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화. 시합을 하다.
이즈라엘이 평생 모은 보물들이 가득한 창고 안.
스으윽.
테오가 앞발로 창고의 물건들을 스캔하고 있었다
"테 대표님, 뭐 하시는 거예요?"
이오나가 앞발을 들고 이리저리 움직이는 테오를 보며 물었다.
"끌림을 찾고 있다냥?"
"끌림이요?"
"그렇다냥. 내 앞발이 끌리는 아이템을 찾고 있다냥!"
"아!"
이오나는 세준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테오의 황금앞발에 대해서.
그리고
'뀻. 그래봤자 감이잖아. 나의 고차원적인 마법에는 안 되지.'
세준의 칭찬을 받는 테오에게 질투를 느끼며 이오나는 마법사로서 승부욕이 생겼었다.
"테 대표님, 우리 시합해요!"
"무슨 시합 말이냥?"
"더 높은 등급의 아이템을 찾는 쪽이 이기는 시합이요!"
"좋다냥!"
상대는 마법사 협회의 협회장이지만, 테오는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테오의 자신감의 근원은 자신이 아니라 세준이기 때문이다.
'푸후훗. 승리는 나의 것이다냥! 왜냐하면 박세준이 내 앞발은 대단하다고 했다냥.'
그렇게 테오와 이오나의 보물찾기 시합이 시작됐다.
***
탑 75층 젠카 호수.
슈욱.
[탑 75층 젠카 호수에 도착했습니다.]
[지금부터 푸른 잉어의 멸종에 위협이 되는 원인을 찾아 제거하세요.]
세준, 흑토끼, 꾸엥이가 나타났다.
"와! 다른 층이다!"
뺘악!!!
꾸에엥!!!
세준도 흑토끼와 꾸엥이도 임무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셋 모두 탑 99층을 벗어난 게 처음인 신출내기들. 그냥 모든 게 신기했다.
"이게 뭐지?
세준은 호수 주변에 있는 풀들을 살펴보기 시작했고
뺙!
꾸엥!
흑토끼와 꾸엥이는 처음 보는 넓고 푸른 호수에 신기해하며 바로 호수로 뛰어들었다.
그렇게 세준이 호수 주변을 한 바퀴쯤 돌며 식물들을 구경하고 때 세준의 눈에 너무도 익숙한 모습의 식물이 보였다.
넓게 펼쳐진 이파리의 한가운데에 거대한 솔방울처럼 생긴 모양의 열매와 그 위로 돋아나 있는 녹색 꼭지! 파인애플이었다.
"흐흐흐. 파인애플이 왜 여기에 있지?"
서걱.
세준이 흥분하며 단검을 꺼내 파인애플을 잘랐다.
그리고
툭.
꼭지를 떼어내 가져온 가방에 챙겼다. 꼭지를 심으면 다시 파인애플을 키울 수 있기에 탑 99층으로 가져가서 심을 생각이었다.
서걱.
파인애플을 4등분 내고 일단 한 조각을 들고 맛을 봤다.
"으읍!"
처음에는 신맛에 온몸에 전율이 돌았지만, 과육을 씹을수록 신맛은 덜하고 단맛이 강해졌다.
"와! 맛있다!"
순식간에 파인애플 하나를 다 먹은 세준이 감탄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파인애플이 몇 개나 있는지 세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전부 12개네."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서걱.서걱.
세준은 일단 파인애플을 전부 수확했다.
그리고 두 번째 파인애플을 맛있게 먹고 있을 때
저벅.저벅.
세준의 뒤에서 뭔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응?!"
세준이 뒤를 돌아보자
개골.개골.
크기 3m의 직립 보행의 개구리가 세준을 보며 침을 흘리고 있었다.
[프로그]
개구리가 왜 두 발로 걸어?! 세준이 당황하는 사이.
개골.
촤악.
프로그가 입을 벌리며 세준을 혓바닥으로 공격했다.
"흥! 이래 봬도 나 탑 99층에서 구른 몸이야!"
세준이 프로그의 혓바닥을 피하며 손도끼를 꺼내 프로그에게 던졌다.
퍽!
손도끼가 프로그의 머리에 정확히 박혔다.
[프로그를 처치했습니다.]
[경험치 500을 획득했습니다.]
"훗. 이 정도는 나한테 아무것도 아니지. 회수!"
수중 몬스터와 지상에서 상대하는 것 자체가 이미 상당한 이점을 취한 상태였지만, 그래도 세준은 스스로가 대견했다.
세준이 기고만장해할 때
[부하 1이 프로그를 처치했습니다.]
[부하 2가 프로그를 처치했습니다.]
흑토끼와 꾸엥이도 물속에서 싸우고 있는 모양이었다.
[탑 75층 젠카 호수의 푸른 잉어를 멸종의 원인 하나를 찾았습니다.]
[중간 관리자 퀘스트가 발생합니다.]
[중간 관리자 퀘스트 : 젠카 호수의 프로그 2291마리를 전부 처치하라.]
프로그 0/2291마리
보상 : 경험치 1만, 1000탑코인
실패 시 : 퀘스트를 완료할 때까지 원래 장소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이런 개구리가 2000마리 넘게 있다고?!"
세준이 서둘러 젠카 호수로 달려가 물에 얼굴을 박고 물속을 살펴봤다.
물속에서는 도망가는 프로그드을 열심히 쫓는 흑토끼와 꾸엥이가 보였다. 연못에서 단련된 둘의 수영 실력은 수준급이지만, 프로그들은 수중 몬스터. 프로그들의 수가 많음에도 프로그 한 마리를 사냥하는 데 엄청난 수고가 필요했다.
'저래서 언제 다 잡냐?'
그렇게 흑토끼와 꾸엥이의 싸움을 구경하는 사이.
"근데 애네들은 무슨 맛이지?"
갑자기 세준은 프로그 고기의 맛이 궁금해졌다.
그래서 불을 피우고 프로그 고기를 이용한 요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
테오와 이오나가 창고에서 시합을 하고 있을 때 젠카 호수를 살펴보던 검은 늑대 한 마리가 달려왔다.
"헤겔 족장, 큰일 났습니다."
"뭔데?"
이미 이오나에게 죽을 뻔한 극한 경험을 한 헤겔은 부하의 보고에 별 감흥이 없었다.
"젠카 호수에 수상한 놈들이 나타났습니다."
"수상한 놈들?"
"네...프로그를 굽고 있습니다."
"뭐?! 프로그를 구워?!"
"네! 근데 맛이 너무 좋습니다! 쓰읍."
검은 늑대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맛?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너 설마 프로그 고기를 먹었어?"
부하는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프로그 고기에는 독이 있어 먹을 수 없다.
"일단 가시죠!"
빨리 젠카 호수로 돌아가고 싶은 늑대가 헤겔을 재촉했다.
"크흠. 엘카, 잠깐 젠카 호수에 다녀올 테니 테 대표님에게 잘 말해주게."
"네. 알겠습니다."
헤겔이 서둘러 젠카 호수로 달려갔다.
***
"여기 있습니다. 세준 님."
물에서 나온 늑대들이 기절한 프로그의 목을 물고 세준에게 끌고 갔다.
"땡큐."
퍽!퍽!
[프로그를 처치했습니다.]
[경험치 500을 획득했습니다.]
[프로그를 처치했습니다.]
[경험치 500을 획득했습니다.]
세준이 손도끼로 프로그 두 마리를 처치하고 늑대들에게 프로그 대파말이를 건넸다.
우적우적.
"진짜 쫄깃해!"
"맛있어!"
늑대들이 요리를 먹고 다시 물속으로 들어갔다.
1시간 전.
프로그의 맛이 궁금해진 세준은 불을 피우고 프로그 고기를 손질해 중간에 해독의 대파를 넣고 돌돌 말아 굽기 시작했다.
안전을 생각하는 세준은 재료에 무슨 독이 있을지 모르기에 항상 상비약처럼 해독의 대파를 챙겼다
그렇게 요리가 완성됐을 때
[탑에서 최초로 프로그 대파 말이를 만드는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요리 Lv. 3에 프로그 대파 말이의 레시피가 등록됩니다.]
[요리 Lv. 3의 숙련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요리 Lv. 3의 숙련도가 채워져 레벨이 상승합니다.]
세준의 요리 레벨이 상승했다.
그리고
[요리 Lv. 4의 효과로 프로그 대파 말이에 특수 효과 : 편안한 물속 움직임이 부여됩니다.]
"특수 효과?"
특수 효과라는 게 요리에 부여됐다. 요리 레벨이 4가 되면서 추가된 새로운 내용이었다.
세준이 완성된 요리를 확인했다.
[프로그 대파 말이]
해독의 대파를 프로그 고기로 감싸 구웠다.
솜씨 있는 요리 실력으로 프로그 고기와 해독의 대파가 잘 구워져 맛이 아주 좋습니다.
해독의 대파가 프로그 고기에 있는 독을 해독했습니다.
특수 효과 : 편안한 물속 움직임
요리사 : 탑농부 박세준
유통 기한 : 5일
등급 : C+
그렇게 세준이 프로그 대파말이의 옵션을 확인하고 있을 때
뺙...
꾸엥...
계속 프로그들을 쫓다 지친 흑토끼와 꾸엥이가 물에서 올라왔다.
그리고
뺙!
꾸엥!
배고팠던 둘이 프로그 대파말이를 먹고 어깨를 들썩이며 신나 했다.
"나도 먹어볼까."
세준도 프로그 구이를 들어 입에 넣었다.
우적.
'이것도 닭고기 맛이 나네'
육질은 부드러웠지만, 맛은 그냥 간하지 않은 닭고기 맛이었다.
꿀꺽.
[프로그 대파 말이를 섭취했습니다.]
[특수 효과 : 편안한 물속 움직임의 효과로 30분 동안 물속 움직임이 편안해집니다.]
"소금 챙겨 올걸..."
세준에게는 좀 아쉬웠다.
그때
"크르르릉. 안 돼요!"
검은 늑대 5마리가 소리치며 다가왔다.
"뭐야?"
뺙!
꾸엥!
세준과 동물들이 검은 늑대들을 경계하며 무기를 들었다.
"프로그 고기에 독이 있습니다."
"맞아요! 빨리 토하세요!"
검은 늑대들이 걱정하는 표정으로 셋을 바라봤다.
"아! 고마운데. 이건 해독한 거야. 너희도 하나 먹어볼래?"
세준이 검은 늑대들에게 말하면서 프로그 대파 말이를 한 입 먹었다.
"..."
그렇게 세준이 3번째 프로그 대파 말이를 먹자
꿀꺽.
"저...하나만 먹겠습니다."
"저도..."
"여기."
검은 늑대들이 세준에게서 프로그 대파 말이를 얻어 먹었다.
그리고
"어?! 물속 움직임이 편해진다고?"
프로그 대파 말이를 먹고 나타난 메세지를 보고 검은 늑대들이 놀랐다.
"이거면..."
메시지의 효과를 확인하기 위해 검은 늑대들이 젠카 호수로 뛰어 들어갔다. 이거면 그동안의 의뢰를 편하게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잠시 후
프로그 사냥에 성공한 검은 늑대들이 프로그의 목을 물고 지상으로 올라왔다.
아우우!
검은 늑대가 동료들을 불렀다.
"맛집이 어디야?!"
다다다.
검은 늑대들이 세준의 요리를 먹기 위해 몰려들었다.
***
"이게..."
헤겔이 젠카 연못에서 벌어지고 있는 광경을 보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
늑대들이 연못에서 프로그들을 사냥해 검은 머리의 인간에게 가져가면 남자가 프로그의 목숨을 끊었다.
그리고 남자에게 고기를 받아먹은 늑대들이 다시 물속으로 들어갔다.
그때
"헤겔 족장!"
부족장인 팔카가 달려왔다.
"팔카 부족장,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일단 이걸 먹어보십쇼."
팔카가 자신이 물고 있던 프로그 대파 말이를 헤겔에게 건넸다.
우적우적.
"오! 이렇게 맛있는 고기라니!"
헤겔이 프로그 대파 말이를 먹으며 말했다. 의뢰를 하러 이곳에 온 이후 처음으로 고기다운 고기를 먹는 것 같았다.
꿀꺽.
그리고 나타나는 메시지.
"설마?! 이 요리 때문에 우리 늑대들이 프로그를 사냥할 수 있는 거야?"
"네. 저 인간의 요리 덕분에 의뢰를 성공적으로 끝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팔카가 세준을 가리켰다.
"그래? 그럼 내가 감사 인사를 해야겠군."
"네. 가시죠."
팔카가 헤겔을 세준에게 안내했다.
그리고
"세준 님, 여기 우리 블랙 울프족의 족장 헤겔 님입니다."
'세준?'
팔카의 말에 헤겔의 머릿속이 하얘졌다.
엘카가 알려준 위대한 검은 용의 존함 박.세.준.
그리고 세준의 오른손등에 보이는 검은 용의 문신. 저건 검은 용의 일족에게만 허락된 문신이었다.
위대한 검은 용이시다!
"위대한 검은 용을 뵙습니다!!!"
헤겔이 서둘러 세준의 앞에 엎드렸다.
그리고
"위대한 검은 용을 뵙습니다!!!"
다른 검은 늑대들도 헤겔의 따라 세준의 앞에 엎드렸다.
뺘로롱.
꾸로롱.
엄청 피곤했던 흑토끼와 꾸엥이가 검은 늑대들의 우렁찬 외침에 아랑곳하지 않고 낮잠을 잤다.
***
"냥?!"
창고의 물건을 살피던 테오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박세준의 무릎이 근처에서 느껴진다냥!'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테오는 자신의 세준 무릎 탐지 능력을 믿었다.
"이오나, 난 나가봐야겠다냥!"
테오가 급하게 창고를 달려 나갔다.
"뀻뀻뀻. 제 승리 군요."
이오나가 창고에서 찾은 B급 아이템을 들어 올리며 승리자의 표시를 취했다. 진정한 승자가 누군지는 시간이 지나 봐야 알 일이었다.
76화. 시합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냥!
76화. 시합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냥!
갑자기 이즈라엘의 창고에서 나온 테오가 달리기 시작하자
"테 대표님, 어디 가십니까?!"
엘카도 테오를 따라 달리며 물었다.
"이 근처에서 박 회장의 무릎이 느껴진다냥!"
"네?!"
"저쪽 방향이다냥!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냥!"
테오가 엘카의 머리 위로 올라타 엘카의 귀를 잡고 외쳤다.
"네!"
탑 99층에 있을 세준의 무릎을 찾는 테오의 말에 엘카는 의아해했지만, 테오의 목소리는 너무 확신에 차 있었다.
"꽉 잡으세요!"
엘카가 일단 테오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달렸다.
****
프로그 1231/2291
"이제 천 마리 정도 남은 건가?"
세준이 남은 프로그 숫자를 확인하며 중얼거리자
"얘들아! 세준 님이 아직도 프로그가 천 마리 정도 남았다고 하신다!! 서둘러 프로그들을 잡아들여라!"
옆에서 귀를 쫑긋 세우고 세준의 일거수일투족에 집중하고 있던 헤겔이 검은 늑대들에게 외쳤다.
"네!"
뺙!
꾸엥!
300마리의 검은 늑대들과 같이 집단 사냥을 하는 재미에 빠진 흑토끼와 꾸엥이가 함께 대답했다.
프로그들을 멀리서부터 포위해 처리하는 늑대들의 사냥 방식은 항상 혼자 사냥을 하던 흑토끼와 꾸엥이에게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렇게 집단 사냥으로 잡은 프로그들을 늑대들이 지상으로 가져와 세준의 앞에 대령했고
퍽!
[프로그를 처치했습니다.]
[경험치 500을 획득했습니다.]
[레벨업 했습니다.]
[보너스 스탯 1을 획득했습니다.]
세준은 편하게 경험치를 쌓으며 30레벨이 됐다.
그리고
[퀘스트가 발생합니다.]
[직업 퀘스트 : 지금까지 심어본 적 없는 새로운 농작물을 하나 심으세요.]
보상 : 31레벨 개방, 500탑코인.
30레벨 직업 퀘스트가 나타났다.
"심어본 적 없는 새로운 농작물?"
세준이 퀘스트를 보며 잠깐 생각하다
"아! 그게 있었지!"
푹.
단검으로 땅을 파고 아까 파인애플을 먹고 챙겨뒀던 파인애플 꼭지를 주머니에서 꺼내 심었다.
[파인애플 꼭지를 심었습니다.]
[씨뿌리기 Lv. 4의 효과로 파인애플 꼭지가 뿌리를 내릴 확률이 증가합니다.]
[씨뿌리기 Lv. 4의 효과로 해충으로부터 충해를 당할 확률이 미세하게 감소합니다.]
[직업 경험치가 아주 미세하게 상승합니다.]
[씨뿌리기 Lv. 4의 숙련도가 아주 미세하게 상승합니다.]
[숙련도 상승 Lv. 1의 효과로 씨뿌리기 Lv. 4의 숙련도가 5% 추가 상승합니다.]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퀘스트 완료 보상으로 31레벨이 개방됩니다.]
[퀘스트 완료 보상으로 500탑코인을 획득했습니다.]
"흐흐흐. 이번 퀘스트는 운이 좋네."
만약 파인애플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씨앗 상점이 열릴 때까지 레벨업을 못 하는 상황이 왔을 수도 있었다.
다행히 이번에는 바로 직업 퀘스트를 완료하며 단 1의 경험치도 손해 보지 않았다.
그렇게 세준이 늑대들이 가져온 프로그를 처치하며 다시 경험치를 올리고 있을 때
부스럭.
수풀이 흔들리며 소리가 났다.
그리고
"찾았다냥!!"
수풀 너머에서 노란색 뭔가가 튀어나왔다.
"어?! 테 대표?!"
세준 무릎 탐지기를 전력으로 가동해 젠카 호수에 도착한 테오가 엘카의 등에서 점프해 세준을 향해 몸을 날린 것이었다.
와락.
세준이 날아오는 테오를 두 손으로 받았다. 굉장히 따뜻하고 푹신했다.
"박 회장, 반갑다냥. 여기는 언제 온 거냥?!"
태연히 앞발을 들어 인사하며 테오가 물었다.
"뭐야? 테 대표, 너야말로 내가 여기 있는지 어떻게 알고 온 거야?"
헤겔에게 들어 테오가 근처에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 일찍 찾아올지는 몰랐다.
"나는 다 아는 방법이 있다냥!"
테오가 거만하게 말하며 세준의 무릎을 차지하고 앉았다.
그리고
척.
계약서 두 장을 꺼내 세준에게 건넸다. 하나는 블랙 울프족과의 계약서였고 하나는 이즈라엘과 오렌에게 5000탑코인을 받는다는 계약서였다.
테오는 자신과 늑대들 그리고 이오나의 목숨값까지 계산해 이즈라엘과 오렌에게 보상금으로 2만 5000탑코인을 청구했다.
하지만 둘의 재산으로는 5000탑코인 정도가 부족했고
"부족한 돈은 몸으로 갚아라냥!"
테오는 이즈라엘과 오렌에게 남은 돈을 노동으로 갚으라는 계약서를 쓰게 했다. 세준에게 배운 건 잘 써먹는 테오였다.
"나 잘했냥?"
"그래. 근데 이즈라엘의 집에서 물건 3개는 골라왔어?"
"그건 아직 못 골랐다냥..."
세준이 자신을 다시 보낼까 봐 테오가 세준의 눈치를 보며 대답했다.
"그래? 그럼 다음에 뽑아 와."
어차피 이즈라엘의 집과 집안의 모든 물건이 계약서를 통해 세준에게 넘어왔다. 뽑기는 아무 때나 할 수 있었다.
"알겠다냥! 다음에 뽑아 오겠다냥!"
세준의 말에 안심한 테오가 세준의 무릎에 편하게 누웠다.
그리고
고로롱.
금세 잠에 빠졌다.
***
남은 프로그의 수가 줄어들수록 늑대들이 프로그를 잡아 오는 속도가 점점 느려졌다.
그리고 남은 프로그의 수가 100마리 이하로 떨어지자 프로그들은 뿔뿔이 흩어져 숨어버렸고 검은 늑대들과 흑토끼, 꾸엥이들도 프로그들을 찾기 위해 흩어졌다.
그렇게 지루한 수색이 이어지자 흑토끼와 꾸엥이는 프로그를 찾는 대신 젠카 호수를 탐험하기 시작했다.
우르르.
뺙!
꾸엥!
흑토끼와 꾸엥이가 젠카 호수에서 찾은 자신들의 보물들을 세준 앞에 쏟아내며 자랑했다.
대부분이 돌이나 뼛조각 같은 잡동사니였지만, 흑토기와 꾸엥이에게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신기한 보물이었다.
"오! 멋진데! 얘들아 가서 보물들 더 찾아봐."
뺙!
꾸엥!
세준의 응원을 받은 흑토끼와 꾸엥이가 더 좋은 보물을 찾겠다는 비장한 각오로 젠카 호수로 들어갔다.
***
[중간 관리자애게 퀘스트가 발생합니다.]
"크히히히! 기특한 인간에게 무슨 퀘스트가 생겼나 볼까?"
에일린이 세준의 퀘스트를 확인했다.
그리고
"크힝! 마음에 안 들어!"
세준의 퀘스트를 확인한 에일린이 인상을 썼다. 퀘스트 보상이 너무 형편없었다. 자신이 과거 세준에게 줬던 퀘스트는 이미 잊어버린 에일린이었다.
"아빠한테 퀘스트 보상 바꾸는 방법 물어봐야지."
안톤이 에이린에게 수정구를 통해 검은 용 조각상과 싱크를 맞추는 방법을 알려줘서 이제 직접적인 대화가 가능했다.
"아빠."
검은 용 조각상을 통해 안톤을 불렀다.
-오! 우리 손녀! 잘 지냈어?!
지금은 안톤이 자리를 비웠는지 카이저가 반갑게 대답했다.
"응. 할아버지, 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크하하하! 다 물어보거라! 할애비가 다 알려주마! 근데 에일린 할애비 보고 싶었지?
"응?! 응! 당연히 보고 싶었지. 할아버지, 나 퀘스트 보상 변경하는 방법 알려줘."
-크하하하! 할애비도 우리 에일린이 너무너무 보고 싶었단다. 근데 퀘스트 보상을 바꾸고 싶다고?
"응."
-흥! 또 세준이 놈한테 뭘 퍼주려고?!
에일린 탄생 100주년 기념 분수대를 퀘스트 보상으로 세준에게 넘어간 것이 떠오른 카이저의 언성이 올라갔다.
하지만
"할아버지. 지금 나한테 화낸 거야?!"
에일린의 음성이 딱딱해지자
-아...아니! 그럴 리가... 자. 할애비가 자세히 설명해 주마!
프리타니가문의 슈퍼갑 카이저의 목소리가 원래대로, 아니 전보다 더 부드럽게 변했다.
그렇게 몇 시간 동안 퀘스트 변경 방법을 배운 에일린.
"보상 변경."
카이저에게 배운 대로 퀘스트 창에 손을 올리고 자신의 의지와 마나를 담아 퀘스트 보상을 변경하기 시작했다.
보상 경험치를 1만에서 1억으로, 탑코인은 1000에서 1000만으로 보상을 1만 배씩 올렸다. 통이 커도 너무 큰 에일린이었다.
하지만
[중간 관리자 퀘스트의 보상을 변경할 수 없습니다.]
[탑농부 박세준의 레벨이 너무 낮습니다.]
세준의 레벨이 너무 낮았다.
"에잇! 그럼 1000배다!"
에일린이 0을 하나씩 빼며 다시 퀘스트 보상을 변경했지만, 1000배도, 100배도, 10배도 세준에게는 너무 높은 보상이었다.
"그럼 7배!"
[중간 관리자 퀘스트의 보상을 변경할 수 없습니다.]
[탑농부 박세준의 레벨이 낮습니다.]
그래도 10배 밑으로 내려가니 '너무'라는 단어는 빠졌다.
그리고
"5배!"
"2배!"
"1.5배!"
드디어 퀘스트 보상이 변경됐다.
"크힝. 기특한 인간 빨리 강해져."
세준에게 많이 주고 싶어도 줄 수가 없는 에일린이 속상해했다.
***
[중간 관리자 퀘스트의 보상이 경험치 1만에서 1만 5000으로 변경됐습니다.]
[중간 관리자 퀘스트의 보상이 1000탑코인에서 1500탑코인으로 변경됐습니다.]
"응?"
늑대들이 프로그를 잡아 오는 속도가 느려지면서 멍하니 호수를 보다 잠들었던 세준이 갑자기 퀘스트 보상이 변경됐다는 메시지에 정신을 차렸다.
"에일린이 뭘 한 건가?"
세준이 알기에 이런 일이 가능한 존재는 에일린뿐이었다.
그렇게 정신을 차린 세준이 주변을 둘러봤다.
그리고
"이게 다 뭐야?"
세준은 자신의 앞에 거의 10m 높이로 쌓여있는 잡동사니 더미를 발견했다. 흑토끼와 꾸엥이가 보물이라고 가져온 것들이 어느새 이렇게 많이 쌓인 것이다.
"뭘 가져왔나 좀 볼까?"
세준이 쓸만한 게 있나 살펴보려 할 때
"뀻뀻뀻."
이오나가 노래를 부르며 날아왔다. 테오의 패배 승복을 받고 시합을 자신의 승리로 마무리하기 위해서였다.
"어?! 세준 님을 뵙습니다!"
뒤늦게 세준을 발견한 이오나가 세준에게 인사했다.
"근데 그게 뭐야?"
이오나의 주변을 둥둥 떠다니는 투명한 액체가 든 유리병을 보며 물었다.
"아! 이거요? 이즈라엘의 창고에서 찾은 계약 무효화 물약이에요."
"계약 무효화 물약?"
"네. 계약서에 이걸 뿌리면 계약을 무효화 할 수 있어요."
"그래?"
"네. 한 번 보세요."
[계약 무효화 물약]
계약서의 계약을 무효화 할 수 있는 물약입니다.
계약서에 계약 무효화 물약을 부으면 계약이 무효화됩니다.
계약을 주재한 자의 격이 높거나 계약 기간이 100일 이상 지나며 계약 무효화가 불가능합니다.
등급 : B
'이런 것도 있었네.'
계약만 하면 끝인 줄 알았는데...
"이런 계약 무효화 물약이 많아?"
"아니요. 저도 들어만 봤지 직접 본 건 처음이에요.
이오나의 대답에 세준이 안도했다.
그래도 앞으로 계약이 무효화 될 경우도 대비해야 겠다고 생각하며 가지고 있는 계약서들을 살펴봤다.
그렇게 세준이 계약서를 살펴보고 있을 때
"테 대표님, 일어나세요."
이오나가 테오의 눈꺼풀을 들어 올리며 테오를 깨웠다.
"냥? 뭐냥? 이오나, 난 더 자고 싶다냥..."
"그럼 시합은 제가 이긴 거죠?"
"냥?!"
"더 좋은 아이템을 찾는 시합이요. 제가 이긴 거죠?"
이오나의 말에 테오의 눈이 번쩍 떠졌다.
"아니다냥! 승리는 내 것이다냥!"
테오가 발딱 일어나며 외쳤다. 세준의 무릎과 함께하는 자신은 무적냥이다. 자신은 절대 패배할 수 없었다.
"뀻뀻뀻. 하지만 저는 이미 B급 아이템을 찾았고 테 대표님은 아직 아무것도 찾지 못했잖아요."
이오나가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며 말했다.
"시합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냥!"
테오가 이오나에게 외치며 자신의 앞발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서둘러 이오나를 이길 아이템을 찾을 생각이었다.
그때
찌릿.
테오가 자신의 앞발을 잡아당기는 강한 끌림을 느꼈다.
'푸후훗. 역시 난 지고 싶어도 질 수가 없는 것이다냥!'
테오가 끌림을 따라
푹.
흑토끼와 꾸엥이가 쌓아놓은 잡동사니 더미에 앞발을 넣고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잡았다냥!'
"푸후훗. 이오나, 승리는 나 테 대표의 것이다냥!"
테오가 잡동사니 더미에서 앞발로 잡은 아이템을 꺼내며 승리를 확신할 때
툭.
"냥?"
잡동사니 더미가 테오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77화. 복귀하다.
77화. 복귀하다.
"테오!"
세준이 무너지는 잡동사니 더미에서 테오를 보호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달려 나갔다.
하지만
"...냥?!"
"...어?!"
테오와 세준의 서로 교차하는 시선.
달려가는 세준을 지나치며 테오가 무너지는 잡동사니 더미를 빠르게 벗어나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테오의 스피드는 엄청나게 빠른 편이었다.
'누가 누굴 걱정한 거야!'
탑 99층 최약체 세준. 세준이 테오를 보며 슬프게 웃었다.
"박 회장!!!"
테오가 서둘러 멈추며 세준을 불렀지만
와르르르.
잡동사니 더미가 세준을 덮치기 시작했다
그때
"세준 님!"
"세준 님!"
엘카와 헤겔이 잡동사니 더미로 뛰어들어 거대한 몸으로 세준을 보호했다.
쿵.
동시에 잡동사니 더미에 왜 있는지 모를 크기 3m짜리 거대한 회색 바위가 늑대들의 몸에 맞고 바닥에 떨어졌다. 아마 꾸엥이가 가져다 놓은 것 같았다.
늑대들이 아니었으면 바위에 깔려 고생 좀 했을 세준이었다.
"휴우. 엘카, 헤겔, 고마워."
세준이 두 거대한 늑대에게 감사를 표했다.
"아닙니다. 위대한 검은 용님을 보호할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늑대들이 꼬리를 흔들며 세준의 칭찬에 기뻐했다.
"박 회장! 방금 날 구하려고 한 것이냥?"
테오가 자신을 구하려고 한 세준에게 감동하며 달려와 세준의 몸을 이리저리 살폈다.
"괜찮냥?! 어디 아픈데는 없냥?!"
특히 무릎을 중점적으로 살폈다.
"괜찮아. 근데 뭘 꺼내려고 했던 거야?"
"바로 이거다냥!"
테오가 거대한 바위를 가리키며 외쳤다.
"이 바위?!"
"그렇다냥! 여기서 생전 처음 느껴보는 엄청난 끌림을 느꼈다냥!!"
"그래?!"
테오의 황금앞발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세준이 서둘러 일어나 바위를 살펴봤다. 겉으로는 그냥 평범한 바위였다. 전혀 특별해 보이지 않았다.
[???의 파편]
???
"오!"
지금까지의 아이템과는 달랐다. 이름부터 물음표였다.
"이오나, 감정 마법 좀 사용해줘."
"네."
"빨리 해봐라냥! 이것으로 나의 승리다냥!
"뀻뀻뀻. 저런 바위로 저를 이기겠다고요?"
이오나가 테오를 비웃으며 바위에 감정 마법을 사용했다.
하지만
[???의 파편]
???
"어?!"
이오나의 감정 마법에도 아이템의 정보는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뀨-!"
자신의 마법이 통하지 않자 분노한 이오나가 분노하며 등에 멘 재앙의 지팡이를 꺼냈다.
그리고
"진실의 눈!"
감정 계통의 마법의 최상위 마법을 사용했다.
파앗.
이오나의 지팡이에서 나온 밝은 빛이 회색 바위에 스며들었다.
[???의 파편]
???의 아홉 번째 파편입니다.
신성력이 흘러나옵니다.
등급 : ???
이번에는 작지만, 그래도 변화가 있었다.
"세준 님, 큰 도움을 드리지 못해 죄송해요. 제 능력으로는 이게 한계에요."
이오나가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괜찮아."
"그래도 신성력이 흘러나오는 게 저주 아이템은 아닌 것 같아요."
이오나의 능력으로 감정을 풀 수 없다는 것 자체가 이 아이템의 등급이 엄청나게 높다는 걸 의미했다. 세준은 일단 저주가 없음을 확인한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나중에 에일린에게 감정해달라고 해야지.'
세준은 나중에 바위를 탑 99층에 가져가 확인하기로 했다. 마력이 부족한 에일린은 탑 99층 이외는 수정구로 볼 수도, 메시지를 보낼 수도 없었다.
"뀽...테 대표님, 제가 졌어요."
이오나가 테오를 보며 자신의 패배를 인정했다. 진실의 눈을 사용하고도 아이템의 정보가 제대로 나타나지 않는 것 자체가 이 바위가 최소 전설급 아이템이라는 증거였다.
"푸후훗. 이오나, 너무 슬퍼하지 말라냥! 나를 이길 수 없는 건 당연한 것이다냥! 그럼 이제 도장을 찍어라냥!"
테오가 우쭐해하며 자연스럽게 계약서를 꺼냈다.
"네? 도장이요?"
"그렇다냥! 당연히 패자는 승자의 부탁을 들어줘야 한다냥!"
'테오, 나이스!'
세준이 뒤에서 슬며시 엄지를 들며 테오를 응원했다.
잠시 후
"박 회장, 여기 계약서 받아라냥!"
테오가 앙증맞은 햄스터 발도장이 찍힌 계약서 한 장을 세준에게 건네며 당당하게 세준의 무릎에 올라가 배를 보이며 누웠다.
"···뭐하냥? 쓰다듬어 달라냥!"
세준이 가만히 있자 테오가 세준의 손을 자신의 배에 올리며 말했다
"그래."
공로가 있으니 포상을 주기로 했다.
쓰담쓰담.
"냥냥냥. 행복하다냥..."
그렇게 세준의 쓰다듬을 받으며 테오가 잠에 빠지려 할 때
뺙!
꾸엥!
흑토끼와 꾸엥이가 새로운 보물들을 들고 올라왔다.
"테오, 또 끌리는 거 없어?"
세준이 은근히 기대하며 묻었다.
"냐···"
테오가 누워서 눈을 감은 상태로 앞발을 뻗고 탐지기를 가동했다.
하지만
"끌리는 게 없다냥. 전부 쓸모없는 것들이다냥."
테오가 앞발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후두둑.
뺙...
꾸엥...
우리 보물이 쓸모없다고?! 테오의 말에 충격을 받은 흑토끼와 꾸엥이.
꾸엥!
"냥?!"
꾸엥이가 테오의 멱살을 잡아 자신들의 보물 앞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뺙!
꾸엥!
이게 쓸모없다고? 잘 들어봐! 흑토끼와 꾸엥이가 테오를 둘 사이에 앉히고 그들의 보물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
"으...더워."
흑토끼와 꾸엥이에게 시달리는 테오를 구경하다 깜박 잠들었던 세준은 찜통 같은 더위에 잠에서 깨야 했다.
어느새 세준의 등에는 꾸엥이가, 무릎에는 테오와 흑토끼가 올라와 자고 있었다.
고로롱.
뺘로롱.
꾸로롱.뀨로롱.
"응?"
처음에는 꾸엥이의 코 고는 소리를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고로롱.
뺘로롱.
꾸로롱.
뀨로롱.
코 고는 소리가 4개였다. 세준이 소리가 나는 곳을 보자 그곳에는 이오나가 테오의 꼬리를 이불처럼 덮고 자고 있었다. 이제 마법사 협회의 협회장까지 홀린 세준의 무릎.
역시 세준의 무릎은 동물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다시 자야 되나?'
잘 자는 동물들을 깨우기도 그래서 세준이 눈을 감고 다시 자려 할 때
"저..."
누군가 세준을 불렀다.
"응? 너희들 언제 왔어?"
테오의 허락으로 집에 다녀온 인턴들이었다.
"지금은 할 거 없으니까 좀 쉬고 있어."
"네. 그런데 드릴 말씀이..."
빌 인턴이 어렵게 말을 꺼냈다.
"뭔데?"
"잠시만요. 얘들아 나와!"
빌 인턴이 외치자
우다다다.
멀리서 대기하고 있던 고양이 30마리가 달려왔다.
"안녕하십니까! 생선구이만 주시면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생선구이?"
식량난에 허덕이고 있는 그래니어 마을의 고양이들이 생선구이를 벌기 위해 인턴들을 따라 세준을 찾아왔다.
그때
[탑 75층 젠카 호수의 푸른 잉어 멸종의 나머지 원인을 찾았습니다.]
[두 번째 중간 관리자 퀘스트가 발생합니다.]
[두 번째 중간 관리자 퀘스트 : 그래니어 마을의 고양이들이 1년 동안 푸른 잉어를 사냥하지 못하도록 막아라.]
보상 : 경험치 1만 5000, 1500탑코인
실패 시 : 퀘스트를 완료할 때까지 원래 장소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새로운 퀘스트가 나타났다.
"테 대표, 일어나봐."
세준이 자고 있는 테오를 깨웠다.
"뭐냥?"
"계약서 도장 좀 받아."
세준은 하루 생선구이 3마리를 일당으로 주는 대가로 1년간 고양이들을 젠카 호수에서 푸른 잉어 사냥을 막는 파수꾼으로 고용했다.
그리고
[두 번째 중간 관리자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두 번째 중간 관리자 퀘스트 완료 보상으로 경험치 1만 5000을 획득했습니다.]
[두 번째 중간 관리자 퀘스트 완료 보상으로 1500탑코인을 획득했습니다.]
두 번째 퀘스트를 완료했다.
***
조난 249일 차. 프로그를 사냥한 지 3일이 지났다.
프로그 2243/2291
"다 어디 숨은 거야?"
세준이 남은 프로그 수를 확인하며 말했다.
남은 프로그는 이제 48마리뿐. 하지만 어디 숨은 건지 찾을 수가 없었다. 어제부터 남은 프로그 48마리를 찾기 위한 대대적인 수색을 벌였지만, 성과가 없었다.
그래도 다른 성과는 있었다. 흑토끼와 꾸엥이가 보물 찾기를 하다가 프로그들을 피해 숨어있는 푸른 잉어의 보금자리를 찾아낸 것. 보금자리에는 푸른 잉어 10마리가 남아 있었다.
세준은 일단 푸른 잉어의 멸종을 막기 위해 파수꾼으로 고용한 고양이들에게 푸른 잉어의 보금자리 주변을 교대로 경계하게 했다.
그렇게 프로그 수색을 이어가고 있을 때 호수 바닥에서 꾸엥이가 크기 10m 정도의 넓적한 바위 하나를 집었다.
세준은 호수 바닥에 다른 파편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꾸엥이에게 수상한 바위가 보이면 가지고 올라오라는 지시를 내린 상태였다.
우지끈.
그렇게 꾸엥이가 넓적한 바위를 들어 올렸을 때
(꾸엥?)
개골.개골.
꾸엥이와 바위 밑에 웅크리고 있는 프로그들의 눈이 마주쳤다. 프로그들이 바위 밑에 숨어 있어 그동안 찾지 못했던 것이다.
콰앙!
(꾸에엥!)
꾸엥에가 바위를 내려놓고 주변의 늑대들을 불렀다.
***
"줄을 서라냥!"
식사 시간이 되자 테오가 제카 호수의 파수꾼들을 줄 세우고 생선구이를 3마리씩 나눠줬다.
현재 그래니어 마을의 식량 사정이 좋지 못하다는 말을 듣고 세준은 고양이들의 가족을 생각해 당분간 일당을 3배로 늘려 생선구이를 하루에 9마리씩 주기로 했다.
어차피 탑 99층 연못에는 피라니아가 넘쳐났다. 대신 테오가 챙겨온 생선구이만으로는 수가 부족했기에 인턴들이 늑대들과 탑 99층으로 피라니아를 가지러 갔다.
그렇게 ???의 파편 위에 앉아 세준이 주변을 둘러보고 있을 때
"찾았다!"
첨벙!
늑대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젠카 호수로 뛰어들었다.
잠시 후
촤악.
늑대들이 호수에서 프로그들을 하나씩 입에 물고 나와 세준의 앞에 섰다.
그리고
"프로그 48마리 전부 찾았습니다."
헤겔이 늑대들을 대표로 세준에게 보고했다.
"수고했어. 모두 모여."
세준이 동물들을 모두 불렀다.
그리고 동물들이 모두 모이자 세준이 프로그들을 처치했다.
[중간 관리자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중간 관리자 퀘스트 완료 보상으로 경험치 1만 5000을 획득했습니다.]
[중간 관리자 퀘스트 완료 보상으로 1500탑코인을 획득했습니다.]
[중간 관리자로서의 임무를 완수했습니다.]
[30초 후 탑 99층으로 돌아갑니다.]
"꾸엥아 바위 들어."
꾸엥!
세준의 지시에 꾸엥이가 바위 아이템을 번쩍 들었다.
"얘들아, 수고했어.
곧 돌아갈 세준이 서둘러 동물들과 인사를 나눴다.
"테오는 인턴들 데리고 탑 38층 잘 다녀오고 헤겔은 탑 99층으로 찾아와."
"알겠다냥! 빨릴 끝내고 가겠다냥!"
"저도 서둘러 따라가겠습니다!"
"뀻뀻귯. 저도 조만간 찾아뵐게요.
이오나가 세준의 무릎을 보며 말하자
"이오나는 오지 말라냥!"
테오가 새롭게 나타난 경쟁자를 경계하며 소리쳤다.
"뀨-싫거든요! 제 마음이거든요!"
파앗.
둘이 싸우는 사이 세준과 흑토끼 꾸엥이가 사라졌다.
***
탑의 관리자 구역.
"크아아! 기특한 인간은 3일이나 지났는데 왜 아직도 안 오는 거야?!"
탑 75층의 상황을 알 수 없는 에일린은 세준의 소식을 알 수 없어 너무 답답했다.
"크힝. 어디 다친 거 아냐?"
특히 약한 세준이 어디 다치지는 않았는지가 가장 걱정이었다.
그렇게 에일린이 세준을 걱정하고 있을 때
[중간 관리자 탑농부 박세준이 임무를 완수했습니다.]
[탑 99층으로 복귀합니다.]
"크히히히! 기특한 인간이 왔다!"
이제 다시 세준을 볼 수 있게 된 에일린이 세준의 복귀에 기뻐하며 수정구로 탑 99층을 살펴봤다.
"어?! 아니! 또 미감정 아이템을! 위험하다니까! 기특한 인간은 역시 내가 없으면 안 된다니까! 크히히히."
꾸엥이가 내려 놓은 거대한 미감정 바위 아이템을 보며 에일린이 환하게 미소지었다. 자신이 활약할 순간이었다.
"크히히히. 위대한 검은 용의 모습을 보여줘야지."
멋진 모습을 보일 기회를 잡은 에이린이 세준에게 말을 걸려할 때 에일린보다 먼저 검은 용 조각상이 선수를 쳤다.
78화. 흔적을 발견하다.
78화. 흔적을 발견하다.
[탑 99층에 도착했습니다.]
"집이다!"
탑 75층에서 돌아온 세준이 양팔을 들며 외치자
뺙!
꾸엥!
흑토끼, 꾸엥이도 세준을 따라 외쳤다. 떠난 지 3일밖에 안 됐지만, 집이 너무 반가웠다.
꾸엥?
꾸엥이가 들고 있는 바위를 어떻게 할지 세준에게 물었다. 빨리 내려놓고 엄마에게 가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냥 거기다 놔."
꾸엥!
쿵!
세준의 말에 꾸엥이가 바로 바위를 패대기치고
꾸에엥!
엄마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를 향해 달려갔다.
뺙!
흑토끼도 가족들에게 달려가 자신이 왔음을 알렸다.
"일단 파인애플부터 심을까."
혼자 남는 세준이 가방에서 파인애플 꼭지 12개를 꺼내 밭에 심었다. 그리고 가방 구석에 덩그러니 남은 타락한 엔트의 강화된 씨앗을 바라봤다.
[타락한 엔트의 강화된 씨앗(정화율 50%)]
'정화의 불꽃을 한 번 더 받으면 완전히 정화되겠네.'
세준이 씨앗을 보고 있을 때
펄럭.펄럭.
검은 용 조각상이 날아왔다.
-크하하하. 박세준 이놈! 아이템 감정도 못하다니 무능하구나!
감정 안 된 바위를 본 카이저가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말했다.
-크하하하. 위대한 검은 용인 나 카이저 프리타니가 특별히 감정을 해주도록 하지.
부탁도 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위대함을 알려주고 싶은 카이저가 먼저 나섰다. 에일린이 분명 수정구로 세준을 보고 있을 테니 에일린에게 멋진 할애비로 보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렇게 검은 용 조각상이 바위 위에 앉자
번쩍.
바위에서 강한 빛이 폭발했다.
번쩍
빛이 한 번 더 폭발했다.
그때
[탑의 관리자가 자신이 아이템 감정을 해주려고 했는데 할아버지가 선수를 쳐버렸다며 속상해합니다.]
[탑의 관리자가 이제 할아버지랑은 얘기도 안 할 거니 그대가 할아버지한테 자신의 말을 전달해 달라고 합니다.]
자신이 활약할 기회를 뺏긴 에일린이 카이저에게 삐쳤다.
"카이저 님, 에일린이 이제 할아버지랑 얘기를 안 하겠답니다."
-...뭣?! 에일린! 할애비랑 이야기 좀 하자꾸나! 에일린~!
카이저가 애타게 에일린을 부르는 동안 세준은 감정이 끝난 바위의 옵션을 확인했다.
[신령스러운 비석의 파편]
신령스러운 비석의 아홉 번째 파편입니다.
주변을 이롭게 하는 신성력이 흘러나옵니다.
파편을 모을수록 신성력이 강해집니다.
등급 : S
"주변을 이롭게 하는 신성력?"
잠깐 눈을 감고 집중했지만, 별로 느껴지는 게 없었다. 등급에 비해 아이템의 옵션은 별로인 것 같았다.
"그래도 S급이 어디야."
세준은 일단 S급 아이템을 집 앞마당에 두었다는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그리고 자신이 없는 사이에 특별한 일은 없었는지 농장을 둘러봤다.
그때
"응?"
세준의 눈에 전에는 없던 게 보였다. 나무를 반으로 자르고 안을 판 나무관이 분수대에서 밭까지 연결돼 있었다.
분수대의 높이가 1m라서 나무관 안의 물이 기울기를 따라 분수대에서 밭으로 흘렀다.
"오! 회색토끼들이 수로를 만든 건가?"
자신이 없어도 다들 잘하고 있었다. 세준은 밭을 돌아다니면서 동물들에게 자신이 돌아왔음을 알리고 동굴로 내려갔다. 저장고의 농작물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불꽃이야! 나 왔어!"
세준이 동굴 중앙에서 푸근한 햇빛을 받고 있는 불꽃이를 부르자
[주인님! 어서 오세요!]
불꽃이가 씩씩한 목소리로 세준을 반겼다.
"잘 있었지?"
[네! 주인님, 근데 밖에 뭐가 생겼나요? 조금 전부터 따뜻한 기운이 몸에 스며들고 있어요. 그래서 힘도 넘치고 기분도 좋아요!]
S급 비석이 효과가 있긴 있는 모양이었다.
[아! 기분은 주인님을 봐서 좋은 건데 따뜻한 기운 때문에 더 좋아진 거예요! 주인님을 봐서 좋은 게 훨씬 커요!]
불꽃이는 혹시 세준이 오해할까 봐 자신이 세준을 봐서 기쁨을 강조해서 다시 말했다.
"그래."
세준이 불꽃이의 이파리를 쓰다듬었다. 이렇게 이쁘게 말하니 안 이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불꽃이와 대화를 나눈 세준은 저장고의 농작물을 확인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
검은 탑과 연결되는 포탈 앞.
"흐음..."
카이저가 심각한 표정으로 탁자에 앉아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
'또 에일린이랑 싸웠나?'
처리할 일이 있어 밖에 나갔다 온 안톤이 심각한 표정의 카이저를 보며 생각했다.
"가주님, 무슨 일입니까?"
분명 대단한 일은 아닐 것 같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다.
"아들아, 창조신님의 흔적을 발견했다."
"네...네?!"
예상치 못 한 카이저의 대답에 평소 감정을 잘 내색하지 않던 안톤의 포커페이스가 깨졌다.
"크하하하. 그럴 줄 알았다. 나도 처음에는 정말 놀랐어."
당황하는 안톤의 얼굴을 보면서 카이저가 웃었다.
"어딥니까?! 창조신님의 흔적이 발견된 곳이?"
안톤이 흥분하며 물었다. 창조신은 그들이 관리하는 탑을 만든 존재. 용들은 30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창조신의 흔적을 찾고 있었다.
3000년 전.
"너희들은 나의 흔적을 찾아 세상을 재건하라."
창조신은 그 말을 남기고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덕분에 그들의 세상이 멸망했다. 아니 많은 세상이 멸망했다.
그들은 알고 싶었다. 창조신은 왜 탑을 만든 건지. 왜 자신들에게 관리를 맡긴 건지.
"창조신님의 흔적은 우리가 관리하던 검은 탑에서 나왔다."
"네?!"
"비석의 일부인데, 박세준이 탑 75층의 호수에서 건져왔다더군."
"탑이요?!"
카이저의 말에 안톤이 당황했다. 지금까지 밖에서 열심히 창조신의 흔적을 찾았는데...탑 안에 있었다고?
정말 등잔 밑이 어두웠다.
"비석이면 무슨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까?"
"없어. 아무것도."
"네?"
"찾은 비석이 끝부분이라 아무 내용도 없었어."
"아...아! 박세준은 무사합니까?"
안톤이 급하게 물었다. 자그마치 창조신의 흔적이다. 평범한 존재는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 해를 입을 수 있었다.
세준은 에일린의 드래곤하트 치료에 도움을 줄 존재. 세준의 신상에 문제가 생겨서는 안 된다.
"크하하하. 내가 누구냐?! 내가 바로 위대한 검은 용 프리타니가의 가주 카이저 프리타니가 아니냐. 내가..."
카이저가 자신이 세준이 가져온 바위를 감정한 일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감정을 하는 순간, 바위 안에서 창조신의 신성력이 꿈틀대는 게 느껴지는 거야."
"그래서요?"
안톤이 침을 삼키며 물었다.
"바위의 봉인 풀리는 순간 박세준이랑 주변 애들은 다 죽겠다는 생각이 들더군. 그래서 서둘러 그럴싸한 이름을 붙이며 티안나게 다시 봉인했지. 어떠냐? 나의 순발력이? 크하하하!"
카이저가 우쭐해하며 말했다.
"휴우. 잘하셨습니다."
안톤이 안도하며 말했다. 카이저의 우쭐해하는 모습이 보기 싫었지만, 인정할 건 인정해야 했다.
창조신의 신성력이 담긴 물건을 다시 봉인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카이저가 아니었으면 정말 큰일 날뻔했다.
"아들아,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
"무슨 일입니까?"
"우리 에일린이 나랑 얘기하기 싫다는데 네가 나서서 화해 좀 시켜줘."
엄청난 능력의 소유자 카이저. 하지만 손녀의 화를 푸는 건 카이저에게는 거의 미션 임파서블급 난이도였다.
그리고
"전 바쁜 일이 있어서..."
그건 안톤도 마찬가지였다.
***
탑 2층.
황무지에 가까웠던 1000평이 넘는 땅이 녹색으로 변해있었다.
그리고 100평씩 나뉘어 있는 밭 사이로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저희 가겔의 경험치 농장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가겔의 안내자가 헌터들을 안내하며 말했다.
"정말 이걸 베기만 하면 몬스터처럼 경험치를 주는 거야?"
가장 앞에 선 고가의 장비들로 무장한 1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성 헌터가 꿈틀대며 움직이는 방울토마토를 보며 물었다.
남자는 경험치 농장을 사용하기 위해 1억이라는 돈을 내고 이곳에 왔다.
"그럼요. 이건 저희 가겔에서 우연히 찾은 식물형 몬스터로 저희 연구진의 노고 덕분에 이렇게 대량으로 키울 수 있게 된 겁니다."
가겔은 돌연변이라고 하면 사람들의 인식이 안 좋을 수도 있기에 그들은 오염된 방울토마토를 탑에서 발견한 식물형 몬스터라고 직원들에게조차 속이고 있었다.
"데이비드 님, 한 번 베어보시죠."
안내자가 데이비드에게 방울토마토의 밑부분을 가리키며 말했다.
서걱.
데이비드가 가지고 있는 검으로 방울토마토의 밑부분을 베자 부드럽게 잘리며
[오염된 방울토마토를 처치했습니다.]
[경험치 33을 획득했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했다.
"오! 진짜네?"
"그럼요. 자 이제 여기가 왜 경험치 농장인지 경험해보시죠."
안내자가 횃불 하나를 꺼내 데이비드에게 건넸다.
"모두 태우시면 됩니다."
"좋네!"
화르르륵.
안내자의 말에 데이비드가 환하게 웃으며 오염된 방울토마토를 태우기 시작했다.
100평을 전부 태우면 경험치가 대략 5~7천의 경험치가 쌓인다.
가겔은 농장 100평에서 경험치를 얻는 대가로 1억을 받고 있지만, 안전하고 빠르게 경험치를 쌓으려는 돈 많은 헌터들이 가겔의 경험치 농장을 이용하기 위해 예약을 하고 기다리는 중이었다.
"작물이 다시 자라는데 며칠이나 걸리지?"
"넉넉하게 한 달이면 충분합니다."
"토마스, 농장의 규모를 100배로 늘리게."
"네!"
활활 타오르는 밭을 보면서 마이클이 토마스에게 지시했다.
***
"읏차!"
세준이 눈을 뜨며 일어났다. 오랜만에 제대로 자서 그런지 몸이 너무 개운했다.
뺙!
세준이 일어나는 소리에 나무상자 집에서 흑토끼가 나오며 인사했다.
"그래. 좋은 아침."
세준이 일어나서 막대기로 침실 벽에 글자를 썼다.
[250]
조난 250일 차 아침일 밝았다. 앞으로는 벽돌집의 벽에 날짜를 표시할 생각이었다.
"나가자."
세준이 흑토끼와 밖으로 나오자 토끼들이 하나둘 동굴에서 지상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삐익!
뺘아!
삐릭!
"그래. 좋은 아침."
세준이 토끼들에게 인사했다.
아침은 24시간 끓이고 있는 세프의 수프와 찐 감자로 해결했다.
그리고 방울토마토 수확을 위해 세준이 밭으로 걸어가고 있을 때
뺘아!!!
뺘압!!!
뒤에서 토끼들의 경쾌한 비명이 들리더니 토끼들이 나무배를 타고 빠르게 세준을 앞질렀다.
촤아악!
토끼들이 탄 배가 지나가며 세준에게 물이 튀었다.
"응?!"
저거...후룸라이드?!
밭이 너무 넓어지며 토끼들이 밭으로 이동하는 수고를 덜기 위해 수로에 배를 띄워 교통수단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부럽다!"
너무 부러웠다. 나도 놀이기...아니 교통수단!
꾸엥?
토끼들의 교통수단을 부러워하는 존재는 세준뿐이 아니었다.
꾸엥!
나무배를 타는 토끼들을 보면서 꾸엥이가 외쳤다. 나도 탈래!
꾸엥!
꾸엥이가 나무판 하나를 들고 분수대로 기어올라 호기롭게 수로 위에 나무판을 깔고 앉았다.
하지만
우지끈.
꾸엥이가 수로 위에 올라가는 가능성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만들어진 수로의 기둥들이 꾸엥이의 무게를 버티지 못했고
쾅!
꾸엥이가 앉는 것과 동시에 나무 기둥들이 수수깡 부러지듯 부러지며 나무관이 그대로 주저앉는 대형 사고가 발생했다.
꿰에엥...
나무관과 함께 떨어진 꾸엥이가 황망한 표정으로 부서진 수로를 보고 있을 때
척.
"괜찮아."
세준이 꾸엥이의 머리에 손을 올리며 위로했다.
꿰에엥...
[나도 배 타고싶다요...]
"걱정마. 태워줄게."
꾸엥이 덕분에 수로를 다시 만들 수 있게 된 세준.
"얘들아, 집합!"
세준이 회색토끼와 블랙 미노타우루스를 불러 튼튼한 수로를 새로 만드는 대공사를 시작했다.
79화. 여긴 내 구역이다냥!
79화. 여긴 내 구역이다냥!
세준은 이왕 수로를 만드는 거 정말 제대로 된 수로를 만들기로 했다.
그리고
"자. 일단 분수대를 들어서 밑에 벽돌을 쌓을 거야."
그 첫 번째 공사로 일단 물의 흐름이 시작되는 분수대의 높이를 높이기로 했다. 그래야 내려갈 때 스릴이...아니 가속도가 붙어 더 멀리까지 물을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직경 100m의 거대한 분수대를 들어올려야 했다.
'카이저 님이나 안톤 님의 도움이 필요해.'
"저기···"
세준이 검은 용 조각장에 말을 걸었다.
-무슨 일이냐···
잔뜩 골이 난 카이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행이다.'
솔직히 안톤보다는 카이저가 더 말하기 편했다. 세준에게는 카이저에게 어렵지 않게 도움을 얻어낼 필승 카드가 있었다.
"카이저 님, 혹시 에일린과 얘기하고 싶지 않으세요?"
-박세준, 건방지구나! 감히 위대한 검은 용인 나 카이저 프리타니가 너에게 부탁할 것 같으냐?!"
세준의 말에 분노한 카이저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럴 리가요. 제가 부탁드릴 게 있는데 그걸 해주시면 고생을 하신 카이저 님을 위해 제가 카이저 님이 불편해하시는 부분을 해결하려는 거죠. 저 스스로요."
-크흠...그래? 어서 부탁해 보거라.
조삼모사 같은 짓이었지만,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카이저에게는 통했다.
"분수대 좀 들어주세요."
-크하하하. 알았다.
쿠궁.
카이저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분수대가 10m 정도 공중에 떴다.
"자. 작업 시작!"
음머!
세준의 지시에 블랙 미노타우루스들이 진흙벽돌을 쌓기 시작했다.
그리고
"에일린."
세준은 에일린을 불러 카이저의 불편을 해결했다.
[탑의 관리자가 무슨 일이냐고 묻습니다.]
"일단 꿀젤리 좀 먹으면서 얘기할까?"
일단 단 음식으로 에일린의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탑의 관리자가 꿀젤리의 달달함에 기뻐합니다.]
그렇게 세준은 에일린의 기분을 좋게 만들고 본론을 꺼내기 시작했다.
"에일린, 이제 카이저 님이랑 얘기 좀 하면 안 될까?"
[탑의 관리자가 하지만 할아버지가 자신이 활약할 기회를 뺏어서 밉다고 말합니다.]
"에일린, 네가 아이템을 감정해서 활약하려는 이유가 뭐야?"
[탑의 관리자가 그건...자신의 위대함을 그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그럼 활약할 필요가 없네."
[탑의 관리자가 무슨 말이냐고 묻습니다.]
"나는 이미 에일린 네가 얼마나 대단한 용인지 잘 알고 있으니까."
[...]
"에일린?"
에일린이 또 숨어버렸다.
하지만
-크하하하하하!
카이저의 웃음소리를 보니 에일린이 카이저와 얘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
다다다.
"빨리 달려라냥!"
테오가 일행들을 재촉했다. 테오의 마음은 아주 급했다.
'빨리 거래를 끝내고 박세준에게 돌아가야 한다냥!'
박세준의 무릎이 위험했다. 이오나는 처음에는 관심 없는 척 자신을 방심하게 하더니 어느새 세준의 무릎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오나는 요망한 햄스터 마법사다냥!'
자고 일어났을 때 세준의 무릎에 있는 이오나를 생각하니 테오는 다시 화가 났다.
그리고
"용서할 수 없다냥! 속도를 높여라냥!"
그 분노만큼 테오의 이동 속도가 빨라졌다.
"헉헉. 테 대표님..."
"좀 쉬어요..."
덕분에 인턴들만 죽어났다.
그렇게 테오의 주도하에 일행은 쉬지 않고 탑 38층을 향해 달렸다.
***
카이저에게 삐진 에일린을 다독여 둘을 화해시킨 세준은 회색토끼들을 도와 블랙 미노타우루스들이 쌓은 진흙벽돌 사이에 진흙을 발랐다.
그렇게 벽돌 한 층을 쌓자 어느새 점심시간이 가까워 졌다.
"점심 준비해야지."
세준이 동굴로 점심 재료를 가지러 가자
[주인님! 보고 싶었어요!]
불꽃이가 이파리를 흔들며 격하게 세준을 반겼다. 그런 불꽃이의 이파리 중 정화의 불꽃과 수호의 불꽃을 썼던 이파리의 절반 이상이 다시 녹색으로 변해있었다.
신령스러운 비석에서 나오는 신성력 덕분에 불꽃이의 이파리가 원상태로 돌아오는 속도가 빨라진 것 같았다.
세준은 불꽃이의 이파리를 쓰다듬어주고 연못으로 갔다. 연못에는 흑토끼와 꾸엥이가 사냥한 피라니아 수백 마리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탑 75층 그래니어 마을의 푸른 잉어를 지키는 파수꾼들에게 일당으로 줘야 할 생선구이가 늘어나면서 더 많은 피라니아를 잡고 있었다.
그때
촤아악.
꾸엥!
꾸엥이가 물에서 나오며 거대한 생선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뺙!
뾱!뾱!뾱!
거대한 생선의 머리 위에서 흑토끼가 생선 머리를 열심히 때리고 있었다.
"와..."
세준이 수중 몬스터의 이름을 보면서 할 말을 잃었다.
[참치]
짝짝짝.
"얘들아, 잘 했어!"
세준이 박수를 치며 흑토끼와 꾸엥이를 칭찬했다.
잠시 후
"밥 먹자!"
식사 시간이 되자
음머!
블랙 미노타우루들은 파 이파리를 먹으로 대파밭으로 이동했고
쿠엉!
엄마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는 대형 냄비에 담긴 세프의 수프를 마셨다.
그리고
"자 오늘 점심은 참치회야."
세준이 참치를 해체해 회를 뜨기 시작했다. 하지만 참치 초밥 한 번 먹어본 게 전부인 세준. 부위별로 회를 뜰 실력은 없었기에 일단 가장 두툼한 뱃살을 얇게 잘랐다.
"어디 맛을 볼까."
세준이 붉은 참치회를 입에 넣자
"음..."
진한 기름기가 느껴졌다.
스르륵.
세준이 제대로 음미하기도 전에 참치회가 순식간에 녹아버렸다.
"와!"
"..."
동물들이 모두 자신만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그렇게 맛있어?
슥슥슥.
세준이 서둘러 자신이 먹은 주변 부위를 회 뜨기 시작했다. 자신이 느낀 감동을 동물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었다.
"자. 여기."
세준이 회 2점씩을 나무 접시에 담아 동물들에게 주었다.
삐익!
뺘아!
뺘악!
꾸에에엥!
참치회를 먹은 동물들의 반응이 굉장히 좋았다.
"좋아! 그럼 다음은 등살!"
자신감이 생긴 세준이 자신이 마치 일식 요리사가 된 것처럼 이번에는 참치의 등살을 잘랐다.
삐익!
뺘아!
뺘악!
꾸에에엥!
이번에도 반응이 좋았다.
"이번에는 꼬릿살!"
"옆구리살!"
"머릿살!"
회를 잘 알지 못하는 세준이 손이 가는 대로 회를 떠서 동물들에게 줬다.
하지만
삐익..
뺘아..
뺘악..
참치만 계속 먹자 참치의 느끼함에 동물들의 반응이 점점 약해졌다.
꾸에에엥!
꾸엥이만 빼고
꾸엥?
꾸엥이는 옆에 토끼들이 회를 먹지 않자 먹어도 되냐고 물어보며 회를 자신의 입에 털어 넣고 있었다.
그렇게 거의 뼈만 남은 참치.
쩝쩝.
아직 부족한지 입맛을 다시는 꾸엥이만 빼고 모두가 배를 두드리며 포만감에 만족해하고 있었다.
"너무 느끼한데."
너무 기름진 걸 먹었더니 상큼한 게 먹고 싶었다. 그리고 이럴 때를 대비해 남겨둔 게 있었다.
"파인애플 먹자!"
세준이 저장고에서 파인애플 5통을 꺼내왔다. 토끼들과 함께 먹기 위해 남겨둔 것으로 이 파인애플은 이오나가 보존 마법을 걸어 꼭지가 떨어졌어도 신선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뺙!
꾸엥!
이미 파인애플을 먹어본 적 있는 흑토끼와 꾸엥이가 흥분했다. 본능적으로 지금 먹으면 너무 좋다는 걸 알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삐익?
뺘아?
흑토끼와 꾸엥이의 반응에 다른 토끼들도 궁금증을 갖기 시작했다.
서걱.서걱.
세준이 접시에 파인애플을 1조각씩 주자
아작.
파인애플을 먹은 토끼들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파인애플의 신맛이 입안에 남아있던 기름을 깔끔하게 씻어냈다. 그리고 이어지는 단맛.
할짝.할짝.
토끼들은 순식간에 파인애플을 다 먹고 손에 묻은 파인애플의 과즙까지 깨끗하게 핥아먹었다.
그렇게 완벽한 점심시간이 끝나고 두 시간쯤 지났을 때
"세준 님, 저희가 왔습니다."
탑 67층에 칼날 이파리와 세프의 수프를 납품하고 레드 로커스트 사체를 수거해 복귀한 보로리가 세준에게 인사했다.
"수고했어. 탑 67층은 어때?"
"레드 로커스트의 패턴이 바뀌면서 처음에는 고전했지만, 탑 69층의 리자드맨 왕국에서 리자드맨 전사들이 충원되면서 다시 안정됐습니다."
"다행이네. 근데 저거는 왜 저래?"
세준이 고양이 인턴들이 봇짐에서 쏟아내는 레드 로커스트의 사체를 보면서 물었다. 죽은 레드 로커스트의 사체 중 많은 수가 머리 부분에 푸른색이 섞여 있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요즘 들어 레드 로커스트들이 저렇게 변하고 있습니다."
보로리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대답했다.
그때
-그건 레드 로커스트가 블루 로커스트로 퇴화하고 있는 거다. 레드 로커스트의 개체수가 50억 마리에 가까워졌다는 증거지.
어느새 지상으로 내려온 검은 용 조각상이 푸른색이 섞인 레드 로커스트의 사체를 보면서 말했다.
"퇴화요?"
-그래. 놈들은 개체수가 적어지면 퇴화하고 많아지면 진화한다.
"그럼 개체수가 더 적어지면 또 퇴화하나요?"
-그렇지. 수가 30억 마리 밑으로 떨어지면 옐로우 로커스트로 변한다.
"아."
-조금만 버티면 싸우기 더 편해질 거다. 블루 로커스트로 퇴화하면 크기도 작아지고 힘도 약해지거든.
"그렇군요."
-에일린, 이걸 알고 있었느냐?
카이저가 에일린에게 물었다.
-뭐?! 몰랐다고?! 이 녀석! 내가 알람을 제대로 보라고 하지 않았느냐!
카이저가 이런 정보를 미리 알고 있지 않은 에일린을 혼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니...소리를 지른 게 아니라...
-에일린~!
[탑의 관리자가 할아버지가 자신한테 큰소리를 쳐서 삐졌다며 할아버지랑은 이제 얘기를 안 하겠다고 합니다.]
세준이 화해시킨 지 한 시간도 안 되서 둘의 대화가 다시 단절됐다.
"보로리, 일단 내려가면 방금 들은 정보를 리자드맨 대전사에게 전해줘. 도움이 될 테니까."
"네. 알겠습니다."
세준은 보로리와 대화를 끝내고 다시 벽돌을 쌓기 시작했다. 5일 안에 벽돌을 10단까지 쌓는 게 목표였다.
***
"도착했다냥!"
테오가 35시간 만에 탑 38층에 도착했다.
"늑대들은 쉬고 인턴들은 날 따라오라냥!"
"네..."
고양이들이 거의 죽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중간에 늑대들이 인턴들을 태워주지 않았으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거다.
"너희들은 아직 잘 모를 테니. 오늘은 지켜만 봐라냥!"
테오가 고양이 인턴들에게 주의를 주며 헌터들의 캠프에 도착했다.
"여기는 내가 만들어 나만 거래를 하는 곳이다냥!"
테오가 인턴들에게 자랑스럽게 말하며 캠프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
"응?"
테오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자신의 거래 장소에서 멧돼지 유랑 상인들이 헌터들과 거래를 하고 있었다.
"뭐냥?!"
자신의 구역을 침범한 멧돼지 유랑 상인들을 보면서 테오가 분노했다.
그리고
"비켜라냥!"
테오가 멧돼지 유랑 상인들의 우두머리 앞으로 가서 소리쳤다.
"넌 뭐야?"
"나는 중견 유랑 상인 테오다냥! 그리고 여긴 내 거래 장소다냥! 비켜라냥!"
"흥! 어디서 중견 상인 주제에! 나는 최우수 유랑 상인 타릭 님이 이끄는 상단의 우수 유랑 상인 우타타다! 그냥 꺼져라."
테오의 말에 우타타가 같잖다는 듯이 말했다. 이곳은 헌터들이 스스로 캠프를 만들어 상권이 만들어진 곳. 이런 곳은 흔치 않았기에 우타타는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방금 날 무시한 거냥?!"
위대한 검은 용의 부하이자 치명적인 노란 고양이인 자신을 무시하다니! 테오가 분노했다.
하지만 힘으로 해결하지는 않았다. 유랑 상인은 유랑 상인의 방법으로 싸우는 법이다.
그리고
"인간들아! 오늘부터 이 멧돼지 유랑 상인과 거래하는 헌터에게는 내 물건을 팔지 않겠다냥!"
테오는 자신의 무기가 뭔지 잘 알고 있었다. 테오의 무기는 어디서도 구할 수 없고 특수한 효과를 내는 세준의 농작물.
"푸하하하! 그래 봤자 너만 손해다! 내 물건들은..."
테오의 말을 비웃던 우타타는 자신과 거래하던 헌터들이 테오의 말 한마디에 거래를 그만두고 우르르 떠나는 것을 보며 당황했다.
"푸후훗. 봤냥? 여긴 내 구역이다냥! 꺼져라냥!"
테오가 우타타를 보며 웃었다.
80화. 꾸엥이호에 타다.
80화. 꾸엥이호에 타다.
가겔의 회의실.
"이번 아시아 대륙의 가뭄과 아프리카의 메뚜기 떼 발생으로 전년도에 비해 농작물 생산량이 15% 정도 줄어들 것으로..."
올해 식량 생산량 전망에 대한 보고가 끝나자
"올해는 식량 가격을 20% 올려. 부회장, 탑농장 프로젝트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지?"
너무도 쉽게 세계 식량 가격을 20%나 올려버린 거대 식량 기업 가겔의 회장 윌리엄 맥라렌이 자신의 아들이자 부회장인 마이클에게 물었다.
"아쉽게도 식량 생산 쪽으로는 아직 성과가 없습니다."
성과가 없다는 말을 너무 당당하게 말하는 마이클의 말에 회의실 공기가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음..."
회실에 있는 임원들이 침음하며 윌리엄의 눈치를 봤다. 가겔의 회장 윌리엄은 아들이라고 봐주는 그런 성격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자신의 뒤를 이을 자격을 증명하라며 더 많은 성과를 요구했다.
"그럼 식량 생산 쪽이 아닌 다른 쪽에서는 성과가 있다는 말이냐?"
"네. 다행히 생각보다 일찍 매출을 올릴 방법을 찾았습니다. 화면을 봐주시죠."
마이클이 자신의 비서에게 신호를 보내자 준비하고 있던 비서가 노트북에 USB를 연결해 자료를 띄웠다.
"탑에서 판매되는 마력의 방울토마토를 연구 중 의외의 성과가 있었습니다."
"의외의 성과?"
"네."
마이클이 돌연변이로 탄생한 오염된 방울토마토를 2층에 심어 경험치 농장을 시험 운영 중이고 농장을 10배로 넓히는 중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심기만 하면 잘 자라고 그걸 없애면 경험치를 준다는 말이지? 재배 기간은?"
"한 달입니다. 그리고 경험치 농장을 10배로 늘리기 위한 예산을 요청합니다."
마이클은 탑 2층의 스켈레톤 묘지 수십 개를 밀어내 경험치 농장을 확장할 생각이었다.
"좋아! 탑농장 프로젝트의 예산을 10배로 올려줄 테니 본격적으로 해봐."
"네! 감사합니다!"
윌리엄의 전폭적인 지원에 마이클이 90도로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예산이 10배로 늘어나면 지금의 경험치 농장 규모를 1000배까지 늘릴 수 있다. 몇 달 후 경험치 농장이 완성되면 하루에 수백억의 돈을 돈을 쓸어담게 될 것이다.
***
"이 고양이 새끼가...꾸이익!"
테오에게 모욕을 받았다고 생각한 우타타가 분노하며 포효했다. 중견 유랑 상인따위에게 이런 모욕을 받고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꾸익!꾸익!
우타타의 포효에 부하 멧돼지 유랑 상인 넷이 봇짐에서 거대한 도끼를 꺼냈다. 멧돼지족은 무력이 뛰어난 유랑 상인으로 자유 용병을 고용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푸후훗! 도끼를 꺼내다니 유랑 상인으로서 패배를 인정하는 것이냥?"
그걸 모르는 테오는 겁도 없이 멧돼지들을 비웃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테오는 절대적으로 믿는 게 있었다.
'박세준의 무릎이 나를 지킨다냥!'
이상한 믿음이었지만
'뭐지? 왜 이렇게 당당해?'
그런 테오의 모습에 우타타는 테오에게 무언가 더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느꼈다.
"너 정체가 뭐냐?"
그래서 우타타는 돌다리를 두드리는 심정으로 테오의 정체를 물었다. 뭔가 숨겨둔 정체가 있을 것 같았다.
"푸후훗. 이 몸의 정체를 물으신다면 대답하는 게 인지상정! 잘 들어라냥! 이 몸은 위대한 검은..."
테오가 흑막처럼 음흉하게 웃으며 자신을 소개하려 할 때
"테 대표님!"
엘카와 늑대들이 나타나 테오의 말을 끊었다. 빌 인턴이 만약을 대비해 늑대들을 불러온 것이다.
크르릉.
늑대들이 테오의 앞을 막아서고 우타타와 다른 멧돼지들을 향해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며 위협했다.
"실버 울프족?"
우타타가 자신의 앞을 막는 은빛 늑대들을 보며 당황했다. 자신들이 알기로 실버 울프족 자유 용병들은 대지주 그리드의 의뢰를 받고 밀짚모자를 추격하고 있어야 했다.
"은빛 늑대여, 그대들은 우리 멧돼지족의 대장로인 대지주 그리드 님의 의뢰를 수행하는 중이 아닌가? 우리를 적대하지 말게."
"의뢰는 파기됐다.
"뭐?! 계약을 파기한다고?"
"어차피 정식 계약도 아니었다. 그보다 물러서라. 계속 테 대표님을 적대하겠다면 공격하겠다."
"꾸익! 은빛 늑대여 언젠가 오늘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너! 두고 보자!"
우타타와 멧돼지들이 테오와 늑대들을 노려보다 봇짐을 챙겨 자리를 떠났다.
"내 소개가 잘렸다냥..."
"테 대표님, 제가 늑대님들을 불러왔습니다!"
빌 인턴이 분위기 파악도 못 하고 자신의 공로를 테오에게 말했다.
빌 인턴은 이로써 자신의 계약 기간이 또 줄어들 거라고 믿었지만
"그동안 줄여줬던 빌 인턴의 계약 기간을 전부 복구시키겠다냥!"
"네?!"
테오의 자기 소개 기회를 뺏은 대가를 치러야 했다. 역효과가 났다.
폴짝.
테오가 나라 잃은 표정을 짓고 있는 빌 인턴을 지나치며 엘카의 등에 올라탔다.
그리고
"오늘은 C급 마력의 방울토마토 5000개, C급 힘의 호박고구마 5000개, 마지막으로 D급 해독의 대파 1만 개를 500개씩 경매로 팔겠다냥!"
테오가 헌터들을 보며 외쳤다. 테오의 봇짐 업그레이드와 인턴들의 봇짐 덕분에 팔 수 있는 농작물의 양이 엄청나게 늘어났다.
"힘의 호박고구마?!"
새로운 농작물의 등장에 헌터들이 술렁거리고 있을 때
"자 마력의 방울토마토 500개부터 경매 시작이다냥!"
테오가 경매 시작을 선포했다.
"500개에 750탑코인!"
마력의 방울토마토는 계속 판매량이 늘어나면서 이제 어느 정도 가격이 안정된 상태였는데 이번에 판매량이 저번보다 2000개나 줄어들면서 가격이 조금 더 상승하며 개당 1.7탑코인 정도에 팔렸다.
그리고 힘의 호박고구마는 애매한 취급을 받았다.
"500개에 500탑코인!"
힘을 0.5 상승시켜주는 효과는 힘 스탯이 중요한 전사들에게 인기가 있었지만, 비각성자가 섭취했을 때의 효과 때문이었다.
"장운동을 활발하게 해준다고?"
장운동이 활발해져봤자 변비가 치료될 뿐이었다. 변비에 수백만 원의 돈을 쓰기는 너무 아까웠다. 그렇게 힘의 호박고구마는 개당 1탑코인 정도에 전사들에게 모두 팔렸다.
"이제 해독의 대파를 팔겠다냥!"
"500개에 3500탑코인!"
"500개에 3600탑코인!"
역시 해독의 대파가 가장 인기가 높았다. 해독의 대파를 먹고 간암 말기 환자들이 100% 완치된 사례가 알려지면서 더욱 많은 간암 환자들이 해독의 대파를 사기 위해 돈을 쓰고 있었다.
"완판이다냥!"
총 판매 금액 82만 4630탑코인. 이번 경매도 대성공이었다. 해독의 대파가 무려 개당 평균 80탑코인 정도에 팔리며 전체 매출을 견인했다.
그리고 이어진 포토타임.
"인간들은 줄을 서라냥!"
세준의 무릎으로 빨리 복귀해야 했지만, 츄르도 포기할 수 없는 테오가 서둘러 사진을 찍었다.
"너희들도 찍어줘라냥!"
테오가 포토타임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인턴들을 투입했다.
그렇게 포토타임을 끝낸 테오.
"그럼 다음에 보자냥!"
테오가 서둘러 일행들을 데리고 탑 99층으로 올라갔다.
한태준과 흑랑단은 테오의 머릿속에서 완전히 잊힌 지 오래였다.
***
조난 253일 차.
"완성이다!"
세준이 10층까지 쌓은 벽돌탑을 올려다보면서 말했다. 예정보다 이틀이나 일찍 공사가 끝났다.
카이저 덕분이었다.
-박세준! 뭐 부탁할 거 없느냐?!
에일린에게 대화를 차단당한 카이저가 참지 못하고 세준에게 부탁을 강요했다. 자신이 세준의 부탁을 들어주면 세준이 나서서 에일린의 화를 풀어주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카이저의 강요에 세준은 벽돌탑의 완성을 부탁했고 카이저는 단숨에 벽돌탑을 완성했다.
그리고 세준은 에일린의 차단 리스트에서 카이저를 지워줬다.
'뭐 오래는 안 갈 거 같지만...'
세준으로서는 또 카이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 나쁘지 않았다.
분수대 탑이 완성되자
삐빅!
회색토끼들이 블랙 미노타우루스들의 도움을 받아 수로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꾸엥이의 무게도 버틸 수 있는 튼튼한 수로를 만들기 위해 기둥을 강화하며 신경을 썼다.
그렇게 수로가 만들어지는 동안
서걱.
[잘 익은 마력의 방울토마토 9개를 동시에 수확했습니다.]
[직업 경험치가 크게 상승합니다.]
[수확하기 Lv. 4의 숙련도가 크게 상승합니다.]
[숙련도 상승 Lv. 1의 효과로 수확하기 Lv. 4의 숙련도가 5% 추가 상승합니다.]
[경험치 270을 획득했습니다.]
세준은 방울토마토를 수확하고 있었다.
그때
꾸엥!
꾸엥이가 나무 몸통 하나를 들고 세준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꾸엥!
쩌저적.
양 앞발로 가볍게 나무를 두 쪽으로 갈라 안쪽에 구멍을 파기 시작했다.
북.북.
꾸엥이가 앞발로 나무를 몇 번 긁자 순식간에 구멍 두 개가 만들어졌다.
꾸엥!
꾸엥이가 앞 구멍에 들어가서 앉아 뒤에 타라며 세준을 불렀다. 2인용 배인 것 같았다.
'귀여운 녀석.'
세준이 꾸엥이를 보며 흐뭇하게 웃을 때
꾸엥!
꾸엥이가 세준을 재촉했다. 빨리 타요!
"알았어."
세준이 꾸엥이의 재촉에 못이기는 척 꾸엥이호에 탔다.
"오!"
겉에서 볼 때는 몰랐는데 안에 다리를 뻗을 수 있는 공간까지 있었다. 나름 인체공학적인 꾸엥이호였다.
그때
쿠엉!
엄마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가 꾸엥이호를 들어 분수대 위에 올렸다. 물놀이나 하라는 의미 같았다.
하지만
꾸엥!꾸엥!
꾸엥이가 자신의 배가 물에 떠서 움직이는 것에 신나 하며 몸을 흔들자
"어?"
드드득.
꾸엥이호가 분수대와 연결된 수로를 향해 움직이더니 수로에 배가 걸쳐졌다.
"꾸엥아! 멈춰."
세준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수로 공사를 오늘 시작했다. 당연히 수로는 미완성 상태. 저기 앞에 수로가 끊어져 있는 게 보였다. 자신이 원한 스릴은 이게 아니었다.
꾸엥?
꾸엥이가 세준의 말에 몸을 멈췄지만
덜컹!
너무 늦었다. 꾸엥이호가 수로를 따라 가속도를 내며 달리기 시작했다.
쏴아아.
"안돼!"
세준의 절규를 뒤로 하고 꾸엥이호가 수로를 따라 빠르게 질주했다.
그리고
부웅.
짧은 수로를 질주한 꾸엥이호가 3초를 날고 9m 높이에서 자유낙하를 하기 시작했다.
"으아악!'
꾸에엥!
꾸엥이호가 거의 바닥에 처박히기 직전
쿠엉.
다행히 엄마 크림슨 자이언트가 꾸엥이호를 받아 줬다.
"휴우."
세준이 안도의 한숨을 쉬며 당분간 꾸엥이호를 봉인시키기로 결심했다.
***
탑 66층 마법사 협회의 협회장실.
"뀻뀻뀻."
이오나가 콧노래를 부르며 짐을 챙기고 있었다.
둥실.둥실.
염력 마법을 사용해 협회장실에 있는 자신의 침대와 책상, 책들을 아공간 주머니에 넣었다.
그때
똑.똑.똑.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들어와요."
철컥.
쀼쀼.
이오나의 말에 문이 열리며 얼굴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큰 왕안경을 쓰고 귀에 붉은 리본을 단 백토끼 한 마리가 방으로 들어와 인사했다.
이오나의 제자이자 지금은 망한 레드리본 왕국의 공주 쀼쀼였다.
"쀼쀼, 제가 데려온 이들은 잘 처리했나요?"
쀼쀼.
이오나의 물음에 쀼쀼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세준은 이즈라엘과 오렌이 테오에게 위험하다고 판단하고는 둘을 이오나에게 데려가게 했고 이오나는 둘을 마법사 협회가 운영하는 마나석 광산으로 보내 처리했다.
"쀼쀼도 짐을 챙기세요. 저랑 같이 탑 99층으로 갈 거니까. 거기에는 쀼쀼의 백성들도 살고 있으니까 쀼쀼도 좋아할 거예요."
쀼쀼!
이오나의 말에 쀼쀼가 서둘러 자신의 방으로 달려가 짐을 챙겼다.
잠시 후
"뀻뀻뀻. 이제 출발해요!"
쀼쀼!
이오나가 자신의 제자를 데리고 탑 99층으로 출발했다.
그리고
"더 빨리 달리라냥!"
경쟁자의 출발을 직감적으로 느낀 테오가 늑대들을 재촉했다.
81화. 마주치다
81화. 마주치다
조난 254일 차 새벽.
-박세준, 일어나라.
차분한 목소리가 세준을 깨웠다.
"으음....안톤 님?"
-박세준, 밖에 타락한 엔트의 나뭇가지 정찰병들이 나타났다.
"네? 나뭇가지 정찰병이요?"
타락한 엔트는 검은 용 조각상의 브레스에 죽었다고 생각한 세준이 의아해했다.
-내가 죽인 것은 놈들 중 하나일 뿐이다.
"아."
상황을 이해한 세준이 주섬주섬 장비를 챙겨 일어나자
뺙?
세준의 침실 구석 나무상자 집에서 자고 있던 흑토끼도 덩달아 일어나 자신의 해머를 챙기고 세준을 따라나섰다.
세준이 벽돌집을 나와 서쪽으로 이동하자
"몇 마리 없네?"
500마리의 소형 나뭇가지 정찰병들이 보였다. 이전에 비하면 확실히 적은 수였다.
"가자!"
뺙!
세준을 따라 흑토끼가 싸우려 할 때
-흑토끼, 너는 가만히 있거라. 오늘은 박세준만 싸운다.
안톤이 흑토끼를 제지했다.
뺙?
-박세준은 너무 약하다. 강해질 필요가 있다.
뺙!
안톤의 말에 흑토끼가 고개를 격하게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래. 너도 잘 알고 있군. 그러니 구경만 하거라.
뺙!
흑토끼가 안톤의 말에 바닥에 앉아 세준을 구경했다.
그때
꾸엥!
시끄러운 소리에 일어났다가 혼자 싸우는 세준을 보고 꾸엥이가 달려왔다. 아빠가 위험하다요!
그리고
-멈춰라.
뺙!
꾸엥?
꾸엥이를 향해 손짓하는 검은 용 조각상과 흑토끼에게 상황을 들은 꾸엥이도 흑토끼의 옆에 앉아 세준을 구경했다.
그렇게 세준 혼자 나뭇가지 정찰병들을 상대했다.
퍽!
세준이 던진 손도끼가 나뭇가지 정찰병의 몸통 한가운데에 박혔다.
[타락한 엔트의 소형 나뭇가지 정찰병을 처치했습니다.]
[경험치 25를 획득했습니다.]
푹.
동시에 세준이 왼손에 든 단검으로 다가오는 적을 찔렀다.
[타락한 엔트의 소형 나뭇가지 정찰병을 처치했습니다.]
[경험치 25를 획득했습니다.]
하지만
뿌득.
세준의 오른쪽에서 다른 적이 접근해 나무팔을 휘둘러 세준을 공격했다. 단검을 뽑아 반격하기에는 시간이 모자랐다.
휘익.
"회수."
세준이 나뭇가지 정찰병의 공격을 피하며 손도끼를 회수했다.
그리고
퍽!
오른손의 손도끼로 방금 공격한 나뭇가지 정찰병의 허리를 찍었다.
[타락한 엔트의 소형 나뭇가지 정찰병을 처치했습니다.]
[경험치 25를 획득했습니다.]
소형 나뭇가지 정찰병을 상대로 무쌍을 찍는 세준.
'나 제법 세잖아!'
그렇게 세준이 혼자 자신의 강함에 심취해 신나게 적들을 처치하고 있을 때
뺘로롱.
꾸로롱.
세준의 긴장감 없는 전투를 구경하던 흑토끼와 꾸엥이가 지루함에 잠들어 버렸다.
그리고
-으음...갈 길이 멀군.
세준의 전투를 지켜보는 안톤의 고민이 커졌다. 너무 형편없어서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날 새벽 세준이 소형 나뭇가지 정찰병 500마리를 상대로 승리했다.
***
탑 55층 대지주 그리드의 집무실.
"뭐? 실버 울프족이 계약을 파기를 했다고?!"
"네. 어떻게 할까요?"
"놔둬라. 아마 탑 67층의 레드 로커스트 고기를 믿고 의뢰를 거절한 모양이지만, 곧 후회하게 될 거다."
레드 로커스트가 살아있는 몇 달 동안은 충분히 식량이 되겠지만, 식량이 없는 레드 로커스트들은 결국 서로를 잡아먹고 자연 소멸하게 된다.
그리고 그리드가 기다리던 식량난이 시작될 것이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그리드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리드는 다시 한번 대기근이 일어나게 만들 생각이었다.
"타릭을 시켜 몬스터의 사체를 사들이는 일은 어떻게 되고 있지?"
"1차분인 몬스터 사체 5만 마리의 구입이 끝나 타릭 님이 직접 상단의 유랑 상인들을 이끌고 탑 67층으로 이동 중입니다."
"좋아."
그리드는 예전 탑 55층에서 잠깐 본 적이 있다. 레드 로커스트가 다음 단계로 진화하면 보라색으로 변하는 모습을.
그리고 퍼플 로커스트의 사체에는 강한 독이 있어 아무도 먹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땅까지 오염시킨다.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되겠군. 클클클."
그리드가 흉측한 어금니의 뿌리가 보일 정도로 크게 웃었다.
***
"읏차."
새벽까지 전투를 한 세준이 늦잠을 자고 일어났다.
슥.
벽에 획 하나를 그어 날짜를 표시하고 밖으로 나오자
쿠엉.
음머.
밖에서는 엄마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와 블랙 미노타우루스들이 벽돌을 쌓으며 수로 공사가 한창이었다.
"불꽃이, 안녕."
세준이 동굴로 내려가 불꽃이에게 인사했다.
[주인님! 좋은 아침이요!]
불꽃이가 이파리를 흔들며 세준을 맞이했다.
"불꽃이, 나 친화의 불꽃이 필요해."
세준은 나뭇가지 정찰병이 다시 활동하자 서쪽 숲의 상황을 살펴볼 생각이었다.
[네. 이야압!]
불꽃이의 녹색 이파리에서 노란 불꽃이 나타나 세준의 몸에 스며들었다.
[친화의 불꽃이 3시간 동안 스며듭니다.]
[친화의 불꽃이 사용자가 불을 조종하는 것을 돕고 불의 위력을 강화시킵니다.]
"얘들아, 가자!"
뺙!
꾸엥!
세준의 부름에 연못에서 사냥을 하고 있던 흑토끼와 꾸엥이가 세준을 따라갔다.
"꾸엥이 변신!"
꾸엥!
세준의 말에 꾸엥이가 거대화했다. 수로 공사를 돕고 있는 엄마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 대신 꾸엥이를 타고 갈 생각이었다.
꾸엥!
꾸엥이가 엎드려 세준과 흑토끼를 태웠다. 꾸엥이의 크기는 어느새 10m를 훌쩍 넘기고 있었다.
다다다다.
그렇게 꾸엥이를 타고 달려 40분 만에 서쪽 숲의 초입에 도착했다.
그리고
"언제 이렇게 자란 거지?"
세준이 어느새 다시 서쪽 숲의 초입을 가득 메운 썩은 나뭇가지들을 보며 놀랐다.
세준은 몰랐지만, 지금까지 타락한 엔트들이 세준이 불태운 썩은 나뭇가지 파수꾼을 충원하느라 세준의 동굴로 나뭇가지 정찰병을 보내지 못한 것이었다.
챙!
세준이 단검과 손도끼를 부딪쳐 불꽃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만든 불꽃을 썩은 나뭇가지에 던졌다. 많이 자랐지만, 다시 태우면 그만이다. 오히려 편하게 경험치를 얻을 기회이니 고마웠다.
화르륵.
세준의 불꽃이 썩은 나뭇가지를 태우기 시작했다.
[타락한 엔트의 썩은 나뭇가지 파수꾼을 처치했습니다.]
[경험치 10을 획득했습니다.]
...
..
.
뺙!
부웅!
꾸엥!
후웅!
엄마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 대신에 흑토끼와 꾸엥이가 바람을 만들어줬다. 둘은 꿀젤리를 꾸준히 먹고 마력 관련 재능을 강화한 상태. 충분히 강한 바람을 만들었다.
화르르륵.
둘의 도움으로 불은 빠르게 커졌고 덕분에 세준의 경험치는 빼르게 쌓여갔다.
그렇게 세준이 경험치를 얻고 있을 때 서쪽 숲 안에서 노랑색 꽃들이 걸어 나왔다.
[타락한 엔트의 끈끈이꽃 공격병]
퉷!퉷!
끈끈이꽃 공격병들이 끈끈이를 뱉어 불을 끄기 시작했다.
"그렇게 둘 수는 없지."
퍽!
세준이 손도끼로 끈끈이 꽃 공격병의 머리를 맞췄다.
[타락한 엔트의 끈끈이꽃 공격병을 처치했습니다.]
[경험치 1200을 획득했습니다.]
쏠쏠한 경험치를 주는 몬스터의 등장이었다.
"얘들아, 공격해!"
화르륵.
자신의 보조만 하게 해서 미안했던 세준이 불을 좌우로 움직여 흑토끼와 꾸엥이에게 끈끈이꽃 공격병까지 가는 길을 만들어줬다.
뺙!
꾸엥!
흑토끼와 꾸엥이 세준이 만든 길을 따라 달렸다.
그리고
뾱!뾱!뾱!
퍽!
끈끈이꽃 공격병들을 처치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전투가 계속되고 있을 때
[레벨업 했습니다.]
[보너스 스탯 1을 획득했습니다.]
[친화의 불꽃이 사그라듭니다.]
세준의 레벨업과 동시에 불꽃이의 친화의 불꽃 버프가 끝났다.
"튀자!"
세준과 동물들이 서둘러 도망쳤다.
세준이 떠난 자리.
우오오오오!
자신의 파수꾼들이 사라진 것에 분노한 타락한 엔트의 포효가 서쪽 숲에 울려 퍼졌다.
***
탑 67층.
"타릭 님,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리자드맨 대전사 타무로가 타릭을 크게 반겼다.
타릭은 거대 상단인 차우 상단의 주인. 그런 타무로가 직접 여기까지 와주니 타무로는 너무 기뻤다.
"타무로 님, 저의 자그마한 성의입니다. 받아주십시오."
타릭이 타무로에게 '10000'이라고 새겨진 검은 패 하나를 건넸다. 차우 상단에 가면 언제든지 1만 탑코인 받을 수 있는 수표였다.
"아니. 이렇게까지..."
곤란한 목소리와 다르게 타무로는 타릭이 건네는 패를 자신의 갑옷 사이에 넣었다.
"타무로 님, 저희끼리 나가서 로커스트 사체를 수거하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그럼요. 멧돼지족이면 전투도 가능하지 않습니까. 그래 주시면 저희야 편하죠."
"감사합니다. 가자."
타릭이 자신을 따라온 유랑 상인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가 10시간 만에 돌아왔다.
나간 시간에 비해 밖에 있는 레드 로커스트 사체의 양에 큰 차이가 없었지만, 타무로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
탑 75층 상점 구역.
"급하다냥!"
테오가 뽑기를 하러 대장간으로 달려갔다. 아무리 급해도 세준이 시킨 건 해야 했다.
일을 빨리 처리하고 떠나기 위해 일행들을 상점 구역의 입구에서 기다리게 했다.
그렇게 대장간에 도착한 테오. 뽑기권을 구매하기 전 일단 뽑기 코너를 살펴봤다. 뽑을 게 있는지 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끌림이 없다냥."
앞발을 끄는 아이템이 없었다. 테오는 빈손으로 대장간을 나왔다.
그리고 일행이 기다리는 상점 구역 입구로 되돌아가는 길.
"쀼쀼!"
테오의 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건?!'
테오가 서둘러 걸음을 멈추고 소리가 난 곳을 바라보자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며 정신없이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는 이오나가 보였다.
'휴우. 아직 늦지 않았다냥.'
테오는 자신의 경쟁자가 눈앞에 있는 것을 보며 안도했다. 세준의 무릎은 안전했다.
"푸후훗. 빨리 먼저 올라가야겠다냥!"
테오가 웃으며 빨리 떠나려 했지만
"쀼쀼! 어딨어요?!"
"냐앙..."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고민이 됐다. 빨리 세준의 포근한 무릎에 앉아 츄르를 받아 먹어야 하는데 간절하게 누군가를 찾고 있는 이오나를 내버려 두고 떠날 수는 없었다.
"이오나! 무슨 일이냥?!"
테오가 결국 이오나를 돕기로 했다.
"테 대표님, 도와주세요! 제 제자 쀼쀼가 사라졌어요!"
이오나는 테오가 나타나자 테오에게 자신의 상황을 설명했다.
"쀼쀼? 어떻게 생겼냥?!"
"붉은 리본에 왕안경을 낀 백토끼에요."
"알겠다냥! 내가 부하들을 시켜 돕겠다냥! 여럿이 찾으면 더 빠를거다냥!"
테오가 서둘러 상점 구역 입구로 달려갔다.
"너희들은 이오나를 도와 쀼쀼라는 붉은 리본에 왕안경을 쓴 백토끼를 찾아라냥!"
"네!"
늑대들과 인턴들이 흩어져 쀼쀼를 찾기 시작했다.
그때
"테오 님, 안녕하세요."
주변을 순찰하고 있던 비밀감찰국 요원 제라스가 테오를 보며 반갑게 인사했다. 요즘 빠르게 늘어나는 테오의 판매 금액을 보면서 천재 상인을 알아본 자신의 안목에 뿌듯함을 느끼고 있는 제라스였다.
"오! 제라스! 도와달라냥! 쀼쀼라는 백토끼를 찾고 있다냥!"
빨리 쀼쀼를 찾아 탑 99층으로 가고 싶은 테오가 다짜고짜 제라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손 하나가 아쉬운 상황이었다.
"쀼쀼요?"
"그렇다냥! 빨리 같이 찾자냥!"
테오가 제라스를 끌고 갔고 얼떨결에 제라스는 자신의 임무인 비밀 순찰을 내팽개치고 쀼쀼를 찾는 일을 함께하게 됐다.
하지만 몇 시간이 지나도록 쀼쀼를 찾을 수 없었다.
'빨리 박세준의 무릎에 앉고 싶다냥.'
테오가 세준의 무릎을 그리워하고 있을 때
찌릿.
테오의 앞발이 발동했다. 강력한 끌림.
척.
전혀 모르는 유랑 상인의 봇짐에 테오가 자신의 앞발을 올렸다.
"뭐야?!"
유랑 상인이 감히 자신의 봇짐을 건드린 상대를 향해 눈을 부라렸다.
그리고
"어?!"
"너는?!"
테오와 스카람이 눈을 마주쳤다.
82화. 우리는 하나다!
82화. 우리는 하나다!
"오늘은 호구 하나 안 지나가려나?"
스카람은 평소처럼 건물 구석에 숨어 사기를 칠 새로운 사냥감을 찾았다.
그때
쀼쀼~쀼쀼~
뭐가 그렇게 신나는지 경쾌한 발걸음으로 노래를 부르며 스카람의 앞을 지나가는 백토끼 한 마리.
'뭐야 토끼잖아···'
스카람이 다시 시선을 돌려 사냥감을 찾으려 할 때
'저게 뭐지?'
백토끼가 귀에 착용한 붉은 리본이 스카람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리본에 그려진 초승달과 토끼. 이제는 사라진 레드리본 왕가의 상징이었다.
그리고
'설마?!'
스카람의 머릿속을 스치는 아이템 하나.
'레드리본?!'
분명 대지주 그리드가 암흑 협회에 포상금을 걸고 찾고 있는 아이템 레드리본이 분명했다.
'크크큭. 오늘은 운이 좋군.'
스카람이 씨익 웃으며 후드를 써 얼굴을 가리고 백토끼를 뒤따랐다.
그리고
훅.
기회를 엿보다가 백토끼가 한적한 곳을 지나가자 자신의 독침으로 쏴서 기절시켰다.
쀼우우...
털썩.
백토끼가 의식을 잃으며 쓰러졌다.
"크크큭."
스카람이 웃으며 다가와 기절한 백토끼를 자신의 봇짐에 담았다.
레드리본만 챙기고 여기서 백토끼를 처리하기에는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길 수 있기에 스카람은 백토끼까지 함께 그리드에게 넘겨 깔끔하게 처리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스카람이 봇짐을 메고 상점 구역을 벗어나고 있을 때
척.
누군가 자신의 봇짐에 손을 올렸다.
"뭐야?!"
스카람이 감히 자신의 봇짐을 건드리는 놈을 노려봤다.
그리고
"너는?!"
자신이 등쳐먹었던 호구 고객 테오와 눈을 마주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