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7화. 푸후훗. 멋진 변신쇼다냥!
417화. 푸후훗. 멋진 변신쇼다냥!
내 이름은 13-2279호. 태어나자마자 복제술사 카피에게 납치돼 실험체가 됐다.
카피는 다른 형체로 변신하는 것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미친 마법사였다. 그걸 위해 생체 실험도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처음에는 주변에 가득했던 친구들이 어느새 하나둘 사라져갔다.
나중에야 이름의 앞에 붙은 '13-'가 1만 명의 실험체가 12번 사라진 흔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실험을 하면 할수록 친구들은 사라졌고, 혼자 남았다. 불행하게도.
그렇게 자신만 남았을 때
"이제 네 이름은 까비다."
복제술사 카피에게 새로운 이름을 받고 강제로 제자가 됐다.
하지만 말이 제자지 자신은 마지막까지 실험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이걸 마셔라."
스승이 진한 은색의 액체를 건넸다. 스승의 명을 거스를 용기가 없는 나는 액체를 마셨고, 의식을 잃었다.
이후 정신을 차렸을 때 주변은 완전히 초토화된 상태였다.
정신을 차린 곳에서 며칠간 스승을 기다렸지만, 스승은 나타나지 않았다.
드디어 자유인가···그동안 너무도 간절히 꿈꿔왔던 자유.
내가 스승으로부터 벗어났다고 생각할 때
꿈틀.
몸이 전혀 다른 형태로 변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나는 너무 큰 자유를 원한 건지도 모른다.
육체에서마져 자유로워졌으니까.
내 두 번째 변신이자, 내가 기억하는 첫 변신은 회색 늑대였다. 사족 보행이 익숙하지 않아, 걸음마를 떼는 데 며칠은 걸렸다.
그리고 간신히 드디어 뛰는 게 익숙해졌을 때
꿈틀.
다시 변신했다.
이후 어떨 때는 오크로, 고블린으로, 남자로, 여자로, 아이로, 노인으로, 동물로, 벌레로 변신했다.
그나마 동물까지는 의식이 남아있지만, 벌레로 변했을 때는 의식도 없었다.
그러다 다른 모습으로 변해 의식을 차리면 벌레가 됐을 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자괴감에 빠졌다.
거기다 약한 존재로 변해 죽을 뻔한 위기를 겪은 것도 수백 번.
다행이라면, 팔이 잘려도, 피를 많이 흘려도 변신만 하면 몸이 정상 상태가 돼서 살 수 있었다.
마을에 정착해 안전해지고 싶어도 머무를 수 없었다. 모습이 계속 변하니까.
변신 능력을 통제할 수 없었다.
실제로 모두와 같이 있을 때 모습이 변해 공격을 받고, 간신히 도망친 적도 있었다.
나는 이렇게는 살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어쩔 수 없이 위험을 무릅쓰고 스승의 연구실로 돌아갔다.
스승을 만나기 두려웠지만, 세상은 더 무서웠다.
다행히 스승은 연구실에 없었다. 오랫동안 찾아오지 않은 건지 연구실 안은 먼지가 수북했다.
나는 안심하며 스승의 연구자료를 공부하며 변신 능력을 조절할 방법을 찾았다.
그리고 연구자료를 공부하던 나는 스승이 내게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았다.
최강의 생명체.
위대한 용으로 변신하는 실험을 내게 한 것.
미친 생각이었다.
당연하게도 내가 위대한 용이 되는 건 불가능했고, 나는 그 부작용으로 본래 모습조차 잃어버린 신세가 된 것이다.
이후 기억이 났다.
첫 변신 때 내가 블랙 미노타우루스로 변신해 복제술사 카피를 해치웠음을.
나는 카피의 연구자료를 토대로 연구를 계속했고 두 가지 물약 레시피를 완성했다.
[변신 억제 물약]
[변신 촉진 물약]
하나는 모습을 유지하고 싶을 때, 다른 하나는 모습을 바꾸고 싶을 때 쓰는 물약이었다.
레시피를 완성하자, 나는 물약의 재료를 구하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물약을 만들기 위한 재료 대부분이 엄청난 고가였고, 돈을 벌 방법이 없는 나는 모습이 변하는 내 특성을 이용해 도둑이 됐다.
모습이 변하기 때문에 어떤 흔적이 남아도 잡히지만 않으면 누구도 자신을 추적할 수 없었다.
그렇게 좀도둑질부터 시작해 실력을 키우며 점점 도둑질의 스케일을 키우자
어느새 까비라는 이름 대신 얼굴 없는 대도 룬이라는 새로운 이름이 자신에게 붙었다.
그리고 조금 전으로 돌아와···
삐익!
"으음···."
얼굴 없는 도적 룬은 침입자를 알리는 알람 마법에 침대에서 뒤척였다.
하필 전투력이 약한 날다람쥐로 변했을 때 침입자라니···
어떻게 자신의 아지트를 찾았는지 의문이 들었지만, 큰 걱정은 되지 않았다.
만일을 대비해 엄청난 투자를 한 함정이 있었으니까.
그래서 걱정하지 않고 다시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들었는데···
챙그랑···
뭔가 깨지는 소리에 눈을 떴다.
"뭐지···?"
룬이 서둘러 일어나 연구실을 볼 수 있는 영상 마법석을 가동했다.
그러자
···?!
어느새 연구실에 들어온 침입자들과 벽 한편에 진열된 시약들이 전부 박살 난 게 보였다.
저게 다 얼만데?!
룬이 자신의 노력과 돈이 쓸모없게 된 것에 분노할 때
"어?"
작은 갈색곰이 앞발에 눈부실 정도의 백색 빛을 만들어 내는 게 보였다.
안돼!
불이 나면 내 연구 자료들이···
특히 어제 드디어 완성한 필생의 역작 본모습으로 돌아가기 위한 물약 레시피가 저 곰의 바로 앞에 놓여져 있었다.
그래서 서둘러 변신 억제 물약과 변신 촉진 물약을 챙겨 거처를 나왔다.
***
"저게 얼굴 없는 대도 룬?"
세준은 사지를 쫙 벌린 채 날아다니는 날다람쥐를 보며 당황했다.
저렇게 조그만 애가 대도라고?
세준은 작고 귀여운 모습에 방심할 뻔했지만
아니지! 이오나도 작고 귀여운데, 대파괴의 마법사잖아!
이오나를 떠올리며 경계심을 끌어올렸다.
그때
"응?"
하늘을 날던 룬이 벽에 달라붙더니, 입고 있던 조끼에 손을 넣어 물약 하나를 꺼내서 마셨다.
그러자
꿈틀.
룬의 몸이 은색의 반죽처럼 변하더니 순식간에 개구리로 변했다.
이어서 물약을 먹고 이번에는 너구리로, 다시 나무늘보로 변신했다.
오늘따라 운이 없는지, 전투에 적합한 종족으로 변신하지 못했다.
'큰일이다!'
룬이 불안해할 때
"와. 대박!"
"푸후훗. 멋진 변신쇼다냥!"
꾸엥!꾸엥!
[신기하다요! 모습이 계속 변한다요!]
삐욧!
[이래서 얼굴 없는 대도 룬이라고 부르는 거군요!]
"와···."
세준과 일행들은 룬의 변신쇼에 흠뻑 빠져버렸다.
그렇게 거의 10번 넘게 변신 촉진 물약을 마시며 변신을 하던 룬.
됐다.
드디어 강한 개체가 나오자
쿵.
세준의 일행들 앞에 착지했다.
[블루피닉스]
불을 다루는 피닉스와 다르게 얼음을 다루는 피닉스.
어떤 종족으로 변할지 모르니, 다른 종족을 공부하는 건 룬에게 필수였다.
쩌저적.
룬은 자신의 연구자료와 시약이 손상되지 않게 주변을 전부 얼리려 했다. 침입자들도.
그때
"윽."
엉덩이···아니. 꼬리에서 따끔함이 느껴졌다.
룬이 서둘러 뒤를 돌아보자
뽁.
뽁.
"푸후훗. 이걸로 박 회장 농기구랑, 이오나 지팡이 만들면 좋겠다냥!"
테오가 룬의 꼬리 깃털을 뽑고 있었다.
"이익! 전부 얼려주마!"
분노한 룬이 냉기를 일으키려 하자
"켁!"
꾸엥!
[우리 아빠 추우면 감기 걸린다요!]
어느새 거대하게 변신한 꾸엥이가 앞발로 룬의 목을 꽉 움켜쥐었다.
뽁.
뽁.
덕분에 멱살이 잡힌 채 꼬리 깃털을 뽑히는 신세가 된 룬.
서둘러 품에서 변신 촉진 물약을 꺼내 마셨다.
꿈틀.
꾸엥?!꾸엥!
[어?! 빠져나간다요!]
꾸엥이가 변신하는 룬을 잡으려 했지만, 룬은 미꾸라지처럼 꾸엥이의 몸을 빠져나가며 고라니로 변했다.
그리고 다시 몇 번을 변신하던 룬.
꾸엥!
[또 변신한다요!]
꾸엥이와 삐욧이, 유렌은 다시 변신쇼 관람 모드가 됐고
"푸후훗. 박 회장, 이거 받으라냥!"
테오는 세준에게 블루피닉스의 꼬리 깃털 7개를 가져왔다.
"오. 이건 시원하네."
세준이 받은 푸른색 깃털을 살펴봤다.
[블루피닉스의 꼬리 깃털]
영생을 사는 블루피닉스의 꼬리 깃털로 강한 냉기의 힘이 담겨 있는 아주 훌륭한 재료입니다.
이 깃털을 사용해 장비를 만들면 높은 확률로 전설급 장비가 탄생합니다.
이 깃털을 이용해 무기를 만들면 얼음속성 무기를, 지팡이를 만들면 얼음속성 공격을 2배 증폭하는 지팡이를, 농기구를 만들면 농작물의 유통기한을 10% 올리는 농기구를 만들 수 있습니다.
등급 : SSS
"잘했어. 테 부회장."
"푸후훗. 당연하다냥! 나 테 부회장은 항상 잘한다냥!"
"흐흐흐. 그래."
얄미운 반응이 나올 건 알았지만, 세준은 칭찬을 안 할 수 없었다.
피닉스의 꼬리 깃털로 농작물의 성장 속도를 5% 올려주는 호미를 만들고.
블루피닉스의 꼬리 깃털로는 농작물의 유통기한을 10% 올려주는 낫을 만들면 최고의 시너지가 나올 거다.
그때
맴.맴.
꾸엥?
[변신 끝났다요?]
룬이 매미로 변신하며 의식을 잃었다.
맴.맴.
"일단 생포해."
삐욧!삐욧!
[네! 제가 잡을게요!]
삐욧이가 부리로 매미로 변한 룬을 잡은 후
꾹.
노예 계약서에 매미의 다리 도장을 받았다.
하지만
삐욧?
[테오 님, 됐어요?]
"안 됐다냥!"
본모습의 손도장이 아니라, 노예 계약이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일단 여기는···나중에 이오나한테 위치 알려주고, 돌아가자."
"알겠다냥!"
세준이 얼굴 없는 대도 룬을 포획해 일행들과 탑 99층으로 복귀했다.
***
황금탑 12층.
콰과광!
하늘에서 수백 줄기의 벼락이 지상으로 내려치는 평지.
달달달.
황금색 수레 하나가 천천히 이동했다.
쾅!
콰광!
이동 중에 벼락이 여러 번 내려쳤지만, 수레는 멀쩡히 이동했다.
"저게 뭐지?"
"일단 공격할까?"
동굴에 숨어 밖을 경계하던 엘프들이 수상해 보이는 수레를 바라보며 수군거렸다.
그때
달달달.
수레가 방향을 바꿔 그들이 있는 동굴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뭐야?"
"어떻게 하지?"
"일단 로이바 장로님께 알려!"
그렇게 엘프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이
쿵.
수레가 그들의 동굴 앞에 멈춰 섰다.
"시위 걸어."
로이바 장로의 말에 엘프들이 활에 날카로운 돌촉을 단 나무 화살을 걸고, 수레를 조준했다.
하지만
······
전혀 미동도 없는 수레.
"1조 접근."
"네."
로이바의 명에 5명의 엘프들이 하늘과 수레를 번갈아 보며 나무 밑으로 이동해 조심스럽게 수레에 접근했다.
언제 번개가 그들을 향해 내리꽂힐지 몰랐다.
그렇게 1조가 가까이 다가가자
우웅.
수레가 황금색을 내기 시작하더니 반경 500m의 거대한 황금색 보호막을 만들었고
콰과광!
보호막은 주변에 치는 벼락을 완벽하게 막아줬다.
그리고
덜컹.
수레의 옆면이 열리며
[판매 목록]
마력의 방울토마토 1개 - 2탑코인(남은 수량 1만 개)
힘의 호박고구마 1개 - 10탑코인(남은 수량 1만 개)
···
..
.
[매입 목록]
황급탑 35층 땅문서 - 100만 탑코인(1개)
-물건을 판매하면 가격을 책정해서 매입합니다.(남은 물건 4종류)
상점창이 나타났다.
"어?"
"응?"
엘프들은 눈이 좋았기에 1조 엘프들뿐만 아니라 다른 엘프들도 상점창을 볼 수 있었고
"일단 내가 가 보겠다!"
장로인 로이바가 대표로 수레에 다가갔다.
10분 후.
"크흠···이용해도 될 것 같군."
마력의 방울토마토의 맛에 흥분해서 계속 사 먹던 로이바가 간신히 흥분을 가라앉히며 엘프들에게 말했고
"와!"
"빨리 먹어보자!"
엘프들도 수레로 다가가 세준의 농작물을 샀다.
잠시 후.
덜컹.
거래가 끝나자 수레의 옆면이 닫혔다.
"잘 가!"
"다음에 또 와!"
달달달.
세준의 농작물을 품에 가득 담은 엘프들을 뒤로하고 황금 수레가 다시 새로운 고객을 찾아 황금탑을 유랑하기 시작했다.
418화. 까망이 시원하다요?
418화. 까망이 시원하다요?
[검은탑 99층에 도착했습니다.]
"집이다!"
음머.
[세준 님, 안녕하세요.]
세준이 웨이포인트에 나타나자, 우마왕이 세준에게 인사했다.
"응. 안녕. 근데 우리 꾸엥이 특훈은 잘하고 있지??"
음머.음머!
[그럼요. 곧 좋은 모습 보여드릴 수 있을 겁니다!]
세준의 물음에 우마왕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좋은 모습? 무슨 좋은 모습?
우리 꾸엥이 이미 강한데?
불안한 마음에 세준은 더 물어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너무 늦었다.
우로릉.
캄캄한 하늘 아래에서 블랙 미노타우루스들이 바닥에 누워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배나무 농장에서 배를 수확하는 바람에 너무 늦어버렸다.
학부모 상담은 다음에 해야 할 것 같았다.
세준은 우마왕과 인사를 하고
"토룡아···."
조용히 토룡이를 소환했다.
-네···
세준의 의도를 알았는지 토룡이도 조용히 나타났다.
그렇게 집으로 가기 위해 토룡이의 머리 위에 오른 세준.
근데 얘네들 왜 안 나오지?
평소라면 도착하자마자 아공간 창고에서 뛰쳐나왔을 테오, 꾸엥이, 까망이가 조용했다.
삐욧이와 유렌은 다시 유렌의 빚을 받는다고 떠났다.
철컹···
세준이 조심히 아공간 창고를 열자
고로롱.
꾸로롱.
보물에 반쯤 파묻힌 채 서로를 부둥켜안고 자고 있는 테오와 꾸엥이가 보였다.
끼잉···
둘의 사이에 낑겨 숨 쉬는 게 힘든지 낑낑거리면서 자는 까망이도.
흐흐흐. 귀엽다.
셋이 자는 모습을 구경하던 세준은 일단 까망이의 쾌적한 잠자리를 위해 테오와 꾸엥이를 떼어낸 후
척.
"푸후훗."
테오는 무릎에 착용하고
포옥.
꾸헤헤헤.
꾸엥이는 품에 안고
쏘옥.
끼히힛.
까망이는 슬링백에 넣었다.
그렇게 일행들을 챙겨 아공간 창고에서 나오려고 할 때
맴···맴···
창고 구석에서 소리가 들렸다.
"응?!"
소리가 나는 곳을 보자, 보석 상자 안에 갇힌 매미로 변한 룬이 보였다.
도망칠까 봐 안에 가둬둔 모양.
이러다 크게 변하면 죽는 거 아냐?
세준은 매미를 꺼내 바닥에 놓고 매미가 도망치지 못하게 몸 위에 금화 하나를 올렸다.
잠시 후
-주인님, 도착했습니다.
"···응. 고마워."
토룡이의 머리 위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던 세준이 안 잔 척 서둘러 고개를 들며 입을 열었다.
세준은 토룡이의 머리 위에서 내려와
"꾸엥이, 일어나. 엄마랑 자야지."
꾸엥이를 깨워 분홍털에게 보냈다.
꾸엥···꾸엥···
[알겠다요···아빠, 안녕히 주무신다요···]
세준의 말에 꾸엥이가 거의 눈을 감은 채 앞발을 흔들며 인사를 하고 분홍털이 있는 곳으로 염력을 써서 뽈뽈뽈 날아갔다.
그리고 취사장으로 들어가 오늘 수확한 배와 다른 과일들을 손질해 올려뒀다.
그리고
"이제 자야지."
침대로 가
끼잉···
슬링백에서 까망이를 꺼내 가슴에 올려놓고
꿀꺽.
[약쑥을 섭취했습니다.]
[모든 스탯이 20 상승합니다.]
[수명이 3개월 늘어납니다.]
[쓴맛이 나는 약을 섭취했습니다.]
[재능 : 체력에 좋은 약이 쓰다가 발동합니다.]
[체력이 9 상승합니다.]
약쑥을 먹고 기절했다. 여전히 적응되지 않는 쓴맛이었다.
그렇게 세준이 기절하고 2시간 정도 지나자
배앳-!
세준의 이마에 은신하고 있던 뱃뱃이가 기지개를 켜며 일어났다.
평소 기상보다 늦은 시간. 오늘은 중간에 세준을 지키기 위해 일어나는 바람에 평소보다 늦잠을 잤다.
(뱃뱃! 모두들 좋은 밤이에요!)
뱃뱃이는 세준과 테오, 까망이에게 조용히 인사를 하고 침실을 나왔다.
그리고
파닥.파닥.
식사를 하러 취사장으로 갔다.
(뱃뱃! 오늘은 배도 있어요!)
뱃뱃이가 세준이 깎아놓은 새하얀 배 조각을 보며 흥분해 달려들었다.
쭙.쭙.
(뱃뱃! 너무 달아요!)
그렇게 배의 과즙을 다 빨아 먹은 뱃뱃이.
뱃뱃?
그제야 과일이 담긴 접시 옆에 놓인 쪽지를 발견했다.
[뱃뱃아, 이오나에게 전해줘 - 세준]
세준의 심부름이었다.
뱃뱃!!!
세준의 심부름 쪽지를 본 뱃뱃이가 흥분했다.
(드디어 저도 별 다섯 개 도장을 받을 수 있어요!)
이날을 위해 미리 준비했어요!
뱃뱃이가 환하게 웃으며 털 속에 고이 간직하고 있던 작은 종이 뭉치를 꺼냈다.
착.착.착.
수십 번 접혀 있던 종이를 펼치자, 뱃뱃이가 정성스럽게 그린 박쥐 그림과 안에 10개의 빈 동그라미가 있었다.
뱃뱃.
뱃뱃이는 종이를 흐뭇하게 바라보다, 다시 종이를 수십 번 접어 품에 넣고
(뱃보!)
농장의 남쪽에 있는 검은 박에 마탑으로 날아갔다.
***
검은 박에 마탑의 최상층.
"뀨-일이 너무 많아요!"
이오나는 오늘도 과중한 업무에 화가 났다.
검은 박에 마탑의 마탑주로서의 업무에, 마법사 협회 협회장으로서의 업무까지 처리해야 하니 바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최근 자신의 일을 도와줄 부협회장을 10명이나 뽑았지만, 며칠 버티지 못하고 도망쳤다. 10명 전부.
"뀨-뀨-돌아오면 가만 안 둘 거예요!"
이오나가 도망간 부협회장들을 향해 분노하며 서류를 거칠게 넘겼다.
그때
(뱃뱃···이오나 님, 저 들어가도 돼요?)
창문 틈 사이로 고개를 빼꼼 내민 뱃뱃이가 이오나의 눈치를 보며 물었다.
"뀻뀻뀻. 어서 들어오세요!"
이오나가 서둘러 서류를 내려놓고 뱃뱃이를 맞이했다.
(뱃뱃. 고맙습니다!)
이오나의 허락에 뱃뱃이가 감사 인사를 하고 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뱃뱃! 이거 세준 님이 전해드리래요!)
이오나에게 세준의 쪽지를 전달했다.
"뀻? 쪽지요?"
이오나가 쪽지를 펼쳐 빠르게 읽기 시작했다.
"뀻?!"
얼굴 없는 대도 룬을 잡았다고요?!
쪽지를 읽은 이오나가 놀랐다.
얼굴 없는 대도 룬은 유랑 상인 협회, 마법사 협회, 자유 용병 협회가 협력해 1년 동안 추격했지만, 잡지 못한 존재였다.
쪽지에는 얼굴 없는 대도 룬의 아지트에서 룬을 잡았다는 내용과 아지트의 위치가 적혀 있었다. 연구실에 있는 물건들을 챙겨달라는 부탁과 함께.
"뀻뀻뀻. 그렇지 않아도 탑 81층에 갈 일이 있었는데, 잘됐네요!"
노예···아니. 부협회장 하나가 도망친 곳이 탑 81층이었다.
"뀻뀻뀻. 근데 테오 님은 요즘 뭐 하세요?"
(뱃뱃! 큰형님은 아침마다 녹색탑으로 출근을···)
이오나의 물음에 뱃뱃이가 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을 열심히 대답했다.
잠시 후.
"뀻뀻뀻. 고마워요. 그럼 돌아가 봐요. 저는 바로 탑 81층으로 갈게요!"
(뱃뱃. 네. 안녕히 계세요!)
테오의 이야기를 들으며 피로를 푼 이오나가 뱃뱃이를 보내고 본격적으로 추노행, 아니 도망친 부협회장을 모시러(?) 출발했다.
***
"읏차."
아침이 되자 눈을 뜬 세준.
[대지의 보석의 봉인이 풀렸습니다.]
[대지의 보석에 봉인돼 있던 바위의 신 로크가 봉인에서 풀려납니다.]
[바위의 신 로크가 자신의 봉인을 풀어준 대상에게 은혜를 갚습니다.]
[바위의 신 로크가 1평 땅에 바윗길을 만들어 은혜를 갚습니다.]
[자는 동안 가진 생명력의 10%를 저장했습니다.]
[생명의 구슬이 8.69% 완성됐습니다.]
[24시간 동안 마력이 0.1 축적됐습니다.
[마력이 0.1 상승합니다.]
"좋아."
바윗길이면 황금바위인가?
메시지를 확인하며 세준이 서둘러 테오와 까망이를 챙겨 일어났다.
그리고
슥.
침실 벽에 날짜를 표시하고 밖으로 나와 황금바윗길을 찾았다.
하지만
"오! 식빵이다!"
세준의 예상과 다르게 황금바위가 아니라 갈색의 식빵이었다. 기대와 달랐지만, 그래서 더 좋았다.
드디어 신들이 감을 잡은 것 같았다.
"흐흐흐. 아침은 프렌치 토스···어?!"
신난 표정으로 식빵을 잡던 세준의 얼굴이 굳어졌다.
왜 이렇게 딱딱해?
식빵은 바위처럼 단단했다. 그렇다고 진짜 바위는 아니었다. 그랬다면 진짜 국물도 없었겠지만.
"이건 갈아서 빵가루나 만들어야지."
로크 님은 좀 더 분발하셔야겠네요. 로크 님의 점수는 10평 만점에 0.2평입니다.
[로크 로드]
우리에게 이가 나갈 정도로 단단한 식빵으로 보답한 바위의 신 로크. 나빠.
세준은 농장 길목에 0.2평짜리 로크 로드를 만들고, 농장을 거닐다 취사장으로 향했다.
"응?"
취사장에 가자 식탁 위에 뱃뱃이가 먹은 과일의 흔적과 함께 수십 번 접어 너덜너덜한 종이 한 장이 놓여 있었다.
[세준 님, 심부름했으니까 저도 별 다섯 개 도장 찍어주세요 - 뱃뱃이]
뱃뱃이가 열심히 쓴 글과 함께.
"푸핫."
뱃뱃이 녀석, 언제 이런 걸 만든 거지? 흐흐흐. 귀엽네.
"오냐."
세준이 별 다섯 개 도장을 꺼내 뱃뱃이의 칭찬 종이에 도장을 찍어주고, 고이 접어 주머니에 잘 챙겨놨다.
잠시 후.
꾸엥!
[아빠, 좋은 아침이다요!]
꾸엥이가 눈을 비비며 취사장으로 들어왔다.
"그래. 꾸엥이, 잘 잤어?"
꾸엥!꾸엥!
[그렇다요! 꿀잠이었다요!]
"그래."
그런 것 같아.
꾸엥이의 오른 앞발과 입 주변의 떡진 털. 밤에 일어나 꿀을 먹은 흔적이 그대로 있었다.
밥 먹고 씻겨야지.
"앉아서 조금만 기다려."
꾸엥!꾸엥!
[아니다요! 꾸엥이가 수저랑 우유를 세팅하겠다요!]
세준의 말을 거부하며 꾸엥이가 각자의 자리에 수저와 우유를 놨다.
그리고
꾸헤헤헤.꾸엥.
[헤헤헤. 오늘 도장 받으면 꾸엥이 용돈 또 받을 수 있다요.]
자신의 자리에 앉아 도장 9개가 찍힌 칭찬 종이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세준이 어서 요리를 끝내고 도장을 찍어주길 기다렸다.
하지만
"자. 이제 먹자."
세준이 아침으로 만든 고구마맛탕을 식탁 위에 놓자
꾸엥!꾸엥!
[맛탕이다요! 잘 먹겠습다요!]
꾸엥이는 도장을 받아야 한다는 것도 잊고 맛탕을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자. 까망이도 먹어."
세준이 밥그릇에 맛탕 몇 개를 담아주자
낑?!
[고구마 요리가 또 있어요?!]
까망이는 새로운 고구마 요리를 보며 경악했다.
끼히힛.낑!
[히힛. 맛있어!]
경악도 잠시 까망이는 고구마맛탕을 맛있게 먹었다.
"테 부회장도 생선구이 먹자."
"알겠다냥!"
모두가 맛있게 아침을 먹는 사이
꾹.
세준은 꾸엥이의 칭찬 종이에 도장을 찍어줬다.
"우리 꾸엥이 도장 10개 모았네?"
꾸엥!꾸엥?
[그렇다요! 꾸엥이 이제 용돈 받을 수 있다요?]
세준의 말에 꾸엥이가 서둘러 고개를 끄덕이며 초롱초롱한 눈으로 세준을 바라봤다.
"응. 자. 용돈."
세준이 꾸엥이에게 1000탑코인을 줬다.
꾸엥!
[아빠 고맙습다요!]
꾸엥이가 두 앞발로 공손히 세준이 주는 용돈을 받아 90도로 인사했다.
그리고
꾸헤헤헤.
용돈 주머니를 꺼내 돈을 넣고는 뿌듯해했다.
아침 식사가 끝나자
"박 회장, 갔다 오겠다냥!"
테오가 녹색탑 1층으로 출근했고
"꾸엥이랑 까망이는 씻자."
세준은 둘을 데리고 수돗가로 데려가 씻겼다.
낑!
[싫은데요!]
물론 까망이가 도주를 시도했지만
꾸엥!
[까망이 이리 온다요!]
낑···
[갈게요···]
몽둥이를 꺼내는 무서운 작은 형의 호통에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자. 끝났다."
그렇게 세준이 둘을 씻기고 꾸엥이의 털을 수건으로 말려주는 동안
꾸에엥?
[까망이 시원하다요?]
끼야야!
꾸엥이가 꾸엥후로 까망이의 털을 말려줬다. 바람 때문에 대답이 잘 들리지 않았지만, 환호를 지르는 걸 보니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환호를 지르는 까망이를 구경하며 꾸엥이의 털을 말리고 있을 때
[멸망이 네타에 보낸 첫 번째 재앙 로커스트를 멸종시켰습니다.]
[위대한 업적 보상으로 네타에 멸망의 첫 번째 재앙 로커스트가 침입할 수 없습니다.]
"응?!"
세준이 다시 한번 로커스트를 멸종시키며 위대한 업적을 달성했다.
419화. 옜다. 칭찬.
419화. 옜다. 칭찬.
테오가 요즘 녹색탑 1층의 네타족 헌터들에게 대파를 열심히 팔고 있다는 소리를 듣기는 했지만, 이렇게 빨리 효과가 나타날 줄이야.
"흐흐흐. 테 부회장, 잘했어."
이따 퇴근하면 칭찬도 해주고 거대 생선구이도 만들어 줘야지.
"아냐. 칭찬은 조금만 해주자."
자신의 칭찬에 거만하게 웃는 테오의 얼굴을 상상하니 괜히 심술이 났다.
근데 업적 보상은 뭐지?
세준이 보상을 궁금해할 때
[녹색탑에서 달성한 위대한 업적이라 녹색탑의 탑농부 오필리아 이올그와 보상을 반씩 나눠서 획득합니다.]
[오필리아 이올그는 당신의 노예입니다.]
[오필리아 이올그가 획득한 보상의 50%를 추가 획득합니다.]
보상 메시지가 나타났다.
위대한 업적을 녹색탑에서 달성해서 원래는 보상을 5:5로 나눠야 하지만, 오필리아가 세준의 노예라 추가 2.5를 더 받았다.
그래서 보상의 75%를 세준이, 나머지 25%를 오필리아가 얻었다.
[위대한 업적 달성 보상으로 검은탑 탑농부 박세준이 재배한 농작물은 멸망의 힘을 미세한 양 흡수해 영양분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렇게 얻은 보상.
"뭐냐···?"
변한 게 거의 없잖아.
'아주 미세한'에서 '미세한'으로 변한 정도.
뭐 그래도 로커스트는 멸종시켰으니까.
세준은 애써 아쉬움을 숨겼다.
하지만 세준의 아쉬움과 다르게 '아주 미세한'에서 '미세한'으로 변한 건 아주 큰 변화였다.
펜릴의 코어 조각을 심은 밭에서 자라는 농작물들이 더 많은 영양분을 섭취할 수 있었고
[앗! 더 많이 흡수할 수 있어요! 힘이 넘쳐요!]
무엇보다 불꽃이가 붉은 안개를 대량으로 흡수하며 10번째 탑 근처를 청소하는 속도가 조금 더 빨라졌으니까.
[소시지, 어서 먹어요.]
거기다 불꽃이는 붉은 안개를 흡수해 만든 영양분으로 영양제로 만들어 새로운 세계수 후보인 소시지에게 줬다.
[소!시!지!]
아직 자기 이름밖에 못 말하는 소시지는 불꽃이의 기대에 부응하려는 듯 자신의 이름을 외치며 분발했고
꾸엥!
[아빠, 소시지 나무에 또 소시지가 열렸다요!]
"오!"
끼히힛.낑!
[히힛. 소시지다!]
모두를 기쁘게 했다.
***
검은탑 관리자 구역.
"크히히히. 완성이다!"
에일린이 웃으면 냄비 뚜껑을 열었다가
"으악!"
냄새를 맡고 서둘러 닫았다.
크힝. 실패네······
그래도 수십 번의 실패 끝에 냄새만 맡아도 이게 먹을 수 있는 건지 아닌지는 판별할 실력이 생겼다.
"좋아. 이번에는···."
그렇게 에일린이 새로운 레시피로 요리를 준비할 때
우웅.
수정구가 진동했다.
"뭐지?"
크히히히. 우리 세준이가 또 뭔가 했나?
에일린이 서둘러 수정구로 달려가 알람을 확인했다.
[검은탑 탑농부 박세준이 녹색탑이 수호하는 차원에서 첫 번째 재앙 로커스트를 멸종시키는 위대한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크엥?"
녹색탑?
에일린은 의아해했지만,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 세준이니까!
[녹색탑에서 달성한 위대한 업적이라···]
이어서 세준에게 나타난 메시지와 비슷한 내용의 알람이 나타났고
[검은 거탑 성장에 필요한 시간을 750일 단축시킵니다.]
위대한 업적의 75%만큼 기간이 줄었다.
"크잉. 아쉽네."
우리 세준이가 한 건데 왜 오필리아 언니랑 나누는 거야?
에일린은 화가 났지만
[검은 거탑 성장까지 33일 남았습니다.]
"크히히히. 이제 33일만 기다리면 세준이한테 자랑할 수 있어!"
검은 거탑 성장까지 남은 시간을 보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때
우웅.
다시 한번 진동하는 수정구.
[그리움의 청동 거울의 업그레이드가 완료됐습니다.]
"크히히히. 다 됐다!"
에일린이 알람을 확인하고는 서둘러 신기 수리 장비가 있는 방으로 달려갔다.
신기 수리 장비는 검은탑의 위상이 오르면서 신기의 수리뿐 아니라 업그레이드까지 가능해졌다.
그래서 에일린은 세준이 가족들과 더 오래 얘기할 수 있도록 세준에게 말하고 거금을 들여 거울을 업그레이드시켰고
거의 100일 만에 그리움의 청동 거울의 업그레이드가 끝났다.
그렇게 에일린이 장비 앞에 서자
[그리움의 은거울]
은색의 거울이 보였다.
그리움의 청동 거울이 업그레이드되며 은거울로 변한 것.
"좋아. 폴리모프 했고, 옷 입었고, 얼굴도 깨끗."
에일린은 서둘러 자신의 상태를 점검했다.
그리고
'세준아, 미안. 일단 나 먼저 쓸게.'
에일린은 세준에게 업그레이드가 완료됐다는 소식을 전하지 않고
어머님, 보고 싶어요!
세준의 엄마인 김미란을 떠올리며 거울에 마력을 불어 넣었다.
그러자 거울에 나타난 김미란.
"어머님, 안녕하세요! "
"오. 에일린, 오랜만이구나!"
김미란은 에일린과 이렇게 몇 번 대화를 나눈 적이 있기에 태연하게 인사를 하고, 세준의 안부를 물었다.
그렇게 둘이 얘기를 나눌 때
"어머님, 저 부탁이 있어요!"
에일린이 하고 싶은 말을 꺼냈다.
"부탁? 무슨 부탁?"
"저에게 요리를 가르쳐주세요! 세준이한테 맛있는 요리를 해주고 싶어요!"
아무리 혼자 연습해도 요리 실력이 늘지 않자, 에일린은 세준의 요리 스승인 김미란에게 요리를 배우기로 했다.
"호호호. 뭐 그런 걸 부탁이라고. 우리 아들 먹이겠다는데, 당연히 가르쳐줄 수 있지."
에일린의 요리 실력을 모르는 김미란. 기특해하며 에일린의 부탁을 흔쾌히 허락했다.
그렇게 에일린의 요리 특훈이 시작됐다.
***
녹색탑 관리자 구역.
크어엉.
브라키오는 아직도 코를 골며 자고 있었고
"에헤헤. 오늘도 가서 테오한테 먹을 거 달라고 해야지."
오필리아는 브라키오 몰래 탑 1층에 가려고 수정구를 조심스럽게 들고 살금살금 방을 나오고 있었다.
그때
[검은탑의 탑농부 박세준이 멸망이 네타에 보낸 첫 번째 재앙 로커스트를 멸종시켰습니다.]
···
..
.
오필리아의 앞에 나타나는 메시지.
"아. 뭐야! 내가 하려고 했는데···."
오필리아는 위대한 녹색용인 자신이 세준에게 지는 것 같아 괜히 투덜거렸다.
하지만
오. 로커스트도 멸종이 되는구나.
속으로는 크게 놀라고 있었다. 자신보다 약한 세준. 농사 하나 믿고 까분다고 생각했는데···
세준이놈, 대단하잖아.
"나도 분발해야겠어!"
오필리아가 농사를 더 열심히 지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위대한 업적 달성 보상으로 녹색탑 탑농부 오필리아 이올그가 재배한 농작물은 멸망의 힘을 아주아주 미세한 양 흡수해 영양분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좋아. 이 보상을 이용해서 멸망을 없애주겠어!"
탑 밖에 붉은 안개가 많다고 했으니까, 가져와서 농작물에게 영양분으로 주면···
"역시 난 천재야!"
스스로에게 극찬을 아끼지 않는 오필리아.
그러나 요즘 모든 위대한 용들이 탑코인을 벌기 위해 붉은 안개 찾기에 혈안이 된 건 몰랐다.
"그럼 분발하기 전에 일단 탑 1층에 가서 배 좀 채울까나! 탑 1층으로···."
오필리아가 탑 1층으로 이동하려 할 때
우웅.
수정구가 진동했다.
***
"음. 뭐지?"
수정구의 진동에 잠에서 깬 녹색탑의 관리자 브라키오가 손가락을 까딱하자, 수정구가 브라키오의 손으로 날아왔다.
"오필리아?"
"에헤헤. 할머니 일어나셨어요?"
수정구를 잡고 있던 오필리아와 함께.
"오필리아, 수정구로 장난치면···응?"
엄한 표정으로 오필리아에게 잔소리를 하려던 브라키오. 그녀의 눈에 수정구에 나타난 알림이 들어왔다.
[검은탑 탑농부 박세준이 녹색탑이 수호하는 차원에서 첫 번째 재앙 로커스트를 멸종시키는 위대한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
..
.
[녹색 거탑 성장 조건 중 하나인 위대한 업적 1개 달성하기 중 위대한 업적 1개가 채워졌습니다.]
[녹색 거탑 성장 조건 중 하나를 달성했습니다.]
보상은 나뉘었지만, 탑의 시스템은 녹색탑이 위대한 업적 1개를 달성한 것으로 인정해 줬다.
"이럴 수가!"
녹색 거탑 성장 조건을 달성하다니?!
알람을 확인한 브라키오가 경악했다.
각 탑의 거탑 성장 조건들은 조금씩 내용이 다르고, 하나하나 채우기 어려운 것들뿐이다.
그 어려운 걸 세준이는 이렇게 쉽게 달성한다고?!
역시···
브라키오는 다시 한번 실감했다. 박세준은 대단한 탑농부였다.
아홉 탑의 탑농부 중 가장 뛰어날 거야.
"근데 박세준이 탑 밖의 로커스트를 어떻게 멸종시킨 거지?"
"할머니. 사실 세준이가 탑 1층에···."
오필리아가 브라키오에게 녹색탑 1층에 세준이 상점을 열었다는 걸 말해줬다.
"그래?"
호호호. 우리 세준이가 우리 녹색탑에 상점을 차렸어?
브라키오가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으며 수정구로 탑 1층을 살펴봤고
"진짜구나."
세준의 농작물을 팔고 있는 상점을 확인하고는 흐뭇하게 웃었다.
"할머니, 제가 탑 99층, 98층, 97층 보스들을 보내서 세준이 상점을 지키게 했어요."
그런 브라키오에게 오필리아가 서둘러 자신의 잘한 일을 브라키오에게 자랑했다.
"그래. 우리 손녀 잘했구나. 탑 96층 보스를 상점에 보내 또 뭐가 필요한 게 있는지 물어봐야겠어."
"할머니, 그건 제가 직접 가서 물어보면 안 돼요?"
"응? 네가? 그건···."
브라키오는 당연히 허락하지 않으려 했다. 오필리아가 탑 1층에 내려가면 세준의 상점에 대혼란이 일어난다.
"사실···저 탑 1층에 내려간 적이 있어요. 세준이 부하 중에 테오라고 있는데, 테오가 제 기운을 흡수해서 다른 곳에는 영향을 안 가게 할 수 있어요!"
브라키오가 거절하기 전에 오필리아가 빠르게 자신이 탑 1층에 내려가도 안전함을 설명했다.
"그래? 그럼 테오가 있을 때만 내려가거라."
"네! 에헤헤. 할머니, 사랑해요!"
탑 1층에 가는 걸 하락받은 오필리아가 브라키오에게 안기며 애교를 부렸다.
***
녹색탑 1층.
"망했다냥···."
테오가 전혀 팔리지 않은 견고한 칼날 대파를 보며 실의에 빠졌다.
로커스트가 멸종된 건 모두에게 좋은 소식이었지만, 대파를 팔아야 하는 테오에게는 아니었다.
네타에서 로커스트가 멸종하자, 네타족 헌터들은 당연히 대파가 필요 없었고 테오는 경매에서 처음으로 무입찰을 경험했다.
견고한 칼날 대파는 먹을 수도 없으니, 당연했다.
다행히 다른 농작물은 다 완판했지만
박 회장에게 큰소리치고 나왔는데···
"우울하다냥···."
테오는 가장 부피가 큰 견고한 칼날 대파를 완판시키지 못한 것이 너무 슬펐다.
"그럼 내일 보자냥···."
그렇게 꼬리가 축 늘어진 채 검은탑으로 퇴근한 테오.
"테 부회장, 어서 와!"
그런 테오를 거대 생선구이와 소시지를 굽고 있는 세준이 반겼다.
"냥?!"
세준의 환대에 당황하는 테오.
나 완판 못했는데···큰일이다냥!
세준이 자신의 완판을 축하해 거대 생선구이를 굽고 있다고 오해한 것.
"응?"
얘가 왜 이러지?
테오의 표정을 보며 세준도 당황했다.
평소라면 당당하다 못해 거만한 태도로 자신의 무릎에 매달려 빨리 거대 생선구이를 내놓으라고 재촉하고 있을 텐데···
'뭐 나쁜 일 있었나?'
기운 없는 테오를 보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하아. 칭찬은 안 하려고 했는데···옜다. 칭찬.
"흐흐흐. 우리 테 부회장이 열심히 견고한 칼날 대파를 녹색탑에 팔아준 덕분에 네타에서 로커스트가 멸종했대. 덕분에 위대한 업적도 얻고, 이게 다 테 부회장 덕분이야. 아주 잘했어. 역시 우리 테 부회장밖에 없다니까!"
세준이 약간 과할 정도로 테오를 칭찬했다.
그러자
"냥?"
살짝 놀라는 테오.
하지만
"푸후훗."
그런 것이었냥? 내가 또 뭔가 잘한 거냥?
금세 입 주변을 실룩거리더니
"푸후훗. 박 회장, 배고프다냥! 빨리 거대 생선구이를 내놓으라냥!"
거만한 표정을 하고는 세준의 무릎에 매달려 큰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꾸헤헤헤.꾸엥!
[헤헤헤. 소시지를 내놓는다요!]
끼히힛.낑!
[히힛. 소시지를 내놓으시죠!]
테오를 따라 큰소리를 치는 꾸엥이와 까망이.
"괜히 칭찬했네······."
세준은 자신의 입꼬리가 올라간 것도 모르고 역시 칭찬은 아껴야 했다고 투덜거렸다.
420화. 근데 왜 말 안 했어?
420화. 근데 왜 말 안 했어?
검은탑 81층.
"빨리 따라와요!"
"네!"
이오나가 노예···아니. 8번 부협회장 채드를 데리고 얼굴 없는 대도 룬의 아지트에 도착했다.
"흠. 여기서 고위 환영 마법의 흔적이 느껴지네요."
꾸엥이가 힘으로 부순 환영 마법진의 중추를 보며 이오나가 말했다.
그리고
"채드, 여기에 뭐가 설치돼 있는지 알겠어요?"
건물의 입구로 다가간 이오나가 채드에게 물었다.
"네?! 크흠. 여기는 다중 좌표를 등록한 이동 마법진이 설치돼 있습니다."
이오나의 눈치를 보며 긴장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채드. 다행히 괜히 8번 부협회장이 된 게 아니라는 듯 실력은 좋았다.
"맞아요. 지정된 장소 5곳에 순서대로 한 명씩 보내는 이동 마법진이 설치돼 있네요."
디테일한 부분은 조금 부족했지만.
"캔슬."
이오나가 입구에 걸린 이동마법을 해제시킨 후 연구실로 직행했다.
그렇게 연구실에 도착한 이오나.
"뀻!"
연구실에 있는 방대한 연구자료와 엄청난 양의 시약을 보며 크게 놀랐다.
무슨 연구자료죠?
척.
이오나가 바닥에 떨어진 연구자료 하나를 집어 빠르게 읽어봤다.
"이건?!"
연구자료는 고위 변신 마법에 대한 내용이었다.
척.
이오나는 다른 연구자료 몇 개를 더 집어 살펴봤다.
대부분이 변신 마법에 대한 내용이지만, 중간중간 마법의 패턴을 분석하고 파훼하는 내용들도 있었다.
"훌륭하네요."
연구자료를 작성한 이의 마법에 대한 이해도가 굉장히 높았다.
수준 높은 인재예요!
만약 이런 높은 수준의 마법 이해도를 가진 이가 마법 협회의 보고서를 작성한다면···
"뀻뀻뀻."
이오나가 즐거운 상상을 하며 웃었다.
하지만
"이게 뭐지?"
곧 연구 자료를 읽고 어벙한 표정을 짓고 있는 채드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뀨-뀨-이것도 몰라요?!"
"헉! 잘못했습니다!"
이오나의 분노 게이지가 올라가자, 일단 머리부터 박고 보는 채드.
"뀨-"
그런 채드를 보면서 이오나는 얼굴 없는 대도 룬을 어떻게든 자신의 밑에서 일하게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0번 부협회장으로 삼고 싶어요!
감옥 대신 마법사 협회에서 형량을 채우게 하고, 피해자에게 보상할 배상액은 마법사 협회의 부협회장 월급으로 갚게 하면 된다.
그러면······
테오 님과 함께할 시간이 늘어나요!
테오의 꼬리에 매달려 테오와 함께할 상상을 하자 다시 기분이 좋아진 이오나.
"뀻뀻뀻. 공간의 힘이여. 내게 새로운 공간을 허락하라. 아공간 창조."
새로운 아공간에 연구실을 통째로 담아 탑 75층으로 이동했다.
테오에게 줄 룬의 현상금의 액수를 정확히 알아보고, 이후 룬을 자신이 고용할 수 있도록 다른 협회장들과 협의를 하기 위해서였다.
***
세준의 아공간 창고.
"음···이번에는 뭐지?"
정신을 차린 룬이 가만히 자신의 몸 상태를 파악했다.
다른 이들이라면 이곳이 어딘지부터 파악하는 게 정상이지만
"푸른털 개코원숭이네."
룬은 자신의 몸 상태를 파악하는 게 더 중요했다. 어떤 존재로 변신했는지 알아야 다치지 않고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푸른털 개코원숭이면···힘도 세고, 민첩하고, 이빨도 강하니···전투력은 중상급.
푸른털 개코원숭이의 특성을 빠르게 떠올린 룬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챙그랑.
그런 룬의 등에서 떨어지는 금화 하나. 세준이 도망가지 못하게 매미로 변한 룬의 몸에 올려둔 금화였다.
"여기가 어디지?"
자리에서 일어난 룬이 주변을 둘러봤다.
주변에는 자신의 보물창고에 있던 보물들이 가득했고, 약간의 농작물들도 보였다.
아작.아작.
룬은 배가 고팠기에 일단 생고구마 하나를 들어 허겁지겁 먹었다.
하지만
이거 뭐지? 왜 이렇게 맛있지?
하나만 먹겠다는 생각은 어느새 배불리 먹자로 변한 지 오래였다.
"몇 개 챙겨야지."
결국 배를 채우는 것을 넘어 자신의 조끼에 고구마와 다른 농작물을 주워 담은 룬.
그제야 밖으로 나갈 곳이 있는지 살펴봤고
"아공간 창고?"
자신이 갇힌 곳이 밖과 완전히 차단된, 공간의 주인이 열어주지 않으면 나갈 수 없는 아공간이라는 걸 깨달았다.
"아공간 창고 정도야 장비 몇 개만 있으면···."
룬이 자신의 조끼에서 큐브 모양의 마법 장비를 꺼냈다.
룬은 마법을 사용할 수 없었다. 몸이 변할 때마다 마력을 다르게 움직여야 하는데, 적응할 만하면 다른 몸으로 변하기 때문.
그래서 몸이 변해도 쓸 수 있는 자신만의 마법 장비들을 만들었다.
달칵.
룬이 장비의 가운데 있는 동전 모양의 버튼을 누르자
우웅.
장비가 주변을 향해 녹색빛을 방출하며 아공간 창고를 스캔하기 시작했다. 마법의 패턴을 찾기 위해서였다.
공간 마법에는 그 근원이 되는 마법 패턴들이 존재했고, 그 패턴의 일부만 파훼해도 몸 하나 들락날락할 정도의 틈은 충분히 만들 수 있다.
이 모든 걸 독학으로 익힌 룬.
룬은 이오나가 인정할 정도로 마법 이해력이 뛰어난 천재였다. 그걸 도둑질을 위해 쓰는 게 문제지만.
우웅.
룬의 마법 장비가 아공간 마법의 패턴을 파악하길 1시간.
"뭐지?"
룬이 당황했다. 10분이면 패턴을 찾아내고 파훼를 해야 할 마법 장비가 여전히 패턴을 탐색하고 있었다.
마법 패턴이 없다고? 그럴 리가···
룬은 난생처음 거대한 벽을 느꼈다.
당연했다. 세준의 아공간 창고는 카이저, 켈리온, 램터, 티어가 힘을 합쳐 완전 새로 만들었으니까.
숨 쉬듯 마법을 쓰는 위대한 용들. 그들에게는 마법사들이 쓰는 패턴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았다.
그때그때 의지로 마법을 구현하기 때문.
그렇게 아무런 진전 없이 10시간이 지났을 때
철컹.
아공간 창고의 문이 열렸다.
지금이 기회야! 무력으로 상대를 제압하고 도망친다!
룬이 서둘러 문을 여는 존재를 제압하려 달려 나갔다.
그리고
"어?! 원숭이?"
아침으로 먹을 에그푸릇을 꺼내기 위해 아공간 창고 문을 연 세준이 그런 룬을 발견했다.
다행이군.
상대를 해치고 싶지 않았던 룬은 간단히 기절시킬 수 있는 세준이 보이자 안심했다.
하지만
"하악!"
세준의 무릎에 매달려 하악질을 하는 테오와
꾸엥?
[덤비는 거다요?]
세준의 앞에 서서 두 앞발을 높이 들고 몸집을 크게 하는 꾸엥이를 보자 얼굴이 굳어졌다.
머릿속에 블루피닉스로 변신한 자신의 꼬리 깃털을 뽑고 멱살을 잡았던 테오와 꾸엥이가 떠올랐고
털석.
룬이 원래 그러려고 했던 것처럼 꾸엥이 앞에 자연스럽게 무릎 꿇었다.
낑?!낑!
[야! 덤비는 거냐?! 위대한 까망이 님이 혼내주마!]
물론 까망이도 세준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룬을 향해 짖었지만, 존재감이 약했다.
잠시 후
"푸후훗. 박 회장의 정성이 들어간 참치 츄르 맛있다냥!"
꾸헤헤헤.꾸엥!
[헤헤헤. 맛있다요!]
끼히힛.낑!
[히힛. 맛있어!]
세준이 만든 아침을 맛있게 먹는 테오, 꾸엥이, 까망이.
그리고 오늘은 테이블에 한 명이 더 앉아 있었다.
"먹을 만해?"
"네? 네! 엄청 맛있습니다!"
세준의 물음에 케첩을 뿌린 에그 스크럼블과 감자수프를 허겁지겁 먹던 룬이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음식 맛은 말할 것도 없고, 이렇게 행복하고 편한 분위기에서 누군가와 식사를 하는 게 얼마 만인지···
모두들 모습이 변하는 자신을 괴물을 보는 것처럼 꺼려했기에 룬은 같이 밥 먹을 친구 하나 없었다.
너무 행복하다.
"많이 있으니까 많이 먹어."
"네!"
"아. 참고로 많이 먹으려면 빨리 먹어야 해."
세준이 말하면서 꾸엥이를 바라봤다. 꾸엥이 앞에 음식들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었다.
"아. 네!"
세준의 말을 이해한 룬이 서둘러 음식을 먹었고 다행히 음식을 한 번 더 가져다 먹을 수 있었다.
그렇게 아침 식사가 끝나자
[푸른 개코원숭이족 1명을 배불리 먹였습니다.]
[의 효과로 모든 스탯이 0.2 상승합니다.]
세준의 앞에 나타나는 메시지.
'다 먹었구나.'
세준은 룬이 배불리 먹은 것을 확인하고
"룬, 변신하는 능력이 제어가 안 된다고 했지?"
룬에게 물었다. 아침을 먹기 전 룬의 사정을 간략하게 들은 세준이었다.
"네···"
세준의 물음에 룬이 침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걱정 마. 이제 고민 끝이니까. 내가 엄청난 전문가를 알고 있거든."
"푸후훗. 그렇다냥! 박 회장만 믿으면 된다냥! 룬은 이제 걱정 끝이다냥!"
꾸엥!
[아빠가 끝이라면 끝인 거다요!]
세준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세준의 무릎과 옆구리에 매달리는 테오와 꾸엥이.
낑···
[그···]
끼로롱.
까망이는 식곤증을 이기지 못하고 잠들었다. 아. 편하다.
"근데 테 부회장, 너 오늘 출근 안 해?"
"···안 갈 거다냥! 오늘은 쉴 거다냥!"
테오가 세준의 무릎에 이마를 비비며 출근을 거부했다.
"그래."
어제 무입찰로 자존심이 상한 테오의 마음을 알기에 세준은 테오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푸후훗."
그렇게 테오를 충분히 쓰다듬어 준 후
"따라 와."
세준이 룬을 데리고 분수대에서 술판을 벌리고 있는 용들을 찾아갔다.
하지만
-세준아, 그건 어렵겠구나.
룬의 증상은 용들도 치료할 수 없었다.
"네? 왜요?!"
위대한 용들이 못 하는 게 있어요?!
세준이 실망한 눈빛으로 용들을 바라보자
많아! 농사도 못 하고, 요리도 못하고! 그러니까 우리가 너한테 술 사는 거잖아!
용들은 그렇게 대답하고 싶었지만, 위대한 용의 자존심상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었다.
-크흠. 세준아, 이건 엄청 격이 높은 존재로 변신하려다 생긴 부작용이다.
-쉽게 말하면 방울토마토가 수박으로 변하려 한 것과 마찬가지지.
-그래. 방울토마토가 수박으로 변하려면 어떻게 해야겠어? 최대한 밀도를 줄여서 부피를 키워야겠지?
-그러면 방울토마토는 자신의 성질을 잃어버릴 거야. 그거랑 비슷해.
그래서 세준에게 자신들이 치료할 수 없는 이유를 자세히 설명했다.
한마디로 격이 높은 존재로 변신하려다 룬의 영혼이 자신의 본모습을 잃어버렸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아. 그래서 치료가 왜 안 되는데요?"
세준은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쟤 영혼이 자기 육체를 기억하지 못하면 우리도 본래의 몸을 찾아줄 수 없어.
-그래. 여기서 우리가 억지로 본모습을 찾겠다고 마법을 사용하면 더 부작용만 날 거야.
-우선 영혼이 본모습을 기억해 내는 게 먼저야.
"아. 그래서···."
용들이 한 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나서야 세준은 이해할 수 있었다.
"미안. 괜히 기대하게 했네."
세준이 분수대를 내려오며 룬에게 사과했다.
그러나
"아······ 뭐라고 하셨죠?"
룬은 제대로 대답할 정신이 아니었다.
비록 본체가 아니라고 하지만, 무려 위대한 용의 수장을 넷이나 마주했으니, 정신이 멀쩡한 게 이상했다.
솔직히 좀 전에 용들이 뭐라고 했는지 하나도 기억이 안 났다.
그렇게 다시 지상으로 내려온 세준과 일행들.
"이러면 최후의 수단이다. 테 부회장, 끌리는 걸 찾아봐!"
세준이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테오의 두 앞발을 잡고 하나를 룬의 몸에 대며 외쳤다.
"냥? 냥! 박 회장, 끌림이 있다냥!"
"오! 진짜?! 어디야?"
역시 테 부회장!
"여기다냥!"
테오가 당당히 자신이 메고 있는 봇짐을 가리켰다.
"응? 테 부회장 봇짐?"
"그렇다냥!"
"언제부터 끌렸는데?"
"룬을 만났을 때부터 끌렸다냥!"
근데 왜 말 안 했어?
세준이 테오를 보며 황당해할 때
"푸후훗. 나 테 부회장이 박 회장만 믿으면 다 된다고 했지 않냥?!"
테오가 큰소리를 치며 룬에게 '우리 박 회장 대단하지?'라는 눈빛을 보내며 우쭐해하고 있었다.
뭐지?
421화. 용서 할 수 없어!
421화. 용서 할 수 없어!
"빨리 말해야 될 거 아냐?! 앙?!"
"바케장, 자모했땨냥!"
방법이 있는 데도 늦게 말한 대가로 테오는 세준에게 볼살을 잡혀 늘리는 찹쌀떡 형벌을 받아야 했다.
덕분에 응징과 힐링을 동시에 한 세준.
"테 부회장, 그래서 끌리는 게 뭔데?"
테오의 앞발이 끌린 게 뭔지 물었고
"이거다냥!"
테오는 다시 자신의 봇짐을 가리켰다.
"그래. 봇짐에 든 건 알지. 그래서 끌림이 느껴지는 게 뭐냐고?"
"냥? 봇짐 안에 안 들었다냥! 이 봇짐에 끌린 거다냥!"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세준이 의아해할 때
"이거 잡아보라냥!"
"네?"
테오가 룬에게 자신의 봇짐을 내밀었고, 룬은 엉겁결에 테오의 봇짐에 손을 올렸다.
···!
봇짐에 손을 올리는 순간 룬은 손끝을 타고 흘러들어오는 약간의 짜릿한 청량감과 함께 머리가 맑고 개운해지는 걸 느꼈다.
동시에 머릿속에 뭔가가 떠올랐다.
내가 누군지 알 것 같아!
명확하지 않아 말로 설명할 수 없지만, 모든 것이 뿌옇게 느껴졌지만, 룬은 자신의 본모습의 특징 중 하나를 알 수 있었다.
난 어두운 갈색 털을 가지고 있었어!
스르륵.
"어?!"
세준은 푸른털 개코원숭이로 변한 룬의 털이 흑설탕 색으로 변하는 걸 발견했다.
뭐지?
테오의 봇짐 때문인 건 알겠는데···좋은 건가?
세준이 룬을 지켜볼 때
"정말 고맙습니다! 덕분에 제 원래 털색이 갈색이라는 걸 알았어요!"
룬이 환하게 웃으며 세준과 테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자신의 털색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기쁜 모양이었다.
하지만
"냥···."
그런 룬을 보며 테오는 크게 실망했다.
당사자도 기뻐하는데, 왜?
"도장을 찍을 수 없다냥···."
룬이 본모습으로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
우리 집념의 테 부회장은 아직도 룬의 손도장을 받아 노예로 만들겠다는 생각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둘에게 감사 인사를 한 룬이 봇짐에서 손을 떼자
스르륵.
룬의 털은 순식간에 본래 색인 푸른색으로 변했다.
어?!
룬은 자신의 털 색이 갈색이라는 걸 머리로는 알겠는데, 몸에는 없는 이상한 경험을 했다.
걷는 방법은 아는데, 다리가 없는 것과 비슷했다.
아···
아득한 상실감에 실망하는 룬.
그렇게 테오와 룬이 각기 다른 이유로 실망하고 있을 때
뭐가 룬을 변하게 만든 거지?
세준은 테오의 봇짐인 '아홉 탑을 유랑하는 대상인의 봇짐'의 설명을 자세히 살펴봤다.
다른 탑으로 이동하는 능력은 상관이 없을 거고···
잠시 생각하던 세준.
"그럼 재료인가?"
테오의 봇짐을 만들기 위해 들어간 5가지 재료들을 살펴봤다.
위대한 검은용의 비늘, 세계수의 가지, 붉은 뼈, 재앙의 지팡이, 피닉스의 꼬리 깃털.
이 중에 방금 룬의 색을 변하게 한 재료가 있을지도 몰랐다.
위대한 검은용의 비늘은 아닐 거고···
그랬다면 카이저가 거만한 표정으로 냉큼 줬을 거다.
붉은 뼈, 재앙의 지팡이, 피닉스의 꼬리 깃털도 룬의 모습을 찾는 것과는 큰 연관이 없을 텐데···
"그럼 세계수의 가지인가?"
"네?! 세계수의 가지요?! 혹시 이 봇짐 세계수의 가지로 만들었나요?! 세계수가 어디 있는 줄 아시나요?"
세준의 혼잣말에 흥분한 룬이 질문 세례를 퍼부었다.
룬이 이곳에 잡혀 오기 전, 본모습으로 돌아가기 위해 개발한 물약 레시피의 핵심 재료가 바로 세계수의 가지였다.
세계수의 가지가 가진 엄청난 복원력.
룬은 그게 자신의 모습을 찾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조금 전에 테오의 봇짐을 만졌을 때 털색이 변한 것도 세계수의 가지 덕분이었다.
"세계수? 당연히 알지. 저기 있잖아."
세준이 세계수인 포도리를 가리켰다.
"네? 저건 그냥 포도나무인데요?"
룬이 세준이 가리킨 포도리를 보며 어리둥절해했다.
"그래. 포도나무이면서 세계수야."
"···네?!"
세준의 말에 경악하는 룬.
자신이 본 10권짜리 세계수 백과사전에서는 분명 세계수를 키우는 게 엄청 힘들다고 했다.
세계수는 예민해 땅, 물, 공기, 햇빛까지 신경 써야 하는 게 너무 많고 성격도 까다롭기 때문.
그래서 열매를 얻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다고 했는데···
하지만 눈앞의 포도나무는···탐스러운 포도가 주렁주렁 많이도 열려 있었다.
그냥 잘 자라는데?
전혀 까다로워 보이지 않았다.
원래 세계수들의 성격은 책에 나온 것보다 더 까다롭다.
포도리도 세준에게 까다롭게 굴고 싶었지만, 불꽃이가 쌍심지를 켜고 지켜보고 있으니 짜증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불꽃이의 관리를 받으며 자란 불싹이는 불평이라고는 전혀 모르는 세계수로 자랐다.
물론 소시지도 곧 그렇게 자랄 예정.
그렇게 룬이 자신이 책으로 배운 세계수와 현실의 세계수 사이의 괴리감에 혼란스러워할 때
"나 가지 몇 개만 가져갈게."
[네! 그럼요!]
세준이 포도리에게 다가가 가지 몇 개를 잘랐다.
그리고
세계수가 자기 가지를 저렇게 쉽게 준다고?!
그걸 본 룬이 다시 경악했다.
세계수 백과사전에서 세계수의 가지를 얻기 위한 파트만 거의 3권 분량에 달했다.
책에서 분명 세계수의 가지를 얻기 위해서는 10년 정도 세계수의 비위를 맞춰야 친해질 수 있고
이후 20년 정도 정성을 들여야 가지 한 개를 얻을 기회가 생긴다고 했는데···
하지만 세준은 너무도 쉽게 세계수의 가지를 잘랐다. 그것도 5개나.
둘 중 하나다.
책이 잘못됐거나, 아니면 자신의 앞에 있는 세준이 세계수와 엄청 친하거나.
물론 책이 잘못될 리는 없었다. 세계수 백과사전은 위키스라는 엄청난 현자가 썼으니까.
그럼 남은 결론은 하나.
세준 님은 수백 년간 세계수와 친분을 다진 거야.
룬이 세준을 존경스럽게 바라볼 때
"포도리, 고마워."
[네! 안녕히 가세요!]
그사이 포도리의 가지 5개를 자른 세준은 포도리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돌아왔다.
그러나 세준을 존경스러운 눈으로보던 룬의 눈빛이 세계수의 이름을 듣고는 짜게 식었다.
지금 세계수 이름을 포도나무니까 '포도리'라고 지어준 거야?!
세준의 작명 실력 때문.
룬은 이때 다음 피해자가 자신이 될 거라는 건 상상도 못 했다.
"자. 잡아봐."
세준이 룬에게 포도리의 가지를 건네자
"네."
룬이 조심스럽게 가지를 잡았다.
그러자
···!!!
이번에는 손끝이 얼얼할 정도로 짜릿한 청량감이 세계수의 가지에서 흘러들어왔다.
봇짐의 재료가 되면서 성질을 많이 잃어버린 세계수 가지와 방금 자른 세계수 가지의 힘은 천지 차이였다.
룬의 머릿속에 명확한 자신의 본모습이 그려졌고
꿈틀.
룬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오른 형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점점 작아지는 룬의 몸. 룬은 손바닥만 한 크기의 갈색 햄스터로 변했다.
룬은 원래 이오나와 같은 종족인 햄스터 족이었던 것.
"어떻게······?"
수천 번 변신해도 본모습을 찾을 수 없었는데···
룬이 오른손으로는 세계수의 가지를 꼭 쥐고, 왼손으로는 자신의 몸을 만져보며 감격할 때
"푸후훗. 역시 박 회장은 위대하다냥!"
여기 감격하는 존재가 하나 더 있었다.
박 회장이 준 기회를 놓칠 수 없다냥!
테오가 서둘러 계약서를 꺼내
"세준 님, 고맙습니다! 덕분에 제 모습을 찾았어요! 이 은혜 잊지 않을게요! 앞으로 세준 님을 평생 모시겠습니다!"
"푸후훗. 그럼 도장 찍으라냥!"
꾹.
세준에게 인사를 하는 룬의 손도장을 받아냈다.
해냈다냥!
보람찬 눈빛으로 계약서를 바라보는 테오.
[노예 1명을 거느렸습니다.]
[의 효과로 모든 스탯이 0.01 상승합니다.]
덕분에 세준의 스탯도 올랐다.
잠시 후
"푸후훗. 룬은 뭘 잘할 수 있냥?! 어서 말하라냥!"
세준의 앞에 선 룬에게 테오가 물었다.
"저는 훔치기, 탈출, 침입을 잘합니다!"
테오의 물음에 룬이 두 손으로 세계수의 가지를 꼭 쥔 채 입사 면접을 치르는 지원자처럼 열심히 대답했다.
룬은 여기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 세계수 가지를 계속 가지고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세준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지만, 혼자서 각박한 세상을 살아온 룬에게는 그게 당연했다.
대도다운 룬의 대답.
하지만
······
룬의 대답에 아무도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큰일이야!
"저 변신 마법에 대해 잘 알고 100가지 필체로 글을 쓸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간단한 마법 장비 제작도 가능해요!"
마음이 급해진 룬이 서둘러 아무거나 하나 걸리라는 생각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걸 떠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 마법 장비도 만들 수 있어?"
"네! 이것들도 제가 만들었어요!"
세준이 마법 장비에 흥미를 보이자, 룬이 서둘러 조끼에서 자신이 만든 장비들을 꺼내 보여줬다.
그러나
"이런 거밖에 없어?"
룬이 만든 마법 장비 중에 세준의 관심을 끄는 게 없었다. 대부분이 밀실 탈출용 장비였기 때문.
"막 엄청 강한 회복 마법을 사용할 수 있거나, 엄청 강한 방어 마법을 사용할 수 있거나, 주변의 엄청 강한 기운을 잘 견디는 장비는 못 만들어?"
그런 걸 만들 줄 알았으면 제가 세준 님한테 안 붙잡혔죠!
"제가 마법 실력이 부족해서···."
룬은 목까지 차오른 속마음을 삼키며 이성적인 대답을 했다.
"뭐. 괜찮아. 마법 실력이야 지금부터 키우면 되지. 이오나가 친절하게 잘 가르쳐 줄 거야."
세준은 룬을 이오나에게 보낼 생각이었다.
"네? 설마 세준 님이 말씀하시는 이오나가 마법사 협회 협회장 이오나 님?"
"응. 맞아."
저 안 괜찮을 것 같은데요···
룬이 갑자기 이오나에게 마법을 배우게 된 것에 당황할 때
"자. 이제 진짜 중요한 일이 남았어. 얘들아, 잘 들어봐."
세준이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말하라냥!"
꾸엥!
[잘 듣겠다요!]
끼히힛.낑!낑!
[히힛. 좋은 판단이다! 현명한 까망이 님이 판단해 주지···요!]
테오와 꾸엥이가 있다는 걸 깜박한 까망이가 거만하게 말하다가 둘의 눈치를 보며 서둘러 마지막에 '요'를 붙였다.
그렇게 모두의 이목이 세준에게 집중되자
"룬도 본모습을 찾았으니, 그 모습에 어울리는 이름을 지어야 하지 않겠어? 내가 이름을 몇 개 정해봤는데 어떤 게 좋은지 말해줘."
세준이 본론을 꺼냈다. 룬은 범죄자의 이름. 새로운 모습을 찾았으니, 새 이름이 필요했다.
그렇게 세준 작명소가 오픈했다.
"흑설, 흑탕, 흑햄, 흑스터 이 중에 하나 골라봐."
세준은 흑설탕 햄스터에서 영감을 받아 4개의 이름을 만들었다.
"푸후훗. 박 회장은 뭐가 마음에 드냥?"
"난 사실 흑스터가 마음에 들어."
"푸후훗. 그럼 나도 흑스터에 한 표다냥!"
세준의 대답에 테오가 서둘러 앞발을 들며 외쳤다. 당연했다. 세준은 테오가 아는 검은탑 최고의 작명가니까.
"저기···그냥 저는 룬이라는 이름도 괜찮은···."
룬이 서둘러 자신의 의견을 말했지만
꾸엥!
[그럼 꾸엥이도 흑스터에 한 표다요]
꾸엥이의 외침에 묻혔다. 당연히 꾸엥이가 아는 최고의 작명가도 세준이었다.
"좋아. 과반수 이상이니까. 흑스터 당첨! 흑스터, 앞으로 잘해보자."
세준이 흑스터에게 새끼손가락을 내밀자
"···네···."
룬에서 이름이 바뀐 흑스터가 어두운 표정으로 세준의 새끼손가락을 두 손으로 잡았다.
그러면서 눈으로는 까망이를 보며 도움을 요청했다.
뭐라고 말 좀 해주세요.
표를 사용하지 않은 걸 보면 세준의 작명 실력이 형편없다는 자신과 의견이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땅!땅!
낑!낑!
[흑스터, 용서할 수 없어! 내 이름 까망이보다 더 멋있잖아!]
까망이는 앞발로 땅을 치며 분해하고 있었다.
422화. 우리 소시지 열일하네.
422화. 우리 소시지 열일하네.
미국 텍사스.
케에엑!
현재 텍사스의 절반 이상이 살점포식자에게 점령됐다.
살점포식자들의 이동이 이상하게 변한 건 이틀 전.
멕시코 국경을 넘으려던 살점포식자들이 갑자기 방향을 바꿔 다시 텍사스의 도시들을 습격하기 시작했고
비슷한 시기에 세계 각국에 퍼져있던 거대 거머리들이 텍사스로 모여들었다.
할파스에게 재앙의 통제권을 받은 마이클 때문이었다.
마이클은 거대 거머리들을 움직여 성장촉진제 생산 주문을 넣은 사료 공장을 습격하게 해 그 중 절반을 텍사스로 보냈다.
그리고 거대 거머리들이 운반한 성장촉진제를 흡수한 살점포식자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미국 백악관.
"영상을 보시면 알겠지만, 살점포식자들의 성장이 급격히 빨라지며 수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육군참모총장이 실시간 위성 영상을 대통령에게 보여주며 보고했다. 영상에는 지상을 덮은 살점포식자들이 가득했다.
"얼마나 빨라진 거지?"
"원래는 성체로 성장하는 데 15일은 걸렸지만, 전문가들의 의견으로는 현재 속도면 3일 만에 성체로 자란다고 합니다."
"그럼 거의 5배 빨라진 건가···?"
"네. 그리고 변이 개체에 대한 추가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변이 개체?"
대통령이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자
"네. 저번 휴스턴 대피 작전 때 보고 했었던 개체입니다."
국방장관이 서둘러 태블릿으로 방울토마토 머리에 사람처럼 팔다리가 있는 몬스터를 보여줬다.
"아···기억났네. 계속 설명하게."
"네. 그럼 계속 설명하겠습니다. 이 변이 개체가 어디서 번식되는지 알아냈습니다."
"생산된다고? 자라는 게 아니라?"
지금까지 살점포식자들은 씨앗이 자라는 것. 번식이라는 말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네. 이걸 보시죠."
육군참모총장 또 다른 영상을 보여줬다.
20배속으로 빠르게 돌아가는 영상.
영상에는 다른 개체들보다 훨씬 거대한 살점포식자 하나가 있었다. 거의 30m의 크기.
시간이 지나자 방울토마토 머리가 갈라졌고 활짝 피며 거대한 꽃이 됐다.
그리고 꽃의 중앙부에 난 입에서 뭔가가 기어 나오는 게 보였다.
"변이 개체군···."
"네. 저 변이 개체들이 사냥을 해 모체에게 영양분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저런 게 많은가?"
"현재 분석으로는 살점포식자 약 100만 마리당 저런 모체 하나가 나타나는 것으로 분석됩니다."
"흠···살점포식자만으로 이미 힘든데···저런 것까지···."
보고를 받은 대통령의 얼굴이 한층 더 어두워졌다.
"그래서 작전은? 저놈들을 어떻게 처리할 거지?"
"대통령님, 핵미사일 사용 허가를 요청드립니다."
대통령의 질문에 국방장관이 입을 열었다.
그나마 고열의 열에는 피해를 입으니, 핵미사일이면 많은 수를 처치할 수 있다.
"핵미사일을?! 아무리 그래도···."
핵이라는 말에 대통령이 주저했다. 당연했다. 주저하는 게 맞았다.
핵을, 그것도 미국 본토에 쏘겠다니···
확실한 이유와 명분이 있어도 고민해야 할 문제였다.
"만약 헌터들과 군대로 살점포식자를 막게 되면 피해가 너무 큽니다. 거기다 놈들의 위치를 보면 점점 동쪽을 향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미 텍사스는 살점포식자로 인해 대부분 궤멸돼 핵미사일을 사용해도 큰 피해가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살점포식자 수가 늘어나며 피해가 커진다.
국방장관이 열심히 핵미사일을 사용해야 하는 이유와 명분을 말하며 대통령을 설득했다.
"휴우. 좋네. 허가하지. 단 텍사스에 사는 사람들의 대피가 끝나야 하네."
한참을 고민하던 대통령이 입을 열었다.
"네. 당연합니다. 100시간 안에 텍사스에 있는 모든 시민들의 대피를 완료하겠습니다!"
대통령의 허락이 떨어지자 미군은 바로 텍사스 국민들의 대피 작전을 시작했다.
핵미사일 발사까지 남은 시간 100시간.
"크크크. 여기가 한국이군."
마이클은 전용기를 타고 한국에 있는 안전지대를 파괴하기 위해 김포공항에 도착해 있었다.
화물칸에 살점포식자의 씨앗을 가득 싣고.
지구에서 유일하게 안전지대가 있는 곳. 지구를 확실하게 점령하기 위해서는 안전지대를 파괴하는 게 우선이었다.
"회장님, 그럼 화물들은 지정하신 곳으로 옮기겠습니다."
"그래."
이 일을 위해 지구에 있는 거대 거머리의 절반을 동해로 불렀다.
안전지대가 사라지는 순간 거대 거머리들이 한국으로 들어와 살점포식자 씨앗에 성장촉진제를 공급할 거다.
"크크크. 그럼 이 작은 나라는 금세 무너지겠지."
그리고 바로 대륙으로 들어가 중국을 무너트릴 거다.
그렇게 지구에서 가장 큰 힘을 가진 미국과 중국이 무너지면 이후는 아주 쉬워질 수밖에 없지.
잠시 후.
"여기군."
척.
서울의 안전지대 가장 외곽에 있는 검은탑에 도착한 마이클이 탑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사라져라."
탑에 멸망의 힘을 주입하자 검은탑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
검은탑 75층.
"좋아요. 그럼 얼굴 없는 대도 룬은 앞으로 제가 관리할게요!"
"네. 얼굴 없는 대도 룬이 지불해야 할 피해보상금은 앞으로 마법사 협회에서 지불하는 것으로 알고 있겠습니다."
"네!"
유랑 상인 협회 협회장 메이슨과 자유 용병 협회 협회장 한니발의 동의를 받아낸 이오나.
뀻뀻귯. 이제 제 일이 줄어들 거예요!
자신 대신 열심히 보고서를 써줄 룬을 상상하며 이오나가 힘찬 발걸음으로 탑 99층으로 향했다.
그렇게 탑 99층에 도착한 이오나. 탑 99층의 멤버들은 여전했다.
세준의 무릎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 테오. 세준의 엉덩이에 궁둥이를 붙이고 자는 꾸엥이와 까망이. 그리고···
뀻?! 햄스터?
이오나의 눈에 한 손에 나뭇가지를 들고, 세준이 주는 땅콩을 열심히 받아먹고 있는 갈색 햄스터 한 마리가 보였다.
"뀨-뀨-뀨-뀨-뀨-"
감히···나의 테오 박 님을!!!!
이오나가 마력을 끌어 올리며 흑스터에게 다가갔다.
***
내 이름이 흑스터라니···
세준에게 새로운 이름을 받고 자괴감에 빠진 흑스터.
오도독.오도독.
"맛있다."
그래도 이 땅콩이라는 걸 먹으니, 기분이 조금 좋아졌다.
그때
"응?"
흑스터는 갑자기 자신을 덮쳐오는 흉포한 살기에 몸을 오소소 떨었다.
"뭐지?"
무서워!
흑스터가 서둘러 땅콩을 입에 넣고, 세준의 다리 밑 땅을 파 몸을 숨겼다. 대도다운 신속한 움직임.
누구냐.
세준의 다리 밑에서 흑스터가 머리를 빼꼼 내밀고 자신에게 살기를 보낸 존재를 찾았다.
그러자
"뀨-뀨-뀨-뀨-뀨-"
흉흉한 기운을 뿜어내며 자신에게 다가오는 새하얀 햄스터가 보였다.
대파괴의 마법사 이오나?! 근데 분노의 뀨 5단계도 있었어?!
나한테 왜 그러지?
이오나를 알아본 흑스터가 두려움에 떨 때
"푸후훗. 이오나 왔냥?!"
졸고 있던 테오가 일어나 이오나를 반겼다.
"뀨-뀨-뀨-네! 근데 테오 님, 저 햄스터는 누구죠?!"
테오가 이름을 불러주는 것만으로 화가 많이 줄어든 이오나가 화난 목소리로 물었다.
"아. 얘는 흑스터야. 참고로 남자."
이오나가 화난 이유를 파악한 세준이 서둘러 오해를 풀어줬다.
자기 연애는 못 하면서 이럴 때는 또 훌륭한 눈치를 보여주는 세준.
"뀻뀻뀻. 그랬군요."
남자군요.
이오나는 세준의 말에 방긋 웃으며 테오의 꼬리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세준 님, 여기 얼굴 없는 대도 룬의 현상금이요."
이오나가 받아온 현상금을 세준에게 건넸다.
"흐흐흐. 고마워. 근데 현상금이 얼마야?"
세준이 환한 얼굴로 현상금이 든 주머니를 받으며 물었다.
"7500억 탑코인이요."
"진짜 많네."
"네. 정말 많이 훔쳤으니까요. 세준 님, 제가 룬을 고용하고 싶어요. 아시는지 모르지만, 얼굴 없는 대도 룬은···."
원래 룬은 피해보상금도 갚아야 하고, 감옥에서 100년은 썩어야 한다.
하지만 자신이 룬을 고용하면 피해보상금도 일해서 갚고 다른 협회에서도 넘어가 주기로 했다고 열심히 설명했다.
"그래. 그렇게 해. 그렇지 않아도 이오나에게 보내 마법을 배우게 할 생각이었거든."
"진짜요?! 제가 잘 가르칠게요!"
룬을 데리고 가면 몇 달은 자신이 직접 교육을 하며 마법 실력을 키워줄 생각이었기에 세준의 대답을 들은 이오나의 표정이 환해졌다.
"흑스터, 이오나 따라가서 많이 배워. 알았지?"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오나의 앞이라 그런지 흑스터가 바짝 긴장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흑스터요?"
룬을 고용하고 싶다고 했는데, 갑자기 흑스터라니?
이오나가 당황하자
"룬이 흑스터다냥! 박 회장이 지어준 룬의 새로운 이름이다냥!"
테오가 이오나에게 룬의 사정을 설명했다.
"뀻뀻뀻. 그랬군요! 멋진 이름이네요!"
이오나가 세준의 작명 실력을 칭찬하며
힘내렴.
세준 작명소의 피해자인 자신의 동족을 동정 어린 표정으로 바라봤다.
"그럼 흑스터는 저한테 맡겨주세요! 제가 잘 가르칠게요!"
"다녀오겠습니다!"
그렇게 세계수 가지를 꼭 쥔 흑스터가 세준에게 인사를 하고 이오나와 떠나자
"이제 일해야지."
세준은 소시지 나무로 다가갔다.
이틀 전에 소시지를 수확했는데, 벌써 소시지가 주렁주렁 열려있었다.
"우리 소시지 열일하네."
세준이 소시지의 가지를 쓰다듬어 주며 칭찬하고는 소시지를 수확하기 시작했다.
[소시지를 수확했습니다.]
···
..
.
그렇게 열심히 소시지를 수확하고 있을 때
"응?!"
세준의 눈에 주렁주렁한 소시지가 아니라, 은은한 빛을 내는 길고 굵은 거대 소시지 하나가 보였다.
대왕 소시지다!
세준이 서둘러 소시지를 수확했다. 당연히 신품종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신기 대왕 소시지 봉을 수확했습니다.]
[직업 경험치가 조금 상승합니다.]
[수확하기 Lv. 8의 숙련도가 조금 상승합니다.]
[경험치 10만을 획득했습니다.]
"어? 신기?"
이게 봉이라고?
킁킁.
냄새도 소시지 맞는데?
세준이 자신의 손에 들린 소시지의 냄새를 맡고 있을 때
[신기를 수확하는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업적 보상으로 신기의 유통 기한이 2배로 늘어납니다.]
"응?"
신기가 유통기한도 있어?
세준이 대왕소시지 봉의 옵션을 살펴봤다.
[대왕 소시지 봉]
모든 소시지를 관장하는 소시지의 신 비엔나가 보낸 신기입니다.
소시지로 만들어 소시지 냄새가 심하게 나지만, 단단하고 유연합니다.
비엔나는 전투 중에 배가 고프면 대왕 소시지 봉을 조금씩 뜯어먹어 배를 채웠습니다.
섭취 시 모든 스탯이 20 상승합니다.
유통기한 : 60일
사용 제한 : 힘 1000 이상, 민첩 1000 이상
제작자 : 소시지의 신 비엔나
등급 : S
"소시지의 신 비엔나가 보냈다고?"
이런 신도 있나?
조금 의아하기는 했지만
"고마워요. 비엔나 님."
세준은 자신에게 신기를 보내준 비엔나에게 감사하며 1평짜리 비엔나 로드를 만들었다.
그렇게 세준이 비엔나 로드를 만들고 있을 때
우웅.
"응?!"
에일린이 진동하는 수정구를 확인했다.
[신기를 추가 획득했습니다.]
[일회용 신기입니다.]
[검은 거탑 성장 조건에 필요한 시간을 200일 단축시킵니다.]
"역시 우리 세준이!"
또 뭔가 했구나!
에일린이 기뻐할 때
[검은 거탑 성장이 완료됐습니다.]
[검은 거탑의 기능이 활성화됩니다.]
[검은 거탑이 현재 관리하는 차원인 지구를 관리 영역에 포함시키기 위한 작업에 3일이 소요됩니다.]
[3일 후 지구가 검은 거탑 0층으로 임시 편입됩니다.]
지구에 검은 막이 씌워지기 시작했다.
423화. 흐흐흐. 얘들아, 우리 집에 갈 수 있대!
423화. 흐흐흐. 얘들아, 우리 집에 갈 수 있대!
검은탑 관리자 구역.
"크히히히. 3일 후면 어머님을 직접 뵐 수 있는 건가? 뭐 입고 가지?"
지구가 검은 거탑에 편입된다는 말에 에일린은 서둘러 옷장으로 달려가 김미란을 만났을 때 입을 옷을 고르기 시작했다.
검은탑일 때도 탑 99층에도 못 내려갔지만, 에일린은 흥분에 잠깐 그 사실을 망각했다.
그때
우웅.
수정구가 다시 진동했다.
"크엥? 뭐가 또 있나?"
에일린이 서둘러 수정구를 확인했다.
[검은 거탑 관리자 매뉴얼이 추가됩니다.]
"매뉴얼?"
에일린이 빠르게 매뉴얼을 읽어 나갔다.
"검은 거탑 0층은 임시로 편입됐기에 땅문서가 없다. 대신 검은 거탑 1층의 전용 입구를 통해서 관리자와 중간관리자 그리고 그들이 허락한 존재만 출입이 가능하다. 크히히히. 좋아!"
자신과 세준이 지구에 갈 수 있다는 말에 신난 에일린.
하지만
"0층에서는 검은 거탑이 만든 안전지대에서만 머무를 수 있고, 검은 거탑 0층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 체류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그 체류 비용은 능력이 강할수록 커진다?"
매뉴얼을 읽을수록 에일린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모든 스탯의 총합이 100이면 1억, 1000이면 100억, 1만이면 1000억, 2만이면 1500억, 3만이면 3000억···
누진세처럼 스탯 양이 늘어날수록 비용이 점점 증가했고
"크엥?! 나는 100경 탑코인이라고?!"
에일린이 크게 당황했다.
그것도 1시간에 지불해야 하는 비용. 위대한 용족이라는 종족 프리미엄으로 인해 할증 비용까지 붙었다.
"크힝···."
그 많은 돈을 어떻게 모아?
에일린은 매뉴얼을 읽다 우울해지자
우리 세준이나 봐야지.
수정구로 세준을 찾았다.
***
탑 99층.
퍽!퍽!
"오. 좋은데?!"
세준이 땅 움직이기 스킬로 만든 바위에 대왕 소시지 봉을 휘두르며 말했다.
가볍게 휘둘렀는데도 단단하게 만든 바위가 대왕 소시지 봉에 부서졌다.
엄청난 파괴력.
겉모습은 하찮아 보여도 역시 신기는 신기였다.
그렇게 대왕 소시지 봉의 테스트를 끝낸 세준이 잠시 봉을 내려놓자
끼히힛!낑!
[히힛. 대왕 소시지는 위대한 까망이 님이 접수한다!]
세준이 내려놓기만 기다리고 있던 까망이가 냅다 소시지를 물고 도망쳤다.
"야! 네가 먹을 거 아냐!"
세준이 서둘러 그런 까망이를 쫓았다.
세준이 예전에는 일부러 잡지 않고 놀아줬지만, 새 코어를 만들면서 나름 강해진 까망이.
우다다다.
끼히힛.낑!
[히힛. 날쌘돌이 까망이 님 나가신다!]
작은 몸집으로 농작물 사이를 요리조리 달리자 세준도 잡기 힘들어졌다.
쫓고 쫓기는 추격전.
둘이 그렇게 술래잡기를 하는 동안
"푸후훗. 내일은 10배로 벌어주겠다냥!"
테오는 봇짐에 농작물들을 담으며 내일 녹색탑의 탑코인을 싹 쓸어오겠다며 의지를 불태웠고
꾸헤헤헤.
저녁은 소시지다요!
꾸엥이는 저녁에 소지지를 먹을 상상을 하며 열심히 소시지를 수확했다.
잠시 후
"헉.헉. 치사한 놈. 일부러 농작물 사이로만 달리다니···네가 그렇게 나온다면 나도 방법이 있지. 꾸엥아, 까망이 좀 잡아줘."
달리다 지친 세준이 쫓는 걸 멈추고 꾸엥이에게 부탁했고
꾸엥!
[알았다요!]
꾸엥이가 염력으로 까망이를 공중에 띄웠다.
낑!낑!
[쟤 따돌렸어! 이제 숨어서 먹어야지!]
그것도 모르고 신나게 자신의 비밀창고로 달리는 까망이.
하지만
둥둥.
낑?!
[뭐지?!]
열심히 달리던 까망이는 갑자기 앞으로 달려지지 않자 당황했다.
허우적.허우적.
열심히 발을 움직였지만, 발이 바닥에 닿지 않았다.
그리고
덥석.
"흐흐흐. 잡았다. 이놈."
결국 공중에 뜬 채 세준에게 목덜미를 잡히고 대왕 소시지 봉을 뱉어내야 했다.
낑···
[내 대왕 소시지···]
짭.짭.
아쉬운 표정으로 입 주변을 핥던 까망이.
끼히힛.낑.
[히힛. 맛있다.]
혀에서 나는 소시지 맛에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어? 이빨 자국 났네?"
까망이에게 대왕 소시지 봉을 뺏은 세준이 봉에 난 이빨 자국을 보며 말했다.
내가 물었을 때는 티도 안 나더니, 역시 용이빨은 달랐다.
그렇게 대왕 소시지 봉을 회수한 세준은 꾸엥이와 남은 소시지를 수확했다.
그리고 소시지 수확이 끝나자
"푸후훗. 박 회장, 내가 왔다냥!"
봇짐에 팔 물건을 다 챙긴 테오가 등에 까망이를 업고 위풍당당하게 걸어왔다.
끼로롱.
아마 바닥에 널브러져 자고 있는 걸 주워 온 모양이었다.
세준이 까망이를 들어 올리자
낑···낑···
[졸려···잘래···]
"그래. 알았어."
세준이 칭얼거리는 까망이를 슬링백에 넣어주자
끼로롱.
금세 곤히 잠들었고
"푸후훗. 행복하다냥!"
그사이 테오는 세준의 무릎을 꽉 안고 매달렸다.
그때
[탑의 관리자가 그대가 집에 갈 수 있는 방법이 생겼다고 말합니다.]
에일린이 세준에게 말을 걸어왔다.
처음에는 세준과 지구에 못 가는 것에 상심했던 에일린.
하지만 세준을 지켜보며 자신이 이기적이라는 걸 깨달았다.
세준이도 집에 가고 싶겠지?
항상 밝게 지내지만, 가끔 멍하니 생각에 잠겨 쓸쓸한 표정을 짓곤 했다.
내가 너무 무심했어···
그래서 서둘러 세준에게 집에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전달했다.
"응?! 집?!"
에일린의 말에 당황하는 세준.
"나 강해져서 가기 어렵다던데?"
[탑의 관리자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탑의 관리자가 그대 덕분에 검은탑이 검은 거탑으로 성장하며 안전하게 갈 수 있는 방법이 생겼다고 말합니다.]
"검은 거탑?"
[탑의 관리자가 그대의 활약 덕분에 검은탑이 성장한 거라고 말합니다.]
[탑의 관리자가 그래서···]
에일린이 세준에게 지구가 검은 거탑의 0층으로 임시 편입됐다는 것과 자신이 읽은 검은 거탑 매뉴얼의 내용을 설명했다.
"오! 그럼 3일 후에는 진짜 집에 갈 수 있는 거네?!"
[탑의 관리자가 탑 1층 땅문서만 찾으면 집에 갈 수 있다고 말합니다.]
"흐흐흐. 얘들아, 우리 집에 갈 수 있대!"
에일린의 설명을 들은 세준이 테오와 꾸엥이에게 소리쳤다.
그러자
"냥?! 여기가 우리 집 아니냥?"
꾸엥?
[우리 집 또 있다요?]
어리둥절해하는 둘.
"아. 우리 집 말고 부모님 집."
"냥?! 드디어 박 회장을 탄생시킨 박 회장의 박 회장을 보는 거냥?!"
세준의 말에 테오가 흥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응?"
박 회장의 박 회장? 아. 우리 아빠 말하는 건가?
세준이 테오의 말을 해석할 때
꾸엥!꾸엥!
[드디어 꾸엥이 할머니 만난다요! 할머니가 맛있는 거 많이 해줄 거다요!]
꾸엥이는 만세를 부르며 사방을 뛰어다녔다.
"얘들아, 진정해. 일단 탑 1층 땅문서를 구해야 하니까."
세준이 그런 둘을 진정시켰다
그동안 계속 찾아왔지만, 소재를 찾을 수 없었던 탑 1층 땅문서.
그 동안은 찾아도 탑을 나갈 수 없기에 찾는데 간절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진짜 간절해졌다.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3일 안에 탑 1층 땅문서를 찾는다!
"땅문서를 구하러 가자!"
세준이 주먹을 불끈 쥐며 외쳤고
"좋다냥! 출발이다냥!"
꾸엥!
[간다요!]
테오와 꾸엥이가 세준의 몸에 달라붙으며 앞발을 번쩍 들었다.
그렇게 셋···아니. 까망이와 뱃뱃이까지 다섯이 농장을 나서 웨이포인트로 향했고
[검은탑 75층에 도착했습니다.]
···
..
.
[의 효과로 모든 스탯이 24 증가합니다.]
탑 75층 도착한 세준과 일행들.
잠시 후
"탑 1층 땅문서를 내놓으라냥!"
세준의 다리에 매달린 테오가 유랑 상인 협회장 메이슨에게 다짜고짜 검은탑 1층 땅문서를 내놓으라며 앞발을 내밀었다.
"네?!"
메이슨은 '맡겨둔 것도 아니고, 갑자기 탑 1층 땅문서를 어디서 구해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조용히 메이슨의 대답을 기다리는 세준과 눈을 마주치고는 말을 삼켰다. 잘못 말하면 위대한 검은용의 화를 살지도 몰랐다.
"죄···죄송합니다. 열심히 열심히 찾아보겠습니다. 그리고 황금탑 35층은 아니지만, 황금탑 땅문서 2개를 구했습니다."
메이슨이 서둘러 2개의 땅문서를 꺼냈다.
[황금탑 22층 농장 땅문서]
[황금탑 53층 농장 땅문서]
"고마워요."
세준은 땅문서를 받고
철컹.
"이건 땅문서 값이요."
"괜찮은데···감사합니다."
아공간 창고를 열어 금화를 두 주먹 집어 메이슨에게 건넸다. 계속 공짜로 받기에는 미안했기 때문.
"흠···."
세준과 일행들이 떠나고 메이슨은 외알 돋보기로 금화를 감정했다
위대한 검은용이 준 금화니, 뭔가 있을 거라 생각한 것.
그리고
"이건?!!!"
금화를 감정하던 메이슨이 금화에 작게 각인된 문양을 보며 경악했다. 검은 탑에 1만 개밖에 없는 희귀 금화였다.
역시 위대한 검은 용은 통이 크시군!
메이슨이 개당 50억 탑코인이 넘는 금화 23개를 흐뭇한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진열했다.
"푸후훗. 박 회장, 다음은 어디로 가냥?"
"일단 탑 79층 갔다가 탑 55층에 가보려고."
테오의 물음에 세준이 대답했다. 코브 왕국에 들렸다 레드리본 왕국에 들르는 게 세준의 계획이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열심히 찾고 있지만, 갈색탑 땅문서만 찾았습니다."
코브 왕국의 왕비 프라나가 죄송한 얼굴로 갈색탑 땅문서 3개를 건넸다. 갈색탑 3층, 32층, 34층 땅문서였다.
"고마워. 이건 땅문서 값."
세준이 이번에도 아공간 창고에서 금을 꺼내 줬다. 이번에 꺼낸 건 손바닥만 한 독수리 모양의 황금 동상.
그냥 이게 끌렸다.
그렇게 세준이 떠나고 세준이 준 황금 동상이 심상치 않다고 생각한 프라나가 감정사를 불러 감정을 맡겼다.
"여왕이시여! 이건 얼굴 없는 대도 룬이 훔쳐갔던 코브왕국을 세우신 초대 여왕 메르마 님의 황금 동상입니다! 제가 이걸 감정하다니, 가문의 영광입니다!"
감격에 찬 목소리로 외치는 감정사. 가치는 거의 3000억 탑코인에 이르렀다.
그렇게 돈을 뿌리고 다니며 탑 55층에 도착한 세준.
뺙!
[삼촌, 어서 오세요!]
쀼쀼!
[세준 님, 어서 오세요!]
세준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흑토끼와 쀼쀼가 화이트 캐슬 정문에서 세준을 맞이했다.
"응."
저녁 시간이었기에 세준은 흑토끼 부부와 같이 식사를 하며 얘기를 나눴다.
"그래서 집에 갈 수 있게 돼서 탑 1층 땅문서를 구하고 있어. 흑토끼, 탑 1층 땅문서 소재에 대해 들은 거 없어?"
뺙!뺙···
[없어요! 저희도 열심히 찾고는 있는데···]
흑토끼가 말하며 부하에게 눈짓을 하자, 부하들이 세준의 앞으로 두루마리 문서 7개를 가져왔다.
푸른탑 53층, 하얀탑 23층, 68층, 녹색탑 25층, 붉은탑 22층, 78층, 94층 땅문서였다.
"고마워."
세준이 받은 땅문서를 챙기며 감사 인사를 하자
뺙?!
[삼촌, 집에 갈 때 저도 데려가 줘요! 저도 삼촌 부모님께 인사드리고 싶어요! 데려가 줄 거죠?]
흑토끼가 자신도 지구에 가겠다며 허락을 구했다.
"응. 당연하······."
흑토끼의 기특한 말에 세준이 기쁘게 대답하다 흑토끼가 쀼쀼와 눈이 마주치자 흠칫 놀라는 걸 발견했다.
우리 흑토끼 아직도 힘들었구나. 내가 꼭 데려가줄게!
세준이 흑토끼를 꼭 지구에 데려가야겠다고 결심할 때
달달달.
허공에 검은 구멍이 생기며 황금탑에 갔던 황금 수레가 완판을 하고 이틀 만에 돌아왔다.
424화. 흐흐흐. 우리 리액션 장인 까망이가 나설 때인가?
424화. 흐흐흐. 우리 리액션 장인 까망이가 나설 때인가?
달달달.
검은 구멍을 천천히 빠져나온 검은탑과 황금탑을 유랑하는 자동 수레가 천천히 세준의 앞으로 다가왔다.
"냥?"
정확히는 세준의 무릎에서 앞발을 열심히 핥으며 조금 전 먹은 생선의 비린내를 없애고 있는 테오의 앞.
"응? 벌써 다 팔았나?"
세준이 수레에 손을 가져가자
파지직.
"앗! 따가워!"
수레가 전격을 만들며 세준의 손길을 거부했다. 주인의 손길만 허락하는 충성심 높은 황금 수레.
하지만
"하악! 박 회장을 공격했다냥! 나쁜 수레다냥!"
테오가 그런 수레에게 오히려 화를 내자
달달달.
테오의 의지를 읽은 황금 수레가 바로 방향을 세준 쪽으로 틀었다.
그리고
덜컹.
입구를 열어 세준에게 수레 내부를 보여줬다.
안에는 원래 넣었던 물건 대신 불에 탄 나무, 황금색 줄이 번개처럼 새겨진 돌, 노란색 버섯이 가득했다.
너무 쓸모없는 것만 사 온 거 아닌가?
세준이 실망할 때
[정산을 시작합니다.]
수레의 문짝에 글자가 새겨지기 시작했다.
[모든 물건을 팔아 1100만 탑코인을 벌었습니다.]
[매입을 지시하신 '황금탑 35층 땅문서'를 매입하지 못했습니다.]
[벼락 맞은 나무 75개를 750탑코인에 매입했습니다.]
[벼락석 1500개를 300탑코인에 매입했습니다.]
[찌릿 버섯 3000개를 1500탑코인에 매입했습니다.]
[바나 마을의 발주서를 0탑코인에 매입했습니다.]
매입 가격을 보니, 진짜 쓸모 없는 물건이 맞는 것 같았다.
"근데 발주서는 뭐지?"
뜬금없는 내용에 의아해하던 세준.
저건가?
물건들 사이에 낀 흰 봉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척.
봉투를 집어 안의 종이를 꺼내자
[바나 마을의 발주서]
발주자 : 바나 마을 촌장 바나
발주 물품 : 마력의 방울토마토 2만 개
발주 단가 : 5탑코인
내용이 적혀 있었다.
"황금탑은 마력의 방울토마토 인기가 좋은가 보네."
2탑코인에 판매했었는데, 알아서 가격을 2.5배 올려줬다.
그렇게 세준이 발주서를 읽고 있을 때
쀼쀼?
[세준 님, 저건 벼락 맞은 나무랑 번개석인 가요?]
뒤에서 구경하던 쀼쀼가 약간 들뜬 목소리로 물었다.
"응. 어떻게 알았어?"
쀼쀼!쀼쀼!
[저거 엄청 비싼 거예요! 뇌속성을 다루는 마법사들이 환장하는 물건이에요!]
저도요!
쀼쀼가 속마음은 꾹 누르며 대답했다.
"흐흐흐. 그래?"
쀼쀼의 말을 들은 세준이 서둘러 벼락 맞은 나무와 번개석의 옵션을 확인했다.
[벼락 맞은 나무]
벼락을 맞으며 뇌속성 기운의 흐름이 원활해진 나무입니다.
이 나무로 뇌속성 장비를 만들 경우 마력 흐름이 원활해 마력을 10% 덜 소모합니다.
등급 : A+
[번개석]
번개를 여러 번 맞으며 뇌속성 기운을 품은 돌입니다.
번개석을 사용해 무기를 만들면 뇌속성 무기를, 지팡이를 만들면 뇌속성 공격을 1.3배 증폭하는 지팡이를 만들 수 있습니다.
등급 : S-
뇌속성 마법사들이 환장하는 물건이라고 하더니···
이 두 개로 뇌속성 마법 전용 지팡이를 만들면 마력 소모 감소에 공격력 증가까지 되는 꽤 좋은 장비가 만들어질 것 같았다.
"쀼쀼, 그래서 이거 얼마나 해?"
세준이 기대 가득한 표정으로 쀼쀼를 보며 물었다.
쀼쀼!쀼쀼!
[최소 벼락 맞은 나무는 100억 탑코인, 번개석은 3억 탑코인 정도 할 걸요! 풀리는 물량이 없어서 더 비싸게 팔아도 팔릴 거예요!]
"진짜?!"
쀼쀼!
[네!]
벼락 맞은 나무는 10탑코인, 번개석은 0.2탑코인에 샀는데···
황금탑 애들 인성 뭐냐?
세준이 황금탑 엘프들의 인성을 칭찬하며 찌릿 버섯을 들었다.
[찌릿 버섯]
황금탑의 어두운 동굴의 천장에서 자생하는 버섯으로, 벼락이 떨어지며 땅에 흐르는 뇌속성 기운을 버티며 자란 버섯입니다.
섭취 시 뇌속성으로 인해 혀에 약간의 찌릿함이 느껴집니다.
섭취 시 뇌속성에 대한 내성이 상승합니다.
장복 시 재능 : 전기 저항을 개화할 수 있습니다.
유통 기한 : 60일
등급 : C
"오! 이것도 좋네."
먹으면 뇌속성 저항이라니, 무조건 장복해야지.
우적.우적.
세준이 맛을 보기 위해 찌릿 버섯을 조금 잘라 먹자
찌릿.
갑자기 혀에 전기가 통한 것처럼 얼얼해졌다.
"아. 언언하다."
혀가 굳어 발음이 잘되지 않을 정도.
세준은 혀의 얼얼함이 사라지자
흐흐흐. 이런 좋은 경험을 나만 할 수는 없지?
갑자기 장난기가 발동했다.
"애들아, 이거 먹어봐."
그래서 찌릿 버섯을 꾸엥이와 흑토끼, 쀼쀼에게 줬다.
테오에게도 권해봤지만
"싫다냥! 나 테 부회장은 그런 거 안 먹는다냥!"
당연히 거절햇다.
냠.
그렇게 테오를 빼고 세준이 준 찌릿 버섯을 먹은 셋.
꾸헤헤헤.꾸엥!
[헤헤헤. 신기한 맛이다요!]
뺙!
[짜릿해!]
쀼쀼!
[처음 먹어보는 맛이네요!]
세준의 기대와 다르게 셋은 아주 편하게 잘 먹었다. 이미 뇌속성에 대한 내성이 상당히 높기 때문.
쳇. 재미없어.
자신이 기대한 반응이 안 나오자
끼로롱.
흐흐흐. 우리 리액션 장인 까망이가 나설 때인가?
세준이 찌릿 버섯을 혀를 살짝 내밀고 자는 까망의 혀에 가져다 댔다.
그러자
께에엑~!끼에엑?!
[뉴규야~! 걈히 뉴갸 위댸한 꺄먕이 님을 견드렸냐?!]
흥분한 까망이가 괴상한 소리를 내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역시 우리 까망이, 날 실망시키지 않는군.
"까망이, 나쁜 꿈꿨어? 얼른 이거 먹어?"
까망이의 반응에 만족한 세준이 서둘러 까망이의 입에 서둘러 군고구마 말랭이를 넣어줬다.
그라자
낑?
[꿈이었나?]
까망이가 고개를 갸웃거리다
짭.짭.짭.
군고구마 말랭이를 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까망이를 진정시키고
"그럼 이게 다 얼마지?"
돈 계산을 하는 세준.
벼락 맞은 나무가 75개에 번개석이 1500개니까···
"그럼 이번에 번 돈이 1조가 넘는 거네?"
쀼쀼가 말한 건 최소 가격이니, 운만 좋으면 2조 탑코인도 가능할 거다.
황금탑 최고!
세준이 황금탑의 대단함에 감탄할 때
"푸후훗. 이게 다 나 테 부회장 덕분이다냥!"
테오가 우쭐거리며 말했다.
"흐흐흐. 그래. 우리 테 부회장도 최고!"
세준이 테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칭찬하자
꾸엥?!
[꾸엥이는 최고 아니다요?!]
꾸엥이가 약간 심술이 난 표정으로 세준을 바라봤고
끼···잉?!낑!
[최고로 위대한 까망이를 빼는 거냐···요?! 어서 까망이가 최고라고 말해!]
까망이도 어떻게 자신을 뺄 수 있냐며 열심히 짖었다.
"그래. 그래. 우리 애들 다 최고!"
세준이 테오, 꾸엥이, 까망이, 흑토끼, 쀼쀼까지 다 안으며 다독여 준 후
"테 부회장, 수레에 방울토마토랑 다른 농작물 싣고, 이번에는 매입 물품에 벼락 맞은 나무랑 번개석도 등록해 줘."
"푸후훗, 알겠다냥!"
세준의 지시를 받은 테오가 서둘러 수레에 농작물을 실었다.
찌릿 버섯은 까망이랑 자신만 먹을 거라 당분간 없어도 될 것 같았다.
잠시 후
"돈 많이 벌어오라냥!"
달달달.
수레에 짐을 다 실은 테오가 황금 수레를 다시 황금탑으로 보냈다.
이틀 만에 돌아왔기에 30일 중 28일이 남아 당장 황금탑에 가기 위해서는 2800억 탑코인을 지불해야 했다.
하지만
훨씬 더 많이 남길 수 있으니 전혀 손해가 아니지.
돈을 좀 쓰고 황금탑에 가서 빨리 벼락 맞은 나무와 번개석을 가져오는 게 더 남는 장사였다.
그렇게 황금 수레가 황금탑으로 떠나자
"이거 가져."
세준이 벼락 맞은 나무와 번개석에서 눈을 못 떼는 쀼쀼에게 10개씩을 줬다.
그리고
"그럼 우리 갈게."
탑 99층으로 돌아가려 할 때
뺙!
[삼촌, 자고 가!]
세준의 옷을 꼭 붙잡는 흑토끼.
"그럴까? 흑토끼도 오랜만에 같이 잘래?"
흑토끼와 눈이 마주친 세준은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흑토끼를 구해주기로 했다.
뺙!
[응!]
세준의 말에 흑토끼가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삼촌, 고마워!' 눈빛으로 감사의 인사를 보냈다.
***
황금탑 12층.
콰과광!
벼락이 떨어지는 평지를 달리는 황금 수레가 바나 마을 근처에 도착하자
"오! 황금 수레가 왔다!"
"바나 장로님께 빨리 알려!"
"알았어!"
바나 마을의 경계를 서고 있던 엘프 하나가 서둘러 바나에게 보고했다.
잠시 후
우웅.
벼락을 막는 보호막이 만들어지자 엘프들이 서둘러 밖으로 달려 나왔다.
그리고
"서둘러 벼락 맞은 나무와 번개석을 주워라!"
바나의 지시에 따라 작업을 시작했다.
거래를 위해서는 돈이 될 만한 게 있어야 하는데, 황금탑의 엘프들은 대부분 동굴에서 자급자족을 하기에 탑코인이 없었다.
그래서 황금 수레에 물건을 팔아 돈을 벌려는 것.
검은탑에서는 아주 귀한 재료였지만, 황금탑에서는 발에 채는 게 벼락 맞은 나무고, 번개석이었다.
그렇게 엘프들은 땅에 떨어진 나무와 돌을 팔아 돈을 마련했고
[마력의 방울토마토 2만 개를 구매했습니다.]
발주한 마력의 방울토마토를 구매할 수 있었다.
"와! 땅에 떨어진 것만 팔아도 돈을 주다니, 황금 수레 최고!"
달달달.
엘프들이 떠나는 황금 수레를 보며 환호했다.
***
다음 날 아침.
뺙!
[삼촌, 잘 가! 그럼 이틀 후에 올라갈게!]
어제보다 안색이 몰라보게 좋아진 흑토끼가 세준을 배웅했다.
그렇게 집에 돌아가기 위해 화이트 캐슬을 나서는 길.
"냥?! 박 회장, 내 앞발이 끌리고 있다냥!"
테오가 갑자기 정면을 향해 앞발을 뻗으며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오. 그래?"
세준도 덩달아 흥분한 목소리로 정면을 바라봤다.
그리고
"양양양."
아무것도 모른 채 콧노래를 부르며 화이트 캐슬로 다가오는 어린 황금양 하나.
"어?! 미미르 아냐?"
"푸후훗. 그렇다냥!"
오. 이런 행운이······
테오가 무엇에 끌린 건지는 모르겠지만, 테오가 미미르에게서 그 물건을 가져올 확률은 100%였다.
세준과 테오가 웃으며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걸어오던 미미르.
"옝?! 세준 님과 테오 님?!"
대상인 황금양 미미르가 뒤늦게 뜨거운 시선을 느끼며 정면에 있는 세준과 테오를 발견했다.
도망가야 해!
뭔가 불길함을 느낀 미미르가 발길을 돌릴 때
냥보!
좀처럼 세준의 무릎을 벗어나지 않는 테오가 순식간에 미미르의 앞에 나타나
"미미르, 내놓으라냥!"
당당히 앞발을 내밀었다.
"뭐···뭘용?"
테오의 말에 크게 당황하는 미미르.
"푸후훗. 다 알고 있다냥! 빨리 내놓으라냥!"
테오가 다시 한번 자신 있게 외치자
"휴우. 녜."
몇 년을 고생해서 얻은 건데···
미미르가 한숨을 쉬며 황금털 속에 숨겨두고 있던 상자를 꺼내 테오에게 건넸다.
하지만
"냥? 이게 뭐냥? 고맙게 받겠다냥! 근데 이게 아니다냥!"
받은 상자를 흔들면서 다시 앞발을 내미는 테오.
"녱?!"
이게 아니었어?! 아니면 주셔야죠!
덕분에 당황한 미미르가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테오를 바라봤지만
"푸후훗. 빨리 달라냥!"
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그럼···혹시 이건가요?"
"아니다냥! 근데 잘 받겠다냥!"
"그럼···이거?"
"아니다냥! 하지만 잘 쓰겠다냥!"
그렇게 털 속에 넣어뒀던 물건들을 탈탈 털리는 미미르.
"그럼···어?! 이게 뭐지?"
털 속을 뒤지다 넣어둔 것도 잊고 있었던 낡은 두루마리 문서 하나를 꺼냈다.
"푸후훗. 그거다냥! 미미르, 고맙다냥!"
테오가 미미르의 손에서 두루마리 문서를 낚아채 순식간에 사라졌고
"박 회장, 이거 가지다냥! 내 선물이다냥!"
테오가 미미르에게서 받은(?) 두루마리 문서와 다른 물건들을 세준의 품에 안겼다.
425화. 얼굴보다 내면을 봐야지!
425화. 얼굴보다 내면을 봐야지!
씨앗 상점 본부.
[검은탑 탑농부 박세준이 소시지의 신 비엔나를 위해 신전(1평)을 지었습니다.]
[신성력이 3 상승합니다.]
"역시 박세준이 좋아할 줄 알았어!"
세준에게 대왕 소시지 봉을 보내 신전을 받은 소시지의 신 비엔나가 환호성을 질렀다.
역시 소시지를 거부할 수는 없지. 므하하하!
자신이 소시지의 신이라서가 아니라, 소시지는 정말 위대한 농작물이었다. 먹을 수 있고, 거기다 장비로도 쓸 수 있으니까.
"좋아. 이 기세로 5평 간다!"
열의를 불태우는 비엔나.
뚝.뚝.
자신의 머리카락 끝에서 소시지를 떼어냈다. 소시지의 신답게 비엔나의 머리카락은 줄줄이 소시지였다.
그렇게 떼어낸 소시지를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연결하는 비엔나.
지금 만들고 있는 신기는 굶주림의 소시지 방패.
방패에서 나는 소시지 냄새를 맡은 적은 엄청난 굶주림을 느끼며 냄새의 근원인 소시지 방패를 먹기 위해 집착하게 된다.
그리고 적이 소시지 방패를 먹는 동안 열심히 때리면 되지. 므흐흐흐.
이 방패 하나로 비엔나는 비전투신들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탱커가 됐다.
거기다 대왕 소시지 봉을 들고 있으면 세트 효과로 굶주림이 더 강화되며 적의 힘이 약화된다.
"박세준, 조금만 기다려라. 깜짝 놀라게 해주지."
잠시 후
"좋아. 손잡이 완성."
비엔나가 'ㄷ'자로 굽어진 소시지를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을 때
'내 신기로 박세준에게 신전을 받아야지!'
'내 신기면 3평 정도는 받을 수 있을 거야!'
다른 신들도 세준에게 보낼 신기를 열심히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신기를 보내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비엔나가 신기를 보낼 수 있었던 것도 세준에게 소시지 나무가 있는 걸 알았고.
불꽃이가 소시지 나무를 세계수로 키우고 있었기 때문.
덕분에 정확한 위치에 적은 신성력으로 신기를 보낼 수 있었던 것.
다행히 여기 그런 조건에 부합하는 신이 하나 더 있었다.
"좋아. 완성이다."
포도넝쿨의 신 엉클이 탑 99층에 있는 포도리에게 자신의 신기를 보냈다.
***
[검은탑 1층 땅문서]
"이걸 또 이렇게 얻네."
그렇게 찾을 때는 안 나오더니···
세준이 자신의 손에 들어온 검은탑 1층 땅문서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고 땅문서를 꽉 쥐는 세준.
이제 이틀 후면 드디어 집에 갈 수 있어.
집에 갈 수 있다는 게 점점 실감 나기 시작했다.
'그래도 방심은 금물이지.'
이렇게 좋은 일이 생길 때는 꼭 나쁜 일도 함께 생겼다.
슥.
세준이 감정을 추스르며 땅문서를 주머니에 넣자
"박 회장, 이걸 열어 보라냥!"
테오가 미미르에게 처음 받았던 상자를 내밀었다.
"이게 뭔데?"
"모른다냥! 근데 미미르가 주기 싫어했다냥! 그래서 안 줬다냥!"
역시 냥아치다.
"그래? 흐흐흐. 좋은 건가?"
세준이 상자를 열자
"응? 선글라스?"
안에는 짙은 검은색의 보석을 황금색 테로 감싼 고급스러워 보이는 안경이 보였다.
[공허의 시선]
이름부터 뭔가 있어 보였다.
뭐지? 전설급이나 신기인가?
세준이 기대 가득한 표정으로 안경을 집었다.
"와."
들자마자 엄청 가벼운 무게감에 놀랐고 안정적인 균형감과 그립감에 다시 한번 놀랐다.
장인이 만든 물건이 틀림없었다.
잡아본 것만으로 감탄이 절로 나오다니, 그 옵션은 어떨지 너무 기대됐다.
세준이 서둘러 옵션을 확인했다.
[공허의 시선]
검은탑 최고의 디자이너 아무르 랭지가 만든 다섯 번째 작품의 3번째 한정판 안경입니다.(No. 5-3)
아무르 랭지는 이걸 쓰면 '내 시선을 들키고 싶지 않아'라는 컨셉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흑요석을 특수 가공해 자신은 타인을 볼 수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자신의 시선을 볼 수 없는 안경알을 만들었습니다.
황금 테는 특수 가공으로 안을 비워 무게를 줄이는 대신 강화 마법으로 줄어든 강도를 보강했습니다.
1년에 1개만 제작됩니다.
사용 제한 : 없음
제작자 : 아무르 랭지
등급 : C
"···?"
세준은 자신이 잘못 읽었나 여러 번 다시 읽었지만, 아무리 읽어봐도 별것 없었다.
"뭐지?"
너무 이상해 에일린에게 감정도 부탁했지만
[탑의 관리자가 이건 이미 감정된 아이템이라고 말합니다.]
"응. 고마워."
미감정 아이템도 아니었다.
이건 아무런 능력이 없는 선글라스일 뿐이었다.
오히려 아무런 능력이 없는데도 아이템 등급이 C급이라는 게 놀라울 정도. 명품은 명품이었다.
그렇게 세준이 '공허의 시선'을 살펴볼 때
"저···세준 님, 그건 돌려주시면 안 될까요? 저 그거 살려고 5년 기다렸어요···."
어느새 달려온 미미르가 울 듯한 표정으로 세준을 바라봤다.
"그래."
세준이 들고 있던 선글라스를 미미르에게 씌워줬다.
"메헤헤. 세준 님, 감사합니다!"
선글라스를 받은 미미르가 세준에게 감사를 전하고는 서둘러 털 속에서 거울을 꺼내
"꺅! 너무 이뻐!"
공허의 시선을 쓴 자신의 모습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근데 아무르 랭지가 누구야?"
"녱? 아무르 랭지를 모르세요? 100년 전부터 유명해진 디자이너예요! 근데 요즘은 너무 유명해져서 물건 하나 사려면 최소 몇 년은 기다려야 해요."
"그래? 어디 가면 만날 수 있어?"
"탑 89층에 아무르 랭지의 작업실이 있어요. 근데 왜요?"
"아냐. 나중에 한 번 만나보려고."
탑 89층이라···나중에 흑스터랑 같이 일하게 해야지.
흑스터는 마법 실력이 좋고, 아무르 랭지는 손재주가 좋으니, 둘이 같이 장비를 만들면 분명 엄청난 시너지가 날 거다.
"미미르, 이건 가져가."
세준이 테오가 가져온 미미르의 물건들을 돌려줬다.
"그리고 이건 땅문서 값."
검은탑 1층 땅문서를 가져간 대신 미미르에게 벼락 맞은 나무와 번개석 일부를 넘겼다.
"감사해용!"
물건을 받은 미미르가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쀼쀼가 말했다시피 두 물건은 구하기 엄청 어려운 재료들.
두 물건을 팔아주는 대가로 거래를 더 유리하게 진행할 수 있다.
"그럼 잘 가."
그렇게 미미르에게 물건을 준 세준과 일행이 미미르와 헤어졌고
"안녕히 가세용!"
미미르는 세준이 사라질 때까지 열심히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세준이 보이지 않자
"멧헴! 멋쟁이 황금양 미미르 출몰!"
공허의 시선을 고쳐 쓴 미미르가 한껏 멋을 부리며 화이트 캐슬 안으로 들어갔다.
쀼쀼에게 자랑을 하기 위해서.
'공허의 시선'을 예약한 미미르 다음 대기자가 쀼쀼였다.
***
검은탑 99층.
-크하하하. 내가 말했나? 우리 세준이가 검은탑을 검은 거탑으로 만들었다고?
-벌써 100번은 더 들었으니까 그만해라.
-그래. 그만하라고.
-아. 배 아파.
카이저의 자랑에 켈리온, 램터, 티어가 짜증을 냈다.
하지만
-크하하하. 내가 그랬나? 이거 미안하구만. 그런 의미에서 내가 VVIP가 되면 모두에게 황금빛 삼양주를 한 잔씩 주지.
카이저의 염장은 끝나지 않았다. 카이저는 자신이 이미 VVIP가 된 것처럼 으스댔다.
으. 저 꼴을 계속 봐야되다니···
우리 세준이가 우리 탑에 있었으면 우리 탑이 거탑이 됐을 텐데···
우리 세준이만 있었으면···
다른 용들이 속으로 아쉬워하고 있을 때
-오! 우리 세준이가 왔군!
웨이포인트에 도착한 세준의 기운을 느낀 카이저가 세준을 마중 나갔다.
***
[검은탑 99층에 도착했습니다.]
집이다.
탑 99층에 도착하자마자
철컹.
"박 회장, 보고 싶었다냥!"
꾸엥!
[아빠다요!]
낑!
[위대한 까망이 님 등장!]
아공간 창고가 열리며 테오, 꾸엥이, 까망이가 세준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척.척.
까망이만 빼고 자신의 자리에 매달리는 테오와 꾸엥이.
낑!
[올려줘!]
세준이 바닥에서 짖는 까망이를 들어 슬링백에 넣어줬다.
그때
-크하하하. 우리 세준이 잘 다녀왔느냐?!
카이저가 세준을 맞이했다.
-우리 세준이 수고했다!
-크흠. 우리 세준이 좀 잘생겨졌구나.
-램터, 양심도 없냐?! 아무리 그래도···
물론 다른 용들도 카이저를 따라왔다.
-우리 세준이가 어때서?! 얼굴보다 내면을 봐야지!
티어의 말에 세준이 상처받을까 서둘러 수습하려는 카이저.
하지만 카이저의 수습에 세준은 더 상처받았다.
"다녀왔습니다."
세준이 서로 다투기 시작하는 용들에게 인사를 하고
"우마왕, 나 우마왕 스킬 좀 복사해도 돼?"
우마왕에게 물었다.
검은탑 최강의 존재.
무슨 스킬을 얻을 수 있을지 너무 기대됐다.
음머.음머.
[네. 마음대로 복사하시죠.]
"응. 고마워."
세준이 우마왕의 다리에 손을 댔다.
[대상의 스킬을 강탈하시겠습니까?]
"응."
[대상이 가진 스킬 중 하나를 랜덤하게 강탈합니다.]
뭐가 나오려나?
세준이 긴장된 표정으로 메시지를 확인할 때
[스킬 : 채식(Master)을 강탈했습니다.]
나타나는 메시지.
"채식?"
풀만 먹는 게 스킬이냐?!
세준이 어이없어하며 스킬을 확인했다.
[채식(Master)]
블랙 미노타우스들이 태어날 때부터 갖는 종족 스킬입니다.
3시간 동안 풀 1kg을 먹을 때마다 스탯이 상승합니다.(먹는 풀의 종류에 따라 상승하는 스탯이 달라집니다.)
"오."
풀만 먹는 데 스탯이 오른다니···영약도 필요 없네. 이 정도면 스킬이라고 해도 되지
스킬의 설명을 읽은 세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블랙 미노타우루스들이 왜 그렇게 풀을 열심히 먹는지 알 것 같았다.
"좋아. 그럼 이제 스킬을 사용해 봐야지."
세준이 스킬 강탈석을 쥐고 마력을 불어넣어 스킬을 사용했다.
[스킬 : 채식(Master)을 사용합니다.]
[3시간 동안 풀 1kg을 먹을 때마다 스탯이 상승합니다.]
그리고
"우마왕, 한 번만 더 복사할게."
음머.
[네.]
세준은 여유 슬롯이 생기자, 아쉬운 마음에 우마왕의 스킬을 한 번 더 복사했다.
하지만
[스킬 : 채식(Master)을 강탈했습니다.]
이번에도 같은 스킬이 나왔다.
세준은 채식 스킬을 사용하고 다시 스킬을 복사하기를 여러 번.
그러나 복사되는 스킬은 하나뿐이었다.
이걸로 확실해졌다.
세준의 능력으로 복사할 수 있는 우마왕의 스킬은 채식밖에 없었다.
"흠···집에나 갈까? 토룡아!"
세준이 토룡이를 불러 집으로 향하자
-크하하하. 세준아 곧 있으면 집으로 갈 텐데, 부모님 선물은 준비했느냐?
"아니요. 탑 1층 땅문서 구하느라 못했어요. 이제 준비하려고요."
-크하하하. 그럼 나한테 맡기거라! 내가 좋은 걸 준비해 주마!
카이저가 나란히 날며 세준에게 말했다.
"네. 감사합니다."
못 미더웠지만, 세준은 일단 감사 인사를 했다.
-크하하하. 그래. 나만 믿거라!
끝까지 자신만만해하는 카이저.
불안한데···또 엄청난 거 주시면 일단 나부터 위험해.
그럴수록 세준은 불안해졌다.
'역시 부모님 선물은 내가 준비해야지.'
잠시 후.
테오는 녹색탑에 출근했고, 꾸엥이는 약초를 보러 갔다.
그리고
끼로롱.
[마력의 방울토마토를 수확했습니다.]
···
..
.
세준은 슬링배에서 자는 까망이의 코고는 소리를 들으며 집에 가져갈 농작물들을 수확했다.
방울토마토, 고구마, 감자, 옥수수 등 종류별로 1만 개 정도씩 가져갈 생각이었다.
근데 우리집 몇 평이지? 들어갈 곳은 있나?
잠시 생각하던 세준.
공간 확장 주머니에 넣어가야지.
그렇게 세준이 집에 가져갈 농작물들을 공간 확장 주머니에 넣고 있을 때
[세준 님!]
포도리가 세준을 불렀다.
"응? 왜?"
[이거 받으세요! 누가 세준 님께 드리라고 보냈어요!]
포도리가 가지를 움직여 가지 끝에 매달린 물건을 세준의 앞으로 가져갔다.
"팔찌?"
포도 넝쿨로 만들어진 팔찌.
툭.
세준이 팔찌를 수확했다.
426화. 뱃뱃! 선물을 구해야 해요!
426화. 뱃뱃! 선물을 구해야 해요!
씨앗 상점 본부.
"세계수여. 이걸 박세준에게 전달해 줄 수 있겠느냐?"
포도 넝쿨의 신 엉클은 처음에는 쉽게 신기를 보낼 수 있을 줄 알았다.
세계수는 포도나무 출신이었고, 거기다 기운도 강했으니까.
하지만
-네가 뭔데?!
대뜸 반말부터 날리는 세계수. 굉장히 싸가지가 없었다.
그냥 보내라고!
이렇게 소리치고 싶었지만, 세계수는 반신에 준하는 격을 가진 존재. 힘이 없는 현재 상태에서는 자신도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크흠. 내가 누군지 몰라서 그런가 보군.
"세계수여. 난 포도넝쿨의 신 엉클이다."
그래서 자신의 신분을 밝혔지만
-오! 엉클, 당신 잘 만났다! 신이면 다야?! 내가 씨 없는 포도가 돼서 그렇게 씨 생기게 해달라고 기도할 때는 안 나타나다가, 자기가 아쉬우니까 나타나?! 어떻게 신이 이렇게 파렴치할 수 있지!? 어?!"
오히려 역효과가 났다.
"그건······."
풍요의 신 레아한테 따져야지. 풍요의 신 레아의 신도가 그런 거잖아.
"세계수여. 뭔가 오해가 있군. 그 당시 나는 힘을 회복하는 중이라 그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네. 거기다 자네를 고자로 만든 건···."
엉클은 자신이 살기 위해 농사왕의 배후가 풍요의 신 레아라는 걸 포도리에게 일러바쳤다.
그렇게 세준이 모두의 평화를 위해 말하지 않은 사실이 포도리의 귀에 들어갔고
-풍요의 신 레아의 신도가 날 고자로 만들었다고요?!
포도리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으로 풍요의 신 레아에게 복수했다.
그건 길막.
께엑?
[얘들아, 미안한데. 당분간 이쪽 길은 쓰지 말아줘.]
께엑!
포도리가 자신의 가지로 버섯개미들이 레아 로드를 지나가지 못하게 막아버렸다.
그리고
-주세요. 세준 님한테 전달은 해드릴게요.
툴툴거리며 엉클이 보내는 신기를 받아 세준에게 전달했다.
***
[봉인의 포도 넝쿨 팔찌를 수확했습니다.]
[직업 경험치가 조금 상승합니다.]
[수확하기 Lv. 8의 숙련도가 조금 상승합니다.]
[수확하기 Lv. 8의 숙련도가 채워져 레벨이 상승합니다.]
[경험치 10만을 획득했습니다.]
"오. 드디어 레벨 올랐다."
그동안 오랫동안 레벨이 오르지 않던 수확하기 스킬이 드디어 9레벨이 됐다.
[신기를 수확하는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업적 보상으로 신기의 유통 기한이 2배로 늘어납니다.]
이어서 나타나는 업적 메시지.
"이것도 유통 기한이 있네."
업적 메시지를 확인한 세준이 손에 든 팔찌를 살펴봤다.
[봉인의 포도 넝쿨 팔찌]
포도 넝쿨을 관장하는 포도 넝쿨의 신 엉클이 보낸 신기입니다.
포도 넝쿨을 여러 겹으로 엮어서 만든 팔찌로 목표를 설정하면 포도 넝쿨이 자라나 목표에게 착용됩니다.
엉클은 이 팔찌를 이용해 적의 힘을 봉인하고 전투에 임했습니다.
팔찌 착용자의 힘을 최대 99%까지 봉인합니다.(최대 총 스탯 1만 5000까지 봉인할 수 있습니다.)
유통기한 : 200일
사용 제한 : 모든 스탯 500 이상
제작자 : 포도 넝쿨의 신 엉클
등급 : S+
"좋네."
이거면 요란스럽게 움직이지 않아도 되겠어.
봉인의 포도 넝쿨 팔찌의 옵션을 확인한 세준이 만족하는 표정을 했다.
그렇지 않아도 세준에게는 고민거리 하나가 있었다.
내가 땅문서를 사용해 검은탑 1층으로 내려가면 다른 헌터들을 어떡하지?
세준이 내려가면 세준의 기운을 버틸 수 없는 헌터들이 위험해진다.
탑 밖은 안전지대니 괜찮지만, 탑 1층은 안전지대가 아니기 때문.
그래서 부하들을 시켜 잠깐 탑 1층을 비워야 하나 고민했지만, 이 팔찌가 있으면 그렇게 소란스럽게 움직일 필요가 없어진다.
다른 애들은 아공간 창고에 넣고 세준만 힘을 봉인한 채 탑 1층으로 내려가면 되니까.
그리고
흐흐흐. 힘숨찐이 될 수 있지.
"약한 척하다가 봉인해제해서 참교육해 줘야지."
크으. 생각만 해도 가슴이 웅장해진다.
세준이 팔찌를 들고 히죽히죽 웃으며 혼자 온갖 상상을 할 때
"푸후훗. 완판이다냥!"
녹색탑 1층에 출근한 테오가 가져간 물건을 완판시켰다.
테오는 인기가 없어진 견고한 칼날 대파 대신 생명이 넘치는 향긋한 포도와 한 번 꾹참은 비명을 지르는 파인애플을 팔았고.
파인애플 폭탄의 위력을 보여주자, 계획한 대로 10배의 매출을 올릴 수 있었다.
"푸후훗. 역시 난 박 회장 다음으로 훌륭한 대상인 테오 박인 것이다냥!"
테오가 한껏 우쭐해진 표정으로 상점 지붕에서 세준이 싸준 생선구이 도시락을 먹고 있을 때
고오오오.
갑자기 하늘에서 거대한 기운이 느껴졌다.
"냥?!"
이건 오필리아 님의 기운이다냥!
테오가 서둘러 기운 빨려를 사용해 다른 손님들이 피해를 받지 않도록 오필리아의 기운을 빨아들였다.
그리고
털석.
"테오, 나도 그거 먹을래."
덕분에 탑 1층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된 오필리아가 테오의 옆에 앉아 테오가 아직 손대지 않은 생선구이를 요구했다.
하지만
"안 된다냥! 이건 박 회장이 나만 먹으라고 정성스럽게 구운 생선구이다냥!"
거절하는 테오. 상대는 위대한 녹색용이지만, 일말의 고민도 없었다.
"뭐?!"
테오의 거부에 오필리아의 얼굴이 굳었다.
감히 위대한 녹색용인 나 오필리아 이올그의 요구를 거부해?!
"그럼 한 입도 안 돼?"
"안 된다냥!"
"이익!"
오필리아가 폭발하기 직전.
"대신 이거 먹으라냥!"
척.
테오가 생선구이 옆에 있던 소시지 꼬치구이를 건넸다.
여러 개의 소시지를 꼬치에 끼운 다음 구운 소시지 꼬치구이.
꾸엥이 도시락에 들어가야 할 게 우연히 테오의 도시락에 하나 들어갔다.
"이게 뭔데?"
오필리아가 뾰루뚱한 표정으로 꼬치를 받으며 물었다.
"소시지 꼬치구이다냥! 그것도 박 회장이 정성껏 구운 거다냥! 푸후훗. 물론 내 생선구이만큼은 아니다냥!"
뭔가 열받게 말하는 테오.
그러나
이 짭조름하면서 맛있는 냄새는 뭐지?!
오필리아는 손에 들린 소시지 꼬치구이에 집중하느라 테오의 말을 듣지 못했다.
푸후훗. 이제 귀찮게 안 하겠다냥!
테오가 소시지에 집중한 오필리아를 보며 본격적으로 생선구이를 열심히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냠.
오필리아도 소시지 꼬치구이의 가장 끝에 꽂힌 소시지 하나를 입에 넣어 씹었다.
뽀드득.
탱탱한 소시지의 질감과 함께 짠맛, 고소한 고기 풍미가 나는 기름이 섞이며 입안에서 어우러졌다.
맛있어!!!
오필리아는 800년 용생을 살면서 처음 먹어보는 소시지맛에 감탄하며 순식간에 꼬치 하나를 다 먹었다.
"테오, 나 소시지 꼬치구이 하나 더 줘!"
테오에게 다시 손을 내미는 오필리아.
"없다냥! 그게 다 였다냥!"
테오의 도시락에 우연히 들어온 소시지 꼬치 구이였기에 방금 먹은 게 전부였다.
"테오, 내일은 소시지 꼬치구이 많이 가져와. 알았지?"
"푸후훗. 알았다냥! 대신 오필리아 님도 열심히 일해야 한다냥! 박 회장이 열심히 일하지 않은 노예는 식사도 없다고 했다냥!"
"응! 알았어! 열심히 일할 테니까. 내일 꼭 소시지 많이 가져와! 알았지?"
"알겠다냥!"
그렇게 테오에게 소시지를 받기로 한 오필리아.
"자라나라! 자라나라!"
탑 99층에 도착하자마자 열심히 쑥 씨앗을 뿌리며 열심히 스킬을 사용했다.
***
검은탑 99층 서쪽.
킁킁.
꾸엥이가 바닥에 코를 대고 약초밭을 돌아다녔다.
그때
꾸헤헤헤.꾸엥!
[헤헤헤. 찾았다요!]
푹.
꾸엥이가 앞발을 땅속 깊숙이 넣어 붉은색 칡뿌리 하나를 캐냈다.
꾸엥!
[이건 꾸엥이 할머니 꺼다요!]
꾸엥이가 방금 캔 칡뿌리를 소중히 간식 주머니에 넣었다. 꾸엥이는 세준의 엄마 김미란에게 선물로 줄 약초들을 캐고 있었다.
푹.
그렇게 칡뿌리를 열심히 캐는 꾸엥이.
잠시 후
꾸엥!
[아빠, 꾸엥이 왔다요!]
약초를 잔뜩 캔 꾸엥이가 집에 돌아왔다.
"꾸엥이 왔어?"
"꾸엥이 왔냥?"
세준과 미리 퇴근해 세준의 무릎에 매달려 있던 테오가 꾸엥이를 맞이했다.
그때
꾸엥!꾸엥!
[아빠, 이것 본다요! 이거 꾸엥이 할머니한테 줄 선물이다요!]
세준 앞에 도착한 꾸엥이가 자신의 간식 주머니를 열며 자신이 캔 약초들을 자랑했다.
[온기의 칡뿌리]
[혈액순환의 칡뿌리]
[튼튼한 칡뿌리]
몸의 온도를 조금 올려주거나, 혈액순환을 좋게 하거나, 몸을 조금 튼튼하게 하는 효과로 전부 등급이 E나 D로 낮았다.
하지만 헌터가 아닌 일반인이 먹기에는 이 정도가 딱 좋았다.
"오구. 오구. 우리 꾸엥이 착하네. 할머니 주려고 캐온 거야?"
꾸엥!
[그렇다요!]
세준이 기특한 꾸엥이의 엉덩이를 토닥이며 칭찬할 때
'냥?! 큰일이다냥! 박 회장의 박 회장에게 줄 선물을 준비 못 했다냥!"
꾸엥이의 선물을 본 테오는 갑자기 마음이 급해졌다.
"박 회장, 나도 선물 구하고 오겠다냥!"
테오가 서둘러 냥보를 사용해 탑을 내려갔다.
***
검은탑 관리자 구역.
"어머님, 잘 부탁드려요!"
오늘부터 김미란에게 요리를 배우기로 한 에일린.
"그래. 우리 열심히 해보자."
"네! 어머님! 아, 어머님 세준이 모레면 탑에서 나가요."
"진짜?! 그럼 집에 오는 거야?!"
"네!"
"그러면 내일은 세준이가 좋아하는 음식 좀 만들어야겠네!"
"어머님, 저도 세준이가 좋아하는 음식 배우고 싶어요!"
"그래. 그럼 내일은 세준이가 좋아하는 음식들을 가르쳐줄게.
"네! 감사합니다!"
둘의 분위기는 아주 좋았다. 요리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에일린, 불이 너무 강한 거 같은데? 좀 줄여야겠다. 약간 뜨겁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만 끓여."
김미란이 거울에 비치는 거의 쇠도 녹일 것 같은 강력한 불을 보며 말했다.
"네! 약간 뜨겁게죠?"
김미란의 말에 불을 더 강하게 하는 에일린. 에일린에게 약간 뜨겁다는 느낌이 들려면 아직 한참 부족했다.
"아니. 에일린, 불을 줄이라니까. 간장 다 졸았잖니."
"네···죄송해요."
"아니. 죄송할 건 아니고, 우리 다시 해보자."
"네!"
에일린은 그리움의 은거울이 허용한 3시간 동안 불 조절만 연습하다 요리 강습이 끝났다.
***
급하다냥!
선물을 구하기 위해 급하게 탑을 내려가는 테오.
그때
삐욧!
[테오 님!]
"테오 님, 어디 가세요?"
탑 99층으로 복귀하는 삐욧이와 유렌을 마주쳤다.
"푸후훗. 유렌, 앞장서라냥!"
"네? 어디로요?"
"모른다냥! 유렌이 가고 싶은 데로 가라냥!"
"제가 가고 싶은데요?"
테오의 말에 유렌은 자신이 가고 싶은 곳으로 발길을 돌렸고
"멈춰라!"
10분 만에 강도가 나타났다. 정말 대단한 유렌의 불행.
"푸후훗. 찍어라냥!"
테오가 단숨에 강도들을 제압했고
꾹.꾹.
삐욧이가 뒤따르며 노예 계약서에 강도들의 도장을 받았다.
그렇게 유렌을 앞세우며 밤늦게까지 탑을 돌아다녔지만
"냥···실패다냥! 박 회장의 박 회장을 생각하면 앞발이 안 끌린다냥!"
세준을 위해서만 발동하는 황금 앞발이 작동하지 않았다.
"그냥 집에 가자냥···."
실망한 표정으로 다시 탑 99층으로 돌아간 테오.
하지만 테오는 자신이 이미 세준의 가족에게 엄청난 선물을 한 걸 몰랐다.
지구가 멸망에 잠식되지 않은 것과 세준이 탑에서 나갈 수 있는 것에 테오의 지분이 상당했다.
커어어.
끼로롱.
"냥···."
테오가 세준과 까망이가 자고 있는 침실에 들어가
고로롱.
세준의 무릎에 자리를 잡고 깊이 잠들자
(뱃뱃! 선물을 구해야 해요! 뱃보!)
이번에는 뱃뱃이가 부랴부랴 세준의 가족 선물을 구하러 움직였다.
427화. 이거 지구에만 있는 거 아니었어?
427화. 이거 지구에만 있는 거 아니었어?
검은탑 99층.
"읏차."
세준이 눈을 떴다.
[대지의 보석의 봉인이 풀렸습니다.]
[대지의 보석에 봉인돼 있던 현무암의 신 하르가 봉인에서 풀려납니다.]
[현무암의 신 하르가 자신의 봉인을 풀어준 대상에게 은혜를 갚습니다.]
[현무암의 신 하르가 1평 땅에 현무암 길을 만들어 은혜를 갚습니다.]
[자는 동안 가진 생명력의 10%를 저장했습니다.]
[생명의 구슬이 8.91% 완성됐습니다.]
[24시간 동안 마력이 0.1 축적됐습니다.
[마력이 0.1 상승합니다.]
"현무암 길?"
흐흐흐. 기대가 되는군.
세준이 기대감에 미소 지을 때
고로롱.
끼로롱.
세준의 귀로 테오와 까망이의 코 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테오 왔네?"
세준이 자신의 무릎을 안고 자는 테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냐앙···."
세준의 손길에 테오가 미소 지으며 자신의 머리를 세준의 손에 비벼댔다.
근데 선물 구하러 간다고 하더니 구했나?
어제 갑자기 사라지는 바람에 잡지도 못했다.
뭐···테오라면 구했겠지. 테오의 운이라면 못 구하는 게 더 이상했다.
척.척.
세준이 테오를 무릎에 착용하고, 까망이를 담은 슬링백을 맨 후
슥.
침실 벽에 획 하나를 추가하며 409일 차 아침을 시작했다.
'일단 현무암 길부터 찾아야지.'
세준이 침실을 나오자
삐로롱.
유로롱.
손님 방에서 삐욧이와 유렌의 코 고는 소리가 들렸다.
테오랑 같이 올라왔나?
세준은 둘의 잠을 방해하지 않게 문을 조심스럽게 열어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저벅.저벅.
농장을 걸어 다니며 농작물들에게 발소리도 들려주고
[마력의 땅콩이 농사꾼의 발소리에 감사하며 힘을 보탭니다.]
[마력 스탯 잠재력이 4891에서 4892로 상승합니다.]
잠재력도 올리고, 어딘가에 만들어진 현무암 길도 찾았다.
잠시 후.
"이건가?"
세준이 검은색 현무암이 깔린 길을 발견했다.
"응? 이거 가룬데?"
무슨 생각인지 현무암의 신 하르는 길에 돌가루를 10cm로 두껍게 뿌려놨다.
"뭐야?"
먹는 건가?
세준은 손가락으로 돌가루를 만져보다 조심스럽게 입에 넣었다.
···?!
가루를 먹은 세준이 크게 놀랐다. 당연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신이 '요레요'를 어떻게 알지?
돌가루에서 지구의 과자인 요레요 맛이 났다.
이거 지구에만 있는 거 아니었어?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세준은 서둘러 삽을 꺼내 요레요를 가죽 주머니에 퍼 담았다.
"흐흐흐. 오늘도 아침부터 보람차다."
세준이 가죽 주머니에 담긴 요레요 가루를 보며 흐뭇해할 때
[좋은 식재료를 구했다는 흐뭇함에 영혼이 충만해집니다.]
[정신력이 1 상승합니다.]
정신력이 상승했다.
"하르 님은 8.5평 드릴게요."
세준은 8.5평짜리 하르 로드를 만들고
"에일린, 이제 얼마나 남았어?"
에일린에게 지구가 검은 거탑 0층에 편입되는 데 남은 시간을 물었다.
[탑의 관리자가 이제 24시간 37분 남았다고 말합니다.]
"응. 알려줘서 고마워."
이제 내일 이맘때면 탑을 나갈 수 있다.
"흥흥흥."
세준은 절로 나오는 콧노래를 부르며 취사장으로 향했다.
***
미국 국방부.
"작전 시간까지 25시간 10분 남은 현재 텍사스 시민의 98% 대피 완료했습니다."
보고를 받은 국방장관의 얼굴은 좀처럼 펴지지 않았다.
2%면 적은 수 같지만, 텍사스의 인구수는 거의 3000만 명. 아직 대피 못 한 인원이 60만 명이나 남았다는 뜻이다.
"나머지 2%는?"
"나머지 2%의 시민들은 텍사스의 너무 안쪽에 있어 구조가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만,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래.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주게."
"네!"
보고를 마친 부하가 나가자
"휴우."
마음이 무거워진 국방장관이 크게 한숨을 쉬었다.
핵미사일 사용을 건의한 건 자신이지만, 자신이라고 미국 본토에 핵을 사용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이게 최선이었다. 혹시라도 다 자란 살점 포식자들이 이동을 시작하는 순간 미국 전체가 위험해진다.
척.
국방장관이 스마트폰을 집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국장, 한국에 간 CIA요원들에게는 연락이 없나?"
국방장관은 친구인 CIA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한국 소식을 물었다.
정확히는 텍사스 오스틴의 기적을 만든 황금박쥐가 다시 나타났는지를 묻는 것.
이게 마지막 희망이었다. 핵을 사용하지 않을 수 있는.
"아직 없네."
"그렇군. 소식이 들리면 바로 전해주게."
"그러지."
뚝.
전화를 끊은 국방장관이 서랍에서 시가를 꺼내 불을 붙였고, 집무실은 금세 안개에 자욱해졌다.
***
"좋아. 핫케이크 100장 구웠고, 소떡소떡 1000개 완성했고······."
세준은 자신이 없는 동안 에일린이 먹을 간식과 용용마켓에서 팔 음식들을 준비했다.
거기다 분수대를 차지하고 있는 수장들이 먹을 안주까지.
카이저, 켈리온, 램터, 티어까지 네 수장들이 탑 99층을 관리해 주기에 신경을 안 쓸 수 없었다.
세준은 오랜만에 집에 가는 만큼 10일 정도 지구에 있다 돌아올 생각이었다.
지금 가진 돈이 대략 7조 탑코인인니까, 애들 다 데리고 가도 충분할 거야.
그렇게 세준이 복병이 있는 줄도 모르고 지구에 갈 준비를 열심히 하는 동안
"냥···박 회장, 소시지 꼬치구이도 만들었냥?"
잠에서 일어난 테오가 어제 세준에게 말한 오필리아의 소시지 꼬치구이를 하고 있는지 물었다.
"응. 당연히 했지."
"푸후훗. 그럼 내 생선구이도 했냥?"
어느새 눈빛이 초롱초롱해진 테오가 세준을 바라보며 물었다.
"당연하지. 테 부회장 생선구이는 일부러 큰 놈으로 굽고 있어."
세준이 테오엑 화로에서 구워지는 생선구이를 보여주자
"푸후훗. 아주 휼륭하다냥!"
테오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몸을 그루밍하기 시작했다.
그때
꾸엥!
[아빠, 안녕히 주무셨다요!]
잠에서 깬 꾸엥이가 눈을 비비며 취사장에 들어와 인사했다.
"응. 꾸엥이 잘 잤어?"
꾸엥!
[그렇다요!]
"그럼 꾸엥이 아빠 좀 도와줘."
꾸엥!
[알겠다요! 꾸엥이가 도와주겠다요!]
별 다섯 개 도장 받을 수 있다요!
도장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꾸엥이의 눈이 번쩍 떠졌다.
"이것 좀 짜줘."
세준이 방울토마토, 파인애플, 포도가 잔뜩 든 바구니를 꾸엥이 앞에 놨다.
꾸엥!
[알겠다요!]
꾸엥이가 거대화를 해서 바구니를 들어 손바닥 위에 과일을 탈탈 털었다.
그리고
꾸욱.
과일을 두 앞발을 포개자
콸콸콸.
과즙이 흘러나와 세준이 준비한 거대한 병에 담겼다.
덕분에 세준은 엄청난 양의 방울토마토, 파인애플, 포도 주스를 만들 수 있었다.
그렇게 착즙이 끝나자
꾸엥!
[아빠, 여기 도장 찍는다요!]
다시 작아진 꾸엥이가 신난 표정으로 간식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칭찬 카드를 꺼냈다.
"그래. 자. 잘했어요."
꾹.
세준이 꾸엥이의 칭찬 카드에 도장을 찍어주자
꾸헤헤헤.
뿌듯한 표정으로 칭찬 카드를 고이 접어 다시 간식 주머니에 넣는 꾸엥이.
그렇게 에일린과 네 수장들, 오필리아가 먹을 음식과 용용마켓에 팔 요리들이 완성되자
삐욧!
[세준 님, 좋은 아침이요!]
"좋은 아침입니다!"
삐욧이와 유렌이 취사장으로 들어왔다.
"어서 와."
세준은 모두가 자리에 앉자, 테오 앞에는 생선구이, 삐욧이 앞에는 볶음 땅콩을 주고.
꾸엥이, 까망이, 유렌 앞에는 우유만 담긴 그릇을 놨다.
꾸엥?
낑?
"어?"
세준의 행동에 당황하는 셋. 그래도 세준에 대한 신뢰가 있기에 좀 더 기다렸다.
"흐흐흐. 이건 요레요라는 거야."
그런 셋의 그릇에 세준이 요레요를 퍼서 그릇 가득 넣어줬다.
"이렇게 우유에 말아서 숟가락으로 퍼서 먹으면 돼."
세준이 시범을 보이자 일행들도 조심스럽게 숟가락을 들어 요레요와 우유를 섞은 후 퍼서 입에 넣었다.
꾸엥!
[맛있다요! 완전 달다요!]
끼히힛.낑!낑!
[히힛. 맛있어! 코어를 더 구해야겠어!]
"진짜 맛있네요!"
함박웃음을 지으며 빠르게 먹는 셋.
그사이 요레요 가루가 퍼지면 우유는 조금씩 검게 변했고
후루룩.
먹는 속도가 빠른 꾸엥이와 유렌이 살짝 검게 변한 우유를 마시기 시작했다.
흐흐흐. 뭘 모르는군.
세준이 그런 둘을 보며 거만한 표정으로 남은 우유에 요레요 가루를 다시 부었다.
우유가 초코 우유가 될 때까지 이렇게 요레요를 말아 먹으면 얼마나 맛있는데.
낑!
[나도 더 줘!]
"그래. 자. 까망이도 부어 줄게."
끼히힛.낑!낑!
[히힛. 신난다! 또 생겼다!]
그렇게 우유를 마시지 않은 세준, 까망이의 그릇에 든 우유는 점점 색이 진해지며 초코 우유로 변했고
꾸엥?
[왜 아빠랑 까망이 우유만 까맣다요?]
"그러게요. 어떻게 하신 거죠?"
그제야 꾸엥이와 유렌도 세준에게 설명을 듣고 남은 우유에 요레요 가루를 다시 넣어 초코 우유를 만들 수 있었다.
잠시 후
"푸후훗. 박 회장, 다녀오겠다냥!"
아침을 다 먹은 테오가 녹색탑 1층으로 출근 준비를 했다.
"응. 점심 먹고 탑 1층으로 내려갈 거니까, 오늘은 일찍 와."
세준은 오늘 오후에 미리 탑 1층에 내려가 상점을 정상화하고 지구에 갈 생각이었다.
"알겠다냥!"
힘차게 대답을 한 테오가 녹색탑으로 떠나자
"너희들은 흑토끼한테 바로 올라오라고 전해주고, 탑 4층에 가서 스켈레톤들 좀 데려와."
세준은 삐욧이와 유렌을 심부름 보냈다.
모두가 각자 할 일을 하러 떠나자
꾸엥?
[꾸엥이는 뭐 한다요?]
혼자 남은 꾸엥이가 세준을 보며 물었다.
"음. 꾸엥이는 목욕하면서 까망이도 목욕시키자."
낑?!
[나는 왜?!]
꾸엥!
[알겠다요!]
끼잉!
[살려줘!]
그렇게 꾸엥이가 까망이를 데리고 목욕탕으로 가자
"삼양주 옮겨 담아야지."
세준은 양조장으로 향했다.
오늘은 황금빛 삼양주가 든 항아리의 술을 개봉하는 날.
쪼르륵.
세준이 항아리에 담긴 황금빛 삼양주를 조심스럽게 술병에 담았다.
항아리 하나에서 나오는 술로 100병을 채울 수 있다.
그리고 세준이 황금빛 삼양주를 담근 항아리는 총 10병.
"끝났다."
세준이 술을 다 옮겨담자 영롱한 황금빛을 내는 1000병의 황금빛 삼양주가 완성됐다.
술 1병당 9잔이 나오니까, 총 9000의 용이 한 잔씩 먹을 수 있는 양.
"일단 네 병은 수장 님들 드리고."
애매하게 주면 넷이 싸울 수 있기 때문에 세준은 평화를 위해 공평하게 한 병씩 주는 방법을 택했다.
그럼 남은 건 996병이니까
"흐흐흐. 성장의 비약 24병을 얻을 수 있지. 에일린 이거 팔아줘."
[탑의 관리자가 자신만 믿으라고 말합니다]
"응. 당연히 에일린만 믿지."
세준은 대답을 하고 목욕을 끝낸 꾸엥이, 까망이와 간단히 점심을 먹고 분수대로 용들을 찾아갔다.
그리고
-우리 세준이 어서 오거라.
"이거 한 병씩 드세요."
세준을 반갑게 맞이하는 용들에게 황금빛 삼양주를 건넸다.
-크하하하. 황금빛 삼양주를 한 병씩 주다니, 역시 우리 세준이는 통이 크다니까.
-으하하하. 그러게 역시 우리 세준이야.
-프하하하. 그렇지. 우리 세준이는 통큰 남자지.
-드하하하. 우리 세준이는 역시 내면이 훌륭하다니까.
티어 님, 싸우자는 거죠?
세준이 티어의 황금빛 삼양주를 뺏을까 고민할 때
-크하하하. 세준아, 이거 부모님 가져다드리거라.
카이저가 작은 상자를 꺼냈다.
달칵.
세준이 받은 상자를 열자
"오!"
주먹만 한 블랙 다이아몬드 하나가 있었다.
카이저가 생각하기에 세준의 부모들은 자신들이 열심히 키운(?) 세준보다 더 약할 게 분명했다.
그래서 좋은 아이템을 주는 것보다는 이렇게 재물을 주는 게 안전하다고 생각한 것.
-세준아, 나도 선물을 준비했다.
-나도 우리 세준이 부모님의 선물을 준비했지.
-세준아, 나도 준비했다!
다른 용들도 보석이 담긴 상자를 세준에게 건넸다.
안에는 카이저가 준 것과 비슷한 크기의 투명한 다이아몬드, 레드 다이아몬드, 퍼플 다이아몬드가 들어 있었다.
약간 긴장했는데, 이렇게 정상적인 선물을 주다니···
"감사합니다."
세준이 상자를 챙긴 후 용들에게 인사를 하고 분수대를 내려왔다.
그때
"푸후훗. 박 회장, 나 테 부회장이 돌아왔다냥!"
녹색탑에서 농작물을 다 판 테오가 돌아왔다.
"그래. 수고했어."
세준이 다리에 매달린 테오를 쓰다듬어 줄 때
뺙!
[삼촌, 나 왔어!]
지구에 같이 갈 마지막 멤버인 흑토끼가 도착했다.
"좋아. 얘들아, 모여!"
세준이 검은탑 1층으로 내려가기 위해 일행들을 불렀다.
428화. 테 부회장, 처리해.
428화. 테 부회장, 처리해.
"박 회장, 그럼 조금 있다 보자냥!"
흑토끼, 꾸엥이, 까망이가 아공간 창고로 들어가자 테오가 창고 문 앞에서 아련한 눈빛으로 세준을 봤다.
뭘 또 그렇게까지 아련해? 1분도 안 돼서 다시 볼 텐데.
"그래. 조금 있다 봐."
철컹.
세준은 테오와 마지막까지 눈을 마주쳐 주며 문을 천천히 닫았다.
그리고 품에서 녹색 넝쿨로 만들어진 팔찌를 꺼내 착용했다.
그러자
[목표에게 봉인의 포도 넝쿨 팔찌를 착용했습니다.]
[능력을 얼마나 봉인할까요?]
나타나는 메시지.
아무도 없지?
세준은 대답하기 전 주변을 확인했다. 능력을 봉인했는데, 그때 주변에 누가 있다면 약해진 몸이 버티지 못하고 기절할 수도 있다.
좋아. 아무도 없다.
"최대치로 봉인해 줘."
주변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한 세준이 말하자
[능력을 99% 봉인합니다.]
[총 11583의 스탯을 봉인합니다.]
"윽···."
능력이 봉인되면 세준은 엄청난 탈력감에 몸을 휘청였다.
총 스탯이 11700에서 117로 줄어들었으니, 그 갭이 너무 컸다.
"휴우."
잠시 심호흡을 하며 몸 상태에 적응한 세준.
"힘숨찐은 어렵겠는데?"
자신의 스탯을 확인하며 실망했다.
최대치로 힘을 봉인했는데도 총 스탯이 117.
이 정도 스탯을 가지려면 적어도 헌터 레벨이 30 이상이어야 한다. 힘숨찐은 힘들어졌다.
"아쉽네."
세준이 아쉬운 표정으로 스탯이 낮아지며 사용 제한에 걸려 착용할 수 없는 장비들을 벗었다.
그렇게 장비들을 벗어 공간 확장 주머니에 넣은 세준.
촤르르륵.
세준이 준비하고 있던 검은탑 땅문서를 펼쳤고
[검은탑 1층 땅문서의 최초 소유자 각인을 위해 소환 기능이 발동합니다.]
흐흐흐. 드디어 간다!
메시지와 함께 검은탑 99층에서 사라졌다.
***
검은탑 1층.
[들어올 때 이용했던 검은탑이 소멸됐습니다.]
[출구가 사라져 나갈 수 없습니다.]
"뭐야?! 탑이 사라지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한국은 안전지대가 있는데, 탑이 어떻게 없어져?!
출구로 나가지 못한 헌터들이 메시지를 보며 당황했다.
그들 중 일부는 외국인으로 안전지대를 믿고 한국에서 탑을 이용하던 헌터들이었다.
"어떡하지?!"
"브라질 헌터들도 한국에 탑 새로 생길 때까지 못 나갔잖아···."
"새로운 탑이 생길까?"
"요즘 탑 생기는 속도가 늦어졌던데···."
"그럼 언제 나갈 수 있을지 모르는 거잖아."
헌터들이 패닉에 빠질 때
"안녕하십니까. 저희는 한국 각성자 협회 직원입니다. 일단 저희가 마련한 숙소에서 쉬고 계시면 저희가 조사한 내용을 설명드리겠습니다."
한국 각성자 협회 직원들이 나서 그들을 진정시키며 데려갔다.
그렇게 각성자 협회 직원을 따라 수십 명의 헌터들이 사라지자
"자. 골라보세요!"
"저희 상점이 가장 쌉니다!"
"독거미의 심장 팝니다!"
헌터들이 모여 있던 출구 근처의 거대한 공터는 원래 자리를 잡고 있던 노점상들의 외침으로 떠들썩해졌다.
그때
[검은탑 1층에 도착했습니다.]
[최상층인 탑 99층에서 탑 1층으로 이동했습니다.]
[98층을 내려갔습니다.]
[의 효과로 모든 스탯이 98 상승합니다.]
입탑 409일 차. 세준이 검은탑 1층 거대한 공터의 구석에 조용히 도착했다.
[봉인의 포도 넝쿨 팔찌가 능력을 99% 봉인합니다.]
총 스탯이 거의 400 늘어날 뻔했지만, 다행히 능력이 99% 봉인되며 총 스탯이 4 늘어났다.
탑 1층아 드디어 내가 왔다!
"흐흐흐."
세준이 웃고 있을 때
철컹.
"박 회장, 보고 싶었다냥!"
테오가 기운이 빠져나가지 않게 아공간 창고의 문을 작게 열며 뛰쳐나왔고
낑!
[나 잡아줘!]
뒤를 이어서 까망이가 몸을 날렸다.
척.
덥석.
테오는 알아서 세준의 얼굴에 매달렸기에 세준은 날아오는 까망이만 받아 슬링백에 넣었다.
"냥···."
세준은 테오의 목덜미를 잡아 무릎에 착용한 후
"꾸엥이, 괜챃아?"
작게 열린 아공간 창고의 문틈 사이로 보이는 꾸엥이에게 물었다.
힘 조절이 힘든 꾸엥이는 지구에 가기 전까지 아공간 창고에 있기로 했다. 대신 꾸엥이가 심심하지 않도록 흑토끼를 옆에 붙여줬다.
꾸엥!꾸엥!
[꾸엥이 괜찮다요! 작은 형아랑 당근 먹는 거 재밌다요!]
바닥에 앉아 흑토끼랑 당근을 먹으며 꾸엥이가 조용히 대답했다.
큰 소리를 내면 자신도 모르게 기운을 끌어올릴지 모르기 때문.
미안하다.
세준은 자신을 안심시키려고 일부러 더욱 맛있게 당근을 먹는 꾸엥이를 보며 마음이 아팠지만, 당장은 방법이 없었다.
"다른 것도 먹으면서 놀아. 알았지?"
꾸엥!
[알겠다요!]
뺙!뺙!
[삼촌, 꾸엥이는 나한테 맡겨! 내가 완전 재미있게 놀아줄게!]
"그래."
철컹.
그렇게 둘과 얘기를 끝낸 세준이 작게 열린 문을 닫은 후 주변을 둘러봤다.
"드디어 이걸 보는구나."
세준이 감격에 찬 표정으로 탑 1층의 전경을 둘러봤다.
화려한 샹들리에 조명이 주변을 밝히고 바닥에는 백색 대리석이 깔려 있으며 넓은 광장에는 장비와 포션 등을 파는 상점들과 전사와 마법사의 스킬을 배울 수 있는 훈련소가 보였다.
"쌉니다! 싸요!"
"일단 와서 보세요! 구경만 하셔도 됩니다!"
근데 노점상이 있다는 말은 못 들어 봤는데···
세준이 왁자지껄한 노점상들을 보며 의아해할 때
"어?! 세준아! 너 박세준 맞지!?"
바닥에 좌판을 깔고 물건을 팔고 있는 헌터 하나가 세준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하악! 감히 우리 박 회장의 이름을···."
세준의 이름을 막 부르는 것에 흥분한 테오가 분노하려 하자
"테 부회장, 가만히 있어."
세준이 서둘러 그런 테오를 말렸다.
"알겠다냥! 가만히 있겠다냥!"
그러게 테오가 조용해지자
누구지?
세준이 가죽 갑옷에 활을 매고, 얼굴에는 긴 흉터 자국이 있는 남자를 유심히 살펴보며 다가갔다.
어?!
자세히 보다 보니 낯이 많이 익었다.
"너 경철이냐? 세아전자 오경철?!"
"그래. 나야. 얼굴이 많이 변했지?"
세준의 입사 동기 경철이 머리를 긁적거리며 약간 어두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잘 지냈어?"
"응. 나야 잘 지냈지. 근데 넌 회사 튀더니 어디서 피부관리만 받았냐? 얼굴이 왜 이렇게 좋아졌어?"
"흐흐흐. 그래?!"
경철의 말에 세준이 헤벌쭉 웃었다. 매일 얼굴 썩었다는 말만 듣다 얼굴 좋다는 말을 들으니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근데 세준이 넌 무슨 돈으로 티켓 구매한 거야? 너도 나처럼 영끌했냐?"
"어? 응! 나도 영끌했지!"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기 복잡했기에 세준은 자신도 모르게 경철의 말에 긍정했다.
"근데 너 오늘 각성한 거야?"
경철이 무기도, 방어구도 없는 세준의 차림새를 보며 물었다.
능력을 봉인하며 사용 제한 때문에 장비를 벗어뒀는데, 그게 경철에게는 이제 탑에 들어온 신입 헌터로 보인 모양이었다.
"어···."
"잘됐다. 나 25레벨이니까, 내가 7층까지 버스 태워줄게!"
세준이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경철이 세준을 키워주겠다고 나섰다.
"어? 날 키워준다고?"
네가?
경철의 말에 당황하는 세준.
나 그래도 총 스탯이 꽤 되는데, 안 강해 보이나?
세준은 항상 강한 존재들 사이에 있어 자신의 재능 : 하찮은 존재감으로 인해 기운이 많이 감춰지는 걸 까먹고 있었다.
그때
"저기요."
경철의 노점상에 다가온 헌터 하나가 경철을 불렀다.
"아. 세준아, 나 물건 팔아야 해서 3시간 후에 여기서 다시 만나자."
"응."
경철이 물건을 팔러 자리로 돌아가자 세준은 이따 만나서 경철의 오해를 풀기로 하고
근데 땅문서 퀘스트는 왜 안 생기지?
퀘스트가 나타나길 바라며 탑 1층을 구경했다.
가장 먼저 간 곳은 스킬을 배울 수 있는 전사 훈련소와 마법사 훈련소였는데
[직업이 맞지 않아 스킬을 배울 수 없습니다.]
거부당했다.
이어서 구경한 것은 물약 상점.
[최하급 힐링 포션] - 1탑코인
섭취 시 체력을 5% 즉시 회복하고, 10분 동안 체력 5%를 천천히 회복합니다.
[최하급 마력 포션] - 1탑코인
섭취 시 마력을 3% 즉시 회보하고 10분 동안 체력을 3% 천천히 회복합니다.
효과가 너무 형편없네.
쑥즙 포션이 있는 세준은 전혀 사고 싶지 않았다.
다음으로 장비 상점도 가봤지만, 초보들을 위한 장비만 있어 볼 게 없었다.
그렇게 탑 1층 시설들의 구경이 끝나자, 세준은 노점상을 구경했다.
대부분 E급과 D급으로 세준이 쓸만한 아이템은 별로 없었지만
오! 미감정 아이템이다!
가끔 느낌이 좋은 미감정 아이템을 찾으면
"이거 얼마에요?"
"그거 미감정이지만, D+급 검이라서 5탑코인은 받아야 해요."
"에이. 깎아주세요."
"그럼 4.5?"
"좀 더 쓰시죠."
흥정을 해서 가격을 깎아서 샀다.
가격이 비싸지 않아 그냥 사고 싶었지만
박 회장의 3번 깎기를 직접 보다니, 영광이다냥!
테오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보고 있어 그럴 수가 없었다.
"에일린, 이거 감정 좀 해줘."
그렇게 3번 깎기로 구매한 미감정 아이템은 에일린에게 감정을 받았다.
[탑의 관리자가 냉기 마법이 걸린 평범한 검이라고 말합니다.]
감정이 끝나자 에일린이 다시 세준에게 아이템을 보냈다.
"오! B급 떴다."
아이템을 받은 세준이 웃었다. 미감정 때는 D+급 검이었는데 감정을 받자 B급 검으로 변했다.
"흐흐흐. 보물찾기하는 기분이다."
그렇게 세준이 노점상의 미감정 아이템을 찾으며 보물찾기를 하고 있을 때
어! 저건 경철이 줘야겠다.
세준의 눈에 꽤 성능 좋은 활이 눈에 들어왔다.
[무한 화살의 장궁]
이름처럼 무한은 아니지만, 화살 1000개까지는 시위만 당기면 화살이 자동으로 시위에 걸리는 B-급 아이템이었다.
"이거 얼마에요?"
"1000탑코인이요."
감정도 됐고 급도 높아서 그런지 노점상에서 파는 물건치고는 가격이 높았다.
물론 세준에게는 저렴한 가격이지만
푸후훗. 박 회장의 3번 깎기는 몇 번을 봐도 영광이다냥!
지치지도 않냐?
"깎아주세요."
계속 초롱초롱한 눈빛을 하고 있는 테오 때문에 이번에도 3번 깎은 후 물건을 샀다.
이제 경철이한테 가면 시간이 딱 맞겠다.
활을 구매한 세준이 경철이 있는 곳으로 향할 때
쾅!
앞쪽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뭐지?
세준이 앞을 막은 헌터들을 뚫고 앞쪽으로 가자
"여기서 장사를 하려면 우리 흑곰파한테 자릿세를 내야 할 거 아냐?!"
중무장을 한 흑곰들이 자신의 허락도 받지 않고 노점상을 하는 헌터를 협박하고 있었다.
세준은 몰랐지만, 이곳에서 장사를 하려면 흑곰파에 자릿세를 내야 했다.
얘네 뭐지? 몇 층 애들인데 여기서 설치는 거야?
세준이 흑곰들을 바라볼 때
쿵.쿵.
"너 물건 많이 사던데, 돈 많은가 봐? 좀 나눠 쓰자."
흑곰 하나가 세준 앞으로 와 앞발을 내밀었다.
그리고
[퀘스트가 발생합니다.]
[퀘스트 : 시장을 불법 점거하고 자릿세를 받고 있는 흑곰파를 처치하거나 합의를 하고 땅의 권리를 되찾아라.]
보상 : 검은탑 1층 시장의 정당한 주인으로 인정
"흐흐흐. 퀘스트 떴다. 테 부회장, 처리해."
"푸후훗. 알겠다냥!"
세준이 땅문서 퀘스트를 보며 테오에게 말했고, 테오가 누가 악당인지 모를 정도로 사악하게 웃으며 세준의 무릎에서 사라졌다.
시장과 함께 시장을 관리할 노예까지 넝쿨째 들어왔다.
429화. 사랑한다! 동기야!
429화. 사랑한다! 동기야!
"위대한 검은용이시여! 죄송합니다!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푸후훗. 어림없다냥! 너희들은 이제 박 회장의 노예다냥!"
뭐가 어떻게 된 거지?
경철은 세준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수십 마리의 흑곰들과 그들을 향해 호통을 치는 노랑고양이를 보며 당황했다.
조금 전 물건을 다 팔고 좌판을 정리하며 세준을 기다리던 경철.
흑곰파의 횡포로 소란스러운 소리가 났지만, 괜히 흑곰파와 시비에 휩쓸릴까 봐 시선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30분 넘게 기다려도 세준이 오지 않자
'설마 세준이가 흑곰파와 시비가 걸린 건 아니겠지?'
혹시나 하는 마음에 흑곰파가 모여 있는 곳으로 갔다.
그리고 경철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한 것이다.
저 흑곰들이 어떤 흑곰들인가?
탑 64층을 재배하는 흑곰족으로 지구 최강의 세력인 피닉스 길드도 저들의 패악질을 보고도 못 본 척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내 동기 세준이가 그런 흑곰들을 무릎 꿇려?'
경철은 지금까지 지구를 구하는 농작물을 재배하며 지구를 구한 지구 최강자 '박세준'과 자신의 동기 박세준이 동명이인이라고 생각했다.
자신과 같이 회사 다니며 같이 밥 먹고, 커피 마시던 입사 동기가 그 '박세준'이라는 건 말이 안 됐다.
그래서 다리에 매달린 고양이도 유랑 상인 테오의 인형인 줄 알았다.
유랑 상인 테오 인형은 현재 지구에서 뱃뱃이와 함께 가장 인기 있는 캐릭터로 자신도 테오의 인형이 있었다.
부끄러워서 다리에 달지는 못하지만.
그러나
"찍어라냥! 안 찍는 녀석은 나 테 부회장이 한 대 더 때려줄 거다냥!"
자신의 동기 세준의 다리에 매달려 있던 테오는 인형이 아니었다. 말도 하고, 계약서에 흑곰들의 발도장도 받고 있었다.
설마 내 동기 박세준이 그 '박세준'이야?!
"맙소사!"
경철은 자신의 동기 세준이 지구 최강자 박세준이라는 걸 깨닫자,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가슴도 벅차올랐다.
'내가 박세준이랑 입사 동기다!'
이 사실만 올려도 별스타 좋아요 백만 개는 쉽게 받을 거다.
그렇게 경철이 별스타에서 좋아요 받을 생각에 신나 할 때
"경철아!"
세준이 경철을 불렀다.
흑곰파를 무릎 꿇린 지구 최강자이자 자신의 동기인 세준이 다른 헌터들이 보는 앞에서 자신을 불러줬다.
사랑한다! 동기야!
"응···세준아···"
내가 감히 이렇게 불러도 되나?
경철이 머뭇거리며 대답할 때
"이거 받아."
경철에게 다가간 세준이 좀 전에 구매한 [무한 화살의 장궁]을 경철에게 건넸다.
"이건 무한 화살의 장궁?!"
경철은 활을 보자마자 바로 알아봤다.
시세가 1000탑코인으로, 이제 티켓을 사기 위해 받았던 대출의 반을 간신히 갚은 경철은 꿈도 못 꿀 아이템이었다.
"이것들도 받아."
세준은 노점상을 돌며 에일린에게 감정을 받은 아이템도 경철에게 줬다.
"세준아, 이걸 왜 나한테 줘?"
"사과 값이야."
"사과 값?"
경철은 자신에게 준 세척 사과를 기억 못 하는 듯했지만, 상관없었다.
상대가 의도했든 안 했든 나는 덕분에 큰 신세를 졌다.
"응. 네가 준 사과 덕분에 좋은 가족을 얻었거든."
불꽃이를 만났으니까.
그래서 감사를 전하는 건 내가 그만큼 불꽃이를 소중히 여긴다는 의미기도 했다.
"기억은 안 나지만, 너한테 도움이 된 것 같아 다행이다. 그래도 이 걸다 받는 건···."
경철이 활 이외의 아이템은 거절하려 할 때
"세준 님!"
멀리서 한태준과 김동식이 달려오며 세준을 불렀다.
-탑 1층에 테오 박 떴어!
-와! 진짜 귀여워! 빨리 와!
흑곰파와의 충돌로 테오를 알아본 헌터들이 헌터폰으로 테오의 사진을 찍어 다른 헌터들에게 소식을 전했고
그건 한태준과 함께 탑에 갇힌 헌터들에게 현재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이동하던 김동식에게도 전해졌다.
그리고
"어?! 스승님, 세준 님입니다!"
테오의 옆에 같이 찍힌 세준을 발견하고 부랴부랴 달려온 것.
아마 10분도 늦었어도 다른 국가의 헌터들이 먼저 세준에게 접촉했을지도 모른다.
"냥! 한태준, 김동식 반갑다냥!"
다가온 한태준과 김동식을 보며 테오가 앞발을 들며 반갑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세준도 어색하게 둘에게 인사했다. 한국 최강의 헌터 한태준과 인사를 하다니.
훨씬 대단한 용들과 매일 인사하지만, 세준에게는 한태준과 인사하는 게 더 긴장됐다.
"세준 님, 저희가 모시겠습니다. 가시죠."
"네."
둘은 세준을 탑 1층에 있는 한국 각성자 협회 지부로 안내하려 했다.
"네. 경철아, 버스는 나중에 타자."
"어? 어..."
아. 부끄러워 죽고 싶다. 내가 세준이한테 버스를 태워준다고 했다니···
경철이 몇 시간 전에 대화를 떠올리며 당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지만
"와! 박세준이 버스 태워준다고 했나 봐!"
"진짜 부럽다!"
주변 사람들은 경철이 버스 운전사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채 떠들었고, 경철은 더욱 낯이 뜨거워져 고개를 들 수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