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화. 풍요의 수확제를 열어라.(2)
"어디서 나머지 농작물을 구하지?"
세준이 남은 당근을 수확하면서 생각하고 있을 때
쀼쀼!
뺘아!
뺘압!
삐릭!
소식을 들은 다른 토끼들도 레드리본의 거대 당근 제단 앞으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세준 님이라면 할 수 있을 거야!'
'세준 님은 할 수 있어요!'
'당신을 믿어요! 세준 님!'
토끼들이 기대하는 눈빛으로 세준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글이글.
뒤통수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시선. 세준은 차마 뒤를 볼 수 없었다.
'부담스럽다.'
이곳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아그작.아그작.
[민첩의 당근을 섭취했습니다.]
[지방 30g을 분해해 10분간 민첩이 0.5 상승합니다.]
그래서 세준은 작업 속도를 올리기 위해 민첩 스탯을 올려주는 당근을 먹으면서 당근을 수확했다. 덕분에 당근 1만 5000개를 2시간 만에 전부 수확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그리고 서둘러 거대 당근 제단이 있는 당근밭을 벗어나 다른 농작물들을 확인했다.
하지만 체력의 옥수수, 폭발하는 체력의 옥수수, 파인애플은 아직 꽃도 피지 않은 상태였다.
"어쩌지?"
거대 당근 제단을 아련하게 바라보는 토끼들을 위해서 세준은 꼭 풍요의 수확제를 개최해 주고 싶었다.
그때
"아!"
세준이 엔트들을 떠올렸다. 엔트의 씨앗이라면 먹을 수도 있으니 농작물로 취급해줄지 몰랐다. 거기다 수도 늘어났다고 했으니 정화의 씨앗 100개 정도는 금방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꾸엥아!"
꾸엥!
세준의 부름에 꾸엥이가 달려왔다.
"서쪽 숲으로 가자!"
꾸엥!
세준의 말에 꾸엥이가 거대화를 했다. 그사이 꾸엥이는 또 커져 키가 15m를 넘어가고 있었다.
덥썩.
꾸엥이가 세준을 들어 자신의 머리 위로 올리고 네 발로 달릴 자세를 취했다.
"박 회장, 빨리 앉아라냥. 떨어진다."
"응."
무릎에 매달려 있던 테오의 말에 세준이 꾸엥이의 등에 앉자 테오도 세준의 무릎에 누웠다.
그리고
"까달라냥!"
조용히 츄르를 내미는 테오. 세준을 앉게 한 속셈이 있었다.
부욱.
"자."
세준이 츄르를 까서 테오에게 주자
촵촵촵.
테오가 열심히 츄르를 핥아먹기 시작했다.
하지만
꾸엥!
[나도 먹을 거 먹고 싶다요!]
츄르를 먹는 테오 때문에 식탐 대장 꾸엥이도 먹을 거를 요구했다.
"꾸엥이는 도착하면 꿀 줄게. 알았지?"
꾸엥!
[알았다요!]
쿵.쿵.
꾸엥이가 네 발로 서쪽 숲을 향해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빨리 도착해 꿀을 먹겠다는 일념으로 가득한 꾸엥이 덕분에 출발한 지 20분 만에 서쪽 숲에 도착했다.
서쪽 숲의 중앙은 아직도 이오나의 마법인 아발라체로 만들어진 얼음벽에 갇혀 있었다.
하지만
"와. 이게 다 뭐야?"
세준이 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서쪽 숲 초입을 보며 놀랐다. 황무지였던 곳에 녹색 잔디들이 자라나고 있었다.
그리고
뿌득.뿌득.
뿌드득.뿌드득.
서쪽 숲을 돌아다니는 크고 작은 엔트들. 세준이 없던 며칠 사이에 엔트의 수가 엄청나게 늘어나 있었다. 거의 1000마리 정도.
우적우적.
엔트들이 아직도 많이 남은 나무들을 먹고 있었다.
그렇게 세준이 엔트들을 구경하고 있을 때
꾸엥!
다시 작아진 꾸엥이가 자신의 빈 유리병을 꺼내며 세준을 불렀다.
"알았어."
철컹.
꾸엥이에게 빈 유리병을 받은 세준이 아공간 창고를 열고 빈 유리병을 넣고 꿀이 가득 찬 유리병을 꺼냈다.
"자. 여기."
꾸엥!
새 꿀을 받은 꾸엥이가 환호하며 서둘러 유리병을 열고 꿀을 찍어 먹기 시작했다.
그때
뿌드득.뿌드득.
엔트들 중 가장 거대한 5m 크기의 엔트가 다가왔다. 가장 먼저 태어난 강력한 정화의 엔트였다.
척.
강력한 정화의 엔트가 세준의 어깨에 나뭇가지를 올리고
[세준...님...우리...괴롭히는...불이 있습니다.]
자신들을 괴롭히는 불에 대해 이르기 시작했다.
"불?"
그러고 보니 엔트들의 몸 여기저기 불에 탄 흔적들이 있었다.
"알았어. 그 불이라는 게 다음에 또 나타나면 말해줘. 그리고 너희 씨앗이 100개 정도 필요한데."
[알았...습니다...]
잠시 후
뿌득.뿌득.
머리에 하얀색 씨앗이 맺힌 어린 엔트들이 세준에게 와서 머리를 내밀었다.
[씨앗...따..줘...]
"응."
똑.
세준이 엔트의 머리에 난 씨앗을 따주자
[정화의 엔트의 씨앗을 얻었습니다.]
[직업 경험치가 조금 상승합니다.]
[채종하기 Lv. 3의 숙련도가 크게 상승합니다.]
[고..마워...요...]
세준에게 감사를 표하고 다시 돌아가서 나무를 먹는 엔트였다.
그렇게 두 시간 정도가 지나자 정화의 씨앗을 98개 모을 수 있었다.
"남은 하나는 뭐로 하지?"
세준이 씨앗이 맺힌 엔트들을 기다리며 거대 당근 제단에 바칠 농작물을 고민하고 있을 때
뿌득.뿌득.
뿌드득.뿌드득.
엔트들이 바닥에 떨어진 나뭇가지를 주워들며 분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준에게 다가오는 강력한 정화의 엔트
"갑자기 무슨 일이야?"
세준이 강력한 정화의 엔트의 몸에 손을 올리며 물었다.
[불이...왔습니다.]
키에에엑!
동시에 남쪽방향에서 괴성이 들려왔다.
"테오, 꾸엥아 가보자."
"알겠다냥!"
꾸엥!
혼자 가기는 불안한 세준이 테오와 꾸엥이를 보디가드로 데리고 엔트들을 따라 남쪽으로 이동했다.
키에에엑!
이동하는 내내 괴성이 계속 들려왔다.
"얘들아. 우리 좀 붙을까?"
"좋다냥!"
꾸엥!
겁이 난 세준이 꾸엥이와 테오를 자신에게 밀착시키며 이동했다.
그렇게 세준이 괴성이 들리는 엔트들의 대열 가장 앞에 도착하자
"불개미?"
1m 크기의 붉은색 개미 100마리와 싸우는 엔트들을 볼 수 있었다. 싸움은 엔트들의 일방적인 열세였다.
대부분의 어린 엔트들은 크기가 1m보다 훨씬 작았고
키에에엑!
콰드득.
붉은 개미들은 자신의 큰 몸으로 엔트를 제압한 후 강력한 턱으로 엔트들의 몸체를 잘라버렸다.
그때
뿌드득.뿌드득.
거대한 엔트들이 붉은 개미들을 막기 위해 다가가자 붉은 개미들이 두 더듬이에서 화염방사기처럼 불을 뿜어내 엔트들을 공격했다.
화르르륵.
붉은 개미들이 더듬이에서 뿜어내는 불에 엔트들의 몸이 불타기 시작했다.
"먹구름 만들기! 비 내리기!"
쏴아아.
세준이 서둘러 비를 내려 엔트들의 몸에 붙은 불을 껐다.
푸슈슉.
"이것들은 어디서 나타난 거야?"
이놈의 탑 99층은 새로운 뭔가가 계속 나타난다.
"휴우. 얼마나 죽은 거야..."
전투를 보니 원래 엔트들의 수가 지금보다 훨씬 더 많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엔트들이 개미들의 공격에 죽은 것이다.
"애들아! 공격해!"
"나와라! 개론!"
꾸엥!
세준의 지시에 동물들이 붉은 개미를 공격했다.
개골!
테오의 발밑이 검은 늪으로 변하더니 크기 30m의 개론이 나타났다.
그리고
고오오오.
세준이 내리는 비를 입으로 빨아들이더니
-수압포!
후우욱.
개미들을 향해 뿜어냈다.
촤아아악!
개론이 뿜어내는 물의 위력은 바위도 관통할 정도의 엄청난 위력이었지만, 개미들의 외피는 개론의 공격을 어렵지 않게 버텨냈다.
대신 수압을 버티지 못한 내부가 먼저 파괴되기 시작했다.
[파수꾼 테오의 노예 벌레사냥꾼 개론이 불개미 일꾼을 처치했습니다.]
[파수꾼 테오가 노예 벌레사냥꾼 개론이 획득한 경험치의 90%를 획득합니다.]
[파수꾼 테오가 획득한 경험치의 50%인 450을 획득했습니다.]
...
..
.
꾸엥!
거기다 거대하게 변신한 꾸엥이가 불개미 일꾼들을 밟아 죽이기 시작하자 싸움은 금세 끝나버렸다.
세준이 불개미 일꾼의 외피를 살펴봤다. 개론의 공격에도 버티는 걸 보니 흥미가 생겼다. 물론 꾸엥이의 발길질에는 가루가 돼버렸지만.
팅.
디잉.
단검으로 강하게 찌르자 외피가 조금 찌그러지면서 외피가 진동했다. 충격을 주변으로 퍼트리는 것 같았다.
"이거 쓸만하겠는데?"
방어구로 만들면 괜찮을 것 같았다.
"몇 개 챙겨봐야지."
세준이 불개미 일꾼 사체 몇 구를 아공간 창고에 담았다.
전투가 끝나고
"비 내리기!"
세준은 불개미 일꾼들이 쉽게 다가오지 못하도록 꾸엥이에게 땅을 파게 해 긴 웅덩이를 만들었다. 아까 비를 내릴 때 보니 불개미 일꾼들이 물이 몸에 닿는 걸 꺼리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웅덩이를 만들고 세준이 돌아가니
부드득.뿌드득.
[세준 님...씨앗...따줘...]
크기 2m의 엔트가 자신의 머리에 난 씨앗 5개를 따달라고 다가왔다. 아까 세준이 화염에서 구해준 엔트였다.
스륵.스륵.
나뭇가지로 세준의 몸을 간질이는 것이 뭔가 애교를 부리는 것 같았다.
퍽!
"허튼수작 부리지 말라냥!"
테오가 엔트를 경계하며 엔트의 나뭇가지를 향해 펀치를 날렸다.
찰싹.
그러자 다른 나뭇가지 팔로 테오를 때리는 엔트.
"하악! 감히 나 테 사장을 건드렸냥?! 승부다냥!"
팔짝.
분노한 테오가 나뭇가지를 향해 점프했지만
부웅.
나뭇가지를 크게 움직이며 피하는 엔트.
"냐앙!"
파바박.
테오가 더욱 열심히 나뭇가지를 쫓아 움직였다.
부웅.부웅.
엔트가 나뭇가지를 이리 한 번 저리 한 번 크게 움직이며 테오의 앞발을 피했다. 결국 낚여버린 테오는 혼자 열심히 뛰어다녔다.
똑.
[정화의 엔트의 씨앗 5개를 얻었습니다.]
[직업 경험치가 조금 상승합니다.]
[채종하기 Lv. 3의 숙련도가 크게 상승합니다.]
[채종하기 Lv. 3 숙련도가 채워져 레벨이 상승합니다.]
그사이 세준이 엔트의 머리에서 씨앗 5개를 수확하며 채종하기 스킬 레벌이 4로 올렸다.
그리고
-낮은 확률로 채종할 때 얻는 씨앗의 수가 2~5배 증가합니다.
4레벨이 된 채종하기 스킬에 새로운 효과가 추가됐다.
"이제 가자."
"좋은 승부였다냥! 다음에 보자냥!"
엔트에게 농락당했지만, 아는지 모르는지 테오의 표정은 아주 만족스러웠다.
"이제 하나만 더 구하면 된다."
세준이 집으로 돌아가면서 생각에 잠겼다. 돌아갈 때는 꾸엥이도 급할 게 없기에 천천히 이동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가자
뺙!
쀼쀼!
세준을 기다리고 있던 흑토끼와 쀼쀼가 어디 갔다 왔냐며 세준에게 화를 냈다.
"아니...난 농작물 구하러 갔다왔지."
뺙?
[여기 농작물 10개가 다 있는데 어디를 가요?]
흑토끼가 답답해하며 말했다.
"10개가 다 있다고?!"
뺙!
흑토끼가 고개를 끄덕이며 세준을 당근밭으로 이끌었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라는 표정으로 세준이 흑토끼를 따라갔다. 그리고 거대 당근 제단 앞에 놓인 농작물들.
"어?! 이건?!"
농작물 중에 못보던 게 2개 있었다. 빨갛게 잘 익은 딸기와 반질반질한 녹색 광택의 청양고추였다.
"아! 이걸 왜 못 봤지?!"
세준은 그제야 조난 215일 차인 5번째 씨앗 상점이 열렸을 때 당근 씨앗 2만 개와 함께 딸기와 청양고추 씨앗을 100개씩 산 것이 기억났다.
뺙!
"뭐? 옥수수에 가려져 있었다고? 그랬군."
왜 딸기와 청양고추를 발견하지 못했냐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쓰읍."
딸기를 보는 것만으로 입에 침이 고였다. 맛을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했지만, 뒤에서 세준을 감시하는 토끼들의 따가운 시선 때문에 차마 먹을 수는 없었다.
'그래. 일단 이게 먼저지."
세준이 정신을 차리고 거대 당근 제단에 다가가 손을 올리자
[레드리본의 거대 당근 제단에 농작물을 바치시겠습니까?]
"네."
세준의 대답과 함께 거대 당근 제단으로 농작물들이 한 종류씩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준의 앞에 나타나는 알람.
[1가지 농장물이 100개 바쳐졌습니다.]
[2가지 농장물이 100개씩 바쳐졌습니다.]
...
..
.
[10가지 농작물이 100개씩 바쳐졌습니다.]
[퀘스트가 완료됐습니다.]
[퀘스트 완료 보상으로 풍요의 수확제가 개최됩니다.]
[레드리본의 거대 당근 제단이 풍요의 수확제를 즐길 토끼족을 무작위로 1000마리 소환합니다.]
[레드리본의 거대 당근 제단이 있는 층 전체에 풍요의 축복이 내려집니다.]
[퀘스트 완료 보상으로 직업 스킬 - 농작물 거대화 Lv. 1을 획득했습니다.]
드디어 풍요의 수확제가 개최됐다.
삐익!
뺘아!
뺙!
쀼쀼!
세준이 토끼들이 환호하는 것을 구경하고 있을 때
"어?!"
세준이 주머니에 넣어뒀던 엔트의 씨앗들이 거대 당근 제단으로 빨려들어갔다.
[11가지 농작물이 100개씩 바쳐졌습니다.]
[풍요의 수확제가 풍요와 마나가 넘치는 수확제로 강화됩니다.]
99화. 수확제가 열리다(1)
99화. 수확제가 열리다.(1)
[레드리본의 거대 당근 제단이 있는 층 전체에 마력의 축복이 추가로 내려집니다.]
파앗.파앗.
메시지가 끝남과 동시에 거대 당근 제단이 하늘로 떠오르며 주변을 향해 녹색과 푸른색의 빛이 연속으로 폭발하며 층 전체로 빛이 퍼져나갔다.
그리고 어느새 거대 당근 제단 밑에 나타난 1000마리의 토끼들.
뾰오...?
뿌우...?
빼액?
갑자기 소환된 1000마리의 토끼들이 주변을 둘러보며 어리둥절해하고 있을 때
쀼쀼!
삐익!
뺘아!
뺙!
탑 99층의 토끼들이 소환된 토끼들을 보며 환호했다.
하지만 환호는 오래가지 못했다. 소환된 토끼들의 상태가 너무 나빴기 때문. 잘 먹지 못해 영양실조에 걸린 건지 삐쩍 마르고 몸의 중간중간 탈모까지 있었다.
"일단 이거라도 먹고 있어."
세준이 아공간 창고에서 몇 시간 전에 수확한 햇당근을 꺼내 소환된 토끼들에게 건넸다.
뾰옥?!
뿌우?!
빼액?!
당근을 보자마자 놀라는 토끼들. 그들은 몇십 년 만에 보는 당근에 울음을 터트렸고 탑 99층의 토끼들이 그들을 달랬다. 오랫동안 고생을 한 것 같았다.
잠시 후
삐익?
뾰옥?
토끼들은 곧 서로의 근황을 묻기 시작했다.
"집으로 가자."
"알겠다냥!"
꾸엥!
세준이 테오와 꾸엥이를 데리고 집으로 갔다. 토끼들이 얘기를 나눌 동안 토끼들이 저녁으로 먹을 당근수프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집에 도착한 세준이 취사장으로 가서 대형 냄비에 재료들을 넣고 수프가 완성되기를 기다리며 새로 얻은 스킬을 확인했다.
[직업 스킬 - 농작물 거대화 Lv. 1]
-C급 이하 농작물의 힘을 강제로 성장에 집중시켜 거대하게 만듭니다.
-농작물의 등급에 따라 거대화되는 정도가 다릅니다.(C급 5배, D급 3배, E급 2배, F급 1.2배)
"흐음."
나중에 에일린이나 엄마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에게 농작물을 줄 때 사용하면 좋은 스킬 같았다.
아무래도 커지면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으니까. 아니면 식량이 모자랄 때 쓰거나?
세준은 이어서 축복들을 확인했다. 불꽃이의 불꽃 버프나 축복 같은 것들은 상태창의 이름 옆에 표시된다.
[박세준 Lv. 50 - 풍요의 축복, 마력의 축복]
세준이 풍요의 축복을 누르자 풍요의 축복에 대한 정보가 나타났다.
[풍요의 축복 - 남은 시간 : 6일 23시간]
-수확제의 개최자 탑농부 박세준이 허락한 존재에게만 축복이 내려집니다.
-수확제가 열리는 동안 탑 99층에 풍요가 증가합니다.
-농작물의 성장 속도가 빨라집니다.
-번식 활동을 하면 새 생명을 잉태할 가능성이 커집니다.
"음."
농작물의 성장 속도가 빨라지는 건 환영할만한 일이지만, 번식 활동을 하면 새 생명이 잉태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니...
"당분간 다른 데서 잘까?"
동굴 안이 토끼들 때문에 시끄러워질 것 같았다.
세준은 이어서 마력의 축복도 확인했다.
[마력의 축복 - 남은 시간 : 6일 23시간]
-수확제의 개최자 탑농부 박세준이 허락한 존재에게만 축복이 내려집니다.
-수확제가 열리는 동안 탑 99층의 마력 농도가 짙어집니다.
-마력 회복 속도가 빨라집니다.
-마력의 위력이 상승합니다.
"흠."
마력의 축복은 이오나나 다른 동물들이라면 몰라도 세준과는 큰 연관이 없었다. 먹구름 만들기와 비 내리기 효과가 상승하기는 하겠지만, 그다지 쓸데가 없었다.
'불개미들이 넘어오지 못하게 웅덩이나 더 크게 만들까?'
세준이 마력의 축복을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할 때
쀼쀼!
삐익!
뾰옥!
뺙!
토끼들이 우르르 도착해 세준의 앞에 질서 있게 줄을 섰고 배식이 시작됐다. 하지만 토끼들의 수가 너무 많아 수프를 담을 그릇이 부족했다.
"테오랑 꾸엥이는 그릇 좀 만들어."
"알겠다냥!"
꾸엥!
세준의 지시에 테오가 적당한 크기로 나무를 자르면 꾸엥이가 아이스크림 푸듯이 나무의 안을 팠다.
그리고 탑 99층의 회색토끼 3마리와 소환된 회색토끼들이 그릇 안의 거친 부분을 사포질로 마감하며 빠르게 수프를 담을 그릇을 만들었다.
덕분에 1000마리 토끼들은 각자 자신의 그릇을 들고 편하게 식사를 했다.
그렇게 식사가 끝나고
"자 이제 후식을 먹어볼까!"
세준이 거대 당근 제단에 바치고 남은 딸기를 씻었다.
"와!"
딸기를 입에 가까이 가져가자 딸기의 짙은 냄새가 세준의 마음을 흔들었다.
츄릅.
결국 유혹을 참지 못한 세준이 딸기를 한 입 베어 물자 딸기 특유의 풍미와 함께 설탕처럼 달달한 맛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행운의 딸기를 섭취했습니다.]
[1시간 동안 행운이 상승합니다.]
"행운?"
세준은 딸기를 먹을 생각에 옵션도 확인하지 않았다는 걸 깨닫고 뒤늦게 옵션을 확인했다.
[행운의 딸기]
탑 안에서 자란 딸기로 영양을 충분히 섭취해 맛있습니다.
농사에 익숙한 농부가 재배해 맛과 효율이 좋아졌습니다.
섭취 시 1시간 동안 행운이 상승합니다.
재배자 : 탑농부 박세준
유통기한 : 90일
등급 : C
'행운이 올라가면 어떻게 좋은 거지?"
옵션이 너무 애매했다. 세준은 그냥 맛있는 딸기를 먹은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세준은 생각난 김에 아공간 창고에 있는 청양고추도 확인했다.
[차분함의 청양고추]
탑 안에서 자란 청양고추로 영양을 충분히 섭취해 맛있습니다.
농사에 익숙한 농부가 재배해 맛과 효율이 좋아졌습니다.
섭취 시 1시간 동안 마음이 차분해집니다.
재배자 : 탑농부 박세준
유통기한 : 90일
등급 : C
"마음이 차분해진다고? 이것도 애매하네."
츄릅.
꾸엥!
세준이 딸기를 씻으면서 몰래 먹다 꾸엥이에게 걸렸다.
그리고 세준이 꾸엥이의 입에 딸기 5개를 넣어주며 공범으로 만들었다.
"자. 이제 너도 먹었으니까. 우린 공범이야. 다른 동물들에게 말하며 안돼. 알았지?"
꾸엥!
세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꾸엥이. 꾸엥이를 공범으로 만든 덕분에 다행히 토끼들에게 딸기를 미리 먹은 걸 들키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읏차."
세준이 눈을 뜨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자
"아직 더 자라냥."
테오가 세준의 무릎에 매달려 더 자라고 칭얼거렸다. 하지만 가볍게 무시해줬다.
그때
"뀻뀻뀻-세준 님, 좋은 아침이요!"
세준의 무릎 위에서 테오의 꼬리를 덮고 꿀잠을 잔 이오나가 기분 좋게 기지개를 켜며 세준에게 인사했다."
"그래. 좋은 아침."
슥.
세준이 이오나의 인사에 대답하며 벽에 회 하나를 추가하고 조난 265일 차 아침을 시작했다.
"으으!"
세준이 기지개를 켜며 밖으로 나오자
"어?!"
멀리 거대 당근 제단 밑에 못 보던 건물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곳을 기웃거리고 있는 동물들.
"뭐지?"
"뀻뀻뀻. 수확제에만 오는 너구리족의 시장이에요! 빨리 구경해요!"
"그래?!"
이오나의 말에 솔깃한 세준이 서둘러 시장에 다가가자 5개의 노점상이 보였다. 음식을 파는 노점들인지 다가갈수록 맛있는 냄새가 세준의 코를 자극했다.
그때
"어허! 이미 시식을 10번이나 시켜줬잖아. 그거면 벌써 2인분이야."
꾸엥!
음식을 파는 노점 앞에서 먹을 걸 달라고 떼쓰는 꾸엥이가 보였다.
꾸엥이 녀석, 내가 매일 배불리 먹이는데 여기서 이러고 있으면 어떡하니. 누가 보면 내가 너 굶기는 줄 알겠다.
"크흠. 꾸엥아."
세준이 민망해하며 꾸엥이를 불렀다.
꾸엥!꾸엥!
세준의 등장에 꾸엥이가 천군만마를 얻은 것처럼 기뻐했다. 우리 아빠 돈 많다요! 부자다요!
"오! 아버님이십니까? 자자 더 먹어!"
노점상 주인이 돈을 내줄 물주가 나타나자 꾸엥이에게 다시 음식을 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
덥석.
노점상 주인이 꾸엥이에게 건네는 뽀얗고 탱탱하게 출렁거리는 음식을 보며 세준은 자신도 모르게 손을 내밀어 잡았다.
말캉.
촉감까지 자신이 아는 그것과 같았다.
"가래떡이라니..."
자신의 손에 들린 영롱한 백색의 가래떡. 세준이 감격하며 가래떡을 입에 넣었다.
쫀득쫀득.
"으음."
기대했던 식감 그대로였다. 그리고 씹으면 씹을수록 퍼져나오는 완벽한 쌀의 맛을 음미하고 있을 때
꾸엥!
꾸엥이도 노점 주인에게 새로운 떡을 받아 맛있게 먹었다. 그렇게 꾸엥이가 가래떡 20개를 2분 만에 먹었을 때
딸칵.
옆에서 들리는 유리병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꾸엥?
유리병 여는 소리는 꿀을 먹을 때라는 공식이 입력된 꾸엥이가 고개를 돌리자
푹.
가래떡에 꿀을 찍어 먹는 세준이 보였다.
꾸엥!
꾸엥이도 세준을 따라 가래떡에 꿀을 듬뿍 찍어 입에 넣었다.
꾸엥!!!
꿀을 찍은 것만으로 가래떡은 완전히 새로운 음식이 돼버렸다.
그리고
"가래떡 다 살게요!"
세준이 노점상의 가래떡을 모두 사버렸다.
"깎아달라냥!"
테오에게 노점상 주인과의 흥정을 맡기고 세준이 다른 노점상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와!"
세준이 노점상에서 파는 음식들을 보며 감탄했다. 다른 3개의 노점상들은 호밀빵, 맥주, 치즈를 팔았다.
"다 살게요!"
세준이 4개의 노점상의 물건을 전부 사버려 강제 퇴근을 시키고 마지막 노점상 앞으로 갔다. 그곳은 진열대에 올려둔 물건이 아무것도 없었다.
"여기는 뭘 파는 곳이죠?"
"여기는 씨앗을 파는 곳입니다. 자 보시죠."
늙은 너구리족 주인이 씨앗 1개를 조심스럽게 꺼내며 말했다.
'달랑 1개?'
세준이 씨앗을 살폈다.
[오색 콩 씨앗]
"얼마죠?"
"1만 탑코인입니다."
씨앗 하나의 가격으로는 너무 비쌌다. 하지만 비싸다고 생각하면서도 세준은 계속 오색 콩 씨앗을 바라봤다.
'사고 싶어.'
세준의 본능이 오색 콩 씨앗에 끌렸다.
그때
"박 회장, 다 샀다냥!"
테오가 때마침 거래를 마치고 자랑스럽게 세준의 무릎으로 돌아왔다.
"테오, 이거 어때? 끌려?"
세준이 테오를 들어 오색 콩 씨앗을 가리키며 물었다. 명품 탐지기인 테오의 황금앞발이면 믿을 수 있었다.
"냥! 강하게 끌린다냥!"
"그래?!"
테오의 말에 세준은 오색콩 씨앗을 구매하기로 했다.
"아까 얼마라고 하셨죠?"
"1만 탑코인입니다."
"음...여기 보면 씨앗에 기스도 있잖아요. 좀 깎아주시죠. "
"그건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이건요? 콩치고 크기가 너무 작지 않나요?"
세준이 온갖 구실을 대며 가격을 깎아보려고 했지만, 늙은 너구리는 절대 밀리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새 세준과 늙은 너구리족의 흥정을 구경하러 온 동물들과 다른 너구리족들. 세준과 늙은 너구리가 서로를 노려봤다.
'테오가 보고 있어! 반드시 깎아야 해!'
'깎아 줄 수 없다! 부하들이 보고 있다고!'
모두가 지켜보는 지금. 이제 수장으로서의 자존심이 걸린 일이 됐다.
그때
-이놈들! 수확제를 하면 나를 불러야지!
검은 용 조각상이 호통을 치며 날아왔다.
[탑의 관리자가 자신도 수확제를 즐기고 싶다고 말합니다.]
"잠깐만."
세준이 노점상에서 산 가래떡과 호밀빵, 치즈를 꿀과 함께 보냈다.
"꼭 가래떡에 꿀 찍어 먹어. 진짜 꿀맛이야. 알았지?"
[탑의 관리자가 알겠다고 말합니다.]
세준이 에일린에게 음식을 어떻게 먹어야 맛있는지 꿀맛 조합을 알려주고 있을 때
쾅!
-어서 술을 내놓아라!
"저...그게..."
카이저가 막걸리를 파는 노점상 앞에서 술을 내놓으라고 횡포를 부리고 있었다. 조각상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은 용의 기운에 너구리는 덜덜 떨며 차마 술이 떨어졌다고 대답하지 못했다.
"카이저 님, 술 여기 있습니다."
세준이 막걸리 통 하나를 통째로 카이저에게 건넸다.
-흥! 딱히 먹고 싶은 건 아니지만, 성의를 봐서 먹어주지.
방금까지 노점에서 술 내놓으라고 횡포 부리는 거 봤는데요?
세준의 눈빛을 읽었는지
콸콸콸.
-흥!
펄럭.펄럭.
카이저는 급하게 술을 입으로 모두 쏟아 붓고는 분수대로 다시 날아갔다.
"구해줘서 고맙습니다!"
늙은 너구리가 세준에게 다가와서 감사를 표했다. 검은 용 앞에서 말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세준이 너무 대단해 보였다.
"고마우면 5000탑코인으로 깎아줘요."
'역시 박 회장은 대단하다냥!'
상대의 위기를 이용해 가격을 후려치는 세준을 보며 테오가 큰 감명을 받았다.
100화. 수확제가 열리다.(2)
100화. 수확제가 열리다.(2)
"그냥 드리겠습니다."
"...?!"
세준은 오색 콩 씨앗을 흔쾌히 건네는 늙은 너구리에게 잠깐 당황했다. 열심히 줄다리기를 하는데 갑자기 상대방이 줄을 놓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훗. 박세준 이 천재 녀석. 테오에게 좀 더 깎는 걸 보여주려고 했는데...'
곧 자신의 거래 기술이 뛰어나서라고 생각했다.
세준이 혼자 자아도취에 빠져 있을 때
척.
세준의 뒤에서 이오나가 늙은 너구리를 보며 엄지를 올렸다.
'잘했어요.'
'저분이 위대한 검은 용이라는 걸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오나와 늙은 너구리가 서로 눈빛으로 대화를 나눴다.
"테 사장, 잘 봤지? 거래는 이렇게 하는 거야."
거래를 성공적으로 끝낸 세준이 우쭐해하며 테오에게 말했다.
"역시 박 화장은 위대하다냥!"
"훗. 뭐 위대한 거 까지는 아니고."
"아니다냥! 나는 지금까지 박 회장처럼 1만 탑코인을 깎는 훌륭한 상인을 보지 못했다냥! 앞으로 더욱 분발하겠다냥!"
"그래. 그래."
테오의 찬양에 기분이 좋아진 세준이 테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오색 콩 씨앗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때
"저..."
너구리 4마리가 세준에게 다가왔다.
"무슨 일이냐?!"
옆에 있던 늙은 너구리가 서둘러 물었다. 혹시라도 너구리들이 세준에게 실수할 수도 있으니 먼저 나선 것이다.
"에밀 장로님, 여기 이분이 가지신 꿀을 사고 싶어서요."
"이 꿀이라는 게 엄청나게 달콤합니다!"
"이걸 저희가 파는 음식과 함께 팔면 훨씬 더 많은 매출을 올릴 수 있을 겁니다!"
"바로 이겁니다."
너구리 중 하나가 작은 그릇에 담긴 꿀을 에밀에게 보여줬다. 가래떡을 꿀에 찍어 너무 맛있게 먹는 꾸엥이를 본 너구리들이 토끼들에게 사정해서 얻은 것이었다.
푹.
너구리들의 말에 꿀의 맛을 보기 위해 에밀이 자신의 품에서 가래떡 하나를 꺼내 꿀에 담갔다 꺼내자 가래떡이 꿀에 코팅되며 윤기가 흘렀다.
"오!"
더욱 먹음직스럽게 변한 가래떡을 보며 에밀이 꿀로 코팅된 가래떡을 자신의 입에 넣었다.
잠시 후
쫍.쫍.
"어?!"
어느새 가래떡을 다 먹고 정신없이 자신의 손가락에 묻은 꿀을 빨고 있는 에밀.
'이건 된다!'
에밀은 꿀에 대해 확신했다. 이건 무조건 팔리는 상품이었다. 에밀이 서둘러 세준을 봤다. 이곳의 주인은 세준. 그의 허락이 있어야 꿀을 사 갈 수 있다.
하지만 세준이 검은 용인 걸 알자 차마 세준에게 말을 걸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그래서 조금 전 자신을 도와준 이오나에게 다시 도움을 요청했다.
"뀻뀻뀻. 세준 님, 여기 에밀 님이 꿀을 사고 싶대요."
"냥?! 그럼 나한테 말해야지 왜 이오나한테 얘기하냥?!"
자신의 본업을 위협받자 테오가 예민하게 반응했다. 더군다나 방금 세준의 거래를 본 테오의 의욕은 만땅 상태.
"박 회장, 창고 문을 열어달라냥!"
"그래."
철컹
세준이 아공간 창고를 열자
"따라오라냥!"
테오가 너구리들을 데리고 아공간 창고로 들어갔다. 창고에 있는 꿀을 보여주며 거래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테오가 너구리들에게 꿀을 팔고 있을 때
[잠시 후 수확제의 첫 번째 대회인 당근 수확 대회가 시작됩니다.]
[레드리본의 거대 당근 제단 앞으로 와주세요.]
수확제의 행사를 알리는 메시지가 나타났다.
"당근 수확 대회?"
세준이 메시지를 보는 사이
우다다다.
토끼들이 거대 당근 제단으로 달려갔다. 세준만 메시지를 본 게 아니었다. 세준도 일단 토끼들을 따라갔다.
세준이 도착하자 거대 당근 제단 밑에는 주변이 붉은빛으로 둘러싸인 100평의 당근밭이 만들어져 있었고 토끼들이 당근밭 앞에 줄을 서 있었다.
"뭐지?"
분명 어제 수확을 끝냈기에 밭에는 당근이 없어야 하는데 당근 줄기가 상당히 자란 것이 바로 수확해도 될 정도였다.
그때 붉은빛이 녹색빛으로 변하자
삐익!
아빠 토끼가 당근밭으로 들어가 당근을 뽑기 시작했다.
[9:59 - 당근 1개]
당근밭 위에 시간이 나타나며 카운트되기 시작했다. 10분 동안 당근을 수확해 가장 많은 당근을 수확하면 이기는 대회였다.
다다다.
아빠 토끼가 당근 줄기를 잡고 앞으로 달리며 빠르게 당근을 수확했다. 역시 농사의 스페셜리스트. 8분쯤 지나자 아빠 토끼가 당근을 거의 다 수확했다.
"다 수확하면 끝나나?"
세준이 궁금해할 때 아빠 토끼가 당근 400개를 전부 수확하자
뾰뵤뵹!
다시 당근들이 일시에 나타났다. 그리고 다시 당근을 수확하는 아빠 토끼. 그렇게 제한 시간인 10분이 지나자 아빠 토끼가 당근밭 밖으로 순간이동했다.
그리고
[당근 수확 대회 랭킹]
1등 - 삐익이(480개)
아빠 토끼의 등수와 성적이 나타났다.
삐익!
아빠 토끼가 대회에서 얻은 48개의 당근 씨앗을 세준에게 건넸다. 수확한 당근은 얻을 수 없었지만, 당근을 10개 수확할 때마다 씨앗 1개를 줬다.
"오! 당근 씨앗을 주네?!"
세준이 환호했다. 이건 무조건 하면 이득인 대회였다. 세준도 서둘러 토끼들 뒤로 줄을 섰다.
그리고 드디어 세준의 차례가 됐다. 1등은 아직도 아빠 토끼였다.
"좋아! 1등은 이제 나야."
미리 당근수프까지 먹으며 민첩을 최대치로 올려놨기에 세준은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세준이 당근밭으로 들어가자
[대회의 공정성을 위해 수확제의 버프가 아닌 다른 버프는 해제됩니다.]
당근수프를 먹은 효과가 사라져버렸다.
"어쩔 수 없지."
지금은 불만을 가질 시간도 아까웠다.
쑥.쑥.
세준이 서둘러 양손으로 당근을 뽑으며 전진했다.
[당근을 수확했습니다.]
[직업 퀘스트 완료까지 7만 4501번 남았습니다.]
[직업 경험치가 아주 미세하게 상승합니다.]
[수확하기 Lv. 4의 숙련도가 아주 미세하게 상승합니다.]
경험치는 없었지만, 스킬 사용은 인정됐다. 덕분에 직업 케스트가 진행되고 직업 경험치와 스킬 숙련도도 상승했다.
그렇게 10분이 지나고 세준이 41개의 씨앗을 손에 쥐고 당근밭에서 밀려났다. 몰랐는데 400개를 수확하고 다시 생성되는 당근은 수확이 더 힘들었다.
"누구 빠진 동물 없나?"
대회에 참가한 세준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빠진 대회에 미참석한 동물이 없는지 살펴봤다.
그때
"어?!"
아직도 열심히 가래떡과 꿀을 먹느라 정신이 없는 꾸엥이와 거래를 끝내고 나오는 테오와 이오나 그리고 너구리들이 보였다.
"얘들아!"
세준이 서둘러 동물들을 불렀다.
"박 회장! 내가 꿀을 한 병당 50탑코인을 받고 100병을 팔기로 했다냥! 나 잘했냥?"
"그래. 잘했어."
가장 빨리 달려온 테오가 세준의 무릎에 매달리며 거래 결과를 보고했다.
"뀻뀻뀻."
테오의 꼬리에 매달려 따라온 이오나가 조용히 웃었다. 이제 테오도 그냥 그러려니 하고 있었다.
꾸엥!
꾸엥이도 달려와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세준의 다리에 몸을 비볐다. 오랜만에 맛있는 걸 먹어서 기분이 아주 좋았다.
그때
"부르셨습니까."
너구리들이 마지막으로 달려왔다.
"응?!"
세준은 테오, 이오나, 꾸엥이만 부른 것이지만, 너구리들이 오해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머릿수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기에 다시 보내지는 않았다.
"자. 들어가서 당근을 수확하면 돼. 알았지?"
"알겠다냥! 귀찮지만, 박회장이 시키니 하겠다냥!
"맡겨주세요!"
꾸엥!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렇게 동물들을 당근 수확 대회에 투입시킨 세준.
"테 사장, 왜 맨손으로 나와?"
"끌리는 게 없다냥...."
테오가 침울해하며 빈손으로 나왔다. 보물찾기로 오해한 모양이었다. 어차피 당근 수확은 테오의 분야가 아니었기에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잘했어."
세준이 귀가 축 처진 테오를 자신의 무릎에 장착하며 당근밭에 들어간 이오나를 바라봤다. 믿는다! 이오나!
"뀻뀻뀻. 역중력!"
이오나가 마법을 사용하자
쑤수숙.
400개의 당근이 순식간에 뽑혀 하늘로 떠올랐다.
뾰뵤뵹!
순식간에 당근들이 다시 나타났다.
"역중력!"
이오나가 다시 마법을 사용하자
뾰뵤뵹!
다시 당근이 뽑혔고 리젠되는 당근들.
"역중력!"
이때부터는 당근을 뽑는 것이 어려워지며 이오나도 조금씩 버거워하기 시작했다.
역중력 마법은 고차원의 마법이었다. 거기가 이오나가 자신의 마법 실력을 뽐내기 위해 당근 400개에 하나하나 쓰고 있었기에 정신력과 마력의 소모도 컸다.
마력의 축복이 있기에 이렇게 사용이 가능한 마법이었다.
'뀽-괜히 했어!'
이오나가 후회했다. 중간에 다른 마법으로 바꾸고 싶었지만, 그건 또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10분이 지나자
[당근 수확 대회 랭킹]
1등 - 이오나(2000개)
2등 - 삐익이(480개)
...
..
.
처음으로 1등이 바뀌었다.
"뀹뀹뀹."
이오나가 앓는 소리를 하며 테오의 꼬리를 덮고 잠을 자기 시작했다.
"꾸엥이는 1등 하면 꿀 10병 줄게."
당근밭으로 들어가는 꾸엥이에게 세준이 나름 꾸엥이의 의욕을 올리기 위해 1등 조건을 걸었다.
꾸엥!
세준의 말에 꾸엥이의 의욕이 불타올랐다. 꾸엥이가 당근밭의 중앙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꾸엥!
당근밭의 바닥을 전력으로 때렸다.
쩌저적.
꾸엥이가 때린 곳을 중심으로 땅이 접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쾅!
접힌 땅이 부딪히며 당근들이 튀어나왔다.
[9:55 - 당근 400개]
순식간에 올라가는 당근 숫자.
"우리 꾸엥이 천잰데?!"
세준이 꾸엥이의 천재성에 감탄하고 있을 때
뾰뵤뵹!
땅이 다시 원상복구 되며 당근들이 리젠됐다.
그리고
쾅!
다시 바닥을 때리는 꾸엥이.
그렇게 꾸엥이가 당근밭을 25번 갈아엎자 당근밭이 사라졌다.
"뭐지?"
세준이 시간을 확인하니 아직 3분이나 남아있었다.
꾸엥!
수확할 당근이 없자 꾸엥이가 당황했다. 내가 1등해야 된다요!
그때
[당근 수확 대회 랭킹]
1등 - 꾸엥이(1만 개)
1등 - 이오나(2000개)
2등 - 삐익이(480개)
...
..
.
꾸엥이가 1등으로 올라서며 랭킹이 갱신됐다.
그리고
[준비된 당근밭을 모두 소진하여 당근 수확 대회가 조기 종료됐습니다.]
대회가 끝났다. 당근밭 리젠에 제한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당근 수확 대회 1등, 2등, 3등에게 보상을 지급합니다.]
척.
꾸엥!
[아빠는 약하니까 이거 먹고 잘 피해야 한다요!]
꾸엥이가 자신이 보상으로 건넨 쭈글쭈글한 모양의 당근 5개를 세준에게 건네며 말했다. 딱 봐도 맛 없어 보였다.
"고마워."
이제 최약체 취급이 자연스러운 세준이 꾸엥이가 준 당근을 확인했다.
[마력을 품은 민첩의 당근]
오랜 시간 강한 마력에 노출된 당근입니다.
농사의 '농'자도 모르는 어리숙한 농부가 재배해 맛이 없습니다.
섭취 시 민첩이 영구적으로 1 상승합니다.
재배자 : 녹색 탑농부 오필리아
유통 기한 : 100년
등급 : C+
"녹색 탑농부 오필리아?"
자신 말고 다른 탑농부가 있다는 사실이 세준은 반가웠다.
'그런데 다른 탑이 있나?'
세준이 녹색 탑이라는 명칭에 의아해하며 당근을 씹었다.
오도독.
"으윽. 뭐야?"
맛없을 거라 생각을 했는데도 충격적인 맛. 이렇게 맛없는 당근은 처음이었다. 당근으로서 지녀야 할 맛은 하나도 없고 쓰기만 했다.
'정말 농사의 '농'자도 모르네. 내 당근에는 비교도 할 수 없겠어. 흐흐흐.'
입은 썼지만, 다른 탑농부를 농사로 이긴 거 같아 기분으 좋았다.
우적우적.
일단 민첩 스탯 상승을 위해 세준이 당근을 꼭꼭 씹어 삼켰다.
[마력을 품은 민첩의 당근을 섭취했습니다.]
[민첩이 영구적으로 1 상승합니다.]
그렇게 맛없는 당근 5개를 다 먹었을 때
"세준 님, 여기요."
삐익!
맛없는 당근을 세준에게 떠넘기는 이오나와 아빠 토끼.
조난 265일 차. 동물들에게 맛없는 당근을 양보 받은 세준의 민첩 스탯이 9 상승했다.
101화. 수확제가 열리다.(3)
101화. 수확제가 열리다.(3)
당근 수확 대회가 끝나자
뺙!
쀼쀼!
삐익!
뾰옥!
토끼들의 흥이 오르며 본격적으로 축제 분위기가 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직업 퀘스트 완료를 위해 농작물을 수확해야 하는 세준은 놀 수 없었다.
그래서 토끼들은 축제를 즐기게 하고 꾸엥이, 테오, 이오나를 데리고 일을 했다.
혼자 일해도 됐지만, 아까부터 흑토끼가 먹는 막걸리를 호심탐탐 노리고 있는 미성년자 꾸엥이는 감시가 필요했다.
엄마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의 말로는 꾸엥이가 어른이 되려면 아직 블루문을 10번 정도는 더 봐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테오와 이오나는 가라고 해도 세준의 무릎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톡.톡.
그렇게 3마리 동물들을 데리고 세준이 방울토마토를 수확했다.
[잘 익은 마력의 방울토마토를 수확했습니다.]
[직업 퀘스트 완료까지 7만 2811번 남았습니다.]
[직업 경험치가 아주 미세하게 상승합니다.]
[수확하기 Lv. 5의 숙련도가 아주 미세하게 상승합니다.]
[경험치 30을 획득했습니다.]
가지를 잘라 여러 개를 한 번에 수확하는 게 편했지만, 그러면 수확하기 스킬을 한 번밖에 사용할 수 없기에 세준은 방울토마토를 하나하나 따고 있었다.
그리고
[덜 익은 마력의 방울토마토를 수확했습니다.]
[직업 퀘스트 완료까지 7만 2744번 남았습니다.]
[직업 경험치가 아주 미세하게 상승합니다.]
[수확하기 Lv. 5의 숙련도가 아주 미세하게 상승합니다.]
[경험치 23을 획득했습니다.]
수확하기 스킬을 사용하기 위해 아직 익지 않은 방울토마토까지 따버렸다.
그렇게 지상밭의 방울토마토를 다 따고 세준이 동물들을 데리고 동굴로 내려가자
꾸엥!
꾸엥이가 사냥을 하기 위해 연못으로 들어갔다.
"이오나, 꾸엥이 좀 봐줘."
"네."
세준의 지시에 이오나가 세준의 무릎과 테오의 꼬리를 포기하고 꾸엥이를 따라 연못 안으로 들어갔다. 이오나의 마법 실력이면 꾸엥이가 위험에 처할 일은 없었다.
[주인님! 어서 오세요!]
불꽃이가 이파리를 흔들며 세준을 반겼다.
"미안. 자주 와야 되는데. 여기 혼자 있으니까 심심하지?"
[아니요! 이렇게 주인님이 와주셨잖아요! 그리고 엔트들도 있어서 괜찮아요!]
역시 이쁘게 말하는 불꽃이.
쓰담쓰담.
세준이 불꽃이의 이파리를 쓰다듬었다. 불꽃이가 다른 농작물에 비해 성장이 느린 것 같아 세준은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헤헤헤. 기분 좋아요!]
그때
쿠구궁.
땅이 울리기 시작했다.
"어?!"
세준이 서둘러 중심을 잡는 사이 땅이 멈췄다.
"뭐지? 꾸엥이가 사고 쳤나?"
[그...글쎄요.]
세준은 10분 정도 불꽃이의 이파리를 쓰다듬으며 다시 땅이 울리지는 않는지 살펴봤지만, 이후로 땅은 잠잠했다.
"괜찮나?"
세준은 안심하고 방울토마토 수확을 시작했다.
***
"에어버블!"
이오나가 물속에서도 숨을 쉴 수 있게 자신과 꾸엥이에게 마법을 사용했다.
부우웅.
머리를 감싸며 만들어지는 투명한 공기 방울.
꾸엥!
꾸엥이가 자신의 머리에 씌워진 공기 방울을 신기해하며 이오나를 대단하게 바라봤다.
"뀻뀻뀻. 이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죠. 이제 마음껏 놀아요."
꾸엥!
이오나의 말에 꾸엥이가 열심히 연못을 헤엄치며 물고기들을 사냥했다. 그리고 공기 방울 덕분에 용기가 난 꾸엥이가 연못 바닥으로 내려갔다.
흑토끼 형아와 함께 할 때는 바닥에는 절대 내려가지 말라고 했기에 항상 궁금했었다.
그렇게 내려간 연못 바닥.
꾸엥?
"이게 뭐죠?"
꾸엥이를 따라 연못 바닥에 도착한 이오나가 차원의 바다을 향해 뻗은 거대한 뿌리를 발견했다.
그때
슈우웅.
차원의 바다 쪽 뿌리에서부터 밝은 빛이 흘러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꾸엥?
꾸엥이와 이오나의 시선이 빛을 따라갔다.
그리고 땅을 뚫고 나와 있는 나무의 거대한 뿌리 안으로 들어가는 빛. 누구의 뿌리인지는 바로 알 수 있었다. 여기에서 나무는 하나밖에 없었다. 바로 불꽃이.
쿠구궁.
빛을 흡수한 나무의 뿌리가 성장하며 땅이 흔들렸다.
"역시 세준 님, 이런 대단한 걸 키우고 계셨다니!"
이오나가 차원의 바다까지 연결된 불꽃이의 거대한 뿌리를 보며 놀라워했다.
그때
꿈틀.
[저기요.]
불꽃이가 뿌리를 움직여 꾸엥이와 이오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
"휴우. 끝났다."
세준이 서둘러 방울토마토 수확을 끝냈다.
그때
첨벙.
물에서 나오는 꾸엥이와 이오나.
"따뜻한 바람이여 불어라. 웜 윈드."
이오나가 마법으로 자신과 꾸엥이의 털에 묻은 물기를 깔끔하게 제거했다.
"잘 놀았어?"
"뀻뀻뀻. 네!"
꾸엥!
이오나도 함께 논 건지 목소리가 밝았다.
"그럼 가서 좀 쉬자. 불꽃아 내일 또 내려올게."
[네! 내일 봐요!]
세준이 불꽃이와 인사를 하고 먼저 지상으로 올라가자
[약속 잊지마요. 알았죠?]
불꽃이가 이오나와 꾸엥이에게 말했다.
"뀻뀻뀻. 물론이죠!"
꾸엥!
불꽃이의 말에 이오나와 꾸엥이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세준을 따라 지상으로 올라갔다. 불꽃이의 뿌리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 대신 모종의 거래를 한 셋이었다.
불꽃이가 뿌리를 숨기고 싶은 이유는 아주 사소했다.
[주인님에게 귀여워 보이고 싶어!]
거대한 뿌리를 보면 세준이 귀엽게 바라보는 시선이 사라질 것 같았다.
세준이 지상으로 올라오자
쀼끅쀼끅!
뺙끅!
삐끅!
토끼들은 술을 진탕 먹고 인사불성 상태였다.
"다들 왜 이렇게 많이 마셨어?"
세준이 바닥에 널브러진 토끼들을 제대로 눕히고 있을 때
-자 마셔라!
검은 용 조각상이 토끼들에게 술을 강요하고 있었다.
-한 방울이라도 남기면 알지?
뾰옥!
안 마시면 죽일 것 같은 분위기. 카이저가 건네는 술잔을 거부할 간 큰 존재는 없으니 토끼들이 이렇게 된 게 이해가 됐다.
그때
-박세준 이놈! 어디 있었던 것이냐?!
이 사태를 만든 카이저가 세준을 발견하자
펄럭.펄럭.
세준의 앞으로 날아와 막걸리가 가득 채워진 술잔을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목이 말랐던 세준이 잔을 조심스럽게 받았다.
그리고
"후웁."
막걸리에 코를 가까이 대고 막걸리의 향을 맡았다.
-크슴. 그래도 술을 좀 마실 줄 아는구나.
세준이 지구에서 먹은 막걸리와 비슷한지 냄새를 맡은 것이 카이저에게는 술을 먹기 전 향을 음미하는 것으로 보이며 술을 좋아하는 카이저의 호감도가 조금 상승했다.
'지구에서 먹던 막걸리 향보다 진하네?'
하지만 지구에서 먹던 시큼하고 달달한 냄새의 비율은 비슷했다.
꼴깍.
막걸리에 대한 기대감에 입안 가득 고인 침을 삼켰다.
그렇게 세준이 설레는 마음으로 막걸리를 한 모금 마시자
'오!'
달짝지근한 맛과 쓴맛, 신맛이 거부감없이 세준의 목구멍으로 부드럽게 넘어갔다.
꿀꺽.
"크으. 달다."
세준이 목구멍을 톡 쏘는 탄산의 청량감에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카이저가 마법으로 막걸리의 온도를 낮춰놔서 탄산이 강했다.
꿀꺽.꿀꺽.
세준이 순식간에 막걸리를 원샷하고 술잔을 내밀었다. 일하고 나서 마셔서 그런지 정말 시원하고 달았다.
"크으. 한 잔 더 주십시오."
-크하하하. 박세준이놈! 술 좀 먹을 줄 아는구나!
카이저가 기뻐하며 세준에게 술을 따라줬다. 술 상대가 없어서 적적했던 카이저였다.
[탑의 관리자가 자신도 막걸리를 먹고 싶다고 합니다.]
"에일린, 너는 아직 어리잖아. 나중에 크면 줄게."
-그래! 그건 세준이 말이 맞아! 너는 아직 200년은 있어야 해.
[탑의 관리자가 이제 180년이라고 말합니다.]
어느새 기다리는 시간이 250년에서 180년으로 줄어들어 있었다.
[탑의 관리자가 이제 삐졌다며 할아버지랑은 얘기 안 할 거라고 말합니다.]
-어?! 에일린~! 박세준이놈! 이게 다 너 때문이야! 내가...
그렇게 에일린에게 다시 차단당한 카이저는 세준에게 자신의 신세 한탄을 하며 몇 시간 동안 막걸리를 먹었지만, 둘 다 아무도 취하지 않았다.
카이저야 기본적으로 용족의 뛰어난 신체 능력 때문에 막걸리 정도로는 취하고 싶어도 취할 수 없었고
우적우적.
세준은 안주로 해독의 대파를 먹고 있었다. 막걸리를 좋아는 하지만, 취하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취해서 카이저에게 말실수라도 할까 봐 무서웠다. 실수 한 번에 목숨이 날아갈 수도 있으니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했다.
그렇게 열심히 해독의 대파를 먹으며 제정신을 유지한 결과.
-쳇! 술이 떨어졌군. 같이 마셔서 즐거웠다.
막걸리를 다 마신 카이저가 다시 분수대로 돌아갔다.
"얘들아, 이것 좀 먹어."
카이저와 술 상대를 한 세준이 술기운을 해독할 수 있게 토끼들에게 해독의 대파를 먹였다.
쀼쀼...
뺙...
삐익...
다행히 세준 덕분에 토끼들은 금세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하지만 밤이 되자 세준은 자신이 한 짓을 후회했다. 낮잠을 자고 정신이 또렷해진 토끼들이 밤새 밭 이곳저곳에서 번식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우욱!우욱!
부우!부우!
서라운드처럼 사방에서 들려오는 헐떡거림.
"뀨-세상이여 침묵하라. 사일런스!"
자신의 꿀잠을 방해받은 이오나가 분노하며 세준의 집 주변에 마법을 걸어 소음을 막았다.
덕분에 세준은 조용히 잘 수 있었지만, 왠지 마음은 싱숭생숭했다.
***
조난 266일 차 아침.
"읏차."
세준이 일어나 밖으로 나오자 밖은 토끼들 몇 마리만 돌아다니고 한가했다.
"반갑다. 솔로들이여."
이렇게 낮에 돌아다닌다는 거 자체가 솔로라는 의미였다. 그리고 그런 솔로 무리에 흑토끼는 보이지 않았다.
다컸구나. 흑토끼, 잘 살아라. 세준은 솔로에서 벗어난 흑토끼를 축복하며 아침을 만들었다.
오늘 아침은 바게트빵과 치즈 그리고 수프를 함께 먹을 생각이었다. 물론 테오가 먹을 생선은 따로 구웠다.
"얘들아, 밥 먹자."
"생선을 내놓으라냥!"
"뀻뀻뀻. 네!"
꾸엥!
세준의 부름에 지난 밤에 아무 일도 없던 동물들이 달려왔다.
우적우적.
동물들이 열심히 아침을 먹었다.
"자. 많이들 먹고 힘내."
솔로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세준이 음식을 푸짐하게 차렸다.
꾸엥!
덕분에 가장 신난 건 꾸엥이.
"꾸엥아 우리가 다 먹자. 행복하지?"
유치하게 먹을 거로 이겨보려는 세준이었다.
그렇게 아침을 먹고 있을 때
"오! 에밀 님, 이것 보십시오! 옥수수입니다!"
"오! 그렇군. 알이 가득 찬 게 최상품입니다."
너구리들이 세준의 농작물을 살펴보고 있었다.
"에밀 님, 여기 와서 이것 좀 드세요."
세준이 자신의 옥수수를 칭찬하는 에밀의 말에 호의를 베풀기로 했다.
"네?! 네! 감사합니다!"
에밀은 거절하고 싶었지만, 위대한 검은 용의 호의를 거절했다가 더 큰 화를 입을 수도 있었다.
'에밀 님! 파이팅!'
다른 너구리들이 세준에게 불려가는 에밀을 응원했다.
그때
"뭐해? 너희들도 와야지."
세준이 다른 너구리들에게 손짓하자
"네!"
에밀을 응원하던 너구리들이 급하게 달려왔다.
그렇게 함께하게 된 식사.
"자. 이건 내가 만든 수프야."
"...감사합니다."
너구리들이 억지로 웃으며 세준이 건넨 보라색 수프를 먹었다. 정말 입맛 떨어지는 색이었다.
하지만
"오!"
한 입 먹자 그런 생각은 순식간에 날아갔다.
"너무 맛있습니다."
"맛있어요!"
너구리들이 열심히 수프를 먹기 시작했다. 자신들이 만든 바게트빵과 치즈와도 잘 어울렸다.
거기다
[강화된 보랏빛 세프의 당근수프를 섭취했습니다.]
[1시간 동안 민첩이 10.5 상승합니다.]
수프를 다 먹자 버프까지 있었다.
"헉!"
"이건?!"
음식에 버프가 있다는 것에 너구리들이 경악했다.
"푸후훗. 갖고 싶으냥?"
호구리들을 보며 테오가 씨익 웃었다.
102화. 수확제가 열리다.(4)
102화. 수확제가 열리다.(4)
"네! 사고 싶습니다!"
끄덕끄덕.
너구리들이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이 수프는 맛만으로도 상품으로서 가치가 크지만, 섭취했을 때의 효과가 압권이었다. 1시간 동안 민첩을 10.5나 올려주고 포만감을 4시간이나 유지시켜 주다니.
수프를 살 수만 있다면 다른 층이나 탑 등 비싸게 팔 곳은 많았다. 만약 팔리지 않아도 자신들이 먹으면 된다.
'민첩이 오르면 우리 너구리들의 작업 속도가 빨라진다.'
아마 기존에 비해 생산량이 15% 정도는 늘어날 거다. 어떻게 해도 손해가 아니었다.
"수프 1인분에 3탑코인, 500인분을 사겠습니다."
"좀 더 쓰라냥! 힘, 민첩, 마력 중 올리고 싶은 걸 말하면 거기에 맞춰 수프를 만들어 줄 수 있다냥!"
"그...그게 정말이십니까?"
"그렇다냥!"
테오가 자신 있게 말했다.
'잘하네.'
테오의 거래를 지켜보는 세준이 흐뭇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1인분에 5탑코인씩 각 스탯별로 200인분을 사겠습니다."
"좋다냥! 거래 성사..."
그사이 테오가 에밀과 거래를 끝내고 악수를 하려 할 때
"잠깐!"
세준이 막았다. 이제 테오가 호구짓을 하지는 않을지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조금 더 배울 필요가 있었다.
"냥?"
"...왜 그러십니까?"
테오와 에밀이 동시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세준을 바라봤다.
'테오, 잘 봐라. 리미티드 에디션의 세계를 알려주지.'
"에밀, 그 가격에는 팔 수 없어. 말하지 않은 게 있는데 이 수프는 재료가 많지 않아서 외부에는 5000인분만 파는 한정판 수프야. 사실 우리 먹을 것도 없거든."
아공간 창고에 퍼플 로커스트 고기가 넘쳐났지만, 이제 구할 수 없는 건 맞았다. 세준이 조금의 뻥을 쳤다.
"하...한정판이요?"
수프를 5000인분만 판다는 세준의 말에 에밀의 목소리가 떨렸다.
'사고 싶다!'
갑자기 수프에 엄청난 희소성이 생기며 에밀의 소유욕을 자극했다.
"어때?"
"좀 전 가격의 2배로 5000인분 제가 다 사고 싶습니다!"
세준의 물음에 에밀이 홀린 듯이 대답했다.
"좋아. 특별히 에밀에게 다 팔게. 그리고 서비스로 다른 농작물을 좀 챙겨줄게.'
"서비스까지요?! 감사합니다!"
세준의 말에 에밀이 감동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대...대단하다냥! 박세준은 거래의 신이다냥!'
테오가 세준을 존경을 넘어 경외의 시선으로 바라봤다. 무릎만 해도 이미 신급 존재인데 거래까지 신급이었다. 테오에게는.
그렇게 너구리족과 또 하나의 거래가 성사됐을 때
뺙...
쀼쀼...
삐익...
삐이...
밤새 거사를 치른 토끼들이 둘씩 짝을 이뤄 밭 여기저기에서 좀비처럼 걸어 나왔다. 너무 배가 고파 기운이 없었다.
하지만
"어쩌지 좀 기다려야 해."
그들을 맞이한 건 꾸엥이가 바닥까지 핥아먹은 빈 냄비뿐. 토끼들은 어쩔 수 없이 아침이 준비되는 동안 주린 배를 잡고 기다려야 했다.
세준의 소심한 복수였다.
***
"근데 너희가 파는 음식들의 재료는 어디서 난 거야?"
세준이 수프를 끓이면서 너구리족 족장인 에밀에게 궁금한 걸 물었다.
가래떡과 막걸리는 쌀, 바게트는 밀가루, 치즈는 우유가 필요하다. 그 말은 에밀이 쌀, 밀가루, 우유를 어디에선가 얻고 있다는 의미. 세준도 얻고 싶었다.
"아. 치즈는 저희 마을 앞에 있는 우유샘의 우유를 저희만의 비법으로 가공해서 만들어요."
"우유샘? 샘에서 우유가 나온다고?!"
"네. 샘에서 우유가 나와요."
에밀이 무슨 문제라도 있냐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바라봤다.
"아니."
샘에서 나온다는데 할 말이 없었다.
"그럼 쌀이랑 밀가루는?"
"아. 그건 저희 마을이 있는 황금 탑의 탑농부 세실리아 님이 키우신 거예요."
"황금 탑?"
"네. 위대한 황금 용들이 관리하는 탑이요. 근데 여기 검은 탑의 탑농부는 누구인가요? 인사를 나누고 싶은데."
에밀이 주변을 둘러보며 탑농부를 찾았다.
"나야."
"네?! 설마 위대한 검은 용인 세준 님이 직접 농사를 지으시는 건가요?!"
세준의 말에 에밀이 크게 놀랐다. 그게 그렇게 놀랄 일인가?
"그래."
"대단하십니다! 오필리아 님과는 완전 다르시네요!"
에밀이 세준을 보며 극찬했다.
"오필리아? 녹색 탑농부 오필리아?"
세준이 오필리아라는 이름에 당근 수확 대회 보상으로 받은 마력을 품은 민첩의 당근 재배자를 떠올렸다.
"네. 역시 잘 아시는군요. 아시다시피 그분도 위대한 녹색 용이시잖아요. 근데...농사는..."
에밀이 왜 놀랐는지 그리고 왜 말을 흐리는지 알 것 같았다. 자신도 오필리아가 키운 당근을 먹어봤으니까. 오필리아의 농사 실력은 아주 형편없었다.
"근데 황금탑 농부 세실리아에게 말해서 쌀과 밀의 씨앗을 얻을 수 있을까?"
"씨앗이요?! 네. 제가 세준 님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그리고 다음에는 우유도 가져와 줘."
"네. 다음 수확제 때 가져오겠습니다."
그때
[강화된 보랏빛 세프의 감자수프가 완성됐습니다.]
[요리 Lv. 4의 숙련도가 조금 상승합니다.]
[강화된 보랏빛 세프의 당근수프가 완성됐습니다.]
...
..
.
힘, 민첩, 마력 스탯별로 만든 수프들이 완성됐다.
"자. 여기."
"감사합니다!"
세준이 수프가 완성된 냄비를 에밀이 꺼낸 아공간 주머니에 넣어줬다.
"돈은 나한테 내라냥!"
"여기 있습니다."
유랑 상인으로서 판매 실적을 올려야 하는 테오가 돈을 받았다.
"따라오라냥! 농작물을 챙겨주겠다냥!"
테오가 너구리들을 데리고 저장고에서 농작물을 종류별로 몇 개씩 챙겨줬다.
그리고
"어?! 이건 아이템?!"
농작물도 먹으면 스탯이 오르는 걸 보고 너구리들은 가진 돈을 전부 털어 세준의 농작물을 샀다. 그것도 아주 비싸게. 이렇게 맛까지 좋으면서 효과가 좋은 농작물은 처음이었다.
덕분에 테오는 너구리들의 돈을 전부 쓸어 담았다.
"그럼 다음 수확제 때 뵙겠습니다."
"다음엔 돈을 더 많이 가져오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호구리들이 다음에는 더 많은 농작물을 사겠다고 결심하며 떠났다.
***
어제 너구리들이 떠나고 세준은 당근 수확 대회에서 얻은 당근 씨앗을 심었다.
그리고 오후에는 서쪽 숲으로 가서 마력의 축복의 도움을 받아 불개미들이 서쪽 숲으로 접근하지 못하도록 웅덩이 크기를 늘렸다.
그 후에는 엔트들의 씨앗을 따고 심기를 반복하다 집으로 돌아와 잤다. 덕분에 엔트들의 수가 2000마리까지 늘어났다.
"읏차."
세준이 잠자리에서 일어나자 역시 오늘도 무릎이 묵직했다.
고로롱.
뀨로롱.
세준의 무릎에 매달려 자고 있는 테오와 이오나.
슥.
세준이 둘을 무릎에 매단 채로 벽에 획 하나를 그으며 조난 267일 아침을 시작했다.
'이제 블루문이 얼마 안 남았네.'
다음 블루문까지 5일이 남았다.
"에일린, 이번 블루문도 잘 부탁해."
[탑의 관리자가 자신만 믿으라고 큰소리칩니다.]
"그래. 당연히 믿고 있지."
그렇게 에일린과 대화를 하고 있을 때
[잠시 후 수확제의 두 번째 대회인 당근 먹기 대회가 시작됩니다.]
[대회 참가를 원하는 참가자들은 레드리본의 거대 당근 제단 앞으로 모여주세요.]
수확제의 두 번째 대회를 알리는 메시지가 나타났다.
우다다다.
메시지를 보고 거대 당근 제단으로 달려가는 토끼들.
"우리도 가자."
세준이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꾸엥이를 데리고 거대 당근 제단 앞으로 가자
[참가 신청까지 남은 시간 - 9분 51초]
[현재 참가 신청 수 - 1032]
거대 당근 제단 아래 저런 메시지가 떠 있었다.
"토끼들은 전부 신청했네. 우리도 신청하자."
세준이 거대 당근 제단 밑으로 가서 테오, 이오나, 꾸엥이와 함께 참가 신청을 했다.
[현재 참가 신청 수 - 1037]
"응? 왜 4가 아니라 5가 늘었지?"
(저도 있어요. 세준 님.)
꾸엥이의 등털 속에 숨어있던 황금박쥐가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
"아. 거기 있었구나. 왜 거기 있어?"
(여기가 어둡고 따뜻해서 좋아요.)
꾸엥?
꾸엥이는 세준이 왜 자신의 등을 보며 얘기하는지 모르는 눈치였다.
그렇게 세준이 황금박쥐와 얘기하고 있을 때
쿠엉!
쿵.쿵.
엄마 크림슨 자이언트가 거대 당근 제단으로 와 참가 신청을 했다.
'이걸로 1등은 정해졌군.'
항상 배불리 먹는 게 소원인 엄마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를 이길 존재는 없었다.
하지만
쿵.쿵.쿵.쿵.
세준의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또 다른 강자가 나타났다.
음머어어!
음머!
음머!
강력한 포효와 함께 멀리서 달려오는 거대한 존재들. 우마왕과 블랙 미노타우루스들이었다. 그들도 배불리 먹기 위해 대회에 참가했다.
[현재 참가 신청 수 - 2038]
우마왕과 블랙 미노타우르스 999마리가 당근 먹기 대회에 참가했다.
잠시 후
[참가 신청이 마감됐습니다.]
[참가 신청자들은 레드리본의 거대 당근 제단 아래로 모여주세요.]
[1분 후 당근 먹기 대회가 시작됩니다.]
대회에 참가 신청을 한 세준과 동물들이 제단 밑으로 모이자
[대회가 시작됩니다.]
대회 시작을 알리는 메시지와 함게 각자의 앞에 당근이 가득 담긴 거대한 바구니가 나타났다. 대충 봐도 100개는 충분히 넘는 양.
와르르르.
와르르르.
시작하자마자 우마왕과 엄마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가 입에 당근을 털어 넣었다.
우적우적.
몇 번 당근을 씹고 삼키자 다시 바구니에 당근이 채워졌다.
"와."
세준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당근을 구경하는 사이
꾸엥!
꾸엥이가 거대화를 하며 질 수 없다는 듯이 당근을 빠르게 먹어 치웠다.
그리고
오도독.오도독.
세준과 토끼들은 이미 승산이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구경꾼의 입장에서 당근을 씹으며 흥미진진하게 푸드파이터들이 먹는 것을 구경했다.
자신의 농장에서 만든 당근보다는 맛이 덜 했지만, 먹을만했다.
그렇게 구경하는 사이 우마왕과 엄마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가 10번째 바구니를 비우자
"오!"
바구니 안에 일반 당근 대신 거대 당근 10개가 채워졌다. 쉽게 먹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우마왕과 엄마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에게는 오히려 씹기 좋은 크기일 뿐이었다.
음머어어!
쿠어엉!
우마왕과 엄마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가 기분 좋은 울음소리를 냈다.
꾸엥!
꾸엥이도 질 수 없다는 듯이 먹는 속도를 올렸다.
와르르르.
와르르르.
어느새 20번째 바구니를 비우는 우마왕과 엄마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 둘은 아직도 속도가 전혀 떨어지지 않았다.
꾸엥!
꾸엥이는 이제 간신히 10번째 바구니의 당근을 전부 먹었다. 아무래도 어른들에 비해서는 입이 작아서인지 한 번에 많이 먹을 수 없었다.
꾸엥!
꾸엥이가 드디어 거대 당근을 먹으려 할 때
[준비된 당근을 모두 소진하여 당근 먹기 대회가 조기 종료됐습니다.]
대회 규모가 작은 건지 아니면 참가자가 너무 한 건지 대회가 항상 당근 소진으로 조기 종료됐다.
음머?!
쿠엉?!
대회 종료 메시지에 우마왕과 엄마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가 허망한 표정을 지었다. 아직 배가 덜 찼기 때문이다.
꿰에엥!!!
1등도 못 하고 배불리도 못 먹은 꾸엥이가 엄마의 품에 안겨 울었다.
[당근 먹기 대회 랭킹]
공동 1위 - 우마왕, 붉은 털(20바구니)
3위 - 꾸엥이(10바구니)
...
..
.
[당근 먹기 대회 1등, 2등, 3등에게 보상을 지급합니다.]
그사이 랭킹이 표시되며 보상이 지급됐다.
척.
꿰엥.꿰엥.
[훌쩍. 아빠는 약하니까 이거 먹어야 한다요.]
아직 울음을 그치지 못 한 꾸엥이가 세준에게 보상으로 받은 사탕 크기의 검은색 환 1개를 건네자
음머!
쿠엉!
우마왕과 엄마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도 고개를 끄덕이며 보상으로 받은 검은색 환 4개씩을 세준에게 양보했다.
"고마워."
세준이 고마움의 표시로 배가 덜 차 허전해하는 우마왕과 엄마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 꾸엥이에게 음식을 추가로 대접했다.
그리고 보상을 확인했다.
[민첩의 비약]
어리숙한 농부가 재배해 제대로 자라지 못 한 당근의 약성을 올리기 위해 1만 개의 당근에서 엑기스를 뽑아 만든 비약입니다.
맛이 지독하게 없습니다.
섭취 시 민첩이 영구적으로 1.5 상승합니다.
생산자 : 푸른 탑농부 젤가
유통 기한 : 100년
등급 : C+
맛이 지독하게 없다고?
"아씨..."
이것들이 다들 먹을 거로 장난을 치네.
"에잇!"
세준이 눈을 꼭 감고 민첩의 비약 9개를 삼켰다. 빨리 씹어서 삼키면 된다.
하지만
"세준 님, 입에서 똥..."
꾸에엥!
입에 남은 비약의 냄새는 상당히 오래갔다.
'다들 너무해.'
결국 세준의 주변을 지킨 것은 후각 대신 무릎을 선택한 테오 뿐이었다.
"테 사장, 고마..."
"냥! 입은 벌리지 말라냥!"
테오가 서둘러 앞발로 세준의 입을 막았다.
조난 267일 차. 세준은 입에서 나는 똥내 때문에 하루 종일 집에만 있어야 했다.
103화. 수확제가 열리다.(5)
103화. 수확제가 열리다.(5)
조난 268일 차 아침.
잠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온 세준이 집 앞에서 혼자 놀고 있는 꾸엥이를 발견하자마자 어제 일을 추궁하려 했다.
하지만
"읍읍?!(꾸엥이, 너 어제 나한테 준 약에서 똥내 나는 거 알았지?!)"
"박 회장, 입 다물어라냥! 똥냄새가 아직 남았다냥!"
"읍?!(아직도?!)"
테오가 서둘러 세준의 입을 막았고 세준은 다시 집에 유폐됐다. 코가 민감한 동물들에게 피해를 줄 수는 없었다.
다행히 입 냄새는 오후가 되자 완전히 사라졌다. 물론 입 냄새 제거를 위해 세준은 대파와 물을 엄청나게 먹어야 했다.
"휴우. 이제 좀 살 것 같네."
세준이 집 밖으로 나와 크게 숨을 내쉬며 말했다.
꾸엥...
세준이 나오자 집 앞을 지키고 있던 꾸엥이가 세준의 주변을 서성거렸다. 아빠, 화났다요...
"꾸엥이, 이리 와."
꾸엥...
세준의 말에 조심스럽게 눈치를 보며 다가오는 꾸엥이.
"꾸엥이, 너 왜 이렇게 기가 죽었어?"
이게 부모님들의 마음인가? 꾸엥이가 자신의 눈치를 보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애가 마음고생을 얼마나 했으면 이렇게 기가 죽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꾸엥.
세준의 기분이 풀린 것 같자 꾸엥이가 세준의 다리에 자신의 얼굴을 비볐다.
스윽.스윽.
"꾸엥이, 또 아빠한테 똥냄새나는 거 줄 거야 안 줄 거야?"
세준이 꾸엥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하자
꾸엥!
[이제 똥냄새나는 건 안 줄 거다요!]
꾸엥이가 격렬하게 고개를 흔들며 대답했다.
"좋아. 그럼 밥이나 먹으러 가자."
꾸엥!
세준의 말에 꾸엥이가 환호했다.
그렇게 취사장으로 간 세준이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오늘 요리는 떡국. 가래떡도 있었고 수확제가 뭔가 명절 느낌이 났다.
"이오나, 이 떡을 이렇게 비스듬하게 썰어줘."
"네. 윈드커터."
이오나가 밖에 꺼내 말려둔 가래떡을 마법으로 어슷하게 썰기 시작했다.
"박 회장! 나도 떡 썰 수 있다냥! 나는 왜 일을 안 시켜주냥?!"
빳칭!
테오가 자신의 날카로운 발톱을 꺼내며 자신은 왜 안 시켜주냐며 세준에게 따졌다.
"테 사장은 쉬어. 사장은 아무 때나 나서는 게 아니야."
테오가 떡을 썬다고 움직이다가 폴폴 날리는 털이 떡에 붙을까 봐 시키지 않은 거지만, 세준은 테오의 기분이 상하지 않게 말했다.
"그런 것이었냥?! 알겠다냥! 그러면 사장으로서 좀 더 열심히 쉬겠다냥!"
세준의 말이 잘 이해가 되지는 않았지만, 세준의 말을 진리로 아는 테오는 세준이 시키는 대로 다시 쉬기로 했다.
'푸후훗. 이제 나는 이런 잡일을 안 해도 박세준의 무릎을 차지할 수 있는 테 사장인 것이다냥!'
그렇게 테오가 기분 좋게 세준의 무릎에 매달려 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오나가 떡을 써는 동안 세준은 떡국의 육수를 만들었다.
치이익.
퍼플 로커스트 고기를 냄비에 넣고 볶다가 물을 붓고 해독의 대파와 함께 계속 끓였다. 이제 육수는 기다리기만 하면 됐다.
송송송.
세준이 육수가 완성되기를 기다리며 대파를 썰었다. 떡국 위에 올릴 데코용이었다.
"뀻뀻뀻. 다 썰었어요!"
"응. 수고했어."
"네. 또 시키실 거 있으세요?"
"아니. 이제 없어."
"네!"
할 일이 없다는 세준의 말에 이오나가 테오에게 달려가 테오의 꼬리로 자신의 몸을 돌돌 말고 휴식을 취했다.
"됐나?"
세준이 육수를 떠서 맛을 봤다.
"음. 이제 떡 넣고 간만 맞추면 되겠다."
세준이 이오나가 썬 떡국떡을 냄비에 넣고 소금으로 간을 했다.
꾸엥!꾸엥!
꾸엥이가 기대감에 엉덩이를 실룩실룩 거리며 춤을 췄다.
"조금만 기다려. 이제 다 됐어."
꾸엥!
잠시 후
[탑에서 최초로 보랏빛 떡국을 만드는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요리 Lv. 4에 보랏빛 떡국의 레시피가 등록됩니다.]
[요리 Lv. 4의 숙련도가 크게 상승합니다.]
떡국이 완성됐다.
"무슨 효과가 있는지 볼까?"
세준이 떡국의 옵션을 확인했다.
[보랏빛 떡국]
퍼플 로커스트의 고기와 해독의 대파를 넣고 높은 온도에서 끓여 육수에 두 재료의 영양분이 충분히 우러나왔습니다.
해독의 대파가 퍼플 로커스트 고기에 있는 극독을 해독하여 요리가 쉽게 상하지 않습니다.
맛이 조금 좋아집니다.
포만감이 1시간 동안 유지됩니다.
요리사 : 탑농부 박세준
유통 기한 : 10일
등급 : D+
"포만감 말고는 효과가 없네?"
해독의 대파를 제외하면 들어간 농작물이 없어서인지 요리에 붙은 옵션이 없었다.
"뭐 맛만 있으면 되지. 자."
세준이 꾸엥이의 그릇에 떡국을 퍼주고 자신의 그릇에도 떡국을 가득 담았다. 그리고 썰어둔 대파를 올리고 후추를 뿌렸다.
"자. 이제 먹자."
꾸엥!
세준도 떡국을 국물과 함께 숟가락으로 떠서 입에 넣자 꾸엥이도 서둘러 떡국을 마시기 시작했다.
"크으. 맛있다!"
간이 잘 된 닭고기 맛 육수와 함께 씹기 좋은 굵기로 썰어진 떡국떡이 씹혔다. 가래떡을 말린 덕분에 씹을 때 좀 더 씹는 맛이 있었다.
후릅.
세준이 고개를 파묻고 떡국을 먹고 있을 때
꾸엥!
순식간에 한 그릇을 끝낸 꾸엥이가 국자로 냄비에서 떡국을 떠 그릇에 담아 자신의 자리에 앉아 먹었다.
하지만
후루룩.
꾸엥이는 처음 몇 번은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먹고 다시 냄비로 가서 푸기를 반복하더니 나중에는 그냥 냄비 앞에 서서 국자로 그릇에 담아 떡국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렇게 세준이 한 그릇을 끝냈을 때
"어?! 벌써 다 먹었어?"
꾸엥이도 한 냄비를 끝냈다.
꾸헤헤헤.
꾸엥이가 배를 두드리며 기분 좋게 웃었다.
그때
"하아...이제 꾸엥이가 나보다 나이가 많아졌네. 어떻게? 이제 꾸엥이 할아버지 됐어."
장난끼가 발동한 세준이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꾸엥?
갑자기 세준이 자신을 할아버지라고 부르자 당황하는 꾸엥이. 갑자기 내가 왜 할아버지다요?
"미안해. 내가 떡국을 한 그릇 먹을 때마다 한 살을 먹는다는 걸 말해줬어야 하는데···"
꾸엥?!
세준의 말에 당황하는 꾸엥이. 꾸엥이가 서둘러 자신이 먹은 떡국 수를 계산하기 시작했다.
냄비의 크기를 보면 어림잡아도 200그릇. 자신이 순식간에 200년 198일을 산 크림슨 자이언트 허니베어가 돼버렸다.
꾸엥···
꾸엥이가 좌절했다. 이제 자신이 아빠보다 나이가 많아졌다. 이제 테오 형아도, 흑토끼 형아도, 쀼쀼 누나도 자신보다 어렸다.
그때
꾸엥?
갑자기 드는 생각에 꾸엥이가 고개를 들었다. 그럼 내가 제일 큰 형아?
"냥?!"
다다다.
꾸엥이가 테오를 낚아채 밖으로 달려 나갔다. 다시 서열정리를 하려는 것이다.
"어?! 꾸엥아!"
뭔가 일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걸 인지한 세준이 꾸엥이를 따라 나가려 할 때
[퀘스트가 발생합니다.]
[퀘스트 : 위대한 검은 용 에일린 프라타니에게 한 그릇에 한 살을 먹게 하는 보랏빛 떡국을 175그릇 대접하라.]
보상 : 나랑 만날 수 있음!!!
거절 시 : 거절은 거절한다!!!!!
세준의 장난으로 한 말을 사실로 들은 에일린이 퀘스트를 냈다.
"에...에이린, 그건..."
세준이 서둘러 자신이 한 말의 뒷수습을 했다.
***
꾸엥!꾸엥!
[이제 내가 제일 큰 형아다요! 왜냐하면 나는 200살이다요!]
꾸엥이가 동굴에 테오, 흑토끼, 황금박쥐를 모아놓고 자신이 가장 나이가 많으니 큰 형아를 해야 한다고 선포했다.
하지만
"무슨 소리냥?! 어떻게 꾸엥이가 갑자기 200살이 되냥? 그리고 나는 250살이다냥! 헛소리 말고 박 회장의 무릎으로 가라냥!"
테오에게는 아직 나이로 안 됐다.
그때
뺙!뺙!(나이만 많다고 형아가 아니야! 여기 먼저 온 순서로 정해야지!)
"그게 무슨 소리다냥! 박 회장에게 도움이 되는 걸 가져오는 순으로 서열을 정해야 한다냥!"
흑토끼의 말로 다시 형아 서열을 정하는 기준에 대한 논쟁이 일어났다.
"박 회장에게 도움이 되는 걸 가져와야 한다냥!"
뺙!(여기 먼저 온 순으로 서열을 정해야 해!)
꾸엥!(아니다요! 크기순으로 정하자요!)
뱃뱃(전 아무래도 좋아요.)
황금박쥐는 어떻게 해도 큰 형아가 될 가능성은 없기에 그냥 뒤에서 구경했다.
그때
[그럼 내가 큰 형아네. 아니 큰누나.]
불꽃이가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무슨 소리냥?"
[내가 여기 가장 먼저 왔고, 내가 가장 커]
가장 먼저 심어졌고 땅 속에 있는 거대한 뿌리도 있으니 불꽃이의 말이 맞았다.
[거기다 난 주인님에게 도움이 되는 걸 드릴 수도 있으니까.]
"인정할 수 없다냥!"
불꽃이가 말에 테오가 소리쳤다. 다른 건 다 인정해도 세 번째 말은 인정할 수 없었다.
그때
[이래도?]
불꽃이의 말과 함께 크기 10m가 넘는 방어가 연못에 나타났다. 불꽃이가 뿌리로 차원의 바다에서 직접 잡은 생선이었다.
"엄청 큰 생선이다냥!"
테오가 서둘러 방어를 향해 달려갔다.
[어때? 인정?]
"냥! 그래도 인정할 수 없다냥! 서열은 나이로 해야한다냥!"
불꽃이에게 가장 높은 서열을 양보할 수 없는 테오가 방어를 부둥켜안은 채로 외쳤다.
꾸엥!(찬성한다요!)
[나도 찬성.]
꾸엥이와 불꽃이가 찬성해 준 덕분에 테오는 큰 형아의 위치를 유지했다.
꾸엥!
이제 서열 2위가 됐다고 좋아하는 꾸엥이.
하지만
"꾸엥아. 아까 한 말 농담이야."
에일린에게 어렵게 해명을 하고 온 세준이 꾸엥이에게 사실을 말해줬다.
꿰에엥!
꾸엥이가 원망의 눈길로 세준을 바라봤다. 그걸 지금 말하면 어떡한다요!
뺙!
뾱!뾱!뾱!
흑토끼가 분노의 눈길로 해머를 휘두르며 꾸엥이를 째려보고 있었다.
***
"크히히히. 저 떡국을 한 그릇 먹으면 한 살을 먹는다고?"
마력이 늘어나면서 수정구를 통해 음성까지 들을 수 있게 된 에일린이 세준의 목소리를 듣고는 흥분했다.
"크히히히. 저걸 175그릇만 먹으면 나도 세준이를 만날 수 있어!"
매일 꿀젤리를 먹은 덕분에 드래곤하트의 상태가 좋아지고 있는 에일린이었다.
에일린이 서둘러 세준에게 퀘스트를 줬다.
"빨리 날 위해 떡국을 175그릇 만들어줘!"
하지만
-에일린, 미안, 꾸엥이에게 장난친 거였어. 내가 살던 곳에는 떡국을 먹어야 한 살을 먹는다는 풍습이 있거든...
세준은 자신의 말이 농담이었다고 말했다. 물론 세준이 떡국을 새로 끓여줬지만, 그걸로 에일린의 기분이 좋아질 리는 없었다.
"크힝힝힝. 슬픈데 맛있어."
에일린이 눈물 젖은 떡국을 맛있게 먹고 있을 때
-아니. 우리 공주님 왜 울어?!
에일린을 이상을 알아차린 카이저가 서둘러 물었다.
"크힝힝! 할아버지! 나 폴리모프하고 세준이 만나고 싶어!"
카이저의 말에 울음이 터진 에일린이 울먹이며 말했다.
-좋아! 우리 손녀가 그렇게 원하는데! 이 할애비가 도와주뫗!
카이저는 술상대로 적당한 세준을 조금은 가까이 두고 싶어졌다.
"진짜?!"
-그럼! 대신 앞으로 할애비랑 얘기하다가 차단하지 말기. 알았지?
"응!"
카이저가 이렇게 에일린에게 큰소리를 칠 수 있는 이유는 수확제가 시작되면서 탑 99층에 펼쳐진 마력의 축복 덕분이었다.
마력의 축복으로 인해 탑 99층의 마력 농도가 점점 올라가고 있었다.
축제의 마지막 날쯤 되면 탑 99층의 마력 농도가 최고치로 올라가 자신이 옆에서 보조하면 에일린이 폴리모프 상태로 몇 분 정도는 머무를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부터 폴리모프를 가르쳐 줄 테니. 잘 들어야 한다.
"네!"
카이저가 에일린에게 속성으로 폴리모프 마법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104화. 수확제가 열리다.(6)
104화. 수확제가 열리다.(6)
뺙!
꾸엥...
뺙친 흑토끼가 쿠데타를 도모한 꾸엥이를 갈구는 동안
"테오, 그 방어는 어디서 났어?"
세준이 방어를 손질해서 봇짐에 넣고 있는 테오에게 물었다.
"아. 이거 말이냥? 이건..."
테오가 불꽃이가 잡은 방어에 대해 설명하려 할 때
[주인님! 여긴 어쩐 일이세요?]
불꽃이가 서둘러 세준을 불렀다. 세준의 주의를 돌리기 위해서였다.
"아. 꾸엥이 때문에. 쉬고 있는데 얘네들 때문에 시끄럽지? 내가 빨리 데려갈게."
[네. 감사합니다.]
불꽃이가 대답하는 동안
스륵.
불꽃이의 뿌리 하나가 태오의 다리를 잡았다.
그리고
[제가 방어를 잡은 건 비밀로 해주세요.]
자신의 크기를 숨기고 싶은 불꽃이가 테오에게 부탁했다.
"싫다냥! 나와 박 회장 사이에 비밀은 없다냥!"
[대신 매달 이렇게 큰 생선을 한 마리 잡아드릴게요. 큰 오라버니.]
"푸후훗. 오라버니라고 한 것이냥?"
테오는 처음 들어보는 호칭에 기분이 좋아졌다.
[네. 큰오라버니.]
"좋다냥! 비밀로 해주겠다냥! 박 회장! 이 방어는 내가 잡은 것이다냥!"
테오가 오라버니라는 호칭에 홀라당 넘어갔다.
[휴우.]
불꽃이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테오, 너가? 넌 물에 들어가는 거 싫어하잖아?"
"냥? 그건···"
갑자기 어버버 거리는 테오.
"너 나한테 뭐 숨기냐?"
"비밀이다냥!"
세준의 추궁에 테오가 밖으로 달려 나갔다.
"왜 저래?"
세준이 이상하게 구는 테오를 보며 말했다.
그리고
"흑토끼, 이제 꾸엥이 용서해줘. 꾸엥이도 많이 반성했을 거야. 그렇지. 꾸엥아?"
흑토끼와 꾸엥이를 화해시켰다.
꾸엥!꾸엥!
세준의 말에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는 꾸엥이.
뺙.
흑토끼가 '이번만이야'라고 말하며 꾸엥이를 용서했다.
꾸엥!
흑토끼가 자신을 용서해주자 신이 난 꾸엥이가 흑토끼를 자신이 목에 태우고 목마를 해주며 주변을 돌아다녔다.
그때
찰싹.
"뭐야?"
그사이 세준의 무릎으로 돌아온 테오. 비밀을 말할 수 없어 도망쳤지만, 세준의 무릎을 오래 비울 수 없는 테오였다. 결국 도망가 봤자 세준이 무릎 안이었다.
"테오, 네가 감히 나한테 비밀을 만들어?!"
덥석.
세준이 테오의 양볼살을 잡아당기며 탈주 고양이를 응징했다.
"바 케장, 자모해따냥! 바거는 불꼬지가 자바줘따냥!"
결국 테오가 순순히 실토했지만, 발음이 전부 뭉개졌다.
"흐흐흐."
주무를수록 찹쌀떡같이 말랑한 느낌을 주는 테오의 볼살을 만지는 재미에 세준은 테오의 대답은 이미 잊혀진지 오래였다.
덕분에 불꽃이의 비밀이 지켜졌다.
***
조난 269일 차 아침.
수확제가 열린 지 6일이 지났다.
"오늘도 대회가 열리려나?"
세준이 모닝커피를 마시며 말했다.
지금까지의 패턴으로 보면 수확제 2일 차에 당근 수확 대회, 4일 차에 당근 먹기 대회가 열렸기 때문이다.
"수확하기, 먹기를 했으니 다음에는 당근 요리나 당근 조각 같은 거려나?"
세준이 다음 대회의 종목을 생각하고 있을 때
뺙!뺙!
꾸엥!꾸엥!
다시 사이가 좋아진 흑토끼와 꾸엥이가 함께 노래를 부르며 세준을 찾아왔다.
퍽.
퍽!
갑자기 땅에 이마를 박고 세준에게 절을 하는 흑토끼와 꾸엥이.
그리고
뺙!
꾸엥!
양 손바닥을 모아 공손하지만, 당당하게 세준에게 내밀었다.
"밥 달라고?"
뺙!
고개를 젓는 흑토끼와
꾸엥!꾸에엥!
고개를 끄덕이다 흑토끼를 보고 서둘러 고개를 젓는 꾸엥이.
"그럼 뭔데?"
뺙?
[삼촌, 세뱃돈 몰라요?]
흑토끼가 세준의 어깨에 올라와서 조용히 물었다. 세뱃돈을 모를 수도 있는 세준을 위한 배려였다.
"아. 그거였어? 당연히 알지. 자. 여기."
세준이 흑토끼와 꾸엥이에게 세뱃돈을 줬다. 수확제의 6일째 되는 날에 세배를 하고 세뱃돈을 받는 게 토끼들의 전통이었다.
뺙!
꾸엥!
흑토끼와 꾸엥이가 세준에게 받은 세뱃돈을 들고 기뻐했다.
"나도 달라냥!"
테오가 서둘러 세준에게 절을 했다. 절만 하고 돈을 받을 수 있다니 아주 괜찮은 일 같았다.
"자. 테오는 큰형이니까 좀 더 줄게."
세준이 흑토끼와 꾸엥이에게 준 금액의 두 배를 줬다.
"고맙다냥! 또 받아라냥!"
누르면 나오는 자판기처럼 절을 할 때마다 세뱃돈을 받는다고 생각한 테오.
하지만
"받은 것도 뺏길래?"
"아니다냥."
세준의 말에 테오가 얌전히 세뱃돈을 봇짐에 넣고 츄르를 꺼냈다.
"까달라냥!"
"그래."
부욱.
세준이 추르를 까서 테오에게 먹이고 있는 동안
삐익!
뺘아!
뾰옥!
토끼들이 세준의 앞에 줄을 서서 새배를 하고 세뱃돈을 받아 갔다.
"그래. 앞으로도 건강해."
어느새 세준은 덕담까지 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슥.슥.
(가, 나, 다, 라...)
세준의 뒤에서 황금박쥐가 열심히 바닥에 한글을 쓰며 복습을 하고 있었다. 곧 지구로 다시 이동할 시간이었다.
(면, 커피, 콜라···)
이어서 세준이 보이면 무조건 가져오라고 강조한 글자들을 복습했다.
잠시 후 느낌이 왔다.
'이번에는 세준 님이 좋아하는 걸 꼭 가져올게요!'
황금박쥐가 세준의 뒷모습을 눈에 담고는 사라졌다.
***
파닥.파닥.
(뭘 고르지?)
황금박쥐가 서둘러 주변을 둘러보며 읽을 수 있는 글씨를 찾았다.
그때
00면, 00커피.
익숙한 글자들이 보였다.
(아! 저거다!)
황금박쥐가 서둘러 물건들을 들고 사라졌다.
잠시 후
"아씨! 누구야?! 라면 누가 먹었어? 내가 화장실 가기 전만 해도 있었는데···"
탕비실에 라면을 먹기 위해 들어온 남자가 부식 진열대를 보며 투덜거렸다.
"몇 분 만에 라면을 먹고 사라질 리는 없는데..."
거기다 봉지 커피를 가져간 흔적도 있었다.
"아무리 소확행이라도 이건 아니지!"
나가기 귀찮아 안에서 식사를 해결하려던 사장님이 마지막 라면이 사라진 것에 분노했다.
***
"자. 여기. 세뱃돈. 행복하게 살아라."
세준이 세배를 하는 토끼들에게 세뱃돈을 주고 있을 때
펄럭.펄럭.
검은 용 조각상이 다가왔다.
그리고
-크흠. 박세준이놈! 너는 나에게 왜 세배를 하지 않는 것이냐?
자신에게 세배를 하러 오지 않는 세준에게 카이저가 삐졌다.
"아! 토끼들에게 세배를 받고 찾아가려고 했습니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카이저를 찾아갈 생각은 하지도 않았지만, 죽기 싫으면 사실대로 얘기할 수는 없었다.
-기다린 건 아니고...크흠. 관대한 내가 특별히 봐주지. 어서 세배를 하거라.
"네. 카이저 님, 만수무강 하십시오."
세준이 공손하게 절을 올렸다.
-뭐?! 박세준이놈! 나보고 뒤지라는 소리냐?!
"네?!"
-내가 지금 1만 살인데 만수무강이면 이제 뒤지라는 소리잖아!
드래곤의 긴 수명을 생각하지 못했다.
"아. 그게 아닙니다!"
세준은 서둘러 자신의 말을 해명했다.
"저희는 100세만 살아도 아주 오래 살았다고 합니다. 만수무강은 아주아주 오래 사시라는 의미입니다."
-크하하하. 그랬군. 내가 인간의 연약함을 생각하지 못했다. 자 세뱃돈이다!
퉷.
검은 용 조각상이 뱉은 검은 광택의 물체가 세준의 손에 떨어졌다.
-특별히 내 것을 주었으니 영광으로 알아라.
"감사합니다!"
뭔지는 모르지만, 일단 감사를 표했다.
펄럭.펄럭.
카이저가 다시 분수대로 돌아가고 세준이 카이저가 준 물건을 확인했다.
[위대한 검은 용 카이저의 비늘]
위대한 검은 용 카이저 프리타니가 자신의 비늘에 직접 마법을 걸었습니다.
원하는 부위에 장착하면 피부에 문신으로 자리 잡습니다.
목숨이 위험 받으면 용족 스킬 - 드래곤 스킨이 1회 한정 자동으로 발동해 소유자의 목숨을 구하고 파괴됩니다.
사용 제한 : 카이저 프리타니의 인정을 받은 박세준
제작자 : 카이저 프리타니
등급 : 측정 불가
"와."
엄청난 물건이었다.
"여기다 이렇게 올리면 되나?"
세준이 카이저의 비늘을 왼팔에 올리자
슈욱.
비늘이 세준의 피부로 스며들며 왼쪽 어깨까지 차지하는 검은 용의 문신이 자리 잡았다.
"근데 이걸 쓸 일이 있으려나?"
자신에게는 이미 가 있었다.
세준은 카이저의 비늘을 쓸 일이 절대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비늘을 사용하는 시기는 금방 다가왔다.
세준은 곧 목숨의 위협을 받는 순간이 올 거라는 것도 모르고 남은 토끼들에게 세배를 받고 세뱃돈을 줬다.
"이제 다 받았지?"
세준이 세뱃돈을 받지 못한 토끼가 있나 주변을 둘러볼 때
펄럭.펄럭.
황금박쥐가 빠르게 날아왔다.
(세준 님! 제가 드디어 세준 님이 원하시는 걸 찾은 것 같습니다!)
황금박쥐가 두 발에 쥔 물건들을 꽉 쥐며 날아왔다.
"어?! 그건?!!!"
세준이 황금박쥐가 가져온 어메이징한 물건에 경악했다.
"푸라면? 믹심커피?"
이번에는 황금박쥐가 정말 제대로 된 물건을 가져왔다.
"일단 물을 550mL를 넣고."
라면은 하나밖에 없기에 실패는 용납할 수 없었다. 세준이 라면의 설명서에 나온 대로 라면을 끓였다.
물의 정량을 맞추기 위해 세준은 조난 때 가져온 생수병으로 물의 용량까지 비슷하게 맞추고 물을 끓였다.
"흐흐흐. 잘했어. 잘했어."
세준은 라면 물을 끓이는 동안 오늘의 1등 공신인 황금박쥐를 품에 안고 계속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뱃뱃.
황금박쥐가 세준의 품에서 기분 좋게 울었다. 하지만 그걸 못마땅하게 바라보는 존재가 있었다.
"마음에 안 든다냥!"
테오가 황금박쥐를 노려봤다. 세준에게 필요한 걸 가져다주는 건 자신의 역할인데 감히 막내 주제에 큰형님이 해야 할 일을 넘보고 있었다.
'저걸 어떻게 혼내주지?'
테오가 자신의 앞발을 핥으며 황금박쥐를 어떻게 혼내줄지 고민할 때
"지금이다!"
세준이 팔팔 끓는 물에 라면과 수프, 후레이크를 함께 넣었다.
그리고
"1, 2...269, 270!"
설명서에 나온 대로 4분 30초를 끓인 후 냄비를 불에서 빼내 라면을 그릇에 옮겨 담았다.
"크으. 이 냄새지."
냄새만 맡았는데 벌써 감동이 밀려 들어왔다.
"후우! 후우! "
세준이 라면을 한 젓가락을 들어 올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면에 바람을 불어 넣었다.
'이제 식었겠지? 에라 모르겠다.'
적당히 식은 것 같자 세준은 일단 입에 넣고 봤다.
후루룩.
"으음!"
거의 9개월 만에 맛보는 라면의 맛. 세준의 미간이 절로 좁혀졌다.
후릅.후릅.
세준이 이번에는 숟가락으로 라면 국물을 떠서 여러 번 마셨다.
"크으!"
다른 말은 필요하지 않았다. 그냥 감동이었다.
그렇게 라면을 먹고 있을 때
뺙!
꾸엥!
세준에게 다가오는 흑토끼와 꾸엥이. 한 입만!
"어..."
한 입만이라는 말에 심하게 흔들리는 세준의 눈동자.
"자."
세준이 일단 흑토끼에게 면발 하나와 숟가락으로 국물 다섯 수저를 덜어줬다. 흑토끼는 그 정도면 충분했다.
그리고
"자. 후루룩."
세준이 꾸엥이에게 덜어주는 척 하다가 갑자기 그룻에 얼굴을 박고 라면을 흡입하기 시작했다. 이건 뺏길 수 없었다.
하지만
꾸엥!
꾸엥이가 재빨리 다가가 세준의 그릇에 입을 박고 빨아들이기 시작하자 압력에 따라 라면들이 진공청소기에 빨리듯이 꾸엥이의 입으로 빨려 들어갔다.
쪽.
세준의 입과 연결되어 있던 마지막 면이 꾸엥이의 입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마지막으로 라면이 깨끗하게 사라졌다.
"내...라면이..."
세준이 좌절하고 있을 때
(저기...큰형님, 제가 큰형님을 위해 이걸 가져왔습니다.)
황금박쥐가 조심스럽게 테오에게 고양이 그림이 그려진 봉투를 건넸다. 추르였다.
그때
[잠시 후 수확제의 세 번째 대회인 당근주 먹기 대회가 시작됩니다.]
[대회 참가를 원하는 참가자들은 레드리본의 거대 당근 제단 앞으로 모여주세요.]
수확제의 마지막 대회가 시작됐다.
105화.
105화.
"감히 내 라면을 먹어?! 어디 당해봐라! 부부부붑!"
라면을 훔쳐먹은 꾸엥이에게 세준이 분노의 배방구를 했다
하지만
꾸헤헤. 꾸에엥!
[헤헤헤. 재밌다요!]
꾸엥이는 자신의 배에 바람을 넣는 세준에게 좋다고 자신의 배를 더 내밀었다.
그렇게 세준이 꾸엥이를 응징(?)하고 있을 때 수확제의 세 번째 대회를 시작한다는 메시지가 나타났다.
"당근주 먹기 대회?"
'해독의 대파만 먹을 수 있으면 이길 수도 있겠는데?'
하지만 당근 수확 대회에서 공정성을 위해 다른 버프가 해제되는 것을 보면 해독의 대파도 안 될 가능성이 높았다.
"일단 가볼까?"
세준이 대회 참가를 위해 거대 당근 제단으로 가려 할 때
"박 회장, 우리 막내한테도 세뱃돈 주라냥!"
츄르를 선물받은 테오가 황금박쥐를 챙기기 시작했다. 우리 막내로 호칭도 업그레이드됐다.
"오! 그럼 당연히 줘야지."
세준이 흔쾌히 말했다. 무려 푸라면을 가져온 황금박쥐다. 세뱃돈이 아니라 더 한 것도 줄 수 있었다.
(세준 님, 절 받으세요!)
황금박쥐가 날개를 포개며 공손히 절을 하자
"오냐. 자 여기 세뱃돈. 황금박쥐도 앞으로 건강해."
(네! 감사합니다!)
세준이 황금박쥐에게 세뱃돈을 줬다.
그리고
"가자."
동물들을 데리고 거대 당근 제단으로 갔다.
거대 당근 제단 앞에는 먼저 도착한 엄마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와 블랙 미노타우루스들 그리고 어른 토끼들이 당근주 먹기 대회가 시작되길 기다리고 있었다.
꾸엥!
꾸엥이가 엄마를 보고 달려갔다.
하지만
쿠엉!
둘이 대화를 나누던 중 엄마 크림슨 자언트 배어가 고개를 젓자
꿰에에엥!
꾸엥이가 바닥에 누워 울기 시작했다.
"자기도 대회 참가하겠다고 떼쓰나 보네."
안 봐도 뻔했다. 지금까지 수확제에서 열린 대회가 전부 먹는 대회였으니까.
그러나 이번 대회는 술 먹기 대회. 미성년자 꾸엥이는 참가할 수 없었다. 세준이 마음속으로 엄마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의 건투를 빌며 거대 당근 제단 밑으로 갔다.
[참가 신청까지 남은 시간 - 7분 51초]
[현재 참가 신청 수 - 532]
확실히 술을 먹는 대회라 그런지 나이 어린 토끼들이 참가하지 못해 참가자 수가 적었다.
"흑토끼는 당연히 참가할 거고 테오는 참가할 거야?"
"당연하다냥!"
술은 안 좋아하지만, 세준의 무릎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테오도 대회에 참가했다.
[현재 참가 신청 수 - 535]
그때
쿠엉!
엄마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가 세준을 가리키면서 세준에게 미안한 눈빛을 보냈다.
그리고
꿰에에엥!
울면서 달려오는 꾸엥이.
'아니. 왜 나한테 보내는데? 내가 요즘 꾸엥이의 육아를 전담하고 있어도 이건 아니지!'
세준이 나중에 엄마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에게 따져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다급히 아공간 창고에서 꿀을 꺼냈다. 일단 꿀로 달래볼 생각이었다.
꾸에에엥!
꿀을 꺼내자마자 달라는지는 울음소리. 역시 허니베어답게 꾸엥이는 꿀을 보자 바로 울음을 그쳤다.
"이거 먹으면서 얌전히 기다리면 끝나고 꿀 한 병 더 줄게. 우리 꾸엥이 얌전히 기다릴 수 있지?"
핥핥핥.
꾸엥!
꿀을 핥느라 정신이 없는 꾸엥이가 시선은 돌리지도 않고 대답만 우렁차게 했다.
그렇게 꾸엥이를 달래고 거대 당근 밑에 가자
[대회가 시작됩니다.]
대회 시작을 알리는 메시지와 함게 반투명한 붉은 빛의 벽이 주변의 접근을 막았다.
그리고
쿵!
중앙에 거대한 당근이 담긴 10m 크기의 술병과 함께 참가자들의 앞에 술잔이 나타났다.
"와!"
저렇게 큰 당근은 처음 봤다.
"술맛도 좋으려나?"
당근으로 담근 술을 먹어본 적이 없는 세준이 기대에 찬 눈빛으로 눈앞에 나타난 술잔을 바라봤다. 술잔에는 투명한 액체가 담겨 있었다. 당근주였다.
척.
세준이 술잔을 들어 먼저 당근주의 향을 천천히 맡았다. 어차피 우승은 생각도 안 하고 있었기에 술을 즐기는 데 집중했다.
"으음."
술에서 향긋한 꾳향기와 함께 당근 특유의 풍미가 느껴졌다.
향을 맡았으니 이제 맛을 볼 때
후룩.
세준이 술을 마셨다.
"음."
입 안으로 술이 들어가자마자 곡물과 당근의 짙은 풍미가 옅은 쓴맛과 함께 입안을 가득 채웠다.
꿀꺽.
의지와 상관없이 술이 부드럽게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쏴아.
시원한 알콜의 기운이 식도를 타고 쭉 내려감과 동시에 술이 사라진 입안에서 은은한 곡물의 단맛이 올라오며 입안에 남아있던 쓴맛을 깔끔하게 잡아줬다.
"크으. 진짜 맛있다."
후룩.
당근주의 맛에 반한 세준이 어느새 채워진 술잔의 술을 한 잔 더 마셨다.
그렇게 세준이 안주도 없이 5잔을 연거푸 마시자
"어? 좀 취하는데?"
세준이 술에서 깨기 위해 해독의 대파를 꺼내려 했지만
[대회의 공정성을 위해 다른 아이템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역시 사용이 제한됐다.
"그만 마실까?"
세준이 그만 마시고 나오려고 했지만
[술병의 술을 전부 비우거나 참가자 전원이 쓰러지기 전까지는 나가실 수 없습니다.]
대회가 끝나기 전까지는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기다릴까?"
"냥냥냥."
세준이 대회가 끝나길 기다리며 테오의 배를 쓰다듬는 동안
쿠엉!
음머!
삐익!
술을 마시며 감탄하는 동물들.
슬금슬금.
술을 먹고 싶은 세준의 손이 조금씩 술잔으로 이동했다.
"딱 한 잔만."
세준이 술잔을 들었다.
꿀꺽.
"크으."
탄성이 절로 나오는 맛. 먹으면 먹을수록 술이 더 당겼다.
"한 잔만 더 먹고 싶은데."
'마셔!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 오늘 지나면 앞으로 또 언제 술 먹을 날이 올지 알고?'
'안돼! 정신 차려! 너 그러다 실수하면 어쩌려고? 바로 죽는 거야!'
머릿속에서 본능과 이성의 속삭임이 들려왔다.
하지만
"빨리 술병을 비워버려야지!"
오늘은 본능의 승리. 세준이 절반 정도 남은 중앙의 술병을 보며 술병 비우기에 힘을 보태기로 했다.
***
탑 55층.
"뭐?! 타릭이 죽어?!"
타릭의 사망 소식에 그리드가 당황했다. 며칠 동안 소식이 끊겨 행방을 알아보고 있었는데 설마 죽었을 줄이야.
"네! 탑 67층에서 로커스트에게 먹이를 주는 걸 마법사 협회의 협회장인 이오나에게 걸려 그 자리에서 바로 살해당했다고 합니다."
"감히 우리 멧돼지족의 장로를 죽여?!"
쾅!
분노를 이기지 못한 그리드의 주먹에 책상이 반으로 부서졌다.
"그리드 님, 고정하시지요. 메이슨 협회장이 그리드 님을 이번 일과 엮어 한 번에 처리하기 위해 비밀감찰국 요원들을 움직여 타릭과 연관돼 있다는 증거를 찾고 있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서둘러 타릭과의 연결 고리를 전부 지우셔야 합니다.""
평소에도 그리드를 눈에 가시처럼 여기던 메이슨. 메이슨은 그리드를 확실히 끝장내기 위해 최대한 비밀리에 움직였지만, 그리드의 정보력도 만만치 않았다.
그리드는 유랑 상인 협회가 극비리에 운영하는 비밀감찰국 요원 중 몇을 오랫동안 공을 들여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어둔 상태였다.
"그건 걱정할 필요가 없다. 증거는 없을 테니까."
그리드는 타릭과의 연락이 끊기자마자 만일을 대비해 타릭과 연결된 흔적들을 전부 제거할 것을 지시했고 암살대는 목격자를 없애기 위해 여러 마을을 지웠다.
"그것보다 농장에 있던 백토끼들이 전부 사라졌다고?"
"네. 분명 감시병들 수십이 지켜보고 있었는데 흔적도 없이사라졌습니다."
"곧 수확을 해야 하는 시기다. 사라진 백토끼들을 찾아내든지 아니면 다른 백토끼들을 잡아들이든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백토끼들을 데려와!"
"네! 그럼 가보겠습니다!"
부하가 서둘러 백토끼들을 확보하기 위해 나가자
드르륵.
그리드가 자리에서 일어나 집무실에 있는 책장을 옆으로 밀었다. 그러자 드러나는 지하로 향하는 계단.
쿵.쿵.
그리드가 계단을 따라 지하고 내려갔다. 계단은 지하 통로와 이어져 있었고 통로는 거대한 광장과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광장의 중앙에 있는 백색의 용 조각상.
"위대한 하얀 용께 미천한 그리드가 인사드립니다."
쿵!
대지주 그리드가 크기 1m의 하얀 용 조각상을 향해 거대한 몸을 접어 절을 했다.
***
"크히히히. 다 배웠다! 이제 세준이 볼 수 있어!"
폴리모프 마법을 완전히 숙지한 에일린이 행복한 표정으로 외쳤다.
이제 카이저가 신호할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됐다.
"크히히히. 빨리 세준이 보고 싶다!"
에일린이 설레는 표정으로 수정구로 세준을 살펴봤다.
-크으. 좋다.
당근주 먹기 대회에 참간한 세준은 술을 마시며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저게 그렇게 좋나?"
에일린은 궁금증이 일어났다.
-크으. 좋다.
-너무 좋다!
-좋다.
먹을 때마다 '좋다'는 감탄사를 내뱉는 세준. 그런 세준을 보던 에일린의 표정이 점점 굳었다.
'흥! 나보다 좋아?!'
***
[탑의 관리자가 그 술이 자신보다 좋냐고 묻습니다.]
"엉?! 그게 무슨 소리야?!"
[탑의 관리자가 왜 술을 마시면서 계속 좋다! 좋다!를 말하냐고 분노합니다.]
"흐흐흐. 우리 에일린 술한테 질투하는구나?"
[탑의 관리자가 자신이 언제 질투를 했냐며 발끈합니다.]
"흐흐흐. 걱정마. 나는 우리 에일린뿐이니까."
술에 취해 기분이 좋은 세준이 애교스럽게 말했다.
[...]
그때
[준비된 당근주를 모두 소진하여 당근주 먹기 대회가 조기 종료됐습니다.]
참가자들이 술병에 있던 술을 전부 마시며 랭킹이 정해졌다.
[당근 먹기 대회 랭킹]
1위 - 붉은 털(1000L)
2위 - 우백이(103L)
3위 - 우칠이(102.5L)
...
..
.
작은 잔으로 어떻게 저렇게 먹었는지 이해가 안 되는 용량. 세준은 몰랐지만, 술잔의 술이 비워지면 술이 계속 채워져 쉬지 않고 먹을 수 있었다.
[당근주 먹기 대회 1등, 2등, 3등에게 보상을 지급합니다.]
보상은 당근이 담긴 맥주병 크기의 술병이었다.
[당근주 먹기 대회 참가상으로 당근 씨앗 10개를 획득했습니다.]
세준은 참가상으로 당근 씨앗을 받았다.
그때
"잠깐!"
이번에는 보상을 세준에게 양보하지 않고 서둘러 자리를 떠나려는 엄마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와 우백이, 우칠이를 세준이 불렀다.
"너희들 왜 이번에는 안주는뒈? 보상 내놧!"
술에 취한 세준이 당당하게 손을 내밀었다.
"너희들 가만 안 있쒀!"
자신이 몸을 주체하지 못해 흔들리고 었었지만, 세준은 애꿎은 동물들에게 가만있으라고 화를 냈다.
"보상 빨리 줘!"
쿠엉!
음머!
세준의 요구에 엄마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와 블랙 미노타우루스들이 술병을 들고 강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흐흐흐. 너희들만 맛있는 거 먹을라고 했고만?!"
세준은 확신했다. 동물들의 반응을 보니 이번 보상은 맛있는 게 분명했다.
"테 사장, 가라!"
"알겠다냥!"
테오가 잽싸게 우칠이가 들고 있는 술병을 가져왔다. 평소라면 테오에게 뺏길 리 없는 우칠이지만, 지금은 취한 상태. 반응 속도가 느렸다.
"여깄다냥!"
"잘했다냥!"
뽕
세준이 테오의 말투를 따라 하며 테오가 가져온 술병의 마개를 열었다.
그리고 세준이 술병의 술을 마시려 할 때
"바보야! 그거 먹으면 죽어!"
퍽!
앳된 여자의 목소리와 함께 뭔가가 세준의 뒤통수를 때렸다.
[육체가 치명상을 입었습니다.]
[가 발동합니다.]
[마력을 소모해 육체가 부서지지 않게 보호합니다.]
[마력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용족 스킬 - 드래곤 스킨이 발동합니다.]
[위대한 검은 용 카이저의 비늘이 파괴됩니다.]
허무하게 사라지는 카이저의 비늘이었다.
106화. 드디어 만나다.
106화. 드디어 만나다.
당근주 먹기 대회가 한창 진행 중일 때
-크으. 부럽다. 부러워.
분수대 위에서 카이저가 맘껏 술을 먹는 세준과 동물들을 부럽게 바라봤다. 술병에 담긴 당근주는 무려 천 년 짜리 당근으로 담가 맛이 꽤 좋았다.
-아쉽네 아쉬워. 내가 몸만 있었어도···
카이저가 조각상의 몸으로 대회에 참가할 수는 없는 것에 아쉬워했다.
물론 용 본체라도 대회는 참가할 수 없었을 거다. 주변의 존재들이 카이저의 기운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
그때
-할아버지 아직도 멀었어요?
빨리 세준을 보고 싶은 에일린이 언제 폴리모프를 사용해 세준 앞에 나타날 수 있는지를 카이저에게 물었다.
-기다리거라. 아직 마력 농도가 충분하지 않아.
카이저가 마력 농도를 체크하며 대답했다. 창조신의 비석에서 흘러나오는 신성력 때문에 마력 농도가 상승하는 속도가 예상보다 빨랐다.
-크힝. 언제까지 기다려요?
-어허. 조금만 기다려. 이제 거의 다 됐어.
카이저가 에일린을 달래고 있을 때 대회가 종료되며 거대한 당근이 담긴 술병이 사라졌다.
고오오오.
수확제의 세 번째 대회가 끝나며 탑 99층의 마력 농도가 폭발적으로 상승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이다!
탑 99층의 마력 농도가 에일린이 있는 관리자 구역과 비슷해졌다.
-크히히히. 세준아 내가 간다! 폴리모프!
카이저의 신호와 함께 에일린이 관리자 구역에서 나오면서 폴리모프마법을 사용했다.
파앗.
위대한 검은 용 에일린의 육체에서 밝은 빛이 폭발했다가 사그라들었다.
빛이 사라졌을 때
"크히히히. 성공!"
그곳에 남은 것은 거대한 검은 용 대신 허리까지 내려오는 검은 머리에 검은색의 귀여운 미니드레스를 입은 미소녀였다. 티 하나 없는 백옥의 피부가 에일린의 미모를 더욱 살려줬다.
하지만
"어?!"
에일린이 처음 사용한 폴리모프는 절반만 성공했다. 폴리모프 마법이 불안정하여 날개와 꼬리는 그대로 있었다.
"꼬리랑 날개 정도는...크히히. 이 정도는 괜찮을 거야! 이동!"
세준을 빨리 보고 싶은 에일린이 서둘러 공간 이동마법을 사용했다.
그리고 에일린이 세준의 옆에 나타났을 때 술을 병째 마시려는 세준을 발견했다.
'저건?! 불의 기운?!'
술병 안의 당근에서 불의 기운이 느껴졌다. 그것도 상당히 강한 불이.
불당근주, 마시면 불의 기운으로 몸의 노폐물을 불태우지만, 어지간히 튼튼한 육체가 아니면 불의 기운에 몸까지 타버리는 술이다.
"바보야! 그거 먹으면 죽어!"
에일린이 급한 마음에 본능적으로 꼬리를 움직여 술병을 뺏으려 했지만, 아직 폴리모프로 변한 신체에 적응하지 못한 에일린의 꼬리가 조금 낮게 움직이며 세준의 뒤통수를 때렸다.
퍽!
"어?!"
에일린은 세준의 뒤통수를 때린 자신의 꼬리에 아차 싶었지만, 다행히 세준의 왼팔에 있던 할아버지의 비늘이 데미지를 대신 감당하고 부서졌다.
"휴우. 할아버지 땡큐."
에일린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
쾅!
세준은 자신의 뒤통수를 때리는 강력한 힘에 이번에는 정말 죽었다고 생각했다.
그때
크오오오.
왼팔에 있던 검은 용 문신이 포효하며 세준을 보호하고 사라졌다.
"어?! 어?!"
뒤통수가 진짜 부서지는 느낌이 났기에 세준이 서둘러 자신의 뒤통수를 신중하게 만져봤다. 다행히 뒤통수는 멀쩡했다.
"살았다."
그제야 세준은 자신이 살아있음에 안도하며 눈에 쌍심지를 켜고 자신의 뒤통수를 때린 존재를 찾았다.
'감히 내 뒤통수를 때려?!'
그리고
"너..."
자신의 옆에 있는 에일린을 발견한 세준.
"세준아···"
세준의 귀에 이 세상 목소리가 아닌 것 같은 미성이 들려왔다.
"에일···"
직접 본 것은 처음이지만, 보는 순간 그냥 알 수 있었다. 눈 앞의 미녀가 에일린이라는 것을.
휘청.
털썩.
세준이 말을 끝내지 못하고 쓰러졌다. 목숨은 구했지만, 그 충격이 다 해소된 것은 아니었다.
"앗."
에일린이 서둘러 세준의 몸을 부축했다.
그때
"냥! 박 화장에게서 손 떼라냥! 감히 박 화장을 때리다니 내가 용서하지 않겠다냥!"
테오가 발톱을 뽑으며 호기롭게 말했지만, 몸은 솔직했다
달달달.
세준의 무릎에 매달려 사시나무 떨리듯 떠는 몸만은 어떻게 할 수 없었다.
그럴 만도 한 게 에일린의 꼬리 공격 한 번에 주변 당근밭이 초토화됐고 다른 동물들은 전부 기절했다. 심지어 엄마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와 블랙 미노타우루스들까지.
만약 앞에서 엄마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와 블랙 미노타우루스들이 공격의 여파를 막아주지 않았으면 토끼들은 전부 죽었을지도 몰랐다. 정말 다행이었다.
거기다 에일린이 내뿜는 위대한 검은 용 특유의 존재감. 그걸 느끼고도 세준을 지키겠다고 대드는 테오가 정말 대단한 거였다. 어찌 보면 세준의 무릎에 대한 찐광기였다.
달달달.
세준의 무릎, 테오의 몸에서부터 시작된 진동이 에일린에게 전해졌다.
안쓰럽기도 했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위대한 검은 용인 자신 앞에서도 세준을 지키겠다고 목숨을 걸고 나서는 테오가 기특하기도 했다.
"테오구나? 안녕. 나는 에일린이야. 나 알지?"
세준의 무릎에 매달려 몸을 떨고 있은 테오를 안심시키기 위해 에일린이 테오에게 부드럽게 말을 걸었다. 항상 수정구로 봤기에 에일린에게 테오는 너무 친근했다.
"설마?! 우리 박 회장을 검은 탑으로 부른 위대한 검은 용 에일린이냥?"
"응. 그게 바로 나야."
테오의 말에 에일린이 우쭐해하며 말했다. 자신이 생각해도 세준을 탑으로 데려온 것은 용생 전체를 뒤져봐도 가장 잘한 일이었다.
"에일린 정말 보고 싶었다냥!"
테오가 존경의 눈빛으로 에일린을 바라봤다. 테오가 세준 다음으로 존경하는 존재가 세준을 이곳으로 부른 에일린이었다.
"크히히히. 나도 보고 싶었어. 실물로 보니까 좋다."
"냥! 나도 좋다냥!"
"안심해. 세준이는 기절만 한 거야."
"후냥. 다행이다냥."
그렇게 세준을 부축한 상태로 테오와 대화를 나누던 에일린.
"아!"
팔이 점점 검게 변하기 시작했다. 마력 부족으로 폴리모프 마법이 풀리며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나 이제 그만 가봐야겠어."
"왜 벌써 가냥? 박 회장이 일어나면 보고 가라냥."
"나도 그러고 싶은데 안돼. 그만 갈게. 테오, 앞으로도 우리 세준이를 잘 지켜줘."
"맡겨달라냥! 박 회장은 내가 지킬 거다냥!"
테오가 호기롭게 가슴을 펴며 말했다.
"응. 그리고 내가 세준이 뒤통수를 때린 건 말하지 말아줘."
"그건 어렵다냥! 나와 박 회장 사이에는 비밀이 없다냥!"
"알았어. 그럼 먼저 말하지는 말아줘."
"알겠다냥!"
"그래. 그럼 갈게."
쪽.
"이동."
에일린이 기절한 세준의 입술에 입을 맞추고 사라졌다.
-아이고. 우리 손녀가 나를 언제 찾아오려나?
마지막에는 자신을 보러 올거라 생각한 카이저가 에일린이 간 것도 모르고 분수대 위에서 에일린을 기다렸다.
***
"으음."
세준이 일어난 것은 수확제의 마지막 날인 7일째 점심이었다.
"박 회장, 일어났냥?"
"세준 님, 일어나셨어요?"
뺙?
꾸엥?
세준의 주변을 지키고 있던 동물들이 거의 하루 동안 기절해 있던 세준을 걱정했다.
"응. 괜찮아. 근데...내가 왜 여기 누워있는 거지?"
세준이 물었다.
"박 회장, 아무것도 기억이 안나냥?"
"응. 분명 술 먹기 대회에서 술을 마신 거는 기억이 나는 데 그 이후로는 기억이 안 나. 나 설마 술 마시고 필름이 끊긴 건가?"
충격으로 인한 단기 기억상실이었지만, 여기서 사실을 아는 존재는 기절하지 않은 테오 뿐이었다.
삐익!
뾰옥!
뿌우!
저녁이 되자 토끼들이 떠나는 토끼들에게 당근을 챙겨주며 이별을 준비했다. 수확제가 끝나면 소환된 1000마리 토끼들은 다시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돌아가는 토끼들의 표정은 대부분 나쁘지 않았다. 자신의 일행들을 데리고 탑 99층으로 이주하기로 했다. 세준에게 받은 세뱃돈도 있기에 여비도 충분했다.
하지만 탑 55층으로 돌아가야 하는 토끼들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돌아가는 즉시 잠도 재우지 않는 가혹한 농사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뀻뀻뀻. 걱정마요. 곧 유랑 상인 협회에서 그리드에게 징계를 내릴 테니까요."
이오나가 토끼들을 안심시켰다. 이오나가 생각하기에 이번 죄는 너무 중대해 아무리 그리드라도 탑 55층을 지킬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토끼들이 서로 인사를 하고 있을 때
"분명히 엄청 이쁜 여자를 봤는데..."
뚝.
[잘 익은 마력의 방울토마토를 수확했습니다.]
[직업 퀘스트 완료까지 6만 7951번 남았습니다.]
[직업 경험치가 아주 미세하게 상승합니다.]
[수확하기 Lv. 5의 숙련도가 아주 미세하게 상승합니다.]
[경험치 30을 획득했습니다.]
세준은 머릿속에 아른거리는 미녀를 떠올리기 위해 애를 쓰며 방울토마토를 수확하고 있었다.
"아. 왜 기억이 안 나지?"
세준이 답답한 마음에 이상을 썼다. 느낌상 자신이 좋아했던 달빛요정의 세라를 오징어로 만드는 극강의 미녀였다.
"다시 볼 수 있으려나? 정말 이뻤는데."
여기서 에일린이 나서서 그게 나였다고 말해주면 좋겠지만, 에일린은 폴리모프 후유증으로 숙면을 취하고 있었다.
그때
뺙!
쀼쀼!
흑토끼와 쀼쀼가 세준을 찾아왔다.
"무슨 할 말 있어?"
세준의 물음에 두 토끼가 세준의 몸에 앞발을 올렸다.
뺙!
[쀼쀼 공주와 탑 55층으로 내려갈래요!]
"쀼쀼랑 둘이? 좀 위험하지 않을까?"
쀼쀼!쀼쀼!
[레드리본 왕국을 다시 재건할 거예요!]
"음....그래. 대신 둘이 가는 건 허락할 수 없어."
이오나의 말로는 곧 그리드가 탑 55층에서 쫓겨날 거라고 했지만, 원래 악당들은 끝까지 살아남는 끈질긴 존재들. 둘만 내려가면 위험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이주해오는 토끼들을 보호하기 위해 블랙 울프족, 실버 울프족을 부른 상태. 그들을 동원하면 좀 더 안전하게 왕국 재건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오나, 흑토끼와 쀼쀼를 따라가서 도와줘."
"뀻뀻뀻. 네! 그렇지 않아도 저도 불안했어요. 같이 갈게요."
세준은 이오나까지 합류시켰다. 이오나의 엄청난 마법이라면 적들이 모두 몰려와도 충분히 물리칠 수 있으니 위험할 일은 없다.
잠시 후
"뀽뀽뀽. 세준 님, 안녕히 계세요."
이오나가 당분간 꿀잠을 잘 수 없다는 것에 슬퍼하며 흑토끼와 쀼쀼를 데리고 세준에게 인사를 했다. 블랙 울프족과 실버 울프족은 탑 75층에서 만나 함께 내려가기로 했다.
"냥냥냥! 이오나, 잘 가라냥! 나는 여기서 기다리겠다냥!"
세준의 무릎을 혼자 독차지할 수 있게 된 테오가 밝은 목소리로 이오나를 배웅했다.
하지만
덥석.
"냥?!'
세준이 무릎에 매달린 테오의 목덜미를 잡아 이오나의 옆으로 옮겼다.
"박 회장, 내가 왜 여기 있는 것이냥?"
"테 사장, 이제 너도 내려가야지."
이제 많이 놀았으니 일 할 시간이었다. 테오의 봇짐에는 이미 농작물이 가득 찬 상태. 내려가기만 하면 됐다.
"알겠다냥!"
테오가 순순히 대답했다. 자신이 생각해도 요즘 너무 많이 놀았다. 자신을 기다리는 인간들에게 얼굴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내가 말한 거 잊지 말고."
"걱정 말라냥! 다 기억한다냥!"
그렇게 동물들이 떠나고 시간이 지나자
[풍요와 마력이 넘치는 수확제가 종료됩니다.]
[수확제 동안 소환됐던 토끼 1000마리가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수확제가 끝났다.
"쓸쓸하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1000마리 토끼가 떠난 농장은 굉장히 비어 보였다.
107화. 10번째 블루문을 맞이하다.
107화. 10번째 블루문을 맞이하다.
탑 75층 유랑 상인 협회 본부.
"뭐?! 정보가 샜다고?"
"네. 비밀감찰국 요원 중에 그리드의 끄나풀이 있었습니다."
"요원 관리를 어떻게 한 거야?!"
유랑 상인 협회 협회장 메이슨이 비밀감찰국 국장 베가의 보고에 분노했다.
비밀감찰국은 유랑 상인 협회를 위해 만들어진 비밀 스파이 조직. 그런데 남의 정보를 빼와야 하는 요원이 오히려 그리드에게 매수돼 정보를 흘리고 있었다니...
"...죄송합니다."
"그래서 그리드에게 매수된 요원들은 잡았나?"
스파이를 잡지 않으면 작전을 변경해도 다 새어 나가기 때문에 스파이 색출이 가장 긴급했다.
"네! 일반 요원 5명, 중급 요원 3명 그리고 부국장 이토스까지 총 9명을 잡아 심문실에서 무슨 정보를 그리드에게 넘겼는지 전부 자백시키고 있습니다."
"부국장까지 매수됐다고?!"
메이슨이 놀라며 되물었다. 부국장 정도의 위치면 비밀감찰국의 정보 대부분을 알고 있다. 그리드에게 비밀감찰국 정보 전부가 넘어갔다고 봐도 무방했다.
"네. 그리고 도련님의 신변도 노출된 것 같습니다."
"뭐?! 제라스가? 제라스는 지금 어디 있지?"
"그게...이토스의 지시로 탑 55층 침투 임무에 투입됐는데...요원들과의 연락이 3시간 전부터 끊겼습니다. 인질로 잡혔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으음..."
심란했다. 그리드는 분명 자신의 아들의 목숨을 대가로 여러 가지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았다.
'어떻게 한단 말인가?'
메이슨이 고민에 빠졌을 때
쾅!
협회장실의 문이 강하게 열리며 이오나를 선두로 동물들이 들어왔다.
***
수확제가 끝나자 몰려오는 쓸쓸함. 세준은 서둘러 우울한 기분을 털어내고 필요한 일들을 하기 시작했다. 우울할 때는 몸을 움직이는 게 좋았다.
"파나 잘라야지."
세준이 수확제 동안 자르지 않아 무성히 자란 파 이파리를 자르기 시작했다. 넓은 대파밭에서 지칠 때까지 파를 벨 생각이었다.
서걱.서걱.
빠르게 베어지는 파 이파리. 세준은 예전에 비해 훨씬 빠르게 파 이파리를 잘랐다. 수확제 동안 민첩이 22.5나 오른 효과였다. 이제 세준의 스탯 중 가장 높은 스탯이 민첩이 됐다.
세준이 파 이파리 베기에 집중하고 있을 때
서걱.서걱.
옆에서 다른 토끼들도 파 이파리를 베는 것이 보였다. 토끼들의 마음도 세준과 비슷했다. 우울함을 털어내기 위해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렇게 대파밭에서 일을 하다보니 점점 우울함이 흐려졌다.
"휴우.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저녁 늦게까지 토끼들과 농사일을 한 세준이 말하자
삐익!
뺘아!
뺘압!
토끼들이 자신의 집으로 향하며 흩어지기 시작했다. 이제 토끼들은 동굴만이 아니라 지상 곳곳에 집을 짓고 있었다.
"나도 씻고 자야지."
세준이 수돗가로 가서 세수를 하고 집으로 향할 때
찌릿.
자신을 노려보는 시선에 세준은 뒤통수가 따가웠다.
'무시하자.'
세준이 애써 무시하려 했지만
펄럭.펄럭.
검은 용 조각상이 날아와 세준의 집 지붕에 내려앉았다.
그리고
-흥!
다시 세준을 노려봤다.
"휴우. 카이저 님, 왜 그러십니까?"
더 이상 무시하기가 어려워진 세준이 카이저를 보며 물었다.
-왜라니?! 네놈 때문에 내 손녀를 못 봤잖아!
"에일린이요?"
-그래. 너만 만나니까 좋냐?!
"에일린은 관리자 구역에 있는데 어떻게 만나요?"
충격으로 에일린이 나타났을 때의 일이 기억나지 않는 세준은 억울할 뿐이었다.
"아! 그것보다 이것 드세요."
세준이 아공간 창고에 넣어두었던 불당근주 한 병을 꺼냈다. 기절하고 정신을 차렸을 때 아공간 창고에서 불당근주 9병을 발견했다. 테오가 챙겨둔 것이었다.
하지만
[불당근주]
100년 동안 화기를 흡수한 당근을 소주에 담가 만든 술.
섭취 시 당근의 화 속성 친화도를 상승시키고 몸의 노폐물을 태워버린다.
마력이 100 이하면 부작용으로 육체가 당근의 화기를 감당하지 못해 당근의 화기가 몸까지 함께 태워버린다.
생산자 : 붉은 탑농부 우돈
유통 기한 : 500년
등급 : C+
마력 100 이하면 부작용으로 온몸이 불탄다는 옵션 때문에 세준은 불당근주를 먹을 수 없었다. 그래서 술을 좋아하는 카이저에게 선물하는 것이다. 물론 술을 대가로 원하는 것이 있었다.
-크흠. 박세준이놈. 그래도 경우를 아는 인간이구나.
세준이 불당근주를 꺼내자 카이저의 목소리가 한층 부드러워졌다.
꼴꼴꼴.
검은 용 조각상이 술병의 술을 자신의 입으로 부었다.
잠시 후
-크으. 좋군. 식도가 뜨거워지는 느낌이 나쁘지 않아.
몸을 불태울 정도의 화기를 가진 불당근주였지만, 카이저에게는 그저 목을 잠깐 데울 정도의 열기일 뿐이었다.
"더 드릴까요?"
-당연하지! 한 병으로는 간에 기별도 안 가!
"여기 있습니다."
세준이 순순히 카이저에게 불당근주를 뺏겨줬다.
그렇게 불당근주를 5병 뺏겼을 때
"저...그런데 카이저 님. 카이저 님이 세뱃돈으로 주신 비늘이 불량 같습니다. 자고 일어났더니 없어졌습니다. 다시 하나 주세요."
세준이 자신의 왼팔을 보이며 말했다. 세준은 이 얘기를 꺼낼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당근주를 순순히 뺏겨준 것.
-뭐?! 그럴 리가?!
세준의 말에 카이저가 마력을 사용해 세준의 몸을 살펴봤다. 그리고 뒤통수에 남아있는 강력한 마력 반응.
'에일린이구나.'
마력에서 에일린의 기운이 느껴졌다. 장하다. 장해. 강한 마법은 아니지만, 자신의 마법이 걸린 비늘을 파괴할 수준으로 성장한 손녀가 기특했다.
-그래. 하나 더 만들어 주지.
기분이 좋아진 카이저가 흔쾌히 승낙했다.
퉷.
검은 용 조각상이 검은 비늘 하나를 뱉어냈다.
"감사합니다."
-크흠. 감사하면 술 좀 더 내놔봐라.
"네. 여기 있습니다."
세준이 불당근주 2병을 카이저에게 건넸다. 원래는 1병만 남길 생각이었는데 일이 순순히 풀려 카이저에게 2병을 주고도 2병이 남았다.
집에 들어온 세준이 카이저의 비늘을 왼팔에 올려 다시 검은 용 문신을 새겼다.
"든든하네."
세준이 자신의 목숨을 지켜줄 검은 용 문신을 감상하다 잠에 뺘졌다.
***
"이오나 님?"
"안녕하세요. 메이슨 협회장님."
"네. 근데 무슨 일로?"
"그리드의 처벌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알고 싶어서요."
"그게..."
메이슨이 비밀감찰국에 그리드의 스파이가 있었다는 것과 현재 자신의 아들이 그리드에게 인질로 잡혔다는 걸 얘기하기 시작했다.
"여기가 협회장실이냥?"
뺙?
이오나와 메이슨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이오나를 따라온 테오와 흑토끼가 협회장실을 돌아다니며 구경하고 있었다.
"오! 이건 비싼 거 같다냥!"
협회장실의 물건을 자기 것마냥 자연스럽게 자신의 봇짐에 넣는 테오. 도둑이 따로 없었다.
그리고
뺙!
흑토끼는 메이슨의 휴식용 흔들 의자에 앉아
끼익.끼익.
앞뒤로 흔들며 놀고 있었다.
'정말 개념들이 없군.'
감히 유랑 상인 협회의 협회장인 자신의 집무실에서 대놓고 물건을 훔치고 노는 테오와 흑토끼를 노려보는 메이슨. 열불이 났지만, 지금은 화를 낼 때가 아니었다.
"이오나 님,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뀨-뀨-부탁이요?"
일 처리는 거지같이 해놓고 부탁을 하는 메이슨의 태도에 이오나가 분노의 뀨 2단계 상태가 됐다.
"이오나 님, 진정하고 들어주세요. 제 아들을 구출해 주시면 그리드가 탑 55층에 물러났을 때 저희가 토끼 왕국의 재건을 위해 공급하는 물건의 가격을 10% 할인해 공급하겠습니다."
"그래요?"
토끼 왕국 재건에는 막대한 돈이 필요하기에 이오나의 귀가 쫑긋하며 관심을 가졌다.
그때
"냥냥냥! 협상은 거래의 신 박 회장에게 배운 나에게 맡겨라냥!"
테오가 호기롭게 외쳤다. 지금은 상대의 위기 상황. 며칠 전 세준이 너구리족을 상대로 썼던 거래술을 쓸 때였다.
"너 누구야?! 누군데 끼어들어?!"
아까부터 거슬리게 굴던 테오가 자신과 이오나의 대화에 끼어들자 분노를 참지 못한 메이슨이 폭발했다.
하지만
"푸후훗. 내가 누군지 묻는다면 대답해 주는 게 인지상정."
우리 테오는 자신을 소개할 기회가 생긴 것이 기쁠 뿐이었다.
"이 몸은 위대한 검은···"
"우수 유랑 상인 테오에요."
이오나가 간단하게 테오를 소개했다. 검은 용의 부하라고 동네방네 소문내서 좋을 게 없었다.
특히 방금 메이슨의 물건까지 훔쳤다. 정체를 밝히는 건 세준의 명성을 낮추는 일이었다.
"뭐?! 유랑 상인이 왜 저쪽 편을 들어?! 나 유랑 상인 협회 협회장이야!"
테오의 말에 메이슨이 역정을 냈다.
"걱정 말라냥! 나는 이오나 편이 아니라 박 회장 편이다냥!"
"뭐?!"
"쿨거래로 끝내자냥! 아들을 구해주는 대신 공짜! 어떠냥?!"
"말도 안 되는 소리! 15%!"
"공짜로 달라냥!"
"20%!"
"공짜로 달라냥!"
'뭐지 이놈?'
밑바닥 유랑 상인에서 이 자리까지 올라온 메이슨은 일관되게 공짜를 외치는 테오를 보며 당황했다.
정말 상식이 없는 놈이었다. 상대의 마진율조차 고려하지 않는 태도. 협상의 '협'자도 모르는데 어떻게 우수 유랑 상인이 된 건지 궁금할 뿐이었다.
'빽이 있나?'
이오나와 함께 다니는 걸 보면 가능성이 있었지만, 이오나의 성격상 그런 짐을 데리고 다니는 성격이 아니었다.
"테 사장님, 그만 가보시죠."
이래서는 일이 진행되지 않을 것 같았다.
"냥?! 무슨 소리냥? 아직 흥정이 끝나지 않았다냥!"
"그래요? 그럼 어쩔 수 없죠. 저는 여기서 바로 탑 99층으로 올라갈게요. 세준 님의 무릎은...뀻."
"그건 안된다냥!"
이오나의 웃음에 테오가 발끈했다. 테오에게 이것보다 큰 협박은 없었다.
"그럼 빨리 탑 38층에서 거래를 끝내야 되지 않을까요?"
"알겠다냥! 이오나도 꼭 탑 55층을 해결하고 올라가라냥!"
"알겠어요. 약속할게요."
"그럼 가겠다냥!"
이오나에게 탑 99층으로 바로 올라가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테오가 급하게 탑 38층으로 내려갔다.
***
조난 271일 차.
"블루문까지 몇 시간 안 남았네."
세준이 저녁으로 치즈 수프에 바게트빵을 먹으며 말했다. 조난 후 10번째 블루문을 맞이하는 세준의 마음은 아주 여유로웠다. 에일린을 믿고 있기 때문.
폴리모프의 후유증으로 숙면을 취하고 있던 에일린은 다행히 아침에 눈을 떴다.
[탑의 관리자가 술 먹기 대회 동안의 일이 기억나지 않는 게 진짜냐고 묻습니다.]
"응. 내가 술을 너무 많이 먹어서 필름이 끊겼나봐."
[탑의 관리자가 왜 필름이 끊길 정도로 술을 마시냐며 화를 냅니다]
에일린은 세준이 자신과의 만남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에 잠깐 충격을 받았지만, 세준과의 좋은 첫인상을 다시 만들 수 있는 기회라고 여기며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했다.
"오늘도 잘 부탁해."
[탑의 관리자가 자신만 믿으라고 큰소리칩니다.]
그렇게 에일린과 대화를 끝내고 세준은 오늘 하루 동안 파 이파리만 자르고 농작물은 수확하지 않았다. 농작물에 블루문의 기운이 스며들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자정까지 1시간 정도 남았을 때
"얘들아, 위치로."
세준이 여러 밭으로 토끼들과 독꿀벌들을 보냈다. 블루문의 기운이 깃든 농작물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잠시 후 블루문이 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에일린이 나타나지 않았다.
"...에일린?"
세준이 급하게 에일린을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