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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 - 1

BJ소드마스터

1화. 김밥천국만세

발라란 왕립 기사 아카데미!

역사적으로 유수한 기사들을 배출한 기관으로, 졸업만 하면 기사로서의 탄탄대로가 보장된다고 알려진 곳이다.

놀랍게도 입학 조건은 까다롭지 않았다.

신분. 재능. 재산.

그중 한 가지만 갖춰져도 들어올 수 있는 곳이었으니까.

다만 입학은 비교적 쉬웠으나 졸업은 아니었다.

"헨리 카밀턴."

"예!"

교관의 부름에 청년은 우렁차게 대답했다.

목소리만으로도 올곧고 선한 기백이 느껴졌다.

"낙제다. 뒤에서 대기하도록."

"...예!"

두 번째 대답은 종전보다 힘이 빠져 있었다.

올곧고 선한 기백과 기사로서의 재능은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역시 헨리 카밀턴이야. 또 낙제라니."

"구제불능이라니까?"

"저쯤 되면 본인도 검에 재능이 없단 걸 알 텐데."

수군거림이 청년, 헨리의 귀를 파고들었다.

가슴이 쓰렸으나 대응하진 않았다.

그런다고 바뀌는 건 없었으니까.

"그만. 기사로서의 덕목을 잊었나?"

교관의 한 마디에 정적이 찾아들었다. 하지만 시선은 그대로였다. 조롱의 시선들이 헨리를 날카롭게 찔렀다.

"렉사르."

"예!"

"다음 수업부터 A반으로 이동한다."

"감사합니다!"

"맥크리는 B반이다."

"감사합니다!"

"루시아는...."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이어질 때마다 희비가 교차했다.

실력에 따른 분반 시스템.

당연히 A반은 가장 뛰어난 인재들을 모아 놓은 곳이었고, 밑바닥은 F반이었다.

그렇다면 헨리 카밀턴이 속한 그룹은?

없었다. 애초에 F반에조차 들 실력이 되지 못한다는 게 이유였다.

3년간 자그마치 세 번이나 낙제한다는 건 마나를 다룰 수 있는 최소한의 재능조차 없다는 의미였으니까.

'빌어먹을. 결국 이번에도.'

치열하게 수련했다.

남들이 지쳐 쉬는 휴식 시간에도 검을 휘둘렀고, 일주일에 단 하루 주어지는 휴일조차 홀로 연병장을 달렸다.

물론 훈련의 효과는 있었다.

얇은 제복 아래엔 더없이 탄탄한 육체가 만들어져 있었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헨리 카밀턴은 마나의 존재조차 느끼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로키. C반이다."

"감사합니다!"

수련생들의 얼굴에 희비가 교차했다.

반이 올라간 이들은 더없이 만족스러운 얼굴이었고, 아주 간혹 떨어진 몇몇은 절망적인 표정으로 땅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헨리에겐 그런 작은 변화조차 일어나지 않았다.

올라가는 건 당연히 불가능했고, 떨어지기엔 더 내려갈 곳이 없었으니까.

"내일부터 일주일간의 휴식이 주어진다. 누군가에겐 짧고, 누군가에겐 긴 시간이겠지. 모두 스스로에게 충실한 시간을 보내길 바란다. 이상, 해산하도록."

"감사합니다!"

교관의 짧은 훈화가 끝나자마자 수련생들이 우르르 흩어졌다.

한 번씩 헨리를 힐끔거리는 것도 빠뜨리지 않았다.

그 입가에 걸린 건, 당연하게도 대부분 비웃음이었다.

무관심한, 혹은 동정어린 시선도 가끔씩은 느껴졌고.

'저 녀석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누군가는 부족한 실력을 갈고닦으려 할 테고, 또 누군가는 간만의 여유를 이용해 즐거운 시간을 보낼 터였다.

짧은 시간이나마 고향을 찾는 이들도 있을 테고.

곧 수련생들이 썰물 빠지듯 사라졌다. 어색한 적막이 흐르고, 자리에 남은 건 교관과 헨리 두 사람뿐이었다.

"헨리 카밀턴."

"예."

교관은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한 채 말했다.

"...잠시 대화가 필요할 것 같군. 따라오도록."

***

수석 교관 루소의 집무실은 차분했다.

필요한 것들이 필요한 자리에 놓여 있었다.

사치라곤 찾아볼 수 없는 담백한 고동빛 공간.

"헨리."

교관 루소는 헨리를 마주보았고, 헨리는 그 시선을 피했다.

"예."

"세 번째 낙제가 어떤 의미인진 알고 있겠지."

"...이제 1년 남았다는 뜻입니다."

아카데미의 교육 과정은 4년이다.

네 번의 낙제를 겪는다는 건, 동기들이 졸업하기 시작한 지금까지도 1학년으로 남았다는 뜻.

그 순간부터 해당 수련생은 재능이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아카데미에서 제적 처리를 받았다.

"나는 지난 3년간 너를 지켜보았다. 이곳의 교관 중 누구보다도 네게 관심이 많았다는 것은 너도 알겠지."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네 노력은 알고 있다. 가문의 기대로 어깨가 무겁다는 것 역시. 하지만 헨리, 이젠...."

"교관님."

아카데미에 입학한 이래 처음으로 헨리는 루소의 말을 끊고 말았다.

"저는 기사가 되어야만 합니다."

"마지막 1년이다. 이번마저 실패한다면 너는 이곳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을 터."

루소는 진심으로 헨리를 걱정하고 있었다.

우직했고, 성실했으며, 누구보다 열정적이었다.

어쩌면 이곳의 학생 중 '기사도'에 가장 어울리는 학생일지도 몰랐다.

"이대로라면 끝끝내 네게 남는 것은 불명예뿐이다, 헨리. 다행히 너와 같은 경우는 처음이 아니고, 아카데미에선 네게 다른 길을 찾아 줄 수 있지."

"알렉스 교관님께서도 그리 말씀하셨습니다."

"생각은 해 봤겠군."

"죄송합니다. 저는 기사가 되어야만 합니다, 교관님."

강하고 단호한 목소리였다.

허나 루소는 그 안에 담긴 절실함을 읽었다. 모를 수가 없었다. 이 아카데미에서 자신 외에 헨리에게 관심을 가지는 이는 없었으니까.

헨리의 절실한 눈빛에 결국 루소는 말을 삼켰다.

"...내년에도 최선을 다해 지도하마."

"감사합니다."

"가 보도록. 바쁘게 움직여야 할 거다."

꾸벅. 헨리가 떠나고, 홀로 남은 루소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바쁘게 움직이라니.'

이 얼마나 무가치한 조언이란 말인가.

역대 아카데미의 학생 중, 헨리 카밀턴보다 치열하게 살았던 수련생은 한 명도 없을 텐데.

'재능이란 참으로 가혹하구나.'

새삼 느끼는 사실에, 루소는 얼굴을 쓸어내렸다.

***

카밀턴 자작가.

선대의 선대까지만 하더라도 나름 명망 있는 기사 가문이었으나, 쇠락을 거듭한 끝에 이젠 간신히 귀족 작위만 유지하는 곳이었다.

어릴 적의 헨리 카밀턴은 귀족들에게 영지가 주어지고, 그곳에서 나오는 세금으로 생활한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아버지인 카밀턴 자작은 검 대신 쟁기를 들었고, 어머니 역시 마찬가지였으니까.

'자작은 별명 같은 것이구나.'

헨리는 그렇게 생각했었고, 그 생각이 깨진 건 아홉 살이 되던 해였다.

집을 찾아온 왕실 관리와 카밀턴 자작의 대화를 엿들었다.

어린 나이에 제대로 알아듣진 못했지만, 헨리는 나름 영특한 아이였다.

카밀턴 자작가는 귀족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

헨리 카밀턴에겐 작위가 이어지지 않을 것이다.

카밀턴 자작이 그리 화내는 모습을, 헨리는 처음 보았다.

'몰락 귀족이란 표현도 그때 처음 들었지.'

왕실 관리의 입에서 나온 것이었다.

카밀턴 자작의 분노는 관리에게 조금의 위협도 되지 못했다. 오히려 그의 입에서 나온 '헨리'의 이름에, 카밀턴 자작은 고개를 떨구고 말았으니까.

「미안하다. 미안하다, 헨리. 아비의 무능이 너를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게 했구나.」

「기사가 되어야 한다, 헨리. 방법은 그뿐이다. 강해지거라. 강해져서, 아비가 물려주지 못한 명예를 되찾거라.」

그날의 기억은 여태까지도 잊히지 않았다.

훈련으로 흠뻑 젖은 등허리에 땀이 흘러내렸다.

"흐음."

공기는 서늘했다. 헨리는 서늘한 공기를 폐부 깊숙이 빨아들였다. 몸이 얼어붙듯 차가워졌다.

조금이나마 기분이 나아졌다.

연무장에 도착한 헨리는 문을 밀어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곧 바깥과는 달리 훈훈한 공기가 느껴졌다.

"역시 아무도 없네."

연무장은 텅 비어 있었다.

1년을 마무리하는 날까지 수련에 임하는 학생은 찾기 힘든 게 당연했다.

허나 헨리 카밀턴은 그곳에 있었다.

꽈악.

모래주머니를 팔다리에 묶었다. 전투 시 갑옷의 무게에 익숙해지기 위함이었다. 목검을 쥐어 들었다.

"후우."

마음이 편해지는 무게였다. 항상 그랬다. 훈련에 임할 때면, 헨리의 머릿속은 마치 비워낸 것처럼 맑아지곤 했다.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왕립 아카데미의 기초 검술이었다. 베고, 찌르고, 다시 올려 베는 것으로 시작하는. 얼마나 연습했는지 움직임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마지막이라.'

어째선지 오늘은 머리를 완전히 비울 수 없었다.

평소라면 한 귀로 듣고 흘렸을 조롱들이 차츰 떠올랐다.

'진작 알고 있었지. 내게 재능이 없다는 건.'

이곳의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고, 당사자인 헨리는 누구보다 뼈저리게 자각했다.

가히 절망적일 정도의 재능.

원시적으로 검을 휘두르고, 체력을 단련한다고 해서 기사가 될 수는 없는 세상이었다.

그렇기에 더욱 타인의 시선을 신경 썼다.

누구에게나 모범적인 기사 수련생으로 보이고자 애썼고, 분쟁을 피하고자 자존심을 굽히는 게 일상이었다.

'기사 외의 다른 길이 있다는 것도 알지만....'

수석 교관 루소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위에 그늘졌던 안타까움이 떠올랐다.

고마운 사람이었고, 그게 진심이란 것도 알았으나, 헨리는 그 조언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

검이 허공을 갈랐다.

진검이었다면 무엇이건 베어 냈을 기세였다.

깊은 무력감을 베었고, 바닥까지 떨어진 자존감을 베었다. 오로지 자신에게 기대를 건 가족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허공을 베고, 또 베었다.

그제야 머릿속을 비워 낼 수 있었다.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이 얼굴을 타고 흐를 때가 되어서야 헨리는 검을 내렸다.

"후우."

깊게 호흡한 뒤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전히 사람은 없었다.

그러다가 멈칫.

헨리는 이상한 걸 보고 말았다.

['xmtn1877'님이 입장하셨습니다.]

"...?"

허공에 무어라 글이 적혀 있었다.

분명 처음 보는 문자였다. 하지만 놀랍게도, 헨리는 그 내용을 읽을 수 있었다.

'입장했다고?'

생판 처음 보는 문자로 쓰인 짧은 글.

읽을 순 있었으나, 이해하는 건 별개의 문제였다.

하지만 상황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실시간 스트리밍 : 중세시대 기사 수련생!]

위쪽에 문자가 추가되었고.

[현재 시청자 : 1]

아래쪽에도 마찬가지.

도무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모를 상황에, 헨리는 미간을 좁힌 채 굳어 버렸다.

[이거 뭔 겜임?? 신작인가?]

'겜이 뭐지? 신작?'

중세. 게임방송. 시청자. 겜. 신작.

나열된 단어들 중, 헨리가 이해할 수 있는 건 단 하나뿐이었다.

기사.

헨리는 기사 지망생이었고, 저것만 봤을 땐 헨리 자신과 관련 있을지도 몰랐다.

'만약 그게 아니라면.'

다른 선택지는 뻔했다.

'고위 마법사의 장난... 아니, 어쩌면 실수일지도 모르지.'

지극히 합리적인 추론이었다.

전설의 대마법사가 말하지 않았던가.

고위 마법사는 다들 미친놈이라고 봐도 무방하다고.

"마법의 길을 걷는 분이십니까?"

[마법의 길이 뭔데요??]

이번엔 놀랍게도 상대방의 뜻을 이해했다.

마법의 길이 무엇이냐니.

'놀리는 건가?'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으나, 그럴 리 없었다.

상대는 마법사다.

놀리는 것도, 몰라서 묻는 것도 아닐 터.

'분명 현학적인 의미를 담은 질문이겠지.'

헨리로선 가늠할 수조차 없는, 이미 인간의 범주를 넘어선 사고력의 소유자일 게 분명했다.

"죄송합니다. 말씀하신 뜻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최대한 예의를 갖추어 말했다.

추구하는 방향은 다를지언정, 자신의 분야에서 일가견을 이룬 인물이 분명해 보였으니까.

하지만.

[노잼컨셉 빡시게 잡으셨네ㅋㅋㅋ]

[갑니다~~ 잼게하세요~]

['xmtn1877'님이 퇴장하셨습니다.]

[현재 시청자 : 0]

'시청자가 이걸 의미하는 거였구나.'

헨리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마법사의 수.

종전의 마법사는 자신의 멍청한 답에 실망해 떠난 게 분명했다.

"어쩔 수 없지."

한 줌의 마나조차 다루지 못하는 자신이다.

감히 마법사와 깊은 문답을 나눌 수 있다곤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건 왜 사라지지 않는 거지?"

[실시간 스트리밍 : 중세시대 기사 수련생!]

영문 모를 문자들도, 조금 전 마법사가 남긴 질문도, 현재 시청자가 0명이라는 문자까지.

의문의 창은 흔들림 없이 허공에 떠 있을 뿐이었다.

"도무지 알 수가 없...."

포기하고 목검을 들어 올리려던 순간.

['김밥천국만세'님이 입장하셨습니다]

이상한 이름의, 두 번째 마법사가 나타났다.

BJ소드마스터

2화. 구독(1)

발라란 왕립 기사 아카데미의 제8연무장.

평소라면 늘 훈련하는 수련생들로 붐비는 이곳도 오늘만큼은 한산했다.

일주일간의 짧은 방학이 시작된 덕이었다.

물론 공식적으로는 내일부터였으나, 사실상 오늘의 수업을 마친 순간부터 수련생들은 훈련에서 해방된 상황.

하지만 단 한 명.

헨리 카밀턴은 홀로 훈련장에 선 채 지금 벌어진 상황을 재차 확인하고 있었다.

"제가 하는 게 방송이란 말씀이십니까?"

[그렇다니까요?? 컨셉 개웃기네진짜ㅋㅋㅋㅋ]

"누구나 제 모습을 지켜볼 수 있는 것이 방송이라고 하셨지요?"

[네ㅋㅋ]

"마법사가 아니라도 말입니까?"

[그렇다니까요~!~!~!]

[컴퓨터만 쓸줄 알면 아무나 올수 있는거잖아요ㅋㅋㅋㅋ]

두 번째 마법사, '김밥천국만세'는 마법사답지 않게 친절했다.

덕분에 헨리는 지금 벌어지는 상황을 대략적으로나마 파악할 수 있었다.

'나는 지금 방송을 하고 있다. 시청자는 그 방송을 지켜보는 사람이고, 시청자는 꼭 마법사여야 할 필요가 없다.'

'시청자'인 마법사가 그렇게 설명해 주었다.

'마법사가 지켜보는 광경을 곁의 사람도 볼 수 있는 거로군. 심지어는 지금처럼 대화를 걸어 올 수도 있고.'

대충 알 것 같았다.

어떤, 마법사 중의 마법사가 헨리에게 관심을 가졌다.

그래서 이 '방송'이라는 소통의 창구를 마련해 둔 것이고, 다른 마법사들은 그 창구를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

"친절한 말씀 감사합니다. 덕분에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아니 돌겠네 진짜 ㅋㅋㅋㅋ 뭘 파악했단 거예요~~!!]

"...주제넘은 표현이었습니다. 겨우, 어떤 일이 벌어진 건지라도 추측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거듭 감사드립니다."

그렇다!

감히 마법사의 생각을 '파악'했다고 한 게 잘못이었다.

마법사가 조용해지자 헨리는 괜스레 마음이 조마조마해졌다.

잠시 대화가 끊겼다가, '김밥천국만세'는 말했다.

[ㅋㅋ이러다가 막판엔 구독과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이럴 거죠??]

"구독과 좋아요가 무엇입니까?"

[아니~~!!!]

[아 모르겠다 ㅋㅋㅋㅋ]

이젠 헨리도 저 표현이 '웃음'을 의미한단 건 알고 있었다.

'뭐가 그리도 우스운 걸까.'

['김밥천국만세'님이 퇴장하셨습니다.]

[현재 시청자 : 0]

아무래도 비웃음이었던 모양이다.

헨리는 실망하지 않았다.

애초에 상대는 마법사. 수월하게 대화할 수 있으리란 기대조차 하지 않았으니까.

'그래도 이번 마법사는 친절했어.'

덕분에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니, 마법사의 반응을 빌리자면 대략적으로나마 이해했다.

물론 아직 헨리가 아는 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테지만, 일단 이 상황이 왜 벌어진 건진 추측할 수 있게 되지 않았는가.

'더 들어오진 않는 건가.'

쪼그린 채 한참이나 '방송 화면'을 지켜보던 헨리가 일어섰다.

세 번째 마법사가 찾아오지 않을까 싶었으나, 관심은 식어 버린 듯했다.

'휘둘리지 말자.'

솔직히 말하자면, 기대를 조금이나마 했던 게 사실이었다.

마나를 도구처럼 '이용하는' 기사와 달리, 그들은 마나와 '함께하는' 존재였으니까.

'끽해야 흥밋거리겠지. 심심풀이였던가.'

헨리는 스스로의 위치를 잘 알고 있었다.

뛰어난 마법사의 눈에 비칠 자신의 모습도.

마침 헨리가 익혔던 기사도에도 그런 내용이 있지 않던가.

요행을 바라선 안 된다는.

'기사도 타령이나 하려는 건 아니지만... 빌어먹을 자식들. 사람을 뭐로 생각하는 거야?'

목검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재능 없는 수련생이 허탈함을 덜 수 있는 방법은 뻔했다.

***

목검이 허공을 갈랐다. 검술 수련은 해도 해도 끝이 없었다.

순수한 검술로 겨뤘을 땐 이곳의 어떤 학생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지만, 그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실전에서도 그리 부탁할 건가? 마나를 쓰지 않고, 정정당당하게 검술로 겨룹시다!」

파이크 교관이 했던 말이었다.

그 한 마디에 수련장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1학년이었던 헨리는 달아오른 얼굴로 상대와 검을 겨루었고, 결과는 뻔했다.

'맞는 말이었어. 나를 위해서 해 준 말은 아니겠지만.'

마나를 다룰 수 없을지언정, 기사로서의 검술 하나만큼은 내가 최고다.

입학한 해의 헨리 카밀턴은 치기 어린 생각을 지닌 꼬맹이였다.

해가 흘렀다.

활발하던 성격은 그대로였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홀로 생각할 때뿐이었다.

타인의 시선 속 헨리는 차분하기 그지없었다.

자신감은 처참히 무너졌다. 간신히, 기사 수련생으로서의 자존감만 겨우겨우 지킬 수 있는 수준이었다.

치열하게 노력함으로써, 간신히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다.

검 끝은 점차 매서워졌다.

어쩌면 이것만으로 마나라는 간극을 메울 수 있을까 기대했으나, 기대는 항상 무너졌다.

"오늘은... 유독 힘든데."

도무지 잡념이 끊이질 않았다. 깨끗해졌다 싶으면 어느새 떠올라 헨리를 괴롭혔다.

연무장의 목검을 조심스레 갈무리하고, 헨리는 연병장으로 향했다.

이곳에도 학생은 없었다.

고요한, 시선 없는 분위기는 마음에 들었다.

여전히 모래주머니를 찬 채 헨리는 달리기 시작했다.

'좀 낫군.'

검술뿐만 아니라, 체력 단련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이제 평지에서는 아무리 달려도 지치지 않았다.

물론 그 역시 기사로서의 전투력엔 별반 도움이 되지 않았으나, 그조차 뛰어나지 않다면 헨리는 이곳에 발붙일 곳이 없었을 터였다.

"좋아."

달리고, 달렸다.

맺힌 땀방울 덕에 바람이 시원했다.

이젠 잡념도 떠오르지 않았다. 머리를 비우는 데 몸을 움직이는 일만큼 좋은 건 없었다.

그리고 그 탓에.

['필살검무'님이 입장하셨습니다.]

['너흰아직준비가'님이 입장하셨습니다.]

[운동하는 겜이에요??]

[????]

['필살검무'님이 퇴장하셨습니다.]

['한통의편지'님이 입장하셨습니다.]

[????? 이분 뭐하는거??]

헨리는 곁에서 벌어지는 일조차 느끼지 못했다.

시청자들이 들어오고 나가길 반복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후욱. 후."

주위가 어두워진 걸 깨닫고 멈추었을 때, 헨리는 그제야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와ㅋㅋㅋㅋ 드디어 멈춤ㅋㅋㅋ]

[운동 너무빡시게하는데??]

[이게 그 슬로우컨텐츠?? 그런거죠??]

[슬로우컨텐츠ㅋㅋㅋㅋㅋㅋㅋ]

[운동 뽐뿌는 오지게된다 ㄹㅇ]

"...?"

대화가 빠르게 이어지고 있었다.

[현재 시청자 : 7]

자그마치 7명의 시청자가 자신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어느 틈에?'

관심이 식었다고 생각했었는데.

어쩌면 이들이 원하는 모습이 이런 것이었을지도 몰랐다.

'수련하는 모습을 보여 주지 않아서 떠난 거였나? 아, 어쩌면 마법의 길이 무엇이냐고 질문했던 것도...?'

대충 머릿속에서 아귀가 짜 맞춰졌다.

마법의 길이 무엇이냐던 질문.

어쩌면 마법사가 원했던 대답은, 어설픈 말이 아닌 아닌 행동으로 보이는 것이었을지도 몰랐다.

"안녕하십니까."

[드디어 말하네ㅋㅋ]

[존버는 승리한다!!]

[ㅋㅋ이거 무슨겜이에요? 운동하신거??]

[ㄹㅇ이런거 보면 운동은 VR로 하는게 직빵인거같음]

[머야 이분 말씀하시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헨리는 조금 전의 생각이 정답임을 직감했다.

"운동... 예, 체력 단련 중이었습니다."

[와 진짜였네ㅋㅋ]

[게임 이름이 뭔데요? 처음 보는데.]

[살은 얼마나 빼셨어요?]

게임. 저 표현은 아직도 무엇인지 정확히 감을 잡지 못했다.

"군살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아카데미에 입학한 이래 한 번도 붙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게임이란 표현은...."

[아카데미요?? 그게 겜이름임??]

[이거 얼마나 하셨는데요?]

"이곳은 발라란 왕립 기사 아카데미입니다. 입학한 지는 3년 되었습니다."

[퍄퍄퍄... 3년동안 매일 일케했어요??]

[발라란? 첨듣는데?? 클베인가요??]

[ㅋㅋ컨셉 개좋아]

정신이 하나도 없다. 헨리는 혼란스러운 나머지 잠시 입을 닫고 말았다.

'마법사가 이렇게 수다스러운 존재였나?'

본 적이 없으니 알 수가 없다.

하지만 7명이라.

이건 고무적인 상황이었다.

마법사는 그 존재만으로 귀하디귀한 취급을 받고, 대마법사는 여느 국가에서도 모셔 가고자 안달이 난 존재였다.

마탑에 틀어박힌 채 마법 연구만 반복하는 인종이 바로 마법사였으니까.

그들을 움직일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바로 마법적 호기심을 선물하는 것일 테고.

'설마?'

머릿속에 번뜩 불이 켜졌다.

'그래서 내게 관심이 생긴 거였어?'

단 한 줌의 마나조차 지닐 수 없는 육체.

일반인들보다도 못한 재능의 소유자가 바로 헨리 자신이었다.

연구 대상으로선 충분한 가치가 있을 터.

'가능해. 충분히 가능해. 단순한 흥밋거리 이상의 가치는 있다는 거야.'

솔직히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희망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었다.

[화면 저만 멈췄어요??]

[ㄴㄴ멈춘거 아님]

[어두워서 멈춘줄알았네ㅋㅋ 저기요~~~]

이 마법사들이 연구 대상으로서 관심을 가졌다면, 헨리가 힘을 얻을 방법을 찾아내려 들 가능성도 있지 않겠는가.

헨리 혼자 낑낑대는 것보단 훨씬 가능성이 높을 터.

"...마법사님들."

[왤케 뜬금없어ㅋㅋㅋㅋ]

[뭐지? 무엇을 암시하는 것이지?]

[우리가 서른까지 모쏠임을 암시하는 것인가?]

['그' 마법사였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재차 웃음을 연발하는 '시청자'들에게, 헨리는 다짜고짜 직구를 던졌다.

"제게 무엇을 원하십니까?"

***

해진 후의 아카데미는 어두웠다.

연병장 역시.

특별한 사용 요청이 없었기에, 흐린 마법등 하나만이 미약하게 빛을 밝히고 있었다.

그 가운데서, 헨리 카밀턴은 진지하게 자신의 과거사를 늘어놓고 있었다.

"카밀턴 자작가가 원래부터 이런 입장인 건 아니었습니다. 저희 조부님 때까지만 하더라도 왕실 내에서 나름의 입지를 세운...."

누가 본다면 이제 헨리 카밀턴이 정신까지 나갔다 비웃었을 것이다. 그러나 헨리는 진지했다.

몰락 귀족으로서의 과거.

입학 조건 중 충분한 재능은 발견되지 않았고, 귀족으로서의 명예도 부족했다.

헨리의 아버지, 카밀턴 자작은 가문에 남은 재산을 싹 긁어모은 끝에 헨리를 간신히 입학시킬 수 있었다.

"...렇게 3년이 흘렀습니다. 1년 후엔 이곳에서 떠나야 할 겁니다. 그때까지도 마나를 느끼지 못한다면."

[아니 배경스토리를 다외우셨네ㅋㅋㅋ]

[ㄹㅇ리스펙함ㅋㅋ 혹시 개발자 아니세요?? 홍보용 방송인가?]

[그럼 거기까지가 튜토리얼이란 뜻이죠?]

"저는 기사 수련생 헨리 카밀턴이고, 튜토리얼이 무엇인진 잘 모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컨셉 진짜 단단하네ㅋㅋㅋㅋ]

[거의 철벽남임 진짜ㅋㅋㅋ]

[근데 겜은 재밌어보임;; 아카데미물 환장하는데 이게 나오네ㅋㅋ]

역시 마법사의 언어는 난해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내용에 헨리는 멍하니 올라오는 말들을 지켜보았다.

"죄송하지만 '컨셉'이 무엇인지 알려주실 수 있으십니까?"

[컨셉요?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님 기사죠??]

"저는 기사 수련생입니다."

[그게 컨셉임ㅋㅋㅋ 기사 수련생 컨셉ㅋㅋㅋㅋ 아 ㅋㅋㅋㅋ]

그렇구나!

헨리는 단박에 이해했다.

컨셉이란 건 신분이나 위치. 즉 그 순간 그 사람의 입장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제야 알겠습니다. 저는 기사 수련생 컨셉입니다. 아, 기사 수련생 컨셉을 잡았습니다. 목표는 정식 기사 컨셉을 잡는 것입니다."

헨리에게도 그 정도 응용력은 있었다.

'컨셉은 '잡는' 거라고 했었지.'

아마 마법사들의 표현이라 짐작했고, 그건 적중했다.

[이제야 인정하시네ㅋㅋㅋ]

[아 속이 다 시원하다 ㄹㅇㅋㅋ]

[오늘 방송 몇시까지 하세요??]

"잘 모르겠습니다. 제게 이걸 열어 주신 마법사님께서 취소하시기 전까진...."

[ㅋㅋ밤샘방송 확정이고~~]

[이제 컨텐츠 뭐해요??]

"컨텐츠는... 죄송합니다. 그 표현도 저로선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아 이건 진짜 인정이다. 인정할 수밖에 없음.]

뭘 인정한다는 걸까.

어쩌면 솔직함이 마음에 든 것일지도 몰랐다.

그리고 다음 순간.

['한입충'님이 채널을 구독하셨습니다!]

여전히 영문 모를 내용에 이어.

"구독이란 것 역시... 헛?"

헨리의 몸에 변화가 찾아왔다.

BJ소드마스터

3화. 구독(2)

구독.

그 단어의 의미를, 헨리 카밀턴은 마침내 이해할 수 있었다.

무어라 말이 나오지 않았다.

경이로운 감각이 헨리의 전신을 뒤덮었다.

'이런 거였어!'

이것이 바로 마나라는 것이던가.

'어처구니없는... 이런 걸 곁에 두고서도 몰랐단 말이지.'

시각적 변화는 없었다.

허나 느낄 수 있었다.

주위를 가득 채운, 마나의 존재를.

'물속에 잠긴 것 같은데. 묘한 감각이야.'

무언가 몸을 둘러싸고 있었다. 부드럽고, 조화로운 무언가가.

물은 헨리의 움직임에 저항하지만 마나는 그렇지 않았다.

호흡 역시 자유로웠다.

숨을 들이마실 때 마나가 함께 체내로 들어왔고, 뱉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수업 때 들었던 내용이... 이거였어.'

들이마시고, 뱉지 않는 것이 마나 수련법의 기초라고 했다.

그 이후엔 들어온 마나를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는 과정이었고.

[ㅋㅋ이분 또 왜이러는거임]

[구독 리액션 아니에요?]

[리액션을 이렇게 한다고???]

대화가 이어졌다. 하지만 헨리는 여전히 감격에 젖은 채 양팔을 마구 휘젓고 있었다.

움직임에 따른 마나의 흐름을 느꼈다.

'믿을 수가 없군.'

이제야 자신을 대하던 교관의 반응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미 경지에 오른 교관들.

그들의 뒤를 따라 수련하는 수련생들.

마나를 느낄 수 있는 그들이었기에, 헨리의 몸부림이 가당찮게 느껴지는 것이었을 터다.

'이 기운을 이용할 수만 있다면.'

얼핏 상상만 했음에도 확연히 느껴졌다.

제아무리 멋지게 검을 휘둘러도, 마나가 실린 꼬마의 검조차 막아 낼 수 없으리란 걸.

"감사합니다."

뒤늦은 감사의 인사가 흘러나왔다.

'구독'은 마법사의 축복이었고, 감히 그 축복을 받았음에 대한.

"무엇으로도 갚을 수 없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느낄 수 있다면, 쌓을 수도 있다.

부족한 기초는 수련으로 극복할 수 있다.

검술이 그러했듯, 노력한다면 마나를 다루는 실력도 충분히 성장할 수 있을 테니까.

[ㅋㅋ무슨 은혜요??]

[너무 분위기잡는거 아님??]

영문을 모르겠다는 반응.

헨리는 이해할 수 있었다.

마법사인 그들에게 이 정도 도움을 주는 것은 대단한 일도 아닐 테니까.

하지만, 헨리 자신에겐 그 무게가 달랐다.

"구독해 주신 것, 정말 감사드립니다. 어떤 말로도 이 마음을 전달할 수 없겠으나...."

당황과 감격이 적당히 섞였다.

헨리의 상식과는 한참이나 떨어진 일이었기에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조차 모를 정도로.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미친 진짜 리액션이었어ㅋㅋㅋ]

[돌겠네ㅋㅋㅋㅋㅋ]

헨리가 굳어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마법사들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오히려 거기서 그치지 않고.

['더러운호드'님께서 구독하셨습니다!]

['풍뎅풍뎅풍뎅'님께서 구독하셨습니다!]

자그마치 2명의 마법사가 추가로 '구독'해 주었다.

"맙소사."

헨리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것뿐이었다.

마나의 농도가 진해졌다. 느낄 수 있었다. 미약하기 그지없던 에너지가 조금 더 또렷해졌다는 사실을.

게다가.

[구독자 : 3]

[감응력이 3만큼 증가합니다.]

[목표 구독자 : 10]

* 목표치 달성 시 추가 보상이 주어집니다.

그 사실이 구체화된 메시지까지.

마법에 문외한인 헨리를 위한 대마법사의 배려임이 분명했다.

'나를 위해서 이렇게까지 해 준다고?'

헨리의 입이 쩍 벌어졌고, 마법사들은 만족했다.

[돌앗네진짜ㅋㅋㅋㅋ]

[ㄹㅇ구독갖고 리액션 일케하는건 첨본다]

[혜자 그자첸데??]

마법사들의 흐뭇함이 여기까지 전해졌다.

마나를 느끼지조차 못하던 기사 지망생이, 마침내 다른 세계를 엿보게 했다는 뿌듯함이 담긴 것일 터.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반드시 마법사님들께서 열어 주신 길을 갈고닦도록 하겠습니다."

[ㅋㅋ뭔 길요?? 가로수길??]

[ㅋㅋㅋㅋㅋㅋㅋㅋ]

[방송으로 돈벌겠다는뜻 아님??ㅋㅋ]

[근데ㄹㅇ 이정도 정성이면 언젠간 대기업된다고본다ㅋㅋ]

[컨셉 신박하긴함ㅋㅋㅋ]

상대가 마법사만 아니었다면 경례라도 올려붙이고 싶은 심정.

허나 그들의 배려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풍뎅풍뎅풍뎅'님이 1,000원 후원!>

<"잘될거임ㅋㅋ!!">

"...!"

과하게 발랄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헨리는 놀란 나머지 화면만 빤히 바라보았다.

"방금 마법사님께서 말씀하신 겁니까?"

[네??]

[또 뭔소리야ㅋㅋㅋㅋㅋ]

"바, 방금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풍뎅풍뎅풍뎅님께서 천 원 후원'이라는... 또 '잘될거임 키읔키읔'이라는 말씀도...."

헨리는 여전히 놀란 상태였다.

현실에선 결코 들어본 적 없는 목소리였으니까.

아니, 애초에 인간의 목소리가 아니지 않은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앜ㅋㅋㅋㅋㅋㅋㅋ]

[미쳣나진짜ㅋㅋㅋㅋㅋㅋㅋㅋ]

반응을 보니 정답이었다.

조금 전 그 목소리는 마법사의 것이고, 그 사실에 놀란 모습이 우스웠던 모양이었다.

"죄, 죄송합니다. 마법사님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 처음인지라... 먼 거리에서 말씀을 전하실 수 있다는 것도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먼 거리긴 하죠ㅋㅋㅋ 서울이랑 부산이면 거리가 얼마야?ㅋㅋㅋㅋㅋ]

[개웃기네진짜ㅋㅋㅋ]

[ㅋㅋ이렇게 글로 쓰는것보다 직접 말하는편이 편하겠죠??]

"음, 그럴 것 같습니다."

헨리가 끄덕인 이유는 간단했다.

글은 직접 보고 있어야 하지만, 목소리는 다른 일을 하는 와중에도 들을 수 있었으니까.

시청자들은 감탄했다.

[와 이걸 저 컨셉 살리면서 한다고???]

[이걸 이렇게 유도를 하네ㅋㅋㅋ]

[저 표정보셈ㅋㅋ ㄹㅇ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ㅋㅋㅋ 연기력 개쩐다진자ㅋㅋㅋ]

이번 대화의 흐름은 당최 종잡을 수가 없었다.

"그보다 그, 마법으로 전달하는 목소리는 원래 조금... 변형되는 겁니까?"

헨리가 화제를 돌렸다.

조금이나마 자신이 따라갈 수 있는 내용으로.

[목소리가 변형돼요??]

"예, 혹시나 해서 여쭸습니다."

[???]

[이해하신분??]

[?????]

물음표의 향연이었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아 다시 말하려던 순간.

<'풍뎅풍뎅풍뎅'님이 1,000원 후원!>

<"ㅋㅋㅋ설마 이걸?? 이렇게??">

예의 목소리가 재차 들렸다.

헨리가 눈을 크게 뜬 채 마구 고개를 끄덕였다.

"예, 이거였습니다. 이 목소리가 마법으로 변형시키신 것인지 궁금했습니다."

[와 빌드업 돌았네진짜 ㅋㅋㅋ]

[설마 기계음 말하는거였음?ㅋㅋㅋㅋ]

[그런듯ㅋㅋㅋㅋ 엌ㅋㅋㅋ]

'마법사는 폐쇄적이고 음침하다더니. 이렇게 쾌활한 사람들일 줄이야.'

역시 소문은 믿을 게 못 된다.

헨리는 마법사들의 대화를 흐뭇하게 지켜보았다.

이해할 수 없는 표현의 향연이었으나 그런 게 어떻단 말인가.

이전까지 이 마법사들은 헨리를 우리 속 원숭이처럼 지켜보던 이들이었으나, 이 순간부턴 엄청난 선물을 건넨 고마운 이들일진대.

[근데 무기는 없어요?? 숙소에 있나?]

[인벤에 넣어둔거 아님?]

"아, 무기라면 연무장의 목검이 있습니다. 진검을 사용할 수 있는 건 몇몇 수업 때뿐입니다."

[그럼 인벤엔 뭐들었어요?]

"죄송합니다, 인벤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포기해야겠다ㅋㅋㅋㅋ]

[검술 한번 보여주시면 안돼요??]

[스킬은 있죠?]

"스킬도... 죄송합니다. 모르겠습니다. 검술은 보여 드릴 수 있겠습니다."

[ㅋㅋ검술이라도 보여주세요!!]

[이거 걍 중세 기사가 모를만한 표현은 다 안 통한다고 봐야할듯ㅋㅋ]

[컨셉 지켜드리죠ㅋㅋㅋㅋ]

컨셉을 지켜 주겠다.

저건 헨리의 입장을 고려해 주겠단 의미일 터.

기사 수련생이 이해할 수 있는 것만 요구하겠다는 뜻이 분명했다.

'괴짜도 괴짜 나름이지. 이런 괴짜들이라면.'

솔직히 고맙기 그지없는 이들이었다.

"연무장으로 이동하겠습니다."

성심성의껏 검술을 보여 주리라 다짐하며, 헨리는 연병장을 벗어났다.

***

[그래픽 하나는 진짜 기똥차네ㅋㅋ]

[진짜 연무장느낌 잘살렸네요]

[중세뽕 지린다 지려ㅋㅋㅋ]

연무장은 여전히 텅 비어 있었다.

헨리는 덤덤히 준비를 마쳤다.

거치대에서 목검을 한 자루 집어 들고, 모래주머니를 추가로 채웠다.

정확히 갑옷의 무게만큼이었다.

[무게 페널티는 없어요??]

[ㄴㄴ그렇게말하면 대답못함ㅋㅋ]

[모래주머니 너무 무겁지 않아요?]

[ㅋㅋㅋㅋㅋ맞음 글케말해야함ㅋㅋㅋ]

'무게 페널티가 무거움에서 오는 불편함이란 의미였구나.'

마법사들의 표현을 한 가지 익히며, 헨리가 고개를 저었다.

"무겁습니다. 하지만 기사는 이 무게에 익숙해져야만 하는 입장이니까요."

[스탯 오르면 커버된다는 뜻인가??]

[아 저거 차고 훈련하면 오르는거구나ㅋㅋ]

[근데 목검인게 아쉽네ㅋㅋ 이펙트 별로일듯]

[글게요 번쩍번쩍하는게 있어야 보는맛이 있는데]

입맛이 썼다.

특정 수업에서만 진검을 사용할 수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헨리 자신을 비롯한 일부 수련생에게 한정된 조항이었다.

B반부턴 개인 훈련 때도 진검을 사용할 수 있었으니까.

수준 낮은 반이 사용하지 못하게 막아 둔 건, 숙련도 부족으로 인한 사고가 발생할까 봐서였다.

'물론 그게 진짜 이유는 아니지만.'

진짜 목적은 동기부여였다.

평상시에 진검을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

그 특혜 하나만으로 상위권은 밀려나지 않으려 애쓰고, 하위권은 기를 쓰고 올라가려 들 정도였으니까.

"기초 검술부터 보여 드리겠습니다."

마법사들이 원하는 진검을 사용할 수 없음이 너무나도 안타까웠으나, 그런 만큼 더욱 최선을 다할 생각이었다.

이를 악물고, 자세를 취했다.

목검이 허공을 갈랐다.

[방금 목검에서 소리난거맞죠??]

[입으로 소리낸거아님??]

[님들 여기 뭐하는방송이에요??]

화면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검을 쥐고 휘두르기 시작한 순간.

헨리는 오로지 검술을 온전히 펼치는 일에만 몰두했으니까.

그 순간.

"...!"

헨리는 무언가를 느꼈다. 평소와 다름없이 목검을 휘두르고 있었으나, 평소와는 다른 이질감이 느껴졌다.

새로웠다.

감각에 집중했다.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이건.'

마나였다. 호흡할 때마다 체내로 들어온 마나가 신체 구석구석으로 퍼진 것이었다.

평소 호흡할 땐 들어온 그대로 빠져나갔으나, 지금은 달랐다.

「몸 안으로 들어온 마나는 결국 밖으로 흘러나가기 마련이다. 심장에 모아 둔 '네' 마나가 아니라면, 결코 붙잡아 둘 수 없지.」

알렉스 교관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헨리에게 하등 의미 없는 수업이었음에도, 빠짐없이 암기해 두었던.

「하지만 흘러나가는 경로를 바꿀 순 있다. 놀랍도록 간단한 기술이지. 집중해라. 손끝, 발끝, 혹은 당장 식사를 위해 든 포크까지. 어디든 상관없이, 네가 온 의식을 기울인 부위가 곧 마나의 배출구가 되는 거다.」

알렉스 교관은 그렇게 말했다.

그게 마나 활용의 '효율성'을 올리기 위한 방법이며, 그 활용도는 오로지 '집중력'에 달려 있다고.

그리고 검술을 펼칠 때의 집중력 하나만큼은.

[어?]

[뭐 반짝이지 않았어요?]

헨리 카밀턴을 따라갈 수련생이 없었다.

[반짝이는거 맞네요ㅋㅋ]

[깐지터지는디???]

[근데 아직 튜토리얼중 아니었음??]

[목검으로 벌써 저런 이펙트가 생긴다고?]

허공에 검의 궤적이 그려졌다.

생전 처음 맛보는 감각.

그 짜릿함에 취한 채.

헨리의 검 끝은 몇 번이고 허공을 가르고, 또 갈랐다.

"후욱."

마지막 횡 베기를 끝으로 검을 거두었다.

발라란 왕립 아카데미의 기초 검술.

그 시연을 마치고, 헨리는 덜덜 떨리는 손을 내려다보았다.

아파서도, 지쳐서도 아니었다.

단지 두근대는 심장을 어찌할 수가 없어서였다.

'이것이 마나!'

이 힘이라면 많은 것들이 달라질 터였다.

달라질 수밖에 없다.

세 번의 낙제?

그깟 제약쯤은 얼마든지 제칠 자신이 생겼을 정도로.

[퍄... 이거 VR맞음?? 벌써 기술력이 이렇게 좋아졌다고??]

[대체 겜이름이 뭔가요?!?!]

[돌았다 진짜ㅋㅋㅋ 퀄리티가 미쳐돌아가네ㅋㅋㅋㅋ]

다행히 마법사들은 만족한 듯 보였다.

그리고 그 만족감은.

['호롤롤롤로'님이 구독하셨습니다!]

['asuu1337'님이 구독하셨습니다!]

['paruin'님이 구독...]

...

[현재 시청자 : 23]

[구독자 : 10]

구체적인 수치로 이어졌다.

[1단계 목표를 달성했습니다!]

[추가 보상이 주어집니다!]

BJ소드마스터

4화. 후원(1)

매년 단 두 번뿐인 방학 전날.

수련생들은 일과를 모두 마치고 자유를 되찾았으나, 그들을 가르치는 교관들에겐 아직 처리해야 할 업무가 남아 있었다.

수련생들이 보기엔 교관의 일과가 압도적으로 자유로운 듯했으나 그건 단지 그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하는 일이 많기 때문이었다.

정신없이 서류를 주고받고, 한 해를 종합하고, 올해의 마지막 공식 업무인 교관 회의를 마친 끝에야 교관들도 자유를 찾을 수 있었다.

"아, 드디어 끝났군. 올해도 참 길었어."

마침내 회의실을 빠져나오며 수석 교관 알렉스는 크게 기지개를 켰다.

곁엔 교관이 한 명 더 있었다.

알렉스와 마찬가지로 수석 교관인 루소.

그는 기운 없는 얼굴로 말을 받았다.

"길었지."

"왜 그리 울상이야?"

"항상 이랬다."

"자네 표정이 항상 축 처져 있단 건 알지. 이렇게 말이야. 세상의 모든 무게를 다 짊어진 것처럼."

알렉스는 과장스럽게 루소를 따라하곤, 다시 처음의 얼굴로 돌아왔다.

"그런데 오늘은 좀 다르단 말이야."

"뭐가 다르다는...."

"평소보다 더 처졌어. 평소에 입술이 이만큼 내려가 있다고 하면, 오늘은 이만큼 더 내려간 느낌이란 거지."

알렉스가 볼을 따라 끌어올린 손가락을 턱까지 내려 보였다.

늘 장난스러운 태도의 알렉스 교관이었으나, 그만큼 루소를 잘 아는 사람도 없었다.

루소는 결국 인정하고 말았다.

"기분이 좋진 않아."

"뭣 때문에? 오늘 우울한 교관은 이 아카데미에서 자네 하나뿐일걸? 방학이란 건 수련생들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니잖아?"

"별것 아니야. 신경 끄게."

"대개 신경 끄란 말은 신경 좀 써 달란 말과 일맥상통하지. 친우여, 오늘 나와 한 잔의 술을 나누지 않겠는가? 마침 괜찮은 술이 들어왔거든."

딸깍- 딱-.

알렉스의 입에서 술병을 따는 소리가 나왔다.

놀라운 정도의 재현이었으나, 루소는 철벽이었다.

"그럴 기분 아니야."

"오늘의 루소는 새침데기로군. 이해하지. 내가 한두 번 본 것도 아니고, 나까지... 흠?"

"왜 그러나?"

"저기."

알렉스가 손을 뻗었다. 그 끝엔 불 켜진 연무장이 있었다.

"아직까지 연무장을 쓰는 녀석이 있네?"

사람이 들어오면 자동으로 마법 등이 켜지는 구조다. 누군가가 있다는 뜻일 터.

"누군지 몰라도 참으로 기특한 수련생이야. 사실 당연한 거지. 공식적으로 쉬는 건 내일부터니까. 아주 기특한데... 얼굴이나 봐 둘까?"

"무엇 때문에?"

"다음 학기에 가산점이라도 줘야지. 유명무실해졌다곤 해도, 평가 항목엔 분명 성실성도 들어가 있으니까. 기사의 덕목 중 하나잖아?"

"굳이 그럴 필요는... 아니, 자네 뜻대로 하게."

"자네 오늘 참 이상해."

"가산점을 주겠다는 말은 진심이겠지?"

"자네나 내게나 그럴 정도의 권한은 있잖아? 괜히 교관이라는 직책 앞에 수석이란 표현을 덧붙여 놓은 게 아니라고."

알렉스가 거침없이 앞장섰다.

힐끔. 열린 문틈으로 엿본 순간, 알렉스는 멈칫했다.

"...."

소리 내지 않고 몸을 돌렸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바라보는 루소와 머쓱한 시선이 맞닿았다.

"헨리였겠지."

"어째 알고 있었던 것 같아?"

"뻔한 일이야. 이런 날에, 이 시간까지 연무장을 사용할 만한 학생이 또 누가 있겠나?"

"이 시간에 여기 나올 일이 있었어야... 이제야 알겠군. 이제야 알겠어."

알렉스가 어째 짠한 눈빛으로 루소를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그런 얼굴이었던 이유가 헨리 때문이냐고 묻는 듯한 표정.

루소는 한숨처럼 말했다.

"알아도 입 밖으로 꺼내지 말게. 헨리는 무엇을 하고 있던가?"

"지쳐 쓰러졌던데. 보기만 해도 열기가 전해지더군. 흠, 기사를 목표로 한 것만 아니라면 참 훌륭한 녀석인데. 볼 때마다 참 안타까워."

탁탁. 알렉스가 루소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입가엔 씁쓸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자네도 너무 마음 쓰지 말라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우리가 없는 재능을 만들어 줄 순 없는 노릇이야."

"흠."

"정 마음에 걸리면 가서 위로라도 해 주는 게 어때? 내 말은 안 듣지만, 자네 말이라면 들을지도 모르지."

"무슨 말?"

"기사를 포기하라는 권유. 다른 길로 갔으면 진작 대성했을 녀석이야."

루소의 시선이 연무장을 향했다.

닫힌 문 너머, 홀로 땀 흘리고 있을 헨리의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그렇기에 더 포기하라고 할 수 없었다.

"수련생의 열의를 꺾는 건 교관으로서 해야 할 일에 포함되지 않아. 괜찮은 술이 있다고 했었지?"

싸구려 동정은 열의에 상처만 낼 뿐이었으니까.

"하하, 이 친구. 잘 생각했네! 가자고! 실망하지 않을 거야!"

***

수석 교관 루소의 예상과 달리, 헨리는 사실 그저 쉬는 것뿐이었다.

[지렸다 지렸어ㅋㅋㅋ]

[퍄퍄퍄퍄ㅍ퍞ㅍ]

[아까 본건 진짜 기초검술이었네ㅋㅋㅋ]

"후욱, 마, 마법사님들께서 마음에 드신 것 같아 다행입니다."

새하얀 천장이 노랗게 보일 정도였다.

기초 검술부터 고급 검술까지.

기사 수련생이 접할 수 있는 검술이란 검술은 모두 헨리의 검 끝에서 쏟아져 나온 참이었다.

성장한 감응력 덕분에 검에 마나를 실을 수 있었다.

실로 미약한 양.

그러나 시각적인 효과는 굉장했다.

[이게 스킬이 아니고 직접 휘두르는거라고 했죠??]

"예, 제겐 스킬이 없습니다. 모든 검술은 제가 직접 펼치고 있습니다."

스킬.

그 표현을 헨리가 이해하기로는 이랬다.

손가락만 까딱하면 자동으로 검술을 시전할 수 있는 기술이라고.

'참 마법사다운 사고방식이야.'

그들에겐 당연한 것일 터.

손끝 하나 까딱이지 않아도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있는 게 바로 마법사였다.

[아니 잠깐만요ㅋㅋ 생각해보니까 뭔가 이상한데??]

[뭐가요?]

[이거 진짜로 휘두르는거 아님??]

[휘두르는 거 맞]

[아?? 어?????]

[아니 잠깐만ㅋㅋㅋㅋ]

헨리가 미간을 좁혔다. 마법사들의 반응이 이상했다. 무언가 잘못되기라도 한 것일까.

섬찟한 긴장감에 입이 마르던 순간.

[그럼 '진짜로' 직접 휘두르는거란 소리네요??]

[맞네 VR겜이네ㅋㅋㅋㅋㅋ]

[ㄹㅇ현실에서 이걸 소화한거라고???]

[미쳤다ㅋㅋㅋㅋㅋ]

격한 반응이 터져 나왔다.

그와 동시에.

['trysky0323'님이 구독하셨습니다!]

['포포리쟝'님이 구독하셨습니다!]

['빅스턴'님이 구독하셨습니다!]

...

구독이 쏟아졌다!

헨리는 갑작스런 반응에 당황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어떤 부분에서 만족한 거지?'

가장 먼저 든 생각이었다.

마법사들의 취향.

허나 짧은 생각 끝에.

'아니, 이건 대단한 이유가 있는 게 아냐.'

헨리는 그리 확신했다.

직접 휘두른다는 표현. 현실에서 이걸 소화한다는 표현.

그에 대한 감탄으로 미루어봤을 때, 이들에겐 기사처럼 '몸을 움직이는' 것 자체가 놀랍고 새로운 일 같았으니까.

'단지 그뿐이야. 이 마법사들은 대단한 마법을 사용하지만, 그만큼 육체를 움직이는 것은 등한시했을 테니까.'

<'보라색다람쥐'님이 1,000원 후원!>

<"개 쩐 다">

이 표현은 배웠다.

쩐다는 건 대단하다는 의미.

앞에 붙은 '개'는 강조의 의미였다.

"매우 대단하다는 말씀으로 듣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보라색 다람쥐 마법사님."

<'포포리쟝'님이 2,000원 후원!>

<"현실이랑 몸매 똑같은거예요 그럼??">

"몸매 말씀이십니까? 현실이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건지...."

이번 문제는 어려웠다.

몸매가 무엇인진 헨리도 알았으나, 아까부터 이들은 계속해서 '현실'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으니까.

<'포포리쟝'님이 1,000원 후원!>

<"진짜 세계요! 현실! 몸매!">

진짜 세계!

찰나간의 고민 끝에, 헨리는 판단했다.

'탑의 바깥세상을 말하는 거야.'

탑에 갇히다시피 한 마법사들과 달리, 기사들은 광활한 세상을 자유로이 돌아다녔으니까.

"예, 같습니다."

[복근 있어요????]

[ㅋㅋ무적권있지ㄹㅇ]

[거의 실전근육이겠는데?]

[보여주세요!!!]

"...알겠습니다."

어차피 아침 구보 때마다 벗어젖히는 게 상의였다.

탁. 탁.

묵직한 모래주머니를 풀어 내려놓고,

시청자들의 대화를 힐끔 확인한 다음.

훌렁!

헨리가 시원하게 웃통을 벗었다.

그리고.

[내가 자괴감 느끼려고 방송킨건 아닌데???]

그곳엔 조각상이 있었다.

[ㅍ퍞ㅍ퍄ㅑㅑ퍄퍄]

[자동으로 기립박수 나왔습니다 형님;;;]

<'포포리쟝'님이 10,000원 후원!>

<"꺄아앙강강가갂!!!!!">

<'trysky0323'님이 5,000원 후원!>

<"멋져요">

구독과 후원이 밀어닥쳤다.

3년간의 치열한 훈련은 군더더기 하나 없는 몸매를 만들어 냈다.

헨리에겐 당연한 거였고, 실제로 기사 아카데미에서 이런 몸은 그리 귀한 게 아니었다.

'하지만 마법사들에겐 그렇지 않은 거였고. 이건 일종의... 경의를 표하는 거겠지? 자신들과 다른 무언가에 대한.'

압도적인 육체미에 마법사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기사님 제가 장담하는데 상의 벗고 계시면 구독자 쏟아질거임;;]

[ㅇㅈㅇㅈ!!!! 맞아요!!!!!!]

[먹던 치킨을 내려놓게하는 정도의. 능력]

[아... 자괴감... 나는 어째서...]

"저와 마법사님들의 입장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기사 수련생으로서 살아왔고, 마법사님들께선 마법의 길을 따르셨습니다."

[뭐지?? 맥이는것인가??]

[ㅋㅋ기사는 두번 때린다!]

[근데 저 피지컬이면 먼겜을해도 대박나겠는디???]

[기사님 다른겜은 안하세요??]

"게임은...."

[컨셉 ㅇㅋ]

[다른 어... 그러니까 기사 말고 다른 직업 가질 생각은 없으세요?]

"없습니다. 결단코. 저는 반드시 기사가 되어야만 합니다."

순간 헨리의 눈빛에서 단단한 결의가 드러났다.

의지. 필사적인, 결코 꺾을 수 없는 단 하나의 열망이.

[그럼 나중에는요??]

[그 뭐 가문도 살리고 이래저래 다 하고 기사로서 이름도 빠방하게 날리고~ 그런 다음에요!!]

"그건...."

헨리가 머뭇거렸다.

마법사는 헨리가 늘 꿈꿔 왔으나, 역설적이게도 감히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그 순간을 말하고 있었다.

"그때가 된다면, 만약 그런 순간이 언젠가 제게 온다면... 모르겠습니다. 정말 그리 된다면 검을 내려놓을 수도 있지 않을까...."

[ㅋㅋ엔딩찍고 한단 소리네]

[켠왕 찍겠다는 마인드 조와용~~]

[이 피지컬이면 금방 엔딩볼듯ㅋㅋ]

정확힌 모르겠으나, 일단 칭찬인 것 같았다.

'기사라... 기사. 되어야지. 뒷일은 그 후에 생각하면 돼. 지금 가진 선택지는 그것뿐이니까.'

목검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무기력하기 그지없던 손아귀엔 자신감이 생겼다.

고작 하루 만에 벌어진 변화가 이 정도.

한 달만 지나도 장족의 발전을 거둬 낼 수 있을 게 분명했다.

'그런데.'

헨리가 눈을 가늘게 떴다.

'저건 뭐지?'

방송 화면 하단.

[1단계 목표를 달성했습니다!]

[추가 보상이 주어집니다!]

조금 전 떠올랐던 내용 아래에, 새로 추가된 메시지가 있었다.

[후원 상점]

'후원과 관련이 있겠지.'

마법사들의 '후원' 역시 아직 무슨 의미인지 파악하지 못한 상태.

허나 정황상 미루어볼 때, 저것 역시 마법사들의 배려일 터였다.

[그럼 담겜은 무적권 AOS??]

[RPG도 괜찮을 것 같은데ㅋㅋ PK떴다하면 다 줘패고다니지 않을까요?]

[그것도 괜찮겠네요ㅋㅋ]

힐끔.

확인하니 마법사들은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그들은 떠들게 두고, 헨리는 손을 뻗어 [후원 상점]을 건드려 보았다.

[후원 상점]

[보유 후원금 : 27,000원]

[후원금으로 물품을 구매할 수 있습니다!]

[구독자 : 17]

[현재 등급에서 구매 가능한 물품은 다음과 같습니다.]

구독자 수가 곧 등급으로 이어지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물품 목록에서.

[세이아트의 뿌리(1) : 12,000원]

* 마나 시약의 재료인 세이아트의 뿌리입니다.

[쓸 만한 광물 주머니 : 880,000원]

* 검을 제련하기에 적합한 광물을 무작위로 얻을 수 있습니다.

[한정판매!]

[소림 소환단 : 23,000,000원]

* 상당한 양의 공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소화하기 위해 충분한 수준의 내공이 필요합니다.

헨리는 마침내 '후원'의 사용처를 깨달았다.

BJ소드마스터

5화. 후원(2)

'온갖 게 있군.'

후원 상점의 판매 물품은 헨리가 이따금 머릿속에 그렸던 것부터, 상상조차 할 수 없던 것들까지 다양했다.

가령 세이아트의 뿌리와 같은 익숙한 재료부터, '소환단'이라는 정체 모를 물건도 있었으니까.

허나 그 아래에 친절히 적힌 설명으로 미루어볼 때, 이것들은 모두 헨리의 성장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게 분명했다.

'후원은 이 마법사들이 선물하는 화폐라고 생각하면 되겠어.'

구독보다도 큰 영향을 미치는 게 바로 '후원'이었다.

'하지만 화폐라면 노골적으로 요구할 순 없겠지. 이 마법사들이 정확히 내게 뭘 원하는 진 모르겠지만, 기사로서의 모습은 유지하는 게 나을 거야.'

이건 어디까지나 호의에서 나오는 것이어야 했다.

만약 노골적으로 구걸이라도 한다면?

그 순간 헨리는 기사로서의 태도를 지키지 못한 게 된다.

[하긴 어지간한 RPG만 돼도 다 썰고다닐수 있을테니까ㅋㅋ]

[ㅇㅈㅋㅋㅋ PVP 개빡시잖아요]

[레이드만 해도 패턴 타는거 생각하면ㅋㅋ]

마법사들은 여전히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헨리는 가만히 그들의 대화를 지켜보았다.

[비주얼만 봤을땐 성기사시키면 딱인데]

[ㅋㅋ전사도 괜찮을듯]

[이분처럼 컨셉 잘잡는분이면 오크전사죠 무조건]

[오크전사? 호드?]

성기사. 오크. 전사.

간혹 알아들을 수 있는 표현도 있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러던 그때.

<'더러운호드'님이 1,000원 후원!>

<"기사님!! '더러운 호드 놈들'이라고 한 마디만 해 주세요!! 분위기 딱 잡구요!!">

여전히 발랄한, 또한 괴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더러운 호드 놈들이라.

이해는 안 됐지만, 고민은 짧았다.

"...더러운 호드 놈들."

요구사항을 최대한 이행했다.

경멸하듯 내리깐 시선, 묵직하게 깔리는 목소리.

완벽한 인간 기사의 모습에, 마법사들은 갑자기 날뛰기 시작했다.

[ㅋㅋㅋㅋㅋㅋ느낌사는거보소]

[ㄹㅇ기사가 이러니까 너무잘어울림ㅋㅋㅋ]

[어??? 더러운 얼라가 숨어있었네??]

[ㅋㅋ호드 한놈 검거!!]

갑자기 마법사들이 날뛰기 시작했다.

'설마 마법 학파의 이름인가?'

호드와 얼라.

만약 그게 마법 학파의 이름이라면 헨리는 꽤 곤란한 상황에 놓인 것일지도 몰랐다.

허나 고민도 잠시.

<'킹가로쉬'님이 1,000원 후원!>

<"비열한 얼라 놈들이라고 해 주세요!!!">

두 번째 요청이 들이닥쳤다.

"...혹시 호드와 얼라가 마법사님들께서 몸담고 계신 학파의 이름입니까? 만약 그런 거라면...."

<'킹가로쉬'님이 2,000원 후원!>

<"아ㅋㅋ 호드 차별하시네ㅋㅋ">

이건 곤란하다. 헨리는 기겁해서 외쳤다.

"비열한 얼라 놈들!"

[ㅋㅋㅋㅋㅋㅋㅋ]

[자본주의의 기사ㅋㅋㅋㅋ]

[선택적 종족ㅋㅋㅋㅋ]

격한 웃음이 일었다.

다행히 무례한 행동은 아니었던 모양.

'학파의 이름이 아니거나, 설령 그렇더라도 이게 문제가 될 만한 행동은 아니란 거겠지.'

기사와 마법사는 같은 상황도 다르게 받아들이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돌아가는 분위기를 짐작하기 무섭게.

<'겉바속촉'님이 1,000원 후원!>

<'킹가로쉬'님이 1,000원 후원!>

이어진 상황은 아무리 헨리라도 바로 파악할 수 있는 종류였다.

'경쟁이 붙었어?'

마법사들은 두 그룹으로 나뉘어 경쟁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내용을 모른다 해도 뻔히 보이는 상황.

그리고 경쟁의 대가는?

바로 후원금이었다.

'바람직한 상황이야.'

헨리는 순간 그렇게 생각하고 말았다.

물론 겉으로 드러내는 행동은 달랐다.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 난감하기 그지없다는 듯 울상을 짓고 있었으니까.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는 건 기사의 덕목과 거리가 멀지 않던가.

하지만.

'너무 정직하게만 굴어선 손해를 안고 사는 법이거든. 마침 그리 민감한 부분도 아닌 것 같고.'

헨리는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었다.

***

경쟁은 한동안 이어졌다.

헨리는 몇 번이고 분위기를 잡았고, 몇 번씩 각 파벌의 입장을 대변했다.

그 결과는.

[후원금 : 71,000원]

상당한 금액의 후원금으로 이어졌다.

게다가 방송에도 나름의 성과가 있었다.

[시청자 : 27]

[구독자 : 20]

자그마치 27명의 시청자와, 20명의 구독자까지!

'훌륭해.'

이들은 헨리를 정말 좋아해 주고 있었다.

보잘것없는, 다른 기사 수련생들과 비교해도 크게 잘난 것 없는 자신을.

'그게 오히려 이유가 되었겠지. 잘나지 않았다는 것.'

방송을 진행하며 헨리가 깨달은 게 있었다.

이들은 누구보다 헨리의 성장에 관심이 많았으며, 또한 헨리라는 인물에 관한 이야기도 마찬가지였다.

'성장하는... 그것도 이리 끔찍한 재능을 지닌 내가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려는 거겠지.'

그렇다면 기대한 만큼의 성과를 보여야만 했다.

그래야 이 마법사들과 꾸준히 긍정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을 테니까.

'그러려면 마나부터 쌓는 게 순서야.'

당장 보일 수 있는 건 조악한 검술뿐이다.

극소량의 마나가 담긴, 고작해야 겉보기에만 대단해 보이는 검술.

하지만 이미 얻지 않았던가.

자그마치 '32'의 감응력.

저게 얼마만큼의 효율이건, 노력의 기반은 마련된 것이었다.

그에 더불어.

[장바구니]

* 구매할 물품을 미리 담아 둘 수 있습니다.

후원금이 쌓이면 구매할 물건들도 점찍어 두었다.

[그럼 학기 시작은 언제에요??]

"일주일의 휴식이 끝나면 바로 시작됩니다."

[ㅋㅋ미친 방학이 일주일이라고??]

[너무 가혹하잖아ㅋㅋㅋㅋ]

[근데 일주일이 진짜 일주일이에요??]

[현실시간이랑 같은건가?]

"예, 같습니다. 일주일 후면 학기가 시작됩니다."

[그럼 너무 긴데?? 튜토리얼치곤 시간을 너무먹는듯;;]

[고증을 빡시게 한거 아닐까요? 게임 퀄리티 생각하면]

[괜찮아요 기사님!! 평소에도 그러고 계시면 저는 매일 올거예요!!!]

[저도요!!]

"감사합니다."

[저는 좀 그런데... 튜토리얼 진행은 언제하세요??]

[계속 검술 수련만 하실거??]

"아닙니다. 지금부턴 마나를 쌓을 생각입니다. 마법사님들께서 주신 기회를 놓칠 순 없으니까요."

[마나는 어케 쌓는건데요?]

"마나 연공실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한동안 그곳에서 수련에 매진할 생각입니다. 하지만 오늘은...."

슬쩍. 내다본 바깥은 어두웠다.

"이만 숙소로 돌아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것도 진검과 마찬가지였다.

소속된 그룹이 B급 이상이라면 다음 날 일정에 맞춰 얼마든지 야간 수련을 이어 갈 수 있었다.

허나 그 이하는?

숙소로 복귀해야 하는 시간이 정해진 것이었다.

실력에 따른 자율성 증대.

그것이 바로 아카데미의 교육 철학이었으니까.

[그럼 방종이네요?]

[아... 아쉽네.]

[일주일동안 방송 안켠다는건 아니죠?]

"아닙니다. 방송은 제 멋대로 켜고 끌 수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마법사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멈칫. 연무장을 벗어나려던 헨리가 멈추었다.

[방송 종료까지 15분 남았습니다.]

[아침 6시에 재개됩니다.]

"죄송합니다. 아침 6시에 뵙겠습니다."

대마법사가 허락한 시간은 여기까지였다.

***

헨리의 숙소는 낡고 허름했다.

자그마치 왕립 아카데미다.

마음만 먹는다면 그 어느 곳보다 호사스러운 환경을 마련할 재정이 있었으나, 이건 사실상 상벌의 의미로 받아들여야 했다.

목적은 당연하게도 동기부여.

낡아빠진 환경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끊임없이 노력하라는 학장의 의도가 담긴 것이었다.

'노력이라.'

헨리는 방 중앙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이 허름한 공간에조차 마나는 존재했다.

'누구보다 자신 있는 분야지.'

남들이 쉴 때 걸었고, 남들이 걸을 때 달렸다.

그럼에도 3년간 헨리는 끊임없이 뒤쳐졌다.

이미 벌어진 간극을 메우려면, 작은 행운에 만족해선 안 된다.

'해 보자.'

기상 시각은 오전 6시.

방송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마법사는 헨리의 휴식을 보장해 주려는 생각인 듯 보였으나, 헨리는 이미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호흡에 집중해라. 들이마시는 것보다 내쉬는 과정이 중요하다. 체내로 들어온 마나는 심장에 머물러야 한다.」

파이크 교관의 수업을 떠올렸다.

헨리에게 호의적인 교관은 아니었으나, 그럼에도 마나를 다루는 그의 실력은 진짜였다.

헨리는 이미 세 번의 1학년을 겪었고, 그의 수업 내용은 이미 완전히 외우다시피 하고 있었다.

「쉽지 않겠지만, 마나량의 증진 속도는 그 과정이 9할 이상의 영향을 미친다고 봐도 좋다. 내쉬는 숨에서의 마나 손실도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그러니....」

'내쉬는 건 공기뿐. 마나는 내보내지 않는다고 생각해야 돼.'

길고 묵직한 호흡이 반복됐다.

헨리는 들숨과 함께 흘러들어오는 마나를 느꼈다. 여전히 신비했고, 놀라웠으며, 적응하기 힘들었다.

묘한 이질감이 목을 간질였다.

불쾌하긴커녕 오히려 청량한 감각이었다.

'쉽진 않지만....'

내쉴 때도 느껴지는 감각은 비슷했다.

그러니까 거의 모든 마나가 그대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쉽다면 그게 더 이상한 거겠지.'

이제 첫 걸음마를 뗀 것뿐이었다.

조급한 마음을 버렸다.

다시 수업 때 들었던 내용을 떠올렸다.

「오롯이 호흡에만 집중해야 한다. 잡념을 비워라. 힘들다면 검을 쥐건, 눈을 감건, 무엇이건 해도 좋다. 중요한 건 자세가 아니다.」

'검이라.'

괜찮은 방법이라 느껴졌으나, 아쉽게도 헨리에겐 목검이 없었다.

둘러보던 헨리가 구석에 놓인 청소 도구를 집어 왔다. 손잡이가 뭉툭한 빗자루였다. 오른손에 쥔 채, 눈을 감았다.

검을 쥔 것이라고 생각했다.

놀랍게도, 효과는 있었다.

"후우우."

호흡이 점차 느려졌다. 입으로 숨을 들이쉬었고, 코로 내뱉었다. 조금이라도 천천히 내보내기 위한 임시방편이었다.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목을 타고, 가슴 깊은 곳까지 빨려드는 숨에만 집중했다.

그리고 다시 돌아나가는 과정에서,

"후우우."

마나가 멈추었다. 턱 걸리듯, 심장 어림을 감싸듯 맴돌았다.

극소량의 마나.

다른 수련생들은 첫 수업에서 거두었을, 그러나 헨리에겐 처음으로 얻어낸 성과였다.

'드디어 성공했... 이런.'

그러나 집중이 풀림과 동시에 맴돌던 마나도 흩어졌다.

'어렵네.'

아쉬웠으나, 실망스럽진 않았다.

오히려 감격의 눈물마저 맺힐 정도로 기뻤을 따름이었다.

아침이 오기까진.

'다시 해 보자.'

충분한 시간이 남아 있었다.

***

새벽 3시.

이미 달이 높게 뜬 시각이었으나, 수석 교관 루소는 붉어진 얼굴로 터덜터덜 걷고 있었다.

"개자식들. 제깟 놈들이 뭘 안다고."

그답지 않게 거친 표현이 흘러나왔다.

조금 전, 알렉스와 술잔을 나눌 때.

우연히 다른 교관들과 마주했고, 겸사겸사 함께 술자리를 하게 되었다.

거기서 헨리 카밀턴의 이야기가 나온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병신은 뭘 해도 병신입니다? 기사라는 자식이 감히 남의 노력을 깎아내려?"

기분 같아선 멱살이라도 잡고 싶었다.

그건 감히 그렇게 평가해선 안 되는 거였다.

재능이 없다는 게 뭐 어떻단 말인가.

마나를 쌓지 못하는 게 뭐 어떻단 말인가.

'누구보다 치열하게 버텨 온 학생을, 고작 마나 하나 다루지 못한다고 깎아내릴 수 있단 말이냐.'

루소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오히려 루소이기에 헨리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내게도 재능이 없었다. 이곳까지 올 수 있던 건 부단히 노력했다는 이유 하나뿐이었단 말이다.'

그에게도 아카데미의 수련생이던 시절이 있었다.

부푼 꿈이 꺾인 건 한순간이었다.

낮은 감응력을 극복하고자 치열하게 노력했고, 그런 끝에 밑바닥이나마 기사라는 이름을 얻을 수 있었다.

헨리 카밀턴과의 차이는 단 하나.

루소의 재능이 아주, 아주 조금 더 뛰어났던 것뿐이었다.

'똑같은 낙오자 신세이면서, 어찌!'

아카데미의 교관들은 모두 기사 출신이고, 수석 교관은 개중에서도 뛰어난 수준의 기사였다.

허나 아카데미 밖에서 본다면?

뛰어난 기사에게 밀려, 학생을 가르치는 입장으로 쫓겨난 낙오자에 불과한 것이었다.

"후우."

긴 한숨이 새어나왔다.

어느새, 정신 차리고 보니 그의 눈앞엔 허름한 헛간 같은 게 있었다.

바로 헨리 카밀턴의 숙소였다.

결코 어떠한 경우에도 '실력'에 따른 대우가 이뤄져야 한다던 학장의 결과물.

'아마 잠들었을 테지.'

루소는 천천히 헛간 쪽으로 다가섰다. 왜 보고 싶은 건진 알 수 없었으나,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그리고 창가에 섰을 때 그가 본 것은.

"...."

빗자루 손잡이를 쥔 채, 명상에 빠진 헨리 카밀턴의 모습이었다.

맹렬한 안타까움이 차올랐다.

저런다고 바뀌는 것은 없을 텐데.

마나 연공실에서도 되지 않던 일이 이런 곳에서 될 리가 없지 않은가.

'재능이란 참으로 가혹하구나!'

소리 내지 않고, 루소는 몸을 돌렸다.

자칫 자신의 모습을 본다면 헨리가 더욱 괴로워할 것을 알기에.

그래서 루소는 보지 못했다.

찰나, 헨리의 입가에서 번뜩인 빛을.

BJ소드마스터

6화. 컨셉충(1)

마나.

이 세계를 구성하는 무한한 자원이자,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범주에 활용되는 동력원.

그중 마나와 가장 친숙한 존재는 당연하게도 마법사였다.

전장에 서는 마법사들은 불꽃을 피우고 번개를 불렀으며, 평화로울 땐 왕국의 일상에 크나큰 편리함을 가져다주었다.

실제로 상당수의 마법사는 전장에 서는 대신, 실생활에서의 활용을 위한 연구를 주목적으로 두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마법사들과 달리.

「우리는 왕국의 검이며 방패이다. 강력한 무력이야말로 국왕 전하와 왕국민들에게 평화를 선물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임을 늘 명심하도록.」

기사들의 효용은 오로지 전장에서만 발휘되었다.

전장의 선봉에서 병사를 이끌고, 후미를 덮치는 적의 타격대로부터 마법사들을 호위하는 일만이 기사의 의무였으니까.

기사들이 그런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것도, 당연히 마나를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하루 전까지만 해도 조금의 재능도 찾아 볼 수 없던 헨리 카밀턴은 정신을 차렸다.

"...?"

아직 정신은 멍했다.

귓가엔 새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지금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지금이 언제인지, 무엇을 하던 상황인지.

잠시간 더 멍하니 생각하다가, 헨리는 그제야 깨달았다.

"아침이네."

기억났다.

연무장에서 낡아빠진 숙소로 돌아왔고, 돌아온 후엔 마나를 쌓으려 낑낑댔었다.

"이러고 있었단 말이지. 빗자루를 쥔 채로."

희미한 웃음이 새어나왔다.

'오늘처럼 깊게 몰입한 적이 있었나?'

생각해 보았으나, 단연코 없었다.

검을 휘두를 때조차 수 시간 동안 정신을 잃다시피 한 적은 없었으니까.

'그래서 몰입의 성과는... 하?'

번개라도 맞은 듯.

헨리는 굳어 버리고 말았다.

"이게...?"

오른손이 가슴께를 더듬었다.

허나 그런 방식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마나!"

단지 너무나도 놀란 나머지.

무의식적으로 움직인 것에 불과했다.

"쌓였어? 정말? 마나가?"

집중하자 더욱 명확히 느껴졌다.

박동하는 심장 주위.

희미하게나마 '자리 잡은' 마나가.

"...꿈이 아니었다니!"

바보 같은 말을 내뱉고 말았다.

허나 누구라도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제정신이 들자마자, 그간의 일이 모두 꿈처럼 느껴졌으니까.

마법사? 방송?

그 모든 것들은 자신의 열망이 빚어낸, 찰나의 꿈이었을지도 모른다고.

3년간의 좌절이 만들어 낸 습관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정말, 정말 마나가 쌓였어. 이런... 하하. 대체 무슨... 이렇게 간단한 일이었다고?"

온갖 감정이 태풍처럼 밀어닥쳤다.

감탄, 감격, 당황, 그리고.

"아니, 이럴 때가 아니지."

헨리가 황급히 자세를 잡고 앉았다.

끓는 감정들을 억지로 진정시켰다.

쉽진 않았으나, 감정을 가라앉히는 건 헨리의 주특기였다.

「이제 너희는 마나를 쌓았다. 그다음엔? 그 마나를 활용해야겠지. 이미 수도 없이 봤을 것이다. 기사가 자신의 무기와 갑옷에 마나를 두른 채 전장으로 나서는 모습을.」

파이크 교관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렸다.

몇 번이고 외웠던 목소리.

당시엔 의미 없던 그 목소리를, 헨리는 되새겼다.

「물론 지금의 너희가 따라할 수 있는 기술은 아니다. 감히 흉내조차 낼 수 없겠지. 허나 그들보다 적은 마나를 지녔어도, 그에 준하는 출력을 낼 수는 있다.」

「관건은 통로의 질이다. 통로라니 애매하게 들리는 모양이지만, 그리 어렵지 않다. 혈관을 생각하면 되겠지. 우선 심장의 마나를 움직여 보아라.」

고작 몇 시간의 집중.

결과는 심장에 쌓인 마나였다.

수업 때 배웠던 호흡법, 그리고 마법사들이 선물해 준 '감응력'이 제대로 먹혔단 의미였다.

그렇다면.

'길을 뚫어야겠지.'

몸속에 마나가 다닐 수 있는 길을 뚫어 주는 게 순서였다.

「힘들 거다. 길이 없으니까. 지금 너희의 심장은 마나를 담는 그릇 역할을 하고 있으나, 현재로선 단지 그뿐이다.」

「머릿속으로 길을 그려라. 이번 과정 역시 관건은 너희들의 집중력이다. 심장부터 검을 쥐는 손까지 이르는 길을 그려 내는 것이 이번 수업의 목표다.」

길을 그려라.

그 막연한 내용이 파이크 교관의 지시였다.

날카롭게 집중된 의식으로 심상(心象)을 그려 내라는 것이 유일한 단서였다.

하지만.

'안 되는군.'

쉽지 않았다.

파이크의 수업을 들을 당시.

세 번째 수업에서 처음으로 성공한 수련생이 나왔고, 일곱 번째 수업에선 절반이 성공했다.

모두가 성공한 건 열두 번째 수업에서였다.

헨리 카밀턴만 제외하고.

'이번에도 기대는 안 해.'

헨리는 덤덤히 생각했다.

며칠이 걸리건, 몇 달이 걸리건.

올해 안으로만 이룰 수 있다면 개의치 않을 자신이 있었다.

'내겐 재능이 없으니까. 그 사실을 잊어선 곤란하지.'

갑작스런 행운에 들떴던 마음이 완벽히 가라앉았다.

일말의 기대조차 완전히 죽였다.

끊임없이, 될 때까지 한다는 생각을 머릿속에 다시 새겨 넣었다.

그게 헨리 카밀턴이 여태까지 버틸 수 있었던 이유였으니까.

'마법사들 덕분에 감응력을 얻었지만, 이것까지 바라선 안 될 거야. 내가 뭔가 보여야만 그쪽도 투자할 이유를 찾을 테니까.'

그렇다면 남은 답은 뻔했다.

노력.

늘 그랬듯, 끊임없이 노력하는 수밖에.

'해 보자.'

눈을 감았다. 모든 감각을 심장 어림으로 집중시켰다. 들리는 소리가 희미해졌고, 감긴 눈꺼풀 너머의 빛도 흐려졌다.

마나를 움직인다.

단 하나의 생각만이 헨리의 사고를 가득 채웠다.

차츰차츰 시간이 흘렀다.

삼십 분.

한 시간.

그리고 어느 순간.

띠링!

뜬금없는 소리에 헨리가 흠칫 몸을 떨었다.

"...?"

깊이 들어갔던 몰입이 깨졌다.

다행이라 해야 할지, 불행이라 해야 할지.

성과가 전혀 없었기에 아쉬움도 없었다.

[방송이 재개됩니다!]

"아."

이게 소리의 정체였다.

대마법사는 오늘도 헨리에게 관심이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시청자는 0명이었으나, 이 방송을 주관하는 대마법사는 자신을 보고 있을 터.

예의를 갖춰 인사하고, 잠시 기다렸다.

허나 들어오는 마법사는 없었다.

'아직 아침이니까. 마법사와 기사의 하루는 시작부터 다르겠지.'

헨리는 미련 없이 엉덩이를 뗐다.

오전 6시.

숙소를 벗어날 수 있는 시간이었고, 그건 마나 연공실을 이용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다시 해 보자.'

어느 순간부터 완전히 발걸음을 끊었던 장소.

허나 오늘의 느낌은 조금 달랐다.

***

발라란 왕립 아카데미의 교육자는 두 종류였다.

각종 무기술 및 승마술 등의 '무력'을 담당하는 '교관'이 있었고, 그 외적인 것들을 담당하는 '교수'가 있었다.

아카데미 내부의 주요 시설물 관리 역시 교수들이 담당하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마나 연공실.

그 관리를 담당하던 교수 미네르바는 갑작스런 손님의 방문에 갸웃했다.

"헨리로군. 어쩐 일이니?"

헨리 카밀턴.

아무리 미네르바가 검과 거리가 멀다곤 하지만, 헨리에 관한 이야기를 듣지 못했을 리 없다.

마나의 재능이 완벽히 결여된, 올해가 마지막 기회인 수련생이라는 소문을.

"연공실을 이용하려고 왔습니다."

"아, 그렇겠지. 들어가도 좋아."

그렇기에 다른 수련생이라면 하지도 않았을 질문을 건넨 것이었다.

'나도 참. 방문 목적이야 당연하겠지.'

연공실을 방문한 목적이라면, 당연히 마나 수련을 하기 위해서 아니겠는가.

미네르바는 헨리의 뒷모습이 어쩐지 기죽어 보인다고 느꼈다.

'저렇게 열심히 하는데. 신께서도 가끔은 너무하신 것 같다니까.'

재능 없다는 소문과 마찬가지로, 치열하게 노력한다는 소문 역시도 들은 탓이었다.

하지만 미네르바의 관심은 거기까지였다.

어차피 그녀의 능력 밖이었고, 단순한 가십거리로서만 여겼을 뿐이었으니까.

건조한 시선은 방금까지 읽던 싸구려 잡지로 돌아갔다.

그리고 헨리는.

'좋아, 조용하군.'

그러거나 말거나, 연공실이 조용하단 사실에 만족하고 있었다.

한창 학기가 진행될 땐 발 디딜 틈조차 없는 게 바로 마나 연공실이었다.

모두들 마나량을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해 누구보다 이곳을 열심히 들락거렸으니까.

마나량이 조금이라도 늘어나면?

당장 다음 시험의 성과가 향상되기 때문이다.

전용 연공실이 없는 C반 아래 학생들은 매일 같이 이곳으로 몰려와 마나를 쌓아 가곤 했다.

'마법사들은 여전히 안 왔고. 좋아. 시작해 볼까.'

헨리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주변은 온통 흰색으로 채워진 공간이었다.

외부와 완전히 단절되어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그야말로 무언가에 집중하기 위한 최적의 장소.

'확실히 다르네.'

들어온 순간부터 알 수 있었다.

헨리의 숙소와 이곳의 마나는 차이가 확연했으니까.

질은 물론이거니와 밀도도 엄청났다.

적어도 열 배, 아니 스무 배는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

'밤새 쌓은 것보단 효율이 좋겠지. 오늘 하루는 이곳에서 보내야겠어.'

하루의 스케줄이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때.

['킹가로쉬'님이 입장하셨습니다]

[ㅋㅋ진짜 6시에 칼같이 켜셨네]

마법사가 들어왔다. 저 이름은 기억하고 있었다. 타 학파의 마법사와 투덕거리며 다투던 사람이었다.

"안녕하십니까, 킹가로쉬 마법사님. 일찍 기상하셨군요."

[ㅋㅋ출근해야죠~]

[근데 혼자 진행중이셨네ㅋㅋ 녹화중이세요?]

"녹화... 죄송합니다. 잘 모르겠습니다."

[컨셉 굳건하고~~]

[일단 출근 준비좀 할게요ㅎㅎ]

출근이라.

어색한 표현이었다.

아마 마탑의 연구실로 간다는 의미일 터.

그리고 연이어.

['드레기'님이 입장하셨습니다.]

['tlsql1234'님이 입장하셨습니다.]

마법사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몰려들어왔다.

[기하~(기사 하이라는 뜻ㅎ)]

[정말 아침에 바로 켜실줄이야!]

"안녕하십니까."

[아침6시 라이브는 흔치않은데ㅎㅎ 오늘도 저녁까지 하세요?]

"예, 그럴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 뜻대로 되는 게 아니라서 확답드리긴 어렵겠습니다."

[그건ㅇㅈ이죠ㅋㅋㅋ 몸이 안따라주면 별수있나??]

[씻고올게요!]

[저도 출근준비요ㅎㅎ 피곤해죽겠네]

다시 대화가 멎었다.

'생각했던 것보단 마법사들이 규칙적으로 생활하는 모양인데.'

아마 경우에 따라 다를 테지만, 이건 꽤나 의외였다.

'하지만 이걸 어쩐다.'

헨리가 잠시 고민했다.

어제의 경험에 미루어볼 때, 한번 마나에 집중하기 시작하면 주변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그러나 당장 마법사가 세 명이나 찾아온 상황.

'다행히 검술 수련은 즐겁게 지켜본 것 같았지만, 마나 수련은 어떨지 모르지. 본인들도 매일같이 하는 일일 테니까.'

헨리도 알고 있었다.

스스로 몇 년을 투자해도 되지 않았던 일이, 마법사들의 도움을 받는 것만으로 해결되었다는 사실을.

물론 당장 마나를 쌓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이 마법사들을 즐겁게 해주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마법사들은 헨리에게 감응력을 선물했다.

감응력을 활용하려면 이곳에서 수련을 하는 게 옳았으나, 만약 또 그런 선물을 받을 수 있다면?

'감응력을 더 쌓는 게 맞겠지. 그 감응력이란 건 구독과 관련이 있었고. 구독 하나당 감응력이 1씩 상승했으니까.'

머릿속이 복잡했다.

이미 경험해 본 것들의 우선순위를 매기는 건 쉬운 일이다.

하지만 방송이란 건 너무나도 생소했고, 누군가가 건넨 '기회' 역시 헨리에겐 생소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내게 이 마법사들을 즐겁게 할 방법이 있나? 일단 원하는 게 무엇인지도 모르는 상황인데.'

또 지금의 헨리처럼 무언가 생소한 상황을 마주했을 때, 능숙하게 헤쳐 나갈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적어도 헨리가 확신할 수 있는 건 이렇게 고민하는 과정이 그리 흥미로운 구경거리는 아닐 거란 사실이었다.

'역시 육체 단련을 하는 편이 낫겠지? 마법사들도 익숙한 것보단 새로운 걸 원할 테니까. 일단 한번 물어봐야겠군.'

이 마법사들은 헨리가 겪어 보지 못한 이들이었고, 그런 만큼 우선 의사를 확인하는 편이 리스크가 적을 터였다.

"저...."

헨리가 뭐라 말하려던 순간.

벌컥.

연공실 문이 열렸다.

"어? 이게 누구야?"

"...안녕하십니까."

불청객이었다.

교관 파이크.

'마나의 수련과 활용'이라는 과목을 가르치는 남자가 우습다는 눈빛으로 헨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BJ소드마스터

7화. 컨셉충(2)

"미네르바 교수님이 말씀하시기에 설마 했더니... 네가 여긴 웬일이지?"

연공실에 온 학생에게 할 만한 질문이 아니었다.

그러나 미네르바도 그랬고, 헨리는 이런 상황쯤엔 익숙해진 지 오래였다.

"수련하려고 왔습니다."

"...아, 참. 그렇지? 여기가 수련 장소라는 걸 잊었군. 이래서 그 자리에 누가 있느냐가 참 중요한 판단 기준이란 말이야."

파이크의 이죽거림은 유치하고, 노골적이었다. 역시 익숙한 상황에 헨리는 반응하지 않았다.

그러자 다시 한번.

파이크는 헨리에게 시비를 걸어왔다.

"혹시나 해서 묻는 거지만, 훈련의 성과는 좀 있었나?"

"없었습니다."

정확히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허나 파이크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비웃음을 띄웠다.

"열심히 하는 건 좋지만, 이젠 그런 걸로 칭찬을 기대할 단계가 아닐 텐데. 슬슬 성과를 내야 하는 입장 아닌가?"

"...맞습니다."

"올해가 마지막이었지? 수석교관님께서 걱정이 아주 많으시더군."

"수석... 루소 교관님 말씀이십니까?"

"굳이 확인할 게 있나?"

파이크의 말대로였다.

이 아카데미에서 헨리의 안위를 걱정할 만한 인물은 루소가 유일했으니까.

[와ㅋㅋ 말하는 싸가지보소ㅋㅋ]

[머리말리다가 채팅치게 만드네ㅋㅋㅋ]

['포포리쟝'님이 입장하셨습니다.]

['PPP'님이 입장하셨습니다.]

[오우야 모닝방송??]

[헐!! 튜토리얼 끝난거에요???]

마법사들이 썰물처럼 들어왔다.

자그마치 6명.

허나 그에 대답할 여유는 없었다.

"실망하시게 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러니까 노력할 때는 이미 지났다는 말이야. 하지만 다른 수단이 있는 것도 아니고. 네게 기대하는 사람이 어디 한둘이어야 말이지."

"...."

"가문에선 네 소식을 제대로 전해 듣고 계신가? 내가 카밀턴 '자작님' 입장이라면 이렇게 두진 않을 텐데."

"...듣고 계십니다."

"자작님께서도 같은 입장이신가?"

"무슨 말씀이신지 이해가 어렵습니다."

"기대를 걸고 계시냔 말이야. 3년간 안 되던 게 갑자기 되리라는."

[와ㅋㅋㅋ]

[저거 사실상 패드립 아님??]

[대사 퀄리티 개웃기네ㅋㅋㅋㅋ]

"...걸고 계십니다."

"그것 참 안타까운 일이군. 아무리 왕실의 지원이 나온다곤 하지만, 학비가 만만찮은 수준일 텐데. 나라면 차라리 그 돈으로...."

"파이크 교관님."

표정 변화는 없었다. 목소리도 여전히 덤덤했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무게는 달랐다.

"왜 그러지, 헨리 카밀턴 수련생?"

"교관님께서 저를 싫어하신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재능도 없는 게 노력한답시고 설친다, 그렇게 말씀하셨던 것도 들었습니다."

"흠, 들으라고 한 말은 아닌데."

들으라고 한 말이었다.

헨리가 지나가기 무섭게 그런 주제를 꺼냈었으니까.

"괜찮습니다. 교관님껜 수련생의 성취를 평가하실 자격이 있으니까요. 그 부분엔 조금의 불만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가문의 이름은 언급하지 말아 주십시오."

"누가 보면 내가 감히 귀족 험담이라도 한 줄 알겠군."

"오해의 소지가 다분했습니다. 물론 교관님께서 귀족을 비하하는 뜻으로 하신 말씀이 아니란 건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그래, 네가 그리 말한다면야... 아니."

문 쪽을 힐끔 보고, 파이크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느린 걸음으로 다가서더니, 파이크는 헨리의 귀에 얼굴을 바짝 들이댔다.

"마침 듣는 귀도 없고, 보는 눈도 없군. 내가 네놈을 멋대로 평가해도 상관없다고 했지?"

"그렇습니다."

"난 네가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아. 내가 뭐라 하건 개 짖는 소리쯤으로 치부하겠다는 그 태연한 낯짝도 그렇고, 항상 같은 음으로 흘러나오는 그 목소리도 마찬가지야."

이번에도 헨리는 반응하지 않았다.

파이크의 눈이 짜증으로 움찔거렸다.

"그래, 지금 그 표정. 그게 마음에 안 든단 거다. 마치 숨겨 둔 수라도 있단 것처럼, 간절하지 않은 것처럼 구는 꼴이 불쾌하다고."

"조언을 가슴에 새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지금 그런... 좋아, 어차피 올해가 마지막일 테니까. 이미 3년간 봐 온 꼴, 1년쯤 더 본다고 해서 괴로울 것도 없겠지."

절레절레.

고개를 젓고는, 파이크는 연공실을 떠났다.

다시 침묵이 흘렀다.

'간절하지 않을 리가 있나.'

파이크의 비난을 곱씹었다.

그의 뜻은 이미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헨리에겐 재능이 없고, 재능이 없는 입장이라면 허리를 쉽게 꺾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게 파이크의 가치관이었다.

하지만 헨리는 그러지 않았다.

꼿꼿이 선 채 휘지 않았고, 부러지지도 않았다.

무조건적인 비난의 이유는 단지 그뿐이었다.

파이크 본인은 그러지 못했으니까.

재능의 한계를 통감했고, 적당히 현실과 타협한 끝에 살아남은 게 파이크라는 사람이었다.

'자기혐오 같은 거겠지. 이해는 해. 그래도 불쾌한 건 달라지지 않지만.'

또한 그렇기에, 파이크의 말은 헨리에게 있어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못했다.

그러나.

이전과 차이가 생겼다면.

「마치 숨겨 둔 수라도 있단 것처럼, 간절하지 않은 것처럼 구는 꼴이 불쾌하다고.」

오늘의 파이크는 적어도 한 가진 맞혔단 것이었다.

[AI의 발달은... 인간을... 짱나게... 만들었다...]

[근데 저 NPC 진짜 전형적인 캐릭터네요]

[저러다가 나중에 유저편으로 갈아타는거 아님??]

[제가봤을땐 조만간 꺾일듯ㅋㅋ 튜토리얼만 끝나면요]

헨리에겐 숨겨 둔 수가 있었다.

방송이라는, 대단한 마법사들과의 연결고리가.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교관님이 보시는 앞이어서 인사를 못 드렸습니다. 죄송합니다."

[와ㅋㅋㅋ그것도 인식해요?? 개쩐다ㅋㅋ]

[뭐하는 사람이었어요??]

[검술교관인가? 쟤한테 배웠다는 설정임?]

"파이크 교관님이십니다. 마나의 수련과 활용이라는 과목을 담당하고 계십니다."

[저 양반도 기사에요?]

"예, 정식 기사 컨셉을 잡으신 분입니다. 저희 아카데미의 교관이 될 수 있는 건 오로지 기사 컨셉을 잡은...."

말하다 멈칫.

헨리가 당황했다.

[미친ㅋㅋㅋㅋㅋ]

[ㅋㅋㅋ]

[ㅋㅋㅋㅋㅋ진지한거봐ㅋㅋㅋㅋ]

[컨셉 진짜 씹ㅋㅋㅋㅋㅋ]

폭발적인 웃음이 일었다.

말없이 보기만 하던 마법사들도 이번엔 반응했다.

'...어떤 부분에서 재미를 느낀 거지?'

전혀 모르겠다. 감이 잡히질 않았다.

컨셉이라는 표현을 배워서? 아니면...

[교관쉑 컨셉충이었고ㅋㅋㅋㅋ]

[ㄹㅇ졸지에 컨셉충됐네ㅋㅋㅋ]

정답이었다.

컨셉이라는 표현에서 웃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 표현 자체가 아닌, 그 표현의 사용 방식이 어색했던 것이다.

[아 방송 재밌네요ㅋㅋ]

[근데 지금 스토리상 마나를 못쓰는거라고 하셨죠??]

[아 스토리 말고. 그니까 기사님이 지금 마나를 못쓰는거죠?]

"지금까진 그랬습니다. 하지만 마법사님들께서 도움 주신 덕분에, 조금이나마 마나를 쌓을 수 있었습니다."

[그럼 쓸수있다구요??]

"예, 지금은 가능합니다."

[역시 튜토리얼이었네ㅋㅋ]

[님들 이거 무슨방송이에요? 저분 컨셉임?]

[컨셉 맞음ㅋㅋ 기사수련생 컨셉 잡은거임ㅋㅋ]

[진짜 개빡시게잡았음ㅋㅋ 개웃기니까 님도 보셈ㅋㅋ]

<'킹가로쉬'님이 1,000원 후원!>

<"그럼 그것만 보여주면 쟤도 당황하겠네요??">

[ㅋㅋ사이다 가즈아~~!!]

[패드립 한방에 몰입 빡됐다ㅋㅋ]

후원과 대화가 밀어닥쳤다.

참가한 마법사 상당수가 열화와 같은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천 원이라는 거금에 대한 기쁨을 숨긴 채, 헨리는 죄송스럽기 그지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아직은 불가합니다."

[왜요?? 교관이라서??]

"그런 문제는 아닙니다. 다만 제가 쌓은 마나가 너무나도 미력한 탓입니다. 도움을 주셨음에도 수련이 부족했습니다."

[그럼 마나는 어떻게 쌓는건데요??]

"직접 수련하여 쌓는 방법이 유일합니다. 이곳은 저희 아카데미에 마련된 마나 연공실이고, 외부에 비해 마나의 밀도가 높은 곳입니다."

[수련부터 하셔야겠네ㅋㅋ]

[운기조식이라도 하나?]

[다 쌓으려면 얼마나 걸려요??]

어째선지 마법사들의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마나 수련에 호기심을 보이다니.

'...결국 과정의 차이면 충분했던 건가? 하지만 아까와는 반응이 너무 다른데.'

그저 숨 쉬듯 쌓이는 마나.

그런 재능을 타고났다면, 헨리처럼 '수련'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신선하게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처음 해 보는 방식이라 확답을 드리긴 힘들겠습니다."

[이거 해야 스킬 쓸수있나본디??]

[그럼 수련부터ㄱㄱㄱㄱㄱ]

[맞아요!! 마나가 없으면 스킬을 못쓰죠!! 기사님 화이팅!!]

[이제 일하믄서 슬슬 볼게요. 채팅 거의 못쳐요^^]

분위기가 완전히 돌아섰다.

이들은 헨리가 수련하길 원하고 있었다.

오직 교관 파이크의 콧대를 꺾어 주길 바란다는 이유에서.

'어쩌면 과정보단 목표가 주어져야 했던 걸지도 모르겠어. 대충 감이 잡히는데.'

기회가 주어졌고, 헨리는 놓치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최대한 집중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알 수 없었다.

헨리의 의식은 깊게 가라앉았다.

자신의 이름도, 위치도, 상황도 떠오르지 않았다. 아니, 그에 신경 쓸 여력이 없다는 표현이 정확했다.

신경 쓰는 건 단 두 가지.

숨을 들이쉴 때 들어오는 마나를 강제로 붙잡아 쌓고, 코를 통해 최대한 느리게 뱉으며 마나의 손실을 줄이는 과정이었다.

심장의 마나는 차츰차츰 덩치를 불려 가고 있었다.

'그릇'이 넓어지고, 깊어졌다. 밀려들어온 마나 덕에 자연스레 벌어지는 과정이었다.

「그릇 크기의 중요성은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마나를 소모해도 이미 키워 둔 공간은 줄어들지 않는다. 마나를 쌓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속도로 회복할 수 있단 뜻이야.」

수련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을 때.

헨리의 무의식은 다른 작업을 병행하기 시작했다.

훨씬 충만해진 마나를 통해 '길'을 뚫으려는 움직임이었다.

목표는 낮았다.

심장과 오른손을 잇는, 얄팍한 한 줄기 통로면 만족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음."

몰입에서 헤어 나오던 순간까지도, 헨리는 성공하지 못했다.

'정말... 진짜 한 줌의 재능도 없구나.'

길을 뚫는 건 감응력과 다른 재능의 문제라고 했었다.

이 정도면 '마나'와 관련된 모든 것에 젬병이리라고 보는 편이 옳았다.

'하지만 확실히 숙소보단 효율적이야.'

쌓인 마나의 양 자체는 고무적이었다.

'새벽에 모은 양의 열 배는 되겠어. 내일부턴 매일 빠지지 않고... 아니, 잠깐.'

그제야 마나에 팔렸던 정신이 완전히 깨어났다.

방송 화면으로 눈을 돌렸다.

헨리가 수련을 시작한 지 세 시간이나 흘렀고, 그사이 상당한 대화가 쌓여 있었다.

[이거 켜놓고 어디 간거 아님?ㅋㅋㅋ]

[명상을 찐텐으로 해버린다고???]

[컨셉에 잡아먹히는 정도의 능력]

'아차.'

흐름이 좋지 않았다.

지금은 아예 새로운 대화 자체가 없었다.

그나마 수련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까진 괜찮았다. 헨리의 집중력이 대단하다는 평이 많았으니까.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실수했네.'

마법사들은 헨리의 성장에 관심이 있다.

성장해서 이룰 목표도, 그에 이르기까지의 과정 역시 마찬가지.

하지만 헨리는 가장 중요한 요소를 간과하고 말았다.

'무조건 흥미로워야 하는 거였어. 그게 대전제야.'

마법사들이 헨리에게 지닌 호의의 근간은 어디까지나 '흥미'였다.

흥미롭지 못한 모습을 보였으니 관심이 끊길 수밖에.

[현재 시청자 : 6]

다행히 6명의 마법사가 남은 상태.

"수련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혹시 지켜보고 계신다면...."

헨리는 일단 적당히 분위기를 수습했다.

별것 아닌 대화라도 주고받고, 대답이 돌아오건 말건 누구라도 반응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았다.

간신히 최악의 상황은 면했다.

하지만.

'이건 곤란한데. 내 일상 전체가 흥미로울 순 없는 거잖아.'

헨리는 새로운 문제점에 직면했다.

방송은 온종일 켜져 있는 상황.

하지만 헨리의 일상이라곤 단조롭고, 반복되는 종류의 것 아니던가.

그 순간.

위대한 대마법사는 답을 주었다.

[블라인드 기능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방송 종료 기능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방송 시작 기능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BJ소드마스터

8화. 미션

무언가가 나타났다.

헨리는 황급히 내용을 확인했다.

[블라인드]

* 방송을 종료하지 않고 화면 송출을 중단할 수 있는 기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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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출 수 있다는...?'

다행히 헨리는 두뇌가 명석한 편이었다.

'확실해. 내게 권한을 넘겨 주신 거야.'

블라인드.

방송 시작.

방송 종료.

세 가지 '기능'을, 헨리는 필요한 순간에 받았다.

'생각이라도 읽으시는 건가.'

아니, 굳이 생각을 읽지 않아도 유추는 가능할 터.

그러나 대마법사라면 둘 중 어느 쪽이건 이상할 게 없었다.

'이게 종료 기능이었고.'

방송 화면.

좌측 상단엔 세모 무늬가 있었고, 우측 상단엔 X 표시가 빨갛게 새겨져 있었다.

저걸 누르면 완전히 방송을 종료할 수 있다.

'블라인드뿐이었다면 약간의 선심을 쓴 것뿐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방송을 시작하고, 끝낼 권한까지 준 건 이유가 있을 텐데.'

무언가 의도가 있을 테고, 그건 아마 헨리가 적재적소에 활용하길 바라는 마음일 터였다.

'...아마도 방송에 집중하란 뜻이겠어. 환경을 마련해 줄 테니, 기회를 헛되이 날리지 마라.'

헨리로선 그렇게 볼 수밖에 없었다.

'아카데미의 교육 철학과는 반대야.'

그 생각에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실력이 오르면 오를수록, 아카데미는 확실한 '보상'을 지급한다.

어떤 방식으로건.

하지만 대마법사는 부족한 헨리에게 재능을 선물했고, 방향을 제시해 주기까지 한 것 아닌가.

'노력의 방향을 바꿔야겠어. 마법사... 시청자들의 만족을 이끌어낼 수 있는 쪽으로. 하지만 어떻게 한다?'

방송이란 시스템은 생소하기 그지없었다.

이전이었다면 관심조차 없었을 분야.

그러나 자고로 간절함이란 어떤 일이건 가능케 하는 감정이었다.

'좋아. 일단 시도부터 해 보자.'

***

정해진 수련을 마친 직후.

헨리는 시청자들에게 기존과 다른 '코스'를 제시했다.

"마법사님들께 너무 좁은 곳만 보여 드린 것 같아서, 오늘은 저희 아카데미를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갑자기 소개요??]

[ㄱㅊ다ㅋㅋ 구조 궁금했음]

[근데 만나는 사람마다 다 시비거는상황 아님?]

"그 정도는 아닙니다. 노골적으로 덤벼드는 건 어제처럼 일대일로 있는 경우뿐입니다. 대부분은 저와 엮이는 것조차 명예에 흠집이 난다고 생각하니까요."

[진짜 밑바닥에서 시작하는구나ㅋㅋ]

"그리고 또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앞으로 제가 어떤 방식으로 성장해야 할지 고민해 보았습니다만, 저만 알고 있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 생각했습니다."

일단 이게 헨리가 준비한 첫 번째였다.

답답한 곳에 갇힌 듯 구는 행동에서 벗어나, 조금 더 넓은 배경을 보여 주는 것.

"또한 단순히 구조를 보여 드리는 선에서 그치지 않고...."

[그거 끝나곤 뭐해요?]

[레벨업은 언제하심?? 기사님 세지는거요]

"그러실 줄 알고 준비했습니다."

이번엔 두 번째 카드를 꺼낼 때였다.

저건 아카데미 시설이고 뭐고, 헨리가 '성장한' 모습을 보고 싶단 뜻이었으니까.

"오늘은 스킬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

[스킬이 있었어요????]

[마나 있어야 쓸수있는거 아니었음???]

[헐 미쳣다 컨셉 포기하신거??]

"저는 결코 제 컨셉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간밤에, 또한 아까 연공실에서 마나를 조금 쌓을 수 있었습니다. 그 효과를 보여 드리려는 것입니다."

[퍄퍄 맞네 몇시간동안 그러고있었네]

[와ㅋㅋㅋ 진짜 이것 때문에 그랬던거임? 아까 현기증난것도 너무 오래 앉아있어서 그랬나ㅋㅋㅋㅋㅋ]

이번 건 먹혔다.

헨리는 그리 확신했다.

여전히 마법사들이 말하는 '스킬'의 정체는 몰랐다.

허나 유추는 얼마든지 가능하지 않던가.

어디부터 가 볼까. 그리 생각한 순간.

<'trysky0323'님이 1,000원 후원!>

<"미션 걸면 받으세요?">

갑작스런 목소리에 헨리는 미간을 좁혔다.

"미션은...."

<'trysky0323'님이 1,000원 후원!>

<"아카데미 소개 30분 안에 끝내시면 2만원!">

"받겠습니다!"

무슨 소리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뭘 원하는진 알 것 같았다.

그 대가 역시.

'2만 원이라니!'

그야말로 엄청난 액수였다.

그 정도의 거금이라면 얼마나 많은 것들을 살 수 있던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철벽컨셉도 자본주의 앞에선 무너지네요? ㅋㅋㅋㅋㅋ]

[개웃기네진짜ㅋㅋㅋㅋ]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30분. 즉시 출발하겠습니다."

헨리의 두뇌가 빠릿빠릿하게 돌기 시작했다.

분명 빡빡한 시간이다.

하지만 헨리는 이곳에서만 자그마치 3년의 시간을 보냈다.

'할 수 있다. 무조건. 해내야만 해.'

머릿속에서 경로가 쫘악 그려졌다.

가장 짧게.

또한 모든 시설물을 빠짐없이 보일 수 있는 경로가.

마지막으로 주위를 살폈다. 사람은 없었다. 아직 이른 시간. 나갈 수 있는 이들은 모두 아카데미를 벗어났고, 하위권 수련생들도 늦잠의 여유를 만끽하는 것일 터.

'완벽하다.'

헨리가 첫발을 뗐다. 손을 뻗어 오른쪽을, 동시에 왼쪽을 가리켰다.

"이쪽부터 보십시오. 어제 보신 연무장. 그리고 저쪽이 연병장입니다. 그리고 뒤쪽."

헨리가 뒤쪽을 홱 돌아보았다.

"지금 보시는 시설이 제가 방금까지 있던 마나 연공실입니다. 아까 있던 공간에 비해 규모가 큰 이유는, 아래에 마나를 응집시키는 마법진이 설치되어 있기 때문이죠."

[ㅋㅋ본격적인거봐ㅋㅋㅋㅋ]

[캐릭터가 좀 바뀐것같은데??ㅋㅋㅋㅋ]

[기사님ㅋㅋㅋㅋㅋ]

대답할 여유는 없었다. 자리를 이동하며 설명을 덧붙였다.

"같은 수업이라도 내용에 따라 연무장을 사용할지, 연병장을 사용할지 나뉩니다. 가령 지휘학이나 전투 진형을 익히는 경우엔 연병장을, 소규모 전투를 통해 검술을 단련하는 경우엔 연무장을 이용하는...."

줄줄줄.

머리 한쪽을 차지하던 지식들이 쉼 없이 흘러나왔다.

무엇이건 가리지 않고 열심히 해 왔던 보람이 있었다. 이 아카데미 내에서 헨리가 모르는 공간은 거의 없었다.

[이거 미니맵 열고 읽고계신거 아님??? ㅋㅋㅋㅋ]

[이걸 다 외웠다고? 말이 돼???]

[진짜 개발자 아님? 시작한지 며칠이나됐다고ㅋㅋㅋㅋㅋ]

[튜토리얼인거 감안하면 끽해야 사흘도 안되지 않았을까요??ㅋㅋㅋㅋ]

"이쪽이 저희... 아니, 하위권 수련생들을 위한 기숙사입니다. C반 이하의 수련생을 의미하며...."

[기사님은 좀 달라요?]

"제 숙소는 저곳입니다. 말씀드렸듯 F반에도 소속되지 못했기에, 학장님께서 저를 위해 직접 준비해 주신 곳이죠."

[저거 창고 아니었음?]

[와 진짜 너무 악랄한데ㅋㅋㅋㅋ]

[대체 뭐하는 아카데미야ㅋㅋㅋㅋㅋ]

[그럼 상위권 기숙사는 어딘데요?]

"음, 저곳입니다."

헨리가 손을 뻗었다. 꽤 멀리 떨어진 곳, 학생들을 위한 숙소라기엔 과하게 화려한 건축물이 보였다.

얼핏 봐도 10층은 넘을 듯한 높이. 살짝 드러난 디자인만 봐도 헨리의 '헛간'과는 비교하는 게 민망할 정도의 화려함이었다.

[비교체험 극과극이네ㄹㅇ]

[헛간<<모텔<<호텔인듯ㅋㅋㅋㅋ]

[근데 저렇게 멀어서 수업은 어케들어요? 아침마다 오기 빡시겠는데?]

"왕실에서 직접 파견해 지은 건축물인 만큼 저곳엔 워프게이트도 설치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좌표도 유동적으로 선택 가능해, 사실상 이동엔 조금의 시간도 소요되지 않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편차 돌앗네진짜ㅋㅋㅋ]

활발하게 돌아오는 반응.

'이건 된다.'

마법사들의 흥미를 끄는 데 성공했다.

거기에 남은 시간은 20분.

벌써 아카데미의 절반 이상을 보여 주었고.

'2만 원을 더 받는다면 구매할 수 있어.'

[장바구니] 가장 위에 담아 둔 물건은, 단돈 9만 9천 원이었다.

***

"이상... 이상으로 저희 아카데미 소개를 마치겠습니다. 혹시 특별히 궁금하신 게 있다면 얼마든지 말씀하십시오."

발라란 왕립 기사 아카데미.

웅장한 규모의 도서관을 마지막으로, 그 소개가 끝났다.

'과연 이걸로 만족했을까.'

헨리는 떨리는 눈동자로 마법사들의 대화를 지켜보았다.

[이걸 진짜 30분에 끊어버리네 ㅋㅋㅋ]

[돈걸리니까 사람이 너무 달라지는디 ㅋㅋ;;]

[진짜 다 외우신거임?]

"특별히 암기한 것은 아닙니다. 누구라도 3년간 지내 온 곳은 꿰뚫고 있을 테니까요."

[저 컨셉 하나를 위해서 이걸 다 외웠다니;;]

[대단하다 대단해 진짜ㅋㅋㅋ]

왜 외웠다고 생각하는 걸까.

이건 헨리도 이해할 수 없었다.

이제 아카데미는 고향보다도 익숙한 곳이었고, 단지 그래서 쉽게 설명할 수 있던 것뿐인데.

하지만.

<'trysky0323'님이 20,000원 후원!>

<"대단해요!">

의문은 단번에 사라졌다.

그런 것쯤이야 뭐 어떻단 말인가!

사소한 오해. 심지어 이유는 모르겠지만 '긍정적인' 오해 아니던가.

심지어 방금 보여 준 모습에 만족하는 듯한 분위기까지.

"이런 세상에.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 아니,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할지도 모를 심정입니다. 2만 원이라는 거금을 이리 쉽게 쾌척해 주시다니...."

여태껏 봐 오지 않았던가.

이 후원금으로 구매할 수 있는 물품 목록.

또한 여태껏 마법사들의 후원금은 대부분 천 원, 이천 원 선이었다는 것을.

이만 원이란 건 정말 엄청난, 평범한 이들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거금일 게 분명했다.

[미션이잖아요^^]

그런데 저렇게 쿨할 수 있다니.

헨리는 진심으로 감격하고 말았다.

"그야말로 마법사 중의 마법사십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꼭 필요한 곳에 아낌없이 투자하겠습니다."

[(대충 저녁에 치킨 한마리 시키겠다는 뜻)]

[ㅋㅋㅋ고건 ㅇㅈ이지~~]

[솔직히 치킨은 인정해줘야한다ㅋㅋ]

'닭을 말하는 건가? 아니면 후원 상점에 치킨이란 물건도 있었나?'

일단 기억해 두었다.

저런 반응이라면 분명 쓸 만한 도구일 터.

허나 그것보다도.

"덕분에 충분한 후원금이 모였습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점찍어두었던 물건을 사용해 봐도 되겠습니까?"

[후원금요?]

[?? 갑자기 무슨소리임?]

"어젯밤에 후원 상점을 나름 상세히 살펴보았습니다. 지금 당장 제게 필요한 게 무엇일지 치열하게 고민했고, 덕분에 몇 가지 물건을 정할 수 있었습니다."

[???]

[후원상점은 또 뭐지?]

[ㅋㅋ일단 해보세요ㅋㅋㅋㅋ]

'이 시청자들은 모르는 건가?'

어쩌면 대마법사가 임의로 마련해 준 것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어찌 됐건.

[후원 상점]

[현재 등급으로 구매할 수 있는 물품 목록입니다.]

[장바구니를 열었습니다.]

'일단 보여 주는 편이 낫겠지.'

제대로 의사소통도 안 되는 상황.

그럴 땐 일단 결과부터 보이는 게 몇 배는 나았다.

[1레벨 재능의 구슬(순환) : 99,000원]

[물품을 구매했습니다!]

모았던 후원금이 사라지고, 툭. 헨리의 손 위로 구슬 하나가 튀어나왔다.

'마법은 역시 대단하다니까.'

아공간을 이리 자유자재로 다루다니.

"마법사님들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로 1레벨 재능의 구슬이란 물건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1레벨 재능요??ㅋㅋㅋㅋㅋㅋㅋ]

[아니 갑자기 무슨ㅋㅋㅋㅋ]

[뜬금포 개터지네ㅋㅋㅋㅋㅋㅋ]

"예, 이 방송을 열어 주신 대마법사님께서 마련해 주신 상점인 것 같습니다. 명칭은 후원 상점이고, 이 상품의 값은 9만9천 원이었습니다."

[아니 미친ㅋㅋㅋㅋ]

[컨셉이 이렇게 이어진다고??]

[후원하면 강해짐ㅋㅋㅋㅋ 졸지에 창렬 현질겜됐네ㅋㅋㅋㅋ]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ㅋㅋㅋㅋㅋ]

[실화냐진짜ㅋㅋㅋㅋ]

[일단 익혀봐요ㅋㅋㅋ 그거 익히면 어케되는거임?? 스킬생김??]

"음, 해 봐야 알겠습니다. 재능의 구슬이라지만, 이게 정확히 무엇인지는 아직 모르겠군요."

당장 어떻게 써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위대한 대마법사는 이번에도 친절했다.

[1레벨 재능의 구슬(순환)]

* 사용 시 [순환]의 재능을 얻을 수 있습니다.

* 달콤한 맛입니다.

'달콤한 맛?'

입에 넣으란 뜻일까.

헨리는 머쓱하게 구슬을 입가로 가져갔다. 재차 마법사들이 웃음을 터뜨렸고, 다음 순간.

"아?"

황홀한 단맛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BJ소드마스터

9화. 구독과 좋아요(1)

재능의 구슬.

그 맛은 단순히 달다고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온몸에 짜릿한 전율이 일었다.

재능의 맛은, 진정 달콤했다.

"이럴 수가. 세상에 이런 맛이...."

[ㅋㅋㅋㅋㅋㅋㅋ]

[뭐라는거야ㅋㅋㅋㅋㅋ]

"달콤합니다. 놀랍도록 달고... 아, 맛이 중요한 게 아니라."

번뜩 정신이 들었다.

[순환]의 재능이라고 했다.

헨리는 그제야 자신의 몸에 일어난 변화를 확인했다.

"맙소사."

그야말로 감탄의 연속.

'길이 생겼어.'

순환이라기에 어렴풋이 짐작은 했었다. 하지만 정말이었다니!

지금 헨리의 전신엔 세심하게 뻗어 나간 길이 있었다.

심장을 중심으로, 머리, 두 손, 상체와 하체를 거쳐 발끝에 이르기까지!

"자, 잠시만 시간을 주십시오!"

덜덜 떨리는 손을 진정시켰다. 억지로, 가까스로 정신을 집중했다. 심장의 마나를, 길을 따라 퍼뜨려 보았다.

'이렇게, 이런 식으로.'

마나가 손가락 끝에 이르렀다. 희미한 빛이 일어났다가, 사라졌다. 다시 길을 따라 돌아왔다. 전신의 길을 타고 마나가 순환했다.

다시 한 바퀴 돌아 검지 끝에 이르렀을 때, 헨리는 억지로 그 흐름을 멈추어 보았다.

그리고.

"아."

손가락 끝의 빛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게 바로 마나를 다루는 기초 중의 기초.

검에 마나를 싣는다는 것은, 결국 마나의 흐름을 검에서 멈추도록 한다는 의미였다.

검지를 눈앞으로 가져왔다. 희미한, 이곳의 수련생이라면 누구라도 만들어 낼 수 있는 초라한 빛.

허나 헨리에겐, 그 의미가 많이 달랐다.

'이런 거였어.'

꽈악.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지금은 이뤄 낸 성취에 기뻐할 때가 아니었다.

이건, 헨리 스스로 거둔 게 아니었으니까.

"스킬! 진짜 스킬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스킬이라고??]

[갑분스ㅋㅋㅋㅋㅋ]

[방금 먹은게 스킬 구슬이에요??]

"그런 것 같습니다. 모두 마법사님들 덕분입니다. 지금 제 몸엔 마나의 통로가 생겼습니다. 지금 이 빛이 그 증거죠."

[오우ㅋㅋ 먼가 있어보이는데?]

[기사님!! 축하드려요!!!ㅋㅋㅋ]

"이 힘을 완전히 검에 실을 수 있게 된 순간, 그 검은 오러 블레이드라 불립니다. 저는 지금 이 순간에야말로 그곳까지 가기 위한 출발점에 서게 되었습니다."

이제야 다른 수련생과 동일선상에 놓였다.

그 하나만으로도 헨리는 감당 안 되는 기쁨을 느끼고 있었다.

그들이 내지르는 검을 방패로 막고, 검으로 쳐 낼 수 있게 되었으며, 빗나간 검격은 헨리의 갑옷에 흠집조차 낼 수 없을 테니까.

'그리고 노력한다면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겠지. 발판은 갖춰졌어. 이젠 상황이 달라졌으니까.'

비록 그 방향은 바뀌었으나, 조금만 더 노력한다면 이미 저 앞에서 달려 나가는 동기들을 따라잡는 것도 꿈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이제 스킬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연무장으로 가야겠군요. 다른 사람이 없으면 좋겠지만, 있어도 상관없습니다! 가시죠!"

당장 이 마법사들이 기대하는 것을 충족시켜 주는 것부터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