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reads / WEREW / Chapter 2 - 2

Chapter 2 - 2

제 107화

화두번째 재앙

A급 히어로 3명이 무력하게 당한, 충격과 공포의 첫번째 테러 이후.

콰아아아아아아아앙.

또서울의 도심 한복판에 분홍색 태풍이 예고도 없이, 또다시 불어닥치기 시작했다.

눈을 뜨기도 힘든, 건물의 외벽을 뜯어버릴 정도로 강한 바람이 휘몰아치고.

하늘에서는 마법진 수십, 수백개가 생겨나 보라색 번개, 별, 광선 등이 떨어지기 시작하며.

마치 인세에 강림한 신의 심판마냥, 도시가 한순간에 멸망하듯 요동치기 시작했다.

한낱 인간이 막을 수 없는, 거대한 재앙처럼 보이는 광오한 광경.

건물이 요동치고 땅이 울렁이는 그 곳 한복판.

이미 평범한 사람들은 전부, 자기의 한목숨을 챙기겠다고 도망친 이곳에서.

한 여성만이, 오히려 그 태풍의 중심 한복판으로 돌진하고 있었다.

"크윽...."

스타더스.

대한민국의 A급 히어로인 그녀.

그녀만이, 마법적인 폭풍이 몰아치는 그 강풍을 뚫고, 빌런이 있을 태풍의 중심을 향해 가고있었다.

"....크, 하앗!"

그리고 그녀의 모습은.

빈말로도 좋지 못했다.

자칫 잘못하면 몸이 날아갈 것만 같은 강풍에 눈도 제대로 못뜨고 있는 그녀.

그렇게 간신히 눈을 떠 정면을 바라보면, 더욱 절망적이어 보이는 상황이 그녀의 앞에 펼쳐졌다.

마치 이 세계가 아닌 것처럼 이질적인, 분홍색이란 자연적이지 않은 색깔로 물든 하늘.

그리고 저번 테러보다 훨씬 많아진 그녀를 공격하는 것들.

"...흐앗!"

그녀는 자신을 향해 날아온 보라색의 커다란 별모양의 무언가를, 간신히 팔을 휘둘러 공중에서 쳤다.

펑-. 그녀의 주먹에 맞자 마치 폭죽처럼 터지는 별모양의 무언가.

보라색 가루가 사방으로 날리며, 흔적도 없이 사라진 그것.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녀의 주위에서 번개가 내리치기 시작했다.

콰직-

콰지지지지직

보라색의 번개들이 사방에서 내리치는, 기묘한 광경.

그리고 그와 동시에.

지 이 이 이 잉-

-콰과과과과과광

"크윽..."

허공에서 생겨난 마법진에서 쏟아져 나오는, 보라색 파괴광선.

사방이 분홍색으로 뒤덮인, 강풍이 불어오는 이곳에서.

자신의 영역을 침범한 침입자를 없애겠다는 듯, 수없이 생기는 마법진들에서 쏟아지는 보라색의 별모양의 포탄, 내리치는 번개, 뿜어져나오는 광선까지.

그리고 스타더스는.

홀로 그 모든걸 견뎌내며, 어떻게든 한발자국이라도 전진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하아... 하아..."

신하루는 이를 악물었다.

저번의 테러 이후. 그녀는 자신을 몰아붙이며 혹독하게 다음 테러를 대비했다.

이미 인간의 경지를 뛰어넘을 정도로 강한 그녀였지만, 더욱 몰아붙였다.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그러나, 그런 그녀의 모든 노력을 비웃듯.

적은 돌아왔다.

전보다 더 강해져서.

"흐아아!"

갑자기 정면에서 쏟아져나오는 광선을 피해, 그녀는 땅바닥을 굴렀다.

적은 아직도 저렇게 강한데, 자신은 오히려 이 안에 들어오자 힘이 더 약화되었다.

마치 무언가에 짓눌리듯, 모래주머니를 매단 것처럼 느려지고 둔해진 몸.

그리고 그런 그녀에게 자신의 눈앞에 놓인 재앙을 상대하라는건, 참으로 가혹한 일이었다.

다행인점은 또다시 온 첩보로 인하여, 테러 날짜를 미리 알아챈 협회가 민간인들을 거진 다 빠르게 대피시켰다는 걸까.

그러니 지금, 기회가 있을 때.

무조건, 이 태풍의 중심에 놓인 빌런을 처리하여야만 했다.

자기 혼자서.

그녀를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

"흐으..."

그런 생각을 하던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했다.

자신은 히어로다.

그리고 히어로는, 다른 사람들을 구하는 자다.

그럼 그 히어로는, 누가 구해준다는 말인가?

누가 도와준다는 말인가?

"....없지. 아무도."

없다.

히어로는 오직 혼자서 일어나, 자신에게 다가오는 끝없는 악의를 홀로 맞서 싸워야한다.

그래.

다 필요없다.

결국 믿을건, 자신 뿐.

그런 생각을 하여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

그래.

더이상 말도 안되는 생각은 하지 말고.

이 시련은, 스스로 이겨내야한다.

반드시.

그렇게 다시 각오를 다지며, 그녀는 자신을 향해 쇄도하는 온갖 마법들을 향해 또 한번 뛰어들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몸에는.

그녀 자신도 눈치채지 못한, 노란 빛줄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

"하루... 크흑! 또 각성하는구나!!!"

티비에서 노란 빛줄기가 뿜어져 나오는걸 본 나는, 스타더스 전문가답게 바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파악했다.

스타더스가 극한의 상황에서 반짝 능력이 증폭되는 각성상태. 각성이 끝난 이후에도 어느정도는 강함이 유지되는 만큼, 일어날때마다 능력이 성장하는 좋은 이벤트다.

그녀가 저 달의 무녀랑 싸울일이 내가 난입하기 전일 저번과 이번밖에 없는 만큼, 기대도 안했었는데 꽤 좋은 일이 아닐수가 없다.

그래. 이거면... 된거야...

그렇게 내가 그걸 보며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자,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서은이가 옆에서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하아... 저 사람은 왜 또 강해지는거야. 안그래도 스펙 맞추느라 힘든데..."

옆에서 혼자 뭐라고 뭐라고 중얼거리던 서은이는, 문득 깨달았다는 듯 나를 보고 되물었다.

"근데 오빠, 이거 좀 잘못될 수 있는거 아니에요?"

"크흑. 뭐가?"

"아니. 이번 테러에서도 또 스타더스가 지고 나면, 다음에 저 여자가 올때 난입해서 납치한다는게 오빠 계획이잖아요. 근데 저 스타더스가 강해져서 지금 이겨버리면 어떡해요?"

아.

그러니까 방금 스타더스가 각성했으니, 막 쎄져가지고 달의 무녀를 잡아버리면 어떡하냐는 거지?

나는 그런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 서은이에게 친절히 설명해줬다.

"서은아... 만약 그게 그렇게 쉽게 풀리는거라면 내가 이렇게 울고 있겠니?"

"그럼요?"

"지금 저 달의 무녀가 많이 강해요. 아주 많이."

월광교의 교주 천월황이 미리 깔아놓은 온갖 버프 디버프기 때문에, 사실상 이 상태의 달의 무녀는 어지간한 미국의 S급 히어로를 데리고와도 이기기 쉽지 않다.

그러니까, 지금 반짝 강해진 정도로는 못이긴단 소리다!!

"크흑... 난 못보겠다!"

"오빠... 우는데 주먹은 왜 삼키는거에요..."

난 그렇게 눈을 감고 버텼다.

차마 못보겠어. 이 끔찍한 광경을!

그리고 역시나.

조금 있다가, 내 귀에 또 폭발음이 들렸다.

[콰아아앙-.]

[여러분! 말씀드리는 순간 스타더스가 폭풍에서 튕겨져 나왔습니다! 아마 감당하기 힘든 공격을 당한것으로 추정됩니다!]

하아. 역시나.

끔직하군.

***

"크윽..."

결국 공세에 못이겨 튕겨져버린 스타더스.

바닥에 쓰러진 그녀는, 시간이 지난후 그제서야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여전히 한쪽 무릎은 땅바닥에 놓은 채로, 숨을 헐떡거리며.

"하아... 하아...."

그녀는 최선을 다했다.

자신의 모든 힘을 대해, 달려들어봤다.

그러나 역시.

결과는 이전과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하하... 하하하하...."

오히려 훨씬 강해진 적.

저걸. 대체 어떻게 이긴단 말인가?

그녀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아.

나는 저걸, 이길 수 없겠구나.

그런 생각이 그녀에게서 떠오른 순간.

다시금 끔찍한 절망감이, 그녀의 안을 맴돌았다.

난 안되겠구나.

여기까진가.

앞으로도 이렇게 무력하게, 아무것도 못한 채 저것이 모든걸 파괴하는걸 바라만 볼 수밖에 없겠구나.

대체 저 안에 있는 괴물은 뭐기에.

저렇게도 강하단 말인가.

부정적인 감정에 잠식당하기 시작하는 그녀.

그러나, 머리를 한번 털어내고.

비틀거리는 몸을 이끈 채, 그녀는 다시 폭풍속으로 발걺음을 옮겼다.

그래.

자신은 히어로다.

쓰러지더라도. 일단은 싸워야지.

그렇게 다시 마음을 다잡고 폭풍 속으로 들어가는 그녀의 눈은.

분명 전보다, 어두워져 있었다.

***

모든걸 파괴하는 비현실적인 분홍색 태풍.

온갖 마법진이 허공에 떠있는 그 광경.

저번에 이어 이번에도 여전히, 압도적인 위력으로 도시 하나를 망가트리는 그 폭풍.

저렇게 피도 눈물도 없이, 심지어 말 한마디 없이 조용히 서울을 멸망시켜려 드는.

그 모든 태풍을 조작하고 있는 건.

검은색 긴 생머리에, 하얀 무녀복을 입은 채 무릎을 꿇고 눈을 감은 채 기도하고 있는 앳된 얼굴의 여자.

그녀를 중심으로 휘몰아치는 바람 가운데서, 조용히 주위를 산산조각 내고 있는 그 여자는.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아무도 듣지 못하는 사과를 끊임없이 하며,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어떡하죠. 저때문에 사람들이 다치고 있어요... 저때문에...'

이제는 거의 눈물을 글썽이는 그녀.

그러나 그런 생각과는 다르게, 그녀의 손은 쉴새없이 허공에 마법진을 그려가며, 폭풍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어쩔 수 없어요...'

그래. 어쩔 수 없다.

이미 자신은 교주에 의해 사실상 속박된 몸.

그가 자신에게 심어둔 주술로 인해, 그녀는 그가 하라는 대로 꼭두각시처럼 움직일 수 밖에 없다.

아마 영원히, 그녀는 그에게 조종당하며 살아야 되겠지. 죽을 때까지, 다른 사람들을 해치며.

그런 생각을 하니 다시 답답해지는 마음을, 그녀는 붙잡고 계속해서 일을 하였다.

그나마 마법으로 공격을 할때, 은근슬쩍 일반 시민들은 안맞추고 근처 건물들만 부수는게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렇게 계속해서 폭풍으로 도시를 파괴하고, 마법으로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히어로를 막던 그녀는.

이내 자신의 귀에 울려퍼지는 교주의 목소리에, 잠시 멈칫했다.

아해야. 이제 다 되었느니라. 마지막으로 월광을 세상에 알리고, 그만 돌아오거라.

복귀하라는 명이 떨어졌다.

드디어, 이 무의미한 파괴행위를 멈출 수 있다.

안도의 한숨을 내뱉은 그녀는, 슬슬 폭풍을 갈무리하며 하늘에 월광을 쏠 준비를 했다.

지금은 물러나지만.

아마 바로 곧. 또 다른 도시를 망가트리기 위해 나서야겠죠.

계속, 계속해서.

교주의 손아귀에 조종당하며.

"...언젠가 저를 구해줄 사람이 올까요?"

그렇게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린 그녀는, 쓴 웃음을 지었다.

그럴리가 없죠.

이 세상은 그렇게 백마탄 왕자님이 있는 동화책이 아닌데.

그리고 자신이 지금까지 지은 죄악들을 떠올려본다면.

어쩌면.

그녀에게 구원은, 죽음만이 유일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그녀는 하늘에 月光(월광)의 문양을 마법으로 빚어 띄워올렸다.

기나긴 두번째 테러도, 끝난 순간이었다.

***

[하늘에 月光의 무늬가 떠올랐습니다! 테러가 드디어, 드디어 끝이 났습니다. 우리의 히어로는, 이번에도 지고 말았습니다...]

두번째 테러도 끝난걸 확인한 순간,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오빠?"

"다인씨?"

갑작스럽게 몸을 일으킨 나를 다들 의아하게 바라보고 있는 와중에.

나는 모두를 향해 선포했다.

"자. 지금부터 바로 우리는 준비한다."

오직 스타더스를 성장시키겠다는 목적. 이를 통해 멸망을 막겠자는 의지 하나로 지금까지, 두번이나 참았다.

그러니. 이제는.

"다음 테러를 막으러, 준비한다. 수빈씨, 레피스단 걔네한테 연락 좀 해주세요. 돌아오라고."

"네? 아, 네!"

거기까지 말한 나는 머리를 쓸어 넘기며, 모든 계획이 사전에 준비되어 있는 곳으로 발걺음을 옮겼다.

그래. 드디어 나설때다.

원작에서 수십번에 걸쳐 일어나는, 서울을 완전히 멸망시키는 이 긴 피폐 이벤트를, 이제는 내 손으로 끝낸다.

대한민국도 구할 겸.

월광교주에 의해 고통받는 달의 무녀도 구할 겸.

그리고.

계속해서 고통받을, 스타더스를 위해서.

"자!! 다들 빨리빨리 모여!!"

다음 테러까지 D-7.

그 전까지, 모든걸 다 완벽하게 준비해둔다.

달의 무녀를 납치하기 위한 모든 준비를.

스타더스야 기다려라.

내가 간드아!!!

제 108화

화Miss Me?

두번에 걸친 월광무녀의 테러.

히어로들이 애쓰는게 무색할정도로 쉽게 박살나는 도시.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경험해보지 못했던, 정말 압도적인 강함에 시민들은 경악했다.

거기에 더 무서운 점은, 이 테러가 언제 끝날지도 모른다는 점.

협회가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해외에서 다른 S급 히어로를 유치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었다.

월광무녀가 보여주는 변칙적인 마법, 그리고 그녀의 폭풍속에 진입하는 순간 능력이 약화된다는 소문은 모두가 겁을 먹게 만들었고.

그 결과, 대한민국은 무력하게 앉은 채로 그 빌런에 당하게 생긴 것이다. 빌런의 이름이건 이런 짓을 하는 이유건, 아무것도 모른 채로. 이렇게 쉽게.

이제는 정치권에서 서울을 버리고 부산으로 수도를 이전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오는 상황.

그렇게 모두가 불안, 걱정, 좌절, 무력감, 절망에 시달리고 있을 때.

가장 절망감을 느끼는 사람은.

다름아닌 그 빌런을 막아야하는 의무가 있는 히어로.

스타더스였다.

"..."

서울 히어로 협회.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매우 어두운 그곳의 사무실에, 한명의 여성이 조용히 앉아있었다.

[...그래서, 아마 익명의 제보에 따르면 그 지역에서 오늘 중으로 테러가 일어날 것으로 보이네. 그러니 계속 대기하도록.]

마지막 테러가 일어난 지 일주일 후.

그때 월광무녀의 세번째 테러가 일어날꺼라는 제보를 받은 그녀는, 자리에서 대기중이었다.

아마도 오늘 안으로 벌어질 테러를 막기위해.

....

그래. 막는다라.

"...하하."

거기까지 생각한 신하루는, 자기도 모르게 공허한 웃음을 흘렸다.

막을 수 있을까? 이번에는?

".....하아."

테러리스트로부터 시민들을 지킬 수 없다는, 공포.

단 한명에 의해 무력하게 유린당하는 도시를 지켜만 봐야한다는 절망.

그 모든것이 어우러져, 그녀의 낯빛을 그림자지게 만들었다.

정녕 희망은, 없는건가.

계속해서 월광무녀의 테러를 상대하며, 그녀는 느꼈다.

이건 자기 혼자선 절대로 안된다는걸.

누군가 도와주지 않는 이상, 서울은 이대로 계속 파괴되기만 할거라는걸.

그러나.

누가, 누가 그녀를 도와준다는 말인가?

그 순간, 그녀의 눈길이 예전에 북마크했던 한 카페로, 자신도 모르게 향했지만.

그녀는 그 망상을 털어냈다.

아니. 그럴리가 없지.

자신이 상대하는게 유일한 방법이다.

그러나 내가, 그럴 수 있을까?

제발.

누군가, 도와줬으면.

그렇게 자리에 앉아 멍하니 생각을 하는 동안.

갑자기 협회 전체에 사이렌이 울리며, 순식간에 비상사태가 선포되기 시작했다.

[서울 동부쪽에 분홍색 폭풍우 발생! 월광무녀의 세번째 테러입니다! 스타더스씨, 지금 바로 출동해 주세요!]

다급하게 흘러나오는 스피커의 목소리.

그걸 들은 그녀는, 조용히 일어나 창문을 열고 밖으로 몸을 던졌다.

어두운 밤하늘,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하늘까지 솟아오른 진분홍의 폭풍.

찬 밤바람을 맞아가며 하늘을 날아가며.

신하루는 어두운 얼굴로, 조용히 생각했다.

오늘이라고, 무슨 변화가 있을까.

자신은 여전히 지고, 저 빌런은 도망가고, 서울은 또 파괴되고, 시민들은 다치고. 그게 그저 반복 될 뿐 아닐까.

결국 오늘도, 전과 똑같을 뿐이 아닐까.

달라질 게 있을까.

***

지금까지와 똑같이, 휘몰아치는 월광의 태풍.

그러나, 오늘은 다르다.

"자. 다들 준비 끝났지?"

서울의 외곽 어딘가.

오늘따라 찬 바람이 불어오는 그곳에서, 나는 내 밑에 있는 이들에게 소리쳤다.

"넵! 끝났습니닷!"

"출항 준비 완료입니닷!"

아주 군대식으로 경례하며, 이륙할 준비가 완료되었다는 소식을 알리는 우리의 토끼 헬멧 아이들.

"좋아. 그러면 다들 비행선에 올라타! 그리고 하율아, 자. 가자."

"네에...."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인 나는, 이내 고개를 돌려 하율이를 바라보았다.

평소와는 달리, 새하얀 로브를 갖추어입은 하율이.

마치 판타지 게임에나 등장할법한 마법사나 사제가 입을 것처럼 생긴 옷을 입은 그녀는, 자기가 입은 옷이 어색하다는 듯 옷을 꾹 꾹 잡아당기고 있었다.

"...근데 오빠, 이거 꼭 입어야돼요?"

"당연하지. 이게 너의 첫 데뷔인데, 컨셉은 필수야 필수."

"....네."

여전히 어색한 얼굴로 자신의 옷을 바라보는 그녀의 손을 잡고, 나는 비행선 위로 떠올랐다.

우리 하율이. 나름 서은이와 수빈씨 이후 원년부터 함께한 멤버인데, 한번도 대중한테 알린적이 없다.

물론 이하율의 능력이 전투쪽이 아닌 치유라 딱히 테러에 쓰일 일이 없었다고 봐야겠지.

그러나 이번에 드디어 할 일이 생겼기에, 이렇게 드디어 데뷔하게 되는 것이다. 에고스트림의 멤버로도 정식으로 발표하고.

...어쩌다보니 서은이 빼고 전부 에고스트림 사이트에 멤버로 등록되어 있는거 같은데, 기분탓이겠지.

그런 생각을 하던 나는, 이내 어느새 비행선 위에 올라와있는걸 확인했다.

하율이의 하얀 로브는 뭐, 사실 이번에 그녀의 능력을 자세하게 밝힐 생각은 없기에 최대한 있어보이는 걸로 입혔다. 왜인지 신비스러워 보이게 말이다. 그래야 대충 보고도 '아, 쟤는 뭔 능력이 있나보구나!'라고 사람들이 생각하지.

하여튼, 중요한건 이게 아니다.

지금 상황에서 핵심은, 우리 스타더스를 구하러 가는거지.

그렇게, 비행선이 하늘로 떠오르기 시작했고.

저 멀리, 분홍색 회오리바람이 작게 보이는 그곳을 향해 본격적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스텔스 모드로 하늘에 뜬 채, 순식간에 날아간 비행선.

"에고스틱님! 거의 다 도착했습니다!"

[흠. 심상치않은 기운이 느껴지는구만.]

비행선이 도착한 곳은, 거대한 분홍생 폭풍이 도시를 집어삼킨 곳.

그 근처까지 도달한 나는, 조용히 그 살풍경한 광경을 응시했다.

월광교의 달의 무녀가 일으키는 수십번의 테러 중 하나.

끝내 서울을 멸망시켜, 원작을 시궁창 직전의 완벽한 피폐물로 만들어버린 그 테러.

이 세계에서 내가 꼭 막기로 결정했던 메인이벤트.

그리고 현실이 되어버린 이 일에서.

나는 처음 두번은 나서지 않고, 오롯이 스타더스에게 맡기기로 했다.

내가 원작에서 벌어졌어야 할 모든 피폐이벤트를 부숴버리고, 심지어 스타더스마저 그보다 훨 강하게 성장시킨 덕분에.

지금 시점에서 등장하는 빌런들은, 스타더스에게 한주먹거리가 되어버렸기 때문.

그렇기에, 고난을 겪는만큼 성장하는, 이 만화의 주인공이 스타더스인 만큼.

원래대로라면 수십번에 걸쳐 이루어졌을 테러를, 내가 중간에 나서서 막는 대신에

딱 두번. 두번만, 스타더스 혼자 상대하게 했다.

....솔직히, 각오는 했지만 신하루가 혼자 구르는걸 보는게 마음 편한 일은 아니었다. 애가 멘탈이 실시간으로 무너지는게 보였다고.

그러나, 꼭 한번은 필요한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만큼 눈물을 꾹 참고 나서지 않았다.

지금까지는.

그리고 이제는 세번째 테러.

드디어, 드디어 나설 때란 말이다.

그렇게 그 세번째 테러가 일어난 즉시, 나는 비행선을 끌고 문제의 현장으로 향했다. 자, 빨리 후딱 달의 무녀만 납치해서 도망치자.

그런 생각을 하며, 실시간으로 분홍색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그곳에 도착한 내가 본것은.

태풍에서 튕겨져나오는 신하루의 모습이었다.

"....아."

튕겨져나와 땅을 몇번 부딪히더니.

한쪽 무릎을 꿇은 채, 비틀거리며 일어나려고 하는 그녀.

그리고 그런 그녀의, 지친 표정.

지금까지도 구르는 신하루를 화면 너머로 지켜보는 것맛으로도 눈물을 훔쳐왔건만.

이렇게 그녀가 고생하고 있는 모습을 직접, 내눈으로 본 나는.

생각보다.

너무.

너무, 가슴이 조여왔다.

"다인오빠?"

"하율아.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그리고 나는.

나도 모르게, 몸이 그 자리에서 튕겨져나가는걸 느꼈다.

저 큰 폭풍에 비하면 너무 작아보이는 그녀.

지친 표정으로, 모든 걸 잃은 표정으로, 반쯤 쓰러져 앉은 채 멍하니 폭풍우를 바라보는 그녀를 향해.

조용히, 그녀 모르게 바로 뒤까지 날아간 나는.

순간, 울컥이는 마음에.

나도 모르게, 조용히.

그녀의 머리위에, 손을 올려 쓰다듬었다.

"...고생하셨습니다."

***

"크으윽..."

벌써 이 일이 벌어진지도 몇시간.

분홍색 폭풍 안, 강풍 속에서 수십개의 마법진들을 홀로 상대해가며, 그녀는 신음을 삼켰다.

여전히, 그녀 혼자 상대하기에는 너무 막강한 적.

이미 전의 두번의 테러로 깨달았지만, 역시.

그녀 혼자서는 절대로, 이길 수가 없었다.

절대.

"하아... 하아..."

그러나, 뭐라도 해야되었기에.

어떻게든 안으로 들어와, 이 폭풍우를 뚫기 위해 발버둥 치고는 있지만.

이미 그녀는 속으로는 생각했다.

아. 역시.

안되겠구나.

오늘도.

그리고, 다음에도.

"....흐익!"

그녀의 옆쪽에 갑자기 생겨난 마법진에서, 쏟아져나오는 보라빛 광선들.

가까스로 팔을 돌려 막아보았으나, 옆에서 폭발하는 구체는 막지 못한 그녀는.

끝내 튕겨져, 하늘을 날았다.

....아.

역시 안되네.

아무리 생각해도, 이길 수 없을거같네.

이번에도.

다음에도.

"...크윽."

공격에 맞고 끝내 폭풍 밖까지 튕겨져나온 그녀.

땅에 몇번 부딪히며 끝내 멈춘 그녀는.

간신히 몸을 일으켜 세워, 한쪽 무릎을 땅에 굽힌 채.

지친 눈길로, 여전히 맹렬히 휘몰아치는 폭풍우를 바라보았다.

이길 수 없다.

죽을 것 같다.

"....하아, 하아."

일반 사람들은, 위기의 순간 히어로가 나타나 구해준다.

그럼 히어로들은.

히어로들의 위기의 순간에, 그들을 구해줄 인물은 있는가?

전에도 생각했었지만.

있을리가 없지.

"..."

그렇게. 깊은 절망감을 품고.

그녀는, 멍하니 폭풍우를 바라보았다.

결국 아무도 도와줄 사람은 없다.

그냥 저것은, 계속해서 도시를 파괴할거고.

이대로, 천천히, 모든건 끝나고 말거다.

결국, 체념의 빛이 그녀의 눈에 스쳤다.

여기까진가보다.

이제는 어떠한 이변도, 일어날 수 없다.

그녀가 그렇게 생각하며, 멍하니 폭풍우를 바라보던.

그때.

갑자기 따스한 무언가가, 그녀의 머리위에 올라왔다.

"....고생하셨습니다."

"....?"

그렇게 풀린 눈으로, 여전히 무슨 상황인지 모르는 상태로. 멍하니 고개를 올린 그녀가 본것은.

"....에고스틱?"

"네. 접니다."

가면으로 얼굴의 반을 숨긴채.

따스한 손길로, 자신을 향해 숨길 수없는 걱정의 기색을 드러내고 있는.

....그였다.

***

"....네가, 왜, 여기 왔어?"

너무나, 지친 상태인만큼.

제대로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를 쥐어짜듯, 나한테 말을 건네는 신하루.

나는 그런 그녀를 향해.

안에서 복받아 오르는 무언가를 꾹 삼킨 채,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 히어로가, 이러고 있는데. 숙적인 빌런으로서 당연히 와봐야죠."

"....하하."

"웃을 힘은 아직도 있으신가 봅니다? 허...."

여전히 지친 표정으로 작게 웃는 그녀를 향해.

그렇게, 나는. 여전히 안에서 솟구치는 무언가를 삼킨 채.

그녀한테 살짝 웃으며, 조용히 말해주었다.

"지금까지, 정말. 잘싸우셨습니다."

"당신은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 누구보다도."

"그러니."

"나머지는 제가, 맡도록 하죠."

".....제 아치에너미를 위해서라면, 이정도는 해줘야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말하며, 억지로 안올라가는 입꼬리를 끌어올려 웃은 뒤.

나는 그녀를 쓰다듬던 손을 떼고, 그녀가 뭐라 입을 열기 전 자리에서 일어나.

폭풍속으로 그대로, 뛰어들어갔다.

그래.

이제는.

이 지랄맞은 일을 끝날때가 됐다.

***

다, 끝난줄로만 알았다.

그래서.

체념하고, 포기하고 있었는데.

"...."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머리에 손을 올려, 자신의 머리 위를 만졌다.

아까까지만 해도 그의 손이 있던 곳에서, 여전히 따스한 온기가 느껴지는 듯 했다.

결국.

모든게 끝인거 같은 순간.

더이상 꿈도, 희망도 없을 때.

나를 위해 나서주는 건.

"....."

그녀는 조용히, 폭풍쪽으로 뛰어가고있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바람에 맞추어 펄럭이는 그의 망토.

....그래.

그런거였구나.

...결국, 그였구나.

그렇게 앉아있던 그녀는.

그 자리에서, 조용히 그의 뒷모습을 지켜봤다.

그가 폭풍 안쪽으로 사라질때까지

계속

계속, 지켜만보고있던

그녀의, 심장은.

두근-

자기도 모르게, 작게 두근거리고 있었다.

제 109화

화폭풍의 언덕

이질적인 분홍색으로 빛나는 하늘, 눈을 뜨기도 힘들게 휘몰아치는 바람.

스타더스마저 힘겨워 했던, 이 폭풍의 한복판에서. 검은색 옷을 갖춰입은 한 남자가 서있었다.

그래, 나말이다 나.

".....이런 느낌이였구만?"

어린아이 하나정도는 쉽게 날려버릴 수 있을 정도로 매섭게 불어오는 바람.

그리고 그런 나를 향해 날아오는, 수십개의 마법진에서 뿜어져나오는 공격.

그렇게 그 어떤 히어로도, 힘겹게 노력해도 뚫지 못한 그 폭풍을.

나는 마치 아침에 집앞 마당 산책하듯, 편안하고 유유하게 걷고 있었다.

"아니, 날파리들이 왜이렇게 많아?"

염동력으로 날아오는 별 같은 것들을 쳐주는건 덤.

무슨 크리스마스 트리 꼭대기에나 있을 법한게 자꾸 날아오는데, 귀찮아 죽겠다.

그렇게 나를 향해 날아오는 별덩어리들을, 아주 스무쓰하게 손짓 하나로 쳐냈고.

그결과 내가 아닌 땅바닥에 쳐박힌 보라색 별은.

콰앙-

무슨 폭탄 터진 양 엄청난 굉음을 내며, 자신이 떨어진 땅을 그냥 완전히 박살내버렸다.

"와... 시바...."

그리고 그걸 보며 나는 혀를 내둘렀다.

그래, 역시.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위력이다.

무슨 평타가 저정도 쎄기야?

나는 고개를 들어올려 보았다.

하늘을 다 가릴정도로 높게 솟아오른, 분홍색 폭풍우.

역시, 원작에서 그 어떤 히어로들도 막지 못한 채, 서울을 결국 완전히 파괴시켜버리는 이벤트 다웠다.

이걸 인간이 막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안든다고.

물론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나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는 얘기지만.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내쪽으로 날아오는 보라색 파괴광선을 손을 펼쳐 막았다.

맹렬한 기색으로 쏘아지는 것과는 다르게, 내 손에 닿지도 못하고 사방으로 퍼지는 빛줄기.

나는 그걸 보며 살짝 웃었다.

그래. 달의 무녀. 굉장히 강하고 위협적인 적이다. 단순히 쓰러트리기 힘든 정도로 따지자면 예전 한은그룹의 거대병기보다 더 힘들정도로.

근데 그건 아무것도 모른 채 싸울때 얘기고.

나는 씨익 웃으며, 그대로 펼친 손을 다시 쥐었다.

그리고 그러자마자.

퍼엉-.

광선을 쏘던 마법진이, 그대로 산산조각이 나며 터져버렸다.

그래, 이번 테러의 핵심은 달의 무녀가 아닌, 교주가 사전에 깔아둔 버프기들, 바로.

서울 전역에 놓여진 마법진들.

히어로들의 능력을 약화시키고, 달의 무녀의 화력을 강화시키며, 전파 방해에 암흑능력 방지에 마력공급에, 그냥 대충 어마무시한 옵션들이 많이 붙어있다.

사실상, 이 마법진들이 이번 테러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달의 무녀도 기본적인 마법실력이 꽤 강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압도적으로 스타더스와 아이시클, 섀도우워커까지 탈탈 털정도로 강한거까진 아니다. 스타더스와 일대일로 싸우면 아슬아슬하게 버티다가 질정도?

그렇기에, 그녀를 거의 무적으로 만들어주는건 교주의 버프 마법진들.

이게 이번 테러 공략의 핵심이자, 사실상 모든것의 중심이다.

원작에서도 서울 거의 다 박살난 상태에서 겨우 이 비밀을 밝혀내, 마법진을 미리 다 박살내서 달의 무녀를 죽이는데 성공했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니 자신을 죽여달라 말하던 달의 무녀의 모습이 또 눈에 어른거렸다. 그래, 그건 개같은 원작일뿐. 이제는 아니지.

하여튼, 나는 아예 여기서 한술 더 떴다.

마법진을 해킹해서 역으로 작동하게 했다는 소리.

그러니까, 서울에 놓인 이 거대한 마법진은.

나를 강하게 해주고, 적을 약하게 해준다.

즉.

이 폭풍 안에서는, 내가 무소불위의 힘을 가지게 해준다는 소리.

"위로 올라가, 그래~"

나를 향해 내리치는 보라색 벼락을 손으로 튕겨, 다시 하늘로 보내버리고.

날아오는 레이저는 그냥 썰어버리고.

별덩이들은 그냥 염동력으로 폭파시켜가며.

나는 유유히, 달의 무녀가 있을 이 폭풍의 중심부로 다가갔다.

아, 쉽다 쉬워,

이제 곧 달의 무녀도 보게 되겠구만.

***

"하아... 하아...."

폭풍의 중심부.

그곳에서, 그녀는 숨을 헐떡였다.

"...흐윽..."

자신이 일으킨 폭풍 안쪽.

어떤 사람이, 자신이 만든 모든 결계를 다 뚫고 접근하고 있었다.

'....어떻게 한거죠.'

자신의 마법을 베이스로, 교주에 의해 증폭된 결계.

그녀가 서있는 곳을 둘러싼 수십, 수백개의 공격 마법진들.

누군가 다 뚫어가며 진격하는게 느껴지고 있었다.

'대체 누구인걸까요.'

저번 두번의 테러에서도, 자신을 막기 위해 달려드는 이들은 많았다.

그러나 모두가 폭풍의 중간도 통과하지 못한채, 물러났었는데.

지금의 침입자는 마치 제집 드나들듯 쾌속으로 그녀가 있는 곳으로 오고 있었다.

'...아마도, 다른 히어로겠죠.'

그녀는 조용히 생각했다.

드디어 누군가가 모든걸 멈추기 위해 오는군요.

그래, 차라리 잘됐어요.

그녀는 잠시 멈추고,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서있는 곳은 태풍의 중심. 바람 한점 안불어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손은, 마치 수전증 환자처럼 떨리고 있었다.

그런 손을 다른 한쪽 손으로 붙잡으며, 그녀는 쓰게 웃었다.

그래. 차라리 잘된거에요.

고작 이번을 포함해 단 세번. 단 세번만에.

이렇게, 힘든데. 괴로운데.

과연 내가, 수십번이나 더 이런 짓을 했으면.

그때는, 버틸 수 있었을까요?

계속해서 짓눌리는 죄책감.

월광교회에 갇혀, 스스로를 갉아먹고 자책하며 사는 삶.

그래. 차리리, 그냥 여기서 끝내는게 나을 수도 있어요.

다른 사람을 해치며 살아가는 삶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아마 다가오는 저 사람은.

자신을 붙잡거나, 죽이려 하겠지.

그러나 붙잡는건 소용없다. 어차피 자신은 교주에 의해 조종당하니, 오히려 역으로 그들이 이용당하겠지.

그런만큼, 자신은 최대한 반항할꺼다.

그렇게된다면 역시.

이 자리에서, 죽게 되겠죠.

'...죽기는, 싫었는데 말이죠.'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눈에는, 살짝 눈물이 고이고 있었다.

사실, 여차하면 목숨을 버릴 각오는 했었다.

그러나.

이게 이렇게, 빨리 올줄은 몰랐다.

당장 저번까지만 해도 속수무책으로 당하던 히어로들 이였던만큼, 최소 몇십번은 더 있다가 올 줄 알았지.

이렇게 바로. 세번째 테러에서.

그녀가 있는 곳으로 다가올 줄은, 몰랐었다.

'...무슨 생각을. 아니요, 오히려 잘된거죠. 더 큰 피해가 생기기 전에 멈출 수 있으니.'

그렇게 생각을 하며 마음을 다잡는 그녀였지만.

역시, 조금 무서웠다.

애초에 그녀도 어느정도 사람들의 반응은 알고있었다.

자신보고 괴물이라고 부르며, 두려워하고 경멸하는 사람들.

그리고 특히 히어로는.

자신의 모든 결계를 뚫을 정도로 강한, 그 히어로는.

자신을 보고 어떤 표정을 지을까. 분노? 혐오? 경멸?

그런 시선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서,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이.

그녀한테는, 너무나도 두려운 일이었지만.

"....."

그래도, 그녀는 각오했다.

그래. 죗값을 치뤄야지.

언제까지고 도망만 갈 수는 없다.

히어로가 이곳으로 오면.

살짝 도발한 뒤, 싸우다가, 자연스럽게 힘을 빼고 공격을 그냥 맞아주자. 결정적인 한방이 날아올 때.

그렇게 슬픈 마음으로 어떻게 죽을건지 플랜까지 짠 그녀는.

자신을 향해 경멸하는 표정을 지을 히어로를 생각하며, 굳은 각오를 한 그녀가 마주했고.

마침내, 폭풍을 뚫고 튀어나온 사람은.

"안녕하십니까!"

활짝 웃으며, 자신에게 인사를 하는 남자였다.

'....뭐죠?'

***

역산한 마법진을 이용해 아주 쉽게 분홍색 폭풍, 일명 마력폭풍을 뚫은 나는, 마침내 태풍의 중심에 도착했다.

바람이 아주 쌩쌩 불던 주변과는 다르게, 그 많던 바람 한 점 없이 고요한 중심.

그리고 그 가운데에는.

하얀 무녀복을 입고, 붉은 색 끈으로 머리를 묶은 여자가 한명 서있었다.

만화 속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보이는 인상.

살짝 신비로워 보이면서도, 이런 테러를 일으켰다고는 볼 수 없어보이는 착한 인상.

거기에 서은이보다 약간 큰 정도의 키라, 내려다봐야 돼서 그런지 살짝 서은이 느낌도 나긴 했다.

원작에서 굉장히 불쌍하게 죽는 인물이기도 한 달의 무녀. 이 모든 테러를 일으킨 그녀를, 드디어 만났다.

...무심한 듯 굳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지만, 눈동자가 겁에 질려있는 그녀의 모습.

그래서 나는 인사를 건네기로 했다.

"안녕하십니까!"

그래서 웃으며 팔을 활짝 벌리고 인사했다.

원래 첫만남에는 웃어주는게 첫인상에 좋다. 그렇고말고.

그리고 그 결과.

겁에 질려있던 그녀의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황당함으로 바뀌었다.

...음, 어쨌든 바뀌었으니까 된건가?

하여튼, 내 갑작스러운 인사공격에 순간 멈칫한 그녀는, 오히려 정신이 들었는지 얼굴을 다시 굳히고, 나를 향해 냉랭한 얼굴로 쏘아붙였죠?

"....당신은 누구인가요? 아니요, 그건 중요하지 않죠. 저를 막으러 오셨다면, 소용 없다는 말을 하고 싶네요."

거기까지 말한 뒤, 그녀는 숨을 들이 마쉬었고.

그와 동시에.

지이이이이이잉.

그녀의 주위로 수십개의 마법진들이, 보라빛을 내며 허공에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붉은 눈동자를 나를 향해 고정한 채.

나지막히, 읊조리는 그녀.

"저는 계속해서 싸울겁니다. 당신이 막으시던지, 그건 중요하지 않...."

"백은월."

나는 그녀의 말을 끊고 입을 열었다.

"백은월. 월광교에서 달의 무녀로 불림. 교주에 의해 주워져 그의 밑에서 길러짐. 달의 신이 준 마법을 쓸 수 있음. 월광교를 좋아하지 않고 교주의 사상에 반대함. 그러나 그가 건 주술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의 뜻에 따라 움직이고 있음. 테러를 일으키고 싶지 않다."

거기까지 나는 한번에 말했다.

내 말에, 마법을 일으키는 것도 멈추고 순간적으로 몸이 굳은 그녀.

갑작스러운 사태에 정신을 못차리고 미친듯이 눈동자만 흔들리고 있는 그녀에게.

나는 씨익 웃으며, 말해주었다.

"은월씨, 그 사이비같은 월광교는 버리시고."

"저와 함께하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자.

본격적으로 입을 한번 털어보자.

***

[여러분! 말씀드리는 순간 속보입니다! 에고스틱이 비행선을 타고 현재 월광무녀의 테러 현장에 등장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에고스틱이 폭풍 안에서 그러고 있는 한편.

대한민국은 실시간으로, 뒤집어지고 있었다.

제 110화

화절벽에 핀 꽃

보라색의 전기같은게 번떡거리는, 분홍색 폭풍의 중심.

그곳에는, 숨막히는 정적이 흐르고 있었다.

"..."

떨리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건, 벌써 3번의 마력폭풍으로 서울을 박살낸 빌런 달의 무녀.

어떤 히어로도 막을 수 없어 보였던 난공불락의 폭풍과는 다르게, 막상 그 중심에 있는 그녀는 연약하고 어려보였다.

"....대체, 무슨 말씀을..."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나에게 묻는 그녀.

주위에 떠있는 마법진들이 허공에서 위태롭게 흔들리는걸 봐선, 굉장히 당황한 것 같은 모습.

그리고 지금이, 딱 밀어붙이기 좋은 타이밍이다.

나는 여전히 씨익 웃으며, 그녀를 향해 한걸음씩 가까이 걸어가며 입을 열었다.

"달의 무녀, 아니. 백은월씨. 저는 월광교에 대하여 잘 알고 있습니다. 심지어 교주에 대해서도 잘 알고요."

그렇게 말하며 그녀를 향해 걸으니, 흠칫 놀라며 살짝 뒷걸음치는 그녀.

나는 그런 그녀에게 웃으며 말해줬다.

"은월씨. 솔직히 말해주세요. 월광교 때문에 괴로우시죠? 사실, 테러하는 것도 싫으시죠? 그런데 교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는거 아닙니까."

계속해서 성큼성큼 걷다보니, 어느새 그녀의 코앞까지 도착한 나.

작게 뒷걸음치던 그녀는 더이상 물러날 곳도 없이, 내 앞에서 파르르 떨 뿐이었다.

이미 허공에 떠있던 마법진들은 다 흔들려 사라진지 오래.

".....더이상, 그들에게 휘둘리지 않고 살고 싶으시지 않으세요?"

나는 그녀의 앞에서 그렇게 말했다.

그저 작게 떨 뿐인 그녀.

역시, 원작에서 나왔듯 강하게 나가면 꼼짝 못하는 그녀였다.

애초에 늘 갇힌 채 교주에게만 조종당하고 교인들에게는 억지 웃음만 지으며 사는 삶이었을테니.

이렇게 다른 사람과 직접 대화를 나누는 것도 처음일 수도 있다.

여전히 나를 올려다보며 혼란스러워하는 백은월.

흠, 지금까지는 밀어붙였으니 이번에는 부드럽게 나가볼까.

거기까지 말한 나는, 바로 한쪽 무릎을 꿇고 그녀와 눈을 마주했다.

아직도 정신을 못차리고 있는 그녀에게, 나는 웃으며.

이번엔 조용히, 부드럽게 타이르듯 말을 해보았다.

"제가 당신을 구해드리겠습니다."

"월광교는 버리시고, 저와 함께하시죠."

"교주는 제가 쓰러뜨리겠습니다."

"그러니. 저와 손을 잡고 함께 새로운 삶을 살아보시지 않겠습니까?"

나는 거기까지 말하고 손을 뻗었다.

여전히 웃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보며.

여전히 몸을 살짝 떨고 있었으나, 그래도 눈은 아까보단 진정된 그녀.

그리고 그렇게, 붉은 눈동자로 나를 살짝 바라보더니.

그녀는 입을 달싹이기 시작했다.

"....일단, 저에 대해 그렇게 어떻게 잘 알고계시는건지는 모르겠어요. 모르겠는데... 그래도."

거기까지 말한 그녀는,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말을 이었다.

"....정말 저를, 도와주겠다는 건가요?"

"네. 맞습니다."

"왜... 왜요? 저는 그냥, 괴물일 뿐인데..."

갑자기 자책하는 목소리로 내게 그렇게 말하는 그녀.

그래. 지금이 기회다.

갑자기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땅을 파고 드려는 그녀의 손을, 내가 갑자기 붙잡았다.

갑자기 나한테 손이 붙잡히자, 흠칫 놀라는 그녀.

그러나 나는 그런 기색을 읽지 못한 듯, 뻔뻔하게 소리쳤다.

"아니요. 당신은 괴물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는 압니다. 저는 봤습니다. 당신이 이 모든 테러를 일으키는 동안에도, 사람들을 최대한 다치지 않게 조절을 하는걸 압니다."

"교주에게 조종당하면서도 끝끝내 굴복하지 않고 버틴 당신을 아는 사람 누가, 당신을 괴물이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까."

"은월씨. 당신은, 괴물이 아닙니다. 스스로를 자책하지 마세요. 그러니까."

나는 서있던 그녀를 붙잡고, 내 품으로 안았다.

"울지마세요."

그리고 내 말을 들은 그녀는.

작게, 울고 있었다.

***

모든걸 포기했었다.

이 자리에서 죽는거까지, 각오했었다.

모든 슬픔을 속으로 삼키고, 마음 먹었었다.

그래요.

저 하나 없어진다고 모든게 끝나는거까진 아니겠지만, 그래도.

여기서 퇴장하는게 맞는거겠죠.

그렇게 마음을 단단히 먹은 그녀에게 나타난건.

가면을 쓴, 이상한 남자였다.

갑자기 자신에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고, 신상을 어떻게 알고 있으며, 자신의 속마음까지 알고 있는 이상한 남자.

그러더니, 자신이 교주를 쓰러트릴테니 함께 손을 잡자고 하는 남자.

이상한 남자다.

대체 어떻게 자신에 대해, 그리고 월광교에 대해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에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저와 손을 잡고 함께 새로운 삶을 살아보시지 않겠습니까?'

그녀는 이미 모든걸 포기했었다.

이미 목숨까지 포기할 정도로, 모든걸 내려놓은 상태였단 말이다.

그리고 그런 그녀에게 갑자기, 갑자기 나타난 동아줄.

사실 동아줄인지, 썩은줄인지. 그녀는 알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 그녀에게 내려온, 유일한 줄이다.

모든걸 포기한 그녀에게 온, 새로운 기회다.

이걸 걷어찬다고 해서 뭐가 달라질까?

어차피 교주에게 이용당하고 서울을 파괴하다가, 히어로에게 죽을 운명이다.

.....그러니 어차피 죽을 운명이라면요.

마지막으로 한번만, 이 남자를 믿어봐도, 되지 않을까요.

그리고.

그걸 다 떠나서, 애초에.

그녀에게 이렇게 따뜻하게 말해주는 사람은, 그가 처음이었다.

늘 차가운 목소리로 자신에게 명령만 내리는 교주.

눈에 초점도 없는 채 자신에 대한 의미없는 찬양만을 읊조리는 신도들.

거기에 늘 어두컴컴한 방까지.

그렇게 세상과 단절되어 살아온 그녀에게.

경멸어린 표정을 받을 각오를 하고 있던 그녀에게.

생글생글 웃으며, 좋은 말을 해주며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겠다고. 저주를 풀어주겠다고 한 사람은.

그가 처음이었기에.

그녀는, 넘어갈 수 밖에 없던 것이다.

그리고. 늘 스스로를 자책하며 괴물이라 자신을 평가하던 그녀한테 들려온.

'당신은 괴물이 아닙니다.'라는 소리에.

그녀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을 흘리고 만 것이다.

'그래요... 어차피, 더이상 잃을 것도 없는데.'

'한번만. 마지막으로 한번만... 이 남자를 믿어볼까요.'

***

좋아.

일단 계획한대로 흔들다리 효과로 어떻게 어떻게 넘기는데에 성공한거 같다.

....사실 이것보다 더 계획한 말들이 많았었는데. 달의 무녀가 생각보다 쉽게 넘어왔다. 아무래도 평소부터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던 모양. 하긴, 원작에서도 스타더스보고 자신을 죽여달라고 말하던 불쌍한 애인데, 당연한가.

나는 여전히 내 품에 꼭 안겨있는 그녀를 쓰다듬으며, 그렇게 생각했다.

...이거, 살짝 손 많이 가는 여동생이 생긴 느낌인데.

하여튼 그게 중요한게 아니다.

나는 여전히 내 품에서 훌쩍거리는 그녀를 떼어내고는, 그녀를 향해 말해주었다.

"그럼, 정말 저희와 함께 하기로 마음 먹은거죠?"

"네에... 근데, 제 저주때문에 교주님... 아니, 교주가 계속 절 감시할 수 있는데... 저, 사실 지금도..."

그녀는 불안한 듯 나를 올려다보며 그렇게 말했다.

아마 지금도 교주놈의 목소리가 들리는 모양.

"네. 그거 당연히 풀어드려야죠. 그전에 잠시만요."

나는 거기까지 말하고, 순간이동해 사라졌다.

어디로? 바로 우리 에고-배틀쉽이 있는 곳으로.

"윽."

"다인오빠!"

배에 도착하자마자, 나를 보고는 달려드는 하율이.

"오빠, 어떻게 됐어요? 지금 막 헬기들 날아다니고 난리났는데..."

"아. 어차피 내가 조금 있다가 방송 틀꺼라 어그로는 다 이쪽에 쏠릴꺼니까. 걱정말고."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그녀의 의상을 점검했다.

하얀 로브를 정갈하게 갖춰입어, 어딘가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 그녀. 좋다. 첫 데뷔인데, 이쁘게 나와야지.

"자 일단, 바로 가자. 지금 치유능력 쓸 수 있지?"

"네."

"좋아. 가자."

나는 하율이의 손을 붙잡고, 다시 태풍의 중심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거기 도착하자마자, 들리는 소름끼치는 목소리.

아해야.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것이냐! 빨리 대답하거라!

"히익..."

태풍속에서 들리는 노인의 목소리와, 그걸 들으며 벌뻘 떨고 있는 달의 무녀.

이런, 벌써 교주놈이 눈치깐건가.

시간이 없다.

"하율아, 어서!"

"네!"

하율이는 쏜살같이 달려가, 주저 앉은채 떨고 있는 달의 무녀, 백은월을 껴안았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둘에게서 뿜어져나오는 하얀 빛.

아해야. 대답하거라. 아해야! 대. 하거. 라. 아. ___

그리고 그와 동시에.

폭풍속에서 들려오던 소름끼치는 목소리가, 점차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끝내 없어졌다.

그리고 다시 찾아온 고요.

"하아... 하아..."

숨을 헐떡이던 달의 무녀, 백은월만이. 이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걸 보고 자신의 손을 살펴보더니. 멍하니 중얼거릴 뿐이었다.

"...들리지, 않아요?"

"네. 은월씨. 축하합니다. 교주가 건 저주는 해제되었습니다. 당신은 자유입니다."

저주를 해제하기 위한 제일 쉬운 방법.

그냥 치유술사 불러서 통채로 치유하면 된다. 끝!

그런 내말에.

여전히 멍하니 있던 백은월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살짝 울먹거리며 말할 뿐이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가, 감사해요...."

그러더니 나와 하율이한테 번갈아가며 감사하다고 말하는 그녀.

원작에서 저주에 대해 묘사할 때, 늘 정신이 갉아먹히고 감시당하는 것 같은 기분이라고 했었었다. 아마 그게 사라졌으니, 바로 체감이 되는 모양.

"자, 자. 감사인사는 나중에 해도 충분하니까. 일단 진정하세요. 뚝."

"그래. 울지마렴."

나와 하율이가 달래주자, 훌쩍임을 좀 줄이는 그녀.

...이와중에 하율이는 내가 말해준대로, 마치 수녀처럼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백은월을 쓰다듬고 있었다. 아니면 그냥 애가 착한건가.

하여튼. 조금 진정이 된 이후.

아까보다 훨씬 더 나를 신뢰감 넘치는 눈으로 바라보는 그녀에게, 나는 말해줬다.

"좋습니다. 은월씨, 이제 교주놈의 감시도 없으니, 당신도 이제 저희 에고스트림 소속인겁니다."

"네. 아, 네!"

"그럼. 그 기념으로, 저랑 방송하나 같이 하죠."

"....네?"

우리 방송켜야 돼.

***

에고스트림의 배가 월광무녀가 테러를 일으키는 곳에 나타났다!라는 소식은 순식간에 전국으로 퍼졌다.

에고스틱이 직접 왔을것이다, 테러를 막을 것이다. 아니다, 스타더스랑 섀도우워커도 못뚫은걸 에고스틱이 어떻게 하겠느냐. 절대로 중심까지도 못간다. 아니, 우리 망고라면 모른다... 등

희망회로를 극한까지 굴리며, 사람들이 불타고 있던 그때.

번쩍-

갑자기 분홍색 폭풍에서, 보라색 빛줄기가 하늘을 향해 번쩍 솟아올랐다.

갑작스러운 사태에 집중된 모두의 이목.

그와 동시에, 급변하는 폭풍.

그렇게 사람들이 가장 긴장하는 순간.

[시발ㅋㅋㅋㅋ 에고스틱 방송ONㅋㅋㅋㅋㅋㅋ]

에고스틱의 방송이, 켜졌다.

*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에고스틱입니다!"

제 111화

화방송

그 어떤 히어로들도 막지 못한, 서울 전역에 일어난 세번의 테러.

모두가 절망하고 있을떄, 현장에 혜성처럼 나타난 에고스트림의 비행선은 모두를 집중하게 만들었고.

그리고 끝내 에고스틱의 방송마저 켜졌을 때.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에고스틱입니다!"

그렇게 카메라에 그의 모습이 나오고.

그리고 그와 맞추어 동시에 쏟아지는.

열화와 같은 성원들.

[시발ㅋㅋㅋㅋㅋ 이왜진ㅋㅋㅋㅋ]

[망고스틱! 망고스틱! 망고스틱! 망고스틱! 망고스틱! 망고스틱! 망고스틱! 망고스틱! 망고스틱! 망고스틱! 망고스틱! 망고스틱! 망고스틱! 망고스틱! 망고스틱! 망고스틱! 망고스틱! 망고스틱! 망고스틱! 망고스틱! 망고스틱!]

[꺄아ㅏ아ㅐㅏㅏ아악 왜이제야와요나정신나갈것같애!!!!!]

[젠장 믿고있었다고!!!]

[망야호~ 망야호~ 망야호~ 망야호~ 망야호~ 망야호~ 망야호~ 망야호~ 망야호~ 망야호~ 망야호~ 망야호~ 망야호~ 망야호~ 망야호~ 망야호~]

[신은 존재하며, 그는 망고의 형상을 하고있다]

[ㅅㅂ채팅창이 존나 빨라서 보이지도 않네ㅋㅋㅋ]

[우리는 에고스틱의 시대에 살고있다 우리는 에고스틱의 시대에 살고있다 우리는 에고스틱의 시대에 살고있다 우리는 에고스틱의 시대에 살고있다 우리는 에고스틱의 시대에 살고있다 우리는 에고스틱의 시대에 살고있다]

[솔직히 방송ON된거보고 눈물 찔끔났으면 개추ㅋㅋㅋ 일단나부터ㅋㅋㅋ]

[존나 반갑네 ㅅㅂㅋㅋㅋㅋ]

채팅이 너무 쏟아지는 바람에, 일반인의 눈으로는 못쫓을 지경이었다.

지상파로도 동시에 송출되고 있다는걸 생각하면, 놀라울 지경.

하여튼, 그러거나 말거나 그는 여전히 쾌활한 어조로 웃으며 인사를 해왔다.

"네! 다들 반갑습니다 여러분. 저번에 마지막으로 본 이후로 꽤나 오랜 시간이 흐른거 같네요!"

[^^ㅣ발 거의 반년이나 잠수타셨는데 당연히 오래됐죠ㅋㅋ]

[난 ㄹㅇ 죽은줄 알았다]

[마지막에 부산에서 테러한 이후로 얼굴한번 안비춤ㅋㅋㅋ]

[어쩐지 존나 오랜만이라 생각했는데 ㄹㅇ오랜만이었네ㅋㅋㅋㅋ]

[망고가 없던 지난 수개월... 으윽, 머리가....]

진짜 오랜만이 맞다는 말들과 함께, 쏟아지기 시작하는 망고단들의 성토.

그런 반응을 아는지 모르는지, 에고스틱은 여전히 얼굴에 있는 가면을 매만지며, 계속 웃는 채 입을 열었다.

"네, 네. 오랜만입니다 여러분. 아! 그런데, 제가 없는 동안 뭔가 많은 일들이 일어났더라고요?

[ㅈㄴ많은 일들이 일어나긴 했지 시바]

[별일 없었음 그냥 서울이 무너지고 수도 이전이 논의되는 정도...? ㅇㅇ]

[ㄹㅇ그냥 건물 수십개 박살나고 나라 망하게 생긴게 다임 별건 없었음]

[ㅅㅂ그게 별거야 미친새끼들아ㅋㅋㅋㅋ]

[코이츠 사람들 머리가 맛이 가버린wwwww]

[ㄹㅇ난리가 나기는 했지 난 집도 없어졌다고 ㅅㅂ]

"네! 맞습니다! 아주 그냥 제가 없는 동안 난리가 났더라고요! 밤하늘에 휘몰아치는 분홍색 폭풍, 무너지는 서울, 경악하는 시민들까지! 이런 난리도 없어요 난리가."

그리고 거기까지 말한 뒤 씨익 웃는 그.

그러더니 그는 그제서야, 핵심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네. 그래서 이게 무슨 일인가 하고 제가 직접 와봤습니다."

"맞습니다! 저는 지금 현재 그 폭풍 안에 들어와있습니다!"

그는 그렇게 소리쳤고.

역시나 채팅창은, 불타기 시작했다.

미친듯이 올라오는 채팅들.

그리고 그 반응을 보며, 여전히 웃던 그는.

빠르게 핵심 정보들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러분. 그동안 제가 조사해본 결과를, 여기서 말해주려고 합니다."

"이 모든 테러는 월광교라는, 어떤 종교단체가 기획한 일들이었습니다. 대충 달의 신이 나타나 세계를 멸망시킬꺼라고 믿는 사이비 종교더군요."

"그리고 이 폭풍을 일으킨건 월광교 내에서 불리길 달의 무녀, 특별한 마법을 쓸 수 있는 인물입니다. 교주의 명령대로 이 모든 일들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이 모든 일의 배후는 월광교라는 사이비 종교고, 대충 정신병자같은 교주놈이 서울 먹고 나라 먹고 세계도 먹어보겠다고 이짓거리 하고있는겁니다."

그렇게 그가 말한 몇마디에.

채팅창이, 다시 불타기 시작했다.

당연하다. 지금 정부와 협회 둘이서 계속 못밝혀내던 이 테러의 진실을, 그냥 지나가는 말하듯 술술술 다 밝혔으니까.

[아니 시발ㅋㅋㅋㅋㅋ 어떻게 아는거냐고ㅋㅋㅋㅋ]

[순식간에 테러 배후에 달의 무녀라는 공식 명칭에 다 털려버렸네ㅋㅋㅋㅋㅋ]

[아니ㅋㅋㅋ 이 간단한걸 협회는 아직까지 모르고 있었던거냐고ㅋㅋㅋ]

[속보)방송시작 5분만에 벌써 정보 이만큼 나옴ㄷㄷ]

[망고한명>>>>>>협회 모든일원]

[방송 시작부터 레전드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거기까지 말한 그는.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참으로, 오만방자하지 않습니까?"

"이미 대한민국 최대규모의 빌런연합 에고스트림이 여기 떡하니 있는데! 월광교니 뭐니 사이비같은 것들이 지들끼리 설치는게 마음에 안든다 이말입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를 찍던 카메라가 점점 뒤로 빠지며. 그가 서있는 곳을 정확하게 넓게 찍기 시작했다.

주위에는 분홍색 바람이 휘몰아치지만, 막상 그가 서있는 곳에는 바람 한점 없는.

태풍의 중심에 서있는 그의 모습을.

[???????????]

[뭐임? 여기 그 분홍색 폭풍 중심 아님?]

[시발 어케 간거임ㅋㅋㅋㅋㅋ]

[아니 방송 시작부터 이미 최종보스 있는 곳에서 시작하네 뭐임ㅋㅋㅋㅋㅋ]

[이거 지금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거임? 진짜모름;;]

[잠깐 저기 그 스타더스던 섀도우워커던 다 못뚫고 들어갔던 그 폭풍 아님? 망고 어떻게 저기 있는거냐ㅋㅋㅋ]

[아니 그럼 잠깐 그 무녀도 여기 있어야 하는거 아니냐? 왜 에고스틱 혼자 저기있음?]

[ㅅㅂㅋㅋ 까도까도 레전드네ㅋㅋㅋㅋㅋㅋㅋ]

갑작스러운 모습에 시청자들이 뒤집어지기 시작할때.

에고스틱은 여전히 그저 의뭉스럽게 웃더니.

한손을 들며, 카메라를 향해 한마디 던질 뿐이었다.

"그러니 상도덕을 어기면, 벌을 받아야겠죠?"

그렇게 말한 그는, 조용히 들었던 손가락을 튕겼고.

동시에, 카메라가 흔들리며 엄청난 굉음이 일어났다.

***

늦은밤.

모두가 잠도 안자고 에고스틱의 방송을 보고있던 서울의 도심.

그곳의 사람들은, 다들 갑작스러운 사태에 당황하기 시작했다.

방송에서 손가락을 튕기던 에고스틱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도심 한곳을 파괴하고 있던 분홍색 태풍에서, 굉음과 함꼐 서울 전역에서 보일 정도로 밝은 보라색 빛기둥이 뿜어져나오기 시작한 것.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 폭풍의 주위에 휘몰아치기 시작한 보라색 전기들.

갑자기 그곳으로부터 들려오는 엄청난 굉음.

서울 멀리서도 보일정도로 발광하기 시작하는 폭풍.

그와 동시에 휘몰아치기 시작하는 바람.

그리고 한치앞도 안보이게 흔들리기 시작하는 에고스틱의 방송.

갑작스러운 상황에 혼란에 빠진 채팅창.

실시간으로 일어나는 이상현상에 난리가 난 도심의 사람들.

그리고.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엄청난 굉음과 함께, 마지막으로 폭풍이 말그대로 폭발해버렸다.

그리고, 그 폭풍의 중심.

그곳을 보여주는 에고스틱의 방송.

분홍색의 연기가 자욱히 깔린 그곳에는.

모두가 처음보는, 의문의 여성이 흐릿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하얀 무녀복을 입고, 검은색의 긴 생머리를 가지고 있으며, 두 눈이 붉은, 신비로운 분위기에 아름다운 여인.

그런 그녀를 본 사람들은 모두 깨달았다.

아. 저게 이 모든 일을 일으킨 월광무녀구나.

그렇게 카메라가 여전히 여인만을 비추고.

방송을 보던 사람들은 에고스틱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걸 의아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아니 시바 대체 일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거에요]

[밖에 창밖으로 번떡번떡하고 난리났음ㄷㄷ]

[망고스틱 어디감?? 나 슬슬 걱정돼

[...뭐지? 설마 이 폭발이 저 여자가 에고스틱을 처리하려고 일으킨건가?]

[에이 설마 그럴리가 없어]

[설마 이대로 개같이 멸망?? 안돼!!!!!]

그렇게 시청자들이 의문이 더욱 쌓여갈 때.

그러한 의문을 종식시키듯.

그 여인의 뒤에서, 에고스틱이 흐릿하게 모습을 비추었다.

그가 뒤에 있음에도, 여전히 미동도 안하고 조용히 서있는 월광무녀.

그리고 그와 동시에 들려오는 그녀의 뒤에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

"네. 맞습니다."

"이런 겉만 요란한, 품위없고 매력없는 테러는 제가 중단시켰습니다."

그는 카메라를 똑바로 응시하며, 그녀의 뒤에서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서 선포하죠."

월광무녀의 뒤에 있던 에고스틱은 그렇게 말하며, 그대로, 뒤에서, 자신의 앞에 있던 그녀를 껴안았다.

그리고 동시에, 그녀의 얼굴- 그러니까 턱쪽에 한쪽 팔을 올려 손가락으로, 그녀의 얼굴을 들어 올리고선.

속삭이듯, 그리고 분명하게.

카메라를 보며, 이 방송을 지켜보고 있는 전국민에게.

씨익 웃으며, 입을 입을 열었다.

"네. 한마디로."

"이제부터 이 월광무녀란 분은 제껍니다."

"그러니까, 이제부터 그녀는 그 사이비 종교같은 월광교 소속이 아닌 에고스트림 소속이라는 거죠."

"그렇죠, 무녀씨?"

그렇게 에고스틱은 능글맞게 속삭였고.

여전히 그의 품에 안긴채 있던 월광무녀는.

처음의 차가운 얼굴을 어디간 채, 살짝 얼굴을 붉히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네에...."

자신의 품에 안긴 그녀의 대답에 만족했다는 듯 웃으며, 에고스틱은 카메라를 향해 말했다.

"하하. 들으셨죠?"

"저희 에고스트림 라인업에 추가된 월광무녀, 다들 많이 사랑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 그리고 월광교님들?"

그는 그렇게 말함과 동시에, 카메라에 손을 올려 엿을 날려줬다.

"수고하세요."

그리고 그렇게 말하는 웃는 그의 모습은.

실로, 악당다웠다.

***

폭풍앞에 마련된, 협회 천막.

그곳에 누워 치료를 받고 있던 신하루는, 조용히 생각했다.

....분명, 그가 머리를 쓰다듬었을 때. 그녀는 자신이 생전 처음느껴보는 감정을 느꼈다.

그리고.

"....."

침대 옆에 놓인 화면에, 월광무녀라는 여자를 뒤에서 껴안은 에고스틱의 모습이 나오는걸 보며.

그녀는 똑같이, 생전 처음으로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뭔가, 짜증나네.'

그런데 아까와 달린 좀 부정적인, 그러한 감정을.

제 112화

화사건 이후의 이야기

점차 약해지는, 보라색 폭풍.

실시간으로 전국에 송출되었던 영상의 마지막에서는, 그 폭풍을 뚫고 유유히 사라지는 비행선의 모습이 담겨있었다.

[하하하하하! 여러분, 그럼 안녕히 계십쇼!]

카메라를 향해 웃음을 보이며, 간단한 손동작으로 인사를 한 채 사라지는 가면의 남자, 에고스틱.

그리고 여전히 그의 품안에 껴안겨져 얼굴을 붉힌 채 얌전히 있는 월광무녀와.

그러한 둘의 옆에 차분히 서있는, 하얀 로브를 입은 한 여성의 모습을 끝으로.

그렇게 비행선이 밤하늘 멀리 사라지며, 영상은 마침내 끝이났다.

그리고 그 밤이 지나곤 다음날.

대한민국은

현실, 인터넷 가릴 것 없이.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

종편 토론 채널.

[그러니까, 지금까지 에고스틱이 해온걸 봐보십쇼! 이정도면 진짜 히어로라고 불러도 손색없는거 아닙니까?]

[에... 그, 이상한 소리는 하지 마시고. 아무리 그래도 에고스틱이 지금까지 테러를 저지른게 있는데]

[그래서! 사망자 한명이라도 있습니까! 있냐고요?!]

[....지금까지는 사망자가 있지는 않았지만, 혹여 잘못했으면 충분히 나올뻔한...]

[조용히 하세요!]

호통을 치는 남성과, 그에 맞추어 땀을 흘리는 중년의 패널.

배심원들은 에고스틱을 지지한 남성측의 손을 들어줬다.

*

시사 프로그램.

[에고스틱. 지금까지 모두에게 A급 빌런으로 알려진 인물이죠. 그런데 말입니다, 혹시 그가 예전에 히어로였다는 소문, 들어보신 적 있으십니까?]

[저희 그것이 알고싶다는, 예전 부산에 한 호텔에 테러현장에 진입해, 자신을 S급 히어로라고 주장한 뒤 사라졌던 한 남성에 대해 자세히 조사해 보았습니다.]

[A급 빌런. 그리고 S급 히어로. 과연 무엇이, 진실일까요.]

*

뉴스.

[안녕하십니까. 9시 뉴스입니다. 지금까지 서울을 불태웠던, 월광무녀의 두번째 테러. 많은 시민들이 두려움에 떨었었는데요. 그 테러가, 세번째가 진행되는 와중에 종료되었습니다. 다름아닌 빌런, 에고스틱에 의해서 말입니다. 믿을 수 없는 이 소식, 김동한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

경제신문.

[自我棒의 對테러진압 후 최근 한달 최초로 코스피 반등... (사진: 환호하는 증권가 직원들)]

*

유튜브.

[미국이 경악하고 일본이 뒤집어졌으며 영국 여왕마저 깜짝 놀란 K-빌런 에고스틱 덕분에 대한민국의 위상이 세계에 알려지다? "빌런이 히어로와 다를 바가 없는 한국에서 저도 살고 싶습니다." 한국 이민 역대 최고치 기록 예상!]

*

에고스틱의 팬카페는, 말할 것도 없다.

[세계 최고의 빌런ㅋㅋㅋㅋ]

[이 시대 제일의 빌런 연합이면 개추ㅋㅋㅋㅋㅋ]

[SSS급 히어로를 아직도 빌런이라고 보도하는 새끼들이 있다?]

[화력요청)국회에 에고스틱 히어로로 재심사 청원ㄱㄱ]

[어제오늘 하루도 안쉬고 카페 상주하고 있는 망붕이만 개추ㅋㅋㅋ]

[망고스틱 <- 얘는 그냥 모든걸 잘함ㅋㅋㅋㅋ]

[반년 가까이 기다린 보람이 있네 ㅅㅂㅋㅋㅋ]

[아니 시발 이제 에고스트림 멤버들 레전드네ㅋㅋ]

[A급 히어로 3명 <<<<< 1 에고스틱 ㄹㅇㅋㅋ]

*

[이봐, 신. 어째서 회의를 시작하지 않는거지?]

(대충 신이 정면을 보고 있는 짤)

"아직 에고스틱이 오지 않았소."

=[댓글]=

[댓글 0개인데 좋아요 1000개는 돌아버린거냐ㅋㅋㅋㅋㅋㅋ]

*

[우리는 에고스틱의 시대에 살고있다]

ㄹㅇ 망고 없었으면 지금 서울 거의 멸망 직전까지 갔었을텐데

그냥 어떻게 월광무녀 꼬셔가지고 아니 ㅅㅂ 레알 어케한거냐ㅋㅋㅋㅋㅋㅋ

=[댓글]=

[테러도 잘하고 여자도 잘꼬시고 못하는게 없음 그냥ㅋㅋㅋㅋㅋ]

[아니 ㄹㅇ 말 그대로의 의미로 꼬신거 같은데ㅋㅋㅋㅋ 얼굴 붉히는거 봤냐?]

ㄴ[월광무녀 처음 봤는데 그게 망고 품에 안긴채 얼굴 붉힌거임 ㅅㅂㅋㅋㅋㅋ]

[월광교인가 뭔가 그냥 NTR 당해버렸네ㅋㅋㅋㅋ]

ㄴ[금태양 망고... 줄여서 망태양ㄷㄷ]

ㄴ[우효wwww 월광교의 무녀 겟☆]

ㄴ[아니 근데 카메라에 엿날릴때 진짜 금태양인줄ㅋㅋㅋ]

*

[망고스타 아이스망고 다 물로켓이였네ㅋㅋㅋㅋ]

이제는 달빛망고의 시대다

(에고스틱이 월광무녀 껴안은 사진)

(에고스틱의 품에서 얼굴 붉히는 월광무녀의 사진)

에고스틱 주변에 이정도로 스킨십 나간 여자들 있음?

아ㅋㅋㅋ 이전까지는 착즙이었다면 이제는 찐이라고ㅋㅋㅋㅋ

=[댓글]=

[달빛코인 개같이 탑승ㅋㅋㅋㅋㅋㅋ]

[ㄹㅇㅋㅋ심지어 같은 에고스트림 팀이라 가능선 존나 높음ㅋㅋㅋㅋ]

ㄴ[일렉트라도 같은 빌런인데... 에고트라는 잊혀짐?]

ㄴ[그게 누구죠? 기억도 안나는데요]

[심지어 이번에 새로운 여자 영상 마지막에 잡히지 않음? 그 하얀색 실크옷 입은 여자]

ㄴ[ㅇㅇ이번에 에고스트림 홈페이지에도 언급되어 있던데. Moonlight랑 Saintess라고 추가됨. Saintess가 그 여자인듯?]

ㄴ[주위에 여자가 수상할정도로 많은 망고ㄷㄷ]

[응 이번에 인터넷에 에고스틱이 폭풍 들어가기 전에 쓰러진 스타더스 쓰다듬는거 유출됐어~ 에고스타 못잃어]

ㄴ[? 그거 어디서 봄?]

ㄴ[잠깐ㄱㄷ]

ㄴ[아니 ㅅㅂ아까까지만 해도 누가 블로그에 올렸었는데 그 블로그 채로 사라짐 뭐냐?]

ㄴ[망상병 게이야....]

ㄴ[이게 에고스타단 평균...?]

ㄴ[아니야 시발 진짜 있었다고!!!!]

ㄴ[에고스타단 팩트로 안되니까 이제는 선동과 날조로 싸우는거보소ㅉㅉ]

ㄴ[아니 시발 억울해죽겠네]

[근데 지금 협회 반응이 존나 궁금하네ㅋㅋㅋㅋ 얘네 뭐하고 있을까?]

***

대한민국 초상 능력자 협회.

일명 히어로 협회의, 회의실.

"크하하하하!! 내가 진짜 속이 다 시원하군 그래."

"협회장님... 저, 조금만 체면을..."

"아니, 기분이 좋은걸 어떡하는가. 아! 진짜 이번에는 속된말로 좆되는줄 알았네. 서울 버리고 수도 이전해야하는 판이었단 말이다. 근데 에고스틱 점마가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와서 모든걸 해결해 줬는데, 어찌 기분이 안좋을수 있겠나. 크하하하하하!"

그렇게 회의장 한복판에서 협회장의 커다란 웃음이 울려퍼지고.

옆에 앉아있던 협회 인사들이, 난처한 표정으로 협회장에게 말을 했다.

"저... 근데 협회장님. 지금 웃으실 때가 아닌거 같습니다. 언론에서 빌런이 사건을 해결하는동안 협회는 뭘했냐고 기사가 자꾸 나오고 있어서..."

"아 그거? 우리 언론대응팀은 뭘하고 있던겐가. 쯧. 자, 불러줄테니 가서 이렇게 기사 내보내라고 하게. 큼. 우리 협회 소속의 히어로들이 끝까지 버텨주었기에, 최소한의 피해로 이번 사건이 끝나게 되었다. 비록 빌런의 소속이 바뀌기는 했지만, 협회는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달려나가겠다. 이정도로."

"네. 알겠습니다."

"크하하하! 어쨌든 이건 뭐 문제도 아니네. 서울 멸망보다야 낫지!"

그렇게 한참을 더 웃던 협회장은, 이내 드디어 표정을 다시 정돈한 채 본격적인 회의에 나서기 시작했다.

"그래서. 우리 히어로들은 지금 뭘하고 있나?"

"스타더스는 현재 병원에서 치료중이고, 아이시클은 다시 유성기업에 돌아가 피해자들에게 후원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섀도우워커는... 아직도 자택에 칩거하고 있다고 합니다."

"에휴. 김자현 그 친구는 정말... 남자가 젊은 나이에 한번 실패를 맛볼 수도 있지. 뭘 그리 꽁해져가지고."

"지금도 그의 여자친구가 계속해서 연락을 시도하고 있다고는 하는데... 별 소용이 없어보인답니다."

"쩝. 뭐,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좀 나아지겠지. 일단 그 문제는 나중에 생각하고, 따로 보고할만한 사안은 없나?"

협회장의 질문에, 눈치를 보던 직원 한명이 슬며시 입을 열었다.

"저... 그리고, 요즘 에고스틱에 대한 문의가 엄청 오고 있습니다."

"뭐라고?"

"언제 S급으로 승격되냐는 문의입니다. 그의 휘하에 있는 월광무녀가 이미 S급인데, 그녀를 필두로 한 수많은 A급 빌런 연합을 이루고 있는 에고스틱이 왜 아직도 A급이냐고..."

"그거? 저번에 국제 협회 총괄 위윈회에 문의 넣지 않았었나? 스타더스랑 에고스틱, 아직도 S급으로 승격 안되었었나?"

"네. 아마 지금 본사가 빌런 습격으로 난리가 났다는데, 그거 때문인거 지체되는거 같습니다."

"그래? 본사가 미국에 있었었나? 하여튼 그 아메리카쪽은 하루도 바람 질 날이 없어. 하여튼 그건 됐고, 에고스틱이 말했던데로 월광교는 추적해보고 있나?"

"네. 저번에 저희가 추리한 내용이 사실인거 같습니다. 아마 교주를 신의 사도로 모시는 종교로 추정되고, 그 교주가 특별한 능력을 가진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그 조직이 너무 폐쇄적인지라, 정보를 얻어내는데에 어려움이 좀 큽니다."

".... 대체 에고스틱 그놈은, 어떻게 거기까지 안건지. 여하튼, 뭐. 그래도 그 달의 무녀라는 사람을 에고스틱에게 뺐겼으니, 거기도 타격이 크지 않겠어? 크하하하하!"

***

지하 깊숙한 곳. 그곳에 있는 이질적인 성당.

그림자가 진 그곳에, 교인 하나가 교주에게 다가가, 무릎을 꿇고 말하였다.

"...죄송합니다, 교주님. 아무래도 달의 무녀와의 연결이 완전히 끊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낮은 목소리로 말하는 그의 말에.

의자에 앉아있던 교주는 살짝 침묵하더니, 이내 그에게서 조용히 긁는듯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그래 알겠다. 어차피 배교자에게 허락된 영생은 없으니.... 그녀는 신의 노예였을 뿐이니, 어떻게 되던 다 그녀의 업으로 돌아가겠지.... 우리의 계획에는 아무 문제가 없으니, 상관없도다 아해야. 이만 돌아가보거라.

그렇게, 마치 별 일도 아니라는 듯 말하는 교주였지만.

막상 의자의 팔걸이를 쥐어잡는 그의 손이 세차게 떨리고 있는걸 확인한 교인은, 이내 고개를 숙이고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그리고 다시 홀로 남은 교주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에고스틱이라...

그래.

....기억할만한 애송이로구나....

***

월광교주는 전전긍긍하고.

한국인들은 찬양하며.

전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서울의 수호자 K-빌런 에고스틱.

"오빠. 스타더스는 대체 왜 쓰다듬은거에요? 아주 그냥 오빠가 스타더스 좋아한다고 온동네 광고하는 거에요?"

"야. 그... 사람많은데서 저 무녀 막 껴안고 막 그 얼굴도 만지고... 그건 좀, 그, 너무 선정적이었던거 아니었냐?"

"다인씨. 지금 이설아라는 사람한테서 전화 계속 오는데요?"

"...."

인 나는 현재, 나와 스타더스의 관계와 이번 빌런 영입과정에 대한 심도깊은 논의를 멤버들과 하고 있었다.

여전히 내 뒤에는 달의 무녀, 백은월이 딱 달라붙은 채.

....살려줘.

제 113화

화악당의 건망증

나는 옳은 일을 했다.

이번 월광교의 테러는 막아야하는 일이었기에, 막았다. 원작에서 이번 일로 서울이 그야말로 개박살이 나서 본격적인 피폐물로 돌입한다는걸 생각하면 당연한 일.

또 내가 방송까지 킨건, 월광교를 견제함과 동시에 어그로를 끌기 위함이기도 했다. 원작처럼 서울테러 이후 대한민국 전역에 월광교에 대한 공포감이 깔려 분위기가 굉장히 어두침침해지는걸 막기 위해, 월광교는 별거 아니라는 인식을 준 것. 나같은 A급 빌런한테도 저지당하는게 월광교다 이말이야- 같은, 이런 연출을 의도했다.

또 달의 무녀 백은월. 원작에서 그녀가 죽을때 눈물을 줄줄 흘린 나인만큼, 그녀또한 무조건 살릴 생각이었다. 또 이왕 살리는김에 내가 창시한 빌런 연합에 끌어들이기도 하고. 비록 이번에 보여준 모습은 마법진으로 강화된거라고 해도, 기본적으로 공격마법, 환영마법등 다양한 능력을 지닌 그녀를 영입하는건 꽤나 필요한 일이었다. 우리 에고스트림에 무력을 가진게 나를 빼면 일렉트라, 데스나이트 단 둘이 끝인만큼 더욱 더.

그리고 물론. 거기서 스타더스를 쓰다듬은건... 음, 그래. 사실 꼭 필요한 일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쩔 수 없었다. 내 최애가 그렇게 쓰러져서 힘들어 하는걸 육안으로 봤는데, 그 상황에서 몸이 안튀어나갈 사람이 누가 있겠냐고. 불가항력이었다. 애초에 뭐, 이미 그녀한테 그런 적이 이미 여러번인데 뭐 어떻냐는 생각도 있다. 기차때도 그랬고, 비행기때도 그랬고. 어차피 그녀는 짜증만 났을텐데 뭐. 거기에 몇안되는 찍힌 사진들도 해킹해서 다 지워버렸으니, 증거도 안남고 해결!

결과적으로 말하면, 난 잘못한게 하나도 없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누가 나한테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 비록 대중들 사이에서 내 이미지가 살짝 좋아졌다는 문제점이 있기는 했지만, 그거야 앞으로 테러 몇번 하면 사라질 일. 아무 문제도 없다.

-라고 비슷하게 말해봤으나, 여전히 혼났다.

"오빠, 걱정되서 그래요. 스타더스가 그러다가 오빠의 정체를 알아차리면 어떡해요? 오빠가 입으로 말했잖아요. 스타더스가 오빠를 계속 적대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라면서요. 요즘 오빠 하는거보면 스타더스가 언제든 오빠를 의심해도 안이상해요."

진지한 목소리로 나에게 그리 말하는 서은이.

그런 그녀에게 나는 피식 웃으며 말해줬다.

"서은아... 무슨 말인줄 알겠는데, 그런 걱정은 안해도 돼."

"왜요?"

"스타더스가 얼마나 신념이 굳은데."

불의를 용서하지 않는 그녀의 성격에, 이미 세상 모든 불의는 다저지르고 다니는 내가 곱게 보일리가 없다.

...물론, 생각해보니까. 저번에 이상한 낌새를 보이기는 했지.

'.....이걸로, 빚은 갚은거지?'

내게 안긴채 그렇게 말하던 그녀의 목소리가 오버랩 되었다.

...근데 그건 그냥 그녀가 빚지고는 못사는 성격이라 그런거지, 다른 의미가 있을리가 없다. 설마 그럴리가.

"하여튼, 이 이야기는 이제 그만! 나도 좀 쉬자. 그 폭풍 뚫느라고 얼마나 개고생을 했는데..."

움찔-.

내가 폭풍을 언급하자, 내 옆에 앉아있던 백은월이 움찔하는게 느껴졌다.

"죄, 죄송해요...."

"아니야! 사과할 일 아니니까, 신경쓰지 마."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옆에 있는 백은월을 바라보았다.

원래 입던 무녀복은 치워버리고, 뽀송뽀송한 티셔츠로 갈아입은 그녀.

서은이 앞에 있으니 둘이 키도 비슷하고 머리카락도 흰색 검은색으로 정반대다 보니까, 약간 쌍둥이처럼 보이기도 한다. 생긴건 정 반대지만. 생각해보니 서은이랑 나이도 비슷하니까, 진짜 쌍둥이같네.

참고로 백은월이 집에 온 이래, 서은이와 그녀는 금새 친해졌다.

애초에 서은이와 나잇대가 비슷하던 사람이 우리 집에 아무도 없었었는데, 이번에 온 백은월이 나이가 유일하게 비슷한만큼, 금새 친해진거 같다.

물론 여전히 백은월은 모두에게 존댓말을 쓴다며 서은이에게까지 말을 놓고 있지 않고 있지만.

"....근데 넌 왜 그렇게 오빠 옆에 붙어있는거야?"

"....옆에 붙어있으면 안되나요?"

"아니. 안되는건 아닌데, 오빠가 불편해하잖아."

"진짜요? 정말인가요, 다인씨?"

"아니. 괜찮은데?"

"괜찮다고 하시네요."

".....흥."

....친해진거 맞지?

하여튼, 백은월도 금새 우리 집에 잘 적응해서 스며들었다.

차가운 월광교에만 있다가, 다들 따뜻하게 맞아주는 모습을 보고 그녀가 눈물을 흘리는 해프닝도 있었긴 한데. 하여튼.

얘가 월광교 어두침침한 어딘가에서만 쭉 살다보니까, 사소한거에 쉽게 감동하는 모습을 보인다.

예를 들어 이번 식사 시간만 봐도.

"이게... 뭐죠?"

"그냥 오므라이스인데. 맛이 어때. 내가 만든거거든. 맛있지?"

"....흑."

"야, 왜 울고 그래? 울지마!"

"세희 언니. 기어코 애를 울린거에요?"

"세희야. 실망이다."

"아니! 왜 다들 나한테 그래. 그렇게 맛이 없어? 나는 먹을만 하던데?!"

"....훌쩍. 그게 아니라, 이렇게 맛있는건 처음 먹어봐서 그래요."

...대체 월광교에서는 뭘 먹였길레 애가 오므라이스 하나에 눈물을 터지게 한거야?

하여튼, 그 이후로 은월이한테 다들 먹을걸 먹여주는 이상한 캠페인이 열리기도 했다. 그냥 밥부터 사이다라던지, 초콜렛이라던지... 뭐 줄때마다 눈을 반짝이는 모습이, 자꾸 먹여주고싶달까. 이게 할머니의 마음?

물론 은월이가 단순히 귀엽기만 한건 아니였다.

"은월아 너가 쓸 수 있는게 너가 저번에 보여준 그런 공격마법이랑, 또 환상마법이라고 했지?"

"네. 예를 들어.... 이런거요."

거기까지 말한 그녀는 손을 휘저어서 허공에 마법진을 만들어 바로 사슴을 한마리 소환했다.

생긴게 진짜 사슴처럼 뛰는데, 아주 리얼하기 이로 말할수가 없었다. 물론 만지면 바로 보라색 가루로 흩날리기는 했지만.

"대단하네."

내가 칭찬해주자 배시시 웃으며 좋아하는 은월이었다.

공격마법에 환상마법에... 하여튼 마법은 딱봐도 쓸모 있어보이니까 뭐. 기본적으로 드디어 우리 파티에 무력이 있는 사람이 추가되었다는게 기쁠 뿐이다.

그렇게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래, 메인 이벤트도 하나 깨부셨는데 잠시 이렇게 평온한 시간이 있어야지.

".....이제, 어떻게 될려나."

"다인 오빠? 뭐하시는 건가요?"

"아 은월아."

그리고 그날 밤.

베란다에 나와 난간에 기대, 비오는 밤하늘을 비추는 달빛을 바라보고 있는 내 쪽으로 은월이가 다가왔다.

"그냥, 잠깐 경치보고 있었어. 너도 같이 볼래?"

"네."

내 물음에 바로 옆에 착 달라붙어 같이 밖을 바라보는 은월이를 살짝 쓰다듬어 주고, 나는 다시 생각에 빠졌다.

....이제 앞으로는 어떻게 될려나.

원작의 메인이벤트인 월광교의 서울 붕괴를 내가 저지했다.

그로 인해, 원작과는 다르게 이 세계는 서울이 붕괴하지 않게되었다. 앞으로도 쭉.

그리고 이로 인해, 아마 내가 아는 미래도 바뀔 가능성이 높다.

"..."

원작.

원작에서는 서울이 박살난 뒤에야 백은월이 죽게된다.

그로 인해 폐허가 된 서울을 피해, 수도가 임시로 부산으로 지정되게 된다.

그리고 이는 부산에 거점을 둔 유성그룹의 실세이자, 대한민국을 집어삼킬 야욕을 품은 이설아에게 절호의 기회가 된다.

그렇게 잠시 수도가 임시로 부산으로 지정되고, 대통령을 포함한 주요 관공서랑 기업들이 부산에 내려온 틈을 타 다 포섭해버린다. 정치인들은 회유하고, 기업은 인수하는 식으로.

그렇게 서울 재건이 끝나 다시 신서울로 옮겨갈 즈음에는, 대한민국의 반 넘게가 다 이설아의 손에 떨어지게 된다.

그리고 이 미래는 내가 서울을 지키는 바람에 없어지고 말았다. 즉, 이설아의 대한민국 흑막 계획이 원작보다 더뎌질거라는 소리.

사실 이게 문제가 아니다.

원작과 달라지는 점 제일 큰 하나를 꼽자면, 원래 죽었어야 할 사람들이 죽지 않았다는 점이겠지.

달의 무녀, 백은월의 몇십번에 걸친 테러로 서울에서 원래 참많이 죽었었다. 특히 4번째 테러부터 그녀가 컨트롤을 포기하며, 더더욱.

그런데 이번에는 아무도 죽지 않았다.

즉, 이들이 제일 큰 나비효과.

이들 중 미래의 테러리스트가 있을지 누가 알겠어.

"휴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이제부터는 원작과 어느정도 틀어지는 일이 생길 각오를 해야한다. 아마 원작에서 일어난 일은 웬만하면 다 일어나겠지만, 이제는 일어나지 않은 일이 일어날 각오도 해야한다는 소리다.

거기에 월광교.

교주의 움직임에도 어느정도 주의를 할 필요가 있다. 내가 원체 어그로를 끈 바람에.

...물론 아마 내 예상으로는 딱히 신경 안쓸 가능성이 제일 높기는 하다. 애초에 그놈의 이세계와 연결된 포탈을 만들어 신을 불러내겠다는 열망이 가장 큰 인물이라, 따른건 다 겉가지 취급해.

그래도 혹시 모르니 어떤 행동을 할지 대비하고 있어야겠지만.

"이설아, 미래, 월광교. 이거 셋만 주의해야 겠구만."

"네?"

"그런게 있단다."

나는 옆에서 궁금한 듯 바라보는 백은월의 머리를 한번 더 쓰다듬어주고는 다시 떠올렸다.

이설아, 미래, 월광교라.

....잠깐.

이설아.

내가 이설아한테 연락을 했던가?

갑자기 싸한 기분이 든 나는 휴대폰을 켜 통화기록에 들어가봤다.

***

[부재중전화]

이설아(67)

***

"....아. 좆됐네."

"왜 그러시나요 오빠?"

"....은월아, 누군가 너가 건낸 말을 67번 씹으면 기분이 어떨거같니?"

"음... 화가 나겠죠?"

"그렇겠지?"

좆된거 맞네.

나는 서둘러 전화를 걸었다.

늦었긴 한데, 그래도 일단은.

아직까지 기다리고 있지는 않겠지만.

***

하늘에 구멍이 뚫린것 마냥, 비가 퍼붓고 있는.

밤의 부산.

유성그룹 꼭대기층, 사장실.

쿠르릉. 콰앙.

천둥소리만이 울려퍼지는, 불이 꺼진 그곳에서, 전화기가 빗소리를 뚫고 벨소리를 시끄럽게 울려퍼지고 있었다.

따르릉. 따르릉.

번쩍.

그리고 그순간 번개가 내리치며, 어두운 사무실이 순간 밝아지며.

그곳에 홀로 조용히 앉은 여성의 모습이 드러났다.

손에 깍지를 끼고 책상위에 올린 채.

조용히 앉아 전화기를 바라보는 이설아의 모습이.

".....늦으셨네요, 다인씨."

제 114화

화방비책

"다인씨. 저한테 미안해요 안 미안해요?"

"미안하다..."

유성그룹 서울 지부의 사장실.

나는 거기서, 이설아한테 사과하고 있었다.

"아니... 솔직히, 저한테는 말씀 해 주실 수 있었던거 아니에요? 제가 그걸 어디가서 가볍게 말하고 다니겠어요?"

짐짓 화난양 나한테 툴툴거리는 그녀.

사실 서운한건 맞을거다. 서울이 완전히 개박살나는 와중에 나한테 급히 연락했더니, 나는 그냥 잠수를 타버렸으니까. 그러다가 중간에 말도없이 방송키고 등장해서 문제를 뚝딱 해결하고, 다시 잠수타버리고.

하늘색 머리카락을 옆으로 휙 돌리며, 어째 흥!이러는 소리가 아른거릴 정도로 나한테 삐졌다는 티를 팍팍 내는 그녀.

....그리고 물론, 이건 다 연기일거다.

애초에 이설아가 누구인가. 원작에서 아예 대한민국을 꿀꺽 집어 삼킬정도로 능력있는 사람. 그만큼 머리가 잘 돌아가는 그녀인만큼, 저렇게 애처럼 행동하는 것도 다 계산된 행동일 가능성이 크다.

물론, 어. 그냥 뇌를 비우고 진짜 삐져서 저렇게 행동하는 걸수도 있고. 애초에 그녀입장에서는 충분히 서운할 수도 있다. 나야 애초에 스타더스를 위해 모든걸 계획한만큼, 이설아한테 말해주면 혹시나 스타더스가 특유의 감각으로 눈치챌까봐 그냥 잠수탄거지만. 그녀가 그걸 알리는 만무.

그러니 일단은 미안하다고 하는게 내 최선이다.

....사실 전화해서 처음 목소리 들었을 때는 사람 하나 담굴 분위기였는데, 지금 정도면 많이 나아진 편이다.

"흥."

"알았어, 알았어. 내가 진짜 미안해. 앞으로 안그런다니까."

"....진짜죠?"

"그래."

거짓말은 아니다. 주어가 빠졌으니까.

다만 내 난입이 끝나자마자 바로 연락을 안준건 미안하지만, 그 전에 미리 연락을 안해준건 어쩔 수 없었다. 아마 앞으로도 마찬가지고.

다만 지금 그런 얘기를 꺼내는건 하수. 여기서는 일단 얼굴에 철판을 깔고 보는거다.

"....그러면, 이번에는 다인씨가 잘못한거 맞죠?"

"그래."

"그러면.... 저 부탁 하나만 들어줘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자기 손을 내려다보며 그렇게 아까보다는 살짝 작은 목소리로 말하는 그녀.

...뭐지? 무슨 부탁?

순간적으로 불길함이 몸을 휘감았다.

그 이설아인데. 대체 무슨 부탁을 할지 모르겠네.

"그래. 뭐든 들어줄께. 말만해봐."

그래도 일단 지르고 봤다.

...너무 이상한 부탁을 하면, 기절시키고 튀어야되나 그런 생각을 하던 그때.

"....얼굴 보여줘요."

"응?"

"저도! 당신 가면 벗은 맨얼굴, 보여달라고요..."

이런말을 하는게 살짝 부끄러운듯, 말끝을 흐리며 살짝 얼굴이 붉어진 이설아.

....그렇게 나를 겁박하더니, 결국 결론은 얼굴 보여달라는 거였다고?

자기가 말해놓고도 내가 거절할까봐 힐끗힐끗 내 눈치를 보는 그녀에게, 나는 피식 웃고는 그냥 가면을 벗어줬다.

"자. 됐지?"

"어...."

내가 너무 쉽게 벗자, 살짝 당황하는 그녀.

그러나 그러기도 잠시, 이내 눈을 반짝이며 내 얼굴을 요목조목 뜯어보기 시작했다.

"....야, 너무 그렇게 뚫어지게 바라보면 좀 부담스러운데."

"아니, 신기해서요."

"...뭐가. 내 얼굴이?"

"아니요. 평소에 인식저해 있는데도 가면쓰고 다니시길래 무슨 얼굴 한쪽에 큰 흉터라도 있는줄 알았더니, 없네요? 그럼 얼굴 한쪽에 가면은 왜쓰고 다니시는 건가요?"

"이 가면이 평범한게 아니야. 수많은 기능들이 있지."

하지만 다들 안쓰이고 주로 채팅창을 보는데 사용되지.

그런 말은 굳이 덧붙이지 않았다.

"어쨌든 좋아요. 이제 얼굴도 봤으니까, 절 집에 초대하는 일만 남았네요. 초대해 주실거죠?"

"...그건 나중에."

나는 일단 선을 그었다.

...아무래도 집 위치까지 노출하기는 좀.

애초에 얼굴을 맘놓고 깐것도, 이번에 새로온 달의 무녀, 백은월이 자체적으로 강력한 인식마법을 걸어줄 수 있어서 깐거다.

"알았어요."

그렇게 대답하는 이설아의 얼굴에는 일말의 아쉬움도 보이지 않았다. 오늘은 얼굴까지 본걸로 만족하는 모양. 아까 붉어졌던 얼굴은 다시 멀쩡해진지 오래.

....당한건가?

내가 그런 생각을 하기 전, 그녀는 마침 기억났다는 듯 나한테 말했다.

"아. 그리고 다인씨. 문제가 있던데요."

"뭔데?"

"지금 인터넷도 그렇고 전체적인 여론조사도 그렇고, 다들 에고스틱을 좋아하는 분위기에요. 거의 히어로 수준? 이러면 문제되는거 아니에요?"

그렇게 말하며 나한테 우려의 시선을 건네는 이설아.

"....심지어 저희가 자체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선 저보다 당신이 호감도가 더 높더라고요."

그게 포인트였냐.

결국에는 서은이가 했던 말과 비슷한 말이었다.

"...그래? 그정도라고?"

"네. 인기가 아주 하늘을 찌르던데요. 무슨 망고거리면서요. 심지어 해외에서도 주목하고 있어요. S급 히어로들도 망설이던 테러를 A급 빌런이 혼자 처리했다고."

해외 뭐시기가 국뽕티비의 어그로가 아닌 실화라고?

계속해서 이어지는 그녀의 당황스러운 말에 나는 이게 살짝 심각하게 고민이 되는걸 느꼈다.

흠... 이러면 나가리인데.

"아니 근데 다인씨. 상식적으로 서울 전국민이 망하게 생긴걸 단신으로 구해내셨는데, 인기가 안오르면 오히려 이상한거 아닐까요?"

"난 빌런인데?"

"...스스로 빌런이라고 호소한다고 해서 빌런이 되는건 아니에요."

그렇게 말하며 나를 짜게 식은 눈으로 바라보는 이설아였다.

"...쓰읍."

역시, 바로 테러를 일으켜야 하나.

그래. 내가 빌런임을 증명하려면 테러만한게 없기는 하지.

"...그래, 알려줘서 고맙다."

"너무 인기가 많아서 고민이라니, 참 부럽네요. 하아."

그렇게 말하며 한숨을 쉬는 그녀였다.

그뒤로도 우리는 몇마디를 나눈뒤, 헤어졌다.

앞으로는 이런 상황이 일어났을 때 꼭 연락을 주겠다는 약속과 함께.

...지킬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만, 일단 그렇게 내뱉고 봤다.

근데 뭔가 찝찝한데, 기분탓이겠지.

***

"휴우...."

에고스틱, 다인이 떠난 사장실.

그곳에서 다시 홀로 남은 이설아는, 한숨과 함께 창밖을 내다보았다.

사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에고스틱. 그가 딱히 자신을 그렇게까지 신뢰하고 있지 않다는걸.

이설아. 그녀는 스스로 눈치가 빠르다고 자부한다.

애초에 자신의 비상한 머리가 없었다면, 이 위치까지도 오르지 못했었을거다. 할아버지를 상대로 이 회사를 장악하는거부터 어린 그녀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었던 만큼.

즉, 사람을 상대로 한 눈치는 자신할 수 있는 수준.

그리고 그가 본 다인은, 자신을 믿지 않고 있었다.

'....어째서?'

사실 그녀는 그게 의아했다.

...그녀가 뭘했다고, 그렇게까지 믿지 않는걸까.

애초에 그녀는 에고스틱, 그에게는 잘해주기만 하였다. 나쁜 마음을 먹은 적도 딱히 없고.

그러나 수상할정도로 그는 그녀를... 뭐랄까. 아무리 마음을 연듯해도 약간 경계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무리 자신이 다가가도, 늘.

마치 그녀 자신도 모르는, 그녀에 대한 무언가를 아는것처럼.

'...답답하네.'

정보의 공백.

아무리 눈치가 빠른 그녀여도, 그 점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애초에 딱봐도 그가 대한민국을 집어삼키려는 그녀의 행보에 불만을 품는거 같지는 않다. 애초에 지원하기까지 했는데.

그러면 대체 왜지?

'...스타더스는 그렇게 믿으면서.'

그리고 그의 이해할 수 없는 스타더스에 대한 헌신.

테러를 일으키는 이유도 다 스타더스를 위해서라고 하니 거의 중증이다. 어찌보면 인생을 애초에 스타더스를 위해 바치고 있는 셈. 엄청난 순애보다.

'하루가... 매력이 있기는 하지만, 그정도인가?'

따지고보면 그녀나 자기나 둘다 같은 A급 히어로인데, 어째서 이렇게 차별대우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그를 알아봐주지도 않는 그녀보다는, 자기가 낫지 않나?

하루가 뭐가 잘났다고.

"....아니지."

생각이 너무 우중충한 방향으로 흐른다.

그녀는 숨을 한번 내쉬운뒤, 상황을 정리했다.

...그래.

어차피 늘, 마지막에 이기는건 나였다.

한번 손에 넣기로 한건 늘, 어떻게든 쥐어왔던 자신이기에.

".....두고봐."

언젠가 에고스틱.

당신이 스타더스가 아닌, 나만 바라보도록 만들어드리죠.

***

아이시클은 꿍꿍이를 꾸미고, 에고스틱은 다음 테러에 대해 고민하던 그때.

에고스트림의 본부로 쓰이는 큰집. 그곳과 연결된, 원래 본부였던 지하기지에 두 소녀가 걷고있었다.

"....서은씨. 저희 지금 어디로 가는건가요?"

"너한테만 보여주는거니까, 따라와봐."

벽면이 다 새하얀 지하의 통로.

전등이 깜빡깜빡 거리는 그곳에서, 백은월은 한서은의 옷을 잡고 불안하다는 듯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걷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한테, 말을 하는 서은이.

"너, 이제는 에고스트림에 대해 알지?"

"네. 다 배웠어요. 다인씨가 창시한, 빌런 연합이라면서요?"

"그래. 오빠가 만들었지. 근데 거기에 초대 멤버가 누구였는줄 알아?"

"누군데요?"

"수빈 언니랑 나였어."

거기까지 말한 서은이는,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근데 세상 사람들은 수빈언니만 알고 나는 몰라. 심지어 이번에 하율언니도 세인티스인가 뭔가 하는 이름으로 데뷔했는데, 오빠는 나만 감싸돈다고."

"저런, 왜죠?"

"아마 내가 어리거나, 무력이 없다고 생각해서겠지.참나, 애초에 나도 이제 고2인데, 고2면 어른 아니야?"

"....어, 어른이 아니긴 하죠?"

"아니지! 이정도면 솔직히 충분히 어른이지."

거기까지 말한 그녀는, 자신들의 앞에 놓인 거대한 철제 문 앞에 비밀번호를 누르기 시작했다.

이내 쿠웅- 하는 소리를 내며 열리는 문.

"...서은씨? 저 깊숙한 곳에서 저를 버리고 갈 생각은 아니죠?"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따라와봐."

여전히 불안하다는 듯 눈을 기울이는 백은월의 앞으로, 한서은은 걸어갔다. 여전히 말을 하며.

"하여튼, 나이는 오빠의 착각이니까 넘어가고. 무력. 그게 문제겠지 아마. 내가 주체적으로 테러를 못한다고. 특히 내가 스타더스, 그 무식하게 힘만 쎈 여자는 상대할수 없어보이니까. 아, 스타더스는 알지? 그 오빠가 이상하게 신경쓰는 여자."

"네. 들었어요."

"하여튼, 나랑 세희언니랑 같이 내가 스타더스를 직접 상대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했었어. 그리고... 그게 이번에 완성되었지."

그렇게 말하며 한서은은 또다른 철제 문의 보안을 풀었다.

이내 끼이익- 하며 거대한 차고같은 문.

그리고 그 뒤로 넓고 어두운 공간이 보였다.

"자, 소개할께. 이번에 내가 만든거야."

그 말이 끝난 뒤 씨익 웃으며, 그녀는 불을 켰다.

이내 불이 탁 켜지고.

위이잉-.

그 공간 한가운데 있는 것이 백은월의 앞에 보였다.

대략 사람 키의 두배정도는 되보이는.

강철같은 단단한 물질로 이루어진, 거대한 슈트같은 것이.

팔 다리 몸통 전부 아주 크고 단단해 보이는, 회색빛의 거대한 기계덩어리가 주는 위압감에 백은월은 입을 헤하고 벌렸다.

"....와. 이게 뭐에요?"

감탄하는 백은월을 보며, 한서은은 뿌듯하다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답해쥤다.

"내가 입을 슈트... 그러니까, 거대 병기야. 이것만 있으면, 나도 그 여자를 직접 상대할 수 있겠지!"

"대단하네요. 직접 만드신건가요?"

"그래. 이름도 붙여줬다고."

"뭔가요?"

궁금하다는 듯한 백은월의 질문에, 서은이는 씨익 웃으며 답해줬다.

"스타버스터."

"스타더스만을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진, 궁극의 무기지."

그렇게 말한 서은이는, 허리에 손을 올리고 여전히 자신만만한 기색으로 사악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걸로, 스타더스 그 여자를 내가 직접 쓰러트리고 말겠어. 어때?"

그리고 그런 그녀를 보며.

"...어, 파이팅?"

백은월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답할 뿐이었다.

***

"....수빈씨, 서은이는 또 어디갔나요?"

"아마 이번에도 지하실에 간거 같아요."

"...걘 대체 맨날 거기서 뭘하는거야?"

제 115화

화선포

[히어로 여론조사... 빌런 에고스틱 순위에 '깜짝등장'.]

월광무녀의 테러 이후 치루어진 히어로 여론조사가 공개되었다.

어느 히어로가 제일 믿음직스럽나? 라는 질문을 통해 치루어진 이번 여론조사에는 상당히 독특한 점이 눈에 띈다.

1위]스타더스

2위]섀도우워커

3위]에고스틱

4위]아이시클

5위]보더맨

(사진: 한국 ARS리서치 랩 여론조사 결과. 신뢰수준 95프로에 오차범위 ±3.0프로)

평소와 같이 A급 히어로들이 줄지어 상위권에 위치한 모습이지만, 특이한 점은 빌런인 에고스틱이 순위에 올라와 있다는 것.

여론 조사 기관도 당황하여 두번이나 다시 확인해봤다는, 실로 놀라운 결과가 아닐 수 없다.

그만큼 에고스틱이 빌런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지지와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해석 할 수 있다.

*

아니. 대체 히어로 여론조사에 왜 내이름이 있어? 애초에 누가 여론조사를 할때 내 이름을 박아놨다는 소리 아니야?

이게 뭐야....

"쓰읍...."

"오빠. 무슨 생각해요?"

화창한 일요일 아침.

소파에 앉아 심각한 얼굴로 앉아있는 나한테, 서은이가 아이스크림 한통을 들고 거실로 오며 내게 물었다.

"테러..."

"네?"

"아무래도 이번에 바로 새로운 테러를 일으켜야 할꺼 같은데."

나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내 예상보다 훨씬 더 이번 사건의 파급력이 큰 바람에, 바로 조치를 취해야 될 상황이 왔다.

아니... 그냥 빌런 한명이 다른 빌런 영입한걸 가지고 이렇게 난리날 줄은 몰랐지.

솔직히 나를 원래 좋아하던 사람들이야 난리날건 예상하고 있었는데, 이정도 일진 몰랐다.

이런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일부러 방송도 켰었는데, 대체 어째서...

역시 여론을 뒤집을 수 있는 방법은 새로운 테러를 바로 일으키는 수밖에 없다.

그래, 본업으로 돌아와야지. 너무 오래 외도를 했다.

다시한번 매콤한 K-빌런의 맛을 사람들한테 보여줄 때다.

...어떤걸 할까나.

그렇게 내가 무슨 테러를 할지 고민하던 그때.

내 말을 듣던 서은이가 갑자기 아이스크림 통을 내려놓고는, 슬며시 나한테 가까이 다가와 물었다.

"새로운 테러를 일으킬꺼라고요?"

"그래. 대충 뮤지컬 난입을 계획하고 있는데..."

"오빠, 그것보다 더 좋은 생각이 있어요."

거기까지 말하고는, 자신만만하게 웃는 서은이.

"제가 이미 다 계획을 세워났으니까요!"

"...너가?"

갑작스러운 서은이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아니, 서은이가 웬일로 이런 기특한 일을?

"....이제는 공개할 때가 됐네요. 오빠, 저 따라와요."

여전히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나한테 손짓하는 서은이.

그렇게 나는 영문도 모른채 지하기지까지 끌려왔다.

대체 뭘 공개한다는 거야?

그런 내 궁금증은 지하기지의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며 더욱 심화됐다.

"....서은아, 대체 어디까지 가는거니?"

"거의 다왔어요. 자!"

마지막으로 거대한 철문이 열리고.

불이 켜지며 그녀가 공개한건.

"...이게 뭐야?"

"스타버스터. 제가 만든 대 스타더스 전략병기에요!"

자신만만하게 소리치는 그녀의 뒤로 보이는, 대략 사람 키의 두배는 되보이는 두꺼운 철갑의 슈트.

위쪽에 사람이 쏙 들어가면, 아랫쪽에 놓인 거대한 철제병기를 조종하는 구조같았다. 거기다 왜인지 익숙한 이름답게 익숙한 외형까지.

이게 뭐람.

"....이걸 너 혼자 만든거야?"

"전체적인 설계는 제가 짜고, 세희 언니가 조금 도와줬죠."

무슨 비장의 신무기를 소개하듯 코끝을 쓰윽 훔치며 말하는 그녀.

정황상 지금까지 맨날 둘이서 지하실 내려가있던게, 이거 만든다고 였던거 같다.

"어때요?"

초롱초롱 눈을 빛내며 나를 올려다 본 채 그렇게 말하는 서은이한테, 나는 일단 칭찬을 해줬다.

"멋지네. 진짜 잘 만들었는데?

"훗. 역시 그렇죠?"

이제는 뿌듯함을 숨기지도 않은 채 미소짓는 서은이. 귀엽네.

근데, 귀엽긴 한데...

여전히 엣헴-거리고있는 서은이한테, 나는 가장 중요한걸 물었다.

"그래서. 이건 누가 타는거야?"

"당연히 저죠!"

자신만만하게 답하는 서은이를 보며, 나는 이마를 탁 짚었다.

"....안돼."

"뭐라고요?"

아까까지만 해도 훈훈하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굳어지는게 느껴졌다.

표정을 굳히고 나를 바라보는 서은이. 투지로 빛나는 그녀의 눈빛을 보며, 나는 쉽지 않은 싸움이 될걸 느꼈다.

아. 애 키우는게 세상에서 제일 힘들었어요.

***

"서은아, 넌 너무 어려. 아직 미성년자라니까? 너를 테러에 내보내면 무슨무슨 죄로 내가 잡혀가요."

"하. 지금까지 이미 저 데리고 테러 같이 기획하고 다른데 해킹한것도 이미 잡혀가기 충분하거든요?"

다시 집.

그곳에서, 서은이는 나를 설득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아니 그래도, 너가 위험할 수도 있어서 안돼. 애초에 이걸로 스타더스를 상대할 수는 있어...? 걔 너 생각보다 훨씬 강해."

내 의문에, 확신에 찬 목소리로 답하는 그녀.

"오빠. 그 여자가 얼마나 강하던, 제 스타버스터는 못이겨요. 이게 뭘로 만들어졌는줄 알아요?"

"....철?"

"무슨 소리에요. 제가 그런걸로 스타더스를 상대하려 했겠어요? 이제는 구하기도 힘든, 철보다 몇십배는 더 단단한 물질로 만든거에요. 웬만한 주먹은 다 버텨낼껄요?"

아니, 그렇게 말해도 몹시 불안한데.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온 최세희가 나와서 서은이를 어시스트 해줬다.

"야. 내가 이거 쟤랑 같이 만들었는데, 진짜 튼튼하긴 하더라. 내가 아무리 공격해도 흠집 하나 안난다니까?"

"맞아요. 그리고 오빠, 솔직히 저희가 함께한 세월이 얼마에요?"

갑자기 그런걸 묻는 서은이.

나는 그러는 그녀한테, 잠시 생각을 해본 뒤 답해줬다.

"...이제 거의 3년 됐나?"

"맞아요. 제가 그 에고스트림 멤버 누구보다 먼저 오빠 옆에 있었다고요. 근데 이거 봐봐요."

그렇게 말하며 나한테 자기의 휴대폰을 건네는 서은이.

그 화면에는, 어딘가 익숙한 카페 대문에 게시글이 하나 있었다.

*

[빌런연합_에고스트림_정리 (최신판)]

에고스틱: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최고 인지도의 빌런. 얘가 지금까지 혼자서 일으킨 일들만 봐도 다 TOP에 들어간다.

일렉트라: 전기능력자. A급 빌런이다.

데스나이트: 스타더스랑 일대일로 맞다이를 뜨기까지 한 유?령. 아마 부활가능한걸로 추측됨ㄷㄷ

월광무녀: 이번에 전국민 앞에서 소개한 그 여자 맞다. 능력은 이번에 봤듯이 압도적. S급임.

세인티스: 역시나 이번 방송에서 처음으로 나옴. 능력은 아직 밝혀지지 않음. 아마 마법, 버프, 힐링 관련으로 추측됨.

거기에 거대한 비행선을 가진 레피스단까지.

라인업이 벌써 ㅎㄷㄷ함

*

"....이게 뭐가?"

갑자기 서은이가 내민 이걸보고 내가 고개를 갸우뚱하자, 서은이는 답답하다는 듯 소리쳤다.

"제 이름이 없잖아요 제 이름만! 심지어 하율언니도 이번에 들어왔는데, 저만 없는게 말이 돼요?"

...생각해보니 그렇긴 하다만.

그런 내 생각은 그녀에 의해 가로막혀졌다.

"안돼요. 제가 오래 참았는데, 이제는 저도 전면에 나서야겠어요. 세상 사람들한테 알리고 말거에요. 제가 있다는걸!"

아니, 왜 이렇게 나서고 싶어하는거야?

나는 그게 이해가 잘 안되면서도, 활활불타는 서은이의 눈을 보며 조용히 생각했다.

...사실 생각해보면, 서은이가 이렇게 먼저 나서서 뭔갈 요구한건 처음인거 같기도 하고.

"...그래, 알았다."

"진짜요?"

내 승낙에 곧바로 태세전환을 하며 눈을 반짝이는 서은이.

원래라면 반대 하려고 했는데.

....저정도로 나서보고 싶어하는데 그래. 한번은 기회를 줄수도 있지 않나 싶다.

"그래. 대신, 무조건 나도 같이 가는거다?"

"당연히 같이 나서야죠. 저 혼자 가면 무슨 의미겠어요?"

그렇게 답하며 씨익 웃는 서은이.

...뭔가 많이 걱정되는데.

"아 그리고. 이번이 드디어 제 첫 데뷔전이니까 연출은 제가 맡을께요. 그래도 되죠?"

"어... 너 마음대로 해라."

"후후... 스타더스, 제가 직접 쓰러트리고 말거에요..."

이상하게 의욕을 불태우는 서은이.

...대체 스타더스가 뭘 했다고 저렇게 쓰러트리겠다는 의욕을 내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응원해주기로 했다.

나는 마지막에 어떻게 서은이를 구해낼지나 생각하고 있어야지.

***

신하루의 집.

오랜만에 그곳에 돌아온 신하루는, 침대에 몸을 털썩 뉘였다.

".....에휴."

요즘따라 더욱 심란해진 그녀는, 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대체 뭐였을까.

....거기서 멈칫한 자신은 뭐고.

그래도.

압도적인 폭풍 앞에서 모든 희망을 잃고 쓰러져있을때.

그가 등장한걸 보고.

솔직히 말해서, 그때 약간 가슴이 뛰었다.

".....벽에 아예 붙여놓을까봐."

에고스틱 사진하나 붙여논 다음에 옆에 나쁜놈이라고 커다랗게 써놓을까- 그런 황당한 생각마저 드는 자신이었다.

...어차피 그 상황에서 난입한것도, 자신의 빌런연합을 키우려고 한걸텐데. 아마 별다른 의도는 없을텐데.

아니다. 혹시 모른다.

정말로, 사실 세계를 파괴할 생각이 없는 놈이라면?

"으으...."

그녀는 혼란스러움에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았다.

에고스틱. 그만 생각하면 늘 이랬다. 나쁜놈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혹시...? 라는 생각이 계속해서 들고.

"...."

그래.

일단은, 다른거에 집중하자.

어차피 에고스틱. 그가 테러를 일으키는건 거진 3개월에 한번이니, 다음에 그를 볼려면 멀었을 것이다.

이제 벌써 대학교 4학년인데, 슬슬 졸업하고 뭘할지도 생각해 봐야된다. 히어로 활동 가끔하는거 때문에 남는시간을 다 놀 수는 없으니.

그래. 에고스틱에 관한건... 그가 돌아오기 전 그때까지 찬찬히 정리해보면 되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눈을 비비던 그녀한테, 책상쪽에서 휴대폰의 벨소리가 울렸다.

누구지...하며 침대에서 일어서 다가간 그녀가 본건, 휴대폰 화면에 커다랗게 표기된 '협회' 두글자.

뭔가 하고 받아본 그녀는,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소식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스타더스씨! 에고스틱이 테러를 일으켰습니다! 빨리 출동해 주세요!]

"네...?"

아니, 벌써?

제 116화

화그와 그녀의 싸움

오늘도 평화로운 서울의 거리.

전에 있었던 월광교의 커다란 테러 전 후로는 별다른 테러가 없었기에, 시민들은 안심하고 길을 걸을 수 있었다.

주말이라 그런지 사람들로 북적이는 거리.

근처 휴대폰 매장에서 들려오는 최신 팝송과, 커피 판매점에서 들려오는 음악등 상가 스피커에서 나오는 수많은 음악들과 길을 걷는 수많은 사람들의 말소리, 도로를 지나다니는 자동차의 경적소리까지.

그렇게 시끌벅적하게 살아 숨쉬는 길.

온갖 다양한 음악들이 섞인 그 길을 걷던 중.

"...?"

가게주인과, 눈치가 빠른 몇몇 사람들은 무언가를 알아차렸다.

매장 스피커에서 나오던 음악들이, 갑자기 전부 시끄러운 락음악으로 바뀌었다는걸.

아까까지만해도 걸그룹의 발랄한 노래가 나오던 가게는, 어느새 일렉기타의 괴랄한 독주가 펼쳐지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점점 더.

점점 더, 커지는 소리.

"으윽..."

이제는 매장 안에 있던 손님들은 눈살을 찌푸리고 귀를 막을 정도로 시끄러워진 음악은.

비로소, 거리에서 떠들며 길을 걷던 몇몇 사람들도 잠시 멈추어 무슨 이벤트인가 하고 고개를 돌아볼 정도가 되었다.

-징지지지지지지지징.

무슨 근본없는 락 공연장에 온 마냥, 한순간에 콘서트장이 되어버린 거리.

사람들은 이제 다들 멈추고 수근수근거리며 주위를 보더니 휴대폰을 꺼내 거리를 찍기 시작했다.

서로 다른 스피커들이 모두 하나로 통일되어 락음악을 내고있는 기상천외한 광경.

이제는 사람들이 모두 어느 유튜브에서 진행하는 몰카가 아닐까? 라면서 즐기는 경지에 도달했을때.

쿵.

멀리서,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남과 동시에.

콰아아아아아아아앙.

"꺄아아아아아아악!"

갑자기 길거리에서 무언가 터지며, 연기들이 거리에 흘러넘치기 시작했다.

이제야 무언가 잘못되었다는걸 깨닫고 사람들이 혼비백산 사방으로 뛰어다니기 시작할 때.

쿵-.

쿵-.

"으아아아악! 이게 뭐야!"

갑자기 무슨 철제 망이 하늘에서 뚝 떨어져, 길거리에 있는 사람들을 하나 둘 가둬버리기 시작했다.

하늘에서 음식이 내린다면이라는 영화는 봤어도, 하늘에서 거대 철장이 떨어진다면이라는건 못들어본 시민들은 쇠창살을 붙잡고 흔드며 으악!을 계속 연발하는 가운데.

계속해서 커다란 락음악은 시끄럽게 울리고있었고.

혼돈의 도가니탕이 된 거리에 경찰차들마저 출동해 뛰어왔지만, 그들마저 하늘에서 떨어진 철조망에 갇혀 쇠창살을 무력하게 흔들 뿐이었다.

지이이이이이잉.

계속해서 시끄럽게 울려퍼지는 일렉기타의 무아지경에 오른 라이브.

그리고 그 가운데, 새장에 갇힌 새들마냥 짹짹거리고 있는 사람들로 찬 철장들이, 하나 둘 허공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으아악- 하는 사람들의 비명소리로 가득한 가운데.

이내 하늘위로 떠오른 철조망들은, 허공 한가운데서 둥글게 원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HAHAHAHAHAHAHAHAHA

터질듯한 음량으로 시끄러운 락음악이 나오고있는 스피커들에서, 갑자기 한 남자의 광기에 젖은 웃음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기괴할정도로 끊임없이 반복재생을 하는 웃음소리와, 거대한 락음악. 철조망에 갇혀 허우적 거리는 사람들.

저 먼 도시까지도 울리는 거대한 소음의 한복판.

몹시도 혼란스러운 그곳에서.

갑자기, 모든 음악이 꺼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터질듯한 음량으로, 모든 스피커들에서 동시에 기계음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WELCOME TO THE SHOW-

그리고 그에 맞추어, 허공에 뜬 철조망들이 있는 곳 한복판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남과 동시에, 분홍색 연기가 사방으로 흩어졌고.

그 가운데에서, 한 남자가 하늘 위에 어느새 떠있었다.

철장들이 허공에 둥글게 떠있는 그곳 한복판.

이제는 여러 카메라들마저 그 주위를 또한번 둥글게 맴돌고 있었고.

그에 맞추어, 그 하늘의 원 한가운데 서있는.

검은 모자, 검은 로브, 검은 망토로 무장한 회색 가면을 쓴 남자가.

자신의 한쪽 손에 들려있는 마이크를 입에 가져다댔고.

그와 동시에 하늘에 뜬 모든 카메라들이 동시에 켜지며.

입을 연 남자의 목소리가, 거리 전역에 거대하게 울려퍼졌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에고스틱입니다!"

그리고 그것의.

빌런 에고스틱의 테러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

에고스틱.

이제는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걸 넘어서, 일부는 추종자들까지 생긴. 히어로 협회 한국지부 창시 이후로 제일 영향력 있는 빌런 TOP 1.

그리고 나는, 그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 최근들어 너무 본업을 소홀히했나.'

빌런을 무서워하고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밉다.

아니, 내가 지금까지 꽤나 화려하게 저지르지 않았나?

당장 떠오르는 것만 하더라도 기차탈선, 비행기 추락, 다리 박살 등등 꽤나 화려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어째서 이러는거냐고.

그래, 솔직히 말하자면 저번에 여론조사를 보고 충격을 조금 받았다.

아니, 이제는 내가 하다하다 A급 히어로보다 인기가 좋은게 말이 돼? 나는 대한민국 뒤에서 암약하는 빌런이지, 아이돌이 아니라고...

특히, 이런 현상은 장기적으로 보면 더욱 안좋다.

애초에 내가 빌런이 된 목적이 뭔데. 다른 원작 빌런들을 거진 내가 해치우니까, 내가 직접 스타더스의 '시련'이 되주겠다는 명분이었다.

그런데 내가 갑자기 이렇게 되버리면, 시련이라고 부르기가 무색해진다. 아니, 히어로보다 인기많은 빌런이 어딨냐고 대체.

그리고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테러, 테러. 더 많은 테러다.

그것도 위협적인.

그런 이유로 지금.

나는 거리에 한복판에 허공에 떠서, 철망에 갇혀 오들오들 떨고있는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다.

그리고 거리에서 계속해서 울려퍼지는 락음악.

귀가 시끄러울 지경이다. ....서은이의 센스가 많이 가미되어 있기는 한데, 참. 얘도 나를 닮아서 그런지 화려하게 일치는거 좋아한다니까.

[다인 오빠. 준비됐어요.]

귀에 꽂은 인이어 이어폰쪽에서 들려오는 은월이의 목소리.

저 철장 드는건 내 혼자힘으로 무겁기에, 달의 무녀인 은월이의 마법에 도움을 좀 받았다. 저쪽 건물 옥상에서 조작하고 있는 그녀.

하여튼, 준비가 되었다니 이제 나서야겠지.

나는 그렇게 카메라를 키고, 허공에서 커다랗게 소리쳤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에고스틱입니다!"

말하기가 무섭게 해킹한 상가 스피커들에서 울려퍼지는 내 목소리.

허공에 뜬채 씨익 웃으며, 살랑이는 바람을 맞아가며 나는 채팅창을 살폈다.

[망고스틱 입갤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시발 벌써??? 뭐냐고 젠장!!!!!]

[수상할 정도로 테러를 자주 일으켜주는 에고양ㄷㄷㄷㄷㄷ]

[왔다 내 야동ㅋㅋㅋㅋㅋ 딱대ㅋㅋㅋㅋㅋ]

[ㅅㅂ소리 존나 시끄럽네ㅋㅋㅋㅋ 이어폰끼고 보고있는데 밴드 둥둥거리는게 귀에서 울림ㅋㅋㅋㅋ]

[철망안에 사람들은 뭐냐 인간 동물원임?]

[늘 우리의 상상따위는 가볍게 뛰어넘는 망고좌ㅋㅋㅋㅋ]

좋아, 방송은 제대로 나가고 있는거 같네.

채팅창을 확인한 나는, 다시 테러에 집중했다.

아, 일단.

이거부터 해야지.

나는 손가락을 딱 튕겼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허공에 두둥실 떠오른 수많은 총들.

그리고 그것들은 모두, 철망안에 갇힌 사람들을 향해 총구를 들이밀었다.

"히익....!"

총구가 자신들을 향하자, 오들오들 떠는 사람들.

역시 리얼 건 앞에서는 공포를 안느낄 사람이 없는 법이다. 그래, 내가 실수로 저 방아쇠만 눌러도 죽는건데 얼마나 쫄리겠어. 진작에 인질들을 이런식으로 다뤘어야 했다. 지금까지 너무 풀어줬어.

그와 별개로, 내 앞에서 오들오들 떠는 사람들을 보니 살짝 미안하기는 했다만, 어쩔 수 없지. 이제는 기강 좀 잡을 때가 됐다.

"아이고 여러분! 겁먹지 마세요, 겁먹지 마세요."

총을 휘두르며 그렇게 말하는 나.

날도 좋아서인지 여전히 선선한 바람이 내 망토를 약하게 휘날리게 하는걸 느끼며.

나는 살짝 웃어주며 말해줬다.

"제가 뭐 나쁜짓을 하려고 하는건 아닙니다. 다만 한시간 후에 이 총을 여러분께 쏘려고 하는거 뿐이죠."

"히익....!"

아니야, 사실 안쏠꺼긴 해.

그러나 그런 티를 내는건 하수. 일류악당은 언제든 '저놈은 진짜 총을 쏠수도 있다'라는 광기를 보여줘야한다.

"하하!! 여러분 죽기 한시간 전입니다! 생전 한시간의 모습을 제가 방송으로 전국에 쏴주고 있으니, 마지막 인사나 나눠보십쇼! 제가 예전부터 죽기 직전에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궁금했거든요."

"히이익...!!!"

더욱 더 떠는 사람들.

그래, 내가 보여주는 광기가 잘 먹히고 있는거 같다.

...그런데, 언제까지 이짓을 해야하는거지? 마음이 아픈데. 슬슬 와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함과 동시에.

뒤에서,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까지다, 에고스틱!"

어째 꽤 오랜만에 듣는듯한, 고함을 지름에도 불구하고 미성인 목소리.

그녀의 목소리를 들은 나는, 나도 모르게 나오는 미소를 굳이 감추지 않은 채. 시끄러운 락음악을 끄고 뒤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이런, 방해꾼이 오셨군요."

전신에 달라붙는 빨간 라텍스.

치렁치렁 휘날리는 금발.

그리고 살짝 하늘빛을 띄는 눈동자로, 나를 노려보는 그녀.

그래. 스타더스. 그녀다.

"뭔짓을 하는거냐 네놈!"

그래, 이런 분노의 대화도 뭔가 오랜만이라 정겹네.

나를 살짝 화난 듯 노려보는 그녀한테, 나는 실실 웃으며 말해줬다.

"네, 네 스타더스씨. 오랜만입니다. 어째 자주보는거 같네요? 저를 따라다니시는거 같기도 하고... 헉, 혹시 저를 스토킹하는건가요!"

"뭐? 대체 무슨 말도안되는 소리냐! 네놈이 지금 하고있는 짓을 봐라!"

내 말도 안되는 말에 얼굴을 붉히며 쏘아붙이는 그녀. 도발에 약한건 여전하구만.

나는 실실 웃으며, 그녀에게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말했다.

"뭐 어쨌든간에. 저를 막으러 오신거죠? 그럼 와서 막아보시죠."

근처 철장 하나에 올라타 앉아 다리를 꼬고 손가락을 까딱거리는 나를 보며, 그녀는 인상을 찌푸렸다. 무슨 의도인지 감안하듯이.

사실 생각해보면 내가 그녀를 못이기는건 당연하거든. 베히모스를 쓰면 10초는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뿐. 상대도 안된다.

그런 내가 그녀를 도발하자, 의심스럽다는 듯 나를 째려보는 그녀.

그러나 이내 마음을 굳힌 듯, 저멀리 서있던 자리에서 박차올라 나를 향해 날아오기 시작했다.

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자 서은아, 너 차례다.

그리고 그녀가 자리를 박참과 동시에.

갑자기 우리 둘 사이의 공간에 그림자가 지더니.

콰아아아아아아앙.

그녀로부터 나를 가로막듯, 거대한 회색빛의 무언가가 하늘에서 떨어졌다.

마치 거대한 슈트처럼 생긴, 양옆으로도 두껍고 위아래로도 두꺼운 그것.

갑작스러운 그것의 등장에 공중에서 급정거한 그녀를 향해, 나는 다시 마이크를 들고 소리쳤다.

"미안하지만, 이번에 당신의 상대는 제가 아닙니다!"

"자, 소개합니다. 오직 당신만을 위해 만들어진 병기. '스타버스터'입니다!!"

팔을 활짝 벌리며 내가 소리침과 동시에, 터미네이터 자세에서 일어나 나오는 목소리.

[스타더스, 내가 상대해주마!]

....기계음이 섞인거치고는 숨길 수 없는 어린 여자의 목소리였다. 서은아... 그리고 왜이렇게 연기가 어색하니?

어쨌든 그게 중요한게 아니다. 지금 스타더스 눈이 불타오르는게 중요한거지.

자, 시작하자.

"과연 제 스타버스터를 상대로 당신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요!! 자, 스타버스터. 돌격!"

[으아아!]

그렇게 서은이의 스타버스터가 강철의 주먹을 스타더스에게 휘두르며.

싸움의 막이 올랐다.

***

스타더스, 신하루는 지금 기분이 매우 안좋았다.

첫째는 에고스틱이 또 잔인무도한 테러를 벌였다는게 그 이유고.

둘째는.

[흐아아! 아줌마, 이게 최선이야?]

....이 여자애는 뭐야?

에고스틱의 새로운 동료로 추정되는 빌런인 저 여자.

또 여자를 동료로 들인 에고스틱. 그건 그렇다고 쳐도...

...어째, 말하는 모양새가 굉장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 매우.

분노를 삼키며, 그녀는 자신 쪽으로 날아오는 주먹을 향해 똑같이 주먹을 날렸다.

...안되겠다.

이 빌런은 오늘 이 자리에서 잡아가야겠다.

그렇게 다짐하는 그녀였다.

제 117화

화그녀의 전략

"크윽...."

사람들이 이미 사방으로 도망쳐, 아무도 남지 않은 넓은 거리.

그곳에서 신하루는, 일명 '스타버스터'라는 거대 로봇과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하아, 하아. 흐, 오빠가 그렇게 쎄다고 말해서 조금 걱정했는데, 그렇게 강, 강하지도 않네요!]

살짝 지쳐보임에도 애써서 어떻게든 도발을 날리고있는 스타버스터 안에 탄 여자아이.

또다시 그녀를 향해 날아오는 강철의 주먹을 피하며, 신하루는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대체 에고스틱, 그놈은 어디서 계속 이런 빌런들을 데리고 오는거지?'

아니, 한두명도 아니고 까도까도 무슨 양파처럼 계속 튀어나오는 새로운 빌런들을 보며, 그녀는 그런 의문을 품었다.

에고스틱이 스스로 빌런연합을 만들 것이라는 말을 한지 채 몇년도 안된 지금, 벌써 그가 처음으로 선보인 빌런들만 해도 꽤 된다. 일렉트라, 레피스단, 데스나이트까지.

거기에 이번엔 무슨 걸어다니는 장갑차마냥 튼튼한... 기계장치를 탄 여자까지.

[하아. 공격좀 해봐요! 왜 도망만 다니는거예요?]

...그리고, 이 여자애는 아무리 봐도 묘하게 어려보인다. 대략 나이는... 모르겠다, 중고등학생정도?

그런 판단을 한 신하루는 다시 분노에 휩싸였다.

미성년자를 고용해서 빌런일을 시키다니, 에고스틱은 제정신인건가?

[하아, 하! 도망만 다니는걸 보니, 아줌마는 별것도 아니었네요!]

....그런 생각은, 계속해서 들리는 목소리에 점차 사그라졌다.

계속되는 도발에 슬슬 신하루의 멘탈도 금이가기 시작한 것.

분명 아까까지만해도 '저 불쌍한 아이를 에고스틱이 이용했구나!'라는 생각을 하던 그녀는, 이제는 저 맹랑한 꼬맹이에게 어른으로서 교육을 해줘야겠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아줌마라니, 하. 그게 무슨 근본도 없는 도발인가.

대체 그녀의 나이가 몇인데. 하, 어이가 없네.

그 어떤 빌런한테도 듣지못한 유치한 도발은, 오히려 그녀를 분노로 충만하게 만들어줬다.

그러나 그런 감정에 앞서 일을 그르치는건 하수.

'일류 히어로란, 자신의 감정을 죽이고 날카로운 이성으로 승부를 봐야하는거란다.'

"..."

언젠가 들었었던 그 말.

과거의 기억을 되살린 그녀는, 머리를 차갑게 식히고 상황을 다시한번 분석해봤다.

쿵-. 쿵-.

현재는 저 로봇이 계속해서 공격을 하고, 그녀는 그걸 피하거나 가끔은 막아가며 수비적이게 싸우고 있는 상황.

그리고 저 기계 안에 있을 여자아이는.

[흐으, 으아! 피하지만 말고 맞서 싸워봐요!]

"..."

계속 도망다니며 그녀의 공격을 막기만 하는 스타더스에게 짜증을 내고 있었다.

[이것도 피해요? 그럼 이건? 에잇!]

일단은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기 위해, 수비적으로 응대하는 스타더스.

그러는 그녀를 보며, 기계 안에 탄 여자아이는 중얼거렸다.

[아니, 싸워봐도 모르겠네. 왜 오빠는 당신만 늘 신경쓰는거야?]

".....!"

그리고 순간 그녀가 던진 말에, 멈칫한 신하루.

....걔가 나만 신경쓴다고?

순간 쿵쾅이는 심장을 붙잡고, 신하루는 머리를 굴렸다.

사실 에고스틱, 그에 대한 정보는 그렇게 많은 편이 아니다. 애초에 늘 자기 할말만 하고 사라져버리는, 베일에 싸인 녀석이니.

그녀는 다시 날아오는 공격을 피하며, 슬쩍 에고스틱이 있는 쪽을 봐봤다.

허공에 떠있는 철장망 중 하나에 앉아, 카메라를 보며 떠들고 있는 그.

그래. 어쩌면 지금이 기회다.

에고스틱. 그 무엇보다 소중한 그에 대한 정보를 얻어낼 수도 있는 기회.

...늘 평소에 궁금했던, 그에 관해서 더 알아볼 수 있는 기회.

그런 판단을 마친 스타더스는, 이내 잠시 몸을 날려 저 스타버스터라는 것으로부터 거리를 벌린뒤, 화난 목소리로 그녀에게 소리쳤다.

"너. 너는 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빌런이지? 또 이번에 에고스틱이 새롭게 고용한 놈이냐?"

짐짓 화난채 하며, 정보를 얻기 위해 은근슬쩍 도발을 섞어 던진 말.

아마 지금까지 그녀가 상대했던 일렉트라나 데스나이트라면 그냥 '흐응... 글쎄?'나 '하하하하!'정도의 답만 받고 끝났을 거지만.

[뭐라고요! 새롭게 고용당한게 아니라, 내가 제일 처음부터 오빠랑 함께했었던 동료거든요?]

빙고.

역시 예상대로, 저 로봇에 탄 여자아이는 말을 술술 불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함께했던 동료라는걸 강조하거나, 오빠라고 하며 친한척 하는게 좀 거슬리긴 하지만... 오히려 이건 이용할 수 있다.

겉으로는 여전히 화난채 하며, 신하루는 다시 한번 물었다. 세상에서 제일 어이없다는 목소리로.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냐? 에고스틱의 첫번째 동료가 네가 아니라는걸 모두가 이미 알고 있다. 애초에 네가 동료라면, 지금까지 뭘하고 있던거냐?"

[이씨....!]

자신의 도발을 들은 여자아이는, 분통을 터트리며 로봇을 더 거칠게 조작하기 시작했다.

아까보다 훨씬 더 강하게 몰아치는 공격.

그 주먹들을 피하며, 스타더스는 여자아이가 하는 말을 주의를 집중하며 들었다.

[내가 첫번째 동료 맞거든요! 지금까지 뒤에서 전파납치 해킹같은거 다 한사람이 다 나에요! 억울해 죽겠어요 정말!]

진짜 세상 억울하다는 듯 말하는 여자아이.

그 말을 들은 스타더스는, 놀랐다는 듯 살짝 목소리를 높이며 물었다.

"지금까지 그 모든 해킹을 다 네가 한거라고? 대체 어디서?"

[어디서긴, 당연히 같은 한집에서...]

거기까지 신나게 말하던 여자아이는, 갑자기 말을 중간에 멈췄다.

그러더니, 간신히 들릴 정도로 조용히 속삭이는 그녀.

'...응? 아니, 오빠. 이정도는 괜찮지 않아요? 아니라고요? ... 알았어요, 힝.'

누군가와 속삭이듯 들리지 않게 말을 하던 그녀는, 이내 다시 큰소리로 소리쳤다.

[...자꾸 쓸데없는 소리는 하지 말고, 순순히 싸우기나 해요!]

그렇게 말하고는 입을 이제는 꼭 닫고 전투에 집중하는 그녀.

'....쳇.'

속으로 혀를 차며 다시 공격을 피하면서 뒤쪽을 보니, 에고스틱이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거의 다 넘어왔었는데, 아쉽네.

그래도 뭐 상관없다.

남은 이야기는, 협회쪽에 끌고가서 들으면 되니까.

이내 그녀는 아까부터 계속 피하기만하며 수동적으로 행동하는걸 멈추고, 다시 몸에 힘을 불러일으키기 시작했다.

갑자기 달라진 그녀의 기세.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녀는 다시 스타버스터에게 달려들었다. 맹렬하게.

[...읏? 잠깐!]

속전속결로 끝낸다.

그녀에게는 그 생각 뿐이었다.

***

이 세계는 오직 절망뿐.

끊임없는 악의와, 멸망을 가속화시키는 모든것들이 독극물처럼 세계 근간에 부글부글 끓고있는, 지옥과도 같은 세계다.

인간은 인간을 죽이려 들고.

괴수들도 인간을 죽이려 들며.

신마저도 인간을 죽이려 드는, 그런 끔찍한 세계.

...는 물론, 내가 애써 저지하고 있다.

모든 멸망으로 가는 경우의 수를 하나씩 차곡차곡 줄이고 있지.

물론 이것도 언제까지일지 모르겠다.

이렇게 웃으면서 테러를 일으키며 스타더스를 만나는 것도, 사실 얼마 남지 않았을 수도 있다.

'....뭐, 벌써 이런 고민을 하는건 조금 이르겠지만.'

아직까지는 평화롭다.

수많은 시민들이 개미떼처럼 떼죽음을 당하지도 않았고, 서울이 폐허가 되어서 대한민국의 국운이 기울기 시작하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쁘지 않네."

나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래. 세상의 평화는 지켜지고 있다. 다 내가 한거지만.

세상이 평화로워서 좋기는 하다.

근데 너무 평화로워서, 이제는 나같은 빌런을 사람들이 빨아주는 사회가 되서 문제지.

".....나쁘지 않네, 나쁘지 않은 날씨네요. 당신을 죽이기에 말이죠!"

"히이이이익!"

철망 위에 다리를 꼬고 앉아있던 나는, 총을 휘두르며 내 아래있는 사람에게 그렇게 소리쳐봤다. 웃으면서.

벌벌벌 떨면서 구석으로 숨는 여자.

그래, 리액션이 참 훌륭해서 좋다. 사실 이 창살위에 앉아있는 것도, 아까 제일 크게 리액션을 한 사람이 이 여자여서다. 리액션 맛집이야. 좋아.

하여튼 무장해제 상태의 민간인을 창살에 강제로 집어넣고 웃으면서 죽이겠다고 총들고 협박한 나는, 슬쩍 채팅창을 봐봤다. 이정도면 충분히 사람들이 겁을 집어먹고, 분노하며 나를 욕하겠지?

[캬ㅋㅋㅋㅋ 망고스틱 오랜만에 빌런답네ㅋㅋㅋ]

[자기가 저 창살에 대신 갇히고 싶은 사람이라면 개추ㅋㅋㅋ]

[나도 에고오빠가 섹시하게 웃으면서 총들고 나한테 협박하는거 직관하고 싶음ㅠㅠ 존나 부럽다ㅠㅠ]

[망고가 빌런짓하면 좀 귀여운듯...ㅎ 이런게 갭모에냐?]

[지금 택시탔는데 거기로 달려가면 저도 창살에 넣어주나요?]

...틀렸다. 이 사람들은 미쳤다.

제발, 제발 단 한명이라도 나를 좀 욕해달라고.

이 채팅창을 내 팬카페 애들이 전세낸건가? 그런건가?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스타더스와 스타버스터가 싸우는 현장을 봐봤다.

여전히 스타더스를 몰아붙이는 서은이랑, 그런 스타버스터를 피하는데 급급한 스타더스.

....이상하다. 스타더스가 지금 능력으로도 저렇게까지 상대하지 못한다고? 무슨 일이지?

애초에 나랑 은월이는 당연히 서은이의 스타버스터가 금방 털릴걸 예상하고 구해줄려고 대기타고 있었는데, 은근 길어지니 신기한 기분이다. 스타더스가 오늘 컨디션이 안좋나?

하여튼 그러면 오히려 좋다. 나쁜짓 프로젝트나 계속해야지.

나는 여전히 떨고있는 여자에게 총을 들이밀고 웃으면서 말을 걸었다.

"자! 이름모를 여성 A씨, 제가 질문을 하나 드릴께요."

"히이이이익!"

"이걸 맞추시면 풀어주겠습니다. 어때요, 좋죠? 빨리 좋다고 말해요!"

"히이익 좋아요, 좋아요오!"

"네, 네. 좋습니다. 질문 나갑니다. 제가 처음으로 테러를 일으킨 날짜는?"

나는 그렇게 말하며 씨익 웃었다.

그래. 나쁜짓 프로젝트 제 2번째. 절대 못맞추는 질문 하기. 계속 답하지 못하는 인질을 놀리며 괴롭히는, 실로 사이코패스 빌런같은 행위다.

그렇게 못맞추는 그녀를 놀리려고 할때, 갑자기 철장 안쪽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4월. 4월..... 17일이요."

떨리는 목소리로 그렇게 답하는 그녀.

그리고 그 날짜는.

정답이었다.

.....어떻게 안거지 시발. 찍었나?

순간 뇌정지가 온 나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니 뭐하는 여자야?

여전히 오들오들 떨며 나랑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푹 숙이는 그녀. 그런 그녀의 볼에는, 아까완 다르게 살짝 홍조가 있었다.

"....히이익."

거기에 어째 아까보다 성의 없어진 비명.

...좋아. 그만 알아보자. 겁나 찝찝하니까.

"....아쉽게도 틀렸습니다! 그러니 당신은 못나갑니다. 여전히 여기 갇혀있으셔야 겠네요. 하하하하!"

[??? 4월 17일 맞지 않음?]

[ㅇㅇ맞음 4.17 배 테러 처음 일으킨 날이라고 위키에 적혀있네]

[아니 맞는데 왜 억까함ㅋㅋㅋㅋ]

[잠깐 저 여자 애초에 그걸 어떻게 안거냐???!]

[ㅅㅂ혹시 저분도 망고단 아님?ㅋㅋㅋㅋ]

나는 이악물고 채팅창을 무시했다.

저는 아무것도 몰라요.

그렇게 뭔가 찝찝한만 남긴 인질과의 대화를 끝내고, 나는 다시 스타더스와 서은이가 싸우고 있는 현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거기에는.

[내가! 첫번째 동료! 맞거든! 지금까지 뒤에서 전파납치 해킹같은거 다 한사람이 나야! 억울해 죽겠어요 정말!]

스타더스에게 정보를 술술 불고있는 서은이가 있었다.

...서은아, 제발.

"지금까지 그 모든 해킹을 다 네가 한거라고? 대체 어디서?"

[어디서긴, 당연히 같은 한집에서...]

그렇게 아주 내부사정까지 알리려고 하는 서은이한테, 나는 다급하게 방송을 음소거하고 연결된 이어폰으로 서은이한테 속삭였다.

"야! 스.. 스타버스터, 거기서 그렇게 말을 많이하면 어떡해! 그만말해!"

내 말을 들은 서은이는, 스타더스에게 쏘아붙이던걸 멈추고 나한테 연결된 이어폰으로 똑같이 속삭이며 답했다.

"...응? 아니, 오빠. 이정도는 괜찮지 않아요?"

"아니야, 안 괜찮아."

"아니라고요?... 알았어요, 힝."

이내 살짝 풀죽은 목소리로 그렇게 답하는 서은이.

조금 미안하긴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신하루 눈치가 얼마나 좋은데. 어느정도 정보통제가 필요해요.

그렇게 서은이는 내 요청대로 입을 다물고 전투에 임하기 시작했고.

그에 맞추어 정보캐기를 실패한 스타더스는, 아까까지 밀렸다는게 거짓말이였다는 듯 스타버스터를 갑자기 두들겨패기 시작했다.

...내 저럴 줄 알았지.

"은.. 월광무녀, 월광무녀 응답해라. 이제 슬슬 나서야 할거 같다."

[네 다인오빠. 알겠어요!]

다른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은월이의 씩씩한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슬슬 팔을 풀고 나설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곧 털릴 서은이를 구해주러 나설 준비를.

아, 힘들다 힘들어.

제 118화

화가족같은 분위기

저번 테러가 일어난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새롭게 일어난 에고스틱의 테러.

지난 사건으로 인해 그의 국민적 관심사가 최대치로 올라간 상황에서 벌어진 테러는,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이번 테러 역시 저번과 마찬가지로, 그가 만든 빌런연합 에고스트림의 멤버와 함께 일으킨 테러.

마치 이동형 기계갑옷같은 슈트를 탄 여자아이를, 이제는 거의 그의 전담 상대라고도 할 수 있는 스타더스가 상대하던 중이었다.

사람들이 대체 에고스틱은 매번 어디서 저런 능력자들을 데리고 오는거랴고 수근거리는 와중에 벌어진 전투.

그리고 처음 상황은 에고스틱쪽에게 더 유리하게 돌아갔었다.

스타버스터라는 이름에 걸맞게, 기계장치를 탄 여자아이는 스타더스를 상대로 꽤나 우위를 점하고 있었고, 스타더스는 기계의 공격을 피하고 막아가며 수비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모습.

그런 모습에 다들 스타더스가 밀리고 있다- 라고 판단했었지만.

상황은, 어느 순간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흐윽?]

쾅-. 쾅-.

바람과 먼지만이 휘몰아닥치는 격렬한 전투.

기계장치의 주먹이 휘둘러지고, 그것이 근처의 외벽을 부수고 난리가 나고있는 와중에.

자신보다 몇배는 더 큰 스타버스터를 상대로, 스타더스는 공세를 퍼붓고 있었다.

[이씨..! 진짜, 해보자는거에요?]

콰앙-.

스타더스의 공격에 의해 저 멀찍한 곳까지 튕겨지게된 스타버스터.

또다시 충격으로 울리는 정신을 붙잡고, 안에 탄 여자아이가 이를 악무는 소리를 냈다.

어째 아까와는 달리 검은 연기도 나고 팔도 덜렁거리는 스타버스터를 보며, 신하루는 피식 웃으며 말을 던졌다.

"지금이라도 항복하고 투항해라. 그게 너한테 좋을꺼다."

무시하는듯한 그녀의 발언에, 이를 악문 안쪽의 해커.

[웃기고있네! 이거나 받으세요!]

그렇게 말함과 동시에, 거대한 스타버스터가 팔을 신하루를 향해 치켜들었고.

그와 동시에 기계팔에서 무언가가 끼릭거리며 나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튀어나온 것은, 작은 사이즈의 미사일.

"...!"

[하하! 잘가세요!]

그렇게 기계안쪽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와 함께 스타더스를 향해 순식간에 날아가는 미사일들.

그와 동시에 스타더스 또한 몸을 박차고 날랐고.

콰아앙-.

스타더스가 서있던 근처가, 그대로 폭발했다.

폭발로 인해 일어난 연기와 먼지로 뒤덮여버린 일대.

[...꿀꺽.]

그렇게 스타버스터는 여전히 경계태세를 취하고는 연기쪽을 드려다보았고.

여전히 스타더스의 형체가 연기에 가려 보이지 않자.

[....히. 오빠, 제가 스타더스 쓰러트렸어요!]

안쪽에 있는 해커는 신난다는 듯 외쳤다.

그에 따라 요동치는 채팅창.

*

[아까부터 오빠오빠 거리는거 좀 귀엽네ㅋㅋㅋ]

[ㄹㅇ 망고스틱 여동생인가? ㅋㅋㅋ]

[왜 히어로랑 빌런이랑 싸우는데 빌런이 저렇게 귀여움? 막 사촌동생 보는거같아서 응원하고 싶어지네ㅋㅋ]

[앗 근데 쓰러트렸어요...? 그런말 함부로 하면 안되는데...]

[스타더스가 저번에 월광무녀한테 좀 약한 모습을 보이긴 했어도 저정도 폭발에 쓰러졌을려나?]

[해치웠나 특) 안 해치워짐.]

[스타더스 개같이 부활까지 5초전ㅋㅋㅋㅋ]

*

그리고 역시나.

연기로 가득한 그곳에서, 사람 한명의 그림자가 아른거리가 시작했다.

그리고 점차 바깥으로 가까워지는 그것.

그렇게 연기속에 나온건, 자신의 머리를 손으로 한번 슥 튕기며, 상처 하나 없이. 심지어 슈트에 손상 하나 없이 유유히 걸어나오는 스타더스였다.

[아니, 진짜. 하아.... 무슨 초인이에요? 이걸 버텨?]

벌써 어린 나이에 인생의 쓴맛을 맛봤다는 듯 허탈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슈트안의 그녀.

*

[펙트)초인이 맞다]

[초상 능력자니까 초인이 맞지 아ㅋㅋㅋ]

[해커동생 때려도 때려도 오뚝이처럼 일어나는 스타더스에 당황ㅋㅋㅋ]

[아ㅋㅋㅋ 스타더스는 나름 준S급 히어로라고ㅋㅋ]

[???: 넌 나를 상대하기에 아직 100만년은 이르다]

[좀 더 커서 오라는 깊은 뜻인거임ㅋㅋㅋ]

*

채팅창은 이미 예상했다는 듯 시끌벅적한 가운데.

이내 스타더스는 다시금 날아올라, 팔을 한번 휘두른 뒤 주먹을 뻗고 스타버스터를 향해 날아올랐고.

이에 맞추어 다시 해커가 조작하는 기계슈트도 육중한 팔을 들어올려 스타더스를 향해 강철의 주먹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시 전투가 시작됐고.

[으겍.]

스타더스가 그냥 일방적으로 밀어붙여, 자신의 상대라는 병기 스타버스터를 그대로 압도했다.

***

[으아아!]

쿠웅-.

자신이 마지막으로 모든 힘을 쥐어짜서 날린, 최후의 일격.

그것에 정통으로 맞은 병기는, 끝내 안에 있을 여자아이의 비명과 함께 하늘위로 튕겨져나갔다.

이미 그 병기는 자신의 공격으로 거의 박살난지 오래.

기계슈트의 머리 쪽 부분도 망가져, 안쪽에 있는 여자아이의 모습이 어렷품이 비춰지는 모습.

그렇게 박살이 난 채 날아가는 스타버스터를 보며.

동시에, 스타더스 또한 몸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그래, 이제 나름 길었던 전투의 끝이었다.

...대체 저 병기를 뭘로 만든건지, 꽤나 튼튼한 바람에 조금 전투가 길어지긴 했지만, 결국 그녀의 승리라고 할 수 있다.

봐라, 이미 자신의 마지막 공격에 끝내 동력을 잃은채 힘없이 날아가는 저 모습을.

그런 감상을 하며, 스타더스는 생각했다.

...자신보다 약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꽤나 강한 상대였다. 아마 A급은 되지 않을까.

대체 이런건 어떻게 만든건지, 지금까지 자신이 다 해킹했다는건 뭔지. 같은 집에 산다는건 뭔지.

신하루는, 에고스틱을 계속해서 '오빠'라고 부르는 저 여자아이에게 궁금한게 참 많았다.

그래.

더 자세한 이야기는, 협회로 끌고가서 물으면 될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스타더스는 금빛 머리카락을 바람에 휘날리는 채 하늘로 날아올라, 여전히 공중에 붕 뜬 채 날아가고 있는 병기에 탄 여자아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렇게.

그녀의 손이, 기절한 그 여자아이에게 닿기 전, 그 순간.

위잉-

그녀의 앞에서, 갑자기 보라색 마법진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빛나기 시작하는 마법진을 보며, 신하루는 급하게 몸을 피했고.

그와 동시에.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일전에 폭풍속에서 봤었던, 파괴광선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렇게 갑작스러운 공격이 끝난 후, 다시 스타더스가 눈을 돌렸을때 본 것은.

"....후후, 스타더스씨. 죄송하지만, 제 동료를 그렇게 쉽게 데려가게 냅둘 수는 없죠."

검은색 모자에 손을 올린 채, 하늘에서 망토를 휘날리며 떨어지는 에고스틱과.

"..."

두 손에 작은 마법진을 생성한 채, 그녀를 경계하듯 바라보고 있는 하얀색 무녀복을 입은 붉은 눈의 여자, 월광무녀였다.

***

휴우, 아슬아슬했다.

겉으로는 씨익 웃음을 지으며, 나는 속으로 땀을 훔쳤다.

애초에 서은이가 스타더스에게 털릴건 거의 자명했던 만큼 다 미리미리 준비를 해놨다. 물론 거의 은월이만 믿은거지만.

애초에 계획은 서은이가 지고 나면 마지막 순간에 구출해 주는거였는데, 갑자기 스타더스가 서은이를 잡으려고 하기에 급하게 나섰다. 아니, 공중에서 잡으려고 할 줄은 진짜 상상도 못했네.

하여튼 대신 급하게 은월이를 시켜 파괴광선을 날리게 한 덕분에, 서은이가 잡히는 참사는 면할 수 있었다. 물론 허공을 날고있는 서은이도 은월이가 마법으로 붙잡았고.

그렇게 스타더스를 저지한 이후, 나는 로봇 안에서 기절해있는 서은이를 붙잡아 들고 안았다. 가볍네.

"....에고스틱."

딱 서은이를 붙잡기 바로 직전 나에 의해 방해받은 스타더스는, 분하다는 듯 나를 쏘아보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나는 그런 그녀에게 빙그래 웃으며 말했다.

"심심한 사과의 말씀 드립니다. 그래도, 제가 당연히 제 동료들을 챙길 수 밖에 없지 않나요? 제 식구인걸요."

"....식구?

찬바람이 휘몰아치는 하늘의 한복판에서.

스타더스는 나를 노려보고, 그걸 막기위해 은월이가 뒤에서 마법진들을 생성하며 위협하고 있는 가운데.

나는 허공에 서은이를 안은 채로 둥둥 떠서, 클로징 멘트를 짜고 있었다.

테러는 끝났다. 이제 집에 가야돼.

일단 스타더스가 뭐라고 하고있지. 식구?

"네, 당연하죠! 저희 에고스트림 멤버들은 모두 가족처럼 끈끈하고도 친밀한 사이입니다. 진정한 악당들의 모임이죠. 그런만큼, 지금... 커흠. '저와 가장 오래 함께한 동료'가 쓰러졌는데, 가만히 있을 수야 있겠습니까?"

좋아. 서은이가 나한테 부탁했던 말도 했고, 명분도 세웠다.

나는 아직도 저쪽 철망쪽에서 둥둥 떠다니는 카메라를 염동력으로 조작해, 이쪽으로 다시 땡기고는.

마지막 마무리 멘트를 하기 시작했다.

"하여튼! 좋습니다, 스타더스씨. 당신의 승리입니다. 제 동료를 멋지게 쓰러트리셨군요. 당신이 이긴만큼 저는 여기서 깨끗이 물러나도록 하겠습니다. 제 동료나 어서 치료해 줘야겠군요."

나는 거기까지 말하고선 은월이에게 손짓했다.

그러자 내 말을 알아듣고는, 바로 내옆에 착 달라붙는 은월이.

그런 그녀를 한쪽 손으로 감싸 안으며, 나는 스타더스에게 마지막 인사를 날려줬다.

"그럼, 아디오스!"

"....."

그렇게 세상 잃은듯한 표정을 하는 스타더스를 뒤로하고, 나는 순간이동을 해 사라졌다.

아니, 왜 마음 아프게 그런 표정을 하고 그래.

...그래도 서은이는 못준다, 암.

***

"스타더스씨, 괜찮으십니까!"

"네, 네. 괜찮아요."

테러가 끝난 뒤.

철장에 갇힌 인질들을 구하고 현장을 정리하기 위해 달려온 협회 직원들과 경찰들의 호송을 받으며, 신하루는 이동하고 있었다.

그들이 건내준 가디건같은걸 어깨에 두른 채, 컵을 홀짝이며 그녀는 속으로 오늘의 수확을 정리했다.

테러야 뭐 늘 그랬듯이 아무 피해자 없이 끝났고, 주변 상권 박살난거야 에고스틱이 또 무슨 보상 어쩌구 해서 괜찮을거고.

마지막에 그 해커를 놓친건 아쉽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오늘은 에고스틱에 대한 새로운 정보들을 얻고 끝났다고 정리할 수 있다.

그렇게 그녀는 차 안에서 오늘 알게 된 내용들을 정리해봤다.

'아까 그 여자아이가 해커... 아마 지금까지 해커관련은 걔가 한거같고.'

'...그리고, 같은 집에 산다라'

'그리고, 뭐? 소중한 동료들, 식구라고. 가족같이 지낸다고 했지...'

그런 생각을 곱씹던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점차 기분이 나빠지는걸 느꼈다.

전에 일렉트라를 안은 에고스틱의 모습과 이번에 둘을 껴안은 채 사라지던 에고스틱의 모습. 그리고 이번에 마치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듯 그 여자아이를 껴안으며, 가족같은 동료라는 말을 강조하던 에고스틱의 모습이 그녀의 머릿속에 떠오르며.

"....."

가족, 가족이라.

하, 참.

제 119화

화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

[이번 테러에 새로 나온 애 왜이렇게 귀여움ㅋㅋㅋ]

ㄹㅇ보면서 빌런이라는 생각은 하나도 안들고 무슨 손녀 재롱장치 보는 기분으로 봄ㅋㅋㅋ

스타더스한테 아줌마라고 극딜하는거랑 에고스틱한테 오빠 오빠 거리는거 ㄹㅇ귀엽더라ㅋㅋ

=[댓글]=

[내가 첫번째 동료라고!! 하는것도 귀여웠음ㄹㅇㅋㅋ]

ㄴ[아 지금까지 아무도 안알아줘서 서러웠다고ㅋㅋㅋ]

ㄴ[+그거랑 스타더스 쓰러트린줄 알고 에고스틱한테 신나서 자랑하는게 ㄹㅇㅋㅋㅋㅋ]

[같은 존댓말도 에고스틱이 하면 뭔가 분위기있는데 얘는 그냥 귀엽더라ㅋㅋㅋ]

ㄴ[고등학생이라고 했으니 어른한테 존댓말하는게 맞긴 핮ㅋㅋㅋ]

[아니 왜 테러가 일어났는데 아무도 테러의 무서움이 아니라 테러리스트가 귀엽다는 말을 하고 있는거냐?]

ㄴ[테러가 아니라 '메인 이벤트'라고 불러두세요]

ㄴ[망고 콘서트인데]

*

[대체 에고스트림은 어떤 곳일까...]

생체 병기를 끌고 나온 천재 해커 여고생 (거짓 하나없는 진짜임)

죽어도 부활하는 데스나이트

남의 사이비 종교에서 NTR해버린 월광무녀에

수상할정도로 영향력있는 망고스틱까지...

심지어 이 모두가 가족같이 끈끈하다고...?

젠장!! 망고스틱 네놈 뭘만든 거냐고!!!!

=[댓글]=

[히어로 협회 게섯거라 망고스트림 나가신다~]

[한국의 보배 에고스틱이 잣으로 보이냐?]

[아니 왜 에고스트림 첫 멤버인 일렉트라는 본문에 쏙 빼는거냐?? 뭐임?? 싸우자는거임?????]

ㄴ[수상할정도로 화나셨는데 혹시 전기망고단이신가요?]

ㄴ[이야 에고트라단이 아직도 남아있다고? 독하다 독해ㅋㅋㅋ]

*

[이번에 한집발언 의미심장한 점]

에고스틱의 맴버들은 가족같다는 발언과

이번에 해커 여고생이 같은 한집에서 해킹했다는 발언 생각해보면

HOXY 에고스트림 맴버들 모두 큰집 하나에서 다같이 사는거 아닐까???

=[댓글]=

[헉]

[이거 ㄹㅇ 킹능성있다]

[지금까지 확인된바로 에고스트림 맴버들 중 여자만 4명 아님? 헉]

ㄴ[하램스틱ㄷㄷㄷㄷㄷㄷ]

ㄴ[일렉트라단 개같이 부활 각이냐?????]

ㄴ[달빛망고단이 더 떡상하는거지 어디서 전기구이가 비빔]

ㄴ[이번에 월광무녀랑 같이 등장한거 못봤냐? 품에 같이 껴안긴 그걸 보고도 그런 말을]

ㄴ[어이 신입... '아이스망고'각은 살아있다....]

ㄴW[미친놈들아 내 댓글창에서 커플링 싸움 하지마ㅅㅂ]

ㄴ[화내는거 보니까 글 작성자 스타더스단인듯ㄷ]

ㄴW[어케안거지]

ㄴ[ㅅㅂㅋㅋㅋㅋㅋㅋ]

[만약에 맴버 모두가 한집에 산다는 저게 ㄹㅇ이면 평소에 다같이 뭘 할까? 진짜 궁금하네]

***

아무도 찾을 수 없는 산맥 깊숙한 곳.

그곳 한복판에 위풍당당하게 서있는 커다란 집.

바로 에고스트림 본부.

대한민국 제일의 빌런연합을 넘어, 이제는 한국 제일의 초상능력자 모임이 되어가려고 하는 그곳.

그리고 이 연합의 창립자인 수장인 나.

는 현재, 울고있는 서은이를 달래주느라 바빴다.

"흐윽...."

"괜찮아, 괜찮아."

하룻밤 기절하고 나서 깨어나자마자, 멍하니 침대에 앉아있다가 갑자기 두 눈에서 눈물을 주르륵 흘리던 서은이.

애가 깨어나자마자 갑자기 우니까 화들짝 놀란 나는, 이렇게 정신없이 달래주고 있었다. 아니, 뭐가 그렇게 서럽다고 울고 그래.

"흐윽.... 이길 수 있었는데..."

아, 그게 서러웠던거구나.

...근데 서은아, 어. 딱히 이길 수 있어보이진 않았는데...?

여전히 내 품에 안겨 훌쩍이던 서은이는, 이내 나한테 사과를 하기 시작했다.

"미안해요 오빠... 제가 조금만 더 잘하면, 이길 수 있던건데..."

"아니야. 괜찮아 괜찮아, 그리고 꼭 이겨야 되는건 아니였어."

"흑흑흑..."

이내 나는 우는 서은이를 품에 안아 달래주며, 조용히 생각했다.

사실 서은아.. 애초에 이거 이기면 안되는 싸움이었어...

에고스트림 자체가 스타더스한테 주기적으로 시련을 주려고 계획된 조직인데, 진짜 스타더스를 이겨먹으면 약간 곤란해진다고.

...아닌가? 오히려 지면 더 분발할려나?

그런 생각을 하며 서은이를 쓰다듬고 있을 때, 서은이의 등 뒤에 있는 방문쪽에서 수빈씨와 최세희의 얼굴이 빼꼼 나타났다.

아마 우는 소리를 듣고 온 모양.

최세희가 나한테 입모양으로 '들어와도 돼?'라고 물어보길래 살짝 고개를 끄덕여줬다.

그래. 애 달래는 것 좀 도와줘.

그렇게 방으로 들어온 최세희는, 이내 서은이한테 옆에서 말을 걸었다.

"야, 서은아."

"히익?!"

갑자기 옆에서 최세희의 목소리가 들리자, 화들짝 놀라는 서은이.

그러더니 다급히 내 품에서 떨어져 말했다.

"어, 언니?"

"그래. 네 언니다. 울지말고 이거나 봐봐."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휴대폰을 건네주는 최세희.

그걸 받은 서은이는 울어서 살짝 붉은 눈으로 화면에 띄워진 게시글들을 읽어봤다.

".....언니, 이게 뭐에요?"

"뭐긴. 이번 테러에서 너 귀엽다고 하는 글들이다. 어때, 좀 힘이나지?"

"...하. 언니, 제가 초등학생도 아니고 이런거 본다고 갑자기 기분이 좋아지고 그러겠어요? 저는 원래 남 눈치보는 사람이 아니에요."

서은아. 그런 말은 입가에 미소만 좀 지우고 했으면 더 좋았을거 같은데.

그렇게 서은이는 휴대폰을 한참을 봤다. 다른 게시글들까지. 어찌나 열심히 보던지 앞에 서있던 최세희가 '어... 이제 그만 주지?'라고 말할 정도.

그렇게 내 팬카페 글들을 열심히 읽은 서은이는, 아까까지 울던 모습은 어디가고 갑자기 힘이 났는지 주먹을 번쩍 쥐고는 말했다.

"....그래요! 제 테러가 이번 한번도 아니고, 앞으로도 남았는데 그때 이기면 되죠!"

갑자기 자신감넘치게 말한 서은이는, 이내 한손에 여전히 주먹을 꽉쥔 채로 앞에 앉아있던 나한테 조용히 비장하게 속삭였다.

"....오빠, 제 스타버스터 2.0은, 저번이랑은 다를거에요. 제가, 그렇게 만들꺼니까."

"어... 그래. 파이팅?"

"좋았어요. 언니!!!"

"으, 으응?"

"저 따라와요, 지하실로! 오늘부터 새로운 스타버스터를 만드는거에요!"

"야, 잠깐만!"

갑작스럽게 의욕에 가득차서 침대를 뛰쳐나간 서은이를 최세희가 황급히 쫓아갔다.

"..."

뭐.

어쨌든 기운 차렸으니까, 좋은게 좋은거겠지...?

참고로 뛰어가던 서은이는 중간에 거실에서 수빈씨한테 들켜 혼났다. 기절하고 일어나자마자 뛰어다니면 어떡하냐고.

저런.

***

"휴우...."

그렇게 서은이 문제도 잘 해결되고.

은월이랑 최세희랑 같이 침대에 누워있는 서은이랑 오손도손 떠드는거까지 보고 다시 거실로 나와 소파에 털썩 주저앉은 나는, 근처에 있는 리모컨을 조작해 티비를 틀어봤다.

[이번에 에고스틱이 새로운 테러를 일으켰는데요, 시민들 반응은 어떱니까?]

[네. 이번에도 역시 이변은 없었습니다. 사상자는 아무도 없었고, 인질들도 무사히 풀려났는데요. 특히 인질로 붙잡힌 사람 중 한명은 평소에 에고스틱의 팬이라, 더없이 행복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그만 보자.

대충 채널을 계속 돌려서 영화가 나오는 곳으로 바꾸어 버린 나는, 이내 한숨을 다시 한번 푹 쉬었다.

"에혀...."

"다인오빠, 왜 그렇게 한숨이세요?"

그러자마자 근처 주방에 있던 이하율이 쪼르르 왔다.

나를 걱정된다는 눈으로 바라보는 그녀.

나는 그런 그녀한테 내 고민을 솔직히 말해주었다.

"아니... 분명 인기를 떨어트리려고 테러를 했는데, 아무런 소득이 없어..."

정말 이해가 안되는 일이 아닐 수가 없다.

언제부터 사람을 철장에 가둬 겁박하고 총으로 위협하는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단 말인가?

역시 이 세계의 대한민국은 어딘가 잘못됐다. 나는 열심히 성실하게 테러를 일으켰는데, 그걸 몰라주는 사람들이 이상한거지.

그리고 그런 내 말에 하율이는 약간 애매한 표정이 되서 말했다.

"....어, 오빠. 솔직히 말해서 이제는 오빠 테러에서 한명 죽지 않는 이상, 인기가 이대로 쭉 갈꺼같은데요. 사실 테러에서 사상자가 한명도 없는게 좀 이상하긴 하잖아요..."

말끝을 흐리면서도 소신발언을 마친 그녀.

나는 그러는 그녀한테 딱 잘라 말해주었다.

"...사람을 죽이는건 안돼. "

이곳에서 빌런이 되기로 마음 먹으면서 한가지 스스로와 약속한 것 한가지.

민간인을 죽이지는 않겠다. 웬만하면.

...아니 애초에, 사상자가 있건 없건 인질 붙잡고 살인미수를 몇십번 저질렀는데. 대체 어째서 그건 아무도 모른척 신경도 안쓰냐고.

"에휴... 근데 그래서 좀 문제네."

"오빠. 힘들어 보이시는데, 머리 맑아지시라고 제가 힐좀 해드릴까요?"

"어? 그래. 그래주면 나야 좋지. 고맙다."

내 말이 끝나자 나를 소파로 앉히더니 내 어깨를 주물러주는 하율이.

...?

"아니 하율아, 너 그 치유능력 써준다는거 아니였니?"

"이렇게 주물르면서 동시에 능력쓰는게 더 효과 좋으니까, 가만히 계세요."

"엄... 그래. 고맙다."

하율이의 안마는 시원했다.

...어쩌다 내가 안마를 받게된건진 잘 기억도 안나는데, 하여튼.

그렇게 그날 밤.

나는 혼자 내 방 책상 앞에서, 동영상 공유 사이트를 뒤적여봤다.

"와... 아니, 이게 그렇게 없다고?"

검색창에 에고스틱을 넣고 쳐봤더니, 어째 나를 욕하는 영상들은 다 어디가고 무슨 연예인 얘기하듯 다룬 영상들밖에 없다.

에고스틱_하이라이트, 에고스틱_매드무비, 세계가 놀란 K-빌런 에고스틱 뭐 이런것들.

...내 욕을 하는 애가 이렇게까지 없다고?

나는 그 순간에서야 큰 경각심을 느꼈다.

아니, 내가 전에 봤던 히어로 영화에는 거미줄만 쏘는 착한 히어로마저 어떤 할아버지 나오는 언론이 미친듯이 억까하면서 까던데, 이 세상에는 빌런인 나를 까는 사람이 없다고?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에고스틱 비판'이라고 쳐봤다.

그러자 확 줄어드는 검색결과.

그나마 있는 영상들도 다 내 테러 초기에 올라왔던거라 없다시피 했다.

그렇게 심각한 얼굴로 스크롤을 내리던 그때.

"...있네, 하나."

딱 하나 있었다.

어떤 여성이 에고스틱은 테러범 아닌가요? 라면서 의아해하는 영상이.

당연?하게도 싫어요 테러를 받은 그 영상을 보며.

나는 무언가가 번뜩였다.

"...그래."

아무도 나를 억까하지 않는다면.

내가 스스로, 그 히어로 영화에서처럼 나를 억까하는 방송을 하나 만들어버리면 되는거 아닐까?

"....."

....나, 천재일지도.

제 120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