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당근을 캐다.
16화. 당근을 캐다.
"가격이 올랐다고?"
"그렇다냥!"
"얼만데?"
"0.07...탑코인이다냥!"
테오는 인간들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소심한 성격은 어쩔 수 없었다.
눈치를 보는 테오의 모습이 헌터들에게는 고양이 보정 필터로 측은함으로 바뀌었고 마력의 방울토마토 가격이 오른 것을 헌터들은 쉽게 수긍했다.
'가격을 올릴만하지.'
'저번에 팔 때도 싸게 팔아서 표정이 좋지 못했던 거야.'
'저 멍한 표정을 봐. 분명 손해를 보고 있을 거야.'
'저 정도면 합리적인 가격일 거야.'
테오의 어리숙한 모습과 종족 특성이 오히려 헌터들에게 호감과 신뢰를 줬다.
"좋아. 200개 사지."
김동식이 14탑코인을 내밀며 말했다. 원래 계획은 100개만 살 생각이었지만, 탑에 들어갈 때 와이프도 다가와 조용히 자신의 것도 부탁했다.
'여보, 딸, 나만 믿어!'
김동식이 지금 가진 돈은 200탑코인. 마력의 방울토마토 1000개도 살 수 있는 금액이었다.
마력의 방울토마토 유통기한이 30일 이기에 이 정도지 유통기한이 없었다면 아내와 딸을 위해 전부 샀을 김동식이다. 물론 다른 헌터들의 생각도 다르지 않았다.
"어?! 난 500개."
"난 200개!"
"나도 400개!"
김동식이 선수를 치자 제시카와 다른 헌터들도 빠르게 돈을 내며 자신이 구매할 수량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완판이다냥. 오늘 가져온 마력의 방울토마토 1500개 다 팔렸다냥!"
마지막 400개를 부른 헌터는 250개밖에 살 수 없었다.
"다음에는 언제 올 거지?"
김동식의 물음에 헌터들의 이목이 테오에게 쏠렸다. 다음에도 거래하고 싶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에 거래를 못 한 헌터들은 특히 더 집중했다. 이번에 못 샀으니 다음에는 꼭 사야 한다.
"다음에도 여기서 기다릴 거냥?"
"그래."
"그럼 10일 정도 후가 될 거다냥."
세준에게 들키기 전에 중견 유랑 상인이 되기 위해서는 쉴 틈이 없었다.
"알았다. 그럼 10일 후에 보지."
리더 김동식의 말이 끝나자 몇몇 여성 헌터들이 다가왔다.
"고양아, 같이 사진 찍어도 돼?"
"내 이름은 고양이가 아니고 테오다냥."
"아. 이름이 테오구나. 테오야 같이 사진 찍어도 돼? 찍으면 이거 줄게."
여성 헌터들이 물컹한 봉지를 내밀었다.
"그게 뭐다냥?"
"츄르라는 건데 이거 이렇게 까서 핥아먹는 거야."
"그런 거냥? 좋은 냄새가 난다냥."
그렇게 테오는 여성 헌터들에게 사진을 찍어주고 츄르를 받을 수 있었다.
***
조난 149일 차.
"흥흥흥."
오늘도 세준은 아침을 먹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방울토마토를 수확하고 있었다.
[잘 익은 마력의 방울토마토를 수확했습니다.]
[직업 경험치가 아주 미세하게 상승합니다.]
[수확하기 Lv. 2의 숙련도가 아주 미세하게 상승합니다.]
[경험치 10을 획득했습니다.]
...
..
.
쏴아아.
백토끼들의 농작물에 물 주는 소리와
뺙!
뾱!
흑토끼의 벽치기 소리가 세준의 콧노래와 함께 동굴의 고요를 밀어냈다.
그때
왱왱.
낯선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응?"
삐익?
뺘아"
뺙?
세준뿐만 아니아 다른 토끼들도 생소한 소리에 의아해하며 소리가 나는 곳을 바라봤다.
며칠 전부터 두문불출하고 있어 걱정하고 있던 독꿀벌의 벌집. 그곳에서 엄지손가락만 한 벌 10마리가 벌집 주변을 맴돌며 날고 있었다.
[새끼 독꿀벌]
"새끼를 기르고 있었구나."
세준이 그제야 독꿀벌이 왜 집에서 나오지 않았는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잠시 후
윙윙.
독꿀벌도 벌집에서 나왔다. 이전과 크기는 큰 차이가 없었지만, 몸이 좀 더 화려해지고 배가 통통해졌다.
그리고
[여왕 독꿀벌]
이름이 바뀌어 있었다.
윙윙.
왱왱.
여왕 독꿀벌이 세준의 곁으로 날아가자 새끼 독꿀벌들도 여왕을 호위하기 위해 따라갔다.
하지만 새끼 독꿀벌들의 목적은 자신의 여왕을 보호하는 것.
파칭!
새끼 독꿀벌들은 세준을 보자 독침을 꺼내 들었다.
"어?!"
삐익?!
뺙?!
새끼 독꿀벌들의 행동에 세준과 토끼들이 당황했을 때
윙!윙!
여왕 독꿀벌이 멈춰서서 강한 날갯짓을 하며 새끼 독꿀벌들을 혼내기 시작했다.
다행히 여왕의 교육에 새끼 독꿀벌들은 세준이 적이 아님을 알고 독침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부비부비.
여왕 독꿀벌이 세준에게 자신의 몸을 비비며 친근감을 표시하고는 꿀을 빨기 시작하자
왱왱.
부비비비.
새끼 독꿀벌들도 여왕 독꿀벌을 따라 세준에게 몸을 비비며 친근감을 표시하고는 여왕을 따라 방울토마토꽃에서 꿀을 빨았다
그렇게 세준의 동굴 가족이 늘어났다.
***
다음 날 아침.
"읏차!"
세준이 힘차게 일어나 날짜를 기록하는 동굴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슥.
획 하나를 추가해 3번째 줄을 완성했다.
正正正正正 正正正正正
正正正正正 正正正正正
正正正正正 正正正正正
"벌써 150일이나 지났네."
세준이 벽에 그어진 시간을 새삼스럽게 바라봤다. 어제보다 획 하나가 추가된 것뿐이지만, 느낌이 달랐다.
예전에는 획 하나가 추가될 때마다 막막했다면 요즘은 획 하나를 그을 때마다 이곳에서 하루를 살아낸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무럭무럭 자라나는 농작물들과 외롭지 않게 해주는 토끼와 벌 덕분이었다. 탑의 관리자도 조금은 도움이 됐다.
"박세준, 잘 살고 있다."
세준이 자신에게 다짐하듯이 말했다. 자기 위안만은 아니었다. 세준은 진짜 잘살고 있었다. 손안에 든 48탑코인이 그걸 증명했다.
동굴에 갇힌 악조건 속에서도 돈을 벌었다. 밖에 나가면 4800만 원에 해당하는 금액. 세준이 회사를 다니며 1년 동안 일해서 번 돈보다 더 많았다.
이 돈을 며칠 만에 벌었고 며칠 안에 또 48탑코인이 모일 거다. 이곳에 오고나서 상황은 하루하루 점점 좋아지고 있었다.
'살다 보면 뭔가 돌파구가 생기겠지.'
그렇게 세준이 자신의 각오를 다지고 있을 때
왱왱.
부지런한 새끼 독꿀벌들이 일어나 세준에게 다가왔다.
"잘 잤어?"
부비부비.
통통한 몸을 비비는 것으로 새끼 독꿀벌들이 대답을 대신했다. 세준의 얼굴에 비비지 못하는 녀석들은 세준의 손에 자신의 몸을 비볐다.
"귀여운 것들."
새끼 독꿀벌들은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손가락 세 개 굵기 정도로 자라났다. 꿀만 먹고 어떻게 저렇게 클 수 있는지 궁금할 정도.
왱왱.
새끼 독꿀벌들은 세준에게 출근 도장을 찍고 꿀을 빨러 갔다. 여왕 독꿀벌은 어제 새끼들이 꿀을 잘 빠는 것을 확인하고는 벌집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다시 알을 낳는 거 같았다.
잠시 후
삐익!
뺘아!
뺙!
토끼들이 굴에서 나오며 세준에게 힘찬 아침 인사를 했다.
"그래. 안녕!"
하루가 또 활기차게 시작됐다.
오늘 세준에게는 오후에 방울토마토 수확 말고도 일 하나가 추가됐다.
그건 흑토끼에게 수영 가르치기.
며칠 전부터 혼자 피라니아를 사냥할 수 있게 된 흑토끼는 어제 레벨업을 한 번 더 하고는 기고만장해져 혼자 연못으로 걸어 들어갔다가 꼬로록 물에 가라앉아 죽을 뻔했다.
흑토끼는 자신이 맥주병이라는 것을 몰랐다.
세준이 너무 조용한 것이 이상해 연못에 가는 것이 조금만 늦었다면 흑토끼는 피라니아에게 뜯어 먹힐 뻔했다.
그래서 세준은 흑토끼에게 수영을 가르치기로 했다.
그렇게 점심을 먹고 흑토끼는 귀에 세준이 블루문을 대비해 만든 파 이파리 귀마개를 꽂고 작은 연못 앞에 섰다.
"준비됐어?"
뺙!
힘차게 대답하는 흑토끼.
"자 그럼 일단 발차기부터 해보자."
세준이 흑토끼의 몸을 살포시 잡고 물에 절반 정도 담갔다.
"자 몸 일자로 피고 발차기."
뺙!
첨벙첨벙.
세준의 지시에 흑토끼가 열심히 발로 물을 찼다.
"야! 다 튀잖아. 물속에서 차야지."
뺙!
세준의 말에 흑토끼가 바로 자신의 발차기를 고쳤다.
그리고 세준이 스르륵 놓자
파다닥.
빠르게 나아가는 흑토끼. 금세 작은 연못의 끝에 닿았다.
"잘하네. 이제 숨쉬기해 보자."
잠시 후
참방참방.
흑토끼는 세준의 수영 클래스를 마스터하고 작은 연못 안을 유유히 돌아다녔다.
하루 만에 수영을 마스터한 흑토끼는 다음날 수영을 하면서 피라니아를 사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6번째 블루문이 다가왔다.
토끼들은 일찌감치 굴속에 들어가 입구를 닫았고 독꿀벌들도 벌집으로 들어가 입구를 막았다.
작은 몬스터들은 이런 식으로 블루문을 피하는 것 같았다.
[탑의 관리자가 이번에 블루문의 기운이 담긴 농작물이 생기면 하나만 달라고 부탁합니다.]
"알았어."
요즘 협박도 없고 말투도 예전처럼 무례하지 않기에 세준은 흔쾌히 허락했다.
그리고 조난 152일 차로 날짜가 바뀌자 블루문이 시작되며 동굴의 천장 구멍으로 푸른빛이 내려왔다.
몬스터의 포효를 대비해 귀마개와 방울토마토를 준비한 세준이 숨을 죽이고 동굴 구석에서 농작물에 변화가 있는지 지켜봤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스스스.
방울토마토 나무 5그루에 푸른빛이 맺히기 시작했다. 5개의 블루문의 기운이 담긴 마력의 방울토마토가 완성되고 있었다.
"와."
세준이 신비하고 아름다운 광경을 넋을 잃고 바라봤다. 그리고 블루문의 기운이 방울토마토에 담기기 시작할 때쯤
스스스.
당근 줄기 하나에 푸른빛이 맺혔다.
"어?! 당근은 아직 캘 때가 아직 많이 남았는데?"
며칠 전에 당근 하나를 캐봤을 때도 당근은 아직 손가락만 한 크기였다.
"있다가 캐봐야지."
세준은 블루문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다 까무룩 잠들었다.
***
찰싹!찰싹!
세준은 오랜만에 남편 토끼의 찰진 싸대기에 깨어났다.
"으음."
세준이 눈을 뜨자
삐익!
뺘아!
뺙!
토끼들은 난리가 난 상황이었다.
"왜 그래?"
눈을 비비는 세준을 흑토끼가 재촉했다.
"잠깐만 날짜만 적고."
세준이 동굴 벽에 피라니아 가시로 선을 하나 그으며 조난 152일 차 아침을 시작했다.
그리고 토끼들이 이끄는 곳으로 갔다.
"아!"
그곳에는 흙 위로 수줍게 푸른색 윗동을 보이는 당근이 있었다.
삐익!
뺘악!
뺙!
토끼들이 어서 당근을 캐라고 침을 흘리며 재촉했다. 빨리 먹어보고 싶은 모양이었다.
"알았어."
쑥.
세준이 당근 줄기를 잡고 위로 잡아당기자 푸른색 당근은 쉽게 뽑혀 나왔다. 당근은 텀블러 굵기 정도로 두꺼웠다.
삐익!
뺘악!
뺙!
거대한 당근 사이즈에 흥분하는 토끼들.
[블루문의 기운이 담긴 민첩의 당근을 수확하셨습니다.]
[직업 경험치가 크게 상승합니다.]
[수확하기 Lv. 2의 숙련도가 크게 상승합니다.]
[경험치 70을 획득했습니다.]
"민첩의 당근?"
세준이 손에 들린 당근을 확인했다.
[블루문의 기운이 담긴 민첩의 당근]
탑 안에서 자란 당근으로 영양을 충분히 섭취해 맛있습니다.
거기에 블루문의 기운을 담아 맛이 더욱 좋아졌습니다.
섭취 시 민첩이 영구적으로 0.05 상승합니다.
재배자 : 탑농부 박세준
유통기한 : 45일
등급 : E+
등급이 E+. 좋은 등급의 농작물을 수확한 덕분에 경험치가 50이 아닌 70을 획득한 것 같았다.
"자. 맛있게 먹어."
세준이 토끼들에게 당근을 양보했다.
맛이 궁금했지만, 나중을 노리기로 했다. 농사를 도와준 토끼들은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었다.
오도독.
삑!!!
뺘!!!
뺙!!!
토끼들이 당근을 맛보고는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톡.톡.
그사이 세준은 블루문의 기운이 담긴 마력의 방울토마토를 수확했다.
5개의 푸른색 방울토마토.
"자. 가져가."
세준이 푸른색 방울토마토 하나를 탑의 관리자에게 넘겼다.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이전에 있던 퀘스트가 완료된 모양이었다.
[탑의 관리자가 고마워합니다.]
"고마우면 나중에 또 스킬 줘."
[탑의 관리자가 조만간 줄 수 있을 거 같다고 합니다.]
"조만간 줄 수 있는 건 뭐지?"
세준이 의아해하며 수확한 푸른색 방울토마토 하나를 입에 넣고 깨물었다.
뽀드득.
"크윽."
터진다. 터져! 새콤달콤한 맛이 세준의 입에 폭죽을 터트렸다.
[블루문의 기운이 담긴 마력의 방울토마토를 섭취하셨습니다.]
[마력이 영구적으로 0.05 상승합니다.]
세준은 메시지를 무시하며 맛에 집중했다.
뽀드득.
나머지 푸른색 방울토마토도 하나씩 입에 넣었다. 방울토마토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오후가 되자
"내가 돌아왔다냥!"
두 번째 완판에 성공한 테오가 돌아왔다.
17화. 결심하다.
17화. 결심하다.
완판을 하고, 쉬지도 않고 열심히 달려온 테오.
하지만
왱!왱!
새끼 독꿀벌들이 독침을 뽑고서 테오를 포위했다. 새끼 독꿀벌들이 태어났을 때는 테오가 없었으니 당연히 테오를 적으로 여기는 것이다.
"이러지 말라냥. 우린 같은 편이다냥. 세준 님, 독꿀벌들에게 공격하지 말라고 해달라냥!"
테오가 앞발로 머리를 감싸고 쪼그리고 앉아 세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괜찮아. 우리 가족이야."
왱왱.
세준의 말에 새끼 독꿀벌들이 독침을 집어넣고 다시 방울토마토꽃에서 꿀을 빨기 시작했다.
"휴우. 세준이형, 고맙다냥."
"뭐? 세준이형?"
"왜 그러냥? 우린 가족이지 않느냥?"
"이게 사원 주제에 어디서 맞먹으려고?!"
세준이 맞먹으려는 테오의 볼살을 두 손으로 가볍게 꼬집으며 바로 응징했다.
물컹.
"악! 아프다냥! 미안하다냥!"
별로 세게 꼬집지도 않았는데 소리부터 지르고 보는 테오였다.
'괘씸하네.'
세준의 손은 테오의 말랑한 볼살을 잡고 더 세게 늘렸다.
솔직히 괘씸한 것보다는 더 잡고 있을 명분이 필요했다. 치즈냥 아니랄까 봐 볼살이 치즈처럼 쭉쭉 늘어나는 게 만지는 맛이 있었다.
'흐흐흐, 기분 좋다.'
안돼! 지금은 화를 내야 하는 타이밍이다.
세준은 자신의 마음을 풀어지게 만드는 마력의 볼살을 간신히 놓으며 마음을 다잡았다. 헤실헤실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붙잡고 다시 엄한 얼굴을 했다.
"테 사원, 일단 정산부터 하자. 방울토마토 판매금 꺼내 봐."
"여기 있다냥."
테오가 어깨에 힘이 팍 들어가서 세준에게 돈을 건넸다.
"75탑코인이네."
"그렇다냥!!!"
우렁찬 목소리.
"..."
세준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마주치는 눈동자. 쫑긋 세운 귀. 너무 자신감이 넘쳤다. 뭔가 수상했다.
그때
[탑의 관리자가 을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일러바칩니다.]
[탑의 관리자가 을이 마력의 방울토마토를 개당 0.07탑코인에 팔았다고 일러바칩니다.]
[탑의 관리자가 당신이 보여줄 갑의 무서움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때마침 나타나는 메시지. 탑의 관리자는 테오도 지켜보고 있었군.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그렇단 말이지?'
세준이 테오를 유심히 살폈다.
'빼돌리려는 건 아닌데...'
테오 성격에 돈을 빼돌렸으면 저렇게 자신 있는 태도를 할 수가 없었다. 잘못했으면 티가 그대로 나는 녀석이니까.
'그럼 뭐지? 설마?!'
세준이 테오의 자신감 넘치는 태도에 대해 생각할 때
"짜자냥! 인간들이 마력의 방울토마토를 사려고 며칠 동안 기다렸다길래 개당 0.02탑코인을 더 받았다냥. 나 잘했냥?"
테오가 30탑코인을 더 꺼내며 말했다. 예상하지 못한 돈을 더 꺼내면서 극적인 효과를 노린 것이다.
하지만
"자 여기 인센티브."
이미 정보를 알아버린 세준은 놀랍지 않았다. 세준이 4.2탑코인을 테오에게 건넸다.
"어?! 다른 건 없냥? 나 잘했는데 대표 안 시켜주냥?"
"이 정도로는 어림없지. 테 사원, 더 열심히 하도록."
"알았다냥."
테오는 역시 대표가 되는 건 어려운 것이라며 더 열심히 팔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세준 님, 나 생선구이 떨어졌다냥. 주급달라냥."
"알았어. 기다려."
세준이 어두운 연못 주변으로 다가갔다. 흑토끼가 수영으로 사냥할 때는 횃불을 꺼 피라니아가 몰리는 것을 막고 있었다.
세준이 연못으로 가자
파다닥.
연못 안에는 피라니아는 한 마리도 없고 흑토끼 혼자 수영을 하고 있었다.
대신 연못 옆 땅에 잡아 놓은 피라니아 10마리가 가지런히 쌓여 있었다. 흑토끼가 수영으로 잡은 피라니아들이었다.
푸드드득.
세준이 연못으로 다가오자 흑토끼가 연못에서 나와 자신의 몸을 털었다.
"흑토끼, 버닝 타임이다."
세준이 흑토끼에게 말하면서 죽은 피라니아 두 마리를 들었다.
뺙!
세준의 말에 흑토끼가 연못에 서서 비장한 표정으로 자세를 잡았다.
횃불을 이용해 피라니아를 유인하는 방법도 있지만, 횃불보다 더 빠르고 격렬하게 피라니아를 유인하는 방법이 있었다.
세준이 피라니아의 이빨로 다른 피라니아의 몸에 박아 넣었다가 뺐다. 이빨이 박혔던 피라니아의 몸통을 누르며 나온 피 몇 방울을 연못에 떨어트리고 기다렸다.
그리고 1분도 지나지 않아 피 냄새를 맡은 피라니아 수십 마리가 연못의 구멍을 통해 들어왔다. 금세 연못이 물 반 고기 반으로 변했다.
그다음은 평소처럼 세준이 횃불을 흔들고
첨벙!첨벙!
횃불을 보고 뛰어오른 피라니아를 흑토끼가 해머로 쳐서 빠르게 사냥했다.
그렇게 잡은 피라니아들을 가지고 불가로 가 생선구이를 만들고 있을 때
촵촵촵.촵촵촵.
이상한 소리가 났다. 세준이 소리가 나는 곳을 보니 테오가 뭔가를 열심히 핥고 있었다.
"테오, 그거 뭐야?"
"이거 말이냥? 츄르다냥."
"츄르?! 그거 어디서 났어?"
"인간들에게 사진 찍어주고 받았다냥. 이건 참치맛이고..."
테오가 말하면서 봇짐에서 자신이 받은 츄르를 맛별로 꺼내 자랑하기 시작했다.
전부 츄르였다. 전부!
자신을 위한 건 하나도 없었다.
사람들과 거래를 하고 츄르만 받아오다니...
촵촵촵.촵촵촵.
혼자만 맛있는 거 먹고. 왠지 화가 났다.
"츄르 압수."
세준이 봇짐에서 꺼낸 츄르를 전부 압수했다.
"어?! 왜 그러냥? 이건 내가 인간들과 사진 찍어주고 받은 거다냥!"
츄르를 압수하자 테오가 입에 거품을 물고 세준에게 강하게 항의했다. 순진한 테오마저 대들게 만들다니. 역시 츄르는 고양이 한정 마약이다.
하지만 세준에게는 츄르를 압수할 수 있는 정당한 권리가 있었다.
"그래. 사진을 찍어주고 거래로 받은 거지?"
"그렇다냥!"
"특약 3번. 을은 갑의 허락 없이 추가 거래처를 만들 수 없다. 이건 엄연한 계약 위반이야."
세준이 계약서를 보이며 말했다.
"헉! 그런 것이냥?!"
"그래. 넌 나 몰래 딴 주머니를 찬 거라고."
테오가 속절없이 츄르를 뺏겨야 한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너무 실망하지는 마. 테 대표, 그보다 우리 새로운 거래처에 대해서 얘기해보자."
"엉?! 나 대표 된 거냥?"
"한 시간만 시켜줄게. 앞으로 새로운 거래에서 제대로 활약한다면 테 대표 한 시간권을 주지."
"좋다냥! 한 번 더 불러달라냥."
"테 대표."
"히히히. 한 번 더 해달라냥."
"테 대표."
한 시간이라도 대표의 자리에 앉을 수 있다니 테오는 기뻤다. 테오가 서둘러 세준의 무릎 위에 자리를 잡았다.
"나 츄르도 먹고 싶다냥."
"그래."
세준이 츄르 하나를 꺼내 테오의 앞에 내밀었다.
촵촵촵.
먹여주기까지 하다니 역시 대표는 좋은 것이었다.
세준이 완전히 넘어온 테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테오의 초상권을 이용한 새로운 사업에 대해 얘기했다. 생각보다 일찍 밖의 물건을 가져올 방법이 생길 거 같았다.
탑에 밖의 물건이 들어오는 경우는 두 가지다.
하나는 배니싱. 이때는 들고 있는 물건을 그대로 탑으로 가지고 들어올 수 있다. 하지만 언제 어디서 배니싱 될지 모르고 1층으로 소환되기에 거기서 이미 거래가 끝나버린다.
남은 하나는 각성한 헌터가 탑으로 들어오면서 반입하는 물건이다.
헌터가 탑에 들어올 때는 1kg 정도의 물건만 탑으로 반입할 수 있다. 아이템은 무게 제한에서 제외다. 그리고 나갈 때는 제한없이 가지고 나갈 수 있다.
헌터들이 보통 탑으로 들어갈 때 챙기는 물건은 헌터용 스마트폰인 헌터폰과 간단한 기호 식품 정도다.
헌터폰은 기존 스마톤의 기능과 함께 항상 해가 있는 탑의 환경을 고려한 태양광 충전 기능과 팀원들과 근거리 통신을 할 수 있는 기능 때문에 헌터들이 꼭 챙기는 필수품이었다.
"무게 제한 때문에 많이 챙겨올 수는 없지만, 간단한 양념이나 커피 정도는 챙기겠지. 알겠냐? 테 사원?"
"어? 뭘 말이냥? 그리고 갑자기 왜 테 사원이냥?"
세준의 손길이 멈추자 츄르를 먹다 졸고 있던 테오가 물었다.
"한 시간 끝났어."
"벌써 말이냥?"
테오가 실망하며 남은 츄르를 들며 세준의 품에서 나왔다. 테오는 세준의 무릎에 앉아 쓰다듬을 받는 것을 대표의 특권이라고 오해하고 있었다.
"다음에는 쓸만한 물건을 가져와. 그리고 다시 테 대표가 되는 거다."
"알겠다냥!"
그때
"테오, 근데 너는 어떻게 몬스터들과 싸우지 않고 38층까지 갈 수 있는 거야?"
가끔 궁금했지만, 신경을 쓰지 않으려 했다.
밖에 신경을 쓰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나갈 수 없기 때문.
그래서 애써 외면하고 있었는데 밖의 물건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무의식적으로 밖에 대한 궁금증이 튀어나와 버렸다.
"그건 나에게 유랑 상인 자격증이 있기 때문이다냥."
"유랑 상인 자격증?"
"그렇다냥."
테오가 허리에 양손을 올리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유랑 상인 자격증은 매년 자격 유지를 위해 유랑 상인 협회에 비싼 회비를 내야 한다.
그리고 등급이 올라갈수록 매년 내야 하는 회비도 높아진다. 대신 그만큼 받는 혜택도 커진다.
회비를 낸 유랑 상인들은 유랑 상입 협회의 보호를 받고 여러 가지 편의 시설을 사용할 수 있다. 그래서 몬스터의 공격을 받지 않는 것이다.
"그럼 테오 너가 헌터들을 여기로 데려와 줄 수는 없어?"
"그건 불가능하다냥. 몬스터는 유랑 상인만 공격하지 않는다냥. 거기다 헌터들은 상인 통로를 이용할 수 없다냥."
"상인 통로?"
"그렇다냥. 상인들이 다니는 지름길이다냥. 상인 통로도 유랑 상인 자격증이 필요하다냥."
"지름길...?"
"그렇다냥. 38층에서 여기까지 5일 만에 오는 건 상인 통로가 아니면 불가능하다냥."
"여기가 몇 층인데?"
세준은 물어보면서 아차! 했다. 물어보지 말아야 할 것을 물어봤다.
"99층이다냥."
테오가 해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뭐?!"
결국 가장 알고 싶지 않은 것을 알아 버렸다.
"여기 99층이다냥. 몰랐냥?"
세준이 혹여 잘못 들었을까 재차 친절하게 말해주며 확인 사살까지 해주는 테오였다.
테오가 5일 만에 38층까지 갔다는 데서 세준은 안심하고 있었다.
헌터들처럼 웨이포인트를 사용할 수 없는 테오가 왕복 10일 만에 다녀올 정도면 여기가 38층과 몇 층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일까 생각했다.
그래서 별 생각 없이 물었는데...완전히 허를 찔렸다.
새로운 거래처고 뭐고 의욕이 사라졌다.
그렇게 잠시 동안 세준이 멍하니 있을 때
촵촵촵.
"세준 님! 내 주급이 타고 있다냥!"
조용히 남은 츄르를 핥아먹고 있던 테오가 생선구이가 타는 냄새에 다급히 세준을 불렀다.
"어?! 어!"
테오의 외침에 세준이 정신줄을 붙잡았다.
'안돼! 정신 차려 박세준!'
변한 건 아무것도 없어. 단지 이곳이 몇 층인지 안 것뿐이야.
세준이 자신을 다독이며 생선구이를 불가에서 꺼냈다. 생선구이를 꺼내다 손에 약간의 화상을 입었지만, 아픈 줄도 몰랐다.
그리고 다른 돌파구를 생각했다.
"테오, 내가 유랑 상인이 되는 건 가능해?"
테오의 말대로라면 유랑 상인만 되면 탑을 안전하게 내려갈 수 있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세준 님은 될 수 없다냥. 유랑 상인은 탑에서 태어난 존재만 할 수 있다냥."
다시 막힌 돌파구.
"젠장! 젠장-!"
세준이 되는 게 없는 현실에 분노하며 고함을 질렀다.
"히꾹! 왜 그러...히꾹! 냥?"
세준의 고함에 놀란 테오가 딸꾹질을 했다. 놀란 건 토끼들과 독꿀벌들도 다르지 않았다.
토끼들은 귀를 쫑긋 세우며 눈을 똥그랗게 뜨고 세준을 봤고, 독꿀벌들도 분주하게 날갯짓을 하며 사방을 날아다녔다. 독꿀벌 여왕까지 벌집에서 고개를 내밀어 무슨 상황인지 살펴볼 정도였다.
"휴우. 소리 질러서 미안해."
세준이 동굴 식구들에게 사과했다. 그래도 고함을 지르니 마음이 조금 진정됐다.
그리고 세준은 한 가지 결심을 했다.
"내가 여기서 잘 먹고 잘 살아주마!"
18화. 양봉 스킬을 얻다.
18화. 양봉 스킬을 얻다.
세준은 마음을 굳게 먹었다.
여기서 뼈를 묻자!
그 각오를 하며 세준이 테오에게 줄 나머지 피라니아를 구웠다.
타닥.타다닥.
활활 타오르는 불을 보며 생각했다.
'잘 먹고 잘살기 위해서는 뭐가 필요할까?'
여기서 언젠간 나간다는 생각에 탑코인이 생겨도 쓸 생각을 하지 않았다. 조금만 기다리면 헌터들이 구하러 올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농작물과 동굴 가족들을 제외하고는 뭔가를 늘리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서 자리를 잡기로 했으니 지금까지 불편했던 것들을 하나씩 고치고 또 동굴 주변도 탐험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테오, 동굴 근처에 몬스터들 있어?"
"근처에는 없다냥!"
세준의 분위기가 밝아지자 테오도 밝게 대답했다.
"하지만 좀 떨어진 곳에는 있다냥!"
"무슨 몬스터야?"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다."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
왠지 3번째 블루문 때 동굴을 공격하려 했던 붉은 털의 몬스터가 떠올랐다.
"엄청 무서운 놈이다냥. 지나갈 때마다 날 노려본다냥."
테오가 몸을 떨며 말했다.
역시 동굴을 나가는 것은 아직 위험했다.
"그래도 한 달 후쯤이면 상황이 달라질 거야."
세준이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는 732그루의 방울토마토 나무들을 바라보자 가슴이 웅장해졌다.
곧 방울토마토 나무에서 수천 송이의 꽃이 피게 될 거다. 그리고 꽃이 많아지면 독꿀벌 여왕도 알을 더 많이 낳고 독꿀벌들의 수가 본격적으로 늘어나게 될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한 달 후에는 수가 많아진 독꿀벌들을 시켜 동굴 주변을 순찰하게 한다면 몬스터가 접근하지 못하는 안전지대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독꿀벌들에게 파 이파리로 만든 줄을 이용해서 날 들게하면..."
세준이 동굴을 나갈 방법을 생각하며 자신의 배를 잡아봤다.
다행히 마력의 방울토마토가 지방을 분해해 준 덕에 뱃살은 없었다.
"테오, 그럼 이번에는···"
세준이 다시 거래를 위해 떠나는 테오에게 몇 가지 지시를 했다.
"알겠다냥! 나만 믿으라냥!"
테오가 큰 임무를 받고 다시 탑을 내려갔다.
***
조난 153일 차, 어제 테오가 떠나고 다시 아침이 왔다.
"으하암."
평소와는 다르게 세준이 하품을 하며 잠에서 일어났다. 심란한 마음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탓이다.
삐익!
삐이!
뺘악!
뺙!
토끼들이 아침 인사를 하며 굴에서 줄지어 나왔다.
"그래. 좋은 아침."
윙윙.
독꿀벌들도 벌집에서 나와 아침 일과를 시작했다. 날갯소리가 어제와는 다르게 힘이 넘쳤다. 덩치도 이제 성인 독꿀벌과 큰 차이가 없어 보였다.
"다 컸네."
정말 하루가 다르게 자란다는 말이 어울리는 독꿀벌들이었다.
세준은 토끼들과 아침을 먹고 일과를 시작했다.
톡.톡.
그렇게 세준이 평소처럼 방울토마토를 수확하고 있을 때
[잘 익은 마력의 방울토마토를 수확했습니다.]
[직업 경험치가 아주 미세하게 상승합니다.]
[수확하기 Lv. 2의 숙련도가 아주 미세하게 상승합니다.]
[경험치 12를 획득했습니다.]
"이것도 플러스 등급인가?"
세준이 경험치가 다른 방울토마토를 살펴봤다. 오늘 수확한 방울토마토 중에서 플러스 등급이 벌써 5개나 나왔다.
[마력의 방울토마토]
탑 안에서 자란 방울토마토로 영양을 충분히 섭취해 맛있습니다.
섭취 시 몸 안에 지방 10g을 분해해 10분간 마력을 0.1 상승시킵니다.
한 시간 안에 최대 10개까지 효과가 중복 적용됩니다.
비각성자가 섭취 시 지방 10g을 분해해 몸에 활력을 줍니다.
재배자 : 탑농부 박세준
유통기한 : 45일
등급 : E+
등급에 +가 붙는다고 더 좋아지는 건 유통기한이 늘어난 거 빼고는 없었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농작물의 유통기한이 늘어난다는 건 꽤 큰 이점이었다.
"더 오래 보관할 수 있으니까."
뽀드득.
세준이 방울토마토 하나를 입에 넣었다.
촤악.
입안에 가득 퍼지는 새콤달콤한 즙.
"으음. 좋다."
마트에서 먹던 밍밍한 맛이 아니다. 직접 재배해 따먹는 방울토마토 맛을 27년간 몰랐다는 것이 진짜 억울할 정도였다.
뺙!
세준이 혼자 뭘 먹고 있자 흑토끼가 우다다 달려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나두!
"자. 우리 잠깐 쉬자!"
세준이 흑토끼의 품에 방울토마토를 안겨주며 다른 토끼들과도 방울토마토를 먹으며 휴식 시간을 가졌다.
쭙쭙쭙.
토끼들이 하나씩 방울토마토를 잡고 빨기 시작했다.
"나도 마시고 싶은데..."
세준이 그런 토끼들을 부럽게 바라봤다.
"아!"
세준이 번뜻 생각나는 아이디어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텀블러를 가져와 방울토마토즙을 짜기 시작했다.
촥-!촥-!
방울토마토 50개 정도를 짜자 한 모금 정도 양이 나왔다.
꿀꺽.
입안 가득 방울토마토의 진한 즙만을 온전히 느끼는 기분.
"크으!"
세준이 다시 한번 텀블러 안에 방울토마토를 50개 정도 짰다.
그리고
꿀렁.
이번에는 꿀을 한 꿀렁 섞었다.
다시 원샷.
"크으!"
입안 가득 채우는 새콤달콤한 맛에 육중한 바디감을 가진 꿀이 추가되며 새콤함과 달콤함 사이에 스며들며 부드럽게 두 맛을 휘감았다.
그리고 두 맛 사이의 공백을 채워주며 새콤함과 달콤함 사이 맛의 변화를 부드럽게 이어줬다.
"맛있다."
지금, 이 순간만은 모든 근심 걱정이 사라졌다.
삐익!
뺘악!
뺙!
토끼들이 세준의 얼굴을 보고는 자신의 방울토마토를 내밀었다. 꿀 뿌려줘!
"알았어."
세준이 꿀이 흐르지 않게 조심스럽게 방울토마토 위에 꿀을 한 방울씩 떨어트려 줬다.
쭙쭙쭙.
꿀과 함께 방울토마토를 먹은 토끼들의 눈이 크게 떠졌다. 꿀과 방울토마토라는 새로운 맛의 조합을 알게 된 토끼들이었다.
그때 지켜 보고 있던 탑의 관리자가 메시지를 보냈다.
[추가 퀘스트가 발생합니다.]
[퀘스트 : 탑의 관리자에게 당신이 마신 꿀을 탄 마력의 방울토마토 주스 1잔을 대접하라!]
보상 : 직업 스킬 1개
거절 시 : 매우 서운함
"이제 일해야 되는데..."
잠깐 쉬는 중이었다. 이제 다시 일할 시간이다.
"이따가 줄게."
[탑의 관리자가 자신도 함께 마시는 느낌을 내고 싶다고 요청합니다.]
[탑의 관리자가 이번 퀘스트 보상으로 주는 스킬은 좋은 거라고 강조합니다.]
"진짜지?"
[탑의 관리자가 자신을 믿으라고 큰소리칩니다.]
"알았어."
미덥지는 못하지만, 믿어보기로 했다.
세준이 텀블러에 방울토마토 100개를 짜고 거기다 꿀을 부었다.
[탑의 관리자가 무슨 맛일지 너무너무 궁금하다며 날개를 펄럭거립니다.]
'그렇게 좋나?'
근데 날개가 있었군. 세준이 탑의 관리자에 대한 정보를 한 가지 더 알게 됐다.
"자 여기 있어."
세준이 방울토마토 주스를 탑의 관리자에게 보내자 텀블러 안의 주스가 깨끗하게 사라졌다.
[탑의 관리자가 주스가 너무 맛있다며 극찬합니다.]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퀘스트 완료 보상으로 특수 직업 스킬 : 양봉 Lv. 1을 획득했습니다.]
"특수 직업 스킬?"
[특수 직업 스킬 - 양봉 Lv. 1이 스킬 사용자가 소유한 독꿀벌 벌집을 스킬에 등록합니다.]
[특수 직업 스킬 - 양봉 Lv. 1에 등록할 수 있는 벌집의 수가 꽉 찼습니다.]
세준의 동굴에 있는 독꿀벌 벌집이 세준의 양봉 스킬에 자동 등록됐다.
"뭐지?"
세준이 양봉 스킬 내용을 확인했다.
[특수 직업 스킬 - 양봉 Lv. 1]
-벌집을 소유할 시 양봉을 할 수 있다.
-소유한 벌집 꿀벌들이 소유자를 적대하지 않습니다.
-소유한 벌집 꿀벌들에게 좀 더 구체적인 지시를 할 수 있습니다.
-소유한 벌집 꿀벌들의 활동 영역이 미세하게 상승한다.
-여왕벌이 알을 낳는 속도가 미세하게 상승한다.
-벌들의 꿀 채집 속도가 미세하게 상승한다.
-수분 확률이 미세하게 상승한다.
-현재 소유한 벌집(1/1) : 독꿀벌 벌집
"오."
독꿀벌들이 밖을 순찰하라는 자신의 지시를 알아듣고 따라줄까 걱정했는데 이 스킬이라면 걱정을 조금 덜어도 될 것 같았다.
스킬 효과는 역시 미세했다. 그래도 좋은 점이라면 스킬이 적용되는 사항이 많았다.
그리고 지금은 미세하지만, 씨앗이 자라듯이 나중에는 큰 열매가 될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고맙다."
세준이 탑의 관리자에게 말했다.
[탑의 관리자가 고마우면 꿀 탄 마력의 방울토마토 주스를 한 잔 더 만들어달라고 요청합니다.]
"이제 일해야 해. 저녁에 줄게."
[탑의 관리자가 알겠다고 말하며 컵에 붙어있는 주스를 탈탈 털어 입에 넣습니다.]
세준이 다시 방울토마토 수확을 시작했다.
***
[방울토마토꽃의 꿀을 1mL 획득했습니다.]
[양봉 Lv. 1의 숙련도가 미세하게 상승합니다.]
[방울토마토꽃의 꿀을 1mL 획득했습니다.]
[양봉 Lv. 1의 숙련도가 미세하게 상승합니다.]
...
..
.
세준이 넘어지지 않게 흙으로 고정한 생수병에 독꿀벌들이 꿀을 넣을 때마다 메시지가 나타났다.
"잘하고 있네."
세준이 메시지를 보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왱왱.
벌집에서 새로운 새끼 독꿀벌들 5마리가 나타났다. 스킬 효과 때문인지 새끼 독꿀벌들은 세준을 처음 봤는데도 독침을 꺼내지 않았다.
그리고
윙윙.
왱왱.
새끼 독꿀벌들은 거의 성체로 자란 독꿀벌들을 따라 꿀을 빨기 시작했다. 덕분에 꿀의 생산량이 20mL 정도 늘어났다.
아주 조금씩이지만, 동굴의 상황은 점점 더 좋아지고 있었다.
세준이 새끼 독꿀벌들이 열심히 꿀 빠는 걸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을 때
삐이익!!
뺘이이!!
뺙!뺙!
흥분한 토끼들이 당근밭에 모여 세준을 불렀다. 토끼들이 당근밭에서 흥분할 이유야 뻔했다. 바로 당근.
"벌써 자란 당근이 있나?"
세준이 당근밭에 가자 당근 몇 개가 뽑힐 준비가 됐다는 듯이 흙 위로 주황색 몸을 드러냈다. 드디어 당근들을 수확할 때가 왔다.
삐익!
뺘악!
뺙!
토끼들이 뜨거운 콧김을 뿜어내며 세준을 바라봤다. 토끼들은 강렬한 눈빛으로 말하고 있었다. 우리는 준비가 됐다! 먹을 준비가!
"알았어."
쑥.
세준이 당근 줄기를 잡고 위로 잡아당기자 주황색 당근이 부드럽게 뽑혀 나왔다. 이번 당근은 블루문 때 수확한 당근보다는 굵기가 얇았다. 그래도 손가락 3개 정도 굵기로 충분히 훌륭한 당근이었다.
[민첩의 당근을 수확하셨습니다.]
[직업 경험치가 미세하게 상승합니다.]
[수확하기 Lv. 2의 숙련도가 아주 미세하게 상승합니다.]
[경험치 10을 획득했습니다.]
세준이 당근의 옵션을 확인했다.
[민첩의 당근]
탑 안에서 자란 당근으로 영양을 충분히 섭취해 맛있습니다.
섭취 시 몸 안에 지방 10g을 분해해 10분간 민첩을 0.1 상승시킵니다.
한 시간 안에 최대 10개까지 효과가 중복 적용됩니다.
비각성자가 섭취 시 지방 10g을 분해하고 시력이 좋아집니다.
재배자 : 탑농부 박세준
유통기한 : 30일
등급 : E
"자."
옵션을 확인한 세준이 토끼들에게 당근을 건넸다.
도리도리.
토끼들이 고개를 저으며 세준에게 먹으라고 권했다. 블루문의 기운이 담긴 당근도 자신들이 먼저 먹었는데, 이것까지 먼저 먹기에는 미안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뚝.뚝.뚝.
침을 줄줄 흘리면서 그러면...
"먼저 먹어. 나는 나중에 먹어도 돼."
세준이 재차 권하자
삐익!
뺘악!
뺙!
토끼들이 단체로 감사의 절을 올리고 세준의 손에서 당근을 받았다.
이게 절까지 할 일이었어?
세준이 서둘러 당근을 뽑아 토끼들에게 하나씩 품에 안겨줬다.
오도독.오도독.
토끼들이 당근을 품에 안고 열심히 먹기 시작했다. 당근이 얼마나 맛있는지 토끼들의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세준도 행복해하는 토끼들을 보면서 당근을 물에 씻어 흙을 닦아내고 한입 베어 물었다.
오도독.
경쾌한 소리와 함께 입에 당근 특유의 풍미가 퍼졌다.
그리고
아작.아작.
씹을 때마다 베어나오는 단맛. 너무 맛있었다.
뺙?
흑토끼가 자신의 당근을 들고 세준의 옆에 토실한 궁둥이를 붙여 앉으며 물었다. 맛있죠?
"응."
세준이 엄지를 치켜올리며 대답했다.
조난 153일 차, 당근을 매일 먹을 수 있게 됐다.
19화. 감자를 심다.
19화. 감자를 심다.
조난 154일 차, 아침.
"읏차!"
슥슥.
세준이 일어나 동굴 벽에 줄 하나를 그었다.
그때
윙윙.
왱왱.
뒤에서 들리는 날갯소리. 독꿀벌들은 이미 일어나 꿀을 빨고 있었다. 요즘 정말 부지런히 꿀을 모으는 것이 독꿀벌 여왕이 다시 산란을 시작한 것 같았다.
세준이 독꿀벌들을 보고 있을 때
삐익!
뺘앙!
뺙!
토끼들이 활기차게 인사하며 굴에서 줄지어 나왔다. 그들의 손에는 하나같이 어제 먹다 남은 당근이 들려있었다.
당근의 크기가 토끼들과 비슷했기에 토끼들은 어제 배가 빵빵해질 때까지 자기 몸만 한 당근의 절반을 먹었다. 저게 어떻게 배에 들어가는지 신기할 정도.
하지만 토끼들은 그저 남은 당근이 원통할 뿐이었다. 그래서 당근을 원통하게 바라보다 굴에 가지고 들어갔다 아침에 다시 가지고 나온 것이었다.
밤에도 당근을 먹었는지 들고나오는 당근의 크기가 들어갈 때 보다 많이 줄어들어 있었다.
오도독.오도독.
굴에서 나온 토끼들은 눈을 비비며 어제 먹다 남은 당근을 마저 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맛있어?"
세준이 징하다는 듯이 흑토끼를 바라보자
뺙!
흑토끼가 세준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당근이지!
덕분에 세준도 분위기에 휩쓸려 아침을 방울토마토와 당근으로 간단하게 먹고 아침 농사를 시작했다.
오늘 세준은 할 일이 많았다. 방울토마토 수확에 당근 수확까지 해야했다.
하지만 오늘은 세준보다 독꿀벌들과 토끼들이 더 분주했다.
독꿀벌들은 새로 심은 방울토마토밭에서 꽃이 피기 시작하면서 이동 거리가 늘어나며 더욱 바쁘게 움직였다.
그리고 토끼들은 토끼 부부가 자식들을 동굴에서 내보냈다.
삐익!
뺘아?!
자식들을 독립시킨 것이다. 집에서 쫓겨난 6마리 토끼들은 자신들만의 굴을 만들기 시작했다.
"왜 굳이 독립을?"
설마?! 또 그짓을?!
세준은 아니길 빌었다.
방울토마토는 수확 시기를 놓치면 금세 등급이 떨어지기에 방울토마토를 먼저 빠르게 수확했다.
그리고 방울토마토 수확을 끝낸 세준이 당근밭으로 가서 당근 수확을 시작했다.
쑥.
역시 잘 뽑혀 나오는 당근.
[잘 익은 민첩의 당근을 수확하셨습니다.]
[직업 경험치가 미세하게 상승합니다.]
[수확하기 Lv. 2의 숙련도가 아주 미세하게 상승합니다.]
[경험치 12을 획득했습니다.]
운이 좋게도 처음부터 E+등급 당근이다.
쑥.쑥.
세준이 본격적으로 당근 수확을 시작했다.
뺙!뺙!
세준이 열심히 뽑은 당근을 옆에 쌓아두면 흑토끼가 체력 훈련이라는 명목하에 양쪽 어깨에 당근을 하나씩 메고 저장고로 옮겼다.
당근 저장고는 어제 미리 방울토마토 저장고 옆에 구덩이를 네모반듯하게 파고 파 이파리를 깔아 만들어뒀다.
뺘...
흑토끼는 10번 정도 왔다 갔다 하더니 기운이 빠졌는지 옮기는 속도가 급격하게 느려졌다.
툭.툭.
데굴데굴.
은근슬쩍 당근을 발로 차서 저장고로 옮기다가 엄마 토끼에게 들켜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흐흐흐. 내가 그럴 줄 알았다."
세준이 혼나는 흑토끼를 지켜보며 웃고 있을 때
[방울토마토꽃의 꿀을 1mL 획득했습니다.]
[양봉 Lv. 1의 숙련도가 미세하게 상승합니다.]
[방울토마토꽃의 꿀을 1mL 획득했습니다.]
[양봉 Lv. 1의 숙련도가 미세하게 상승합니다.]
...
..
.
독꿀벌들이 생수통에 꿀을 채워 넣었다.
그리고
[방울토마토꽃의 꿀을 1mL 획득했습니다.]
[양봉 Lv. 1의 숙련도가 미세하게 상승합니다.]
[양봉 Lv. 1의 숙련도가 채워져 레벨이 상승합니다.]
양봉 스킬의 레벨이 상승했다.
세준이 레벨이 상승한 양봉 스킬을 살펴봤다.
옵션은 큰 변화가 없었다. 미세하게 상승에서 조금 상승으로 바뀐 정도. 솔직히 조금이라는 말로는 얼마나 변한 건지 모호했다.
대신 확실하게 변한 게 있었다. 보유할 수 있는 벌집의 수가 (1/1)에서 (1/2)로 변하면서 하나 늘어났다.
아직은 아니지만, 나중에 독꿀벌이 분봉을 하게 된다면 그때는 벌집 두 개를 소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수고했어."
세준은 열심히 꿀을 빤 독꿀벌들이 기특해 가까이 있는 독꿀벌들의 통통한 꼬리를 두드려주며 칭찬했다.
터덜터덜.
그사이 엄마한테 혼나고 우울해져 돌아온 흑토끼는 세준이 독꿀벌들의 꼬리를 두드려주는 것을 발견했다.
뺙?!뺙!
흑토끼도 자신의 엉덩이를 세준에게 내밀며 말했다. 나는?! 통통한 엉덩이라면 나도 지지 않아!
"그래."
세준은 스스로 굴러들어온 흑토끼의 엉덩이를 두드리며 잠깐 서로의 힐링 타임을 가졌다.
오도독.
오도독
당근을 씹으면서.
그리고
"어디 가냐?"
휴식이 끝나자 슬며시 연못으로 도망가려는 흑토끼를 잡아 다시 당근을 나르게 했다.
그렇게 세준이 다시 당근 수확에 열을 올리고 있을 때
[잘 익은 민첩의 당근을 수확했습니다.]
[직업 경험치가 미세하게 상승합니다.]
[수확하기 Lv. 2의 숙련도가 아주 미세하게 상승합니다.]
[경험치 10을 획득했습니다.]
[레벨업 했습니다.]
[보너스 스탯 1을 획득했습니다.]
레벨이 올라 10레벨이 됐다. 세준은 보너스 스탯으로 체력을 올렸다. 체력이 오르자 무거웠던 몸이 조금은 가벼워지는 기분이었다.
[퀘스트가 발생합니다.]
"뭐야?! 나 바쁜 거 안 보여?"
세준이 메시지 내용은 확인하지 않고 탑의 관리자에게 따졌다.
[탑의 관리자가 자신이 아니라고 억울해합니다.]
"응?! 너 아냐?"
세준이 뒤늦게 퀘스트 메시지를 자세히 확인했다.
[직업 퀘스트 : 농장을 50평 이상 확장하라.]
보상 : 11레벨, 10탑코인, 직업 특성 1개 추가
그러고 보니 들어본 것 같았다. 10레벨에 있는 직업 퀘스트. 그 퀘스트를 통과해야지 새로운 직업 특성을 얻고 다음 레벨로 넘어갈 수 있다.
다른 헌터들의 퀘스트는 보통 몬스터 몇 마리 토벌이지만, 자신은 농부라 퀘스트 내용이 다른 모양이었다.
"농장 확장하는 거야 쉽지."
이미 여러 번 밭을 확장했기에 세준에게는 어렵지 않았다. 할 일이 많아질 뿐.
[탑의 관리자가 그것보라며 섭섭하다고 말합니다.]
"미안. 대신 나중에 방울토마토 주스 만들어줄게."
세준은 탑의 관리자를 달래줬다.
그리고 서둘러 당근을 수확을 끝내고 밭 만들기에 들어갔다.
토끼들이 삽으로 자리를 만들면 세준이 방울토마토를 심었다. 방울토마토를 너무 많이 심게 됐지만, 당장 채종할 수 있는 건 방울토마토뿐이라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렇게 심다 보니 자기 전에야 간신히 방울토마토 심기를 마칠 수 있었다. 심은 방울토마토 씨앗의 수는 1000개. 이왕 하는 김에 욕심을 부렸더니 규모가 조금 커졌다.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퀘스트 완료 보상으로 11레벨이 됐습니다.]
[보너스 스탯 1을 획득했습니다.]
[퀘스트 완료 보상으로 10탑코인을 획득했습니다.]
[퀘스트 완료 보상으로 직업 특성 1개를 획득했습니다.]
[직업 특성으로 논이나 밭을 1평 만들 때마다 경험치를 획득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농작물을 수확할 때만 경험치를 얻었는데 이제 밭이나 논을 만들어도 경험치를 얻을 수 있게 됐다.
"좋은데?"
세준이 새로 얻은 직업 특성에 만족했다.
그날 밤 세준의 예상대로 토끼 부부가 거사를 준비했다.
하지만 토끼 부부가 거사를 위해 뜨거운 분위기를 만들고 있을 때 의외의 방해꾼이 나타났다.
크어어엉.컹.
크어어엉.컹.
삐익?!
뺙?!
밤늦게 들리는 동굴을 울리는 괴성에 토끼들이 몬스터가 침입한 줄 알고 우르르 굴 밖으로 달려 나왔다.
그리고
크어어엉.
푸후.
고된 노동에 피곤했던 세준의 코 고는 소리라는 것을 깨닫고는 세준의 몸을 밀어 옆으로 자게 하는 수고를 하고 다시 굴로 들어가야 했다.
그렇게 본의 아니게 세준이 토끼 부부의 거사를 방해했다.
***
조난 155일 차.
오늘은 씨앗 상점이 열리는 중요한 날. 세준은 일어나자마자 벽에 선 하나를 긋고 연못으로 가서 세수를 했다.
삐익...
뺘아...
뺘악...
토끼들이 잠을 설쳤는지 피곤한 얼굴로 나왔다.
"뭐야? 잠 안 자고 뭐 했어?"
삐이익!
뺘아아!
뺘악!뺘악!
세준의 말에 토끼들이 분노했다. 특히 토끼 부부는 불같이 화를 냈다 너 때문이잖아!
"하하하. 미안."
세준은 화난 토끼들을 달래기 위해 당근을 바치는 것으로 토끼들의 분노를 잠재웠다.
그리고 오전 농사를 시작했다.
"흥흥흥."
세준이 콧노래를 부르며 한참 방울토마토 수확에 집중하고 있을 때
[씨앗 상점이 열립니다.]
[오늘 판매할 씨앗 3종이 랜덤으로 보여집니다.]
[현재 등급에서는 씨앗을 한 번만 구매 가능합니다.]
오늘 구매할 수 있는 씨앗들이 나타났다.
[씨감자 100개 - 5탑코인]
[딸기 씨앗 100개 - 0.5탑코인]
[상추 씨앗 1000개 - 0.1탑코인]
"상추는 고기가 없으니까 패스."
남은 건 씨감자와 딸기. 돈은 많았기에 가격은 고려하지 않았다.
"아. 고민된다."
세준이 두 개 중 뭘 살지 고민하다가 감자와 딸기를 먹는 장면을 상상해봤다.
감자를 파 이파리에 싸서 구운 다음 입으로 호호 불며 껍질을 까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감자의 속살을 한 입 베어 물면 그 포슬포슬한 식감과 미묘한 짠맛이...
"크으!"
상상만해도 배가 따뜻해지는 기분이었다.
딸기는 또 어떤가. 새빨갛게 잘 익은 딸기를 따서 한 입에 넣고 씹으면 딸기 특유의 풍미와 함께 새콤하고 설탕을 뿌린 듯한 달달함이 입안을 가득 채워준다.
"쓰읍."
세준이 떨어지는 침을 닦으며 씨앗 상점 창을 바라봤다.
"뭘 사지?"
세준은 한참을 고민하다 눈물을 머금고 씨감자를 선택했다.
요즘 탄수화물이 너무 고팠다.
[씨감자 100개를 구매했습니다.]
[씨앗 은행 박세준 님의 계좌에서 5탑코인이 빠져나갑니다.]
[씨앗 상점 마일리지 50점이 적립됩니다.]
[씨앗 상점 마일리지가 총 56점 적립됐습니다.]
[씨앗 상점을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30일 후에 다시 씨앗 상점 Lv. 1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쿵.
세준의 앞에 씨감자 100개가 담긴 포대가 나타났다.
"좋아."
세준이 서둘러 방울토마토와 당근 수확을 끝내고 씨감자 심기를 시작했다.
토끼들에게 미리 밭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했기에 씨감자를 심기만 하면 됐다.
"이렇게 자르면 돼."
어디서 본 건 있어서 낫 아이템을 가진 토끼에게 씨감자를 사 등분 해달라고 했다. 자세히 보면 싹이 나는 자리가 보였기에 그 부분이 포함되게만 자르면 됐다.
그렇게 사 등분 된 씨감자를 세준이 심었다.
[씨감자를 심었습니다.]
[씨뿌리기 Lv. 2의 효과로 씨감자가 발아할 확률이 증가합니다.]
[씨뿌리기 Lv. 2의 숙련도가 아주 미세하게 상승합니다.]
...
..
.
그리고 세준이 한 시간 만에 씨감자 400개를 전부 심었다.
이제 완전히 일이 손에 익은 세준이었다.
쏴아아.
물조리개를 가진 토끼들이 감자밭에 물을 주는 것으로 감자심기가 완전히 끝났다.
"으아. 뿌듯하다."
세준이 씨감자 400개가 심어진 밭을 자랑스럽게 바라보고 있을 때
[감자밭 10평을 만들었습니다.]
[경험치 10을 획득했습니다.]
1평에 경험치 1. 크지는 않았지만, 부수입이 들어오는 기분이었다.
"놀랍지 않냐? 씨감자 100개로 400개를 심는 나의 농사 신공이?"
뺙?!
세준이 우쭐해하며 말하자 흑토끼가 한심하게 바라봤다. 그거 모르는 농부가 어디 있어?!
괜히 말했다가 무시만 당했다.
조난 155일 차, 세준의 밭에 감자가 자라기 시작했다.
20화. 신품종을 수확하다.
20화. 신품종을 수확하다.
조난 157일 차 아침.
오도독.오도독.
"모두 잘 들어. 드디어 그날이 왔다."
세준이 열심히 아침 당근을 먹고 있는 토끼들 앞에서 중대 발표를 했다.
삐익?
뺘아?
뺙?
토끼들은 세준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전혀 몰랐다. 그래서 눈을 똥그랗게 떴다. 무슨 날?
"오늘은 고구마를 캐는 날이다."
고구마순 450개를 심은 게 엊그제 같은 데 벌써 고구마순이 뿌리를 내리고 자라 고구마들을 수확할 시기가 온 것이다.
삐익!!!
뺘아!!!
뺙!!!
고구마라는 말에 흥분하는 토끼들. 저번에 먹었던 군고구마 맛을 떠올린 것 같았다.
그리고 더 좋은 이유는 자신들은 할 게 없다는 것이다. 어차피 수확은 세준 혼자 하니까.
하지만 토끼들은 자신들이 군고구마를 먹기 전에 뭘 했었는지 기억해내지 못했다.
"자 그러니까. 오늘은 오전에 일 다 끝내고 오후에 고구마순을 심을 거야."
고구마를 캐기 전에 고구마 넝쿨을 다 걷어내야 한다. 세준은 심기만 하면 고구마를 만들어낼 고구마순을 그냥 버릴 수 없었다.
삐익?!
뺘?!
뺙?!
토끼들은 서둘러 고구마밭을 확인했다. 고구마밭에는 고구마순이 무성하게 자라나 있었다. 저걸 다 잘라 심겠다니. 세준의 말에 토끼들이 당황했다.
그래도 안심했다. 수확과 고구마순 심기는 전부 세준의 몫이었다.
하지만
"그리고 중대 발표가 하나 더 있어. 오늘은 고구마순을 심는 기쁨을 독점하지 않기로 했어."
이제 밭이 넓어지면서 세준 혼자 하루에 할 수 있는 작업량을 넘어서고 있었다. 그래서 씨뿌리기 스킬 숙련도를 포기하기로 했다.
농사는 타이밍이다. 스킬 숙련도 때문에 농사를 망칠 수는 없었다.
그렇게 시작된 오전 농사.
물조리개를 든 토끼 둘이 밭에 물을 줬고, 아내 토끼와 낫을 든 토끼가 파 이파리를 자르면 지게를 가진 토끼가 파 이파리를 지게에 실어 날랐다.
그리고 흑토끼와 삽을 가진 토끼들은 미리 고구마순을 심을 이랑을 만들었다.
뺘뱌뱌뺙!!
모든 것이 전사의 수련인 흑토끼가 해머의 평평한 부분을 밑으로 해서 끌면서 땅을 평평하게 만들면서 달려 나가면
푹.퍽.
푹.퍽.
삽을 든 토끼 둘이 흙을 퍼 옆에 올리면서 고랑을 파고 두둑을 올렸다.
톡.톡.톡.
세준도 서둘러 방울토마토를 수확했다. 오전에 일을 다 끝내려면 정신없이 움직여야 했다.
그렇게 끝낸 오전 농사.
"휴우."
삐이...
뺘이...
뺙...
세준과 토끼들이 과도한 노동에 전부 뻗었다. 땀을 많이 흘려서인지 목이 탔다.
"이럴 때는 시원한 꿀물이지."
세준이 생수병에 담겨 있던 꿀을 텀블러에 부었다.
꿀렁.꿀렁.
텀블러에 꿀을 2꿀렁 붓고 연못 물을 담았다.
그리고
쉐킷쉐킷.
꿀이 잘 섞이도록 흔들었다.
"잘 섞였나?"
세준이 꿀물을 한 모금 마셔보려 할 때
뺙?!
흑토끼가 세준을 불렀다. 혼자만 먹어요?!
흑토끼의 손에는 당근의 속을 파먹고 만든 당근컵이 들려 있었다. 당근으로 컵을 만들 생각을 하다니...천잰데?!
꼴꼴꼴.
세준이 흑토끼의 당근컵에 꿀물을 부어줬다. 그사이 흑토끼를 따라 당근컵을 만든 백토끼들에게 꿀물을 따라주니 텀블러에는 꿀물이 절반 정도 남아 있었다.
꿀꺽꿀꺽.
세준이 꿀물을 원샷했다. 입안에 꿀물이 들어오며 단맛이 세준의 뇌세포를 깨웠고 식도를 따라 내려가는 시원함이 온몸의 피로를 풀어주는 것 같았다.
"캬아!"
뺘악!
흑토끼가 세준을 따라 하며 당근컵에 든 꿀물을 원샷을 했다. 말이 컵이지 흑토끼에게는 거의 대야였는데 그걸 양손으로 들고 다 마셨다.
그리고
탈.탈.
깨끗하게 마신 당근컵을 자신의 머리에 털었다. 너 그런 건 어디서 배웠어? 우리 아버지도 술 먹고 그렇게는 안 해.
오도독.오도독.
토끼들은 꿀물을 다 마시고 꿀물이 묻어있는 당근컵을 먹어치웠다. 환경친화적인 컵이었다.
꿀물을 먹고 기운을 차린 세준은 서둘러 점심을 먹고 고구마순 심기를 시작했다.
오늘은 좀 더 효율적인 분업을 했다.
아내 토끼와 낫을 든 토끼가 고구마 순을 자르면 지게를 가진 토끼와 흑토끼가 고구마순을 나르고 나머지 토끼들과 세준이 고구마순을 심었다.
고구마순은 엄청나게 많았지만, 손이 많았기에 몇 시간 걸리지 않아 전부 해치웠다.
"끝났다!"
고구마순 1500개를 심은 밭이 완성됐다.
[고구마밭을 150평을 만들었습니다.]
[경험치 150을 획득했습니다.]
[레벨업 했습니다.]
[보너스 스탯 1을 획득했습니다.]
세준이 좋은 정보 하나를 알게 됐다. 혼자 농작물을 심지 않아도 밭을 만들고 받는 경험치는 온전히 얻을 수 있었다.
11레벨 때 얻은 보너스 스탯은 힘을 올렸기에 이번에는 체력 스탯을 1 올렸다.
그리고
"자 이제 고구마를 캐러 가자!"
드디어 오늘의 하이라이트인 고구마 수확이 시작됐다. 고구마 넝쿨을 거둬내자 심은 450개의 고구마순 중 성공적으로 자란 것은 270개 정도였다.
푹.푹.
삽을 든 토끼들이 삽을 흙 깊이 밀어 넣어 땅을 잠깐 들었다가 삽을 빼고 지나가면 세준이 고구마를 캤다.
이것도 토끼들과 함께하려 했지만, 고구마 크기 하나가 당근처럼 토끼들 몸만 했기에 결국 세준 혼자 캐야 했다.
우두두둑.
운이 좋을 때는 줄기만 뽑아도 고구마가 10개씩 딸려 나왔다.
[힘의 호박고구마를 수확하셨습니다.]
[직업 경험치가 아주 미세하게 상승합니다.]
[수확하기 Lv. 2의 숙련도가 아주 미세하게 상승합니다.]
[경험치 10을 획득했습니다.]
...
..
.
"기분 좋다."
세준이 한 번에 10개나 수확한 고구마를 보며 뿌듯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삐이익~
뺘아아~
뺙!뺙!
토끼들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고구마를 파 이파리로 감아 군고구마를 만들고 있었다.
[탑의 관리자가 군고구마! 군고구마!를 외칩니다.]
어디 있다 왔는지 타이밍은 기가 막혔다.
세준은 혼자서 고구마 수확을 이어갔다. 옆에는 세준이 수확한 고구마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대략 3000개. 대략 줄기 하나당 10~13개의 고구마를 수확했다.
그렇게 거의 수확이 끝나가고 있을 때
"응?!"
흙을 거둬낸 땅에서 황금빛이 나왔다. 세준의 손이 빨라지며 서둘러 황금빛을 내는 물건을 캐냈다.
파앗.
눈이 부실 정도로 빛이 폭발했다.
"우왓!"
세준이 눈이 부실 정도로 밝은 빛에 서둘러 손으로 눈을 가렸다.
[태양의 호박고구마를 수확했습니다.]
[직업 경험치가 아주 미세하게 상승합니다.]
[수확하기 Lv. 2의 숙련도가 아주 미세하게 상승합니다.]
[경험치 10을 획득했습니다.]
극적으로 등장한 것에 비하면 초라한 메시지.
그때
[탑에 신품종을 탄생시키는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탑이 신품종에 대해 당신에게 독점 재배권을 인정합니다.]
[당신의 허락 없이는 태양의 호박고구마를 재배할 수 없습니다.]
[직업 경험치가 대폭 상승합니다.]
[직업 경험치가 가득 찼습니다.]
[탑농부(E)의 등급이 상승합니다.]
[탑농부(D)가 되었습니다.]
[직업 등급이 상승하며 직업 특성이 강화됩니다.]
[수확하기 Lv. 2의 숙련도가 크게 상승합니다.]
[수확하기 Lv. 2의 숙련도가 채워져 레벨이 상승합니다.]
신품종이 대단한 건지 단숨에 직업 등급과 스킬 레벨이 올랐다. 세준이 서둘러 황금빛을 내는 호박 고구마의 옵션을 확인했다.
[태양의 호박고구마]
탑의 가장 높은 곳에서 태양 빛을 흠뻑 흡수해 태양의 기운을 품은 돌연변이 호박 고구마입니다.
탑 안에서 자란 호박고구마로 영양을 충분히 섭취해 맛있습니다.
섭취 시 몸 안의 지방 100g을 분해해 1시간 동안 화염 내성이 증가합니다.
비각성자가 섭취 시 몸 안의 지방 100g을 분해해 24시간 동안 추위를 잘 타지 않습니다.
재배자 : 탑농부 박세준
유통기한 : 30일
등급 : E
"신품종이라..."
세준이 자신의 손에 들린 황금빛 고구마를 바라봤다.
신품종이라는 건 이 탑에 이 고구마를 가진 존재는 자신밖에 없다는 뜻이다. 거기다 세준이 고구마를 수확해 팔아도 다른 이가 태양의 호박고구마를 키울 수 없게 독점 재배권까지 줬다.
"이건 무조건 키워야지."
세준은 태양의 호박고구마의 맛이 궁금했지만, 일단 심어서 고구마의 수확량을 늘리기로 했다.
"무럭무럭 자라라."
세준이 태양의 호박고구마를 정성껏 심고 땅이 흠뻑 젖을 때까지 물을 부어줬다.
그때
뺙!
흑토끼가 세준을 급하게 불렀다. 탄내 나요!
토끼들은 탄내가 나기 시작하자 또 불안한 모양이었다.
"알았어. 가자!"
세준이 불가에 가자 토끼들이 기대에 찬 눈빛으로 불 속에 든 고구마를 뚫어져라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냄새가 무르익지 않았다. 세준이 고구마를 지켜보며 타이밍을 기다렸다.
'지금이다!'
세준이 군고구마를 불가에서 꺼냈다.
[탑의 관리자가 침을 닦으며 자신의 차례를 기다립니다.]
"자. 군고구마 10개."
구워놓은 호박고구마는 많았기에 세준은 탑의 관리자에게 군고구마 10개를 줬다.
[탑의 관리자가 맛있게 먹겠다며 고마워합니다.]
"그래. 자 우리도 먹자."
세준이 파 이파리를 풀어내고 김이 폴폴 나는 호박 고구마의 껍질을 까 토끼들에게 나눠줬다.
후우우.
후우우.
뿌우우.
토끼들이 군고구마에 바람을 불어 식혀줬다.
그리고 토끼들이 군고구마를 먹기 시작했다.
삐익!
뺘압!
뺙!
토끼들이 군고구마를 먹으며 단맛의 환호성을 질렀다.
와왑.
세준도 군고구마를 베어 물었다.
"아. 맛있다. 근데 테오는 잘하고 있으려나?"
지금쯤이면 38층에 도착했을 테오였다.
***
세준의 예상대로 부지런히 탑을 내려간 테오가 38층에 도착했다.
"어?! 왔다!"
"저 고양이인가 봐!
테오를 발견한 피닉스 길드 헌터들이 달려왔다. 근데 숫자가 원래보다 배로 늘어났다.
김동식의 파티원들 중 몇이 마력의 방울토마토에 대해 소문을 내면서 이렇게 많아진 것이다. 먹기만 하면 살이 빠지는 기적의 방울토마토. 헌터들이 궁금증에 모여든 것이다.
"내가 전부 살게!"
저번에 사지 못한 헌터 하나가 소리쳤다.
"안 된다냥! 오늘부터 파는 방식을 바꿨다냥."
테오는 세준에게 새로운 지시를 받았다.
"오늘부터는 가장 비싼 가격을 부른 인간에게 방울토마토를 500개씩 팔겠다냥!"
그건 바로 마력의 방울토마토를 경매로 판매하는 것.
"500개에 40탑코인!"
테오의 말이 끝나자마자 김동식이 소리쳤다. 개당 0.08탑코인. 요즘 마력의 방울토마토 때문에 집에서의 위상이 높아진 김동식은 마력의 방울토마토를 포기할 수 없었다.
하지만
"41탑코인!"
저번에 구매하지 못한 다른 헌터들이 바로 가격을 올렸다.
"45탑코인!"
"45.5탑코인!"
거기다 구경 온 다른 헌터까지 가세하며 가격이 오르기 시작했다.
그때
"100탑코인!"
크리스가 엄청난 거액을 질렀다. 개당 0.2탑코인. 방울토마토를 1개도 아니고 500개를 개당 20만원에 산 것이다.
크리스는 처음 거래에서 마력의 방울토마토 30개를 사 제약사 대표인 자신의 누나 제나에게 줬다.
요즘 매일 앉아만 있어 살이 찐다고 투덜거리던 것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나는 방울토마토 몇 개를 먹어보고는 그 효능에 놀라 마력의 방울토마토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계속 성분 추출에 실패했고 크리스에게 다시 마력의 방울토마토를 부탁한 것이다.
'돈은 누나가 낸다고 했으니까.'
그렇기에 크리스는 부담 없이 돈을 질렀고 총 273탑코인을 지불하고 마력의 방울토마토 1500개를 전부 사들였다.
경매가 끝나자 여성 헌터들이 다가왔다.
"테오, 같이 사진 찍어도 돼?"
"된다냥. 대신 커피 줘라냥."
"커피?"
츄르가 아니고 커피라고? 츄르를 잔뜩 챙겨 온 여성 헌터들이 당황했다.
"잠깐만. 맥스 나 커피 좀 줘!"
여성 헌터들이 일행에게 커피를 뺏어왔다.
"아니면 후추같은 양념도 된다냥. 나랑 사진을 찍고 싶으면 성의를 보여줘라냥."
대표가 되고 싶은 욕심에 구걸냥이 되어가는 테오였다.
21화. 고구마 말랭이를 만들다.
21화. 고구마 말랭이를 만들다.
"줄을 서라냥!"
테오가 여성 헌터들을 줄 세워놓고 한 명씩 사진을 찍어줬다.
"보수를 달라냥."
사진을 찍자 테오가 앞발을 내밀며 말했다.
"어머! 분홍 젤리 좀 봐."
말캉말캉.
캐서린이 홀린듯이 테오의 앞발을 만지작거렸다. 테오는 좀 불편했지만, 이 인간에게 보수를 받아야 했기에 기다려줬다.
"자. 여기."
캐서린이 하얀 가루가 든 봉지를 내밀었다.
"이게 뭐냥?"
"소금이야."
"좋다냥."
휙.
테오가 빠르게 소금을 봇짐에 넣었다.
'푸후훗. 이걸로 테 대표 한 시간권 한 장 확보다냥.'
그때
"그리고 이건 그냥 테오 줄게. 덕분에 힐링 됐어."
캐서린이 챙겨왔던 츄르를 테오에게 건넸다.
"이걸 그냥 주는 거냥?"
"응. 네 발을 만지게 해줬잖아."
"헉! 그런 것이었냥?!"
캐서린의 말에 테오가 큰 충격을 받았다.
'인간들은 발을 만지게 해줘도 먹을 걸 주는구냥.'
"다음 인간 오라냥."
테오가 줄을 서고 있는 다음 인간과 사진을 찍었다.
척.
테오가 사진을 찍으며 은근슬쩍 자신의 앞발을 여성 헌터의 손 위에 올렸다.
'어서 만져라냥.'
테오의 의도대로 사진을 찍은 여성 헌터들은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치지 못하듯이 테오의 앞발을 홀린 듯이 만지고 앞서 캐서린이 했던 것처럼 츄르를 상납했다.
"푸후훗. 내 발이 인간들에게 그렇게 매력적인 것이다냥?"
테오가 자신의 앞발을 깨끗하게 핥으면서 말했다.
'푸후훗. 이거면 박세준 네 무릎은 내 것이다냥.'
여성 헌터들 덕분에 테오가 큰 오해를 해버렸다.
"내 위상이..."
이번에도 마력의 방울토마토 200개를 가져가겠다며 집에 큰소리를 치고 나온 김동식의 어깨가 축 처졌다.
그때
"여기 한국에서 온 인간 있냥?"
여성 헌터들과 포토타임을 끝낸 테오가 외쳤다.
"한국?"
"리더가 한국 사람이잖아."
헌터들이 김동식을 바라봤다.
"인간, 한국에서 왔냥?"
테오가 김동식에게 다가갔다.
"어. 한국에서 왔지. 그건 왜?"
"조용히 할 얘기가 있다냥. 따라와라냥."
테오가 김동식을 다른 헌터들이 엿듣지 못하도록 으슥한 곳으로 데려갔다.
***
조난 160일 차 아침.
"으아함."
세준이 하품을 하며 일어났다. 어제는 조금 잠을 설쳤다. 토끼 부부가 기어이 어제 거사를 치렀기 때문이다.
슥.
벽에 획 하나를 추가하고 하루를 시작했다.
작은 연못에서 플라스틱 용기로 물을 떠서 간단히 세수를 하고 텀블러에 꿀을 2꿀렁 담아 꿀물을 만들었다.
며칠 전부터 732그루의 방울토마토 나무에서 꽃이 피기 시작하면서 꿀벌들이 꿀을 빨 꽃이 늘어났다.
거기다 어제 새로운 새끼 독꿀벌 5마리가 새로 추가되면서 꿀 생산량이 급격히 늘어나 이렇게 매일 마셔도 소모하는 꿀보다 채워지는 꿀이 더 많아졌다.
뺘앙...
뺙...
자식 토끼들이 굴에서 나오며 기운 없는 목소리로 세준에게 아침 인사를 했다.
"너네도 못 잤지? 자 꿀물은 우리 솔로들만 마시자."
뺘아!
뺙!
자식 토끼들이 미리 만들어둔 당근컵을 내밀었다.
꼴꼴꼴.
"진짜 배신하면 안 된다. 알았지? 모태솔로인 너희만이 내 희망이야."
세준이 토끼들에게 꿀물을 따라주며 말했다. 그러나 토끼들은 세준의 말이 부담스러웠는지 꿀물만 받아서는 쌩하니 가버렸다.
뺘악!
흑토끼만이 남아 꿀물을 원샷하고 잔을 머리에 터는 퍼포먼스를 하고는 당근컵을 다시 내밀었다.
"그래. 흑토끼, 너는 믿었다."
꼴꼴꼴.
세준이 의리를 지키는 흑토끼의 당근컵 가득 꿀물을 따라줬다. 하지만 흑토끼도 꿀물 한 잔을 더 받고는 그냥 가버렸다.
쩝.
토끼들의 배신에 입이 썼다.
꿀꺽.꿀꺽.
그렇게 세준은 쓰디쓴 배신의 맛을 꿀물로 해결하고는 아침 농사를 시작했다.
톡.
[잘 익은 마력의 방울토마토를 수확했습니다.]
[직업 경험치가 아주 미세하게 상승합니다.]
[수확하기 Lv. 3의 숙련도가 아주 미세하게 상승합니다.]
[경험치 12를 획득했습니다.]
"오 플러스 등급."
세준이 E+등급 방울토마토를 따로 보관했다. E+등급은 유통기한이 더 길기에 다른 E등급 방울토마토보다 나중에 먹기 위해서였다.
아니면 테오에게 보내 더 좋은 가격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유통기한이 길어서 나쁠 건 없으니까.
세준이 그렇게 방울토마토를 수확하고 있을 때 탄내가 나기 시작했다.
"조금 있으면 꺼내야겠네."
세준은 점심으로 먹을 군고구마를 굽고 있었다. 토끼 부부가 밤에 한 짓은 용서할 수 없지만, 그래도 고생했으니 몸보신은 시켜주고 싶었다.
여기서 몸보신이라고 해봐야 최근에 수확해 희소성이 있는 군고구마 정도였다.
그리고 군고구마 냄새가 무르익자 세준이 군고구마를 꺼내기 시작했다.
근데 꺼내는 숫자가 좀 많았다. 무려 군고구마 50개. 아무리 토끼 부부가 몸보신이 필요하다고 해도 너무 많은 숫자였다.
그때
삐익!
삐이!
때마침 토끼 부부가 사이좋게 집에서 나왔다.
"밥 먹자!"
뺘아!
뺙!
세준의 외침에 토끼들이 점심을 먹으러 우다다 달려왔다.
삐이...
뺘아...
뺘악...
토끼들이 군고구마를 가득 먹고 배를 두드리며 늘어졌다. 토끼들이 먹은 군고구마는 3개. 열심히 분발했지만, 당근처럼 많이 먹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아 배부르다."
세준도 군고구마 2개를 먹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탑의 관리자가 그럼 남은 것은 다 내 것이냐고 물어봅니다.]
"아까 5개 줬잖아. 이건 따로 할 게 있어."
[탑의 관리자가 실망합니다.]
"기다려봐. 새로운 거 먹게 해줄게."
[탑의 관리자가 당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크게 기대합니다.]
세준이 탑의 관리자와 말하고는 남은 군고마의 껍질을 깠다.
그리고
"이것 좀 썰어줘."
낫을 든 백토끼에게 군고구마를 새끼 손가락 크기 정도 썰어달라고 부탁했다.
흑토끼에게 말리고 있는 파 이파리 위에 자른 고구마를 포개지 않고 나란히 깔게 했다.
"이제 잘 말리기만 하면 끝이야."
군고구마가 따뜻한 햇빛을 받으며 군고구마 말랭이로 변하고 있었다.
***
탑 75층.
테오가 유랑 상인 본부가 있는 상인 구역에 도착했다. 이번에는 놀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몇 가지 물건을 사 오라는 세준의 심부름 때문이었다.
"냄비, 국자, 그릇, 숟가락, 단검. 냄비..."
테오가 세준이 사 오라고 한 물건을 까먹지 않게 입으로 중얼거리면서 상점 구역을 걸었다. 세준은 호구인 테오를 믿을 수 없기에 일단 가장 필요하고 저렴한 물건 5개만 사 오게 했다.
"어서 오세요."
테오가 잡화점으로 들어가 필요한 물건들을 집어 상점 주인에게 가져갔다.
"냄비 1탑코인, 국자 0.2탑코인, 그릇 0.3탑코인, 숟가락 0.1탑코인 이니까 총 1.6탑코인입니다."
"깎아달라냥."
"흐음...그럼 1.5탑코인에 해드리죠."
"더 깎아달라냥."
"손님, 저희도 에누리 없이 드리는 겁니다."
"알겠다냥."
테오가 대답하고는 미련 없이 뒤돌아 나가기 시작했다.
"제가 졌습니다. 1.3탑코인에 드립죠."
"1.2탑코인. 아니면 그냥 나가겠다냥."
"휴우. 알겠습니다. 1.2탑코인."
"여기 있다냥."
테오가 물품을 구입하고 태연하게 나왔다.
하지만
쿵쾅!쿵쾅!
테오의 심장은 심하게 뛰고 있었다.
"휴우. 내가 해냈다냥."
세준은 테오가 호구가 되지 않게 최소한의 대책으로 3번 깎기 작전을 지시했다.
일단 상대가 가격을 부르면 무조건 깎아달라고 하고, 안 된다고 하면 미련없이 나간다. 그리고 만약 붙잡으면 거기서 더 깎아 총 3번 깎고 사는 작전.
그렇게 테오는 세준이 가르쳐 준 대로 대장간에 가서도 3번 깎기를 시도해 20탑코인짜리 단검을 13탑코인에 구매했다.
"푸후훗. 이제 나는 가격을 깎을 줄 아는 유랑 상인이다냥."
테오가 뿌듯해하며 99층으로 가려 할 때
"이건 탑 밖의 물건이야."
"밖의 물건이요?!"
"그래. 이걸 위층으로 가져가면..."
어디서 익숙한 소리가 들렸다.
테오가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고블린 유랑 상인 스카람이 또 신입 여우 유랑 상인을 등치려 하고 있었다.
'저 나쁜 놈이...!'
"스카람 말 믿지 말라냥. 저 놈 사기꾼이다냥."
테오가 신입 유랑 상인이 자신처럼 당하지 않도록 스카람의 사기를 방해했다. 거래에서 테오가 호구 짓을 하는 건 막은 세준이지만, 오지랖은 예상하지 못했다.
"뭐?! 내가 사기꾼이라는 증거 있어?!"
스카람은 테오를 보고 잠깐 당황했지만, 오히려 언성을 높이며 소리쳤다.
"그 텀블러 분명 보존 마법이 걸려있다고 했겠지냥? 믿지 마라냥. 이 텀블러는 외부랑 접촉을 차단해 열의 이동을 막아 온도가 늦게 떨어질 뿐이다냥."
테오가 세준이 한 말을 떠올리며 자신 있게 말했다.
"이익...두고 보자."
테오의 말이 다 맞았기에 이번 거래는 텄다고 생각하며 스카람이 물러났다.
"고맙습니다. 덕분에 사기를 당하지 않았어요.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내 이름 말이냥? 난 테오다냥."
"테오 님이셨군요.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래. 조심하라냥. 호구 짓하지 말라냥."
"네. 안녕히 가세요."
테오가 호구 하나를 구하고 기분 좋게 99층으로 올라갔다.
테오가 사라진 상인 구역. 신입 여우 유랑 상인이 인적 드문 골목길의 한 상점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뭘 드릴까요?"
"영원한 황금."
대답을 한 여우 유랑 상인은 상점 주인을 지나쳐 구석에 걸린 방패를 눌렀다.
철컥.
방패가 뒤로 밀리며 지하로 가는 계단이 나타났다.
그리고 계단을 타고 내려가자 분주히 움직이는 상인들이 보였다.
"제라스 요원, 스카람 체포 작전은 어떻게 됐나?"
"죄송합니다. 실패했습니다."
유랑 상인 협회 비밀감찰국 소속 제라스는 신입 유랑 상인에게 사기를 치는 스카람에 대한 첩보를 듣고 신입 유랑 상인으로 위장해 스카람을 현행범으로 잡는 작전을 수행 중이었다.
'그놈만 없었어도!'
으드득.
제라스가 테오를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푸후훗. 스카람의 그 분한 얼굴을 떠올리니 기분이 좋아진다냥."
테오는 자신도 모르게 스카람을 구해주고 말았다.
***
고가의 외제차 한 대가 부천의 한 아파트 앞에 도착했다.
"여기가 세준 님의 집인가?"
김동식이 아파트를 둘러보며 테오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무슨 얘긴데?"
"나와 거래를 하자냥."
"거래?"
테오가 계약서 한 장을 꺼냈다. 탑에서 만든 계약서의 강제성은 밖에서도 통하기에 많이 사용하는 거래 방법 중 하나였다.
김동식이 계약서를 살펴봤다. 계약서에는 미리 세준이 작성한 내용이 쓰여 있었다.
"부천시 소사구...뉴월드 아파트 305동 701호 박세준의 가족에게 5000만 원을 전달하라고?"
"그렇다냥. 그리고 세준 님이 잘 있다고 말해줘야 한다냥. 대가는 마력의 방울토마토 200개와 50탑코인이다냥."
테오가 따로 빼둔 방울토마토를 꺼냈다.
"할게!"
마력의 방울토마토 200개가 필요했던 김동식이 외쳤다.
"근데 박세준 님이 누구야?"
"박세준 님은 대단한 남자다냥! 40층에서 내 목숨을 구해줬다냥. 그래서 심부름을 하는 것이다냥."
테오가 세준과 대화를 맞춘 시나리오였다.
"뭐?! 40층?"
그렇게 비공식적으로 40층에 오른 천재적인 재능의 헌터에 대한 소문이 만들어졌다.
'그런 헌터의 가족이라니... 친해지면 나중에 도움이 될 거야.'
김동식이 트렁크에서 한우 세트를 꺼내 아파트로 들어갔다.
그리고
띵동.
김동식이 세준의 집 초인종을 눌렀다.
22화. 가족에게 안부를 전하다.
22화. 가족에게 안부를 전하다.
"누구세요?"
문 너머에서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저는 박세준 님의 부탁을 받고 왔습니다."
"네?! 엄마!"
"여보!"
김동식의 대답에 안이 소란스러워졌다.
'이거 무슨 일 난 거 아냐?'
김동식이 문을 뜯어내고 들어가야 하나 고민할 때
철컹.
문의 도어락이 열렸다.
그리고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들어오시죠."
문 너머 20대 남자가 문을 열어줬다.
'세준 님의 동생인가?'
김동식이 한우 선물 세트를 들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집은 낡은 흔적은 보였지만, 관리를 잘했다는 느낌이 드는 온기가 가득한 집이었다.
거실에는 문을 열어준 남자와 비슷하게 생긴 50대 남자가 있었다.
'세준 님의 아버님이군.'
세준의 어머니 쪽은 아까 소란으로 인해 안방에 있는 것 같았다.
"정식으로 인사드립니다. 피닉스 길드의 5번 팀을 맡은 리더 김동식이라고 합니다."
"네? 피닉스 길드요?!"
타다다닥.
세준의 동생 세돌이 서둘러 스마트폰으로 검색을하기 시작했다.
피닉스 길드 정도면 길드원들도 한 번씩은 TV에 나와 인터뷰 한 번 정도는 다 하는 유명 인사다. 그런데 리더라고?!
피닉스 길드 팀의 리더급이면 인터넷에 검색만 해도 수만 장의 사진이 나올 것이다.
그리고 검색을 끝낸 세돌이 스마트폰의 사진과 김동식의 얼굴을 번갈아 보더니.
"마...맞아요. 이분 진짜 피닉스 길드 5팀 리더 김동식 님이에요."
"그럼 세준이는..."
"역시 형은..."
분위기를 보니 세준의 가족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저는 박세준 님의 부탁을 받고 이걸 전달하러 왔습니다."
김동식이 서둘러 오해를 풀기 위해 봉투 하나를 건넸다.
하지만
"세준아..."
"혀엉..."
더 큰 오해를 불러왔다.
"유서가 아닙니다. 5천만 원입니다."
"네?!"
"...?!"
세돌이 재빠르게 봉투 안의 내용물을 꺼냈다.
봉투 안에서 나온 건 '50,000,000원'이라는 숫자가 적힌 눈부신 수표였다.
"박세준 님이 자신은 잘 있다고 가족분들에게 전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건 제 선물입니다."
김동식이 한우 선물 세트를 내밀었다.
"저희 세준이는 잘 지내고 있는 거죠?"
"네. 잘 지내고 있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여보!"
세준의 아버지 박춘호가 서둘러 세돌의 손에 들린 수표를 낚아채 안방으로 달려갔다.
***
세준이 탑에 들어간다고 톡을 보낸 이후 3달이 넘도록 세준이 돌아오지 않자 세준의 가족은 한국 각성자 협회에 탑 안에 세준이 있는지 확인을 요청했다.
하지만 두 달이 지나도록 아직까지 연락이 없자 점점 나쁜 쪽으로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상황에서 김동식이 세준의 부탁을 받고 왔다고 하니 부고를 전하러 왔다고 오해를 한 것이다.
잠시 후
안방에 들어갔던 박춘호가 아내 김미란과 함께 나왔다.
"감사합니다. 저희 세준이 진짜 괜찮은 거죠? 근데 왜 안 나와요?"
"퀘스트 때문에 나올 수가 없다고 합니다. 어머님,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김동식이 자신 있게 대답했다. 퀘스트는 김동식이 즉흥적으로 생각해 낸 생각이었다. 가끔 탑의 퀘스트 중에 탑을 나가면 무효가 되는 퀘스트가 있었다.
거기다 잠깐 세돌과 대화를 나눴는데 세준이 탑에 들어간 지 5달이 조금 넘었다고 했다.
10년 동안 탑 40층에 도달한 헌터가 없는데 5개월 만에 탑 40층? 희대의 천재다!
김동식은 세준의 재능에 점점 환상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세돌에게도 눈이 갔다. 몸도 좋았고 형에게 그렇게 대단한 재능이 있다면 동생도 재능이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탐이 났다. 자신이 직접 티켓을 주고 각성을 시키고 싶을 정도.
하지만 세준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기에 그러지 않았다.
헌터가 되면 화려한 명성과 돈을 얻을 기회가 생기지만, 그걸 갖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 한다. 그래서 헌터들 중 가족에게 헌터를 권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괜히 허락을 받지도 않고 각성을 시켰다가 오히려 관계가 악화될 수도 있었다.
"그럼 저는 이만 일어나 보겠습니다."
"아니. 식사라도 하고 가세요."
"아닙니다. 제가 탑에서 나오자마자 바로 온 거라서요. 가족들이 기다립니다."
"아. 제가 바쁜 분을 붙잡았네요. 그러면 조심히 가세요."
"네. 그럼 가보겠습니다."
김동식이 나오려는 세준의 가족들을 막으며 집에서 나왔다.
화르르륵.
김동식의 품에 있던 계약서가 푸른 불길을 내며 타기 시작했다. 계약이 이행됐다는 뜻. 마법적인 불이기에 다른 것은 태우지 않았다.
"됐군."
부릉.
김동식이 차에 시동을 걸고 집으로 출발했다. 이제 마력의 방울토마토를 가져가서 가장의 위상을 세울 때였다.
***
조난 161일 차.
일어나자마자 벽에 획 하나를 긋고 세수를 했다.
"잘 전해졌겠지?"
세준이 가족들을 생각했다. 분명 마력의 방울토마토가 밖에 알려지기 시작했으니 자신이 살아있다는 건 알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돈을 보내서 자신이 정말 잘살고 있음을 알리고 싶었다.
그때
윙윙.
독꿀벌들이 열심히 높이 솟은 옥수수 근처를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응?"
세준이 다가가니 그동안 풀처럼 높이 자라기만 해서 큰 관심을 갖지 않았는데 무성히 자라던 옥수수 줄기의 끝에 어느덧 꽃이 피어 있었다
거기다 씨앗 상점에서 산 씨감자들의 싹도 올라와 있었다.
"미안. 얘들아, 요즘 형이 신경을 못 썼네."
쏴아아.
세준은 서둘러 세수를 하고 옥수수와 감자 싹에 물을 주며 사과했다.
덕분에 토끼들도 덩달아 일어나자마자 일을 하기 시작했다.
옥수수 씨는 200개 중에서 139개가 자랐고, 씨감자도 400개 중 282개의 싹이 났다. 씨앗 상점에서 산 씨앗들의 발아율은 대략 70% 근처에서 고정돼 있는 것 같았다.
'좀 더 두고 보긴 해야겠지만.'
세준은 그렇게 자라나는 옥수수와 감자에 물을 주고 아침 식사를 준비했다.
오늘 아침 메뉴는 어제 햇빛에 말린 군고구마 말랭이와 당근. 군고구마 말랭이는 잘 마르도록 어제 자기 전 한 번 뒤집어줬다.
세준이 군고구마 말랭이가 잘 됐는지 하나를 손가락으로 집었다. 겉이 잘 말라서 손에 끈적하게 묻어나지 않았다.
"좋아."
세준이 만족스러워하며 군고구마 말랭이를 입에 넣었다.
오물오물.
씹자마자 군고구마 특유의 향과 함께 햇빛에 수분이 날아가며 더욱 농밀해진 고구마의 단맛이 세준의 혀를 즐겁게 했다.
그리고
쫀득쫀득.
군고구마 말랭이 특유의 끈적한 식감이 먹는 재미를 더해줬다.
오도독.
삐익?
뺘아?
뺙?
당근을 다 먹은 토끼들이 세준의 표정을 보고는 새로운 먹거리에 기대감 찬 눈빛으로 세준을 바라봤다. 먹어도 됨?
끄덕.
세준이 고개를 끄덕이자 토끼들이 우다다 군고구마 말랭이를 향해 달려갔다.
삐익!!
빠얍!!
뺙!!
토끼들이 극대화된 단맛에 취한듯이 몽롱한 표정을 지으며 군고구마 말랭이를 먹기 시작했다.
[탑의 관리자가 뭔가 잊지 않았냐고 물어봅니다.]
"알았어."
세준이 첫날 먹었던 세척 사과의 봉지에 군고구마 말랭이를 가득 담았다.
"자 맛있게 먹어."
봉지째 군고구마 말랭이가 사라졌다.
[탑의 관리자가 군고구마 말랭이의 달달함에 기뻐합니다.]
그렇게 토끼와 탑의 관리자에게 군고구마 말랭이의 맛을 알려준 세준도 서둘러 군고구마 말랭이를 먹기 시작했다. 군고구마 40개를 말렸는데 오늘 안에 사라질 것 같았다.
아침을 먹은 세준이 토끼들이 먹고 남긴 줄기가 손가락 한 마디 정도 남아있는 당근 윗동 3개를 들고 며칠 전 고구마를 수확한 밭으로 갔다.
그곳은 이미 흑토끼가 해머로 땅을 평평하게 만들고 삽을 든 토끼 둘이 이랑을 만들어 새로운 농작물을 심을 수 있는 밭으로 완성됐다.
세준이 두둑의 땅을 파고 당근의 줄기가 흙에 묻히지 않게 심었다.
[당근 뿌리의 윗동을 심었습니다.]
[씨뿌리기 Lv. 2의 효과로 당근이 뿌리를 내릴 확률이 증가합니다.]
[씨뿌리기 Lv. 2의 숙련도가 아주 미세하게 상승합니다.]
우연히 당근 윗동만 있어도 당근의 싹이 자란다는 걸 알게 된 이후로 세준은 토끼들에게 윗동 취식 금지를 내렸다.
그리고 매일 토끼들이 먹고 남긴 당근 윗동 3~5개 정도를 심고 있었다. 물론 기존에 심은 당근 몇 개는 꽃을 피워 씨를 받는 채종도 준비하고 있었다.
그렇게 3번째 당근 윗동을 심었을 때
[씨뿌리기 Lv. 2의 숙련도가 아주 미세하게 상승합니다.]
[씨뿌리기기 Lv. 2의 숙련도가 채워져 레벨이 상승합니다.]
"오!"
씨뿌리기 스킬의 레벨이 상승했다. 농사는 이게 좋다. 열심히 일하다 보면 조금씩 쌓여 뜻하지 않은 보상을 준다.
오늘도 아침부터 보람찼다.
"흥흥흥."
세준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방울토마토 수확을 시작했다.
그렇게 방울토마토를 수확하고 있을 때
[방울토마토꽃의 꿀을 1mL 획득했습니다.]
[양봉 Lv. 2의 숙련도가 미세하게 상승합니다.]
[방울토마토꽃의 꿀을 1mL 획득했습니다.]
[양봉 Lv. 2의 숙련도가 미세하게 상승합니다.]
...
..
.
"왜 옥수수꽃 꿀은 없지?"
분명 독꿀벌들이 옥수수꽃에도 열심히 왔다 갔다 하고 있는데 옥수수꽃 꿀을 획득했다는 메시지는 나오지 않았다.
"옥수수꽃에는 꿀이 없나?"
세준이 옥수수꽃에 꿀이 있나 없나에 대해서 생각할 때
뺙?뺙!
흑토끼가 위풍당당하게 다가왔다. 뭐 함? 나 레벨업!
또 피라니아를 잡고 레벨업을 한 모양이었다. 이 정도면 피라니아 학살자 수준 아닌가?
"응?"
세준의 눈에 흑토끼가 걸을 때마다 엉덩이에 붙어 달랑달랑 움직이는 군고구마 말랭이가 보였다. 아까 열심히 먹다가 달라붙은 모양이었다.
"푸하하하. 이건 이따가 먹으려고?"
세준이 흑토끼의 엉덩이에 달라붙은 군고구마 말랭이를 떼줬다.
드드득.
뭔가 뜯기는 느낌이 났다.
뺙!
따끔했는지 흑토끼가 소리를 질렀다. 진짜 아팠는지 흑토끼의 눈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어?!"
세준이 자신의 손에 들린 군고구마 말랭이를 보니 검은 털이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미안."
뺙!
흑토끼가 토라진 표정을 지으며 세준의 무릎에 엎드렸다. 아프니까 빨리 두드려줘.
"알았어."
탁.탁.탁.
세준이 흑토끼의 포동포동한 엉덩이를 두드려주며 잠깐 쉬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슬슬 잘 준비를 할 때
툭.
독꿀벌이 벌집에 들어가기 전에 세준의 손에 노란색 사탕처럼 생긴 것을 한 개 놓고 갔다.
[옥수수 꽃가루 뭉치 10g을 획득했습니다.]
[양봉 Lv. 2의 숙련도가 미세하게 상승합니다.]
"옥수수 꽃가루 뭉치?"
옥수수꽃에는 꿀대신 이 꽃가루 때문에 독꿀벌들이 왔다 갔다 한 모양이었다. 세준이 자신의 손에 놓인 옥수수 꽃가루 살펴보다 입에 넣었다.
사르륵.
입에 넣자마자 옥수수 꽃가루 뭉치가 침에 녹으며 솜사탕처럼 풀어졌다.
"달다."
세준이 미소를 짓고 있을 때
툭.툭.툭.
[옥수수 꽃가루 뭉치 10g을 획득했습니다.]
[양봉 Lv. 2의 숙련도가 미세하게 상승합니다.]
...
..
.
독꿀벌들이 옥수수 꽃가루 뭉치를 하나씩 세준의 손바닥에 놓고 벌집으로 퇴근했다.
어느새 세준의 한 손 가득 옥수수 꽃가루 뭉치 15개가 수북이 쌓였다.
"으음."
세준이 입에 옥수수 꽃가루 뭉치를 하나 더 넣고 맛을 음미할 때
"내가 돌아왔다냥!"
테오가 3번째 완판과 세준의 심부름을 끝내고 돌아왔다.
23화. 아이템을 감정하다.
23화. 아이템을 감정하다.
위대한 검은 용 에일린 프리타니는 요즘 기분이 너무 좋았다. 자신의 실수로 들어온 인간이 알고 봤더니 복덩이였다.
'자랑이라도 하고 싶지만, 참아야지.'
자신의 실수를 들킬 수는 없었다.
"크릉.크릉.크르릉."
에일린이 콧노래를 부르며 프리타니 가문 조상들이 대대로 모은 물건들을 보관하는 컬렉션 창고로 갔다. 컬렉션 창고에는 영구보존 마법이 걸려있어 안에 있는 물건은 항상 그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
철컥.
에릴린이 창고의 문을 열었다. 창고 안 진열장에는 지구에 풀리는 순간 수백억은 가볍게 호가할 아이템들이 즐비했다.
에일린이 진열된 아이템들을 쌩하고 지나쳐 빈 진열대에 앞에 섰다.
그리고
부스럭.부스럭.
자신의 물건이 부서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진열대 위에 올려놓고는 뿌듯하게 바라봤다.
새롭게 추가된 컬렉션에는 한국어로 '예산 세척 사과'라고 쓰여있었다.
세준이 군고구마 말랭이를 담아줬던 세척 사과 봉지였다. 예산 세척 사과 봉지가 수백만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프리타니 가문의 컬렉션 창 한자리를 당당하게 차지하는 영광을 얻었다.
"헤헷. 인간이 또 뭐 맛있는 거 만드는지 확인해야지."
에일린이 창고를 나와 수정구 앞에 앉아 세준의 동굴을 지켜봤다.
"오! 고양이 상인이 돌아왔구나. 을 녀석, 우리 인간을 또 속이기만 해봐랏!"
검은 용 에일린 프리타니가 혹시 테오가 세준을 속이지는 않을까 뚫어지게 수정구를 바라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