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0화
화역효과
"으으... 미안해요, 여러분 미안해요... 미안하다고!!!"
서울의 한 원룸.
그곳에서 컴퓨터를 보며 마우스를 딸깍이던 채나영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빽 질렀다.
그리고 눈물을 머금고 영상의 댓글창을 막아버렸다.
댓글을 막는 초강수를 둔 문제의 영상은 바로, 에고스틱 비판 영상.
"하아... 진짜, 어째서...."
그녀는 한숨을 푹 쉬었다.
채나영, 그녀는 기자다.
아니, 정확히는 기자였다. 이번에 잘리기 전까지만 해도.
홀로 다시 길바닥에 내려앉은 그녀는, 울며 겨자먹기로 동영상 공유 플랫폼에 채널을 하나 파 영상을 올리고 있었다. 자신이 제일 잘하는, 시사 관련 영상을.
구독자수도 별로 없어 겨우 입에 풀칠할 정도지만, 현재 그녀의 유일한 희망.
편의점 알바까지 두탕을 뛰어가며 열심히 운영하고 있던 채널. 그리고 이번에 새로 올린 영상이, 싫어요 테러를 받은 것이다.
"...아니, 에고스틱이 무슨 성역이야? 성역이냐고!"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빽 질렀다.
자신이 이번에 올린 영상은 빌런 에고스틱을 비판하는 영상.
정확히는, 그를 무지성적으로 추종하는 사람들을 비판하는 거였다. 아니, 빌런이잖아? 그런데 왜 지상파도 그렇고 그를 그렇게까지 심하게 비판하지 않는거지?
그래서 그녀는 자신이 먼저 나서서 블루오션을 개척하기로 했다.
솔직히 자신 있었다. 아직 에고스틱을 까는 사람이 별로 없을때, 자신이 앞장서서 나서면 에고스틱을 비판하는 모든 반대파들을 흡수 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그 결과는.
폭망이었다.
".....하. 망했네. 이게 유일한 희망이었는데.."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며 자기도 모르게 울먹였다.
안그래도 조회수는 매번 하락중. 이제는 정말 먹고살길이 막막해질 지경.
심지어 월세도 못낼 위기에 처한 그녀는, 그만 싫어요와 악플을 받고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아. 다, 그만할까."
그리고 그녀는.
이내 초점을 잃은 눈동자로 중얼거렸다.
하하, 안될거야 아마.
로또라도 샀어야했나.
아. 이번 월세는 어떻게 내지.
그렇게 퀭한 눈으로 그녀가 있을 때.
띵동- 하고 알람이 왔다.
"....뭐지."
그렇게 중얼거리며 자신의 휴대폰을 열어본 그녀는.
순간적으로 눈을 비볐다.
"...뭐냐. 꿈인가?"
[DH님이 10,000,000원 후원.]
[안녕하세요 늘 영상 잘 보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소신을 잃지말고 이런 영상 계속 만들어주셨으면 해요. 특히 이번 영상, 굉장히 마음에 들었습니다. 혹시 저랑 사업 하나 해보실 생각 없으십니까?]
"....에?"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휴대폰을 손에서 떨어트렸다.
***
"오빠.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좋은 생각이 아닌거 같은데요?"
"아니야. 이건 굉장히 좋은 아이디어야."
"아닌거 같은데...."
나는 서은이한테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말했다.
아니, 이제는 이 방법밖에 없다.
그리고 이게 제일 효율이 좋고.
대한민국에 에고스틱을 욕하는 언론사같은게 하나도 없다는건 정말 이상한 일이다.
따로 알아본 결과, 누가 조금이라도 비판적인 기사를 쓰면 우르르 사람들이 몰려가 싫어요 세례를 받는다는걸 깨달은 뒤로, 난 느꼈다. 이건 좀 바뀔 필요가 있다는걸.
내 목적은 스타더스에게 시련을 안겨주어 성장시키는 빌런이 되는 것.
사실 따지고보면 스타더스만 나를 빌런이라고 생각하면 오케이인 일이기도 하다. 내가 하는 모든 일들은 스타더스를 위해서니까.
다만. 지금처럼 사람들 모두가 나를 딱히 욕하지 않는다면 스타더스가 의아해 할 수도 있다. 막 스스로를 의심할 수도 있다고. 다른 사람들이 다 에고스틱을 딱히 안 싫어하는걸 보니까, 에고스틱은 빌런이 아닌가? 이러면서.
물론, 물론 우리 스타더스가 그럴리가 없다고 난 믿고있다. 정의감으로 가득 찬 스타더스가 나같이 악랄하기 짝이없는 빌런을 상대로 다른 이들처럼 그런 말도 안되는 의심을 할리가 없겠지. 다만, 아무리 그래도 나를 비판하는 곳이 단 한곳도 없는건 좀 문제다.
그래서 나는 결심한 것이다.
그래, 내가 아싸리 방송사를 하나 차려버리자.
에고스틱 비판전문 채널을 만들어버리는거다.
대한민국에 이런게 적어도 하나는 있어도 괜찮잖아?
라는 생각을 하자마자, 또 문제점에 부딪혔다.
아니, 내가 그런거 할 시간이 어딨어? 처음부터 열까지 다 하려고 하니까 힘들다.
그런 고민을 하다보니 내 눈에 들어온 것.
바로, 유일하게 나를 비판하는 영상을 올렸다가 싫어요 폭탄을 받은, 어떤 여자의 방송이었다.
험악한 댓글창과는 다르게, 영상은 꽤나 잘 만들어졌다. 편집실력도 깔끔하고, 여자 목소리도 마치 공중파 앵커처럼 또박또박하고.
그런 그녀의 영상을 홀린듯 시청하던 나는, 무언가를 깨달았다.
....잠깐. 생각해 보니까 굳이 내가 직접 할 필요없이, 이 여자를 키워서 나를 까는 영상만 만들게 하면 되는거 아닐까?
"..."
나는 즉시 떠오른 아이디어를 행동으로 옮겼다.
자, 입벌려 후원 들어간다.
우리 한번 진득한 대화를 나눠볼까?
***
"후흐..."
채나영.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계속 실실거리다가, 스스로 흠칫하고 놀랐다.
그래, 이렇게 좋아해서만은 안되지.
일하자, 일.
"...예쓰!!!"
그러나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침대에서 번쩍 뛰어올랐다.
그래.
이대로 나락으로 갈꺼같던 그녀의 인생에도, 한줄기 구원의 빛이 내린 것.
바로 그녀에게 후원자가 생긴것이다.
그것도, 자신의 능력을 인정해주는.
자신한테 밑도끝도 없이 갑자기 천만원을 후원해준 그 의문의 후원자.
화들짝 놀란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그 후원자분과 연락을 하게 되었고.
이내 그와 많은 대화를 하게 되었다.
자신을 그냥 아이디 [DH]로 불러달라고 한 그 익명의 남성, 아니. 그 분. 그 분은 자신의 제일 최근 영상이 몹시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그래, 에고스틱을 비판했던 그 영상이.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에게 남는 건 돈 뿐이니, 팍팍 밀어줄테니까 한번 에고스틱 그놈을 진득하게 까보라고 하셨다. 앞으로 나올 영상의 퀄리티를 보고, 더 후원. 아니, 더 투자 해주실 수도 있다고.
그렇다.
그녀는 재벌 2세로 추정되는 사람한테 간택받은 것이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그 의문의 후원자를 향해 중얼거렸다.
솔직히 말해서 그녀는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이게 현실이라고? 갑자기 돈이 넝쿨채 굴러들어왔는데?
그리고 느껴지는 후원자분에 대한 경의.
그래... 이게, 사랑인걸까?
그녀는 지금 후원자를 거의 숭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나같이 미천한 사람을... 어찌감히...
"그래... 이럴때가 아니지."
그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 기회.
인생에 정말 한번 올까말까한 이 기회를 놓칠수는 없다. 절대로.
후원자분이 자기를 찝은 이유는 에고스틱을 까는 그 영상때문.
즉, 그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그녀는 분발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날 즉시 그녀는 그가 후원해준, 아니. 투자해준 돈으로 스튜디오를 하나 빌렸다.
그래. 나 채나영.
나의 저력을 꼭 후원자님한테 보여줘서, 인정받고 말겠다.
내가 한다면 하는 여자라는걸.
이 세상에서 에고스틱을 자기보다 더 찰지게 깔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다는 걸.
***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다.
"하아... 하아..."
마지막 최종편집까지 마친 채나영은, 컴퓨터앞에 털썩 쓰러졌다.
"...하얗게, 불태웠어..."
영상 하나 만드는데, 그녀가 할 수 있는 모든걸 쏟아부었다고 자부할 수 있다.
로고만 있으면 공중파 9시 뉴스급 퀄리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모습.
이 고퀄리티의, 대단히 공신력 있어보이는 영상의 내용은 알차게 에고스틱을 욕하는 내용으로만 담았다.
오로지 단 한분, 자신의 후원자를 위해.
"후원자님... 보고 계십니까? 당신을 위한 심퍼니입니다..."
그렇게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영상을 새로 판 채널에 업로드했다.
자.
주사위는 굴려졌다.
***
내가 채나영이라는 유튜버한테 후원을 해준 뒤, 대단히 생산적인 일을 한지 일주일 후.
사실 한 주나 지나서 거의 까먹고 있었는데.
띠링하고 폰이 울려서 봤더니, 그녀가 영상을 하나 올렸다는 알림이 왔다.
"아, 드디어 올렸나. 어디한번 봐볼까?"
그리고 내가 본 영상은.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
처음부터 끝까지 에고스틱을 쉴세없이 까는 영상.
그것도 엄청난 퀄리티로, 마치 뉴스처럼 제작된 그 영상은.
그야말로 내가 딱 원하던 거였다.
그리고 난 그때 깨달았다.
...이거, 물건이다.
크게 될 수 있다.
그런 판단을 마친 즉시, 나는 서은이한테 달려갔다.
"서은아! 주작기 있지?"
"에. 네? 주작기요?"
"그래. 유튜브 조회수 주작기. 그거 빨리 써, 이 영상 실시간 인기영상 1위로 만들자."
"아니, 이게 뭔데요. ...이걸요?"
"그래. 내 감이 말해주는데, 이건 각이 나왔어. 얘 밀어주면 뜬다."
"네? 아니... 참... 스읍... 일단 알았어요."
그렇게.
대한민국 유튜브 실시간 인기 영상 1위에.
[잔인무도한 사이코패스 빌런 에고스틱, 그의 추악한 일면을 정리해보자]가 등극하는, 희대의 이벤트가 일어났다.
***
신하루.
그녀는 한주간 제일 생각을 많이한건, 언제나 똑같듯 에고스틱이었다.
대체 그가 같은 집에 산다는건 무슨 소리인가.
동료들이랑 가족같이 친하다고? ...자신은 그에대해 아무것도 모르는데, 그는 동료들이랑 가족같이 한집에서 지내는 걸수도 있댄다.
자신은 그에 대한 작은 정보 하나, 이름하나 모르지만 그의 동료들은 가족이라던데 당연히 그정도는 알겠지. 자신은 아무리 애를 써도 모를 것을.
그리고 그 테러.
이번에 일으킨 테러는 대체 뭘 워한 테러였던걸까. 기껏 인질까지 붙잡더니, 털끝도 안건드리고 또 풀어줬다. 애초에 인질을 잡은건 별다른 이유는 없고 스타더스 자신을 부르기 위함이라는 것처럼.
...그러면 대체 이번 테러는 왜 일으킨거란 말인가. 무슨 목적으로?
그리고 그런 그녀의 직감이 말하기를.
...어째, 이번 테러는 에고스틱 그가 자신이 빌런이라는걸 호소하기 위해 한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말도 안되는 자신의 망상이겠지만, 그냥 그런 생각이 자신도 모르게 들었다.
...에고스틱. 그를 정말 나쁜놈이라고 봐야하는 걸까. 그를 빌런이라고 할 수 있는가?
또 그런 생각을 하던 신하루는, 자신도 모르게 머리를 져었다.
...에고스틱은 당연히 악당이다. 잔인한 악당. 자꾸 이상한 생각을. 헛된 망상을 해서 약해지면 안된다.
에고스틱은 분명한 빌런이고, 자신은 그를 잡으면 된다. 끝.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자연히 머리가 아파지던 신하루는, 한숨을 쉬며 유튜브나 들어갔다. 음악이나 들을까 하고.
그리고 그런 그녀에 눈길을 사로잡는, 실시간 1위라고 적혀있는 커다란 썸네일의 영상.
[잔인무도한 사이코패스 빌런 에고스틱, 그의 추악한 일면을 정리해보자]
그 제목을 본 그녀는, 홀린듯 영상을 눌렀다.
그리고 시작되는 영상에서는 한 앵커저럼 보이는 여자가 나와, 침착한 목소리로 지금까지 에고스틱이 저질렀던 악행들을 조목조목 읊기 시작했다.
민간인들이 탄 배를 폭탄으로 터트릴려 하기, 기차 선로에 사람 묶어두기, 비행기 떨어트리기, 다리 폭파 기물 파손 등등.
지금까지 에고스틱이 저지른 악행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말하던 앵커는, 마지막에 가서는 격양된 목소리로 외쳤다.
[이런 잔인무도한 사이코패스같은 미친자식을 당장 집어넣어야 합니다!! 국민 여러분, 속지 마십쇼! 그는 구제불능한 미친 쓰레기고, 당장 사형시켜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세상에 나쁜놈이 있다면 그건 이 개만도 못한 에고스틱일겁니다!!!]
그렇게 흥분한 여성의 일갈로 끝난 영상.
그 밑에는 무수히 박힌 싫어요들이 범람하고 있었고.
댓글창에는 수많은 욕들이 난무했다. 물론 에고스틱이 아닌, 앵커에게.
그리고 그 영상을 끝까지 본 뒤.
여전히 멍하니 있던 신하루는, 조용히 생각했다.
"....."
...아니, 에고스틱이 물론 나쁜놈은 맞지만.
그래도, 그래도 이건 너무 심하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하던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영상의 댓글창에 댓글을 적고있는 자신의 손가락을 발견했다.
[Newday313][이거는 좀 너무 억지로 까는거 같네요. 논리도 빈약하고요. 에고스틱이 이렇게까지 나쁜놈은 아닌거 같습니다.]
거기에 바로 댓글 등록까지 해버린 그녀는, 조용히 생각했다.
...그래. 이건 일종의 정의구현이다.
아무리 상대가 빌런이라고 하더라도 이렇게 욕까지 하면서 까는건 아니지, 암.
솔직히 이정도면 에고스틱이 불쌍한거니까. 응. 너무 욕을 심하게 했으니까... 어쩔수 없는거야.
그렇게 신하루는 내친김에 영상에 싫어요 표시도 꾸욱 했다.
...왠지, 에고스틱이 욕먹는 영상을 보니 자신이 기분이 나빠지는,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을 품은 채.
***
"와. 오빠. 오빠 까는 영상 좋아요 대 싫어요 비율 1대 10000을 돌파했어요. 거의 역대 최고 기록인데요?"
놀리듯 나한테 말하는 서은이를 보며, 나는 말해줬다.
"서은아. 그건 아무 의미 없어."
그래.
이건 사실상 스타더스, 신하루 한명만 보라고 만든 영상이다.
분명 휴식시간에는 유튜브를 보는 그녀니, 분명 이 영상도 봤겠지.
그녀가 이걸 보고 다시한번 내가 얼마나 나쁜지 깨닫고, 나에대한 적개심을 활활 불태운다면 그걸로 난 됐다.
비록 댓글창은 나를 커버쳐주는 사람들로 한가득이지만, 거기에 스타더스가 있는건 아닐테니 상관없다.
"그래... 그거면, 된거야...."
제 121화
화예기치않은 만남
에고스틱에 대한 건설적인 비판의 장을 만들기 위해 계획한, 안티-에고스틱 방송 만들기. 일명 반-에고스틱 언론사 만들기는, 따지고 보자면 성공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지금은 싫어요 테러를 당하는 등 분위기가 안좋아보이지만, 원래 선구자는 욕을 먹는법. 계속하다보면 언젠간 인정받을 날이 올거다.
그래서 그런 의미로 투자를 해서 아예 스튜디오를 하나 만들어버렸다. <데일리 빌런>. 말이 데일리 빌런이지, 사실 에고스틱 전문 방송이라고 할 수 있다. 투자금을 다 내가 댔으니 당연히 내 입김이 꽤나 들어가겠지만, 그래도 채나영 그 여자가 혼자서도 알아서 잘 하는것처럼 보여서 믿음직스러웠다.
근데 그거랑 별개로, 이 채나영이란 여자가 나한테, 엄, 너무 부담스럽게 굴어서 좀 문제다. 계속 후원자님은 제 은인이에요 이러는데, 진정해.
...생각해보니까 좀 웃기긴 하다. 나는 후원자라고 거의 숭배하듯 우러러보면서, 정작 하는일은 그 후원자를 욕하는거잖아? 물론 그녀는 내가 에고스틱이라는걸 모르니 그렇게 된거지만, 모든걸 아는 입장에서는 묘하긴 하다.
하여튼 아직은 미약하지만, 시간이 차차 지나면 꽤나 효과가 있을 거라고 개인적으로 예측한다. 언젠가는 모든 대중이 날 잔인무도한 사악한 빌런이라고 생각할 날이 오겠지. 암, 그렇고 말고.
하여튼 이 문제는 일단 됐다.
이런게 중요한게 어디지.
"...어디보자..."
나는 봉인된 내 공책을 꺼내놓았다.
원작을 통해 아는, 앞으로 미래에 일어날 일들이 정리되어있는 이 다이어리.
그것을 보며 나는 침음했다.
"...하아. 산넘어 산이구만."
앞으로 등장할 빌런들을 대략적으로 보니, 머리가 지끈거리는 기분.
솔직히 이제는 스타더스가 꽤나 강해져서 어지간한 적들은 전부 무력으로 때려 부수지만.
문제는 기믹형 빌런들이다. 독가스를 뿌린다던가, 대규모 학살을 한다던가 그런 놈들. 스타더스가 잡는다 하더라도 이미 수많을 피해자를 낼 놈들.
...물론 내가 이 세계를 원작과는 꽤나 다르게 바꾸긴 했지만, 그건 원래 죽었을 사람들을 살린거지 살았을 사람들을 죽인게 아니라 별 의미가 없다. 결국 원작에서 등장했던 이 빌런들은 아마도 높은 확률로 등장할거란 말.
그리고 월광교. 얘네도 문제다.
대망의 2페이즈 최종보스인 이 교주녀석. 벌써부터 골치가 아프고, 최종장이랑 연계를 생각하면 이것저것 골때리기는 한데. 이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3페이즈도 이제 슬슬 대비해야된다. 그때가 되면 세계가 진짜 미쳐 날뛰는데, 아마 그 상황에서는 나 혼자서 지금처럼 다 처리할 수는 없을거다. 협회랑 어느정도 협력을 해야겠지.
협회와의 협력은 뭐, 이미 이설아를 내편으로 꼬드긴 시점에서 반쯤은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섀도우워커랑 협회장, 둘만 더 끌어드리면 협회도 내 손에?
아, 또 미래를 생각하니 머리가 아프네.
좋아. 이건 나중에 생각하고.
지금 당장 닥친 일만 한번 봐보자.
"좋아. 이제 다음에 일어날 메인 이벤트가... "
그렇게 노트를 넘기던 나는 멈칫했다.
그래, 이제 이거 차례구나.
나는 노트에 내가 예전에 적어놓았던 글씨를 바라보았다.
[섀도우워커 여자친구 살인 사건]
"....."
좀 쉬나 했더니.
또 바쁘겠구만.
***
이 세계관의 대한민국에는 3명의 A급 히어로가 있다.
서울의 스타더스.
부산의 아이시클.
그리고 저녁의 섀도우워커.
밤에 한정해서는 절대적인 위력을 내는 그는, 원작 만화 초반부까진 별로 등장도 안한다. 애초에 거의 저녁에만 활동하니 스타더스랑 만날 일도 없고.
그러나 내가 분명 이 세계관이 무엇이라고 했었나.
이 지구는 멸망직전까지 가는 피폐한 세계.
즉, 히어로인 섀도우워커도 피폐의 마수를 피하지 못했다.
그중 그의 인생이 피폐해지기 시작한다는 신호탄을 쏜게 바로 그의 여친 살인 사건.
그에게 큰 정신적 지주였던 여친이 갱단에 납치당해 인질로 묶였다가, 끝내 살해당하는 사건.
그전부터 안그래도 경미한 우울증을 갖고 있던 섀도우워커는, 순식간에 나락행 열차를 타게 된다.
그렇게 갖은 피폐의 시련이 닥치고, 결국 흑화엔딩.
...아, 그거 생각하니까 골 때리네.
하여튼 결론은, 그의 여자친구가 죽는게 결과적으로 안좋은 일이라는거다.
그러니까 살려야지.
이제 슬슬 준비해야겠구만.
그런 결심을 마친 나는 거실로 나왔다.
거실에 들어오자마자 보이는, 서은이와 은월이.
거실 식탁에 추욱 늘어진 서은이는, 백은월한테 중얼거리고 있었다.
"여행... 여행이 가고싶어."
"...생각해보니, 전 태어나서 한번도 여행을 가본적이 없네요."
"뭐 진짜?"
"네... 기억 날때부터 월광교에 갇혀 살았으니까요."
"그럼 바다는 본 적 있어?"
"....당연히 본 적은 있죠. 다만 그때는 교주를 따라 사람들한테 전도하러 갔을 때 잠깐 멀리서 본거라, 들어가서 논적은 한번도 없네요.
"와 진짜?"
...서은아, 그. 너도 저번에 나랑 수빈씨랑 놀러가기 전까지는 바다 한번도 가본적 없지 않니? 왜 그렇게 놀라는거야.
그런 생각을 품고 내가 거실로 다가가자, 나를 본 서은이는 반색하며 말했다.
"오빠! 우리 여행가요, 바다로!"
"바다?"
"네. 저랑 오빠랑 수빈언니랑, 세희언니랑, 하율언니랑, 은월이랑, 데식이 아저씨랑 차윤이 다 같이 바다 한번 가는거에요. 어때요?"
나한테 눈을 빛내며 그렇게 말하는 서은이.
거기에 옆에있던 은월이도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보는게, 여행에 관심이 있어보이는 눈치였다.
...여행, 여행이라.
생각해보니 마지막으로 서은이랑 수빈씨랑 부산 놀러갔던거 빼고는 다같이 여행을 가본적이 없네.
요즘 너무 바쁘게 살아오긴 했지.
....그래, 여행이라.
"좋아. 나중에 한번 가보자. 다같이."
"진짜요? 야호!"
"뭐야, 우리 여행가?"
그렇게 서은이와 은월이가 신나하고 있을 때, 방금 막 일어났는지 최세희가 눈을 부비며 걸어들어왔다.
"네. 언니, 지금부터 한번 우리끼리 알아봐요. 은월이가 바다 한번도 가본적이 없다니까 바다 어때요?"
"바다? 좋지. 이많은 인원이 다가면 아예 펜션이라도 빌려야 할려나? 한번 알아볼까."
"좋아요!"
물흐르듯 갑작스럽게 진행되는 여행얘기.
이렇게 좋아할 줄 알았으면 진작 여행 한번 갈껄 그랬나?
그런 생각을 하던 나는, 뭔가를 잊은듯한 찝찝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잠깐. 내가 왜 거실로 나왔더라. 여행말고 다른 할 얘기가 있었는데.
아 맞다.
"서은아, 서은아. 일로와봐."
"왜요 오빠?"
내가 부르자마자 쪼르르 달려오는 서은이.
나는 그런 서은이한테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해줬다.
"서은아."
"헤헤... 네?"
"오빠가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
"네! 뭐든 해보세요!"
"여자 한명만 CCTV 해킹해서 감시해줄래?"
".....네?"
아까까지만 해도 방긋 웃고있던 서은이의 눈과 입꼬리가 착 가라앉았다.
아니, 이상한거 아니야.
다 세계를 위해서 이러는거라고.
그렇게 서은이한테 상황을 잘 설명해주고서야, 나는 서은이의 협조를 받아낼 수 있었다.
좋아... 이 준비는 완료되었고.
이제 아이시클, 이설아만 만나러가면 되겠네.
***
하여튼 그렇게 일은 착실히 계획되고 있었다.
섀도우워커의 폭주를 막아라. 제 1단계. 여친 살려주기.
"다인씨. 제 말 듣고있어요?"
"응? 아, 당연히 듣고있지."
유성기업 사장실.
정기적으로 하는 이설아와의 대담에서, 그녀는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하아. 제가 어디까지 말했죠? 네, 하여튼 일이 좀 꼬이고 있어요. 다른 기업들은 하나 하나 인수하고 있는데, 정치권이 문제네요."
"잘 안돼?"
"말도 마세요... 제말을 듣는둥 마는둥 하는데. 그냥 그놈들을 다 얼려버리고 싶다니까요. 이제 대선도 얼마남지 않았는데, 진짜 뭐하자는건지.. 하아."
이설아는 그렇게 나를 붙잡고 자신의 대한민국 정치권 장악 프로젝트가 표류하고 있다고 한동안 징징거렸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말을 들으며.
"...하하, 힘들겠네."
나는 살짝 식은땀을 흘렸다.
...나 때문인가?
원작에서는 월광무녀의 서울 테러 이후 정부청사같은게 전부 부산으로 옮겨지면서, 부산 토박이인 이설아의 위상이 상대적으로 엄청 강해졌었다.
그래서 정부도 굉장히 쉽게 먹었던걸로 기억하는데...
"진짜 김만복 그놈은!! 아흑... 머리야."
"...하하."
맞는거같다. 원작에서는 분명 쉽게쉽게 정부도 장악했다고 나왔는데, 지금 저렇게 머리를 싸매고 있는걸 보아 잘 안풀리는 모양.
그렇게 죽는소리를 하는 이설아를 보며, 나는 괜사리 좀 미안했다. 아니 그래도, 서울이 망하게 둘 수는 없었잖아....
결국 죽는소리로 시작한 이설아와의 대담은 결국 그녀가 요즘 힘드니 우리집에 한번 놀러와보고 싶다는걸로 결론이 났다.
...결론의 상태가 이상한데, 하여튼.
***
그 이후로도 일상은 나름 평범하게 진행되었다.
나는 다음 테러 기획하고, 에고스트림 멤버들은 여행 어디갈지 알아보느라 바쁘고, 서은이는 틈틈히 섀도우워커 여친 감시하고,
그렇게 평범하게 지내던 어느날.
"오빠! 그 여자가 갑자기 이상한 남자들한테 끌려갔어요!"
거실에서 최세희랑 같이 리듬게임 2인배틀을 하고있던 나한테, 서은이가 달려와서 다급히 소리쳤다.
"뭐라고!"
나는 당장 패드를 던져버리고 외쳤다.
아니, 생각보다 빨리 일어났는데?
나는 서둘러 준비하기 시작했다.
좋아, 빌런의 시간이다.
***
섀도우워커, 김자현.
그는 방안에 틀어박혀 있었다.
저번 월광무녀 사건 이후, 살짝 우울증에 걸린 그.
늘 해가 진 밤이 도래한 시간에는 무적이라는 자신감이 있던 그는.
월광무녀한테 처참히 지고 나서, 그야말로 멘탈이 박살났다.
밤.
밤은... 내가 최강이 아니었어?
처음으로 자존심에 큰 스크레치를 입은 그는.
그렇게 우울감에 빠져 방안에 틀어박혀 하루하루를 자괴감에 빠진 채 살았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힘이 되었던건, 그의 여자친구.
자신을 늘 응원해주던 그녀덕분에, 섀도우워커는 점점 힘을 낼 수 있었다.
"...근데, 왜 연락이 안되지?"
그런데 그날은 뭐가 이상했다.
늘 연락이 잘되던 그녀가 갑자기 연락이 끊긴것.
그래서 김자현 그가 걱정에 빠져있을 때.
갑작스럽게,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지."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문으로 다가간 그는, 뭔가 이상하다는걸 깨달았다.
...노크소리가, 문에서 들려오고 있지 않았다.
현관문이 아닌, 옆에 창문에서 들려오고 있었다는 것.
"아니 시발. 뭐야."
황당함을 느낀 그가 창문을 벌컥 열었고.
그렇게 10층 상공에서.
"안녕하십니까, 섀도우워커씨. 에고스틱이라고 합니다!"
가면을 쓴 A급 빌런이 제발로 찾아와 인사를 건냈다.
"...."
김자현은 자신이 꿈을 꾸고있는건지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제 122화
화사나이
히어로 협회.
사실 각종 히어로물들에서 늘 모든 히어로들을 총괄하는 협회같은 단체는 꼭 등장한다.
그리고 그런 단체들의 공통점은, 꼭 내부의 적에 의해 무너진다는 것도 똑같고.
이 세계관의 협회도 마찬가지다.
무능하지만 그래도 양심은 있는 협회장에 의해 초중반까지는 어찌어찌 굴러가던 협회는, 결국 후반부에는 빌런 세력에 완전히 먹혀버린다. 그리고 교묘하게 히어로들을 이끌어 자멸과 내분으로 이끄는 등, 대한민국 막장화에 큰 기여를 한다.
그거말고도 이런 저런 이유들이 있는데, 한줄로 정리하면 이거다.
아이시클과 섀도우워커.
큰거 안 바라고 딱 두명. 딱 두명만 포섭하고 보자.
그렇게 나는 원작에 나온 섀도우워커를 떠올려봤다.
밤에는 무적이란 특수한 능력때문에 프라이드가 강하고, 그에 따라 스스로가 굉장히 똑똑하다고 생각하고, 그런 자신의 믿음과는 다르게 어... 그래. 항상 피곤해서 뇌를 저전력으로 운영하는건지, 애가 좀 단순하다. 원작에서 봤는데, 어. 강력한 능력과는 다르게 좀 많이 단순하더라고.
그리고 어쨌든 그보다 제일 중요한건 여자친구를 굉장히 아낀다는 거다
그럼 그런 그의 친구가 되기 가장 좋은 방법은 뭘까?
아! 걔 여친을 구해주면 되지 않을까?
그래서 내가 여기 왔다.
"안녕하십니까, 섀도우워커씨. 에고스틱이라고 합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며 산뜻하게 웃어줬다.
원래 첫만남이 모든걸 결정하는 법. 첫인상에 웃는 모습을 보여 호감도를 올리겠다는 나름의 계략으로 웃은거다. 물론 원래 웃기는 하지만, 하여튼.
그렇게 대략 밤의 10층 높이는 되는 아파트에서.
찬 바람을 맞아가며, 나는 창문 너머의 섀도우워커에게 인사를 건냈다.
그리고 그런 내 인사를 받은 섀도우워커는.
"....내가 지금 꿈을 꾸는거냐?"
살짝 황당해 보이는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부스스한 머리에, '나 피곤해요'를 광고하듯 눈 밑에 그려져 있는 다크서클까지. 심지어 여전히 잠옷까지 입고 있는 모습.
그런 그는, 이내 여전히 무슨 상황인지 이해를 못하겠다는 듯 부스스한 머리를 손으로 털더니, 나를 보며 계속 말을 이었다.
"....아니지, 분명 현실인데. 그럼 넌 뭐냐? 자수하러 온거냐?"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나를 바라보는 그.
머리가 어지럽다는 듯 이마를 부여잡는 그에게, 나는 여전히 씨익 웃은 채 입을 열었다.
"그럴리가 있겠습니까? 당연히 다른 이유로 찾아왔죠."
"아니... 그전에 내 집은 대체 어떻게 알고 찾아온거야? 뭐냐 대체...."
"제가 지금부터 중요한 말을 할겁니다. 잘 들으세요."
"....그냥 내가 널 여기서 붙잡고나서 들으면 안되냐?"
"일단 이건 제가 한 일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흥분하지말고 잘 들어보세요."
"....아니. 네 입장에서 생각해봐라. 네가 밤에 있는데 히어로가 네 집 창문에 똑똑하고 창문을 두들기면 흥분 하겠어 안하겠어?"
"제가 한건 아니고 저도 들은건데."
"...뭐. 뭔데."
"당신 여자친구가 무슨 갱단한테 납치당했답니다."
"..."
그리고 내가 그 말을 내뱉은 그 순간.
아까까지만 해도 어리버리해 보이던 그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바뀌었다.
"아니 시발 제가 한거 아니라고 했잖아요. 그거 낫 치워봐."
나는 어느새 자기 손에 그림자로 이루어진 낫을 소환한 그를 보고 심드렁이 말했다.
내 이럴줄 알았지, 빌런은 서럽다 서러워. 좋은 일을 해도 의심을 받으니, 이거 억울해서 살겠어? 어?
"....네가 한거 아니라고?"
"아니 좀 생각해보세요. 제가 한거였으면 왜 여기와서 굳이 맨투맨으로 통보하겠습니까? 그냥 방송키지."
"...그래. 방송. 너 지금 이거 방송킨거 아니야?"
"이상한 소리는 하지 마시고, 이건 오프 더 레코드입니다. 당신과 저만의 대화죠."
"아니 시발... 숙희, 숙희가 납치당했다고? 넌 그걸 어떻게 알고있는데?"
"제가 모르는건 이세상에 없다, 그렇게만 알고계시면 됩니다. 그리고 자, 여기입니다."
갑작스러운 내 말에 패닉에 빠진 그를 보며, 나는 휙 하고 지도 한장을 건네줬다. 사실 벌써 줄 생각은 없었는데, 얘가 슬슬 멘탈이 빠르게 무너지는게 보여서 일단 건네주고봤다. 조금만 지체하면 '네가 납치했지?' 하면서 저 낫을 나한테 휘두르게 생겼었다고.
".....이게 뭐냐."
"뭐긴요. 당신 여자친구분이 납치당했다는 공장지대 좌표입니다. 선물이에요."
"..."
그리고 내 말이 끝나는 즉시, 그는 그림자이동으로 그냥 텔레포트해서 사라졌다.
....? 그냥 갔어?
".....음, 어. 바로 갔네."
그렇게 나는 휑한 창 밖에서, 홀로 서있었다.
...아니, 아무리 정신이 없다 해도 나는 뭐 딱히 공격해서 묶어둔다거나 하지도 않고 그냥 사라져버렸네.
애초에 저게 함정이었으면 대체 어쩌려고 저러는거지? 물론 밤에 섀도우워커를 위협할 수 있는게 뭐 얼마나 되겠냐만은 그래도.
"베히모스야, 아쉽게 됐다."
나는 내 코트안에 챙긴 베히모스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을 전해주었다. 베히모스 좀 오랜만에 쓰나 했더니 어째 별 소득이 없네. 섀도우워커의 어둠을 상대할 수 있는게 베히모스라 기껏 챙겨왔는데, 섀도우워커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가버려서 원...
[다인! 어떻게 된건가. 싸움이 어째서 아직도 시작되지 않는거지?]
"아. 데식이 아재. 거, 음. 오늘은 싸움없습니다. 그냥 잠이나 자세요."
[뭐라고!]
그리고 반지안에 영혼상태로 갇혀있는 데스나이트. 싸움을 기대한 그에게도 아쉽게 됐다.
아니, 난 진짜 최소 한번은 싸울 줄 알았지.
원래 내 계획은 이거였다.
내가 섀도우워커한테 니 여친 납치당했다고 말한다. 그러면 섀도우워커가 빡돌아서 '네가 납치했지!!' 라면서 나를 공격한다. 그러면 나는 베히모스랑 데스나이트를 이용해 그에게 맞선다. 그리고 나 아니라고 살살 설득해서 그 공장지대로 애를 보내버린다... 였는데.
엄. 그냥 내 말을 들은 순간부터 살짝 식은땀도 흘리고 초조불안해 하더니 지도 받자마자 세상 빠르게 텔레포트해서 사라졌다.
"....뭐. 좋은게 좋은거지."
저걸보니 왜 쟤가 여친 죽고나서부터 슬슬 흑화했는지 알거 같네.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다시 1층으로 내려왔다.
어두운 골목 사이로, 미리 주차되어 있는 검은색 차.
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거기에 타서 입을 열었다.
"수빈씨. 저 왔어요."
"어머, 다인씨. 일찍 오셨네요?"
"네. 싸울 줄 알았는데 안싸우더라고요. 어쨌든 빠르게 밟죠. 목적지 설정됐나요?"
"네. 그 공장쪽으로 되어있어요."
"좋습니다. 바로 출발하죠."
그렇게 우리는 어두운 밤의 거리를 달리기 시작했다.
...섀도우워커, 그놈이야 능력이 출중하니 거기까지 한순간에 순간이동 할 수 있지만, 나는 그짓거리했다가는 피토하고 죽는다. 여기서 거기까지 거리가 얼만데.
"....."
그리고 생각해보니까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수빈씨 안부르고 나 혼자 갈걸 그랬네.
나야 섀도우워커와의 싸움은 피할 수 없을거라고 90프로 이상 확신했으니, 도중에 부상을 입을걸 대비해 수빈씨를 미리 대기시켜 놓은건데, 멀쩡하니까 좀 미안하다. 내가 운전해도 되는데.
살짝 미안함 마음을 가지고 나는 차에 탄 채 공장지대로 향했다.
그래도 등받이는 푹신하고, 수빈씨도 오랜만에 둘만 있으니 좋다고 했으니까 된 거 아닐까?
그렇게 이런저런 대화를 하며, 우리는 금새 공장지대에 도착했다.
을씨년스러운 밤의 폐공장.
아마 저 안에서 섀도우워커가 갱단을 조지고 있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공장 쪽으로 이동했다.
섀도우워커랑 말은 하고 떠나야지.
***
"크아아악!"
"쯧."
섀도우워커, 김자현은 혀를 찼다.
방금을 마지막으로 이 공장을 점거하고 있던 갱단의 일원을 전부 처리한지 오래.
"...하아. 이게 무슨 일이냐..."
그렇게 납치당한 채 기절해있던 인질들을 전부 풀어주고.
그 틈에 섞인 여자친구만 일단 챙긴 채, 그는 밖으로 나왔다.
"....큰일날뻔했네."
그는 기절한 자신의 여자친구를 품에 안은 채, 중얼거렸다.
다행히 상처하나 없이 평온히 잠들어있는 그녀.
...정말 큰일 날 뻔했다.
그는 방금전에 봤던 모습을 떠올렸다.
총을 든 채, 히히덕 거리며 누구 먼저 쏴서 죽여볼까 거리며 놀던 갱단새끼들.
그 모습에 눈이 뒤집힌 그는, 순식간에 전부 처리해 버렸으나.
아찔한 감각은 아직까지 남아있는 채였다.
저런 한주먹거리도 안되는 놈들한테 그녀를 잃을 수도 있었다.
....그가 없었다면
"안녕하십니까 섀도우워커씨. 역시 깔끔하게 처리하신 모습이네요. 대단하십니다."
"....에고스틱."
여자친구를 품에 안은 채 밖으로 나온 김자현은, 드넓은 공터에 선 채로 자신을 향해 축하의 말을 건네는 에고스틱을 보며 짧게 읊조렸다.
검은 모자에 검은 망토에 검은 옷에 아주 깔맞춤한 채, 하얀 마스크로 얼굴의 반을 가리고 있는 그.
...저놈 덕분에, 그녀를 구할 수 있었다.
"...."
그는 자신이 알고있던 에고스틱에 대한 정보를 빠르게 복기해봤다.
에고스틱. 낮에 일어나는 일에는 별로 관심이 없던 그도 수없이 많이 들어본 놈이다.
대한민국에서 제일 유명한 빌런이자, 인기 또한 제일 많은 빌런. 테러는 일으키되 사상자는 절대로 내지 않고, 오히려 다른 빌런이 테러를 일으키는걸 막을때도 있다고 들었었다.
그래, 그도 소문으로는 많이 들었다. 스타더스도 그에 대해 꽤 많이 신경을 쓴다는걸 들었었고.
사실 그래도 그렇게까지 자신은 별 관심이 없었는데.
이러면 얘기가 달라진다.
"....에고스틱. 너는 분명 빌런 아니냐? 어째서 나를 도와준거지?"
그래.
그게 김자현, 그의 제일 큰 궁금증이었다.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다는건 넘어가고, 어째서 그의 여자친구가 납치당하는걸 그에게 알려준거지?
그리고 자신의 의문섞인 질문에, 에고스틱 그는 씨익 웃으며 답할 뿐이었다.
"글쎄요. 왜일까요?"
"...."
"그냥 편하게 생각하세요. 빌런이라고 꼭 나쁜일만 해야되는건 아니지 않습니까? 히어로들도 매일 착한건 아니고, 가끔은 나쁜일도 하지 않습니까. 저도 뭐 가끔씩은 착한 일도 해보고 그럴 수 있는거죠."
"...?"
뭔 개소리야.
김자현은 그 말이 입밖으로 나올뻔한걸 참았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사실상 그녀를 구해준건 에고스틱이니까.
대신, 김자현은 머리를 굴렸다.
그의 여자친구 숙희는 늘 그보고 단순무식하다고 하지만, 김자현은 스스로는 굳게 믿고 있다. 그가 머리를 안써서 그렇지, 막상 쓰면 아주 똑똑하다는걸.
그런 그가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에고스틱. 빌런이지만 평소에 일으키는 테러는 사상자도 없고 다른 빌런을 사냥하고 다닌다. 거기까지만 보면, 그래도 빌런은 빌런이지 않냐고 볼 수 있지만.
"....고맙다. 뭐 원하는거 있냐?"
"훗. 협회나 다른 이들한테 제가 도와줬다고 알리지나 마십쇼. 그것만 해주신다면 더 바라는거 없습니다."
거기에 더해 굳이 다른 히어로의 연인이 납치당했다는걸 히어로한테 알려줘 범죄도 막고 인질들도 살려나게 한다?
그렇게 그의 대뇌는 결과를 도출했다.
이녀석, 착한놈이었구만.
"알았다. 너도 뭔 사정이 있겠지."
섀도우워커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이미 무엇보다 소중한 자신의 여자친구를 살려줬다는거에서, 에고스틱에 대한 호감도는 천장을 뚫은지 오래. 거기에 딱히 나쁜 녀석도 아닌거처럼 보여, 또 호감도는 2배가 되었다.
심지어 그는 다른 이들한테 자신의 선행을 알리지 말아달라는 말만 남긴 채, 뒷끝없이 그대로 사라졌다.
이거 완전, 진정한 사나이가 아닌가.
"...에고스틱. 착한 녀석이었군. 물론 난 처음부터 알고 있었지만."
"으응..."
"어 숙희야! 깼어?"
그렇게 그날 밤.
그날 밤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대한민국의 A급 히어로 3명 중 2명이 에고스틱의 편이 되는 순간이었다.
***
"....?"
혼자 방에 있던 스타더스는, 뭔가 이상한 감각에 사로잡혔다.
뭐지? 이 자기만 따돌린 채 다들 무언가를 하고있는거 같은 기분은.
"...기분탓이겠지."
그렇게 그녀는 오늘도 열일하는 직감을 기분탓으로 치부하고 넘겼다.
...좀 찝찝함만 남긴 채.
제 123화
화악당의 하루
나에게 사람의 마음을 추측하는 능력까지는 없다.
그래서 현재 섀도우워커가 나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딱히 모르는 일.
....그래도 원작에서 나온 그놈의 단순한 성격을 생각해 봤을 때, 나를 믿는데 그렇게 오래 걸리진 않을 거라고 믿는다. 아마 몇번만 더 하면 같이 술잔을 기울일 수 있을 정도로 발전할 수도 있지 않을까.
걔의 그리 단순한 성격때문에 나중에 사기당해 배신당하는 일도 있었지만, 그건 나중일이니 일단은 보류하자.
그렇게 제일 급한 불이던 섀도우워커 여친 살인사건을 막고, 거기에 섀도우에게도 호감작까지 해뒀더니.
음. 마음이 편안하네.
그래도 한시름 놨다고 할 수 있다.
살짝 긴장이 풀리는 느낌.
나는 지금까지 내가 이룬 업적을 다시 떠올려보았다.
역시 제일 중요한건 스타더스를 원작보다 훨씬 빠르게 성장시켰다는 것. 결국에는 스타더스가 알파이자 오메가인만큼 이게 제일 크다.
그리고 스타더스의 스트레스도 원작보다 훨씬 덜해졌을 거라는 것또한 큰 장점. 원작 만화에서는 이미 이 시간대 쯤이면 멘탈이 가루가 되어있을 그녀다. 그러나 지금은? 원작에 비하면 아주 해피할꺼다.
또 뭐가 있을까.
그래. 나 때문에 죽지않은 사람들이 벌써 수십, 수백명에. 지켜진 도시들도 몇개나 된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섀도우워커의 흑화도 막았고.
그리고 빌런 연합 창설도 아주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얼마나 순조롭나면, 저번에 수능을 본 하율이가 드디어 대학이 확정났다.
"연희대 간호학과?"
"네! 여기는 별로 기대도 안했는데 붙었어요!"
그렇게 말하면서 기뻐하는 하율이었다. 사실 이미 S급 능력인 치유능력이 있는데 대학이 무슨 소용인가 싶지만, 그래도 뭐 본인이 가고 싶다는데 굳이 말리진 않았다. 대학도 하나의 경험이니까.
그런데 연희대면 스타더스, 신하루가 다니는 곳인데.
그렇게 생각한 나는 멈칫했으나, 생각해보니 연희대는 1학년은 나머지 학년과 다른 캠퍼스를 쓴다고 해서 안심할 수 있었다. 그래, 하루가 이제 4학년이지? 어차피 만날 일도 없겠네. 심지어 내년이면 졸업이니까.
....없겠지? 응, 없을꺼야 설마.
그래. 거기에 스타더스는 우리 하율이를 한번도 직접 본적은 없잖아? 괜찮겠지 뭐.
그런 생각을 하던 나는, 슬슬 이런 생각도 해봤다. 언젠가 스타더스가 충분히 강해지고, 빌런 연합이 나 없이도 잘 굴러갈 정도라면... 나는 그만 쉬어도 되는거 아닐까. 그런 생각을.
아니, 세상이 진짜 나름 평온하게 잘 굴러가고 있다.
이제는 원작의 그 피폐한 세계관이랑은 아주 많이 달라진지 오래. 이정도면 치유물..?
물론 아직까지도 두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있는 월광교와, 아직 수없이 남은 빌런들을 생각하면 그정도는 아니겠지만, 하여튼.
결국 중요한건, 내가 알기로 한동안은 별다른 일이 없을거라는거.
그러니까 두다리 쭉 뻗고 쉬어도 된다, 이말이다.
그렇게 나는 조금 마음 편하게 먹기로 했다.
뭐 별일 있겠어.
***
며칠후, 화창한 낮.
따뜻한 태양볕이 창문을 통해 거실을 은은하게 밝히는 그곳의 소파 아래쪽에 앉아.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다들, 준비됐어?"
"당연하죠. 오빠, 질 준비나 해요. 제가 1등일꺼니까."
"하. 서은아, 미안하지만 1등은 이 언니꺼란다."
가운데에 앉아 컨트롤러를 쥔 채 준비를 하고 있는 나.
그리고 내 양 옆에 앉아 같이 컨트롤러를 각각 하나씩 쥐은 채 미소짓고 있는 서은이와 세희.
그리고 심판을 보는 은월이까지.
그렇게 긴장한 내 앞에 티비화면에서는.
숫자가 카운팅 다운되고 있었다.
[쓰리- 투- 원-]
[고!!]
그와함께 화면에서, 동시에 각자가 조작하는 자동차가 출발했다.
우리 셋이 하기로 한 내기. 게임에서 세개의 트랙을 모두 돌아 1등으로 도착한 사람의 소원을 나머지 두명이 들어주기.
그렇게 빌런들의 치열한 전투가 펼쳐졌다.
"아악! 등껍질 맞았어요!"
"미안하다 서은아! 그거 내가 쏜거다!"
"아니, 오빠. 진짜 그럴거에요?"
"쓰읍... 이거 왤케 빡시냐..."
피튀기는 빌런들의 한판 승부.
그렇게 첫번째 트랙이 끝나고.
승부는 더욱 찌릿찌릿해지기 시작했다.
아니, 말 그대로의 의미로 찌릿찌릿해지기 시작했다. 최세희 주위로 정전기가 일어나기 시작했거든.
"아니! 최세희! 너 그거 정전기 어떻게 좀 해봐!"
"쓰읍. 나 지금 집중하고 있잖아, 말시키좀 말아봐."
"아니! 언니! 저 슬슬 팔이 진짜로 따가워지고 있어요!"
전기타입 능력자 특징. 집중하면 전기를 제어를 못함.
이대로는 승부에 심각한 영향이 갈꺼라는 판단이 든 나는, 비상한 상황에 맞는 비상한 대책을 세우기로 했다.
뭐긴 뭐야. 런이지.
"아니 오빠, 어디가는거에요!"
"서은아 미안하다! 나는 살아야겠다!"
나는 그렇게 순간이동해 소파에서 멀찍히 떨어진 곳으로 이동했다.
순간이동 최대장점. 게임할때 화면에서 눈을 안때고 자리를 바꿀 수 있다.
그런데 어째, 멀리 떨어져있는데도 정전기가 일어나고 있는 기분이다?
"야 최세희! 대체 왜 여기까지 정전기가 나는건데? 너 일부러 그러는거지?"
"쓰읍... 난 아무것도 모른다. 묻지마. 흐."
순간 삐끗하면 나락으로 가는 게임인만큼 고개를 돌려 최세희를 바라볼 수는 없었지만. 안봐도 쟤가 웃고있는건 알 수 있겠다.
....좋아. 그렇게 나오겠다 이거지?
그렇게 정전기의 억까속에 나는 꼴등을 하고 있는 상황.
그래. 이대로는 안된다.
아까 말했듯, 비상한 상황에서는 비상한 대책을 세워야 하는법.
나는 염동력을 발휘해 컨트롤러를 띄워올렸다.
물론 내꺼 말고 쟤들꺼.
"아니 야!"
"오빠!!! 왜 저한테까지 그래요!!!"
집중해서 게임하다가 갑자기 컨트롤러가 두둥실 떠오르는 살아생전 하기힘든 놀라운 경험에 그녀들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나왔다.
억까에는 억까로, 능력에는 능력으로.
내가 무능력자인줄 알어? 나도 염동력이라는 능력을 가진 어엿한 듀얼능력자라고.
....물론 서은이한테는 좀 미안했다. 못난 어른들이 미안하다 서은아.
그렇게 방해공작 끝에 내가 다시 1위로 우뚝 설 수 있었다. 그래, 이거지.
참고로 두 어른에 억까에 휘말린 서은이는 꼴찌가 되어버린 상황.
"....그래, 다들 이렇게 나오겠다 이거죠?"
이를 갈던 서은이는, 갑자기 달리는걸 멈추고 컨트롤러를 이상하게 조작하기 시작했다. 누가 보면 격투게임을 콤보 누르는 마냥 아무키나 누르기 시작하는 그녀.
나는 순간 드디어 서은이가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게임을 접어버렸나? 라고 생각하던 순간.
갑자기 내 차가 달리다 말고 하늘 높이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마치 찰리와 유리엘리베이터를 탄 것마냥 트랙을 떠나 저 먼 우주로 질주하기 시작하는 나의 차!
"아니 이게 뭔일이야!!"
"쓰읍 서은아! 이거 네가 한거지!!"
"하. 이건 언니랑 오빠가 먼저 시작한거에요! 저는 능력 없는줄 알았죠?"
그렇게 무슨 코드를 입력해 우리를 우주로 보내버리고 유유히 텅 빈 트랙을 1등으로 질주하고 있는 서은이.
황급히 드디어 땅으로 돌아온 나와 최세희가 애를 써봐야 역부족.
이대로 가면 백프로 진다.
그런 생각을 하던 중, 저쪽에 있던 최세희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동시에 서로의 생각을 꿰뚫은 우리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적의 적은 나의 친구라는 오래된 격언이 있지. 어차피 스포츠맨쉽은 저 아래 땅바닥에 쳐박혀있는지 오래. 이제와서 점잖을 떨어봤자 위선일뿐.
서은아. 인생은 실전이란다. 저 바깥의 세상으로 나가면 너의 적들은 공정하게 룰을 지키면서 싸우지 않아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치사하고 더럽게 널 옭아맬거란다. 그런 세상의 험악함에 서은이가 당황하지 않을 수 있도록, 나는 미리 교육을 시켜주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서은이가 결승선을 통과하기 직전, 찌릿한 정전기기가 그녀의 등에 닥침과 동시에 손에 들고있던 컨트롤러도 미친듯이 진동하며 컨트롤을 방해하기 시작했다.
"언니!!! 오빠!!! 진짜 이럴거에요!!!"
"크흑... 미안하다 서은아. 이 못난 오빠를 용서해라!!!"
"쓰읍.... 난 아무것도 안했어 서은아. 언니 믿지?"
"야 임마."
"아니 진짜!!!! 아니!!!"
그렇게 서은이가 얼타는 순간 다시 우리 둘이 순식간에 따라잡았고.
"으으...!"
"쓰읍... 간다!"
"제가 질거같아요?"
드디어 마지막 결승선을 셋 중 한명이 통과하려던 그때!!!
-파앗.
갑자기 티비 화면이 검은색이 되며 꺼졌버렸다.
"...."
"...."
"...."
그렇게 순간적인 침묵이 거실을 감싸고.
우리 셋이 모두 갑작스러운 사태에 굳어있을 때.
소파 위에서 멍하니 우리가 일으키던 생쇼를 지켜보던 은월이만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어. 이렇게 되면 무승부네요."
"...."
"...."
"쓰읍... 서은아! 아까 네가 이상한거 하더니 티비가 고장난거 아니야?"
"아니 언니. 여기서 제탓을?!"
"푸흣... 아니. 크흑, 진짜 웃겨죽겠다. 우리 진짜 지금까지 대체 뭘한거냐? 엔딩봐라."
이제는 아예 폭소를 터트리는 최세희.
그런 그녀를 어이없다는 듯 보던 서은이도, 이내 이 상황이 웃긴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보며 나도 웃음을 지었다.
...아, 이렇게 뇌 비우고 놀던게 진짜 얼마만이지?
괜사리 나도 웃음이 터지는 기분.
...그래. 이게 행복이지. 사실 행복은 멀리있는게 아니다. 이렇게 다같이 모여 웃고 놀며 떠드는게, 진정한 행복 아닐까.
비록 언제까지 이렇게 다른 생각 안하고 웃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당분간은 별일이 없을테니까, 상관없다. 지금 이렇게 이 순간을 즐기자고.
내가 그렇게 미소지으며 생각하고 있을 때, 아까 꺼졌던 티비가 드디어 다시 빛을 내며 켜지기 시작했다.
"어? 저거 다시 켜지는데?"
내가 손으로 티비를 가르키며 말했다.
아니, 나름 좋은 티비를 갔다가 썼는데 왜 고장나고 난리인거야?
켜졌다는 불이 들어오긴 하지만, 여전히 새까만 어둠으로 뒤덮인 화면.
그런 티비를 지켜보던 나는 제일 먼저, 무언가 이상하다는걸 깨달았다.
....잠깐. 이거 고장이 아닌거 같은데.
그리고 그런 내 생각을 입증하듯.
갑자기.
거대한 검은색 티비 화면에서.
달이.
하얀색 달이, 중앙에 떠올랐다.
"....저건 뭐야?"
갑작스러운 상황에 최세희가 고개를 갸웃거릴 때.
뒤에 있던 은월이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어 말했다.
"월광..."
"응?"
"저 달이, 월광교의 상징이에요...."
살짝 공포에 질린 목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리는 은월이.
그리고 그와 동시에 화면에서는, 어떤 늙은 사람의 목소리가 지직거리며 나오기 시작했다.
[아....]
[아...해들이여...]
[월광교의 교주, '천월황'이옵니다.... 처음으로 인사올립니다. 강녕하시옵니까....]
그렇게 지직거리는, 긁는 듯한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얼굴을 굳혔다.
아니 시발.
원작에서 이런 일은, 분명 없었는데.
제 124화
화영웅의 하루
히어로.
히어로라고 해서 매일 일만 하는 건 아니다.
사실 히어로들은 빌런이 나타났을 때나 활약할 기회가 있기 때문에, 빌런이 없는 대부분의 시간. 즉 평소에는 그렇게 할 일이 많은 편이 아니다.
그런만큼, 히어로들은 빌런이 없는 대부분의 시간을 꽤나 한가하게 보내는 편이다.
협회에서 주는 월급만으로는 살기도 힘든 저등급의 히어로들은 대부분 각자 따로 주업을 두고 히어로 활동을 부업으로 하는 편.
그리고 그런 저등급 히어로들 말고도, 대한민국을 책임지는 A급 이상의 히어로들도 대부분 여가시간을 따로 각자의 할 일을 하며 보내는건 마찬가지다.
아이시클, 이설아. 그녀는 빌런이 등장하지 않는 대부분의 시간을 자신의 회사를 운영하며 보낸다. 이미 정치계와 금융권에 깊숙히 발을 들인 이설아의 유성기업은, 곳곳에 뿌려진 그녀의 영향력에 의해 이미 그녀 없이는 굴러가기 힘든 상태. 그런만큼 이설아또한 회사에서 살다시피 하며 살고있다.
섀도우워커, 김자현. 낮에 자고 밤에 활동하는, 드라큘라와 같이 사는 그는 주로 자신의 여자친구와 놀면서 시간을 보내는 법이다. 아니면 그 시간에 자신의 능력을 단련하던가 하며.
그리고 마지막으로. 스타더스, 신하루.
그녀 역시도, 남은 시간에 히어로 활동이 아닌 다른 일을 한다. 대표적으로 대학생활. 이제 4학년, 졸업반인 만큼 수업도 듣고 과제도 들으며, 마치 평범한 대학생처럼 살고 있다.
그러나, 스타더스가 누구인가.
대한민국의 A급 히어로들 3명 중 제일 특별한, 유일하게 S급에 가까운 인물. 그리고 그들 중 제일 정의로운 인물.
그런 그녀이니만큼, 빌런이 나타났을 때만 잠깐 반짝 활동한 뒤 나머지 시간은 빌런이든 뭐든 히어로활동은 다 잊고서 일상에 전념하는 다른 히어로들과는 달랐다. 즉, 그녀는 평상시에 대학 생활도 병행하면서, 히어로라는 신분을 망각하지 않고 틈틈히 협회 사무실에 나가거나, 아니면 집에서나 빌런들을 어떻게 잡을지 연구하며 일하는 편이다.
즉, 현재.
협회에 있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신하루는 컴퓨터를 끼고 앉아 일을 하고 있었다.
"스타더스님. 혹시 필요한거 있으시면 언제든지 불러주시길 바랍니다."
"네. 감사합니다."
그렇게 협회 직원도 나가고.
다시 마우스를 달깍이던 그녀는, 늘 그랬듯 한 사이트에 들어갔다.
[에고스틱 팬카페]
"....."
상당히 오랜만에 들어옴에도, 마치 고향집에 온거처럼 자신을 반겨주는 정겨운 노란색 인터페이스.
그녀가 이 카페에 들어온 이유는 단 하나, 정보를 얻기 위함에서다.
무슨 정보? 당연히 에고스틱에 대한 정보.
"하아..."
그녀는 히어로.
그런 그녀는, 전국에서 암약하며 테러를 일으키는 빌런들을 붙잡아 수용소에 쳐넣어버리는 것이 그녀의 임무다.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현재 가장 꼭대기에 있는 히어로인 신하루 그녀가, 그녀와 마찬가지로 가장 꼭대기에 있는 빌런 에고스틱을 집중적으로 알아보는 것은, 자석의 N극과 S극이 맞물리는 것처럼 지극히 당연한 일. 사실 그녀가 하루종일 에고스틱에 대해서만 고민한다 해도 그런 그녀를 책망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것이다. 오히려 칭찬하면 칭찬했지.
그렇게 자신이 에고스틱 팬카페를 둘러보는 것에대한 구구절절한 자기합리화를 마친 그녀는, 이내 양심의 가책을 벗어던지고 카페의 인기글들을 먼저 둘러보기로 결정했다.
척 보기에도 별 쓸모없어 보이는 것들이 대다수.
에고스틱 테러 스틸샷, 망고스틱 코스프레, 에고스트림 맴버랑 커플링 등...
그래도 혹시 모르므로 굳이 다 들어가본 그녀는, 마음에 드는 게시글에는 좋아요를 누르고 마음에 안들면 댓글로 반박도 달며, 열심히 활동했다.
다시 말하지만, 놀고 있는게 아니다. 엄연히 히어로로써 빌런에 대해 알아보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열심히 모든 인기글들을 다 읽어본 뒤.
다시 메인 화면으로 돌아온 그녀는, 문득 허망함을 느꼈다.
...자신은 에고스틱 그에 대한 작은 정보 하나라도 더 얻기 위해 이렇게 애쓰는 동안, 그의 동료들은 이미 에고스틱 그에대한 모든걸 다 알고있겠지?
그런 생각을 하던 신하루는 가슴이 답답해지는걸 느꼈다.
내가 에고스틱 전문가인데.
정작 나는 에고스틱에 대해 아는게, 그들과 비교하면 거의 없구나.
"에휴...."
'우리는 가족같은 사이입니다. 아주 친하죠.'
귓가에 어른거리는 에고스틱의 목소리에 다시 기분이 안좋아지는 느낌.
...하아. 어쨌든간에, 에고스틱은 테러를 여러번 저지른 빌런이다. 빌런이니까, 잡아야되는데...
"...."
모르겠다.
이상하게 에고스틱에 대해서만 생각하면 그녀는 머리가 바보가 되는거 같았다.
온갖 나쁜놈인 척 빌런짓은 다하면서도, 정작 중요한 순간 나타나 자신을 구해주는 그를.
....이제는, 그를 자신의 손으로 감옥에 잡아넣을 수 있는 순간이 왔을때, 자신이 그한테 그럴 수 있을지도 확신이 들지 않는다.
"...내가 무슨 생각을."
그래. 아무리 그래도 그는 빌런이다. 걸어다니는 시한폭탄. 이미 전과만 수십개.
히어로로써, 자신을 지지해주는 대중들을 생각해서도 이러면 안된다.
그래. 일하자 일.
그녀는 다시 모니터에 집중했다.
.... 좋아, 이번에는 뭘 알아볼까.
협회에서 올라온 보고서나 다시한번 읽어볼까.
그렇게, 창가에서는 햇빛이 내려와 그녀의 금발 머리를 반짝이듯 빛나게 하는, 아늑한 그녀의 사무실.
따뜻한 태양볕을 받으며, 신하루는 다시 열심히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녀가 문서들을 읽고있던 그때.
돌연, 모니터가 그냥 꺼져버렸다.
"....?"
뭐지. 고장났나.
그녀가 모니터를 노려보며 뭐가 문제인건지 생각해보려던 그때.
팟-.
다시 모니터에 빛이 들어왔다.
아, 다시 켜졌구나.
라고 그녀가 생각하던 순간.
그녀는 무언가, 이상한걸 깨달았다.
아까까지만 해도 하얀색의 문서가 나와있던 화면.
그 화면에 문서는 어디가고.
새까맣게 검은색으로 물들은 화면에는.
거대한 달 하나만이, 외롭게 떠있을 뿐이었다.
"....뭐야 이거."
갑자기 자신의 모니터에 나타난 달.
그것을 보며, 신하루는 즉각 불길함을 느꼈다.
뭔가, 이상하다.
그리고 그 순간, 바로 자신의 모니터와 천장에 달린 협회 스피커에서 나는, 쇠가 긁는 소리.
[아....]
[아...해들이여...]
[월광교의 교주, '천월황'이옵니다.... 처음으로 인사올립니다. 강녕하시옵니까....]
월광교.
그 말을 들은 즉시, 그녀는 즉시 얼굴을 굳혔다.
에고스틱과 더붙어, 협회에서 가장 예의주시하고 있는 빌런 중 하나.
저번에 월광무녀를 앞세워 서울을 거의 괴멸시킬뻔한 그 단체.
"스타더스씨!!!"
"네, 저도 지금 듣고있어요."
서둘러 달려온 협회직원한테 조용히 하라고 손짓으로 전한 뒤, 그녀는 월광교주 말에 귀를 기울였다.
여전히 무언가 쇠를 긁는 듯한 목소리로 이어지는, 스피커의 소리.
[네... 아, 네.... 모두들 행복한거 같으셔서 기분이 저도 몹시 좋습니다... 다들 가정과 일터에 축복이 있는... 그런 낮을 보내고 계십니까?]
[썩어빠진 인간들끼리 모여 서로를 악의 구렁텅이로 빠트리는 모습이, 참으로... 참으로 즐거웁니다 그려....]
[오늘도 매일 세계를 파멸로 이끌어가는... 스스로 재앙과도 같은 그대들에게.]
[제가 선물이, 있사옵니다....]
[
저 하늘 위의 달을 보십시오.}
[달이 참으로, 밝지 않습니까?]
밝은 대낮에 갑자기 달을 바라보라는 교주의 말.
이해하기 힘든 선문답같은 말에, 신하루의 얼굴이 찌푸려졌으나.
갑자기.
교주의 그 말이 끝난 그 순간.
"....어?"
아까까지만 해도 맹렬히 타오르던 햇빛이 갑작스럽게 사라짐과 동시에. 모든게 새까메지며.
세상이 갑작스럽게, 어둠에 내려앉았다.
"....밤이 됐어?"
[....끌끌끌.]
[우둔한 여러분께 소인이 주는, 첫번째 선물이옵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를... 더 드리도록 하죠.]
[서로가 서로를 죽이려드는 끔찍한 세계를...]
[벗어나 구원의 길로 가실 수 있도록, 제가 기회를 주겠습니다...]
[구원을 얻지 못하신 모든 자들이여... 월광(月光)과 함께하면 구원의 길이 그대에게도 열릴지어니.]
[배교자에게는, 오직 죽음뿐이리라.]
그리고 교주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도시의 한쪽편에서 들려오는, 기괴하고 거대한 울부짖음.
구워어어어어어어어어어-
끼이이이에에에에엑그
"스타더스씨!"
"네, 지금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이미 슈트를 다 챙겨입은 그녀는, 불빛한점 없는 새까만 하늘로 즉시 몸을 던졌다.
"....."
갑작스럽게 내려앉은 짙은 어둠에 깔린 도시.
그곳 위를 날며, 거대하게 울리는 기괴한 소음이 나는 곳으로 날아가는 신하루.
그러는 그녀의 표정은, 어느때보다도 불안해보였다.
불길하다.
그 어느때보다도, 불길하다.
그녀의 직감은, 그렇게 경고하고 있었다.
***
순식간에 어둠속에 휩싸인 집.
[구원을 얻지 못하신 모든 자들이여... 월광(月光)과 함께하면 구원의 길이 그대에게도 열릴지어니.]
[배교자에게는, 오직 죽음뿐이리라.]
교주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시발. 진짜 좆됐네."
나는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아니, 시발. 진짜 왜...
"오빠! 이게 다 무슨일이에요?"
"다인씨! 갑자기 밖이 어두워졌는데 어떻게 된거죠?"
"야... 지금 대체 뭐가 일어나고 있는거냐?"
우리 에고스트림도 난리가 난 가운데.
[속보입니다! 현재 서울 한지역에서 미확인 괴생물체가 나타났다는 소식입니다!]
나는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듣고, 얼굴을 굳혔다.
월광교. 갑자기 깔린 어둠. 괴생물체.
시발. 이건 백퍼 월광교의 그거다.
2페이즈의 최종전에 등장하는 묵시록의 병사들 중 하나.
"...은."
"네?"
"서은아, 은 있는거 다 챙겨. 빨리!!!"
좆됐다.
이건 진짜 빨리 못막으면 답이 없다.
나는 서둘러 지하실을 향해 이동했다.
아니, 시발 교주 씹새끼야.
왜 최종병기를 지금 들고오냐고.
그렇게 어둠이 깔린 도시에서.
두명의 인물이, 재앙을 막기 위해 나서고 있었다.
제 125화
화참혹한 재앙
평범한 대한민국의 낮.
어느때와 다름없이 밝은 해가 도시를 내비추는, 평범한 하루였다.
그래.
정확히는 평범한 하루였었다.
월광교의 교주가 대국민 메세지를 전한 뒤, 그 직후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어두운 하늘.
한순간에 새까매진 하늘을 최대한의 속도로 날아가며, 스타더스는 불길함에 몸서리쳤다.
방금까지만 해도 밝았던 하늘이 어둠에 잠긴, 초자연적인 현상.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거지.'
현재 대한민국은 통신도 전부 끊어져서, 협회랑 제대로 연락도 안되는 상황이었다.
고요하고 새까만 하늘을 배경으로, 계속해서 들려오는 의문의 괴소음을 향해 그녀는 날아갔다.
현재 그녀가 알고있는건, 어둠에 잠긴 서울의 도시 한쪽에 '무언가'가 나타났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나타난 이후, 그 도시쪽에서 모든 연락이 다 끊겼다는 것이다.
무언가 심각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건 누구나 알 수 있는 일.
"...."
그렇게 심각한 얼굴로 스타더스는, 새까만 어둠에 잠긴 하늘을 금발 머리를 휘날리며 통과했고.
이내 그 현장에 가까이 도착한 그녀는.
순간 보이는 광경에, 그대로 몸이 굳어버렸다.
새까만 어둠에 잠겨있는 도시.
육안으로 도시를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빠르게 날아온 그녀는, 도심 한복판에 서있던 '그것'을 드디어 볼 수 있었다.
"....뭐야, 저게."
그것은.
가히 재앙이 찾아온 모습이었다.
*
[끼이이이이이이이끄이에에에엑-]
"꺄아아아아아아아악!!"
"사, 살려줘!!!"
"흐윽... 이게, 이게 뭐야아..."
마치 쇠를 긁는듯한 괴음.
어두운 도시. 그곳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 뒤엉켜 소리의 진원지로부터 조금이라도 더 빠져나가기 위해 애쓰고 있었고.
그리고, 그 중심.
갑작스럽게 밤이 되어버린 어두운 밤하늘을 배경으로, 홀로 빛나는 새하얀 달빛 아래.
보라색의, 기괴하고 거대한 무언가가 도심 한복판에 서있었다.
[크르르르르르르르르...]
어떻게 보더라도, 인간이 아예 아닌 무언가.
흉측하게 올라온 분홍색의 혈관.
보라색으로 짙게 물들은 커다란 신체.
기괴하게 뒤틀린 얼굴과 몸.
그러나 눈만은 선명한 붉은색으로 타오르고 있는 그것.
"크아아아아악! 크어, 억...."
그리고 그것은.
사람들을 향해 팔을 들어올리고 있었고.
그것의 앞에 있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힘에 이끌려 공중에 뜬 채 꺽꺽대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크아아아악....
크아아아아악."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공중에 떠 있는 사람들한테서, 갑자기 하얀색의 반투명한 무언가가 빠져나오기 시작한 것.
절규하는 표정의 흰색 무언가.
그렇게 사람들에게서 빠져나간 그 흰색 무언가는, 전부 중심에 선 보라색의 '그것' 안으로 흡수되듯 빨려들어갔고.
그와 동시에, 공중에 떠있던 사람들은 전부 생기를 잃고 바닥에 털썩 쓰러졌다.
마치, 영혼이 빠진듯이.
[끄이이이이익- 키에에에에에에엑!]
울부짖는 보라색의 거대한 그것.
전기마져 끊겼는지 사방이 어두운 도시의 한복판에서.
수많은 건물들을 박살내며 육중한 덩치로 도시를 차근차근 박살내고 있는 그것.
그리고 그것의 주변에는.
도망치다가 그것에 의해 공중에 붙잡힌 채 끌려온 수많은 사람들이, 공중에서 괴로워하다가 이내 영혼을 빼앗기고 땅바닥에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어두운 도시를 배경으로,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는 사람들. 사방에서 피어오르는 연기.
그리고 중심에 서서, 사람들의 영혼을 빼앗아먹으며 도시를 파괴하고 있는, 이계에서 온듯한 괴생명체.
그리고, 싸늘하게 쓰러진 사람들.
마치 인세에 강림한 지옥도(地獄圖)같은 모습.
음산하게 어두운, 비명만이 가득한 도시.
오직 괴생명체의 보라색 빛깔과 붉게 타오르는 눈만이 보이는 그곳에서.
휘슈우우우우우우웅-.
어두운 밤하늘을 가로지르며, 노란색 빛이 어디에서인가 날아와, 대지에 서있던 그 보라색의 괴생명체에 내리꽂혔다.
콰아아아아아앙-.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어보이던, 지옥에 화신과도 같은 괴수에 그대로 내리꽂은 그녀.
그녀는 바로 히어로, 스타더스였다.
[....끼에에에에에엑-!]
이내 괴수가 충격으로 비틀거리자, 공중에서 괴로워하던 사람들이 순간적으로 땅에 떨어졌고.
영혼이 털리지 않은 그들은, 다시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흐, 흐아아아아악!!"
"흐에엥... 시발 살려줘!!!"
"아, 아아아..."
도망치는 사람들.
그리고 이내 보라빛의 괴수가 다시 그들에게 고개를 돌릴 때.
"네 상대는 나다, 이 괴물새끼야."
불타오르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금발의 여자에의해, 다시 등쪽에 타격을 입고는 관심을 돌리기 시작했다.
[-끼이이이이익...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아엑!!!]
"크윽...."
이내 괴수가 내뿜는 소름끼치는 소리에 얼굴을 일그러트린 스타더스.
그런 그녀는, 다시 그것을 향해 온 힘을 다해 주먹을 휘둘렀다.
콰앙-
그순간 생긴 엄청난 굉음.
주먹의 충격파로 주변이 뿌연 연기로 뒤덮인 가운데.
[그이이이이이... 끼에에에...]
그녀의 주먹을 정통으로 맞은 그것은, 마치 아무런 타격을 받지 못했다는 듯, 여전히 제자리에 서있는 채로 얼굴만 그녀쪽으로 돌린 채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그것의 붉은 눈과 마주친 스타더스가 자신도 모르게 몸을 굳힌 그때.
뒤에서 갑작스럽게 들려온, 섀도우워커의 목소리.
"스타더스, 피해라!"
그녀가 몸을 던짐과 동시에.
그것의 붉은 눈에서, 무언가의 보라색 광선이 뿜어져나와 그녀가 있던 곳을 스쳤다.
그런 그녀가 뒤를 돌아보자 마주친건.
"헉... 헉.... 섀도우워커?"
"그래. 늦어서 미안하다. 하... 시발. 자다가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냐."
[키르그으으으으으...]
이제는 그 둘을 확실히 적으로 인식했는지, 초점을 둘에게 맞춘 그것.
자신들을 바라보는 그것을 보며, 섀도우워커는 빠르게 말했다.
"스타더스, 빠르게 말하겠는데 지금 내 능력이 정상이 아니다. 이 밤이 인위적으로 생긴거라 그런지 출력이 이상해. 듣기로는 한반도만 어두워지고 다른 나라는 전부 정상적이라고 하던데, 그 영향인거 같아."
[크르르르... 키아아아아아아아!]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들에게 달려든 그것.
황급히 둘이 떨어짐과 동시에, 섀도우워커는 마지막으로 스타더스에게 전했다.
"일단은 난 사람들 먼저 안전한곳으로 옮기면서 널 서포트 해줄테니, 버텨봐라!"
그 외침을 끝으로, 섀도우워커는 어둠에 녹아 사라졌다.
그리고 이제는 스타더스 그녀에게 시선을 고정한 그것.
[.....엑크르으으으...]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한손을 들어 올리자.
도심 어딘가에 있던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잡혀 끌려와, 또 비명을 지르며 영혼을 빼앗기기 시작했고.
그 비현실적이게 끔찍한 현장을 보며, 스타더스는 다시 주먹을 쥐고 육중한 덩치의 보라색 무언가에 달려들었다.
순간 그것과 눈이 마주치자 머리가 잠시 울리기 시작했으나 그뿐. 역시나 일반인들처럼 공중에 들려 비명을 지르는 그런 일들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이를 악문 그녀가 이내 가까이 접근하자 다시 덤벼드는 그것을 공중에서 몇번 피하며 접근하자, 그것또한 주먹을 쥐고서 스타더스를 상대하기 시작했다.
콰앙.
콰아앙-.
그렇게 시작된 혈전(血戰).
어둠속에서, 노란색의 빛과 보라색의 빛이 얽히며 치열하게 전투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것과 맞서던 스타더스는.
이를, 악물었다.
강하다, 너무 강하다.
자신이 아무리 공격해도 타격이 거의 들어가는 것 같지 않아보이고, 심지어 그것이 내지르는 공격은 그것 주위에 있는 보라색 아우라 때문인지 거의 살기를 내뿜는 수준.
이미 지구상의 그 어떠한 생명체와도 겹쳐보이지 않는, 기괴하게 뒤틀린 그것.
그것은 심지어 그녀와 전투를 하는 와중에도,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초자연적인 힘으로 끌어올려, 영혼 비슷한 것을 빼앗아 흡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과 계속해서 몇번 공방을 맞붙어본 그녀는, 직감적으로 깨닫고 말았다.
...자신은 절대 이것을 이길 수 없을 것이란 걸.
'.....어째서, 이런일이.'
이미 패배를 직감한 그녀였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그것에 덤벼들었다.
...이곳에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죽기 직전에 최후의 한명이라도 더 살리겠다.
그렇게.
스타더스, 그녀의 목숨을 건 전투가 시작되었다.
***
어두운 밤하늘.
밑에 도시에서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그 근처 건물 옥상 위에 선 나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지랄났네."
어둠에 잠긴 도시.
그 가운데 있는건, 현실에서 직접 보니 진짜 세상 끔찍하게 생긴, 월광교의 최종병기중 하나인 영혼포식자. 그리고 그것과 어떻게든 맞서 싸우고 있는 노란 빛의 스타더스.
그리고 동시에 무너지고 있는 도시.
온동네에 가득한 검은색 연기.
쓰러져있는 수많은 영혼이 빼앗긴 시체들.
사방에서 서라운드로 들려오는 비명.
뭔가 하고는 있는거 같은데 큰 도움은 안되고 있는 섀도우워커.
공중에 떠오른 채 목을 조르며 영혼이 빼앗기고 있는 사람들에.
딱봐도 밀리고 있는 스타더스와.
자신이 아직 이런때 나오는게 아닌 막강한 최종병기중 하나라는 걸 여실히 증명하고 있는, 양학중인 보라빛의 거구까지.
그 참혹한 지옥도를 보며.
나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뭐야."
"....진짜 큰일난 줄 알았더니, 상황이 그렇게 나쁘진 않네?"
아니, 진짜 뭐지?
하늘 어두워진거 보곤 진짜 겁에 질렸는데, 헐레벌떡 와보니 영혼포식자가 딱 한 개체만 있는 모습.
원작의 최종전에선 수십마리 튀어나왔던거 생각하면 애교인 수준이다.
심지어 아직 영혼 수급도 못해서 진화도 안된 모습인데, 저 상태에서 저거 죽이면 지금 쓰러진 사람들 다 살아난다. 사실상 내가 쟤 죽여버리면 사상자도 없는거아니야.
그리고 쟤도 다들 쌩으로 그냥 싸우니까 다들 탈탈 털리는거지, 지금 내가 들고온 제 약점인 은탄 몇방 맞으면 그냥 꽥 죽는 놈이다. 기믹형 보스들이 다 그렇듯.
그러니까 보기에는 거의 멸망 직전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냥 내가 지금 들고 온 대물 저격총으로 은탄 한방 쏴주면 끝나는 상황이란 소리.
"....뭐야?"
괜히 쫄았잖아....?
그렇게 난 옥상에 서서, 대물저격총을 그것을 향해 조준하기 시작했다.
...뭔가 허무한데.
아니야. 스읍, 그래. 오히려 좋아.
이 기회를 이용해야한다.
이거 쏘는거 타이밍 맞춰서, 극적인 순간에 스타더스가 쟤를 쓰러트린거처럼 연출하면 어떨까?
....오, 나쁘지 않은데?
***
그리고 에고스틱이 이미 긴장을 풀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옥상에 있던 그시각.
스타더스는.
[끼에에에에에에에엑!!!]
'....유언이라도 미리 남겨놓을걸 그랬나.'
이미 모든걸 포기한 채, 체념한 눈빛으로 전투에 임하고 있었다.
제 126화
화최후의 일격
영혼포식자.
굉장히 직관적인 닉네임의 이 괴생명체는, 원작의 2부 최종장에서 등장하는 월광교의 최종병기들 중 하나. 즉, 당연히 첫등장도 2부 최종장인, 원래라면 아직 나올 놈들이 아니다.
"....근데 왜 벌써 나온거냐?"
갑자기 어두워진 하늘.
밑에서 들려오는 귀곡성을 들으며, 나는 건물 옥상에 서서 생각에 잠겼다.
이상하네... 이새끼가 이때쯤 나올 애가 아닌데...
이때까지는 헐레벌떡 생각할 겨를도 없이 오느라 몰랐었지만, 생각해보니 이상한 일이다. 왜 월광교가 원작과 달리 쟤를 벌써 내보냈을까?
그렇게 곰곰이 생각해 본 결과.
나는 결론에 도달했다.
"....나 때문인가?"
아무래도 월광무녀인 은월이를 테러 중간에 NTR해서 빼앗어버린게 좀 큰 느낌.
원작에서 교주가 월광무녀를 시켜 테러를 일으킨게 월광교를 무서움을 모두에게 알리기위해 했던거란걸 생각하면...
흠. 그냥 나때문에 방해받은게 꼬아서 한번 더 일으킨건가..?
솔직히 교주가 그거 가지고 별 신경쓸까 싶었는데, 아무래도 좀 빈정이 상했나보다. 아니, 나이도 지긋한 사람이 왜이리 속이 좁아. 대인배처럼 넘어갈수도 있지, 참.
하여튼, 여전히 건물 아래에서 포효를 하며 개판을 치는 보라빛의 영혼포식자를 보며, 나는 혀를 찼다.
저거 한개체만 내보낸거 보니까 애초에 전력이 다 모이지도 않은거 같겄만, 왜 이렇게 무리했데?
"에휴... 그 영감탱이."
너 때문에 나만 쫄았잖아.
저 영혼포식자가 위협적이려면, 셋중 하나여야 한다. 여러 개체거나, 영혼을 충분히 먹어 진화한 상태이던가, 은이 약점이라는걸 모르거나.
그러나 지금은 단 한개체에, 색도 아직 보라색인걸 보니 진화도 안됐고, 심지어 나는 여러 개체들이 나온줄알고 은도 한가득 가져왔다.
그러니까 뭐. 게임 끝이란 소리.
".....이제 뭐하지."
그렇게 옥상위에 서서.
밤하늘의 차가운 공기를 맞으며, 나는 중얼거렸다.
아니. 솔직히 그냥 은탄 큰거 한발 쏘면 끝인데 뭘해. 솔직히 원작에서도 은이 약점이라는거 알기전에만 털렸었지, 알고 난 이후에는 그냥 역공해서 쟤들은 다 잡았다. 최종장에는 쟤보다 더 문제인 그놈이 있었으니.
하여튼, 좀 허무해지려던 나는 생각을 고쳐먹기로 했다.
그래. 오히려 좋아.
".....역시 밀리네."
아래를 내려다보니 역시 일대일 싸움에서 밀리고있는 스타더스의 모습. 아무리 그래도 최종병기는 최종병기다보니 상대하기 어려워하는 모습이다.
심지어 저놈 저거 주위에 사람들 또 두둥실 띄운다음에 영혼 빨아들이는 것좀 봐라. 계속 저렇게 체력회복을 해대니 스타더스가 밀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다만...
"....그래. 오히려 좋아."
지금 저 영혼포식자가 스타더스보다 일방적으로 강하다는건, 그만큼 스타더스가 더 성장할 수 있다는 소리.
시련을 겪을수록 강해지는 그녀이니만큼, 이 기회에 또 성장할 수 있다면 나쁘지 않을거다.
그리고, 거기에다가...
나는 총구를 만지작거렸다.
....어차피 지금 다들 정신도 없는 상황.
즉, 스타더스가 결정적인 공격을 날릴 때 내가 이걸 뒤에서 몰래 쏴버리면.
사람들은 스타더스가 쓰러트렸다고 생각하고 스타더스를 다들 찬양하지 않을까?
거기에 내 정체도 안드러나니 일석이조.
그래. 바로 이거다.
그렇게 결론을 내린 나는, 총구를 겨누고 타이밍을 노리기 위해 존버하기 시작했다.
....일방적으로 탈탈 털리고 있는 스타더스를 직관하며.
크흑, 눈물이 나올거같지만 참았다. 그러다 오인사격하면 안되거든.
그래도 스타더스 열심히 싸우는거 보니까 역시... 절망적인 상황에저도 저렇게 희망을 가지고 싸우는 모습을 봐라. 그래. 그런 그녀를 봐서라도 제일 최적의 타이밍을 노리자.
그렇게 조준을 마친 내 밑에서는.
끔찍하고 처절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
'답이 없다.'
그것이 스타더스가 내린 결론이였다.
-
끼에에에에에에에!!!
다시 그 괴수가 휘두른 팔을 아슬아슬하게 피하며, 스타더스는 슬슬 한계가 오고 있다는걸 느꼈다.
쾅-. 쾅-. 무너지는 건물들,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
"하아..."
쾅-.
또다시 그것의 일격을 겨우 피한 그녀는, 잠시 그것과 거리를 벌려 떨어졌다.
그녀가 숨을 간신히 고르는 그때, 다시 울부짖는 괴수.
끄끼아아아아악!!!! 끼야이에아악!!!
귀에 꽂히는 소름끼치는 소리.
폐허가 된 어두운 도시를 배경으로, 오직 하늘 위 밝은 달만이 그 아래를 비추는 그곳에서.
보라빛의 괴수가 괴음을 내지르자, 그에 맞추어 허공에서 끌려와 그것 주위를 원형으로 맴도는 허여멀건한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비명. 뽑혀져나오는 영혼. 몸에 힘을 잃고 인형처럼 쓰러지는 사람들. 붉게 타오르는 그것의 눈동자.
어두운 하늘 밝은 달 아래.
끔찍한 괴음을 내지르며 사람들의 영혼을 빼앗고 있는 그것의 모습은, 그야말로 초현실적인 광경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스타더스에게 달려들었다.
"크윽..."
콰앙.
다시 둘이 맞붙으며, 엄청난 굉음이 났고.
역시나 스타더스는 막기에 급급하였다.
쾅. 쾅.
가끔 스타더스가 공격을 날려보지만, 무의미할뿐.
끄떡도 없이 계속해서 달려드는 그것을 상대하며, 스타더스는 점차 지쳐갔다.
"하아, 하아."
끄이에에에에에에에에엑!!!
쾅.
"흐윽..."
그리고 이내 그것이 휘두른 공격에 정통으로 맞아버린 스타더스.
엄청난 충격에 그대로 튕겨져나간 그녀는, 이내 벽쪽의 건물에 그대로 부딪히고 말았다.
그리고 그녀가 정신을 체 차리기도 직전, 그녀를 향해 쏘아지는 분홍색 레이져.
그 검은 하늘을 가르는 광선을 보고 가까스로 몸을 날려 피한 그녀.
콰아아아앙.
스타더스가 아까까지 있던 자리는 완전히 박살이 나고.
다시 그녀가 비틀거리며 날아올랐을때는, 이미 다시 그 괴수가 저 멀리 도망치던 사람들을 염력으로 자기 주위로 끌고 와 영혼을 빨아먹고 있는 순간이었다.
"헉... 헉...."
스타더스는 뿌연눈을 한손으로 부비며, 어떻게든 정신을 차리기 위해서 애썼다.
자신이 이대로 쓰러지면 안된다, 쓰러지면...
그리고 다시 그녀를 향해 달려드는 보라빛의 그것.
이를 악물고 주먹을 쥔 그녀는, 다시 그것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역시나 역부족.
타격은 거의 못준채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기만 한 그녀는, 이내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그녀는 다시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그것을 바라보았다.
뒤에 보이는 폐허가 된 도시, 어두운 하늘.
다시 가까워지는 보라빛의 흉측한 그것.
인생은 원래 한순간이라더니.
정말로, 끝은 이렇게도 갑작스럽게 찾아오는구나.
"크흑."
그것이 내지른 주먹을 다시 한번 막아보았지만, 역시나 역부족.
머리까지 울리는 충격에 비틀거리며, 그녀는 거친 숨을 내뱉었다.
....대체 어디서 이런게 갑자기 튀어나왔는지 모르겠다.
분명 오늘 전까지만 해도, 늘 평소와 똑같은 하루였는데.
그리고 이렇게 비슷한 하루가, 계속 될 줄 알았는데.
한순간에 이렇게 다 끝나는구나.
다시 어두운 밤하늘을, 그것의 공격을 전보다 훨씬 느리게, 간신히 피하며.
스타더스는 생각했다.
....싸우기 시작한지, 얼마나 됐더라.
아마 꽤 됐겠지.
그녀는 전투중에 간신히 옆을 힐끔 보았다.
아마 저쪽 어딘가에서 섀도우워커는 계속해서 사람들을 대피시키고 있겠지.
그러는 동안, 자신은 어떻게든 이것을 붙들고 막아야한다. 이것이 이 도시를 떠나 다른곳으로 가게되면, 더 큰 재앙이 될테니.
그러나.
'...못이겨.'
그녀는 직감적으로 그것을 깨달았다.
자신은 이자리에서 절대로 저것을 이길 수 없다.
이미 계속되는 공방으로 몸은 지치고, 눈은 계속 떨릴 지경.
자신이 이렇게 빈사사태가 되는동안, 저것은 여전히 저렇게 쌩쌩한 상태.
이대로 계속 싸우다간 죽는다.
그녀는 그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걸 안다고 어쩔까. 자기 혼자 도망칠까?
"....."
저 쓰러진 사람들을, 여기에 버려두고?
그런 자신을, 히어로라고 부를 수 있는가?
아니.
이 자리에서 쓰러지더라도, 끝까지 맞서싸워.
단 한사람이라도 더 구하는것.
그것이, 히어로다.
그렇게 다시 마음먹은 그녀였으나.
"크윽..."
역시나 계속되는 공격에, 이제는 버티지 못하고 거의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
점차 그녀의 몸에 힘은 빠지면서도, 공세는 더욱 강해지는 최악의 상황.
그럼에도 그녀는.
계속해서 거친 숨을 내뱉으며, 어떻게든 맞서싸웠다.
"헉... 헉..."
"으윽."
어떻게든.
"하아, 하아... 젠장, 하아..."
계속해서, 맞서 싸우던 그녀는.
"으으윽, 크흑!"
그렇게 계속 막고, 막고 맞서다.
시간이 꽤 지났을때.
그때 결국, 본능적으로 느꼈다.
'이제.... 한계다.'
더이상은 몸을 움직이기도 힘들다.
아무래도... 여기까지같은 느낌.
여전히 괴수는 괴음을 내뱉으며 그녀에게 달려오고, 더이상 몸을 움직여 피할수도 없어 보이는.
그녀가 슬슬 최후가 다가온다고 느끼던 그때.
스타더스. 그녀는 마치 주마등처럼, 이전의 기억들이 갑작스럽게 떠오르는걸 느꼈다.
어린시절 부모님을 잃은 기억, 이설아를 처음 만난 기억, 히어로 협회에서 처음으로 히어로로 인정받은 기억, 처음으로 빌런을 쓰러트린 기억, 자신이 구해낸 시민들에게 감사를 받던 기억, 쓰러짐에도 다시 일어나던 순간의 기억.
그리고.
'안녕하십니까 스타더스씨. 에고스틱이라고 합니다.'
"....하."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마지막에 떠오르는게 에고스틱의 모습이라니.
끼에에에에에에엑!
"큭...."
다시 커다란 충격에 튕겨져나간 그녀.
그렇게 다시 비틀거리는 몸을 간신히 띄우며.
신하루는 자기도 모르게 계속해서 떠오르는 기억들을 복기했다.
배를 폭파시키려 들던 에고스틱.
비행기를 자신보고 구하라고 격려하던 에고스틱.
다리를 무너트린 에고스틱.
자신을 대신해 공격을 맞던 에고스틱.
인질들을 잡고 협박하던 에고스틱.
쓰러진 그녀를 쓰다듬은 뒤 폭풍으로 향하던 에고스틱.
"하.."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탄식을 내뱉었다.
다시 그녀에게 쇄도하는 보라빛의 괴물을 피하며.
그녀는 조용히 곱씹었다.
생각해보니 늘, 자신이 절망할때나 위기에 몰렸을때는 에고스틱이 어떠한 방법으로도 곁에 있었지.
이번에도... 그랬으면...
하. 무슨생각을 하는거야. 그럴리가 없다는 걸 알면서.
...그런것보다는.
자신은 끝끝내, 에고스틱의 비밀을 풀지도 못한 채, 이대로 가는구나.
모든걸 체념한 채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그녀는 문득, 분노가 치솟는걸 느꼈다.
...저 쓰잘때기 없는 괴물놈 하나때문에 끝내 그에 대해 전혀 알아내지도 못한 채 이대로 가다니.
"..."
...안돼.
억울하다.
그건 말도 안된다.
그래, 이대로 끝낼 수는 없어.
다시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육중한 보라빛의 괴수.
그런 그것을 보며,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
이미 몸은 만신창이가 된지 오래. 곧 쓰러지기 직전의 상태인 그녀였지만.
"....갈땐 가더라도, 반드시 네놈은 쓰러트리고 간다!"
그렇게, 이미 다 쓰러져가는 몸을 이르켜.
그녀는 최대한의 속도로 그것을 향해 날아가며.
힘을 쥐어짜, 주먹을 쥐고 그것을 향해 휘두를 자세를 취했다.
최후의 일격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네놈한테 이거 한방은 먹이고 가겠다.
끄예예예아아아악!!!
"흐읏.....!"
그렇게 이를 악문채 쏘아지던 그녀의 주먹은.
어두운 밤하늘을 밝히는 밝은 빛을 내기 시작하며.
노랗게, 빛나고 있었다.
***
스타더스의 주먹을 중심으로 빛나는, 노란색의 빛.
"....지금이다."
굳은 얼굴로 전투를 계속 지켜보던 나는, 그 빛을 본 순간 그대로.
겨누고있던 총구의 방아쇠를, 당겼다.
-탕.
그렇게 밤하늘에는 눈이 부실 정도의 커다란 빛이 번쩍이며.
작은 총소리만이,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게 조용히 울려퍼질뿐이었다.
제 127화
화빛이 있으라
어두운 도시.
그곳 한구석에 숨어있는 여자는, 길 한쪽에 주저앉은 채 벌벌 떨고 있었다.
'아니... 시발. 대체 저런 괴물이 어디서 튀어나온거야....'
끼에에에에에에에엑!!!
"히이이익!"
자신도 모르게 큰 소리를 낸 여자는, 재빨리 입을 가렸다.
회사에서 일을 하던 중, 갑작스럽게 찾아온 재앙.
밝은 낮이 갑자기 어두워지고, 도시가 회색빛이 된 순간.
저 괴물이, 갑자기 도심 한복판에서 튀어나왔다.
흉물스러운 생김새에 모두가 비명을 지르는 순간, 놈이 손을 들었고.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마치 보이지 않은 손에 끌려가듯 허공을 날아 그놈에게 가까이 가게 되더니.
그대로, 마지막 비명을 지른뒤 모두 싸늘한 시체가 되었다.
'.....이젠 다 틀렸어.'
여전히 여자는 벌벌떨며 생각했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끔찍한 생김새를 가진 저 괴물.
저 괴물이 언제든 손을 들면, 다음 차례는 바로 자신이 될 수 있다.
마치 여전히 자신의 옆에 있는 싸늘한 시체가 되어 누워있는 대리님처럼.
콰앙.
콰앙.
물론 저 괴물만이 이 어두운 도시에 있는건 아니었다.
이 사태가 일어난 직후에, 곧장 달려온 히어로들.
처음에는 사람들도 히어로를 보고 저들이 해결해 줄거라는 희망을 가졌으나.
'....틀렸어.'
콰아아아앙.
또다시 들리는 파괴음.
벌벌떨던 그녀가 고개를 옆으로 들려 뒤를 봤고.
그 코너 뒤에는.
끼에에에에에에엑!
-크흑...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는, 금발 머리를 휘날리는 히어로가 보였다.
저 괴물을 무찌르기는 커녕, 놈이 휘두르는 공격을 막기에도 급급해보이는 그녀.
그리고 그와중에도 계속 수많은 사람들이 골목 어딘가에서 괴물에 의해 끌려와, 비명을 지르더니 정기가 빨리고선 땅바닥에 풀썩 쓰러졌다. 차가운 시체가 되어.
'.....이젠 나도 곧이겠지.'
이미 그녀는 체념했다.
다른 히어로가 구조작업을 하고 있는거같긴 한데, 아무래도 자기 쪽으로는 올 기미가 안보인다.
하, 이렇게 죽을 줄 알았으면 그 꼰대 과장 뺨은 한대 때려보고 죽어볼껄.
....어차피 그 과장도 죽었을려나?
아니다, 그 명줄 긴 인간이라면 지금도 살아있을 수 있어.
그런 생각을 보며 이제는 아예 대놓고 전투를 지켜보던 그녀에게.
저 한쪽에서, 휴대폰을 들고있는 남자가 보였다.
'.....저 인간은 저기서 뭐하는거야?'
눈을 가늘게 뜨고 자세히 보니, 휴대폰을 가로로 잡고 전투현장을... 찍고있는거 같다.
'.....하. 진짜 난리났네.'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마지막 순간까지 유튜브 스트리밍을 하는건지 뭘하는건지 모르겠는 남자를 뒤로하고, 그녀는 다시 전투를 지켜봤다.
여전히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는 히어로.
이름이... 스타더스였나? 스타더스는 여전히 맞서 싸우고 있었으나, 갈수록 힘이 빠지고 있다는게 일반인인 그녀가 보기에도 느껴졌다.
다시봐도 스타더스가 이길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그래도, 최선을 다해 싸우네.'
그녀는 씁쓸히 생각했다.
지금은 저렇지만,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아마 이제 곧, 자신도...
-살려줘! 꺄아아아악!
어느덧 또다시, 허공에서 끌려오는 사람들.
스스로 목을 조르며 괴로워하더니 이내 몸안에서 무언가 하얀게 빠져다가더니, 땅에 생기를 잃은 채 털썩 쓰러지는 그들.
그런 모습을 빛을 잃은 눈으로 고개를 빼곰 내민 그녀가 그것을 지켜보던 그때.
-쿵.
그것과, 그녀의 눈이 마주쳤다.
"....아."
황급히 다시 고개를 돌려 벽쪽으로 다시 몸을 숨긴 그녀.
그렇게 몸은 떨리는데다 쿵쿵거리는 심장을 붙잡고, 벽뒤에서 숨을 죽인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깨달았다.
이제 다음은 내차례 겠구나.
자신 옆에 싸늘하게 누워있는 시체를 다시보니 공포심이 더욱 극대화 된 그녀.
이빨마저 딱딱 부딪히는 가운데.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체념한 그녀였으나, 직접 죽음을 문턱에 두자 갑자기 삶에 열망이 생기는 그녀였다.
'제발.... 스타더스... 제발....'
다시 고개를 빼꼼 내밀고서는 스타더스를 향해 아예 기도를 하기 시작하는 그녀.
제발. 제발! 기적이 내려, 스타더스님. 한번만 저놈을 이겨주면 안되겠어요? 제발요.
그러나 역시나 스타더스는 아까와 다를 바 없이 밀리고 있었고.
이제는 건물에 부딪히며 난리를 피우는 가운데.
그것이 다시 손을 들어올린 채 스타더스에게 달려들고.
그 전투의 현장을 벽뒤에 숨은 그녀가 고개를 내밀고 지켜보던 그때.
'아, 안돼...'
순간 그녀는, 자신의 몸을 누군가 꽉 잡은 듯한 감각을 느꼈다.
자신또한 다른 이들처럼 영혼을 빨리게 생긴 그 순간.
저 괴물에게 끌려가며 절규하던 그녀 앞에.
"으아아아아아-!"
기합에 찬 여자의 함성이 들려왔고.
그와 동시에.
스타더스와 그 괴물이 있는 곳에서.
스타더스가 주먹을 휘두르는 순간,
번쩍-
눈이 부실 정도의 밝은 빛이 그 중심에서 번쩍이며.
끝내 그 빛이 그것을 향해 쏘아지는 순간.
쿠우우우우웅.
콰아앙-
이때까지 들었던 그 어떤 소리보다 큰 굉음이 울려퍼지고.
그들을 중심으로 날아갈정도의 바람이 휘몰아치며.
도시 전체가, 그 중심에 마치 원자폭탄이 터진것마냥 거대한 노란 빛으로 순간 빛나는 동시에.
-쿠구구구구구구구구구궁.
끼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엑!!!!
"....으악!"
엄청난 빛에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며 눈을 감은 그녀가, 다시 눈을 떴을때 본 것은.
끼에에에... 끄아아아아아아!!!
허공에 뜬 채, 고통으로 울부짖는 괴물.
그것의 몸 사이사이에서 뿜어져나오는 보라색 빛.
그리고, 그것의 마지막 단말마를 끝으로.
-슈우욱
콰과과과과과과과과광-
작열하는 하얀색 빛과 함께, 그 괴물이
펑.
터져버렸다.
"히익!"
이내 허공에 들렸던 그녀의 몸도 바닥에 떨어지고.
잠시 그녀가 고통속에 엉덩이를 매만질때.
"으으으..."
"어? 대리님?"
자신 옆에 싸늘한 시체가 되어 누워있던 남자에게.
하얀색 빛의 무언가. 마치 영혼같은 것이 그에게 들어오며.
그가 다시 혈색을 띄고, 신음을 내뱉기 시작했다.
그런 광경을 지켜보던 그녀는.
"스타더스가... 쟤를 결국 쓰, 쓰러트린거야?"
자신도 모르게 더듬거리며 그렇게 말한 그녀.
이내 땅바닥에 시체가 되어 뒹굴던 사람들도 하나 둘 다시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고.
이내 무너진 벽 뒤에서, 더러워진 자신의 정장을 신경도 안쓴 채 비틀거리며 일어난 그녀. 그리고 그녀를 포함해 그순간 정신을 차린 모두가 본 것은.
그 도시를 중심으로 어두운 하늘이 걷히며 다시 해가 떠오르고.
그 중심에 서서, 제일 먼저 밝은 빛을 맞이한 채 허공에 여전히 주먹을 쥐고 떠있는.
금발 머리카락만을 휘날리고 있는, 스타더스.
떠오르는 해의 역광으로 떠, 그림자에 잠긴 스타더스의 등 뒤를 보며.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영웅."
저게, 영웅이구나.
누구도 상대하지 못할 것만 같은 괴물을 쓰러트린 뒤, 홀로 빛나며 떠있는 스타더스의 모습은그야말로 영웅이었으며.
그 모습을 본 모든 이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런 스타더스의 모습을 멍하니.
그저 멍하니,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빛나는, 우리들 모두를 구원해준.
영웅의 모습을.
그렇게 그날부로.
스타더스의 전투가 처음부터 끝까지 찍힌 영상이 전국으로 퍼지며.
스타더스 그녀의 인기는, 폭발하기 시작했다.
***
어둠이 사라지고 다시 밝아진 하늘.
그 중심의 옥상에서, 나는 웃었다.
"하하, 시발. 좆밥새끼. 한방에, 쿨럭. 끝나죠?"
은탄을 꾹꾹 눌러담아 무슨 바주카포마냥 놈한테 날려주니 그냥 찍소리도 못하고 끼에엑! 거리며 죽는 모습.
심지어 내가 스타더스가 스타-펀치를 날리며 빛이 번쩍하던 그 순간 쏘는 바람에, 정말 누가봐도 스타더스가 쓰러트린 모습이다. 하루도 자기가 쓰러트린걸로 알껄?
핵탄두라도 맞은마냥 강렬한 빛이 번쩍하면서 놈이 쓰러지는게, 나조차도 순간 스타더스가 직접 쓰러트린 줄 알았다.
물론 하루의 스타펀치가 얼마나 강한지와는 별개로 저놈은 은으로 공격하는게 아니면 절대 안죽는 애인만큼, 그럴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원작보다 훨씬 빠르게 이 기회로 준필살기인 스타펀치를 각성한게 어딘가.
다시 밝아진 하늘 아래, 마지막으로 놈을 쓰러트린 뒤 잠시 떠있다가 모든 힘을 다하고 풀썩 쓰러진 스타더스. 그런 그녀를 뒤로하고, 나는 이제 내 자신을 신경쓰기 시작했다. 스타더스야 피로가 풀리면 다시 깨어날거고... 이젠 내가 문제네.
"휴... 이제 집에, 쿨럭. 어떻게 가... 쿨럭. 쿨러억."
아 시발.
이와중에 나는 또 피를 토했다.
아무래도 여기까지 이 먼거리를 오바해서 순간이동으로 왔더니, 긴장이 풀린 이제야 그 후폭풍이 오는 것 같은 느낌.
결국 건물 외벽에 피를 한바가지 토해준 나는, 입가에 흐르는 피를 쓱 닦고 주섬주섬 대물저격총을 챙겨 집에 돌아갈 준비를 했다.
하, 돌아가는건 어케가지.
엄청 걱정해하던 이설아한테도 상황 설명해줘야하고... 할께 많네.
그렇게 생각하며 총을 챙긴 내가 뒤를 딱 돌아보려는 순간.
"역시 너였구나."
내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나는 멈칫하고 말았다.
그렇게 다시 고개를 돌린 내 앞에 있던건.
"....섀도우워커?"
검은 머리에 다크서클이 가득한 섀도우워커였다.
눈은 피로에 찌든 모습이지만, 그럼에도 입가는 살짝 올라가있는그.
...아니 시발. 얘가 왜 여기서 나와.
갑작스러운 만남에 내가 얼타고 있을 때, 놈은 코끝을 쓱 닦더니 나를 향해 말했다.
"그렇게 놀랄 필요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알고있었으니까."
"....뭘?"
"네놈이 빌런인척 하는 히어로라는건 난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이번에 보니 저걸 제거한것도, 너지?"
날 앞에두고 주절주절 말하는 그. 아니 그래서 얘는 어디서 튀어나온거고, 혼자 뭔소리를 하는거야
그렇게 눈알만 굴리고 있는 나를 보며, 그런 나를 보고 혼자 무슨 판단한것인지 그는 다시 코밑을 쓱 닦으며 말했다.
"하여튼... 히어로를 대신해 말하지. 에고스틱. 너에게 내가 대신 감사를 표한다. 에고스틱."
그러더니 이제는 나한테 엄지를 척 내밀며 말하는 그.
"네놈은 내가 인정한... 진정한 사나이다!"
....임마는 대체 뭐지.
"어... 고맙다?"
나는 자기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는 걔한테 그냥 그렇게 한마디 해줬다.
...어차피 섀도우워커는 원래 포섭하려고 했던 놈이니, 나에 대해 좋게 생각해주면 좋지 뭐.
무슨 상황인지는 어, 모르겠는데.
그래도 이 말은 해야지.
나는 여전히 따봉을 날리고 있는 그한테 덧붙였다.
"아 그리고. 내가 이랬다는거 다른 사람들한테 말하면 안된다?"
"훗. 나를 뭘로 보는게냐. 너한테도 이러는 사정이 있다는걸 이해한다. 비밀은 꼭 지켜주지."
그래. 고맙다.
그러니, 슬슬 가주면 안되겠냐?
지금 정신이 나갈 것 같거든.
"그래, 고맙다. 그러니 이젠 나도 가야돼서, 쿨럭."
아 씨발.
결국 난 그놈 앞에서 피를 쏟고 말았다.
갑자기 내 입에서 피가 토해지는걸 보자 표정이 굳는 그.
".....어이, 네놈. 괜찮은거냐?"
"괜찮으니까, 쿨럭. 이제 가줄래?"
아. 생각해보니 아까부터 너무 당황해서 존댓말 컨셉 지키는것도 잊고 있었네.
어쨌든 내가 손을 휘휘 지으며 좀 가달라 부탁하니, 표정을 여전히 굳힌 채 그래도 발을 옮기는 그였다.
"...네놈, 음.... 아니다, 그래. 음.... 그래, 나는 먼저 가지."
그렇게 무슨생각을 한건지 혼자 더듬더니 터덜터덜 옥상의 문을 열고 내려가는 그였다.
그림자 이동은 안하고 왜저러나 했는데, 생각해보니 이제 밤이 아니구나.
뚜벅이가 된 그의 뒷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던 나는, 이내 머리를 부여잡고 침음했다.
그래... 깜짝 이벤트도 어떻게 해결하고.
아. 집은 이제 어떻게가지.
어쩔 수 없다. 이 몸상태로는 좀 리스크가 크지만, 그래도 순간이동을 하자. 다른 리스크지지 말고.
...쓰러지면 하율이가 치료해주니까, 괜찮겠지? 설마 가다가 죽지는 않을꺼아니야.
그런 판단을 마친 나는 다시 장거리 순간이동을 감행했다.
인생이 고달파요.
****
[네! 방금 올라온 현장 영상입니다! 스타더스가 끝내 그 괴물을 무찌르는 모습입니다! 스타더스가 모두를 구했습니다! 영웅 그자체의 모습을 보여준 스타더스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스타더스 만세! 스타더스 만세! 스타더스 만만세!!!]
[김태원 앵커, 지금 당장 데스크에서 내려오세요! 생방송중에 누가 거길 올라가! 방송 꺼. 방송 꺼!]
그날의 사건 이후.
대한민국에서는 그야말로 스타더스 열풍(熱風)이 불었다.
지금까지 헌정사상 그 어떤 히어로도 겪지 못한 뜨거운 지지.
절망에 빠져있던 국민들을 위해, 끝까지 맞서 싸우며, 끝내 번쩍이는 빛과 함께 놈을 쓰러트려 모두에게 구원을 내린 스타더스. 그런 그녀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 말그대로 국민 영웅이라 불러도 모자람이 없었다.
그리고 대중의 뜨거운 사랑과 관심.
그 중심에 선 스타더스, 신하루는.
'....분명 그때, 옥상에서 누군가...'
자기가 인기가 있건 없건 그런건 다 뒤로하고, 힘이 다해 쓰러지기 전 마지막으로 본 광경을 떠올리느라 애쓰고 있었다.
분명 탕하는 소리와, 가면 쓴 누군가를 본거같은데...
잘못들은건가. 아닌데...
제 128화
화착각이야
[대한민국은 현재 스타더스 열풍. 실시간 트렌드에 #스타더스, 사라질 기미가 안보여...]
[역대급 인기... 스타더스 전투 하이라이트 영상 단시간내 1000만뷰 돌파.... 전세계 인기영상 리스트에 올라가.]
[외신들도 주목하는 이번사태... 낮이 밤이된 초유의 사건, 이를 끝낸건 자랑스러운 한국 히어로 스타더스였다.]
[역대 히어로들 중 초유의 인기... 협회 연전연승.]
"크하하하하하하!!!"
사태가 마무리 되고 난 이후.
대한민국 히어로 협회 최상층.
그곳에서 협회장은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래. 스타더스. 몸은 이제 괜찮고?"
"네 협회장님."
"그래! 역시 우리 스타더스야. 이번에 정말 대박이었네! 내 진짜 나라 망하는줄 알고 얼마나 놀랬는줄 아나? 크하하하하하하!"
계속 해서 웃는 협회장.
그리고 그런 반응을 보며, 신하루는 불편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정말 내가 쓰러트린게 맞았을까?'
그래.
자신이 마지막으로 그 괴물을 상대로 날린 빛을 뿜으며 날린 공격은, 지금 생각해도 놀라울 정도의 출력을 가지고 있었다.
아마 그녀가 지금까지 발휘한 능력 중에서도, 제일 강했던 공격.
그러나.
신하루는 단 한번도, 그 공격으로 놈을 쓰러트릴 수 있을거라고 생각한적은 없다.
오직 마지막 순간 놈에게 한방을 먹이겠다는 각오로 한것일뿐.
그녀가 직감적으로 느끼기에, 놈은 이런 일반적인 단순한 공격으로는 쓰러질거 같지 않았다. 따로 '약점'같은게 있다면 모를까...
그렇기에.
신하루는 자신이 놈을 그런 공격으로 쓰러트렸다는걸 믿을 수 없었다.
그리고.
"스타더스. 걱정말게. 내 꼭 책임지고 국제 협회 총괄지부에 연락해 당장 S급으로 승격시키라고 따질테니! 크하하, 히어로 협회 소속, S급이라! 크하하하!"
"....."
자신이 그것을 쓰러트렸다고 굳게 믿는 협회장을 보며, 그녀는 점점 마음이 불편해져갔다.
....과연 내가 쓰러트린게 맞을까.
그런 의심과 더불어, 놈이 쓰러진 뒤 자신또한 정신을 잃기 전 보았던, 흐린 기억.
자신이 공격을 날릴 때 분명 탕- 하는, 마치 총소리같은 소음이 들려왔고.
옥상 위에 누군가, 분명 서있던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아마.
신하루가 누군가를 떠올리던 그때, 다시 협회장의 웃음소리가 회의실을 가득 채웠다.
"하여튼 스타더스. 이번에 보너스도 챙겨줄테니 좀 푹 쉬게, 알았지? 어디 여행이라도 갔다오게. 저기 동해쪽에 이 날씨에도 불구하고 따뜻한 바다가 있다고 하던데, 좀 그런데 가서 쉬어. 고생한만큼 보상이 있어야 하지 않겠나. 이제 전국적 스타인데, 하하하하!!!"
"그래 하루야. 고생했으니까 쉬어. 딸꾹. 정말 큰일을 했잖아?"
옆에서 아이시클 또한 붉게 물든 얼굴로 따뜻하게 웃으며 그렇게 말했고.
옆에서 혼자 깊은 생각에 빠져있던 섀도우워커도 문득 정신을 차리고 입을 열었다.
"으음.... 음, 아? 아, 그래. 스타더스. 너의 싸움은 정말 멋졌어. 이제 좀 쉬게. 대한민국의 영웅 아닌가. 나머지는 아이시클이 다 해준다고 했네."
"...저기요, 딸꾹. 자현씨? 제가 언제 그런말을 했죠?"
그렇게 협회장에 이어 아이시클과 섀도우워커마저 자신에게 그런 말을 건네자, 스타더스의 마음은 이제는 살짝 죄책감마저 느끼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 그녀가 끝까지 목숨을 걸고 맞서 싸운건 맞다.
그러나 과연 마무리지은게 자신일까?
탕- 소리, 옥상 위 그림자.
누구보다 많은걸 알며, 총을 주 무기로 하고, 가면을 쓴거 같았으며, 늘 위기에 순간 자기를 구해주었던.
그와 동시에 그녀의 머릿속에 한 남자의 모습이 스쳐갔으나,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너무 억측이다. 내가 그냥 마지막에 힘이 빠져서 잘못 듣고, 잘못 본걸 수도 있지. 자신의 직감 말고는 그 어떤 증거도 없지 않는가. 애초에 그는 빌런이기도 하고.
그러나.
신하루의 직감은, 한가지는 확실하다고 끝까지 강력하게 소리쳤다.
....그건, 그녀가 쓰러트릴 수 있는게 아니었다고.
분명 다른 누군가가 도와준거라고.
아마, 분명 그가...
"하하! 그 괴물을 단신으로 쓰러트리다니, 스타더스. 자네는 정말 생각할수록..."
"협회장님."
그렇게 신나서 떠드는 협회장의 말을 끊고.
끝내 스타더스, 신하루는. 고백하고 말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걸 쓰러트린건 제가 아닌거 같습니다."
그녀의 말이 끝난 순간.
갑자기 얼어붙은 분위기.
"....뭐라고?"
그녀의 폭탄발언을 들은 협회장의 얼굴이 굳을 때.
그보다 더 당황한 인물들이 있었으니.
"...딸꾹."
".....!"
그건 바로, 창백한 표정을 짓고있는 아이시클과 섀도우워커였다.
***
"무슨 소리야 하루야. 당연히 쓰러트린건 너지, 하하하, 딸꾹. 착각하는거 아니야?"
그렇게 얼어붙은 분위기에서 처음으로 말을 꺼낸건, 아이시클이었다.
이미 다인에게 사건의 전말을 다 전해들은 그녀였기에, 그가 괴물을 몰래 쓰러트린걸 알고 있던 그녀.
'...그리고 내가 타이밍을 정확하게 노려서 하는 바람에, 스타더스는 절대로, 쿨럭, 내가 했다는걸 모를거야. 자기가 한거라고 확신하겠지.'
'...다인씨. 분명 하루는 모를거라면서요!'
자신만만하게 자신한테 전화로 전했던 그의 말이 귓가에 들려오는 듯 했던 이설아는, 속으로 그를 원망하며 어질거리는 머리를 붙잡은 채 스타더스에게 말을 이었다.
"거기서 너말고 쓰러트릴 사람이 누가있겠어? 하루야, 기절했다가 일어나서 머리 아픈거 아니야?"
"아니. 난 분명 봤었어. 옥상 위에 누군가가 있었던걸. 그리고 아마 그것을 쓰러트린건, 그 같아."
"스타더스. 그건 아니야."
"....섀도우워커?"
갑작스럽게 난입한 섀도우워커의 말에 스타더스는 의문을 표했고.
그런 그녀의 시선을 받으며, 섀도우워커는 속으로 조용히 생각했다.
'....에고스틱. 그는 분명,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고 싶지 않다고 했었지.'
그러면서 그는 그날 옥상에서의 기억을 회고했다.
한사코 자신이 알려지는걸 원하지 않던, 계속 빌런으로써 어둠에 살고 싶다고 한 그.
그리고 피를 계속, 계속해서 토하던 그.
그리고 거기서, 섀도우워커는 한가지 가설을 만들어냈다.
'....시한부인가.'
어째서 그 남자는 히어로가 아닌 빌런으로써, 좋은 일을 하면서도 세상 사람들에게 빌런이라는 오명을 받기를 자처하며 살아가는가.
누구보다 이 세상을, 사람들을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던 그가 어째서?
...그가 시한부여서, 자신이 히어로로 활동하다 사망할시 세상 사람들이 희망을 잃을 걸 대비해 그러는게 아닐까.
어차피 떠나게 될 날이 정해졌기에... 정을 붙이지 않고. 빌런으로써 조용히 뒤에서 세상을 지키며 살아가는 거라면.
'....크흑. 에고스틱. 역시 네놈은 진정한 사나이다.'
어둠 속에서 세상을 지키는 다크 히어로... 에고스틱...
그렇게 머릿속에서 한편의 대서사시를 그린 섀도우워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 그런 진정한 영웅 에고스틱을 위해 내가 이정도도 못해주겠어.
걱정마라, 에고스틱. 여기는 내게 맡겨라.
그런 신념에 사로잡힌 섀도우워커는, 다시 뻔뻔하게 스타더스에게 말했다.
"내가 네가 마지막으로 그를 쓰러트리기 직전, 네 주위를 다 살펴봤었는데. 그 누구도 네 근처에 있지 않았다. 당연히 그 어떤 옥상 위에도 아무도 없었고."
"....그럴리가."
"날 믿어라 스타더스. 어두울때 한정해서 내 능력은 아무리 약해져도 그정도는 눈치 챌 수 있다는걸 알지 않는가."
"그때 네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것을 쓰러트린건 너다."
"맞아 하루야. 거기 누가 있었겠어? 당연히 네가 쓰러트린거지. 요즘 기가 허해서 헛것이 보이나보다. 내가 좋은 휴양지 알려줄까?"
"...."
"...하하하! 그래 스타더스, 자네가 착각한거겠지. 내 진짜 깜짝 놀랬지 뭐야. 그럼 난 이만 기자들한테 우리 협회가 어떤 도움을 줬는지 설명해야되서, 가보겠네."
"아, 하루야. 나도 가볼게. 하아, 요즘 기업이나 정치권이나 다들 내 기업을 못잡아먹어 가지고 난리라, 딸꾹. 그거 대책을... 에휴. 지겨워 진짜."
"...나도 가보겠다. 역시 낮에 깨어있으니 졸려 죽겠군. ...근데 아이시클, 그거 설마 술인가?"
"뭐요. 요즘 이거 없으면 미치겠어서 주기적으로 마셔줘야되거든요?"
"....아까부터 딸꾹거리더만 그게... 그. 아니다, 그래. 너 알아서 해라."
그렇게 그들의 말소리가 점차 멀어져가며.
이내 회의실에는, 스타더스 혼자만이 남아있게 되었다.
"..."
모두가 떠난 자리.
그렇게 홀로 남은 스타더스는, 여전히 심각한 얼굴로 조용히 중얼거렸다.
".....아닌데, 그럴리가 없는데...."
자신을 빼고 모두가 짜고 친듯 착각일뿐이라고, 아니라고 그녀에게 말하는 상황.
....그게 착각이라고?
말도 안된다, 말도 안되는데...
모두가 부정하니 이젠 그녀도 혼란스러울 지경이었다.
....진짜 내가 그냥 착각한건가?
"....그거, 아무리 생각해도 에고스틱 같았는데."
자신도 모르게 끝내 시인한 그녀.
...그래, 어쩌면 자신이 에고스틱에게 너무 의존을 하는 바람에, 착각한 것일수도 있다.
잠깐. 의존? 내가 빌런인 에고스틱에게 의존하고 있다고?
"..."
화악.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진 그녀는, 고개를 털며 빠르게 생각을 정정했다.
그럴리가. 그냥 요즘 정말 허해서 착각한거다.
...아니 근데 정말로, 에고스틱 같았다. 직감이 그랬다고.
".....내가 망상하는건가."
아니.
그래도, 그건 에고스틱이 쓰러트린거 같다.
그렇게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을 말을, 그녀는 홀로 중얼거릴 뿐이었다.
그래.
....이번엔, 내 직감을 믿어보는게.
그런 생각을 하던 그녀는, 문득 정신을 차리곤 황망히 텅 빈 회의실을 둘러보았다.
....잠깐. 근데 생각해보니까 다들 어디가고 나만 혼자 있는거지.
그렇게 신하루는 홀로 텅 빈 커다란 사무실에 앉아있다, 자리를 털고 나왔다.
...다들 너무한거같다.
***
[망붕이 영혼 빨린 썰 푼다]
그날도 회사에서 몸이 갈리던 사축 망붕이
갑자기 시발 밖에서 크롸롸롸~ 소리가 들리는거임
그래서 헐레벌떡 나갔더니 시발 날이 어두워지고 막 괴물 튀어나오는거여
다들 그거보고 으악! 이러면서 사방으로 튀는데
갑자기 내 몸을 누가 붙잡은것처럼 움질일 수가 없더니 허공에 잡혀 그 괴물놈한테 끌려감;;
그러더니 갑자기 누가 내 머리 끄댕이를 잡아당기는? 느낌과 함께
무슨 쭈쭈바 쥐어짜듯 몸에서 무언가 빠져나가는게 느껴지는 거야
내가 영끌투자를 많이 하긴 했는데 그렇다고 ㄹㅇ 영혼이 끌어모아져 빨릴 줄은 몰랐음 ㅅㅂㅋㅋ
하여튼 뽑히고 나니 느낌 존나 기묘함 무슨 괴물옆에 붙여있는데 약간 몽롱하니 꿈꾸는느낌? 의식이 약하게 있기는 했음
그렇게 어어어 이러며 있는데 갑자기 노란 빛이 번쩍하더니 다시 몸으로 복귀함 ㄷ 스타더스 없었으면 ㄹㅇ영혼상태로 쭉 있었겠지? ㅅㅂ생각만해도 무섭네
오늘 느낀건데 사후세계는 있는게 맞는듯ㅇㅇ...
좀 말이 두서 없어졌는데
결론: 오늘부터 에고스타 지지하기로 했다
=[댓글]=
[결론이 좀 이상한데?]
[ㅅㅂㅋㅋㅋㅋㅋ 세상 살면서 진귀한 경험 했네]
[에고스타를 드디어 깨달은거 보니 좋은 경험이었네.]
[에고스타 갑자기 떡상ㅋㅋㅋ 정작 에고스틱이랑은 엮이지도 않았는데 뭐냐]
ㄴ[아ㅋㅋ 망고도 좋고 스타더스도 좋으니까 둘이 합쳐지면 2배로 좋아지는거 아니겠냐고ㅋㅋㅋ]
*
"하, 쿨럭. 웃기네, 쿨럭. 쿨러억!"
"오빠! 괜찮아요?"
"어, 당연히, 쿨럭. 괜찮... 쿨럭. 쿨러억!!!"
"꺄아악! 하율언니!!!"
"지금 갈게!"
모든 사건이 끝난 이후.
내리 기절해있던 나는, 깨어난 후에도 계속 피를 쏟고 있었다.
하. 순간이동 그거 좀 몇번 했다고 다 죽어가는게 말이 되냐?
능력 구린 사람들은 서러워서 살겠냐...
"내가 진짜 오빠때문에 못살아요!"
"서은아... 나도 지금 못살고 쓰러지겠다... 은월아, 쿨럭. 저기 손수건 새거 하나 좀."
"네, 네!"
하.
진짜 내가 빨리 은퇴하던가 해야지 뭔.
제 129화
화휴식
스타더스는 떡상했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그냥 내 스타더스 팬카페만 봐도 알 수 있다. 가입자가 요 며칠사이 그냥 폭등했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스타더스의 매력을 알게 되니 내가 다 기쁘다.
물론 그 반작용으로, 내가 거의 죽을뻔하기는 했는데...
그래도 결과적으로 안죽었으니까 된 거 아닐까?
"쿨럭."
"다인오빠, 여기 손수건이요."
"아, 은월아. 고맙다."
나는 입가에 흐르는 피를 슥 닦았다.
...아무래도 초장거리 순간이동은 내 몸에 좀 무리가 많이 가는거 같다. 하긴, 따지고보면 수십키로를 한번도 안쉬고 전력질주 한거니 몸이 안망가지는게 이상하지. 죽지 않은게 다행이긴 하다.
...물론 죽지는 않았지만, 거의 죽을뻔하기는 했다.
집에 도착하자 마자 피바다를 일으키고는 그냥 쓰러져버렸으니까. 나중에 듣기를 진짜 온 집안이 뒤집어졌다고 한다. 그나마 하율이가 바로 달려와서 치료해주는 덕분에 겨우 살아난거지, 아니였으면 숨 넘어갈 것처럼 보였다나.
특히 내가 이러는 걸 처음 본 최세희랑 은월이는 거의 패닉상태에 빠졌다고 한다. 서은이랑 하율이는 저번에도 내가 칼빵맞고 피철철 흘리며 온적이 있어서인지 비명을 지르면서도 정신은 붙잡았다는데, 은월이는 듣기로는 기절했대나...?
그 결과가 내 침대 옆에 꼭 붙어있는 은월이다.
"다인오빠... 진짜 괜찮으신거 맞죠?"
"그래. 걱정마, 은월아."
여전히 나를 향해 걱정어린 시선을 보내는 은월이.
나는 그런 은월이에게 계속 괜찮다고 말해줬다. 내가 깨어나자마자 본게 세상 잃은듯 펑펑 울던 은월이라, 미안한 마음이 크다. 안그래도 나한테 서은이만큼이나 많이 의지하는 애인데, 얼마나 놀랐겠어.
그렇게 나한테 붙어 살짝 떠는 그녀를 내가 옆에서 한손으로 다독이고 있자 불편한 기색으로 눈을 흘기던 서은이는, 이제는 갑자기 모함을 하기 시작했다.
"오빠, 백은월 저거 사실 오빠 옆에 붙어있으려고 괜히 약한척 하는거에요. 다 연기니까 속으면 안돼요."
"...아니거든요? 오빠, 저런 거짓말에 속으면 안되요. 제가 진짜 걱정 많이하는거 알죠?"
"당연히 알지."
"이씨....! 그렇게 나오겠다 이거지?"
이내 내 옆에 앉아있던 서은이는, 자신도 내가 반쯤 누운듯 앉아있는 침대에 자기도 올라오기 시작했다.
"....서은씨, 뭐하세요?"
"뭐가. 나도 오빠 걱정하거든? 붙어있을꺼거든?"
"....아까는 저보고 오버하는거라면서요?"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헤. 솔직하지 못하신게 귀여우시네요."
"뭐라고? 지금 나 놀리는거지?"
"아니요. 귀엽다는 칭찬이에요."
"흥. 그러면 너도 귀여워."
"고마워요."
"...뭔가 이상한데."
오늘도 투닥거리는 서은이와 은월이.
...뭐, 여느때와 같이 친한 둘이었다.
사실 이렇게 으르렁 거리는 것도 둘이 친하니까 가능한거다. 평소에는 둘이서 손잡고 이곳저곳 쏘아댕기며 잘놀더라.
하여튼 요즘에는 이런 식으로 살고 있다.
침대 겸 피로회복기에 누워서 지내는 삶.
내가 아무리 괜찮다고 말해도 각혈이 이어지는 걸 본 멤버들이 강제로 여기 눕힌 뒤, 손가락 까딱 못하게 하고 있다.
...아니, 이제는 가끔 피토하는거 빼고는 정말 괜찮은데. 너무 과보호가 심하다.
하여튼 여전히 으르렁거리며 해커망고니 달빛망고니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대화를 하고있는 둘을 중재시킬겸, 나는 입을 열었다.
"....서은아, 은월아. 진정하고. 쿨럭."
"오빠! 괜찮은거 맞아요? 하율언니 또 부를까요?"
"쿨럭. 그정도는 아니야."
이미 최근까지도 내 옆에서 선잠자며 하루종일 내 옆에 붙어서 병간호하다가 이제야 눈좀 감은 애를 다시 깨우자고? 그건 아니다. 내 양심이 허락하지 않아...
싸우다말고 나를 향해 걱정어린 목소리로 말하는 서은이를, 나는 쓰다듬어 줬다. 그제서야 살짝 눈을 감고 안심하듯 한숨을 내쉬는 그녀.
휴, 다들 걱정시켜서 미안한 마음이 크다.
나도 힘들어. 어디론가 훌쩍 여행을 떠나 쉬고싶은 마음 뿐이다. 좀 휴양지 비스무리한 데로.
"우리 조금있다 바로 여행이나 가자. 어디든."
"네? 그 몸상태로요?"
"...서은아, 이제는 진짜 괜찮다니까. 어차피 휴양지 가는거라 나는 누워만 있어도 되고."
"...그런가. 뭐, 그정도면 괜찮을거 같기도 하네요! 언니들한테 말해볼께요."
"....여행..."
여행이란 말을 듣자 눈을 반짝이는 은월이었다.
그래, 빨리 은월이 바다 보여줘야지.
하여튼 그렇게 다같이 누워서 이런 저런 얘기를 했다.
애초에 서은이랑 은월이가 이 방으로 오는 이유가 나 혼자 누워있으면 심심할꺼라고 해서인만큼, 양옆에서 재잘거리는 애들.
"그래서 오빠. 이제 거의 다 제작이 끝났어요. 스타버스터 2호기, 버스터를 넘어선 일명 스타브레이커! 이번에는 저번과 확실히 다를거에요. 스타더스가 제 앞에서 무릎꿇기까지 이제 얼마 안남은거죠! 히히."
"...아니 서은아. 대체 스타더스가 너한테 뭘 했다고 그러니..."
"저한테 한게 아니라 오빠한테 했죠. 맨날 그 여자때문에 오빠가 다쳐서 들어오는데, 전 용서할 수 없어요!"
....나 때문이였던거야?
그렇게 스타더스를 쓰러트릴 계획을 말하며 환하게 웃는 서은이를 보며, 나도 어색하게 웃어주었다.
...하긴, 생각해보면 서은이는 원작에서도 스타더스랑 사이가 안좋았었다. 역시 원작대로 가는게 이 세상의 순리인가? 그래, 이건 다 원작때문이다. 나 때문이 아니야.
그렇게 스타브레이커가 전의 스타버스터보다 강하고, 튼튼하고, 원격으로도 불러올 수 있고 등 장점을 줄줄 읊던 서은이는, 이내 주먹을 불끈 쥐더니 침대에 일어서서 외쳤다.
"그래! 이럴때가 아니야. 오빠! 저 스타브레이커 좀 더 손 보고 올게요! 은월아, 따라와!"
"....네? 어, 저는 다인오빠랑 좀 더 같이 있고싶은데..."
"응 나없이 둘만 있는건 안돼. 따라와!"
"으에에..."
그렇게 서은이는 은월이의 손을 잡고 질질 끌며 밖에 나가고 말았다.
마지막까지 애처롭게 나를 향해 손을 뻗는 은월이가 좀 딱했지만, 난 말릴 수 없었다.
은월아... 좀 쉬다 와... 나도 스타더스 팬카페 정리해야 돼...
그렇게 둘도 사라지고.
다시 조용해진 방에서, 내가 노트북을 꺼내려던 그때.
-링딩딩~
전화의 벨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누군가 하고 보니 이설아.
오랜만이네.
나는 바로 전화를 받았다.
"어, 설아야."
[딸꾹. 안녕하세요 다인씨. 몸은 괜찮으세요?]
"어. 이제 슬슬 괜찮아지고 있어."
[다행이네요, 딸꾹.]
"...야, 근데 나보다 네가 더 안괜찮아 보이는데? 왜 이렇게 딸꾹질을 해?"
[아, 딸꾹. 술 좀 마셨더니 계속 이러네요.]
"술? 지금 시간이 몇신데 벌써 술이야. 대낮인데?"
[하아... 요즘 이래저래 심란한 일이 많아서, 딸꾹. 이거 마셔주면 그래도 좀 기분이 나아져요. 기업들은 인수도 잘 안되지, 국회는 유성기업 못잡아먹어서 안달이지... 하아, 딸꾹. 갈수록 점입 가경이에요. 서럽네요.]
...미안하다 설아야. 그거 아무래도 나때문인거 같다.
원작을 너무 바꿨나봐. 원래는 지금쯤이면 한국 반쯤 정복 끝나있어야 되는데.
나는 쿡쿡 쑤시는 양심을 무시하고 어색하게 응원의 말을 건네줬다.
"하하... 야, 너도 힘내라."
[다인씨. 딸꾹. 근데 그것보다 더 서러운게 뭔 줄 아세요?]
"....어, 뭔데?"
[제가 제일 소중히 여기는 동료가 쓰러졌다는데 병문안조차 갈 수 없다는 사실이요. 하하, 뭐 어디 사시는지 저한테 말 못하실 수 있죠. 이해해요, 제가 못미더우셔도.]
"에이, 그런거 아니야."
뭔가 불길함을 느낀 내가 황급히 입을 열어봤으나, 이미 늦었다.
이설아는 살짝 울먹이며,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냥. 그래도 조금 씁쓸하네요. 동료한테 믿음 하나 못줘서, 흑, 아직도 집도 모르는 제가 뭘 할 수 있다고 이렇게 나섰는지. 미안해요 다인씨. ...그냥, 그냥 저는 다인씨 소중하게 생각하고, 의지하기도 하고, 그냥 좋아하는데. 흑, 그런 다인씨가 아파하는데 아무 도움도 못주고, 훌쩍, 병문안도 못가고. 하아. 누굴 탓하겠어요, 신뢰감 하나 못주는 제 자신을 탓해야지. 흑, 미안해요 다인씨...]
이제는 거의 흐느끼기 시작하는 그녀. 아니, 얘 왜이래?
"야, 야. 왜 그래. 울지마. 뚝."
[하하하... 미안해요 다인씨. 딸꾹. 술 마셨더니 정신이 나갔는지 말이 막나오네. 미안해요, 잊어주라. 하하, 내가 왜이러지. 훌쩍, 감정 조절이 안되네...]
훌쩍이면서도 애써 웃으며 그렇게 이설아.
그러는 그녀한테 마음이 약해진 나는, 결국 그렇게 말할 수 밖에 없었다.
"....와."
[네?]
"병문안 오라고, 주소 알려줄테니까."
[훌쩍, 정말요?]
"그래. 그러니까 내가 너 믿지 않는다는 말도안되는 생각은 말은 이제 하지 말고..."
[와! 진짜죠? 무르기 없기에요? 당장 가도 되는거죠?]
"....어. 그래. 주소 보낼테니까, 그쪽으로 와."
[네! 알았어요! 그때봬요!!]
"어... 어..."
그리고 바로 전화가 끊겨졌다.
...뭐지. 이 찝찝함은?
아니, 아직도 이설아가 배신때릴까봐 못믿고 그런건 아닌데.
...뭔가, 당한거 같은 기분이...
"씁. 생각해보니 나보고 제일 소중한 동료라는 대목부터 눈치챘어야 되는데..."
그건 거짓말이다.
왜냐하면 원작에서는 분명, 이설아가 제일 소중히 생각하는 동료는 신하루라고 분명히 말했었거든.
"....."
....거짓말, 맞겠지?
생각해보니 오히려 거짓말이 아니면 더 곤란하네.
하여튼 뭔가 찝찝한 기분으로 나는 주소를 보내줬고, 이설아한테서 근시일 내에 찾아뵙겠다는 답장을 받았다.
...뭐, 그래. 와도 문제될 건 없으니까 상관없겠지. 솔직히 이설아가 이제와서 불거같지도 않고.
근데 잠깐.
내가 에고스트림 멤버들이랑 큰집에서 다 같이 살고 있다는걸, 얘기 했었나...?
***
다음날.
"안녕하세요 다인씨."
"어... 설아야, 안녕. 굉장히 금방왔다....?"
내 방에는 이설아가 서있었다.
하늘색 머리카락을 늘어트린 채, 나를 보며 웃는 그녀.
"네. 처음으로 다인씨 집을 찾아 뵐 수 있는데, 당연히 빨리 와야죠."
그렇게 말한 그녀는, 한층 더 진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근데, 방까지 오면서 봤는데. 집에, 굉장히 다른 여성분들이 많네요? 동거 하시나봐요?"
"...하하. 어쩌다보니."
여전히 입꼬리를 올린 채 웃고있는 그녀.
그러나 그런 그녀의 표정과는 다르게, 방은 점점 싸늘해지기 시작했다.
아니 물리적인 의미로. 진짜 체감온도가 내려가고 있는거 같은데...
그렇게 서늘한 방안에서.
여전히 웃고있는 이설아를 홀로 마주하며,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어, 설아야. 이제 슬슬 추운데....?
제 130화
화정색
저번.
스타더스와 섀도우워커, 협회장과 함께한 회의를 마친 이후.
아이시클, 이설아는. 자신의 집무실에 다시 돌아와 생각에 잠겼다.
".....휴."
익숙한듯 책상에 있는 술병을 기울여, 와인 한잔을 따른 그녀.
그렇게 보랓빛 액체를 한모금 마신 뒤, 그녀는 아까 있었던 일을 회상했다.
'.....섀도우워커가 에고스틱을, 스타더스가 보는 앞에서 두둔했어.'
자신이 말하고도 이상한 말.
그러나, 이는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대체 왜?'
섀도우워커가 한 말은 명료하다.
스타더스가 그 괴물을 자신이 쓰러트린게 아닌 다른 누군가, 정확히는 에고스틱이 쓰러트린거란걸 거의 유추한 상황에서.
섀도우워커는 이를 반박했다. 자신이 봤지만, 그 근처에는 아무도 없었다고.
"....거짓말."
그러나 그건 거짓말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자신은, 에고스틱이 그날 근처 건물의 옥상에서 저격을 했다는걸 그로부터 들었기 때문이다.
즉. 만약 섀도우워커가 정말 그날 주위를 둘러봤다면 에고스틱을 봤을테니 거짓이고.
만약 주위를 둘러보지 않았다면 모르는데도 없었다고 거짓말을 한거니, 그냥 거짓.
결론적으로, 섀도우워커의 말은 어떻게봐도 거짓일 수밖에 없다.
".....그럼, 왜 그런 거짓말을 했을까?"
이설아는 와인잔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섀도우워커. 그가 무엇을 위해 그런 거짓말을 한걸까. 무슨 생각으로...
"....."
이설아.
어린 나이에 이미 유성기업 전반을 장악하고, 이제는 대한민국을 차근차근 먹어치우고있는, 능력과 처세술만은 타고났다고 자부할 수 있는 그녀.
물론 대한민국 정복계획은 요즘 삐걱거리고 있긴 하지만, 하여튼...
눈치 하나는 대한민국에서 제일 가는 그녀였기에, 그녀는 빠르게 진실에 도달할 수 있었다.
".....에고스틱이, 섀도우워커랑 접촉했다."
그래.
이게 진실일 가능성이 제일 크다.
"....."
자신이 있는데, 어째서?
순간 그런 생각에 울컥한 그녀였으나, 이내 와인을 한모금 더 마시는걸로 속을 진정시켰다.
...그래. 애초에 자신에게도 처음 접촉한 그였던만큼, 다른 A급 히어로와 접촉해도 이상할 게 없지. 스타더스만 건드리지 않을 뿐, 다른 사람들도 건드리지 않는다는 말은 그가 한적이 없으니까.
"....하아."
이설아는 한숨을 쉬었다.
...이 감정은 뭘까.
그래, 이건 초조함, 불안감이다.
에고스틱을 빼앗길 수도 있다는 불안감.
사실 따지고보면.
에고스틱 그는, 자신을 믿지 못하니까.
그렇게.
대한민국 최고의 기업 유성 그룹 본사 최상층 사장실.
따뜻한 햇볕이 등 뒤로 들어오는 그곳에서.
정장을 입은 이설아는, 자신의 하늘색 머리를 매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이설아. 자신이 에고스틱과 정기적으로 만난지도 꽤나 시간이 오래되었다.
사실 막상 그와 만날때는 일 얘기를 한다기 보다는, 서로 이런 저런 잡담을 나누는 시간이 더 길었다. 요즘 뭐가 어떻고, 기분 좋네 피곤하네... 이런 친구와 나눌법한 시시콜콜한 일들.
그리고 그런 시간이 쌓이면서.
이설아는, 점차 다인. 그와 함께 있는 시간이 자기도 모르게 기다려진다는 걸 깨달았다.
늘 회사일과 중상모략에 치이고 치이는 삶이지만, 그와 만날때만은 그런걸 다 잊고 자신도 순수하게 웃으면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처럼 자신을 특별하게, 높디 높은 사람으로 대하기 보다는 인간적으로 대해주는, 몇 안되는 사람이었기에.
또, 신기하게도.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이설아 자신을 제일 '이해'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째서인진 모르겠지만.
하여튼 또, 그의 능력은 어떠한가.
'....솔직히, 다인씨 없었으면 이미 한국은 몇번이고 무너져도 이상할 게 없었죠.'
사실 이설아 그녀가 보기에는, 지금의 대한민국은 굉장히 기형적이다.
갑작스럽게 감당하기 힘든 거대한 규모의 테러가 최근 몇년사이 빵빵 터지는 느낌. 그것도 하나하나가 한국을 거의 준 멸망시킬 수 있는 종류의 테러들이다.
에고스틱 그가 어지간한건 다 막는바람에, 막상 따지고보면 다 잘 풀렸긴 했지만.
그 말은 반대로, 에고스틱 그만 없다면 언제든 모래성처럼 무너질 수도 있단 소리.
"....그건 안돼."
즉.
에고스틱 그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존재이다.
이설아 개인에게도, 대한민국 전체로 봐도.
다만 문제라면.
'...왜 그렇게 나를 믿지 않는걸까?'
바로 그것.
그는 자신에게 접근할때, 굉장히 보수적으로 왔다.
본명 하나 아는데 몇개월이 걸리고, 얼굴 아는데도 몇개월이 걸리고.
심지어 아직도 그가 어디사는지는 모른다. 그는 자신이 어디사는지는 알면서.
'...내가 그를 배신할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거 같기도 하고...'
자신을 명백히 경계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는 그.
그점이 이설아는 못내 억울했다.
아니, 자신이 대체 왜 그를 배신하겠는가. 지금까지 그에게 받은것과 앞으로를 생각하면, 그녀는 절대 그럴 생각이 없다. 그가 무엇을 한다고 해도. 애초에 이설아 자신도 딱히 도덕적인 인물이 아닌만큼, 더욱 그랬다.
그런만큼 이설아 그녀는 그와 평생 갈 생각이었는데.
어째서, 그는 그녀를 이다지도 경계하는 걸까.
심지어 그가 무리하게 움직이는 바람에 몸져 누웠다는데, 집주소를 몰라서 병문안 하나 못가는게 그녀의 현실.
'...어디서 모함이라도 들은걸까.'
그런 생각을 하며 다시 우울해진 그녀는, 이내 다시 술병을 병에 따라 꿀꺽꿀꺽 마셨다.
혼자서 거의 한병을 비우니, 이제야 알딸딸해지는 기분.
"....."
그렇게 볼도 붉어진 이설아는, 잠시 자신의 휴대폰을 바라보았다.
그래. 계속 이렇게 있다가는 뒤쳐지는거다.
급발진을 한번 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에게 부딪혀볼 필요가 있다.
어차피 자신은 취했으니까, 일이 잘 안풀리면 취해서 헛소리했다고 넘어갈 수도 있고.
그런 판단을 한 그는, 다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
다인과 한 전화는, 생각외로 잘 풀렸다.
그녀답지않게 눈물까지 찔끔 흘려가며 감성적으로 나선 보람이 있는걸까.
이설아는 끝내 그의 집에 초대를 받을 수 있었다.
....물론 그 과정을 떠올리면 지금도 얼굴이 붉어졌지만.
결과가 좋으니 된게 아닐까.
그렇게 어디 산골짜기에 발을 들인 그녀의 첫 감상은.
".....와."
그의 집이, 굉장히. 굉장히 크다는거다.
사람 수십명은 거뜬히 들어갈 수 있어 보이는 대저택.
이설아 자신이 살고 있는 집도 작은 편이 아닌데, 그가 살고 있는 저택은 목재로 만들어져 고풍스러운게 뭔가 왠지모를 위압감을 줬다. 마치 성처럼.
그렇게 문이 열리고.
어떤 여성이 이설아를 맞이했다.
"안녕하세요. 이설아씨죠?"
"아... 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전 이수빈이라고 해요."
인자하게 웃으며 자신을 맞아준, 이수빈이란 여자.
그리고 그런 그녀를 보며 똑같이 웃으며 인사한 이설아는, 속으로는 매우 당황하고 있었다.
...뭐지? 이 여자가 왜 그의 집에 있는거지.
아, 병간호 때문에 있는거겠지? 그런걸꺼야.
그러나 그런 그녀의 예상은, 집에 들어간 이후로 완전히 박살났다.
"....안녕하세요."
"....."
"하하, 안녕하세요?"
그가 누워있다는 방을 향해 걸어가면서 맞이한 수많은 여자들.
자신을 탐탁치 않다는 듯 바라보는 기세보이는 주황 머리 여자와, 경계하는 듯한 시선을 한 은발의 여자애, 속을 잘 모르겠는 미소를 짓고 있는 무녀복..? 같은걸 입고있는 여자까지.
다 에고스트림 소속의 빌런들인 그녀들.
그리고 거실에서 마주해 짧게 인사를 나누고 스쳐지나간 것만으로도, 그녀는 깨달을 수 있었다.
저 옷, 저 편해보이는 분위기, 저 생활감.
저들은 여기 놀러온게 아니다.
여기에 그냥 살고있다.
그녀는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
...왜? 대체 한집에서 남자랑 여자 여럿이 동거를 하고 있는거지? 그럴 이유가 있나?
그런 생각을 하며.
그녀는 방문을 열고, 침대에 누워있는 다인과 마주했다.
"안녕하세요 다인씨."
"어... 설아야, 안녕. 굉장히 금방왔다....?"
전화하자마자 바로 다음날 온 자신을 보여 살짝 놀란듯 보이는 그.
침대 위에 놓고 보고 있던 노트북을 옆으로 치우며 자신에게 인사를 건내는 그를 보며,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웃으며 말했다.
"네. 처음으로 다인씨 집을 찾아 뵐 수 있는데, 당연히 빨리 와야죠."
그렇게 말하고 그녀는 웃었다.
...
아.
이말은 지금 꺼내면 안돼.
이설아, 너 이런말 하러 온거 아니잖아. 다인씨 병문안 온거잖아.
...그래도.
이거 하나는, 물을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웃는 모습 그대로.
이설아는 입을 열어, 누워있는 다인에게 물었다.
"....근데, 방까지 오면서 봤는데. 집에, 굉장히 다른 여성분들이 많네요? 동거 하시나봐요?"
"...하하. 어쩌다보니."
그런 자신의 물음에, 멋쩍은 듯 시선을 돌리는 그.
자기도 멋쩍긴 한가보다...내심, 그가 부정하기를 기다렸는데.
"...."
"...어, 설아야, 갑자기 좀 춥다? 하하."
뭔가 좀 그렇네.
***
"사장님, 잘 갔다오셨습니까?"
"...와인, 56년산으로 하나 갖다주실레요?"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비서로부터 병을 받은 이설아는, 자신의 집무실에 앉은 뒤 잔에 따른 와인을 한잔을 따라 조용히 마셨다.
"....."
그녀는 오늘 다인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
그러나 사실 그런 것들은 다 필요없고, 그녀가 얻은 정보는 단 하나.
다인과 에고스트림 멤버들의 사이가 매우 끈끈하다.
이설아 자신은 넘보기 어려울 정도로.
"....그래, 세상에 쉬운일이 없지."
다인은 이미 자신이 점찍은지 오래.
이제야 그녀는 깨달았다. 그는 사실 빌런보다는 히어로에 어울린다는 것을.
그런데 저런 빌런들과 엮여서는, 안된다.
"....."
자신을 경계심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던 여성멤버들을 떠올린 이설아는, 다시 술을 입으로 가져다댔다.
그래.
그렇단말이지.
이미 술에 뇌가 절여진 이설아는, 머리가 이성적이지 않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에고스틱, 그는 스타더스에 집착했었지.
그래. 그는 히어로가 어울린다.
그러나 자신 혼자서는 역부족. 상대는 빌런 멤버들 다수.
어떻게 해야하나.
'그래... 그가 다음번에 여행을 떠나간다고 했었나. '
"....."
그런 생각을 하며.
이설아는 자신도 모르게, 신하루의 연락처를 바라보고 있었다.
동맹, 동맹이라.
어차피 스타더스는 에고스틱의 본모습을 모르니까, 인식저해도 있으니.
"....."
그렇게 조용히 있던 이설아는, 씨익 웃었다.
그래.
그렇게 하자.
***
"쓰읍... 뭔가 불길한데. 이번 여행에서도 저번처럼 뭔 사건 터지는거 아니야?"
"오빠. 불길한 소리 하지 마요."
아니, 싸한 기분이 드는걸 어떡해.
제 131화
화바닷가
철썩- 하고 들려오는 파도소리.
살그머니 불어오는 푸른 바람.
"하아.... 좋구만."
나는 썬베드에 누워 옆에 있는 음료를 한잔 마신 뒤 탄식을 내뱉었다.
그래... 이게 인생이지.
"오빠. 거기서 누워만 있을거에요?"
"오빠 조금만 쉬다가 갈게. 너 먼저 놀고있어."
"참나... 알겠어요. 빨리 와요?"
"그래. 그래."
모래사장을 뛰어가는 서은이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다시 선글라스를 썼다.
휴, 좋구만.
그래. 이게 인생이지. 바다를 바라보며 모히또 한잔 하는 이게...
그래.
우리 에고스트림 멤버들은 여행을 왔다.
동쪽 어딘가 바닷가로.
***
"와... 이게 바다란 거군요..."
"아니, 너도 바다가 뭔지는 알잖아. 왜 이렇게 놀래?"
"악! 세희언니, 물뿌리지 마요!"
"바닷가에 나왔으면 놀아야지!"
음, 시끌벅적하군.
나는 연두색 모히또 한잔을 빨대로 쭉 빨아마시면서 애들이 노는걸 구경했다.
그래. 역시 바다에 오니까 다들 좋아하네. 이전까지 정기적으로 했던 등산 이벤트때보다 더 활기가 넘치는 느낌.
내 몸이 좀 낫자마자, 우리는 바로 바다로 달려왔다.
물론 지금도 조금 무리하면 또 피를 쏟겠지만, 염력이나 순간이동만 과도하게 안쓰면 상관없다. 즉, 별 문제 없다는 소리.
그렇게 물장구를 치며 노는 이들을 보며, 나는 다시 썬베드에 다리를 쭉 폈다.
"다인씨, 이거 하나 드실레요?"
"아, 네 감사합니다. 음... 오, 이거 맛있네요."
"그쵸? 저기서 줄서서 팔더라고요."
나는 수빈씨가 건내준 닭강정을 오물거렸다.
이거 맛있네.
"여기 놓을테니까 같이 먹어요."
"예. 이따가 애들 오면 몇개 더 사놔야겠어요."
나는 여전히 닭강정을 오물거리며 이렇게 말했다.
현재 썬베드에 누워있는건 나랑 수빈씨 둘.
어른들은 앉아서 좀 쉬고, 애들은 바닷가에서 즐겁게 놀고있다.
하율이와 그녀의 동생 차윤이는 데식이랑 같이 저쪽에서 모래성을 만들며 놀고있다. 참고로 데식이는 인형탈을 쓰고 옆에서 차윤이랑 놀아주는 모습. 아무래도 검은갑옷을 입은 귀신이 해변에 등장하면 좀 문제가 있을거 같아서 임시방편으로 저리 해놨다.
바닷가에서 물장구치며 놀고있는 애들은 서은이와 은월이. 그리고 최세희다. 쟤는 애도 아닌데 왜 저러고 있나 싶긴 한데... 뭐, 즐거워보이니 됐나. 사실 정신연령은 비슷할 수 있다.
"....날씨가 따듯하니, 정말 신기하네."
애초에 난 이 계절에 바닷가에 갈 수 있을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근데 나도 몰랐었는데 이런 곳이 있더라.
열 능력자가 전담해서 관리하는 해변. 여기만 혼자 동남아마냥 따뜻하다.
물론 히어로로 치면 거의 B급은 되보이는 열 능력자가 상주하고있는 만큼 이용료가 좀 많이 비싸지만, 그건 내 알바가 아니다.
하여튼 나는 그렇게 다시 모히또 한잔을 홀짝였다.
해변에서는 우리 말고도 꽤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다들 피서를 즐기는 모습.
다만 우리는 전원 은월이가 걸어준 강력한 인식방해 마법 덕분에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모습이다. 머리카락이 검은색 흰색 주황색등 버라이어티한데도 다들 눈길 하나 안주는 모습.
그렇기에 나도 간크게 에고스트림 멤버 전원을 데리고 올 자신이 있던거다. 솔직히 걸릴리가 없어.
그렇게 내가 모히또 다시 한잔 하려던 그때, 옆 썬베드에 누워 나와 같이 일광욕을 하고있던 수빈씨가 문득 중얼거렸다.
"...뭔가 추억이네요."
"네?"
"예전에 다인씨랑 서은이랑 같이 부산에 놀러갔을 때. 그때도 저희 둘이 이렇게 썬베드에 앉아있고, 서은이가 바다에서 뛰어놀고 그랬었잖아요. 문득 그때의 기억이 나네요."
"아... 그렇네요. 그리고 호텔가서 잘때 갑자기 테러리스트 나와서 잠깨고."
"그때... 다인씨가 딱 나서서 스스로를 애플망고라고 지칭하셨던게 기억나네요. 푸흡."
"아 제발... 그 일은 잊어주세요..."
흑역사를 다시 떠올리자 지끈거리는 머리.
내가 어지럽다는 듯 이마를 손으로 꾹꾹 누르자, 수빈씨는 옆에서 맑은 웃음소리를 내었다.
"하하. 그래도 그때가 지금 생각하면 추억이네요. 그때만 해도 이렇게 사람들이 훨씬 많아져서 떠들석해질지는 몰랐는데..."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해변쪽을 응시했다.
나도 썬베드에 등을 기댄 채, 한손에는 모히또를 들고 바다를 바라보았다.
웃고 떠들며 놀고있는 우리 멤버들, 가족끼리 왔는지 아이와 같이 놀고 있는 부부, 뛰어노는 사람들까지.
....원작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광경이다. 이때쯤이면 다들 삶이 피폐해져서 이렇게 휴양지가 정상 작동이 될 리가 없으니까.
그래. 생각해보니 이게 내가 만든 풍경이네.
뭐... 나쁘지 않은거 같다.
거기에 이번 기회에 원작에서도 안나온 이 해변의 총 책임자인 열 능력자를 알게 됐으니까. 아마 저쪽에 구명조끼 끼고 빨간 모자에 선글라스 쓴 여자인거 같은데, 이만한 해면을 데울려면 능력이 어지간히 강한거 아닌가? 나중에 알아볼 가치가 있을거 같다.
"다인씨. 저희 나중에 저녁은 어디서 먹을까요?"
"이 뒤에 펜션에서 다같이 고기나 구워먹죠. 바베큐. 원래 이정도 인원이면 재밌는 법이죠."
"후후. 좋네요. 재료는 준비할까요?"
"아마 최세희가 다 해놨을거같긴 한데... 제가 조금 있다가 확인해 볼게요."
나는 그렇게 말하며 뒤를 봤다.
해변가를 바로 마주보고 있는 펜션.
저게 우리가 2박 3일동안 묵기로 계획된 펜션이다.
참고로 저기에다가 별거 다 쑤셔박아 놓았다. 총, 가면, 거기에 심지어 카메라까지. 뭔가 싸한 기분에 일단 다 준비하고 봤다. 저번의 부산 호텔 몽키스패너 사건 이후 이게 버릇이 됐다. 어디에서 뭔 일이 생길지 몰라... 물론 이번에 별일 생길거 같진 않지만.
"오빠! 언니! 거기서 누워만 있지말고 같이 놀아요!"
"그래 이것들아! 여기까지 와서 물 하나 안묻히는게 말이 되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우리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앞쪽에서 우리를 향해 손짓을 하고있는 서은이랑 세희. 은월이도 눈을 반짝이고 있는 모습.
"수빈씨, 이제 저희도 좀 놀고 올까요?"
"네. 그래요."
나를 향해 미소지으며 대답하는 수빈씨의 말과 함께,나는 일어났다.
어차피 수영복은 우리 둘 다 입고있으니 위에 걸친 가디건만 벗어던지고 바다로 함께 향했다.
"지금 간다!"
하. 이렇게 머리를 텅 비우고 쉬는게 얼마만인지.
그래. 이때까지 너무 바쁘게 살아왔어, 나도 쉬어야지. 사람이 혹사만 하면 죽는 법이다.
설마 이런 즐거운날에 또 뭔일 일어나겠어?
신이 나를 가엽게 여긴다면 그럴 수 없다.
그렇게 나는 바다로 들어갔다.
별일 있겠어.
***
"....지금쯤 다인씨는, 그 해변에서 놀고 있겠네."
일을 하던 이설아는, 문득 그런 생각에 잠시 펜을 놓았다.
에고스트림 맴버들끼리 놀러간다고 말하며, 자기도 모르게 즐거운 듯이 말하던 그의 기억이 난다.
"...."
에고스틱. 그가 빌런한테 넘어가는건 말이 안된다.
장기적으로 그를 히어로 쪽으로,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려고 했던 이설아에게는 청천벽력같은 일.
심지어 그녀에 대해 과도한 경계심을 보였던 다른 에고스트림 멤버들을 생각하면, 머리가 아파올 지경이었다.
"....그래."
자신의 잔에 와인을 한잔 더 따라 마시며, 이설아는 생각에 잠겼다.
에고스틱. 그는 분명 스타더스에게 살짝 집착하는 면모를 보여줬다.
그리고 자신이 제일 경계한 것도 그것.
언젠가 하루가 에고스틱에 대한 모든 비밀을 알게되고, 에고스틱은 스타더스를 좋아하니.
만약 에고스틱과 스타더스. 그 둘이 한 팀이 되면.
그 사이를, 이설아 자신이 비집고 들어가기는 쉽지 않을거다.
그런 생각을 하던 이설아는, 이번 기회에 생각이 바뀌었다.
그래. 스타더스를 견제해야 하는건 맞다.
다만, 그보다 더 위험한 사람들이 그녀도 모르는 사이 다인을 옭아메고 있었다.
에고스트림 멤버들. 그들이 먼저 다인을 채간다면?
"...차라리 하루한테 넘겨줘도, 그건 안되지."
안된다. 자신을 경계하던 그들과 에고스틱의 유착관계가 더 강해지면, 어쩌면 이설아 자신과 연을 끊으라고 그들이 그를 유도할 수도 있다.
그것만은 안된다.
그렇다면 차라리, 역으로 생각하는건 어떨까.
다인이 스타더스를 팬으로써든 뭐로써든 일단 특별하게 생각하는건 사실.
그렇다면.
"...."
어차피 인식저해 걸려있을테니 하루는 그가 에고스틱인걸 전혀 못알아볼거다. 다인 그가 멤버 하나가 역대급 인식저해 마법을 익혔다고 그렇게 자랑을 했으니.
그렇게 좋아하는 스타더스를 사석에서 실물로 봐 좀 친해지기끼지 한다면, 에고스틱의 마음도 점차 히어로 쪽으로 기울지 않을까?
히어로 애플망고. 영상보니까 귀여우시던데.
그래, 우연을 가장해서...
그렇게 술에 취해 좀 이성적이지 않게 된 이설아는.
에고스틱이 들으면 뒷목을 잡고 그대로 쓰러질 계획을 세운 뒤.
휴대폰을 켜, 하루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어~ 하루야. 뭐해?"
"다른게 아니라, 우리 바다나 보러 놀러가지 않을래?"
***
거실, 소파.
오랜만의 휴식시간에 소파에 누워 멍하니 있던 신하루는,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손가락만 휴대폰에 가있을 뿐, 그녀의 생각은 이미 다른데로 센지 오래.
'....그거 분명 에고스틱 이었던거 같은데...'
자신은 분명 옥상 위에 누군가 있던 걸 봤다.
그런데 아무도 본 적 없다고 하니 속이 답답할 따름.
"하아..."
생각해보니 요즘은 하루종일 이 생각이네.
...그래. 어쩌면 빌런인 그가 그 현장에 나타났다고 믿는 자신이 이상한 걸수도 있다.
...머리아프네.
신하루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설아?"
무슨 일이지?
그녀는 의아해하면서도 전화를 받았다.
"어 설아야."
"뭐 바다? 내일 바로 놀러가자고? 따뜻한데가 있다고..."
갑자기 내일 바다로 놀러가자고 제안한 이설아의 말에, 평소대로라면 거절했을 신하루는 살짝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래. 요즘 에고스틱 생각만 하면서 머리 아픈데.
한번 바다로 가서, 그런것들도 다 잊어버리는 것도 괜찮겠네.
그렇게 잠시 고민하던 하루는, 이설아에게 대답했다.
"그래. 갈게, 바다."
***
"아 물총 가져올걸, 깜빡했네."
"아이고 세희야. 네가 애니?"
"뭐, 애? 내가 물총이 없으면 못 뿌릴줄 알지. 에잇!"
"꺄악! 언니, 왜 저한테도 뿌려요!"
"...잠깐. 야! 다인 너 그거 안놔? 능력으로 물폭탄은 반칙이지!"
"응. 인식방해 겹겹이 걸어서 아무도 눈치 못채~"
"잠깐! 항복, 항복!"
즐겁게 놀던 나는 문득 스타더스의 생각이 났다.
...하루는 지금쯤 뭘하고 있을려나.
뭐, 그녀 성격이라면 협회에 출근했거나 집에서 쉬고있겠지.
생각해보니 당분간 내가 다음 테러하기 전까진 또 만날일이 없겠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최세희한테 물폭탄을 던져버렸다.
"악. 야!"
아. 이거 좀 재밌네.
제 132화
화어긋난 만남
정말 오랜만에 휴가를 나온 것인만큼, 진짜 푹 놀았다.
썬베드에서 낮잠도 자고, 바다에서 물놀이도 하고, 해변에서 배구도 하고.
그렇게 다시 엑티브한 일을 한 다음.
저녁은 펜션에서 바베큐를 구워먹었다.
맛있더라.
그리고 또 해가 지고.
근처에 야시장이 열렸길레 다함께 구경나갔다.
머리카락이 알록달록한 사람들이 우르르 뭉쳐다니면 상당히 눈길이 끌릴수도 있지만, 인식방해마법이 확실한지 아무도 우리쪽으로는 눈길도 안주는 모습.
물론 인형탈은 그래도 좀 오버같에서 데식이는 반지안으로 들어갔다.
"야! 이거 봐봐!"
그렇게 다들 구경하며 걷고 있을때, 저쪽에서 우리를 부르는 최세희.
"뭔데 그래?"
뭔가 재밌는걸 봤다는 듯이 손을 휘젓는 최세희. 그녀가 있는 쪽으로 우리는 걸어갔다.
그리고 그런 내가 본것은.
"야 이것봐. 에고스틱 인형임!"
다트 던져서 풍선 맞추기 부스에 상품으로 걸려있는.
2등신의 에고스틱 인형이었다.
"....와. 이건 예상 못했네."
"푸흡. 야. 인형도 생기고, 아주 그냥 연예인 다됐다? 아니지, 연예인들도 자기 인형이 있지는 않지 않냐? 슈퍼스타야 슈퍼스타!"
내 옆구리를 콕콕 찌르며 놀리는 최세희에게 고개를 저어주며, 나는 다른 인형들도 살폈다.
근본 없어 보이는 녹색 공룡 인형같은게 대다수긴 했지만, 에고스틱 인형처럼 특이한 것들도 있는 모습.
오, 자세히 보니 스타더스 인형이랑 아이시클, 섀도우워커까지. 히어로들 인형도 있네. 스타더스는 좀 탐나는데.
...잠깐, 저건 뭐지?
"야! 이건 너 아니냐?"
"푸하하... 응?"
옆에서 에고스틱 인형에 정품이라 적힌걸 보며 웃던 그녀는, 내가 주황색 머리카락을 한 여자의 인형을 꺼내자 당황하기 시작했다.
"....당황스럽네."
"여기 상표에 일렉트라라 적혀있네. 야, 이건 무녀복 입고 있는데 은월이인가?"
"어머, 이건 데스나이트 아저씨인거 같네요."
"오빠, 저는 없어요?"
"서은이? 어디보자... 없는거같은데?"
".....내가 진짜 억울해가지고, 다음 테러는 제가 일으킬꺼에요!"
"그래. 그래."
그렇게 볼을 부풀리고 삐진티를 내는 서은이를 달래줄 무렵, 최세희가 팔을 걷고 나섰다.
"다 나와봐. 언니가 인형 따줄게."
"언니. 다트 잘던져요?"
"그럼! 이 언니만 믿어. 아저씨! 저희 한판 할게요!"
"어서옵쇼! 한판? 자, 여깄습니다. 이 인형들은 10발중에 8발 맞추면 드립니다, 그 이하는 이것들! 그리고 10발 다 맞추면 이 커다란 인형!"
"아... 이거 큰일났네. 일부러 2개 틀려야겠는데?"
그렇게 허세를 부리던 최세희는.
"4발! 자, 4발 상품은 이거입니다."
"..."
"언니..."
오징어 키링을 하나 받았다.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손에 키링을 들고있는 그녀.
그래, 지금이 나설 타이밍이지.
"훗. 나와라. 내 차례다. 10발중에 10발의 힘을 보여주지."
"....참나. 흥, 이거 풍선이 계속 이동해서 생각보다 어렵거든? 넌 나보다 못맞출걸?"
최세희의 저주 비슷한 말을 흘려들은 채 다트를 던졌다.
10발 던져서 10발 맞췄다.
"....."
"허업... 다, 다 맞추셨네요... 상품은 이, 이 인형이..."
"아, 이렇게 큰건 괜찮고요, 대신 저 작은인형 몇개 가져가도 되나요?"
"예? 예! 됩니다! 3개 가져가시죠!"
"자 애들아, 인형 골라라."
"...이건 반칙이야. 너 능력 썼지?"
"아닌데? 증거있어?"
"아, 얄미워..."
당연히 염동력으로 다트 조작했지, 안했겠어?
"저흰 당연히 이거!"
은월이랑 서은이는 바로 에고스틱 인형을 낚아챘다.
....꼭 그걸 가져가야겠니?
최세희와 은월이가 자기들 인형 가져가는건 극구반대 하길레 데식이 인형 하나랑 스타더스 인형이나 챙겼다.
"....오빠, 스타더스 인형은 왜 챙긴거에요?"
"어? 아니,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고, 적을 알아야 쉽게 물리치지. 스타더스 인형을 딱 장식장에 올려놓으면 전의가 불타지 않겠어?"
"....그냥 사심인거 같은데요."
심지어 조용히 있던 수빈씨도 한마디 거들었다.
짜게 식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녀들의 눈.
참, 이렇게 억까를 당해서야 억울해서 살겠나. 수장을 못믿는 부하직원들의 모습에 통탄스러울 지경이다.
하여튼 야시장에서 그 이후로도 뭐 먹고 놀고 이것저것 하면서 보냈다.
그리고 펜션으로 돌아왔다.
짐 풀고, 씻고, 잘 준비 하고...
"오빠. 대체 이 가면이랑 총같은 것들은 왜 들고온거에요?"
"서은아, 인생은 어떻게 될지 뭘라. 저번 부산사태 기억 안나니? 밤새 펜션에 누구 쳐들어오면 어떡해."
"...과민반응이라고 말해주고 싶은데, 생각해보니까 저번에 진짜 그런일이 있었네요."
"그렇다니까."
"....뭔 얘기에요?"
"아, 내가 알려줄게. 들어봐, 저번에 오빠랑 놀러갔을때..."
우리의 대화에 궁금증을 느끼는 은월이의 질문에 서은이가 열심히 답변해줄때, 다시 최세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이것봐라!"
"응?"
갑자기 들려오는 나를 찾는 목소리.
펜션 밖 작은 정원쪽으로 나가보니 최세희가 데스나이트랑 뭘 하고있었다.
"왜?"
"아니, 이것봐봐."
[크하하, 다인. 봐보게, 자네도 깜짝 놀랄걸세.]
"...여기서 뭘할려고? 좀 불안한데."
"걱정말고 봐봐! 일렉트릭 나이트다!"
그 말과 동시에 최세희가 데식이한테 그대로 전기를 쏘았다. 아니, 뭐하는거야?
[크하하하! 찌릿찌릿하군!]
그러나 데식이는 마치 아무 문제 없다는 듯 통쾌하게 웃었다. 그러나 그의 검은색 갑옷과 속에 영혼까지 전기가 흐르는 모습.
...이게 뭐람.
"봐봐! 내가 이렇게 전기를 공급해주면 데식아재가 전기타입이 된다니까?"
[그말이 맞네. 으랴!]
그 말과 함께 데식아재가 검을 휘두르고.
전기가 그의 검에서 뿜어져나왔다.
"어때?"
"....나쁘지 않은데?"
"엥? 진짜?"
자기가 한 말에 당황하는 최세희.
나는 그런 그녀를 무시하고 진지하게 고려하기 시작했다. 최세희가 주기적으로 전기만 쏴주면 업그레이드가 된다는 거잖아.
흠... 나쁘지 않은데.
그렇게 우리는 몇가지 의논을 더 했고.
자신의 인식방해 마법이 흔들리는걸 느낀 은월이가 밖으로 나온 바람에 상황은 종료됐다.
...아무리 그래도 정원에서 전기는 뿜지 말래.
***
그렇게 다음날이 되었다.
아침 맛있게 먹고, 다시 해변으로 돌아왔다.
음, 다들 지치지도 않고 재밌게 놀고있다.
"하암..."
나는 다시 썬베드에 누워있다.
오른손에는 블루 하와이 한잔. 이것도 맛있더라.
여전히 어제와 같이 따스한 해변, 뛰어노는 사람들...
"...졸리네."
따스한 햇빛을 맞으며 누워있다 보니 꾸벅꾸벅 졸음이 올 지경.
내가 한숨 잘까 생각하던 중, 전화가 걸려왔다.
발신자는 이설아. 무슨일이지?
"여보세요?"
[아 다인씨. 딸꾹. 지금 해변에서 놀고 계세요?]
"응? 어, 잘 놀고있지. 썬베드에 누워서 일광욕하고있다 지금."
[그래요? 다른게 아니라, 마침 제가 그쪽에 갈 일이 있어서 그러는데, 잠깐 들려봐도 될까요? 썬베드에 누워계시면 같이 거기서 간단하게 뭐 같이 술 한잔만 하고싶어서요.]
"...썬베드에서?"
[네 뭐. 어디든요. 가도되죠?]
"어... 그래 뭐 잠깐이면 안될것도 없지. 갈색 펜션 앞쪽에 있다."
[진짜죠? 그럼 곧 갈테니까 기다려주세요.]
"그래, 그래."
그렇게 전화는 끊어졌다.
....뭐, 오고 싶다는데 올 수도 있지.
술이나 한잔 하자는데, 얘 목소리가 이미 취한거 같던데.
나는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펴보았다.
음, 다들 잘 놀고있군.
...피곤해 죽겠는데, 설아 올때까지 한숨 자기나 할까.
그래. 그게 좋겠네.
그렇게 나는 눈을 감았고.
곧 수마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
-인 씨.
"다인씨!"
"어, 응?"
잠에서 깨어난 나는 눈을 떴다.
눈을 부비고 일어나보니, 저쪽에서 보이는 멀리서 걸어오고있는 이설아.
살짝 해변가에 맞게 가벼운 옷이 눈에 띈다.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는 모습.
나도 그런 그녀를 향해 손을 휘저어줬다.
하암, 벌써 왔나? 일찍왔네.
그렇게 자리에 앉아 이설아를 맞이해주려던 나는, 그대로 몸이 굳고 말았다.
...잠깐, 뭐야.
이설아 뒤에 그녀를 따라오고 있는 한 여성.
뭔가, 세상 어색한 표정으로 그녀의 뒤에 있는 여성의 얼굴이.
굉장히 낯이 익었기 때문.
아니지?
설아야. 시발 아니지?
"안녕하세요 다인씨! 여기는 제 친구 신하루라고 해요. 하루야, 여기는 다인씨라고, 내 사업 파트너."
"...안녕하세요."
"하, 하하. 하하. 안녕하세요."
나는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그렇게 답했다.
그렇게 말하는 내 눈앞에 서있는 사람은.
....누구라도 한번 바라보게 될 외모, 긴 금발 머리에, 편한 옷차림에 하얀 가디건을 걸치고 있는.
내 아치 에너미.
스타더스였다.
그리고 그녀는 지금 썬베드에 썬글라스 하나 달랑 쓰고 앉아있는 A급 빌런 에고스틱 민간인 폼을 바라보고 있고.
'좆...됐다...'
옆에있는 이설아를 살짝 보니, 표정을 알 수 없는 희미한 웃음을 짓고 있는 그녀.
...넌 나중에 보자. 아무래도 깊은 대화가 필요하겠네. 하...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다.
왜 갑자기 자다가 이런 날벼락을 맞았는지나 생각해 볼 때.
아니, 다떠나서.
나는 아까까지만 해도 세상 어색한 표정을 짓다가, 내 얼굴을 딱 보더니 표정이 굳은 신하루를 보며.
극심한 불안감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아니, 시발 설아야. 설아야.
신하루 쟤 초감각 있다고 초감각!
무슨 깡으로 데리고 온거냐고...
나는 여전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이게 현실이라고?
따스한 바람이 불어오는 해변가. 그 모래사장 위에있는 썬베드에 앉은 채로, 나를 지켜줄건 가디건이랑 썬글라스 하나만 있는 내 앞에 신하루가 있는게 맞아?
이게... 현실?
괜사리 모래사장에 얹어있는 발이 살짝 떨리는걸 느끼며, 나는 잠에서 깨어나 상황파악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
사복 스타더스도 예쁘네. 아니, 이게 아니라.
그렇게 내가 멍하니 정신줄을 부여잡고 있을 때.
"어머! 갑자기 급한 연락이. 저 잠깐 전화 좀 받고 올게요. 다인씨, 하루야. 둘이 대화 좀 하고 있을레?"
이설아가 갑자기 세상 어색한 연기로 급한 연락이 왔다는양 눈앞에서 사라졌다.
아니, 설아야. 제발. 어디가니. 넌 진짜로 있다가 보자.
그렇게 나는 멍하니 앉아있고.
신하루는 해변가에서 서있는 채 나를 내려다보고있었다.
그리고 나는.
"...다인씨, 라고 했나요?"
내 위에서 들려오는 신하루의 목소리를 들으며,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제발.
제발 은월이의 인식방해 마법이, 제대로 발휘되기를.
"...하하하, 네. 맞습니다. 다인이라고 합니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웃으며 답했다.
내가 지금 웃는게 웃는게 아니야.
....눈치 못챘겠지? 그랬겠지?
그래. 난 우리 은월이 믿어.
***
신하루는 자기도 모르게 눈앞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설아가 갑자기 뜬금없이 자기 사업파트너를 인사시켜준다고 해서, 내키지 않지만 그냥 따라갔었는데.
막상 해변가 한복판에서 썬베드에 앉아있는 그 남자를 보게 된 순간, 그녀는 기묘한 감각을 느끼게 됐다.
'이 남자, 어디서 본 적 있는거 같은데..."
어디지?
어디서 본거지?
갑작스러운 기분에 기억을 더듬던 그녀는, 순간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
자신의 눈앞에 있는, 처음 보게 된 남자.
사람 좋다는 듯 그녀를 처음 보고도 허허 웃고있는 그를 보며, 그녀는 뭔가 갑자기 떠올랐다.
...아무런 증거도 없고, 말도 안되는 얘기이지만.
그녀의 직감이. 속삭이기를.
자신의 눈앞에 있는 남자의 느낌이, 어째 익숙한 기분.
언젠가에도 자주 누군가의 앞에서 느꼈던 기분이다.
정확히는, 그래.
이 남자, 왜인지.
'...에고스틱 같은 느낌인데.'
아니.
그 정도가 아니다.
...근거는 하나도 없는, 말도 안되는.
있을 수 없는 이야기지만.
신하루는, 자신도 모르게 어떠한 생각에 사로잡혔다.
'...잠깐.'
'이 남자. 그냥 에고스틱, 아니야?'
그렇게 지금, 이 해변가 한가운데서.
스타더스 그녀의 직감이, 드디어 제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제 133화
화알면서
대한민국의 한 해변.
사람들이 모두 즐겁게 노는, 태양빛이 작렬하는 그곳에서.
대한민국에서 인기가 제일 많은 히어로와, 제일 유명한 빌런이 서로 마주보고 있었다.
참고로 빌런은 수영복 차림에 가운 하나 걸친 채 선글라스 쓰고 있고, 히어로 또한 사복차림.
그리고 히어로는 옆의 썬베드에 앉아, 빌런한테 조용히 말을 거는 이질적인 광경.
근데 문제는 내가 그 빌런이라는거고.
아마도 지금이 내 인생 최고의 위기.
패닉이 와도 이상할게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내 머리는 이런 위기상황에서, 오히려 더욱 냉정하고 침착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래. 프로 악당은 위기 상황에서도 정신줄을 잡고 침착하게 문제를 해결하는법.
내 머리는 초속 5cm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이설아가 배신했나?'
이설아가 기어코 날 배신하고 신하루한테 달려가 '쟤가 에고스틱이래요~'를 했단 말인가?
원작에서도 온갖 기업들 다 통수쳐서 인수합병해버리더니, 기어코 나도 통수쳤다고?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는데? 우리 사이 좋던거 아니였어?
그렇게 나는 선글라스 너머로 스타더스를 바라보았다.
음.
아무리봐도 나를 에고스틱이라고 생각하고 있는거 같지는 않다.
아니, 다 떠나서 내가 에고스틱이란걸 알았으면 이미 달려들어서 잡았겠지, 이렇게 세상 어색하다는 듯 나를 보고 인사를 건냈겠어?
'....그래, 이설아가 배신한건 아닌거같고... 그냥 생각이 없던건가?'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
걔는 딱보니까 스타더스가 초감각 있는지도 잘 모르는거 같던데, 신하루가 날 전혀 못알아볼거라고 생각한건가? 친해지길 바래라도 찍으라는거야 뭐야.
하여튼 신하루가 내 정체를 알아챈건 아니것 같아 보인다.
물론 내 얼굴을 보더니 갑자기 표정이 살짝 변하긴 했는데, 그거야 뭐... 어...
쓰읍. 좆된거같은데.
"신하루씨는 대학교에 다니신다고요?"
"네... 혹시 다인씨는 그 사업하신다고 했나요?"
"아 네. 설아씨와는 비즈니스 파트너로, 전 그냥 작은 사업 하나하고 있습니다. 하하."
나는 살짝 식은땀을 흘리며 그렇게 말했다.
이제는 아예 내 옆자리에 자리를 잡고, 나한테 계속 말을 시키는 하루.
왜 이래요 신하루씨. 너 막 모르는 사람한테 먼저 말시키고 그런 애 아니잖아. 언제부터 그렇게 적극적이였다고....!
나는 마음 속으로 소리없는 절규를 내질렀다.
아니, 사석에서 히어로와 대화하는 빌런의 기분을 네가 아니?
괜히 언제 눈치챌까 초조불안해지는 기분.
사실 이미 초감각으로 눈치챘을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엄습했으나, 그런 부정적 생각은 머리에서 지웠다. 말이 씨가 된다고, 괜히 그런 생각을 하면 안돼.
그렇게 나는 속으로 다짐했다.
일단 무해한 사람처럼 웃자. 저는 빌런 아닙니다. 평범한 민간인입니다.
내가 에고스틱이라는 증거있어? 증거 있냐고!
솔직히 은월이 마법이 얼마나 효과 좋은데. 내가 봤을때 절대 못알아채.
그렇게 신하루는 그녀답지 않게 처음 본 나에게 끊임없이 말을 시켰고.
나는 설정상 오늘 처음 본 여자의 말을 끊임없이 받아주는 착한 남자가 되어 고개를 끄덕이며 받아줬다.
참고로 그녀는 무알콜 칵테일도 하나 시켰다. 아니, 얼마나 오래 앉아있으려고...?
그렇게 대화가 좀 이어지고.
어느덧 시간이 지나자, 이제는 긴장이 풀어졌다.
이제는 내 말에 살짝 미소까지 보이는 그녀.
그래. 아무래도 잘 넘긴거 같다.
솔직히 인식저해 마법도 걸려있는데 어떻게 알아보겠어. 말도 안되지.
괜한 걱정이었던거지? 그래...역시 내 연기력이란.
그렇게 내가 긴장을 완전히 놓을 무렵.
신하루는 옆에 앉아서 미소 지은 채, 나에게 지나가듯 물었다.
"다인씨... 맞어요. 저 궁금한게 있어요."
"네, 뭔가요?"
"혹시 에고스틱 아시나요?"
그리고 그런 그녀의 질문에, 나는 순간 얼굴이 굳을 뻔했다.
아니, 그건 왜물어보는거야.
"...하하, 에고스틱이요?"
그렇게 내가 어떻게든 웃어보며 그녀를 슬쩍 본 순간.
턱을 받진 채, 모든걸 안다는 듯 살짝 미소지으며 나를 응시하고 있는 그녀의 푸른 눈과 내 눈이, 딱 마주쳤다.
아.
아무래도 진짜 좆된거같은데.
'....아니야, 진정하자. 유도신문에 걸려들면 안된다.'
순간 숨이 멎을 뻔한걸 간신히 막고서, 나는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쓰읍. 아무래도 진짜 의심하는건 맞는거 같은데.
그게 아니고서야 그녀가 초면에 이런 말을 할리가 없다. 왜 저런 말을 하겠어.
여전히 내 앞에서 나를 보며 살짝 눈웃음을 짓는 그녀.
...솔직히 그녀의 눈웃음이 내 심장에 타격이 더 컸지만, 프로 악당답게 참아내었다. 일류 악당은 공과 사를 잘 구별해야 하는법.
일단 출제자의 의도를 구별해야 한다.
왜 저런 걸 물었을까? 내 반응을 에고스틱이 맞는지 아닌지 떠보려는 거다. 아니면 내가 에고스틱이라고 확신하는데 놀리려고 물은거거나. 셀프소개 해보라고.
그러나 장난을 잘치지않는 신하루가 그런 말을 했을거같진 않고, 이건 떠보는거다. 아마 아직 에고스틱이랑 나를 엮었어도 의심 단계일 것. 즉. 여기서 내 순수를 증명하는게 중요하다.
그 순간, 내 머리를 스치는 어떤 생각.
지금은 위기 상황. 그러나 위기는 거꾸로 기회. 즉, 오히려 이걸 기회로 생각하는거다.
순식간에 판단을 마친 나는 입을 열었다.
"에고스틱은 정말 쓰레기같은, 사악한 빌런이죠. 당장 붙잡아야 한다고 봅니다."
"....네?"
갑자기 나온 내 과격한 말에 살짝 당황하는 그녀.
좋아, 이거다.
나는 빠르게 말하기 시작했다.
"요즘 인기가 많은거 같던데, 전 솔직히 공감하기가 어렵더라고요. 온갖 테러는 다 일으키고 범죄조직을 설립하며 법을 짓밟는 그런 자를 좋아해주는 사람이 있다는게. 그런 사이코패스는 당장 법으로 엄벌해야 한다고 봅니다."
내 논리정연하고 구구절절 맞는 말에 그녀의 표정이 떫떠름해졌다. 아무래도 여기서 자기비하가 나올 줄은 몰랐던 모양. 그래. 이래도 내가 에고스틱으로 보이니?
내 말에 살짝 침묵하던 신하루는, 이내 입을 다시 열었다. 아마도 내 말에 동의를 표하고 같이 까서 그런 내 반응을 보려는 모양. 어림없지. 나는 누구보다 스스로를 잘 깔 자신이 있다. 얼마든지 해보라고.
그러나 내 각오와는 다르게,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내 생각과 완벽히 다른 말이었다.
"....그래도, 에고스틱이 다른 빌런의 테러들을 중간에 막은 적이 꽤 많지 않나요? 마냥 나쁘다고 하기에는 좀..."
아니 하루야. 왜 거기서 나를 커버쳐주고 있니.
뭐지? 고도의 전술인가? 그래, 흔들리면 안된다. 무소의 뿔처럼 우직하게 밀고나가자.
나는 다시 강경하게 말했다.
"아니죠. 그건 다 자기 밥그릇 지키려고 그러는게 틀림 없습니다. 애초에 빌런들은 관심으로 먹고 사는 존재들 아닙니까? 다리건, 한은그룹때던, 월광교던 놈이 그랬을때, 거기에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는 마음은 조금도 없었을 겁니다."
"...거짓말."
"네?"
"아, 아니에요. 말이 잘못나왔네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살짝 웃었다.
....하루야, 잘못말한거 맞지? 그렇지?
나 방금 소름이 돋았거든...?
신하루는 내 말을 듣고 여전히 방긋 웃은 채, 자신이 손에 쥔 칵테일잔을 손가락으로 살살 돌렸다. 그런 모습에 나도 모르게 시선이 간 순간, 그녀는 다시 나한테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다인씨."
"네?"
"입으로는 싫다고 하시면서, 에고스틱이 지금까지 한 일에 대해 거의 다 알고계시네요? 누가 보면 참, 본인인줄 알겠어요."
"...하하. 저보고 그런 사악한 빌런같다는 건가요?"
"아, 농담이에요. 농담."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씨익 웃었다.
그리고 나도 웃었다.
...엄마가 보고 싶어졌다.
"그럼 다인씨, 스타더스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칵테일을 한모금 입에 마신 그녀는, 다시 나한테 웃으며 물었다.
아니 하루야. 너 언제부터 이렇게 잘 웃는 아이였니... 이런 애 아니잖아... 히어로 활동 할떄가 아닌 사석에서는 소심한 애잖아... 나한테 왜 이러는거야?
나는 거의 정신줄을 놨다.
"스타더스... 제가 제일 좋아하는 히어로입니다."
"어머, 진짜요?"
"네."
"왜요?"
"....제일 정의롭고, 신념이 빛나기도 하고. 누구보다 사람들을 걱정하는 착한 마음을 지니고, 보상받지 못함에도 끝까지 모두를 위해 싸우는, 제일. 그 누구보다 히어로다운 인물이니까요. 거기에 이쁘고요."
"....아."
내 뇌를 거치지 않고 막 튀어나온 말에 살짝 얼타는 그녀.
그래. 이게 나지.
이게 에카콜라다. 이젠 막나가는거에요 그냥.
살짝 볼이 붉어진 그녀를 보며, 나는 다른 생각을 했다.
하. 이대로 망한건가.
지금 봐서는 아무래도 좆된거 같은데.
솔직히 신하루가 여기서 언제 나를 덮쳐도 이상할게 없다. 순간이동이 있기는 한데, 몸상태도 안좋아서 멀리 도망칠수도 없다고. 아니, 이미 정체를 들킨 시점에서 이미 좆된거다. 이름까지 까발려졌는데.
그렇게 멍하니 해변가를 보던 나는, 문득 저쪽에 있는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바로 여기를 어쩔줄 모르듯이 바라보는 서은이와 은월이에 최세희등 에고스트림 멤버들.
그래. 다들 스타더스가 온걸 눈치챘구다.
애들아. 나 좆됐어. 어쩌냐?
그렇게 자포자기하던 나는, 문득 섬광이 치는 듯한 깨달음이 일었다.
잠깐. 서은이. 최세희. 은월이. 환상마법. 테러. 알리바이. 성공적.
순식간에 이 상황을 타파할 방법을 깨달은 나는, 몸을 펄쩍 뛸뻔한걸 참았다.
그래. 이 난관을 해쳐나갈 방법이 딱 하나 있다. 딱 하나. 이것만 통한다면.
"...저, 하루씨?"
"네?"
여전히 볼이 붉어진 채 칵테일을 빨대로 마시던 그녀는, 내 질문에 고개를 들었다.
그런 그녀한테 난 말했다.
"저 잠깐 화장실 좀 갔다와도 될까요?"
"...네?"
내 말에 순식간에 표정을 굳히는 그녀.
나는 그런 그녀한테 안심하라는 듯, 바로 앞을 가르키며 말했다.
"여기 바로 앞에 있어서. 금방 갔다올게요."
실제로 눈앞에 하얀 컨테이너처럼 서있는, 이 자리에서 한눈에 보이는 곳에 있는 화장실.
그런 그걸 보고 살짝 고민하던 그녀는, 이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뭐. 갔다오세요."
"감사합니다. 그럼..."
나는 싱긋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됐다. 끝났다.
제일 어려운 부분을 해냈다.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바로 앞의 화장실에 들어가기 전 모래성 앞에 앉아있는 서은이랑 잠깐 눈이 마주쳤다.
내가 한쪽 눈을 깜빡이자, 알아차렸다는 듯 어딘가로 달려가는 서은이.
그래. 역시 서은이야. 눈빛만으로도 알아보는구나.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화장실로 들어갔다. 미소지으며.
...스타더스야, 스타더스야.
내가 여기서 잡힐거 같으냐?
***
"...."
다인이 화장실로 들어간 이후, 신하루는 조용히 화장실 쪽을 바라보았다.
3분. 3분을 넘기면 바로 행동한다.
그녀는 이미 거의 확신에 빠졌다.
그는 에고스틱이다. 확실하다.
그리고 자신이 스타더스인 것도 역시, 아는 눈치고.
그와 몇마디 나눠보며 확신에 가까워진 그녀.
그러나 그녀는, 오히려 다른 생각에 빠졌다.
'...그래서, 어떡하지?'
이 자리에서 덮쳐서 잡을까? 감옥으로 끌고 가야하나?
....그게 맞을까?
"..."
이런 상황이 오면, 그녀는 자신이 주저하지 않고 그를 감옥에 집어넣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막상 그 순간이 눈앞에 오자.
스타더스는 막상, 고민되기 시작했다.
'...잡아야지. 잡아야지, 그게 맞지... 맞는데...'
"기다리셨어요?"
그녀가 그런 생각에 빠졌을 있을 때,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
"....빨리 돌아오셨네요?"
"그럼요. 제가 뭐 어딘가로 도망칠 줄 알았나요?"
그렇게 뻔뻔하게 말하는 그를 보며,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이상하게 그의 앞에만 있으면, 살짝 마음이 풀어진다.
...분명 빌런일텐데.
갑작스러운 기분에 싱숭생숭해진 그때.
다시 썬베드에 앉은 그는, 웃으며 먼저 말을 걸었다.
"그래서. 하루씨."
"네?"
"하루씨는 스타더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어...."
갑작스러운 질문에 그녀가 당황하자, 살짝 웃는 그.
....쟤 역시 아무래도 다 알고 하는거 같은데.
자신이 살짝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자, 뭐가 문제냐는 듯 고개를 갸우뚱 거리는 그였다.
...얄밉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그녀는 살짝 이 상황이 웃겼다.
...빌런이랑 히어로가 서로의 정체를 이미 눈치챘는데도,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웃으면서 대화를 나누는 상황.
자신을 앞에 두고 그냥 막 던지는 에고스틱이나, 그걸 웃으며 받아주는 자신이나.
...둘 다 미친거 같다.
...잡아야지. 공격해야지. 정체도 알았으니 도망쳐도 이제 협회에 보고해 추적해야지.
그런 생각을 하자, 신하루는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답답해지는게 느껴졌다.
...그래. 이 대화까지만 하고, 덮치자. 아직은 아니고, 이 대화만 하고...
그렇게 스스로와 약속을 하며 그녀가 입을 여는 순간.
저쪽 어딘가 멀리서, 뭔가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콰앙.
"...?"
갑작스러운 사건에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저 멀리 어딘가에서 희미하게 보이는 검은 연기.
갑작스러운 사건에 해변가가 술렁일 때, 그녀의 주머니의 휴대폰이 갑자기 울리기 시작했다.
"...다인씨, 잠깐만요."
[협회]
화면에 띄워진 글자를 본 그녀가 순간 일어나, 한쪽으로 떨어져 전화를 받자.
그곳에서 들려오는, 직원의 다급한 목소리.
[스타더스씨! 큰일났습니다. 에고스틱이 또 나타나 테러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네?"
갑작스러운 말에 당황한 신하루는, 고개를 돌려 다인이 앉아있던 곳을 바라보았다.
당황스럽다는 듯 주위를 둘러보며 검은 연기가 나는 곳을 바라보는 그. 마치 무슨 일인지 전혀 모르겠다는 듯한 순진무구해 보이는 모습.
"...에고스틱이 확실해요?"
[네. 틀림없는 본인입니다.]
확신하듯 말하는 그 말을 듣고, 신하루는 갑자기 혼란에 빠지기 시작했다.
...에고스틱이 나타났다고? 그럼 저기 있는 저 남자는 누군데?
***
저편 한쪽에서 눈에띄게 당황하고 있는 스타더스.
나는 그런 그녀를 보며, 그녀가 모르게 살짝 웃으며 조용히 생각했다.
'계획대로.'
제 134화
화알리바이
해변가 한쪽에 있는 화장실.
신하루에게 허락을 구하고 그곳에 간 가는, 휴대폰을 키고 일단 빠르게 연락을 했다.
[오빠! 어떡해요, 괜찮아요? 스타더스가 거기 왜온거에요? 오빠 들킨거 아니에요?]
"괜찮아 서은아. 아직은. 근데 시간이 없거든 지금? 그러니까 오빠말 한번에 들어. 알겠지?"
[네! 말씀하세요.]
"일단 데스나이트랑 최세희, 그리고 스타브레이커라고 했었나? 그거랑 은월이까지, 전부 필요해."
우리는 테러를 일으킨다.
바로 지금.
나의 계획은 단순했다.
신하루가 지금 내가 에고스틱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그럼 그 해결방안은?
단순하다. 내가 여기 있을때 에고스틱이 다른 곳에서 테러를 일으키고 있다는걸 증명하면 된다. 알리바이가 확보되는거지.
그러나 굉장히 급하게 진행됨과 동시에, 스타더스에게 일말의 의심조차 안남기게 해야 하는 테러.
그런만큼, 중요한건 시간을 끄는거다.
그렇게 빠르게 계획을 세운 나는, 이를 우리 에고스트림 멤버들에게 말해 즉시 실행하게 시켰다.
내 급작스러운 지시에도 당황하지 않고 마치 내 손발처럼 빠르게 움직여주는 멤버들.
고맙다. 진짜 내가 사람들 하나는 잘 뽑았구나.
오래 있으면 의심 받을수도 있는 만큼, 빠르게 전할 것만 전한 나는 다시 화장실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잠시 숨을 들이마쉬었다.
그래. 이제는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각오를 마친 나는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보이는, 썬베드 한쪽에 안자 약간 심란하다는 듯 고민을 하고있어 보이는 그녀.
...설마 저게 날 어떻게 덮쳐 잡아넣을지 고민하는건 아니겠지.
더 이상한 생각을 하기 전에 시선을 돌려야한다.
그런 각오를 가지고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먼저 말을 걸었고.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
쾅-.
테러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걸려온 의문의 전화, 아마도 협회로부터 온 것일 전화를 받은 신하루는 급하게 자리를 떴다.
...물론 헤어지는 과정에서 약간 곤란한 일이 벌어지긴 했지만, 일단 헤어졌다는게 중요하지.
그렇게 신하루도 사라지고.
술렁거리는 해변에 홀로 서, 나는 정신을 부여잡았다.
자. 계획대로 하자 계획대로.
***
....이게 대체 무슨일일까.
슈트를 입고 하늘을 가로지르는 신하루, 스타더스의 마음은 너무 혼란스러웠다.
에고스틱이 나타났다고? 정말?
그럼 그 해변가에서 자신과 대화를 나눈 남자는 누군데?
뭐가 뭐인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스타더스는 일단은 나설 수밖에 없었다.
현재진행형으로 테러가 일어나고 있다는데 자신이 나서지 않을수도 없다. 즉시 나서야 하는게 맞지.
그러나...
".....이상해, 아무래도 이상해."
그녀는 하늘을 가로지르며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에고스틱이 하늘 아래 2명일리도 없고.
....
그래. 당연히 그럴리가 없지.
자신이 착각한 것이고, 아마도 지금 나타난 에고스틱이 진짜 에고스틱일 확률이 훨씬 높다.
그러나.
'정말?'
그녀는 자신의 직감을 거의 믿지 않았다.
그러나, 그러나. 이번만은 거의 확실했다. 정말 본능적으로 느껴졌었다.
그래.
이건 이상하다. 말도 안된다.
그런 확신을 품은 그녀는, 빠르게 에고스틱이 있다는 곳으로 날아갔다.
시간이 좀 지체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렇게 급한 마음으로 날아간 그녀는, 이내 볼 수 있었다.
어느 도심 한복판에 날아다니며, 폭탄을 던지고 있는 에고스틱을.
"....."
그의 옆에 둥 둥 떠다니는 카메라들. 콰앙-하고 들려오는 폭발음들.
그리고 분명하게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
"하하하하! 여러분, 폭탄주먹밥 좋아하시나요? 그럼 폭탄도 좋아하시겠네요? 여기 폭탄 선물세트입니다!"
"...."
그래.
마치 아까까지 자신과 웃으면서 해변에 대화를 하고 있었다고는 믿을 수 없을정도로 자연스럽게 테러를하고 있는 그의 모습. 검은 모자, 검은 망토, 얼굴에 쓴 가면, 카메라를 보며 말하는 목소리도. 그냥 평소의 에고스틱과 다를게 없다.
분명 그녀가 오기 전에도 계속 이렇게 테러를 했다고 했으니...
이 에고스틱이 진짜고, 그 해변에서 자신과 대화를 나눈 남자가 에고스틱이 아닐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 같은 시간에 동시에 2명이 있을 수는 없으니.
그래. 아마 저게 진짜 에고스틱이겠지.
....정말?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하늘에 떠서, 아래에서 자신을 눈치 못 챘는지 여전히 떠들며 테러를 하고 있는 에고스틱을 바라보았다.
...저게, 에고스틱이라고.
직감.
그녀는 직감적으로, 뭔가 이상한걸 느꼈다.
뭔가 이상한 기분. 그래.
분명 저 아래 있는 남자는 에고스틱일텐데.
왜.
에고스틱같지가 않지?
또 그냥 직감이다. 누가 왜 그런 느낌을 받았는데? 라고 한다면 '그냥 느낌이 그래.'라는 말밖에 못할, 사실 억측과 망상에 더 가까울 일.
그러나 하늘 위, 찬 바람을 맞으며.
그녀는 계속해서 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믿을 수 없다.
에고스틱은 분명... 그녀와 함께 해변에 있었는걸.
그러니.
가까이 가서, 그를 코앞에 닿을 거리에저 직접 마주해 본다면. 그와 대화를, 몇마디를 주고 받을 수만 있다면.
알 수 있지 않은까.
확신 할 수 있지 않을까.
저 앞쪽에 있는 남자가 에고스틱인지, 아닌지.
그래.
그 누구보다 에고스틱을 많이 본 자신이라면.
...어쩌면, 방금 전까지만 해도 사석에서 그와 대화까지 한 자신이라면.
분명 그의 앞에 마주서는 것만으로도, 바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확신에 사로잡힌 그녀는.
이내 거리 한쪽에 떠있는 채 여전히 폭탄인지 연막탄인지를 집어던지는 에고스틱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에고스틱!"
자신의 목소리를 듣자, 순간 몸을 멈칫하더니 폭탄 던지는걸 멈추고 몸을 빙그르 도는 그.
이내 자신쪽을 바라보는 그를 보며, 그녀는 더욱 묘한 감각에 사로잡혔다.
....저게 에고스틱이 맞다고?
이상하지만, 그래.
더 정확한건 그의 앞에 가면 확인 할 수 있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그녀가 그의 앞으로 쏜살같이 날아가던 그때.
[흐앗-!!!!]
"....!"
갑작스럽게 그녀의 앞에 들이우는 그림자와 불길한 감각에, 신하루는 황급히 날다 말고 몸을 뒤로 뺐고.
이내.
쿵-.
엄청난 소리와 함께, 커다란 덩치를 지닌 무언가가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하하하! 아줌마의 적수는 나에요!]
커다랗고 육중한, 마치 괴수를 연상시키는 거대한 기계 슈트.
은색으로 깔끔하게 빛나는, 하늘에서 떨어진 그것.
그것의 가운데에는 별이 붉은 선으로 인해 반으로 박살나는 모습이 박혀있었다.
그리고 그 거대하고 위압감 넘치는 모습과는 다르게, 안의 스피커로 들려오는 앳된 소녀의 목소리.
[스타더스? 오랜만이네요! 당신은 저 사우스실버가, 이 새로운, 당신의 대적자-스타브레이커로 막겠어요!]
의기양양하게 소리치는 아마도 기계장치 안에 있을 여자아이.
그 목소리를 들으며, 스타더스는 안에서 무언가가 샘솟았다.
....내 대적자는 너가 아닌, 에고스틱이야.
그러니까.
"나와."
그러나 그 기계 슈트는 절대로 비켜주지 않을려는 양 에고스틱의 앞에 서 팔을 벌렸고.
이내 스타더스는 분노를 참으며, 손에 주먹을 쥐었다.
...그래. 빨리 해치우고, 에고스틱에게로 가자.
그렇게 그녀는 그 스타브레이커라는 것에 달려들었고.
그것또한 자신의 기계 팔에서 미사일을 꺼내며.
전투가 시작되었다.
***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에고스틱입니다!"
[망하(망고스틱 하이라는 뜻~)]
[에고스틱! 에고스틱! 왜이렇게 오랜만임ㅜ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마스터 '망']
[왕의 귀환... 모든 조무래기 빌런들은 불안에 떨 것이다]
[근본 입갤ㅋㅋㅋㅋㅋ 큰거왔다ㅋㅋㅋㅋㅋ]
[망고방송은 ㄹㅇ알림 보자마자 그냥 미소가 지어짐ㅋㅋㅋㅋㅋ]
[그리웠습니다... 마지막 테러 이후 또 오랜만이네...]
[유일무이 테러 방송의 G.O.A.T 망고스틱과 동시대에 살아서 오늘도 행복합니다]
[아ㅋㅋㅋㅋ 그래서 오늘은 또 뭐 하냐고ㅋㅋㅋ]
[아니 이번엔 방송 좀 늦게켰네ㅋㅋㅋ 왜 테러 시작하자마자 안키냐고ㅜㅜㅜ]
방송이 켜지고.
사람들이 본것은, 하늘에 떠서 닭에게 모이를 주듯 길바닥을 향해 폭탄을 던지고 있는 에고스틱이었다.
그렇게 폭탄을 던지다 말고 사람들을 향해 인사를 하는 에고스틱.
그는 여느때와같이 하늘 위에 둥둥 떠, 쾌활한 목소리로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실상은?
뻥 뚫린 고속도로.
그곳을 가로지르는 검은 리무진에서, 나는 마이크를 키고 말하고 있었다.
"네! 오랜만입니다 여러분! 잠시만요, 폭탄좀 던지면서 스타더스 좀 기다릴께요!"
[아ㅋㅋㅋ 스타더스는 못참지ㅋㅋㅋㅋ]
[에고스타 떡상 각??????]
[정보)테러하면서 히어로 기다리는 빌런이 있다?]
[이정도면 스타더스는 에고TV 공식 출연자 아니냐?ㅋㅋㅋㅋ]
[망고x스타 조합은 꿀잼 보장이긴 해ㅋㅋㅋㅋ]
[아니 왜 스타더스가 올거라고 확신하는데ㅋㅋㅋㅋ]
[ㄹㅇ이설아 서울 근처라던데 아이시클이 올 수도 있는거 아님?]
응 걔는 못와.
나는 주접떠는 채팅창을 곁눈질하며, 눈치를 살폈다.
좋아. 아무도 눈치 못챘지?
나는 마이크를 끄고, 앞에서 운전을 하고있는 수빈씨에게 물었다.
"수빈씨! 저희 지금 도착하는데 얼마나 걸려요?"
"조금만 있으면 돼요!"
그래.
현재 나는 차 안에서 테러가 일어나는 그 현장으로 달려가고 있다.
순간이동 쓰면 한방이지만, 안그래도 몸상태 메롱인데 또 순간이동 했다가는 테러고 뭐고 이동하자마자 기절할 확률이 99프로기에 어쩔 수 없는 일.
그러면 저 영상에서 폭탄 던지고있는 에고스틱은 누구냐고?
저건 먼저 마법으로 날아간 은월이가 달의 주술로 만든 내 환상이다. 목소리까지는 재현 안되서 여기서 마이크를 키고 송출하고 있고.
"오빠! 지금 스타더스가 저희보다 먼저 그 근처에 도착하고 있는거 같아요!"
"그래? 그럼 빨리 그 스타뭐시기 출격시켜봐!"
"스타브레이커에요....! 그리고 저도 원격조종은 처음이라 힘들거든요....!"
옆에서 미친듯이 노트북을 두들기고 있는 서은이.
나는 그녀에게 마이크를 넘겨줄 준비를 했다.
얘도 말 해야되거든.
"...야, 이거 괜찮은거 맞냐?"
[그래 다인. 너무... 정신이 없다.]
"안 괜찮은걸 괜찮게 하는게 저희 일이죠. 세희야, 데식이. 둘다 모두 싸울 준비나 해요."
나또한 다시한번 옷매무새를 살폈다. 모자, 가면, 망토. 다 착용 완료했지?
휴. 나는 심호흡을 했다.
스타더스라면 아마 저 환상 에고스틱을 가까이서 보자마자 바로 거짓이란걸 알아차릴거다. 그러니까, 나는 최대한 스타더스의 접근을 막아, 그녀가 눈치채기 전 은월이와 바꿔치기 해야한다. 인식저해마법 걸린 나를 보고 거의 에고스틱이란걸 눈치 챈 그녀가 환상을 눈치 못챌리가 없지.
즉, 이제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스타더스가 내가 도착하기 전 먼저 환상스틱을 눈치 채느냐.
아니면 내가 먼저 도착해 바꿔치기에 성공, 확실한 알리바이를 만드는데 성공하느냐.
오로지 그 싸움.
"수빈씨! 그냥 밟아요! 어차피 여기 지금 아무 차도 안다닐거니까!"
"여기서 더요? 으으, 알겠어요!"
"히익!"
그렇게 우리 모두를 태운 차는 4륜구동 이동수단이 낼 수 있는 최대 속도의 한계를 시험하듯 달려가기 시작했다.
근처에 도착하면 거기에선 무리를 감수하고 순간이동 한다.
자, 가자.
할 수 있다.
그렇게.
스타더스 그녀만 모르는 타임어택이,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