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0화
80.
레이렌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인사에 답했고 마르다닌은 지휘실에서 나왔다.
지휘실에서 나온 마르다닌은 곧장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가며 생각했다.
'겁대가리 없는 자식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숲도 아니고 영역에 침범을 하다니?
겁을 상실한 행동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내 2층에 도착한 마르다닌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왼쪽을 힐끔 보았다.
왼쪽에는 감옥이 있었다.
비료로 쓸 인간들이 갇혀 있는 감옥이었다.
"마르다닌 님을 뵙습니다."
감옥 앞을 지키고 있던 엘프가 마르다닌의 시선에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했다.
그리고 마르다닌은 엘프에게 다가갔다.
"문을 열거라."
"예."
엘프는 일말의 머뭇거림도 없이 바로 감옥 문을 열었고 마르다닌은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주변을 스윽 훑었다.
수많은 인간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인간들의 표정에는 하나같이 두려움이 가득했다.
마르다닌은 히죽 웃으며 오른손을 품에 넣어 단검을 하나 꺼냈다.
짙은 핏빛 단검이었다.
그리고 이어 마르다닌은 근처에 있던 젊은 인간 여인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여인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고 이내 여인이 두둥실 떠올랐다.
여인은 발버둥 쳤다.
그러나 아무런 의미 없었다.
여인은 그대로 마르다닌에게 끌려갔고 이내 마르다닌의 손에 목이 붙잡혔다.
그리고 마르다닌은 핏빛 단검을 여인의 심장에 박았다.
푹!
"컥!"
여인은 비명을 내뱉었다.
이어 단검이 여인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여인은 순식간에 쪼그라들었고.
스아아....
이내 먼지로 변해 사라지기 시작했다.
마르다닌은 바람을 일으켜 먼지를 흩었다.
그리고 단검을 보았다.
그렇지 않아도 짙었던 단검의 핏빛이 한층 더 짙어져 있었다.
마르다닌은 흡족한 표정으로 단검을 다시 품에 넣었다.
그리고 남은 인간들을 보며 생각했다.
'이건 좀 아쉽군.'
전진기지인 이곳에서는 자유롭게 인간들을 제물로 쓸 수 있다.
그러나 본부로 귀환하면 불가능하다.
허가를 받아야 했다.
'그래도 귀환하는 게 낫지.'
마르다닌은 입맛을 다시고는 뒤로 돌아섰다.
그리고 감옥에서 나온 마르다닌은 입구를 지키고 있던 간수 엘프의 인사를 받으며 제1 공동으로 향했다.
이내 제1 공동에 도착한 마르다닌은 대기하고 있는 수많은 부하 엘프들을 볼 수 있었다.
오랜 경계 근무 끝에 귀환을 하게 됐기 때문일까?
부하 엘프들의 표정은 무척이나 밝았다.
마르다닌 역시 활짝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바라보는 부하 엘프들에게 외쳤다.
"이제! 본부로 귀환한다!"
부하 엘프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허리춤에 있던 단검을 하늘로 뻗었다.
이후 마르다닌은 앞장서 걸음을 옮겼고 부하 엘프들이 뒤를 따랐다.
그렇게 마르다닌은 부하 엘프들과 함께 지하 1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도착과 동시에 주변에 귀를 기울였다.
-키에에....
-키에....
이어 비명을 들을 수 있었고 마르다닌은 인상을 구겼다.
'보통이 아니군.'
방금 들린 비명은 지하 1층을 지키고 있는 수호목들의 비명이었다.
수호목들의 힘을 알고 있다.
쉽게 죽을 이들이 아니다.
'몇이나 온 거지?'
대체 몇 마리나 왔기에, 얼마나 강한 이들이 왔기에 수호목들이 맥없이 당하고 있는 것일까?
마르다닌은 곰곰이 생각하며 비명이 들려온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거리가 가까워지자.
-키에에....
-키에엑....
집중하지 않아도 수호목들의 비명을 들을 수 있었다.
"헛."
"엇."
당연히 부하 엘프들 역시 비명을 들었고 당황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저벅! 스윽.
그제야 마르다닌은 걸음을 멈추고 손을 들었다.
그러자 부하 엘프들이 따라 걸음을 멈췄고 마르다닌을 보았다.
마르다닌은 뒤로 돌아 부하 엘프들에게 말했다.
"지저분한 고블린 녀석들이 침입했다. 다들 전투 대형 준비."
엘프들은 마르다닌의 말에 눈을 번뜩이며 흉포한 얼굴로 흩어졌다.
흩어진 엘프들은 근처에 있던 나무 뒤 혹은 위에 자리를 잡았고.
마르다닌은 길 중앙에 서서 비명이 들려오는 전방을 바라보며 핏빛 단검을 꺼냈다.
그리고 얼마 뒤.
저벅....
저벅....
발소리가 들려왔다.
마르다닌은 발소리가 들려오자 집중력을 높였다.
이내 발소리의 주인공이 시야에 나타났다.
"...!"
그리고 마르다닌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인간?'
당연히 차가운 뿌리 부족의 고블린들이 침입한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침입자는 인간이었다.
'이곳의 지성체가 어찌....'
마르다닌은 믿기지 않았다.
이번 침공 무대인 '지구'라는 행성의 주요 지성체는 '인간'이었다.
다른 세계와 달리 지구의 인간들은 무척이나 약해빠진 존재들이었다.
그런데 어찌 여기까지 온 것일까?
그것도 혼자서 상처 하나 없이?
'잠깐, 설마 아드호란 제국 녀석인가? 아니면 메드린?'
문득 든 생각에 마르다닌은 눈을 번뜩였다.
당연히 지구의 인간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지구의 인간이 아닐 수도 있다.
아드호란 제국이나 메드린 왕국의 인간일 수 있다.
'...아니, 그럴 리가.'
하지만 곧이어 든 생각에 마르다닌은 생각을 부정했다.
'3차 제약이 해제된 것도 아니고 녀석들이 여기까지 올 수 있을 리가.'
정확한 위치는 모르지만 아드호란 제국은 미국이란 곳에, 메드린 왕국은 호주라 불리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1차 제약밖에 해제되지 않은 상황에 두 국가의 인간들이 이곳에 나타날 가능성은 0에 가까운 게 아니라 0%였다.
즉, 지금 나타난 인간은 이곳 '지구' 소속이 확실했다.
'다행이군.'
아드호란 제국이나 메드린 왕국이 아니라는 것에 마르다닌은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그리고 살짝 긴장을 풀며 생각했다.
'그래도 쓰레기들만 있는 건 아니라는 건가.'
제약 때문에 아직 제대로 기운을 느낄 수 없었다.
그러나 상황을 보면 지금 나타난 인간은 약하지 않다.
너무 마음 놓고 상대해서는 안 될 것이었다.
마르다닌은 핏빛 단검에 기운을 불어넣으며 전투를 준비했다.
바로 그때였다.
스앗!
인간이 사라졌다.
"...!"
마르다닌은 경악했다.
갑자기 사라지다니?
'블링크를? 영창 없이?'
이동이 빨라 놓친 게 아니다.
블링크로 공간을 이동한 것이 분명했다.
문제는 인간이 입을 열지 않았다는 것이다.
마르다닌은 긴장감을 다시 끌어올리며 주변을 확인했다.
그리고 사라진 인간이 어디로 이동했는지 알 수 있었다.
'망할!'
마르다닌은 속으로 욕을 내뱉었다.
사라진 인간이 다시 나타난 곳은 마르다닌의 등 뒤였다.
그리고 인간의 검이 목 앞에 도달해 있었다.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마르다닌은 모든 기운을 목으로 보내 강화했다.
'이 정도면 문제없겠지.'
상처는 날지언정 치명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핏빛 단검을 뒤로 뻗었다.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할 작정이었다.
* * *
스걱! 스아앗!
[검은 숲 수비대장 마르다닌이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포인트가 15만 상승합니다.]
[퀘스트 '수비대장 마르다닌'을 완료하셨습니다.]
[기여도에 따라 보상이 차등 지급됩니다.]
.
.
메시지가 주르륵 나타났다.
강진석은 대충 메시지를 확인하고 고개를 내려 바닥으로 떨어진 핏빛 단검을 보았다.
'꽤 강력해 보였는데.'
마르다닌은 공격을 피하지 않았다.
맞대응을 했다.
물론 강진석도 피하지 않았다.
마르다닌의 공격이 닿지 않을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강진석은 이어 주변을 확인했다.
아직 41마리의 엘프가 남아 있었다.
'42마리씩 교대가 맞나 보네.'
조금 전 선유도역으로 들어갔던 엘프들이 아니다.
'레이렌이 델니오급인 건가?'
방금 죽은 마르다닌은 델니오와 동급이 아니었다.
선유도역에 있던 네임드 보스는 레이렌과 마르다닌 둘뿐이었다.
즉, 강진석이 감지했던 델니오와 동급의 엘프는 레이렌이 분명했다.
강진석이 생각에 잠겨 있던 그때.
-!@#$!@%$@
엘프 하나가 괴성을 내뱉었고.
멍한 상태에 빠져 있던 엘프들이 일제히 활을 꺼내 들었다.
그러나 강진석은 당황하지 않았다.
마르다닌이 떨어트린 핏빛 단검 등의 전리품을 인벤토리에 보관했다.
그리고 그사이 엘프들이 시위를 놓았고.
스앗!
강진석이 사라졌다.
공간이동을 한 것이다.
푝! 푝! 푝!
이어 강진석이 있던 자리에 수많은 화살이 작렬했다.
그리고 사라진 강진석이 다시 나타난 곳은 괴성을 내뱉었던 엘프의 등 뒤였다.
강진석은 바로 검을 휘둘렀다.
엘프는 강진석의 등장을 인지하지도 못했고 당연히 검을 피하지 못했다.
스걱!
그렇게 괴성을 내뱉은 엘프의 머리가 하늘로 떠올랐다.
스아앗!
그리고 빛과 함께 사라졌다.
이어 강진석은 바로 근처에 있던 엘프들에게 검을 휘둘렀다.
스걱! 스걱! 스걱!
순식간에 추가로 세 엘프가 죽음을 맞이했고.
-!@$!
-#%@
그제야 엘프들이 강진석을 인지했다.
그리고 강진석은 엘프들의 시선이 몰리자 현 위치에서 11시 방향에 있는 엘프 셋의 뒤로 공간이동을 했다.
스걱! 스걱! 스걱!
그리고 연달아 검을 휘둘러 세 엘프를 처리하고 바로 옆에 있던 엘프 무리에게 향했다.
이번에는 공간이동을 하지 않았다.
거리가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강진석은 거리가 가까우면 직접 움직여서, 거리가 멀면 공간이동을 하며 엘프들을 죽여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마리도 빠짐없이 모든 엘프가 죽음을 맞이했고 강진석은 초감각에 집중했다.
혹여나 놓친 뭔가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다행히 그리고 당연하게도 놓친 것은 없었고 강진석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강진석은 지하 2층으로 이어진 계단 앞에 도착했다.
계단 앞에 도착한 강진석은 혼돈의 구를 그림자 단검으로 변형했다.
"은신."
그리고 은신을 시전 후 계단을 따라 내려갔다.
지하 2층에 도착한 강진석은 초감각에 집중하며 주변을 확인했다.
'일단 근방에는 없고.'
엘프는 물론 나무 괴인도 보이지 않았다.
강진석은 한결 편해진 표정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저벅!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강진석은 다시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엘프들의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40마리?'
감지된 엘프의 수는 총 40마리였다.
'레이렌이랑 한 마리는 어디에 있는 거지? 지하 3층에 있나?'
강진석은 우선 엘프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강진석은 감지되지 않았던 일반 엘프 한 마리를 감지할 수 있었다.
감지된 것은 일반 엘프뿐만이 아니다.
강진석이 2층에 내려온 목적인 '사람들'도 감지됐다.
'음....'
이어 강진석은 침음을 내뱉었다.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들의 수 때문이었다.
'150명이나 갇혀 있을 줄은 몰랐는데.'
놀랍게도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들은 총 150명이었다.
'이건 구출해도....'
강진석은 새로운 고민에 빠졌다.
구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문제는 구출하고 난 뒤였다.
'...일단 구출부터 하고 생각하자.'
지금 당장 결론이 나지 않는 문제였다.
강진석은 생각을 멈추고 다시 엘프 40마리가 모여 있는 곳으로 향했다.
엘프들에게서 150명을 지킬 자신이 없었다.
구출을 위해서는 먼저 엘프들을 정리하는 게 나아 보였다.
"은신."
얼마 지나지 않아 강진석은 목적지 근처에 도착했고 은신을 시전했다.
그리고 은신한 상태로 목적지에 진입했다.
제81화
81.
진입 후 강진석은 엘프들을 훑었다.
홀로 떨어져 휴식을 취하고 있는 엘프도 있었고 수련을 하고 있는 엘프도 있었다.
그리고 여럿이 모여 대화를 나누거나 카드 게임을 하고 있기도 했다.
'입구는 하나뿐이니까....'
엘프들이 모여 있는 거대한 공동에는 입구가 하나였다.
즉, 강진석이 입구를 지키고 있으면 엘프들은 도망칠 수 없다.
순식간에 사냥 동선이 짜였고 강진석은 바로 행동에 옮겼다.
강진석은 은신 상태로 가장 가까이 있던, 수련을 하고 있는 엘프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기운을 주입해 델룬 장검으로 변형시키며 검을 휘둘렀다.
수련하고 있던 엘프는 움찔했지만 그뿐이었다.
스걱! 스아앗!
그대로 목이 날아갔고 이어 빛과 함께 사라졌다.
강진석은 곧장 다음 엘프에게 다가갔다.
두 번째 엘프 역시 제대로 반응하지 못했고 그대로 죽음을 맞이했다.
그렇게 두 엘프가 죽고 나서야 공동 내 엘프들이 강진석의 존재를 인지했다.
그러나 인지했다고 달라질 것은 없었다.
애초에 이들보다 직위가 높고 강한 마르다닌 또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했다.
강진석은 엘프들을 하나씩 줄여나가며 생각했다.
'한 번에 여럿을 잡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아쉽게도 강진석에게는 광역 공격 방법이 없었다.
공격 한 번에 한 마리만 죽일 수 있었다.
'강력한 광역 스킬이 담긴 아티펙트 어디 없나.'
여태껏 많은 아티펙트를 마주했다.
스킬이 달린 아티펙트는 많았지만 광역 공격 스킬이 달린 아티펙트는 없었다.
'붉은 바람 잔영이 범위만 넓었어도....'
강진석은 에파드의 수련 도끼에 내장된 스킬 '붉은 바람 잔영'을 떠올렸다.
붉은 바람 잔영은 강력했다.
하지만 범위가 너무 좁았다.
만약 범위를 조절할 수 있었다면 아주 요긴하게 사용했을 것인데 참으로 아쉬웠다.
스걱! 스아앗!
이내 마지막 엘프가 죽음을 맞이했다.
사냥을 마친 강진석은 공동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곧장 감옥으로 향했다.
감옥 근처에 도착한 강진석은 다시 혼돈의 구를 그림자 단검으로 변형 후 은신을 시전했다.
그리고 은신한 상태로 입구를 지키고 있는 엘프에게 다가갔다.
스걱!
엘프 앞에 도착한 강진석은 바로 엘프의 목을 찔렀다.
그와 동시에 메시지가 나타났다.
[퀘스트 '선유도역 지하 2층'을 완료하셨습니다.]
[기여도에 따라 보상이 차등 지급됩니다.]
[1등 보상을 획득합니다.]
[포인트가 15만 상승합니다.]
'확실히 포인트 수급은 던전이 엄청나긴 하네.'
수급되는 포인트 양이 어마어마했다.
역시 던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끼이익.
강진석은 메시지에 대한 관심을 접고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 순간 갇혀 있던 이들의 기운이 크게 흔들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문 열리는 소리에 이리 두려워하다니?
어떤 일이 있었기에 문 열리는 소리에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일까?
강진석은 안타까운 얼굴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곧 수많은 이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어?"
"엇?"
"...?"
갇혀 있던 이들은 강진석을 보고 대부분 의아한 반응을 보였다.
강진석의 등장을 생각지도 못했다는 반응이었다.
'...뭐지?'
그래서 강진석은 의아했다.
퀘스트가 완료된 것을 통해 어느 정도 상황 파악이 됐을 텐데 어찌 이리 의아한 반응을 보이는 것일까?
"안녕하세요."
일단 강진석은 자신을 바라보는 이들에게 인사했다.
그리고 바로 본론을 꺼냈다.
"여러분들을 구출하러 온 강진석이라고 합니다."
강진석의 말에 감금된 이들은 여러 반응을 보였다.
"아아...."
누군가는 계속해서 탄성을 내뱉었고.
"가, 감사합니다."
누군가는 감사의 인사를.
"흑흑."
누군가는 눈물을 흘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이들의 기운이 평온을 되찾았다.
그리고 근처에 있던 중년 사내가 다가와 물었다.
"혹시 저희가 도울 일이 있을까요?"
강진석은 중년 사내의 물음에 잠시 생각하다가 답했다.
"당장 도와주실 일은 없고 궁금한 게 하나 있습니다."
"네, 아는 것이라면 상세히 답변드리겠습니다."
"혹시 퀘스트 완료 안 되셨나요?"
"퀘스트요? 혹시 던전 퀘스트를 말씀하시는 걸까요?"
"네."
조금 전 퀘스트 '선유도역 지하 2층'을 완료했다.
그리고 지하 1층에서 퀘스트 '수비대장 마르다닌'을 완료했다.
퀘스트 완료 메시지를 보았을 것인데 감금된 이들의 반응은 무언가 이상했다.
마치 완료 메시지를 보지 못한 것 같았다.
"그게...."
중년 사내는 말끝을 흐렸다.
그리고 쓴웃음을 지으며 이어 말했다.
"던전 퀘스트가 삭제됐습니다."
"...삭제요?"
"네, 이곳에 갇히는 순간 퀘스트가 삭제됐습니다. 그와 동시에 디버프 또한 없어졌구요."
"아...."
강진석은 나지막이 탄성을 내뱉었다.
반응이 이상했던 것, 디버프를 받고 있을 텐데 힘들어하는 기색이 없던 것까지 모든 게 다 이해됐다.
"근데 혹시 그 괴물들이 전부 죽은 건가요...?"
중년 사내가 물었다.
그리고 중년 사내의 물음에 모든 이들이 강진석을 빤히 바라보았다.
강진석은 안심을 주기 위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엘프는 딱 한 마리 남았습니다. 나무 괴인들도 이제 처리하러 갈 생각이구요."
이제 남은 것은 지하 3층에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수비대장 레이렌과 세계수 뿌리 조각 그리고 잡지 못한 나무 괴인뿐이었다.
그들만 잡으면 선유도역 청소는 끝이 날 것이다.
강진석의 답에 질문을 한 중년 사내는 물론 다른 이들 역시 초롱초롱한 눈빛을 지었다.
수많은 눈빛을 마주하게 된 강진석은 생각했다.
'근데 탈환해도 문제인데....'
선유도역은 신방화역, 마곡나루역, 양천향교역과 다르다.
사방이 적이었다.
방화역으로 데리고 가자니 가는 길이 무척 험난했다.
한, 둘이라면 보호하면서 데리고 가겠지만 150명을 전부 보호하면서 간다?
불가능한 일이었다.
'...일단 시간이 좀 있으니까.'
탈환과 동시에 선유도역은 요새화될 것이다.
며칠이나 버틸지는 모르겠지만 당장은 안전할 것이고 그 안에 대책을 세우면 된다.
생각을 마친 강진석은 인벤토리에서 자루 3개를 꺼냈다.
혹시나 이런 상황이 있을까 가지고 다니는 무기 자루였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적이 나타나면 최대한 시간 끌어주세요."
강진석은 자루에 담겨 있던 무기를 사람들에게 분배했다.
"그럼 이따 뵙겠습니다."
그리고 인사 후 감옥에서 나왔다.
감옥에서 나온 강진석은 초감각에 집중했다.
'이 정도면 별일 없겠지.'
지하 1층에 있는 나무 괴인들이 신경 쓰이긴 했지만 이동 속도나 이곳 환경을 생각하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강진석은 걱정을 떨치고 감옥 입구 앞쪽에 있던 계단으로 다가갔다.
지하 3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이었다.
아래쪽을 잠시 바라보던 강진석은 이내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지하 3층에 도착한 순간.
[세계수 뿌리 조각이 당신을 인지합니다.]
[세계수 뿌리 조각이 지하 1층에 남아 있던 나무 괴인을 자신의 보금자리에 소환합니다.]
[나무 괴인을 전부 처치 시 퀘스트 '선유도역 지하 1층'을 완료할 수 있습니다.]
메시지가 주르륵 나타났다.
'...뭐야?'
강진석은 메시지를 보고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세계수 뿌리 조각이?'
그도 그럴 것이 메시지의 주인공은 수비대장 레이렌이 아니라 세계수 뿌리 조각이었다.
'인지했다니 이게 무슨....'
세계수 뿌리 조각이 인지했다는 내용이 무척 신경 쓰였다.
그뿐만이 아니다.
거기다 '자신의 보금자리'라는 단어도 매우 신경 쓰였다.
세계수 뿌리 조각은 앞서 파괴했던 제단과 달리 살아 있는 생명체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운을 아껴야겠어.'
레이렌을 잡을 때 과하게 기운을 소모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만약 세계수 뿌리 조각이 살아 있는 생명체라면?
레이렌보다 강할 확률이 높았다.
괜히 레이렌에게 힘을 뺐다가 예상치 못한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
'...어쨌든 잘됐네.'
구출에 집중하느라 지하 1층을 깨끗이 청소하지 못했다.
그런데 세계수 뿌리 조각이 나무 괴인들을 전부 소환해 준 덕분에 지하 1층 청소에 시간을 쓸 필요가 없어졌다.
강진석은 한결 편해진 표정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뒤 강렬한 기운을 감지할 수 있었다.
레이렌이 분명했다.
'...음?'
강진석은 레이렌의 기운에 고개를 갸웃했다.
'뭐지? 왜 더 강해졌어?'
던전 밖에서는 델니오와 동급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동급이 아니었다.
델니오보다 기운이 더 컸다.
'영역 안이라서 그런가...?'
갑자기 기운이 커진 이유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본 강진석은 영역 안이기 때문이란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그리고 의문이 해결되자마자 또 하나의 의문이 생겨났다.
'근데 왜 혼자 있지?'
당연히 세계수 뿌리 조각과 함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레이렌은 거대한 공동에 홀로 있었다.
왜 혼자 있는 것일까?
세계수 뿌리 조각이 더 강하기에 지킬 필요 없다는 것일까?
이내 공동 입구에 도착한 강진석은 멈칫했다.
정 반대편에 통로가 하나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나무 괴인들이 있었다.
세계수 뿌리 조각은 나무 괴인들을 자신의 보금자리로 소환했다.
즉, 나무 괴인들이 있는 곳이 세계수 뿌리 조각의 보금자리라는 뜻이다.
'보금자리로 가는 통로를 지키고 있던 거구나?'
강진석은 레이렌이 왜 공동에 홀로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세계수 뿌리 조각에 조그마한 문제도 생기지 않게 나서서 막겠다는 생각이 아닐까 싶었다.
'좋은 생각이야.'
강진석은 흡족한 표정으로 은신을 시전 후 공동에 진입했다.
진입과 동시에 강진석은 레이렌과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레이렌이 활을 들었다.
'...음?'
강진석은 당황했다.
그리고 고개를 힐끔 내려 자신의 손을 보았다.
반투명했다.
분명 은신 상태였다.
바로 그때였다.
휙!
귓가에 들리는 소리에 강진석은 옆으로 한 걸음 움직였다.
그러자 강진석이 조금 전까지 서 있던 곳으로 화살이 지나갔다.
'무적이 아닌 건 알고 있었지만....'
강진석도 최은형의 은신을 간파했었다.
그래서 은신이 무적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래도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강진석은 아쉬운 표정으로 레이렌의 뒤로 공간이동을 시전했다.
마르다닌 때처럼 기습을 통해 단숨에 죽일 생각이었다.
훙!
레이렌의 등 뒤에 도착하자마자 강진석은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검이 작렬하기 직전.
스앗!
레이렌이 사라졌다.
공간이동을 한 것이다.
'...이건 예상 못 했는데.'
강진석은 뒤로 돌아섰다.
당혹스러운 눈빛을 짓고 있는 레이렌이 시야에 들어왔다.
이어 강진석은 레이렌의 목을 보았다.
목걸이가 빛나고 있었다.
강진석처럼 본연의 힘으로 이동한 것이 아닌 아티펙트의 도움으로 이동한 것이 분명했다.
'몇 번 더 쓸 것 같은데.'
목걸이에 담겨 있는 기운은 아직도 상당했다.
앞으로도 몇 번은 더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문제는 강진석의 경우 공간이동에 많은 정신력이 소모된다는 점이다.
세계수 뿌리 조각과의 전투가 남아 있는 상태에서 정신력을 더 쓰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물론 공간이동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현재 강진석은 정상적인 상태의 델니오도 쉽게 죽일 수 있을 정도로 강했다.
레이렌이 델니오보다 강하다고 해도 크게 어려운 상대는 아닌 것이다.
'그래,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정신력을 아끼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결정을 내린 강진석은 전력을 다해 레이렌과의 거리를 좁혔다.
제82화
82.
레이렌은 다가오는 강진석을 향해 시위를 놓았다.
첫 화살과 달리 평범한 화살이 아니었다.
화살에 기운이 가득 담겨 있었다.
강진석과 화살의 거리는 순식간에 좁혀졌다.
화살을 피하기 위해 강진석은 동선을 살짝 비틀었다.
그러자 화살의 방향 역시 바뀌었다.
그 순간 강진석은 깨달았다.
'유도 화살이구나?'
공격력이 강화된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물론 유도 화살이라고 크나큰 문제가 발생한 것은 아니다.
스걱!
강진석은 검을 휘둘렀다.
그대로 화살은 반으로 쪼개졌다.
당연히 담겨 있던 기운 역시 허공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강진석은 계속해서 레이렌에게 다가가며 표정을 살폈다.
너무나도 허무하게 화살이 막혔기 때문일까?
레이렌의 얼굴에 가득했던 당혹스러움은 한층 더 짙어져 있었다.
이내 거리가 가까워졌고 강진석은 검을 휘둘렀다.
스앗!
그 순간 다시 한번 레이렌이 자리에서 사라졌다.
강진석은 당황하지 않았다.
이미 몇 번 더 공간이동 할 것을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강진석은 돌아섰다.
그리고 시위를 당기는 레이렌을 향해 다시 달려들었다.
거리가 다시 빠르게 좁혀지기 시작했고 레이렌이 시위를 놓았다.
당연히 이번 화살에도 기운이 담겨 있었다.
강진석은 방향을 살짝 틀었다.
그러자 전처럼 화살 역시 미세하게 방향이 바뀌었다.
'유도 기능만 있지는 않을 것 같은데.'
화살에 담긴 기운은 전보다 많았다.
기운의 크기를 생각하면 유도 기능만 있지는 않을 것 같았다.
강진석은 살짝 찝찝한 표정으로 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화살을 벤 순간.
쾅!
화살이 폭발했고 열기가 강진석을 엄습했다.
강진석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열기에 다쳤기 때문이 아니다.
바로 앞에서 폭발해 열기에 휩싸였지만 자그마한 상처도 나지 않았다.
조금의 고통도 없었다.
아무런 피해가 없음에도 강진석이 미간을 찌푸린 이유는 폭발을 예상하지 못했다는 것 때문이었다.
지금이야 폭발의 위력이 약해 피해를 받지 않았다.
하지만 피해를 받을 정도로 위력이 강력했다면?
과거 목소리를 잃었을 때의 사고가 되풀이됐을 수 있다.
강진석은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기로 생각하고 레이렌과의 거리를 좁히는 데 집중했다.
스앗!
역시나 이번에도 레이렌은 강진석이 도착하자 사라졌다.
강진석은 돌아섰다.
그리고 싱긋 미소를 지었다.
레이렌의 목걸이가 빛을 잃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표정을 보니 공간이동을 할 수 있는 또 다른 아티펙트를 가지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이제는 도망 못 치겠지.'
강진석은 앞서 했던 것처럼 전력을 다해 레이렌에게 달리기 시작했다.
레이렌은 재빨리 활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허리에 차고 있던 단검과 허벅지에 메고 있던 단검을 각 손에 쥐었다.
이어 레이렌이 두 단검에 기운을 주입했고 붉은빛이 치솟아 검신을 이뤄 장검이 되었다.
'...정말 자연스럽네.'
강진석은 순간 부러움을 느꼈다.
'난 형태 만들기도 힘든데....'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레이렌이 사용한 기술은 강진석도 틈이 날 때마다 연습을 하고 있지만 제대로 성공한 적 없는 기술이었기 때문이었다.
'언젠가는 가능하겠지.'
조금씩 조금씩 발전하고 있었다.
언젠가는 레이렌처럼 자연스레 기운을 다룰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이내 거리가 좁혀졌고 레이렌이 먼저 검을 휘둘렀다.
강진석은 마주 검을 휘둘러 레이렌의 쌍검을 쳐냈다.
레이렌의 양팔이 뒤로 밀려났고 강진석은 바로 레이렌의 목을 향해 검을 뻗었다.
단숨에 목을 베어 죽일 생각이었다.
물론 레이렌은 마르다닌과 달리 갑옷으로 목을 보호하고 있었다.
그러나 상관없었다.
갑옷과 함께 베어 내면 그만이었다.
이내 레이렌의 목을 보호하고 있던 갑옷에 검이 작렬했다.
그극!
"...!"
그리고 이어진 상황에 강진석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혼돈의 구로 한 번, 기운 주입으로 또 한 번.
총 두 번 강화된 상태였다.
당연히 갑옷과 함께 그대로 벨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갑옷은 살짝 파였을 뿐 뚫리지 않았다.
레이렌은 그대로 갑옷과 함께 힘이 실린 방향으로 날아갔다.
쾅!
이내 레이렌이 땅에 처박혔고 강진석은 검을 보았다.
'기운을 적당히 넣었다고 해도....'
세계수 뿌리 조각을 파괴할 때 얼마나 많은 기운이 필요할지 몰라 기운을 조금 넣었다.
그래도 뚫리지 않았다는 것이 충격적이었다.
강진석은 다시 고개를 들어 일어나고 있는 레이렌을 보며 생각했다.
'...갖고 싶은데.'
레이렌이 입고 있는 갑옷은 보통 아티펙트가 아닌 것 같았다.
소유하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다.
더 망가지지 않은 상태로.
결정을 내린 강진석은 다시 레이렌에게 달려들며 갑옷으로 보호되지 않는 부분들을 확인했다.
그리고 해당 부분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레이렌은 피하기 위해 전력을 다해 움직였다.
그러나 격차가 커도 너무 컸다.
강진석의 공격을 완벽히 피해내는 것은 불가능했고 레이렌의 기운이 급속도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기운이 줄어들자 단검의 붉은빛 검신 역시 따라 줄어들었다.
얼마 뒤 레이렌의 기운이 바닥났고 강진석은 공격을 멈췄다.
그와 동시에 레이렌이 앞으로 엎어졌다.
잠시 뒤.
스아앗!
레이렌의 갑옷이 빛나더니 허리띠로 변했다.
스아앗!
그리고 이어 레이렌이 빛나며 사라졌다.
[검은 숲 수비대장 레이렌이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포인트가 18만 상승합니다.]
[퀘스트 '수비대장 레이렌'을 완료하셨습니다.]
[기여도에 따라 보상이 차등 지급됩니다.]
.
.
메시지를 본 강진석은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레이렌이 남기고 간 부산물들을 확인했다.
가장 먼저 확인한 것은 허리띠로 변한 갑옷이었다.
'감정이 필요하네.'
역시나 바로 정보가 떠오르지 않았다.
강진석은 인벤토리에서 감정 스크롤을 꺼냈다.
그리고 감정을 시도했다.
그러나 정보창이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메시지가 나타났다.
[감정에 실패했습니다.]
"...!"
감정 실패 메시지를 본 강진석은 눈을 번뜩였다.
하급 감정 스크롤을 사용한 게 아니었다.
중급 감정 스크롤을 사용했다.
그런데 실패라니?
'...최소 상급이라고?'
아무리 못해도 상급 아티펙트라는 것을 의미했다.
강진석은 침을 꿀꺽 삼키며 상점창을 열었다.
그리고 상급 감정 스크롤을 구매 후 감정을 시도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정보창이 나타났다.
<세계수의 축복이 깃든 허리띠>
1. 착용 시 민첩 5 상승
2. 착용 시 체력 5 상승
3. 착용 시 스킬 '간파' 활성화
4. 기운 주입 시 '세계수 갑옷' 발동
'와....'
강진석은 감탄을 내뱉었다.
상급 아티펙트답게 효과가 엄청났다.
착용하는 것만으로도 민첩과 체력을 5씩 올려줬고 패시브 스킬 '간파'도 내장되어 있었다.
'세계수의 갑옷은 사용해 봐야겠는데.'
강진석은 바로 허리띠를 착용했다.
그리고 기운을 주입했다.
그러자 허리띠가 빛나며 갑옷으로 변했다.
'체형에 맞춰 변하는 거구나? 잘됐네.'
레이렌과 체격 차이가 있었다.
그래서 혹시나 제대로 사용할 수 없으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이었다.
'이것도 강화되려나?'
강진석은 추가로 기운을 주입했다.
그러자 갑옷에 초록빛이 서렸다.
그리고 강진석은 느낄 수 있었다.
훨씬 더 단단해졌다는 것을.
'근데 기운을 너무 잡아먹네.'
강진석은 기운을 회수했다.
그러자 다시 허리띠 상태로 돌아갔다.
그리고 강진석은 남은 부산물을 확인 후 반대편 통로로 향했다.
'얼마나 걸리려나.'
이제 남은 것은 세계수 뿌리 조각과 나무 괴인뿐이었다.
전부 잡는 데 얼마나 걸릴지 생각하며 강진석은 통로에 진입했다.
진입과 동시에 강진석은 퀴퀴한 냄새에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이게 뭔 냄새야.'
정신이 흔들릴 정도로 지독한 악취가 느껴졌다.
강진석은 기운을 움직여 악취가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 냈다.
'이제야 좀 낫네.'
그제야 한결 편해진 표정으로 강진석은 주변을 보았다.
통로에는 수많은 나무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그중에는 나무 괴인들이 속속 숨어 있었다.
강진석은 혼돈의 구에 기운을 주입해 갈락 도끼로 변형했다.
그리고 나무 괴인을 향해 도끼를 휘두르며 전진을 시작했다.
* * *
쩍!
-키에에엑!
스아앗!
마지막 나무 괴인이 빛과 함께 사라졌다.
[퀘스트 '선유도역 지하 1층'을 완료하셨습니다.]
[기여도에 따라 보상이 차등 지급됩니다.]
[1등 보상을 획득합니다.]
[포인트가 15만 상승합니다.]
그리고 퀘스트 완료 메시지가 나타났다.
강진석은 고개를 돌려 전방을 보았다.
통로의 끝이 보였다.
이제 남은 것은 세계수 뿌리 조각뿐이었다.
세계수 뿌리 조각만 파괴하면 선유도역 청소도 끝이 난다.
강진석은 긴장을 끌어올리며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통로의 끝을 지나 거대한 공동에 진입할 수 있었다.
진입과 동시에 강진석은 세계수 뿌리 조각을 발견했고 감탄했다.
'큰 거 봐라....'
감탄한 이유는 엄청난 크기 때문이었다.
세계수 뿌리 조각은 3층 건물과 비슷했다.
드러난 부분만 3층 건물이다.
땅에 박혀 보이지 않는 부분을 포함하면 5층 건물이라 봐도 무방했다.
'뿌리 조각이 이 정도면....'
세계수의 조각이 아니라 세계수 '뿌리'의 조각이었다.
뿌리의 조각이 이 정도면 온전한 세계수는 얼마나 큰 것일까?
강진석은 세계수에 대해 생각하며 추가로 기운을 주입해 갈락 도끼를 강화했다.
바로 그때.
후웅!
공동 곳곳에 뻗어 있던 나무뿌리들이 사방에서 날아왔다.
말 그대로 사방이었다.
피할 곳이 없었다.
그러나 강진석은 싱긋 웃었다.
피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스앗!
강진석이 자리에서 사라졌다.
공간이동을 한 것이다.
사라진 강진석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곳은 세계수 뿌리 조각의 바로 앞이었다.
강진석은 강화된 갈락 도끼를 휘둘렀다.
쩍!
이내 갈락 도끼가 세계수 뿌리 조각에 작렬했고.
쾅!
폭음과 함께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스아아....
도끼가 작렬한 부분 주변이 검게 변하며 말라비틀어졌다.
그뿐만이 아니다.
사방에 뻗어 있던 나무뿌리 중 일부도 검게 변했다.
당연히 검게 변한 부분이나 나무뿌리는 움직이지 않았고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도끼질 한 번에 무력화된 것이다.
'...생각보다 쉽게 끝낼 수 있겠는데?'
크기를 보고 파괴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공격의 결과를 보니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 같았다.
강진석은 바로 움직여 온전한 부분을 갈락 도끼로 내려찍기 시작했다.
쾅! 쾅!
도끼가 작렬할 때마다 폭음이 울려 퍼졌고 검게 물들기 시작했다.
물론 세계수 뿌리 조각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움직일 수 있는 나무뿌리를 이용해 강진석을 공격했다.
그러나 강진석은 계속해서 공간이동을 하며 공격을 이어 나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드러난 부분의 80%가량이 검게 변했다.
그리고 바로 그때.
스아아....
세계수 뿌리 조각의 기운이 급속도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갑작스런 변화에 강진석은 집중했다.
그리고 이어진 상황에 강진석은 안도했다.
공격받지 않은 온전한 부분도 검게 물들어 시들기 시작했다.
'전부 찍어낼 필요는 없나 보네.'
온전한 부분을 한 곳도 빠짐없이 전부 공격하려 했던 강진석은 싱긋 웃으며 상황을 지켜보았다.
이내 모든 부분이 검게 물들었고.
스아아....
먼지로 변해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메시지가 나타났다.
[세계수 뿌리 조각이 파괴됐습니다.]
[조건을 충족하셨습니다.]
[퀘스트 '세계수 뿌리 조각 파괴'를 완료하셨습니다.]
[영역이 파괴됐습니다.]
.
.
'...어?'
메시지를 살피던 강진석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생각지도 못한 메시지가 추가로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축하합니다.]
[최초로 요새 사령관(1)의 조건을 충족하셨습니다.]
[최초 보상을 획득합니다.]
[현재 소유하고 있는 모든 요새의 방어력이 강화됩니다.]
[요새 포인트가 200만 상승합니다.]
[1회용 이동 게이트 10개를 획득했습니다.]
제83화
83.
오롯이 존재하는 자 때와 비슷한 메시지였다.
'요새 사령관이라니....'
강진석은 일단 요새 사령관(1)의 조건을 확인했다.
1. 세계 침공자 소유의 던전을 탈환해 요새화시키기 5회
2. 요새 지배권 소유
조건을 확인한 강진석은 고개를 갸웃했다.
'여섯 번째인데?'
태백 빌딩, 방화역, 양천향교역, 마곡나루역, 신방화역 그리고 선유도역까지 강진석이 요새화시킨 곳은 여섯 곳이었다.
그런데 왜 신방화역이 아닌 선유도역에서 조건이 충족된 것일까?
'...아.'
생각에 잠겨 있던 강진석은 이내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태백 빌딩은 던전이 아니었지....'
생각해 보니 태백 빌딩은 던전이 아니었다.
일반 거점이었다.
요새화가 되기는 했지만 조건에는 부합하지 않는 곳이었다.
'...근데 보상이 무슨.'
강진석은 이어 보상을 보고 침을 꿀꺽 삼켰다.
요새 사령관(1)의 최초 보상은 엄청났다.
오롯이 존재하는 자(1)과는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였다.
첫 번째로 보유하고 있는 모든 요새의 방어력이 강화됐다.
얼마나 강화됐을지 아직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미약하게 강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강진석이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두 번째 보상 때문이었다.
'200만 포인트나 주다니....'
2만도 아니고 20만도 아니고 무려 200만이다.
보상 수준을 보면 요새 방어력 역시 크게 강화됐을 가능성이 높았다.
'1에서 이 정도면 2에서는....'
요새 사령관(1)이 끝이 아닐 것이다.
오롯이 존재하는 자를 생각하면 요새 사령관(2)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오롯이 존재하는 자의 경우 포인트 보상이 10만에서 50만으로 5배 증가했다.
만약 요새 사령관의 보상도 5배로 증가한다면?
'1000만....'
상상만 해도 웃음이 나오는 양이었다.
'근데....'
요새 방어력 강화, 요새 포인트.
2가지 다 엄청난 보상이었다.
그러나 강진석의 시선을 가장 끄는 보상은 따로 있었다.
'1회용 이동 게이트는 내가 생각하는 그걸까?'
바로 세 번째 보상인 1회용 이동 게이트였다.
강진석은 인벤토리에서 1회용 이동 게이트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꺼내자마자 강진석의 머릿속에 이동 게이트에 대한 정보가 주르륵 떠올랐다.
'...허.'
강진석은 정보를 확인하고 헛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손에 들린 지름 30cm의 동그란 판을 보았다.
놀랍게도 1회용 이동 게이트는 강진석의 생각과 매우 비슷한 물건이 맞았다.
설치 시 30분간 이용이 가능했다.
그리고 메시지에는 10개라고 나왔지만 10개가 아니다.
정확히는 10쌍이었다.
하나를 설치하면 요새 관리창 구조 변경을 통해 짝이 되는 게이트를 하나 설치할 수 있었다.
'다른 이동 게이트랑 연결이 되지 않기는 해도....'
생각과 달랐던 부분은 다른 이동 게이트와는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일대일 대응이었다.
그러나 아무 문제 없었다.
조금도 아쉽지 않았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강진석은 무척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이어 퀘스트창을 열었다.
퀘스트 '선유도역 수비'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선유도역 수비>
8일 뒤 여러 몬스터들이 지하도를 통해 선유도역을 침공할 예정이다.
공격을 막아 선유도역을 지켜내라!
[기여도 : 0]
퀘스트 보상 : ???
'침공은 걱정할 필요 없겠고.'
다행히 선유도역 침공은 8일 뒤였다.
다른 침공과 날짜가 겹치지도 않았고 시간도 매우 넉넉했다.
강진석은 퀘스트창을 닫았다.
그리고 요새 포인트를 확인했다.
[현재 보유 요새 포인트 : 301만 5000]
확인과 동시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이 정도면 여러 개 개발할 수 있겠는데?'
강진석은 향후 발전 계획을 떠올리며 일반 포인트를 확인했다.
[현재 보유 포인트 : 720만 4070]
'이야....'
요새 포인트 때에는 웃음이 나왔다면 일반 포인트 때에는 감탄이 나왔다.
숲에 들어서기 전 540만도 되지 않았던 포인트가 700만이 훌쩍 넘어가 있었다.
어마어마한 포인트 수급량에 강진석은 연신 감탄을 내뱉으며 정보창을 열었다.
힘 : 139(102+37)
민첩 : 137(100+37)
체력 : 146(103+43)
정신력 : 140(104+36)
'투자 좀 할까?'
가는 동안 무슨 일이 있을지 몰라 포인트를 아껴두고 있었다.
그런데 포인트 상황을 보니 어느 정도는 써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생각 좀 해보자.'
강진석은 정보창을 닫았다.
그리고 뒤로 돌아섰다.
일단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바로 구출한 150명을 방화역으로 보내는 것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구출 후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을 했었다.
그런데 1회용 이동 게이트가 생겨 모든 문제가 해결됐다.
'다 입주했으면 좋겠지만....'
마음 같아서는 150명 전부 입주하길 바랐다.
그러나 요새 입주 조건을 듣고 입주를 거부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것도 한둘이 아니라 많은 이들이 거부할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랜 감금으로 정신과 마음이 지쳐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얼마나 입주하시려나.'
강진석은 150명 중 몇 명이나 입주할지 생각하며 지하 2층 감옥으로 향했다.
이내 감옥에 도착한 강진석은 은은히 미소를 지었다.
던전 완료 메시지를 본 것인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전부 밝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거기다 강진석을 바라보는 눈빛이 한없이 빛났다.
한지윤을 포함한 몇몇 요새 입주자들이 떠오를 정도였다.
"일단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아시겠지만 선유도역을 탈환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역 주변은 몬스터로 가득합니다. 그래서...."
강진석은 간략히 설명했다.
설명을 마친 뒤 강진석은 바로 1회용 이동 게이트를 설치했다.
설치 방법은 간단했다.
바닥에 놓고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된다.
딸칵 스아앗!
[구조 변경을 통해 이동 게이트 설치를 할 수 있습니다.]
[남은 시간 : 30분]
버튼을 누르자 이동 게이트가 빛나며 메시지가 나타났다.
강진석은 바로 요새 관리창을 열어 구조 변경을 선택했다.
그러자 홀로그램 지도가 나타났고 강진석은 바로 방화역을 선택했다.
'자유 훈련장 근처가 좋겠지.'
강진석은 방화역 지하 1층 자유 훈련장 옆에 짝이 되는 이동 게이트를 설치했다.
그리고 설치와 동시에 이동 게이트 위쪽으로 포털이 나타났다.
"잠시 확인하고 오겠습니다. 한 분씩 입장할 수 있게 줄 서주세요!"
강진석은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이들에게 말한 뒤 먼저 포털로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강진석은 목적지 방화역 지하 1층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어, 진석 님?"
때마침 이동 게이트 앞으로 다가온 최은형이 놀란 목소리로 강진석을 불렀다.
"잠시 선유도역에서 일이 있었습니다. 이건 이동 게이트구요."
강진석 최은형에게 상황을 설명하며 줄어든 정신력을 확인했다.
'이 정도면....'
소모된 정신력은 아주 미량이었다.
150명 전부 문제없이 이동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어 강진석은 초감각에 집중했다.
김지용과 주다영 느껴졌다.
한지윤은 사냥을 나갔는지 느껴지지 않았다.
'일단 세 분한테 맡겨야겠네.'
강진석은 김지용과 주다영에게 자유 훈련장 근처로 와달라는 텔레파시를 보냈다.
"데리고 오겠습니다! 지용 님이랑 다영 님 오실 텐데 설명 부탁드릴게요."
그리고 최은형에게 말한 뒤 다시 포털을 통해 선유도역으로 돌아갔다.
선유도역에 도착한 강진석은 질서정연하게 줄을 서 있는 이들을 볼 수 있었다.
강진석은 가장 앞에 서 있던 중년 사내에게 말했다.
"한 분씩 입장하시면 됩니다."
* * *
검은 숲의 근간인 세계수 카르실의 열다섯 번째 뿌리.
현재 열다섯 번째 뿌리 심처에는 검은 숲 엘프들을 이끄는 세 하이엘프가 탁자를 두고 둘러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다들 아시겠지만 선유도역에 있는 조각이 파괴됐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이엘프 하나린이 말끝을 흐리며 둘리안, 폴리타셋을 보았다.
그러자 둘리안이 이어 말했다.
"뭐 차가운 뿌리 녀석들의 짓이겠지요."
둘리안의 말에 폴리타셋이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더러운 녀석들 대림역에 집결해 놓고 다른 곳으로 공격을 해오다니."
차가운 뿌리 부족 고블린들은 대규모 공격을 위해 대림역에 집결하고 있었다.
당연히 그쪽에서 전면전이 발생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부분을 치고 들어왔다.
"그러게 말입니다. 추잡한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나 추잡할 줄은."
둘리안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두 하이엘프의 반응에 하나린은 생각했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닌 것을.'
전쟁 중이었다.
정당한 공격이든 정당하지 않은 공격이든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
그런 것을 따질 사이도 아니었고 상황도 아니었다.
하나린은 둘리안과 폴리타셋이 참으로 답답했다.
그러나 내색할 수는 없었다.
둘리안과 폴리타셋의 성격을 알기 때문이다.
분명 이 이야기를 꺼내면 속에 담아두었다가 후에 내분을 발생시키고도 남을 이들이었다.
"근데 선유도역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폴리타셋이 물었다.
그러자 둘리안이 싱긋 웃으며 답했다.
"그쪽은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미 보내두었거든요. 충분히 정리할 겁니다."
"오, 벌써 손을 쓰셨습니까? 역시 둘리안 님 대단하십니다!"
폴리타셋은 감탄하며 둘리안을 치켜세웠다.
그러나 하나린은 폴리타셋과 달리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지금 모인 이유가 선유도역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미 손을 썼다니?
"누굴 보내셨는지 알려주실 수 있으십니까?"
"5공격대와 7공격대, 9공격대를 보냈습니다."
하나린이 물었고 둘리안이 답했다.
그리고 하나린은 난감해할 수밖에 없었다.
'레이렌과 마르다닌이 있던 곳이 함락당했는데 고작 공격대 셋을 보내?'
레이렌이 이끌고 있는 2수비대, 마르다닌의 5수비대.
두 수비대와의 연락이 끊겼다.
즉, 두 수비대 전부 당했다는 것인데 고작 공격대 셋을 보내다니?
공격대 셋으로 상황을 정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하나린이 보기에 참으로 멍청한 대처였다.
그러나 질책할 수는 없었다.
이미 일이 벌어진 상태였다.
둘리안을 질책해 봤자 달라질 것 없었고 오히려 불화의 씨앗만 남길 뿐이었다.
'하아....'
하나린이 할 수 있는 것은 속으로 깊게 한숨을 내뱉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하나린의 생각을 모르는 둘리안은 껄껄 웃으며 답했다.
"하하, 혹시 물어보신 이유가 차가운 뿌리 녀석들과의 전선 때문이라면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제가 그 정도는 다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 * *
선유도역으로 돌아온 강진석은 이동 게이트를 보았다.
이제 남은 시간은 10초였다.
'어떻게 되려나?'
강진석은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잠자코 기다렸다.
이내 10초가 지났고.
스아아....
포털이 사라졌다.
그리고 이어 이동 게이트 곳곳에 균열이 나타났다.
균열이 점점 커졌고 이동 게이트는 이내 먼지로 변해 사라졌다.
'이렇게 되는구나?'
이동 게이트의 최후를 확인한 강진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뒤로 돌아섰다.
그리고 곧장 지상으로 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입구에 도착한 강진석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뭐 이리 많아?'
제84화
84.
입구 주변 건물에서 수많은 엘프가 감지됐다.
'122마리....'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세어 보니 무려 122마리였다.
거기다 레오렌 만큼은 아니지만 마르다닌 만큼 강한 엘프도 셋이나 있었다.
강진석은 잠시 고민했다.
피할지 아니면 죽일지.
그리고 오랜 고민 끝에 강진석은 결정을 내렸다.
전부 죽이기로.
'이대로 가만히 있지는 않겠지.'
지금은 숨죽이고 있었다.
그러나 영원히 숨죽이고 있을까?
아니, 언젠가는 숨죽임을 끝내고 공격을 해올 것이다.
그때를 생각하면 미리 청소하는 게 맞다.
물론 결정을 내렸다고 바로 뛰쳐나가지는 않았다.
강진석은 스킬창을 열었다.
사냥 전에 강진석은 스킬을 습득할 생각이었다.
지금 상태로 사냥이 불가능하기 때문은 아니다.
솔직히 말해 스킬을 찍지 않아도 충분히 잡을 수 있다.
다칠 일도 없다.
그럼에도 강진석이 스킬을 찍으려 하는 이유는 공간이동을 여러 번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다치지는 않겠지만 많은 정신력이 소모될 것이다.
주변 엘프 사냥이 끝이라면 모를까 끝이 아니다.
서초동까지 가야 하는 상황에 정신력을 과하게 소모하는 것은 살짝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능력치를 올린다면?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다.
'일단....'
강진석은 정신력 라인 스킬을 습득하기 시작했다.
.
.
[스킬 '정신력16'의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정신력이 1 상승합니다.]
순식간에 스킬 '정신력16'을 최대 레벨까지 올린 강진석은 바로 이어 체력 라인 스킬을 습득하기 시작했다.
.
.
[스킬 '체력16'의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체력이 1 상승합니다.]
그렇게 목표했던 스킬 '체력16'의 최대 레벨을 달성한 강진석은 스킬창을 보며 힘 라인 스킬 습득에 필요한 포인트를 계산하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한 블록당 19만 2400....'
대흉근 강화2, 전거근 강화2, 외복사근 강화 그리고 능력치 패시브인 힘17까지 한 구획을 최대 레벨로 올리는 데 필요한 포인트는 19만 2400이었다.
민첩, 체력, 정신력 또한 마찬가지였다.
'엄청 여유 있는데?'
라인별로 두 구획씩 습득하는 데 필요한 포인트는 153만 9200으로 현재 강진석의 포인트를 생각하면 차고 넘치는 상태였다.
계산을 마친 강진석은 바로 스킬을 습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뒤 '정신력18'을 끝으로 스킬 습득을 마쳤고 강진석은 포인트를 보았다.
[현재 보유 포인트 : 507만 5270]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앞으로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른다.
그래도 500만 정도면 충분히 대처가 가능할 것이다.
강진석은 흡족한 표정으로 정보창을 열었다.
힘 : 149(112+37)
민첩 : 147(110+37)
체력 : 161(118+43)
정신력 : 165(129+36)
능력치를 보니 절로 마음이 편해졌다.
'근데 다음 변화는 몇이려나?'
40에 첫 번째 변화가 찾아왔고 100에 두 번째 변화가 찾아왔다.
과연 세 번째 변화는 언제 찾아올까?
'...너무 생각하지는 말자.'
세 번째 변화가 꼭 존재하리란 법은 없다.
두 번째 변화가 끝일 수 있다.
강진석은 세 번째 변화에 대한 생각을 끝내고 정보창을 닫았다.
그리고 입구 밖으로 나가며 가장 가까이 있는 엘프 무리에게 공간이동을 했다.
엘프들은 1마리도 빠짐없이 10마리 전부 입구를 노려보고 있었다.
강진석은 왼쪽 검지에 착용하고 있던 초록 반지에 기운을 주입했다.
초록 반지의 이름은 '소리 반지'로 레이렌이 남긴 부산물이었다.
기능은 단순했다.
기운 주입 시 '소리 장막' 발동이었다.
소리 장막의 효과는 장막 내에서 발생하는 소리가 장막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게 막는 것이었다.
그리고 범위는 기운 주입량에 따라 달라지는데 최대 20m나 됐다.
'10m 정도면 되겠지.'
물론 지금 상황에 최대 범위 장막을 만들 이유는 없었다.
스아앗!
이내 지름 10m 크기의 반투명한 장막이 생성됐고.
-@!#?
-@$?
엘프들이 의아한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바로 그때.
엘프 하나가 고개를 돌렸고 강진석과 눈이 마주쳤다.
그와 동시에 엘프의 눈이 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강진석은 검을 휘둘렀다.
스걱! 스아앗!
[엘프를 처치하셨습니다.]
[포인트가 1500 상승합니다.]
* * *
공격대장 사일렌은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믿을 수가 없었다.
사일렌은 어쩌다 이런 상황이 된 것인지 처음부터 곰곰이 생각해 봤다.
우선 사일렌이 이곳에 온 이유는 선유도역이 함락됐기 때문이었다.
함락된 선유도역을 수복하기 위해 사일렌뿐만 아니라 다른 공격대도 두 곳이나 파견됐다.
자리도 잘 잡았다.
어떤 입구로 나오든 족족 죽일 수 있게 모든 입구를 포위했다.
그런데 어떻게 된 것일까?
주기적으로 주고받던 신호가 끊겼다.
한 곳만 끊긴 게 아니다.
모든 곳이 끊겼다.
문제가 생겼다는 뜻인데 작은 문제일까?
아니, 작은 문제가 아닐 것이다.
지금 상황에 연락이 끊긴 것은 '죽음'일 확률이 높았다.
그래서 문제였다.
아무런 이상 징후도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전부 죽다니?
'3차 제약이 개입한 건가?'
이런 일을 벌일 수 있는 존재는 사일렌이 알기로 최소 3차 제약을 받은 존재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나선 것이라면 사일렌은 버틸 자신이 없었다.
'지금이라도 도망쳐야 할까?'
사일렌은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시작했다.
고민을 하던 그때.
"왜 그러십니까?"
옆에 있던 1조 조장 리카네모르가 물었다.
리카네모르의 물음에 사일렌이 답했다.
"다른 공격대와의 연락이 끊겼다."
"...예?!"
사일렌의 답을 듣고 리카네모르는 그게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반문했다.
바로 그때였다.
"저... 대장님."
사일렌과 리카네모르의 대화를 듣고 블론슈가 입을 열었다.
블론슈의 목소리에는 불길함이 가득 담겨 있었고 사일렌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도 그럴 것이 블론슈는 공격대 내 연락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런데 블론슈의 목소리에 불길함이 가득하다?
좋지 않았다.
"2조와 연락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뭐?"
이어진 블론슈의 말에 사일렌은 인상을 구기며 반문했다.
"2분이 지났는데도 연락이...."
"다른 조는?"
"지금 해보겠습니다."
블론슈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얼마 뒤 다시 눈을 떴다.
눈을 뜬 블론슈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답을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그리고 블론슈가 입을 열었다.
"3조와 4조 다 연락이 되지 않습니다."
블론슈의 입에서는 예상했던 답이 나왔다.
"그게 무슨 소리야?"
리카네모르가 불신 가득한 얼굴로 블론슈에게 물었다.
"3조와 4조까지 연락이 안 된다니? 대체 왜?"
"그, 글쎄요."
그러나 블론슈도 연락이 되지 않는 이유를 몰랐다.
"으음...."
사일렌은 침음을 내뱉었다.
5공격대, 7공격대와의 연락이 끊긴 것도 모자라 공격대 내에서도 연락이 끊기다니?
지금 상황이 무척이나 혼란스러웠다.
바로 그때였다.
스앗!
누군가 허공에서 스르륵 나타났다.
"...!"
사일렌은 움찔하며 반사적으로 활을 들었다.
'...인간?'
허공에서 갑작스레 나타난 존재는 '인간'이었다.
* * *
[검은 숲 공격대장 사일렌이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포인트가 14만 상승합니다.]
[퀘스트 '공격대장 사일렌'을 완료하셨습니다.]
[기여도에 따라 보상이 차등 지급됩니다.]
.
.
마지막 엘프 '사일렌'이 죽었고 메시지가 주르륵 나타났다.
메시지를 대충 확인 후 강진석은 포인트를 확인했다.
[현재 보유 포인트 : 600만 3770]
'이야....'
500만 초반까지 떨어졌던 포인트가 다시 600만을 넘어섰다.
늘어난 포인트를 보니 절로 마음이 편해졌다.
물론 마음이 편한 이유는 포인트 때문만이 아니다.
'능력치 올리길 잘했어.'
모든 능력치를 올렸다.
특히 정신력의 경우 25나 올렸다.
덕분에 공간이동을 수차례 했음에도 큰 부담이 없었다.
휴식하지 않고 바로 서초동을 향해 떠나도 될 정도였다.
강진석은 건물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다음 목적지 당산역으로 향하며 생각했다.
'당산역에는 얼마나 있으려나?'
당산역은 9호선과 2호선.
2개의 호선이 존재하는 역이었다.
마곡나루역처럼 1개 호선이 끝인 곳보다 규모가 클 것으로 추정됐다.
'...정리를 해야 할까?'
원래 강진석의 계획에 지하철역 탈환은 없었다.
계획과 달리 선유도역을 청소한 이유는 엘프들의 만행 때문이었다.
그리고 당산역 상황 또한 선유도역과 비슷할 가능성이 높았다.
'시간이....'
문제는 시간이었다.
강진석이 서초동에 가는 이유는 강나연을 구출하기 위해서였다.
구출에 무한한 시간이 주어진 게 아니다.
침공이 시작되기 전 귀환해야 한다.
가는 길에 엘프들을 정리하는 데 시간을 쓴다면?
시간 내 강나연을 구출하고 방화역으로 귀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으음....'
아무래도 선택을 해야 할 것 같았다.
강진석은 고민을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뒤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왜 안 보이지?'
이제 곧 당산역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엘프를 단 한 마리도 마주하지 못했다.
물론 엘프만 마주하지 못했을 뿐이다.
나무 괴인이 곳곳에 숨어 있기는 했다.
그러나 검은 숲의 주인은 나무 괴인이 아니라 엘프였다.
어째서 엘프들이 보이지 않는 것일까?
이내 강진석은 당산역 근처에 도착했고 당산역의 디버프 수준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당산역의 디버프는 무려 도합 40이었다.
예상대로 선유도역보다 강력했다.
'...뭐 지금 들어갈 건 아니니까.'
당산역의 디버프가 강하든 강하지 않든 상관없다.
강진석은 고민 끝에 청소하지 않기로 했다.
다른 사람들을 구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긴 했지만 지금 강진석에게 더 중요한 것은 강나연 구출이었다.
이내 당산역에 도착한 강진석은 그대로 당산역을 지나쳐 이동을 시작했다.
* * *
서초동 특수 임무 사령부 제3 안가.
"얼마나 남았어?"
강나연의 물음에 유성윤이 냉장고를 확인했다.
그리고 쓴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이틀이면 끝입니다. 배식량을 조금 줄여도 3일이요."
"흠."
강나연은 침음을 내뱉었다.
그리고 옆에 있던 김칠성이 무슨 문제냐는 표정으로 말했다.
"왜? 상점에서 사면 되잖아?"
시험이 시작되며 상점창이 생겼다.
상점창에서는 식량도 판매를 했다.
김칠성은 강나연의 표정이 왜 어두워진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포인트가 들잖아. 식량에 포인트를 쓰는 게 맞는다고 생각해? 스킬 배우는 데에도 모자라서 허덕이는 상황인데."
"아...."
강나연의 답에 김칠성은 나지막이 탄성을 내뱉었다.
그리고 멋쩍은 표정으로 관자놀이를 긁으며 말했다.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자고. 근처 편의점 갔다 오면 되잖아?"
바로 그때였다.
-취익!
-취익!!
귓가에 들리는 소리에 세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서로를 바라본 뒤 조심스레 창가로 다가갔다.
"...음?"
"헛?"
"어...?"
세 사람은 창밖을 보자마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제3 안가가 위치한 곳은 한 몬스터들만 활동하는 곳이 아니었다.
엘프와 오크들의 중립 지대였다.
그런데 지금 중립 지대에 수많은 오크들이 나타났다.
그리고 오크들은 엘프들의 검은 숲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시야에 들어온 오크만 수백이다.
보이지 않는 곳까지 생각하면 천 마리가 넘지 않을까 싶었다.
'잠깐....'
문득 든 생각에 강나연은 인상을 구겼다.
'오크들이 주변을 장악하면....'
오크들이 검은 숲에 쳐들어간 이유는 영역 확장 때문으로 추정됐다.
그래서 문제였다.
여태까지 안가가 안전할 수 있던 이유는 중립 지대였기 때문이었다.
엘프나 오크들이 서로를 견제해 쉬이 움직이지 못했기에.
그런데 만약 오크들이 주변을 장악하게 된다면?
안가는 더 이상 안전하지 않을 것이다.
'...떠날 때가 된 건가.'
아무래도 안가를 떠나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그때였다.
'...어?'
강나연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오크들의 거처에 있던 붉은 장막이 커지기 시작했다.
제85화
85.
장막의 확장 속도는 무척 빨랐다.
피해야 한다고 생각이 들었지만 피할 수 없는 속도였다.
5초도 지나지 않아 붉은 장막은 안가에 도달했다.
그리고 안가를 지나 검은 숲으로 향했다.
검은 숲에 도달하고 나서야 붉은 장막은 확장을 멈췄다.
그러나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붉은 장막이 안가를 지나친 순간 발생한 상황이었다.
갑작스레 몸이 무거워졌다.
그뿐만이 아니다.
[퀘스트 '성소 파괴'가 생성됐습니다.]
[퀘스트 '1군단장 오블'이 생성됐습니다.]
[퀘스트 '부군단장 클락'이 생성됐습니다.]
[퀘스트 '부군단장 에이랏도'가 생성됐습니다.]
.
.
[퀘스트 '탈출하라'가 생성됐습니다.]
수많은 퀘스트가 생성됐다.
'이게 대체....'
강나연은 퀘스트창을 열었다.
그리고 우선 가장 먼저 생성된 퀘스트 '성소 파괴'를 확인했다.
<성소 파괴>
영역 내 어딘가에 '열화 사막 부족'의 성소가 존재한다.
성소를 파괴해 선포된 영역을 파괴하라!
퀘스트 보상 : ???
퀘스트 '성소 파괴'는 이름 그대로 성소를 파괴하는 퀘스트였다.
'...이건 깨라고 만든 거야?'
지금 상황에 성소를 파괴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아니, 가까운 게 아니라 확실히 불가능하다.
위치가 나와 있는 것도 아니고 수많은 오크들이 지키고 있을 것인데 어찌 파괴하겠는가?
그리고 불가능한 것은 퀘스트 '성소 파괴'뿐만이 아닐 것이다.
강나연은 이어 퀘스트 '1군단장 오블'을 확인했다.
<1군단장 오블>
수많은 오크 부족 중 20번째로 규모가 큰 '열화 사막 부족'의 1군단장 오블.
.
.
오블을 처치하라!
[기여도 : 0]
퀘스트 보상 : ???
'역시....'
예상대로 퀘스트 '1군단장 오블' 또한 퀘스트 '성소 파괴'처럼 완료가 불가능한 퀘스트였다.
일반 오크도 혼자가 아니면 상대하기 힘든데 군단장인 오블을 처치하라니?
어불성설이었다.
강나연은 추가로 몇 개 퀘스트를 더 확인 후 퀘스트창을 닫았다.
더 본다고 달라질 것 없을 것 같았다.
하나같이 전부 완료가 불가능한 것들뿐이었다.
강나연은 김칠성과 유성윤을 보았다.
김칠성과 유성윤 역시 퀘스트를 확인하고 있는지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당연히 표정은 좋지 않았다.
강나연은 두 사람에게 말했다.
"일단 퀘스트 확인보다 어떻게 할지부터 생각하자."
* * *
반포4동 주민센터.
'음....'
주민센터 옥상에서 강진석은 침음을 내뱉었다.
침음을 내뱉은 이유는 전방에 보이는 '붉은 장막' 때문이었다.
검은 숲이 끝나는 지점부터 붉은 장막이 자리하고 있었다.
붉은 장막이 무엇인지 강진석은 안다.
영역이 확실했다.
확신하는 이유는 붉은 장막에서 느껴지는 디버프 수준 때문이었다.
'약하긴 한데....'
디버프 수준은 강하지 않았다.
도합 15 정도로 무척 약했다.
문제는 외곽이 15인 것이지 영역 전체가 15는 아니라는 점이었다.
붉은 장막의 크기는 어마어마했다.
끝이 보이지 않았다.
여태까지 강진석이 본 그 어떤 영역보다 거대했다.
중심지에 갈수록 디버프가 강력해질 것인데 외곽이 15라면 중심지는 얼마나 강할까?
'50은 그냥 넘을 것 같은데....'
디버프에 대해 생각하던 강진석은 이내든 생각에 고개를 갸웃했다.
'대체 어떤 몬스터지?'
문득 궁금해졌다.
어떤 몬스터가 이 정도의 영역을 선포한 것인지.
바로 그때였다.
"...!"
강진석은 눈을 번뜩였다.
초감각에 몬스터가 한 마리 감지됐기 때문이었다.
'...오크?'
감지된 몬스터의 외형은 오크였다.
'전쟁 바람은 아닌 것 같은데.'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전쟁 바람 부족'이었다.
그러나 전쟁 바람 부족 오크는 아닐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같은 부족이라 하기에는 거리가 너무 떨어져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전쟁 바람 부족의 영역은 '초록색'이었다.
그리고 지금 펼쳐져 있는 영역은 '빨간색'이었다.
차가운 뿌리 부족의 영역이 전부 같은 색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다른 부족 오크가 아닐까 싶었다.
'그래, 다른 부족이겠지.'
이곳에 영역을 선포한 부족이 전쟁 바람 부족이냐 아니냐는 솔직히 중요한 게 아니다.
강진석은 해당 부분에 대한 생각을 접고 새로운 고민에 빠졌다.
'이대로 가는 게 맞는 걸까?'
이제 몽마르뜨 공원만 넘어가면 대법원이고 조금만 더 가면 목적지인 '제3 안가'에 도착할 수 있다.
직선거리로 1km 정도 남은 상태였다.
그런데 붉은 장막을 뚫고 가는 게 맞는 것일까 의문이 들었다.
'...그래.'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돌아간다고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붉은 장막은 매우 컸다.
직접 확인한 것은 아니지만 장막의 크기를 보면 제3 안가 역시 장막 안에 있을 것이다.
어차피 돌아가도 피할 수 없다.
결정을 내린 강진석은 바로 옥상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몽마르뜨 공원으로 향하며 생각했다.
'안가에 있겠지?'
안가에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지만 100% 확실한 것은 아니다.
다른 곳으로 갔을 수도 있다.
저벅!
얼마 지나지 않아 강진석은 검은 숲의 끝이자 붉은 장막 앞에 도착했고 잠시 멈췄다.
그리고 호흡을 한 번 하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붉은 장막에 진입과 동시에 몸이 살짝 무거워졌다.
힘 5, 민첩 5, 체력 5 정도로 신경 쓸 정도는 아니었다.
강진석은 메시지창을 보았다.
[퀘스트 '성소 파괴'가 생성됐습니다.]
[퀘스트 '1군단장 오블'이 생성됐습니다.]
[퀘스트 '부군단장 클락'이 생성됐습니다.]
[퀘스트 '부군단장 에이랏도'가 생성됐습니다.]
.
.
[퀘스트 '탈출하라'가 생성됐습니다.]
메시지를 확인한 강진석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무슨 퀘스트가....'
퀘스트가 생성될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생성된 퀘스트의 수가 예상 이상이었다.
'...29개나?'
생성된 퀘스트의 수를 확인한 강진석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강진석은 초감각을 통해 주변 오크들의 위치를 주시하며 퀘스트창을 열었다.
그리고 퀘스트들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확인한 퀘스트는 '성소 파괴'였다.
'성소 파괴는 예상대로고....'
대충 확인한 강진석은 바로 다음 퀘스트로 넘어갔다.
<1군단장 오블>
수많은 오크 부족 중 20번째로 규모가 큰 '열화 사막 부족'의 1군단장 오블.
.
.
오블을 처치하라!
[기여도 : 0]
퀘스트 보상 : ???
예상대로 전쟁 바람 부족 오크가 아니었다.
이곳에 자리 잡은 오크들은 '열화 사막 부족'이었다.
'전쟁 바람보다 훨씬 큰 곳이네.'
전쟁 바람 부족은 수많은 오크 부족 중 35번째로 규모가 큰 곳이었다.
열화 사막 부족은 20번째로 전쟁 바람 부족보다 규모 순위가 훨씬 높았다.
'이래서 퀘스트도 이렇게 많았던 거구나.'
퀘스트가 너무 많다고 생각했는데 이해가 됐다.
규모 순위를 보면 많은 게 당연했다.
강진석은 차근차근 퀘스트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특공단장 무르디안>
수많은 오크 부족 중 20번째로 규모가 큰 '열화 사막 부족'의 만부장이자 1군단 2특공단장 무르디안.
.
.
무르디안을 처치하라!
[기여도 : 0]
퀘스트 보상 : ???
<탈출하라>
열화 사막 부족의 영역에 들어선 당신.
생존을 위해 열화 사막 부족 영역에서 탈출하라!
퀘스트 보상 : ???
체류 기간이 길수록 보상이 강화됩니다.
자정 기준 하루에 한 번 완료가 가능합니다.
이내 마지막 퀘스트를 확인한 강진석은 퀘스트창을 닫았다.
그리고 속으로 침음을 내뱉으며 생각했다.
'29개가 끝이 아닌 것 같은데.'
놀랍게도 29개 중 천부장 오크에 대한 퀘스트가 없었다.
천부장 오크 역시 네임드 몬스터다.
아직 생성되지 않았을 뿐 퀘스트가 없을 리 없다.
아마도 천부장 오크 퀘스트는 클라브, 에스탈 때와 마찬가지로 일정 거리가 되어야 생성이 될 것 같았다.
그뿐만이 아니다.
성소 퀘스트도 하나뿐이었다.
이 큰 영역에 성소가 하나뿐일까?
아니, 수십 개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도 각각 퀘스트가 존재할 것이다.
그래서 더 당황스러웠다.
'그럼 대체 퀘스트가 몇 개까지....'
천부장 오크, 성소 파괴 퀘스트를 포함하면 대체 퀘스트가 몇 개까지 늘어날까?
'부족 전체도 아니고 1군단이잖아.'
이번에 생성된 29개 퀘스트는 열화 부족 전체 퀘스트가 아니다.
군단이 몇 개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전부 1군단 내 퀘스트였다.
'규모가 얼마나 큰 거야?'
열화 사막 부족의 규모가 절로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강진석은 걸음을 옮기며 생각을 이어 나갔다.
'그래도 수준은 비슷하니까. 천부장까지는 쉽게 잡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열화 사막 부족은 전쟁 바람 부족보다 규모가 크다.
그러나 규모가 큰 것이 수준이 높다는 뜻은 아니다.
열화 사막 오크들은 전쟁 바람 오크들과 비슷했다.
기운 크기부터 체형까지.
즉, 일반 오크는 물론 천부장 오크까지는 문제없을 것이다.
'만부장부터가 문제네.'
천부장은 낮은 직위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높은 직위도 아니었다.
중간에 있는 직위였다.
퀘스트를 보면 천부장보다 강한 존재들이 매우 많았다.
그리고 강진석은 아직 그들을 한 번도 마주한 적 없었다.
만약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다면?
'만날 일이 없을 것 같긴 하지만....'
제3 안가는 붉은 장막 외곽에 있다.
중심지도 아니고 만부장 이상의 존재들을 마주할 가능성은 현저히 낮았다.
솔직히 말해 천부장도 만나기 힘들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때.
저벅!
강진석은 걸음을 멈췄다.
초감각에 느껴진 강렬한 기운 때문이었다.
'...천부장?'
전쟁 바람 부족 천부장 클라브, 에스탈과 기운 크기가 비슷한 것을 보니 만나기 힘들 것이라 생각했던 열화 사막 부족의 천부장으로 추정됐다.
'누구랑 싸우고 있는 거지?'
천부장 오크는 연신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누군가와 전투를 벌이고 있는 게 분명했다.
강진석은 초감각을 변형시켰다.
그리고 천부장 오크가 전투를 벌이고 있는 이를 확인했다.
'...엘프였구나.'
천부장 오크가 전투를 벌이고 있는 이는 엘프였다.
'이 정도면 대장급인데.'
당연히 엘프의 수준도 낮지는 않았다.
앞서 마주했던 공격대장, 수비대장 엘프와 비슷했다.
강진석은 잠시 전투를 지켜보았다.
'...죽일까?'
전투를 지켜보던 강진석은 문득 두 존재를 죽일까 생각했다.
두 존재는 전투로 기운이 쭉쭉 줄어들고 있었다.
기습을 한다면?
힘들이지 않고 손쉽게 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야, 일단 확인부터 하자.'
지금 중요한 것은 오크, 엘프 사냥이 아니다.
조금만 더 가면 제3 안가다.
강나연의 안위가 먼저였다.
강진석은 전투에 대한 관심을 접고 다시 이동했다.
이내 몽마르뜨 공원을 넘어 대법원에 도착했고 강진석은 미소를 지었다.
초감각에 제3 안가가 감지됐다.
그리고 안가에서 3개의 기운이 감지됐다.
다행히 3개의 기운 중 하나가 강나연의 것이었다.
'칠성이도 있네.'
강나연뿐만이 아니다.
과거 든든한 부하이자 동료였던 김칠성도 함께 있었다.
강진석은 일단 강나연에게 텔레파시를 보냈다.
[오빠 왔다.]
제86화
86.
텔레파시를 보내자마자 강나연의 기운이 흔들렸다.
그리고 주변을 휙휙 쳐다보는 것을 보니 놀란 게 분명했다.
강진석은 피식 웃으며 재차 텔레파시를 보냈다.
[갈 테니까 너무 놀라지 마.]
그리고 바로 안가로 공간이동을 했다.
* * *
"몸 상태는?"
강나연이 물었다.
그러자 김칠성이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고는 답했다.
"전력의 70% 정도로는 움직일 수 있어. 근데 10분 이상은 힘들 것 같은데? 전투까지 포함되면 솔직히 말해서 불가."
김칠성의 답을 듣고 강나연은 유성윤을 보았다.
그리고 유성윤이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어 답했다.
"저도 선배님이랑 같습니다. 적응 전까지는 전투는 힘들 것 같습니다."
"에휴."
유성윤의 답을 듣고 강나연은 한숨을 내뱉었다.
아무리 봐도 안가에 있으면 안 될 것 같았다.
한시라도 빨리 떠나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두 사람의 상태를 보니 떠날 수 없을 것 같았다.
만약 안가를 나서다가 몬스터를 만나기라도 한다면?
죽을 확률이 100%다.
바로 그때였다.
[오빠 왔다.]
머릿속에 울려 퍼지는 목소리에 강나연은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뭐, 뭐야?'
강나연은 휙휙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확인했다.
그러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분명 오빠 목소리였는데?'
방금 머릿속에 울려 퍼진 목소리는 분명 강진석의 목소리였다.
그래서 당황스러웠다.
강진석의 목소리가 왜 들린단 말인가?
"왜 그래?"
김칠성이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갑자기 한기가 들어서."
강나연은 물음에 답하며 생각했다.
'환청인가?'
지금 상황은 매우 좋지 않았다.
위기 중의 위기였다.
혹시 극도의 스트레스로 인해 환청이 들린 게 아닐까 싶었다.
[갈 테니까 너무 놀라지 마.]
그러나 다시 한번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강나연은 경악했다.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스트레스로 인한 환청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이게 무슨....'
강나연이 경악한 채 어떻게 된 것인지 생각하던 그때.
스앗!
허공에서 스르륵 누군가 나타났다.
강나연은 물론 김칠성, 유성윤 역시 화들짝 놀라며 무기를 꺼내 전투를 준비했다.
"어?"
"헐?"
그리고 이어 강나연과 김칠성이 탄성을 내뱉었다.
"...?"
강나연과 김칠성의 탄성에 유성윤은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두 사람의 반응이 무언가 이상했다.
"오빠!"
"대장!"
그리고 이어진 두 사람의 외침에 유성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강나연이 오빠라 부르고 김칠성이 대장이라 부를만한 사람은 한 사람뿐이었다.
'저 사람이 그러면....'
유성윤은 싱긋 웃는 사내를 보았다.
'강진석 씨?'
강진석이 분명했다.
"어, 어떻게 된 거야?"
강나연이 말을 더듬으며 물었다.
그리고 강진석이 입을 열었다.
"어떤 거? 텔레파시?"
"...어? 대, 대장! 목소리 어떻게 된 거예요?"
강진석의 반문에 이번에는 김칠성이 말을 더듬으며 물었다.
그리고 강나연은 놀란 얼굴로 입을 뻐끔뻐끔거렸다.
두 사람의 반응에 강진석은 활짝 웃으며 그간 있었던 일을 간략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더 시간을 끌면 안 되겠다 싶어서 온 거고."
얼마 뒤 이곳에 온 이유를 끝으로 강진석은 설명을 마쳤다.
"오빠 진짜...."
"역시 대장은 괴물입니다."
"와...."
델니오, 에스탈, 클라브 등 몇몇 사건은 이야기하지 않고 생략했다.
그럼에도 강나연과 김칠성, 유성윤은 감탄을 내뱉었다.
"어떻게 버텼어?"
세 사람의 반응에 강진석은 피식 웃으며 물었다.
시험이 시작되고 어떻게 지금까지 버텼는지 궁금했다.
"그게...."
그리고 강나연이 설명을 시작했다.
강나연 역시 세밀하게 모든 것을 말하지는 않았다.
간략히 강나연의 입장에서 큼지막한 사건들만 전했고 모든 이야기를 들은 강진석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중립 지대라 버틸 수 있던 거구나?'
세 사람이 버틸 수 있던 이유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이곳이 검은 숲 엘프와 열화 사막 오크들의 중립 지대였기 때문이었다.
'건너뛰길 잘했어.'
만약 오는 길에 마주한 모든 역을 탈환하려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이렇게 온전한 세 사람을 만나지 못했을 수 있다.
생각을 마친 강진석은 세 사람에게 물었다.
"혹시 지금 능력치가 다들 어떻게 되는지...?"
이제 안위 확인을 했으니 귀환할 차례다.
강진석은 세 사람의 능력치가 궁금했다.
능력치에 따라 귀환 방법이나 동선이 달라지기 때문이었다.
"능력치면 정보창의 그 능력치? 힘, 민첩, 체력, 정신력?"
"어."
강나연이 반문했고 강진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강나연이 바로 답했다.
"차례대로 25, 32, 23, 23. 민첩이 높은 이유는 직업 특전. 패시브도 몇 개 찍기는 했고."
강나연의 답을 들은 강진석은 김칠성을 보았다.
그러자 김칠성이 씨익 웃으며 답했다.
"저는 33, 17, 21, 22입니다! 특전으로는 힘 10을 받았구요. 참고로 패시브는 아직 하나도 찍지 않았습니다."
"...!"
김칠성의 능력치를 듣고 강진석은 살짝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패시브를 하나도 습득하지 않은 것 치고 능력치가 매우 높았다.
특히 힘이 무척 높았다.
특전으로 10이 오르긴 했지만 특전이 아니더라도 23이었다.
시험이 시작됐을 때 강진석의 힘은 21이었다.
'역시 힘 하나는....'
강진석은 김칠성의 여전한 괴력에 마주 싱긋 웃고는 고개를 돌려 유성윤을 보았다.
그러자 유성윤이 머뭇거리며 답했다.
"...저는 전부 20입니다. 패시브는 아직 하나도 찍지 않았고 특전으로 모든 능력치가 2씩 올랐습니다."
"...?"
강진석은 유성윤의 말에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모든 능력치 2?'
처음 보는 유형의 특전이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두 가지 능력치를 올려주는 직업은 여럿 있었다.
그런데 모든 능력치를 올려주는 직업이 있다니?
"혹시 직업이...?"
강진석은 궁금했다.
대체 어떤 직업이 모든 능력치를 2씩 올려주는 것일까?
"...탐험가입니다."
"탐험가요?"
유성윤의 직업은 '탐험가'였고 강진석은 반문했다.
물론 반문의 이유가 크게 놀라서는 아니었다.
의례적인 반문이었다.
"옙."
"아하, 혹시 스킬이 어떻게 되는지도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네, 스킬은...."
유성윤이 탐험가의 스킬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스킬 이야기를 듣던 강진석은 눈을 번뜩였다.
'뭐 이리 여러 개가 섞였어?'
탐험가는 놀랍게도 도적, 전사 심지어 마법사까지 여러 직업의 스킬들이 섞여 있었다.
물론 각 직업의 모든 스킬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만능이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 정도면 충분히 들은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강진석은 중간에 유성윤의 이야기를 끊었다.
그리고 이어 김칠성과 강나연을 보았다.
그러자 두 사람은 서로를 힐끔 보더니 먼저 김칠성이 입을 열었다.
"저는 전사입니다."
"습득한 스킬은?"
전사의 스킬 트리는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다.
김칠성이 어떤 스킬을 습득했는지 궁금했다.
강진석의 물음에 김칠성이 답하기 시작했다.
"강격, 용기의 포효, 도발, 이단 공격...."
그리고 김칠성의 답을 듣고 강나연이 이어 답했다.
그렇게 강나연의 스킬 상황까지 확인 후 강진석은 생각에 잠겼다.
'바로 같이 가는 건 힘들겠고.'
혼자서는 언제든 안전히 귀환할 자신이 있다.
주변에 있는 오크들의 수준은 강진석에게 위협적이지 않았고 돌아가는 길에 마주할 엘프나 나무 괴인, 고블린들 역시 마찬가지였기에.
그러나 세 사람과 함께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대부분의 공격을 막아줄 수는 있다.
그러나 모든 공격을 막아줄 자신은 없었다.
엘프 수십, 수백이 화살을 날리면 어찌 막겠는가?
그리고 만에 하나 위협적인 공격을 하나라도 놓친다면?
그 공격이 세 사람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힐 수도 있다.
'서초역을 탈환하면....'
현재 강진석에게는 1회용 이동 게이트가 있다.
근처에 있는 서초역을 탈환해 요새화시킨 후 이동 게이트를 통해 귀환한다면?
'이게 그나마 안전할 것 같은데....'
물론 서초역 탈환 역시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신경 쓰이는 부분이 하나 있었다.
'그동안 버틸 수 있을까?'
바로 세 사람이 탈환하는 동안 버틸 수 있는가?였다.
탈환하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
그리고 더 이상 안가는 안전하지 않다.
탈환하는 동안 오크들이 공격해 온다면?
'같이 들어가는 것도 위험하고.'
함께 서초역에 들어가는 것도 문제다.
서초역의 디버프는 도합 30으로 매우 강했다.
디버프 수준을 보면 서초역에 있는 오크들은 무척 강할 것이다.
'으음....'
강진석은 어떻게 귀환을 해야 할까 고민했다.
그리고 세 사람은 잠자코 강진석의 고민이 끝나길 기다렸다.
바로 그때였다.
"...."
강진석이 말없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강진석의 표정을 본 강나연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왜...?"
"오크들이 다가오고 있어서."
강진석이 미간을 찌푸린 이유는 안가 근처로 다가온 오크 무리 때문이었다.
'...뭐지? 그 파동?'
정확히 말하면 오크 무리가 들고 있는 한 아티펙트 때문이었다.
원래 오크 무리는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티펙트에서 파동이 흘러나왔고 안가를 훑고 지나갔다.
그리고 파동이 안가를 훑고 지나간 순간 오크들이 방향을 틀었다.
'탐색 아티펙트인가?'
갑자기 왜 방향을 틀겠는가?
파동이 뭔가를 전해줬기 때문이 분명했다.
"잠시 정리 좀 하고 올게."
강진석은 건물 밖으로 공간이동을 했다.
그리고 건물 앞에 도착한 오크 무리를 볼 수 있었다.
오크의 수는 여섯이었고 선두에 서 있는 오크의 손에는 수정구가 하나 들려 있었다.
그리고 수정구에는 하얀 점이 4개 표시되어 있었다.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안가에 있던 넷을 가리키는 게 아닐까 싶었다.
'일단 처리부터 하자.'
강진석은 오크들에게 달려들었다.
스걱! 스걱! 스걱!
전부 일반 오크들이었다.
오크들은 반응하지 못했고 그대로 죽음을 맞이했다.
그렇게 순식간에 전투가 끝났고 강진석은 수정구를 집었다.
역시나 감정이 필요했고 강진석은 스크롤을 꺼내 바로 감정했다.
그러자 정보창이 나타났다.
<탐색의 수정구>
1. 주문 영창 시 '탐색의 파동' 발동
2. 탐색의 파동에 생명체가 감지될 경우 수정구에 표시
3. 영역 내에서만 사용 가능
'좋지 않은데....'
정보를 확인한 강진석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예상대로 수정구는 탐색 능력이 있는 아티펙트였다.
열화 사막 오크들만 탐색의 수정구를 사용할까?
아니, 모든 몬스터가 사용하는 것은 아니어도 사용하는 몬스터가 꽤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강진석도 피하지 못한 탐색이다.
탐색을 피할 수 있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으음....'
강진석은 침음을 내뱉으며 다시 안가로 공간이동을 했다.
그리고 창가에 서 있는 세 사람의 뒷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방금 전 전투를 지켜본 듯했다.
스윽.
이내 세 사람이 뒤로 돌아섰다.
그리고 강진석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저 사람 왜 저래?'
당황한 이유는 유성윤의 눈빛 때문이었다.
강나연이나 김칠성은 한결 편해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유성윤은 무척이나 초롱초롱한 눈빛을 짓고 있었다.
마치 사랑에 빠진 것처럼.
바로 그때였다.
유성윤이 허리를 숙이며 외쳤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제87화
87.
너무나 갑작스러운 외침에 강진석은 잠시 멈칫했다.
그리고 강나연과 김칠성을 보았다.
두 사람은 아무렇지 않은 듯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원래 이런 사람인가 보네.'
강진석은 두 사람의 반응을 통해 유성윤이 어떤 캐릭터인지 알 수 있었다.
"...네, 저도 잘 부탁합니다."
파악을 마친 강진석은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에 답했다.
그리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일단 내가 세운 귀환 계획은 3가지야."
강진석의 입에서 '귀환'이란 단어가 나오자 세 사람은 눈을 번뜩이며 경청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는 다 같이 직접 이동하는 거. 목표는 선유도역. 거기서 이동 게이트로 넘어갈 생각이야. 가는 길에 마주할 몬스터는 엘프랑 나무 괴인. 오는 길에 내가 좀 정리하긴 했지만 그래서 더 경계가 삼엄해졌을 수 있어. 최대한 막아주겠지만 전부 막아줄 수 있다는 보장은 못 해."
첫 번째 계획을 설명 후 강진석은 세 사람이 생각할 시간을 주었다.
"...두 번째 계획은?"
그리고 얼마 뒤 강나연이 물었다.
강나연의 물음에 김칠성과 유성윤 역시 강진석을 보았고 그제야 강진석은 두 번째 계획을 설명했다.
"서초역 탈환 후 이동 게이트로 넘어가는 거. 던전 난도가 좀 높아 보이긴 하지만 이동하다가 몬스터를 마주할 일은 없겠지. 물론 내가 탈환하는 동안 버텨야 해. 여기서는 안 되고 서초역에서."
처음에는 서초역을 탈환하는 동안 안가에서 버티게 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탐색 아티펙트 때문에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탈환하는 동안 오크들이 방문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이런 상황에 안가에서 버티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럼 세 번째는?"
"신반포역이나 구반포역까지 이동 후 탈환하고 거기서 이동 게이트로 넘어가는 거. 마주할 몬스터는 적고 탈환하는 데 위험도 덜 할 거야."
"첫 번째랑 두 번째 섞은 거네?"
"그렇다고 할 수 있지."
강진석은 반문에 답한 뒤 세 사람의 반응을 살폈다.
"음...."
"어...."
"흐음...."
세 사람은 고민에 잠겼다.
강진석은 재촉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목숨이 걸린 일이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후회 없는 선택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오빠가 강한 건 알겠어. 근데 서초역을 탈환할 수 있겠어?"
생각에 잠겨 있던 강나연이 걱정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거기 오크들 진짜 많아. 일반 오크 말고도 십부장, 백부장 오크들도 있고 그 이상도 있을 거야."
조금 전 강진석이 오크 여섯을 순식간에 죽이긴 했다.
그러나 죽은 오크들은 전부 일반 오크였다.
서초역에는 일반 오크만 있는 게 아니다.
거기다 숫자가 매우 많다.
적어도 천 마리 이상 있을 것이다.
강진석이 아무리 강해도 서초역 탈환은 위험하지 않을까 싶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그냥 다 같이 여길 빠져나가는 게 낫지 않을까요?"
김칠성 역시 강나연의 말에 힘을 실었다.
유성윤은 두 사람의 눈치를 살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때였다.
"잠시만."
강진석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초감각에 천부장 오크와 여러 오크가 감지됐다.
천부장 오크가 향하는 방향은 다른 천부장 오크와 엘프가 전투를 벌이고 있는 전장이었다.
아무래도 전투를 지원하려는 것이 분명했다.
현재 전장은 박빙이었다.
이대로 천부장 오크가 전장에 도착한다면?
승기는 오크들에게 크게 기울 것이고 전투는 순식간에 끝날 것이다.
전투가 끝나면 어떻게 되겠는가?
영역 안정화를 위해 오크들이 내부를 돌아다니기 시작할 것이다.
강진석의 입장에서는 결코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막아야 해.'
아무래도 천부장 오크와 오크 무리가 전장에 가지 못하게 막아야 할 것 같았다.
"천부장 오크 좀 정리하고 올게."
"천부장 오크? 갑자기 그게 무슨...."
강나연이 반문하던 중 강진석이 사라졌다.
세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다시 뒤로 돌아 창밖을 보았다.
"어! 저기! 대법원 정문 쪽!"
이내 강진석과 오크 무리를 발견한 강나연이 외쳤다.
그리고 김칠성과 유성윤 역시 대법원 정문을 보았다.
"...어?"
"헛!"
"...."
이어진 상황에 세 사람은 경악했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천부장 오크를 포함한 오크 무리가 강진석에게 속절없이 쓰러지고 있었다.
"처, 천부장 오크 맞지?"
"어, 분명...."
"천부장 오크면 보스 몬스터 아니에요...?"
세 사람은 전투를 보며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대화를 나눴다.
이내 모든 오크가 죽었고 강진석이 사라졌다.
세 사람은 뒤로 돌아섰다.
그리고 강진석을 볼 수 있었다.
지친 기색이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강나연은 강진석을 자세히 살폈다.
상처 또한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강진석은 강나연의 시선에 의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다들 첫 번째 계획을 원하는 것 같으니 떠날 준비해. 준비 끝나는 대로 가자."
그리고 강진석의 말에 강나연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생각이 바뀌었어."
"...?"
강진석은 고개를 갸웃했다.
갑자기 생각이 바뀌었다니?
"서초역 탈환으로 가는 게 좋을 것 같아."
어째서 생각이 바뀐 것일까 궁금했다.
그러나 당장 묻지는 않았다.
강진석은 고개를 돌려 김칠성과 유성윤을 보았다.
"저도 서초역 탈환이 좋아 보입니다."
"저 역시! 두 번째 방법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자 김칠성과 유성윤이 차례대로 답했다.
어째서인지 유성윤의 눈빛은 한층 더 초롱초롱해져 있었다.
살짝 부담이 될 정도였다.
"...그래, 그러면 서초역 탈환하는 걸로. 여기 비밀 통로 있지?"
"어, 서초역이랑 연결된 통로 하나 있긴 하지. 근데 지금은 어떻게 됐을지 몰라."
"그건 걱정 안 해도 돼. 연결 잘 되어 있을 거야."
애초에 비밀 통로 이야기를 꺼낸 이유가 초감각으로 감지했기 때문이다.
비밀 통로는 서초역과 연결이 아주 잘 되어 있었다.
"떠날 준비해. 준비 끝나는 대로 바로 가게."
* * *
올림픽 공원 88호수 앞.
그곳에는 열화 사막 부족의 대족장이자 총사령관 아슬렌의 거처가 있었다.
그리고 현재 아슬렌의 거처 안에는 일곱 오크가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거처에 모인 오크들은 총사령관 아슬렌, 부사령관 엘리타나, 1군단장 오블부터 5군단장 파피에드까지 열화 사막 부족을 이끄는 최고 권력자들이었다.
"북쪽 오우거들 상태는?"
아슬렌이 5군단장 파피에드에게 물었다.
"주기적으로 내려와 난동을 부리긴 하는데 큰 피해는 없습니다. 그리고 2차 제약이 해제되는 날 바로 밀어 버릴 수 있도록 준비 중입니다."
파피에드가 답했고 아슬렌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어 끄덕임을 멈춘 아슬렌이 1군단장 오블에게 물었다.
"검은 숲 엘프들은? 차가운 뿌리 부족과 전쟁 중으로 알고 있는데."
"예, 곧 대규모 전쟁이 발발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조금 전 보고를 받았는데 중립 지대를 영역화하는 데 성공했다고 합니다. 현재 강남역에 있던 2수비단장을 서초역으로 보내 영역을 공고히 하라 명했습니다."
"믿을 만한 자인가?"
"예, 3차 제약을 갓 받은 존재이긴 하나 현재 검은 숲 엘프들의 상황을 생각하면 문제없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렇다면야."
아슬렌은 다시 한번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어 2군단장에게 물었다.
"주변 인간들은 잘 정리되고 있나?"
"예, 저항하는 몇몇 무리가 있긴 하지만 2차 제약이 풀리는 날 싹 정리할 예정입니다."
* * *
"준비 끝났어."
강나연이 배낭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리고 강진석은 배낭을 힐끔 보고 김칠성과 유성윤을 보았다.
김칠성과 유성윤 역시 앞에 배낭을 하나씩 내려둔 상태였다.
"당장 쓸 것들은 따로 빼놨지?"
"응."
"옙! 빼놨습니다."
"네, 빼놨습니다!!"
강진석의 물음에 세 사람이 차례대로 답했다.
그리고 강진석은 세 사람의 배낭을 인벤토리에 보관했다.
"가자."
"오케이, 나만 따라오셔."
강나연은 강진석의 말에 답하며 앞장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딸칵! 딸칵!
얼마 뒤 벽 앞에 도착한 강나연은 근처에 있던 장치를 작동시키기 시작했다.
끼이익!
그리고 이내 벽이 갈라지며 통로가 나타났다.
서초역과 연결된 비밀 통로였다.
물론 초감각으로 이미 통로의 존재를 알고 있던 강진석은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이제부터는 내가 앞장설게."
강진석은 강나연에게 말하며 앞장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강진석은 붉은 장막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영역 안에 영역이라니.'
열화 사막 부족 영역 디버프는 도합 15였다.
그리고 서초역의 디버프는 도합 30이었다.
디버프가 갑자기 2배로 뻥튀기된 이유는 영역이 중첩됐기 때문이었다.
스윽.
강진석은 뒤따라온 세 사람을 힐끔 보았다.
'버틸 수 있을까?'
세 사람의 능력치를 들어 알고 있다.
도합 30의 디버프를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안전 캠프 설치해 줄 거니까. 버틸 수 있겠지.'
마곡나루역에서 특별한 아티펙트를 획득했다.
안전 캠프라는 이름의 아티펙트로 던전 내에서 사용이 가능한데 3일간 던전 디버프의 효과를 감소시키는 아티펙트였다.
물론 전구역의 디버프를 감소시키는 것은 아니고 설치 장소에서 반경 5m였다.
그리고 얼마나 감소 될지는 모른다.
확인해 봐야 안다.
그래도 강진석이 청소를 끝낼 때까지 버틸 정도는 될 것이다.
"3분 뒤에 들어와. 설치해 놓고 있을 테니까."
강진석은 세 사람에게 말한 뒤 장막을 지나쳤다.
[던전 '서초역'에 입장하셨습니다.]
[24시간 동안 모든 입구가 봉쇄됩니다.]
[던전 클리어 시 봉쇄가 해제됩니다.]
[퀘스트 '성소 파괴'가 생성됐습니다.]
[퀘스트 '수비단장 도르에나'가 생성됐습니다.]
.
.
[퀘스트 '서초역 지하 2층'이 생성됐습니다.]
[퀘스트 '서초역 탈환'이 생성됐습니다.]
[숨겨진 입구로 진입하셨습니다.]
[안전 구역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진입과 동시에 수많은 메시지가 나타났다.
당연하게도 대부분이 퀘스트 생성 메시지였다.
강진석은 메시지를 통해 생성된 퀘스트들을 대충 확인했다.
'...어?'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내 강진석의 표정이 진지해졌고 메시지를 처음부터 다시 확인하기 시작했다.
강진석이 진지해진 이유는 2가지였다.
첫 번째는 생성된 퀘스트가 많다는 것.
처음 열화 사막 부족 영역에 입장했을 때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많은 퀘스트가 생성됐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전에 생성된 퀘스트가 또다시 생성됐기 때문이었다.
퀘스트 '성소 파괴'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수비단장 도르에나?'
중복으로 생성된 퀘스트는 바로 '수비단장 도르에나'였다.
강진석은 퀘스트창을 열었다.
그리고 이번에 생성된 '수비단장 도르에나'를 확인했다.
<수비단장 도르에나>
서초역에 자리 잡은 열화 사막 부족 1군단 2수비단장 도르에나.
.
.
도르에나를 처치하라!
퀘스트 보상 : ???
'완전히 같지는 않네.'
이번에 생성된 '수비단장 도르에나'와 이전에 생성된 '수비단장 도르에나'는 달랐다.
완전히 다른 것은 아니었다.
두 퀘스트 모두 완료 조건은 같았다.
도르에나를 죽이는 것.
다른 것은 퀘스트 내용이었다.
이전에 생성된 '수비단장 도르에나'는 열화 사막 부족 영역 어딘가에 있는 도르에나를 찾아 처치하는 퀘스트였다.
그리고 이번에 생성된 '수비단장 도르에나'는 서초역으로 장소가 언급되어 있었다.
솔직히 말해 다르다는 것은 말장난일 뿐이고 동일 퀘스트라 봐도 무방했다.
'근데 이러면 보상은....'
문득 든 생각에 강진석은 눈을 번뜩였다.
도르에나를 잡으면 두 퀘스트 다 완료될 것이다.
그리고 각자 보상이 주어질 것이다.
보상이 2배라는 생각을 하니 무척이나 짜릿했다.
'얼마나 주려나?'
제88화
88.
강진석은 보상 생각을 하며 이어 퀘스트 '성소 파괴'를 확인했다.
<성소 파괴>
서초역 어딘가에는 영역의 근간이 되는 성소가 존재한다.
성소를 파괴해 서초역에 선포된 영역을 파괴하라!
퀘스트 보상 : ???
퀘스트 완료 시 던전 클리어
'이것도 동시에 2개 완료되려나?'
열화 사막 부족의 영역에 입장했을 때 29개의 퀘스트가 생성됐다.
그리고 가장 먼저 생성된 퀘스트가 '성소 파괴'였다.
혹시 서초역에 있는 성소를 파괴하면 같이 완료가 될까?
강진석은 이전에 생성된 '성소 파괴'를 확인했다.
<성소 파괴>
영역 내 어딘가에 '열화 사막 부족'의 성소가 존재한다.
성소를 파괴해 선포된 영역을 파괴하라!
퀘스트 보상 : ???
'파괴돼야 정상이긴 한데....'
퀘스트 설명만 보면 완료가 되어야 했다.
그러나 수비단장 도르에나와 달리 완료가 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합당한 이유가 있어 이런 생각이 든 것은 아니다.
이런 생각이 든 이유는 '그냥'이었다.
'...이따 보면 알겠지.'
완료될지 아닐지는 어차피 곧 알게 될 것이다.
굳이 걱정을 사서 할 필요가 없다.
강진석은 남은 퀘스트들을 쭉 확인했다.
수비단장 도르에나 말고도 네임드 처치 퀘스트가 3개나 더 존재했다.
전부 수비대장 직위를 가지고 있는 천부장 오크들이었다.
'다른 역에서는 보스였을 녀석들인데.'
이내 퀘스트 확인을 마친 강진석은 침을 꿀꺽 삼켰다.
'생각보다 어렵겠는데.'
입장 전에는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퀘스트를 확인하고 생각이 바뀌었다.
여태까지 탈환했던 역들 중 가장 난도가 높을 것으로 추정됐다.
아니, 추정이 아니라 100% 확실했다.
강진석이 확신하는 이유는 수비단장 도르에나 때문이었다.
도르에나는 수비단장 말고도 한 가지 직위가 더 있었다.
바로 '만부장'이었다.
도르에나는 여태까지 강진석이 만난 그 어떤 몬스터보다 강할 것이다.
난도가 높은 것은 당연했다.
'그래도 궁금했는데 잘됐어.'
만부장 오크는 얼마나 강할까 항상 궁금했었다.
이번에 확인해 보면 될 것 같았다.
강진석은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퀘스트창을 닫았다.
그리고 인벤토리에서 안전 캠프를 꺼냈다.
안전 캠프는 가로, 세로, 높이가 전부 10cm인 정육면체 형태였다.
설치 방법은 간단했다.
바닥에 내려놓고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된다.
'이쪽에 설치하면 되겠지.'
강진석은 걸음을 옮겨 안전 캠프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위쪽에 있던 초록 버튼을 클릭했다.
딸칵 스아앗!
그러자 안전 캠프가 빛나기 시작했다.
버튼과 마찬가지로 완연한 초록빛이었다.
스아악!
이내 초록빛이 사방으로 퍼졌다.
그렇게 반경 5m 크기의 장막이 생성됐다.
그리고 장막이 생성됨과 동시에 메시지가 나타났다.
[안전 캠프가 생성됐습니다.]
[캠프 내 영역 디버프가 약화됩니다.]
강진석은 디버프 수준을 확인했다.
디버프는 힘 10, 민첩 10, 체력 10으로 도합 30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각 7로 줄어들었다.
'30% 약화 됐네.'
강진석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안전 캠프의 효과가 30%인지 아니면 3인지 당장은 알 수 없지만 어떤 경우든 상당히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그때.
강나연과 김칠성, 유성윤이 장막을 지나 들어섰다.
"우리 왔... 읍!"
"흡!"
"...!"
세 사람은 진입과 동시에 움찔했다.
강화된 디버프 때문이 분명했다.
물론 엄청난 차이는 아니었기에 금세 세 사람은 정신을 차렸고 강진석이 말했다.
"잠시 기다려. 잡고 올 테니까."
그리고 강진석은 뒤로 돌아 문을 열고 나갔다.
그렇게 강진석이 떠났고 안전 캠프에는 잠시 정적이 찾아왔다.
정적이 찾아온 이유는 저마다 달랐다.
강나연은 퀘스트를 확인하기 시작했고.
김칠성은 안전 캠프 곳곳을 흥미로운 표정으로 살피고 있었으며.
유성윤은 두 사람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한없이 이어질 것 같던 정적을 깬 이는 강나연이었다.
"다들 어때? 버틸 만해?"
"예, 생각보다 괜찮은데요?"
"내가 잠깐 캠프 밖 나가봤는데 나가지 마. 성윤이는 특히 벅찰 거다."
"에? 진짜요?"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던 그때.
[수비대장 멜리노스아가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퀘스트 '수비대장 멜리노스아'가 완료됐습니다.]
[기여도에 따라 보상이 차등 지급됩니다.]
[기여도가 0입니다.]
[최소 보상을 획득합니다.]
[포인트가 1만 상승합니다.]
주르륵 메시지가 나타났다.
"...!"
"...!"
"...!"
메시지를 본 세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멈칫했다.
생각지도 못한 메시지였다.
"...둘 다 1만 올랐어?"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강나연이 김칠성과 유성윤에게 물었다.
"어, 1만 올랐어."
"네, 올랐습니다. 와...."
두 사람의 답을 듣고 강나연은 침을 꿀꺽 삼켰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1만이 올랐다.
그저 던전 안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1만이면....'
혼자서는 오크를 10마리 잡아야 얻을 수 있고 셋이서 힘을 합치면 수십 마리를 잡아야 얻을 수 있는 엄청난 양이었다.
'여기서 끝이 아닐 텐데.'
던전 입장 시 생성된 퀘스트는 한두 개가 아니다.
물론 지하 1층, 지하 2층 청소 퀘스트나 탈환 퀘스트는 포인트를 주지 않을 수도 있다.
네임드 처치 퀘스트만 이렇게 포인트를 주는 것일 수 있다.
'적어도 3만은 더 오르는 거잖아.'
남은 네임드 처치 퀘스트가 3개였다.
거기다 3개 중 하나는 수비대장이 아닌 '단장'이었다.
포인트를 더 주면 더 줬지 적게 줄 일은 없을 것이다.
즉, 최소 3만이 더 주어진다는 뜻이다.
'4만....'
강나연은 침을 꿀꺽 삼키며 두 사람에게 말했다.
"일단 포인트 투자하지 말고 있어 봐. 오빠 돌아오면 어떻게 할지 물어보자."
"그래, 대장이 간 길 따라가는 게 좋을 것 같으니."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메시지가 나타났다.
[퀘스트 '서초역 지하 1층'이 완료됐습니다.]
[기여도에 따라 보상이 차등 지급됩니다.]
[기여도가 0입니다.]
[최소 보상을 획득합니다.]
[포인트가 5000 상승합니다.]
* * *
서초역 지하 2층 지휘실.
지도를 보며 전황을 살피던 도르에나는 눈을 번뜩였다.
'침입자!'
서초역에 누군가 침입했다.
몇 명이 침입한 것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누가 침입한 것인지는 알 것 같았다.
'역으로 공격을 해올 줄이야. 역시 검은 숲을 얕봐서는 안 되겠군.'
지금 상황에 침입할 존재는 검은 숲 엘프뿐이었다.
도르에나는 반대편에 앉아 있던 두 수비대장 중 베리아토에게 말했다.
"엘프들이 침입했다. 1층으로 올라가 멜리노스아를 도와라."
침입한 검은 숲 엘프들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모른다.
그러나 터무니없이 약한 이들이 침입한 것은 아닐 것이다.
멜리노스아 혼자서는 힘들 수 있다.
"예, 알겠습니다."
도르에나의 명령에 베리아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꾸벅 숙여 인사하고는 지휘소를 떠났다.
도르에나는 다시 지도를 살피기 시작했고 수비대장 중 홀로 남은 말칸은 잠자코 도르에나의 말을 기다렸다.
이내 도르에나가 고개를 들어 말칸을 보며 말했다.
"주변에 숨어 있는 인간들 처리는?"
"10개 조를 운용 중이고 내일까지 서초역 근방은 전부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 *
스걱!
[열화 사막 부족 수비대장 베리아토가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포인트가 18만 상승합니다.]
[퀘스트 '수비대장 베리아토'을 완료하셨습니다.]
[기여도에 따라 보상이 차등 지급됩니다.]
.
.
메시지를 보며 강진석은 생각했다.
'생각보다 빨리 끝나겠는데.'
던전 퀘스트는 총 8개였다.
그런데 벌써 3개를 완료했다.
이제 남은 것은 5개였고 금방 완료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강진석은 포인트를 확인했다.
[현재 보유 포인트 : 900만 3770]
포인트를 보며 강진석은 생각했다.
'천만은 확정이겠지?'
남은 던전 퀘스트는 다섯.
도르에나의 경우 중복 퀘스트가 있어 여섯이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수비단장 도르에나는 여태껏 마주한 그 어떤 몬스터보다 강할 것이고 많은 포인트를 줄 것이다.
즉, 1000만이 넘는 것은 기정사실이라 할 수 있었다.
기대되는 것은 포인트뿐만이 아니다.
솔직히 제일 기대되는 것은 따로 있었다.
스윽.
강진석은 고개를 내려 팔찌를 보았다.
'도르에나라면 100% 되겠지?'
현재 가온 팔찌의 전환율은 90%로 90%에서 멈춘 건 옛날이었다.
조건을 충족하지 못해서 멈춘 것일 텐데 도르에나라면 전환율 100%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능력치가 강화되면....'
현재 가온 팔찌의 능력치는 32였다.
이번에도 2배 증가한다면?
64가 될 것이다.
32가 추가로 늘어나는 것이다.
상상만 해도 짜릿했다.
강진석은 흡족한 표정으로 돌아섰다.
그리고 안전 캠프로 향했다.
지하 2층이 아닌 안전 캠프로 향하는 이유는 세 사람의 상태가 괜찮은지 궁금하기도 했고 따로 확인할 것이 있기 때문이었다.
'보상 받았으려나?'
세 사람 역시 퀘스트가 완료됐을 것이다.
그러나 세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바깥이었다면 보상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곳은 바깥이 아닌 던전이었다.
보상 체계가 달라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보상을 받았을 수도 있다.
이내 강진석은 안전 캠프에 도착했다.
"...?"
세 사람의 표정을 본 강진석은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세 사람의 얼굴에는 흥분이 가득했다.
'설마 보상을 엄청나게 받았나?'
아무리 봐도 퀘스트가 완료된 것 때문은 아닌 것 같았다.
그리고 퀘스트 완료 때문이 아니라면 지금 상황에서 흥분할 만한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바로 퀘스트 보상.
막대한 보상을 받은 게 아닐까 싶었다.
"퀘스트 보상 받았어?"
강진석은 바로 세 사람에게 질문했다.
그러자 강나연이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어! 멜리노스아랑 베리아토는 1만씩! 1층 청소는 5천!"
예상대로 세 사람이 흥분한 이유는 보상 때문이었다.
"...!"
그리고 강진석은 세 사람이 받은 보상에 살짝 놀랐다.
'2만 5천이나?'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2만 5천 포인트나 제공되다니?
이어 강진석은 세 사람의 능력치를 떠올리고 미소를 지었다.
'이 정도면 바로 가능하겠는데?'
그리고 강나연과 김칠성에게 말했다.
"일단 나연이는 민첩 40까지 올려."
"...패시브를 찍으라고?"
"응, 혹시 꼭 찍어야 할 액티브 스킬 있어?"
"꼭 찍어야 되는 건 없긴 한데...."
"그럼 찍어 봐. 그리고 칠성이는 힘 40까지, 성윤이는 골고루."
강진석의 말에 세 사람은 스킬창을 열었다.
그리고 패시브 스킬을 습득하기 시작했다.
"헐."
이내 강나연이 탄성을 내뱉었다.
김칠성과 유성윤은 잠시 스킬 습득을 멈추고 강나연을 보았다.
"왜?"
그리고 김칠성이 물었다.
"오빠 이거 뭐야?"
그러나 강나연은 김칠성의 물음에 답하지 않았다.
대신 강진석에게 물었다.
강진석은 싱긋 웃었다.
"왜? 뭔데?"
김칠성이 호기심, 답답함이 반반 섞인 표정과 목소리로 재차 물었다.
그러자 강나연이 두둥실 떠올랐다.
"뭐야?"
"헐."
김칠성과 유성윤이 탄성을 내뱉었다.
그리고 이내 강나연이 지상으로 내려와 살짝 지친 얼굴로 말했다.
"민첩 40이 되면 비행이 가능해져. 민첩 오를수록 빠르게, 정신력 높아질수록 오래."
강나연은 말을 마친 뒤 강진석을 보았다.
"맞아?"
"응, 맞아."
"그럼 힘 40은?"
강진석은 강나연의 물음에 고개를 돌려 김칠성을 보았다.
그러자 강나연과 유성윤도 따라 김칠성을 보았고 김칠성은 다시 스킬을 찍기 시작했다.
그렇게 김칠성의 힘이 40이 됐고.
"...!"
김칠성은 경악했다.
그리고 어처구니없는 얼굴로 강진석을 보며 말했다.
"대장, 이거 뭡니까...?"
제89화
89.
강진석은 김칠성의 말에 싱긋 웃을 뿐 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강나연이 답답한 표정으로 말했다.
"뭔데 그래?"
"...그게 에너지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됐다고 해야 하나?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네."
그러나 김칠성은 답하고 싶어도 답을 할 수가 없었다.
몸으로는 알겠는데 머리로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걸 무어라 설명해야 할까?
김칠성은 강진석을 보았다.
그리고 강진석이 설명을 시작했다.
"근육의 에너지를 자유롭게 이동시킬 수 있어. 예를 들어 하체에 힘이 다 빠져도 상체에 남아 있는 에너지를 이동시켜 다시 달릴 수 있지."
장황하게 설명하지는 않았다.
이 정도만 이야기해도 충분히 이해할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뭐? 그러면 나도 힘부터 찍어야 했던 거 아냐?"
"비행도 에너지 통합 못지않아. 그리고 어차피 다 40 찍어야 하고."
"...알겠어. 근데 체력이나 정신력 40에는? 다 40씩 찍어야 한다는 걸 보면 힘과 민첩만 이런 게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맞아, 체력 40에는 육체를 관조할 수 있게 돼. 피부의 단단함이라던가 에너지가 얼마나 남았는지 등. 그리고 정신력이 40이 되면 초감각이 활성화되고."
"초감각?"
강나연이 고개를 갸웃하며 반문했다.
"응, 다른 존재의 기운이나 공간을 느낄 수 있게 돼."
"혹시 선협 소설에 나오는 의식이나 무협 소설에 나오는 기감지 능력 같은 건가요?"
유성윤이 설마 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리고 강진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맞아. 비슷해."
강진석의 답에 세 사람은 놀란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강진석은 세 사람의 반응에 싱긋 웃었다.
'100에 생기는 변화는 나중에 이야기하는 게 좋겠지.'
40에만 변화가 생기는 게 아니다.
100에도 변화가 생긴다.
기운 운용, 공간이동, 육체 재구성, 초감각 조절 그리고 텔레파시까지 보통 변화가 아니다.
그러나 강진석은 굳이 100에 찾아올 변화를 언급하지 않았다.
워낙 먼 이야기였고 100을 찍기 위해 무리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칠성이는 분명 무리할 테니.'
강나연과 유성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김칠성이 무리할 확률은 100%였다.
"그럼 이번에 얻는 포인트는 전부 패시브에 투자하는 게 좋겠네?"
"스킬 습득하는 것도 나쁜 선택은 아니야. 직접 다 때려죽일 생각이 아니라면."
강나연의 말에 강진석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강진석도 솔직히 말해 스킬을 습득하고 싶었다.
오롯이 존재하는 자 때문에 습득하지 않을 뿐이다.
이후 강진석은 조금 더 대화를 한 뒤 다시 캠프를 나섰다.
그렇게 강진석이 떠나고 강나연은 비행에, 김칠성은 자신의 육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유성윤은 그런 둘을 보며 생각했다.
'부럽다.'
유성윤은 둘과 달리 특출나게 높은 능력치가 없었다.
40을 찍고 싶어도 찍을 수 없는 상태였다.
그래서 강나연과 김칠성이 너무나 부러웠다.
하늘을 나는 것도 너무나 부러웠고 육체의 에너지를 자유롭게 이동시킬 수 있다는 것도 너무나 부러웠다.
'...근데 진석 님은 능력치가 몇이나 되시는 걸까?'
문득 든 생각에 유성윤은 고개를 갸웃했다.
강진석의 능력치를 듣지 못했다.
높다는 것만 알 뿐이다.
'혹시 막 100도 넘고 그러시려나?'
* * *
도르에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왜 보고가....'
시간만 보면 베리아토, 멜리노스아에게 보고가 왔어야 했다.
그런데 보고가 오지 않고 있었다.
'설마....'
보고가 오지 않는 이유 2가지가 떠올랐다.
첫 번째는 보고를 할 틈이 없을 정도로 전투가 치열할 경우다.
두 번째는 이미 당했을 경우다.
이 두 가지 경우 외에는 떠오르는 이유가 없었다.
도르에나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어떤 경우든 좋지 않기 때문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
도르에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갑자기 도르에나가 일어난 이유는 제련소에 설치해 둔 경계 마법이 파괴됐기 때문이었다.
제련소는 지하 2층에 위치해 있었다.
즉, 제련소의 경계 마법이 파괴됐다는 것은 베리아토와 멜리노스아가 뚫렸다는 것을 의미했다.
물론 뚫렸다고 두 오크가 죽었다는 뜻은 아니다.
살아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중요한 것은 두 오크의 생사가 아니다.
'성소가 위험하다!'
엘프들이 침입한 이유는 제련소가 아니다.
성소를 파괴하기 위해서가 분명했다.
도르에나는 말칸을 보았다.
말칸은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무래도 베리아토와 멜리노스아가 당한 것 같구나."
"...그 둘이 당했단 말입니까?"
"그래, 제련소 경계 마법이 파괴됐다."
"어, 어찌...!"
말칸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말칸은 정신을 차리고 이어 말했다.
"제련소 쪽으로 제가 갈까요?"
"아니, 도착할 즘에는 이미 완전히 망가져 있을 거다."
지휘소와 제련소의 거리는 상당했다.
그리고 병력 소집에 걸리는 시간을 생각하면 제련소를 지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거기다 베리아토와 멜리노스아가 뚫릴 정도다.
말칸이 병력을 꾸려 간다고 해도 막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오히려 당할 것이다.
"그러면...."
"녀석들의 목적은 성소겠지."
"아!"
"성소에서 녀석들을 막는다. 병력을 끌고 성소로 오거라. 먼저 가 있을 테니."
"옙, 알겠습니다."
말칸이 꾸벅 숙여 인사하고는 지휘소를 떠났다.
그리고 도르에나는 왼쪽 벽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왼쪽 벽 탁자 위에 진열되어 있던 두꺼운 회색 몽둥이가 두둥실 떠오르더니 도르에나에게 날아갔다.
몽둥이를 쥔 도르에나는 기운을 주입했다.
그러자 몽둥이에 회색빛이 서리더니 진동하기 시작했다.
진동을 보며 도르에나는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주입했던 기운을 회수 후 지휘소에서 나와 성소로 향하며 생각했다.
'어떤 녀석인지는 모르겠지만....'
베리아토, 멜리노스아가 뚫린 걸 보면 직위가 상당한 존재가 온 게 분명했다.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3차 제약을 받은 존재가 온 것이 아닐까 싶었다.
도르에나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3차 제약을 받은 존재가 침입한 것이어야 지금 상황이 설명되기 때문이었다.
'내가 이곳에 있다는 걸 모르고 온 거겠지.'
원래 도르에나의 거처는 강남역이었다.
중립지대를 영역화시키고 공고히 하기 위해 비밀리에 서초역으로 왔다.
아마도 침입한 이는 도르에나가 서초역에 있는 것을 모르고 온 것일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만약 도르에나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침입할 이유가 없다.
도르에나는 3차 제약을 받았다.
솔직히 서초역에서도 제대로 힘을 발휘하기 힘들다.
현재 도르에나는 원래 힘의 20% 정도만 사용이 가능했다.
그러나 이것은 침입한 3차 제약을 받은 엘프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오히려 도르에나보다 상황이 더 좋지 않다.
더 큰 제약을 받고 있을 것이기에.
원래 힘의 10% 정도밖에 내지 못할 것이다.
'검은 숲의 힘을 약화시킬 절호의 기회야.'
이번 기회에 3차 제약을 받은 엘프를 죽인다면?
적어도 근방의 영역을 공고히 하는 데에는 아주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검은 숲에서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할 것이기에.
도르에나는 활짝 웃었다.
'생각보다 일이 쉽게 풀리겠군.'
* * *
쩌적... 쩍....
거대한 마나석이 조각 나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 메시지가 나타났다.
[거대 마나석을 파괴하셨습니다.]
[퀘스트 '제련소 파괴'를 완료하셨습니다.]
[기여도에 따라 보상이 차등 지급됩니다.]
.
.
메시지를 보며 강진석은 생각했다.
'던전 안에서 따로 또 퀘스트가 생성될 줄이야.'
제련소 파괴 퀘스트는 원래 없던 퀘스트였다.
근처에 도착하자 생성된 퀘스트였다.
'앞으로도 꼼꼼히 살펴야겠어.'
보상이 아주 만족스러웠다.
앞서 완료한 퀘스트와 비슷했다.
서초역에만 이런 퀘스트가 있지는 않을 것이다.
강진석은 추후 다른 던전에 갔을 때에도 꼼꼼히 확인하기로 다짐하고 고개를 돌려 주변을 보았다.
불이 꺼진 화구, 작업물이 올라가 있는 작업대 등이 시야에 들어왔다.
강진석은 주변 광경에 싱긋 웃었다.
'전부 파괴하지 않아도 돼서 다행이야.'
퀘스트 '제련소 파괴'의 완료 조건은 제련소 중앙에 위치한 마법진의 거대 마나석을 파괴하는 것이었다.
만약 화구나 작업대 등을 전부 파괴해야 했다면?
탈환 후 자산이 줄어드는 것이나 마찬가지기에 가슴이 아팠을 것이다.
'근데 마나석 없이는 사용이 불가능하려나?'
문득 든 생각에 강진석은 핵이 있던 마법진을 보았다.
마법진은 빛을 잃은 상태였다.
마나석이 없기 때문이었다.
근데 꼭 마법진을 활성화시켜야 제련소를 이용할 수 있는 것일까 의문이 들었다.
'나중에 여쭤봐야겠어.'
강진석은 후에 장택수, 김지용에게 물어보기로 하고 제련소에서 나왔다.
그리고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도르에나는 어디에 있으려나?'
걸음을 옮기며 강진석은 서초역의 보스 도르에나를 떠올렸다.
'성소에 있겠지?'
성소가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성소를 지키고 있지 않을까 싶었다.
'말칸도 같이 있으려나?'
네임드 몬스터는 도르에나만 남은 게 아니다.
서초역에는 수비대장이 셋이나 있었고 둘을 잡아 하나가 남아 있었다.
그리고 남은 수비대장 말칸 역시 도르에나와 함께 성소를 지키고 있을 것 같았다.
바로 그때였다.
"...!"
강진석은 눈을 번뜩이며 잠시 멈칫했다.
수많은 기운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중에는 유독 강한 기운이 있었다.
앞서 죽인 두 수비대장 멜리노스아, 베리아토와 비슷했다.
즉, 기운의 주인은 수비대장 말칸이 분명했다.
강진석은 싱긋 웃으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저벅!
얼마 지나지 않아 강진석은 걸음을 멈췄다.
단순히 걸음을 멈추기만 한 게 아니다.
입가에 지어져 있던 미소도 사라졌다.
미소만 사라진 게 아니다.
강진석의 얼굴에 당혹감이 나타났다.
갑자기 강진석의 분위기가 바뀐 이유는 초감각에 감지된 무척이나 강렬한 기운 때문이었다.
말칸과 비교하는 게 민망할 정도로 강한 기운이었다.
'...도르에나?'
서초역에서 말칸보다 강한 존재는 하나뿐이다.
바로 수비단장 도르에나.
지금 느껴진 기운은 도르에나의 기운이 분명했다.
'이 정도였어...?'
도르에나가 강할 것은 알고 있었다.
수비단장이었고 만부장이었기에.
그런데 예상보다 훨씬 강했다.
얼마나 강하냐면 도르에나의 기운은 현재 강진석의 기운과 비슷했다.
'이능까지 생각하면....'
문제는 이능의 경우 기운 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도르에나는 여러 이능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즉, 도르에나와의 전투는 강진석에게 불리할 확률이 높았다.
물론 이대로 붙을 경우에 그렇다는 것이지 강진석은 이대로 붙을 생각이 없었다.
굳이 불리한 전투를 치를 이유가 없다.
그렇다고 전투를 포기하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강진석은 포인트를 보았다.
[현재 보유 포인트 : 924만 3770]
혹시 모를 상황을 위해 포인트를 아껴두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이 포인트를 써야 할 때 같았다.
제90화
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