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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5 - 5

< 출전(2) >

"이번에 데뷔하게 된 신인 선수다."

가브리엘 감독이 소개했다.

그러자 역사 교과서에서도 본 적 있는 사내가 자기소개를 했다.

"이번에 첫 데뷔고 연봉도 가장 낮지만 그렇다고 너무 구박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

선수들은 그저 떨떠름한 표정으로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신인 선수를 박수로 맞이했다.

그렇게 서문엽은 YSM 선수단에 합류했다.

서문엽이 투입되는 다음 경기는 포스트시즌 1차전, 3위 팀 인천BC이었다.

"인천BC은 우리 팀에 대한 대책으로 지난 이적 시즌 때 유소년 리그에서 이 선수를 영입했습니다."

가브리엘 감독이 말하며 리모컨을 조작했다.

대형 화면에 프로필이 떴다.

아직 앳된 티가 나는 청년이었다.

그리고 청년의 경기 영상이 흘러나왔다.

증폭된 분석안으로도 실시간 영상이 아니면 적용되지 않는다.

하지만 서문엽은 다행히 YSM의 경기를 TV로 챙겨봤기 때문에 인천BC과 겨룰 때 저 청년의 능력치를 확인했었다.

"한승엽이지?"

"예, 아시는군요."

-대상: 한승엽(인간)

-근력 59/63

-민첩성 52/70

-속도 55/62

-지구력 64/73

-정신력 63/72

-기술 63/80

-오러 66/67

-리더십: 33/42

-전술: 49/71

-초능력: 추적

-추적: 살아 있는 타깃 5명을 지정해 위치를 추적할 수 있다. 직접 눈으로 본 타깃만 지정 가능하다.

대체로 별 볼 일 없는 선수였다.

능력치를 한계까지 다 키운다 해도 간신히 KB-2 리그 수준이었다.

현재 능력치는 더더욱 별로였고 말이다.

이런 애를 데려왔다면 목적은 정말로 하나뿐이었다.

"순전히 우릴 이기려고 데려온 거네?"

"예, 보다시피 피지컬 자체는 떨어집니다. 다만 추적이라는 초능력이 유용하게 쓰일 때가 있죠."

가장 최근 인천BC과 YSM이 치른 경기가 요약된 영상으로 재생되었다.

한승엽은 그림자 속에 숨은 윤범의 위치를 찾아냈고, 조승호가 어디에 숨어 있는지도 알아냈다.

인천BC 선수들은 우회하여서 조승호를 치는 데 집중했다.

YSM도 조승호를 보호하는 움직임을 취했고, 이나연은 조승호로부터 3㎞ 이상 떨어지지 않도록 거리 조절을 하며 날뛰었다.

결국은 YSM의 승리였지만 인천BC 측이 조승호를 곧잘 찾아내고 초반부터 한판 붙자고 맹공을 펼치는 통에 난전을 치러야 했다.

조승호가 이나연과 함께 달리기 훈련을 받아서 속도 78/78을 다 찍지 못했더라면 추격당해서 일찌감치 죽었을지도 몰랐다.

"이날 2 대 1로 간신히 이겼지만 하마터면 질 뻔했습니다. 우리 측의 조승호는 물체 전달 능력을 활용해서 적의 위치를 파악하지만, 한승엽의 추적은 바로바로 우리의 위치를 파악하기 때문에 매 순간 판단이 더 빨랐습니다."

조승호는 하나하나 물체 전달을 시도해 보는 식으로 위치 파악을 한다.

하지만 한승엽은 단숨에 미리 찍어놓은 5명의 위치를 파악 가능하다.

"난전이 될수록 불리하네."

서문엽이 결론을 내렸다.

가브리엘 감독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포스트시즌 1차전에서도 우리가 이나연, 윤범으로 견제를 펼친다면, 인천 BC는 바로 강공을 펼칠 겁니다."

전력을 동원해 곧바로 문제의 근원인 조승호를 친다는 전략.

극단적이지만 견제를 계속 당하며 불이익을 받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가브리엘 감독은 어깨를 으쓱했다.

"하지만 사실 별문제는 안 됩니다. 우린 평소와 똑같은 전술로 플레이할 거고, 다만 최정민 대신 구단주께서 출전할 뿐입니다."

끝.

전부 해결이었다.

최정민 대신이라면 서문엽이 조승호가 이끄는 조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인천 BC가 전력으로 들이쳐도 서문엽이 함께 있는데 뭐가 문제냐는 투였다.

서문엽은 고개를 끄덕였다.

"뭐 사실 나 혼자 적진으로 뛰어가도 돼. 경기가 30분도 안 돼서 싱겁게 끝날까 봐 문제지."

"결국 의미 없는 전술 토론이군요. 결론은 평소대로 하니 특별한 준비는 필요 없는 셈입니다."

모여 있던 선수들은 맥이 빠졌다.

서문엽 있으니 뭘 해도 우리가 이긴다.

그냥 그게 결론이었다.

그동안 늘 철저한 대비를 갖추고 경기에 나섰던 것을 생각하면 허무한 일이었다.

하지만 현실이었다.

자선 경기에서 전원이 국가 대표 선수로 이루어져 있었던 팀을 혼자 박살 낸 것은 지금도 회자되고 있었다.

하물며 KB-2 리그 팀 정도야 어떻게 해도 이기기란 쉬웠다.

서문엽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1차전 1세트 던전은 위저드 캐니언.

거대한 계곡에 공중을 부유하는 섬들이 제각각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던전.

섬에서 섬으로 건너며 가장 높은 곳에 이르러야 하는데, 정해진 순서대로 이동하지 않으면 와이번 떼의 습격을 받는다.

바로 이나연의 충격적 데뷔전이 있었던 던전이었다. 심지어 그때 상대도 인천BC.

이기기란 쉬운데 이왕이면 좀 더 재미있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문득 좋은 생각이 났다.

'한 번 시도해 볼까?'

아이디어가 떠오른 서문엽은 벌떡 일어났다.

"그럼 자율 훈련 좀 해도 될까? 준비할 게 있는데."

"상관없습니다. 어떤 준비인지 제게 먼저 말씀해 주신다면 말이죠."

서문엽은 가브리엘 감독에게 자신의 아이디어를 설명해 주었다.

이채를 띤 가브리엘 감독이 물었다.

"그게 가능합니까?"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잖아. 내 던지기 비거리도 그 정도쯤 나올 것 같고."

"좋습니다, 그럼 한번 시도나 해보지요."

가브리엘 감독은 쾌히 승낙했다.

허락을 받자 서문엽은 조승호의 뒷덜미를 붙잡았다.

"너도 가자."

"저요?"

화들짝 놀란 조승호.

그대로 서문엽에게 질질 끌려가 접속 모듈 속에 들어가야 했다.

"던전은 위저드 캐니언으로!"

그렇게 주문하고는 서문엽도 장비를 챙겨서 접속 모듈에 들어갔다.

위저드 캐니언에 접속한 두 사람.

서문엽이 조승호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말했다.

"형은 말이다. 창을 던져서 2㎞ 떨어진 목표물도 맞출 수 있어."

"정말요?"

눈이 휘둥그레진 조승호.

서문엽은 거들먹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목표물이 눈에만 보인다면 말이지. 창은 그 이상도 날아가지만 살상력을 가지려면 딱 2㎞까지가 적당해."

"와······."

"알아들었냐? 눈에만 보인다면이야."

조승호는 눈을 크게 떴다.

그제야 서문엽이 왜 자신을 데려왔는지 알아차린 것이다.

-시야 전달: 눈에 보이는 풍경을 3㎞ 이내에 있는 면식 있는 타인과 공유한다.

조승호의 초능력 시야 전달을 활용해 초장거리 투창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서문엽의 어마어마한 스케일에 조승호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활로 쏴도 그런 저격은 못할 거예요!"

"당연하지. 화살은 나처럼 변화구로 날아가지 않잖아."

활을 무기로 삼은 배틀필드 선수들은 대개 일직선상에 있는 적밖에 타깃으로 삼을 수 없다.

그런데 던전이란 게 그런 긴 거리가 지평선처럼 아무런 장애물 없이 이루어져 있지가 않다.

"그럼 네가 무엇을 해야 할지는 알겠지?"

"네, 적을 내려다볼 수 있는 곳으로 가야겠네요."

"정상 루트로 위로 올라가 봐."

조승호는 시키는 대로 홀로 움직였다.

정상 루트로 섬에서 섬으로 옮겨 다니며 이동하면 와이번 떼의 습격을 받지 않는다.

물론 섬에도 자체적으로 나타나는 괴물들이 있지만, 조승호는 이나연과 육상 훈련을 받아 단련된 이동 속도로 도망 다니며 목적지에 도착했다.

-여긴 어떤가요?

"시야 전달 해봐."

-네, 잠시만요.

이윽고 조승호가 보고 있는 장면이 서문엽에게도 보이게 됐다.

정확히는 눈으로 보는 게 아니라 두뇌로 직접 시각 정보가 전달된 것이었다.

"오, 신기하네?"

-어때요? 너무 작게 보이나요?

"좀 작긴 하네. 아, 쌍안경! 쌍안경으로 보는 것도 나한테 전달 가능하지?"

-네.

"그럼 쌍안경 갖고 다시 가봐."

-클럽하우스에 쌍안경이 있을까요?

"넷티한테 쏜살같이 가져오라 해."

그 덕에 이나연이 슈퍼마리오처럼 점프하며 숙소로 달려가 자신의 쌍안경을 가져다주었다.

쌍안경을 가지고 다시 접속.

아까의 위치에 도착한 조승호는 쌍안경으로 내려다보며 시야 전달을 펼쳤다.

-이제 어때요?

"오오, 잘 보여!"

서문엽은 재미있는 놀이를 발견한 어린아이처럼 신바람이 났다.

-한번 던져보세요. 저도 궁금해지네요.

"오냐, 저기 저 소나무 맞춰볼게."

-저게 소나무인가?

"몰라, 같은 침엽수잖아."

던전의 식물들은 지상의 것과는 비슷하면서도 사뭇 달랐다.

기괴하게 휘어져 자란 침엽수를 타깃으로 삼고, 서문엽은 창을 하나 꺼내 있는 힘껏 던졌다.

파앗!

파공음을 일으키며 날아간 창.

그러나 첫 시도는 실패였다.

침엽수의 15m 근처에도 못 갔다.

"아, 힘드네."

-우와, 그래도 꽤 가까이까지 던지셨어요.

"보는 방향과 던지는 방향이 다르니까 좀 까다롭다."

그래도 창이 어디로 떨어졌는지도 조승호를 통해 봤으므로 대충 감은 잡았다.

휘익!

던졌던 창이 다시 되돌아와 서문엽의 손에 잡혔다.

-헉! 방금 그건 뭐예요?

"뭐긴, 필살기지."

증폭된 던지기의 위력에 조승호가 놀랐다.

아마 이 훈련을 지켜보는 가브리엘 감독이나 코치진들도 놀라고 있을 터였다.

'진짜 필살기는 못 쓰지만.'

영체로 변신은 배틀필드에서는 불가능했다.

'불사'가 아바타에서 제외되었으니 증폭시킬 수도 없었던 것이다.

서문엽은 계속 창을 던졌다.

2차 시도는 5m 이내까지 접근 성공.

3차 시도, 4차 시도는 아슬아슬했다.

그리고 이어진 5차 시도.

콰지직!!

창에 맞고 박살이 나버린 침엽수의 모습을 시야 전달을 통해 서문엽도 볼 수 있었다.

"아자!!"

-우와아아!

서문엽이 포효했고 조승호도 기겁했다.

-저걸 어떻게 맞추신 거예요!

"그 옆에 있는 놈도 맞춘다. 나 완전히 감 잡았어."

기술 100/100.

초장거리에서, 남의 눈을 빌려서, 보는 방향과 다른 곳에서 던지는데도 투창에 성공하는 서문엽의 테크닉이었다.

'기술을 증폭시키면 더 쉽게 맞출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러면 창을 회수하지 못하니 어쩔 수 없지.'

던진 창을 다시 회수하려면 던지기에 증폭을 걸어야 했다.

하는 수 없었다.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오직 연습뿐이었다.

"계속한다. 이제 다른 곳도 한 번 봐봐. 적이 어디에 있어도 여기서 던져서 맞출 테니까."

-네!

서문엽의 투창은 계속되었다.

***

"저게 사람인가?"

이제 수석 코치의 역할에 익숙해진 최동준이 대형 스크린을 보며 경탄했다.

"신이지, 신."

"신이 내린 재능이야."

"우리나라에 저런 초인이 나타나다니. 내가 꿈을 꾸나 봐."

"저러니까 세상을 구했지."

코치들도 넋이 나간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기상천외한 장거리 투창.

신화에 나올 법한 영웅의 허풍 섞인 활약상을 그대로 선보인 듯했다.

"올해의 그레이트 킬상은 확정이군."

가브리엘 감독도 중얼거렸다.

올해의 선수상과 함께 선정하는 그레이트 킬상.

한국인 최초의 수상자가 나올 것 같았다.

< 출전(2) > 끝

< 출전(3) >

누가 현존 최고의 초인이냐는 논쟁은 언제나 뜨거운 논쟁거리였다.

기존 톱3는 물론 제럴드 워커 등의 선수들도 논쟁에 끼어 각자 나라의 네티즌들이 열띤 키보드 배틀을 붙었다.

그런 논쟁에서 한국 네티즌들은 조용한 관람객이었다.

그래도 역대 최고의 초인은 서문엽이다.

서문엽이 죽지만 않았더라면······.

서문엽까지 갈 것 없이, 백제호가 사업 안 하고 선수 했으면 올해의 선수상 몇 개는 탔을 거다.

이런 정도의 말은 하지만 과거를 논하자는 게 아니므로 대체로 찍소리 못 하고 조용히 논쟁을 관람하는 편이었다.

당연히 논쟁에 낀 나라의 팬들도 배틀필드의 불모지인 한국을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서문엽이 기적적으로 생환하고서 얘기가 달라졌다.

그동안 아무 소리도 못 했던 한국의 키보드 워리어들이 일제히 들고 일어난 것이다.

서문엽이 팔팔한 서른으로 돌아왔는데 최고 논쟁은 끝난 거 아니냐?

초인 중의 초인이 돌아오셨다. 나단이고 나발이고 이제 입 다물자.

어딜 애송이들을 세계를 구하신 서문엽 형님과 비교하려 들어?

전 세계 네티즌들은 갑작스럽게 펼쳐진 한국 네티즌들의 화력에 당황했다.

그래도 과학적인 대인전 훈련을 거친 현역 선수들과 옛 시대 사람인 서문엽이 같으냐는 반박이 있었다.

그러나 서문엽이 불사신으로 밝혀지면서 한국은 더더욱 기세등등해졌다.

논쟁은 끝났다.

지구 최강의 생명체는 서문엽이다.

서문엽 형님은 아예 안 죽으신다. 한 번 붙어볼래?

불사신이니 서문엽 형님이 환갑잔치를 하셔도 여전히 최고임.

이는 전 세계 네티즌들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죽여도 안 죽는데 이길 도리가 없지 않은가.

대신 슬며시 논쟁의 주제를 바꿨다.

그래, 가장 강한 건 서문엽이 맞는데, 우린 지금 최고의 배틀필드 선수가 누구냐를 가리는 거야.

불사는 배틀필드에서 적용이 안 되잖아?

서문엽이 배틀필드 플레이어가 될 생각도 별로 없어 보이고.

결투 장소가 현실에서 배틀필드로 옮겨가자 한국 네티즌들도 주춤했다.

배틀필드에 대한 경험이 없는 서문엽이기 때문에 현역 최고의 선수들과 경기에서 붙으면 불리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었다.

하지만 자선 경기에서 서문엽이 올킬 쇼를 벌이자 다시금 화력이 불타올랐다.

봤냐? 불사 없어도 서문엽이 최고다.

현실이고 배틀필드고 그냥 서문엽 형님이 짱이시다.

이제 다시는 안 흔들린다. 서문엽은 무조건 최고다.

존재 자체로 논쟁거리를 계속 제공하고 있는 서문엽.

그런 서문엽이 자선 경기 이후, 마침내 공식전 무대에 나타났다.

그 여파는 대단했다.

전 세계가 한국의 2부 리그 경기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것이었다.

서울 배틀필드 경기장.

"인천! 인천!"

"YSM! YSM! YSM!"

"서문엽! 서문엽!"

경기 시작 전이지만 벌써부터 관중석의 분위기가 뜨거웠다.

포스트시즌 1차전.

인천 BC 대 YSM.

마침내 서문엽이 공식전에 출전하는 역사적인 날이었기 때문이다.

이미 한 번 자선 경기 때 실력을 제대로 보여주었던 서문엽이었다.

한국의 초인이라는 게 믿겨지지 않는 화려한 활약을 선보인 서문엽의 플레이를 또다시 볼 수 있다니 감개무량한 팬들도 있었다.

본인의 강함은 물론, 구단주로서도 찍는 선수마다 대박을 터뜨리는 안목을 갖췄으니 한국 배틀필드 팬들은 살판이 났다.

서문엽 때문에 배틀필드에 입문한 나이든 팬들도 생겨나면서 YSM은 돌풍의 중심이 되었다.

선수대기실에서 준비를 마친 양 팀 선수가 경기장에 입장하기 위하여 복도에 집결했다.

인천 BC 선수들은 정말로 무장을 하고 나타난 서문엽에 시선을 완전히 빼앗겼다.

진짜 서문엽이었다.

역사 교과서, 신문, 뉴스, 영화, 광화문 동상 등으로 본 주인공이었다.

그런 사람이 상대 팀에서 적으로 뛴다니 불합리하다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국가 대표들도 올킬당했는데······.'

'이건 좀 아니다.'

'치사한 YSM 놈들. 서문엽을 여기 내보내는 건 좀 아니지 않냐?'

'왜 2부 리그 경기에 서문엽이 나타나는 거야.'

'제발, 너무 처참하게 지면 안 되는데.'

잔뜩 주눅 든 표정의 인천 BC 선수들.

그에 비해 YSM 선수들은 축제에 나가는 듯 설레는 모습이었다.

'우승이다.'

'1부 리그 승격이다.'

우승 경쟁인데 왜 이렇게 마음이 편하냐.'

'치트키 쓴 것 같아서 좀 미안해진다.'

'인천 애들이 이번에 우승하려고 굉장히 노력했었는데.'

오히려 경쟁 상대인 인천 BC에게 미안해할 정도였다.

서문엽은 인천 BC 선수들을 쭉 둘러보며 분석안을 펼쳤다.

'역시나 딱히 탐나는 선수는 없군.'

전체적으로 KB-2 리그 중에서는 수준이 높은 편인데, 특출한 잠재력을 가진 선수도 없이 상향평준화된 느낌의 팀이었다.

그러다가 유달리 능력치가 낮은 선수가 보였다.

바로 인천 측의 신인 한승엽이었다.

한승엽은 YSM의 선수들을 하나하나 바라보다가 서문엽과 눈이 마주쳤다.

"안녕?"

서문엽이 말을 걸었다.

"안녕하십니까!"

한승엽이 우렁차게 인사했다.

"살살 말해, 시끄러, 인마."

"네!"

여전히 데시벨이 높은 한승엽의 목소리.

"추적 타깃 지정하고 있었냐?"

그 말에 화들짝 놀란 한승엽이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나도 지정했지?"

"네, 물론입니다!"

"그래, 나도 너 타깃으로 찍었다."

"그, 영광입니다!"

"응, 수고해. 나한테 찍혔다고 너무 울지 말고."

"안 웁니다!"

씩씩해서 좋긴 하지만 재능이 별 볼 일 없어서 한승엽에게 더는 관심이 가지 않았다.

마침내 선수 입장.

경기장 중앙에서 팬들에게 인사하고 서로 악수하며 경기 준비를 마쳤다.

"서문엽! 서문엽! 서문엽!"

내내 서문엽의 이름이 울려 퍼져서 인천 BC 선수들을 더욱 주눅 들게 만들었다.

서문엽은 피식 웃으며 한마디 할 뿐이었다.

"아, 존나 시끄럽네."

"배부른 소리 마세요. 부러워 죽겠는데."

남궁지훈이 투덜거렸다.

서문엽은 어깨를 으쓱했다.

"워낙 주목을 많이 받고 살아서 이제 지겹다."

"헐······."

재수 없지만 사실이라 할 말이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경기가 시작되었다.

1세트는 위저드 캐니언.

서문엽은 던전에 접속하자마자 조승호에게 말했다.

"승호, 연습했던 대로 가자."

"네, 지금 출발할게요!"

조승호는 이나연, 윤범, 남궁지훈, 최혁을 데리고 출발했다.

선발대가 적진 가까이 접근하여서 초반부터 압박하는 평소 전술 그대로였다.

하지만 경로가 살짝 달랐다.

그들은 정상 루트를 통해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와이번 떼에게 습격당하지 않는 정상 루트로 이동하며 점점 높은 섬으로 올라가고 있는 것이었다.

이유는 단 하나였다.

조승호 일행은 곧 적을 내려다볼 수 있는 곳까지 도달하여서 목에 걸고 다니던 쌍안경을 꺼내 들었다.

-적 확인!

조승호가 시야 전달로 쌍안경으로 보이는 적의 모습을 서문엽에게 전했다.

"좋아, 한승엽 찾아봐."

-한승엽 확인!

이윽고 사냥에 열중하고 있는 한승엽의 모습이 보였다.

서문엽은 창을 꺼냈다.

철컥! 철컥!

오러를 주입하자 창이 1.8m 길이로 펼쳐졌다.

'지금 위로 올라간 조승호 일행을 신경 쓰고 있겠지?'

한승엽은 서문엽과 조승호를 타깃으로 지정해 '추적'을 사용 중일 것이다.

다만 서문엽은 현재 멀리 떨어져 있으므로 조승호만 신경 쓰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이나연이랑 윤범 움직여서 시선 끌어봐."

서문엽이 추가로 주문했다.

이나연과 윤범도 한승엽의 추적 타깃에 지정되어 있을 테니 말이다.

지시대로 이나연과 윤범이 적진 쪽으로 이동했다.

그러자 인천 BC도 이 두 사람의 견제 플레이에 대비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

"이나연, 윤범 2조를 향해 접근 중!"

한승엽이 소리쳤다.

서문엽도 서문엽이지만 YSM의 주 무기는 바로 이나연과 윤범의 견제 플레이였다.

한승엽이 경고를 보내자 인천 BC의 주장 백강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계획대로 대응한다. 원거리 딜러들은 모두 2조로 이동. 승엽이는 가지 말고 여기서 계속 주요 적 위치 보고해. 서문엽은 어디 있어?"

"본대와 함께 있습니다."

"다행이네. 서문엽도 견제하겠다고 초반부터 다가왔으면 곤란했을 텐데."

백강철은 다소 안도했다.

인천 BC의 대응 전략이 달라졌다.

본래는 YSM이 이나연과 윤범을 앞세워 재미 보려 들면, 당장 전원이 움직여 조승호 사냥에 나서는 극단적 전략을 취해왔다.

하지만 YSM에 서문엽이 끼어 있으니 더는 그런 극단적인 총공격을 취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원거리 딜러를 다수 동원해 이나연과 윤범의 견제 플레이에 대응하는 것으로 방침을 변경했다.

이나연도 윤범도 활을 주로 쓰기 때문에 원거리 딜러들로 맞대응하면 막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조승호처럼 화살을 무한 공급해주는 이가 없어 화력에서 밀리긴 하지만, 인천 BC의 원거리 딜러들도 화살을 잔뜩 챙겨 들고 온 상태였다.

본래 원거리 딜러는 사정거리가 긴 대신에 공격력이 근접 딜러보다 떨어져서 다수를 동원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오늘은 YSM에 대한 맞춤 전술로 기교를 부린 것이었다.

이윽고 이나연과 윤범이 나타나 인천 BC 측과 교전을 개시했다.

인천 BC 측에서 원거리 딜러 3명이 활을 쏘며 맞대응하자 이나연과 윤범은 가까이 접근 못 하고 멀리서 활로 응사할 뿐이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휘익-

멀리서 창 한 자루가 바람을 가르며 날아들었다.

"응?"

백강철은 와이번들을 상대로 열심히 사냥하던 중에 어디선가 날아오는 창을 발견했다.

"뭐, 뭐야, 저건······!"

조심하라고 외칠 틈도 없었다.

우아한 궤적을 그리며 폭포수처럼 뚝 떨어진 창이 그대로 한승엽의 옆구리에 적중했다.

콰직!

팟!

한승엽의 아바타가 그대로 소멸되었다.

-서문엽, 1킬.

한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뭐야! 창이 왜 날아와?!"

주장 백강철이 소리쳤다.

서문엽의 창이 분명했기 때문.

"서문엽은 본대와 함께 있다며?"

하필이면 전술의 핵심이었던 한승엽을 죽여 버렸다.

인천 BC가 혼란에 빠진 틈에, 창이 한 자루 더 날아왔다.

파앗- 콰악!

"으악!"

이번에는 근접 딜러가 당했다.

-서문엽, 2킬.

"서문엽이 가까이 접근한 거야! 다들 사방 경계해!"

백강철이 소리쳤다.

당연히 가까이에서 투창을 하고 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나연·윤범과 실랑이를 벌이는 2조 쪽에서 사고가 터졌다.

-악!

-서문엽, 3킬.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이쪽을 노리나 했는데 이번에는 저쪽에서 킬이라니?

"대체 어디서 창을 던지는 거야?!"

패닉에 빠진 인천 BC.

서문엽의 초장거리 투창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던져졌던 창들이 다시 왔던 방향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오러가 다 고갈될 때까지 무한히 창을 던질 수 있다는 뜻.

인천 BC 선수들에게 지옥이 펼쳐졌다.

< 출전(3) > 끝

< 위업(1) >

-서문엽 선수, 벌써 3킬입니다!

-지금 제가 보고 있는 게 현실인가요? 대략 2㎞ 조금 넘는 거리에서 3킬을 거뒀습니다. 어떻게 저 거리에서 창을 던졌나요?! 보이지도 않는데······!

중계진은 흥분했다.

관중들 역시 충격적인 광경에 넋을 놓고 말을 잃었다.

"어떻게 맞춘 거야?"

"안 보이잖아?"

"아니, 저 거리에서 어떻게 창을 던져?!"

"미쳤다······."

그때 대형 화면에 서문엽이 돌아온 창을 잡고 다시 한번 던지기를 하는 광경이 비춰졌다.

신중하게 조준하고서, 달려가며 추진력을 실어.

파앗!

있는 힘껏 던진 창이 시원스러운 포물선을 그리며 쏘아졌다.

콰지직!

"크에에엑!"

인천 BC 선수들이 사냥 중이던 와이번의 머리통을 그대로 꿰뚫어 버렸다.

이로서 확실해졌다.

서문엽은 정확히 조준하고 던지고 있었다.

-조승호 선수에게 주목해봐야 합니다. 평소와 달리 이번에 조승호 선수가 자리 잡은 위치가 달라요. 높은 고도에서 쌍안경으로 인천 선수들을 계속 내려다보고 있거든요.

-예, 조승호 선수가 적의 위치를 알려주면 서문엽 선수가 창을 던져서 맞추는 식인 것은 확실한데, 그게 가능한 일이던가요?

조승호의 시야 전달은 알려진 초능력이 아니었다.

그래서 다들 어떻게 서문엽이 멀리 떨어져 보이지 않는 적을 정확히 맞출 수 있는지 의아해했다.

하지만 사정을 알면 더 놀라게 된다.

"저게 어떻게 가능하지?"

VIP석.

백제호가 말도 안 된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백제호와 한승희 부부는 함께 서문엽이 출전하는 경기를 관람하러 나들이를 나왔다.

겸사겸사 YSM 선수들의 경기력을 확인하고 대표 팀에 선발할지 여부를 정할 생각이었지만, 주요 목적은 역시나 서문엽의 실력을 보고 싶어서였다.

"조승호라는 선수가 눈에 보이는 걸 다른 사람한테 전달할 수 있대."

한승희가 조곤조곤 말했다.

백제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나도 들었어. 근데 문제는 보는 방향하고 던지는 방향이 완전히 다르다는 거야. 차라리 안 보고 던지는 것보다 더 헷갈릴 수도 있는데, 저걸 저 거리에서 정확하게 맞추다니······."

"엽이 씨가 워낙 대단하잖아. 자기가 더 찬양하고 다녔으면서."

"그건 저 자식이 죽은 줄 알았을 때고."

서문엽에게 은혜를 입은 백제호는 친구의 추모에 앞장서면서 그가 얼마나 위대한 초인이었는지 알리려 노력했다. 그래서 서문엽 팬클럽 회장이니, 서문엽의 대리인이니 하는 별명을 들었을 정도였다.

근데 살아 돌아오니 조금 민망해진 것이다.

뭐 하러 징그럽게 그런 짓을 하고 다녔냐는 서문엽의 심드렁한 반응도 있었고 말이다.

"당신 그거 기억 나?"

백제호가 문득 말했다.

"내가 서문엽이 2㎞ 바깥에서도 창을 던져 괴물을 맞췄다고 말한 적 있었는데, 허풍이 심하다고 사람들이 다들 뭐라고 했거든."

한승희가 쿡쿡 웃었다.

"친한 친구였던 건 알겠는데 좀 지나치다고 사람들이 그랬지."

"속이 다 시원하네. 난 허풍 떤 적이 없는 게 이제야 증명됐잖아."

워낙 경이로운 활약이 많았던 서문엽이라, 서문엽에 대한 백제호의 증언들은 용비어천가처럼 취급되어서 다 사실로 받아들일 수는 없는 주관적인 견해로 취급되었다.

허풍쟁이가 된 백제호로서는 속이 터질 노릇이었다.

그래서 서문엽에게 배틀필드를 하라고 권했던 것일 수도 있었다.

그 대단함을 직접 모두에게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이제 증명된다.'

그저 서문엽을 찬양할 뿐, 진정으로 서문엽이 어떤 인간이었는지 몰랐던 대중들에게, 이 경기를 보여주고 싶었다.

"근데 던진 창을 되돌아오게 할 수도 있었던가?"

서문엽에 대해 가장 잘 안다고 자부하던 백제호조차도 처음 보는 광경이라 의아스러웠다.

"초능력이 더 진화한 거 아닐까?"

한승희가 의견을 제시했다.

"그런 경우가 없지는 않지만······."

저기서 아직 더 진화할 게 있었냐는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는 백제호였다.

서문엽은 창 네 자루를 로테이션으로 돌렸다.

되돌아온 창을 다시 던지는 식으로, 서문엽은 무한히 공격을 펼쳤다.

목숨을 위협하기도 하고, 몹 스틸도 하면서 끊임없는 견제가 펼쳐졌다.

계속 공격이 날아오므로 인천 BC 선수들은 죽을 맛이었다.

창이 언제 어디로 날아올지 모르니 사냥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탱커 1명이 마크하고 나머지는 사냥에 몰두하는 방식도 안 통했다.

공격 범위가 워낙 광범위해서 탱커 1명이 감당할 수 없었다.

결국 계속 창이 날아올 것을 주의하며 사냥해야 하니 정상적인 플레이가 될 수 없었다.

"미치겠네, 진짜!"

"대체 어디서 던지는 거야?"

"이나연은 차라리 보이기라도 하지!"

물론 보는 앞에서 점프하며 날뛰어서 더 얄미운 게 이나연 견제의 특징이었다.

하지만 서문엽이 보여주는 이 투창 견제는 그와 비교할 수도 없는 위협성이 있었다.

아무런 대책도 없었던 것이다.

"하필 승엽이가 먼저 죽다니. 이것도 노린 거겠지."

인천 BC의 주장 백강철은 이를 갈았다.

한승엽이 죽으니 윤범과 이나연의 기세가 덩달아 살아났다.

위치 추적이 안 되니 윤범이 안심하고 그림자에 숨어 침투했고, 윤범이 먼저 들어가 흔드니 이나연도 슬슬 점프를 펼치며 견제에 시동을 걸었다.

이나연과 윤범을 막기 위해 모인 원거리 딜러들은 멀리서 날아오는 창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또 날아온다! 피해!"

버럭 소리 지르며 왼쪽으로 피하는 원거리 딜러.

콰악!

날아온 창이 조금 전 있던 자리에 꽂혔다.

그러나 그때, 그림자 속에서 윤범이 단검을 들고 뛰쳐나왔다.

촤악! 콱!

"컥!"

파앗!

원거리 딜러의 아바타가 소멸되었다.

-윤범, 1킬.

서문엽과 합작한 암습이었다.

서문엽은 이로서 3킬 1어시를 올렸다.

"좀 더 템포를 올려볼까?"

씨익 웃은 서문엽이 등에 매달고 있던 나머지 4자루의 창까지 전부 던지기 시작했다.

총 8자루의 창의 로테이션!

당연히 투창 속도도 2배 더 빨라졌다.

인천 BC 선수들이 2배 더 괴로워졌다는 뜻이었다.

"구단주님, 슬슬 끝내러 갈까요?"

YSM의 주장인 노정환이 물었다.

서문엽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계속 조지고 있을 테니까 가서 마무리 지어라."

"예!"

서문엽이 계속 장거리 투창을 시전하는 가운데, 나머지 10명의 선수가 인천 BC를 치러 갔다.

이미 4명이 죽은 인천 BC다.

거기에 사냥 효율에서 훨씬 압도적이었기 때문에 이제 양 팀의 격차는 훨씬 더 벌어져 있었다.

더 경기를 길게 끌어봐야 의미 없으므로 일찌감치 끝내기로 노정환은 판단한 것.

그렇게 벌어진 한타 싸움에서 YSM은 인천을 압도했다.

한타 싸움조차도 서문엽이 가장 빛을 발했다.

계속 창을 던져 1명을 더 죽이고, 다른 모든 킬에도 어시스트를 했다.

4킬 7어시.

상대 팀 11명을 죽이는 데 전부 관여했다는 뜻이었다. 주구장창 창만 던져서 딴 공격 포인트였다.

***

"오오! 역시 서문엽이야!"

"이런 놀라운 플레이를 보여주다니! 또다시 세상을 놀라게 했어!"

100인치짜리 스마트 TV로 경기를 관람하던 모로 형제가 열광했다.

형 장 모로가 흥분에 몸을 떨었다.

"화끈하게 올킬해 버리는 것도 멋졌을 테지만!"

"저건 더 멋져!"

"그래! 기상천외한 플레이를 보여주는 게 더 서문엽다워! 으하하! 어떻게 저 거리에서 창을 던진다는 발상을 할 수 있지?"

필립 모로는 선수 관리의 전문가인 만큼 좀 더 분석적인 시각을 발휘했다.

"저 조라는 서포터의 초능력일 거야. 아마 쌍안경으로 본 것을 그대로 서문엽에게 전달해 줄 수 있는 능력이라도 있는 거겠지. 그냥 말로 위치를 전해줘서는 창으로 맞출 수 있을 만큼 정확한 포인트 전달이 불가능해."

"아, 그렇겠군. 그럼 조라는 서포터도 함께 데려와야 서문엽의 저 우아한 장거리 투창을 우리 클럽에서 선보일 수 있는 걸까?"

"글쎄. 아쉽지만 조의 스펙이 너무 떨어져. 유용한 초능력이 여러 가지 있지만 우리 파리 뤼미에르에 어울릴 선수는 아냐. 차라리 비슷한 초능력을 가진 좀 더 나은 서포터를 찾아보는 게 나을 것 같아."

"꼭 찾아봐! 저 장거리 투창은 서문엽을 상징하는 트레이드마크가 될 거야. 위력도 어마어마하지만, 마케팅적으로도 팬들을 열광하게 만드는 흥행 포인트라고!"

"물론이야, 형. 저 투창은 완전히 미쳤어. 파리의 유니폼을 입고 저 플레이를 펼치는 걸 보고 싶어."

애석하게도 KB-2 리그에서 데뷔를 했지만, 어쨌거나 서문엽이 마침내 프로 선수가 되었다는 점이 중요했다.

"흐흐, 서문엽을 영입한다는 게 돈의 문제라면 너무 쉬워지지."

"그냥 많이 주면 되니까."

"서문엽이 자신의 팀을 키운다 해도 결국 한국 리그야. 능력을 온전히 펼치기 위해서는 세계 무대로 나올 거야. 바로 그때, 그를 영입하는 건 바로 우리 클럽이야."

"어떤 팀보다도 많은 돈을 준비하면 되잖아. 그건 너무 쉬운 일이야. 우리 클럽은 그의 조카도 있으니까."

서문엽이 아끼기로 소문난 조카 백하연은 현재 파리 뤼미에르 BC에서 교체 멤버로 활약 중이었다.

확고한 주전이 될 정도로 폭발적인 활약을 보이지는 못했지만, 그럭저럭 쓸 만한 선수라고 팬들도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잘하면 칭찬하고 부진하면 주급 도둑이라며 무자비하게 쌍욕을 하는 팬들이지만, 백하연은 아직까지 욕을 먹지 않았다.

갑자기 수준 높은 파리 프르미에 리그에 왔으니 적응의 문제도 있고 해서 부진한 경기가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팬들도 눈치가 있어서 참 다행이야."

"하연을 욕해서 기분 상하게 하면 서문엽이 안 올지도 모른다는 걸 팬들도 아는 거야."

파리 뤼미에르 BC의 서포터들도 알고 있었다.

백하연은 서문엽을 불러들이기 위한 모로 형제의 원대한 계획의 일환이라는 것을.

거기다가 경기력도 나쁘지 않기 때문에 단순한 미끼 상품도 아니었다.

쓸 만한 근접 딜러도 영입하고 서문엽도 불러들이는 일석이조 효과라고 서포터들은 모로 형제를 칭찬했다.

이를 아는 다른 팀 서포터들도 백하연을 데려오자고 아우성 중이었다.

인터넷상에서 파리 뤼미에르 BC의 팬인 척하며 백하연에 대한 욕설을 써서 이간질까지 시도하는 상황.

물론 파리 뤼미에르 BC의 서포터들도 인터넷에서 열심히 디펜스를 하며 백하연을 애지중지하고 있었다. 나중에 삼촌을 불러올 소중한 선수였으니까.

***

"수고하셨습니다."

가브리엘 감독과 코치진이 서문엽을 개선장군처럼 맞이했다.

"어때? 죽이지?"

서문엽이 한껏 거들먹거리며 묻자 가브리엘 감독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관중들의 반응이 아주 뜨거웠습니다."

"흐흐, 그럼 재미는 충분히 준 셈이네?"

"예, 쇼는 이걸로 충분하니 이제 2세트와 3세트는 가볍게 분질러 버리죠."

2세트 던전은 천 개의 다리.

까마득한 절벽 위에 천여 개의 다리가 설치되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미로 형식의 던전이었다.

워낙 지형이 복잡해 장거리 투창을 하기에 적당하지 않았다.

쇼 비즈니스 차원에서 색다른 플레이를 보여준 서문엽도 이제는 본 실력을 드러낼 생각이었다.

< 위업(1) > 끝

< 위업(2) >

천 개의 다리.

거대한 원기둥 모양으로 구멍이 뚫린 절벽에 수많은 다리가 얽히고설킨 던전이다.

살짝 발을 디뎌도 폭삭 무너지는 다리도 있고, 환영으로 만들어진 가짜 다리도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했다.

어떤 게 진짜 다리인지 정확한 지리 파악이 필요하기 때문에 눈 감고도 다닐 수 있을 때까지 빡세게 훈련해야 하는 곳이다.

그래서 신인 선수들이 준비하느라 고생하는 던전인데, YSM의 많은 신인 선수들은 가브리엘 감독의 지도하에 철저히 준비했다.

'여기도 내가 공략했던 곳인데, 너무 오래돼서 간만에 공부 좀 했다.'

숙지하는 데 한 시간 정도 걸렸다.

코치들이 깜짝 놀랐는데 서문엽의 머리가 매우 좋다는 것이 다시 한번 증명된 순간이었다.

게다가 서문엽이 숙지했다고 말하는 것은 단순히 어느 다리가 진짜고 가짜인지 구분하는 수준을 뜻하는 게 아니다.

정석 루트, 지름길, 샛길을 다 파악하고, 적 팀을 견제할 수 있는 좋은 포인트까지 파악해 뒀다는 뜻이었다.

환영으로 만들어진 다리의 경우 좋은 은폐물이 되기 때문에 기습 용도로 쓰기 좋았다.

선수들이 던전에 접속하자, 곧바로 괴물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시작은 아라크네.

거미줄을 타고 내려와 선수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흩어져! 거미줄에 맞지 말고!"

노정환이 소리쳤다.

서문엽이 합류했지만 팀의 주장이자 메인 오더는 여전히 노정환이었다.

서문엽은 역할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활약하는 프리 롤(Free role)을 부여받았고, 필요할 경우 몇몇 선수를 차출할 권한까지 부여받았다.

이는 구단주라는 신분 때문이 아니었다.

가브리엘 감독이 서문엽의 뛰어난 전술적 역량을 인정했기 때문에 이러한 절대적 권한을 준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서문엽의 전술적 역량은 인류의 최고치인 100/100.

88/98의 빼어난 역량을 가진 가브리엘 감독보다도 훨씬 높았다.

그렇지 않았으면 제아무리 지위와 명성을 가진 서문엽이라 해도 가브리엘 감독이 자신의 권한을 침범당하는 걸 용납하지 않았을 터였다.

서문엽도 무언가 시도하기 전에 가브리엘 감독의 허락을 먼저 구했기 때문에 두 사람은 사이가 매우 좋았다.

YSM의 선수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아라크네들의 거미줄은 생명력을 빨아먹으며, 한번 닿으면 끈끈해서 잘 떨어지지도 않아 골치 아프기 때문.

콰직!

서문엽은 아라크네들을 미친 듯이 죽여 나갔다.

100㎝ 던지기 컨트롤을 이용한 강력한 찌르기로 한 번에 한 마리씩 꾸준히 죽였다.

아라크네는 단단한 껍질만 뚫으면 맷집이 약해 쉽게 죽으므로 그리 사냥이 어려운 괴물이 아니었다.

하지만 사냥은 이제 시작이었다.

아라크네보다도 2배는 더 큰 칠흑색 거미가 나타나 사방에 거미줄을 펼치기 시작한 것이다.

"사령거미다!"

"원거리 딜러들, 집중 사격해!"

직접 달려들기보다는 일단 사방에 거미줄을 치며 활동 범위를 넓히는 사령거미.

이윽고 흉측한 주둥이를 쩌억 벌려서 거미줄로 똘똘 뭉친 덩어리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덩어리가 거미줄 곳곳에 대롱대롱 달렸다.

이나연과 윤범 등 원거리 딜러들이 공격했지만 사령거미는 단단함도 아라크네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덩어리들이 점점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번데기에서 탈피하듯, 안에서 무언가가 거미줄 덩어리를 찢고 나오기 시작했다.

"크아아악!"

간신히 사람 형상을 하고 있지만, 이미 죽은 지 꽤 되어 보이는 좀비였다.

사령거미는 살아 있는 생명체를 거미줄로 납치해 죽이고 작은 덩어리로 압축시켜서 보존했다가 나중에 다시 꺼내 좀비로 부리는 흉악한 괴물이었다.

전투 방식이 워낙 까다로워서 거의 보스 몹 수준으로 취급되는 녀석이다.

죽자마자 보존되어서 부패되지는 않았지만 생전에 던전 공략을 하던 초인으로 보이는 좀비가 사령거미의 하수인이 된 광경은 끔찍했다.

"이야, 이런 것까지 잘 구현했네. 옛날 생각난다. 알에서 예전 동료가 튀어나오는 것도 본 적 있는데."

서문엽은 옛 추억을 떠올리며 아련한 표정을 지었지만, 다른 선수들은 그 말에 으스스함을 느껴야 했다.

지금이야 가상이라지만, 저런 광경을 실제로 봤다면 어떤 기분이었을까?

사령거미들은 계속 나타났다.

서문엽은 슬슬 본격적으로 사냥 속도를 높이기로 했다.

바로 무차별 던지기!

던지기를 증폭시키고서 창 8개를 미친 듯이 사방에 던졌다.

콰직!

"끼엑!"

쉬익- 콰지직!

"크어어어!"

알에서 깨어난 좀비든 사령거미든 아라크네든 가리지 않고 족족 죽였다.

되돌아오는 창을 낚아채 바로 던지며 미친 듯이 괴물을 학살하는 서문엽.

폭탄이 터진 것처럼 괴물들은 우수수 시체가 되어 버렸다.

YSM 선수들도 괴물들이 급속도로 줄어들자 사냥감을 잃고 넋을 놓을 정도였다.

사냥 포인트가 급속도로 쌓였다.

서문엽의 몸에 휩싸인 오러가 푸른색을 넘어 보랏빛을 띠기 시작했다.

단번에 폭발적인 사냥으로 괴물을 휩쓸어버린 서문엽.

자신의 사냥 포인트가 보랏빛이 된 것을 확인하고서는 조승호에게 손짓했다.

"인마, 이리 와서 오러 좀 내놔."

거의 삥 뜯는 일진 같은 태도였다.

"네."

조승호는 순순히 서문엽에게 오러를 전달해 주었다.

던지기를 연속으로 펼치느라 소모된 약간의 오러가 다시 보충되었다.

"이만하면 됐다. 나 먼저 가본다?"

"예."

노정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서문엽은 일행을 떠나 단독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는 서문엽의 쇼 타임이었다.

재빨리 인천 BC 측에게 접근한 서문엽은 수없이 얽힌 다리들을 은폐물 삼아 효과적인 사냥을 했다.

창에 강력한 회전을 걸어서 가로막고 있는 다리를 피해 타깃을 노렸다.

콰직!

-서문엽, 1킬.

창을 한 번 던지면 즉시 자리를 떠나 움직였다.

"4시, 아니 5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어요!"

한승엽이 열심히 추적으로 서문엽의 위치를 파악해 알려줬지만, 방향에 대비할 틈을 주지 않았다.

계속 위치를 바꾸면서 창을 던졌고, 또한 5시에서 던졌는데 급격하게 궤적이 틀어져서 4시 쪽에서 날아들기도 했다.

"펼쳐! 몰아서 잡아야 돼!"

인천 BC는 4-3-3으로 인원을 나눠 세 방향에서 서문엽을 몰아넣어 사냥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것은 실수였다.

서문엽이 득달같이 달려들어서 3명밖에 남지 않은 조를 삽시간에 몰살시킨 것이다.

-서문엽, 2킬.

-서문엽, 3킬.

-서문엽, 4킬.

매복했다가 창을 던져서 하나.

달려들어서 육탄전으로 둘.

후퇴하려는 놈을 창 던져서 셋.

킬을 먹고 사냥 포인트가 대폭 쌓인 서문엽은 이제 핏빛과 같은 진한 붉은빛을 띠었다.

"빨리 끝내자. 더 시간 끌며 오랫동안 괴롭히는 취미는 없거든."

계속해서 3명이 모인 조를 향해 달려가는 서문엽.

세 갈래로 흩어진 인천 BC를 각개격파로 다 잡겠다는 심산!

"이런 제기랄!"

인천 측의 주장 백강철은 울분을 토했다.

3인 1조는 배틀필드의 기본이었다.

셋이 있는데 한 명을 못 당해낸다면 애당초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3인조에게 달려가다가 돌연 등을 돌려서 주장 백강철이 포함된 4인조를 향해 투창!

창은 나선을 그리며 다리들을 비켜가 인천 BC의 원거리 딜러 1명을 또 맞췄다.

-서문엽, 5킬.

갑자기 방향을 돌려 공격한 것은 그야말로 심리의 허를 찌른 동물적 감각이었다.

공격 범위가 넓다는 것은 이렇게나 무서웠다.

이어진 싸움은 참혹한 학살이었다.

단독으로 돌격해 3인조를 육탄전으로 전멸시킨 서문엽은 남은 3명도 가뿐하게 정리해 버렸다.

-서문엽, 10킬, 11킬.

그렇게 2세트는 서문엽의 올킬로 끝났다.

11-0, YSM의 압승이었다.

접속 모듈에서 나왔을 때, 서문엽에게 함성이 쏟아졌다.

"와아아아아!!!"

"서문엽! 서문엽!"

"천하무적 서문엽!"

"올킬! 올킬! 올킬!"

한국 무대에서 벌어진 두 번째 꿈의 올킬 플레이.

공식전만 치면 한국 배틀필드 프로리그 사상 첫 올킬이었다.

서문엽은 쏟아지는 열광에 씨익 웃어 보였다.

"엄청 좋아하네."

"우리나라에서 올킬 나온 건 처음이잖아요! 너무 멋져요!"

이나연이 방방 뛰며 좋아했다.

"양학이 뭐 대수라고."

"그렇게 시원시원하게 양민 학살을 할 수 있는 선수도 여태껏 없었거든요."

"에잉, 근데 하면 할수록 미안해지네. 애들 싸움에 낀 것 같잖아. 쟤들 멘탈 완전히 나갔던데?"

서문엽이 더그아웃에 들어와 투덜거렸다.

관중들은 대부분 서문엽 보러 왔기 때문에 그저 좋아할 뿐이지만, 인천 BC 입장에서는 비참한 경기였다.

아무런 상대도 안 된다는 것이 2세트에서 밝혀진 셈이었다.

1세트의 장거리 투창은 그저 유희였을 뿐임도 인천 BC는 알게 되었다. 서문엽은 굳이 그러지 않아도 완승을 거둘 역량이 있었다.

"그럼 3세트는 빠지시겠습니까?"

가브리엘 감독이 물었다.

"그럴까?"

"예, 이미 상대 팀은 의욕이 사라진 것 같으니, 그동안 출전 못 했던 선수들 위주로 기용해 실전 경험을 쌓게 하겠습니다."

"그래라. 연속으로 지면 5세트는 나가줄게."

"그럴 일은 없습니다."

서문엽은 선수 대기실에서 무장을 해제하고 가벼운 유니폼 차림으로 더그아웃에 앉았다.

보란 듯이 무장을 해제한 모습을 보이니, 반대편 인천 BC의 더그아웃 쪽에서도 이를 알아차렸다.

그들로서는 YSM이 여유를 부린다고 기분 나빠할 겨를도 없었다.

서문엽이라는 존재 자체가 말이 안 됐기 때문이다.

오히려 빠져줘서 고맙다고 서문엽에게 인사하고픈 심정이었다.

하지만 3세트, YSM은 후보 선수 위주로 구성된 1.5군으로 싸워서 멋지게 4-0 승리를 거두었다.

1세트, 9-0.

2세트, 11-0.

3세트, 4-0.

3세트는 그나마 인간적인 경기였다.

하지만 YSM의 강력한 조직력이 거둔 승리였기 때문에 인천 BC는 더욱 패배감을 느껴야 했다. 1, 2세트는 그냥 재앙이었다 해도, 3세트는 팀 역량의 패배였다.

1, 2세트 MVP는 단연 서문엽.

3세트 MVP는 탱커임에도 근접 딜러 시절의 경험을 살려 3킬 3어시 활약을 떨친 최혁이었다.

MVP 인터뷰에서 서문엽은 질문을 거의 독점하였다.

-오늘 본인의 경기력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존나 좋았죠."

서문엽의 말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실력 발휘는 다 하지 못했지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다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인천 BC에게는 미안한 생각도 듭니다. 애들 싸움에 껴서 좀 주책 같다는 자괴감이 들었고요."

-호호, 그래서 3세트에 안 나오셨군요?

"네."

-다음 2차전 상대는 SP인데요, 어떻게 예상하시나요?

"그럼 SP 팀에게 한마디 해볼까요?"

-네!

서문엽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너희도 딱히 다를 건 없는 거 알지?"

< 위업(2) > 끝

< 위업(3) >

KB-2 리그 2위 팀 SP와의 2차전도 결과는 비슷했다.

SP는 탱커를 4명이나 출전시키고 6-5 전술을 사용했다.

서문엽의 견제로부터 각개격파당하지 않기 위한 대책이었다.

부질없는 노력이었다.

-또 시작됩니다! 서문엽의 장거리 투창!

조승호 일행이 적을 관찰할 수 있는 위치까지 접근해서 시야 전달을 해주었고, 서문엽은 창을 던졌다.

서문엽은 창 8자루를 로테이션으로 던지며 시종일관 목숨을 위협하고 사냥감을 스틸했다.

가뜩이나 탱커가 많아서 사냥이 느렸던 SP는 그 때문에 더욱 성장이 정체되었다.

거의 폭망 수준으로 성장이 망한 SP는 YSM의 총공세에 폭삭 무너졌다.

1세트, 3킬 7어시.

2세트, 8킬 2어시.

2세트의 경우 시종일관 투창으로 적을 괴롭힌 서문엽이 조승호로부터 소진한 오러를 보충받고서 직접 한타 싸움을 벌여 대학살을 벌였다.

3세트부터는 서문엽이 빠지고 후보 선수들이 대거 올라갔는데, 3세트는 근소하게 패배했지만 4세트에서 압승을 거뒀다.

후보 선수들이라고 하지만 가브리엘 감독의 지도하에 철저히 전술 훈련이 되어 있던 이들이라 유기적인 조직력을 자랑했다.

어차피 5세트까지 갔다면 서문엽이 다시 등판해서 마무리 지었을 테지만, 그렇게 SP의 승격의 꿈은 박살 났다.

<2부 리그의 황소개구리 서문엽>

<서문엽 4연속 MVP>

<마침내 공개된 서문엽의 저력, 전 세계가 놀랐다>

언론들의 축제였다.

역시나 서문엽은 기대를 배신하지 않고 뜨거운 기삿거리를 주었다.

그와 더불어 파리 뤼미에르 BC에서 서문엽에게 대대적인 러브콜을 보내기 시작했다.

<파리 뤼미에르 BC '돈은 준비됐다, 서문엽 꼭 영입할 것'>

<모로 형제 '서문엽 다른 팀 간다는 것 상상할 수 없어'>

<파리 뤼미에르의 고핀 감독 '서문엽은 완전무결한 선수'>

<'황태자' 나단 베르나흐 '서문엽과 호흡 맞추고파'>

<'이탈리아 수호신' 치치 루카스 '서문엽, 마음 잘 맞는 친구'>

<백하연 '아버지가 그랬듯 삼촌과 함께 싸우고 싶다'>

모로 형제, 고핀 감독, 나단 베르나흐와 치치 루카스, 거기에 백하연까지.

서문엽에게 러브콜을 보내는 데 거의 모두를 총동원했다고 봐야 했다.

이제 곧 후반기 시즌이 종료되고 겨울 이적 시장이 열리므로, 파리 뤼미에르 BC가 언론 플레이를 대대적으로 시작한 것이다.

그러한 파리 뤼미에르 BC의 태도에 세계 최강을 다투는 다른 팀들도 당황했다.

서문엽이 너무 강한 게 문제였다. 상상 이상이었다.

피지컬이든 정신력이든 오러든 최고 수준일 거라고는 진즉부터 예상했지만, 대인전에 취약할 것이라는 단점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최고가 될 자질은 있지만 훈련과 실전 경험이 더 필요함.

그것이 상식적으로 타당한 추측이었다.

그런데 서문엽의 경기력이 선보여지자 모든 추측들이 어긋나 버렸다.

서문엽은 사람도 아주 잘 잡았다.

노련한 사냥꾼처럼 상대의 심리를 잘 알고 허를 찔렀다.

초장거리에서 행한 창던지기는 또 어떠한가?

그 자체로 전술이었다.

"이건 매물이 너무 큰데."

YSM 대 SP의 경기를 본 엠레 카사 감독이 탄식했다.

전 7영웅 멤버.

터키의 국민 영웅.

베를린 블리츠 BC의 감독.

올해의 감독상 수상자.

세계 최고 명문 클럽 중 하나인 베를린 블리츠 BC를 이끄는 사령탑으로서 명성을 떨치는 그는 TV를 보며 고뇌했다.

그는 7영웅 시절 서문엽의 지시를 충실히 이행하던 동료였다.

그리고 지금은 권위적인 감독이다.

베를린 블리츠 BC의 대주주 중 한 사람이기도 해서 구단 내에 그의 입지는 절대적이었다.

현재 베를린 블리츠 BC는 전 세계 선수들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꿈의 클럽 중 하나였다.

당연히 손꼽히는 스타들만이 입단했고, 그런 스타 군단을 지휘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권위가 필요했다.

엠레 카사 감독은 그런 자신의 권위를 위협할 수 있는 서문엽을 팀에 들이기가 싫었다.

그런데 저 실력을 보라.

던전 괴물 사냥하듯 상대 팀 초인들을 잡아버리는 활약이라니.

단지 강한 것만이 아니었다.

상대 팀이 어떤 대응을 하듯 손바닥 안을 들여다보듯이 훤히 꿰뚫어보고 있었다.

단 한 번도 당황한 모습 없이 자연스럽게 적을 죽여 나간다.

낭비되는 동선도 없었다.

완벽한 숙련도.

던전에서 봤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서문엽 선수, 대인전 훈련을 따로 받으신 적이 없는데 어떻게 그런 활약을 하실 수 있으신 건가요?

MVP 인터뷰에서 때마침 가장 묻고 싶었던 질문을 한다.

서문엽은 태연히 말했다.

-지저인보다 사람이 훨씬 잡기 쉽습니다.

번역된 자막을 보며 엠레 카사는 탄식했다.

"역시나 서문엽은 서문엽이구나. 상대가 누구냐가 중요한 게 아니었어."

엠레 카사도 저 말에 공감했다.

지저 전쟁을 경험했던 나이 든 초인 중에서도 고위 등급의 지저인을 상대해 본 이는 매우 드물었다.

왜냐하면 고위 등급의 지저인이 있는 던전은 대부분 공략 불가로 판정되었기 때문이다.

검은색, 흰색 오러를 지닌 최상위 지저인들을 사냥한 사람은 바로 서문엽이었다.

그 정도로 지위가 높은 지저인은 확실히 요즘의 월드 클래스 배틀필드 선수보다도 상대하기 어려웠다.

엠레 카사 감독도 7영웅 시절에 함께 싸웠기에 이를 알았다.

'이러면 그를 영입할 수밖에 없나.'

저 정도 선수를 다른 팀에 빼앗길 수는 없었다.

특히 파리나 뉴욕에 보내서는 안 된다.

그러면 다음 해 월드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컵을 거머쥘 수 없었다.

올해 10월에 월드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하는 데 성공하여서 2021년 올해의 감독상 수상이 역력한 엠레 카사 감독이었다.

하지만 그 전에 5월에 치른 유로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파리 뤼미에르 BC에게 패배한 것이 옥에 티였다.

같은 톱3인 베를린 블리츠와 파리 뤼미에르는 같은 유럽이기도 해서 치열한 라이벌 구도를 성립하고 있었다.

스타성이 뛰어난 선수들을 긁어모으는 파리 뤼미에르 BC.

스타성보다는 실력과 팀에 대한 기여도를 중시하는 엠레 카사 감독의 베를린 블리츠 BC.

성향도 다르고 실력은 백중세인 이 두 팀은 유로 챔피언스리그와 월드 챔피언스리그에서 매년 맞붙었다.

요즘은 뉴욕 베어스와 LA 워리어스가 있는 메이저리그도 점점 경쟁력이 강해지고 있어서 우승컵 쟁탈전이 더욱 힘이 부치는 즈음이었다.

하필 이럴 때 서문엽이라는 초대형 매물이 나타난 것이다.

'빼앗기면 큰일 난다. 하지만 우리 팀 성향에 맞는 선수도 아니다.'

엠레 카사는 짧은 시간이지만 7영웅 시절에 서문엽을 충분히 경험했다.

자유로운 사람이었다.

평소 성격도 아나키즘적인 성향이 보이는데, 던전에서도 창의적인 방식으로 공략 불가 던전들을 속속히 함락시켰다.

융통성 없지만 숨 막힐 듯이 철저하고 빈틈없는 엠레 카사 감독의 성향과 맞지 않았다.

하지만······.

'오히려 파리와 어울리지. 그래서 더더욱 파리로 보낼 수는 없어.'

엠레 카사 감독은 하루 종일 고민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갖고 싶지 않다.

하지만 빼앗길 바에는 가지겠다!

'혼자 프리 롤로 풀어버려도 알아서 플레이를 잘할 사람이니까.'

나머지 10명이 엠레 카사 감독의 스타일대로 칼같이 움직인다면, 나머지 1명쯤 멋대로 행동하게 놔둬도 될 거라고 생각했다.

서문엽이 멋대로 움직인다 해도 팀에 저해될 행동을 할 사람은 아닐 거라는 확신도 있었다.

그의 전투 능력보다 전술 능력을 더욱 인정하는 엠레 카사 감독이었다.

서문엽이라면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 같아도 팀의 전술에 도움이 되는 플레이를 해줄 거라고 믿었다.

'물론 내 개인적으로는 조금 불편한 상황도 벌어지겠지만······.'

엠레 카사 감독은 무뚝뚝하고 필요한 말과 행동만 하는 스타일이라 존경하는 사람은 많아도 개인적으로 친하게 다가오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런데 그런 그를 7영웅 시절에 곧잘 괴롭힌 사람이 바로 서문엽이었다.

말장난을 걸며 신경을 건드리던 서문엽이 떠올라서 엠레 카사 감독은 그만 한숨을 쉬었다.

'참아야지. 참을 수 있다. 최고일 수 있다면.'

권위를 중시 여기지만 자신의 권위에 기대어 자아도취 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목표는 팀을 최고의 자리로 올려놓는 것.

결심을 굳힌 엠레 카사 감독은 다음 날 구단주를 찾아갔다.

"오, 얼굴 보기 참 힘들군. 이게 얼마 만인가?"

구단주 존 베르만은 엠레 카사 감독을 친구처럼 반갑게 맞이했다. 구단주와 감독인 두 사람은 관계가 매우 좋은 편이었다.

존 베르만 구단주는 자신의 사업체 중 하나인 클럽을 키워주는 감독이 좋았고, 엠레 카사 감독도 자신에게 절대적 권한을 주는 구단주가 좋았다.

"선수 영입 때문에 찾아왔습니다."

"그런 얘기는 단장한테 해도 되는데, 날 직접 찾아온 걸 보니 어지간히도 큰 빅 사이닝인가 보군?"

빅 사이닝(Big Signing)은 거물급 선수들의 이적을 뜻했다.

존 베르만 구단주는 대강 짐작하면서도 모른 척하는 듯했다.

엠레 카사 감독은 단호히 말했다.

"서문엽입니다."

"음······."

존 베르만 구단주는 표정이 좋지 않았다.

"반드시 서문엽을 영입해야 합니다."

"이보게, 서문은 자네의 성향과 어울리지 않잖아?"

"예, 그는 자신보다 위에 있는 권위를 싫어하고 제멋대로죠."

"내 말이 그걸세. 서문을 영입하지 않아도 우리는 챔피언일세."

"그가 다른 팀에 가면 지금보다 훨씬 힘들어질 겁니다. 특히나 파리로 가버리면요."

"서문이 대단한 건 나도 알고 있네. 인류를 구한 영웅 아닌가? 그런데 배틀필드 선수로서의 역량은 아직 검증된 게 아닐 거라고 생각하네. 오히려 구세주 타이틀을 달고 있어서 몸값만 더 비쌀 뿐이야."

가격 대비 효율에서 서문엽에 대해 부정적인 존 베르만 구단주.

지금도 잘해왔는데 왜 굳이 어마어마한 이적료가 소모될 게 뻔한 서문엽을 영입해야 하느냐는 의문이었다.

특히 전처럼 소속이 없다면 모를까, 지금은 YSM라는 듣도 보도 못한 팀 소속이었다.

"그가 활약한 상대는 기껏해야 한국 선수들이었네. 이곳 같은 빅 리그에서도 그런 활약을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일세."

"빅 리그에 와도 그는 최고일 겁니다. 제가 장담합니다."

엠레 카사 감독이 확언했다.

존 베르만 구단주는 그의 의지가 확고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한숨을 푹 내쉬고는 물었다.

"얼마?"

"1억 8천만 유로 정도는 각오하셔야 할 겁니다."

"헉!"

헛바람을 집어삼킨 존 베르만 구단주에게 엠레 카사 감독이 이어 말했다.

"파리의 모로 형제가 서문엽에게 미쳐 있기 때문에 더 나갈 수도 있습니다."

"그 문어 형제 놈들하고 돈으로 경쟁해야 한다고? 그건 돈 낭비가 너무 심해!"

"그럴 가치가 있습니다. 영입 못 하면 우린 2인자 확정입니다."

문제는 이 같은 대화가 내로라하는 세계 명문 클럽에서도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 위업(3) > 끝

< 위업(4) >

포스트 시즌 최종전.

KB-2 리그 1위 팀인 오션 엠파이어와의 우승컵 및 자동 승격이 걸린 경기는 그 중요성에 비해 긴장감이 별로 없었다.

"어휴, 승강전이나 준비해야지."

"승강전에서 박 터지게 싸우게 생겼네."

"SP 애들도 승강전에 목숨 걸었다던데."

"암만 치열해도 승강전이 낫지, 서문엽을 어떻게 이기냐?"

경기장에 모인 오션 엠파이어의 서포터들이 푸념을 늘어놓았다.

1세트, 서문엽이 최단시간 올킬 신기록을 세웠다.

시작하자마자 달려가서 오션 엠파이어 선수들을 죄다 때려눕힌 것이다.

거의 쥐 잡듯이, 창으로 던져서 잡고 찔러서 잡고 방패로 패서 잡으며 무자비하게 학살을 했다.

"이게 무슨 콜로세움의 검투사들도 아니고, 다들 한 가닥씩 초능력을 가지고 있는데도 어쩜 그렇게 안 통하지?"

"무슨 초능력을 언제 쓸지 다 알고 원천 봉쇄 하는 것 같은데."

"아니, 저 창 던지는 거는 금지시켜야 하는 거 아니냐?!"

"저걸 금지시키면 허용되는 초능력이 없을걸."

오션 엠파이어는 오션 그룹의 스포츠 구단으로 본래 1부 리그에 있었으나 지난해에 강등당한 클럽이었다.

한때는 KB-1에서도 우승 경쟁을 한 적이 있어서 재빨리 1부 리그에 복귀해 예전의 모습을 되찾겠다는 의지가 가득했다.

실제로 KB-2에서는 그들의 상대가 되는 팀이 없었기 때문에 복귀는 순조롭나 싶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서문엽이 나타난 것이다.

오션 엠파이어의 서포터들도 포스트시즌 1차전을 보고서 허탈감에 빠져 버렸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서문엽은 도저히 이길 상대가 아니었다.

결국 오션 엠파이어의 서포터들은 해탈한 채 그냥 편안히 지켜보기로 했다.

"됐다. 승격은 승강전에서 하기로 하고, 오늘은 그냥 눈 정화나 하자."

"서문엽 되게 잘 싸우더라."

"미쳤지. 세계 최강이잖아."

"저 정도면 불사 없어도 세계 최강 아니냐?"

승강전은 KB-2 포스트시즌의 2, 3위 팀과 KB-1의 최하위 두 팀이 겨뤄서 최종 승자 1팀을 뽑는 제도였다.

네 팀 모두 사활을 걸기 때문에 우승 경쟁 못잖게 치열했다.

가장 편한 건 포스트시즌에서 우승해서 자동 승격되는 것인데, 서문엽 탓에 글러버렸다.

YSM은 얄밉게도 2세트부터는 서문엽을 출전시키지 않았다.

대신 포메이션에 변화를 주었다.

최혁을 메인 탱커로 기용한 것.

본래 탱커로서는 초보였던 최혁은 서브 탱커로 활약하며 포지션 적응에 집중하고 있었다.

하지만 후반기 시즌을 치르고서 부쩍 성장했다.

-대상: 최혁(인간)

-근력 85/90

-민첩성 75/75

-속도 71/71

-지구력 70/70

-정신력 77/80

-기술 68/70

-오러 81/82

-리더십 41/43

-전술 45/55

-초능력: 오러 집중, 내구력 강화

-오러 집중(초능력): 오러를 들고 있는 무기에 빠르게 집중시킨다.

-내구력 강화: 오러가 항시 몸을 보호하고 있어 외부 충격에 쉽게 다치지 않는다.

집중적으로 단련한 근력이 85로 폭풍 성장하며 노정환의 82를 능가했다.

지구력은 더는 성장하지 않지만 본래 근접 딜러였던 만큼 민첩성과 속도가 월등했다.

무엇보다도 모든 것의 근간이 되는 오러량이 많은 편이라 유리했다.

뿐만 아니라 오러 집중 초능력으로 그 오러량을 120% 활용 가능한 재원!

이만하면 국가 대표로 뽑혀도 되는 역량이었다.

그래서 서문엽이 추천을 하였고, 가브리엘 감독도 일리 있다고 여겨 포메이션 변경을 추진한 것이다.

최전방 메인 탱커로 최혁.

주장 노정환은 서브 탱커로 한발 물러나 오더에 집중하기로 했다.

이것이 노정환의 재능을 더 살릴 수 있는 길이기도 했다.

-대상: 노정환(인간)

-근력 82/87

-민첩성 65/65

-속도 65/69

-지구력 72/85

-정신력 80/83

-기술 67/76

-오러 70/70

-리더십 84/91

-전술 69/72

-초능력: 육체 강화

노정환도 그동안 부쩍 성장했다.

가장 괄목한 성과는 처음 봤을 때 60이었던 지구력이 72까지 올라간 것이다.

앞으로 남은 한계치인 85까지 다 키우면, 지구력이 70/70밖에 안 되는 최혁을 대신해 커버 플레이를 해줄 수도 있었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탱커로서는 KB-1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하기에 충분한 수준.

그런데 노정환의 진짜 재능은 바로 주장으로서의 역량이었다.

그간 클럽을 이끌어왔던 주장답게 리더십이 84/91로 매우 높았고, 전술 역량도 69/72 정도면 평균 이상이었다.

가장 전방에 있는 것보다는 한발 물러나 모두를 아우르는 것이 팀워크에 더 도움이 될 거라고 판단했다.

이러한 YSM의 계획은 2세트에서 성공적으로 실현되었다.

힘세고 맷집도 센 최혁은 최전방에서 공격을 잘 막아내고 딜러였던 경험을 살려 반격도 잘했다.

뒤로 물러난 노정환은 그만큼 시야도 더 넓어져서 이리저리 잘 뛰어다니며 디펜스의 공백을 메웠다. 지구력을 갈고닦은 덕에 가능해진 플레이였지, 예전 같았으면 금방 퍼져 버렸을 터였다.

"오, 꽤 좋은데? 안 그래?"

경기를 지켜보던 서문엽의 말에 가브리엘 감독도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의 장점이 모두 살아났습니다. 최혁은 서브 탱커로 뒤처져 있을 땐 방어를 할지 공격을 할지 양자택일을 하는 습관이 있었는데, 최전방에 두니 둘을 동시에 펼치게 되었군요."

"전직 딜러여서 그래. 애매한 위치에 두면 옛날 버릇 나타나서 혼란스러워지니까 그냥 앞에서 박 터지게 싸우게 둬야 한다니까."

표현은 단순해 보여도 맞는 말이라 가브리엘 감독은 이에 동의했다.

그는 서문엽의 의견이 더욱 궁금해졌다.

"노정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걔는 약체 팀에 너무 오래 있어서 일단 버티고 보자는 약팀 근성이 있지. 그래서 최전방에서 두드려 맞다 보면 그때 근성이 살아나서 여유가 없어져. 시야가 좁아지지."

"음, 그것도 맞는 말씀 같습니다."

"그럼, 내 말은 틀린 법이 없어."

"그러고 보니 오더라면 조승호도 꽤 잘하더군요. 전술적 이해력이 상당합니다. 이것도 구단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인데, 대체 어떻게 재능을 알아보신 겁니까?"

"내가 전쟁 시대 땐 말이지, 던전 공략 할 때마다 그때그때 동료를 모집했어. 고정 멤버는 제호밖에 없었지."

"신뢰할 수 있는 고정 멤버끼리만 다니는 게 일반적이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계속 함께하려면 배려해야 할 부분도 있는데, 귀찮아. 시간도 서로 맞아야 하는데 난 그냥 내가 부르면 바로 튀어오는 애들이 좋고."

또 워낙 초인들이 많이 죽어나가던 시대인 탓도 있었다.

"아무튼 그렇게 계속 인간 군상을 보다 보니까 보는 눈이 생긴 거지."

정확히는 그 눈이 바로 분석안이다.

어쨌든 그렇게 분석안이 생긴 건 사실이었다.

"대단하시군요."

"뭘, 감독도 경험 쌓이다 보면 이 정도는 될 거야."

"노력하겠습니다. 아무튼 조승호의 전술적 역량이 올라오면, 그때부터는 메인 오더도 조승호로 옮길까 생각됩니다."

"사냥과 한타는 노정환, 특별 전술은 조승호, 그렇게 이원화하면 되겠지."

전쟁 시절과 달리 안전보다 빠른 사냥이 목적이기 때문에 인원을 나누는 일이 많았다. 그러므로 오더 체계가 이원화되어도 혼란이 없었다.

그때, 조용히 대화를 듣던 최동준 수석 코치가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

"저기, 저도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요."

"또 뭔데?"

가브리엘 감독을 대할 때와 말의 온도 차가 너무 났다.

최동준 수석 코치는 잠시 서러움을 느꼈으나 워낙 익숙해진 탓에 그러려니 하고 넘겼다.

"벌써 여기저기서 이적 문의가 오고 있는데요."

"아무도 안 팔아. KB-1에서도 실적을 올려야 몸값이 올라가지."

"아니, 그게 아니라 문의 대상이 구단주님이십니다."

"나?"

"들리는 소문에는 웬만한 명문 클럽들은 다들 구단주님을 영입하겠다고 이적료를 최소 1,000억 원 이상은 준비했다던데요?"

"호오, 최소 1,000억이라."

이적료는 선수가 아니라 팀이 갖는다.

근데 YSM은 100% 서문엽의 소유였다.

세금도 안 내므로 YSM의 재산은 곧 서문엽의 재산이었다.

"파리로 가십시오. 모로 형제가 돈을 넉넉히 줄 겁니다."

가브리엘 감독은 파리 뤼미에르 BC를 권했다. 전 소속 팀에 대한 애정은 여전한 모양이었다.

"흐음, 그냥 여기서 가끔 경기 뛰며 우리 팀을 최고로 만들면 안 되나?"

"최고라고 해봐야 아시아 최고고, 그 정도는 구단주님의 도움 없어도 이룰 수 있습니다."

"그 뭐시냐, 월드 챔스? 거기서 우승하면 최고 되는 거 아냐."

"못 이깁니다."

가브리엘 감독이 고개를 휘휘 저었다.

"혼자 올킬 쇼를 하는 것도 한국 수준까지입니다. 세계 레벨에선 구단주님이 아무리 대단하셔도 혼자서는 안 되죠."

"그러니까 선수도 좀 영입하고······."

"그만한 레벨의 선수들이 한국에 오려 하지 않습니다."

"끄응, 그럼 뭐 한국을 배틀필드 강국으로 만들어야 비로소 온다 이거야?"

서문엽은 짜증이 치밀었다.

이놈의 나라는 자신이 없는 사이에 왜 이렇게 바닥이 됐나 싶었다.

"리그 수준, 대우 조건, 주거 시설 등 걸리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죠. 이런 곳에 와서는 성장할 수가 없다고 판단하므로 전 세계의 유망주들은 한국에 오지 않습니다."

가브리엘 감독이 말을 이었다.

"그런데 구단주님을 팔아서 막대한 이적료를 손에 넣는다면, 리그의 수준은 몰라도 대우나 시설은 만족할 수준으로 만들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음······."

서문엽은 잠시 고민을 했다.

역시 재테크로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직접 노동해서 돈 버느니만 못했다.

"당장 결정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예, 천천히 생각해 보시죠."

2세트도 승리를 거둔 YSM은 3세트에서 서문엽에게 당한 여파로부터 멘탈을 수습한 오션 엠파이어의 반격에 당해 패배했다.

오션 엠파이어는 KB-1 수준의 팀이었기 때문에 YSM이 상위 리그에서도 통할지 알아볼 수 있는 좋은 시험 상대였다.

가브리엘 감독은 경기를 통해서 KB-1로 데려갈 선수와 이적시킬 선수를 구분했다.

4세트, YSM은 이나연과 윤범의 활약으로 초반부터 압박하며 우세를 가져갔다.

특히나 조승호가 스스로를 미끼로 내걸고 적을 유인하여서 2킬을 내는 쾌거도 거두었다.

오션 엠파이어는 수적으로 불리해지자 장기전을 택하며 성장에 집중했다.

이나연이 계속 쫓아 붙으며 사냥을 방해했지만, 윤범은 암습을 시도했다가 반격당해 데스를 당했다.

중반부터 오션 엠파이어가 대대적인 반격을 개시하며 삽시간에 역전을 이뤄냈다.

결국 오션 엠파이어가 승리를 거두며 2-2 동점을 만들었다.

유리했던 게임을 역전당하자 선수들은 고개를 푹 숙이며 들어왔다.

하지만 서문엽은 납득할 만했다.

'원래 실력도 쟤들이 월등한데 뭘.'

오션 엠파이어의 주전들은 KB-1 출신이었다.

서문엽이 영입한 이나연 등의 신인 선수들의 재능도 밀리지 않지만, 아직 성장이 더 필요했다.

그리고 한정실업 시절부터 있었던 기존 선수들은 실력이 많이 부족했다.

2세트에서 이긴 게 대단할 정도였다.

"구단주님, 좀 더 수고해 주셔야겠습니다."

"그래, 금방 끝내고 오지 뭐."

결국 5세트에서 서문엽이 다시 출전했다.

당연하지만 YSM은 2022년 KB-2 프로리그 최종 우승을 달성했다.

꼴찌 팀을 인수한 지 1년 만에 우승시킨 위업이었다.

< 위업(4) > 끝

< 겨울 이적 시장(1) >

후반기 시즌이 종료되고 마침내 겨울 이적 시장이 열렸다.

예상했지만 YSM에 많은 이적 문의가 들어왔다.

최혁.

이나연.

조승호.

남궁지훈.

노정환.

거기에 신인 선수인 윤범과 최정민까지.

서문엽이 콕 집어서 영입하거나 키운 선수들이 다 클럽들이 군침 흘리는 대상이 된 것이다.

하지만 서문엽은 그 누구도 팔 생각이 없었다.

위의 7인은 모두 연봉을 올려주며 재계약을 단행했다.

그들 또한 YSM에 있으면 더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과 애정이 있었기 때문에 쾌히 재계약했다.

하지만 그 외에는 전부 판매 대상이었다.

KB-2나 KB7 1부 리그 클럽에 판매를 단행하여서 4명을 보내는 데 성공했다.

실질적인 실력은 다들 형편없었지만 그래도 서문엽이 분석안으로 보고 단점을 보강하게 했고, 가브리엘 감독의 체계적인 훈련으로 기량을 끌어올렸다.

그래도 여전히 부족한 건 맞지만 가브리엘 감독의 전술 및 조직력 훈련 덕에 원래 실력보다 더 좋은 선수처럼 보였다.

그 덕에 선수들을 곧잘 처분할 수 있었다.

"선수 보강이 시급합니다."

가브리엘 감독이 말했다.

서문엽도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얼마나 필요한데?"

"발이 빠른 서브 탱커가 1명 더 있었으면 좋겠고, 근접 딜러는 많이 필요합니다. 원거리 딜러도 1, 2명 있었으면 좋겠군요. 제대로 원거리 공격과 관련된 초능력이 있는 선수로요."

이나연이나 윤범은 원거리 딜러이긴 하지만, 초능력 자체는 원거리 공격에 특화된 게 아니어서 화력이 별로였다.

국가 대표 원거리 딜러인 심영수처럼 폭발하는 불덩어리를 던진다거나 하는, 순간적인 파괴력이 강한 원거리 딜러가 한타 싸움에서는 필수였다.

물론 심영수처럼 멘탈이 쓰레기면 안 되지만 말이다.

"좋아, 봐둔 애들이 몇몇 있으니까 샅샅이 뒤져서 꼬셔볼게."

서문엽은 예전과 달리 후반기 시즌 동안에는 배틀필드 경기를 부지런히 봐뒀다.

KB-1, KB-2, KB7 1부, 그밖에도 아시아권이나 동유럽, 남미 등 선수 대우가 별로 좋지 않은 국가 위주로 유망주를 뒤져보았다.

그래야 영입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프랑스나 미국 같은 배틀필드 강국은 유망주들이 절대로 한국에 오려 하지 않았다.

중국도 자국 리그가 폐쇄적인 편이라 그렇지 실력 자체는 강국에 포함되며 연봉도 셌다.

일본이나 아랍권은 실력에 비해 연봉이 세서 데려오기가 힘들었다.

가장 좋은 것은 역시 대한민국에서 유망주를 찾는 것이었다.

이제 YSM도 당당한 KB-1 클럽이었다.

더 이상 하위 리그의 약체가 아니라서 유망주를 데려올 여건이 있었다.

문제는 이미 웬만한 유망주는 다 기존의 KB-1 클럽들이 선점해서 자기들의 유소년 팀에서 키우는 중이라는 것.

YSM은 아직 유소년을 키울 여건까지는 되지 않았다.

'씨발 몰라, 그냥 내가 분석안으로 때워야지. 뭘 복잡하게 유소년 팀이야.'

안목이 좋은 지도자가 없으면 유소년을 키우는 일도 그냥 돈을 꼬라박는 짓이었다.

서문엽은 그냥 하던 대로 분석안으로 잘될 선수를 딱 집어내는 게 좋았다.

일단 봐둔 명단이 있었기 때문에 서문엽은 직접 바이크를 타고 출발했다.

물론 최동준 수석 코치나 몇 안 되는 스카우터들이 추천하는 선수도 직접 봐볼 생각이었다.

헬멧도 없이 바이크를 타고 고속도로에 당당히 진입한 서문엽은 경상남도까지 질주했다.

경상남도 진주시에 도착한 서문엽은 봉원 고등학교에 도착했다.

진주시에서 유소년 리그에서 참가하는 배틀필드 팀이 있는 유일한 학교였다.

겨울 방학 기간이라서 학교는 한산했다.

방학이 아니었으면 당장에 학생들이 개떼처럼 모여들어 사인해 달라, 사진 찍어 달라 설쳤을 터였다.

"어이쿠, 서문엽 씨! 어서 오십시오!"

얼마 전에 통화했던 나이 든 감독이 나와 반겨 맞았다.

초인임에도 저렇게 나이 들어 보이는 걸 보면 실제 나이는 무척 많을 터.

상당히 옛날부터 지저 전쟁에 참여했던 초인 출신이 분명했다.

"선수들 좀 볼 수 있을까요?"

"예, 물론입니다. 이쪽으로 오십쇼."

감독과 함께 훈련실로 들어서며 서문엽이 물었다.

"김형태라는 애는 있나요?"

"아, 형태······."

나이 든 감독의 얼굴에 안타까움이 어렸다.

"왜요?"

"그게, 형태는 얼마 전에 쌍성 스피리츠와 계약했습니다. 이를 어쩌죠?"

"뭐, 그럼 어쩔 수 없죠."

서문엽은 별일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김형태는 봉원 고등학교의 주전 탱커였다.

KB-1의 주전 선수가 될 정도의 재능을 가졌고, 현재 능력도 로테이션 멤버로 기용 가능했다.

탱커 1명이 필요하다는 가브리엘 감독의 주문이 있었기 때문에 점찍었지만, 솔직히 큰 기대는 안 했다.

'다른 데서 데려갈 줄 알았다.'

그렇게 크게 탐나던 녀석도 아니어서 미련 없었다.

온 김에 선수들을 쭉 둘러보았다.

체력 단련을 하고 있던 선수들은 서문엽을 흘깃흘깃 쳐다봤다. 신경 쓰이는 게 당연했다.

인류를 구한 영웅이자 구단주였다.

선수를 골랐다 하면 대박을 터뜨리는 미다스의 손으로도 알려져서 자신도 좀 뽑아줬으면 하는 설렘이 들 수밖에 없었다.

선수들은 갑자기 더 열심히 체력 단련에 매진했다.

하지만 서문엽은 이미 분석안으로 모두 훑어본 뒤였다. 쓸 만한 선수는 없었다.

"이대영이라는 근접 딜러도 있지 않았던가요?"

서문엽의 물음에 감독은 그 선수는 어떻게 알았냐는 듯 눈이 휘둥그레졌다.

"대영이도 눈여겨보셨습니까?"

"예."

"이를 어쩌지. 그 애는 은퇴했습니다."

"엥?"

고등학생 놈이 은퇴는 무슨 은퇴란 말인가?

이상해하는 서문엽에게 감독이 한숨을 쉬었다.

"하기 싫대요."

"그럼 공부한대요?"

"아뇨, 공부는 더 싫어합니다."

감독이 푸념 어린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아버지가 건물주입니다."

"아······."

비로소 납득이 됐다.

그냥 세상 편하게 살고 싶은 놈이었다.

배틀필드는 그냥 멋져 보여서 잠깐 했던 것이리라.

"열심히 했으면 그래도 KB7 1부까지는 갔을 텐데, 에휴."

감독이 한숨을 푹푹 쉬었다.

사실 서문엽이 보기에는 KB-1까지도 충분히 갈 수 있는 놈이었다. 그래서 영입하려고 여기까지 온 것이고.

겸사겸사 다른 선수들도 쭉 훑어봤지만, 자질 있는 유망주는 안 보였다.

"그럼 뭐, 이제 건질 게 없네요. 잘 봤습니다."

서문엽은 더 볼 선수가 없다고 직설적으로 말하고는 등을 돌렸다.

"서문엽 씨, 잠시만!"

감독이 급히 서문엽을 불러 세웠다.

"왜요?"

"제가 한 녀석을 추천하고 싶은데 한 번 봐주실 수 있겠습니까?"

"여기 없는 애예요?"

"예, 박영민이라는 앤데 작년에 졸업하고 이제 스무 살 됐습니다."

"그럼 이미 다른 팀 소속이겠네요."

"아뇨, 배틀필드를 관두고 방황을 하고 있는데 참 안타까워서······."

"방황?"

"그냥 질 나쁜 사람들과 어울려 놀고 있답니다."

"쓰레기 재활용은 취미가 없는데."

"재능은 확실히 있는 앱니다! 그러니까 서문엽 씨가 좀······."

"무슨 생각이신지 알겠네."

서문엽은 나이 든 감독의 눈을 빤히 마주 보았다.

가까이서 눈이 빤히 마주치자 감독은 당황했다.

"내가 찾아가서 쥐어 패서라도 끌고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시지? 내가 하면 반쯤 죽여놔도 처벌 안 받으니까."

감독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저도 왕년에 산전수전 다 겪은 몸이고, 그런 녀석도 많이 봤습니다. 느낌이 있잖습니까? 던전에 데려가면 잘할 것 같은 애."

"있죠."

서문엽도 동의했다.

던전 데려가면 잔뜩 겁먹고 트롤 짓을 할 놈인지, 의외로 제 역할 잘할 놈인지는 오랜 경험을 통해 감이 왔다.

"걔가 그렇습니다. 애가 가정사가 복잡하고 그래서 좀 방황하는데 자질은 확실하게 있어요. 제가 장담합니다."

"음, 좀 귀찮은데······."

그렇게 투덜거린 서문엽은 돌연 감독을 노려보며 말했다.

"정말 자신 있게 자질 있다고 말할 수 있어요? 막상 봐서 재능이 없다 싶으면 팔다리 분질러서 길거리 한복판에 버려놓고 갈 건데."

그 말에 감독은 움찔했다.

서문엽은 정말 그럴 수 있는 사람이었다.

언론에 알려진 거야 그냥 사고뭉치 수준이지만, 전쟁 시절의 서문엽은 정말 무섭고 잔인한 자였다. 그 시절 던전에서 구르던 초인들끼리 돌던 소문도 있어서 감독은 두려움을 느꼈다.

"예, 제 생각에는 정말 자질이 있습니다."

"포지션은?"

"근접 딜러였습니다."

"오케이, 지금 어디 있어요?"

"애들이 알 텐데 한번 물어보겠습니다."

감독은 선수들에게 물어보러 들어갔다가 잠시 후 다시 나와서 알려줬다.

"이 근처 PC방 단골이라더군요."

감독은 서문엽에게 PC방 주소를 일러주었다.

"재능 없으면 내일 신문 1면에 나올 각오하쇼."

"저, 정말 보장합니다."

감독의 목소리는 점점 떨렸다.

알려준 PC방으로 달려간 서문엽은 곧장 분석안으로 쭉 훑어보았다.

금방 찾을 수 있었다.

-대상: 박영민(인간)

-근력 70/84

-민첩성 63/85

-속도 60/81

-지구력 54/70

-정신력 46/62

-기술 55/81

-오러 70/76

-리더십 12/32

-전술 39/54

-초능력: 화염검

-화염검: 검에 충돌 시 작은 폭발을 일으키는 불꽃을 입힌다.

"오!"

서문엽이 감탄했다.

물론 천하의 서문엽이 감탄할 정도의 자질은 아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보기 어려운 재능의 소유자였다.

'근력, 민첩성, 속도, 기술이 전부 80대네.'

저만한 자질을 가졌는데 현재 능력치가 저것밖에 안 되는 건 본인의 노력 부족이었다.

그 덕에 다른 클럽들의 눈을 피해 이렇게 서문엽의 타깃에 들어왔지만 말이다.

'정신력이 별로이긴 한데 아주 못 써먹을 수준은 아니니까.'

잘 키우면 국가 대표도 능히 할 수 있는 재목.

반드시 데려가기로 한 서문엽은 성큼성큼 박영민에게 다가갔다.

머리를 노랗게 염색한 박영민은 똑같이 할 일이 없어 보이는 친구들과 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흡연석이 바로 근처에 있는데도 제자리에서 담배를 뻑뻑 피며 재를 음료수 빈 캔에 털고 있었다.

여자 아르바이트생이나 다른 손님들은 무서워서 문제 제기를 못 하고 눈치만 봤다.

알아주는 양아치들인 모양이었다. 하기야 초인이 양아치 짓을 하면 경찰도 진땀을 뺀다.

"어? 서, 서문엽이다!"

박영민의 친구 하나가 서문엽을 발견하고는 놀라서 소리쳤다.

서문엽은 그 친구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뻑!

"컥!"

"왜 반말이야, 개새야."

뒤통수를 맞은 친구는 키보드에 머리를 처박고 기절했다.

"씨, 씨발, 뭐야!"

박영민과 친구들이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뭐라고? 씨발?"

"아, 아뇨."

저도 모르게 욕을 한 친구가 급격히 눈을 깔았다.

서문엽은 그 친구가 피우고 있던 담배를 뺏어 목에 짓이겨 주었다.

"아악!!"

"왜 여기서 흡연이야, 개새들아."

"죄, 죄송합니다!"

다들 급히 담배를 끄고 난리도 아니었다.

서문엽은 서늘한 눈으로 박영민을 쳐다봤다.

박영민은 눈이 딱 마주치니 어찌할 바를 모르고 겁을 먹었다.

"박영민 빼고 다 나가."

정확히 이름을 지목당하자 박영민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다른 친구들은 다행이다 싶어서 떠나려고 하는데, 문득 서문엽이 말했다.

"야 이 씨발들아. 누가 걸어 나가래?"

"네?"

"그럼······."

"기어서 나가, 벌레들아."

PC방에서 행패를 부리던 양아치들은 결국 엉금엉금 기어서 도망쳐야 했다.

상황이 정리되자 서문엽은 부처처럼 인자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영민아. 넌 형하고 얘기 좀 하자."

박영민은 두려움에 질렸다.

< 겨울 이적 시장(1) > 끝

< 겨울 이적 시장(2) >

"근데 말이다. 왜 흡연실도 아닌데 담배를 폈니?"

"죄송합니다."

박영민은 바로 사죄했다.

안 그러면 맞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죄송할 짓을 했으면 혼이 나야 하겠네?"

"네?"

뻐억!

"끄억!"

머리를 강렬하게 후려 맞은 박영민은 그 충격에 눈알이 빠지는 줄 알았다.

때린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서문엽은 만족스러워했다.

"타격감이 좋네."

'뭐, 뭐래는 거야!'

박영민은 사시나무처럼 떨었다.

자신이 뭘 해도 상대는 때릴 생각으로 충만해 보였다.

박영민도 어디 가서 누군가에게 겁먹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상대가 서문엽이면 얘기가 달랐다.

'서문엽씩이나 되는 사람이 나한텐 무슨 볼일인 거야? 왜 내 이름을 알고 있지?'

서문엽 같은 거물이 왜 자신을 찾아왔을까?

그 의문에 곧 답이 나왔다.

두려움에 질려 있던 박영민의 표정이 변했다.

"감독님 소개받고 오셨죠?"

"어."

"전 싫어요. 배틀필드 안 할 거예요."

특히나 눈앞에 있는 인간과 다시는 상종하고 싶지 않았다. 20년 평생 본 가장 무서운 인간이었다.

"그래, 그러니까 그 부분에 대해서 둘이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눠보자. 일단 조용한 곳으로 자리를 옮길까?"

"싫어요. 전 더 할 얘기 없어요."

박영민은 자리에 털썩 앉아 모니터로 고개를 돌렸다.

본인이 안 하겠다는데 별수 있겠느냐는 생각에서였다.

'아까는 실내에서 흡연했다는 명분이 있어서 맞았지만 설마 의사 표현 갖고 때리지는 않겠지. 양아치도 아니고.'

사실 어딜 봐도 양아치였다. 그래도 인류를 구한 영웅의 품격을 믿었다.

예상대로 서문엽은 주먹을 휘두르지 않았다.

침착한 어조로 설득을 할 뿐이었다.

"그래도 여기까지 찾아온 성의가 있는데 시간 좀 내주지 않을래?"

"싫어요. 죄송한데 그냥 돌아가세요."

가라고 손짓을 하는 박영민.

그때였다.

"이 개새끼가 거의 파리 쫓듯이 손짓을 하네. 뒈지고 싶냐?"

박영민이 착각한 게 있었다.

서문엽은 품격 같은 걸 키우지 않았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뻐억!

"크억!"

뒤통수를 강하게 얻어맞은 박영민.

서문엽은 멱살을 틀어쥐고 바짝 끌어당기며 말했다.

"야, 네가 꺼지라면 난 꺼져야 하는 거냐? 꺼져줄까? 앙?!"

"아니, 제가 싫다는데 왜······."

"그러니까 얘기를 좀 하자고!"

퍼억!

"쿠엑!"

명치를 얻어맞고 비틀거리는 박영민.

초인으로 각성한 이래로 가장 아프게 맞아본 날이었다.

저항이라도 해보고 싶은데, 몸이 공포로 굳어 말을 듣지 않았다.

"반항했으면 뒈지게 팼을 텐데 의외로 참을성 있네."

박영민은 말을 듣지 않는 몸에 감사했다.

"자, 가자."

서문엽은 박영민의 멱살을 붙들고 PC방을 나서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서문엽은 문득 PC방 한쪽 구석 자리에서 자신을 향해 스마트폰 카메라를 향하고 있는 젊은 여자를 발견했다.

인상을 찡그린 서문엽은 그 여자에게 말했다.

"야."

"힉!"

여자는 화들짝 놀라 숨는답시고 자기 자리에 몸을 웅크렸지만, 서문엽은 그쪽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지워라. 오빠 안 그래도 피곤한 사람이야."

"저, 저기, 그게요."

빼꼼이 PC방 모니터 너머로 얼굴을 내미는 여자.

탈색한 단발머리에 금방이라도 울 듯한 여린 인상의 귀여운 여자였다.

초인은 아니었고, 이제 갓 20살쯤 되어 보였다.

"이거 동영상 녹화가 아니라요."

"아니면?"

"저 BJ이쁜나리라고 하는데요, 인터넷 방송이에요."

"뭐? 방송?"

"네."

"···지금 생방송으로 나가고 있다는 거야?"

"네, 실시간······."

서문엽은 문득 자신의 손에 멱살이 잡혀 있는 박영민을 빤히 바라보았다.

이게 지금 생방송으로 인터넷에 송출되고 있다고 한다.

"이름이 뭐라고?"

"BJ이쁜나리요."

"지가 지 입으로 예쁘대."

"아, 아니요. 닉네임이에요!"

"여기서 방송은 왜 해?"

"그게······."

이쁜나리라는 BJ는 서문엽과 박영민의 눈치를 보더니 순순히 털어놓았다.

"여기가 양아치 소굴 PC방으로 유명한데요, 여기서 방송하는 미션 받았어요. 이거 하면 별사탕 1만 개예요."

그 말에 박영민은 얼이 빠졌다. 이미 양아치로 널리 알려지게 된 셈이었다.

"여자가 무슨 그런 위험한 방송을 해?"

"헤헤, 요즘은 얼굴만 갖고는 못 먹고살아요."

무서워했던 모습은 다 어디 갔는지 배시시 웃으며 대답하는 BJ이쁜나리.

마치 팀의 이나연을 보는 듯한 천진난만함이었다.

차이점은 눈앞의 이 여자가 좀 맛이 간 듯 보이는 점.

"하아······."

서문엽은 성큼성큼 다가와 BJ이쁜나리의 옆에 앉았다.

그리고 스마트폰 카메라를 쳐다보자 채팅이 실시간으로 폭주하고 있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

-서문엽 대박이다ㅋㅋㅋ

-오늘 방송 레전드ㅋㅋ

-서문엽 깊은 한숨ㅋㅋㅋ

-와, 진짜 서문엽이다

-오늘 방송 미쳤다ㅋㅋ

-ㅋㅋㅋㅋㅋ

-서문엽 포스 개쩐다

-기어서 나가 벌레들아, 희대의 명언 탄생ㅋㅋㅋ

-서문엽 님, 안녕하세요! 언제나 존경합니다!

-사요나라 님께서 별사탕 10,000개를 선물하셨습니다.

-오오오

-55555

-5555

-우와

"꺄악! 사요나라 님 별사탕 1만 개 감사합니다."

갑자기 BJ이쁜나리가 방방 뛰며 소리 지르자 서문엽은 흠칫했다.

서문엽의 반응에 채팅창이 'ㅋㅋㅋ'로 도배되었다.

-ㅋㅋㅋㅋ

-ㅋㅋㅋ

-서문엽 문화 충격ㅋㅋ

-별사탕 리액션 직관

-ㅋㅋㅋ

"별사탕 1만 개면 얼만데?"

"별사탕 하나에 100원이고 저한테는 수수료 떼고 70원 떨어져요."

"얼마 안 되네."

서문엽에겐 작은 돈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때부터 별사탕 잔치가 벌어졌다.

시청자들이 별사탕을 마구 쏘기 시작한 것이다.

BJ이쁜나리가 서문엽 앞에서 리액션을 하는 게 웃겨서다.

"꺅! 또 1만 개! 감사합니다! 완전 지렸어요. 완전히 지린 나머지! 제가 새로운 리액션 보여 드릴게요!"

그러더니 엉금엉금 기어 다니는 게 아닌가.

"아이고 지렸다! 지려서 기어서 나갈 거다!"

박영민의 친구들을 패러디한 리액션.

채팅창은 웃음 폭탄이 떨어졌고, 서문엽도 어느새 낄낄거리며 웃게 되었다.

'확실히 또라이네.'

TV 중독자 서문엽이 인터넷 방송이라는 신세계를 만난 순간이었다.

꿰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앉아 있는 박영민만 떫은 표정이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BJ이쁜나리가 갑자기 전화가 왔는지 주머니에 있던 다른 핸드폰을 꺼내 받았다.

"여보세요?"

이윽고 사색이 된 BJ이쁜나리.

"네? 징계요? 며칠이요? 그렇게 오래요?"

점점 울상이 되는 BJ이쁜나리.

서문엽이 채팅창을 보니 운영자 떴다고 'ㅋㅋ'거리고 있었다.

"운영자?"

그 물음에 수많은 'ㅋㅋㅋ'의 바다 속에서 몇몇이 대답했다.

-네

-방송에 폭력 노출돼서 운영자한테 징계 먹었나 봐요

-방송 정지 먹나ㅠㅠ

-전과가 있어서 이번엔 더 길 텐데 걱정이다ㅠㅠㅠㅠ

-영자야, 작작해라

대강 상황을 파악한 서문엽은 BJ이쁜나리에게 손짓했다.

"폰 갖고 와."

"네?"

"나 바꿔봐."

BJ이쁜나리는 잽싸게 폰을 건넸다.

"운영자야?"

-네, 누구시죠?

젊은 남자 목소리였다.

"나 서문엽인데."

-······!

살짝 기겁하는 소리가 들렸다.

"징계한다고 전화했지?"

-네. 방송이 폭력에 노출되어서······.

"폭력? 그거 나한테 한 소리야?"

-그, 그게······.

"난 교육의 일환으로 손을 썼을 뿐이야. 근데 폭력이라고? 너 그 말에 책임질 수 있어?"

슬슬 억지를 부리기 시작한 서문엽.

하지만 책임이라는 말에 쉽게 응할 수 있는 직장인은 별로 없었다.

"나와 네 소신이 다르다면 어디 한번 책임지고 해봐. 대신 나 바로 너희 회사 가서 너 찾는다. 너 이름 뭐야?"

-······.

"왜 대답이 없어. 너 이름 뭐냐고."

운영자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 저기,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잠시 후,

-상의 결과 BJ 본인에게 고의성은 없었으므로, 경고 조치로 처리하기로 했습니다.

"응, 그래. 그게 맞지."

서문엽도 양심상 그 정도는 인정했다.

-대신 폭력과 욕설이 나오지 않도록 주의 부탁드립니다.

"응, 알았어."

-저기요, 지금도 멱살 잡고 계시는 거 놔주시고요.

"응? 아."

그제야 서문엽은 아직도 박영민의 멱살을 쥐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놔줬어. 그럼 수고들 해라."

서문엽은 통화를 종료하고 폰을 BJ이쁜나리에게 건넸다.

"어, 어떻게 됐어요?"

"그냥 경고 처리 한대."

"꺅!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BJ이쁜나리가 굽신굽신 인사를 했고 채팅창도 서문엽에 대한 찬사로 도배되었다.

-대단하다ㅋㅋ

-포스 보소ㅋㅋㅋㅋ

-지렸다

-전화받은 사람이 나였으면 지렸을 듯

-운영자 참교육ㅋㅋㅋ

-개쩐다ㅋㅋ

-위압감 뭐야ㅋㅋㅋㅋㅋ

-막말로 사장 부르라 할 기세

-역시 갑 오브 갑

서문엽은 그 반응들을 보며 혀를 찼다.

"뭐가 그렇게 웃기냐? 너희도 갑질 당하면 기분 안 좋잖아."

본인도 잘못한 것을 알긴 알았다.

"흠흠, 어쨌든 오늘 일은 좀 과했지만 사소한 해프닝으로 여겨주시고, 여기 이 친구와는 좋게 얘기할 테니 오해 없길 바랍니다. 물의를 빚어 죄송하고······."

서문엽은 도끼눈을 뜨며 말을 이었다.

"기자들, 내가 사과한 것까지 안 실으면 다음부터 재미없다. 야, 방송 꺼!"

"넹! 여러분 그럼 있다 뵐게요!"

BJ이쁜나리는 교태를 한껏 부리다가 방송을 종료했다.

"감사합니다! 오늘 덕분에 시청자 5만까지 찍었어요!"

"그렇게 많이 봐?"

"원래 평균 2천 명인데 오늘 완전 대박 나서요!"

"흐음, 그럼 너 언제 우리 클럽하우스에서 방송 안 해볼래?"

홍보에 좋겠다는 생각에 즉흥적으로 내린 결정이었다.

"YSM 클럽하우스요? 완전 좋죠! 저도 배틀필드 좋아해요! YSM 경기 본 적도 있고, 이나연 언니 너무 좋아요!"

"그래그래, 잘됐네. 조만간 한번 놀러와서 선수들 인터뷰도 하고 그래봐."

"네! 언제 갈까요? 내일 당장?!"

좋은 방송 소재 잡았다는 생각에 BJ이쁜나리는 눈이 반짝였다.

"···뭐, 내일모레쯤 와봐."

"네! 그때 뵐게요! 아, 연락처 주세요!"

연락처 줘서 보낸 후, 서문엽은 박영민과 단둘이 되었다.

"야."

"네."

"부모님 뭐 하셔?"

박영민은 불편한 표정이 되었다.

대답하기 싫었지만 안 하면 맞을 것 같았다.

"어머니는 식당에서 일하시고, 아버지는 술 마시고 노름해요."

"어머니가 세 식구 먹여 살리는 거야?"

"할아버지 할머니도 계시는데, 할아버지 연금도 같이 보태서 생활해요."

"넌 뭐 하고 사는데?"

"···그냥 알바 좀 하고 놀아요."

"노가다?"

"네."

몸 튼튼한 초인들은 단기간 용돈벌이로 중노동을 선호했다.

"앞으로 인생 계획은?"

"···딱히 없는데요."

"요약해 보자. 집안은 어렵고 어머니는 고생하시는데, 넌 놀고 있고 앞으로도 계획 없고?"

"······."

"너 뒈질래, 나 따라 선수 할래?"

서문엽의 눈빛에 진득한 살기가 어렸다.

박영민은 두려움에 떨며 간신히 입을 열었다.

"하, 할게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대신 조건이 있어요."

"조건?"

"아니, 부탁이에요."

"읊어봐."

"저희 아버지 말인데요."

"술 마시고 논다며."

"네, 오늘 저처럼 똑같이 참교육 시켜주세요. 다시는 술 안 드시게요."

아버지에 대해 말하는 박영민의 표정에 애증이 교차하고 있었다.

한동안 말을 잃었던 서문엽은 이윽고 한탄했다.

"내 인생은 폭력이 끊이질 않는구나."

2022년 겨울 이적 시장.

서문엽은 폭력 사태로 스타트를 끊었다.

< 겨울 이적 시장(2) > 끝

< 청부업자(1) >

전주시의 어느 당구장.

술이 들어가 얼굴이 벌게진 중년 사내들끼리 담배를 뻑뻑 피우며 내기 당구를 하는 곳에 서문엽이 나타났다.

양손에는 유리병이 잔뜩 든 검은 비닐봉지를 든 채였다.

내기 당구에 정신 팔려 있는 사내들에게로 서문엽은 성큼성큼 걸어갔다.

"어? 서문엽이다!"

한 사내의 말에 그제야 다들 서문엽을 돌아보았다.

"어, 진짜다!"

"우와! 이게 누구야!"

"오늘도 우리 동네에서 사고 한 건 치셨던데?"

"하하하!"

유쾌하게 웃는 사내들.

서문엽도 사람 좋게 웃어 보였다.

"영민이 아버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어? 전데요?"

유난히 술 냄새가 많이 나는 중년 사내가 말했다.

박영민의 아버지 박주철이었다.

서문엽의 웃음이 더욱 자애로워졌다.

"결혼 후 한 5년쯤 장사하다 접은 뒤로 15년째 술 드시고 노름만 하셨다는 그분 맞아요?"

"엉? 그, 뭐야?"

바로 돌직구.

박주철의 표정이 당혹으로 물들었다.

"일단 아드님이 어엿한 배틀필드 프로 선수가 된 것을 축하드립니다."

"우, 우리 영민이가요?"

"그럼요. 저는 기쁜 소식을 전하고, 겸사겸사 아드님의 부탁으로 다시는 술을 안 드시도록, 죽도록 패드리러 왔습니다."

패드립 그 자체.

"뭐라고요?"

박주철은 더없이 당황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어떻게 패야 술 생각이 안 날지 저도 고민을 많이 하다가, 빈 술병을 준비해 봤습니다."

서문엽은 검은 봉지를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그리고 안에서 빈 소주병과 맥주병을 연이어 꺼내 당구대 위에 올렸다.

각 브랜드별로 하나씩 갖춰진 알찬 패키지였다.

서문엽의 미소는 뒤에 후광이 비칠 정도로 자애로웠다.

"술병만 봐도 무서워서 지리게 만들면 되지 않을까 하고 판단했습니다."

그 말뜻을 이해한 박주철과 사내들은 두려움에 질린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거기 다들 술친구들이시죠?"

"네, 네······."

한 명이 공포를 이기고 간신히 대답했다.

"친구가 15년째 가족 내팽개치고 술만 처마시는데 같이 어울리신 걸 보면 똑같은 쓰레기들이시군요. 눈깔 뽑기 전에 제 시야 밖으로 퇴장해 주십쇼."

거의 사이코패스 같은 눈빛.

사내들은 주춤주춤 홍해처럼 박주철을 중심으로 갈라졌다.

친구들을 둘러보며 패닉에 빠진 박주철에게 서문엽이 천천히 다가갔다.

"그럼 찬이슬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소주병 하나가 그의 손에 들려 있었다.

"참고로 76년생이더군요. 전 75년생인데, 형이라 부르실래요?"

"그, 그런······."

박주철은 말문이 막혔다. 저런 형을 두고 싶지 않았다.

"난 말 편히 할게. 불만 없지? 그냥 동네 형한테 좀 혼났다고 생각하자."

그리고······.

병원에 들러 치유 능력을 가진 초인에게 말끔히 치료받은 박주철은 가족의 품에 돌아왔다.

몸은 말끔했으나 영혼은 탈탈 세탁되어서 얼빠진 얼굴이었다.

"여, 여보!"

"주철아!"

박영민의 어머니와 할머니, 할아버지가 뛰쳐나왔다.

박영민 또한 걱정되는 얼굴로 아버지와 서문엽을 바라보고 있었다.

"서, 서문엽 씨, 대체 제 아들을 어떻게······."

할아버지가 물었다.

"다시는 술 드시지 않겠답니다. 그렇지?"

"네! 서, 성실히 살겠습니다!"

"노름도 안 하고?"

"예!!"

경기를 일으키는 듯한 빠릿빠릿한 대답이었다.

"약속을 어길 시 다시 면담을 갖기로 했으니 이제 염려 놓으십시오."

"주철아, 정말이냐?"

"예, 아버지! 이제 정신 차렸습니다!"

신병처럼 군기가 들린 대답이었다.

서문엽은 이제 박영민을 응시했다.

"인마."

"···네."

"약속 지켰다. 내일 클럽하우스로 아까 사인한 계약서 들고 찾아가라."

"내일 바로요?"

"넌 오래 놀았잖아. 재활 훈련 미리부터 받아야지."

"알았어요."

박영민은 이제 한가하게 놀던 좋은 시절은 다 간 걸 아는지 한숨을 쉬었다.

그리하여 근접 딜러 박영민이 새롭게 YSM에 합류했다.

'영입 한번 더럽게 힘드네.'

발로 뛰는 구단주는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다음 지역으로 떠났다.

헬멧도 없고 고속도로로 당당히 진입하다 못해, 이제는 한 손으로 스마트폰을 들고서 인터넷 방송까지 보고 있었다.

-꺄악! 방송 잘했다고 별사탕 5,000개! 으악! 지렸다! 또 지려서 이족 보행을 못하겠어! 기어 다녀야겠어!

바닥을 기는 '기어서 나가, 벌레들아' 리액션을 펼친 BJ이쁜나리가 드러누운 채 들썩거리며 심장 제세동기 세리머니까지 펼치고 있었다.

낄낄거리던 서문엽은 별사탕 5,000개를 더 쏴줬다.

-꺄악! 우주급짱짱맨님! 너무 감사합니다!

파프리카TV의 새로운 큰손, 우주급짱짱맨.

바로 서문엽의 아이디였다.

인터넷 방송에 푹 빠진 덕에 가는 길이 지루하지 않았다.

질주한 끝에 도착한 곳은 경상남도 통영시.

충무고등학교에 도착한 서문엽은 배틀필드 팀 훈련실을 찾아갔다.

"네가 김진수구나."

"예! 안녕하십니까!"

190㎝에 달하는 키에 호리호리한 체형의 김진수가 우렁차게 인사했다.

미리 연락을 해뒀기 때문에 점찍었던 김진수를 쉽게 만날 수 있었다.

-대상: 김진수(인간)

-근력 66/80

-민첩성 65/81

-속도 61/75

-지구력 70/88

-정신력 80/91

-기술 73/76

-오러 69/69

-리더십 43/52

-전술 38/56

-초능력: 희생, 재생

-희생: 지정한 사람의 부상을 흡수하여 대신 짊어진다.

-재생: 상처를 재생한다.

김진수는 탱커였다.

탱커치고 근력이 약해 주목을 못 받았고, 간신히 KB7 2부 구단의 제안을 받았다.

졸업을 앞둔 터라 마지막까지 고민하던 차에 서문엽의 연락을 받은 것이었다.

'확실히 근력은 약하네.'

다행히 근력 한계는 80으로 아슬아슬하게 커트라인이었다.

대신 민첩성 한계가 81로 높은 편.

거기다 지구력은 한계가 88로 강점이었다.

기술도 73/76으로 더 가르칠 게 없어서 좋았다.

기술은 가장 올리기 어려운 수치라 처음부터 키우려면 오래 걸린다. 그런데 벌써 73이니 당장 써먹을 수 있는 것이다.

초능력은 둘 다 탱커에 어울렸다. 재생의 경우 파리의 치치 루카스도 가진 초능력인데, 희생과 시너지가 환상적일 듯했다.

'딱 가브리엘 감독이 찾던 발 빠른 서브 탱커군.'

개인적으로는 높은 정신력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저 정도면 멘탈 문제로 기량이 하락할 염려는 없었다.

"진수야."

"네, 구단주님!"

"넌 네 장점이 뭐 같아?"

잠시 고민한 김진수는 수줍게 답했다.

"전 힘이 약해서 방패 컨트롤로 디펜스를 보완했습니다. 그 덕에 테크닉은 좋은 편입니다."

"응, 그건 지금 당장의 장점이지."

의아해하는 김진수에게 서문엽이 설명했다.

"넌 재빠르고 부지런히 뛰어다닐 수 있는 재능을 가졌어. 너도 선수로서 야망이 있지?"

"네!"

"널 국가 대표 서브 탱커로 키워주마."

"저, 정말이신가요?"

"응, 나 알잖아. 내가 지목하면 무조건 터지는 거."

미다스의 손으로 소문난 서문엽의 안목은 김진수에게 용기를 불어넣었다.

"네, YSM에 가고 싶습니다."

현재 제안 온 곳이 KB7 2부 리그 팀밖에 없었으니 선택의 여지도 없었다.

물론 서문엽이 찾아왔다는 소문이 돌면, 다른 클럽에서도 혹시나 싶어 찔러볼 수 있다.

하지만 김진수는 자신을 알아봐 준 서문엽에게 가고 싶었다.

"넌 뭐 문제 같은 거 없지? 가족 중에 좀 맞아야 할 사람이 있다든가."

"어, 없습니다!"

김진수는 무슨 소릴 하냐는 듯 화들짝 놀라는 반응이었다.

서문엽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정상적인 선수 영입이었다.

"진수야, 넌 근력 트레이닝이 시급하니까 빠른 시일 내에 우리 클럽하우스에 합류해라."

"내일 바로 가겠습니다!"

김진수는 충실하고 충성스러운 성격으로 보였다.

서문엽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거긴 세계적인 트레이닝 기법을 가진 지도자가 있어서 지금까지와는 달리 폭풍 성장할 거다."

"네!"

"휴, 좋네. 선수들이 다 너 같았으면 좋겠다."

서문엽은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김진수를 격려했다. 오랜만에 보는 멀쩡한 청년이었다.

그런데 그때 전화가 왔다.

'누구지?'

모르는 번호였다.

자신의 번호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서문엽은 의아해하면서도 전화를 받았다.

"누구야?"

서문엽다운 통화 예절.

-서문엽 씨 되십니까?

굵직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 넌 누군데?"

-한국 배틀필드 협회 부회장 심태호입니다.

"응?"

의외의 거물이었다.

물론 박진태 협회장도 우습게 아는 서문엽에게는 거물로 보이지 않았지만.

"몇 년생이쇼?"

-65년생입니다.

출생년도만 따져도 서문엽보다 10살 위였다.

"···근데 무슨 일로 전화하셨는데요?"

-어제 폭력 사건을 일으키셨더군요.

그 말에 서문엽의 표정이 변했다.

그걸 문제 삼아서 징계라도 하려 들면 골치가 아팠다.

징계라고 해봐야 무서울 게 있냐마는, 지금은 선수의 신분이라 활동에 제약이 걸릴 수 있는 것이었다.

서문엽은 아가리 파이팅을 할 태세를 갖추고는 불량스럽게 말했다.

"같은 말 반복하게 만드시네. 그게 무슨 폭력이야? 그게 폭력인지 아닌지 한번 단둘이 진지하게 토론해 볼까? 앙?!"

-문제 삼으려고 전화한 게 아닙니다.

"응? 그럼 무슨 일이신데요?"

싸우자고 전화한 게 아닌 것 같아서 서문엽은 급 공손해졌다.

-다소 사적인 용건입니다. 제 아들을 아십니까?

"잉? 댁 아들을 내가 어떻게··· 아! 그 멘탈 쓰······."

쓰레기라고 하려다가 서문엽은 말을 멈췄다.

국가 대표 원거리 딜러 심영수.

정신력 26/60의 멘탈 쓰레기라 자선 경기에서 팀원의 발목을 잡아 서문엽에게 탈탈 털린 녀석이었다.

제법 파괴력 좋은 폭발 구체를 다루지만 서문엽은 백제호에게 심영수를 대표 팀에서 빼라고 조언한 바 있었다.

혹시 그것 때문에 따지려고?

-아시는군. 그 녀석 맞습니다.

심태호 부회장의 말투를 보니 따지려는 것도 아닌 듯했다.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내 아들놈이 소속 팀에서 팀원들과 불화를 일으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래요?"

의외도 아니었다.

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

-보아하니 심영수를 빼라고 백제호 감독에게 조언하셨다지?

"네."

-내 아들의 문제를 한눈에 파악한 것 같은데 맞습니까?

"그쪽도 문제를 알긴 아시네요?"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의외로 자기 아들을 냉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그때 서문엽의 뇌리로 생각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어제 박영민을 영입하는 과정에서 생긴 폭력 사건을 언급하더니, 이제는 자기 멘탈 쓰레기 아들 얘기를 꺼냈다.

그렇다면?

"저기 말이죠. 혹시 용건이란 게 저더러 댁 아들을 쥐어 패, 아니, 교육시켜달라고 전화한 건 아니죠? 하하, 내가 무슨 참교육 청부업자도 아니고."

껄껄 웃는 서문엽.

그런데 상대방은 어째 조용했다.

잠시 후 심태호 부회장이 말했다.

-오늘 내 아들이 소속 팀에서 방출 명단에 올랐습니다.

< 청부업자(1) > 끝

< 청부업자(2) >

설명에 따르면 심영수는 이미 대표 팀에서나 소속 팀에서나 신용을 잃고 있었다.

그런데 본격적으로 심영수에 대한 평가 재고가 시작된 계기는 바로 대표 팀 제명 논의였다.

백제호 감독이 주장한 그것은 협회에 인맥이 있는 소속 팀에도 알려졌다.

심영수를 빼라는 조언을 백제호 감독에게 한 사람은 다름 아닌 서문엽.

사람 보는 안목이라면 직접 7영웅을 선발했을 정도인 서문엽 아닌가?

그 탓에 본격적으로 심영수에 대한 평가가 재고되기 시작했다.

그 결과 킬이나 어시 같은 수치화된 성적은 좋지만, 팀워크나 전술 등 수치화되지 않고 있던 평가에서 심각한 단점이 확인되었다.

폭발 구체의 화끈한 화력과 속박이라는 보조 초능력까지 출중하여서 많은 팬이 있는 심영수.

그 탓에 감독은 싫어해도 구단주나 관계자는 선호했던 심영수의 실체가 드러났다.

-영수가 세계 진출을 원했으니 이를 밀어준다는 명목으로 이적 시장에 내놨지만 미국이나 유럽 팀에서도 대부분 거절하거나 턱없이 안 좋은 조건을 제시해서 에이전트로부터 좋은 소식이 없었습니다.

"그것도 나 때문이라는 겁니까?"

서문엽의 물음에 심태호 부회장이 부정했다.

-아니요. 우리만 몰랐을 뿐, 빅 리그 클럽들은 이미 훨씬 전부터 안 좋은 평가를 내린 상태라고 합니다.

"아, 하긴. 아무리 약체 국가라도 명색이 국가 대표이니 눈에 안 띄었을 리는 없구나."

서문엽은 일전에 분석안으로 봤던 심영수의 능력치를 떠올려 보았다.

-대상: 심영수(인간)

-근력 60/66

-민첩성 70/73

-속도 79/85

-지구력 65/68

-정신력 26/60

-기술 68/73

-오러 84/85

-초능력: 폭발 구체, 속박

-폭발 구체(초능력): 강한 폭발을 일으키는 화염의 구체를 만들어 던질 수 있다.

-속박(초능력): 오러로 이루어진 로프를 던져 상대를 1~5초간 속박시킬 수 있다.

원거리 딜러에게 가장 중요한 초능력 두 가지가 아주 좋다.

우선 강력한 화력의 폭발 구체.

한타 싸움에서 뛰어난 위력을 발휘할 초능력이었다.

오러 능력치가 84/85로 높은 편이므로 초능력을 더 잘 다룬다.

물론 서문엽에게는 먹히지 않았지만, 서문엽이야 슈란의 소멸 광선도 막았던 몸이었다.

거기에 접근한 상대할 수 있는 수단도 여럿 있었다.

속박으로 묶어도 되고, 속도 79/85라는 빠른 발로 달아나도 된다.

다른 능력치는 별 볼 일 없지만, 원거리 딜러에게 가장 중요한 속도·오러·초능력이 좋으므로, 빅 리그에서 뛰어도 명문 클럽은 몰라도 중하위권 팀에서는 주전으로 뛸 수 있을 정도.

문제는······.

'정말 멘탈만 문제로군.'

구단주로서 많은 선수를 살펴본 서문엽은 이제 현실적인 눈높이를 갖게 되어서 심영수가 생각보다 괜찮은 기량을 가졌음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기량이 좋아도 팀 전술에 방해되고 팀워크를 해치면 소용없었다.

'던전이라는 건 혼자의 힘으로 어찌할 수 있는 곳이 아냐. 철저한 전술로 헤쳐 나가야 하는 곳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그냥 초인을 잔뜩 투입해 인해전술로 해보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지저 전쟁 때 과연 안 해봤을까?

괜히 그 당시 서문엽이 갑 오브 갑이었던 게 아니었다.

"제가 볼 때 댁 아드님은 자질이 있어요. 그건 인정해요."

-제 아들이라서가 아니지만 재능은 확실합니다. 그렇기에 제가 다소 힘써서 밀어준 것도 있고요.

짜증 나지만 이해 못 할 건 아니었다.

자기 아들이 심지어 재능도 출중하니 누군들 안 밀어주겠나.

다만 그 탓에 협회 부회장이 아끼는 아들이라는 포지션이 확고해져서 팀에서도 다들 어려워하게 되었다. 때문에 심영수는 더더욱 기고만장해졌고 말이다.

"내가 볼 땐 정신적으로도 원래부터 약하게 타고난 것 같진 않은데······."

-무슨 변명을 하겠습니까? 나는 던전에서 구르느라 집안을 돌볼 틈도 없었고, 집안에 홀로 있던 아내는 하나뿐인 아들 녀석을 끔찍하게 싸고돌았습니다.

"뭐, 그랬을 것 같습디다."

-아무튼 북미와 유럽권에서는 죄다 혹평이었고, 그 탓에 비싼 몸값을 얻으려 했던 소속 팀도 당황했습니다. 아랍에서는 제값을 쳐준다는데 거긴 아들 녀석이 싫어하고요. 영어 공부도 싫어하는 놈이 그쪽 언어는 무슨 수로 익힌답니까?

"그래서 지금 몸값이 많이 낮아져 있다?"

-그렇습니다. 화력이 부족한 YSM 입장에서는 좋은 기회 아닙니까?

"근데 그것도 본인이 오기 싫어하면 땡이잖아?"

-제가 함께 설득하지요. 이대로라면 대표 팀에서도 제명당하고, 북미·유럽 진출을 시도했다가 혹평만 받았다는 소문도 이제 곧 퍼질 거라고 일러줄 참입니다.

서문엽도 손가락을 딱 튕겼다.

"추락한 명예를 회복할 길은 내 선택을 받았다는 것밖에 없군!"

-그렇습니다. 서문엽 구단주는 안목이 귀신같기로 유명하니까. 당신이 보기에 우리 아들 자질은 어떻습니까?

"음······."

서문엽은 고민하다가 말했다.

"멘탈 빼고는 나쁘지 않은 건 아까 얘기했지만, 일단은 직접 만나봐야겠습니다."

심영수는 증폭된 분석안으로 볼 필요가 있었다.

서문엽의 추측대로라면, 심영수는 리더십과 전술이 바닥일 확률이 높았다.

그렇다면······.

'영입을 안 하든가, 철석같이 오더만 따르도록 참교육이 필요하다는 건데······.'

서문엽은 통영의 맑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게 제 운명인 겁니까?'

저 위에 계시는 어떤 위대한 분이 고개를 끄덕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하늘이 폭력을 부르고 있었다.

***

"아, 씨발 짜증 나. 개새끼들."

연신 욕설을 퍼부으며 술을 들이켜는 청년은 바로 심영수였다.

시끄러운 EDM이 쏟아지고 있는 클럽.

뒤편의 조용한 테이블에서 심영수는 친구들과 술자리를 즐겼다.

심기가 몹시 불편한 심영수는 술과 욕설뿐이었고, 그 탓에 여자들도 떠나 버려 함께 온 친구들은 그저 한숨만 쉴 뿐이었다.

'그냥 조용히 마시다 가자.'

'쟤 저러다 사고 칠라.'

친구들도 눈치가 있어서 그냥 술만 권하며 심영수를 달랠 뿐이었다.

심영수의 배 속에 들어가고 있는 게 온통 90도가 넘는 독한 보드카뿐이라 걱정되기 시작했다.

"대체 내가 부족한 게 뭔데?! 그놈의 팀워크는 무슨, 개새끼들! 같은 팀의 병신들이 정치질을 해서 날 걸고넘어지는 거 아냐!"

북미와 유럽에서 다 까였다는 소식을 에이전트로부터 들었다.

담당 에이전트에게 쌍욕을 퍼부으며 무능력을 문제 삼았지만, 그래도 속이 안 풀려서 이렇게 술만 퍼마시는 중이었다.

오라는 데가 아랍권 클럽밖에 없어서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심지어 국내 팀들도 심영수를 꺼리고 있었다.

소속 팀도 자신을 싫어하니 그야말로 오갈 데 없는 천덕꾸러기 신세였다.

탄탄대로만 걷던 자신이 왜 갑자기 이렇게 추락했을까.

'이게 다 서문엽 때문이야.'

자선 경기에서 처음 봤을 때부터 기분이 나빴다.

백제호 국가 대표 감독에게 자신을 빼라고 종용한 게 서문엽이라고 들었다.

'그 망할 자식,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이거 완전히 갑질 아냐?'

늘 협회 부회장 아들이라는 이유로 대접만 받았던 심영수는 자신보다 갑인 사람에게 불이익을 당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서문엽이라는 존재가 몹시 부당하게 느껴졌다.

자신보다 갑인 사람이 있다는 게 말이 되지 않았다.

'아빠도 똑같아!'

아버지에게 대표 팀 제명을 막아달라고 부탁했지만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

'다 네 문제라 어쩔 수 없다'고 말했지만, 심영수가 보기에는 아버지도 서문엽을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서문엽 개새끼, 지가 옛날에 활약 좀 했으면 다야? 지금이 2004년이냐고.'

술을 아무리 마셔도 화가 안 풀렸다.

"화장실 좀 다녀올게."

심영수는 벌떡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툭!

"악!"

반대편으로 지나가던 누군가와 어깨가 부딪쳤다. 그런데 나동그라진 것은 심영수였다.

"아, 쏘리."

상대는 손을 흔들고는 그냥 가버렸다.

어안이 벙벙해진 심영수는 순간 울화가 치밀었다.

"야 이 개새꺄!"

버럭 소리 지른 심영수.

그러자 떠나던 상대가 우뚝 멈췄다.

"지금 시비 걸었냐? 죽고 싶어? 내가 누군지 아냐고!"

심영수가 고함을 지를 때였다.

사내가 뒤를 돌았다.

심영수는 흠칫했다.

모자와 선글라스를 쓰고 마스크까지 쓴 이상한 놈이었다.

'대체 누가 저딴 놈을 안에 들인 거야?'

사내가 마스크를 벗어 던졌다.

"너 지금 나한테 뭐랬냐?"

그렇게 질문을 하며 선글라스와 모자도 벗었다.

심영수는 뱀 앞의 개구리처럼 굳어버렸다.

사내는 바로 서문엽이었다.

술 마시고 사고 치기로는 결코 심영수의 아래가 아닌 서문엽이 눈을 매섭게 부라리고 있었다.

"죽고 싶냐고 했지? 다시 한번 말해볼래?"

"어, 아니, 그게······."

심영수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왜 서문엽이 여기 있단 말인가? 그리고 왜 정체를 꽁꽁 숨기고?

"내가 그런 말 들은 게 꽤 오랜만이라 신선하네, 하하하. 누군가가 나한테 시비 거는 게 대체 얼마만이야?"

껄껄 웃는 서문엽.

눈동자에서 사이코패스 같은 광기가 보였다.

'이, 이건 함정이야. 일부러 정체를 숨기고서······.'

생각은 길지 않았다.

뻐억!

어퍼컷이 턱에 작렬했다.

망치로 후려갈긴 듯한 충격. 영혼이 저 먼 곳으로 이탈하는 듯하더니, 의식의 끈을 놓쳐 픽 쓰러져 버렸다.

"여, 영수야!"

"헉! 서문엽이다!"

천구들이 후다닥 달려왔지만 상대가 서문엽인 것을 보고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서문엽은 축 늘어진 심영수의 뒷덜미를 붙잡았다.

"얘 내가 데려간다. 불만 있냐?"

"아, 아뇨."

친구들은 황급히 부정했다. 자신들은 뉴스에 출연하고 싶지 않았다.

서문엽은 심영수를 질질 끌며 클럽에서 사라졌다.

클럽을 관리하던 가드들도 VIP 고객인 심영수가 걱정됐지만 도리가 없었다.

"경찰 불러봐라. 경찰이 출동해야 하는 일을 하나 만들어줄 테니까."

가드들도 다 초인이었지만 서문엽 앞에서는 꼼짝도 못했다.

서문엽은 심영수를 어깨에 짊어진 채 바이크를 타고 어디론가 떠나 버렸다.

잠시 후.

심영수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가로등도 없는 어두운 뒷골목이었다.

"여, 여긴 어디야?"

"반말이냐?"

"헉! 아, 아니요."

심영수는 자신 앞에 서 있는 서문엽을 보자 공포로 굳어버렸다.

"저를 왜 이런 곳에······."

"글쎄다. 내가 왜 목격자도 CCTV도 없는 이런 곳에 널 데려왔을까?"

"헉!"

심영수의 심장이 쿵쾅쿵쾅 위험 신호를 보냈다.

상대는 10대 초반에 살인을 했다는 인간이었다.

이건 정말 위험했다.

"제, 제가 시비를 건 게 아니잖아요! 일부러 정체를 숨기고 저한테······!"

"뉴스는 어떻게 나갈까? 북미 유럽에서 모두 거절당해 해외 진출 실패한 심영수, 서문엽에게 시비 걸다 얻어맞았다?"

"그, 그건······!"

"주르륵 달릴 댓글들이 벌써 눈에 보인다. 심영수 갈 데까지 갔구나, 어디까지 추락하나, 인성 쓰레기였네 등등."

"일부러 그랬지! 일부러 날 이렇게 만든 거잖아!"

"이 새꺄, 네가 똑바로 살았어봐라. 누가 봐도 내가 시비 걸어서 애꿎은 애 폭행했구나, 하고 되는 거지. 여태껏 수많은 폭행 시비가 일어났지만 왜 내가 손가락질 안 받았는지 알아?"

"······."

"다 맞을 만한 놈들이라 그래."

당당히 말하는 서문엽.

심영수의 눈에는 천하의 악당으로 보였다.

"네가 이 수렁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딱 하나 있는데 들어볼래?"

서문엽 식 영입 제안이 시작되었다.

< 청부업자(2) > 끝

< 청부업자(3) >

증폭된 분석안으로 보니 심영수는 벌써 1년이 지났음에도 전과 능력치의 변화가 없었다.

저 나이에 1년간 발전이 없었다는 건 정말 불성실하다는 뜻.

1년 전에 보지 못했던 것을 증폭된 분석안으로 추가로 볼 수 있었다.

-대상: 심영수(인간)

-리더십 11/23

-전술 19/46

예상했다시피 리더십은 폭망이었다.

그런데 전술이 의외였다.

물론 현재의 전술은 19로 바닥 수준.

하지만 한계치는 46으로 아예 쓰레기는 아니었다.

물론 전술적 이해력은 경기를 지배하는 일류 선수의 덕목 중 하나지만, 꼭 팀원 모두가 전술적 이해력이 좋아야 할 이유는 없었다.

그냥 오더만 잘 들어도 되는 선수도 있는 법.

"대체 나한테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서 이런 함정에 빠뜨리는 건데! 날 대표 팀에서 제명시키려 하고 악의적인 소문을 내서 해외 진출도 못 하게 만들고 이젠 변장하고서 클럽에서 일부러 시비까지······!"

"왜 반말이야?"

"어? 아, 죄송······."

퍽!

"꾸엑!"

무자비한 하이 킥이 머리통을 강타. 심영수는 개구리처럼 바닥에 패대기쳐졌다.

뒷덜미를 잡아서 들어 올려 눈높이를 맞춘 채 서문엽이 말했다.

"대표 팀에서 빼는 건 네가 못해서고, 악의적 소문이 난 것도 네가 못해서고. 클럽에서 시비 건 것 말고는 내 잘못 없어."

"역시 시비는 일부러 건 거잖아!"

"또 반말하네?"

"아니, 당신이 한 일에 비하면······!"

뻑!

"끄억!"

잡고 있던 뒷덜미를 그대로 바닥에 누르며 또 한 번 패대기.

"희한한 자식이네. 그렇게 처맞았는데도 흥분하면 반말이 튀어나와. 푸풉."

"으으으······."

심영수는 악마를 보았다.

자신에게 이렇게 부당하게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른 사람은 여태껏 없었다.

갑질, 횡포, 폭력.

왜 사람들이 그런 소리를 하며 성토하는지 비로소 알 것 같았다. 당해보니 정말 억울한 일이었다.

"어디까지 얘기했더라? 네가 끼어들어서 까먹었잖아!"

뻑!

"꺽!"

뒤통수를 후려맞은 심영수는 공포에 젖었다. 이곳에서 살아서 빠져나간다면 다시는 이 인간과 상종하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하지만,

"아, 맞다. 네가 수렁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고 했지."

"네······."

심영수는 한층 고분고분해졌다.

"그건 바로 YSM으로 이적하는 거다."

"뭣?!"

"반말하지 말라고."

퍽!

"컥!"

주먹으로 망치질하듯 정수리를 내려치자 심영수는 혀를 깨물 뻔했다.

덕분에 정신이 띵했다.

'이런 인간하고 같은 팀에 있으라고? 말이 되냐?'

결단코 싫었다.

서문엽이 악마처럼 속삭였다.

"술 마시고 나한테 시비 걸었다가 맞았다는 뉴스가 떠봐. 그걸 계기 삼아 제호가 대표 팀에서 널 제명할 테고. 그럼 네 팬들도 우수수지."

"크윽······!"

심영수는 이를 악물었다.

"근데 말이다."

서문엽이 말을 이었다.

"그때 내가 널 영입하겠다고 나선다면 어떨까? 미다스의 손이라 불리는 이 몸의 선택을 받았다면 넌 아직 재능이 있는 선수라고 보증해 주는 셈이잖아?"

"······."

"우리 팀에 온다면 어깨동무하고 사진 찍어서 SNS에 올려주지. 그럼 오늘 일도 그냥 웃고 넘길 수 있는 해프닝이 되는 거잖아? 인마, 말이 나와서 말인데 한국에서 나와 친하다고 알려지면 팬은 더 생긴다?"

그 말에는 심영수도 솔깃했다.

입지가 급격히 좁아진 지금의 수렁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인 건 사실이었다.

"어디 그뿐이야? 말만 잘 들으면 대표 팀 제명도 없던 일로 해줄게."

백제호를 뒤에서 조종하는 비선실세임을 스스로 드러낸 서문엽이었다.

"YSM에 안 가면 대표 팀 자른다고? 이건 횡포잖아! 요."

서문엽이 눈을 부라리자 심영수는 재빨리 '요'를 덧붙였다.

"이 새끼가 누가 들으면 내가 멋대로 권력 휘두르는 줄 알겠네."

면책권을 이용하는 건 사실이었지만.

"네 문제가 뭔 줄 아냐?"

"난 팀 내에서 정치질을 당해서······."

"야 이 씨발아, 넌 리더십도 전술성도 바닥인데 그놈의 스타병 걸려서 나대는 게 문제야. 알아?"

치욕에 심영수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서문엽의 말이 계속됐다.

"판단력도 없는 놈이 전술 능력인 폭발 구체를 멋대로 사용하고, 전술도 이해 못하는 놈이 오더에 끼어들지를 않나. 난 말이다."

심영수의 멱살을 잡고 끌어 올렸다.

"전쟁 시대에 너 같은 새끼를 몇 명이나 때려 죽였는지 모른다."

서문엽의 눈빛에 살기가 어렸다.

심영수는 공포에 젖었다.

진심이었다.

정말 이 자리에서 자신을 죽일 것 같았다.

"하지만 너보다 더 심각한 꼴통이 하나 있었지. 무지막지한 초능력을 가졌는데, 뻑하면 겁에 질려서 그걸 마구 난사해 버리는 거야. 근데 나는 기어코 그 꼴통을 데리고 최후의 던전을 공략했어. 그 계집애는 중국의 영웅이 되었고."

바로 슈란의 이야기였다.

물론 그 당시의 슈란이나 지금의 심영수나 정신력은 도긴개긴.

다만 사고를 치는 스케일이 슈란이 훨씬 커서 문제였다.

"너도 그렇게 만들어주마. 너 리그 우승 해본 적 있어?"

"하, 한 번요."

"아시아 챔피언스리그는?"

"중국이 있는데 어떻게 해요?"

"월드 챔피언스리그는?"

"말도 안 되죠."

"월드컵은?"

"예선 통과도 벅차요."

"내가 다 이루게 해주마."

심영수의 두 눈이 커졌다.

이 변방 한국에서 참 거대한 꿈을 꾸고 있었다.

"내가 못할 것 같아? 난 너희처럼 허접하지가 않아."

심영수는 쉬이 대답을 못 했다.

"내일까지 답변 줘라. 이게 네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는 거 명심해."

서문엽은 바이크를 타고 떠나 버렸다.

그날 집에 돌아간 심영수는 인터넷 뉴스에 오늘 일이 올라오자 눈을 질끈 감고 스마트폰을 던져 버렸다.

"젠장!"

<클럽서 만취한 심영수, 서문엽에 시비?>

댓글은 보나마나였다.

술에 취해서 서문엽에게 시비를 건 바보가 됐을 것이다.

본래부터 안티 팬이 많아서 악의적 소문이 퍼져 나갔을 터였다.

팀 내에서는 감독도 동료들도 싫어해서 고립된 상태.

협회 부회장인 아버지 눈치를 보던 보드진도 자신을 팔아 치우고 싶은 눈치.

해외에서는 이미 좋지 않은 선수라고 평가 절하된 상태.

이번 사건으로 인성 논란이 일어나 국내 팀들도 꺼려 할 것이다.

오갈 데가 없어지니 문득 서문엽이 했던 제안이 생각났다.

'정말 YSM에 가볼까? 어쩌면 좋은 기회 아냐?'

서문엽이 있으면 분명 리그 우승은 따 놓은 당상이고, 아시아 챔스 우승도 가능성이 있었다. 어쩌면 월드 챔스에서도 성적을 낼 수도 있고 말이다.

아무리 팀 수준이 낮아도 서문엽이 무시무시한 저력을 발휘하며 원맨쇼를 펼치면 월드 챔스 8강 정도는 갈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럼 한국 최초로 세계무대에서 업적을 세운 클럽의 주역이 되는 것이다.

거기에 잘 편승하면 유럽 진출의 길도 다시 열릴 테고 말이다.

'지금 YSM 감독이 파리 뤼미에르에 있었던 가브리엘 사나지. 그 사람 인맥을 통해서 유럽 진출하기가 더 수월해질 수도 있을 거야.'

물론 단점은 있었다.

'그런 악마 구단주 밑에 내 발로 기어들어간다는 게······.'

심영수도 어릴 적부터 주변에 양아치들이 많았다.

하지만 단연코 서문엽은 차원이 다른 악당이었다. 주변 눈치도 안 보고 서슴없이 사람을 팬다. 법도 초월했다.

'그, 그래도 평상시에는 클럽에 관여 안 한다잖아? KB-1 정도의 수준 낮은 리그 경기는 시시해서 안 뛰겠지.'

가끔 서문엽이 출몰했을 때만 조심한다면, YSM은 새 출발 하기 좋은 클럽이었다.

가브리엘 감독의 지휘하에 선진적인 훈련을 받을 수 있는.

그래도 갈등이 돼서 아버지 심태호 부회장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심태호는 단호히 말했다.

"YSM에 가거라."

"진짜? 아빠도 서문엽 싫어하잖아?"

"내가 왜?"

"그야······."

심태호 부회장은 백제호의 대표 팀 감독 취임에 반대했다. 그래서 반대파의 수장 같은 이미지가 있는 건 사실이었다.

"백제호 감독에 대해 반대했던 건 대중적 인기를 가진 영웅을 대중의 비판을 막아주는 욕받이로 이용하는 게 싫어서다. 감독으로서의 역량도 전혀 검증이 안 됐기 때문에 차라리 해외에서 유능한 감독을 데려오는 게 낫다는 입장은 지금도 마찬가지였고."

"······."

"하지만 7영웅의 백제호는 존경하지. 그리고 백제호 감독을 통해 서문엽이 대표 팀에 관여한다면 그건 찬성이다. 지도자로서 백제호 감독은 아직 의심스럽지만 서문엽이라면 이야기가 달라."

심영수는 할 말을 잃었다.

자신을 대표 팀에서 빼라는 서문엽의 의견에도 아버지는 찬성한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조금 심통이 난 심영수에게 심태호 부회장이 말했다.

"YSM에 가라. 서문엽은 진짜다. 가브리엘 감독도 우리 협회가 대표 팀 감독으로 부르고 싶어도 못 부르는 유능한 지도자고."

"그, 그 사람이 날 싫어하잖아."

"공사 구별 못하는 사람이었으면 최후의 던전도 공략 못했겠지. 전 세계를 다니며 수많은 초인과 협업해 본 사람이야."

"음······."

아직도 서문엽에게 맞은 게 생각나서 망설여졌다.

하지만 마음은 다소 YSM 쪽에 기울어졌다.

의외로 아버지가 서문엽을 지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결국 심영수는 에이전트를 통해 YSM으로의 이적을 추진케 했다.

YSM도 심영수의 소속 팀인 미래 하이퍼스에 오퍼를 보냈다.

때마침 심영수가 사고까지 쳐서 여론이 안 좋아지자 미래 하이퍼스는 기회다 싶어 이적을 추진했다.

미래 하이퍼스의 단장 박철호는 협상 테이블에 나타난 YSM 측 관계자를 보고 깜짝 놀랐다.

"서, 서문엽 씨?"

그랬다.

서문엽은 테이블에 떡하니 앉아 심드렁히 말했다.

"나 커피."

여직원이 황급히 커피 두 잔을 가져왔다.

커피를 마시며 서문엽이 박철호 단장에게 물었다.

"몇 년생이쇼?"

"78년생입니다만······."

"동생이네."

서문엽은 빙긋 웃어 보였다. 박철호 단장의 눈에는 미친놈처럼 보였다. 불길한 협상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지랄 말고 12억 하자."

서문엽의 파격적인 협상 스킬이 펼쳐졌다.

박철호 단장은 피를 토할 뻔했다.

"예? 아무리 그래도!"

"싫으면 그냥 데리고 있든가. 이미지도 쓰레기 됐는데."

"아랍에서는 최소 30억을 얘기했어요!"

"걔네는 돈이 썩어나서 원래 막 부르잖아. 그리고 아랍은 본인이 싫다는데 약 팔지 말고."

"아무리 그래도 12억은 무리입니다."

"왜? 그럼 대표 팀에서 제명된 후에 다시 얘기할까?"

"이런 식으로는 협상을 할 수 없어요! 상식적인 금액을 가져와요!"

쾅!

박철호 단장은 기개 있게 테이블을 내리치며 소리쳤다.

상대가 누구든 기세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배짱이었다.

그러나 사람을 잘못 봤다.

"왜 고함을 질러? 뒈지고 싶냐!"

꽝!

빠지직!!

서문엽이 내려치자 테이블이 두 쪽이 나서 박살 나버렸다.

박철호 단장은 공포로 얼어붙었다.

상대는 상식이 있는 존재가 아니었던 것이다.

서문엽은 눈을 가늘게 뜨더니, 이윽고 특유의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럼 너희 그룹 부사장 찾아가서 얘기해 볼까?"

그 말에 박철호 단장은 더더욱 공포로 굳어버렸다.

미래그룹에는 수많은 부사장이 있다.

하지만 서문엽이 언급하는 부사장이란, 미래그룹 일가의 재벌 3세를 뜻했다.

옛날, 술 취한 서문엽에게 폭행당하고 인질극까지 당해 곤욕을 치렀던 바로 그 재벌 3세 당사자 말이다.

박철호 단장은 눈앞의 이 사람이 인류를 구한 영웅인지 악마인지 알 수 없었다.

< 청부업자(3) > 끝

< 용병(1) >

다음 날 수석 코치 겸 운영단의 업무까지 맡고 있는 최동준이 계약을 마무리했다.

이적료는 13억 원으로 해결되었다.

미래 하이퍼스의 박철호 단장은 몇 년은 늙은 것 같아 보였고, 그래서 괜히 미안해진 최동준 수석 코치였다.

어찌 되었건 심영수가 합류함으로써 YSM의 화력 지원이 크게 강화되었다.

심영수의 독선적인 성향이 우려되었으나, 첫 만남에서부터 심영수는 가브리엘 감독을 무척 존중하는 태도를 보였다.

유럽에 진출하고 싶으니 유럽에 대해 잘 알고 인맥도 있는 가브리엘 감독에게 잘 보여야 할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

거기다가 말을 안 들었다간 구단주가 폭력을 휘두르러 출동할지도 모르는 일.

'그냥 죽었다고 생각하고 참자. 여기서 새 출발이다.'

심영수도 나름대로 각오를 다진 것이다.

덕분에 서문엽과 클럽에서 벌인 사고도 사소한 해프닝으로 끝이 났다.

사이좋게 찍힌 사진이 SNS에 올라 화해했음을 알렸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심영수의 인성 논란도 얼추 가라앉았다.

대형 사고를 치고 다니는 서문엽이 옆에 있으니, 심영수의 인성 정도는 정말 사소해 보이는 착시 효과였다.

그리하여 지급까지 YSM이 영입한 선수는 근접 딜러 박영민, 서브 탱커 김진수, 원거리 딜러 심영수였다.

심영수야 줄곧 KB-1에서 뛰었고 국가 대표로도 활약한 터라 확고한 즉전감.

가브리엘 감독은 통영까지 내려가 영입한 김진수에 대해서도 만족감을 표했다.

-근력과 민첩성 등 기본 피지컬이 부족하지만 방패 컨트롤이 괜찮아 보였습니다. 반대의 경우면 키우는 데 오래 걸리지만 피지컬이야 집중 훈련으로 금방 올릴 수 있을 겁니다.

"그렇지? 걔는 성격도 착하고 충실한 성격이라 잘해낼 거야."

-그런데 박영민이라는 선수는 재능이 있는지 잘 모르겠더군요.

1년간 날라리로 지내다가 아버지까지 패키지로 참교육 시켜준 근접 딜러 박영민.

80이 넘는 잠재력이 네 가지나 있지만, 오래 쉬어서 현재 능력치가 매우 부족했다.

특히 기술이 55/81.

"걔는 김진수와 반대로 성장에 오래 걸리는 타입이지. 기술적으로도 기초부터 보완이 많이 필요하니까."

-다행히 클럽에 검술 코치가 있으니 남궁지훈과 함께 집중적으로 시키겠습니다.

"뭐, 맡길게. 걔는 기초 피지컬도 부족한 애니까. 근데 잘 키우면 한국에서는 상위에 해당하는 선수가 될 거야."

-네, 한번 성장 경과를 지켜보겠습니다. 구단주님의 말씀이라면 확실하겠죠. 그런데 일단 심영수를 제외하면 당장 KB-1에서 뛰어난 활약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즉전감이 필요합니다.

"음, 해외에서 좀 찾아봐야 하나. 아무튼 알았어."

서문엽은 이미 시즌 중에 유소년 리그나 KB7 1, 2부 리그 경기를 모두 훑어봤다.

물론 경기를 풀로 본 게 아니라 선수만 체크한 후에 바로 드라마로 채널을 돌리는 식이었지만.

그중 다른 클럽에서 침 발라놓지 않아서 건진 유망주는 지금 영입한 두 사람 정도였다.

직접 발품 팔아서 출전 기회를 받지 못해 TV에 나오지도 못한 선수들을 봐야 하는데, 그렇게까지 하면 너무 힘들었다.

'너무 유망주만 봤나. 현역 선수 중에서도 한번 봐볼까?'

실력 좋은 현역 선수는 비싸다.

하지만 현재도 실력이 좋지만 앞으로도 더 발전 가능성이 있는 선수라면, 투자할 만하다.

'이 나라 현역 선수는 대부분 본 것 같고, 해외에서 좀 찾아보자.'

영상으로 봐도 증폭된 분석안으로 볼 수 있지만, 실시간으로 보는 영상이 아니면 통하지 않는 단점이 존재한다.

결국 서문엽이 발품을 팔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좋아, 외국인 용병을 한둘쯤 사자.'

빅 리그 출신만 아니면 한국에 데려올 수도 있을 터였다.

집으로 돌아가니 백하연이 휴가차 한국에 돌아와 있었다.

"오, 하연이 왔냐?"

"응, 나 보고 싶었어?"

"당연히 보고 싶었지."

"그럼 삼촌도 파리에 오지 그래?"

"호오, 삼촌 없이는 역시 팀에 적응을 못하고 있구나?"

"무슨 소리야? 나 완전 적응 잘했는데. 로테이션 멤버지만 출전 많이 하고 포인트도 많이 땄다고."

서문엽도 안다.

현지에서 백하연 영입은 그럭저럭 성공이었다고 합격점을 받았다.

아직 세계 최고의 클럽인 파리 뤼미에르 BC에서 주전을 차지할 정도는 못 됐다.

하지만 종종 전술적 변화에 따라 투입되는 로테이션 멤버로서 팀의 새로운 옵션이 되고 있었다. 답답할 때마다 활력소가 되어주는 조커의 역할인 것.

사실 중하위권 클럽에 갔다면 주전을 차지했을 터였다. 하지만 그대로 드림 클럽에서 성장해서 언젠가는 주전을 차지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저기서 전술적 이해도가 높으면 완벽해지는데.'

말 나온 김에 증폭된 분석안으로 백하연을 살폈다.

그랬더니 놀라운 결과가 나타났다.

-대상: 백하연(인간)

-근력 78/82

-민첩성 90/90

-속도 95/95

-지구력 75/80

-정신력 81/81

-기술 72/75

-오러 70/70

-리더십 87/95

-전술 61/86

-초능력: 순간이동, 로프

'허어······.'

무척 성장했다.

근력이 72에서 78로 업그레이드.

속도는 95를 다 채웠다.

67밖에 안 되던 단점 지구력도 75로 무난한 수준.

수준 높은 리그에서 뛰다 보니 피나는 노력을 했는지 기술도 72가 되었다.

한국 수준만 보다가 탈(脫) 한국 클래스의 능력치를 보니 탐날 정도였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리더십과 전술이었다.

'팀 내 적응을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었구나.'

무진장 높은 리더십!

어딜 가도 대장 노릇 할 체질이었다.

거기에 전술 또한 잠재력이 높았다.

저 전술 86을 다 채우고 나면 본인의 초능력을 훨씬 더 치명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 터였다.

"응? 삼촌, 왜 그렇게 봐?"

"아니, 그냥. 돌머리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실전에 강하구나 싶어서."

"아으, 혼날래!"

"호오, 아니라고? 그럼 그사이 공부한 프랑스어 좀 테스트해 볼까?"

그 뒤로 서문엽이 프랑스어로 이것저것 질문해 대자 백하연은 귀를 틀어막고 고개를 휘저었다.

저녁 식사 시간 맞춰서 백제호도 돌아왔다.

서문엽은 홧김에 백제호도 증폭된 분석안으로 보았다.

-대상: 백제호(인간)

-리더십 51/51

-전술 62/62

'에라이, 그냥 하연이가 감독 하는 게 낫겠네.'

백제호를 보는 서문엽의 눈에 한심스러움이 깃들었다.

"뭐야, 왜 그런 눈으로 봐?"

백제호가 예민하게 반응했다. 옛날 자신이 실수했을 때 서문엽이 욕하기 전에 보던 그 눈빛이었다.

"아니, 그냥. 이미 한계구나 싶어서."

"또 뭐래는 거야. 밥 먹는데 시비 걸지 말고. 그나저나 너희 선수 영입 열심히 하고 있더라? 영수도 영입하고."

"아, 걔는 부회장이 부탁하기에 나쁘지 않겠다 싶어서."

"대표 팀에서 빼랄 땐 언제고 네가 영입해?"

"쓸 만해질 때까지 담금질 해야지."

서문엽은 주먹을 불끈 쥐며 말을 이었다.

"습관이란 게 마음가짐 좀 달라졌다고 쉽게 고쳐지는 게 아니지. 나쁜 버릇 안 나올 때까지 존나 팰 거야."

지금은 YSM에 막 입단한 상태라 심영수의 태도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익숙한 대표 팀에 간다면 몸에 배인 스타병 습성이 튀어나올지도 몰랐다.

"당분간 대표 팀에 소집 안 할게."

"응."

"근데 영입은 더 안 해?"

"해외에서 좀 찾아보려고. 이 나라 놈들 재능은 다 거기서 거기야. 예전엔 안 그랬는데 왜 이렇게 수준이 낮아졌지."

"초창기에 해외로 다 떠나 버린 게 크지. 아직 16년밖에 안 됐어. 그 후유증에서 회복하려면 멀었지."

"어디 몸값 싸고 초인들 많은 곳 없냐? 남미 같은 데 괜찮냐?"

"축구 하냐? 남미까지 가게."

"그럼?"

"요즘 아시안컵 대비해서 전력 분석 하는데 카자흐스탄이 뜨고 있더라."

"카자흐?"

서문엽은 정말 뜬금없다는 표정이 되었다.

러시아 밑에 붙어 있는 카자흐스탄은 영토 면적이 인도에 준할 정도로 넓지만, 그에 비해 인구수가 무척 적어서 초인도 적었다.

"서양 쪽 애들은 신경도 안 쓰겠지만, 아시아에서 보면 전력이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고 하더라. 초인을 훈련시키는 기술은 우리보다 훨씬 부족한데,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는 건 나름 재능 있는 애들이 있다는 거 아니겠어?"

"음······."

고민하는 서문엽에게 백하연이 옆에서 채근했다.

"삼촌, 나랑 카자흐 놀러가자. 경치 좋은 곳 많아."

"어머! 카자흐?"

카자흐스탄에 놀러간다는 말에 한승희도 격하게 반응했다. 반년 전에 파리에 함께 갔을 때도 무척 즐거워했던 한승희였다.

덕분에 백제호는 또 집에 혼자 남아야 한다는 불안감을 느꼈다.

백하연이 계속 옆에서 부추긴다.

"거기서 가장 존경하는 초인이 삼촌이야."

"뭐, 어딘들 날 존경 안 하겠니?"

서문엽은 우쭐해졌다.

"그래서 초인들 중에 창잡이가 많아."

"그래?"

"응응, 딜러도 창 쓰고 탱커도 창 방패 쓰고 그래. 요즘은 삼촌 창던지기도 따라하겠다고 열풍이라더라."

변화구처럼 휘어지는 창 궤적에 카자흐 사람들이 꽂힌 모양이었다.

"그건 던지기 초능력이 없으면 힘들 텐데."

"하도 창을 던져서 관련 초능력 각성한 초인들도 많을걸."

"그 정도로 열풍이었던 거야?"

얼마나 서문엽을 따라했으면 초능력까지 생길까.

서문엽은 서서히 호기심이 들었다.

"좋아, 그렇게 날 좋아한다는데 한 번 왕림해 줄 수도 있지!"

"아싸! 카자흐다!"

"후, 곤란하군. 날 보면 사인해 달라고 몰려올 거 아냐."

한류 스타 기분에 젖은 서문엽과 여행 간다고 그저 좋은 백하연.

희희낙락한 두 사람을 한승희가 부러운 눈길로 쳐다보고 있었다.

백제호는 침울해진 얼굴로 말했다.

"여보, 같이 다녀와······."

"아, 아냐. 남편 혼자 집에 있으면 안 되잖아."

"집에 일하는 사람도 많은데 어때. 다녀와······."

"정말?"

반색하며 좋아하는 한승희.

사회생활로 바쁜 가장은 그저 쓸쓸했다.

그리하여 다음 날, 곧바로 항공 티켓을 끊고서 카자흐스탄으로 날아갔다. 갑작스러운 일정이었지만 신난 여자들은 밤새워서 짐을 쌌다.

카자흐스탄, 알마티 국제공항.

대책 없이 도착한 일행은 러시아어를 할 줄 아는 서문엽을 앞세워서 이리저리 쏘다니기 시작했다.

"서문! 서문!"

공항에서 그를 발견한 사람들이 몰려와 사인과 사진을 요청했다.

이미 한류 스타 기분에 취해 있던 서문엽은 흔쾌히 받아주었다.

택시 타고 번화가로 가서 유명한 식당에 가니, 거기서도 식당 주인이 사진을 함께 찍어달라고 요청하고는 대신 호화로운 식사를 무료로 대접했다.

식사를 하면서 백하연이 물었다.

"삼촌, 무작정 오긴 했는데 이제 어디서 선수를 보려고?"

"음, 글쎄다."

곰곰이 생각해 본 서문엽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잠깐만."

스마트폰으로 카자흐스탄 배틀필드 협회를 검색한 후에 나온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거기 협회죠? 나 서문엽인데요. 사람 한 명만 보내줘요."

< 용병(1) > 끝

< 용병(2) >

"서문!"

구릿빛 피부에 190㎝에 달하는 듬직한 근육질 육체를 가진 장년 사내가 씨익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서문엽도 아는 얼굴이었다.

"티무르?"

"그래, 서문!"

티무르 아흐메토프라는 카자흐스탄의 초인이었다.

전쟁 시절 러시아 쪽에서 활동할 때 던전 공략에 자주 참여했던 동료였다.

7영웅에 들지는 못했지만 실력이 괜찮아서 몇 차례 데리고 다녔었다. 러시아어를 배운 것도 이 친구에게서였다.

서문엽과 함께 공략 불가 던전을 몇 차례 격파했기 때문에 카자흐스탄에서 영웅이 되었던 것으로 알고 있었다.

"너도 협회에서 일해?"

"응, 나 협회장이야."

"······."

서문엽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협회에 전화해 직원 보내 달라니까 협회장이 출동했다.

"협회에 직원이 없냐?"

그러자 티무르는 껄껄 웃으며 말했다.

"서문이 왔다니까 내가 직접 온 거지. 카자흐스탄에 왔으면 진작 내게 연락하지 그랬어."

"어, 미안. 원래 쓰던 핸드폰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어서."

그 말에 티무르는 호탕하게 웃었다.

그는 곧 백하연, 한승희와도 인사를 나눴다.

"그런데 카자흐스탄엔 무슨 일이야?"

"선수 좀 보려고."

"정말?"

티무르가 반색을 했다.

"그럼 우리 팀에 먼저 가자."

"우리 팀?"

"내가 팀 하나를 갖고 있어."

"협회장에 구단도 하나 있다고?"

"하나 아니야. 축구단도 하나 있지. 몰랐겠지만 나 장관도 지냈었어. 다 서문 덕이야."

서문엽은 헛웃음을 지었다.

이제 보니 못 본 사이에 아주 거하게 출세한 모양이었다.

"자자, 가자고. 우리 팀 보여줄게."

그렇게 해서 티무르를 따라 도착한 배틀필드 클럽은 시설 면에서 YSM과 우열을 겨룰 수 있을 듯했다.

한마디로 열악해 보였다는 뜻이었다.

"하하, 겉보긴 좀 그렇지? 그래도 있을 건 다 있어."

"뭘, 우리 팀도 마찬가지야."

강화도 산골의 폐공장을 개조한 클럽하우스를 가진 YSM이 뭐라 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지도자나 훈련 시설 등은 최신식으로 바꿔서 내실은 다졌지만 말이다.

'하다못해 여긴 도심에 있기라도 하지, 우리는 정말 돈 벌어서 클럽하우스를 옮기든가 해야겠어.'

YSM으로 선수들이 오기 싫어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위치였다.

산골에 처박혀 있어서 놀려면 차 끌고 나와야 하니 오기 싫은 것이다.

바이크 타고 쌩쌩 달리는 서문엽조차 클럽하우스에 자주 가지 않으니 대책이 필요하긴 했다.

그런 궁리를 하고 있을 즈음, 트랙을 달리던 여자 선수 하나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아빠! 그 사람이 서문이야?"

하얀 피부와 흑발, 늘씬한 몸매에 작은 얼굴.

전형적인 러시아계 미녀였다.

그래서 서문엽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방금 아빠라고?'

티무르와 미녀를 번갈아 보던 서문엽이 결론을 내렸다.

"아, 입양했구나?"

"가끔 너무한 소리를 하는 건 여전하네. 내 친딸 맞아, 서문."

"말이 안 되잖아?"

따지듯이 묻는 서문엽의 말에 미녀 딸이 키득거렸다.

"뭐가 말이 안 돼? 아내의 미모와 나의 강인한 체력을 물려받은 아이라고."

확실히 180㎝에 달하는 큰 키나 떡 벌어진 어깨는 아버지를 닮긴 했다.

"그렇게 편리한 유전자 몰빵이 가능한 거였냐?"

"저기 백의 딸도 있잖아!"

그제야 서문엽은 백하연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지."

"자, 인사나 하라고. 내 딸 사니야야."

"반가워요. 만나서 영광이에요."

사니야의 인사를 받으며 서문엽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증폭된 분석안으로 능력치를 살펴보았다.

-대상: 사니야 아흐메토바(인간)

-근력 72/87

-민첩성 75/93

-속도 73/88

-지구력 70/84

-정신력 83/83

-기술 73/97

-오러 85/90

-리더십 72/72

-전술 36/81

-초능력: 근력 강화

-근력 강화: 오러를 지속적으로 소모하여 근력을 40% 강화시킨다.

'어우야.'

서문엽은 헛바람을 집어 삼켰다.

평생 살면서 본 여자 초인 중 슈란 다음으로 최강이었다.

재능만 따지면 파리 뤼미에르 BC의 스타플레이어들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았다. 나단 베르나흐나 치치 루카스 같은 괴물만 빼면 꿀리지 않을 능력치!

90을 넘긴 재능도 민첩성, 기술, 오러로 모두 알짜배기고, 다른 능력치도 80대다.

정말로 전투 쪽의 재능은 아버지를 물려받은 모양이었다. 초능력 근력 강화도 아버지와 판박이였고 말이다.

"포지션이 뭐니?"

"탱커예요."

"음······."

근력 강화까지 있으니 탱커가 자연스러운 선택이었으리라.

"야, 네 딸 경기 영상 좀 볼 수 있을까?"

"오, 내 딸에게 흥미가 생긴 거야?"

"전투 쪽은 네 유전자를 받았다니까 한번 보고 싶어서."

"으하하! 내 딸이라서 자랑하는 건 맞지만, 정말 대단한 아이라고."

"알았으니까 경기 영상 봐보자."

"아니, 서문! 못 본 사이에 왜 그렇게 재미없어졌어?"

"뭐 인마?"

"예전 같았으면 한번 붙어보자고 했을 거 아냐?"

"그땐 참고할 만한 영상이 없었을 때잖아."

그리고 그때는 멤버로 합류시키기 전에 기선 제압을 할 의도도 있었다.

그때 사니야가 서문엽에게 말했다.

"대련을 해주시면 안 될까요? 너무 뵙고 싶었어요. 부탁할게요."

"음, 그럼 장비 좀 가져와 봐."

"하하하! 한번 붙어보라고!"

서문엽은 대충 창과 방패만 들고 접속 모듈에 들어갔다.

반면 사니야는 중무장을 했고 눈빛에도 실력을 다 보여주겠다는 각오가 되어 있었다.

던전에서 마주쳤을 때, 서문엽은 흠칫했다.

사니야는 원형 방패에 1.8m쯤 되는 짧은 창을 들고 있었다. 한 손으로 쓰기도 좋고 던지기도 편한 정도의 창이었다.

등에도 접이식으로 된 창 세 자루가 더 걸려 있었다.

전투 태세 역시 어디선가 많이 본 모습인데······.

'뭐야? 내 판박이잖아?'

그랬다.

사니야는 서문엽을 똑같이 흉내 내고 있었다.

카자흐스탄에 서문엽의 추종자인 배틀필드 선수들이 많다더니 정말인 모양이었다.

사니야는 씨익 웃더니, 들고 있던 창을 대뜸 던졌다.

쉬이이익!!

창은 무서운 속도로 날아왔다.

그야말로 빛의 속도를 방불케 했다.

서문엽은 빠른 반사 신경으로 고개를 돌려 피했는데, 조금만 늦었으면 머리가 꿰뚫려 원 샷에 져버리는 참사를 당했을 것이다.

'던지기 스킬도 없이 저리 빠르게 던지다니. 근력 강화를 이용했구나.'

순간적으로 근력을 강화시켜서 창을 던졌다.

현재 근력이 72인데, 초능력으로 40% 강화시키면 약 101.

그 정도면 그냥 창을 던져도 엄청난 위력을 발한다.

만약에 근력을 한계치인 87까지 다 키운 후에 근력 강화를 한다면?

'와, 그럼 122 정도인가?'

활용하기에 따라 엄청난 위력을 발휘할 것 같았다.

두 사람이 본격적으로 충돌하기 시작했다.

터엉!

사니야가 내지르는 창을 가볍게 방패로 받아냈다.

이윽고 좌측으로 뛰어오르며 지르기!

촤악!

사니야는 갑자기 방패로 커버할 수 있는 범위 바깥에서 공격당하자 급히 벗어나서 피했다.

서문엽은 쫓아 붙으며 찌르기를 계속 펼쳤다.

그러면서 계속 사니야를 분석한다.

'방패 컨트롤이 약한데.'

서문엽이 작은 원형 방패를 쓰는 이유는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 작은 걸 써도 상대의 공격을 미리 예측하고 움직여서 다 막을 수 있는 테크닉적인 자신감.

둘, 민첩성이 좋지만 힘이 약하다는 점.

근력 79로 탱커로서는 아슬아슬한 수치인 서문엽이었다.

근력보다는 차라리 민첩성을 더 살리는 자연스러운 선택을 했다.

빠르게 공격할 수 있으면서 던지기도 편한 창을 골랐고, 그러다 보니 한 손으로도 쉽게 창술을 펼칠 수 있었다.

그러자 왼손이 빈 게 아까워서 그냥 방패라도 들었다.

그렇게 딜러에서 탱커로 포지션이 확정된 서문엽이었다.

절대 정석이 아니었다.

정석이 아니므로 단점도 있었지만, 서문엽은 인류 최고 수준인 기술 100/100으로, 극한으로 자신의 스타일을 연마해서 완성시켰다.

87이나 되는 근력의 재능이 있고, 근력 강화까지 펼칠 수 있는 사니야에게 어울릴 스타일은 결코 아니었다.

'하지만 얘도 민첩성과 속도가 꽤나 높아서 아예 중무장을 시키기도 아깝긴 한데. 그렇다고 내 스타일을 계속 시키자니 근력 강화를 활용 못 하고.'

사니야는 근력 강화를 주로 창 던질 때 활용하고 있었다.

근접 전투에서는 제대로 활용 못 했다.

그럴 수밖에 없다.

한 손보다 두 손으로 써야 더 힘을 크게 실을 수 있는 건 초인도 마찬가지였다.

한 손으로 창을 다루니 근력 강화를 100% 활용할 수 있을 리 없다.

거기에 방패도 작고 무장도 가벼워서 몸싸움을 벌이기도 부적절하다.

물론 서문엽은 제럴드 워커와 몸싸움을 벌여도 테크닉으로 극복했지만, 그건 서문엽이 기술 100/100이기 때문.

꾸준히 키워서 기술을 97까지 다 채워준다면 사니야도 서문엽 스타일로도 대성할 수 있겠지만, 그때까지 언제 기다릴 참인가?

'역시 포지션을 바꿔야겠어. 일단은 가볍게 때려눕히자.'

서문엽은 순간적으로 창의 그립을 던지는 자세로 고쳐 잡았다.

던지는 듯하더니, 다시 찌르기 그립으로 바꿔 쥐고 하단을 찔렀다.

푹!

초고속으로 펼친 페인트에 걸린 사니야는 허벅지를 찔렸다.

"악!"

균형을 잃고 한쪽 무릎을 꿇은 사니야. 다시 일어나려 했지만, 서문엽은 그대로 돌진해 방패로 냅다 찍어버렸다.

파앗!

사니야의 아바타가 소멸했다.

당연하지만 서문엽의 완승이었다.

접속 모듈에서 나오자 속상해하는 사니야가 보였다.

실력을 다 보여줄 틈도 없이 져버려서 속상하다고 생각할 터였다.

하지만 서문엽은 이미 분석안으로 그녀의 자질을 충분히 파악한 뒤였다.

"역시 서문이야. 내 딸은 어땠어?"

"응, 재능 있던데."

"하하, 그렇지? 거봐라, 사니야. 재능 있다고 하잖아. 그러니까 속상해하지 마."

티무르는 사니야를 위로해 주었다.

서문엽이 그런 그녀를 보며 말을 이었다.

"그 스타일은 아버지한테 배웠어?"

"네. 힘이 세니까 탱커가 좋은데, 이왕 탱커면 서문이 최고라고 하셔서······."

"하하하! 이 나라에서 가장 너를 가까이서 보았던 사람은 바로 나지! 난 네 스타일을 다 알고 있기 때문에 딸에게 여기까지 가르칠 수 있었어."

"······."

서문엽은 한심함을 느꼈다.

생각해 보니 그 시절, 티무르도 서문엽을 몹시 존경했던 추종자였다.

"사니야, 잘 봐봐. 내 스타일은 방패와 창을 들고 있고 힘을 양쪽에 분산시키고 있지?"

"네."

"이 스타일은 어느 한쪽에 힘을 완전히 가하지 않아. 정면 충돌보다는 언제나 회피하고 반격할 태세인 거야. 이건 이해하지?"

"네."

"아까 보니까 순간적으로 근력을 강화시키던데, 이 스타일로는 그걸 제대로 활용할 수 없어."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뜬 사니야.

서문엽이 이어 말했다.

"방패를 버리고 양손 창으로 바꿔서 근접 딜러를 하자. 그러면 네 힘과 민첩성을 동시에 살릴 수 있을 거야. 우리 팀에 온다면 이걸로 널 세계 최고로 만들어줄게."

< 용병(2) > 끝

< 용병(3) >

서문엽은 자신의 뛰어난 안목으로 진심 어린 조언을 해주었다.

그런데 그런 영광을 받은 사니야는 어쩐지 심통이 난 얼굴이었다.

"싫어요."

"그래, 내 말대로 훈련하면 곧··· 응?"

"싫다고요!"

"방금 내 천금 같은 조언을 싫다고 했니?"

서문엽의 입가에 특유의 인자한 미소가 띠려는 찰나, 티무르가 잽싸게 끼어들었다.

"자자, 서문. 내 딸 스타일이 왜 마음에 안 드는 거야?"

"아깝잖아. 근력 강화 초능력을 이상하게 이용하고 있으니까."

"내 딸은 스피드도 있어. 다 활용하는 탱커는 역시 서문이잖아."

"그러니까 양손 창 쓰고 근접 딜러를 하라고! 두 손으로 힘 빡 줘서 찔러 버리면 그것만큼 좋은 게 없는데, 왜 힘 낭비야!"

"쯧쯧, 서문은 여자의 마음을 모르는군."

"뭐 인마?"

"탱커의 로망은 서문이잖아."

"그게 여자의 마음이랑 뭔 상관이야, 미친놈아!"

퍽!

"크억!"

20년 만에 조인트를 까인 티무르는 펄쩍펄쩍 뛰었다.

그러면서도 티무르는 정강이를 붙잡으며 말했다.

"18년 평생 너처럼 되고 싶어서 훈련했던 아이의 마음을 해치지 말아줘."

"잉? 18년?"

서문엽은 놀라서 사니야를 쳐다봤다.

180㎝의 큰 키.

떡 벌어진 어깨.

어른스러운 얼굴과 몸매.

이게 어딜 봐서 18세란 말인가?

20대 초중반 정도는 된 줄 알았던 서문엽은 경악해야 했다.

'만 18세밖에 안 됐는데 이 정도라면······.'

적합한 스타일과 체계적인 훈련만 만나면 곧 폭풍 성장을 할 것이다.

잘 키워놓으면 1,000억에도 팔 수 있는 것이다.

이 정도의 초특급 유망주를 본 적이 없는 서문엽은 눈이 돌아갔다.

"사니야?"

"왜요."

사니야는 뾰로통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어쨌거나 너도 최고가 되고 싶은 게 목표 아니야. 맞지?"

"네."

"그렇다면 내가 책임지고 널 최고로 만들어주마. 그러니 같이 한국에 갈래?"

"싫은데요."

"······."

서문엽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런데 이마에는 힘줄이 솟았다.

"이유가 뭔데?"

"서문도 곧 유럽으로 떠날 거잖아요. 서문도 없는데 나 혼자 한국에 있어서 뭐 해요? 더 선진적인 유럽 팀에 가고 말지."

"······."

너무 지당한 말이라 대꾸를 할 수 없었다.

사니야는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아빠가 협회장이라서 유럽 쪽에 나름 인맥이 있거든요? 국제 대회 성적 바닥인 건 한국이나 우리나 마찬가진데 배틀필드 강국인 줄 착각하지 말래요? 축구가 아니거든요."

"으음······."

서문엽은 침음했다.

하기야 저만한 유망주가 한국에 온다는 게 말이 되지 않았다.

'나라도 안 간다.'

7영웅 중 2명이나 있는 나라가 어쩌다 저런 소리를 듣게 됐는지 회의감이 들었다.

서문엽은 고민 끝에 질문을 던졌다.

"그러니까 네 말은, 내가 유럽에 안 가면 우리 팀에 올 생각이 있다 이거지?"

"흥, 생각은 있어요."

그냥 한 번 튕기는 사니야.

서문엽은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내가 유럽 가서 이적료 뜯어내면 그 돈으로 이것저것 할 수 있지만, 쟤도 아무리 봐도 월드 클래스로 자랄 것 같은데.'

심지어 여자라서 초상권 판매도 더 우월할 것 같았다.

팬들도 이왕이면 전사보다 여전사를 더 좋아했기 때문이다.

이번에 놓치면 다시는 얻을 수 없을 것 같은 유망주였다.

'그래, 일단은 한국에서 이룰 수 있는 것을 전부 이루자.'

사니야가 다 성장해서 자신의 뒤를 받쳐준다면 YSM으로도 세계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심영수처럼 특별 관리가 필요한 놈도 있으니 겸사겸사 YSM에 잔류하기로 했다.

결심을 굳힌 서문엽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유럽 안 간다."

"정말요?"

"그래, 가도 나중에 너랑 같이 손잡고 갈게."

사니야는 배시시 웃었다.

"좋아요. 그럼 생각해 보죠."

이후 사니야의 이적 관련해서는 티무르와 상의했다.

티무르도 이왕이면 서문엽에게 딸을 맡기고 싶어 했다.

왜 유럽에 안 보내냐고 물으니, 서문엽이 최고이기 때문이란다.

"유럽도 공략 불가 던전을 깨지 못했지만 서문은 했잖아. 아무리 그들이 기술력이나 스포츠 의학이 어쩌고 설쳐도 난 그들보다 서문을 믿어."

"뭐, 믿어주니 고맙네. 내가 책임지고 월드 클래스로 키워줄게."

"하하, 내 딸에게 그만한 재능이 있는 건 확실하지?"

"나 모르냐?"

"알지, 서문이 찍은 초인은 다 거물이 됐잖아."

그리하여 사니야 아흐메토바와 계약을 했다.

사니야는 이래 봬도 카자흐스탄에서 알아주는 인기 선수였기 때문에 대우를 적게 해줄 수 없었다.

옛정을 중시 여기는 티무르는 그저 얼마든 상관없다며 껄껄거렸지만, 서문엽은 이적료 30억 원을 주었다.

사니야의 연봉도 5년 계약에 최혁과 같은 7억으로 맞췄다. 본래 5억이었지만 KB-1으로 승격하면서 재계약해 오른 액수였다.

사니야를 갖게 되니 그 뒤로는 선수를 볼 필요도 없었다.

"이제 이적 시장은 끝났어. 놀자!"

그 뒤로 사니야와 서문엽 일행은 카자흐스탄의 관광지를 돌아다니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

서문엽 일행이 사니야와 함께 돌아왔을 때, 인천공항에 기자들이 모여 있었다.

"서문엽 씨, 파리 뤼미에르에서 영입 제안을 한 것이 사실입니까?"

"베를린 블리츠에서도 영입 제의를 했다고 하는데 의향이 있으십니까?"

"전 7영웅 동료였던 엠레 카사 감독이 서문엽 씨와 또다시 기적을 이루고 싶다고 했습니다. 이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파리 뤼미에르와 베를린이 2억 유로 규모의 비드를 했다는데 사실입니까?"

"뉴욕 베어스와 LA 워리어스에서도······!"

기자들이 질문 공세를 펼쳤다.

그랬다.

배틀필드 빅 클럽들이 본격적으로 서문엽 영입 경쟁을 시작한 것이었다.

서문엽은 귀찮다는 듯이 손을 휘휘 내저었다.

"아, 몰라! 해외 안 나가요."

그러자 기자들의 얼굴에 실망감이 어렸다.

"해외 진출을 하실 생각이 없으신 겁니까?"

"아직 한국에서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어서 해외는 나중에 갑니다."

"해야 할 일이란 건······."

"아 진짜. 비켜, 이제!"

서문엽이 짜증을 내자 기자들이 길을 열었다.

공항 주차장에서 백제호가 기다리고 있었다.

기자들 때문에 공항 안에 가지는 못하고 차 안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서문엽이 해외 진출을 미룬다는 소식은 곧 속보로 전 세계에 퍼졌다.

덕분에 서문엽의 행보에 주목하고 있던 전 세계 팬들은 시무룩해졌다.

역대 최대 규모의 이적이라는 초대형 이벤트를 기대했었기 때문이다.

파리, 베를린, 뉴욕, LA 등등 월드 챔스 우승컵을 노리는 강호들도 시무룩해졌다.

-이제야말로 우리 LA가 세계 정상에 우뚝 설 수 있었는데.

└서문엽이 해외 진출 의사가 있으면 우리 뉴욕에 오지 LA는 왜 가냐?

└LA는 한인들이 많이 살거든?

└돈도 없는 LA 놈들이 서문엽 영입하겠다고 설치네.

-다 닥쳐, 미국 돼지들아. 서문엽은 결국 파리에 오게 되어 있다. 너희처럼 덩치들 모아서 시대착오적인 파워 게임이나 추구하는 놈들은 서문엽의 우아한 테크닉을 소화 못 한다.

-뤼미에르 자식들 서문엽하고 친한 척은 다 하네. 우리 베를린은 같은 동료였던 엠레 카사 감독님이 계시거든?

-7영웅끼리 뭉쳐야지. 서문엽은 베를린으로 올 거야.

-아오, 시끄러워. 서문엽 한국에 있겠다잖아.

-서문엽은 일단 자기 팀을 키우고 싶을 거야. 다 이해해. 서문엽이라면 팀을 아시아 최고로 만들기까지 1년이면 충분할 거야. 우리 베를린 팬들은 1년 정도는 기다려 줄 수 있어.

-설레발들 치는군. 귀여운 조카가 부르는데 당연히 파리로 와야지.

-다들 모르나 본데, 서문엽이 할 줄 아는 언어 중에는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말고도 러시아어가 있다. 돈이라면 우리 모스크바도 안 져.

└소름 끼쳤다. 러시아는 여기서 좀 빠지자.

-우리 중국은 서문엽을 환영한다. 그리고 자금력에서 서양에게 지지 않는다.

└중국은 그냥 쿵푸나 해라.

-아, 아쉽다. 우리 베를린 블리츠가 세계 최고 경쟁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었는데. 간만에 짠돌이 구단주도 거액을 내놨단 말이야.

└웃기는군. 서문엽이 자기 졸병이었던 엠레 카사 감독 밑에서 선수 생활 하고 싶어 할까? 우리 파리는 구단주부터가 서문엽 광팬이야.

└파리야말로 치치 루카스 같은 선수도 나단 뒤치다꺼리 하게 만드는 한심한 놈들이잖아.

└나단은 서문엽을 존경한다. 둘이 조화를 이룰 거야.

전 세계 배틀필드 관련 커뮤니티에선 팬들 간에 글로벌 전쟁이 벌어졌다.

서문엽을 누가 데려가느냐로 팬들 간에 말싸움을 벌이는 현상.

이는 세계 무대를 주름 잡는 강호들이 모두 겪고 있었다.

서문엽을 영입하지 못하면 들고 일어날 기세니 보드진은 울며 겨자 먹기로 이적료를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서문엽이 해외 진출을 미룬다고 하니 일단은 한숨 돌렸다.

이 분위기에서 경쟁을 치렀으면 영입에 성공한다 해도 어마어마한 자금을 소모해야 했을 터였다.

'아직 이르다.'

'뛰어나다는 건 인정하지만 더 큰 무대에서 뛰는 걸 봐야 한다.'

'어마어마한 돈을 투자할 가치가 있는지 좀 더 검증이 필요하다.'

서문엽의 해외 진출 보류로 이적 시장은 다소 김이 빠졌지만, 구단들은 여전히 서문엽의 행보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파리로 간 백하연이 좋은 활약을 하면서 한국에 체류하는 스카우터들도 늘어났다.

전 세계가 주목하는 가운데, 이적 시장은 종료되었다.

휴식기 동안 열심히 훈련을 받으며 재정비를 하던 YSM은 2023년 전반기 시즌에 나섰다.

개막전 첫 경기.

박영민, 김진수, 심영수, 사니야 등 신입생 4인방이 모두 출전하였다.

"오늘 이길 수 있겠어?"

더그아웃에 함께 있던 서문엽이 물었다.

"예. 우리의 전력은 한층 업그레이드되었습니다."

가브리엘 감독은 자신 있게 말했다.

"그중에서도 저 사니야 아흐메토바가 놀랍습니다."

사니야는 YSM에 오자마자 휴식기 동안 특별 훈련을 받았다.

무기는 서문엽과 똑같은 1.8m짜리 한손 창을 쓰다가 3m나 되는 장창으로 교체했다.

모양은 똑같지만 길이만 더 길어진 것으로 모로 형제의 공방에 주문을 넣은 것.

서문엽이 가진 창과 똑같이 오러를 주입하면 펼쳐지는 구조의 장창인데, 창던지기에 나름 일가견이 있었던 사니야가 몹시 좋아했다.

아무튼 무기가 바뀌고 포지션도 탱커에서 근접딜러로 바뀌었으니 특별 훈련이 불가피했다.

창을 다루는 코치를 가브리엘 감독의 인맥을 통해 프랑스에서 영입해 와 붙여주었다.

그랬더니 폭풍 성장을 했다.

한 달 남짓한 단기간이었지만, 73이었던 기술이 76으로 3 올랐다.

민첩성은 75에서 80/93으로.

속도는 73에서 75/88이 됐다.

단기간에 폭발적인 성장.

포지션과 무기를 교체시킨 서문엽의 안목이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저런 성장 속도는 나단 베르나흐를 비롯해 몇몇 선수 외엔 본 적이 없었습니다."

한때 파리 뤼미에르 BC의 유소년 팀도 맡은 경험이 있었던 가브리엘 감독의 말이었다.

서문엽은 뿌듯해했다.

"당연하지. 쟨 월드 클래스 감이야. 내가 쟤 때문에 해외 진출을 미룬 거라고."

경기가 시작되었다.

서문엽이 열심히 뛰어다니며 모은 이적생들의 활약을 볼 차례였다.

< 용병(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