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reads / MAGOSILENCIOSO / Chapter 6 - 50-60

Chapter 6 - 50-60

50화

50.

[김포공항 공항대로를 말씀하시는 거 맞나요?]

"네! 정확히는 김포공항 입구 교차로쪽이요! 오우거는 총 세 번 나타났었고 트롤들은 3마리씩 다섯 번 나타났었어요."

[고블린, 오크들이 가만히 있었나요?]

최은형의 말에 따르면 공항시장 쪽은 고블린들이 꽉 잡고 있었고 김포공항은 오크들이 꽉 잡고 있었다.

오우거와 트롤들이 나타났을 때 고블린과 오크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궁금했다.

"아뇨. 바로 싸우던데요?"

[어땠나요? 오우거나 트롤 많이 강한가요?]

"예, 고블린이나 오크들보다는 훨씬요. 특히 오우거는 진짜 엄청나게 강해 보이더라구요. 근데 수가 워낙 차이가 나다 보니..."

"...!"

최은형의 답에 강진석은 살짝 놀랐다.

뒷말을 들어 보니 전투에서 승리한 것은 오우거나 트롤이 아니라 고블린, 오크들인 것 같았다.

'이러면 할만할지도?'

오우거, 트롤이 감당 불가능할 정도로 강하면 어쩌나 걱정했다.

그런데 고블린, 오크들이 숫자로 이겨냈다면?

상대하는 게 가능할 것 같았다.

의외로 치열한 전투가 아닌 손쉬운 사냥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전투 상황 좀 자세히 알려주실 수 있나요?]

"일단 오우거가 처음 나타났을 때 고블린 30마리 정도가 떼로 달려들었어요. 고블린 10마리 정도가 죽었을 때 오우거가 도망쳤구요. 두번째 오우거가 나타났을 때에는 오크 30마리가 달려들었고 오크가 10마리 정도 죽었을 때 오우거도 죽었습니다. 그리고..."

강진석은 최은형의 답을 들으며 오우거와 트롤이 얼마나 강한지 가늠할 수 있었다.

그리고 결론도 내릴 수 있었다.

'잡을 수 있겠네.'

자신이 생겼다.

오우거나 트롤을 마주해도 손쉽게 사냥할 자신이.

****

태백 빌딩 지하 1층.

"잘 부탁드립니다!"

최은형이 고개를 꾸벅 숙이며 기존 입주자들에게 인사했다.

짝짝짝!

"환영합니다."

"저희도 잘 부탁해요!"

그러자 박수와 함께 입주자들이 인사에 답했다.

그렇게 소개와 인사가 끝났고 잠시 정적이 찾아왔다.

정적은 오래가지 않았다.

"혹시 은형씨는 조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지윤이 강진석에게 물었다.

기존 입주자들은 현재 1조부터 4조까지 조를 나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방금 입주한 최은형은 배정되지 않은 상태였다.

강진석은 한지윤의 질문에 바로 메모지를 내밀었다.

[2조에 배정하면 될 것 같아요. 은지씨도 있으니.]

바로 배정을 마친 강진석은 앞장서 방화역으로 향했다.

이내 연결 통로를 지나 방화역에 도착했고 이어 뒤따라온 입주자들이 탄성과 함께 말을 내뱉었다.

"헛, 퀘스트가 생성됐어요."

"저도요."

"몸이 좀 가벼워졌는데요?"

"힘도 세진 것 같아요."

"이게 아까 회의때 말씀해주신 능력치 상승 기능인가 봐요! 와..."

강진석은 입주자들의 놀란 반응에 은은히 미소를 지은 채 계속해서 걸음을 옮겨 지하 2층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가장 가까운 선로로 향했다.

얼마 뒤 선로에 도착했고 강진석은 구조 변경을 통해 지하도로 나갈 수 있는 입구를 만들었다.

입구를 만든 뒤 강진석은 메모지를 내밀었다.

[말씀 드린대로 시작하겠습니다.]

이제 1조부터 4조까지 순서대로 지하도에 있는 몬스터들과 전투를 치를 예정이었다.

전투 능력도 키우고 포인트 수급을 통해 힘을 키우기 위해서였다.

"네!"

"예!"

입주자들이 답했고 강진석은 여태껏 그래왔듯 지하도로 나가 앞장서 걸음을 옮겼다.

저벅!

얼마 지나지 않아 강진석은 걸음을 멈추며 손을 들었다.

그러자 한지윤을 포함한 모든 이들이 걸음을 멈췄다.

강진석은 한지윤에게 메모지를 전했다.

[고블린 3마리에 거대 쥐 2마리 입니다.]

[거대 쥐는 일반 고블린보다 살짝 강한 것 같네요.]

"알겠습니다."

한지윤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리고 이어서 뒤로 돌아 말했다.

"1조 앞으로 나와주세요."

한지윤의 말에 1조 인원들이 앞으로 나섰다.

1조는 한지윤 그리고 한지윤과 함께 로우포트에서 온 셋 그리고 장은서와 주다영까지 총 여섯이었다.

장은서를 제외하면 이미 다 전투를 해본 이들로 4개 조 중 가장 강한 조라 할 수 있었다.

1조가 앞으로 나서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고블린 3마리와 거대 쥐 2마리가 나타났다.

그리고 바로 전투가 시작됐다.

물론 한지윤은 개입하지 않았다.

한지윤이 개입하면 너무나 쉽게 끝날 것이기에.

그럼에도 전투는 수월했다.

얼마나 수월했냐면 전투가 끝나기까지 2분도 걸리지 않았다.

강진석은 2조부터 4조 입주자들을 보았다.

방금 전 전투를 보고 자신감을 얻은 이도 있었고 살짝 떨고 있는 이도 있었다.

'이정도면 문제없이 사냥 가능하겠어.'

당연히 지켜볼 생각이지만 분위기를 보니 2조, 3조, 4조 역시 별문제 없이 사냥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분위기 확인을 마친 강진석은 1조 인원들에게 물었다.

[혹시 기여도가 얼마나 올랐나요?]

퀘스트 '지하도 청소'는 기여도 1000부터 완료가 가능한 반복 퀘스트였다.

얼마나 잡아야 완료가 가능한지 궁금했다.

"포인트는 총 100 올랐고 기여도는 50 올랐어요."

"저는 포인트 70 올랐고 기여도는 35요!"

기여도는 획득 포인트의 절반이었다.

즉, 퀘스트를 완료하기 위해서는 최소 2000포인트를 얻어야 했다.

'많이 쌓을수록 보상도 강화되겠지?'

기여도 1000부터 완료가 가능한 것이지 꼭 1000에 완료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반복이니까 보상이 좋지는 않으려나?'

강진석은 보상에 대해 생각하며 다시 앞장서 걸음을 옮겼다.

****

"와, 내가! 내가 고블린을!"

"나도 할 수 있었구나!"

마지막으로 4조의 사냥이 끝났다.

1조만큼은 아니었지만 4조 역시 무난히 사냥을 마쳤다.

강진석은 사냥 성공으로 흥분에 휩싸인 4조 인원들을 보며 은은히 미소를 지었다.

'걱정 안 해도 되겠어.'

다들 자신감을 얻었다.

거기다 문제가 생겨도 한지윤과 최은형이 있다.

어지간한 문제는 두 사람이 나서면 바로 해결될 테니 마음 편히 다른 일을 처리하러 가도 될 것 같았다.

[저는 따로 일 좀 하러 가보겠습니다.]

"네! 최대한 조심히 사냥 진행하겠습니다!"

한지윤이 답했고 강진석은 입주자들과 인사를 나눈 뒤 지하도 입구로 향했다.

그리고 입구로 향하며 강진석은 포인트를 확인했다.

[현재 보유 포인트 : 79만 9550]

입주자들의 사냥을 지켜보며 강진석은 포인트를 어떻게 할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었다.

그리고 고민을하면 할수록 스킬 습득으로 마음이 기울었었다.

'그래.'

이내 강진석은 결정을 내렸다.

'지금은 스킬이 맞아.'

아무리 봐도 스킬을 습득하는 게 맞는 것 같았다.

물론 앞으로 계속해서 스킬에만 포인트를 투자할 생각은 아니었다.

3일 뒤 몬스터들의 침공이 있을 예정이었다.

'한 번이 아니겠지.'

침공은 이번이 마지막이 아닐 것이다.

주기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지하도를 통해 계속해서 공격해올 것 같았다.

즉, 요새에도 투자를 해야했다.

'3일 동안 얼마나 모이려나?'

스킬 습득 후 강진석은 3일간 사냥에 전념할 예정이었다.

그리고 수급된 모든 포인트를 요새에 투자할 생각이었다.

'적어도 50만은 모이겠지?'

강진석은 수급될 포인트에 대해 생각하며 스킬창을 열었다.

그리고 바로 스킬을 습득하기 시작했다.

힘, 민첩, 체력 라인 스킬들을 습득 후 정신력 라인 스킬을 찍던 중.

스킬 '마법 분석2'를 최대 레벨까지 올린 강진석은 메시지창을 확인했다.

[스킬 '마법 분석2'를 습득하셨습니다.]

[스킬 '마법 분석2'의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보이는 것은 습득, 상승 메시지뿐이었다.

'...100개도 아니야?'

메시지창을 확인한 이유는 스킬 '마법 분석2'가 100번째 패시브 스킬이었기 때문이었다.

오롯이 존재하는 자2의 조건이 패시브 스킬 100개가 아닐까 생각했었다.

그런데 보아하니 아닌 것 같았다.

강진석은 아쉬운 표정으로 스킬 '정신력8'을 최대 레벨까지 올렸다.

그리고 정보창을 확인했다.

힘 : 80(62+18)

민첩 : 76(60+16)

체력 : 86(68+18)

정신력 : 98(79+19)

정신력을 보며 강진석은 생각했다.

'그래도 이건 뭐 있겠지...?'

앞으로 2만 더 올리면 100이었다.

강진석은 정보창을 열어둔 채 다시 정신력 라인 스킬 '사고 가속, 고통 저항3, 감정 분석'을 습득했다.

스킬 '정신력9'가 해금됐고 강진석은 바로 2레벨까지 올렸다.

그렇게 정신력이 100이 되었다.

"...?"

그리고 강진석의 얼굴에 물음표가 나타났다.

초감각 범위가 늘어났다.

기운 역시 커졌고 강렬해졌다.

그뿐이었다.

특별한 뭔가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딱 정신력 2가 오른 수준의 변화였다.

'이것도 없어...?'

오롯이 존재하는 자2의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다.

그래서 정신력에는 특별한 뭔가가 있길 더욱 바랐던 강진석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혹시 120에 있나?'

꼭 100에 변화가 있으리란 법은 없다.

애초에 시작이 40이었다.

120이나 140에 특별한 변화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있다면 언젠가는 알 수 있겠지.'

앞으로도 강진석은 계속 능력치를 올릴 생각이었다.

특별한 뭔가가 존재한다면 언젠가는 알게 될 것이다.

강진석은 아쉬움을 털어내고 마저 스킬 '정신력9'를 5레벨까지 올린 뒤 체력, 민첩, 힘 라인 스킬들을 습득했다.

[현재 보유 포인트 : 2만 9950]

그렇게 80만에 가까웠던 포인트가 다시 바닥에 가까워졌다.

'그래도 알차게 썼으니까.'

포인트를 확인한 강진석은 정보창을 보았다.

힘 : 85(67+18)

민첩 : 81(65+16)

체력 : 91(73+18)

정신력 : 103(84+19)

스킬 습득 전과 비교해 모든 능력치가 10씩 올랐다.

거기다 근육과 뼈가 강화된 덕분에 체감은 10이 아니라 그 이상 오른 것 같았다.

강진석은 흡족한 표정으로 정보창을 닫았다.

'어디부터 갈까?'

스킬 습득도 끝냈고 이제 사냥을 떠날 차례였다.

'개화산 먼저 갈까?'

처음에는 개화산을 아예 건들지 않을 생각이었다.

개화역 오크 군단이 움직일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데 생각이 바뀌었다.

어차피 건들지 않아도 오크들은 언젠가 넘어올 것이다.

그러나 압도적인 힘으로 계속해서 쓸어버린다면?

미지의 공포 때문에 쉽사리 진격해오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개화산이 아닌 다른 곳으로 진격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래, 다른 곳도 확인해야 하니까.'

거기다 전에는 개화역 오크 군단을 보고 바로 귀환하느라 행주대교, 방화대교 같은 한강 쪽을 확인하지 못했다.

이번에 가서 확인하면 될 것 같았다.

결정을 내린 강진석은 바로 요새에서 나왔다.

그리고 비행을 통해 개화산 입구로 향했다.

시간이 좀 흘렀기 때문일까?

깔끔히 청소를 했었는데 개화산 곳곳에 다시 오크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강진석은 바로 오크 사냥을 시작했다.

이미 오크들의 수준을 알고 있기에 거침이 없었고, 강해진 덕분에 전보다 훨씬 빠르게 청소를 할 수 있었다.

강진석은 오크들을 잡을 때마다 오르는 포인트를 보며 생각했다.

'이 속도면 100만도 가능하겠는데?'

51화

51.

3일간 50만 정도를 예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포인트 오르는 속도를 보니 2배인 100만도 가능할 것 같았다.

아니, 3일 내내 지금 속도로 포인트가 오른다면?

100만이 아니라 그 이상도 가능할 것이다.

그정도로 포인트 오르는 속도가 빨랐다.

강진석은 오크들을 처치하며 정상으로 향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강진석은 정상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당연히 중심지는 아니고 전에 왔던 외곽이었다.

강진석은 전처럼 수풀에 몸을 숨긴 채 상황을 파악했다.

'더 많아졌네?'

전에는 십부장 오크 5마리, 일반 오크 20마리 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십부장 오크 7마리, 일반 오크 45마리로 2배 이상 늘어난 상태였다.

'외곽에 이정도면...'

중심지가 아니다.

안쪽에는 더 많은 오크들이 활동하고 있을 것이었다.

'결국 넘어왔겠네.'

늘어난 오크들의 수를 보니 언젠가는 개화산을 넘어 방화역에 왔을 것 같았다.

'오길 잘했다.'

강진석은 첫 행선지로 개화산을 선택한 것이 아주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하며 수풀 밖으로 나갔다.

-취익?

-취익!

그러자 오크들이 강진석을 발견했고 비음 섞인 괴성을 내뱉었다.

그리고 전처럼 일반 오크들이 달려오기 시작했다.

전부가 달려오지는 않았다.

5마리만 움직였고 나머지 오크들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강진석은 달려오는 5마리에게 마주 다가갔다.

그렇게 거리가 빠르게 좁혀졌고.

스걱! 스걱!

오크 5마리는 순식간에 죽음을 맞이했다.

-취, 취익!

십부장 오크 중 한 마리가 외쳤다.

그러자 남은 일반 오크 40마리가 일제히 움직였다.

일반 오크뿐만이 아니다.

십부장 오크 3마리도 함께 움직였다.

'저녀석들은 왜 안오지?'

강진석은 움직이지 않는 십부장 오크 2마리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어째서 다른 오크들과 달리 움직이지 않는 것일까?

강진석은 움직이지 않는 두 십부장 오크를 주시하며 사냥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절반 정도가 죽었을 때.

"...!"

강진석은 멈칫했다.

움직이지 않던 십부장 오크 2마리가 뒤로 돌아섰기 때문이었다.

이내 두 십부장 오크가 중심지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왜 안 오나 했더니...'

중심지에 강진석의 존재를 알리려는 것이 분명했다.

'그건 안 되지.'

강진석은 바로 하늘로 뛰었다.

그리고 오크들을 넘어 도망치는 두 십부장 오크에게 날아갔다.

현재 강진석의 민첩은 81이었다.

처음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비행 속도가 빨라진 상태였고 5초도 지나지 않아 강진석은 두 십부장 오크를 따라잡을 수 있었다.

스걱!

[십부장 오크를 처치하셨습니다.]

[포인트가 1000 상승합니다.]

스걱!

[십부장 오크를 처치하셨습니다.]

[포인트가 1000 상승합니다.]

그렇게 두 십부장 오크를 마무리한 강진석은 다시 돌아섰다.

남은 절반의 오크들이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강진석은 곧장 오크들에게 다가갔다.

방금 죽인 십부장 오크들처럼 도망을 칠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지금처럼 멍하니 있을 때 한 마리라도 더 죽여야 문제 없이 전부 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

다행히 오크들은 도망치지 않았다.

이내 모든 오크를 처치한 강진석은 흡족한 표정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개화역을 보았다.

'으음...'

개화역을 보자마자 강진석은 속으로 침음을 내뱉었다.

변화가 있기 때문이 아니다.

반대로 변화가 없어 침음이 나왔다.

여전히 수많은 천막이 보였고 수많은 오크들이 오가고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 막히는 광경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

강진석의 두 눈이 커졌다.

그리고 얼굴에 놀람이 가득 나타났다.

'뭐야?'

갑작스레 강진석의 분위기가 바뀐 이유는 개화역에 막 일어난 변화 때문이었다.

개화역에 초록색 장막이 나타났다.

'...영역?'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영역이었다.

아니, 영역 밖에 없다.

고블린들의 검은 장막처럼 초록 장막은 오크들의 영역이 분명했다.

'저정도 크기면...'

크기가 어마어마했다.

방화역에 펼쳐져 있던 고블린들의 영역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컸다.

물론 크기만 크고 실속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은 0에 가까웠다.

크기가 큰 만큼 디버프도 무척 강력할 것으로 추정됐다.

"..."

이내 정신을 차린 강진석은 돌아섰다.

이대로 있을 때가 아닌 것 같았다.

강진석은 중심지를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얼마 뒤 초감각에 수많은 오크들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저벅!

이내 강진석은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매우 강렬한 기운이 감지됐기 때문이었다.

얼마나 강렬하냐면 방화역을 차지하고 있던 3부족장 메타르와 비슷했다.

바로 그때였다.

[퀘스트 '정찰대장 카르몬'이 생성됐습니다.]

퀘스트가 생성됐고 강진석은 바로 퀘스트창을 열었다.

<정찰대장 카르몬>

카르몬은 오크 부족 중 35번째로 규모가 큰 전쟁 바람 부족의 천부장이자 2군단 1정찰대장이다.

현재 카르몬은 2군단 부단장 알리온의 명을 받아 개화산 정상에 거점을 만들어 주변 정보를 습득 중이다.

.

.

수집한 정보를 군단에 보고하기 전 카르몬을 처치하라!

퀘스트 보상 : ???

그리고 퀘스트를 통해 강진석은 강렬한 기운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개화산이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있었다.

모든 것을 알게 된 강진석은 인상을 구겼다.

메타르와 기운이 비슷했다.

그래서 정찰대장이란 직위가 매우 높은 직위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퀘스트 내용을 보니 전혀 아니었다.

정찰대장 위로 군단장, 부단장 등 직위가 여럿 더 있었다.

'...아니야, 그래도 낮은 직위는 아니겠지.'

강진석은 고개를 휙휙 저었다.

위에 직위가 몇 가지 더 있긴 했지만 정찰대장이란 직위 또한 부족 내에서 매우 높은 편에 속할 것이다.

아니, 높아야 했다.

기운의 크기를 생각하면 높아야 정상이었다.

강진석은 직위에 대한 생각을 끝내고 개화역 오크 군단을 떠올렸다.

'근데 이러면 개화역에 있는 녀석들이 2군단인걸까?'

퀘스트 내용에 따르면 카르몬은 2군단 소속이었다.

즉, 개화역 오크 군단이 2군단일 확률이 매우 높았다.

'1군단은 어디에 있는거지? 설마 김포공항에 있는 녀석들이 1군단인가?'

최은형이 말하길 김포공항은 오크들이 꽉 잡고 있다고 했다.

김포공항 오크들이 전쟁 바람 부족의 1군단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1군단이면 좋겠는데.'

아니, 1군단이어야 했다.

그도 그럴 것이 1군단이 아니라면 그게 더 문제였다.

이내 강진석은 퀘스트창을 닫았다.

그리고 카르몬이 이동한 방향으로 조금 더 다가갔다.

바로 그때였다.

이동중이던 카르몬이 갑자기 멈췄다.

그리고 이어 기운이 살짝 흔들리며 노란색 빛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노란색의 정체를 강진석은 알고 있었다.

스킬 '감정 분석'을 습득 후 나타나기 시작한 색으로 노란색이 의미하는 감정은 '놀람'이었다.

'...왜?'

그래서 의아했다.

카르몬이 갑자기 왜 놀란단 말인가?

이내 오크들이 부산스레 움직이기 시작했다.

휴식을 취하고 있던 오크들도 진형을 갖췄다.

문제는 진형을 갖춘 채 경계하는 방향이 강진석이 있는 방향이라는 점이었다.

'...들킨건가?'

아무래도 들킨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지금 상황은 설명이 되지 않는다.

'어떻게?'

강진석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소리를 낸 것도 아니고 사건을 일으킨 것도 아니다.

그런데 어떻게 안 것일까?

'분명 카르몬인데...'

강진석의 존재를 눈치챈 것은 카르몬이 분명했다.

'잠깐, 설마...'

문득 든 생각에 강진석은 경악했다.

'카르몬도 초감각을 활성화 한건가?'

정신력 40에 활성화된 '초감각'.

만약 카르몬도 초감각을 활성화 했다면?

그리고 초감각을 통해 강진석의 기운을 감지한 것이라면?

그런 것이라면 지금 상황이 전부 설명된다.

물론 예상과 달리 초감각이 아닐 수 있다.

다른 이유로 눈치챈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중요한 것은 어떻게 들켰는지가 아니다.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이냐였다.

강진석은 고민했다.

'나보다 약한 건 확실한데.'

메타르와 비슷했다.

즉, 강진석보다는 훨씬 약했다.

그러나 기운의 크기가 전부는 아니다.

액티브 스킬이나 아티펙트는 기운 크기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카르몬이 강력한, 특별한 이능을 가지고 있다면?

'...그래도 이정도 차이면.'

기운이 전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니다.

이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이정도 격차면 충분히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고민을 끝낸 강진석은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얼마 뒤 강진석은 진형을 갖춘 채 자신을 노려보는 오크들을 두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오크들은 전투태세를 완벽히 갖춘 상태였다.

개화역 오크 군단 만큼은 아니지만 가슴이 살짝 답답할 정도로 기세가 대단했다.

강진석은 고개를 돌려 오크들 뒤쪽에 서 있는 카르몬을 보았다.

십부장 오크들보다 주먹 하나 정도 더 큰 카르몬은 냉철한 눈빛을 짓고 있었다.

외관상 특별해 보이는 뭔가는 없었다.

바로 그때였다.

-취익!

카르몬이 외쳤다.

그러자 오크들이 진형을 유지한 채 다가오기 시작했다.

강진석은 바로 오크들에게 달려들었다.

비슷한 수준이었다면 달려들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차이가 너무났다.

오크들의 진형은 강진석에게 아무 의미 없었다.

토끼들이 진형을 갖춘다고 호랑이에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아니, 식량이 한데 모인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렇게 오크들이 강진석에게 죽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3개 진형을 무너트렸을 때.

-취익!

카르몬이 재차 외쳤다.

그러자 오크들이 일제히 물러났고 이어 카르몬이 앞으로 나섰다.

카르몬이 나선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부하들로는 상대가 되지 않음을 깨달은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의문이 하나 생겼다.

초감각으로 강진석의 기운을 눈치챈 것이라면 애초에 안 될 것을 알았을 텐데 이제 와 나서는 이유가 무엇일까?

'초감각이 아닌건가? 아니면 오크들의 초감각은 다른걸까?'

강진석의 경우 기운의 크기까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카르몬의 경우 존재 감지만 가능한 것일 수 있다.

바로 그때였다.

-취익!

카르몬이 비음이 섞인 포효를 내뱉었다.

그리고 곧장 강진석에게 달려들었다.

'...!'

강진석은 살짝 놀랐다.

예상보다 카르몬의 속도가 빨랐기 때문이었다.

메타르보다 훨씬 빨랐다.

강진석은 공격을 피하지 않고 막기로 결정했다.

공격력은 어떤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팅!

이내 청동 방패에 카르몬의 검이 작렬했다.

그리고 강진석은 느낄 수 있었다.

'약하네.'

메타르보다 속도는 빨랐다.

그러나 힘이 약했다.

공격력을 확인한 강진석은 잠시 고민했다.

'바로 죽일까? 아니면 좀 지켜봐?'

아직 이능을 사용하지 않았다.

굳이 위험을 감수하며 전투 정보를 얻을 가치가 있을까?

'...그냥 죽이자.'

금세 고민이 끝났다.

오래 끌 상황이 아니다.

해야할 일이 많았다.

강진석은 재차 날아오는 카르몬의 검을 피하며 안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델룬 장검을 휘둘렀다.

당연히 목표는 카르몬의 목이었다.

스그극!

바로 그때 카르몬이 싱긋 웃었고 목쪽 피부가 돌처럼 변했다.

이내 돌처럼 변한 피부에 델룬 장검이 작렬했다.

그극...

잠깐의 멈칫거림이 발생했다.

스걱!

말 그대로 잠깐이었고 이내 델룬 장검이 피부를 파고들었다.

스아악!

그리고 카르몬의 육체에 빛이 서리며 메시지가 나타났다.

[정찰대장 카르몬이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포인트가 5만 상승합니다.]

[퀘스트 '정찰대장 카르몬'을 완료하셨습니다.]

.

.

[전환율 : 60%]

52화 (무료 연재 마지막)

52.

나타난 메시지는 한, 두개가 아니었다.

그러나 강진석은 메시지를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메시지 확인보다 중요한 일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블린들은 메타르가 죽고 사방으로 도망쳤었다.

카르몬이 죽은 지금 오크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강진석은 오크들을 보았다.

'음...?'

그리고 분위기를 확인한 강진석은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모든 오크의 얼굴에 분노가 가득했다.

철천지원수를 마주한 것 같은 얼굴이었다.

전혀 도망칠 것 같지 않았다.

그리고 이내.

-취익!

-취익!!

모든 오크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분노가 담긴 괴성을 내뱉으며 강진석에게 달려들었다.

강진석은 달려오는 오크들을 보며 활짝 웃었다.

'다행이네.'

만약 고블린들처럼 사방으로 도망쳤다면?

전보다 빨라졌기에 놓치지는 않았겠지만 그래도 상당히 애를 먹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다가와 주다니?

마음이 너무나 편해졌다.

강진석은 델룬 장검을 휘두르기 시작했고.

스걱! 스걱!

오크들이 죽음을 맞이하기 시작했다.

얼마 뒤 마지막 십부장 오크가 죽음을 맞이했고 강진석은 초감각에 집중했다.

혹시나 놓친 뭔가가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당연하게도 놓친 것은 없었고 강진석은 메시지를 다시 확인했다.

그리고 메시지를 확인하던 중 퀘스트창을 열었다.

퀘스트 '정찰대장 카르몬'이 완료됨과 동시에 생성된 퀘스트가 있었다.

<정보 차단>

개화산 정상에서 주변 정보를 수집하고 있던 카르몬.

.

.

정보를 차단하라!

퀘스트 보상 : ???

정보 차단 기간이 길어질수록 보상이 강화됩니다.

'호오.'

퀘스트를 확인한 강진석은 속으로 감탄을 내뱉었다.

강진석이 개화산에 온 이유와 부합하는 내용의 퀘스트였다.

'주기적으로 청소만 하면 되겠네.'

정보 차단에 실패하면 퀘스트가 완료된다.

즉, 정보 수집을 위해 개화산에 투입되는 오크들만 처리하면 된다.

'언제까지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강진석은 흡족한 표정으로 퀘스트창을 닫았다.

그리고 마저 메시지를 확인했다.

남은 메시지 중 시선을 끄는 메시지는 하나뿐이었다.

'60%라...'

바로 전환율 메시지였다.

'진짜 더디네.'

메타르를 잡았을 때 20%가 됐다.

이후 수많은 고블린과 오크를 죽였다.

그럼에도 이제야 60%였다.

언제쯤 100%가 될 지 예측이 되지 않았다.

강진석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중심지로 향했다.

그리고 얼마 뒤 오크들의 천막을 발견할 수 있었다.

초감각을 통해 강진석은 천막 내부도 확인할 수 있었는데 몇몇 천막에는 각종 무기와 방어구가 보관되어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저벅!

강진석은 걸음을 멈췄다.

걸음을 멈춘 이유는 방금 막 감지 된 천막 때문이었다.

천막 안에서 기운이 느껴졌다.

아티펙트가 분명했다.

그것도 한, 두개가 아니었다.

강진석은 다급히 천막으로 다가갔다.

'카르몬이 사용하던 천막인가 보네.'

다른 천막들 보다 확실히 고급스러워 보였다.

카르몬이 사용하던 천막으로 추정됐다.

'하기야 그러니 아티펙트도 있는 거겠지.'

강진석은 기대감을 끌어올리며 천막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왼쪽 구석을 보았다.

구석에는 상자 하나와 활, 단검, 각반 등의 물품들이 비치되어 있었다.

전부 강진석이 느꼈던 아티펙트들이었다.

강진석은 구석으로 다가가 우선 상자를 열었다.

"...!"

그리고 살짝 놀랐다.

상자에 들어있던 것은 스크롤이었다.

그것도 아주 익숙한 문양이 각인되어 있는 스크롤이었다.

'감정 스크롤이잖아?'

강진석은 스크롤의 개수를 확인했다.

하급 감정 스크롤 20장, 중급 감정 스크롤 10장이었다.

'포인트 아낄 수 있겠네.'

강진석은 싱긋 웃으며 나머지 아티펙트들을 확인했다.

바로 쓰임새를 알 수 있는 것도 있었고 감정 스크롤이 필요한 것들도 있었다.

물론 감정 스크롤이 함께 있었기에 강진석은 바로바로 확인했다.

<바람의 활>

1. 화살 속도 10% 증가

2. 기운 주입 시 화살에 바람 속성 부여

'이건 지윤님 드리면 되겠다.'

기능을 확인하며 강진석은 요새 입주자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이내 모든 아티펙트 확인을 마친 강진석은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인벤토리에 넣었다.

'내가 쓸만한 것도 있었으면 참 좋았을텐데.'

강진석은 아쉬운 표정으로 천막 내부를 다시 한 번 훑었다.

혹시나 추가로 도움이 될만한 물건이나 정보가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생각과 달리 아무것도 없었고 강진석은 천막에서 나왔다.

이후 각 천막을 돌아다니며 무기와 방어구를 챙긴 강진석은 한강이 보이는 방향으로 향했다.

곧 목적지에 도착한 강진석은 한강 주변을 꼼꼼히 확인했다.

그리고 강진석의 표정이 서서히 굳기 시작했다.

반대편에 트롤 무리가 다수 보였다.

당연히 오우거도 여럿 보였다.

대부분이 혼자였지만 무리를 지은 오우거도 있었다.

'저건 또 뭐지?'

거기다 처음 보는 종류의 몬스터도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영역이 몇 개야...'

형형색색의 장막들이 보였다.

몬스터들의 영역이 분명했다.

'한강쪽으로 가면 안 될 것 같은데.'

지금 상황에서 한강쪽으로 이동하는 것은 매우 위험해 보였다.

갔다가는 큰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음...'

이내 강진석은 속으로 침음을 내뱉으며 뒤로 돌아섰다.

'일단 사냥부터 하자.'

****

"혹시 격투기 배우셨나요?"

한지윤이 최은형에게 물었다.

그러자 최은형이 싱긋 웃으며 답했다.

"네, 검도 좀 배웠습니다."

최은형의 답을 듣고 한지윤은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예지몽에서 보았던 강자들처럼 최은형은 단순히 힘만 강한 게 아니라 전투에 능했다.

그래서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사촌 누나가 유명 선수였거든요. 최서윤이라고."

"...!"

그리고 이어진 최은형의 말에 한지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최서윤?'

생각지도 못한 이름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혹시 말씀하신 분이 2연속 전국검도대회 우승한 그 최서윤 선수...?"

한지윤은 설마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리고 최은형이 놀란 얼굴로 반문했다.

"어? 아세요?"

바로 그때.

"아냐니? 뭘?"

최은지와 주다영이 다가왔다.

"지윤님이 서윤 누나 알고 계신다네?"

"뭐? 진짜?"

최은형이 놀란 얼굴로 한지윤을 보았다.

그리고 한지윤이 입을 열었다.

"...네, 기사를 봤었거든요!"

"아하~"

"그래서 알고 계셨던거구나."

한지윤의 답에 최은지와 최은형이 차례대로 답했다.

그리고 이어 최은지가 걱정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서윤 언니는 잘 있겠지...?"

"글쎄, 정동진에 고블린이나 오크들이 나타났으면 무사할 것 같긴한데..."

최은형 역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답했다.

둘의 대화에 한지윤은 말하고 싶었다.

아주 잘 있다고.

그러나 참았다.

예지몽을 언급해서 좋을 게 없었다.

갑자기 예지몽을 언급하며 상황을 전하면 무슨 눈으로 보겠는가?

'미친년 보듯 보겠지.'

앞서 수없이 마주했다.

물론 믿어줄 가능성도 있긴 하다.

그러나 가능성만 믿고 예지몽을 언급할 수는 없다.

바로 그때 주다영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어? 설마 그분 정동진에 계셔?"

"응, 왜?"

"진석씨 부모님도 정동진 웨이브크루즈 호텔에 여행 가셨다고 했거든."

"...!"

한지윤은 주다영의 말에 다시 한 번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한지윤이 예지몽에서 활동했던 곳이 웨이브크루즈였기 때문이었다.

한지윤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생존자들 중 강진석과 닮은 이가 있는지.

그러나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성함을 여쭤보기도 그렇고...'

지금 상황에 강진석의 부모님 성함을 묻는 것은 매우 이상한 일이었다.

'나중에 여쭤봐야겠다.'

후에 자연스레 묻는 게 좋아 보였다.

바로 그때였다.

다다다닥!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한지윤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곧 발소리의 주인공 김수형이 나타났다.

경계를 서고 있던 김수형이 다급히 돌아왔다는 것.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한 가지였다.

"고블린 15마리가 다가오고 있어요. 주술사 고블린도 2마리 끼어있구요! 부장 고블린도 넷 있습니다."

한지윤은 눈을 번뜩였다.

주술사 고블린이 끼어 있다니?

"...혹시 정신력 20 이상이신 분?"

한지윤은 입주자들에게 물었다.

원래 이번 사냥은 3조 차례였다.

그러나 숫자도 많았고 주술사 고블린이 끼어 있었다.

주술사 고블린은 현혹을 사용한다.

현혹에 저항하기 위해서는 정신력이 20을 넘어야 했다.

즉, 이번 사냥은 3조에게 맡길 게 아니라 따로 인원을 뽑아야 했다.

"저요."

"저 넘습니다! 25요!"

한지윤의 말에 몇몇이 손을 들었다.

총 10명이었다.

'문제없겠지.'

하루 내내 사냥을 했다.

덕분에 다들 전투에 익숙해졌고 스킬도 여러 개 습득했다.

거기다 강진석이 아티펙트까지 지원해줬다.

주술사 고블린이 둘이나 끼어 있다고 해도 10명이면 충분히 사냥할 수 있을 것이다.

스윽

한지윤은 최은형을 보았다.

'나랑 은형씨가 있으니까.'

거기다 최악의 경우가 발생해도 상관없다.

최은형이 있으니 큰 문제로 번지지는 않을 것이다.

"다들 전투 준비해주세요. 그리고 정신력 20미만인 분들은 뒤쪽 경계 부탁드릴게요."

"네!"

"옙!"

한지윤의 말에 모두가 답했고 진형을 갖추기 시작했다.

"하급 바람 결계."

그리고 진형을 갖추자 주다영이 결계를 시전했다.

초록색 장막이 나타났고 그로부터 얼마 뒤 고블린 무리가 등장했다.

일반 고블린들이 선두에 서 있었고 그 뒤에 부장 고블린이 그리고 그 뒤에 주술사 고블린이 서 있었다.

한지윤은 바로 시위를 당기며 생각했다.

'폭발 화살 쓸 수 있으면 참 좋을텐데.'

폭발 화살 한 방이면 일반 고블린은 전부 죽일 수 있다.

그러나 지하도에서 폭발 화살을 쓰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고블린에게만 영향을 끼치는 게 아니기 때문이었다.

"저격"

한지윤은 저격을 시전 후 시위를 놓았다.

****

스걱! 스아악!

부장 고블린이 빛으로 변해 사라졌다.

그리고 강진석은 주변 아파트를 훑었다.

현재 강진석은 방화역에서 조금 떨어진 2단지 내 고블린들을 사냥하고 있었다.

그리고 단지 내 고블린을 사냥하며 수많은 생존자들을 감지할 수 있었다.

'구심점만 있으면 좋았을텐데.'

생각했던 것보다 2단지에는 생존자가 많았다.

한데 모이면 고블린들도 쉽사리 달려들지 못할 정도로.

강진석은 창문을 통해 자신을 바라보는 생존자들에게서 관심을 거두고 포인트를 확인했다.

[현재 보유 포인트 : 101만 2350]

2일 동안 열심히 사냥했다.

덕분에 현재 강진석의 포인트는 100만이 넘어간 상태였다.

'스킬도 많이 찍을 수 있겠어.'

원래 3일간 수급한 모든 포인트를 요새에 투자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생각이 바뀌었다.

50만 정도라 생각했기에 전부 투자할 생각이었지 2일 동안 100만이 모였는데 전부 요새에 투자할 수는 없었다.

그러기에는 너무나 아까웠다.

강진석은 다음 장소로 이동하며 스킬창을 열었다.

.

.

[스킬 '체력10'의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체력이 1 상승합니다.]

그리고 거침없이 스킬 '체력10'까지 습득한 강진석은 이어 정신력 라인 스킬을 습득하기 시작했다.

두번째로 정신력을 선택한 이유는 스킬 '감정 분석2' 때문이었다.

'이번에는 어떤 감정을 볼 수 있게 되려나?'

현재 스킬 '감정 분석'을 통해 볼 수 있게 된 감정은 놀람과 슬픔이었다.

스킬 '감정 분석2'에서는 어떤 감정을 볼 수 있을지 무척 궁금했다.

[스킬 '감정 분석2'를 습득하셨습니다.]

[스킬 '감정 분석2'의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습득과 동시에 강진석은 어떤 감정인지 알게 됐고 미소를 지었다.

1레벨은 분노였고 2레벨은 살의였다.

'좋네.'

붉은 반점이 있거나 기운이 붉은 것으로 악인을 구별할 수 있긴 했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일을 저질렀을 때에나 볼 수 있는 것이고 일을 저지르기 전에는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상관이 없어졌다.

살의를 볼 수 있게 됐기에.

강진석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이어 스킬 '정신력10'을 습득했다.

저벅!

그리고 강진석은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최대 레벨까지 올린 순간 추가로 나타난 메시지 때문이었다.

[축하합니다.]

[최초로 오롯이 존재하는 자(2)의 조건을 충족하셨습니다.]

[최초 보상을 획득합니다.]

[포인트가 50만 상승합니다.]

[혼돈의 구를 획득합니다.]

제53화

53.

메시지를 본 강진석은 침을 꿀꺽 삼켰다.

기다리고 기다렸던 '오롯이 존재하는 자2' 메시지였다.

강진석은 우선 조건을 확인했다.

1. 패시브 스킬 125개 최대 레벨 달성

2. 액티브 스킬 습득하지 않기

'125개였구나?'

오롯이 존재하는 자1과 조건 종류는 같았다.

다른 것은 스킬 개수뿐이었다.

'5배라서 포인트도 5배 준 건가.'

오롯이 존재하는 자2의 최초 보상은 2가지였다.

첫 번째는 50만 포인트였고.

두 번째는 '혼돈의 구'였다.

'혼돈의 구는 뭐지?'

강진석은 인벤토리에서 혼돈의 구를 꺼냈다.

그리고 혼돈의 구를 꺼낸 순간.

"...!"

혼돈의 구에 대한 정보가 머릿속에 떠올랐고 강진석은 눈을 번뜩였다.

스윽.

강진석은 혼돈의 구를 보았다.

혼돈의 구는 장비를 흡수해 형태와 기능을 저장할 수 있는 물품이었다.

무한정 저장이 가능한 것은 아니고 최대 10개까지만 저장이 가능했다.

그리고 종류는 상관없었다.

검이든 창이든 도끼든 전부 저장이 가능했다.

무기뿐만이 아니다.

갑옷, 투구, 각반 같은 방어구도 저장할 수 있었다.

다만 저장된 장비를 다시 꺼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흡수시키는 순간 끝이다.

그리고 저장 공간이 10개라고 심사숙고해서 좋은 것들로만 저장할 필요는 없다.

한 번 저장한다고 영영 가지고 가야 하는 게 아니다.

언제든 삭제가 가능했다.

'정말 좋은 물건인 것 같긴 한데....'

실제로 사용해 본 것은 아니지만 잠깐만 생각해도 쓰임새가 매우 좋은 물건 같았다.

그러나 혼돈의 구를 바라보는 강진석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기운을 주입해야 한다니....'

표정이 좋지 않은 이유는 사용 방법 때문이었다.

장비 저장은 물론 형태 변환 역시 기운을 주입해야 가능했다.

'진짜 기운 통제 먼저 익혀야 하나?'

강진석은 힘 라인 스킬 '기운 통제'를 떠올렸다.

델룬 장검도 그렇고 카르몬의 천막에서 얻었던 아티펙트도 그렇고 기운 주입을 요구하는 아티펙트들이 상당히 많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많이 볼 것 같았다.

그래서 스킬 '기운 통제'를 최대한 빨리 습득하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근데 만약 기운 통제랑 상관이 없으면....'

신경 쓰이는 부분이 하나 있기는 했다.

스킬 '기운 통제'와 기운 주입이 상관없을 경우였다.

기운 통제를 습득하면 기운을 주입할 수 있게 되리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강진석의 추측일 뿐이다.

실제로는 전혀 다른 것일 수 있다.

'...일단 등록부터 하자.'

이내 강진석은 기운 주입에 대한 생각을 지웠다.

'그 기능도 확인해야 하니까.'

현재 혼돈의 구는 강진석이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진정한 주인이 된 상태는 아니었다.

진정한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각인'을 해야 했다.

각인 방법은 단순했다.

혼돈의 구에 피를 흡수시키고 10분간 쥐고 있으면 된다.

강진석은 혼돈의 구를 잠시 내려놓고 인벤토리에서 단검을 하나 꺼냈다.

카르몬의 천막에서 얻은 단검으로 델룬 장검만큼이나 날카로운 단검이었다.

강진석은 단검으로 손가락에 살짝 상처를 냈다.

그러자 상처에서 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강진석은 바로 혼돈의 구에 피를 떨어트렸다.

툭!

피가 혼돈의 구에 닿았다.

스아악!

그와 동시에 혼돈의 구에 각종 문양이 나타났다.

그리고 강진석은 바로 혼돈의 구를 쥐었다.

그 순간 강진석은 혼돈의 구와 연결됨을 느낄 수 있었다.

혼돈의 구가 신체의 일부가 된 것 같은 참으로 기묘한 느낌이었다.

강진석은 혼돈의 구를 빤히 바라보며 각인이 끝나길 기다렸다.

스아앗....

얼마 뒤 문양이 사라졌고 각인이 끝났다는 것을 깨달은 강진석은 혼돈의 구를 앞쪽에 던졌다.

강진석이 갑자기 혼돈의 구를 던진 이유는 기능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저장, 변환 말고도 혼돈의 구에는 한 가지 기능이 더 있었다.

각인해야만 사용이 가능한 기능 '회수'였다.

'의지 발현이라는 게 생각만 하면 되는 걸까?'

저장과 변환은 기운을 주입해야 했다.

그러나 회수는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기운 주입이 아니었다.

의지를 발현하면 된다.

강진석은 인벤토리나 스킬창 등을 사용할 때처럼 혼돈의 구를 바라보며 돌아오라 생각했다.

바로 그때였다.

스앗!

혼돈의 구가 사라졌다.

그리고 강진석의 앞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맞네, 생각.'

예상했던 대로 의지 발현은 생각이었다.

강진석은 혼돈의 구를 집으며 생각했다.

'그래도 자주는 못 쓰겠어.'

방금 전 혼돈의 구를 회수하며 정신력이 소모됐다.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만약 회수에 별 힘이 들지 않으면 투척 무기로 사용할까 했는데 소모된 정신력을 보니 투척 무기로 사용하는 것은 힘들 것 같았다.

강진석은 다시 인벤토리에 혼돈의 구를 넣었다.

'나중에 보자.'

기운 주입을 해결할 때까지는 사용할 일이 없을 것 같았다.

이어 강진석은 포인트를 확인했다.

[현재 보유 포인트 : 131만 9950]

최초 보상으로 50만 포인트가 오른 덕분에 80만까지 떨어졌던 포인트가 다시 100만을 훌쩍 넘어간 상태였다.

'50만 정도만 있으면 되니까.'

요새에 투자할 포인트는 50만으로 정해둔 상태였다.

강진석은 바로 스킬을 습득하기 시작했다.

.

.

[스킬 '정신력11'의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정신력이 1 상승합니다.]

[현재 보유 포인트 : 53만 7950]

포인트는 순식간에 50만까지 떨어졌고 강진석은 스킬창을 닫았다.

그리고 정보창을 열었다.

힘 : 95(77+18)

민첩 : 91(75+16)

체력 : 101(83+18)

정신력 : 113(94+19)

이제는 정신력뿐만 아니라 체력 역시 세자릿수에 진입했다.

물론 정신력과 마찬가지로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대체 몇일지....'

강진석은 정보창을 닫았다.

그리고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얼마 뒤 목적지에 도착했고 강진석은 수많은 고블린과 생존자들을 감지할 수 있었다.

'여기도 생존자가 더 많네.'

2단지와 마찬가지로 서로 떨어져 있을 뿐 생존자들의 수가 고블린보다 많았다.

'...한데 모이는 날이 올까?'

강진석은 미래를 생각하며 고블린들에게 다가갔다.

* * *

로우포트 회의실.

회의실에는 로우포트 생존자들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전부 모여 있었다.

오순도순 섞여 있지는 않았다.

장윤석을 필두로 왼쪽에 한 무리가 있었고.

김지용을 필두로 오른쪽에 한 무리가 있었다.

그리고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무척이나 무거웠다.

분위기가 무거운 이유는 향후 계획에서 의견 충돌이 났기 때문이었다.

장윤석 쪽에 모인 이들은 계속해서 로우포트에 있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그리고 김지용 쪽에 모인 이들은 요새에 합류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장윤석이 김지용과 그 뒤에 서 있는 이들을 훑고는 입을 열었다.

"아시잖아요. 주변에 고블린 없는 거."

강진석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들 때문인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현재 방화역은 매우 안전했다.

방화역뿐만이 아니다.

치현초등학교, 4단지 등 근처 다른 곳에도 고블린이 보이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 굳이 요새에 갈 필요 있을까요?"

무척이나 안전한 상황이다.

그런데 굳이 요새에 갈 이유가 있을까?

장윤석의 뒤쪽에 서 있던 이들이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김지용이 입을 열었다.

"계속해서 이런 상황이 유지될까요?"

"...."

김지용의 물음에 장윤석은 아무런 답도 할 수 없었다.

장윤석 역시 지금의 안전이 영원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장윤석이 말이 없자 김지용이 이어 말했다.

"전 아니라고 봅니다. 그리고 만에 하나 유지된다고 해도 이곳의 주도권은 요새 쪽에 있겠죠. 지금이라도 합류해 도움이 되어야 나중에 함께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가봤자 노예처럼 일하게 될 뿐입니다. 먼저 간 사람들이 어떤 말을 하고 갔는지 아시잖아요?"

"실제로 어떻게 생활하는지 본 건 아니지 않습니까?"

"...."

장윤석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

김지용의 말대로 노예 생활은 추측일 뿐이다.

직접 본 게 아니다.

노예처럼 생활하지 않고 있을 수 있다.

솔직히 강진석의 성품을 생각하면 노예 생활이 아닐 확률이 매우 높았다.

그러나 장윤석은 그런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인정하는 순간 로우포트 인원들이 더욱 빠져나갈 것이기 때문이었다.

"후...."

장윤석이 말이 없자 김지용은 깊게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결단을 내린 듯한 얼굴로 물었다.

"그러면 가실 생각 없으신 거죠? 윤석 님이나 뒤쪽에 계신 분들은."

"...없다면 가실 생각이십니까?"

장윤석의 말에 김지용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답했다.

"네, 그럴 생각입니다. 한시라도 빨리 이야기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

김지용의 답에 장윤석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만약 입주를 거절당하면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설마 돌아오실 생각이신가요?"

장윤석의 말에 김지용이 피식 웃었다.

그리고는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답했다.

"어쩌긴요. 설마 여기가 윤석 님 건물이라 생각하시는 건 아니죠?"

김지용이 쏘아붙이자 그렇지 않아도 무거웠던 분위기가 한순간에 험악해졌다.

그렇게 험악해진 분위기 속 잠시 정적이 흘렀고.

"다들 가시죠."

김지용은 피식 웃고는 자신의 뒤에 있던 이들과 함께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후...."

이내 장윤석은 깊게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장윤석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뒤에 서 있던 이들에게 말했다.

"하하, 머리가 좀 아프네요. 향후 계획에 대한 회의는 1시간만 쉬고 다시 진행하도록 하죠!"

지금 분위기에서 향후 계획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여러모로 좋지 않았다.

장윤석은 회의를 잠시 중단하고 먼저 회의실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방으로 올라갔다.

방에 도착하자마자 장윤석은 인상을 구겼다.

'안 그래도 쓸모없는 새끼들이 감히.'

김지용의 직업은 대장장이였다.

그리고 나머지 이들 역시 대부분 연금술사, 조리사 같은 비전투 직업이었다.

12명 중 전투 직업을 가진 이는 고작 둘 뿐이었다.

즉, 떠난다고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급도 안되는 녀석들이 건방지게.'

다만 분위기를 망치고 떠난 것이 짜증 날 뿐이었다.

저벅저벅.

장윤석은 창가로 다가갔다.

그리고 요새로 향하는 김지용 무리를 보며 생각했다.

'하긴 쓸모없는 걸 알았으니 지금이라도 노예 생활을 자처하려는 거겠지.'

이대로 가다가는 자신들이 가장 먼저 버려질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실제로 장윤석은 누군가를 버려야 한다면 지금 떠난 이들을 생각하고 있긴 했다.

이내 요새 입구에 도착한 김지용 무리를 보며 장윤석은 생각했다.

'...죽여 버릴까?'

아무리 봐도 요새에 인원이 늘어나는 것을 막아야 할 것 같았다.

대부분 쓸모없는 이들이긴 했지만 머릿수만으로 영향력이 커지기 때문이었다.

'그래.'

고민 끝에 장윤석은 결심했다.

'기회 봐서 죽이자.'

김지용 무리를 전부 죽이기로.

제54화

54.

죽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대부분이 비전투 직업이었고 전투 직업을 가지고 있는 둘 또한 쉽게 죽일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장윤석이 죽이려 다짐한 것은 김지용 무리뿐만이 아니다.

이미 요새에 입주했거나 앞으로 요새에 입주하려는 이들도 죽일 생각이었다.

물론 대놓고 죽일 수는 없다.

강진석과의 격차가 너무 컸다.

죽이다가 걸리면 죽임을 당할 수 있다.

들키지 않게 조심히 설계해야 했다.

물론 설계 부분은 크게 걱정되지 않았다.

'어차피 자리 자주 비우니까.'

어딜 가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강진석은 요새를 자주 떠나 있었다.

요새 입주자나 입주하려는 이들을 죽일 기회는 자주 올 것이다.

결정을 내린 장윤석은 한결 편해진 표정으로 김지용 무리를 보며 생각했다.

'죽을 때 어떤 표정 지을지 궁금하네.'

* * *

스걱!

[부장 고블린을 처치하셨습니다.]

[포인트가 200 상승합니다.]

[전환율 : 70%]

부장 고블린이 죽으며 전환율 메시지가 나타났다.

'오, 70%!'

강진석은 은은히 미소를 지었다.

'이번에도 강화가 됐으면 좋겠는데.'

앞으로 30%만 더 올리면 100%였다.

부디 부산물 등장이 아니라 강화가 되길 바라며 강진석은 다음 장소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였다.

[요새에 방문자가 나타났습니다.]

메시지가 나타났고 강진석은 이동을 멈췄다.

'...근처 생존자들이 왔나?'

방문자 메시지는 처음 나타난 게 아니다.

이전에도 주변 아파트 단지에서 생존자들이 찾아온 적 있었다.

그러나 전부 강진석의 말을 듣고 생각해 봐야겠다며 돌아갔었다.

혹시 그들 중 누군가 다시 온 것일까?

아니면 새로운 생존자들이?

강진석은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바로 요새로 향했다.

이내 요새 근처에 도착한 강진석은 살짝 멈칫했다.

로우포트에서 강렬한 살의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장윤석?'

살의를 가진 이는 장윤석이었다.

'누구한테 살의를 느끼는 거지?'

강진석은 의아했다.

안전 구역에 있는 장윤석이 갑자기 왜 살의를 느낀단 말인가?

혹시 로우포트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주시해야겠는데.'

살의를 볼 수 있을 뿐이다.

그 대상까지는 알 수가 없었다.

어떤 이가 대상인지 모르지만 주시는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다시 한번 다짐했다.

'절대 들이면 안 되겠어.'

결코 요새에 들이지 않겠다고.

애초에 강진석은 장윤석이 입주를 요청해도 받아 줄 생각이 없었다.

살의 때문이 아니다.

일전에 장윤석은 고블린들을 요새로 유도했었다.

그것도 강진석이 방화역 탈환을 위해 자리를 비웠을 때였다.

만약 그때 한지윤이 없었다면?

요새는 고블린들에게 공격받았을 것이다.

물론 요새는 무척 단단하다.

고블린 몇 마리에게 공격받았다고 무너질 리는 없다.

그러나 그런 행동을 했다는 것 자체가 문제였다.

강진석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이동에 집중했다.

그리고 곧 요새의 방문자들을 볼 수 있었다.

한둘이 아니었다.

무려 12명이었다.

그리고 처음 보는 이들도 아니었다.

'로우포트 사람들이네?'

한 사람도 빠짐없이 전부 로우포트 생존자들이었다.

강진석은 장윤석을 떠올렸다.

'살의의 대상이....'

장윤석이 살의를 가진 이유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대상이 누구인지는 알 것 같았다.

이내 강진석이 입구에 도착했고.

"안녕하십니까! 김지용이라고 합니다."

김지용이 앞으로 나서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강진석 역시 꾸벅 고개 숙여 인사에 답했다.

그리고 김지용이 바로 본론을 꺼냈다.

"혹시 요새에 받아 주실 수 있을까요...?"

강진석은 김지용의 말에 앞주머니에 넣어두었던 메모지를 꺼내 글을 적고 내밀었다.

[그때 이야기 들으셨겠지만 요새에 입주하시려면 일을 하셔야 합니다.]

"네! 그건 당연합니다! 근데 그게...."

우렁차게 답을 시작한 김지용이 언제 그랬냐는 듯 말끝을 흐렸다.

그리고 난감한 표정으로 강진석의 눈치를 살폈다.

강진석은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분위기를 보아 문제가 있는 듯했다.

대체 무슨 문제일까?

"두 분만 전투 직업인데 괜찮을까요...?"

"...?"

강진석의 의아함은 답을 듣고 더욱 커졌다.

두 명만 전투 직업이라니?

[일단 들어가서 이야기하시죠.]

* * *

5층 회의실.

'대장장이라....'

강진석은 살짝 당황했다.

김지용의 직업은 '대장장이'였다.

그리고 김지용이 처음 눈치를 봤던 이유는 대장장이의 액티브 스킬 중에는 공격 스킬이 없기 때문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배울 수 없는 위치에 있었다.

'비전투 직업이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는데....'

김지용뿐만이 아니다.

12명 중 10명이 비전투 직업이었다.

김지용을 포함해 대장장이는 총 셋이었고.

연금술사가 넷, 조리사가 둘, 음유시인이 하나였다.

조리사와 음유시인이라니?

생각지도 못한 직업이었다.

강진석은 문득 든 생각에 키보드를 두들겼다.

[혹시 포인트를 얻는 방법이 사냥 말고 따로 있나요?]

전투 직업이 주어진 이들은 공격 스킬을 통해 나름 손쉽게 포인트 수급이 가능하다.

그러나 비전투 직업은 공격 스킬이 없다.

즉, 사냥이 힘든 편이었다.

그러나 꼭 사냥을 통해 포인트를 얻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최은지의 직업은 치유사였다.

그리고 최은지에게 치료받은 이가 사냥을 하면 최은지의 포인트가 오른다.

물론 항상 오르는 것은 아니었다.

똑같은 상황에서도 오르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

그래서 현재 최은지는 포인트가 오르는 메커니즘을 찾고 있었다.

그리고 치유사처럼 대장장이, 연금술사, 조리사, 음유시인 역시 직접 사냥을 하지 않아도 포인트를 올릴 수 있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없으면 나처럼 패시브 찍고 사냥해야겠지만....'

강진석도 마법사가 됐지만 액티브 스킬을 습득하지 않았다.

주문 영창을 할 수 없었기에.

그래서 패시브로 육체를 강화해 사냥을 하고 있었다.

만약 사냥 말고 포인트 올릴 방법이 없다면?

같은 길을 걷게 할 생각이었다.

그게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에.

"있긴 합니다."

김지용이 답했다.

"제작 스킬로 무기나 방어구를 만들면 오릅니다. 아직 만들어 본 적은 없지만요...."

답을 마친 김지용이 고개를 돌려 연금술사인 장유은을 보았다.

그러자 장유은이 답했다.

"연금술사들도 비슷해요. 포션이나 스크롤을 만들면 포인트가 오릅니다. 저도 만들어 본 적은 없구요...."

장유은은 고개를 돌려 조리사인 유진우를 보았다.

그리고 유진우가 답했다.

"저는 요리를 하면 오릅니다. 그렇게 많이 오르지는 않고 매번 오르지도 않더라구요."

유진우의 답을 들은 강진석은 자연스레 고개를 돌려 유일한 음유시인 최형규를 보았다.

강진석의 시선에 최형규는 난감한 표정으로 답했다.

"...저는 전혀 모르겠습니다."

[혹시 음유시인 첫 스킬이 어떻게 되나요?]

"용기의 목소리, 차분한 연주, 강렬한 연주. 3개 있습니다."

[효과는 나와 있나요?]

"다 추상적이에요. 용기를 부여한다, 정신이 차분해진다, 용맹해진다. 이런 식으로요."

[아직 안 배우신 거죠?]

"예, 포인트를 그냥 버리는 것 같아서...."

강진석은 최형규의 답을 듣고 생각했다.

'아무리 봐도 버프 같은데.'

어떤 효과인지는 모르겠지만 광역 버프로 추정됐다.

그리고 치유사와 포인트 오르는 방식이 비슷할 것 같았다.

강진석이 말이 없자 김지용이 다시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혹시 입주 가능할까요?"

생각에 잠겨 있던 강진석은 싱긋 웃으며 키보드를 두들겼다.

[물론입니다.]

강진석은 입주를 당연히 받아들일 생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할 일이 전투만 있는 게 아니다.

거절할 이유가 없다.

'대장간이랑 연금술 작업실도 만들어야겠네. 식당도 만들고.'

강진석은 아직 쓰임새를 찾지 못한 구역들을 떠올리며 물었다.

[혹시 가져오실 짐 있으신가요?]

"아뇨, 없습니다!"

"두고 오기 그래서 다 가져오긴 했습니다!"

생존자들의 답을 듣고 강진석은 키보드를 두들겼다.

[이제 설명드릴 게 있는데 혹시나 이 이야기를 듣고 생각이 바뀌시면 마음 편히 말씀해주세요.]

그리고 강진석은 현재 요새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한지윤을 포함한 기존 입주자들이 방화역 지하도에서 사냥을 하고 있다는 것은 물론 내일 침공이 발생할 것도 전부 전했다.

"헉, 침공이요?"

"몬스터들이 방화역을...."

역시나 침공 이야기에 모두들 웅성댔다.

강진석 분위기 살폈다.

"혹시 저희가 도울 일이 있을까요?"

"전투에 큰 도움은 되지 않더라도...."

"저희는 어딜 지키면 될까요?"

"말씀만 해주시면 지금 당장 출발하겠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이야기에 미소를 지었다.

생각이 바뀐 이는 없는 것 같았다.

다들 적극적이었다.

비전투 직업인 이들도 방어에 참여하려 했다.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기에 강진석은 확인차 물었다.

[이따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우선 생각 바뀌신 분이 있을까요?]

"...."

"...."

강진석의 질문에 답하는 이는 없었다.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았고 서로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럼 전부 입주하시는 걸로 알고 방 배정해드리겠습니다.]

[김지용 님은 601호, 황석훈 님은 602호....]

그리고 방을 배정하며 생각했다.

'앞으로도 이런 분들만 오면 참 좋을 것 같은데....'

* * *

한지윤은 주변을 경계하며 생각했다.

'잘하고 계시려나?'

현재 요새 입주자들은 2무리로 나뉘어 사냥을 하고 있었다.

무리를 나눈 이유는 성장 때문이었다.

다 같이 다니면 안전하겠지만 성장이 너무 느리다.

그래서 인원을 나눠 사냥을 하기로 했다.

'그래, 은형 씨가 있으니까.'

한지윤은 2조와 3조를 이끌고 있는 최은형을 떠올리고 걱정을 떨쳐냈다.

그리고 그 순간.

저벅!

한지윤은 미간을 찌푸리며 걸음을 멈췄다.

'하필.'

전방에 보이는 검은색 장막 때문이었다.

"돌아가죠."

고블린들의 영역이 분명했다.

포인트가 아무리 중요해도 영역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바로 그때였다.

장막에서 고블린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한지윤은 활짝 웃었다.

장막 안에서는 위험하지만 밖에서라면 손쉽게 사냥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정예 전투대장 말도넬이 등장했습니다.]

이어 나타난 메시지에 한지윤의 웃음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리고 한지윤이 다급히 외쳤다.

"도망쳐요!"

한지윤의 외침에 모두들 약속이라도 한 듯 왔던 길을 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도망치며 한지윤은 뒤를 힐끔 보았다.

다행히 말도넬은 추격해 오지 않았다.

한지윤은 말도넬을 보며 생각했다.

'잡을 수 있을까?'

주술사 고블린까지는 별 피해 없이 사냥이 가능했다.

그러나 정예 전투대장은 네임드 몬스터였다.

주술사 고블린과는 차원이 다른 존재였다.

'...도망치는 게 맞아.'

사냥이 가능할 것 같긴 했다.

그러나 쉽지는 않을 것이다.

누군가 죽을 수도 있다.

'근데 이렇게 가까이 있다고?'

문득 든 생각에 한지윤은 미간을 찌푸렸다.

방화역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혹시 내일 침공 때 정예 전투대장들도 공격을 오는 것일까?

'...그래, 진석 씨가 있으니까.'

한지윤은 강진석을 떠올리고 미간을 풀었다.

강진석과 함께라면 문제없이 공격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곧 갈림길에 도착한 한지윤은 이동을 멈췄다.

이동을 멈춘 이유는 다른 길로 갔던 2조와 3조가 돌아와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 무슨 일 있으셨어요?"

최은형이 다급히 달려온 이들을 보고 물었다.

"정예 전투대장이 있었어요. 고블린 수십 마리랑."

"그렇군요...."

한지윤의 답에 최은형이 걱정스런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최은형의 반응에 한지윤은 이상함을 느끼고 물었다.

"혹시 가셨던 곳에 문제 있었나요?"

"...네, 오크를 발견했습니다. 진석 님한테 보고하려고 귀환하던 중이었구요."

"...!"

한지윤은 놀란 얼굴로 최은형이 갔던 통로를 보았다.

'설마 오크들도 공격을 오는 거야?'

아무래도 침공 몬스터는 고블린과 거대 쥐뿐만이 아닌 것 같았다.

'...가능할까?'

한지윤은 걱정이 됐다.

오크는 고블린보다 훨씬 강했다.

강진석이 있다고 해도 오크들의 공격까지 막을 수 있을까 걱정이 됐다.

제55화

55.

'...그래, 가능하겠지. 메타르도 그냥 죽이셨는데.'

이내 든 생각에 한지윤은 걱정을 살짝 덜었다.

강진석은 방화역을 지배하고 있던 3부족장 메타르도 단숨에 죽였다.

그것도 상처 하나 없이.

일반 오크나 십부장 오크는 물론 네임드 오크가 나타나더라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바로 그때.

"지윤 씨?"

한지윤이 말이 없자 최은형이 의아한 목소리로 한지윤을 불렀다.

"아, 네."

최은형의 부름에 정신을 차린 한지윤은 멋쩍은 미소를 짓고는 이어 자신을 바라보는 입주자들에게 말했다.

"일단 귀환하겠습니다! 혹시 특이사항 있으신 분? 중독당하셨다거나."

"...."

"...."

한지윤의 말에 아무도 답을 하지 않았다.

"은형 씨, 뒤쪽 경계 부탁드릴게요."

특이사항이 없음을 확인한 한지윤은 최은형에게 후방 경계를 부탁하고 앞장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꼼꼼히 사냥한 덕분에 귀환하는 동안 개미 한 마리 마주치지 않았고 입주자들은 단 한 번의 전투 없이 무사히 방화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방화역에 도착한 한지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입구에 강진석이 있었다.

물론 강진석 때문에 놀란 것은 아니다.

한지윤이 놀란 것은 강진석과 함께 있는 이들 때문이었다.

로우포트 생존자 일부가 강진석 뒤에 서 있었다.

'설마 입주하신 건가?'

궁금하긴 했다.

입주를 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로 온 것인지.

그러나 질문할 수는 없었다.

로우포트 생존자들의 입주 여부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보고드릴 게 있습니다!"

한지윤은 강진석에게 다가가 말했다.

은은히 웃고 있던 강진석은 웃음을 지우고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바로 물어보실 줄 알았는데.'

이번에 입주를 한 김지용, 장유은 등은 한지윤과 인연이 있는 이들이었다.

당연히 김지용 등에 대해 물어볼 것이라 생각했는데 보고 이야기가 먼저 나왔다.

그것도 매우 진지한 얼굴과 목소리로.

대체 지하도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25분 거리에 검은 장막이 있었습니다. 고블린들의 영역으로 추정되구요! 정예 전투대장도 나타났습니다. 말도넬이라는 녀석이었는데 검이 아니라 창을 메고 있었어요. 그리고...."

한지윤은 말끝을 흐리며 최은형을 보았다.

강진석은 따라 최은형을 보았고 눈이 마주친 최은형이 보고를 이어 나갔다.

"저희는 오크들을 봤습니다. 네임드 오크는 보지 못했지만 숫자가 상당했고 위치는 개화역 쪽이었습니다."

"아무래도 내일 침공 때 네임드 고블린에 오크들까지 나타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

두 사람의 말을 듣고 강진석은 눈을 번뜩였다.

'네임드에다가 오크까지?'

첫 침공이었다.

더구나 근처에 있던 몬스터 수준이 워낙 낮아 침공도 큰 위험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웬만하면 입주자들에게 침공 방어를 맡기고 지켜볼 생각이었다.

입주자들을 성장시킬 기회였기에.

그런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렇게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입주자들은 분명 강해졌다.

가장 기운이 약한 장은서도 일반 고블린 둘, 셋은 잡을 수 있을 정도였다.

일반 오크도 한 마리는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네임드 고블린이 나타난다면?

오크들이 떼로 나타난다면?

절대 버티지 못한다.

'어쩔 수 없이 개입해야겠는데....'

물론 그런 상황이 온다고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강진석은 혼자서도 전부 잡을 자신이 있었다.

네임드 고블린이 나타나도, 오크들이 떼로 나타나도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생각을 마친 강진석은 메모지를 내밀었다.

한지윤은 메모지를 받으며 강진석의 표정을 살폈다.

표정에서 걱정이 조금도 보이지 않자 한지윤은 속으로 안도하며 메모지를 확인했다.

[알겠습니다. 근데 혹시 더 사냥하실 생각이신가요?]

"네, 보고드린 이후 다시 사냥을 갈까 했는데 혹시 시키실 일이 있으신 건가요?"

강진석은 한지윤의 말에 싱긋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다시 메모지를 내밀었다.

[침공이 얼마나 지속될지 모르니 이제부터 휴식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꼭 사냥 해야 하는 경우가 아니면 휴식 취하시는 게 어떠실까요?]

침공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사냥으로 포인트를 조금 수급하는 것보다 휴식을 취해 체력을 회복, 보존하는 게 나아 보였다.

"아, 네! 알겠습니다!"

한지윤은 강진석에게 답한 뒤 입주자들에게 메모지 내용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강진석은 문득 든 생각에 다시 메모지를 내밀었다.

[요새에 변화가 생길 예정인데 제가 하는 거니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 * *

"일단 물자부터 확보하는 걸로 하죠. 시간 흐를수록 물자 싸움 될 것 같으니."

"네! 좋은 생각이십니다!"

"알겠습니다!"

생존자들의 답에 장윤석은 흡족한 표정으로 이어 말했다.

"4단지, 3단지는 민호가 2팀, 3팀이랑 같이 가서 쓸어오고. 1팀이랑 4팀, 5팀은 저와 함께 7단지, 9단지로 갑니다. 각자 용무 해결하시고 20분 뒤에 집합하겠습니다."

장윤석의 말에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장윤석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향했다.

그그극! 스앗! 스앗!

그러나 곧 들려오는 소리에 장윤석은 회의실 문 앞에서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장윤석은 뒤로 돌아섰다.

그리고 다급히 창가로 다가가 소리의 근원지 '요새'를 보았다.

'...이게 무슨.'

장윤석은 인상을 구겼다.

요새가 변하고 있었다.

외벽 곳곳에 정체불명의 문양이 나타났다.

그뿐만이 아니다.

방화역 입구 외관이 변했다.

'경계 초소?'

전에는 지하철 입구에 외벽만 세워져 있었다면 지금은 경계 초소가 떠올랐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아무리 봐도 부정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그래서 더 불안했다.

요새가 좋게 변할수록 입지가 좁아질 것이기에.

바로 그때였다.

스아앗!

태백 빌딩은 물론 방화역 입구를 감싸는 반투명한 장막이 나타났다.

'저건 또 뭐야....'

* * *

.

.

[영역이 활성화됐습니다.]

[영역 내에서 치유력이 강해집니다.]

[영역 내에서 체력이 빠르게 회복됩니다.]

[자가 수복 개발까지 남은 시간 : 2시간 59분]

'후....'

메시지를 보며 강진석은 속으로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포인트를 확인했다.

[현재 보유 포인트 : 4500]

바닥에 가까워진 포인트를 보며 강진석은 생각했다.

'진짜 포인트 잡아먹는 괴물이네.'

많은 기능을 강화하고 개발한 게 아니다.

그럼에도 50만이 넘던 포인트가 순식간에 바닥났다.

물론 투자한 보람이 없지는 않았다.

몇 가지 기능을 강화하고 변경했을 뿐인데 요새는 훨씬 더 안전해졌다.

'모든 기능 개발하고 강화하면....'

강진석은 상상해 봤다.

만약 모든 기능을 개발하고 최대 한계까지 강화하면 어떻게 될까?

상상을 해 본 결과 죽을 때까지 문제가 없을 것 같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렇다고 모든 기능을 개발하고 강화할 생각은 없었다.

포인트가 너무 많이 들기 때문이었다.

다른 이들에게 포인트를 지원받을 수 있다면 모를까 요새 기능 강화나 개발에 필요한 포인트는 오롯이 강진석 혼자 감당해야 했다.

'차라리 스킬을 습득하는 게 낫지.'

강진석은 요새 기능 개발을 클릭했다.

그러자 개발할 수 있는 기능들이 주르륵 나타났다.

'그래도 몇몇 기능은 개발해야겠지만....'

강진석은 그 중 눈에 띄던 기능들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외벽 - 불 저항>

개발 시간 : 24시간

필요 포인트 : 100만

필요 물품 : 없음

확인과 동시에 강진석은 헛웃음을 내뱉었다.

기능 '외벽 - 불 저항'은 말 그대로 불에 대한 저항 능력을 강화하는 기능이었다.

필요 포인트는 무려 100만이었다.

문제는 100만 포인트가 기능을 '개발'하는 데에만 소모된다는 점이다.

기능 개발이 끝이 아니다.

강화도 있었다.

최대 레벨이 몇일지는 모르겠지만 0에서 최대 레벨까지 올리는데 얼마나 많은 포인트가 필요할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강화가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강화한다고 외벽에 바로 적용이 되는 게 아니다.

따로 부여를 해줘야 했다.

그리고 부여 범위만큼 또 포인트가 소모된다.

요새 전체에 부여를 한다면?

상상만으로 끔찍했다.

강진석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다음 기능을 확인했다.

<이동 게이트>

개발 시간 : 72시간

필요 포인트 : 100만

필요 물품 : ??? (조건 충족 시 공개됩니다.)

'이건 설치에 얼마 안 들었으면 좋겠는데....'

이동 게이트는 현재 강진석이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기능이었다.

현재 방화역은 공간 확장으로 넓어진 상태였다.

태백 빌딩에서 방화역으로 이동하는 데에는 시간이 좀 걸렸다.

그러나 이동 게이트를 설치한다면?

바로바로 이동이 가능해진다.

더구나 게이트 이용에 필요한 자원도 각자의 정신력이었다.

즉, 설치 후에는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물론 설치하기까지의 여정이 험난하기는 했다.

개발에 필요한 포인트만 100만이었다.

거기다 필요한 물품도 존재했다.

개발에도 이 정도인데 강화나 설치에는 얼마나 많은 자원이 필요할까?

상상을 하던 강진석은 요새 관리창을 닫았다.

'나중 이야기니까.'

지금 당장 생각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머나먼 이야기였다.

강진석은 시간을 확인했다.

침공까지 시간이 애매하게 남은 상태였다.

나가서 사냥을 하기에는 부족했고 가만히 있기에는 아까웠다.

'...상점창이나 확인하자.'

고민 끝에 강진석은 미처 보지 못한 상점창 물품들을 확인하기로 결정하고 상점창을 열었다.

* * *

공항시장역 근처 주택가.

창문을 통해 바깥 상황을 주시하던 김초홍은 침을 꿀꺽 삼켰다.

'갑자기 왜 역으로 들어가는 거지?'

고블린들이 20분 전부터 갑자기 공항시장역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항상 역에서 나오기만 했던 고블린들이 갑자기 왜 역으로 들어가는 것일까?

혹시 역 안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좋은 징조는 아닌 것 같은데....'

무슨 일인지는 알 수 없다.

예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했다.

좋은 일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바로 고블린들의 표정이었다.

고블린들의 표정에는 흥분이 가득했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 바로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위험해 보이는 흥분이었다.

그리고 한두 마리만 그런 게 아니라 역으로 들어간 모든 고블린이 흥분해 있었다.

"하...."

김초홍은 깊게 한숨을 내뱉었다.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하는 걸까...."

시험이라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시작된 지 벌써 6일째였다.

6일 동안 김초홍은 집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한계였다.

먹을거리가 전부 떨어졌다.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나가야 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밖으로 나가자니 흥분한 고블린들이 너무나 무서웠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 * *

띠띠!

알람이 울렸다.

한지윤은 바로 알람을 껐다.

그리고 침을 꿀꺽 삼킨 채 지하도 입구를 주시했다.

한지윤뿐만이 아니다.

강진석을 포함한 모든 이들이 지하도 입구를 바라보고 있었다.

입구를 바라보는 이유는 단순했다.

침공 시작 1분 전이었기 때문이었다.

강진석은 지하도 입구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얼마나 쳐들어오려나.'

제56화

56.

퀘스트 '방화역 수비'에 정확히 쓰여 있는 것은 침공 시작 시간뿐이었다.

침공 지속 시간이나 몬스터들의 종류, 개체수는 쓰여 있지 않았다.

그래서 더 궁금했다.

과연 얼마나 많은 몬스터들이 침공을 해올까?

'다른 입구로도 오겠지?'

지금 강진석이 대기하고 있는 1번 입구는 가장 큰 입구일 뿐 유일한 입구가 아니다.

방화역에는 총 4개의 지하도 입구가 존재했다.

1번 입구 말고도 다른 곳으로 공격을 해 올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방화역 침공이지 1번 입구 침공이 아니기에.

'두 곳이면 좋겠는데....'

두 곳까지는 괜찮다.

강진석이 한 곳을 막고 나머지 한 곳을 입주자들이 막으면 되니까.

그러나 세 곳부터는 힘들다.

그렇지 않아도 적은 인원을 나눠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한 곳도 제대로 방어하지 못할 수 있다.

그래서 강진석은 부디 두 곳이길 바랐다.

[침공이 시작됩니다.]

이내 1분이 지났고 침공의 시작을 알리는 메시지가 나타났다.

당연히 시작 메시지만 나타난 게 아니다.

수많은 메시지가 함께 나타났다.

[퀘스트 '지하도 청소'가 일시 정지됩니다.]

[첫 번째 웨이브가 시작됩니다.]

[남은 침공 웨이브 : 4회]

.

.

다행이라 해야 할까?

메시지에는 침공에 대한 정보가 쓰여 있었다.

총 5번의 몬스터 웨이브를 막아 내면 끝이었다.

이내 모든 정보를 확인한 강진석은 안도했다.

'다행이네, 두 곳이라.'

모든 입구로 공격해 오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침공 루트는 1번 입구와 3번 입구 두 곳이 끝이었다.

'여긴 내가 맡고 3번 입구를 맡기는 게 좋겠어.'

보통 입구가 좁을수록 방어가 수월하다.

최전선에서 진격해 오는 몬스터의 수가 적을 수밖에 없기에.

그리고 1번 입구는 매우 넓다.

얼마나 넓냐면 3번 입구보다 2배는 넓었다.

즉, 1번 입구 방어가 훨씬 더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강진석은 자신이 1번 입구를 맡기로 했다.

결정을 내린 강진석은 바로 메모지에 글을 적어 한지윤에게 건넸다.

[제가 1번 입구를 혼자 막을게요.]

[전부 3번 입구로 가주세요.]

"괜찮으시겠어요?"

메모를 확인한 한지윤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한지윤뿐만이 아니다.

뒤이어 메모를 확인한 이들 역시 걱정을 내뱉었다.

"혼자서요...?"

"그래도 몇 명은 보조를 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맞습니다. 몇 명 정도는...."

강진석은 입주자들의 걱정에 싱긋 웃었다.

걱정해 주는 것은 좋았다.

그러나 입주자들이 지금 걱정해야 하는 것은 강진석이 아니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솔직히 강진석은 조금도 걱정되지 않았다.

고블린 정예 전투대장들이 몰려온다고 해도 상관없다.

전부 잡을 자신이 있기에.

그리고 몰려오면 오히려 좋았다.

많은 포인트를 수급할 수 있을 것이기에.

바로 그때 최은형이 외쳤다.

"진석 님이 강하다고 하셔도 이건 아닙니다! 너무 위험하세요."

최은형은 다른 이들보다 훨씬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강진석은 최은형의 반응을 이해했다.

그도 그럴 것이 최은형은 보지 못했다.

강진석의 힘을.

다른 이들보다 과하게 걱정하는 게 당연했다.

"적어도 보조할 인원 다섯 아니, 10명은 남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어진 최은형의 말에 강진석은 살짝 당황했다.

'...너무 과하신데?'

걱정하는 것은 이해가 된다.

그런데 걱정의 크기가 너무 컸다.

'설마 이야기를 못 들으신 건가?'

문득 든 생각에 강진석은 설마 하는 표정으로 다른 입주자들을 보았다.

함께 한 시간이 적지 않았다.

그래서 당연히 이야기를 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그런데 혹시 이야기를 하지 않은 것일까?

바로 그때 한지윤이 최은형을 불렀다.

"은형 씨."

"네."

"진석 씨는 혼자서도 괜찮으실 거예요."

"예? 강하신 건 알지만 그래도 고블린 수백 마리가 나타나면...."

최은형은 한지윤의 반응에 차근히 설명을 시작했다.

그리고 설명을 하던 중 최은형은 이상함을 느끼고 말을 멈췄다.

상황을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고블린 '수백 마리'를 언급했다.

그런데 수백 마리 언급에도 사람들의 반응은 달라지지 않았다.

"수백 마리는 혼자서도 충분히 막으실 거예요."

"예? 그게 무슨...."

"방화역도 혼자서 탈환하셨어요. 수백 마리 정도는 가뿐하실 겁니다. 그래서 진석 씨도 혼자 막으신다고 하신 거구요."

"...잠깐만요. 여길 혼자서 탈환하셨다구요? 다 같이 탈환한 게 아니라?"

한지윤의 말에 최은형은 경악하며 반문했다.

최은형이 입주했을 때에는 이미 수많은 이들이 입주해 있었다.

당연히 다 같이 힘을 합쳐 고블린들을 몰아낸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혼자서 한 것이라니?

최은형은 최은지를 보았다.

눈이 마주친 최은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최은형은 깨달을 수 있었다.

'기여도가 높아서 그런 게 아니었구나....'

강진석은 요새의 절대자였다.

입주 여부는 물론 요새 구조 변경이나 강화 같은 권한이 전부 강진석에게 있었다.

탈환했을 때 기여도가 얼마나 높았기에 이렇게 강한 권력이 부여된 것일까 궁금했는데 이제야 이해가 됐다.

혼자서 탈환했는데 당연한 것이었다.

"...여유가 생기면 바로 합류하겠습니다!"

최은형이 멋쩍은 표정으로 외쳤다.

강진석은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한지윤을 필두로 모든 입주자들이 3번 입구로 떠났다.

그리고 강진석은 1번 입구를 통해 지하도로 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초감각에 고블린들이 감지됐다.

40마리였다.

구성은 일반 고블린 30마리, 부장 고블린 9마리, 주술사 고블린 1마리였다.

'이게 첫 번째 웨이브야?'

수가 예상보다 적었다.

'금방 끝나겠는데.'

웨이브는 총 5회였다.

첫 번째 웨이브 수준을 보니 별 피해 없이 쉽게 막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강진석 한결 편해진 표정으로 고블린들이 도착하길 기다렸다.

'근데....'

기다리던 중 강진석은 고개를 갸웃했다.

주술사 고블린에게서 이질적인 기운이 하나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강진석은 해당 기운에 집중했다.

그리고 주술사 고블린이 들고 있는 지팡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티펙트?'

지팡이에서 기운이 느껴진다는 것, 그것은 아티펙트를 의미했다.

어떤 아티펙트인지는 모르겠지만 예상치 못한 수확에 절로 웃음이 지어졌다.

이내 고블린 무리가 도착했다.

강진석은 주술사 고블린이 들고 있는 지팡이를 보았다.

한쪽 끝에 해골이 달려 있었다.

강진석은 바로 고블린들에게 달려들었다.

스걱! 스아앗!

스걱! 스아앗!

검을 휘두를 때마다 한 마리씩 죽었고 빛과 함께 시체가 사라졌다.

그렇게 순식간에 10마리를 죽인 강진석은 주술사 고블린의 반응에 의아함을 느꼈다.

'뭐지?'

주술사 고블린이 당황해하고 있었다.

'동족들 때문이 아닌 것 같은데.'

처음에는 당황한 이유가 동족들의 죽음 때문인 줄 알았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동족들의 죽음 때문이 아닌 것 같았다.

대체 무엇에 당황한 것일까?

바로 그때 주술사 고블린이 인상을 구겼다.

결단을 내린 듯한 분위기였다.

그리고 이어 주술사 고블린의 기운이 줄어들었다.

반대로 지팡이의 기운이 늘어났다.

강진석은 지팡이에 집중했다.

이내 지팡이에 달려 있던 해골의 입에서 붉은색 빛이 쏘아져 나왔다.

주시하고 있던 강진석은 가볍게 빛을 피해냈다.

쾅!

그리고 붉은 빛이 외벽에 작렬하며 폭발했다.

[요새 내구도 : 99.9%]

메시지를 본 강진석은 힐끔 폭발 지점을 확인했다.

요새 외벽에 작디작은 1cm도 되지 않는 그을음이 나타나 있었다.

'...3번 입구에도 있으면.'

강진석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급소에 직격당하는 게 아닌 이상 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크게 다칠 것은 확실했다.

강진석은 다시 주술사 고블린을 보았다.

주술사 고블린의 기운이 다시 줄어들고 있었고 지팡이의 기운이 늘어나고 있었다.

강진석은 바로 비행을 통해 거리를 좁혔다.

아무래도 먼저 주술사 고블린을 처치해야 할 것 같았다.

휙!

이내 주술사 고블린 앞에 도착한 강진석은 검을 휘둘렀다.

스걱! 스아앗!

주술사 고블린은 그대로 목이 날아갔고 빛과 함께 사라졌다.

물론 아티펙트인 해골 지팡이는 흡수되지 않았고 땅에 떨어졌다.

그러나 강진석은 지팡이를 신경 쓰지 않았다.

아직 고블린들이 남아 있었다.

강진석은 남은 고블린들에게 달려들었고 얼마 뒤 모든 고블린이 죽음을 맞이했다.

그렇게 첫 번째 웨이브를 막은 강진석은 해골 지팡이를 쥐었다.

그리고 고개를 갸웃했다.

정보가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강진석은 인벤토리에서 감정 스크롤을 하나 꺼냈다.

그리고 지팡이를 감정했다.

<하급 파괴 광선 지팡이>

1. 기운이 가득 찬 상태에서 주문 영창 시 '파괴 광선' 발동

2. 시체를 흡수해 기운 충전 가능

3. 구조물에 추가 피해

감정과 동시에 정보창이 나타났고 강진석은 미간을 찌푸렸다.

어떤 아티펙트일까 궁금했는데 공성 무기였다.

그리고 강진석은 주술사 고블린이 당황했던 이유도 알 수 있었다.

기운 충전을 위해 흡수해야 할 시체가 없어져 당황했던 것이 분명했다.

'3번 입구는....'

이어 강진석은 입주자들이 방어하러 간 3번 입구를 떠올렸다.

가온 팔찌 덕분에 강진석은 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입주자들에게는 시체 처리기가 없다.

즉, 3번 입구를 공격하는 몬스터들이 공성 무기를 가지고 있다면?

'갈 수도 없고.'

아직 웨이브가 끝나지 않았다.

괜히 갔다가 더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그래, 안전하게 막으라 말씀드렸으니.'

요새의 내구도가 깎여도 되니 안전하게 방어하라고 했다.

큰 문제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이내 초감각에 두 번째 무리가 감지됐다.

강진석은 메시지를 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갸웃했다.

'왜 안 나타나?'

두 번째 웨이브 시작 메시지가 보이지 않았다.

혹시 근처에 도착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기다릴 필요는 없겠지.'

강진석은 두 번째 무리를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뒤 두 번째 무리를 마주했다.

강진석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두 번째 무리는 첫 번째 무리보다 10마리가 늘어난 50마리였다.

구성은 일반 고블린 35마리, 부장 고블린 13마리, 주술사 고블린 2마리였다.

그리고 두 주술사 고블린 손에는 파괴 광선 지팡이가 들려 있었다.

물론 강진석이 미간을 찌푸린 것은 개체수나 파괴 광선 지팡이가 늘어났기 때문이 아니다.

여전히 메시지가 나타나지 않았다.

'...설마.'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그런 건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강진석은 부디 자신의 생각이 틀렸길 바라며 두 번째 무리에게 달려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번째 무리가 전멸했고 강진석은 메시지를 확인했다.

보이는 것은 처치 메시지, 포인트 상승 메시지뿐이었다.

강진석은 두 번째 무리가 왔던 방향으로 향했다.

그리고 얼마 뒤 세 번째 무리를 마주할 수 있었다.

주술사 고블린 3마리, 부장 고블린 15마리, 일반 고블린 42마리로 총 60마리였고 파괴 광선 지팡이는 2개였다.

그리고 이번에도 메시지가 나타나지 않았다.

강진석은 바로 고블린들에게 달려들었다.

얼마 뒤 모든 고블린이 죽음을 맞이했고 강진석은 메시지창을 확인했다.

"...!"

그리고 눈을 번뜩였다.

전과 달리 침공 관련 메시지가 나타났다.

[첫번째 웨이브가 끝났습니다.]

[30분 뒤 두번째 웨이브가 시작됩니다.]

메시지를 전부 확인한 강진석은 인상을 구겼다.

두 번째 무리를 마주했을 때 메시지가 나타나지 않아 의심했다.

첫 번째 웨이브가 한 무리가 아닌 여러 무리로 이루어진 것일 수 있다고.

메시지를 보니 생각했던 대로였다.

'이럴 때가 아니야.'

강진석은 뒤로 돌아섰다.

어서 3번 입구로 가 도와야 할 것 같았다.

제57화

57.

강진석은 요새로 달리며 생각했다.

'한 무리는 잘 막으시겠지만....'

3번 입구에 나타날 몬스터의 종류나 개체수는 모른다.

그러나 1번 입구와 큰 차이 나지 않을 것이다.

강진석은 입주자들의 수준을 안다.

한 무리 정도는 분명 잘 막아 낼 것이다.

문제는 두 번째, 세 번째다.

입주자들의 체력으로 연달아 벌어지는 대전투를 잘 치를 수 있을까?

강진석이 보기에 그럴 확률은 0에 가까웠다.

그리고 만에 하나 잘 막아낸다 해도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첫 번째 웨이브가 끝날 뿐이다.

두 번째 웨이브는?

세 번째, 네 번째 그리고 마지막 다섯 번째 웨이브는?

이번 침공을 큰 피해 없이 방어하기 위해서는 체력 안배가 필수다.

첫 번째 웨이브에 모든 체력을 쏟아붓게 해서는 안 된다.

강진석은 다시 한번 메시지를 확인했다.

[30분 뒤 두 번째 웨이브가 시작됩니다.]

'여유가 있어서 망정이지.'

다행히 두 번째 웨이브는 바로 시작되지 않았다.

30분의 여유가 주어졌다.

만약 바로 시작됐다면?

지금처럼 도우러 가지 못했을 것이다.

이내 요새에 도착한 강진석은 조금도 속도를 줄이지 않고 전력을 다해 3번 입구로 향했다.

* * *

"다들 너무 긴장은 하지 마시고요! 죽을 것 같거나 전투할 수 없을 것 같으면 요새 안쪽으로 와주세요."

한지윤이 외쳤다.

"네!"

"예! 알겠습니다!"

입주자들이 우렁차게 답했고 한지윤은 싱긋 웃으며 주다영과 장은서를 보았다.

"다영아, 은서 씨. 부탁해요."

한지윤의 말에 주다영과 장은서는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약속이라도 한 듯 거리를 벌리고 입을 열었다.

"하급 바람 결계."

"하급 물 결계."

정중앙을 기준으로 왼쪽에는 하급 바람 결계가, 오른쪽에는 하급 물 결계가 나타났다.

그렇게 입구 밖에 임시 안전 구역이 만들어졌고 한지윤은 결계 바로 앞에서 오크들의 진격을 막아줄 입주자들에게 말했다.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입니다. 아까 말씀드렸듯이 억지로 버티지 마세요."

"예, 무리하지 않겠습니다!"

"네, 걱정 마십쇼!"

바로 그때였다.

쿵... 쿵....

발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모든 입주자들이 입을 다물고 발소리가 들려오는 지하도 끝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쿵.... 쿵....

한지윤은 발소리에 집중하며 생각했다.

'고블린이 아닌데?'

고블린의 발소리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묵직했다.

한지윤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지금 상황에서 고블린이 아니라면 가장 유력한 몬스터는 '오크'였다.

그리고 곧 발소리의 주인공이 나타났다.

쿵! 쿵!

한지윤의 예상대로 발소리의 주인공은 오크였다.

오크들이 성큼성큼 발소리를 내며 다가오고 있었다.

"주변 탐지."

한지윤은 스킬 '주변 탐지'를 사용해 오크들의 숫자를 확인했다.

'30마리....'

구성은 일반 오크 27마리에 십부장 오크 3마리였다.

검, 도끼, 몽둥이 등 무기는 무척이나 다양했다.

구성을 파악한 한지윤은 생각에 잠겼다.

'첫 번째 웨이브는 할 만한 것 같은데....'

오크들은 강하다.

일반 오크도 부장 고블린보다 살짝 강한 편이었다.

그래도 현재 입주자들의 힘이라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두 번째부터는 좀 힘들겠는데....'

문제는 이번 웨이브가 끝이 아니라는 것.

두 번째 웨이브는 지금보다 많거나 혹은 더 강한 오크가 등장할 것이다.

'체력 안배를 좀 해야겠어.'

전력을 다해 전투 시간을 단축하는 것보다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체력을 보존하는 게 나아 보였다.

생각을 마친 한지윤은 입주자들에게 외쳤다.

"다음 웨이브도 있으니까. 체력 아껴주세요! 힘들다 싶으면 바로 교체하시구요!"

외침과 동시에 한지윤은 준비해 두었던 발판 위로 올라가며 시위를 당겼다.

아직 거리가 좀 있었다.

코앞에 도착하기 전 최대한 피해를 줄 생각이었다.

"저격."

스킬 '저격'을 시전 후 한지윤은 바로 시위를 놓았다.

푝!

그리고 화살은 성공적으로 목표했던 오크의 머리를 파고들었다.

[오크를 처치하셨습니다.]

[포인트가 300 상승합니다.]

그리고 머리가 뚫린 오크는 당연히 즉사했다.

한지윤은 메시지를 보며 흡족한 표정으로 다시 시위를 당겼다.

'...근데 저건 뭐지?'

십부장 오크 한 마리가 해골이 달린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처음 보는 물품이었다.

한지윤은 지팡이를 주시하며 일단 스킬 '저격'을 시전했다.

그리고 저격을 시전한 순간.

[스킬 '저격'의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저격의 레벨이 상승했다.

"...!"

한지윤은 눈을 번뜩였다.

스킬 레벨이 상승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스아악!

십부장 오크가 들고 있던 해골 지팡이가 빛났다.

스앗!

그리고 앞서 죽음을 맞이한 오크의 시체에 핏빛이 서리더니 사라졌다.

'흡수한 거야?'

상황을 보아 지팡이가 시체를 흡수한 것이 분명했다.

'...막아야 해.'

흡수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했다.

결코 좋은 일은 아닐 것이다.

한지윤은 십부장 오크를 조준하고 시위를 놓았다.

레벨이 높아졌기 때문일까?

조금 전보다 더욱 빠르게 화살이 날아갔다.

그러나 일반 오크가 아닌 십부장 오크는 화살을 인지했고 몸을 틀었다.

푹!

그로 인해 목표했던 머리가 아닌 어깨에 화살이 박혔다.

-취익!!

십부장 오크가 인상을 구기며 괴성을 내질렀다.

그걸로 끝이었다.

-취익!

이내 십부장 오크가 어깨에 박힌 화살을 뽑아내며 외쳤다.

그러자 오크들이 속도를 높였고 순식간에 결계 앞에 도착했다.

그렇게 결계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입주자들과 오크들이 맞붙기 시작했다.

한지윤은 다급히 시위를 당겼다.

그리고 고민했다.

지팡이로 정체불명의 일을 꾸미고 있는 십부장 오크를 노려야 할까?

아니면 코앞까지 다가온 오크들을 노려야 할까?

'일단 앞에 있는 녀석부터!'

오래 고민할 상황이 아니었다.

"저격."

한지윤은 결계 앞을 지키고 있는 입주자들과 전투를 벌이고 있는 오크를 향해 조준을 했다.

그리고 시위를 놓았다.

푝!

[오크를 처치하셨습니다.]

[포인트가 300 상승합니다.]

오크가 죽음을 맞이했다.

스아앗!

그리고 이번에도 핏빛이 서리더니 시체가 사라졌다.

그뿐만이 아니다.

최은형이 목을 벤 오크 역시 핏빛이 서리더니 사라졌다.

한지윤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지팡이를 든 십부장 오크를 보았다.

십부장 오크는 미소를 지은 채 지팡이를 앞으로 겨누고 있었다.

한지윤은 순간 불길함을 느꼈다.

-취익!!

그리고 그 순간 십부장 오크가 외쳤다.

스아악!

이어 지팡이에서 초록빛 덩어리가 뿜어져 나왔다.

초록빛 덩어리는 빨랐다.

한지윤이 어떻게 해야 하나 결정을 내리기도 전에 초록빛 덩어리는 결계에 도착했고.

쾅!

폭발했다.

쩌저적!

그리고 그와 동시에 결계가 파괴됐다.

파괴된 결계는 하급 바람 결계뿐만이 아니었다.

하급 물 결계 역시 폭발에 휘말렸고 그대로 산산조각 났다.

파괴된 것은 결계뿐이었다.

다친 입주자는 없었다.

그러나 안전 구역인 결계의 파괴는 입주자들의 심리에 영향을 끼쳤다.

입주자들이 당황했고 움직임이 느려졌다.

그리고 오크들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오크들이 맹렬히 입주자들을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입주자들은 오크들을 밀어내지 못했다.

계속해서 뒷걸음질 칠 수밖에 없었다.

한지윤은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말도 안 돼.'

충분히 막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실제로 그렇게 되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초록빛 덩어리 때문에 모든 계획이 어그러졌다.

"연막탄 던지겠습니다!"

바로 그때 최은형이 외쳤다.

최은형의 외침에 한지윤은 정신을 차렸고 이어 허공에 떠오른 회색 구슬을 볼 수 있었다.

펑!

이내 구슬이 폭발했고 새하얀 연기가 지상을 덮쳤다.

-취익!

그와 동시에 십부장 오크가 외쳤고 오크들이 물러나기 시작했다.

덕분에 입주자들은 안전하게 요새로 귀환할 수 있었다.

"...."

"...."

한 사람도 죽지 않았다.

다친 이도 없었다.

그럼에도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하기야 일방적으로 밀렸는데 분위기가 좋지 않은 게 당연했다.

한지윤 역시 너무나 푹 가라앉은 분위기에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그러나 계속해서 이러고 있을 수는 없다.

침공이 끝난 게 아니다.

지금도 입구 밖에는 20마리가 넘는 오크들이 남아 있었고 시간이 흐를수록 더 많은 오크들이 나타날 것이다.

"은형 씨 고마워요."

일단 한지윤은 최은형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최은형의 연막탄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무사히 후퇴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닙니다."

최은형은 싱긋 웃으며 답했다.

그리고 입구를 힐끔 보고 이어 말했다.

"근데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가요? 나가서 싸우기는 힘들 것 같은데."

"일단 제가 혼자 수를 좀 줄여볼게요."

한지윤은 입구 앞으로 향했다.

현재 3번 입구에는 보안 기능이 적용되어 있었다.

입구가 파괴되지 않는 이상 오크들은 요새로 들어올 수 없다.

반대로 요새 입주자인 한지윤에게는 보안 기능이 적용되지 않는다.

즉, 요새를 방패 삼아 일방적인 공격이 가능한 상태였다.

입구 앞에 도착한 한지윤은 밖을 보았다.

연기가 가라앉아 시야가 확보됐음에도 오크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한데 모여 경계를 하고 있을 뿐이었다.

'명령을 기다리는 건가?'

한지윤은 오크들의 반응에 의아해하며 시위를 당겼다.

"저격."

그리고 시위를 놓았다.

스앗!

화살이 바람을 가르며 날아갔다.

푝!

[오크를 처치하셨습니다.]

[포인트가 300 상승합니다.]

그리고 이내 한 오크의 머리에 화살이 박히며 메시지가 나타났다.

한지윤은 다시 시위를 당기며 생각했다.

'다 잡을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오크들을 전부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 혼자 성장하면....'

문제는 혼자 성장해서는 상황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이렇게 혼자 처리하는 게 맞는 것일까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의문이 든다고 공격을 멈출 수는 없었다.

한지윤 말고는 지금 상황에서 오크를 죽일 수 있는 이가 없었다.

최은형도 불가능하다.

한, 두 마리라면 모를까 저 많은 오크들을 상대로 근접 전투를 펼친다?

얼마 버티지 못하고 죽을 것이다.

바로 그때였다.

"어, 진석 님?"

누군가 외쳤고 한지윤은 고개를 돌렸다.

한지윤뿐만이 아니다.

모두가 고개를 돌렸다.

"...!"

"...!"

그리고 약속이라도 한 듯 강진석을 본 모두가 놀란 얼굴을 했다.

1번 입구를 방어하기로 한 강진석이 어찌 이곳에 온 것일까?

"진석 씨 1번 입구는...."

한지윤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그러자 강진석이 다가와 메모지를 내밀었다.

[막고 왔습니다. 상황이 어떻게 되죠?]

"일반 오크 27마리, 십부장 오크 3마리가 나타났었습니다."

한지윤이 설명을 시작했다.

설명을 들으며 강진석은 생각했다.

'여길 내가 왔어야 했네.'

당연히 1번 입구 난도가 더 높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3번 입구의 방어 난도가 훨씬 높았다.

만약 1번 입구를 입주자들이 맡았다면?

지금처럼 밀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폭발하는 초록빛 덩어리 때문에 진영이 무너져서 후퇴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이내 설명이 끝낸 한지윤은 미안한 마음에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그리고 강진석이 메모지를 내밀었다.

[일단 제가 정리하겠습니다. 드릴 말씀도 있구요.]

"아, 네."

강진석은 한지윤을 지나쳐 밖으로 나갔다.

-취익?

-취익!

오크들은 강진석의 등장에 의아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강진석은 곧장 오크들에게 달려들었다.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졌고.

이내 강진석과 오크들이 전투를 벌이기 시작했다.

한지윤은 강진석과 오크들의 전투를 보며 생각했다.

'...역시 차원이 다르시구나.'

솔직히 말해 전투라 할 수 없었다.

너무나 일방적이었다.

강진석이 검을 휘두를 때마다 오크 한 마리가 죽음을 맞이했다.

전투가 아니라 사냥 아니, 학살이라 봐야 했다.

"미친...."

생각에 잠겨 있던 한지윤은 귓가에 들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최은형이었다.

최은형은 입을 벌린 채 멍하니 강진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제58화

58.

아무래도 강진석의 일방적 학살에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하기야 직접 보는 건 처음이시니.'

최은형은 강진석의 힘을 직접 본 적이 없다.

듣기만 했을 뿐이다.

이미 보아 알고 있던 한지윤도 놀랐는데 최은형이 충격을 받는 것은 당연했다.

한지윤은 다시 강진석을 바라보았다.

'벌써....'

시간이 많이 흐른 게 아니다.

강진석이 전투에 돌입한 지 3분도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남은 오크가 몇 되지 않았다.

앞으로 10초면 전투가 끝날 것 같았다.

이내 마지막 십부장 오크가 죽음을 맞이하며 전투가 끝났다.

"응?"

그리고 이어진 상황에 한지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어디 가시는 거지?'

당연히 강진석이 돌아올 것이라 생각했다.

할 이야기가 있다고 했기에.

그러나 강진석은 돌아오지 않았다.

오크들이 왔던 방향으로 사라졌다.

'설마 다음 웨이브 처리하러 가신 건가?'

웨이브는 총 5번이다.

두 번째 웨이브를 처리하러 간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얼마 뒤 메시지가 나타났다.

[첫 번째 웨이브가 끝났습니다.]

[18분 뒤 두 번째 웨이브가 시작됩니다.]

"엇."

"어...?"

메시지를 본 입주자들이 당황스러운 목소리를 내뱉었다.

첫번째 웨이브는 진즉 끝났다.

그런데 왜 이제야 웨이브가 끝났다는 메시지가 나타난 것일까?

'설마....'

한지윤은 문득 든 생각에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진석 씨가 안쪽으로 가신 이유가....'

* * *

[첫 번째 웨이브가 끝났습니다.]

[18분 뒤 두 번째 웨이브가 시작됩니다.]

세 번째 오크 무리를 처치 후 나타난 메시지에 강진석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따로 시작되는 게 아니었구나?'

웨이브 시작 시간이 다르길 바랐다.

그러면 왔다 갔다 하면서 막을 수 있기에.

그러나 바람과 달리 두 번째 웨이브 시작 시간은 1분도 차이 나지 않았다.

'어떻게 할까.'

강진석은 입구로 귀환하며 생각했다.

아직 4번의 웨이브가 남아 있는 상태였다.

어찌해야 안전히 웨이브를 막을 수 있을까?

'끝까지 가서 쓸어버릴 수도 없고.'

처음에는 시작 지점에 가서 전부 쓸어버릴까 했다.

그런데 진입과 동시에 봉쇄가 되어 갇힐 수 있다는 생각에 제외했다.

'그냥 지금처럼 하는 수밖에 없나?'

아무리 봐도 이번처럼 하는 게 최선인 것 같았다.

'위치는 바꿔야겠지.'

앞으로 계속해서 1번 입구에는 고블린이 나타날 것이고 3번 입구에는 오크가 나타날 것이다.

조금 전 상황을 보니 입주자들에게 고블린을 맡기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이내 입구에 도착한 강진석은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입주자들의 분위기를 살폈다.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푹 가라앉아 있었다.

하기야 오크들에게 속절없이 밀려났는데 분위기가 좋지 않은 게 당연했다.

강진석은 메모지를 꺼냈다.

그리고 웨이브 구성과 추후 계획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네, 알겠습니다! 저희가 그럼 1번 입구로 가겠습니다!"

"1번 입구는 기필코 잘 지켜내겠습니다!"

고블린을 상대하게 됐기 때문일까?

이야기를 나누며 입주자들의 분위기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고 강진석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혹여 계속 축 처져 있으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이었다.

[그럼 바로 출발해주세요. 도착할 즘에 시작될 것 같네요.]

"네, 알겠습니다! 다들 출발하겠습니다!"

한지윤은 강진석의 말에 답하며 입주자들을 이끌고 1번 입구로 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1번 입구에 도착한 한지윤은 시간을 확인했다.

웨이브 시작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다.

"다영아, 은서 씨 결계 부탁해요."

한지윤은 바로 진형을 갖추기 시작했다.

입주자들은 한지윤의 지도하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진형을 갖췄고.

[두 번째 웨이브가 시작됩니다.]

[남은 침공 웨이브 : 3회]

웨이브가 시작됐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고블린 무리가 시야에 나타났다.

'이 정도면....'

고블린 무리의 구성은 일반 고블린 30마리, 부장 고블린 10마리, 정예 전투 고블린 8마리, 주술사 고블린 2마리로 총 50마리였다.

'어렵긴 해도 잡을 수 있어!'

결코 쉬운 구성은 아니다.

그러나 전혀 걱정되지 않았다.

오크 때보다 훨씬 마음이 편했다.

'근데 오크들도 구성이 변했을 텐데 괜찮으실까?'

강진석에게 첫 번째 웨이브 구성을 들었었다.

첫 번째 웨이브 때보다 난도가 올랐다.

3번 입구 역시 난도가 올랐을 것이다.

'...괜찮으시겠지.'

그러나 이내 떠오른 강진석과 오크 무리의 전투를 떠올린 한지윤은 걱정을 떨쳐냈다.

'우리 걱정이나 하자.'

강진석을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한지윤은 시위를 당기며 입을 열었다.

"저격."

* * *

강진석은 전방에 나타난 세 번째 오크 무리에게 다가가며 생각했다.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는데.'

첫 번째 웨이브는 세 번째 무리가 끝이었다.

강진석은 부디 두 번째 웨이브도 세 번째가 마지막이길 바라며 사냥을 시작했다.

세 번째 오크 무리는 일반 오크 50마리에 십부장 오크 5마리였다.

첫 번째 웨이브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한 구성이었다.

물론 강함이란 언제나 상대적인 것.

강진석에게는 그리 어려운 상대가 아니었다.

스걱!

이내 마지막 십부장 오크가 죽음을 맞이했고.

[두 번째 웨이브가 끝났습니다.]

[34분 뒤 세 번째 웨이브가 시작됩니다.]

그와 동시에 메시지가 나타났다.

"...!"

메시지를 본 강진석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바람대로 세 번째 무리가 마지막이라 놀란 것은 아니었다.

강진석이 놀란 이유는 생각지도 못한 메시지가 추가로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기여도에 따라 1차 보상을 획득합니다.]

[포인트가 5만 상승합니다.]

[요새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요새 포인트가 2만 상승합니다.]

[최초로 요새 포인트를 획득했습니다.]

[최초 보상을 획득합니다.]

[요새 포인트 티켓(1만) 5장을 획득합니다.]

1차 보상이라니?

요새 포인트라니?

'이게 무슨....'

강진석은 요새 관리창을 열었다.

그리고 알 수 있었다.

요새 포인트 또한 포인트였다.

대신 상점창, 스킬창에서는 사용이 불가능하고 오로지 요새 관리창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요새 전용 포인트였다.

강진석은 인벤토리에서 티켓을 한 장 꺼냈다.

그리고 티켓의 외형을 확인했다.

가운데에 10,000이라는 숫자가 쓰여 있었다.

외형 확인을 마친 강진석은 티켓을 찢었다.

[요새 포인트가 1만 상승합니다.]

그러자 메시지가 나타났고 강진석은 요새 포인트를 확인했다.

[현재 보유 요새 포인트 : 3만]

1차 보상 2만, 티켓 1만으로 총 3만이 되어 있었다.

강진석은 인벤토리에서 티켓 4개를 꺼내 찢으며 생각했다.

'1번 입구 보상도 포인트랑 요새 포인트겠지?'

3번 입구에만 1차 보상이 주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1번 입구도 두 번째 웨이브 방어 시 1차 보상이 주어질 것이고 보상은 포인트와 요새 포인트로 추정됐다.

'다른 분들은 티켓으로 지급되려나?'

강진석의 경우 요새를 보유 중이기에 요새 포인트로 받았다.

그러나 입주자들은 요새에 '입주' 중인 것이지 '보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즉, 요새 포인트가 직접적으로 주어지지 않고 '티켓'으로 주어질 확률이 높았다.

그리고 티켓은 양도가 가능했다.

'이래서였나....'

요새 기능 강화, 개발에는 정말 많은 포인트가 필요했다.

스킬과 비교가 불가능했다.

그래서 그림의 떡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많은 포인트를 요구했던 것이 이해가 됐다.

'근데 이걸 어떻게 말씀드려야 하나....'

강진석은 고민했다.

요새 포인트 티켓은 입주자들에게 쓸모가 없다.

요새에만 사용이 가능하기에.

달라고 하면 전부 줄 것이다.

그러나 그냥 달라고 하자니 강탈하는 느낌이었다.

지금 당장에야 문제가 없겠지만 시간이 흐르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처음부터 분위기를 잘 잡고 이야기를 잘해야 문제가 없을 것이다.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할까 고민하며 강진석은 1번 입구로 향했다.

얼마 뒤 1번 입구에 도착한 강진석은 고블린들과 전투를 벌이는 입주자들을 볼 수 있었다.

'두 번째 무리인가?'

많은 입주자들이 지친 기색을 보였다.

거기다 시간을 감안하면 두 번째 무리가 분명했다.

그러나 강진석은 바로 개입하지 않았다.

'위험한 것도 아니고 기여도에 따라 지급된다고 하니까.'

개입하면 분명 쉽게 막을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강진석이 개입해 끝낸다면?

1차 보상도 적어질 것이고 그만큼 성장이 둔화된다.

웨이브의 난도가 점점 상승하는 것을 고려하면 성장의 기회를 빼앗아선 안 된다.

물론 그렇다고 세 번째 무리까지 다 맡길 생각은 없었다.

마지막 웨이브라면 모를까 아직 웨이브는 많이 남아 있었다.

체력 보존을 위해 강진석은 세 번째 무리부터는 개입할 생각이었다.

'근데 균형이 안 맞네.'

전투를 지켜보며 강진석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입주자 중 원거리 공격을 할 수 있는 이가 많지 않았다.

'활이랑 화살 좀 구해야겠는데?'

원거리 공격이 부족한 이유는 무기의 부재 때문이었다.

'100% 활용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지금보다는 낫겠지.'

사냥꾼만 활을 사용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활을 쏘는 것은 전사, 마법사 등 직업 상관없이 가능했다.

단지 스킬이 없어 강한 파괴력을 내지 못할 뿐이다.

'이번 침공 끝나면 제작 부탁드려야겠다.'

현재 요새에는 김지용을 포함해 대장장이가 셋 있었다.

상점창에서 구매해도 되지만 대장장이들의 성장을 위해서는 제작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렇게 향후 계획에 대해 생각하던 사이 두 번째 고블린 무리가 전부 죽었다.

입주자들은 바로 자리에 앉아 휴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강진석은 남은 시간을 확인했다.

그리고 지하도 끝을 바라보며 휴식을 취하고 있는 한지윤에게 다가갔다.

"어? 진석 씨!"

한지윤은 놀란 얼굴로 외쳤고 강진석은 메모지를 내밀었다.

[세 번째 웨이브 시작까지 이제 20분 남았습니다.]

[휴식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남은 녀석들은 제가 마무리 짓겠습니다.]

"아, 네!"

한지윤의 답을 듣고 강진석은 바로 지하도 끝으로 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세 번째 무리를 마주할 수 있었고 바로 사냥을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메시지가 나타났다.

[두번째 웨이브가 끝났습니다.]

.

.

[요새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요새 포인트가 1만 상승합니다.]

메시지를 본 강진석은 싱긋 웃었다.

전부 잡은 게 아니라 그런지 보상이 줄었다.

아쉽지는 않았다.

보상이 줄은 만큼 입주자들의 보상이 늘어났을 것이기에.

요새의 미래를 생각하면 지금이 더 나았다.

강진석은 뒤로 돌아섰다.

그리고 입구로 돌아가며 생각했다.

'어떻게 말씀드려야 하나.'

보상으로 요새 포인트 티켓을 받았을 것이다.

어떻게 이야기를 꺼낼지 고민이 됐다.

"...?"

이내 입구에 도착한 강진석은 잠시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지윤과 최은형이 입주자들에게 무언가를 받고 있었다.

'...티켓?'

자세히 보니 티켓이었다.

왜 티켓을 모으고 있는 것일까?

강진석은 의아한 표정으로 다시 다가갔다.

"어, 진석 씨!"

한지윤이 강진석을 발견했고 활짝 웃으며 최은형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최은형이 들고 있던 티켓을 한지윤에게 건넸다.

강진석은 한지윤이 왜 티켓을 모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아니었기에 모른 척 가만히 있었다.

이내 한지윤이 다가왔고 티켓을 내밀었다.

"조금 전 보상으로 받은 요새 포인트 티켓이에요. 필요하실 것 같아서요! 그리고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제59화

59.

한지윤이 티켓을 모은 이유는 강진석의 예상대로였다.

강진석은 일단 티켓을 받으며 생각했다.

'감사하기는 한데 어떻게 모으신 거지?'

티켓을 모아준 것은 고마웠다.

그러나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었다.

입주자끼리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가였다.

혹시 강압적으로 모은 것일까?

'그 이야기를 하시려는 걸까.'

마지막에 한지윤은 할 말이 있다고 했다.

혹시 입주자들과 나눈 이야기를 전하려는 게 아닐까 싶었다.

우선 강진석은 티켓을 전부 찢었다.

그러자 무수히 많은 메시지가 나타났다.

[요새 포인트가 2000 상승합니다.]

[요새 포인트가 500 상승합니다.]

[요새 포인트가 1000 상승합니다.]

.

.

강진석은 메시지를 힐끔 확인하고 한지윤에게 메모지를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요새에 잘 쓰겠습니다.]

"아닙니다! 진석 씨가 저희에게 해주신 거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걸요! 그리고 이것 역시 저희를 위한 일이기도 하구요!"

한지윤은 활짝 웃으며 답했다.

"그리고 이따 또 티켓이 주어질지는 모르겠지만 주어진다면 전부 드리겠습니다!"

[감사히 쓰겠습니다. 근데 티켓 관련해서 드릴 말씀이 있는데 오래 걸릴 이야기 같아 침공 끝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아, 네!"

[그리고 하실 이야기가 있다고 하셨는데 어떤 이야기인가요?]

"그게...."

한지윤은 말끝을 흐렸다.

그리고 강진석의 눈치를 보며 이어 말했다.

"활과 화살이 더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활과 화살을 사달라는 말은 아닙니다! 지금은 제대로 쏠 수 있는 분들이 없어서 있어도 의미가 없기도 하구요!"

한지윤의 말을 듣고 강진석은 살짝 놀랐다.

그렇지 않아도 이야기하려 했던 주제였다.

강진석은 일단 한지윤의 말을 경청했다.

"...마침 직업이 대장장이신 분들이 있으니 그분들께 제작을 맡기면 좋을 것 같은데 혹시 대장간을 만드실 계획이 있으실까요?"

이내 길고 길었던 한지윤의 이야기가 끝났다.

그리고 강진석은 한지윤이 눈치를 살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대장간 때문이 확실했다.

강진석은 미소를 지으며 메모지를 내밀었다.

[알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대장간, 연금술 작업실, 식당을 만들려고 했거든요.]

[근데 하실 이야기가 혹시 대장간뿐이실까요?]

"한 가지 더 있긴 한데 지금 말씀드리기에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서...."

말끝을 흐린 한지윤이 입주자들의 눈치를 살폈다.

무슨 이야기이기에 눈치를 살피는 것일까?

"침공 끝나고 말씀드려도 될까요?"

[네, 알겠습니다.]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지금 상황에서 말하기 껄끄러운 내용일 수도 있기에.

강진석은 시간을 확인했다.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세 번째 웨이브 시작 시간이 다가와 있었다.

강진석은 한지윤과 입주자들에게 인사를 한 뒤 3번 입구로 향하며 요새 관리창을 열었다.

그리고 요새 포인트를 보며 생각했다.

'대장간은 어디에 만드는 게 좋으려나.'

* * *

개화역 2군단 부단장 알리온의 거처.

현재 알리온의 앞에는 오크 넷이 부복해 있었다.

알리온은 탁자 위에 있던 거대한 잔을 들었다.

그리고 잔에 들어 있던 술을 단숨에 들이마신 뒤 부복해 있는 오크들에게 말했다.

"다들 일어나시게."

알리온의 말에 오크들이 눈치를 살피며 일어났다.

그리고 알리온이 가장 왼쪽에 있던 마르키온에게 물었다.

"할 수 있겠나?"

"예, 물론입니다."

마르키온은 물음에 답하며 주먹을 들었다.

그리고 가슴을 퉁퉁 두 번 친 뒤 이어 말했다.

"차가운 뿌리 부족 녀석들의 전초기지를 완전히 박살 내고 오겠습니다."

마르키온의 답에 알리온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구석을 향해 손을 뻗었다.

스아앗!

그러자 구석에 있던 도끼가 두둥실 떠올라 알리온의 앞으로 날아왔다.

알리온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오른손으로 도끼를 집었다.

그러고는 도끼에 기운을 주입했다.

스아앗!

기운을 주입하자마자 도끼날에 붉은빛이 서렸다.

알리온의 앞에 서 있던 오크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알리온은 왼손으로 도끼날을 쓰다듬은 뒤 기운 주입을 멈췄다.

그러자 붉은빛이 사라졌고 알리온은 도끼를 내밀며 말했다.

"전초기지에 메라키오의 막내아들이 있다고 하더군. 메라키오의 핏줄답지 않게 2차 제약밖에 받지 못한 녀석이라 이게 있다면 자네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걸세."

"가, 감사합니다!"

마르키온은 한쪽 무릎을 꿇고 양손을 들어 도끼를 받았다.

도끼를 하사한 알리온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이제 가보게나."

"예, 부단장님. 좋은 소식으로 찾아뵙겠습니다."

마르키온은 꾸벅 숙여 인사하고는 거처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마르키온이 나가자 알리온은 언제 그랬냐는 듯 미소를 지우고 남은 세 오크를 보았다.

"카르몬에게서는 아직도 연락이 없나?"

"...예, 아무래도 당한 것 같습니다."

세 오크 중 가운데에 있던 빌리옴이 눈치를 살피며 답했다.

"...."

빌리옴의 답에 알리온은 인상을 구기며 생각했다.

'대체 누가 카르몬을....'

2차 제약을 받은 카르몬은 지정된 영역을 벗어나 원래 힘의 반도 내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러나 그것은 다른 이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서 카르몬의 죽음이 더더욱 믿기지 않았다.

'설마....'

문득 든 생각에 알리온은 눈을 번뜩였다.

'개화산에 3차 제약을 받은 존재가 있는 건가?'

만약 3차 제약을 받은 존재가 개화산에 있다면?

카르몬의 죽음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당연한 일이 된다.

2차 제약을 받은 존재와 3차 제약을 받은 존재의 격차는 매우 크기에.

'...조심히 조사해야겠어.'

* * *

강진석은 남은 정예 전투 고블린을 보며 생각했다.

'얼마나 주려나?'

남은 고블린은 10마리였다.

10마리만 잡으면 네 번째 웨이브가 끝난다.

그리고 네 번째 웨이브가 끝나면 2차 보상이 주어진다.

3번 입구에서는 7만 포인트와 요새 포인트 3만이 주어졌다.

과연 1번 입구는 얼마나 주어질까?

스걱!

이내 마지막 고블린이 죽었고 메시지가 나타났다.

[네 번째 웨이브가 끝났습니다.]

[19분 뒤 마지막 웨이브가 시작됩니다.]

.

.

[요새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요새 포인트가 2만 상승합니다.]

'4만에 2만이라....'

강진석은 싱긋 웃었다.

3번 입구와 비교하면 무척 적었지만 전혀 아쉽지 않았다.

아쉽기는커녕 매우 만족스러웠다.

강진석은 흡족한 표정으로 뒤로 돌아섰다.

그리고 입구로 향하며 생각했다.

'이번에는 얼마나 받으셨으려나?'

이전 1차 보상 때 입주자들에게 주어진 티켓은 3만 2000 포인트였다.

이번에는 더 늘었을 것이다.

얼마나 될지 무척 기대됐다.

이내 입구에 도착한 강진석은 티켓을 한 움큼 들고 있는 한지윤을 볼 수 있었다.

"여기 있습니다!"

한지윤은 활짝 웃으며 다가와 티켓을 내밀었다.

그리고 강진석은 바로 티켓을 받아 찢으며 입주자들의 상태를 확인했다.

'역시....'

얼굴에 다들 피로가 가득했다.

눕는 순간 바로 잠이 들 것 같은 얼굴들을 하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이제 한 번 남았으니 조금만 힘내주세요.]

"네, 마지막이니까요! 힘내 보겠습니다!"

"맞습니다!"

"다들 조금만 힘냅시다!"

한지윤의 외침을 시작으로 몇몇 입주자들이 외쳐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그럼 이따 뵙겠습니다.]

그리고 강진석은 메모지를 건넨 뒤 3번 입구로 향했다.

입구에 도착한 강진석은 지하도 끝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마지막 웨이브도 똑같을까?'

첫 번째 웨이브부터 네 번째 웨이브까지 전부 3개 무리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렇다고 확신할 수는 없었다.

마지막인 만큼 다를 가능성도 있었다.

이내 시간이 되었고.

[다섯 번째 웨이브가 시작됩니다.]

[퀘스트 '침공대장 마르키온'이 생성됐습니다.]

시작 메시지와 함께 퀘스트가 생성됐다.

'퀘스트?'

강진석은 바로 퀘스트창을 열었다.

그리고 퀘스트 '침공대장 마르키온'을 확인했다.

<침공대장 마르키온>

마르키온은 오크 부족 중 35번째로 규모가 큰 전쟁 바람 부족의 백부장이자 2군단 3침공대장이다.

.

.

알리온의 명을 받은 마르키온은 전력을 다해 요새를 파괴하려 한다.

마르키온을 막아 내라!

퀘스트 보상 : ???

퀘스트를 확인한 강진석은 알 수 있었다.

'역시 2군단 녀석들이었구나.'

혹시나 다른 오크들일까 했는데 아니었다.

개화역에 자리 잡은 2군단 오크들이 맞았다.

강진석은 퀘스트창을 닫았다.

'슬슬 가볼까.'

그리고 마중을 위해 이동을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초감각에 기운이 감지됐다.

한, 둘이 아니었다.

'30, 40....'

계속해서 늘어났다.

저벅!

이내 강진석이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입가에서 미소가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미소가 사라진 이유는 무척 강렬한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마르키온?'

아무리 봐도 지금 상황에서 이 정도로 강렬한 기운은 마르키온뿐이었다.

'설마 전력을 다한다는 게....'

강진석은 인상을 구겼다.

퀘스트 내용 중 전력을 다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처음에는 의례적으로 쓰여있는 말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이런....'

강진석은 다시 전력을 다해 달리며 생각했다.

'별일 없어야 할 텐데.'

직위는 모르겠지만 1번 입구에도 네임드 고블린이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마르키온과 마찬가지로 네임드 고블린 역시 전력을 다한다면?

지금 입주자들의 상태로 네임드 고블린을 죽일 수 있을까?

전투대장 정도라면 가능하다.

입주자들이 지쳐 있긴 했지만 전력을 다하면 죽일 수 있다.

그러나 죽이기 위해서는 입주자들도 여럿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즉, 입주자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한시라도 빨리 마르키온을 정리하고 가야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강진석은 오크 무리를 마주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가장 뒤쪽에 있는 마르키온도 볼 수 있었다.

마르키온은 강진석의 등장에 당황스러운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물론 강진석은 신경 쓰지 않았다.

스걱!

강진석은 최소한의 동선으로 검을 휘두르며 오크들을 죽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20마리 정도를 죽였을 때.

-취익!

비음 섞인 괴성과 함께 마르키온이 움직였다.

강진석은 마르키온을 힐끔 보았다.

마르키온은 도끼를 쥔 채 달려오고 있었는데 도끼날에 강렬한 붉은빛이 서려 있었다.

아티펙트가 분명했다.

마르키온의 상태를 확인한 강진석은 다시 주변 오크들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렇게 다섯 정도를 더 죽였을 때 마르키온이 도착했고 도끼를 휘둘렀다.

앞서 죽은 오크들과 달리 확실히 속도가 빨랐다.

물론 오크들과 비교했을 때 빠르다는 것이지 강진석에게는 느렸다.

애초에 천부장이었던 카르몬의 공격도 쉽게 피한 강진석에게 백부장 마르키온의 공격을 피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강진석은 최소한의 간극으로 도끼를 피해내며 마르키온의 목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스걱!

당연하게도 마르키온은 피하지 못했고.

스아앗!

빛과 함께 사라졌다.

그리고 이어 메시지가 나타났다.

[퀘스트 '침공대장 마르키온'을 완료하셨습니다.]

[포인트가 3만 상승합니다.]

[요새 포인트가 2만 상승합니다.]

강진석은 메시지를 보며 허공에서 떨어지기 시작한 도끼를 집어 바로 인벤토리에 넣었다.

어떤 기능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했지만 확인할 때가 아니었다.

아직 남아 있는 오크가 수두룩했다.

강진석은 남은 오크들을 향해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제60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