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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5 - 5

***

집 앞의 숲.

그곳에서 서자영을 훈련시키며, 나는 곰곰히 생각했다.

...앞으로 이렇게 내가 직접 나서서 하는 테러를 몇번이나 더 할 수 있으려나.

이제 원작 기준으로도 시간이 어느정도 지나고, 스타더스도 충분히 강해지고 나면 딱히 내가 전면에 나설 필요가 없다.

안그래도 테러 한번 한번 할때마다 은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제는 진지하게 나중을 한번 생각해 볼 때쯤일수도.

'...에고스트림도 이제 점점 더 강해지고 있으니.'

물론 아직 부족하다. 여기서 능력자들 몇명 더 있어야 완벽하겠지. 다만, 능력도 좋고 성격도 좋은 빌런을 찾기가 쉽지가 않아서, 앞으로 몇명이나 더 모집할 수 있을까 싶다.

거기에 레피스단을 포함한 하위 빌런들을 모아 만들까하는 망고스쿼드... 아니, 에고스쿼드랑 이설아랑 협력해 만들 생각이 있는 능력자 PMC까지.

원작 후반부의 파워 인플레를 대비해 준비해 놓을것들을 생각하니 머리가 아플 지경. 거기에 또 스타더스 혼자 막기 힘들 수많은 다른 빌런들까지...

아, 머리가 아프다 머리가 아파. 그래, 은퇴든 뭐든 그건 나중에 생각하고, 일단 이번 테러 준비나 하자.

그렇게 나는 허우적거리고 있는 자영을 향해 말했다.

"그만 허우적하고, 파이어볼 한번 쏴봐봐!"

"...으에, 파이어보올-"

세상 힘들다는 듯 길게 늘어틀이며 손을 대충 휘두르는 그녀.

그러나 건성인 동작과는 다르게, 강렬하게 불타오르는 보라색 불이 그녀의 손에서 튕겨져나갔다.

"오오..."

나무에 닿자마자 보라색으로 굉음과 함께 펑 터지는 불꽃.

거기다가 이 불꽃이 열기랑 확산 조절도 되서, 불은 옮겨붙지 않고 맞은 그 자리에서만 보라빛으로 불타올랐다.

그래, 봐봐. 하니까 되잖아.

처음 왔을때보다 훨씬 강해졌다. 빌런학 1타강사의 교육덕분에 전투에 익숙해진 그녀를 봐라.

"와아..."

"야. 이제 그만 내려와라..."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보라빛 불꽃으로 소용돌이를 만들어 올라타버린 그녀였다.

흠. 어쨌든, 이정도면 됐으려나.

"흐응. 오랜만에 재미 좀 보고 있었는데."

"이제 진짜 재미를 볼테니까 기다려. 테러하자."

"...오, 드디어?"

허우적 거리며 다가오던 그녀가 처음으로 관심을 가졌다.

"테러할 자신은 있지?"

"그래. 그게 뭐 어렵다고. 히어로 상대로 불꽃 좀 쏘다가 잡힐거 같으면 튀면 되는거 아니야?"

그녀는 아주 평온하게 그렇게 말했다.

...역시 원작에서 알아서 테러를 일으켰던 애인만큼, 은근 본질을 꽤뚫고 있다.

"아, 그리고 너 방송도 나오는거 알지?"

"알지. 걱정마, 나 팬서비스 잘해."

서자영는 그렇게 말하면서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

...저렇게 나오니까 오히려 더 무서운데.

하여튼, 그렇게 돌아온 우리는 드디어 구체적인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테러 일시, 테러 장소, 테러 진행...

그리고 제일 중요한, 서자영의 빌런 네임을 무엇으로 정할것인가.

"흑령 어때?"

나는 먼저 그렇게 물었다.

뭐, 원작에서 자기가 스스로 이 이름으로 붙였으니까 당연히 이번에도 이걸로 가겠지. 아마 어떻게 알았냐고 깜짝 놀라지 않을까.

그런데 그런 내 예상과 다르게, 서자영은 나를 짜게 식은 눈으로 되돌아 볼 뿐이었다.

"...우와. 네이밍 센스 별로."

"오빠. 누가 여자 이름을 흑령이라고 지어요..."

옆에서 같이 듣고있던 서은이도 나를 향해 안타깝다는 듯 그렇게 말했다.

...나 너무 억울해! 얘 원작에서 스스로 그렇게 이름 지었었다고!

그러나 그런말을 할 수도 없고...

내 억울함과는 별개로, 결국 서자영의 빌런명은 미스트로 결정났다.

...흑령과는 아무 상관없는 이름이었다.

하여튼 그렇게 모든 준비를 마친 채 시간이 흐르고.

마침내.

때가, 왔다.

***

저녁. 섀도우워커 김자현의 집.

그는 자리에 앉아, 이설아와 전에 나눴던 대화를 떠올리고 있었다.

"흠... 에고스틱이 스타더스를 위해 테러를 한다라."

그녀에게서 전해 들은 말은, 이미 다 자신이 추측한 대로였다.

에고스틱, 그는 빌런인척 하며 뒤에서 대한민국을 지키고 있던 히어로. 그것도 스타더스에 버금갈정도로 열성적이게 대한민국을 지키는 히어로였다.

"스타더스를 성장시키려고 테러...?"

그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니까 에고스틱이 테러를 하는 이유는 다 스타더스를 위해서. 그녀를 성장시키려고 그런다는거다. 어쩐지, 낮에만 테러를 하는 이유가 있었다.

"왜 하필 스타더스지..?"

물론 왜 하필 스타더스인지는 살짝 의문이었으나.

그는 잠시 고민한 끝에 깨달았다. 아! 역시 스타더스를 좋아해서 그러는거지. 참, 당연한걸.

"...크흑, 사랑하는 사람을 성장시키기 위해 그런 그녀에게 미움받으면서까지 그렇게 행동하다니... 에고스틱. 그는 대체."

사나이 중에 사나이, 에고스틱이로다.

그가 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전화벨소리가 울렸다.

뭔가했더니 협회.

그리고 받자마자 그가 들은 건.

[섀도우워커씨! 빌런 에고스틱이 테러를 일으켰습니다. 밤이니만큼 섀도우워커씨가 출동해 주셔야겠습니다!]

"음..?"

그는 살짝 당황했다.

나는 왜...?

저녁의 테러는 섀도우워커, 그가 나선다는건 대한민국의 상식.

그걸 모를리도 없을텐데, 에고스틱은 왜 밤에 테러를 일으켰지?

잠시 의아해하던 그는, 이내 그냥 깔끔히 결론내렸다.

뭐, 스타더스만 상대하기는 좀 그러니까 겸사겸사 나도 한번 성장시켜 주겠다는거 아닐까.

그래. 그거겠네.

그럼 뭐,....놓칠 수 없지.

"그래! 에고스틱, 내가 가마. 기다려라!"

섀도우워커는 그렇게 호탕하게 웃으며 떠날 준비를 했다.

...그가 자신을 상대하기 위해 어떤 테러를 준비했을지, 살짝 궁금한 마음을 가진 채.

***

[그러니까, 섀도우워커씨가 이미 출동하셨으니 스타더스씨는 일단 대기를...]

"...."

제 147화

화한여름 밤의 테러

바다와 맞닿아있는 모든 나라들이 피해를 입었던, 범지구적 빌런조직 라티스의 해안가 테러.

아직도 수많은 나라들이 그때의 피해에서 시름겪는 가운데, 한국만은 유일하게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었다.

그리고, 대한민국만 무사했던 이유가 전부 빌런 에고스틱에 의해서라고 잠정 결론이 내려진 상태.

모든 지상파나 인터넷에서 이 사실을 광역으로 모두에게 때린 바람에, 에고스틱의 인지도와 인기는 또다시 미친듯 상승했다. 평소에 빌런에 아무 관심도 없던 사람마저 에고스틱만은 알 정도로.

그렇게 지금, 에고스틱에 대한 관심이 제일 높은 시점에서.

그의 방송이, 드디어 켜졌다.

***

어두운 밤.

가로등의 불빛과 건물들 사이에서 나오는 불빛 몇개만이 희미하게 빛나는 어두운 도시의 밤거리에서.

똑같이 어두운 옷을 입은 남자만이, 검은 망토를 펄럭이며 하늘에 떠 있었다.

그렇게 잠시 화면에 등을 돌린 채 밤거리를 내려다보고 있는, 이내 씨익 웃더니 드디어 화면을 바라보고. 활짝 웃는 채로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네요.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에고스틱입니다!"

그렇게 팔을 활짝 벌린 채 인사하는 그를 보며.

채팅창은 그야말로, 그냥 난리가 났다.

[에고스틱! 에고스틱! 에고스틱! 에고스틱! 에고스틱! 에고스틱! 에고스틱! 에고스틱! 에고스틱! 에고스틱! 에고스틱! 에고스틱! 에고스틱! 에고스틱! 에고스틱! 에고스틱! 에고스틱! 에고스틱! 에고스틱!]

[대한민국의 유일무이한 S급 히어로 망고스틱 마침내 입갤ㅋㅋㅋㅋㅋㅋㅋㅋ]

[망끼얏호우~! 망끼얏호우~! 망끼얏호우~! 망끼얏호우~! 망끼얏호우~! 망끼얏호우~! 망끼얏호우~!]

[왜 이제와? 왜 이제와? 왜 이제와? 왜 이제와?]

[캬ㅋㅋㅋㅋㅋ 오늘 밤은 다 잤다ㅋㅋㅋㅋㅋㅋ]

[월요일 저녁 후회없는 선택 망고스틱 방송 라이브로 시청ㅋㅋㅋㅋㅋㅋㅋ]

[방송 알림 보고 헐레벌떡 뛰어들어온 망붕이만 개추ㅋㅋㅋㅋㅋㅋ]

[젠장 에고스틱 믿고있었다고!!!!!]

그야말로 물밀듯이 올라오는 채팅들.

육안으로는 확인이 힘들정도로 쏟아지는 열렬한 반응속에서, 에고스틱은 마치 이를 알고 있다는듯 여전히 팔을 벌린 채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네, 네.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다들 편안하게 지내셨는지?"

웃으며 건내는 그의 인사에, 채팅창은 더더욱 수많은 채팅들로 불타올랐다. 특히 대부분은, 라티스의 테러를 단신으로 막아낸 에고스틱에 대한 찬양이었고.

화면에선, 거기까지 말하고 또 씨익 웃던 에고스틱이 마치 막 생각났다는 듯 한손을 주먹으로 탁 치며 말을 잇고 있었다.

"네 여러분, 반가운건 반가운데, 크흠. 요즘들어 저에대한 선동과 날조가 들려오더라구요? 제가 무슨 대한민국을 지켜냈느니 어쨌느니 이러는."

말도안되는 소리라는 듯 웃으며 말하는 그에 말에, 채팅창은 계속해서 불타올랐다.

[선동과 날조? 무슨 선동과 날조?]

[선동 ㅇㄷ? 날조 ㅇㄷ?]

[다 구구절절 팩트인데?ㅋㅋㅋㅋㅋㅋ]

[제가 대한민국을 지켜냈다(맞음) ]

[대체 뭐가 선동과 날조라는거임ㅋㅋㅋㅋ]

[전세계가 공격받을때 대한민국만 무사했던 이유는? 자랑스러운 K-빌런 에고스틱의 물 밑 외교덕분! 빌런마저 나라를 지키는 대한민국은 어떤 나란가 대충 미국이 경악하고 일본이 오열 어쩌구...]

[ㅅㅂ위에 채팅 어질어질하네ㅋㅋㅋ]

[왜 지켰다고 말을 못해! 본심을 말해!!!]

항변으로 가득한 채팅창이 보이지 않는다는 듯, 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이었다.

"뭐... 말도안되는 소리니 애초에 진지하게 믿으신 분들은 없겠죠. 전혀 사실무근인 이야기입니다. 사실무근."

[사실무근ㅇㅈㄹㅋㅋㅋㅋㅋㅋ]

[아니 이유도 안알려주고 아무튼 사실무근이라고 하면 어캄ㅋㅋㅋㅋ]

[속보)에고스틱 최근 소식에 사실무근이라 입장 밝혀. 증거는 없?음]

[협약은 맺었지만 테러 막은건 아니다도르]

[이쯤되면 그냥 협회가 용서이벤트 열어서 망고 히어로로 세탁해야한다ㅋㅋㅋㅋ]

[대체 이걸 누가 믿냐고ㅋㅋㅋㅋㅋㅋ]

[응 아무리 뭐라해도 이미 에고스틱 팬카페 성장세 역대 최고야~]

[망소리 ON]

"크흠... 어쨌든, 사족이 길었네요."

헛기침을 하며 말을 마친 그는, 이내 다시 어깨를 으쓱이며 화면에서 등을 돌렸다.

이내 카메라가 점점 멀어지며, 어두운 하늘 가운데 홀로 서있는 그의 모습을 담고.

에고스틱은 마치 이야기를 들려주듯, 찬찬히 입을 열어 말을 하기 시작했다.

"참으로 아름다운 밤입니다. 달도 정말 예쁘게 빛나고 있는 모습이군요."

거기까지 말한 그는 잠시 고개를 돌려 씨익 웃더니, 이내 말을 이었다.

"예로부터 밤은... 대한민국은 안전하다고 소문이 났죠. 섀도우워커를 이길 수 있는 빌런은 없다! 이런 말이 많았었으니까요."

"그런 의미로, 저희 에고스트림은 그의 권위에 한번 더 도전해볼까 합니다."

"소개합니다! 저희 에고스트림의 새로운 빌런, 미스트입니다!"

거기까지 말한 그는 손을 뻗어 한쪽을 가르켰고.

이내 카메라도 돌아가며, 에고스트림 옆쪽으로 화면이 옮겨졌다.

그렇게 화면에 나온것은, 한 여자의 모습이었다.

"..."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보라색 머리카락에, 반쯤 감겨있는 눈. 아름다우며 동시에 신비스러워 보이는, 현실에서 보면 말을 먼저 건내기 힘들것만 같은 외모. 그리고 그런 외모와 다르게 간단히 입은것 같은 한치수 커보이는 평범한 검은색 후드.

에고스틱보다 한뼘정도 작은 키에, 자신의 작은 손쪽에 멍하니 피어오른 보라색 불꽃을 보고 있던 그녀는.

이내 카메라가 자기를 비추고 있다는걸 인지했는지, 고개를 돌려 화면을 바라보았다.

"....?"

이내 여전히 나른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이며 화면을 바라보던 그녀는. 이내 손가락으로 브이를 만들어 얼굴쪽으로 올렸다.

"응... 이게 아닌가. 뭐, 안녕하세요. 미스트라고 해요."

이내 살짝 미소를 지으며 손을 가슴쪽으로 낮게 올려 작게 흔드는 그녀.

밤하늘을 배경으로 보라색 머리카락을 늘어트린 아름다운 소녀의, 몽환적인 모습에 순간 멈칫한 채팅창은.

이내 그 반동인양, 다시 폭발적으로 채팅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오ㅋㅋㅋㅋㅋ 분위기 뭐임?ㅋㅋㅋㅋ]

[무슨 빌런 소개가 연예인 소개인줄ㅋㅋㅋㅋ]

[에고스트림은 빌런 뽑을때 외모 보고 뽑음? 왜 다 멋지거나 이쁘거나 귀엽거나 그런건데ㅋㅋㅋ]

[오늘부터 보라망고 지지한다]

[아니 근데 생각해보니까 또 여자네 아ㅋㅋㅋㅋ]

[망고게이야 또 여자를 꼬셨느냐]

[에고스틱/논란/여성편력]

[카사망고 ㅇㅈㄹ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 스타망고 전기망고 아이스망고 달빛망고 해커망고에 이어 이젠 보라망고 등장 ㅋㅋㅋㅋㅋ 대체 몇개냐고ㅋㅋㅋ]

[왜 아무도 저 능력같은 보라색 불꽃엔 관심은 없냐ㅋㅋㅋㅋㅋ]

[밤에 하는 테러는 방송 처음인가? 분위기 ㄹㅇ 오지네]

그렇게 채팅이 올라오는 동안, 카메라는 다시 에고스틱을 비췄고.

그는 여전히 웃는 채로, 손벽을 치며 입을 열었다.

"네. 소개하기 무섭게! 마침 저곳에 그가 오고 있네요!!"

이내 다시 카메라가 돌아가고.

그곳에는 멀리서 보이는, 그림자에 휘감겨 오고있는 검은색 남성. 히어로 섀도우워커가 오는 모습이 비추어지고 있었다.

"과연 그가 저희 미스트를 이길 수 있을지, 저는 멀리서 여러분과 함께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전 이만!"

그 말을 끝으로 에고스틱은 뒤로 빠졌고.

시청자들이 채 아쉬움을 느끼기도 전, 섀도우워커의 모습이 화면에 잡혔다.

"...빌런, 여기서 뭘 하는거냐."

"음..."

낮은 목소리로 읊조리는 섀도우워커.

그런 그의 말에, 보라색 머리카락의 여자 미스트는 손가락을 잠시 입에 갖다대더니, 이내 당연한걸 묻는다는듯 노래하는 양 말했다.

"테러?"

그리고 그녀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화르륵-.

어두운 밤하늘에, 그녀의 등 뒤로 보라색의 거대한 불의 고리가 생겨남과 동시에.

그녀가 여전히 반쯤 감긴 눈으로 씨익 웃으며, 손가락을 튕겼고.

이내 보라색의 파이어볼이, 그녀의 주위에 여러개 생겨나며 모두가 섀도우워커를 조준하기 시작했다.

"...하. 밤에 이 섀도우워커를 상대로 싸우겠다니. 용기있군."

"...글쎄. 길고 짧은건, 응... 대봐야 하는거 아닐까?"

이내 노래하듯 대답한 그녀가 손가락을 한번 더 튕기자, 불꽃들이 섀도우워커를 향해 작렬하기 시작했고.

섀도우워커또한 몸을 그림자에 숨기고 이를 막아내려 하기 시작하며.

전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

'...크흑. 이녀석도 역시나 내 공격이 잘 안통하는군.'

어두운 밤.

에고스틱이 데리고 온 빌런, 미스트와 맞서 싸우며 섀도우워커는 속으로 통탄했다.

아! 지난날에 모두를 한방에 무찌르던 자신이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가.

이제는 점점 그를 이겨먹으려 하는 상대가 많아지는 상황.

또다시 한은그룹과 월광교의 악몽이 떠오르며 좌절감이 올라오던 그는, 이내 이를 악물고 정신을 차렸다.

'...그래. 이게 에고스틱의 뜻인가.'

아마 에고스틱은, 섀도우워커 자신의 능력을 거진 무시하는 빌런 앞에서 이렇게 무력해진다는걸 알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그래. 그럼 이 모든 테러는, 자신을 정신적으로 성장시키기 위한 그의 따끔한 충고인건가. 질질짜지 말고, 정신 차리고 싸우라고.

"...그래. 사나이라면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맞서 싸워야하는법."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게 조용히 중얼거린 그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래. 그가 누군가. 대한민국의 섀도우워커 아닌가.

자신은 할 수 있다.

그는 그런 생각과 함께, 저쪽 멀리편에 있을거로 보이는 에고스틱을 바라보며 속으로 다짐했다.

에고스틱, 내 절대 네놈을 실망시키지 않으마!

"자,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가보지."

"흐응..?"

이내 다시 의지를 굳힌 그는, 자신에게 보라색의 불덩이를 쏘아대는 여자를 바라보았다.

그래. 저 여자를 쓰러트리고, 에고스틱에게 인정을 받고 말겠다.

그런 각오와 함께, 섀도우워커는 다시한번 달려들었다.

좌절감을 딛고 도약하는 그의 모습은.

스스로가 생각해도, 사나이다웠다.

***

[오! 섀도우워커가 나름 저희 미스트를 상대로 꽤나 선전 하고있군요. 대단합니다, 대단해요.]

"협회장님. 현재 섀도우워커가 상대와 비등비등하게 싸우고 있습니다. 이길 수도 있을거 같습니다!"

"아니요. 지고있는거 같은데요."

"...네?"

"아무래도 제가 나서야겠습니다."

"네? 잠시만요, 스타더스씨! 일단 자리에 앉으시고..."

그시각, 협회 직원은 돌발 행동을 하려하는 히어로를 말리느라 진땀을 빼고 있었다.

제 148화

화깊어지는 싸움

서자영.

그녀는 오랜만에, 좀 재미를 느끼고 있었다.

"흐응..."

"크흑."

어두운 밤하늘.

이미 사람들은 전부 대피한 도심 위에서, 서자영은 일종의 불꽃놀이를 즐기고 있는 기분이었다.

다만 그 불꽃들이 전부 보라색이고, 사람을 향해 발포되고 있다는 차이점이 있을 뿐.

서자영은 기본적으로 이렇게 활발하게 움직이는 성격이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늘 반쯤 감긴 눈에서 알 수 있듯, 아무것도 안하고 누워있는거랑 자는걸 제일 좋아하는 그녀.

그래서인지 지금 하늘에 떠있는 상태에도, 약간 바람에 눕듯 비스듬하게 앉아있듯 떠있었다. 한손은 후드의 주머니에 넣고, 다른 손으로 능력을 쓰면서.

[아니ㅋㅋㅋㅋ 월케 테러를 대충하는거 같냐ㅋㅋ]

[이게 강자의 여유?]

[ㄹㅇ섀도우워커를 상대로 이렇게 여유로운건 처음이네]

[진짜 섀도우워커 극상성인듯ㅋㅋㅋㅋ]

물론 그렇다고 그녀가 진짜 대충 하고 있던건 아니다. 부담가지지 않고 놀듯이, 가볍게 할뿐.

그렇게 그녀는 잠시 정신을 집중해,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순간 시간이 느려진듯한 감각 속에서, 차갑게 식은 몸의 에너지가 혈관을 타고 한 손에 집중되는 감각. 이내 오른손 위쪽이 점차 뜨겁게 듫끓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손 위에 작게 피어오르는 보라색 불꽃.

약한 열기를 내뿜은 채 피어오른 불꽃을 한바퀴 돌린다는 느낌으로, 그녀는 손을 살짝 움직인다. 그러자 점차 빠르게 회전하며, 더 살이 붙듯 더 강하게 타오르는 불꽃. 그렇게 스스로 회전한 그것은 이내 작은 불꽃이라기보다는, 불타오르는 보라색 화염구라는 표현이 더 적절해 보였다. 에너지가 집중되어서인지 강렬하게 터질듯 부풀었다 수축했다를 반복하는 그것.

이내 그녀는 그것이 자신의 손 위에서 터지기 전에 화염구를 앞쪽으로 밀어내듯 손을 돌려, 팔을 전방으로 뻗었다. 그런 상태로, 손바닥을 펼치고 있는 그녀. 그렇게 손바닥 앞에는 홀로 작렬하듯 타오르는 보라색의 화염구가 떠있었고.

그리고 그 상태에서, 그녀는 앞쪽으로 쏘아버린다는 감각으로 힘을 주었다.

"파이어볼,"

이내 그녀의 짧은 중얼거림과 함께 작은 마법진같은 것이 그녀의 손바닥과 불꽃 사이에 생겨나며. 그 순간 펑- 터지는 소리와 함께 화염구가 빠르게 발포되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그녀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이 모든 과정은 섀도우워커와 시청자들이 보기에는 찰나에 일어났다. 잠시 미스트, 그녀가 손을 휘젓는 듯 하더니 순식간에 쏘아지는 보라색의 파이어볼. 이내 어두운 밤하늘에 자주빛 자취를 남기며 쏘아진 그것은, 어둠 속 섀도우워커가 있는 곳으로 작렬했다.

"크흑..."

그림자 속에 숨은 섀도우워커가 몸을 피해가며 막아보지만, 그 첫발이 끝이 아니었다. 한방을 막아내기가 무섭게 또다시 날아오는 한방, 또 한방.

물론 섀도우워커가 가만히 당하고 있던 것만은 아니었다. 여전히 바람에 기대듯 누워 한손을 흐느적 거리며 불꽃을 날리고 있던 서자영. 그런 그녀의 주위가 순간 어두워지더니, 솟아오르는 그림자들.

이를, 그녀는 몸을 불꽃에 감싼 채 빠르게 피했다. 몸이 작은건 이런 장점이 있다. 쉽게 움직일 수 있다는거.

그런 감상을 하며, 서자영은 이를 악물고 자신의 코앞까지 온 섀도우워커를 바라보았다. 그의 공격을 피하며, 주머니에 넣어놓은 다른 손도 비로소 꺼낸 그녀. 그러해 두 손을 그녀가 움직이자, 거대한 원 모양의 보라색 불의 고리가 자신과 그 사이에 생겨났다. 이내 불의 고리가 쏘아지자, 다시 그림자에 숨어 몸을 피한 그.

그렇게 어두운 밤하늘 위에 날아올라 몸을 움직이며, 그녀는 오랜만에 진심어린 미소를 지었다.

...그래. 역시, 자신의 예상대로 이렇게 밤하늘을 날며 움직이는건 꽤 재밌었다. 평소에는 별로 쓸 일도 없던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는 것도, 불꽃의 소용돌이에 누워 하늘에 떠있는것도. 전부.

사실 그녀가 이렇게까지 할 수 있던건 전부 에고스틱의 덕이기도 했다. 그와 빡세게 훈련을 하지 않았다면 오래 못버티지 않았을까. 아마 불만 좀 쏘다가 도망갔을거다.

역시 에고스틱의 제안을 받아들인건 잘한 선택이었다고 그녀가 스스로 뿌듯해할 때 쯤, 자신의 눈앞에 달려드는 섀도우워커의 모습이 보였다.

...쟤가 그렇게 강하다던 섀도우워커신가.

그러나 역시 에고스틱이 말한 대로, 자신의 불꽃 앞에서는 어째 많이 약해진 느낌이다. 물론 그래도 밤에는 무식할정도로 강한게 좀 너프된거지, 아예 약한건 아닌지라 꽤나 정신을 집중해 싸우고 있는 편이었다.

...근데, 시간이 언제까지 있더라?

서자영을 그렇게 또다시 불꽃을 날리며, 잠시 에고스틱의 말을 떠올려봤다.

'너가 지고있을때 내가 구해주러 올거고, 만약 너가 만약 이기는 방향으로 간다해도 어차피 얼마 안가 지원이 올테니 그때도 내가 구하러 데리러 갈꺼야. 그러니까 이기든 지든 사실 상관없으니 적당히 너 하고싶은대로 해도 돼.'

...그는 그렇게 적당히 해도 된다고 말했었지만.

서자영은 딱히, 그럴 생각이 없었다.

적당히? 적당히도 좋지만, 이왕 나섰는데 이겨야지.

그렇게 어두운 밤하늘 아래, 보라색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살짝 미소지었다.

....다인. 그는 딱히 내색은 안했지만, 분명 그녀가 이길거라고 생각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오히려 밀릴거라고 생각하는 눈치지.

...그런데 자신이 만약 섀도우워커를 이긴다면, 다인은 무슨 표정을 지을까? 깜짝 놀라려나, 아니면 잘했다고 칭찬하려나.

그것이 궁금해서, 그녀는 더욱 눈을 빛내며 열심히 나섰다.

그래, 이번에는 이렇게 해볼까.

그렇게 그녀는 자사의 손가락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의 감촉을 느끼며, 또다시 기하학적인 무언가를 그리기 시작했고.

그렇게 보라색 불길은 더욱 타오르며.

전투의 열기는, 더더욱 뜨거워지고 있었다.

***

밤에 섀도우워커를 이길수 있는 사람은 없다.

라는 말은, 한은그룹의 거대로봇이 섀도우워커의 능력을 완벽하게 씹어버리며 깨져버리고 말았다.

그래도 그때는 그의 멘탈이 터지지 않았다.

그래, 로봇이니까. 거대로봇은 어쩔 수 없지. 저건 너무 크고, 첨단과학의 결정체에, 아예 빌런 집단이 만든 궁극적인 병기니까.

그렇게 스스로에게 하는 변명으로 버티던 그의 멘탈은, 폭풍과 함께 등장한 월광무녀의 등장으로 기어코 박살이 났다.

아! 이제는 그 대단했던 내가 저녁에도 단신의 빌런 하나 못이기는 퇴물이 되었구나. 내 영광의 시대가 정말 가버린건가. 이젠 어떻게 살아야하지?

안그래도 낮에는 거의 일반인과 다를바 없다는 사실에 은근 자격지심이 있던 그는, 이젠 밤에도 밀린다는 끔찍한 현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실제로 멘탈이 와장창 깨져 한동안 모두와 연락을 끊고 집에 홀로 칩거했을 정도로.

물론 그렇게 홀로 좌절하던 그는, 여자친구의 도움 덕에 어느정도 회복하고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왔다.

...돌아왔지만, 사실 멘탈이 완전히 회복된 건 아니었다. 여전히 자신을 밤에도 이길 수 있는 빌런들이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면 좌절감이 느껴졌으니.

그렇게 하루하루 살아가던 그에게.

또, 자신의 능력을 어느정도 무시하고 공격을 하는 빌런이 나왔다.

아마 평소라면, 좌절감이 또 빡세게 왔을거다.

아마 얼마 싸우다가 포기하고, 다시 집에 칩거했을 수도 있겠지.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이번 테러의 목적을 알았기에.

에고스틱이 그런 나약한 자신을 성장시키기위해 특별히 준비해 준것이란걸 알기에.

그는 마음을 다잡고, 이를 악물고, 온 힘을 다해 싸웠다.

그래. 앞으로도 이런 빌런들이 더 나올 수 있지.

그때마다 좌절만 하고 있을건가? 아니다. 이제는 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하고, 한걸음 앞으로 내딛어야할때. 그것이 에고스틱이 나에게 바라는 것일 것.

사실 에고스틱은 아무 생각 없이 한거였지만, 그걸 알 리가 없는 섀도우워커는 그렇게 굳게 믿고 있었다.

"크흑... 아이고."

계속해서 날아오는 불의 공격.

원래대로라면 별것도 아닌, 그의 그림자로 손쉽게 방어가 되는 거였겠지만.

어째서인지 그림자를 뚫는 그 공격으로부터, 섀도우워커는 급히 이동하느라 바빴다.

어두운 밤하늘을 배경으로 떠있는.

검은 후드를 입고있는, 체구가 작은 보라색 긴 머리카락의 여자.

손을 휘두르며 불꽃을 날리는 그녀의 공격을 피하다가 가끔 자신도 공격을 하며.

그는 점차, 싸움의 방향을 가다듬고 있었다.

"흐응... 아까부터 본격적으로 가본다더니, 이게 다야?"

"크흑... 네년..."

그렇게 저 멀리 떠서 자신을 찍고있는 카메라를 의식함과 동시에 약간의 진심을 담아, 짜증을 살짝 낸 그는.

이를 악물고, 손에 그림자를 농축시킨 채 다시 한번 저 불의 마녀한테 달려들었다.

사실 저 여자가 저렇게 허세를 부려도, 초반보다 살짝 지친게 이미 눈에 보이고있다.

즉, 기회가 있다는 소리.

기필코 이긴다!

그렇게 에고스트림과 히어로 협회 구성원들의 대결 중에선 최초로, 양쪽 모두 상대를 무조건 쓰러트리겠다는 각오로 전투에 임하고 있었고.

그에 맞추어 전투는 끝을 모르겠다는 듯 계속해서 불타올랐다.

계속, 계속.

좀 오래.

***

[와ㅋㅋㅋ 이번 전투 ㄹㅇ 역대급이네ㅋㅋㅋ]

[개치열하게 싸우는wwwwww]

[아이고 건물 다 터진다 터져!]

[지금 저 근처 사는데 난리남 하늘 막 번쩍번쩍 하고 굉음 들리고ㅋㅋㅋㅋ]

[섀도우워커가 이렇게 이악물고 싸우는건 처음보는 듯]

[에고스틱은 무슨 신규영입 빌런이 A급 히어로를 상대로 단순 무력만으로 호각으로 싸움ㅋㅋㅋ 저정도면 바로 S급 아니냐?]

[얘 근데 미스트인가 저 여자 왜이렇게 귀엽고 이쁨?? 스타망고고 아이스망고고 뭐고 보라돌이망고가 골인할거 같은데?]

[응 아니야 스타더스가 더 이뻐 음해ㄴ]

[위에 채팅들 인식저해로 제대로 보이지도 않으면서 뭔얘기하는거냐ㅋㅋ 얼굴 당당히 까고 싸우는 아이시클이 잣으로 보임?]

[아이스망고 붐은 온다]

[왜 싸움 얘기는 안하고 이런 채팅만 하냐고ㅋㅋㅋ]

[근데 ㄹㅇ싸움 치열하기는 하다 오래가네 일렉트라때는 한순간이었는데]

[지금 누가 이기는거임? ㄹㅇ박빙이라 잘 모르겠네]

[섀도우워커가 중반부터 폼 돌아오더니 약간 이기고 있는듯?]

전투가 이미 상당히 오래 지속되었음에도, 아직도 활발한 채팅창.

이제는 하다가 지쳐서 어느순간 해설도 멈춘 나는, 약간 당황한 채로 싸움을 보고 있었다.

아니, 애들아. 왜 이렇게 최선을 대해 싸워? 적당적당히 해도 되잖아...

특히 서자영은 만사 게으른 애가 왜 저렇게 열심히 싸우는지 모르겠다. 대체 무엇을 위해?

하여튼, 그게 중요한게 아니다.

중요한건, 이렇게 싸움이 길어지고 치열해지면 그녀가 올 확률이 높아진다는거지.

그리고 역시 그런 내 예상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시야에 누군가 잡혔고.

나는 사전에 준비한대로, 카메라를 음소거 하고 다른 쪽으로 돌린 채, 내 쪽으로 다가온 반가운 인물한테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스타더스씨. 역시 오셨군요."

"...에고스틱."

어두운 도심 위에, 금발 머리를 휘날리며 내 쪽으로 오는 나의 히어로에게.

나는 씨익 웃으며 인사하며, 속으로는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역시 이렇게 되나.

그럼 답은, 계획해둔 플랜 B다.

참고로, 오랜만에 본 스타더스는 여전히 이뻤다.

그냥 그랬다고.

제 149화

화깊은 대화

저녁이라 그런지, 더욱 차갑게 불어오는 바람.

앞쪽에서 불을 펑펑 싸줘서인지 춥지는 않았지만, 바람이 날려서인지 내 앞에있는 스타더스의 머리카락은 오른쪽으로 휘날리고 있었다.

"오랜만에 보니 더 반갑네요.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

안부인사를 건내는 나를, 상당히 복잡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그녀.

아니, 복잡할게 뭐가 있어? 그냥 달려들면 되지.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스타더스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다시 입을 벌려 말했다.

"...내가, 올 걸 알고 있었나?"

"네. 당연하죠."

"...왜?"

"그야 당연히 섀도우워커 선에서 처리가 안되니까, 직접 오신거겠죠?"

"...그래. 그렇지..."

내 말을 들은 그녀는 약간 멈칫하더니, 이내 약간 낮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하여튼, 나는 그런 스타더스를 보면서도 살짝 옆쪽 상황을 봐 봤다.

음, 여전히 치열한 모습. 아주 그냥 번쩍거리면서 펑 펑 뭐 터지고 난리가 났다.

근데 이젠 뭔가 우리 미스트가 약간 밀리는 느낌.

그래, 찬바람 맞아 오래 서있었는데, 슬슬 떠날때가 왔네.

그렇게 옆쪽은 아주 불타고 깨지고 기합하면서 강풍 휘날리면서 난리치는 동안, 여전히 조용히 웃는 채 대치하고 있는 우리.

물론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주머니에서 장치를 잡고 손을 꺼내들었다.

"아, 맞다. 그리고 늘 그랬듯이, 제가 기폭장치 챙겨오신거 아시죠? 저한테 공격하시면 바로 누를꺼니까, 조심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래, 그렇겠지."

애초에 별 기대도 안했는지 그냥 그렇게 답하는 스타더스. 음, 이게 학습된 무기력인가? ...다음번에는 좀 다른 패턴으로 해야하나.

내가 그런 잡생각을 할때 쯤, 스타더스는 내 앞에서 여전히 복잡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

그래, 날 계속 보고있었다. 당황스럽게.

'...아니, 얘 왜이래?'

대체 그녀가 왜 나를 가만히 공중에 떠서 보고있는건지 모르겠다. 섀도우워커 도와주려고 온 거 아니였나? 왜 내 앞에서 이러는거지. 곤란하게. 이러면 플랜B를 실행하기가 굉장히 애매해지는데.

참고로 여기서 말하는 플랜B는 단순하다. 시퀀스 R.U.N. 런. 튄다고. 미스트를 데리고 누구보다 빠르게 퇴장하는거다. 애초에 이번 테러가 내 메인 테러라기보다는 새로운 에고스트림 정규멤버인 미스트를 처음으로 소개하는 쇼케이스에 가까워서. 거기에 이제 에고스트림이 섀도우워커도 상대할 수 있다! 이거 보여주려고 한거지. 즉, 이거 2개만 보여줬으면 바로 집에 돌아가도 아무 상관 없다는 소리.

그 이유로, 만약 스타더스가 지원군으로 온다해도 문제가 없다. 스타더스가 와서 섀도우워커를 도와 우리 미스트를 공격하는 순간, 내가 난입해서 얘 들고 엔딩멘트 친 다음에 튀면 되거든. 그림도 딱 이쁘다.

근데 지금 문제는, 스타더스가 섀도우를 도우러 안가고 내 앞에 있다는걸까.

그래서 나는 내색은 안하고 있었지만, 살짝 당황한 상태였다. 하루야, 빨리 싸우러 가야지 내 앞에서 뭐해.

내가 그런 생각을 할때 쯤, 비로소 열린 스타더스의 입.

"...왜 이런 짓을 한거지?"

"...네? 어... 그야 저는 빌런이니까요?"

대체 무슨 당연한 얘기를 묻는거야?

내가 여전히 웃는 채지만 살짝 의아하다는 듯 그렇게 답하자, 스타더스는 그 뜻이 아니라는듯 살짝 고개를 저으며 다시 물었다.

"그게 아니라... 그, 라티스. 왜 그들의 테러를 네가 막은건지, 어째서 그런 짓을 한건지 물었다."

"어..."

나는 의외에 질문에 살짝 당황했다.

아니, 지금 이 타이밍에 그걸 묻는다고? 지금 우리 바로 옆에서 치고박고 굉음나고 난리 났는데 저기에 안끼고?

거기에 묻는 내용도 살짝 당황스러웠다. 그게 벌써 한두개월 전 일인데. 분명 내가 아는 스타더스 성격이라면 '빌런이 무슨 짓을 하던 내 알바 아니다. 새로운 기만책이거나 사실이 아니겠지.' 이러면서 신경도 안써야 정상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살짝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마주친, 나를 결연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그녀.

...뭐야, 왜 진지해보이지.

아니 생각해보니까 이미 방송 시작할때 난 모르는 일이라고 해명을 했는데, 그건 못봤나?

근데 뭐, 그건 대중 앞에서 말하는거니까 혹시 문제가 될까봐 모르는 일이라고 딱 잡아땐거고.

어차피 카메라도 돌렸는데 스타더스한테는 좀 다른 말을 해도 되겠지. 어차피 지금 보니까 그런 변명에 납득할거 같지도 않고.

그런 계산이 선 나는, 재빠르게 할말을 생각했다.

그런 다음, 스타더스에게 다시 한번 씨익 웃으면서 대답했다.

"스타더스씨가 그런 찌라시에 그렇게 관심을 가질줄은 몰랐네요."

"...장난치지 말고-"

"뭐, 굳이 말하자면. 제가 저번에도 당신한테 말하지 않았나요? 제 계획이랑 이것저것을."

나는 거기까지 말한 뒤, 당연한 말을 한다는듯한 뉘앙스로 얘기를 이었다.

"제 목표가 무엇인지, 당신한테만 알려줬었는데. 혹시 잊으신겁니까? 저는 대한민국 최대 규모의 빌런연합을 만들어 협회와 대적하는게 목표라는걸요. 그런데 그런 잔챙이들이 대중의 관심을 다 뺐어가면 제 입장이 조금 곤란해지죠. 그래서 뭐, 살짝 입김을 가한건 사실입니다. 에고스트림의 독점적인 지위유지를 위해서요. 대한민국을 위한건 아니였습니다, 당연히."

아, 한번에 말을 길게 하니까 목아프네.

그런 감상을 가진 채,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생각해보니까 지금 조금 웃긴 광경이다.

옆에 내 부하..? 쯤 되는 미스트랑 그녀의 동료인 섀도우워커는 바로 옆에서 생사결 하듯 싸우고 있는데. 우리는 대체 뭐하고 있는거야. 쟤들은 치고박고 싸우느라 아파할때 나는 말을 많이해서 아프다니.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저쪽 한편에서 치고박고 싸우는 이들을 다시 힐끔봤다.

하도 불꽃에 그림자에 소음에 화려해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가 가만히 서서 대화를 하는동안에도 여전히 치열하게 싸우는 모습. 심지어 어째 점점 이쪽으로 밀려오는거 같다. 잠깐, 밀려?

그 생각이 들자마자 바로 다시 채팅창을 확인해봤다.

[이젠 확실하게 섀도우워커가 승기 잡은게 맞는듯?]

[ㄹㅇ이네 아 미스트 밀리나요!]

[그래도 그 섀도우워커랑 단신으로 이때까지 맞선게 대단하긴 하네 밤에 쟤 이기는 애 거의 없지 않았나]

[ㄹㅇ심지어 처음에는 미스트가 살짝 더 우세이기까지 함ㅋㅋㅋ 섀도우가 후반 갈수록 지구력으로 점점 더 강해져서 그렇지]

[솔직히 싸우는건 신경도 안쓰고 미스트만 보고있었다면 개추ㅋㅋㅋㅋㅋ]

[ㄹㅇㅋㅋ 순간적으로 미스트 눈나가 빌런인거 까먹고 미스트 응원하고있었음 아ㅋㅋ]

[빌런? 갈!!! 에고스트림 멤버는 전부 '히어로'인건 상식이다. 외우삼]

[미스트가 슬슬 살짝 밀리는게 맞는거같긴 하네]

...음, 아무래도 튀어야 될 순간이 오는거 같은데.

내가 슬슬 초조함을 느끼고 있을 때, 그녀는 내가 아까한 말이 마음에 안들었는지 나한테 반문했다.

"...그걸 믿으라고?"

"아니, 진실만을 말해줬, 콜록. 말해줬는데 그렇게 나오시면 저도 곤란합니다."

...분명 완벽한 이유였는데 왜 안믿으려 하는거야? 그냥 빌런이 하는 말이니 일단 거르고 본다 이건가.

근데 그와는 별개로, 내가 목 풀려고 잠깐 기침을 한 순간 그녀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그렇게 살짝 머뭇거리더니, 이내 여전히 얼굴을 굳힌채 묻는 그녀.

"...어쨌든, 그래. 그건 됐고. 너... 저번에 피를 토했었지."

"...엄, 피요?"

"그래. 피. 내 눈을 속일수는 없다. 저번 테러에서, 기침하면서 각혈하지 않았나? 뭐, 몸에 문제라도 있나보지?"

그렇게 나를 추궁하듯 묻는 그녀.

...아니, 그건 또 언제 봤대. 이래서 눈치가 빠른 히어로는 문제가 크다니까.

근데 이건 왜 묻는거지? 아, 살짝 비웃듯이 물은건가. '너 뭐 몸에 문제라도 있어보이는데 곧 죽나보지? 풋.' 이런 느낌으로. 아무렴, 설마 그녀가 나를 걱정하는건 아닐꺼 아냐.

그래서 나는 오히려 놀리듯 답변했다.

"뭐, 스타더스씨가 그렇게 절 걱정해줄 줄은 생각도 못했네요."

"걱정이 아니라..."

"네, 네. 그냥 그땐 잠시 힘들어서 그런거고, 몸은 멀쩡하니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제가 죽기 직전까지는 절대 안멈추고 계속 테러할꺼니까, 앞으로도 기대해 주세요."

"...."

거기까지 놀리듯 말한 나는, 다시한번 전투 상황을 봐봤다.

[아니 미스트 ㄹㅇ잡히겠는데?]

[섀도우워커 분노의 러쉬중ㄷㄷㄷㄷㄷ]

[에고스틱 어디감 눈나 지게 생겼다 임마]

[섀도우 폼 완전히 돌아왔네 ㅅㅂㅋㅋㅋㅋ]

아니 좆됐잖아.

시간을 너무 지체했음을 깨달은 나는, 내 앞에서 살짝 탐탁치않으면서도 안심..?한 표정을 짓고있는 스타더스에게 빠르게 작별을 날려주었다.

"어쨌든! 대화 즐거웠습니다. 그럼 전 이만 제 동료를 구하러 가보도록 하죠!"

"응? 야, 잠깐..."

뭐가 잠깐이야. 지금 시간이 없다.

거기까지 말한 나는 순식간에 순간이동 했다. 당연히 어디로? 미스트가 있는 곳으로.

그렇게 이동을 하자마자 느껴지는 뜨거운 열기, 그리고 몰아닥치는 강풍.

그 속에서 그림자에 공격받고있는 미스트를 뒤에서 안고 바로 다시 옆쪽으로 순간이동했다.

"하아, 하아... 왔어?"

"네. 늦어서 죄송합니다."

숨을 몰아쉬며 나한테 말한 서자영을 보며, 나는 그렇게 말해줬다. 안그래도 게을러서 맨날 누워만 있는 애를 너무 혹사시켰네. 미안한 마음이 크다.

하여튼, 내 갑작스러운 난입에 허공을 가른 섀도우워커는, 고개를 돌리다 우리를 보곤 다가왔고. 저쪽편에 있던 스타더스 역시 우리쪽으로 날아왔다.

밤하늘 아래에서 갑작스럽게 성사된 히어로 빌런 4자대면. 똑같이 숨을 몰아쉬며 내쪽을 보는 섀도우워커랑, 못마땅한 표정으로 미스트를 끌어안은 나를 보고있는 스타더스.

당연히 이제는 스타더스도 나오게 카메라로 찍고있는 이 광경에서, 나는 씨익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아쉽지만, 싸움은 여기까지! 이제는 저희가 헤어져야할 순간이 온거같네요."

[질거같으니 바로 구원투수 입갤ㅋㅋㅋㅋ]

[ㄹㅇ언제 에고스틱 오나 그것만 기다리고 있었다]

[벌써 방종이라니 그래도 오늘 방송 나름 알찼다]

[ㅋㅋㅋㅋㅋ섀도우워커 닭쫓던 개 행ㅋㅋㅋㅋ]

[스타더스는 언제옴? 방금왔나?]

[스타더스 오니까 바로 탈주하네ㅋㅋㅋ]

"...에고스틱인가."

"네 섀도우워커씨. 꽤나 강하시네요. 다음번엔 저희도 보강해서 와야겠습니다."

"..."

나를 보며 숨을 몰아쉬는 섀도우와, 여전히 떨떠름한 표정으로 우리를 지켜보는 스타더스. 그리고 나와 스타더스를 번갈아보며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고있는 서자영 사이에 서서, 나는 엔딩멘트를 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래. 그랬었다.

살짝 사악한 웃음을 짓던 서자영이, 돌발행동을 하기 전까진.

"....?"

...얘가, 미쳤나?

제 150화

화돌발 행동

서자영.

그녀는 기본적으로, 꽤나 재미 하나만을 추구하며 사는 성격이었다. 그냥 집에 누워있는게 가장 안정적인 재미를 꾸준히 뽑아낸다고 생각해서 매일 누워있었을 정도로.

즉, 상당히 재미에 진심인 편. 서자영은 재미를 위해서라면 처음보는 빌런의 아지트에 따라가 거기서 살 정도로, 재미를 추구했다.

그런 즉슨, 그녀가 에고스틱을 따라 섀도우워커를 상대로 테러를 일으킨 것도, 다 재미를 위해서였고.

그렇게 현재 그녀는, 나름 큰 재미를 느끼는 중이었다.

"하아, 흐으..."

너무 열심히 움직여서인지 보라빛 머리카락이 땀에 젖어 목쪽에 달라붙어있을 정도. 그녀는 그렇게 거친 숨을 내쉬며, 자신의 앞쪽에 있는 남성을 노려보았다.

이미 그림자에 잠겨 거의 형체도 보이지 않는 그.

그리고 그녀는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그림자를, 불의 장벽을 세워 가까스로 막아냈다.

"휴우. 이제 좀, 위험한거 같기도..."

그런데 그것도 이제 슬슬 한계.

꽤나 오랜시간 몸을 움직이며 싸운 그녀는, 점차 버거워지는걸 느꼈다.

이기길 희망했지만, 역시 훈련 조금 한걸 가지고 현역 A급 히어로를 이기는건 무리였나보다. 세희 말대로 다인이랑 훈련 좀 열심히 할걸 그랬나.

그런 생각을 하며, 서자영은 손을 휘둘러 또다른 불꽃을 생성해냈다.

그리고 그건, 바로 닥쳐오는 그림자들에 잡혀 사라졌다.

...음. 이젠 진짜 위험한거 같은데.

몸에 힘이 다 빠진 채 숨을 헐떡이는 상태로, 자신을 향해 들이닥치는 그림자를 멍하니 바라보던 그때.

뒤에서 누군가 갑자기 그녀를 끌어당김과 동시에, 눈앞의 광경이 한순간에 변했다.

아까의 그림자는 어디가고, 그녀의 눈앞에 탁 트인 밤하늘.

위험에서 빠져나온 그녀는, 자신을 뒤에서 끌어안고 있는 남자를 향해 태평하게 말했다.

"하아, 하아... 왔어?"

"네. 늦어서 죄송합니다."

자신을 향해 그렇게 살짝 웃으며 답하는 남자, 다인. 정확히는 에고스틱.

그런 그를 보며, 서자영은 속으로 살짝 안심했다.

그래도 뭐, 아주 늦지는 않았네.

그렇게 그녀가 에고스틱의 품에 멍하니 안겨있는 동안, 그들의 앞으로 히어로들이 속속들이 오기 시작했다. 자신처럼 거친 숨을 내쉬고 있는 섀도우워커랑, 스타더스..?

'흐응... 진짜로 왔네?'

역시나 말로만 듣던 그 유명한 A급 히어로 스타더스를, 그녀가 이렇게 직접 보는건 처음.

그래서 서자영은 살짝 흥미가 돋았다. 에고스틱과 스타더스, 둘의 인연이 은근 길다고 들었는데.

그렇게 가까이 다가온 둘은 에고스틱이 무언가의 장치를 해놔서인지, 따로 그들을 공격하진 않았고.

그리고 에고스틱은 여전히 그녀를 뒤에서 껴안은 채, 입을 열어 히어로들과 카메라를 향해 말을 하고 있었다.

"아쉽지만, 싸움은 여기까지! 이제는 저희가 헤어져야할 순간이 온거같네요."

밝은 목소리로 통보하듯 말하는 그.

"...에고스틱인가."

"네 섀도우워커씨. 꽤나 강하시네요. 다음번엔 저희도 보강해서 와야겠습니다."

그렇게 두 남자가 대화를 하고 있을때.

서자영은 몰래, 스타더스를 관찰하고 있었다.

그리고.

....흐응?

그녀는 꽤나 재밌는걸, 눈치챌 수 있었다.

여전히 에고스틱의 품에 안겨있는 자신.

사실 에고스틱이나 자신은 그걸 별로 신경도 안쓰고 있었지만.

그걸 보고 있는 스타더스의 표정은, 별로 탐탁치 않아보였다.

정확히는, 빌런을 봐서 탐탁치 않다는게 아니라.

그녀가 느끼기엔, 자신을 껴안고 있는 그를 보고..?

'...잠깐. 이거, 혹시?'

순간 서자영의 머릿속에 무언가가 번뜩였다.

에고스틱이 스타더스만 상대하고 신경쓴다는건 널리 알려진 사실.

그리고 그와 같이 사는 자신은 더욱 많은걸 알고있다. 예를들어 그가 스타더스 팬카페를 운영할정도로 상당히 스타더스에게 진심이라는걸.

그래서 뭐 당연히, 에고스틱 혼자 그런건 줄 알았는데.

지금 막상 보니까, 그게 아닐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같은 여자라 느끼는 걸 수도 있는거겠지만, 스타더스가 짓고 있는 저 탐탁치 않은 표정은 분명...

'아무리 봐도, 약간... 질투같은데?'

정확히는 스타더스 그녀 스스로도 모르고 느끼고 있는 감정 같달까.

물론 자신이 관상가도 아니고 얼굴만 보고 딱 알아맞출 수 있는건 아니지만, 직감적으로 느껴졌다.

대체 왜 히어로가 빌런을 보고 질투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뭔진 몰라도, 재밌네?'

그래.

다 필요없고, 재밌었다. 이 상황 자체가.

물론 자신의 말도 안되는 추측일 가능성이 크지만.

...그거야, 직접 확인해보면 되는거 아닐까?

단순히 껴안고 있는걸 보고도 저런 표정을 보인다면, 더 강한 자극을 줘서.

"그럼 지금까지 저희 저희 에고스트림의 쇼를 즐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서자영은 기본적으로 재미를 추구한다.

즉 그녀는, 재미를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다.

그렇게, 에고스틱이 작별인사를 하는 순간.

그에게 살짝 비스듬히 안겨있던 서자영은, 고개를 돌려 그의 볼에 입을 맞추었다.

"수고했어, 자기."

그리고 웃으며, 그렇게 말해주었다.

"....."

"....?"

그 순간, 살짝 몸이 굳더니 굉장히 당황한 표정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에고스틱.

그리고 서자영은, 고개를 돌려 완전히 얼어붙은 스타더스의 얼굴을 확인한 뒤. 살짝 미소지으며 생각했다.

거봐.

맞잖아.

***

신하루.

그녀는 전부터, 에고스틱의 테러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에게 직접 묻고 싶은게 너무 많아서.

왜 라티스를 막은거냐.

대체 너의 목적은 뭐냐.

어째서 빌런짓을 하는거냐.

...그리고, 각혈은 왜 한거냐.

신하루가 그렇게 에고스틱의 테러만을 기다리고 있을 때.

에고스틱이 테러를 일으켰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밤에. 또 새로운 여자를 데리고.

"섀도우워커씨가 이미 출동하셨으니, 굳이..."

물론 에고스틱을 굳이 자극하지 않고도 어차피 섀도우워커선에서 끝날거라는 협회의 잘못된 판단에 잠시 출동이 느려지기는 했지만, 섀도우워커가 밀리는걸 확인한 그녀는 결국 빠르게 현장으로 나갔다.

...지금 놓치면, 다음에 언제 또 에고스틱과 얘기할 수 있는 기회가 올지 모른다.

그런 판단으로 현장으로 빠르게 날아간 그녀는, 마침내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스타더스씨. 역시 오셨군요."

"...에고스틱."

빛나는 별이 희미하게 보이는 밤하늘 위에서, 망토를 휘날리며 자신을 맞아주는 그.

"오랜만에 보니 더 반갑네요.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웃으면서 자신에게 인사를 건내는 그를 보며, 신하루는 잠시 침묵했다.

역시 오셨군요..라니. 자신이 올 줄 알았다는건가?

왜?

"그야 당연히 섀도우워커 선에서 처리가 안되니까, 직접 오신거겠죠?"

"...그래. 그렇지..."

자신의 질문에 당연하단걸 묻는다는 듯 대답하는 에고스틱을 보며, 신하루는 속마음을 숨긴채 수긍했다.

...다행히 자신이 그를 만나 대화하고 싶어서 온거라는건 모르는 눈치다.

"아, 맞다. 그리고 늘 그랬듯이, 제가 기폭장치 챙겨오신거 아시죠? 저한테 공격하시면 바로 누를꺼니까, 조심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혹시라도 자신이 달려들까, 주머니에서 기폭장치를 꺼내 흔들며 말하는 에고스틱을 보며, 신하루는 단순히 수긍했다. 뭐... 저렇게 말은 해도, 자신이 아는 그라면 어차피 저걸 누를 일은 없다. 이제 그녀는, 이정도는 알게 됐다.

그렇게, 할말을 다했는지 멀뚱히 자신을 바라보는 에고스틱을 보며.

신하루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바로 평소에 궁금했던걸 물었다.

잠시 혼선이 있었지만, 그녀가 궁금했던건 이것.

"라티스. 왜 그들의 테러를 네가 막은건지, 어째서 그런 짓을 한건지 물었다."

그래.

대체 에고스틱, 그는 그 테러를 왜 막았냐는거다.

...빌런이면서, 분명 빌런이라면서.

어째서.

그리고 그녀가 그런말을 할 줄은 몰랐다는 듯 살짝 당황한 그는.

이내 뭔가 길게 답하기 시작했다.

"제 목표가 무엇인지, 당신한테만 알려줬었는데. 혹시 잊으신겁니까? 저는 대한민국 최대 규모의 빌런연합을 만들어 협회와 대적하는게 목표라는걸요. 그런데 그런 잔챙이들이 대중의 관심을 다 뺐어가면 제 입장이 조금 곤란해지죠. 그래서 뭐, 살짝 입김을 가한건 사실입니다. 에고스트림의 독점적인 지위유지를 위해서요. 대한민국을 위한건 아니였습니다, 당연히."

대충 요약하자면, 그냥 뭐 자신을 위해 한거라는거.

이 내용을 그녀한테만 알려줬다는 부분은 좋았지만, 그게 중요한게 아니었다.

중요한건 그녀의 직감이 느끼길.

아무리봐도 이 말은, 거짓말 같다는 것.

"...그걸 믿으라고?"

"아니, 진실만을 말해줬, 콜록. 말해줬는데 그렇게 나오시면 저도 곤란합니다."

그렇게 그녀가 따져물을 찰나.

순간 목이 아픈지 기침하는 에고스틱의 모습을 보며, 신하루는 자기도 모르게 멈칫했다.

...그래. 더 중요한게 있었지.

그래서 그녀는, 제일 중요한.

그리고 사실 그녀가 그를 만나서 제일 묻고싶었던걸, 드디어 물을 수 있었다.

"...어쨌든, 그래. 그건 됐고. 너... 저번에 피를 토했었지."

"...엄, 피요?"

"그래. 피. 내 눈을 속일수는 없다. 저번 테러에서, 기침하면서 각혈하지 않았나? 뭐, 몸에 문제라도 있나보지?"

...그를 걱정해서 묻는건 아니다. 그냥, 그냥... 혹시 모르니까. 갑자기 비명횡사하면 곤란하니까 물을 뿐이다. 응.

"...그땐 잠시 힘들어서 그런거고, 몸은 멀쩡하니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제가 죽기 직전까지는 절대 안멈추고 계속 테러할꺼니까, 앞으로도 기대해 주세요."

그리고 웃으면서 답변하는 그의 말에,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살짝 안심했다. 그래... 테러는 안멈추고 계속 하겠다는거구나

...잠깐, 왜 이걸 듣고 안심되는거지. 내가 미쳤나.

신하루가 그렇게 속으로 자신을 책망하고 다음 질문을 던지려던 그때.

"어쨌든! 대화 즐거웠습니다. 그럼 전 이만 제 동료를 구하러 가보도록 하죠!"

"응? 야, 잠깐..."

에고스틱은 시간이 다 됐다는 듯, 갑자기 그녀의 앞에서 사라졌다.

...아직 묻고싶은게 남았는데.

그래. 그래도, 앞으로도 계속 테러할거라고 밝혔으니까, 물을 기회는 어차피 많을려나.

속으로 그렇게 납득하며, 신하루는 에고스틱이 가버린 곳으로 이동했다.

...생각해보니, 섀도우워커랑 저 여자랑 옆에서 이때까지 싸우고 있었구나. 에고스틱만 바라보느라 눈치도 못챘다.

그런 생각을 하며 다가간 신하루가 본 것은.

웬 처음보는 여자를 뒤에서 다정하게 껴안고 있는 에고스틱이었다.

"....."

왠지 그 광경을 보니 자신도 모르게 머리가 차갑게 식는 그녀.

하. 아주 그냥 여자들이랑 스킨십이, 일상이네...

...그래. 그래도 뭐, 자기 입으로 동료들은 가족같은거라고 했으니, 그렇고 그런 사이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왠지, 기분이 안좋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언짢은 표정으로 에고스틱의 마지막 말을 듣던 신하루는. 이때까지는 몰랐다.

-쪽.

자신이 그런 광경을 보게 될 줄은.

'...잠깐.'

지금, 내가.

뭘본거지?

***

[이번엔 진☆짜다. 실시간 검색어, 실시간 인기태그, 실시간 급상승 동영상 1위 <<에고스틱X미스트 열애설>> 보는 내가 다 설래지는 볼뽀뽀의 정체는?! 오늘밤 연예가 중계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다음날. 대한민국은 에고스틱 열애설로 또 뒤덮혔다.

벌써 3번째 열애설이었다.

제 151화

화열애설

[안녕하세요! 연예가~ 중계!입니다. 오늘은 정말 핫한 소식을 들고왔는데요, 바로! 빌런 에고스틱의 열애설입니다!]

[와! 에고스틱 열애설이라니! 근데, 채령씨. 이전에도 이 분은 열애설이 몇번 터졌었지 않았나요?]

[맞습니다. 이번이 첫번째가 아닌데요. 맨 처음에는 히어로 스타더스와 열애설이 터졌었었습니다. 그때 영상, 함께 보시죠!]

진행자의 마지막 말을 끝으로 나오는 영상.

그곳에는 달려오는 기차를 막은 뒤 쓰러져있는 스타더스의 옆에서 무릎을 꿇고 말해주는 에고스틱의 모습이 보였다.

["그래요 스타더스. 잘하셨습니다. 제가 상상도 못 한 방법으로요. 그런 방식으로 모두를 살릴 줄이야, 진짜 예상도 못했네요. 당신의 승리입니다. 저는 이만 가볼 테니, 이제 푹 쉬세요. 곧 다른 히어로들이 올 테니."]

그의 말을 끝으로 끝난 영상.

다시 화면에 나온 진행자들은, 열띤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여러분, 잘 보셨나요? 히어로가 자신의 테러를 막은 뒤 힘을 잃고 쓰러져있을때, 공격하기는 커녕 오히려 따뜻하게 격려를 해주는 모습! 정말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뛰게 했었는데요.]

[네! 그래서 이때 사실 둘이 뒤에서 연애하고 있는거 아니냐!라며 열애설이 터졌었습니다. 물론 협회와 히어로의 강력한 부정으로 사실이 아닌것으로 결론 났었지만요.]

[이때가 에고스틱의 2번째 테러였으니, 벌써 꽤 이전 일이네요. 그럼 바로 다음 열애설 함께 보시죠!]

화면이 바뀌고, 새롭게 나오는 영상.

그곳에는 일렉트라를 공주님 안기로 든 채, 씨익 웃고있는 에고스틱의 모습이 나왔다.

[채령씨, 이때는 어떻게 열애설이 터지게 된것인가요?]

[네! 마치 서로 연인인것처럼 일렉트라를 껴안은 에고스틱의 모습을 보고, 다들 둘이 사귀는게 아니냐! 란 말이 많았었습니다. 물론 나중에 에고스틱의 테러가 여러번 진행되며 점차 그건 아닌걸로 잠정 결론이 났고요. 그리고 물론, 이번에 열애설을 보면 이건 열애설이라고 부르기도 부끄러울 정도입니다.]

[와! 이번 열애설은 대체 어떻길레 그런건가요?]

[백문이 불여일견! 영상 함께 보시죠!]

그 말과 함께, 다시 나오는 영상.

어두운 밤하늘을 배경으로, 미스트를 뒤에서 껴안고 있는 에고스틱의 모습.

그리고 그 순간, 미스트를 고개를 돌려 에고스틱의 볼에 입을 맞췄다.

그리고 고혹적이게 웃으며, 에고스틱에게 속삭이는 그녀.

["수고했어. 자기."]

그 말을 끝으로, 다시 화면은 두 진행자에게 포커싱되었다.

[어머 어머! 보는 제가 다 설래네요.]

[네. 솔직히 이정도면 열애설이고 뭐고 그냥 확정같은데요! 그래서인지 네티즌들의 반응도 아주 뜨겁습니다. 현재시각 기준으로 모든 인터넷 커뮤니티들이 이 이야기로 떠들석합니다.]

[아무래도 에고스틱이 현재까지 대한민국 역사상 모든 빌런들중 제일 세간의 관심이 지목된 인기 빌런이고, 또 이 장면이 모든 방송국에서 생중계되었던 만큼 더욱 화제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채령씨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는 뭐... 그냥 이정도면 확정이 아닐까요? 누가봐도 이건 둘 사이에 썸띵이 있다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인터넷 반응도 그렇고요.]

[아, 말씀드리는 순간! 또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는데요, 여기, 자료화면에 에고스틱의 손에 반지 보이십니까? 지금 네티즌들이 새롭게 발견한건데, 이게 커플링이 아니냐는 추측이 있습니다. 정확히는 에고스틱이 반지를 안끼다가 데스나이트의 합류 이후 끼기 시작했는데, 대략 그때부터 사귀기 시작한거 아니냐는 이야기가 있더라고요.]

[점차 증거가 많아지고 있군요! 아 그리고 마침 인터넷 반응하니까 알려들고 싶은게 있는데, 에고스틱 팬카페인 망고단이 현재 난리가 났다고 들었습니다.]

[오, 왠가요?]

[알고보니 지금까지 에고스틱과 다양한 사람들로 커플링을 짜며 놀던 팬들이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하는데요, 갑작스럽게 나타난 새로운 여성이 그의 연인 자리를 꿰찬걸 인정할 수 없다며 난리가 났다고 합니다.]

[어머, 저런.]

...어머 저런은 뭐가 어머 저런이야

"...진짜 지랄났네..."

밤.

에고-하우스의 거실.

그곳의 소파에 앉아 티비를 보고있던 나는, 화면에 나오는 내용을 보고있으니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는게 느껴졌다.

아니, 진짜. 서자영 걔는 거기서 대체 왜 그런 짓을 해가지고...

서자영의 돌발 행동에 화들짝 놀라 집으로 황급히 돌아온 직후.

내가 왜 그랬냐고 묻기도 전에, 서자영은 무서운 표정을 지은 채 웃고있는 서은이와 은월이, 수빈씨, 최세희에게 잡혀 어딘가로 사라져버렸다.

끌려가기전에 나를 애처롭게 바라보며 살려달라고 손을 뻗었지만, 결국 질질 끌려가버린지 오래. 그렇게 서자영은 시간과 정신의 방 어딘가로 끌려갔다.

...뭐, 마지막이 이상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테러는 나름 성공적으로 끝났다.

그렇게 여전히 어딘가로 사라진 일행을 냅두고 몸을 정리한 나는, 소파에 앉아 지친 몸을 쉬고 있었다.

그리고 티비를 틀자 마자 바로 저 난리가 나고 있었고.

...근데 솔직히, 이게 이렇게까지 큰일인가 싶기는 했다. 아니, 애초에 내가 서자영이랑 뭐가 있는것도 아니긴 한데... 뭐 있다고 해도 그렇게 큰 문제인가? 대체 빌런의 연애사에 왜이렇게 관심이 많은지 모르겠다. 나는 테러리스트지 연예인이 아니에요.

물론 포털사이트 1면 뉴스에 서자영이 내 볼에 입맞추는 사진이 걸려있는거 보면... 그냥 좀 어질어질했다. 아니, 테러가 일어났다는거에 중점을 둬야지 왜 저런걸 메인에 두는거야?

"... 아, 맞다. 내 팬카페도 난리가 났다던데."

아까 티비에서 얼핏 들었던거 같아, 나는 상당히 오랜만에 내 팬카페에 들어가보기로 했다.

보자. 무슨 얘기를 할려나...

그렇게 메인으로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수많은 게시글들.

그것들의 제목을 쭉 훑어본 나는, 대략 정신이 멍해지는걸 느꼈다.

*

[응 니들이 뭐라해도 이미 보라망고 확정이야ㅅㄱㅋㅋㅋㅋㅋㅋㅋ]

[미스트 이쁘고 귀여우면 개추ㅋㅋㅋㅋ 일단 나부터ㅋㅋㅋㅋㅋ]

[정실은 에고스타인데 다들 뭔 개소리임ㅋㅋㅋㅋ]

[아이스망고 각은 아직 죽지 않았다...]

[코이츠 아직도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wwww]

[저희 에고스틱 팬카페는 안개망고를 정실로 인정합니다]

[다 닥쳐 우리 에고오빠가 그럴리가 없어!!!!!!]

[ㅅㅂ다들 스타니 아이스니 달빛이니 전기니 뭐니 할때 이미 망고는 이미 미스트랑 골인ㅋㅋㅋ]

[응 좆까 저건 기만술이야 사실 에고스타야~~]

[아무리 뭐라해도 ^뽀뽀쪽^선에서 다 컷~]

[에고스틱 겁나 당황했던거 안보임? 딱봐도 장난이겠지;;]

[얘들 단체로 대가리 다 깨진거 왜이렇게 웃기냐ㅋㅋㅋㅋ]

[이미 얼리어댑터들은 안개망고 코인에 탑승했다 빨리 타라]

[이건 코인이 아니라 이미 상장된 화폐 정도라고ㅋㅋㅋㅋ "수고했어 ^자기^" 안들림?]

[아니 ㅅㅂ 망고로 회로만 돌렸었지 ㄹㅇ 내가 안밀던 갑자기 튀어나온 애랑 사귄다니 숨이 턱 막히네]

[제발 해명방송 제발 아니라고 해줘 제발]

[이새끼들 테러랑 섀도우워커에는 아무도 관심없고 오로지 커플링만 파네ㅋㅋㅋㅋㅋ]

*

"...."

올라온 게시글들을 슥 읽어본 나는, 나도 모르게 홈버튼을 눌러 꺼버렸다.

...역시 내가 지금까지 여기를 안 들어간건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할 때 쯤, 저쪽에서 문이 벌컥 열리더니, 서자영이 비틀비틀 걸어왔다.

"으으..."

"왔냐."

"어... 하아, 스타더스 팔아가지고 겨우 빠져나왔어..."

오자마자 거실에 털썩 엎드려 누운 그녀.

그런 그녀한테 나는 턱을 괴고 물었다.

"아니, 진짜 왜 그랬던거야? 지금 티비 다 너랑 내 얘기밖에 안한다..."

"왜냐니, 그야 재미있으니...까지. 앞에 사람들 반응이 궁금해서 그런건데... 왜, 설렜어?"

"어. 너무 설레서 그 자리에서 너한테 딱밤 한대 때릴 뻔했다."

"에헤..."

역시나 재미있을거 같아서 그렇게 했다는 그녀.

그래, 그럴줄 알았다... 원

여전히 검은 후드를 입은채 바닥에 누워 나한테 그리 답변한 그녀는, 이내 갑자기 실실 웃기 시작했다.

"...흐흐."

"왜 또 웃어?"

"아니, 그때 스타더스 표정 다시 생각해보니까 웃겨서..."

"뭐라는거야."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실실 웃는 그녀.

나는 그런 서자영한테 다가가 볼을 잡았다.

"아아아...."

"앞으로 이런 돌발 행동 할거야, 안할거야."

"으에, 안할테니까 놔 줘어..."

나는 한숨을 쉬며 손을 놨다.

그래도 여전히 웃고있는 서자영.

"에휴... 해명방송이나 진행해야겠네."

"도와줄까?"

"넌 가만히 있는게 도와주는거야... 그리고 사실 할 필요 없기는 한데, 안그러면 계속 저 난리 칠때니까. 다음 방송 할때 언급해야지..."

"으응... 갑자기 좀 미안하네."

"그런 말은 좀 웃는건 멈추고 말하지?"

"...에헤. 아, 저기 서은이 온다..."

그런 우리의 대화는, 이쪽으로 걸어오는 서은이와 수빈씨에 의해 끊겼다.

근데 뭐, 사실 따지고보면 별 일 아니긴 하다. 막말로 내가 쟤랑 진짜 사귀는줄 대중이 알아도 뭔 상관이야. 나야 테러만 잘 하면 되지.

저번에 이설아처럼 내 정체를 밝히려 든 것도 아니고, 이정도는 뭐 웃으며 넘어가 줄 수 있다.

이거 때문에 딱히 뭐가 바뀔 건 전혀 없으니까.

나야 스타더스한테 테러만 잘 하면 되지.

***

쾅-

"히익?"

히어로 협회 본부 건물, 복도.

서류를 들고 복도를 걷던 협회 직원은, 갑작스러운 소리에 깜짝 놀라 들고있던 종이를 떨어트렸다.

"...뭐지? 스타더스씨 사무실 안에서 들린거 같은데..."

고개를 두리번 거리자, 보이는 스타더스씨의 집무실.

문이 반쯤 열려있길레 그 안을 살짝 들여다본 직원은, 스타더스가 내리쳤는지 반쯤 박살나있는 그녀의 책상을 보고는 조용히 발걺음을 돌렸다.

...음, 뭐. 화나는 일이 있으셨나보네...

'아래에 연락해서, 책상 하나 새로 보내달라고 해야겠다...'

직원은 그런 생각을 하며 종종 발걺음을 옮겼다.

협회에 오래 일하면서, 그녀는 이미 깨달은지 오래다.

화난 히어로는 건드리지 말고 피하는게 상책이란걸.

그렇게, 오늘의 하루도 저물고 있었다.

제 152화

화사전 준비

[협회는 오늘 빌런 미스트가 공식적으로 S급으로 지정되었다고 밝혔습니다. 섀도우워커를 위협할 수 있는 위험성과 능력의 잠재성을 바탕으로...]

"오. 나 S급 됐네."

저번 테러 이후, 한 일주일이 지난 직후.

거실에서 서자영은 티비를 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뭐, 언니는 S급이 반쯤 확정이기는 했으니까요."

내가 앉아있는 곳과 서자영이 누워있는 곳 사이를 막듯이 앉아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던 서은이는, 바닐라를 우물거리며 그렇게 답했다.

[한편, 이로 인해 대한민국의 빌런 연합 에고스트림은 이번 미스트와 월광무녀까지 포함해, 총 2명의 S급 빌런이 속해있는 조직이 되었습니다.]

"흐응. S급은 나랑 은월이 뿐인건가?"

"이건 진짜 억울해요. 왜 저는 S급이 아닌건데요? 아니, 해킹도 잘하고 스타더스도 거의 이긴 병기를 만든 제가 A급이라니, 이건 진짜 뭔가 잘못됐어요."

얼마나 억울했는지 아이스크림을 먹던 스푼을 흔들어 가며 그렇게 답하던 서은이는, 이내 한숨을 쉬며 소파쪽에 등을 기대 다시 퍼먹기 시작했다.

...음, 서은이가 먹는걸 보니까 나도 오랜만에 아이스크림이 땡기네. 숟가락 하나 더 가져올까?

[한편 네티즌들은 S급 빌런이 2명이 속해있는 연합의 리더인 에고스틱이 아직도 A급인 것에 의아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와중에...]

"아니, 너는 왜 또 A급이야?"

"몰라? 무력이 약해서인가보지. 저번에 위원회에서 뭐 승격이 미루어지고있다고도 들은거 같기도 하고."

"흐응."

사실 별 관심 없었다는 듯 서자영이 나른히 대답하던 그때.

[다음 속보입니다. 에고스틱과 미스트의 열애설이 일주일째 대한민국을 달구는 가운데...]

"씁."

곧 잠에 빠질려고 하듯이 나른하게 누워있던 서자영이 갑자기 눈을 번쩍 뜨더니, 엄청난 속도로 일어나 리모컨을 잡아 채널을 바꿨다.

"..."

한편 그 뉴스가 딱 나오자마자, 아이스크림을 푸던 그 자세대로 멈춘 뒤 웃는 모습으로 서자영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서은이. 물론 입만 웃고 눈은 웃고있지 않아 좀 무서웠다.

그리고 이미 그 시선을 느꼈는지 누구보다 빠르게 채널을 바꾼 서자영은, 살짝 식은땀을 흘리며 티비를 가리켰다.

"하, 하하... 여기는 해외 소식 나오네. 이거나 보자."

"...."

서은이의 시선을 받아내며 자영이 땀을 뻘뻘 흘리는 동안, 티비에서는 해외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멕시코의 사막지역이 전면 출입 금지 됐습니다. 계속 붉은 번개가 내리쳐 통행이 아예 불가능한 상태인데요, 이는 S급 빌런 파이썬의 소행으로...]

[이집트에서 현재 자신을 재림 파라오라고 자칭하는 빌런이 나타나 당국 협회가 비상 사태를 선포했습니다. 이미 국민의 상당수가 이 빌런을 따르고 있는 것으로 밝혀져 큰 충격을...]

[프랑스에서 에펠탑이 또 공격받았습니다. 지난 3년간 벌써 수십차례에 공격을 받은 에펠탑은 이번에는 거의 70프로 이상 파손되어 복구작업이 한창인 상태로...]

음, 여전히 세계는 여전히 착실하게 개판으로 흘러가고 있는 모습이다.

거의 전세계 거의 모든 나라들이 갑작스러운 테러율의 증가로 시름겪는 가운데...

아마, 곧 있으면 능력자 비율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는 통계가 발표될거다. 그리고 더 많은 능력자는 더 많은 테러를 부를테니, 세상은 나날히 혼란해질꺼고.

사실 빌런이 늘어나는 만큼 히어로도 늘어나는게 아닐까 싶기도 한데, 빌런 10명 늘어나는동안 히어로는 한명 늘어날까 말까라 그냥 답이 없다.

물론 다른 나라들이 저렇게 나날이 개판이 되어가는거에 비해 우리나라는 나름 방어가 착실히 잘되고 있는 편이기는 한데... 그거야 내가 뒤에서 메인 테러들을 다 막아냈으니까 그런거고. 참고로 앞으로도 막아야 할 테러들이 상당히 많다. 물론 아직 월광교의 메인 이벤트 전이기도 하니. 시간이 좀 있기는 하겠지만.

"쓰읍. 생각해보니까, 이설아 만나고 와야겠네."

"오빠, 또 어디가요?"

"어. 사업 논의 좀 하려고."

나는 그렇게 답하며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흐음... 일단 전화 먼저 하고 가야겠지?

***

그렇게 또 며칠 후.

나는 유성기업 최상층에 이설아와 마주 앉아 있었다.

여전히 안색이 초췌한 채 등받이 의자에 피곤하다는 듯 기대앉고있지만, 그래도 약간은 웃고있는 이설아.

"오랜만에 기분 좋은 일이라도 있어?"

그런 내 질문에, 이설아는 기지개를 피며 대답했다.

"아. 네, 있죠. 드디어 대충 국내 주요 기업들을 거의 다 장악 끝났다는거?"

"오, 진짜?"

"네. VK 기업이라는데가 제일 힘들었는데, 그냥 거기 사장을 다인씨가 보내준 비리죄로 엮어서 보내버렸어요. 이제 어느정도 마무리하면 정치권쪽에만 힘을 다 쏟으면 될 것 같아요."

그렇게 말하면서 힘들어 보이는 상태에서도 뿌듯한 미소를 짓는 그녀였다.

...역시, 좀 느려지긴 했어도 원작대로 차근차근 대한민국을 집어 삼키고 있는 이설아다.

개인적으로 이설아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나한테도 좋은만큼, 나도 칭찬해줬다. 앞으로 원작 후반부에 들어갈수록 이렇게 한명에 의해 통일된게 위기를 극복하는데 훨씬 좋을거거든. 내가 다 간섭할 수 있다는 소리니.

그렇게 내 칭찬을 잠시 즐기던 그녀는, 이내 살짝 얼굴이 어두워지더니, 애써 웃으며 나한테 말했다.

"...아, 맞다. 그리고 다인씨도, 소식 들었어요."

"응? 뭘?"

"이번에 뭐 애인 사귀셨다던데..."

말끝을 애매하게 흐리는 그녀한테, 나는 손을 내저어가며 부정했다.

"아, 그거. 아니야. 그냥 걔가 장난친거지, 아무 사이도 아니야."

"...진짜요?"

"당연하지. 애초에 내가 누구 사귈 시간이 어딨어?"

내 부정에 그녀는 살짝 안심했다는 듯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잘 생각했어요. 연애는 괜히 일에 능률만 떨어트리고 비효율적인 시간낭비일 뿐이니, 저도 굳이 해야 할 필요 없다고 생각해요."

...음. 난 그렇게까지 말한 적은 없는데.

하여튼 나한테 굉장히 진지하게 말하는 이설아한테, 나도 진지하게 대답해줬다.

"그래. 그건 그렇고, 이번에 내가 온 이유 알지?"

"...어, 제 얼굴 보고싶으셔서?"

"당연히 일때문이지. 저번에 내가 말한거, PMC."

"아 그거..."

내 말에 잠시 서류를 뒤적거리던 이설아는, 이내 종이 하나를 꺼대더니 살펴보곤 말했다.

"제가 알아보긴 했는데, 이게 법률문제가 얽혀있어서 좀 곤란한부분이 있어요. 근데 이건 사실 로비하면 어떻게 될거 같기는 한데..."

"정확히는 단순 고용이 아니라 육성까지 책임진다는거야."

"네, 일단 유성 PMC라는 이름으로 법인등록은 마쳤어요. 근데 다인씨, 이거 진짜 괜찮은거 맞아요?"

"어. 사실 괜찮고 자시고, 나중 생각하면 어떤 식으로든 무조건 해야돼."

"...다인씨가 말하는거니, 알겠어요."

나는 그녀와 그런 대화를 나누며, 차를 한잔 마셨다.

...원작 후반부에 대한민국의 치안은 거의 붕괴 수준에 이른다.

그리고 그 이유 중 하나가, B, C급 빌런들 때문.

사실 B, C급이 뭐 얼마냐 문제냐고 할 수는 있지만, 이게 비행기를 막 혼자서 들 정도로 강한건 아니라 그렇지, 쟤들도 민간인 상대로는 굉장히 강력한 편이다.

그리고 몇년 지나면 점점 능력을 각성한 애들이 많아지며, 수없이 많은 하위 빌런들의 난봉으로 정부와 협회가 치안을 거의 관리하지 못하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거기에 하위 히어로는 돈도 안되는데 특유의 히어로한테 엄격한 국민정서로 사소한 잘못하나에도 매달리는 만큼, 히어로 수는 여전히 적은데. 그래서 능력자들은 능력을 숨기고 살다가 빌런의 길로 빠지고...

즉, 미래에 상당히 개판이 펼쳐진다는걸 생각하면.

얘네들이 전부 그지랄 나기 전에 전부 모종의 방법을 취해야 된다. 그리고 그 잉여전력이 나중에 상당히 중요해지는 만큼, 보존도 필요하니까.

그리고 이때 이설아의 역할이 커진다.

자본과 인지도로 쟤네를 끌어모을 수만 있다면, 나중에 상당히 도움이 될테니.

사실 이것도 부탁할 타이밍만 노리다가 저번에 이설아가 딱 잘못했던걸 계기로 이걸로 퉁치기로 한거다.

뭐 따지고보면 이설아도 한국이 개판 되는걸 원하진 않을테고. 어차피 이제 한국 곧 얘꺼되는데.

그렇게 이설아와 PMC 설립 계획과 앞으로의 대한민국 정복 계획에 대해 심도깊은 대화를 나눈후,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물론 이건 당장 할 사업은 아니고, 일단 미리 대충 기틀만 잡아놓는 정도겠지만. 그래도 미리미리 준비해야지. 아마 내가 신분까고 할 첫 사업인데. 어차피 스타더스한테도 이름도 털린 이상 더이상 거리낄것도 없다.

그렇게 집에 돌아온 나는, 애들한테 공표했다.

"이번엔 우리, 다른 빌런 사냥하러 간다."

"와! 그거 텔레포터 이후로 처음 아니에요?"

"...야, 너 무슨 빌런 사냥도 하냐? 그정도 까지 가면 진짜 히어로 아니냐..? "

"무슨 소리야, 이게 내 근본인데. 내가 이걸로 A급 빌런 직위 받았었어."

"...에, 진짜?"

"맞아요 언니. 제가 그때 오빠 도왔었어요. 그땐 저밖에 없었었는데."

"...어, 서은아? 그때 언니도 있었지 않았니?"

"아, 맞다. 수빈언니도 있었었죠! 전이랑 헷갈렸네요 헤헤."

...뭐 하여튼, 다음 일은 오랜만에 다른 빌런 암살이었다.

이거 하는 김에 미스트랑 열애설 그거 해명방송도 같이 진행하면 될거다.

그렇게 우리는, 다음 이벤트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아 참고로, 열애설 해명은 대중의 관심히 하도 지대하다보니 하는거다. 사실 제일 중요한 스타더스는 신경도 전혀 안쓰고 있을텐데 굳이 해야하나 싶긴 한데, 뭐. 언론이 귀찮으니까 해야지. 그래도 사실 타이밍 안맞으면 안해도 되지 않을까?

***

그시각, 히어로 협회 사무실.

새로 받은 책상 앞에 앉아있는, 금발의 히어로 신하루.

그녀는 태양을 등진 채 팔짱을 끼고 조용히 생각하고 있었다.

".....에고스틱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일단 붙잡아야겠어."

결론을 내렸다는듯, 그렇게 중얼거리는 그녀.

그리고 그런 그녀의 눈은.

자신도 모르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

"....아니다. 그래도, 해명방송은 꼭 해야지."

"당연히 해야죠 다인씨. 안하시려고 했나요?"

"...아, 그게 아니라. 그냥 새삼 다짐했을뿐이에요."

갑자기 든 생각인데, 뭔가 안하면 큰일날거 같은 느낌적인 느낌. 이 싸한 기분, 상당히 오랜만이네.

그래, 일단 제일 먼저 그것부터 밝히고 시작하자, 응...

제 153화

화개미굴

원작에서 2페이즈의 최종보스는 월광교다.

이때까지 없었던 압도적인 스케일과, 대한민국 빌런 최초로 전세계를 상대로 공격을 가행한 이들의 능력은 실로 압도적.

그전까지는 능력자 세계에선 별 관심을 못받던 대한민국이 본격적으로 인지도가 높아진 시기이기고 하고, 이후에도 한명 한명이 재해급인 빌런들이 등장하는 시발탄이 된다.

근데 그렇다고 해서 월광교 이전 빌런들이 다 약하냐하면, 그건 또 아니다.

능력은 가졌으나 아직 빌런으로 타락하지 않은 인물도 있고, 테러를 준비만 하고 있을 뿐 실행은 하지 않은 인물도 있고...

그리고 오늘은, 3페이즈 초반부에 대규모 테러를 일으키는 놈을 찾으러 왔다.

"오빠. 여기 맞아요?"

"야, 이런데가 있네. 신기하다 야."

내 양옆에 뒤따라오는 은월이와 최세희.

나는 이 둘과 함께, 어느 가정집 아래 있는 수상한 지하복도를 걷고 있었다.

"그래... 여기가 오늘 우리의 목표인 놈에 본거지야. 다 왔네."

나는 둘한테 그렇게 말해주었다.

우리가 순간이동해서 온 곳이 바로 미래의 S급 빌런, 웨폰마스터의 본거지.

무기개발과 사람납치 후 개조 등 끔찍한 짓을 태연자약하게 저지르는 미친놈. 참고로 얘는 안그래도 괴수들로 인해 난리난 신서울을 더 개판으로 만드는데 큰 일조를 한다.

즉, 그러기전에 아직 무기만 만들던 이때 죽여야한다는거지.

그런 의미로 데식이는 집지키라 하고 은월이랑 최세희를 데리고 온 나는, 놈의 본거지 앞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자,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전에. 일단 방송부터 키자."

"알았어요 오빠."

"그 해명 한다는거지? 좋아, 빨리 해."

그 둘의 말을 끝으로 나는 휴대폰을 염력으로 띄워 방송을 틀었다.

이게 뭐라고 굳이 카메라까지 챙겨오나 싶어서 휴대폰 카메라로 퉁 치기로 했다. 어차피 유튜브에만 올라갈텐데 뭐.

하여튼, 잠시 옷 매무새를 정리하고 방송을 키자마자, 잠시 [?]같은 것만 올라오더니 순식간에 올라오기 시작하는 채팅들.

늘 볼때마다 느끼는건데 어떻게 방송 키자마자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물밀듯 오는건가 싶다. 알람이라도 해놨나?

"다들 안녕하세요. 에고스틱입니다!"

나는 씨익 웃으며 인사했다.

거기에 어차피 공식 방송도 아니니 그냥 손도 대충 흔들어줬다. 휙휙, 마치 친구 만날때 하듯이.

그런데도 어째 테러방송마냥 빠른 속도로 올라오는 채팅들.

근데 어째 채팅창이, 불타고 있었다.

*

[이번 방송 화질 왜이럼ㅋㅋㅋㅋ]

[폰카로 찍는건가? 약간 야방느낌ㅋㅋㅋㅋ]

[테러 일으키고 단 2주만에 새로운 방송 뭐냐구!!!!]

[뒤에 월광무녀랑 일렉트라도 보이네 새로운 테러인가?]

[다필요없고 미스트랑 진짜 사귀는건가요? 그게 제일 굼금함 빨리 대답해주세요 현기증난단 말이야]

[그래서 미스트랑 사귐? 그래서 미스트랑 사귐? 그래서 미스트랑 사귐? 그래서 미스트랑 사귐? 그래서 미스트랑 사귐? 그래서 미스트랑 사귐?]

[에고스틱은 해명해라🔥🔥🔥🔥🔥🔥🔥🔥🔥🔥]

[ㄹㅇ시청자들의 마음을 우롱한 죄 해명해!!!🔥]

[망고오빠 그런거 아니지? 망고오빠 그런거 아니지?]

[🔥🔥🔥🔥🔥🔥🔥🔥🔥🔥🔥🔥🔥🔥🔥]

[임마들 대체 왜 불타고있는거임ㅋㅋㅋㅋㅋㅋ]

[해명해🔥🔥🔥🔥🔥]

[일단 불타보자🔥🔥🔥🔥🔥🔥🔥🔥🔥🔥]

[빌런의 열애설로 채팅창이 불타는 광경... 이건 귀하네요]

*

근데 뭐, 이거야 이미 예상했던 결과다.

지난 이주간 예능같은데서 심심하면 내 얘기하던데 이럴 수 있지.

...근데 어째 생각보다 더 불타는거 같기는 한데, 그래서 더욱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 맞다. 요즘 그런 얘기가 들리더라고요. 제가 막 저희 에고스트림의 새로운 멤버 미스트와 연인관계가 아니냐는."

내 말에 [ㅇㅇㅇㅇ]거리면서 긍정을 표하는 채팅창.

나는 그런 그들에게, 통보하듯 말해주었다.

"대체 왜 제가 누구랑 사귀든 뭘하든 관심이 그리 많으신지는 모르겠는데, 아쉽게도 저는 미스트와 아무 사이도 아닙니다! 에고스트림 멤버들은 다들 제 동료일 뿐이니, 오해 없으시면 좋겠습니다. 저번 테러 막바지에 미스트가 여러분 반응이 궁금하다고 장난 친 거니까."

[ㄹㅇ?]

[구라 아님?]

"그리고 뭐, 진짜 그런거면 깔끔하게 인정하지 제가 왜 굳이 부정하겠습니까?"

"맞아요. 에고 오빠랑 언니 그런 사이 아니에요."

피식 웃으며 그렇게 답하는 내 말과, 옆에서 은월이가 어시스트까지 해주자 갑자기 빠르게 진정되는 채팅창.

*

[음... 그래?]

[뭐 이번 한번만? 믿어주지]

[난 에고오빠 처음부터 믿고 있었어^^]

[우리 망고스틱 의심한 망고단 없제?]

[에이 뭐야 난 또 사귀는줄]

[장난을 잘치는 미스트양ㄷ]

[막상 아니라고 하니까 섭?섭 하네ㅋㅋㅋ]

[줸장 믿고있었다구~~]

[아이스망고각은 살아있다!!]

[이새끼들 왜이렇게 빨리 진정되는데ㅋㅋㅋㅋ]

[아니 최면 건 것마냥 채팅창 온순해졌네ㅋㅋㅋ]

[이제 이거 또 기사로 나갈듯ㅋㅋㅋ]

[ㅅㅂ 아니 왜 방송킨 빌런한테 열애설 해명하라고 하고 진짜 해명해주는건데ㅋㅋㅋㅋㅋ]

*

태세전환이 다들 참 빠르네.

어찌 됐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나는 자연스럽게 주제를 바꿔 입을 열었다.

"하여튼... 뭐, 이 얘기는 이정도면 됐습니다. 제가 방송 킨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이걸 예고하기 위함이니까요."

나는 그 말과 함께, 내 휴대폰을 바꿔 앞의 복도를 비췄다.

채팅에 [여긴 어디임?]등의 궁금하다는 반응이 올라오는 가운데.

다시 내 얼굴이 보이게 카메라를 바꾼 뒤, 나는 궁금해하는 시청자들에게 입을 열어 뭘 할건질 얘기해줬다.

"오늘 이 시간에, 제 말을 안듣는 다른 빌런을 사냥해볼까 합니다. 예전에 마지막으로 텔레포터 잡은 이후로 몇년만에 이번이 처음이네요."

*

[오???]

[빌런사냥??]

[유입들은 모르는 에고스틱의 근본 빌런사냥 컨탠츠가 돌아왔단 말인가??]

[캬 요즘 방송 왜이렇게 알차냐고!!!!]

[안되겠다 이건 팝콘 먹으면서 봐야겠다]

[다좋은데 화질만 어떻게 해봐 제발 폰카 뭐냐구]

[이게 야스지ㅋㅋㅋㅋ]

*

그렇게 시청들이 앞으로 무슨 방송이 이어질지 기대를 잔뜩 하고있는 가운데.

나는 그들에게 차가운 현실을 알려주었다.

"네! 그래서 뭐, 아마 결과는 오늘 밤 뉴스에서 보실 수 있을거같네요. 그럼 예고도 했으니, 오늘 제 방송은 여기까지입니다. 감사합니다!"

*

[?]

[???]

[잠깐 여기서 방종이라니 이게 무슨 소리야]

[실컷 기대하게 해놓고 이런게 어디써!!!!!]

[안돼 돌아와 돌아와 돌아와]

[이런건 현실이 아니야!!!!]

[잘못했어요 화질 구려도 괜찮으니까 투정 안부릴테니까 제발]

[? 지금 팝콘 다 튀겨왔는데 방??? 종??? 안돼!!!]

*

돼.

나는 그렇게 손을 흔들어준 뒤, 방송을 꺼버렸다.

여기 이제 은근 위험할 수 있어서, 방송을 키는건 좀 리스크가 크다.

"뭔가 사람들이 불쌍해요..."

마음씨가 고운 은월이만이 그렇게 말해줄 뿐이었다.

"자, 이건 됐고. 다시 출발하자."

"하암... 끝났어? 그래, 가자."

방송이 끝나자, 벽에 기대서 하품을 하고있던 최세희도 팔을 뻗으며 몸을 일으켜세웠고.

은월이도 준비를 마친 걸 확인한 후, 우리는 복도를 걸었다.

"야... 여기 신기하네."

조금 걷자마자 바로 튀어나오는 창고같은 방들.

그곳에는 온갖 총들이 쌓여있었다. 군대에서 보이는 흔한 총부터, 무슨 하얀색으로 도금된 우주 총같은거 까지.

그리고 벽에 걸려있는 푸른색의 스크린에, 그 앞에 적혀있는 무언가의 무기 설계도. 거기에 수북히 쌓여있는 다양한 종류의 폭탄들.

온갖 다양한 무기들이 줄지어 깔려있는 이곳을 우리는 계속 걸어갔다.

그렇게 점차 지하 깊숙한 곳으로 들어갈수록, 처음에는 신기하다는 듯 두리번거리며 따라오던 최세희의 표정도 굳어지기 시작했다.

"...야, 여기. 왜 이렇게 무기가 많냐? 무섭게."

"내가 말했잖아, 여기 무기 전문가의 아지트라고."

"와 미친. 저렇게 큰게 폭탄이야?"

그리고 깊숙히 들어갈수록, 온갖 변태같은 무기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바닥에 떨어진 피묻은 철퇴를 발견했을때는 그야말로 호러. 은월이는 이미 겁에 질려서 내 팔을 꼭 붙잡은지 오래다. ...은월아, 철퇴 몇십개보다 너가 훨씬 더 강해.

"으, 뭔가 으스스하네."

"지하라서 더 그런걸수도. 왜 빌런들은 다 지하에 아지트를 만드는거야?"

한은그룹도 그렇고, 여기도 그렇고. 죄다 지하에 무슨 개미굴마냥 무언가를 파뒀다. 거기에 앞으로 나올 그 빌런 중 하나도 지하에다가 이렇게 아지트 만들어놨고.

...그런 생각을 하던 나는, 생각해보니 우리 에고-베이스도 처음에는 지하였다는걸 생각하고는 가만히 있기로 했다. 음, 뭐. 지하도 따뜻하고 좋지.

그렇게 으스스한 길을 지나자 갑자기 나온 양갈래 길.

그곳에 서서, 나는 최세희와 은월이한테 말했다.

"너희 둘은 저쪽으로 가. 나는 이쪽으로 갈테니까."

"엥? 너 혼자?"

"안돼요 다인오빠. 너무 위험해요!"

그렇게 말하며 걱정스럽다는 듯 나를 바라본 둘을 설득해, 나는 기어코 갈라지는데 성공했다.

헤어지는 마지막까지 나를 주저하며 바라보긴 했지만, 어쨌든.

그렇게 을씨년스러운 복도를 홀로 걸으며,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녀석아. 이제 나 혼자다. 어떻게 할래?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숨겨져있는 검은색 CCTV를 힐끗 바라보았다.

아마 보고있을텐데, 더 늦기전에 결단을 내려야지?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옷 안쪽에 있는 검은색 촉수를 언제든 꺼낼 준비를 하였다.

...우리 베히모스, 오랜만에 사용하게 되겠구만.

제 154화

화같은 상황 다른 느낌

에고스틱이 웨폰마스터의 아지트에 침입한 그 시각.

"시발... 이게 대체 어떻게 된거야...."

지하의 어느 방.

그곳에 앉은 금동근은, 자신의 머리를 부여잡으며 화면에 나온 영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의 비밀 무기 저장고에 침입한 3명의 인물.

양아치처럼 생긴 여자와 무녀복을 입은 여자애, 그리고 검은 망토를 펄럭이는 남성.

전부 그가 익히 아는 이들이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빌런, 에고스틱과 그의 동료들.

"아니 대체 시발... 왜 많고 많은 사람들중에 나한테만 지랄이냐고!"

그는 거의 울분에 차 소리쳤다

대체 저놈이 왜 하필 수많은 빌런들 중 자신의 정체와 본거지를 어떻게 알고 습격해왔는지, 같은 빌런이면 히어로나 족칠 것이지 어째서 자신한테 지랄인지 모르겠는 그.

그러나 이미 일은 벌여졌고, 이제는 대처방안을 생각해야하는 타이밍이었다.

"시발... 시발..."

금동근은 오늘도 늘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방구석에서 무기를 개발하고 있었다.

언젠가는 기계인간들에게 자신이 만든 무기를 쥐어주어 서울의 모든 인간들을 도륙내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가진 채 오늘도 열심히 최첨단 무기를 만들고 있던 그의 기지에서, 갑자기 경보가 물리기 시작했다.

아무도 이곳에 침입 해 올거라는 생각을 못했기에, 그냥 장식용으로 달아논 경보가 울리자 그가 당황한건 당연지사.

서둘러 헐레벌떡 안경을 쓰고 화면을 확인해보니 나온 에고스틱에 1차 충격. 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유튜브를 켜보니 자신을 사냥하겠다고 말하는 에고스틱을 보고 2차 충격을 받은 그였다.

"...좆까. 내가 이대로 죽어줄 거 같아?"

그러나 금동근은 독하게 마음먹었다.

그의 꿈. 언젠가 이 모든 무기들로 사람들을 학살해 공포의 지배자로 불리고 싶다는 그의 사이코패스적인 소망.

이제 겨우 무기들 거의 다 만들고, 사람들을 납치해 기계인간으로 개조 해 군단을 만들려던 그에게 갑작스럽게 등장한 에고스틱은 그야말로 다된 밥에 재뿌리기와도 같았다.

잠시 이 무기고를 버리고 튈 생각도 해봤으나, 자신이 도망가면 이 모든걸 다 에고스틱의 꿀꺽할 것이 자명.

거기에 숨어살던 자신을 기어코 찾아낼 그의 정보력이라면, 도망쳐도 언젠간 잡힐 가능성이 크다고 그는 판단했다.

그러면 대체 어떻게 해야할까.

"...시발, 여기가 내 집인데, 내 홈그라운드에서 내가 질 줄 알아?"

미친놈처럼 중얼거리는 그.

이내 그는 결심 했다. 여기서 에고스틱과 저 년들을 다 도륙을 내주겠다고.

"씨발, 근데 저 괴물들을 다 어떻게 조지냐고..."

그러나 문제는 물론 자신의 능력으론 저들을 처치하는게 불가능 해 보인다는 것.

애초에 S급 빌런 하나에 A급 빌런 둘을 그 혼자 어떻게 처리하는가.

조금만 더 그들이 늦게, 금동근 그가 기계인간들을 만드는데 성공한 이후 왔더라면 그것들을 보내 대처할 수 있었겠지만.

그에겐 불행히도 저들은 하필 그가 기계인간 프로젝트를 실행하기 딱 직전에 찾아왔다.

아예 그냥 폭탄으로 여기를 날려서 죽여버릴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그러기에는 이곳이 너무 아까웠다. 그가 오랜시간 인생을 걸고 만든 무기와 인체실험실을 날린다? 말도안된다.

그렇다고 저 셋을 그가 조질수는 없고...

그리하여 그가 도망치지도 못하고 끙끙거리는 동안,

기회가, 찾아왔다.

"잠깐..."

똘똘 뭉쳐다니던 셋이, 양갈래 길에서 갈라진 것.

그렇게 두 여자가 떨어지고, 에고스틱 홀로 복도를 걷고 있는 모습이 스크린에 비추어지고 있었다.

검은 망토를 휘날리며 뚜벅뚜벅 걷고있는 에고스틱.

그 모습을 보며, 웨폰마스터 금동근은 갑자기 희망을 품기 시작했다.

"잠깐... 에고스틱 정도면..."

생각해보니 저놈이 늘 정장같은 것만 쫙 빼입고 가면을 쓴 채 비밀스러운 분위기로 입만 털어서 그렇지.

사실 무력은 보잘 것 없는 놈 아니야?

놈의 부하들이 하나하나가 무식할 정도로 강할 뿐이지, 막상 그가 강한건 아니지 않는가.

그렇게 머릿속에서 계산기를 두들긴 금동근은.

이내, 결론을 내렸다.

"그래... 솔직히 시발 에고스틱 정도면, 내가 잡을 수 있지."

갑작스러운 자신감으로 가득찬 그는, 결국 결심했다.

이 자리에서 저 에고스틱이란 놈을 잡는다.

어차피 무력은 별거없는 놈이니, 그가 최첨단 무기로 기습하면 에고스틱 정도는 충분히 조져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저놈 먼저 죽인 뒤, 나머지 둘은 당황한 틈 사이에 어떻게 없에버리면 되고.

"시발. 본때를 보여주마."

그렇게 독한 마음을 먹근 금동근은, 이내 슈트로 갈아입고 무기를 챙긴 뒤. 자신의 방을 떠나 비밀길로 갔다.

뒤에서 이 총 한방이면, 제 아무리 그 대단하다는 에고스틱이라도 별 수 없을 것이다...

스크린으로 확인한 에고스틱의 위치.

그것을 바탕으로 그의 동선을 예측한 이후, 몰래 통로를 통해 놈이 곧 도착할 방의 문 옆쪽에 숨은 금동근은, 자세를 잡았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마침내, 에고스틱이 그 방에 도착했다.

"흐음.. 여기는 또 뭐하는 곳이지."

이내 그의 앞에서 들리는 목소리.

그걸 들으며 웨폰마스터는, 조용히 에고스틱에게 총구를 겨눴다.

자신이 직접 개조해서 만든, 무소음 폭발 총,

이거 한방이면 별다른 능력도 없는 에고스틱 따위야 영문도 모른채 사지가 분해되어 즉사할 것이다.

'시발, 죽어라 이 새끼야.'

그렇게 그는 사악한 웃음을 흘리며 방심하고 있는 에고스틱을 향해 방아쇠를 눌렀고.

그렇게 아주 조용히 폭탄총알이 에고스틱에게 날라가며, 웨폰마스터가 승리를 확신한 순간.

끼이이이이이이에엑.

이변이, 일어났다.

그가 방아쇠를 누르고 총알이 에고스틱에게 날아간 그 순간, 갑자게 에고스틱의 몸에서 피어오르는 검은색의 무언가.

마치 허공을 나는 검은 액체같은 그것은, 그와 에고스틱 사이로 넓게 퍼져 검은 촉수로 총알을 잡아 먹었다.

그리고 이내 쿵-하는 소리와 함께 폭발하는 총알.

그러나 이미 흉측한 검은색 촉수가 그것을 둘러싼지 오래였기에, 폭발은 어떤 충격도 주지 못했다.

"씨.. 씨발, 저게 뭐야."

소름돋을 정도로 기괴한 검은색 촉수의 향연에, 웨폰마스터는 자기도 모르게 땅바닥에 주저앉았고.

그런 그를, 에고스틱은 씨익 웃으며 돌아보고 있었다.

"아하."

여기있으셨군요?

***

"흐음..."

내 앞에 벌벌떨며 주저앉아있는 웨폰마스터를 보며, 나는 나도 모르게 씨익 웃음지었다.

그래. 이새끼, 이럴줄 알았다.

원작을 읽어 놈의 성격을 아는 나는, 이미 대기하고 있던지 오래.

그리고 역시나, 놈은 홀로 남은 나를 공격하러 왔다.

내가 비장의 한 수를 숨기고 있단것도 모르고.

"가라, 베히모스."

나는 심드렁하게 폭발을 막아낸 내 검은색 촉수를 손을 한번 휘저어 컨트롤했다.

우리 베히모스. 한은그룹 지하에서 얻어 스타더스랑 상대했을 때 빼고는 쓸 일이 없어 그냥 방탄조끼처럼 가지고만 있었다.

아니, 더 정확히는 의도적으로 방송에 노출을 안시켰다. 왜냐? 뭐든지 비장의 한수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좋은거거든.

그래야, 이렇게 방심하는 놈도 생기는 법이니까.

"으으으으읍!"

검은색 촉수들로 이루어진 베히모스가 바닥에 엎어진 웨폰마스터를 감쌌고.

이내 허공에 거미줄에 묶인 고치처럼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린 놈.

뭐라고 말을 하려고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미 끈적한 검은색 촉수로 둘러싸여있어 말도 제대로 못하는 그였다.

"금동근씨... 금동근씨. 반갑습니다. 에고스틱입니다."

"으으으읍!"

"네, 네. 분하고 억울하시겠죠. 잘 압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며, 내 품에 있는 총을 꺼내들었다.

그걸 보자 더욱 발작하는 놈.

...웃기는 일이다. 지도 이미 몇명 죽이고, 나중가면 서울 사람들 막 학살하는 놈이 자기 죽는건 두려워해?

하긴 원작에서도 그런 놈이었지. 수천명을 죽인 뒤, 끝내 스타더스의 손에 죽는다. 스타더스가 죽인 몇 안되는 인물이기도 하고.

애초에 다른 빌런들과 다르게 마음이 원래 글러먹은 놈이다.

"억울해 마십시오, 금동근.. 아니, 웨폰마스터씨."

"으으으으읍!"

"어차피 당신은 나중되면 죽습니다. 그러니, 어차피 죽을거 미리 죽는게 인류를 위해서도 당신을 위해서도 더 낫지 않을까요?"

"으으읍! 으으으으읍!!!"

나는 총을 장전하며, 검은 촉수에 감겨 발버둥치는 그를 구경했다.

정황상 살려달라 하는거 같은데, 지는 뭐 남들 살려줬나.

"그러니, 잘 가시죠."

"으으읍!!!"

그리고 내 마지막 말과 함께, 나는 놈에게 총을 겨눴고.

탕-.

"....."

이내, 몸부림치던 그는 움직이는걸 멈췄다.

"휴우..."

그래도 나름, 진짜 쉽게 처리했네.

나는 한숨을 내쉬며 총을 다시 품에 집어넣었다.

그나마 얘는 이렇게 막을 기회가 있었어서 다행이지만, 내가 이름도 본거지도 모르는 빌런들은 어떻게 할 지 모르겠다.

...역시 스타더스 키우고, 다른 B급 능력자들 양성하는게 제일 좋은 해결책인가.

"다 끝났어. 이제 와도 돼."

마무리지은 이후, 나는 둘에게 연락했고.

이내 몇분 지나지 않아 은월이와 최세희가 내가 있는 곳으로 왔다.

"잘하셨어요, 다인오빠."

"으음..."

은월이는 피흘리며 쓰러진 놈을 보고도 별 동요가 없었다. 최세희가 살짝 떠는 것과는 다르게.

역시 월광교에 있으면서 내성이 길러져서인가.

"자, 얘도 해치웠으니까. 여기 있는 무기만 몇개 챙기고 폭죽 터트린 뒤 그만 가자."

나머지 무기는 전부 협회가 꿀꺽할거다.

그리고 사실 그러라고 의도한거기도 하고. 원작 후반부를 생각해보면, 협회가 최대한 많은 무기를 비축해두면 좋으면 좋지 나쁠게 없다. 얼마나 개판나는데, 미리미리 대비시켜놔야지.

고맙다 웨폰마스터. 대한민국의 안보를 위협하던 너의 무기들이 거꾸로 대한민국을 위해 쓰이겠구나.

무기메이커 웨폰마스터에게 짧은 묵념을 올린 뒤, 우리는 제일 쓸만한 무기들만 몇개 챙겨가기로 했다. 원래 보스 격파후 파밍 시간이 제일 즐거운 법.

그리고 가기전에 이 곳의 위치를 알릴 폭죽 하나 쏘고 사라지면 되겠지.

협회는 무기를 얻고, 나는 사람을 서슴없이 죽이는 잔혹한 빌런이라는 타이틀을 다시 얻고.

특히 스타더스가 나를 향해 적대심을 끓어오르게 하기 딱 좋을거다. 이런 사적제재, 특히 살해. 스타더스가 얼마나 싫어해.

아 맞다, 그리고 가기전에. 어그로를 끌거면 확실히 끌어야지.

"야, 뭐해?"

장갑을 낀 채 놈의 시체 옆에 피로 무언가를 적는 나를 보며, 옆에있는 최세희는 기겁을 했다.

"가만히 있어봐. 이것도 나름 근본이라고."

나는 그렇게 답하며, 피로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투 유... 스타.. 더스..."

좋아. 끝났다.

이걸 보고 나면 스타더스는 또 분노로 차오르겠지?

완벽해.

그렇게 나는 흡족하게 작성을 마친 뒤, 입구쪽 산에 폭죽을 몇개 터트려주고 그곳을 떴다.

***

To you, Stardus.

"...."

에고스틱이 범행을 저지른, 산골짜기 어딘가 지하기지.

개미굴같은 그곳에 내려온 스타더스와 협회 직원들.

직원들은 서둘러 현장을 감식하고 위험 물질들을 치우느라 바쁜 가운데.

에고스틱이 죽인 것으로 추정되는 빌런 앞에 서서, 스타더스는 그것의 옆에 피로 적힌 글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에고스틱이 적었을 글씨.

에고스틱이 자신을 위해, 적었을 글씨.

그것을 내려다보며.

스타더스는, 신하루는. 묘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이 글귀를 자신은 이미 본 적이 있다.

에고스틱을 알기도 전, 그가 두차례나 이미 적었던 메세지.

분명 예전에 그걸 본 그녀는, 몹시 분노하며 에고스틱을 혐오했었지만.

"...스타더스에게라. 하."

어째서인지.

이번에는, 그런 감정이 전혀 들지 않았다.

"...나도, 미친건가."

"그리고 이번 피해자도 역시 빌런이 맞는 거 같군요. 그리고 저 흔적 역시.. 네?"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계속 설명하시죠."

그렇게 경관의 설명을 듣던 그녀는, 스스로도 모르게 조용히 그렇게 중얼거렸을 뿐이었다.

제 155화

화그녀의 분노

에고스틱.

온갖 테러를 일으키고, 특유의 도주에 특화된 능력때문에 잡기도 어려우며, 스스로 빌런들을 규합해 세력을 형성한.

대한민국 최고의 위험인물.

거기다 그의 테러가 시민들만이 아닌 다른 빌런들까지 포함돼 극형주의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지지와, 우연의 일치인지 민간인만은 죽이지 않아 일반 대중들 중에서도 팬층까지 가지고있어 문제가 한두가지가 아니다. 방송을 하여 인지도도 크고.

즉, 현재까지는 그래도 큰 일을 벌이진 않았지만.

그가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든 대한민국을 터트릴 수 있는, 시한폭탄과도 같은 존재다.

능력이 어디까지일지 짐작도 안되는 해커, 불사로 추정되는 A급 빌런에 S급 빌런만 2명을 휘하로 두고 있으니.

그래. 에고스틱. 그는 어떠한 방법을 써서라도 무조건 막아야 하는, 위험분자 그 자체. 이는 대한민국의 저명한 빌런 밎 테러관련 전문가들이 모두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것이다. 처음과 다르게 그는 이제 너무 위협적이게 되었다고.

...그리고 여기까지가, 일반인들이 에고스틱에 대해 알고있는거고.

그와 늘 맞서싸운 스타더스, 신하루 자신은.

그에 대해 일반인들이 모르는, 훨씬 더 많은 걸 알고있다.

에고스틱은 베히모스란 생체병기를 가지고 있다- 라는 단순한 사실관계와 더불어.

'..다음에는, 나서지 마세요.'

묘하게 그녀의 민간인 신분까지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결코 건들이지 않고 오히려 걱정해준다던가.

'당신이 절, 완성시킵니다.'

자기가 저지른 테러를 그녀보고 막으라고 응원한다던가.

'이번에, 하나 빚지신 겁니다.'

...예전에는 아예, 그녀 자신을 위해 에고스틱 그는 목숨을 내던지기도 했다.

이 모든건 일반 대중은 모르는 이야기.

물론 그들도 에고스틱이 스타더스를 그의 맞상대라 여기는거 정도는 알고 있다. 애초에 그의 빌런 데뷔때 스타더스를 저격하며 시작했고, 이후에 기차테러때 행동이라던가 주로 스타더스만 부르는 그를 통해.

다만 그에 대해 더 많고 깊은 사실은 스타더스 그녀만 알고있고.

즉, 에고스틱은 사실 세간에 보이는 것보다 스타더스 자신을 훨씬 더 깊게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하. 진짜, 어이가 없어서."

협회 안.

스타더스는 그날도 이를 갈고 있었다.

다름아닌 에고스틱, 그때문.

에고스틱의 잠재적, 노골적 위험성과 가끔씩 그가 진짜 나쁜게 맞는건가 라는 고민등. 신하루가 에고스틱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하는건 늘상과 다를바 없는 일이었지만.

'쪽-.'

'수고했어, 자기.'

이번에는 에고스틱에 대해, 좀 다른걸 생각하고 있던 그녀였다.

"...하. 내가 진짜 어이가 없네."

그때 밤의 일.

에고스틱과 연인이라도 되는 마냥 스킨십을 하던 보라색 머리카락을 가진 미스트의 모습.

마지막에는 자신이 보는 앞에서 입맞춤까지 하던 둘의 모습을 떠올리던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가는걸 느꼈다.

"...참자."

또 책상 하나를 부숴먹을 수는 없잖아.

분노를 가라앉히고 주먹에 힘을 풀어봤으나, 다시 그 장면을 떠올릴때마다 느껴지는 깊은 빡침.

...지금까지 나한테는, 뭐 내가 완성시킨다는 둥 막 그렇게 말하고 그랬으면서.

알고보니 그러면서 뒤에서는 다른 여자랑 막 쪽쪽거리면서 물고 빨고 그러고 있었단 소리야?

"하아..."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은 그녀는, 잠시 눈을 감고 한숨을 쉬었다.

사실 왜 이렇게까지 화가 나는지는 잘 모르겠다. 처음에 둘이 붙어서 그런.. 그런 행동을 하는걸 봤을때 느낀건.. 약간 순간 머리가 멈추는 느낌. 에고스틱이 다른 여자랑 그렇고 그럴줄은 상상도 못했기에 더욱 그랬다.

그리고 그렇게 멍한 상태로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눕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떠오르는건 분노. 그 광경만 상상해도 열이 받는 기분. 뭔가 마음 속 무언가가 금가는 기분.

대체 왜 이런 감정을 느끼는걸까. 그가 뭘 하든 자신이 무슨 상관이라고.

그에대해 잠시 생각해보던 스타더스는.

'그래. 에고스틱이 다른 S급 빌런이랑 저정도로 찐하게 결탁했다는건데, 이건 커다란 문제이자 잠재적인 위협 아닌가?'

그렇게 스스로 정당화했다.

그래. 자신이 그에 대해 분노하는건 전혀 이상한게 아니다. 오히려 히어로라면 당연한 일. 다시한번 말하지만, 절대로 이상한게 아니다.

그렇게 스스로 그렇게 최면을 걸듯 되새긴 그녀는, 이내 대책을 모색했다.

그럼 어떻게 해야할까?

당연히, 떨어트려놔야지.

"...그래. 에고스틱, 저놈이 얼마나 위험한 놈인데."

테러리스트이자 빌런 조직의 수장, 에고스틱.

역시, 빨리 그를 잡아서 수용소에다가 감금해놓을 수밖에 없다.

그를 거기 가둔 다음에 자신이 몇날에 걸쳐 그를 만나 설득하면, 교화시킬 수도 있지 않을까..?

일단 먼저 잡아서 가두고...

그렇게 그녀가 에고스틱이 듣는다면 소름 돋아할 생각을 이어가던 그때.

"어?"

그녀가 전혀 생각치도 못할 타이밍에.

에고스틱의 방송이, 켜졌다.

갑작스럽게 시작된 라이브.

그리고.

영상 속의 그는 씨익 웃으면서, 그녀가 생각치도 못한 말을 뜬금없이 꺼냈다.

[저와 미스트는 아무 사이도 아닙니다!]

"...?"

그가 방송을 튼걸 보고 언제든 뛰쳐나갈 준비를 하고 있던 그녀는, 갑작스러운 그의 말에 잠시 몸을 멈춰 돌아봤다.

[제 동료일 뿐이니, 오해 없으시면 좋겠습니다. 미스트가 장난친 것일 뿐이니까요.]

화면에 나오는, 당당하게 웃고있는 에고스틱의 모습.

그렇게 옷을 갈아입는걸 멈추고 그런 그를 잠시 바라보던 스타더스는, 깨달았다.

진실이다.

자신의 직감으로 봐도, 저건 거짓이 아니다.

사실 저번의 일렬의 사건으로 자신의 직감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진 그녀지만, 이번에는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저건 진실이 맞다고.

"....음, 뭐. 저런 말은 왜하는거지."

이제와서 하는 얘기지만, 스타더스는 사실 알고 있었다. 그래. 에고스틱이 그럴리가 없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편안한 얼굴을 하던 그녀는.

이내 에고스틱의 영상이 끝나자, 중얼거렸다.

"...빌런을, 사냥하겠다고?"

왜인지 꽤나 오랜만에 듣는 듯한 말.

...그래. 생각해보니 자신이 처음 에고스틱을 알게 된 것도, 그가 빌런을 사냥해 피로 자신의 이름을 적어서였지.

몇년 전의 일을 떠올리던 그녀는, 이내 나갈 준비를 마쳤다.

일단 그를 막고 봐야하니까.

"스타더스씨. 지금은 에고스틱의 위치를 추적할 수가 없다하니, 일단은 대기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떠나려하던 그녀는 이내 협회직원에 의해 멈춰졌다.

***

그렇게 몇시간 후.

어떤 산 위에서 누군가 조명탄을 쐈기에 그곳으로 가봤더니, 거기서 수상한 굴을 찾을 수 있었다.

이에 협회 요원들과 스타더스가 그곳으로 파견되었고.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

그 굴과 이어진 수상할정도로 거대한 연구실같은 곳 안에서.

스타더스는 싸늘하게 쓰러진 남성과, 그 옆에 에고스틱이 자신에게 남겨놓은 메세지를 본 이후.

다시 발걸음을 옮겨, 주위를 살펴보았다.

"네. 협회장님. 보이시는데로 상당수의 무기가 확인됩니다. 전부 작동 가능한 상태인 것 같습니다."

[크하하하! 그러니까 이제 이 많은 최신식 무기들이 전부 우리꺼라는 소리 아닌가? 키야, 이게 금맥이지 뭐가 금맥이겠나! 당장 다 챙겨오게!]

"알겠습니다!"

옆에서 협회 직원이 협회장과 영상통화를 나누는 걸 힐끔 보며, 탁자에 놓인 무기 하나를 들어본 그녀.

누가봐도 최신식인 무기. 그걸 다시 내려놓은 그녀는, 주위를 살펴보고는 표정이 굳었다.

무기, 무기. 온 사방에 깔려있는 무기들.

단순히 이게 이제 다 우리꺼라고 좋아하는 협회장과 다르게, 스타더스는 심각함을 느꼈다.

...그러니까 서울 한복판에, 이정도의 살상병기가 깔려있었다는 말인가.

그리고 에고스틱 말고는, 이걸 아무도 몰랐고.

그렇게 스타더스가 느낀 불안감은, 지하 또다른 곳에서 직원의 설명을 들으며 더욱 커졌다.

"...아마도, 놈은 사람을 납치해 기계로 만들려고 한 것 같습니다. 한마디로 개조죠. 놈의 계획대로라면 그가 개발한 폭약들과 무기로 서울 사람들 최소 수천명이 사망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자세히 알아봐야겠지만, 실행계획이 꽤나 구체적인것으로 보아 실현가능성이 크다는 판단이..."

"...."

중얼거리는 요원의 말에, 스타더스의 표정은 자연히 굳었다.

...최소 수천명이 사망?

그렇게, 그녀가 이 무기 저장굴을 돌아보고, 파악할수록.

그 생각은 더더욱 강해졌다.

...서울 지하에서 이런 대규모 테러가 계획되는 동안, 협회는 이에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이런게, 과연 여기뿐일까?

그렇게 심란한 마음으로 한바퀴 둘러본 그녀가 다시 돌아온것은, 빌런이 쓰러져있던 방.

이미 시체는 치워지고, 핏자국만이 남아있는 그곳에서.

스타더스는, 에고스틱이 남긴 메세지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예전에는 자기가 정의인양, 멋대로 다른 사람을 죽이고 다니는 에고스틱을 보곤 분노가 들끓었지만.

이제는... 잘 모르겠다. 과연 그가 틀린건지.

그가 이러지 않았으면, 수천명이 죽어나가도 이상하지 않았을테니.

To you, Stardus.

"하..."

그래도 이 상황에서까지, 너는 나를 위해 메세지를 남겼구나.

이건 무엇을 의미하는걸까.

나보고 묻는 것인가. 과연 수천명을 죽이려드는 빌런을 죽인 그가 정말 잘못된거냐고.

아니면 놈의 테러를 막은게, 자신한테 주는 선물이라는 소릴까.

멍하니 그걸 내려다보던 스타더스, 신하루는. 이내 결론을 내렸다.

...역시, 다 필요없고.

에고스틱. 그를 잡는데 총력을 기울여야 되겠다.

갑작스럽게 나온 결론같지만, 그녀에게는 다 이유가 있었다.

애초에 엄청난 위험성을 지닌 인물이니, 당연히 붙잡는게 맞기도 하고.

덤으로 이 메세지의 뜻. 그가 어떻게 이 빌런의 위치를 알아쳤는지, 그가 테러를 하는 이유. 이 모든걸 알아내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그리고 에고스틱이 다른 여자랑 또 놀아나.. 아니 결탁하는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스타더스는 재차 다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에고스틱을 붙잡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모든걸 해야할 때라고.

***

"다인오빠. 근데 마지막에 스타더스에게...라는 메세지는 왜 적으신 거에요? 무슨 뜻이 있나요?"

"응?"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를 향해 묻는 은월이에게, 나는 당연하다는 듯 답해줬다.

"별 이유 없는데?"

"...네?"

"아니. 예전에도 다른 빌런 암살할때 스타더스 어그로 끌겠다고 그런 메세지 남겼거든. 근데 그때 생각나서 또 해봤지. 근본이니까."

"아하..."

애매한 표정을 짓는 은월이를 뒤로하고, 나는 그보더 더욱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분명 어째 쌔한 기분이 들어서 열애설 해명까지 했는데.

어째 아직도 쌔한 기분이 안사라진다.

뭐지.

이 불길한, 뭔가 앞으론 더 빡세질거 같다는 기분은.

제 156화

화그 악당들의 훈련

S급 빌런이 될 웨폰마스터, 이놈을 미리 처치한건 굉장히 스스로도 뿌듯한, 뜻깊은 일이다.원작에서 놈의 악랄함을 매주 보면서 치를 떨었던 예전을 생각하면, 아주 통쾌하기 이로 말할 수가 없는 일.

서울.

지금은 어제와 오늘이 같은 서울이지만, 원작에서는 이러지 않았다. 일명 신서울. 대한민국의 모든걸 장악한 이설아가 주도한 프로젝트로, 새롭게 서울을 재건하여 탄생한 신도시다. 원작에서 지금과 다른게 베히모스 한은그룹 월광교 3종콤보로 박살이 났던 서울을 겨우 재건한 이설아.

그런 그녀의 야심찬 꿈은 월광교주의 최후의 발악으로 도시 한복판에 포탈이 열려서 1차로 망하고, 이 웨폰마스터 놈이 난입해서 2차로 망한다. 특히 신서울의 막타를 날린건 웨폰마스터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하여튼 그런 악랄함을 떨치던 놈을 이렇게 손쉽게 죽였으니, 어느정도 안심이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이런 요행이 언제까지일까 싶긴 한데...

어쨌든간에 이번 에고스트림 처치는 또 다른 의도도 있다. 바로 잔혹한 에고스틱이라는 평가를 올리는 것.

그렇게 나는 팝콘을 먹으며, 즐겁게 티비를 보고 있었다.

[이거 보십쇼. 에고스틱이 또 자기 마음대로, 그저 취미로 무기를 만들던 소시민을 죽였습니다. 자신이 정의인양 칼을 쥐고 민간인들을 학살하는 모습이, 진정 잔혹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모두 에고스틱을 두려워하고! 경계해야합니다!]

음, 음. 참 맞는말이다.

"오빠, 왜 케이블을 보고 있어요? 지상파 틀어요."

삑.

[네. 다음 속보입니다. 에고스틱이 무기 수천개를 숨겨놓았던 빌런을 죽였다는게 밝혀져 큰 화제가 되었는데요. 협회는 이에 모든 무기를 압류했고, 이 무기들은 대한민국에 있어 큰 전력이 될거라고 밝혔습니다. 이에 네티즌들 사이에선 에고스틱이 또 대한민국을 지킨게 아니냐는 의견이...]

"스읍."

갑자기 바뀐 채널에 머리가 아파진 나는,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일이나 해야지. 내가 또 뭘 해.

"좋아. 이정도면 오래 쉬었다. 서은아, 은월아 훈련하러 나가자. 아 그리고 서자영 너도, 나와."

"아아... 안돼. 서은아, 그냥 얘 그거 보게 납두지 왜 그랬어어..."

바닥에 누워서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며 죽는 소리를 내는 보라색의 무언가. 서자영.

...아니, 누가 보면 매일 훈련하는 줄 알겠어.

"자. 자, 너무 누워만있어도 몸 다 상하니까. 이리 와."

"아아아..."

"자꾸 그렇게 버티면 또 염동력으로 들고나간다?"

"...그렇게 해줘."

"...뭐?"

"그거 은근 편하더라..."

"...나, 참."

나는 결국 한숨을 쉬며 염동력으로 서자영을 허공에 두둥실 띄우고 밖으로 나갔다.

...그래. 이것도 일종의 훈련이지 뭐.

"자영언니. 그렇게 매일 누워만 있어도 괜찮은거 맞아요?"

"응... 걱정하지마. 언니는 연체동물이라 안움직이면 오히려 에너지가 솟아나... 어흥..."

대문 밖으로 걸어가며 걱정스럽게 묻는 은월이랑, 여전히 어지러운 대답을 하는 서자영.

둘의 만담을 들으며, 나는 이들을 이끌고 숲속 공터로 나왔다.

"자! 지금부터 서로 싸워라."

"흑흑. 내가 이 작고 귀여운 서은이랑 어떻게 싸워. 나는 못해애..."

"음, 언니. 저번에 언니가 저한테 사정없이 불 쏘아가지고 제 슈트가 거의 다 그을리지 않았나요..?"

"난 기억 없어..."

"제가 막 항복이라 해도 계속 했던건..?"

"은월이가 환상마법 건걸꺼야."

"네?!"

볼을 긁적이며 그렇게 말하던 서은이와, 아무튼 오리발을 내미는 서자영, 옆에서 괜히 불똥이 튀어서 화들짝 놀라는 은월이까지.

...어떻게든 몸을 움직이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지연시키키 위해 자연스럽게 만담을 이어나가는 서자영. 정말 대단하다고 밖에 할 수 없다. 사실 근데 저렇게 뻐팅기다가도 막상 훈련 시작하면 누구보다 신나서 하는게 쟤긴 한데.

"자. 어쨌든, 슬슬 해보자. 최세희가 없으니까 이번에는 은월이 혼자 너랑 서은이 상대하는걸로 하자."

"저 혼자요?"

"그래. 은월아. 넌 할 수 있어. 난 널 믿는다!"

"...음, 알겠어요. 최선을 다해볼게요!"

은월이는 그렇게 말하며 주먹을 작게 쥐었다.

사실 은월이 혼자서면 충분히 2:1 가능하다. 애초에 우리 중에서 제일 실전에서 강한게 은월이라. 데식이도 있긴 한데, 기본 무력이 은월이에 비하면 딸리긴 한다.

"...은월이는 우리 둘이 힘을 합치면 충분히 이기지. 그치 서은아?"

"맞죠. 백은월, 이번에는 내가 이길테니까 패배할 준비 하고 있어!"

"네. 한번 최선을 다해보세요."

살짝 눈웃음 지으며 그렇게 답하는 은월이.

그러자 서은이도 무언가를 눌러 자신의 슈트를 소환하고, 서자영도 비로소 기지개를 피며 보라색 불꽃들을 자신 주위에 늘어트림과 동시에.

그 둘을 마주 본 은월이도, 무녀복을 입은 채 작게 기도하는 모습을 취하더니 이내 손에 마법진을 생성하였고.

그렇게 다들 눈에 살짝 생기가 돌며.

쾅. 본격적인 전투...가 아니라 훈련이 시작되었다.

남자애들 공만 던져주면 신나서 잘 논다면.

우리 빌런들은 어찌됐건 몸을 쓰며 전투할 기회가 오면, 신나서 능력쓰면서 뛰어날며 논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평화로운 숲속은 다시 뭐 박살나는 소리가 나며,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

미래.

이 세계가 흘러갈 미래는, 결코 순탄하지 않다.

내가 아는 재앙만 해도 몇십개. 거기에 뒤에가면 괴물들도 튀어나온다는걸 생각하면 그야말로 첩첩산중.

즉, 내가 어느정도 막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 가면 갈수록 무력이 중요해지는건 당연지사다.

그리고 그때를 대비해 미리미리 능력을 훈련해놓는것도 당연한거고.

물론 공식적으로 능력이 깡으로 성장하는건 우리 스타더스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훈련이 소용없다는건 당연히 아니고. 오히려 더욱 중요하다. 대충 싸워도 알아서 성장하는 스타더스와 다르게, 다른 이들은 훈련을 통해 잠재력을 끝까지 끌어다쓰지 않으면 오히려 퇴보하니까.

그래서 내가 요즘들어 우리 멤버들을 본격적으로 훈련시키는거고. 이 험난한 원작 후반부를 해쳐나갈려면 이정도로는 안된다. 더 강한 기술, 더 빠른 반사신경, 더 훌륭한 테크닉.

그걸 위해 훈련은 주로 모의전투를 진행하는 것이다. 실전만큼 좋은 훈련은 없으니까.

다만 실전과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내가 옆에서 날아다니면서 코치를 한다는걸까.

"서자영, 거기서는 불로 장벽같이 세워서 막어! 그리고 서은아, 이럴때는 굳이 맞서싸우는 것보다 그냥 피해. 은월이는 후방도 주의하고. 앞에서 캐스팅만 하다 보면 뒤가 약해져."

"허억, 허억. 네!"

숨을 헐떡이면서도 나한테 대답을 하며 마법진 3개를 동시에 소화해 서은이와 자영 둘을 막고있는 은월이.

그렇게 전투가 한동안 계속되고, 드디어 훈련이 끝이 났다.

"흐아악... 이겼다아..."

슈트를 벗고 나와 다 쓰러져가는 서은이.

나는 얼른 서은이한테 다가가 미리 준비해둔 물을 건내줬다.

"자, 마셔. 마셔."

"고마워요 오빠. 으음..."

"나, 나도 무울..."

물 달라고 찾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봤더니, 눈앞에 보이는 바닥에 들이누운 서자영.

푸른 잔디와 혼연일체가 되어 쓰러진게, 심히 힘들어 보이는 모습이다.

"자."

"땡큐.. 아아. 이게 그 꿀물인가 뭔간가?"

그렇게 서자영이 누워서 물을 마시는 묘기를 펼치고 있을 때, 허공에 떠있던 은월이가 비로소 하얀 무녀복을 나풀거리며 바닥으로 내려왔다.

"은월아. 괜찮아? 너도 물 줄까?"

"네? 아, 괜찮아요."

나한테 살짝 웃으며 그렇게 대답하는 그녀.

이미 다 죽어가는 둘과 다르게, 호흡만 좀 가쁠뿐 상대적으로 괜찮아보이는 은월이었다.

"그래도 마셔. 땀 좀 흘린거같은데."

"알았어요."

싱긋 웃으며 물병을 받아든 은월이는, 이내 검은 머리카락을 목 뒤로 넘기고 꿀꺽거리며 마시기 시작했다.

그렇게 괜찮다더니 물병을 다 비우고 다시 뚜껑을 닫은 그녀는, 나를 보며 말했다.

"저 잘했어요?"

"잘했지. 최고였어."

순수한 미소로 내게 그렇게 물어오는 은월이한테, 나는 따봉을 해주며 그렇게 대답해줬다.

그러자 옆쪽에서 들려오는 서은이의 목소리.

"하아, 아무래도 이 슈트는 좀 수정해야될거 같아요. 두번째 버전보다 좀 슬림하게 만들었더니 문제가 좀 있네."

자신의 은빛 슈트를 내려다보며 그렇게 중얼거리는 서은이.

"그래도 서은아, 저번보다 기술 자체는 늘어난거 같은데?"

"저도 놀고만 있던건 아니니까요. 근데 오빠, 다음부터는 오빠도 끼면 안돼요? 우리끼리 하는것보다 오빠 있을때가 더 치열했던거 같은데. 그 베히모스 있잖아요."

"지금 내 베히모스 저번에 폭발충격 흡수한거 때문에 맛 가서 실험관 액체에 담겨 수리중이다."

"아 그랬지, 참."

기억났다는 듯 대답하는 서은이를 끝으로, 우리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이번 훈련은 이렇게 했으니, 다음 훈련은 세희랑 데스나이트 데리고 한번 더 하면 되겠지.

"아. 이제 한달은 쉬어야돼..."

참고로 바닥에서 저렇게 중얼거리는 서자영은 무조건 훈련에 참여시킬 예정이다.

쟤가 제일 최근에 들어와서 훈련할게 많거든...

***

하여튼 그렇게 훈련도 해가며, 하루하루가 흘렀다.

"흠..."

생각해보니 이제는 슬슬 '그' 빌런 연합도 출범하겠네.

아니지. 정확히는 국제 빌런 연합의 연합이라고 해야하나...? 하여튼, 중반부에 들어서니 확실히 이벤트가 많다. 하. 거기 또 어떻게 잘 껴야될텐데. 슬슬 PMC도 모집하고...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쯤, 마침 이설아한테 전화가 걸려왔다.

오, PMC관련 얘기인가?

"어, 설아야. 왜?"

그렇게 나는 기쁜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고.

이내 예상치 못한 얘기를 들었다.

"...뭐? 스타더스가 그 어느때보다 나를 붙잡으려고 노력하고있다고?"

그 소식을 들은 순간 살짝 멈칫한 나는. 바로 머리를 빠르게 굴려보았다.

스타더스가 나를 잡으려 노력한다.

스타더스가 악당을 잡으려고 열심히 노력한다.

스타더스가 악당을 해치우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며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음.

그렇게 이설아에 말을 들은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뭐 어쨌든 정의로운 그녀답게 악당을 잡으려고 노력하고 있다니까.

결과적으로 잘된거 아닌가?

"잘됐네!"

[...다인씨.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아닌거 같아요.]

그런 내 말에 수화기 속에 이설아는 그렇게 답할 뿐이었다.

...맞는말인데 왜그러지.

제 157화

화세계 속으로

스타더스가 나를 붙잡기 위해 전보다 더 열과 성을 다하고 있다-.

이설아가 나에게 이 소식을 알려주기 위해 따로 전화까지 해, 조심하라고 신신당부하며 알려준 그 이야기를 들은 이후.

나는 소파에 앉아 누워서 쉬고 있었다.

"흐음..."

스타더스가 나를 잡기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근데 그럼 그건 반대로 말하자면 지금까지는,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말 아니야..?

"그럴리가 없지."

우리 하루가 얼마나 정의롭고 불의를 못참는 성격인데. 분명 지금도 최선을 다하고 있고, 앞으로도 더욱 최선을 다할거라는 뜻일거다. 크게 달라지는건 없지 않을까? 이설아가 괜히 오버하는거 같다는게 내 생각이었다.

그렇게 내가 멍하니 앉아 그런 생각을 할 때쯤, 앞의 티비에서는 앵커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번에 네앤테크 주식회사가 매각되며, 사실상 이제 대한민국의 대기업들은 전부 범 유성그룹의 소속이 되었습니다. 이에 정치권에서 경각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는 있지만, 결국 이번 국회에서도 반-유성그룹 독점방지법은 통과되지 않았습니다.]

딱 이설아 생각을 마침 하고있을때, 뉴스에서 흘러나오는 유성그룹 소식.

멍하니 스타더스를 떠올리던 나는, 관심을 티비로 옮겨 앵커가 하는 말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한편 유성그룹의 회장 이설아는 히어로 활동을 제외하고는 철저히 외부와 연락을 취하고 있지 않고 있는 와중에, 유성그룹이 대한민국의 정점을 찍으며 그녀도 대한민국 재산 보유순위 1위에 올랐습니다. 이에 대한민국이 유성의 나라가 되는거 아니냐 라는 불안섞인 의견도 나오는 가운데...]

흠. 저 언론사는 아직 이설아가 손 안댔나? 유성그룹에 대해 비판적으로 보도하는 채널이 아직도 남아있네.

약간 그런 의문을 품으면서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드디어 이설아가 거진 다 먹는데 성공했네.

아마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정치권이랑 언론도 다 먹어치울거다. 그러면 그때가서는 정말로 유성그룹이 대한민국을 지배하게 되겠지. 히어로 협회 쪽만 빼고는.

"....."

결국 좀 늦긴 했어도, 원작대로 됐다.

이설아의 한반도 정복은 슬슬 그 끝이 보이는 중.

....사실 따지고보면 나라 하나를 개인이 주무르는건 결코 좋지 않은 일이다. 특히 그 개인이 시장경제부터 입법, 사법, 행정부를 혼자서 컨트롤 한다? 나라 망하기 딱 좋다. 그래서 내가 원작 초반에 고민했던거고. 이설아를 초장부터 해치우고 가는게 맞을까.

그렇게 고민한 결과, 이설아는 그냥 이대로 냅두고 대신 포섭하기로 했다. 원작 후반에 개판날때는 강력한 개인이 전권을 틀어쥐는게 혼란을 덜하기도 하고, 이설아 자체가 나라를 끝까지 배신하지 않았기도 하고.

무엇보다 그래야 원작 전개도 어느정도 유지돼 예측이 가능해지고, 내가 이설아를 통해 더 다양한 일을 할 수 있으니까. 예를들어 곧 시작할 PMC 사업같은.

그런 생각을 이어나가고 있을 때, 소파 앞 아래쪽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왜 티비에서 뉴스만 나오는거야..."

"음?"

고개를 내밀어 바라보니, 거실 구석에 누워있는 서자영이 보였다.

...너무 자연스럽게 저쪽에서 자고있어서 순간 저기 있다는걸 까먹고 있었네.

"뉴스말고 다른것도 보면 안돼?..."

"으음. 그래. 자, 리모컨써라."

"...야호."

내가 던져 준 리모컨을 허공에서 탁 낚아챈 서자영은, 대충 아무거나 돌려 맞춰서 보더니 이내 눈을 감고 다시 잠들었다.

...뭐하는 애지.

한편, 서자영이 돌려놓은 곳에서는 해외 소식이 나오고 있었다.

...근데 저것도 따지고보면 뉴스 아닌가?

[대한민국이 아닌 해외 소식들을 전하는 글로벌 위클리 시간입니다. 승희씨. 금주에 제일 핫한 소식은 뭔가요?]

[네. 금주의 이슈는 바로, 미국의 S급 빌런 셀레스트가 돌아왔다는 소식입니다!]

[셀레스트요? 랭킹 1위의 빌런이라고 평가받는 그녀 말씀이신가요?]

[맞습니다. 국제 협회에서 선정한 '제일 위험한 빌런'으로 뽑힌 그녀는, 가지고 있는 능력이 몇개인지 상상도 못할 정도라 불리는대요. 그녀를 따르는 S급 빌런만 수십명이라 하니, 그 강함과 위험성이 상상이 되시죠.]

[네. 미 전역과 유럽쪽에서 한때 공포의 군주로 군림했던 그녀가 사라진지 벌써 몇년째였는데, 그런 그녀가 이번에 돌연 복귀했는데요. 이에 각국의 협회는 벌써 긴장하는 모양세입니다. 복귀한 그녀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는 아직 결정나지 않았으며...]

아무생각 없이 티비 화면을 시청하던 나는, 의외의 소식에 정신을 집중했다.

셀레스트의 복귀라.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그러면 이제, 그것도 곧인데.

생각을 빠르게 마친 나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슬슬 준비해야겠네.

아예 배를 내놓고 누워있는 서자영한테 얇은 이불 하나만 씌워주고, 나는 내 방으로 올라갔다.

서은이랑 다른 애들은 또 새로운 슈트 개발하겠다고 지하실로 들어간지 오래.

즉, 오랜만에 돌아온 개인시간이라는거다.

그 판단하에 방으로 들어온 나는, 오랜만에 책상 위 서재쪽에서 책을 하나를 빼들었다.

바로 내가 꾸준히 적고 있는 일기장.

"흠..."

얘도 이제 곧 본격적으로 써야할 날이 다가오네.

처음 적을때는 대체 언제까지 적어야하나 했는데 말이지. 곧 안써도 되겠군.

그런 짧은 감상과 함께, 나는 책을 꺼내들었다.

다름이 아니라, 내가 이 세계에 떨어진 후 초창기에 적어놓았던 걸 다시한번 확인해보기 위해.

"역시 이맘때쯤이 맞네."

나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S급 빌런들 중 제일 강하다고 평가받는 셀레스트. 그녀가 부활하고.

전세계 빌런 연합 수상들의 모임, 일명 '카테달'이라는 것을 창시하는 것도.

일기장에 밑줄까지 그어가며 '카테달 참여!'라고 적어놓은걸 보며, 나는 잠시 눈을 감고 생각했다.

카테달... 카테달이라...

역시나 대한민국만 나의 개입으로 인해 조금 다르게 흘러가지, 국제사회는 여전히 원작대로 흐르는 모습.

그리고 예상대로라면, 곧 전세계 빌런 연합 리더들의 모임인 카테달이 만들어져 첫번째 만남을 가질거다.

"흠..."

나는 책상을 손가락으로 두들기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카테달. 원작에서는 한국의 그 어떤 빌런도 참여하지 못해 등장때는 언급만 되고 넘어간 조직.

그러나 한국에서만 안중요한거지, 전세계 단위로 보면 꽤나 중요한 모임이다. 애초에 각자 개성이 강하고 독자적인 S급 빌런들, 그런 그들을 이끄는 그중에서도 제일 강한 이들만이 모인다는건 딱봐도 위험하고 중요해보이니.

물론 실제로는 엄청난건 없다. 그냥 다들 한번씩 모여 정보를 교류하고, 테러도 가끔 같이 하고 그뿐.

물론 그것도 원작 최후반부 들어가면 달라지지만.

하여튼 그렇게 빌런들을 모아 모임을 만든건, 모든 빌런들 중 가장 강하다고 평가받는 셀레스트라는 빌런이다. 비공식 랭킹 1위의 빌런이자, 스스로도 빌런 연합인 에테리아를 이끌기도 하고.

즉, 다른 S급 빌런들도 그녀가 '여기 모여라~' 하니까 뭐가 있나보고 모인거지 다른 애가 그랬으면 신경도 안썼을거다. 그만큼 그녀의 위상이 강력하다는 뜻.

어쨌든 그렇게 주기적으로 빌런 수장들이 모이는 카테달. 원작 후반부에는 굉장히 중요해지는 곳이고, 세계단위의 정세에 낄 수 있는 기회인만큼 나로써는 꼭 참여해야한다.

그런데 문제는 범 국가적으로 악명을 떨치는 그곳이, 나를 불러줄거냐는거다. 거기있는 애들 하나하나가 전부 국제적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는 애들인 반면, 나는 워낙 한국 안에서만 놀아서 인지도가 한국 밖에선 크지도 않고.

즉, 그야말로 위기의 순간.

그러나 물론, 나는 다 계획이 있었다.

사람 친분이라는게 다 뭔가. 대한민국이 혈연 지연 학연으로 굴러가듯, 이 바닥도 인맥으로 비비면 다 뚫리는 법이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빽 쓸거란 소리다.

그리고 때마침 나는 아주 든든한 빽이 있고.

그렇게 판단을 마친 나는, 휴대폰을 들어 전화로 들어갔다. 어디보자... 아틀라스 연락처가 어딨나.

아, 여깄네.

"크흠, 크흠."

잠시 목을 가다듬고, 영어 발음을 준비한 뒤.

나는 전화를 걸었다.

"아이고 아 사장님! 오랜만입니다 그려. 저 에고스틱입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일류 빌런의 전략 제 첫번째.

이용할 수 있는 패는 전부 싸그리 이용해라.

***

북대서양 깊은 곳에 세워진, 거대한 수중 도시.

바로 라티스단의 본거지, 아틀라스 시티.

그 중심에 있는 커다란 건물에서, 한 남자가 왕좌에 앉아 자신의 아래에 있는 자를 내려다보았다.

"...그래. 그래서, 그 유명한 셀레스트가 나 아틀라스를 초대했다?"

"맞습니다. 저의 마스터께서는 북태평양 전체를 호령하며 수만의 군사를 부리시는 아틀라스님을 정중하게 초대하고자 하십니다."

하얀 로브를 입은 셀레스트의 사신이 그렇게 말하자, 위의 의자에 앉아있는 근육질의 남성, 아틀라스는 자신의 수염을 쓰다듬으며 답했다.

"흐음, 그래. 다른 누구도 아니고 그 셀레스트의 요청이라니, 내 한번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보지."

"감사합니..."

"다만, 조건이 있네."

고개를 숙이던 사신이 순간 멈칫하며 의아한 기색을 내비칠 때.

아틀라스는 왕좌에 기대, 생각만해도 흐뭇하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앞에 있는 사신에게 물었다.

"자네. 혹시 에고스틱이라고 아나?"

"...네?"

제 158화

화지금 만나러 갑니다

아틀라스와 대화를 나눈 이후, 나는 한동안 일기장과 내 정보기록지를 펼쳐 다시한번 원작의 내용을 복기했다.

물론 스타더스와 관련된 어지간한건 다 외워놓기는 했지만, 딱히 연관없는 엑스트라들은 좀 가물가물하긴 하다.

그런 의미로 지구상의 빌런 단체의 수장들이 거진 다 모이는 카테달에 가기 전, 그 빌런들에 관한 정보를 다시 숙지해두었다.

이 세계에 떨어진 이후 좀 힘들어하다가 정신차리고 부랴부랴 원작의 내용을 잊기전에 싸그리 다 자세하게 적어놓았기 때문에, 다시 읽으니 기억이 다 새록새록 나는 수준.

"...자바포시즈, 레이트레. 아니, 이름들이 왜 다 이따구야?"

국산 빌런이 아니라 그런지 이름부터 매니악한 이들. 그래도 카테달 회의장에가서 어리버리까면 안되는 만큼, 미리 이름과 외향, 능력, 원작에서의 행적들을 다 숙지하는건 기본.

"아! 감사합니다. 네, 그럼 그때 찾아뵙겠습니다. 옙. 들어가십쇼."

그리고 때마침 그런 준비를 하던 찰나에, 아틀라스로부터 연락이 왔다.

셀레스트로부터 빌런들의 회의 카테달에 초대를 받았고, 그런 김에 나도 강력히 추천해서 껴넣었다는 그. 껄껄 웃으며 알려준 날짜에 오라는 그의 말을 끝으로, 나는 전화를 끊고 한숨을 쉬었다. 휴, 그래도 가장 큰 고비는 넘겼군. 역시 인맥빨이 최고다. 아틀라스가 수상할 정도로 나한테 호감을 보여서 다행이지...

사실 내가 아틀라스 이 양반한테 한건 그렇게 크지 않다.

그냥 그의 해양 확장 사업에 깊은 공감을 해줬을뿐. 아, 덤으로 도시 박살나게 생긴것도 미리 경고해주고 다 죽어가던 그의 딸도 살려줬다, 그정도?

음, 생각해보니 은근 큰거 같기도.

하여튼, 그렇게 날짜가 잡히고.

나는 바다건너 좀 갔다온다고 미리 일행한테 말해줬다.

"응. 잘 갔다와. 올때 메로나."

서자영은 손을 슥슥 흔들며 쿨하게 나를 배웅해줬지만.

"...다인씨, 그거 위험한거 아니에요?"

"오빠. 전세계 모든 빌런들이 다 모인다니까 불안한데요..."

수빈씨와 서은이는 살짝 걱정하는 기색을 보여, 내가 걱정말라고 안심시켜줘야 했다.

실제로 생각해보면 걱정할 만 하기도 하다. S급 빌런들 중에서도 최정예, 그것도 다른 빌런들을 이끄는 대표들만 오는 자리 아닌가. 그 강한 능력자들이 우글우글 모인 그 틈에서 까딱하면 목이 잘리는거 아니냐고 걱정하는건 이상한게 아니다.

"괜찮으니까, 걱정하지마."

"그래도..."

물론 나는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켜줬다.

왜냐하면 그야, 원작을 통해서 그 회의장이 어떤 분위기인지 대략적으로 알고있기 때문이지.

빌런들끼리 모인다고 하니까 왜인지 막 싸움나고 폭탄터지고 그럴거같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굉장히 나름 차분한 분위기 속에 진행된다.

애초에 그 자리에 오는 놈들은 다 하나의 조직을 이끌며 아직까지도 협회에 안잡힌 똑똑한 이들인데, 당연히 세계에서 제일 위험한 빌런 앞에서 사릴 지성은 있다. 뭐 애초에 안그러고 나대던 놈들은 나중가서 죽으니...

거기에다가 나 혼자 딸랑 다니는게 아니라 그 빌런들 사이에서도 영향력이 큰편인 아틀라스와 함께 가니, 더욱 걱정할게 없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드디어 약속의 때가 왔고.

카텐달에 가기전, 아틀라스와 함께 가기로 한 나는 해양도시로 출발했다.

휴, 빌런들의 모임이라...

사실 갈 생각하니 머리가 지끈거렸지만, 그래도 스타더스를 위해서라면 이 정도는 해야지.

다시 마음먹은 나는 오랜만에 라피스단을 불러서 비행선을 타고 날랐다.

아틀라스 아재, 저번 만남 이후로 오랜만에 보겠구만.

***

북대서양 바다아래 어딘가.

그 곳에는, 아무도 찾을 수 없게 설계된 비밀스러운 수중 도시가 있다.

바로 S급 빌런 아틀라스가 지은, 아틀라스 시티.

청록색의 바다 유적같은 석조건물들과 전부 투명한 유리로 지어진 건물들이 공존하고 있는 신비한 도시.

바다의 확장을 노리는 라티스단이 거점을 삼아 지내고 있는 이 도시. 그곳의 한복판에 지어져있는 석조건물에서. 나는 한 아저씨를 만나고 있었다.

"하하! 에고스틱, 우리 에고스틱! 반갑네, 잘 지냈는가?"

"예 아틀라스씨도 잘 지내셨습니까? 오랜만에 얼굴 뵙는거 같네요. 그동안 찾아뵙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아닐세 아닐세! 자네도 바쁜데 당연히 그럴 수 있지. 그래도 이번 기회에 다시 얼굴 보니 좋구만 그려!"

껄껄 웃으며 내게 그렇게 말하는 아틀라스.

이내 그는 아래로 길게난 자신의 복실복실한 푸른 수염을 쓰다듬으며, 내게 진중하게 말했다.

"그리고, 혹여나 시간 남으면 언제든지 여기 오게. 우리 라티스단은 언제나 자네를 환영하니. 우리 딸아이도 자네를 보고싶어 하고."

"하하, 알겠습니다. 나중에 아틀라스씨도 한국 한번 오시죠. 제가 잘 대접하겠습니다."

"껄껄, 내 꼭 그러지."

호탕하게 웃는 아틀라스를 향해 나도 웃어주었다.

파란색 바디슈트 같은걸 입은 근육질 아저씨와 바다 깊은 곳에서 웃고있는 나였다.

거대한 신전같이 생겨서, 밖에는 유리벽 사이로 바다의 물고기들이 헤엄치는게 보이는 이곳.

동화속 바다왕국 같은 이곳. 아니, 실제로 아틀라스 아재가 왕좌에 앉아있는걸 보면 나름 왕국이 맞다. 아직 지상을 정복을 못해서 문제인거지, 사실상 바다는 이 아재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

"그래. 그래서 준비는 다 됐나?"

"네."

"좋아, 그럼 이제 갈 준비를 하세."

이내 그 말을 끝으로 아틀라스가 자신의 육중한 몸을 왕좌 위에서 일으키던 그때, 그의 시선이 순간 저 먼쪽으로 고정됐다.

뭔가 하고 나도 고개를 돌려 등 뒤를 돌아보니, 어떤 인영이 기둥 뒤로 숨는게 보였다.

그래도 완전히 숨지는 못해 살짝 반쯤 보이는 긴 푸른색 머리카락.

그런 그 인물을 향해, 아틀라스는 큰 소리로 외쳤다.

"아리엘! 그 뒤에서 뭐하니! 아빠 이제 간다!"

아, 누군가 했더니 아리엘이구나.

아틀라스의 말에도, 여전히 기둥 뒤에 숨어서 나올 생각을 안하는 그녀.

"허허, 내가 미안하네. 원래는 안저러는데, 자네만보면 부끄러운지 이러는구만."

"괜찮습니다 하하. 아리엘씨랑은 다음에 왔을때 따로 더 친해져봐야겠군요."

나는 웃으며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기둥 뒤에 숨은 아리엘을 힐끔 바라봤다.

아리엘. 아틀라스의 딸이자, 원작에서는 시름시름 앓다가 죽는 인물이다. 그녀를 내가 살려내서 아틀라스의 호감을 얻기도 했고.

하여튼 기둥뒤에 숨은 그녀를 보며,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아리엘. 나는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알고봤더니 그녀도 능력이 꽤 강했다. 물을 조종할 수 있는 능력이라니. 강하다고 평가받는 원소능력들 중에서도 물은 특히 특별한만큼, 내가 은근 눈독들이고 있기도 하다. 어케어케 잘 설득해 에고스트림에 은근슬쩍 넣으면 참 좋을거 같은데.

...근데, 저번에 만났을때는 나랑 멀쩡히 웃으면서 대화했으면서 지금은 왜 저러는거야?

나는 속으로 의아한 마음을 품으며, 고개를 살짝 내민 그녀한테 손을 흔들어줬다. 그러자 살짝 귀가 붉어지더니 다시 숨는 그녀.

...멀쩡히 다 큰 여자가 왜저런데. 여기 애들은 원래 그런가? 생각해보니 여긴 무슨 물고기인간들만 보여서 잘 모르겠다.

"자, 하여튼. 이제 가세. 이 편지를 잡게나."

아틀라스는 그렇게 말하며 내게 편지 하나를 건냈다.

빨간 인장이 가운데에 있을뿐인 편지지.

이게 바로 카테달에 직통으로 갈 수 있는 그것인가.

그의 말을 끝으로 내가 편지지 한쪽을 잡자, 아틀라스는 가차없이 편지를 반으로 부욱 찢어버렸다.

그순간 우리쪽에 무언가 푸른색의 기운이 흩어지며.

화악-

순간 흩뿌려지는 하얀 연기들과 함께, 분명 그전까지만 해도 대리석 위에 서있던 우리들은 어느새 딱딱한 검은색 벽돌위에 서있었다.

"흠... 이런 원리인가."

연기를 손으로 휙 휙 흩어낸 아틀라스. 그렇게 시야가 탁 트이자, 우리 앞에 검은 공간이 드러났다.

"어서 오십시요 아틀라스님. 그리고... 에고스틱님."

그리고 그 옆, 하얀 로브를 입은 사람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우리의 앞에 나타났다.

음, 이게 그 유명한 셀레스트의 하얀 사제인가.

"그래. 여기는 어디인가?"

"이곳은 카테달의 모임회관인 대성당입니다. 이 앞의 복도를 쭉 따라 가시면, 회견실로 바로 향하실 수 있을겁니다. 회의가 끝나고 돌아오실때는 아무쪼록 다시 이쪽으로 와주시길."

"알겠습니다."

그의 말에는 내가 대답했다.

이내 그 사람은 고개를 숙이며 뒤쪽으로 빠졌고, 나와 아틀라스는 긴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흐음. 이번에 셀레스트를 만날 수 있겠구만. 에고스틱, 자네는 셀레스트에 대해 아나?"

"어느정도는 압니다만, 저도 이렇게 만나보는건 처음이로군요."

"하하! 여기에는 그녀만큼이나 강력한 빌런들도 많을걸세. 긴장하지 말고. 뭐, 자네야 어련히 알아서 잘 하겠지만 말이야! 하하하!"

"하하..."

나를 향해 깊은 신뢰가 담긴 눈으로 바라보는 아틀라스. 나는 그런 그에게 애매하게 웃어줄 뿐이었다. 아니, 이 양반은 나를 대체 왜 이렇게 고평가 하는거야? 물론 아틀라스도 해양 전체를 컨트롤 해 전세계를 동시에 공격할 수 있는, 이곳에서도 분명 손에 꼽을 강자긴 하니...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어느새 눈앞에 보이는 뻥 뚫린 원형의 문.

그 앞으로 걸어나가자.

"호오..."

거대한 방이 펼쳐졌다.

양옆에 쫙 깔린 스태인글라스, 위에 떠있는 큼지막한 샹들리에.

그리고 그 방 가운대에 커다랗게 놓여진 원탁.

이미 다수의 빌런들이 꽤나 앉아있는 그곳에서.

저쪽편에, 하얀 베일로 눈앞을 감싸는, 마치 판타지 게임에 성녀와도 비슷한 복장을 한 백발의 여성이 보였다.

저 여자가 바로...

S급 빌런들 중 제일 강력하다고 평가받는 이이자, 동시에 가장 비밀스러운 빌런. 그리고 원작에서는 최후반부에서야 나서는 여자. 셀레스트.

그런 그녀의 주위에 원탁을 둘러싸 앉아있는, 혼자서 나라 하나는 손쉽게 멸망시킬 수 있는 빌런들.

그리고 그 틈사이에서, 나는 조용히 생각했다.

'흠...'

그래서, 여기는 어떻게 먹어야할까나.

제 159화

화원탁

거대한 샹들리에 아래.

커다랗게 있는 원탁을 중심으로, 전세계에서 모인 그 누구보다 강력한 빌런들이 빙 둘러싸 앉아있었고.

그리고 그 틈사이에 연약한 나도 앉아있었다.

예.

'....'

강한 이들을 내 곁으로 모았을뿐 능력 자체는 별거없는 나와 다르게, 이곳에 모인 이들은 하나하나가 거진 다 혼자만의 능력으로 나라를 망가트릴 수 있는 놈들. 아마 개인의 무력 자체만 놓고 따지자면 내가이중에서 제일 약하지 않을까?

물론, 내 능력은 무력이 메인이 아니니까.

아마 이들 중에서 제일 약한 내가 그들과 다른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역시, 나는 미래를 알고 있다는 것.

그뿐이랴. 각 히어로와 빌런들의 약점, 성격, 비밀등 절대로 알 수 없는걸 전부 알고있다. 마치 이 세계의 창조자마냥.

그리고 이 차이점 하나가, 이들에 비해 나머지 면에서 전부 약한 내가 그들과 대등, 또는 그 이상이 되게 해준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내 주위에 있는 빌런들을 힐끔 보았다.

내 바로 옆에 앉아있는 아틀라스 아재. 그리고 그 옆쪽으로 앉아있는 몇몇 빌런들. 단안경을 쓴 노신사와 뒤에 산소탱크를 달고있는 뱅글뱅글 돌아가는 안경을 쓴 초록 머리카락에 미친 과학자까지.

...전부 내가 익히 아는, 빌런들 중에서도 유명한 이들.

그리고 내 왼쪽도, 맞은편도.

전부 다 원작 만화에서 한번씩 삽화로 보았던 인물들이다.

저 빨간 모히칸머리를 한 건달같은 놈부터, 일본식 야쿠자 복장을 하고 칼을 찬 검은 꽁지머리에 여자까지. 그리고 저쪽편에는 붉은 중국식 도복을 입은 땋은 머리에 남자가 앉아있었다.

그외에도 도처에 깔린 수많은 강력한 빌런들.

역시, 이곳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이런 빌런들이 우글우글 모여서 있다가 어쩌다보니 원작과 다르게 '우리 심심한데 한국이나 한번 다같이 쳐들어 갈까요?' 하는 순간 그야말로 작살나는거다. 물론 내가 어케어케하면 막아낼 수야 있겠지만, 그 과정에서 피해가 막심할거라는 건 당연한 일.

즉, 그 사단 나는걸 미리 막으려면 여기 이렇게 앉아서 토템처럼 지켜야한다.

스타더스와 같은 히어로들은 할 수 없는, 빌런인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니까.

물론 그럴려면, 나도 어느정도의 영향력을 확보해야되고.

....근데 일단 그런건 일단 나중에 생각하고, 일단은 저들이나 봐볼까.

그런 생각을 하여, 나는 아까본 야쿠자와 중국인을 티안나게 유심히 관찰했다.

"...."

이마를 훤히 까고있는 꽁지머리의 남자.

붉은 도복을 입은 저 사람이 바로 중국 정부조차 눈치를 본다는, 대륙 제일의 빌런 리 샤오펑.

역시나 무언가의 기백을 내뿜는 강렬한 눈썹의 그를 보며, 나는 다시한번 그에 대해 복기했다.

중국 제일의 범죄조직 화룡(火龍), 일명 파이어 드래곤의 수장인 그는, 무려 용을 소환한다는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 긴 수염을 가진 불꽃의 용이 등장하면 모두가 떨게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 물론 그게 진짜 용인지는 모르겠으나... 하여튼 중국에서 꽤나 영향력이 큰 인물이다.

그리고 저쪽편에 앉아있는 검은색 꽁지머리를 한 여자는 일본 아쿠자 조직 중 제일 큰 곳의 수장 카타나. 특징은 신검이라고 불릴 정도의 검술로, 여리여리한 얼굴과는 다르게 홀로 수백명을 상대할 수 있는걸 넘어 건물마저 베어버릴 수 있다는 소문이 도는 여자다. 실제로 사실이기도 하고.

수많은 빌런들 중 내가 제일 주목한 이는 이 두명.

한국 옆에 바로 붙어있는 두 나라의 제일 인지도가 높은 빌런인만큼, 나도 어느정도 둘은 유의해 둘 필요가 있다. 물론 지금 건드린다는건 아니고, 나중에. 어차피 시간은 많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쿵-

샹들리에의 빛이 켜지며.

"...시작하는건가."

내 옆에 앉아있는 아틀라스가 작게 중얼거림과 동시에, 저쪽 가운데에 앉아있던 하얀 성녀와도 같은 복장을 한 여성이 입을 열었다.

"반갑습니다, 형제자매들이여."

원탁에 울려퍼지는 그녀의 청아한 목소리. 아니, 청아한걸 넘어 거의 신성하게까지 들리는 목소리. 그런 천상의 목소리로, 그녀는 말을 이어갔다.

"저는 셀레스트. 제 초대에 응답해주신 여러분들께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백발을 늘어틀인채 고개를 살짝 숙였고.

그와 동시에, 좌중의 시선이 모두 그녀에게 쏠렸다.

그리고 당연히 나도 예외가 아니고.

얼굴 위를 가리는 하얀 성녀복의 베일때문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자세히 보면 알 수 있는 감은듯한 눈. 그리고 몸에서 뿜어져나오는 신비롭고도 거룩한 분위기.

역시, 원작에서 언급됐던 셀레스트의 모습 그대로다.

그렇게 모두의 시선 속에서, 셀레스트는 담담히 입을 열었다.

"제가 오늘 이 자리에 여러분들을 초청한 건 다름이 아닌, 함께 친목을 도모하고 뭉치자는 생각에 따름입니다. 여러분."

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손을 한번 휘저어 원탁 가운데에 마법으로 이루어진 것같은 무언가를 만들었다.

이내 원탁 위에 생긴, 한 건물의 환상.

국제 히어로 협회 본사의 건물로 보인다.

"우리들의 적, 협회의 공격은 갈수록 격해지고 있습니다. 또한 국제적인 정세도 굉장히 풍전등화의 상황이지요. 이에 저는, 모든 이들중에서도 특별한 여러분들을 이 자리에 모았습니다. 각자가 한 도시를 넘어, 한 국가, 한 대륙을 컨트롤 할 수 있는 수장들끼리 모여 서로 정세의 흐름을 얘기하고 정보를 공유하면, 어찌 아니 좋겠습니까?"

그런 그녀의 말이 이어지며, 원탁 위에는 지금까지 강력하다고 칭송받던- 빌런 입장에서는 주적 그자체인 히어로들의 형상이 차례차례 나타났다. 다행히 스타더스는 없었다. 음, 그래. 이런데서 튀는건 좋지 않지.

하여튼 그 말을 끝으로 그녀가 손을 한번 더 내젓자, 원탁 위의 형상들은 전부 사라졌다.

이내 셀레스트. 그녀는 다시 차분히 우리에게 물었다.

"...그래서. 다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당연히 이자리에 모일때의 안전은 제가 보장합니다. 저는 그저 저희들도 함께 연대하면 좋겠다, 라는 순수한 마음일 뿐. 저또한 동등한 일원으로써 여러분과 교류하겠습니다. 혹여나 반대하시는 분 있으실까요?"

"...흠."

"음."

"커흠."

뭐,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손짓만으로 즉사시킬 수 있는 소문마저 도는 셀레스트 앞에서 나서고 싶지도 않을테니까.

...근데, 원작으로 미리 알긴 했는데도 진짜 이 차분하고 정적인 분위기가 적응 안되긴 하다. 무릇 빌런들끼리 모여있으면 금새 서로 사소한걸로 꼬투리잡아서 싸움이 벌어져야 정상아닌가? 무슨 말잘듣는 초등학생처럼 다들 조용하지.

물론 그렇다고 내가 나설건 아니기에, 나는 그냥 조용히 있었다.

뭐. 내가 번역을 제대로 못해서 그렇지 셀레스트가 위압감 넘치게 말했나보지.

"좋습니다. 그렇다면 바로... 시작해보죠."

그리고 그렇게 그녀의 말이 끝나며.

마침내, 회의가 시작되었다.

***

S급 빌런.

협회가 히어로와 빌런의 등급을 부여하는 기준이 달라, 상대적으로 적은 S급 히어로와는 다르게 S급 빌런들은 정말 많다. 일단 나만해도 우리 에고스트림에 S급 빌런이 2명이나 있고.

그런만큼, S급 빌런도 다 같은 S급 빌런이 아니다.

간신히 S급 빌런 라인에 끼는 애들부터, 그들과는 능력이 근본적으로 차이나는 저 위의 S급까지. 같은 S급 내에서도 사실상의 위계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은 S급 빌런들 중에서도 제일 강력한 이들.

거기에 능력만 강한걸 넘어, 각자 조직을 이끌고 있다는거에 알 수 있듯 기본적으로 머리도 꽤나 잘 돌아가는 이들이다. 한마디로 협회의 최우선 경계대상, 그야말로 인류의 주적 그자체.

...그런 그들은 지금 현재, 한대 모여 서로 통성명을 하고 있었다. 이 얼마나 무시무시하고 끔찍한 일이란 말인가.

"...내 이름은 카타나. 일본에서 삼협파를 운영하고 있다."

거기까지 말하고 입을 다문 그녀.

뭐, 소개라고 해봤자 저게 끝이다. 이름과 어느 국가에서 조직을 이끌고 있는지만 간단히 통성명할뿐.

뭔가 무시무시하고 끔찍하기보다는 묘하게 익숙한 느낌이었지만, 원작에서도 이랬으니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하여튼 내가 그런 생각을 하던 말던, 통성명은 차분히 계속되었다.

"독일의 제일가는 깡패집단, 레드 모터즈의 수장인 하이킨이다. 다들 보니 나보다 약한거 같은데, 잘지내보지."

...물론 저렇게 또라이도 있고는 했다.

대체 누군가 하고 봤더니, 아주 강렬한 빨간 모히칸머리를 하고있는 남자였다.

참고로 놈의 도발에 다른 빌런들이 보인 반응은, 그냥 무시.

다들 어디서 개가 짖나 싶을 정도로 감흥없는 표정들이었다. 뭐, 당연하겠지만 저런 놈일수록 약한 법이다. 그리고 다른 이들은 모르겠지만, 참고로 저놈은 3개월후에 죽는다. 원작에서 나오거든.

그렇게 다들 가끔 튀어나오는 이상한 놈을 제외하고는, 다들 돌아가며 한마디씩 했고.

"하하! 내가 라티스단의 주인이자 바로 북대서양의 지배자 아틀라스네. 뭐, 만나서 반갑네 그려!"

호탕하게 인사한 아틀라스를 끝으로, 내 차례가 왔다.

나야 뭐, 딱히 첫만남부터 튈 생각은 없었음으로 그냥 평범하게 인사하기로 했다. 조금씩 조금씩 장악해야지, 처음부터 나서면 되는 일도 안되는 법.

그래서 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모두들 반갑습니다. 저는 대한민국에서 에고스트림이라는 빌런연합을 운영하고 있는 에고스틱이라고 합니다. 다들.."

"잠깐."

그렇게 내가 살짝 웃으며 말을 하던 그때, 누군가 내 말을 끊었다. 뭐야?

누군가하고 봤더니, 이쪽을 보며 사납게 웃고있는 아까 그 모히칸 머리를 한 빨갱이가 있었다.

"내가 너 알지. 에고스틱 아니야? 대한민국의 그 유명한... A급 빌런."

나를 향해 한쪽 입꼬리를 끌어올린 채 그렇게 말하는 그를 보며, 나는 미소지으며 조용히 생각했다.

...음. 싸우자는건가?

...아무래도 첫날부터 누구 하나 담궈야 하게 생겼다.

제 160화

화도발

원탁.

수많은 빌런들이 모여있는 그 엄숙한 자리에서, 저 맞은편에 앉아있는 빨간 모히칸머리의 남자, 히치칸이 지랄을 하고 있었다.

뭐, 무료해진 회담에 경각심을 주기 위해 저러는것도 나쁘지는 않다. 원래 이런거 구경하는게 제일 재밌기도 하고.

근데 문제는 나한테 지랄중이라는거지.

"아니, 다들 생각해보자고. 여기가 어디야. 다 한 조직을 이끄는 S급 빌런들이 모인 곳, 아닌가? 그런데 저런 A급 빌런이 이곳에 오는게 말이 되냐 이말이야."

어깨를 으쓱이며 그렇게 말하는 빨갱이.

갑자기 진행되는 일에 무슨 일인가 하고 몇몇이 이쪽을 보고 있는 그 상황에서.

나를 향해 그렇게 말하는 빨갱이를 향해, 나는 그냥 별 대꾸없이 조용히 미소만 지어주었다.

왜냐고?

"네이놈!!!!!"

옆에 있는 우리 아틀라스 아재가 대신 나서주고 있으니까.

원탁을 주먹으로 쾅치고 거의 숫제 몸을 일으킨 아틀라는, 분노를 폭발시키며 놈에게 소리쳤다.

"뚫린 입이라고 아주 아무말이나 지껄이는구나! 감히 이 아틀라스의 친우한테 그따위 망발을 지껄여? 네이놈!!!"

"...아니, 거 참. 내가 뭐 틀린말 했습니까?"

"갈!!!!!!"

이제는 빨갱이를 후두려패기 위해 나서려는 듯 거의 의자에서 반쯤 일어난 아틀라스 아재. 샤우팅이 얼마나 큰지 번역마법을 뚫고 그의 욕설이 원어로 들릴 지경.

그런 그에게 여전히 팔짱을 낀 채 빈정대는 히치칸이였으나, 딱봐도 좀 당황한게 보인다. 여기서 아틀라스가 나설 줄은 몰랐나보지.

...아니, 내가 여기 앉아서도 아틀라스랑 속닥이며 대화 주고받기도 했는데 그것도 못봤나? 하여튼, 아틀라스가 이제는 하다못해 창마저 소환해 싸우려 하는 그 순간.

"그만."

원딱 저 끝에 앉아있던 셀레스트의 맑은 목소리가, 갑작스럽게 울려퍼졌다.

"...신성한 회의에서, 폭력은 결코 용납될 수 없습니다. 다들 진정하시지요."

"....흠, 쯧."

"...."

무슨 하얀색의 둥근 베리어같은게 원탁 주위로 생겨나, 둘 사이를 막었다.

거칠게 혀를 차며 다시 의자에 앉은 아틀라스와, 못마땅하다는 표정으로 턱을 괴고 앉은 히치칸.

...뭐, 결국 셀레스트가 개입해서야 일이 끝났다.

휴. 갑자기 뭔 난리레.

특히 저 빨간 모히칸 머리를 한 녀석은 여전히 심기가 안좋아 보였는데, 아마도 일이 계획대로 안풀려서인거 같은 모양. 그래도 전세계 도시를 동시에 습격할 정도의 능력을 갖춘 아틀라스한테 대들 깜냥은 없는지,혀만 차고 가만히 있는 모양이다.

음, 이래서 사람은 역시 빽이 있어야돼.

그렇게 뜬금없는 둘의 싸움도 끝나고, 갑작스러운 사건때문에 원탁위 분위기가 어색해질 만도 하였으나... 다들 관심도 없었다는 듯,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거처럼 통성명은 계속되었다.

역시 모두들 닳고 닳은 노련한 빌런이라 그런지, 뭔 일이 터져도 별 신경도 안쓰는 모습. 아마 이런 아사리판에는 다들 익숙한가보다.

하여튼 그런식으로 다시 무탈하게 회의가 흘러갔으나, 한가지 차이점이라면 나를 향한 은근한 시선들이 몇개 생겼다는건가. 정확히는 '저놈은 뭔데 아틀라스랑 친분이 있지?' 그런 시선이다.

아틀라스. 겉보기에는 아재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이 기라성같은 빌런들 틈사이에서도 강함으로 따지면 한손안에 드는 그. 그런 그가 대신 분노까지해줄 정도인 나는, 대체 무슨 사이인건지 궁금하겠지. 심지어 A급인데.

곤란하다. 오늘부터 이런 관심을 쏠리는건 예상못했거든.

...아니지, 오히려 이렇게 된 이상...?

물론 내가 그러든 말든 이 회담의 대표자 셀레스트는 그 이후로 이쪽으로 눈길도 주지 않았다. 뭐, 애초에 아틀라스가 날 추천한거니까 그와 내가 친분이 있다는걸 그녀는 알고 있을테니.

어쨌든 셀레스트에서 시작한 순서는 다시 돌고 돌아 셀레스트 바로 옆에 앉아있는 짧은 금발의 기사한테 까지 왔다.

"...제 이름은 아서. 세븐헤븐즈 나이트의 수장입니다."

짧게 소개를 마친 그 남자.

갑옷을 입고 있는게 눈에 띄기는 하지만, 얘보다 더 기상천외한 복장이 많아서 별로 주목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나만은 그에게 주목했다.

아서. 세븐어쩌구의 수장이라는데, 그냥 한마디로 말해서 셀레스트 심복이다. 애초에 세븐이 셀레스트의 연합 에테리아의 하위 조직인걸. 애초에 셀레스트 옆에 앉아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만.

참고로, 저 남자의 능력은 그가 입은 갑옷을 포함한 기사복장때문에 싸움 관련된거라 착각하기 쉽지만... 사실 그건 위장이고. 그는 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바로 상대의 위험도. 즉, 강함이라고 해야하나. 그런걸 알 수 있다는 능력이다. 이 능력으로 인해 그는 곧바로 셀레스트의 핵심 심복이 되었다. 아마 셀레스트의 이번 회담의 목적중엔 다른 빌런들의 위험도를 측정할 이유도 있었을거다.

물론 연약하고 무해한 나는 전혀 신경쓸게 아니지만. 대충 순간이동이나 염동력.. 검은 촉수? 이런걸로 무슨 평가를 받겠어. C급 취급을 받아도 이상할게 없다. 그런즉슨 셀레스트가 오늘 날 신경쓸리도 없으니, 여기서 영향력을 보일려면 나중에 다른식으로 아가리를 털어야하고.

내가 그런 생각은 하고 있을 때쯤, 드디어 한바퀴 돌아 다시 셀레스트에 차례가 돌아왔다.

"저는 에테리아의 수장 셀레스트. 그리고 이 모임 카테달의 개최자입니다."

굳이 모두가 아는 사실을 한번 더 말한 그녀는, 이내 신성함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다시 말을 이었다.

"...여기까지 해서 서로 통성명도 끝났으니."

-이제는 제가 이 모임을 개설한 이유이기도 한, 메인을 시작하겠습니다.

셀레스트는 여전히 청량하면서도 성스러운 맑은 목소리로, 설명을 시작했다.

카테달. 모든 빌런들이 주기적으로 한번씩 만남을 갖는 모임.

이 모임의 기본적인 원칙은, 서로 하나 이상씩 자신이 알고있는 고급 정보를 공유하는 것.

여기있는 모든 이들은 조직을 운영하며, 듣는 귀가 많은 만큼 다양한 정보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협회의 동향이든, 초상능력에 관한 정보든, 정부나 국제정세든 뭐든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정보를 공유하자.

각 국가의 지부마다 서로 유동적으로 정보를 공유하는 히어로 협회처럼, 빌런들도 함꼐모여 정보를 공유하는 모임을 갖자는 소리.

그런 그녀의 설명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고 납득했다.

다들 하나의 도시를 넘어 나라와 대륙에 영향을 끼치는 이들만큼, 정보의 소중함에는 공감하는 것.

즉, 다시 말해 이 모임은 모두에게 좋은 만남이다.

비록 자신도 하나의 고급정보를 털어놓아야하지만, 그만큼 수십개의 정보들을 얻어갈 수 있으니. 거기에 셀레스트가 관리하여 정보의 질도 어느정도 유지되고. 계속 질낮은 정보만 풀면 모임에서 퇴출당할테니.

어쨌든 그런 셀레스트의 설명에 납득한 분위기.

그러면서 그녀는 오늘도 일단 정보공유의 시간은 갖되, 이번시간만은 풀 정보가 없으면 그냥 넘어가도 된다고 설명하며.

그녀가 준비해온 정보를 하나 풀기 시작했다.

"여러분. 다들 아실껍니다. 전세계적으로 능력자의 숫자가 점진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 말에 몇몇은 고개를 끄덕였다. 뭐, 뉴스만 틀어도 나오는 사실이니.

그리고 셀레스트는, 거기서 충격적인 정보를 풀었다.

"이에, 히어로 수급이 전보다 원할해진 국제 히어로협회가 미합중국등 히어로 대국의 S급 히어로들을 다른 국가로 파견시킨다고 합니다. 다들 각별한 주의를 해주시길."

그 말에 빌런들의 표정이 굳었다.

자국 히어로 유출을 극도로 자제하던 미국이 그런다는걸 못믿는 분위기. 그러나 셀레스트가 공유해 준것이니 믿지 않을 수도 없어서, 다들 표정만 굳은 모양세다.

물론 원래 알고있던 나는 별 감흥이 없었다. 어차피 그런다고 한국에 파견보낼리도 없고. 나야 스타더스만 잘 상대하면 되지.

하여튼, 정보를 푼 셀레스트는 이어서 다들 돌아가며 혹여나 풀 정보가 있으면 풀어보라 했고.

대다수는 그냥 패스했다. 뭐, 오늘은 굳이 풀 필요가 없으니까 다음에 푼다는거겠지. 준비도 안됐고.

그래도 몇몇은 자기가 알고있는 정보를 풀기는 했다. 그마저도 짧고 간단한, 추측성 정보였지만.

그런 사이에, 어느덧 내 차례가 코앞으로 왔다.

그리고.

나는, 살짝 고민했다.

원래라면 나도 첫날부터 나설 생각은 없었다. 그냥 조용히 패스하려 했지.

그런데.

"..."

나는 여전히 건들건들하고 있는 저 붉은 모히칸 머리를 바라보았다.

...음, 어차피 저놈때문에 이미 어그로 끌렸는데.

그냥 나서도 되는거 아닐까?

그렇게 내 차례가 왔고.

나는, 나서기로 결정했다.

그래. 뭐, 영향력 확보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지. 심지어 제물감도 있고.

저 히치만인가 뭔가하는 빨갱이, 어차피 3개월뒤에 죽잖아?

"음..."

잠시 침묵한 나는, 이내 입을 열었다.

"저도 그냥 들은 정보인데, 유럽에 독일 말입니다."

나는 그렇게 운을 땠다.

자기가 살고있는 독일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고개를 돌려 관심을 가지는 빨갱이.

그 상태에서, 나는 살짝 미소지으며 말을 이었다.

"독일에 큰 일이 들이닥친다는 소문이 있더라고요. 당분간 독일에 갈때는 조심하시는걸 권해드리죠."

거기까지 말하고, 나는 고개를 살짝 그 빨갱이 쪽으로 돌렸다..

"...특히, 독일 사시는 분은. 더욱 조심해주세요."

그리자 나와 눈이 마주친 놈을 향해.

그런 그를 행해 나는 웃는 낯으로, 미소지은 채 다시한번 말해줬다.

"3개월안에, 어떤 비극적인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요?"

놈을 향해 피식 웃으며 말한, 명백한 도발.

이에 빨갱이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이자식! 감히 나를 위협하는거냐!"

책상을 쾅 친 놈.

그리고 이에 질세라 아틀라스도 책상을 쾅 치며 나서줬다.

"네이놈!!! 이제는 그가 충고를 알려줘도 시비인 것이냐! "

그렇게 다시 일어날뻔한 싸움은, 셀레스트가 한숨을 쉬며 다시 막아며 중재되었다.

결국 다시 자리에 앉아서 여전히 머리카락만큼이나 붉어진 얼굴로 이쪽을 째려보는 히치만. 물론 나는 미소지은 채 무시했다.

뭐, 잘됐다.

저놈이 내 말을 믿을리도 없고, 3개월뒤에 어차피 그 사건으로 죽을테니, 이제는 더 신경쓸것도 없겠지.

그렇게 내 차례는 넘어갔고, 아까와 마찬가지로 다들 방금의 소동엔 별 관심을 안가지는 모양이었다.

그냥 으레있는 빌런들의 기싸움이라고만 생각하는 모습.

...물론 저놈이 3개월뒤에 그 일로 죽어오면, 그때가선 어떻게 생각할진 모르겠지만.

뭐, 그래도. 누가봐도 걔의 죽음은 나와 아무런 연관도 없을테니, 이걸 말했다고 놈을 죽인게 나라고 몰아갈수도 없을거다.

다만 이상하게는 생각할거다. 내가 그게 일어날지 어떻게 알았는지를. 물론 얻어맞춘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혹시라도 내가 정말로 무언가 조치를 취한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물론 딱봐도 아무 상관 없어보이겠지만, 그래도 혹여나 고도의 수를 쓴게 아닐까라는 의심.

그리고 그런 의심이, 나를 더 위협적으로 느껴지게 만들거고.

그래.

이것이 바로 약자의 방식이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위험한 놈이라고 착각하게 만드는거. 실제보다 강해보이게 스스로를 포장하는 것.

그리고 우리 빨갱이가 그 희생양이고.

뭐, 어차피 난 진짜 아무것도 안할테니까 그건 아닌가. 남들도 그렇게 생각할진 모르겠지만.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동안, 정보공유의 시간도 끝이 났다.

4개월뒤에 다시 만나자는 셀레스트의 말을 마지막으로, 해산.

그렇게 다들 각자에 자리에 일어나, 왔던 복도로 되돌아갔다.

가는길에 빨갱이가 나를 또 째려보기도 했는데, 역시나 그냥 미소로 무시해줬다. 이놈을 실물로 보는것도 마지막이네. 잘살아라. 남은 3개월간.

"에휴. 이상한 놈때문에 자네가 좀 곤혹스러웠겠지만, 그래도 나름 나쁘지 않은 만남이었네. 특히 자네의 마지막 도발은 아주 훌륭했어! 속이 다 시원하더구만. 하하하하!"

"하하,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곤란할 뻔했는데, 아틀라스님 덕분에 잘 물렸습니다."

"하하하! 아닐세 아닐세! 내 당연히 도와야지!"

그렇게 화기애애하게 웃으며, 우리는 왔던 검은 복도를 다시 되돌아갔다.

음, 이제야 집에 가겠네.

큰일도 끝났으니, 푹 쉬자.

오늘은 비록 아무도 나를 신경쓰지 않았겠지만, 뭐. 다음부터 천천히 하면 되니까.

***

모두가 떠난 원탁.

어두운 그 자리에서, 아서는 자신의 상관인 셀레스트에게 진중한 목소리로 보고했다.

"...그게, 정말인가요?"

"네 셀레스트님. 이중에서 에고스틱, 이라던 그 자가... 제 능력에 의하면 제일 위험하다고 판단됐습니다."

"...에고스틱."

셀레스트는 자신의 백발을 매만지며,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제 161화

화수확

카테달.

S급 빌런, 그들중에서도 세계 단위로 노는 최강자들이 모인 빌런 회의.

그곳에서 갔다온 나는, 다시 정겨운 한국으로 돌아와, 그리웠던 집에 소파에 널브러져 있었다.

"으어어..."

그래. 이거지.

역시 집이 최고다, 집이 최고야.

"다인씨, 여기요."

"아, 감사합니다 수빈씨."

수빈씨가 타주신 따뜻한 캐모마일 허브티를 마시며, 나는 만족에 겨운 한숨을 쉬었다.

그래, 이게 인생이지. 어쩌면 행복은 멀리있는게 아니지 않을까? 역시 밖에서 고생고생 하다가 오면 집 생각이 간절해지는 법이다.

"오빠. 그래서 어떻게 된거에요?"

"뭐가?"

"이번에 다른 빌런들 만나고 온거요. 별일 없었어요?"

옆에서 묻는 서은이의 질문에, 나는 곰곰히 생각해봤다.

별 일 없었냐고? 별 일 없었지. 3개월뒤에 죽을 빨갱이가 시비털어서 겁준거 말고는 별로 한거 없다.

"음..."

...별거 아닌거 맞겠지?

하여튼, 이 얘기까지 해서 괜히 걱정시키고 싶지는 않았기에, 대충 별일 없었다고 답해줬다. 실제로 그건 앞으로 내가 할 일에 비하면 별거 아니기도 하고.

그렇게 서은이와 우리 에고스트림 멤버들을 안심시켜준 다음에야, 나는 다시 편안하게 차를 음미할 수 있었다.

"...."

거실의 커다란 창밖으로 들어오는 따스한 햇볕.

그 아래에서 노곤하게 햇빛을 맞으며 차를 한 모금씩 한 뒤, 나는 다시 생각에 잠겨 이번 회의를 다시한번 복기해봤다.

세계 정상급의 빌런 셀레스트의 주도로 이루어진 빌런회의, 카테달.

첫날이니 만큼 별 얘기가 오가지는 않았지만.

'...확실히, 다들 강하다.'

사실 뭐... 능력이야 원작을 통해 다 알고있었으니 새로울 건 없지만, 개념적으로 알고만 있는것과 실제로 만나서 느끼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그냥 딱봐도 느껴지는 심상치않은 기운.

지금까지는 대한민국 안에서만 있어서 잘 몰랐었지만, 역시나 이번 회의장만 봐도 외국쪽이 얼마나 개판일지 짐작 가능하다.

물론 그쪽은 S급 빌런들이 많은 만큼, 히어로들 또한 그에 상응할 정도로 많아서 어찌어찌 힘의 균형이 유지되고는 있는 상태. 아직 S급 히어로가 한명도 없는 대한민국과 S급 히어로 수십명을 보유한 미국. 둘만 놓고 비교해봐도 그냥 기준이 다르다는걸 알 수 있다.

특히 셀레스트는. 역시나 원작에서 언급한대로 그냥 격이 다르다는 느낌. 하얀 성녀복에 눈쪽을 희미하게 가리는 베일로 얼굴을 장식한 그 모습이 성스럽고 거룩하게 보일 지경이니 말 다했다. 백발을 늘어트린 그 아름다운 모습만 보면은 히어로로 보일 지경. 실상은 협회에서 제일 위험하다고 판단한 빌런이지만.

물론 다른 빌런들도 그녀에 비하면 좀 덜할 뿐이지, 기운이 만만치 않은건 똑같았다. 강자들은 원래 기를 뿌리고 다니나? 하긴, 아틀리스 아재도 처음에는 위압감 넘쳤었지.

...뭐, 사실 이건 중요한게 아니다.

중요한건 그 S급 빌런들 중 대표격들만 모인 카테달, 거기서 내가 어떻게 행동하냐지.

"....흠."

나는 차를 한모금 더 마시며 생각에 잠겼다.

사실, 인정할건 인정해야한다.

그들중에서 내가 제일 약하다는걸.

애초에 나는 초대받지도 못한걸, 아틀라스를 이용해서 간신히 들어간거니.

'...아마, 아무도 나한테 관심이 없겠지.'

내가 아틀라스랑 친한거에 살짝 호기심을 느낄 뿐.

그 외에는 별거 없다고 생각해 빠르게 관심을 끊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셀레스트는... 아틀라스의 권유로 나를 초대하기는 했지만 못마땅해 할수도 있다. 별로 강하지도 않은 애가 왜 들어온거지- 하고. 애초에 편지도 부족하다고 안줘서 아틀라스랑 같이 왔잖아.

"즉, 나를 신경쓰는 사람은 아직까지는 아무도 없다."

나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래, 이게 펙트지. 아마 온갖 능력자들을 나 만나봤을 다른 빌런들은, 고작해야 A급인 나한테 큰 관심이 없을거다.

그리고 이걸, 나는 오히려 이용할거고.

나한테 관심이 없다는건, 날 별로 경계하지도 않고 나에대한 정보도 없다는 소리다. 애초에 히어로-빌런 사회에서 한국은 약간 주류 범죄집단이랑 동떨어져 있어 애초에 정보라는게 없을테고.

즉, 나의 목표는 다른게 아니다.

바로 빌런회의, 카테달을. 천천히, 야금야금 먹어가는 것.

그들에 비해 모든게 딸리는 내가 가지고 있는것은, 정보와 미래.

그리고 이건, 아무것도 아닌 내가 그 누구보다 위험해 보이게 만들어줄 최고의 도구들이다.

말 몇마디로, 저 날고기는 S급 빌런들을 농락할 유일한 방법.

그리고 그 시작이, 독일의 히치칸을 비명횡사 시켜버리는 것.

사실 그냥 나 없어도 죽을 놈이 죽는것일 뿐이지만, 그걸 그들이 어떻게 알겠어. 내가 모종의 작용을 했을거라고 의심하는 이들이 분명 생길거다.

그리고 나는 그 의심을 역으로 이용해, 실리를 챙길거고. 내가 A급인게 더 강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A급을 셀레스트가 이 모임에 불렀다는건, 무언가 그에게 엄청난 능력이 있는게 하고-. 뭐, 그들은 내가 아틀라스 빽으로 들어온것 까지는 모르니까.

...어차피 이 모든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는 않을거다.

천천히, 가랑비에 옷 젖듯. 그들은 뭔가 이상하다는걸 알게 되겠지.

"....."

그렇게 나는 한동안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아 앞으로 카테달에서 어떻게 해야할지 계획을 짰다.

아틀라스는 있으니, 그를 중심으로 세력을 구축하면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중국과 일본 빌런들도... 어지간하면 끌어들이는게 좋을테고. 셀레스트는 한동안 날 신경쓸리가 없으니 걱정 꺼도 되고... 이번 카테달 참여 빌런 리스트를 국제 히어로 협회 총장이 입수하기는 하지만, 원작을 보면 어차피 별 문제는 안될거고...

한참을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던 나는, 어느새 컵이 텅 빈걸 확인하고는 잠시 멈췄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사실, 지금부터 걱정할 문제는 아니기는 했다. 어차피 다음 모임까지는 무려 4개월이나 남았으니까.

그렇게 생각에 잠겨있다 현실로 돌아온 나는, 문득 앞을 보았다가 저 아래에 있는 서자영이랑 눈이 마주쳤다.

"...?"

"끝났어?"

멍한 눈길로 나한테 그렇게 묻는 그녀.

내가 무슨 소리인가 생각할 때, 서자영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아니... 너가 혼자 막 중얼중얼 하길래 재밌어서 보고 있었지. 이제 생각 다 끝났나봐?"

"...음. 그렇지."

헛기침을 하며 답한 내 말을 들은 서자영은, 한층 더 진하게 웃었다.

아니. 그걸 보고있는 사람이 있을줄은 몰랐지.

서자영은 늘 거실 바닥과 거의 동화되어 있어서, 가끔씩 서자영이랑 같이 있어도 그녀의 존재를 잊을 때가 있다.

"흐응..."

햇볕을 받아 반짝이는 그녀의 보라색 머리.

처음 봤을때처럼 여전히 신비롭게,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는 눈동자로. 그녀는 내게 물었다.

"근데... 그래서 무슨 생각을 하고있던거야?"

"그냥 뭐. 일 생각이지 뭐겠어. 빌런회의에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그런것들."

"그래..."

내 말을 들은 서자영은, 이내 금방 흥미를 잃었다는 듯 다시 머리를 바닥에 기대고 뒹굴뒹굴 했다.

뭔가 더 말하려고 하다가 마지막 순간에 망설인거 같은 분위기인데, 기분탓이겠지?

하여튼 나는 컵을 정리한 뒤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음. 이제 이 다음에는 뭘 해야 할려나.

어차피 테러는 꽤 최근에 해서 상관없고... PMC준비나 하면... 당분간은 별 일 없으려나.

그렇게 결론내린 나는, 서은이가 있는 지하실이나 내려가기로 결정했다.

이번에는 정말로 스타더스를 이길 수 있다고 강조하며 열과 성을 다해 만들던데, 잘 되고 있으려나.

은월이와 세희도 돕고 있는걸로 아는데. 나도 얼굴 좀 비춰야지.

그런 한가한 생각을 하며, 나는 아래로 내려갔다.

그래, 이번에는 좀 쉬자. 애들이랑 놀기도 하고. 저번에 놀이공원 가고싶다고 노래를 부르던데, 한번 유원지나 대리고 갈까. 최세희랑 수빈씨도 은근 기대하는 눈치고.

나는 그런 한가한 생각을 하며 내려갔다.

...스타더스가 좀 걱정이긴 한데, 그거 빼고는 별 문제 없으니까 뭐.

당분간은 별일 없을거다. 응.

***

미국에 위치한, 국제 히어로 협회 본사.

총장실에 그곳에 앉아있던 여성은, 자신의 손에 쥐어진 서류를 천천히 바라보았다.

"...."

국제 협회의 주적, 셀레스트의 주도하에 열렸다는 빌런회의.

그 회의에 참여한 이들의 명단을 입수한것.

...그리고 역시나, 그녀가 예상했던 인물들은 전부 들어가있었다.

"...역시."

조용히 중얼거리는 총장.

일전에 공개되었던 대로다. 큰 변동사항은 없는 모습.

이걸 어찌해야할까.

과로에 의해 눈가 밑에 생긴 다크서클. 그걸 꾹꾹 눌러가며, 협회 총장은 조용히 생각했다. 어차피 예상했던 일이기도 했고, 건드려봤자 긁어 부스럼이니 일단은 넘어가자고.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없기도 하고, 이미 사전에 예측되었던 유명 빌런들만 다 모여있어 딱히 특별할것도 없었다. 다만 이들이 뭘 할지가 문제인데... 그건 사후에 대처하는게 최선이겠지.

그렇게 한숨쉬며 서류를 읽던 협회장은, 문득 한 인물의 이름에 멈칫하였다.

"잠깐... 에고스틱?"

얘가 누구였더라.

빠르게 기억을 복기한 그녀는, 그가 한국에서 활동하는 A급 빌런이라는걸 기억해냈다. 저번에 아틀라스, 그와 협약을 맺은 대한민국의 빌런.

"....A급이 여기 껴있다고?"

그녀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도 그럴것이, 에고스틱 빼고는 전부 세계단위로 난리치는 S급빌런 수장들인데, 뜬금없이 그만 A급에 한국에서만 활동하는 빌런인 것.

그렇게 이상함을 느낀 그녀는, 잠시 시간을 내어 협회 데이터베이스에 쌓인 에고스틱에 대한 정보를 찬찬히 읽어봤고.

시간이 지난후, 이내 결심을 내렸다는 듯 수화기를 들어 어디론가 연락했다.

"...어, 협회장. 여기 위로 지금 시간 남는 S급 히어로 한명 불러봐요."

아무래도 이번에 어디로 출장좀 보내야겠으니까.

제 162화

화도움과 연락

"아이고, 당연히 저희가 힘 좀 써봐야지요. 다른 누구도 아니고 회장님 부탁인데, 어찌 여부가 있겠습니까."

"감사해요."

고급스러운 한식당.

그 안쪽 깊숙한 곳에서, 양복을 입은 중년의 남성과 하늘색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트린 여성이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게 다 이설아 회장님께서 나라를 생각해서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남자의 아부섞인 말에, 조용히 미소지을 뿐인 그녀.

이내 자리가 파할 무렵, 그녀는 흘러가듯 그에게 말을 건냈다.

"요즘 야당이 재미를 못 본지도 한참 되었다던데..."

"아이고... 저희가 더 잘해야지요."

"이번에 잘됐으면 좋겠네요. 특히... 감의원님처럼 능력있는 분이라면 그 과정에 충분히 기여하실거 같네요."

해석. 이번에 한자리 해먹을 수 있게 팍팍 밀어주겠다.

정치짬밥이 있는 만큼 그 속뜻을 모를 리 없는 감의원의 얼굴이 활짝 펴지며, 연신 감사하다는 말을 내뱉었다.

이내 감의원은 희희낙락하게 웃으며 사라지고.

썬팅된 검은 리무진의 뒷자석에 올라탄 이설아는, 시트에 등을 기댄 채 눈을 감고 생각에 빠졌다.

유성그룹. 그리고 이설아. 그녀는 이미 대한민국에서 누구도 넘보기 힘들 정도의 권력을 쥐는데 성공했다.

이미 사실상 한국의 경제는 그녀의 손아귀에 있다고 해도 무리가 아닌 상황. 이에 압도적인 재계 장악력을 바탕으로 정계도 차츰 먹어치우기 시작한 그녀는, 이미 여의도를 반쯤 장악했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었다.

이에 정부와 의원들도 이설아와 유성기업의 눈치를 보는 상황에서.

당근과 채찍을 조금 잘 이용하면, 유성기업이 그 어떤일을 하든 정치권에서 말이 나오는걸, 어느정도는 막을 수 있었다.

거기에 이미 여권은 예전에 장악 끝낸 그녀가, 야권에서도 다른 말이 안나오도록 오늘 만남을 가진거고.

"휴우..."

바쁜 와중에 정치권 인사들과 여럿 만나 말을 맞추는건 그녀에게도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어떻게 끝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에고스틱. 다인의 부탁이었으므로.

"..."

PMC.

에고스틱이 자신한테 꺼낸 이 사업은, 생각보다 문제가 많은 사업이었다.

일단 기업이 사적으로, 그러니까 돈으로 능력자들을 고용한다는건데, 이게 잘못하면 기업이 무장 조직을 가지려 든다며 여러 소리가 나올 수 있기 때문.

이미 능력자들의 전쟁터가 된 다른 나라에서야 꽤나 일어나는 일이지만, 아직까지 한국에서는 한번도 없던 일.

이에 이설아는 처음부터 신중히 접근해야했다.

사실 정계나 언론보다 더 큰 문제는 협회였지만, 이는 협회장과 그녀의 끈끈한 커넥션으로 어떻게 할 수 있을거다. 애초에, 그녀도 히어로 아닌가. 협회 탈퇴는 절대 안한다고 하고, 여러 지원을 약속하며 다 인류를 위한거라고 넘어가면 어떻게 잘 될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어느새 이설아는 예전에 다인과 나눴던 대화를 반추해봤다.

...

"...능력자들을 모아, 사기업을 하나 만들꺼야. 일명 PMC."

"네?"

그날. 유성기업 꼭대기 사장층.

이제는 그녀와 다인의 공식적인 만남의 장소가 된 그곳에서, 다인은 진지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설명했었다.

A급 까지는 바라지도 않고, B급 이하의 능력자들을 다수 고용해서 경호업체 같은 걸 만든다든 그의 계획.

물론 표면만 그런거고, 실제로는 훈련부터 실전투입까지 준비할 PMC.

"능력자들이 협회에 히어로가 되는걸 꺼리는 이유가 뭔지 알아?"

박봉에, 일은 고되고, 욕은 많이 먹기 때문.

히어로가 한번의 실수라도 하면 매도당하는게 일상인 대한민국에서, 히어로로 살아가는건 쉬운게 아니다. 아싸리 돈 많이 주는 A급이여도 안할 마당에, B급 이하는 더더욱.

그렇게 설명을 한 에고스틱은, 이내 그녀에게 설명했다.

그런 잉여인력들을 놀리느니, 차라리 싹다 고액에 고용해서 훈련에 정신교육까지 시키는게 맞다고.

왜냐하면...

"앞으로, 치안이 굉장히 혼란해질거야."

마치 미래를 보고 온듯 마냥 확정이라는듯 단언하는 다인의 진지한 말에, 이설아는 자기도 모르게 납득했다. ...대체 어떻게 아는건지는 모르겠지만.

"즉... 앞으로 능력자들이 돈벌겠다고 빌런타락하기 전에, 아예 고용하는게 나쁘지 않을거란 소리지. 그리고 걔들도 다 쓸데가 있을거고."

그의 말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이거였다.

대한민국은 모종의 사건으로 치안이 무너지고 빌런이 판을 친 날이 올거다.

그때를 대비해, 미리미리 능력자들을 사적으로도 고용해 유사시 전력으로 훈련시켜야한다.

사실 따져보면 근거도 뭣도 없는 말.

그러나 이설아는 그걸 믿었다. 지금까지 그가 한말이 틀린적이 없기도 한... 에고스틱. 다인의 말이었으니까.

"이건 다른 누구도 아닌, 너만이 들어줄 수 있는 부탁이야."

다인은 그녀의 눈을 마주쳐오며, 그렇게 말했었다.

능력자들로 사조직을 만든다. 그 누가 시도하는 순간, 정부와 협회의 역풍에 그대로 바스라 질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을 반쯤 먹은 유성기업이 아니라면, 누구나.

그렇게 자신을 바라보며 진지하게 말하는 다인에게, 이설아는 순순히 도와주겠다고 답했다.. 뭐... 애초에 이제 대한민국이 거의 그녀꺼인만큼, 한국을 지키는건 그녀 입장에서 좋기도 하고. 애초에 자신이 잘못한 게 있기도 하고. 다인씨에게는 받은게 많을 뿐더러...

'다른 누구도 아닌, 나만이 도와줄 수 있는거니까...'

그렇다.

이건 오직 이설아, 자신만이 에고스틱에게 해줄 수 있는 일.

거의 미래를 보는 능력을 지녔을 정도로 판단력이 좋은 에고스틱도, 그의 능력만 강한 동료들도, 심지어 스타더스도 할 수 없는.

이설아 '자신'만이 해줄 수 있는 일이니까.

"으흥..."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왜인지 그 사실을 떠올리자 기분이 좋아진 이설아는, 자기도 모르게 콧노래를 하며 리무진 뒤에서 다리를 까딱거렸다.

그래. 지금까지 대한민국 먹어보겠다고 아옹다옹 한 보람이 있다. 이게 아니였으면, 과연 그녀가 에고스틱에게 이런 걸 도와줄 수 있었을까?

앞으로 에고스틱이 PMC를 떠올릴때면, 자연스럽게 이설아 자신도 떠올리게 되겠지.

그렇게 천천히 그의 마음을 자신으로...

기분이 좋아보이는 듯 리무진 뒤에서 다리를 까딱거리던 이설아는, 이내 갑자기 무언가를 떠올리곤 운전기사에게 말을 건냈다.

"아 맞다. 여기 이 주소로 가주세요."

"알겠습니다 사장님."

그래, 서울에 온 김에 오랜만에 하루 얼굴이라도 볼까.

그렇게 생각한 이설아는, 차를 돌려 하루의 집으로 향했다.

"하루..."

오랜만에 보고싶네.

사실, 하루는 설아에게 있어 거의 유일한 친구였다. 이제는 다인이 생겨 예외라지만, 그전까지는 거의 유일.

어린시절부터 만나 학창시절을 함께 보냈으니까...

"오랜만에 가면 좋아할려나?"

사실 최근에는 에고스틱 관련 일로 몇번의 사소한... 마찰이 있기는 했지만. 그런걸로 둘의 사이가 멀어질정도는 아니다. 애초부터 서로가 서로의 고민을 털어놓는 거의 유일한 상대였으니까. 이설아가 말을 놓는건 하루가 유일하기도 했고.

어쨌든 그녀는 이번에 하루의 집에 깜짝 방문하기로 했다. 협회에 없다니 아마 집에 있을거다. 특히 최근에는 에고스틱이 테러를 안한지도 벌써 3개월이 넘었으니, 할 일도 없을테니. 워커홀릭 아니면 집순이인 신하루가 어디 있을지는 뻔한일.

그렇게 생각한 이설아는, 이내 차를 타고 하루가 사는 아파트에 도착했다.

이내 현관문 앞까지 도착한 그녀.

"흐흥... 깜짝 놀래켜줘야겠다."

이내 이설아는 자연스럽게 신하루의 집에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기 시작했다.

서로 워낙 친하다 보니 아무때나 오라며 이미 서로의 집 비밀번호는 알고있는지 오래.

이내 문을 열고 들어간 이설아는, 밝은 소리로 외쳤다.

"하루야, 나 왔어~."

이내 미소를 띄우고 들어온 이설아를 맞이한건.

어떻게 된건지 약간 어두컴컴한 집.

왜인지 느껴지는 싸한 분위기에, 이설아는 작게 중얼거리며 앞으로 향했다.

"하루야..?"

돌아오지 않는 대답.

하루가 없나, 하고 거실쪽으로 향하던 그녀는.

자연스럽게 벽쪽에 붙어있는 에고스틱의 사진에 순간 멈칫했다.

"...?"

에고스틱의 사진과, 그 옆에 적혀있는 글씨들.

이게 왜 여기 하루 집에 걸려있지.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시선이 가던 그때.

"설아야?"

"힉!"

순간 뒤쪽에서 갑작스레 들려온 목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얼음을 쏠 뻔했다.

놀라서 고개를 돌리자 보인건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진, 신하루.

갑작스러운 공포분위기에 이설아의 몸이 굳을때.

"언제왔어?"

금발 머리의 물기를 털며 반갑다는 듯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한 하루는, 이내 거실에 불을 켰다.

다시 밝아진 집. 이내 아까의 무서운 분위기와 다르게 밝아보이는 하루를 보며, 설아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순간 놀라긴 했지만, 역시 하루는 하루였다. 겉으로는 강하고 무뚝뚝한 스타더스인척 해도, 친구들에게만 보여주는... 사실은 착하고 따뜻한 신하루.

"방금왔어... 씻고있었구나. 순간 없는줄 알았네."

"아하하, 잘왔어."

미소를 지으며 반겨주는 하루.

요즘 뭐하고 지내나 살짝 걱정했었는데, 의외로 밝아보이는 모습이었다.

이에 안심한 설아는, 여전히 놀란 가슴을 진정시킨 채 웃으며 말했다.

"잠시 서울 온 김에, 우리 하루 얼굴이나 볼까해서 왔지. 아 근데 하루야, 이건 뭐야?"

이설아는 궁금하다는 듯 벽에 걸린 에고스틱의 사진을 가리키며 그렇게 물었고.

이내 신하루는 살짝 어두워진 눈빛으로, 아무렇지 않게 답했다.

"아. 에고스틱 어떻게 잡을까 계속 생각하고 있었거든. 물론 걔가 요즘 테러를 안해서 이렇게 혼자 생각해봤자 아무 의미도 없긴 하지만. 집에서 자기 동료들이랑 놀고있나보지."

그렇게 말하며 아하하- 웃는 하루.

...그리고 그 짧은 틈사이에 하루의 눈에 있는 약간의 다크서클과, 뭔가 영혼없는 웃음을 캐치한 이설아는 본능적으로 싸함을 느꼈다.

...아니, 애초에. 하루가 저렇게 아하하 거리며 잘 웃는 애가 아닌데...

"하하, 그래? 음, 일단 나 목이 좀 말라서. 혹시 여기 마실거 있어?"

"아. 기다려봐. 꺼내줄게."

가까스로 대화의 주제를 돌린 이설아는, 역시나 뛰어난 사업가답게 현재 하루의 상태를 눈치챘다. 음. 오늘 하루 앞에서 에고스틱 얘기는 꺼내지 말아야겠다. 분위기 안좋네.

다시한번 에고스틱에게 스타더스를 조심하라는 경고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설아는, 이내 자리에 앉아 하루와 이 얘기 저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만나서 떠드는거라 그런지 분위기는 좋았다.

...물론 중간에 에고스틱 얘기가 실수로 나오는 바람에, 왜 자기가 꼭 에고스틱을 잡을것이고 왜 그녀 자신이 잡아야하는지에 대해 눈에 불을 키고 말하는 신하루의 열변에 살짝 이설아의 몸이 떨리긴 했으나.

그걸 제외하고는 화기애애했다.

정확히는, 둘의 대화 도중에 협회에서 '에고스틱을 잡기 위해 미국의 S급 히어로를 한국에 파견했다'는 연락이 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제 163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