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0화
170.
<공허의 틈에서 생존하라!>
두 번째 영혼 각성을 한 당신.
그러나 당신의 두 번째 영혼 각성은 아직 완벽하지 않다.
완벽한 각성을 위해 공허의 틈에서 7일간 생존하라!
퀘스트 보상 : ???
퀘스트 내용은 매우 간단했다.
온통 검은 이곳, 공허의 틈에서 생존하기만 하면 된다.
문제는 2가지다.
첫 번째는 공허의 틈에 무엇이 있는지 쓰여 있지 않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생존 시간이 7일이라는 점이었다.
'만약 똑같이 흐르면....'
공허의 틈과 지구의 시간이 똑같이 흐른다면?
7일은 짧지 않다.
많은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긴 시간이었다.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은 3일 뒤 강서구 주변 지역의 2차 제약 해제였다.
2차 제약이 해제되면 활동 반경이 넓어진다.
즉, 주변 지역에서 언제든 강서구로 넘어올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길드원들의 수준은 높다.
한지윤을 포함한 최고 간부들은 영역에서 힘을 합치면 3차 제약 침공자도 상대할 수 있을 정도였다.
주변에서 3차 제약 침공자가 넘어온다고 해도 쉽게 당하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2차 제약 해제에서 끝나지 않을 경우다.
이어 3차 제약 해제가 된다면?
4차 제약 침공자가 나타나기라도 한다면?
길드원들의 수준으로는 결코 감당할 수 없다.
영역의 힘을 빌린다고 해도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다.
아직 강진석도 만나 본 적 없지만 손짓 한 방에 쓸려나갈 수도 있다.
'...그래, 그 정도는 아니겠지.'
2차 제약이 해제되는 데에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런데 2차 제약이 해제되고 4일 안에 3차 제약까지 해제된다?
여태까지의 상황을 생각하면 그렇게 빨리 해제되지는 않을 것이다.
강진석은 퀘스트창을 닫았다.
그리고 초감각에 집중했다.
계속 생각한다고 상황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지금 중요한 것은 공허의 틈이 어떤 곳이냐는 점이다.
'으음....'
초감각을 통해 주변을 확인한 강진석은 속으로 침음을 내뱉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텅 비어 있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다고 방심할 수는 없었다.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감지하기가 힘드네.'
문제는 바로 초감각의 상태였다.
초감각이 정상적이지 않았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완벽히 감지할 수 있는 범위가 작아졌다.
그 밖은 감지할 수 있지만 흐릿했다.
초감각의 상태만 봐도 보통 장소가 아니다.
분명 초감각 범위 밖에 위험한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근데 지금 내 상황에서 위험할 정도면....'
영혼 각성 2레벨이 활성화됐다.
퀘스트에는 완전하지 않다고 쓰여 있었지만 강진석이 느끼기에는 1레벨 때와 비교할 수 없었다.
강진석은 지금의 자신과 각성 전 자신이 붙는다면 1시간 내로 박살 낼 자신이 있었다.
그 정도로 1레벨과 2레벨의 차이는 컸다.
그런데 지금 상황에서 위험을 느낄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바로 그때였다.
"...!"
초감각 끝에 무언가 느껴졌고 생각에 잠겨 있던 강진석은 눈을 번뜩였다.
당연히 제대로 감지되지는 않았다.
무척이나 흐릿했다.
강진석이 알 수 있는 것은 크기뿐이었다.
'가서 확인해 봐?'
무언가는 강진석에게 다가오고 있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곧 초감각 범위 밖으로 사라질 것이다.
다가가서 확인할지 말지 고민이 됐다.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강진석이 결정을 내려 끝난 게 아니다.
초감각에 감지된 무언가가 이동을 멈췄다.
그 순간 강진석은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을 훑는 무언가의 '초감각'을.
이내 무언가가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엄청난 속도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거리는 빠르게 가까워지기 시작했고 이내 강진석은 흐릿했던 무언가를 완벽히 감지할 수 있었다.
'...늑대?'
앞서 강진석이 느낄 수 있는 것은 '크기'뿐이었다.
그리고 거리가 가까워진 지금 정확한 형태와 기운을 파악할 수 있게 됐다.
일단 형태는 '늑대'와 비슷했다.
등에 달린 날개 4장만 제외하면 거대한 늑대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기운의 크기는 3차 제약 침공자와 비교할 수가 없을 정도로 컸다.
아직 만나 본 적 없지만 4차 제약 침공자와 동급으로 추정됐다.
그리고 기운의 성질이 묘했다.
여태껏 본 적 없는 종류로 감지하는 것만으로도 정신력이 소모됐다.
물론 신경 쓸 정도는 아니지만 이런 존재가 수백, 수천이 있다면?
초감각 범위를 줄여 감지를 멈춰야 할 것이다.
'여럿이었으면 골치 아팠겠네.'
강진석은 자리에 멈춰서 늑대가 도착하길 기다렸다.
그리고 이내 늑대가 시야에 나타났고 강진석은 메시지창을 힐끔 확인했다.
혹시나 늑대에 대한 메시지가 나타났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예상대로 메시지가 하나 나타나 있었다.
그리고 메시지를 통해 강진석은 늑대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공허 늑대가 나타났습니다.]
늑대처럼 생기긴 했으나 다른 명칭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진짜 늑대였다.
강진석은 다시 늑대를 보았다.
그리고 20m 앞에서 멈춘 늑대 역시 강진석을 빤히 바라보았다.
정적은 오래가지 않았다.
늑대가 입을 쩍 벌렸다.
그 순간 강진석은 늑대의 입에 모이는 회색 기운을 볼 수 있었다.
회색 기운은 구체가 되었고 이어 지름 10cm가 된 순간.
스앗!
사라졌다.
강진석은 그와 동시에 공간이동으로 자리를 벗어났다.
그리고 자신이 있던 자리를 보았다.
사라진 회색 구체가 보였다.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회색 구체 곳곳에 균열이 가 있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회색 구체가 폭발했다.
소리는 없었다.
그렇다고 파괴력이 약한 것은 아니었다.
회색 구체 반경 5m 정도의 공간이 일그러지고 있었다.
만약 피하지 않았다면?
'죽지는 않았겠지만....'
강진석은 침을 꿀꺽 삼켰다.
공허의 틈이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 확실히 이해됐다.
강진석은 다시 늑대를 보았다.
늑대는 강진석을 보고 살짝 당황스러운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이어 늑대가 앞발에 기운을 모으기 시작했다.
강진석은 늑대의 앞발을 주시하며 혼돈의 구에 기운을 주입했다.
바로 그때 늑대가 허공에 앞발을 휘둘렀다.
그리고 앞발이 사라졌다.
"...!"
근접전을 생각하고 있던 강진석은 순간 당황했다.
그리고 등 뒤에서 강렬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사라진 앞발이었다.
공간이동으로 피하는 것은 늦었다.
막는 것도 늦었다.
강진석은 최대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몸을 비틀었다.
덕분에 늑대의 앞발은 머리가 아닌 왼쪽 어깨에 작렬했다.
팅!
그리고 쇳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앞발이 다시 사라졌다.
강진석은 늑대를 보았다.
늑대는 구체 때보다 확연히 당황스러운 반응으로 앞발을 힐끔힐끔 보고 있었다.
강진석은 늑대를 주시하며 어깨 상태를 확인했다.
상처는 나지 않았다.
생채기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상처만 나지 않았을 뿐이다.
어깨에서 묵직함이 느껴졌다.
만약 피하지 않고 머리를 가격당했다면?
꽤나 위험했을 것이다.
'육체 제련을 안 했으면....'
이 정도로 끝난 것은 육체 제련 덕분이었다.
만약 육체 제련을 하지 않았다면?
왼쪽 어깨를 사용할 수 없었을 것이다.
바로 그때였다.
늑대가 뒤로 슬금슬금 물러나기 시작했다.
앞서 두 번의 공격 실패로 격차를 느끼고 도망을 치려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강진석은 늑대를 그냥 보내줄 생각이 없었다.
강진석 역시 앞서 두 번의 공격으로 격차를 확실히 느꼈다.
늑대를 죽일 수 있다.
죽일 수 있는데 굳이 보내줄 이유가 없다.
그리고 보내줬다가 동료를 데리고 온다면?
그때는 위험할 수도 있다.
강진석은 우선 아이스 포그를 시전했다.
그러나 시전과 동시에 강진석은 미간을 찌푸렸다.
'...마법은 안 되나?'
초감각과 마찬가지로 아이스 포그 역시 정상적이지 않았다.
범위가 평소보다 80% 줄었다.
'어쩔 수 없지.'
강진석은 혼돈의 구를 몽둥이로 변환했다.
그러고는 늑대의 앞으로 공간이동을 했다.
후웅!
도착과 동시에 강진석은 몽둥이를 휘둘렀다.
늑대는 다급히 앞발을 들어 몽둥이를 막았다.
쾅!
그러자 폭음이 울려 퍼지며 늑대가 뒤로 날아갔다.
늑대는 날개를 펼치더니 그대로 전속력을 다해 도망치기 시작했다.
강진석은 공간이동을 통해 재차 늑대의 앞을 막아서며 몽둥이를 휘둘렀다.
늑대는 앞발이 아닌 날개를 겹쳐 몽둥이를 막았다.
쾅!
그리고 재차 폭음이 울려 퍼지며 날개가 찢어졌다.
-크헝....
늑대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뱉었다.
그러나 강진석은 멈추지 않았다.
계속해서 몽둥이를 휘둘러 늑대 곳곳을 가격하기 시작했다.
쾅! 쾅! 쾅!
그렇게 3분간 일방적인 매타작이 진행됐고.
쩌저적!
기운이 바닥난 늑대의 육체 곳곳에 균열이 나타났다.
강진석은 그제야 몽둥이질을 멈췄고 이어 늑대가 먼지로 변해 사라졌다.
그리고 강진석은 늑대가 사라진 자리를 자세히 살폈다.
'...아무것도 안 남겼네.'
늑대는 강했다.
그러나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
공허라는 단어가 아주 찰떡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진석은 메시지창을 보았다.
[공허 늑대를 처치하셨습니다.]
[귀환 시간이 20분 단축됩니다.]
메시지를 본 강진석은 눈을 번뜩였다.
보상은 하나뿐이었다.
바로 귀환 시간 단축이었다.
'단축할 수 있었구나?'
꼼짝없이 1주일을 기다려야 하나 했다.
그런데 메시지를 보니 그럴 필요가 없었다.
공허의 틈에서 살아가는 존재를 죽이면 귀환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강진석은 바로 방향을 잡아 이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초감각에 집중하며 퀘스트창을 열었다.
'혈력이 올랐으려나?'
퀘스트 '육체 제련'의 조건 중 하나인 혈력.
혈력을 올리는 방법은 세계 침공자 처치 혹은 동족 처치였다.
공허의 틈이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구는 아닐 것 같았다.
즉, 공허 늑대는 세계 침공자가 아닐 확률이 높았다.
혈력이 오르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육체 제련>
조건을 충족하라!
[혈력 : 90%]
.
.
[알칸데움 : 0 / 2kg]
퀘스트 보상 : 스킬 '육체 제련' 2레벨 활성화
세계 침공자 처치 시 혈력이 자동 수집됩니다.
동족 처치 시 혈력이 자동 수집됩니다.
"...!"
확인과 동시에 강진석은 눈을 번뜩였다.
'오르네?'
오르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공허 늑대는 혈력을 올려줬다.
그것도 엄청나게 올랐다.
강진석은 활짝 웃었다.
한 마리만 더 잡으면 혈력은 100%가 될 것이다.
물론 바로 진행할 생각은 없다.
육체 제련 1레벨 때를 생각하면 2레벨 역시 험난할 것이다.
공허의 틈에서 육체 제련을 진행할 수는 없다.
귀환 후 진행하는 게 맞았다.
'영혼 각성도 습득해야겠다.'
문득 든 생각에 강진석은 스킬창을 열었다.
영혼 각성 3레벨을 습득하기 위해서였다.
[스킬 '영혼 각성'의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스킬 퀘스트 '영혼 각성'이 생성됐습니다.]
습득과 동시에 퀘스트가 생성됐고 강진석은 퀘스트를 확인했다.
<영혼 각성>
조건을 충족하라!
[혼력 : 0%]
.
.
[공허의 결정 리튜렌 : X]
퀘스트 보상 : 스킬 '영혼 각성' 3레벨 활성화
세계 침공자 처치 시 혼력이 자동 수집됩니다.
동족 처치 시 혼력이 자동 수집됩니다.
제171화
171.
퀘스트를 본 강진석은 어김없이 첫 번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혼력을 보며 생각했다.
'바로 채울 수 있으려나?'
공허 늑대가 제공한 혈력 수치를 생각하면 바로 혼력 100%를 충족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근데 채워도 재료가 문제네.'
세 번째 영혼 각성의 조건은 혼력을 포함해 51가지였다.
50개의 재료가 필요했다.
문제는 재료의 가치였다.
강진석이 알고 있는 몇몇 재료는 상점창에서 1억 포인트 전후로 판매되는 것들이었다.
'창고에 있으면 다행인데....'
봉제산 창고와 개화역 창고.
두 창고에는 많은 물품이 존재한다.
필요한 것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전부 있지는 않을 것이고 남은 재료를 모으는 데 꽤나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일단 혼력부터 충족하고 생각하자.'
강진석은 퀘스트창을 닫았다.
그리고 다시 초감각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 * *
"...."
한지윤은 말없이 전방에 있는 검은 구체를 보았다.
5일 전 갑자기 개화역에 나타난 검은 구체.
검은 구체에 대한 보고를 받았을 때 한지윤은 걱정하지 않았다.
강진석이 언질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는 검은 구체에 한지윤은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오래 걸리신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으셨는데.'
강진석은 영혼 각성 후 바로 청소하러 간다고 했다.
당시 강진석의 표정과 분위기를 보면 영혼 각성은 얼마 걸리지 않았어야 했다.
길어도 몇 시간이면 끝나야 했다.
그런데 몇 시간은커녕 벌써 5일이 지났다.
5일간 많은 일들이 있었다.
일단 얼마 전 인접 지역의 2차 제약이 해제됐다.
그리고 몬스터들의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해당 지역 내에서만 활발해진 게 아니다.
소수의 몬스터들이 강서구로 계속 넘어오고 있었다.
물론 넘어오자마자 전부 죽이거나 쫓아내기는 했다.
그러나 넘어오는 몬스터들이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곧 감당할 수 없는 몬스터들이 넘어올 것이다.
바로 그때였다.
한지윤은 고개를 돌려 입구를 보았다.
이내 입구에서 길드원 김춘성이 다급히 들어왔다.
"부, 부길드장님!"
이어진 김춘성의 외침에 한지윤은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무슨 일인가요?"
한지윤은 침착하게 물었다.
"행주대교를 통해 코볼트들이 대거 내려오고 있습니다!"
"붉은 폭풍 코볼트들이요? 얼마나요?"
"자세히 파악되지는 않았지만 최소 1000마리는 되는 것 같습니다."
"...!"
김춘성의 답에 한지윤은 놀란 표정으로 공간이동을 통해 개화역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바로 하늘로 비상 후 인벤토리에서 마법 망원경을 꺼내 행주대교를 확인했다.
'...이런.'
김춘성의 말대로 새빨간 피부의 코볼트들이 대거 행주대교를 통해 남하하고 있었다.
한지윤은 코볼트 군단을 보며 생각했다.
'정찰이 아니야.'
단순히 숫자가 많아 정찰이 아니라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코볼트들의 무장 상태가 가볍지 않았다.
전부 갑옷을 입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일반 코볼트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무장 상태가 좋은 코볼트들이 여럿 보였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단연 뛰어난 무장 상태의 코볼트가 있었다.
'...3차 제약 침공자인가?'
아무리 봐도 2차 제약 침공자는 아닌 것 같았다.
무장 상태나 분위기나 3차 제약 침공자로 추정됐다.
바로 그때였다.
한지윤이 3차 제약 침공자가 아닐까 의심하고 있던 코볼트가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 한지윤은 느낄 수 있었다.
눈이 마주쳤다는 것을.
그리고 눈이 마주친 코볼트는 주변 코볼트들을 향해 무어라 외쳤다.
그러자 코볼트들의 이동속도가 빨라졌다.
한지윤은 다시 지상으로 내려갔다.
바라만 보고 있을 때가 아니다.
이대로라면 곧 코볼트들이 당도할 것이다.
행주대교 근처에 만들어 둔 방어선에서 코볼트들을 막아 내야 했다.
그리고 지상에 도착하자마자 대기하고 있던 길드원들에게 외쳤다.
"다들 행주대교 1진지로 이동해 주세요! 코볼트 무리가 도착할 겁니다. 나가서 죽이지는 마시고 녀석들이 진입하지 못하게 방어하는 데 집중해 주세요!"
한지윤의 외침에 길드원들은 기다렸다는 듯 행주대교 1진지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지윤은 다시 개화역, 검은 구체가 있는 곳으로 공간이동을 했다.
'언제 나오실지는 모르겠지만.'
한지윤은 인벤토리에서 볼펜과 종이를 꺼냈다.
그러고는 종이에 현재 상황을 적고 구체 앞에 놔둔 탁자에 올려놓았다.
이후 마지막으로 검은 구체를 한 번 보고는 개화역 밖으로 공간이동을 했다.
그리고 하늘로 날아올라 행주대교 1진지로 향했다.
비행 속도는 빨랐고 한지윤은 먼저 출발한 길드원들보다 빨리 1진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1진지는 무척이나 분주했다.
'다행이네.'
혹여 코볼트 군단에 겁을 먹어 혼란에 빠져 있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괜한 걱정이었다.
한지윤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뱉으며 1진지의 관리를 맡은 수비대장 최재욱에게 다가갔다.
"엇, 부길드장님 오셨습니까."
휘하 길드원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있던 최재욱은 한지윤을 발견하고 다급히 다가와 인사했다.
"상황은요?"
"일단 마력포는 전부 설치 완료했고 마나석도 분배 완료했습니다. 근데 코볼트들의 숫자를 생각하면 마나석이 부족할 것 같습니다."
최재욱의 말에 한지윤은 인벤토리를 열었다.
그리고 인벤토리에서 거대한 자루를 여럿 꺼냈다.
자루에 들어 있는 것은 당연히 전부 마나석이었다.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당연히 지원해 드려야 할 것들이니까요. 부족하면 바로바로 지원해 드릴 테니 아끼지 말고 발포해 주세요."
"네! 용찬아! 설아야! 이거 가지고 가!"
최재욱의 말에 근처에 있던 사내와 여인이 다가왔다.
"그리고 포대에 전해 녀석들이 선을 넘으면 바로바로 발포하라고. 아끼지 말고!"
"넵!"
"네!"
사내와 여인은 최재욱의 말에 답한 뒤 한지윤에게 인사 후 자루를 들고 사라졌다.
그리고 두 사람이 사라지자마자 최재욱이 조용한 목소리로 한지윤을 불렀다.
"근데 부길드장님."
"...네?"
한지윤은 의아한 표정으로 답했고 최재욱이 이어 물었다.
"혹시 길드장님은 아직도 안 돌아오셨나요...?"
"아...."
최재욱의 물음에 한지윤은 작게 탄식을 내뱉었다.
그리고 최재욱처럼 조용한 목소리로 답했다.
"네, 아직이요."
"...그렇군요."
한지윤의 답에 최재욱은 막막한 표정을 지었다.
바로 그때였다.
[붉은 폭풍 부족 1개척단장 겔리만이 나타났습니다.]
[퀘스트 '개척단장 겔리만'이 생성됐습니다.]
[퀘스트 '개척단을 막아라!'가 생성됐습니다.]
[퀘스트 '생존하라!'가 생성됐습니다.]
메시지가 주르륵 나타났다.
한지윤과 최재욱은 메시지를 보고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가장 먼저 생성된 퀘스트 '개척단장 겔리만' 때문이었다.
'...단장이 아니길 바랐는데.'
한지윤은 자신과 눈이 마주친 코볼트가 '대장'이길 바랐다.
대장이라면 3차 제약 침공자는 아닐 것이기에.
그러나 바람은 어김없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괜찮을까요?"
최재욱은 한지윤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네, 걱정 마세요. 곧 지원군이 올 테니까요."
한지윤은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 김칠성과 강나연, 최은형에게 연락을 보냈다.
'그 녀석들처럼 쉽게 쫓아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3차 제약 침공자를 처음 상대하는 게 아니다.
강진석이 종종 대련을 통해 3차 제약 침공자의 수준을 알려주었고 실제로 그제와 어제 한 번씩 강서구에 발을 들인 3차 제약 침공자들을 쫓아냈었다.
말 그대로 쫓아낸 것이다.
죽인 게 아니다.
그리고 솔직히 쫓아낼 수 있던 것도 3차 제약 침공자들이 목숨을 걸고 넘어온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만약 목숨을 건 싸움이었다면?
쉽게 쫓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쉽게 안 돌아가겠지?'
코볼트들의 무장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어제와 그제처럼 쉽게 쫓아낼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한지윤은 내색하지 않았다.
내색하면 길드원들에게 영향이 갈 것이기에.
'진석 님도 이런 마음으로 내색하지 않으셨을까?'
한지윤은 강진석을 떠올렸다.
강진석은 한 번도 힘들다고 티를 낸 적이 없다.
항상 앞서서 모든 것을 감당했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당연히 해야 될 일인 것처럼.
'...돌아오시면 더 열심히 보좌해야겠어.'
한지윤은 다짐했다.
앞으로 보좌를 더욱 열심히 하겠다고.
'그러려면 일단 살아야겠지.'
한지윤은 스킬창을 열었다.
그러고는 포인트를 탈탈 털어 스킬을 습득하기 시작했다.
* * *
붉은 폭풍 부족 1개척단장 겔리만은 복잡미묘한 표정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대체 무엇이 있기에.'
2차 제약이 해제됐다.
문제는 모든 지역의 2차 제약이 해제된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
붉은 폭풍 부족의 영역 중 덕양구에 자리 잡은 영역만 해제가 됐다.
즉, 특정 조건에 의해 해제가 된 것이다.
당연히 조사를 진행했고 강서구와 관련되어 있다는 점을 알아냈다.
그러나 관련되어 있다는 것만 알아냈을 뿐 정확히 어떤 일 때문인지는 파악하지 못했다.
지금 겔리만이 강서구로 향하는 이유 중 하나가 제약이 해제된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대체 강서구에 무슨 일이 있던 것일까?
무슨 일이 있었기에 덕양구의 2차 제약이 해제된 것일까?
문득 겔리만은 조금 전 자신과 눈이 마주친 인간을 떠올렸다.
'분명 지구의 인간이었지.'
시험 참가자가 아니다.
이곳 지구의 인간이었다.
'수준이 매우 높았어.'
처음에는 잘못 본 것이라 생각했다.
덕양구에도 꽤나 수준 높은 인간들이 있었지만 눈이 마주친 인간은 차원이 달랐기에.
'잠깐, 그 인간이 있던 곳은....'
문득 든 생각에 겔리만은 눈을 번뜩였다.
'전쟁 바람 부족 2군단이 위치한 곳인데?'
생각해 보니 눈이 마주친 인간이 있던 장소가 이상했다.
'2군단이 당했다고?'
확인된 사실이 아니다.
그러나 전쟁 바람 부족 2군단이 당했을 확률이 매우 높아 보였다.
그래야만 인간이 해당 장소에 있던 게 설명된다.
'그러고 보니 오르드 부족도 보이지 않고....'
생각해 보니 이상한 것은 전쟁 바람 부족뿐만이 아니다.
5일 전부터 오르드 부족 리자드맨들이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2군단과 마찬가지로 인간들에게 당한 게 아닐까 싶었다.
'2차 제약이 해제된 이유가 설마....'
어째서 덕양구의 2차 제약이 해제된 것인지 알 것 같았다.
'쉽게 봐서는 안 되겠군.'
겔리만은 근처에 있는 부관들에게 말했다.
"쉽게 볼 녀석들이 아니니 진지하게 전투에 임하라고 전하거라. 전쟁 바람 부족과 오르드 부족도 당했을 확률이 높다고 전하고."
바로 그때였다.
"...!"
겔리만은 눈을 번뜩였다.
전방에서 날아오는 빛 덩어리들 때문이었다.
펑! 펑! 펑!
이어 귓가에 폭발음이 들려왔다.
아주 익숙한 폭발음이었다.
'...마력포!'
바로 마력포의 소리였다.
빛 덩어리의 정체를 깨달은 겔리만은 앞으로 뛰쳐나갔다.
그러나 빛 덩어리의 속도는 빨랐고 선두에 빛 덩어리가 작렬하며 폭발이 일어났다.
겔리만은 기운을 담아 외쳤다.
"다들 일시 후퇴!"
마력포가 없다면 모를까 이렇게 진격해서는 안 된다.
겔리만의 외침에 휘하 코볼트들이 질서정연하게 물러났다.
그리고 겔리만은 허공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검에서 붉은 검기가 빠져나가 뒤늦게 날아오는 빛 덩어리들을 격추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코볼트들은 안전히 물러났고 겔리만은 안도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
겔리만은 경악하며 고개를 휙 돌렸다.
검은 기둥이 보였다.
구름을 꿰뚫을 정도로 매우 길었다.
겔리만은 구름을 꿰뚫을 정도로 긴 검은 기둥을 처음 보는 게 아니다.
오래전에 한 번 본 적 있었다.
그래서 더 문제였다.
당시 검은 기둥이 나타난 이유는 붉은 폭풍 부족의 대족장 '부르샤'가 두 번째 영혼 각성을 마쳤기 때문이었다.
'서, 설마....'
제172화
172.
겔리만은 침을 꿀꺽 삼켰다.
지금 나타난 검은 기둥이 부르샤 때와 마찬가지로 누군가의 두 번째 영혼 각성 완료를 알리는 현상이라면?
'근데 저 위치는....'
검은 기둥이 나타난 곳은 전쟁 바람 부족 2군단이 위치해 있던, 눈이 마주친 인간이 있던 곳이었다.
즉, 완료를 알리는 현상이 맞는다면 각성한 존재는 인간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서 더 믿기지 않았다.
시험이 시작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두 번째 영혼 각성을 한단 말인가?
그것도 지구의 인간이?
'...혹시 인간이 아닌가?'
문득 인간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르브가 한 걸까?'
전쟁 바람 부족에서 유일하게 영혼 각성을 한 대제사장 마르브.
마르브가 두 번째 영혼 각성을 한 게 아닐까 싶었다.
'끙....'
그러나 이내 든 생각에 겔리만은 속으로 신음을 내뱉었다.
눈이 마주친 인간을 생각하니 마르브가 영혼 각성을 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스앗!
이내 검은 기둥이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정신을 차린 겔리만은 목소리에 기운을 담아 외쳤다.
"다들 귀환한다! 즉시!"
이러고 가만히 있을 때가 아니다.
원래 계획대로 진격해서도 안 된다.
계획대로 움직였다가는 죽을 것이다.
지금은 한시라도 빨리 귀환해야 한다.
그것만이 살길이었다.
겔리만의 외침에 코볼트들은 잠시 당황하다가 이내 질서정연하게 후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겔리만 역시 부하들과 함께 왔던 길을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겔리만은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주변에 나타난 새하얀 눈송이 때문이었다.
자연스레 하늘에서 내린 눈송이가 아니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눈송이다.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고 허공에 둥둥 떠 있는 것이 바로 그 증거였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 눈송이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보통이 아니었다.
겔리만 역시 움직이는 것을 포기했을 정도였다.
'망할.'
겔리만은 속으로 욕을 내뱉었다.
이런 눈송이를 만들 수 있는 존재가 누가 있겠는가?
검은 기둥을 만들어 낸 존재의 짓이 분명했다.
그리고 왜 이런 눈송이를 만들어 냈겠는가?
그냥 돌려보내지 않겠다는 뜻이 분명했다.
그렇다고 겔리만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대족장 부르샤가 두 번째 영혼 각성을 마친 후 '힘'을 보여주었다.
그날 깨달았다.
자신이 수백, 수천이 있어도 두 번째 영혼 각성을 한 존재에게는 개미만도 못하다는 것을.
바로 그때였다.
눈송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눈송이에 닿은 부하들이 즉시 얼어붙어 죽음을 맞이했다.
이어 빛과 함께 사라졌다.
'...뭐지?'
겔리만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부하들의 죽음 때문이 아니다.
죽음은 이미 예상했다.
겔리만이 당황한 이유는 겔리만 근처에 있는 눈송이만 움직이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왜 날 죽이지 않는 거지?'
우연이 아니다.
분명 의도가 있다.
대체 무슨 이유로 죽이지 않는 것일까?
설마 인질로 삼으려는 것일까?
생각에 잠겨 있던 사이 모든 부하가 죽음을 맞이했다.
그리고 눈송이가 사라지며 허공에 누군가 나타났다.
겔리만은 허공을 보았다.
'역시 인간....'
허공에 나타난 존재는 인간이었다.
인간에게서는 아무런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겔리만은 희망을 갖지 않았다.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인간이 약해서가 아니다.
감지할 수 없을 정도로 격차가 나기 때문이었다.
겔리만은 잠자코 인간의 행동을 기다렸다.
'...뭐지?'
그러나 이어진 상황에 겔리만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인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허공에 떠 있을 뿐이었다.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인간은 허공을 바라보며 허공에 손짓하고 있었다.
'대체 뭘 하는....'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의 행동에 의아해하던 겔리만은 눈을 번뜩였다.
꽤나 강한 기운을 가진 존재 넷이 다가오고 있었다.
당연히 아군이 아니다.
남쪽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인간으로 추정됐다.
* * *
"저, 저게 뭘까요?"
최재욱이 말을 더듬으며 물었다.
"...."
한지윤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개화역 상공에 나타난 검은 기둥을 바라볼 뿐이었다.
'...돌아오신 건가?'
검은 기둥은 검은 구체와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확실했다.
개화역에 검은 기둥이 나타날 이유는 검은 구체 말고는 없다.
바로 그때였다.
김칠성과 강나연, 최은형이 도착했다.
세 사람 역시 검은 기둥을 보며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거 뭡니까?"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김칠성이었다.
"설마 오빠랑 관련된 거예요?"
이어 강나연이 물었고 그제야 한지윤도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그런 것 같...."
그러나 한지윤은 말을 끝내지 못했다.
검은 기둥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한지윤은 잠시 고민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개화역에 가서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나 행주대교에서 코볼트 군단이 내려오고 있었다.
'3차 제약 침공자만 아니었어도....'
한지윤은 이를 악물었다.
1개척단장 겔리만.
겔리만의 존재만 아니었어도 곧장 개화역으로 가 확인했을 것이다.
바로 그때였다.
[네 사람만 지금 행주대교 쪽으로 와주세요.]
머릿속에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한지윤은 눈을 번뜩였다.
기다리고 기다렸던 강진석의 목소리였기 때문이었다.
한지윤은 강나연, 김칠성, 최은형을 보았다.
세 사람 역시 놀란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서로의 얼굴을 확인한 네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활짝 웃었다.
강진석이 돌아왔다.
이제 코볼트 군단은 물론 차가운 뿌리 부족, 전쟁 바람 부족, 검은 숲 엘프 등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다.
"가자."
한지윤은 세 사람에게 말했다.
그러곤 곧장 하늘로 비상했다.
세 사람 역시 따라 하늘로 비상했고 그렇게 네 사람은 행주대교로 향했다.
얼마 뒤 행주대교에 도착한 한지윤은 미소를 지었다.
행주대교 중간 상공에 강진석이 있었다.
물론 강진석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강진석의 발아래 코볼트가 한 마리 있었다.
코볼트를 본 한지윤은 눈을 번뜩였다.
'...겔리만!'
1개척단장 겔리만이 분명했다.
'왜 안 죽이시고...?'
한지윤은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강진석의 힘을 안다.
겔리만이 제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강진석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즉, 지금 겔리만이 살아 있는 것은 강진석의 의도다.
강진석은 어째서 겔리만을 죽이지 않고 살려 둔 것일까?
"오빠!"
바로 그때 강나연이 외쳤다.
강진석은 씨익 웃는 걸로 외침에 답했다.
그리고 이어 말했다.
"일단 이 녀석부터 잡아 보시죠."
"...!"
"...!"
강진석의 말에 네 사람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겔리만을 왜 죽이지 않았나 궁금했는데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니?
그리고 이어 강진석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 순간 세상이 변하며 메시지가 나타났다.
[영역이 선포됐습니다.]
* * *
쾅!
김칠성의 대검이 겔리만의 방패에 작렬하며 폭음이 울려 퍼졌다.
뒤로 살짝 밀려난 겔리만은 인상을 구기며 검을 휘둘러 반격했다.
물론 검이 김칠성에게 닿는 일은 없었다.
이미 반격해 올 것을 예상하고 있던 김칠성은 재빨리 뒤로 물러나 검을 피했다.
겔리만은 따라붙어 재차 공격하려 했다.
그러나 그 순간 날아오는 한지윤의 화살 때문에 따라붙을 수 없었고 대신 검을 세워 화살을 막았다.
그리고 화살이 검에 작렬했다.
지지직!
그 순간 화살에서 스파크가 일더니 이어 전기가 사방으로 방출됐다.
겔리만은 팔의 저릿함에 인상을 구겼다.
그사이 은밀히 겔리만의 뒤로 다가간 최은형이 단검을 내질렀다.
겔리만은 단검을 피하지 못했고 이내 단검이 겔리만의 허리에 박혔다.
픽!
물론 육체가 워낙 단단해 깊게 박히지는 않았다.
그러나 박힌 것은 박힌 것이었다.
겔리만은 이를 악문 채 뒤로 돌며 검을 휘둘렀다.
물론 반격을 예상하고 있던 최은형은 뒤로 텀블링하듯 허리를 꺾었고 겔리만의 검은 허공을 갈랐다.
그리고 그대로 최은형은 거리를 벌리며 장침을 던졌다.
팅! 팅! 팅!
단검과 달리 장침은 작은 생채기조차 내지 못했다.
그러나 상관없었다.
최은형이 장침을 던진 이유는 안전하게 거리를 벌리며 다른 셋에게 공격할 틈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였기에.
'많이 강해지셨네.'
처음부터 모든 전투를 지켜보던 강진석은 은은히 미소를 지으며 생각했다.
겔리만은 3차 제약 침공자 중에서도 강한 편에 속했다.
네 사람이 힘을 합쳐도 이기기 힘들 것이라 생각했다.
그럼에도 네 사람에게 겔리만을 맡긴 이유는 경험을 주기 위해서였다.
3차 제약 침공자를 상대하는 것은 쉽게 겪을 수 없는 경험이기에.
물론 5일 전 기준이다.
네 사람의 기운은 5일 전보다 적게는 30% 많게는 50% 강해졌다.
거기다 많은 경험을 했는지 전투 센스도 매우 좋아졌다.
지금이라면 굳이 강진석이 개입하지 않아도 네 사람의 힘만으로 겔리만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바로 그때였다.
겔리만이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이어 강진석을 힐끔 보고는 기운을 끌어올렸다.
강진석은 그 순간 느낄 수 있었다.
겔리만의 기운이 심장 부근에 응축되는 것을.
'...자폭?'
문득 자폭이 떠올랐다.
물론 자폭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이제 개입해야 될 때라는 점이었다.
이대로 가만히 내버려 두면 네 사람이 위험하다.
그 정도로 심장 부근에 응축되는 기운은 심상치 않았다.
강진석은 겔리만 앞으로 공간이동을 했다.
그리고 바로 몽둥이를 휘둘렀다.
후웅!
기운을 끌어올리고 있던 겔리만은 몽둥이를 피하지 못했고.
쾅! 쩍!
머리에 몽둥이가 작렬하며 폭발과 동시에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스아악!
그리고 이어 빛과 함께 겔리만의 육체가 사라지며 메시지가 나타났다.
[붉은 폭풍 부족 1개척단장 겔리만이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포인트가 1500만 상승합니다.]
.
.
메시지를 통해 보상을 확인한 강진석은 겔리만이 사라진 자리를 확인했다.
수많은 아티펙트가 떨어져 있었다.
강진석은 겔리만이 남긴 아티펙트를 수거했다.
그리고 네 사람을 보았다.
네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전부 얼떨떨한 표정으로 강진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기야 자신들이 힘을 합쳐도 죽을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던 겔리만이 한 방에 죽었다.
얼떨떨한 반응을 보이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강진석은 네 사람의 시선에 씨익 웃으며 아티펙트를 사 등분 했다.
그리고 사 등분한 아티펙트를 네 사람에게 보내며 말했다.
"고생하셨어요. 그리고 어울리게 분배했습니다. 혹시나 필요 없으시면 다른 사람과 교환하셔도 되구요."
"...."
"...."
강진석의 말에 네 사람은 바로 답하지 않았다.
답할 수가 없었다.
겔리만의 허무한 죽음은 그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한지윤이었다.
"고, 고생하셨습니다."
그리고 한지윤의 말에 강나연이 어처구니없는 표정과 목소리로 이어 말했다.
"우리가 고생한 거 맞아? 아닌 것 같은데."
"와, 대장. 얼마나 강해지신 겁니까?"
제173화
173.
"뭐?"
강나연이 놀란 얼굴로 반문했다.
믿기 힘든 이야기를 들었다.
"오빠가 죽을 뻔했다고?"
강진석이 얼마나 강한지 알고 있다.
조금 전만 해도 3차 제약 침공자인 겔리만을 한 방에 죽였다.
그런 강진석이 죽을 뻔했다니?
"응, 계속 싸웠으면 결국 내가 죽었을 거야."
강진석은 강나연의 말에 답하며 공허의 틈에서 마주했던 '라카트'를 떠올렸다.
라카트는 공허의 틈 네임드 존재였다.
당연히 네임드 존재는 공허 늑대, 공허 거북이, 공허 사자 등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했다.
특히 방어력이 매우 강했다.
육체 제련을 한 강진석의 물리력으로도 피해를 주기가 힘들었다.
만약 도망치지 않고 끝까지 싸웠다면?
결국 죽는 것은 강진석이 됐을 것이다.
'...뭐 그전에 귀환 시간이 됐겠지만.'
물론 죽는 데 걸리는 시간은 매우 길다.
생존 시간이 7일이 아니라 70일이었어도 생존 시간을 충족해 귀환했을 것이다.
즉, 끝까지 싸운다면 죽겠지만 그럴 일이 없기에 죽을 일은 없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강진석은 굳이 진실을 전하지 않았다.
네 사람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해서였다.
'너무 의지하고 있어.'
이야기를 나누며 강진석은 깨달았다.
네 사람은 강진석을 의지하고 있었다.
의지한다는 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정도가 심했다.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고, 아무런 문제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실제로 대부분이 해결될 것이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강진석이 해결해 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번처럼 자리를 비울 때가 오겠지.'
이번에 공허의 틈에서 5일을 보냈다.
원래 보내야 할 시간은 7일이었다.
이번만 공허의 틈에서 생존해야 하는 것일까?
3레벨부터는 생존이 필요 없을까?
아니, 강진석은 공허의 틈에서 지구로 귀환한 순간 깨달았다.
3레벨 때 다시 공허의 틈에 가게 될 것이라는 걸.
그리고 3레벨 때에는 7일이 아닐 것이다.
0이 하나 더 붙을 수 있고 그 이상이 붙을 수도 있다.
즉, 미리미리 준비를 해야 했다.
"진짜 무서운 곳이네. 나중에 가게 되면 단단히 준비하고 가야겠어."
강나연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그리고 이어 물었다.
"근데 어디부터 처리할 생각이야?"
강나연의 물음에 한지윤, 김칠성, 최은형 역시 강진석을 빤히 바라보았다.
"음...."
강진석은 침음을 내뱉었다.
'육체 제련은 미루는 게 맞겠지.'
원래는 귀환하자마자 육체 제련부터 진행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생각보다 상황이 좋지 않았다.
주변에 몬스터들이 들끓고 있었다.
영혼 각성처럼 오랜 시간이 소요될 수도 있는데 지금 상황에서 육체 제련을 진행할 수는 없다.
'청소부터 하자.'
김포공항 일대를 청소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오래 걸리지도 않는다.
강진석이 확신하는 이유는 두 번째 영혼 각성이 완벽해져 김포공항 일대를 샅샅이 감지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었다.
심층 영역도 감지가 가능했다.
물론 생김새까지 선명히 파악할 수는 없지만 몬스터가 얼마나 있는지, 얼마나 강한지 정도는 파악이 가능했다.
'그리고 부모님도 모셔 오고.'
생각을 마친 강진석은 입을 열었다.
"일단 전쟁 바람 부족부터. 그 이후에는 정동진에 갔다 올 거야. 그러고 나서 다시 주변 청소 시작할 거고."
"우리가 도울 일은?"
"일단 지금처럼 주변에서 넘어오는 몬스터들 막으면서 힘을 키워. 겔리만을 혼자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게, 겔리만을 혼자?"
강나연은 기겁하며 반문했다.
넷이서 힘을 합쳐도 쉽게 죽일 수 없는 존재가 바로 겔리만이었다.
그런 겔리만을 혼자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키우라니?
얼마나 강해져야 가능할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응."
강진석은 고개를 끄덕이고 한지윤, 김칠성, 최은형에게 말했다.
"세 분 역시 마찬가...."
그러나 중간에 강진석은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미간을 찌푸렸다.
강진석의 갑작스런 반응에 네 사람은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이내 강진석이 입을 열었다.
"전쟁 바람 부족이 움직이기 시작했어."
"...!"
"...!"
"...!"
"...!"
네 사람은 강진석의 말에 눈을 번뜩였다.
전쟁 바람 부족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니?
"근데 그걸 어떻게 안 거야? 메시지 뜬 것도 아닌데."
문득 든 생각에 강나연이 반문했다.
메시지가 나타난 게 아니다.
그리고 전쟁 바람 부족 오크들이 자리 잡은 곳은 김포공항 일대였다.
이곳 행주대교 1진지와는 거리가 매우 멀었다.
초감각으로 알아차린 것도 아닐 것이다.
'...잠깐, 설마 초감각인가?'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초감각뿐이었다.
"...설마 초감각이 거기까지?"
강나연이 설마 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응."
강진석은 작게 고개를 끄덕여 답했다.
"도망치려는 것 같으니 일단 청소하러 가봐야겠습니다. 내일 오후 2시에 봉제산에서 뵙는 걸로 하죠. 그럼 먼저 가보겠습니다."
말을 마친 강진석은 네 사람의 답을 듣지 않고 바로 사라졌다.
"...."
"...."
"...."
"...."
남겨진 네 사람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강진석이 있던 자리를 바라볼 뿐이었다.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이번에도 한지윤이었다.
"...우, 우리도 갈까?"
"...김포공항요?"
"아니."
한지윤은 강나연의 반문에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길드장님이 가셨으니 거기는 신경 쓸 필요 없을 것 같아."
다른 이도 아니고 강진석이 갔다.
김포공항 일대에 자리 잡은 전쟁 바람 부족은 끝이다.
"엘프들이랑 고블린들이 슬금슬금 넘어오고 있잖아? 마포구에서도 정체불명의 괴물들이 넘어오고 있고."
전쟁 바람 부족만 있는 게 아니다.
주변에는 전쟁 바람 부족 말고도 상대해야 할 몬스터가 수두룩했다.
"그 녀석들 정리하러 가자."
* * *
"...."
에파드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멍하니 상공을 바라볼 뿐이었다.
에파드가 바라보는 상공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원래 없었던 것은 아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하늘을 꿰뚫은 검은 기둥이 있었다.
'분명....'
처음 보는 이상 현상이 아니다.
알고 있는 이상 현상이었다.
잘못 본 것도 아니다.
최근에 본 적은 없지만 오래전 두 번이나 본 적 있었다.
'두 번째 영혼 각성이라니. 믿기지 않는군.'
에파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바로 그때였다.
"준비됐습니다."
귓가에 들리는 부관 클레논의 목소리에 에파드는 뒤로 돌아섰다.
그러고는 바로 천막으로 들어가 통신 거울 앞에 선 뒤 클레논에게 눈짓했다.
그러자 클레논이 수정구에 기운을 불어넣었고 통신 거울에 빛이 서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통신 거울에 한 오크가 모습을 드러냈다.
곧이어 에파드는 바로 무릎을 꿇어 예를 취하며 인사했다.
"1군단장 에파드, 대족장님을 뵙습니다."
-표정을 보니 좋은 일은 아닌 것 같군.
-무슨 일이지?
"조금 전 검은 기둥이 나타났습니다."
-...검은 기둥?
올라쿤은 미간을 찌푸리며 반문했다.
그리고 에파드가 이어 말했다.
"일전에 보고드린 존재가 두 번째 영혼 각성을 마친 것 같습니다."
-....
올라쿤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할 수가 없었다.
두 번째 영혼 각성은 그 정도로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정적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 그게 무슨 소리인가?
화면 밖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얼굴을 보지 않아도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대제사장 마르브의 목소리가 분명했다.
이내 거울에 마르브가 나타났다.
-두 번째 영혼 각성이라니!
마르브가 불신 가득한 표정과 분노가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대족장 올라쿤에게 보고 중이었다.
마르브가 끼어든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올라쿤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두 번째 영혼 각성이 마르브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전대 대제사장이신 라울린 님 때 나타났던 검은 기둥과 똑같았습니다."
-....
에파드의 입에서 오래전 부족을 떠난 전대 대제사장 라울린의 이야기가 나오자 마르브는 말을 잃었다.
그리고 이내 거울에서 사라졌다.
마르브가 사라지자 에파드가 올라쿤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큰일 날 것 같았다.
-...전원 철수하는 게 좋겠군.
-설치된 아티펙트와 마법진은 전부 버리고 복귀하거라.
-최대한 빠르게.
"알겠습니다. 떠날 때 보고드리겠습니다."
-아니, 보고는 필요 없다.
-그 시간에 바로 출발할 수 있도록.
"예."
에파드의 답을 끝으로 통신 마법이 끊겼다.
곧이어 에파드는 자리에서 일어나 부관 클레논에게 말했다.
"본부로 복귀한다. 모든 지휘관에게 전하거라. 본부에서 온 전사들에게는 내가 전하겠다."
"옙!"
클레논은 비장한 표정으로 답하며 천막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클레논이 빠져가고 곧장 두 오크가 들어왔다.
본부에서 온 전사들을 이끄는 '카스란', '렐리나'였다.
통신 마법을 느끼고 온 것이 분명했다.
"...조금 전 상황을 보고한 건가요?"
카스란은 뒤쪽에 있는 거울을 힐끔 보고 물었다.
에파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철수하라고 하셨소. 지금 당장."
카스란과 렐리나 역시 검은 기둥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는 묻지 않고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하고는 다시 밖으로 나갔다.
두 오크가 떠나자마자 에파드는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짐을 챙기던 에파드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이곳에서 육체 제련을 진행할 예정이었다.
그래서 육체 제련에 필요한 재료는 물론 수많은 자원을 가지고 왔다.
문제는 전부 챙길 시간이 없다는 점이었다.
'육체 제련 재료만이라도 챙겨야겠지.'
다른 것은 다 포기하고 가도 된다.
그러나 육체 제련 재료만큼은 꼭 챙겨야 했다.
다시 모으는 데 얼마나 걸릴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에파드는 구석에 있는 보관 아티펙트 앞으로 향했다.
바로 그때였다.
탁자 위 수정구가 맹렬히 빛을 뿜어냈고 에파드는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쩍!
그리고 이내 수정구가 파괴됐다.
"...."
에파드는 말없이 인상을 구겼다.
수정구는 영역에 침입한 존재의 수준을 알려주는 아티펙트였다.
첫 번째 육체 제련이나 첫 번째 영혼 각성을 한 존재가 침입해도 파괴되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감지 아티펙트였다.
그런데 수정구가 파괴됐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였다.
두 번째 영혼 각성을 한 존재가 영역에 침입한 게 분명했다.
'어찌 벌써!'
에파드는 고민했다.
명령을 내린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 전부 철수하는 게 가능할까?
아니, 불가능하다.
'...막아야겠지.'
부하들을 방패 삼아 도망칠 수는 없다.
반대로 부하들이 도망칠 시간을 벌어주는 것이 수장의 의무였다.
'오래 끌지 못하더라도....'
에파드는 이를 악물었다.
그러고는 옆으로 손을 뻗었다.
후웅!
그러자 탁자 아래에 놓여 있던 황금 도끼가 바람을 가르며 날아왔다.
도끼를 잡은 에파드는 기운을 끌어올리며 천막 밖으로 나왔다.
'최대한 버틴다.'
* * *
쾅! 쩍!
[전쟁 바람 부족 1군단장 에파드가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퀘스트 '1군단장 에파드'가 완료됐습니다.]
.
.
메시지를 본 강진석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바로 찾아올 줄은 몰랐는데.'
제174화
174.
영역에 진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에파드가 나타났다.
솔직히 강진석은 에파드를 이렇게 바로 만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지 않았다.
심층 영역에 들어가고 나서야 만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왜 나타난 걸까?'
에파드의 표정은 비장했다.
이미 죽을 것을 알고 온 것 같았다.
왜 도망치지 않고 죽으러 온 것일까?
'부하들 도망칠 시간 벌려고 온 건가?'
강진석은 에파드가 나타난 이유에 대해 생각하며 에파드가 남긴 아티펙트를 수거했다.
그리고 수거를 마친 뒤 고개를 돌려 심층 영역이 있는 방향을 보았다.
'지금 오고 있는 녀석들도 마찬가지려나?'
에파드 말고도 마중을 나오는 오크가 여럿 있었다.
한 마리도 빠짐없이 전부 수준이 높았다.
놀랍게도 에파드와 비슷한 수준도 둘이나 있었다.
퀘스트 덕분에 에파드와 비슷한 두 오크의 정체는 예상됐다.
직할 1특수단장 카스란과 직할 1특공단장 렐리나가 분명했다.
이내 오크들이 적당한 거리에 멈춰 섰다.
그리고 선두에 있는 가장 강한 두 오크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주변을 훑었다.
에파드를 찾는 게 분명했다.
강진석은 싱긋 웃으며 혼돈의 구에 기운을 주입했다.
그러자 수많은 눈송이가 나타나 오크들을 포위했다.
오크들은 눈송이를 보자마자 기운을 끌어올려 보호막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보호막 위로 눈송이가 작렬하며 한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오크들은 빠르게 얼어붙기 시작했다.
그것은 이 중 제일 강한 카스란과 렐리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강진석은 혼돈의 구를 몽둥이로 변환했다.
그리고 공간이동을 통해 거리를 좁혔다.
눈송이는 신경 쓸 필요 없었다.
애초에 닿는다고 해도 아무런 영향이 없었고 애초에 닿을 일이 없었다.
눈송이를 통제하는 게 강진석이었기에.
후웅!
도착과 동시에 강진석은 몽둥이를 휘둘렀다.
표적이 된 오크는 몽둥이를 인지했다.
그러나 인지했다는 것이 피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었다.
쾅!
몽둥이가 작렬하며 폭음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오크의 몸을 감싸고 있던 얼음 조각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강진석은 재차 몽둥이를 휘둘렀다.
쾅!
다시 한번 오크의 머리에 몽둥이가 작렬했고.
[전쟁 바람 부족 직할 1특공단 단원 메포리가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퀘스트 '1특공단 메포리'가 완료됐습니다.]
.
.
메시지가 나타났다.
강진석은 바로 다음 오크에게 다가갔다.
그렇게 얼어붙은 오크들이 하나둘 죽음을 맞이하기 시작했다.
* * *
"...."
올라쿤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멍하니 영혼석이 진열되어 있는 진열장을 바라볼 뿐이었다.
조금 전 에파드의 영혼석이 파괴됐다.
'그사이에 쳐들어오다니.'
철수 명령을 받은 에파드의 영혼석이 왜 파괴됐겠는가?
두 번째 영혼 각성을 한 존재가 방문한 것이 분명했다.
'1군단이 이리 허망하게....'
파괴된 영혼석은 에파드의 것만이 아니다.
에파드의 영혼석이 파괴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1군단에 파견한 전사들의 영혼석이 하나둘 파괴되기 시작했고 1특수단장 카스란의 영혼석도 파괴됐다.
이제 남은 것은 1특공단장 렐리나의 영혼석뿐이었다.
그리고 곧 렐리나의 영혼석 역시 파괴될 것이다.
바로 그때였다.
빠각!
생각하길 기다렸다는 듯 렐리나의 영혼석이 파괴됐다.
"...."
올라쿤은 착잡한 표정으로 진열장을 닫았다.
그리고 걸음을 옮겨 지도 앞으로 향했다.
저벅!
이내 지도 앞에 도착한 올라쿤은 지도를 보며 생각했다.
'만약 본부로 쭉 진격해 오면....'
1군단에서 끝날까?
아니, 그럴 가능성은 0에 가까웠다.
분명 영역을 넓히려 할 것이다.
만약 본부가 있는 계양산으로 쭉 진격해 온다면?
'흐음....'
올라쿤은 미간을 찌푸렸다.
1군단이 위치한 김포공항 일대와 계양산은 매우 가깝다.
두 번째 영혼 각성을 한 존재라면 눈 깜짝할 사이에 도착할 것이다.
물론 계양산에는 강력한 영역과 각종 마법진, 아티펙트가 설치되어 있다.
거기다 올라쿤과 올라켄, 마르브까지 벽을 넘어선 존재가 셋이나 있다.
제아무리 두 번째 영혼 각성을 했다고 해도 계양산에서는 죽음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물론 두 번째 영혼 각성을 한 존재를 죽이기 위해서는 올라쿤도 죽음을 각오해야 한다.
올라쿤뿐만이 아니다.
올라켄, 마르브도 죽음을 각오해야 한다.
'...준비를 최대한으로 해도 누군가는 죽겠지.'
솔직히 지금보다 방비를 더 강화해도 모두가 사는 그림은 그려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방비 강화를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방비를 강화하기로 결정을 내린 올라쿤은 거처 밖으로 나가며 생각했다.
'근데 오지 않으면....'
본부로 올 가능성이 있는 것이지 확정된 게 아니다.
올라쿤의 예상과 달리 본부로 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괜히 자원만 낭비하게 되는 꼴이 된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다.
'더 강해질 텐데.'
솔직히 오지 않아도 문제다.
시험이 시작된 지 오래된 것도 아니고 고작 한 달 정도였다.
그런데 벌써 두 번째 영혼 각성을 했다.
말도 안 되는 성장 속도였다.
'세 번째 영혼 각성은 불가능하겠지만....'
물론 세 번째 영혼 각성은 쉽지 않을 것이다.
전대 대제사장 라울린도 세 번째 영혼 각성을 위해 30년을 투자했지만 실마리를 잡지 못했다.
부족을 떠난 이유도 실마리를 잡기 위해서였다.
즉,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도 세 번째 영혼 각성은 걱정할 필요 없다.
그러나 영혼 각성을 걱정할 필요 없다는 것이지 다른 부분은 걱정해야 한다.
강해질 방법은 영혼 각성만 있는 게 아니다.
만에 하나 육체를 제련하기라도 한다면?
'...미치겠군.'
오길 바라야 할지 오지 않길 바라야 할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올라쿤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 * *
1군단 다섯 번째 창고.
'이야....'
창고를 돌아다니며 물품을 확인하던 강진석은 속으로 감탄을 내뱉었다.
'첫 번째 창고도 그렇고 두 번째 창고도 그렇고 여기도 그렇고....'
1군단은 2군단보다 규모가 훨씬 컸다.
영역 상징도 1개가 아니라 2개나 됐다.
규모가 큰 만큼 창고도 한두 개가 아니었다.
총 다섯 곳이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한 곳, 한 곳이 전부 2군단 창고와 비슷했다.
이내 창고 탐색을 끝낸 강진석은 흡족한 표정으로 퀘스트창을 열었다.
<육체 제련>
조건을 충족하라!
[혈력 : 100%]
.
.
[알칸데움 : 2 / 2kg]
퀘스트 보상 : 스킬 '육체 제련' 2레벨 활성화
세계 침공자 처치 시 혈력이 자동 수집됩니다.
동족 처치 시 혈력이 자동 수집됩니다.
'1개만 사면 되겠네.'
혈력은 진즉 충족됐고 나머지 재료들만 있으면 됐다.
그리고 그중 몇 가지는 상점창에서 구매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1군단 창고에 1개를 제외한 나머지가 전부 있었다.
덕분에 포인트를 대거 아끼게 됐다.
당연히 퀘스트 '육체 제련'의 재료만 수급된 것은 아니다.
<물의 이해>
조건을 충족하라!
[물속 생활 : 100%]
[물의 보석 아쿠아린 : 10 / 10]
.
.
퀘스트 보상 : 스킬 '물의 이해' 1레벨 활성화
'이건 봉제산 창고에 들르면 끝이고.'
퀘스트 '물의 이해'에 필요한 재료들도 수급했다.
봉제산 창고에 있는 재료 '마르지 않는 나뭇가지'만 챙기면 완료가 가능한 상태였다.
'남은 두 퀘스트가 문제인데....'
강진석은 이어 퀘스트 '영혼 각성'을 확인했다.
<영혼 각성>
조건을 충족하라!
[혼력 : 30%]
.
.
[공허의 결정 리튜렌 : X]
퀘스트 보상 : 스킬 '영혼 각성' 3레벨 활성화
세계 침공자 처치 시 혼력이 자동 수집됩니다.
동족 처치 시 혼력이 자동 수집됩니다.
'언제쯤 완료할 수 있을까.'
혼력을 제외하고 50개의 재료가 필요했다.
문제는 1군단 창고에서 수급된 재료가 2개뿐이라는 점이었다.
'상점창에서 다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남은 48가지 중 상점에서 판매하는 재료는 10가지뿐이었다.
38가지는 어디서 구해야 할지 막막했다.
'...어차피 혼력 채우는 데 시간이 걸리니까.'
공허의 틈부터 1군단까지 수많은 몬스터를 죽였다.
어중이떠중이만 죽인 게 아니다.
3차 제약 침공자도 수십이었다.
그럼에도 아직 혼력은 30%였다.
언제 100%가 될지 추측조차 할 수 없었다.
'급할 필요 없지.'
모든 재료가 모여도 혼력이 충족되지 않으면 완료할 수 없다.
강진석은 마지막으로 혼돈의 구 해방 퀘스트를 확인했다.
<혼돈의 구(1)>
아래 조건을 충족하라!
[영혼 각성 1레벨 : O]
[육체 제련 1레벨 : O]
.
.
[알칸데움 : 500 / 500g]
퀘스트 보상 : 혼돈의 구 강화
완료 시 퀘스트 '혼돈의 구(2)'가 생성됩니다.
'진짜 문제는 이 녀석인데....'
20가지 조건 중 15가지를 충족했다.
문제는 남은 5가지였다.
남은 5가지는 상점창에서 판매하지 않는다.
혼력을 충족해야 하는 영혼 각성과 달리 재료만 있으면 바로 완료가 가능한 상태였다.
그래서 더 신경 쓰였다.
'본부에 있으려나?'
강진석은 계양산에 있는 전쟁 바람 부족의 본부를 떠올렸다.
1군단은 2군단보다 규모가 컸고 그만큼 많은 재료가 있었다.
본부 역시 1군단보다 규모가 클 것이고 더욱 많은, 질 좋은 재료가 있을 것으로 추정됐다.
즉, 본부 창고에는 필요한 재료들이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가고 싶지만....'
마음 같아서는 당장 가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가 없었다.
주변을 정리해 일단 안전을 확보해야 했고 정동진으로 가 부모님을 구출해야 했으며 육체 제련 진행까지 할 일이 많았다.
'4차 제약 침공자가 있을 테니.'
그리고 전쟁 바람 부족의 대족장인 '올라쿤'은 분명 4차 제약 침공자일 것이다.
질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할 일이 많은 상황에서 쉽게 공격을 갈 수는 없었다.
'전부 정리하는 대로 가자.'
물론 그렇다고 질질 끌 생각은 없었다.
모든 일이 정리된 후 곧장 방문할 생각이었다.
강진석은 퀘스트창을 닫고 창고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온 강진석은 김포공항 일대에 만든 영역을 재차 확인하며 주변을 탐색했다.
'들어올 생각은 없나 보네.'
영역 밖에 몬스터 무리가 감지됐다.
전쟁 바람 부족 오크들도 있었고 차가운 뿌리 부족 고블린도 있었고 다른 곳에 소속되어 있는 몬스터도 있었다.
그러나 영역을 경계할 뿐 안으로 들어오지는 않았다.
강진석은 굳이 죽이러 가지 않았다.
'길드원들 경험치로 딱이겠어.'
길드원들의 성장을 위해서였다.
주변 탐색을 마친 강진석은 이어 봉제산으로 이동했다.
퀘스트 '물의 이해'를 완료하기 위해서였다.
'드디어 어떤 스킬인지 알 수 있겠네.'
창고에서 마르지 않는 나뭇가지를 챙긴 강진석은 퀘스트창을 열었다.
그리고 바로 퀘스트 '물의 이해'를 완료했다.
[스킬 퀘스트 '물의 이해'를 완료하셨습니다.]
[스킬 '물의 이해'가 활성화됩니다.]
[물과 관련된 모든 효과가 100% 증가합니다.]
완료와 동시에 메시지가 나타났고 강진석은 눈을 번뜩였다.
스킬 '물의 이해'의 효과 때문이 아니다.
완료와 동시에 머릿속에 떠오른 스킬 '물의 이해'에 대한 정보 때문이었다.
'이게 대체....'
제175화
175.
정보에 집중하던 강진석은 공간이동을 통해 한강으로 이동했다.
확인할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허....'
그리고 도착과 동시에 강진석은 속으로 탄성을 내뱉었다.
한강에 대한 정보가 속속 머릿속에 떠오르고 있었다.
정확히는 한강에 대한 정보가 아닌, 한강을 이루고 있는 '물'에 대한 정보가 떠올랐다.
물이 깨끗한지 아닌지는 물론 어떤 성질을 가지고 있는지도 느껴졌다.
'근데 1레벨에 이 정도면....'
스킬 '물의 이해'는 아직 1레벨이었다.
그리고 최대 레벨은 5레벨이었다.
1레벨에 이런 정보가 주어진다면 대체 2레벨과 3레벨 그리고 최대 레벨인 5레벨에서는 어떤 정보가 주어지는 것일까?
'운용이랑 지배도 기대가 되는걸.'
이해가 끝이 아니다.
상위 스킬인 물의 운용과 물의 지배도 있었다.
물의 이해가 이 정도인데 운용과 지배는 어떨까?
무척이나 기대됐다.
'일단....'
강진석은 스킬창을 열었다.
[스킬 '물의 이해'의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스킬 퀘스트 '물의 이해'가 생성됐습니다.]
그리고 스킬 '물의 이해'를 2레벨로 올린 뒤 다른 이해 스킬들을 보며 생각했다.
'비슷하겠지?'
불의 이해, 시간의 이해, 공간의 이해 등 다른 이해 스킬들 역시 물의 이해와 마찬가지로 정보를 제공할 것으로 추정됐다.
'전부 습득할 수는 없고.'
1군단 청소를 통해 강진석은 포인트를 대거 수급했다.
그러나 모든 이해 스킬을 습득할 정도로 많지는 않았다.
'그러면....'
[스킬 '시간의 이해'를 습득하셨습니다.]
[스킬 퀘스트 '시간의 이해'가 생성됐습니다.]
[스킬 '공간의 이해'를 습득하셨습니다.]
[스킬 퀘스트 '공간의 이해'가 생성됐습니다.]
고민 끝에 강진석은 스킬 '시간의 이해'와 '공간의 이해'를 습득했다.
시간과 공간을 선택한 이유는 확인할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바로 첫 번째 조건이었다.
퀘스트 '물의 이해'의 첫 번째 조건은 '물속 생활'이었다.
말 그대로 물속에서 생활하면 조건을 충족할 수 있었다.
시간과 공간은 어떨까?
'그냥 시간 지나면 충족되려나?'
강진석은 퀘스트 '시간의 이해'를 확인했다.
<시간의 이해>
조건을 충족하라!
[시간 인지 : 0%]
[시간의 돌 타이르푸스 : 0 / 5]
.
.
퀘스트 보상 : 스킬 '시간의 이해' 1레벨 활성화
'시간 인지?'
조건을 확인한 강진석은 미간을 찌푸렸다.
아쉽게도 첫 번째 조건은 예상과 달랐다.
'...어떻게 인지하라는 거지?'
시간이 흐른다고 해도 충족되지 않을 것 같았다.
'으음....'
어찌해야 충족할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었다.
강진석은 이어 퀘스트 '공간의 이해'를 확인했다.
<공간의 이해>
조건을 충족하라!
[공간 인지 : 0%]
[공간의 돌 타이르푸스 : 0 / 5]
.
.
퀘스트 보상 : 스킬 '공간의 이해' 1레벨 활성화
'이것도 인지야?'
시간의 이해와 마찬가지로 공간의 이해 첫 번째 조건 또한 공간 '인지'였다.
강진석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다시 첫 번째 조건을 확인했다.
[공간 인지 : 0%]
'...역시 이건 아닌가?'
공간 인지라기에 혹시나 주변 광경을 바라보면 되는 게 아닐까 했다.
그런데 역시나 아니었다.
'흐음.'
강진석은 속으로 침음을 내뱉었다.
'물의 이해는 그대로겠지...?'
그리고 살짝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퀘스트 '물의 이해'를 확인했다.
<물의 이해>
조건을 충족하라!
[물속 생활 : 0%]
[물의 보석 아쿠아린 : 0 / 50]
.
.
퀘스트 보상 : 스킬 '물의 이해' 2레벨 활성화
'휴.'
조건을 확인한 강진석은 안도했다.
다행히 첫 번째 조건은 그대로 '물속 생활'이었다.
혹시나 '물 인지'면 어쩌나 했는데 참으로 다행이었다.
'많이 늘기는 했지만.'
물론 다른 재료가 대폭 늘어나기는 했다.
그러나 재료는 상관없다.
창고에 수두룩했기에.
그리고 모자란다?
구매하면 그만이었다.
강진석은 퀘스트창을 닫았다.
그리고 시간을 확인했다.
회의는 내일 오후 2시 봉제산에서 진행될 예정이었다.
아직 회의까지 시간이 많이 남은 상태였다.
'...청소는 내가 도와줄 필요 없을 것 같고.'
원래 계획은 김포공항 일대를 정리 후 정동진에 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길드원들이 위험할까 봐 그전에 잠깐 청소를 도울까 했다.
그런데 초감각으로 확인해 보니 위험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 청소를 돕는 것은 길드원들의 성장을 방해하는 일이었다.
'바로 가면 되겠어.'
계획대로 정동진에 가면 될 것 같았다.
결정을 내린 강진석은 전에 한지윤에게 받은 서류를 꺼냈다.
그리고 동선상에 있는 구출 대상자들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1721.'
동선상에 있는 구출 대상자의 수는 1721명이었다.
'전부 살아 계시지는 않겠지만....'
시험이 시작된 지 하루, 이틀 지난 게 아니다.
안전 구역은 전부 사라졌을 것이고 많은 이들이 죽었을 것이다.
솔직히 말해 전부 죽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많이들 살아계셨으면 좋겠네.'
부디 강진석은 최대한 많은 이들이 살아있길 기도하며 연달아 공간이동을 시전해 선유도역이 위치한 영등포구로 진입했다.
진입과 동시에 강진석은 메시지창을 확인했다.
'다행이네.'
그리고 안도했다.
영등포구는 이미 2차 제약이 해제된 상황이었다.
그래서 혹시나 진입과 동시에 3차 제약이 해제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3차 제약 관련 메시지는 나타나지 않았다.
메시지 확인을 마친 강진석은 초감각에 집중했다.
그리고 강진석은 수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공격 오려는 건가?'
일단 수많은 엘프가 선유도역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수는 1000마리가 넘어섰다.
거기다 한 마리도 빠짐없이 전부 무장을 한 상태였다.
'일단 정리부터.'
1000마리 중 3차 제약 침공자가 한 마리도 없었다.
대신 2차 제약 침공자가 50마리였다.
물론 강진석에게는 아무 의미 없었다.
3차 제약 침공자가 50마리였다고 해도 강진석은 자신 있었다.
강진석은 바로 공간이동을 통해 엘프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바로 혼돈의 구에 기운을 주입해 델칸의 아이스 포그를 시전했다.
시전과 동시에 눈송이가 나타났다.
"...!"
강진석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뭐야?'
전보다 눈송이의 크기가 1.5배 커졌다.
크기만 커진 게 아니다.
개수도 늘어났고 범위도 늘어났다.
'...물의 이해 때문인가?'
스킬 '물의 이해'가 활성화되며 물과 관련된 모든 효과가 100% 증가한 상태였다.
물론 아이스 포그는 '얼음'이었다.
그러나 '물'과 관련 없다고 할 수는 없었다.
아이스 포그가 강력해진 이유는 물의 이해 때문이 분명했다.
'좋네.'
강진석은 싱긋 웃으며 눈송이를 움직였다.
그리고 당황해하는 엘프들에게 눈송이가 작렬하기 시작했다.
쩌저적! 쩌적!
3차 제약 침공자에게도 위협적인 눈송이다.
그런 눈송이가 더욱 강력해졌다.
2차 제약 미만 침공자들에게는 어떻겠는가?
강진석은 눈송이와 닿자마자 빛과 함께 사라지는 엘프들을 잠시 바라보다가 메시지창을 보았다.
.
.
[엘프를 처치하셨습니다.]
[포인트가 3000 상승합니다.]
새로운 메시지가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었다.
그러나 중요한 메시지는 보이지 않았다.
처치 메시지와 포인트 상승 메시지뿐이었다.
이내 모든 엘프가 죽음을 맞이했고 강진석은 잠시 고민했다.
'챙겨야 하나?'
2차 제약 침공자들이 남긴 아티펙트들이 있었다.
한, 두 개가 아니다.
애초에 2차 제약 침공자의 수가 50이었고 파괴되지 않고 남은 아티펙트의 수는 82개였다.
'...그냥 냅두자.'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강진석은 아티펙트를 내버려 두기로 했다.
인벤토리에 한계가 없다면 모를까 한계가 있다.
그리고 다 챙기면서 가기에는 앞으로 얻게 될 아티펙트의 수가 너무 많기도 했고 솔직히 말해 챙겨야 할 정도로 좋은 것도 없었다.
물론 내버려 둔다는 것이 그냥 버리겠다는 뜻은 아니다.
직접 챙기지 않겠다는 뜻이지 그냥 버릴 수는 없다.
다른 몬스터의 손에 들어가면 문제가 될 수 있기에.
스윽.
강진석은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 한지윤에게 현재 장소와 아티펙트 개수를 보냈다.
이후 강진석은 재차 공간이동을 해 당산역으로 이동했다.
당산역에 도착한 강진석은 바로 아이스 포그를 시전해 역 밖에 있던 엘프들을 정리했다.
그리고 당산역 입구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구출하면서 가는 게 맞겠지?'
당산역에 영역이 펼쳐져 있었다.
그러나 두 번째 영혼 각성을 마친 강진석은 영역 내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당산역 지하 2층에 생존자가 있었다.
구출 대상자는 아니다.
근처에 구출 대상자는 없었다.
그러나 그냥 버리고 가기에는 너무나 찝찝했다.
'그래, 오래 걸리는 것도 아니고.'
강진석은 당산역으로 진입했다.
[던전 '당산역'에 입장하셨습니다.]
[24시간 동안 모든 입구가 봉쇄됩니다.]
[던전 클리어 시 봉쇄가 해제됩니다.]
[퀘스트 '세계수 뿌리 조각 파괴'가 생성됐습니다.]
[퀘스트 '수비대장 레발리'가 생성됐습니다.]
.
.
입장과 동시에 메시지가 주르륵 나타났다.
강진석은 전과 달리 대충 확인하고 관심을 거뒀다.
퀘스트창을 열지도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전과 구성이 똑같았다.
내용 역시 똑같을 것이다.
강진석은 재차 지하 1층, 엘프들이 머물러 있는 곳으로 공간 이동했다.
그리고 바로 아이스 포그를 시전했다.
* * *
검은 숲의 근간인 세계수 카르실의 열다섯 번째 뿌리 심처.
현재 심처에는 검은 숲 엘프들을 이끄는 세 하이엘프 하나린, 둘리안, 폴리타셋이 심각한 표정으로 침묵하고 있었다.
세 하이엘프가 침묵하고 있는 이유는 조금 전부터 발생한 믿기지 않는, 정체불명의 상황 때문이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없이 이어질 것 같던 정적을 깬 것은 하나린이었다.
"...."
"...."
하나린의 질문에 둘리안과 폴리타셋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린은 두 엘프의 침묵에도 답을 재촉하지 않았다.
두 엘프가 침묵하는 이유를 알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하나린도 이러고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입을 연 것이지 머릿속이 무척이나 혼란스러웠다.
'대체 누가 뿌리 조각을....'
1시간 전 당산역에 있는 뿌리 조각이 파괴됐다.
당산역뿐만이 아니다.
국회의사당에 있던 뿌리 조각도 파괴됐고 국회의사당역에 있던 뿌리 조각도 파괴됐다.
그리고 3분 전 여의나루역에 있던 뿌리 조각이 파괴됐다.
1시간 만에 뿌리 조각이 4개나 파괴된 것이다.
'인간들의 짓이 아닌가...?'
처음에는 인간들의 짓이라 생각했다.
당산역을 공격할 수 있는 것은 인간들뿐이었기에.
그러나 상황을 보니 인간들의 짓이 아닌 것 같았다.
아무리 차가운 뿌리 부족 고블린들을 몰아낸 인간들이라 해도 1시간 만에 뿌리 조각을 4개나 파괴한다?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 이 정도는 4차 제약 존재만이 할 수 있는 일이야.'
지금 상황은 적어도 '벽'을 넘어서야 가능하다.
벽을 넘지 못한 이가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럼 누구지?'
그래서 더 문제였다.
대체 어떤 존재가, 무슨 이유로 이런 짓을 벌인단 말인가?
제176화
176.
생각에 잠겨 있던 그때.
"일단 인간들의 짓은 아닌 것 같습니다."
둘리안이 입을 열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폴리타셋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맞습니다. 인간들의 짓이라 하기에는 너무 빠릅니다. 적어도 벽을 넘어선 존재가 아닐까 싶습니다."
두 엘프의 말에 하나린 역시 생각을 끝내고 입을 열었다.
"제 생각도 두 분과 같습니다. 그래서 더 문제입니다. 대체 누구일까요?"
"...혹시 메라키오가 나선 게 아닐까요?"
하나린의 질문에 이번에도 둘리안이 먼저 답했다.
검은 숲과 영역을 맞댄, 인접 세력에는 벽을 넘어선 존재가 꽤 있다.
그들 중 숲을 공격할 만한 동기가 있는 존재는 차가운 뿌리 부족의 부족장 메라키오, 열화 사막 부족의 총사령관 아슬렌, 부사령관 엘리타나 셋뿐이었다.
그러나 아슬렌과 엘리타나는 일이 시작된 당산역과 매우 먼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들이 당산역까지 왔다?
말도 안 된다.
즉, 가능성이 높은 것은 메라키오였다.
"메라키오의 힘이라면 충분히 가능하겠지요. 하지만...."
전처럼 폴리타셋이 이어 말했다.
그러나 전과 달리 동조하지는 않았다.
"상황을 생각하면 메라키오는 아닐 것 같습니다. 저희 영역을 공격할 힘이 있다면 영역을 되찾는 데 썼을 테니까요."
"으음...."
폴리타셋의 말에 둘리안은 침음을 내뱉었다.
솔직히 둘리안도 상대적으로 가능성이 높은 게 메라키오라 언급했을 뿐이지 상황을 생각하면 메라키오일 확률도 무척 낮았다.
"...."
"...."
"...."
그리고 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메라키오가 아니라면 대체 누가 이런 짓을 벌인 것일까?
바로 그때였다.
"...!"
"...!"
"...!"
세 엘프는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눈을 번뜩였다.
뿌리 조각이 하나 더 파괴됐다.
이번에 파괴된 조각은 63빌딩 부근에 자리 잡은 조각이었다.
여의나루역 조각이 파괴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파괴가 된단 말인가?
문제는 시간만이 아니다.
63빌딩 부근에 자리 잡은 조각은 보통 조각이 아니다.
다른 곳보다 2배나 큰 조각이 자리 잡은 곳으로 당연히 배치된 병력도 많았다.
"...메라키오는 확실히 아닌 것 같군요."
메라키오가 전력을 다한다고 해도 쉽게 무너지지 않을 곳이 63빌딩 부근이었다.
즉, 그렇지 않아도 낮았던 메라키오일 확률은 이제 완전히 0이 되었다고 할 수 있었다.
"인근에 있던 존재도 아닌 것 같군요."
메라키오뿐만이 아니다.
인접 세력의 벽을 넘어선 존재 중에서도 이렇게 빨리 63빌딩 부근을 무너트릴 존재는 없었다.
"어떻게 할까요? 대응한다고 막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닌 것 같은데."
하나린이 말했다.
지금 숲을 헤집는 존재는 보통 존재가 아니다.
세 엘프가 힘을 합쳐도 막을 수 있으리란 보장이 없다.
둘리안과 폴리타셋이 말이 없자 하나린이 이어 말했다.
"동선을 보면 이대로 열화 사막 영역으로 넘어갈 것 같긴 한데...."
"...!"
"...!"
이어진 하나린의 말에 둘리안과 폴리타셋이 눈을 번뜩였다.
"그냥 내버려 두는 게 어떨까요?"
"맞습니다. 굳이 저희가 힘을 들여 막을 재앙이 아닌 것 같습니다."
* * *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내일 안전한 곳으로 이송해 드리겠습니다.]
강진석은 감옥에 갇혀 있는 생존자들에게 텔레파시를 보냈다.
원래 강진석은 구출한 생존자들을 전부 봉제산으로 보냈었다.
그러나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기도 했고 과부하가 될 것 같아 계획을 바꿨다.
잠시 대기시키기로.
물론 엘프들이 빼앗긴 영역을 되찾기 위해 공격을 해올 수 있다.
그러나 영역이 공격당하면 메시지가 나타난다.
즉, 영역이 파괴되기 전 돌아와 정리하면 된다.
대기한다고 안전에 문제가 생기는 일은 없는 것이다.
[지금 계신 곳도 안전하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강진석은 재차 텔레파시를 보내 생존자들을 안심시킨 뒤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서쪽에 있는 샛강역과 남쪽에 있는 노량진역을 보며 잠시 고민했다.
샛강역과 노량진역에도 생존자가 여럿 있었다.
'...빨리 정동진에 가야 하는데.'
원래 강진석의 계획은 동선에 있는 생존자만 구출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샛강역과 노량진역은 동선에서 벗어난 곳이었다.
그러나 이대로 생존자들을 버리고 가자니 마음이 너무나 찝찝했다.
'괜찮다고는 하셨지만....'
한지윤이 말했다.
정동진은 당분간 안전할 것이라고.
'정동진도 상황이 다를 수 있는데....'
그러나 현재 상황만 봐도 한지윤의 예지와 달라져 있었다.
즉, 정동진 상황도 다를 수 있다.
'...에휴.'
강진석은 이내 속으로 한숨을 내뱉었다.
'그래, 아버지나 어머니도 구하라 하셨을 거야.'
고민 끝에 강진석은 동선 밖 생존자들을 구출하기로 결정했다.
'그래도 노량진역은 안 되겠지...?'
물론 강진석은 샛강역만 들를 생각이었다.
노량진역에도 생존자가 있는데 샛강역만 들르려는 이유는 두 역의 지역구가 다르기 때문이었다.
샛강역은 영등포구에 속해 있었다.
이미 2차 제약이 해제된 상태였다.
그러나 노량진역은 동작구에 속해 있었다.
그리고 아직 동작구는 2차 제약이 해제되지 않은 상태였다.
즉, 노량진역의 생존자를 구출하자고 동작구에 진입한다면?
2차 제약이 해제될 것이고 더 큰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그래, 동선상에 있다면 모를까.'
물론 동선상에 동작구가 있었다면 노량진역 생존자도 구출했을 것이다.
그러나 동선에 동작구는 없었다.
'차라리 몰랐다면 좋았을 텐데.'
강진석은 예전 강나연을 구출하러 갔을 때를 떠올렸다.
당시에는 초감각이 약해 생존자들을 감지할 수가 없었다.
존재 자체를 몰랐기에 당연히 신경 쓰이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초감각 범위를 줄일 생각은 없었다.
이내 샛강역에 도착한 강진석은 지상에 있던 엘프들을 휩쓸었다.
그리고 바로 역으로 진입했다.
[던전 '샛강역'에 입장하셨습니다.]
[24시간 동안 모든 입구가 봉쇄됩니다.]
[던전 클리어 시 봉쇄가 해제됩니다.]
[퀘스트 '세계수 뿌리 조각 파괴'가 생성됐습니다.]
[퀘스트 '지원대장 클니나'가 생성됐습니다.]
.
.
역시나 퀘스트 구성은 다른 역과 같았다.
강진석은 관심을 거두고 지하 1층으로 이동했다.
* * *
검은 숲의 근간인 세계수 카르실의 열다섯 번째 뿌리 심처.
"...."
"...."
"...."
하나린, 둘리안, 폴리타셋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할 수가 없었다.
예상했던 것과 전혀 다른 상황이 펼쳐졌기 때문이었다.
당산역을 시작으로 뿌리 조각을 파괴하던 정체불명의 존재.
하나린을 포함한 세 엘프는 해당 존재가 열화 사막 부족의 영역으로 넘어갈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과 달리 정체불명의 존재는 넘어가지 않았다.
계속해서 뿌리 조각을 파괴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폴리타셋이 입을 열었다.
"...영등포구에 있는 뿌리 조각만 파괴하고 있습니다."
정체불명의 존재가 파괴하는 뿌리 조각은 전부 '영등포구'에 자리 잡은 것들이었다.
"아무래도 저희 예상과 달리 인간들과 관련이 있는 것 같은데...."
영등포구는 차가운 뿌리 부족의 영역이었다가 인간들의 영역이 된 '강서구'와 맞대고 있는 지역이었다.
즉, 지금 상황은 처음 예상과 달리 인간들의 짓일 수도 있다.
말을 마친 폴리타셋은 하나린과 둘리안의 눈치를 살폈다.
그리고 둘리안이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반문했다.
"그 말은 인간 중에서 벽을 넘은 존재가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벽을 넘어선 존재가 아니라 여럿이 동시에 벌인 일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보고에 따르면 강서구에 있는 인간들의 수준은 약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차가운 뿌리 녀석들을 몰아내지 않았습니까? 뭔가가 있을 겁니다."
"...!"
둘리안은 폴리타셋의 말에 눈을 번뜩였다.
일리가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 잠자코 이야기를 듣던 하나린이 입을 열었다.
"일리가 있지만 여럿이 벌인 일은 아닐 겁니다."
하나린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가득했다.
"만약 그런 것이라면 보고가 들어왔을 테니까요."
보고가 들어오지 않았다.
즉, 보고할 시간도 없이 당했다는 뜻이다.
이번 일은 분명 벽을 넘어선 존재의 짓이다.
"아무래도 벽을 넘어선 인간이 있는 것 같습니다."
"...!"
"...!"
하나린의 말에 둘리안은 물론 폴리타셋 역시 놀란 얼굴을 했다.
그리고 이어 반문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시험이 시작된 지 얼마나 됐다구요?"
"맞습니다. 아무리 강서구 인간들의 수준이 높다고 해도 벽을 넘어선 존재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두 엘프의 반문에 하나린이 답했다.
"...저도 처음에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이상하더군요. 메라키오가 왜 영역을 버리고 떠났을까요?"
"...!"
"...!"
하나린의 답에 두 엘프는 놀란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인간들이 차가운 뿌리 부족의 영역을 차지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당황스러웠다.
어째서 메라키오가 영역을 버린 것인지.
당시에는 의논 끝에 내분이 발생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보니 내분 때문이 아닌 것 같았다.
벽을 넘어선 인간이 나타났기 때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그러나 이번 정적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하나린이 무척이나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벽을 넘어선 인간이 있다는 가정하에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한시라도 빨리 대책을 세워 대응해야 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차가운 뿌리 부족과 같은 결말을 맞이하게 될 수도 있다.
실제로 이미 영등포구는 거의 빼앗긴 상황이었다.
"...."
"...."
그러나 하나린의 말에 둘리안과 폴리타셋은 입을 열지 않았다.
하나린은 두 엘프가 입을 열지 않는 이유가 충격을 먹어서라 생각했다.
하기야 지구의 인간이 벽을 넘어섰다는 것에 어찌 충격을 안 받겠는가?
위급 상황이 아니었다면 하나린도 넋을 놓았을 것이다.
'그래도!'
그러나 위급 상황이었다.
넋 놓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하나린은 답답한 표정으로 두 엘프를 보았다.
'...어?'
그리고 당황했다.
'...충격을 먹어서가 아니야?'
넋을 놓아 말이 없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표정을 보니 넋을 놓은 게 아니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
"지금 상황에...."
둘리안이 입을 열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있습니까?"
"...."
그리고 이어진 둘리안의 말에 하나린은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당장 어떻게서든 대응해야 된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대응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현재 검은 숲에서 벽을 넘어선 존재에게 대응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이는 하나린, 둘리안, 폴리타셋 셋뿐이었다.
그러나 세 엘프가 자리 잡은 관악산은 아직 제약이 풀리지 않았다.
세 엘프는 움직이고 싶어도 움직일 수가 없는 상태였다.
즉, 벽을 넘어선 인간이 무슨 짓을 하든 지켜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끙....'
하나린은 이를 악물었다.
'...잠깐.'
그러다 문득 든 생각에 눈을 번뜩였다.
대응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대응할 방법이 있었다.
하나린은 둘리안과 폴리타셋에게 말했다.
"...본부 이동을 하면 어떨까요?"
제177화
177.
"...?"
"...?"
둘리안과 폴리타셋은 하나린의 말에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본부 이동이라니?
"어디로 말입니까?"
둘리안이 반문했다.
그리고 하나린이 이어 말했다.
"동작구요. 정확한 위치는 좀 더 생각해 봐야겠지만요."
"동작구요!?"
하나린의 말에 둘리안은 그게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재차 반문했다.
그리고 폴리타셋 역시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물었다.
"이대로라면 영등포구를 전부 빼앗길 겁니다. 그런데 동작구라니요? 인간들과 직접적으로 마주하게 될 텐데 너무 위험합니다!"
상황을 보면 곧 영등포구에 자리 잡은 모든 뿌리 조각이 파괴될 것이다.
그런데 영등포구와 맞대고 있는 동작구로 본부를 이동하자니?
"그래서 더 동작구로 이동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벽을 넘어선 존재가 동작구로 넘어오면 지금 상황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본부를 동작구로 옮긴다면 막을 수 있습니다. 제아무리 벽을 넘어섰다고 해도 뿌리의 힘이 가득한 곳에서 저희 셋을 상대할 수 있겠습니까? 오히려 녀석이 오면 죽일 수 있겠지요."
하나린은 차분하게 자신의 생각을 전달했다.
"...."
"...."
둘리안과 폴리타셋은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았다.
일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일리가 있다고 쉽사리 동의할 수는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본부 이동은 제약이 풀리기 전에는 한 번만 가능했다.
당연히 2차 제약을 말하는 게 아니다.
모든 제약이 풀려야 자유로워진다.
즉, 본부 이동은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일인 것이다.
둘리안은 고민에 잠겼고 폴리타셋은 둘리안의 눈치를 살폈다.
그리고 이내 둘리안이 입을 열었다.
"이동하는 게 좋을 것 같군요."
둘리안의 말에 폴리타셋이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저도 동의하겠습니다."
두 엘프의 답을 들은 하나린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전부 동의하셨으니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시간은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빠르면 2일 늦어도 3일이면 될 겁니다."
* * *
"...뭐지?"
시간을 확인한 강나연은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근처에 있던 김칠성이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지금쯤이면 엘프들이 나타났어야 했는데 안 나타나서."
검은 숲 엘프들은 항상 같은 시간에 공격을 해왔었다.
그런데 지금 엘프들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이상하네."
"언니한테 보고해야겠어."
엘프들이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게 분명했다.
강나연은 핸드폰을 꺼내 한지윤에게 문자를 보냈다.
[언니, 엘프들이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것 같아요. 나타날 시간인데 나타나질 않네요.]
문자를 보내자마자 핸드폰이 진동했다.
한지윤의 전화였고 강나연은 바로 전화를 받았다.
"네, 언니."
-혹시 지금 목동 5단지 쪽이야?
"네, 혹시 아시는 거 있는 거예요?"
강나연은 한지윤의 질문에 답한 뒤 물었다.
목소리의 분위기를 보니 한지윤은 지금 상황에 대해 뭔가를 알고 있는 듯했다.
-지금 길드장님이 영등포구 쪽 정리하고 계셔.
"...오빠가요?"
-응, 아마 나타나지 않는 건 길드장님이 정리하셔서 그런 것 같아.
-엇, 지금 문자 왔어. 양평역 정리하셨다고.
-진즉 연락해 줬어야 했는데 미안, 지금 길드장님 명령으로 영등포 구쪽에서 아티펙트랑 생존자 구출 진행 중이라 정신이 없었네.
"아니에요. 미안해하실 일 아닌걸요. 혹시 도울 일 있을까요? 없으면 고블린들 때려잡으러 갈까 하는데."
-그러면 양평역 생존자들 부탁해도 될까?
-이동 게이트는 설치해 두셨데.
"면접까지 바로 진행하면 될까요?"
-응, 부탁할게!
"네! 특이 사항 생기면 연락드릴게요!"
강나연의 답을 끝으로 통화가 끝났고 김칠성이 기다렸다는 듯 물었다.
"무슨 소리야? 대장이 영등포구를 정리하고 있다고? 김포공항 쪽은 벌써 정리가 끝난 거야?"
"어, 그런 것 같아."
"근데 대장 김포공항 정리 끝내고 정동진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
"그랬지, 근데 생존자들 때문에 생각 바꿨나 봐."
김칠성의 물음에 답하며 강나연은 양평역이 위치한 방향을 바라보았다.
"가자."
그리고 김칠성에게 말하며 먼저 양평역으로 비행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양평역에 도착한 강나연은 입구 밖에 있는 강진석을 발견할 수 있었다.
빤히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니 기다리고 있던 게 분명했다.
"어떻게 된 거야? 전쟁 바람 부족 녀석들은 벌써 다 정리한 거야?"
"응, 정리했지. 그리고 정동진에 가려다가 생존자들이 너무 많이 감지돼서."
"아...."
강나연은 탄성을 내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된 것인지 모든 상황이 이해됐다.
몰랐다면 모를까, 알면서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럼 가는 길에 전부 구하면서 가게?"
강진석이 정동진에 가려는 이유는 부모님의 안전을 위해서였다.
그러나 가는 길에 있는 모든 생존자를 구출하며 간다?
정동진 도착까지 예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응, 일단 구할 수 있는 사람은 전부 구하면서 갈 것 같아."
원래는 동선상에 있는 이들만 구출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생각이 바뀌었다.
모든 생존자를 구출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강진석이 결정한 구출 범위는 자신의 방문으로 2차 제약이 해제되는 지역구의 생존자였다.
즉, 다음 방문지인 '용산구' 그다음 방문지인 '성동구'에 있는 생존자들은 전부 구출할 생각이었다.
"알겠어, 근데 그 이야기 하려고 기다린 거야?"
"아니, 줄 게 있어서."
강진석은 싱긋 웃으며 인벤토리에서 봉투를 하나 꺼냈다.
"뭐야?"
봉투를 본 강나연은 의아한 표정으로 강진석에게 물었다.
"기본 포인트 티켓."
"...!"
티켓 이야기에 강나연이 눈을 번뜩였다.
눈을 번뜩인 것은 강나연뿐이 아니었다.
옆에서 조용히, 함께 이야기를 듣고 있던 김칠성 역시 눈을 번뜩였다.
이어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강진석을 보았다.
강진석은 피식 웃으며 인벤토리에서 봉투 하나를 더 꺼냈다.
"이건 칠성이 거."
"감사합니다! 대장!"
김칠성은 더할 나위 없이 활짝 웃으며 감사를 표하고 봉투를 받았다.
그리고 강진석은 인벤토리에서 추가로 봉투를 꺼내 강나연에게 내밀었다.
"이건 지윤 씨, 이건 은형 씨 그리고 이건 지용 씨 거."
강나연과 김칠성 것만 준비한 게 아니다.
1군단에서 얻은 포인트 티켓은 적지 않았다.
"잘 전해줘."
"걱정 마셔."
"스킬 습득했다고 너무 자신감 있게 움직이지는 말고."
"그것도 걱정 마셔. 겔리만이랑 싸우면서 내 주제를 정확히 파악했으니까. 근데 오빠는 필요 없어? 너무 많이 준 거 아냐?"
"응, 그 정도는 괜찮아."
간부들에게 제공한 티켓은 결코 적지 않다.
전부 합치면 7000만 포인트였다.
그러나 현재 강진석에게 7000만 포인트는 그리 큰 포인트가 아니었다.
스윽.
강진석은 힐끔 현재 보유 포인트를 확인했다.
[현재 보유 포인트 : 32억 2370만 3240]
포인트를 확인한 강진석은 다시 강나연과 김칠성을 보며 말했다.
"그럼 나중에 보자고."
* * *
[용산구에 입장하셨습니다.]
[조건이 충족됐습니다.]
[용산구 내 세계 침공자들의 2차 제약이 조기 해제됩니다.]
[세계 침공자들의 활동 반경이 더욱 넓어집니다.]
.
.
입장과 동시에 메시지가 주르륵 나타났다.
특별한 내용은 없었다.
전부 예상대로였다.
강진석은 공간이동을 통해 가장 가까이 있는 영역으로 이동하며 생각했다.
'여기는 어떤 오크들이려나?'
용산구에 자리 잡은 몬스터들은 '오크'였다.
당연히 전쟁 바람 부족이나 열화 사막 부족이 아닌 다른 부족 오크들이었다.
오크들이 달고 있는 '문양'이 바로 그 증거였다.
'순위가 궁금하네.'
전쟁 바람 부족은 지구를 침공한 오크 부족 중 35번째로 규모가 큰 부족이었다.
그리고 열화 사막 부족은 20번째로 규모가 컸다.
이곳에 자리 잡은 오크 부족의 규모는 몇 번째일까?
[던전 '용산 역사 박물관'에 입장하셨습니다.]
[24시간 동안 모든 입구가 봉쇄됩니다.]
[던전 클리어 시 봉쇄가 해제됩니다.]
[퀘스트 '제단 파괴'가 생성됐습니다.]
[퀘스트 '경계대장 밀리나'가 생성됐습니다.]
.
.
영역에 입장하자마자 재차 메시지가 나타났고 강진석은 퀘스트창을 열었다.
그리고 퀘스트 '경계대장 밀리나'를 확인했다.
용산구에 자리 잡은 오크 부족이 어떤 부족인지, 규모는 몇 번째인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
확인과 동시에 강진석은 인상을 구겼다.
정보가 없기 때문은 아니었다.
어떤 부족인지는 물론 규모도 정확히 나와 있었다.
용산구에 자리 잡은 오크 부족은 '차가운 강철 부족'이었다.
문제는 차가운 강철 부족의 순위였다.
'...75위?'
놀랍게도 차가운 강철 부족의 규모 순위는 75번째였다.
'얼마나 많이 침공한 거야?'
적지 않은 수가 침공한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서울에만 해도 너무나 많은 몬스터가 있었으니까.
그래도 75번째라니?
차가운 강철 부족이 마지막이라 해도 75개의 부족이 침공했다는 뜻이다.
그것도 오크 부족만.
'일단 정리부터 하자.'
더 생각한다고 침공한 몬스터의 수가 줄어들지는 않는다.
강진석은 침공 규모에 대한 생각을 접었다.
'그래도 75위면 생존자가 좀 많으려나?'
규모가 작다고 안전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예 상관없다고 할 수도 없다.
오히려 영향이 매우 큰 편이었다.
즉, 용산구는 앞서 방문한 지역보다 생존자가 많을 가능성이 높았다.
강진석은 초감각에 집중해 용산 역사 박물관은 물론 주변을 세밀히 탐색했다.
오크들의 수준과 규모 그리고 생존자들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
탐색을 하던 강진석은 이내 고개를 갸웃했다.
'왜 오크뿐이야?'
수많은 기운이 감지됐다.
문제는 해당 기운이 전부 오크라는 점이었다.
사람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용산구 전역을 탐색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4분의 1 정도로 결코 적지 않은 지역을 탐색했다.
'설마....'
문득 든 생각에 강진석은 미간을 찌푸렸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무척이나 불길했다.
강진석은 확인을 위해 공간이동을 통해 삼각지역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초감각에 집중했다.
새로운, 수많은 기운이 느껴졌다.
그러나 이번에도 사람의 기운은 단 하나도 감지되지 않았다.
'전부 죽은 건가?'
여전히 용산구 전역을 확인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상황을 보니 남은 지역을 샅샅이 확인해도 의미 없을 것 같았다.
'...다른 곳도 비슷할까?'
강진석은 다음 방문 지역구인 성동구를 떠올렸다.
성동구 역시 용산구와 마찬가지로 생존자가 없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할까.'
강진석은 새로운 고민에 빠졌다.
원래 생존자들을 구출하며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구출해야 할 생존자가 없었다.
그렇다면 용산구에 자리 잡은 차가운 강철 부족의 오크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당장 죽일 필요는 없겠지.'
이제야 2차 제약이 해제됐다.
오크들이 강해진다고 해도 길드원들의 힘으로 충분히 박살 낼 수 있다.
'확인만 하자.'
강진석은 차가운 강철 부족의 수준만 파악하고 넘어가기로 결정을 내리고 공간이동을 통해 남은 지역을 돌아다니며 탐색을 시작했다.
'...뭐지?'
그리고 탐색을 마친 강진석은 고개를 갸웃했다.
'4차 제약 침공자가 없어?'
제178화
178.
용산구에서 가장 영역이 크고 강력한 곳은 녹사평역이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용산구에서 가장 강한 오크는 녹사평역에 있었다.
문제는 해당 오크가 3차 제약 침공자라는 점이었다.
물론 전쟁 바람 부족의 1군단장 에파드와 비슷했다.
3차 제약 침공자 중에서도 강한 편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결국 3차 제약 침공자라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었다.
'다른 곳에 있는 것도 아닌데....'
중구, 성동구 등 인접 지역에 있는 게 아니다.
차가운 강철 부족의 영역은 용산구가 끝이었다.
강진석이 확신하는 이유는 인접 지역에 다른 몬스터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4차 제약 침공자가 없을 수도 있구나?'
당연히 최소 하나씩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기야....'
차가운 강철 부족의 규모 순위를 생각하면 없다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이러면 진짜 그냥 넘어가도 되겠네.'
4차 제약 침공자가 있고, 상대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면 처리하고 넘어갈 생각이었다.
후에 4차 제약 침공자가 움직이면 문제가 될 수 있기에.
그런데 4차 제약 침공자가 없으니 그냥 넘어가도 아무 문제 없을 것이다.
강진석은 바로 공간이동을 해 성동구로 넘어갔다.
[성동구에 입장하셨습니다.]
[조건이 충족됐습니다.]
[성동구 내 세계 침공자들의 2차 제약이 조기 해제됩니다.]
[세계 침공자들의 활동 반경이 더욱 넓어집니다.]
.
.
용산구 때와 똑같은 내용의 메시지가 나타났고 강진석은 초감각으로 생존자를 탐색했다.
당연히 생존자는 감지되지 않았다.
감지된 기운은 코볼트뿐이었다.
'설마 여기도?'
강진석은 설마하는 표정으로 성동구 곳곳을 돌아다니며 탐색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이내 탐색을 마친 강진석은 인상을 찌푸렸다.
성동구에 자리 잡은 부족은 푸른 바람 부족이었다.
규모 순위는 67위였고 용산구와 같았다.
성동구 역시 생존자가 존재하지 않았다.
온통 코볼트뿐이었다.
그리고 생존자가 없는 것만 같은 게 아니다.
성동구 역시 용산구와 마찬가지로 4차 제약 침공자가 없었다.
'이거 오히려 어중간한 규모 가진 곳이 생존하기 더 힘든 건가?'
강진석은 생각에 잠긴 채 다음 방문 지역구인 광진구로 넘어갔다.
[광진구에 입장하셨습니다.]
[조건이 충족됐습니다.]
[광진구 내 세계 침공자들의 2차 제약이 조기 해제됩니다.]
[세계 침공자들의 활동 반경이 더욱 넓어집니다.]
.
.
진입과 동시에 강진석은 눈을 번뜩였다.
메시지 때문은 아니다.
용산구, 성동구 때와 메시지는 똑같았다.
'생존자!'
강진석이 눈을 번뜩인 이유는 생존자 때문이었다.
앞서 방문했던 용산구, 성동구 때와 달리 생존자가 있었다.
생존자가 있는 곳은 어린이 대공원 중심에서 남동쪽이었다.
그리고 어린이 대공원에 펼쳐진 영역은 다른 곳보다 강력했다.
영역만 강력한 것은 아니다.
어린이 대공원에는 현재 초감각에 감지된 몬스터 중 가장 강한 몬스터가 있었다.
'...여기도 4차 제약은 없는 건가?'
물론 4차 제약 침공자는 아니었다.
그러나 초감각에 감지되지 않았을 뿐 아직 탐색하지 못한 지역에 4차 제약 침공자가 있을 수도 있다.
강진석은 잠시 고민했다.
구출 먼저 할지 광진구 탐색을 먼저 할지.
그러나 이어진 상황에 강진석의 고민은 바로 결정됐다.
무장을 한 고블린 무리가 생존자들이 갇혀 있는 감옥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죽이려는 건가?'
확실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상황을 보면 생존자들을 죽이려는 것 같았다.
탐색보다 먼저 구출을 해야 했다.
강진석은 감옥 입구로 공간이동을 했다.
[던전 '어린이 대공원'에 입장하셨습니다.]
[24시간 동안 모든 입구가 봉쇄됩니다.]
[던전 클리어 시 봉쇄가 해제됩니다.]
[퀘스트 '제단 파괴'가 생성됐습니다.]
[퀘스트 '대족장 카마키'가 생성됐습니다.]
.
.
그리고 입장과 동시에 메시지가 나타났다.
'...대족장?'
퀘스트를 확인하던 강진석은 속으로 반문했다.
'이러면 4차 제약 침공자는 없다고 봐야겠네.'
보통 대족장은 부족 내에서 가장 강하다.
그리고 이곳에서 가장 강한 고블린은 3차 제약 침공자였다.
즉, 대족장 카마키가 3차 제약 침공자라는 뜻이고 아직 확인하지 못한 지역에 4차 제약 침공자가 있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할 수 있었다.
강진석은 한결 편해진 표정으로 혼돈의 구에 기운을 주입하며 갇혀 있는 생존자들에게 텔레파시를 보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곧 구해드리겠습니다.]
이내 시야에 고블린들이 나타났고 강진석은 바로 아이스 포그를 시전했다.
* * *
광진구를 지배하고 있는 푸른 바람 부족의 대족장 카마키.
"그게 사실이냐?"
"예, 아주 따끈따끈한 소식입니다!"
카마키의 동생이자 푸른 바람 부족의 2인자 카마룬이 확신에 가득 찬 표정과 목소리로 답했다.
카마룬의 답에 카마키는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이어 말했다.
"허, 2차 제약이 조기 해제되다니."
차가운 강철 부족이 지배하고 있는 '용산구'의 2차 제약이 해제됐다.
그것도 바로 조금 전에.
문제는 아직 광진구는 2차 제약이 해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래서 더 문제였다.
2차 제약이 해제된 것과 해제되지 않은 것은 아주 큰 차이다.
격차가 점점 벌어질 것이다.
언젠가 충돌하게 될 것인데 격차가 벌어지면 어떻게 되겠는가?
'어째서 조기 해제된 걸까.'
카마키는 생각에 잠겼다.
무슨 이유로 2차 제약이 조기 해제된 것일까?
바로 그때 카마룬이 입을 열었다.
"형님, 녀석들과 저희의 차이는 하나뿐입니다."
"...지구의 인간들 말이냐?"
"예, 녀석들은 전부 죽이지 않았습니까? 그 외에는 저희와 다른 점이 없습니다."
"어쩌자는 말이냐?"
"어차피 제물로 바치기에는 수가 너무 적습니다. 죽여 버리시지요."
"으음...."
카마키는 침음을 내뱉었다.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마론."
고민을 끝낸 카마키는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던 부관 마론에게 명령을 내렸다.
"인간들을 전부 죽이고 오거라."
"예."
마론은 카마키의 말에 꾸벅 숙여 인사한 뒤 밖으로 나갔다.
"흐흐, 이제 드디어 2차 제약이 해제되겠군요!"
카마룬이 실실 웃으며 외쳤다.
카마키 또한 말없이 싱긋 웃었다.
그러나 두 고블린의 웃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
"...!"
얼마 뒤 약속이라도 한 듯 두 고블린은 웃음을 지우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두 고블린이 놀란 이유는 2차 제약이 해제됐기 때문이었다.
'인간들과 관계있던 게 아니었나?'
아직 마론은 근처에 있었다.
즉, 감옥에 가두어 둔 인간들이 전부 죽어 해제된 게 아니다.
'대체....'
조건이 무엇일까?
왜 갑자기 해제가 된 것일까?
바로 그때였다.
"...!"
"...!"
카마키와 카마룬은 동시에 눈을 번뜩였다.
이번에 눈을 번뜩인 이유는 영역에 침입자가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카마키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탁자에 설치해 둔 아티펙트 '영역 지도'를 확인했다.
침입자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응?"
위치를 확인한 카마키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어찌 이곳에?'
당연히 외곽에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놀랍게도 침입자는 외곽이 아닌 중심부에 위치한 '감옥' 앞에 있었다.
'...어떻게 된 거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떻게 감옥 앞에 있는 것일까?
"형님? 왜 그러십니까?"
바로 그때 카마룬이 다가와 물었다.
그리고 카마룬 역시 지도를 보았고 경악했다.
"어, 어떻게 벌써?"
"...아무래도 다녀와야겠다. 지키고 있거라."
카마키는 카마룬의 반문에 답하며 기운을 끌어올렸다.
'잘됐다.'
조금 전 2차 제약이 해제됐다.
덕분에 카마키는 영역 내에서 온전한 힘을 낼 수 있게 됐다.
즉, 침입자에게는 최악의 상황이라 할 수 있었다.
'어떻게 감옥까지 간 건지는 모르겠지만....'
카마키는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감옥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카마키는 이동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 이게 무슨!'
전방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기운 때문이었다.
제약이 해제된 덕분에 온전한 힘을 낼 수 있는 상황에서도 숨이 막힐 정도로 강렬했다.
그리고 그만큼 강렬한 기운을 낼 수 있다는 것은 하나뿐이다.
'...벽을 넘어선 존재!'
카마키는 침을 꿀꺽 삼켰다.
'누구지?'
광진구 주변에 벽을 넘어선 존재는 남쪽에 있는 열화 사막 부족의 총사령관 아슬렌, 부사령관 엘리타나.
그리고 북쪽에 있는 트롤킹 그라가, 사자왕 라이카리, 사일 부족의 대족장 카린까지 총 다섯이었다.
다섯 중 누구일까?
'카린인가...?'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은 사일 부족의 대족장 카린이었다.
카린은 공간을 다루는 대마도사였다.
즉, 감옥에 나타난 것도 카린이라면 가능하다.
그러나 가능성이 높은 것이지 확신할 수는 없었다.
'...근데 어떻게?'
그도 그럴 것이 2차 제약이 해제됐을 뿐이다.
아무리 카린이 벽을 넘어섰다고 해도, 공간을 다루는 대마도사여도 사일 부족의 영역을 벗어나 광진구에 나타났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시험을 주관하는 법칙들이 허용했을 리 없다.
'...이럴 때가 아니다.'
카마키는 정신을 차리고 뒤로 돌아섰다.
그리고 전력을 다해 도망치기 시작했다.
기운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모르나 벽을 넘어선 존재인 것은 확실했다.
아무리 제약이 풀렸다고 해도 벽을 넘어선 존재와 마주한다?
분명 죽을 것이다.
벽을 넘은 것과 넘지 않은 것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 카마키는 매우 잘 알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스앗!
코앞에 무언가 나타났고 카마키는 반사적으로 기운을 끌어올려 보호막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몽둥이?'
무언가의 정체는 바로 '몽둥이'였다.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었고 이내 몽둥이가 보호막에 작렬했다.
보호막은 산산이 조각났고 그 순간 카마키는 직감했다.
죽음을.
* * *
-옙! 그럼 설치되는 대로 출발하겠습니다!
"네, 그럼 나중에 또 연락드릴게요."
강진석은 한지윤과의 통화를 마친 뒤 전방을 보았다.
전방에는 제단이 있었다.
제단의 정체는 푸른 바람 부족의 영역 상징이었다.
강진석은 제단을 향해 지팡이를 겨눴다.
스아앗!
그리고 이내 지팡이에서 파괴 광선이 뿜어져 나와 제단으로 날아갔다.
쾅!
[조건을 충족하셨습니다.]
[퀘스트 '제단 파괴'를 완료하셨습니다.]
[영역이 파괴됐습니다.]
.
.
제단이 파괴되며 무수히 많은 메시지가 나타났다.
강진석은 메시지를 확인하며 길드 관리창을 열어 영역을 강화했다.
이후 공간이동을 통해 감옥 입구로 이동했다.
그러고는 이동 게이트를 설치한 후 감옥에서 대기하고 있는 생존자들에게 텔레파시를 보냈다.
[곧 여러분들을 구출할 분들이 오실 겁니다.]
[아까 말씀드렸듯 자유롭게 선택해 주시면 됩니다.]
텔레파시를 끝으로 어린이 대공원에서의 모든 할 일을 마친 강진석은 초감각으로 주변을 살폈다.
본부가 파괴됐기 때문일까?
어린이 대공원 밖에 있는 푸른 바람 부족 고블린들이 경계하고 있었다.
'공격할 것 같지는 않고.'
분위기를 보니 경계 이상의 행동을 할 것 같지는 않았다.
강진석은 마음 편히 공간이동을 통해 영역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광진구를 샅샅이 확인 후 구리시로 넘어갔다.
[구리시에 입장하셨습니다.]
[조건이 충족됐습니다.]
[구리시 내 세계 침공자들의 2차 제약이 조기 해제됩니다.]
[세계 침공자들의 활동 반경이 더욱 넓어집니다.]
.
.
구리시에 도착한 강진석은 곳곳을 돌아다니며 탐색을 시작했다.
"...!"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강진석은 탐색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생존자를 발견했기 때문이 아니다.
매우 강렬한 기운이 느껴졌다.
3차 제약 침공자와는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강렬했다.
바로 그때 주시하고 있던 강렬한 기운이 사라졌다.
스윽.
그리고 강진석은 고개를 들어 상공을 보았다.
상공에는 보랏빛 로브로 외형을 완전히 감춘 한 존재가 떠 있었다.
강진석은 메시지를 힐끔 확인했다.
[사일 부족의 대족장 카린이 등장했습니다.]
[퀘스트 '대족장 카린'이 생성됐습니다.]
[퀘스트 '생존하라!'가 생성됐습니다.]
[일시적으로 카린의 모든 제약이 해제됩니다.]
제179화
179.
메시지를 통해 정체를 파악한 강진석은 다시 카린을 보았다.
'영혼 각성인 것 같은데.'
카린은 4차 제약 침공자가 분명했다.
4차 제약의 조건은 육체 제련 혹은 영혼 각성이었다.
그리고 강진석이 보기에 카린은 육체 제련이 아닌 영혼 각성을 한 것으로 추정됐다.
영혼 각성이라 추정한 구체적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냥 카린을 보니 본능적으로 영혼 각성이란 생각이 들었다.
바로 그때였다.
스앗!
허공에 카린의 로브와 똑같은 색의 보랏빛 지팡이가 나타났다.
카린은 지팡이에 바로 기운을 주입했고 강진석은 혼돈의 구에 추가로 기운을 주입하며 아이스 포그를 시전했다.
시전과 동시에 수많은 눈송이가 나타났다.
-!@%!@
그 순간 카린이 괴성을 내뱉었고.
스아앗!
보랏빛 지팡이에 빛이 서렸다.
스앗! 스앗! 스앗! 스앗!
그와 동시에 카린의 등 뒤에 4개의 마법진이 나타났다.
마법진의 크기는 제각기 달랐다.
가장 큰 마법진은 지름이 4m를 넘을 정도로 거대했고 가장 작은 마법진도 지름 1m 정도로 작지 않았다.
눈송이를 움직여 공격하려던 강진석은 이어진 상황에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다.
가장 큰 마법진에서 보랏빛 화염이 뿜어져 나왔다.
화염에 담긴 열기와 기운은 멀찍이 떨어져 있음에도 아주 잘 느껴질 정도로 강력했다.
'아이스 포그로는 안 되겠는데.'
지금 만들어 낸 눈송이를 전부 소모해도 화염을 없애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도 약화는 시킬 수 있을 테니.'
강진석은 모든 눈송이를 카린에게 보냈다.
눈송이와 화염이 마주했고 엄청난 양의 수증기가 발생했다.
그러나 강진석은 녹아 없어지는 눈송이, 약해지는 보랏빛 화염에 신경 쓸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카린이 소환한 마법진은 4개였고 보랏빛 화염은 그중 하나였다.
아직 3개의 마법진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중 2개의 마법진에서 무언가 나오고 있었다.
강진석은 마법진에 집중했고 무언가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하나는 한기를 가득 머금은 얼음으로 만들어진 보랏빛 창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주먹 크기의 보랏빛 구체였다.
창과 달리 구체는 하나가 아니었다.
계속해서 나오고 있었고 이미 나온 것만 20개를 훌쩍 넘어섰다.
'역시 4차 제약부터는 격이 다르구나.'
3차 제약 침공자보다 강할 것은 알고 있었다.
기운부터 차이가 났으니까.
그런데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차이 났다.
카린의 마법은 강진석도 쉽사리 볼 수 없는 수준이었다.
바로 그때 허공에 둥둥 떠 있던 보랏빛 얼음창이 움직였다.
얼음창의 속도는 빨랐고 순식간에 코앞에 도착했다.
물론 강진석은 얼음창을 막지 않았다.
피할 수 없다면 모를까 굳이 막을 이유가 없었다.
강진석은 공간이동을 통해 자리를 벗어났다.
쩌저적!
얼음창은 강진석이 있던 자리에 작렬했고.
"...!"
이어진 상황에 강진석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후우웅!
얼어붙은 땅이 일그러지더니 움푹 파였다.
만약 피하지 않고 막았다면?
'...막았으면 꽤 아팠겠는데.'
물론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꽤나 큰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강진석은 고개를 들어 카린을 보았다.
조금 전 카린의 기운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공간이동을 한 순간 흔들렸어.'
카린의 기운이 흔들린 순간은 강진석이 '공간이동'을 시전했을 때였다.
강진석은 궁금했다.
어째서 카린은 공간이동에 흔들린 것일까?
카린에게 공간이동이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바로 그때였다.
보랏빛 구체가 카린의 주위를 맴돌기 시작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모든 눈송이를 없앤 보랏빛 화염 역시 카린의 주위를 함께 맴돌았다.
'...뭐지?'
강진석은 의아했다.
구체는 멀쩡했고 화염 역시 약해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강력했다.
당연히 공격을 해올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상황을 보니 공격이 아니라 방어를 하는 느낌이었다.
갑자기 왜 방어를 한단 말인가?
'...설마.'
강진석은 아직 무언가를 내뱉지 않은 마법진을 떠올렸다.
혹시 지금 방어에 집중하는 이유가 남은 마법진을 발동시키기 위해서라면?
바로 그때 하나 남은 마법진이 빛나기 시작했다.
예상대로 방어에 집중한 이유는 마법진을 발동시키기 위해서가 분명했다.
강진석은 미간을 찌푸리며 혼돈의 구를 지팡이로 변환했다.
그리고 카린에게 겨누어 파괴 광선을 날렸다.
쾅!
이내 파괴 광선이 작렬했다.
'끙.'
그리고 강진석은 속으로 침음을 내뱉었다.
파괴 광선에 의해 구체가 2개 파괴됐다.
그게 끝이었다.
물론 계속 파괴 광선을 시전하면 언젠가는 뚫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전에 카린의 준비가 끝날 것이다.
'피해야 하나?'
애초에 카린의 등장은 예상치 못한 등장이었다.
즉, 지금 벌어진 전투도 갑작스레 발생한 전투였다.
꼭 카린을 잡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더구나 카린의 제약은 일시적으로 해제된 것이다.
강진석이 자리를 벗어난다면?
카린은 다시 제약을 받게 될 것이다.
즉, 카린이 날뛰는 것을 걱정할 필요도 없다.
'그래, 피하는 게 맞아. 궁금하긴 하지만.'
4차 제약 침공자인 카린이 얼마나 강한지 끝을 보고 싶기는 했다.
그러나 상황이 좋지 않았다.
해야 할 일이 많았다.
강진석은 결정을 내리고 공간이동을 시전했다.
'...!'
그리고 이어진 상황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 멀찍이 떨어진 곳으로 가려 했다.
그런데 1m밖에 이동되지 않았다.
'...공간이 비틀려 있어?'
1m밖에 이동되지 않은 이유를 안다.
공간이동을 시전한 순간 느낄 수 있었다.
주변 공간이 비틀려 있다는 것을.
그리고 공간이 비틀린 원인도 파악할 수 있었다.
빛나고 있는 마법진이었다.
'뭘 준비하는 거지?'
카린이 준비하고 있는 게 마지막으로 빛난, 네 번째 마법진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상황을 보니 아닌 것 같았다.
바로 그때였다.
스아앗!
허공에 새로운 마법진이 나타났다.
마법진의 크기를 본 강진석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마법진의 크기가 매우 컸다.
지름만 30m였다.
단순히 크기만 큰 게 아니다.
기운 역시 어마어마했다.
강진석은 기운을 끌어올려 보호막을 만들었다.
분명 마법진에 담긴 기운은 크다.
그러나 목숨에 위협을 느낄 정도는 아니었다.
'이 정도 마법이면 힘이 좀 빠지겠지.'
그리고 카린의 기운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었다.
마법이 발동되면 카린 또한 정상적인 상태는 아닐 것이다.
'나중에 처리하려고 했는데.'
강진석은 혼돈의 구를 몽둥이로 변환했다.
그 순간 마법진이 빛났다.
그리고 이어진 상황에 강진석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공간이 떨리고 있었다.
처음 보지만 무척이나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공간이동?'
공간이동의 전조와 비슷했다.
그 순간 주변 광경이 바뀌었다.
"...."
강진석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멍하니 바뀐 광경을 바라볼 뿐이었다.
'...전투할 생각이 없었던 거구나.'
이내 정신을 차린 강진석은 카린이 시전한 마지막 마법진을 떠올렸다.
당연히 공격 마법진일 줄 알았는데 공간이동 마법진이었다니?
이어 강진석은 육체 상태를 확인했다.
당연하게도 자그마한 상처 하나 보이지 않았다.
육체 확인을 마친 강진석은 이어 메시지창을 확인했다.
[동해시에 입장하셨습니다.]
[조건이 충족됐습니다.]
[동해시 내 세계 침공자들의 2차 제약이 조기 해제됩니다.]
[세계 침공자들의 활동 반경이 더욱 넓어집니다.]
.
.
"...."
메시지를 통해 위치를 확인한 강진석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진짜 동해였나.'
바다가 보였다.
그래서 혹시나 했는데 진짜 동해일 줄이야?
'...잘 됐다고 해야 하나?'
예전 훈련 때문에 동해에 온 적이 있었다.
당시 기억에 따르면 동해에서 정동진까지는 직선으로 20km 정도였다.
즉, 예정보다 빠르게 도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강진석은 바로 출발할 생각이 없었다.
'동해시에는 생존자가 얼마나 있을까.'
동해시의 2차 제약이 조기 해제됐다.
생존자가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전부 구출하고 올라갈 생각이었다.
강진석은 초감각에 집중했다.
'많네.'
감지된 몬스터의 수는 매우 많았다.
숫자만 많은 게 아니다.
종류도 하나가 아니었다.
총 세 종류였다.
첫 번째는 오우거였고 두 번째는 오크였다.
'나가인가?'
그리고 마지막 몬스터는 소설, 웹툰에서 보았던 '나가'와 비슷한 생김새를 가지고 있었다.
'이래서 생존자가 많은 건가?'
적게는 5명, 많게는 30명의 생존자 무리가 감지됐다.
그리고 생존자 무리는 한 무리도 빠짐없이 전부 몬스터들의 영역 경계선에 있었다.
만약 동해시가 지금처럼 세 종류의 몬스터가 아닌 한 몬스터의 지배를 받았다면?
경계선은 없었을 것이고 생존자도 지금보다 적었을 것이다.
'바쁘겠는데.'
이전에는 생존자들이 한곳에 모여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곳곳에 퍼져 있었다.
쉬지 않고 움직여도 꽤나 많은 시간이 소요 될 것이다.
'...그러고 보니.'
문득 든 생각에 강진석은 퀘스트창을 열었다.
그리고 공간의 이해를 확인했다.
<공간의 이해>
조건을 충족하라!
[공간 인지 : 67%]
[공간의 돌 타이르푸스 : 0 / 5]
.
.
퀘스트 보상 : 스킬 '공간의 이해' 1레벨 활성화
어떻게 충족해야 할지 의문이었던 '공간 인지'.
공간 인지가 67%가 되어 있었다.
'...그런 걸 느껴야 되는 건가.'
강진석은 카린이 만들어 낸 공간의 비틀림과 진동을 떠올렸다.
'혼자서는 힘들겠는데.'
아쉽게도 강진석에는 공간을 뒤틀거나 진동시킬 능력이 없었다.
즉, 혼자서 공간 인지를 올릴 방법은 없다.
'어차피 만나게 될 테니.'
카린은 구리시에서 활동하고 있다.
언젠가는 충돌할 수밖에 없는 존재였고 충돌하는 날 공간 인지를 충족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시간 인지도 비슷하려나?'
강진석은 퀘스트 '시간의 이해'를 확인했다.
<시간의 이해>
조건을 충족하라!
[시간 인지 : 0%]
[시간의 돌 타이르푸스 : 0 / 5]
.
.
퀘스트 보상 : 스킬 '시간의 이해' 1레벨 활성화
당연하게도 아직 0%였다.
그러나 막연했던 전과 달리 지금은 길이 보였다.
이번처럼 시간과 관련된 변화를 마주하게 되면 오를 것이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강진석은 퀘스트창을 닫았다.
그리고 공간이동을 통해 가장 가까이 있는 생존자 무리에 다가갔다.
* * *
사일 부족의 2인자 수아렌.
수아렌은 착잡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겨 있었다.
'대체 왜?'
조금 전 2차 제약이 조기 해제됐다.
문제는 제약이 해제됨과 동시에 대족장인 카린이 자리에서 사라졌다는 점이다.
대체 카린은 어딜 간 것일까?
'말도 없이 가신 걸 보면 보통 일이 아닌 것 같은데.'
어딜 가든 항상 말을 해 주던 카린이다.
그런 카린이 말없이, 심각한 표정으로 사라졌다.
수아렌이 걱정하고 있던 바로 그때.
스앗!
카린이 돌아왔다.
"대족장님! 어딜 다녀오신 겁니까! 무슨 문제가 생긴 겁니까?"
수아렌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정신 사나워. 목소리 좀 낮춰."
카린은 힘 빠진 목소리로 답했다.
그리고 이어 모자를 뒤로 넘기며 자리에 앉았다.
"...!"
카린의 얼굴을 확인한 수아렌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문신으로 가득했던 카린의 얼굴 일부가 깨끗해졌다.
문제는 사라진 문신이 평범한 문신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대주술의 문신이!'
수아렌의 시선에 카린이 입을 열었다.
"어쩔 수 없었어."
카린은 조금 전 마주했던 존재를 떠올렸다.
"...괴물이었거든."
제180화
1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