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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5 - 5

***

"크르릉. 으음...내가 또 의식을 잃은 건가?"

에일린은 가끔 마나 부족으로 인해 의식을 잃을 때가 있었다. 요즘은 그런 일이 없었고 발작도 없어서 괜찮은 줄 알았는데...

에일린이 씁쓸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스윽.

"어?!"

에일린은 평소와 다른 자신의 몸상태에 당황했다.

평소 에일린이 의식을 잃을 때는 몸이 생존을 위해 강제로 스위치를 내리는 느낌으로, 자고 일어나면 몸이 천근만근 무거웠다.

하지만 지금은 날아갈 듯 몸이 너무 가벼웠다.

"왜 이렇게 몸이 가볍지? 아! 방울토마토!"

에일린은 그제야 자신이 의식을 잃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생각났다.

블루문의 기운이 담긴 마력의 방울토마토!

에일린은 세준이 준 푸른색 방울토마토 5개를 받자마자 바로 입에 넣고 씹었다. 새콤달콤한 게 너무 맛있었다.

그렇게 맛을 음미하는 동안

쿵.쾅.쿵.쾅.

약하고 느렸지만, 연속으로 뛰기 시작하는 드래곤하트의 박동을 느끼며 의식을 잃었다가 지금 일어난 것이었다.

"그럼 드래곤하트는?"

에일린이 서둘러 자신의 드래곤하트에 집중했다.

"..."

박동을 했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드래곤하트는 고요했다. 그리고 마나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너무 기대했나?"

에일린이 실망하며 인간을 구경하기 위해 수정구로 다가갔다. 자신이 없는 사이에 혼자 맛있는 걸 먹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때

쿵!

"아코!"

수정구가 있는 방으로 들어가는 에일린의 머리가 뭔가에 부딪혔다.

"윽! 뭐야?"

에일린이 몸을 움츠리며 자신을 아프게 한 것을 바라봤다. 문천장이었다.

"저게 왜?"

자신의 키와 문천장과는 대략 10m 정도의 거리가 있어 자신이 날지 않는 이상 머리가 절대 문천장에 닿을 수 없었다.

"뭐지?"

에일린이 이상함을 느끼고 목욕을 하는 호수로 가 자신의 모습을 살폈다. 물에 비치는 검은 용은 에일린이 알던 모습보다 커져 있었다.

"어?! 나 자랐네? 크르릉."

에일린이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한참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때

"어?! 나 뭐 하려고 했었지?"

문득 중요한 걸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차!

이럴 때가 아니었다. 에엘린이 서둘러 수정구로 달려갔다.

"역시! 인간 녀석 나만 빼고 맛있는 거 먹으려고 했어!"

때마침 수정구에서는 세준이 찐 옥수수를 냄비에서 꺼내고 있었다. 기가 막힌 타이밍. 먹을 복은 있는 에일린이었다.

***

오늘 저녁은 옥수수를 이용한 요리로 찐 옥수수와 옥수수구이였다.

"됐다."

세준이 불가에서 냄비를 꺼내 집게로 찐 옥수수를 하나씩 빼기 시작했다.

그때

[탑의 관리자가 자신도 옥수수를 맛보고 싶다고 말합니다.]

[탑의 관리자가 한 개만 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퀘스트가 발생합니다.]

[퀘스트 : 배고픈 탑의 관리자에게 옥수수 요리를 줘라.]

보상 : 매우 고마움

거절 시 : 매우 서운함.

"조금만 기다려. 아직 덜 됐어."

[탑의 관리자가 자신은 잘 기다릴 수 있다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세준은 찐옥수수가 식는 동안 옥수수구이가 만들어지는 숯불 근처로 갔다.

새끼 곰이 가져왔던 나무로 만든 숯에, 나뭇가지로 옥수수대를 관통한 옥수수를 토끼들이 천천히 돌려가면서 굽고 있었다. 열기에 옥수수의 겉이 노릇노릇하게 구워져 있었다.

토끼들의 옆에는 이미 구워진 30개의 옥수수구이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이제 그만 구워도 되겠다."

삐익!

뺘아!

뺙!

세준의 말에 토끼들이 자리에서 찐 옥수수와 옥수수구이를 하나씩 챙겨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준은 찐 옥수수와 옥수수구이를 각 5개씩 들었다.

"에일린, 맛있게 먹어."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퀘스트 완료 보상으로 탑의 관리자가 매우 고마워합니다.]

"그래."

세준은 에일린에게 옥수수를 주고 토끼들과 함께 옥수수를 먹기 시작했다.

테오가 없자 세준의 곁에서 옥수수를 먹고 있는 새끼 토끼들.

뺘압!

뺩!

새끼들이 옥수수를 먹기 위해 노력했지만, 아직 그들에게는 옥수수는 너무 크고 먹기 어려웠다.

"우리 이렇게 먹자."

드르륵.

세준이 새끼 토끼가 먹고 있는 옥수수를 들고 숟가락으로 옥수수알갱이를 긁어내 그릇에 담아 새끼들에게 주었다.

오물오물.

새끼들이 앞발로 그릇 안에 든 옥수수알갱이를 집어 먹기 시작했다.

잠시 후

뺘아!

뺘암!

뺘앗!

새끼 토끼들이 빈 그릇을 보이며 세준에게 옥수수를 더 달라고 울어댔다. 꽤 많은 양이었는데 벌써 다 먹은 것이다.

"잠깐만 기다려."

세준이 옥수수를 하나 집어 그릇을 가져오기 위해 고개를 돌렸을 때

"푸웃! 뭐야?"

새끼들의 모습을 보고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새끼들은 옥수수알갱이로 옥수수 위장을 하고 있었다.

새끼들이 먹은 옥수수알갱이는 절반 정도. 나머지는 털에 붙어 있었다.

뺘아!

뺘암!

뺘앗!

새끼 토끼들은 옥수수 알갱이를 몸에 잔뜩 묻혀놓고 더 달라고 시위를 하고 있었다.

"이러니까 모자라지."

세준이 새끼 토끼의 몸에 묻은 옥수수알갱이를 하나씩 떼어내 새끼 토끼들의 입에 넣어 주었다.

뺘!

뺘!

뺘!

새끼 토끼들이 아기 새처럼 주둥이를 내밀고 서로 먹겠다고 싸웠다.

"어허! 기다려! 움직이는 토끼는 안 줄 거야."

세준이 엄한 목소리로 새끼 토끼 하나를 안고 몸에 붙은 옥수수알갱이를 하니씩 떼어내 새끼 토끼들의 입에 넣어주었다.

"테오가 있을 때가 편했는데..."

처음으로 테오의 빈자리를 느끼는 세준이었다. 테 대표가 그리웠다.

34화. 지력을 올리다.

34화. 지력을 올리다.

꾸엥!

오늘도 새끼 곰의 외침으로 아침을 시작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토끼 부부의 굴속에서 새끼 토끼들이 서라운드로 함께 울어댄다는 것.

스윽.

세준이 동굴 벽에 획 하나를 추가하며 조난 185일 차의 아침을 시작했다

오늘은 씨앗상점이 열리는 날.

"좋은 씨앗 나오게 해주세요."

세준이 경건한 마음으로 연못에 소원을 빌고 세수를 하는 사이

삐익!

뺘앙!

뺘압!

뺘앗!

토끼 부부가 새끼들을 데리고 나왔고

뺘아!

뺙!

자식 토끼들도 굴에서 나왔다. 그리고 함께 아침을 준비했다. 아침 메뉴는 간단하게 군고구마 말랭이와 당근.

오도독.오도독.

어른 토끼들이 조용히 아침을 먹고 있을 때

뺘앙!

뺘압!

뺘앗!

새끼 토끼들은 질서정연하게 세준 삼촌 앞에 줄을 서 있었다.

오물오물.

세준이 군고구마 말랭이를 씹으며 단검으로 당근을 감자튀김 크기로 썰어 새끼 토끼들에게 두 개씩 나눠줬다.

오도독.오도독.

새끼 토끼들이 양손에 하나씩 당근 스틱을 들고 양쪽 당근을 교대로 한 번씩 씹으며 열심히 먹었다.

세준은 자르고 남은 당근도 썰어 예전에 씨앗을 사고 받은 가죽 주머니 두 개에 담았다. 주머니가 크지 않아 당근 스틱이 5개 정도 들어갔다.

그리고 파 이파리로 끈을 만들어 가죽 주머니에 묶어 가방을 완성했다.

"자 이제 너희가 보급 담당이야."

세준이 5마리 중 상대적으로 덩치가 큰 새끼 토끼 두 마리의 몸에 사선으로 가죽 주머니 가방을 걸어줬다.

뺘앙!!!

가죽 주머니 가방을 멘 새끼 토끼들이 호기롭게 외쳤다. 이제 난 최강이다. 왜냐하면 당근을 배고플 때마다 꺼내 먹을 수 있으니까!

그렇게 세준과 토끼들이 아침을 먹고 작업을 시작했다.

서걱.서걱.

세준이 빠르게 파 이파리를 베어냈다. 아내 토끼가 다시 복귀했지만, 세준의 속도가 더 빨랐기에 아내 토끼는 새끼 토끼들을 돌보며 할 수 있는 간단한 일을 맡았다.

오늘 세준이 오전에 할 일은 파 이파리를 자르기, 방울토마토와 옥수수 수확. 옥수수는 어제 한 번 더 수확해 아직 덜 영근 것을 남겨둔 거라 수확할 양이 많지 않았다.

서걱.

세준이 수확한 방울토마토 가지를 아내 토끼에게 가져가자

빠앙!

뺘압!

뺘앗!

새끼 토끼들이 엄마 토끼를 따라 방울토마토를 따는 게 보였다. 아직 힘이 부족해 2~3마리씩 붙어서 방울토마토를 따고 있었는데 방울토마토를 따려고 낑낑대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세준은 그런 새끼 토끼들을 넋 놓고 구경하다가 정신을 차리고 옥수수밭으로 가서 남은 옥수수들을 수확했다.

툭.

[잘 익은 체력의 옥수수를 수확했습니다.]

[직업 경험치가 조금 상승합니다.]

[수확하기 Lv. 4의 숙련도가 조금 상승합니다.]

[숙련도 상승 Lv. 1의 효과로 수확하기 Lv. 4의 숙련도가 5% 추가 상승합니다.]

[경험치 24을 획득했습니다.]

그동안 D등급은 +등급이 나오지 않더니 드디어 D+등급 농작물을 수확했다. 유통기한이 D등급의 1.5배인 90일이나 됐다.

"직업 경험치가 많이 쌓였나 보네."

세준의 경험상 +등급 농작물이 수확되는 조건은 직업 경험치가 절반쯤 찼을 때부터였다.

"좋아."

세준이 기세를 몰아 옥수수들을 수확했다.

그리고

[레벨업 했습니다.]

[보너스 스탯 1을 획득했습니다.]

세준의 레벨이 올라 16레벨이 됐다. 보너스 스탯으로 작업 속도를 높이기 위해 민첩을 올렸다.

"시간이 남네."

오늘 작업량이 평소보다 적었는지 옥수수 수확이 끝났는데도 시간이 많이 남았다. 세준은 점심을 준비하기 전까지 옥수수 채종을 하기로 했다.

세준이 저장고에서 옥수수 20개를 꺼내왔다. 수확한 옥수수 중에서 옥수수알갱이가 이쁘고 크게 박힌 녀석들만 채종용으로 따로 골라둔 것이었다.

토독.토독.

세준이 숟가락으로 긁어내면 혹시 옥수수알갱이 안의 씨앗이 상할까 옥수수알갱이를 조심스럽게 손으로 하나씩 떼어내 플라스틱 용기에 담았다.

[옥수수 씨앗을 얻었습니다.]

[직업 경험치가 미세하게 상승합니다.]

[채종하기 Lv. 1의 숙련도가 조금 상승합니다.]

옥수수 하나에 대략 옥수수알갱이 200개나 됐지만, 작업이 점점 손에 익으며 세준의 손이 빨라졌고 옥수수 20개의 채종이 빠르게 끝났다.

그리고

[채종하기 Lv. 1의 숙련도가 채워져 레벨이 상승합니다.]

옥수수 20개에서 정확히 3987개의 옥수수 씨앗을 채종한 세준의 채종하기 스킬의 레벨이 올랐다.

"다 했다."

채종을 끝낸 세준이 자리에서 일어나려 할 때

[씨앗 상점이 열립니다.]

[오늘 판매할 씨앗 3종이 랜덤으로 보여집니다.]

[현재 등급에서는 씨앗을 한 번만 구매 가능합니다.]

씨앗 상점이 열리며 오늘 구매할 수 있는 씨앗들이 나타났다.

[무 씨앗 100개 - 0.1탑코인]

[오이 씨앗 100개 - 0.2탑코인]

[땅콩 씨앗 1000개 - 5탑코인]

"으음···다 괜찮긴 한대..."

세준이 씨앗들을 보며 고민했다. 무는 생으로 먹어도 맛있긴 하지만, 함께 먹을 재료나 양념이 부족하기에 나중을 기약했다. 오이도 비슷한 이유로 걸렀다.

"오늘은 땅콩이다."

세준이 땅콩을 사기로 마음을 정했다. 땅콩을 볶아 먹으면 그 특유의 고소한 향과 맛이 일품이다.

거기다 세준의 얕은 농사 상식에 땅의 지력을 올리는데 콩이 좋다는 내용을 본 기억이 있었다.

"땅콩도 콩이니까."

땅에서 나는 콩이라서 땅콩.

땅콩은 지상 밭의 지력을 회복시켜줄 수 있는 작물이었다.

세준이 땅콩을 구매했다.

[땅콩 씨앗 1000개를 구매했습니다.]

[씨앗 은행 박세준 님의 계좌에서 5탑코인이 빠져나갑니다.]

[씨앗 상점 마일리지 50점이 적립됩니다.]

[씨앗 상점 마일리지가 총 106점 적립됐습니다.]

[다음 등급 상승을 위해 씨앗 상점 마일리지가 100점 차감됩니다.]

"차감?"

[박세준 님의 등급이 신입에서 평범으로 상승합니다.]

[평범 등급에서는 4종류의 씨앗이 랜덤으로 보여집니다.]

[평범 등급에서는 씨앗을 5탑코인 금액 안에서 원하는 만큼 구매할 수 있습니다.]

[씨앗 상점 Lv. 1의 레벨이 상승합니다.]

씨앗 상점의 등급이 상승하자 씨앗 상점 스킬의 레벨도 상승했다.

[씨앗 상점을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30일 후에 다시 씨앗 상점 Lv. 2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잘그락.

세준의 손에 땅콩 씨앗 1000개가 든 가죽 주머니가 나타났다.

"오후에는 땅콩을 심어야지."

이틀 동안 새끼 곰과 토끼들이 밭을 열심히 일궈놨기에 땅콩 1000개를 심을 밭은 이미 완성되어 있기에 심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세준이 채종한 옥수수알갱이를 담은 플라스틱 용기를 챙기기 위해 바닥을 바라봤다.

그때

슥.

플라스틱 용기 위로 앙증맞은 발이 거침없이 들어와 옥수수알갱이를 한 움큼 집었다. 뽀송한 하얀 털을 가진 새끼 토끼의 앞발이었다.

"잡았다. 요놈."

세준이 엄한 목소리로 새끼 토끼의 뒷덜미를 잡았다. 옥수수알갱이 털이범이 현장에서 검거됐다.

뺘앗!

새끼 토끼가 세준의 손에서 벗어나기 위해 잠깐 발버둥 쳤지만, 의외로 편했는지 새끼 토끼는 목덜미를 잡힌 채로 편안하게 앞발에 든 옥수수알갱이들을 입에 넣고 오물오물 씹기 시작했다.

톡.톡.

씹을 때마다 옥수수알갱이가 터지는 소리가 났다.

귀여웠지만, 현혹돼서는 안 된다. 삼촌으로서 조카의 비행을 눈감아 줄 수는 없는 법. 세준이 조카를 어떻게 혼내줄지 고민하고 있을 때

톡.톡.톡.

"응?"

뒤에서도 뭔가를 터트리는 소리가 들렸다.

"뭐지?"

세준이 고개를 돌려 뒤를 보자 새끼 토끼들이 세준이 채종한 생옥수수 알갱이를 열심히 먹고 있었다.

대담하게도 가죽 주머니 가방 메고 있던 새끼 토끼들은 가죽 주머니에 옥수수알갱이를 가득 채워둔 상태였다. 단독 범행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옥수수알갱이 털이단이었다.

"이거 누가 이렇게 가져가랬어?! 어?!"

세준이 언성을 높이며 새끼 토끼들을 혼냈다. 새끼 토끼들의 나쁜 버릇을 고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뺘앙...

뺘압...

뺘앗...

새끼 토끼들이 억울해하며 울기 시작했다. 우린 잘못한 거 없는데...

세준과 새끼 토끼들 사이에 오해가 있었다. 새끼 토끼들은 세준이 옥수수를 줄 때 항상 알갱이를 떼어서 줬기에 플라스틱 용기에 있는 것도 자기들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 그래. 삼촌이 미안해."

졸지에 죄인이 된 세준이 열심히 새끼 토끼들을 달래며 어제 남은 찐 옥수수에서 알갱이를 떼어내 새끼 토끼들에게 주었다.

그리고 점심시간. 세준이 옥수수를 먹고 잠든 새끼 토끼들을 토끼 부부에게 인계하고 점심을 준비했다.

그때

쿠어어엉!

웬일인지 엄마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가 순찰을 마치고 일찍 돌아왔다. 마치 점심시간에 맞춰 온 느낌. 설마 어제 새끼 곰한테 먹인 찐 옥수수 맛을 보려고 온 건 아니겠지?

"뭐 내가 옥수수를 줘야 할 이유는 없지."

말과는 다르게 세준은 빠르게 냄비에 옥수수를 가득 넣고 찌기 시작했다. 절대 무서워서 그러는 건 아니다. 손님은 왕이니까?

세준이 그렇게 옥수수를 찌는 동안 토끼들도 피라니아를 꿰고 당근을 챙기며 식사 준비를 했다.

그리고

"당겨!"

줄에 매달린 세준이 외치자

주르르륵.

오늘은 거의 고속엘리베이터를 타듯이 밧줄이 빠르게 올라갔다.

"어?!"

순식간에 세준의 눈높이가 지상을 벗어나 5m 높이까지 올라갔다가 땅으로 내려왔다. 오늘은 새끼 곰 대신 엄마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가 줄을 당겨줬다.

꾸엥!꾸엥!

세준이 올라오자 새끼 곰이 서둘러 자신의 자리에 착석했다. 저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요! 밥 주세요!

"자 먹자."

세준이 음식을 분배하자 은근슬쩍 엄마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도 새끼 곰 뒤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뭔가를 원하는 눈빛으로 세준을 바라봤다. 역시 찐 옥수수를 준비하지 않았으면 큰일이 벌어졌을지도 몰랐다

세준이 찐 옥수수를 만들길 잘했다는 생각을 하며 엄마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에게 찐 옥수수 20개를 건네자

쿠어엉.

엄마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가 찐 옥수수 20개를 기다렸다는 듯이 한 입에 털어 넣었다.

우적우적.

꾸엥?

새끼 곰이 기쁜 표정으로 엄마를 보며 물었다. 엄마, 맛있지?

하지만

꾸엥?

새끼 곰의 표정이 조금씩 어두워졌다. 엄마, 설마 혼자 다 먹었어?

쿠어어엉...

엄마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가 간절한 눈빛으로 세준을 바라봤고 결국 세준은 동굴로 내려가 다시 옥수수를 쪄야 했다.

세준이 찐 옥수수를 만들어 지상으로 올라오자

뺘아악!

꾸에에엥!

흑토끼와 새끼 곰이 엎드려 쉬고 있는 엄마 크림슨 자이어트 베어의 팔을 타고 미끄럼틀을 타듯이 데굴데굴 내려오며 놀고 있었다.

"잰 무섭지도 않나?"

아무렇지 않게 엄마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의 몸을 타고 놀다니 흑토끼는 전사라 그런지 확실히 겁이 없었다.

세준은 새끼 곰에게 찐 옥수수를 가져다주고 식사를 마쳤다.

후루룩.

그래도 엄마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가 있는 덕분에 세준은 편안하게 커피를 마시며 조용한 휴식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쿠어어엉.

엄마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는 적당히 쉬고 일어나 다시 순찰을 나갔고 토끼들도 오후 농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푹.

세준은 지상에 남아 단검으로 땅을 파고 땅콩을 심었다.

[땅콩 씨앗을 심었습니다.]

[씨뿌리기 Lv. 3의 효과로 땅콩 씨앗이 발아할 확률이 증가합니다.]

[직업 경험치가 아주 미세하게 상승합니다.]

[씨뿌리기 Lv. 3의 숙련도가 아주 미세하게 상승합니다.]

[숙련도 상승 Lv. 1의 효과로 씨뿌리기 Lv. 3의 숙련도가 5% 추가 상승합니다.]

그리고 한 시간이 조금 지났을 때

[땅콩밭 250평을 만들었습니다.]

[경험치 500을 획득했습니다.]

세준이 땅콩 1000개를 다 심었다.

조난 185일 차. 땅의 지력을 올려줄 땅콩이 지상 밭에서 자라나기 시작했다.

35화. 우화하다.

35화. 우화하다.

"냥냥냥."

테오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60층에서 50층으로 통하는 통로에서 나오자마자

"서둘러야 한다냥. 인간들이 기다리고 있다냥!"

빠른 발걸음으로 서둘러 50층에서 40층으로 통하는 통로로 들어갔다.

"저놈인가?"

테오가 사라지자 숨어있던 은색 늑대 3마리가 나타났다. 그들은 실버 울프족으로, 그들 부족은 대대로 탑에서 자유 용병으로 활동하며 돈을 벌었다.

지금은 55층 대지주 그리드의 의뢰를 받고 그리드가 도난당한 물건 하나를 쫓고 있었다. 평범한 디자인의 밀짚모자. 어디를 가도 흔하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대지주 그리드가 왜 평범한 밀짚모자를 원하는지 그들은 몰랐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자신들은 대가를 받고 움직이는 용병이니까.

그렇게 그들 부족 전체가 움직여 찾은 단서는 하나. 장물아비들 중 하나가 밀짚모자를 75층의 상점 구역 대장간에 다른 장물들과 함께 넘겼다는 것.

그 단서 하나로 밀짚모자를 추적하던 중 대장간 직원 하나가 밀짚모자를 누가 사 갔는지 기억해냈다.

"웬 노란색 털을 가진 고양이 유랑 상인이 뽑기 코너에서 사 갔어요."

그들은 그렇게 노란색 털을 가진 고양이 유랑 상인들을 추적했고 테오가 여기에 나타난다는 정보를 얻고 잠복하고 있던 것이다.

"엘카 족장, 어떻게 할까요?"

"일단 계속 따라간다."

그들은 용병이지만, 자유 용병 협회와 유랑 상인 협회의 협약으로 용병들도 사용료를 내면 상인 통로를 이용할 수 있었다.

그렇게 은색 늑대 3마리가 테오를 따라 상인 통로로 따라 들어갔다.

그리고

"실버 울프족이 왜?"

역시 테오를 미행하려고 기다리고 있던 제라스도 서둘러 상인 통로로 들어갔다.

테오는 자신이 미행당하는 줄도 모르고 인간들이 기다리는 38층으로 향했다.

***

조난 186일 차.

세준이 점심을 먹고 지상에서 흑토끼, 새끼 곰과 낮잠을 잔 후 동굴로 내려왔다.

그리고

서걱.

방울토마토 가지를 자르며 수확을 하고 있을 때

삐익.

뺘아.

남편 토끼가 낫 토끼와 함께 다가와 옥수수밭을 가리켰다. 옥수수나무는 옥수수 수확이 끝나 녹색 줄기만 무성한 상태였다.

"옥수수밭은 왜?"

세준은 옥수수가 방울토마토처럼 또 나는 건지 아니면 완전히 자르고 다시 심어야하는지 몰라 옥수수나무를 방치하고 있었다.

뺘아!

낫 토끼가 옥수수밭으로 가서 옥수수나무의 밑을 자르는 시늉을 했다.

"아 이거 잘라야 한다고?"

삐익.

남편 토끼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르고 다시 심어야 하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세준은 방울토마토 수확을 끝내고 옥수수나무를 잘랐다.

서걱.서걱.

세준은 자른 옥수수나무를 밧줄로 묶어 지상으로 옮겼다. 요즘 파 이파리와 방울토마토 가지로 농작물을 심은 장소 주변을 덮어주고 있었다.

이유는 햇빛에 수분이 날아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하면 물을 주는 시기는 조금 늦출 수 있으니 그만큼 그 노동력을 다른 곳에 쓸 여유가 생긴다.

"당겨!"

꾸!엥!꾸!엥!

새끼 곰이 40그루씩 묶인 옥수수나무를 끌어 올렸다. 그렇게 4번 총 139그루의 옥수수나무를 지상으로 옮겼다.

세준이 옥수수나무를 땅콩을 심은 밭에 땅콩을 심은 부분을 덮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펼쳤다. 그리고 남은 옥수수나무는 미리 만들어둔 밭에 넓게 깔아놨다.

그리고 작업이 끝났을 때

쿠어어엉.

엄마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가 새끼 곰을 데리러 왔다.

꾸엥!

새끼 곰이 엄마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의 머리 위에서 세준에게 손을 흔들었다.

"잘 가! 내일 보자."

세준도 새끼 곰에게 손을 흔들고 동굴로 내려와 남은 일을 마무리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

다음 날 아침.

쿠어어엉.

평소와 달리 새끼 곰이 아닌 엄마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가 세준을 깨웠다.

"으음...무슨 일이야?"

[탑의 관리자가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가 동굴 주변에 다른 몬스터의 흔적이 있다고 전합니다.]

세준의 물음에 에일린이 대신 대답해줬다.

"다른 몬스터?"

자신은 몰라도 청각이 예민한 토끼들도 밤새 조용했는데...

[탑의 관리자가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가 뿔 달린 녀석들인 것 같다고 전합니다.]

"뿔 달린 녀석들?"

세준은 뿔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블루문 때 7m 깊이의 구덩이를 여러 개 만든 몬스터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럼 심각한데..."

세준은 일단 지상으로 올라가 주변을 둘러봤다. 다행히 예전처럼 밭을 망가트리지는 않았다.

대신

"어?!"

밭을 덮어뒀던 옥수수나무 등이 전부 사라져 있었다.

***

우천삼은 우마왕의 지시로 맛있는 풀을 찾아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때

킁킁.

어디선가 향긋한 냄새가 났다.

이건?

우천삼이 조심스럽게 황무지 지역으로 진입했다. 이곳은 누구도 영역을 주장하지 않는 쓸모없는 구역.

하지만 누구의 영역도 아니기에 모든 몬스터가 다닐 수 있는 곳이라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지금도 얼마 전에 지나간 건지 붉은 털의 냄새가 진하게 났다.

우천삼이 살금살금 소리가 나지 않게 걸어 향긋한 냄새가 나는 장소에 도착했다.

그리고 향긋한 냄새가 나는 풀들이 바닥에 버려져 있는 것을 보고는 열심히 주웠다.

대장한테 칭찬받겠군.

우천삼이 두 손 가득 풀을 들고 자신의 구역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세준이 수분이 날아가지 않게 널어둔 옥수수나무와 파 이파리, 방울토마토 가지 전부를 도둑맞았다.

***

쿠어어어엉!

엄마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는 세준에게 몬스터의 침입을 알려주고 순찰을 하러 나갔다. 오늘은 뿔 달린 녀석들이 있는 방향을 집중 순찰할 계획이었다.

그렇게 엄마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가 떠나고, 세준은 생각에 잠겼다.

"일단 다행으로 여기자."

몬스터가 왜 바닥에 깔아둔 옥수수나무 등을 가져갔는지 의문이었지만,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는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하지만 다음에도 그러리라는 법은 없으니 대비할 필요는 있었다.

"역시 스스로를 지킬 힘이 필요해."

세준이 그 대비로 떠올린 것은 독꿀벌이었다. 세준은 이전부터 독꿀벌들의 수를 늘려 주변을 지키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다.

동굴에 있는 독꿀벌들의 수는 빠르게 늘어나 이제 200마리를 넘겼다. 아직 몬스터 한 마리도 상대하기 어려운 숫자지만, 계속 늘어나다 보면 충분히 몬스터를 위협할 수 있는 수준이 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세준이 밧줄이 묶여있는 바위로 다가가 독꿀벌 여왕의 고치가 있는 곳 앞에 조용히 자리를 잡았다.

오늘은 고치 안의 독꿀벌 여왕이 우화하는 날.

독꿀벌 여왕의 고치 설명에 우화하고 처음 본 대상을 주인으로 여긴다는 내용이 있었기에 세준은 오늘 농사를 쉬고 여기서 독꿀벌 여왕의 우화가 끝날 때까지 기다릴 생각이었다.

세준이 독꿀벌 여왕의 고치를 넣어둔 구덩이를 덮은 파 이파리를 조심스럽게 열어 안을 살피자

바스락.바스락.

독꿀벌 여왕이 고치에서 나오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힘내."

세준이 조용히 독꿀벌 여왕을 응원하며 파 이파리를 닫았다.

세준은 주변에 아무도 얼씬거리지 못하게 하고 독꿀벌 여왕의 우화를 방해하지 않도록 조용히 먹을 수 있는 군고구마 말랭이를 커피와 먹으며 우화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혹시 우화한 독꿀벌 여왕이 배고프다고 할까 봐 꿀과 꽃이 달린 방울토마토 가지도 준비했다.

그렇게 세준이 자리를 잡고 기다린 지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위이잉.윙이잉.

세준이 독꿀벌 여왕의 고치를 넣어둔 구덩이 안에서 가녀린 날갯짓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설마?!"

세준이 파 이파리를 살짝 들추자

위잉.위잉.

독꿀벌 여왕이 구덩이에서 천천히 날아오르며 세준과 눈을 마주쳤다.

[독꿀벌 여왕의 고치를 무사히 우화시켰습니다.]

[새로 태어난 독꿀벌 여왕이 당신을 주인으로 인식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양봉 Lv. 2의 숙련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양봉 Lv. 2의 숙련도가 채워져 레벨이 상승합니다.]

위잉.위잉.

독꿀벌 여왕이 세준의 손에 자신의 몸을 비비며 호감을 표했다.

그리고 배가 고팠는지 방울토마토꽃으로 다가가 꿀을 빨기 시작했다.

"많이 먹어."

동굴 주변을 지켜줄 독꿀벌 여왕이 꿀을 빨며 몸을 회복했다.

***

이게 황무지에 버려져 있었다고?

네. 대장.

잘했다.

감사합니다!

우마왕의 칭찬에 우천삼은 기분이 너무 좋았다.

우적우적.

우마왕은 우천삼이 가져온 풀들을 씹어 먹으면서 놀라워했다. 하나같이 달고 부드러웠다.

이런 풀들이 버려진 황무지라니. 마음 같아서는 부하들을 보내 황무지를 전부 차지하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풀의 양이 너무 적었다.

우마왕의 앞에 놓인 풀의 양은 세준이 도난당한 양의 10분의 1밖에 되지 않았다. 나머지는...

꺼억. 죄송합니다. 대장.

우천삼이 트림을 하고는 우마왕에게 사죄했다. 풀을 가져오는 도중 배가 고팠던 우천삼이 배가 찰 때까지 풀을 먹어버렸다. 덕분에 우마왕이 황무지로 부하들을 보내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우천삼이 다시 황무지로 가서 이 풀을 더 가져와라.

네! 대장!

우마왕의 지시에 우천삼이 다시 황무지로 떠났다. 물론 배가 부르기에 일단 어디 한적한 곳으로 가서 잠을 좀 자야 할 것 같았다.

***

탑 38층.

헌터들이 테오를 기다린 지 5일이 지났다. 대부분의 헌터들은 거래를 포기하고 돌아갔고 마력의 방울토마토가 정말 필요한 두 팀만 남았다.

"진짜 다른 층으로 간 게 아닐까?"

"아니야. 물건 수급에 문제가 생긴 걸 수도 있어."

그들이 테오가 오지 않는 여러 가지 상황을 생각하고 있을 때

"인간들아 내가 왔다냥!"

테오가 나타났다.

"왔다!"

"테오, 왜 이렇게 늦게 왔어?!"

헌터들이 테오를 환대했다.

"미안하다냥. 일이 좀 있었다. 근데 뭐냥? 내 인기가 식은 것이냥?"

테오는 이번에 새로 보여줄 D급 마력의 방울토마토에 환호할 많은 인간들을 기대했는데 생각보다 적은 인간들의 수에 귀가 축 처졌다.

"아니야. 다들 오고 싶었는데 네가 불편해할까 봐 제비뽑기로 우리만 온 거야."

"그런 것이냥? 다음부터는 그럴 필요 없다냥."

김동수의 말에 테오의 귀가 다시 살아났다.

"그래."

김동수는 자신도 모르게 이 불쌍한 고양이를 위해 선의의 거짓말을 했다.

'내가 왜 그랬지?'

김동수는 자신도 자신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테오가 실망하는 걸 보니 어떻게든 기운나게 하고 싶었다.

그렇게 자신이 집사가 되어가고 있다는 걸 모르는 김동수가 자신의 행동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있을 때

"오늘 파는 마력의 방울토마토는 특별하다냥!"

"알아. 그래서 우리가 특별한 방울토마토를 사러 온 거잖아."

"아니다냥! 이번에는 더 특별하다냥! 무려 D급 마력의 방울토마토다냥!"

"뭐?! D급?"

처음에는 테오의 재롱으로 생각하던 헌터들의 눈빛이 바뀌었다. 탑에서 등급이 높다는 건 그만큼 효과가 뛰어나다는 의미. 헌터들은 기다리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옵션 좀 볼 수 있을까?"

"나도 보고 싶어!"

"나도!"

헌터들이 앞다투어 D급 마력의 방울토마토의 옵션을 보기 위해 테오에게 밀려들었다.

"인간! 줄을 서라냥!"

테오가 헌터들을 줄 세우고 한 명씩 마력의 방울토마토 옵션을 확인하게 했다.

"정말 D급이야."

"지방이 20g이나 분해된다고?"

"마력 상승량도 0.2로 올랐어."

"유통기한이 60일이야."

헌터들이 옵션을 전부 확인하자

"오늘은 400개씩 총 2000개를 경매로 팔겠다냥."

테오가 경매 시작을 선언했다.

"400개에 70탑코인!"

"400개에 90탑코인!"

호가 2번에 D급 마력의 방울토마토 가격이 순식간에 0.2탑코인을 넘어갔다.

헌터들은 돈을 생각하지 않고 높은 가격을 불렀다. D급 마력의 방울토마토는 아직 밖에 한 번도 풀리지 않은 아이템. 그 희소성을 생각하면 이번 거래는 무조건 2배 이상 남길 수 있는 장사였다.

가격은 무섭게 치솟아 D급 마력의 방울토마토 1개당 대략 0.3탑코인에 팔렸고

"완판이다냥!"

테오는 D급 마력의 방울토마토 2000개를 팔고 총 612탑코인을 받았으며 총 판매 금액이 1000탑코인을 넘었다.

'푸후훗. 드디어 나도 중견 유랑 상인이 되는 것이다냥! 이제 박세준에게 쫄 필요가 없다냥!'

드디어 세준에게 떳떳해질 수 있게 된 테오였다.

36화. 파티를 하다.

36화. 파티를 하다.

경매가 끝나고 테오가 여성 헌터들과 포토타임을 가졌다.

하지만 남은 여성 헌터의 숫자는 넷에 그 중 테오와 사진을 찍겠다고 하는 여성 헌터의 수는 둘뿐이었다.

그렇게 사진을 찍어주고 받은 것은 츄르 3개와 커피 믹스 2개.

"이번에는 성과가 나쁘다냥. 테 대표 시간을 두 시간밖에 못 벌었다냥."

테오가 침울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테오, 나랑도 사진 하나만 찍자. 우리 딸이 고양이를 좋아하거든. 대신 나는 이걸 줄게."

그동안 여성 헌터들이 많아 끼지 못했던 김동식이 붉은 가루를 내밀며 말했다.

"이게 뭐냥?"

"고춧가루야."

"좋다냥!"

뭔지는 잘 몰랐지만, 박세준이 좋아할 것 같았다.

찰칵.

김동식은 쿨하게 사진 하나를 찍고 갔다.

거래가 끝나고 테오는 서둘러 탑을 올랐다. 세준의 무릎을 차지하기 위해서, 그리고 멋진 삼촌인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조카들을 위해서였다.

이미 새끼 토끼들에게 멋진 삼촌은 세준으로 바뀌었지만, 테오는 몰랐다.

그렇게 테오가 40층에서 50층으로 이동하는 상인 통로를 이용하려 할 때

"잠깐 멈춰라."

"그래. 우리를 도와줘야겠어."

"우리가 묻는 것에만 대답하면 해치지는 않겠다."

크기 5m의 거대한 은빛 늑대가 3마리가 다가왔다.

"뭐냥?! 안 도와줄 거다냥!"

도와달라는 말에 테오는 세준의 지시 사항을 떠올리고 그냥 무시하려 했다.

하지만

"어딜 가려고?"

늑대 하나가 빠르게 움직여 테오의 앞을 막아섰다.

"왜...왜 그러냥? 안 도와줄 거다냥! 박세준이 도와주지 말라고 했다냥!"

"크르릉. 이걸 확! 좋은 말로 할 때 협조해라. 너 대장간에서 산 밀짚모자 어떻게 했어?"

늑대가 날카로운 이빨을 테오에게 들이밀며 말했다.

"그...그건..."

달달달.

늑대의 위협에 테오가 떨고 있을 때

퍼엉!

회색 연기가 퍼지며 고약한 냄새가 주변으로 퍼졌다.

"크윽!"

"으악!"

"이게 무슨 냄새야!"

후각이 좋은 늑대들이 냄새로 고통받는 사이

"어?!"

"쉿! 조용히 하세요."

복면을 쓴 존재가 테오를 잡아끌고 실버 울프족을 피해 상인 통로로 도망쳤다.

타다다닥.

"이제 잠깐 쉬죠."

테오를 끌고 30분쯤 달리던 존재가 멈췄다.

그리고

"테오 님, 괜찮으십니까?"

테오를 바라보며 물었다.

"너는 누구냥? 어떻게 내 이름을 아냥?"

복면을 쓴 존재가 자신의 이름을 알자 테오가 경계하며 물었다.

"접니다. 제라스."

제라스가 복면을 벗으며 말했다.

30분 전.

'어떻게 하지?'

미행을 하고 있던 제라스는 테오가 실버 울프족에게 둘러싸이자 테오를 구할지 말지 고민했다.

테오가 자신의 임무를 방해하기는 했지만, 나름 의도는 선했다. 나쁜 놈은 아닌 것이다.

그리고

'그 밀짚모자가 정말 대지주 그리드의 물건이었다니.'

대지주 그리드, 자신이 가진 땅과 식량을 이용해 소작농들을 노예처럼 부리고 식량을 대가로 탑에 거대한 영향을 미치는 존재.

그리드를 싫어하는 제라스로서는 그리드의 일을 방해하고 테오에게도 접근할 수 있는 일석이조의 기회. 테오에게 어떻게 접근할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실버 울프족 덕분에 고민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래서 제라스는 늑대들이 싫어하는 악취탄을 터트리고 테오를 구한 것이다.

"제라스! 고맙다냥!"

"저번에 절 구해주셨잖아요. 그러니 이제 비긴 거로 해요."

"그래도 고맙다냥."

테오가 제라스에 대한 경계심을 상당 부분 풀었다. 둘은 대화를 나누며 상점 구역까지 함께 이동했다.

***

세준이 독꿀벌 여왕에게 꿀을 충분히 먹이자

윙윙.

독꿀벌 여왕은 세찬 날갯짓을 하며 날아올라 주변을 가볍게 둘러보고는 다시 세준이 파준 구덩이로 들어갔다. 자려는 모양이었다.

"나도 슬슬 내려가야지."

이미 늦은 오후였다. 동굴로 내려온 세준은 옥수수나무를 자른 밭에 옥수수 씨앗 400개를 심었다.

원래는 옥수수나무의 뿌리를 전부 뽑고 심을 생각이었지만, 옥수수나무의 뿌리가 생각보다 깊이 박혀 잘 뽑히지 않았기에 그냥 옆에 빈 땅에 심었다.

삐익!

뿌리가 남는 곳에 심는다는 것이 좀 이상했지만, 남편 토끼가 옆에서 농사 코치를 해줬기에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옥수수를 심은 세준이 모포를 덮고 잠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꾸엥!

새끼 곰의 기상 울음소리와 함께 세준이 일어났다.세준은 일어나자마자 벽에 획 하나를 추가하며 조난 188일 차 아침을 시작했다.

그리고 독꿀벌 여왕의 상태를 확인하러 세수도 안 하고 지상으로 올라왔지만

"응?!"

독꿀벌 여왕은 구덩이에 없었다.

"어디 갔지?"

세준이 틈날 때마다 지상으로 올라와 구덩이를 확인했지만, 독꿀벌 여왕은 온종일 보이지 않았다. 옆에 먹으라고 놓아두었던 꿀도 그대로였다.

그렇게 하루가 지났지만, 독꿀벌 여왕은 돌아오지 않았다.

조난 189일 차 아침.

방울토마토 수확을 끝낸 세준이 잘라놓은 파 이파리와 방울토마토 가지를 들고 밧줄의 매듭에 발을 걸었다.

그리고

"당겨!"

꾸!엥!꾸!엥!

새끼 곰이 세준과 파 이파리를 끌어 올렸다. 세준은 파 이파리와 방울토마토 가지로 수분 증발을 막기 위해 다시 밭을 덮고 있었다.

세준이 파 이파리를 가지고 올라오자 낫 토끼와 지게 토끼가 세준을 도와 열심히 파 이파리로 밭을 덮었다.

그리고 일을 마친 새준이 점심 준비를 위해 다시 동굴로 내려갔을 때

뺙!

흑토끼가 세준을 불렀다.

"피라니아 옮기자고?"

뺙!뺙!

세준의 말에 흑토끼가 고개를 흔들며 연못을 가리켰다. 저기 이상한 놈이 있어요! 내 해머가 안 통해!

흑토끼가 가린 킨 곳에는 우연히 연못 구멍으로 들어온 팔뚝만 한 크기의 자줏빛 갑각류 괴물이 유유히 연못 바닥을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어?! 저건?"

세준이 괴물의 정체를 단번에 알아봤다. 감격스럽다. 널 이곳에서 보다니! 밀림의 법칙에서 출연자들이 그렇게 맛이 좋다고 극찬했던 놈이었다.

"흑토끼, 날 엄호해!"

뺙!

풍덩!

세준의 말에 흑토끼가 물속으로 들어가 피라니아의 접근을 막는 사이 세준이 조심스럽게 갑각류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푹.

케인즈의 수련용 단검으로 단숨에 갑각류 괴물의 머리를 찔렀다.

[크레이피시를 처치했습니다.]

[경험치 30을 획득했습니다.]

연못에 새로운 단백질 공급원이 나타났다. 세준이 사냥한 크레이피시를 연못에서 건졌다.

그리고

푹.

가슴에 다시 한번 단검을 찔러 피가 빠지길 기다렸다.

"대박이다. 지하에 크레이피시가 살고 있었다니...더 없나?"

크레이피시의 피를 빼는 동안 세준이 연못을 기웃거리며 혹시 크레이피시가 더 있지 않을까 찾아봤지만, 세준이 크레이피시를 잡으며 흘러나온 피로 인해 피라니아들만 바글바글하게 모여들었다.

뺙!

뾱!뾱!뾱!

흑토끼가 신나게 피라니아들을 사냥했다. 오늘 점심은 새끼 곰도 포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크레이피시의 피를 빼고 세준이 파 이파리로 꽁꽁 묶어 불에 넣었다.

오늘 점심은 크레이피시구이다! 시간이 지나자 맛있는 냄새가 동굴에 진동했다.

삐익!

뺘아!

뺙!

꾸엥!

토끼들과 새끼 곰까지 크레이피시구이 냄새에 흥분했다.

"기다려."

세준이 흥분한 동물들을 진정시키고 크레이피시를 조금 더 불에서 구운 다음 꺼냈다.

그리고 크레이피시의 몸을 꽁꽁 싸맸던 파 이파리를 걷어내자 껍질이 붉은색으로 변한 크레이피시가 세준을 맞이했다.

"와."

쩌억.

세준이 잘 구워진 크레이피시에 감탄하며 몸통을 반으로 접자 탱글탱글하고 새하얀 속살이 모습을 드러났다.

꾸엥!

새끼 곰이 크레이피시의 속살을 보고는 침을 흘리며 흥분했다.

"저러다 또 떨어지겠네."

세준이 급하게 크레이피시의 살을 잘라 토끼와 새끼 곰에게 나눠줬다. 혼자 먹었다면 배부른 양이었지만, 입이 많았기에 모두에게 살 한 점 정도의 양밖에 돌아가지 않았다.

세준이 모두에게 크레이피시를 한 점씩 나눠주고 남은 크레이피시의 살점을 집어 조금만 깨물어 씹었다.

오물오물.

크레이피시의 살을 씹자마자 찰진 식감과 함께 입안을 약간의 짠맛과 단맛이 지배했다.

쩝쩝.

살을 씹을면 씹을수록 달았다.

'이런 맛이구나.'

크레이피시 본연의 살맛을 봤으니 이제 다른 부분과 합쳐진 맛을 볼 때

슥슥.

세준이 크레이피시의 몸통에 있는 내장에 비빈 다음 살점을 입에 넣었다.

"으음."

내장이 맛있다고 하더니 치즈와 버터 풍미가 입에서 폭발했다.

뺙?

세준의 반응에 흑토끼가 호기심에 꺼림직하게 생긴 크레이피시의 내장을 손가락으로 조금 찍어 먹었다.

그리고

뺙!

오도독.

내장의 맛에 매료된 흑토끼가 자신의 당근을 가져와서 크레이피시의 내장에 찍어 먹기 시작했다.

까드득.까드득.

새끼 곰이 크레이피시의 껍질을 씹어 먹는 것으로 크레이피시구이가 완전히 사라졌다.

"아..."

삐익...

뺘아...

뺘악...

꾸엥...

모두들 입맛을 다시며 아쉬움 가득한 표정으로 크레이피시구이의 여운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을 때

첨벙!첨벙!

연못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뭐지?"

정신을 차린 세준이 연못으로 다가갔다. 그곳은 피가 철철 넘치는 전쟁터였다. 아니 학살의 현장이라고 하는 게 더 맞았다.

크레이피시 10마리가 피라니아들을 무참히 학살하고 있었다. 아까 세준이 크레이피시를 찌르며 흘러나온 피를 따라 동료들이 복수를 하러 온 것 같았다.

"큰일이네."

불이 모자랐다. 지금의 불로는 크레이피시 10마리를 요리할 수 없었다.

"얘들아! 빨리 불 더 피우고 흑토끼는 긴 나무랑 끈 가져와!"

오늘은 크레이피시 파티다!

뺙?

세준의 지시에 의문을 가지며 긴 나무와 끈을 가져온 흑토끼가 연못 안에 있는 크레이피시를 보고 흥분했다.

그리고 우다다 불가로 달려가 백토끼들과 말린 파 이파리로 화로를 4개 더 만들었다.

삭.삭.

그사이 세준은 나무에 줄을 걸 수 있게 홈을 파고 단검 손잡이와 끈으로 연결했다.

그리고

푹.

[크레이피시를 처치했습니다.]

[경험치 30을 획득했습니다.]

세준이 나무의 긴 리치를 이용해 크레이피시를 하나씩 사냥해 건져 올렸다.

뺙!

세준이 크레이피시를 잡으면 흑토끼가 불가로 옮기고 백토끼들이 파 이파리로 크레이피시를 꽁꽁 묶어 불에 넣었다.

화르르륵.

크레이피시가 맛있게 구워지기 시작했다.

푹.

[크레이피시를 처치했습니다.]

[경험치 30을 획득했습니다.]

세준이 사냥한 크레이피시를 건져 올리고 있을 때

"응?"

연못 구멍으로 크레이피시 한 마리가 들어오는 게 보였다. 크레이피시의 피가 다시 다른 크레이피시 동료를 부른 것이다.

"오늘 크레이피시로 배를 채울 수 있겠는데?"

푹.푹.

세준은 일부러 크레이피시의 몸을 여러 번 찔러 피를 퍼지게 만들어 다른 크레이피시를 유인했다.

그날 세준과 동물들은 크레이피시 30마리를 사냥해 배불리 먹었다.

까드득.까드득.

물론 크레이피시의 껍질을 먹고 있는 새끼 곰은 조금 모자라 보였지만, 새끼 곰을 배불리 먹이려면 크레이피시 50마리로도 부족할 것 같았다.

그렇게 크레이피시로 고단백 식사를 한 세준과 토끼들이 오후 농사를 힘차게 시작했다.

그리고 오후 농사가 끝나갈 때쯤

쿠어어엉.

엄마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가 새끼 곰을 데리러 왔다.

쿠엥!

"잘 가."

세준이 새끼 곰과 서로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고 동굴로 내려가려 할 때

윙윙.

며칠간 자리를 비웠던 독꿀벌 여왕이 꼬리가 통통해져서 돌아왔다.

37화. 도둑을 잡다.

37화. 도둑을 잡다.

테오와 제라스가 탑의 75층인 상점 구역에 도착했다.

"테오 님은 이제 어디로 가십니까?"

"일단 중견 상인 승급을 신청할 거다냥."

"벌써 중견 유랑 상인이 되시는 겁니까? 부럽네요."

제라스는 속으로 놀랐다. 중견 유랑 상인이 되려면 1000탑코인의 판매 금액이 필요한데 테오의 활동 기간으로 봤을 때 특별한 지원이 없다면 거의 불가능한 금액이었다.

"저...테오 님은 무슨 물건을 파십니까?"

제라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유랑 상인에 따라서 자신이 취급하는 물건을 비밀로 하는 유랑 상인들도 있었다.

"난 방울토마토를 판다냥."

"네? 방울토마토요?"

거짓말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냥. 나중에 기회가 되면 보여주겠다냥."

그렇게 대화를 하는 동안 테오가 유랑 상인 협회 지부에 도착해 중견 유랑 상인으로의 승급을 요청했다.

"테오 님, 이제부터 중견 유랑 상인이 되셨습니다."

중견 유랑 상인으로의 승급은 판매 금액 말고는 특별한 조건이 없었기에 바로 처리됐다.

"여기 중견 유랑 상인 자격증입니다."

유랑 상인 협회 지부의 직원이 테오에게 푸른 금속으로 만들어진 사각형의 자격증을 줬다. 그렇게 테오가 중견 유랑 상인으로 승급했다.

"푸후훗. 이제 나는 중견 유랑 상인이다냥!"

이제 세준에게 재배자 문제로 꿇릴 것이 없어진 테오의 발걸음이 더욱 가벼워졌다.

"축하드립니다. 테오 님."

"고맙다냥."

제라스가 유랑 상인 협회 지부에서 나오는 테오를 축하했다.

"다음 목적지는 어디십니까?"

"이제 잡화점에 가야 한다냥."

테오는 잡화점에서 무쇠 냄비 두 개, 톱, 실과 바늘을 구매했다.

"무쇠 냄비 1탑코인, 톱 0.9탑코인, 실과 바늘은 0.5탑코인으로 총 2.4탑코인입니다."

잡화점 주인이 부르는 가격에 제라스가 옆에서 눈을 빛냈다.

'내가 흥정하면 2탑코인까지 가격을 깎을 수 있어.'

테오에게 도움을 주고 더욱 신뢰를 얻을 생각을 하는 제라스였다.

그때

"깎아달라냥!"

테오가 가격을 깎기 시작했다.

"흐음...그럼 2.2탑코인에 드리죠."

첫 번째 깎기 때는 호구처럼 보였는데 그래도 바가지는 쓰지 않는구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더 깎아달라냥!"

"손님, 저희도 먹고살아야죠. 그건 어렵습니다."

테오가 두 번째 깎기를 사용하자

'호호호, 그렇게 막무가내로 가격을 깎아달라고 말한다고 가격을 깎아주는 게...'

제라스가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때

"알겠다냥. 제라스, 가자냥."

테오가 대답하고는 쌩하고 뒤돌아 나가기 시작했다.

"아휴! 손님, 무슨 성미가 그렇게 급하십니까? 제가 졌습니다. 2탑코인에 드리죠."

"...?!"

제라스가 잡화점 주인의 말에 크게 놀랐다.

자신이 빠르게 물건을 살피며 발견한 가격을 낮출 수 있는 5가지 논리와 화려한 언변도 없이 테오는 단 두 마디로 자신이 생각한 결과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1.8탑코인. 아니면 그냥 나가겠다냥."

테오가 마지막 세 번째 깎기로 가격을 후려치자

'거기서 가격을 더 내린다고?!'

제라스가 테오의 무지막지함에 경악했다. 저건 불가능해!

하지만

"휴우. 알겠습니다."

제라스의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거래가 이루어졌다.

'이럴 수가...'

제라스는 자신의 흥정 실력에 대한 자신감을 완전히 잃었다. 나름 가문에서 교육까지 받았는데...테오와 비교할 수 없는 격차가 느껴졌다.

그냥 깎아달라고 3번 말했을 뿐인데 테오의 흥정 실력에 경외감까지 느끼는 제라스였다.

'저 정도 흥정 실력이면 불법 없이도 큰돈을 벌었을 수도 있겠어.'

제라스가 테오에 대한 의심을 완전히 풀었다.

"테오 님, 저는 그만 가보겠습니다. 다음에 또 늑대들을 만날 수 있으니 조심하세요."

"알겠다냥! 잘 가라냥."

테오는 제라스와 인사를 하고는 대장간으로 장비 뽑기를 하러 갔다.

하지만

"오늘은 잡고 싶은 게 없다냥."

테오의 손을 잡아끄는 장비가 없었다.

"그냥 가야겠다냥."

테오가 99층으로 이동했다.

제라스는 테오와 헤어지고 비밀감찰국으로 복귀했다.

그리고 국장에게 보고서를 제출했다.

[유랑 상인 테오의 매출이 급상승한 이유 : 유랑 상인 테오는 흥정의 천재임.]

테오를 단단히 오해해버린 제라스였다.

***

세준은 배가 불룩해져 돌아온 독꿀벌 여왕이 구덩이에서 꿀을 빨고 자는 것을 확인하고 동굴로 내려와 잠을 잤다.

다음 날 아침.

조금 일찍 눈이 떠진 세준이 독꿀벌 여왕이 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지상으로 올라오자 독꿀벌 여왕이 또 사라져 있었다.

대신 로프를 묶는 바위 꼭대기 부분에 작은 벌집이 있었다. 독꿀벌 여왕이 드디어 자리를 잡고 알을 낳을 준비를 하는 것이다.

그때

쿠어어엉.

꾸엥!

엄마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와 새끼 곰이 함께 왔다.

데굴데굴

새끼 곰이 엄마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의 어깨를 타고 미끄럼틀 타듯이 굴러 내려왔다.

하앑짝.하앑짝.

엄마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가 새끼 곰을 씻기듯이 몇 번 핥아줬다.

꾸엥!꾸엥!

그 힘이 좋은 새끼 곰이 엄마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의 혓바닥에 이리저리 휘청이는 것은 신기한 장면이었다.

그렇게 세준이 둘을 바라보고 있을 때

크어엉.

새끼 곰을 씻긴 엄마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가 세준을 바라보며 뭐라고 말하고는 순찰을 나갔다. 에일린의 번역이 없었지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오늘도 크레이피시를 많이 잡아야겠네."

왠지 오늘도 엄마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가 점심시간에 나타날 것 같았다.

"꾸엥이, 여기서 네가 먹는 꿀을 만들어주는 거니까. 너 이거 먹으면 안 된다."

세준은 혹시 새끼 곰이 이제 막 자리를 잡은 독꿀벌 여왕의 벌집에 손을 댈까 봐 미리 주의를 줬다.

꾸엥!꾸엥!

새끼 곰이 강하게 끄덕였다. 알았어요! 내가 지켜줄 거예요!

세준은 동굴로 내려와 토끼들과 아침을 먹고 일과를 시작했다.

민첩이 하나 더 올랐고, 농사일은 손에 익을 대로 익었다. 그리고 다른 농작물의 수확이 끝나 수확할 건 방울토마토뿐.

세준은 두 시간 만에 모든 일을 가뿐히 끝내고 연못으로 갔다.

"흑토끼, 준비됐지?"

뺙!

첨벙.

세준의 물음에 흑토끼가 대답하고는 연못으로 다이빙해 시야를 가리는 피라니아들을 먼저 처리했다.

뾱!뾱!뾱!

흑토끼의 해머가 휘둘러질 때마다 피라니아들이 연못 밖으로 튕겨져나왔다.

세준이 빠르게 피라니아를 밧줄로 꿰 새끼 곰에게 줄 피라니아 두 두름을 만들었다.

그리고 흑토끼가 연못에서 나오자 세준이 본격적으로 크레이피시 사냥을 시작했다.

연못 안에 있는 크레이피시는 40마리 정도. 연못으로 한 번 들어온 녀석들은 무슨 이유인지 다시 밖으로 나가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

세준이 물로 들어가 크레이피시를 한 마리씩 손으로 잡았다. 어제는 아무 생각 없이 다 찔러 죽였지만, 이렇게 잡으면 다른 피라니아나 크레이피시를 부르지 않고 잡을 수 있다.

"연못물이 오염되게 둘 수는 없지."

어제 크레이피시가 피라니아들을 학살하는 바람에 연못물이 오염되어 아침까지 물도 못 마시고 세수도 못 한 세준이었다. 뭔가 물을 정수할 방법이 필요했다.

그렇게 세준이 물을 정수할 방법을 생각하면서 연못에서 크레이피시를 주웠다.

그리고 세준이 그렇게 크레이피시를 줍줍하는 동안

뺙!

흑토끼가 세준의 단검으로 크레이피시의 배를 가르고 피를 뺐다.

그때

푹.

크레이피시의 배를 찌른 흑토끼의 몸과 해머에서 검은빛이 났다. 보통 레벨업을 하면 그냥 밝은 빛이 났었는데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흑토끼의 몸에는 변화가 없었지만, 해머가 조금 더 커지고 손잡이의 끝이 송곳처럼 뾰족하게 변했다.

일반적인 레벨업과는 달라 보였다.

뺙!

흑토끼가 위풍당당하게 해머를 들고 연못으로 들어왔다.

"갑자기 왜?"

뺙!

흑토끼가 세준을 보며 엄지를 세웠다. 이제 내가 처리함!

뾱!

흑토끼가 강하게 크레이피시의 머리를 치자 크레이피시의 움직임이 멈췄다. 레벨업으로 힘이 강해진 흑토끼의 해머질에 크레이피시가 기절한 것이다.

뾱!뾱!

흑토끼가 기절시킨 크레이피시를 연못 밖으로 끌고 나왔다.

그리고

푹.

끝이 뾰족하게 변한 해머의 손잡이 부분으로 크레이피시의 가슴을 찔렀다.

뺙?

흑토끼가 크레이피시의 피까지 빼고는 세준을 거만하게 바라봤다. 봤음?

"그래. 크레이피시는 이제 너에게 맡길게."

흑토끼의 성장으로 할 일이 줄어든 세준은 크레이피시를 굽는 일에 열중했다.

그리고

쿠어어엉.

점심시간이 가까워지자 예상대로 엄마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가 세준의 동굴로 돌아왔다.

우적우적.

역시 엄마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는 크레이피시구이 20마리를 한입에 넣었다.

이번에는 가족들이 먹을 건 따로 빼놨기에 다시 동굴로 내려갈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맛있게 점심을 먹고

"저기 땅 좀 파줄 수 있냐고 물어봐 줘."

세준이 에일린에게 엄마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와의 번역을 부탁했다.

맛있는 점심을 대접하며 일을 부탁할 명분도 얻었으니 세준은 거리낌이 없었다.

원래는 저번 찐 옥수수를 대접했을 때 부탁하려고 했지만, 그때는 에일린이 자고 있었다.

[탑의 관리자가 어디를 파면 되냐고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의 말을 전합니다.]

좋아!

"여기."

세준이 동굴에서 500m쯤 떨어진 땅을 가리켰다. 혹시 동굴에 피해가 갈까 봐 멀리 떨어진 곳으로 정했다.

쿵.쿵.

엄마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가 성큼성큼 걸어 빠르게 세준이 가리킨 곳에 도착했다.

그리고

쿠웅!쿠웅!

단 몇 번 앞발을 땅에 넣고 움직였을 뿐인데 땅이 뒤집어지며 밑에 있던 검은 흙이 지상으로 올라왔다. 포크레인도 몇 시간은 걸릴 일을 단숨에 끝냈다.

세준은 엄마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 덕분에 단숨에 1000평 정도의 땅을 뒤집었다.

쿠어어엉.

엄마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가 다시 순찰을 하러 나갔고 세준은 오후 내내 1000평의 땅에 토끼들과 함께 옥수수 3000개와 방울토마토 1000개를 심었다.

그리고

쏴아아.

씨를 심은 곳에 물조리개 토끼들이 열심히 물을 거의 다 줬을 때

뚝.

물조리개에서 나오는 물이 끊겼다.

"어? 뭐야? 왜 물이 안 나와?"

물조리개에서 물이 무한대로 나오는 줄 알았던 세준이 물었다.

삐익.

냠편 토끼가 고개를 흔들었다. 오늘 물을 다 썼어.

지금까지는 전부 사용할 일이 없어서 몰랐지만, 백토끼의 물조리개 아이템은 하루에 사용할 수 있는 물의 양이 정해져 있었다. 앞으로 물의 사용을 아껴야 할 것 같았다.

세준은 물을 뿌린 밭에 남는 파 이파리로 최대한 덮어주고 잠에 들었다.

하지만 그날 밤 다시 풀 도둑이 들었다.

***

"냥냥냥."

세준의 동굴이 가까워지자 기분이 좋아진 테오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빠르게 걸었다.

그때

우적우적.

어디서 뭔가를 씹는 소리가 들렸다.

"뭐냥?"

소리가 나는 곳을 바라보자 미노타우루스 한 마리가 풀을 먹고 있었다.

"어? 저거 박세준이 키우는 파 이파리 아니냥?"

테오는 보자마자 파 이파리를 알아봤다. 자신이 직접 잘라봤기에 잘 알았다.

"너 그거 어디서 난 거냥?"

테오가 미노타우르스에게 다가가 물었다.

음머?

미노타우르스가 상대가 유랑 상인임을 확인하고는 대답했다. 땅에서 주웠어.

"그럴 리 없다냥! 그건 박세준이 아끼는 풀이다냥! 박세준이 그 풀을 그릇으로도 쓰고, 밧줄도 만들고, 엉덩이 닦을 때도 쓴다냥! 너는 박세준의 풀을 훔친 것이다냥!"

테오가 풀 도둑 우천삼을 잡았다.

38화. 고용하다.

38화. 고용하다.

[마력의 방울토마토]

"이게 이번에 새로 판매됐다는 D급 마력의 방울토마토인가? 이걸 먹기만 해도 20g의 지방이 분해된다니 정말 놀랍군."

세계 식량 시장의 39%를 장악하고 있는 거대 식량 기업 가겔의 부회장 마이클 맥라렌이 붉은색 방울토마토를 보며 말했다. 그는 각성자라서 마력의 방울토마토의 옵션을 볼 수 있었다.

"E급 마력의 방울토마토를 지구에 심어본 결과는?"

마이클은 몇 달 전부터 마력의 방울토마토를 구해 연구를 하게 했고 최근에 첫 수확을 했다.

"방울토마토가 자라기 좋은 최상의 조건을 가진 곳에 심었지만, 탑과 환경이 달라서인지 아이템이 아닌 저희가 아는 일반적인 방울토마토로 성장했습니다."

"흐음..."

마이클 맥라렌이 생각에 잠겼다.

10년 전 마이클이 아버지의 지시로 회사일을 배우고 있을 때 탑이 등장했다.

그리고 탑이 등장하고 몇 달이 지났을 때 마이클은 운 좋게 배니싱으로 탑에 들어갈 수 있었다.

탑은 겉에서 보기와는 다르게 엄청나게 넓었다. 한 층에서만 제대로 자리를 잡아도 현재 가겔이 생산하는 농작물의 5%는 충분히 수확할 수 있을 정도.

거기다 탑 안에는 24시간 해가 뜨니 수확 주기도 짧았다. 탑에서 농작물을 키울 수만 있다면 전 세계 식량 시장을 전부 장악하는 것도 꿈이 아니었다.

마이클은 탑에서 나오자마자 가겔의 회장인 아버지를 설득해 탑에 대규모 농장을 세우는 탑농장 프로젝트를 주도했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하지만 뜻하지 않은 곳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탑농장 프로젝트팀이 탑으로 가지고 들어간 씨앗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발아하지 않았다.

발아 조건과 환경을 바꾸고 모종을 들고 가는 방법 등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했지만, 전부 실패했다.

그리고 그들이 실패한 원인을 알게 된 것은 다른 연구팀의 연구보고서를 통해서였다.

-각성자들이 불임이 되는 이유에 대한 고찰

연구보고서의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탑에 들어가는 순간 각성자들이 생식 능력을 잃어버린다는 것.

지금은 마력 적응으로 인한 일식적인 부작용이고, 각성자 레벨이 10을 넘으면 생식 능력이 대부분 회복된 다는 것이 알려졌지만, 탑이 나타난 초창기만 해도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줬다.

번식력을 잃어버리는 것은 식물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됐고, 씨앗의 레벨을 올릴 방법이 없는 마이클은 외부에서 씨앗을 들여오는 방법을 포기했다.

대신 씨앗을 직접 구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탑에도 여러 가지 농작물을 이용해 만든 식량을 팔고 있었다. 그래서 탑의 상인들에게 씨앗을 구매하려 하자

"씨앗이요? 그건 55층의 그리드라는 탐욕스러운 놈이 독점하고 있어서 판매가 안 돼요."

그렇게 마이클의 탑농장 프로젝트는 55층은 가야 뭐라도 해볼 수 있다는 시대에 앞선 프로젝트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폐기됐다.

하지만 마력의 방울토마토가 세상에 등장하면서 다시 탑농장 프로젝트에 대한 마이클의 의욕이 불타올랐다.

"마력의 방울토마토를 탑에 심은 결과는?"

"시험적으로 탑 1층에 E급 마력의 방울토마토 100개를 파종했는데 10개가 발아에 성공했고 곧 수확을 앞두고 있습니다."

"정말인가?!"

"네. 회장님."

지금은 발아율이 10%지만, 마이클은 가겔이 가진 노하우를 이용하면 발아율을 끌어올리는 건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당장 탑농장 프로젝트의 예산안 통과시킬 테니까 각성자들 고용해서 농장을 만들 곳 주변의 몬스터들 밀어버려."

그렇게 멈춰있던 거대 식량 기업 가겔의 탑농장 프로젝트가 세준의 방울토마토 덕분에 다시 가동됐다.

***

음머?!!!

테오의 말에 우천삼이 분노했다. 전사인 내가 도적질을 했다는 거냐?!!!

"그...그렇다냥. 아니면 가서 박세준에게 물어보자냥!"

우천삼의 분노에 테오가 찔끔했지만, 곧 자신감을 회복했다. 자신에게는 박세준이 있었다. 박세준이라면 다 해결해 줄거다냥.

음머!

우천삼이 코로 뜨거운 숨을 뿜어내며 일어났다. 안내해!

"따라오라냥!"

테오가 우천삼을 데리고 동굴로 갔다.

***

모두가 잠든 동굴.

꾹.꾹.

"으음...테오?"

세준이 자신의 볼을 앞발로 누르는 테오 때문에 잠에서 깼다.

"회장님아 내가 돌아왔다냥!"

"수고했어. 일단 자자."

세준이 테오를 안고 자려고 손을 뻗었지만

휙.

테오가 세준의 손을 자신의 앞발로 제지했다.

"안 된다냥! 지금 나랑 밖에 나가봐야 한다냥!"

"밖에?"

"그렇다냥! 내가 도둑을 잡았다냥! 영광으로 알아라냥! 이렇게 도둑을 잘 잡는 고양이는 흔하지 않다냥!"

테오가 거드름을 피우며 말했다.

'쥐를 잡아 왔나?'

세준은 테오의 말을 가볍게 생각했다.

"아침에 확인하면 안 돼?"

"안 된다냥! 도둑이 도망갈 수도 있다냥! 빨리 밖으로 나가자냥!"

"알았어."

세준은 테오의 재촉에 자리에서 일어나 지상으로 올라왔다.

후욱.후욱.

그렇게 지상으로 올라온 세준은 세차게 콧김을 뿜어내고 있는 12m의 뿔 달린 검은색 몬스터와 눈이 마주쳤다.

[블랙 미노타우루스]

그나마 엄마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의 거대한 크기에 적응해서 괜찮은 거지. 아니었다면 블랙 미노타우루스의 크기에서 나오는 위압감에 주저앉았을지도 몰랐다.

"테오, 네가 잡은 도둑이 이분이니?"

"그렇다냥! 얘가 도둑이다냥! 우천삼이 회장님의 풀을 훔쳤다냥!"

테오가 고자질하듯이 세준에게 말했다.

음머!음머!

테오의 말에 우천삼이 억울해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아니라고! 난 주운 거야!

"아니다냥! 우천삼은 도둑이다냥!"

둘은 서로 도둑이네 아니네로 싸우기 시작했다. 우천삼이 아무리 콧김을 뿜어도 테오는 쫄지 않았다. 세준과 함께하는 테오는 기세등등했다.

이게 뭐지? 둘을 보면서 세준은 서둘러 분위기를 파악했다.

머리에 난 뿔로 보아 블루문 때 자신의 밭을 난장판으로 만든 놈이었다. 그런데 테오의 말을 들어보니 저번에 밭을 덮어뒀던 파 이파리와 옥수수나무를 훔쳐 간 것도 이놈의 짓인 것 같았다.

그리고 오늘도 파 이파리를 훔치러 왔다가 테오에게 걸린 것이다. 블랙 미노타우루스 우천삼은 테오의 추궁에 바닥에 떨어진 걸 주웠다고 주장하며 억울해하고 있었다.

"개도 아닌데 도둑을 잡다니."

개냥이도 이런 개냥이가 없었다. 거기다 잡은 도둑도 그냥 도둑이 아니라 농사에 도움이 되는 힘 잘 쓰는 도둑이었다. 세준이 테오를 기특하게 바라봤다.

"회장님아 지금 표정이 이상하다냥!"

"응?!"

"그것보다 빨리 우천삼에게 풀을 버린 건지 아닌지 말해달라냥."

"당연히 버린 게 아니지."

세준이 단호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버렸다고 해도 아니라고 할 판이었다.

"우천삼한테 밭을 난장판으로 만든 것과 기껏 열심히 깔아둔 풀을 훔친 것에 대해 손해배상금으로 100탑코인을 청구하겠다고 전해."

세준이 엄청난 금액을 불렀다. 밭을 망치고 풀을 훔친 대가로는 너무 과했다.

"알겠다냥!"

음머...

테오가 세준의 말을 전하자 우천삼이 절망적인 표정을 지었다. 나 돈 없다...

"회장님아 우천삼이 돈이 없다는데 어떻게 하냥?"

"뭘 어떻게 해? 돈이 없으면 몸으로 갚아야지. 여기서 일하면 하루에 1탑코인을 줄게."

세준이 우천삼에게 일자리를 제안했다. 대가를 과하게 부른 것은 다 이것을 위한 밑밥이었다. 물론 자신의 밭을 망치고 일을 여러 번 하게 만든 것에 대한 앙심도 일부 있었다.

"아! 그런 것도 되는 거냥?!"

세준의 말에 테오가 감탄했다.

'돈이 없으면 몸으로도 갚을 수 있는 것이었구냥.'

테오가 새로운 거래 수단에 대해서 깨달았다.

음머!

우천삼이 세준의 제안에 고개를 끄덕였다. 블랙 미노타우루스의 전사로서 남의 것을 훔치는 짓을 할 수는 없었다.

"가서 쉬고 아침에 출근하라고 전해."

"알겠다냥."

우천삼이 도망갈 것 같지는 않았다. 어차피 파 이파리 때문에라도 다시 올 몬스터. 그렇다면 보수로 파 이파리를 주면서 일을 시키는 게 서로에게 윈윈일 수도 있었다.

뭐 압도적으로 세준에게 유리하겠지만...

테오가 세준의 말을 우천삼에게 전했고

음머.

우천삼은 침울한 얼굴로 돌아갔다. 그렇게 세준은 밭을 갈아줄 강력한 검은 소...아니 블랙 미노타우루스를 고용했다.

"테오, 잘했어."

"나 잘했냥?"

테오가 말하며 세준을 바라봤다. 잘했으면 뭘 줘야 하는지 알지 않느냥?이라는 표정이었다.

"테 대표, 한 달 연장."

"더 쓰라냥!"

세준에게 흥정을 시도하는 테오.

하지만

쭈욱.

세준이 츄르 봉지를 찢어 테오의 앞에 가져가자

촵촵촵.

흥정에 대한 생각은 금세 저편으로 날아가 버렸다.

덥석.

세준이 츄르를 탐닉하는 테오를 한 손에 안고 동굴로 내려가 다시 잠을 잤다.

조난 192일 차. 세준은 테오를 안고 기분 좋게 꿀잠을 잤다.

***

쿠어어어어엉?!(네가 여기 왜 있어?!)

음머어어어!!(빚 갚으러 왔다!!)

꾸엥!!(형아들, 나 왔어요!)

아침이 되자 엄마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와 블랙 미노타우루스 우천삼으로 인해 지상에 소란이 일어났다.

"깜빡했다."

"뭐냥?!"

세준이 서둘러 배에서 자고 있는 테오 번역기를 등에 매달고 지상으로 올라갔다. 둘 중 누구라도 다치면 큰일이었다.

지상으로 올라가니 동굴을 중심으로 엄마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와 우천삼이 원을 그리며 서로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일촉즉발의 상황.

"잠깐!"

세준이 일단 소리를 치며 둘을 말렸다.

쿠어엉!

"위험하니 들어가라고 한다냥."

음머!

"빚을 갚으러 왔다고 한다냥."

꾸엥!

"회장님아 쟤가 또 츄르를 달라고 한다냥! 빨리 혼내줘라냥!"

번역을 하던 테오가 새끼 곰을 가리키며 흥분했다.

"일단 모두 진정해. 그리고..."

세준이 혼돈을 단번에 해결할 마법의 단어를 꺼냈다.

"일단 밥 먹고 얘기하자."

꾸엥!

세준의 얘기에 꾸엥이가 서둘러 자신의 자리에 앉았고

쿠어엉...

음머어...

엄마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와 우천삼도 자리에 엉거주춤 앉았다.

***

쿠어어엉.

피라니아와 크레이피시를 먹은 엄마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가 순찰을 하러 일어났다. 아침을 먹으면서 세준에게 자초지종을 듣고는 우천삼에 대한 경계를 풀었다.

우적우적.

음머어?

파 이파리와 방울토마토 가지를 씹으며 우천삼이 테오에게 다가와 물었다. 난 뭐해?

"우천삼이 자긴 뭐하냐고 묻는다냥!"

"뭐하긴 땅 뒤집어야지."

세준이 우천삼을 데리고 블루문 때 우천삼이 만든 구덩이로 데려갔다.

"이렇게 구덩이를 만들어줘."

음머!

세준의 말에 우천삼이 길이가 1m쯤 되는 뿔을 땅에 박고

우드득.

뿔을 길게 만들었다. 뿔이 땅을 뚫고 7m까지 길어졌다.

그리고

음머어어어어!

쿠구궁.

우천삼이 기합을 넣으며 고개를 들자 땅이 함께 들렸다.

"좋아. 점심 먹을 때까지 이것만 해주면 돼."

음머?!

우천삼이 감동한 표정을 지었다. 점심도 줘?!

"당연하지. 나 그렇게 악독한 고용주 아니야."

밖에 나가면 바로 노동청에 고소당할 정도의 열악한 노동 조건이었지만, 탑에서 밥을 먹이면서 일을 시킬 정도면 아주 훌륭한 고용주였다.

그렇게 세준은 우천삼에게 일을 시키고 테오와 동굴로 내려왔다.

그때

뺘앙!

뺘압!

뺘앗!

새끼 토끼들이 테오 쪽으로 달려왔다.

"조카들아 멋진 삼촌이 왔다냥!"

두 팔을 벌려 새끼 토끼들을 환영하는 테오. 하지만 새끼 토끼들은 테오를 지나쳐 세준에게 달려갔다. 짧은 새끼 토끼들의 인생에서 테오는 이미 남이었다.

"어떻게 그렇게 쉽게 변하는 것이냥!"

테오가 변심한 새끼 토끼들을 향해 애절하게 외쳤지만, 새끼 토끼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세준은 새끼 토끼들과 조금 놀아주다 토끼 부부에게 보냈다. 테오와 이번 거래에 대한 정산을 해야 했다.

"이번에도 완판을 하고 612탑코인을 벌었다냥."

그리고

후두두둑.

테오가 봇짐을 잡고 거꾸로 흔들어 사진을 찍고 얻은 츄르와 커피 그리고 잡화점에서 산 물품들을 쏟아냈다.

"이번에는 나를 기다리는 헌터들이 별로 없었다냥...사진도 두 명이랑 밖에 못 찍었다냥."

테오의 귀가 축 처졌다.

"괜찮아. 뽑기는?"

"이번에는 손이 가는 게 없어서 그냥 왔다냥."

"수고했어. 여기 인센티브."

세준이 인센티브로 35탑코인을 테오에게 건넸다.

"감사하다냥!"

"그리고 이건 도둑을 잡은 것에 대한 인센티브."

테오 덕분에 우천삼에게 100탑코인 만큼 일을 시키기로 했으니 100탑코인의 20%인 20탑코인을 추가 지급했다.

"그...그럼 전부 합치면 55탑코인이다냥!!!"

테오가 자신의 두 발바닥에 올려진 돈을 감격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고향을 떠날 때 가지고 나온 50탑코인 보다 많은 돈을 단숨에 벌었다.

'역시 박세준이랑 있으면 나는 성공한다냥! 역시 박세준의 무릎은 내 것이어야 한다냥!'

테오가 세준의 무릎을 전부 차지하기 위해 발라당 누웠다.

"야 이제 비켜. 일해야 해."

"싫다냥!"

조난 193일 차. 세준은 오늘따라 틈만 나면 자신의 무릎에서 질척거리는 테오를 떼어내느라 애를 먹었다.

39화. 투배럭을 돌리다

39화. 투배럭을 돌리다

우천삼, 어디 가냐?

3일째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황무지 지역으로 출근하는 우천삼을 향해 동료 우천사가 물었다.

맛있는 밥 먹으러 가!

우천삼이 기분 좋게 대답했다. 요즘 매일 점심에 풀을 먹을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았다. 빚 탕감도, 우마왕의 지시도 어느새 새까맣게 잊어버린 우천삼이었다.

맛있는 밥?!

응! 뿔로 땅 뒤집고 다시 덮어 주면 밥을 줘.

나도 밥 먹고 싶어! 나도 갈래!

우천사가 흥분하며 일어났다.

그래! 같이 가자!

우천삼이 신입 일꾼 우천사를 데리고 세준의 동굴로 출근했다.

***

꾸엥!

세준이 새끼 곰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깼다.

그리고

슥.

동굴 벽에 선을 그으며 조난 195일 차 아침을 시작했다.

세준이 블랙 미노타우루스 우천삼에게 아침에 할 일을 지시하기 위해 밧줄을 타고 지상으로 올라가자

"어?!"

음머!

음머!

블랙 미노타우루스 두 마리가 세준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 마리가 더 있었다. 세준이 둘을 구분할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의 어깨에 그려진 문양이 다르기 때문.

세준이 이게 무슨 상황인지 생각하는 동안

꾸벅.

우천삼과 함께 온 블랙 미노타우루스가 세준에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음머!

"우천삼이 자신의 동료 우천사도 여기서 일하고 밥을 먹게 해달라고 한다냥."

세준의 다리에 매달려있던 테오가 우천삼의 말을 번역했다.

"좋아. 밥은 제공할 수 있지만, 일당은 줄 수 없는데 그래도 하겠냐고 물어봐."

"알겠다냥."

테오가 우천사에게 세준의 말을 전했다. 세준으로서는 지금 당장 밭을 만드는 게 급하지 않았기에 돈을 지불하며 블랙 미노타우루스 한 마리를 추가로 고용할 이유가 없었다.

음머!

밥을 먹으러 왔기에 우천사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수락했다. 그렇게 블랙 미노타우르스 두 마리가 열심히 땅을 뒤집었다.

쿠우웅.

블랙 미노타우루스 두 마리가 땅을 뒤집는 소리를 들으며 세준이 동굴로 내려왔다.

그리고 그동안 방치했던 대파의 뿌리를 나눠 심기로 했다.

수분이 날아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지상 밭을 덮고, 엄청난 덩치의 일꾼 둘을 먹이려면 파 이파리 생산량을 늘릴 필요가 있었다.

지금까지는 파 이파리가 항상 넘쳐났기에 늘리지 않았지만, 대파는 자르면 자를수록 뿌리의 수가 늘어난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숫자를 늘릴 수 있는 게 대파였다.

세준이 조난당했을 때 가장 먼저 심은 대파의 뿌리들을 떼어내기 시작했다. 대파의 뿌리는 텀블러 정도의 굵기로 굵어져 있었고 뿌리는 거의 30개나 됐다.

세준은 그렇게 얻은 대파 뿌리들을 지상으로 가지고 올라와 어제 우천삼이 땅을 뒤집고 다시 메꾼 땅으로 가서 밭을 만들고 대파 뿌리들을 심었다.

대파를 지상에 심은 이유는 파 이파리를 힘들게 동굴에서 가지고 올라올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대파 뿌리를 심으니 단숨에 지상의 대파밭이 동굴에 있는 대파밭보다 20배 정도로 커졌다.

[대파밭 200평을 만들었습니다.]

[경험치 200을 획득했습니다.]

앞으로 뿌리가 늘어날 때마다 다시 나눠 심기를 한다면 금세 지금보다 몇 배는 넓은 대파밭이 만들어질 거다.

한 가지 문제만 해결하면.

쏴아아아.

세준이 대파밭에 물을 주는 물조리개 토끼들을 바라봤다. 물조리개의 수량이 정해져 있어 농작물에 전부 물을 줄 수 없었다.

그래서 현재는 세준이 동굴 밭의 일부에 직접 연못물을 길어와 해결하고 있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세준이 물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파앗.

남편 토끼의 몸이 눈부시게 빛났다. 그리고 흑토끼의 해머가 변한 것처럼 남편 토끼의 물조리개가 변화하며 물을 담는 부분이 더 커졌다.

"2차 각성이네."

2차 각성이라는 말은 토끼들이 레벨업을 하며 장비도 함께 성장하는 것을 구분하기 위해 세준이 붙인 명칭으로 2차 각성을 한 토끼는 전보다 월등히 능력이 좋아진다.

삐익...

2차 각성을 끝낸 남편 토끼가 변화한 자신의 물조리개를 뿌듯하게 바라봤다.

"어때? 물 용량 많이 늘어났어?"

기대감 가득한 목소리로 세준이 물었다.

삐익!

남편 토끼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손가락 두 개를 폈다. 2배!

"오!"

남편 토끼의 2차 각성으로 당분간 물이 부족할 일은 사라졌다. 그렇게 물 문제가 해결되며 세준의 농장이 한 번 더 성장했다.

***

조난 197일 차.

"자 밥 먹자!"

오늘은 새끼 토끼들이 처음으로 지상에 올라와 함께 식사를 했다.

그리고 식사가 끝나자

꾸엥!

꾸엥이는 자신보다 어린 새끼 토끼들을 만난 게 반가운지 먼저 다가가 인사했다.

뺘앙!

뺘압!

뺘앗!

새끼 토끼들은 꾸엥이의 거대한 덩치에 겁먹지 않고 꾸엥이에게 다가가 함께 놀기 시작했다.

꾸엥!

꾸엥이는 형아로서 자신이 아는 걸 가르쳐 주고 싶었는지 새끼 토끼들을 데리고 밭으로 가서 심기를 가르쳐 줬다. 여기다 심으면 나중에 더 많이 나와.

"농부의 피가 흐르는 백토끼들에게 심기를 가르치다니."

세준이 커피를 마시며 흥미진진하게 꾸엥이와 새끼 토끼들을 구경했다. 물론 커피를 마시며 쉬는 세준의 무릎에는 테오와 흑토끼가 하나씩 자리를 차지하고 낮잠을 자고 있었다.

뺘앙?

꾸엥이의 설명을 들은 새끼 토끼 하나가 가죽 주머니 가방에서 군고구마 말랭이를 꺼내 땅에 심었다.

꾸에에엣!

꾸엥이가 그런 새끼 토끼를 보며 비웃었다. 올챙이 적 생각 못 한다고 자기가 군고구마와 피라니아를 심었던 기억은 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평화로운 휴식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왱왱.

새끼 독꿀벌의 날갯소리가 들려왔다.

"응?"

세준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독꿀벌들은 새끼 독꿀벌들을 위험할 수 있는 동굴 밖으로 내보내지 않기 때문이다. 뭐지?

세준이 소리가 나는 곳을 바라보자

왱왱.

새끼 독꿀벌 7마리가 바위 위에 지어진 벌집 주변을 날고 있었다. 두 번째 벌집에서 드디어 첫 번째 새끼 독꿀벌들이 태어난 것이다.

세준이 자고있는 흑토끼와 테오를 바닥에 내려놓고 새끼 독꿀벌들에게 다가갔다.

왱왱.

독꿀벌 여왕의 주인으로 인식된 덕분인지 새끼 독꿀벌들은 독꿀벌 여왕의 교육이 없어도 세준을 경계하지 않고 다가와 애교를 피웠다.

"얘들아,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세준이 새끼 독꿀벌들을 이끌고 동굴로 내려갔다. 그리고 꽃이 있는 곳으로 데려가 새끼 독꿀벌들에게 꿀을 빨게 했다.

윙윙.

기존의 독꿀벌들은 다른 세력 독꿀벌들의 등장에 경계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세준이 그들과 함께 있자 곧 경계를 풀고 다시 꿀을 빨았다.

그렇게 두 번째 벌집에서 태어난 새끼 독꿀벌들이 자리를 잡았다. 앞으로 꿀의 생산량도 늘어날 거고 드디어 세준이 생각했던 활동 영역을 넓히는 수단이 생기는 것이다.

세준이 순조롭게 벌집 투배럭을 돌리기 시작했다.

오후에는 파 이파리를 잘라 밭을 덮어주고 동굴로 내려와 방울토마토를 수확을 시작했다.

그렇게 세준이 방울토마토를 수확하고 있을 때

[잘 익은 마력의 방울토마토 8개를 동시에 수확했습니다.]

[직업 경험치가 조금 상승합니다.]

[수확하기 Lv. 4의 숙련도가 조금 상승합니다.]

[숙련도 상승 Lv. 1의 효과로 수확하기 Lv. 4의 숙련도가 5% 추가 상승합니다.]

[경험치 176을 획득했습니다.]

[레벨업 했습니다.]

[보너스 스탯 1을 획득했습니다.]

세준의 레벨이 오르며 17레벨이 됐다. 아직까지 힘이나 체력이 부족한 적은 없었기에 이번에도 보너스 스탯은 작업 속도를 올려주는 민첩에 투자했다.

저녁이 되자

크어어어엉.

엄마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가 새끼 곰을 데리러 왔고

음머!

음머!

두 블랙 미노타우루스들도 퇴근했다.

"테 대표, 이제 슬슬 거래하러 내려갈 때가 되지 않았어?"

세준이 저녁을 먹고 무릎에 올라온 테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원래라면 테오가 며칠은 더 놀게 놔뒀겠지만, 가족에게 안부를 전할 때가 됐다.

"내려가고 싶지만, 못 내려간다냥!"

"그게 무슨 소리야?"

"여기 오다가..."

테오가 늑대들에게 습격받은 얘기를 했다.

"늑대들이 밀짚모자에 대해 물으며 날 잡아먹으려 했다냥."

"이 밀짚모자를?"

다른 층에도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있나? 세준이 쓰고 있는 밀짚모자를 만지며 물었다. 유물이고 또 효과도 좋지만, 농사를 짓는 사람이 아니면 필요 없는 옵션만 있는 아이템이었다.

"그렇다냥! 그래서 나는 못 내려간다냥!"

"걱정 마. 감히 우리 테 대표를 노리다니! 내가 해결해 줄게."

감히 우리 테오의 목숨을 노리다니! 세준이 분노하며 강력한 해결책을 생각했다.

"어떻게 말이냥?"

"우리에게는 우천삼이 있잖아. 테 대표, 너 자유 용병 고용할 수 있지?"

"할 수 있다냥!"

"우천삼을 자유 용병으로 고용해서 내려갔다 오면 되잖아."

유랑 상인의 용병으로 고용된 존재는 자유 용병으로 고용되는 동안 상인 통로를 이용할 수 있다.

세준도 자유 용병으로 탑을 함께 내려가면 좋겠지만, 한 가지 조건 때문에 세준은 자유 용병이 되는 게 불가능했다.

그 조건은 탑에서 태어날 것. 다시 태어나는 거 말고는 방법이 없는 조건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건 유랑 상인도 마찬가지였다.

유랑 상인과 자유 용병 등 몇 가지 직업은 탑에서 태어난 존재들에게만 허락되는 직업이라고 했다.

"오! 맞다냥! 이번에 늑대들이 덤비면 우천삼이랑 같이 혼내줄 거다냥!"

테오가 세준의 말에 용기를 얻었다.

고로롱.

그렇게 테오는 내일 우천삼과 탑을 내려가기로 하고 세준의 배 위에서 잠들었다.

***

다음 날 아침.

세준이 우천삼에게 자유 용병으로 고용되어 테오를 호위해주면 일당의 3배인 3탑코인을 탕감해주겠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음머!

우천삼이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왜? 일당을 세 배로 주는데?!"

음머!

"여길 떠나면 밥을 못 먹어서 싫다고 한다냥!"

"뭐?!"

우천삼에게는 빚 탕감보다 밥이 더 중요했다.

"알았어. 그럼 하루 세끼 보장."

세준이 삼시세끼를 모두 제공하기로 하자

음머!

옆에서 듣고 있던 우천사가 손을 들었다. 나도 간다! 하루 세 끼를 먹을 수 있는 일자리가 나타났으니 무조건해야 했다.

"음...좋아. 그럼 너도 일단 3탑코인에 하루 3끼 보장해주면 되지?"

세준은 블랙 미노타우루스 두 마리리라면 하나가 싸우는 동안 남은 하나가 테오를 지켜 줄 수 있을 테니 테오의 안전을 충분히 보장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음머.음머.

우천사가 고개를 저었다. 돈은 필요 없다. 밥을 달라.

"그래."

세준은 서둘러 블랙 미노타우루스 두 마리의 10일 치 식량을 챙기기 위해 열심히 파 이파리를 베었다.

"아냐. 15일 치는 챙겨야지."

세준이 파 이파리 50%를 테오의 봇짐에 추가로 담았다.

불가피한 일로 일정이 길어지면 파 이파리가 모자랄 수도 있다. 그러면 배가 고파진 우천삼과 우천사가 테오를 잡아먹을지도 몰랐다.

"그럼 큰일이지. 절대 테오를 먹지 않겠다는 계약서라도 받아야 하나?"

세준이 그렇게 고민하는 동안 두 블랙 미노타우루스 두 마리가 먹을 파 이파리 15일 치가 테오의 봇짐에 담겼다.

엄청난 양이었지만, 테오의 봇짐 3분의 1밖에 차지하지 않았다.

"오! 엄청 많이 들어가네?"

"그렇다냥. 이제 나는 중견 유랑 상인 테 대표이기 때문이다냥!"

테오가 우쭐해하며 말했다. 테오가 중견 유랑 상인으로 승급하며 봇짐의 용량이 크게 늘어나지 않았다면 이번 거래는 파 이파리만 들고 갈 뻔했다.

"조심히 갔다 와!"

"그럼 다녀오겠다냥!

조난 198일 차. 테오가 세준의 배웅을 받으며 두 블랙 미노타우루스를 대동하고 탑을 내려갔다.

40화. 대파를 수확하다.

40화. 대파를 수확하다.

탑 1층의 외곽 지역.

10명의 각성자들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금발에 황금 갑옷을 입은 남자가 검은 벽 너머에서 나타났다.

오늘은 가겔의 탑농장 프로젝트팀이 심은 E급 마력의 방울토마토를 수확하는 날. 가겔의 부회장인 마이클 맥라렌이 직접 농장을 찾았다.

"부회장님, 이쪽입니다."

연구팀장이 탑농부 프로젝트 본부로 마이클을 안내했다. 탑 1층에는 돈을 내면 개인이나 집단이 사용할 건물을 빌릴 수 있었다.

"대농장을 만들 부지의 확보는 어떻게 됐지?"

"현재 노예들이 탑 2층의 고블린 마을들을 몰아내고 땅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노예라고 부르는 이들은 가겔이 사채를 쓴 사람들의 채무를 인수한 후 탑의 계약서를 이용해 강제로 노예 계약을 맺고 티켓으로 각성시킨 각성자들이었다.

그들은 평생 일해도 갚을 수 없는 빚을 갚기 위해 탑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일만 하고 있었다.

그렇게 대농장 부지 확보에 대한 얘기를 하며 걷는 사이 마이클이 본부의 마당에 도착하자 방울토마토들이 주렁주렁 열린 밭이 보였다.

"드디어..."

톡.

흥분한 마이클이 밭으로 다가가 빨갛게 잘 익은 방울토마토 하나를 수확해 살펴봤다. 자세히 살펴봐도 설명은 나타나지 않았다.

"아이템은 아니군."

조금 기대하고 있었던 마이클이 실망했다. 하지만 탑농장 프로젝트를 시작할 씨앗을 구했다는 것에 의의를 두기로 했다.

'맛은 어떨까?'

마이클이 방울토마토를 입에 넣었다.

뽀득.

촤악.

방울토마토가 터지며 안의 즙이 터져 나왔다.

"...?"

오물오물.

마이클의 표정이 굳어지며 신중하게 방울토마토를 씹었다.

그리고

퉤!

마이클이 방울토마토를 뱉었다.

그리고

톡.톡.톡.

마이클의 손이 다급하게 다른 방울토마토들도 수확해 하나씩 맛봤다.

하지만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마이클이 손에든 방울토마토를 집어 던지며 소리쳤다.

"부회장님, 무슨 일이십니까?"

"무슨 일?! 이거 아무 맛도 안 나잖아!"

"네?!"

마이클의 말에 방울토마토를 키운 연구팀원들이 서둘러 방울토마토를 맛보기 시작했다.

"이럴 리가...어떻게 이런 맛이..."

연구팀장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필요한 영양제를 전부 투입했는데 방울토마토에서는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

마이클은 연구팀장과 탑에서 나와 연구팀장에게 방울토마토의 분석을 지시했다.

그래도 회사의 기술을 이용하면 방울토마토의 품종을 개량해 맛을 끌어올릴 수 있을지도 몰랐다.

몇 시간 후 연구팀장이 탑에서 수확한 방울토마토를 분석한 보고서를 들고 찾아왔다.

"어떻게 됐어?"

"모든 성분이 기준치 이하입니다. 최하등급으로 상품성이 전혀 없습니다. 거기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안에 씨앗이 없습니다."

"씨앗이 없다고?!"

"네."

씨가 없다면 품종개량은커녕 방울토마토 재배 자체가 불가능하다.

"후우. 이번에 38층에서 거래가 열리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D급 마력의 방울토마토 전부 확보해서 다시 재배해! 알았어?!"

"네!"

마이클은 E급이 안 된다면 D급 마력의 방울토마토에 기대를 걸어보기로 했다.

'등급이 높아지면 달라지겠지.'

마이클의 지시 덕분에 테오의 매출은 다시 한번 최고치를 찍을 예정이었다.

***

테오가 떠나고 오전 내내 풀만 벤 세준이 점심을 준비했다.

오늘 메뉴는 냄비에 피라니아, 파, 당근을 넣고 고춧가루와 소금으로 간을 한 피라니아 매운탕. 세준이 테오가 사 온 물건을 정리하던 중 냄비 안에서 고춧가루를 발견했다.

"테오 녀석, 이런 귀한 게 있었으면 진작 말해주지. 흐흐흐."

세준은 테오가 오면 테 대표 5시간에 무릎에 올려두고 츄르를 맘껏 먹게 해줘야겠다고 생각하며 숟가락으로 냄비 안의 국물을 떠먹었다.

후룩.

"크으..."

청양고추로 만든 고춧가루의 매운맛이 세준의 입을 얼얼하게 만들었다.

뺙?

흑토끼가 불길한 붉은 액체를 조심스럽게 앞발로 찍어 먹었다. 세준이 먹는 건 일단 다 먹어봐야 직성이 풀리는 흑토끼였다.

뺙!!

매운탕 국물을 먹은 흑토끼가 입에서 불이 난 거처럼 서둘러 연못으로 가서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피라니아 매운탕은 후추를 먹었던 흑토끼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포기한 덕분에 세준 혼자 피라니아 매운탕을 독차지할 수 있었다.

재료 부족으로 밖에서 먹었던 매운탕에 비하면 맛이 많이 부족했지만, 거의 200일 만에 먹는 얼큰한 맛에 세준은 피리니아 매운탕을 바닥이 보이도록 깨끗이 그리고 맛있게 먹었다.

"쓰읍. 하아. 맵다 매워."

세준은 매운맛을 달래기 위해 방울토마토 주스 제조에 들어갔다.

촥-!촥-!

세준이 빈 냄비 안에 방울토마토즙을 짜기 시작하자

윙윙.

독꿀벌들이 날아와 냄비 안에 꿀을 투하했다. 그렇게 달달한 방울토마토 주스를 완성한 세준이 텀블러에 주스를 국자로 덜어 매운맛을 달래고 있을 때

[탑의 관리자가 자신도 방울토마토 주스를 먹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럴 줄 알고 많이 만들었어. 퀘스트 줘."

[퀘스트가 발생합니다.]

[퀘스트 : 탑의 관리자에게 꿀을 넣은 방울토마토 주스를 대접하라.]

보상 : 에일린의 호감

거절 시 : 서운함

"자 가져가."

세준이 든 냄비 안의 방울토마토 주스가 사라지며 퀘스트가 완료됐다.

[탑의 관리자가 맛도 좋고 몸에도 좋은 방울토마토 주스에 기뻐합니다.]

[탑의 관리자가 저번에 먹었던 크레이피시는 왜 또 안 주냐고 묻습니다.]

"그건 아껴 먹어야 해. 기다렸다 다음 주에 먹자."

[탑의 관리자가 자신은 잘 기다릴 수 있다고 말합니다.]

크레이피시는 개체 수가 많지 않은 건지 동료의 피로 몇 번 유인하자 모여드는 숫자가 점점 줄어들더니 이제는 피로 유인해도 1~3마리 정도만 모여들었다.

그래서 세준은 크레이피시의 개체 수를 보호하기 위해 일주일에 한 번만 먹기로 했다.

그렇게 세준이 방울토마토 주스를 마시며 탑의 관리자와 얘기를 나누는 동안

꾸엥.

꾸엥이가 꿀이 든 유리병을 들고 세준에게 다가왔다. 꿀 주세요!

"알았어."

달칵.

세준이 꾸엥이가 가져온 유리병의 뚜껑을 열고 꾸엥이의 앞발에 꿀을 1꿀렁 부었다.

생수통의 입구보다 유리병의 입구가 훨씬 더 컸기에 유리병의 1꿀렁은 예전의 20꿀렁 정도는 되는 양이었다.

핥핥.

꾸엥이가 자신의 발을 타고 흐르는 꿀을 서둘러 핥았다. 꾸엥이가 이렇게 많은 꿀을 먹을 수 있게 된 것은 독꿀벌들의 수가 늘어나며 꿀의 수확량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지금은 벌집 두 개를 합쳐 독꿀벌들의 수가 대략 400마리. 지금은 독꿀벌들이 동굴에서 100m 정도 떨어진 곳까지 순찰을 다녔다.

그리고 두 번째 벌집의 등장에 자극을 받은 건지 첫 번째 벌집의 독꿀벌 여왕도 낳는 알의 수를 늘렸다.

덕분에 요즘에는 양쪽 벌집을 합쳐 하루에 15마리 정도의 새끼 독꿀벌이 태어나며 더욱 빠르게 독꿀벌들의 수가 늘어나고 있었다.

꾸엥...

그사이 꿀을 다 핥아먹은 꾸엥이가 세준의 옆에 누워 잘 준비를 했고 낌새를 느낀 흑토끼도 세준의 무릎에 와서 잠들었다. 무릎이 허전할 틈이 없는 세준이었다.

그렇게 흑토끼와 꾸엥이의 체온을 느끼며 낮잠을 잔 세준은 오후에는 동굴로 내려가 방울토마토를 수확했다.

오전에 수확하지 못한 양까지 수확하다 보니 수확량이 꽤 많았지만, 세준은 무리 없이 수확을 끝냈다.

그리고

서걱.

땅에 심은 태양의 호박고구마에서 순을 10개 잘랐다. 대파를 지상에 나눠 심기하며 빈자리에 심기 위해서였다.

푹.

세준이 단검으로 구멍을 낸 자리에 태양의 호박고구마순을 심었다.

[태양의 호박고구마순을 심었습니다.]

[씨뿌리기 Lv. 3의 효과로 태양의 호박고구마순이 뿌리를 내릴 확률이 증가합니다.]

[직업 경험치가 아주 미세하게 상승합니다.]

[씨뿌리기 Lv. 3의 숙련도가 아주 미세하게 상승합니다.]

[숙련도 상승 Lv. 1의 효과로 씨뿌리기 Lv. 3의 숙련도가 5% 추가 상승합니다.]

그렇게 태양의 호박고구마순을 다 심고 세준은 채종으로 씨앗을 얻어 심은 대파를 살펴봤다.

2주 전까지만 해도 실파 정도의 굵기였는데 어느새 손가락 두 개 굵기로 굵어져 있었다.

"이제 수확해도 되려나?"

서걱.

세준이 파 이파리를 잘랐다. 하지만 수확했다는 메시지가 나타나지 않았다.

"열매가 아니라서 그런가?"

투둑.

세준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파를 통째로 뽑았다.

[해독의 대파를 수확하셨습니다.]

[수확하기 Lv. 4의 효과로 한 단계 등급 높은 농작물을 수확했습니다.]

[직업 경험치가 크게 상승합니다.]

[수확하기 Lv. 4의 숙련도가 크게 상승합니다.]

[숙련도 상승 Lv. 1의 효과로 수확하기 Lv. 4의 숙련도가 5% 추가 상승합니다.]

[경험치 36을 획득했습니다.]

"어?! 한 단계 높은 농작물?"

세준이 서둘러 대파의 옵션을 확인했다.

[해독의 대파]

탑 안에서 자란 대파로 영양을 충분히 섭취해 맛있습니다.

섭취 시 1시간 동안 C+급 이하의 독을 해독합니다.

비각성자가 섭취 시 24시간 동안 해독을 하는 간의 기능이 활발해집니다.

재배자 : 탑농부 박세준

유통기한 : 135일

등급 : C+

탑 밖에서 인기있는 지방 분해 옵션이 없었다. 그리고 원래 D+등급이었는지 등급이 한 단계 상승하며 C+등급이 됐다.

"좋은 건가? 뭐 맛있으면 됐지."

독에 중독될 일이 없는 세준에게는 해독의 대파도 그냥 맛있는 대파일 뿐이었다. 세준이 채종할 대파 몇 개를 남겨두고 대파 200뿌리 정도를 수확했다.

***

탑 1층 피닉스 길드의 본부.

"요즘 길드원들이 탑 38층에 가는 횟수가 많이 증가했군. 갑자기 무슨 일이지?"

피닉스 길드의 길드장 레온이 탑 출입 기록을 보면서 물었다. 탑 36층에서 3달간 퀘스트를 수행하고 지금 막 돌아온 참이었다.

"요즘 길드원들이 38층에서 유랑 상인과의 거래에 열을 올리면서 자연스럽게 탑에 체류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어요."

부길드장 캐서린이 대답했다.

"유랑 상인?"

"네. 길드장님, 이거 보세요. 귀엽죠?"

캐서린이 테오와 찍은 사진을 보여줬다.

"고양이?"

"네. 테오라는 유랑 상인이에요. 그리고 이 마력의 방울토마토를 팔고 있죠."

캐서린이 레온에게 D급 마력의 방울토마토를 보여줬다.

"마력 0.2? 전투에는 큰 도움이 안 되겠어."

"뭘 모르시네요. 이거 가지고 부인 분에게 가져가 보세요. 바로 대접이 달라질걸요."

"그래?"

캐서린의 말에 레온이 솔깃했다. 솔직히 여기서 이러고 있는 것도 3달 만에 집에 들어가려니 눈치가 보였기 때문이다.

"자요. 저도 어렵게 구한 건데 10개 드릴게요."

"고마워."

"그것보다 퀘스트 성과는 있었어요?"

"이제 간신히 해독제 3병을 모았어."

레온이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탑 38층의 보스인 치명적인 타란툴라는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강한 독가스를 뿜어내는 패턴이 있었다.

그래서 보스를 공략하기 위해서는 해독제가 필요했지만, 치명적인 타란툴라의 강한 독을 해독할 수있는 해독제를 구할 데가 없었다.

그렇게 38층 공략에 어려움을 겪던 중 레온은 탑 36층에서 우연히 거미독을 연구하는 연금술사를 만났다.

그리고 탑 36층의 특정 구역에서 가끔 나타나는 포이즌 스파이더 100마리의 사체를 가져다주고 해독제 하나를 받는 퀘스트를 받았다.

그리고 피닉스 길드의 1, 2팀과 함께 포이즌 스파이더를 사냥한 결과 3달 동안 퀘스트 3번을 완료하고 해독제 3병을 얻은 것이다.

해독제 하나를 얻는데 1달. 탑 38층 보스를 공략하려면 적어도 20명은 필요하니 17달은 지나야 탑 38층 보스를 공략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휴우."

"일단 집에 가서 좀 쉬다 오세요."

"알았어."

3달 만에 집으로 들어간 레온은 캐서린이 챙겨준 마력의 방울토마토 덕분에 부인의 환대를 받을 수 있었다.

***

"냥냥냥."

"저기 옵니다."

"신호하면 덮쳐라."

"네."

70층에서 60층으로 통하는 상인 통로에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나오는 테오를 보며 은빛 늑대 3마리가 뛰어나갈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지금이다!"

크르릉. 은빛 늑대 3마리가 달려 나가 테오를 포위했다.

그때

"...!"

"...!"

"...족장?"

테오의 뒤를 이어 블랙 미노타우루스 우천삼과 우천사가 상인 통로에서 나왔다.

"푸후훗. 이제 내 차례다냥!"

테오가 악당처럼 웃으며 은빛 늑대들을 바라봤다.

41화. 선물을 받다.

41화. 선물을 받다.

'여기에 블랙 미노타우루스가 왜?!'

테오를 따라 나오는 두 마리의 블랙 미노타우루스를 보면서 실버 울프족의 족장 엘카와 다른 두 마리 은빛 늑대가 당황했다.

블랙 미노타우루스는 99층의 몬스터, 85층에 거주하는 자신들과는 그 격차가 상당했다. 너무도 불리한 상황.

하지만

"엘카 족장, 어떻게 합니까?"

"의뢰에 집중해라. 의뢰를 완료해야 그리드에게서 식량을 받을 수 있다."

그들에게는 물러설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부족의 어린 늑대들이 며칠째 자신들이 가져갈 식량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밀짚모자에 대한 정보를 얻어야 해!'

은빛 늑대들이 블랙 미노타우루스를 상대로 전투를 준비했다.

음머!

우천사는 테오를 지키고 우천삼이 앞으로 나섰다.

"살살 때리라냥! 죽이면 안 된다냥!"

음머!

테오의 말에 우천삼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때

다다다다.

은빛 늑대들이 우천삼을 향해 빠르게 달려들었다. 선공만이 그나마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발악이었다.

엘카가 우천삼의 정면으로 달려갔고 나머지 두 마리의 늑대들이 양쪽으로 움직이며 빈틈을 노렸다.

크아앙!

엘카가 우천삼의 오른쪽 허벅지를 노리며 몸을 날렸다.

콰득.

엘카가 너무도 쉽게 공격에 성공했다.

콰득.콰득.

다른 늑대들도 우천삼의 왼쪽 팔과 오른쪽 어깨를 물었다.

하지만

음머어!

우천삼의 가죽은 늑대들의 날카로운 이빨이 박히지 않을 정도로 질기고 또 두꺼웠다. 우천삼이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팔과 어깨를 문 늑대들을 잡아 바닥에 패대기쳤고

쾅!

깨갱!깨갱!

음머어!

두 마리 늑대를 기절시킨 우천삼이 엘카를 향해 오른 주먹을 뻗었다.

'위험해!'

엘카가 공격하는 우천삼의 주먹을 보며 서둘러 뒤로 피했다.

하지만

음머어!

이미 우천삼의 다음 주먹이 엘카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덩치와 다르게 쾌속한 움직임.

'이건 못 피해.'

엘카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우천삼의 거대한 주먹을 보며 삶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엘카, 잘 들어라. 지금은 우리가 이렇게 자유 용병으로 돈에 따라 움직이고 있지만, 과거 우리 부족의 조상들은 긍지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고고한 늑대였단다. 너는 꼭 이걸 명심하고 조상들의 명예에 누가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어릴 적 할아버지가 자신을 무릎에 올려놓고 항상 하시던 말씀. 그 말씀을 할 때만은 삶에 지친 할아버지의 표정이 살아나며 입가에 미소가 어리고 눈동자에서는 빛이 났다.

"네! 할아버지! 저도 나중에 긍지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고고한 늑대가 될 거예요!"

"그래. 그래."

엘카는 할아버지의 말을 기억하며 누구보다 긍지를 지키는 늑대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100년 전 탑에 일어난 대기근으로 식량 사정이 급격히 나빠지면서 엘카는 꿈을 잃었다.

많은 부족의 어른들이 어린 늑대들을 살리기 위해 음식을 양보하고 굶어 죽기를 선택했다. 엘카의 할아버지와 부모님도 그때 돌아가셨다.

엘카는 대기근을 겪으면서 긍지만으로는 먹을거리가 생기지 않는다는 걸, 긍지라는 게 얼마나 뜬구름 잡는 소리인지, 긍지를 지킨다는 게 대단한 사치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악착같이 자유 용병으로 활동하며 돈을 벌어 부족의 늑대들을 배불리 먹이는 것만을 생각하며 살아왔다.

'나는 고고한 늑대였나?'

엘카가 스스로에게 물었다. 대답은 금방 나왔다. 아니. 자신은 긍지를 버린 비열한 늑대였다. 후회는 없었다. 단지 아쉬울 뿐.

'다음 생이 있다면 긍지를 지키는 고고한 늑대로 한번 살아보고 싶군.'

엘카가 다음 생을 기약하며 눈을 감았다.

퍽!

깨갱!

우천삼의 주먹을 맞은 엘카가 기절했다.

"얘 기절한 거 맞냥?"

테오가 앞발로 엘카의 몸을 찌르면서 진짜 기절했는지 확인했다.

그리고

꾸욱.꾸욱.꾸욱.

테오가 종이 한 장을 꺼내 기절한 은빛 늑대 3마리의 발바닥 도장을 하나씩 찍었다.

"이 몸의 목숨을 노린 죄는 비싸다냥. 나는 돈으로 복수를 하겠다냥. 데려간다냥!"

테오는 늑대들을 세준에게 데려가 자신의 목숨을 노린 대가를 제대로 받아낼 생각이었다.

기절한 늑대 3마리를 우천삼과 우천사의 어깨에 걸쳐 들게 하고

"냥냥냥!"

테오가 다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탑을 내려갔다.

'푸후훗. 이놈들 돈이 없으면 몸으로 갚아야 될 거다냥!'

돈이 없으면 몸으로 갚아라! 세준에게 배운 걸 써먹는 놀라운 학습력. 거기다 계약서에 도장을 미리 찍어두는 철저함까지.

세준을 닮아가는 세준 2세, 테오 박이었다.

***

슥.

잠에서 깨어난 세준이 동굴 벽에 획 하나를 추가하며 네 번째 줄을 완성했다.

正正正正正 正正正正正

세준이 조난 200일 차 아침을 맞이했다.

"벌써 200일이라니..."

어제와 다를 바 없는 하루지만, 200이라는 숫자가 세준의 마음에 파문을 만들며 우울함에 빠지려 할 때

꾸엥!

새끼 곰이 자신이 왔음을 알렸다. 나 왔어요!

그리고

뺘앙!

뺘압!

뺘앗!

화답하는 새끼 토끼들로 인해 동굴은 시끌벅적해졌다.

"오늘은 200일 이니까 200퍼센트로 힘을 내야지!"

덕분에 세준의 우울함은 금세 날아갔다.

세준이 세수를 하고 아침을 준비했다. 아침 메뉴는 옥수수구이였다. 어제 매일 아침 식사로 먹던 군고구마 말랭이를 마지막으로 먹으며 남은 고구마를 다 먹어버렸다.

우적우적.

세준이 옥수수구이를 먹고 있을 때

뺙.

흑토끼가 해독의 대파 하나를 들고 와 불에 구웠다. 맛이 궁금했던 모양이었다.

뺙?

잠시 후 구운 해독의 대파를 먹은 흑토끼가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뭐가 달라진 거지?

"맞아. 원래 먹던 거랑 별로 차이 안나."

먼저 먹어봤던 세준이 흑토끼의 생각이 맞다는 것을 확인해줬다.

그랬다. D급 해독의 대파와 원래 먹던 파 이파리 사이에 큰 맛의 차이가 없었다. 그래서 해독 효과나 간 기능을 활발하게 하는 효과를 내세워 테오에게 팔게 할 생각을 하고 저장고에 보관하고 있었다.

물론 C+등급 해독의 대파 맛은 다를 거 같았지만, 하나밖에 없는 C+등급이기에 일단 나중을 위해 보관하기로 했다.

그렇게 아침을 먹은 세준과 토끼들이 아침 농사를 시작했다.

꾸엥!

빠르게 방울토수확을 끝내고 지상으로 올라온 세준을 꾸엥이가 반갑게 맞이했다. 나랑 놀아줘!

하지만

"미안. 나중에 놀아줄게."

세준은 할 일이 많았다. 대파밭으로 가자 낫 토끼가 혼자 열심히 파 이파리를 베고 있었다.

서걱.서걱.서걱...

세준도 합류해 열심히 파 이파리를 베었다.

그렇게 얼마나 베었을까.

"휴우. 너무 많이 심었나?"

세준이 오늘 자른 파 이파리 더미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파 이파리가 1m 정도의 높이로 쌓여 있었다.

삽 토끼가 밭을 만들고 물조리개 토끼들이 물을 뿌려두면 그곳을 파 이파리로 덮고 있었지만, 그렇게 사용하는 파 이파리보다 훨씬 더 많은 파 이파리가 하루에 2번 생산되고 있었다.

뿌리가 늘어날 때마다 나눠 심기를 했더니 금세 대파밭이 200평에서 400평으로 늘어난 덕분이었다.

"진짜 빨리도 자라네."

세준이 처음 잘랐던 대파들의 이파리가 어느새 10cm 정도 자라나 있는 것을 보며 말했다. 파 이파리를 그냥 놔둬도 상관없지만, 그건 또 두고 볼 수 없는 세준이었다.

"이제 블랙 미노타우루스 10마리는 감당하겠네."

서걱.서걱.

세준이 큰일 날 소리를 하면서 다시 파 이파리를 베기 시작했다.

그리고 파 이파리를 거의 다 베어냈을 때

뺙!

흑토끼가 지상으로 올라와 세준을 불렀다. 점심시간이었다.

점심 메뉴는 소금으로 간을 한 생선구이. 세준과 흑토끼는 후추를 한 꼬집씩 따로 뿌려서 맛있게 먹었다.

우적우적.

꿀꺽.

꾸엥!

꾸엥이는 피라니아 한 마리를 삼킬 때마다 맛있어!를 연발하면서 즐겁게 먹었다.

그렇게 즐거운 점심시간을 끝내고

뺘로롱.

꾸로롱.

낮잠을 흑토끼와 꾸엥이와 함께 세준이 잠들려 할 때

[탑의 관리자가 탑에 온 지 200일이 된 당신을 위해 선물을 준비했다고 합니다.]

"선물?"

그래도 200일이라고 챙겨주려고 하다니. 세준이 에일린의 말에 조금 감동했다.

[퀘스트가 발생합니다.]

[퀘스트 : 에일린에게 마력의 방울토마토 1개를 줘라.]

보상 : 비밀!

거절 시 : 흥! 나의 선물을 거절할 수는 없을걸!

보상이 비밀이라고? 서프라이즈인가?

"방울토마토 1개 가져가."

세준이 잔뜩 기대하며 퀘스트를 완료했다.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퀘스트 완료 보상으로 에일린의 건강 수프를 획득했습니다.]

"건강 수프?"

[탑의 관리자가 어서 동굴에 있는 냄비를 확인해보라고 말합니다.]

[탑의 관리자가 너무 열심히 요리를 했더니 졸리다며 자러 가겠다고 합니다.]

"고마워."

세준이 에일린에게 감사를 표했다. 에일린에게 뭔가를 받은 것은 처음이었다.

[탑의 관리자가 신경 써서 만들었으니 꼭 다 먹으라고 말합니다.]

"그래."

세준이 대답하며 동굴로 내려갔다.

그리고

"이건..."

냄비 안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녹색의 걸쭉한 액체가 담겨있었다.

"이거 먹으라고 만든 거야?"

세준이 인상을 찌푸리며 액체를 자세히 보자 설명이 나타났다.

[에일린의 건강 수프]

위대한 검은 용, 에일린 프리타니가 여러 가지 영약을 넣어 만든 용생 첫 번째 요리.

맛은 보장할 수 없지만, 효과는 뛰어나다. 살아남는다면...

섭취 시 모든 스탯이 3 상승한다.

섭취 시 C급 마비독에 중독된다.

섭취 시 C급 산성독에 중독된다.

요리사 : 위대한 검은 용, 에일린 프리타니

등급 : A급

"아이템?"

이걸 마시고 살아남으면 모든 스탯이 3 상승한다. 다행이라면 세준에게는 C+등급 해독의 대파가 있었다.

'마시자.'

먹어도 죽지는 않으니 먹기로 했다. 모든 스탯 3이 세준이 과감한 결단을 할 수 있는 용기를 줬다.

우적.

세준이 C+등급 해독의 대파를 먹었다.

[해독의 독파를 섭취했습니다.]

[1시간 동안 C+등급 이하의 독을 해독합니다.]

"좋아."

비장한 얼굴로 냄비에 담긴 건강 수프를 바라봤다.

"이건 음식이 아니고 약이다."

세준이 자신을 세뇌하며 코를 막고 냄비를 입에 대고 에일린의 건강 수프를 마셨다.

꿀꺽.

[에일린의 건강 수프를 섭취했습니다.]

[C급 마비독에 중독됩니다.]

[해독했습니다.]

[C급 산성독에 중독됩니다.]

[해독했습니다.]

독으로 인한 고비는 쉽게 넘겼다.

그러나

꿀꺽.꿀꺽.우욱!

녹색 건강 수프의 역한 맛에 금세 고비가 찾아왔다. 여기서 멈추면 안 된다. 이 고통을 두 번 느낄 수는 없어!

'한 번에 끝낸다!'

세준이 마음을 다잡으며 역류하는 액체를 누르며 계속 마셨다.

하지만

꿀꺽.꿀꺽.우웁!

다시 고비가 찾아왔다. 건강 수프를 마시자 냄비 바닥에 있던 생선 대가리가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생선 대가리는 왜 통째로 넣은 건데?!

세준이 속으로 비명을 지르며 생선 대가리의 눈과 마주치지 않기 위해 두 눈을 질끈 감고 건강 수프를 계속 삼켰다.

그리고

[에일린의 건강 수프를 전부 섭취했습니다.]

[모든 스탯 3이 상승합니다.]

드디어 고생의 결실을 얻었다.

"으으."

세준이 끔찍한 맛에 몸서리치며 다음부터 에일린이 선물을 준다고 하면 무조건 거절하겠다고 결심했다.

"이건 너희 먹어라."

풍덩.

세준이 냄비에 있던 생선 대가리를 연못에 던져 넣었다.

잠시 후

[피라니아를 처치했습니다.]

[경험치 2를 획득했습니다.]

[크레이피시를 처치했습니다.]

[경험치 30을 획득했습니다.]

...

..

.

[거대 전기 뱀장어를 처치했습니다.]

[경험치 5000을 획득했습니다.]

"거대 전기 뱀장어?"

연못 주변에 저런 게 있었다니 만약 전기라도 뿜어냈으면 위험할 뻔했다.

[레벨업 했습니다.]

[보너스 스탯 1을 획득했습니다.]

조난 200일 차. 에일린의 끔찍한 선물을 먹고 모든 스탯이 3 상승했다. 그리고 선물을 사용해 동굴에 위협이 될 수 있었던 거대 전기 뱀장어를 처치하고 레벨이 상승했다.

대신 며칠 동안 연못에 아무것도 돌아다니지 않아 한동안 피라니아와 크레이피시를 먹을 수 없었다.

42화. 찾아 나서다.

42화. 찾아 나서다.

서걱.서걱.

오후에는 에일린의 건강 수프를 먹고 오른 모든 스탯 3과 18레벨이 되면서 얻은 보너스 스탯을 민첩에 투자하면서 민첩이 4개나 오른 세준이 모터가 달린 것처럼 빠르게 파 이파리를 베어나갔다.

거기다 늘어난 힘으로 파 이파리 2~3장을 동시에 베기 시작하자 작업 시간은 오전에 비해서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단축됐다.

서걱.서걱.

꾸엥!꾸엥!

세준은 빠르게 잘려 나가는 파 이파리를 옮기기 위해 놀고 있는 꾸엥이에게 나르게 했다. 물론 꾸엥이를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는 꿀이라는 대가가 필요했다.

"자 한 줄 끝났으니까. 꿀 먹자."

꾸엥!

세준의 말에 꾸엥이가 서둘러 꿀이 담긴 유리병을 들고 세준에게 달려왔다.

달칵

세준이 유리병의 뚜껑을 열고

꿀렁.

꾸엥이의 앞발에 꿀을 1꿀렁 부어주자

핥핥.

꾸엥이가 열심히 꿀을 핥아먹기 시작했다.

그 사이 세준도 잠시 휴식 시간을 가졌다.

"많이 변했네."

세준이 뿌듯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황무지였던 지상에 심은 땅콩 씨앗 1000개, 옥수수 씨앗 3000개, 방울토마토 씨앗 1000개에서 녹색 싹들이 자라나면서 황무지가 녹색빛을 띠기 시작했다.

물론 대파를 심은 대파밭 중 세준이 아직 자르지 않은 곳은 녹색빛이 아니라 녹색 숲이라고 할 정도로 울창했다.

그렇게 세준이 주변의 변화를 살펴보고 있을 때

꾸엥!

꿀을 다 먹은 꾸엥이가 세준을 불렀다. 빨리 일합시다요!

지구가 자본주의로 움직인다면 꾸엥이에게는 벌꿀주의가 있었다. 벌꿀이 꾸엥이를 움직이게 했다.

서걱.서걱.

꾸엥이의 재촉에 세준이 자리에서 일어나 파 베기를 시작했다. 괜히 시켰나? 세준이 힐끗 뒤를 보고는 다시 정신없이 파를 벴다.

꾸에엥!

뒤에서 꿀을 먹을 생각에 의욕이 넘치는 꾸엥이가 미친 속도로 파 이파리를 주우며 세준을 잡아먹을 듯이 따라왔다.

"헉헉헉."

꾸엥이에게 쫓기듯이 파를 벤 세준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꾸엥이 덕분에 오전에 비해서 파 베는 시간을 절반이나 단축했다.

핥핥.

세준에 비해 꾸엥이는 아직도 힘이 넘치는지 앞발에 묻은 꿀을 신나게 핥았다.

그렇게 꾸엥이 덕분에 작업을 일찍 끝낸 세준은 잠시 쉬고 남는 시간을 이용해 남은 옥수수 씨앗과 방울토마토를 심었다.

꾸엥?

꾸엥이가 세준이 또 꿀을 주지 않을까 세준의 곁을 기웃거렸다. 뭐 할 거 없음요?

"이건 혼자 해야 해."

꾸엥...

세준의 말에 꾸엥이가 시무룩하게 바닥에 앉았다.

그때

뺙!

흑토끼가 지상으로 올라왔다. 동생아 형아가 왔다!

꾸엥!

꾸엥이가 흑토끼를 향해 달려갔다. 형아 놀아줘!

그렇게 둘이 수련 겸 놀이를 하는 동안 세준은 성실하게 씨앗을 심었다.

푹.

단검으로 땅을 찔러 만든 공간에 씨앗을 넣고 흙을 덮었다.

그렇게 세준이 씨앗 하나하나를 정성스럽게 심고 있을 때

[마력의 방울토마토 씨앗을 심었습니다.]

[씨뿌리기 Lv. 3의 효과로 마력의 방울토마토 씨앗이 발아할 확률이 증가합니다.]

[직업 경험치가 아주 미세하게 상승합니다.]

[씨뿌리기 Lv. 3의 숙련도가 아주 미세하게 상승합니다.]

[숙련도 상승 Lv. 1의 효과로 씨뿌리기 Lv. 3의 숙련도가 5% 추가 상승합니다.]

[씨뿌리기 Lv. 3의 숙련도가 채워져 레벨이 상승합니다.]

씨뿌리기의 레벨이 4가 됐다. 그리고 수확하기의 레벨이 4가 되면서 새로운 효과가 생긴 것처럼 씨뿌리기에도 새로운 효과가 생겼다.

[직업스킬 - 씨뿌리기 Lv. 4]

-씨앗을 심었을 때 발아할 확률이 조금 상승합니다.

-해충으로부터 충해를 당할 확률이 미세하게 감소합니다.

"해충? 벌레?"

지금까지 탑에서 벌레를 본 적조차 없던 세준이 당황했다. 뭐야 불안하게? 진짜 벌레가 나타나지는 않겠지?

세준이 찜찜함을 뒤로 하고 다시 씨앗을 심었다.

***

테오가 우천삼과 우천사를 40층 상인 통로 입구에 대기시키고 탑 38층으로 내려갔다. 인간들의 관심을 혼자 독차지 하기 위해서였다. 관심은 나만 받아야 한다냥!

헌터들에게 거대한 덩치의 블랙 미노타우루스는 관심은커녕 두려움만 줄 뿐이었지만, 미리 경계하는 테오였다.

테오는 흉포한 맹수(?)인 자신을 인간들이 좋아하니 블랙 미노타우루스도 좋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매력 포인트를 완전히 잘못짚고 있는 테오였다.

"내가 왔다냥!"

탑 38층에 도착한 테오가 기다리는 헌터들에게 자신의 등장을 알렸다.

"오! 드디어 왔다!"

며칠째 테오를 기다리고 있던 거의 100명에 가까운 명의 헌터들이 테오를 반겼다.

이전 거래에서 뒤늦게 테오가 거래 장소에 나타났다는 것을 알고는 헌터들이 이번에는 끈기 있게 기다렸고 이번에는 마력의 방울토마토를 사기 위해 다른 길드의 헌터들까지 합류하며 수가 크게 늘어났다.

'푸후훗. 이렇게 많은 인간이 나와 거래를 하러 오다니!'

우쭐해진 테오의 걸음은 거침이 없었다. 테오가 앞으로 걸어가자 바다가 갈라지듯이 헌터들이 길을 비켜줬다.

"오늘은 D급 마력의 방울토마토를 경매로 400개씩 총 3600개를 팔겠다냥!"

인간들의 한가운데 선 테오가 당당하게 외쳤다. 테오의 봇짐 용량이 3배로 늘어나면서 파 이파리로 3분의 1을 채우고도 방울토마토를 3600개나 담을 수 있었다.

400개 정도는 더 담을 자리가 있지만, 그 자리에는 세준의 가족에게 전달할 농작물들이 보관돼 있었다.

"뭐?!"

"3600개?!"

테오의 선언에 헌터들이 흥분했다. 탑 밖에서 넘쳐나는 수요 때문에 감당이 안 될 지경인데 이렇게 수량을 늘려주니 반가웠다.

"400개에 120탑코인!"

경매가 시작되자마자 D급 마력의 방울토마토 1개당 가격이 0.3탑코인에서부터 시작했다.

"400개에 160탑코인!"

마이클의 지시를 받은 가겔의 연구팀장 토마스가 단숨에 1개당 가격을 0.4탑코인을 올렸다.

하지만

"400개에 170탑코인!"

"400개에 180탑코인!"

"400개에 200탑코인!"

이곳에 있는 헌터들은 다들 세계 유수의 부호들의 부탁을 받고 거래하러 온 헌터들이다. 그들의 자금력도 만만치 않았다.

경매는 더욱 뜨거워졌고

"400개에 320탑코인!"

개당 0.8탑코인의 가격에 상사의 지시를 받고 반드시 방울토마토를 구해가야 하는 토마스가 첫 경매의 낙찰을 따냈다.

"아자!"

다른 헌터들이 환호하는 토마스를 원망스럽게 바라봤다. 토마스 때문에 가격이 너무 뛰었기 때문이다.

이어진 경매들도 대량 개당 0.75~0.85탑코인의 시세를 유지하며 낙찰이 이뤄졌다. 그중 2000개는 토마스가 구매했다. 자신의 돈이 아니기에 마음껏 지른 토마스였다.

"완판이다냥!"

회사돈을 마음껏 쓴 토마스 덕분에 테오는 이번 거래로 역대급 판매 금액을 달성했다. 무려 2870탑코인! 엄청난 금액이었다.

'박세준이 칭찬해 줄 거다냥!'

세준의 무릎에서 츄르를 먹으며 '역시 테 대표밖에 없어!'라는 칭찬을 들을 생각을 하니 테오의 기분이 좋아졌다.

"자 나와 사진을 찍고 싶은 인간은 줄을 서라냥!"

기분이 좋아진 테오가 포토타임 내내 활짝 웃으며 여성 헌터들에게 서비스를 제대로 했다.

그리고

"보상을 달라냥!"

보답도 확실히 받았다.

포토타임이 끝나고

"인간 거래를 하자냥."

테오가 김동수를 불러 거래를 제안했다.

"할게!"

재벌들의 횡포로 방울토마토를 확보하지 못한 김동수가 조건을 들어보지 않고 수락했다.

"조건은 저번과 같다냥. 대가는 마력의 방울토마토 200개. 이걸 박세준의 가족에게 전해달라냥."

테오가 계약서에 김동수의 사인을 받고 50탑코인과 민첩의 당근, 체력의 옥수수, 마력의 방울토마토를 50개씩 건넸다.

"이건?!"

김동수가 테오가 건넨 농작물들의 옵션을 보고 크게 놀랐다. 민첩을 상승시키고 시력이 좋아지는 당근, 체력을 증가시키고 피부 탄력이 좋아지는 옥수수라니!

마력의 방울토마토만 있는 줄 알았던 김동수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이게 세상에 알려지면 다시 소란스러워지겠군.'

김동수는 이게 기회라는 걸 깨달았다.

"테오, 내가 앞으로 대가 없이 매달 세준 님의 가족들에게 50탑코인을 지불하고 농작물을 전달할게. 대신 나에게 다른 농작물을 살 기회를 줘."

"냐앙...그건 생각해보고 다음에 말해주겠다냥."

테오는 세준에게 물어보고 결정하기 위해 결정을 미뤘다.

그렇게 세준의 심부름까지 완벽하게 끝낸 테오가 블랙 미노타우루스들이 기다리고 있는 40층 상인 통로의 입구로 돌아갔다.

우적우적.

우천삼과 우천사가 파 이파리를 맛있게 씹으며 늑대들을 감시하고 있었다. 감시라고는 하지만, 귀찮았던 우천삼과 우천사는 늑대들이 정신을 차릴 때마다 뒤통수를 때려 다시 기절시켰다.

"이제 다시 올라가자냥!"

음머...

음머...

이제 돌아가면 하루 한 끼만 먹게 되는 우천삼과 우천사가 침울하게 대답하며 두 발 무겁게 일어났다.

반대로 세준의 무릎에 올라갈 생각에 신난 테오의 발걸음은 한 없이 가벼웠다.

"냥냥냥!"

테오가 콧노래를 부르며 블랙 미노타우루스 두 마리와 늑대 세 마리를 데리고 탑 99층을 향해 이동했다.

그때

음머?

이동하던 우천삼이 갑자기 머리를 긁적거렸다. 나 뭐 잊은 거 같은데?

***

우천삼 이놈 어디서 뭐 하는 거지?

우천삼을 계속 기다려도 소식이 없자 우마왕이 분노했다.

설마?! 풀을 구하다 다른 몬스터의 구역으로 들어간 건가?

이 미련한 놈이 맛있는 풀을 구하러 붉은 털의 구역이나, 독꿀벌의 구역으로 들어갔을지도 몰랐다.

아니. 혹시 그곳으로 갔다면?!

우마왕의 머릿속에 끔찍한 장면이 떠올랐다. 그곳은 시체조차 남길 수 없는 끔찍한 놈들이 사는 곳이었다.

내 지시 때문인가?

우마왕은 풀을 가져오라는 자신의 지시 때문에 우천삼이 죽었다고 생각했다. 설마 우천삼이 하루 세 끼 맛있는 풀을 배불리 먹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죄책감을 느낀 우마왕이 직접 우천삼의 시체를 찾기 위해 나서기로 했다.

음머어어어!

우마왕이 우일이부터 우백이까지의 부하들을 불러 웨이포인트를 지키게 했다.

그리고

쿵.쿵.

직접 우천삼을 찾아 움직였다.

***

"휴우."

조난 205일 차. 세준이 높이 1m로 수북이 쌓인 파 이파리 더미 수십 개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많아도 너무 많았다.

대파 뿌리가 나눠질 때마다 나눠 심다 보니 대파밭은 점점 커지는데 파 이파리를 먹어줄 존재는 없었다. 소비량보다 생산량이 압도적으로 많은 상황.

"좀 있으면 우천삼과 우천사가 돌아오니 좀 나아지겠지."

그래봤자 파 이파리 더미가 늘어나는 속도를 줄일 뿐이었다. 이미 블랙 미노타우루스 두 마리가 해결할 수 있는 양이 아니었다.

그때

꾸엥!

꾸엥이가 파 이파리 더미로 점프했다. 푹신푹신해서 좋은 모양이었다.

"좋으면 가져가서 잘 때 써."

꾸엥?

세준의 말에 꾸엥이가 기뻐하며 물었다. 엄마 꺼도 가져가도 돼요?

"그래."

그렇게 엄마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와 꾸엥이가 잠자리에 깔 파 이파리 더미 10개를 챙겨 떠나려고 할 때

음머어어!

쿵.쿵.

엄마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와 비슷한 덩치를 가진 블랙 미노타우루스 한 마리가 두 눈이 붉게 충혈된 상태로 세준의 대파밭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왔다.

43화. 먹튀하다.

43화. 먹튀하다.

쿵.쿵.

블랙 미노타우루스의 영역을 나선 우마왕이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탑 99층의 보스로서 웨이포인트를 지켜야 하는 의무가 있는 우마왕은 한 달에 1시간 이상 웨이포인트를 벗어날 수 없었다.

후욱.

'이쪽에서 우천삼의 냄새가 난다.'

우마왕이 우천삼의 냄새를 쫓아 빠르게 달렸다.

그렇게 냄새를 쫓아 이동하고 있을 때

음머?!

'응?! 왜 우천사의 냄새가 우천삼의 냄새와 같이 나는 거지? 설마?! 둘이 눈이 맞은 건가? 이놈들이!'

모든 것이 설명됐다. 왜 며칠째 영역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지. 분명 우천삼이 맛있는 풀로 우천사를 꼬신 게 분명했다.

이제 부하를 걱정하던 우마왕은 없었다. 그저 행복한 커플을 저주하는 우마왕이 있을 뿐이었다.

음머어어!

우마왕이 분노의 포효를 하고는 다시 냄새를 따라 난폭하게 이동했다.

그때

후욱.후욱.

우마왕의 코에 다른 냄새가 섞여 들어왔다.

이건?!

우마왕이 우천삼에게 찾으라고 지시했던 맛있는 풀 냄새 중 하나였다. 그리고 부하들의 냄새도 풀 냄새 방향을 따라 이어지고 있었다.

'잡았다! 이놈들!'

우마왕이 서둘러 냄새가 나는 곳을 향해 달려갔다. 냄새를 따라 달려갈수록 부하들의 냄새도, 풀 냄새도 더 짙어졌다.

그리고 우마왕의 앞에 펼쳐진 광경. 황무지였던 곳에 녹색의 대파숲이 보였다. 저 안에 두 년놈들이 있는 게 분명하다.

종족 번식도 하면서 맛있는 풀까지 먹다니!

두 가지 모두를 가지려 하다니!

하나는 나에게 양보해!

음머어어!

쿵.쿵.

대파밭 옆에 붉은 털이 보였지만, 행복한 블랙 미노타우루스 커플을 응징하겠다는 생각뿐인 우마왕에게는 보이지 않았다.

이성을 잃은 우마왕이 대파밭을 향해 달려갔다.

***

[탑 99층 보스 우마왕]

"우마왕?"

세준이 갑자기 대파밭을 향해 달려오는 거대한 블랙 미노타우루스를 보며 당황하고 있을 때

쿠어어어엉!!!

엄마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가 서둘러 꾸엥이를 세준에게 보내고 우마왕의 앞을 막았다.

우마왕은 99층의 최강자 자신이 막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약속은 약속이었다. 자신이 이곳을 지켜주기로 했기에 엄마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가 목숨을 걸고 나섰다.

그때

뒤적뒤적.

우마왕은 그들에게는 관심이 없다는 듯이 허겁지겁 대파밭을 헤치며 뭔가를 찾았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자

우물우물.

대파의 이파리를 자르지도 않고 입에 넣고 씹기 시작했다.

우적우적.

향긋한 풀내가 우마왕의 입안을 가득 채웠다. 거기다 부드럽우면서 질긴 식감까지.

음머어어어~

너무 기분이 좋은 우마왕이 흥을 주체하지 못하고 신나게 울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땅바닥에 앉아 대파를 뿌리째 뽑아 입에 넣고 삼키기 시작했다.

우적우적.

순식간에 대파밭의 4분의 1 정도가 사라졌다.

"뭐지?"

쿠엉?

꾸엥?

삐익?

뺙?

세준과 동물들이 우마왕을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봤다. 어느새 우마왕에 대한 두려움은 완전히 사라졌다. 저건 그냥 소였다. 대파를 좋아하는 아주 많이 큰 소.

그리고 잠시 후

음머어어···

우마왕이 더 먹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는지 두 손 가득 대파를 쥐고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웨이포인트 방향으로 달려갔다.

"저게 탑 99층의 보스라고?"

세준이 허망하다는 듯이 달려가는 우마왕을 바라봤다. 왜 지금까지 웨이포인트에 갈 생각을 못했는지 후회가 됐다.

"진작 대파들고 찾아갈 걸."

하지만 이제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우마왕이 실수한 게 있었다. 우마왕은 세준의 대파밭을 망치고, 무전취식까지 했다.

"내 밭을 망치고 고맙게도 먹튀까지 해주다니."

우천삼과 얘기를 했을 때 블랙 미노타우루스는 분명 전사의 명예를 중요시했다. 분명 우마왕도 그럴 것이다. 아니 블랙 미노타우루스의 우두머리인 만큼 더욱 명예를 중시할 거다.

세준이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리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전화위복이라고 세준에게 좋은 생각이 났다.

세준은 지금이라도 웨이포인트로 달려가 우마왕과 협상을 하고 싶었지만, 우마왕과 원활한 협상을 하기 위해 번역을 해줄 테오가 도착하면 우마왕을 찾아가기로 했다.

에일린도 번역이 가능하지만, 에일린은 가끔 갑자기 잠드는 경우가 있어 조금 불안했다.

세준이 우마왕이 망친 대파밭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분명 짜증나는 일이지만, 세준의 얼굴에는 짜증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흥흥흥."

오히려 기분이 좋은지 콧노래를 부르고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일단 우마왕한테 웨이포인트 사용하게 해달라고 해야지. 흐흐흐. 그리고..."

세준은 우마왕에게 요구할 것들을 생각하며 힘든 줄도 모르고 일을 했다.

***

우마왕이 대파밭을 엉망으로 만들고 난 다음날.

세준은 아침에 빠르게 방울토마토 수확을 끝내고 어제 시간이 늦어 끝내지 못한 대파밭을 마저 정리하고 파 이파리를 자르기 시작했다.

서걱.서걱.

파 이파리를 자르는 일은 금세 끝났다. 어제 우마왕이 대파밭을 4분의 1이나 없애준 덕분에(?) 할 일이 크게 줄어든 세준이었다.

"살짝 아쉽네."

파 이파리를 다 자르며 오전 일이 끝나버린 세준이 땅에 앉으며 말했다.

꾸엥!

세준을 도와 파 이파리를 쌓은 꾸엥이가 유리병을 들고 왔다. 꿀 주세요!

"그래."

달칵.

세준이 유리병의 뚜껑을 열자

팟.

꾸엥이가 서둘러 앞발을 내밀었고

꿀렁.

세준이 조심스럽게 꿀을 1꿀렁 부어줬다.

핥핥.

그렇게 세준이 꾸엥이가 꿀을 맛있게 핥아먹는 걸 구경하며 쉬고 있을 때

[풍년 기원 Lv. 1이 발동합니다.]

[대파밭 70평에 풍년이 듭니다.]

[앞으로 일주일간 수확량이 50% 상승합니다.]

"대파밭에?!"

뿌드득.뿌드득.

세준의 귀에 거칠게 성장하는 생명의 소리가 들려왔다.

"어?!"

세준이 서둘러 대파밭을 바라봤다. 황금빛이 어린 대파밭의 파 이파리가 다시 빠르게 올라오고 있었다.

아까 아쉽다는 말은 취소였다. 풍년이 든 대파밭에서 파 이파리를 하루에 3번 수확할 수 있게 된 세준이었다.

그리고

꾸에엥!

꿀을 또 먹을 수 있게된 꾸엥이가 두 손을 들며 환호했다. 만세!

***

탑 75층.

테오가 블랙 미노타우르스들과 상점 구역에 도착했다. 그리고 세준이 부탁한 유리병을 사러 잡화점으로 가는 길. 오늘따라 상인들로 길이 붐볐다.

'잘 피해서 다녀야 겠다냥.'

테오가 오늘은 상인들의 발에 차이지 않도록 조심히 다녀야겠다고 생각할 때

우르르.

상인들이 양쪽으로 갈리지며 테오에게 길을 만들어줬다.

'뭐냥?'

테오가 당황했다. 키가 작은 테오는 항상 상인들의 발이 치이지 않도록 상인들의 다리 사이를 요리조리 피하며 걸었는데...오늘은 무슨 일인지 키 큰 상인들이 전부 테오의 앞을 막지 않았다.

'푸후훗. 중견 유랑 상인 테오 님을 알아본 것이냥?'

테오가 턱을 치켜들고 위풍당당하게 걸어 블랙 미노타우루스들과 잡화점으로 들어갔다.

테오가 잡화점으로 들어가고

"방금 봤어?!"

"응. 내가 본 거 맞는 거지? 와! 여기서 블랙 미노타우루스를 보다니."

"근데 상점 구역은 어떻게 들어온 거지? 블랙 미노타우루스 유랑 상인은 없는 거로 아는데."

"자유 용병이 아닐까?"

"와 대단하네. 블랙 미노타우루스를 자유 용병으로 고용한 유랑 상인이라니. 한 번 보고 싶네."

"그러게. 그런 거물 유랑 상인이랑은 얼굴이라도 터야 되는데."

상인들 누구도 블랙 미노타우루스의 고용주가 자신의 발밑을 통과했다는 걸 모르고 있었다.

잡화점 안

텅.

테오가 유리병 20개를 계산대에 올렸다.

후욱.후욱.

테오의 뒤에서 우천삼과 우천사가 어깨에 늑대 3마리를 걸치고 콧김을 뿜으며 잡화점 주인을 내려다봤다.

"얼마냥?"

"유...유리병 하나당 0.15탑코인으로 총 3탑코인입니다."

잡화점 주인이 잔뜩 겁을 먹은 목소리로 말했다.

"깎아달라냥!"

테오가 첫 번째 깎기를 시도했다.

"그...그럼 1.5탑코인에 드리겠습니다."

'뭐냥?'

순식간에 50%나 깎아주는 잡화점 주인의 대우에 테오가 잠깐 당황했다.

'푸후훗. 내가 중견 유랑 상인이 됐다고 잘 보이려고 하는 거구냥.'

충분히 가격을 깎아준 것 같지만, 그래도 세준이 시킨 대류 2번 더 깎기를 해야 했다.

"깎아달라냥!"

"여기서 더요?"

테오의 2번째 깎기에 잡화점 주인이 울듯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니면..."

"아...아닙니다! 0.5탑코인에 드리겠습니다!"

잡화점 주인이 사색이 된 얼굴로 외쳤다. 유리병 하나의 원가가 0.1탑코인으로 적자였지만, 저기 블랙 미노타우루스의 어깨 위에 시체로 올라가고 싶지는 않았다.

'뭐냥? 아니면 나가겠다고 말하려 했는데...'

테오는 이상함을 느끼면서 다시 한번 깎기를 시도했다.

"깍아달라냥!"

"제가 우둔해서 몰랐습니다. 그냥 드릴 테니. 살려만 주십시오!"

잡화점 주인이 바닥에 넙죽 업드리며 외쳤다.

"어...? 고맙다냥."

테오가 어리둥절해 하며 유리병 20개를 챙겨 잡화점에서 나왔다.

'역시 박세준의 말은 곧 진리였다냥!'

테오가 세준의 위대함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리고 대장간으로 가서 테오가 다시 3번 깎기를 시도하자

"그냥 뽑아가십시오."

"고맙다냥!"

대장간에서도 장비 뽑기를 무료로 할 수 있게 해줬다.

하지만

"손이 가는 게 없다냥."

그래도 공짜였기에 아무거나 뽑아왔다.

"가자냥!"

할 일을 끝낸 테오가 블랙 미노타우루스들과 다시 상인 통로를 이용해 탑 99층으로 올라갔다.

테오가 미노타우루스들과 휩쓸고 간 상점 구역.

블랙 미노타우루스가 고양이 상인을 협박해 자유 용병 계약을 맺고 횡포를 부린다는 소문이 퍼지며 블랙 미노타우루스의 자유 용병 고용 조건이 까다로워졌다.

***

세준이 풍년이 든 대파밭에서 파 이파리를 3번 베고 저녁을 먹기 위해 내려왔을 때

"응?!"

흑토끼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오늘 점심시간 이후 흑토끼를 보지 못한 세준이었다.

삐익!

뺘아!

다른 백토끼들도 뒤늦게 흑토끼가 사라진 걸 알고 흑토끼를 찾기 시작했다.

그때

뺘학!

흑토끼가 물속에서 참았던 숨을 터트리며 올라왔다.

"어?! 분명 연못도 찾아봤는데."

세준이 의아해하고 있을 때

뺙!

숨을 고른 흑토끼가 연못의 구멍을 가리켰다. 자세히 보니 연못 구멍이 상당히 넓어져 있었다.

뺙!

흑토끼가 자신의 해머 끝부분으로 벽을 두드리는 모습을 취했다. 내가 부쉈어요!

흑토끼는 연못 독살(?) 사건 이후 연못 주변에 피라니아와 크레이피시가 오지 않자 사냥감을 찾아 연못 구멍 밖으로 나갔다 온 것이었다.

"야! 위험하게!"

연못 물은 희석되며 중독은 되지 않았지만, 밖에 피라니아, 크레이피시 말고도 거대 전기 뱀장어 같은 위험한 몬스터가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세준이 화를 냈다.

하지만

뺙!뺙!

흑토끼가 대들었다. 나도 전사라고! 전사는 강해져야해요! 자신은 전사로서 세준을, 가족들을, 밭을 지켜야하는 의무가 있었다.

하지만...

흑토끼는 알고 있었다. 여기서 자신이 가장 약했다. 세준 다음으로.

자신이 최약체 취급을 받고 있는지 모르는 세준이었다.

그래서 경험치를 주는 피라니아와 크레이피시가 사라지자 조바심을 느끼고 연못 밖으로 나선 것이다. 세준이 연못 밖에 거대 전기 뱀장어가 있다고 말한 것도 한몫했다.

"흑토끼, 너..."

세준은 자신이 흑토끼의 마음을 너무 몰랐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기가 그렇게 먹고 싶었어?

뺙!

흑토끼는 세준이 자신의 의도를 이해했다고 생각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동상이몽(同牀異夢)

조난 206일 차. 함께 산 지 거의 반년이 다 됐지만, 아직도 뜻이 통하지 않은 세준과 흑토끼였다.

44화. 전기 뱀장어를 찾다.

44화. 전기 뱀장어를 찾다.

어떡하지?

어제 웨이포인트로 돌아와 기분 좋게 잠들었던 우마왕이 심각한 표정으로 자산의 손에 들린 시든 대파 뿌리를 보며 고민에 빠졌다.

생각해 보니 분명 어제 붉은 털과 다른 존재들이 대파밭에 있었어. 그리고 가지런히 심어진 대파.

즉, 누군가 대파를 키우고 있었다는 소리다. 위대한 전사이자 모든 블랙 미노타우루스들의 우두머리인 자신이 남의 물건을 훔친 것이다.

만약 이걸 다른 블랙 미노타우루스들이 알게 된다면? 치욕도 그런 치욕이 없었다.

우적우적.

음머~

우마왕이 일단 유일한 증거인 시든 대파를 입에 넣어 제거했다. 맛있군.

한 달 후 가서 대가를 치른다.

우마왕은 웨이포이트를 떠날 수 있는 한 달 후에 다시 그곳에 찾아가 먼저 먹었던 풀에 대한 대가를 치르기로 했다. 그때는 값을 치르고 풀을 더 먹어야지. 이번에는 1시간 제한 때문에 제대로 먹지 못했다.

근데 뭐로 대가를 치르지?

우마왕이 뭘 대가로 줄지 생각에 잠겼다. 세준이 빽빽한 보상 리스트를 만든 상태였지만, 그걸 모르는 우마왕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