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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8 - 18

***

황금박쥐에 대한 걱정이 떠나지 않자 세준은 농사일에 집중했다. 지금으로서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없는 상황. 걱정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었다.

이럴 때는 차라리 아무 생각 안 하고 몸을 움직이며 땀을 흘리는 게 나았다.

"땅 움직이기!"

세준이 마일러의 괭이를 사용해 수확이 끝난 고구마밭에 고구마 순을 심었다.

푹.

세준이 휘두른 괭이가 땅에 박히자

쿠궁.

[호박고구마순 20개를 심었습니다.]

[직업 경험치가 미세하게 상승합니다.]

[씨뿌리기 Lv. 6의 효과로 호박고구마순이 활착할 확률이 증가합니다.]

[씨뿌리기 Lv. 6의 숙련도가 미세하게 상승합니다.]

땅이 움직이며 토끼들이 밭에 일정 간격으로 뿌려둔 고구마순이 심어졌다. 수확에 이어 심기까지 땅 움직이기 스킬의 쓰임은 정말 무궁무진했다.

"좋아! 20개 성공!"

세준이 이마의 땀을 닦으며 말했다. 굉장히 고도의 집중이 필요했기에 스킬 몇 번 사용했을 뿐인데 땀이 줄줄 났다.

그렇게 세준이 열심히 고구마순을 심고 있을 때

쩝쩝.

꾸엥!

[맛있다요!]

꾸엥이가 백설기를 꿀에 찍어 맛있게 먹으면서 세준을 구경하고 있었다.

상심에 빠진 세준을 위로하기 위해 토끼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유물 : 재화를 삼키는 쌀반죽에 탑코인을 넣고 얻은 쌀가루로 만든 백설기.

하지만 세준이 입맛이 없다며 먹지 않자 꾸엥이가 백설기를 독식하고 있었다.

"넌 지금 황금박쥐가 지구에 돌아오지 못하는데 떡이 넘어가냐?"

조금 전까지 그렇게 걱정하더니······ 지금은 평온해 보였다. 적응이 빨라도 너무 빠른 거 아냐?

하지만

꾸엥!

[생각해 보니까 황금박쥐는 지구로 갔다요! 그리고 아빠는 지구에 사는 허약한 지구인이다요! 따라서 황금박쥐는 안전하다요!]

꾸엥이는 황금박쥐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평온해진 것이었다.

황금박쥐는 지구로 갔다.

그리고 세준은 지구에 사는 허약한 지구인이다.

따라서 허약한 지구인이 사는 지구는 황금박쥐에게 안전하다.

배우지도 않은 아리스토텔레스의 3단 논법을 활용한 꾸엥이의 대답. 또······ 똑똑한데? 우리 꾸엥이는 천재가 분명했다. 그리고 세준은 자신이 또 실수했다는 걸 깨달았다.

'지금 내가 누굴 걱정한 거지?!'

탑 99층에서 남 걱정만큼 쓸데없는 게 없는데······

황금박쥐가 오히려 사람들을 헤치지 않을까를 걱정해야 할 상황이었다. 뭐 성격이 온순해서 그럴 리는 없었지만······ 결국 아래층으로 내려간 테오만 불쌍해졌다.

"걘 고생 좀 해도 돼."

요즘 부회장이 되더니 발가락 하나 까딱 안 하고 너무 건방져졌다.

그때

꼬르륵.

세준의 위장에서 울리는 소리. 황금박쥐의 안전에 대한 걱정이 사라지자 배가 고파졌다.

"꾸엥아 나도 백설기 하나만 줘봐."

멈칫.

세준의 말에 열심히 백설기를 씹던 꾸엥이의 입이 멈췄다.

그리고

꾸엥······

[백설기 다 먹었다요······.]

세준의 눈치를 보며 말하는 꾸엥이. 방금 먹은 게 마지막이었나보다.

"괜찮아. 또 만들면 되지. 금방 만들어."

백설기는 쌀가루에 물과 설탕을 적당히 넣어주고 골고루 섞이도록 한 다음에 찌기만 하면 끝이다.

꾸엥!

[그럼 꾸엥이 백설기 또 먹고 싶다요!]

"그래."

그렇게 세준이 꾸엥이와 새로 백설기를 만들기 위해 취사장으로 갈 때

삐익!

아빠 토끼가 세준에게 다가왔다. 품에는 주먹만 한 양파를 들고.

"어?! 양파네? 벌써 수확할 때가 됐었나?"

삐익!

세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양파를 건네는 아빠 토끼. 세준이 받은 양파를 살펴봤다. 어떤 옵션이 붙을지 기대됐다.

[배출의 양파]

탑 안에서 자란 양파로 영양을 충분히 섭취해 맛있습니다.

농사에 익숙한 농부가 재배해 양파의 단맛이 강화됐습니다.

섭취 시 몸 안의 노폐물을 조금 배출해 줍니다.

장복하면 노폐물 배출 효과가 상승하고 마력 순환 증대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재배자 : 탑농부 박세준

유통기한 : 90일

등급 : C

"배출의 양파? 노폐물 배출 효과가 있네?"

거기다 장복하면 노폐물 배출 효과 상승에 마력 순환 증대 효과까지 생긴다. 나중에 마법사들에게 대량으로 납품하면 좋을 것 같았다.

자신은 양파를 팔아 돈을 벌고 마법사들은 그 지독한 쓴맛이 나는 환대신 양파를 넣은 맛있는 식사를 할 수 있을 테니 모두에게 윈-윈.

'안 산다고 하면 이오나한테 강매해야지.'

삐익?

양파를 어떻게든 팔겠다고 결심하는 세준에게 아빠 토끼가 양파를 어떻게 할지 물었다.

이제 양파가 충분히 자라 수확할 때가 됐기에 이대로 수확을 할 건지 아니면 꽃을 피워 채종을 할 건지 세준의 의견을 묻는 것이다.

"당연히 씨를 받아서 양파를 더 많이 심어야지. 일단 몇 개는 수확하고."

한국의 웬만한 요리에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야채 중 하나인 양파. 그래서 세준은 오징어볶음을 먹을 때마다 오징어와 양파를 같이 먹지 못하는 것이 항상 아쉬웠다.

"오늘은 오징어볶음이다!"

그렇게 백설기에서 오징어볶음으로 메뉴가 급하게 변경됐다.

***

(처음에는 어색했죠. 하지만······)

"이거 어디서 나는 소리야?"

코인노래방 사장은 맑은 미성으로 부르는 노래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가수라고 해도 믿을 정도의 노래 실력.

'우리 노래방에 그런 실력자가?'

사장은 실력자의 얼굴이 궁금했다. 그래서 누가 부르는지 확인하기 위해 손님이 있는 방들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확인할 방이 몇 개 남지 않았을 때

"형님! 가지 마세요!"

배정호가 급히 들어오며 사장을 말렸다.

"아! 깜짝이야! 배정호! 갑자기 뭐야? 뭘 가지 마?"

'세상에 그런 일이'의 PD 정도면 친화력 만렙. 배정호는 코인노래방 사장과 이미 형님동생 하는 사이였다.

"형님, 가지 말고 이거로 보세요."

배정호가 자신의 노트북 화면을 보여줬다.

"어?! 쟤 뭐야?!"

화면에는 황금색 박쥐가 마이크를 잡고 열심히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것도 기계에 돈을 넣고. 세준이 만약을 대비해 황금박쥐에게 챙겨준 현찰이었다.

"형님, 이거 엄청난 특종입니다!"

7층에서부터 내려온 황금박쥐가 5층의 코인노래방으로 향하는 것을 계속 지켜본 배정호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

[농사꾼의 따뜻한 손길 Lv. 4이 발동합니다.]

[손길이 닿는 동안 사과나무의 성장이 조금 빨라집니다.]

오징어를 잡으러 물속으로 들어간 꾸엥이를 기다리며 세준이 불꽃이의 이파리를 쓰다듬었다.

[헤헤헤. 주인님! 저 자라고 있어욧!]

"그래. 우리 불꽃이 빨리 크자."

[네!]

땅 아래에 있는 어마어마한 불꽃이의 크기를 모르는 세준이 빨리 크라며 불꽃이에게 아낌없이 스킬을 사용했다.

'주인님! 제가 최고의 오징어를 잡아드릴게요!'

자신을 쓰다듬어주는 세준을 보면서 불꽃이가 최고의 오징어를 잡기 위해 차원의 바다로 뻗은 거대한 뿌리들을 열심히 움직이고 있었다.

꾸엥!

참방참방.

꾸엥이는 사냥하는 척 불꽃이가 오징어를 잡아 올 때까지 물속에서 놀고 있었다.

그때 불꽃이의 뿌리 사이를 지나가는 거대한 오징어.

뿌드득.

불꽃이의 뿌리가 그런 오징어를 꽉 잡아 꾸엥이가 기다리는 곳으로 끌고 가기 시작했다.

쾅!쾅!

오징어가 끌려가지 않게 자신의 다리를 움직여 필사적으로 불꽃이의 뿌리를 공격했지만, 불꽃이의 뿌리를 뿌리치지는 못했다.

그리고

쾅!

그렇게 끌려오며 지친 오징어를 꾸엥이가 마무리했다.

꾸엥!

[아빠 오징어 잡았다요!]

꾸엥이가 50m 크기의 거대 오징어의 멱살을 잡고 자랑스럽게 연못에서 걸어 나왔다.

"그런 게 물속에 있었어?!"

세준이 거대한 오징어를 보며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생각보다 물속은 엄청나게 위험한 것 같았다.

조난 292일 차. 오징어가 모자란 게 아니라 양념이 모자라 오징어볶음을 다 만들 수 없었다.

***

탑 40층.

"막내가 위험하다냥!"

아직 황금박쥐를 걱정하고 있는 큰형아 테오가 헌터들이 모여있는 캠프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을 지구방위대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냥?!"

헌터들의 캠프는 처참하게 파괴돼 있었다.

그리고

"여기는 우리가 점령했다. 꺼져라."

탑 49층에 있었야 할 자이언트 블랙오크들이 헌터들의 캠프를 점령하고 있었다. 대충 봐도 1만이 넘는 엄청난 대병력이었다.

블랙 미노타루우스의 남하로 놀란 몬스터들이 움직이며 탑 60층에 있는 몬스터들이 50층 대로 내려가고, 탑 50층에 있는 몬스터들이 40층 대로 내려가면서 생긴 나비효과였다.

"여기 있는 인간들은 어떻게 한 것이냥?!"

"당연한 것 아니냐? 약육강식의 법칙에 따라 우리가 잡아 노예로 쓰다가 잡아먹을 것이다."

"그렇게는 안 된다냥! 나 위대한 검은 용의 부하 치명적인 노랑 고양이 테오 박 님이 너희를 막겠다냥!"

빳칭!

테오가 발톱을 뽑으며 외쳤다. 자신의 호구들이 노예가 되게 할 수는 없었다.

'그럼 우리 박 회장의 농작물은 누가 사주냥?'

농작물을 팔고 세준의 이쁨을 받아야 하는 테오에게 호구들이 사라지는 건 심각한 문제였다.

140화. 증표를 달라냥!

140화. 증표를 달라냥!

1 vs 12000의 전투. 아무리 테오가 75층의 존재라도 혼자서 1만이 넘는 적을 감당할 수는 없다. 하지만 테오는 믿는 게 있었다.

"나의 노예 개론, 나와라냥!"

테오가 목걸이에 달린 무지개색 목걸이를 들며 외쳤다. 자신에게는 과거 종족신까지 했던 벌레사냥꾼 개론이라는 훌륭한 노예가 있었기 때문.

개골!

테오의 발밑이 검은 늪으로 변하며 크기 30m의 거대 개구리 개론이 나타났다.

"개론, 적들을 혼내주라냥!"

테오가 개론의 머리 위에서 우르치와 다른 자이언트 블랙오크들을 내려다보면서 외쳤다.

-네! 테 주인님!

그때

"감히! 내 앞에서 위대한 검은 용님의 부하를 자처한 것이냐?!"

자이언트 블랙오크의 왕 우르치가 분노하며 소리쳤다.

그는 수백만 블랙오크들의 왕이자 간절히 위대한 검은 용의 부하가 되고 싶은 위대한 검은 용의 추종자. 그런데 저 하찮은 고양이 상인이 감히 위대한 검은 용의 부하를 사칭하다니?!

"이놈! 나를 모욕하다니! 저놈을 죽여라!"

뿌우우.

우르치의 명령에 옆에 있던 부하들이 뿔나팔을 불기 시작했다.

그러자

쿵.쿵.쿵.

사방에서 들려오는 발소리. 탑 40층을 정복하고 있던, 자이언트 블랙오크를 따르는 수백만 블랙오크 병사들이 모여 테오를 포위하기 시작했다.

"냥?! 뭐냥?"

적의 우두머리가 갑자기 지신을 모욕했다고 흥분하더니 자신들의 부하들을 불러모아 적의 수가 500만으로 불어나자

"나 진짜 위대한 검은 용의 부하 치명적인 노랑 고양이 테오 박이 맞다냥! 여기 최우수 유랑 상인임을 증명하는 황금패에도 적혀 있다냥!"

당황한 테오가 자신의 자랑 황금패를 꺼내며 적과의 오해를 풀려고 했다.

하지만

"흥! 누굴 바보로 아는 것이냐?! 그건 네 마음대로 적을 수 있는 게 아니냐?! 좋다! 네가 정말 위대한 검은 용님의 부하라면 증표를 보여라!"

"무슨 증표 말이냥?!"

"위대한 검은 용의 부하라면 분명 위대한 증표가 있을 것이다!"

"냥? 그런 거 없다냥. 박 회장이 안 줬다냥······."

괜히 서러워진 테오가 침울해하며 대답했다. 박 회장은 증표도 안 챙겨주고······ 나는 슬프다냥······

"증표가 없다면 그냥 죽어라!!! 공격해라!"

뿌오오오!

우르치의 명령과 함께 뿔나팔이 다시 울렸다.

"와아아아! 적을 죽여라!"

뿔나팔의 소리에 따라 500만 마리의 블랙오크들이 테오 하나를 죽이겠다고 달려들었다.

그렇게 시작된 2 vs 500만의 전투.

"개론, 이길 수 있냥?!"

-테 주인님, 저는 벌레사냥꾼입니다만······

개론은 벌레퇴치에는 강했지만, 이런 전투에는 취약했다. 거기다 주변에 물도 없었기에 제 실력을 내기 어려웠다.

"그럼 어쩔 수 없다냥! 이오나, 일어나라냥!"

도움을 받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은 긴급 상황.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테오가 서둘러 자신의 꼬리에 매달려 있는 이오나를 깨웠다. 급하게 내려오느라 함께 딸려온 이오나였다.

"뀨-테 부회장님, 무슨 일이죠?"

잠을 깨우는 테오 때문에 이오나가 짜증을 내며 일어났다. 별거 아닌 거로 깨웠으면 가만있지 않겠다는 분노의 뀨 1단계 상태로.

"이오나! 지금은 잘 때가 아니다냥!"

"뀨-? 잘 때가 아니라니······ 어?! 블랙오크들?"

테오의 말에 이오나가 주변을 둘러보다 자신이 있는 방향으로 달려드는 500만 마리의 블랙오크들을 발견했다.

"뀨-뀨-이것들은 뭐죠?"

이오나의 분노게이지가 올라갔다. 감히 자신의 잠을 방해하다니! 이오나가 자신의 잠을 깨운 블랙오크들을 응징하기 위한 마법을 준비하려 할 때

"어?! 멈춰! 블랙오크들은 공격을 멈춰라!!!!"

멀리서 이오나를 발견한 우르치가 서둘러 블랙오크들을 향해 소리 질렀다. 거의 비명에 가까운 외침.

"모두 멈춰! 왕께서 공격을 멈추라고 말씀하셨다!"

뒤에서 명령을 들은 블랙오크들이 앞으로 달려나가는 블랙오크들을 강제로 붙잡아 멈춰 세웠다. 다행히 아직 공격을 한 블랙 오크는 없었다.

"휴우."

방금 블랙오크족의 멸족을 막은 우르치가 식은땀을 흘리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적 한 명이 늘어난 것뿐이지만, 그 한 명으로 인해 우르치는 전투를 포기했다. 아니 사실상 항복이었다.

'왜 대파괴의 마법사 이오나가 저 고양이 상인의 꼬리에서 나오는 거야?!'

우르치가 이해할 수 없는 표정으로 테오와 이오나를 바라봤다.

"냥?! 갑자기 공격을 멈췄다냥?! 역시 위대한 검은 용의 부하 나 치명적인 노랑 고양이 테오 박 님을 알아본 게 분명하다냥! 이오나, 괜히 깨워서 미안하다냥!"

이오나를 보고 멈춘 거지만, 테오는 자신을 수호하는 세준의 무릎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무릎의 수호를 받는 자신은 치명적인 것이다냥!

"푸후훗. 비켜라냥!"

개론을 역소환한 테오가 위풍당당하게 블랙오크들을 가로지르며 우르치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우르치! 어서 호구······ 아니 인간들을 풀어줘라냥! 나의 소중한 고객들이다냥!"

우르치를 보고 당당하게 말하는 테오. 그런 테오의 뒤에서 이오나가 우르치를 째려보고 있었다. 얘 말 안 들으면 너희들 모두 멸족이에요! 빨리 일을 해결하고 잘 생각뿐인 이오나였다.

"휴우. 알았다."

"뭐냥?! '알았다?' 감히 위대한 검은 용의 부하 치명적인 노랑 고양이 테오 박 님에게 반말을 하는 것이냥?!"

덕분에 위축된 우르치를 보며 테오의 우쭐 증상이 더 악화됐다.

"······알았습니다. 인간들을 풀어줘라."

잠시 후

"여기 데려왔습니다."

블랙오크들이 사로잡았던 헌터들을 데려왔다.

"어서 풀어주라냥!"

"네!"

테오의 지시를 받은 블랙오크들이 헌터들을 풀어줬다.

"테오, 고마워."

"정말 고마워."

헌터들이 테오에게 감사를 표하고 서둘러 자리를 벗어나려 했다. 지금은 테오 덕분에 풀어났지만, 저들의 눈에 아직 자신들에 대한 적의가 보였다. 언제 다시 공격할지 몰랐다.

그때

"어디 가냥? 고마우면 성의를 표시하라냥! 여기에 도장 찍어라냥!"

그냥 구해주는 법이 없는 테오. 테오가 헌터들에게 계약서를 내밀며 말했다.

"어?! 어······."

"응······."

거절하면 다시 블랙오크에게 붙잡힐 것 같은 분위기. 헌터들이 울며 겨자먹기로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환영한다냥! 이제 너희들은 지구방위대 2기 멤버들이다냥!"

계약서에는 앞으로 지구방위대로 활동하겠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물론 2기 멤버들은 매달 지구 평화를 위해 50탑코인을 기부하는 내용이 추가로 적혀있었다.

"너희들은 한태준을 찾아가서 내가 보냈다고 하면 된다냥!"

"응."

그렇게 지구방위대가 된 헌터들을 보내고

"우르치도 도장을 찍어라냥!"

테오가 우르치에게도 계약서를 내밀었다. 자신의 목숨을 노렸으니 목숨값을 치러야 했다. 대가는 500만 탑코인을 적었다. 나는 테 부회장이니까 목숨값이 비싸다냥!

"좋다."

꾹.

우르치가 계약서를 자세히 읽고 도장을 찍었다.

'푸후훗. 박 회장에게 또 칭찬받겠다냥!'

테오가 그런 우르치를 보며 웃었다. 순식간에 테오가 지구 방위대 100명과 500만 마리의 블랙오크 일꾼을 얻은 테오가 세준에게 칭찬받을 기대감에 부풀었다.

하지만

"여기 있다."

쿵!

우르치가 500만 탑코인인 든 상자를 테오의 앞에 놨다.

"냥?!"

챙그랑.

세준에게 칭찬을 받는 상상이 산산이 부서졌다. 500만 탑코인을 이렇게 쉽게 줄 줄이야. 우르치는 49층의 왕. 그에게 이정도 돈은 큰돈이 아니었다.

"철수한다!"

그렇게 테오에게 돈을 준 우르치가 블랙오크들을 데리고 탑 41층으로 철수했다.

"내 일꾼들이 간다냥······."

테오가 허망한 표정으로 떠나는 블랙오크들을 보고 있을 때

"근데 테 부회장님, 갑자기 탑 40층에는 왜 내려온 거예요?"

내일 탑 99층의 남쪽 불개미들을 토벌하고 마탑을 세우기로 한 이오나가 물었다. 지금 바로 돌아가야 새벽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냥?! 깜빡했다냥!"

이오나의 말에 자신이 여기 온 이유를 기억해낸 테오. 일꾼들을 만들 생각에 황금박쥐 생각은 완전히 잊고있었다.

"기다려라냥!"

테오가 서둘러 탑 39층으로 내려가는 지구방위대 2기 대원들을 좇아 자신의 말을 한태준에게 전하게 했다.

-황금박쥐를 찾아 보호해라! 반드시!

그리고

"블랙오크들은 탑 41층으로 올라갔으니 탑 40층은 안전하다냥!"

탑 40층을 다시 써도 된다는 소식도 전했다. 그들이 열심히 돈을 벌어야 세준의 농작물을 사 줄 수 있다.

그렇게 자신의 일을 끝낸 테오.

"달려요! 테 부회장님!"

"알겠다냥!"

테오가 이오나를 꼬리에 매달고 서둘러 탑 99층으로 돌아갔다.

"뀻뀻뀻."

이오나는 흔들리는 테오의 꼬리를 잡고 기분 좋게 다시 잠들었다.

***

"음······?"

세준이 아침에 눈을 뜨니 무릎에서 적당한 무게감과 함께 따뜻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고로롱.

뀨로롱.

테오와 이오나의 코 고는 소리. 테오와 이오나가 세준의 무릎에서 자고 있었다.

"새벽에 돌아왔나보네. 조금 있다 일어날까?"

탑 40층까지 다녀오느라 고생한 테오와 이오나를 위해서 세준이 다시 눈을 붙였다.

하지만

꾸엥!

[아빠 꾸엥이 배고프다요!]

30분 정도 잤을 때 꾸엥이가 세준을 깨우러 왔다.

"알았어. 밥 먹자."

세준이 일어나자

"냥······ 박 회장 더 자자냥······."

잠투정을 하는 테오.

"그래. 테 부회장, 더 자."

세준이 그런 테오의 엉덩이를 두드려주며 테오를 무릎에 착용하고 취사장으로 가 아침을 만들었다.

[유물 : 재화를 삼키는 쌀반죽이 10탑코인을 삼키고 5kg의 최상급 쌀반죽을 생산합니다.]

아침은 어제 먹으려다 오징어볶음에 밀린 백설기.

"얘들아 밥 먹자!"

꾸엥!

삐익!

세준의 부름에 꾸엥이와 토끼들이 와서 백설기를 먹기 시작했다.

그때

"박 회장, 나 너무 서운하다냥!"

잠에서 일어난 테오가 세상 억울한 표정으로 세준을 바라봤다.

"테 부회장, 왜 그래?"

거만하게 굴 때는 언제고 오늘은 갑자기 귀까지 축 늘어져 있었다.

"나는 박 회장의 부하인데······ 왜 증표가 없는 것이냥?"

"증표? 무슨 일 있었어?"

테오가 우르치와 있었던 일을 얘기했다.

"그러니까 나도 증표를 달라냥!"

꾸엥!

[아빠 꾸엥이도 증표 갖고 싶다요!]

일단 형아가 갖는 건 다 갖고 싶은 꾸엥이도 세준을 조르기 시작했다.

'갑자기 증표라니?'

세준이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아! 카이저 님의 비늘!"

세준에게 좋은 생각이 났다. 카이저의 마법이 각인된 비늘이 있으면 문신이 새겨져 증표처럼 보이고 목숨이 위험한 상황이 오면 보호도 된다.

-뭐?! 내 비늘을 달라고?

"네! 저랑 다른 애들이 쓸 거예요. 대신 비늘 하나당 막걸리 100병 드릴게요."

-몇 장이나 필요한데?

"음······ 5장 정도요?"

세준이 카이저의 눈치를 보며 대답했다. 자신이 쓸 거 한 장, 테오, 흑토끼, 꾸엥이, 황금박쥐 것까지 챙기면 5장은 필요했다.

-뭐?! 5장?!

카이저의 언성이 올라갔다. 너무 많나?

"그럼······."

세준이 일단 자신과 황금박쥐 거는 빼야겠다고 생각할 때

-목숨 귀한 줄 모르는 녀석! 넌 최소 내 비늘 10장은 가지고 있어야지!

조난 293일 차. 막걸리에 욕심을 낸 카이저가 용족 스킬 - 드래곤 스킨이 각인된 비늘 20개를 강제로 세준에게 팔았다. 세준으로서는 너무 고마운 거래였다.

141화. 뭔가가 있어.

141화. 뭔가가 있어.

슈욱.

"자. 이제 됐지?"

세준이 카이저의 비늘을 이용해 테오의 왼쪽 뒷발에 증표를 만들어줬다. 혹시 테오의 황금 앞발에 부정이라도 탈까 봐 사소한 것도 조심하는 세준이었다.

그렇게 테오의 왼쪽 뒷발바닥에 새겨진 검은 용 문신.

"박 회장, 증표를 줘서 고맙다냥!"

테오가 쭈구리고 앉아 자신의 왼쪽 발바닥 분홍 젤리 위에 새겨진 검은 용 문신을 보며 기뻐했다. 세준의 왼팔 전체를 차지하는 문신에 비해 테오의 문신은 굉장히 작았다.

-가진 마력이 크면 그만큼 문신의 크기를 줄일 수 있다. 네가 모자란 거지. 마력은 언제······

세준이 이상하게 여기며 카이저에게 물어봤다 괜히 본전도 못찾고 잔소리만 들었다.

'저도 성장했는데요!'

세준이도 나름 강해졌다. 마력이 늘어나며 어깨를 넘어갔던 검은 용 문신도 어깨를 넘어가지 않는 정도로 작아졌다.

하지만 카이저 앞에서 말해봤자 코끼리 앞에서 개미가 자기 힘 세졌다고 말하는 것과 큰 차이가 없기에 그만뒀다. 잔소리만 길어진다.

꾸엥!

[아빠 나도 증표 갖고 싶다요!]

잔소리를 듣고 돌아온 세준에게 꾸엥이가 오른앞발을 내밀며 말했다.

"알았어. 자."

세준이 꾸엥이 내민 발바닥에 카이저의 비늘을 놓자

슈욱.

카이저의 비늘이 꾸엥이의 발바닥으로 스며들며 꾸엥이의 엄지 발가락에 작은 검은 용문신이 새겨졌다. 앙증맞은 크기의 문신

'우리 꾸엥이 마력도 높구나.'

덕분에 꾸엥이의 마력이 엄청 크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꾸엥!

[큰형아! 나도 증표 있다요!]

신난 꾸엥이가 자신의 엄지 발가락에 새겨진 검은 용 문신을 테오에게 자랑했다.

"푸후훗. 꾸엥이보다 내 증표가 더 크다냥! 이것만 봐도 내가 이곳의 이인자인 걸 알 수 있다냥!"

자신의 증표가 꾸엥이보다 더 큰 것에 테오가 허리에 손을 올리고 우쭐해 했다.

꾸엥?

[꾸엥이 증표는 왜 작은 것이다요?]

꾸엥이가 자신의 증표와 세준과 테오의 증표를 비교하며 실망했다. 증표의 크기가 작을수록 더 좋은 거지만, 이곳은 거꾸로 돌아갔다.

그때

"박 회장, 이오나에게도 증표를 주자냥!"

기분이 좋아진 테오가 이오나에게 호의를 베풀었다.

"그래. 네가 해줘."

"알겠다냥! 자. 받아라냥!"

세준에게서 카이저의 비늘을 받은 테오가 직접 이오나의 몸에 비늘을 올렸다.

그리고

슈욱.

곧 비늘이 이오나의 몸에 흡수됐다.

하지만

"냥?!"

이오나가 자고 있어서인지 오류가 일어났다. 그로 인해 등에 검은 용문신을 한 햄스터가 탄생했다.

"풋! 테 부회장, 난 모르는 일이다."

꾸엥!

[큰형아! 꾸엥이도 모르는 일이다요!]

세준과 꾸엥이가 테오를 버려두고 밭으로 도망쳤다.

"박 회장! 꾸엥이! 같이 가자냥!"

테오도 서둘러 그런 그들을 쫓아갔다. 우리는 하나다냥!

잠시후

"뀨유윳! 너무 잘 잤어요."

이오나가 기지개를 켜며 일어났다.

"세준 님, 그럼 저는 남쪽으로 출발할게요."

"그······ 그래."

이오나는 일어나자마자 마법사들을 이끌고 남쪽으로 불개미들을 토벌하러 갔다.

그리고 이오나의 등에 생긴 검은 용 문신을 목격한 마법사들. 그들 중 누구도 이오나의 등에 생긴 검은 용 문신에 대해 묻지 않았다. 아니 두려움에 떨며 묻지 못했다.

'무서워!'

평소에도 무서운데 등에 문신까지 한 이오나의 위압감은 장난이 아니었다. 덕분에 이오나는 평소보다 더 말을 잘 듣는 마법사들을 데리고 불개미들을 토벌했다.

결국 아무도 말을 해주지 않았기에 남쪽 토벌이 끝날 때까지 이오나는 자신의 등에 검은 용 문신이 새겨진지 모르고 돌아다녔다. 테오에게는 정말 다행이었다.

***

"네? 여기 주소요? 서울시 강남구······."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건물의 위치를 알아내려는 황금박쥐의 귀에 한 직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덕분에 황금박쥐가 편하게 자신이 있는 곳의 주소를 알아냈다.

(뱃뱃! 세준 님, 제가 알아냈어요!)

파닥.파닥.

황금박쥐가 기쁨의 날갯짓을 하며 날아다녔다. 그렇게 쉽게 건물 주소를 알아낸 황금박쥐는 할 게 없어지자 하염없이 탑으로 돌아가길 기다렸다.

(심심하네요.)

황금박쥐가 지루함을 느끼고 있을 때

(좋으니 그 사람······)

어디선가 들려오는 노래소리.

뱃뱃?

황금박쥐가 노래소리를 따라 코인 노래방으로 날아갔다. 탑 77층에서 나무들에게 노래를 불러주면서 노래를 부르는 것에 흥미가 생겼기 때문.

그리고 코인노래방 주변을 날아다니며 사람들의 행동을 눈여겨 본 황금박쥐가 노래방 기계에 천 원을 넣고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충전된 노래는 2곡. 노래는 금방 끝났다.

(뱃뱃! 재미있어요! 나는 어둠 속에 있었네. 그때 나를 꺼내준 건~ 세준 님~)

천 원어치 노래를 다 부른 황금박쥐가 흥에 취해 자신의 자작곡을 부르기 시작했다. 아직 돈이 3000원 남아있었지만, 세준의 돈을 함부로 쓸 수는 없었다.

(뱃뱃. 기분이 좋아졌어요.)

노래를 다 부른 황금박쥐가 노래방을 떠나려 할 때

남은 곡 : 1곡

(어?!)

분명 다 불렀는데 화면에 곡이 하나 남아있었다.

뱃뱃!

황금박쥐가 신나하며 1곡을 더 불렀다. 하지만 황금박쥐가 계속 노래를 불러도 줄어들지 않는 1곡.

(이건 마법이에요!)

황금박쥐가 기뻐하며 계속 노래를 불렀다. 누군가 카운터에서 계속 곡을 넣어주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아. 힐링된다."

황금박쥐의 노래에 힐링받고 있는 노래방 사장님 황민호였다.

그때

파앗.

노래를 부르고 있는 황금박쥐가 사라졌다. 무선마이크를 든 채로.

***

"오! 잘 영글었네."

세준이 옥수수를 감싼 껍질을 살짝 벌려 안의 옥수수 알갱이들을 살펴보며 말했다. 옥수수밭을 지나가다 수염이 갈색으로 변한 옥수수들이 있어 확인해보니 확실히 옥수수가 알알이 잘 영글어 있었다.

톡.톡.

세준이 땅에 쓰러진 옥수수나무에서 옥수수를 수확하기 시작했다.

1시간 후.

고로롱.

테오는 세준의 무릎에 달라붙어 늘어지게 자고 있었고

꾸엥!

[빨리 찐 옥수수 먹고 싶다요!]

꾸엥이는 곧 세준이 쪄줄 옥수수를 기대하며 열심히 옥수수 껍질을 벗기고 있었다.

아작.

꾸엥!

물론 까는 옥수수의 절반 정도는 꾸엥이 뱃속으로 들어갔다. 생으로 먹어도 맛있다요!

그리고

"너무 많은데······."

아직도 수확하지 않은 1만 개 정도의 옥수수를 보면서 세준은 잠깐 생각에 잠기더니 집 앞에 꽂아 두었던 마일러의 괭이를 들고 왔다.

그리고

"땅 움직이기."

괭이를 휘두르며 스킬을 사용했다.

'삼키고 분류해!'

머릿속으로 강한 의지를 싣고. 활용도가 무궁무진하다고 했으니 이것도 가능할 것 같았다.

스스스.

10평 정도 땅에 있던 옥수수나무가 땅으로 흡수되듯이 땅에 묻혔다. 땅을 크게 움직이지 않기에 마력 소모도 적었다.

잠시 후

[체력의 옥수수 102개를 수확했습니다.]

[직업 경험치가 미세하게 상승합니다.]

[수확하기 Lv. 6의 숙련도가 미세하게 상승합니다.]

[경험치 3060을 획득했습니다.]

스스스.

메시지와 함께 다시 땅으로 올라오는 옥수수나무와 수확된 옥수수. 둘은 따로 분리돼 쌓여진 상태로 땅으로 올라왔다.

"이게 돼?!"

자신이 하고도 믿기지 않은 듯 멍한 표정으로 세준이 차곡차곡 쌓인 옥수수나무와 옥수수를 바라봤다.

그리고

"땅 일으키기! 땅 일으키기!"

연속으로 스킬을 사용했다.

그러자

스스스.

스스스.

시간 차를 두며 땅으로 뺠려들어가는 옥수수나무.

"땅 일으키기! 땅 일으키기!"

세준은 스킬이 잘 발동되는지 신경쓰지 않고 다시 다른 땅에 스킬을 사용했다.

그렇게 땅 움직이기 스킬을 10번 사용했을 때

[체력의 옥수수 97개를 수확했습니다.]

...

..

.

옥수수를 수확했다는 메시지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역시."

세준은 메시지를 보며 확신했다.

'내 의지에 반응하는 뭔가가 있어.'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자신이 스킬을 사용하면 자신이 신경쓰지 않아도 끝까지 자신의 생각을 수행하는 뭔가가 있었다.

거기다 자신이 같은 걸 생각하며 스킬을 사용하자 학습하는 것처럼 점점 큰 집중력 없이도 스킬 사용이 가능했다.

"근데 뭐가 내 생각에 따라 움직이는 거지?"

세준이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세준 님! 세준 님! 제가 알아냈어요!)

지구에서 돌아온 황금박쥐가 초코파이 2봉지를 들고 날아왔다.

***

다음 날 점심.

"뀨-뀨-뀨 이거 누가 그런 거죠?!"

마탑을 세울 땅의 근처 불개미를 전부 토벌한 이오나가 분노의 뀨 3단계 상태로 자신의 등을 가리키며 말했다.

불개미 토벌은 이오나의 예상보다 힘들었다. 하필 마탑을 세우려고 한 땅에 불개미 여왕의 둥지가 있었기 때문.

물론 불개미 여왕을 처치하기는 했지만, 불개미 여왕의 격렬한 저항에 이오나의 자랑인 새하얀 털이 그을렸다. 그래서 털을 깎고 씼었는데······

"뀨?"

잘 닦았는지 얼음으로 만든 거울로 자신의 몸을 살펴보던 이오나가 등에 새겨진 검은 용문신을 발견했다.

그리고 바로 이곳으로 달려온 것이다. 저런 문신이 새겨질 정도로 방심했을 때는 세준과 테오가 있을 때뿐이니까.

"테 부회장이 그랬어. 근데 테 부회장은 어제 탑 40층으로 내려 갔는데?"

어제 황금박쥐가 알아온 주소를 들은 세준.

"테 부회장, 내려가서 태준 님한테 말해서 황금박쥐가 알아온 주소의 건물 좀 사달라고 해줘."

"냥······ 싫다냥! 나 올라온 지 얼마 안 됐다냥! 더 있다 가고 싶다냥!"

세준의 무릎과 떨어지고 싶지 않은 테오가 세준의 볼에 이마를 비비며 애교를 폈다.

"좀 있으면 이오나 올 건데 괜찮겠어? 나는 너가 걱정돼서 그러지."

"냥?!"

세준의 말에 테오는 자신이 이오나에게 한 짓을 기억해냈다.

"네가 내려가 있으면 내가 이오나에게 잘 말해서 이오나의 화를 풀어놓을게."

"진짜냥?"

"테 부회장, 나 못 믿어?"

"아니다냥! 당연히 믿는다냥!"

세준의 말에 테오가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자기는 못 믿어도 세준은 믿는 테오였다. 그렇게 테오는 어제 탑 40층으로 내려갔다.

아마 지금쯤 헌터들에게 농작물을 팔고 한태준에게 자신의 말을 전달하고 있을 것이다.

"이오나 너무 화내지 마. 테오가 허락받지 않고 문신을 새긴 건 잘못이지만, 정말 좋은 의도로 그런 거야."

"뀨-그래도 이건 너무 심해요."

이오나가 자신의 등에 난 검은 용문신을 다시 보며 말했다. 카이저의 마법이라서 그런지 옮기거나 지워지지도 않았다.

"음······그럼 이건 어때 내가 말리지 못한 것도 있으니까 앞으로 6개월간 매달 볶음땅콩 1000개를 줄게."

"보······ 볶음땅콩 1000개요?! 흥! 제가 먹을 거에 넘어갈 것 같아요?!"

거의 넘어온 듯 하지만 먹을 것에 넘어가기에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모양이다.

"그럼 거기에 테오 꼬리 사용권 1일."

"뀻? 테오 꼬리 사용권이요?!"

이오나의 눈이 반작였다.

"응. 하루 동안 이오나 네가 마음대로 테오를 데리고 다닐 수 있는 권한을 줄게."

평소에는 테오가 가는 데로 끌려다니는 이오나에게 주도권을 준 것이다.

"뀻뀻뀻! 좋아요!"

그렇게 이오나의 화가 풀렸다.

***

"냥?! 기분이 이상하다냥······."

테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탑 40층에 도착했다.

그리고

"인간들아 내가 왔다냥!"

평소대로 캠프의 헌터들에게 자신의 등장을 알렸다. 세준이 시킨 일을 하고 돌아가려면 빨리빨리 움직여야 했다.

"테오다!"

"탑 40층의 구원자가 왔어!"

캠프에 대기하고 있던 헌터들이 테오를 크게 반기며 우르르 다가왔다. 테오가 블랙오크들을 몰아내고 탑 40층을 지켜냈다는 소문이 생존자들을 통해 퍼졌기 때문.

"냥?! 인간들아 떨어져라냥! 멀리서 감사하라냥!"

헌터들이 너무 가까이 오자 테오가 헌터들을 뒤로 물렸다. 너무 가까운 건 세준 말고는 싫었다.

그리고 헌터들이 모이자 경매를 시작했다.

"오늘 가장 먼저 팔 농작물은 머리털을 풍성하게 해주는 폭발하는 체력의 옥수수다냥!"

테오가 붉은색 옥수수 하나를 꺼내며 외쳤다.

"뭐?! 머리털을 풍성하게 하는 옥수수?!"

테오의 외침에 헌터들의 눈에 불길이 일어났다.

간암을 치료하는 해독의 대파, 위암을 치료하는 힘의 감자.

시력을 회복시켜 주는 민첩의 당근까지 테오가 파는 농작물들이 지구에 풀릴 때마다 지구의 병들은 하나씩 정복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말은 테오가 가져온 폭발하는 체력의 옥수수가 인류 최대 난제 중 하나인 탈모를 해결해 준다는 의미.

"100탑코인!"

"500탑코인!"

"1000탑코인!"

헌터들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호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올라가는 호가. 당연하게도 그들은 머리카락이 없었다.

142화. 투구를 얻다.

142화. 투구를 얻다.

25살부터 머리가 빠지기 시작한 제롬. 그는 믿었다. 지구에는 없지만, 탑 안에는 탈모를 치료할 신비의 약이 있을 거라고.

그렇게 탈모 치료제를 찾아 7년간 탑을 오른 제롬은 어느새 지구 랭킹 87위의 랭커가 되어있었지만, 탈모 치료제는 찾지 못했다.

'이렇게 포기해야 하나······.'

재롬이 거의 탈모 치료제에 대한 희망을 포기할 때쯤

-탑 40층에 신비한 농작물을 파는 고양이 상인이 나타났다.

제롬에게 테오에 대한 소문이 들려왔다. 먹으면 지방을 분해해 주고, 암을 치료하고, 시력을 회복시켜주는 농작물들. 그래서 혹시나 하는 희망을 가지고 온 제롬.

그리고

'찾았다!'

그 희망은 보답받았다. 드디어 발견한 것이다. 인류의 숙원 대머리 치료제를! 약은 아니고 농작물이지만······

'오늘만을 기다렸다!!! 꺼져! 대머리들아! 저건 내 거야!'

"2000탑코인!!!"

이성을 상실한 제롬이 외쳤다.

하지만

"2300탑코인!"

"2500탑코인!"

이성을 잃은 대머리는 제롬 하나가 아니었다. 많은 대머리 헌터들이 테오가 든 폭발하는 체력의 옥수수를 보고 이성을 잃었다.

"3000탑코인!"

"3200탑코인!"

"3500탑코인!"

무섭게 치솟는 호가.

그때

"5000탑코인!"

로얄나이트 길드의 길드장 에단이 외쳤다.

"에단, 네가 그걸 왜 사?!"

대머리들이 분노했다. 에단은 잘생긴 얼굴과 풍성한 금발 머리카락이 있었기 때문.

"완판이다냥!"

그렇게 다 가져야만 했냐?! 경매에 참가했던 대머리 헌터들이 원망 가득한 눈으로 에단을 바라봤다.

뚜벅.뚜벅.

대머리 헌터들의 원망 어린 시선을 받으며 에단이 꿋꿋이 테오에게 걸어갔다.

"여기 5000탑코인이다."

탈모 치료제 하나에 50억. 쉽게 낼 수 있는 돈이 아니었지만, 에단은 흔쾌히 5000탑코인을 냈다. 그에게는 50억보다 탈모 치료제가 더 가치 있었다.

"받아라냥!"

테오가 돈을 받고 폭발하는 체력의 옥수수를 건네줬다.

그리고

스윽.

폭발하는 체력의 옥수수를 받은 에단이 머리에 손을 대고 머리카락을 잡아당기자

트득.

가발이 벗겨지며 맨살이 드러났다. 에단, 그도 대머리였던 것이다. 에단은 지구에서 탑배우, 스포츠스타들보다 인기가 많은 남자.

만약 대머리인 게 알려지면 인기, CF 위약금 등 잃을 게 한둘이 아니었다.

"에단, 너도?!"

"힘들었겠구나."

에단의 갑작스러운 탈밍아웃에 대머리들이 울컥했다.

우적.우적.

에단은 말없이 옥수수를 생으로 씹어 먹었다. 맛은 느끼지도 못했다. 자신의 머리에 머리카락이 나는지만 집중했다.

그렇게 옥수수를 다 먹고 1분 정도 지났을 때

움찔.

에단은 머리에서 간질간질한 느낌을 받았다. 그동안 경매가 이어졌지만, 대머리 헌터들의 시선은 에단에게 집중돼 있었다.

"완판이다냥!"

그렇게 테오가 갸져온 모든 농작물을 다 팔았을 때

"났다!"

"머리카락이 났어!"

숨죽이고 에단을 지켜보는 대머리 헌터들이 짧은 금발로 덮인 에단의 머리를 보며 흥분했다. 불가능이 가능으로 바뀌는 순간을 직접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헌터들이 에단의 머리가 나는 것을 지켜보는 사이

"한태준을 만나고 싶다냥!"

테오는 지구방위대 대원을 만나 한태준을 찾았다.

하지만

"태준 님이 현재 비행기 안이라 탑으로 들어오려면 10시간 정도 걸릴 것 같습니다."

하필 태준은 아프리카에서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 안에 있었다.

"알겠다냥! 그럼 10시간 후 다시 오겠다냥!"

테오가 지구방위대 대원과 얘기를 끝내고 에단에게 다가갔다. 어느새 에단의 머리는 가발을 벗기 전의 그 풍성한 금발 상태로 변해 있었다.

"머리가 나는 걸 잘 봤냥?!"

테오가 에단을 구경하고 있는 헌터들에게 물었다.

"그래! 테오, 다음에도 폭발하는 체력의 옥수수 가져올 거지?"

기적을 목격한 헌터들이 흥분해서 다음에도 옥수수를 가져올 수 있는지 물었다.

"무슨 소리냥? 아직 99개가 남았다냥!"

테오가 봇짐에서 붉은색 옥수수를 꺼내며 말했다. 반응이 뜨겁기에 일부러 수량이 더 있다는 걸 말하지 않은 테오였다.

"어?!"

"3000탑코인!"

"3300탑코인!"

다시 경매가 시작됐다. 처음보다는 못했지만, 폭발하는 체력의 옥수수를 개당 3500탑코인 정도에 팔았다. 지구를 놀라게 할 새로운 농작물의 등장이었다.

"그럼 가겠다냥!"

테오가 헌터들과 포토 타임을 갖고 캠프를 떠났다.

그리고

"푸후훗. 기다려라냥!"

테오가 41층으로 달려갔다. 테오는 한태준을 기다리는 동안 탑 41층에 있는 블랙오크들의 왕 우르치를 찾아갈 생각이었다.

'이걸 보여주지 않고 그냥 갈 수는 없다냥!'

자신에게 검은 용의 부하라는 증표가 없다고 무시했던 우르치에게 자신의 증표를 자랑하기 위해서였다.

***

척.

세준이 옥수수 알갱이 한움큼을 집어 어제 수확이 끝난 옥수수밭에 던졌다.

그리고

"땅 움직이기!"

세준이 마일러의 괭이로 땅을 찍자

쿠궁.

10평의 땅이 움직이며 밭에 뿌려둔 옥수수들이 심어졌다.

땅을 크게 움직이지 않고 거기에 자신의 지시를 수행하는 뭔가가 땅에 옥수수를 심어줬기에 세준은 스킬 사용에 큰 마력 소모 없이 무한대로 스킬을 사용할 수 있었다.

그렇게 10만 개가 넘는 옥수수 알갱이를 하루 만에 전부 심은 세준.

"아 좋다!"

꾸엥!

[나도 좋다요!]

(아무래도 사랑인가 봐~)

세준이 꾸엥이의 배를 베고 누워 황금박쥐가 부르는 코인노래방에서 배워온 한국 최신 가요를 들으며 쉬고 있을 때

펄럭.펄럭.

켈리온이 날아왔다.

그리고

-세준이 네가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

다짜고짜 세준에게 따지기 시작했다.

"네? 제가 뭘 했다고?"

-왜 카이저 비늘이랑만 바꿔?! 비늘이 필요하면 날 찾아왔어야지

! 내 비늘이랑도 바꿔!

카이저에게 세준과 막걸리 100병과 비늘 하나를 바꿨다는 말을 들은 켈리온이 세준을 찾아와 따졌다.

"네?! 켈리온 님, 죄송한데 이제 비늘은 필요 없어요."

검은 탑에서 하얀 용문신을 하고 다녀 좋을 게 없다.

-그럼 내 용아병은 어떠냐?

세준이 거절하자 켈리온은 자신의 이빨로 만든 용아병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어차피 빠진 이빨이 아까워 재미로 만든 것들. 막걸리와 바꿔도 크게 아쉽지 않았다.

"네?! 용아병이요?"

-그래. 용아병이여. 일어나라!

달그락.

켈리온의 부름과 함께 바닥에 마법진이 그려지며 크기 3m의 용아병 하나가 일어났다.

-이놈들은 자지도 쉬지도 않는다. 용아병 하나에 막걸리 1000병 어떠냐?

켈리온이 먼저 조건을 제시했다. 이빨 하나로 용아병 10마리를 만들 수 있다. 거기다 비늘은 뽑아도 100년이면 다시 자라지만, 이빨은 1만 년은 있어야 다시 난다. 나름 합리적인 조건이었다.

하지만

"별로 쓸모 있을 것같지 않는데요?"

용아병을 보는 세준의 눈은 탐탁치 않았다. 용아병은 덩치가 너무 커서 농작물 수확에 투입하기도 어려웠고 밭을 갈거나 힘을 쓰는 일은 꾸엥이나 블랙 미노타우루스가 있었다.

그렇다고 24시간 쉬지 않고 해야 할 일도 없었다. 한 마디로 용아병은 무쓸모였다.

그때

-잠깐! 이놈들에게는 방어구로 변신하는 능력이 있다!

세준이 관심 없어 하자 켈리온이 다급하게 외쳤다.

"방어구요?!"

거래 품목이 방어구라면 얘기가 아주 달라졌다. 항상 목숨의 위협을 받는 세준에게 방어구는 너무도 필요한 것. 거기다 용의 이빨로 만들었다면 그 강도도 믿을 만했다.

-그래. 용아병 변신.

달그락.

켈리온의 명령에 용아병이 용의 두개골 모양을 한 뼈투구로 변신했다.

-어떠냐?

"일단 좀 볼게요."

세준이 뼈투구를 살펴봤다.

[용아병(龍牙兵) - 투구]

위대한 하얀 용 켈리온 마므브가 자신의 이빨로 만든 용아병입니다.

전체적인 능력은 용의 뼈로 만든 것에 비해 손색이 있지만, 위대한 하얀 용 켈리온 마므브의 마법이 담겨 부서져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재생됩니다.

투구로 변신할 수 있습니다.(착용자의 몸에 맞게 크기를 조절합니다)

투구 상태에서 착용자가 원하면 전신 갑옷으로 변신이 가능합니다.

사용 제한 : 켈리온 마므브의 인정을 받은 자

제작자 : 켈리온 마므브

등급 : 측정 불가

"흐음······."

일단 설명으로는 좋아 보였다. 하지만 이게 자신의 목숨을 구해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아직 확신이 서지 않았다.

"꾸엥아 쳐봐."

세준이 투구를 꾸엥이에게 건네며 말했다. 마음 같아서는 직접 투구를 쓰고 테스트해보고 싶지만, 운이 없으면 투구는 멀쩡한데 다른 부위가 부러져 죽을 수도 있었다.

꾸엥?

[이거 부숴도 된다요?]

꾸엥이가 자신이 쳤다가 투구가 부서지면 어떡하냐고 걱정하며 물었다.

-하하하. 어디 부숴보거라.

켈리온이 어림도 없다는 듯이 자신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리 탑 99층의 몬스터라도 용의 뼈에 흠집을 내는 건 쉬운 게 아니었다.

꾸엥!

[그럼 친다요!]

꾸엥이가 두 손을 들어 투구를 내려치려 했다.

"아! 잠깐! 다른 데로 가서 하자."

여기서 꾸엥이가 풀파워로 투구를 때리면 투구가 문제가 아니라 농장이 박살 날 수도 있었다.

-그럴 필요 없다. 차단.

켈리온이 주변과 차단되는 결계를 만들어줬다.

"켈리온 님, 감사합니다. 꾸엥아 쳐봐."

꾸에엥!

세준의 말에 꾸엥이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양손을 들어 귀여운 괴성을 지르며 투구를 내려쳤다.

콰아앙!

귀여운 괴성과 다르게 위력은 전혀 귀엽지 않았다. 엄청난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윽!"

세준으로서는 충격파조차 견뎌내기 버거울 정도. 아마 켈리온의 결계가 없었다면, 농장에 불꽃이가 있는 동굴보다 더 깊은 구멍이 생겨났을 것이다.

그렇게 충격파가 지나가고

"오!"

투구를 확인한 세준이 탄성을 질렀다. 역시 용의 뼈로 만들어서인지 투구는 상처 하나 없이 멀쩡했다.

-······하하하. 내가 뭐라고 했냐?!

켈리온이 크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면서 서둘러 마력을 불어넣어 투구에 난 1mm 정도의 실금을 복구했다.

'곰탱이 놈! 세준이 근처에서 좋은 걸 얼마나 주워 먹은 거냐?!'

아무리 1만 년 전의 뼈라도 자신의 뼈에 흠집을 내다니······ 켈리온으로서는 자존심이 상했다.

그렇게 켈리온이 꾸엥이를 욕하는 사이

쓱.

"꾸엥아 아빠 어때?"

세준이 뼈투구를 쓰고 꾸엥이에게 물었다.

꾸엥!

[좋다요!]

디자인은 모르겠고 꾸엥이는 자신의 공격을 버티는 투구를 보며 내구성 점수에 만점을 줬다.

그리고

꾸엥!

[아빠 꾸엥이도 투구 갖고 싶다요!]

꾸엥이도 투구를 요구했다. 세준과 같이 쓰면 재미있을 거라 생각하는 꾸엥이였다.

"꾸엥이도 갖고 싶어?"

꾸엥!

[아빠랑 같이 쓰고 싶다요!]

"켈리온 님, 이거 살게요. 대신 10개월 할부로 용아병 5마리 먼저 주세요."

사이즈 조절이 가능했기에 테오, 흑토끼, 꾸엥이, 황금박쥐 것까지 주문했다.

-할부?

"10개월 동안 매달 나눠서 용아병 값을 지불하겠다는 뜻입니다."

세준은 용들을 상대로는 가격을 깎지 않았다. 괜히 용의 심기가 상하기라도 하면 목숨이 위험했다. 대신 카이저 때처럼 미리 물건을 받고 대가는 나중에 준다고만 했다.

-그럼 매달 막걸리 500병이군 좋다!

그렇게 켈리온과 용아병 거래가 성사됐다.

***

탑 41층.

"우르치, 어디 있냥?!"

테오가 경망스럽게 블랙오크족의 왕 우르치의 이름을 부르며 돌아다녔다. 그리고 부하에게서 자신의 이름을 경망스럽게 부르는 고양이가 있다는 소리를 듣고 찾아온 우르치.

"고양이 상인, 여기까지 무슨 일이냐?"

우르치가 테오의 꼬리를 주시하며 물었다. 다행히 대파괴의 마법사 이오나는 보이지 않았다.

"이것봐라냥! 나 징표 받았다냥! 이게 위대한 검은 용의 부하라는 징표다냥!"

테오가 자신의 왼쪽 뒷발을 들어 발바닥에 새겨진 검은 용 문신을 보여주며 우르치에게 자랑했다.

"그······ 그게?! 위대한 검은 용님의 징표?!"

우르치는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테오의 발바닥 문신에서 느껴지는 흉포한 기운의 잔재. 거기서 흘러나오는 기운은 분명 용의 것이었다.

"푸후훗. 갖고 싶으냥?!"

테오가 악당처럼 웃으며 자신의 발바닥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우르치에게 물었다.

143화. 팝콘을 먹다.

143화. 팝콘을 먹다.

"가······ 갖고 싶습니다!"

우르치가 테오의 발바닥에 있는 검은 용 문신을 보며 홀린 듯이 대답했다.

위대한 검은 용의 부하라는 증표. 그걸 가질 수 있다면 그건 가문의 영광, 아니 종족 전체의 영광이었다.

그리고 그걸 자신이 해낸다면 자신은 먼 훗날까지 블랙오크족 역사에 길이 남는 위대한 왕이 될 것이다.

"그럼 앞으로 내 말 잘들어라냥!"

테오가 허리에 손을 올리며 거만하게 말했다. 자신의 말을 잘 들으면 나중에 세준에게 부탁해서 카이저의 비늘을 하나 가져다줄 생각이었다.

"당연합니다! 위대한 검은 용의 부하께서 말씀하시면 저희는 따를 뿐입니다!"

"아니다냥!"

"네?!"

"잘 들어라냥! 나는 위대한 검은 용의 부하 치명적인 노랑 고양이 테오 박 님이다냥!"

"아! 네! 위대한 검은 용의 부하 치명적인 고양이 테오 박 님!"

"푸후훗. 그거다냥!"

테오는 자신의 소개를 남의 귀로 듣게 되니 기분이 아주 좋았다.

"위대한 검은 용의 부하 치명적인 고양이 테오 박 님! 저희에게 위대한 검은 용의 증표를 쓸 수 있는 영광을 내려주십시오!"

"냥?! 증표를 어떻게 쓴다는 말이냥?"

"저희에게 방법이 있습니다. 루켄!"

우르치가 소리치자

"네!"

거대한 덩치의 블랙오크가 들어왔다. 손에는 해골 장식이 된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저희 블랙오크족의 주술사 루켄이 위대한 검은 용의 부하 치명적인 고양이 테오 박 님의 발바닥에 있는 증표를 복사할 겁니다."

"복사말이냥?"

"네! 위대한 검은 용의 부하 치명적인 고양이 테오 박 님의 증표에는 절대 피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럼 좋다냥!"

"감사합니다! 위대한 검은 용의 부하 치명적인 고양이 테오 박 님!"

"우르치, 앞으로는 그냥 이름만 불러라."

수식어가 너무 길어지자 테오 자신이 불편했다.

"네! 테오 님!"

"우르치 님, 증표를 어디다 새기실 겁니까?"

루켄이 우르치에게 물었다.

"위대한 검은 용은 지고의 존재! 그분보다 내가 위에 있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내 정수리에 증표를 새기겠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증표를 머리 위에 올려주십시오!"

"알겠다!"

쿵!

우르치가 테오 앞에 엎드렸다.

"테오 님, 제 정수리에 증표를 올려주십시오!"

"이렇게 말이냥?!"

척.

우르치의 요청에 따라 테오가 문신이 있는 자신의 발바닥을 우르치의 정수리에 올렸다. 어쩌다 보니 불량배가 엎드려 빌고 있는 사람의 머리를 밟고 있는 듯한 이상한 그림이 됐다.

"그렇게 잠시만 있어 주십시오!"

쿵!쿵!

루켄이 지팡이로 땅을 두드리며 주술을 사용하자

우웅.

테오의 발바닥과 우르치의 정수리 사이에서 붉은빛이 흘러나왔다.

"다 됐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테오 님!"

"우르치도 수고했다냥!"

우르치의 말에 테오가 자세를 바꾸지 않고 대답했다.

"······이제 떼셔도 됩니다."

"알겠다냥!"

테오가 그제야 우르치의 정수리에서 발바닥을 뗐다. 그러자 우르치의 정수리에 제대로 새겨진 위대한 검은 용 문신이 드러났다.

그때

"냥?!"

다른 것까지 복사된 걸 발견한 테오. 검은 용 문신 주변을 감싼 둥근 모양들. 테오의 발바닥 모양이 검은 용 문신과 함께 우르치의 정수리에 새겨져 버렸다.

하지만

"루켄, 앞으로 이 증표를 우리 블랙오크 왕국의 깃발로 만들겠다!"

"네! 알겠습니다!"

위대한 검은 용의 증표가 원래 그렇게 생긴 줄 아는 블랙오크들.

'내 잘못은 아니다냥!'

테오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위대한 검은 용의 증표와 테오의 발자국이 함께 새겨진 그림이 새로운 블랙오크 왕국의 국기가 됐다.

***

탑 99층 동굴의 늦은 밤.

탁.탁.

장작이 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모닥불 주변을 둘러싼 세준과 불꽃이, 꾸엥이, 황금박쥐, 이오나.

"그래서 남자가 혹시나 해서 뚜껑을 열었는데······."

꿀꺽.

모두가 침을 삼키며 세준이 하는 말에 집중하고 있었다.

"만두가 또 한 개 사라진 거야!"

세준이 모닥불을 피워놓고 무서운 얘기를 하며 놀고 있었다.

꾸엥!!!

[아빠 무섭다요!!!]

먹지 않았는데 음식이 사라지는 미스터리한 현상에 꾸엥이가 세준의 옆에 찰싹 달라붙었다. 아무 이유 없이 음식이 사라지는 것보다 공포스러운 상황은 꾸엥이에게 없었다.

그때

꼬르르륵.

꾸엥이의 뱃속에서 우렁찬 소리가 들려왔다.

꾸엥!

[먹을 거 얘기하니까 배고프다요!]

좀 전까지 무서워하던 표정은 어디가고 꾸엥이가 세준을 보며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 원래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하는데 오늘은 특별한 상황. 야식은 엄마나 아빠의 허락이 필요했다.

"그럼 팝콘 먹을까?"

꾸엥!

[신난다요!]

팝콘이 뭔지 잘 몰랐지만, 일단 먹는다는 세준의 말에 꾸엥이가 만세를 불렀다.

"잠깐만."

세준이 일어나 불개미 일꾼의 등판으로 만든 넓은 냄비 두 개를 모닥불 위에 올렸다.

그리고

와르르.

두 냄비에 붉은색 옥수수 알갱이를 부었다. 나중에 먹으려고 심기 전 미리 빼둔 폭발하는 체력의 옥수수였다.

잠시 후

타닥.타닥.

뜨거운 열을 흡수한 옥수수 알갱이의 안에서부터 만들어진 수증기가 옥수수 알갱이를 터트리며 빠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 금세 두 냄비 안은 하얀 눈송이로 가득찼다.

"일단 소금맛 팝콘을 만들고······."

팝콘이 가득한 두 냄비 중 하나에 세준이 소금을 넣고 골고루 섞어 간을 했다.

그리고

"자. 여기."

세준이 파 이파리를 돌돌 말아 아이스크림콘처럼 만들어 안에다 팝콘을 담아줬다. 많이 주지는 않았다. 입맛을 돋울 정도.

아작.

꾸엥!

[맛있다요!]

(맛있어요!)

"뀻뀻뀻!"

동물들이 고소하면서 짠맛에 중독돼 팝콘을 정신없이 먹기 시작했다.

그사이

꿀렁.꿀렁.

세준은 새로운 냄비를 꺼내 물과 꿀을 함께 넣고 졸이기 시작했다.

꾸엥!

갈색으로 변하는 꿀을 보며 꾸엥이가 불안하게 바라봤다. 그렇게 꿀을 태울 거면 내가 먹고 싶다요!

"태우는 거 아냐. 잠깐만 기다려."

세준은 어느 정도 꿀이 졸여지자 그 위에 간을 하지 않은 팝콘을 붓고 꿀이 골고루 팝콘과 섞이도록 열심히 저어주며 허니팝콘을 만들었다.

꾸엥?

[아직 멀었다요?]

세준이 준 팝콘을 다 먹고 냄비에서 퍼져나오는 꿀 향기에 흠뻑 빠진 꾸엥이가 허니팝콘이 만들어지고 있는 냄비 주변을 알짱거리며 세준을 보챘다.

"꾸엥이, 기다려."

뜨거운 불 주변을 돌아다니는 꾸엥이에게 세준이 엄하게 말하자

꾸엥!

[꾸엥이 자리에서 기다린다요!]

꾸엥이가 어렸을 때 배운 대로 서둘러 자신의 자리에 앉아 얌전하게 음식을 기다렸다.

'거의 다 됐어.'

"이오나, 건조 마법을 약하게 사용해줘."

세준이 꿀과 잘 섞인 팝콘을 보며 이오나에게 두 냄비 안에 든 팝콘의 수분을 날리는 마법을 부탁했다. 팝콘은 맛도 맛이지만, 식감도 정말 중요했다.

"뀻뀻뀻. 네! 건조!"

이오나가 서둘러 건조 마법을 사용했다. 이오나도 팝콘에서 나오는 단내 때문에 빨리 팝콘을 먹고 싶었다.

그렇게 허니팝콘까지 완성되자

"먹고 싶은 맛으로 먹어."

세준이 동물들에게 소금맛 팝콘과 허니팝콘 중 먹고 싶은 걸 먹게 하고 자신도 팝콘을 담았다.

"흐흐흐. 나는 반반."

세준이 소금맛 팝콘과 허니팝콘을 이파리콘컵에 반씩 담아 입구를 막고 흔들어 섞었다.

그리고

와락.

팝콘을 한 움큼 집어 입에 욱여넣었다.

아작.

'크으! 이거지!'

세준이 입안에서 느껴지는 맛에 전율했다. 씹을 때마다 소금맛 팝콘과 허니팝콘이 교대로 씹히면서 절대 질리지 않는 맛의 조합 단짠단짠이 완성됐다.

거기다

아그작.아그작.

꿀이 굳으면서 팝콘을 씹을 때마다 느껴지는 허니팝콘의 바삭한 식감이 먹는 재미를 더했다.

꾸엥?

꿀이 들어간 허니팝콘을 집중 공략하던 꾸엥이가 세준이 먹는 것을 보고 자신도 팝콘을 섞어 먹었다. 세준을 따라하면 항상 성공적이었기 꾸엥이는 전적으로 세준을 믿었다.

그리고

꾸엥!

[맛있다요!]

이번에도 믿음은 보상받았다.

꾸엥!

아작.아작.

꾸엥이가 한 손은 소금팝콘, 다른 한 손은 허니팝콘을 쥐고 교대로 와구와구 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조난 295일 차의 밤이 지나갔다.

***

-황금박쥐를 찾아 보호해라! 반드시!

테오의 연락을 받고 부하들에게 황금박쥐를 찾으라고 지시했던 한태준. 그는 테오가 찾는다는 소리에 서둘러 탑을 향해 이동 중이었다.

그때

우웅.

비서의 스마트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여보세요. 그래? 진짜? 바로 링크 보내."

뚝.

비서가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협회장님, 황금박쥐를 찾았다고 합니다."

"그래? 어떻게?"

"이걸 보시죠."

비서가 태블린의 영상을 틀어줬다. 그리고 배정호가 편집한 세상에 그런 일이 방송이 나왔다.

"흠······ 벌써 방송을 타버렸군. 위치는?"

"저희 협회 옆 한라 빌딩입니다."

"옆 건물? 그렇게 가까웠어? 한라 빌딩이 얼마였지?"

"그게······ 원래 시세는 2000억 정도인데 건물에 박쥐가 나온다는 방송 때문에 가격을 많이 깎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당장 매입해."

"네!"

태준은 테오에게 황금박쥐가 나타나는 건물을 알아봐달라고 한 적이 있었기에 테오에게 선물로 줄 생각이었다.

'흐흐흐. 이걸로 부탁 하나 까버려야지.'

때마침 한라 빌딩의 주인이 건물을 급하게 팔고 싶어 했기에 한태준은 세준의 이름으로 구매한 건물 계약서를 가지고 탑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

"으······."

세준이 아침에 일어나자 주변은 난장판이었다. 바닥에는 어제 먹다가 흘린 팝콘들이 널브러져 있고

꾸로롱.

배로롱.

꾸엥이는 냄비 안에서 황금박쥐를 안고 자고 있었다. 이오나는 일찍 일어나 마탑의 건설 현장을 확인하러 갔다.

[주인님, 일어나셨어요?]

"응."

주변을 둘러보는 세준에게 불꽃이가 아침 인사를 했다.

"불꽃이도 잘 잤지?"

[네. 어제는 밤이 고요하지 않아 좋았어요!]

우리 불꽃이 그동안 외로웠구나? 세준은 앞으로 자주 동굴에서 놀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직 자는 꾸엥이와 황금박쥐를 놔두고 밖으로 나왔다.

그때

께엑!

버섯 개미 하나가 위풍당당하게 세준에게 다가왔다.

"흐흐흐. 잘 왔어."

버섯 개미가 이렇게 자신감이 넘칠 때는 보통 등에 영약 버섯을 키우고 있기에 세준이 버섯 개미를 반갑게 맞이했다.

께엑!

세준의 환대에 자신의 등을 보여주는 버섯 개미. 세준의 예상대로 버섯 개미의 등에는 영약 버섯 하나만 있었다. 검은색에 돌처럼 생긴 처음 보는 버섯이었다.

"키우느라 고생했어."

세준이 버섯 개미의 등을 쓰다듬으며 칭찬해줬다.

그리고

톡.

버섯을 땄다.

[상급 영약 : 블랙 트러플을 수확했습니다.]

[직업 경험치가 조금 상승합니다.]

[수확하기 Lv. 6의 숙련도가 조금 상승합니다.]

[경험치 250을 획득했습니다.]

"어?! 블랙 트러플?"

지구에서는 들어만 봤던 버섯이었다.

"이거 엄청 비싼 거 아닌가?"

세준이 서둘러 옵셥을 확인했다.

[상급 영약 : 블랙 트러플]

탑농부의 소작농 버섯 개미가 키운 블랙 트러플이 주변의 모든 영양분을 오랫동안 홀로 흡수해 영약으로 성장했습니다.

강렬한 향을 자랑합니다.

섭취 시 모든 스탯 +3

재배자 : 탑농부 박세준의 소작농 버섯 개미

유통기한 : 150일

등급 : C+

"오!"

모든 스탯을 3씩 올려주는 상급 영약이었다.

'꾸엥이가 일어나기 전에 먹어서 없애 버린다!'

우물우물.

세준은 서둘러 블랙 트러플 입에 넣고 씹었다. 꾸엥이가 보면 분명 달라고 할 게 뻔했다. 나도 살아야지! 계속 최약체 취급을 받을 수는 없었다.

[상급 영약 : 블랙 트러플을 섭취했습니다.]

[모든 스탯이 3 상승합니다.]

"좋아."

어제의 자신보다 강해진 세준이 기분 좋게 아침을 시작했다.

그때

꾸엥!

[좋은 아침이다요!]

배고픔에 일어난 꾸엥이가 활기차게 아침 인사를 했다.

킁킁.

꾸엥!꾸엥?!

[아빠 입에서 좋은 냄새 난다요! 혼자 뭐 먹었다요?!]

세준에게 다가가던 꾸엥이가 세준의 입주변 냄새를 맡기 시작하더니 세준이 혼자 뭔가를 먹었다는 걸 귀신같이 알아냈다. 하필 향이 강렬하기로 유명한 트러플을 먹은 게 문제였다.

"어?! 아닌데! 나 아무것도 안 먹었는데?!"

세준이 서둘러 향이 퍼지지 않게 입을 막았지만

꾸엥?!꾸엥!!!

[근데 입을 왜 막았다요?! 아빠가 거짓말하면 나쁜 놈이라고 했는데 아빠 지금 거짓말 한다요!!!]

그건 꾸엥이의 의심만 높일 뿐이었다.

"아니야. 아빠 아무것도 안 먹었다?"

부정하면 할수록 세준의 입에서 트러플향이 진하게 퍼져나가며 혼자 먹었다고 자백하는 세준이었다.

144화. 나쁜 놈은 때려도 된다.

144화. 나쁜 놈은 때려도 된다.

꾸엥!꾸엥!

[끝까지 거짓말을 하면 어쩔 수 없다요! 꾸엥이는 아빠를 나쁜 놈으로 만들 수 없다요!]

부모가 나쁜 길로 가려 하면 막는 게 자식 된 도리. 굳은 결심을 한 꾸엥이가 몽둥이를 꺼냈다. 아빠 미안하다요! 맞고 정신 차리는 거다요!

카이저의 비늘이 있기에 마음 놓고 몽둥이를 든 꾸엥이였다.

"알았어. 아빠가 혼자 먹었어. 그러니까 우리 꾸엥이 그 몽둥이는 내려놔요."

몽둥이를 들고 비장한 표정으로 다가오는 꾸엥이의 모습에 세준이 서둘러 자백했다. 절대 꾸엥이의 참교육이 무서워서가 아니었다.

부모로서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여주려는 것뿐...진짜다. 타이밍이 좀 그렇지만...

꾸엥!

[휴우! 다행이다요!]

아빠가 나쁜 놈이 되는 걸 막은 꾸엥이가 안도하며 몽둥이를 다시 등에 멨다.

그때

꼬르르륵.

꾸엥이의 위장이 어서 음식을 넣으라고 신호를 보냈다.

"배고프지? 빨리 밥 먹자."

세준이 서둘러 요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다행히 영약을 먹은 건 들키지 않았다.

***

"자! 줄을 서세요!"

마법사들이 탑 99층에 도착한 몬스터들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마탑 건설을 위해 뽑은 인부였다.

그때

"여긴가?"

인부들 중 악어 머리를 한 존재가 열심히 주변을 살펴보고 있었다. 탑 75층에서 사라진 레켄이었다. 레켄은 며칠간 조사를 통해 테오의 마지막 목적지가 항상 탑 99층인 걸 알아냈다.

'분명히 그곳에 마일러의 괭이가 있어!'

그래서 탑 99층에 어떻게 의심받지 않고 들어갈지 고민하던 중. 중력 마탑에서 건설 인부를 구한다는 광고를 보고 인부들에 섞여 탑 99층에 들어온 것이다.

그렇게 마법사들을 따라 이동하던 레켄이 세준의 농장 근처에 도착했을 때

"여기서 잠깐 쉬고 다시 이동한다! 절대 자리를 벗어나지 말아라!"

마법사들이 인부들에게 휴식 시간을 주고 서둘러 세준의 농장으로 향했다. 정확히는 농작물 저장고.

뺘아!

저장고를 지키고 있던 토끼가 마법사들을 반겼다.

그리고

"토끼야. 방울토마토 2병이랑 호박 군고구마 말랭이 3병 줘."

"나는 방울토마토 3병이랑 당근 30개."

마법사들이 저장고를 지키는 토끼에게 먹을거리를 주문하기 시작했다. 요즘 여기에서 군것질거리를 사는 게 마법사들의 큰 즐거움이었다.

수준이 낮은 마법사들은 오로지 녹색환만 먹어야 하지만, 약간의 간식 정도는 허용해줬다. 마탑의 선배 마법사들도 녹색환을 먹는 게 얼마나 고역인지 알기 때문.

거기다 마력의 방울토마토는 잠깐 마력을 올려줘 마력을 다루는 감각을 익히는 데 도움을 줬기 때문에 세준의 농장을 들리는 마법사들이 필수로 사 가는 간식이 됐다.

마법사들이 먹을 간식을 사고 있을 때

슬금.슬금.

인부 중 하나가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마일러의 괭이를 찾으러 온 레켄이었다.

'어디 있으려나?'

레켄이 몸을 숙이고 세준의 농장을 조심스럽게 둘러봤다.

그때

"어?!"

레켄은 너무도 쉽게 전략 병기급 전설 장비, 땅을 움직이는 전설, 마일러의 괭이를 발견했다. 그냥 밭 옆에 덩그러니 꽂혀 있었다.

'마일러의 괭이가 맞겠지?'

자신이 본 게 혹시 가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허술하게 관리되고 있는 마일러의 괭이. 모르는 존재가 본다면 그냥 길바닥의 흔한 농기구로 봤을 것이다.

하지만 레켄이 괭이를 손에 쥐자 자신의 힘에 반응하는 대지의 힘이 이 괭이가 자신이 찾는 땅을 움직이는 전설, 마일러의 괭이가 맞다는 것을 알려줬다.

'이놈들은 이게 얼마나 대단한 장비인지 모르는 건가?'

안다. 다만 장비빨로 매울 수 없는 격차를 느낀 세준이 그냥 조금 좋은 장비로 취급하고 있을 뿐.

'아무렴 어때.'

마일러의 괭이를 얻은 레켄이 서둘러 탑 99층의 입구로 도망쳤다.

위잉.

위잉.

중간에 독꿀벌들이 성가시게 굴었지만, 레켄의 두꺼운 가죽을 뚫을 수는 없었기에 레켄은 그냥 무시하고 달렸다.

그리고 거의 탑 99층의 입구에 다다랐을 때

꾸엥!

[우리 아빠 거다요!]

멀리서 꾸엥이가 달려오며 외쳤다.

***

30분 전.

혼자 상급 영약을 먹은 게 미안한 세준은 꾸엥이와 황금박쥐가 좋아하는 음식을 많이 준비했다.

꿀을 넣은 꿀백설기와 고구마수프를 만들고 수량이 많지 않은 바나나, 수박, 망고를 아공간 창고에서 꺼냈다.

꾸엥!

[맛있다요! 황금박쥐 동생도 많이 먹는 것이다요!]

(뱃뱃. 네, 꾸엥이 형님도 많이 드세요!)

꾸엥이와 황금박쥐는 아침부터 호강하며 맛있게 음식을 먹었다.

그렇게 푸짐한 아침 식사가 끝나고

"그럼 나는 막걸리 만들고 있을 테니까. 둘이 놀고 있어."

세준은 꾸엥이와 황금박쥐를 놀게 하고 양조장으로 갔다. 두 용에게 공급해야 할 막걸리 수량이 적지 않았기에 세준은 건축가 토끼를 시켜 양조장을 짓고 막걸리를 만들고 있었다.

그렇게 세준이 떠나고

꾸엥!

[이제 배부르다요!]

(뱃뱃. 저도요!)

꾸엥이와 황금박쥐가 뽈록한 서로의 배를 보며 웃고 있을 때

위잉!

멀리서 일곱째 독꿀벌 여왕이 빠르게 날아왔다.

꾸엥?!

[무슨 일이다요?]

꾸엥이가 일곱째 독꿀벌 여왕에게 물었다.

위잉!위잉!

[꾸엥이 님, 큰일 났어요! 침입자예요!]

꾸엥?

[또 다른 독꿀벌이 왔다요?]

꾸엥이와 일곱째 독꿀벌은 끈적한 꿀 커넥션으로 연결돼 가끔 동쪽의 독꿀벌들이 나타나면 꾸엥이가 쫓아내 주고 보상으로 좀 더 특별한 꿀을 받고는 했다.

위잉!위잉!

[아니요! 침입자가 세준 님의 괭이를 훔쳐서 도망치고 있어요!]

꾸엥?

꾸엥이는 자신이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감히 아빠 걸 훔쳤다요? 그럴 리가 없다요.

하지만

(뱃뱃. 세준 님의 괭이면 전설급 장비잖아요!)

위잉!

[네! 맞아요! 탑 99층을 벗어나기 전에 잡아야 해요!]

황금박쥐와 일곱째 독꿀벌 여왕의 대화가 자신이 잘못들은 게 아니라는 걸 말해줬다.

꾸엥!꾸엥?!

[감히 어떤 나쁜 놈이 꾸엥이 아빠 걸 훔쳤다요! 나쁜 놈 어디 있다요?!]

위잉!

[저쪽이에요!]

(꾸엥이 형님! 같이 가요!)

그렇게 꾸엥이와 황금박쥐가 일곱째 여왕을 따라 20분쯤 이동하니 멀리 악어 머리를 한 존재가 세준의 괭이를 들고 달려가는 것이 보였다.

***

다다다다.

꾸엥!꾸엥!

[빨리 그 괭이를 내려놓는다요! 그거 꾸엥이 아빠 거다요!]

(맞아요! 그건 세준 님 거예요!)

꾸엥이가 빠르게 달려 팔을 활짝 펴서 레켄의 앞을 막았고 황금박쥐는 뒤를 포위했다.

"캬캬캬! 어린놈! 다치기 싫으면 비키거라!"

꾸엥!꾸엥!

[내 이름은 어린놈 아니고 꾸엥이다요! 그리고 남의 것을 가져가는 건 나쁜 거다요!]

척.

꾸엥이가 등에 멘 몽둥이를 꺼냈다.

"땅 움직이기!"

쿵!

그렇지 않아도 마일러의 괭이를 시험해 보고 싶었던 레켄이 땅을 향해 괭이를 강하게 휘두르자

쿠궁.쿠구궁!

땅이 울리기 심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세준의 괭이질과는 그 차원이 달랐다.

그리고

드드득.

땅에서 솟구치는 돌로 만들어진 5m 크기의 거대한 손들. 그런 거대한 돌손 수십 개가 꾸엥이와 황금박쥐, 일곱째 독꿀벌 여왕을 포위했다.

위잉!

[꾸엥이 님! 어떡해요?!]

꾸엥이를 안내한 일꼽째 독꿀벌이 거대한 돌손들을 보고 두려운 목소리로 말했다.

꾸엥!

[황금박쥐는 일곱째를 보호한다요!]

(꾸엥이 형님은요?)

황금박쥐가 꾸엥이를 보며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다 사고 치면 어떡해요?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꾸엥!

[아빠가 나쁜 놈은 때려도 된다고 했다요!]

대놓고 힘을 쓰려고 하는 꾸엥이.

아장.아장.

꾸엥이가 늠름하게 앞으로 나섰다.

"캬캬캬. 용감하구나. 아직 세상 무서운 걸 모르는 거겠지. 어디 받아봐라!"

스스로가 만들어낸 광경에 흥분한 레켄이 돌손들을 움직여 주먹을 쥐게 하고 꾸엥이를 공격했다.

후우웅.

바람 소리를 내며 빠른 속도로 꾸엥이를 공격하는 돌주먹들.

하지만

꾸엥!

꾸엥이가 몽둥이에 마력을 넣고 휘두르자

콰광!

거대해진 몽둥이가 돌주먹 5개를 한 번에 부쉈다.

그리고

꾸엥!

[나쁜 놈 혼내준다요!]

꾸엥이가 몽둥이로 자신의 앞을 막는 돌주먹을 부수며 레켄을 향해 달려갔다.

"이익! 땅 움직이기!"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꾸엥이를 보며 당황한 레켄이 다시 땅을 움직였다.

그러자

드드득.드드득.

이번에는 돌손들이 손을 펴고 꾸엥이를 누르기 시작했다.

꾸엥!

꾸엥이가 손을 뻗어 누르는 힘을 버텨냈다.

하지만

"땅 움직이기!"

쿵!쿵!

레켄은 계속 돌손을 소환해 꾸엥이를 덮어버렸다.

"캬캬캬. 이 정도면 됐겠지."

레켄이 자신이 만들어낸 높이 20m의 작은 돌산을 보고 흐뭇해할 때

쩌저적.

돌손들이 갈라졌다.

그리고

꾸에엥!

거대해진 꾸엥이가 돌산을 부수며 나타났다.

"어······ 어떻게?! 이익! 땅 움직이기!"

돌산보다 5m는 더 큰 거대한 곰이 나타나자 레켄이 최후의 발악을 했다. 여기서 밀리면 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쿠구궁.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는 진동과 함께 거대화한 꾸엥이보다 10배는 큰 거대한 손이 나타났다.

꿰엥······

엄청난 크기의 돌손에 압도된 꾸엥이가 당황했다.

그때

쿠어어어어엉!

멀리서부터 거대한 마력과 함게 곰발바닥 모양의 분홍색 기파가 돌손과 부딪혔다. 분홍 곰의 공격이었다.

...

소리는 없었다. 그리고 돌손도 없어졌다.

꾸엥!

[엄마다요!]

엄마의 등장에 용기백배한 꾸엥이가 다시 레켄을 향해 달려갔다. 하지만 레켄은 좀 전의 공격에 사라진 후였다. 도망간 게 아니라 돌손과 함께 소멸했다.

바닥에는 분홍 곰의 공격을 버텨낸 세준의 괭이만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꾸엥!꾸엥!

[나쁜 놈 청소했다요! 아빠 괭이를 찾았다요!]

목표를 이룬 꾸엥이가 뿌듯한 표정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어?! 뭐지?"

막걸리를 만들다가 갑자기 하늘에 어두워져 밖으로 나왔지만, 다시 밝아진 하늘을 보며 어리둥절해하는 세준이었다.

***

"너희들은 이제부터 41층에 농장을 만드는 거다냥!"

"테오 님, 농사짓는 농장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갑자기 농장을 만들라는 테오의 지시에 우르치가 당황했다. 자신들은 싸움 빼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전투종족인데 농사라니?

"위대한 검은 용의 부하가 되기 싫은 것이냥?!"

"아······ 아닙니다!"

"위대한 검은 용 박 회장의 부하가 되려면 농사는 필수다냥! 나도 이 과정을 거쳤다냥!"

테오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기도 세준이 시키거나 칭찬할 때만 농사일을 도운 주제에 마치 엄청나게 열심히 농사를 지은 것처럼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41층에 농장을 건설하겠습니다!"

테오의 말을 철석같이 믿는 우르치가 41층에 농장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수백만 마리의 블랙오크들 중 농사에 대해 아는 존재는 아무도 없었다. 항상 뺏거나 사냥만 해봤지 뭔가를 키워본 적이 없는 그들이었다.

"대현자이자 주술사인 루켄 그대가 나서 농장을 건설하게."

"네! 농사는 땅에 심고 길러내는 것. 저에게 맡겨주십시오!"

그렇게 책으로 농사를 배운 루켄의 주도로 농장 건설이 시작됐다. 그러나 농사를 모르기는 루켄도 마찬가지.

"어린 블랙오크들을 땅에 심어라!"

루켄은 땅에 심은 다음 먹을 걸 주며 키우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테오가 뿌린 씨앗이 이상한 방향으로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냥냥냥!"

자신이 무슨 짓을 한지도 모르고 테오는 탑 40층으로 한태준을 만나러 내려갔다.

145화. 뽑기 한 번에 얼마냥?

145화. 뽑기 한 번에 얼마냥?

"이 주소의 건물을 우리 박 회장의 이름으로 사달라냥!"

테오는 40층으로 내려와 한태준을 만나자마자 한태준의 예상대로 건물을 사달라고 했다.

"여기를?!"

"그렇다냥!"

"테 부회장, 이 건물이 얼마나 비싼 건지 알아?

한태준은 테오가 부탁을 쓰게 일부러 생색을 냈다.

"모른다냥! 많이 비싸냥?"

"2000억이야. 탑코인으로는 20만 탑코인. 나한테도 부담이 크니까 이건 부탁 하나를 사용하는 거로 하자."

"좋다냥!"

"자! 여기!"

테오가 부탁을 사용하자 태준이 바로 세준의 이름으로 계약한 건물 계약서를 내밀었다.

"냥! 훌륭하다냥! 박 회장이 아주 좋아할 거다냥!"

테오가 재빠르게 계약서를 받아 챙겼다. 고양이 한 마리 잘 들여 순식간에 강남의 2000억짜리 빌딩을 공짜로 얻은 세준이었다.

"그럼 다른 일은 없는 거지?"

"아직 남았다냥! 부탁 하나를 더 쓰겠다냥!"

"정말?!"

"앞으로 평!생! 빌딩을 음식으로 채워달라냥!"

건물을 얻었으니 안을 채워야 했다.

"좋아. 뭐 얼마나 된다고. 가득 채워줄게."

테오의 '평생'이라는 단어가 신경 쓰이기는 했지만, 부탁 하나를 더 쓰겠다는 테오의 말에 한태준의 얼굴이 밝아졌다.

건물값에 비하면 건물에 물건을 채우는 값은 그렇게 크지 않았다. 그리고 먹어봐야 얼마나 먹겠나?

한태준은 나중에 자신이 얼마나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깨닫는다. 세준의 주변에 먹어도 먹어도 만족을 모르는 맹슈와 굇수들이 다수 존재한다는 걸 몰랐다. 아주 경솔한 결정이었다.

"고맙다냥! 그럼 바로 물건을 채워달라냥!"

"그래. 그리고 견고한 칼날 대파가 더 필요해."

다른 곳에도 로커스트가 침공할 가능성이 있기에 만약을 대비할 생각이었다.

"알겠다냥! 내가 인턴들에게 말해 놓겠다냥!"

그렇게 한태준과 얘기를 마친 테오가 탑 99층을 향해 올라갔다.

***

"크으. 좋다."

카이저가 막걸리 한 잔을 원샷하고 그 끝맛을 음미하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군고구마 한 입을 베어 물 때

"아버님! 블랙문이 열리고 있습니다!"

안톤이 급하게 들어오며 소리쳤다.

"뭐?! 블랙문?!"

안톤의 말에 카이저의 안색이 굳어지며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멀리 붉은 운무에 휩싸인 세상과 그 세상의 중간에 보이는 얇은 구멍. 확실히 블랙문이 맞았다.

그리고 블랙문은 빛을 내는 것이 아닌 빛을 빨아들여 자신의 존재를 키우며 열리고 있었다.

"모든 검은 용들을 깨우고 대기하라고 전해라!"

"네!"

지금까지의 허술한 모습은 어디 가고 기세가 변한 카이저가 안톤에게 명령했다.

블랙문이 열리려면 거의 10년은 걸리겠지만, 용들의 시간관념에서 10년은 긴 시간이 아니다.

특히 수백 년간 긴 수면을 잔 용들을 깨울 때는 더욱 그렇다. 지금부터 깨워야 10년 후에 제 컨디션으로 싸울 수 있다.

"해제."

쿠웅!

카이저가 폴리모프 마법을 해제하며 거대한 용으로 변신해 하늘로 날아올랐다.

하늘로 올라오니 재앙의 존재들에 의해 멸망한 세상들과 연결된 촉수처럼 생긴 관을 통해 세상의 기운을 흡수하며 커지고 있는 붉은 세상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 붉은 세상의 이름은 멸망. 멸망은 해도, 달도, 별도 없이 항상 불길한 붉은빛을 내는 구름에 감싸여 있었다.

그리고 그런 멸망을 포위하고 있는 검은 탑을 포함한 8개의 탑. 그 탑의 위에는 거대한 땅덩어리가 떠 있었다. 용들의 터전이자 멸망과의 싸움을 준비하는 최전방 진지였다.

"저게 지금 나타나다니······."

카이저가 블랙문을 보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블랙문이 나타났다는 건······

"그들도 돌아온다는 의미겠지."

과거 탑이 생겼을 때 딱 한 번 저렇게 블랙문이 뜬 적이 있었다.

갓 태어난 붉은빛의 세상과 붉은빛 세상의 한가운데에 만들어진 블랙문. 블랙문이 완성되고 얼마 후 블랙문 안에서 멸망의 사도라는 강대한 기운을 가진 12명의 존재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나오자마자 용들을 공격했고 그렇게 시작된 멸망의 사도 12명과 1만 마리 용들의 전투는 압도적인 숫자로 밀어붙인 용들이 당연히 승리했다.

하지만 멸망의 사도들은 블랙문이 뜰 때 다시 돌아온다는 말을 남기고 재가되며 사라졌다. 멸망의 사도 12명을 처치하기 위해 용족 1000마리가 죽은 것을 생각하면 상처뿐인 승리였다.

"휴우. 이번에는 피해가 크지 않으면 좋겠군."

그렇게 카이저가 앞으로의 일을 걱정하고 있을 때

"카이저, 이렇게 직접 보는 건 거의 3000년 만인가?"

본체로 변한 켈리온이 다가왔다.

"그렇군. 블랙문 때 이후로 만날 일이 없었으니까······."

"다른 가주들이 기다린다. 어서 가자."

"그래."

카이저와 켈리온이 다른 가주들과 블랙문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회의장을 향해 날아갔다.

그렇게 카이저와 켈리온이 떠나고

꿈틀.

검은 탑에서 뻗어 나온 뿌리가 부지런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

조난 299일 차.

"받아라! 배방구! 부부부붑!"

꾸헤헤헤!

세준이 점심을 잔뜩 먹고 빵빵해진 꾸엥이의 배에 입으로 바람을 넣으며 꾸엥이랑 놀고 있었다.

꾸엥!

[간지럽다요!]

그렇게 놀다가

커어어.

꾸로롱.

잠든 세준과 꾸엥이.

그때

"뀻뀻뀻. 낮잠을 즐기고 있군요?"

마탑 건설을 끝내고 돌아온 이오나가 그런 둘을 발견했다.

폴짝.

이오나가 이런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듯이 세준의 무릎 위에 자리를 잡고 눈을 붙였다.

"뀨-뀻! 뀨-뀻!"

분노와 즐거움이 함께하는 악몽을 꾸는 이오나였다.

잠시 후

"응?! 이오나 왔네?"

꾸엥?

[이오나 누나, 언제 왔다요?]

낮잠을 자고 일어난 세준과 꾸엥이가 이오나를 보며 아는 체를 했다.

"뀨-10분 전쯤이요."

조금 밖에 못 자 약간 짜증이 남은 목소리로 이오나가 대답했다.

"근데 무슨 일이야? 요즘 마탑 건설 때문에 바쁘다며?"

"뀻뀻뀻. 오늘 마탑 건설이 끝났어요!"

"뭐?! 벌써 다 지었어?!"

이오나의 말에 세준이 놀랐다. 자신이 듣기로는 마탑 높이가 500m가 넘는 고층 건물이었는데?

"뀻뀻뀻. 마법의 힘은 위대하다고요."

세준의 반응을 즐기며 이오나가 말했다.

"그럼 마탑 구경하러 가도 돼?"

"그럼요! 그렇지 않아도 나중에 마탑 완공 축하 파티에 초대하려고 했어요!"

"오! 축하 파티도 해?!"

파티라니?! 세준의 목소리에는 설렘이 담겨 있었다.

꾸엥!

[파티다요!]

파티는 평소보다 더 많이 먹을 수 있는 날이라고 알고 있는 꾸엥이의 목소리에도 설렘이 가득했다.

"뀻뀻뀻. 네! 일주일 후에 할 예정이에요. 그래서 세준 님께 부탁드릴 게 있어요!"

"뭔데?"

"파티에 나갈 음식에 세준 님의 농작물을 이용하고 싶어요!"

"그 정도야 마음대로 해."

일부 농작물을 빼고는 저장고에 넘쳐났다.

"뀻뀻뀻! 감사해요! 대가는 충분히 지불할게요!"

이오나는 세준의 허락에 감사하며 농작물을 가지러 요리사들이 올 거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그리고

"안녕하십니까!"

농작물을 가지러 온 요리사들이 세준의 저장고에서 엄청난 양의 음식물을 가져갔다. 이번 축하 파티의 규모가 큰 모양이었다.

덕분에 세준의 씨앗 은행 잔고가 테오가 벌어온 돈과 합쳐 딱 1억 탑코인이 됐다. 마법사들이 돈이 많다고 하더니 진짜였다. 깎지도 않고 부르는 대로 지불했다.

세준은 1억 탑코인이 생기자

"에일린, 나 권능 또 줄 수 있어?"

새로운 권능을 받을 수 있는지 물었다.

[탑의 관리자가 잠시 기다려 달라고 말합니다.]

잠시 후

[부여 가능한 권능]

, ,

에일린이 세준이 가진 탑코인을 확인하고는 부여 가능한 권능들을 보여줬다.

[탑의 관리자가 3개의 권능 중에 하나를 고를 수 있다고 말합니다.]

"정했어. 강한 체력할게."

고민할 것도 없었다. 살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를 생각하면 답은 금방 나왔다.

[탑의 관리자가 그럼 을 부여하겠다고 말합니다.]

"응."

[씨앗 은행에 예치돼 있던 1억 탑코인이 결제됩니다.]

[탑의 관리자가 탑의 중간관리자 징표에 을 부여합니다.]

[나중에 공헌도나 탑코인을 사용해 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의 효과로 체력이 50 상승합니다.]

체력 스탯이 50이나 오르면서 단숨에 체력이 74가 됐다.

"흐흐흐."

높아진 체력에 세준은 가슴이 웅장해지며 무엇이라도 가능할 것 같은 자신감이 들었다.

그때

꾸엥!꾸엥!

콧노래를 부르며 세준에게 다가오는 꾸엥이.

'아. 사람은 항상 겸손해야지.'

꾸엥이를 보자마자 세준의 가슴에서 웅장함은 사라지고 조건 반사처럼 겸손해지는 마음이 들었다.

꾸엥?꾸엥!

[아빠 갑자기 왜 기운이 없다요? 기운 없을 때는 맛는 거 먹는 거다요!]

그런 세준을 꾸엥이가 위로하며 취사장으로 끌고 갔다.

그리고

꾸엥!

[꾸엥이는 가래떡이 먹고 싶다요!]

당당하게 자신이 먹고 싶은 걸 얘기하는 꾸엥이.

하지만

"지금 쌀가루 살 돈이 없는데?"

세준이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방금 권능을 부여하는 데 돈을 다 써서 유물 : 재화를 삼키는 쌀반죽에 넣을 돈이 없었다.

꾸엥······?

[그럼 우리 거지다요······?]

세준의 대답에 꾸엥이가 슬픈 표정을 지었다.

"거······ 거지라니? 우리 거지 아니야! 잠깐 빈곤한 거라고! 대신 오늘은 가래떡 말고 꿀젤리 해줄게."

꾸엥이이 말에 발끈하며 세준이 다른 대안을 말했다.

꾸엥?!

[아빠도 꿀젤리를 만들 수 있다요?!]

독꿀벌만 꿀젤리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 꾸엥이가 세준의 말에 흥분했다.

"그럼 나도 꿀젤리 만들 수 있지."

세준이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말했다. 꿀젤리 만들기는 엄청나게 간단했기 때문이다.

"자. 그릇에 꿀을 담고. 아이스 큐브."

꿀이 든 그릇을 강하게 얼렸다.

"자! 이제 끝이야!"

꾸엥?

[이게 끝이다요?]

꾸엥이가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꿀이 든 아이스 큐브는 저번에 먹어봤기 때문이다.

"이건 저번에 먹은 거랑은 달라."

저번에는 물 반 꿀 반이었지만, 이번에는 꿀 100%였다.

푹!

세준이 아이스 큐브를 손도끼로 찍어 얼음을 반으로 쪼갰다.

그리고

"자. 봐봐."

세준이 그릇 안의 꿀을 꺼내자 꿀이 젤리처럼 탱글탱글하게 움직였다.

꾸엥!

[아빠는 대단하다요!]

"그래. 아빠 대단하지? 흐흐흐. 아이스큐브."

꾸엥이의 칭찬에 우쭐해하며 세준이 다시 꿀젤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꾸엥이의 칭찬은 세준을 춤추게 했다.

***

탑 99층을 향해 올라가던 테오.

"냥! 한 군데 들리고 가야겠다냥!"

갑자기 챙겨야 할 게 생각난 테오가 탑 75층으로 진입했다.

그리고 테오가 향한 곳은 자신을 부회장으로 등극시켜 준 물건을 구한 곳. 유랑 상인 협회의 유실물 창고였다.

"뭐냐? 왜 또 왔어?!"

유실물 창고를 지키고 있는 타루가 테오를 보며 말했다.

"뽑기 한 번에 얼마냥?"

"뭐?! 여기는 그런 데가 아냐 가봐!"

"싫다냥! 뽑기 하고 싶다냥!"

여기에 자신의 부회장의 장기 집권을 위한 물건들이 있었다. 탑 최고의 유랑 상인이 되는 길은 멀고 멀다. 하지만 자신은 그 중간 동안에도 부회장을 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저기 안에 있는 물건이 필요하다냥! 아무도 나를 막을 수는 없다냥!'

"뽑기 할 거다냥!!!"

테오가 강렬한 눈빛으로 타루를 바라보며 말했다.

146화. 그럼 흥정을 시작하자냥!

146화. 그럼 흥정을 시작하자냥!

"그냥 가거라. 여기는 뽑기를 하는 곳이 아니다."

유실물 창고의 경비 타루는 좋은 말로 이 고양이 상인을 타일러 점잖게 돌려보내려 했다.

하지만

"그럼 흥정을 시작하자냥!"

"안 된다고!"

이놈의 고양이 상인은 말을 들어 먹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뽑기 한 번에 1탑코인 어떠냥?!"

거기다 이런 터무니 없는 가격이라니?!

'이놈 봐라······.'

꽈악.

테오가 부르는 가격에 타루는 묘하게 기분이 상하며 자신도 모르게 창을 쥐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무리 유실물 창고에 쓸만한 물건이 없다고 해도 1탑코인이라니?! 그럼 이곳을 100년 넘게 지킨 자신은 뭐가 되는가?

그렇게 타루가 기분 나빠하고 있을 때

'최대한 싸게 사야 좋은 상인이 될 수 있다냥!'

좋은 물건을 최대한 싸게 사 이윤 극대화하는 것이 유능한 상인의 덕목이라고 믿는 테오는 최대한 싸게 뽑기를 할 생각뿐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공짜로 들어가서 마음에 드는 걸 전부 가져 나오고 싶었지만, 그래도 양심은 있는 테오였다.

"여긴 그런 곳이 아니라니까."

타루가 가슴에서 올라오는 분노를 참고 다시 좋은 말로 거절했다.

하지만

"그럼 1.1탑코인!"

테오의 흥정은 이제 시작이었다.

"안돼."

"그럼 1.2탑코인!"

"안된다고!"

"1.3탑코인!"

"안 된다니까!"

타루의 계속된 거절과 거절을 거절하며 흥정하는 테오.

'지독한 놈!'

타루가 가격을 찔끔찔끔 올리는 테오를 보며 질려했다. 최우수 유랑 상인이 짜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 정도 일 줄은 몰랐다. 짜도 너무 짰다.

그렇게 몇 시간이 흘렀다.

"10탑코인!"

"야이씨! 너무 저렴하잖아!!!"

결국 테오가 부르는 흥정가에 분노한 타루가 소리쳤다.

"깜짝이다냥! 저렴해서 그런 거면 말을 하지 그랬냥! 뽑기 한 번에 20탑코인 어떠냥?"

테오가 호쾌하게 흥정가를 2배로 올렸다.

"1000탑코인. 아니면 들어갈 수 없다."

타루가 단호하게 말했다. 자신이 지키는 곳이라면 그 정도의 가치는 있어야 했다.

타루는 테오가 분명 저번에 운 좋게 레켄이 노리던 물건을 한 번 뽑고는 다시 요행을 바라는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맹랑한 고양이에게 교훈을 줄 생각이었다.

'쓸모없는 물건을 1000탑코인 주고 뽑으면 금방 정신 차리겠지.'

아마 이번에 1000탑코인을 주고 돈도 안 되는 물건 하나 뽑으면 앞으로 뽑기를 하겠다고 찾아올 일은 없을 것이다.

"깎아달라냥!"

상대가 가격을 제시하자 테오는 3번 깎기를 시도했다. 하지만 타루는 흥정을 할 생각이 전혀 없었기에 요지부동이었다.

"그럼 그냥 하겠다냥! 여기 3000탑코인이다냥!"

테오의 목적은 세준이 시키는 것을 하는 것.

'박 회장이 시키는 대로 3번 깎아달라고 말했다냥!'

테오가 타루에게 당당하게 3000탑코인을 건넸다. 저번에 잡지 못한 물건이 3개. 오늘 그것들을 다 가지고 나올 생각이었다.

"3개나?!"

오히려 테오의 반응에 타루가 당황했다.

"3개는 안 된다. 무조건 하나만 가지고 나올 수 있다."

한 번 당해보라는 마음이었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금액이 컸다. 테오의 손실을 걱정한 타루가 2000탑코인을 다시 돌려줬다.

그리고

쿵.

거대한 유실물 창고의 문을 열어줬다.

화르륵.

문이 열리자 어둠에 잠겨 있던 유실물 창고 안의 횃불에 불이 붙었다.

"뭐가 이렇게 안 되는 게 많다냥?!"

테오가 투덜거리자

"하기 싫으면 그냥 돌아가라!"

"아니다냥! 그럼 들어가겠다냥!"

타루가 다시 유실물 창고의 문을 닫으려 하자 테오가 서둘러 유실물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10분 후.

"냥!냥!"

테오가 허름한 상자 하나를 낑낑거리며 들고나왔다.

"그걸로 하겠느냐?"

타루는 당연히 상자 안에 든 물건을 골랐다고 생각하고 상자 안을 들여다봤다.

하지만

터엉.

안은 비어있었다.

"설마 그 상자를 고르겠다고?!"

"그렇다냥! 그럼 다음에 또 오겠다냥!"

테오가 상자를 봇짐에 넣고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떠났다.

"오긴 뭘 또 와. 이제 다시는 안 오겠구만······."

타루는 테오가 쓰레기를 골랐다고 확신했다.

***

황금 용의 땅.

쿵.쿵.

카이저와 켈리온이 도착했다. 둘이 안으로 들어가니 황금색, 붉은색, 푸른색, 보라색, 녹색, 갈색 용들이 이미 도착해 있었다.

"이제 모두 모였군. 자. 회의를 시작하지."

둘이 들어오자 회의를 주관하는 율 가문의 가주 황금 용 아르테미스 율이 회의의 시작을 알렸다.

하지만 서로 간섭하지 않는 용들의 습성상 크게 할 얘기는 없었다. 그저 블랙문을 대비해 수면 중인 용들을 깨우고 열심히 싸우자는 내용의 회의가 형식적으로 진행됐다.

그리고 회의가 끝나고 용들이 떠나려 할 때

"이것들 좀 먹고 가게. 우리 황금 탑의 탑농부가 수확한 농작물로 만든 음식들이라네."

아르테미스가 용들에게 음식을 대접했다. 의도는 뻔했다. 나는 유능한 탑농부를 가졌다. 이걸 보여주려는 것이다.

"허허허. 이거 대접만 받기는 미안하니 나도 하나 꺼내야겠구만. 이건 우리 붉은 탑의 탑농부가 담근 술이라네."

"크흠. 이건······."

다른 용들도 자신이 관리하는 탑의 탑농부가 만든 것들을 꺼내며 자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

"······."

카이저와 켈리온은 말없이 다른 용들이 꺼낸 것들을 먹기만 했다. 카이저야 세준의 농작물을 자랑하고 싶기는 했지만, 옆에서 자존심 상해하는 켈리온을 위해 참았다.

평소에는 웬수 같은 놈이지만, 이런 상황에서 자신까지 농작물을 자랑해 켈리온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때

"카이저, 켈리온, 너희는 왜 안 꺼내? 얼마나 맛있는 걸 가지고 있기에 그렇게 꽁꽁 숨겨두는 거야? 좀 같이 먹자고. 안 그래? 하하하."

페텐 가문의 가주 보라색 용 티어 페텐이 웃으며 말했다. 눈에는 깔보는 시선이 가득했다.

······

티어의 말에 회의장의 분위기가 차갑게 식었다.

가주들은 용들의 터전에서 떠나지 않았지만, 다른 용들은 서로 교류를 하기 때문에 정확히는 아니더라도 다른 탑들의 상황을 대략 알고 있다.

검은 탑은 카이저의 손녀 에일린 때문에 탑농부를 두지 않고 있었고 하얀 탑은 켈리온의 손자 아작스가 덜컥 탑농부가 되는 바람에 농사가 전혀 되지 않는 상황.

그런 걸 알면서도 티어가 말을 꺼낸 것이다.

"······."

"이익!"

카이저는 말없이 티어를 노려봤고 켈리온은 분노를 삼키며 참았다.

'흐흐흐. 어디 화를 내보라고.'

평소 둘에 대한 앙심이 품고 있던 티어는 속으로 둘이 화를 내길 바랐다. 여기서 카이저와 켈리온이 화를 내면 자신은 몰랐다고 발을 빼면 둘만 우스운 상황이 된다.

그때

"티어, 꺼내기 싫으면 꺼내지 않을 수도 있지요. 굳이 그걸 강요할 필요는 없을 것 같군요."

이올그 가문의 여가주 녹색 용 브라키오 이올그가 티어에게 차가운 목소리로 말하며 카이저와 켈리온을 두둔했다.

자신의 손녀 오필리아도 탑농부이기에 켈리온의 일이 남 일 같지 않았다. 물론 녹색 용은 용들 중에서는 가장 자연 친화적인 종족. 용들 중에서는 농사 엘리트였다.

하지만 브라키오는 최근 녹색 탑에서 열린 수확제에서 보상으로 받은 검은 탑의 농작물을 보고 크게 놀랐다.

검은 탑에 탑농부가 생긴 것에 놀랐고 검은 탑의 탑농부가 수확한 농작물에 한 번 더 놀랐다.

검은 탑 탑농부 박세준의 농작물은 아직 등급은 낮았지만, 완벽했다. 맛이면 맛, 효과면 효과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은 것이다.

그래서 회의가 끝나고 카이저와 따로 대화를 나누려 했는데...티어가 분위기를 망치고 있었다.

"크흠. 내가 너무 경솔했군. 미안하네. 꺼내기 싫으면 안 꺼낼 수도 있는데······ 뭐 둘이 꺼낼 게 없으면 좀 나눠주려고 했지."

끝까지 이죽거리는 티어였다.

"오늘은 그만 흩어지고 3달 후에 다시 만나도록 하지."

분위기가 안 좋자 아르테미스가 서둘러 나서 회의를 끝냈다. 용들은 회의를 시작하면 율 가문을 시작으로 3개월마다 각 가문의 땅에서 한 번씩 회의를 한다. 그것이 용들의 율법이었다.

***

조난 301일 차 밤.

"토끼들이랑 독꿀벌, 버섯개미들은 다 집에 들어갔고······."

세준이 곧 시작될 11번째 블루문을 준비했다.

[탑의 관리자가 도움을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합니다.]

에일린이 열심히 카이저가 만든 서치라이트에 마력을 충전했지만, 두 칸은 있어야 가동되는 서치라이트. 에일린의 마력으로는 한 칸을 충전하기도 어려웠다.

"괜찮아. 오늘은 충분히 대비를 했으니까."

세준이 분홍곰과 블랙 미노타우루스 5마리가 지키는 농장을 보며 말했다. 보기만 해도 든든했다.

세준은 그동안 불꽃이가 정화의 불꽃을 사용할 수 있게 될 때마다 블랙 미노타우루스에게 사용했다. 그 결과 5마리가 블루문에 영향을 받지 않게 됐다.

거기다 꾸엥이도 있으니 이 정도면 농장을 지키기는 충분했다.

그때

꾸엥!

[아빠 이상 없다요!]

(뱃뱃. 세준 님, 이상 없어요!)

꾸엥이와 황금박쥐가 농장에 침범한 불개미나 독꿀벌이 없는지 순찰하고 돌아왔다.

"수고했어. 그럼 야식 먹자."

늦은 밤까지 안 자고 고생하는 동물들을 위해 세준이 야식을 준비했다.

꾸엥!

[좋다요!]

야식이라는 말에 꾸엥이가 짧은 앞발로 만세를 부르며 흥분했다.

"오늘은 가래떡 해줄게."

어제 블루문 동안 밖으로 나올 수 없는 마탑의 마법사들이 간식을 사 가며 다시 돈이 들어왔다.

그리고 그 돈으로 유물 : 재화를 삼키는 쌀반죽에 돈을 넣고 쌀가루를 얻은 다음에 가래떡 반죽을 만들고 레드리본 왕국의 보물창고에 넣었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아! 나 부자구나······."

보물창고에 있는 금괴 하나만 팔아도 몇십 코인은 충분히 나오는데...보물창고의 보물을 까맣게 잊고 있던 세준이었다.

'이걸로 나중에 권능 사야지.'

세준은 보물창고의 재물로 새로운 권능을 살 결심을 하며 보물창고를 닫았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자

[현재 레드리본 왕국 보물창고에서 출고할 수 있는 물건 리스트(총 2391만 8120개)]

찰진 반죽 1kg X5

...

..

.

반죽이 찰진 반죽으로 변해있었다. 흑토끼가 열심히 떡메질을 하고 다시 넣은 것이다.

"찰진 반죽 1kg 5개 꺼낼게."

[레드리본 왕국 보물창고에서 찰진 반죽 1kg 5개를 출고합니다.]

"자. 천천히 살살 눌러!"

세준이 꾸엥이가 들고 있는 수동 가래떡 기계에 반죽을 넣으며 말했다.

꾸엥!

이미 몇 번 해봤기에 꾸엥이는 능숙하게 가래떡을 뽑기 시작했고

[쫄깃한 가래떡을 완성했습니다.]

[요리 Lv. 4의 숙련도가 미세하게 상승합니다.]

[요리 Lv. 4의 효과로 쫄깃한 가래떡의 맛과 효과가 미세하게 올라갑니다.]

가래떡이 완성됐다. 흑토끼의 실력이 좋아지면서 가래떡 앞에 붙었던 '조금' 라는 단어도 사라졌다.

"자. 먹자!"

세준이 가래떡을 먹기 좋게 잘라 분홍곰과 꾸엥이 황금박쥐에게 줬다. 물론 가래떡이 꿀이 빠질 수 없으니 꿀도 잔뜩 꺼냈다.

"자. 너희들은 이거 먹어."

음머!

(잘 먹겠습니다!)

블랙 미노타우루스들은 떡의 식감을 싫어해서 먹지 않았다. 대신 잘라 놓은 방울토마토 줄기를 잔뜩 줬다.

그렇게 세준과 동물들이 사이좋게 야식을 다 먹었을 때

"어?! 블루문이다!"

하늘에 푸른 달이 떴다.

"이제 일하자."

세준이 일어나며 말했다. 흩어져서 블루문의 기운이 깃든 농작물의 위치를 파악해야 했다.

그때

"박 회장! 내가 왔다냥!"

때마침 도착한 테오가 세준을 향해 몸을 날렸다.

"오! 테 부회장, 잘 왔어!"

"냥?!"

오자마자 일을 하게 된 테오였다.

147화. 약한 이름을 말해서 죄송합니다.

147화. 약한 이름을 말해서 죄송합니다.

"내가 왜 이걸 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냥?!"

세준의 머리에 매달린 테오가 입이 삐죽 나온 채 푸른빛이 내리는 밭을 열심히 둘러봤다. 아래에서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무릎에 못 매달리게 했다고 삐진 것이다.

"테 부회장, 조금만 참아. 대신 이거 끝나고 츄르 줄게."

"냥! 알겠다냥!"

세준의 말에 기운이 난 테오가 눈을 부릅뜨며 주변을 둘러봤다.

그때

"냥! 박 회장, 찾았다냥"

꾸엥!

[아빠 찾았다요!]

테오와 분홍 털의 머리 위에서 밭을 둘러보던 꾸엥이가 푸른빛이 맺히기 시작하는 밭을 동시에 찾았다.

"냥! 꾸엥이, 내가 먼저 봤다냥!"

꾸엥!꾸엥!

[아니다요! 큰형아보다 꾸엥이가 먼저 봤다요!]

그렇게 테오와 꾸엥이가 누가 먼저 찾았는지 싸우는 사이

파앗!

푸른 빛이 더욱 밝아졌다. 블루문의 기운을 모두 흡수하는 것처럼.

"뭐지?"

이런 적은 없었기에 세준이 빛이 나는 방울토마토밭으로 다가갔다.

스스스.

세준이 다가갈 때쯤에는 푸른 빛은 방울토마토 하나에 완전히 옮겨진 상태였다. 그리고 푸른색도 붉은색도 아닌 하얀 빛을 내는 방울토마토.

"······."

뚝.

세준이 홀린 듯이 하얀색 방울토마토를 땄다.

그리고

[영약 : 강대한 마력을 품은 방울토마토를 수확했습니다.]

[수확하기 Lv. 6의 효과로 한 단계 등급 높은 농작물 1개를 수확했습니다.]

[직업 경험치가 크게 상승합니다.]

[수확하기 Lv. 6의 숙련도가 크게 상승합니다.]

[수확하기 Lv. 6의 숙련도가 채워져 레벨이 상승합니다.]

[경험치 1000을 획득했습니다.]

"어?!"

세준은 수확했다는 메시지를 보고 나서야 정신이 들었다.

그리고

"강대한 마력을 품은 방울토마토?!"

처음 보는 농작물의 이름을 보며 당황했다. 거기다 영약이었다.

그때

[탑에서 신품종을 탄생시키는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탑에서 신품종에 대한 당신의 독점 재배권을 인정합니다.]

[당신의 허락 없이는 영약 : 강대한 마력을 품은 방울토마토를 재배할 수 없습니다.]

[직업 경험치가 대폭 상승합니다.]

그동안 가장 많이 수확했던 방울토마토. 하지만 신품종이 생기지 않아 거의 포기하고 있었는데······

"방울토마토! 널 믿고 있었다고!"

마력의 방울토마토가 드디어 세준에게 신품종을 안겨줬다. 그것도 영약으로.

세준이 서둘러 손에 든 하얀색 방울토마토의 옵션을 확인하려 할 때

[탑에서 신품종 5개를 탄생시키는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위대한 농부의 업적에 대한 보상으로 직업 특성이 1개 추가됩니다.]

[직업 특성으로 신품종을 탄생시킬 때마다 모든 스탯이 10씩 상승합니다.]

"오! 대박!"

신품종을 탄생시킬 때마다 모든 스탯 10이나 올려주다니! 레벨 40을 올리는 것과 같은 효과를 지닌 엄청난 직업 특성이었다.

"그럼 옵션을 볼까."

세준이 기뻐하며 영약 : 강대한 마력을 품은 방울토마토의 옵션을 확인했다.

[영약 : 강대한 마력을 품은 방울토마토]

탑의 가장 높은 곳에서 블루문의 강한 마력을 홀로 흡수한 돌연변이 방울토마토입니다.

탑 안에서 자란 방울토마토로 영양을 충분히 섭취해 맛있습니다.

강한 마력을 흡수하며 색이 하얀색으로 변했습니다.

섭취 시 마력이 영구적으로 10 상승합니다.

강력한 마력을 흡수하며 탄생해 마력이 강한 곳이 아니면 자라지 못합니다.

재배자 : 탑농부 박세준

유통기한 : 10년

등급 : A

"어?! A급이네?!"

그러고 보니 한 단계 높은 농작물을 수확했다는 메시지도 있었었다.

그때

"그 방울토마토 여기다 넣어라냥!"

테오가 봇짐에서 상자 하나를 꺼냈다.

"그 상자 뭔데?"

"뽑기로 뽑은 상자다냥!"

"뭐?! 뽑기? 대장간에서 뽑았어?"

"아니다냥! 새로 한 군데 뚫었다냥!"

타루도 모르게 테오의 새로운 뽑기 장소로 확정된 유실물 창고였다.

"오! 진짜?!"

테오의 말에 세준이 방금 영약 방울토마토를 얻었을 때보다 더 좋아했다. 테오의 뽑기는 언제나 옳다. 테오가 세준의 무릎을 믿는 것만큼이나 세준도 테오의 앞발을 믿었다.

세준이 상자를 살펴봤다.

[허름한 나무 상자]

???

등급 : E

"흐흐흐. 이건 무슨 효과가 있으려나."

세준이 기대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에일린, 이것 좀 감정해줘."

에일린에게 감정을 부탁했다.

[탑의 관리자가 맡겨 달라고 합니다.]

에일린의 대답과 동시에 허름한 나무 상자가 사라졌다.

잠시 후

[탑의 관리자가 감정이 끝났다고 합니다.]

[탑의 관리자가 테오가 이번에도 괜찮은 물건을 가져왔다고 말합니다.]

"당연하다냥! 나는 항상 도움이 되는 물건을 가져온다냥! 그러니 박 회장은 빨리 나를 칭찬하라냥!"

"그래. 테 부회장, 잘했어."

"맨입으로 말이냥?! 빨리 테 부회장 기간을 늘려줘라냥!"

"알았어. 한 달 연장!"

"냥!냥! 좋다냥!"

목표한 대로 테 부회장 기간을 늘린 테오가 기뻐하며 세준의 뒤통수에 자신의 이마를 비벼댔다.

[탑의 관리자가 그대에게 도움이 될 만한 물건 같다고 말합니다.]

"그래?"

[탑의 관리자가 직접 보면 알 거라고 합니다.]

쿵.

에일린의 말과 함께 세준의 앞에 상자가 나타났다.

"어?!"

아까는 분명 허름한 나무 상자였는데 지금은 황금 상자로 변해있었다. 세준이 서둘러 황금 상자의 옵션을 확인했다.

[풍요의 황금 상자]

이름이 잊힌 고대 풍요를 담당했던 신의 능력이 담긴 상자입니다.

오랜 시간이 흘러 신의 능력이 대부분 소실됐습니다.

곡식이나 과일을 1개 넣고 하루를 기다리면 2개로 늘어납니다.

사용 제한 : 풍요를 기원하는 자

제작자 : ???

등급 : A+

"신의 능력?"

설명대로 능력이 많이 소실됐는지 신의 능력치고는 등급이 낮았다. 거기다 두 배도 아니고, 1개를 넣으면 2개가 나오는 옵션. 신의 물건치고는 좀 많이 모자랐다.

"테 부회장, 말대로 여기다 넣어봐야겠다."

그래도 1개 밖에 없는 영약 : 강대한 마력을 품은 방울토마토를 하루 만에 2개로 늘릴 수 있으면 나쁘지 않은 효과였다.

세준이 방울토마토를 풍요의 황금 상자에 넣었다. 그리고 황금 상자를 아공간 창고에 넣고 나오자

꾸로롱.

배로롱.

꾸엥이와 황금박쥐는 분홍 털의 등에서 뻗어 자고 있었고

"냥······ 츄르······."

츄르를 꼭 먹고 자겠다던 테오는 테 부회장 기간을 늘리는 목표를 이루자 세준의 머리에 매달린 채 반쯤 졸고 있었다.

"피곤했나 보네."

척.

세준이 테오를 무릎에 장착했다. 이후로도 세준은 분홍 털, 블랙 미노타우르스 5마리와 계속 밭을 둘러봤다.

하지만 영약 : 강대한 마력을 품은 방울토마토가 모든 블루문의 기운을 흡수한 건지 다른 농작물 중에는 블루문의 기운을 품은 농작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블루문이 끝나자

"다들 수고했어."

쿠엉!

음머!

세준은 분홍 털과 블랙 미노타우루스들에게 감사의 표시로 먹을 것들을 잔뜩 주고 돌려보냈다.

"나도 자야지."

동물들을 보내고 집으로 들어간 세준. 뽀송뽀송한 새송이버섯 매트리스에 누워 머리를 대자마자 잠들었다.

커어어.

고로롱.

침실에는 세준과 테오의 코 고는 소리만 들렸다.

***

"냐아아앙! 잘잤다냥!"

세준의 무릎에서 숙면을 취한 테오가 앞발을 쭉 내밀고 개운하게 기지개를 켰다.

그리고

통.통.

세준의 몸을 밟고 세준의 얼굴로 다가갔다.

"박 회장은 아직 꿈나라다냥. 근데 얼굴이 많이 썩었다냥!"

테오가 세준의 얼굴을 보며 안쓰럽게 말했다. 박 회장의 얼굴은 대체 언제 괜찮아지는 것이냥?!

"어쩔 수 없다냥! 내가 특별히 마사지 해주겠다냥!"

꾹.꾹.

세준의 얼굴을 앞발로 열심히 밟는 테오.

그렇게 테오가 세준의 얼굴을 마사지하고 있을 때

"뀻뀻뀻. 테 부회장님, 오셨군요!"

세준에게 부탁할 게 있어 찾아온 이오나가 테오를 발견하고 크게 기뻐했다.

"이오나 반갑다냥!"

"네! 테 부회장님, 4일 후에 마탑 완공 축하 파티가 있어요. 그때 오세요."

이오나가 테오를 파티에 초대했다.

"냥?! 박 회장도 가냥?"

"네. 세준 님도 오기로 했어요."

"그럼 나도 간다냥!"

그렇게 테오와 이오나가 얘기를 나누는 사이

"으음······.'

세준이 일어났다.

"박 회장 깼냥?"

"그럼 안 깨냐? 옆에서 그렇게 떠드는데······."

세준이 일어나며 투덜댔다.

"잘됐다냥! 박 회장, 일어났으니 츄르를 달라냥!"

테오가 세준의 무릎에 발라당 누워 초롱초롱한 눈빛을 하고 츄르를 받아먹을 자세를 취했다.

"뀻. 그럼 저도 잠깐 자다 가야겠어요!"

테오가 눕자 이오나가 냉큼 테오의 꼬리를 감고 눈을 붙였다.

"그래."

부욱.

아직 잠이 덜 깬 세준이 비몽사몽 상태로 츄르를 뜯어 테오의 입에 넣어줬다.

촵촵촵.

'역시 박 회장의 무릎에서 박 회장이 먹여주는 츄르가 가장 맛있다냥!'

테오가 츄르를 먹으면서 행복해했다.

그리고 세준이 테오에게 츄르를 먹이면서 잠에서 깨기 시작할 때

꾸엥!

[아빠 꾸엥이도 배고프다요!]

자다가 배고픔에 일어난 꾸엥이가 눈을 뜨자마자 세준을 찾아왔다.

"그래······ 이거 먹으면서 잠깐 기다려."

세준이 아공간 창고에서 군고구마 말랭이를 꺼내 꾸엥이에게 줬다.

꾸엥!

[맛있다요!]

오물오물.

세준의 옆에 궁둥이를 붙이고 열심히 군고구마 말랭이를 먹는 꾸엥이.

잠시 후.

(세준 님! 좋은 아침이요!)

잠에서 깬 황금박쥐도 세준을 찾아왔다.

"그래. 좋은 아침."

그렇게 동물들에 둘러쌓인 세준이 조난 302일 차 아침을 시작했다.

"그러니까 마탑의 새로운 이름을 정해달라고?"

"뀻뀻뀻. 네!"

갉갉.

세준의 물음에 대답한 이오나가 다시 열심히 볶음 땅콩을 갉아 먹었다. 이오나가 세준을 찾아온 이유는 마탑의 새로운 이름을 받기 위해서였다.

원래는 중력 마탑이었지만, 불꽃, 파괴, 운석 마탑을 흡수하면서 규모가 커졌고 중력 마법을 사용한다는 정체성도 흐려졌다. 그래서 모두에게 소속감을 줄 새로운 마탑의 이름이 필요했다.

그리고 마탑의 회의 끝에 검은 탑의 실세 세준에게 새로운 마탑의 이름을 받자는 의견이 나온 것이다.

"냥! 나에게 좋은 이름이 있다냥! 테 부회장, 줄여서 테부 마탑 어떠냥?!"

"그건 완전 별로잖아."

"무슨 소리냥? 그게 별로일 리 없다냥! 그럼 테오 박 마탑은 어떠냥?!"

"패스."

"왜 내가 말하는 걸 다 가는 것이냥?!"

테오가 자신이 생각한 이름이 왜 인정받지 못하는지 따지려 할 때

꾸엥!

[꾸엥이도 이름 생각했다요!]

꾸엥이가 앞발을 힘차게 들며 말했다.

"오?! 꾸엥이 뭔데?"

꾸엥!

[꿀 마탑이다요!]

꾸엥이가 자신이 좋아하는 꿀을 마탑의 이름으로 말했다.

"음······ 그건 힘들 것 같은데?"

꾸엥!꾸엥?

[꿀은 맛있다요! 왜 안 된다요?]

꾸엥이가 맛있는 꿀이 왜 마탑의 이름이 될 수 없는지 의아해했다.

그때

(뱃뱃. 세준 님의 이름을 붙여서 세준 마탑은 어떨까요?)

황금박쥐가 세준의 이름을 마탑의 이름으로 하자고 말했다.

'흐흐흐. 황금박쥐 녀석 부끄럽게······.'

세준이 내심 기뻐할 때

"안 된다냥! 너무 약하다냥!"

꾸엥!

[이름에 강함이 없다요!]

마탑에 최약체 세준의 이름을 마탑에 붙이는 것에 테오와 꾸엥이가 반대했다. 이것들이!

"아니. 너무······."

"뀨-뀨-세준 님 이름은 안 돼요! 그럼 우리 마탑을 무시할 거예요!"

세준이 따지려 할 때 이오나의 분노 게이지가 분노의 뀨 2단계 상태까지 올라가며 화를 냈다.

"나 전보다 많이 강해졌는데······."

세준이 억울해하고 있을 때

(뱃······ 약한 이름을 말해서 죄송합니다.)

세준의 이름을 말한 황금박쥐가 사과했다.

"크윽······ 황금박쥐 너마저······."

마지막 확인 사살까지 당한 세준이 좌절했다.

148화. 역시 집 밖은 위험해.

148화. 역시 집 밖은 위험해.

세준에게 상처만 준 마탑 이름 짓기.

그때

[탑의 관리자가 감히 누가 자신의 탑농부를 무시하냐고 분노합니다.]

에일린이 세준의 편을 들고 나섰다.

[탑의 관리자가 검은 탑의 탑농부 박세준이 언제 어디서 죽어도 놀라지 않을 정도로 약한 건 사실이지만, 누구보다 농사를 잘 짓는다고 칭찬합니다.]

"에일린······."

앞에 얘기는 안 하고 칭찬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세준의 자존감이 바닥을 치기 시작할 때

[탑의 관리자가 마탑의 이름을 박에 마탑으로 짓겠다고 선언합니다.]

세준은 듣자마자 감이 왔다. 에일린의 이름 짓는 스타일을 알기 때문.

'박세준의 '박'과 에일린의 '에'를 합친 거군.'

하지만

"뀻? 박에 마탑이요?"

왜 저런 이름이 나온지 모르는 이오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박애와 발음이 유사해 다른 존재들이 헷갈려 할 것 같았다.

[탑의 관리자가 대신 마탑에 '검은'이라는 수식어를 쓰는 것을 허락하겠다고 말합니다.]

"뀻뀻뀻! 감사합니다. 위대한 검은 용 에일린 님!"

에일린의 말에 이오나는 생각할 것도 없이 에일린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검은 탑에서 '검은'이라는 수식어를 쓴다는 건 굉장한 의미. 왜냐하면 검은 용의 허락을 받은 존재만이 '검은'이라는 말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몰래 쓸 수도 있지만, 그때의 뒷감당은 혼자서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용들은 자신의 허락 없이 '검은'이라는 수식어를 쓴 종족을 절대 용서하지 않는다. 당사자뿐 아니라 그 종족 전체가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리고 그 대가는 멸족. 그 정도의 무게가 있는 수식어를 마탑의 이름으로 쓸 수 있다는 건 엄청난 영광이었다.

[탑의 관리자가 앞으로 탑 99층에 지어진 마탑의 이름을 검은 박에 마탑으로 부르겠다고 선포합니다.]

그렇게 마탑의 이름이 지어졌다.

검은 박에 마탑.

후에 마탑의 이름 때문에 자선을 베푸는 마탑인 줄 알고 접근했다가 박애와는 전혀 다른 파괴적인 행보로 헌터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된다.

***

"암스테르담항에 도착하면 뭐 할 거야?"

나이지리아의 라고스항에서 출발한 곡식 운반선의 갑판에서 조나단이 동료에게 물었다.

"뭘 하기는? 바로 술집 가서······."

동료가 설레는 목소리로 대답할 때

쿠웅!

갑자기 곡식을 실은 탱크에서 약한 진동과 함께 소리가 들렸다.

"뭐지?!"

"글세······ 카카오가 든 탱크에서 들리는 것 같은데?"

"설마 안에 뭔가 썩고 있는 거 아냐?"

그런 경우는 거의 없지만, 가끔 탱크에 저장한 곡식이 썩으면서 발생한 가스로 인해 탱크가 팽창할 때가 있었다.

"아······ 이번에 라고스에서 너무 급하게 출발할 때 뭔가 이상이 있었나 봐."

라고스에서 수백만 마리의 메뚜기 떼가 나타나 사람, 동물을 가리지 않고 공격하자 그들의 고용주는 서둘러 곡식을 실어 화물선을 출발시킬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그에 따라 그들은 급하게 곡식을 실어 출발한 것이다.

"그럼 도착하자마자 탱크 청소부터 해야 되는 거 아냐?!"

"그러니까······ 젠장! 술은커녕 청소만 하다 돌아가겠네······."

둘이 푸념을 하는 사이

콰앙!

거대한 폭음과 함께 탱크의 뚜껑이 강제로 열렸다.

그리고

푸드득.푸드득.

로커스트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어?! 메뚜기?!"

"도망쳐!"

조나단이 서둘러 외쳤지만, 이곳은 망망대해. 도망칠 곳이 없었다.

로커스트들이 사냥을 하듯이 배 안의 사람들을 덮쳤다. 그런 로커스트들의 몸은 완전히 노란색으로 변해있었다.

지구방위대는 나이지리아 라고스의 로커스트를 전부 몰아내고 안심하고 있었지만, 로커스트들은 이미 곡식이 든 수십 대의 곡식 운반선 안에 침투한 후였다.

그리고 아무 방해 없이 곡식을 먹어 치우며 수를 급격히 늘려 옐로우 로커스트로 진화를 끝낸 것이다.

세계 여러 항구로 향하는 곡물 운반선 안에서 이런 일이 동시에 일어나며 연락 두절이 된 배들이 빠르게 늘어났다.

***

조난 305일 차.

세준이 풍요의 황금 상자에서 영약 : 강대한 마력을 품은 방울토마토를 하나 꺼냈다. 풍요의 황금 상자의 최대 용량은 2개. 그래서 2개로 늘어나면 1개를 빼줘야 다시 2개로 늘어난다.

[영약 : 강대한 마력을 품은 방울토마토 씨앗 30개를 얻었습니다.]

[직업 경험치가 미세하게 상승합니다.]

[채종하기 Lv. 6의 숙련도가 미세하게 상승합니다.]

그렇게 얻은 영약급 방울토마토는 먹지 않고 안의 씨앗을 빼냈다. 어차피 한두 개 먹어서는 주변의 굇수들에게 무시만 받기 때문.

물론 계속 씨뿌리기에 실패해 씨를 소모하고 있는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이번에는 되라. 준비됐지?"

세준이 흙을 담은 화분 앞에 서서 테오와 꾸엥이를 보며 말했다.

"준비됐다냥!"

꾸엥!

[준비됐다요!]

테오와 꾸엥이가 화분에 마력을 불어 넣으며 말했다.

세준은 영약 : 강대한 마력을 품은 방울토마토 씨앗을 심는 데 계속 실패하고 있었다. 마력이 강한 곳이 아니면 자라지 못하는 특징 때문.

그래서 세준은 일부러 마력이 강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테오와 꾸엥이의 도움을 받아 영약급 방울토마토 심기를 시도하고 있었다.

하지만

[영약 : 강대한 마력을 품은 방울토마토 씨앗을 심었습니다.]

[영약 : 강대한 마력을 품은 방울토마토 씨앗이 뿌리를 내리기에 마력이 강한 환경이 아닙니다.]

[씨 뿌리기가 실패합니다.]

스스스.

메시지와 함께 씨앗이 재처럼 변했다. 이번에도 실패였다.

"마력이 얼마나 많이 필요한 거야?!"

테오와 꾸엥이의 마력으로도 안 되다니······ 세준은 다음번에는 이오나까지 데려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영약급 방울토마토 심기에 실패하자

"심심해······."

실내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사라진 세준이 지루한 목소리로 말했다. 세준은 어제부터 집 밖으로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이유는 검은 박에 마탑의 완공 축하 파티 때문. 파티 초대를 받은 각 층의 세력가들이 파티에 참가하기 위해 탑 99층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마탑으로 가기 위해 중간에 있는 세준의 농장을 지나갈 수밖에 없었고 세준을 걱정한 테오와 꾸엥이가 세준을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보호하고 있는 것이다.

"박 회장, 집에서 잠이나 자자냥!"

테오가 세준을 위로하듯이 말하며 세준의 무릎에 발라당 누워 자신의 등을 세준의 무릎에 열심히 비볐다.

꾸엥!

[큰형아 말이 맞다요! 집 밖은 위험하다요!]

꾸엥이도 테오의 의견에 동의하며 세준의 엉덩이에 자신의 궁둥이를 붙이고 앉아 아공간 창고에서 가지고 나온 꿀을 열심히 찍어 먹었다.

둘 다 이 기회에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겠다는 열망이 가득했다.

'그냥 나갈까?'

세준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나갈 수 있다. 자신은 이곳의 주인이고 자신을 지키는 동물들은 하나같이 강하니까. 거기다 에일린도 자신의 편.

하지만

쿵.쿵.

창문 밖으로 끝이 보이지 않는 몬스터들의 행렬을 보니 굳이 밖에 나갈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자동으로 들었다. 굳이 강한 놈들이 많은 곳에 일부러 얼쩡거릴 필요는 없었다.

"역시 집이 최고지."

세준이 푹신한 새송이버섯 매트릭스에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이렇게 하루 종일 집에 있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생각해보면 지구에서는 회사 안 가는 날 오후 늦게 일어나 저녁까지 침대에서 뒹구는 게 일상이었는데······."

자신이 이렇게 집에 있는 걸 답답해한다는 게 신기했다.

그렇게 누워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씨앗 상점이 열립니다.]

씨앗 상점이 열렸다.

[씨앗 상점 스킬의 레벨을 확인합니다.]

[씨앗 상점 Lv. 3을 확인했습니다.]

[박세준 님의 등금이 평범에서 비범으로 상승했습니다.]

50레벨 직업 퀘스트 완료 보상으로 모든 스킬의 레벨이 1 오르면서 씨앗 상점의 레벨이 오르자 등급도 따라 상승했다.

[비범 등급에서는 씨앗 상점에서 구매했던 씨앗 하나를 선택해 매일 10탑코인 이내에서 구매할 수 있습니다.]

[선택된 씨앗은 오늘 판매할 씨앗 리스트에서 빠집니다.]

[선택한 씨앗을 다른 씨앗으로 바꾸길 원하실 경우 소정의 변경 수수료를 지불하셔야 합니다.]

[어떤 농작물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수수료도 있네.'

[당근 씨앗]

[딸기 씨앗]

[양파 씨앗]

[청양고추 씨앗]

...

..

.

세준이 생각하는 동안 그동안 구매했던 농작물들이 나타났다.

"나중에 고를게."

당장 급하게 키워야 하는 농작물은 없기에 세준은 천천히 고르기로 했다.

[오늘 판매할 씨앗 5종이 랜덤으로 보여집니다.]

[현재 등급에서는 50탑코인 안에서 씨앗을 원하는 만큼 구매할 수 있습니다.]

등급이 오르자 랜덤으로 보이는 씨앗의 종류가 4개에서 5개로 하나 더 늘어났지만, 구매 가능 금액은 5탑코인에서 50탑코인으로 10배가 늘어났다.

[단호박 씨앗 50개 - 6탑코인]

[땅콩 씨앗 1000개 - 9탑코인]

[화염콩 씨앗 1개 - 10탑코인]

[수박 씨앗 10개 - 12탑코인]

[블루베리 씨앗 10개 - 20탑코인]

'가격이 또 올랐네.'

씨앗들의 가격이 전에 봤을 때보다 거의 50% 이상 올라가 있었다.

"단호박, 땅콩, 화염콩, 블루베리."

수박 씨앗은 탑 77층에서 원숭이들이 준 수박을 먹고 많이 챙겨왔기에 세준은 수박 씨앗을 뺀 씨앗들을 샀다.

[씨앗 은행 박세준 님의 계좌에서 총 45탑코인이 빠져나갑니다.]

[씨앗 상점 마일리지 450점이 적립됩니다.]

[씨앗 상점 마일리지가 총 601점 적립됐습니다.]

잘그락.

세준의 손 위에 씨앗이 든 작은 가죽 주머니 4개가 떨어졌다.

[씨앗 상점을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30일 후에 다시 씨앗 상점 Lv. 3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일단 화염콩은 화분에 심어놔야지."

세준이 화염콩 씨앗을 화분에 심으려 할 때

삐익!

뺘아!

께엑!

밖에서 토끼들과 버섯개미들이 뭔가를 경계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하찮은 것들이 감히 내가 누군 줄 알고 앞길을 막는 것이냐?! 나는 탑 95층의 지배자 레파드의 아들 자슈. 다음 대 95층의 지배자가 되실 몸이다! 죽고 싶지 않으면 비켜라!"

오만함이 가득한 목소리도 들려왔다. 꼭 저런 놈들이 있다. 꼭 하늘 위에 하늘이 있음을 모르고 자신이 최고인 줄 아는 존재들. 농장에 불청객이 온 모양이었다.

"나가봐야겠어."

자중하고 있지만, 식구를 건드리는 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법.

"꼭 저런 것들이 있다냥!"

꾸엥!

[혼내주겠다요!]

자신을 움직이게 한 존재에게 분노하며 세준을 따라 테오와 꾸엥이도 일어났다.

"얘들아 이거 쓰고 나가야지."

척.

"냥?"

꾸엥?

세준이 안전을 위해 용아병 투구를 쓰고 테오와 꾸엥이에게도 씌워줬다. 혼자만 써도 되지만, 굳이 둘에게도 씌워주는 세준. 혼자 쓰려니 부끄러웠다.

그렇게 세준과 테오, 꾸엥이가 집 밖으로 나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