성됐습니다.]
[퀘스트 '대족장 올라쿤'이 생성됐습니다.]
.
.
입장과 동시에 익숙한 메시지가 주르륵 나타났다.
물론 전에 입장했을 때와 완전히 같지는 않았다.
이전에 마르브를 죽였다.
마르브가 죽었기 때문일까?
몇몇 퀘스트명에 변화가 생겼다.
퀘스트명이 달라졌으니 퀘스트 내용도 달라졌을 확률이 높았다.
강진석은 퀘스트창을 열었다.
그리고 퀘스트를 확인하며 초감각으로 계양산 전역을 탐색했다.
당연하게도 탐색이 먼저 끝났고 강진석은 싱긋 웃었다.
'쉽게 끝낼 수 있겠어.'
이제 남은 4차 제약 침공자는 올라쿤, 올라켄 둘 뿐이었다.
비술 지속 시간이 끝나 올라쿤의 기운은 원래대로 돌아왔고 올라켄의 기운은 대폭 약화됐다.
올라켄뿐만이 아니다.
계양산 내 모든 3차 제약 침공자들의 기운도 적게는 20% 많게는 60% 약화된 상태였다.
상태를 보니 손쉽게 마무리 지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내 퀘스트까지 확인을 마친 강진석은 바로 정상으로 공간이동했다.
그리고 올라쿤의 거처를 바라보았다.
곧 거처에서 올라쿤이 걸어나왔다.
올라쿤의 표정은 초연했다.
모든 것을 내려놓은 것 같았다.
강진석은 의지 번역을 시전 후 물었다.
"지금은 대화할 생각이 있나?"
-!@$!@%(무슨 대화를 말하는 거지? 아까 했던 질문을 말하는 건가?)
-@%@%(대체 무엇이 궁금하기에 이렇게 우리를 농락하는 건가, 초월의 씨앗이여.)
-!@$!(말해보거라, 그 빌어먹을 질문이 무엇인지.)
강진석은 올라쿤의 반응에 눈을 번뜩였다.
올라쿤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깃들어 있었다.
그러나 전처럼 달려들지는 않았다.
전처럼 다짜고짜 달려들 확률이 높다고 생각했는데 반응을 보니 대화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시간을 주겠다고 한 것도 문제가 됐나?"
답을 듣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당시 반응을 보면 분명 문제가 됐을 것이다.
그럼에도 질문을 한 이유는 확실히 하기 위해서 그리고 어떤 문제인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래, 저주가 내려왔었다. 죽이지 않으면 죽는.)
올라쿤의 말에 강진석은 은은히 미소를 지었다.
'...좋은데?'
강진석이 한 것이라고는 시간을 주겠다는 '말'뿐이었다.
그런데 그 말 때문에 저주를 받다니?
물론 저주를 받은 몬스터는 전력을 다할 것이다.
강진석을 죽이지 않으면 본인이 죽기에.
즉, 난도가 올라간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달리 생각하면 저주를 받는 순간 도망치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궁금한 게 고작 이딴 거였나?)
생각에 잠겨 있던 강진석은 올라쿤의 말에 바로 두번째 질문을 했다.
"아니, 한 가지 더. 시험의 목적을 알고 있나?"
절대적 존재들이 '시험'을 벌인 이유.
강진석은 그 이유를 '유희'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많은 것을 경험한 지금은 '유희'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월의 씨앗이 시험의 이유를 모른다고?)
올라쿤은 어처구니없는 표정과 목소리로 반문했다.
그리고 잠시 침묵하다가 이어 말했다.
-!@$@(초월자를 찾아내기 위해서다.)
"...초월자?"
생각지도 못한 이유에 강진석은 반문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무엇을 초월하든 초월자를 찾는 게 이 시험의 목적이지.)
이어진 올라쿤의 말에 강진석의 의문은 한층 더 짙어졌다.
'무언가를 초월하는 게 초월자라고? 초월의 씨앗이랑 관련 있는 게 아니었나?'
처음에는 초월의 씨앗과 관련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초월의 씨앗이 된 후 무언가를 더 하면 초월자가 되는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크게 관련 없는 것 같았다.
'그 스킬이랑 관련 있는 건가?'
문득 강진석의 머릿속에 패시브 스킬 '초월'이 떠올랐다.
혹시 스킬 '초월'을 습득하면 초월자가 되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렇게 초월에 대한 생각에 잠겨 있던 그때.
-!@$!(나도 질문 하나 해도 되나?)
올라쿤이 물었다.
강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올라쿤이 입을 열었다.
-!@!@%(그대가 걷는 길은 공간인가? 아니면 물리인가?)
"...?"
강진석은 올라쿤의 질문에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올라쿤이 말한 걷는 길은 '진로'를 말하는 게 분명했다.
그런데 공간이라니?
물리라니?
'설마...'
문득 든 생각에 강진석은 눈을 번뜩였다.
'초월이라는 게 이런 개념들을 초월하는 건가?'
직전까지 초월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초월자는 '무언가'를 초월해야 한다.
그 무언가가 혹시 '공간', '물리' 같은 것들이 아닐까 싶었다.
'특별 스킬창!'
그리고 이어 머릿속에 특별 스킬창이 떠올랐다.
특별 스킬창에 있는 수많은 이해, 운용, 지배 스킬들.
초월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 같았다.
아니, 확실히 관련있다.
'그럼 지배까지 전부 습득해야 초월자가 되는건가...?'
제192화
192.
강진석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운용은 1레벨 부터 습득에 1억 포인트가 필요하다.
그리고 지배는 1레벨 부터 3억 포인트가 필요하다.
즉, 지배 스킬 최대 레벨을 달성해야 초월자가 되는 것이라면 쉽지 않을 것이다.
'꼭 초월자가 될 필요는 없지만...'
물론 꼭 초월자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강진석의 목표는 초월자가 되는 게 아니라 시험을 끝내는 것이다.
그리고 시험을 끝내는 조건은 초월자 탄생이 아닌 모든 영역 상징 파괴였다.
"초월자가 나타나면 시험은 바로 끝나나?"
올라쿤의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시험의 목적은 초월자의 탄생이다.
초월자가 탄생하면 영역 상징이 파괴되지 않아도 시험이 종료되는 것인지 궁금했다.
바로 그때였다.
"...!"
강진석은 놀란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하늘에 먹구름이 나타났다.
메라키오를 죽음으로 인도했던 먹구름이었다.
올라쿤은 목숨을 구걸하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왜 먹구름이 나타난 것일까?
굳이 오래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정보 제공 때문이 분명했다.
'...뭔가 이상한데?'
먹구름을 보던 강진석은 고개를 갸웃했다.
분명 먹구름에 담긴 기운은 강력했다.
그런데 전과 달리 기운이 안정적이었다.
벼락이 떨어질 것 같지 않았다.
'...경고인가?'
시간이 좀 흘렀음에도 벼락이 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더 이상 이야기하지 말라는 경고가 아닐까 싶었다.
-!@%!@%(대화는 여기까지군.)
바로 그때 먹구름을 응시하던 올라쿤이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리고 기운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올라쿤의 반응에 강진석은 자신의 생각이 맞았음을 알 수 있었다.
먹구름은 경고다.
더 이상 대화하지 말고 싸우라는.
이제부터 올라쿤은 전력을 다해 덤벼들 것이다.
-@$!@(그대가 어떤 길을 걷는지는 모르겠지만...)
-#^@^#(쉽게 죽지는 않을 것이다.)
타앗!
올라쿤이 강진석에게 달려 들었다.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졌고 올라쿤은 도끼를 휘둘렀다.
그리고 강진석은 마주 몽둥이를 휘둘렀다.
분명 뒤늦게 공격한 것은 강진석이었다.
그러나 먼저 목적지에 도착한 것은 도끼가 아닌 몽둥이었다.
쾅!
몽둥이가 올라쿤의 머리에 작렬했고.
쩌적!
올라쿤은 그대로 땅에 처박혔다.
쾅! 쾅! 쾅!
강진석은 쉬지 않고 몽둥이를 휘두르며 생각했다.
'죽이기 전에 도착하겠네.'
또 다른 4차 제약 침공자 올라켄이 올라오고 있었다.
그것도 혼자 올라오는 게 아니라 3차 제약 침공자들과 함께.
올라쿤의 육체는 매우 단단했다.
일방적으로 공격하고 있지만 상태를 보면 올라켄은 올라쿤이 죽기 전 도착할 것이다.
'올라켄을 먼저 처리하는 게 빠르려나?'
강진석은 올라켄이 도착한 뒤 어떻게 하는 게 더 효율적일 지 생각했다.
물론 공격을 멈추지는 않았다.
쾅! 쾅!
그렇게 계속 몽둥이 타작이 이어졌고.
이내 올라켄이 도착했다.
-!@%@!%
올라켄은 도착과 동시에 괴성을 내뱉었다.
-@!%@@!%(도망..치거라!)
그리고 올라쿤이 외쳤다.
올라쿤의 외침에 올라켄은 물론 함께 온 3차 제약 침공자들이 멈칫했다.
그리고 저마다 기운을 끌어 올리며 무기를 꺼내 들기 시작했다.
-!@%!@%(이런..멍청한..)
절망이 가득한 올라쿤의 목소리를 들으며 강진석은 몽둥이 타작을 멈췄다.
그리고 몽둥이를 은장도로 변환 후 바로 아이스 포그를 시전했다.
수많은 눈송이가 허공에 나타났다.
당장에라도 달려들 것처럼 무기를 꺼내든 올라켄과 3차 제약 오크들은 눈송이를 보고 움직임을 멈췄다.
물론 움직임을 멈춘 것이 큰 의미가 있지는 않았다.
강진석은 눈송이를 움직였고.
쩌저적! 쩌적!
눈송이를 마주한 오크들은 전부 얼어 붙었다.
스아앗! 스아앗!
[전쟁 바람 부족 1수비단장 케리로니가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포인트가 300만 상승합니다.]
[퀘스트 '수비단장 케리로니'를 완료하셨습니다.]
[기여도에 따라 보상이 차등 지급됩니다.]
.
.
그리고 이어 얼어붙은 오크들은 빛과 함께 사라졌고 사망 메시지가 나타났다.
물론 모든 오크가 죽은 것은 아니었다.
4차 제약 침공자인 올라켄은 죽지 않았다.
얼음 속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었다.
바로 그때 올라쿤이 도끼를 휘두르며 외쳤다.
-!@%!(안 된다!)
무엇이 안 된다는 것인지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올라켄을 말하는 것이 분명했다.
강진석은 방패를 들었다.
쾅!
도끼가 작렬했고 강진석은 도끼의 힘을 이용해 그대로 올라켄에게 날아갔다.
그리고 날아가며 은장도를 다시 몽둥이로 변환했다.
후웅!
그렇게 올라켄 앞에 도착한 강진석은 몽둥이를 휘둘렀다.
쾅!
그렇지 않아도 올라켄의 몸부림 때문에 깨지기 직전이었던 얼음 덩어리는 몽둥이가 작렬하자 산산이 조각났다.
아쉽게도 조각난 것은 얼음 덩어리 뿐이었다.
올라켄은 죽지 않았다.
물론 죽지 않았을 뿐이다.
기운이 크게 약화됐다.
강진석은 몽둥이를 휘두르며 가늠했다.
'5,6번이면 죽겠네.'
적게는 5번, 많게는 6번이면 올라켄은 죽을 것이다.
쾅! 쾅!
그렇게 두 번의 몽둥이가 작렬했을 때.
-!@%!%@(멈춰라!)
올라쿤이 달려오기 시작했다.
쾅! 쾅!
당연히 강진석은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올라쿤이 도착해 도끼를 휘두르는 순간.
쾅! 스아앗!
[전쟁 바람 부족 대전사장 올라켄이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포인트가 1억 4000만 상승합니다.]
.
.
올라켄이 죽음을 맞이했다.
그리고 강진석은 바로 뒤로 돌아 방패로 도끼를 막았다.
쾅!
도끼가 작렬하며 폭음이 울려퍼졌다.
그러나 전처럼 강진석은 날아가지 않았다.
한 걸음조차 밀려나지 않았다.
올라쿤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기야 전력을 다한 공격이 먹히지 않았는데 당황하는 게 당연했다.
강진석은 당황한 올라쿤을 향해 몽둥이를 휘둘러 다시 타작을 시작했다.
쾅! 쾅! 쾅!
올라쿤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얼마 뒤.
스아앗!
올라쿤의 육체가 빛났다.
그리고 메시지가 나타났다.
[전쟁 바람 부족 대족장 올라쿤이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포인트가 1억 8000만 상승합니다.]
.
.
메시지를 보며 강진석은 초감각을 통해 남은 오크들의 상태를 확인했다.
올라쿤의 죽음이 알려진 것일까?
한 마리도 빠짐 없이 전부 정상을 바라보며 분노를 표출하고 있었다.
물론 전혀 두렵지 않았다.
숫자만 많을 뿐이기 때문이었다.
지금 분노를 표출하는 오크 중 가장 강한 오크도 2차 제약이었다.
3차 제약이라 해도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는데 두려워할 이유가 없었다.
'도망은 안 치겠네.'
메시지 확인과 오크들의 상태 확인을 마친 강진석은 기운을 방출해 전리품을 한데 모았다.
그리고 비고 입구를 소환했다.
스앗!
거대한 나무 문이 나타났고 강진석은 문을 열어 한데 모인 아티펙트를 전부 안에 집어 넣었다.
'아, 맞다. 그건 확인해야지.'
그러다 문득 든 생각에 강진석은 아티펙트 더미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더미 속에서 올라쿤의 도끼가 날아왔다.
'...아.'
도끼를 집자 정보가 떠올랐고 강진석은 속으로 탄식을 내뱉었다.
놀랍게도 내장 액티브 스킬이 2개 뿐이었다.
아니, 스킬 효과를 생각하면 2개가 아니라 1개라고 봐도 무방했다.
내장된 2개 스킬은 '희생의 서약'과 '희생의 제'였다.
스킬 '희생의 제'는 희생의 서약을 맺은 이들에게 힘을 받는 스킬이었다.
희생의 서약은 강제로 맺을 수 없다.
상호 간의 동의가 필요했다.
'효과는 좋긴 하다만...'
올라쿤이 사용했을 때 모든 능력치가 300% 증가했다.
그것도 30분이나.
효과는 엄청나다고 할 수 있었다.
'한, 둘로는 안 될 것 같은데.'
문제는 당시 올라켄과 3차 제약 침공자들의 줄어든 기운 양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한, 둘로 300%, 30분은 불가능해 보였다.
강진석은 도끼를 잠시 바라보다가 비고에 던졌다.
그리고 이어 퀘스트창을 열어 퀘스트 '전기의 이해'를 확인했다.
<전기의 이해>
조건을 충족하라!
[전기 인지 : 100%]
[중급 뇌전석 : 20 / 20]
.
.
퀘스트 보상 : 스킬 '전기의 이해' 2레벨 활성화
'...허.'
확인과 동시에 강진석은 속으로 헛웃음을 내뱉었다.
먹구름이 등장했으나 벼락은 떨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전기 인지가 100%가 됐다.
강진석은 눈을 번뜩였다.
'이거 계속 소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먹구름이 소환되는 이유를 알아냈다.
침공자가 목숨을 구걸하거나 혹은 강진석이 살려주겠다는 상황을 만들면 나타난다.
그게 아니더라도 과도한 정보 공유를 하면 먹구름은 등장한다.
'이러면 금방 운용까지 갈 수 있는거 아냐?'
즉, 전기의 이해의 경우 최대 레벨까지 손쉽게 습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스킬 퀘스트 '전기의 이해'를 완료하셨습니다.]
[스킬 '전기의 이해' 2레벨이 활성화됩니다.]
[전기와 관련된 모든 효과가 100% 증가합니다.]
강진석은 일단 퀘스트를 완료했다.
그리고 바로 스킬창을 열었다.
[스킬 '전기의 이해'의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스킬 퀘스트 '전기의 이해'가 생성됐습니다.]
그렇게 전기의 이해 3레벨을 습득한 강진석은 퀘스트 조건을 확인했다.
<전기의 이해>
조건을 충족하라!
[전기 인지 : 0%]
[상급 뇌전석 : 20 / 30]
.
.
퀘스트 보상 : 스킬 '전기의 이해' 3레벨 활성화
'휴, 다행이네. 개수가 늘긴 했지만.'
조건을 확인한 강진석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혹여 전기 인지 말고 따로 충족해야 하는 조건이 생기면 어쩌나 했다.
그러나 여전히 '전기 인지'를 제외하면 전부 재료였다.
강진석은 퀘스트창을 닫았다.
그리고 고개를 돌렸다.
2차 제약 침공자인 대장급 오크를 필두로 오크 무리가 다가오고 있었다.
지금 나타난 오크 무리가 끝이 아니다.
계양산 내 모든 오크가 올라오고 있었다.
복수를 위해 올라오는 게 분명했다.
강진석은 싱긋 웃었다.
'좀 더 빨리 끝낼 수 있겠어.'
* * * *
-아, 네! 알겠습니다!
-그럼 귤현역 정리되는 대로 바로 정리팀 보내겠습니다!
"네, 저는 창고 좀 정리하고 있을게요."
-예!
한지윤과의 통화가 끝났고 강진석은 핸드폰을 인벤토리에 넣었다.
그리고 앞을 보았다.
거대한 철문이 시야에 들어왔다.
전쟁 바람 부족 창고 입구로 당연하게도 평범한 철문이 아니었다.
수많은 방어 마법진이 각인되어 있었다.
웬만한 공격으로는 흠집 하나 나지 않을 것 같았다.
물론 강진석의 공격은 '웬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저벅저벅
강진석은 창고 앞으로 향했다.
후웅!
그리고 바로 몽둥이를 휘둘렀다.
쾅! 쩡! 쩌저적! 쩌적!
각인되어 있던 마법진이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파괴됐다.
그렇게 입구를 굳건히 지키던 철문은 평범한 철문이 되었고 강진석은 철문을 열고 안으로 진입했다.
저벅!
진입과 동시에 강진석은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시야에 가득 들어온 아티펙트와 재료 때문이 아니었다.
'...뭐지?'
창고 가장 안쪽에 무척이나 강렬하며 묘한 기운이 느껴졌다.
강진석은 해당 장소로 공간이동을 했다.
그리고 기운을 뿜어내는 것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나뭇가지랑 돌?'
하나 인줄 알았으나 하나가 아니었다.
한없이 검은 나뭇가지와 보라색 연기로 둘러싸인 돌이었다.
그래서 더 궁금했다.
나뭇가지와 돌의 정체가.
정보를 확인하기 위해 강진석은 먼저 나뭇가지를 집었다.
그 순간 나뭇가지의 정보가 머릿속에 떠올랐고.
"...!"
강진석은 눈을 번뜩였다.
'삼천목? 이게 삼천목이라고?'
검은 나뭇가지의 이름은 '삼천목'이었다.
'언제 구하나 했는데...'
삼천목은 영혼 각성의 재료 중 하나였다.
그것도 상점에서 판매하지 않는.
제193화
193.
어떻게 해야 구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창고에서 발견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스윽
강진석은 고개를 돌려 보라색 돌을 보았다.
'그럼 이건...'
삼천목과 함께 있는 돌이다.
거기다 돌의 기운도 삼천목 못지않았다.
강진석은 삼천목을 인벤토리에 넣고 돌을 집었다.
"..."
머릿속에 돌의 정보가 떠올랐고 강진석은 말없이 미소를 지었다.
'자령뇌석!'
돌의 이름은 '자령뇌석'이었다.
삼천목과 마찬가지로 영혼 각성의 재료였다.
상점에서 판매하지 않는.
'2개나 얻게 될 줄은 몰랐는데...'
강진석은 퀘스트창을 열었다.
<영혼 각성>
조건을 충족하라!
[혼력 : 100%]
.
.
[공허의 결정 리튜렌 : X]
퀘스트 보상 : 스킬 '영혼 각성' 3레벨 활성화
세계 침공자 처치 시 혼력이 자동 수집됩니다.
동족 처치 시 혼력이 자동 수집됩니다.
'이제 36개 남았네.'
삼천목과 뇌령자석을 수급한 덕분에 이제 남은 재료는 36개였다.
'이것들도 청소하다 보면 하나, 둘 나오려나?'
36개 전부 상점에서 판매하지 않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삼천목, 뇌령자석처럼 주변 청소를 진행하다가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비고에도 있으면 좋겠는데.'
강진석은 검은 숲에서 얻은 비고를 떠올렸다.
시간이 없어 아직 비고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다.
그러나 비고에 있던 엄청난 재료의 수를 생각하면 36개 중 몇 가지는 있을 수 있다.
'생각난 김에 비고나 확인해볼까?'
강진석은 비고를 소환했다.
그리고 비고에 진입 전 길드 관리창을 열어 창고 입장 권한을 설정했다.
혹여 비고에 들어가 있는 동안 창고에 문제가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권한 설정을 마친 강진석은 바로 나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초감각을 통해 자세히 비고 내부를 탐색했다.
삼천목, 뇌령자석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상당한 기운의 재료들이 다수 감지됐다.
강진석은 가장 가까이 있는 재료 앞으로 공간이동했다.
스윽
반투명한 보석이었다.
그리고 보석 안에는 '물'이 가득했다.
평범한 물은 아니다.
은은한 빛이 서려 있었다.
'혹시 이거 그건가?'
강진석은 혹시나 하는 표정으로 보석을 집었다.
'오.'
정보가 떠올랐고 강진석은 속으로 탄성을 내뱉었다.
보석의 이름은 '명수석'으로 영혼 각성의 재료 중 하나였다.
'진짜 있었네.'
비고에 영혼 각성 혹은 육체 제련의 재료가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기는 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 바람이었다.
없을 확률이 높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시작하자마자 하나가 나왔다.
'시작이 좋은걸.'
강진석은 미소를 지은 채 명수석을 인벤토리에 넣었다.
그리고 공간이동을 통해 다음 재료 앞으로 이동했다.
* * * *
짙은 어둠 부족 대족장 킬로아의 보물 창고.
"후..."
킬로아는 나지막이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안타까운 표정으로 4번 방에 모아둔 재료들을 보았다.
'모든 것을 준비해두었거늘...'
막내 동생 킬리안을 위해 첫번째 육체 제련에 필요한 모든 재료를 모아두었다.
그런데 킬리안이 죽어버렸다.
'...망할, 뱀 새끼들.'
킬로아는 동해에 자리 잡고 있는 나일 부족을 떠올렸다.
그리고 이를 악물었다.
'기필코 씨를 말려주마.'
킬로아는 가만히 있을 생각이 없다.
킬리안 때문만이 아니다.
수많은 부족원이 죽임을 당했다.
이대로 그냥 넘어가면 후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100%였다.
부족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나일 부족을 응징해야 했다.
물론 나일 부족은 약하지 않다.
지금은 제약이 전부 해제된다고 해도 나일 부족을 멸족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말 그대로 '지금' 상태에서 그렇다는 이야기다.
킬로아는 4번 방에서 나와 1번 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1번 방에 모아둔 재료들을 보며 생각했다.
'세번째 제련만 끝나면...'
세번째 육체 제련에 필요한 재료들을 거의 모았다.
앞으로 10개 정도만 더 모으면 된다.
그리고 세번째 제련을 마치면 나일 부족을 멸족시키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조금만 기다려라.'
킬로아는 다시 한 번 나일 부족의 멸족을 다짐하며 창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밖으로 나오자마자 킬로아는 당황한 표정의 정보단장 제이라를 보고 의아해했다.
갑자기 왜 저리 당황한단 말인가?
"설마 나일 부족이 움직였나?"
가장 의심 되는 것은 '나일 부족'이었다.
킬로아는 살짝 성난 표정과 목소리로 물었다.
"아닙니다."
"그럼?"
"나일 부족이 아니었습니다."
"...?"
제이라의 답에 킬로아는 다시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나일 부족이 아니라니?
그리고 킬로아의 의아한 표정에 제이라가 이어 말했다.
"강동면을 습격한 건 인간이었습니다."
"...인간이라고?"
"예, 지금 강동면 영역에 인간들이 나타났습니다. 지금 보고 들어온 수만 400이 넘습니다."
"..."
킬로아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강동면을 공격한 게 나일 부족이 아니라 인간이었다니?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그 허약한 존재들이?'
그도 그럴 것이 킬로아는 지구의 인간들이 얼마나 약한지 직접 보았다.
킬로아가 본 인간만 약한 게 아니다.
각 지부에서 올라온 보고에 따르면 지구의 인간들은 '나약'의 대명사였다.
그래서 인간들을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야, 인간들만의 힘이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인간들 본연의 힘이 아닌 것 같았다.
'뱀 새끼들의 강화 비술이라면...'
나일 부족의 강화 비술.
강화 비술로 인간들을 강화했을 것이다.
그래야만 지금 상황이 설명된다.
"뱀 새끼들이 개입했을 가능성은? 인간들에게 강화 비술을 사용한 것일 수도 있지 않나?"
혹시나 킬로아는 자신만의 생각일까 제이라에게 물었다.
제이라는 눈을 번뜩이더니 잠시 생각하고는 답했다.
"...생각해 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저희가 알고 있는 인간들의 힘을 생각하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상황이니까요."
킬로아는 제이라의 답을 듣고 이를 악물었다.
'이 뱀새끼들...'
혹시나 제이라가 반대 의견을 내면 잠시 상황을 지켜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당장 출발한다."
* * * *
나일 부족의 여왕 카라빈의 비고.
카라빈은 주변에 진열된 수많은 물품을 보고 활짝 웃었다.
'6개만 더 모으면...'
현재 카라빈은 세번째 영혼 각성을 준비하고 있었다.
남은 재료는 6가지.
6가지만 모으면 재료는 준비 완료였다.
'다 모을 즘에는 격도 갖출 수 있겠지.'
물론 재료가 준비된다고 모든 준비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영혼의 '격'을 갖춰야 했다.
정확히 말하면 격을 갖추지 않아도 재료만 있으면 각성을 진행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할 경우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문제 없이 각성을 마치기 위해서는 '격'을 갖추고 진행해야 했다.
바로 그때였다.
"...!"
카라빈은 눈을 번뜩였다.
비고에 누군가 들어왔다.
현재 시험에 참가한 부족원 중 비고에 들어올 수 있는 존재는 카라빈을 포함해 둘 뿐이었다.
바로 대주술사 크라였다.
즉, 지금 비고에 들어온 존재는 크라가 분명했다.
카라빈은 입구로 향했다.
그리고 예상대로 크라를 볼 수 있었다.
문제는 크라의 표정이었다.
무척이나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카라빈은 미간을 찌푸렸다.
표정을 보니 좋지 않은 일이 생긴 게 분명했다.
"무슨 일이지?"
카라빈은 크라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그러자 크라가 입을 열었다.
"킬로아가 5지부에 나타났습니다."
"...!"
크라의 말에 카라빈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벌써?'
킬로아가 5지부를 공격할 것은 크라의 예지 때문에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빨리 공격을 시작하다니?
'이 망할 오크 새끼가.'
카라빈은 이를 악물었다.
'기어이 성물을 썼구나.'
킬로아는 벽을 넘어섰다.
제약이 풀리지 않은 지금 벽을 넘어선 킬로아는 움직일 수 없다.
정확히 말하면 움직일 수는 있지만 움직여서는 안 된다.
영역 밖으로 나갈 경우 막대한 페널티를 받게 되기에.
그러나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짙은 어둠 부족에게는 방법이 하나 있었다.
바로 성물 '아사르'.
아사르의 힘을 이용하면 일시적으로 제약을 완화할 수 있고 그만큼 페널티도 완화된다.
'대체 왜 성물까지 써가면서!'
아사르는 무한히 사용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소모성 성물로 한 번 사용하면 다시 사용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 기운을 모아야 했다.
그리고 5지부는 성물을 써가면서 공격할 정도로 중요한 지부가 아니다.
오히려 별거 없는 한적한 지부였다.
그래서 태어날 때부터 허약했던 조카 '에레디'에게 관리를 맡긴 곳이었다.
'만약 예지가 아니었으면...'
예지가 있었기에 에레디를 본부로 데려왔다.
만약 데려오지 않았다면?
에레디는 킬로아에게 죽었을 것이다.
'선을 넘은 걸 후회하게 해주마.'
카라빈은 크라에게 말했다.
"지금부터 돼지 사냥을 시작하지."
* * * *
'이야...'
비고 탐색을 마친 강진석은 속으로 감탄을 내뱉었다.
예상보다 비고에는 많은 재료가 있었다.
세번째 영혼 각성의 재료만 있는 게 아니다.
세번째 육체 제련의 재료도 다수 있었다.
'이러면 조만간 완료 가능하겠어.'
없는 재료는 앞으로 계속 청소하다 보면 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강진석은 흡족한 표정으로 비고에서 나왔다.
그리고 비고를 역소환한 뒤 초감각을 통해 계양산 내부를 재차 탐색했다.
'오셨구나.'
정리팀이 계양산 곳곳을 돌아다니며 정리를 하고 있었다.
딱히 문제도 없어 보였다.
강진석은 정리팀에 대한 관심을 거두고 고민했다.
'어디로 갈까.'
다음 청소 장소에 대한 고민이었다.
현재 강진석이 생각하고 있는 곳은 3곳이었다.
첫번째는 행주대교 북쪽에 있는 '붉은 폭풍 부족'이었다.
지금이야 잠잠하지만 얼마 전 행주대교를 통해 건너왔었다.
언제 또 건너올지 모른다.
그 전에 어느정도 정리해두는 게 좋지 않을까 싶었다.
두번째는 구리시에 있는 사일 부족이었다.
사일 부족의 대족장 카린은 4차 제약 침공자였다.
4차 제약 침공자가 영역 코앞까지 나타났었다.
아직 영역을 넘어오지는 않았지만 만에 하나 넘어올 수도 있다.
그리고 4차 제약 침공자인 카린의 창고가 무척 탐났다.
세번째는 강동면이었다.
짙은 어둠 부족 오크들이 계속해서 내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곧 3차 제약 침공자 5마리가 올 것이다.
현재 강동면에 투입된 전력으로는 막을 수 없다.
'...그래, 일단 확정난 곳부터 정리하는 게 좋겠지.'
고민 끝에 강진석은 강동면에 가기로 결정했다.
붉은 폭풍 부족이나 사일 부족은 넘어 올 가능성이 있는 것이지 확정난 게 아니었다.
즉, 시간 여유가 있다고 할 수 있었다.
이미 확정이 난 짙은 어둠 부족부터 처리하는 게 맞았다.
결정을 내린 강진석은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 한지윤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전화 받았습니다!
"강동면에 갈 생각입니다."
-지금 바로 가시는 건가요?
"네, 그리고 북쪽으로 쭉 올라갈 생각입니다."
-아, 짙은 어둠 부족을 처리하실 생각이시군요.
"그럴 생각입니다."
강동면에 간다는 것이 강동면에서 가만히 수비하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강진석은 북쪽으로 올라가 짙은 어둠 부족을 청소할 생각이었다.
-그럼 정리팀 준비하겠습니다!
"네, 부탁드릴게요."
-넵!
한지윤과의 통화가 끝났고 강진석은 길드장 전용 기능 '영역 이동'을 통해 강동면으로 이동하며 생각했다.
'짙은 어둠 부족 창고에는 뭐가 있으려나...'
제194화
194.
짙은 어둠 부족의 규모 순위는 무려 18위였다.
서초구, 강남구, 송파구 최소 세 곳을 지배하고 있는 열화 사막 부족의 규모 순위가 20위다.
열화 사막 부족보다 규모가 큰 짙은 어둠 부족의 창고에는 어떤 아티펙트와 재료가 있을지 벌써부터 기대됐다.
'5차 제약 침공자가 있지는 않겠지?'
한 가지 걱정되는 부분이 있었다.
바로 '5차 제약 침공자'였다.
5차 제약의 기준을 모른다.
그러나 4차 제약의 기준이 영혼 각성, 육체 제련이었다.
5차 제약의 기준은 그보다 훨씬 높을 것이고 지금 마주하면 위험할 가능성이 높았다.
'...엄청난 제약을 받고 있을테니 있어도 문제없겠지.'
강진석은 5차 제약 침공자에 대한 걱정을 빠르게 떨쳐냈다.
그리고 초감각을 통해 강동면 책임자인 최은형의 위치를 파악 후 다시 공간이동했다.
"저 왔습니다."
"엇, 길드장님!"
자리에 앉아 고민에 잠겨 있던 최은형은 강진석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진석은 최은형에게 다가가 반대편에 앉으며 물었다.
"지금 상황은 어떤가요?"
현재 강진석이 알고 있는 것은 추후 3차 제약 침공자 5마리가 공격해 온다는 것 뿐이었다.
그 외에는 들은 게 없었다.
최은형은 강진석의 물음에 지도를 꺼내 펼쳤다.
그리고 강동면 곳곳을 가리키며 설명을 시작했다.
"훈련소 건축은 끝났고 숙소 건축은 내일 완료 예정입니다. 수용 인원은 1만 5천명입니다. 자급자족을 위한 인원은 농부 30명으로 충분할 것 같구요. 지금 당장이야 셋 정도만 있어도..."
얼마 뒤 강동면 개발에 대한 설명이 끝났고 이어 외부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됐다.
"....지금은 문제없지만 일전에 보고드렸듯 3차 제약 침공자들이 내려오면 힘들 것 같습니다."
이내 외부에 대한 이야기가 끝났고 강진석은 지도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계획대로 움직이면 되겠네.'
특별히 신경 써야 할 부분은 없었다.
오기 전 생각했던 대로 움직이면 될 것 같았다.
"지금 바로 북쪽에 갈 생각입니다."
"...!"
강진석의 말에 최은형은 눈을 번뜩였다.
그리고 강진석이 이어 말했다.
"가는 길에 싹 청소할 생각이구요. 생존자가 있다면 구출할 생각입니다."
"도울 일이 있을까요?"
"음..."
강진석은 침음을 내뱉으며 잠시 생각하다가 답했다.
"앞으로 구출할 생존자들은 봉제산 훈련소가 아니라 여기로 보낼까 합니다."
여태껏 구출한 이들은 전부 봉제산에 있는 훈련소로 보냈다.
현재 봉제산 훈련소는 포화 상태였다.
그런데 이제 강동면에도 훈련소가 생겼다.
굳이 멀고 포화 상태인 봉제산 훈련소에 보낼 이유가 없었다.
"알겠습니다. 준비해두겠습니다!"
"그럼 이따 연락 드리겠습니다."
"옙! 연락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최은형의 답을 듣고 강진석은 공간이동을 시전했다.
그리고 강동면 외곽에 도착한 강진석은 바로 지역을 넘어갔다.
[강릉시에 입장하셨습니다.]
[조건이 충족됐습니다.]
[강릉시 일정 구역 세계 침공자들의 2차 제약이 조기 해제됩니다.]
[세계 침공자들의 활동 반경이 더욱 넓어집니다.]
.
.
앞서 나타난 메시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메시지 확인을 마친 강진석은 곳곳을 돌아다니며 몬스터의 수준, 숫자 그리고 생존자들을 찾기 시작했다.
'...허.'
이내 탐색을 마친 강진석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숙소 증축해야겠는데.'
생존자가 생각보다 많았다.
정확히 세지는 않았지만 2만을 넘어섰다.
강동면 숙소의 최대 수용 인원은 1만 5000.
턱없이 부족했다.
물론 기존 건물이 남아 있으니 당장 지내는 데에는 문제없겠지만 전기, 수도 등을 생각하면 빠르게 증축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강진석은 핸드폰을 꺼내 한지윤과 최은형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리고 다시 핸드폰을 넣고 공간이동을 했다.
[던전 '월대산'에 입장하셨습니다.]
[24시간 동안 모든 입구가 봉쇄됩니다.]
[던전 클리어 시 봉쇄가 해제됩니다.]
[퀘스트 '제단 파괴'가 생성됐습니다.]
[퀘스트 '수비단장 그드라스'가 생성됐습니다.]
.
.
그렇게 가장 가까이 있던 던전 '월대산'에 입장한 강진석은 바로 생존자들이 갇혀 있는 감옥 입구로 공간이동을 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그리고 감옥에 갇혀 있는 생존자들에게 텔레파시를 보내며 입구를 지키고 있던 오크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생존자들과의 대화, 오크 정리는 순식간에 끝났고 강진석은 곧장 월대산 정상으로 이동했다.
정상에 있는 월대산의 보스 오크 '수비단장 그드라스'를 잡기 위해서였다.
'그 전에.'
물론 바로 죽일 생각은 없었다.
확인할 것이 있었다.
강진석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무기를 빼 드는 그드라스에게 의지 번역을 시전했다.
"잠시 대화 좀 하지."
-!@%!@(헛! 어떻게!)
그렇지 않아도 당황해하던 그드라스의 당황은 더욱 더 커졌다.
스윽
강진석은 힐끔 허공을 바라보고 이어 말했다.
"시험에 대해 물어 볼 게 있다."
-...!@%(...뭐지?)
"혹시 초월자가 나타나면 시험은 바로 끝나나?"
올라쿤에게 물었으나 답을 듣지 못했다.
그래서 다음에 수준 높은 몬스터를 만나면 물어보려 했다.
'알고 있으려나?'
문제는 그드라스의 수준이 높지 않다는 점이었다.
3차 제약 침공자로 모르고 있을 수도 있다.
-...
그드라스는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
강진석은 그드라스의 눈빛과 분위기에 은은히 미소를 지었다.
'알고 있네.'
몰라서 답을 하지 않는 게 아니다.
분명 알고 있는 분위기였다.
그럼에도 말하지 않는 이유는 경계심 때문인 것 같았다.
스윽
강진석은 다시 힐끔 허공을 보았다.
여전히 하늘은 맑았다.
먹구름이 나타날 기미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이걸 아쉽다고 해야 하나.'
먹구름이 나타나면 퀘스트 '전기의 이해'의 첫번째 조건 '전기 인지'를 충족할 수 있다.
그래서 은연중에 먹구름이 나타나길 바라고 있던 강진석은 애매한 표정으로 그드라스를 보았다.
그리고 때마침 고민을 끝낸 그드라스가 입을 열었다.
-!@%!@%(왜 그런 질문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초월자가 나타난다고 시험이 끝나지는 않는다.)
"아..."
강진석은 아쉬운 표정으로 탄성을 내뱉었다.
만약 초월자가 탄생하는 것으로 시험이 종료된다면 스킬 '초월' 습득에 전력을 다하려 했다.
그런데 초월자가 나타나도 시험이 끝나지 않는다니?
'진짜일까?'
물론 사실이 아닐 수 있다.
그드라스가 거짓말을 한 것일 수도 있다.
'...어차피 되려고 했으니까.'
강진석은 생각을 멈췄다.
생각한다고 사실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바로 그때.
-!@%!@%(대체 나일 부족의 어떤 비술로 그렇게 강화된 거지?)
그드라스가 물었다.
'나일 부족?'
강진석은 그드라스의 질문에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동해에 있는 그 나가들?'
나일 부족은 동해항 같은 항구, 해수욕장 그리고 동해에 자리 잡은 몬스터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갑자기 짙은 어둠 부족 오크의 입에서 왜 나온단 말인가?
바로 그때였다.
그드라스가 어색하게 갑옷을 움직였다.
"...!"
그리고 생각에 잠겨 있던 강진석은 눈을 번뜩였다.
'저거...'
갑옷을 움직인 순간 강진석의 시야에 익숙한 '무언가'가 나타났다.
'아키로스의 눈?'
무언가는 바로 희끄무레한 '눈'이었다.
4구역에서 보았던 '아키로스의 눈'과 똑같았다.
'뭘 꾸미는 거지?'
먹구름이 소환될 때까지 대화를 하려 했다.
그런데 더 시간을 끌면 안 될 것 같았다.
강진석은 바로 거리를 좁혔다.
그드라스는 놀란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강진석은 갑옷을 향해 몽둥이를 휘둘렀다.
쾅!
그드라스는 반응하지 못했고 몽둥이가 작렬했다.
그리고 이어 무수히 많은 메시지가 나타났다.
[아키로스의 눈을 파괴하셨습니다.]
[포인트가 500만 상승합니다.]
[짙은 어둠 부족 수비단장 그드라스가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
.
'역시.'
예상대로 희끄무레한 '눈'의 정체는 아키로스의 눈이었다.
'대체 뭘까.'
강진석은 아키로스의 눈에 대해 생각하며 그드라스가 남긴 아티펙트를 수거했다.
그리고 혼돈의 구를 은장도로 변환했다.
그드라스가 죽었을 뿐이다.
아직 월대산에는 오크들이 매우 많이 남아 있었다.
강진석은 가장 가까이 있는 오크 무리에게 공간이동했다.
그리고 아이스 포그를 시전해 단숨에 정리 후 가장 가까이 있는 오크 무리에게 공간이동했다.
* * * *
짙은 어둠 부족 본부 정보단장 제이라의 거처.
"..."
제이라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멍하니 거울을 바라볼 뿐이었다.
거울은 정상적이지 않았다.
정확히 반으로 갈라져 있었다.
문제는 거울이 평범한 거울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아키로스의 눈이 한 방에...'
아키로스의 눈과 연결된 거울이었다.
거울이 반으로 갈라졌다는 것은 아키로스의 눈이 파괴됐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래서 더 문제였다.
아키로스의 눈을 가지고 있던 것은 수비단장 그드라스였다.
제이라는 그드라스에게 명령을 내렸었다.
만약 적이 나타난다면 아키로스의 눈을 보호하며 최대한 정보를 뽑아내라고.
그런데 그드라스는 아키로스의 눈을 지키지 못했다.
지키지 못한 것은 아키로스의 눈뿐만이 아닐 것이다.
'죽었겠지...'
아마도 그드라스 역시 죽었을 것이다.
'어떻게 인간이 그런 속도를 낼 수 있던거지?'
제이라는 거울에 나타났던 인간을 떠올렸다.
'아무리 강화 비술이 뛰어나다고 해도 말이 안 되는데...'
나일 부족의 강화 비술은 매우 뛰어나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그러나 대상은 '나가'가 아닌 '인간'이었다.
지구의 인간들은 나약했다.
강화 비술이 뛰어나다고 해도 그 나약한 인간을 그렇게 강화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설마 강화 비술이 인간들에게 특히 더 잘 먹히는 건가?'
제이라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뒤쪽에 있는 통신 구슬로 향했다.
지금 상황을 보고하기 위해서였다.
거리가 멀기 때문일까?
마나를 주입 했음에도 바로 연결되지 않았다.
-예, 제이라님.
한참 뒤 연결이 됐고 구슬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족장님은?"
-조금 전 뱀들의 신단을 파괴하셨고 제단을 설치하고 계십니다.
"월대산에 인간들이 쳐들어왔다. 제단 설치가 끝나는 대로 보고드릴 수 있도록."
-헛, 알겠습니다!
통신을 마친 제이라는 잠시 생각했다.
'월대산이 당했으니 다음은...'
인간들을 앞세운 나일 부족의 공격은 월대산에서 끝이 아닐 것이다.
제이라는 다음 공격 장소로 추정되는 두 곳에 연락해 월대산이 당했으니 조심하라는 경고와 최대한 정보를 뽑아내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거울 앞으로 돌아가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반으로 갈라진 거울이 옆으로 날아갔고 뒤쪽에 있던 수많은 거울 중 2개가 앞으로 날아왔다.
제이라는 두 거울을 번갈아 보며 생각했다.
'어디에 나타날까...'
바로 그때였다.
왼쪽 거울에 비친 화면이 다급히 변했다.
제이라는 의아한 표정으로 거울을 주시했다.
그리고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거울에 인간이 나타났다.
'벌써?'
문제는 거울에 나타난 인간이 월대산에 나타났던, 그드라스와 마주했던 인간이라는 점이었다.
쩍!
그리고 이내 거울이 반으로 갈라졌다.
"...!"
제이라는 경악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195화 >
195.
거울이 깨졌다는 것은 아키로스의 눈이 파괴됐다는 것을 의미했다.
'레카이노스가 반응을 못 했다고?'
지금 파괴된 아키로스의 눈을 가지고 있는 오크는 '레카이노스'였다.
레카이노스는 3차 제약 2단계인 그드라스보다 훨씬 강한, 3차 제약 8단계의 강자였다.
3차 제약 8단계의 강자인 레카이노스가 아키로스의 눈을 지키지 못했다니?
'...이건 아니야.'
아무리 봐도 지금 상황은 이상했다.
나일 부족의 강화 비술이 제아무리 뛰어나도 지금 상황은 말이 되지 않는다.
다른 뭔가가 더 있는 게 분명했다.
제이라는 자리에서 일어나 통신 구슬 앞으로 달렸다.
어서 이 상황을 킬로아에게 보고해 대책을 세워야 했다.
* * * *
스아앗!
[짙은 어둠 부족 공격단장 레카이노스가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
.
레카이노스가 빛과 함께 사라지며 메시지가 나타났다.
그러나 메시지를 바라보는 강진석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대체 뭘까.'
레카이노스 역시 아키로스의 눈을 가지고 있었다.
이번에는 먼저 아키로스의 눈만 파괴했다.
그리고 레카이노스에게 물었다.
아키로스의 눈이 무엇인지.
그러나 레카이노스는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입을 꾹 다문 채 덤벼들었다.
의지 번역은 강제로 대화할 수 있는 스킬이 아니었다.
상대가 대화할 의지가 없다면 아무 소용 없는 스킬이었다.
결국 어쩔 수 없이 강진석은 레카이노스를 죽였다.
'앞으로 만나는 녀석들도 다 입 다물면...'
강진석은 미간을 찌푸리며 하늘을 힐끔 보았다.
'먹구름을 봐야 하는데.'
메라키오, 올라쿤 때 연달아 먹구름을 보았다.
그래서 먹구름을 쉽게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같은 상황이 계속 이어진다면?
먹구름을 보는 것은 힘들 것 같았다.
'...일단 청소부터 하자.'
강진석은 생각을 끝내고 혼돈의 구를 은장도로 변환했다.
그리고 공간이동과 아이스 포그를 번갈아 시전하며 빠르게 청소를 진행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제단을 파괴하며 탈환을 끝낸 강진석은 바로 길드 관리창을 열어 기본 설정을 한 뒤 최은형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리고 바로 다음 장소로 향했다.
[던전 '강릉항'에 입장하셨습니다.]
[24시간 동안 모든 입구가 봉쇄됩니다.]
[던전 클리어 시 봉쇄가 해제됩니다.]
[퀘스트 '제단 파괴'가 생성됐습니다.]
[퀘스트 '수비단장 모르타니'가 생성됐습니다.]
.
.
강릉항에는 생존자가 없었고 강진석은 바로 보스 '모르타니'가 있는 곳으로 공간이동하며 간절히 바랐다.
'대화가 됐으면 좋겠네...'
그러나 도착과 동시에 강진석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도그럴것이 모르타니의 머리 위에 아키로스의 눈이 둥둥 떠 있었다.
'대체 몇 개야?'
강진석은 짜증스런 눈빛으로 의지 번역을 시전했다.
"아키로스의 눈이 대체 뭐지?"
-!@%!@%(어, 어떻게!)
모르타니는 강진석의 물음에 놀란 목소리로 반문했다.
그걸로 끝이었다.
더 이상 모르타니는 입을 열지 않았다.
대신 기운을 끌어올리더니 달려 들었다.
'메라키오나 올라쿤이 특별했던건가?'
강진석은 대화를 나누었던 두 몬스터 메라키오와 올라쿤을 떠올렸다.
그리고 아쉬운 표정으로 공간이동을 통해 아키로스의 눈 앞으로 이동했다.
후웅! 쩡!
[아키로스의 눈을 파괴하셨습니다.]
[포인트가 500만 상승합니다.]
아키로스의 눈이 파괴됐고 강진석은 다시 공간이동해 모르타니에게 다가갔다.
후웅! 쾅!
스아앗!
[짙은 어둠 부족 수비단장 모르타니가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
.
모르타니 역시 아키로스의 눈처럼 한 방에 끝을 맞이했다.
'설마 3차 제약 침공자들은 제대로 말을 못 하나?'
강진석은 모르타니가 남긴 아티펙트를 수거하며 생각했다.
'아니야, 그드라스 생각하면 말할 수 있는데...'
오늘 만난 3차 제약 침공자 중 가장 약했던 그드라스는 아주 잘 이야기했다.
즉, 대화를 하지 못한 것은 성향 차이 일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그래, 아직 많이 남았으니까.'
강진석은 대화에 대한 생각을 멈췄다.
아직 수많은 오크가 남아 있었다.
청소하다 보면 분명 대화를 잘 나눌만한 오크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설마 다 대화를 안 하겠어?'
* * * *
"이게 무슨 개 소리야!"
통신 구슬을 향해 킬로아는 고함을 내뱉었다.
"강화 비술을 받았다고 해도 인간에게 그렇게 당하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그것도 똑같은 인간한테?"
-...아무래도 강화 비술 말고도 뭔가 더 있는 것 같습니다.
"그거야 당연한거고! 그게 뭔지 파악했어야지! 4군단 영역의 절반이 날아갔는데 그걸 아직도 파악 못했다는 게 말이 되냔 말이야!"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했다.
한 인간에게 4군단 영역의 절반이 날아갔다.
그것도 하루도 지나지 않아서.
하루는커녕 한나절도 지나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조속히 확인 후 보고드리겠습니다.
"지금 당장 귀환할 거다. 그때까지 알아내지 않으면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옙.
제이라의 답을 듣고 킬로아는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통신 마법을 연결하고 있던 글린이 통신 마법을 끊었다.
그리고 킬로아는 뒤로 돌아 대기하고 있던 수뇌부들에게 말했다.
"1개척단만 남고 전부 철수한다. 당장 가서 준비해. 15분 뒤 출발한다."
"옙!"
"넵!"
"명을 받듭니다."
킬로아의 말에 수뇌부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임시 지휘실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킬로아는 이를 악물며 지금 상황의 핵심인 '인간'을 떠올렸다.
'뱀 새끼들 대체 무슨 짓을...'
3차 제약자인 단장들을 순식간에 죽인 '인간'.
지금 인간이 보여주는 힘은 벽을 넘어선, 4차 제약자 수준이었다.
나일 부족의 강화 비술이 뛰어나다고 해도 '인간'의 수준을 그렇게까지 끌어올렸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제이라의 말대로 강화 비술 말고 무언가가 더 있는 게 분명했다.
스윽
킬로아는 손목에 착용하고 있는 성물 '아사르'를 보았다.
'섣불렀다.'
제약을 완화하기 위해 성물 '아사르'를 사용했다.
다시 아사르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30일을 기다려야 했다.
즉, 본부로 귀환 후 모든 상황을 파악해도 직접 움직일 수는 없다.
'설마 이걸 노린 건가?'
문득 든 생각에 킬로아는 눈을 번뜩였다.
'그래, 에레디 그 어린 뱀 새끼가 없는걸 보면.'
5지부의 관리자이자 나일 부족의 여왕 카라빈의 조카 '에레디'.
에레디는 5지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즉, 5지부는 나일 부족의 함정이다.
함정의 목적은 성물 '아사르'의 힘을 소모시켜 킬로아의 발을 묶기 위해서가 분명했다.
'이런 개같은 뱀 새끼들이 같잖은 짓을!'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스아아...
그리고 킬로아의 전신에서 검은 기운이 뿜어져 나왔고.
그그극...
그극...
주변 공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그러진 공간에서 흡입력이 발생해 모든 것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였다.
"대, 대족장님!"
지휘실에 남아 있던 글린이 다급히 외쳤다.글린의 외침에 정신을 차린 킬로아는 기운을 가라앉혔다.
그러자 검은 기운이 다시 몸속으로 돌아가며 일그러진 공간도 복구됐다.
"...고맙구나."
"아닙니다!"
킬로아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
'인간에게 무슨 짓을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한계가 있겠지.'
영역을 뒤집고 다니는 인간.
나일 부족은 인간에게 강화 비술 말고도 무언가를 더 했다.
무언가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인간의 힘을 생각하면 부작용이 없을리 없다.
분명 곧 부작용이 발생할 것이고 인간은 이동을 멈출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의 피해도 없을 것이다.
'...배로 갚아주마.'
* * * *
[짙은 어둠 부족 지원단장 글라시코가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
.
"..."
강진석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어떻게 한 마리도 대화를...'
청소하다 보면 대화할 오크 한 마리 정도는 만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놀랍게도 단 한 마리도 대화를 하려 하지 않았다.
강진석은 혼돈의 구를 은장도로 변환했다.
그리고 해왔던 대로 공간이동과 아이스 포그를 통해 청소를 이어 나가며 생각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죽이지 말걸.'
유일하게 대화를 했던 그드라스.
괜히 죽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려나.'
2차 제약이 조기 해제된 곳들의 청소는 끝났다.
그리고 최은형에게 연락이 왔다.
3차 제약 침공자 5마리 침공 퀘스트가 삭제됐다고.
즉, 1차 목표는 달성했다.
물론 여기서 멈출 생각은 없었다.
아직 주변에는 몬스터가 넘쳐났고 강진석은 계속해서 청소를 이어 나갈 생각이었다.
'다른 지역에는 대화할 녀석이 있었으면 좋겠네.'
강진석은 부디 곧 방문할 지역에는 대화할 오크가 있길 바라며 청소에 집중했다.
그리고 집중한지 3분도 지나지 않아 강진석은 제단 파괴를 끝으로 청소를 마칠 수 있었다.
강진석은 기본 설정을 마친 뒤 최은형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리고 바로 영역 밖으로 나와 다음 목적지 '구정면'으로 향했다.
[구정면에 입장하셨습니다.]
[조건이 충족됐습니다.]
[구정면 내 세계 침공자들의 2차 제약이 조기 해제됩니다.]
[세계 침공자들의 활동 반경이 더욱 넓어집니다.]
.
.
강진석은 전과 마찬가지로 곳곳을 돌아다니며 구정면 내 오크, 생존자를 확인했다.
'...!'
그리고 확인하던 중 강진석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4차 제약 침공자!'
놀랍게도 구정면에는 4차 제약 침공자가 있었다.
그리고 더욱 더 놀라운 것은 4차 제약 침공자 역시 강진석을 인지했다는 점이었다.
물론 강진석의 위치를 인지했다는 뜻은 아니다.
4차 제약 침공자가 인지한 것은 자신을 탐색하고 있는 강진석의 '초감각'이었다.
'대화할 수 있으려나?'
강진석은 사방을 두리번 거리는 4차 제약 침공자를 잠시 지켜보다가 탐색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한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생존자가 없네...'
구정면에는 생존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
강진석은 바로 4차 제약 침공자 있는 곳으로 공간이동을 했다.
[던전 '강릉 솔향 수목원'에 입장하셨습니다.]
[24시간 동안 모든 입구가 봉쇄됩니다.]
[던전 클리어 시 봉쇄가 해제됩니다.]
[퀘스트 '제단 파괴'가 생성됐습니다.]
[퀘스트 '흑익 기사단장 카타론'이 생성됐습니다.]
.
.
그리고 메시지를 통해 강진석은 4차 제약 침공자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기사단장?'
4차 제약 침공자의 정체는 흑익 기사단장 카타론이었다.
'오크 기사라...'
강진석은 퀘스트창을 열어 퀘스트를 확인했다.
<흑익 기사단장 카타론>
짙은 어둠 부족의 일곱 기사단 중 세번째로 강한 흑익 기사단.
흑익 기사단의 단장 카타론은 남서쪽 개척을 맡았다.
.
.
카타론을 처치하라!
퀘스트 보상 : ???
'...기사단이 7개나 있어?'
퀘스트를 통해 강진석은 짙은 어둠 부족에 대한 많은 정보를 알 수 있었다.
'4차 제약 침공자가 몇이나 있는거야?'
흑익 기사단보다 강한 기사단이 2개나 있었다.
그리고 두 기사단의 단장이 카타론보다 약할 것 같지는 않았다.
최소 동급일 것이다.
즉, 4차 제약 침공자일 확률이 매우 높았다.
스윽
퀘스트를 확인하던 강진석은 고개를 돌렸다.
멀리서 카타론이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5초 정도면 시야에 나타날 것이다.
강진석은 퀘스트창을 닫았다.
그리고 정확히 5초 뒤 시야에 카타론이 등장했다.
-!@%!@
카타론은 괴성을 내뱉으며 점프했다.
그리고 양손에 쥔 두손검을 하늘로 들었다.
강진석은 카타론에게 의지 번역을 시전하며 생각했다.
'어차피 한 방에 죽지는 않을테니까.'
카타론은 육체를 제련했다.
3차 제약 침공자와 달리 한 방에 죽지 않는다.
일단 반쯤 죽여놓고 대화를 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강진석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카타론의 머리 위로 공간이동했다.
후웅!
그리고 이동과 동시에 몽둥이를 휘둘렀다.
강진석의 공간이동을 예상치 못했는지 카타론은 몽둥이를 피하지 못했다.
쾅!
몽둥이가 작렬하며 폭음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카타론은 엄청난 속도로 지상에 처박혔다.
육체를 제련한 4차 제약 침공자답게 카타론은 지상에 처박히자마자 바로 일어났다.
쾅!
그러나 일어나자마자 강진석의 몽둥이가 작렬했고 다시 한 번 땅에 처박혔다.
강진석은 땅에 처박힌 카타론을 향해 몽둥이를 계속해서 휘둘렀다.
그리고 카타론의 기운이 절반 정도로 줄어들었을 때 타작을 멈추고 물었다.
"우리 대화 좀 할까?"
< 196화 >
196.
-...!@$!(...누, 누구십니까.)
몽둥이 타작 덕분에 처음과 달리 매우 순해진 카타론은 강진석의 질문에 머뭇거리며 답했다.
"..."
강진석은 말없이 싱긋 웃었다.
후웅!
그리고 몽둥이를 다시 한 번 휘둘렀다.
쾅!
-!@(컥)
카타론의 기운이 다시 한 번 움푹 줄어들었다.
그리고 강진석이 이어 말했다.
"질문은 나만."
강진석의 말에 카타론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강진석이 물었다.
"아키로스의 눈이 뭐지?"
-...
카타론은 강진석의 질문에 입을 열지 않았다.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강진석을 바라볼 뿐이었다.
마치 '그런 걸 왜?'라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강진석은 카타론의 반응에 몽둥이를 들었다.
그러자 카타론이 다급히 입을 열었다.
-!@%!@(감시 아티펙트입니다!)
"감시 아티펙트?"
-!@%@(예, 아세르 부족의 대주술사 아키로스가 만든 아티펙트로...)
카타론의 설명이 이어졌고 강진석은 아키로스의 눈이 무엇인지 그리고 아키로스의 눈을 만든 대주술사 아키로스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역시 있었구나, 두 번 각성한 몬스터가.'
대주술사 아키로스는 영혼을 각성했다.
그것도 강진석과 마찬가지로 한 번이 아닌 두 번을.
'얼마나 강할까.'
그리고 아키로스는 이번 시험에 참가했다.
즉, 언젠가는 마주하게 될 것이다.
'안전하게 잡으려면 세번째 각성이나 제련을 해야 할 것 같은데...'
영혼 각성이든 육체 제련이든 한 번과 두 번의 차이는 매우 크다.
아키로스를 안전하게 잡으려면 세번째 육체 제련이나 영혼 각성을 해야 한다.
강진석은 아키로스에 대한 생각을 끝내고 다음 질문을 했다.
"짙은 어둠 부족에서 가장 강한 존재는 대족장이 맞나?"
-...!@%!@(...맞습니다. 킬로아님이 가장 강하시지요.)
"킬로아는 육체를 제련했나? 아니면 영혼을 각성했나?"
-...
카타론은 답하지 않았다.
강진석은 몽둥이를 들었다.
그럼에도 카타론은 입을 열지 않았다.
후웅!
강진석은 몽둥이를 휘둘렀다.
쾅!
몽둥이가 작렬했고 카타론의 기운은 다시 한 번 움푹 사라졌다.
그리고 강진석은 카타론에게 말했다.
"대답."
-...!%@@%(...주군에 대한 정보는 발설할 수 없습니다.)
카타론은 결의에 가득 찬 표정으로 답했다.
강진석은 카타론의 답에 미간을 찌푸렸다.
표정을 보아 죽으면 죽었지 대족장 킬로아에 대한 정보는 발설하지 않을 것 같았다.
"...4차 제약을 받은 존재는 얼마나 있지? 너희 부족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는 다른 부족들도."
결국 강진석은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저희 부족에서 벽을 넘어선 이들은 저를 포함해 무려 아홉입니다.)
-!@$!@(동쪽 바다에 자리 잡은 나일 부족에는 여왕 카라빈을 포함해 다섯, 저희 부족 북쪽에 자리 잡은...)
카타론은 4차 제약 침공자답게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강진석은 계속 질문하며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얼마 뒤.
"...!"
강진석은 눈을 번뜩이며 싱긋 웃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먹구름이 보였다.
먹구름의 기운은 무척이나 안정적이었다.
강진석은 퀘스트창을 열었다.
그리고 전기의 이해를 확인했다.
<전기의 이해>
조건을 충족하라!
[전기 인지 : 50%]
[상급 뇌전석 : 30 / 30]
.
.
퀘스트 보상 : 스킬 '전기의 이해' 3레벨 활성화
전기 인지가 급속도로 상승하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기 인지가 100%가 됐고.
[스킬 퀘스트 '전기의 이해'를 완료하셨습니다.]
[스킬 '전기의 이해' 3레벨이 활성화됩니다.]
[전기와 관련된 모든 효과가 100% 증가합니다.]
강진석은 바로 퀘스트를 완료 후 스킬창을 열었다.
[스킬 '전기의 이해'의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스킬 퀘스트 '전기의 이해'가 생성됐습니다.]
그리고 전기의 이해 4레벨을 습득했다.
4레벨을 습득 후 강진석은 먹구름을 보았다.
먹구름의 기운은 여전히 안정적이었다.
강진석은 안정적인 먹구름을 바라보며 싱긋 웃고는 퀘스트 '전기의 이해'의 조건을 확인했다.
<전기의 이해>
조건을 충족하라!
[전기 인지 : 10%]
[최상급 뇌전석 : 40 / 40]
.
.
퀘스트 보상 : 스킬 '전기의 이해' 4레벨 활성화
'휴.'
강진석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엄청난 속도로 치솟는 전기 인지 때문만이 아니었다.
'바로 5레벨까지 갈 수 있겠어.'
바로 완료하기 위해 최대한 재료를 준비했다.
혹시나 모자란 재료가 있으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히 모자라지 않았다.
아주 넉넉했다.
즉, 4레벨도 전기 인지만 100%가 되면 바로 완료할 수 있다.
강진석은 100%가 되길 기다렸다.
-!@$!@$(저, 저기...)
그리고 강진석이 아무런 말이 없자 카타론이 입을 열었다.
스윽
강진석은 카타론의 말에 고개를 돌려 말없이 카타론을 바라보았다.
카타론은 강진석의 눈빛에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얼마 뒤.
[스킬 퀘스트 '전기의 이해'를 완료하셨습니다.]
[스킬 '전기의 이해' 4레벨이 활성화됩니다.]
[전기와 관련된 모든 효과가 100% 증가합니다.]
전기 인지가 100%가 됐고 강진석은 바로 퀘스트를 완료했다.
[스킬 '전기의 이해'의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스킬 퀘스트 '전기의 이해'가 생성됐습니다.]
그리고 전기의 이해 5레벨을 습득 후 바로 조건을 확인했다.
'...당장 완료는 안 되겠네.'
최대한 준비했지만 부족한 재료가 많았다.
5레벨의 경우 전기 인지가 충족된다고 해도 완료가 불가능했다.
그러나 크게 아쉽지는 않았다.
부족한 재료는 나중에 비고에서, 창고에서 혹은 상점창에서 구하면 된다.
전기 인지만 충족되면 아무 문제 없다고 할 수 있었다.
강진석은 빠르게 차오르는 전기 인지를 보다가 먹구름을 보았다.
'근데 5레벨에도 전기 인지가 이렇게 오르면 먹구름은 대체...'
전보다 느려지긴 했으나 상대적으로 느려졌다는 뜻이지 전기 인지는 여전히 엄청난 속도로 상승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곧 100%가 될 것이다.
그래서 더 궁금했다.
대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바로 그때였다.
"...!"
강진석은 눈을 번뜩였다.
안정적이었던 먹구름의 기운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대로라면 곧 벼락이 칠 것 같았다.
'...시간 끈 것 때문에?'
정보 공유도 없었고 목숨 구걸도 없었다.
기운이 요동치기 시작한 이유는 아무리 봐도 시간 때문이 분명했다.
바로 그때였다.
-!@$!@$(사, 살려주십쇼.)
카타론이 두려움 가득한 얼굴로 먹구름을 힐끔거리고는 강진석에게 외쳤다.
그리고 강진석은 카타론의 외침을 듣자마자 뒤로 물러났다.
그렇지 않아도 요동치기 시작했던 먹구름의 기운은 더욱 크게 요동쳤고 이내 벼락이 쳤다.
벼락의 대상은 카타론이었다.
땅에 박혀 있던 카타론은 벼락을 피하지 못했다.
[짙은 어둠 부족 흑익 기사단장 카타론이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
.
그렇게 카타론은 죽음을 맞이했다.
"..."
강진석은 빠르게 메시지를 확인했다.
[침공자 규율을 어긴 카타론에게 천벌이 내립니다.]
[카타론이 어긴 규율이 주변 고위 침공자들에게 공개됩니다.]
규율 메시지를 본 강진석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건 좋지 않은데.'
짙은 어둠 부족 오크들은 강진석이 초월의 씨앗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초월의 씨앗에게 목숨을 구걸하면 죽는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즉, 먹구름은 강진석이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는 비장의 무기였다.
그런데 이제는 조건이 공개됐다.
앞으로 짙은 어둠 부족 오크들은 목숨을 구걸하지 않을 것이다.
'아쉽다.'
강진석은 아쉬운 표정으로 카타론이 남긴 아티펙트를 보았다.
아쉬운 것은 아쉬운 거고 아티펙트 수거는 진행해야 했다.
'그러고 보니 저거...'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온 것은 카타론의 '두손검'이었다.
'심상치 않았지.'
카타론의 공격을 맞을 일은 없다.
눈에 훤히 보였고 피할 방법도 많았기에.
그런데 만약 피하지 않았다면?
상처가 났을 것이다.
그것도 꽤나 문제가 될.
두 번이나 제련한 육체에 생채기가 아니라 문제가 될 상처가 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카타론의 능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다.
능력의 비중이 없지는 않지만 강진석이 보기에 두손검의 비중이 더 컸다.
스윽
강진석은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두손검을 집었다.
그와 동시에 두손검의 정보가 떠올랐다.
"...!"
정보를 확인한 강진석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두손검의 명칭은 '다크닐'이었다.
다크닐에 담긴 기운은 성물보다 못했다.
그런데 내장된 패시브, 액티브 스킬은 성물 못지 않았다.
오히려 강진석의 입장에서는 웬만한 성물보다 나았다.
패시브든 액티브든 전부 전투와 관련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날카롭네.'
다크닐은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절삭력이 강하다는 것이 느껴질 정도로 날카로웠다.
그래서 더 기대가 됐다.
혼돈의 구에 저장하면 성능이 대폭 강화된다.
지금도 성물보다 낫다는 생각이 드는데 강화가 되면 얼마나 더 강력해질까?
'4차 제약 몬스터 육체도 자를 수 있을 것 같은데.'
육체를 제련한 몬스터들은 육체가 매우 단단하다.
거기다 기운으로 보호까지 하기 때문에 쉽게 죽일 수 없었다.
그리고 영혼을 각성한 존재들도 육체 제련 몬스터만큼은 아니지만 육체가 단단했고 기운은 더더욱 두터워 쉽게 죽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여태까지 몽둥이 타작으로 기운을 줄이고 죽였던 것이다.
그런데 다크닐의 절삭력이 강화된다면?
기운으로 보호되는 육체라도 쉽게 파고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생각을 마친 강진석은 다크닐을 혼돈의 구에 저장했다.
그리고 혼돈의 구를 다크닐로 변환했다.
'어둠 방출이라...'
강화된 스킬은 '어둠 방출'이었다.
'이따 도착하면 확인해 보는 걸로 하고.'
오크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스킬 '어둠 방출'이 얼마나 강력한지는 오크들이 도착하면 확인하기로 결정한 강진석은 이어 다크닐의 절삭력을 확인했다.
'이야...'
확인과 동시에 강진석은 속으로 감탄을 내뱉었다.
다크닐의 절삭력은 전보다 훨씬 강력해졌다.
아직 기운을 주입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럼에도 이정도의 절삭력이라니?
강진석은 다크닐의 검신에 기운을 주입했다.
그러자 다크닐의 검신에 반투명한 검은 기운이 서렸다.
그리고 강진석은 검은 기운을 보며 확신했다.
'이정도면 육체 제련을 했어도...'
제련을 한 육체라도 벨 수 있다.
물론 벨 수 있는 것은 한 번 제련한 육체였다.
두 번 제련한 육체는 상처 내는 정도가 한계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강진석은 흡족한 표정으로 전방을 보았다.
빽빽이 들어선 나무가 시야에 들어왔다.
이내 나무 사이로 오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강진석은 다크닐 내부에 각인된 수많은 마법진 중 '어둠 방출' 마법진에 기운을 주입했다.
그러자 다크닐에서 어둠이 넘실넘실 뿜어져 나왔다.
스킬 '어둠 방출'의 발동 방법은 2가지였다.
첫번째는 주문 영창이었고 두번째는 기운 주입이었다.
강진석이 굳이 기운 주입으로 어둠 방출을 발동한 이유는 주문 영창으로 방출한 어둠보다 더욱 크게 폭발하기 때문이었다.
강진석은 나무 사이에 멈춰 대기하고 있는 오크들을 향해 다크닐을 휘둘렀다.
그러자 다크닐에 서려 있던 어둠이 덩어리를 이룬 채 전방을 향해 날아갔다.
어둠 덩어리는 순식간에 목적지에 도착했고.
스아아!!!
폭발하며 어둠이 퍼졌다.
"..."
그리고 이어진 광경에 강진석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빽빽이 들어선 나무는 물론 그 사이에 숨어 있던 오크까지 모든 게 다 사라져있었다.
< 197화 >
197.
정확히 말하면 지상에 있는 것들만 사라졌다.
폭발의 형태는 '반구형'이었다.
어둠은 지하에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어둠 방출의 폭발력이 이렇게 강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강진석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광경을 바라보다가 정신을 차리고 폭발의 범위를 확인했다.
'30m...'
놀랍게도 반경 30m가 삭제되어 있었다.
더더욱 놀라운 것은 최대 출력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이번 출력은 30%였다.
만약 최대 출력으로 방출했다면?
'반경 100m...'
강진석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왼쪽을 보았다.
폭발 범위 밖이었던 왼쪽에는 여전히 나무가 빽빽이 들어서 있었고 수많은 오크가 숨어 있었다.
강진석은 다시 한 번 다크닐을 휘둘러 어둠을 방출했다.
이번에는 최대 출력이었다.
덩어리가 폭발했고.
스아아!!!!
어둠은 전보다 훨씬 넓게 퍼졌다.
그리고 어둠이 사라진 자리에는 당연하게도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빠르게 끝내자.'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강진석은 결정을 내렸다.
어둠 방출을 통해 빠르게 청소하기로.
'생존자도 없으니.'
수목원에는 생존자가 없었다.
오크뿐이었다.
어둠 방출을 난사한다고 해도 아무 문제 없는 상황이었다.
결정을 내린 강진석은 바로 움직였다.
스아아!!!
스아아!!!
수목원 곳곳에 어둠으로 이루어진 반구가 나타났고.
[조건을 충족하셨습니다.]
[퀘스트 '제단 파괴'를 완료하셨습니다.]
[영역이 파괴됐습니다.]
.
.
3분도 지나지 않아 강진석은 청소를 끝낼 수 있었다.
'이 속도면...'
강진석은 침을 꿀꺽 삼켰다.
'다른 곳도 금방 탈환할 수 있겠는데.'
생존자가 있는 곳은 사용하기 힘들다.
그러나 생존자가 없는 곳은 지금처럼 빠르게 탈환할 수 있다.
'근데 어둠의 이해 활성화되면...'
문득 든 생각에 강진석은 눈을 번뜩였다.
여태까지 강진석이 완료한 이해 스킬은 '물'과 '전기'였다.
둘 다 활성화될 때마다 모든 효과가 100% 증가했다.
어둠의 이해 역시 어둠과 관련된 모든 효과가 100% 증가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엄청난 위력을 가지고 있는 어둠 방출인데 여기서 효과가 증가한다면?
상상만으로 감탄이 나왔다.
강진석은 스킬창을 열었다.
[스킬 '어둠의 이해'를 습득하셨습니다.]
[스킬 퀘스트 '어둠의 이해'가 생성됐습니다.]
그리고 스킬 '어둠의 이해'를 습득 후 퀘스트창을 열어 조건을 확인했다.
<어둠의 이해>
조건을 충족하라!
[어둠 인지 : 0%]
[하급 흑요석 : 0 / 10]
.
.
퀘스트 보상 : 스킬 '어둠의 이해' 1레벨 활성화
'어둠 속 생활이 아니네.'
어둠의 이해 역시 '생활'이 아닌 '인지'였다.
'이건 얼마나 걸리려나.'
인지에 대해 생각하며 강진석은 나머지 재료를 확인했다.
'충족만 되면 바로 완료가능하겠어.'
다행히 특별한 재료는 없었다.
전부 비고, 창고 안에 있는 것들이었다.
즉, 어둠 인지만 충족되면 완료가 가능했다.
'그러고 보니.'
강진석은 이어 퀘스트 '전기의 이해'를 보았다.
현재 전기의 이해는 재료만 있으면 완료가 가능했다.
그리고 완료하면 5레벨이 활성화된다.
5레벨이 활성화되면 '이해'의 상위 스킬인 '운용'을 습득할 수 있다.
'어떤 퀘스트려나.'
이해 스킬과 마찬가지로 운용 스킬 또한 바로 활성화되지 않을 것이다.
퀘스트가 있을 확률이 매우 높았다.
그리고 퀘스트 난도는 낮지 않을 것이다.
강진석은 퀘스트 조건에 대해 생각하며 비고를 소환했다.
그리고 비고 안에서 퀘스트 '어둠의 이해', '전기의 이해' 완료에 필요한 재료들을 챙겼다.
이후 비고에서 나와 영역 이동을 통해 봉제산 창고로 이동 후 다시 한 번 재료를 챙겼다.
그렇게 완료에 필요한 모든 재료를 챙긴 강진석은 바로 퀘스트를 완료했다.
[스킬 퀘스트 '전기의 이해'를 완료하셨습니다.]
[스킬 '전기의 이해' 5레벨이 활성화됩니다.]
[전기와 관련된 모든 효과가 100% 증가합니다.]
그리고 완료하자마자 강진석은 스킬창을 열었다.
전기의 이해 5레벨이 활성화된 덕분에 전기의 운용 아이콘이 활성화되어 있었다.
강진석은 싱긋 웃으며 스킬 '전기의 운용'을 습득했다.
[스킬 '전기의 운용'을 습득하셨습니다.]
[스킬 퀘스트 '전기의 운용'이 생성됐습니다.]
예상대로 퀘스트가 생성됐다.
"...?"
그러나 강진석은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이 발생했다.
강진석은 잠시 메시지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내려 손을 보았다.
그리고 잠시 집중했다.
지지직!
그러자 손에서 전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전기는 강진석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강진석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전기를 보며 생각했다.
'아직 퀘스트 안 깼는데...?'
당연히 퀘스트를 완료해야 전기의 운용이 활성화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미 전기의 운용은 활성화된 상태였다.
그러면 퀘스트는 왜 생성된 것일까?
강진석은 어떻게 된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퀘스트 '전기의 운용'을 확인했다.
<전기의 운용>
조건을 충족하라!
[전기 운용 : 1%]
[최상급 뇌전석 : 0 / 100]
.
.
퀘스트 보상 : 스킬 '전기의 운용' 2레벨 습득 권한 활성화
'아.'
확인과 동시에 강진석은 탄성을 내뱉었다.
퀘스트 보상은 예상대로 활성화가 아니었다.
'완료해야 하는 건 매한가지지만...'
퀘스트를 완료하지 않으면 전기의 운용 2레벨을 습득할 수 없다.
즉, 이해와 마찬가지로 다음 레벨을 습득하기 위해서는 퀘스트를 완료해야 했다.
'이게 낫지.'
이해는 습득해도 당장 효과를 볼 수 없었다.
당장 효과를 볼 수 있는 운용이 훨씬 나았다.
강진석은 완료에 필요한 조건을 확인 후 퀘스트창을 닫았다.
그리고 다시 전기를 보며 생각했다.
'이제 쉽게 올릴 수는 없겠네.'
전기 인지였다면?
먹구름을 통해 빠르게 올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전기 '인지'가 아닌 전기 '운용'이었다.
치트키 같은 속도는 이제 불가능하다.
강진석은 전기를 계속 운용하며 영역 이동을 통해 다시 강릉시로 이동했다.
청소를 이어 나가기 위해서였다.
* * * *
"와..."
최은형은 감탄을 내뱉었다.
감탄을 내뱉은 이유는 조금 전 강진석에게 온 문자 때문이었다.
문자 내용은 간결했다.
영역을 탈환했으니 정리팀을 보내달라는 내용이었다.
물론 감탄한 이유가 문자 하나 때문만은 아니었다.
짧게는 5분, 길게는 10분마다 문자가 오고 있었다.
당연히 전부 영역을 탈환했으니 정리팀을 보내달라는 내용이었다.
'내일이면 끝나겠어.'
몬스터 청소 속도가 매우 빨랐다.
이대로라면 아무리 늦어도 내일이면 강릉시 청소가 끝날 것 같았다.
'일단 정리팀 요청해야겠다.'
지금도 강진석의 탈환 속도가 워낙 빨라 정리팀이 따라가질 못하고 있었다.
최은형은 지원을 요청하기 위해 한지윤에게 전화를 걸었다.
-응, 은형아.
"누나, 혹시 정리팀 지원 가능해요?"
-정리팀?
"네."
한지윤의 반문에 최은형은 현재 상황을 설명했다.
그리고 상황을 알게 된 한지윤이 물었다.
-10팀밖에 안 될 것 같은데 괜찮을까?
"예, 그정도면 괜찮을 것 같아요."
강진석의 탈환 속도를 보면 10팀도 부족하다.
그러나 정리에 시간제한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한지윤의 반응을 보면 서울도 정리팀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알겠어. 강릉 본부로 보낼게.
-20분 정도 걸릴 거야.
"네! 근데 서울 상황은 어때요?"
-잔존 병력 처리하면서 영역 안정화 중이야.
-2주 정도면 차가운 뿌리, 전쟁 바람, 검은 숲은 깔끔히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아.
한지윤의 이야기를 들으며 최은형은 진짜 궁금했던 질문을 꺼냈다.
"누나, 숙제 상황은 어때요?"
-숙제?
"네, 길드장님이 내주신 숙제요."
-아, 3차 제약 침공자 혼자서 잡는 거?
"네!"
최은형은 숙제를 받은 이후 미친 듯이 노력했다.
수많은 패시브, 액티브 스킬을 습득했고 장비도 업그레이드 했다.
숙제 받았을 당시와 비교해 훨씬 강해졌다.
아직 확인해보지는 않았지만 지금이라면 겔리만 같은 3차 제약 침공자를 혼자서도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궁금했다.
한지윤, 강나연, 김칠성은 어떤지.
-안 그래도 1시간 전에 하나 잡고 왔어.
-나연이랑 칠성이도 잡고 있구.
"...오호!"
최은형은 한지윤의 답에 눈을 번뜩였다.
자신감이 생기긴 했으나 객기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세 사람이 3차 제약 침공자를 홀로 잡고 있다니?
'마음 편히 도와드려도 되겠어.'
* * * *
"..."
킬로아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멍하니 허공을 바라볼 뿐이었다.
"후우..."
이내 정신을 차린 킬로아는 깊게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한숨을 내뱉으며 다시 멍한 상태에 빠졌다.
주변에 앉아 있던 수뇌부들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킬로아가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흑익 기사단장 카타론이 죽었다.
카타론이 누구인가?
짙은 어둠 부족 내 서열 7위의 강자이자 킬로아의 의동생이었다.
물론 킬로아가 멍한 이유는 카타론의 죽음 때문만이 아니었다.
제단이 파괴되고 있었다.
그것도 너무나 빠르게.
"끙..."
이내 킬로아가 신음을 내뱉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망할 초월의 씨앗!'
킬로아는 카타론이 죽은 이유, 제단을 파괴하고 있는 존재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바로 '초월의 씨앗'이었다.
킬로아는 초월의 씨앗이 어떤 존재인지 매우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답답했다.
지금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야 할 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분명 두번째 제련을 했거나 각성을 했다.'
카타론은 초월의 씨앗에게 직접 죽임을 당하지 않았다.
초월의 씨앗에게 목숨을 구걸했고 그로인해 천벌을 받아 죽었다.
그것이 초월의 씨앗이 약하다는 뜻은 아니다.
벽을 넘어선 카타론이 목숨을 구걸했다.
만약 제련을 한 번 했거나 각성을 한 번 했다면 카타론이 구걸했을까?
아니, 구걸할 리 없다.
초월의 씨앗은 육체를 2번 제련했거나 혹은 영혼을 2번 각성했을 것이다.
'점점 강해질텐데.'
문제는 초월의 씨앗의 성장력이다.
초월의 씨앗은 무지막지한 성장력을 가지고 있다.
하루하루가 달리 강해진다.
그렇지 않아도 강한 초월의 씨앗이 더 강해진다면?
'죽일 수도 없고.'
한시라도 빨리 죽여야 했다.
그러나 죽이고 싶어도 죽일 방법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부족 내에서 초월의 씨앗을 상대할 수 있는 이는 킬로아를 제외하면 북부사령관 케피라느 뿐이었다.
문제는 킬로아와 케피라느가 부족 영역 북쪽에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제약 때문에 영역을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킬로아, 케피라느와 달리 초월의 씨앗은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는다.
어디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
초월의 씨앗이 킬로아, 케피라느가 갈 수 없는 남쪽과 서쪽을 헤집는다면?
그냥 보고만 있어야된다.
최악의 상황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갑자기 어디서 초월의 씨앗이...'
킬로아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대체 어디서 초월의 씨앗이 탄생한 것일까?
'이 근처는 아닌데.'
만약 영역 내에서 탄생한 것이라면 감지했을 것이다.
영역 밖이라도 가까웠다면 보고가 들어왔을 것이다.
'남쪽에서 온 건가?'
그런데 감지되지도 않았고 보고가 들어오지도 않았다.
즉, 머나먼 곳에서 탄생한 게 분명했다.
'끙.'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어디서 왔는지가 아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초월의 씨앗이 영역을 활보하고 있다는 것 그 자체였다.
킬로아는 고민했다.
"후우..."
고민 끝에 깊게 한숨을 내뱉었다.
아무리 고민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다른 곳으로 갔으면 좋겠는데...'
킬로아는 속으로 간절히 바랐다.
부디 초월의 씨앗이 영역 밖으로 사라져 주기를.
< 198화 >
198.
물론 현재 초월의 씨앗의 동선을 생각하면 영역 밖으로 사라질 확률은 지극히 낮았다.
그렇다고 해도 바랄 수밖에 없다.
할 수 있는게 없었기에.
바로 그때였다.
우웅!
뒤쪽 진열대에 진열되어 있던 통신 수정구 중 하나가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
킬로아는 눈을 번뜩이며 빛나는 수정구 앞으로 향했다.
'무슨 일이지?'
지금 빛나고 있는 수정구는 북부 사령관 케피라느와의 직통 수정구였다.
케피라느는 웬만한 일로는 연락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 궁금했다.
직통 수정구로 연락을 한 이유가 무엇인지.
수정구 앞에 도착한 킬로아는 기운을 주입했다.
그러자 수정구에 서린 빛이 하늘로 치솟았고 포털이 생성됐다.
그리고 포털에 북부사령관 케피라느가 등장했다.
-대족장을 뵙습니다.
"무슨 일인가?"
케피라느의 인사에 킬로아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사카라 부족에서 사고를 친 것 같습니다.
"...그 망령 자식들이?"
사카라 부족은 짙은 어둠 부족의 북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영혼, 저주, 독 등 하나같이 껄끄러운 능력을 다루는 데에다가 규모도 짙은 어둠 부족 못지않게 큰, 매우 강력한 집단이었다.
그런 사카라 부족이 사고를 친 것 같다니?
무슨 사고를 쳤다는 것일까?
-예, 지금 사카라 부족의 혼령들이 원혼 상태로 날뛰고 있습니다.
-잡령뿐만 아니라 1급 혼령도요.
-계속 넘어오고 있는데 통제할 생각이 없는 것 같습니다.
"1급 혼령까지..."
킬로아는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잡령이라 불리는 4, 5급 혼령은 충분히 원혼 상태로 날뛸 수 있다.
그러나 1급 혼령이 원혼이 되어 날뛰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도 그럴 것이 3급 혼령 이상은 사카라 부족에서도 아주 특별히 관리하는 귀한 자산이었기 때문이다.
"혹시 특급 혼령은 안 보였나?"
-네, 아직 특급 혼령은 보이지 않습니다.
-근데 시간이 흐를수록 귀기가 짙어지는 것을 보아 곧 나타날 것 같기도 합니다.
케피라느의 말에 킬로아는 생각에 잠겼다.
'이 상황...'
상황이 심상치 않았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낯설지가 않았다.
어디서인가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 서적에!'
이내 어디서 보았는지 떠올린 킬로아는 눈을 번뜩였다.
대대로 대족장들에게 내려오는 역사 서적이 있었다.
역사 서적에는 현재 사카라 부족의 상황과 똑같은 상황이 쓰여 있었다.
당연히 이유도 쓰여 있었다.
그리고 이유를 떠올린 킬로아의 얼굴이 굳었다.
"..."
킬로아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케피라느를 바라볼 뿐이었다.
-...대족장? 왜 그러십니까?
킬로아의 표정에 케피라느는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게..."
케피라느의 질문에 정신을 차린 킬로아는 답하려다가 말끝을 흐렸다.
'세번째 각성을 알려도 되나?'
역사 서적에 나온 이유는 '세번째 영혼 각성'이었다.
물론 다른 이유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킬로아가 보기에 다른 이유일 가능성은 높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사카라 부족에는 세번째 영혼 각성을 시도할 만한 존재가 셋이나 있었다.
'말하면 분명 불안해 할텐데.'
세번째 영혼 각성은 보통 일이 아니다.
부족원들의 불안함이 커질 확률이 매우 높았다.
아니, 높은 수준이 아니라 100%다.
그리고 불안함은 곧 사기 저하로 이어질 것이고 이번 시험을 진행함에 있어 큰 문제가 될 것이다.
그렇다고 말하지 않자니 피해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날 것 같았다.
킬로아는 인상을 구겼다.
'그렇지 않아도 초월의 씨앗 때문에 미치겠는데.'
남쪽에서 초월의 씨앗이 날뛰고 있다.
이런 상황에 북쪽에서 세번째 영혼 각성이라니?
'...잠깐.'
그러다 문득 든 생각에 킬로아는 눈을 크게 떴다.
'초월의 씨앗을 사카라 부족 영역으로 보내면...!'
* * * *
[던전 '백마봉'에 입장하셨습니다.]
[24시간 동안 모든 입구가 봉쇄됩니다.]
[던전 클리어 시 봉쇄가 해제됩니다.]
[퀘스트 '제단 파괴'가 생성됐습니다.]
.
.
강릉시 마지막 탈환 영역인 '백마봉'에 입장한 강진석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표정이 좋지 않은 이유는 생존자 때문이었다.
'...너무 없는거 아냐?'
강릉시 시내동지구에는 2만이 넘는 생존자가 있었다.
그래서 당연히 구정면, 성산면, 주문진읍 등 남은 지역에도 많은 생존자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생존자가 거의 없었다.
남은 지역의 생존자를 전부 합쳐도 1000명이 되지 않았다.
시내동지구의 생존자를 합쳐도 2만 5000 이하였다.
강진석이 기억 하기로 강릉시의 인구는 20만이 넘었다.
즉, 너무나 많은 이들이 죽었다.
'...서울 생각하면 많은건가?'
문득 서울의 상황이 떠올랐다.
아직 남은 지역에 생존자가 얼마나 있는지 모르겠지만 강진석이 보기에 서울 생존자는 10%도 되지 않을 것으로 추정됐다.
10% 이상인 강릉이 서울보다 상황이 낫다고 할 수 있었다.
'에휴.'
강진석은 속으로 한숨을 내뱉으며 백마봉의 정상으로 공간이동했다.
그리고 강진석은 볼 수 있었다.
도끼를 들고 거처에서 빠져나오는 오크를.
던전 '백마봉'의 보스인 수비단장 겔리오사였다.
강진석은 겔리오사에게 의지 번역을 시전 후 말했다.
"대화할 생각이 있나?"
-!@$!@(부족을 위하여!)
겔리오사는 포효하며 도끼를 들고 달려들었다.
강진석은 달려오는 겔리오사를 보며 다크닐에 기운을 주입했다.
'뭐 얻을 건 없을테니까.'
대화를 하지 못한 것이 아쉽지는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강릉시 곳곳을 돌아다니며 강진석은 수많은 오크를 마주했고 그중 몇몇과 대화를 나눴다.
즉, 이미 많은 정보를 얻은 상태였다.
3차 제약 침공자에게는 더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없을 정도로.
강진석은 코앞에 도착해 도끼를 휘두르는 겔리오사를 보며 다크닐을 휘둘렀다.
먼저 공격한 것은 겔리오사였다.
그러나 먼저 도착한 것은 다크닐이었다.
스걱!
[짙은 어둠 부족 수비단장 겔리오사가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
.
그렇게 겔리오사가 죽음을 맞이했고 강진석은 전리품을 수거했다.
그리고 이어 백마봉 곳곳으로 공간이동해 어둠을 방출했다.
어둠의 반구가 백마봉 곳곳에 모습을 드러냈고 1분도 지나지 않아 백마봉 내 모든 오크가 죽음을 맞이했다.
그렇게 청소를 마무리 한 강진석은 탈환을 마무리 하기 위해 제단 앞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다크닐을 휘둘렀다.
스걱!
[조건을 충족하셨습니다.]
[퀘스트 '제단 파괴'를 완료하셨습니다.]
[영역이 파괴됐습니다.]
.
.
제단이 반으로 갈라지며 메시지가 주르륵 나타났다.
"...?"
그리고 메시지를 대충 확인하던 강진석의 표정에 의아함이 나타났다.
'...뭐야?'
기존에 나타나던 메시지 말고도 새로운 메시지가 추가로 나타났다.
[조건이 충족됐습니다.]
[퀘스트 '희망의 상징'이 생성됐습니다.]
[퀘스트 '상징 거부'가 생성됐습니다.]
'...무슨 퀘스트지?'
메시지를 보고 잠시 멈칫했던 강진석은 정신을 차리고 퀘스트창을 열었다.
그리고 퀘스트 '희망의 상징'을 확인했다.
<희망의 상징>
수많은 영역 상징을 파괴해 영토를 되찾은 당신.
당신은 지구의 희망이 될 조건을 충족했다.
당신의 선택은?
퀘스트 보상 : 한반도 모든 생존자에게 희망 전파, 생존자 현황 지도(한반도)
퀘스트 완료 시 퀘스트 '상징 거부'가 삭제됩니다.
"...!"
퀘스트를 확인한 강진석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지구의 희망이라는 거창한 단어 때문이 아니다.
'생존자 현황 지도?'
강진석이 놀란 이유는 퀘스트 보상 중 하나인 '생존자 현황 지도(한반도)' 때문이었다.
'저것만 있으면...'
지금은 생존자 유무를 직접 돌아다니며 파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생존자 현황 지도만 있다면 직접 돌아다닐 필요가 없다.
그리고 우선적으로 생존자가 있는 지역을 방문해 구출할 수 있다.
강진석은 퀘스트 '상징 거부'를 확인했다.
<상징 거부>
수많은 영역 상징을 파괴해 영토를 되찾은 당신.
당신은 지구의 희망이 될 조건을 충족했다.
그러나 꼭 희망이 될 필요는 없다.
당신의 선택은?
퀘스트 보상 : 1억 포인트
퀘스트 완료 시 퀘스트 '희망의 상징'이 삭제됩니다.
퀘스트 '상징 거부'의 보상은 포인트였다.
그것도 1억으로 적지 않았다.
그러나 강진석은 고민하지 않았다.
'1억 정도야.'
현재 강진석에게 1억 포인트는 그리 큰 포인트가 아니었다.
물론 무시할 정도는 아니다.
그러나 지도의 가치가 훨씬 컸다.
강진석은 바로 퀘스트 '희망의 상징'을 완료했다.
[퀘스트 '희망의 상징'을 완료하셨습니다.]
[한반도 내 모든 생존자에게 당신의 정보가 약간 전달됩니다.]
[생존자 현황 지도(한반도)를 획득하셨습니다.]
[퀘스트 '상징 거부'가 삭제됩니다.]
그리고 메시지가 주르륵 나타났다.
"..."
메시지를 본 강진석은 말없이 미간을 찌푸렸다.
'내 정보가 전달됐다고?'
퀘스트 '희망의 상징'의 보상은 지도 말고도 하나가 더 있었다.
바로 희망 전파였다.
어떤 희망이 전파되는 것일까 궁금했다.
그런데 자신의 정보가 전달됐다는 사실에 강진석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어떤 정보가 전달된 거지?'
강진석은 핸드폰을 꺼내 한지윤을 포함한 길드 최고 간부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전달된 정보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그때문만은 아니었다.
생존자 현황 지도를 얻었다.
이와 관련해 어떻게 할 것인지 회의를 해야 했다.
문자를 보낸 뒤 강진석은 지도를 꺼냈다.
그와 동시에 머릿속에 지도에 대한 여러 정보가 떠올랐다.
강진석은 지도를 펼쳤다.
그리고 초록점과 파란점을 볼 수 있었다.
강진석은 초록점과 파란점이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었다.
초록점은 영역을 확보한 생존자들을 가리킨다.
당연하게도 강진석의 길드 영역에는 전부 초록점이 자리하고 있었다.
물론 강진석의 길드 영역에만 초록점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역시 우리 말고도 있구나.'
부산, 대전, 목포 등에도 초록점이 있었다.
초록점 확인을 마친 강진석은 이어 파란점을 훑었다.
파란점은 몬스터들에게 갇혀 있는 생존자들이 있는 곳이었다.
강진석은 서울에 있는 수많은 파란점 중 하나를 눌렀다.
파란점을 누른 이유는 정보를 얻기 위해서였다.
초록점과 달리 파란점은 정보를 제공했다.
거창한 정보는 아니었다.
-현재 생존자 : 5273명
생존자의 숫자였다.
강진석은 계속해서 파란점을 눌러 생존자의 수를 확인했다.
확인하면 할수록 강진석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이내 모든 파란점을 확인한 강진석의 얼굴에 씁쓸함이 가득 나타났다.
'...정말 많이 죽었구나.'
남은 생존자는 100만명 정도였다.
그것도 북한에 있는 생존자를 포함한 숫자다.
부산, 대전, 목포 등에 있는 초록점에 생존자들이 얼마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수천만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즉, 수천만 명이 죽었다는 뜻이다.
'이럴 때가 아니야.'
지도를 보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어서 회의를 통해 계획을 짜야 했다.
강진석은 길드 관리창을 열었다.
그리고 기본 설정을 마친 뒤 영역 이동을 통해 회의 장소인 봉제산으로 이동했다.
< 199화 >
199.
봉제산에 도착한 강진석은 곧장 회의실로 향했다.
모든 수뇌부가 모이지는 않았지만 한지윤, 강나연을 포함해 절반이 도착해 있었다.
바로 그때.
"어, 오빠!"
강진석을 발견한 강나연이 의아한 목소리로 다가와 물었다.
"방금 나타난 메시지 뭐야?"
"퀘스트 완료했더니 그렇게 뜨더라고, 어떤 정보가 나타난 거야?"
"오빠 이름이랑 길드명, 길드 본부 위치. 그리고 오빠 직업까지 4개."
"직업까지 떴어?"
"응."
"아..."
약간의 정보라고 해도 능력과 관련된 정보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직업이 공개될 줄이야?
'뭐 큰 상관은 없지만...'
직업이 마법사이긴 했다.
그러나 강진석은 액티브 스킬을 배우지 않았다.
강진석을 아는 이들도 마법사보다 전사를 떠올릴 정도다.
즉, 직업이 공개된다고 문제가 생길 일은 없다.
"혹시 다른 분들도 같은 정보가 떴나요?"
강진석은 이어 주변에 있는 길드원들에게 물었다.
"네, 저도 같은 정보가 떴습니다."
"저도요!"
혹여 저마다 다른 정보가 떴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다행히 전부 같은 정보가 뜬 것 같았다.
강진석은 한결 편해진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간부들이 도착했고 회의가 시작됐다.
* * * *
부산 일광역 근처 4층 건물.
"..."
김필립은 아까 나타난 메시지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
.
[길드 '강진석'의 본부는 '서울 강서구 화곡동 봉제산'에 위치해 있습니다.]
[강진석의 직업은 '마법사'입니다.]
한동안 메시지를 빤히 바라보던 김필립은 미간을 찌푸렸다.
'지구의 희망이라니 이게 뭔...'
갑자기 지구의 희망이 나타났다며 한 인간의 정보가 나타났다.
많은 정보는 아니었다.
인간의 이름, 길드, 길드 본부 위치, 직업이 끝이었다.
중요한 것은 인간이 '길드'를 이끌고 있다는 점이었다.
'강진석이라...'
김필립은 인간의 이름 '강진석'을 속으로 되뇌며 생각했다.
'창설에 얼마나 걸릴까.'
아직 김필립은 길드를 만들지 못했다.
그러나 길드 창설 조건은 알고 있었다.
요새 4개, 요새 입주 인원 300명이 창설 조건이었다.
'그래, 며칠이면 되겠지.'
이미 요새를 2개 보유중이고 입주 인원도 270명이었다.
그리고 곧 추가로 요새 1개가 확보될 것이고 입주 인원이야 당장에라도 채울 수 있다.
요새 근처에서 머물고있는 이들이 수두룩했기에.
즉, 창설은 금방 할 수 있을 것이다.
'얼마나 성장시킬 수 있냐가 관건인데.'
중요한 것은 창설 후 얼마나 빠르게 덩치를 키우냐였다.
'당장 만날 일은 없겠지만...'
김필립이 길드 규모에 신경 쓰는 이유는 강진석 길드 때문이었다.
강진석 길드는 서울에 있었다.
서울과 부산은 매우 멀리 떨어져 있었다.
즉, 당장 마주하게 될 일은 없었다.
말 그대로 '당장' 마주하지 않을 뿐이다.
언젠가는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마주하게 되는 순간 대치, 전쟁 등의 여러 선택지가 주어질 것이다.
좋은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길드의 규모를 최대한 키워야했다.
바로 그때였다.
"형님!"
백창주가 다급히 달려왔다.
"왜?"
"큰일 난 것 같아요!"
"큰일?"
김필립은 반문할 수밖에 없었다.
왜인지 묻기는 했으나 조금 전 나타난 강진석 메시지 때문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다급한 표정을 보니 그게 아닌 것 같았다.
"뭔데? 왜?"
"오크들이 갑자기 뛰쳐나왔어요!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습니다!"
"뭐?"
백창주의 답에 김필립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옥상으로 올라가 오크들의 영역을 확인했다.
백창주의 말대로 오크들이 무리 지어 움직이고 있었다.
전에 오지 않았던 곳들까지.
'이게 갑자기 무슨.'
바로 그때였다.
[세계 침공자들의 2차 제약이 해제됩니다.]
[세계 침공자들의 활동 반경이 더욱 넓어집니다.]
.
.
메시지가 주르륵 나타났다.
그리고 메시지를 통해 김필립의 의문은 해결됐다.
갑작스런 오크들의 변화는 2차 제약이 해제됐기 때문이었다.
'망할.'
김필립은 속으로 욕을 내뱉었다.
'벌써 해제된다고?'
예전에 튜토리얼이 끝나며 1차 제약이 해제됐다.
그리고 당시 김필립은 1차 제약이 끝이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1차 제약이 끝이었다면 '1차'라는 단어가 붙지 않았을 것이기에.
언젠가는 2차 제약이 해제되는 날이 오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더 열심히 움직였다.
2차 제약이 해제되면 몬스터들이 더욱 강해질 것이기에.
그런데 벌써 2차 제약이 해제되다니?
"당장 전투 준비해."
김필립은 백창주에게 말했다.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을 때가 아니었다.
* * * *
대전시 노은역 4번 출구 앞 노은빌딩.
노은빌딩 7층에는 두 사람이 있었다.
한 사람은 자리에 앉아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또 다른 한 사람은 긴장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 있는 이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철호야."
자리에 앉아 있던 중년 사내 김성운이 눈치를 보고 있는 사내, 최철호를 불렀다.
"예, 형님."
"넌 어떻게 생각하냐."
"...강진석 길드 말입니까?"
"그래, 녀석들이 서울에서 여기까지 내려올까?"
"...언젠가는 내려오지 않겠습니까?"
서울과 대전의 거리는 가깝다고도 할 수도 있고 멀다고도 할 수 있었다.
당장이야 몬스터들 때문에 내려오지 못하겠지만 시간이 흐르면 내려올 가능성이 높았다.
"...보통 녀석 아니겠지?"
"보통 녀석은 아닐 겁니다. 그래도 형님을 이길 수는 없을 겁니다!"
최철호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외쳤다.
빈말이 아니다.
최철호는 김성운이 강진석을 이길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근거 없는 확신이 아니다.
"녀석이 마법사가 아니라면 모를까, 마법 사냥꾼 앞에서는 엎드려야죠!"
김성운의 직업은 평범한 직업이 아니었다.
마법 사냥꾼이라는 특별한 직업이었다.
수많은 이들의 직업을 확인했으나 김성운처럼 특별한 직업을 가진 이는 없었다.
그리고 김성운의 스킬은 마법사들에게 너무나 치명적이었다.
"그리고 저희가 있지 않습니까? 솔직히 형님이 나서실 필요 없이 애들만으로도 충분히 박살 낼 수 있을 겁니다."
바로 그때였다.
[세계 침공자들의 2차 제약이 해제됩니다.]
[세계 침공자들의 활동 반경이 더욱 넓어집니다.]
.
.
메시지가 주르륵 나타났다.
"...!"
김성운은 눈을 번뜩이며 메시지를 확인했다.
그리고 확인을 마친 김성운은 활짝 웃으며 최철호에게 물었다.
"미끼 준비는 어떻게 됐어?"
"50명 준비 완료입니다."
"50명으로 충분할까?"
"...10명 추가할까요?"
"추가해 어차피 우리 아니었으면 뒤졌을 새끼들인데."
"알겠습니다! 바로 준비하고 보고드리겠습니다!"
최철호는 김성운의 말에 답하며 꾸벅 숙여 인사했다.
그리고 방에서 나와 6층으로 내려갔다.
"문 열어."
6층에 도착한 최철호는 입구를 지키고 있는 두 부하에게 말했다.
끼이익
문이 열렸고 최철호는 안으로 들어가 주변을 스윽 훑었다.
수많은 철창 그리고 철창 안에 갇혀 있는 이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리고 갇혀 있는 이들은 전부 두려운 얼굴로 최철호의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최철호는 손가락으로 2번 철창에 갇혀 있는 이들을 가리키며 뒤따라 들어온 김석훈에게 말했다.
"2번 녀석들 2층으로 보내."
"...추가로 말입니까?"
"어, 형님 명령이시다."
"알겠습니다."
김석훈이 2번 철창으로 다가갔다.
"사, 살려주세요!"
"제발! 뭐든 하겠습니다!"
그러자 2번 철창 안에 있던 이들이 다급히 외쳤다.
최철호는 외침에 싱긋 웃으며 답했다.
"그래, 바라는 대로 살 기회를 주는 거야."
* * * *
봉제산 지휘실.
"그럼 계획대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강진석의 말을 끝으로 회의가 끝났다.
그리고 강진석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한지윤에게 말했다.
"바로 출발할게요. 혹시나 지원 필요하면 알려주세요."
"네! 문제가 생기면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한지윤이 답했고 강진석은 고개를 돌려 강나연, 김칠성에게 말했다.
"지금 수준으로는 상대할 수 없는 몬스터가 있을거야. 굳이 무리하지 말고 연락해."
모두가 생존자 구출을 위해 움직이는 것은 아니었다.
강나연, 김칠성은 다른 이들과 다른 임무가 주어졌다.
바로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초록점.
대전으로 향하는 길을 뚫는 것이었다.
"걱정마셔. 목숨 소중한 거 아니까."
"위험할 것 같으면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두 사람의 답을 듣고 강진석은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럼 나중에 보자."
그리고 작별 인사를 한 뒤 영역 이동을 통해 증미역으로 넘어갔다.
이어 강진석은 공간이동을 통해 마포구로 이동했다.
회의 도중 2차 제약이 해제됐다.
그로 인해 마포구에 진입했으나 아무런 메시지도 나타나지 않았다.
혹여 3차 제약이 조기 해제 되지 않을까 메시지창을 확인했던 강진석은 한결 편해진 표정으로 서대문구로 향했다.
마포구를 그냥 지나치는 이유.
그 이유는 마포구에 생존자가 없기 때문이었다.
이내 서대문구에 도착한 강진석은 바로 던전 '궁동근린공원'으로 향했다.
[던전 '궁동근린공원'에 입장하셨습니다.]
[24시간 동안 모든 입구가 봉쇄됩니다.]
[던전 클리어 시 봉쇄가 해제됩니다.]
[퀘스트 '신단 파괴'가 생성됐습니다.]
.
.
수많은 퀘스트가 생성됐다.
그러나 강진석은 퀘스트를 확인하지 않았다.
감옥으로 향하고 있는 고블린 무리 때문이었다.
강진석은 바로 감옥 앞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도착하자마자 입구를 지키고 있던 고블린 두 마리를 향해 전기를 방출했다.
지지직! 지지직!
전기가 작렬했고 두 고블린은 그대로 죽음을 맞이했다.
그리고 강진석은 아이스 포그를 시전했다.
수많은 눈송이가 나타났고 강진석은 다가오는 고블린들에게 눈송이를 보내며 안에 갇혀 있는 생존자들에게 텔레파시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강진석입니다.]
[곧 구출해드리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강진석은 전처럼 길게 설명하지 않았다.
퀘스트 '희망의 상징'을 완료하며 생존자들에게 정보가 전달됐기 때문이었다.
이내 다가오던 고블린 무리와 근처에 있던 고블린들이 눈송이에 전부 죽음을 맞이했다.
그렇게 감옥의 안전을 확보한 강진석은 공원 곳곳을 돌아다니며 고블린들을 죽이기 시작했다.
당연하게도 전부 한 방이었고 3분도 지나지 않아 강진석은 제단을 파괴하며 탈환을 마칠 수 있었다.
강진석은 길드 관리창을 열어 기본 설정을 마친 뒤 한지윤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리고 바로 공원 밖으로 나와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던전 '서대문 아파트 단지'에 입장하셨습니다.]
[24시간 동안 모든 입구가 봉쇄됩니다.]
[던전 클리어 시 봉쇄가 해제됩니다.]
[퀘스트 '신단 파괴'가 생성됐습니다.]
.
.
"...?"
입장과 동시에 강진석은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강진석이 멈칫한 이유는 영역 밖에서 느껴지지 않았던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뭐지?'
외형이 감지 되지 않았다.
기운만 감지할 수 있었다.
일단 고블린은 아니다.
애초에 생물이 아니었다.
'...아티펙트인가?'
정체불명의 기운이 위치한 곳은 창고였다.
창고에 있는 것을 보면 아티펙트 혹은 재료로 추정됐다.
강진석은 정체불명의 기운에 대해 생각하며 일단 감옥으로 이동했다.
[안녕하세요. 강진석입니다.]
[곧 구출해드리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그리고 생존자들에게 텔레파시를 보낸 뒤 감옥의 안전을 확보했다.
이후 강진석은 정체불명의 기운을 확인하기 위해 창고로 향했다.
아직 탈환을 하지 않아서일까?
창고 입구는 강력한 마법진으로 보호되고 있었다.
물론 강진석에게는 아무 의미 없었다.
강진석은 다크닐을 휘둘러 마법진의 모든 중점을 파괴했다.
중점이 파괴된 마법진은 자연스레 와해됐고.
[수비단장 으파루가 창고의 상황을 인지했습니다.]
서대문 아파트 단지의 보스인 '으파루'가 상황을 인지했다는 메시지가 나타났다.
당연히 강진석은 신경 쓰지 않았다.
으파루는 3차 제약 침공자였다.
현재 강진석의 입장에서 3차 제약 침공자는 일반 몬스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강진석은 창고로 들어갔다.
그리고 정체불명의 기운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곧 강진석은 정체불명의 기운을 두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고.
'아...'
속으로 나지막이 탄성을 내뱉었다.
'이래서 감지가 안 됐던 거구나?'
주변 공간이 일그러져 있었다.
< 200화 >
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