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한 달이 지났다.
그동안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고, 많은 사건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내 생각보다도 홍수령과 대화를 많이 나누었다.
"홍 선배는 뇌전의 본질에 대해 어찌 생각하십니까?"
"뇌전의 본질이라…."
"저는 찰나라고도 생각합니다."
"흐음, 나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내 예상보다도 은근히 그녀에게 배울 점이 있었고, 그녀는 사실상 진휘 대신 금신천뢰문에서의 내 스승 역할을 해 주고 있었다.
"다만 뇌도(雷道) 그 자체에서 더 깊이 들어간 관점에서 보면. 번개의 본질은 결국 음양의 교류에서 비롯되는 힘일 뿐이지. 하나… 음양은 건곤으로도 해석되니, 천지 아래에서 순간적으로 태어나는 힘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뇌전은 찰나라고도 해도 될지도 모른다."
"천지간의 찰나… 마치 삶과도 비슷하군요."
"그래서 비검술을 익히며 사람의 인생도 뇌전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하곤 했지. 천지와 생사 안쪽에서 발버둥 치다가 결국 스러지는 인간의 인생은, 더 높은 관점에서는 한 줌 먼지나 찰나처럼 느껴지지 않겠느냐."
"…그렇군요."
"뇌전이란, 천지만물에 흐르고 인간의 몸에도 흐른다. 그리고 뇌 안에서 전기 신호가 주고받아지며 생각이라는 걸 하고, 육신을 움직일 때도 전기가 쓰인다."
"그렇지요."
"요족도 다르지 않지. 그 녀석들도 음양을 순환시키며 음양 사이에서 태어나는 미약한 뇌력이 뇌에 자극을 주어 지성을 발전시키는 거니까. 한 마디로, 인간의 행동과 감정, 이성은 뇌전의 영향을 받는다."
"…."
"그러므로 뇌전은 자연의 이치인 동시에 '존재의 이치'라고도 할 수 있는 거겠지."
'존재의 이치라….'
어쩌면, 그렇기에 구현 3단계부터는 천겁의 형질을 띄는지도 몰랐다.
'존재….'
파직, 파지지직―
나는 손끝으로 뇌전을 피워 올렸다.
지난 한 달간.
나는 천족 원영기의 수행을 전부 되찾았다.
비록 16회차에 도달했다고 어렴풋이 기억하는 원영 중기는 아직 되찾지 못했지만, 그래도 원영 중기 역시 양(陽)의 힘을 머금은 뇌도공법을 익히다 보면 금세 도달할 것 같은 느낌이었기에 걱정은 없었다.
그리고, 나는 이제 칠뢰진경과 멸뢰내천궁의 공법을 익히는 중이었다.
치지지직!
녹색의 뇌전이 내 손끝에서 춤춘다.
칠뢰진경의 4단계였다.
그리고 단전 안쪽에서 멸뢰내천궁의 힘이 꿈틀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우릉, 우르르릉!
총 12성으로 이뤄진 멸뢰내천궁 역시 벌써 6성까지 익히는 데에 성공했다.
'일반적인 수행 속도로는 멸뢰내천궁 6성까지 40년은 걸린다고 했던가?'
그게 '정상적인' 수행 속도라고 홍수령에게 들었었다.
"흐음, 역시 뇌성체인가."
물론 홍수령 역시 내가 뇌도공법을 빨리 익히는 건 뇌성체이기 때문으로 알고 있었다.
그녀는 내 경지를 재어 보며 신기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무리 봐도 일반적인 수행 속도라기보단… 흩었던 경지를 되찾는 속도 같군. 그게 아니면 말도 안 되는 속도야. 이게 전설적인 체질의 힘인가…."
"…뭐, 그렇지 않겠습니까?"
"후후, 나 역시도 뇌성체를 재현해 보고 싶은 마음이 더더욱 끓어오르는군."
"제 생각에 홍 선배는 뇌성체보다는 익힌 공법들부터 기초를 다지시는 게 어떻습니까?"
"시끄럽다. 네놈이 뭘 안다고 훈수를…."
한 달간, 나와 홍수령은 이런 식으로 잡담을 나눌 정도로 꽤 친해져 있었다.
'의외로 말이 잘 통한단 말이지.'
뭔가, 청문령과 김영훈을 합친 듯한 느낌이 드는 사람이었다.
법술과 뇌도공법에 대한 부분에선 청문령.
그리고 가끔 비검술로 나와 대련할 때는 김영훈 같은 모습도 보여 준다.
그랬기에 나 역시도 스스럼없이 그녀와 친해진 걸지도 몰랐다.
"…뭐, 오늘은 여기까지 하지. 네 말을 들으니 영감이 떠올라서, 신입들을 납치해서 실험 좀 해 봐야겠구나."
"…제발 이상한 소문이 나지 않도록 온건한 실험으로 부탁드립니다."
나는 불안 불안한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며 조언했다.
그러나 그녀는 어느새 나와의 대화에서 뭔가 영감을 얻었는지 벌써 자기만의 세계에 들어가 뭔가를 중얼거리는 중이었다.
'나를 실험 대상으로 안 보는 건 좋지만….'
나와 대화를 나누고, 뇌성체에 대해 조사하며, 뇌성체를 자신의 손으로 재현한다는 목표는 더더욱 확고해진 것인 모양이었다.
최근에 금신천뢰문에 입문한 광한계 출신 신입 제자들을 간혹 본인의 연구동으로 납치해서 실험을 한다는 소문이 많이 들려온다.
물론 신입 제자들은 고통스러울지언정 특이한 능력을 얻거나 수행이 올라갔으면 올라갔지 해가 되는 건 없었기 때문에, 원로들 사이에서도 말이 나올지언정 별로 문제 삼지는 않았다만.
나는 그녀의 동부에서 나와 내 동부로 돌아갔다.
일전 내 동부를 박살 내 버린 홍수령이 미안했는지, 뇌령도에 있는 다른 영산 중 하나를 뽑아와 내 동부로 만들어 주었다.
그 덕에 내 동부는 이전보다도 훨씬 크고, 영맥이 진해져 있었다.
'그럼, 오늘 수련을 시작해 볼까.'
나는 동부 안쪽에서 가부좌를 틀고 수련을 시작했다.
홍수령은 내가 한 달여 만에 멸뢰내천궁 6성에 달한 것을 신기해했고, 그것이 뇌성체의 공능이라고만 생각했을 터였다.
하지만.
치직, 치지지직!
"천린수해(千璘樹海)!"
뇌전이 튀기는 내 육신 주변으로 아름다운 옥빛의 기운이 퍼져 나갔다.
멸뢰내천궁은 단전 안쪽에 뇌궁(雷宮)을 만들어 뇌전의 저항력을 키우고 제의에 도움을 받으며 주변 지형에 진도를 까는 데에 특화된 공법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뇌궁이란, 정말로 궁전이라기보다는 64개의 괘상(卦象)에 대한 일종의 비유였다.
내괘와 외괘가 합쳐져 단전 안에 64개의 팔괘도가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 64개의 팔괘의 길 사이로 뇌력이 움직이며 점차 굵어지고 있었다.
파직, 파지직!
그리고, 그 팔괘도의 중심으로는 한 그루의 나무가 자라나 있었다.
그것은 너무나도 거대한 나무였다.
목(木)은 팔괘의 괘상에서 진(震).
거기에 목 속성의 진도를 깔아 주변을 장악하는 천린수해성은 뇌 속성의 진도로 주변을 장악하는 멸뢰내천궁과 너무나도 상성이 잘 맞았기에, 천린수해성과 멸뢰내천궁을 동시에 수련하니 그 수련 속도는 기존의 몇 배에 달했다.
거기에 나는 요수공법으로 자체적으로 음양의 흐름을 체현하며, 뇌성체의 힘으로 체내에서 뇌전의 힘이 증폭되었기에 다시금 수련 속도는 기존의 몇 배.
수련 속도가 증폭되고 증폭되어 도달한 것이 한 달이라는 시간 내에 멸뢰내천궁 6성에 도달한 결과였다.
파지지지직!
내 주변으로, 뇌전으로 이뤄진 나무의 형상이 숲을 이루기 시작했다.
나는 뇌전의 수해 안쪽에서 어마어마한 속도로 멸뢰내천궁을 수련했다.
그리고 멸뢰내천궁의 수련 속도에 힘입어 칠뢰진경 역시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었다.
쿠릉, 쿠릉, 쿠르르릉!
주황색, 황색, 녹색의 뇌전이 몸에서 뿜어지며 세 개의 깃발을 뿜어냈다.
적색의 깃발은 왜 없는가 했으나, 홍수령에게 듣기로 적색의 뇌전은 그 자체로 천뢰번을 사역할 때 쓰이는 뇌전이기에 적색의 깃발은 따로 없다고 했다.
치지지지직―
나는 뇌전에 둘러싸인 상태로 집중에 들어갔다.
멸뢰내천궁 6성은 결단기 후기 수준의 성취였고, 나는 원영기에 들어간 것은 숨긴 채 멸뢰내천궁 6성의 성취만을 보고했었다.
그리고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말도 안 되는!!!
―이게 뇌성체로구나!
―과연 번개의 화신!
―시조시여!!!
금벽호와 원로진들이 행복한 비명을 질렀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했다.
칠 주야 후.
나에게 금신천뢰문의 장로직을 부여하는 의례가 준비되어 있었다.
금벽호와 원로진들에게 보인 성취는 아직 결단 후기 수준이었으나, 그럼에도 그들은 내게 장로직을 바로 부여하려는 듯했다.
'한 달 만에 장로라….'
결단기 대원만까지는 쭉쭉 올라가는 모습을 보여 줘도 된다.
어차피 광한계 본토인들에게는 시간만 주면 도달하는 게 결단기니까.
그리고 원영기부터는 계위에 대한 깨달음이 필요했기에 시간이 조금 더 걸려도 될 터였다.
'딱 적당한 수준이군.'
나는 천린수해성의 힘을 뇌전의 힘으로 녹여 내며 멸뢰내천궁 7성을 뚫었다.
콰지직!
뇌전이 꿈틀거리며 체내에서 용과 같은 기세로 회전했다.
'남은 시간 동안 천천히 원영기에 들어간 척하고, 원영 중기만 어떻게 빠르게 뚫으면 되겠지.'
원영 후기와 대원만은 정말로 빠르게 넘길 자신이 있었으니, 16회차의 기억이 사라진 원영 중기의 경지만 어찌어찌하면 될 터였다.
치지직….
나는 얼마 후 뇌전을 갈무리하고, 동부 한구석.
그곳에서 수련하는 두 존재에게 다가갔다.
원유와 홍범이었다.
치직, 치지지직!
일전 태극진뢰신도 받았지만, 솔직히 태극진뢰신 같은 성전환 공법은 맨정신으로 익히기가 매우 껄끄러웠고 결국 원유에게 넘겨주기로 했다.
음양이 함께하는 몸을 가진 원유에게 태극진뢰신은 최고의 선택이었는지, 나날이 태극진뢰신의 성취가 높아지는 원유였다.
그리고, 홍범은 제명비신대법으로 이름을 각성시켜 다시 수련시키는 중이었다.
우우웅―
홍범에게 산수에게서 구매한 사족 공법을 건네자, 홍범은 빠르게 공법을 익혀 가고 있었다.
녀석의 성취는 벌써 연기기 중기.
그러니까 연기기 7성의 고비에 도달한 상태였다.
푸콱!
가만히 영기를 빨아들이며 수행하던 홍범의 배 안쪽이 폭발했다.
나는 황급히 홍범에게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홍범의 배는 다시 아물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녀석은 마구 꿈틀거리더니 갑자기 갑각을 벗었다.
사족 공법의 구결에 따라 허물을 벗는 것이었다.
몇 번이나 녀석의 몸이 터지고, 내가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는 것을 반복한 지 한 달.
홍범도 한 달이라는 시간 만에 연기기 7성 수준에 도달한 것이었다.
꿈틀, 꿈틀….
어느새 팔뚝만큼 커진 홍범은 내 팔에 머리를 비비며 친근감을 표시했다.
아직 제대로 된 언어를 구사할 만큼의 지능은 없는 모양이었으나, 내가 녀석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깨달은 모양.
'이번 생에서도 무럭무럭 자라라.'
나는 홍범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준 후.
다시 자리로 돌아가서 멸뢰내천궁을 펼쳤다.
쿠르르릉!
주변으로 뇌전의 진도가 깔린다.
진도를 통해 제의를 지내는 것에 특화된 공법.
그것이 멸뢰내천궁이었다.
'그럼, 연아….'
치직, 치지지지직….
나는 기괴고의 비술에 연결되어 있을 김연과의 연결을 활성화시켰다.
그리고 멸뢰내천궁의 힘을 통해, 내 의지를 전파로 바꾸어 기괴고의 연결에 흘려 넣었다.
김연과 내 거리가 예상외로 멀었기에 기괴고의 비술로는 직접적인 대화가 불가능했다.
그랬기에 이런 식으로 멸뢰내천궁의 힘을 빌어야 그녀에게 내 의지를 전하는 게 가능했다.
물론 답신은 아직 돌려받고 있지 못했다.
그녀가 기묘성심전을 본격적으로 익히기 시작해 의식으로 기괴고의 연결을 더더욱 활성시키면 몰라도 말이었다.
지금으로선 그녀에게 기묘성심전에 도움이 되는 구결들을 전파로 쏘는 수밖에는 없었다.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치치칙….
나는 멸뢰내천궁을 해제한 후.
동부 바깥으로 나갔다.
"안녕하십니까, 서 사형."
동부 바깥에선 금신천뢰문의 제자들이 나를 보자 존경심 어린 표정으로 내게 인사를 올렸고, 지나가는 장로들 역시 내게 아는 척을 했다.
"하하, 서 도우. 이제 내일이면 그날이군."
그리고, 한 장로가 나를 도우라고 친근하게 부르며 내 옆에 내려앉았다.
"예, 그렇군요."
나는 하하 웃으며 금신천뢰문의 한 전각을 바라봤다.
기율각.
저 안에서, 전명훈이 예절을 비롯한 이 세계의 상식과 언어, 기초 등등을 배우고 있다.
그리고 내일이면 교육이 끝난다고 들었다.
"내일이면, 이제 서 도우를 향한 관심도 조금 시들해지겠어. 그래도 너무 섭섭해하진 마시게. 허허허! [그] 천상금뢰지체가 아닌가!"
"그렇지요, 이해합니다."
내일부터, 전명훈이 드디어 금신천뢰문의 기초공법을 익히기 시작할 것이다.
검은 뱀(7)
"…이상, 오늘부로 금신천뢰문의 역사 수업도 전부 끝났어. 성제국 문화, 언어, 예절 전반. 그리고 광한계의 기본 언어와 별자리, 대략적인 문화 전반과 수도계 상식은 전부 공부가 끝났으니까, 오늘부터 너는 정식으로 뇌도공법을 익히게 될 거야. 알겠지?"
"그래, 알겠다."
전명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이상한 세계에 떨어지고, 등선향이라는 곳에서 금벽호에게 잡혀 온 후 약 한 달 정도가 흘렀던 것 같다.
그 시간 동안, 전명훈은 금소해에게 지도를 받으며 많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역시 이 세상은 수도선파들이 살아 숨 쉬는 선협의 세상이야.'
사실 본래라면 선협 세상에 떨어진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누구보다도 선협의 생리를 잘 아는 전명훈에게, 선협 세상은 일종의 마경이나 다름없었으니 말이었다.
'뇌조도사의 세계관이 아니라는 걸 알았을 때는 절망했지만… 그래도 괜찮다.'
전명훈은 자신의 몸을 바라보았다.
그 자신도 몰랐으나, 전명훈은 천상금뢰지체라는 신화적인 자질의 소유자라고 하였다.
지난 한 달 동안 기율각에서 금소해에게 금신천뢰문의 역사를 배우며 천상금뢰지체의 힘을 똑똑히 전해 들었다.
'수선의 끝자락에 도달할 때까지, 한 번도 천겁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체질?'
거기다가 천지뇌기가 뇌도공법의 수련을 돕기에 뇌도공법은 일반적인 천영근자의 수 배나 되는 속도로 수련할 수 있다고 했다.
금신천뢰문의 전설적인 체질들.
뇌성체나 흑뢰지체, 칠색진뢰진체, 혹은 급이 조금 떨어지는 벽력체, 혼원체, 홍령수지체 등 모든 전설과 위명을 가진 체질들을 전부 합쳐도 천상금뢰지체의 소유자에게는 절대로 도달할 수 없다고 했다.
번개 그 자체라고 일컬어지는 뇌성체조차, 천상금뢰지체의 재능이 극한에 도달한 양수진은 뇌성체를 인위적으로 양산해 내기도 했다고 했으니, 능히 천상금뢰지체의 위명을 알 만했다.
'앞으로 이 세상에서 내 인생은 완전히 탄탄대로로군.'
전명훈은 금소해를 바라보며 흡족한 웃음을 지었다.
'금소해도 시간을 들어 공략해 보고… 금신천뢰문의 끝까지 올라가서 권력을 마음껏 누리고 살면 그 또한 최고겠군.'
전명훈은 이미 집으로 돌아간다는 생각 따위는 버린 지 오래였다.
'돌아가 봤자 기다리고 있는 건 어차피 SJD 컴퍼니의 권력 투쟁…. 그런 짜증 나는 중견 기업에서 숙부의 뒤나 닦으러 다녀야 하는 멍청한 짓은 이제 작별이다!'
그는 금신천뢰문의 시조인 양수진의 일화를 떠올렸다.
삼천대천세계를 주유하며, 진선의 극점에 올라 몇몇 무시무시한 존재들을 제하면 누구도 그의 패악질을 막지 못했다고 전해져 내려오는 양수진의 전설들이었다.
물론 금소해는 '패도적인' 행보라고 전달했지만, 솔직히 전명훈이 전해 들은 양수진의 행보는 지구의 중국과 비슷할 정도였다.
'선조니까 패도적이랍시고 금칠해 준 거지, 당하는 입장에서는 죽여 버리고 싶었겠군.'
그나마 안심이 되는 건, 양수진은 다행스럽게도 자신을 한 번 건드린 이들은 뿌리까지 전부 걷어 내서 소멸시켰거나, 다시는 현세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금제를 걸어 놓은 경우가 많다고 했기에 복수의 걱정도 없었다.
'어쨌든, 이 세계에서 힘을 가지면 양수진처럼 행동해도 된다는 거지.'
그리고 전명훈은 그러한 양수진과 같은 자질을 지니고 태어났다.
'앞으로, 이 세계의 역사는 나 전명훈을 중심으로 움직일 것이다.'
그는 금소해와 함께 한 달 동안 생활했던 기율각을 나서면서 미소지었다.
쿠릉, 쿠르르릉!
전명훈은 금소해와 함께 문파에서 가장 영맥이 진한 봉우리라는 '뇌운봉'으로 향하였다.
뇌운봉의 정상, 문파의 신물을 봉해 놓았다는 봉뢰당 앞에는 태상장문인 금벽호와 장문인, 그리고 원로진 등이 자리해 벽력을 내뿜고 있었다.
수도자들은 연기기 이상부터는 대다수가 두 발로 걸어 다닐 일이 없었기에 뇌운봉 같은 높은 곳을 올라갈 때에도 '계단'이 필요 없었다.
그랬기에 전명훈은 기율각에서 배웠던 예법대로, 금소해의 비행법기에 올라타 엄숙하게 부동 자세를 취했다.
금소해의 비행법기는 천천히 뇌운봉으로 올라갔다.
뇌운봉의 아래쪽에는 연기기, 축기기 제자들이.
중턱에는 결단기 제자들이.
그리고 끝자락에는 원영기 장로들이 자리를 잡고 걸터앉아 있거나 허공에 떠 있었다.
전명훈은 부동 자세를 취한 상태로 은근슬쩍 원영기 장로들, 그리고 천인기 원로들의 면면을 파악했다.
'문파의 권력층의 얼굴들은 빨리 익혀 놔야지.'
기회는 준비된 이에게만 온다.
전명훈은 문파의 최고 권력층과 빠르게 친해지기 위해 우선 회사에서의 경험을 살려, 그들의 얼굴과 특징을 빠르게 뇌 속에 입력하기 시작했다.
서은현은 전명훈이 일을 안 한다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달랐다.
전명훈은 회사에서 일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최고 권력자들에게 잘 보이기 위한 작업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계속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결단기 제자 놈들은 신경 쓸 것 하나도 없다. 원영기 장로들부터 천인기 원로. 그리고 사축기인 금벽호 님과 친해지는 게 가장 중요하지.'
전명훈의 잔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앞으로 누구보다 빠르게 광한계의 특산물, 그리고 귀한 자원 등을 파악해서 손에 넣고, 문파의 윗선들과 친해지기 위한 뇌물로 줘야겠어.'
그의 눈이 금소해에게로 은근슬쩍 돌아갔다.
'그리고 금소해 역시 금벽호가 아끼는 후손이라고 하니, 그녀와도 더더욱 친해지는 게 좋겠군.'
그는 금소해를 보며 속으로 미소지었다.
'생긴 것도 솔직히 누구한테 안 꿀리게 생겼으니, 쌍수를 하는 금신천뢰문의 특성상 아마 그녀의 쌍수 상대는 높은 확률로 내가 된다. 침대에서 완전히 내게 굴복시켜 주겠어.'
전명훈은 태생적으로 승리자였다.
SJD 컴퍼니가 대기업은 아니라지만, 그래도 나름 업계에서 이름을 날리는 목욕용품 회사였다.
특히 비누 제작에는 따라올 정도가 없을 정도로 혁신적인 비누 회사였고, 전명훈은 SJD 컴퍼니의 일맥을 장악한 평양 전씨 가문 태생이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돈 때문에 부족한 건 하나도 없었고, 정말로 권세가 있는 집안이 아니라면 한 번도 또래에게 머리를 숙여 본 적이 없는 인생이었다.
물론 회사에 정식으로 입사하고 나서부터는 회사 동료들이 눈칫밥을 조금 주기는 했지만, 어차피 그의 숙부인 전명철이 있는 이상 대놓고 뭐라고 하는 이들은 없었다.
그리고 전명훈은 앞으로도 인생이 승승장구할 것이라고 여겼다.
천상금뢰지체를 얻은 지금, 그건 정말로 확신할 수 있는 미래였다.
'아, 그건 그렇고. 여기에 서 뭐시기… 그놈도 떨어졌다 했지 않았나?'
전명훈은 잠시 생각하다가 마침내 '서은현'의 이름을 떠올렸다.
'맞아, 서은현이었지.'
전명훈은 서은현을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같은 시기에 입사하긴 했고, 나이도 동갑이긴 했다.
그래서인지 서은현은 처음에 전명훈과 친해지려고 많이 말을 걸었었다.
'주제도 모르는 놈이었었는데 말이야.'
물론 전명훈은 평범하게 빈궁하고, 평범하게 고개 숙이고, 평범하게 열심히 일하는 녀석 따위는 관심 없었다.
정말로 상대할 가치조차 없는 평범한 녀석이었으니까.
그래서 서은현의 관심에 무시 일관으로 반응했다.
'주제도 모르고, 짜증 나는 녀석이었지.'
전명훈은 서은현을 생각하자 문득 짜증이 나는 게 느껴졌다.
입사 초, 서은현과 전명훈이 동일한 직급일 때.
초반에는 전명철의 조카인 전명훈에게 조금 관심이 쏠리는 듯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직장 상사들의 관심은, 조금 능력은 떨어져도 정말 엄청나게 열심히 업무를 처리하는 서은현.
그리고 의욕은 없어 보여도 신속하고 융통성 있게 업무를 처리하는 강민희에게 전부 집중되었다.
강민희는 봐줄 수 있었다.
여자였으니까.
전명훈이 언젠가 손에 넣기 위해 작업을 치던 목록 중에 하나였으니까.
하지만 전명훈은 같은 남자인 서은현이 자꾸 관심을 가져가는 것이 아니꼬웠다.
그래서 전명철의 힘으로 쾌속 승진을 한 이후에는 노골적으로 서은현을 괴롭혔다.
빨리 회사에서 꺼지라고.
그러나 서은현은 회사에서 나가지 않았고, 꿋꿋하게 버텼다.
귀여운 신입인 김연이 들어왔을 때, 특히나 서은현을 노골적으로 괴롭혔지만 어째서인지 김연은 어느 시점부터 서은현한테 노골적으로 호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전명훈은, 서은현이 짜증 났다.
'원래는 워크숍 가서 술 먹은 다음 오 대리랑 같이 짜고 제대로 밟아 보려고 했는데….'
그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뭐, 잘 됐군. 금신천뢰문에서 재기 불능할 정도로 밟아 버리면 그것도 재밌겠지.'
어차피 인권도 제대로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다.
오히려 회사에서보다 제대로 밟아 줄 수 있으리라.
전명훈은 뇌운봉 밑동에서부터 서은현을 한 번 찾아보기로 했다.
'어디 보자, 그 녀석도 뇌 뭐시기 지체를 타고났다고 했었나? 금소해가 서은현도 수도공법을 배우고 상당히 진도를 나갔다고 했는데…. 그럼 연기기 제자들 중에 서 있겠지?'
그러나 서은현은 아래쪽에 존재하지 않았다.
'흠, 그놈 수준에 축기기? 뭘 배우면 열심히 하는 놈이긴 했는데 그래 봤자겠지. 절대 축기기는 안 됐을 테고, 그 녀석도 날 좋아하진 않았으니….'
전명훈은 아래에서 시선을 돌리고 피식 웃었다.
'아마 내가 이렇게 문파의 이목을 끄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어디 숨어 버렸나 보군. 큭큭….'
전명훈은 기분이 좋아졌다.
이렇게, 서은현이 알아서 주제를 파악하고 찌그러져 자신의 눈앞에 나오지 않는다면 구태여 찾아서 밟아 줄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저 위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점차 금소해가 조작하는 비행법기가 뇌운봉 정상 봉뢰당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자, 밑에서 찌그러져 있을 놈은 신경 쓰지 말자. 내 길은 저 창창한 하늘에….'
"…."
'…어?'
전명훈은 정상을 향해 눈을 돌렸다, 순간 뭔가가 이해되지 않아 눈을 끔뻑였다.
"엥?"
그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상황에, 순간 당황해서 예법을 잊어버리고 입 밖으로 멍청한 소리를 내뱉었다.
금소해가 옆에서 눈을 흘기며 눈치를 주었다.
전명훈은 냉큼 입을 다물었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의문만이 가득했다.
'뭐지? 왜…?'
우우웅!
어느덧 금소해와 전명훈이 탑승한 비행법기가 뇌운봉 끝자락에 도착했다.
그리고 전명훈과 '그'의 시선이 마주쳤다.
남색의 혁대.
결단기 대원만, 즉 미래의 장로진이 될 자격을 능히 갖추었다는 자격의 증명표를 단 서은현이, 원영기 장로들 사이에서 전명훈을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도대체 저놈이 왜 저기에….'
그리고, 그가 혼란스러워하는 사이 어느덧 비행법기는 뇌운봉 정상.
봉뢰당의 앞에 도달했다.
봉뢰당에 위쪽에 떠 있던 천인기 원로들과 금벽호가 차례대로 전명훈의 앞에 내려앉으며 엄숙하게 선포했다.
[오늘로써, 우리 금신천뢰문은 선조의 신물인 천뢰번, 그리고 선조의 권능의 근원이었던 천상금뢰지체. 두 가지를 다시 전부 되찾았다. 먼 옛날, 삼천세계 전체에 위명을 끼쳤던 금신자 대의 금신천뢰문의 이름을 되찾을 날이 머지않았다!]
금벽호의 연설이 얼마간 이어지고, 금벽호가 천뢰번을 들고, 시조인 양수진에게 복을 구하는 제의를 치르는 의식이 얼마간 이어졌다.
"…이상으로 제례를 마치고. 전명훈을 금신천뢰문의 정식 문도로 인정하는 바이다!"
그리고, 마침내 전명훈은 정식으로 금신천뢰문의 제자가 되었다.
전명훈은 일단 예법대로 금벽호에게 인사를 올렸다.
"사문 존장의 말씀을 하해와 같이 받들겠습니다."
몇 차례의 의식이 다시 치러졌고, 얼마 후.
전명훈은 마침내 고대하던 것을 받을 수 있었다.
"자, 전명훈. 앞으로 네가 익힐 본문의 기본공법, 적뢰공이다. 네 천상금뢰지체는 천지 뇌력을 끌어모으는 권능이 있으니, 아마 적뢰공을 대성하는 데에…."
'좋아, 이제부터 시작이다.'
전명훈은 밝은 미소를 지었다.
'금소해는 보통 천영근자가 적뢰공을 대성해서 연기기 극성까지 가는 데에 2, 3년이 걸린다 했으니… 나는 못해도 1년. 빠르면 6개월 안에 적뢰공을 대성할 수 있겠지!'
전명훈이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을 때였다.
"적뢰공의 대성은 뭐, 한 한두 시진이면 되겠지? 허허…."
"…???"
전명훈은 뭔가, 금벽호와 자신의 시간 감각에 조금 괴리가 있다는 걸 발견했다.
"적뢰공은 너무나 기본적인 것이니 천상금뢰지체인 네게… 솔직히 익히라고 하기도 미안한 수준의 공법이다. 하지만 어쨌든 금신천뢰문의 기본은 적뢰공이니 반드시 익히긴 해야 하니 이해를 부탁한다."
"예, 예…. 당연히 기본부터 익히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전명훈은 '한두 시진'이면 적뢰공에 대성에 성공할 것이라는 금벽호의 기대를 받으며 조금 당황스러웠다.
'뭐지? 내가 지닌 천상금뢰지체가 그 정도로 엄청난 체질이라고?'
"허허, 기본기의 중요성을 잘 이해하는 네 마음씨를 보니 벌써부터 본좌의 마음이 든든해지는구나. 이전에 들어온, 너보다 자질이 떨어지는 뇌성체를 타고난 서은현이 네 동료라고 들었다."
"…예, 맞습니다."
'하, 서은현 녀석. 내가 제놈 동료라고? 주제도 모르는 게….'
"그 서은현은 아침에 적뢰공을 받고, 저녁에 연기기 6성에 이르렀다. 연기기 7성은 절차상의 문제로 조금 시간이 걸렸다만, 오늘은 전명훈 네게 딱 시운이 맞는 날이다."
"예?"
"한 마디로 네가 연기기 6성에 도달하기만 하면 바로 칠성제를 오늘 당장 지낼 수 있다는 게지."
금벽호는 껄껄 웃으며, 벌써부터 대견하다는 듯이 전명훈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믿겠다, 제자야."
"…어, 예."
전명훈은, 멍청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것 외엔 할 수 없었다.
천상금뢰지체인 전명훈의 입문 환영식이 끝나고, 전명훈은 그에게 배정된 동부로 와, 일단 적뢰공의 구결을 읽어 보기 시작했다.
"어… 음…."
그리고, 전명훈은 얼굴을 딱딱하게 굳혔다.
'젠장, 이게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냐.'
놀랍게도, 전명훈은 적뢰공의 구결 중 단 한 자도 이해할 수 없었다.
* * *
다음 날이 되었다.
금신천뢰문이 뒤집어졌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이냐, 어제 전명훈의 칠성제를 지내지 않았다고? 일부러 녀석에게 알맞은 시운을 골라 어제 딱 적뢰공을 하사한 것인데!?"
금벽호의 노호성이 금신천뢰문의 업무를 처리하는 금뢰전에서 휘몰아쳤다.
천인기 원로 중 하나이자, 전명훈의 스승으로 임명된 금진찬이 앞으로 나서 말했다.
"죄송합니다, 문주님. 다만 전명훈은 서은현과는 달리, 애당초 수도계에 무지한 범인이었던 듯합니다. 영기와 법력, 그리고 수도공법 구결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가 부족한 게 탈인 듯합니다."
"흐음…."
금벽호가 혀를 찼다.
"하긴, 천상금뢰지체라는 것에만 너무 흥분해서 본좌 역시 녀석이 얼마 전까지 범인에 불과했단 걸 잊었군."
금벽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녀석에게 수도공법에 대한 기본 상식들과 영기의 이해를 익히게 해서, 녀석이 연기기 6성에 도달하게 하려면 얼마나 걸리겠나?"
그에 금진찬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말했다.
"아마 칠 주야면 충분하리라 생각됩니다. 영기의 호흡법, 기경팔맥의 위치, 그리고 기타 등등을 가르치는 데에 닷새 정도 걸릴 테니, 넉넉잡아 칠 일의 시간이면 충분합니다."
"칠 주야씩이나 걸린다라… 뭐, 알겠네. 얼마 전까지 범인이었던 아이에게 내가 너무 많은 걸 바랐군."
금벽호는 이해한다는 듯한 어투로 말했으나, 그의 눈에는 명백한 실망감이 깃들었다.
"그럼 칠 주야 후, 전명훈의 성취를 다시 듣지. 설마 그때에도 칠성제를 못 지내진 않겠지."
"칠 주야 후까지 반드시 칠성제를 지낼 수 있도록 만들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금진찬은 자신 있게 말했다.
그리고 3개월이 지났다.
전명훈은.
마침내.
단수기에 도달했다.
"드디어!"
우웅!
전명훈은 자신의 아랫배에 형성된 법화단전에 눈물을 글썽이며 기뻐했고, 전명훈의 스승으로 임명된 금진찬은 착잡한 표정을 드러내지 않도록 최대한 얼굴 근육을 조정했다.
"…그래. 잘 했다, 명훈아."
금진찬은 들리지 않도록 작게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성취를 보고하러, 태상장문께 가보자꾸나."
"하하, 옛. 알겠습니다."
전명훈은 자신의 손끝에서 맴도는 영력의 감촉이 신기한지, 손끝으로 법력을 내뿜으며 금진찬의 뒤를 따라갔다.
'좋아, 3개월 간의 고련으로 수도공법에 대한 감은 다 잡았어. 연기기도 순식간에 찍어 주지.'
그리고, 전명훈이 희희낙락하며 금진찬을 따라 금벽호가 머무르는 금뢰전에 도착했을 때였다.
"흐하하하하하! 잘 했다, 서은현! 아니, 서 장로!!!"
금뢰전 안쪽에서, 금벽호의 웃음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금진찬은 착잡한 표정으로 전명훈을 데리고 금뢰전에 들어갔다.
금뢰전 안쪽.
그곳에서는 자랑스러워 미치겠다는 표정을 한 진휘가 서은현의 옆에 서 있었다.
"아, 왔는가, 진찬? 이보게. 여기 내 제자가 이번에 멸뢰내천궁 9성에 도달해서 3개월 만에 원영기에 도달했다네."
이어지는 질문에, 전명훈의 스승으로 임명된 금진찬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천상금뢰지체를 3개월간이나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고 폐관시키더니 오늘에서야 드디어 얼굴을 보게 해 주는군. 그래, 천상금뢰지체 역시 결단기에 이르렀나? 아니면 설마 그 녀석도 서은현처럼 벌써 원영기에?"
진휘는 물론이고, 웃음을 터트리던 금벽호 역시 기대가 가득한 눈으로 금진찬과 전명훈을 바라보았다.
금진찬은 작게 이를 갈며 전명훈을 앞에 세웠다.
"제 제자 전명훈의 성취는…."
그리고, 이어지는 금진찬의 말에 금뢰전이 뒤집어졌다.
"뭬야!!!!!!!"
검은 뱀(8)
우릉, 우르르릉!
천둥소리가 금뢰전을 울렸다.
대노한 금벽호의 심기에, 천기현상이 변화하며 먹구름에서 벼락이 번쩍였다.
[지금, 3개월이나 걸려 단수기가 말이나 된다고 생각하는 건가?]
금진찬은 격노하는 금벽호의 시선을 마주보지 못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일반적으로 잡영근자가 법화단전을 생성하기까지 빠르면 1년, 느리면 3~5년 정도가 걸린다.
그리고 진영근자면 1달에서 2, 3달 정도가 소요되며, 단일영근인 천영근자는 하루이틀 정도가 소요되는 게 정상이었다.
그리고 그 '정상'의 기준은 하계인 수계의 기준이었고, 광한계에서 법화단전은 누구나 태아 때 가지고 태어나는 수준이었다.
잡영근을 가지고 태어난 신생아들조차 생후 1, 2개월이면 천지영기를 자연스레 흡입해서 법화단전을 생성한다.
한 마디로, 전명훈은 광한계의 자질이 떨어지는 신생아보다도 더 속도가 느린 것이었다.
[도대체 천상금뢰지체를 어떻게 가르쳤기에 이런 머저리 같은 속도로 시간을 낭비하는 건가!]
그리고,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금벽호는 전명훈을 나무라기보다는 그의 스승인 금진찬에게 노호성을 내질렀다.
금신천뢰문의 시조인 양수진과 같은 체질을 가지고 태어난 이가 오영근자들보다도 못한 속도로, 연기기에조차 못 들어가고 있는 걸 보자니 금벽호와 다른 원로진들의 표정이 안 좋아졌다.
"...제가 미욱하여 제자를 바르게 가르치지 못했으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물론 정작 전명훈의 스승인 금진찬은 입을 열 개라도 더 만들어서 억울한 점을 호소하고 싶었다.
'제길, 천상금뢰지체면 뭘 하냐는 말이다.'
천영근자들이 하루이틀이면 법화단전을 생성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천영근자가 '전심전력을 다하여' 수련에 집중할 때를 기준으로 했을 때였다.
수도자들이 수도공법을 수련하려면 수도공법에 쓰이는 용어를 잘 알아야함은 물론이고, 영기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와 의식영역의 이해.
그리고 영기가 전신을 순환할 수 있도록 기경팔맥에 대한 이해도도 상당히 필요했다.
물론 고계 수도자들은 상대의 상단전에 강제로 지식을 주입할 수 있는 법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식 여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지식을 주입한 후, 몇 번의 실습을 통화 몸에 체화시키면 그런 류의 상식은 주입이 끝났다.
애당초 금진찬이 전명훈은 칠주야 안에 연기기 6성에 올리겠다고 한 것 역시 그러한 '상식'에 입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금신천뢰문의 원로진들이 전명훈에 대하여 잘못 파악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의지력'이었다.
수도공법의 수련은 장난이 아니었다.
제아무리 천영근자라도 영기를 받아들여 음양의 순환으로 법화단전을 생성하는 과정 자체가 '하루에서 이틀' 씩이나 걸린다는 것은, 간단한 과정일지언정 어마어마한 집중력을 요했기 때문이었다.
이틀동안 한 번도 정신력이 흐트러지지 않고, 똑같은 동작을 끝없이 반복할 수 있을 정도의 정신력이 필요했다.
하계의 수도가문 자제들은 어릴 적부터 그런 훈련을 받고, 산수들이나 수도선파의 제자들 역시 긴 기간동안 정신력 수련을 받기 때문에 무리없이 정해진 시간 안에 법화단전을 형성한다.
그러나, 전명훈에겐 그런 류의 의지력은 거의 없다시피했다.
지구에서부터 가만히 앉아있기를 힘들어했고, 노력을 요하는 업무는 대강대강 해도 그의 인맥과 자금으로 대부분 해결이 가능한 인생을 살아온 전명훈이었다.
그러나, 수도공법은 그가 어떤 인맥을 가지고 있더라도 자기 자신이 익히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는 부류의 것이었다.
결국 3개월이란 시간 동안 전명훈은 하루 24시간, 이 세계의 기준으로 12시진의 시간을 꼼짝않고 앉아서 법화단전을 세밀하게 생성하는 과정 자체에 익숙해지는 데에 시간을 다 썼던 것이었다.
전명훈의 스승인 원로 금진찬은 그러한 사실을 금벽호에게 하소연하고 싶었으나 이를 악물었다.
'제자의 실수는 모두 스승의 부덕함. 제자의 의지력과 집중력이 예상외로 떨어졌다지만, 그걸 파악 못한 나 역시 잘못이 있다. 변명을 해 봤자 나만 더 추해지겠지.'
"...다만 그래도 3개월간 제자를 가르치며, 제자의 성향 자체를 더더욱 파악하게 되었으니, 다시 시간을 주시면 전명훈을 더 잘 가르치도록 하겠습니다."
"크흠!"
금벽호는 조금 불쾌한 기색이었으나, 점차 노기를 가라앉혔다.
"뇌성체 서은현은 벌써 한참 전에 장로직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말로 원영을 응결해 금신천뢰문의 정식 장로가 되었네. 한데 시조의 재림이나 다름없는 천상금뢰지체의 보유자가 아직도 단수기 어림에서 헤매고 있다면, 말도 되지 않는 일이야."
금벽호는 금뢰전의 태좌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원로 금진찬은 들으라! 태상 장문령으로 명하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앞으로 전명훈의 수행을 끌어올려라! 천겁을 맞으며 성장하는 원영기부터 천상금뢰지체의 진정한 힘이 드러난다고 하니, 최대한 빨리 전명훈을 원영기에는 올려놓아야 할 것이다!"
"...지엄하신 태상 장문의 명을 받잡겠나이다."
금진찬은 전명훈과 함께 금뢰전을 나섰다.
* * *
전명훈은 금진찬과 함께 금뢰전에서 나와 그의 동부로 향하며 속으로 이를 갈았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그는 서은현의 모습을 떠올렸다.
분명 회사에서는 볼품없이 찌그러져 있던 멍청한 놈이, 어째서 금신천뢰문에서는 벌써 장로가 되었단 말인가?
'입사초엔 엑셀도 제대로 못했던 병신이, 여기서는 그 어려운 구결들을 전부 외우고 숙달해서 벌써 원영기에 들었다고?'
전명훈은 속으로 이를 갈며 생각했다.
'그럴 리가 없지. 서은현한테 그럴 지능이 있다고? 아니, 없다! 그렇다면 놈이 어떻게 벌써 원영기에 도달한 거지?'
잠시 고민하던 전명훈은 이내 답을 알아차렸다.
'그래, 놈은 영약을 많이 먹은 게 틀림없어. 그리고 쌍수상대도 천인기 원로 중 하나라고 했으니, 쌍수대법의 힘을 받아서 단기간 내에 그렇게 폭풍성장한 거지.'
전명훈은 서은현의 비밀을 알아차렸단 생각에 속으로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나름대로 지능이 성장해서 문파의 윗선과 친해지고, 좋은 쌍수상대와 더 좋은 영약들을 잔뜩 지급받아서 그 경지에 이른 것입 분명하다.'
사실이 어떻든, 전명훈은 그렇게 믿었다.
'조금만 기다려라, 서은현. 나 역시 최대한 빨리 좋은 쌍수상대를 배정받아 네놈을 뛰어넘어주마.'
그는 자신만만하게 희망찬 미래를 그리며 금진찬과 함께 동부에 도착했다.
그리고 혼자서 망상에 빠져 있었던 덕인지, 전명훈은 그의 스승인 금진찬의 표정을 보지 못했다.
"...명훈아, 수련에 들어가도록 하자꾸나."
"하하, 예. 그래도 법화단전을 만들며 수도공법에 대한 감은 잡았습니다. 앞으로 연기기 수행도 그런 식인 것이겠죠?"
전명훈은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말했다.
"제자가 지금 잠시 서은현에게 뒤쳐졌다지만, 그래도 앞으로는 쭉쭉 성장해서 문파의 얼굴이 되어..."
"그래, 그래. 포부는 좋으니 수련을 시작하자. 이 스승이, 네 성정을 파악하고 네게 딱 맞는 수행 방식을 고려해 보았다."
장년인의 모습인 금진찬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허공에 손을 뻗었다.
그러자 전명훈의 동부 바닥이 꿈틀거리며 흙이 변화해 석좌(石座)를 만들었다.
"제자야, 앉거라. 앞으로 네 수행은 이 의자에 앉아서 진행될 것이다."
"오, 가부좌를 틀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까?"
내심 가부좌를 틀고 오래 앉아서 수행하는 것이 불편했던 전명훈은, 희희낙락하며 석좌에 얌전히 앉았다.
그와 동시에.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석좌의 팔걸이와, 다리 부근의 돌이 튀어나와 전명훈의 사지를 결박하는 구속이 되었다.
"...어, 스승님?"
철컥!
그리고 마지막으로, 석좌의 등받이 부분에서 긴고아 같은 동그란 구속이 튀어나와 전명훈의 머리를 구속했다.
전명훈은 석좌에 구속된 듯한 모양새가 되었다.
그리고 금진찬이 다시 손가락을 까딱거리자, 석좌의 곳곳에 뇌도공법의 구결을 적어놓은 주술문자들이 음각되었다.
치직, 파치지지직!
그와 동시에 주술문자들을 중심으로 뇌기가 몰려들며, 전명훈이 앉은 석좌 곳곳에서 시퍼런 뇌전이 꿈틀거렸다.
그러나 다행히도 금진찬이 무언가 보호 법술을 펼쳐놓은 것인지 전명훈의 몸에까진 뇌전이 닿지 않았다.
"스승님...? 이 전기는 무엇입니까?"
"...천상금뢰지체는 삼라만상 모든 뇌전의 사랑을 받는 체질. 자질이 극한에 달하게 구현되면 능히 천겁마저도 들이마셔 먹어치울 수 있다."
전명훈은 사지와 머리통을 결박당한 상태에서 침을 꿀꺽 삼켰다.
'빌어먹을, 이건 꼭 전기로 사형시킬 때 쓰던 의자처럼 생겼는데...'
바보라도 지금 상황에서는 불길함을 느낄 터였다.
그는 침을 꿀꺽 삼키며 금진찬의 말에 대답했다.
"...예, 알고 있습니다만..."
"...지금부터."
금진찬의 얼굴에는, 어쩐지 울화통이 섞인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칠십이지살지결의 수결과 진언을 몸에 익힐 것이다. 만약 배움이 부족하다면 이 스승이 친히 뇌전의 힘을 주입해, 선통후각과 선각후통의 방식을 병행하게 해 줄 것이야."
전명훈은 금진찬의 표정을 보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어... 그냥 가부좌 틀고 수행하던 방식으로 돌아가면 안 되겠습니까?"
그리고 얼마 후, 전명훈의 동부 안쪽에서 전명훈의 비명소리가 울려오기 시작했다.
파지지지지직!
"끄아아아아아악!!!"
* * *
"허허, 그럼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소, 서 장로."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갈 장로님. 살펴 가시지요."
나는 내 동부에서 금신천뢰문 장로진과 원로진들의 축하를 받은 후, 그들을 배웅하고 가부좌를 틀었다.
파치직...
멸뢰내천궁과 천린수해성이 상부상조하며 무서울 정도로 서로의 수행 속도를 폭증시켜주고 있었다.
'멸뢰내천궁도, 칠뢰진경도 둘 다 상당한 경지까지 익혔다.'
그리고 태극진뢰신 역시 원유의 몸을 조종해 익히며, 그 이해도가 상당히 높아졌다.
금신천뢰문의 삼대 공법이라고도 불리는 공법들을 전부 익힌 것이었다.
'...익히면 익힐수록, 금신천뢰문의 공법들은 기묘하단 말이지.'
나는 세 공법 사이의 연관성에 대해 생각했다.
'홍수령은, 이전까지 세 개의 공법을 전부 이렇게 빠른 속도로 성취한 이는 없었다고 했다.'
홍수령과 나는 쌍수 상대로 지정되었으나, 정작 하라는 쌍수는 안 하고 깨달음을 주로 주고받는 관계로 발전해 있었다.
나는 선각후통과 검 그 자체에 대한 깨달음을 홍수령에게 전달해 주었고, 그녀는 비검술과 수도공법의 합일에 대한 깨달음을 주로 내게 전달해 주었다.
그 덕택에 나는 최근 수도자들의 비검술에 대해서도 상당한 식견이 쌓인 상태였다.
'검진에 대해서도 그렇고 말이지.'
거기에 다수의 비검을 가지고 펼치는 검진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그렇듯이, 우리의 쌍수관계는 육체적 관계라기보다는 정신적 관계에 더 중점을 둔 상태였다.
그리고 홍수령은 내 뇌도공법을 봐주면서, 금신천뢰문의 천인기 원로로서도 충고를 주었다.
나는 그녀와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이제껏 너처럼 금신천뢰문의 주요 공법을 전부 익힌 이들은 없었다. 사실 뇌성체를 가지고 태어났다는 선조 분들 역시 처음에는 너와 같은 길을 걸으려 했으나, 이내 모종의 이유로 포기했다고들 하지.
-모종의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잘은 모른다. 하지만 나 역시 금신천뢰문의 공법을 오래도록 수련한 몸으로 짐작컨대, 어쩌면 금신천뢰문의 뇌도공법은 '전부' 불완전한 공법이다.
-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정확히는, 불완전한 공법들을 같이 익히면 공법들끼리 서로 보완하게 되어 있는 형태지.
-아니 그럼 오히려 3대 공법 등을 같이 익혀야 맞지 않습니까?
-나 역시 인체실험을 해보며 그런 시도를 조금 해 봤다. 하지만 결과는 전부 실패했어. 일정 성취까지는 쭉쭉 나가는 듯 했고, 동 경지를 압도하는 듯 했지만, 결과적으로 한 가지 공법 아래에 다른 공법이 종속되어버리는 결과를 낳았지.
-공법이 종속된다는 말씀입니까?
-그래. 멸뢰내천궁과 칠뢰진경을 동시에 익힌 수도자가 있고, 그의 수도공법 성취 중 멸뢰내천궁이 칠뢰진경보다 조금 높았다고 치지. 그러면 어느 순간부터 칠뢰진경이 멸뢰내천궁에 종속되어버리더구나.
홍수령이 허공에 뇌전으로 그림을 그려주며 설명을 이었다.
-종속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공법이 종속되어버림으로써, 멸뢰내천궁의 수행이 칠뢰진경의 수행을 집어삼켜버리게 된다. 그렇게 되면 멸뢰내천궁 자체의 수행은 상승하지만...
-칠뢰진경의 수행이 갑자기 뽑혀나가는 상황과 다를 바 없군요.
-그렇지. 우리 몸은 공법을 수행하며 조금씩 조금씩 그 공법에 맞춰 변화한다. 하지만 몸이 칠뢰진경과 멸뢰내천궁, 두 가지 공법에 딱 맞게 적응한 상태에서 한 가지 공법이 갑자기 사라지면 어찌되겠느냐?
-...몸의 균형이 완전히 어그러져 수명이 짧아지거나, 갑자기 약해질 수도 있는 겁니까.
-그래. 아마 문파의 기록을 보면, 뇌성체를 타고났다는 선조분들 역시, 금신천뢰문 뇌도공법의 이런 불완전성을 극복하지 못했던 거겠지.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아 그녀에게 물었다.
-그럼 왜 금신천뢰문은 공법의 그러한 단점들을 개선하려 하지 않는 겁니까? 그리고 왜 제가 주요 공법을 전부 익히겠다고 했을 때 말리지 않은 겁니까?
-그야 뇌성체는 체내에서 최대한 공법들끼리 조화가 이뤄지니까 말이다. 금신천뢰문 뇌도공법의 '단점'이 발현된다고 해도 그건 아마 거의 천 년 이후의 일일 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전설상의 일이다만 시조님이 계셨을 당시의 기록에는, 그런 '단점'들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했다. 어쩌면 천상금뢰지체의 힘이라면 불완전한 뇌도공법의 힘을 어찌어찌 보완할 방법이 있었을지도 모르지.
'천상금뢰지체의 힘...'
나는 그때의 대화를 떠올리며 전명훈을 떠올렸다.
'그 녀석이 양수진 정도로 성장하는 데에 얼마나 걸리려나.'
하지만 내 예상컨대, 그 정도로 녀석이 성장하려면 아무리 적게 잡아도 만 년은 걸릴 것 같았다.
'당장 단수기에 드는 데조차도 3개월이라니.'
김연조차도 3개월 안에 연기기 4성에는 도달했었다.
'그런 놈을 믿고 괜히 뇌도공법의 약점을 놔둘 필요는 없지.'
나는 체내에서 느껴지는 멸뢰내천궁과 칠뢰진경 사이의 부조화를 인식했다.
아직은 '저주'가 뇌성체의 역할을 일정 부분 하며 두 공법 간의 부조화가 강제로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성취가 부족한 공법이 다른 공법에 종속당해서 먹혀버리고, 내 체내에 불균형이 찾아올 터였다.
'전명훈을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다.'
내가 내 힘으로 어떻게든 균형을 맞춰본다.
그리고 그렇다면 어떻게 공법 간의 균형을 맞춰야 하는가?
'금신천뢰문 3대 주요 공법 말고도 무수한 뇌도공법들이 산재해 있지.'
나는 금신천뢰문에 존재하는 '모든' 뇌도공법을.
전부 익혀버리기로 결심했다.
'금신천뢰문에 존재하는 모든 뇌도공법을 전부 익혀서, 부조화가 극대화되어 공법이 다른 한 공법에게 종속되는 일을 막아버린다.'
다른 공법을 종속시키려는 공법이 있다면 다른 공법들의 영향력을 키워 찍어누르면 될 일이었다.
다른 이들이라면 정신나간 짓이라고 하겠지만, 어차피 내 결심은 확고했다.
'500년이나 걸려서 겨우 원영 중기에 도달했던 게 16회차다.'
홍수령은 재능이란 실체가 없다고 했지만, 나는 재능에는 실체가 있고, 내 재능은 다시 없을 머저리같다는 걸 이미 인지하고 있었다.
'이번 삶에서도 그렇게 무식하게 시간을 들여서 원영 중기를 회복할 틈은 없다.'
그렇다면 답은 무엇인가.
무식하게 밀어붙여서, 어떻게든 원영 중기를 강제로 뚫어낸다!
그리고 그 방법은 뇌도공법의 부조화도 극복할 겸하여, 금신천뢰문에 존재하는 모든 뇌도공법을 담아내는 것이었다.
파칙, 파지지지직!
나는 진휘에게 부탁하여 금신천뢰문의 서고에서 공법서들을 받아냈고, 하나하나 수련하기 시작했다.
'우선, 팔뢰천장부터 시작해서...'
* * *
서은현과 전명훈은 각자 열심히 수행을 시작했다.
그리고, 약 1년 반의 시간이 흘렀다.
"드디어!!!"
금진찬과 전명훈이 같은 동부 안에서 서로 얼싸안고 기쁨에 겨운 탄성을 질렀다.
"제자 전명훈! 드디어 연기기 6성, 팔괘완로를 완공했습니다!!!""장하다, 장하다 제자야! 이 정도 속도라면 일반적인 천영근 제자들과 비슷해졌어!"
1년 반 사이.
금진찬의 지옥수련 아래에서 전명훈의 집중력과 의지력은 강제로나마 성장했다.
그 덕에, 현재 전명훈의 수행 속도는 전설상의 천상금뢰지체에는 여전히 못 미쳤으나, 일반적인 천영근 수도자들과 비슷하리만치 올라와 있었다.
"이제 남은 건 칠성제다! 칠성제의 관문만 뚫으면 너도 제대로 된 쌍수도려를 부여받고 더더욱 빨리 뇌도공법의 성취를 올릴 수 있을 것이야!""예, 스승님!"
전명훈은 기대에 찬 눈으로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드디어 나도 쌍수로 뇌도공법을 수련할 수 있는건가!'
1년 반 동안, 전명훈은 정신이 나갈 것만 같았다.
그의 스승인 금진찬은 금벽호의 격노를 받았던 것에 수치스러웠는지 전명훈을 동부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게 했다.
무려 1년 반 동안이나, 전명훈은 동부 안에서 갇혀 전기고문을 당하며 억지로 억지로 수행을 올려야 했다.
'하지만 그 빌어먹을 수행도 이제 끝이다!'
칠성제 이후로 맺어지는 쌍수도려.
쌍수 상대가 생기면 앞으로는 상대의 동부에 찾아가서 쌍수를 수련한다거나 하는 일도 많았기에, 금진찬 역시 쌍수도려를 맺은 이후부터는 전명훈을 풀어주겠다고 약속하였다.
'드디어 이 빌어먹을 동부 안에서 벗어날 수 있다!'
전명훈은 다른 것보다도 그것이 너무 기뻤다.
"자, 그럼 며칠 후에 칠성제를 지내면 될 것 같구나."
"예, 스승님!""네 의지력이 부족했을 뿐, 의지력과 집중력이 올라가는 만큼 수행 속도가 나날이 상승하고 있으니, 정말로 천상금뢰지체의 위명은 허언이 아니었음을 증명해다오!"
전명훈은 금진찬의 신뢰 어린 눈빛 아래에서, 더더욱 정진하리라고 마음먹었다.
* * *
며칠 후.
전명훈의 칠성제 준비가 완료되고, 전명훈은 오랜만에 동부 바깥으로 나왔다.
'시원하군.'
어느덧 1년 반의 세월이 지나갔다.
수도자들에게 1년 반은 찰나와도 같았으나, 전명훈의 입장에서는 공익근무요원 시절보다도 더 길게 느껴졌다.
'수도공법을 수련할수록, 점점 체내의 영기가 증폭됨에 따라 강해진다는 느낌은 확실히 든다. 의식영역도 커지는 만큼 점점 인간을 벗어나는 느낌도 있고...'
그러나, 전명훈은 점차 수련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지옥 같은 고행이었지만, 그만큼 강해진다.
그만큼 권능을 얻게 된다.
'앞으로 쭈욱 수련하면, 나 역시 원영기 장로들처럼, 천인기 원로들처럼 무지막지한 수명과 권능을 가지게 된다는 거겠지?'
전명훈은 앞으로 펼쳐질 그의 인생을 생각하며 웃었다.
'듣자하니, 서은현 그 녀석도 원영기에 올라간 이후부터는 이전처럼 빠른 속도로 수행이 되지 않는다는군.'
그는 서은현이 멈춰 있는 사이, 빠르게 서은현을 따라잡기로 했다.
'칠성제 이후부터는 쌍수 수련이니, 어떤 수현보다도 더 열심히 할 자신이 있다.'
그전까지는 조금 집중력이라든가 의지력이 부족했다지만, 쌍수 수련이라면 전명훈은 미친 듯이 정열을 불태울 자신이 있었다.
'지구에서 단련된 내 기술을 다시 펼칠 수 있겠어. 좋아! 앞으로 쌍수공법의 힘으로 빠르게 힘을 키워 서은현을 뛰어넘는다!'
전명훈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쿠구구구구구!
갑자기, 전명훈의 옆으로 무언가 거대하고 길쭉한 것이 지나쳤다.
"히끅!"
그 무시무시한 뭔가의 기세에 눌려 전명훈은 저도 모르게 딸꾹질을 내뱉었다.
'이, 이무기?'
전명훈은 순간 머릿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전명훈의 앞을 지나간 검고 긴 그것은, 역광에 가려져 마치 길고 검은 이무기 같았다.
'아니, 뱀인가?'
그랬다.
그것은 마치 검은 뱀처럼 보였다.
하지만 전명훈이 자세히 집중하자, 그는 그 '검은 뱀'의 실체를 볼 수 있었다.
'뱀이 아니야, 저, 저건!'
"흐익, 저게 뭐야!"
전명훈은 그 징그러운 것의 실체를 파악하고 비명을 질렀다.
그것은 마디마디가 집채만한 거대한 지네였다.
거대한 지네가 하늘을 날아다니며 전명훈의 동부 앞을 지나치고 있었다.
그리고 전명훈의 비명에, 갑자기 지네가 더듬이를 구부리더니 전명훈에게 시선을 돌렸다.
'뭐, 뭐지? 종문 안에 요괴는 들어올 수 없다고 했는데...'
전명훈이 순간 거대한 포식자의 앞에서 머리가 새하얘졌을 때였다.
[귀하는, 누구십, 니까?]
"...어?"
지네의 입에서 영언이 터져나왔다.
상당히 예의바른 어조였다.
"마, 말을 해?"
[저는, 금신천뢰문, 장로님 중, 한 분의, 애완요수인, 홍범이라 하옵니다.]
"아, 그렇군."
전명훈은 장로의 애완요수라는 말에 그제야 납득했다.
'일반적인 요괴가 아니었단 건가.'
"미안하구나, 순간 종문에 침입한 요괴인줄 알고 놀랐다. 그나저나 원영기 장로쯤 되면 너 같은..."
전명훈은 지네 요괴 홍범의 수행을 가늠해보며 말했다.
"축기기 수준의 요괴도 부릴 수 있는 건가?"
[뭐... 능력에 따라 다르시겠지요?]
"그렇군..."
전명훈은 그의 앞에서 둥둥 떠있는 지네, 홍범을 보며 결심했다.
'반드시, 저 지네의 주인인 장로만큼 고강한 강자가 되어 나 역시 이런 요수를 길러봐야겠군.'
그는 저도 모르게 홍범의 주인에게 존경심을 품으며, 자신 또한 반드시 그런 강자가 되리라고 다짐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전명훈의 칠성제가 시작되었다.
검은 뱀(9)
전명훈은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하늘의 기운과 자신의 기운을 연결해서 천기를 보는 기초적인 영통을 여는 단계.
그것이 칠성제.
그는 당당하게 하늘을 향해 천지영성을 부탁하는 읠케를 치루며 생각했다.
'이제 이 단계만 거치면...!'
꿈에도 그리던 쌍수 단계의 수련만이 남았다.
그리고, 전명훈과 금진찬이 제의를 막 시작하려 할 때였다.
우릉, 우르르릉!
"음?"
전명훈의 눈에 의아함이 깃들었다.
"스승님, 먹구름 때문에 천문 현상을 읽을 수가 없습니다만...?"
"흐음..."
금진찬은 먹구름을 보며 굳은 표정이 되었다.
"...일단 잠시 기다려보자. 일시적인 현상일수도 있으니까."
그는 입술을 꾹 악물며 말했다.
"바람이 불면 곧 사라질 게다."
그 말에 전명훈은 자리에서 기다렸다.
금진찬과 전명훈이 칠성제를 지내는 모습은, 전명훈은 몰랐으나 금신천뢰문 곳곳의 장로와 원로들이 주의깊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서은현 역시 그 중 하나였다.
서은현은 그의 동부 위, 봉우리 위쪽에 걸터앉은 채로 먹장구름을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과연 너는 어떻게 천거를 극복할 것인가."
전명훈은 물롬이고, 금진찬 역시 처음에는 기다리는 듯 했으나, 당최 먹장구름이 사라지지 않자 둘 모두 초조해졌다.
"스승님... 이제 몇 시진 후면 해가 뜹니다만..?"
"나도 안다! 기다려라... 설마 해가 뜰때까지 저 구름이 계속 자리에 있지는 않겠지!"
하지만, 설마는 현실이 되었다.
먹장구름은 절대로 자리를 비켜주지 않았다.
전명훈과 금진찬은, 그대로 허망하게 먹장구름을 올려다보며 그렇게 아침을 맞았다.
* * *
두 달이 지났다.
"하, 하하... 말도 안되는."
금진찬은 금신천뢰문의 서고를 뒤지며, 떨리는 목소리로 혼잣말을 했다.
"천거 현상이라고...? 시조님도 같은 현상을 겪으셨단 말인가?"
두 달 동안 어떤 방법을 통해서 칠성제를 지내도 전명훈의 칠성제는 번번히 먹장구름에 막혀버렸다.
이에 금벽호가 대노했음은 물론이고, 금진찬과 원로진들은 서고를 뒤져가며 전명훈과 같은 사례를 찾았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은 '천거 현상'이라는 사실에까지 닿을 수 있었다.
금진찬은 그 사실을 조사하여 금벽호에게 찾아갔다.
"천거 현상이라고?"
금뢰전에서, 금신천뢰문의 원로진 대다수가 모여 회의를 시작했다.
금벽호는 불편한 듯이 태좌의 팔걸이를 톡톡 두들겼다.
"...그래, 시조님 역시 같은 현상을 겪었다지?"
"예. 그렇습니다."
"...시조님은 어떻게 극복하셨다 했는지는 기록에 나와있지 않았는가?"
"예... 송구스러우나, 그냥 엄청난 재능으로 극복했다고밖에 수록되어있지 않습니다."
"그 엄청난 재능이 도대체 뭐냔 말일세...!"
"송구합니다."
금진찬은 고개를 떨어뜨렷다.
금벽호는 한숨을 내뱉었다.
"법기로는 해결이 안 되는가?"
금뱍호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으며 물었다.
그의 분석으로, 현재 전명훈이 겪고 있는 현상은 일종의 천겁이었다.
다만 뇌겁의 형태가 아닌, 하늘이 작정하고 제의를 방해하는 류의 천겁.
그런 류의 천겁이라면 법기를 다뤄서 본인이 뚫어버리더라도 문제가 안 될 터였다.
"상품 이상의 법기라면 능히 먹장구름을 뚫어낼 성능이 됩니다."
"그러면 상품 이상의 법기를 쥐어주면..."
"하오나, 상품 이상의 법기를 구동하려면 최소 연기기 극성 수준의 법력이 필요합니다."
"..."
상품 법기를 다루기 위해서는 연기기 극성이어야 한다.
하지만 연기기 극성으로 가기 위해서는 상품 법기를 다룰 수 있어야 한다.
모순이었다.
"괴군 정도의 실력자가 아니라면, 연기기 저계 수사가 사용할 수 있는 상품 법기를 만들 이가 없습니다. 광한계 곳곳에 수소문을 해 보아도 마찬가지이더군요."
"...그렇겠지. 물론 그 미치광이 늙은이를 찾이서 괴뢰를 빌릴 일은 절대 없으니... 후,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금벽호는 이마에 돋아난 힘줄을 꾹꾹 누르며 짜증을 참았다.
그러던 중, 문득 그의 시선이 부문주인 진휘에게 가 닿았다.
"부문주 진휘는 서은현을 가르칠 때, 저런 천거현상을 겪은 적 없소? 아 하긴 없겠군. 천거 현상이 뇌성체에게 일어났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사실... 서은현 역시 비슷한 현상을 겪은 적이 있습니다."
"뭣...!"
이어지는 진휘의 말에, 금벽호가 눈을 부릅떴다.
"아니 왜 그걸 여지껏 말하지 않았는가!!!"
"송구합니다. 서은현, 아니 서 장로는 너무 간단하게 먹장구름을 찢어버리고 칠성제를 지냈는지라... 사실 천거 현상인지조차 몰랐습니다."
"끄음... 뭐 됐네. 어쨌든 그렇다면 서은현은 어떻게 손쉬운 방법으로 천거 현상을 극복했지?"
그리고 금벽호의 질문에, 진휘는 어색한 표정으로 말했다.
"으음... 서 장로가 손을 들자, 서 장로의 손에서 굵은 뇌전 줄기가 뿜어져 나와 단박에 먹장구름을 찢어발겼고, 그대로 칠성제를 진행했습니다."
"..."
"이게 끝입니다."
"허허..."
진휘의 진술에, 금벽호는 헛웃음을 흘렸다.
너무나도 도움이 안 된다.
그러나 동시에 문파에 뛰어난 제자가 있어서 좋기도 하다.
하지만 동시에 뇌성체를 가진 제자는 저렇게 쉽게 통과하는 제의를, 천상금뢰지체의 보유자인 전명훈은 왜 저렇게 헤메는지 이해가 안 되기도 햤다.
'아니,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그랬지.'
금벽호는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속으로 서은현과 전명훈을 비교해 보았다.
생각해보면, 서은현은 자력으로 비승을 한 주제에, 원영 후기 수준의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거기에 적뢰공을 받자마자 하루아침에 6성에 오르고, 칠성제의 시간까지 다 포함해도 연기기 극성에 이르는데에 열흘도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입문한지 고작 1년 반인 지금.
원영 초기 극성에 도달해, 원영 중기로 도약하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게 보이지 않나.
그에비해, 전명훈은 처음 입문하자마자 수도공법을 배우는 게 아닌, 예절머리가 없어 예절 교육부터 시켜야 했고, 잔뜩 기대를 한 상태에서 공법 수련을 시켜보니 서은현보다 한참은 뒤쳐졌다.
거기다가 진휘의 말을 들어보니, 서은현과 전명훈은 둘 다 천거현상을 겪은 모양이었다만, 서은현은 어째 한 번에 천거를 해결한 모양이었다.
그런데 더 위대한 자질을 가진 전명훈은 도대체 왜 천거를 해결치 못하고 쩔쩔 맨다는 말인가?
'신체적인 자질은 전명훈이 우위에 있지만, 오성에 있어서는 서은현이 한참은 압도하는 천재라는 건가.'
천상금뢰지체와 뇌성체가 함께 입문했을 때만 해도, 금벽호는 좋아 죽을 뻔햇다.
하지만 막상 천상금뢰지체인 전명훈이 자꾸 속을 썩이자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차라리 저 자질을 서은현이 가지고 태어났다면...'
너무나도 아쉬운 일이었다.
'그랬다면 정말로 시조의 재림이었을 텐데, 안타깝구나...'
금벽호는 속으로 혀를 찼다.
"일단 서 장로를 금뢰전으로 불러오거라. 서 장로가 어떻게 천거 현상을 극복햤는지, 서 장로의 의견도 들어보겠다."
그는 일단 서은현은 어떻게 천거 현상을 극복했는지 알아보기 위해 서은현을 불러들였다.
* * *
"그냥 하니까 되더군요."
나는 태연한 표정으로 금벽호의 앞에서 말햇다.
"그러니까... 그 '하니까 된다'의 정확한 방법을 알려줄 수 있느냐?"
금벽호는 머리가 아프다는 표정으로 나에게 물었다.
하지만 나로서는 솔직하게 대답해줄 수는 없었다.
천겁을 미리 맞아서 그 천겁을 저장해 놓았다가 방출해 버렸다라고 대답하는 것은, 너무 수상해 보이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남의 천겁을 대신 맞아주라고 할 수도 없지.'
전명훈이 한 번 남의 천겁을 대신 맞아주면, 천겁은 끊임없이 강해진다.
전명훈이 평생 그 자의 옆에 붙어서 천겁을 대신 맞아줄 게 아니라면 그런 방식은 그 자의 죽음을 앞당길 뿐이었다.
그렇다면 뭐라고 해야할까.
'나라면 괴군 대신 전명훈의 팔을 뜯어버린 후 놈의 팔을 개조해 줄 수는 있다만...'
점명훈의 팔에 서 장군의 얼굴을 붙여서 서장군포를 발사할 수 있게 한다면, 천거 현상은 바로 해결된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하면 괴군에게 당한 게 많은 금벽호 입장에선 바로 나를 불신해 버릴 것이란 것이었다.
'괴뢰를 통한 방법은 안 될테고, 저 놈의 오성에 더더욱 강한 비술을 익히는 것도 벅찰 테고, 그렇다고 창천개벽문의 공법이나 요수공법을 전해서 익히면 그 역시 끈기가 없는 놈은 익히는 데에 몇십년은 걸리겠지.'
무공은 오히려 더더욱 안된다.
절정이나 삼화취정은 애들 장난으로 오르는 경지가 아니었고, 오기조원과 등봉조극은 더더욱 그랬다.
'내 장담컨대, 전명훈을 등봉조극에 오르게 하려면 400년은 필요하다.'
무학의 일대종사의 위치에 달한 나였기에 감히 확신할 수 있었다.
놈은 무공 쪽으로는 아예 자질이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금벽호가 만족할만한 답을 줄 수 있을까.
'스승님이었다면 어떻게 했으려나.'
나는 스승님을 떠올렸다.
청문령, 그분이라면 지금 상황에서 어떻게 제자에게 도움을 주었을까.
머리를 굴려보던 나는 이곳이 '광한계'라는 것에 생각이 미쳤다.
'그래, 광한계에는 천지영기가 훨씬 더 많지.'
그렇다면, 어쩌면 그 방법이 통할지도 모른다.
"...제가 사용한 방법은, 전명훔에게 도움이 안 될지도 모릅니다."
"그걸 판단하는 건 일단 나다. 그러니 말이나.."
"하오나, 제가 생각하기에 전명훈에게 도움이 될 법한 방법이 있습니다."
"흠..!?"
나는 금벽호에게 내가 생각한 구상을 얘기햇다.
내 설명에 금벽호는 물론이고 모여있는 원로진들의 눈에도 희색이 맴돌았다.
"확실히... 그런 방법이라면...!"
* * *
파직, 파지지지직!
전명훈은 적뢰공으로 뇌기를 잔뜩 끌어모았다.
"빌어먹을!"
그는 울분에 차서 외쳤다.
"도대체 왜! 칠성제가 안 된다는 거야!"
그가 격분해서 소리치자, 그의 주변에서 펄떡이던 뇌기가 끓어오르며 더더욱 강해졌다.
"제깉!"
그가 마구 소리를 지를 때엿다.
"소리질러봤자 아무것도 안 변해. 얌전히 고민이나 해 봐."
맑은 목소리가 전명훈에게 다가왔다.
금빛 궁장을 입은 여인, 금소해였다.
"원로님들이 천거 극복 방법을 찾느라 불철주야 노력하신다잖아. 너도 그러고만 있지 말고 뭔가 방법을 찾아봐."
전명훈은 눈썹을 꿈틀거렸다.
"...나도 방법을 찾고 있어. 그런데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법기도 안된다 하고, 스승님이 대신 구름을 치우면 제의가 끝나고, 나는 아무리 해도 구름을 치울 능력이 없고!"
"쯧, 내 말은, 태도의 문제야. 솔직히 넌 잘 시간 되면 다 자고 쉴 시간에 쉬면서 방법 찾는다 하고 있잖아."
그 말대로였다.
전명훈은 밤이 되면 잤고, 쉬는 시간을 지정해서 늘 몇 시진 정도는 편히 쉬고는 했다.
그러나 전명훈은 오히려 금소해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당연히 사람이 잘 시간이 되면 자야지,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수도자의 길을 걷기로 했으면, 잠 자는 시간은 최소한으로 줄이는 게 좋아. 장로님들 중에서는 몇십 년동안 잠도 자지 않고 앉아서 폐관수련만 하시는 분들도 계시니까."
"...후우."
전명훈은 '장로급쯤 되면 인간이 아니라 괴물이라서 그게 가능한 거겠지' 라고 말하려 했으나 꾹 참았다.
'예쁘지만 않았으면 진즉 꺼지라 했겠지만...'
솔직히 금소해의 얼굴은 정확히 금벽호의 취향이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뭐 그래서, 나더러 어쩌라는 건데?"
"아 마침 그거에 대해서 조금 얘기해보려고 온 거야. 널 도와주고 싶은 친구가 있대."
"날 도와주고 싶은 친구?"
그리고, 동시에 시커멓고 길쭉한 그림자가 전명훈의 위쪽으로 치솟아 올랐다.
"흐이익!"
전명훈은 그 생김새에 흠칫 몸을 떨었다.
몇 번을 봐도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 생김새였다.
거대한 지네 요수, 홍범이었다.
"장로님 중 한 분의 요수인데, 최근 나랑 친하게 지내고 있거든."
[안녕하십니까, 지난번에 뵈었었지요?]
"아, 안녕하냐. 방금 전에는... 비명 질러서 미안하군."
전명훈은 어색하게 지네에게 인사를 했다.
[아닙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지요. 제가 빨리 원영기에 이르러 화형을 한다면 해결될 문제인데 놀라게 해드려 죄송할 따름입니다.]
예의바른 홍범의 말에 전명훈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나야말로 미안하다. 그나저나... 이제는 말을 더듬지 않는군?"
[금소해님께 언어에 대해서 많이 배웠습니다. 최근에는 영언이 아니라 성대로 인간의 언어를 말하는 법을 익히고 있지요.]
"호오... 대단하구나. 과연 원영기 장로의 요수인가..."
[후후, 제 주인님께서 역시 틈이 날 때마다 제 수행을 도와주시고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을 물으면 친절히 설명해 주십니다.]
"과연 대단하신 장로님이시구나."
전명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그나저나 네가 날 도와주고 싶다는 녀석이냐?"
[예, 그렇습니다. 주인님께서 뇌도공법에 대해서도 간혹 음양의 이치를 설명하실 때 설명해 주시는데, 그 설명을 듣고 나니 문득 전명훈님이 최근 고생하신다는 말을 들어 도와주고자 소해 님께 부탁하여 도움을 드리고자 이리 함께 찾아왔습니다.]
"호오, 어떻게 도움을 준다는 거지?"
[뇌도공법, 현재 전명훈님이 익히고 계신 적뢰공의 이해를 도와드리고자 합니다.]
"...뭐? 네가 적뢰공을?"
전명훈은 지네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아서 되물었다.
그러나 홍범은 태연하게 말했다.
[제 주인께서는 선각후통의 명사이십니다. 그분께 적뢰공에 대한 설명을 들었고, 적뢰공의 위력을 10할 전부 끌어내실 수 있다면 명훈님 역시 적뢰공의 힘으로 천거를 극복하실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흐음... 나도 선각후통에 대해서는 그럭저럭 안다만 선각후통에 그렇게 뛰어난 위력이 있나?"
[물론입니다. 일단 한번 들어보시고 결정해 보시지요.]
얼마 후, 전명훈은 홍범의 선각후통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그리고 전명훈이 눈을 빛냈다.
"과연...! 엄청나군. 이해가 안 되던 부분들이 바로 이해된다! 설명을 엄청나게 잘 하는구나!"
[주인님께 잘 배웠을 뿐입니다.]
"그렇다 해도 네 주력은 적뢰공이 아니라 요수의 요수공법일텐데 이런 설명이라니... 엄청난 녀석이로군!"
전명훈은 홍범을 칭찬하며, 동시에 마음속으로 홍범의 주인이라는 원영기 장로에 대한 존경심이 무럭무럭 솟아났다.
'금신천뢰문에 계시는 선각후통의 명사님이시로군. 키우는 요수조차 이토록 공법의 근간에 정통하다니...'
[만약 명훈님이 원하신다면 명훈님이 주인님께 직접 선각후통의 공부를 배울 수 있게 도와드리겠습니다.]
"으음..."
그러나 전명훈은 고민하는 얼굴로 은근슬쩍 금소해의 눈치를 보았다.
금소해가 홍범의 앞에서 말했다.
"미안하지만 홍범, 본문에서 자신의 스승이 아닌 다른 스승에게 뭔가를 배우는 건 그렇게 권장되는 사항이 아니야. 쌍수도려같은 가까운 사이라면 서로에게 뭔가를 배우는 게 허락되지만, 아예 다른 스승이라면 자신의 스승에 대한 역심으로 보기도 하거든. 특히나 네 주인님은 장로님이시지만, 전명훈의 스승이신 금진찬님은 원로기 때문에 더더욱 민감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어."
[아 그렇군요. 제가 주제넘은 말을 했습니다. 하오나... 그렇다면 요수인 제가 주인님의 말을 전해서 전명훈님께 도움을 드리는 정도도 아니 되겠습니까?]
"음... 그 정도는 괜찮을지도 모르겠네. 요수에 대해서는 규정이 없으니까."
그 말에 홍범은 전명훈을 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하면 제가 주인님을 대신해서, 그분의 가르침을 전명훈님께 전달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전명훈은 홍범을 보며 물었다.
"그런데... 너는 도대체 왜 내게 이렇게 잘해주는 거지?"
[그야... 주인님께선 늘 전명훈님을 걱정하고 계시니 말입니다. 전명훈님께서 천상금뢰지체로서 성장하여야 문파가 안정된다고 말하셨으니, 그분을 모시는 입장인 저로서는 당신께 최대한 도움을 드리는 게 주인님을 위한 길이겠지요.]
"그런...!"
전명훈은 감격한 눈으로 홍범을 바라보았다.
그는 홍범에게 감동했고, 그리고 홍범의 주인이라는 원영기 장로에게 깊은 존경심을 가지게 되었다.
'저 정도로 후학을 생각할 정도는 되어야 문파의 장로를 맡는 위치에 오르는군.'
"그 장로님의 성함을 알려다오, 아니, 잠깐. 아니다. 내가 추후에 경지에 이르고 나서 직접 찾아가 인사드리지. 그 전에는 알려줄 필요 없다."
[예 뭐... 원하신다면 그러겠습니다. 그럼 앞으로 제게서 선각후통에 대한 강의를 들으시겠다는 것이지요?]
"그래, 부탁하겠다, 홍범!"
전명훈은 홍범에게 무릎을 꿇으며 가르침을 청했다.
요수에게 무릎을 꿇었다는 부끄러움은 없었다.
홍범의 수행은 축기기로, 필히 자신보다 오래토록 수행의 길을 걸었을 요수임이 틀림없었고, 그의 주인일 원영기 장로 역시 고명한 어른임에 틀림없었으니까.
'반드시 홍범에게 선각후통에 대한 이론을 배워, 적뢰공의 진짜 힘을 일깨우겠다.'
그리고 반드시 칠성제를 넘어서, 눈칫밥을 주는 스승님과 문파의 원로진에게 똑똑히 알릴 것이었다.
자신이 '승리자'라는 것을.
그리고, 10년이 지났다.
* * *
"하늘이여!!!"
전명훈은 이를 갈며 먹장구름을 바라보았다.
파직, 파지지직!
그의 주변으로 적뢰공의 뇌력이 충천해 있었다.
굵은 벼락이 전명훈의 주변에서 붉게 물든채로 일렁였다.
뇌전이 붉게 물드는 것은 적뢰공을 대성하여야지만 나오는 특징.
전명훈은 지난 10 년간 선각후통의 방식으로 적뢰공의 처음과 끝을 모조리 뜯어서 해체할 수 있을 정도로 수련했다.
하지만.
"왜! 나는! 아직도!!! 연기기 7성을 넘을 수 없는 거냐!! 하늘이여, 하늘이여, 하늘이여어어어!!!!!"
전명훈은 눈알이 시뻘겋게 충혈된 채로 이를 갈았다.
쿠르르르릉!
연기기 6성인 상태로 홍범의 도움을 받아 적뢰공의 진의를 깨우쳤다.
붉은 적뢰가 하늘을 향해 치솟으며 구름에 닿았다.
하지만, 그것 뿐이었다.
연기기 6성 수준의 법력으로는, 적뢰공의 진의를 깨우쳐보았자 부족했다.
붉은 벼락은 먹구름의 끝자락을 살짝 건드리고는 스러졌을 뿐이었다.
동 경지의 연기기 6성 수준에서는 맞설 수가 없는 강력한 힘이었지만, 그 정도의 힘조차도 하늘을 막아세운 구름을 뚫기는 힘들었다.
"왜! 나는! 아직도! 아직도 칠성조차 뚫을 수 없느냔 말이다!!!"
전명훈의 옆에서, 금소해와 홍범, 그리고 금신천뢰문에서 친해진 몇몇이 전명훈을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전명훈이 10년째 천거 현상을 극복하지 못하는 일은 문파 내에서 유명했다.
그리고 10년간, 어느 순간부터 금진찬은 전명훈이 칠성제를 지내든 말든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원로진들 역시 전명훈을 더 이상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았다.
오직 몇몇의 벗들만이 전명훈의 곁에서 전명훈을 응원할 뿐이었다.
전명훈은 금소해와 홍범, 몇몇을 제외한 모두에게 배신감을 느꼈다.
'쓸모 있어 보일 때는 잘해주다가 쓸모가 없어 보이니.이렇게 헌신짝처럼 나를 내팽개쳐?'
듣기로는, 최근 무수한 원로진들이 서은현의 동부로 모여 서은현과 뭔가를 한다고 했다.
서은현에 대한 열등감, 사문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 울분 등이 합쳐져 전명훈의 마음에 응어리졌다.
'분노가 강해질수록, 적뢰공이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최근 들어 전명훈은 무언가 적뢰공이 변화하는 듯한 느낌을 느꼈다.
'공법이 감정에 반응한다. 어쩌면... 어쩌면 더한 분노가 있다면...'
공법 자체가 진화해버릴 것만 같은 느낌이 솔솔 들었다.
'그래, 분명 그럴 거다.'
그리고 전명훈은 그때를 기다렸다.
'공법을 진화시키는데에 성공하면, 칠성제를 뚫을 수 있다!'
칠성제만 뚫는다면, 전명훈은 이 앞의 길은 평탄하리라고 생각했다.
'빠르게 경지를 올려... 나를 무시한 모두에게 복수해주마!'
빠드득!
그는 이를 악물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 * *
"...벌써 10년째군."
홍수령이 내 동부에 들어와 차를 마시며 말했다.
"10년 전에도 생각했던 거지만, 네놈은 좀 미친 놈 같다."
나는 홍수령의 말에 콧웃음을 쳤다.
"멀쩡한 신입들 잡아다가 인체실험하는 홍 선배에게 듣고 싶은 말은 아닙니다만."
"나쁜 의미로 한 말은 아니야. 그냥 네 능력이 너무 규격 외로 뛰어나다는 말을 한 것 뿐이지."
그녀는 팔짱을 끼며 내 주변, 주변에서 휘몰아치는 무수한 뇌전의 흐름을 보며 말했다.
"금신천뢰문 뇌도공법을 전부 익혀보겠다고 했을 때는 정말로 정신 나간 놈인 줄 알았다만... 설마 10년 안에 정말로 그 짓을 해낼 줄이야. 가장 성취가 낮은 것조차 3성 이상으로 익혀내다니, 대단하구나."
"칭찬 감사합니다."
"거기에... 전명훈을 위한 계획도 솔선수범해서 착착 해내다니... 지금 태상장문께서 뭐라고 하시는 줄 아느냐?"
"뭐라 하십니까?"
"왜 나를 네놈 쌍수도려로 정했느냐 하더군. 자기 현손녀를 네놈 쌍수도려로 억지로라도 맺었어야 했다며 피눈물을 흘리시는 중이지. 큭큭..."
그녀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나도 피식 웃었다.
"아마 그분께서 그러셔도 금소해는 이미 전명훈과 10년간 이러니 저러니 하며 잔뜩 정이 든 모양입니다만..."
솔직히 나도 금소해가 왜 전명훈을 좋아하는지는 몰랐다.
하지만 그녀는 일단 전명훈을 좋아했다.
정말로,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었다.
'아마 전명훈에게 사랑에 빠질 운명인가보지.'
"그나저나 그 얘기 하려고 찾아오신 겁니까?"
"물론 아니지. 네가 금신천뢰문의 공법 9562개를 전부 익히는 데에 성공했다고 해서 물어볼 게 있어 온 것이다."
"..."
"원로진들 사이에서는 소문으로만 내려왔지만, 금신천뢰문의 역대 장문인들은 모두 이 비밀을 공유하고 있었다 하더구나."
나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눈치챘다.
"금신천뢰문에 존재하는 모든 공법은 모두 불완전하다. 본문의 공법은 서로가 서로를 보완한다. 본문의 공법은 전부 금신자님의 천상금뢰지체를 모방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러한 사실들 때문에 원로진들 사이에서는 늘 이러한 소문이 돌아왔지."
그녀가 나를 보며 말했다.
"어쩌면, 본문의 공법은 불완전한 것들이 아닌, '원래 전부 하나였던 완전한 공법'을 9000여개로 쪼개놓은 것이라는 소문. 그리고 '완전한 공법'을 익히면 시조와 같은 '천상금뢰지체'를 얻을 수 있다는 소문이 말이다."
홍수령의 눈빛이 진중해졌다.
"역대 장문인들은 이러한 소문에 대해 뭔가를 알고 있는 듯 하면서도 늘 사실을 공유해주지 않았지. 그래, 모든 공법을 익혀보니 어떤가. 정말로 금신천뢰문의 공법은, 원래 하나였던 공법을 쪼개놓았던 거냐?"
"...그건..."
* * *
전명훈은 그날도 역시 공법수련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이었다.
부우우웅!
그의 위쪽에서 둔광이 번뜩이며 누군가가 나타났다.
"아, 스승님!"
전명훈은 금진찬을 보며 예를 취했다.
"어쩐 일이십니까?"
"어쩐 일이기는, 네 성취를 보러 왔다. 스승으로서 제자의 성취를 보는 건 당연한 게 아니냐. 최근 들어 적뢰공의 진의를 깨쳤다는 얘기는 들었다. 펼처보거라."
"예, 알겠습니다."
'말하는 투가 어째, 평소에도 신경을 써줬다는 투로군. 짜증나게 하기는...'
그는 금진찬에 대해 속으로 짜증을 내면서도 겉으로는 예의바르게 적뢰공을 펼쳤다.
파치지지직!
그의 주변으로 붉은 번개가 몰아쳤다.
금진찬은 전명훈의 성취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흠, 좋군. 기본공법인 적뢰공의 극의에 달한 게 맞구나."
"예, 그렇습니다. 제자가 불철주야..."
"그나저나 말이다, 명훈아. 적뢰공에 극의에 도달해도 연기기 6성인 너에 대해 원로진들이 회의한 결과,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예...? 무슨 일인 겁니까?"
전명훈은, 어쩐지 금진찬의 잔혹한 표정에서 뭔가 불길함을 느꼈다.
"천상금뢰지체를 네가 가지고 있어봤자,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하여, 네 육신을 갈아 단약으로 만들고, 그 천상금뢰지체의 영근을 타인에게 넘겨주기로 결론이 났단다."
"....?????"
전명훈은 순간 이해가 되지 않아 뇌가 정지했다.
"예...? 그게 무슨..."
"이해할 필요 없다."
쿠르릉!
금진찬이 냉혹한 미소를 지으며 전명훈에게 손을 뻗었다.
"이리 오려무나. 마도선파연합에 부탁해서 막리세가라는 단약세가 출신의 솜씨좋은 연단사를 이미 초빙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