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중 웨이브 (3) > 끝
여왕벌은 아직 죽지 않았다.
그렇기에 지금부터 나는 여왕벌이 추락한 곳으로 가서 여왕벌의 숨통을 완전히 끊어놓을 것이다.
'거기다가 조금만 더 여유가 있다면, 그 이상도 가능할 터.'
비록 여왕벌이 아직 살아있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전처럼 지휘를 하고 있지는 못했는지 거대 벌들의 움직임이 둔해졌다.
무려 1급 거충종을 일격에 침묵시킬 정도로 내가 엥켈렌스의 창을 투척해서 얻어낸 성과가 적지 않다는 뜻이었다.
'문제는, 지금 내 앞을 가로 막고 있는 놈들.'
제일 성가시다고 할 수 있었던 여왕벌과 거대 벌들의 공세는 줄어들었지만, 지금 내가 가야할 곳은 여왕벌이 추락한 장소다.
달리 말하자면, 여전히 마수와 마물들이 득실대고 있는 지상 한복판인 셈.
'거기다가··· 저 녀석들도 문제야.'
2급 비행종, 붉은 날개 와이번.
2급 괴암종, 악마상 가고일.
1급 거충종 여왕벌과 더불어서 나를 집요하게 괴롭히고 있는 녀석들이었다.
'우선, 놈들부터 따돌린다.'
나는 호루스의 고삐 겸 뼈 촉수를 강하게 쥐었다.
그것만으로 호루스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았다는 듯이 속도를 높였다.
[케에엑!]
여전히 나를 쫓는 비행종을 비롯한 공중형 마수와 마물의 숫자는 그야말로 어마어마했다.
아니, 오히려 내가 죽인 마수와 마물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고 보는 게 옳았으니 어찌 보면 당연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많은 마수와 마물들은 몇몇 강력한 개체를 뺀다면 내 뒤를 쫓지 못하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여왕벌의 존재로 인해서 호루스의 기동성이 제한될 수밖에 없었으나, 이제는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쐐애애애애액────!!!
격한 소닉붐을 일으키며 날아가는 호루스의 모습은 그야말로 하늘의 지배자나 다름없었다.
'역시 쫓고 있군.'
그렇게 엄청난 속도를 내고 있는 호루스였음에도 불구하고, 뒤에 바짝 따라붙은 마수와 마물들이 몇 마리 있었다.
그중 두 마리는 오늘 유독 자주 마주친 놈들이었다.
2급 비행종, 붉은 날개 와이번.
2급 괴암종, 악마상 가고일.
1급 거충종 여왕벌과 더불어서 현재 나를 쫓고 있는 마수와 마물 중에서 가장 귀찮은 녀석들이었다.
나머지 마수들과 마물들은 나를 쫓고 있기는 했어도 공포탄 특성을 비롯한 이동 속도 차이로 인해서 그 속도가 더뎠지만, 저 두 마리에게는 공포탄 특성도 제대로 발휘되지 않았을뿐더러, 속도도 빨랐기 때문이다.
'이거나 처먹어.'
나는 호루스의 몸에서 돋아난 뼈 촉수를 지지대로 삼아서 그대로 뒤로 누웠다.
손에는 Ark-15 자동소총을 쥔 채로.
철컥-
총구가 거침없이 불꽃을 토했다.
[끼에에에에엑!]
A-985 폭발탄에 눈을 얻어맞은 붉은 날개 와이번이 고통에 찬 괴성을 내질렀다.
추격에 나선 비행종은 분명히 두려운 대상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가 지상에 발을 붙이고 있을 때다.
추격자보다도 더 빠른 속도로 날고 있는 상태에서 추격자의 존재란, 그저 맞추기 쉬운 과녁판에 불과했다.
쾅─!
콰카카캉───!!!
연신 당겨진 방아쇠와 함께, A-985 폭발탄이 붉은 날개 와이번의 얼굴을 그야말로 걸레짝처럼 만들었다.
그 정도 수준이 되자, 붉은 날개 와이번은 더 이상의 추격을 포기하고서 날개를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냥 보내는 게 아깝긴 하지만··· 지금 저걸 따라갈 여력은 없어.'
이제 남은 건 2급 괴암종, 악마상 가고일.
말 그대로 얼굴이 악마 형태로 일그러진 석상이 그려진 가고일이다.
철컥-
놈을 본 나는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콰아아앙!!!
자욱하게 일어나는 연기.
본래였다면 악마상 가고일이 날아드는 속도와 총알의 파괴력이 더해져서 거의 카운터 형식으로 피해가 극대화되었어야만 했다.
그러나 악마상 가고일의 피해는 그다지 크지 않은 듯, 아랑곳하지 않고서 추격을 이어왔다.
[가아아아악!]
놈은 비록 붉은 날개 와이번에 비해서 느린 속도로 나를 추격하고 있었지만, 괴암종 특유의 방어력으로 인해서 A-985 폭발탄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흐음.'
나는 빠르게 탄창을 갈아끼웠다.
철갑탄이었다.
상대의 특성에 따라서 탄을 바꿔서 끼는 건 적절한 공략법이었다.
괴암종을 공략하는 가장 정석적인 방법은, 가장 먼저 저 두터운 외갑을 부수는 것이다.
2급 괴암종 악마상 가고일에 대한 공략법 역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타아앙───!!!
철갑탄이 궤적을 그렸다.
그러나 초탄은 너무나도 허무할 정도로 쉽게 악마상 가고일의 외피에 맞고 그대로 튕겨 나갔다.
벌써 두 번째였다.
'역시.'
새삼스레 놀랄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예상했던 일이었으니까.
철컥─
나는 재차 방아쇠를 당겼다.
한 발, 두 발, 세 발······.
연신 철갑탄이 악마상 가고일의 미간을 두드리자, 여태껏 끄떡도 하지 않았던 악마상 가고일의 미간에 작은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쩌적, 쩌저적─
단순히 같은 곳을 공격해서가 아니었다.
칼날 탄환 특성.
상대의 방어력을 깎는 이 특성과, 철갑탄의 돌파력이 합쳐져서 만들어낸 효과였다.
[가각, 가가각!]
그제야 자신에게 일어난 이상을 눈치챘는지, 악마상 가고일의 움직임이 바빠졌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방아쇠는 진즉 당겨졌으니까.
쐐애애애액───!!!
마지막으로 쏘아진 철갑탄이 악마상 가고일의 미간을 꿰뚫으며, 그 견고하던 갑옷에 일어나던 균열이 폭발했다.
[가가가가각!!!]
비산하는 돌 파편들.
악마상 가고일의 추격은 거기에서 끝이날 수밖에 없었다.
아쉽게도 악마상 가고일을 죽이지는 못했지만, 어차피 지금 내 목적은 악마상 가고일이 아니었기에 큰 상관은 없었다.
'어차피 나중에 가면 결국 다시 만날 테니까.'
이는 붉은 날개 와이번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호루스의 고삐를 재촉했다.
이제, 목적지가 머지않았다.
'저기다.'
그 사실을 증명하듯이 지상에서 유독 마수와 마물들을 비롯한 거대 벌들이 모여 있는 곳이 보였다.
덜컥─
나는 호루스의 등 위의 한 곳에 치워두었던 TITAN-17 대마수 로켓을 다잡았다.
TITAN-17 대마수 로켓은 공중에서 회피 기동을 하는 비행종을 비롯한 마수들에게는 맞추기 어렵지만, 지상에 있는 상대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아주 좋은 과녁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짤깍-
TITAN-17 대마수 로켓의 방아쇠가 당겨지고,
피우우우우웅───!!!
마수를 섬멸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대마수 로켓이 바람을 가르며 뻗어 나갔다.
콰아아아앙──!!!
밀집한 마수의 숫자가 숫자인 터라 폭발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거대 벌들의 거대하고 단단한 외갑이 폭발을 억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짤깍-
처음부터 고작 한 발만 쏠 생각 따위는 없었으니까.
피우우우우웅───!!!
피우우웅-!
연신 당겨진 방아쇠와 함께 지상으로의 폭격이 시작됐다.
[삐익, 삐이이익!]
뒤늦게 여왕벌의 신호가 들려왔으나, 이미 여왕벌의 명령을 들어야 할 거대 벌들은 폭발에 휘말린 뒤였다.
[삐이이······.]
지금껏 거대 벌들의 보호를 받고 있던 여왕벌은 이제 상처 입고, 불에 그을린 채로 나를 마주하게 되었다.
잘난 듯이 하늘을 날던 날개 역시도 진작 모두 타버린 지 오래였다.
"오랜만이다."
나는 손에 들려 있던 TITAN-17 대마수 로켓을 다시금 다잡았다.
여전히 여왕벌의 숨통은 끊어지지 않았다.
이제, 악연을 끝낼 때다.
콰아아아아아앙───!!!
거대하게 일어난 폭발.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연기.
나는 그 속에서 호루스를 몰고서 마침내 지상까지 단번에 날았다.
[삐이이이익······.]
이윽고 드러난 여왕벌의 전신은 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아무리 1급 거충종이라고 해도, 이미 큰 상처를 입은 채로 이런 폭격을 당하고서 무사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아직도 숨통이 붙어있는 게 놀랍지만.'
이러니 저러니 해도 1급 거충종은 1급 거충종이라는 이야기였다.
"끝이다."
여왕벌의 숨통을 끊기에 앞서, 나는 주위에서 달려드는 마수와 마물들을 처리할 필요성을 느꼈다.
"받아!"
나는 그대로 여왕벌이 있는 곳을 향해서 호루스의 등 위에서 뛰어내렸다.
절대 낮지 않은 높이였지만 큰 상관 없었다.
나에게는 아주 훌륭한 조력자들이 있었으니까.
[받아?]
[받아. 받아. 받아. 받아. 받아. 받아. 받아. 받아. 받아. 받아. 받아. 받아. 받아. 받아. 받아. 받아. 받아. 받아. 받아. 받아. 받아······.]
[잡았, 다.]
에테르들이 떨어지는 내 속도를 붙잡고서 늦췄다.
만약 그대로 추락했다면 아무리 야누스가 있다고 하더라도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겠지만, 에테르 덕분에 그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삐이이······.]
마침내 지상에 도착하자, 여왕벌이 나를 마주 보았다.
공격할 힘도, 의지도 잃어버린 여왕벌은 그저 나를 향해 낮게 울뿐, 그 이상으로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 순간.
[키에에에에!]
[삐이이이익!!!]
어느새 다다른 마수와 마물들이 나를 향해서 덮쳐왔다.
여전히 이곳은 마수 군단의 한복판이었다.
'일단, 주변에 있는 것들부터 치워야겠지.'
방법은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그건 이미 내가 한 차례 써먹었던 방법이기도 했다.
['엥켈렌스의 영역'을 선포합니다!]
[현재 지속 가능한 시간 : 33분 4초.]
그와 함께 나를 향해서 달려들던 마수 군단의 움직임이 멎었다.
자신들보다 까마득히 압도적인 포식자를 마주한 것처럼 굳어버린 것이다.
물론 내가 실제로 그러한 포식자는 아니었기에, 나는 여왕벌에게 최후의 일격을 가하기 위해서 내가 지닌 무기 중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를 뽑아들었다.
['엥켈렌스의 창'을 소환합니다!]
['엥켈렌스의 창' 소환 가능 시간 : 24분 4초.]
길게 뽑혀나온 칠흑의 창.
나는 그것을 무방비가 된 여왕벌을 향해서 거침없이 뻗었다.
[삐에에에────!]
단말마의 비명.
사방으로 튀는 피.
그게, 끝이었다.
[1급 거충종, 여왕벌을 처치하였습니다.]
[1급 거충종, 여왕벌에 대한 피해량이 0.05% 증가합니다.]
"후아······."
과연 1급 거충종답게 보통이 아닌 상대였다.
만약 내가 지닌 것들 중에서 그 어느 것 하나라도 없었다면 절대로 사냥할 수 없었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쉬고 있을 틈은 없었다.
엥켈렌스의 영역이 유지되고 있는 동안 마수를 죽인 탓에 엥켈렌스의 영역 효과가 풀린 것이다.
[키에에에에에!]
[삐이이이이!]
여왕을 잃은 거대 벌들을 비롯한 지상의 마수와 마물들이 나를 향해서 다시금 달려들었다.
내가 엥켈렌스의 영역을 유지한 채로 마수를 사냥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했다.
"호루스!"
[키에에에에!]
내 부름과 함께 호루스가 나를 향해서 뼈 촉수를 뻗고, 그와 더불어서 여왕벌의 시체 역시도 낚아챘다.
만약 살아있는 여왕벌이었다면 호루스가 들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컸을 테지만, 지금의 여왕벌은 이미 죽은 데다가 폭격에 노출되며 신체의 일부를 잃었기에 가능했다.
마침내, 1급 거충종 여왕벌의 시체를 손에 넣은 것이다.
[···이걸 진짜로 하네.]
이를 지켜보고 있던 에스더는 그제야 한숨 놓았다는 듯이 말했다.
비록 여왕벌의 시체를 들고 있는 터라 호루스의 속도가 많이 느려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쫓을 수 있는 마수는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속도는 따라올 수 있어도 그럴 때마다 족족 Ark-15 대물 저격총의 총알이 날개를 불태웠다.
'대충 위기는 넘겼나.'
간신히 한숨을 돌린 나는 곧장 여왕벌의 시체로 시선을 옮겼다.
아무래도 여왕벌의 시체가 작은 게 아니었다 보니, 빠르게 처리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야누스, 호루스."
내 부름과 함께 야누스와 호루스에게서 뼈 촉수가 뻗어 나왔다.
아무래도 혼자서 여왕벌을 모두 먹어치우는 건 효율상 좋지 않았으니, 둘이서 나눠 먹는 게 여러모로 좋았다.
"먹어치워."
[키이이잇!]
[기깃!]
오랜만의 식사 명령이 떨어지자, 야누스와 호루스에게서 뻗어 나온 뼈 촉수가 여왕벌이 몸에 꽂혔다.
푹!
푸푹!
그 이제 남은 건 여왕벌을 먹어치우는 것뿐이었다.
쪼옥, 쪼옥─
마수들과의 공중 추격전이 이어지는 와중에도 야누스와 호루스는 뼈 촉수를 멈추지 않았다.
쯔으으으윽───!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키잇, 키이이잇······.]
[끼깃, 끼기기기기긱!]
야누스와 호루스의 몸이 부르르 떨리기 시작하더니, 거의 동시에 괴성이 울려 퍼졌다.
< 다중 웨이브 (4) > 끝
야누스와 호루스의 포효가 마치 공명처럼 울려 퍼졌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서서히 야누스와 호루스의 상태가 진정되기 시작했다.
1급 거충종, 여왕벌의 힘을 온전히 흡수했다는 뜻이었다.
예전이었다면 무려 1급 거충종의 힘을 온전히 흡수할 수는 없었겠지만, 이제 호루스나 야누스나 모두 엄청난 성장을 이룬 상태였기에 충분히 가능했다.
[1급 거충종, 여왕벌을 흡수하였습니다!]
[1급 거충종, 여왕벌의 능력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엥켈렌스의 송곳니 흡수율이 30%를 돌파하여, 새로운 능력을 획득합니다.]
['엥켈렌스의 포효'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여왕벌의 능력이야 예상했었지만, 엥켈렌스의 새로운 능력이라······.
나는 곧장 야누스의 정보를 확인했다.
──────────────
[뼈 갑옷(Lv.5)] [야누스] [★★★★★★★★★★(10성)]
아크의 장교용 기본 방호복(Lv.5)의 에너지원에 가축화시킨 뼈 기생체를 연결한 방어구.
아누스의 이름을 부여받았다.
현재 엥켈렌스의 송곳니 흡수율 : 33.2%
'엥켈렌스의 포효'를 사용할 수 있다.
1급 거충종, 여왕벌의 피와 살을 흡수했다.
여왕벌의 능력을 사용할 수 있다.
"상세 보기"
──────────────
'역시······.'
비록 뼈 갑옷의 등급 자체가 오르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생긴 변화가 작은 건 아니었다.
무려 1급 거충종 여왕벌의 능력과, 엥켈렌스의 능력 중 한 가지를 더 얻은 것이다.
'엥켈렌스의 포효라··· 역시 그걸 말하는 거겠지.'
엥켈렌스의 포효에는 살아있는 모든 존재를 짓누르는 힘이 있다.
모르긴 몰라도, 지금 야누스가 얻은 능력 역시도 그것과 유사한 능력일 터.
'온전히 같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낫겠지.'
거기에 더해서 1급 거충종, 여왕벌을 흡수하면서 얻어낸 능력에도 흥미가 갔다.
이 부분 같은 경우에는 야누스뿐만 아니라 호루스 같은 경우도 같은 능력을 얻었을 게 분명했기에, 더욱더 그러했다.
'마침 지금 실험하기 딱 좋아.'
나는 조용히 정신을 집중했다.
그리고 야누스에게 의사를 전달하자, 곧이어서 호루스 역시도 내 뜻을 알아들었다.
['음파 교란'이 발동합니다.]
그와 함께 야누스와 호루스에게서 거의 동시에 괴성이 터져나왔다.
[삐이이────────]
[삐이익────────!!]
[뭐, 뭐가 이리 시끄러워?]
귀를 찢는 듯한 음파.
무려 1급 유령종 출신인 에스더가 예민하게 반응할 정도로, 단순한 포효가 아니었다.
'이건······.'
나는 이 소리를 알고 있었다.
다름이 아니라, 바로 얼마 전까지 지긋지긋할 정도로 들었던 소리였으니까.
'여왕벌의 울음 소리.'
그 사실을 증명하듯이 지금까지 여왕을 잃고서 우왕좌왕하고 있던 거대 벌들의 움직임이 변했다.
다만, 예전처럼 우리를 포위하는 진형을 짜는 움직임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지.
위이이이잉······.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한 거대 벌들이 갑작스럽게 뒤로 돌았다.
그리고는 일 말의 망설임도 없이 같은 마수와 마물들을 향해서 독침을 드러냈다.
[삐이이이이·········!]
푹!
푸푸푹!
[케에에에에에!]
마수 군단 사이에서 내분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카아아아아악!]
푹! 푹!
위이이이이잉!!
순식간에 혼란에 빠진 마수 무리.
그야말로 자중지란이 따로없었다.
'흐음······.'
처음에는 거대 벌들이 기습으로 우위를 점하는 듯했으나, 그것도 얼마가지 못했다.
거대 벌에 해당하는 마수와 그렇지 않은 마수 및 마물들의 숫자 차이는 굳이 말로 설명할 필요도 없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음파 교란이라··· 대충 이런 능력인가.'
아마 여왕벌이 지니고 있었던 음파를 통한 지휘에서 비롯된 능력인 듯했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교란에 불과한 만큼, 실제로 거대 벌들을 내 뜻대로 조종하거나 하는 건 아닌 듯했다.
아닌 게 아니라, 거대 벌들의 공격 대상에는 내가 타고 있는 호루스 역시도 제외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삐이이이익!]
[키이이익!]
1급 거충종의 힘을 흡수한 덕분인지, 호루스의 움직임이 한껏 빨라졌다.
얻은 건 단순히 여왕벌이 지니고 있던 능력뿐만이 아니라는 뜻이기도 했다.
'아예 조종하는 능력이었다면 좋았겠지만··· 이것만으로도 충분하겠지.'
물론 내 생각이 맞는다면 이것도 무적의 능력은 아니었다.
애초에 능력 자체가 조종이 아닌 교란인 만큼, 같은 여왕벌 개체이자 네임드 개체인 여왕 피켈라 같은 녀석이 나타난다면 교란 자체가 통하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뭐, 지금 걱정할 건 아니지.'
나는 전선을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기습으로 우위를 점했던 거대 벌들은 압도적인 수의 불리함으로 점차 줄어들어갔다.
이대로라면 이번에 얻은 능력인 음파 교란 자체가 쓸모없는 능력이 될 판이었기에, 나는 저 상황을 막을 필요성을 느꼈다.
'마침 적당한 게 있지.'
이 모든 상황을 단번에 종식시킬 수 있는 능력.
엥켈렌스의 송곳니 흡수율이 30%를 돌파하며 야누스가 얻은 또 다른 능력.
"야누스."
[기깃!]
지금까지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던 야누스의 뼈 촉수들이 곤두섰다.
조금씩, 조금씩.
뼈 촉수들이 마치 공명하듯이 부르르 떨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거대한 울림으로 변했다.
['엥켈렌스의 포효'가 발동합니다.]
그와 함께 쏘아진 거대한 포효.
[크오오오오오오────!!!]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진 거대한 포효와 함께 이 일대에 있는 모든 마수들의 움직임이 멎었다.
마치 엥켈렌스의 영역을 선포했을 때와 비슷한 효과였으나, 지금 일어난 포효의 효과는 그 이상이었다.
'흠.'
신기하게도 그토록 거대한 포효를 내질렀음에도 불구하고, 착용자인 나에게는 그다지 영향이 오지 않았다.
하지만 마수 군단은 달랐다.
[끽, 끼기긱!]
[크우, 크우우!]
[캬오오오!]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포식자를 마주한 짐승의 모습은 무엇인가.
지금 마수 군단의 모습에서는 영락없이 그 모습이 흘러나왔다.
물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마수 군단은 간신히 정신을 차렸는지 다시금 흉성을 토해냈다.
어차피 나로서는 이 정도로도 충분했다.
그 덕분에 지금까지 서로 싸우고 있던 거대 벌들은 물론이고 마수들 역시도 어느덧 싸움을 멈췄기 때문이었다.
'과연······.'
엥켈렌스의 포효는 엥켈렌스의 영역 선포와 얼핏 보면 비슷한 효과를 지닌 것처럼 보였지만, 그 쓰임새가 달랐다.
엥켈렌스의 영역 선포가 일종의 안전지대를 만드는 능력이라면, 엥켈렌스의 포효는 마수들의 전의를 꺾는 일종의 광역 디버프 능력인 셈이었다.
'어그로 초기화는 덤이고.'
어쨌거나 소기의 목적을 마친 나는 그대로 호루스의 기수를 돌렸다.
아무래도 이 이상 이곳에 남아 있어봤자 더 할 수 있는 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만 돌아가지."
[드디어 가는 거예요?]
"그래."
[웬일이에요? 여기 있는 마수들 전부 다 쓸어버리기 전에는 안 돌아간다고 바득바득 우길 줄 알았는데.]
"슬슬 한계다."
[에엥? 주인님 같은 괴물이 한계는 무슨─]
에스더의 말이 멈췄다.
아마, 오랜만에 내 이마에서 흐르는 땀방울을 봐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진짜였어요?]
거짓말이 아니었다.
실제로 나는 체력적으로 거의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비록 야누스나 호루스는 조금 전에 영양분을 섭취하며 회복했다지만, 나는 아니었다.
애초에 1급 거충종 여왕벌을 일격에 침묵시킬 정도의 큰 공격을 하고서 지금까지 움직인 것만 해도 기적이었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더 빨리 아크에 이 소식을 알려야 해.'
처음부터 혼자서 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않았다.
내 역할은 어디까지나 아크의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것.
이미 1급 거충종 여왕벌을 죽인 것을 비롯한 2급 비행종 붉은 날개 와이번과 2급 괴암종 악마상 가고일에게 큰 피해를 입혔으니, 당장 내가 해야 할 일은 거진 다 한 셈이었다.
'거기다가, 마수들의 숫자 역시도 꽤 많이 줄였지.'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전체적인 숫자에 비하면 그야말로 새 발의 피에 불과한 숫자였지만, 그런 숫자들이 모여서 결국 성과와 결과를 만들어내는 법이었다.
"가자."
호루스가 날개를 활짝폈다.
돌아갈 때가 됐다.
*
엥켈렌스의 포효 덕분일까.
우리를 뒤쫓는 마수와 마물들을 따돌리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일정 거리까지는 따라오다가 마수들이 먼저 포기하고 돌아갔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아직 본격적인 웨이브가 시작될 때가 아니라는 거겠지.'
대체 무엇이 저토록 많은 마수와 마물들의 의지를 웨이브라는 한 가지 현상에 강제하는 걸까?
이에 대해서는 유저 커뮤니티 사이에서도 여러 추측이 있었지만, 아직 명확히 밝혀진 바가 없었다.
정확히는, 그렇게까지 깊이 있게 관심을 가지고 있던 이가 드물었다.
어쨌거나 더 디펜스는 디펜스류의 게임이었고, 그런 류의 게임에서 게임의 본질인 웨이브에 대해서 의구심을 가지는 것 자체가 이상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아니지만.'
이렇게 직접 이 빌어먹을 세계에서 웨이브를 마주하고 있으니, 이 불합리함에 대해서 의구심이 안 드려야 안들 수가 없었다.
[다 왔어요!]
애석하게도 내 생각은 에스더의 목소리와 함께 끝날 수밖에 없었다.
"······."
[왜요? 불만 있으면 지성인답게 말로 해요. 괜히 총부터 꺼내지 말고.]
"···아무것도 아니다."
영산 노아에 도착한 나는 곧장 호루스를 내버려 둔 채로 발걸음을 옮겼다.
곧 찾아올 웨이브에 대한 사실을 아크에 알려야 했기 때문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아크까지 호루스를 타고서 이동하고 싶었지만, 당연히 안될 일이었기에 나는 편한 이동 수단을 내버려두고 다시금 도보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 내 상태가 엄청나게 피곤하다는 걸 생각한다면 썩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그나마 돌아오면서 잠깐 쉬어서 다행인가.'
호루스의 등 위는 결코 편안하다고 볼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접 몸으로 뛰는 것보다는 백배 천배 나았다.
[걷는 꼴이 좀비가 따로 없네. 마음 같아서는 도와주고 싶은데, 아쉽게도 저도 힘이 거의 다 빠져서요. 유감유감.]
"전혀 유감스러운 목소리가 아니군."
[아, 그랬어요? 그것도 유감스럽네요.]
"그것도."
그렇게 에스더와 의미없는 실랑이를 하면서 걷다 보니, 어느덧 레드 라인의 게이트가 보였다.
내가 향한 곳은 Red-17 게이트였다.
아무래도 이런 소식을 전하려면 아는 얼굴을 통하는 게 여러모로 편했으니 말이다.
[신원 확인되었습니다.]
Red-17 게이트를 통과한 나는 곧장 이모샤 중위를 호출했다.
무려 게이트 관리자씩이나 되는 인물이었지만, 내 부름에 이모샤 중위는 한달음에 달려왔다.
"돌아오셨군요."
어째 조금은 기뻐보이기까지 한 모습이었으나, 애석하게도 일일이 그런 것에는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다.
"곧 웨이브가 올 거다."
"예, 그렇군요."
놀라운 소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모샤 중위는 표정 하나 바뀌지 않았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웨이브란, 아크를 지키는 게이트 관리자에게 있어서 일상이나 다름없는 것이었으니까.
"곧 그럴 만한 시기가 되었으니, 이미 아크에서도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던 차입니다."
다만, 이모샤 중위가 착각하고 있는 게 있었다.
"평소와 같은 웨이브가 아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시간이 흐를수록 웨이브가 강해진다는 사실은 알고 있을 거다."
"물론입니다. 그래서 아크에서도 군 증강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비록 잘 되고 있지는 않지만요."
"하지만, 이번에는 차원이 다르다. 평소처럼 조금 강해진 수준이 아니다."
그제야 이모샤 중위는 내 이야기가 무언가 다르다는 걸 알아차렸는지, 진중한 태도로 바뀌었다.
"···다르다 하시면?"
"평소의 두 배 이상의 웨이브가 들이닥칠 거다. 대비하지 않으면 아크는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을 거다."
"그런··· 확실한 정보입니까?"
"내가 어디서 왔다고 생각하나?"
이모샤 중위는 그대로 할 말을 잃었는지 입을 닫았다.
"대체 갑자기 왜······."
"원인은 모른다. 우리가 해야 할 건, 이미 일어난 현상에 대해서 대응하는 것뿐이다."
엄연히 말하면 다중 웨이브는 내가 만들어낸 나비 효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이었지만, 굳이 거기까지는 말할 필요는 없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바놀 중령님께 보고 드리고 오겠습니다."
"아니. 나는 시간이 없다. 이대로 돌아갈 테니, 내가 말한 사실만 아크에 전달해라."
"···알겠습니다."
이모샤 중위와의 대화가 끝난 나는 곧장 발걸음을 옮겼다.
본격적인 웨이브가 머지않았다.
< 다중 웨이브 (5) > 끝
이제까지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막대한 군세를 상대하기 위해서 필요한 건 무엇인가.
많은 요소가 있겠지만, 나는 그중에서 일단 휴식을 택했다.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잘 거다."
[네?]
가벼운 온천욕을 마친 나는 그대로 은신처 안에 있는 텐트 속에서 자리를 깔고 누웠다.
곧 다가올 웨이브를 생각한다면 지나칠 정도로 태평할 수도 있는 모습이었으나, 모르는 소리였다.
이제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전쟁을 앞둔 만큼 쉴 수 있을 때 확실하게 쉬어 두어야만 했다.
"이만 잔다."
[아니이······.]
에스더가 무어라 말했으나, 나에게 있어서 에테르가 잠을 설치게 만드는 일은 이미 일상이었기에 이젠 자장가처럼 들릴뿐이었다.
하지만 그토록 피곤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랜 불면증 탓인지 쉽게 잠은 오지 않았다.
아마 이런저런 생각들로 머릿속이 복잡해서 일 것이다.
'아크, 그림자단, 웨이브, 모트교, 크로노스 연합······.'
아크에는 적이 많다.
그리고 그건 곧 나의 적이기도 했다.
거기에 아크 내부의 적은 또 어떤가?
'비록 지금은 잠잠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심해질 터.'
단순히 그림자단의 간계에 의한 것뿐만 아니라, 애초에 아크라는 장소 자체가 라인 간 갈등이 없으려야 없을 수가 없는 구조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라인 통합이 정답이라는 것도 아니지.'
나는 이미 라인 통합의 결말이 어떤지는 그림자단 루트를 통해서 질릴 정도로 보아왔다.
내전, 죽음, 멸망.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 빌어먹을 세계에서 아크를 지켜낼 수 있는가?
답은 알 수 없었다.
애초에 정답을 찾은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앞으로 있을 일을 생각한다면 지금 닥쳐온 다중 웨이브 정도는 오히려 애교일 지도 모른다.
'···모르겠다.'
누운 자리에서 생각해봤자 당연히 결론은 내려지지 않았다.
머릿속에서 지난 날 해왔던 더 디펜스의 나날들이 스쳐 지나갔다.
무수히 많은 루트들.
그러나 그 어느 루트 중에서도 칼 마커스의 이름은 찾을 수 없었다.
'칼 마커스는 누구지?'
나는 누구인가.
이 세계에 온 뒤로 처음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칼 마커스인가?
아니면 다른 누군가인가?
그것도 아니면······.
"······."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는 답에 대한 문제를 뒤로한 채로, 서서히 의식이 멀어졌다.
어둠이 나를 마주했다.
*
[일어나······.]
목소리가 들린다.
누구의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어째서인지는 몰라도 묘하게 익숙하게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일어나······.]
두 번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알았다.
이건 꿈이다.
하지만 어째서인지는 몰라도 묘하게 실감이 나는 꿈이었다.
[일어나······.]
세 번째로 들려온 목소리에 나는 슬슬 의구심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누구지?
분명히 모르는 목소리인데, 익숙하게 느껴졌다.
이상한 일이었다.
[일어나······.]
참 이상한 꿈이었다.
아마 개꿈이라는 게 이런 거겠지.
[일어나······.]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점차 선명해졌다.
[일어나······.]
다가오고 있다.
내가 그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희끗한 무언가가 내 주변에 온통 넘실대고 있었다.
이게 뭐지?
마치 망망대해에 혼자 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정도로 내 주변에 넘실대고 있는 무언가는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했다.
[칼··· 마커스······.]
지금의 느낌은 평범한 꿈과는 분명히 달랐다.
아주 지독한 악몽.
혹은 다른 무언가.
[나를 찾아.]
흐릿하게만 느껴졌던 목소리가 선명하게 울려퍼지며,
거대한 빛이 번뜩였다.
*
쏟아지는 빛과 함께 눈이 떠졌다.
가장 먼저 보인 건 나를 내려다 보는 에스더의 얼굴이었다.
[흠, 흠흠······.]
내가 눈을 뜨자, 마치 들켜서는 안 될 걸 들킨 것처럼 에스더가 헛기침을 했다.
그럴 필요가 없는 데도 참으로 인간 같은 반응이 아닐 수 없었다.
[일어났어요?]
"···나를 불렀나?"
[네? 어······ 그러긴 했죠. 하도 안 일어나서 직접 깨운 거고.]
"왜?"
[혹시 죽었나 해서요.]
"무슨."
나는 몸을 일으켰다.
그냥 잤을 뿐인데 죽은 줄 알았다니··· 어처구니가 없는 이유였다.
[아뇨, 진짜로 하루 동안 꼼짝도 안 하는 거 보고 그냥 죽은 줄 알았다니까요?]
"하루라고?"
[네, 정확히는 25시간 정도 지났어요.]
"내가 그렇게 오래 잤다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세계에 온 뒤로, 나는 약초의 힘을 빌어서 자도 이 정도로 푹 잔 적이 없다.
그만큼 내 몸에 드리운 불면증을 비롯한 온갖 패널티가 보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25시간을 꼬박 잤다고?'
어제 있었던 격전이 아무리 피곤했어도 그렇지······.
'···아니, 이 정도 전투는 이전에도 얼마든지 해왔어. 이해할 수 없어.'
하지만 25시간을 꼬박 잤다는 말은 사실이었는지, 늘 무겁던 머리가 놀라울 정도로 가볍게 느껴졌다.
단순히 머리뿐만이 아니라, 몸 전체에 이제껏 느끼지 못했던 활력이 느껴졌다.
그렇게 내가 의아함 속에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을 때.
[위대한 영혼의 목소리를 경청하였습니다!]
[에테르 감응력이 크게 상승합니다!]
[25 -> 28]
'······위대한 영혼의 목소리라고?'
여기에 대해서 짐작가는 건 하나뿐이었다.
간밤에 꾸었던 정체를 알 수 없는 묘한 꿈.
그것은 악몽 같기도 했고, 혹은 아무런 의미없는 개꿈 같기도 했다.
'그냥 꿈이 아니었다는 건가?'
위대한 영혼에 대해서 내가 아는 건 그다지 없지만, 한 가지 아는 건 있었다.
'쿠릴타는 칼 마커스에 대해서 위대한 영혼의 후예라고 말했다.'
단순히 쿠릴타의 말뿐만이 아니라, 오래전에 칼 마커스의 정보에 대해서 볼 때도 그와 비슷한 문구를 본 적이 있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는 몰라도··· 중요한 건 이제 곧 에테르가 레벨 4가 머지않았다는 점인가.'
의문은 여전히 많았지만, 당장 알 수 있는 건 없었기에 나는 이번에 생긴 변화에 주목했다.
에테르 감응력이 31 이상이 되면, 비로소 레벨 4로 분류되는 에테르 적합자가 된다.
물론 엄밀히 따지면 현재 내 에테르 감응력은 현재의 28 수치와 더불어서 영웅의 길 특성과 강화 혈청 효과로 인한 16이 더해져서 무려 44에 달한다.
단순 수치로만 보면 레벨 4가 아니라 레벨 5에 다다르는 것이다.
하지만 강화 혈청을 비롯한 보조 효과는 어디까지나 능력치의 크기만을 키울 뿐, 본질적인 수치를 올려주지는 않는다.
말하자면, 엔진은 그대로인데 출력만 높아지는 셈이다.
이는 비단 에테르 감응력뿐만이 아니라 모든 능력치에게 공통된 사항이었다.
'물론 그래도 소용이 없는 건 아니지만.'
만일 순수한 에테르 감응력 40에 달하는 자와, 이런저런 강화 효과를 받아서 40에 다다른 자가 맞선다면 분명히 순수한 에테르 감응력 40의 인물이 조금이나마 더 우세할 것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힘의 크기 자체는 비슷하므로, 그 차이는 절대로 크지 않다.
강화 혈청이든, 영웅의 길 특성이든 무엇이든지 간에 일단 능력치가 높으면 높을수록 좋다는 이야기다.
'뭐가 어떻든지 간에··· 일단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면 되겠지.'
칼 마커스에 대해서 의문점은 여전히 많았다.
하지만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움직이려고요? 괜찮아요?]
"그래."
[그렇게 무리하지 않아도, 이번에는 그냥 아크에 맡겨도─]
"아니."
내가 말을 끊자, 에스더는 입술을 비쭉 내밀어 툴툴댔다.
특유의 외모 때문인지 어째 그 모습이 묘하게 귀엽게 느껴졌으나, 나는 그대로 시선을 돌렸다.
"호루스."
[키잇!]
나는 호루스의 등에 올라탔다.
하루를 꼬박 잠들어 있었으니, 슬슬 다시금 활동에 나서도 될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그 사지를 또 가려고요?]
"아니. 이번에는 다르다."
[뭐가 달라요?]
"이번에는 내가 가는 게 아니니까."
[···네?]
그제야 에스더는 무언가 이상한 점을 눈치챘는지, 내 시선이 향한 곳을 바라보았다.
지평선 너머의 하늘에서 몰려오는 무수한 점들.
얼핏 보면 철새 떼가 이동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문제는 지금 오고 있는 것들의 크기가 단순히 철새 수준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마침이라고 해야 할지······.'
내가 깨어나기 무섭게 본격적으로 웨이브가 태동하기 시작했다.
아니, 어쩌면 웨이브가 오고 있기에 깨어난 건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으, 으으······.]
[오고 있어. 오고 있어. 오고 있어. 오고 있어. 오고 있어. 오고 있어. 오고 있어. 오고 있어. 오고 있어. 오고 있어. 오고 있어. 오고 있어. 오고 있어. 오고 있어.]
[다, 죽여.]
곧이어서 전운을 느낀 에테르 역시도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점점 내가 품은 에테르 중에서 호전성이 높은 녀석들이 섞이기 시작했다는 게, 지금까지와는 다른 점일 것이다.
까맣게 물들기 시작한 하늘을 시작으로, 곧이어서 지평선 너머에서도 마수 군단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다중 웨이브가 일어난다는 건, 곧 한 가지 사실을 의미했다.
'최소 두 개분의 웨이브 병력들이 확보가 되었다는 거겠지.'
물론 내가 나서면서 그 숫자는 꽤 줄어들었겠지만, 어찌 되었든지 간에 지금까지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규모인 건 확실했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웨이브가 일어나기 시작하자, 아크에서도 전쟁 준비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내가 이모샤 중위에게 전달한 내용이 소용이 있었던 건지, 멀리서 보이는 풍경이긴 했어도 이전보다도 훨씬 더 견고한 방비를 한 듯했다.
그 순간.
[아크에 매우 중요하고 유의미한 정보를 전달하였습니다.]
[명예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1 -> 2]
['영웅의 길' 특성 효과로, 모든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1) -> (+2)]
'호오······.'
아무래도 명예 능력치 상승은, 내가 전달한 정보가 사실로 판명된 이후에 적용된 듯했다.
'만약 내 정보가 거짓이었다면 반대로 명예가 깎여나갔겠지.'
그러나 웬만하면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나는 아크의 편이었으니까.
호루스에 탄 나는 고삐 겸한 뼈 촉수를 쥐었다.
이번에 나는 아크 안이나 영산 노아에서 싸우지 않고, 직접 나서서 싸울 생각이었다.
'이미 어느 정도 준비는 해두었다.'
1급 거충종 여왕벌은 죽었고, 2급 비행종 붉은 날개 와이번과 2급 괴암종 악마상 가고일은 큰 상처를 입었다.
아무리 새로운 마수와 마물들이 합류했다고는 해도, 호루스를 타고서 하늘을 누비는 나를 위협할 상대는 많지 않다는 뜻이었다.
'설사 합류했다 하더라도··· 놈들의 시선을 내가 끌게 되면 그만큼 아크의 전선이 유리해진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충분히 위험을 무릅쓸 가치가 있다는 뜻이었다.
[키에에엑!]
호루스가 본격적으로 날개를 펼쳤다.
마수 군단이 다가오고 있는 이상, 나도 여기에서 이러고 있을 틈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크의 대공망 밖으로 돌아서 가야해.'
[키엣!]
지금은 평시와는 다르게 아크의 대공망 감시가 활성화된 상태다.
아무리 영산 노아라고는 해도, 만약을 대비해서 돌아서 나갈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호루스의 속도로는 조금 돌아나간다고 해서 시간이 크게 지체된다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마수 군단이 아크의 공격 범위에 도달하기 전에, 호루스와 나는 마수 군단이 있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진짜 더럽게 많네.]
에스더가 질렸다는 듯이 말했다.
동감하는 바였다.
[캬오오오오─!]
[크우우우우!]
창공 위에서 마수 군단을 내려다보니 징그러운 벌레 떼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실제로 거충종들이 다수 섞여 있었으니, 꼭 틀린 말도 아니겠지만 말이다.
'일단, 광역 디버프부터 걸어볼까.'
모름지기 본격적인 전투 전에 상대의 사기를 한껏 깎아놓을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
"야누스!"
그와 함께 야누스의 뼈 촉수들이 부르르 떨렸다.
['엥켈렌스의 포효'가 발동합니다!]
뼈 촉수들이 공명하며,
이내 거대한 울림을 만들었다.
[그오오오오오오────!!!!]
엥켈렌스로부터 비롯된 거대한 포효가, 이번 전쟁의 시작을 알렸다.
< 다중 웨이브 (6) > 끝
엥켈렌스의 포효가 울려 퍼지며, 하늘과 땅을 가득 메운 마수와 마물들의 움직임이 잠시 멈췄다.
삐이이──────────
세상이 고요하다.
들리는 건 귀에서 들리는 이명뿐.
마치 세상이 멈춘 듯한 착각에 빠질 것 같은 압도적인 광경이었다.
이런 일이 가능한 건가?
절로 그런 생각이 들었으나, 지금 눈앞에 일어난 일은 명백한 현실이었다.
[그우우우······.]
[캬오오오!]
물론 그 침묵은 그다지 오래 가지 않았다.
엥켈렌스의 포효로 인해서 그 기세는 꽤 많이 누그러들었지만, 마수와 마물들은 이내 정신을 차리고서 진격을 이어갔다.
"흠."
어차피 나도 포효 한 번에 전쟁을 막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조금도 하지 않았기에, 곧장 호루스의 고삐를 쥔 채로 마수와 마물들이 득실대는 군세로 날아갔다.
달칵-
이번 전투에 앞서, 나는 TITAN-17 대마수 로켓뿐만 아니라 NOA-8 중기관포 역시도 가져왔다.
아무래도 이번에 호루스가 1급 거충종 여왕벌의 피와 살을 먹으며 더욱더 강해진 덕분에 이 정도 무게는 거뜬히 감당할 수 있게 된 데다가, 무엇보다도 저번에 공중전에서의 화력 부족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지상을 폭격하는 데는 TITAN-17 대마수 로켓로도 충분하지만, 쫓아오는 비행형 마수와 마물들을 잡기는 어려워.'
물론 Ark-15 자동 소총을 통한 공격 역시도 충분히 유효했지만, 아무리 A-985 폭발탄을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화력 면에서 조금 밀리는 건 사실이었다.
만약 평범한 상황이었다면 NOA-8 중기관포의 탄 소모를 생각했을 때 A-985 폭발탄 쪽이 압도적으로 효율이 좋았겠지만, 나에게 그런 효율 같은 건 상관없었다.
'압도적인 화력으로 전부 쓸어 버린다.'
나는 TITAN-17 대마수 로켓를 다잡았다.
엥켈렌스의 포효로 인해서 기세가 줄어든 마수 군단에게 본격적인 선전 포고를 알리기 위해서였다.
달칵-
방아쇠가 연신 당겨졌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지금부터는 전쟁이었고, 전쟁에 있어서 가진 걸 아낄 필요는 없었다.
피우우우웅───!!
맹렬하게 토해진 불꽃과 함께 그려지는 무수한 빛의 선들.
곧이어서 그 빛의 선들이 지상을 향해서 마구잡이로 쏟아져 내렸다.
콰카카카카캉───!!!
빛의 무리가 지상에 닿으며, 곧이어서 거대한 폭발이 연달아 일어났다.
[10급 야수종, 헬하운드를 처치하였습니다.]
[10급 야수종, 헬하운드에 대한 피해량이 0.05% 증가합니다.]
[10급 야수종, 헬하운드를 처치하였습니다.]
[10급 야수종, 헬하운드에 대한 피해량이 0.05% 증가합니다.]
[10급 야수종, 열대 초원 랩터를 처치하였습니다.]
[10급 야수종, 열대 초원 랩터에 대한 피해량이 0.05% 증가합니다.]
.
.
.
[8급 야수종, 굶주린 검치호를 처치하였습니다.]
[8급 야수종, 굶주린 검치호에 대한 피해량이 0.05% 증가합니다.]
첫 번째 폭격이라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이에 희생된 마수들 역시도 상대적으로 약한 마수들뿐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살아남은 마수들이 무사하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우우우우우우!]
[카아아악!]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 괴성.
그럼에도 나는 방아쇠를 당기는 걸 멈추지 않았다.
쿠르르르릉───!!!
쾅, 쾅쾅──!
다시금 거친 폭발이 일어났다.
그러나 지상을 향해 쏟아지기 시작한 폭격 속에서도 마수 군단은 꿋꿋이 전진했다.
이전에 맞닥뜨렸을 때와는 달리, 본격적인 웨이브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나로서는 잘 됐지만.'
예전과는 상황이 다르다.
마수들의 목적은 내가 아니라 아크였고, 이곳에서 내가 할 역할은 군세의 허리를 끊는 역할이었다.
[키에에에에!]
[끼엑, 끼에엑!]
전투, 아니 일방적인 폭격이 한동안 이어졌다.
하지만 어그로를 너무 끈 탓일까.
이내 적지 않은 수의 비행형 마수와 마물들이 나와 호루스를 향해서 달려들기 시작했다.
[주인님! 뒤!]
"나도 안다."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이미 한 차례 겪었던 일인 데다가, 무엇보다도 이제 저 무리에는 가장 위협적이라고 볼 수 있는 1급 거충종 여왕벌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호루스."
[키에에엣!]
이제 저 중에서 호루스의 속도를 따라올 수 있는 마수는 거의 없었다.
아니, 설사 있더라도 속도만 빨라서는 날아다니는 과녁판에 불과했다.
'해볼까.'
나는 NOA-8 중기관포를 잡고서 뒤로 돌았다.
쫓아오는 비행형 마수들을 차례로 사냥하기 위해서였다.
내가 NOA-8 중기관포를 겨누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수들은 아랑곳하지 않고서 추격을 이어왔다.
참으로 건방진 놈들이었다.
"계속 와보든지."
위이이이이잉······.
NOA-8 중기관포의 총열이 거칠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돌아간 총열이 한 바퀴를 돌았을 때, NOA-8 중기관포의 총구가 거친 화염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콰카카카카카!!!!
엄청난 속도로 날고 있는 공중에서는 맞추기 어려웠던 TITAN-17 대마수 로켓와는 달리, 분당 1만 발에 가까운 총알을 토해내는 NOA-8 중기관포는 공중전에 특화된 중화기였다.
[키에에에에!]
[카악, 카아악······.]
TITAN-17 대마수 로켓 정도는 눈 감고도 피해내던 비행형 마수들이, NOA-8 중기관포에서 토해진 20mm 총알에는 힘없이 픽픽 쓰러져 나갔다.
눈에 보이는 투사체와 그렇지 못한 섬광 사이에는 그 정도의 차이가 있었다.
[6급 거충종, 붉은 눈 거대 잠자리를 처치하였습니다.]
[6급 거충종, 붉은 눈 거대 잠자리에 대한 피해량이 0.05% 증가합니다.]
[6급 비행종, 녹색 깃털 일족 하피 전사를 처치하였습니다.]
[6급 비행종, 녹색 깃털 일족 하피 전사에 대한 피해량이 0.05% 증가합니다.]
[5급 비행종, 암흑 가오리를 처치하였습니다.]
[5급 비행종, 암흑 가오리에 대한 피해량이 0.05% 증가합니다.]
.
.
[4급 비행종, 하늘 청새치를 처치하였습니다.]
[4급 비행종, 하늘 청새치에 대한 피해량이 0.05% 증가합니다.]
나와 호루스의 뒤를 따르고 있는 마수들이 지상으로 연신 추락했다.
그리고 추락한 마수들의 시체는 지상의 마수들에게 또 다른 재앙이 되었다.
비행형 마수들의 크기가 크기인 만큼, 이 높이에서 떨어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협이 된 것이다.
[캬오오오오──!]
[끼에엑!]
전투가 이어졌다.
나는 호루스를 재촉했다.
* * *
레드 라인 17번 게이트.
한창 전투가 벌어지는 와중에도 이모샤 중위는 목이 터져라 외쳤다.
"알파팀, 알파팀 있나? 지금 당장 인원 차출해서 R17-7 포인트로 지원 가도록. 지금 당장!"
["알겠습니다."]
이모샤 중위는 DR-404 리볼버를 연신 당겼다.
지휘관이 있는 곳까지 마수와 마물들이 들이닥칠 정도로 전선의 상황이 좋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이것도 미리 방비를 했기에 이 정도지, 만약 이번 웨이브를 평소와 비슷한 수준으로 예상했더라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만약 그 남자가 아니었더라면······.'
이모샤 중위는 저도 모르게 온 몸에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이제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규모의 웨이브.
그렇다고 해서 몰려오는 마수 및 마물들의 수준이 이전보다 낮은 것도 아니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해.'
보통 아크의 최후방인 레드 라인의 전선에는 7급 이상의 마수나 마물들은 그렇게까지 많이 오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은 7급은 물론이고 5급 이상의 마수와 마물들까지도 간간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야말로 끔찍한 일이었다.
["R17-21 포인트에 5급 괴수종으로 추정되는 마수 무리 발견! 지원 요청!"]
하지만 이상한 일이 있었다.
마수들의 숫자도, 수준도 이전의 웨이브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압도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Red-17 게이트를 비롯한 아크의 전선은 예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잘 버텨내고 있었다.
객관적인 데이터가 모두 아크의 멸망을 가리키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전선이 유지되고 있다니······.
현장 담당관인 이모샤 중위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왜지?'
병사들이 필요 이상으로 잘 싸워주고 있어서?
아니다.
이곳에 칼 마커스 같은 변수가 발생해서?
아니다.
그렇다면 왜?
이모샤 중위는 스스로 내던지는 질문에 답을 하지 못했다.
["R17-25 포인트에 2급 식물종으로 추정되는 마물 출현! 대규모 화력을 요청합니다!"]
"알았다. 지원이 도착하기 전까지 최대한 수비적으로 버텨라."
그렇게 한창 전장을 지휘하던 이모샤 중위는 전선에서 일어나고 있는 한 가지 이질적인 현상을 목격했다.
지평선 너머, 그러니까 마수 군단이 들이닥치고 있는 길목 부분에서 일종의 병목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었다.
'···군세의 움직임이 예상보다 훨씬 더디다.'
숫자도, 수준도 이전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높다.
그럼에도 웨이브의 기세가 생각보다 약한 건, 그저 마수와 마물들의 진격이 생각보다 느렸기 때문이었다.
마치 어딘가에서 억지로 발목을 붙잡히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뭐지?'
이모샤 중위는 잠시 멍하니 지평선 너머를 바라보았다.
지평선 너머까지 펼쳐진 마수 군단은 분명히 위협적이었지만, 그 강대한 군세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이래서야 정말로 군단 전체가 어딘가에서 발목이라도 붙잡히고 있는 것 같지 않은가?
'설마······.'
이모샤 중위는 이윽고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에 고개를 내저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는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래도 이번에는 아니겠지.'
물론 칼 마커스가 보인 활약을 이모샤 중위 역시도 알고 있다.
그렇기에 지금 같은 상황에서 혹시나 하고 있는 것이었고.
하지만 지금 상황은 일개 개인이 활약하고 있다기에는 상황이 너무나도 거대했다.
감히 누가 이 정도로 압도적인 규모의 마수 군단의 발목을 붙잡을 수 있겠는가?
만약 그런 게 정말로 가능하다면, 그거야말로 군단이라 불릴 만한 세력일 것이다.
이모샤 중위는 칼 마커스에 대해서 매우 높게 평가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었다.
'···칼 마커스.'
이모샤 중위는 조용히 그 이름을 곱씹었다.
만약 그가 전해준 정보가 아니었다면, 이번에 아크는 엄청난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아니, 최악의 경우에는 전선이 뚫려서 멸망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을 수도 있다.
비록 지금은 모습이 보이지 않았지만, 칼 마커스 역시도 지금 아크를 위해서 싸우고 있을 것이다.
이모샤 중위는 그 사실을 확신했다.
'부디, 무사하기를.'
평소였다면 스스로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에 매우 놀랐겠지만, 애석하게도 이모샤 중위에게는 그럴만한 여유가 없었다.
그렇기에, 어느덧 스스로 그 사실을 받아 들였다.
부디, 칼 마커스가 무사히 아크에 돌아오기를.
이모샤 중위는 그렇게 바랐다.
* * *
쾅──!
콰카카캉───!!
TITAN-17 대마수 로켓을 통한 무차별 폭격.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 일방적인 학살극은 그다지 오래 가지 못했다.
어느덧 호루스의 바로 뒤에 따라 붙은 마수와 마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잘 알고 있는 마수들이었다.
2급 비행종, 붉은 날개 와이번.
2급 괴암종, 악마상 가고일.
일전에 한번 부딪쳤으나, 끝내 마무리는 하지 못했던 녀석들이 다시금 모습을 드러냈다.
물론 내가 입혔던 상처가 작지는 않았기에, 붉은 날개 와이번의 날개에는 구멍이 숭숭 나 있었고, 악마상 가고일의 몸에는 온갖 균열들이 일어난 상태였다.
"그래, 너희랑도 끝을 봐야지."
안 그래도 저번에 살려 보낸 게 영 아쉬웠건만, 이렇게 알아서 나타나 주니 고마울 따름이었다.
다만, 아쉽게도 당장 처리하기에는 여력이 나지 않았다.
따라붙은 고위 마수는 비단 그뿐만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저건······.'
1급 비행종, 하늘 메갈로돈.
하늘의 주인이라 불리는 녀석이 내 앞에 나타났다.
'저번에는 못 봤던 녀석인데··· 이번에 새로 합류한 건가.'
아니, 애초에 비행형 마수 중 1급에 해당하는 개체가 여왕벌뿐만이었던 건 아니다.
단지 놈들 중 대다수는 나에게 흥미가 없거나, 거리가 너무 멀어서 어그로가 끌리지 않았기에 마주치지 않았던 것일 뿐.
'분명히 까다로운 녀석이지만··· 여왕벌보다는 아니지.'
하늘 메갈로돈이 여왕벌보다 약하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개체가 가진 강함만을 따지자면 비교조차 불가능한 수준이라고 보는 게 옳다.
하지만 하늘 메갈로돈과 여왕벌의 가장 큰 차이는, 무리를 이끄는 대장인지 아닌지다.
'하늘 메갈로돈은 매우 강하지만, 반대로 그렇기 때문에 단독 행동을 주로한다.'
그 점을 공략한다면 사냥할 방법 따위야 얼마든지 있었다.
거대 벌들을 조종해서 제 몸을 사리기 바빴던 여왕벌과는 달리, 하늘 메갈로돈은 거는 싸움을 피하지 않는 유형이었으니까.
"가볼까."
나는 호루스의 기수를 돌렸다.
하늘의 진정한 주인이 누구인지 가르쳐줄 때가 됐다.
< 다중 웨이브 (7) > 끝
아크에게 가장 위협이 되는 마수 혹은 마물은 무엇인가?
첫 번째는 당연히 2급 이상의 고위 마물들이다.
고위 마물은 마수와는 다르게 어느 정도의 지능이 있는 게 대부분이었고, 실제로 같은 등급이라 하더라도 마수보다도 더 위협적으로 보는 게 일반적인 관점이다.
실제로 2급 환상종 도플갱어 같은 경우, 상대적으로 등급은 낮을지 몰라도 블랙 라인의 멸망에 엄청난 기여를 한 마물이었다.
두 번째는 고위 등급의 마수다.
비록 앞서 말할 때 마수는 마물보다 덜 위협적이고, 실제로도 그런 경우가 많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위 등급의 마수가 약하다거나 덜 위험하다는 건 아니다.
오히려, 각 개체가 지닌 강함은 동 등급의 마수가 마물을 뛰어넘는 경우도 많았다.
특히 그러한 고위 마수 중 가장 흔한 예가 바로 초대형 마수들이다.
초대형 마수들은 아크의 성벽을 무너뜨릴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하고, 또한 단단한 외피를 지닌 경우가 대다수였기에 잡는 것 역시도 쉽지 않다.
실제로 일전에 사냥했던 이끼의 쿠프 같은 경우도, 등급은 고작 6급에 불과했지만, 만약 아크의 전선에 나타났다면 충분히 위협이 됐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가 바로 비행형 마수 혹은 마물들이다.
비행형 마수와 마물들은 상대적으로 등급이 낮더라도 아크의 성벽과 관계없이 직접적인 피해를 입힐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위협적이다.
더군다나 특유의 기동력으로 아크의 화력을 낭비하게 만들기도 하니, 그야말로 까다로운 상대인 셈.
이렇게 아크에 가장 위협이 되는 마수들을 나열했을 때, 앞선 두 가지 위협 대상은 지금의 내가 혼자 상대하기에는 너무나도 까다롭다.
당연히 잡기 위한 노력 대비 효율 역시도 썩 좋지 않다는 소리.
하지만 마지막 세 번째인 비행형 마수와 마물들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아크에 위협이 되지만, 반대로 적절한 방법만 사용한다면 잡기 그다지 까다롭지 않은 녀석들.
내가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서 여기까지 온 이유 역시도 그것 때문이었다.
'이곳에서 비행형 마수들을 최대한 많이 처리한다.'
나는 기수를 돌려서 그대로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는 마수들에게로 향했다.
[미, 미친! 지금 뭐 하는 짓이에요?!]
에스더가 비명을 내질렀다.
그 정도로 무모해 보이는 돌격이었고, 실제로도 무모한 돌격이었다.
500m.
300m.
100m.
50m······.
마수들과의 거리가 점차 가까워졌다.
그렇게 충돌하기 직전.
['엥켈렌스의 포효'가 발동합니다!]
야누스에서 뻗어 나온 뼈 촉수들이 공명하기 시작했다.
[크오오오오오오────!!!]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진 엥켈렌스의 포효와 함께 나를 향해서 달려들던 마수들의 움직임이 잠시 멎었다.
거기에는 2급 비행종 붉은 날개 와이번은 물론이고, 1급 비행종 하늘 메갈로돈 역시도 예외가 아니었다.
여기에 생긴 틈.
나는 그걸 놓칠 생각이 없었다.
철컥-
본래라면 비행형 마수에게 TITAN-17 대마수 로켓를 적중시키는 건 쉽지 않다.
하지만 지금 생긴 틈이라면 아무리 탄속이 느려도 충분히 맞출 수 있었다.
피우우우웅───!!!
총 다섯 발.
지금 생긴 틈 동안 내가 당길 수 있었던 방아쇠의 숫자였다.
섬광이 궤적을 그렸다.
그중 세 발이 붉은 날개 와이번의 머리 위에 적중하고, 두 발은 근처에 있던 다른 마수들에게 적중했다.
콰카카카카캉───!!
자욱하게 일어난 폭발.
이내 그 속에서 내 지긋지긋한 적수 중 하나가 마침내 날개를 잃고서 형편없이 추락했다.
[2급 비행종, 붉은 날개 와이번을 처치하였습니다.]
[2급 비행종, 붉은 날개 와이번에 대한 피해량이 0.05% 증가합니다.]
그와 함께 잠시 얼어붙어 있던 마수와 마물들이 다시금 나를 향해서 흉성을 드러냈다.
그야말로 적진 한복판에서 무방비로 노출된 셈이었다.
'엥켈렌스의 포효를 곧장 다시 사용할 수는 없어.'
큰 기술에는 큰 반동이 따르듯이 엥켈렌스의 포효는 야누스로서도 제법 부담이 되는 능력이었다.
[캬오오오오!!!]
[갸르르릉······!]
사방에서 마수와 마물들이 나와 호루스를 향해서 덮쳐왔다.
아무리 호루스가 빠르다고 해도, 조금도 빠져나갈 틈이 없었다.
"에스더."
[이런 대책 없는 주인님 같으니라고!]
에스더가 비명 섞인 목소리를 내지르며 사방으로 에테르를 분출했다.
[지, 켜?]
[지켜. 지켜. 지켜. 지켜. 지켜. 지켜. 지켜. 지켜. 지켜. 지켜. 지켜. 지켜. 지켜. 지켜. 지켜. 지켜. 지켜. 지켜. 지켜. 지켜. 지켜.]
[지키자······.]
순간적으로 일어난 에테르의 장벽에 의해서 나를 향해서 달려들던 마수들의 움직임이 가로막혔다.
[빠, 빨리 뭐라도 해봐요!]
에스더의 말마따나 에테르가 버틸 수 있는 건 아주 잠시뿐이었다.
그만큼 나에게 달라붙은 마수와 마물들이 그야말로 빼곡했기 때문이었다.
쩌적, 쩌저적──!
에테르 장벽이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지며, 주변의 에테르가 비명을 내질렀다.
[꺄아아아아아악────!!]
[멈춰. 멈춰. 멈춰. 멈춰. 멈춰. 멈춰. 멈춰. 멈춰. 멈춰. 멈춰. 멈춰. 멈춰. 멈춰. 멈춰······.]
[그만해에에에에에에에!!]
이대로면 에테르 장벽과 함께 마수와 마물들에게 사방에서 덮쳐질 상황.
'슬슬 됐나.'
가만히 주변을 살핀 나는 마침내 때가 왔음을 느꼈다.
정말로 내가 이런 사지 한복판까지 오면서 아무런 준비를 안 했을 리가 있겠는가.
이제, 아끼고 아껴두었던 녀석들을 써먹을 때가 됐다.
"호루스!"
비록 지금 야누스에게 어떤 능력을 사용할 여력은 없었지만, 호루스는 아니었다.
제아무리 호루스에게 엥켈렌스의 능력은 없다고 해도, 호루스에게는 이번에 얻은 아주 훌륭한 능력이 있었다.
['음파 교란'이 발동합니다!]
그와 함께 호루스의 전신에서 뻗어 나온 뼈 촉수들이 공명하듯이 부르르 떨렸다.
그리고 곧이어서 거대한 괴성이 토해졌다.
[삐이이이이이이익────!!!]
하늘에 떠 있는 마수 무리에게로 뻗어 나간 거대한 음파는, 곧이어서 마수 무리 사이에 있었던 거대 벌들에게도 닿았다.
예전과는 다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멸종하는 게 아닌가 싶었던 거대 벌들의 숫자는 그동안 보충되었는지 어마어마하게 늘어나 있었다.
만약 이 거대 벌들이 자중지란이라도 일으킨다면, 이 엄청난 마수 군단에게도 충분히 영향을 줄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 그러한 예상은 곧 현실로 일어나기 시작했다.
[삐?]
[삐이이이익······.]
그와 함께 마수 무리의 곳곳에 퍼져 있던 거대 벌들이 일제히 주변의 마수와 마물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푹!
푸푸푹-!
[키에에에에에!]
[삐이이이이!!!]
순식간에 나를 에워싸고 있던 마수 및 마물들이 이내 저들끼리 물어뜯고, 싸우기 시작했다.
조금 전에 호루스를 통해서 사용된 음파 교란이 아주아주 잘 먹혀들었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면······.'
나 역시도 호루스의 기수를 돌렸다.
[···말려도 갈 거죠?]
"잘 아네."
[에휴······ 그런데 저는 못 도와줘요. 지금 힘이 다 빠졌어. 조금 쉴게요.]
"충분하다."
비록 일순간이지만, 무려 수백 마리의 비행형 마수들을 막아냈던 에스더다.
예전의 에스더였다면 모를까, 힘을 많이 잃은 지금의 상태에서 여력이 남아있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그리고는 이 와중에 나를 노려보고 있는 1급 비행종, 하늘 메갈로돈을 마주 보았다.
"뭘 봐."
내가 하늘 메갈로돈을 바라보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거대한 포효가 울려 퍼졌다.
[크오오오오오오오───!!!]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 포효에 저도 모르게 몸이 움츠러들 뻔했지만, 어디까지나 잠시일 뿐.
강화 혈청을 비롯한 온갖 효과로 이제 20을 넘어선 투지 능력치는, 내가 움츠러드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오는군.'
같은 1급 마수지만, 하늘 메갈로돈은 여왕벌과는 다르다.
여왕벌이 지휘관이라면,
하늘 메갈로돈은 선봉장.
놈은 절대로 물러서지 않는다.
그게 하늘 메갈로돈이라는 마수였고, 놈에게는 실제로 그 의지를 관철할 만한 힘이 있었다.
그렇기에 나 역시도 이러한 판을 만든 것이었다.
지금이라면, 놈과 나 사이의 싸움을 방해할 만한 마수는 그다지 많지 않을 테니까.
'거대 벌들의 숫자는 마수들에 비해서 명백한 열세.'
즉, 하늘 메갈로돈과의 싸움 역시도 빠르게 마무리 지을 필요성이 있다는 소리였다.
'거리낄 건 없지.'
1급 비행종인 하늘 메갈로돈 같은 경우, 이대로 내버려 두었을 경우에 아크에 적잖은 피해를 입힐 게 분명했다.
놈을 이곳에서 잡아야 할 이유는 차고 넘칠 정도로 충분했다.
나는 NOA-8 중기관포를 잡았다.
저토록 거대한 상대를 상대하면서도 TITAN-17 대마수 로켓를 꺼내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하늘 메갈로돈을 처음으로 상대하는 아크의 군인들이 하는 가장 큰 착각 중 하나가, 하늘 메갈로돈이 거대한 덩치를 지닌 만큼 둔할 거라는 생각이다.
더군다나 그 압도적인 몸집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거대한 화력의 필요성을 느끼게 만든다.
하지만 그 모든 건 명백한 실책이다.
1급 비행종.
그중에서도 하늘의 지배자라는 이명까지 있는 하늘 메갈로돈은 거대한 몸집과 단단한 외피를 지니고 있지만, 무엇보다도 두려운 건 하늘을 주유하는 말도 안 되는 속도와 파괴력이다.
즉, TITAN-17 대마수 로켓로는 놈을 맞추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위이이이잉······.
NOA-8 중기관포의 포구가 거칠게 회전을 시작했다.
하늘 메갈로돈은 분명히 엄청나게 빠르지만, 작정하고 쏘는 NOA-8 중기관포의 총알을 모조리 피해낼 수는 없었다.
애초에, 나는 하늘 메갈로돈의 움직임 자체를 아예 꿰고 있었으니까.
불꽃과 함께 쏟아진 무수한 섬광들이 하늘 메갈로돈을 향해서 나아갔다.
콰카카카카카───!!!
하늘 메갈로돈은 쏟아지는 섬광을 눈으로 보고 피할 수 있을 정도의 감각과 반응속도를 지닌 마수다.
하지만 나는 그것조차도 이미 계산 안에 넣고 있었기에, 놈의 움직임을 철저하게 유인했다.
[캬오오오오!!!]
하늘 메갈로돈의 거체가 이리저리 회피 기동을 할 때마다 무수한 마수들이 치여서 그대로 지상으로 추락했다.
저 거대한 몸집과 속도에 치이고서 멀쩡하기는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8급 비행종, 검은 깃털 참수리를 처치하였습니다.]
[8급 비행종, 검은 깃털 참수리에 대한 피해량이 0.05% 증가합니다.]
[6급 비행종, 녹색 깃털 일족 하피 약탈꾼을 처치하였습니다.]
[6급 비행종, 녹색 깃털 일족 하피 약탈꾼에 대한 피해량이 0.05% 증가합니다.]
[7급 괴암종, 저주 받은 새 동상을 처치하였습니다.]
[7급 괴암종, 저주 받은 새 동상에 대한 피해량이 0.05% 증가합니다.]
.
.
.
[8급 거충종, 거대 파리를 처치하였습니다.]
[8급 거충종, 거대 파리에 대한 피해량이 0.05% 증가합니다.]
빗발치는 섬광 속에서 하늘 메갈로돈과의 거리가 놀랍도록 빠르게 가까워졌다.
마치 거대한 바위가 다가오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하늘 메갈로돈의 크기는 보통이 아니었다.
'아니, 크기 자체만 보면 하늘 고래보다 살짝 더 큰 수준에 불과하지만······.'
하늘 메갈로돈이 지닌 강함은 단순히 크기뿐만이 아니라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뭐, 뭐해요?! 이러다가 부딪치겠어요!]
"그럴 거다."
[네?!]
어느덧 놈과의 거리가 지척까지 가까워졌다.
피하려면 피할 수 있었으나, 나는 굳이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쿠우우우우웅───!!!!
한 차례 일어난 거대한 격돌.
미리 충돌에 대비하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호루스 바깥으로 튕겨 나갈 뻔했다.
이 높이에서 추락했다가는··· 아무리 야누스와 에테르가 있다고 하더라도, 주변의 비행형 마수들이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을 것까지 감안한다면 사실상 죽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리스크도 감내해야만 할 때였다.
'지금 내가 가진 화력으로는 하늘 메갈로돈을 원거리에서 요격할 수 없다.'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원거리에서 요격할 화력이 되지 않는다면, 근거리에서 잡으면 될 뿐이었으니까.
[지, 지금 뭐 하는─]
에스더의 비명 섞인 외침을 뒤로한 채로,
나는 그대로 하늘 메갈로돈의 등 위로 뛰어 들었다.
< 다중 웨이브 (8) > 끝
[키에에엑!]
무려 1급 비행종 하늘 메갈로돈고아 정면 충돌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호루스의 상태는 비교적 멀쩡했다.
애초에 충돌에 대비하면서 전신을 뼈 촉수들로 감싸고 있었던 데다가, 무엇보다도 그 뼈 촉수들에 우로보로스와 이끼의 쿠프로부터 얻은 능력인 강철화와 경질화를 모두 적용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다만, 문제는 역시 나였다.
[꺄아악! 미, 미쳤어요?!]
에스더의 비명이 울려 퍼지며, 나는 망설임 없이 하늘 메갈로돈에게 몸을 날렸다.
나도 안다.
이게 미친 짓이라는 것쯤은.
이 높이에서 살아있는 마수의 등 위에, 그것도 1급 비행종 하늘 메갈로돈의 등에 매달리는 건 정상적인 행동이 아니다.
하지만 도박이라는 건 언제나 엄청난 리스크를 동반하는 법이다.
그렇기에, 도박에서 이겼을 때의 리턴 값 역시도 그에 상응하는 법이었고.
"야누스!"
내 외침과 함께 칠흑의 뼈 촉수가 야누스를 타고서 뻗어나왔다.
['엥켈렌스의 창'을 소환합니다!]
['엥켈렌스의 창' 소환 가능 시간 : 36분 12초.]
왼손을 타고서 뻗어 나온 칠흑의 창을 붙잡은 나는 그대로 하늘 메갈로돈의 지느러미를 찍었다.
메갈로돈의 지느러미는 분명히 엄청난 두께와 단단함을 자랑하지만, 엥켈렌스의 창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하물며 내가 전력을 다해서 찔러넣은 창이라면 더욱더 그러했다.
[쿠오오오오오오!!!]
단번에 급소 중 한 곳을 공격당한 하늘 메갈로돈이 몸부림쳤다.
만약 조금이라도 타이밍이 안 맞았다면 그대로 추락할 뻔했을 정도로 아슬아슬했다.
"가만히 좀 있어!"
내가 하늘 메갈로돈의 지느러미에 꽂힌 엥켈렌스의 창을 지지대 삼아서 버티는 동안, 야누스에서 무수한 뼈 촉수가 뻗어 나왔다.
스스스스──!!
현재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는 엥켈렌스의 창을 중심으로 완전히 하늘 메갈로돈의 지느러미를 붙잡고서 버티기 위해서였다.
'···일단 올라오는 데는 성공했다.'
하늘 메갈로돈은 분명히 위협적인 마수지만, 신체 구조상 일단 등 위에 올라와서 버틸 수만 있다면 충분히 사냥할 수 있는 상대다.
보통 아크에서 하늘 메갈로돈을 상대할 때 사실상 그게 불가능에 가까워서 그렇지.
[기기깃!]
야누스에게서 뻗어 나온 뼈 촉수들이, 엥켈렌스의 창이 내놓은 지느러미의 상처를 통해서 스멀스멀 들어갔다.
완전히 쐐기를 박기 위해서였다.
[크오오오오오오오!!!]
하늘 메갈로돈이 괴성을 내지르며 더욱더 거칠게 요동쳤다.
저 거대한 몸집이, 저러한 신체 구조로 어떻게 하늘에 떠 있을 수 있는가?
그에 대한 답 중 하나가 바로 하늘 메갈로돈의 지느러미였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한마디로, 하늘 메갈로돈의 지느러미는 놈에게 있어서 급소 중의 급소라는 이야기였다.
[그우우우우우우───!!!]
하늘 메갈로돈의 발악이 더욱더 심해지며 놈의 몸이 거꾸로 뒤집어졌다.
지금 야누스가 하고 있는 일은 급소 중의 급소나 다름없는 곳의 상처를 벌리고, 그 안에 쐐기를 박아넣는 일이다.
당연히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다만 놈이 한 가지 착각을 하고 있는 게 있다면, 그렇게 억지로 몸을 뒤집어 봤자 지느러미에 매달려 있는 하중에 부담만 더 해질 거라는 점이다.
즉, 지금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아프다는 소리다.
[그오오오오오오!!!]
결국 고통을 이겨내지 못한 건지 하늘 메갈로돈의 몸이 다시금 중심을 찾았다.
억지로 뒤집어서 나를 떨쳐내려고 해봤자, 고통만 더욱더 심해질 거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래봤자지만.'
아주 잠깐의 고통을 피해봤자, 지금 내가 하늘 메갈로돈의 등 위에 있다는 진실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계속 몸을 뒤집고 있자니 지느러미가 떨어져 나갈 것 같을 테니, 하늘 메갈로돈으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긴 했다.
[기기깃!]
그렇게 쐐기 작업이 완료되자, 나는 다시금 엥켈렌스의 창을 소환 해제했다가 다시금 소환했다.
현재 내가 지닌 무기 중에서 하늘 메갈로돈에게 제대로 된 타격을 줄 수 있는 무기는 엥켈렌스의 창만 한 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슬슬 제대로 해볼까.'
하늘 메갈로돈은 여전히 하늘 위에서 몸부림치며 어떻게든 나를 떨어뜨리려고 난리를 쳤으나, 이미 나는 지느러미에 단단히 쐐기를 박은 뒤다.
제까짓게 아무리 난리를 쳐봤자 나를 떨려뜨릴 수는 없다는 뜻이다.
뿌득, 뿌드득······.
엥켈렌스의 창을 쥔 팔을 중심으로 전신의 근육이 울음을 토했다.
애초에 하늘 메갈로돈이 몸부림을 치는 와중에 중심을 잡은 데다가, 본격적으로 무기를 쓰려니 전신에 힘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우선, 한 방.'
엥켈렌스의 창이 크게 들렸다가 이내 하늘 메갈로돈의 등을 강하게 내리 찍었다.
"흡!"
푸욱─!!
무려 엥켈렌스의 창으로 내려찍었음에도 불구하고, 겉가죽이 워낙 두터운 탓인지 아직 하늘 메갈로돈의 피부에서는 피 한 방울 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효과가 없는 건 아니었다.
[그오오오오오오!!!]
이것 자체로 어떤 공격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거대한 괴성.
이미 그것만으로 내가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이 의미 없는 행동이 아니라는 걸 증명해 주었다.
'하늘 메갈로돈의 약점 중 가장 크게 노출된 건 지느러미다. 만약 지느러미를 자른다면 지상으로 추락하기야 하겠지만······.'
나는 그 선택지는 잠시 접어두었다.
왜냐면 하늘 메갈로돈 같은 마수는 설사 이 높이에서 지상으로 추락시킨다고 하더라도 죽이기는 어렵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 전쟁 중에 하늘 메갈로돈을 전투 불능으로 만드는 건 분명히 의미가 있는 일이었으나, 나는 그다음까지 내다 볼 수밖에 없었다.
저번에 여왕벌의 시체를 챙길 때도 그토록 고생했는데, 지금처럼 본격적으로 웨이브가 일어난 상황이라면 더욱더 어려울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도··· 하늘 메갈로돈의 시체는 호루스로 옮길 수 있는 수준이 아니야.'
하늘 메갈로돈이 지상으로 추락한다면 사실상 그 시체는 포기해야 한다는 이야기.
야누스와 호루스가 없었다면 모를까, 지금의 내가 그런 아까운 짓을 할 리가 만무했다.
어쨌거나 결론은 간단했다.
하늘 메갈로돈에게 어느 정도 타격을 입히 돼, 당장 지상으로 추락하지 않을 정도로 조절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흡!"
다시 한번 엥켈렌스의 창이 휘둘러지며, 드디어 하늘 메갈로돈의 등에서 피가 치솟았다.
비로소 하늘 메갈로돈에게 유의미한 타격을 입혔다는 뜻이기도 했다.
[크오오오오오오오───!!!!]
하늘 메갈로돈의 발버둥이 더욱더 심해졌다.
물론 내가 고작 그 정도로 나가떨어질 리가 만무했지만 말이다.
내가 다시금 엥켈렌스의 창을 내려찍으려던 순간.
[주인님!]
에스더의 경고와 함께 내 머리 위로 무언가 공기를 찢는 엄청난 속도로 다가왔다.
쐐애애액!!!
나는 본능적으로 몸을 숙여서 그것을 피해낸 이후, Ark-15 자동 소총을 다잡아서 대응 사격을 했다.
타타탕!!!
그러나 습격자는 내 기민한 대응마저도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이 여유롭게 피해냈다.
천천히 고개를 든 나는 이내 습격자의 정체를 알아볼 수 있었다.
[기긱, 기기기긱!]
2급 괴암종, 악마상 가고일.
붉은 날개 와이번과 더불어서 이번 다중 웨이브에서 가장 나를 성가시게 한 놈 중 하나였다.
'어쩐지 안 보인다 싶더라니.'
하늘 메갈로돈은 딱히 무리를 이끄는 지휘관이나 대장 같은 게 아니다.
고고히 홀로 하늘을 거닐며, 눈에 보이는 걸 모조리 파괴하는 파괴자이자 지배자에 가깝지.
그렇기에 지금까지 다른 마수들이 이 싸움에 끼어들지 않은 것이었지만, 그게 절대적인 건 아니었다.
오히려 이곳에서 나는 적진 한복판에 있는 것이었으니 얼마든지 이러한 상황을 마주하는 게 정상이었다.
'거대 벌들은 거의 다 당했나.'
아니, 오히려 전체 비행형 마수들에 비하면 적은 숫자로 지금까지 버텨낸 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하다고 볼 수 있었다.
아무리 거대 벌들의 숫자가 많고 강해도, 거대 벌들을 제외한 나머지 마수들은 그보다 훨씬 더 많고 강했으니까.
[캬오오오!]
악마상 가고일이 나를 향해서 달려들었다.
'지금 놈의 외피는 균열이 가 있다. Ark-15 자동 소총으로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
그렇게 내가 철갑탄을 장전한 Ark-15 자동 소총을 겨눈 순간.
[키에에엑!]
어느새 날아온 호루스가 악마상 가고일의 목덜미를 낚아 챘다.
나로서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나이스 뼈순이!]
···그래, 그러고 보니 지금 나는 혼자 싸우고 있는 게 아니었다.
비록 아크와는 멀리 떨어져 있긴 해도, 이곳에도 내 아군들이 있었다.
[그렇지! 잘한다!]
에스더의 말대로였다.
호루스의 힘은 이제 1급 마물 중에서도 거의 중간 수준에 올랐다고 볼 수 있었으니, 안 그래도 상처까지 입은 악마상 가고일이 습격까지 당한 채로 상대할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갸갹, 갸갸갹!]
호루스의 전신에서 무수한 뼈 촉수들이 뻗어 나왔다.
칠흑색의 뼈 촉수들.
우로보로스의 역린에서 기인한 것들 증명이라도 하듯이, 뼈 촉수들은 너무나도 쉽게 악마상 가고일의 단단한 외피를 꿰뚫고 들어갔다.
쪼옥, 쪼옥─
감히 나를 습격한 대가인 걸까.
악마상 가고일은 산 채로 호루스에게 피와 살을 뜯기는 형벌에 처해지게 됐다.
[갸악, 갸갸갸!]
악마상 가고일이 흉성을 토해내며 필사적으로 발버둥 쳤으나, 이미 호루스에게 배후를 잡힌 뒤다.
당연히 제까짓 게 발버둥을 쳐봤자 호루스에게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기에에······.]
악마상 가고일의 생기가 급속도로 빠져 나가며 점차 몸이 축 늘어졌다.
'저쪽은 대충 정리되고 있나.'
그러나 여유를 부릴 수는 없었다.
비록 호루스가 악마상 가고일을 완전히 압도하며 제압했지만, 전체적인 상황은 그다지 좋지 못했기 때문이다.
[키에에에!]
[캬아악!]
그 사실을 증명하듯이 몇몇 비행형 마수들이 나를 향해 발톱을 드러냈다.
물론 그다지 강한 마수는 아니었기에 어렵지 않게 처리할 수 있었지만, 언제까지고 이럴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서둘러야겠어.'
나는 재차 엥켈렌스의 창을 내려찍었다.
단순히 혼자의 힘만이 아니라, 야누스를 비롯한 에테르까지도 끌어낸 최선의 일격이었다.
푹!
푸푸푹!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신체 능력을 거의 한계까지 끌어다 쓴 탓에 팔에서 경련이 일어날 정도였음에도 나는 멈추지 않았다.
계속해서, 끊임없이.
나는 엥켈렌스의 창을 내려치고, 또 내려쳤다.
[그우우우우······.]
몸을 가리지 않은 덕분일까.
하늘 메갈로돈 역시도 더는 버티지 못하고 크게 몸을 휘청였다.
그리고는 조금씩이지만 지상을 향해서 추락하기 시작했다.
'지금이다.'
하늘 메갈로돈이 완전히 추락할 정도는 아니지만, 반항할 여력은 거의 잃은 상황.
마침내 때가 왔음을 느낀 내가 곧장 외쳤다.
"호루스!"
그와 함께 어느덧 악마상 가고일의 뒷처리를 마친 호루스가 다시금 내 곁으로 왔다.
호루스가 지척까지 다다랐음에도 불구하고, 하늘 메갈로돈은 그 어떤 반응도 보이지 못했다.
내가 예상했던 대로 이미 하늘 메갈로돈의 상태가 한계까지 다다랐다는 뜻이었다.
"먹어치워."
명령이 떨어진 순간.
호루스와 야누스가 합심해서 하늘 메갈로돈의 전신에 뼈 촉수들을 때려 넣었다.
푹─!
푸푸푹!
본래였다면 이토록 쉽게 뼈 촉수들의 침입을 허용하지 않았을 하늘 메갈로돈이지만, 이제는 반항할 기력을 잃었다는 듯이 약간의 발악을 제외한다면 사실상 반항다운 반항조차 하지 못했다.
애초에 내가 하늘 메갈로돈의 등 위를 점유했을 때부터 정해진 운명이나 다름없었다.
쪼옥, 쪼옥······.
야누스와 호루스가 합심해서 하늘 메갈로돈의 피와 살을 취하기 시작했다.
그 틈에 다른 마수와 마물들이 무방비가 된 호루스와 야누스를 노리기 위해서 달려들었으나, 그 둘과는 달리 나는 건재했기에 나는 곧장 Ark-15 자동 소총으로 그들을 엄호했다.
콰앙-!
콰카카캉!
비록 이런 대규모 전쟁에서는 그 빛이 조금 바라는 감이 있었지만, A-985 폭발탄 역시도 무시할 물건은 아니었기에 적습을 막기에는 충분했다.
그리고,
마침내 호루스와 야누스의 식사가 끝이 나며 하늘 메갈로돈의 추락 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지기 시작했다.
내가 이곳에서 탈출할 시기가 왔다는 뜻이기도 했다.
[1급 비행종, 하늘 메갈로돈을 처치했습니다!]
[마수 군단 한복판에서 믿을 수 없는 업적을 이룩하였습니다!]
[투지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7 -> 8]
[특성, '하늘의 지배자'를 획득하였습니다.]
──────────────
[하늘의 지배자]
하늘을 지배하는 자여.
하늘 위에서 공격시 주는 피해량이 20% 증가하고, 받는 피해량이 20% 감소한다.
"상세 보기"
──────────────
< 다중 웨이브 (9) > 끝
'호오······.'
하늘의 지배자.
말 그대로 공중에 있을 시 메리트를 받는 특성으로서, 매우 직관적이고 강력한 효과를 자랑하는 특성 중 하나였다.
모름지기 강화형 특성은 이런저런 복잡한 조건이 달린 것보다 이렇게 간결한 게 훨씬 더 좋은 특성이었다.
'얻기 힘든 특성인데··· 역시 하늘 메갈로돈을 잡은 게 크긴 컸다는 건가.'
그럴 만도 했다.
무려 1급 비행종 하늘 메갈로돈을 그냥 잡은 것도 아니라, 웨이브가 일어나고 있는 마수 군단 한복판에 쳐들어가서 잡아낸 것이었으니까.
얻어낸 건 비단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1급 비행종, 하늘 메갈로돈을 흡수하였습니다!]
[1급 비행종, 하늘 메갈로돈의 능력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마침내, 야누스와 호루스가 하늘 메갈로돈의 피와 살을 온전히 흡수했다.
이전에 여왕벌을 흡수했던 전적이 있어서인지는 몰라도, 훨씬 더 부드럽게 흡수한 느낌이었다.
뭐어, 그건 그거고······.
'일단 여기서 빠져나가야겠지.'
점차 가까워지는 지상과의 거리를 본 나는 곧장 호루스의 등 위에 올라탔다.
이대로 하늘 메갈로돈의 빈껍데기와 함께 지상에 고꾸라지는 취미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가자."
[키엣!]
하늘 메갈로돈의 몸에서 뼈 촉수를 모조리 떼어낸 호루스가 거친 날갯짓을 시작했다.
그렇게 호루스가 하늘 메갈로돈의 몸을 걷어차다시피 박차자, 안 그래도 추락하고 있던 하늘 메갈로돈의 몸이 더욱더 빠르게 지상으로 추락했다.
그리고, 그건 지상에 있던 마수들에게 있어서는 하나의 거대한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쿠우우우웅────!!!
하늘 메갈로돈에게 직접적으로 깔린 마수들은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절명했다.
[10급 야수종, 헬하운드를 처치하였습니다.]
[10급 야수종, 헬하운드에 대한 피해량이 0.05% 증가합니다.]
[8급 괴수종, 스컬 하운드를 처치하였습니다.]
[8급 괴수종, 스컬 하운드에 대한 피해량이 0.05% 증가합니다.]
[10급 야수종, 열대 초원 랩터를 처치하였습니다.]
[10급 야수종, 열대 초원 랩터에 대한 피해량이 0.05% 증가합니다.]
.
.
.
[8급 야수종, 굶주린 검치호를 처치하였습니다.]
[8급 야수종, 굶주린 검치호에 대한 피해량이 0.05% 증가합니다.]
그렇게 내가 호루스를 타고서 격전지에서 빠져나오는 동안,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비행형 마수들이 끊임없이 달려들었다.
이제 혼란을 일으킬 거대 벌들이 거의 남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뭐, 이젠 상관없지만.'
어차피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
이제부터는, 그저 전투뿐.
철컥-
나는 NOA-8 중기관포를 잡았다.
대충 근처에서 크게 위협이 되는 고위 마수와 마물들은 잡았다.
지금부터 나를 막아설 놈들은 이 하늘에 거의 없다는 소리였다.
물론 이미 많은 고위 마수와 마물들이 아크로 향했겠지만, 그것까지는 내가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이건 전쟁이다.
내가 모든 걸 해줄 수는 없었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아크가 입을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것뿐이었다.
곧이어서 NOA-8 중기관포가 거칠게 회전을 시작했다.
이동식 포탑이라는 게 아마 이런 걸 것이다.
콰카카카카카─!!!
NOA-8 중기관포가 맹렬한 불꽃을 토해내며 하늘을 나는 비행형 마수들의 날개에 무수한 구멍을 냈다.
[키에에에에!]
[카악, 카아악!]
하늘에서 한때 마수였던, 그리고 마물이었던 고기 파편들이 하염없이 쏟아져 내렸다.
NOA-8 중기관포의 화력을 견디기에는 놈들의 외피가 너무나도 약했던 탓이었다.
[9급 비행종, 거대 흡혈 박쥐를 처치하였습니다.]
[9급 비행종, 거대 흡혈 박쥐에 대한 피해량이 0.05% 증가합니다.]
[10급 거충종, 거대 날파리를 처치하였습니다.]
[10급 거충종, 거대 날파리에 대한 피해량이 0.05% 증가합니다.]
[6급 거충종, 붉은 눈 거대 잠자리를 처치하였습니다.]
[6급 거충종, 붉은 눈 거대 잠자리에 대한 피해량이 0.05% 증가합니다.]
.
.
[5급 비행종, 암흑 가오리를 처치하였습니다.]
[5급 비행종, 암흑 가오리에 대한 피해량이 0.05% 증가합니다.]
그렇게 광역 어그로를 끈 탓일까.
어느덧 거대 벌과의 사투를 마친 마수들의 흉성이 나와 호루스를 향했다.
[그르르······.]
[캬오오오오!]
[크릉, 크르릉!]
사방에서 덮쳐오는 마수들.
아무리 고위 마수가 거의 없다고는 해도, 저 숫자는 그 자체로도 이미 엄청난 위협이었다.
'엥켈렌스의 포효를 사용할 수도 있겠지만······.'
적당한 휴식과 더불어서 이번에 영양분을 보충한 덕분인지, 야누스의 기력이 다시 회복됐다.
엥켈렌스의 포효를 사용하려고 한다면야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다는 뜻.
그러나 나는 그것보다는 이번에 얻어낸 새로운 능력에 집중했다.
하늘 메갈로돈을 흡수하고서 얻어낸 새로운 능력을, 이번 기회에 실험해보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호루스!"
내 부름에 호루스가 응했다.
호루스의 꼬리가 크게 휘둘러지며, 주변의 공기가 마치 파도처럼 일어나기 시작했다.
['파도 치기'가 발동합니다!]
그리고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일어나는 거대한 파동.
바다도 아닌 하늘에서, 정말로 파도가 일어나고 있었다.
콰아아아아아───!!!
무형의 힘에 휩쓸린 마수와 마물들이 단번에 나가떨어지기 시작했다.
[카아아악!]
[끼에에!]
[그우우우!]
나가떨어진 마수와 마물 중 일부는 아예 지상까지 추락해서, 그대로 지상에 있는 마수 군단을 덮쳤다.
쿠우우우웅───!!!
[8급 괴수종, 변이된 비늘 뱀을 처치하였습니다.]
[8급 괴수종, 변이된 비늘 뱀에 대한 피해량이 0.05% 증가합니다.]
[9급 괴수종, 독 발톱 랩터를 처치하였습니다.]
[9급 괴수종, 독 발톱 랩터에 대한 피해량이 0.05% 증가합니다.]
[10급 거충종, 근면한 일개미를 처치하였습니다.]
[10급 거충종, 근면한 일개미에 대한 피해량이 0.05% 증가합니다.]
.
.
[5급 영장종, 악마의 팔 침팬지를 처치하였습니다.]
[5급 영장종, 악마의 팔 침팬지에 대한 피해량이 0.05% 증가합니다.]
그에 휩쓸린 지상의 마수 무리도 적지 않았으니, 과연 하늘 메갈로돈의 능력답게 공중전에서 사용하기에 최적화된 능력이나 다름없었다.
'조금 아쉬운 건 위력인가.'
지상까지 밀려나서 추락한 마수들을 제외한다면 의외로 파도 치기 자체에 죽은 마수와 마물들은 별로 없었다.
그런 걸 보면 비록 파괴력 자체는 그리 크지 않은 것 같았으나, 범위나 효과를 생각한다면 분명히 매우 쓸모 있는 능력이었다.
'적을 몰아내는 용도로는 매우 뛰어나다.'
거기에 더해서 만약 여기에 에테르까지 보조한다면, 그 위력은 더욱더 커질 터.
'대규모 비행형 마수를 상대할 때 적합한 능력이야.'
그뿐만이 아니었다.
호루스가 이런 능력을 사용할 수 있다면 같이 하늘 메갈로돈의 피와 살을 취한 야누스 역시도 같은 능력을 사용할 수 있을 터.
'야누스가 지상에서 사용하면 위력이 조금 반감되긴 할 것 같지만··· 이 정도도 감지덕지겠지.'
파도 치기가 만들어낸 잠깐의 여유 덕분에 나는 주변을 돌아볼 수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호루스가 흡수한 능력이 한 개 더 있었지.'
2급 괴암종, 악마상 가고일.
아까 호루스는 놈의 피와 살을 흡수하며 놈의 능력을 손에 넣었다.
비록 아직 악마상 가고일의 능력이 무엇인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내가 알고 있는 악마상 가고일의 능력들을 떠올린다면 호루스가 사용할만한 능력 역시도 대충 알 것 같았다.
'그나저나, 이왕 먹을 거면 야누스랑 나눠먹는 게 효율이 좋았을 텐데··· 어쩔 수 없지.'
내가 조금 아쉬워하고 있을 때, 호루스에게서 뻗어 나온 뼈 촉수 하나가 야누스에게로 향했다.
처음에는 무얼 하나 했는데, 이내 호루스와 야누스의 뼈 촉수가 맞닿은 뒤에 이뤄지는 걸 보고는 그게 일종의 영양 교환 같은 거라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
끌렁, 끌렁······.
[2급 괴암종, 악마상 가고일의 능력을 일부 전이 받았습니다!]
[2급 괴암종, 악마상 가고일의 능력을 일부 사용할 수 있습니다.]
허허······.
이런 것까지 될 줄은 몰랐는데.
솔직히 말해서 조금 당황스러울 지경이었다.
'그래도 좋은 게 좋은 거니까.'
그렇게 내가 다시금 전장으로 시선을 옮기려던 순간.
'···잠깐, 그렇다면 혹시 엥켈렌스의 능력도 되나?'
[기깃!]
그러한 내 생각을 읽은 건지, 야누스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엥켈렌스의 능력 자체가 워낙 이질적이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야누스 본인도 미처 소화를 못 시켜서 그런 건지, 그것도 아니면 먹은 지 너무 오래되어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어쨌든 불가능한 듯했다.
'이건 진짜로 아쉽네.'
만약 엥켈렌스의 능력이 호루스에게로 전이가 되었다면, 호루스가 지금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강해졌을 텐데 말이다.
[카아아아아악!]
[키엑! 키엑!]
아쉽게도 여유는 거기까지였다.
어느덧 내 주위로 다시금 비행형 마수들이 빼곡하게 들이차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까지와는 달리, 나에게는 광역 공격기 하나가 생겼기에 거리낄 건 없었다.
'이곳에서 최대한 비행형 마수와 마물들의 허리를 끊는다.'
해야 할 일도 정해졌겠다, 나는 다시금 NOA-8 중기관포를 다잡았다.
마수들이 끊임없이 몰려들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두려울 건 없었다.
지금 나는, 혼자가 아니었으니까.
"가보자고."
[키엣!]
[기깃!]
[···저도 해야 하나요?]
전쟁이 어느덧 막바지를 향해서 달려갔다.
* * *
전례없던 대형 웨이브.
아니, 엄밀히 말하면 전례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소위 D-DAY라고 불리는, 아크를 제외한 모든 인류의 도시가 멸망했던 바로 그 날, 평소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대형 웨이브가 들이 닥쳤다.
다행히 이번 웨이브는 그 정도까지는 되지 않는 듯했으나, 분명한 건 적어도 이번 웨이브가 평상시의 두 배를 넘는 규모라는 점이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바놀 중령은 전선에서 들어오는 보고를 들으며 어떤 이질감 하나를 느꼈다.
분명히 적지 않은 피해가 발생할 것이라고 느꼈는데, 생각보다도 전선의 피해가 적었던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파악하기 위해서 바놀 중령은 재빠르게 움직였고, 이내 한 가지 결론을 노출할 수 있었다.
'아크에 가장 위협이 되는 비행형 마수들의 숫자가 유난히 적다.'
각 라인에서 보고되고 있는 마수들의 종류와 등급을 살핀 후 내려진 결론.
하지만 이상한 일이었다.
'왜지?'
그럴만한 이유가 없다.
웨이브 규모가 늘어났다면, 필시 비행형 마수들의 규모 역시도 두 배 이상 많아졌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 아크에 들이닥치는 비행형 마수의 숫자는 평상시와 비교해도 큰 차이가 나지 않거나, 오히려 그보다 더 적었다.
마땅히 떠오르는 이유는 없었으나, 바놀 중령은 왜인지 한 사내의 이름이 떠올랐다.
'···칼 마커스, 그자가 이번 대형 웨이브에 대해서 일러주었다고 했던가.'
처음 이모샤 중위에게 그 보고를 들었을 때, 바놀 중령은 진위 여부 따위는 개의치 않고서 전선 방비를 몇 배로 늘렸다.
설령 보고가 거짓이라고 하더라도 손해는 그다지 크지 않았을 뿐더러, 무엇보다도 칼 마커스의 말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평소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규모의 웨이브가 일어났지.'
칼 마커스는 여전히 비밀이 많다.
어떤 꿍꿍이를 가지고 있는 지도 솔직히 말해서 전혀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칼 마커스가 점차 아크의 신임을 얻고 있고,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아크에 이득을 가져다준다는 점이었다.
'칼 마커스라······.'
이번 전쟁에서 살아남는다면, 술자리라도 한 번 만들어 봐야겠군.
바놀 중령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 다중 웨이브 (10) > 끝
치이이익······.
도대체 얼마나 방아쇠를 당겨댄 건지, 나름대로 열 관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NOA-8 중기관포의 포신이 붉게 달아올랐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자동 복원 능력에 의해서 어느 정도 수복이 되긴 하겠지만, 적어도 지금 당장 사용할 수는 없다는 뜻이었다.
과열된 건 비단 NOA-8 중기관포뿐만이 아니었다.
TITAN-17 대마수 로켓는 물론이고, 내 주력 병기인 Ark-15 자동 소총 역시도 과열되어서 더는 사용할 수 없는 수준이 되었다.
끊임없이 달려드는 마수와 마물들을 상대한다는 건 그런 것이었다.
'별수 없나.'
Ark-15 자동 소총의 끈을 어깨 뒤로 넘긴 나는 호루스를 비롯한 야누스, 그리고 에스더와 함께 육탄전으로 돌입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당분간은 총기류를 사용할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기 때문이었다.
[와요!]
"알면 막아라!"
[그러고 있어요!]
에스더와의 짧은 실랑이가 오가고,
[키에에에엑!]
호루스가 괴성을 내지르며 사방에서 달려드는 마수와 마물들을 향해서 흉성을 토해냈다.
나 역시도 엥켈렌스의 창을 다잡은 채로 끊임없이 창을 휘두르고, 찔렀다.
촤아아악───!
푹! 푹, 푹!
[카아악!]
[끼에에에에에에!!!!]
지역의 주인급 마수인 우로보로스의 역린조차도 뚫어냈던 엥켈렌스의 창이다.
일반적인 수준의 마수들이 이를 감당할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기깃!]
야누스 역시도 내 움직임을 보조함과 동시에 나를 향해서 달려드는 마수들을 상대했다.
['경질화'가 발동합니다!]
['강철화'가 발동합니다!]
거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스스스───!!
마치 고슴도치처럼 전신에서 뼈 가시를 세운 야누스가 괴성을 내질렀다.
['뼈 투창'이 발동합니다!]
그리고,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뼈 촉수들이 사방으로 비산하기 시작했다.
쐐애애애애액───!!
쐐새새새색!!!
[케헥!]
[그우우!]
그와 함께 겁 없이 달려들던 비행형 마수들의 날개에 바람구멍이 솔솔 나며 지상으로 추락했다.
비록 뛰어난 효과만큼이나 남용하기에는 소모값이 아주 큰 능력이었지만, 그에 대해서는 크게 고민할 필요 없었다.
이곳에 널리고 널린 게 바로 야누스의 먹잇감들이었으니까.
쐐새새색!
한 번의 뼈 촉수를 사방에 비산한 야누스는, 다시금 뼈 촉수들을 뻗어서 주변의 마수와 마물들을 낚아챘다.
쪼옥, 쪽─
그리고 그건 같은 뼈 기생체 마물인 호루스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키에에엑!]
만약 이곳에 야누스와 호루스에게 크게 위협이 될 만한 마수와 마물이 있었다면 전장 한복판에서 이런 짓은 하지 못했을 테지만, 이미 위협이 될 만한 고위 마수와 마물들은 모두 죽였거나, 혹은 다른 곳에 있다.
하물며 나 역시도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었으니 야누스와 호루스가 식사를 마칠 시간을 벌어주는 건 어렵지 않았다.
[가악, 가아악!]
[그르르!]
먹고, 죽이고, 다시 먹고.
전장 한복판에서 이 기괴한 루틴이 끝없이 이어지며 치열한 전투가 이어졌다.
손에 감각이 없다.
그저 기분 탓만은 아닐 것이다.
실제로 내가 창을 휘두르고 찌른 횟수만큼이나 죽인 마수와 마물들이 많았으니까.
"큭!"
전투의 치열함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전투가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몸에 하나둘씩 크고 작은 상처가 늘어갔다.
오랜 전투 탓에 야누스의 보호 능력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뜻이기도 했다.
[키에에······.]
그리고 그건 호루스 역시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아무리 직접적으로 위협이 되는 마수와 마물들이 없다고는 해도, 숫자에는 장사가 없는 법이었다.
"콜록! 콜록!"
그렇게 얼마나 싸워댄 걸까.
어느 순간부터인가 달려드는 마수와 마물들의 숫자가 부쩍 줄어들더니, 어느덧 보이지 않게 되었다.
물론 지상에는 여전히 마수와 마물들이 있기는 했지만, 놈들은 우리에게 전혀 위협지 되지 못했다.
그렇게 간신이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되었을 때, 나는 물론이고 호루스와 야누스 역시도 어디 한 군데 성한 곳이 없을 정도로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크, 흡!"
나는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마약성 진통제를 허벅지에 놓고는 숨을 몰아쉬었다.
중화기와 A-985 폭발탄을 난사할 때야 몸에 상처를 입을 일이 거의 없었으나, 본격적으로 근접전에 돌입하면서 크고 작은 상처들을 입다 보니 이 꼴이 될 수밖에 없었다.
'아직 멀었군.'
그럼에도 살아남았다.
무려 다중 웨이브 한복판에서.
보통의 상식으로는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지만, 호루스와 야누스, 그리고 에스더와 무한의 총알이 그걸 가능하게 했다.
'그리고··· 아크 쪽도 거의 정리 되고 있나.'
비록 내가 웨이브 한복판에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마수 군단과 혼자 싸운 건 아니었다.
아니, 엄밀히 따지면 마수 군단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아크였고, 나는 그 중간에 길목에서 훼방을 놓는 정도에 불과했다.
'물론 그 정도도 충분했겠지만.'
그에 대한 증거로, 아크가 웨이브를 막아낸 시간이 예정보다 훨씬 더 빨랐다.
무려 다중 웨이브를 상대했음에도 불구하고 평소보다 살짝 늦어진 수준.
즉, 아크에 있어서 상대하기 까다로운 축에 속하는 비행형 마수들의 발목을 끈덕지게 붙잡고 있었던 게 아주 큰 도움이 됐다고 볼 수 있었다.
[후아··· 이제 끝난 거예요?]
"대충은."
이제 아크의 전선에 있는 마수 군단의 숫자도 얼마 남지 않았다.
아크의 화력을 생각했을 때, 저 정도 잔당은 그야말로 순식간에 처리할 수 있을 터.
'나름대로 잘 막아냈다고 봐야겠지.'
갑작스러운 다중 웨이브.
하지만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되는 걸 감내한 덕분인지 아크의 피해는 예상보다 훨씬 더 적었다.
그리고······.
마침내, 이번 전쟁의 끝을 알리는 메시지가 눈앞에 나타났다.
[Red-05, 06 스테이지를 클리어하였습니다!]
[공적치가 누적됩니다.]
[+184,887 공적치]
[다중 웨이브를 클리어하였습니다! 공적치가 추가로 적립됩니다.]
[+80,000 공적치]
[전장 한복판을 누비는 엄청난 활약을 보였습니다! 공적치가 추가로 적립됩니다.]
[+30,000 공적치]
[현재 공적치 : 455,308]
그렇게 들어온 공적치를 본 후, 나는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호오.'
무려 30만에 가까운 공적치가 한 번에 생겼다.
스테이지 후반부에나 얻을 수 있는 공적치량을, 고작 레드 라인 스테이지에 불과한 지금 얻어낸 것이다.
'저번 공적치가 고정형 화기인 이레이저를 사용해서 얻어낸 성과라는 걸 생각하면··· 엄청나군.'
거기에 더해서 이미 내가 지니고 있었던 공적치와 합치니,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숫자가 튀어나왔다.
'45만 공적치.'
이 정도면 화력 면에서 기존 병기보다 압도적인 병기인 블래스터류 병기를 구매하기에도 충분한 공적치다.
하물며 지금의 나는 아크의 명예 시민이었으니, 자격도 충분할 터.
'게드윈이 꽤 놀라겠는데.'
병참 장교 게드윈은 공적치와 관련된 특수한 성질의 에테르를 읽어낼 수 있다.
당연히 내 주변에는 공적치만큼의 에테르가 득실대고 있을 테니, 게드윈이 기절하지나 않으면 다행이었다.
'정말로 기절이라도 했다가는 내가 귀찮아지니까.'
어쨌거나 이제 할 일도 끝났겠다, 나는 호루스의 기수를 돌렸다.
비록 호루스도 많이 지쳐있기는 했어도, 이 먼 거리를 또 걸어서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가자."
집으로 갈 때다.
* * *
"허억, 허억······."
이제 막 전쟁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이모샤 중위는 후들거리는 다리로 성벽 위의 수비 구역을 걸었다.
비록 보고를 받기는 했어도, 각 포인트 별 피해 상황을 비롯한 현장 상황을 직접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오, 오셨습니까······."
"레넬 상병! 당장 조치를─"
"끅!"
"······."
당연히 그 과정에서 이모샤 중위는 무수한 죽음을 보아야만 했다.
마지막까지 아크를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아끼지 않고 싸웠던 부하들.
그러나 그 숫자는 매 웨이브 때마다 줄어만 갔다.
"아, 오셨습니까."
물론 그중에는 상대적으로 무사한 이들 역시도 있었다.
다만 어디까지나 상대적일 뿐, 그들의 행색 역시도 무사하다고 볼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피해 상황은 어떻지?"
"보고 드린 대로입니다. 총원 17명 중 사망 다섯, 중상 셋 그리고··· 실종 둘입니다."
이번 웨이브가 평소와는 다른 다중 웨이브라는 걸 생각한다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적은 사상자였다.
그럼에도 이모샤 중위는 기뻐하지 못했다.
마냥 기뻐하기에는, 죽어간 이들과 사라진 이들이 너무나도 많았기 때문이었다.
"···실종자의 흔적은? 찾았나?"
"일단 파악 중에 있습니다만··· 솔직히 말씀드려서 장담은 못 드리겠습니다."
그 말대로였다.
사실, 실종이라는 것 자체가 사실상의 사망선고나 다름없었다.
아크의 성벽 위에서 사라졌다는 건, 곧 시체조차 찾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 말고 다른 의미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 그런가."
하지만 이모샤 중위에게는 그들의 죽음을 일일이 애도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이제 고작 하나의 웨이브가 지나갔을 뿐이었고, 얼마 후에는 또 다른 웨이브가 찾아올 것이기 때문이었다.
'대체, 언제까지······!'
이모샤 중위는 입술을 깨물었다.
병사들의 죽음을 볼 때마다, 이모샤 중위는 머나먼 과거가 겹쳐 보였다.
블랙 라인.
바로 그곳에서 있었던 일들이.
* * *
[뼈순이 오늘 많이 피곤한가 보네? 왜 이렇게 느려.]
[키에엣······.]
에스더의 말마따나 호루스의 날갯짓은 꽤 많이 느렸다.
하지만 재촉할 수는 없었다.
비단 호루스뿐만이 아니라 나와 야누스 모두 상당한 중상자였기 때문이었다.
'괜히 억지로 속도를 높여봤자 상처만 더 터지지.'
호루스와 야누스는 본질이 마물이니 그렇다고 쳐도, 문제는 나였다.
일단 진통제와 붕대 등으로 임시조치를 취하기는 했지만, 제대로 된 조치는 은신처로 돌아간 뒤에 하는 게 나을 것이다.
'아크에 들어가서 치료를 받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테지만··· 웬만하면 아크에는 이런 상처들을 안 보여주는 게 낫겠지.'
웨이브가 일어날 때, 생존한 병사들의 중상 비율은 은근히 적다.
애초에 중상을 입을 만한 병사들은 이미 죽기 때문이다.
물론 아크는 생존자 편향의 오류를 저지르는 머저리 집단이 아니었기에, 의료 설비나 기술에 대한 투자를 줄인다든지 하는 짓은 하지 않았다.
물론 그건 그거고, 중요한 건 아크에서 내가 어디서 이런 상처들을 입고 왔는지 의심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 내 상처는 누가 봐도 마수 군단과 지척 거리에서 싸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정도로 그 정도가 심했다.
'뭐, 크게 상관없겠지.'
걸리는 일들이 몇 개 있긴 했으나, 그럼에도 나는 좋게 생각했다.
설마 이런 시기에 무슨 일이 일어나진 않겠지라는 막연한 낙관주의와, 그와 더불어서 그렇기를 바라는 바람이 겹쳐져서 생긴 일이었다.
아마 그래서일 거다.
갑작스럽게 지상에서 날아온 투사체에 대해서 예상하지 못한 것이.
'무언가 날아온다.'
날아든 건 창이었다.
다만, 왜인지 그 생김새가 익숙했다.
'···뼈 창.'
뼈로 만들어진 창.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키에에에에엑!]
[뼈순아!]
뼈 창이 호루스의 날개 중 하나를 완전히 꿰뚫고 지나갔다.
푸슉!
그와 함께 안 그래도 허우적거리다시피 날갯짓을 하고 있던 호루스의 몸이 빠르게 추락하기 시작했다.
"···망할."
만약 평소의 호루스라면 충분히 피하거나 막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호루스는 매우 지치고 상처 입은 상태였고, 그 근본적인 피로는 아무리 마수들의 시체를 먹으며 영양분을 보충해도 채워지지 않는 것이었다.
"에스더!"
[···노력해 볼게요!]
추락의 충격을 최대한 완화하기 위해서 에스더는 물론이고 얼마 없는 내 에테르까지도 응집했다.
[천천히?]
[받아. 받아. 받아. 받아. 받아. 받아. 받아. 받아. 받아. 받아. 받아. 받아. 받아. 받아. 받아. 받아. 받아. 받아. 받아. 받아. 받아.]
[힘 빠져······.]
그리고 호루스와 야누스 역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최대한 뼈 촉수들을 세우며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서 갑옷을 둘렀다.
하지만 그 모든 노력은 결국 추락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함일 뿐 추락하지 않기 위함은 아니었다.
곧, 우리는 지상에 추락했다.
쿠우우우우우웅───!!!
자욱하게 일어난 흙먼지 속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랜만이다, 에스더. 아마 거기 있을 테지?"
에스더가 모습을 드러냈다.
만약 에스더가 모습을 숨기고 있었다면 저쪽에서 에스더를 보지는 못할 테지만, 애초에 에스더의 존재를 알고 있는 이상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너는······.]
이윽고 흙먼지가 조금씩 걷히며, 익숙한 시선이 나를 향했다.
"그 날의 대답을 들으러 왔다, 인간."
변절자 룩.
놈이 나를 찾아왔다.
< 다중 웨이브 (11) > 끝
[룩!]
변절자 룩.
이 타이밍에 가장 마주치고 싶지 않은 인물 중 한 명을, 결국 마주하고야 말았다.
"···그런 걸 물어보러 온 것치고는 방식이 과격한데."
[맞아! 그러다 떨어져서 죽었으면 어쩌려고 했어? 무식하게 힘만 쌔 가지고!]
옆에서 에스더가 힘차게 거들었다.
잘한다, 더 해라.
"듣자 하니 노아에서 지내고 있다지? 아무래도 거기까지 들어가면 찾기가 조금 귀찮아지니까. ···그리고 너는 조용히 해라, 에스더. 이게 다 너 때문이니."
[내가 잡히고 싶어서 잡혔나?]
"그러니까 조용··· 아니, 아니다."
변절자 룩이 고개를 내저었다.
아무래도 에스더를 상대하는 게 힘든 건 비단 나뿐만은 아닌 듯했다.
'그나저나, 힘은 여전하군.'
아무리 호루스가 지쳐 있다고는 해도, 무려 1급에 달하는 힘을 지닌 마물이다.
그런 호루스의 날개를 이토록 쉽게 찢어발기다니······.
변절자니, 스컬 턴코트니, 등급 외 마물이니 하는 자질구레한 이야기들은 다 빼놓고서 단지 그림자단의 몇 없는 전투원이라는 것만으로 변절자 룩의 강함은 입증된 것이나 다름없다.
실제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서 변절자 룩을 잡기 위해서는 최소 스테이지 중반 이후는 되어야 한다는 게 중론이기도 했고 말이다.
'그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게 아크의 힘을 끌어다 쓴다는 걸 전제로 한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지.'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나라면 호루스와 더불어서 야누스, 에스더의 힘까지 빌린다면 상대하지 못할 것도 없는 게 사실이다.
내 입으로 직접 말하기는 그래도, 지금 나는 일반적인 상식 수준의 성장 궤도를 벗어나 있었으니까.
'온갖 패널티를 대가로 레벨 3의 에테르 감응력, 그리고 강체 능력과 야누스의 힘. 거기에 더해서 알파, 시그마, 오메가 타입의 강화 혈청까지 손에 넣었지.'
그렇기에 지금의 나라면 호루스, 그리고 에스더까지 합세한다는 가정하에 변절자 룩과도 해볼 만할 것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변절자 룩의 공격 패턴은 내 머릿속에 하나도 빠짐없이 들어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 어디까지나 현재 내 상태가 멀쩡하다면 말이다.
"대답은 준비되었나?"
변절자 룩의 얼굴이 사나운 미소로 물들었다.
마치 지금 당장 대답하지 않으면 죽이기라도 할 것 같은 분위기.
그러나, 내가 그까짓 분위기에 굴할 리가 만무했다.
"기분이 나빠서 오늘은 못 해주겠군. 다음에 다시 찾아와라."
[···주인님 혹시 지금 미쳤어요? 지금 룩 앞에서 무슨 개소리를─]
"하하."
변절자 룩의 손이 잠시 시야에서 사라졌다.
파아아아아앙────!!!
공기를 찢고서 날아든 뼈 창이 내 뺨을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반응을 하려고 했다면 할 수야 있었겠지만, 어차피 맞지도 않는 걸 어설프게 막으려고 해봤자 나만 손해였기에 일부러 가만히 있었다.
"건방 떨지 마라. 그 잘난 혓바닥이 끝까지 목 위로 붙어 있고 싶다면."
"이러면 내 기분이 더 나빠질 거라는 생각은 못 해봤나?"
"내 인내심을 시험하지 마라. 에스더를 봐서 봐주는 것도 여기까지다."
"해보든지."
[제발 그러지 좀 마요! 그러다가 진짜 죽는다고!]
에스더가 비명을 내질렀다.
최악이라면 최악인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토록 당당한 이유는 간단했다.
어차피 변절자 룩은 나를 죽일 수 없을뿐더러, 무엇보다도 지금 나에게는 구사일생 중첩이 하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도··· 이 상황에서 룩에게 어설프게 밀렸다가는 끝장이다.'
비록 예전에 단장과 함께 있을 때는 그 진면목을 드러낼 일이 없었지만, 본디 변절자 룩은 짐승과도 같은 사내다.
어설프게 약한 모습을 보였다가는 언제 잡아먹혀도 이상하지 않다.
나는 그 누구보다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찢어놓고 싶지만··· 단장의 말도 있으니 한번은 참겠다. 그래, 제안은 생각해봤나?"
단장의 말 때문인지, 변절자 룩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참을성을 발휘했다.
애초에 이럴 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진귀한 광경이었다.
"해보긴 했다."
"대답은?"
"고민할 시간이 더 필요할 거 같더군."
[아··· 난 이제 몰라.]
에스더가 체념했다.
그리고 변절자 룩의 표정이 사나운 미소로 일그러졌다.
"지금 나와 장난을 치자는 건가?"
"그렇게 보였나? 나름대로 진지하게 말한 건데."
"그렇다면 지금 당장 결정해라. 그리고 다시 한번 경고하지만··· 감히 내 인내심을 시험하지 마라, 인간."
경고는 말뿐만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듯이 변절자 룩에게서 폭발할 것 같은 기세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 만, 해······!]
[하지 마. 하지 마. 하지 마. 하지 마. 하지 마. 하지 마. 하지 마. 하지 마. 하지 마. 하지 마. 하지 마. 하지 마. 하지 마. 하지 마. 하지 마.]
[꺄아아아아악───!!!]
주변의 에테르가 격렬하게 반응할 정도의 기세.
변절자 룩은 에테르 감응력이 거의 없는 존재다.
애초에 에스더를 보지 못하는 것 역시도 그러한 맥락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현상을 일으킨다는 것 자체가 변절자 룩이 지닌 강함을 증명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결국 이렇게 되는군.'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변절자 룩의 제안은 그다지 어렵지도 않은 문제다.
혹시라도 거절할 생각이라도, 일단 받아들인다고 한 후에 나중에 가서 그림자단을 배신하면 되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림자단은 바보가 아니었고, 애석하게도 그에 대해서는 상당히 치밀한 준비를 해두는 족속들이었다.
'설사 내가 당장 위기를 모면하려고 하더라도, 필시 배신할 수 없는 환경을 만들 거다.'
누구보다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나였지만, 당장 대놓고 변절자 룩의 제안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만약 몸 상태가 조금이라도 더 좋았다면 모를까, 현재 내 상황은 썩 좋지 못했다.
"협력하지."
내가 한마디를 덧붙였다.
"대신, 오늘은 이만 돌아가라."
"그러지."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변절자 룩은 순순히 물러나는 듯했다.
"단."
그러면 그렇지.
"저걸 넘겨라."
변절자 룩의 손가락 끝이 향한 곳에 있는 건 다름 아닌 호루스였다.
[기이익······.]
조금 전에 날개가 찢어진 탓에 호루스는 구슬픈 울음을 흘리면서 상처를 회복하는 것에 전념하고 있던 찰나였다.
지금 변절자 룩은, 그림자단에 협력하겠다는 약속에 대한 증거로 호루스를 요구하고 있었다.
어처구니없는 요구였다.
"내가 왜 그래야 하지?"
"혹시 아나? 저걸 타고 멀리 도망갈지. 아, 저 녀석에 대한 건 크게 걱정하지 마라. 네가 쓸데없는 짓을 하지 않는다면 나도 저 귀여운 녀석에게 손을 대고 싶지는 않거든."
"그런 것치고는 잘도 날개에 구멍을 내놨던 거로 기억하는데."
"그랬나? 그냥··· 그래, 최소한의 안전장치라고 생각해라. 어차피 네가 진심으로 우리에게 협력할 생각이라면 별로 상관없을 텐데?"
[맞아요! 어차피 뼈순이를 죽인다는 것도 아닌데, 저 정도는 괜찮지 않아요?]
딱히 틀린 말은 아니다.
실제로 일이 수틀리게 되면 그럴 생각도 어느 정도 하고 있던 게 사실이었으니까.
'물론 아크를 지켜야 하니 멀리는 못 갔겠지만.'
어쨌거나 결국 이야기가 돌고 돌아서 예상했던 대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그림자단은, 그리고 변절자 룩은 나를 순순히 놓아줄 생각이 없다.
애초에 그림자단에 가입할 생각이라면 전혀 상관없는 조건이지만, 반대의 경우라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저 말대로 호루스를 내놓게 되면 결국 그림자단의 요구에 따를 수밖에 없어진다.'
호루스를 포기한다는 선택지는 당연히 존재하지 않았다.
아무리 함께 한 시간이 상대적으로 길지 않다고 하더라도, 무려 1급 마물 수준까지 키워낸 녀석이다.
이런 말 같지도 않은 일 때문에 호루스를 포기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키워내려고 한다면 또 키워낼 수도 있겠지만··· 호루스에게 들어간 시간과 노력을 생각한다면 도저히 수지타산이 안 맞아.'
결국, 이제 나도 결단을 내려야만 할 때가 왔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거절한다."
"···내 말을 제대로 이해한 건가? 저 마물을 달라는 게 아니라, 단이 숙원을 이루는 동안 잠시 맡기라는 뜻이다."
변절자 룩은 조금 당황한 기색이었다.
설마하니 내가 면전에서 그림자단의 제안을 거절했을 리는 없으니, 내용을 잘못 알아들은 것으로 치부한 것이다.
다만 변절자 룩이 한 가지 착각하고 있는 게 있다면, 지금 내가 한 말이 무언가를 착오해서 한 말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걸 거절한다는 뜻이다."
변절자 룩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지금 내가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차렸다는 뜻이었다.
"그게 너의 뜻인가? 인간."
"그렇다고 말했을 텐데."
[미, 미친··· 룩! 이건 아니야. 다시 한번 생각해. 설마 진짜로 이 인간을 죽일 건 아니지? 그러면 나도 죽어!]
이미 반쯤 체념하고 있던 에스더에게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 정도로 분위기는 심각해져 가고 있었다.
"하하······."
낮은 웃음이 흘렀다.
본래였다면 이쯤에서 변절자 룩을 향해서 선공을 해야 함이 옳지만, 애석하게도 그럴 만한 수단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엥켈렌스의 창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최대한 아껴둬야 해.'
야누스가 강해지면서 엥켈렌스의 창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도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그 시간을 거의 다 소진했을 정도로 오늘의 격전은 치열했다.
'어차피 그림자단 측에서 호루스를 요구한 순간부터 엎질러진 물이다.'
만약 내가 진심으로 그림자단에 협력할 생각이었다면 상관없었을 것이다.
천천히 그림자단에 협력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들의 신임 역시도 얻었을 테니까.
하지만 문제는, 진짜로 그런 짓을 했다가는 아크의 상황이 돌이킬 수 없는 수준까지 치달아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었다.
애초에 그림자단으로서 하는 임무들이 대개 그런 임무들이었으니까.
'아크를 또다시 반으로 가를 수는 없어.'
그림자단과 함께 해서는 이 빌어먹을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그건 이미 내가 질리도록 몸으로 체험한 바였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그 사실이 지금 상황에는 썩 도움이 되지는 못한다는 점이었다.
"처음부터 이렇게 할 것을······."
나지막이 중얼거린 변절자 룩의 전신에서 흉악한 기세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대체 어쩌려고요?]
나도 알고 있다.
지금의 내 상태로는 절대로 변절자 룩을 상대로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단순히 내 상태만 나쁜 게 아니라, 야누스와 호루스, 그리고 에스더까지도 중상이라고 보는 게 옳았다.
"괜찮아."
내가 조용히 지평선 너머를 바라보았다.
온갖 마수와 마물의 시체가 늘어선 곳에서, 나는 한 가지를 느낄 수 있었다.
마침내, 올 게 왔다는 것을.
"시간은 이미 충분히 끌었거든."
[그게 무슨─]
에스더의 의문이 채 토해지기 직전, 변절자 룩이 휘두른 뼈 창이 나를 향해서 쇄도했다.
[이익!]
에스더가 에테르를 일으키며 변절자 룩의 뼈 창을 막아내려 했지만, 안 그래도 힘을 많이 잃은 에스더가 지치기까지 했으니 가능할 리가 만무했다.
"아서라!"
뼈 창이 쇄도한다.
지금 내가 저걸 막아낼 수 있을까?
아니, 피할 수나 있을까?
대답은 회의적이었다.
만약 몸이라도 멀쩡했다면, 아니 야누스의 상태라도 멀쩡했다면 어떻게든 됐겠지만, 지금은 그 어느 것도 충족되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꼭 내가 저걸 막거나 피할 필요는 없었다.
살다 보면, 때로는 기적이라는 게 일어나는 법이었으니까.
물론 지금 일어날 기적은 내가 일으킨 것이었지만 말이다.
쐐애애애애애액────!!
거리를 가늠할 수 없는 머나먼 거리에서 날아온 무언가가, 나를 향해서 쇄도하던 변절자 룩의 뼈 창을 후려쳤다.
콰카카카카캉───!!
그에 기민하게 반응한 변절자 룩이 단번에 뒤로 물러나며, 이내 이쪽을 향해서 익숙한 인영 하나가 빠르게 다가왔다.
[저건······.]
그와 함께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 인영의 정체는 뻔했다.
"동··· 족··· 내가··· 왔, 다."
변절자 나이트.
그것이 나의 부름에 응했다.
< 변절자 룩 > 끝
난데없이 불청객에 의해서 자신의 공격이 막혀서일까.
아니면 지금 나타난 이의 정체 때문일까.
"호오······."
변절자 룩이 의외라는 듯이 뼈 창을 거두었다.
하려고 했다면야 곧장 공격을 이어갈 수 있었겠지만, 변절자 룩으로서도 이번 방문자가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는 뜻이다.
"이거··· 아주 의외의 얼굴이 여기서 나타났는데."
변절자 룩과 변절자 나이트가 서로를 마주 보았다.
비록 같은 변절자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아크에서 분류한 명칭일 뿐, 그게 둘 사이의 어떠한 관계를 나타내지는 않는다.
그 사실을 증명하듯이 실제로 변절자 룩과 변절자 나이트 사이에서 흐르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너, 죽인다."
문답무용이라는 걸까.
변절자 나이트가 변절자 룩을 향해서 뼈 창을 내밀자, 그에 화답하듯이 변절자 룩에게서 흉악한 기세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끼어들겠다는 건가?"
"동, 족 지킨, 다."
"동족? 하하! 누가 누구를 보고 동족이라고 하는 건지 모르겠군. 편을 잘못 고른 것 같은데?"
그 말마따나 지금까지의 변절자 나이트의 행동 양상을 보면 변절자 룩 역시도 동족으로 받아들였어야 한다.
아니, 엄밀히 따지자면 나보다는 변절자 룩 쪽이 훨씬 더 동족이라는 분류에 걸맞다.
하지만 여기에는 한 가지 숨겨진 일화가 있었다.
오래 전, 변절자 나이트는 변절자 룩에게 잡아 먹힐 뻔했다.
비유 같은 게 아니라, 정말로.
그 이후로 변절자 나이트과 변절자 룩은 적대 관계가 되었고, 그게 지금까지 이어져왔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변절자 나이트가 변절자 룩을 피해왔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개인 대 개인은 물론이고, 세력까지 생각한다면 변절자 나이트는 변절자 룩의 상대가 될 수 없었던 게 사실이었으니까.
'변절자 룩으로서도 굳이 쫓을 이유가 없기도 했고.'
변절자 룩에게 있어서 변절자 나이트는 제법 먹음직스러운 먹잇감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단의 임무나 숙원을 모조리 팽개치고 찾으러 다닐 만큼 가치가 있는 건 아니다.
한쪽은 도망 다니고, 한쪽은 굳이 쫓을 필요를 느끼지 못하니 자연스럽게 이 둘은 적대 관계를 유지한 채로 마주치지 않게 되었다.
'그것도 오늘까지지만.'
어차피 오늘은 변절자 나이트에게 있어서도 기회가 될 것이다.
이 지긋지긋한 악연을 마무리 지을 수 있는 기회.
"죽··· 어라."
변절자 나이트의 신형이 사라졌다.
변절자 룩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콰아아아아앙───!!!
그리고 일어난 변절자들 간의 전투.
과연 아크로부터 변절자라는 이름으로 지정된 위험 마물들 간의 전투답게, 서로의 뼈 창이 격돌할 때마다 거대한 기파가 일어났다.
"고작 그 정도더냐!"
변절자 룩이 광소를 터트리며 뼈 창을 내질렀다.
변절자 나이트 역시도 그에 밀릴세라 뼈 창을 함께 뻗었으나, 조금씩 밀리는 게 보였다.
"죽, 어."
변절자 나이트의 전신에서 무수한 뼈 촉수들이 돋아났다.
그러나 변절자 룩에게서 뻗어 나오기 시작한 뼈 촉수들은 그보다 훨씬 더 많고, 두꺼웠다.
그리고는 변절자 룩과 변절자 나이트의 뼈 촉수들이 서로 엉키기 시작했다.
쐐색─!
쐐새새색!!!
변절자들끼리의 전투.
달리 말하자면 스컬 턴코트들끼리의 전투답게 온갖 곳에서 어지럽게 뼈 촉수들이 서로를 향해서 찔러 들어갔다.
푹!
푸푸푹!
하지만 스컬 턴코트라는 마물 자체가 뼈를 이용해서 공방 일체를 이루는 마물이다 보니, 일격에 승부가 나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서로의 특성이 비슷한 만큼 흘러가는 양상 역시도 소모전에 가깝게 흘러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소모전이라고 하더라도 결국 승부는 나는 법.
전투의 기세는 점차 변절자 룩에게로 기울기 시작했다.
'저건··· 안 되겠군.'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분명히 일대일 싸움은 변절자 룩이 변절자 나이트보다 우위에 있다고 보는 게 옳다.
괜히 아크에서 룩에게는 룩의 이름을 부여하고, 나이트에게는 나이트의 이름을 부여한 게 아니라는 소리.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일대일의 경우일 뿐.
'야누스.'
[기잇!]
나는 조용히 오른팔을 뻗었다.
비록 화기들을 사용하려면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내가 지닌 무기는 화기뿐만이 아니었다.
['엥켈렌스의 창'을 소환합니다!]
['엥켈렌스의 창' 소환 가능 시간 : 3분 11초.]
오른팔에 잡힌 엥켈렌스의 창이 더없이 무겁게 느껴졌다.
그만큼 현재 내 상태가 영 말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우는 소리를 할 수는 없지.'
만약 이 싸움을 변절자 나이트에게 맡겨둔 채로 도망친다면, 당장의 위기는 모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다음은?
변절자 나이트라는 내가 지닌 패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패 중 하나를 의미 없이 잃게 될 뿐이다.
'그렇게 둘 생각은 없지만.
뿌득, 뿌드득─
엥켈렌스의 창을 다잡은 근육이 끔찍한 비명을 내질렀다.
아무리 내가 자연 회복력이 뛰어나다고는 해도, 절대로 이런 단기간에 회복할 상처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한계를 넘어서 그대로 투창 자세를 잡았다.
'에스더.'
[내가 이젠 하다하다 옛 동료의 등에 칼을 꼽는 날이 왔구나······.]
'먼저 맞은 건 우리다.'
[엄밀히 말하면 우리가 아니라 주인님이긴 한데··· 뭐, 지금은 딱히 틀린 말도 아니네요.]
요동치는 에테르가 엥켈렌스의 창을 타고서 들썩였다.
다만, 에테르 역시도 많이 소모했기에 평소처럼 강렬하지는 못했다.
[던져······.]
[맞추, 자······.]
에테르가 엥켈렌스의 창을 휘감는다.
비록 이 몸으로 저 전투 한 가운데에 끼어들기에는 무리가 있더라도, 멀찍이서 지원하는 것 정도라면 충분히 가능했다.
'우선, 한 방.'
나는 크게 젖혀진 창을 내던졌다.
['뼈 투창'이 발동합니다!]
파아아아아아앙────!!!!
그와 함께 공기를 찢고서 날아간 엥켈렌스의 창이 시종일관 변절자 나이트를 압박하고 있던 변절자 룩에게 향했다.
"이까짓 것!"
저런, 막지 말고 피했어야지.
물론 내 충고는 변절자 룩에게 닿지 않았다.
변절자 룩은 순간적으로 뼈로 만들어낸 방패를 들어서 내 투창을 막아냈으나, 엥켈렌스의 창에 가해진 회전은 멈추지 않았다.
콰득, 콰드드득!
"···제법!"
콰드드드득!!!
변절자 룩의 뼈 방패에 가로막혔음에도 불구하고, 엥켈렌스의 창의 회전은 여전히 멈추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욱더 거칠게 회전했다.
쩌적, 쩌저적──!!
뼈 방패에서 점차 가느다란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하더니, 이내 산산이 부서지며 폭발이 일어났다.
콰아앙!
사방으로 뼈 파편들이 비산하며 변절자 룩의 몸이 크게 휘청거렸다.
변절자 나이트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서 곧장 뼈 촉수들을 뻗었다.
쐐새새새색!!!
그 덕분에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내내 밀리고 있던 변절자 나이트가 여유를 되찾았다.
그리고 나는 그 틈을 놓칠 생각이 없었다.
"호루스!"
내 부름과 함께 이제 막 날개의 회복이 끝난 호루스가 날아올랐다.
나 역시도 엥켈렌스의 창의 소환을 해제하고는 변절자 나이트의 옆에 섰다.
"동, 족······."
"해보자고."
나를 비롯한 야누스와 호루스. 그리고 거기에 더해서 에스더와 변절자 나이트까지.
순식간에 1:5의 상황이 되었다.
그 모습을 바라본 변절자 룩이 조금은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말했다.
"···조금 비겁하다는 생각은 안 해봤나?"
"별로."
중환자를 기습한 주제에 잘도 지껄이기는.
그러나 압도적인 수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변절자 룩에게서는 위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아니, 오히려 여유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적당히 하려고 했는데··· 그러지 못하게 하는군."
이윽고 변절자 룩에게서 흉험한 기세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다 죽여주지."
단순히 기세뿐만이 아니었다.
마치 무언가 형상화되기라도 한 것처럼, 그의 주변에 있는 뼈 촉수들이 넘실거리며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가시덩굴을 이루기 시작했다.
마치 공간 자체를 자신의 영역으로 만드는 것 같았다.
그리고,
순식간에 변절자 룩의 몸이 튀어 오르더니, 이내 나를 향해서 쇄도했다.
아무래도 상대적으로 약한 쪽부터 노릴 생각인 듯했다.
'빠르다.'
변절자 룩이 펼쳐낸 저 뼈 덩굴 자체가 하나의 영역으로서 작용하며 변절자 룩의 움직임을 배로 빠르게 만들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서 무수하게 자라난 뼈 덩굴 자체가 변절자 룩을 보호하는 갑옷이 되어주기도 했으니, 그야말로 공방 일체의 기술이었다.
'야누스!'
하지만 나도 쉽게 당해줄 생각은 없었다.
야누스가 뼈 촉수를 뿜어내서 단번에 나를 감쌌다.
스스스!
야누스의 뼈 촉수들이 나를 지키기 위해서 스멀스멀 피어오름과 거의 동시에, 변절자 룩의 뼈 창이 내 허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아무리 야누스가 방어를 했다고는 하나, 약해진 야누스로서는 변절자 룩의 공격을 온전히 막을 수 없었던 것이다.
"큭!"
그나마 시그마 타입 강화 혈청의 능력인 질긴 피부가 아니었다면 진작 뼈가 잘려나갔으리라.
물론 우리도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공격은 곧 또 다른 빈틈을 만들었고, 변절자 나이트와 호루스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변절자 룩을 향해서 뼈 촉수들을 마구잡이로 쏟아냈다.
콰카카카카캉───!!!
마치 폭격처럼 쏟아져 내린 뼈 촉수들 사이에서, 변절자 룩이 뿜어낸 뼈 덩굴이 그것들을 향해 맞섰다.
뼈, 뼈, 뼈, 더 많은 뼈.
이 자리에 있는 뼈 기생체의 숫자만 해도 네 마리라는 걸 증명하듯이, 온갖 뼈들이 전장에서 나돌았다.
'장관이군.'
아니, 그 반대인가?
어쨌거나 이런 소모전으로는 승부가 안 날 게 뻔했기에, 결국 마무리를 짓기 위해서는 접근전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가자."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었다.
변절자 룩과 변절자 나이트. 그리고 나와 호루스가 일제히 서로를 향해서 달려들었다.
뿌드득······.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근육이 비명을 내지르고, 간신히 응급 처치만 했던 상처들이 다시 벌어지며 피가 배어 나오기 시작했다.
여전히 몸 상태는 최악.
그리고 그건 나와 함께 싸운 야누스나 호루스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망할.'
이럴 때는 새삼스레 스컬 나이트와 인간의 차이를 느낀다.
명백히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게 되는 스컬 나이트와는 달리, 평범한 인간의 육체는 분명히 여러 부분에서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강화 혈청 덕분에 서 있을 수라도 있는 거지만.'
그마저도 없었더라면, 아마 이 모든 게 꼼짝없이 변절자 룩의 뜻대로 흘러갔으리라.
쐐새새색!
뼈와 뼈가 오가는 교전이 이어졌다.
과연 변절자 룩이라는 건지, 수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노련한 움직임으로 전투에 임했다.
변절자 룩이라는 존재가 단순히 힘만 강한 마물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듯이 말이다.
쿠웅!
변절자 룩의 일격이 무겁다.
고작 몇 번 가볍게 받아냈을 뿐인데도 상처가 모조리 터져서 전신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큭!"
분명히 그럴 때마다 변절자 룩에게는 기회였을 텐데, 어째서인지 변절자 룩은 한 걸음을 더 내디디지는 않았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료했다.
'무언가를 경계하고 있다.'
그리고 그게 무엇인지는 어렵게 생각할 것도 없었다.
현재 변절자 룩에게 그럴듯한 피해를 줄 수 있는 무기라면, 오직 하나뿐이었으니까.
'엥켈렌스의 창.'
하긴, 처음에 엥켈렌스의 창에 호되게 당했으니 변절자 룩이 이토록 경계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소모전으로 갈 수밖에 없는 뼈 기생체들 간의 싸움에서, 일격에 적을 침묵시킬 수 있는 엥켈렌스의 창의 존재는 분명히 경계될 수밖에 없었다.
'역시.'
어쨌거나 그 덕분에 변절자 룩은 언제라도 치고 나올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혹시라도 빈틈을 드러냈다가는 엥켈렌스의 창에 맞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경계하는 것이었다.
곧, 그 사실은 나에게 있어서 더없이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미끼를 한 번 뿌려볼까.
변절자 룩이 저렇게 대놓고 엥켈렌스의 창을 경계하고 있다면, 나로서도 그 부분을 이용해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좋아.'
생각을 마친 나는 망설임 없이 뒤돌아섰다.
"도망치는 거냐!"
"작전상 후퇴라고 해두지."
내가 살며시 전선을 이탈하기 무섭게 변절자 룩이 노성을 토해내며 따라붙었다.
예상했던 대로, 안 그래도 엥켈렌스의 창을 경계하고 있는 변절자 룩이 나를 쉽게 놓아줄 리가 만무했다.
'또 원거리에서 저격이라도 하면 까다롭다고 여긴 거겠지.'
지금의 몸 상태로는 처음에 보였던 투창을 할 수 있는 건 기껏해야 한두 번 수준이었지만, 변절자 룩이 그 사실을 알 리가 만무했다.
아니, 설령 짐작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엥켈렌스의 창이 위협적이라는 사실은 그대로였다.
쐐색─
쐐새색!
마치 찰거머리처럼 뻗어오는 무수한 뼈 촉수들을 막아내기 급급하던 순간, 또 다른 뼈 촉수들이 우리 사이에 끼어들었다.
호루스와 변절자 나이트였다.
[키엑!]
"네, 상대, 나."
변절자 룩의 얼굴이 사정없이 구겨졌다.
< 변절자 룩 (2) > 끝
"그래, 다 죽여 주지!"
변절자 룩이 흉성을 터트렸다.
마치 자신의 앞을 막아선 호루스와 변절자 나이트가 가소롭다는 듯이.
변절자 룩은 얼핏 보면 분노에 찬 것처럼 보였으나, 그러는 와중에도 나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었다.
현재 전황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무기나 다름없는 엥켈렌스의 창을 경계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즉, 지금 드러나고 있는 변절자 룩의 분노조차도 철저히 통제된 것에 불과하다는 이야기였다.
'변절자 룩은 겉으로 보이는 짐승 같은 성정과는 달리, 전투에 있어서만큼은 누구보다도 신중하다.'
그리고 그건 때로는 이용할 수 있는 약점이 되기도 한다.
신중하다는 이야기는 반대로 말하자면 전투 도중의 판단에 있어서 한 발자국 느려질 수밖에 없다는 걸 의미했으니까.
'이쯤이면 되겠지.'
호루스와 변절자 나이트 덕분에 마침내 적당히 거리를 벌리는 데 성공한 나는, 그대로 야누스에게 손을 뻗은 뒤에 뼈 창 하나를 잡았다.
['경질화'가 발동합니다.]
['강철화'가 발동합니다.]
경질화와 강철화.
그 두 가지 힘에 의해서 평소였다면 하얘야 할 뼈 창의 색깔이 탁한 칠흑빛으로 물들었다.
그래, 마치 엥켈렌스의 창처럼.
['뼈 투창'이 발동합니다!]
칠흑의 창이 쏘아진다.
그러나 변절자 나이트와 호루스를 동시에 상대하면서도 이를 주시하고 있던 변절자 룩이 너무나도 쉽게 그것을 피해냈다.
막는 게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걸 이미 경험하였으니, 차라리 그냥 피하는 걸 선택한 것이다.
"흥! 고작 그 정도─"
변절자 룩의 비웃음이 쏘아지기 직전, 또 하나의 뼈 창이 그의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앞서 던졌던 것과 마찬가지로 평범한 뼈 창이었기에, 위력 자체는 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변절자 룩에게서는 당황스러움과 분노가 동시에 터져 나왔다.
"놈!"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재차 뼈 창을 투척했다.
쐐애애애애액─!
본래였다면 무난하게 쳐낼 수 있는 수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혹시라도 엥켈렌스의 창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변절자 룩에게 회피를 강요했다.
그 과정에서 변절자 룩이 억지로 투창을 피해내느라 자세가 순간적으로 무너지며, 본래는 없었던 빈틈을 만들어냈다.
"죽, 어라."
그 틈을 놓치지 않고서 호루스와 변절자 나이트가 파고들었다.
아무리 변절자 룩이라고 할지라도 자세가 무너진 상태에서 변절자 나이트와 호루스를 동시에 상대하는 건 쉽지 않았다.
"큭!"
그제야 변절자 룩 역시도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챈 듯했지만, 이미 늦었다.
'자아, OX 퀴즈 시작이다.'
과연 지금 던지는 창은 엥켈렌스의 창인가, 아닌가?
변절자 룩으로서는 맞기 전까지는 그 결과를 알 수 없을 것이다.
쐐애애애액───!!!
다시금 뼈 창이 날아들었다.
이를 몇 차례 피하며 전투를 이어가던 변절자 룩은 더는 안 된다고 느낀 건지 뼈 창을 쳐냈다.
"얕은 수작, 더는 안 통한다!"
어, 그렇게 나올 줄 알았어.
변절자 룩이 다시금 뼈 창을 쳐내려 했으나, 그것은 튕겨 나가기는커녕 오히려 변절자 룩의 팔을 그대로 꿰뚫었다.
콰드득─!
이번에 던진 뼈 창은 일반적인 창이 아닌, 엥켈렌스의 창이었기 때문이다.
"이놈······!"
변절자 룩의 생각, 방식, 싸움.
그 모든 게 내 손바닥 위에 있다.
"어, 딜, 봐."
[키엑!]
변절자 나이트와 호루스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서 맹공을 퍼부었다.
아무리 변절자 룩이 강하다고 해도, 이런 상황에서 수적인 열세는 쉽게 극복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이놈!"
상황이 그랬으니, 변절자 룩으로서는 무리를 해서라도 나를 노릴 수밖에 없었다.
원래 전투에서 후방 지원조를 노리는 건 정석 중의 정석이었으니, 딱히 놀라울 것도 없었다.
'쉽지는 않을 테지만.'
변절자 룩이 끊임없이 나를 노리기 위해서 시선을 돌렸으나, 변절자 나이트와 호루스는 그걸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이 끈질기게 변절자 룩에게 달려 들었다.
쿵─!
쿵! 쿠웅!
호루스의 거체가 움직일 때마다 변절자 룩으로서도 그걸 피하기 위해서 부지런히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호루스가 만만한 상대도 아닌 데다가, 저 거체는 아무리 변절자 룩이라 할지라도 함부로 무시할 수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대로 전투가 이어지면 승기가 기우는 상황에서, 먼저 움직인 건 당연히 변절자 룩이었다.
뚜득, 뚜드득─
한순간, 변절자 나이트와 호루스를 모조리 떨쳐낸 변절자 룩이 자신을 보조하고 있던 뼈 덩굴을 모조리 해제하고는 나를 향해서 달려들었다.
저 정도의 뼈 영역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소모했을 힘을 생각한다면 분명히 쉽지 않은 결단이었을 터인데, 그것까지도 감안하고서 나를 노린 것이다.
"어, 딜."
변절자 나이트와 호루스가 그런 변절자 룩을 막아서려던 순간, 변절자 룩이 떨어뜨려 놓은 뼈 덩굴이 무서운 속도로 뻗어가며 호루스와 변절자 나이트를 덮쳤다.
"크윽!"
호루스와 변절자 나이트 모두 변절자 룩이 설치해놓은 함정에 발목을 붙잡힌 것이다.
'오는군.'
절대로 가깝지 않은 거리였음에도 불구하고 변절자 룩의 신형이 가까워졌다.
이대로 저 속도에 치이게 되면 안 그래도 최악인 내 몸이 견딜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그러나,
이미 이러한 변절자 룩의 승부수조차도 나에게 있어서는 익숙한 행동 패턴 중 하나일 뿐이었다.
'에스더.'
[···에휴. 미안하다, 룩.]
서서히 에테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평소에 에스더가 사용하던 에테르에 비하면 그야말로 미약하기 그지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에테르의 질까지도 떨어지는 건 아니었다.
[베어?]
[죽, 여······.]
그렇게 만들어진 건 잘 벼려진 에테르의 칼날이었다.
한때 1급 유령종으로서 에테르의 본질에 다다랐던 에스더이기에 가능한 묘기.
그렇게 벼려진 에테르의 칼날이 마치 숨겨진 비수처럼 은밀하게 세워졌다.
'지금.'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고,
존재하지도 않는다.
그런 말도 안 되는 형태의 무형의 칼날이 서서히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는 변절자 룩을 마주했다.
쿠웅!
쿵쿵쿵─!
변절자 룩은 에테르를 거의 느끼지 못한다.
에테르 감응력이 사실상 거의 없기 때문이었다.
뭐, 엄밀히 따지면 이 세계에서 에테르 감응력을 지닌 존재 자체가 드물었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게 꼭 좋은 소식만을 가져다 주는 건 아니었다.
상대가 눈치챌 수 없는 비수인 만큼, 당연히 에테르 칼날은 상대의 움직임을 막는 억제력으로도 작용할 수 없었다.
"죽어라."
어느새 코앞에 다다른 변절자 룩의 싸늘한 목소리와 함께 뼈 창이 나를 향해 쇄도했다.
몸 상태가 멀쩡했어도 막는 게 쉽지 않았을 일격.
하지만 지금 내 몸 상태는 그야말로 최악이었으니, 나는 이 일격을 막는 데 전력을 다해야 했다.
[기깃······!]
야누스가 괴성을 내지르며 전력을 다해서 뼈 촉수들로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 둥글게 말았다.
하지만 지쳐있는 것은 야누스 역시도 마찬가지.
평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앙상한 뼈 촉수들은 너무나도 쉽게 변절자 룩의 뼈 창에 산산이 부서져 나갔다.
콰득!
콰득, 콰드득!
이윽고 흩날리는 선홍의 핏방울.
야누스가 시간을 끌어준 덕분에 나는 아슬아슬하게 겉가죽이 찢어지는 정도로 변절자 룩의 공격을 흘릴 수 있었다.
"어딜."
하지만 변절자 룩은 집요하게 다시금 나를 향해서 파고들었다.
비록 첫 번째 공격을 피하긴 했어도, 고작 그것으로 변절자 룩의 공세가 끝날 리가 없다.
그래, 어디까지나 변절자 룩이 일방적으로 공격을 할 때에 말이다.
뚝─
뚝······.
변절자 룩의 가슴에서 떨어져 내리는 붉은 빛의 피.
미리 만들어두었던 에테르 칼날이 변절자 룩의 빈틈을 파고든 것이었다.
"이까짓 것······!"
가슴에서 흘러내리는 출혈량이 절대 적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변절자 룩은 아무렇지 않은 척 다시금 나를 향해서 달려들었다.
정확히는, 그러려고 했다.
"크윽!"
변절자 룩의 몸이 들썩였다.
비록 변절자 룩은 눈치채지 못했을 테지만, 에스더가 통제하는 에테르 칼날이 어느덧 변절자 룩의 몸 안에 자리를 잡았다는 뜻이었다.
작전 성공이었다.
"잔재주를!"
변절자 룩이 나를 바라보며 흉성을 토해낸 그 순간, 내 앞에서 에스더가 그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움직이지 마.]
"···에스더."
[너를 해치고 싶지 않아.]
저건 기만인가, 아닌가.
솔직히 말해서 잘 모르겠다.
예전에야 에스더의 모든 표정이나 말 같은 게 모두 기만이라고 생각했지만, 최근 들어서 그 생각이 조금씩 바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상대가 한때 그림자단으로서 함께 동고동락 했던 변절자 룩이라면 더욱더 그러했다.
"이까짓 것으로 날 막을 수 있을 것 같나?"
[힘들겠지. 하지만 한 걸음 더 내디디면 너도 죽어.]
"해봐라."
변절자 룩이 코웃음 쳤다.
그 말마따나 에테르 칼날은 변절자 룩의 내부를 엉망진창으로 만들 수는 있어도, 당장 내 앞에 있는 공격을 막아주지는 못한다.
즉, 변절자 룩 역시도 적지 않은 피해를 입을 테지만 나는 확실하게 죽는다는 뜻이다.
'변절자 나이트와 호루스는··· 아직 거리가 조금 있나.'
변절자 룩이 만든 뼈 덩굴.
놈은 그것을 떨어뜨려 놓고 오는 과정에서, 뼈 덩굴을 한꺼번에 비산시켜서 호루스와 변절자 나이트의 발목을 붙잡았다.
물론 그 둘을 상대로는 그럴듯한 피해조차 입히지 못하는 시간 벌이에 불과했지만, 어쨌거나 그 탓에 지금 저 둘이 이쪽으로 합류하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했다.
에스더가 말했다.
[의미 없는 죽음이야. 숙원을 포기할 셈이야?]
솔직히 말해서 이건 허세였다.
나는 물론이고 에스더조차도 이 이상 에테르 칼날을 유지할 여력이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네가 없으면 어차피 같다."
[단장이 슬퍼할 거야.]
멈칫.
단장이라는 이름을 꺼내서일까.
지금까지 요지부동이던 변절자 룩의 움직임이 잠시나마 멎었다.
"···네가 그 이름을 꺼낼 자격은 없다, 배신자."
[나는··· 배신한 게 아니야.]
"그렇다면 이건 뭐지? 정말로 배신한 게 아니라면 비켜라. 단을 위해서라면 너 하나쯤은 희생할 수 있어야 하지 않나?"
[내가 죽어도··· 단장은 슬퍼할 거야.]
"하!"
변절자 룩의 시선이 마치 잡아먹을 것처럼 에스더를 향했다.
물론 변절자 룩에게는 에스더에게 해를 가할 만한 능력이 없었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배신감, 원망, 그리움.
온갖 감정들이 소용돌이 치듯이 변절자 룩과 에스더 사이를 오갔다.
'흐음.'
나는 사태를 관망하다가 슬슬 움직여야 할 때가 왔음을 느꼈다.
물론 에스더를 이용해서 변절자 룩의 감정을 자극하는 것도 꽤 나쁘지 않은 방법일 것이다.
하지만, 나한테는 더 확실한 방법이 있거든.
"야누스!"
내가 야누스를 외침과 거의 동시에 변절자 룩 역시도 기민하게 움직였다.
하지만 이내 달려든 변절자 나이트에 의해서 변절자 룩의 공격이 가로막혔다.
에스더가 시간을 끄는 동안 뼈 덩굴에서 빠져나온 것이었다.
[지금 무슨 짓을─]
에스더가 경악했다.
지금 일어난 일은 에스더와는 전혀 상의 되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 처음부터 이렇게 나왔어야지!"
변절자 룩이 차라리 잘됐다는 듯이 다시금 흉성을 토해내며 공세에 나서려던 순간.
['엥켈렌스의 포효'가 발동합니다!]
야누스가 마지막 힘을 짜냈다.
[끼에에에에에에────!!!]
엥켈렌스에게서 비롯된 포효는 강자 중의 강자인 변절자 룩마저도 잠시 멈춰 세웠다.
변절자 룩에게 드러난 틈.
나는 그 틈을 놓칠 생각이 없었다.
[하, 하지 마!]
에스더의 비명 속에서,
어느덧 내 손에 뽑혀 나온 엥켈렌스의 창이 변절자 룩을 꿰뚫었다.
< 변절자 룩 (3) > 끝
스컬 턴코트는 질긴 마물이다.
설령 내가 중화기나 Ark-15 자동변환 소총과 A-985 폭발탄을 사용할 수 있었다고 한들, 변절자 룩이라는 강자 중의 강자에게 그럴듯한 피해를 주거나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엥켈렌스의 창은 다르다.
공격력면에서 단연 최고라 할 수 있는 플라즈마 소드조차도 앞서는 절삭력과 강도.
그 압도적인 파괴력은 분명히 변절자 룩에게도 통한다.
[왜, 왜······!]
나는 절망하고 있는 에스더에게 한 가지 소식을 전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 안 죽었다."
[······뭐라고요?]
그 말마따나 변절자 룩은 아직도 숨이 붙어 있었다.
"······큭."
나로서는 참 유감스럽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조금 착잡했지만 말이다.
[룩!]
스컬 턴코트의 약점은 어디인가?
기본적으로는 인간과 같은 신체를 지닌 만큼 약점 역시도 비슷하다.
머리, 심장, 그 외 등등······.
다만,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면 인간보다는 그 약점에 대한 내성이 훨씬 더 강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설사 심장이 꿰뚫리더라도 스컬 턴코트는 어느 정도 시간이 있다면 회복해낼 수 있다.
하물며 공격이 약점을 제대로 노리지 못했다면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빗맞았어.'
그럼에도 치명상인 건 분명했지만, 여전히 변절자 나이트는 살아 있었다.
"놈······!"
그 사실을 증명하듯이 가슴을 꿰뚫린 변절자 룩에게서 흉성이 터져나왔다.
이대로 있다가는 변절자 룩의 분노에 휩쓸릴 게 뻔했기에, 나는 엥켈렌스의 창을 소환 해제하고는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콰카캉───!!!
마치 꼬리처럼 돋아난 뼈 촉수들이 내가 있던 지면을 거칠게 쓸었다.
만약 어설프게 버텼다가는 그대로 곤죽이 되었으리라.
"쿨럭!"
그러나 그 영향에서는 완전히 벗어나는 데 실패해서, 내 몸에 있던 상처가 모조리 다 터졌다.
터진 상처에서 뿜어진 피가 방울방울 흩날렸다.
"끄윽······."
아프다.
아파서 죽을 것만 같다.
하지만 고통은 나누면 반이 된다는 말도 있듯이, 변절자 룩 역시도 치명상을 입고서 비틀대고 있었다.
이대로면 수적으로 우세인 우리 쪽이 유리한 건 자명했다.
"여기, 까지."
변절자 나이트가 잘 벼려낸 뼈 칼을 들고서 변절자 룩을 향해 달려들었다.
오랜 악연을 끊겠다는 듯이.
그렇게 변절자 나이트와 호루스가 달려들려던 순간, 변절자 룩에게서 마치 고슴도치 같은 뼈 가시가 뿜어졌다.
파바바박!
공격보다는 순전히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한 것에 가까운 기술.
어쨌거나 그 탓에 공세에 나섰던 변절자 나이트 역시도 한 걸음 물러나며 방어 태세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다시금 대치가 이뤄졌다.
다만, 상황 자체는 이전과는 매우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일단 심어두는 데는 성공했다.'
내가 엥켈렌스의 창으로 변절자 룩을 꿰뚫었을 때, 나는 엥켈렌스의 창 일부를 변절자 룩의 체내에 남겼다.
정확히는, 야누스의 일부를.
그게 변절자 룩을 상대로 효과가 있을지 없을지는 몰라도, 적어도 최후의 보루 정도는 되어주리라.
한편, 변절자 룩의 꿰뚫린 가슴 위로 뼈 촉수들이 꿀렁거렸다.
구멍 난 가슴을 메우기 위해서였다.
"이거··· 제대로 당했군."
변절자 룩이 자신의 구멍 난 가슴을 바라보며 허탈하게 웃었다.
"그래도 끝은 봐야겠지."
꼴이 저렇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변절자 룩은 물러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의견이라는 건 언제나 상호 합의가 이루어져야 의미가 있는 법.
"아니. 싸움은 이제 끝이다."
"도망치게 둘 것 같으냐?"
"도망치겠다고 한 적은 없다."
변절자 룩이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대답을 대신해서 야누스에게 내 의사를 전달했다.
[기잇!]
그와 함께 변절자 룩이 가슴을 부여잡고는 그대로 표정을 사정없이 구겼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조금 전, 내가 변절자 룩의 체내에 심어둔 야누스의 일부는 다름 아닌 변절자 나이트를 종속시킬 때 사용했던 바로 그것이었으니까.
"···지금,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냐?"
"글쎄. 엄밀히 따지면 그건 틀린 말이지. 아직은 아무 짓도 하지 않았으니까."
물론 이건 허세였다.
변절자 나이트는 스스로 나의 수하가 되기를 원했지만, 변절자 룩이 그런 걸 원할 리가 만무했다.
그렇기에 아무리 내가 야누스의 일부를 심어두었다고는 해도, 수하로 삼거나 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보는 게 옳았다.
'더군다나 변절자 룩은 강한 마물이다. 고작 저 정도 일부로는 죽이거나 하는 것도 불가능할 게 뻔해.'
하지만 중요한 건 변절자 룩이 그 사실을 모른다는 점이다.
아무리 변절자 룩이라고 할지라도 자신의 몸 안에 다른 뼈 기생체의 일부가 들어온 경험은 겪어보지 못했을 테니 말이다.
즉, 지금 시점에서는 변절자 룩 역시도 함부로 움직이지 못한다는 이야기였다.
"······."
"단장에게 전해라."
단장이라는 말에 변절자 룩의 이마가 꿈틀 움직였다.
그러나 당장 달려들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몸속에 야누스의 일부가 있는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도 단장에게 전하는 전언이라는 말 때문이었다.
"변절자 룩과 에스더의 목숨을 살리고 싶다면, 더는 나에게 개입하지 말라고."
"감히······."
"그리고 마지막으로 말하지."
내가 변절자 룩을 바라보았다.
"나는 그림자단의 적이 아니다."
내가 한마디를 덧붙였다.
"지금은."
너희들이 하기에 따라서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었다.
"······적이 아니다라."
변절자 룩은 그 말을 곱씹는 듯하다가, 이내 코웃음 쳤다.
"그 말을 나보고 믿으라고?"
"안 믿으면 어쩔 수 없지."
어차피 뒤의 말은 변절자 룩이 아닌, 단장에게 전하는 전언에 가깝다.
변절자 룩이 납득하지 않는다고 해도, 당장 그의 몸 안에 있는 야누스의 파편을 어쩌지는 못할 터였다.
"어쨌든 싸움은 여기까지다. 물론 끝까지 하겠다면 받아주겠지만··· 하겠나?"
어느새 내 주위에 호루스를 비롯한 변절자 나이트와 에스더가 섰다.
[기깃!]
거기에 더해서 야누스까지.
아무리 변절자 룩이라 할지라도 부상과 더불어서 몸 안에 꺼림칙한 것까지 달고 있는 채로 싸우는 건 현명한 선택이 아니었다.
하물며, 그 싸움의 결과가 모두에게 좋지 못한 결과만을 끌어낸다면 더욱더.
[룩······.]
"나를 그렇게 부르지 마라."
[나는······.]
에스더가 이를 악물었다.
그다지 의미 없는 행동.
그저 표현을 위한 표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게 진심이라는 건 나도 알 수 있었다.
나를 대할 때와는 달랐다.
적어도 그것만큼은 알 수 있었다.
"···죽인, 다."
그때, 변절자 나이트가 앞으로 나왔다.
아직 싸움이 끝났다고 여기지 않고 있는 듯했다.
"오, 해볼 테냐? 나는 상관없는데."
그 모습을 본 변절자 룩이 이죽대며 조용히 자세를 잡았다.
비록 가슴이 꿰뚫리기는 했어도 여전히 변절자 룩은 무시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물론, 내가 그걸 그냥 내버려 둘 리가 만무했다.
"그만."
변절자 나이트는 변절자 룩을 보내줄 생각이 없는 듯했지만, 그런 치기 어린 행동은 지금 시점에서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비록 전체적인 상황이 우리에게 조금 유리하긴 했어도, 끝까지 간다면 이쪽의 피해 역시도 절대로 적지 않을 테니까.
"시, 끄, 러."
"······."
당연하게도 변절자 나이트는 내 말 따위는 가볍게 무시했다.
다만, 야누스의 말은 달랐다.
[기기깃!]
"동족, 이, 그렇게, 말한, 다면."
어째 그 차별이 조금 서럽게 느껴졌지만, 뭐 어쩌겠는가.
내가 진짜 동족도 아닌데.
'아니, 그렇게 따지면 야누스도 동족은 아니지 않나?'
그냥 같은 뼈 기생체끼리니까 그 정도 차이는 퉁 치는 건가?
'아니면 나를 야누스의 숙주로 알고 있거나.'
무엇이 되었든지 간에 참 묘한 일이긴 했다.
어쨌거나 그렇게 잠깐의 실랑이가 지나간 후, 변절자 룩이 뒤돌아섰다.
서로 간에 더 이상 싸울만한 상태가 아니었기에, 이 이상의 입씨름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다음에도 이런 행운이 찾아올 거라는 기대는 마라."
[룩······.]
변절자 룩은 그 말을 남긴 채로 자리를 떠났다.
나는 잠시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이내 변절자 룩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너무나도 격렬한 싸움이었다.
"후아······."
진짜로 뒈질뻔했네.
꿀렁, 꿀렁······.
나는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핏물을 바라보았다.
만약 일반인이었다면 상처 때문이든, 과다 출혈 때문이든 즉사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태였다.
'아무래도 당분간은 꼼짝없이 요양해야겠어.'
제아무리 내 몸이 튼튼하다고는 해도, 어디까지나 인간의 몸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그 전에 응급 처치는 해두어야 했기에, 나는 야누스와 도움을 받아서 상처를 다시 꿰맸다.
"끄응······."
오늘 하루 동안 진통제를 너무 맞아서인지 머리가 핑핑 돌았다.
오늘 잠들면 영영 못 깨어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그건 그렇고······.'
나는 변절자 룩이 떠나간 자리와 변절자 나이트를 둘러보았다.
뭐가 어찌 되었든, 해냈다.
그 변절자 룩을 패퇴시킨 것이다.
'거기다가 구사일생 중첩을 소모하지도 않았지.'
솔직히 말해서 룩에게 기습을 당했을 때, 구사일생 중첩 정도는 소모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변절자 나이트가 예상보다도 빨리 도착한 덕분에 중첩을 아낄 수 있었다.
여러모로 다행이었다.
[등급 외 네임드 스컬 턴코트, 변절자 룩의 기습으로부터 살아남았습니다!]
[무수한 사선을 넘어섰습니다. 새로운 특성을 습득합니다!]
[특성, '질긴 생명력'을 습득하였습니다.]
[투지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8 -> 9]
[행운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10 -> 12]
──────────────
[질긴 생명력]
끈질긴 생명력을 얻는다.
"상세 보기"
──────────────
특성에는 한 가지 법칙이 있다.
바로, 설명이 간결하면 간결할 수록 좋은 특성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조건부가 없다는 뜻이니까.'
그렇기에 질긴 생명력은 매우 좋은 특성 중 하나였다.
특히 이 빌어먹을 세계에서 생존 관련 특성들이 가지는 가치는 어마어마했고, 질긴 생명력은 비록 분류되는 등급 자체는 높지 않아도 매우 쓸모 있는 특성이었다.
'다만, 한 가지 신경이 쓰이는 게 있는데······.'
새로운 특성과 능력치 상승.
물론 이는 좋은 소식이었지만, 꼭 긍정적인 소식인 것만은 아니었다.
[모든 순수 능력치의 합이 100을 초과하여, '초심자의 행운' 효과가 종료됩니다.]
초심자의 행운 효과 종료.
이번에 특성이나 강화 혈청으로 인한 상승분을 제외한 내 순수 능력치의 종합이 100을 초과하였기에, 더는 예전과 같은 행운이 따르지 않는다는 걸 의미했다.
'벌써 끝났나.'
레드 라인 스테이지가 채 끝나기도 전에 초심자의 행운 효과가 종료됐다.
상황에 따라서 오렌지 라인에 진입하고 나서도 초심자의 행운 효과를 얻지 못할 때도 있다는 걸 생각한다면, 어마어마한 일이었다.
'언젠가 찾아올 일이긴 했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
초심자의 행운은 있을 때는 체감하기 힘들지만, 막상 사라졌을 때 역체감이 심한 특성 중 하나다.
이제부터 나에게 어떤 일이 닥칠 지 모른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심지어 오늘 일어난 일 역시도 초심자의 행운이 있는데도 일어났다는 거지.'
그런데 만약 초심자의 행운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처음에 변절자 룩이 던진 창이 호루스의 날개가 아닌 다른 부분에 꽂혔을 수도 있지 않을까?
답은 알 수 없었다.
그렇기에 더 두렵기도 했다.
'그래도··· 가야겠지.'
그곳이 어디든지.
"동, 족."
변절자 나이트가 나를 바라보았다.
이제 무얼 해야 하느냐고 묻는 듯한 제스쳐였다.
"아, 이만 돌아가도 돼. 고마웠다."
어차피 영산 노아까지 함께 갈 수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이쯤에서 헤어지는 게 맞았다.
물론 또다시 기습을 당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때는 다시 변절자 나이트를 호출하면 되는 거였으니까.
"알았, 다."
변절자 나이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대로 돌아갔다.
이번에 변절자 룩과의 싸움에서 입증되었듯이, 변절자 나이트는 굉장히 큰 도움이 되어주었다.
'기회가 된다면 변절자 나이트를 키워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어쨌거나 변절자 나이트는 이제 나에게 종속되었으니, 강해져서 나쁠 건 없었다.
'그러면······.'
나는 호루스의 등위에 올랐다.
비록 여전히 멀쩡한 것과는 거리가 있었으나, 찢어졌던 날개는 얼추 회복한 뒤였다.
"가자."
집으로.
* * *
격렬했던 싸움 이후, 변절자 룩은 머릿속에서 울려 퍼지는 목소리를 느꼈다.
이번에 칼 마커스에게 공격을 당한 뒤로 내내 들려오는 목소리였다.
『복종하라.』
이 목소리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인지는 알고 있다.
칼 마커스가 심어 놓은 뼈 기생체의 파편.
다만, 그 힘이 너무나도 이질적인 터라 약해진 상태의 변절자 룩으로서는 어떻게 손을 쓸 도리가 없었다.
"······닥쳐."
변절자 룩이 흉성을 토했다.
그러나, 목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복종하라.』
『복종하라.』
『복종하라.』
< 변절자 룩 (4)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