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드헌터스>
현상금 사냥꾼이 되어 전 세계를 떠돌아다니며 탈옥한 죄수들을 잡아들이는 게임.
나는 이 게임이 좋았다.
뛰어난 전투 묘사, 광활한 세계관, 이질적이지만 아름다운 맵 디자인, 망해 가는 세계 특유의 감성.
거기에 방대한 볼륨에 높은 자유도, 더럽게 하드코어한 난이도까지.
게임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이 심각할 정도로 내 취향이었다.
때문에 대학 시절부터 취준 시기를 거쳐 회사에 들어오고 나서까지.
나는 이 게임을 죽어라 들이팠다.
6년의 시간.
나는 게임 속 모든 클래스들을 한 번 이상씩 플레이 해 보고, 히든 퀘스트까지 클리어하며 스토리를 파악하고, 공식 홈페이지에 수록된 설정집까지 깡그리 독파했다.
한국에서, 아니 전 세계에서 이 정도로 이 게임을 씹고 뜯고 맛본 유저는 아마도 나뿐이었다.
관련 커뮤니티는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다 죽었고, 공략글을 올리는 유저도 나 말고는 단 한 명도 없었으니까.
온라인 게임이었다면 진작 서비스 종료를 하고도 남았을 상황.
하지만 이건 싱글 게임이라 어찌어찌 지금도 살아남기는 했다.
이 빌어먹을 게임은 엔딩 파트를 빼놓고 출시됐기 때문이다.
게임 플레이 초반부터 최종 보스에 대한 복선을 대놓고 뿌려 놓고선, 최종 보스는 작중에 나오지도 않는다.
대충 중간급 보스와 대결하고, 그대로 끝.
똥을 싸던 중 변기가 사라진 것 같은 이 어이없는 전개에 수많은 게이머가 이 게임을 던졌다.
물론 나도 이 사실을 알곤 쌍욕을 하며 패드를 집어 던졌었다.
내 취향의 게임이 이것밖에 없어서 다시 집어 들긴 했지만.
자기 취향인 음식이 세상에 하나뿐이라면 곰팡이가 좀 폈어도 먹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오늘도 그랬다.
퇴근하고, 씻고, 맥주 한 캔 까서 물고 <헤드헌터스>를 켰다.
그리고 그대로 맥주를 뿜었다.
"DLC 출시?!"
이 미친놈들이 6년 만에 DLC를 출시한 것이었다.
그것도 엔딩 파트를.
"이걸 왜 이제 내는데!!"
유저들 다 떨어져 나가고 이제 와서 내 봤자 대체 무슨 소용인 건데!!
하고 외치면서도 내 손은 DLC 구매 버튼으로 커서를 옮기고 있었다.
세상엔 욕하면서도 할 수밖에 없는 일이라는 게 존재했다.
6년을 들이팠는데, 그래도 엔딩은 보는 것이 도리 아니겠나.
그렇게 나는 DLC 구매 페이지로 들어갔다.
<헤드헌터스 DLC: 흑신 강림>
흑신(黑神).
작중에서 언급만 되고 나오지는 않았던, 이 게임의 최종 보스.
나는 거의 비명을 지를 뻔했다.
"자 일단 진정하자, 진정… 내 카드가 어디 있더라."
한데 막상 보니 체크카드를 꺼낼 필요도 없었다.
구매 페이지에 큼지막하게 이렇게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이 게임에 미친 당신만을 위한 특별 할인가!>
<65,000크레딧 → 0크레딧>
공짜.
게임사 놈들이 최소한의 양심은 있었는지, DLC를 무료로 내놓았던 것이다.
"오예."
이제 진짜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나는 곧바로 구매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후욱!
갑작스러운 섬광과 함께, 나는 정신을 잃었다.
* * *
매캐한 냄새가 콧속을 파고들어 왔다.
동시에 미세한 먼지가 뺨에 들러붙는 것도 느껴졌다.
"으으...."
그렇게 눈을 떴을 때.
나는 내가 내 방이 아니라 어느 엉뚱한 장소에 던져져 있음을 깨달았다.
"뭐야 여긴."
좁디좁은 방이었다.
물론 내가 살던 원룸도 그리 넓지는 않았지만, 이곳은 그보다 더 심했다.
거기다 침대, 변기, 세면대가 칸막이도 없이 한데 주르륵 붙어 있었다.
실로 끔찍하기 이를 데 없는 가구 배치.
거기다 발밑은 차가운 돌바닥이었고, 벽과 천장에는 두꺼운 철판이 덧대어져 있었다.
내가 알기로 이런 반인륜적인 인테리어를 채택하고 있는 건축물은 딱 하나였다.
감옥.
"내가 왜?!"
평생 범죄 따위는 저지르지도 않았다.
그 흔한 과태료 한 번 내본 적 없었고.
그런 모범 시민인 내가 갑자기 감옥이라고?
"아니 근데 잠깐만."
이 감옥의 인테리어, 어딘가 묘하게 익숙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여긴 게임 속에 나왔던 감옥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