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0화
110.
스앗!
시전과 동시에 찬란한 방패에 빛이 서렸다.
후웅!
이어 방패에 서린 빛이 방패에서 빠져나와 전방을 향해 날아갔다.
이내 빛이 고블린 무리와 조우했고.
콰앙!
폭발이 발생했다.
그리고 그 순간 강진석은 빛에 응축되어 있던 충격이 사방으로 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충격에 휩싸인 고블린들의 기운이 소멸된 것도 느꼈다.
빛에 가려 보이지 않지만 죽은 게 확실했다.
강진석은 확인을 위해 메시지창을 확인했다.
[고블린을 처치하셨습니다.]
[포인트가 110 상승합니다.]
[부장 고블린을 처치하셨습니다.]
[포인트가 300 상승합니다.]
.
.
수많은 메시지가 보였다.
메시지를 통해 죽음을 확인한 강진석은 충격에 휘말리지 않아 살아남은 고블린들에게 다가가며 생각했다.
'예상보다 괜찮네.'
솔직히 이렇게 원거리 공격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물론 그렇다고 완전히 마음에 쏙 드는 것은 아니었다.
문제가 두 개 있었다.
'5분에 한 번인 게 아쉽긴 한데....'
충격 방출에는 쿨타임이 존재했다.
한 번 사용 후 5분을 기다려야 다시 사용이 가능했다.
'속도라도 빠르든가.'
두 번째 문제는 속도였다.
빛이 날아가는 속도가 느렸다.
수색 고블린까지야 반응하지 못하고 당하겠지만 네임드 몬스터들은 충분히 피할 수 있는 속도였다.
'강화하면 달라지려나?'
물론 이 두 문제는 찬란한 방패가 강화되면 해결될 수도 있다.
이내 살아남은 고블린들 앞에 도착한 강진석은 몽둥이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고블린이 죽음을 맞이했고 강진석은 4번 입구 상황을 확인했다.
조금만 있으면 입주자들과 고블린들의 전투가 시작될 것 같았다.
'얼마나 잘 잡으려나.'
전투의 승패는 이미 정해져 있다.
네임드 몬스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입주자들이 패배할 일은 없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잘, 빠르게, 안전히 승리하냐는 점이었다.
* * *
저벅... 저벅....
멀리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주변 탐지."
발소리가 들리자 한지윤은 기다렸다는 듯 주변 탐지를 시전했다.
그렇게 첫번째 무리의 구성을 파악할 수 있었다.
'80마리나....'
발소리가 적지 않아 많을 것은 예상했다.
그런데 예상보다 많은 숫자에 한지윤은 침을 꿀꺽 삼켰다.
단순히 숫자만 많은 것도 아니다.
수색 고블린과 정예 전투 고블린 같은 강한 고블린도 존재했다.
'네임드는 없으니까.'
그나마 다행인 것은 네임드 고블린이 없다는 점이었다.
한지윤은 고개를 돌려 자신을 바라보는 관리자들에게 고블린들의 구성을 전했다.
"수색 고블린 10, 정예 전투 고블린 10, 주술사 고블린 5, 부장 고블린 15, 일반 고블린 40입니다. 네임드는 없구요. 계획대로 첫 전투는 관리자들끼리 진행하면 될 것 같아요."
"알겠습니다."
"예, 준비하죠."
구성을 들은 관리자들은 전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내 시야에 고블린들이 나타났고.
스윽.
한지윤이 시위를 당겼다.
"관통 화살."
그리고 스킬 '관통 화살'을 시전 후 시위를 놓았다.
스앗!
시위를 놓자마자 화살이 엄청난 속도로 날아갔다.
화살은 순식간에 고블린들에게 도달했고.
푝!
가장 앞에 있던 일반 고블린의 미간을 꿰뚫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스킬 '관통 화살'을 통해 화살의 관통력은 크게 강화된 상태였고 뒤에 있던 고블린 둘을 더 꿰뚫었다.
그렇게 세 고블린이 죽음을 맞이했고 기다렸다는 듯 김칠성이 뛰쳐나갔다.
김칠성뿐만이 아니다.
나머지 관리자들 역시 고블린 무리에게 달려들었다.
그렇게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됐다.
전투는 무척이나 일방적이었다.
당연히 관리자들의 우세였다.
고블린들은 관리자들의 공격을 얼마 버티지 못하고 속속 죽음을 맞이했다.
일반 고블린뿐만이 아니다.
부장 고블린, 주술사 고블린 등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수색 고블린이 조금 버텼는데 가장 오래 버틴 고블린도 30초를 버티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고블린이 죽음을 맞이했고 한지윤은 돌아오는 관리자들에게 고생했다 이야기하며 생각했다.
'이 정도면 두 팀만 투입해도 막을 수 있겠는데?'
첫 번째 무리의 수준을 보니 모든 팀을 투입할 필요 없다.
두 팀만 투입해도 충분히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행이야.'
예전 방화역 침공을 수비할 때처럼 모두가 힘을 합쳐도 벅차면 어쩌나 걱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상황을 보니 그때처럼 벅차지는 않을 것 같았다.
"다들 괜찮으신가요?"
이내 관리자들이 도착했고 한지윤이 물었다.
"네, 괜찮아요."
"아주 좋습니다. 포인트도 쏠쏠하고."
"이 정도면 몇 날 며칠도 막을 수 있겠는데요?"
한지윤의 물음에 관리자들이 답했다.
'휴.'
관리자들의 답을 듣고 한지윤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혹시나 본인만 수월하다고 생각하는 거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히 아니었다.
다른 관리자들 역시 같은 생각이었고 한지윤은 한결 편해진 표정으로 이어 말했다.
"다음 무리부터는 두 팀씩 투입하고 위험하다 싶으면 예비팀을 추가 투입하는 방식으로 진행할까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몇 번 막는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수십 무리가 나타날 것이다.
체력을 생각하면 매번 전부가 달려들어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다.
"오, 좋습니다."
"그렇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근데 네임드가 나타나면 어떻게 하실 거예요?"
"네임드가 나타나면 지금처럼 저희가 우선적으로 나서 처리하는 걸로 하죠."
네임드 몬스터는 일반 몬스터와 차원이 다르다.
일반 입주자들이 잡기에는 너무 위험하다.
잡는 게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아주 큰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관리자들이 힘을 합치면?
쉽지는 않아도 큰 피해 없이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좋은 생각입니다! 그러면 다음은 1팀이랑 2팀이 먼저?"
"네, 저희가 먼저 시작할게요."
* * *
'일반 입주자분들도 잘 싸우시네.'
첫 번째 웨이브 두 번째 무리가 도착했다.
그리고 한지윤과 1팀, 2팀이 투입해 두 번째 무리와 전투했다.
첫 전투 때와 달리 시간이 좀 걸리긴 했으나 이번에도 입주자들의 완승이었다.
'이 정도면 걱정할 필요 없겠어.'
관리자들이 잘 싸울 것은 알고 있었다.
걱정되는 것은 일반 입주자였다.
관리자들에 비해 확연히 약했기에.
그런데 다행히 일반 입주자들 역시 잘 싸웠다.
'네임드도 큰 문제는 없을 것 같고.'
만에 하나 네임드 몬스터가 나타난다고 해도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물론 2차 제약 침공자인 '대장'급이 나타났을 때 이야기다.
3차 제약 침공자인 '단장'급이 나타나면 도망치라고 이미 전했다.
관리자들이 힘을 합쳐도 상대할 수 없는 게 '단장'급이었기에.
'슬슬 마중 나가볼까.'
혹여 문제가 생기면 개입하기 위해 입구 쪽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그러나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을 확인했으니 대기하고 있을 이유가 없다.
강진석은 고블린들이 나타났던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강진석은 세 번째 무리를 감지할 수 있었다.
저벅!
세 번째 무리를 감지하자마자 강진석은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눈을 번뜩였다.
'네임드가 벌써?'
강진석이 걸음을 멈춘 이유는 세 번째 무리에 네임드 고블린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단장급은 아니었다.
2차 제약 침공자인 대장급이었다.
'...생각보다 빠르게 등장했네.'
네임드가 나타날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등장할 줄은 몰랐다.
적어도 첫 번째 웨이브 때에는 마지막 무리에나 등장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벌써 등장을 하다니?
'설마 세 번째가 마지막인가?'
강진석은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뒤 세 번째 무리를 조우 했고 메시지가 나타났다.
[정예 전투대장 그라가넨이 등장했습니다.]
'전투대장이었구나?'
메시지를 통해 네임드 고블린의 정체를 확인한 강진석은 몽둥이를 들었다.
그리고 방패를 강하게 후려쳤다.
쾅!
전보다 큰 폭음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이어 강진석은 충격 방출을 시전했다.
스앗!
시전과 동시에 찬란한 방패에 빛이 서렸고 이내 빛이 전방을 향해 날아갔다.
흡수한 충격이 컸기 때문일까?
전보다 빛의 크기가 컸고 조금 더 강렬했다.
'범위도 전보다 크려나? 파괴력만?'
크기가 커지고 강렬해진 만큼 범위에도 변화가 있을지 궁금해졌다.
그러나 이어진 상황에 강진석은 미간을 찌푸렸다.
휙!
뒤쪽에 있던 그라가넨이 단검을 던졌기 때문이었다.
단검과 빛이 마주했다.
콰아아앙!
그리고 그 순간 빛이 폭발하며 응축되어 있던 '충격'이 사방을 헤집었다.
'...범위도 커졌네.'
예상대로 범위가 전보다 커진 상태였다.
통로를 가득 채울 정도였다.
'여기서 더 키우면 안 되겠네.'
여기서 더 강한 충격을 방출하면?
주변 구조물에 영향을 끼칠 것이다.
개활지라면 상관없지만 이곳은 지하였다.
구조물이 무너지면 향후 어떤 문제가 생길지 모른다.
충격 방출의 기준을 세운 강진석은 전방을 보았다.
그라가넨은 물론 다른 고블린들 역시 조금 전 폭발에 당황해하고 있었다.
하기야 그라가넨이 막지 않았다면?
빛은 무리에 도달했을 것이고 그대로 전부 죽었을 것이다.
그 정도로 응축된 충격은 강력했다.
고블린들이 당황해하는 것은 당연했다.
물론 고블린들의 당황은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죽음을 피한 게 아니다.
잠시 유예된 것뿐이다.
강진석은 공간이동을 시전해 코앞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바로 몽둥이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쾅! 쾅! 쾅!
몽둥이가 작렬할 때마다 고블린들이 죽음을 맞이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라가넨을 제외한 모든 고블린이 죽었고 강진석은 그라가넨을 보았다.
그라가넨은 양손으로 검을 쥔 채 공격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공격을 하지는 않았다.
강진석은 그라가넨이 공격하지 않는 이유를 알고 있다.
그라가넨은 덜덜 떨고 있었다.
압도적인 공포에 겁을 먹은 상태였다.
물론 강진석은 그라가넨을 살려둘 생각이 없었다.
후웅! 쾅!
몽둥이가 작렬했고 그라가넨은 그대로 죽음을 맞이했다.
그리고 이어 메시지가 나타났다.
[정예 전투대장 그라가넨이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포인트가 4만 상승합니다.]
[첫 번째 웨이브가 끝났습니다.]
[20분 뒤 두 번째 웨이브가 시작됩니다.]
.
.
예상대로 세 번째 무리가 첫 번째 웨이브의 마지막이었다.
그러나 강진석은 메시지에 집중할 수 없었다.
그라가넨이 남긴 '부산물' 때문이었다.
강진석은 허공에 둥둥 떠 있는 책을 보았다.
처음 보는 책이 아니다.
예전에도 본 적 있는 책이었다.
'포인트 북....'
바로 포인트 북이었다.
강진석은 고개를 돌려 메시지창을 확인했다.
[포인트 북을 발견하셨습니다.]
[20분간 포인트 북을 소유 시 포인트를 획득할 수 있습니다.]
[5분간 소유자가 없을 경우 포인트 북은 소멸합니다.]
'...하.'
메시지를 통해 포인트 북인 것이 확실해지자 강진석은 속으로 나지막이 한숨을 내뱉었다.
'좋지 않은데....'
제111화
111.
포인트 북의 등장은 분명 좋은 일이다.
포인트를 주니까.
성장에 도움이 되니까.
좋은 일인데 강진석이 좋지 않다 생각하는 이유는 상황 때문이었다.
포인트 북은 사람 수대로 생성되는 게 아니다.
단 하나만 등장한다.
강진석의 경우 혼자이기에 아무 문제 없다.
그러나 4번 입구는?
100명이 넘는 많은 인원이 상주하고 있다.
그런데 포인트 북이 달랑 하나 나타난다?
어떤 상황이 발생할까?
상상을 하니 여러 상황이 떠올랐다.
최악의 상황은 포인트 북 쟁취를 위한 다툼이었다.
물론 다툼이 발생할 가능성은 높지 않았다.
그러나 다투지 않아도 불화의 씨앗이 생성될 것은 자명했다.
'갑자기 왜 나타난 거야....'
어느 순간부터 포인트 북이 나타나지 않아 잊고 있었다.
이렇게 나타날 줄 알았다면 진즉 이야기를 나누고 어떻게 할 것인지 이야기했을 것인데 참으로 난감했다.
'...드랍 안 될 수도 있는 거 아냐?'
이어 떠오른 생각에 강진석은 눈을 번뜩였다.
포인트 북은 정말 오랜만에 나타났다.
오랜만에 나타난 이유가 드랍률이 낮아서라면?
4번 입구에 나타날 네임드 고블린이 포인트 북을 드랍하지 않을 수 있다.
'그래, 괜한 걱정일 수 있잖아?'
강진석은 걱정을 떨쳐냈다.
그리고 뒤로 돌아섰다.
1번 입구의 첫 번째 웨이브는 끝났다.
남은 것은 4번 입구의 마지막 무리뿐이다.
'끝나고 이야기나 해야겠어.'
두 번째 웨이브 시작까지 남은 시간은 20분.
강진석은 웨이브가 끝나는 대로 포인트 북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로 결심하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근데 숫자가 좀 많은데 괜찮으려나?'
마지막 무리라 그런지 네임드 몬스터를 제외하더라도 고블린의 숫자가 매우 많았다.
입주자들이 전원 투입된다고 해도 꽤나 벅찬 싸움이 될 것 같았다.
'...괜찮겠지.'
만에 하나 괜찮지 않다면?
강진석이 나서면 그만이었다.
* * *
최은형은 침을 꿀꺽 삼켰다.
코앞에 나타난 네임드 몬스터 정예 전투대장 글라시코 때문이었다.
글라시코는 거대한 몽둥이를 들고 있었다.
'한 대 맞으면 골로 간다.'
몽둥이는 단순히 크기만 한 게 아니다.
이미 파괴력을 확인했다.
방패로 흘려 냈음에도 팔이 저릿했다.
만약 정타를 허용한다면?
그대로 끝이다.
최은형은 주변을 보았다.
여유가 있는 입주자들이 없었다.
모든 입주자들이 고블린들과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지원을 오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았다.
최은형은 글라시코를 노려보며 생각했다.
'버틸 수 있을까?'
혼자 죽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원이 올 때까지 버티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버텨야지.'
어차피 답은 정해져 있다.
버티지 못하면 죽는다.
단순히 최은형 본인의 죽음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글라시코는 또 다른 이에게 죽음을 선사하러 갈 것이다.
무조건 버텨야 한다.
'진석 님이 주신 아티펙트도 있으니까. 버틸 수 있어.'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가능성이 낮지는 않았다.
강진석에게 받은 아티펙트의 위력을 생각하면 버틸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고 할 수 있었다.
-키익!
바로 그때 글라시코가 괴성을 내뱉으며 다가왔다.
그리고 몽둥이를 휘둘렀다.
최은형은 막지 않고 뒤로 물러났다.
막아도 의미가 없는 파괴력이 담겨 있었다.
후웅!
몽둥이가 허공을 갈랐고 바람을 가르는 소리에 최은형은 침을 꿀꺽 삼켰다.
'전보다 더 세진 거 같은데?'
조금 전 방패로 흘렸을 때보다 더 강력한 느낌이 들었다.
이번에도 방패로 흘리려 했다면?
저릿한 정도로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최은형은 피하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손에 쥐고 있던 투척용 단검을 던졌다.
목표는 글라시코의 허벅지였다.
바로 앞에서 던진 단검이었다.
거기다 최은형은 투척을 쉼 없이 연습했었다.
푝!
덕분에 단검은 빗나가지 않았다.
성공적으로 글라시코의 오른쪽 허벅지에 박혔다.
-키익!
글라시코는 고통이 가득 담긴 비명을 내뱉었고 거칠게 몽둥이를 휘둘렀다.
이미 발광할 것을 예상했던 최은형은 뒤로 한 바퀴 구르며 몽둥이를 피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글라시코를 보았다.
-...키익!
당연히 허벅지에 단검이 박힌 글라시코는 따라붙지 않았다.
대신 짧은 괴성과 함께 단검을 뽑아냈다.
단검이 뽑힌 자리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글라시코는 분노 가득한 표정으로 상처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들어 최은형을 보았다.
사납디사나운 글라시코의 눈빛에 최은형은 잠시 움찔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음을 다잡은 최은형은 글라시코를 주시했다.
'...역시 허벅지 노리길 잘했어.'
허벅지의 상처 때문일까?
글라시코는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분노 가득한 표정으로 최은형을 노려볼 뿐이었다.
'이대로 시간만 끌자.'
지금처럼 가만히 대치만 해도 된다.
그러면 전투를 마친 이들이 지원을 올 것이고 수월히 잡아낼 수 있을 것이다.
바로 그때였다.
휙!
글라시코가 몽둥이를 던졌다.
이렇게 갑자기 원거리 공격을 할 것이라고 생각지 못했던 최은형은 본능적으로 옆으로 몸을 날리려다가 멈칫했다.
뒤쪽에 있는 입주자 때문이었다.
만약 여기서 몽둥이를 피한다?
뒤에 있는 입주자에게 영향을 끼칠 것이다.
최은형은 방패를 들었다.
쾅!
"큽!"
이내 방패에 몽둥이가 작렬했고 묵직함에 최은형은 짧게 비명을 내뱉으며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스앗!
그리고 허공에 떠오른 몽둥이가 빛과 함께 사라졌다.
최은형은 당황스러운 얼굴로 글라시코를 보았다.
사라졌던 몽둥이가 다시 글라시코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아티펙트인가? 스킬?'
회수 기능이 있는 아티펙트인지 아니면 글라시코의 스킬인지 알 수는 없었다.
그러나 지금 중요한 것은 아티펙트냐 스킬이냐가 아니다.
몽둥이를 던지는 것으로 글라시코가 원거리 공격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만약 계속해서 글라시코가 몽둥이를 던져댄다면?
'망할.'
최은형은 인상을 구겼다.
지원군이 올 때까지 버티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글라시코의 허벅지 상처가 아물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곧 다시 움직일 것이다.
바로 그때였다.
"고생했습니다. 은형 씨."
뒤쪽에서 들려오는 중저음에 최은형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중저음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기 때문이었다.
"엇, 벌써 전투 끝내셨어요?"
"수색 고블린쯤이야. 한주먹거리니까요. 흐흐."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김칠성이었다.
김칠성은 실실 웃으며 최은형의 옆에 마주 섰다.
그리고 글라시코를 보았다.
몽둥이를 재차 던지려 했던 글라시코는 김칠성의 등장에 몽둥이를 던지지 않았다.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 분명했다.
바로 그때였다.
"저 녀석만 잡으면 끝인가?"
강나연까지 합세했다.
"네, 이번에 나타난 네임드는 한 마리니까요."
최은형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혼자서는 글라시코를 죽일 수 없다.
그러나 김칠성, 강나연이 합류한 지금은?
상처 하나 없이 잡을 자신이 생겼다.
김칠성이 앞으로 성큼 나서며 말했다.
"이제 제가 메인 맡겠습니다. 서포트 부탁합니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속도를 높여 글라시코와의 거리를 좁혔다.
글라시코는 반사적으로 몽둥이를 휘둘렀다.
그러나 김칠성은 피하지 않았다.
마주 몽둥이를 휘둘렀다.
쾅!
몽둥이와 몽둥이가 마주했고 폭음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김칠성이 뒤로 살짝 밀려났다.
물론 밀려난 것은 김칠성뿐만이 아니다.
글라시코 역시 한 걸음 물러났다.
그리고 아물고 있던 상처가 다시 터져 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김칠성은 활짝 웃으며 시간을 주지 않기 위해 글라시코에게 바로 달려들었다.
그런 김칠성의 모습에 뒤쪽에 있던 최은형은 놀란 표정을 지었고 강나연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서포트 시작하죠. 이대로 가다가는 저 녀석도 크게 다칠 것 같으니."
"아, 네!"
강나연의 말에 정신을 차린 최은형은 놀람을 가라앉혔다.
그리고 강나연과 함께 글라시코에게 달려들었다.
물론 똑같이 정면에서 달려들지는 않았다.
강나연은 왼쪽을 최은형은 오른쪽을 맡았다.
그렇게 김칠성이 정면에서 글라시코의 손을 묶고 강나연과 최은형이 눈치를 보다가 기습적으로 공격을 해 글라시코에게 상처를 입혔다.
-키익!
지금 상황이 짜증이 났는지 글라시코는 짜증과 분노가 섞인 괴성을 내뱉었다.
그러나 그걸로 끝이다.
글라시코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렇게 글라시코의 육체에는 점점 상처가 늘어났고.
-키익....
[정예 전투대장 글라시코가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포인트가 2만 상승합니다.]
[첫 번째 웨이브가 끝났습니다.]
[5분 뒤 두 번째 웨이브가 시작됩니다.]
.
.
이내 죽음을 맞이하며 메시지가 주르륵 나타났다.
'5분?'
메시지를 본 최은형은 인상을 구겼다.
두 번째 웨이브 시작까지 5분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방화역 때와 너무 차이 났다.
이렇게 빨리 웨이브가 시작된다니?
'...어?'
그러나 그것도 잠시 최은형은 고개를 갸웃했다.
[포인트 북을 발견하셨습니다.]
[20분간 포인트 북을 소유 시 포인트를 획득할 수 있습니다.]
[5분간 소유자가 없을 경우 포인트 북은 소멸합니다.]
웨이브 시작 메시지 다음으로 나타난 메시지 때문이었다.
최은형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글라시코가 죽었던 자리를 보았다.
글라시코는 총 4개의 물품을 남겼다.
그중 3개는 바닥에 떨어져 있었고 하나는 허공에 두둥실 떠올라 있었다.
허공에 있는 것은 바로 주황색 포인트 북이었다.
'...5000포인트.'
주황색 포인트 북을 알고 있는 최은형은 침을 꿀꺽 삼켰다.
물론 현재 최은형에게 5000포인트가 엄청나게 많은 포인트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만큼 적은 포인트도 아니었다.
'어떻게 하지?'
문제는 포인트 북이 하나라는 점이다.
글라시코를 잡는데 세 사람이 힘을 합쳤다.
어떻게 분배를 해야 할까?
바로 그때였다.
스앗!
포인트 북 바로 앞에 강진석이 나타났다.
강진석은 난감한 표정으로 포인트 북을 보고 있었다.
스윽.
이내 강진석이 포인트 북을 집었다.
그리고 뒤로 돌아섰다.
그러자 강나연이 강진석에게 물었다.
"그거 뭐야?"
"주황색 포인트 북, 20분 뒤 5000포인트 제공되는 물품."
"...빨간색 포인트 북 상위 물품이구나?"
"응, 그렇지."
강진석은 물음에 답한 뒤 김칠성과 최은형을 보았다.
김칠성은 아무런 생각이 없어 보였고 최은형은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포인트 북에 대한 갈망이 아니라 분배를 어떻게 해야 하나 상황에 대한 눈치인 것 같았다.
솔직히 문제는 세 사람이 아니다.
포인트 북 메시지가 나타난 것은 세 사람뿐만이 아니다.
이곳에 있는 모든 입주자들에게 나타났다.
지금 뒤쪽에서 전투를 끝내고 포인트 북을 바라보는 이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대부분이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몇몇은 부러움이 가득 담긴 눈빛을 하고 있었다.
강진석은 분위기를 살피고 확신했다.
'문제 생기겠는데.'
지금이야 세 사람에게 분배하는 것으로 잘 끝낼 수 있다.
그러나 이후가 문제다.
네임드 몬스터가 드랍한 것을 알게 된 입주자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제112화
112.
앞으로는 위험을 무릅쓰고 네임드 몬스터를 공격하려 할 것이다.
그래야 분배에 숟가락을 올릴 수 있을 테니까.
물론 능력이 되는 상황에서 숟가락을 올리는 것은 아무런 상관없다.
문제는 능력이 되지 않는데 억지로 숟가락을 올리려 할 경우다.
단순히 본인만 피해를 입는 게 아니다.
다른 입주자들에게도 큰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확실히 이야기하고 가야겠네.'
시간이 없었다.
두 번째 웨이브 시작까지 남은 시간은 5분이었다.
그래서 분배만 하고 두 번째 웨이브를 마무리 지은 뒤 이야기하려 했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그전에 문제가 터질 것 같았다.
"일단."
강진석은 입주자들을 스윽 훑고 김칠성, 최은형, 강나연 세 사람을 보며 말했다.
"포인트 북, 아티펙트는 글라시코를 죽인 세 사람에게 분배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분배 방식은 그렇게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구요. 근데 보상 때문에 네임드 몬스터를 맡고 싶어하는 분들이 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강진석은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꺼내자 관리자들은 물론 일반 입주자들 역시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강진석에게 집중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지금 입주자분들의 수준으로는 네임드 몬스터에게 덤벼들었다가는 그대로 죽습니다.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공격에 반응조차 하기 힘드실 겁니다."
이어진 강진석의 말에 몇몇 일반 입주자들의 얼굴에 그림자가 졌다.
"하지만 지금보다 강해지면 몇몇 분들은 가능해지겠죠."
기를 살려주기 위해 하는 말이 아니다.
실제로 몇몇 입주자들은 조금만 더 강해지면 2차 제약 침공자에게도 죽지 않을 수준이 될 것이다.
"앞으로는 관리자부터 네임드 몬스터를 맡을 수 있는 걸로 하겠습니다. 관리자의 직위를 원하신다면 언제든 말씀해 주세요. 제가 직접 확인 후 관리자 직위를 부여하겠습니다. 혹시 지금 당장 관리자 승급을 요청하실 분 계신가요?"
강진석은 질문으로 말을 마쳤다.
"...."
"...."
그리고 잠시 정적이 찾아왔다.
기존 관리자들은 일반 입주자들을 보았고 일반 입주자들은 서로를 보았다.
그렇게 눈치를 살피던 중 정적이 깨졌다.
"혹시 지금의 저는 가능한가요? 저는 저희 팀에서 가장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기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정적을 깬 것은 3팀 소속 일반 입주자 김재필이었다.
김재필은 강진석도 눈여겨보고 있던, 앞서 말한 조금만 더 강해지면 관리자가 될 수 있는 입주자 중 하나였다.
"지금 능력치가 평균 25정도 되실 것 같은데 맞나요?"
"엇, 네. 맞습니다."
강진석의 말에 김재필은 살짝 놀라며 답했다.
"평균 5정도만 더 올리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 말씀은 평균 30 정도면 된다는 말씀이실까요?"
"네, 지금은 평균 30 정도면 관리자 직위를 부여할 생각입니다. 물론 전투 능력도 고려할 예정입니다. 능력치가 되지 않더라도 직위가 부여될 수 있고 혹은 더 되더라도 부여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아, 제 경우에 평균 30이라는 말씀이셨군요. 알겠습니다! 조만간 신청하겠습니다!"
김재필은 활짝 웃으며 외쳤다.
그렇게 대화가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옆에 있던 또 다른 입주자가 입을 열었다.
"...혹시 다른 관리자분들도 평균 능력치가 30이 넘나요?"
질문을 한 입주자의 눈빛에는 의심이 살짝 깃들어 있었다.
강진석은 싱긋 웃으며 답했다.
"네, 다들 훌쩍 넘어가십니다."
평균 30이 아니라 평균 40이 넘는 관리자도 있었다.
"아하."
강진석의 답에 질문을 했던 입주자는 머쓱한 표정으로 탄성을 내뱉고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강진석이 입주자들을 스윽 훑었다.
모두가 입을 꾹 닫고 있었다.
질문이 없음을 확인한 강진석은 이어 말했다.
"관리자가 됐다고 혼자서 네임드 몬스터를 잡을 수 있는 수준이 됐다는 것은 아닙니다. 죽지 않을 수준이 됐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관리자 혼자 네임드 몬스터를 잡는 것은 불가능하다.
조금 전 강나연, 김칠성, 최은형도 힘을 합치지 않았다면?
상처 하나 없이 사냥을 마치지 못했을 것이다.
강진석의 말에 직접 마주했던 강나연, 김칠성, 최은형 세 사람은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강진석은 시간을 확인 후 말했다.
"아시겠지만 이제 곧 두 번째 웨이브가 시작될 겁니다. 다들 준비해 주세요."
* * *
등촌역 지하 2층 지휘소.
지휘소에는 수많은 이들이 모여 있었다.
단순히 많기만 한 것도 아니다.
부족 내에서 지위가 높은 이들이 다수 있었다.
앉을 자리가 부족해 2차 제약을 받은, 웬만한 곳에서는 대접받을 이들이 뒤쪽에 덩그러니 서 있을 정도였다.
가장 상석에 앉아 있던 5부족장 밀레닐라가 물었다.
"보고는 왔나요?"
밀레닐라의 물음에 이번 탈환 작전 총괄을 맡은 본부 직할 수색단장 베르닐이 답했다.
"아니요. 당했을 겁니다. 보고할 틈도 없이."
베르닐은 당연하다는 듯 답했다.
부족원들이 당했다는 이야기를 너무나 당연하게 이야기 하는 것에 누군가 걸고넘어질 법했지만 그 누구도 걸고넘어지지 않았다.
"역시...."
"하기야 메타린 님이 당하셨는데...."
베르닐의 반응대로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밀레닐라를 포함해 몇몇 이들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베르닐이 입을 열었다.
"2차 제약 부족원들로는 잘 해봐야 흠집이 한계일 겁니다. 적어도...."
말끝을 흐린 베르닐은 잠시 생각하고는 이어 말했다.
"6차 공격부터 제대로 피해를 줄 수 있겠죠."
증미역을 장악한 이들의 수준을 생각하면 적어도 3차 제약 침공자들이 나서야 한다.
문제는 6차 공격부터 3차 제약을 받은 이들이 공격에 나설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정확히 말하면 그전에도 나설 수 있긴 하지만 막대한 페널티를 받게 된다.
굳이 페널티를 받으면서 공격을 할 이유는 없었다.
"음...."
밀레닐라는 침음을 내뱉었다.
"혹시 6차 때 전력을 다해 공격하실 생각이십니까?"
부족 내 직위는 밀레닐라가 더 높다.
그러나 이번 작전의 총괄은 베르닐이었다.
작전에 의견을 제시할 수는 있지만 확정 짓는 것은 베르닐의 몫이었다.
베르닐의 생각이 궁금했다.
"아니요."
밀레닐라의 물음에 베르닐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전부 공격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6차 공격부터 3차 제약 침공자들이 나설 수 있지만 전부가 나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모두가 나서려면 마지막 기회인 8차 공격에나 가능했다.
"그러면...."
밀레닐라가 말끝을 흐렸고 베르닐이 눈을 번뜩이며 답했다.
"8차 공격 때 전부 가시지요."
* * *
"...."
강진석은 말없이 미간을 찌푸렸다.
전방에서 감지 된 고블린 무리의 구성 때문이었다.
고블린들의 구성은 대장급 고블린 둘, 수색 고블린 50, 정예 전투 고블린 100, 주술사 고블린 10마리로 무척이나 강했다.
물론 구성이 강력해 미간을 찌푸린 것은 아니다.
강진석이 미간을 찌푸린 이유는 오히려 구성이 생각보다 약했기 때문이었다.
이번 무리는 일곱 번째 웨이브의 마지막으로 추정되는 세 번째 무리였다.
'단장급은 왜 안 나타나?'
당연히 3차 제약 침공자인 단장급 고블린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감지되지 않았다.
이번뿐만이 아니다.
이전 웨이브에도 단장급 고블린은 나타나지 않았다.
강진석은 이해가 가지 않는 표정으로 퀘스트창을 열었다.
그리고 퀘스트 '차가운 뿌리 부족의 지원군'을 확인했다.
<차가운 뿌리 부족의 지원군>
메타린은 본부에 당신의 존재를 보고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지원까지 요청했다.
본부에서는 요청을 받아들였고 증미역으로 지원군을 보내기로 했다.
지원군의 규모는 총 300.
3차 제약 침공자가 3마리, 2차 제약 침공자가 15마리나 포함된 엄청난 규모다.
4시간 뒤 증미역을 침공할 지원군의 공격에서 생존하라!
퀘스트 보상 : ???
침공 시작 후 24시간 생존 시 퀘스트 완료
'적어도 이번에 하나는 나올 거라 생각했는데....'
지원군에만 3마리가 있었다.
3마리가 끝이 아닐 것이다.
몇 마리가 더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적어도 일곱 번째 웨이브에 한두 마리는 등장할 것이라 생각했다.
'설마 마지막에 다 몰려오는 거야?'
상황을 보니 아무래도 마지막인 여덟 번째 웨이브에 전부 등장할 것 같았다.
그래서 문제였다.
지금 입주자들의 수준으로는 결코 3차 제약 침공자를 상대할 수 없다.
버티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조금이라도 버티려다가는 그대로 죽을 것이다.
그 정도로 격차가 컸다.
'끙....'
강진석은 속으로 신음을 내뱉으며 거리를 좁혔다.
그리고 세 번째 무리 사냥을 시작했다.
쾅!
충격 방출로 일거에 수십을 죽이며 시작된 사냥은 3분도 지나지 않아 끝이 났다.
강진석은 부산물을 습득 후 메시지를 보았다.
[일곱 번째 웨이브가 끝났습니다.]
[30분 뒤 마지막 웨이브가 시작됩니다.]
.
.
'으음....'
메시지를 본 강진석은 속으로 나지막이 침음을 내뱉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주어진 시간은 30분으로 앞서 진행된 웨이브들에 비해 많은 시간이 주어졌다.
문제는 시간이 주어졌지만 딱히 준비할 게 없다는 점이었다.
3차 제약 침공자들이 우르르 나타날 것이다.
그런데 무엇을 준비할 수 있겠는가?
강진석은 뒤로 돌아섰다.
그리고 4번 입구로 향하며 생각했다.
'입주자들이 막으면 10분 정도 남을 것 같은데....'
4번 입구에도 조금 전 강진석에게 죽은 고블린 무리와 똑같은 구성의 고블린들이 나타날 예정이었다.
입주자들이 방어를 마치면 남을 시간은 10분으로 예상됐다.
'일단 다 요새 안으로 들여야겠지...?'
아무리 봐도 마지막 웨이브는 밖에서 대비하면 안 된다.
3차 제약 침공자가 바로 나선다면?
죽을 확률이 높다.
관리자라 해도 마찬가지다.
'그래, 안으로 들이는 게 맞아.'
결정을 내린 강진석은 이어 마지막 웨이브 방어에 대해 생각했다.
'근데 혼자서 가능할까?'
아직 구성이 확인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마지막 웨이브는 혼자 막아야 할 것 같았다.
혼자서 3차 제약 침공자 여럿을 막는 게 가능할까?
강진석은 마지막 웨이브 때 나타날 이들의 수준을 전부 '메타린'으로 가정하고 상상해 봤다.
'...가능할 것 같긴 한데.'
현재 강진석의 힘은 메타린을 상대할 때보다 훨씬 강해졌다.
지금이라면 메타린과 동급의 존재를 동시에 여럿 상대해도 무난히 이길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들었다.
물론 생각일 뿐이지 확실한 것은 아니었다.
'후우.'
강진석은 속으로 한숨을 내뱉었다.
* * *
"...들어가 있으면 되는 거야?"
강나연이 물었다.
"응, 위험할 거야."
강진석은 물음에 답하며 시간을 확인했다.
이제 1분 뒤 마지막 웨이브가 시작된다.
그리고 3차 제약 침공자들이 나타날 것이다.
"...알겠어. 필요한 일 있으면 바로 말해줘."
"어, 부탁할 일 있으면 말할게."
강진석의 답을 끝으로 강나연이 입구를 통해 증미역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1분 뒤 메시지가 나타났다.
[마지막 웨이브가 시작됩니다.]
[퀘스트 '절망'이 생성됐습니다.]
[퀘스트 '차가운 뿌리 5부족장 밀레닐라'가 생성됐습니다.]
.
.
한두 개가 아니었다.
수많은 메시지가 나타났고 메시지를 본 강진석은 미간을 찌푸렸다.
제113화
113.
'이게 다 몇 개야?'
강진석은 생성된 퀘스트의 수를 확인했다.
'11개....'
무려 퀘스트가 11개나 생성됐다.
강진석은 빠르게 퀘스트창을 열어 퀘스트들을 확인했다.
그리고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다.
가장 먼저 생성된 퀘스트 '멸망'을 제외한 10개의 퀘스트가 전부 네임드 퀘스트였다.
'단장은 셋뿐이네.'
그리고 10개 퀘스트 중 직위가 단장인 네임드 퀘스트는 3개뿐이었다.
물론 3차 제약 침공자가 셋이라는 것은 아니다.
5부족장 밀레닐라, 8부족장 크로신 역시 단장과 동급이었다.
강진석이 확신하는 이유는 퀘스트에 3차 제약 침공자라 언급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퀘스트 '5부족장 밀레닐라'에는 밀레닐라가 이번에 침공한 고블린 중 가장 강하다는 이야기가 쓰여 있었다.
'근데 3차 제약 침공자가 많아서 그런가?'
강진석은 퀘스트 '5부족 고블린들'을 보며 생각했다.
<5부족 고블린들>
2차 제약 침공자이자 5부족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고블린들을 처치하라!
[정예 전투대장 클라본 : X]
[수비대장 물레닌 : X]
.
.
퀘스트 보상 : ???
이전에는 2차 제약 침공자 역시 따로 퀘스트가 생성됐었다.
그런데 3차 제약 침공자가 다섯이나 있기 때문일까?
이번에는 따로 생성되지 않았다.
5부족, 8부족, 직할 수색단 등 소속별로 통합됐다.
2차 제약 침공자의 통합을 보니 이번 침공의 난도가 보통이 아니라는 것이 여실히 느껴졌다.
강진석은 퀘스트창을 닫았다.
'근데 5마리가 끝일 줄이야.'
솔직히 말해 7~8마리를 예상하고 있었다.
최악의 경우 10마리가 넘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5마리라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나마 다행이라는 것이지 실제로 다행인 상황은 아니었다.
상황 자체를 놓고 보면 최악이라 할 수 있었다.
'따로따로 와줬으면 좋겠는데.'
부디 강진석은 3차 제약 침공자들이 시간에 텀을 두고 와주길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강진석의 바람은 산산이 조각났다.
'...뭐야?'
초감각에 고블린 무리가 감지됐다.
문제는 해당 무리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기운 다섯이었다.
밀레닐라, 크로신, 베르닐 등의 3차 제약 침공자들이 확실했다.
'다 같이 움직인다고? 처음부터?'
강진석은 당황스러웠다.
모두가 함께 움직이는 것도.
이렇게 바로 오는 것도.
거기다 약속이라도 한 듯 전부 1번 입구로 오고 있었다.
정확히는 4번 입구에도 고블린 무리가 나타나기는 했다.
그러나 그 수는 많지 않았다.
2차 제약 침공자 셋뿐이었다.
구성을 보면 미끼로 추정됐다.
'...따로 싸울 방법 있나?'
전투를 피할 방법은 없다.
최선은 동시에 상대하는 게 아니라 따로따로 상대하는 것이다.
'으음....'
그러나 함께 움직이고 있는 상황이었다.
따로따로 한 마리씩 상대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잠깐.'
그러다 문득 든 생각에 강진석은 눈을 번뜩였다.
'스크롤 퍼부으면 되지 않나?'
창고에는 수많은 스크롤이 있었다.
그중에는 공격용 스크롤도 다수 있었다.
물론 3차 제약 침공자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을지는 확실치 않다.
귀찮음 정도만 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한 상황이었다.
거기다 조금 전, 가장 먼저 생성된 퀘스트 '멸망'에 따르면 지하 통로는 강화됐다.
웬만해서는 무너지지 않는다는 단어가 쓰여 있었다.
여파 역시 신경 쓸 필요 없어진 상태였다.
스크롤을 사용하기로 결정한 강진석은 바로 창고로 공간이동을 했다.
그리고 스크롤을 챙기며 쓴웃음을 지었다.
'내가 쓰게 될 줄은 몰랐는데.'
원래 입주자들에게 주려 했다.
강진석이 직접 사용할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렇게 빠르게 쓰게 될 줄이야?
'효과가 컸으면 좋겠는데.'
이내 스크롤을 챙긴 강진석은 다시 1번 입구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가오는 무리를 향해 마중을 나가기 시작했다.
거리가 빠르게 좁혀지기 시작했다.
"...!"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강진석은 눈을 번뜩였다.
강진석이 눈을 번뜩인 이유는 고블린들이 갑자기 이동을 멈췄기 때문이었다.
고블린들이 멈춘 곳은 거대한 공동이었다.
혹시 공동에 중간 거점을 만들려는 게 아닐까?
그러나 이어진 상황에 강진석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고블린들이 이동을 멈춘 것은 중간 거점 때문이 아니었다.
이동 순서를 바꾸기 위해서였다.
선두에 있던 3차 제약 침공자들이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2차 제약 침공자들과 일반 고블린들이 앞으로 나섰다.
갑자기 왜 순서를 바꾼 것일까?
이유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강진석의 입장에서 좋은 일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좋은 일이 아닌 이유는 3차 제약 침공자들에게 시간이 주어지기 때문이었다.
원래는 바로 선두에 있는 3차 제약 침공자들에게 스크롤을 퍼붓고 몰아붙여 끝낼 생각이었다.
그런데 2차 제약 침공자들과 일반 고블린들이 앞장서다니?
'공간이동으로 넘어가서 끝낼까?'
물론 바로 3차 제약 침공자들을 공격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3차 제약 침공자들이 있는 곳으로 공간이동을 하면 된다.
그러나 그렇게 할 경우 스크롤의 여파를 강진석 역시 같이 감당해야 하는 단점이 있었다.
'그냥 2차 제약 침공자나 일반 고블린들을 정리하는 데 쓸까?'
꼭 스크롤을 3차 제약 침공자에게 써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2차 제약 침공자와 일반 고블린들을 죽이는 데 쓰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고.
저벅!
이내 강진석이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스크롤을 하나 꺼냈다.
스크롤의 이름은 '파드란의 대화염구'라는 공격용 스크롤이었다.
사용 방법은 무척이나 단순했다.
스크롤을 찢거나 혹은 기운을 주입하면 된다.
'주입하는 게 맞겠지?'
사용 방법에 따라 파괴력이 달라진다.
스크롤을 찢을 경우의 파괴력이 1이라면 기운 주입 시 파괴력은 2였다.
수많은 기운을 주입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조금만 주입하면 된다.
거기다 최대한 피해를 입혀야 하는 상황에 굳이 파괴력이 낮은 방식으로 발동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스윽.
결정을 내린 강진석은 고개를 들었다.
저 멀리 고블린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강진석은 얼마 뒤 스크롤에 기운을 주입했다.
그러자 스크롤에 빛이 서리더니 이내 빛과 함께 사라졌다.
스앗!
그리고 강진석의 눈앞 허공에 마법진이 나타났다.
지름 2m의 마법진으로 무척이나 붉었다.
화르륵!
이내 마법진에서 거대한 화염구가 등장했다.
'...파이어 볼이랑 비교가 안 되네.'
강진석은 앞서 마법사가 직업인 이들의 파이어 볼을 보았다.
지금 등장한 화염구는 마법사들의 파이어 볼 수십 개를 합쳐놓은 크기였다.
크기만 큰 게 아니었다.
열기도 강렬했고 담긴 기운 역시 엄청났다.
강진석은 고블린들에게 날아가는 화염구를 보며 생각했다.
'얼마나 강력할까?'
열기나 기운을 보면 파괴력 역시 보통이 아닐 것 같았다.
강진석은 기대감을 끌어올리며 고블린들을 보았다.
화염구를 인지한 고블린들은 무척이나 당황스러운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그뿐이었다.
고블린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이내 화염구가 고블린 무리에 도달했다.
화르륵!
화르륵!
당연히 폭발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화염구는 폭발하지 않았다.
대신 마주하는 모든 고블린을 불태우며 계속해서 전진했다.
[수색 고블린을 처치하셨습니다.]
[포인트가 3000 상승합니다.]
[수색 고블린을 처치하셨습니다.]
[포인트가 3000 상승합니다.]
.
.
강진석은 주르륵 나타나는 메시지를 보고 다시 화염구를 보았다.
화염구는 어느새 작은 점으로 변해 있었다.
이내 시야에서 화염구가 사라졌다.
[수색 고블린을 처치하셨습니다.]
[포인트가 3100 상승합니다.]
[수색 고블린을 처치하셨습니다.]
[포인트가 2900 상승합니다.]
.
.
물론 시야에서 사라졌을 뿐 메시지는 계속해서 나타났다.
강진석은 침을 꿀꺽 삼키며 생각했다.
'...이건 분배하면 안 되겠다.'
파드란의 대화염구는 생각 이상으로 강력했다.
3차 제약 침공자를 죽일 정도는 아니지만 2차 제약 침공자들에게는 큰 피해를 입힐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른 공격용 스크롤과 달리 막 분배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강진석은 이어 떠오른 생각에 인벤토리에서 스크롤을 하나 더 꺼냈다.
이번에 꺼낸 스크롤은 '파드란의 얼음 사슬'이었다.
'...대화염구랑 비슷하려나?'
대화염구와 마찬가지로 '파드란'이란 단어가 붙어 있었다.
거기다 스크롤의 개수 역시 대화염구와 마찬가지로 3장밖에 되지 않았다.
그래서 기대가 됐다.
아주 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그때였다.
콰아아앙....
폭음이 들려왔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메시지가 주르륵 나타났다.
'내가 너무 걱정을 많이 했나?'
스크롤을 퍼부어도 힘들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위력을 보니 괜한 걱정을 한 것 같았다.
굳이 스크롤을 퍼붓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강진석은 한결 편해진 표정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 *
"...."
베르닐은 말없이 미간을 찌푸렸다.
미간을 찌푸린 이유는 전방에 모습을 드러낸 한 인간 때문이었다.
별 볼 일 없는 기운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었다.
그러나 조금 전 인간이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마법은 별 볼 일 없지 않았다.
무척이나 강력했다.
만약 베르닐이 마법을 파괴하지 않았다면?
더 많은 부족원들이 죽었을 것이다.
'기운을 숨긴 건 분명한데....'
인간이 기운을 숨긴 것은 확실했다.
그래서 문제였다.
기운을 숨겼는데 조금도 파악이 되지 않았다.
그 말은 베르닐보다 수준이 높다는 것을 의미했다.
물론 현재 베르닐은 제약을 받고 있는 상태였다.
제약을 일시적으로 완화하면 인간의 수준을 간파할 수도 있다.
그러나 수준을 간파하자고 제약을 완화할 수는 없었다.
'저 인간이 메타린 님을 죽인 걸까?'
마법 수준을 보면 메타린의 죽음과 연관이 있을 것 같았다.
'근데 메타린님이 마법사에게 죽었을 것 같지는 않은데....'
메타린은 마법에 강하다.
인간 마법사의 마법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혼자서 메타린을 죽였을 것 같지는 않았다.
'동료가 있는 건가?'
확실치 않지만 인간 마법사와 비슷한 수준의 동료가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면 그 인간이 합류하기 전에 끝을 내야 할 것 같은데....'
바로 그때였다.
"...?"
베르닐은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인간이 갑자기 몽둥이를 들었다.
마법사가 지팡이도 아니고 갑자기 웬 몽둥이란 말인가?
'설마 몽둥이가 아니라 지팡이인가?'
누가 봐도 몽둥이었다.
하지만 몽둥이의 형태를 한 지팡이일 가능성도 있었다.
그러나 이내 이어진 상황에 베르닐은 인상을 구겼다.
쾅!
인간이 몽둥이를 휘둘렀고 폭음과 함께 부족원이 그대로 죽음을 맞이했다.
지팡이일 가능성이 0이 되는 순간이었다.
"...마법사인 줄 알았건만."
함께 있던 밀레닐라가 황당한 목소리로 말했다.
베르닐은 정신을 차리고 밀레닐라와 세 고블린을 보았다.
"보통 녀석이 아닌 것 같은데 바로 힘을 합쳐 처리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제114화
114.
"좋은 생각입니다."
밀레닐라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러나 직할 3수비단장 딜라이델의 생각은 달랐다.
"통로가 좁은데, 어설픈 연계는 오히려 해가 되지 않겠습니까?"
넓은 공동이 아니다.
통로가 매우 좁았다.
오랜 시간 합을 맞춘 것도 아닌데 지금 상황에 연계를 한다?
어설픈 연계는 치명적인 독이 되어 돌아올 수도 있다.
"그건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근데 그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겁니다."
밀레닐라가 싱긋 웃으며 답했다.
그러자 나머지 네 고블린이 눈을 번뜩였다.
밀레닐라의 능력을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영역을 생성하실 생각이십니까?"
베르닐이 설마 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자 밀레닐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보아하니 저 인간만 잡으면 무난하게 이번 탈환을 끝낼 수 있을 것 같으니 이쯤에서 영역을 선포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군요."
"...감사합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베르닐이 감사를 표했고 밀레닐라는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사파이어가 달린 지팡이를 하늘로 들며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스아앗!
얼마 지나지 않아 발밑에 마법진이 나타났다.
마법진은 등장과 동시에 빛을 뿜어냈고 이어 주변 환경이 변했다.
더 이상 좁은 통로가 아니었다.
한없이 넓은 빈터가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미약하게나마 제약 또한 완화됐다.
베르닐은 인간을 보았다.
인간은 살짝 당황해하고 있었다.
하기야 갑자기 환경이 변했으니 당황하는 게 당연했다.
"먼저 출발하겠습니다."
베르닐이 밀레닐라에게 말했다.
영역 생성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많은 기운과 정신력이 소모되는 일이었고 영역을 생성한 밀레닐라는 살짝 지친 상태였다.
회복을 기다리는 것보다 넷이 먼저 시작하는 게 좋아 보였다.
"곧 합류하겠습니다."
밀레닐라가 싱긋 웃으며 답했고 베르닐은 다른 세 고블린에게 눈빛을 보냈다.
그리고 세 고블린은 약속이라도 한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로 움직였다.
인간이 도망칠 수 없게 베르닐은 인간의 앞을, 크로신은 인간의 오른쪽을 남은 둘은 왼쪽과 등 뒤를 맡았다.
그렇게 포위를 마친 뒤 베르닐은 인간을 향해 검을 겨눈 채 공격할 타이밍을 잡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였다.
스앗!
인간이 사라졌다.
"...!"
그리고 베르닐은 눈을 번뜩이며 뒤로 돌아섰다.
인간이 나타난 곳이 밀레닐라의 코앞이었기 때문이었다.
'블링크를!'
전사였다.
당연히 블링크 같은 공간이동 마법을 사용할 것이라고 생각지 않았다.
그래서 포위를 한 것이다.
도망치지 못하게.
그런데 공간이동을 할 줄이야?
후웅!
밀레닐라 앞에 나타난 인간은 바로 몽둥이를 휘둘렀다.
쾅!
이내 인간의 몽둥이가 밀레닐라에게 작렬하며 굉음이 울려 퍼졌다.
'...휴.'
그리고 이어진 상황에 베르닐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그도 그럴 것이 몽둥이는 밀레닐라에게 직접적으로 작렬하지 못했다.
밀레닐라는 그 짧은 순간 보호막을 만들어 냈고 몽둥이는 그 위에 작렬했다.
'근데 아무리 급하게 만들었다고 해도 보호막이....'
보호막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곳곳에 균열이 가 있었다.
한 번 더 몽둥이가 작렬하면 파괴될 것 같았다.
밀레닐라는 부족 내 손꼽히는 주술사였다.
다급히 만든 보호막이라 해도 밀레닐라의 보호막이 공격 한 번에 저리되다니?
'피해야겠는데.'
인간의 공격을 흘리거나 피해야 할 것 같았다.
맞대응했다가는 피를 볼 것이 분명했다.
스앗!
바로 그때 인간이 다시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인간이 서 있던 바닥에서 날카로운 얼음 기둥이 솟구쳤다.
밀레닐라는 인간이 공격을 피하자 인상을 구기며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베르닐 역시 따라 고개를 들어 허공을 보았다.
허공에 얼음 기둥을 피해 사라진 인간이 있었다.
인간의 표정 또한 밀레닐라와 마찬가지로 좋지 않았다.
왜 좋지 않은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인간 역시 지금 상황을 매우 불편해하고 있다.
혹여 인간이 여유를 가지고 있다면 어쩌나 했는데 그나마 다행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인간이 허공에 손을 뻗었고 이내 스크롤이 나타났다.
'설마....'
안도하고 있던 베르닐은 순간 불안함을 느꼈다.
인간의 수준을 생각하면 스크롤의 수준 역시 평범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막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생각을 마친 그때.
스아악!
스크롤이 빛나며 사라졌다.
그리고 베르닐은 느낄 수 있었다.
심장이 얼어붙을 정도로 차가운 한기를.
* * *
[극한의 냉기에 모든 속도가 감소합니다.]
[빙결을 무시합니다.]
.
.
.
메시지를 본 강진석은 생각했다.
'...지금 사용하길 잘했네.'
조금 전 강진석은 스크롤 '파드란의 얼음 사슬'을 사용했다.
파드란의 얼음 사슬은 강진석의 예상과 전혀 달랐다.
일단 대화염구보다 훨씬 강력했다.
위력만 강한 게 아니다.
'영역 스킬일 줄이야.'
대화염구와 달리 얼음 사슬은 영역 스킬이었다.
만약 이 사실을 모르고 입주자들이 있는 곳에서 사용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버틸 수 있는 입주자가 있을까?
아니, 단 한 사람도 버티지 못할 것이다.
모든 입주자들이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다.
'다른 것들도 미리미리 확인해야겠어.'
강진석은 추후 다른 스크롤들을 하나하나 확인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고개를 내려 3차 제약 침공자들을 보았다.
강진석도 영향을 받았을 정도다.
3차 제약 침공자인 다섯 고블린들도 영향을 받은 상태였다.
가장 기운이 약했던 고블린은 하반신이 완전히 얼어붙었다.
상반신도 움직이는 데 제한이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네 고블린들 역시 육체 곳곳이 얼어붙어 있었다.
'대화염구 수준이었으면 이 정도는 아니었겠지.'
대화염구와 비슷한 수준이었다면?
지금의 상황은 결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강진석은 가장 먼저 맞붙었던, 사파이어 지팡이를 쥐고 있는 고블린을 보았다.
'우선 밀레닐라부터 죽이는 게 맞겠지?'
고블린의 정체는 밀레닐라였다.
밀레닐라는 다섯 중 가장 강했다.
그러나 지금은 두 번째로 약했다.
갑자기 약해진 이유는 확실치 않지만 영역 선포 때문으로 추정됐다.
'그래, 회복하면 더 귀찮아질 테니.'
지금도 빠르게 기운이 커지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곧 회복을 마칠 것이고 처리하는 데 더 귀찮아질 것이다.
결정을 내린 강진석은 바로 공간이동을 시전했다.
극한의 한기 때문에 전보다 더 많은 정신력이 요구됐지만 상관없다.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밀레닐라 앞에 도착한 강진석은 바로 몽둥이를 휘둘렀다.
당연히 밀레닐라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사파이어 지팡이에 기운이 서렸다.
그러나 마법이 발현하기도 전 강진석의 몽둥이가 보호막에 작렬했다.
쾅! 쩌저적!
이미 금이 쩍쩍 가 있던 보호막은 몽둥이가 작렬하자마자 산산이 조각났다.
그리고 이어 강진석은 느낄 수 있었다.
머리 위, 등 뒤, 바닥에 나타난 세 마법진을.
강진석은 잠시 고민했다.
이대로 마법진에서 튀어나올 마법을 무시하고 그대로 밀레닐라를 공격할지 아니면 일단 피할지.
고민할 시간은 많지 않았고 강진석은 빠르게 결정을 내렸다.
'잡자.'
어떤 마법인지 모른다.
그러나 마법진의 기운을 보면 가장 처음 마주했던 얼음 기둥보다는 약할 것 같았다.
그리고 얼음 기둥보다 약하다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마법진을 무시하기로 결정한 강진석은 몽둥이를 휘둘렀다.
그 순간 머리 위와 등 뒤 마법진에서 얼음덩어리가 튀어나왔고, 바닥 마법진에서는 한기가 흘러나왔다.
'휴.'
강진석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예상대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었기 때문이었다.
"...!"
그리고 이런 강진석의 행동을 예상치 못한 것일까?
밀레닐라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내 당황한 밀레닐라의 머리에 몽둥이가 작렬했다.
쾅!
폭음과 함께 밀레닐라가 뒤로 날아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마법진에서 튀어나왔던 얼음덩어리들이 강진석의 머리, 등을 강타했다.
강진석은 살짝 움찔했다.
그뿐이었다.
조금의 충격만 느껴졌을 뿐이다.
이어 강진석은 발을 들었다.
그리고 바닥에서 한기를 뿜어내는 마법진의 중점을 밟았다.
쾅! 쩌저적!
마법진의 중점이 파괴됐고 당연하게도 한기 역시 사라졌다.
그리고 강진석은 바로 공간이동을 시전해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는 밀레닐라의 앞으로 이동했다.
후웅!
도착과 동시에 강진석은 몽둥이를 휘둘렀다.
쾅! 쾅!
강진석은 쉼 없이 몽둥이를 휘두르면서 뒤쪽에 있는 네 고블린들을 주시했다.
네 고블린들은 얼음 사슬의 한기를 몰아내고 있었다.
완전히 얼어붙은 고블린을 제외하고는 곧 한기에서 자유로워질 것 같았다.
'그 전에 끝내야 하는데.'
강진석은 밀레닐라의 기운을 확인했다.
밀레닐라의 기운은 몽둥이가 작렬할 때마다 움푹움푹 사라지고 있었다.
고민 끝에 강진석은 몽둥이에 기운을 조금 더 주입했다.
무리해서라도 밀레닐라를 끝내야 할 것 같았다.
그게 더 향후 전투에 좋을 것 같았다.
쾅! 쾅! 쾅!
밀레닐라는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해 마법을 시전하고 직접 움직여 피하는 등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그러나 상황은 반전되지 않았다.
스아악!
얼마 뒤 밀레닐라가 빛과 함께 사라졌다.
그리고 메시지가 나타났다.
[차가운 뿌리 부족 5부족장 밀레닐라가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포인트가 120만 상승합니다.]
.
.
[퀘스트 '유폐된 데리오스'가 생성됐습니다.]
'...이건 또 뭐야?'
메시지를 본 강진석은 살짝 당황했다.
생각지도 못한 퀘스트가 생성됐기 때문이었다.
'어쩐지 갑자기 바뀌었더라니.'
예전 퀘스트를 통해 강진석은 차가운 뿌리 부족의 5부족장을 알게 됐다.
당시 5부족장은 '데리오스'라는 존재였다.
그런데 갑자기 밀레닐라로 바뀌어 의아했는데 상황을 보니 부족장의 자리를 빼앗긴 것 같았다.
'무슨 퀘스트일까?'
강진석은 궁금했다.
퀘스트 '유폐된 데리오스'가 어떤 퀘스트일지.
설마 감금된 고블린을 구하는 퀘스트일까?
아니면 처치하는 퀘스트일까?
당장 확인하고 싶었지만 강진석은 확인하지 않았다.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강진석은 뒤로 돌아 네 고블린을 보았다.
밀레닐라의 죽음 때문일까?
네 고블린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특히 한기에서 자유로워진 다른 세 고블린과 달리 아직도 하반신이 얼어붙어 있는 고블린의 표정은 무척이나 어두웠다.
'일단 확실히 끝낼 수 있는 녀석부터.'
다른 세 고블린은 이제 움직일 수 있다.
사냥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릴 것이다.
밀레닐라 보다 더 걸릴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하반신이 얼어붙은 고블린은 쉽게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결정을 내린 강진석은 바로 공간이동을 시전했다.
그리고 몽둥이를 휘둘렀다.
* * *
증미역 지하 3층.
"...."
"...."
입주자들이 팀별로 자리에 앉아 정적을 유지하고 있었다.
모두의 표정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걱정이 가득한 이유는 마지막 웨이브가 시작되며 생성된 수많은 퀘스트 때문이었다.
퀘스트를 보니 마지막 웨이브는 앞서 발생한 웨이브들과는 차원이 다른 난도를 가지고 있었다.
문제는 더 어려워졌는데 웨이브를 막는 이는 강진석 혼자라는 점이었다.
미안했고, 불안했고, 두려웠다.
몇몇 입주자들은 이대로 가만히 있어도 되는 것인지 주변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차가운 뿌리 부족 5부족장 밀레닐라가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퀘스트 '차가운 뿌리 부족 5부족장 밀레닐라'가 완료됐습니다.]
[기여도에 따라 보상이 차등 지급됩니다.]
[기여도가 0입니다.]
[최소 보상을 획득합니다.]
[인원이 많아 최소 보상이 줄어듭니다.]
[포인트가 2만 상승합니다.]
.
.
메시지가 주르륵 나타났다.
"...!"
강나연은 눈을 번뜩였다.
그리고 주변을 확인했다.
웅성웅성.
역시나 모두에게 나타났는지 모두가 웅성거리고 있었다.
제115화
115.
입주자들의 반응을 확인한 강나연은 다시 메시지를 확인했다.
'다행이야.'
시작된 지 시간이 좀 흘렀다.
그럼에도 아무런 메시지가 나타나지 않아 불안함이 커지고 있었는데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근데 보상이....'
보상을 확인한 강나연은 살짝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인원이 많아 최소 보상이 적어졌다.
만약 인원이 많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그때처럼 5만 줬으려나?'
강나연은 서초역의 보스 도르에나를 떠올렸다.
당시 도르에나는 최소 보상으로 5만 포인트를 제공했다.
그리고 밀레닐라는 이번에 침공한 이들 중 가장 강한 고블린이었다.
만약 보상이 줄어들지 않았다면?
5만 포인트가 아니라 그 이상이 주어졌을 수도 있다.
'...전체적으로는 지금이 낫네.'
입주자는 100명이 넘었다.
전체 보상을 계산하면 지금이 훨씬 나았다.
강나연은 남은 퀘스트들을 떠올렸다.
'입주자들 수준이 엄청 오르겠는데?'
이제야 첫 퀘스트가 완료됐다.
생성된 퀘스트는 11개로 아직 10개의 퀘스트가 남아 있었다.
10개 퀘스트의 최소 보상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적지는 않을 것이고 입주자들의 수준이 대폭 상승할 것으로 추정됐다.
아니, 추정이 아니라 확실했다.
입주자들이 담배, 술 같은 기호 식품에 모든 포인트를 사용하는 게 아닌 이상 상승할 수밖에 없다.
바로 그때였다.
[차가운 뿌리 부족 직할 3수비단장 딜라이델이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퀘스트 '차가운 뿌리 부족 직할 3수비단장 딜라이델'이 완료됐습니다.]
[기여도에 따라 보상이 차등 지급됩니다.]
[기여도가 0입니다.]
[최소 보상을 획득합니다.]
[인원이 많아 최소 보상이 줄어듭니다.]
[포인트가 2만 상승합니다.]
.
.
추가로 메시지가 나타났다.
'...이번에도 2만이야?'
강나연은 살짝 당황했다.
가장 강한 밀레닐라의 최소 보상과 딜라이델의 최소 보상이 같았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더 적을 것이라 생각했던 강나연은 남은 퀘스트들을 떠올렸다.
확실치 않지만 적어도 단독 네임드 퀘스트는 전부 2만씩 제공하지 않을까 싶었다.
'일단.'
강나연은 메시지에 대한 관심을 접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근처에 있는 한지윤에게 다가갔다.
잠시 대화를 나눴고 한지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러분."
한지윤의 말에 입주자들이 고개를 돌려 한지윤에게 집중했다.
모든 시선이 모이자 한지윤은 숨을 한 번 고르고 이어 말했다.
"지금 받으신 포인트가 상당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침공은 이번이 끝이 아닙니다. 담배나 술을 구매하셔도 됩니다. 그런데 미래를 위해 적어도 절반 정도는 스킬 습득에 투자를 부탁드리겠습니다."
* * *
[차가운 뿌리 부족 8부족장 크로신이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포인트가 110만 상승합니다.]
[퀘스트 '차가운 뿌리 부족 8부족장 크로신'을 완료하셨습니다.]
[기여도에 따라 보상이 차등 지급됩니다.]
[1등 보상을 획득합니다.]
.
.
크로신의 죽음과 함께 메시지가 주르륵 나타났다.
강진석은 뒤로 돌아섰다.
이제 남은 3차 제약 침공자는 하나, 본부 직할 수색단장 베르닐뿐이었다.
강진석은 베르닐의 얼굴을 보았다.
홀로 남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앞서 동족들의 죽음을 보았기 때문일까?
베르닐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무척이나 어두웠고 두려움이 보였다.
연기가 아니다.
기운이 격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빨리 끝내자.'
지금 공격을 한다면?
조금 더 쉽게 끝을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강진석은 바로 베르닐에게 달려들었다.
공간이동을 하지는 않았다.
거리가 가깝기도 했고 정신력을 아껴야 했다.
베르닐이 끝이 아니다.
영역 밖에 수많은 고블린이 남아 있었고 새로운 고블린이 나타났을 수 있다.
이내 거리가 좁혀졌고 강진석은 앞서 네 고블린을 죽였을 때처럼 몽둥이를 휘둘렀다.
후웅!
바람을 가르며 몽둥이는 베르닐의 머리로 향했다.
당연히 베르닐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몽둥이를 피하기 위해 옆으로 몸을 날리며 검을 뻗었다.
강진석은 검을 보았으나 피하지 않았다.
검이 향하는 곳이 어깨이기도 했고 검에 담긴 힘이 그리 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맞는다고 해도 생채기조차 나지 않을 정도였다.
물론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피하지 않는 대신 몽둥이에 힘을 줘 방향을 비틀었다.
그리고 몽둥이와 검이 동시에 서로에게 작렬했다.
강진석의 예상대로 검은 어깨에 아무런 상처를 내지 못했다.
살짝 따끔했을 뿐이다.
쾅!
그리고 반대로 몽둥이는 엄청난 반응을 만들어 냈다.
폭음과 함께 베르닐이 그대로 날아갔다.
베르닐의 표정은 고통으로 한없이 일그러져 있었다.
강진석은 바로 베르닐에게 따라붙으며 몽둥이를 들었다.
그리고 그대로 베르닐을 내려쳤다.
쾅!
재차 폭음이 울려 퍼졌고.
쩌저적!
베르닐이 땅에 처박혔다.
강진석은 쉬지 않고 몽둥이를 휘두르며 생각했다.
'걱정이 너무 과했어.'
처음에는 위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상대해야 할 3차 제약 침공자가 다섯이었기에.
그런데 직접 사냥하며 알게 됐다.
괜한 걱정이었다고.
파드란의 얼음 사슬의 도움을 받기는 했다.
그러나 얼음 사슬이 아니었어도 충분히 사냥이 가능할 정도로 강진석과 3차 제약 침공자들의 격차는 컸다.
이번 3차 제약 침공자들뿐만이 아니다.
다른 3차 제약 침공자들 역시 상대하는 데 큰 문제 없을 것 같았다.
물론 그렇다고 마음 편히 상대할 생각은 없었다.
파드란의 얼음 사슬처럼 큰 영향력을 가진 변수로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갈 수 있기에 조심은 해야 했다.
스아악!
[차가운 뿌리 부족 본부 직할 수색단장 베르닐이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포인트가 115만 상승합니다.]
[퀘스트 '차가운 뿌리 부족 본부 직할 수색단장 베르닐'을 완료하셨습니다.]
[기여도에 따라 보상이 차등 지급됩니다.]
[1등 보상을 획득합니다.]
.
.
이내 빛과 함께 베르닐이 사라졌고 메시지가 나타났다.
메시지를 확인한 강진석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주변을 보았다.
모든 3차 제약 침공자가 죽었다.
그럼에도 아직 영역은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었다.
'중점만 파괴하면 알아서 파괴되려나?'
물론 사라지지 않았다고 그냥 나갈 수는 없었다.
고블린들의 힘을 강화시키는 영역을 그냥 둔다?
후환이 될 확률이 100%다.
무조건 파괴해야 했다.
'전부 파괴해야 할까.'
영역을 이루고 있는 중점은 총 6개였다.
6개를 전부 파괴해야 영역도 파괴되는 것일까?
강진석은 가장 가까운 중점으로 다가갔다.
첫 번째 중점은 땅바닥 있었다.
강진석은 발을 들었다.
그리고 그대로 기운을 실어 바닥을 찍었다.
쾅!
폭음과 함께 땅이 뒤집어졌고 중점 역시 그대로 파괴됐다.
강진석은 주변을 확인했다.
여전히 영역은 굳건했다.
조금의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역시 하나로는 안 되나 보네.'
혹시나 하나만 파괴해도 연쇄적으로 영향을 끼쳐 무너지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기대는 기대로 끝났다.
강진석은 다음 중점으로 향했다.
두 번째 중점은 허공에 있었고 강진석은 몽둥이를 휘둘렀다.
쾅!
몽둥이가 작렬하자마자 중점은 폭음과 함께 스르륵 사라졌고.
쩌적....
이번에는 변화가 나타났다.
허공에 작은 균열들이 생겨났다.
강진석은 다음 중점으로 향했고 그렇게 네 번째 중점이 파괴됐을 때.
[밀레닐라의 영역을 파괴하셨습니다.]
.
.
쩌적!
메시지가 나타나며 영역 또한 파괴됐다.
영역이 무너지고 강진석은 주변을 보았다.
전방에 당황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는 고블린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저 녀석들만 잡으면....'
3차 제약 침공자들은 전부 잡았다.
이제 남은 것은 2차 제약 침공자와 일반 고블린뿐이었다.
굳이 강진석이 손을 쓰지 않아도 입주자들의 힘만으로도 막을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입주자들에게 맡길 생각은 없다.
최대한 빠르게 침공을 끝낼 생각이었다.
강진석은 바로 고블린들에게 달려들었다.
[퀘스트 '8부족 고블린들'을 완료하셨습니다.]
[기여도에 따라 보상이 차등 지급됩니다.]
[1등 보상을 획득합니다.]
.
.
그렇게 8부족, 직할 3수비단 등 소속별 퀘스트가 하나, 둘 완료되기 시작했다.
이내 마지막으로 퀘스트 '5부족 고블린들'이 완료되었고.
[퀘스트 '멸망'을 완료하셨습니다.]
마지막 퀘스트이자 메인 퀘스트라 할 수 있는 '멸망' 역시 완료됐다.
모든 퀘스트가 완료됐다는 것.
그것은 마지막 웨이브가 끝났다는 뜻을 의미했다.
[마지막 웨이브가 끝났습니다.]
[기여도에 따라 마지막 보상을 획득합니다.]
[포인트가 400만 상승합니다.]
[요새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요새 포인트가 500만 상승합니다.]
보상을 본 강진석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난도가 보통이 아니었기에 보상이 엄청날 것이라 생각하기는 했다.
그런데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다.
기본 포인트 400만에 요새 포인트 500만이라니?
[퀘스트 '증미역 수비'를 완료하셨습니다.]
[기여도에 따라 보상이 차등 지급됩니다.]
[압도적인 기여를 하셨습니다.]
[보상이 강화됩니다.]
[1등 보상을 획득합니다.]
.
.
[퀘스트 '지하도 청소'가 다시 활성화됩니다.]
[퀘스트 '증미역 수비2'가 생성됐습니다.]
이어 메시지를 쭉 확인한 강진석은 다시 한번 감탄했다.
웨이브 마지막 보상만 엄청난 게 아니었다.
퀘스트 '증미역 수비'의 보상 또한 엄청났다.
'이 정도면....'
강진석은 정동진에 있는 부모님을 떠올렸다.
'구하러 가도 되겠는데?'
보상으로 받은 포인트를 전부 패시브에 투자한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강해질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3차 제약 침공자를 가뿐히 죽일 수 있는 상태인데 더 강해진다면?
안전히 정동진에 있는 부모님을 구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확실히 구출할 수 있다.
'...갔다 오자.'
다음 침공은 마곡나루역에서 발생할 예정이었다.
침공 시기는 이틀 뒤로 내일 하루 여유가 있었다.
강진석은 내일 당장 정동진에 가기로 결정을 내렸다.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정을 내린 강진석은 이어 퀘스트창을 열었다.
다른 퀘스트와 달리 자동 완료되지 않은 퀘스트가 하나 있었다.
<특수 퀘스트 - 침공자 사냥>
세계 침공자들을 죽여 세계를 지켜내라!
[남은 시간 : 20일]
[기여도 : 1500만 / 1500만]
[2차 제약 침공자 : 10 / 10]
[3차 제약 침공자 : 1 / 1]
퀘스트 보상 : 150만 포인트, ???
세계 침공자 처치 시 기여도가 상승합니다.
바로 특수 퀘스트였다.
당연하게도 모든 조건이 충족되어 있었다.
'어떤 보상이 주어지려나.'
앞서 어마어마한 보상을 보았기 때문일까?
특수 퀘스트의 보상도 궁금했다.
물론 궁금한 것은 포인트가 아니라 '???'로 표시되어 있는 숨겨진 보상이었다.
강진석은 기대감을 키운 채 특수 퀘스트를 완료했다.
그리고 메시지가 주르륵 나타났다.
[특수 퀘스트를 완료하셨습니다.]
[포인트가 150만 상승합니다.]
[빠르게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보상이 강화됩니다.]
[특수 퀘스트 정보 확인 티켓 5개를 획득했습니다.]
[특수 퀘스트 쿨타임 초기화 티켓 1개를 획득했습니다.]
[특수 퀘스트 페널티 무효화 티켓 2개를 획득했습니다.]
제116화
116.
"...?"
강진석은 순간 당황했다.
'티켓...?'
생각지도 못한 보상이 주어졌기 때문이었다.
이름만 봐도 어떤 용도인지 알 것 같았다.
그래도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강진석은 인벤토리에 들어온 세 티켓을 하나씩 꺼냈다.
그리고 티켓을 쥔 순간 알 수 있었다.
'맞네.'
티켓의 용도는 강진석의 예상 그대로였다.
정보 확인 티켓은 특수 퀘스트를 수락하지 않고 정보를 파악할 수 있는 티켓이었다.
쿨타임 초기화 티켓은 완료 후 1주일이라는 기간을 없애 바로 특수 퀘스트를 받을 수 있게 해주는 티켓이었다.
그리고 페널티 무효화 티켓은 말 그대로 퀘스트 실패 시 받게 될 페널티를 무효화시키는 티켓이었다.
'나쁘지는 않은데....'
강진석의 표정에 아쉬움이 살짝 나타났다.
앞서 받은 엄청난 보상에 기대감이 커져서일까?
나쁜 보상이 아님에도 아쉬움이 느껴졌다.
'그래도 양도가 가능하니까.'
강진석은 긍정적인 부분을 떠올리며 아쉬움을 떨쳐냈다.
'일단 뒷정리부터 하자.'
그리고 티켓을 다시 인벤토리에 보관 후 증미역으로 향했다.
침공이 끝났다.
이제 뒷정리를 할 시간이었다.
'그러고 보니.'
역으로 귀환하며 강진석은 퀘스트창을 열었다.
특수 퀘스트 보상 때문에 순간 잊은 것이 있었다.
바로 퀘스트 '증미역 수비2'의 시기였다.
<증미역 수비2>
20일 뒤 여러 몬스터들이 지하도를 통해 증미역을 침공할 예정이다.
공격을 막아 증미역을 지켜내라!
[기여도 : 0]
퀘스트 보상 : ???
'한참 남았네.'
다행히 증미역 수비2의 침공 시기는 20일 뒤였다.
강진석은 퀘스트창을 닫았다.
그리고 한결 편해진 표정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 *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이동 게이트를 통해 방화역으로 돌아온 강진석은 함께 돌아온 입주자들에게 텔레파시를 보냈다.
그리고 강진석의 말에 입주자들은 각자의 거처로 해산했다.
물론 모든 입주자들의 떠난 것은 아니었다.
[잠시 나 좀 보자.]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강진석은 강나연과 한지윤에게 텔레파시를 보냈다.
그리고 강나연과 한지윤이 다가왔다.
"어떻게 딱 우리 둘을 부른 거야?"
도착과 동시에 강나연이 말했다.
"...?"
강진석은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강나연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스윽.
"여기 받아."
바로 그때 강나연이 검은 봉투를 내밀었다.
강진석은 봉투 안을 확인했다.
요새 포인트 티켓이 가득 담겨 있었다.
강진석은 다시 고개를 들어 강나연을 보았다.
그리고 어떻게 된 것인지 알려달라는 눈빛을 지었다.
그러자 강나연이 답했다.
"입주자들끼리 모았어. 한 사람도 빠짐없이 전부 절반씩."
"아하."
강진석은 이해했다는 듯 탄성을 내뱉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한지윤을 보았다.
한지윤 역시 검은 봉투를 들고 있었다.
"여기 있습니다! 한곳에 모으기에는 봉투가 작아서요!"
예상대로 한지윤이 들고 있는 검은 봉투에도 요새 포인트 티켓이 가득 담겨 있었다.
강진석은 봉투를 받았다.
그리고 입주자들에게 텔레파시를 보냈다.
[감사합니다. 요새에 빠르게 투자하겠습니다.]
텔레파시로 감사 인사를 한 뒤 강진석은 두 사람에게 따로 또 감사를 표했다.
"고맙습니다."
"아니에요! 받은 게 더 많은걸요!"
한지윤이 싱긋 웃으며 답했다.
그리고 강나연은 멋쩍은 표정으로 화제를 돌렸다.
"근데 진짜 우리 둘을 왜 부른 거야? 뭐 할 말 있어?"
강나연의 말에 강진석은 본론을 꺼냈다.
"정동진에 다녀올까 해."
"...!"
"...!"
강진석의 말에 강나연과 한지윤이 눈을 번뜩였다.
"언제?"
이어 정신을 차린 강나연이 물었다.
"바로. 늦어도 마곡나루역 침공 시작 전에는 올 생각이야."
"괜찮겠어?"
"응, 이번에 확신이 들었어. 지금 내 힘이라면 충분히 갈 수 있어."
"돌아오는 건? 오빠야 안전히 오갈 수 있다고 해도...."
강나연이 말끝을 흐렸고 강진석은 싱긋 웃으며 손을 들어 왼쪽에 있는 1회용 이동 게이트를 가리켰다.
"아...."
1회용 이동 게이트를 본 강나연은 이해했다는 듯 탄성을 내뱉었다.
"...좋은 소식 들고 와."
"당연한 소리."
그렇게 둘의 대화가 끝날 기미를 보였고 잠자코 대화를 듣고 있던 한지윤이 입을 열었다.
"저희 둘만 부르신 건 비밀로 하기 위해서이실까요?"
"네, 맞습니다. 다른 관리자분들한테도 비밀로 해주세요.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을 것 같아서요. 어차피 금방 돌아올 예정이기도 하구요. 만에 하나 문제가 생겨 제가 늦게 되면 나연이랑 지윤 씨가 상의해서 처리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잘 대처하고 있겠습니다. 아, 그리고...."
문득 든 생각에 한지윤이 말끝을 흐렸다.
그리고 잠시 멈칫했다가 이어 말했다.
"두 분이 계신 곳이 웨이브크루즈 호텔이라고 들었습니다."
"엇? 네, 맞습니다. 그걸 어떻게...?"
강진석은 놀란 얼굴로 강나연을 힐끔 보았다.
혹시 강나연이 말한 것일까?
그러나 강나연 역시 놀란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을 보니 강나연에게 들은 것은 아닌 듯했다.
"다영이한테 들었어요."
"아."
강진석은 이해했다는 듯 탄성을 내뱉었다.
시험이 시작되기 전, 주다영에게 이야기했던 것이 떠올랐다.
"갑자기 그 이야기가 나온 건 은형이랑 은지 사촌 때문이구요!"
한지윤은 친절하게도 이야기가 나온 이유까지 설명해 주었다.
"사촌이요?"
"네, 은형이랑 은지 사촌도 웨이브크루즈 호텔에 있다고 하더라구요."
강진석은 한지윤이 이 이야기를 왜 꺼냈는지 알 것 같았다.
"구할 수 있으면 함께 구출해야겠네요. 혹시 이름 아시나요?"
"예, 최서윤이라는 분이에요. 특이 사항은 전국검도대회를 2연속으로 우승했다는 거? 아마 부모님 두 분도 안전히 잘 계시지 않을까 싶어요!"
"...!"
강진석은 눈을 번뜩였다.
최서윤을 알기 때문이 아니다.
전국검도대회를 2연속이나 우승했다는 이야기 때문이었다.
한지윤의 말대로 부모님이 최서윤과 함께하고 있다면?
안전히 잘 버티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물론 희망 사항이다.
최악의 상황도 함께 떠올랐다.
그러나 굳이 부정적인 생각을 할 필요는 없기에 강진석은 바로 생각을 멈췄다.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조심히 다녀오세요!"
"예."
"잘 다녀와."
"그래."
다시 한번 인사를 나누고 한지윤과 강나연이 뒤로 돌아섰다.
그리고 거처로 향하며 강나연이 말했다.
"언니, 고마워요."
"어떤 거?"
"서윤 씨 이야기요. 불안했거든요. 혹시나 잘못되시지 않았을까. 그런데 마음이 조금 놓이네요."
"아."
한지윤은 탄성을 내뱉으며 싱긋 웃었다.
그리고 이어 물었다.
"근데 부모님 성함 좀 여쭤 봐도 될까? 미리 알아두면 좋을 것 같아서!"
"아버지는 강현석, 어머니는 권영신이에요."
"...!"
한지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 두 분이었어?'
그도 그럴 것이 한지윤은 강현석과 권영신을 알고 있었다.
물론 성은 몰랐다.
이름만 알고 있었다.
그 둘을 알고 있는 이유는 당연하게도 최서현만큼이나 중요 했던 이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잘 계시겠네.'
한지윤은 다행이라는 표정으로 강나연을 보았다.
강현석과 권영신은 살아 있을 것이다.
그 둘에게 문제가 생겼다는 것은 최서현은 물론 웨이브크루즈 또한 문제가 생겼다는 뜻인데 그럴 가능성은 0에 가깝기에.
* * *
강나연, 한지윤이 떠나고 홀로 남게 된 강진석은 거처로 공간이동을 했다.
그리고 포인트를 확인했다.
[현재 보유 포인트 : 3502만 3510]
이번 침공에서 2500만에 가까운 포인트를 획득해 현재 강진석의 포인트는 3천만을 훌쩍 넘어가 있었다.
'이번에도 500만 정도만 남기면 되겠지?'
모든 포인트를 투자할 생각은 없다.
정동진으로 향하는 중이나 도착 후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기에.
강진석은 스킬창을 열었다.
그리고 스킬 습득을 시작했다.
.
.
[스킬 '정신력58'의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정신력이 1 상승합니다.]
스킬 습득을 마친 강진석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감정 스크롤도 최상급만 들고 다니면 되겠네.'
이번에 '물품 감정2'도 습득을 했다.
이제 상급 아티펙트까지는 감정 스크롤 없이 감정이 가능해졌다.
물론 흡족해 한 이유가 '물품 감정2' 습득 때문만은 아니었다.
강진석은 정보창을 열었다.
힘 : 396(332+64)
민첩 : 394(330+64)
체력 : 397(333+64)
정신력 : 394(330+64)
모든 능력치가 80씩 올랐다.
수준이 한 단계가 아니라 몇 단계는 상승한 느낌이었다.
'이 정도면 4차 제약 침공자도 상대할 수 있지 않을까?'
아직 한 번도 4차 제약 침공자를 마주한 적 없다.
4차 제약 침공자가 얼마나 강한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이라면 4차 제약 침공자도 쉽게는 아니더라도 죽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물론 생각이 그렇다는 것이지 4차 제약 침공자에게 덤빌 생각은 없었다.
꼭 잡아야 하는 상황이라면 모를까 그런 상황도 아닌데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덤빌 이유가 없다.
강진석은 정보창을 닫았다.
그리고 요새 관리창을 열었다.
기본 포인트와 마찬가지로 요새 포인트 역시 무지막지하게 쌓여 있었다.
조금만 더 모으면 이동 게이트를 개발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이건 남길 필요 없겠지.'
기본 포인트와 달리 요새 포인트는 남길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최대한 박박 긁어 투자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강진석은 요새 기능 개발과 강화에 모든 요새 포인트를 투자했다.
그렇게 요새 포인트가 바닥났고 강진석은 시간을 확인했다.
'이제 슬슬 가볼까.'
포인트 사용도 끝냈고 이제 정동진으로 향할 차례였다.
강진석은 요새 밖으로 나왔다.
요새 밖으로 나온 강진석은 주변을 훑었다.
'...점점 많아지네.'
침공 전보다 훨씬 많은 이들이 모여 있었다.
면접을 보는 데에도 어마어마한 시간이 소요 될 것으로 추정됐다.
스윽.
강진석은 로우포트를 보았다.
'꼬시고 있는 건가?'
로우포트 역시 전보다 사람이 크게 늘어난 상태였다.
장윤석이 빨빨 움직이는 것을 보니 적극적으로 포섭을 하는 듯했다.
'...문제만 안 생기면 좋겠는데.'
강진석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가 관심을 거뒀다.
지금 중요한 것은 장윤석이 아니다.
강진석은 전력을 다해 비행을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증미역에 도착한 강진석은 주변을 확인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당연하다고 해야 할까?
몬스터는 한 마리도 감지되지 않았다.
감지된 것은 곳곳에 숨어 있는 생존자들뿐이었다.
강진석은 생존자들에게 텔레파시를 보낸 뒤 계속해서 동쪽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영등포구에 도착한 순간 메시지가 나타났다.
메시지를 본 강진석은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생각지도 못한 내용이 쓰여 있었다.
[영등포구에 입장하셨습니다.]
[3분 안에 영등포구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영등포구의 2차 제약이 조기 해제됩니다.]
제117화
117.
'아....'
강진석은 나지막이 속으로 탄식을 내뱉었다.
2차 제약 조기 해제라니?
'내가 초월의 씨앗이었구나?'
강서구에서 2차 제약이 조기 해제됐던 이유는 초월의 씨앗이 탄생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강진석은 초월의 씨앗이 무엇일까 생각했지만 확신을 내리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는 확신할 수 있게 됐다.
자기 자신이 초월의 씨앗이라는 것을.
지금 나타난 메시지가 증거였다.
일단 강진석은 다시 강서구로 돌아갔다.
그리고 메시지창을 보았다.
별다른 메시지는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하지....'
강진석은 고민했다.
3분 안에 영등포구를 주파할 자신은 없었다.
즉, 계획대로 움직이면 영등포구는 강서구처럼 2차 제약이 조기 해제될 것이다.
영등포구뿐만이 아니다.
정동진까지 수많은 곳을 지나쳐야 한다.
그곳들 역시 영등포구와 마찬가지로 2차 제약이 조기 해제될 가능성이 높았다.
수많은 곳의 2차 제약을 조기해제 하면서 정동진에 간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정동진에 도착 후 구출하는 것으로 모든 게 다 끝난다면 모를까 그게 아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살아야 하는데 2차 제약이 해제되면 몬스터들의 성장이 빨라진다.
더더욱 상황이 악화되는 것이다.
'...왔다갔다 하면서 가면?'
문득 든 생각에 강진석은 눈을 번뜩였다.
영등포구는 강서구 말고도 다른 구와 영역을 맞대고 있었다.
경계선을 따라 왔다갔다 하면 괜찮지 않을까?
강진석은 확인을 위해 재차 영등포구로 진입했다.
[영등포구에 입장하셨습니다.]
[3분 안에 영등포구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영등포구의 2차 제약이 조기 해제됩니다.]
[두 번째 입장입니다.]
[네 번째 입장 시 2차 제약이 조기 해제됩니다.]
전과 다른 메시지가 나타났고 강진석은 쓴웃음을 지으며 다시 강서구로 물러났다.
'안 되는구나.'
혹시나 하고 해본 것인데 혹시는 혹시로 끝났다.
꼼수는 막혀 있었다.
'음....'
강진석은 속으로 침음을 내뱉었다.
'초월의 씨앗이 무슨 의미일까?'
초월의 씨앗이 갖는 의미가 궁금해졌다.
대체 무슨 의미이기에 2차 제약 조기 해제라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발생하는 것일까?
'초월이랑 관련이 있나?'
강진석은 패시브 스킬 '초월'을 떠올렸다.
초월의 길을 엿본다는 이해할 수 없는 설명을 가지고 있는 스킬 '초월'.
혹시 초월의 씨앗이 스킬 '초월'과 관련이 있는 것일까?
그러나 결론을 내리기에는 정보가 너무나 부족했다.
'하....'
강진석은 속으로 한숨을 내뱉으며 초월의 씨앗에 대한 관심을 거뒀다.
지금 중요한 것은 초월의 씨앗 의미가 아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다.
강진석은 생각에 잠겼다.
우선 정동진으로 가는 것은 미뤄야 한다.
2차 제약 조기 해제는 막아야 하기에.
'...일단 강서구 먼저 정리해야 하나?'
이미 강서구는 2차 제약이 해제된 상태였다.
즉, 강서구는 어딜 가든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곳곳을 돌아다니며 성장이 빨라진 몬스터들을 제거하는 게 생존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래, 그러는 게 좋겠어.'
강진석은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 지도를 열어 강서구 내 영역 상징을 확인했다.
자물쇠로 정보가 잠겨 있는 곳도 포인트를 사용해 해금했다.
'...많네.'
영역 상징은 예상대로 모든 지하철역에 하나씩 존재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지하철역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었다.
차가운 뿌리 부족의 본부가 있는 봉제산은 물론 수명산, 우장산 그리고 역 주변 아파트 단지에도 영역 상징이 존재했다.
영역 상징의 수를 확인한 강진석은 퀘스트창을 열었다.
그리고 해방 퀘스트 '찬란한 그날의 영광을(1)'을 확인했다.
<찬란한 그날의 영광을(1)>
아래 조건을 충족하라!
[영역 상징 파괴 : 0 / 20]
[3차 제약 침공자 : 5 / 10]
퀘스트 보상 : 찬란한 방패 강화
완료 시 퀘스트 '찬란한 그날의 영광을(2)'이 생성됩니다.
완료 시 퀘스트 '혼돈의 구(1)'가 생성됩니다.
완료 조건은 2가지였다.
영역 상징 파괴와 3차 제약 침공자.
두 번째 조건인 3차 제약 침공자는 이번 증미역 침공 덕분에 절반을 충족한 상태였다.
그러나 영역 상징 파괴는 아직 시작조차 못 했다.
그런데 지도를 보니 영역 상징 파괴 역시 금방 충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강진석은 퀘스트창을 닫고 다시 지도를, 정확히는 봉제산의 영역 상징을 보며 생각했다.
'메라키오는 4차 제약 침공자겠지?'
차가운 뿌리 부족의 대족장 메라키오.
메라키오가 3차 제약 침공자일 것 같지는 않았다.
아직 만나지 못한 4차 제약 침공자로 추정됐다.
'개화역에도 4차 제약 침공자 하나는 있을 것 같고....'
강서구에는 고블린들만 있는 게 아니다.
전쟁 바람 부족 오크들도 존재했다.
그리고 개화역의 디버프 수준을 보면 4차 제약 침공자가 있을 확률이 높았다.
없다고 해도 앞서 만난 3차 제약 침공자들보다 강한 오크가 있을 것이다.
'가는 길에 탐색 좀 하고 가야겠다.'
강진석은 뒤로 돌아섰다.
* * *
"...?"
강나연은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간 거 아니었어?"
그도 그럴 것이 정동진에 간다고 떠난 강진석이 다시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설마 벌써...?"
강나연은 혹시나 하는 표정으로 주변을 스윽 훑어 부모님을 찾았다.
"...아니야."
강진석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문제가 생겼어."
"문제? 무슨 문제?"
강나연은 강진석의 입에서 문제라는 단어가 나오자 심각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심각한 건 아니고."
강진석은 초월의 씨앗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나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 고민 끝에 이야기하지 않기로 했다.
확실히 아는 것도 아닌데 괜히 이야기를 했다가는 상황이 이상하게 꼬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제대로 모를 때에는 입을 다무는 것이 낫다.
적어도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일단 강서구 내 몬스터들부터 정리해야 할 것 같아."
강진석은 바로 화제를 돌렸다.
"강서구 내 몬스터들을 전부?"
"응."
"봉제산에 고블린들 본부 있다고 하지 않았어?"
"그렇지."
"그 녀석들까지...?"
강나연은 설마 하는 표정으로 반문했다.
"어, 이번에 싹 정리할 생각이야. 물론 봉제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당장 봉제산을 칠 생각은 없다.
지금 입주자들의 수준으로 봉제산을 친다?
불나방과 다를 바 없다.
많은 이들이 죽을 것이다.
"그러면?"
"개화산역부터 차근차근 넓혀갈 생각이야. 봉제산 칠 때쯤이면 입주자들도 강해질 테니까."
돌아오는 길에 개화산역과 공항시장역의 디버프 수준을 다시 확인했다.
그리고 확신했다.
개화산역이나 공항시장역은 강진석의 도움 없이 입주자들의 힘만으로도 탈환이 가능하다는 것을.
물론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생각은 없다.
요새 지배권을 얻기 위해서는 압도적인 기여를 해야 한다.
입주자들에게만 맡길 수는 없다.
적어도 해당 역의 보스는 혼자 잡아야 했다.
"언제 시작하게? 설마 내일?"
"어, 내일 바로 시작할 거야. 이틀 뒤부터 침공이니까."
"너무 강행군 아니야?"
"어차피 모두를 데리고 갈 생각은 아니야. 그리고 가만히 있어도 돼, 최소 보상만 챙겨도 되니까."
"...그런 거라면야."
강나연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때였다.
끼이익.
문이 열리며 회의실로 한지윤이 들어왔다.
한지윤의 표정 역시 강나연과 마찬가지로 의아함이 가득했다.
강진석은 강나연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전했다.
문제가 생겨 돌아왔다고 이제부터 강서구를 정리할 생각이라고.
"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한지윤은 탄성을 내뱉으며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이어 관리자들이 속속 도착했다.
강진석은 모든 관리자가 모이자 회의를 시작했다.
* * *
"그럼 내일 오전 10시까지 준비하면 될까요?"
"네, 10시에 출발할 생각입니다."
"바로 지원자를 받아야겠네요!"
"피곤하시겠지만 부탁드리겠습니다."
한지윤의 말에 강진석이 싱긋 웃으며 답했다.
그리고 이어 다른 관리자들을 스윽 훑고 말했다.
"혹시 더 궁금하신 게 있거나 하실 말씀 있으신 분?"
강진석의 말에 기다렸다는 듯 김칠성이 입을 열었다.
"관리자 시험을 요청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떻게 안내를 할까요?"
이번 침공에 참여한 입주자들은 침공 전보다 훨씬 강해진 상태였다.
그리고 강해진 이들 중 몇몇이 관리자 시험을 원하고 있었다.
김칠성의 물음에 강진석은 잠시 생각하고는 답했다.
"내일 9시까지 방화역 지하 1층 자유 훈련장으로 오시라고 안내해 줘."
몇 명이나 요청할지는 모른다.
그러나 많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 확인하는 데에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으니 1시간이면 충분할 것이다.
"따로 준비할 게 있을까요?"
"주무기 정도? 전투 능력을 봐야 하니까."
"예, 그렇게 안내하겠습니다!"
김칠성과의 문답이 끝났고 강진석은 다른 관리자들을 보았다.
모두가 입을 닫고 있었다.
"그럼 이만 해산하겠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강진석의 말에 관리자들이 하나, 둘 회의실을 떠났다.
모든 관리자가 떠났고 강진석은 식당으로 공간이동을 했다.
거처가 아닌 식당에 간 이유는 확인할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뭘 만드신 거지?'
회의 도중 식당에서 강렬한 기운이 나타났다.
얼마나 강렬하냐면 김칠성의 기운 절반 크기였다.
문제는 기운의 주인공이 생명체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주인공은 바로 배영태가 만든 '음식'이었다.
대체 무슨 음식이기에 이리 강렬한 기운을 품고 있는 것일까?
"엇, 진석 님!"
강진석을 발견한 배영태가 놀란 얼굴로 외쳤다.
그리고 음식을 힐끔 보고 다시 강진석을 보았다.
"그렇지 않아도 드릴 말씀이 있었는데 잘됐네요."
"하실 말씀이 혹시 저 음식에 대한 이야기인가요?"
강진석은 배영태가 보았던, 강렬한 기운을 품고 있는 음식을 보며 물었다.
"네, 맞습니다."
배영태는 고개를 끄덕였다.
강진석은 음식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음식을 살피며 물었다.
"씨앗 호떡 맞나요?"
"네, 주신 씨앗으로 무엇을 만들어야 할까 고민하다가 씨앗 호떡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만들어봤는데 첫 제작 보너스, 레벨 보너스, 첫 조합 보너스, 재료 손질 보너스, 손재주 보너스 등 갖가지 보너스들이 중첩됐습니다."
배영태는 강진석의 물음에 답하며 다시 한번 메시지를 확인했다.
그리고 이어 말했다.
"중첩된 덕분에 5등급이 됐구요."
"5등급이면 엄청 높은 건가요?"
"예, 엄청나게요. 처음입니다. 5등급을 만든 건. 아마 다시 똑같이 만든다고 해도 5등급은 되지 않을 겁니다. 4등급도 안 될 확률이 높습니다. 워낙 중첩된 보너스들이 많아서요."
"효과는 아시나요?"
요리 등급이 높을수록 버프가 강해진다고 했다.
그래서 궁금했다.
5등급인 씨앗 호떡의 효과가.
"3등급까지는 파악이 가능한데 5등급이라서...."
배영태가 난감한 표정으로 말끝을 흐렸다.
직접 먹어봐야 안다는 뜻이었다.
"혹시 먹어봐도 될까요?"
"네! 물론입니다."
"그럼...."
강진석은 씨앗 호떡을 하나 집어 자세히 살폈다.
한입 크기로 무척이나 작았다.
그 외에 특별한 점은 없었다.
확인을 마친 강진석은 바로 씨앗 호떡을 입 안에 넣었다.
그리고 몇 번 씹자 메시지가 주르륵 나타났다.
[12시간 동안 일시적으로 힘이 10 상승합니다.]
[12시간 동안 일시적으로 민첩이 10 상승합니다.]
[12시간 동안 일시적으로 체력이 10 상승합니다.]
[축하합니다.]
[기적이 일어나 축복의 일부가 당신의 육체에 완전히 깃듭니다.]
[영구적으로 힘이 1 상승합니다.]
[영구적으로 체력이 1 상승합니다.]
"...!"
메시지를 본 강진석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영구적으로?'
제118화
118.
능력치가 상승했다.
일시적으로만 상승한 게 아니다.
영구적인 상승도 있었다.
강진석은 정보창을 열었다.
힘 : 397(333+64)
민첩 : 394(330+64)
체력 : 398(334+64)
정신력 : 394(330+64)
원래 일시적인 버프는 정보창에 표기되지 않는다.
그러나 영구적인 상승이었기에 메시지에 나온 대로 힘과 체력이 1씩 상승해 있었다.
능력치 상승을 확인한 강진석은 고개를 돌려 남은 씨앗 호떡의 수를 확인했다.
남은 씨앗 호떡은 4개.
만약 4개 전부 능력치를 올려준다면?
'근데 기적이라는 걸 보면 무조건은 아닌 것 같은데....'
영구적 상승 메시지 직전 기적이 일어났다는 내용의 메시지가 나타났다.
기적은 쉬이 발생하는 게 아니다.
먹는 족족 능력치가 상승할 것 같지는 않았다.
"무슨 문제라도...?"
강진석의 반응에 배영태가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능력치가 올랐어요."
"아, 많이 올랐나요?"
"일시적이 아니라 영구적으로요. 100%는 아닌 것 같지만요."
"...영구적이요?"
배영태는 놀란 얼굴로 씨앗 호떡을 보았다.
그리고 잠시 뒤 다시 강진석을 보며 말했다.
"잘됐네요! 그렇지 않아도 침공 때문에 어떻게 도움 될 일 없을까 했는데! 영구적인 상승이라니!"
"말씀 감사합니다. 근데 1개만 더 먹겠습니다."
배영태의 말에 강진석은 은은히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나머지 3개는 영태 님이 드셔주세요. 미래를 생각하면 영태 님 체력 강해지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서요."
마음 같아서는 전부 먹고 싶긴 했다.
그러나 효율을 생각하면 그래서는 안 된다.
강진석의 입장에서 능력치 1 상승은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하지만 배영태에게 능력치 1 상승은 큰 영향을 끼친다.
장기적으로 보면 더 오래, 지속적으로 요리할 수 있게 배영태의 능력치를 올리는 게 더 낫다.
"...알겠습니다!"
배영태는 강진석의 말뜻을 이해하고 답했다.
그리고 배영태의 답을 듣고 강진석은 씨앗 호떡을 하나 더 먹었다.
[최대 지속 시간에 도달했습니다.]
[더 이상 지속 시간이 증가하지 않습니다.]
[24시간 동안 일시적으로 힘이 10 상승합니다.]
[24시간 동안 일시적으로 민첩이 10 상승합니다.]
[24시간 동안 일시적으로 체력이 10 상승합니다.]
[축하합니다.]
[기적이 일어나 축복의 일부가 당신의 육체에 완전히 깃듭니다.]
[영구적으로 체력이 1 상승합니다.]
역시나 이번에도 능력치가 올랐다.
'...체력만?'
문제는 전과 달리 체력만 올랐다.
힘이 오르지 않았다.
"음?"
바로 그때 배영태가 의아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강진석은 배영태를 보았다.
그러자 배영태가 당혹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능력치가 안 올랐는데요...?"
배영태의 말에 강진석은 생각했다.
'확률이 높지 않은가 보네.'
아예 오르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는 했다.
그런데 막상 오르지 않은 것을 보니 확률이 궁금해졌다.
"혹시 바로 또 드셔주실 수 있나요?"
"네!"
배영태는 바로 씨앗 호떡을 하나 더 먹었다.
"엇, 이번에도 안 올랐는데요?"
그리고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운이 좋았던 건가?'
똑같이 2개씩 먹었다.
그런데 강진석은 두 번 다 올랐고 배영태는 두 번 다 오르지 않았다.
"또 먹을까요?"
"네."
강진석은 고개를 끄덕였고 배영태가 마지막 씨앗 호떡을 먹었다.
그리고 강진석은 답을 듣지 않아도 결과를 알 수 있었다.
"이번에도...."
배영태가 말끝을 흐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강진석이 이어 말했다.
"확률이 높지는 않은 것 같네요."
5번으로 표본이 많지 않았다.
확률을 논할 정도는 분명 아니다.
그러나 기적이라는 메시지 그리고 세 번 전부 오르지 않은 것을 보면 확률이 낮을 것으로 추정됐다.
"혹시 제가 씨앗 같은 특별한 재료를 가져다드리면 요리 해주실 수 있나요?"
"엇, 그래 주시면 저야 감사하죠! 숙련도가 어마어마하게 오르거든요!"
"오, 다행이네요. 잠시만요."
강진석은 바로 상점창을 열었다.
상점창에는 없는 게 없을 정도로 많은 것들을 판매하고 있었다.
그중에는 김민정의 씨앗처럼 특별한 재료들도 많았다.
물론 구매에 필요한 포인트가 무지막지하기는 했다.
포인트 수급량이 다른 이들과 차원이 다른 강진석의 입장에서도 살짝 부담이 될 정도였다.
'몇 개는 투자할 만하지.'
그러나 조금 전 씨앗 호떡의 효과를 생각하면 몇 개 정도는 투자할 가치가 있었다.
구매를 마친 뒤 강진석은 바로 인벤토리에서 해당 재료들을 꺼냈다.
"오오!"
재료를 본 배영태가 감탄을 내뱉으며 눈을 반짝였다.
당장 확인하고 싶어 하는 얼굴이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혹시 언제까지 만들어 드리면 될까요? 지금부터 바로 시작할까 하는데 완성될 때마다 가져다 드리면 될까요?"
"그러실 필요는 없고 제가 내일 아침 8시 30분쯤 한 번 들르겠습니다. 급하게 만드실 필요는 없고 한두 가지만 있어도 괜찮습니다."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해 만들어 보겠습니다!"
* * *
.
.
[축하합니다.]
[기적이 일어나 축복의 일부가 당신의 육체에 완전히 깃듭니다.]
[영구적으로 힘이 1 상승합니다.]
[24시간 동안 축복이 깃들지 않습니다.]
메시지를 본 강진석은 눈을 번뜩였다.
'한계가 있구나?'
먹기만 하면 제한 없이 무한정 능력치를 올릴 수 있는 것일까 했는데 아니었다.
시간제한이 있었다.
강진석은 식탁 위 빈 접시들을 보며 생각했다.
'그래도 뭐 다 먹었으니까.'
배영태가 밤새 만든 5등급 음식은 3가지였다.
그리고 3가지 음식을 섭취해 영구적으로 힘이 총 2 상승했다.
강진석은 고개를 들어 배영태를 보았다.
배영태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강진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강진석은 배영태에게 감사를 표했다.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감사하죠. 레벨이 이렇게 빨리 오를 거라고 생각 못 했는데...."
처음 다루는 재료들이었고 처음 만드는 음식들이었다.
덕분에 여러 스킬의 숙련도가 쭉쭉 올랐다.
이대로라면 곧 메인 스킬이라 할 수 있는 '요리의 길' 또한 최대 레벨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 정도로 숙련도 오르는 폭이 컸다.
"그럼 다음에 또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는 일정이 있어서...."
"네! 혹시나 또 5등급 이상 요리가 나오면 보고드리겠습니다!"
"옙! 나중에 또 재료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작별 인사를 나눈 뒤 강진석은 바로 방화역 지하 1층 자유 훈련장으로 공간이동을 했다.
자유 훈련장에는 이미 많은 이들이 모여 있었다.
훈련 때문이 아니다.
강진석은 시간을 확인했다.
8시 50분으로 10분 뒤 관리자 시험이 있을 예정이었다.
'일찍 시작해도 되겠지.'
생각보다 지원자가 많았다.
미리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강진석은 입주자들에게 텔레파시를 보냈다.
[관리자 시험을 보실 분들은 제 앞에 줄을 서 주세요.]
텔레파시를 보내자마자 입주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줄을 서기 시작했다.
강진석은 줄을 선 이들을 훑으며 생각했다.
'절반 정도인가.'
관리자 직위를 줄 만한 이는 절반이었다.
나머지 절반은 관리자가 되기에는 수준이 부족했다.
'생각보다 많네.'
절반이 적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예상보다 많았다.
'잘됐네.'
그렇지 않아도 입주자에 비해 관리자가 부족한 상태였는데 이번 기회에 관리자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앞으로 나와주세요."
강진석의 말에 가장 앞에 서 있던, 일전에 강진석에게 질문을 했던 3팀 소속 일반 입주자 김재필이 나섰다.
김재필의 표정에는 긴장이 역력했다.
강진석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전력을 다해 공격해 주세요."
기운만 봐도 김재필은 이미 합격이다.
그러나 그것을 아는 것은 강진석뿐이다.
아무것도 보지 않고 관리자의 직위를 준다면?
의문을 갖는 입주자들이 있을 것이다.
특히 탈락한 이들이 불만을 가질 확률이 높았다.
그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김재필의 수준을 보여줘야 했다.
"진짜 전력을 다하나요...? 스킬까지요?"
김재필이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강진석은 김재필이 아주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스킬까지 사용하면 위해를 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분위기를 보면 확실했다.
김재필만 이런 생각을 가질까?
아니, 전부는 아니겠지만 김재필 말고도 여러 입주자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분위기를 보면 확실했다.
"네, 스킬 포함해서 전력을 다해주세요."
강진석은 미소를 유지한 채 반문에 답했다.
"...알겠습니다."
김재필은 강진석의 답에 답하며 앞으로 나섰다.
"시작하겠습니다."
"...."
강진석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김재필이 검을 쥔 손에 힘을 줬다.
그리고 검을 휘두르며 외쳤다.
"강격!"
스앗!
검에 빛이 서렸다.
그리고 강진석은 검을 향해 손을 뻗었다.
턱!
그렇게 검이 잡혔다.
그걸로 끝이었다.
"...!"
눈 깜짝 할 사이 일어난 일이었다.
검이 잡히고 나서야 인지를 한 김재필은 화들짝 놀랐다.
"괘, 괜찮으...."
김재필은 중간에 말을 멈췄다.
그리고 당황스러운 얼굴로 강진석을 보았다.
괜찮냐고 물어보려 했는데 답을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검을 잡은 손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무척이나 괜찮아 보였다.
그리고 강진석이 검을 놓으며 물었다.
"이게 가장 강한 공격이실까요?"
물론 아닌 것을 안다.
강격은 기본 스킬이었다.
그럼에도 강진석이 이런 질문을 한 이유는 김재필이 깨닫길 바라서였다.
그리고 강진석의 바람대로 김재필은 깨달았다.
'...사방치기도 안 먹히겠는데?'
현재 김재필의 스킬 중 가장 강력한 스킬인 '사방치기'.
사방치기를 사용한다고 해도 강진석의 털끝도 건드리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마음이 편해졌다.
이렇게 강한 강진석의 옆에 붙어 있는다면?
미래가 무척이나 밝을 것 같았다.
"다시 가겠습니다."
김재필은 강진석에게 말했다.
"사방치기."
그리고 스킬 '사방치기'를 시전 후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검의 잔영이 4개 나타나 강진석의 사방을 찔러 들어갔다.
강진석은 전처럼 손을 들어 잔영을 전부 쳐낸 뒤 마지막으로 검을 잡았다.
'이 정도면 끝내도 되겠지?'
뒤쪽에서 구경하고 있는 이들도 김재필의 수준을 봤을 것이다.
그리고 강진석의 강함도 인지했을 것이다.
즉, 끝을 내도 될 것 같았다.
강진석은 그대로 검을 당겼다.
"엇."
검을 쥐고 있던 김재필은 균형을 잃고 그대로 끌려왔고 강진석은 김재필의 무릎 안쪽을 살짝 건드렸다.
쿵!
"큽!"
그러자 김재필이 엎어지며 비명을 내뱉었다.
이어 김재필은 쓴웃음을 지었다.
"...졌습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패배를 선언했다.
패배를 선언한 김재필의 표정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강진석은 김재필에게 말했다.
"합격입니다."
"...예?"
아쉬워하던 김재필은 그게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반문했다.
전력을 다해 공격했으나 예상했던 대로 털끝도 건드리지 못했다.
완벽히 압도당했다.
그래서 당연히 불합격일 줄 알았다.
다음에 조금 더 수준을 올려 도전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합격이라니?
"저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는데요...?"
김재필의 반문에 강진석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수비대장이라든가 수색대장 같은 네임드에게 쉽게 죽지 않으실 정도는 되니까요."
"아...."
이어진 강진석의 말에 김재필은 나지막이 탄성을 내뱉었다.
생각해 보니 합격 조건은 유의미한 공격을 성공시키는 게 아니었다.
"감사합니다!"
김재필은 감사를 표하며 옆으로 비켜섰다.
그리고 강진석은 두 번째 입주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다음 분."
제119화
119.
강진석의 말에 두 번째 입주자가 앞으로 나섰다.
'최치영 님이었나?'
김재필과 달리 이름도 확실히 기억하지 못하는 입주자였다.
'숨은 원석이셨네.'
그래서 더 의외였다.
최치영의 기운은 김재필과 비교해도 전혀 부족하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 더 강렬했다.
"안녕하십니까. 최치영입니다! 처음부터 전력을 다하겠습니다!"
앞서 김재필의 시험을 두 눈으로 본 최치영은 한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외쳤다.
그리고 들고 있던 창을 강진석에게 겨눴다.
'창이랑 검으로 가시는 건가?'
최치영은 창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니다.
허리춤에 검 하나가 달려 있었다.
액티브 스킬 라인을 '검', '창'으로 정한 듯했다.
'하나에 집중하거나 하나는 원거리로 바꾸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검과 창의 리치는 다르다.
그러나 결국 근접 무기다.
하나가 완벽한 것도 아닐 텐데 굳이 두 가지에 분산 투자할 이유가 있을까 싶었다.
차라리 하나에 집중하거나 하나를 원거리 무기로 바꾸는 게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끝나고 말씀드리자.'
강진석은 시험이 끝난 뒤 말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그 순간 최치영이 창을 내질렀다.
최치영은 스킬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을 꽤나 실었는지 앞서 시험을 본 김재필의 '강격'보다 강력했다.
물론 강력하다고 잡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김재필의 '강격'보다 강할 뿐이다.
강진석은 손을 뻗어 최치영의 창을 잡았다.
그리고 바로 그때였다.
"잔영! 투창!"
이미 잡힐 것을 예상한 것인지 잡히는 순간 최치영이 스킬 '잔영'과 '투창'을 연달아 시전했다.
그리고 강진석은 창끝에서 튀어나오는 창의 잔영을 볼 수 있었다.
'호오.'
강진석은 속으로 감탄을 내뱉었다.
이런 식으로 공격을 해 올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퉁!
예상하지 못했을 뿐이다.
강진석의 입장에서 창의 잔영 속도는 느렸고 강진석의 손은 2개였다.
반대 손으로 강진석은 창의 잔영을 쳐냈다.
그리고 그대로 창을 끌어당겼다.
"엇!"
당연하게도 최치영은 그대로 끌려오며 균형을 잃었다.
그리고 강진석은 김재필 때와 달리 무릎을 건들지 않고 창의 방향을 틀었다.
그러자 틀어진 방향을 따라 최치영이 끌려가다가 창을 놓쳤고 그대로 옆으로 엎어졌다.
"고생하셨습니다."
강진석은 창을 내려놓으며 엎어진 최치영에게 말했다.
"고, 고생하셨습니다."
최치영은 멋쩍은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답했다.
"합격입니다."
"...!"
그리고 이어진 강진석의 말에 최치영은 눈을 번쩍였다.
김재필 때와 달리 무기를 놓쳐 불합격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합격이라니?
"가, 감사합니다!"
"근데...."
감사를 표하던 최치영은 강진석의 말에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강진석이 이어 말했다.
"창이랑 검에 투자하고 계신 건가요?"
"네, 맞습니다! 근데 이제부터 창에만 집중적으로 투자할 생각입니다!"
"아하."
앞으로도 검, 창 두 가지에 투자할 생각을 갖고 있다면 방향성에 대해 말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굳이 말할 필요 없을 것 같았다.
"알겠습니다."
강진석의 답에 최치영은 꾸벅 숙여 인사하고는 김재필이 있는 옆쪽으로 물러났다.
그리고 강진석은 세 번째 참가자를 보며 말했다.
"다음 분."
그렇게 세 번째 시험이 시작됐다.
"합격입니다."
"불합격입니다."
"합격입니다."
이후 강진석은 기운의 크기, 전투 능력을 보고 빠르게 결과를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뒤 마지막 시험이 시작됐다.
"아이스 볼!"
마지막 시험자의 직업은 '마법사'였다.
스앗!
얼음덩어리가 나타나 강진석에게 날아가기 시작했다.
스킬 레벨이 낮아서일까?
아이스 볼에 담긴 기운은 무척이나 약했다.
강진석이 아니라 앞서 시험을 본 이들도 손쉽게 파훼할 수 있을 정도로 약했다.
유독 아이스 볼이 약한 것일 수 있다.
시험자의 기운 크기를 생각하면 더 강한 마법도 있을 것이다.
마법을 하나 더 보고 결정을 내리기로 한 강진석은 손가락으로 아이스 볼의 중점을 찔렀다.
팟!
그러자 아이스 볼이 그대로 사라졌다.
강진석은 시험자를 보았다.
시험자는 기대 가득한 눈빛을 짓고 있었다.
당연히 다음 마법을 날릴 것이라 생각했는데 왜 바라만 보고 있는 것일까?
'...이게 끝인가?'
문득 든 생각에 강진석은 설마 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이게 끝인가요?"
"엇, 네! 제가 가장 자신 있는 마법입니다!"
"아...."
강진석은 나지막이 탄성을 내뱉었다.
'자신 있다고 하기에는 너무 약한데....'
다른 마법을 볼 필요 없을 것 같았다.
"불합격입니다."
"엇... 넵."
불합격이라는 말에 마지막 시험자는 흠칫했다.
그뿐이었다.
불만을 내뱉지는 않았다.
잠자코 수긍했다.
강진석은 이어 시간을 확인했다.
어느새 출발 시간인 10시 코앞이었다.
강진석은 바로 텔레파시를 보냈다.
[개화산역 가실 분들은 집합해 주세요.]
이제 개화산역 탈환을 시작할 차례였다.
* * *
화곡동 봉제산.
차가운 뿌리 부족의 대족장 메라키오의 천막.
천막의 주인 메라키오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메라키오뿐만이 아니다.
함께 천막에 있는 메타킨, 메타룬, 마르가딜 등 차가운 뿌리 부족의 수뇌부들의 표정도 무척이나 좋지 않았다.
모두의 표정이 좋지 않은 이유는 2가지 때문이었다.
첫 번째 이유는 증미역을 공격한 부족원들이 전멸했다.
그렇다고 증미역에 큰 피해를 준 것도 아니다.
정찰 결과 증미역은 굳건했다.
조금의 피해조차 주지 못한 것으로 추정됐다.
그래서 더 문제였다.
증미역을 공격한 부족원들은 어중이떠중이가 아니다.
부족 내에서도 꽤나 수준이 높은 이들이었다.
그들이 피해를 주지 못했는데 누가 피해를 줄 수 있을까?
더구나 검은 숲 엘프들과의 전쟁으로 대부분의 부족원이 차출된 상태였다.
다시 공격하려 해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표정이 좋지 않은 두 번째 이유는 조금 전 개화산역의 영역 상징이 파괴됐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된 것인지 아직 파악되지 않았다.
정찰조를 보냈으니 곧 보고가 올 것이다.
물론 보고를 듣지 않아도 천막 내 모두가 알고 있다.
개화산역 역시 증미역을 공격한 인간들의 짓이 분명했다.
지금 상황에서 그들 말고는 개화산역을 공격할 이들이 없다.
바로 그때.
스윽.
상석에 앉아 있던 메라키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중앙 지도를 가지고 돌아와 펼쳤다.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가 지도를 살폈다.
지도를 살핀 이들의 표정은 한층 더 어두워졌다.
처음 침공할 때 주어진 영역이 늘어나기는 커녕 크게 줄었기 때문이었다.
"다들 보면 알겠지만 전쟁 바람 부족과 맞대고 있던 영역을 인간들이 앗아갔다."
메라키오가 입을 열었고 모두가 집중했다.
"이대로라면 이전 침공에서 우리가 비웃었던 그들과 같은 결말을 맞이하게 되겠지."
차가운 뿌리 부족은 지구 말고도 여러 세계를 침공했었다.
당연히 차가운 뿌리 부족만 침공한 게 아니다.
수많은 이들이 침공을 했다.
그리고 그중에는 해당 세계의 지성체들에게 역으로 멸망 당한 곳도 있었다.
그때는 비웃었다.
어찌 당할 수 있냐고.
그러나 상황이 반전되지 않고 이대로 흘러간다면?
차가운 뿌리 부족은 비웃었던 그들과 같은 결말을 맞이하게 될 확률이 매우 높았다.
"이 상황을 타개할 2가지 방법이 있다. 첫 번째는...."
그러나 갑자기 메라키오가 말을 멈추고 인상을 구겼다.
그런 메라키오의 말에 메타킨을 포함한 수뇌부들은 지도를 확인했다.
그리고 알 수 있었다.
메라키오가 왜 말을 멈췄는지, 인상을 구긴 것인지.
공항시장역에 있던 영역 상징이 파괴됐다.
* * *
강진석은 월아창을 내질렀다.
후웅!
거력을 담은 월아창은 바람을 가르며 나아갔고.
푹!
공항시장역의 보스 몬스터인 지원대장 클레마르의 가슴을 꿰뚫었다.
-...!
클레마르는 비명조차 내뱉지 못했다.
그저 눈을 크게 뜰 뿐이었다.
스앗!
이내 클레마르가 빛과 함께 사라졌다.
[차가운 뿌리 부족 지원대장 클레마르가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포인트가 25만 상승합니다.]
[퀘스트 '지원대장 클레마르'를 완료하셨습니다.]
[기여도에 따라 보상이 차등 지급됩니다.]
.
.
[퀘스트 '공항시장역 지하 4층'을 완료하셨습니다.]
[기여도에 따라 보상이 차등 지급됩니다.]
[1등 보상을 획득합니다.]
[포인트가 20만 상승합니다.]
수많은 메시지가 나타났고 강진석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이 정도면 지배권도 문제없겠지.'
고블린을 더 적게 죽인 개화산역에서도 요새 지배권이 주어졌다.
이대로 탈환이 끝난다 해도 문제 없이 요새 지배권이 주어질 것이다.
강진석은 한결 편해진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전방을 보았다.
전방에는 클레마르가 지키고 있던 제단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제단뿐이다.
제단만 파괴하면 공항시장역 탈환도 끝이다.
강진석은 제단으로 다가가며 월아창을 몽둥이로 변환했다.
그리고 도착과 동시에 몽둥이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쾅! 쾅!
몽둥이가 작렬할 때마다 해당 부분이 산산이 조각났다.
[조건을 충족하셨습니다.]
[퀘스트 '작은 제단 파괴'를 완료하셨습니다.]
[영역이 파괴됐습니다.]
.
.
얼마 지나지 않아 제단이 완전히 파괴됐고 메시지가 주르륵 나타났다.
[탈환에 압도적인 기여를 하셨습니다.]
[특수 보상을 획득합니다.]
[요새 지배권을 획득하셨습니다.]
[이미 요새를 보유 중입니다.]
[모든 요새가 합병됩니다.]
.
.
예상대로, 당연하게도 지배권이 주어졌다.
'...어??'
그러나 강진석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생각지도 못한 메시지가 추가로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축하합니다.]
[최초로 요새 사령관(2)의 조건을 충족하셨습니다.]
[최초 보상을 획득합니다.]
[현재 소유하고 있는 모든 요새의 방어력이 강화됩니다.]
[요새 포인트가 500만 상승합니다.]
.
.
바로 요새 사령관(2)의 충족 메시지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강진석이 당황한 것은 요새 사령관(2)의 충족 때문이 아니다.
충족과 동시에 활성화된 새로운 기능 때문이었다.
[길드 시스템이 활성화됩니다.]
[길드 '강진석'이 창설됐습니다.]
[길드 관리창에서 길드명을 바꿀 수 있습니다.]
[현재 소유 요새에 입주해 있는 모든 이들이 길드 '강진석'에 가입됩니다.]
.
.
[요새 관리창의 모든 기능이 길드 관리창으로 이전됩니다.]
새로운 기능은 바로 '길드 시스템'이었다.
강진석은 자세히 메시지를 확인했다.
'와....'
그리고 얼마 뒤 모든 내용을 확인한 강진석은 속으로 감탄을 내뱉었다.
많은 변화가 생겼다.
그중 눈에 띄는 변화는 2가지였다.
첫 번째는 요새 탈환과 관련된 변화였다.
'이제 내가 직접 갈 필요 없겠네?'
이제부터는 강진석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길드원들끼리 던전을 탈환해도 요새 지배권은 강진석에게 주어진다.
기여도가 상관없어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길드원들에게 마냥 맡길 생각은 없었다.
시간도 많이 걸리고 위험했기에 적절히 개입할 생각이었다.
'길드 영역은 내가 생각하는 그런 영역일까?'
두 번째는 길드 영역이었다.
강진석은 길드 관리창을 열었다.
제120화
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