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윙윙.
자신의 등장을 알리며 동굴의 천장 구멍에서 뛰어내린 테오는 독꿀벌들의 날갯소리가 들리자마자
"같은 편이다냥!"
소리를 지르고는 다다다 달려 세준의 옷 속으로 쇽하고 들어갔다. 그리고 세준의 옷 목 부분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뭐야? 목 늘어나잖아."
"독꿀벌 무섭다냥"
"걱정 마. 안 와."
어른이 된 독꿀벌들이 테오가 나타나자마자 새끼 독꿀벌들에게 테오가 같은 편인 걸 알려줬기에 괜찮았다.
"휴우 다행이다냥."
테오는 독꿀벌들이 독침을 뽑지 않은 걸 확인하고 나서야 세준의 옷에서 나왔다.
"그것보다 내가 시킨 건 잘했어?"
"당연하다냥! 모든 임무를 완수하고 완판도 했다냥!"
테오가 우렁차게 대답했다.
"그럼 우리 집에 소식을 전하는 계약은 잘 된 거야?"
"그럴 거다냥. 여기 계약서다냥."
테오가 세준에게 계약서를 건넸다.
세준이 계약서를 잡자
화르르륵.
때마침 계약이 이행됐는지 계약서가 푸른 화염을 내며 타기 시작했다. 가족들에게 세준의 안부와 5천만 원의 돈이 잘 전해졌다는 의미였다.
"수고했어. 그럼 정산부터 하자."
"여기 있다냥! 계약금으로 50탑코인 그리고 상점 심부름으로 14.2탑코인을 썼다냥."
테오가 세준에게 건네며 자신이 쓴 금액을 보고했다.
"208.8탑코인?!"
자신이 생각한 돈보다 배는 큰 금액에 세준이 놀랐다.
"이번에 호구를 만나서 비싸게 팔았다냥!"
뭐지? 호구에게 호구라고 불릴 정도면 얼마나 호구인 거야?
거래 상황을 모르는 세준은 테오의 말을 그대로 믿어야 할지 헷갈렸다.
"자 여기 인센티브. 원래 10.92탑코인이지만, 조금 더 주는 거야."
세준이 생색을 내며 테오에게 15탑코인을 건넸다.
"세준 님, 고맙다냥! 그리고 이것도 있다냥!"
테오가 더 칭찬받고 싶었는지 서둘러 일어나 자신의 봇짐을 뒤집어 털었다.
후두두둑.
양념들과 츄르 그리고 세준의 심부름으로 사 온 물건들이 봇짐에서 쏟아져 나왔다.
"이건?!"
부스럭.
세준이 투명한 봉투에 든 가루를 조심스럽게 찍어 먹었다.
'짜다!'
입안에 짠맛이 파도처럼 밀려들어 왔다.
'이것만 있으면...생선구이랑...'
소금을 어디에 사용할지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있을 때
"어떠냥?"
테오가 당당하게 세준의 무릎 위로 올라가며 물었다.
"어?!"
"나 이제 테 대표냥?"
그제야 정신을 차린 세준이 테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테오가 쏟아낸 물건들을 살펴봤다.
양념은 소금과 후추 두 가지뿐이었다. 그리고 커피 믹스 15개. 대충 보기에도 테 대표 한 시간권 20장은 나올 것 같았다.
"좋아. 24시간 동안 테 대표로 임명해주지."
세준은 테오가 자신의 부탁을 문제없이 처리해줬기에 시간을 조금 더 쓰기로 했다.
"좋다냥!"
"테 대표, 고생했어."
세준이 떨어진 참치 맛 츄르 하나를 주워 끝의 절취선을 뜯고 테오의 앞에 내밀었다.
촵촵촵.
그렇게 테오가 츄르를 먹는 동안 세준은 테오에게 심부름을 시켜 사 온 물건들을 살펴봤다.
냄비, 국자, 그릇, 숟가락, 단검. 요리와 식사를 위해 산 물건들이었다.
세준이 먼저 냄비를 들어 살펴봤다.
[무쇠 냄비]
무쇠로 만들어져 튼튼하다.
손잡이를 나무로 감싸 사용자가 편하게 사용할 수 있다.
사용 제한 : 없음
제작자 : 비공개
등급 : D
"비공개?"
세준이 국자도 들어 살펴봤다.
[무쇠 국자]
무쇠로 만들어져 튼튼하다.
손잡이를 나무로 감싸 사용자가 편하게 사용할 수 있다.
사용 제한 : 없음
제작자 : 비공개
등급 : D
나머지 그릇과 숟가락도 마찬가지였다. 전부 비공개였다.
"이상하네."
촤압.촤압.촤압.
세준의 눈치를 보느라 테오의 츄르 먹는 속도가 현저하게 느려졌다.
세준이 마지막으로 단검을 살펴보기 위해 들었다. 이것까지 확인하고 테오에게 물어볼 생각이었다. 왜 제작자가 비공개인지.
단검은 세준의 생각보다 꽤 무거웠다.
[단검]
???
사용 제한 : Lv 10 이상, 힘 5 이상
제작자 : 비공개
등급 : E
"응? 이거 왜 물음표가 있지?"
아이템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 할 자리에 물음표 3개만 있었다.
척.
일단 사용 제한은 충족하기에 세준이 단검을 쥐었다. 그리고 잠자리를 위해 깔아둔 마른 파 이파리를 잘라봤다.
서걱.
얇기는 했지만, 굳으면 나무처럼 단단해지는 마른 파 이파리가 너무도 쉽게 잘렸다. 요리할 때 충분히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테 대표, 이거 어디서 났어?"
"어?! 대장간 뽑기 코너에서 샀다냥."
테오는 제작자가 비공개인 것에 대해 자신을 추궁할 줄 알았던 세준이 다른 걸 물어보자 당황하며 대답했다.
"뽑기 코너?"
"그렇다냥. 대장간에서 떨이로 판다길래 거기서 샀다냥."
대장간 주인은 테오가 그냥 요리할 때 쓸 단검을 달라길래 자신들이 감정할 수 없는 장비들을 모아둔 뽑기 코너에서 하나 고르라고 했다.
"깎아달라냥!"
테오는 세준에게 배운 대로 뽑기 코너에서 3번 깎기를 시도했고 한 번 뽑을 때 20탑코인인 가격을 13탑코인으로 깎아 단검 하나를 가져온 것이다.
"그래. 잘했어."
뭐 무슨 단검인지 알 필요는 없다. 싸게 샀으면 됐다.
무겁기는 했지만, 잘 잘리기만 하면 되니까.
그때
[탑의 관리자가 미감정 아이템을 함부로 쓰면 큰일 날 수도 있다면서 자신이 감정해 주겠다고 합니다.]
"그래? 그럼 해줘."
[퀘스트가 발생합니다.]
[퀘스트 : 탑의 관리자에게 미감정 단검을 보내라.]
보상 : 없음.
거절 시 : 감정을 못 함
[추가 퀘스트가 발생합니다.]
[퀘스트 : 탑의 관리자에게 군고구마 말랭이를 선물하라.]
보상 : 감정된 단검
거절 시 : 단검을 받을 수 없음.
"...꼭 이렇게 해야 해?"
[탑의 관리자가 퀘스트를 이용해야 물건이 왔다 갔다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탑의 관리자라 절대 자신이 군고구마 말랭이를 먹고 싶어서가 아니라고 강하게 부정합니다.]
강한 부정은 긍정이라던데?
[탑의 관리자가 쓰읍 침을 닦아냅니다.]
[...!!!]
그럴 줄 알았다.
[탑의 관리자가 군고구마 말랭이를 먹고 싶은 마음이 조금은 있지만, 퀘스트가 필요한 것도 맞다고합니다.]
"알았어."
세준은 단검을 감정하기로 했다. 탑의 관리자의 말을 들으니 정보를 모르는 아이템을 쓰기 찜찜하기도 했고 군고구마 말랭이 몇 개 주는 건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조만간 한 번 더 주려고 했는데 이거로 끝내면 되겠다.'
"가져가."
세준의 손에서 단검이 사라졌다.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탑의 관리자가 단검에 감정 스킬을 사용합니다.]
[탑의 관리자가 다행히 해를 끼치는 아이템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래?"
세준이 머리맡에 둔 씨감자를 담아 두었던 가죽 주머니에 담아둔 군고구마 말랭이 한 줌을 꺼냈다.
"자 여기 있어."
세준의 손에 군고구마 말랭이가 사라지며 단검이 나타났다.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퀘스트 완료 보상으로 감정된 단검 - 케인즈의 수련용 단검을 획득했습니다.]
"케인즈의 수련용 단검?!"
장비에 이름이 붙었다. 그렇다면 이건 네임드 장비!
밖에 나가면 기본 가격이 억대부터 시작하는 게 네임드 장비다. 세준이 서둘러 단검을 확인했다.
[케인즈의 수련용 단검]
붉은 산의 레인저 케인즈가 소싯적 수련용으로 쓰던 단검이다.
단검에 무게감을 주기 위해 흑철을 사용해 단검치고는 무겁다.
단검을 제작할 때 미스릴을 소량 섞어 한 번 날을 갈면 단검의 예기가 오래 유지된다.
사용 제한 : Lv 10 이상, 힘 5 이상
제작자 : 대장장이 레븐(검은 망치족 드워프)
등급 : B
스킬 : [숙련도 상승 Lv. 1]
[숙련도 상승 Lv. 1]
이 단검을 사용한 모든 스킬의 숙련도가 5% 빠르게 상승한다.
탑의 관리자가 사용한 강력한 감정 스킬인 만큼 유랑 상인 협회에서 제한했던 제작자에 대한 정보까지 모든 정보가 공개됐다.
덕분에 테오에게 제작자에 대해 물어보겠다는 세준의 생각은 깨끗이 사라졌다.
촵촵촵.
테오의 츄르 먹는 속도가 다시 빨라졌다. 세준의 분위기가 좋음을 느낀 것이다.
그리고
"세준 님, 등도 긁어달라냥."
테오가 당당하게 요구했다.
"그래."
북북.
케인즈의 수련용 단검을 홀린 듯이 바라보던 세준이 테오의 등을 긁어주며 새삼스럽게 테오를 바라봤다.
뭐야? 이 녀석 호구인 줄만 알았는데...테오에게는 다른 재능이 있었다.
이런 황금손, 아니 황금앞발을 가지고 있었다니...역시 세상은 공평하다.
갑자기 테오의 앞발이 너무 이뻐 보였다.
"테 대표, 츄르 더 먹을래?"
세준이 테오의 도톰한 앞발을 만지며 말했다.
"당연한 거 아니냥. 빨리 달라냥!"
테오가 거만하게 말했다. 앞발은 필살기로 아껴두고 있었는데 세준이 먼저 자신의 앞발을 만져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어진 호감 가득한 목소리.
'푸후훗. 역시 박세준 너도 인간인 이상 그럴 줄 알았다냥.'
자신의 마수에 걸린 것이다. 역시 인간들은 모두 자신의 앞발에 무릎을 꿇는 것이다냥.
뭐지? 이 괘씸한 태도는?
건방진 테오의 태도에 세준의 마음이 불편해졌다.
그리고 테오를 다시 대표로 복직시킬까 했던 마음도 사그라들었다.
테오는 그렇게 테 대표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바로 앞에서 놓쳤다.
촵촵촵.
바로 전에 테 대표가 될 기회가 지나간 줄도 모르고 테오는 열심히 츄르를 핥아댔다.
그때 세준의 무릎 위에 올라간 테오를 불편하게 생각하는 존재가 다가왔다.
뺙!
흑토끼가 테오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거기 내 자리야!
"무슨 소리냥? 여긴 대표의 자리다냥!"
뺙!
흑토끼가 자신의 해머를 꺼내며 대답했다. 몰라! 당장 나와!
세준의 무릎을 건 테오와 흑토끼의 신경전이 시작됐다.
"흐흐흐. 귀여운 것들."
둘의 신경전을 보는 것이 재미있었지만, 이제 잘 시간이다.
와락.
"자 다 같이 자자."
세준이 테오와 흑토끼가 도망가지 못하게 둘을 꽉 안고 자리에 누웠다.
"뭐냥?!"
뺙?!
처음에는 세준의 가슴에서 벗어나기 위해 바둥거리던 것도 잠시 둘은 세준의 심장 소리를 들으며 깊은 잠에 빠졌다.
조난 161일 차. 세준과 테오 그리고 흑토끼는 서로의 온기를 나누며 꿀잠을 잤다.
24화. D급 농작물을 수확하다.
24화. D급 농작물을 수확하다.
"냥?"
뺙?
밤새 서로를 꼭 끌어안고 자던 테오와 흑토끼가 동시에 잠에서 깨며 눈이 마주쳤다.
꿈뻑.꿈뻑.
둘은 이 어색한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에 빠졌다.
"잘 잤냥?"
뺙!
둘은 너무 당황한 나머지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까먹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일어났다.
"일어났어?"
테오와 흑토끼의 대화 소리에 세준도 일어났다.
"그렇다냥!"
뺙!
찌릿!
찌릿!
둘은 동시에 대답하며 무엇을 위해 싸워야 하는지 깨달았다.
슥.
세준이 동굴 벽에 획 하나를 추가해 조난 162일 차를 시작한 사이
하악!하악!
뺙!뺙!
세준의 목소리가 도화선이 되어 테오와 흑토끼는 다시 서로를 철천지원수처럼 노려보며 경계했다.
테오는 자신의 숨겨둔 발톱을 꺼냈고 흑토끼는 해머를 두 손으로 꽉 잡아 언제든지 휘두를 준비를 했다.
묘토상박(猫兎相搏). 노랑과 검정의 싸움. 분위기가 점점 험악해졌다.
그때
"사이좋게 지내야지."
"냥?"
뺙?
세수를 하고 돌아온 세준이 둘의 찹쌀떡 같은 둘의 뒷덜미를 잡아 들고는 테오와 흑토끼를 자신의 양쪽 무릎에 하나씩 올렸다.
그리고
쏙.
쏙.
쏙.
자신의 입에는 군고구마 말랭이를, 테오와 흑토끼의 입에는 츄르와 당근을 넣어줬다.
촵촵촵.
오도독.오도독.
둘은 잠깐 더 서로를 노려보다 점점 먹는 데 집중하며 싸움은 시시하게 끝났다. 그렇게 테오와 흑토끼는 서로의 영역을 인정했다.
간단하게 아침을 먹은 세준은 바로 아침 농사를 시작했다. 설레는 마음 때문에 일을 서둘렀다. 이유는 바로 자신의 손에 들린 케인즈의 수련용 단검 때문. 빨리 사용해 보고 싶었다.
세준은 먼저 토끼들이 먹은 당근 윗둥 4개를 심기 위해 밭으로 갔다.
푹.푹.
역시 네임드 단검은 땅도 잘 파졌다. 몬스터를 베는 수억짜리 네임드 무기가 세준의 손에서 농기구로 전락했다.
슥슥.
세준이 단검으로 만든 구멍에 당근 윗동 하나를 심었다.
[당근 뿌리의 윗동을 심었습니다.]
[씨뿌리기 Lv. 3의 효과로 당근이 뿌리를 내릴 확률이 증가합니다.]
[직업 경험치가 아주 미세하게 상승합니다.]
[씨뿌리기 Lv. 3의 숙련도가 아주 미세하게 상승합니다.]
[숙련도 상승 Lv. 1의 효과로 씨뿌리기 Lv. 3의 숙련도가 5% 추가 상승합니다.]
"어?! 이것도 숙련도 상승이 되는 거였어?"
전투에만 적용되는 줄 알았던 세준이 케인즈의 수련용 단검의 옵션을 다시 읽어봤다.
[숙련도 상승 Lv. 1]
이 단검을 사용한 모든 스킬의 숙련도가 5% 빠르게 상승한다.
"단검을 사용한 모든 스킬?"
역시 B급 네임드 아이템은 뭔가 달랐다.
"흐흐흐. 숙련도 열심히 올려야지."
세준의 의욕이 불타올랐다. 세준은 금세 나머지 당근 윗동 3개를 다 심은 후 방울토마토밭으로 갔다.
세준이 방울토마토가 여러 개 달려 있는 줄기를 단검으로 잘랐다.
서걱.
질긴 방울토마토 줄기가 너무도 쉽게 잘렸다. 요즘 수확해야 할 방울토마토가 많아져 이렇게 줄기째 수확하고 있었다.
[잘 익은 마력의 방울토마토 7개를 동시에 수확했습니다.]
[직업 경험치가 조금 상승합니다.]
[수확하기 Lv. 3의 숙련도가 조금 상승합니다.]
[숙련도 상승 Lv. 1의 효과로 수확하기 Lv. 3의 숙련도가 5% 추가 상승합니다.]
[경험치 70을 획득했습니다.]
"와."
진짜 일 할 맛 난다.
서걱.서걱.
세준이 열심히 방울토마토 줄기를 잘라 방울토마토 여러 개를 한 번에 수확했다.
그리고 그렇게 수확한 방울토마토 줄기에서 방울토마토를 떼어내는 일은 테오의 몫이었다. 테오가 방울토마토를 떼어내 바로 봇짐에 넣었다.
세준이 자른 방울토마토 줄기를 테오에게 가져가자
"난 대표인데 이걸 왜 하는 것이냥?"
테오가 투덜거리며 물었다.
"그럼 나는? 난 회장인데 일하고 있잖아."
"뭐냥? 세준 님은 회장님이었냥?"
"그래. 그러니까 빨리 해라. 테 대표."
"알았다냥. 근데 회장이 대표보다 높은 것이냥?"
더 높이 올라갈 목표를 발견했다는 듯이 테오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푸후훗. 내가 회장이 되면 박세준의 양손과 양무릎을 내가 독점하겠다냥!'
테오가 세준의 무릎에 누워 세준이 한 손으로는 자신의 배를 쓰다듬어 주며 한 손으로는 츄르를 먹여주는 상상을 했다.
"그렇지."
"오! 좋은 걸 알았다냥! 더 열심히 일해야겠다냥!"
"먹으면서 해."
"이거 맛 없다냥."
테오는 방울토마토를 싫어했다. 세준은 그렇게 테오의 의욕을 고취시키고 다시 방울토마토를 수확했다.
그때
뺙!
점심시간이 가까워졌는지 흑토끼가 잡아 놓은 피라니아를 옮기기 위해 세준을 불렀다. 오늘은 테오에게 주급도 줘야 하기에 평소보다 더 많은 피라니아를 잡았다.
세준이 파 이파리로 피라니아를 싸기 전 피라니아에 소금과 후추로 간을 했다.
토끼와 테오가 먹을 수 있는지 모르기에 일단 각각 한 마리씩 후추와 소금, 소금, 후추 이렇게 3가지 방법으로 세 마리만 먼저 구웠다.
"남으면 내가 먹으면 되니까."
드디어 간이 된 음식을 먹을 수 있다. 세준이 설레는 마음으로 나머지 피라니아를 파 이파리로 싸 불에 넣었다.
그리고 생선구이가 완성되기를 기다렸다. 오늘은 설레는 일이 많았다.
잠시 후 생선구이 냄새가 동굴에 폴폴 퍼지기 시작하자
"밥 먹자!"
세준이 백토끼들을 불렀다.
삐익!
뺘아!
세준의 말에 백토끼들이 대답하며 나머지 식사 준비를 했다. 아내 토끼는 대파를 굽고, 다른 백토끼들은 저장고에서 고구마와 당근을 가져왔다.
오도독.
토끼들이 당근을 먹으며 다른 음식이 완성되길 기다리는 동안 세준은 아무것도 입에 대지 않았다.
배고플 때 입안의 미각 세포는 예민해진다. 세준은 양념이 된 생선구이에 모든 미각 세포를 집중하기 위해 기다리고 기다렸다.
그리고
"됐다!"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세준이 기다리던 생선구이가 완성됐다. 피라니아를 덮고 있던 파 이파리를 거둬내자 김이 모락모락 나면서 후추 향이 퍼져나왔다.
처음 꺼낸 생선구이는 후추로만 간이 된 피라니아였다.
"후웁."
세준은 냄새를 콧속 깊이 빨아들였다.
"자 먹어볼까. 너희들도 먹을래?"
세준이 후추로 간이 된 생선구이를 조금씩 잘라 토끼들에게 나눠줬다.
하지만
켁켁.
백토끼들은 후추가 매웠는지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뺙!
다행히 흑토끼는 신세계를 만났다는 듯이 환호를 지르며 열심히 먹었다.
그리고
"테 대표, 먹어 볼래?"
"사양하겠다냥. 생선에 장난을 치겠다는 거냥?"
테오는 순수 생선파였다.
다행히 백토끼들은 소금으로 간이 된 생선구이는 맛있게 먹었다.
그렇게 후추는 세준과 흑토끼만의 양념이 됐다.
점심식사가 끝나자
후루룩.
세준은 오랜만에 해가 비추는 자신의 지정석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채종을 위해 꽃을 피우고 있는 당근 빼고는 당근 수확이 끝났다. 오후 농사는 방울토마토 수확 말고는 없기에 여유가 있었다.
"졸리다냥..."
뺙...
세준이 앉자 당연하다는 듯이 세준 양무릎에 테오와 흑토끼가 자리를 잡고 낮잠을 잤다.
고로릉.
뺘로릉.
금세 둘은 잠에 빠져들었다. 덕분에 일어날 수 없게 된 세준은 오랜만에 하늘 멍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때
왱!왱!
벌집에서 새로 태어난 엄지손가락만 한 새끼 독꿀벌 3마리가 세상 나들이를 나왔다. 새로 심은 방울토마토밭에서 꽃이 만발하자 독꿀벌 여왕은 본격적으로 알을 낳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 매일 3~5마리의 새끼 독꿀벌들이 태어나며 어느새 독꿀벌들의 수가 50마리를 넘어갔다. 정확히는 53마리였다.
윙윙.
독꿀벌들이 새로 태어난 새끼 독꿀벌들을 데리고 일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평화로운 광경이었다. 세준은 독꿀벌들이 새끼 독꿀벌들을 가르치는 걸 구경하면서 커피를 다 마셨다.
"이제 일어나."
세준이 테오와 흑토끼를 깨웠다.
"5분만이다냥."
뺘아악...
잠투정을 하는 테오와 흑토끼.
덥석.
세준이 테오와 흑토끼의 말캉거리는 뒷덜미를 잡아 땅바닥에 내려놓고 일어났다.
"이제 일해야지."
세준이 다시 방울토마토밭으로 가서 방울토마토를 수확했다.
서걱.서걱.
"흥흥흥. 잘 썰린다."
쉽게 쉽게 잘리는 줄기 덕에 세준은 절로 흥이 났다.
그렇게 세준이 방울토마토 수확에 열중한지 얼마나 지났을까.
"나는 이만 가겠다냥!"
테오가 봇짐에 방울토마토를 가득 채우자마자 남은 테 대표 시간을 킵하고 탑을 내려갈 준비를 했다.
당근과 고구마는 토끼들과 자신이 먹을 양도 부족하기에 다음 수확 정도는 끝나야 팔 계획이었다.
"벌써? 여기 생선구이 챙기고."
"고맙다냥."
테오가 세준이 주급으로 챙겨주는 생선구이를 자신의 봇짐에 소중하게 넣었다.
"상점 구역 들리면 대장간도 꼭 들려서 뽑기 코너에서 아무거나 하나 뽑아와 봐."
"알겠다냥."
세준은 이번에도 테오에게 상점에서 필요한 것들을 사 오게 했다. 그리고 가는 김에 대장간에서 장비 뽑기도 한 번 하게 했다. 테오의 눈부신 재능을 썩힐 수는 없었다.
"다녀오겠다냥."
테오가 네 번째 거래를 위해 다시 탑을 내려갔다.
그렇게 테오를 보내고 방울토마토를 수확하고 있을 때
[잘 익은 마력의 방울토마토 6개를 동시에 수확했습니다.]
[직업 경험치가 크게 상승합니다.]
[수확하기 Lv. 3의 숙련도가 크게 상승합니다.]
[숙련도 상승 Lv. 1의 효과로 수확하기 Lv. 3의 숙련도가 5% 추가 상승합니다.]
[경험치 90을 획득했습니다.]
"응? 경험치 90?"
방울토마토 6개를 수확하고 얻을 수 있는 경험치가 아니었다.
세준이 수확한 방울토마토를 살펴봤다.
3개는 원래 기존의 방울토마토였지만, 나머지 3개는 달랐다.
[마력의 방울토마토]
탑 안에서 자란 방울토마토로 영양을 충분히 섭취해 맛있습니다.
섭취 시 몸 안에 지방 20g을 분해해 10분간 마력을 0.2 상승시킵니다.
한 시간 안에 최대 10개까지 효과가 중복 적용됩니다.
비각성자가 섭취 시 지방 20g을 분해해 몸에 활력을 줍니다.
이제 막 농사가 손에 익은 탑농부가 재배해 더욱 맛이 좋아졌습니다.
재배자 : 탑농부 박세준
유통기한 : 60일
등급 : D
D급 농작물이었다.
지방 분해량, 마력 상승량, 유통기한이 모두 두 배로 증가했다.
하지만 세준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따로 있었다.
"더 맛이 좋아졌다고?"
세준이 바로 D급 마력의 방울토마토를 입에 넣었다.
뽀드득.
촤악.
방울토마토를 씹자마자 한층 강력해진 새콤달콤함이 입안을 휘몰아쳤다.
"맛있다...헉!"
세준이 서둘러 정신을 차리고 D급 방울토마토를 서둘러 자신의 주머니에 따로 넣었다. 탑의 관리자가 어디에서 호시탐탐 지켜보고 있을지 몰랐다. 그리고 흑토끼도.
하지만 이미 들켰다.
뺙?!
아까부터 세준을 예의 주시하고 있던 흑토끼가 우다다 달려오며 소리쳤다. 혼자 뭐 먹어?!
쉿!
세준이 검지를 입에 대고 흑토끼를 슬며시 동굴 구석으로 데려갔다. D급 방울토마토가 3개뿐이라 다른 백토끼들이 알면 서운해할 수도 있었다.
"조용히 먹어야 해. 알았지? 우린 이제 공범인 거야."
세준이 흑토끼에게 주의를 주며 D급 방울토마토를 줬다.
뺙!
흑토끼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 있게 대답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
세준은 흑토끼를 믿고 다시 돌아와 방울토마토를 수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쭙!쭙!쭙!
흑토끼가 방울토마토즙을 빨아 먹는 소리가 동굴에 울려 퍼졌다. 야! 걱정 말라며!
다행히 그전에 D급 방울토마토 10개를 추가로 수확해서 백토끼들이 서운할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탑의 관리자가 자신은 안 준다며 서운해합니다.]
"줄라고 했어."
조난 162일 차. 진짜 아무도 서운해하는 이 없이 모두 D급 마력의 방울토마토의 맛을 봤다.
"응?! 뭔가 서운하다냥."
테오가 이상하게 서운한 기분을 느끼며 탑을 내려갔다.
25화. 떨어지는 새끼 곰을 받다.
25화. 떨어지는 새끼 곰을 받다.
"대표님, 모든 추출 방법을 사용해 봤지만, 방울토마토에서 새로운 성분을 추출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그래요?"
오독.
제약사 이스테르의 대표인 제나가 직접 지휘하는 연구팀의 보고에 제나는 자신의 손톱을 물어뜯었다. 골똘히 생각할 때의 버릇이었다.
'역시 아이템에서 추출하는 건 불가능한 건가?'
자신의 남동생 크리스가 아이템에서 뭔가를 추출하는 건 불가능할 거라는 말에 흥분해서 오버를 해버렸다.
"그래도 임상 실험 결과는 아주 좋습니다. 마력의 방울토마토를 섭취 시 지방이 10g 분해되면서 기초 대사량이 5~10% 정도 올라가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중복 효과는요?"
"비각성자의 경우 섭취 시 지방은 10g 줄어들지만, 기초 대사량 증가는 0.1% 정도 추가 상승하는 정도입니다. 추가적인 효과는 미미합니다."
"역시 그렇군요."
직접 마력의 방울토마토를 먹고 체감한 제나가 가장 잘 알았다. 단지 정확한 숫자로 확인해보고 싶었다.
"과다 섭취로 인한 부작용은요?"
"일반적인 방울토마토를 먹었을 때 발생하는 부작용 말고는 없습니다."
"그래요? 지방 과다 분해로 인한 건요?"
"그 부분이 놀랍습니다. 마력의 방울토마토를 과다 복용해도 몸에 지방이 적을 경우 체지방률 7~9% 아래로는 지방을 분해하지 않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대신 몸의 활력을 높이는 효과도 사라집니다."
연구원의 말은 한마디로 마력의 방울토마토를 과용해도 건강에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알겠어요. 일단 남은 건 제 사무실로 가져와 주세요."
며칠 전부터 제나가 마력의 방울토마토를 선물했던 FDA 자문위원회 위원들에게 방울토마토를 더 구할 수 없는지 연락이 오고 있었다.
"네. 그런데 확실히 마력의 방울토마토가 좋긴 좋은 모양입니다. 대표님 턱선이 많이 살아났어요."
"호호호. 고마워요."
연구팀장의 말에 제나는 기분이 좋아졌다. 마력의 방울토마토에서 성분을 추출하는 연구는 실패했지만, 다이어트는 성공했다.
***
조난 165일 차.
"읏차!"
세준이 일어나 벽에 획 하나를 추가해 또 하나의 正을 완성했다.
"네 번째 줄도 벌써 30%나 채워졌네."
시간은 느리게 가는 것 같다고도 어느새 보면 빠르게 흘러갔다.
윙윙.
독꿀벌들이 아침 일찍 일어나 꿀을 빨기 전에 세준에게 다가왔다. 이틀 사이에 독꿀벌들의 수는 7마리가 더 늘어나 독꿀벌의 수는 총 60마리가 됐다.
"다들 잘 잤어?"
부비부비.
독꿀벌들이 자신의 꼬리 부분을 세준의 몸에 비비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때
삐익!
뺘아!
뺙!
토끼들이 일어나 세준에게 아침 인사를 했다.
세준과 토끼들은 간단히 고구마와 당근 그리고 시원한 꿀물을 먹고 아침 농사를 시작했다.
오늘부터 세준의 일에 한 가지가 추가됐다. 아내 토끼가 하던 파 이파리를 자르는 일을 세준이 하기로 했다.
아내 토끼의 배가 점점 불러오면서 아내 토끼에게는 식사 준비나 세준이 수확한 방울토마토 줄기에서 방울토마토를 따는 쉬운 일을 맡겼다.
서걱.서걱.
세준이 엄청난 스피드로 파 이파리를 잘랐다. 케인즈의 수련용 단검이 있는 세준은 이 동굴에서 거의 독보적인 예초기라고 할 수 있었다.
지게를 가진 백토끼 혼자로는 세준의 파 이파리 자르는 속도를 맞출 수 없어, 낫을 가진 백토끼까지 파 이파리를 나르는 일을 도와야 했다.
그렇게 한 시간 만에 파 이파리 자르기를 끝낸 세준은 바로 방울토마토 수확을 시작했다. 요즘 체력이 좋아져 이 정도로는 힘들지도 않았다.
서걱.서걱.
세준은 열심히 단검으로 방울토마토 가지를 자르며 열심히 방울토마토를 수확해 아내 토끼에게 가져다줬다.
어제 D급 마력의 방울토마토를 수확한 이후 수확한 방울토마토 대부분이 D급이었다. 세준이 D급 탑농부가 된 후 맺힌 열매들이 D급으로 자라난 것이었다.
"테오가 하루만 늦게 갔어도 D급 방울토마토를 팔 수 있었는데."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덕분에 D급 마력의 방울토마토를 마음껏 먹을 수 있으니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서걱.
그런 생각을 하며 세준이 방울토마토 가지를 자르고 있을 때
[잘 익은 마력의 방울토마토 7개를 동시에 수확했습니다.]
[직업 경험치가 조금 상승합니다.]
[수확하기 Lv. 3의 숙련도가 조금 상승합니다.]
[숙련도 상승 Lv. 1의 효과로 수확하기 Lv. 3의 숙련도가 5% 추가 상승합니다.]
[경험치 140을 획득했습니다.]
[레벨업 했습니다.]
[보너스 스탯 1을 획득했습니다.]
며칠 전 레벨업을 했는데 D급 방울토마토를 수확하며 경험치가 늘어나 예상보다 일찍 레벨업을 해 14레벨이 됐다. 세준은 보너스 스탯으로 체력을 올렸다.
"좀 쉴까?"
손을 멈춘 김에 세준은 다른 백토끼들의 상황을 보기 위해 주위를 둘러봤다.
아내 토끼가 농사에서 빠졌지만, 세준이 파 이파리를 빠르게 잘라 할 게 없어진 낫토끼와 지게토끼가 다른 토끼들을 도와주면서 오히려 전보다 일의 진척이 더 빨랐다.
"잠깐 휴식!"
테오가 가져온 단검 하나 덕분에 세준과 토끼들의 하루에 여유가 많아졌다.
세준의 외침에 토끼들이 공식 쉼터인 불가로 모여들었다.
"자 하나씩 먹으면서 쉬자."
세준이 방금 수확한 방울토마토 줄기 2개를 가져와 토끼들에게 방울토마토를 떼어내 하나씩 나눠줬다.
푹.
쭙쭙쭙.
토끼들이 방울토마토에 이를 박고 즙을 빨아 먹기 시작했고
촥-!촥-!
세준은 방울토마토즙을 텀블러 안에 짜서 방울토마토 주스를 만들었다.
그때
윙윙.
독꿀벌들이 다가왔다. 이렇게 먹고 있으면 독꿀벌들이 토끼들의 방울토마토 위에 꿀을 뿌려주고는 했다.
윙윙.
세준에게도 독꿀벌들이 다가왔다.
"난 괜찮아."
오늘은 방울토마토의 온전한 맛을 먹고 싶었기에 세준은 꿀을 거절했다.
그렇게 세준과 토끼들은 휴식을 취하고 다시 각자의 일을 하다 점심을 먹었다.
후루룩.
"아 좋다."
점심으로 소금간을 한 생선구이를 먹고 입에 남은 짠맛과 비린내를 세준이 커피로 깨끗이 씻어냈다. 오늘은 냄비로 물을 끓여 뜨거운 물로 커피를 탔다.
뺙...
흑토끼가 낮잠을 자기 위해 세준의 무릎 위로 올라와 누웠다.
1초 후.
뺘로롱.
"어떻게 눕자마자 잠들지?"
세준이 흑토끼를 신기하게 바라보다 하늘을 바라봤다.
그렇게 10분 정도가 흘렀을 때
꾸엥.꾸에엥.
동굴 위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어?!"
세준이 서둘러 자리에 일어났고
뺙?!뺙?
그 덕에 내팽개쳐진 흑토끼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어리둥절해했다.
하지만 세준은 그걸 신경 써줄 수 없었다. 위에서 들려온 소리는 우렁차지 않았지만, 분명 몬스터가 분명했다.
폴짝!
세준이 계속 위를 보고 있자 이상함을 느낀 흑토끼가 서둘러 점프로 세준의 어깨로 올라갔다.
그때 세준과 흑토끼는 천장의 구멍을 향해 고개를 내미는 붉은 털을 가진 존재와 눈이 마주쳤다.
꾸엥?!
미끌.
꾸에에엥!!!
세준과 흑토끼보다 더 당황한 상대가 미끄러지면서 동굴 안으로 떨어졌다. 이상한 비명을 지르면서.
***
저기로는 가면 안 돼.
엄마가 항상 가면 안 된다고 말한 장소. 그곳은 독꿀벌들의 영역으로 위험하다고 했다.
하지만 엄마가 잠깐 잠에 빠진 사이 잠에서 깬 새끼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는 혼자 밖으로 나가서 놀다가 길을 잃어버렸다.
엄마!
엄마!
새끼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가 엄마를 목놓아 부르며 집에 돌아갈 길을 찾았다.
하지만 새끼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는 잘못된 방향으로 향했고 점점 엄마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와 멀어지며 가지 말라고 한 독꿀벌들의 영역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엄마!
엄마!
독꿀벌들의 영역에서 엄마를 찾던 새끼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
그때
킁킁.
어디선가 달콤한 냄새가 났다.
맛있는 냄새 난다!
새끼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는 자신이 엄마를 찾고 있었다는 것도 잊고 냄새가 나는 곳으로 향했다.
킁킁.
냄새를 따라간 새끼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는 땅 밑에서 난 구멍에서 냄새가 올라온다는 것을 깨닫고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밀어 밑을 바라봤다.
어?!
근데 밑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있었다.
미끌.
새끼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다리에 힘이 풀리며 구멍 속으로 떨어졌다.
엄마 살려줘!!!
***
"어?!"
세준은 자신도 모르게 떨어지는 존재를 손으로 받았다. 그렇게 붉은 털을 가진 소형견 크기 몬스터가 세준의 품에 안겼다.
퍽!
세준이 몬스터를 받고 처음 든 생각은 푹신하다였다.
꾸엥?
몬스터가 자신을 받아준 세준을 바라봤다.
"개?"
아무리 봐도 개였다. 근데 이름을 보니 아니었다.
[새끼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
세준이 새끼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를 땅에 내려놨다.
꾸엥.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는 아직 무서운지 두 발로 서서 앞발로 세준의 다리를 잡고 뒤에 숨어 주변을 둘러봤다.
"얘 어떡하지?"
세준은 갑자기 나타난 이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새끼가 있다는 건 어미가 있다는 말이고 어디선가 새끼를 찾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렇게 세준이 고민하는 동안
아장아장.
새끼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는 자신을 공격할 존재가 없다고 생각하고 동굴을 탐험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향한 곳은 달콤한 냄새가 나는 꿀이 모인 생수통.
하지만
윙윙.
파칭!
동굴에 침입했을 뿐만 아니라 꿀까지 노리는 적을 향해 독꿀벌들이 독침을 꺼내자
꾸에엥!꾸에엥!
새끼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가 비명을 지르며 서둘러 다시 세준의 다리 뒤로 숨었다.
윙윙.
독꿀벌들이 새끼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 주변을 맴돌며 공격할 준비를 했다.
달달달.
쉬익.
겁을 먹은 새끼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는 몸을 떨며 오줌까지 지렸다. 이러면 너무 안쓰럽잖아.
"괜찮아."
세준이 독꿀벌들을 진정시키고 돌려보냈다.
꾸에엥.
독꿀벌들이 사라지자 자신을 지켜준 세준에게 안아달라고 매달리는 새끼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
"얘 뭐지?"
세준은 일단 새끼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를 안았다.
꾸로롱.
"뭐야?"
안자마자 새끼 곰은 순식간에 잠들어 버렸다. 왜지? 흑토끼도 그러고 왜 내 품 안에서 이렇게 잘 자는 건데?
세준은 의문을 가지며 새끼 곰을 자신의 지정석에 살포시 내려놨다.
그리고 흑토끼에게 새끼 곰을 지키게 하고 오후 농사를 시작했다.
세준은 새끼 곰이 신경 쓰여 중간중간 새끼 곰을 확인했다.
그렇게 수시로 새끼 곰을 확인하고 있을 때
어?!
자신의 지정석에 있어야 할 흑토끼와 새끼 곰이 보이지 않았다.
설마?!
새끼 곰이 흑토끼를 잡아 먹은 건 아닌지 걱정이 됐다.
세준이 서둘러 주변을 둘러보는데 연못에서 흑토끼와 새끼 곰의 소리가 들려왔다.
뺙!
뾱!
꾸엥!
흑토끼가 피라니아를 사냥하는 것을 보여주자 새끼 곰이 존경의 눈빛으로 흑토끼를 바라봤다.
뺙?!뺙!
흑토끼가 잔뜩 우쭐한 모습으로 새끼 곰을 바라봤다. 형아가 하는 거 봤냐?!
꾸엥!꾸엥?
새끼 곰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형아, 대단해! 나 이거 먹어도 됨?
뺙!
흑토끼가 호탕하게 대답했다. 그럼!
꾸엥!
흑토끼의 허락을 받은 새끼 곰이 피라니아를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세준은 그런 둘을 보며 일단 흑토끼에게 새끼 곰의 관리를 맡기기로 했다.
조난 165일 차, 길 잃은 새끼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가 숙식을 하기 시작했다.
26화. 멀티를 하다.
26화. 멀티를 하다.
오도독.
쩝쩝.
아그작.
쩝쩝.
"으음?"
뭔가를 먹는 소리에 잠에서 깬 세준이 서둘러 자신의 옆을 확인했다.
"없네..."
자신의 옆에서 자고 있어야 할 새끼 곰이 보이지 않았다. 세준은 먹는 소리가 누구의 것인지 알 것 같았다. 새끼 곰이 자다가 배고파서 뭘 먹는 모양이었다.
세준이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가 나는 곳으로 가는 사이
뺙!
우다다다.
뾱!뾱!뾱!
흑토끼가 굴에서 달려 나와 농작물 도둑을 향해 해머를 휘둘러 응징했다.
꾸에엥?
어제까지 잘 대해주던 흑토끼가 자신을 때리자 새끼 곰은 당황하며 울었다. 형아 왜그래?
하지만
뺙!
흑토끼는 봐주지 않았다. 누가 저장고에 손대래!
팡!팡!
팡!팡!
백토끼들도 나와 새끼 곰을 둘러싸고 발로 땅을 두드리면서 자신들의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자신들이 열심히 키운 농작물을 세준의 허락도 없이 훔쳐먹고 있으니 화가 난 모양이다.
"너무 화내지마. 애가 먹어야 얼마나 먹는다고...어?!"
세준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어느새 중형견 크기로 성장한 새끼 곰이었다. 어제까지 소형견 크기였던걸 생각하면 엄청난 성장 속도였다.
그리고 이어서 드는 생각.
저렇게 빠르게 성장하려면 얼마나 먹어야 할까?
세준이 서둘러 저장고를 확인했다.
"...!"
저장고가 많이 비어있었다. 저장된 고구마와 당근의 3분의 1 정도가 사라졌다. 방울토마토는 하나도 건드리지 않은 게 왠지 더 괘씸했다.
꾸에엥!
새끼 곰은 세준을 보자마자 자신을 보호해 줄거라 생각하는지 세준에게 안아달라며 달려들었다.
퍽.
어제와 다른 묵직한 느낌. 힘도 어제와는 완전히 달라졌다.
"곰이 원래 이렇게 빨리 자라는 거였어?"
얘 데리고 있다가는 우리 동굴 거덜 나게 생겼다. 아니 나중에는 배고프다고 자신들을 잡아먹을지도 몰랐다. 갑자기 위기감이 들었다.
그리고 세준처럼 위기감을 느끼는 존재가 하나 더 있었다.
[탑의 관리자가 왜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의 새끼가 여기 있냐며 놀랍니다.]
[탑의 관리자가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의 새끼는 먹이만 있으면 하루에 100kg도 거뜬히 먹는 돼지 녀석들이라고 말합니다.]
탑의 관리자는 짜증이 났다. 인간의 식량 창고가 털리고 있었다.
까다로운 인간 때문에 자신은 친분을 만들며 간신히 하나씩 받아 가고 있는데...
물론 인간과 친분을 만드는 것은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새끼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 따위가 우리 인간의 농작물을 당당하게 훔쳐먹다니. 감히! 감히! 용서할 수 없었다.
[탑의 관리자가 새끼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에게 분노합니다.]
[퀘스트가 발생합니다.]
[퀘스트 : 새끼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를 동굴에서 내보내라!]
보상 : 직업 스킬 1개
거절 시 : 굶어 죽음!!!
탑의 관리자는 너무 흥분해 보상까지 내걸었다.
[탑의 관리자가 서두르라고 재촉합니다.]
[탑의 관리자가 며칠만 지나도 새끼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가 자라나 동굴을 빠져나갈 수 없게 된다고 말합니다.]
탑의 관리자의 말에서 세준은 심각함을 느꼈다. 생존본능이 경종을 울렸다. 대책이 필요해!
하지만
"으음..."
막상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없었다.
"일단 꿀물 한 잔 마시고 생각하자."
뇌에 에너지를 공급하면 좋은 생각이 날 것 같았다.
세준이 텀블러를 들고 꿀을 담은 생수통으로 걸어가자
아장아장.
새끼 곰도 세준의 뒤를 열심히 따라갔다. 지금 토끼들에게 미움받고 있으니 자신을 보호해줄 존재는 앞의 인간뿐이었다.
꿀렁.꿀렁.
세준이 텀블러에 꿀을 넣는 동안
툭.툭.
바닥에 침을 줄줄 흘리며 꿀을 바라보는 새끼 곰. 너무 짠한 모습에 세준의 마음이 약해졌다.
"자."
세준이 새끼 곰의 발바닥에 꿀을 조금 부어줬다.
꾸엥!
새끼 곰이 드디어 달콤한 냄새를 쫓아 이곳까지 온 목적을 이뤘다.
핥짝.
혀를 통해 느껴지는 극강의 단맛. 새끼 곰이 태어나서 처음 맛보는 달콤함이었다. 맛있다!
핥핥.
새끼 곰이 허겁지겁 자신의 발바닥을 핥아댔다.
그사이 꿀물을 만든 세준은 토끼들과 꿀물을 나눠마시며 새끼 곰을 내보낼 대책을 생각했다.
그때
"아! 그러면 되겠구나."
갑자기 세준의 머릿속에 새끼 곰을 내보낼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역시 뇌에 에너지가 들어가니 머리가 돌아가는군."
톡.톡.
세준이 새끼 곰을 내보내기 위해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독꿀벌들의 벌집을 노크했다. 이번 일을 위해서는 독꿀벌들이 꼭 필요했다.
윙윙.
벌집에 충격이 가해지자 독꿀벌들이 서둘러 나왔다.
"얘들아, 자는데 미안. 나 좀 도와줘."
윙윙.
세준의 말에 독꿀벌들이 원을 그렸다.
"고마워. 이걸 밖으로 옮겨줘."
세준이 가리킨 곳에는 그동안 탈출을 위해 파 이파리를 엮어 만든 밧줄이 있었다. 이걸로 새끼 곰을 들어 올릴 생각이었다.
"토끼 너희들은 올라가서 밧줄을 받아줘."
삐익!
뺘아!
뺙!
토끼들이 대답하고는 동굴 천장의 구멍으로 올라갔다. 밧줄을 가지고 올라가 주면 좋겠지만, 밧줄의 무게가 상당해 밧줄을 들고 뛰면 동굴 밖으로 나갈 수가 없다.
윙윙.
윙윙.
그사이 독꿀벌들이 밧줄 끝에 달라붙어 밧줄을 들고 천장의 구멍을 향해 날아올랐다.
그리고
꽈악.
반대쪽 밧줄의 끝으로 새끼 곰의 몸을 묶었다.
꾸엥?
왜 자신을 묶냐고 쳐다보는 새끼 곰.
"이제 엄마한테 가야지."
꾸엥!꾸엥!
엄마라는 말에 울기 시작하는 새끼 곰. 이제야 엄마 생각이 난 모양이었다.
그렇게 독꿀벌들이 밧줄을 가지고 올라가자 토끼들이 밧줄을 받았다.
"당겨!"
세준이 새끼 곰의 몸을 들고 만세 자세를 하며 소리쳤다.
삐익!
뺘아!
뺙!
윙!윙!
토끼들과 독꿀벌들이 힘을 합쳐 밧줄을 잡아당겼다.
하지만
...
핥짝.핥짝.
새끼 곰은 미동 없이 자신의 발바닥을 핥고 있었다.
"자 다시 한번 해보자. 이번에는 하나! 둘! 호령을 붙이면 둘에 동시에 당기는 거야. 하나! 둘!"
삐익!
뺘아!
뺙!
윙!윙!
세준의 둘!의 호령에 토끼들과 독꿀벌들이 있는 힘을 다해 잡아당겼다.
새끼 곰의 몸이 5cm 움직였다.
"된다!"
"하나! 둘! 하나! 둘!"
세준의 구령에 맞춰 토끼들과 독꿀벌들이 새끼 곰을 들어 올렸고 한 시간 만에 간신히 새끼 곰을 동굴 밖으로 내보냈다.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퀘스트 완료 보상으로 직업 스킬 - 채종하기 Lv. 1을 획득했습니다.]
"채종하기?"
세준이 스킬을 확인했다.
[직업 스킬 - 채종하기 Lv. 1]
-농작물에서 채종할 때 더 좋은 씨앗을 얻을 확률이 미세하게 증가합니다.
세준이 스킬을 확인하는 동안
삐익.
빠아.
토끼들이 새끼 곰의 몸에 감긴 밧줄을 풀어줬다.
그렇게 토끼들이 밧줄을 다 풀었을 때
쿠어어어엉!
때마침 멀리서 새끼를 찾는 엄마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의 포효가 들려왔다.
꾸엥!꾸엥!
새끼 곰이 엄마를 부르며 달려갔다.
"휴우. 얘들아, 수고했어."
구멍 안으로 점프하는 토끼들을 향해 세준이 손을 뻗으며 말했다.
하지만
휙.
토끼들은 긴 귀로 방향을 전환하며 세준의 손을 피해 세준의 어깨나 머리를 밟고 땅에 착지했다.
그리고
윙윙.
독꿀벌들은 기력을 보충하기 위해 방울토마토밭으로 향했다.
조난 166일 차. 세준과 토끼 그리고 독꿀벌들은 장차 무서운 포식자로 자라날 새끼 곰에게서 동굴의 식량과 평화를 지켜냈다.
***
탑 75층, 유랑 상인 협회 비밀감찰국 국장실.
"제라스 요원, 새로운 임무를 주겠다."
"네!"
스카람 체포 작전을 실패한 이후 새로운 임무를 기다리고 있던 제라스가 힘차게 대답했다.
"이번 임무는 한 유랑 상인의 조사다."
"조사요?"
"그래. 신입 유랑 상인으로 요즘 갑자기 매출이 급상승한 게 수상하니 무엇 때문에 매출이 상승한 건지 알아보게."
"네! 맡겨주십시오!"
"여기 조사할 유랑 상인의 정보네. 숙지하고 파기하게."
"네!"
제라스가 국장실을 나와 자신이 조사할 대상의 정보가 적힌 문서의 첫 장을 넘겼다.
"...!"
초상화에는 어리벙벙한 표정의 고양이가 있었다. 근데 얼굴이 상당히 낯이 익었다.
'설마?!'
제라스가 서둘러 이름을 확인했다.
이름 : 테오
그놈이었다. 자신의 스카람 체포 작전을 방해했던 고양이 유랑 상인.
'테오! 이놈 잘 걸렸다! 네 놈의 비리를 탈탈 털어주마!'
제라스가 이를 갈며 테오의 비리를 캐내기 위해 움직였다.
***
"읏차!"
세준이 눈을 뜨자마자 동굴 벽으로 가 획 하나를 추가했다.
조난 170일 차 아침이 밝았다.
삐익!
빠아!
뺙!
토끼들이 아침 인사를 하며 굴에서 나왔다.
"그래. 좋은 아침."
윙윙.
독꿀벌들도 와서 꼬리를 비비며 아침 인사를 했다.
그렇게 세준이 동굴 식구들과 아침 인사를 나누고 있을 때
꾸엥!
새끼 곰이 천장 구멍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4일 만에 나타난 새끼 곰은 대형견보다 더 크게 자라 있었다.
그때 새끼 곰을 내보내지 않았으면...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그런데
쿠엉.
이번에는 엄마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도 함께였다. 엄마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는 너무 커서 몸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
...!
당황한 세준과 토끼들. 아무리 흑토끼가 야무지게 때렸어도 이렇게 엄마 불러오기 있긔?
쿠어엉.
[탑의 관리자가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가 새끼에게 꿀을 먹이고 싶다고 전합니다.]
다행히 탑의 관리자가 어미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의 말을 해석해줬다.
"어?! 꿀을?"
다행히 새끼 곰이 이르지는 않은 모양이다.
쿠어어엉.
[탑의 관리자가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가 꿀을 주는 대가로 이 주변을 지켜주겠다고 전합니다.]
"좋아."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가 주변을 지켜준다면 동굴 밖으로 나갔을 때 충분히 안전을 확보할 수 있다.
세준이 승낙하자
쿠어어어어엉.
낮게 으르렁거리며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가 새끼 곰을 두고는 자리를 떠났다. 주변에 이곳이 자신의 영역임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꾸엥.꾸엥.
엄마가 가자 꿀을 달라고 보채는 새끼 곰.
"기다려."
세준이 꿀을 어떻게 건네줄지 고민하고 있을 때
"잠깐?!"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저 정도 덩치면 충분히 자신도 끌어올릴 수 있지 않나?
세준이 독꿀벌들을 시켜 새끼 곰에게 밧줄을 전해줬다.
그리고
"당겨!"
꾸에엥!
새끼 곰이 가볍게 세준을 끌어올렸다. 새끼 곰 승강기였다.
주르륵.
밧줄을 따라 올라가며 세준이 밑을 바라봤다. 자신이 기른 농작물들이 보였다.
"드디어 이곳을 나간다."
주르륵.
줄이 올라갈수록 세준은 탑 99층에 대한 긴장과 기대감으로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척.
드디어 세준이 99층 지상의 땅을 밟았다.
하지만
"이게 뭐야?"
동굴을 나오자마자 세준이 본 것은 끝이 보이지 않는 황무지였다. 주변을 둘러봤지만, 풀 한 포기 없었다.
그리고 저 멀리 하늘로 솟은 붉은 빛줄기가 보였다.
"저기가 웨이포인트구나."
저기로 가야지 이 탑을 나갈 방법이 생긴다.
하지만 세준에게는 저기까지 몬스터를 뚫고 나갈 무력이 없었다.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와의 거래도 이곳을 지켜준다는 거지 저기까지 데려다준다는 것은 아니었다.
물론 탑의 관리자를 통해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에게 데려다 달라고 말은 해봤지만
[탑의 관리자가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가 거부했다고 전합니다.]
[탑의 관리자가 웨이포인트로 가기 위해서는 대략 3000마리 정도의 몬스터를 처치해야 갈 수 있다고 합니다.]
"휴우."
세준이 아쉬운 마음으로 웨이포인트를 바라봤다.
"그래도 저게 보이는 게 어디냐."
세준이 에전보다 나아진 상황에 집중하며 새끼 곰의 발바닥에 꿀 2꿀렁을 주었다.
그리고
"밭 갈자."
삽토끼 두 마리와 함께 99층 지상에 새로운 밭을 만들기 시작했다.
조난 170일 차. 세준이 첫 멀티를 했다.
27화. 도움 요청을 무시하다.
27화. 도움 요청을 무시하다.
엄마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가 자신의 새끼를 다시 찾았을 때
'얘가 어디서 뭘 먹은 거야?'
새끼는 얼마나 잘 먹었는지 그새 엄청나게 성장해 있었다.
킁킁.
엄마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는 새끼에게서 나는 달콤한 냄새가 본능적으로 새끼에게 도움이 될 거란 것을 알았다.
이 달콤한 냄새는 뭐야?
엄마, 달콤한 냄새가 나는 꿀이라는 건데 인간의 집에 이만큼 있어요.
새끼 곰이 자신의 팔로 생수통의 크기를 표현했다.
자신도 꿀이라는 걸 먹어보고 싶었지만, 새끼를 위해 참았다. 새끼가 자신에게 설명하는 걸 봤을 때 자신은 먹어봐야 정말 간에 기별도 가지 않을 양이었기 때문이다.
엄마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는 새끼에게 꿀을 먹이기 위해 새끼를 찾은 곳에서부터 인간의 집을 찾기 시작했다.
거기다 인간이 새끼에게 먹을거리를 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자신과 있을 때보다 더 자라난 새끼를 보니 인간은 식량이 많은 것 같았다.
그리고 며칠간 주변을 수색한 끝에 인간의 집을 찾았다. 엄마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는 인간에게 이곳을 지켜주는 대가로 거래를 제안했다. 꿀을 지속적으로 얻기 위해서는 그것이 더 좋을 것 같았다.
엄마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가 혼자 힘으로 인간의 집 주변을 지켜준다고 자신 있게 말한 이유는 이 황폐한 땅을 원하는 몬스터가 없기 때문이다.
간혹 황무지를 가로질러 가려는 몬스터가 가끔 오는데 그 정도는 자신이 영역을 순찰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쫓아내 줄 수 있다.
하지만 어떻게 말을 전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탑의 관리자가 자신이 인간에게 말을 전해주겠다고 합니다.]
...!
그동안 거의 활동이 없던 탑의 관리자가 나서 인간과의 거래를 중계해줬다.
탑의 관리자까지 나서는 것을 보고 엄마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는 인간에게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이루어진 거래.
보금자리에서 인간 집까지의 거리가 꽤 멀기에 매일 그 먼 거리를 왕복하는 건 키가 아파트 10층 높이 정도나 되는 엄마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에게도 굉장히 수고스럽다.
하지만 새끼에게 꿀을 먹이기 위해서 먼 길을 이동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쿠어어어엉!
엄마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는 오늘도 자신의 새끼를 데리고 꿀을 주는 인간의 집으로 가며 순찰할 때 어디서 낮잠을 잘까 생각했다.
고맙게도 인간은 새끼도 봐주고 점심까지 해결해줬다.
인간의 집으로 가는 엄마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의 발걸음이 점점 가벼워졌다. 밥하기 귀찮은 건 지구의 엄마나 탑의 몬스터 엄마나 똑같았다.
***
"읏차!"
눈을 뜬 세준이 일어나 벽에 획 하나를 추가하며 조난 173일 차 아침을 시작했다. 엄마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와 거래를 한 지 3일째였다.
윙윙.
삐익!
뺘아!
뺙!
독꿀벌들과 토끼들과 아침 인사를 하는 동안
꾸엥!
새끼 곰도 동굴의 천장 구멍에서 아침 인사를 하며 자신이 왔음을 알렸다. 엄마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는 새끼를 두자마자 서둘러 순찰을 나갔다.
"그래. 잘 잤어?"
꾸엥!
새끼 곰이 대답하며 흑토끼에게 손을 흔들었다. 형아, 나왔어!
뺙!
흑토끼도 쿨하게 손을 흔들어줬다. 기다려 형이 점심에 물고기 잡아서 올라간다!
세준은 세수를 하고
오물오물
오도독.
토끼들과 군고구마 말랭이와 당근으로 아침을 해결했다.
그리고 서둘러 아침 농사를 시작했다. 이제 지상의 밭까지 있기에 할 일이 정말 많았다.
세준이 빠르게 파 이파리를 자르고 방울토마토 수확을 시작했고 아내 토끼는 세준이 수확한 방울토마토 가지에서 방울토마토들을 땄다.
그동안 낫 토끼와 지게 토끼는 세준이 자른 파 이파리를 날랐고 물조리개 토끼들은 빠르게 농작물에 물을 줬다.
그리고
뺙!
뾱!
흑토끼는 피라니아를 잡았다. 요즘 새끼 곰 때문에 잡는 양이 크게 늘어났다.
너무 많이 잡아 피라니 개체수가 줄어들지는 않을까 걱정이 됐지만, 피로 유인하고 몰려드는 피라니아의 숫자를 봤을 때 아직은 충분해 보였다.
마지막으로 삽 토끼 둘은 미리 올라가 밭을 만들었다.
하지만 지하의 비옥한 땅과는 상황이 많이 달랐다.
푹.푹.
삽 토끼들이 땅을 파서 작은 돌들을 걸러내며 밭을 만들었다.
꾸엥!
그나마 새끼 곰이 노는 건 줄 알고 앞발로 포크레인처럼 땅을 뒤집어주고 바위도 치워줬기에 작업에 속도가 붙었다.
그렇게 오전이 지나 점심시간이 가까이 오자
뺙!
흑토끼가 피라니아를 옮기자고 세준을 불렀다. 그리고 세준과 흑토끼 엄마 토끼가 함께 점심 준비를 했다. 불은 지상이 안전하다는 확신이 들기 전까지는 동굴에서만 피울 생각이었다.
생선 냄새가 동굴 구멍을 통해 지상으로 올라오자
킁킁.
꾸엥.꾸엥.
새끼 곰이 배고프다고 보채기 시작했다. 냄새가 식욕을 자극한 모양이었다.
"조금만 기다려."
세준이 달랬지만
꾸엥!꾸엥!
배고프다고 계속 울어대는 새끼 곰.
"자 이거 먹으면서 기다려."
세준이 새끼 곰에게 고구마 하나를 던져주고 조용히 시켰다. 그리고 배니싱 때 가지고 왔던 가방에 고구마와 당근을 담았다.
나머지 토끼들은 굽지 않은 피라니아 40마리를 줄로 꿰서 연결했다.
그리고
"당겨!"
준비가 끝난 세준이 가방을 메고 한 손에는 생피라니아 두 두름과 구운 생선구이 5마리를 들고 밧줄을 잡고 외쳤다. 점심은 새끼 곰과 함께 먹기 위해 이렇게 새끼 곰 승강기를 타고 지상으로 올라갔다.
폴짝!
폴짝!
토끼들이 서둘러 세준의 몸에 올라탔다.
꾸!엥!꾸!엥!
세준이 자신의 식사를 가지고 올라오는 것을 알기에 새끼 곰은 열심히 밧줄을 끌어 올렸다. 자신을 들어 올릴 때 하는 걸 듣고는 밧줄을 당길 때 꼭 저렇게 리듬감을 가지고 당겼다. 2비트 리듬을 타는 곰이랄까?
세준이 지상으로 올라왔다.
동굴 구멍에서 5m 정도 떨어진 거리에는 전에는 없던 세준의 키만 한 거대한 바위가 있었다. 그리고 바위에 밧줄의 끝이 묶여 있었다.
어제 엄마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가 세준의 부탁으로 가지고 온 바위로 덕분에 밧줄을 고정할 수 있게 됐다.
킁킁.
쿠엥!
새끼 곰이 세준의 손에 들린 피라니아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으며 흥분했다.
"어허! 기다려!"
세준이 엄하게 말하자
꾸엥!
새끼 곰이 서둘러 뒤로 물러나 앉았다. 나 기다리고 있어요!
이미 세준의 키만큼 자란 새끼 곰이지만, 그 특유의 귀여움은 아직 남아있었다.
세준과 토끼들이 새끼 곰이 기다리는 동안 서둘러 식사를 준비하고 식사를 시작했다.
"자 이제 먹자."
와구와구.
꾸엥!
새끼 곰이 피라니아를 먹으며 행복한 소리를 냈다. 마시쪄!
이후 새끼 곰은 후식으로 꿀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쉬고 있는 세준에게 다가가 흑토끼와 함께 세준의 무릎을 베고 편안한 낮잠 시간을 가졌다.
***
"뭔가를 뺏긴 기분이 든다냥."
이상한 기분을 느끼며 테오가 탑 38층에 도착했다.
"인간들아 내가 왔다냥!"
"고양이 유랑 상인이 왔다!"
"테오가 왔어!"
테오가 오기를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던 헌터들이 반갑게 맞이했다. 그사이 마력의 방울토마토에 대한 소문이 널리 퍼지면서 40명 정도의 헌터가 테오를 기다리고 있었다.
피닉스 길드의 10개 팀 중에서 4팀이 이곳에서 테오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마력의 방울토마토에 대한 관심이 더욱 뜨거워지고 있었다.
"오늘은 마력의 방울토마토를 300개씩 총 1800개를 경매로 팔겠다냥!"
테오는 세준에게 인센티브를 받을 때마다 자신의 봇짐을 업그레이드하고 있었다. 식사는 주급으로 생선구이를 받아 식비가 들지 않았기에 모든 돈을 봇짐 업그레이드에 투자했다.
덕분에 봇짐의 용량이 커져 처음에는 방울토마토가 1500개밖에 들어가지 않던 봇짐에 이제는 1800개를 넣을 수 있을 정도로 커졌다.
"300개에 25탑코인!"
"300개에 27탑코인!"
경매는 치열했지만, 저번처럼 높은 가격은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테오는 마력의 방울토마토 1800개를 팔아 220탑코인을 벌었다.
"테오, 같이 사진 찍자! 나 츄르랑 커피 둘 다 가져왔어."
"나도! 츄르랑 고춧가루 가져왔어!"
여성 헌터들이 츄르와 세준이 원하는 양념 가루와 커피 믹스를 가지고 테오와 사진을 찍기 위해 다가왔다.
"잘 했다냥. 나도 그루밍하며 몸단장을 하고 왔다냥! 줄을 서라냥!"
테오가 헌터들을 줄 세우고 하나씩 사진을 찍고 발을 만지게 해주며 물건들을 받아 봇짐에 넣었다.
'푸후훗. 이번에도 박세준의 무릎을 하루는 차지할 수 있다냥!'
테오는 포토타임이 끝나자 서둘러 세준의 무릎을 차지하기 위해 탑을 올라갔다.
그리고 40층에서 50층까지 연결된 상인 통로를 이동해 50층에 도착했을 때
"도와주세요!"
근처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가 들렸다.
멈칫.
도움을 요청하는 목소리에 순간 테오의 걸음이 멈췄다.
하지만 불현듯 세준이 한 말이 떠올랐다.
세준은 테오가 돌아다니다 호구가 되지 않도록 여러 가지 주의를 줬는데 그중 가장 강조한 것 중 하나가 길 가다 누군가 도움을 요청하면 그냥 지나가라였다.
매정한 지시였지만, 테오는 물에 빠진 사람 구해주고 감사 인사는커녕 자기 봇짐까지 뺏길 호구였다.
'맞아! 박세준이 그냥 가라고 했다냥!'
테오가 도움을 요청하는 목소리를 무시하며 쌩하고 50층에서 60층까지 연결된 상인 통로로 들어갔다.
"뭐지?"
상점 거리에서 본 테오의 성향을 봤을 때 100% 도와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도움을 요청했는데...
우연한 만남을 만들어 테오와 동행하려던 제라스의 작전이 실패했다.
***
점심을 먹고 휴식까지 취한 세준은 동굴에 한 번 더 내려가 고구마 100개와 당근 윗동을 10개를 가지고 올라왔다.
그리고 삽 토끼들이 만든 50평 정도의 밭에 시험 삼아 고구마와 당근 윗동을 심었다. 땅이 너무 척박해 보였기에 방울토마토는 심지 않았다.
이미 삽 토끼들이 심을 구멍까지 만들어 놨기에 세준은 고구마만 묻고 흙을 덮었다.
[고구마를 심었습니다.]
[씨뿌리기 Lv. 3의 효과로 고구마가 뿌리를 내릴 확률이 증가합니다.]
[직업 경험치가 아주 미세하게 상승합니다.]
[씨뿌리기 Lv. 3의 숙련도가 아주 미세하게 상승합니다.]
[숙련도 상승 Lv. 1의 효과로 씨뿌리기 Lv. 3의 숙련도가 5% 추가 상승합니다.]
...
..
.
그렇게 세준이 열심히 고구마를 심고 있을 때
꾸엥?
새끼 곰이 세준의 행동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먹는 걸 땅에 묻어?
꾸엥!
퍽!퍽!
뭔가를 깨달은 새끼 곰이 땅을 파고 세준이 심은 고구마를 땅에서 꺼내 먹으며 세준을 따라갔다.
아그작.
아그작.
"응?!"
열심히 고구마를 심던 세준은 자신의 뒤를 따라오며 들리는 이상한 소리에 뒤를 바라봤다.
그리고 맛있게 고구마를 먹고 있는 새끼 곰과 눈이 마주쳤다.
꾸엥!
새기 곰이 우쭐해하는 표정으로 세준을 바라봤다. 내가 다 찾았어요!
"아냐! 임마!"
먹이 찾기 놀이인 줄 알고 고구마를 땅에서 찾아 먹고 있는 새끼 곰 때문에 세준의 언성이 올라갔다.
뺙!
동굴에서 피라니아를 잡고 있던 흑토끼가 세준의 목소리를 듣고 지상으로 올라왔다.
꾸엥?
아직 영문을 모르는 새끼 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형아 나 뭐 잘못했어?
뺙!
흑토끼가 새끼 곰에게 뭘 잘못했는지 가르치기 시작했다.
조난 173일 차 새끼 곰이 심는다는 의미에 대해서 알게 됐다.
28화. 민첩을 올리다.
28화. 민첩을 올리다.
꾸엥!
"으음..."
세준이 새끼 곰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깼다.
요즘 엄마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의 출근 시간이 조금씩 빨라지고 있다. 뭔가 새끼를 빨리 여기에 던져두고 싶어 하는 느낌? 그러고 보니 새끼 곰을 데리러 오는 시간도 점점 늦어졌다. 뭐지?
쓱.
세준이 일어나 동굴 벽에 획 하나를 추가했다. 4번째 줄에 완성된 正 5개. 조난 175일 차의 아침이 새끼 곰의 울음소리와 함께 시작됐다.
삐익!
뺘앙!
뺙!
윙윙.
토끼들과 독꿀벌들이 세준에게 아침 인사를 했다.
세준은 세수를 하고 파 이파리 위에 말리고 있는 군고구마 말랭이 쪽으로 걸어갔다.
만들어 두었던 군고구마 말랭이가 다 떨어져 세준은 어제 새롭게 고구마 50개를 굽고 잘라 새로 군고구마 말랭이를 만들었다.
당연히 어제 메뉴는 군고구마였고 토끼들, 탑의 관리자와 함께 아주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하나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고구마는 수확하고 시간이 지나면 더 맛있어 진다는 걸 알았지.
덕분에 더 달달해진 군고구마를 먹느라 모두 얼굴에 검댕이가 묻는 지도 모르고 열심히 먹었다.
덥석.
세준이 자는 동안 잘 말려진 군고구마 말랭이 하나를 집어 입에 넣었다.
우물우물.
"으음..."
햇살을 가득 담아 쫄깃해진 말랭이가 입 안에서 단맛과 함께 따뜻함을 풀어냈다. 수면 후 배고픈 뇌에 에너지가 들어간다고 신호를 보내며 뇌를 깨웠다.
꿀꺽.
"흥흥흥. 잘 말랐다."
세준이 군고구마 말랭이가 잘 완성된 것을 확인하고는 콧노래를 부르며 아침으로 먹을 양을 빼고 가죽 주머니에 담았다.
오도독.오도독.
토끼들이 당근을 먹으며 세준이 군고구마 말랭이를 언제 줄지만 기다리고 있었다.
"자 군고구마 말랭이 먹자."
세준이 토끼들에게 군고구마 말랭이를 3개씩 주었다.
그리고 아내 토끼에게는 두 배인 6개를 주었다. 아내 토끼는 배가 불러오면서 식욕이 너무 좋아졌다.
그렇게 군고구마 말랭이로 아침을 먹고 아침 농사를 시작했다. 세준은 파 이파리를 베고 바로 방울토마토를 수확했다.
"오 이건 왕건이다!"
서걱.
세준이 방울토마토가 주렁주렁 달린 가지를 잘랐다.
[잘 익은 마력의 방울토마토 10개를 동시에 수확했습니다.]
[직업 경험치가 조금 상승합니다.]
[수확하기 Lv. 3의 숙련도가 조금 상승합니다.]
[숙련도 상승 Lv. 1의 효과로 수확하기 Lv. 3의 숙련도가 5% 추가 상승합니다.]
[수확하기 Lv. 3의 숙련도가 채워져 레벨이 상승합니다.]
[수확하기 Lv. 3에 새로운 효과가 추가됩니다.]
[경험치 200을 획득했습니다.]
"오!"
수확하기 스킬에 새로운 효과가 추가됐다는 메시지에 세준이 서둘러 스킬을 확인했다.
[직업스킬 - 수확하기 Lv. 4]
-수확할 때 약간 덜 익거나 더 익은 열매를 최적의 상태로 만듭니다.
-아주 낮은 확률로 수확할 수 있는 농작물보다 한 단계 등급이 높은 농작물을 수확할 수 있습니다.
아주 낮은 확률이라 애매하기는 하지만 한 단계 높은 등급을 수확할 수 있다니...더 맛있어진 방울토마토를 먹는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직업 스킬 4레벨이 되면 스킬 효과가 추가되는 건가?"
세준은 일단 다른 직업 스킬이 4레벨이 되면 확인하기로 하고 다시 방울토마토를 수확해 아내 토끼에게 가져다주었다.
그렇게 방울토마토를 수확하고 있을 때
뺙!
흑토끼가 세준을 불렀다. 점심시간이었다.
"알았어."
세준이 연못으로 가서 흑토끼가 잡은 피라니아를 불가로 옮겨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하고 생선구이를 구웠다. 물론 백토끼들은 후추를 못 먹기에 백토끼들 생선구이는 소금으로만 간을 했다.
생선구이가 완성되어가자
꾸엥!꾸엥!
맛있는 냄새를 맡은 새끼 곰이 배고프다고 울어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제 능숙해진 세준과 토끼들은 당황하지 않고 서둘러 짐들을 챙겼다.
그리고
"당겨!"
꾸!엥!꾸!엥!
세준과 토끼들을 새끼 곰이 끌어 올리기 시작했다.
지상으로 가자 새끼 곰 옆에는 세준의 팔뚝 정도 되는 나뭇가지 10개 정도가 쌓여 있었다.
이건 세준이 새끼 곰에게 부탁한 것으로 자신의 팔뚝을 보여주며 비슷한 굵기의 나뭇가지를 가져다 달라고 했더니 어제부터 몇 개씩 주워 왔다.
사다리와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만들 생각이었는데 농사일 때문에 시간이 나지 않았다.
앞으로 새끼 토끼들이 태어나면 일손이 늘어나겠지만, 앞으로 세준의 계획과 심고 싶은 게 많은 만큼 밭은 더 빨리 늘어날 거다.
농사에는 힘과 체력만 있으면 될 줄 알았는데 스피드도 필요했다. 그래서 앞으로는 민첩 스탯도 올릴 생각이었다.
꾸엥?
새끼 곰이 우쭐한 표정으로 어서 칭찬해달라는 듯이 세준을 바라봤다. 나 잘했죠?
"잘했어."
팡팡.
세준이 이미 자신의 키보다 커진 새끼 곰의 엉덩이를 두드려줬다. 그리고 점심을 먹기 시작했다.
"자 이거 먹어봐."
세준이 새끼 곰에게 군고구마를 건넸다. 어제 새끼 곰은 일찍 집으로 가서 군고구마를 먹지 못했기에 세준이 새끼 곰에게 줄 군고구마 5개를 남겨놨다. 덕분에 새끼 곰 먹을 건 왜 따로 빼놓냐며 탑의 관리자가 삐져버렸다.
냠.
새끼 곰은 군고구마의 껍질을 까지도 않고 한 입에 넣었다.
꾸엥!
새끼 곰은 군고구마를 씹더니 너무 맛있어 몸을 흔들며 맛있음을 표했다. 마시쪄!
냠.
냠.
냠.
새끼 곰은 군고구마를 입에 넣고 넣고 또 넣었다.
그리고
꾸엥...
새끼 곰이 마지막 남은 군고구마를 들고 고민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응?"
뺙?
지금까지 새끼 곰이 음식을 다 먹기 전까지 일어나는 걸 본 적이 없던 세준과 흑토끼가 새끼 곰을 바라봤다.
푹.
새끼 곰은 밭으로 가더니 땅을 파고 자신의 군고구마를 땅에 묻었다. 그리고 흙으로 군고구마를 덮고 땅을 두드렸다.
심기를 배운 새끼 곰이 아무거나 땅에다 심기만 하면 다 자라는 줄 알고 군고구마를 심은 것이다.
"푸훗!"
지켜보던 세준이 새끼 곰의 엉뚱한 행동에 웃음이 터졌다.
흑토끼는 서둘러 새끼 곰에게 달려갔다. 형아의 가르침이 필요할 때였다.
뺙!
흑토끼가 다시 군고구마를 꺼내라고 말하자
꾸엥.
새끼 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형아가 이거 심으면 나중에 많이 먹을 수 있다고 했잖아.
뺙.
흑토끼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대답했다. 불로 요리한 건 안 돼.
꾸엥!
흑토끼의 말에 큰 깨달음을 얻은 새끼 곰이 다시 군고구마를 파내 입에 넣으면서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그렇게 유쾌한 점심시간이 끝나자 세준은 새끼 곰과 흑토끼에게 무릎을 내주고 커피를 마시며 잠깐의 휴식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이제 일어나."
낮잠을 자는 새끼 곰과 흑토끼를 깨우고 다시 동굴로 내려가기 전에 토끼들이 먹고 남긴 당근 윗동을 심기 위해 밭으로 갔다.
그때
"응? 왜 땅에서 비린내가 나는 거지?"
땅에서 생선 비린내가 심하게 올라왔다.
푹.
세준이 이상함을 느끼고 냄새가 나는 곳을 파보자
"헉!"
땅에서 나타난 것에 세준이 당황했다.
방긋.
피라니아 머리가 세준을 반겨줬다.
"이건 왜 세워서 묻은 거야?!"
세준이 짜증을 내며 이걸 여기다 심은 범인을 바라봤다.
꾸에엥!
점심을 먹고 기운이 넘치는 새끼 곰이 포크레인처럼 앞발로 땅을 뒤집고 있었다. 아마 저기다도 피라니아를 심을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새끼 곰에게 보충 수업이 필요해 보였다.
***
탑 75층.
테오가 세준의 무릎에 앉아 츄르를 받아먹을 생각을 하며 부지런히 움직여 상점 구역에 도착했다.
"주전자, 모포, 꿀 담을 유리병 5개, 집게. 주전자..."
테오가 세준이 시킨 걸 잊어먹지 않게 되뇌면서 잡화점으로 들어가 물건들을 사고 가게를 나왔다.
"푸후훗. 오늘도 깎기에 성공했다냥."
테오는 오늘도 3번 깎기로 2.1탑코인을 부른 주인에게서 0.4탑코인을 깎아 1.7탑코인에 물건들을 구매했다.
그리고 마지막 코스인 대장간으로 가는 길.
"테오 님, 안녕하세요."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어? 넌?!"
테오가 상대를 알아봤다.
"스카람에게 사기당할 뻔했던 호구가 아니냥?"
"그...그렇습니다. 저는 제라스라고 합니다."
테오의 말에 제라스가 울컥할 뻔한 걸 간신히 참고 대답했다. 조사로 이미 테오가 스카람에게 사기를 당했단 걸 알았기에 제라스는 더 화가났다. 호구에게 호구 취급을 받다니!
"근데 무슨 일이냥?"
"저번에 보답을 못 해서 식사라도..."
"거절한다냥. 나는 바쁘다냥!"
테오가 제라스를 쌩하고 지나갔다. 빨리 대장간에서 장비 뽑기를 하고 세준에게 가야 했다. 테오의 감이 말하고 있었다.
'뭔가 불안하다냥. 누군가 박세준의 무릎을 노리고 있다냥!'
"테오 님, 그러면 간단히 차라도!"
제라스가 서둘러 테오를 뒤따랐다.
"왜 따라오냥?"
대장간에 도착한 테오가 자신의 뒤를 따라온 제라스에게 물었다.
"아...저도 대장간에 볼일이 있어서..."
테오가 자신의 제안을 받아주지 않자 무작정 따라온 제라스였다.
"알겠다냥."
테오는 제라스를 지나쳐 대장간 주인에게 저번처럼 13탑코인에 장비 뽑기를 하겠다며 돈을 지불하고 뽑기 코너로 갔다.
그리고 뽑기 코너의 장비들을 유심히 살펴보는 테오.
그때
"오 저거다냥!"
테오의 손길을 당기는 물건이 있었다.
테오가 그 물건을 잡으려 할 때
"잠깐만요! 설마 그거 고를 거예요?!"
제라스가 몰래 지켜보다 참지 못하고 나섰다. 저건 해도 해도 너무 했다.
"그렇다냥. 왜 그러냥?"
"왜 그러냐뇨?! 어떻게 대장간에서 저걸 골라요?!"
제라스가 흥분하며 테오가 집으려던 물건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대장간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밀짚모자가 있었다. 제라스가 보기에저건 100% 똥템이었다.
"괜찮다냥. 상관하지 말라냥."
테오가 당당하게 밀짚모자를 골라 대장간을 나왔다.
'박세준이 내가 원하는 거로 뽑아오라고 했다냥.'
세준은 뽑기만큼은 테오에게 전권을 줬다.
"아 이게 아닌데..."
그렇게 대장간을 나가는 테오를 보면서 제라스가 성과 없이 비밀감찰국으로 복귀했다.
"제라스, 그 소식 들었어?"
제라스의 옆자리 동료 요원이 말을 걸어왔다.
"무슨 소식?"
"이번에 55층에서 대지주 그리드의 창고에 도둑이 들었대."
"그래?"
제라스는 속으로 쎔통이라고 생각했다. 대지주 그리드는 소작농들의 등골을 빼먹는 악덕 지주로 유명했다.
"그리고 이거 도난당한 물품 리스트야. 국장님이 살펴보래."
"알았어."
제라스가 리스트를 쓱 훑어보며 몇 장을 넘겼다.
그때
"응?!"
도난 리스트에 눈에 익은 물건이 보였다. 평범한 밀짚모자. 좀 전에 대장간에서 본 밀짚모자와 비슷했다.
하지만
"에이 아니겠지."
잡화점에만 가도 그런 밀짚모자가 수백 개는 있다.
제라스가 도난 리스트를 덮고 다시 자신의 임무인 테오의 뒤를 캐낼 방법을 생각했다.
***
오후에는 새끼 곰에게 심기에 대해서 재교육을 하고 그동안 바빠서 미루고 있던 당근꽃에서 채종을 했다.
저장된 당근의 양이 절반으로 줄어들자 세준을 재촉하는 토끼들 때문이었다.
탈탈탈.
탈탈탈.
세준이 바짝 마른 당근꽃을 털자 당근 씨앗이 우수수 떨어졌다.
[당근꽃에서 당근 씨앗 50개를 얻었습니다.]
[직업 경험치가 조금 상승합니다.]
[채종하기 Lv. 1의 숙련도가 조금 상승합니다.]
[숙련도 상승 Lv. 1의 효과로 수확하기 Lv. 1의 숙련도가 5% 추가 상승합니다.]
[당근꽃에서 당근 씨앗 35개를 얻었습니다.]
...
..
.
그렇게 얻은 당근 씨앗이 대략 2000개. 세준과 토끼들이 채종한 당근 씨앗을 절반은 동굴에 절반은 지상 밭에 심었다.
그리고 지상 밭에 당근 심기가 모두 끝났을 때
[당근밭 250평을 만들었습니다.]
[경험치 500을 획득했습니다.]
[레벨업 했습니다.]
[보너스 스탯 1을 획득했습니다.]
세준은 보너스 스탯으로 작업 속도를 높이기 위해 민첩을 올렸다.
조난 175일 차 세준이 당근 2000개를 심고 민첩을 올렸다.
29화. 다 같이 낮잠을 자다.
29화. 다 같이 낮잠을 자다.
조난 177일 차.
오늘은 흑토끼가 부르기 전에 먼저 연못으로 가서 피라니아를 옮기고 점심 준비를 했다.
민첩을 올리자 일하는 속도가 빨라지며 아침 농사에 조금 여유가 생겼다.
시계가 없어 정확한 측정을 할 수는 없지만, 체감상으로는 분명 빨라졌다.
점심시간까지 약간의 여유가 있었기에 세준이 파꽃에서 채종하여 심은 파밭으로 가서 아직 굵게 자라지 않은 실파 이파리 몇 개를 잘라 왔다.
그리고
송송송.
단검으로 실파를 얇게 잘라 생선구이 위에 가니쉬로 올렸다.
세준과 흑토끼가 점심 준비를 하는 동안 백토끼들도 자신들의 일을 끝내고 식사 준비를 도왔다.
오늘부터 백토끼들은 동굴에서 따로 식사를 했다. 이유는 아내 토끼가 이제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배가 나왔기 때문. 조만간 새끼들이 태어날 것 같았다.
"당겨!"
꾸!엥!꾸!엥!
그렇게 점심을 챙긴 세준과 흑토끼를 새끼 곰이 끌어 올렸고 셋만 지상에서 점심을 먹었다.
세준이 실파를 올리고 소금으로 간을 한 생선구이를 한 입 베어 물고 군고구마 말랭이를 입에 넣어 같이 씹었다. 최대한 밥 먹는 느낌을 내고 싶었다.
오물오물.
아는 맛은 역시 무서웠다. 짭조름한 생선이 입에 들어가자 뇌는 자연스럽게 흰쌀밥을 떠올렸다. 군고구마 말랭이도 탄수화물이라 조금 비슷한 느낌은 났지만, 밥의 식감과 맛을 따라 할 수는 없었다.
"아 밥 먹고 싶다."
세준이 넓은 황무지를 보며 황금벼가 익어가는 상상을 하며 다시 생선구이와 군고구마 말랭이를 함께 먹었지만, 세준의 입에는 부족하기만 했다.
"언젠가 내가 쌀밥 먹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고구마를 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해하던 세준이었지만,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었다.
그렇게 세준이 새로운 농사 목표를 세우고 있을 때
윙윙.
독꿀벌들 10마리가 동굴 구멍에서 올라와 2마리씩 흩어지며 주변 300m 정도를 순찰하기 시작했다.
세준이 지상으로 올라온 날부터 독꿀벌들도 세준이 지상으로 올라올 때 이렇게 따라 올라와 순찰을 했다. 세준을 지켜주는 것이다.
"기특한 녀석들."
세준이 독꿀벌들이 날아다니는 것을 보며 식사를 끝마쳤다.
그리고
뺙...
꾸엥...
당연하다는 듯이 커피를 마시는 세준 쪽으로 낮잠을 자러 다가오는 흑토끼와 새끼곰.
흑토끼야 몸이 작아 상관없었지만, 새끼 곰은 막무가내로 자신의 머리를 들이밀었다.
하지만 며칠 사이에 더 커버린 새끼 곰에게 세준의 무릎은 너무 좁았다.
꾸엥.
예전처럼 자신도 세준의 품에서 자고 싶은데 그게 안 되니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었다. 새끼 곰은 그렇게 몇 번 뒤척이더니 방법을 바꿨다.
새끼 곰이 세준의 등에 자신의 배를 붙이며 옆으로 누워 웅크리고 잠들었다. 세준이 새끼 곰의 품에 들어간 것처럼 됐다.
꾸로롱.
눕자마자 금세 잠든 새끼 곰.
후루룩.
세준이 커피 한 모금을 마시고 새끼 곰의 푹신한 몸에 자신의 몸을 완전히 기댔다.
"푹신하네."
오랜만에 이불을 덮는 듯한 포근한 느낌을 느끼며 세준도 잠에 빠졌다.
그렇게 얼마나 잤을까
찰싹!찰싹!
"으음..."
뭔가가 자신의 허벅지를 때리는 소리에 세준이 잠에서 깼다.
삐익!
남편 토끼가 세준이 내려오지 않자 올라와서 깨워준 것이다. 새끼 곰의 배가 너무 푹신해서 자신도 모르게 깊이 잠든 모양이었다.
"얘들아 일어나자."
뺘악···
꾸엥···
세준이 잠투정하는 흑토끼와 새끼 곰을 깨웠다.
흑토끼는 요즘 오후에는 새끼 곰과 수련을 했다. 아니 정확히 보면 새끼 곰은 놀고 있는데 흑토끼만 필사적으로 싸우고 있었다.
뺙!
뾱!뾱!뾱!
흑토끼가 새끼 곰의 앞발을 피하며 자신의 해머로 열심히 새끼 곰을 때렸지만
꾸엥!
새끼 곰은 신나 하며 흑토끼에게 달려들었다. 형아 재미있어!
술래잡기인 줄 아는 모양이었다.
세준은 둘이 놀이 겸 수련을 하는 동안 가지고 올라온 당근 윗동을 심고 동굴로 내려와 방울토마토 수확을 시작했다.
그리고
서걱.
한참 방울토마토 가지를 자르고 있을 때
윙윙.
독꿀벌 하나가 주먹만 한 크기의 뭔가를 들어 힘겹게 동굴 밖으로 나가는 것이 보였다.
"뭐지?"
세준이 궁금증에 방울토마토 수확을 멈추고 독꿀벌을 따라 밧줄을 타고 지상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그거 뭐야?"
주변을 배회하며 뭔가를 찾는 독꿀벌에게 세준이 묻자
툭.
독꿀벌은 대답 대신 조심스럽게 세준의 손 위에 자신이 들고 있던 것을 내려놓고는 동굴로 돌아갔다. 세준에게 처분을 맡긴 것이다.
"뭐지?"
세준이 아이보리색의 애벌레같이 생긴 것을 손으로 조심스럽게 잡았다.
[독꿀벌 여왕의 고치를 획득했습니다.]
"독꿀벌 여왕의 고치?"
이렇게 메시지가 뜬다는 것은 아이템이라는 의미. 세준이 고치를 자세히 살펴봤다.
[독꿀벌 여왕의 고치]
독꿀벌 애벌레가 우연히 로얄젤리만 섭취해 독꿀벌 여왕으로의 우화를 준비 중입니다.
우화까지 10일 남았습니다.
우화하고 처음 본 대상을 주인으로 여깁니다.
아직 분봉할 시기가 아닌데 새로운 독꿀벌 여왕이 탄생하려 하자 독꿀벌들이 이렇게 버리러 나온 것이다.
하지만 세준에게는 두 번째 벌집을 얻을 기회였다.
세준이 밧줄을 묶어둔 바위 근처 그늘에 땅을 파고 조심스럽게 독꿀벌 여왕 고치를 내려놨다.
그리고 동굴에서 파 이파리를 가지고 올라와 그 위를 덮어줬다.
"이러면 되려나?"
어떻게 하면 독꿀벌 여왕 고치가 안전하게 고치를 벗고 무사히 나올지 몰랐기에 세준은 일단 외부 스트레스를 최대한 줄여줬다.
그리고 다시 방울토마토를 수확하고 다른 백토끼의 일을 도우며 하루가 지나갔다.
***
178일 차 아침.
꾸엥!
새끼 곰이 동굴 구멍으로 자신이 도착했음을 알렸다. 역시나 오늘도 일찍 도착한 새끼 곰.
"그래. 안녕."
세준과 토끼들이 잠에서 깨며 분주히 아침 농사를 준비했다.
오물오물.
오도독.오도독.
세준은 군고구마 말랭이로, 토끼들은 당근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있을 때
"내가 복수를 하겠다냥!"
테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응? 무슨 복수?"
세준이 서둘러 밧줄을 타고 올라갔다.
***
세준의 무릎을 차지하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한 테오.
"냐냐냥. 드디어 박세준의 무릎에 다 와 간다냥!"
테오가 행복감에 노래를 부르며 세준이 있는 동굴로 이동했다.
그때
푹.푹.
세준의 동굴 위에서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 한 마리가 땅을 파고 있었다.
"이것 이었냥..."
뭔가가 세준의 무릎을 노리고 있다는 불길함에 서둘러 왔는데. 세준이 이미 죽어버린 것이다. 왜 항상 불길한 생각은 틀린적이 없는 것이냥.
테오는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가 세준의 뼈를 묻고 있는 거라고 착각했다.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가 정말 세준을 먹었다면 뼈조차 남기지 않았겠지만, 분노한 테오는 지금 사리 분별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박세준을 죽이다니냥!
나의 안락한 무릎을 뺏다니냥!
아직 테 대표 남은 시간도 다 못 썼다냥!
"내가 복수를 하겠다냥!"
챙!
테오가 숨겨둔 발톱을 꺼내며 새끼 곰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때
"테오, 왔어?"
세준이 밧줄로 타고 동굴을 올라와 고개를 내밀었다.
"어?! 그렇다냥! 내가 돌아왔다냥!"
테오가 방향을 빠르게 바꿔 세준의 얼굴을 향해 돌진했다.
퍽!
"떨어져."
세준이 자신의 얼굴에 찰싹 달라붙은 테오에게 말했다.
"푸후훗. 알겠다냥."
테오는 세준이 무사하자 웃으며 세준의 얼굴을 기어올라 지상으로 점프했다.
"근데 이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는 뭐냥?"
"우연히 동굴에 빠졌다가 친해졌어. 지금은 얘네 엄마가 이 주변을 지켜주는 대신 새끼 곰에게 꿀을 주고 있지."
세준이 지상으로 완전히 올라오며 대답했다.
"그런 것이냥?"
"그것보다 간 건 잘 됐어?"
"그렇다냥! 이번에도 모든 임무를 완수하고 완판하고 왔다냥!"
테오가 우렁차게 대답하며 세준의 무릎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이번에는 방울토마토 1800개를 220탑코인에 팔았다냥!"
테오가 봇짐에서 돈을 꺼내 세준에게 건넸다. 저번보다 금액이 줄어들었지만, 상관없었다. 더 높은 등급의 방울토마토들이 출시를 기다리고 있으니까.
"잘했어. 자 인센티브 5%."
세준이 테오에게 11탑코인을 주었다. 테오가 잘해주고 있기에 세준은 테오의 인센티브를 대표급인 5%로 올려줬다.
"이것도 있다냥!"
테오가 봇집에서 세준이 부탁한 물건들과 츄르 그리고 세준이 좋아하는 양념과 커피를 꺼냈다.
"테 대표 몇 시간 가능하냥?"
테오가 기대감 가득한 눈으로 세준의 말을 기다렸다.
"저번 것까지 합치면 38시간?"
"알겠다냥! 이번에는 다 쓰고 갈 거다냥!"
무릎의 소중함을 깨달은 테오는 오랫동안 무릎을 누리기로 했다.
"자 수고했어."
세준이 테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츄르 하나를 뜯어 테오의 입에 가져갔다.
"그렇다냥! 나 엄청 수고했다냥!"
촵촵촵.
그렇게 테오가 엄청 거드름을 피우며 열심히 츄르를 핥고 있을 때
핥핥.
웬 낯선 혓바닥이 들어왔다.
"뭐냥?
꾸엥?
새끼 곰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테오를 바라봤다. 그러는 형아는 누구예요?
새끼 곰이 겁도 없이 테오의 츄르에 혀를 댔다.
하악!하악!
발톱을 뽑아 새끼 곰을 때리겠다고 난동을 부리는 테오의 몸통을 세준이 꽉 붙잡으며 테오의 폭주를 막았다.
하지만
꾸에엥엥!
테오에게 놀란 새끼 곰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쿠어어엉.
쿵.쿵.쿵.
아직 멀리 가지 않았던 엄마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가 새끼 곰의 울음소리를 듣고 달려왔다.
꾸엥!꾸엥!
새끼 곰이 엄마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에게 달려가 테오를 발로 가리키며 테오가 한 짓을 이르기 시작했다.
"아...안녕하십니까! 고양이 유랑 상인 테오라고 합니다!"
테오가 서둘러 세준의 무릎에서 내려와 엄마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에게 90도로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당황한 건지 사투리도 까먹고 갑자기 표준어를 구사하는 테오였다.
쿠어어엉.
엄마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가 테오를 노려보며 으르렁거렸다.
"네! 잘못했습니다. 앞으로 사이좋게 지내겠습니다."
테오는 말이 통하는지 열심히 사과를 했다.
"잠깐 싸운 거야. 아무 일도 없었어."
세준도 긴장하며 서둘러 테오를 옹호해줬다. 멀리서 고생하고 왔는데 오자마자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자신의 책임도 있는 것 같았다.
쿠우우웅.
엄마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가 강하게 콧바람을 뿜으며 테오에게 새끼를 건드리지 말라고 경고를 하고 다시 순찰을 갔다.
"후냐앙. 냥꾹. 냥꾹."
긴장이 풀린 테오가 갑자기 딸국질을 하기 시작했다.
"자. 끝났어. 진정해."
"날 위...냥꾹...말해줘...냥꾹...고맙다냥."
테오가 딸꾹질을 하며 세준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나도 미리 말 못 해줘서 미안해."
세준이 테오를 안고 테오의 가슴을 쓰다듬어 주었다.
그리고
고로롱.
테오는 세준의 손길에 진정이 됐는지 금세 잠들었다.
꾸엥.
새끼 곰은 테오가 잠들자 낮잠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세준의 등을 안고 누웠고
뺙!
흑토끼도 세준의 무릎 위로 올라왔다.
"애들아?"
고로롱.
뺘로롱.
꾸로롱.
대답 대신 낮게 코 고는 소리만 들렸다. 그새 다 잠든 것이다.
"에라 모르겠다. 응?"
세준도 체념하고 같이 자려고 할 때 세준의 옆에 밀짚모자 하나가 보였다. 아까 엄마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가 콧바람을 뿜을 때 날아온 모양이었다.
"잘 됐다."
해를 가릴 게 필요했던 세준이 밀짚모자를 쓰고 잠에 빠졌다.
조난 178일 차. 테오가 새끼 곰을 건드리면 큰일 난다는 것을 깨달았다.
"새끼 곰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냥. 그래도 츄르는 조금만..."
테오가 잠꼬대를 했다.
30화. 풍년이 들다.
30화. 풍년이 들다
"크릉.크릉.크릉."
에일린이 콧노래를 부르며 인간이 준 마력의 방울토마토 10개를 한 번에 입에 넣고 씹었다.
뽀득.
촤악.
예전에는 수십 개를 한 번에 먹어야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지만, 요즘은 방울토마토의 등급이 D급으로 상승하면서 맛이 진해졌고 10개 정도만으로도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에일린이 방울토마토 맛을 음미하며 즐겁게 먹고 있을 때
쿵.
"어?!"
에일린은 자신의 가슴에서 느껴진 진동에 놀랐다.
"내 드래곤하트가..."
아주 약했고, 1초도 안 되는 시간의 작은 박동. 하지만 지금껏 태어나서 200년 동안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박동이기에 에일린은 바로 알아차렸다.
200년 동안 한 번도 뛰지 않았던 에일린의 드래곤 하트가 아주 잠깐 스스로 움직여 마나를 흡수했다.
가뭄으로 쩍쩍 갈라진 땅에 물 한 방울이 떨어지는 것처럼 마나는 드래곤하트에 흡수되자마자 흩어지며 흔적도 없이 금세 사라졌다.
하지만 에일린은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드래곤 하트에 변화가 생겼다는 것을. 그리고 그 변화의 이유는...
에일린이 이번에는 확실한 느낌을 받기 위해 D급 마력의 방울토마토 20개를 한 번에 입에 넣었다.
그리고
뽀득
촤악.
꿀꺽.
방울토마토를 맛있게 씹어 삼키고 드래곤하트에 집중했다.
잠시 후
쿵.
역시 이번에도 드래곤하트가 잠깐이지만, 스스로 움직여 마나를 흡수했다.
자신이 씹고 있는 인간의 농작물. 맛있는 줄만 알았는데...자신의 드래곤하트를 치료할 수 있는 능력까지 있는 모양이었다.
"어?! 그러고 보니 나 발작할 때가 이미 지났는데?"
지금 에일린이 있는 검은 탑의 관리자 공간에는 마나 농도가 다른 곳보다 월등히 높기에 에일린의 드래곤하트가 뛰지 않아도 에일린의 호흡만으로 육체에 마나를 공급해줬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어 10년 정도의 주기로 에일린은 마나 부족으로 인한 발작을 일으켰다.
그리고 발작이 일어날 때마다 발작 주기는 며칠씩 줄어들고 있었다.
그런데 마지막 발작이 일어난 지 10년하고 며칠이 더 지났는데 아직까지 발작이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앞으로 인간은 내가 지킨다!"
원래도 자신에게 맛있는 것을 줘서 소중했지만, 자신의 드래곤하트를 뛰게 해줄수 있는 인간은 더욱 소중했다.
위대한 검은 용 에일린 프리타니, 나이 200살.
드디어 지켜주고 싶은 존재가 생겼다.
에일린이 서둘러 인간이 뭐 하는지 살펴보기 위해 수정구를 들여다 봤다.
그리고
"아니! 내가 없는 사이에 또 미감정 아이템을! 위험하다니까! 역시 인간은 내가 없으면 안 되겠군."
에일린이 서둘러 낮잠을 자는 세준을 깨웠다.
***
[탑의 관리자가...밀짚···감정...말합니다.]
"으음···"
세준이 잠에서 깬 건 탑의 관리자의 메시지 때문이었다.
[탑의 관리자가 왜 또 미감정 아이템을 착용하고 있냐며 화를 냅니다.]
[탑의 관리자가 미감정 아이템을 함부로 쓰면 큰일 날 수도 있다고 자신이 말하지 않았냐고 말합니다.]
"어?! 이거 아이템이었어?"
탑의 관리자의 말에 세준이 안고 있던 테오를 무릎에 내려놓고 서둘러 밀짚모자를 벗어 살펴봤다. 너무 흔하게 생겨서 그냥 평범한 밀짚모자라고 생각했다.
[농부의 밀짚모자]
???
사용 제한 : Lv. 20, 힘 20 이상, 체력 20 이상
제작자 : 비공개
등급 : D
스킬 : [대지의 가호 Lv. 1]
[대지의 가호 Lv. 1]
소유한 농지 전체에 약한 대지의 가호를 내립니다.
지력의 회복이 미세하게 빨라집니다.
"와."
미세한 지력 상승이지만, 농지 크기에 제한이 없었다.
"사용 제한만 없으면 굉장히 좋은 아이템인데..."
Lv. 20에 힘과 체력 20 이상은 20레벨에는 착용하지 말라는 말과 같았다.
지상의 황무지 때문에 고민하고 있던 세준은 사용 제한 때문에 밀짚모자의 스킬인 대지의 가호를 사용할 수 없는 것이 너무 아쉬웠다.
[탑의 관리자가 일단 그 밀짚모자를 감정하자고 말합니다.]
"알았어. 퀘스트줘."
그래도 아직 햇빛 가리개로의 용도는 남아있기에 세준은 감정을 하기로 했다.
[퀘스트가 발생합니다.]
[퀘스트 : 탑의 관리자에게 미감정 밀짚모자를 보내라.]
보상 : 없음.
거절 시 : 감정을 못 함
[추가 퀘스트가 발생합니다.]
[퀘스트 : 탑의 관리자에게 다음 블루문 때 블루문의 기운이 담긴 농작물을 주겠다고 약속하라.]
보상 : 감정된 밀짚모자
거절 시 : 밀짚모자를 받을 수 없음.
"블루문의 기운이 담긴 농작물?"
[탑의 관리자가 그게 꼭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알았어."
세준은 흔쾌히 수락했다. 앞으로 더 많이 그리고 더 좋은 농작물을 수확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아끼고 그럴 필요가 없었다.
"이제 감정해줘."
세준의 손에서 밀짚모자가 사라졌다.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탑의 관리자가 농부의 밀짚모자에 감정 스킬을 사용합니다.]
[탑의 관리자가 감정된 아이템을 보고 기뻐합니다.]
이상했다. 왜 탑의 관리자가 기뻐하지?
[탑의 관리자가 엄청난 아이템이라고 당신을 축하합니다.]
[탑의 관리자가 이제 다음 블루문 때 에일린 프리타니에게 블루문의 기운이 담긴 농작물을 준다고 약속하라고 말합니다.]
"에일린 프리타니?"
[탑의 관리자가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는 것이니 영광으로 알라고 거만하게 말합니다.]
"뭘 이름 가지고..."
세준이 시큰둥하게 말했다.
[탑의 관리자가 이건 대단한 영광이라며 발로 바닥을 꽝꽝 치며 흥분합니다.]
"네. 에일린 프리타니 님 이름을 알려주셔서 영광입니다."
세준이 빨리 밀짚모자를 받기 위해 에일린의 비위를 맞춰줬다.
[탑의 관리자가 만족스러워합니다.]
[탑의 관리자가 어서 약속하라고 말합니다.]
"나 박세준은 다음 블루문 때 블루문의 기운이 담긴 농작물을 수확하면 에일린 프리타니에게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탑의 관리자가 이건 그대와 나의 첫 번째 약속이라고 말합니다.]
'첫 번째 약속?'
탑의 관리자가 의미심장하게 얘기했다.
세준은 이상함을 느꼈지만, 곧 눈앞에 나타난 밀짚모자에 집중했다.
척.
세준이 서둘러 떨어지려는 밀짚모자를 잡았다.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퀘스트 완료 보상으로 감정된 밀짚모자 - 유물 : 대지의 성자 패트릭의 밀짚모자를 획득했습니다.]
"유물?"
유물이 붙은 네임드 장비. 유물이라는 것은 세준도 처음 들어봤다.
세준이 밀짚모자의 옵션을 확인했다.
[유물 : 대지의 성자 패트릭의 밀짚모자]
농사로 많은 굶주린 자를 살려 대지의 성자라고 불리던 농부 패트릭이 항상 쓰고 다니던 밀짚모자입니다.
검은 탑에 10개만 존재하는 유물 중 하나입니다.
유물은 착용자의 직업 등급에 따라 제한이 풀립니다.
사용 제한 : 농사 관련 직업을 가진 자
제작자 : 패트릭
등급 : 미정
스킬 : [대지의 가호 Lv. 1]
"탑에 10개 밖에 없다고?!"
세준이 엄청난 희소성에 놀라며 밀짚모자의 옵션을 확인했다.
원래 사용 제한으로 있던 레벨과 스탯 제한이 사라지는 대신 '농사 관련 직업을 가진 자'라는 제한이 생겼다.
직업이 탑농부인 세준으로서는 반길만한 일이었다.
등급은 이상하게도 미정이었다. 아마 착용자의 직업 등급에 따라 능력이 성장한다는 내용을 생각하면 착용했을 때 정해지는 것 같았다.
스킬에는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아이템의 등급이 정해지면 새로운 스킬이 나타날 수도 있다.
세준이 설레는 마음으로 밀짚모자를 썼다.
[유물 : 대지의 성자 패트릭의 밀짚모자가 착용자의 직업과 등급을 확인합니다.]
[탑농부(D)를 확인했습니다.]
[유물 : 대지의 성자 패트릭의 밀짚모자의 등급이 D로 상승합니다.]
세준의 예상대로 아이템 등급이 착용자의 직업 등급을 따라갔다.
[E등급 제한이 풀립니다.]
[스킬 - 대지의 가호 Lv. 2의 제한이 풀립니다.]
[스킬 - 농사꾼의 육체 Lv. 1가 개방됩니다.]
[D등급 제한이 풀립니다.]
[스킬 - 대지의 가호 Lv. 3의 제한이 풀립니다.]
[스킬 - 농사꾼의 육체 Lv. 2의 제한이 풀립니다.]
[스킬 - 풍년 기원 Lv. 1이 개방됩니다.]
"오오!"
탑에 10개 밖에 없는 유물이라고 하더니 아이템 옵션이 엄청났다.
세준이 대지의 가호와 새로 풀린 스킬들을 확인했다.
[대지의 가호 Lv. 3]
소유한 농지 전체에 조금 강한 대지의 가호를 내립니다.
지력의 회복이 조금 빨라집니다.
[농사꾼의 육체 Lv. 2]
농사꾼의 육체는 항상 굳건해야 합니다.
모든 스탯이 3 상승합니다.
[풍년 기원 Lv. 1]
매우 낮은 확률로 소유한 농지 일부에 일주일 동안 풍년이 듭니다.(최대 100평)
풍년이 들면 수확량이 50% 상승합니다.
역시 테오의 손은 금손이었다. 이번 뽑기도 대성공!
"잘했어! 테 대표."
세준이 흥분해서 테오의 앞발을 만졌다.
그때
"음냥...박세준은 츄르를 바쳐라냥..."
테오가 잠꼬대를 했다.
"그래. 얼마든지 주마."
기분이 좋은 세준이 츄르 하나를 뜯어 테오의 입에 대자
촤압.촤압.촤압.
"맛있구냥..."
테오는 자면서도 츄르를 열심히 핥았다.
그리고 테오가 츄르를 다 먹자 세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자고 싶다냥···"
뺘악···
꾸에엥···
세준이 일어나자 잠투정을 하는 녀석들.
"자 빨리 일어나!"
낮잠을 자는 바람에 일이 밀렸다. 세준이 테오와 흑토끼 그리고 새끼 곰을 서둘러 깨웠다.
그리고
"츄르를 달라냥! 아까 제대로 못 먹었다냥!"
완전히 잠에서 깬 테오가 세준에게 츄르를 요구했다.
"테 대표, 너 방금 츄르 먹었는데?"
"그게 무슨 소리냥? 나를 놀리는 것이냥?!"
세준의 대답에 테오가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다.
"나는 분명 꿈속에서 먹었다냥!"
테오는 억울했다. 자신은 분명 꿈에서 먹었는데 박세준은 자신이 현실에서 츄르를 먹었다고 우기고 있었다.
"알았어. 자."
세준이 테오에게 새 츄르를 따서 주고 농사를 위해 동굴로 내려갔다.
테오도 세준을 따라 동굴로 내려가 세준의 지정석에 자리를 잡았다. 지상에 있다가는 새끼 곰에게 자신의 소중한 츄르를 뺏길 수도 있었다.
촵촵촵.
테오가 열심히 츄르를 먹기 시작했다. 박세준의 무릎 위에서 먹는 맛보다는 못했지만, 역시 츄르는 맛있다냥.
그렇게 테오가 츄르를 여유롭게 먹으며 평온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휴우. 끝났다."
농사꾼의 육체 스킬 덕분에 모든 스탯이 3 증가하면서 세준은 지치지도 않고 빠른 속도로 파 이파리를 전부 베었다.
그리고 방울토마토밭으로 가서
서걱.
방울토마토 가지를 자르며 수확에 열을 올렸다.
[잘 익은 마력의 방울토마토 4개를 동시에 수확했습니다.]
[직업 경험치가 조금 상승합니다.]
[수확하기 Lv. 4의 숙련도가 조금 상승합니다.]
[숙련도 상승 Lv. 1의 효과로 수확하기 Lv. 4의 숙련도가 5% 추가 상승합니다.]
[경험치 80을 획득했습니다.]
그때
"응?!"
주변 땅에 황금색 기운이 내려앉았다.
그리고
[풍년 기원 Lv. 1이 발동합니다.]
[마력의 방울토마토밭 30평에 풍년이 듭니다.]
[앞으로 일주일간 수확량이 50% 상승합니다.]
세준의 방울토마토밭에 풍년이 왔다.
31화. 새 가족들이 태어나다.
31화. 새 가족들이 태어나다.
"왜 탑이 열리지 않는 것이야?!"
흑발에 호쾌한 얼굴을 한 50대 남자가 활성화되지 않는 포탈을 보며 화를 냈다.
자신의 손녀인 에일린의 마지막 발작 이후 10년하고 3일이 지났는데 포탈은 그대로였다.
"가주님, 고정하시지요."
같은 흑발에 호쾌하지만,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얼굴의 30대 남자가 50대 남자를 향해 말했다.
"지금 내가 고정하게 생겼느냐! 우리 에일린을 볼 수 없는데!"
"아버님, 체통을 지키십시오. 다른 용들이 보고 있습니다."
에일린을 치료하기 위한 진귀한 약들을 챙기고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프리타니가의 수십 마리 용들을 보며 안톤이 조용히 말했다.
둘은 프리타니가의 가주 카이저 프리타니와 카이저의 아들이자 에일린의 아버지인 안톤 프리타니였다.
"모두 우리 프리타니가의 용들인데 어때서! 저 녀석들도 모두 에일린을 걱정해서 모인 것이 아니냐."
"에일린도 저희 프리타니가의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발작을 잘 이겨내고 있을 겁니다."
안톤은 마치 남얘기 하듯이 차갑게 말했다.
"안톤, 에일린은 너의 딸이다. 네가 걱정하는 모습을 보여도 뭐라 할 용은 없어."
카이저는 안톤이 가문의 다른 용들의 눈치를 보며 자신의 딸인 에일린을 차갑게 대하는 것이 답답하고 안타까웠다.
프리타니가의 용들은 해츨링인 에일린을 살리기 위해 많은 희생을 하고 있었다.
탑의 관리자 공간은 원래 프리타니가의 용들이 교대로 맡아 힘을 기르는 곳.
탑의 관리자 공간의 넘치는 마나가 그곳에 있는 것만으로 용들을 강하게 만들어줬지만, 프리타니가 용들은 그 특권을 모두 에일린에게 양보했다.
거기다 프리타니가의 용들은 에일린을 치료할 약재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렇게 에일린에게 여러 가지를 양보해 주는 용들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안톤은 딸을 걱정하는 내색을 할 수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이렇게 탑이 열리지 않아 며칠씩 대기까지 하고 있으니 안톤의 미안한 마음은 더욱 커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들을 돌려보낼 수도 없는 일. 에일린이 발작할 때마다 약과 함께 수십 마리 용들이 마나를 넣어서 육체의 불균형을 해소해 줘야 했다.
'에일린의 드래곤하트에 뭔가 좋은 변화가 생긴 걸까?'
그러면 정말 다행이지만...
안톤은 포탈이 열리지 않는 것이 기쁘면서도 뒤에서 기다리고 있는 용들을 보면 기뻐할 수가 없었다.
"일단 탑이 열릴 때까지 여기서 대기한다."
"네!"
지시를 내린 카이저가 다시 포탈을 바라봤다.
"우리 손녀 밥은 잘 먹고 있는 것이냐?"
카이저가 요즘 에일린이 식도락에 빠진 것도 모르고 자신의 손녀를 걱정했다.
***
풍년이 든 방울토마토밭. 갑자기 방울토마토 가지에 꽃들이 추가로 빠르게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윙윙.
독꿀벌들이 새로 피어난 꽃에 다가가 꿀을 빨았다.
"이렇게 수확량을 50% 늘려주는 거구나."
수확량 50%를 수확할 때 추가로 아이템으로 주는 게 아닐까 생각했는데 세준의 생각과는 달랐다.
중간중간 가지에 꽃이 피어나는 바람에 세준은 풍년이 든 밭에서는 방울토마토를 하나씩 따야 했지만, 조금만 기다리면 꽃 하나하나가 방울토마토를 만들어 낼 것이기에 전혀 불만이 없었다.
그렇게 방울토마토 수확을 끝내고
"테오, 앞으로 일주일간 테 대표로 복직이야."
세준이 자기 전 자신의 머리맡에 자리를 잡은 테오에게 말했다.
유물 : 대지의 성인 패트릭의 밀짚모자라는 엄청난 물건을 뽑아왔으니 이 정도 혜택은 당연했다. 솔직히 기간을 더 늘려주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나중에 테 대표 약발이 떨어질 것 같아서 참았다.
"저...정말이냥?! 일주일이나 테 대표를 시켜주는 것이냥?!"
특별히 한 것도 없는데 일주일이나 테 대표를 시켜주겠다니! 테오는 자신이 금손이라는 것을 몰랐다.
커어어.
테오가 감동하는 사이 세준은 이미 잠에 빠졌다.
스륵.
세준의 머리맡에 있던 테오가 일어나 세준의 배 위로 올라가 누웠다.
그리고
고로롱.
위아래로 움직이는 새준의 배에서 안정감을 느끼며 테오도 금세 잠들었다.
그렇게 고요가 내린 동굴에서 모두가 숙면을 취하고 있을 때
삐이이!!!
아내 토끼의 비명이 동굴에 울려 퍼졌다. 아내 토끼의 산통이 시작된 것이다.
삐이!!!
세준은 이미 한 번 겪어봤기에 그렇게 놀라지는 않았지만
"무...무슨 일이냥?!"
뺘아?!
뺙?!
테오와 자식 토끼들은 그렇지 않았다.
"괜찮아. 이제 동생들이 나오는 거야."
세준이 앉아서 테오와 토끼들을 불러 진정시켰다.
뺘아...
뺘악...
자식 토끼들이 세준의 다리를 붙잡고 불안하게 토끼 부부가 있는 동굴을 바라봤다.
그리고
오들오들.
테오는 뭐가 무서운지 세준의 다리 사이에 들어가 몸을 잔뜩 웅크리고 떨고 있었다. 진짜 겁보였다.
한 시간 정도가 지나자
뺘아.
뺘아.
토끼 부부의 동굴에서 새로 태어난 새끼 토끼들의 가녀린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삐익!
남편 토끼가 동굴 밖으로 달려 나와 새로운 토끼들의 탄생을 알렸다.
하지만
커어어.
고로롱.
뺘로롱.
기다리다 지친 세준과 테오 그리고 토끼는 서로를 의지해 잠들어 버린 상태였다.
조난 179일 차 새벽 새로운 동굴 식구들이 태어났다.
***
이른 아침.
꾸엥!
새끼 곰이 동굴 천장 구멍에 고개를 내밀며 자신의 등장을 알렸고 새끼 곰의 울음소리가 동굴에 울려 퍼졌다.
동시에
뺘아!
뺘아!
토끼 부부의 동굴에서 화답하듯이 새끼 토끼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꾸엥?
처음 듣는 생소한 소리에 새끼 곰이 갸웃거리고 있을 때
삐익!!!
겨우 새끼 토끼들을 재우고 간신히 잠들었던 남편 토끼가 분노의 샤우팅을 질렀다.
"쉿!"
잠에서 깨어난 세준이 입에 검지를 대며 새끼 곰을 조용히 시켰다.
세준이 벽에 획 하나를 추가하고 조용히 아침을 준비했다. 토끼들도 토끼 부부의 동굴을 한 번씩 보며 조용히 움직였다.
세준이 생선구이 2마리와 파 이파리 그리고 당근 중 튼실한 놈으로 2개를 골라 토끼 부부의 동굴 앞에 놔뒀다.
그리고 이어진 아침 식사. 모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퀭한 얼굴로 기계적으로 음식을 입에 넣고 씹었다.
"자 이제 일하자."
뺘압!
백토끼 5마리가 기합을 넣으며 자신의 농기구 아이템을 들고 밭으로 갔다.
뺙!
일손이 부족한 걸 아는 흑토끼도 형제들을 돕기 위해 나섰다.
그리고
"자 우리도 가자."
세준이 테오를 들고 일어났다.
"응? 그게 무슨 말이냥? 어디를 간단 말이냥?"
테오가 세준의 손에 들린 상태로 어리둥절해하며 물었다.
"저번에 해봤지? 내가 방울토마토 가지를 잘라 오면 방울토마토를 따서 봇짐에 넣으면 돼. 다른 토끼들에게는 어렵겠지만, 우리 테 대표에게는 너무 쉬운 일이야. 그치 테 대표?"
세준이 방울토마토밭 옆에 테오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당연하다냥! 테 대표에겐 너무 쉽다냥!"
세준의 부추김에 얼떨결에 농사일에 투입된 테오였다.
토끼 부부가 빠졌지만, 세준의 스탯이 증가하며 작업 속도가 빨라졌고 흑토끼와 테오까지 농사에 합류하며 아침에 할 일을 모두 끝낼 수 있었다.
테오는 중간에 테 대표의 위엄을 보여주겠다며 발톱을 꺼내 파 이파리까지 깔끔하게 자르며 세준을 놀라게 했다. 덕분에 테오는 파 이파리 자르는 일까지 맡아버렸지만...
점심이 되자 토끼 부부의 동굴 앞에 음식을 놔두고 모두 지상으로 올라와 함께 식사했다. 세준이 아침에 토끼 부부의 동굴 앞에 두었던 음식은 언제 나와 가져갔는지 사라져 있었다.
점심시간은 아주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그리고 새끼 곰에게 꿀 3꿀렁을 디저트로 주고 세준도 커피를 마시면서 휴식 시간을 가졌다.
자연스럽게 세준의 무릎 위로 테오와 흑토끼가 올라왔고 새끼 곰이 세준을 품에 안고 낮잠을 자기 시작했다.
***
조난 181일 차. 새끼 토끼들이 태어난 지 이틀이 지났다.
그리고 내일은 세준이 조난을 당한 이후 7번째 블루문이 뜨는 날. 오늘은 자정부터 뜰 블루문 때문인지 엄마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는 새끼 곰을 데리고 오지 않았다.
덕분에 세준과 토끼들은 오랜만에 제시간에 일어날 수 있었다.
"읏차!"
세준이 일어나 자신의 배에서 자고 있는 테오를 옆에 내려놓고 동굴 벽에 획 하나를 긋고 있을 때
삐익!
삐이!
토끼 부부가 아직 자는 새끼 토끼들을 두고 굴을 나와 아침 인사를 했다.
그리고
빠아!
뺙!
다른 토끼 굴에서도 이젠 형, 오빠가 된 토끼들이 나오며 인사를 했다.
"그래. 좋은 아침."
오늘은 세준도 토끼들도 일을 서둘렀다. 최대한 빨리 일을 끝내고 블루문을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테 대표, 일어나."
"흠냥...아직 더 자고 싶다냥."
세준이 테오를 파 이파리 앞에 놓고
서걱.
밭으로 가서 방울토마토 가지를 자르며 수확을 시작했다.
[잘 익은 마력의 방울토마토 8개를 동시에 수확했습니다.]
[직업 경험치가 조금 상승합니다.]
[수확하기 Lv. 4의 숙련도가 조금 상승합니다.]
[숙련도 상승 Lv. 1의 효과로 수확하기 Lv. 4의 숙련도가 5% 추가 상승합니다.]
[경험치 160을 획득했습니다.]
"테 대표의 위엄을 보여주겠다냥!"
파바바밧.
어느새 잠에서 깬 테오가 자신의 발톱을 꺼내 파 이파리를 자르며 낫 토끼와 지게 토끼에게 자신의 능력을 자랑했다.
그렇게 하루가 빠르게 흘러갔다.
저녁이 되자 토끼들은 동굴에 들어가 입구를 막았고 독꿀벌들도 벌집의 입구를 막으며 블루문을 준비했다.
그리고
"테 대표, 뭐해?"
"여기 들어가서 블루문을 피하는 거다냥."
테오는 봇짐의 입구에 자기 몸을 욱여넣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기능이 많은 봇짐이었다.
"테 대표, 그럼 이것도 가지고 있어."
세준이 만약을 대비해 독꿀벌 여왕의 고치도 테오에게 맡겼다.
얼마 후 블루문이 시작됐다.
쿠어어엉!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의 포효가 들려왔다.
"엄마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랑 새끼 곰은 괜찮으려나?"
세준이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 모자를 걱정하고 있을 때
쿵.쿵.쿵.
뭔가가 동굴로 다가왔다.
"뭐지?"
척.
긴장한 세준이 단검을 손에 쥐었다.
그리고 만약을 대비해 서둘러 귀마개를 하고 D급 마력의 방울토마토 10개를 한꺼번에 먹고 마력을 2 높였다.
음머어어어!
몬스터가 동굴 위에서 포효했다. 지금까지 들어본 적 없는 포효소리.
"...!"
세준이 흐려지는 의식을 간신히 붙잡고 정신을 차렸다.
다행히 몬스터는 동굴 위에서 난동을 피우다가 다른 몬스터의 포효소리를 듣고 그쪽을 향해 달려갔다.
"휴우."
세준이 안도하며 긴장한 몸을 풀고 있을 때
스스스.
풍년이 든 방울토마토밭의 나무들에 푸른빛이 맺히기 시작했다. 푸른빛은 줄기를 따라 방울토마토에 담기며 방울토마토를 푸른색으로 변화시켰다.
"저게 다 몇 개야?"
대충 세어도 10개가 넘었다. 블루문의 기운이 담긴 방울토마토도 풍년이었다.
세준이 그렇게 방울토마토를 보며 기뻐하고 있을 때
스스스.
다른 밭에도 푸른빛이 맺히기 시작했다.
"어?! 저긴..."
빨리 수확해 맛보고 싶었지만, 알이 차기를 기다리며 꾹꾹 참고 있던 옥수수밭이었다. 옥수수 잎사귀에 맺힌 푸른빛이 옥수수에 깃들고 있었다.
만세!!!
세준이 아직 블루문이 끝나지 않아 소리는 지르지 못하고 손을 하늘로 뻗으며 주체할 수 없는 흥분을 표현했다.
조난 182일 차. 오늘 아침은 옥수수다!
32화. 옥수수를 수확하다.
32화. 옥수수를 수확하다.
블루문이 끝나자 폭주했던 99층의 몬스터들이 다시 자신의 구역을 찾아 돌아왔다.
그리고 99층의 웨이포인트를 지키는 우마왕이 부하들의 인원 체크를 시작했다.
가끔 다른 몬스터의 영역에 들어갔다가 돌아오지 못하는 녀석들이 있기 때문이다.
우일이, 우둘이, 우삼이···
그렇게 우마왕이 부하들을 확인하고 있을 때
달랑달랑.
우천삼이의 뿔에 뭔가가 달려있는 게 보였다.
음머?
우마왕이 부하를 보며 물었다. 우천삼이 그거 뭐야?
하지만
음머?
부하는 자신의 뿔에 뭐가 달려있다는 것을 모르는지 오히려 우마왕에게 반대로 물었다. 대장, 뭐요?
음머!
전사라는 놈이 이렇게 자신의 몸에 뭐가 붙어있는지도 모르다니! 우마왕이 부하의 반응에 답답해하며 직접 부하의 뿔에 꽂혀 있는 것을 떼어냈다.
녹색 이파리에 주황색 뿌리가 달린 식물이었다. 우천삼이는 블루문 때 뿔로 땅을 파헤친 것이 분명했다.
우마왕이 우천삼이를 지나쳐 다시 인원을 파악했다.
···우삼천팔이.
다행히 돌아오지 못한 부하는 없었다.
쿵.쿵.
우마왕이 다시 자신의 자리인 99층의 웨이포인트 앞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다시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킁킁.
어디서 향긋한 냄새가 났다.
음머?
우마왕은 냄새가 나는 곳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부하의 뿔에서 떼어낸 식물이 자신의 손에 들려 있었다. 이걸 내가 왜 안 버렸지?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우마왕이 식물을 입에 넣고 씹었다.
오도독.오도독.
우물우물.
주황색 뿌리는 좋은 식감과 단맛을 줬고 줄기는 야들야들한 게 부드럽게 삼켜졌다.
음머어어어?!
우마왕이 급하게 우천삼이를 불렀다. 너 이거 어디서 났어?!
***
세준은 블루문이 끝나자마자 봇짐에 들어간 테오를 불러내 밖을 정찰시켰다.
"아무도 없다냥."
"좋아. 수고했어."
테오는 세준에게 보고를 하고는 세준의 모포 속으로 들어가 잠들었고 세준은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세준이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옥수수밭.
툭.
녹색 잎사귀에 쌓여있는 푸른 옥수수를 꺾었다.
[블루문의 기운이 담긴 체력의 옥수수를 수확했습니다.]
[직업 경험치가 상승합니다.]
[수확하기 Lv. 4의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숙련도 상승 Lv. 1의 효과로 수확하기 Lv. 4의 숙련도가 5% 추가 상승합니다.]
[경험치 100을 획득했습니다.]
"체력의 옥수수?"
옥수수는 체력 스탯을 올려주는 농작물이었다.
[블루문의 기운이 담긴 체력의 옥수수]
탑 안에서 자란 옥수수로 영양을 충분히 섭취해 맛있습니다.
거기에 블루문의 기운을 담아 맛이 더욱 좋아졌습니다.
섭취 시 체력이 영구적으로 0.1 상승합니다.
재배자 : 탑농부 박세준
유통기한 : 60일
등급 : D
D급 농작물이라서 그런지 E급 농작물보다 스탯 상승치가 2배나 높았다.
하지만
"아무렴 어때."
세준에게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맛이 중요하지.
"흥흥흥."
세준이 콧노래를 부르며 먼저 옥수수에 달린 수염을 뽑아내고
촤악.촤악.
과감하게 옥수수의 껍질을 벗겨냈다. 그러자 살짝 누르면 튕겨 나올 정도로 탱글탱글한 푸른 옥수수 알갱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와아. 윤기 봐."
옥수수가 푸른광택을 보이며 '나 맛있음'이라고 자신을 어서 맛보라고 유혹하고 있었다. 마음이 급해졌다. 빨리 먹고 싶다!
"어?!"
자신도 모르게 세준이 생옥수수를 입에 댈 뻔하다가 멈췄다. 옥수수를 찌기도 전에 먹어버리는 대형 사고가 일어날 뻔했다.
"휴우."
세준이 심호흡을 하며 들뜨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척.척.
벗긴 옥수수 껍질들을 냄비에 한 장씩 정성스럽게 깔고 물을 적당히 넣은 다음 옥수수를 넣고 뚜껑을 덮었다.
그리고
화르르륵.
불에 올려 끓이기 시작했다. 물이 졸여지면 옥수수 껍질이 냄비와 옥수수 사이에서 공간을 만들어주며 옥수수를 쪄줄 것이다.
이제 필요한 건 옥수수가 맛있게 쪄지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하지만
[탑의 관리자가 어서 약속을 지키라고 말합니다.]
아직 할 일이 남아있었다.
"알았어. 이제 줄려고 했어."
세준이 방울토마토밭으로 가서 블루문의 기운이 담긴 방울토마토를 수확했다.
톡.
[블루문의 기운이 담긴 마력의 방울토마토를 수확했습니다.]
[직업 경험치가 상승합니다.]
[수확하기 Lv. 4의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숙련도 상승 Lv. 1의 효과로 수확하기 Lv. 4의 숙련도가 5% 추가 상승합니다.]
[경험치 100을 획득했습니다.]
톡.
[블루문의 기운이 담긴 마력의 방울토마토를 수확했습니다.]
...
..
.
그렇게 세준이 수확한 블루문의 기운이 담긴 방울토마토는 전부 13개였다.
"진짜 풍년이네. 흐흐흐."
세준이 두 손 가득한 푸른색 방울토마토를 보면서 웃었다.
"자 가져가."
세준이 탑의 관리자에게 푸른색 방울토마토 5개를 주었다.
[탑의 관리자가 당신에게 고마워합니다.]
[탑의 관리자가 나중에 꼭 보답할 거라고합니다.]
"그래."
별 기대는 하지 않았다. 300년을 어떻게 기다리란 말인가.
"맛있겠다."
세준이 손에 든 방울토마토를 바라봤다. D급에 블루문의 기운이 담겼으니 더 맛있을 거다.
하지만
"참자."
옥수수의 맛을 제대로 느끼기 위해 참기로 했다.
세준은 자리에서 일어난 김에 옥수수수염을 해가 잘 드는 자신의 지정석 위에 잘 펼쳐 말렸다. 옥수수수염을 잘 말려두면 옥수수수염차를 만들어 먹을 수 있다.
"이걸로 먹을 수 있는 음료수가 하나 늘었군."
세준이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불가로 돌아왔다.
그리고 옥수수가 완성되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 냄비 뚜껑의 틈을 통해서 옥수수 특유의 달달하면서 고소한 냄새가 퍼지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세준이 속으로 30초를 세고 냄비를 불에서 꺼내 뚜껑을 열었다. 과유불급. 너무 찌면 옥수수 알이 다 터져버리기에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화악.
뚜껑을 열자마자 수증기와 함께 옥수수 냄새가 진동했다.
"와아!"
세준이 조심스럽게 집게로 옥수수를 들어 자신의 그릇에 담았다.
그리고
후우욱.후우욱.
빨리 먹고 싶은 마음에 세준이 옥수수에 바람을 불어 넣으며 열심히 식혔다.
"됐나?"
세준이 옥수수에 손을 올려 아직도 뜨거운지 확인했다. 옥수수는 1, 2초 정도 잡을 수 있을 정도로 뜨거운 상태였다.
"좋아."
세준이 식은 옥수수 껍질 하나로 옥수수 양쪽 끝부분을 잡고
뽀각.
반으로 잘랐다. 반은 토끼들에게 줄 옥수수였다.
세준이 옥수수 반쪽을 한 입 베어 물었다.
드드득.
세준의 치아가 포크레인처럼 옥수수 알갱이들을 쓸어 담았다.
"추읍."
옥수수 알멩이가 떨어지며 옥수수대에서 흘러나오는 단물을 세준이 서둘러 쭉 빨았다. 아! 달다!
아삭아삭.
단물을 빤 세준이 본격적으로 옥수수 알갱이를 씹기 시작했다.
옥수수 알갱이 하나하나 전부 살아있었다. 그래서 씹을 때마다 입 안에서 옥수수 알갱이들이 적당히 반항을 하다가 톡톡 터져 나왔다.
오물오물.
씹을수록 올라오는 고소한 단맛. 세준이 홀린 듯이 옥수수 하모니카를 불며 열심히 옥수수를 먹었다.
그리고
[블루문의 기운이 담긴 체력의 옥수수를 섭취하셨습니다.]
[채력이 영구적으로 0.1 상승합니다.]
어느새 세준은 토끼들을 위해 남겨둔 옥수수까지 다 먹어버렸다.
"내가 이걸 다 먹다니..."
세준이 눈앞의 메시지를 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옥수수대의 남은 단물을 빨았다.
하지만 세준이 이미 단물이 나올 때까지 쪽쪽 빨아 마셨기에 단물은 나오지 않았다.
"아쉽네."
세준이 서둘러 증거 인멸을 위해 옥수수대와 이파리를 불가에 넣고 태웠다.
그리고 벽에 획 하나를 추가하며 아침을 시작할 때
꾸엥...
새끼 곰이 조용히 자신이 도착했음을 알렸다. 새끼 토끼들을 깨우지 않기 위해서였다.
세준이 지상으로 올라갔다. 새끼 곰이 왔다는 건 엄마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가 왔다는 거고, 그건 주변이 100% 안전하다는 의미였다.
지상으로 올라가자
"역시."
예상대로 지상의 밭은 완전히 블루문 때 왔던 몬스터로 인해 난장판이 돼 있었다.
세준이 서둘러 엄마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를 찾았다. 다친 곳은 없는지 걱정이 됐다.
저 멀리 세준의 눈에 엄마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가 성큼성큼 이동하는 것이 보였다. 걸음걸이로 봐서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엄마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의 안전을 확인한 세준이 테오에게 맡겨두었던 독꿀벌 여왕의 고치를 조심스럽게 제자리에 갔다 놓았다.
그리고
"너도 다친 데는 없지?"
세준이 새끼 곰의 몸을 살펴보며 다친 곳은 없는지 확인했다.
꾸엥!
세준이 자신의 몸을 살펴보자 새끼 곰은 세준이 자신을 쓰다듬어 주려는 줄 알고 발라당 누웠다.
"그래. 그래."
세준은 새끼 곰의 몸을 쓰다듬어주며 몸을 전부 확인했다. 다행히 다친 곳은 없었다.
"자 여기 꿀."
블루문으로 고생했을 새끼 곰에서 꿀 3꿀렁을 주고 세준이 다시 동굴로 내려오자
삐익!
삐이!
일어날 시간이 됐는지 굴에서 토끼 부부와
뺘아.
뺙!
출가한 자식 토끼들이 굴에서 나와 인사를 하고 아침 농사를 준비했다.
오도독.오도독.
"자 이거 먹어."
세준이 아침을 당근을 먹는 토끼들에게 푸른색 방울토마토 8개를 하나씩 건넸다.
그렇게 다 나눠주니 세준이 먹을 방울토마토는 없었지만, 자신은 옥수수를 먹었으니 오늘은 양보하기로 했다.
삐익!
삐이!
뺘아!
뺙!
쭙쭙쭙.
토끼들이 세준에게 고마워하며 방울토마토를 맛있게 빨기 시작했다.
뺘아!
뺘앙!
뺘앗!
오후에는 토끼 부부가 새끼 토끼 5마리를 굴에서 데리고 나와 새끼들에게 세상 구경을 시켜줬다. 호기심 많은 새끼 토끼들이 활발하게 주변을 탐험하기 시작했다.
그때
뺘아!
뺘앙!
뺘앗!
유독 새끼 토끼들의 관심을 끄는 것이 있었다.
촵촵촵.
열심히 츄르를 먹고 있는 테오를 향해 새끼 토끼들이 다가가 테오의 몸을 타고 놀기 시작했다.
"나한테 왜 이러는 것이냥?"
테오가 귀찮게 구는 새끼 토끼들을 피해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자리로 이동했다.
하지만
뺘아!
뺘앙!
뺘앗!
새끼 토끼들이 끈질기게 테오를 따라왔다.
"회장님아 아가들이 자꾸 나를 따라 다닌다냥. 어떻게 해줘라냥."
새끼 토끼들이 자꾸 따라오자 테오가 세준에게 다가가 도움을 요청했다. 지상으로 도망가면 됐지만, 지상에는 테오의 츄르를 노리는 새끼 곰이 있었다.
"새끼 토끼들이 멋진 삼촌을 알아본 거야. 그래서 테 대표를 따라다니는 거지."
"그럼 내가 멋진 삼촌인 것이냥?"
"그렇지."
만만해서 따라다니는 것 같지만, 사실을 말하지는 않았다. 누군가는 새끼를 봐야 했다.
뺘아!
뺘앙!
뺘앗!
그사이 새끼 토끼들이 테오를 또 따라왔다.
"너희들 그런 것이었냥?"
테오가 이번에는 새끼들을 피해 도망가지 않았다.
"자 멋진 삼촌인 나 테 대표를 따라오라냥."
테오가 새끼 토끼들을 데리고 다니기 시작했다.
"그건 지지다냥! 먹으면 안 된다냥."
"이리 오라냥! 불은 위험하다냥!"
의외로 테오는 5마리나 되는 새끼 토끼들을 잘 보살폈다. 테 대표의 직무에 보모가 추가됐다.
그리고 조난 183일 차.
"멋진 삼촌이 돈 많이 벌어오겠다냥!"
뺘아!
뺘앙!
뺘앗!
테오가 새끼 토끼들의 배웅을 받으며 다시 탑을 내려갔다.
33화. 빈자리를 느끼다.
33화. 빈자리를 느끼다.
테오가 38층으로 떠나고 세준과 토끼들은 오전 농사를 끝내고 점심을 먹었다.
토끼 부부들은 새끼 토끼들 때문에 동굴에서 먹고 세준과 자식 토끼들만 새끼 곰과 지상에서 식사를 했다.
꾸엥!
새끼 곰이 피라니아 30마리를 먹어 치우고 아쉬운 얼굴로 세준의 생선구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울었다. 더 먹고 싶어요!
성장이 빠른 만큼 먹는 양도 점점 늘어났다.
"자."
세준이 자신이 먹고 있던 생선구이를 반으로 잘라 새끼 곰에게 건넸다.
꾸엥!
새끼 곰이 고개를 숙이며 생선구이를 받았다. 잘 먹을게요!
왑.
오도독.오도독.
새끼 곰은 생선구이를 입에 넣고 몇 번 씹더니 뼈까지 통째로 씹어 삼켰다.
그리고
꾸엥.
새끼 곰이 이번에는 흑토끼가 먹는 당근을 바라보며 울었다. 형아 나 그거 줘.
하지만
뺙!
흑토끼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당근은 못 줘!
꾸엥...
토라진 새끼 곰이 흑토끼에게서 몸을 돌렸다. 형아 미워...
점심시간이 끝나고
후루룩.
세준은 커피를 마시며 망가진 밭을 걸었다.
어제는 정성들여 만든 밭이 망가지자 기운이 빠져 살펴볼 생각도 못 했지만, 계속 그럴 수는 없는 일. 망가진 밭을 다시 일궈야 했다.
"다행히 다 망가지지는 않았네."
전체적으로는 밭이 망가져서 밭농사를 전부 망친 줄 알았는데 살아 남은 농작물이 제법 있었다.
그렇게 세준이 밭을 둘러보고 있을 때
"어?!"
동굴에서 1km쯤 떨어진 곳에 높이 7m 정도 되는 흙더미가 여러 개 보였다. 뭐지? 이전까지는 없던 것이었다. 세준이 호기심에 흙더미로 다가갔다.
"뭐야?!"
그곳에는 흙더미 옆에 네모반듯한 깊이 7m 정도의 구덩이들이 있었다. 구덩이가 시작되는 곳에 둥근 두 개의 자국으로 봐서는 뿔이 달린 몬스터가 땅을 푹 찍어서 들어버린 것 같았다.
"힘이 얼마나 좋으면..."
세준이 몬스터의 힘에 경악하며 흙더미의 가장 높은 부분을 바라봤다. 끝부분만 색이 달랐다. 검은색이었다.
푹.푹.
세준이 조심스럽게 흙더미에 단검을 박아가며 올라가 검은 흙을 살펴봤다. 지상의 황폐한 토질과는 질감부터 달랐다. 푸석하지 않고, 부드럽고, 수분을 머금어 적당한 점성도 있었다.
딱 봐도 영양이 가득한 흙이었다. 이런 흙이 황폐한 땅 밑에 있었다니. 땅을 뒤집어 섞어줄 수만 있다면...
하지만 포크레인이나 트랙터 같은 농기구가 없는 지금의 상황에서 7m 깊이의 땅을 뒤지는 건 감히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었다.
엄마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에게 부탁하면 매일 조금씩은 가능할 수 있지만, 최근 블루문으로 인해 몬스터들의 영역이 흔들리면서 순찰하기 바쁜 엄마 크림슨 자이언트 베어였다.
세준은 일단 땅 밑에 양질의 흙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그렇게 밭을 둘러보고 점심을 먹은 자리로 돌아오니
뺘로롱.
꾸로롱.
세준을 기다리던 흑토끼와 새끼 곰이 언제 화해를 한 건지 서로를 안고 잠들어 있었다.
"자 일어나자."
세준이 흑토끼와 새끼 곰의 폭신한 엉덩이를 두드리며 잠에서 깨웠다.
뺘악...
꾸엥...
흑토끼와 새끼 곰이 눈을 감은 상태로 몸만 일으켰다.
"얘들아, 이게 뭘까?"
세준이 군고구마 말랭이와 꿀을 꺼내자
뺙!
꾸엥!
둘은 간신히 눈을 뜨며 세준에게 음식을 달라고 졸랐다.
오물오물.
핥핥.
흑토끼와 새끼 곰이 세준에게 받은 간식을 먹으면서 잠에서 깼다.
"얘들아, 일하자."
괜히 간식을 준 게 아니었다.
꾸엥!
잠에서 깬 새끼 곰이 두 앞발을 땅에 푹 넣고 쟁기처럼 뒷걸음치며 가볍게 땅을 갈아엎었고
뺘뱌뱍!
흑토끼가 해머로 땅을 평평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푹.푹.
삽 토끼들이 흙을 퍼서 이랑을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작은 밭이 완성되면 세준이 동굴에 심은 고구마에서 잘라온 고구마 순을 심었다.
[호박고구마밭 10평을 만들었습니다.]
[경험치 20을 획득했습니다.]
고구마순을 다 심은 세준은 밭을 만드는 새끼 곰과 토끼들을 놔두고 동굴로 내려갔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옥수수를 수확할 때. 세준이 밭에서 옥수수를 따기 시작했다.
툭.
옥수수를 꺾자
[잘 익은 체력의 옥수수를 수확했습니다.]
[직업 경험치가 미세하게 상승합니다.]
[수확하기 Lv. 4의 숙련도가 미세하게 상승합니다.]
[숙련도 상승 Lv. 1의 효과로 수확하기 Lv. 4의 숙련도가 5% 추가 상승합니다.]
[경험치 20을 획득했습니다.]
"옥수수는 무슨 효과가 있는지 볼까?"
세준이 옥수수의 옵션을 살펴봤다.
[체력의 옥수수]
탑 안에서 자란 옥수수로 영양을 충분히 섭취해 맛있습니다.
섭취 시 몸 안의 지방 20g을 분해해 10분간 체력을 0.2 상승시킵니다.
한 시간 안에 최대 10개까지 효과가 중복 적용됩니다.
비각성자가 섭취 시 지방 20g을 분해하고 피부 탄력이 좋아집니다.
재배자 : 탑농부 박세준
유통기한 : 60일
등급 : D
"피부 탄력?"
애매하기는 했지만, 아이템에 쓰여있는 내용은 100% 효과를 보장하기에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엄마가 좋아하겠네."
세준은 조만간 다시 한번 가족들에게 자신의 소식을 전하며 이번에는 자신의 농작물도 함께 전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밖에서 자신의 이름으로 농작물이 팔리고 있는데 정작 가족들은 못 먹고 있으니 섭섭해할 수도 있었다.
툭.툭.
세준이 다시 옥수수를 수확했다.
***
탑 38층.
"유랑 상인이 왜 안 오는 거지?"
"태오가 올 때가 지났는데···"
헌터들이 초조하게 테오를 기다렸다. 헌터들은 이번에 마력의 방울토마토를 구해달라는 많은 요청을 받았다.
이번에는 지인들이 아니라 재산이 수천억 원은 가볍게 넘는 거부들의 요청이었다.
탑 밖은 마력의 방울토마토에 대한 소문이 부호들 사이에서 퍼지면서 부호들은 삶의 활력을 주는 방울토마토를 매일 아침 약처럼 먹기 시작했다.
그들은 돈이 넘치는 사람들. 희소하고 좋은 상품은 그들의 관심을 끌었고 현재 지구에서 마력의 방울토마토 1개의 시세는 50만 원 정도까지 올라간 상태였다.
그것도 돈을 더 낼 부호들은 얼마든지 있었지만, 파는 사람이 없어 거래가 없기 때문에 가격이 올라가지 않은 것.
마력의 방울토마토를 가지고 나가기만 하면 구매할 사람은 넘쳐나는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헌터들은 테오가 오기만 하면 돈 낼 준비가 돼 있었다. 하지만 테오가 오지 않았다.
우리가 저번 거래에서 너무 저렴하게 사서 다른 층으로 가버린 건 아닐까?
헌터들은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충분히 돈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테오가 동굴에서 열심히 방울토마토를 따고 파 이파리를 자르느라 늦어지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