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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3 - 120-130

제120화

120.

관리창을 열자 무수히 많은 목록이 나타났다.

-길드 정보

-길드 영역

-직위 권한 설정

.

.

메시지에 나온 대로 요새 관리창의 기능 역시 전부 이전되어 있었다.

물론 완전히 똑같이 이전되지는 않았다.

명칭이 바뀌기도 했고 합쳐지기도 했다.

'그런 영역이면....'

강진석은 기대감을 듬뿍 키우며 두 번째에 자리한 길드 영역을 선택했다.

선택과 동시에 지도가 나타났다.

지도에는 현재 강진석이 소유하고 있는 요새들이 표시되어 있었다.

동떨어져 있는 선유도역과 서초역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보였다.

강진석은 일단 현재 위치해 있는 공항시장역을 클릭했다.

그러자 요새 정보창이 나타났다.

중요한 것은 요새의 정보가 아니다.

강진석은 오른쪽 하단을 보았다.

"...!"

그리고 눈을 번뜩였다.

오른쪽 하단에 2개의 버튼이 있었다.

[영역 확장]

[영역 강화]

바로 영역 확장과 강화였다.

강진석은 일단 확장을 클릭했다.

그러자 머릿속에 영역 확장에 대한 정보가 떠올랐다.

'맞네.'

강진석은 활짝 웃었다.

길드 영역은 이름만 다를 뿐 몬스터들의 영역과 같은 효과를 가지고 있었다.

아니, 머릿속에 떠오른 정보가 사실이라면 동급이 아닌 상위호환이라 봐야 했다.

영역뿐만 아니라 확장에 대한 모든 것을 파악한 강진석은 확장 버튼을 클릭했다.

그러자 요새 정보창이 사라지고 다시 지도가 나타났다.

강진석은 지도를 확대했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공항시장역 주변을 선택하며 오른쪽 상단을 보았다.

[필요 포인트 : 2만 4500]

오른쪽 상단에는 숫자가 쓰여 있었다.

숫자는 고정되어 있지 않았다.

[필요 포인트 : 3만 8900]

강진석이 선택한 영역이 늘어날수록 숫자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포인트가 많이 들긴 하네.'

숫자의 정체는 영역 확장에 필요한 포인트였다.

'강화는 또 얼마나 들려나?'

문득 든 생각에 강진석은 영역 선택을 멈췄다.

[영역을 확장하시겠습니까?]

확인창이 나타났고 강진석은 확인을 눌렀다.

[영역이 확장됐습니다.]

[적대 세력이 영역에 영향을 받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메시지가 나타났고 강진석은 메시지를 보며 생각했다.

'적대하게 될 사람들이 생길까?'

적대 세력은 세계 침공자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길드 기능 중 하나인 '적대 선포'에 등록된 이들 역시 포함된다.

'...그래, 분명 생기겠지. 최동팔 같은 녀석들이 없을 리 없으니.'

어스뷰2에 있던 악인 '최동팔'.

시험이 시작되고 곳곳을 돌아다녔으나 강진석이 발견한 악인은 최동팔뿐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악인이 없다는 증거가 되지는 않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악인은 점점 많아질 것이다.

그리고 악인이 아니더라도 적대 선포를 하게 될 세력이 생길 것이다.

모두의 뜻이 같을 수는 없기에.

생각을 마친 강진석은 이어 영역 강화를 클릭했다.

그리고 지도와 함께 새로운 선택창이 나타났다.

[버프 강화]

[디버프 강화]

목록을 확인한 강진석은 일말의 고민도 없이 바로 버프 강화 버튼을 클릭했다.

그러자 선택창이 사라지고 새로운 목록이 나타났다.

1. 힘 강화

2. 민첩 강화

3. 체력 강화

4. 정신력 강화

5. 모든 능력치 강화

6. 이동 속도 강화

7. 공격 속도 강화

.

.

'와....'

목록을 본 강진석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강화 종류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다양했다.

얼마나 다양하냐면 스킬 숙련도의 상승 속도도 강화가 가능했다.

'...포인트가 얼마나 들려나.'

이어든 생각에 강진석은 침을 꿀꺽 삼켰다.

힘, 민첩 같은 능력치는 많이 들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숙련도 상승 속도나 공포 저항 같은 특수한 것들은 포인트를 엄청나게 잡아먹을 것 같았다.

강진석은 확인을 위해 일단 스킬 숙련도 상승 속도 강화를 클릭했다.

그리고 조금 전 확장했던 영역을 그대로 선택하며 필요 포인트를 확인했다.

[필요 포인트 : 7만 4500]

.

.

[필요 포인트 : 13만 8900]

강진석은 선택을 멈췄다.

전부 선택한 게 아니다.

확장된 영역의 절반도 선택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선택을 멈춘 것은 더 이상 확인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말도 안 되게 들어가네.'

필요 포인트가 어마어마했다.

'뒤덮는 건 힘들겠는데?'

포인트가 별로 들지 않는다면 요새끼리 선을 그어 내부를 전부 영역으로 뒤덮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포인트 소모량을 보니 전부 뒤덮는 것은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일단 요새 주변 위주로 강화해야겠어.'

향후 강화 방향을 결정한 강진석은 확장 때와 달리 강화하지 않고 목록을 그냥 닫았다.

마음에 드는 대로 강화할 게 아니라 나중에 자세히 확인하고 효율을 따져 강화해야 할 것 같았다.

이어 강진석은 디버프 강화를 클릭했다.

1. 힘 약화

2. 민첩 약화

3. 체력 약화

4. 정신력 약화

5. 모든 능력치 약화

6. 이동 속도 약화

7. 공격 속도 약화

.

.

디버프 강화는 버프 강화와 비슷했다.

다른 것이라고는 '강화'가 '약화'로 변한 것뿐이었다.

'포인트도 같겠지?'

강진석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스킬 숙련도 상승 속도 약화를 선택 후 필요 포인트를 확인했다.

'역시.'

예상대로 버프 강화와 디버프 강화의 필요 포인트는 같았다.

강진석은 전과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목록을 닫았다.

'그나마 다행이네, 이제 길드원들이 획득하는 포인트 일부가 들어오니까.'

포인트 소모처만 생긴 게 아니다.

다행히 수급처도 생겼다.

앞으로 길드원들이 획득하는 포인트의 1%가 요새 포인트로 적립된다.

길드원들의 포인트를 뺏어 적립하는 게 아니다.

길드원들의 획득 포인트는 그대로다.

불만이 생길 일도 없는 것이다.

'퀘스트 포인트도 적립되면 좋았을 텐데.'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길드원들이 퀘스트를 통해 얻는 포인트는 적립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하기야 퀘스트 포인트까지 적립되면 말이 안 되긴 하지.'

강진석은 아쉬움을 떨쳐내고 적립된 포인트를 확인했다.

[적립 포인트 : 900]

'음?'

확인과 동시에 강진석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0일 것이라 생각했다.

길드 시스템이 활성화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그런데 왜 900인 것일까?

'설마 사냥하고 계시나?'

혹시 방화역에 남아 있는 입주자들 중 일부가 사냥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근데 9만 포인트나?'

적립되는 포인트양은 1%다.

900이라는 것은 길드원들이 9만 포인트를 얻었다는 뜻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 짧은 시간에 9만 포인트나 얻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남아 있는 이들의 수준은 그리 높지 않기에.

'잠깐, 설마....'

강진석은 문득 든 생각에 눈을 번뜩였다.

'무구 제작이나 조리도 적립이 되는 건가?'

생각해 보니 포인트를 얻는 방법은 사냥과 퀘스트만 있는 게 아니다.

대장장이들의 경우 무구 제작을 통해, 연금술사의 경우 포션, 스크롤 제작으로, 조리사의 경우 요리를 통해 포인트를 얻는다.

[적립 포인트 : 903]

[적립 포인트 : 908]

[적립 포인트 : 920]

잠깐 생각하는 사이 20이 늘었다.

아무리 봐도 사냥이 아니다.

'확인해 봐야겠다.'

돌아가는 대로 확인을 하기로 한 강진석은 적립창을 닫았다.

그리고 싱긋 웃었다.

'퀘스트 빼고 다 적립되는 거면....'

확실치 않지만 예상대로라면?

요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빨리 가자.'

이어 강진석은 방화역에서 입주 아니, 가입을 기다리는 이들을 떠올렸다.

한시라도 빨리 돌아가 가입시키고 싶었다.

빠르게 가입시킬수록 포인트 적립량도 늘어날 것이기에.

'버프랑 디버프 알리면 대부분 가입하시겠지.'

아직 영역 버프나 디버프를 강화하지 않았다.

그래서 모든 능력치를 1씩 올려주고, 1씩 내리는 기본 상태였다.

그러나 1씩이어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가입 조건을 듣고 고민하는 이들도 버프와 디버프의 존재를 알게 되면 바로 마음을 정할 것이다.

강진석은 입주자들이 대기하고 있는 공동으로 공간이동을 했다.

길드 시스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던 입주자들은 강진석이 나타나자 약속이라도 한 듯 말을 멈추고 강진석을 보았다.

[고생하셨습니다. 이제 귀환하겠습니다.]

[길드 관련해서는 회의 후 바로 전달 드리겠습니다.]

강진석은 입주자들에게 텔레파시를 보냈다.

그리고 이어 관리자들에게만 추가로 텔레파시를 보냈다.

[귀환 후 바로 회의를 할 생각입니다. 회의실로 와주세요.]

텔레파시를 보낸 뒤 강진석은 1회용 이동 게이트를 설치했다.

그리고 입주자들이 순서에 맞춰 방화역으로 귀환을 시작했다.

귀환하는 입주자들을 보며 강진석은 적립 포인트를 확인했다.

[적립 포인트 : 1050]

잠깐 사이에 적립 포인트가 1000을 돌파했다.

강진석은 적립 포인트를 보며 생각했다.

'...뒤덮을 수 있을지도.'

모든 요새를 선으로 잇고 내부를 영역으로 뒤덮어 완전한 안전 구역을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포인트가 너무 들어 반쯤 포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적립 포인트를 보니 희망이 보였다.

'요새 주변에 집중하는 것도 괜찮아 보이고.'

뒤덮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꼭 그래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확장하는 대신 강화에 집중한다면?

엄청나게 강화해야겠지만 강진석의 개입 없이 입주자들의 힘만으로 3차 제약 침공자를 막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 * *

"그래서 일단 메인 거점이라 할 수 있는 방화역과 내일 침공이 있을 마곡나루역의 영역을 강화하려 합니다."

말을 마친 강진석은 회의실 내 관리자들 아니, 간부들을 보았다.

강진석의 시선에 관리자에서 부길드장이 된 한지윤이 입을 열었다.

"혹시 방화역 영역은 스킬 숙련도 상승 속도를 강화하실 생각이실까요?"

한지윤의 질문에 몇몇 간부들이 눈을 번뜩이며 강진석을 보았다.

그리고 강진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네, 일단 비전투 직업 길드원분들이 전부 방화역에 계시니까요. 스킬 숙련도 상승 속도에 체력 회복까지 다양하게 강화할 생각입니다. 마곡나루역은 일단 능력치와 저항 같은 버프만 강화할 생각이구요."

질문에 대한 답을 마친 강진석은 이어 한지윤에게 물었다.

"질문하신 이유가 혹시 상주 인원 때문이실까요?"

한지윤이 잠시 멈칫했다가 답했다.

"...네, 너무 방화역에 모여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방화역, 개화산역, 공항시장역, 마곡나루역, 신방화역 등 길드 소유 요새는 무척 많았다.

그러나 모든 인원이 방화역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로 인해 숙소를 포함한 각종 시설들이 전부 포화 상태였다.

몇몇 길드원들은 가입을 했음에도 요새가 아닌 근처 오피스텔에서 머물고 있었다.

지금이야 아무런 불만도 없지만 그것은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불만이 생길 것이고 곧 문제로 번질 것이다.

한지윤의 답에 강진석은 싱긋 웃으며 답했다.

"그렇지 않아도 이주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강진석 역시 현 상황에 대한 문제를 파악하고 있었다.

방화역에 몰려도 너무 몰렸다.

공간 확장이 된 상태임에도 자리가 부족했다.

그래서 강진석은 조만간 다른 요새로 길드원들을 이주시킬 생각이었다.

물론 길드원들만 이주시켜서는 안 된다.

그들을 관리할 간부도 함께 이주시켜야 했다.

강진석은 간부들의 분위기를 살폈다.

이주 이야기에 몇몇은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냈지만 나머지는 눈치를 살폈다.

눈치를 살피는 이유가 무엇일까?

'남고 싶어 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네.'

확실치는 않지만 이주를 꺼리기 때문으로 추정됐다.

바로 그때였다.

"저기...."

부길드장 다음 직위인 '단장'이 된 유성윤이 손을 들었다.

제121화

121.

강진석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유성윤이 이어 말했다.

"이주를 생각하신다고 하셨는데 전부가 옮겨가는 게 아니라 분할을 말씀하시는 거겠죠?"

"맞습니다. 각 요새로 인원을 나눠 보낼 생각입니다."

"그러면 해당 요새를 관리할 사람도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저희가 관리하게 되는 걸까요?"

"예, 부길드장님들이나 단장분들께 각 요새 관리를 맡길 생각입니다."

"그러면...."

말끝을 흐린 유성윤이 눈치를 살폈다.

강진석은 유성윤이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는 지 알 것 같았다.

'영역 이야기겠지?'

영역 버프와 디버프에 대한 질문이 분명했다.

그리고 이 부분은 유성윤만 궁금해하는 게 아닐 것이다.

다른 간부들 역시 궁금해하고 있을 확률이 100%다.

강진석은 먼저 이야기를 꺼내기로 결정하고 입을 열었다.

"영역 버프는 같을 겁니다. 다만 해당 요새에서 포인트 티켓을 모아 요청한다면 추가로 강화해 드릴 수는 있겠죠."

"...스킬 숙련도 속도 상승 같은 것도요?"

"네, 어떤 것이든."

"오오! 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유성윤은 무척이나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유성윤뿐만이 아니다.

표정이 좋지 않았던 몇몇 간부들의 표정도 밝아졌다.

강진석은 간부들의 반응에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이주에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 * *

검은 숲의 근간인 세계수 카르실의 열다섯 번째 뿌리 심처.

현재 심처에는 엘프가 넷 있었다.

넷 중 셋은 검은 숲 엘프들을 이끄는 하이엘프 하나린, 둘리안, 폴리타셋이었고 남은 하나는 보고를 하러 온 엘프 크나비였다.

"...다시 한번 말해보거라."

하나린이 크나비에게 말했다.

그러자 크나비가 침을 꿀꺽 삼키고 조금 전 했던 보고를 다시 하기 시작했다.

"차가운 뿌리 고블린들이 일제히 후퇴했습니다. 이후 영역을 공격 중임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것을 보아 완전히 철수한 것으로 보입니다."

보고를 마친 크나비는 다시 한번 침을 삼키고 세 하이엘프의 눈치를 살폈다.

"...."

"...."

"...."

세 하이엘프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크나비를 바라볼 뿐이었다.

한없이 이어질 것 같던 정적을 깬 것은 둘리안이었다.

"녀석들이 갑자기 왜 철수한 걸까요?"

둘리안의 말에 하나린은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입을 다문 채 생각에 집중했다.

그리고 폴리타셋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함정 아닐까요?"

실제로 영역을 포기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영역은 곧 힘이다.

아무 이유 없이 힘을 포기한다?

저항도 하지 않고?

누가 봐도 수상한 상황이었다.

뭔가 술수를 부려놨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야만 지금 상황이 설명된다.

"샅샅이 확인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차가운 뿌리 부족의 영역 상징을 파괴하는 것으로 안심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파괴 후 수상한 부분이 없는지 곳곳을 꼼꼼히 확인해야 할 것 같았다.

때마침 생각을 끝낸 하나린이 크나비에게 말했다.

"영역을 파괴하고 철저히 확인한 후에 조각을 설치하라 전하거라. 혹여 특별한 것이 발견되면 바로 보고하고."

"명을 받듭니다."

크나비는 하나린의 말에 답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고개를 꾸벅 숙여 세 하이엘프에게 인사 후 심처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크나비가 떠난 뒤 하나린이 둘리안에게 물었다.

"혹시 선유도역은 어떻게 됐나요?"

일전에 선유도역을 빼앗겼다.

둘리안이 알아서 하겠다고 말해 신경을 껐다.

그러나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선유도역 상황에 대해 알아야 할 것 같았다.

"...."

하나린의 질문에 둘리안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것이...."

둘리안은 말끝을 흐리며 머뭇거렸다.

머뭇거리는 이유는 선유도역에 보냈던 이들이 전부 당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답을 하지 않을 수는 없기에 둘리안은 침을 꿀꺽 삼킨 뒤 입을 열었다.

"전부 당했습니다. 추가로 보내려 했지만 차가운 뿌리와 열화 사막 녀석들 때문에 보낼 인원이 없어 경계 명령만 내려둔 상태입니다."

추가로 보내고 싶어도 움직일 수 있는 이들의 수준이 너무 낮았다.

보내봤자 당할 것이 뻔했다.

그래서 경계 명령만 내린 상태였다.

"그렇군요."

하나린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끄덕임을 멈춘 뒤 하나린이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혹시 선유도역을 공격한 게 차가운 뿌리 녀석들의 짓이 아닐 수 있지 않을까요? 녀석들이 당했을 수도 있다고 보는데."

당연히 차가운 뿌리 부족 고블린들의 짓이라 생각했다.

영역을 맞대고 있기에.

그러나 그게 아니라면?

맞대고 있는 차가운 뿌리 부족의 영역이 이미 다른 종족에게 점령당했고 선유도역을 공격한 것도 다른 종족이라면?

"...!"

"...!"

둘리안과 폴리타셋은 놀란 반응을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일리가 있었다.

선유도역을 공격한 게 다른 종족의 짓이고 해당 종족과 차가운 뿌리 부족이 맞붙은 상황이라면 지금의 이해 가지 않는 후퇴도 설명이 된다.

물론 가능성이 높지는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차가운 뿌리 부족과 영역을 맞댄 종족은 오르드 부족과 전쟁 바람 부족이었다.

그리고 오르드 부족과 전쟁 바람 부족은 서로 전쟁 중이었다.

그들이 갑자기 차가운 뿌리 부족을 공격했을 가능성은?

0에 가깝다.

"문득 든 생각인데...."

폴리타셋이 눈치를 살피며 입을 열었다.

"지구의 인간 짓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

"...?"

하나린과 둘리안은 폴리타셋의 말에 그게 무슨 소리냐는 표정을 지었다.

"그럴 리가요."

먼저 입을 연 것은 둘리안이었다.

"이곳 인간들은 터무니없이 약합니다. 보시지 않았습니까?"

침공 후 수많은 지구의 인간들을 마주했다.

무척 약했다.

세 하이엘프가 자리한 장소의 인간들만 약한 게 아니다.

곳곳에서 올라온 보고에 따르면 피해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법칙들의 성격을 생각하면...."

폴리타셋은 바로 수긍하지 않았다.

"뭔가를 주지 않았을까요?"

시험을 만든 법칙들.

법칙들은 세계 침공자의 편도 아니고 침공받은 세계의 편도 아니다.

그래서 항상 균형을 맞춘다.

어느 한쪽이 쉽게 무너지지 않게.

물론 완벽한 균형은 아니다.

대부분 침공자들이 유리하기는 했다.

"그럴 수 있겠네요. 저희가 받은 제약이 강력하기는 하나 인간들의 수준을 보면 뭔가를 더 줬을 것 같기도...."

하나린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침공자들이 받은 제약은 무척 강력했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지구 인간들의 수준은 낮았다.

법칙들이 뭔가를 더 줬을 수 있다.

성장력이라든가 조건부 힘이라든가.

하나린의 동의에도 둘리안의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도 한 달도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사이에 차가운 뿌리 부족 고블린들이 당할 정도로 지구 인간들이 성장했을 것 같지는 않군요."

둘리안의 말에 하나린과 폴리타셋은 아무런 반박도 할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맞는 말이었다.

시간이 오래 흐르지 않았다.

법칙들이 무엇을 주었든 지구 인간들이 선유도역을 점거하고 차가운 뿌리 부족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세 하이엘프는 약속이라도 한 듯 고개를 돌려 입구를 보았다.

똑똑

"제3 첩보단장 블란슈입니다. 급히 보고드릴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내 노크와 함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거라."

하나린이 말했고.

끼이익.

문이 열리며 블란슈가 들어왔다.

블란슈는 들어오자마자 한쪽 무릎을 꿇어 예를 갖춰 인사했다.

"무슨 일이냐?"

하나린의 물음에 블란슈가 입을 열었다.

"열화 사막 오크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이틀 내로 공격을 해 올 것 같다는 보고가 올라왔습니다."

블란슈의 보고를 들은 세 하이엘프는 전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런 세 하이엘프의 반응에 블란슈는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상황이 좋지 않다.

검은 숲 주력 부대는 차가운 뿌리 고블린들과 전쟁 중이다.

지금 상황에 열화 사막 오크들이 쳐들어오면 막는 게 힘들다.

그런데 어찌 웃는단 말인가?

블란슈의 의아함은 이어진 하나린의 말에 해결됐다.

"차가운 뿌리 녀석들이 꼬리를 말고 도망쳤다."

"...!"

"지금 바로 명령을 내려 동쪽으로 보낼 테니 오크 녀석들을 전부 죽일 준비를 하라 전하거라."

* * *

봉제산 메라키오의 천막.

"후퇴 완료했습니다. 아마도...."

말끝을 흐리며 메타킨은 지도에 손가락을 올렸다.

손가락을 올린 곳은 검은 숲과 맞대고 있는 차가운 뿌리 부족의 영역이었다.

"이곳부터 이곳까지 전부 파괴될 겁니다."

"...알겠다."

메라키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로 끝이었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메타킨은 잠시 눈치를 살피다가 이어 말했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명령대로 후퇴하기는 했다.

전장에서의 후퇴만으로도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그런데 영역까지 버렸다.

이렇게까지 모든 것을 버리고 후퇴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었다.

전장에서만 후퇴하고 영역을 지키는 게 낫지 않았을까?

"어차피 검은 숲 엘프들은 만족하지 않고 공격해 올 텐데요."

차가운 뿌리 부족에서 마음대로 끝낼 수 있는 전쟁이 아니었다.

검은 숲 엘프들은 자신들의 영역 상징을 설치 후 안정화한 뒤 계속해서 진격해 올 것이다.

메타킨의 말에 메라키오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 중요한 건 인간들이다. 인간들을 마무리 짓지 않으면 검은 숲 엘프들과의 전쟁에서 승리한다고 해도 의미가 없지, 녀석들의 속도를 보면 그만큼 영역을 빼앗길 테니까."

인간들의 진격 속도는 무척이나 빨랐다.

엘프들의 영역을 뺏는다고 해도 그 이상으로 빼앗길 확률이 높았다.

문제는 엘프들의 영역을 빼앗는 데 들어가는 힘과 시간이다.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

지금 1순위는 인간들을 정리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검은 숲 엘프들은 무지하지 않다."

메타킨은 엘프들의 공격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메라키오는 안다.

검은 숲 엘프들이 얼마나 '의심'이 많은지.

"오히려 그래서 더 의심하겠지, 함정이 아닐까? 라고."

지금 상황에 검은 숲 엘프들이 마냥 진격해 올까?

아니, 이번에 차가운 뿌리 부족에서 포기한 영역을 샅샅이 탐색할 것이다.

무슨 술수를 부려둔 게 아닐까 하고.

"녀석들이 눈치를 챌 때면 상황은 정리될 거다."

그리고 검은 숲 엘프들이 모든 상황을 파악했을 때에는 인간들을 정리한 상황이니 문제 없을 것이다.

"...만약 그때까지 정리가 되지 않는다면요?"

잠자코 이야기를 듣던 메타킨이 물었다.

메라키오는 당연히 정리될 것이라 말하고 있으나 그것은 모든 상황이 생각대로 흘러갈 때의 이야기다.

메타킨이 보기에 인간들의 힘은 약하지 않다.

정리가 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그때까지 정리가 안 된다?"

메타킨의 물음에 메라키오가 반문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모르겠느냐?"

"...!"

이어진 메라키오의 말에 메타킨은 눈을 번뜩였다.

생각해보니 만약 검은 숲 엘프들이 모든 상황을 파악할 때까지 상황이 정리되지 않는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차가운 뿌리 부족의 파멸이다.

즉, 어떻게 해서든 시간 내 정리를 해야 했다.

제122화

122.

"되돌릴 수 없는 일이다. 이럴 시간에 조금이나마 힘을 회복하는 게 좋을 것 같구나."

"...알겠습니다."

메타킨은 메라키오의 말에 답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꾸벅 숙여 인사 후 천막에서 나왔다.

밖으로 나온 메타킨은 곧장 자신의 거처로 향했다.

얼마 뒤 거처에 도착한 메타킨은 탁자에 앉아 대기하고 있는 수많은 고블린들을 볼 수 있었다.

전부 메타킨이 이끄는 파벌 소속 고블린들이었다.

메타킨은 자연스레 걸음을 옮겨 상석에 앉았다.

휘하 고블린들의 시선이 집중됐고 메타킨이 입을 열었다.

"전력을 다하실 생각이시더군."

메타킨의 말에 휘하 고블린들 중 몇몇은 침음을 몇몇은 눈을 번뜩였다.

휘하 고블린들의 반응을 확인한 메타킨이 물었다.

"다들 어느 정도 회복했지?"

메타킨의 물음에 휘하 고블린들은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파벌 2인자이자 2부족장 마사드였다.

"2차 제약이 해제된 덕분에 40% 정도 회복했습니다."

"...!"

"...!"

마사드의 말에 대부분 놀란 반응을 보였다.

고작 40%라서가 아니다.

무려 40%다.

그도 그럴 것이 마사드는 3차 제약 7단계였다.

3차 제약 7단계의 40%는 결코 얕볼 수 없다.

이곳에 있는 이들 중 몇몇의 경우 100% 회복해도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다.

메타킨은 이어 마사드 옆에 있던 로그라나를 보았다.

그러자 로그라나가 답했다.

"50% 정도 회복했습니다."

로그라나의 답을 들은 메타킨은 그 옆에 있던 믈린을 보았다.

그렇게 차근차근 모든 휘하 고블린들의 상태를 파악한 메타킨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이 정도면....'

생각했던 것보다 휘하 고블린들의 회복 상태가 좋았다.

인간들과의 전쟁에서 파벌의 힘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들 돌아가 회복에 전념해 줬으면 좋겠군, 인간 녀석들을 휩쓸고 나서 바로 검은 숲을 불태워야 할 테니."

인간들을 정리한다고 모든 게 다 끝나는 것은 아니다.

검은 숲 엘프들과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인간들을 정리하고 나서 바로 전쟁이 시작될 수 있다.

그때는 이번보다 더 위험할 것이다.

조금이라도 더 회복을 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알겠습니다."

"예, 명을 받듭니다."

메타킨의 말에 휘하 고블린들이 답했다.

그리고 이어 하나, 둘 인사 후 거처를 떠났다.

그렇게 모든 고블린이 떠났고 메타킨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구석에 설치한 마법진으로 향했다.

털썩.

이어 마법진 중앙에 가부좌를 튼 메타킨은 오른손을 들었다.

그러자 마법진에서 보랏빛 연기가 뿜어져 나와 오른손을 빙빙 돌기 시작했다.

메타킨은 힘을 회복하며 생각했다.

'전면에 나서야 할까?'

인간들과의 전쟁에서 바로 전면에 나서면 공을 세울 수 있다.

'아니면 상황을 좀 지켜봐야 할까.'

그러나 인간들의 수준과 능력이 정확히 파악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예상치 못한 능력에 상처라도 입는다면 향후 계획에 큰 문제가 생길 것이다.

'그래, 어차피 메타벤 녀석이 선봉으로 나서려 할 테니.'

현재 메타벤은 메라키오의 명령을 받아 발산역에 있었다.

거기다 연결 역인 '마곡역'에는 메타벤의 수하들이 포진되어 있었다.

마곡역은 첫 격전지가 될 마곡나루역과 붙어 있다고 할 수 있는 곳이었고 메타벤이 이번 기회를 놓칠 리 없다.

분명 선봉으로 나서 공을 세우려 할 것이다.

메타벤을 통해 인간들의 수준을 완벽히 파악하고 움직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 * *

[영역을 강화하시겠습니까?]

확인창이 나타나자 강진석은 확인을 눌렀다.

[영역이 강화됐습니다.]

그리고 메시지를 본 강진석은 마곡나루역의 영역 정보를 확인했다.

아군)

[힘 +10]

[민첩 +10]

[체력 +10]

[정신력 +10]

[모든 회복력 +1%]

.

.

적대 세력)

[힘 -10]

[민첩 -10]

[체력 -10]

[정신력 -10]

'이 정도면....'

강화에 많은 포인트를 투자했다.

버프와 디버프를 통해 능력치 차이만 무려 20이다.

'바로 죽지는 않겠지.'

물론 3차 제약 침공자는 지금 영역 수준으로 감당할 수 없다.

일반 길드원뿐만 아니라 간부도 감당이 안 된다.

적어도 영역 버프와 디버프가 지금보다 5~6배는 강해져야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정도로 3차 제약 침공자는 강하다.

그러나 이 정도만 되어도 한 번에 죽지는 않을 것이다.

몇 번 버틸 수 있을 것이고 지금 상황에서 그 정도면 충분하다.

영역 확인을 마친 강진석은 시간을 확인했다.

이제 남은 시간은 3시간.

3시간 뒤 침공이 시작될 것이다.

바로 그때였다.

[차가운 뿌리 부족이 전력을 다합니다.]

[퀘스트 '마곡나루역 수비'의 정보가 갱신됩니다.]

[퀘스트 '마곡나루역 수비'의 난도가 강화됩니다.]

[퀘스트 '마곡나루역 수비'의 보상이 강화됩니다.]

[퀘스트 '증미역 수비2'의 정보가 갱신됩니다.]

.

.

메시지가 주르륵 나타났다.

강진석은 메시지를 보고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게 무슨.'

차가운 뿌리 부족이 전력을 다한다니?

전력을 다하는데 왜 퀘스트 정보가 갱신되고 난도와 보상이 강화된단 말인가?

참으로 불길했다.

강진석은 초감각에 집중했다.

메시지는 모두에게 나타났는지 모두 웅성거리고 있었다.

일단 강진석은 퀘스트창을 열었다.

그리고 우선 곧 시작될 퀘스트 '마곡나루역 수비'를 확인했다.

<마곡나루역 수비>

3시간 뒤 차가운 뿌리 부족의 고블린들이 마곡나루역을 침공할 예정이다.

공격을 막아 마곡나루역을 지켜내라!

[기여도 : 0]

퀘스트 보상 : ???

"...."

확인과 동시에 강진석은 미간을 찌푸렸다.

여러 몬스터에서 차가운 뿌리 부족의 고블린으로 명확히 명시됐다.

그뿐만이 아니다.

'지하도가 사라졌어?'

원래 침공은 지하도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그런데 이번에는 지하도라는 단어가 사라졌다.

그 말은 지하도가 아닌 지상으로 공격을 올 수도 있다는 뜻이다.

물론 강진석의 예상일 뿐이다.

전과 마찬가지로 지하도를 통해서만 공격해 올 수 있다.

그러나 솔직히 그럴 가능성은 0에 가깝다.

아무리 봐도 지상으로 공격을 올 것 같았다.

'...영역이 지상도 포함이라 다행이긴 한데.'

영역 버프와 디버프는 지하도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당연히 지상에도 적용이 된다.

즉, 지상으로 공격을 온다고 해도 영역 효과는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지하도와 달리 지상은 방어해야 할 구역이 너무 넓었다.

영역 효과를 받을 수 있다고 해도 아주 큰 문제였다.

'끙....'

강진석은 속으로 앓는 소리를 내뱉으며 갱신된 퀘스트들을 하나하나 확인하기 시작했다.

<증미역 수비2>

6일 뒤 차가운 뿌리 부족의 고블린들이 증미역을 침공할 예정이다.

공격을 막아 증미역을 지켜내라!

[기여도 : 0]

퀘스트 보상 : ???

'...당겨졌네.'

넉넉했던 '증미역 수비2'의 침공 시기가 크게 앞당겨졌다.

혹시나 다른 퀘스트들도 시기가 앞당겨졌는지 강진석은 빠르게 확인했다.

'영역을 맞대고 있어서 그런가...?'

다른 역과 달리 전쟁 바람 오크들과 영역을 맞대고 있는 개화산역, 공항시장역의 경우 전과 비슷했다.

지하도가 사라지긴 했으나 여전히 '여러 몬스터들'이란 단어가 쓰여 있었다.

'으음....'

이내 모든 퀘스트를 확인한 강진석은 속으로 침음을 내뱉으며 간부들에게 텔레파시를 보냈다.

[잠시 정찰 좀 갔다 올게요.]

[침공 전에는 돌아오겠습니다.]

텔레파시를 보낸 뒤 강진석은 역 밖으로 나왔다.

수많은 이들이 줄을 서 있었다.

근처에 숨어 살고 있던 이들이었는데 줄을 선 이유는 당연히 가입 때문이었다.

'3시간 안에 안 끝나겠지?'

침공 시작까지 3시간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인원을 보니 그 안에 끝날 것 같지 않았다.

지상으로도 공격을 올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대로면 휘말릴 확률이 100%다.

강진석은 길드 관리창을 열었다.

그리고 마곡나루역 내부에 대기소를 만들고 입장 권한을 변경했다.

그리고 입장 관리를 맡고 있는 길드원들에게 텔레파시를 보냈다.

[역 안쪽에 대기소를 만들어 뒀습니다.]

[안전바로 표시해 뒀으니 전부 안에서 대기시켜 주세요.]

텔레파시를 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줄을 서 있던 이들이 쭉쭉 역으로 들어갔다.

역으로 들어가는 이들을 보며 강진석은 여전히 거처에서 머물고 있는 이들에게 텔레파시를 보냈다.

[3시간 뒤 고블린들이 대대적인 공격을 해올 예정입니다.]

[역으로 대피하시거나 혹은 방화역 쪽으로 대피해 주세요.]

[지금 계신 곳은 위험할지도 모릅니다.]

물론 이렇게 말해도 거처에서 나오지 않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여태까지 안전했으니까.

이번에도 안전할 것이라 믿고 버티려는 이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상황은 이전과 많이 다르다.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강제로 끌어내 안전 구역으로 데리고 갈 수는 없기에.

강진석은 부디 많은 이들이 움직이길 기원하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마곡역 방향을 보았다.

거대한 목책 장벽과 선명한 검은색 장막이 시야에 보였다.

영역 때문에 초감각으로도 장막 내부를 파악하기가 힘들었다.

물론 힘든 것이지 아예 파악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목책에 가까이 있는 고블린들은 감지할 수 있었다.

'...전보다 확실히 늘었네.'

2시간 전 마곡나루역에 도착했을 때 확인했었다.

그리고 1시간 전에도 확인했었다.

두 번의 확인 때에는 고블린의 수가 같았다.

그런데 지금은 그때보다 4배 정도 늘어난 상태였다.

괜히 목책 쪽에 수가 늘어난 게 아닐 것이다.

'저 녀석들이 전부 지상으로 공격해 오면....'

강진석은 잠시 상상해 봤다.

'혼자서는 힘들 것 같은데.'

광역 공격 스킬을 여러 개 가지고 있다면 모를까 지금 감지된 고블린들이 사방에서 달려온다면 혼자 막을 자신이 없었다.

그렇다고 지하에 있는 인원을 지상으로 끌어오자니 지하 쪽에 구멍이 생길 것 같았다.

강진석은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했다.

'미리 정리 해버려?'

문득 든 생각에 강진석은 눈을 번뜩였다.

꼭 침공을 기다려야 할까?

먼저 공격하면 안 되는 것일까?

'...일찍 시작되기라도 하면.'

그러나 이어든 생각에 강진석은 선공을 보류할 수밖에 없었다.

공격을 했다가 즉시 침공이 시작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큰 혼란이 발생할 것이고 막대한 피해로 이어질 것이다.

강진석은 어떻게 해야 할지, 좋은 방법이 없는지 다시 고민에 빠졌다.

'...선유도역에서 공격해 봐?'

얼마 지나지 않아 강진석은 다시 눈을 번뜩였다.

선유도역 역시 차가운 뿌리 부족과 영역을 맞대고 있었다.

그러나 선유도역은 다른 역과 달리 검은 숲 엘프들의 영역에 자리하고 있었다.

즉, 고블린들이 선유도역을 공격한다면?

검은 숲 엘프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만에 하나 충돌하지 않아 선유도역을 잃어도 상관없다.

선유도역은 어차피 길드원들을 입주시키기도 애매한 곳이었다.

잃는다고 해도 후에 필요할 때 다시 탈환하면 그만이었다.

'그래.'

결정을 내린 강진석은 다시 길드 관리창을 열었다.

길드 관리창을 연 이유는 당연히 선유도역으로 이동하기 위해서였다.

길드 시스템이 활성화되며 여러 기능이 생겼다.

그중에는 길드장 전용 기능인 '영역 이동'도 있었다.

영역 이동은 말 그대로 길드 영역 내 어디든 이동할 수 있는 기능이었다.

조건 없이 무한히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영역 내에서만 사용이 가능했고.

한 시간에 한 번만 사용이 가능했다.

정확히는 시간 내 더 사용하려면 포인트를 소모해야 한다.

100을 시작으로 2배씩 늘어난다.

부담되는 수준이 아니기에 솔직히 말해 신경 쓸 필요 없는 조건이기도 했다.

[해당 지점으로 이동하시겠습니까?]

선유도역을 선택하자 확인창이 나타났고 강진석은 확인을 눌렀다.

제123화

123.

스앗!

확인을 누르자마자 발밑에 마법진이 나타났다.

그리고 곧 빛이 번쩍이며 강진석은 선유도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도착과 동시에 강진석은 메시지창을 확인했다.

'...?'

메시지창을 확인한 강진석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런 메시지가 나타나지 않았다.

'2차 제약 조기 해제 메시지 왜 안 떠?'

선유도역은 영등포구에 위치해 있었다.

그래서 당연히 2차 제약 조기 해제 경고 메시지가 뜰 것이라 생각했다.

'요새 안이라서 그런가?'

지금 강진석은 분명 영등포구에 있다.

그러나 요새 안이었다.

경고 메시지가 나타나지 않은 것은 요새 내부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

강진석은 확인을 위해 입구로 향했다.

그리고 요새에서 한 걸음 나오자마자.

[영등포구에 입장하셨습니다.]

[3분 안에 영등포구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영등포구의 2차 제약이 조기 해제됩니다.]

[세번째 입장입니다.]

[네번째 입장 시 2차 제약이 조기 해제됩니다.]

메시지가 주르륵 나타났다.

예상대로 메시지가 나타나지 않았던 것은 요새 안에 있기 때문이었다.

'이러면 서초역도....'

강진석은 서초역을 떠올렸다.

서초역 역시 선유도역과 마찬가지로 요새 내에서는 메시지가 뜨지 않을 것으로 추정됐다.

'일단 이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오래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강진석은 경고 메시지에 대한 생각을 끝내고 초감각에 집중했다.

근처에서 엘프들이 여럿 감지됐다.

경계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정리였다.

그러나 이어 든 생각에 생각이 바뀌었다.

고블린들이 선유도역을 공격할지도 모른다.

이이제이를 위해서는 내버려 두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강진석은 들키지 않게 공간이동으로 훌쩍 이동했다.

그리고 바로 한 번 더 공간이동을 해 강서구로 귀환했다.

귀환과 동시에 강진석은 혼돈의 구에 기운을 주입해 월아창으로 변환시켰다.

'역시 여기도 전보다 많아졌네.'

신목동역 주변 또한 전에 왔을 때보다 고블린의 수가 대폭 증가한 상태였다.

'어디서 이렇게 나타난 거지?'

강진석은 궁금했다.

대체 이 많은 고블린이 어디서 온 것인지.

계속 생각한다고 알 수 있는 일은 아니기에 강진석은 생각을 멈췄다.

그리고 싱긋 웃었다.

'어쨌든 잘됐어.'

그렇지 않아도 최대한 큰 피해를 야기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리 개체수가 많아지다니?

고블린들의 수준이 높지는 않지만 그래도 숫자를 생각하면 유의미한 피해를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강진석은 근처에 있는 고블린 무리에게 다가갔다.

거리는 순식간에 가까워졌고 강진석은 바로 월아창을 내질렀다.

공격 대상이 된 고블린은 월아창은 물론 강진석이 다가온 것도 인지하지 못했다.

푝!

월아창은 그대로 고블린의 등을 꿰뚫었고.

-....

스아앗!

고블린은 비명조차 내뱉지 못하고 그대로 빛으로 변해 가온 팔찌에 흡수됐다.

강진석은 다음 고블린을 향해 월아창을 내지르며 메시지창을 힐끔 보았다.

[고블린을 처치하셨습니다.]

[포인트가 250 상승합니다.]

새로 나타난 메시지는 처치 메시지와 포인트 상승 메시지뿐이었다.

그 외에는 아무런 메시지도 나타나지 않았다.

푝!

스아앗!

[고블린을 처치하셨습니다.]

[포인트가 250 상승합니다.]

두 번째 고블린이 죽었음에도 마찬가지다.

강진석은 세 번째 고블린을 향해 월아창을 내지르며 생각했다.

'언제쯤 100%가 될까.'

전환율 메시지가 나타날 리 없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네임드 고블린을 흡수한 것도 아니고 일반 고블린을 흡수한 것이니.

다만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힐끔 봤을 뿐이다.

'이번 침공 막으면 가능하려나?'

강진석은 마곡역에 있는 고블린들을 떠올렸다.

단순히 개체수만 많은 게 아닐 것이다.

3차 제약 침공자도 여럿 있을 것으로 추정됐다.

그들을 흡수한다면 전환율이 100%가 되지 않을까?

'아니면....'

강진석은 신목동역 입구를 보았다.

'저기서 가능하려나?'

주변을 돌아다니는 고블린들의 숫자를 보면 신목동역 안에도 무수히 많은 고블린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신목동역의 보스가 3차 제약 침공자라면?

신목동역에서도 전환율 100%가 가능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시간 내로 탈환할 수 있을까?'

문제는 시간이었다.

처음부터 탈환을 생각하고 온 게 아니다.

신목동역 탈환은 지금 즉흥적으로 떠오른 생각이었다.

'...전력을 다하면 될 것 같기도 한데.'

온전히 탈환을 목적으로, 꼼꼼히 살피지 않고 죽이는 데에만 집중하면 가능할 것 같았다.

'안 되면 뭐 나가면 되니까.'

만에 하나 시간 내 탈환이 불가능하다?

그러면 공간이동으로 탈출하면 된다.

고민을 마친 강진석은 남은 고블린들을 처치했다.

그리고 가장 가까이 있는 다음 무리에게 다가갔다.

신목동역에 진입 전 근처에 있는 고블린들을 한 마리도 남김없이 깔끔히 정리할 생각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역 근처 모든 고블린을 처치한 강진석은 3번 입구로 향했다.

그리고 역에 진입과 동시에 메시지가 주르륵 나타났다.

[던전 '신목동역'에 입장하셨습니다.]

[24시간 동안 모든 입구가 봉쇄됩니다.]

[던전 클리어 시 봉쇄가 해제됩니다.]

[퀘스트 '작은 제단 파괴'가 생성됐습니다.]

[퀘스트 '수색대장 클라모'가 생성됐습니다.]

.

.

[퀘스트 '신목동역 지하 3층'이 생성됐습니다.]

[퀘스트 '신목동역 탈환'이 생성됐습니다.]

[30분 뒤 안전 구역이 사라집니다.]

메시지를 보자마자 강진석은 미간을 찌푸렸다.

'수색대장이네....'

신목동역의 보스는 수색'대장'이었다.

3차 제약 침공자이길 기대했던 강진석은 단장이 아닌 것에 아쉬워하며 안전 구역에서 나왔다.

그리고 빠르게 계단을 따라 지하 1층으로 향했다.

* * *

신목동역 지하 3층 지휘소.

현재 지휘소에는 신목동역을 관리하는 12수색대장 클라모가 심각한 표정으로 보고를 받고 있었다.

"12정찰조와 연락이 끊겼습니다."

"11정찰조와 연락이 끊겼습니다."

이야기하는 고블린은 달랐다.

그러나 하는 이야기는 전부 같았다.

"9정찰조와 연락이...."

스윽.

클라모는 손을 들어 보고를 끊었다.

듣지 않아도 안다.

연락이 끊겼다는 보고일 것이 뻔했다.

'이런 망할.'

클라모는 속으로 욕을 내뱉었다.

정찰조가 연락이 끊겼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한다.

그게 아니고서야 연락이 끊길 이유가 없다.

그리고 연락이 끊긴 순서를 보면 검은 숲 엘프들이 움직인 것이 분명했다.

'자리 잡기 전에 파고들 줄이야.'

본부에서 온 정보를 통해 검은 숲 엘프들이 움직일 것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미리 정찰조를 움직여 자리를 잡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리 빨리 움직이다니?

바로 그때였다.

"...!"

클라모는 눈을 번뜩였다.

'침입자!'

영역에 침입자가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검은 숲 엘프들이 분명했다.

"다들 전투를 준비해라. 빌어먹을 엘프 녀석들을 쳐 죽인다."

클라모의 말에 고블린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지휘소 밖으로 나갔다.

모든 고블린이 나가고 클라모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구석으로 향했다.

통신 마법으로 본부에 보고를 하기 위해서였다.

스앗!

수정구가 빛나기 시작했고 얼마 뒤 수정구에 한 고블린이 나타났다.

고블린이 나타나자마자 클라모는 꾸벅 숙여 인사했다.

"12수색대장 클라모 3정보단장 베렌 님을 뵙습니다."

-무슨 일이지?

베렌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리고 클라모는 바로 본론을 꺼냈다.

"검은 숲 엘프들이 쳐들어왔습니다."

-...뭐? 벌써?

클라모의 답에 베렌은 놀란 목소리로 반문했다.

"예, 밖에 있던 정찰조는 거의 전멸한 상태로 추정되고 지금 침입한 녀석들을 정리하러 떠날 생각입니다."

-잡을 수 있겠나?

"예, 바깥과 달리 이곳은 저희의 영역이니까요. 어떤 녀석들이 왔을지는 모르겠지만...."

말끝을 흐린 클라모는 눈을 번뜩이며 이어 말했다.

"한 마리도 빠짐없이 전부 죽여 버리겠습니다."

-...좋은 소식 기다리지.

"옙!"

스앗!

클라모의 답을 끝으로 수정구의 빛이 사라졌다.

그리고 클라모는 뒤로 돌아섰다.

클라모는 성큼성큼 지휘소 밖으로 걸음을 옮기며 생각했다.

'수준 높은 녀석이 온 거면 좋겠는데.'

* * *

[차가운 뿌리 부족 수색대장 클라모가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포인트가 22만 상승합니다.]

[퀘스트 '수색대장 클라모'를 완료하셨습니다.]

[기여도에 따라 보상이 차등 지급됩니다.]

[1등 보상을 획득합니다.]

[포인트가 20만 상승합니다.]

.

.

메시지를 보며 강진석은 생각했다.

'역시 안 뜨는구나.'

예상대로 신목동역의 보스인 클라모를 죽였으나 전환율 메시지는 뜨지 않았다.

강진석은 아쉬운 표정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제 남은 것은 제단뿐이었다.

제단만 파괴하면 신목동역 탈환도 끝이다.

이내 제단 앞에 도착한 강진석은 혼돈의 구를 몽둥이로 변환했다.

그리고 여태까지 그래왔듯 몽둥이를 휘두르며 제단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조건을 충족하셨습니다.]

[퀘스트 '작은 제단 파괴'를 완료하셨습니다.]

[영역이 파괴됐습니다.]

.

.

[퀘스트 '신목동역 수비'가 생성됐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제단이 완전히 무너졌고 메시지가 나타났다.

메시지 확인을 마친 강진석은 시간을 확인했다.

'넉넉했네.'

신목동역 탈환에 걸린 시간은 2시간이었다.

마곡나루역 침공 시작까지 촉박하면 어쩌나 했는데 괜한 걱정이었다.

강진석은 길드 관리창을 열었다.

그리고 영역 이동을 통해 마곡나루역으로 이동했다.

도착과 동시에 강진석은 초감각을 통해 상황을 파악했다.

다행히 자리를 비우기 전과 비슷했다.

강진석은 한결 편해진 표정으로 길드 관리창을 열었다.

그리고 이어 길드 영역을 선택했다.

그러자 허공에 지도가 나타났다.

강진석이 길드 영역을 선택한 이유는 단순했다.

'능력치는 너무 많이 들고 받는 대미지 감소로 갈까?'

바로 영역을 강화하기 위해서였다.

강진석은 조금 전 신목동역을 탈환하며 얻은 요새 포인트를 전부 투자할 생각이었다.

'그래 효율 생각하면 강화 안 한 것들 강화하는 게 맞지.'

결정을 내린 강진석은 받는 대미지 감소, 스킬 가속 등 아직 강화하지 않아 필요 포인트가 적은 것들을 선택하기 시작했다.

[영역을 강화하시겠습니까?]

이내 선택을 마친 강진석은 바로 확인을 눌렀다.

[영역이 강화됐습니다.]

그렇게 영역 강화를 마친 강진석은 역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영역의 경계선, 장막을 보았다.

강화된 덕분에 영역의 푸른빛이 한층 더 짙어져 있었다.

'이 정도면 지하는 걱정할 필요 없겠지.'

당연히 3차 제약 침공자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3차 제약 침공자는 논외다.

강화되기는 했지만 지금 영역 수준으로는 감당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 밑인 2차 제약 침공자까지는 아예 걱정할 필요 없을 것 같았다.

영역 수준과 간부들의 수준을 생각하면 가뿐히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지상인데....'

강진석은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차가운 뿌리 부족의 목책을 보았다.

목책 쪽에 있는 고블린들의 수가 더 늘어나 있었다.

거기다 수준 높은, 2차 제약 침공자로 추정되는 고블린도 여럿 감지됐다.

제124화

124.

'전부 설치해도 못 막을 것 같은데.'

마나 요새포, 요새 마력포 등 현재 강진석은 다양한 요새 방어 물품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전부 설치한다고 해도 사방에서 몰려온다면?

막기 힘들 것 같았다.

'저 녀석들도 분명 가지고 있을 테고....'

거기다 마나 요새포나 요새 마력포 같은 물품은 인간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고블린들 또한 공성 무기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아니, 높은 게 아니라 100%다.

그리고 공성 무기뿐만이 아니다.

방어 물품도 여럿 가지고 있을 것이다.

대포로 별 피해를 주지 못할 수 있다.

물론 대포로 피해를 주지 못한다고 피해를 줄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현재 강진석의 인벤토리에는 무수히 많은 공격 스크롤이 존재했다.

상황을 봐서 스크롤을 난사하면 된다.

'스크롤을 막을 방법도 가지고 있는 건 아니겠지?'

최악의 경우는 고블린들이 스크롤에 대한 방비도 했을 경우다.

'...아니야, 그 정도는 아니겠지.'

강진석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게나 철저히 준비하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생각을 마친 강진석은 이어 스킬창을 열었다.

신목동역에서 얻은 것은 요새 포인트뿐만이 아니다.

기본 포인트도 얻었고 당연히 강진석은 패시브 습득에 투자할 생각이었다.

.

.

[정신력이 1 상승합니다.]

이내 습득을 마친 강진석은 스킬창을 닫고 정보창을 열었다.

힘 : 431(367+64)

민첩 : 426(362+64)

체력 : 432(368+64)

정신력 : 428(364+64)

'이 정도면 몇 마리가 나타나든....'

능력치를 올리기 전에도 이미 3차 제약 침공자는 손쉽게 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능력치가 오른 지금은 더더욱 쉽게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근데 4차 제약 침공자가 나타나지는 않겠지...?'

문득 든 생각에 강진석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3차 제약 침공자와 2차 제약 침공자의 차이는 무척 컸다.

당연히 4차 제약 침공자는 3차 제약 침공자보다 훨씬 강할 것이다.

지금 능력치로는 영역의 도움을 받아도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 3차 제약이 해제된 것도 아니고.'

3차 제약이 해제된 게 아니다.

2차 제약만 해제됐을 뿐이다.

증미역 때보다 난도가 높을 것은 분명하지만 그래도 4차 제약 침공자가 나타날 것 같지는 않았다.

강진석은 괜한 걱정이라 생각하며 걱정을 떨쳐내고 정보창을 닫았다.

그리고 퀘스트창을 열었다.

<찬란한 그날의 영광을(1)>

아래 조건을 충족하라!

[영역 상징 파괴 : 3 / 20]

[3차 제약 침공자 : 5 / 10]

퀘스트 보상 : 찬란한 방패 강화

완료 시 퀘스트 '찬란한 그날의 영광을(2)'이 생성됩니다.

완료 시 퀘스트 '혼돈의 구(1)'가 생성됩니다.

'이번에 두 번째 조건은 충족될 테고.'

감지된 고블린의 수를 생각하면 3차 제약 침공자도 적지 않을 것이다.

두 번째 조건 충족은 확실했다.

'영역 상징은....'

첫 번째 조건인 '영역 상징 파괴'가 문제였다.

강진석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마곡역에 있는 영역 상징은 하나였다.

침공을 막고 역으로 영역 상징을 파괴한다고 해도 16개나 더 파괴해야 충족이 가능했다.

물론 마곡역에 하나라는 것이지 발산역이나 근처 아파트 단지에도 영역 상징이 있기는 했다.

그러나 근방에 있는 것들을 전부 파괴해도 충족은 불가능했다.

충족을 위해서는 더 멀리 나아가야 했다.

'해방이 길드원들 성장보다 중요할까?'

강진석은 고민했다.

혼자서 파괴하고 다니면 분명 빠르게 조건을 충족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만큼 길드원들의 성장 속도가 느려질 것이고 한계가 낮아질 것이다.

'이건 끝나고 생각 좀 해보자.'

지금 중요한 것은 영역 상징 파괴가 아니다.

곧 시작될 침공이 더 중요했다.

강진석은 퀘스트창을 닫고 초감각에 집중해 주변 상황을 자세히 파악하기 시작했다.

* * *

봉제산 메라키오의 천막.

천막에는 현재 차가운 뿌리 부족의 수뇌부가 모여 있었다.

표정이 좋은 고블린은 하나도 없었다.

메라키오를 포함해 전부 어두웠다.

표정이 어두운 이유는 단순했다.

조금 전 신목동역의 영역 상징이 파괴됐다.

"...엘프들의 짓이 확실한가?"

메라키오가 의아함이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보고에 따르면 신목동역을 공격한 것은 엘프들이었다.

그런데 메라키오가 보기에 무언가 이상했다.

아직 검은 숲 엘프들은 차가운 뿌리 부족이 버린 '영역'들을 제대로 정복하지 못했다.

정복하지 못한 상황에 공격을 해온다?

검은 숲 엘프들의 성향을 생각하면 매우 이상한 일이었다.

메라키오의 물음에 메타킨이 입을 열었다.

"혹시 인간들의 짓이라 생각하시는 겁니까?"

"...그래, 엘프들이 벌써 공격을 했을 것 같지는 않구나."

"저도 그런 생각을 하긴 했으나 염창역, 등촌역, 용왕산 등의 영역 상징이 굳건한 것을 보면 인간들의 짓일 확률은 현저히 낮다고 봅니다. 아마도 저희가 이번 선택을 내리기 전부터 계획했던 일이 아닐까요?"

"으음...."

메라키오는 침음을 내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가 있었다.

차가운 뿌리 부족의 영역 포기는 갑작스레 결정된 일이다.

엘프들의 신목동역 공격이 전부터 계획된 일이라면 지금 상황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녀석들이 더 공격을 할 것 같지는 않지만 경계를 하라 명하거라. 내 기운이 깃든 토템도 하나씩 보내고."

"알겠습니다."

메라키오가 이어 말했고 메타킨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리고 뒤에 있던 부관에게 눈빛을 보냈다.

그러자 부관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하고는 천막 밖으로 나갔다.

이후 다시 회의가 재개됐다.

"메타벤에게 보고는 들어왔나?"

솔직히 말해 신목동역의 영역 상징이 파괴된 것은 뼈아픈 일이지만 지금 상황에서 크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지금 중요한 것은 곧 있을 인간들과의 전쟁이었다.

"예, 조금 전 보고 받았습니다. 현재 인간들이 마곡나루역 곳곳에 방어 아티펙트를 설치 중이고 영역 또한 한층 강화됐다고 하더군요."

"계획은?"

"마곡역에 비치해 둔 모든 공성 무기와 아티펙트를 쏟아부어 단숨에 박살 내겠답니다."

"...."

메라키오는 말없이 인상을 찌푸렸다.

참으로 단순한 계획이었다.

물론 단순하다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수준 차이가 난다면 단순한 것만큼 좋은 방법도 없다.

문제는 그 정도로 수준이 차이 나느냐였다.

"가능하다고 보느냐?"

메라키오의 물음에 메타킨은 잠시 고민하다가 답했다.

"...피해는 줄 수 있겠으나 탈환은 힘들 것 같습니다."

마곡역은 주요 거점이 아니다.

즉, 비치된 자원이 많지 않았다.

주요 거점 중 하나인 발산역에서 지원을 받았다고 해도 마곡나루역을 단숨에 탈환할 가능성은 메타킨이 보기에 높지 않았다.

"그래, 알고 있으니 다행이구나."

메라키오는 싱긋 웃으며 답했다.

"바로 2차 공격을 이어 갈 수 있게 준비하거라."

"예, 알겠습니다."

메타킨이 답했고 메라키오는 고개를 돌려 오른쪽에 앉아 있는 차가운 뿌리 부족의 2인자이자 대주술사 밀보닐에게 물었다.

"제물 준비는 잘 되었나요?"

"예, 완벽합니다. 1주일 뒤 바칠 예정입니다."

"...시간을 앞당길 수는 없겠지요?"

처음 예상했던 것보다 빠른 편이긴 했다.

그러나 상황이 상황인지라 1주일도 길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대한 시기를 앞당겨 제약을 한층 더 완화하고 싶었다.

그래야 마음이 한결 편해질 것 같았다.

"예, 최대한 앞당긴 게 1주일입니다."

그러나 밀보닐은 일말의 고민도 하지 않고 답했다.

"...알겠습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하하,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사는 완벽하게 진행될 테니까요."

밀보닐은 껄껄 웃었다.

그러고는 주변을 스윽 훑고는 이어 말했다.

"제사 준비 때문에 먼저 일어나 봐도 되겠습니까?"

"예, 물론이지요.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어휴, 아닙니다. 먼저 자리를 떠나게 되어 죄송할 따름입니다. 그럼."

밀보닐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메라키오에게 인사를 한 뒤 거처 밖으로 나왔다.

거처에서 나온 밀보닐은 제단이나 거처로 향하지 않았다.

제물들을 가둬 둔 감옥으로 향했다.

"대주술사 밀보닐 님을 뵙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목적지에 도착한 밀보닐은 간수의 인사를 받으며 감옥 안에 갇혀 있는 인간들을 보았다.

'이해가 안 된단 말이지.'

오랜만에 회의에 참여했다.

그리고 인간들에게 영역을 빼앗겼다는, 메타린 같은 부족 내 강자도 죽었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이해가 가지 않았다.

밀보닐이 알고 있는 이곳 지구의 인간들은 너무나 약했기에.

지금 감옥에 갇혀 있는 이들만 봐도 무척 약했다.

'돌연변이 몇몇이 있는 건가?'

밀보닐은 품에서 보랏빛 단검을 꺼냈다.

보랏빛 단검의 등장에 갇혀 있던 인간들의 얼굴에 두려움이 나타났다.

그리고 가장 가까이 있는 감옥 안 인간들의 경우 덜덜 떨기 시작했다.

밀보닐은 인간들의 두려움 가득한 표정에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간수에게 눈짓했다.

그러자 간수는 능숙하게 가까이 있던 감옥의 문을 열었다.

인간들은 비명을 내지르며 문에서 멀어졌다.

그러나 이내 벽에 막혔고 곧 간수의 손에 한 인간이 들려 나왔다.

인간은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쳤으나 간수의 힘은 강했고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내 간수가 밀보닐 앞에 도착했고 밀보닐은 익숙하게 들고 있던 지팡이로 인간의 머리를 가리켰다.

그와 동시에 인간이 고개를 푹 숙였다.

인간이 고개를 숙이자마자 밀보닐은 능숙하게 보랏빛 단검을 인간의 가슴에 박았다.

스앗!

가슴에 박힌 보랏빛 단검이 빛나기 시작했고 이어 인간의 피부가 급속도로 노화되기 시작했다.

스앗!

얼마 뒤 인간의 피부가 쭈글쭈글해졌고 빛이 사라졌다.

밀보닐은 은은히 미소를 지은 채 단검을 뽑았다.

스아아....

그와 동시에 인간이 먼지로 변해 사라졌다.

그리고 밀보닐은 간수에게 다시 눈짓했다.

그러자 간수가 다시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하고는 감옥으로 향했다.

* * *

강진석은 시간을 확인했다.

'1분....'

침공까지 남은 시간은 단 1분.

1분 뒤 침공이 시작될 것이고 정보가 제공될 것이다.

너무나 궁금했다.

이번 침공의 난도는 어느 정도일지.

바로 그때였다.

"저, 진석 님."

뒤쪽에 있던, 마나 요새포를 운용하게 된 길드원이 강진석을 불렀다.

"네."

강진석은 뒤로 돌며 부름에 답했다.

"제가 불안해서 다시 한번 확인하고 싶은데 저기 횡단보도를 넘어서는 순간 발포하면 되는 걸까요? 일반 고블린 한 마리라도?"

"네, 몇 마리든 상관없습니다. 한 마리라도 저 지점을 넘어서면 무조건 발포해 주세요. 그리고 만에 하나 앞쪽 보호막이 깨지거나 균열이 생기면 역으로 돌아가 주시구요."

"넵, 알겠습니다!"

그렇게 대화가 끝났고 이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메시지가 나타났다.

[침공이 시작됩니다.]

"...?"

그러나 메시지를 본 강진석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왜 안 떠?'

그도 그럴 것이 나타난 메시지가 침공 시작 메시지뿐이었다.

침공 정보 메시지가 나타나지 않았다.

제125화

125.

'난도가 높아져서?'

퀘스트 '마곡나루역 수비'의 난도가 높아졌다.

혹시 난도가 높아져 침공에 대한 정보도 제공되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지상에 있어서?'

난도 때문이 아닐 수 있다.

현재 강진석은 지상에 있었다.

지하는 지상과 다르게 정보가 제공됐을 수 있다.

확인을 위해 강진석은 지하에 있는 강나연에게 텔레파시를 보냈다.

[혹시 침공 시작 메시지 말고 다른 메시지 떴어? 떴으면 오른손 들고 안 떴으면 왼손 들어봐.]

텔레파시를 보내자마자 강나연이 왼손을 들었다.

강진석은 미간을 찌푸렸다.

지하 역시 지상과 마찬가지였다.

'좋지 않은데....'

침공 정보는 무척 중요하다.

웨이브의 시작, 끝은 물론 침공이 언제 끝나는지 알 수 있어 체력, 스킬 쿨타임 등의 관리가 용이하기에.

그런데 침공 정보가 제공되지 않는다?

그러면 관리가 무척 어려워진다.

'설마 앞으로 다 이렇게 되는 건가?'

난도가 올라간 것은 '마곡나루역 수비'뿐만이 아니다.

다른 수비 퀘스트 역시 난도가 올라갔다.

'후우....'

강진석은 속으로 한숨을 내뱉으며 목책을 보았다.

스앗! 스앗! 스앗!

그 순간 목책 곳곳에 빛이 서렸다.

그리고 빛과 함께 목책이 사라지며 통로가 생겼다.

수많은 고블린이 시야에 들어왔다.

"헙."

"헐."

고블린을 본 것은 강진석뿐만이 아니다.

뒤쪽에 있던 몇몇 길드원들이 놀란 목소리를 내뱉었다.

이어 고블린들이 통로를 따라 나오기 시작했다.

'역시 공성 무기도 함께구나.'

고블린들은 맨몸으로 나오지 않았다.

공성 무기와 함께 나오고 있었다.

앞서 봤던 공성 무기와는 비교도 안 되는, 여태까지 본 적 없는 거대한 크기였다.

'저건 방어용인가?'

처음에는 전부 공성 무기인 줄 알았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공성 무기라 하기에는 형태가 이상한 것들이 있었다.

'근데 이러면 안 들어올 것 같은데....'

공성 무기의 사거리를 모른다.

그러나 영역 밖에서도 충분히 타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준비해 주세요.]

그래도 예상과 달리 사정권 안으로 들어올 수 있기에 일단 강진석은 길드원들에게 텔레파시를 보냈다.

그리고 텔레파시를 받은 길드원들이 발포를 준비했다.

물론 길드원들이 발포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역시.'

예상대로 고블린들이 이동을 멈췄다.

대포 사정권은커녕 영역에도 들어오지 않았다.

[갔다 오겠습니다. 아까 말씀드렸듯 보호막 파괴되면 역으로 가주세요.]

강진석은 지상에 있는 길드원들에게 텔레파시를 보낸 뒤 공성 무기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공간이동을 통해 단숨에 거리를 좁히는 것도 가능했다.

가능함에도 공간이동을 사용하지 않은 이유는 공성 무기 주변에 떠돌고 있는 정체불명의 기운 때문이었다.

어째서인지 정체불명의 기운에서 꺼림칙함이 느껴졌다.

단순히 정체를 몰라 꺼림칙한 게 아니다.

초감각이 말해주고 있었다.

공간이동을 하면 안 된다고.

그래서 강진석은 일단 직접 거리를 좁혀 공성 무기를 파괴하고 정체불명의 기운을 파악할 생각이었다.

이내 공성 무기 근처에 도착한 순간.

공성 무기를 지키고 있던 고블린 일부가 강진석에게 달려들었다.

강진석은 순간 고민했다.

고블린들을 무시하고 공성 무기를 먼저 파괴할지 아니면 고블린들을 먼저 정리할지.

'공성 무기 먼저.'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고블린들을 당장 잡지 않는다고 해도 큰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공성 무기의 경우 마곡나루역에 피해가 발생한다.

결정을 내린 강진석은 순간 속도를 높여 고블린들을 지나쳤다.

물론 여전히 공성 무기 곁을 지키고 있는 고블린들이 있긴 했다.

그러나 강진석은 그들조차 무시하고 공성 무기를 먼저 파괴할 생각이었다.

혼돈의 구에 기운을 주입해 몽둥이로 변환한 강진석은 바로 몽둥이를 휘둘렀다.

후웅!

몽둥이는 바람을 가르며 나아갔다.

쾅! 쩌적!

이내 몽둥이가 작렬했고 폭음과 함께 공성 무기에 균열이 생겼다.

'단단한 거 봐라.'

몽둥이에 많은 기운을 담았다.

그래서 한 번에 파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했던 것보다 공성 무기는 훨씬 단단했다.

이대로라면 몇 번 더 휘둘러야 파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문제였다.

공성 무기는 하나가 아니다.

지금 파괴하려는 것과 똑같이 생긴 것만 15개였다.

그리고 생김새가 다른 것까지 포함하면 총 60개였다.

'피해 없이 막는 건 불가능하겠네.'

강진석은 아쉬운 표정으로 재차 몽둥이를 휘둘렀다.

쾅! 쾅! 쾅!

순식간에 세 번 더 몽둥이를 휘둘렀고.

쩌저적....

그제야 공성 무기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

그리고 그와 동시에 공성 무기를 둘러싸고 있던 기운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강진석은 흠칫하며 뒤로 훌쩍 물러났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쩌저적!

기운이 진동하며 공간이 흔들리는 것을.

피하지 못한 고블린들이 속절없이 구겨지는 것을.

'이런 거였구나?'

아직도 기운의 정체는 모른다.

그러나 효과는 알게 됐다.

만약 공간이동을 했다면?

'죽지는 않았겠지만....'

고블린들은 공간이 흔들리며 발생한 압력을 버티지 못하고 죽었다.

그러나 강진석은 죽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물론 그것이 공간이동을 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죽지 않을 뿐 크나큰 피해를 보게 될 것이다.

그 정도로 공간 진동의 압력은 강력했다.

'직접 가야겠네.'

강진석은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현 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공성 무기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도착하기도 전.

스앗! 후웅!

공성 무기 상단에서 만들어진 빛 덩어리가 마곡나루역을 향해 날아갔다.

강진석은 계속해서 거리를 좁히며 빛 덩어리를 바라보았다.

쾅!

이내 빛 덩어리가 보호막에 작렬하며 폭발했고 메시지가 나타났다.

[요새가 공격받고 있습니다.]

[요새 보호막 : 99.6%]

'0.4%나?'

메시지를 본 강진석은 살짝 놀랐다.

준비 시간이 긴 것도 아니고 한두 개가 아니다.

그런데 한 번에 0.4%나 깎이다니?

쾅! 쾅! 쾅!

이어 연달아 빛 덩어리가 보호막에 작렬하며 메시지가 주르륵 나타났다.

[요새 보호막 : 99.2%]

[요새 보호막 : 98.9%]

.

.

강진석은 쭉쭉 내려가는 보호막 내구도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보호막이 전부는 아니다.

요새 내구도는 별도였다.

아직은 여유가 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속도로 내구도가 떨어진다면?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

강진석은 속도를 높였다.

그리고 다음 공성 무기에 도착하자마자 몽둥이를 휘둘렀다.

쾅! 쾅! 쾅!

더 많은 기운을 담았기 때문일까?

전과 달리 세 번 만에 공성 무기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이번에도 정체불명의 기운이 진동하며 공간을 진동시켰고 압력이 발생했다.

이미 공간 진동을 알고 있던 강진석은 관심을 주지 않고 곧장 다음 공성 무기로 향했다.

그러나 이어 감지된 기운에 강진석은 이동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얼마 뒤 여섯 고블린이 나타나 강진석을 포위했다.

강진석은 메시지창을 보았다.

[퀘스트 '차가운 뿌리 직할 4수비단장 무라이'가 생성됐습니다.]

[퀘스트 '차가운 뿌리 직할 3공격단장 켈리니'가 생성됐습니다.]

[퀘스트 '메타벤의 부관 트리만'이 생성됐습니다.]

.

.

메시지를 통해 여섯 고블린의 직책과 이름을 확인한 강진석은 싱긋 웃었다.

'이렇게 한곳에 모여주다니.'

여섯 고블린은 전부 3차 제약 침공자였다.

만약 이들이 군데군데 떨어져 마곡나루역을 공격했다면?

잡는 데 시간도 오래 걸렸을 것이고 그만큼 더욱 큰 피해가 발생했을 것이다.

그래서 강진석은 지금 상황이 무척 반가웠다.

'전부 베르닐이랑 비슷하네.'

여섯 고블린의 기운 크기는 전에 증미역에서 죽였던 베르닐과 비슷했다.

'얼마나 걸리려나.'

기운의 크기가 전부는 아니다.

그러나 강진석은 이미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근거 없는 자신감은 아니다.

증미역에서 강진석은 동시에 3차 제약 침공자 다섯을 죽였다.

어렵지 않았다.

스크롤의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 무척 쉽게 죽였다.

그리고 그때보다 강진석은 훨씬 강해진 상태였다.

증미역 때보다 1마리가 더 늘기는 했지만 어렵지 않게 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

바로 그때였다.

전방에 있던 고블린이 하늘을 향해 양손을 들었다.

그 순간 해당 고블린의 발밑에 마법진이 나타났다.

'영역 선포?'

강진석은 마법진에서 익숙함을 느꼈다.

밀레닐라가 영역을 선포할 때와 느낌이 같았다.

그리고 이어진 상황에 강진석은 자신의 생각이 맞았음을 알 수 있었다.

스앗!

마법진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며 주변 환경이 변했다.

그리고 메시지가 나타났다.

[메타벤의 부관 트리만이 영역을 선포합니다.]

[영역 효과를 받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5 감소합니다.]

[모든 저항력이 약간 감소합니다.]

메시지를 본 강진석은 생각했다.

'많이 약하네?'

밀레닐라의 영역보다 디버프가 약했다.

그렇다고 버프가 강한 것도 아니다.

3차 제약 침공자들의 기운은 아주 미세하게 늘어났다.

'특별한 효과가 있으려나?'

물론 기운 크기에 영향을 주지 않는 엄청난 효과가 있을 수도 있다.

'자세히 확인하고 싶지만....'

상황이 다급하지 않았다면 강진석은 영역에 대한 정보를 자세히 확인했을 것이다.

그러나 상황이 상황인지라 파악에 시간을 쓸 수가 없었다.

강진석은 조금 전 영역을 선포해 기운이 약해진, 메타벤의 부관 트리만을 향해 달려들었다.

-...!

트리만은 놀란 얼굴로 다급히 푸른빛이 서린 단검을 허공에 휘둘렀다.

스아앗!

그러자 단검에서 아이스 스피어가 튀어나와 강진석에게 날아갔다.

그러나 단검에 기운이 담겨 있어 이미 경계하고 있던 강진석은 갑작스런 아이스 스피어의 등장에도 당황하지 않았다.

대신 몽둥이에 기운을 담아 휘둘렀다.

중점을 가격할 필요도 없었다.

다급히 날려서인지 아이스 스피어에 담긴 기운은 무척 약했다.

파삭!

아이스 스피어는 몽둥이와 마주하자마자 산산이 조각나 사라졌다.

그리고 강진석은 마저 거리를 좁히며 재차 몽둥이를 휘둘렀다.

후웅!

-키....

이렇게 빠르게 거리가 좁혀질 것이라 생각지 못한 것일까?

트리만은 당황스러운 목소리를 내뱉을 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쾅!

이내 몽둥이가 작렬했고 트리만의 고개가 휙 꺾였다.

당연히 죽은 것은 아니었고 강진석은 쉬지 않고 몽둥이를 계속해서 휘둘렀다.

쾅! 쾅!

다행히 함께 나타난 고블린들 역시 지금 상황을 예상 못 했는지 자리에서 머뭇거릴 뿐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았고 강진석은 아무런 제지 없이 트리만을 끝장낼 수 있었다.

스아앗!

[메타벤의 부관 트리만이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

.

빛과 함께 메타벤이 사라졌고 자리에 여러 아티펙트가 떨어졌다.

강진석은 빠르게 아티펙트들을 인벤토리에 넣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단검을 쥔 순간.

"...!"

강진석은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내장 스킬이었어?'

트리만이 사용한 아이스 스피어.

당연히 본연 능력일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아이스 스피어는 내장 스킬이었다.

그것도 여태까지 본 적 없는 형태의 내장 스킬이었다.

강진석은 단검을 넣지 않고 뒤로 돌아섰다.

그리고 단검에 기운을 주입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단검에 푸른빛이 서렸다.

이내 단검이 받아들일 수 있는 한계까지 기운을 주입한 강진석은 트리만이 그랬듯 허공에 단검을 휘둘렀다.

스아앗!

그러자 아이스 스피어가 튀어나왔다.

그것도 트리만이 만들어 낸 아이스 스피어보다 3배나 큰, 무척이나 거대한 아이스 스피어가.

제126화

126.

아이스 스피어는 남은 다섯 고블린 중 가장 왼쪽에 있던 도끼를 쥐고 있는 고블린에게 날아가기 시작했다.

도끼 고블린은 놀란 얼굴로 옆으로 몸을 날렸다.

강진석은 도끼 고블린의 반응에 싱긋 웃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의미 없는 행동이었기 때문이었다.

단검에 내장된 아이스 스피어는 평범한 아이스 스피어가 아니었다.

정신력을 소모해 방향 조절이 가능했다.

즉, 피할 게 아니라 맞대응을 했어야 했다.

강진석은 정신력을 소모해 아이스 스피어의 방향을 틀었다.

도끼 고블린은 기겁하며 재차 몸을 날렸다.

당연히 이번에도 강진석은 아이스 스피어의 방향을 틀었다.

그제야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도끼 고블린은 도끼에 기운을 주입했다.

그러자 도끼에 붉은빛이 서렸다.

도끼 고블린은 한껏 인상을 구긴 채 아이스 스피어를 향해 도끼를 휘둘렀다.

쩡!

도끼와 마주한 아이스 스피어가 폭발했다.

그리고 아이스 스피어에 담겨 있던 한기가 퍼지기 시작했다.

쩌저적....

도끼는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도끼를 쥐고 있던 고블린의 손도 얼어붙었고 이어 팔목, 어깨까지 한기가 계속해서 퍼져 나갔다.

3초도 지나지 않아 고블린의 전신이 얼음으로 뒤덮였다.

'장난 아닌데?'

아이스 스피어의 파괴력에 강진석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도끼 고블린은 3차 제약 침공자답게 죽지 않았다.

그러나 죽지 않았을 뿐이다.

얼음에 갇혀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 몽둥이를 휘두르거나 창을 던진다면?

피하지 못할 것이다.

그대로, 온전히 공격을 받아내야 할 것이다.

즉,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쿨타임도 없고 즉발이고.'

단검에 내장된 아이스 스피어는 쿨타임이 없었다.

그리고 흔히 캐스팅이라 하는 마법 발동에 필요한 준비 시간도 없었다.

기운만 주입하면 무한정, 즉시 발동할 수 있었다.

'근데 아쉽긴 하네.'

물론 모든 것이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한 번 주입해 놓고 나눠서 쓸 수 있으면 좋았을 텐데.'

아이스 스피어는 한 번 발동할 때마다 주입된 기운을 전부 소모한다.

사용할 때마다 기운을 주입해 줘야 하는 것이다.

주입에 걸리는 시간을 생각하면 조금 아쉬웠다.

강진석은 재차 단검에 기운을 주입했다.

이번에는 한계까지 주입하지 않았다.

절반 정도만 주입 후 단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전보다 작은 아이스 스피어가 튀어 나가 도끼 고블린에게 날아갔다.

강진석은 날아가는 아이스 스피어를 보며 재차 단검에 기운을 주입했다.

이번에는 한계까지 기운을 주입했다.

강진석이 두 번째 아이스 스피어의 결과를 보지 않고 단검에 기운을 주입한 이유는 도끼 고블린이 마지막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도끼 고블린을 제외해도 아직 넷이나 더 남아 있었다.

스아앗!

강진석은 세 번째 아이스 스피어를 날렸다.

세 번째 아이스 스피어는 도끼 고블린이 아닌 도끼 고블린을 도우려 다가가던, 양손에 단검을 하나씩 쥔 고블린에게 날아갔다.

단검 고블린은 자신에게 날아오는 아이스 스피어에 인상을 구기며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지팡이를 들고 있는 고블린에게 향했다.

그 사이 두 번째 아이스 스피어가 도끼 고블린에게 작렬했다.

쩡! 쩌저적!

폭음과 함께 도끼 고블린을 뒤덮고 있던 얼음이 조각조각 파괴됐다.

물론 얼음만 파괴된 것은 아니었다.

도끼 고블린의 육체도 함께 산산이 조각났고 이어 빛과 함께 조각난 육체가 사라지며 메시지가 나타났다.

[차가운 뿌리 직할 3특수단장 바스탈이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

.

메시지를 통해 바스탈의 죽음을 확인한 강진석은 살짝 당황했다.

'두 번 만에 죽을 정도는 아니었는데?'

아이스 스피어가 강한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두 번 만에 3차 제약 침공자를 죽일 정도는 분명 아니었다.

더구나 두 번째 아이스 스피어는 기운을 절반만 주입했었다.

'...얼어 있던 상태라서 그런가?'

아무리 봐도 얼어 있던 것이 변수가 된 것 같았다.

그것 말고는 설명이 되지 않았다.

일단 강진석은 바스탈이 있던 자리로 달리며 세 번째 아이스 스피어가 향하는 곳을 보았다.

단검 고블린은 지팡이를 들고 있는 고블린 뒤에 서 있었고 지팡이 고블린은 짜증 가득한 표정으로 지팡이를 앞으로 내밀었다.

그리고 그 순간 지팡이에서 불길이 뿜어져 나왔다.

"...!"

강진석은 눈을 번뜩였다.

'혹시....'

본연 능력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게 아니라 지팡이에 내장된 스킬이라면?

이내 아이스 스피어와 불길이 마주하며 막대한 양의 수증기가 발생했다.

그리고 아이스 스피어의 기운이 약해지며 진격 속도가 느려졌다.

말 그대로 느려졌을 뿐이다.

진격은 멈추지 않았고 아이스 스피어는 묵묵히 지팡이 고블린에게 다가갔다.

'방향을 틀 필요는 없겠지.'

아이스 스피어의 방향을 틀어도 불길을 피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강진석은 상황을 주시하며 바스탈이 남긴 아티펙트들을 챙겼다.

3차 제약 침공자답게 아티펙트의 수준이 무척 높았다.

그러나 강진석은 아쉬움을 살짝 느꼈다.

트리만의 단검 같은 아티펙트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스윽.

강진석은 아쉬운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지팡이 고블린을 보았다.

어느새 아이스 스피어가 지팡이 고블린 코앞에 도착해 있었다.

이대로라면 곧 폭발해 한기가 퍼질 것이다.

'근데 너무 약해진 것 같은데.'

불길 때문에 아이스 스피어에 담긴 기운이 상당히 약해져 있었다.

도끼 고블린 때처럼 한기가 강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강진석은 단검에 기운을 주입하며 멀찍이 떨어져 있는, 남은 두 고블린을 보았다.

남은 두 고블린은 여전히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상황을 주시할 뿐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강진석은 은은히 미소를 지었다.

'각개격파 하기 딱 좋네.'

남은 넷이 힘을 합쳤다면?

잡는 데 시간이 더 걸렸을 것이다.

그런데 상황을 보아 빠르게 끝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바로 그때.

-키익!

지팡이 고블린이 괴성을 내뱉었다.

그와 동시에 불길이 끊겼고 단검 고블린이 앞으로 몸을 날려 아이스 스피어를 향해 단검을 휘둘렀다.

쩡!

아이스 스피어가 파괴되며 한기가 퍼졌다.

쩌저적....

그리고 단검 고블린의 양팔이 얼어붙었다.

그걸로 끝이었다.

바스탈처럼 완전히 얼어붙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역시.'

예상했던 상황이기에 강진석은 당황하지 않았다.

괜히 단검에 기운을 주입하고 있던 게 아니다.

스아앗!

강진석은 단검을 휘둘렀고 아이스 스피어가 날아가기 시작했다.

다시 나타난 아이스 스피어에 단검 고블린은 인상을 구겼다.

단검 고블린뿐만이 아니다.

뒤에 서 있는 지팡이 고블린도.

멀찍이 떨어져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두 고블린의 얼굴도 부정적으로 변했다.

네 고블린들의 반응을 주시하며 강진석은 단검에 기운을 재차 주입했다.

계속해서 아이스 스피어를 발동해 몰아붙일 생각이었다.

쩌저적....

기운 주입과 동시에 들리는 소리에 강진석은 고개를 내려 단검을 보았다.

단검에 균열이 생겼다.

아이스 스피어를 연달아 사용해 무리가 온 것 같았다.

물론 큰 문제는 아니다.

적어도 강진석에게는.

그도 그럴 것이 강진석에게는 내구도 걱정할 필요가 없는 혼돈의 구가 있었다.

강진석은 혼돈의 구에 기운을 주입해 기본 상태로 변환시켰다.

그리고 단검으로 혼돈의 구를 찔렀다.

흡입력이 발생했고 혼돈의 구가 단검을 빨아들였다.

그렇게 단검을 저장한 강진석은 바로 혼돈의 구를 단검으로 변환했다.

'와....'

아쉽게도 로필렌 몽둥이, 월아창 때와 달리 거력이 생기지는 않았다.

그러나 거력이 생기지 않았을 뿐이다.

감탄이 나올 수밖에 없는 변화가 생겼다.

아이스 스피어에 담을 수 있는 기운의 한계가 늘어났다.

그것도 2배로.

그뿐만이 아니다.

전에는 아이스 스피어를 발동할 때 주입한 기운을 전부 담아야 했다.

그런데 이제는 아니다.

주입한 기운을 나눠서 사용할 수 있게 됐다.

강진석은 기운을 주입했다.

늘어난 한계까지 순식간에 주입을 마친 강진석은 단검을 휘둘렀다.

나눠서 사용할 수 있지만 이번에는 모든 기운을 담았다.

최대치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스아앗!

아이스 스피어가 나타났고 강진석은 생각했다.

'크기는 별 차이 없네?'

주입 기운의 한계가 2배나 늘어났다.

그래서 크기도 크게 늘지 않을까 했는데 아니었다.

10% 정도 커졌을 뿐이다.

대신 크기와 달리 파괴력은 2배 이상 강해졌다.

강진석이 느끼기에 3배 정도 강해진 것 같았다.

'이 정도면 한 번에 보낼 수 있으려나?'

어서 파괴력을 직접 확인해 보고 싶었다.

강진석은 앞서 날린 아이스 스피어의 궤적을 그대로 따라 보냈다.

-키, 키익!

-키릭?

한층 더 강해진 아이스 스피어의 등장에 그렇지 않아도 표정이 좋지 않았던 고블린들의 표정이 더더욱 어두워졌다.

그리고 앞서 보냈던 아이스 스피어가 단검 고블린의 단검과 마주하며 폭발했다.

쩌저적!

이번에는 한기가 조금도 약화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단검 고블린은 바스탈 때처럼 단숨에 얼어붙었다.

그리고 뒤에 살짝 떨어져 있던 지팡이 고블린이 불길로 얼어붙은 단검 고블린을 녹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키, 키릭!

강력해진 아이스 스피어가 코앞으로 다가오자 지팡이 고블린은 불길을 멈췄다.

그리고 괴성을 내뱉으며 멀찍이 떨어져 있던 두 고블린에게 향했다.

단검 고블린을 포기한 것이다.

얼어붙었을 뿐 죽지 않은 단검 고블린은 지팡이 고블린의 선택을 인지했고 감정 분석을 통해 감정을 알 수 있게 된 강진석은 단검 고블린의 감정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분노, 절망, 두려움 무척이나 다양했다.

강진석은 강화된 아이스 스피어의 방향을 틀어 남은 세 고블린에게 보냈다.

그리고 단검 고블린에게 다가갔다.

굳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단검 고블린에게 강화된 아이스 스피어를 사용할 이유가 없다.

강진석은 단검 고블린을 직접 죽일 생각이었다.

이내 단검 고블린 앞에 도착한 강진석은 혼돈의 구를 몽둥이로 변환했다.

그리고 그대로 얼어붙은 단검 고블린을 향해 휘둘렀다.

쾅! 쩌저적!

폭음과 함께 얼음이 산산이 조각났다.

그리고 바스탈 때처럼 육체 역시 산산조각 났고 이어 빛과 함께 사라졌다.

[차가운 뿌리 직할 7특수단장 바스텐이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

.

'바스텐? 형제였나?'

메시지를 통해 단검 고블린의 이름을 알게 된 강진석은 어째서 바스텐이 바스탈을 도우려 했던 것인지 알 것 같았다.

강진석은 바스텐이 남긴 아티펙트를 수거 후 세 고블린을 보았다.

지팡이 고블린은 아이스 스피어를 향해 불길을 뿜어내고 있었다.

전보다 불길의 파괴력이 훨씬 강력했는데 그 이유는 다른 두 고블린이 지팡이 고블린의 양 어깨를 한 쪽씩 잡고 기운을 전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보고 싶었는데.'

강진석은 강화된 아이스 스피어의 최대 파괴력을 보고 싶었다.

3차 제약 침공자를 한 번에 죽일 수 있는지 없는지.

상황을 보아하니 최대 파괴력은 다음에 확인해야 할 것 같았다.

'이제 슬슬 공간이동 써도 되겠지?'

영역 안에는 정체불명의 기운이 없었다.

즉, 영역이 선포된 순간부터 공간이동을 사용해도 상관없었다.

사용할 수 있음에도 공간이동을 하지 않았던 이유는 방심을 유도하기 위해서였다.

만약 처음부터 공간이동을 사용했다면?

경계심이 더욱 높아졌을 것이고 고블린들의 대처도 달랐을 것이다.

그리고 그만큼 잡는 데 시간이 더 걸렸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대처가 달라져도 괜찮다.

남은 고블린은 셋뿐이다.

거기다 세 고블린은 아이스 스피어를 막는 데 열중하고 있었다.

지금 상황에서 공간이동으로 다가가 기습한다면?

치명적인 피해를 줄 수 있을 것이다.

생각을 마친 강진석은 바로 공간이동을 시전해 기운을 전달하고 있던 검을 메고 있는 고블린의 뒤로 이동했다.

제127화

127.

그리고 도착과 동시에 강진석은 몽둥이를 휘둘렀다.

후웅!

몽둥이는 바람을 가르며 나아갔다.

-키, 키릭!??

3차 제약 침공자답게 고블린들은 몽둥이를 인지했다.

그러나 너무 늦었다.

대처하려면 몽둥이를 휘두를 때 인지할 게 아니라 공간이동을 했을 때 인지했어야 했다.

쾅!

몽둥이가 작렬했고 폭음과 함께 검을 멘 고블린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기운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일까?

몽둥이에 맞지 않은 지팡이 고블린과 반대쪽에 있던 고블린도 고꾸라지지 않았을 뿐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질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불길이 약해졌고 아이스 스피어가 성큼 다가왔다.

바로 그때였다.

스앗!

스앗!

지팡이 고블린과 반대쪽 고블린이 자리에서 사라졌다.

공간이동을 한 것이다.

'역시.'

예상했던 상황이었기에 강진석은 당황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팡이 고블린을 잡기 위해, 곧 폭발할 아이스 스피어 범위에서 벗어나기 위해 바로 공간이동을 했다.

그러나 공간이동을 하자마자 지팡이 고블린 역시 바로 공간이동을 해 도망갔다.

강진석은 고개를 돌려 지팡이 고블린을 보며 생각했다.

'저 녀석부터 죽였어야 했나.'

술래잡기를 예상하긴 했다.

그런데 막상 마주하니 살짝 짜증이 났다.

쩡! 쩌저적!

바로 그때 아이스 스피어가 폭발했다.

그리고 메시지가 나타났다.

[차가운 뿌리 직할 4수비단장 무라이가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

.

'...?'

메시지를 본 강진석은 당황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돌려 무라이가 있던 자리를 보았다.

무라이의 시체는 보이지 않았다.

가온 팔찌가 흡수한 것이 분명했다.

자리에 남아 있는 것은 무라이의 형태를 띤, 속이 빈 얼음덩어리와 그 안에 있는 아티펙트들뿐이었다.

'와, 한 방에 죽었다고?'

세 고블린의 합동 불길에 기운이 약해지기는 했다.

그러나 워낙 강력했기 때문일까?

3차 제약 침공자인 무라이가 한 방에 죽었다.

그것도 빙결된 상태 그대로.

'너무 센 거 아냐?'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아이스 스피어에 담긴 기운이 엄청나긴 했지만 일반 고블린이나 2차 제약 침공자도 아니고 3차 제약 침공자가 한 방에 죽다니?

'델칸이 누구길래....'

내장된 아이스 스피어는 평범한 아이스 스피어가 아니었다.

앞에 단어가 붙어 있었다.

정식 명칭은 '델칸의 아이스 스피어'였다.

델칸이 대체 어떤 존재이기에 아이스 스피어가 이런 위력을 내는 것일까?

'이름 붙은 것들은 더 꼼꼼히 확인해야겠어.'

가온 팔찌도 그렇고 파드란도 그렇고 이름이 붙은 것들은 특출난 효과를 가지고 있었다.

앞으로도 이름이 붙은 것들은 더욱 꼼꼼히 확인해야 할 것 같았다.

'일단.'

강진석은 델칸에 대한 관심을 접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델칸의 정체가 아니었다.

강진석은 다시 고개를 돌려 남은 두 고블린을 보았다.

두 고블린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는 듯한 얼굴이었다.

'누가 바바리아고 누가 켈리니지?'

이제 남은 것은 직할 3공격단장 켈리니, 직할 4공격단장 바바리아 둘뿐이었다.

누가 켈리니고 누가 바바리아인지 궁금했다.

물론 두 고블린의 정체도 크게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전부 죽일 것이었기에.

'우선 지팡이부터 처리하는 게 낫겠지?'

강진석은 지팡이 고블린을 바라보았다.

'얼마나 더 도망가려나.'

* * *

발산역 지하 2층 지휘소.

메타벤은 고개를 갸웃했다.

부관 중 하나인 트리라스가 다급한 표정으로 지휘소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무슨 일이지?"

메타벤이 물었다.

그리고 트리라스가 심각한 목소리로 답했다.

"마곡나루역에서 인간 하나가 튀어나왔는데 그 인간을 잡기 위해 이번 작전에 투입된 3차 제약자 절반이 움직였다고 합니다."

"...절반이면 여섯인데 인간 하나를 잡자고?"

메타벤은 미간을 찌푸리며 반문했다.

이번 작전에 투입된 3차 제약자는 총 열둘이었다.

그런데 인간 하나를 잡기 위해 절반인 여섯이 움직이다니?

아무 이유 없이 단체로 움직인 것은 아닐 것이다.

3차 제약자들이 단체로 움직인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예, 트리만이 영역까지 선포했다고 합니다. 확실치 않지만 메타린 님의 죽음과 연관된 인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트리만이 영역을?"

"예."

"그럼 신경 쓸 필요 없다. 금방 해결될 테니."

트리라스의 답에 메타벤은 싱긋 웃으며 답했다.

"...예?"

그러자 트리라스가 반문했고 메타벤이 이어 말했다.

"트리만에게 성물의 모방품을 하사했다."

차가운 뿌리 부족은 성물 중 하나인 '델칸의 단검'의 모방품을 여럿 만들었고 메타벤 역시 하나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 작전을 위해 메타벤은 델칸의 단검 모방품을 트리만에게 하사했다.

물론 모방품이기에 성물과 똑같은 힘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성물의 힘 중 하나만 담았고 그마저도 20%밖에 내지 못한다.

그럼에도 담긴 힘이 너무 커 몇 번 쓰면 망가질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인간이 얼마나 강하든 성물의 모방품을 가지고 있는 트리만이 투입됐다면?

금방 해결될 것이다.

"아...."

트리라스는 이해했다는 듯 탄성을 내뱉었다.

그리고 그런 트리라스에게 메타벤이 재차 물었다.

"혹시 같이 간 다섯이 누구인지 아나?"

별일 없을 것이다.

그런데 혹시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트리만과 함께 움직인 다섯이 누구인지 궁금해졌다.

"바스탈, 바스텐, 무라이, 켈리니, 바바리아라고 합니다."

"...바바리아가 있다고?"

메타벤은 눈을 번뜩이며 반문했다.

"하하핫!"

그리고 트리라스가 답을 하기도 전에 호탕하게 웃었다.

트리라스는 메타벤의 반응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고 이내 웃음을 멈춘 메타벤이 답했다.

"바바리아에게 홍염 대지 부족의 성물 모방품 하나가 있거든."

"...!"

메타벤의 말에 트리라스는 경악했다.

홍염 대지 부족은 차가운 뿌리 부족과 교류하는 몇 안 되는 부족 중 하나였다.

그리고 이번 시험에 참가한 수많은 고블린 부족 중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강대한 부족이기도 했다.

그런 홍염 대지 부족의 성물 모방품을 바바리아가 가지고 있다니?

'설마 그 소문이 사실이었나?'

바바리아에게는 은연중에 떠도는 소문이 하나 있었다.

홍염 대지 부족의 성물 모방품을 가지고 있는 게 사실이라면 소문 역시 사실일 확률이 높았다.

'잘 보여야겠어.'

트리라스는 앞으로 바바리아와 좋은 관계를 맺기로 다짐했다.

그리고 메타벤에게 말했다.

"보고가 들어오는 대로 보고 드리겠습니다."

* * *

[차가운 뿌리 직할 4공격단장 바바리아가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

.

메시지를 통해 지팡이 고블린의 이름을 알게 된 강진석은 고개를 내려 바바리아가 남긴 아티펙트들을 보았다.

가장 시선을 끄는 것은 '지팡이'였다.

'내장 스킬일까?'

지팡이에서 뿜어져 나온 불길.

불길은 과연 내장 스킬일까?

아니면 바바리아의 본연 능력일까?

강진석은 홀로 남은 고블린, 켈리니를 주시하며 아티펙트를 수거하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지팡이를 쥔 순간.

"...!"

강진석은 눈을 번뜩였다.

다행히 불길은 지팡이의 내장 스킬이었다.

정식 명칭은 '홍염의 숨결'.

발동 방법은 아이스 스피어보다 더 간단했다.

아이스 스피어의 경우 기운 주입 후 단검을 휘둘러야 했다.

그러나 지팡이의 경우 내부에 각인되어 있는 마법진에 기운만 주입하면 된다.

그러면 즉시 발동되어 불길이 뿜어져 나온다.

'파괴력도 더 강하려나?'

거기다 아이스 스피어보다 더 많은 기운을 주입할 수 있었다.

물론 기운을 많이 담는다고 파괴력이 강한 것은 아니다.

델칸의 아이스 스피어는 비정상적으로 강력한 편이었다.

홍염의 숨결이 많은 기운을 필요로 한다고 더 강하리란 법은 없다.

'저장하고 확인해 보자.'

물론 지금 바로 확인할 생각은 없다.

혼돈의 구에 저장 후 확인할 생각이었다.

'어떤 효과가 추가되려나?'

델칸의 아이스 스피어는 혼돈의 구에 저장 후 변화가 생겼다.

홍염의 숨결 역시 변화가 생길 것으로 추정됐다.

강진석은 어떤 변화가 생길지 기대하며 혼돈의 구에 기운을 주입했다.

그리고 지팡이에 기운을 주입해 저장 후 바로 혼돈의 구를 지팡이로 변환했다.

"...!"

변환 후 강진석은 눈을 번뜩였다.

예상대로 홍염의 숨결에 변화가 있었다.

다른 이가 보기에는 별 변화가 아닐 수 있지만 강진석의 입장에서는 눈이 번뜩일 만한 변화였다.

원래 홍염의 숨결은 마법진에 기운을 주입하면 바로 발동이 됐다.

그런데 이제는 아니다.

마법진에 주입해도 바로 발동이 되지 않는다.

단검을 휘두르는 것처럼 특별한 행동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바로 의지 발현.

생각을 통해 발동할 수 있게 됐다.

그뿐만이 아니다.

전처럼 일직선이 아니라 방출한 불길을 조종할 수 있게 됐다.

물론 아이스 스피어와 마찬가지로 조종에는 정신력이 필요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마법진에 더 많은 기운을 담을 수 있게 됐다.

'파괴력은 확실히 늘어났을 테고 거리나 속도는 어떨까?'

당장 확인해 보고 싶었다.

강진석은 켈리니를 보았다.

켈리니는 두려움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강진석은 싱긋 웃으며 지팡이에 기운을 주입했다.

그리고 홍염의 숨결을 발동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와 동시에 지팡이에서 불길이 주르륵 나왔다.

불길은 곧장 켈리니에게 향했다.

그리고 강진석은 발동을 멈췄다.

물론 이미 튀어나온 불길은 사라지지 않고 켈리니에게 날아갔다.

강진석은 날아가는 불길을 보며 생각했다.

'지속 시간이 엄청 늘었네?'

혼돈의 구로 강화하기 전 홍염의 숨결은 지속 시간이 무척 짧았다.

그래서 사거리도 짧은 편이었다.

그런데 강화된 지금은 지속 시간이 비교 불가능할 정도로 늘어났다.

물론 아이스 스피어와 비교하면 여전히 무척 짧다고 할 수 있지만 그래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너무 괜찮은데?'

강진석은 활짝 웃으며 켈리니를 보았다.

스앗!

바로 그때 켈리니가 자리에서 사라졌다.

공간이동을 한 것이다.

그러나 강진석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애초에 강진석이 중간에 발동을 멈춘 것도 공간이동을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강진석은 불길의 방향을 돌리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불길의 기운을 보면 켈리니가 도망친 곳에 도착하기 전 사라질 것이 뻔했다.

굳이 정신력을 소모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불길은 예정대로 켈리니가 있던 자리에 작렬했다.

화르륵!

그리고 작렬과 동시에 맹렬히 열기를 뿜어내다가 소멸했다.

'파괴력은 나쁘지 않네.'

만약 켈리니가 피하지 않았다면?

죽지는 않아도 죽음에 가까운 상태가 됐을 것이다.

그 정도로 조금 전 열기는 강력했다.

'역시 이것도....'

델칸의 아이스 스피어와 마찬가지로 홍염의 숨결 또한 평범한 스킬이 아니었다.

강진석은 고개를 돌려 켈리니를 보았다.

홍염의 숨결의 파괴력을 보았기 때문일까?

켈리니의 표정은 한층 더 어두워져 있었다.

강진석은 그런 켈리니의 목걸이를 보며 생각했다.

'얼마 안 남았겠지.'

켈리니는 목걸이를 통해 공간이동을 하고 있었다.

목걸이에서 느껴지는 기운을 보면 많아야 5번 정도가 끝일 것이다.

강진석은 싱긋 웃으며 다시 홍염의 숨결을 발동했다.

제128화

128.

화르륵!

지팡이에서 불길이 뿜어져 나갔다.

당연히 이번에도 중간에 발동을 멈췄다.

공간이동을 할 것이 뻔했기에.

스앗!

역시나 불길이 다가오자 켈리니는 재차 공간이동을 했다.

불길을 피해냈음에도 켈리니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공간이동이 의미 없다는 것을 깨달은 듯했다.

그러나 의미 없다고 공간이동을 하지 않으면 불길을 마주해야 한다.

의미가 없어도 어쩔 수 없이 켈리니는 공간이동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강진석은 켈리니가 더 이상 공간이동을 할 수 없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일지 기대하며 계속해서 불길을 날렸다.

스앗! 스앗! 스앗! 스앗!

이후 켈리니는 4번 더 공간이동을 했다.

그리고 목걸이에 담긴 기운이 완전히 바닥났다.

강진석은 기대감을 더욱 키우며 불길을 날렸다.

공간이동이 불가능한 지금 켈리니는 어떻게 대처를 할까?

'좋은 아티펙트가 있으면 좋겠는데.'

강진석이 기대하는 이유는 켈리니가 가지고 있을 '아티펙트' 때문이었다.

트리만은 델칸의 아이스 스피어가 내장된 '단검'을.

바바리아는 홍염의 숨결이 내장된 '지팡이'를 남겼다.

켈리니가 그와 동급의 아티펙트를 가지고 있다면?

미래에 아주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스윽

켈리니가 방패를 들었다.

그리고 방패에서 한기가 뿜어져 나와 거대한 얼음 방패가 됐다.

강진석은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흥미는 얼마 가지 않아 사라지고 그 자리를 아쉬움이 대신했다.

'방어 스킬은 필요 없는데....'

누가 봐도 공격 스킬은 아니었다.

방어 스킬로 추정됐다.

문제는 강진석에게 찬란한 방패가 있다는 점이다.

물론 쓰임새가 완전히 같지는 않다.

얼음 방패는 찬란한 방패보다 방어 범위가 넓었다.

즉, 누군가를 지킬 수 있다.

그러나 그게 끝이었다.

현재 강진석이 누군가와 함께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델칸의 아이스 스피어나 홍염의 숨결과 비교하면 매우 아쉬웠다.

이내 불길이 얼음 방패에 작렬했다.

치이이이익!

작렬과 동시에 불길이 열기를 뿜어냈고 막대한 수증기가 발생했다.

수증기는 순식간에 주변으로 퍼졌고 안개가 됐다.

불길도 얼음 방패도 보이지 않았다.

물론 강진석에게 시야 제한은 큰 의미 없었다.

거리가 멀다면 모를까 가까워 초감각으로 확인이 가능했다.

'...생각보다 많이 약한데.'

초감각으로 상황을 주시하던 강진석은 미간을 찌푸렸다.

얼음 방패의 기운이 급속도로 약화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곧 파괴될 것이다.

반대로 불길의 기운은 그리 크게 줄어들지 않았다.

얼음 방패를 파괴하고도 켈리니를 덮칠 확률이 99%였다.

쩡!

이내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지금 상황에서 깨질 만한 것은 얼음 방패뿐이었다.

-키익!!

이어 켈리니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단순히 비명만 울린 게 아니다.

켈리니의 기운 역시 급속도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열기에 당한 것이 분명했다.

'죽지는 않겠네.'

기운이 크게 줄기는 했으나 죽을 정도는 아니었다.

강진석은 확실히 끝내기 위해 공간이동을 시전해 거리를 좁혔다.

홍염의 숨결을 발동하지 않고 거리를 좁힌 이유는 아티펙트 때문이었다.

델칸의 아이스 스피어나 홍염의 숨결은 아티펙트 내구도에 영향을 끼친다.

물론 3차 제약 침공자들이 사용하는 아티펙트의 수준은 높은 편이었다.

그래서 완전히 파괴된 것은 없었다.

그러나 확실히 손상이 가기는 했다.

그나마 온전한 아티펙트를 얻기 위해서는 직접 타격해 죽이는 편이 나았다.

-키익?!

켈리니 역시 강진석이 다가온 것을 인지했는지 고통만 가득했던 목소리에 당황이 섞였다.

그러나 열기를 완전히 제거하지 못한 켈리니가 할 수 있는 것은 당황을 내뱉는 것뿐이었다.

강진석은 혼돈의 구를 몽둥이로 변환 후 곧장 휘둘렀다.

후웅! 쾅!

거력을 품은 몽둥이는 그대로 켈리니의 머리에 작렬했다.

-...!

전과 달리 켈리니는 비명조차 내뱉지 못했다.

강진석은 계속해서, 아티펙트가 없는 부분을 타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뒤.

스아앗!

[차가운 뿌리 직할 3공격단장 켈리니가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

.

빛과 함께 켈리니가 사라지며 메시지가 나타났다.

메시지를 통해 죽음이 확인되자 강진석은 공격을 멈추고 생각했다.

'...이번에도 안 나타났네.'

이번에는 전환율 100% 메시지가 나타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4차 제약 침공자를 잡아야 하는 건가?'

강진석은 미간을 찌푸린 채 켈리니가 남긴 아티펙트를 하나하나 확인하며 수거하기 시작했다.

'역시 상태는 좋네.'

아티펙트의 내구도는 전부 괜찮았다.

내구도를 생각하면 지금처럼 1 대 1 상황에서는 타격으로 죽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스킬도 나쁘지 않고.'

델칸의 아이스 스피어, 홍염의 숨결 같은 특출난 액티브 스킬이나 기능은 없었다.

그러나 특출난 게 없을 뿐이지 전부 괜찮은 스킬이나 기능이 달려 있었다.

'근데 능력치 올려주는 게 어떻게 하나도 없지?'

놀랍게도 이번에 3차 제약 침공자들에게 얻은 수많은 아티펙트 중 능력치를 올려주는 게 단 하나도 없었다.

'좋은 아티펙트는 능력치가 원래 안 붙나?'

아티펙트의 수준이 낮은 것도 아니고 전부 평균 이상이었다.

혹시 수준이 높을수록 능력치 같은 기본적인 기능이 붙지 않는 것일까?

'그러면 가온 팔찌는?'

지금 강진석이 소유하고 있는 아티펙트 중에서도 가온 팔찌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좋은 아티펙트였다.

즉, 수준이 높을수록 능력치가 붙지 않는다는 가정의 완벽한 반례라 할 수 있었다.

'성장형이라 붙은 걸까?'

강진석은 아티펙트에 대해 생각하며 주변을 스윽 훑었다.

이제 영역을 파괴하고 나갈 차례였다.

강진석은 혼돈의 구를 지팡이로 변환했다.

그리고 영역의 중점을 향해 불길을 날려 보냈다.

화르륵! 화르륵! 화르륵!

그렇게 세 번째 중점이 파괴된 순간.

[트리만의 영역을 파괴하셨습니다.]

.

.

쩌적!

영역이 파괴되며 주변 환경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강진석은 바로 초감각을 통해 주변 상황을 파악했다.

3차 제약 침공자들의 승리를 확신한 것일까?

고블린들은 마곡나루역 공격에 열중하고 있었다.

강진석은 다시 혼돈의 구를 트리만의 단검으로 변환했다.

그리고 기운을 주입 후 단검을 휘둘렀다.

스아앗!

단검에서 방출된 아이스 스피어는 곧장 공성 무기를 향해 날아갔다.

강진석은 아이스 스피어가 공성 무기에 도착하기 전 다시 단검을 휘둘렀다.

스아앗!

그렇게 두 번째 아이스 스피어가 방출됐고 두 번째 아이스 스피어 역시 공성 무기로 날아갔다.

쩡! 쩌저적!

이내 첫 번째 아이스 스피어가 공성 무기에 작렬했고 한기에 의해 발포 직전이었던 공성 무기 전체가 얼어붙었다.

그리고 이어 두번째 아이스 스피어가 작렬하며 얼어붙었던 공성 무기가 조각조각 산산이 파괴되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당연히 공성 무기가 파괴되자 공간이 진동하기 시작했고 압력이 발생했다.

압력에 의해 잘게 부서지는 얼음 조각들을 보며 강진석은 생각했다.

'생각보다 쉽게 막을 수 있겠는데?'

조금 전 방출한 아이스 스피어 2개는 전력을 다한 게 아니다.

최대 출력의 20% 수준이었다.

기운이든 정신력이든 강진석의 입장에서 크게 부담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거기다 사거리도 길어 지금 위치에서도 대부분 파괴할 수 있었다.

'고블린들도 이제는....'

공성 무기뿐만이 아니다.

아이스 스피어와 홍염의 숨결은 단일 대상에게만 피해를 주는 마법이 아니다.

앞으로 고블린 사냥도 한결 더 수월해질 것이다.

'일단 공성 무기부터 박살 내자.'

강진석은 계속해서 기운을 주입하며 단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스아앗! 스아앗!

그리고 방출된 아이스 스피어들이 공성 무기를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 * *

마곡역 지휘부.

"그게 무슨 소리지?"

마곡역 관리자이자 일대를 지배하고 있는 10부족장 글라마가 불신 가득한 얼굴로, 분노 깃든 목소리로 반문했다.

글라마가 분노한 이유는 조금 전 들어온 보고 때문이었다.

"전부 죽어? 인간 하나를 잡는데?"

마곡나루역에서 홀로 다가온 인간을 죽이기 위해 3차 제약자 여섯이 움직였다.

거기다 트리만이 영역까지 선포했다.

문제는 얼마 뒤 영역이 파괴되며 인간만 나타났다는 점이다.

그 말은 함께 영역으로 들어간 3차 제약자 여섯이 전부 죽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리고 그 인간이 공성 무기를 싹 파괴하고 있다?"

영역에서 나오자마자 인간은 공성 무기를 파괴하고 있었다.

"방어 아티펙트는 뭘하고!"

공성 무기를 지키기 위해 많은 방어 아티펙트도 투입했다.

그런데 대체 무엇을 하고 있기에 공성 무기가 파괴된단 말인가?

보고하러 온 10부족 정보대장 무후라가 눈치를 살피며 답했다.

"...방어 아티펙트도 파괴되고 있습니다."

"...."

무후라의 답에 글라마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멍하니 무후라를 바라볼 뿐이었다.

글라마뿐만이 아니다.

함께 보고를 듣고 있던 마곡역에 남아 있는, 이번 작전의 수뇌부인 3차 제약자 다섯 역시 멍하니 무후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글라마를 포함한 수뇌부의 반응은 전혀 이상한 게 아니었다.

솔직히 공성 무기, 방어 아티펙트가 파괴된 것은 중요하지 않다.

정확히 말하면 문제는 문제지만 제일 큰 문제는 아니다.

지금 수뇌부들의 반응에 제일 큰 영향을 끼친, 가장 큰 문제는 인간을 잡으러 간 3차 제약자들이 전부 죽었다는 점이었다.

인간을 잡으러 간 3차 제약자들은 글라마를 포함한 수뇌부와 동급의 존재들이었다.

여섯이 힘을 합쳤음에도, 영역을 선포했음에도 인간을 당해내지 못했는데 지금 남아 있는 이들이 힘을 합친다고 죽일 수 있을까?

'...4차 제약자?'

글라마는 4차 제약자를 떠올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상황은 인간이 4차 제약자 혹은 4차 제약을 코앞에 둔 3차 제약 10단계여야만 가능한 상황이었다.

'말이 안 되는데?'

그러나 4차 제약자든 3차 제약 10단계든 말이 되지 않는다.

'어떻게 벌써?'

시험이 시작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벌써 그 정도 수준이 됐다?

'설마 진짜 초월의 씨앗이 탄생한 건가?'

2차 제약이 조기 해제됐다.

당시 여러 이야기가 나왔다.

그중 가장 가능성 없는 이야기가 '초월의 씨앗 탄생'이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을 보니 '초월의 씨앗 탄생'이 가장 유력해 보였다.

물론 확실한 것은 아니다.

글라마는 수많은 시험을 치렀지만 초월의 씨앗을 마주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이야기만 전해 들었을 뿐이다.

그래서 지금 인간이 초월의 씨앗인지 아닌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만약 그런 거면 어떻게 되는 거지?'

글라마는 곰곰이 생각했다.

만약 인간이 초월의 씨앗이라면?

초월의 씨앗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급속도로 강해진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래서 초장에 끝장낼 수 없다면 피하라는 소문도 함께 전해지고 있었다.

문제는 제약이었다.

3차 제약이나 4차 제약이 해제된 상황이라면 모를까 고작 2차 제약이 해제된 지금 상황에서 3차 제약자들을 가뿐히 죽이는 인간을 죽일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했다.

제129화

129.

'이건 바로 보고드려야 해.'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한시라도 빨리 상부에 보고해야 할 사항이었다.

글라마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보고 좀 하고 오겠습니다. 일단 후퇴 명령 부탁드립니다."

이대로 계속해서 공격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인간의 힘을 생각하면 지금 당장 공격을 중지하고 수비에 전념해야 했다.

"예, 다녀오시죠."

"후퇴 끝나는 대로 수비 작전 시작하겠습니다."

수뇌부들의 답을 듣고 글라마는 지휘소를 나섰다.

통신 마법으로 보고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거리가 먼 것도 아니고 바로 옆이다.

통신 마법보다 직접 가 보고 하는 게 빨랐다.

'일단 그 전에....'

글라마는 목책으로 다가갔다.

두 눈으로 직접 상황을 확인해 볼 생각이었다.

이내 목책에 도착한 글라마는 목책 밖을 확인했다.

"미친."

확인과 동시에 반사적으로 욕을 내뱉었다.

무후라의 보고대로 공성 무기와 방어 아티펙트들이 조각조각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글라마는 빠르게 전장을 훑어 인간의 위치를 찾았다.

'저 녀석이....'

인간의 외형을 확인한 글라마는 잠시 인간을 주시했다.

조금이라도 정보를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인간이 단검을 휘두를 때마다 아이스 스피어가 방출되고 있었다.

'...왜 익숙한 느낌이 드는 거지?'

어째서인지 아이스 스피어에서 익숙함이 느껴졌다.

그래서 당황스러웠다.

아이스 스피어에서 왜 익숙함이 느껴진단 말인가?

'일단....'

글라마는 뒤로 돌아섰다.

익숙함이 느껴지는 이유에 대해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글라마는 전력을 다해 발산역으로 달렸다.

발산역은 주요 거점으로 마곡역보다 영역이 짙은 상태였다.

'여기서라면....'

글라마는 조금 전 보았던 인간을 떠올렸다.

이곳에서는 인간을 상대할 수 있을까?

'속절없이 당하지는 않겠지.'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은 들지 않았다.

그러나 앞서 죽은 이들처럼 빠르게 죽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근데 녀석이 이곳에 올 이유가 없으니.'

이곳은 차가운 뿌리 부족의 영역이었다.

미치지 않고서야 인간이 영역에 들어올 이유가 없다.

이내 발산역에 도착한 글라마는 수많은 고블린들의 인사를 받으며 지휘소로 향했다.

그리고 지휘소에 도착하자마자 반가운 표정을 짓고 있는 메타벤을 볼 수 있었다.

"오, 10부족장! 벌써 끝난 겁니까?"

메타벤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글라마는 메타벤의 반응에 순간 당황했다.

반응을 보니 단단히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글라마는 당황을 가라앉히고 입을 열었다.

"끝이 나긴 했지만 좋은 상황은 아닙니다."

"...?"

메타벤은 글라마의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글라마가 이어 말했다.

"인간을 죽이기 위해 움직인 트리만 외 다섯이 전부 죽었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공격으로 공성 무기와 방어 아티펙트가 파괴되어 현재 후퇴 명령을 내렸고 수비 작전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그게 무슨?"

메타벤은 반문할 수밖에 없었다.

잘못 들은 게 아닐까 싶었다.

그 정도로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성물 모조품이 2개나 있는데?'

그도 그럴 것이 트리만과 바바리아에게 성물 모조품이 하나씩 있었다.

메타린의 죽음과 관계된 인간이라 해도 이길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반대의 상황이 발생했다.

'이렇게 빨리?'

어떻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패배했다는 게 사실이라 해도 시간이 이상했다.

성물 모조품이 2개나 있는데 어찌 이리 빨리 패배한단 말인가?

메타벤의 반문에 글라마가 이어 말했다.

"제 생각이지만 아무래도 초월의 씨앗이 아닌가 싶습니다."

"...!"

이어진 글라마의 말에 메타벤은 경악했다.

초월의 씨앗이라니?

잠시 멈칫했던 메타벤은 재빨리 부관 트리라스에게 외쳤다.

"당장 통신 마법 준비해. 아버지께 바로 보고한다."

"옙."

트리라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구석으로 향했다.

그리고 통신 마법을 활성화하기 시작했다.

이어 메타벤은 글라마에게 말했다.

"확실한 겁니까? 여섯이 전부 죽었다는 거?"

"예, 죽은 걸 직접 보지는 못했습니다만 공성 무기와 방어 아티펙트를 파괴하는 건 두 눈으로 똑똑히 봤습니다. 그리고 제가 이런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지요."

"...."

글라마의 답에 메타벤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생각해 보니 아주 쓸데없는 질문이었다.

이런 거짓말을 글라마가 왜 하겠는가?

"...미안합니다."

"아닙니다. 상황이 상황이니까요. 저도 믿기 힘들어 직접 확인하러 간...!"

메타벤의 사과에 답하던 글라마는 문득 든 생각에 말을 멈추고 눈을 번뜩였다.

그리고 그런 글라마의 반응에 메타벤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내 글라마가 설마 하는 표정으로 메타벤에게 물었다.

"혹시 성물 모조품을 트리만에게 하사하셨습니까?"

"...그걸 어떻게?"

메타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트리만에게 성물 모조품을 하사한 것은 아는 이가 몇 되지 않는 비밀이었다.

그런데 글라마가 어찌 알고 있는 것일까?

"그 인간의 아이스 스피어가 어째서인지 익숙하더군요. 지금 보니 성물의 기운이 담겨 있어 익숙했던 것 같습니다."

"...그럴 리는 없습니다."

메타벤은 말도 안 된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아시지 않습니까. 저희 일족이 아닌 다른 존재들이 성물 모조품을 사용하면 어떻게 되는지."

"아...."

글라마가 아차! 하는 표정으로 탄성을 내뱉었다.

"녀석을 직접 보셨다고 하셨죠."

"...예."

"녀석이 죽어가고 있었습니까?"

"그건 아닙니다. 하지만...."

글라마는 말끝을 흐렸다.

성물의 기운이 분명했다.

그러나 인간의 상태는 정상이었다.

'어떻게 된 거지?'

그래서 이해가 가지 않았다.

대체 어떻게 된 상황일까?

"...제가 잘못 본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그렇게 느끼신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겠지요."

글라마의 말대로 성물 모조품을 사용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글라마가 착각한 데에도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메타벤은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그때였다.

"준비됐습니다. 이제 1분이면 연결될 겁니다."

통신 마법을 활성화시키던 트리라스가 외쳤다.

"그럼 잠시 보고부터 하고 오겠습니다."

메타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통신 마법진 앞으로 향했다.

"후...."

마법진 앞에 도착한 메타벤은 깊게 한숨을 내뱉었다.

지금 상황을 어떻게 보고해야 할까 고민이 됐다.

고민하며 시간이 흘렀고.

스아앗!

허공에 반투명한 타원형 포털이 나타났다.

그리고 곧 포털에서 메라키오가 모습을 드러냈다.

"메타벤이 위대한 아버지를 뵙습니다."

메타벤은 재빨리 한쪽 무릎을 꿇어 예를 갖추며 인사했다.

-표정을 보니 좋은 일로 연락한 것은 아닌 것 같구나.

"...죄송합니다."

* * *

"...나중에 다시 연락하마."

메라키오는 통신 마법을 끝냈다.

스아앗!

그리고 통신 포털이 사라지자마자 인상을 구겼다.

'초월의 씨앗이 탄생하다니!'

2차 제약이 조기 해제됐을 때 초월의 씨앗이 탄생한 것은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흔히 탄생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런데 메타벤의 보고가 사실이라면 초월의 씨앗이 탄생한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말이 되지 않는 상황이 발생했다.

'3차 제약자 여섯이 당했을 정도면 이미 성장을 했다는 것인데....'

단순한 여섯이 아니다.

성물 모조품을 가진 3차 제약자가 둘이나 포함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전부 당했다는 것은 초월의 씨앗이 어느 정도 성장했음을 의미했다.

'한 달도 안 돼서 어찌....'

초월의 씨앗 탄생을 처음 보는 것은 아니다.

메라키오는 초월의 씨앗 탄생을 2(@두 )번 겪어 보았다.

문제는 시간이었다.

앞서 겪은 초월의 씨앗 탄생은 시험이 시작된 지 1년 6개월, 2년이 지났을 때였다.

이번은 한 달도 되지 않아 탄생했다.

'카시막스보다 더 위험할 것 같은데....'

초월의 씨앗은 시간이 흐를수록 기하급수적으로 강해진다.

1년 6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초월의 씨앗이 된, 아드호란 제국의 영웅 카시막스.

카시막스의 성장 속도는 엄청났고 막강한 힘으로 수많은 부족을 멸망시켰다.

만약 차가운 뿌리 부족도 아드호란 제국 근처에 있었다면?

카시막스에게 멸망했을 것이다.

그 정도로 초월의 씨앗은 위험했다.

물론 초월의 씨앗이 무적이란 소리는 아니다.

2년 차에 초월의 씨앗이 되었던 글레민은 카시막스처럼 승승장구하다가 5차 제약자 킬레드아스의 레어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즉, 초월의 씨앗도 죽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카시막스나 글레민의 상황과 전혀 다르다.

일단 카시막스나 글레민 때에는 시간이 흘러 제약이 많이 완화된 상태였다.

그리고 애초에 시작부터 제약이 강하지 않은 편이었다.

그런데 이번 시험 장소인 지구는 시작부터 제약이 무지막지하게 강했다.

그리고 시간도 얼마 지나지 않아 완화도 얼마 되지 않은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 이미 3차 제약자들을 가볍게 죽이는 초월의 씨앗을 죽일 수 있을까?

5차 제약자에게 도전한 글레민처럼 바보 같은 짓을 한다면 모를까 그게 아니라면 절대 죽이지 못할 것 같았다.

'...어떻게 해야 하지?'

메라키오는 고민했다.

원래 계획은 인간들을 정리하는 데 집중하고 정리를 끝낸 뒤 검은 숲 엘프들과 다시 전면전을 벌이는 것이었다.

그러나 초월의 씨앗 탄생으로 모든 것이 어그러졌다.

기존 계획대로 움직이면 필패다.

모든 계획을 전면 수정해야 했다.

문제는 상황을 타개할 길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이대로 포기를 해야 하나?'

시험을 꼭 완주해야 할 필요는 없다.

막대한 페널티를 받게 되지만 중도 포기가 가능했다.

'근데 포기하려고 해도 아직 시간이....'

문제는 중도 포기를 하기 위해서는 시험 시작 후 최소 2달이 지나야 된다는 점이다.

지금은 포기하고 싶어도 포기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시간이 되자마자 포기하기에는 페널티가 너무 강력했다.

차라리 죽는 게 나을 수 있다.

"후...."

메라키오는 깊게 한숨을 내뱉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무척이나 혼란스러웠다.

이내 메라키오는 뒤로 돌아섰다.

그리고 거처로 향했다.

거처에 도착하자 자리에 앉아 있던 수뇌부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메라키오는 수뇌부들에게 시선을 주지 않고 생각에 잠긴 채 자리에 앉았다.

그런 메라키오의 반응에 메타킨은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무슨 보고를 받으셨기에....'

메라키오는 보고를 받으러 갔었다.

무슨 보고를 받았기에 저리 표정이 좋지 않은 것일까?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했다.

긍정적인 보고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서 더 문제였다.

지금 상황에 부정적인 보고가 올라왔다는 것은 계획에 차질이 생겼음을 의미하기에.

* * *

'대체....'

강진석은 의아했다.

고블린들이 공격을 멈추고 자신들의 영역으로 후퇴했다.

처음에는 공성 무기가 파괴되어 그런 것인가 했다.

그런데 이후에도 너무나 조용했다.

이상하리만큼.

지하도 마찬가지였다.

공격을 오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고 침공이 끝난 것도 아니다.

아직 퀘스트는 완료되지 않았다.

강진석은 고개를 돌려 차가운 뿌리 부족의 목책을 보았다.

'...우리가 공격해야 하나?'

제130화

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