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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7 - 160-170

제160화

160.

무엘의 말에 알리온과 블리오드가 말했다.

"저도 함께하지요. 혼자서는 힘드실 겁니다. 영혼을 각성한 존재라면."

"부족원들을 이끄는 건 단장들로도 충분할 겁니다. 저도 가겠습니다."

두 오크의 말에 무엘은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벽을 넘은 존재와 넘지 못한 존재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 무엘은 알고 있다.

즉, 전투의 결말이 어떨지도 알고 있다.

아마도 높은 확률로 죽을 것이다.

그 사실을 알리온과 블리오드가 모를 리 없다.

즉, 부족원들을 위해 죽음을 각오한 것이다.

무엘은 자랑스러운 눈빛으로 두 오크를 바라보며 말했다.

"바로 가지."

* * *

[던전 '개화역'에 입장하셨습니다.]

[48시간 동안 모든 입구가 봉쇄됩니다.]

[던전 클리어 시 봉쇄가 해제됩니다.]

[퀘스트 '제단 파괴'가 생성됐습니다.]

[퀘스트 '2군단장 무엘'이 생성됐습니다.]

[퀘스트 '2군단 부군단장 알리온'이 생성됐습니다.]

.

.

[퀘스트 '개화역 탈환'이 생성됐습니다.]

[1분 뒤 안전 구역이 사라집니다.]

입장과 동시에 메시지가 나타났고 강진석은 빠르게 훑었다.

'많기는 한데....'

강진석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일반 제단이면....'

봉제산에 있던 제단은 '대제단'이었다.

물론 차가운 뿌리 고블린과 전쟁 바람 오크는 같은 종족이 아니다.

종족이 다른 만큼 제단의 의미도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의미가 달라도 평범한 제단이라면 개화역에는 4차 제약 침공자가 없을 것 같았다.

'아쉽네.'

4차 제약 침공자의 힘을 확인해 보고 싶었던 강진석은 아쉬운 표정으로 퀘스트창을 열었다.

그리고 퀘스트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앞서 다른 곳에서 생성됐던 퀘스트와 비슷했다.

다른 것은 명칭 정도로 그 외에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내 모든 퀘스트 확인을 마친 강진석은 퀘스트창을 닫았다.

스윽.

그리고 고개를 돌려 천막 쪽을 보았다.

오크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문제는 움직이는 방향이었다.

강진석이 진입한 방향이 아니라 몇몇은 개화역 안으로, 몇몇은 정반대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다.

'...도망인가?'

아무리 봐도 도망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별로 큰 포인트는 아니지만....'

도망치는 오크들의 수준은 매우 낮다.

전부 잡는다고 해도 이제 만족할 만한 정도는 아니다.

그러나 이대로 오크들을 보낸다면?

후에 어떤 위험이 되어 돌아올지 모른다.

그리고 당장 저들이 도망치는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큰 문제가 될 것이다.

즉, 도망치게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

강진석은 바로 오크들이 도망치고 있는 방향으로 공간이동을 했다.

도착과 동시에 강진석은 혼돈의 구를 변환했다.

그리고 바로 '델칸의 아이스 필드'를 시전했다.

쩌저적!

시전과 동시에 바닥이 얼어붙었다.

그리고 그 위에 있던 오크들은 전부 그대로 움직임을 멈췄다.

스앗! 스앗! 스앗!

이어 빛과 함께 오크들이 사라지며 메시지가 나타났다.

[십부장 오크를 처치하셨습니다.]

[포인트가 2000 상승합니다.]

[오크를 처치하셨습니다.]

[포인트가 900 상승합니다.]

.

.

메시지를 확인한 강진석은 아이스 필드 범위 밖 오크들을 보았다.

오크들은 무척이나 당황스러운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강진석은 해당 오크들을 향해 재차 아이스 필드를 시전했다.

쩌저적!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바닥이 얼어붙으며 오크들이 움직임을 멈췄고.

스앗! 스앗! 스앗!

빛과 함께 사라지며 수많은 메시지가 나타났다.

'확실히 편하긴 하네.'

양천구에서는 주변에 건물들이 많아 아이스 필드를 사용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곳 개화역은 다르다.

전부 오크들이 만든 시설들로 파괴돼도 상관없었다.

강진석은 다시 한번 아이스 필드를 시전했다.

쩌저적! 스앗! 스앗! 스앗!

그렇게 또 한 번 오크 무리가 대거 죽음을 맞이했다.

그리고 바로 그때.

스윽.

강진석은 고개를 내려 바닥을 보았다.

거대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리고 이어 바닥에 마법진이 나타났고 빛을 뿜어냈다.

그 순간 강진석은 몸이 살짝 무거워짐을 느꼈고 메시지창을 확인했다.

[대제사장 마르브의 용기 마법진이 발동됐습니다.]

[전쟁 바람 부족 오크들의 모든 능력이 강화됩니다.]

[전쟁 바람 부족 외 생명체의 모든 능력이 약화됩니다.]

[던전 내 모든 보상이 대폭 강화됩니다.]

[퀘스트 '섬멸 혹은 탈출'이 생성됐습니다.]

메시지를 본 강진석은 활짝 웃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메시지였다.

'이게 끝일까?'

5구역은 불마진과 혈폭진 2가지가 있었다.

만약 지금 발동된 대제사장 마르브의 용기 마법진 말고 한 가지 마법진이 더 존재한다면?

'좀 천천히 잡아야 하나?'

강진석은 잠시 고민했다.

또 다른 마법진을 발동할 수 있게 시간을 줄지 말지.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냥 잡자, 도망가고 있는데.'

다른 마법진이 있는지 없는지 확실치 않다.

그리고 천천히 잡기에는 전부 도망을 치고 있었다.

막상 마법진이 발동된다고 해도 잡을 오크가 없을 수 있다.

강진석은 바로 네 번째 아이스 필드를 시전했다.

쩌저적! 스앗! 스앗! 스앗!

그렇게 또 하나의 오크 무리가 죽음을 맞이했다.

강진석은 이어 계속해서 아이스 필드를 시전하며 생각했다.

'설마 보스들도 도망가고 있는 건 아니겠지?'

앞서 강진석이 만난 전쟁 바람 부족 오크들은 동족들의 죽음에 겁먹지 않고 오히려 분노해 달려들었다.

그러나 지금 도망치는 일반 오크들을 보니 보스급 몬스터들도 도망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네.'

강진석은 확인을 하기 위해 개화역으로 공간이동을 했다.

그리고 공간이동을 한 직후 강진석은 괜한 걱정이었음을 깨달았다.

개화역에서 강력한 기운을 가진 세 오크가 걸어 나오고 있었다.

[전쟁 바람 부족 2군단장 무엘이 등장했습니다.]

[전쟁 바람 부족 2군단 부군단장 알리온이 등장했습니다.]

[전쟁 바람 부족 2군단 부군단장 블리오드가 등장했습니다.]

세 오크의 정체는 바로 개화역의 보스 몬스터들인 무엘, 알리온, 블리오드였다.

강진석은 세 오크의 기운을 보며 생각했다.

'제약이 완전히 해제된 게 이 정도였구나?'

이제 강진석과 마주하는 3차 제약 침공자, 4차 제약 침공자는 온전한 힘을 사용할 수 있다.

그리고 애초에 마주하지 않아도 강서구는 3차 제약이 조기 해제된 상태였다.

그래서 궁금했었다.

제약을 받지 않는 3차 제약 침공자는 얼마나 강한지.

그리고 지금 궁금증이 해결됐다.

무엘, 알리온, 블리오드의 기운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강했다.

'영혼 각성하기 전이었으면 애 좀 먹었겠는데.'

지금이야 어렵지 않아 보였다.

그러나 영혼을 각성하기 전이었다면 상대하는 데 꽤나 오래 걸렸을 것이다.

그 정도로 세 오크의 기운은 강력했다.

바로 그때였다.

-취익!

세 오크 중 조금 더 강한, 2군단장 무엘로 추정되는 오크가 콧바람과 함께 들고 있던 도끼에 기운을 주입했다.

도끼에 붉은 기운이 서렸고 이어 무엘은 허공에 도끼를 휘둘렀다.

그러자 도끼에 서려 있던 붉은 기운이 빠져나왔다.

당연히 붉은 기운의 목표는 강진석이었다.

물론 붉은 기운이 강진석에게 닿는 일은 없었다.

붉은 기운의 속도는 무척이나 빨랐지만 피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강진석은 공간이동을 시전해 붉은 기운을 피했다.

그리고 바로 혼돈의 구를 지팡이로 변환해 무엘에게 겨누며 파괴 광선을 발동했다.

스앗!

파괴 광선은 붉은 기운보다 더욱 빠르게 나아갔다.

무엘은 강진석과 달리 피하지 못했고.

쾅!

광선이 작렬하며 폭발했다.

그리고 이어진 상황에 강진석은 살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단단하네?'

기운이 강력해 당연히 파괴 광선 한 방에 죽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무엘의 육체는 단단했다.

파괴 광선에 피해를 입기는 했지만 죽을 정도의 피해는 아니었다.

한두 방이 아니라 서너 방에도 죽지 않을 것 같았다.

'보호막 때문인가?'

무엘은 기운을 전신에 두르고 있었다.

파괴 광선에 큰 피해를 입지 않은 것은 단순히 육체가 단단해서만은 아닌 것 같았다.

물론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 이상 맞추면 되니까.'

지금 상황에서 강진석은 파괴 광선을 쉬지 않고 계속해서 날릴 수 있었다.

서너 방에 죽지 않는다면 그 이상 맞추면 그만이었다.

강진석은 계속해서 파괴 광선을 날리기 시작했다.

물론 무엘에게만 날리지는 않았다.

무엘의 양옆에 있는 알리온과 블리오드에게도 광선을 날렸다.

쾅! 쾅!

그렇게 광선이 작렬할 때마다 세 오크의 기운이 훅훅 떨어지기 시작했다.

* * *

무엘은 당황스러웠다.

'어찌 이런 마법을 쉬지 않고...!'

인간의 마법이 강력해도 너무 강력했다.

그런데 그 강력한 마법을 인간은 단 한 번의 휴식도 취하지 않고 끊임없이 시전하고 있었다.

거기다 시전에 걸리는 시간도 무척이나 짧았다.

'이러면 개죽음인데....'

영혼 각성을 한 존재를 상대하는 일이다.

죽음을 각오하기는 했다.

그런데 생각했던 것보다 격차가 너무 컸다.

부족원들이 전부 도망칠 때까지 시간을 끄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전부가 아니라 일부도 도망치지 못할 것 같았다.

이대로라면 아무런 보람 없는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어떻게 하지?'

무엘은 광선이 작렬할 때마다 약해지는 보호막에 끊임없이 기운을 공급하며 빠르게 대책을 찾기 시작했다.

일단 도움을 청할 수는 없다.

2군단 내에서 무엘을 제외하고 가장 강한 알리온과 블리오드도 함께 공격받고 있었다.

'결국 그 방법뿐인가.'

무엘은 인상을 구겼다.

아무리 봐도 지금 상황을 반전시킬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무엘은 오른팔에 각인해 둔 문양에 기운을 주입했다.

그와 동시에 문양이 오른팔 전체로 퍼졌고 무엘은 팔이 떨어지는 고통에 이를 악물었다.

이어 오른팔이 검은 연기로 변해 사라졌다.

그리고 검은 연기는 무엘을 둘러싸 검은 장막이 되었다.

무엘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장막을 빤히 바라보았다.

이내 장막에 붉은 눈동자 2개가 나타났다.

-무엇을 원하느냐.

머릿속에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오른팔을 제물 삼아 소환한 마족 '카림'의 목소리였다.

"제 앞에 있는 인간 마법사를 죽여 주시지요."

-알겠다.

-조건은 잊지 않았겠지?

"예, 잊지 않았습니다."

카림이 바라는 것은 무엘의 왼팔이었다.

어차피 이대로면 왼팔이 아니라 목숨을 잃게 생겼다.

인간을 진짜 죽여준다면 왼팔이야 마음 편히 줄 수 있다.

'근데 가능할까.'

카림은 정말 강하다.

따로 육체를 제련하지 않았음에도 제련한 이들과 비슷한 육체를 가지고 있었고 영혼 각성을 2번이나 했다.

그러나 카림이 직접 강림한 게 아니다.

애초에 카림은 이번 시험에 참가하지 않았다.

즉, 온전한 힘을 사용할 수 없다.

과연 영혼 각성을 한 인간을 카림이 죽일 수 있을까?

'죽이지는 못 해도 시간은 끌 수 있겠....'

바로 그때였다.

쩍!

금 가는 소리가 들려왔고 무엘은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

들려서는 안 될 소리였다.

무엘은 소리가 들려온 곳을 보았다.

장막 쪽에 미세한 실금이 보였다.

'이게 무슨....'

카림이 만든 장막이다.

장막이 얼마나 단단한지 무엘은 알고 있다.

무엘이 기운을 둘러 만든 전신 보호막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단단했다.

그런데 왜 금이 간단 말인가?

참으로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당황한 것은 무엘뿐만이 아니었다.

-음?

장막의 주인 카림 역시 당황스러운 목소리를 내뱉었다.

-이 기운은....

그러나 카림이 당황한 이유는 무엘과 달랐다.

-엘리넨?

제161화

161.

"...!"

카림의 말에 무엘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카림이 말한 '엘리넨'은 카림이 살고 있는 6마계의 5대 지배 세력 중 하나인 '엘리넨 종족'을 말하는 것일 가능성이 높았다.

문제는 엘리넨 종족과 카림이 속해 있는 세력 '일룬'의 관계다.

엘리넨 종족과 일룬은 영역을 맞대고 있어 시도 때도 없이 분쟁이 일어나는 앙숙 중의 앙숙이었다.

-인간이라고 하지 않았나?

카림이 물었다.

무엘은 침을 꿀꺽 삼켰다.

카림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를 속인 건가?

그리고 이어진 카림의 말에 무엘은 카림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인간이 맞습니다! 바로 확인하실 수 있는 일을 제가 왜 거짓말하겠습니까?"

무엘은 다급히 답했다.

답하지 않으면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질 것 같았다.

-...그건 차근차근 확인해 보도록 하지.

카림은 무엘의 답에 답하며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이어 장막을 열었다.

무엘은 카림의 분위기에 안도했다.

어떻게 인간이 엘리넨 종족의 기운을 다루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카림의 분위기를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힘을 내줄 것 같았다.

* * *

강진석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저건 뭐지?'

전방에 검은 장막이 나타났다.

검은 장막은 무척 단단했다.

파괴 광선에도 실금이 몇 개 생길 뿐이다.

'오른팔을 제물로 만든 거 같은데.'

장막이 나타나기 직전 무엘의 오른팔이 사라졌다.

즉, 장막은 무엘과 관련 있을 것이다.

강진석은 메시지창을 확인했다.

관련 메시지가 나타났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관련 메시지는 보이지 않았다.

'...일단 둘부터 마무리 짓자.'

장막 안으로 사라진 것은 무엘뿐이었다.

알리온과 블리오드는 밖에 있었다.

장막이 사라지고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무엘이 전혀 다른 존재가 되어 나타날 수도 있다.

그전에 알리온과 블리오드를 죽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강진석은 장막에 쏟아붓던 파괴 광선도 알리온과 블리오드에게 쏟아부었다.

그렇지 않아도 무엘에 비해 약했던 알리온과 블리오드의 기운은 광선이 작렬할 때마다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이대로라면 곧 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이어진 상황에 강진석은 공격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스앗!

검은 장막이 사라졌다.

물론 장막이 사라진 것 때문에 공격을 멈춘 것은 아니다.

공격을 멈춘 이유는 장막이 사라지며 등장한 존재 때문이었다.

당연히 무엘을 말하는 게 아니다.

놀랍게도 장막이 사라지며 나타난 존재는 무엘 말고도 하나가 더 있었다.

강진석은 해당 존재를 주시했다.

'오크는 아니고.'

정체불명의 존재는 보랏빛 피부에 붉은 눈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팔이 4개였으며, 머리에는 원형 뿔이 2개 솟아 있었다.

누가 봐도 오크는 아니었다.

'4차 제약 침공자인가?'

외형만 다른 게 아니다.

느껴지는 기운도 무엘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했다.

얼마나 강하냐면 4차 제약 침공자가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강진석은 메시지창을 다시 확인했다.

검은 장막이 막 생성됐을 때에는 아무런 메시지도 나타나지 않았지만 지금이라면 관련 메시지가 나타났을 것 같았다.

'역시.'

예상대로 관련 메시지가 나타나 있었다.

[전쟁 바람 부족 2군단장 무엘이 6마계 남작 카림의 사념을 소환했습니다.]

[던전 내 모든 보상이 대폭 강화됩니다.]

[퀘스트 '생존하라!'가 생성됐습니다.]

정체불명의 존재는 바로 '카림의 사념'이었다.

강진석은 다시 시선을 돌려 카림의 사념을 보며 생각했다.

'사념이 이 정도면 본체는 얼마나 강한 거야?'

당연히 본체라 생각했다.

기운이 엄청났기에.

그런데 본체가 아니라 사념이었다.

사념이 본체만큼 강하지는 않을 것이다.

대체 본체는 얼마나 강한 걸까?

'만약 본체였으면....'

강진석은 상상해 봤다.

지금 나타난 게 사념이 아니라 본체였다면?

'으음....'

강진석은 침음을 내뱉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승리하는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아직 멀었구나.'

영혼 각성 후 적어도 근방에서는 위협을 느낄 일 없겠다 싶었다.

그런데 이렇게 바로 위협적인 존재가 나타나다니?

물론 위협적이긴 해도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승리는 장담할 수 없지만 죽지 않을 자신은 있었다.

'더 강해져야겠어.'

죽지 않을 자신이 있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강진석은 힘을 더 빠르게 키우기로 결심하고 혼돈의 구에 기운을 주입했다.

바로 그때였다.

-!@!@%

카림이 외쳤다.

당연히 알아들을 수 없었다.

듣기 싫은 쇳소리 같았다.

그리고 강진석이 답이 없자 카림이 고개를 갸웃하며 무엘을 보았다.

그러자 무엘이 답했다.

당연히 이번에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기다려 줄 이유는 없지.'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 모른다.

하지만 대화가 끝날 때까지 잠자코 있을 이유는 없다.

강진석은 바로 파괴 광선을 날렸다.

스앗!

파괴 광선은 순식간에 카림에게 도달했다.

그러나 이어진 상황에 강진석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카림은 고개를 돌리지 않고 계속 무엘을 바라보며 손을 뻗었다.

이내 카림의 손에 파괴 광선이 붙잡혔다.

말 그대로였다.

붙잡힌 파괴 광선은 폭발하지 않았다.

'뭐지?'

강진석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자세히 살폈다.

자세히 보니 파괴 광선은 손에 붙잡힌 게 아니었다.

반투명한 장막 안에 갇혀 있었다.

바로 그때 카림이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장막에 갇힌 파괴 광선을 이리저리 살피기 시작했다.

'뭐 하는 거야?'

강진석은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대체 왜 파괴 광선을 살핀단 말인가?

이내 카림이 흥미로운 표정을 짓더니 강진석을 보았다.

눈이 마주쳤고 강진석은 이후 벌어질 상황을 예상할 수 있었다.

파괴 광선을 다시 던지지 않을까 싶었다.

휙!

예상대로였다.

카림은 파괴 광선을 강진석에게 던졌다.

이미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 있던 강진석은 공간이동으로 자리를 벗어났다.

그리고 바로 혼돈의 구를 단검으로 변환하며 생각했다.

'모든 마법을 다 잡을 수 있는 건가?'

파괴 광선은 붙잡혔다.

그러나 그것이 모든 마법을 붙잡을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실제로 모든 마법을 붙잡을 수도 있지만 확인은 해봐야 했다.

스앗!

강진석은 단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델칸의 아이스 스피어가 카림에게 날아가기 시작했다.

당연히 하나만 날리지 않았다.

스앗! 스앗!

강진석은 쉬지 않고 계속해서 아이스 스피어를 발동했다.

만약 아이스 스피어도 붙잡을 수 있다면 몇 개나 붙잡을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수많은 아이스 스피어가 카림에게 날아갔다.

카림은 아이스 스피어를 보고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이어 활짝 웃으며 4개의 팔을 앞으로 뻗었다.

스악!

그러자 전방에 검은 장막이 나타났다.

막으려는 것이 분명했다.

강진석은 몇몇 아이스 스피어의 방향을 틀었다.

쩡! 쩌저적! 쩌적!

방향을 틀지 않은 아이스 스피어가 장막에 작렬하며 한기를 뿜어냈고 장막에 서리가 끼기 시작했다.

당연히 서리가 끼는 수준에서 끝나지 않았다.

균열이 곳곳에 생겨났다.

'방향 안 틀었으면 그냥 깼겠는데?'

아이스 스피어의 방향을 틀지 않았다면 장막은 깨졌을 것이다.

-!@$%

장막에 상태를 확인하던 강진석은 카림의 괴성에 시선을 돌렸다.

카림이 괴성을 내뱉은 이유는 방향을 틀었던 아이스 스피어 때문이었다.

파괴 광선 때와 마찬가지로 카림은 4개의 팔로 아이스 스피어를 붙잡았다.

그러나 파괴 광선 때와 달리 아이스 스피어는 붙잡히지 않았다.

그대로 팔에서 폭발했고 한기를 뿜어냈고 카림의 팔은 전부 얼어붙었다.

'전부 잡을 수 있는 건 아닌가 보네.'

강진석은 당황스러워하는 카림을 바라보며 단검을 재차 휘둘렀다.

그리고 다시 수많은 아이스 스피어가 카림에게 날아가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였다.

-!@$!@

카림이 괴성을 내뱉었다.

그러자 카림의 전신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그리고 육체의 얼음이 순식간에 녹았고 아이스 스피어가 도착하기 직전 카림이 자리에서 사라졌다.

아이스 스피어는 그대로 카림이 있던 자리를 지나 뒤에 있던 무엘에게 작렬했다.

쩍! 쩌저적!

카림이 사라질 것이라 생각지 못한 무엘은 아이스 스피어들을 피하지 못했고 수많은 아이스 스피어가 작렬하며 완전히 얼어붙었다.

죽지는 않았지만, 한 번만 더 공격하면 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강진석은 무엘에게 신경 쓸 수 없었다.

그 이유는 바로 카림 때문이었다.

스앗!

카림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곳은 강진석의 바로 앞이었다.

모습을 드러낸 카림은 주먹을 뻗었다.

4개의 주먹에는 더 이상 얼음이 보이지 않았다.

전부 불길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공간이동으로 피하기에는 주먹이 너무 빨랐다.

적어도 한 번은 막아야 할 것 같았다.

강진석은 방패를 들어 가장 빨리 도달하는 주먹을 막으며 공간이동을 했다.

쾅!

방패에 주먹이 작렬했고 그와 동시에 강진석이 사라졌다.

그리고 이어 세 주먹이 허공을 갈랐다.

강진석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곳은 무엘의 바로 앞이었다.

'일단 처리하자.'

혼돈의 구를 몽둥이로 변환한 강진석은 기운을 가득 주입하며 휘둘렀다.

후웅!

얼어 있던 무엘은 몽둥이를 피할 수 없었다.

당혹스러운 눈빛으로 몽둥이를 바라볼 뿐이었다.

쾅!

이내 몽둥이가 작렬하며 무엘의 육체가 얼음과 함께 산산이 조각나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스아앗!

그리고 빛과 함께 무엘의 육체가 사라지며 메시지가 나타났다.

[전쟁 바람 부족 2군단장 무엘이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퀘스트 '2군단장 무엘'이 완료됐습니다.]

.

.

그러나 강진석은 메시지를 확인하지 않았다.

대신 방패 상태를 확인했다.

주먹이 작렬한 부분이 살짝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불길 때문인지 그을음도 약간 보였다.

'...강하네.'

그렇지 않아도 단단한 찬란한 방패는 해방을 통해 한층 더 단단해졌다.

그런데 주먹 한 번에 파이다니?

'직접 맞으면 꽤 위험하겠는데.'

방패 상태를 보니 직접적으로 맞는 것은 피해야 할 것 같았다.

강진석은 카림을 보았다.

카림은 인상을 한껏 구기고 있었다.

강진석은 카림을 주시하며 생각했다.

'뒤에 두 녀석도 처리해야 하는데.'

무엘 말고도 처리해야 할 오크가 둘 더 있었다.

바로 알리온과 블리오드였다.

두 오크는 카림 때문인지 아니면 무엘의 죽음 때문인지 기습하기 좋은 상황임에도 머뭇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대로 계속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카림과의 전투에서 두 오크가 움직인다면?

변수가 될 것이다.

그것도 강진석에게 좋지 않은 변수가.

그러나 두 오크를 처리하기에는 카림이 문제였다.

두 오크를 바로 죽일 수 있다면 모를까 시간이 좀 걸릴 것인데 그 사이 카림이 가만히 있을까?

'잠깐.'

문득 든 생각에 강진석은 눈을 번뜩였다.

'포그 쓰면 되잖아?'

생각해 보니 카림도 견제하고 두 오크를 죽일 방법이 있었다.

바로 델칸의 아이스 포그였다.

강진석은 혼돈의 구를 은장도로 변환했다.

그러고는 바로 델칸의 아이스 포그를 시전했다.

시전과 동시에 수많은 얼음 알갱이가 허공에 나타났다.

강진석의 주변은 물론 카림의 주변 그리고 알리온, 블리오드의 주변에도 빽빽이.

카림은 신기한 표정으로 얼음 알갱이를 바라보았고 두 오크는 알갱이가 닿을까 더욱 경직됐다.

물론 움직이지 않는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델칸의 아이스 포그는 혼돈의 구로 강화가 되었고 의지로 알갱이를 조종할 수 있게 됐다.

많은 정신력과 기운이 들긴 하지만 영혼 각성을 한 강진석에게는 이제 전혀 부담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강진석은 바로 곳곳에 깔린 알갱이들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알갱이들이 폭발하며 한기를 뿜어냈고 곧 메시지가 나타났다.

[전쟁 바람 부족 2군단 부군단장 알리온이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퀘스트 '2군단 부군단장 알리온'이 완료됐습니다.]]

.

.

제162화

162.

무엘 때와 달리 강진석은 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카림이 알갱이를 막느라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메시지를 확인한 강진석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이 정도면 봉제산이나 5구역보다 더 얻을 수 있겠는데?'

무엘, 알리온 그리고 블리오드까지 세 오크가 제공한 포인트는 엄청났다.

차가운 뿌리 부족의 2인자이자 대주술사인 밀보닐보다 훨씬 더 많았다.

'제약이 해제돼서 그런가?'

카림의 등장으로 보상이 한 번 더 강화된 상태이긴 했다.

그러나 강화됐다고 해도 너무 차이 났다.

밀보닐 때보다 보상이 훨씬 좋은 이유는 아무래도 제약이 완전히 해제됐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강진석은 퀘스트창을 열었다.

그리고 카림이 나타났을 때 생성된 퀘스트 '생존하라!'를 확인했다.

예상대로 카림에게서 생존하라는 퀘스트였다.

생존 방법은 2가지였다.

카림이 소멸할 때까지 버티거나 혹은 개화역을 탈출하거나.

강진석은 퀘스트창을 닫으며 카림의 상태를 확인했다.

'죽지는 않겠네.'

알갱이는 카림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문제는 카림의 육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길이었다.

불길 때문에 알갱이의 한기가 카림을 얼리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카림에게 피해를 아예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카림의 기운이 줄어들고 있었다.

그것도 눈에 띄게.

'본체도 아니니 회복할 일은 없겠고.'

카림은 본체가 아니라 사념이었다.

사념이 자체적인 회복 능력을 가지고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만에 하나 가지고 있다고 해도 뛰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기운부터 갉아먹자.'

쉽게 잡기 위해서는 기운을 소비시키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강진석은 은장도에 내장된 또 다른 스킬 '델칸의 아이스 필드'를 시전했다.

쩌저적!

바닥이 얼어붙었다.

얼음 알갱이를 막아 내는 데 집중하던 카림은 피하지 못했고 발목까지 얼어붙었다.

물론 정확히 말하면 얼지는 않았다.

카림의 발에도 불길이 타오르고 있었다.

발목 높이의 두꺼운 빙판이 생성됐을 뿐 육체를 봉쇄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기운 소모 속도가 빨라진 것을 보니 적지 않은 타격을 줬다고 할 수 있었다.

-!@$!$@

카림이 괴성을 내뱉었다.

여전히 알아들을 수 없는 쇳소리였다.

그러나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화가 났다는 것을.

목소리에 담긴 분노와 잔뜩 구겨진 얼굴을 보면 확실했다.

화르륵!

이어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던 불길이 한층 더 강렬해졌다.

그러자 카림의 주변 빙판 일부가 녹아 사라졌고 알갱이들 역시 육체에 도달하기 전에 사라졌다.

그리고 카림이 성큼성큼 다가오기 시작했다.

'빠르게 끝낼 생각인가.'

기운 소모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전력을 다해 끝내려는 것이 분명했다.

강진석은 다가오는 카림을 보며 생각했다.

'굳이 맞붙을 필요 있나?'

일정 시간 내 잡아야 하는 게 아니다.

그리고 장소도 아무런 문제 없다.

카림이 날뛰며 주변을 파괴한다고 해도 전혀 상관없다.

굳이 전력을 다해 덤벼드는 카림을 맞상대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잡는 순간 보상이 약화될 수 있잖아?'

그리고 카림의 등장으로 보상이 강화됐다.

퇴장하는 순간 보상이 다시 약화될 수 있다.

강진석은 결정을 내리고 싱긋 웃었다.

그러고는 바로 뒤로 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카림은 강진석의 행동에 순간 멈칫했다.

말 그대로 순간이었다.

카림은 다시 전력을 다해 강진석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거리는 쉽사리 좁혀지지 않았다.

'공간이동만 조심하면 되겠어.'

강진석은 카림의 공간이동만 신경 쓰기로 결정하고 주변 오크들을 향해 아이스 필드를 시전했다.

쩌저적!

아이스 필드가 발동되며 그 위에 있던 오크들이 대거 죽음을 맞이했다.

그리고 수많은 메시지가 나타났다.

"...!"

보상을 확인한 강진석은 살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2배가 아니라 3배였어?'

카림의 등장으로 보상이 강화됐다.

당연히 2배 정도 강화됐으리라 생각했다.

여태까지 그래왔기에.

그런데 아니었다.

보상이 3배로 늘어난 상태였다.

'제약 때문만은 아니었구나?'

강진석은 앞서 죽은 무엘, 알리온, 블리오드의 보상을 떠올렸다.

보상이 차이 나는 이유가 제약 때문인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아니었다.

'이러면....'

강진석은 침을 꿀꺽 삼켰다.

카림을 죽이지 않고 이대로 개화역 탈환을 마친다면?

상상만 해도 짜릿했다.

강진석은 카림을 주시하며 아이스 필드를 난사하기 시작했다.

* * *

카림은 인간의 뒤를 쫓으며 생각했다.

'인간 녀석 무슨 생각이지?'

지금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인간은 자신과의 전투를 피했다.

처음에는 겁을 먹어 피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인간을 추격하며 알게 됐다.

겁을 먹어서 피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카림이 그리 생각하는 이유는 인간이 벌이는 학살 때문이었다.

인간은 도망치며 전쟁 바람 부족 오크들에게 마법을 난사했다.

그것도 매우 강력한 마법을.

'저렇게 마법을 난사하면서 기운을 빼도 날 상대할 자신이 있는 건가?'

대체 인간은 어째서 오크 따위에 기운을 빼는 것일까?

만약 카림이 인간의 입장이었다면?

언제든 죽일 수 있는 오크 따위에 기운을 빼지 않았을 것이다.

'근데....'

이어든 생각에 카림은 미간을 찌푸렸다.

'상대할 자신이 있으면 왜 피하는 거지?'

오크 따위에 기운을 뺄 정도로 자신이 있다면 어째서 전투를 피하는 것일까?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던 카림은 눈을 번뜩였다.

'...녀석도 애매한 건가?'

솔직히 카림은 전력을 다해도 인간을 죽일 자신이 없었다.

그 정도로 인간은 강했다.

반대로 인간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시간을 끌며 내 기운이 다하길 기다리는 건가?'

카림은 인간을 죽이기 위해 전력을 다하기로 결심했고 기운을 끌어올렸다.

남은 기운의 양을 생각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이대로 쫓기만 해도 20분이면 기운이 다할 것이다.

전투가 벌어진다면?

기운이 바닥나기까지 10분도 걸리지 않을 것이다.

본체가 아니다.

기운이 바닥나면 카림은 소멸할 수밖에 없다.

카림은 침을 꿀꺽 삼켰다.

'내가 본체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는 뜻인데.'

어찌 안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반응을 보면 본체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게 확실했다.

'...이번 시험에 참가하지 않길 잘했어.'

원래 카림은 시험에 참가할 예정이었다.

카림이 모시고 있는 백작 '타타리온'의 명령 때문에 참가를 포기했다.

당시에는 아쉬웠지만 지금 상황을 보니 아쉬움이 싹 사라졌다.

그도 그럴 것이 시험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런데 벌써 이 정도 수준이라니?

시험이 끝날 때쯤에는 얼마나 더 강해질까?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그래도 알아 놔야겠지.'

수준을 보아 쉽게 죽을 존재가 아니다.

이번 시험에 참가한 5차 제약 침공자들에게 달려들지만 않는다면 죽을 일은 없을 것이고, 언젠가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다시 마주하게 될 때에는 지금과 달리 목숨을 건 전투를 벌이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그때를 대비해 인간의 능력을 파악해 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생각을 마친 카림은 공간이동을 통해 인간의 앞을 막아섰다.

그러고는 주먹을 뻗었다.

그러나 인간은 주먹이 도달하기도 전에 공간이동으로 사라졌고 주먹이 허공을 갈랐다.

'...반사 신경이 뛰어난데.'

반응할 줄 몰랐다.

공간이동을 하기 전 가격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어쩔 수 없나.'

카림은 쓴웃음을 지었다.

이대로라면 그냥 쫓다가 끝날 것이다.

아무런 정보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소득 없이 돌아갈 수는 없다.

카림은 인간을 바라보며 영역을 선포했다.

스아앗!

그리고 그와 동시에 주변 환경이 변했다.

카림은 보랏빛 하늘을 보며 숨을 들이마셨다.

짙은 마기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3분인가.'

영역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남은 기운을 생각하면 3분이 한계다.

거기다 전투에 소모될 기운을 생각하면 2분 아니, 1분도 유지하지 못할 수 있다.

'그 정도면 충분하겠지.'

카림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인간을 보았다.

인간은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뿐이었다.

그 외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래서 문제였다.

'...육체도 제련한 건가?'

연약한 육체를 가진 이들은 영역에서 정상적으로 움직일 수 없다.

중력이 무척이나 강하기에.

육체를 제련할 정도로 강해야만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

물론 인간이 육체를 제련한 게 아닐 수 있다.

카림 역시 육체를 제련하지 않았다.

타고났을 뿐이다.

'선포하길 잘했어.'

만약 영역을 선포하지 않았다면?

육체의 강함을 알지 못했을 것이고 훗날 낭패를 봤을 것이다.

바로 그때였다.

인간의 은장도에서 빛이 났다.

그러자 땅이 얼어붙었다.

카림은 신경 쓰지 않았다.

영역의 효과 중 하나가 마법 약화였기 때문이었다.

쩌저적....

예상대로 수많은 오크를 학살했던 아이스 필드의 범위는 반의반도 되지 않았다.

두께 역시 절반 수준이었다.

'가볼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긴장했던 카림은 한결 편해진 표정으로 인간에게 달리기 시작했다.

거리는 순식간에 좁혀졌다.

그리고 그 순간 인간이 무기를 변환했다.

무엘을 죽였던 몽둥이였다.

'하기야 몽둥이 파괴력을 생각하면 순수 마법사라고 볼 수는 없었지.'

카림은 무엘이 죽었던 당시를 떠올리며 마기의 불꽃을 키웠다.

그리고 이내 거리가 좁혀졌고 카림은 인간에게 주먹을 뻗었다.

인간은 방패로 주먹을 막아 내며 마주 몽둥이를 휘둘렀다.

카림은 싱긋 웃었다.

인간은 공격을 막으며 반격을 선택했다.

그러나 인간이 간과한 것이 있었다.

바로 카림의 팔이 4개라는 점이었다.

카림은 몽둥이를 붙잡기 위해 두 팔을 뻗었고 남은 한 팔을 인간에게 뻗었다.

이대로라면 인간은 선택해야 할 것이다.

첫 번째 주먹을 막을지 아니면 마지막 주먹을 막을지 둘 중 하나는 허용할 수밖에 없다.

뒤로 물러나는 것도 불가능하다.

애초에 몽둥이를 잡으려는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

어떤 선택을 하든 인간은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어?'

그러나 이어진 상황에 카림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붙잡기 직전 몽둥이에 담긴 힘을 직감할 수 있었다.

몽둥이에 담긴 힘이 생각 이상이었다.

붙잡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상황을 되돌리기에는 너무 늦었다.

카림은 긴장을 끌어올렸다.

분명 외통수라 생각했다.

그런데 외통수에 빠진 것은 인간이 아니었다.

이내 몽둥이와 카림의 두 손이 마주했다.

쾅!

예상대로 몽둥이는 붙잡는 것이 불가능했다.

"컥!"

폭음과 함께 카림은 비명을 내뱉으며 뒤로 밀려났다.

발에 힘을 줘 뒷걸음을 가까스로 멈춘 카림은 인간을 주시하며 몽둥이에 맞은 두 손을 보았다.

상처는 없었다.

그러나 무척이나 저릿저릿했다.

'이게 무슨....'

어처구니가 없었다.

육체가 강한 것은 알고 있었다.

그래도 마법보다는 수준이 낮을 것이라 생각했다.

누가 봐도 인간의 행동이나 모습이 마법사였기에.

그런데 아니었다.

육체의 힘도 마법 못지않았다.

'마법사가 아니라 전사라 생각해야겠군.'

조금 전까지는 육체 능력이 뛰어난 마법사라 생각했었다.

그래서 근접전을 펼치려 했던 것이다.

마법사들의 약점이 근접전이기에.

그런데 지금 생각이 바뀌었다.

마법을 쓸 줄 아는 전사로 생각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제163화

163.

'1분 정도인가.'

이렇게 생각에 잠겨 있을 때가 아니었다.

조금 전 몽둥이 때문에 남은 시간이 1분도 되지 않았다.

카림은 다시 인간에게 달려들었다.

인간 역시 가만히 있지 않았다.

마주 달려왔고 거리는 순식간에 좁혀졌다.

인간은 몽둥이를 휘둘렀고 카림은 주먹을 뻗었다.

'어차피 얼마 남지 않은 것.'

남은 시간이 많지 않았다.

카림은 몽둥이를 피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대신 인간의 육체에 한 방이라도 먹일 생각이었다.

육체가 얼마나 단단한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인간은 카림의 선택을 예상 못 했는지 살짝 놀란 반응을 보였고 이내 카림의 육체에 몽둥이가, 인간의 방패와 육체에 주먹이 작렬했다.

쾅!

그리고 폭음이 울려 퍼졌다.

카림은 2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첫 번째는 인간의 육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단단하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아직 육체를 제련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제련한 자들 특유의 반탄력이 느껴지지 않았다.

'제련을 안 했는데도 이정 도라....'

제련하는 순간 육체는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진다.

지금도 이 정도인데 얼마나 더 강해질까?

카림은 침을 꿀꺽 삼켰다.

'이번 시험은 대참사군.'

아무리 봐도 이번 시험에 참가하지 않은 게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서서히 사라지는 자신의 육체를 보며 카림은 히죽 웃었다.

이제 본체에게 기억이 전달될 것이다.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무척이나 궁금했다.

* * *

강진석은 미간을 찌푸렸다.

카림은 육체가 먼지로 변하면서 활짝 웃었다.

'왜?'

어째서 웃은 것일까?

왜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찼다.

그러나 생각한다고 알 수 있는 게 아니다.

강진석은 카림에 대한 생각을 접고 메시지창을 보았다.

'와....'

그리고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6마계 남작 카림의 사념이 소멸했습니다.]

[포인트가 1억 상승합니다.]

.

.

그도 그럴 것이 보상이 엄청났다.

'1억이라고?'

사념이 제공한 포인트만 1억이었다.

퀘스트 '생존하라!'의 보상으로 5000만 포인트가 추가 제공됐다.

총 1억 5천만 포인트가 수급된 것이다.

무엘 때와는 비교가 불가능했다.

'본체가 아니라 사념인데?'

강진석은 침을 꿀꺽 삼켰다.

'본체는 그럼 얼마나....'

사념이 이 정도인데 본체를 죽이면 얼마나 많은 보상이 주어질까?

상상이 가지 않았다.

이내 메시지 확인을 마친 강진석은 퀘스트창을 열었다.

그리고 우선 퀘스트 '영혼 각성'을 확인했다.

<영혼 각성>

조건을 충족하라!

[혼력 : 72%]

.

.

[공허의 보석 라툴레타 : X]

퀘스트 보상 : 스킬 '영혼 각성' 2레벨 활성화

세계 침공자 처치 시 혼력이 자동 수집됩니다.

동족 처치 시 혼력이 자동 수집됩니다.

'허? 72%나?'

1레벨 때와 달리 오르는 속도가 무척이나 더뎠다.

그래서 개화역 청소를 마쳐도 50%를 채우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50%는커녕 강서구 전역을 청소해도 100%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카림 때문일까?

아직 개화역 청소를 마치지 않았음에도 50%가 훌쩍 넘어가 있었다.

'이러면 강서구 청소만 끝내도 충족할 수 있겠는데?'

강진석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근데 혼력이 이 정도면....'

이어 강진석은 '혈력'을 떠올렸다.

혼력과 마찬가지로 혈력 역시 자동으로 수집된다.

혈력은 과연 얼마나 충족됐을까?

<육체 제련>

조건을 충족하라!

[혈력 : 100%]

.

.

[알칸데움 : 0 / 100g]

퀘스트 보상 : 스킬 '육체 제련' 1레벨 활성화

세계 침공자 처치 시 혈력이 자동 수집됩니다.

동족 처치 시 혈력이 자동 수집됩니다.

"...!"

혈력을 확인한 강진석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혼력이 생각보다 많이 충족되어 혹시나 하고 기대했는데 진짜 100%가 되어 있었다.

'재료만 있으면....'

이제 남은 것은 재료뿐이었다.

그리고 재료는 상점에서 구매하면 그만이었다.

'빨리 청소하자.'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 상점에서 필요 재료를 구매 후 완료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영혼 각성의 경우 별일 없었지만 육체 제련은 또 다를 수 있다.

안전하게 청소를 마친 뒤 완료하는 게 맞았다.

강진석은 퀘스트창을 닫았다.

그리고 바로 그때였다.

쩌저적!

쩌적!

공간에 균열이 생겼다.

강진석이 중점을 파괴한 게 아니다.

저절로 무너지고 있었다.

'불안정하더라니.'

놀랍지는 않았다.

애초에 중점이 불안정했던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이내 공간이 완전히 무너져 내리며 익숙한 개화역이 시야에 들어왔다.

강진석은 초감각에 집중했다.

영역에 붙잡혀 있던 사이 오크들은 더욱 멀어져 있었다.

'전부는 못 잡겠는데.'

전력을 다해도 전부 죽이는 것은 힘들 것 같았다.

'시간은 넉넉해졌는데....'

강진석은 쓴웃음을 지었다.

카림의 등장으로 강화된 보상은 2시간 뒤 다시 약화된다.

이미 무엘, 알리온, 블리오드를 죽였기에 마무리하는데 2시간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변수가 생길 줄이야?

강진석은 바로 공간이동을 통해 가장 가까이 있는 오크 무리로 이동했다.

그리고 도착과 동시에 아이스 필드를 시전했다.

* * *

계양산 정상.

전쟁 바람 부족의 대족장 올라쿤의 거처.

올라쿤은 심각한 표정으로 책상 위 지도를 보고 있었다.

지도에는 전쟁 바람 부족의 영역과 인근 다른 종족들의 영역이 표시되어 있었다.

"후...."

이내 올라쿤이 한숨을 내뱉었다.

'...큰일이군.'

상황이 매우 좋지 않았다.

좋지 않은 이유는 강서구에 자리 잡은 1군단과 2군단 때문이었다.

올라쿤은 1군단과 2군단을 교두보로 삼아 북쪽, 동쪽으로 영역을 확장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영역 확장은 커녕 영역을 버려야 되는 상황이 왔다.

'왜 하필 그쪽에....'

올라쿤은 미간을 찌푸렸다.

영혼 각성을 한 존재가 나타난 것도 어처구니가 없는데 하필 영역 인근에 나타났다는 것이 너무나 어이없었다.

바로 그때였다.

쩍!

무언가 박살 나는 소리가 들렸다.

"...!"

올라쿤은 순간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어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왼쪽을 보았다.

왼쪽에는 진열대가 있었다.

'서, 설마....'

조금 전 소리는 분명 진열대에서 났다.

올라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진열대로 다가갔다.

이내 진열대 앞에 도착한 올라쿤은 침을 꿀꺽 삼키며 진열대를 열었다.

끼이익.

진열대가 열리며 각양각색의 보석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올라쿤은 빠르게 두 번째 줄 두 번째에 위치한 보석을 확인했다.

동그란 초록색 보석이 반으로 갈라져 있었다.

"...."

올라쿤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멍하니 초록색 보석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초록색 보석은 2군단장 무엘의 상태를 알려주는 영혼석이었다.

그리고 영혼석이 반으로 갈라졌다는 뜻은 무엘이 죽었다는 뜻이었다.

올라쿤은 조금 전 무엘에게 철수 명령을 내렸다.

그런데 죽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였다.

영혼 각성을 한 존재가 2군단에 나타난 것이 분명했다.

쩍! 쩍!

이어 초록색 보석 옆에 있던 보석들이 반으로 갈라졌다.

이번에 갈라진 두 보석은 무엘을 보좌하고 있는 2군단의 부군단장 알리온과 블리오드의 영혼석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거처로 두 오크가 들어왔다.

서열 2위이자 올라쿤의 동생인 올라켄과 대제사장 마르브였다.

"음? 거기서 뭐 하십...."

올라켄은 진열대 앞에 있는 올라쿤에게 묻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이어 경악했다.

경악한 것은 올라켄뿐만이 아니다.

함께 온 마르브 역시 경악했다.

스윽.

두 오크의 경악에 올라쿤은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돌렸다.

"지금 당장 1군단에 전사들을 파견해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지?"

2군단 공격으로 끝날까?

아니, 올라쿤이 보기에 1군단도 공격받을 가능성이 100%였다.

물론 1군단장인 에파드와 1군단에 설치되어 있는 마법진과 아티펙트라면 영혼 각성을 한 존재에게도 쉽게 무너지지는 않겠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다.

전사들을 파견해 방어를 공고히 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 * *

'이제 끝이네.'

강진석은 전쟁 바람 부족의 제단을 보았다.

개화역 내부는 물론 외부까지 완벽히 청소를 끝냈다.

놓친 오크들이 좀 있긴 했지만 대부분이 일반 오크들이었다.

네임드의 기준인 2차 제약 이상 오크들은 넷밖에 놓치지 않았다.

개화역의 규모를 생각하면 거의 놓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었다.

강진석은 전쟁 바람 부족을 향해 지팡이를 겨눴다.

스앗!

이내 보랏빛 구슬이 나타났고 이어 광선이 뿜어져 나와 제단으로 날아갔다.

쾅! 쾅! 쾅!

[조건을 충족하셨습니다.]

[퀘스트 '제단 파괴'를 완료하셨습니다.]

[영역이 파괴됐습니다.]

.

.

그렇게 세 번의 광선이 작렬한 후 강진석은 메시지를 볼 수 있었다.

메시지를 훑던 강진석은 씨익 웃었다.

보상을 보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이어 강진석은 포인트를 확인하며 생각했다.

'포인트 모자랄 일은 없겠네.'

힘, 민첩 라인 스킬을 전부 습득하고 육체 제련 2레벨을 습득해도 포인트가 남는다.

그 정도로 이번 개화역에서 얻은 포인트는 많았다.

'일단 창고부터 확인하자.'

메시지 확인을 끝낸 강진석은 창고 입구로 공간이동을 했다.

입구에 도착한 강진석은 문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폭발 마법진은 남아 있으려나?'

원래 제단을 파괴하기 전에 창고를 확인하려 했다.

그러나 확인할 수가 없었다.

창고에 설치된 장막 때문이었다.

물론 파괴하고 들어갈 수 있었지만 경고 메시지가 떴었다.

장막을 강제로 파괴할 경우 창고 내부에 설치된 폭발 마법진이 발동한다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장막의 근원인 제단을 먼저 파괴하러 갔던 것이다.

'남아 있으면 없애는 게 좋겠지.'

장막은 사라졌으나 폭발 마법진은 그대로일 가능성이 높았다.

만약 마법진이 남아 있다면 없애기로 강진석은 결정을 내리고 문을 열어 창고로 들어갔다.

저벅!

창고에 진입과 동시에 강진석은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부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넓었다.

그리고 그 넓은 곳에 무기, 방어구, 장신구, 보석 등 재화들이 가득했다.

강진석은 시야에 가득 들어온 각종 재화를 스윽 훑었다.

'...확인하는 데 엄청 걸리겠는데?'

눈에 익은 것들도 있었지만 처음 보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확인하는 데에 엄청난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나중에 차근차근 확인해야겠네.'

육체 제련 같은 더 중요한 일들이 있어 당장 확인할 수는 없었다.

강진석은 추후 하나하나 확인하기로 결정을 내리고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창고 크기를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미 초감각으로 창고의 크기는 확인됐다.

걸음을 옮기는 이유는 어떤 물품들이 있는지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음?'

그렇게 창고 내부를 돌아다니며 물품을 확인하던 강진석은 걸음을 멈췄다.

'저건 뭐지?'

이상하게도 시선이 가는 곳이 있었다.

10가지나 되는 다양한 물품들이 한데 모여 있는 곳이었다.

'...잠깐.'

강진석은 눈을 번뜩였다.

어째서 시선이 갔는지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저거 그거잖아? 봉제산 창고에서 봤던!'

10가지 중 4가지가 봉제산 창고에 있는 것들이었다.

즉, 시선이 갔던 이유는 익숙함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익숙한 4가지 물품은 육체 제련에 필요한 재료들이었다.

그렇다면 나머지 6가지는?

'...설마.'

강진석은 혹시나 하는 표정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물품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이내 강진석의 입가에 미소가 나타났다.

미소는 점점 짙어지기 시작했다.

'살 필요 없겠네.'

모여 있던 10가지 물품들은 전부 '육체 제련'의 재료들이었다.

제164화

164.

강진석은 흡족한 표정으로 재료들을 인벤토리에 넣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 재료 알칸데움 덩어리를 넣은 순간.

[모든 조건이 충족됐습니다.]

메시지가 나타났다.

강진석은 메시지를 보고 바로 퀘스트창을 열었다.

그러고는 활성화된 퀘스트 '육체 제련'의 완료 버튼을 보며 더할 나위 없이 활짝 웃었다.

스윽.

이어 강진석은 주변을 훑었다.

'여기서 하기에는 좀 그렇고.'

안전하긴 하지만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주변에 있는 재료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강진석은 마저 재료를 확인하고는 창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가장 가까운 훈련장으로 이동했다.

훈련장에 도착하자마자 강진석은 스킬창을 열었다.

'최상의 상태에서 하는 게 좋겠지.'

강진석은 가장 먼저 정신력 라인 스킬을 습득했고 이어 체력 라인 스킬을 습득했다.

이제 남은 것은 힘과 민첩 라인 스킬뿐이었고 강진석은 육체 제련을 하기 전에 전부 습득할 생각이었다.

굳이 먼저 스킬을 습득하려는 이유는 이상하게도 그래야 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영혼 각성의 능력이겠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강진석은 지금 느껴지는 이 정체불명의 느낌을 영혼 각성의 효과라 생각하고 있었다.

.

.

[스킬 '민첩220'의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민첩이 1 상승합니다.]

이내 민첩220을 끝으로 모든 라인 스킬을 습득한 강진석은 메시지창을 보며 생각했다.

'대체 오롯이 존재하는 자4는 조건이 뭐지?'

이번에는 오롯이 존재하는 자4의 조건이 충족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에도 오롯이 존재하는 자4의 조건은 충족되지 않았다.

'3이 끝은 아닐 텐데.'

강진석은 미간을 찌푸리며 퀘스트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제 퀘스트 '육체 제련'을 완료할 차례였다.

'후....'

강진석은 속으로 짧게 숨을 내뱉은 뒤 완료 버튼을 눌렀다.

[스킬 퀘스트 '육체 제련'을 완료하셨습니다.]

[스킬 '육체 제련'이 활성화됩니다.]

.

.

영혼 각성 때처럼 수많은 메시지가 나타났다.

그리고 영혼 각성 때와 마찬가지로 강진석은 메시지를 보지 않았다.

활성화되며 찾아온 변화 때문이기는 했다.

그러나 영혼 각성 때와 이유는 달랐다.

강진석은 전신에서 느껴지는 열기에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열기는 점점 강해지기 시작했고 강진석은 불길함을 느꼈다.

이내 강진석은 가부좌를 틀었다.

그리고 눈을 감은 채 고통을 인내하기 시작했다.

'언제까지....'

강진석은 이를 악물었다.

어느 정도 강해지면 멈출 것이라 생각했던 열기는 멈추지 않았다.

계속해서 강해졌다.

이대로라면 내부가 다 녹아내리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바로 그때였다.

'...!'

강진석은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열기가 가라앉기 시작했다.

언제 그랬냐는 듯 열기는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그러나 강진석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열기가 사라진 것이 끝이 아님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이어 한기가 느껴졌다.

열기와 마찬가지로 한기는 급속도로 강해지기 시작했다.

강진석은 다시 한번 이를 악물며 생각했다.

'스킬 습득 안 했으면....'

만약 힘과 민첩 라인 스킬을 습득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죽지야 않았겠지만 지금보다 버티기가 훨씬 힘들었을 것이다.

'열기 때를 생각하면 끝날 때가 됐는데....'

강진석은 인고의 시간을 보내며 어서 한기가 사라지기를 바랐다.

그리고 얼마 뒤 한기가 급속도로 약화되기 시작했다.

이내 한기가 완전히 자취를 감췄고 그 순간 강진석은 깨달았다.

육체 제련이 끝났다는 것을.

강진석은 눈을 뜨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육체를 살피기 시작했다.

제련 후 얼마나 바뀌었을지 궁금했다.

"...."

육체 확인을 마친 강진석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멍하니 육체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 정도로 육체에 찾아온 변화는 충격적이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강진석은 침을 꿀꺽 삼켰다.

'이게 제련이구나....'

달라질 것을 예상하기는 했다.

그런데 예상했던 것보다 더 달라졌다.

강진석은 공간이동을 통해 개화역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온 이유는 확인할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내 오크들의 천막이 가득한, 곧 공터가 될 장소에 도착한 강진석은 주변을 스윽 훑었다.

그리고 개화역과의 거리를 가늠하며 생각했다.

'이 정도 거리면 충분하겠지.'

강진석은 발을 들었다.

그리고 발에 힘을 준 뒤 그대로 땅을 찍었다.

완벽한 진각이었다.

쾅! 쩌저적!

폭음과 함께 땅이 뒤집어졌다.

그리고 땅이 뒤집히며 근처에 있던 천막들 역시 전부 무너졌다.

"...."

강진석은 말없이 무너진 천막들을 보았다.

이내 정신을 차린 강진석은 생각했다.

'진각 한 번에 이 정도야?'

전력을 다해 밟은 진각이 아니다.

그럼에도 파괴력이 엄청났다.

'이 정도면 마법보다 나은 것 같은데....'

현재 혼돈의 구에는 강력한 마법들이 여럿 저장되어 있었다.

그 마법들과 비교해도 진각은 부족함이 없었다.

범위든 파괴력이든 밀리지 않았다.

오히려 기운 소모를 생각하면 진각이 더 나은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근데 진각이 이 정도면....'

문득 든 생각에 강진석은 혼돈의 구를 몽둥이로 변환했다.

그리고 기운을 주입한 뒤 힘을 주어 몽둥이로 땅을 내리쳤다.

콰앙!

진각을 밟았을 때보다 훨씬 큰 폭음이 울려 퍼졌다.

당연히 폭음만 큰 게 아니다.

여파도 달랐다.

혼돈의 구가 작렬한 부분을 중심으로 거대한 크레이터가 생성됐다.

진각 때보다 범위가 배 이상 넓었고 범위 안에 있던 천막들은 무너진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박살이 났다.

강진석은 침을 꿀꺽 삼키며 생각했다.

'4차 제약 침공자는 조심해야겠는데...?'

4차 제약 침공자의 조건은 육체 제련 혹은 영혼 각성이었다.

그리고 모든 4차 제약 침공자가 1레벨은 아닐 것이다.

2레벨도 있을 것이고 3레벨도 있을 것이다.

육체 제련 1레벨이 이 정도인데 만약 2레벨, 3레벨 존재들을 마주한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자신 있게 마주했다가는 큰코다칠 것 같았다.

조심하기로 결정한 강진석은 이어 메시지창을 보았다.

육체 제련의 여파 때문에 확인하지 못한 메시지들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어?'

메시지를 확인하던 강진석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생각지도 못한 메시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축하합니다.]

[최초로 오롯이 존재하는 자(4)의 조건을 충족하셨습니다.]

[최초 보상을 획득합니다.]

[포인트가 1억 상승합니다.]

.

.

바로 '오롯이 존재하는 자4'의 충족 메시지였다.

'이게 뭔....'

계속 메시지를 확인하던 강진석은 더욱 당황했다.

'오롯이 존재하는 자4'의 보상 때문이었다.

포인트를 말하는 게 아니다.

1억 포인트는 분명 놀라운 보상이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아니, 의아한 보상이 있었다.

[특별 스킬창이 개방됩니다.]

바로 '특별 스킬창'의 개방이었다.

강진석은 스킬창을 열었다.

전에 보이지 않았던 세 번째 페이지가 생성되어 있었다.

강진석은 바로 세 번째 페이지를 선택했다.

그러자 수많은 스킬이 시야에 들어왔다.

'무슨 스킬이지...?'

강진석은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가장 상단에 있는 스킬 하나를 선택했다.

그러자 정보가 나타났다.

<물의 이해[패시브]>

물을 이해합니다.

최대 레벨 : 5

현재 레벨 : 0

필요 포인트 : 5000만

선택한 스킬의 이름은 '물의 이해'였다.

'...물을 이해해?'

패시브 스킬이었는데 효과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물을 이해한다니?

뭘 이해한단 말인가?

'포인트 보면 보통 스킬은 아닌 것 같은데....'

습득에 5000만이나 필요했다.

육체 제련이나 영혼 각성만큼은 아니지만 평범한 스킬은 아닐 것 같았다.

강진석은 몇몇 스킬을 더 확인했다.

<독의 이해[패시브]>

독을 이해합니다.

최대 레벨 : 5

현재 레벨 : 0

필요 포인트 : 5000만

<흙의 이해[패시브]>

흙을 이해합니다.

최대 레벨 : 5

현재 레벨 : 0

필요 포인트 : 5000만

'첫 번째 줄은 다 이해 스킬인가 보네.'

독, 흙 등 종류만 다를 뿐 전부 뒤에 '이해'가 붙어 있었다.

강진석은 두 번째 줄의 스킬을 확인했다.

<불의 운용[패시브]>

불을 운용합니다.

최대 레벨 : 5

현재 레벨 : 0

필요 포인트 : 1억

"...!"

그리고 확인과 동시에 눈을 번뜩였다.

'불을 운용한다고?'

스킬 '불의 운용'은 앞서 확인한 스킬들과 달리 직관적으로 이해가 됐다.

불을 다룰 수 있게 된다는 뜻이 분명했다.

'근데 패시브 스킬인데?'

첫 번째 줄에 있는 '이해' 스킬들과 마찬가지로 불의 운용 역시 패시브 스킬이었다.

그런데 불을 운용한다니?

어떻게 운용한다는 것일까?

강진석은 일단 두 번째 줄에 있는 몇몇 스킬들을 더 확인했다.

첫 번째 줄과 마찬가지로 종류만 다를 뿐 전부 뒤에 '운용'이 붙어 있었다.

'그럼 세 번째 줄은....'

강진석은 침을 꿀꺽 삼켰다.

첫 번째 줄은 '이해', 두 번째 줄은 '운용'이었다.

그럼 대체 세 번째 줄에는 뭐가 있는 것일까?

강진석은 긴장한 표정으로 세 번째 줄의 스킬을 확인했다.

<빛의 지배[패시브]>

빛을 지배합니다.

최대 레벨 : ???

현재 레벨 : 0

필요 포인트 : 3억

스킬을 확인한 강진석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멍하니 스킬 정보를 바라볼 뿐이었다.

'지배....'

이내 정신을 차린 강진석은 침을 꿀꺽 삼켰다.

세 번째 줄에 있는 스킬은 '지배'였다.

어떤 식으로 지배한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범상치 않은 스킬인 것은 분명했다.

일단 1레벨을 습득하는 데 필요한 포인트가 3억이었다.

육체 제련, 영혼 각성의 3배였다.

'왜 최대 레벨이....'

거기다 최대 레벨이 ???로 되어 있었다.

아직 알 수 없다는 뜻일 수도 있고 끝이 없다는 뜻일 수도 있다.

만약 끝이 없다는 뜻이라면?

'...그게 뭐가 중요하겠어.'

강진석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여태까지의 경험상 필요 포인트는 2배씩 증가할 것이다.

즉, 3억 시작이면 2레벨은 6억이 필요할 것이고 3레벨은 12억이 필요할 것이다.

더구나 지배 스킬을 습득하기 위해서는 하위 운용 스킬을 '5레벨' 달성해야 한다.

그리고 운용 스킬을 습득하기 위해서는 하위 이해 스킬을 '5레벨' 달성해야 한다.

이해 스킬과 운용 스킬 습득에 필요한 포인트를 생각하면 지배 스킬 습득은 아주 머나먼 이야기가 될 것이다.

'근데 이것만 그런 거 아냐?'

강진석은 문득 든 생각에 다른 지배 스킬을 확인했다.

<어둠의 지배[패시브]>

어둠을 지배합니다.

최대 레벨 : ???

현재 레벨 : 0

필요 포인트 : 3억

<시간의 지배[패시브]>

시간을 지배합니다.

최대 레벨 : ???

현재 레벨 : 0

필요 포인트 : 3억

'아니구나.'

확인 후 강진석은 빛의 지배만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강진석은 스킬 정보를 닫고 첫 번째 줄에 있는 이해 스킬들을 보며 생각했다.

'...일단 이해 스킬 하나는 습득해 볼까.'

이번 개화역 탈환에서 강진석은 정말 많은 포인트를 수급했다.

이해 스킬을 하나 습득해도 육체 제련 2레벨을 습득하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강진석은 어떤 스킬을 습득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강진석은 가장 먼저 확인했던 '물의 이해'를 습득하기로 결정했다.

결정을 내린 강진석은 바로 스킬 '물의 이해'를 습득했고 메시지가 나타났다.

[스킬 '물의 이해'를 습득하셨습니다.]

[스킬 퀘스트 '물의 이해'가 생성됐습니다.]

제165화

165.

메시지를 본 강진석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것도 퀘스트야?'

혹시나 하긴 했다.

그런데 진짜 퀘스트가 생성될 줄이야?

아니길 바랐던 강진석은 속으로 한숨을 내뱉으며 퀘스트창을 열었다.

그리고 퀘스트 '물의 이해'를 확인했다.

<물의 이해>

조건을 충족하라!

[물속 생활 : 0%]

[물의 보석 아쿠아린 : 0 / 10]

.

.

퀘스트 보상 : 스킬 '물의 이해' 1레벨 활성화

조건을 확인한 강진석은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물속 생활?'

물의 이해 역시 영혼 각성의 혼력, 육체 제련의 혈력처럼 충족해야 할 특별 조건이 존재했다.

문제는 해당 조건에 대한 설명이 없다는 점이었다.

'그냥 물속에 들어가 있으면 되는 건가? 아니면 물속에서 진짜 생활을 해야 하나?'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강진석은 이내 퀘스트창을 닫았다.

'한강 정리할 때 확인하면 되겠지.'

어차피 한강에 있는 오르드 부족의 영역을 정리하러 가야 했다.

물속에만 있어도 되는지 아닌지는 그때 가서 확인하면 될 것이다.

강진석은 퀘스트창에서 스킬창으로 시선을 돌렸다.

습득할 스킬이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육체 제련 2레벨이었다.

[스킬 '육체 제련'의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스킬 퀘스트 '육체 제련'이 생성됐습니다.]

습득하자마자 강진석은 바로 퀘스트를 확인했다.

<육체 제련>

조건을 충족하라!

[혈력 : 0%]

.

.

[알칸데움 : 0 / 2kg]

퀘스트 보상 : 스킬 '육체 제련' 2레벨 활성화

세계 침공자 처치 시 혈력이 자동 수집됩니다.

동족 처치 시 혈력이 자동 수집됩니다.

예상대로 필요 재료가 대폭 늘어나 있었다.

'이번에도 그냥 제련되지는 않겠지?'

강진석은 완료 당시 발생한 열기와 한기를 떠올렸다.

2레벨 역시 열기와 한기가 발생할 것으로 추정됐다.

그것도 1레벨 때보다 훨씬 더 강력한.

'그러고 보니.'

문득 든 생각에 강진석은 메시지창으로 시선을 돌렸다.

'조건이 뭐지?'

오롯이 존재하는 자(4)의 조건을 아직 확인하지 않았다.

'일단 육체 제련은 있겠고.'

육체 제련을 마친 순간 충족이 됐다.

즉, 육체 제련이 조건 중 하나일 것이다.

나머지 조건은 무엇일까?

강진석은 바로 오롯이 존재하는 자(4)의 조건을 확인했다.

1. 첫 번째 육체 제련

2. 첫 번째 영혼 각성

3. 액티브 스킬 습득하지 않기

'아....'

확인과 동시에 강진석은 속으로 나지막이 탄성을 내뱉었다.

'이러면....'

오롯이 존재하는 자의 조건은 세 번째 조건인 '액티브 스킬 습득하지 않기'를 제외하고는 완전히 달라졌다.

더 이상 능력치, 패시브 스킬 개수를 요구하지 않았다.

'다음은....'

오롯이 존재하는 자(4)가 끝이 아니다.

강진석이 확신하는 이유는 충족하며 나타난 메시지에 오롯이 존재하는 자(5)에 대한 암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두 번째 육체 제련이랑 영혼 각성인가?'

아마도 오롯이 존재하는 자(5)의 조건은 영혼 각성, 육체 제련 2레벨이 아닐까 싶었다.

물론 확실한 것은 아니다.

'설마 이해 스킬 습득은 아니겠지?'

오롯이 존재하는 자(4)의 보상으로 특별 스킬창이 개방됐다.

그리고 특별 스킬창에는 이해, 운용, 지배 스킬들이 존재했다.

이해, 운용, 지배 스킬을 습득하는 것이 조건일 수도 있다.

'시간이 지나면 알 수 있겠지.'

강진석은 정보창을 닫았다.

그리고 이어 시간을 확인하며 길드 관리창을 열었다.

'지금쯤이면 다 하셨으려나?'

시간이 꽤 흘렀다.

지금이라면 면접이 끝나지 않았을까 싶었다.

'다 가입한 게 아닌가?'

봉제산에서 구출한 생존자는 1만 1211명이었다.

그리고 신규 가입자는 1만 1051명이었다.

160명이 차이 났다.

아직 면접이 진행 중일 수도 있고 가입을 거절한 것일 수도 있다.

어떤 경우든 면접이 거의 끝났다고 할 수 있었다.

'어쨌든 지금 상황을 전달해야 하니.'

강진석은 봉제산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도착과 동시에 수많은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끝난 거 맞네.'

면접장에는 한지윤을 포함해 최고 간부라 할 수 있는 몇몇만 남아 있었다.

160명은 가입을 하지 않은 듯했다.

강진석은 면접장으로 재차 공간이동을 했다.

"엇, 진석 님!"

"길드장님 오셨습니까!"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간부들은 강진석을 발견하고 인사했다.

강진석은 인사에 답한 뒤 한지윤에게 물었다.

"면접은 끝난 건가요?"

"네, 15분 전에 끝났습니다. 160명을 제외하고는 전부 가입했습니다. 여기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한지윤은 질문에 답하며 들고 있던 서류를 내밀었다.

"혹여 궁금하신 부분이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네."

강진석은 서류를 받아 확인했다.

서류에는 가입한 인원들의 '직업', '습득 스킬', '특기' 등이 쓰여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어째서 160명이 가입을 하지 않았는지 알 수 있었다.

대부분이 가족 때문이었다.

가족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떠난 이도 있었고 가족의 죽음 때문에 실의에 빠져 모든 것을 내려놓은 이들도 있었다.

확인을 마친 강진석은 서류를 내려놓았다.

"고생하셨습니다."

"아닙니다! 고생은 길드장님이 하셨죠!"

한지윤의 말에 강진석은 싱긋 웃으며 물었다.

"혹시 메시지 뜨셨나요? 제약에 대한 메시지요."

"아, 네! 3차 제약이 해제됐다는 메시지 떴습니다!"

"인근 지역 2차 제약 해제 메시지는요?"

"...인근 지역 해제요? 그건 안 떴습니다!"

"아, 그렇군요."

강진석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한지윤을 포함한 모든 이들의 표정에 긴장이 나타났고 이어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면 3일 뒤부터 더 위험해지겠군요...."

"준비 단단히 해야겠는데요?"

"내일부터 던전 입장할까 했는데 이따 바로 가야겠네요."

이내 강진석의 이야기가 끝났고 간부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내뱉었다.

강진석은 안도했다.

너무나 갑작스런 상황 변화였다.

그것도 좋지 않은 변화였다.

그래서 혹시나 실의에 빠지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괜한 걱정이었다.

간부들의 표정은 심각했지만 실의에 빠지지 않았다.

반대로 의욕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바로 그때.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개화역까지 정리하셨다니."

한지윤이 강진석에게 말했다.

그리고 한지윤의 말에 모든 간부들이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강진석을 바라보았다.

강진석은 모두의 시선에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애초에 제약이 해제된 원인이 강진석이었다.

그리고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것도 강진석뿐이었다.

강진석의 입장에서 개화역 정리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다.

"그리고 회의 끝나는 대로 한강 쪽에 있는 리자드맨들의 영역 그리고 김포공항 일대를 정리하러 갈 생각입니다."

정리해야 할 장소는 개화역뿐만이 아니다.

강진석은 회의가 끝나는 즉시 한강에 있는 오르드 부족의 영역을 청소하러 갈 생각이었다.

"...혹시 저희가 도울 일이 있을까요?"

한지윤이 강진석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음...."

강진석은 침음을 내뱉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이내 입을 열었다.

"일단 성장에 집중해 주세요. 강서구는 제가 혼자 청소할 수 있지만 나머지 지역들을 혼자 청소할 수는 없을 테니까요."

한국에는 강서구 말고도 수많은 지역구가 존재한다.

그리고 한국에만 몬스터들이 나타난 게 아니다.

지구 전역에 나타났다.

즉, 강서구는 시작일 뿐이다.

앞으로를 생각하면 수준을 끌어올려야 한다.

지금 상태로는 생존하는 것도 힘들어지는 때가 올 것이다.

"그리고...."

* * *

-알겠습니다.

-2군단을 궤멸시킨 존재가 나타나는 대로 보고드리겠습니다.

1군단장 에파드의 보고에 올라쿤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고생하게."

-옙! 너무 걱정 마시길.

에파드의 답을 끝으로 올라쿤은 통신 마법을 끊었다.

그리고 통신이 끊기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올라켄이 물었다.

"지금 보낸 전사들로 막을 수 있을까요?"

2군단이 궤멸당했다.

그래서 다급히 1군단에 전사들을 추가 파견했다.

당연히 평범한 전사들은 아니다.

전부 3차 제약을 받은 전사들이었다.

그러나 올라켄은 불안했다.

전사들을 파견했음에도 막지 못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쉽게 당하지는 않을 거다."

올라쿤은 복잡미묘한 표정으로 답했다.

솔직히 1군단의 전력을 생각하면 영혼 각성을 한 존재라 해도 1군단을 궤멸시키는 것은 쉽지 않다.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2군단이 너무나 빠르게 궤멸당했다.

시간을 생각하면 불가능한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이야기는 이제 그만. 에파드를, 전사들을 믿는 게 좋겠구나."

더 이야기한다고 좋은 의견이 나올 것 같지는 않았다.

오히려 기분만 축 처질 것이다.

올라쿤의 말에 올라켄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눈치를 살피던 마르브가 물었다.

"오르드 부족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1군단에 보낸 전사들은 원래 오르드 부족과의 전쟁에 투입될 전사들이었다.

즉, 전선에 보낼 지원 병력이 붕 뜬 상태였다.

이대로라면 전장에 문제가 생길 것이다.

올라쿤은 마르브의 질문에 잠시 생각하다가 답했다.

"일단 모든 공격을 멈추고 방어에 집중하라 명령을 내리는 게 좋겠군."

1군단에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상황이 안정화될 때까지는 방어에 집중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 * *

오르드 부족 4구역장 크라젠의 거처.

현재 거처에는 거처의 주인인 4구역장 크라젠.

오르드 부족 최강 전사단인 '카쿰 전사단'의 단장 블레니, 세 번째 전사단 '하힐 전사단'의 단장 크라스.

세 리자드맨이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으음...."

"이게 대체...."

분위기가 심각한 이유는 조금 전 '3차 제약'이 해제됐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되어 해제된 게 아니다.

너무나도 이르게, 갑자기 해제됐다.

특정 조건이 충족되었다는 뜻인데 오르드 부족 입장에서 좋은 상황은 아닐 것이다.

"혹시 5구역을 궤멸시킨 인간과 관련된 걸까요?"

블레니가 말했다.

그러자 크라스가 동감한다는 얼굴로 답했다.

"저와 같은 생각을 하고 계셨군요."

크라스 역시 3차 제약이 해제된 이유가 5구역을 궤멸시킨 인간과 관련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크라스 님도 같은 생각을 하고 계셨다면 그대로 보고드리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블레니는 말끝을 흐리며 크라젠을 보았다.

"언제쯤 준비되겠습니까?"

"앞으로 10분이면 될 겁니다."

바로 그때였다.

크라젠이 답을 한 그 순간.

"...!"

"...!"

"...!"

세 리자드맨은 약속이라도 한 듯 눈을 번뜩였다.

스아아!

밝게 빛나는 탁자 위 수정구 때문이었다.

크라젠은 수정구를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고는 두 단장에게 물었다.

"...그 인간이 온 걸까요?"

* * *

[던전 '오르드 부족 4구역'에 입장하셨습니다.]

[24시간 동안 모든 입구가 봉쇄됩니다.]

[던전 클리어 시 봉쇄가 해제됩니다.]

[퀘스트 '석상 파괴'가 생성됐습니다.]

[퀘스트 '대전사장 크라젠'이 생성됐습니다.]

.

.

강진석은 메시지를 보며 생각했다.

'4구역이었구나?'

제166화

166.

5구역 옆에 있는 곳이 4구역인지 6구역인지 궁금했다.

그리고 지금 궁금증이 해결됐다.

물론 중요한 것은 아니었기에 강진석은 메시지 확인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이내 강진석은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5구역과 퀘스트 구성이 비슷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많이 달랐다.

정확히는 추가로 생성된 퀘스트들이 존재했다.

[퀘스트 '카쿰 전사단'이 생성됐습니다.]

[퀘스트 '카쿰 전사단장 블레니'가 생성됐습니다.]

[퀘스트 '하힐 전사단'이 생성됐습니다.]

[퀘스트 '하힐 전사단장 크라스'가 생성됐습니다.]

바로 전사단과 전사단장 퀘스트였다.

강진석은 퀘스트창을 열어 퀘스트를 확인했다.

'호오?'

그리고 눈을 번뜩였다.

카쿰 전사단은 오르드 부족 휘하 전사단 중 최강이라 불리는 전사단이었다.

중요한 것은 전사단에 속한 전사들이 전부 3차 제약 침공자라는 부분이었다.

'단장만 3차 제약 침공자라 생각했는데....'

전사단의 단장인 블레니만 3차 제약 침공자라 생각했다.

그런데 전부라니?

'그러면 하힐 전사단도...?'

강진석은 이어 하힐 전사단을 확인했다.

확인 후 강진석은 더할 나위 없이 활짝 웃었다.

하힐 전사단은 오르드 부족 휘하 전사단 중 세 번째로 강한 전사단이었다.

그리고 카쿰 전사단과 마찬가지로 소속 전사들이 전부 3차 제약 침공자였다.

강진석은 실실 웃었다.

'이러면 보상이....'

전사들이 몇 명인지 나와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적지는 않을 것이다.

보상 생각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혈력은 몰라도 혼력은 다 채울 수 있겠는데?'

개화역에서 혼력을 대거 올렸다.

4구역 청소를 마치면 혼력 100%를 충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혼력이 충족된다고 끝이 아니다.

혼력을 제외하고도 필요 재료가 24가지나 있었다.

그중 10가지는 이미 보유 중이었고 14가지만 더 모으면 된다.

그리고 14가지는 전부 상점창에서 판매하고 있었다.

비싸긴 했다.

그러나 카쿰 전사단, 하힐 전사단을 잡고 얻게 될 포인트를 생각하면 포인트가 부족할 일은 없었다.

즉, 4구역 청소를 마치면 영혼 각성 2레벨을 활성화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강진석은 싱글벙글 웃으며 퀘스트창을 그대로 켜둔 채 늪을 지나 호수로 향했다.

퀘스트창을 켜둔 이유는 확인할 것이 있기 때문이었다.

바로 퀘스트 '물의 이해'였다.

'쉽게 올랐으면 좋겠는데.'

퀘스트 '물의 이해'의 첫 번째 조건인 '물속 생활'.

강진석은 부디 '물속 생활'이 쉽게 오르길 기원하며 호수로 들어갔다.

그리고 진입과 동시에 강진석은 거대한 수중 도시를 볼 수 있었다.

'5구역이랑 비슷하네?'

카쿰 전사단과 하힐 전사단의 존재 때문에 5구역보다 훨씬 규모가 클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4구역의 도시 크기는 5구역과 비슷했다.

강진석은 도시로 향하며 퀘스트 '물의 이해'를 주시했다.

멈칫!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강진석은 이동을 멈췄다.

<물의 이해>

조건을 충족하라!

[물속 생활 : 1%]

[물의 보석 아쿠아린 : 0 / 10]

.

.

퀘스트 보상 : 스킬 '물의 이해' 1레벨 활성화

이동을 멈춘 이유는 물속 생활의 퍼센트가 올랐기 때문이었다.

물론 많이 오른 것은 아니다.

1%밖에 오르지 않았다.

그러나 호수에 진입한 지 1분도 지나지 않았다.

시간을 생각하면 매우 빠르게 올랐다고 할 수 있었다.

'계속 이렇게 올라 주면 좋겠는데.'

강진석은 부디 물속 생활이 빠르게 올라주길 바라며 퀘스트창을 닫았다.

오르는 것을 확인했으니 이제 청소에 집중할 차례였다.

바로 그때였다.

'...음?'

강진석은 고개를 들었다.

머리 위쪽에 희끄무레한 무언가가 있었다.

'눈?'

자세히 보니 눈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문제는 눈이 향하는 방향이었다.

'날 보는 것 같은데....'

강진석은 눈을 향해 지팡이를 겨눴다.

그러고는 바로 파괴 광선을 발동했다.

스앗!

파괴 광선은 눈의 중점을 관통했고.

아무런 소리 없이 눈이 흩어졌다.

그리고 그 순간 메시지가 나타났다.

[아키로스의 눈을 파괴하셨습니다.]

[포인트가 500만 상승합니다.]

강진석은 메시지를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눈의 정체 때문이 아니다.

보상 때문이었다.

'...500만?'

포인트가 무려 500만이나 상승했다.

강진석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조금 전 눈이 있던 자리를 보았다.

'아키로스의 눈이 뭐길래....'

500만이나 제공된 것을 보면 평범한 물건이 아니다.

그러나 생각을 한다고 알 수 있는 게 아니다.

강진석은 고개를 다시 내렸다.

그리고 도시를 향해 이동을 시작했다.

* * *

"...."

"...."

"...."

크라젠, 블레니, 크라스.

세 리자드맨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멍하니 반으로 갈라진 거울을 바라볼 뿐이었다.

"아키로스의 눈을 어떻게...."

침묵을 깬 것은 크라젠이었다.

아키로스의 눈은 아세르 부족의 대주술사 아키로스가 만든 아티펙트였다.

당연히 평범한 아티펙트가 아니다.

아티펙트를 만든 아키로스는 영혼 각성을 두 번이나 한 천재 중의 천재였다.

아키로스가 말하기를 웬만한 감지 능력으로는 아키로스의 눈을 찾을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적어도 벽을 넘어야 감지할 수 있을 것이라 했다.

즉, 인간이 아키로스의 눈을 파괴했다는 것은 인간이 벽을 넘어섰다는 뜻이다.

그래서 더 믿을 수 없었다.

벽을 넘어서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세 리자드맨은 알고 있었다.

특히 셋 중 유일하게 벽을 마주하고 있는 블레니는 다른 두 리자드맨보다 더욱 불신하고 있었다.

'어떻게 한 달도 지나지 않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시험이 시작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짧은 시간에 벽을 넘어섰다?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다고 해도 말이 되지 않는다.

더구나 블레니는 알고 있다.

이곳 지구의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 것 같군요. 어떻게 할까요?"

크라젠이 재차 입을 열었다.

인간은 곧 도시로 진입할 것이다.

벽을 넘어선 존재다.

이대로라면 도시에 피바람이 불 것이다.

어떻게 할 것인지 빠르게 대책을 세워야 했다.

"...이미 답은 정해져 있습니다."

불신에 잠겨 있던 블레니가 입을 열었다.

"혈폭진과 봉마진을 발동하고 저희 전사들과 하힐 전사단 그리고 4구역의 전사들이 한 곳에서 한 번에 공격하는 것, 그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군요."

블레니의 말에 여태껏 침묵하고 있던 크라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발동에 시간이 걸리니 바로 준비하시는 게 좋을 것 같군요."

두 리자드맨의 말에 크라젠은 난감한 표정으로 답했다.

"봉마진을 발동하면 통신 마법이 끊길 겁니다."

크라젠의 말에 크라스가 블레니를 보았다.

블레니는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벽을 넘어선 게 진짜라면 보고하고 봉마진을 발동시키는 것은 늦습니다. 그리고 보고한다고 상황이 해결되는 것도 아니구요. 보고는 상황이 종료되고 나서 하는 게 좋을 것 같군요."

"...알겠습니다."

크라젠은 블레니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 보니 틀린 말이 하나 없었다.

일단 인간을 상대할 준비를 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바로 그때였다.

"그, 급히 보고드릴 일이 있습니다!"

거처 밖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크라젠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렇지 않아도 좋지 않은 상황에 급히 보고할 게 있다니?

'설마 인간이 벌써 도시에?'

크라젠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입을 열었다.

"들어오거라."

그리고 크라젠의 말에 밖에 있던 다급한 목소리의 주인공이 들어왔다.

주인공을 확인한 크라젠은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목소리의 주인공은 감옥을 관리하는 간수장 엘레벤이었다.

엘레벤이 급히 보고할 일이 있다니?

대체 무슨 보고인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무슨 일이지?"

크라젠이 물었다.

그리고 엘레벤이 답했다.

"감옥에 장막이 나타났습니다. 진입할 수가 없습니다."

"...뭐?"

크라젠은 반문할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감옥에 장막이 왜 나타났단 말인가?

'설마....'

문득 영역에 침입한 인간이 떠올랐다.

아무리 봐도 영역에 침입한 인간과 관련이 있을 것 같았다.

"잠시 확인해 보고 오겠습니다."

크라젠이 블레니와 크라스에게 말했다.

그러자 블레니와 크라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같이 가지요."

"저도 가겠습니다."

그렇게 세 리자드맨은 곧장 거처에서 나와 감옥으로 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감옥 앞에 도착한 세 리자드맨은 볼 수 있었다.

감옥을 둘러싸고 있는 찬란하게 빛나는 푸른빛의 장막을.

장막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심상치 않았다.

크라젠은 잠시 장막을 바라보다가 전력을 다해 주먹을 뻗었다.

퉁!

장막에 주먹이 작렬했다.

그리고 크라젠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허공을 친 것 같았다.

주먹에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장막에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전력을 다한 공격이었다.

그럼에도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것.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였다.

시험을 관장하는 법칙의 힘이 개입했다는 것.

'망할.'

크라젠은 속으로 욕을 내뱉었다.

혹여나 최악의 상황이 발생하면 최후의 수단으로 인간들을 방패 삼으려 했다.

그런데 최후의 수단이 벌써 부터 막혀 버렸다.

"...바로 발동시키러 가보겠습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이제 남은 수단은 인간을 죽이는 것뿐이었다.

크라젠은 블레니와 크라스에게 말한 뒤 봉마진, 혈폭진을 발동시키기 위해 제단으로 향했다.

* * *

'음....'

강진석은 속으로 침음을 내뱉었다.

성벽을 넘어 도시에 진입한 순간 메시지가 나타났다.

문제는 메시지의 내용이었다.

[도시(4구역)에 입장하셨습니다.]

[감옥이 안전해집니다.]

[퀘스트 '생존자 구출'이 생성됐습니다.]

[퀘스트 '악인 색출'이 생성됐습니다.]

[퀘스트 '악인이 모두를 죽이기 전에'가 생성됐습니다.]

감옥이 안전해진다는, 발산역 입장 때 보았던 메시지가 있었다.

그리고 퀘스트가 3개나 생성됐다.

생존자 구출은 보지 않아도 어떤 퀘스트인지 알 것 같았다.

4구역 감옥에 갇혀 있는 이들을 구출하는 퀘스트가 분명했다.

문제는 다른 두 퀘스트다.

아직 내용을 확인하지 않았지만 퀘스트명만 봐도 심상치 않았다.

강진석은 퀘스트창을 열었다.

그리고 우선 '악인 색출'을 확인했다.

<악인 색출>

4구역 감옥에는 악인 무리가 있다.

악인 무리를 색출하라!

퀘스트 보상 : ???

악인을 색출하지 못할 경우 살아남은 악인들에게 막대한 보상이 지급됩니다.

퀘스트 '악인 색출'의 내용은 무척 단순했다.

말 그대로 감옥에 갇혀 있는 이들 중 악인들을 색출하면 되는 퀘스트였다.

'이건 신경 쓸 필요 없겠고.'

악인을 구별할 수 있는 강진석에게는 무척이나 쉬운 퀘스트였다.

진짜 문제는 다음 퀘스트 '악인이 모두를 죽이기 전에'였다.

<악인이 모두를 죽이기 전에>

감옥이 안전해진 것을 알게 된 악인들은 곧 생존자들을 죽여 포인트를 수급할 계획이다.

악인들이 모든 생존자를 죽이기 전에 생존자들을 구출하라!

퀘스트 보상 : ???

퀘스트 내용을 확인한 강진석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퀘스트창을 닫았다.

'우선 감옥부터 가야겠는데.'

차근차근 주변을 청소하며 가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랬다가는 악인들에 의해 많은 생존자들이 죽을 것이다.

강진석은 초감각을 통해 감옥의 위치를 찾기 시작했다.

제167화

167.

'...안쪽이나 반대쪽에 있나?'

샅샅이 탐색했으나 초감각 범위 안에는 감옥으로 추정되는 장소가 없었다.

'감옥이 중요하니까.'

천천히 찾을 상황이 아니다.

한시라도 빨리 감옥을 찾아야 했다.

강진석은 안쪽으로 공간이동을 했다.

그리고 다시 초감각을 통해 주변을 탐색했다.

수많은 리자드맨의 기운이 느껴졌다.

그러나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강진석은 감옥 탐색에 집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강진석은 눈을 번뜩였다.

감옥으로 추정되는 장소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거대한 장막에 둘러싸여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장막에서는 절대적 존재들의 압도적인 기운이 느껴졌다.

현재 감옥은 시스템에 의해 안전해진 상태였다.

즉, 절대적 존재들의 기운이 느껴지는 장막이 둘러싸고 있는 곳은 감옥일 확률이 매우 높았다.

강진석은 바로 공간이동을 했다.

그리고 도착과 동시에 강진석은 싱긋 웃었다.

예상대로 감옥이 맞았다.

강진석은 장막에 손을 가져다 댔다.

손은 장막을 그대로 장막을 통과했고 강진석은 안도했다.

혹여 상황이 종료되기 전까지 진입하지 못하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이었다.

강진석은 바로 장막을 지나쳤다.

그리고 그 순간 감옥 안에 있던 생존자들의 기운이 느껴졌다.

강진석은 생존자들의 기운과 감정을 살폈다.

생존자들은 두려움, 호기심, 의아함 그리고 살의까지 무척이나 다양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살의를 가지고 있는 이들은 전부 악인이었다.

기운이 전부 붉었고 몇몇은 선명한 붉은 반점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살의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악인이 아닌 것은 아니다.

살의는 없지만 기운이 붉거나 반점을 가지고 있는 이들도 많았다.

'...생각보다 많네.'

악인 '무리'였다.

한둘이 아닐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았다.

'어떻게 정리를 해야 할까.'

강진석은 잠시 고민했다.

악인을 구별할 수 있다.

그러나 강진석이 악인을 구별할 수 있다는 것을 이곳 생존자들은 모른다.

즉, 강진석이 악인들을 처리하면 반감을 가질 확률이 매우 높았다.

물론 반감 때문에 악인들을 내버려 둘 생각은 없다.

생존자들이 반감을 갖든 말든 악인 처리가 더 중요했다.

'일단 분류부터 하자.'

이러고 고민에 잠겨 있을 때가 아니다.

악인들의 살의가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곧 시작될 것이다.

우선 일반 생존자와 악인들을 떨어트려 놓아야 할 것 같았다.

강진석은 생존자들에게 텔레파시를 보내기 시작했다.

* * *

정찬혁은 박수호에게 조용히 말했다.

"준비는?"

박수호는 정찬혁의 질문에 싱긋 웃으며 답했다.

"전부 전달했어."

정찬혁의 명령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조직원들에게 전부 전했다.

"이따 신호만 주면 다들 시작할 거야."

"고생했다."

정찬혁은 박수호에게 답하며 활짝 웃고는 생각했다.

'이대로 죽나 했는데.'

리자드맨들에게 잡혀 감옥에 갇힌 뒤 꼼짝 없이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상황이 변했다.

감옥이 안전해졌다는 메시지와 함께 퀘스트가 생성됐다.

퀘스트명은 '당신이 선택한 길'이었다.

조건은 사람 10명을 죽이는 것.

보상은 막대한 보상과 도시 탈출이었다.

죽음을 기다리고 있던 정찬혁에게 한 줄기 빛과 같은 퀘스트였다.

바로 그때였다.

"엇?"

"어?"

주변 몇몇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뱉었다.

목소리를 내뱉은 것만 몇몇일 뿐이다.

거의 대부분이 흠칫했다.

"...?"

정찬혁은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왜 이런 반응을 보인단 말인가?

혹시나 무슨 메시지가 뜬 것일까 정찬혁은 메시지를 확인했다.

그러나 새로운 메시지는 없었다.

'뭐지?'

불길했다.

갑자기 느낌이 좋지 않았다.

정찬혁은 주변 이들이 왜 이러는지 확인하기 위해 앞에 있는 중년 사내에게 다가갔다.

"저기...."

"...네?"

"갑자기 왜 그러세요?"

"예?!"

그러자 중년 사내가 화들짝 놀라며 반문했다.

"그, 그게...."

그리고 말끝을 흐리며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정찬혁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중년 사내의 반응은 누가 봐도 겁을 먹은 사람의 반응이었다.

갑자기 왜 겁을 먹겠는가?

'퀘스트가 뜬 건가?'

아무래도 중년 사내에게 퀘스트가 뜬 것이 분명했다.

정찬혁이 받은 퀘스트 '당신이 선택한 길'과 다른 퀘스트가.

'바로 시작해야겠네.'

아무래도 시간을 더 주면 안 될 것 같았다.

정찬혁은 인벤토리에 숨겨 두었던 도끼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정찬혁이 도끼를 꺼내든 순간 옆에 있던 박수호는 물론 휘하 조직원들이 전부 따라 무기를 꺼내 들었다.

"저, 저녀석들!"

"진짜였어?!"

"미, 미친놈들아! 이게 뭐 하는...!"

많은 이들이 무기를 꺼내든 정찬혁과 조직원들에게 외쳤다.

그러나 정찬혁은 신경 쓰지 않았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고 시간을 주면 반격을 해올 수 있다.

그 전에 분위기를 휘어잡아 '전투'가 아닌 '사냥'을 해야 한다.

정찬혁은 싸늘한 표정으로 분위기를 조성하며 중년 사내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였다.

스앗!

중년 사내 앞에 무언가 나타났다.

갑작스레 나타난 무언가에 정찬혁은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재빨리 정신을 차린 뒤 눈앞에 나타난 것이 무엇인지 자세히 살폈다.

'...어?'

정찬혁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이었어?'

놀랍게도 무언가의 정체는 사람이었다.

정찬혁은 침을 꿀꺽 삼켰다.

나타난 것을 보지 못했다.

대체 어떻게 나타난 것일까?

생각에 잠긴 정찬혁은 움직이지 않았다.

움직이고 싶어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본능이 말하고 있었다.

움직이면 안 된다고.

바로 그때였다.

멀리 떨어져 있던 조직원이 근처에 있는 여인에게 달려들며 검을 휘둘렀다.

그와 동시에 눈앞에 있던 사내가 흐릿해지더니 사라졌다.

이어 검을 휘두르던 조직원이 빛났다.

그리고 사라졌다.

어떻게 된 것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했다.

조직원이 사라진 것은 조금 전 눈앞에서 사라진 사내의 짓이 분명했다.

스앗! 스앗!

이어 곳곳에서 빛이 번쩍이기 시작했다.

문제는 번쩍이는 것이 전부 조직원들이라는 점이었다.

뒤에 있던 박수호는 사라지는 조직원들을 보며 재빨리 무기를 버렸다.

그러나 아무런 의미 없었다.

스앗!

박수호 역시 빛과 함께 사라졌다.

무기를 버린 박수호가 사라진 순간 정찬혁은 깨달았다.

이대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해도 박수호나 조직원들과 같은 결말을 맞이할 것이다.

* * *

[악인을 처치하셨습니다.]

[포인트가 2만 5000 상승합니다.]

[모든 악인을 처치하셨습니다.]

[퀘스트 '악인이 모두를 죽이기 전에'를 완료하셨습니다.]

.

.

강진석은 메시지를 보고 생각했다.

'수준이 낮아서 그런가 보상이 영 별로네.'

악인의 수는 많았다.

그러나 수준이 매우 낮았다.

그래서인지 보상이 형편없었다.

'하기야 2차 제약 침공자 둘만 있어도 제압이 가능한 수준이었으니.'

악인 무리의 수준이 얼마나 낮았냐면 이곳 오르드 부족의 2차 제약 침공자가 둘만 있어도 가지고 놀 수 있을 정도로 낮았다.

수준을 생각하면 오히려 보상은 높은 편이라 봐야 했다.

강진석은 메시지에 대한 관심을 접고 주변을 보았다.

그리고 생존자들의 시선을 마주할 수 있었다.

"구,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상종 못 할 녀석들이 있을 줄은!"

이내 생존자들이 감사를 표하기 시작했다.

강진석은 생존자들의 감사 인사에 싱긋 웃으며 텔레파시를 보냈다.

[아직 밖에 리자드맨들이 남아 있습니다.]

텔레파시를 보낸 순간 생존자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침을 꿀꺽 삼키며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제가 마무리 할 때까지 여기서 잠시만 대기해 주세요. 곧 돌아오겠습니다.]

이어진 강진석의 텔레파시에 생존자들은 각기 다른 반응을 보였다.

몇몇은 안도를.

몇몇은 걱정을.

강진석은 생존자들의 반응을 살피며 텔레파시를 보냈다.

[아, 그리고 악인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싹 정리했으니까요. 그럼 나중에 뵙겠습니다.]

그렇게 마지막 텔레파시를 보낸 뒤 강진석은 감옥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초감각으로 주변을 탐색했다.

감옥 문제가 해결됐다.

이제 본격적으로 청소를 시작할 때였다.

'보스급들은 심층 영역에 있는 건가?'

초감각에 감지된 리자드맨들 중 3차 제약 침공자는 없었다.

전부 2차 제약 미만이었다.

아무래도 3차 제약 침공자는 심층 영역 안에 있는 것 같았다.

'심층 영역부터 정리할까?'

강진석은 고민했다.

심층 영역으로 들어가 먼저 보스급부터 청소할지 아니면 심층 영역 밖을 먼저 청소할지.

바로 그때였다.

"...!"

강진석은 눈을 번뜩이며 바닥을 보았다.

땅 밑에서 거대한 기운이 느껴졌다.

강진석은 싱긋 웃었다.

그리고 이어 바닥에 거대한 마법진이 나타났고 메시지가 나타났다.

[봉마진이 발동됐습니다.]

[마법 스킬이 봉인됩니다.]

[던전 내 모든 보상이 대폭 강화됩니다.]

[퀘스트 '섬멸 혹은 탈출'이 생성됐습니다.]

'...봉마진?'

마법진의 정체를 확인한 강진석은 고개를 갸웃했다.

불마진인 줄 알았는데 봉마진이라니?

'상위 마법진인가?'

5구역의 불마진은 이동 스킬만 봉인했다.

다른 스킬의 경우 약화만 됐을 뿐 봉인되지 않아 사용이 가능하긴 했다.

그런데 봉마진은 모든 마법 스킬이 봉인됐다.

아무래도 불마진의 상위 마법진 같았다.

'그럼 보상도 2배가 아니라 더 강화됐으려나?'

마법 스킬이 봉인됐다.

그러나 강진석은 아무런 걱정도 하지 않았다.

육체 제련을 마친 강진석은 마법 없이도 3차 제약 침공자 정도는 쉽게 잡을 수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어?'

땅 밑에서 거대한 기운이 또 느껴졌다.

'설마....'

스아악!

이어 바닥에 마법진이 하나 더 나타났고 메시지가 나타났다.

[혈폭진이 발동됐습니다.]

[모든 리자드맨들의 능력이 대폭 강화됩니다.]

[던전 내 모든 보상이 대폭 강화됩니다.]

[퀘스트 '섬멸 혹은 탈출'이 생성됐습니다.]

[해당 퀘스트를 진행 중입니다.]

[퀘스트 '섬멸 혹은 탈출'의 보상이 대폭 강화됩니다.]

메시지를 본 강진석은 더할 나위 없이 활짝 웃었다.

이번 마법진은 이전 5구역에서 겪었던 '혈폭진'이었다.

물론 혈폭진이라 웃은 것은 아니다.

'좋네.'

활짝 웃은 이유는 보상 때문이었다.

봉마진으로 한 번, 혈폭진으로 한 번.

보상이 두 번 강화됐다.

앞으로 얻게 될 보상을 생각하면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얼마나 강화됐으려나.'

당장 보상을 확인해 보고 싶었다.

'일반 몬스터보다는 그래도 2차 제약 침공자로 확인해야겠지.'

강진석은 확인을 위해 심층 영역 근처에 있는, 2차 제약 리자드맨들이 여럿 모여 있는 공터로 향했다.

공터에 도착하자마자 강진석은 2차 제약 리자드맨 7마리와 일반 리자드맨 50마리를 볼 수 있었다.

강진석은 혼돈의 구를 몽둥이로 변환 후 기운을 가득 주입했다.

그리고 땅을 찍었다.

쾅! 쩌저저저적!

몽둥이가 작렬하자마자 땅이 뒤집히며 흙덩이들이 비산했다.

흙덩이들은 리자드맨들을 덮쳤고 이어 메시지가 나타났다.

[오르드 부족 정찰대장 밀리네가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포인트가 60만 상승합니다.]

.

.

메시지를 통해 리자드맨들의 보상을 확인하던 강진석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강진석의 표정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미소가 사라진 이유는 생각지도 못한 메시지가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봉마진이 손상됐습니다.]

[봉마진의 효과가 사라집니다.]

.

.

제168화

168.

땅이 뒤집혔기 때문일까?

아니면 물리력이 마법진에 영향을 끼친 것일까?

봉마진이 손상되며 효과가 사라졌다.

당연히 봉마진만 손상된 것은 아니다.

[혈폭진이 손상됐습니다.]

[혈폭진의 효과가 사라집니다.]

.

.

혈폭진 역시 손상되어 효과가 사라졌다.

'...이 부근만 그런 거겠지?'

초감각을 통해 강진석은 보이지 않는 곳까지 감지할 수 있었다.

지금 위치에서는 봉마진과 혈폭진이 느껴지지 않지만,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는 봉마진과 혈폭진이 정상적으로 느껴졌다.

효과가 사라진 것은 강진석의 주변뿐으로 추정됐다.

'그래, 보상이 약화된다는 메시지는 없으니까.'

무엇보다 보상이 약화된다는 메시지가 나타나지 않았다.

즉, 손상과 파괴는 다르다.

그리고 만에 하나 파괴됐다고 해도 상관없다.

불마진이 파괴됐을 당시 보상 강화는 3시간 동안 유지됐다.

3시간이면 청소를 마치는데 전혀 부족함이 없는 긴 시간이었다.

강진석은 한결 편해진 표정으로 뒤집힌 주변을 보며 생각했다.

'그래도 앞으로 생각하고 있어야겠어.'

마법진에 영향이 갈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물론 영향이 간 것이 이상한 일이라는 것은 아니다.

주변 지형이 바뀔 정도로 여파가 거셌는데 영향을 끼치는 게 당연했다.

말 그대로 생각하지 못했을 뿐이다.

강진석은 다시 초감각에 집중했다.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서였다.

보상이 얼마나 강화됐는지 확인했으니 이제 청소에 집중할 때였다.

강진석은 가장 가까이 있는 리자드맨 무리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처음과 마찬가지로 몽둥이에 기운을 주입하며 바닥을 찍었다.

쾅! 쩌저저저적!

그러자 땅이 뒤집히며 흙덩이들이 비산했고.

범위 안에 있던 리자드맨들이 전부 죽음을 맞이했다.

[봉마진이 손상됐습니다.]

[봉마진의 효과가 사라집니다.]

.

.

당연히 이번에도 봉마진과 혈폭진이 손상됐다.

그러나 여전히 파괴 메시지는 보이지 않았다.

'내구성 좋네.'

강진석은 궁금했다.

'얼마나 더 손상되면 파괴가 되려나?'

중점을 파괴하지 않고도 손상만으로 마법진을 파괴할 수 있는지 없는지.

파괴가 된다면 얼마나 손상시켜야 하는지.

강진석은 확인을 위해 곳곳을 돌아다니며 땅을 뒤집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뒤 강진석은 멈칫했다.

봉마진과 혈폭진이 파괴됐기 때문은 아니다.

심층 영역에서 나온 강렬한 기운들 때문이었다.

한, 둘이 아니다.

수십이었다.

그리고 한 마리도 빠짐없이 전부 3차 제약 침공자였다.

세 부류로 나뉘어 움직이는 것을 보면 카쿰 전사단, 하힐 전사단 그리고 4구역의 전사들로 추정됐다.

'곧 들어가려 했는데.'

그렇지 않아도 바깥 청소를 어느 정도 마친 뒤 심층 영역으로 들어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오히려 밖으로 나와주다니?

'근데 동시에 상대 가능하려나?'

문득 든 생각에 강진석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육체 제련을 하기 전에도 3차 제약 침공자는 별 힘들이지 않고 잡을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서넛 이야기지 수십이나 되는 3차 제약 침공자를 힘들이지 않고 잡을 수 있을까?

그것도 동시에?

'카림의 사념 같은 걸 소환하면 위험할 것 같은데.'

전쟁 바람 부족 2군단장인 무엘은 카림의 사념을 소환했었다.

만약 오르드 부족의 리자드맨들이 카림의 사념 같은 비장의 무기를 가지고 있다면?

물론 없을 수도 있다.

여태껏 마주한 3차 제약 침공자 중 카림의 사념 같은 위협적인 비장의 무기를 가진 이는 몇 되지 않았다.

그러나 마냥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움직일 수는 없다.

목숨과 직결된 일이다.

만에 하나 비장의 무기를 가진 존재가 여럿 있다면 위험하다.

'...각개격파 하자.'

아무리 봐도 동시에 상대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안전하게 각개격파를 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어떻게 떼어낼까.'

강진석은 새로운 고민에 잠겼다.

세 부류로 나뉘어 있긴 했지만,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좀처럼 떨어질 것 같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리자드맨들을 떨어트릴 수 있을까?

'...역시 그 방법뿐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공간이동으로 사방을 돌아다니며 난장판을 피우는 것.

그것 말고는 떨어트릴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 안 떨어진다고 해도 리스크가 없으니.'

만약 떨어지지 않고 뭉쳐 이동한다고 해도 상관없다.

어차피 강진석은 청소를 하는 것이기에.

결정을 내린 강진석은 바로 공간이동을 시전했다.

* * *

"...."

"...."

"...."

카쿰 전사단장 블레니, 하힐 전사단장 크라스, 4구역장 크라젠.

세 리자드맨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멍하니 먼 곳을 바라볼 뿐이었다.

서로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게 아니다.

블레니는 서쪽을, 크라스는 동쪽을, 크라젠은 남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세 리자드맨이 각기 다른 곳을 바라보는 이유는 단순했다.

쾅....

콰앙....

쾅!

세 방향에서 불규칙적으로 굉음이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블레니는 미간을 찌푸렸다.

'혼자가 아니었나?'

당연히 혼자라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혼자가 아니라 말하고 있었다.

혹시 눈이 파괴된 이후에 추가로 침입한 것일까?

'그래, 거리를 생각하면.'

아무리 봐도 다른 누군가가 더 있는 것 같았다.

그게 아니고서야 지금 상황은 설명이 되지 않는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블레니는 여전히 멍한 상태에 빠져 있는 크라스와 크라젠에게 말했다.

"침입자가 더 있는 것 같군요."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러자 크라스와 크라젠이 답했고 블레니가 이어 물었다.

"저는 서쪽을 맡겠습니다. 두 분은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따로 가자는 말씀입니까?"

블레니의 물음에 크라젠이 놀란 얼굴로 반문했다.

"예, 다 같이 확인하기에는 너무 머니까요."

"그러다가 벽을 넘어선 존재를 마주하기라도 하면...."

"마주하면 즉시 신호탄을 쓰는 거로 하지요. 그리고 바로 지원을 가면 괜찮지 않겠습니까? 제아무리 벽을 넘어섰다고 해도 저희를 단숨에 죽이지는 못할 테니까요."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남쪽을 맡지요."

크라젠의 답을 들은 블레니는 크라스를 보았다.

"그럼 제가 동쪽을 맡겠습니다."

"이따 뵙지요. 다들 조심하시길."

그렇게 탐색 방향이 정해졌고 크라젠과 크라스가 전사들을 이끌고 각자의 방향으로 떠났다.

그리고 블레니 역시 카쿰 전사단을 이끌고 서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블레니는 이동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인간을 마주했기 때문이 아니다.

블레니가 이동을 멈춘 이유는 굉음의 여파를 마주했기 때문이었다.

'대체 어떻게....'

건물은 물론 조형물까지 모든 것이 완전히 뒤집혀 있었다.

어떻게 이런 광경을 만들어낸 것일까?

'설마 마법을?'

봉마진이 발동된 상태이긴 했다.

그러나 봉마진은 무적이 아니다.

봉마진의 제약보다 수준이 높은 마법사라면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

'아니야, 잔재가 없어.'

마법이 발동됐다면 마나의 잔재가 남는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마나의 잔재가 보이지 않았다.

'그럼 육체의 힘으로? 그건 더 말이 안 되는데.'

마법이 아니라면 남은 것은 하나뿐이다.

그러나 그것은 더더욱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육체의 힘으로 이런 광경을 만들어냈다?

'...설마 영혼 각성이 아니라 육체 제련을 했다?'

벽을 넘어서는 방법은 2가지다.

육체 제련과 영혼 각성.

당연히 이번에 침입한 인간이 벽을 넘은 방법은 '영혼 각성'이라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육체 제련은 처음부터 무척이나 위험하기 때문이었다.

'말도 안 돼.'

블레니가 본 이곳 지구 인간의 허약한 육체로는 절대 불가능한 게 육체 제련이었다.

적어도 몇 년 동안은 육체를 강화해야만 시도할 수 있을 정도로 지구 인간들의 육체는 나약했다.

그런데 지금 주변 상황은 인간이 육체 제련을 했다고 말하고 있었다.

"...단장님?"

생각에 잠겨 있던 블레니는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답했다.

"가지."

그리고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얼마 지나지 않아 블레니는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 걸음을 멈춘 이유는 새로운 굉음의 여파를 마주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전방에 나타난 인간 때문이었다.

블레니는 다급히 손목에 달아둔 신호탄에 기운을 주입했다.

펑! 펑! 펑!

그리고 신호탄이 허공으로 떠올라 폭발하며 형형색색의 빛을 수놓았다.

물론 블레니는 신호탄이 정상적으로 터졌는지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없었다.

블레니는 인간을 주시했다.

잠시라도 눈을 떼면 큰일이 날 것 같았다.

그러나 블레니의 생각은 아주 잘못된 생각이었다.

눈을 떼지 않는다고 큰일이 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 싱긋 웃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 순간 블레니는 조금 전 보았던 굉음의 여파를 떠올렸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뒤쪽에 있는 전사들에게 외쳤다.

"다들 방...."

그러나 블레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콰아아앙!

굉음이 울려 퍼졌다.

"...!"

땅이 뒤집히며 날아오는 흙덩이에 블레니는 기운을 끌어올려 보호막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보호막에 흙덩이가 작렬했고 엄청난 위력에 블레니는 깨달았다.

따로 움직여서는 안 됐다고.

* * *

강진석은 마지막 리자드맨을 향해 몽둥이를 휘둘렀다.

이미 앞서 여러 번 피격 당한 리자드맨의 기운은 바닥난 상태였다.

리자드맨은 막지 않고 허망한 표정으로 몽둥이를 바라보았다.

이내 몽둥이가 리자드맨의 머리에 작렬했다.

쾅!

그리고 굉음과 함께 메시지가 나타났다.

[카쿰 전사단장 블레니가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포인트가 4500만 상승합니다.]

[퀘스트 '카쿰 전사단장 블레니'를 완료하셨습니다.]

[기여도에 따라 보상이 차등 지급됩니다.]

[1등 보상을 획득합니다.]

.

.

메시지를 본 강진석은 더할 나위 없이 활짝 웃었다.

블레니의 자체 제공 포인트는 4500만이었다.

거기다 퀘스트 '카쿰 전사단장 블레니'가 완료되며 1억이 올랐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블레니는 카쿰 전사단의 마지막 전사였고 퀘스트 '카쿰 전사단' 또한 완료됐다.

전사단 전원이 3차 제약 침공자이기 때문일까?

퀘스트 '카쿰 전사단'의 보상은 앞서 받은 두 보상보다 훨씬 큰 2억 5000만이었다.

'포인트 티켓까지 생각하면....'

기본 포인트 티켓도 도합 3000만이나 제공됐다.

'주변에서 넘어온다고 해도 문제없겠어.'

강진석은 기본 포인트 티켓을 직접 사용할 생각이 없었다.

길드원 육성에 사용할 생각이었다.

강진석은 사용처를 생각하며 보상에 대한 관심을 거뒀다.

그리고 초감각에 집중했다.

하힐 전사단과 4구역 전사들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마중 나가는 게 좋겠지.'

이대로라면 거의 동시에 도착할 것이다.

각개격파를 위해서는 먼저 다가가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생각을 마친 강진석은 남쪽에서 올라오는 리자드맨들에게 공간이동을 했다.

도착과 동시에 리자드맨 무리가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고 강진석은 싱긋 웃으며 몽둥이에 기운을 가득 주입 후 전력을 다해 땅을 내리찍었다.

콰아앙!

그러자 땅이 뒤집히며 흙덩이들이 비산해 리자드맨 무리를 덮쳤다.

물론 3차 제약 침공자들답게 흙덩이에 죽지는 않았다.

그러나 죽지 않았을 뿐이다.

-크익!

-크륵!

보호막으로 반응을 한 몇몇 리자드맨을 제외하고는 피를 토해낼 정도로 큰 피해를 입었다.

강진석은 카쿰 전사단 때처럼 공간이동으로 거리를 좁혀 큰 피해를 입은 리자드맨들의 머리를 몽둥이로 내리찍기 시작했다.

쾅! 쾅!

[오르드 부족의 대전사장 네리스가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포인트가 1900만 상승합니다.]

.

.

한 마리를 죽이는데 두 방이면 됐다.

강진석은 계속해서 몽둥이를 휘둘러 리자드맨들을 죽이며 생각했다.

'이 정도면 다 같이 모여 있었어도 쉬웠겠는데?'

제169화

169.

동시에 전부 상대하는 것은 위험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각개격파를 선택한 것이다.

그런데 막상 상대해 보니 굳이 각개격파를 하지 않았어도 됐을 것 같았다.

'자신감을 좀 가질 필요가 있겠어.'

걱정 때문에 오히려 시간을 낭비하게 된 상황이었다.

향후 3차 제약 침공자를 상대할 때에는 너무 걱정하지 말고 자신감 있게 행동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이내 마지막 리자드맨이 죽음을 맞이했고 강진석은 동쪽을 보았다.

마지막 리자드맨 무리, 하힐 전사단이 다가오고 있었다.

강진석은 하힐 전사단이 도착하길 기다리며 퀘스트창을 열었다.

그리고 우선 퀘스트 '영혼 각성'을 확인했다.

<영혼 각성>

조건을 충족하라!

[혼력 : 94%]

.

.

[공허의 보석 라툴레타 : X]

퀘스트 보상 : 스킬 '영혼 각성' 2레벨 활성화

세계 침공자 처치 시 혼력이 자동 수집됩니다.

동족 처치 시 혼력이 자동 수집됩니다.

앞서 잡은 리자드맨들 덕분에 혼력은 90%를 훌쩍 넘어섰다.

앞으로 6%만 더 올리면 100%였다.

'하힐 전사단만 잡으면....'

강진석은 싱긋 웃었다.

굳이 도시 내 모든 리자드맨을 잡을 필요 없다.

지금 다가오고 있는 하힐 전사단만 죽여도 100%가 될 것 같았다.

물론 혼력이 100%가 된다고 바로 완료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재료가 필요했다.

그러나 재료 중 일부를 가지고 있었고 없는 것들은 상점창에서 구매하면 된다.

즉, 퀘스트 완료는 확정이라 할 수 있었다.

'순식간이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2레벨 활성화가 다가왔다.

'3레벨도 순식간이려나?'

강진석은 3레벨을 생각하며 퀘스트 '물의 이해'를 확인했다.

<물의 이해>

조건을 충족하라!

[물속 생활 : 50%]

[물의 보석 아쿠아린 : 0 / 10]

.

.

퀘스트 보상 : 스킬 '물의 이해' 1레벨 활성화

'이것도 벌써 절반이나....'

오랜 시간을 보낸 게 아니다.

그런데 조건 '물속 생활'은 어느새 50%가 되어 있었다.

'청소 끝나고도 좀 있어야겠는데.'

원래는 청소를 마칠 때쯤이면 물속 생활 100%를 충족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예상보다 청소가 일찍 끝나 충족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강진석은 퀘스트창을 닫았다.

그리고 혼돈의 구에 기운을 주입하며 고개를 돌려 동쪽을 보았다.

이내 시야에 수많은 리자드맨이 나타났고 강진석은 싱긋 웃으며 공간이동을 통해 거리를 좁혔다.

그리고 바로 땅을 내리찍었다.

콰아아아앙!

* * *

4구역 감옥.

모든 생존자가 흥분 가득한 표정과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제 곧 끝나는 거겠죠?"

"네, 보스급 리자드맨들은 전부 죽었으니까요! 아무 문제 없을 겁니다!"

"근데 포인트 진짜 미쳤는데요?"

"아무것도 안 하고 이 정도 포인트라니...."

"저만 오른 거 아니죠...?"

"그 질문 벌써 다섯 번째예요."

"강진석 님은 대체 어떤 분일까요?"

"그러게요. 솔직히 포인트 다 투자해도 그분처럼 강해질 수는 없을 것 같은데...."

생존자들의 이야기 주제는 여러 가지였다.

현재 상황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고 포인트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고 강진석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석상이 파괴됐습니다.]

[퀘스트 '석상 파괴'를 완료하셨습니다.]

[영역이 파괴됐습니다.]

.

.

메시지가 주르륵 나타났다.

그리고 메시지가 나타난 순간 약속이라도 한 듯 모든 생존자가 입을 다물었고 정적이 찾아왔다.

말 그대로 순간이었다.

"...대, 대박!"

"...살았다!"

5초도 지나지 않아 생존자들의 입에서 환호가 터져 나오며 정적이 깨졌다.

물론 환호도 오래가지 않았다.

머릿속에 울린 목소리 때문이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폭발 마법진만 해제하고 가겠습니다.]

[그리고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제가 이끌고 있는 길드가 있습니다. 현재 길드원의 수는....]

* * *

봉제산 가입 대기실.

웅성웅성.

강진석은 대기실에서 웅성대는 4구역 생존자들을 보며 생각했다.

'이번에는 얼마나 가입하시려나?'

생존자들에게 길드의 존재를 알린 뒤 일단 전부 봉제산으로 데려왔다.

물론 가입 때문에 전부 데려온 것은 아니다.

권유만 했을 뿐 선택권은 생존자들에게 있다.

바로 그때였다.

-전사, 무도가 같은 근접 전투 직업인 분들은 첫 번째, 두 번째 천막 앞으로 와주세요! 빨간색 천막입니다.

대기실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한지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사냥꾼이나 궁사, 마법사 같은 원거리 전투 직업인 분들은 세 번째, 네 번째 천막 앞으로 와주세요! 파란색 천막이구요.

생존자들은 한지윤의 말에 삼삼오오 모여 대기실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생존자가 대기실을 떠났고 강진석은 한지윤이 있는, 봉제산 정상에 만든 지휘소로 이동했다.

"고생하셨습니다."

강진석은 막 자리에서 일어나는 한지윤에게 말했다.

"엇, 오셨군요! 아닙니다! 제가 한 거라고는 방송밖에 없는 걸요."

한지윤은 싱긋 웃으며 답했다.

그리고 이어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면접도 안 들어가구요...!"

한지윤 역시 강진석과 마찬가지로 면접장에 들어가지 않는다.

관리해야 할 간부들이 대거 늘었기 때문이었다.

면접 볼 시간에 간부들을 관리하는 게 더 나은 상황이 되었다.

"아, 그리고 말씀하신 농장은 이틀이면 완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 개간 중입니다!"

"어, 벌써요?"

강진석은 살짝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농장을 만들어야겠다고 말한 것은 4구역에 가기 전이었다.

즉, 몇 시간 지나지 않았다.

거기다 계획한 농장 규모는 텃밭 수준이 아니다.

그런데 벌써 완공 시기가 나오다니?

"네, 이미 안전이 확보된 지역이기도 하고 허가를 받을 필요가 없어졌으니까요."

"아하."

강진석은 이해했다는 듯 탄성을 내뱉었다.

건물을 짓든, 농사를 짓든, 무엇을 하던 더 이상 정부의 허가가 필요 없는 세상이 되었다.

그리고 스킬과 아티펙트 때문에 작업 능률도 비약적으로 상승한 상황이었다.

완공 시기가 빠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또 보고드릴 게 있습니다."

"...?"

이어진 한지윤의 말에 강진석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한지윤이 서랍을 열더니 서류 더미를 꺼냈다.

서류 더미의 두께는 무척이나 두꺼웠다.

"여기 있습니다."

한지윤이 두터운 서류 더미를 내밀었다.

"...이게 뭐죠?"

일단 강진석은 서류 더미를 받으며 물었다.

"길드원들의 가족들이 있는 곳입니다. 지역별로 취합했습니다!"

"아."

강진석은 탄성을 내뱉었다.

한지윤에게 농장 말고도 한 가지를 더 부탁했다.

길드원들의 가족 혹은 구해야 할 사람을 취합해 알려달라고.

"벌써 됐군요."

길드원의 수가 워낙 많아 꽤나 시간이 걸릴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빨리 될 줄이야?

"네, 이번에 가입한 분들도 따로 취합해 보고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강진석은 한지윤의 말에 답하며 우선 가장 위에 있는 서류를 확인했다.

가장 위에 있는 서류는 '서울'에 있는 이들이었다.

'...계실까?'

서울 전부를 확인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강진석이 확인한 곳들은 대부분 환경이 좋지 않았다.

죽었거나 혹은 다른 곳으로 떠났을 확률이 매우 높았다.

'그래도 최대한 구해 봐야지.'

이내 서울 서류를 전부 확인한 강진석은 서류 더미를 인벤토리에 보관했다.

그리고 한지윤을 보았다.

한지윤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강진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궁금한 게 있다면 언제든지 말하라는 표정이었다.

"고생하셨습니다."

"아닙니다! 혹시 궁금하신건...?"

"지금 당장은 없습니다."

"옙! 혹시나 궁금한 게 생기시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세요!"

"네, 그리고 이제 김포공항역에 갈 생각입니다."

4구역을 끝으로 이제 강서구에 남은 몬스터들의 영역은 김포공항 일대뿐이었다.

김포공항역을 시작으로 일대를 정리한다면 강서구 내 남은 몬스터들의 영역은 없다.

청소가 끝나는 것이다.

"청소 끝내고 바로 떠날 생각이구요."

그리고 청소가 끝나면 강진석은 바로 정동진에 갈 생각이었다.

제약이 풀릴까 봐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제 움직이지 않아도 제약이 풀린다.

더 이상 미룰 이유가 없었다.

"알겠습니다! 혹시 저희가 따로 해야 하거나 준비할 일이 있을까요?"

"확실하지는 않지만 강서구 청소를 끝내는 순간 무슨 일이 벌어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수비에 집중해 주세요."

"몬스터들이 쳐들어올 수도 있을까요?"

"네,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일단 영역은 강화해 두겠습니다."

"옙!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제가 영혼 각성을 할 예정인데 혹시나 개화역 쪽에 무슨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그 여파일 테니 너무 걱정은 마시구요."

김포공항 청소를 하기 전 강진석은 영혼 각성 2레벨을 활성화할 생각이었다.

1레벨 때에는 별일 없었다.

그렇다고 2레벨에도 별일 없으리란 보장은 없다.

"네! 혹시나 필요하신 일이 생기시면 바로 말씀해 주세요!"

"네. 그럼."

강진석은 싱긋 웃으며 인사하고는 바로 개화역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개화역 창고에서 영혼 각성에 필요한 재료를 찾기 시작했다.

'역시 있었네.'

퀘스트 '영혼 각성'의 필요 재료는 혼력을 제외하고 24가지였다.

그중 10가지는 봉제산 창고에서 챙겼다.

그리고 남은 14가지 중 10가지가 개화역 창고에 있었다.

강진석은 상점창을 열었다.

'4개는 결국 사야겠네.'

남은 4개 재료를 구매하기 위해서였다.

강진석은 바로 검색을 통해 4개 재료를 구매했다.

[모든 조건이 충족됐습니다.]

마지막 재료를 구매한 순간 메시지가 나타났고 강진석은 퀘스트창을 열었다.

퀘스트 '영혼 각성'의 완료 버튼이 활성화되어 있었다.

강진석은 개화역 지하에 있는 훈련장으로 이동했다.

'별일 없이 됐으면 좋겠는데.'

그리고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완료 버튼을 눌렀다.

[스킬 퀘스트 '영혼 각성'을 완료하셨습니다.]

[스킬 '영혼 각성'의 2레벨이 활성화됩니다.]

.

.

완료와 동시에 수많은 메시지가 나타났다.

그러나 강진석은 메시지에 신경 쓸 수 없었다.

완료와 함께 찾아온 변화 때문이었다.

육체 제련 때처럼 고통이 찾아온 것은 아니다.

영혼 각성 1레벨 때처럼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변한 것도 아니다.

변한 것은 세상이었다.

'이게 뭔....'

강진석은 주변을 스윽 훑었다.

온통 검었다.

강진석은 고개를 내렸다.

바닥 역시 검었다.

아니, 바닥이란 게 존재하는 것 같지 않았다.

허공에 둥둥 떠 있는 느낌이었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자신의 육체 뿐이었다.

'뭐지 대체?'

강진석은 의아한 표정으로 메시지창을 확인했다.

이 상황은 영혼 각성 때문일 것이다.

즉, 메시지창에 상황에 대한 메시지가 있을 것이다.

'...어?'

그리고 메시지를 본 강진석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활성화와 동시에 생성된 퀘스트가 있었다.

문제는 퀘스트명이었다.

강진석은 바로 퀘스트창을 열어 생성된 퀘스트를 확인했다.

그리고 퀘스트 내용을 확인 후 인상을 구겼다.

제170화

1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