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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 - 2

***

헨리가 아직 어렸을 때.

많지 않은 여유에도 불구하고, 카밀턴 자작이 매달 한 번씩 빠짐없이 데려가던 곳이 있었다.

대단한 곳은 아니었다.

단지 근처 마을의, 가장 큰 여관에 불과했으니까.

「사람은 경험한 것 외엔 알지 못한단다, 헨리. 그런 경험이 쌓여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지. 하지만 모든 걸 직접 몸으로 겪어야만 알 수 있는 건 아니란다.」

이따금 카밀턴 자작이 하던 말이었다.

그 이유로 여관에 간다는 건 좀 이상한 일이었으나, 헨리도 어느 순간 깨달을 수 있었다.

큰 도시였고, 가장 큰 여관이었다.

그곳엔 정말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있었다.

항상 시끌벅적했다.

술과 음식, 편안한 분위기는 긴장을 푸는 데 정말 큰 도움을 주는 환경이었다.

맥주를 홀짝이는 카밀턴 자작 곁에서, 헨리는 많은 이야기를 엿들을 수 있었다.

그 사람의 생김새와 행동, 말투를 보았다. 자랑스레, 혹은 우울하게 내놓는 경험이 헨리의 기억 속에 쌓였다.

간접적인 경험도 지혜를 쌓는 것에 도움이 되었다.

아니, 애초에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많은 일들이 직접 겪을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가끔은.

「꿈을 키워라, 헨리. 누군가에겐 허황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지만, 누군가는 분명 그런 일을 직접 겪었을 거다.」

조용히 술만 홀짝이던 카밀턴 자작도 눈을 빛낼 때가 있었다.

유능한 이야기꾼이 이야기보따리를 푸는 순간이었다.

「영웅은 말했소! 사악한 마룡 카르고니르여, 이 순간! 이 장소에서! 네 악행의 끝을 맺겠다!」

이야기꾼이 영웅이라도 된다는 듯 외칠 땐 주먹을 꽉 쥐었고, 끝내 이야기가 마무리되었을 땐 짜릿하다는 듯 웃었다.

「꿈을 잃은 이들은 여기서 웃지 못할 거다, 헨리. 오롯이 이야기를 즐기는 대신, 불가능한 일이라며 비웃기 바쁘겠지.」

카밀턴 자작은 이야기꾼을 그렇게 표현했다.

꿈을 선물해 주는, 고마운 이라고.

당시의 헨리는 완벽히 동의하지도, 거부하지도 않았다.

단지 아버지는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그렇게 여기는 선에서 끝냈으니까.

그러나 이 순간, 헨리는 그때의 아버지를 이해했다.

번뜩!

검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빛이 허공을 수놓았다.

어제보다 화려한 빛이었다.

당연한 일이다.

대기 중의 마나를 내뱉는 선에서 그치지 않고, 조금이나마 쌓인 마나를 검에 '실은' 상태였으니까.

헨리는 알고 있었다.

고작 이만큼의 마나는 실제 전투에서 별반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막말로 화려하단 것 외엔, 큰 효용이 없는 행동.

그러니까 헨리는 지금.

"합!"

화면 너머 마법사를 위한 '쇼'를 펼치고 있는 것이었다.

[진짜 검술하나는 디진다진짜ㅋㅋ]

[지금 스킬이 머라고하셨죠??]

[인챈트같은거라고 하셨어요! 마나량만큼 데미지도 세지고 공속도 빨라지고 그런것같아요!]

[오우 친절한 답변 감사함다;;]

곁눈질로 대화를 살폈다.

반응이 좋다는 것을 확인했고, 촤합! 기합과 함께 마지막으로 마나를 길게 뿌렸다.

"후우. 방금 보신 게 마무리 일격입니다. 앞서 펼친 검술로 상대의 빈틈을 먼저 열어야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죠. 하지만 적중하기만 한다면 충분한 파괴력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스킬 이름은 뭔데요??]

"이 스킬의 이름은...."

그런 게 있을 리가 없다. 이건 단순히 초급 검술을 펼친 것뿐이니까. 하지만.

"다, 달빛검입니다. 마지막 기술이 마치 초승달을 연상케 한다는 까닭으로...."

얼굴이 확 붉어졌다.

달빛검이라니!

다른 이가 듣는다면 배꼽을 잡고 웃을 일이었다.

그러나, 효과는 좋았다.

[와! 달빛!]

[스킬 레벨도 올릴수 있어요?]

[선딜 좀 있는거 빼면 괜찮은듯. 막타에 몰빵한 스킬같네요.]

[혹시 다른스킬도 있어요??]

"무, 물론입니다. 이번에 보여 드릴 스킬은...."

이름. 이름을 생각해야 했다. 그러나 헨리에겐 작명의 재능도 없었다.

"보여 드리겠습니다."

일단 저지르고 생각하자.

창피함을 떨치고, 헨리는 짐짓 진지한 얼굴로 검을 들었다.

***

'스킬'은 화려했다.

헨리는 이곳의 어떤 수련생보다 검술에 담긴 의미를 정확히 꿰뚫어보고 있었고, 그런 만큼 어떤 부분에서 힘을 줘야 하는지 알았다.

그리고 쇼맨십의 이상적인 방향도 깨달았다.

"빗발치는 벼락!"

날카로운 찌르기가 연속적으로 허공을 파고들었다. 마나가 남긴 궤적은 또렷했고, 흡사 수십 번의 찌르기가 동시에 이뤄진 듯 보일 정도였다.

[이쯤 되니까 좀 깐지나는데??]

[화려하긴 한듯]

적당히 화려하고, 적당히 절도 있는 모습에 마법사들은 크게 만족하고 있었다.

정답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헨리가 성장하는 단조로운 과정을 보고 싶은 게 아니라, 헨리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흥미로운 모습들을 원한 것이었다.

'흥미롭기만 하면 돼. 그게 수련하는 모습이건, 수련의 성과이건.'

그 한 줄이야말로 방송의 알파이자 오메가였다.

단순히 우스꽝스런 것만을 원하진 않았다.

그랬다면 광대나 다름없을 터.

멋지건, 감동적이건, 우습건, 급박하건.

단지 그 '과정'이 흥미를 끌 수 있어야 한단 의미였다.

그리고 지금 헨리가 이 마법사들에게 보이는 모습은, 그들의 일상과는 꽤나 거리가 떨어진 종류였다.

"달빛 가르기!"

촤악! 헨리가 일검을 내질렀다. 횡으로 넓게 공간을 가르는 검격이었다. 얼핏 봐선 '달빛검'과 비슷했으나 그보다 훨씬 정교하고, 날카로운 빛이 그려졌다.

[달빛 가르기ㅋㅋㅋㅋㅋㅋ]

[달빛검 카운터에요??]

[또 훅들어오네ㅋㅋㅋㅋ]

후우. 헨리가 검을 거두었다. '달빛 가르기'라고 외친 기술은, 헨리가 익힌 최상위 검술 중 하나였다.

"감사합니다. 아, 또 카운터가 혹시 파훼법을 의미하시는 겁니까?"

[내 맞아요!!]

"아닙니다. 달빛 가르기는 달빛검보다 우위에 있습니다. 오히려 달빛검이 특정 상황에서만 사용된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거짓은 단 하나도 섞여 있지 않았다.

고급 검술은 초급 검술보다 뛰어났고, 초급 검술은 수련생들이 검을 처음 배울 때만 사용하는 것이었으니까.

[그럼 같은 속성? 그런건가보네]

[스킬 관계는 또 왤케 복잡함ㅋㅋ 이것도 다 외우신거죠?]

"저는 천재가 아닙니다. 이건 단지 이곳에서 3년간 수련한다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죠."

헨리는 진심이었다.

자그마치 3년이다.

누군가에겐 짧은 시간일지도 모르겠으나, 끊임없이 같은 것만 반복하기엔 끔찍할 정도로 긴 시간이었다.

그 사실을 잊기 위해서라도 헨리는 계속해서 이미 익힌 것들을 몇 번이고 되새겨야 했었다.

[그놈의 컨셉 진짜ㅋㅋㅋ]

[아 맞다. 아까 저희가 후원하면 세진다고했죠??]

"정확히는 그것으로 물품을 구매할 수 있습니다. 물품을 사용하면 성장하고, 또한 구독해 주실 때도 감응력이 상승했습니다."

[ㅋㅋㅋㅋㅋㅋ]

[아니 진자 자낳괴라고 하고싶은데 표정이 무슨ㅋㅋㅋㅋ]

[너무 찐텐이라 저도 말을 못하겠음ㅋㅋㅋ]

자낳괴는 뭐고, 찐텐은 뭘까.

헨리는 눈만 멀뚱멀뚱 뜨고 있었다.

분명 이 언어를 '이해하고' 있음에도 알 수 없는 표현이었다.

그때 다른 질문이 들어왔다.

[지금 후원금 얼마남았는데요??]

"정확히 3천 원 남았습니다."

[반응속도 칼같네ㅋㅋㅋ 3천원 맞아요 님들??]

[저 어제부터 하루종일봤는데 그정도 될거임]

[와 컨셉도 극한까지 가니까 오히려 컨셉이 아닌것같네ㅋㅋ]

[그럼 3천원으론 뭐 살수있어요?]

"3천 원. 우선 확인해 보겠습니다."

헨리가 후원 상점을 열었다.

목록을 쭉쭉 넘겨 가며 가장 저렴한 물품들을 확인했다.

"대부분 약초 뿌리 같은 것들입니다. 간혹 낮은 품질의 광석도 있고, 아, 전투 시 취식이 용이한 건식들도 보입니다."

[아ㅋㅋ 잡템이요?ㅋㅋㅋㅋ]

[잡템맞네ㅋㅋㅋ]

[아니 너무 창렬인데ㅋㅋㅋㅋㅋㅋㅋ]

[아까 스킬 배운건 얼마라고하셨죠?]

"9만9천 원이었습니다."

[개비싸잖아ㅋㅋㅋㅋㅋㅋ]

[근데 검술은 기본으로 달고있는거 아님??]

[사실상 마나가 핵심인듯ㅋㅋ]

"그렇습니다. 검술 실력에서 압도적인 차이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승패는 사실상 마나의 질과 양에 달려 있습니다. 같은 찌르기와 베기여도 실린 파괴력이 다르니까요."

그게 헨리를 이 자리에 머물게 했던 이유였고.

검술 하나만큼은 자신 있었으나, 헨리가 자신 있는 건 검술뿐이란 게 문제였다.

[마나 양은 구독으로 올리는 거였죠??]

"그렇습니다. 마법사님들께서 구독해 주실 때마다 감응력이 상승했습니다. 지금 제 감응력은 26이군요."

[구독자 수가 26명인데?]

[아니 씁ㅋㅋㅋㅋ]

[구독 1당 감응력 1인거네ㅋㅋㅋㅋㅋ]

[그럼 기사님 제가 주문 하나 알려드림]

헨리가 흠칫했다.

주문이라니.

설마 마법이라도 알려 주겠단 뜻인가.

[따라해보세요. 구독과 좋아요 감사합니다.]

헨리가 미간을 좁혔다.

'주문이 아닌 것 같은데.'

누가 봐도 마법 주문과는 거리가 멀다.

단지 마법사들에게 구독을 요청하는 내용이지 않은가.

"그건...."

마법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리 말하려다가, 헨리가 멈칫했다.

'시청자들이 내가 뭘 할 때 웃었더라.'

현재 헨리의 구독자는 26.

감응력도 26이었다.

또한 '후원받은' 금액으로 산 구슬 하나.

그것만으로 벌써 마나의 '길'까지 뚫지 않았던가.

이 상황에서, 헨리가 보여야 할 모습은 명확했다.

'속아 주는 편이 낫겠어.'

BJ소드마스터

10화. 구독과 좋아요(2)

"구독과 좋아요 감사합니다."

헨리의 그 짧은 한 마디는 효과적이었다.

물론 말뿐만이 아니었다.

무언가 이상하다는 듯한 표정.

내가 지금 속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반신반의하는 듯한 분위기까지.

그 덕에 마법사들은 폭소했고, 순간 헨리는 상당한 소득을 거둘 수 있었다.

'어설픈 모습이 먹히는 거야. 마법사들의 대화를 가끔 알아듣지 못하고, 이따금씩은 완전히 어설픈 반응을 보여 주는... 그런 거.'

대충 알 것 같았다.

그 기반에 호의가 깔렸단 것은 분명하나, 마법사들은 진중한 기사의 헛소리를 원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 '주문'엔, 실질적인 효과도 있었으니까.

[와 구독자 늘긴 느네ㅋㅋㅋ]

[이틀만에 30명 가까이 찍은거면 엄청빠른거에요!!]

[이분은 진짜 조만간이겠다ㅋㅋㅋ]

"모두 마법사님들께서 알려 주신 덕분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마법사님들."

희미한 미소를 입가에 걸었다. 진중한, 그러나 진심 어린 감사를 눈에 담은 채.

'이제 뭘 해야 한다.'

구독이 필요했고, 후원이 필요했다. 당장 연공실에 틀어박힌 채 수련하는 것보단 그 편이 훨씬 효율적이란 걸 깨달은 지 오래였다.

'게다가 이것도 있지.'

[현재 구독자 : 28]

[2단계 목표 : 30]

* 목표 달성 시 보상이 지급됩니다.

처음 구독자 열 명을 채웠을 때.

헨리에겐 '후원 상점'을 이용할 권한이 생겼다.

이제 두 명만 더 늘어난다면 다음 보상까지 지급되는 상황.

고민 끝에 헨리가 결정했다.

"마법사님들."

모를 땐, 물어보는 게 상책이었다.

"혹시 보시고자 하는 게 있으십니까?"

***

헨리는 빠른 속도로 적응했다.

방송이라는 환경은 분명 생소했으나, 다행히 헨리는 우직하기만 한 기사는 아니었으니까.

주어지는 정보를 편견 없이 받아들였고, 그 결과물이 그 무엇보다도 효율적임을 인정했다.

마법사들의 비위를 맞추는 게 수 년 간의 제 노력보다 뛰어난 성과를 준다는 사실.

누군가는 그 사실을 자조적으로 받아들였을지도 모르지만, 헨리는 아니었다.

'더 바랄 나위 없는 상황이지. 세상 모든 일이 노력만으로 극복할 수 있는 거라면 이런 상황에 놓이지도 않았을 테니까.'

무기력하게 밑바닥에 남아 있는 것보단, 이런 요행으로라도 치고 올라가는 편이 낫다는 게 바로 헨리 카밀턴의 가치관이었다.

"오늘의 스케줄은 어제와 같습니다. 세부 내용은 바뀔 수 있겠으나, 우선 체력 단련을 시작으로...."

이제 헨리에겐 마법사들이 만족할 만한 쇼를 꾸려 낼 능력이 생겼다.

물론 겉모습을 꾸미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 마법사들에게 헨리는 올곧은 기사이자, 노력을 멈추지 않는 기사 수련생의 모습으로 남아야 했으니까.

그러던 순간이었다.

[매니저라도 하나 뽑으시는게 낫지 않을까요? 은근히 사람 많아졌는데.]

헨리의 방송에 애정을 가지고 지켜보던 시청자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했다.

"죄송합니다. 매니저가 정확히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이걸 뭐라고 설명하지?]

[굳이 있어야될까요? 채팅 매크로 하나만 짜둬도 괜찮을 것 같은데.]

[매크로ㄴㄴ]

[본인이 직접 저는 이런 컨셉입니다~ 이럴순 없잖아요ㅋㅋㅋ]

[그것도 그러네ㅋㅋㅋ]

매니저는 뭐고, 매크로는 또 뭐란 말인가.

헨리는 일단 가만히 '채팅창'을 지켜보았다.

마법사들의 대화를 채팅이라 부른다는 것까지가 헨리가 깨달은 범위였으니까.

"매니저가 정확히 무엇을...."

헨리가 다시 질문하려던 순간.

[매니저에게 채팅 관리를 위임할 수 있습니다.]

"...."

헨리는 굳이 더 말하지 않은 채 설명을 읽었다.

이 '채팅창'을 '관리'해 주는 게 매니저의 역할이었다.

가령 새로 들어온 시청자에게 헨리 카밀턴이 어떤 인간인지 설명해 준다거나, 그와 관련된 이런저런 질문을 받아 준다든가 하는 식.

'단련을 마친 후엔 검술 수련이 진행됩니다... 이런 걸 대신 말해준다는 건가?'

그런 게 굳이 있어야 할까.

잠시 생각했고, 결론은 뻔했다.

'필요하겠네.'

그렇다면.

'누구에게 부탁해야 하지?'

상대는 마법사.

즐겁게 헨리의 모습을 지켜보곤 있으나, 매니저로서 업무를 수행하는 건 다른 문제였다.

"예, 그럼 말씀대로 매니저를 한 분 구해 보도록...."

[저요!!!!! 제가 할게요!!!!!]

[저도 오전엔 가능ㅋㅋ]

[저 프리랜서! 시간! 많음! 12시에 자고 8시에 일어나는 바른생활 어린이!!]

[일만 아니면 저도 하고싶은데ㅠㅠ]

'뭐지?'

헨리는 이제야 간신히 궤도에 발을 올린 기사 수련생일 뿐이었다.

심지어 마법사들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그 이름마저 조만간 뺏기고 말았을 입장이었고.

그런데 이 열화와 같은 반응은 대체 뭐란 말인가.

"그, 그럼 두 분을 모시도록 하겠...."

[네!!! 저요!!! 본업 일러스트레이터!!! 자막!!! 썸네일!! 원하시면 편집도 해볼게요!!]

[퍄퍄 능력자가 계셨네ㅋㅋ]

[그럼 저분이 메인으로 보시고 서브로 보실분 한분이면 될듯ㅋㅋㅋ]

<'포포리쟝'님이 1,000원 후원!>

<"저진짜 잘할수잇어요!!! 돈은 없지만ㅠㅠ 흑흐규ㅠㅠ">

포포리쟝.

이 마법사는 헨리도 확실히 기억하는 이름 중 하나였다.

'유독 내게 호의적이었지.'

고민은 짧았다.

"그럼 포포리쟝 마법사님께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할게요!!! 진짜!!!]

"제가 감사드릴 일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포포리쟝 마법사님."

[넵!!!!! 그리고 거의 외주로 작업하는거라서 작업 시간 제 마음대로 정할수 있거든요!!]

[오전이나 점심때나 저녁 늦게나 한타임만 커버해주시면 돼요!! 일 있을때도!!]

[저도 모쏠... 직장인이라 저녁엔 풀타임으로 가능... 영상쪽... 편집 기똥차게 도와드릴수 잇읍니다...]

[캬 라인업 짱짱한거보소ㅋㅋㅋㅋ]

아무래도 결정 난 것 같았다.

"그럼 불꽃솔로 마법사님께도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옙... 최선을... 다하겟읍니다...]

헨리가 채팅창에 손을 뻗었다.

마법사의 이름을 건드리고, '매니저 위임'을 선택했다.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두 마법사의 이름 왼쪽에 '매니저'라는 표시가 나타났다.

"다 된 것 같습니다."

[저는 매크로 문구부터 짜올게요!!!]

[저도 나중에 오프닝에 깔 BGM이나 먼저 준비해드리겟... 습니다... 저작권... 걱정업는것으루...]

무슨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건, 이 두 사람이 헨리를 위해 무언가를 준비한다는 것.

[시작하자마자 엄청 본격적이네요ㅋㅋㅋㅋ]

[컨셉이 독특해서 호응도 괜찮은듯ㅋㅋ]

[그럼 오늘도 운동부터 가실거에요??]

대마법사는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지원을 해 주었고, 다른 마법사들도 더없이 호의적인 상황.

준비는 끝났다.

[현재 구독자 : 29]

2차 목표까지 남은 건 단 한 명.

"휴식이 너무 길었군요."

전신에 마나를 한 바퀴 돌리고, 헨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즉시 시작하겠습니다."

***

새로운 일정은 소화하기에 조금의 무리도 없었다.

육체 단련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검술 역시 마찬가지.

단지 신경 써야 하는 건 얼마나 '멋지게' 마나를 실을 수 있는지였다.

거기에 새로 영입한 두 매니저는 헨리의 기대 이상으로 훌륭히 역할을 수행했다.

[헨리 카밀턴. 발라란 왕립 아카데미의 1학년 수련생이며, 철저하게 캐릭터 컨셉을 지키고 계십니다. 설정상 마나를 다룰 수 있는 재능은 없으며...]

저게 바로 일정 시간마다 자동으로 올라오는 '포포리쟝'의 채팅이었다.

누구라도 읽기만 한다면 헨리 카밀턴이 어떤 인간인지 단번에 파악할 수 있을 만큼 상세한 내용.

덕분에 신규 시청자도 무리 없이 기존 분위기에 편승할 수 있었으며, 그건 구체적인 성과로 이어졌다.

['쌍두오우거'님이 구독하셨습니다.]

['노량진전문가'님이 구독하셨습니다.]

['바리스타최'님이...]

...

구독자 수의 상승세가 눈에 또렷이 보일 정도.

"구독과 좋아요 감사합니다."

헨리 역시 배운 것을 잊지 않고 써먹었다.

그렇게 방송을 시작하고 닷새 째.

하루의 끝자락에 이르렀을 즈음엔.

[구독자 : 42]

[현재 시청자 : 33]

확실한 성과가 헨리의 눈앞에 있었다.

[진짜 빨리 늘긴한다ㄷㄷㄷ]

[일단 보기만 하면 구독찍게되는듯ㅋㅋ]

[컨셉 개신박하잔슴ㅋㅋ 희한하게 후원유도해도 기분이 안나쁨 여긴ㅋㅋㅋㅋ]

[기사님 오늘도 방송 9시까지 하세요??]

"감사합니다. 다행히 오늘은 제가 숙소로 돌아간 이후에도 켜 둘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가능하다면 밤을 샐 의향도 있었다.

순간 이때를 위해 여태껏 체력을 길러 왔던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최소한 이틀 정도는 잠을 자지 않고도 버틸 수 있는 게 바로 헨리였다.

하지만.

[21시에 방송이 종료됩니다.]

대마법사의 선고에 헨리는 머쓱한 표정을 지어야만 했다.

"...죄송하지만 아홉 시에 끄라고 말씀하시는군요. 20분 남았습니다."

[ㅋㅋㅋ대마법사님이요??]

[무슨 만능 치트키임]

[기승전 또마법사여ㄹㅇㅋㅋㅋ]

"제게 이런 기회를 주신 분이니까요. 저는 그저 감사드릴 따름입니다."

[또마법사가 혹시 부모님이신거 아님??]

[아홉시엔 게임 끄고 밥먹어!!!!]

[등짝스매싱 꽂히고ㅋㅋ]

[가능성 잇다고본다ㅋㅋㅋ 개웃기네ㅋㅋㅋㅋ]

'부모님이라.'

어쩌면 이들 눈엔 그리 보일지도 몰랐다.

이렇게까지 대가 없이 위할 수 있는 존재는 그리 많지 않을 테니까.

흥미를 좇는 마법사들과 달리, 대마법사는 그 어떤 상황에도 헨리에게 간섭하지 않았다.

지루한 수련을 반복할 때도 건들지 않았으며, 오히려 필요하다 싶을 때 무언가를 건네주는 것으로 끝이었으니까.

'대체 내게 왜 그렇게까지 해 주는 건진 모르겠지만.'

새삼 고마움이 가슴을 가득 채웠다.

이제 고작 이틀 차.

경황이 없던 터라 제대로 생각해 보진 않았으나, 고민하면 할수록 납득되지 않을 정도의 호의 아니던가.

'감히 이해할 수조차 없는 이유가 있겠지.'

분명 무언가 고매한 이유가 있을 터.

생각을 접고, 헨리는 슬슬 방송을 마무리했다.

"오늘도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법사님들. 내일도 여섯 시에 뵙겠습니다."

[기-바]

[낼도 바로올게요 기사님!!!!!]

[쉬십... 시요...]

[낼바여ㅎㅎ]

마법사들이 하나둘씩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시간이 아홉 시에 다다른 순간.

[방송이 종료됩니다.]

대마법사는 여지없이 방송을 종료시켰다.

"후우."

끝났다는 생각에 맥이 탁 풀렸다.

갑작스레 찾아든 행운.

처음엔 몹시 얼떨떨했으나, 고작 이틀이 지났음에도 어느 정도 적응이 된 기분이었다.

"방송이란 말이지."

검게 변한 화면을 가만히 응시했다. 마법사들이 모두 떠났음에도, 그들이 남긴 채팅은 그대로였다.

잠시 지켜보던 헨리가 몸을 돌렸다.

곧 마법사들이 헛간이냐며 웃음을 터뜨렸던 숙소가 보였다. 문을 닫고, 허름한 바닥에 엉덩이를 앉혔다.

'오늘 잠은 다 잤네.'

1레벨 재능의 구슬.

그걸 먹는 것만으로 헨리는 [순환]의 재능을 얻었다.

'너무나도 손쉽게 말이야. 여태껏 노력해 온 것들이 우습게 느껴질 만큼.'

그건, 그야말로 재능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그냥 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심지어 그 길을 이용하는 것도 쉬웠고.'

길을 만드는 데서 그치지 않고, 마나가 그 길을 타고 이동하는 것도 부드럽기 그지없었다.

수업 때 교관 파이크가 분명 말하지 않았던가.

「길을 만들었나? 축하한다. 하지만 이제부터 시작이야. 심장의 마나를 손끝으로 옮겨라. 길을 뚫는 것보다, 뚫린 길에 익숙해지는 게 몇 배는 힘든 일일 거다.」

'하지만 내겐 전혀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지. 이런 재능을 타고난 녀석들은 대체 어떤 느낌일지.'

아마 평생을 가도 둔재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터.

그러나 헨리는 가능했다.

괴로웠던 경험이 있었고, 그렇기에 이 기회가 얼마나 값진 것인지 누구보다 잘 알 수 있었다.

'첫날은 경황이 없어 그냥 넘어갔지만, 이젠 그럴 수 없지.'

당장 놓인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부터 시작이었다.

1단계는 후원 상점의 판매 물품을 완벽히 숙지하는 것.

그러나 그 전에.

[구독자 30명 확보!]

[2차 목표를 달성했습니다. 추가 보상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보상부터 획득하는 게 순서였다.

BJ소드마스터

11화. 땀 흘려 버는 돈의 가치

[추가 보상이 지급됩니다.]

* 후원 상점의 '구매 가능 품목'이 한 단계 확장됩니다.

* 홍보 배너(1시간)가 지급됩니다!

'홍보 배너라고?'

헨리가 갸웃했다.

구독자 10명을 달성했을 때.

'1단계 목표 보상'으로 '후원 상점'이 열렸었다.

'상품 종류가 늘어나리란 건 예상했지만, 홍보 배너란 건 뭐지?'

물론 대마법사의 의도가 담긴 선물일 터.

하지만 이름만 봐선 무엇인지 짐작이 가질 않았다.

톡- 메시지를 건드리자.

[한 시간 동안 걸어 둘 수 있는 일종의 간판입니다.]

친절한 설명이 튀어나왔다.

'간판이라!'

이번엔 헨리도 이해할 수 있었다.

보아하니 이 '방송'의 존재를 모르는 마법사들이 많은 모양.

간판을 걸어 둠으로써 조금이라도 많은 마법사가 자신을 지켜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물건이었다.

'확실히 큰 도움이 되겠어.'

후원금 액수도, 구독 수도 지켜보는 마법사의 머릿수에 비례한다.

효과가 어느 정도일진 모르겠으나, 잘만 활용한다면 상당한 성과를 얻어낼 수 있을 터.

'그렇다면.'

헨리가 다시 후원 상점으로 시선을 돌렸다.

[2단계 물품을 구매할 수 있습니다!]

[2레벨 재능의 구슬(순환) : 378,000원]

* 1레벨 [순환]을 익혀야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역시.'

헨리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2레벨 재능의 구슬.

오늘 얻은 재능을 다음 단계로 키울 수 있단 의미였다.

'문제는 가격과 효율이겠지? 37만8천 원이라. 1레벨 재능의 4배 수준이야.'

만약 효율도 그에 준한다면?

고민 없이 구매할 수 있을 터.

'하지만 모르는 일이고.'

헨리 자신에겐 마나와 관련된 어떤 재능도 없다는 게 확실시된 상황.

그렇다면 다른 재능들도 '빠짐없이' 구매해야 한다는 의미가 된다.

[1레벨 재능의 구슬(방출) : 99,000원]

[1레벨 재능의 구슬(유지) : 148,000원]

[1레벨 재능의 구슬(결속) : 48,000원]

...

목록을 주르륵 넘겼다.

마나 활용의 재능을 담은 1레벨 구슬은 이미 구매한 [순환]을 포함한 여섯 종류.

값은 도합 50만 원 정도였다.

하지만.

[1레벨 재능의 구슬보따리]

[499,000원 → 439,000원]

[이미 보유 중인 구슬이 있습니다.]

[할인이 적용됩니다.]

다행히 이곳엔, 묶음 상품이 있었다.

***

기사의 왕국 발라란.

헨리의 모국을 일으켜 세운 초대 국왕은 가장 용맹한 기사 중 한 명이었다.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모두의 앞에 설 수 있기에 가장 고귀한 것이라고. 당시의 귀족들께선 전장의 어느 곳에 있었냐는 질문을 항상 받으셨다고 들었습니다."

명예는 용맹에서 비롯된다.

그 표현이야말로 초대 국왕이 가장 사랑하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실상 당시의 기사는 '기사(騎士)'라기 보단 '전사(戰士)'에 가까웠고.

허나 건국왕 사후.

그 아들이 국왕의 자리에 올랐을 땐 시대가 바뀌었다.

전쟁은 생존을 위한 것이 아니었고, 백성들은 불안정하나마 평화를 누렸을 정도로.

"기사도가 처음 정립된 것이 그 시기였습니다."

2대 국왕은 수하들의 용맹만을 우선하지 않았다. 안정된 국가를 위해 필요한 건 무장들만이 아니었으니까.

시대가 지나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다.

지금 헨리가 배우고, 실천하는 기사도는 삼백 년 전의 것과는 사뭇 달랐다.

[퍄퍄... 중세뽕이 차오른다...]

[아카데미는 언제 만든거에요??]

"아카데미의 역사는 백 년 가까이 되었습니다."

[ㅋㅋ역사와 전통의 아카데미고]

[그럼 사실상 지금 기사들은 다 여기출신아님??]

[학연으로 비비는건 힘들겠네ㅋㅋㅋㅋ]

"학연... 예, 그렇습니다. 현재 발라란의 기사님들은 절반 이상이 아카데미에서 공부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른 경우도 있나봐요?]

"왕국법 상 백작 이상의 귀족께선 직권으로 기사직을 서임(敍任)하실 수 있습니다."

같은 귀족이라도 백작급부턴 그 위세가 달라졌다.

지을 수 있는 성의 규모, 주어지는 영지의 넓이, 육성할 수 있는 사병의 수부터, 기사 서임권의 유무까지.

차이가 발생한 이유는, 그들이 '국왕의 기사'이기 때문이었다.

"건국왕께선 직접 지휘하셨던 기사들에게 백작 이상의 작위를 하사하셨고, 그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겁니다."

물론 지금은 그때와 세상이 달라졌다.

전쟁은 드물었고, 전장에 일반 귀족들이 직접 서는 일은 더더욱 그랬다.

그러나 그 의미만큼은 설령 국왕이라도 감히 건드릴 수 없는 부분이었다.

[캬ㅋㅋ 국왕의 기사ㅋㅋ]

[그럼 요즘도 귀족되기 가능?? 일반 기사들이?]

[자작까지만 된다는뜻인듯? 맞나?]

흥미롭게 듣던 마법사들이 질문했다.

저게 바로 헨리가 하려던 이야기였다.

"맞습니다. 발라란에서 작위를 받을 수 있는 건 오로지 기사뿐이고, 아무리 대단한 공을 세워도 기사가 아니라면 귀족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헨리가 필사적으로 아카데미에 붙어 있었던 것이다.

온갖 조롱과 멸시를 견뎌가며, 단지 카밀턴 자작가를 일으키겠다는 일념만으로.

[기사님은 자작 가문이었죠? 자작은 기사 못뽑나?]

[그러네. 그럼 사병도 못키워요? 기사만 못 쓰는 거죠?]

"평민을 기사로 서임하는 게 불가능합니다. 단 이미 기사로서 활동하는 이를 거두는 것은 가능합니다. 자작 역시 귀족이니까요."

[근데 기사만 귀족 될 수 있는 거면 마법사들이 반발하진 않어요??]

"아, 그건."

순간 헨리는 당황하고 말았다.

상대는 마법사.

세상 물정에 어두운 나머지 나온 질문일 테지만, 자칫 불쾌감을 줄 수도 있는 부분이었으니까.

"사실상 작위만 드릴 수 없을 뿐, 발라란은 마법사님들을 결코 홀대하지 않습니다. 또한 제가 알기로 궁정 마법사이신 하인리히님께선...."

헨리가 설명했다.

말이 기사만 작위를 준다는 거지, 사실상 마법사들에 대한 대우도 귀족이나 별반 다를 바 없다고.

특히나 역대 모든 국왕이 마탑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며, 상당수의 마법사들이 그러한 명예보단 마법적 성취에 관심이 많다는 사실까지.

"또한 전장에서 마법사님들의 안전이 위협받기라도 할 땐 기사들이 기꺼이 목숨을 던지며...."

[ㅋㅋㅋㅋㅋㅋㅋ]

[아~~~ 누가 우리 기사님 자극했어!!!!]

[기겁한거 개웃기네ㅋㅋㅋㅋ]

[이거 진짜 컨셉 맞음? 아닌거같은데?]

마법사들이 헨리를 진정시켰다.

조금 더 눈치를 보던 끝에야 헨리는 다시 정상적인 대화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렇기에 제가 반드시 기사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드렸던 것입니다. 또한 아카데미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둔 수련생은, 이후 우선적으로 공을 세울 기회가 주어집니다."

[전쟁 없다고 하지 않았어요??]

"전공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어떤 일에서건, 왕국에 도움이 된다면 그 공을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가령 특정 영지를 위협하는 몬스터 퇴치라든가, 한 발 더 나아가 몬스터들의 둥지를 토벌한다든가.

굳이 타국과의 전쟁이 아니더라도 기사들이 활약할 곳은 많았다.

[그럼 시험은 뭘로보는데요? 검술?]

[마나 쓰는 검술 아님?]

"시험의 종류는 다양합니다. 각 학기 말에 종합 평가가 이뤄지나, 그게 가장 중요한 시험은 아닙니다. 예정된, 혹은 예고 없이 이뤄지는 모든 시험은 빠짐없이 중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그럼 저 헛간 탈출할수 있는거네요?]

[진짜 저기만 벗어나도 감개무량할듯ㅋㅋ]

[이젠 그정도는 아니지않아요? 이제 마나 쓰잖아요ㅋㅋ]

[그럼 첫시험은 언제임? 수업좀 듣고?]

"학기 시작 후, 바로 첫 번째 시험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아카데미의 수련생들은 학기 말, 학기 초에 한 번씩 시험을 치러야 했다.

굳이 짧은 간격에 두 번씩이나 치르는 이유는, 그때의 성과가 요행이었거나, 컨디션이 좋지 않았을 경우를 대비해서 그런 것이었고.

[ㅋㅋ진짜 튜토리얼이었누]

[맞네ㅋㅋㅋ 그 시험 없으면 F반도 못가는거잖음ㅋㅋ]

[생각해보니 숙소도 특별제작이었네요ㅋㅋㅋㅋ]

[그럼 방학 끝나고 바로 시험임?]

"예, 학기가 시작한 즉시 치러집니다. 그러니까, 오늘을 포함해 이틀이 남았군요."

다른 수련생들에겐 별반 의미도 없는 시험.

하지만 밑바닥인 헨리에겐 결코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어떤 시작점을 만드느냐에 따라 하나의 학기가 통째로 결정되는 셈이었으니까.

'반드시 올라가긴 하겠지.'

하다못해 마나를 다룰 수 있게 되었다는 것만 보여도 지금보단 훨씬 상황이 나아질 터.

그러니까 중요한 건.

'올라가되, 얼마나 올라가느냐.'

벌어질 변화의 폭이었다.

성적이 뛰어나면 뛰어날수록 좋다는 건 자명한 일.

현재 헨리에게 주어진 최선의 선택지 역시, 명확했다.

[1레벨 재능의 구슬보따리(마나)]

[499,000원 → 439,000원]

[이미 보유 중인 구슬이 있습니다.]

[할인이 적용됩니다.]

'반드시 저걸 사야만 해. 시험을 치르기 전에.'

그러려면 방송의 성과를 충분히 올려야 할 터.

다행히 헨리에겐.

[홍보 배너를 적용합니다.]

[즉시 적용되었습니다! 효과가 한 시간 동안 지속됩니다!]

2차 추가 보상이라며 받았던 대마법사의 선물이 있었다.

***

'정말 효과적인데?'

배너를 적용하고 30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헨리는 그 효과를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효과적이었던 건 홍보 배너만이 아니었다.

<'어화둥둥'님이 1,000원 후원!>

<"열바퀴 더 돌면 만원!!!">

"바로 이어서 시작하겠습니다."

얼마 전부터 꾸준히 반복해 왔던 육체 단련.

정확히 정해진 개수만큼 훈련하는 헨리의 모습은, 일부 시청자들의 가슴 속에 불을 지폈다.

<'어화둥둥'님이 10,000원 후원!>

<"체력 아직 남으셨죠??????">

"예, 아직 남았습니다."

<'어화둥둥'님이 1,000원 후원!>

<"팔굽혀펴기 100개 만원 가즈아~!">

미션이라고 했다.

특정 조건을 제시하고, 달성했을 땐 그에 걸맞은 대가를 지불하는 방식.

당연히 헨리로선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시작하겠습니다."

착실히 쌓여 가는 후원금.

헨리는 애써 기쁨을 감춘 채 미션을 이행했다.

원래라면 아무런 조건 없이, 그저 매일같이 해 오던 훈련을 반복하는 것으로 끝났을 텐데.

이제는 헨리에게 훌륭한 조력자까지 있었다.

[기사님!!! 좀 힘들어하는 모습 보여주시는게 더 좋아요!!!]

"저는 전혀 힘들...."

[말씀하지 마시고!!! 이거 매니저 채팅이에요!! 기사님만 보실수있는!!!]

[저도... 있읍니다...]

[포포리쟝님 말씀이 맞읍니다... 힘들어하시면 더줄것...]

두 명의 매니저 덕분에, 헨리는 후원금을 쏟아 붓는 마법사들의 심리 상태까지 파악할 수 있었다.

'내가 지친 모습을 보려는 거라고 했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음, 이제 한계가 온 것 같습니다."

<'어화둥둥'님이 1,000원 후원!>

<"하지만??? 100개당 만원이라면???">

"하겠습니다."

이번에도 매니저들이 옳았다!

헨리는 적당히 거친 호흡을 연기했고, 마법사들은 만족했으며, 만족은 재차 긍정적인 성과로 이어졌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에너자이저야??????]

[방송컨셉 개신박하네ㅋㅋㅋㅋ]

[!!!컨셉공지!!! 헨리 카밀턴. 발라란 왕실 아카데미의 1학년 수련생이며, 철저하게 캐릭터 컨셉을 지키고 계십니다. 설정상 마나를 다룰 수 있는 재능은 없으며...]

[진짜 직접 하고있는거임?? 캐릭터가 움직이는게 아니고???]

[와 어케 또 하네 저걸ㅋㅋㅋ]

[저희 기사님 많이 예뻐해주세요!!!!!]

가히 폭발적인 채팅창 반응.

자낳괴니 뭐니 하는 의문의 표현이 있었으나, 헨리는 묵묵히 주어진 미션만 완벽히 수행했다.

그리고.

[홍보 효과가 종료되었습니다.]

고작 한 시간짜리 홍보 배너가 종료되었을 때.

[구독 : 102]

[구독자 100명 달성!]

['구독' 3차 목표를 달성했습니다! 추가 보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보유 후원금 : 121,000원]

헨리는 위의 성과를 거둬 내는 데 성공했다.

[이 기사 체력이 대단하다!]

[땀흘려 버는 돈의 가치ㅋㅋㅋㅋㅋ]

[ㄹㅇ이건 택배 상하차랑 비빈다고 본다ㅋㅋㅋㅋ]

홍보 효과 종료와 비슷한 시점에 미션도 끝났다.

헨리는 얼굴을 타고 줄줄 흐르는 땀을 훔쳤다.

거의 땀으로 목욕을 한다는 말이 과장이 아닐 정도.

하지만 놀랍게도, 헨리는 조금도 지치긴커녕 상쾌함마저 느끼고 있었다.

사실 훈련 강도만 따졌을 땐 오히려 아직도 부족한 감이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여기서 멈춰야겠지.'

매니저들이 추천하지 않았던가.

정해진 개수만 하되, 미션이 들어올 때만 훈련량을 늘리라고.

'또 검술 수련에서도 비슷한 흐름을 기대할 수 있을 거라고 했지.'

상상만 해도 흐뭇한 상황.

"이제 연무장으로 이동하겠습니다."

[!!!공지!!! 오후 네시부터 검술 수련 컨텐츠가 진행됩니다!]

채팅창 매니저.

'포포리쟝'이 타이밍 좋게 설명해준 걸 확인하고, 헨리는 연병장 계단을 올랐다.

BJ소드마스터

12화. 루소(1)

학기 시작을 고작 이틀 정도 남겨 둔 시점.

수석 교관 알렉스는 아끼는 제자를 데리고 개인 수련장을 벗어났다.

아무리 왕립 아카데미라지만 교관마다 아끼는 제자는 있기 마련이었고, 뛰어난 인재란 교육자를 쉬지 못하도록 하는 법이었다.

'조금만 더 가르치면 조만간 싹을 틔우고도 남을 녀석이야.'

알렉스 역시 기사이기 이전에 교육자였다.

처음 이곳에 들어왔을 땐 모르겠으나, 지금에 와선 생각이 완전히 바뀌고도 남은 상황이었다.

지금 알렉스에겐 스스로의 명예보다 곁에서 졸졸 따라다니는 제자의 미래가 몇 배는 중요한 일이었다.

"잊지 마라. 실수만 하지 않는다면 네 실력은 충분해."

"예, 교관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제자의 힘이 가득한 대답에 알렉스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어제까진 자신의 개인 연무장에서 제자를 가르쳤으나, 오늘은 굳이 모든 수련생이 사용하는 연무장으로 제자를 데리고 나왔다.

이유는 간단했다.

학기가 시작되자마자 치를 시험에서의 긴장을 풀어 주기 위해서.

순수하게 실력을 늘리는 덴 독립된 공간이 낫지만, 그런 만큼 압박감도 심해지는 법이었다.

다른 사람이 있건 없건 공개된 공간이라면 심리적인 압박감은 훨씬 나아질 테니까.

'단지 장소만 바뀌어도 훨씬... 음?'

알렉스가 눈을 가늘게 떴다.

연무장에 누군가 있는 것 같았다.

'이런 시간부터 훈련이라니.'

누군지 모르지만 훌륭한 자세다.

거기까지 생각하고 다가서려다가, 알렉스가 멈칫했다.

'아, 설마?'

당장 며칠 전의 일이 생각난 탓이었다.

홀로 연무장에 지쳐 쓰러져 있던 헨리와, 그에 안타까워하던 루소의 모습.

'조심해서 나쁠 건 없겠지?'

알렉스는 일부러 걷는 속도를 올렸다.

제자보다 몇 걸음 앞장서서 연무장에 도착했고, 내부를 들여다본 그는 눈썹을 가운데로 모아야만 했다.

'헨리일 거란 추측은 옳았지만, 이 상황은 뭐지?'

그를 놀라게 한 건, 목검을 이리저리 휘두르는 헨리 카밀턴의 모습이었다.

'마나를 다룰 수 있게 되었다고?'

"교관님?"

"멈춰. 거기서 대기하도록."

"예? 아, 옙."

의아한 표정의 수련생이 뒤로 물러났다.

'이 녀석 기술이나 다듬어 주려고 왔더니, 이런 걸 보게 될 줄이야.'

알렉스는 짐짓 심각하단 표정을 지어 보였다.

"훈련은 잠시 후로 미루지. 가서 루소를 좀 데려와줄 수 있겠나? 안 온다고 하면, 내가 정말 급히 찾는다고 강조해."

"옙!"

수련생이 황급히 멀어졌다. 다른 교관이었으면 모르겠으나, 알렉스 역시 루소처럼 헨리에게 악감정이 없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소문이 퍼져서 좋을 건 없겠지.'

아니, 퍼지더라도 최소한 루소가 먼저 알 자격은 있었다. 애초에 연무장에서 대놓고 수련하고 있다는 상황 자체가 '비밀'은 아니란 의미니까.

'이 녀석이 마나를 느끼게 될 줄이야. 하지만 뭐라고 떠들어 대는 건지.'

귀에 마나를 집중시키려다가 멈추었다.

늘 가벼운 듯 구는 그였으나, 남의 비밀을 엿들을 만큼 어긋난 성격은 아니었다.

알렉스는 문을 지키듯 버티고 섰다.

곧 저만치서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인영이 보였다.

'항상 이러니저러니 툴툴거려도 이럴 때 보면 참 좋은 친구라니까?'

급하다는 동료의 한 마디에 저렇게까지 달려와 줄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알렉스."

탓-.

루소가 알렉스의 앞에서 멈추었다. 그리 빨리 달렸음에도 흐트러짐 하나 없는 모습이었다.

그 성의에, 알렉스는 보답했다.

"안에 자네가 아끼는 녀석이 있어."

"헨리 말이겠군. 설마 괴롭힘을... 아니, 그런 거라면 나를 부를 것도 없이 자네가 먼저 막았겠지."

"직접 봐."

알렉스가 곁으로 비켜섰다. 미간을 좁힌 채 루소가 내부를 들여다보았고, 흠칫 굳었다.

천천히 고개를 돌린 그의 시선은, 정확히 알렉스가 기대했던 종류였다.

"거봐, 급한 일이랬지?"

***

타고난 감응력의 상승.

그건 불가능한 일까진 아니었지만, 그리 흔한 일도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감응력은 '재능'의 영역에 속한다.

그러니까, 될 놈만 된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 되었을 정도로.

하지만 이따금 그런 정설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지금 루소는 헨리가 그런 경우라고 확신했다.

"언제 마나를 느꼈지?"

"이틀 전입니다."

"길을 뚫은 것은?"

"어제의 일입니다."

"고작 하루 만에 이런 수준에 이르렀단 말이군."

감탄해 마지않을 일이었다.

헨리 카밀턴의 감응력은 상승했고, 심지어 고작 하루 간 수련한 성과라곤 믿을 수 없을 만큼 뛰어난 활용을 보이고 있었다.

"잠시 손목을 볼 수 있겠나?"

"...예."

슬쩍. 루소는 헨리의 손목 위로 검지와 중지를 얹었다. 혈관처럼 생성된 길을 타고 흐르는 마나. 그 흐름을 가늠했고, 확신했다.

'이 녀석은 천재다.'

타고난 감응력은 바닥일지도 모른다.

허나 최소한의 자격.

즉 마나를 느낄 수만 있었다면, 진즉 천재라고 불리고도 남았을 것이다.

'전신의 길을 뚫었군. 놀라울 정도야. 이게 고작 하루 만에 벌어진 일이라니.'

일반적으로 처음 길을 뚫은 수련생의 경우.

그 길은 불안정하고, 가늘었다.

즉 실질적으로 다룰 수 있는 마나량도 턱없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어느 순간 실 끊어지듯 마나의 공급이 끊길 수도 있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이건.'

헨리의 길은, 최소한 몇 달은 수련한 학생과 비등할 정도였다.

전신의 길이란 마치 근육과 같아서 훈련을 거듭할수록 굵고, 튼튼해지는 것이었으니까.

"훈련에 특별히 참고한 것이 있었나?"

"예, 파이크 교관님께서 수업하셨던 내용을 복기했습니다."

"그것뿐이라."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다.

헨리는 자신의 수준을 제대로 가늠조차 하지 못한 게 분명했다.

'나라도 그랬겠지.'

헨리는 3년간 무기력한 수련생으로 살아왔다.

믿을 만한 동료도, 의지할 스승도 없는 채로.

비교할 대상이 없으니, 당연히 아무런 기준도 없는 것일 터.

"우선 수련부터 마무리하도록. 나는 조금 뒤에... 아니지. 장소를 옮기는 게 좋겠군."

루소는 복잡한 표정이었고, 헨리는 갑작스런 제안에 어리둥절한 얼굴이었다.

두 사람은 연무장을 벗어났다.

***

왕립 아카데미의 교관들은 그런대로 대우가 괜찮은 편이었다.

비록 기사로서의 삶에선 낙오한 이들이었으나, 결국 그들의 손끝에서 새로운 기사들이 태어난다는 것을 국왕이 알고 있어서였다.

특히나 수석 교관.

그들에게, 아카데미에선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이곳에 있도록."

"알겠습니다."

"마저 수련하란 의미다."

"...감사합니다."

헨리의 눈이 놀람으로 동그래졌다.

이곳은 루소의 개인 연무장이었으니까.

기사의 생명이라는 무구만큼은 아니었으나, 개인 연무장 역시 함부로 남을 들이지 않는 공간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일정 수준 이상의 기사라면 수련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무언가를 '훔칠' 수 있었으니까.

"곧 돌아오지."

헨리를 뒤로하고 루소가 밖으로 나섰다.

기다리던 알렉스가 다가왔다.

"내가 제대로 봤지?"

"제대로 봤더군. 혹시 자네 제자는 저 모습을...."

"이 친구야, 자네가 저 녀석에게 가진 마음을 아는데? 걱정하지 말라고. 분명 지금까지 본 건 나뿐일 거야."

확신의 근거는 간단했다.

아직 이 아카데미에 소문이 퍼지지 않았으니까.

만년 열등생인 헨리 카밀턴이 바뀌었다?

누구라도 관심을 가지고 떠들어 댈 만한 가십거리다.

"그래서, 어떻게 된 건데? 갑자기 벼락 치듯 각성이라도 했다던가?"

반쯤 장난이었고, 또 반쯤은 진심이었다.

그러나 알렉스 입장에선 기가 차게도, 루소는 고개를 끄덕였다.

"허, 정말이란 말이지?"

"어차피 곧 알려질 테지만, 첫 시험 때까진 비밀로 해 주게. 사흘 전에 마나를 느꼈고, 어제 첫 길을 뚫었다더군."

"천재란 소리야?"

"그런 것 같네."

"하필 감응력만 없어서 그 재능을 발휘하지 못했던 거고?"

"지금 생각하기론."

"알려지면 배를 부여잡고 뒹굴 것들이 한둘은 아니겠어."

조롱의 대상이 한순간에 성장했고, 심지어 그 재능이 압도적이란 것까지 알려진다면.

당연히 안 좋게 보는 시선이 압도적일 것이다.

특히 능력이 없을 때라면 모를까, 일단 '경쟁 상대'에 오른 순간부턴 직접적인 견제까지 가해 올지도 몰랐다.

"주의하지. 그래서 어쩔 생각이야? 물론 대충 짐작은 가지만."

"이제라도 내가 해야 할 일을 해야겠지."

"그 루소가 직접 가르치는 학생이라니. 시기하는 놈들이 두 배는 많아질 텐데."

"그런 것 따위에 발목 잡힐 녀석이었다면 여태까지 버틸 수도 없었겠지."

"흠."

알렉스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건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말이었으니까.

아마 헨리가 겪었을 조롱들은, 알렉스의 입장에선 제대로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뭐, 축하해야겠지. 솔직히 나는 크게 신경도 안 쓰던 녀석이지만. 동료의 기쁨은 곧 나의 기쁨 아니겠어?"

"자네 덕분에 늦지 않았어. 진심으로 감사하네."

알렉스가 씩 웃었다. 그가 루소를 진짜 동료라고 느꼈듯, 루소 역시 자신을 그렇게 생각하는 게 보여서였다.

"방해꾼은 이만 물러나도록 하지. 아무튼 시험 때까진 입 꾹 닫고 있을 테니, 자네는 즐거운 시간 보내라고. 당분간 술자리에서 얼굴 보긴 힘들겠어."

"아마도. 이해해 줘서 고맙네."

"고맙다는 말은 한 번씩만 해. 수고하라고."

휘적휘적.

대충 손을 내젓고, 알렉스는 자리를 떴다.

'헨리 카밀턴이 마나를 느꼈다라. 하물며 천재란 말이지.'

그 사실에 알렉스가 느낀 감정은 단순한 흥미에 불과했다.

하지만 다른 이들에겐 아닐 터.

'조만간 재밌는 그림이 여럿 나오겠군.'

술자리에서 나눌 수 있는 대화거리가 많아진다면, 알렉스로서도 반길 만한 일이었다.

구경꾼의 입장에서, 변화란 항상 흥미로운 사건들을 낳기 마련이었으니까.

***

"예, 그분이 루소 교관님이십니다. 그리고 일단 마법사님들의 말씀을 따르긴 했습니다만, 루소 교관님은 정말 믿을 수 있는 분이십니다."

[아니ㅋㅋㅋ 어차피 이해를 못한다니까요??]

[NPC가 방송을 어케알아!!!!]

[기사님 제발 저희 믿어주셈. 말해봤자 의미가 없어요 의미가ㅋㅋㅋ]

헨리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채팅창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

연무장에서 루소와 만났을 때, 시청자들은 한 마음 한 뜻으로 뭉쳐 '루소에게 방송을 언급하지 말라'고 권했다.

당연히 헨리는 마법사들의 사정이 있겠거니 하며 순순히 따랐던 것이고.

하지만.

"도대체 NPC가 무엇입니까?"

계속해서 언급되는 'NPC'라는 표현만큼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기사님 빼고 다요!!]

[ㅋㅋㅋ아니 이걸 진지하게ㅋㅋㅋ 진짜 돌겠네~!]

[기사님 빼고 다른사람은 다 NPC임. 그 사람들한텐 아무리 방송이 어쩌고 마법사가 어쩌고 말해도 못 알아들어요!!]

"아."

그제야, 헨리는 마법사들이 이러는 이유를 깨달았다.

다분히 마법적인 이유였다.

모종의 장치로 인해 헨리 외의 사람들은 이 '방송'의 존재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의식에 괴리가 생긴다거나... 그런 조치라도 해 둔 건가?'

하여간 그 말이 사실이라면, 마법사들의 권유는 타당했다.

"감사합니다. 말씀을 이제야 이해했습니다."

[휴~~~~]

[이제 좀 살겠네ㅋㅋㅋ]

[근데 루소도 기사임? 수석교관이면 일반 기사는 아닌거죠?]

"교관님들 중 기사로서의 실력이 가장 뛰어나시거나, 아카데미에 오시기 전에 세우신 공로를 인정받은 경우입니다. 루소 교관님께선 두 경우 모두 해당하시는 분이십니다."

[걍 그럼 대놓고 스승 NPC구나ㅋㅋ]

[이제야 슬슬 튜토리얼 진행하는 느낌 좀 나는듯ㅋㅋㅋ]

[그럼 쟤한테 검술 배우고 스킬 배우고 하는거? 마나 어쩌고도 좀 배우나요?]

"제가 알기로 교관님께선 정규 수업 외의 가르침은 지양하시는 분이십니다. 어쩌면 오늘 저를 부르신 것도 직접적으로 가르치시려는 의도보단...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그건 진심이었다.

헨리로선 루소의 마음을 짐작조차 할 수 없었으니까.

BJ소드마스터

13화. 루소(2)

'나를 안타깝게 여긴다는 건 알고 있지만.'

루소에 대해 헨리가 아는 건 딱 거기까지였다.

수석 교관 루소는 늘 해야 할 말만 꺼내고, 해야 할 행동만 하는 담백한 사람이었다.

이 아카데미에서 누구보다 기사도에 가까운 사람이 바로 루소였을 정도로.

'정말 내게 가르침을 주시려는 거라면 기쁜 일이겠... 아니, 아니지. 그래선 곤란한데.'

머릿속에서 깨달음이 번뜩였다.

지금 자신이 놓인 상황을 되새겼고,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떠올랐다.

지금 헨리 자신은, 수석 교관 루소의 가르침을 받아선 안 되는 상황이었다.

'그래선 방송을 제대로 진행할 수가 없잖아. 곤란한데.'

당장 헨리가 이 상황까지 온 게 누구 덕분이던가.

아카데미에서 유일하게 헨리를 지켜봐 주던 수석 교관 루소?

먼 곳에서나마 간절한 마음으로 성공하길 바라는 가족들?

그런 게 아니었다.

당장 생판 얼굴도 모르는 마법사들.

지금 헨리의 반응을 지켜보며 즐겁게 떠드는 이들이야말로 헨리가 마나를 다룰 수 있게 된 이유 아니던가.

지금 헨리는 꾸준히 방송을 진행하고, 후원받은 '돈'으로 재능의 구슬을 구매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당연히 루소에게 가르침을 받는 과정은 후원을 이끌어내기에 적절한 장면이 아닐 테고.

'물론 근간은 이 방송이란 걸 시작하게 해 주신 대마법사님이겠지만.'

헨리도 그쯤은 예상할 수 있었다.

마법사라고 다 같은 마법사는 아닐 터.

이 방송 자체를 조절하는 마법사는 이 '시청자'들과는 궤부터 다른 존재일 게 분명했다.

"마법사님들."

헨리는 결론을 내렸다. 이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저는 교관님의 제자가 되어선 안 됩니다. 그렇다면 지금처럼 방송을 진행할 수 없을 테니까요."

[그건 맞죠.]

[근데 진짜 아무말이나 하는거 다 인식하는거에요? 이상하다고 생각하나?]

[인공지능 수준이 너무높은데ㅋㅋ]

"마법사님들께서 제게 걸어 두신 장치를 감히 평가할 순 없겠습니다만, 분명 인식하실 겁니다. 파이크 교관님도 그러셨으니까요."

마나 연공실에서 만난 파이크는 그러했다.

만약 마법사들의 장치가, 혹은 대마법사 개인이 걸어 둔 장치가 절대적인 거였다면?

애초에 헨리에게 아예 관심을 보이지 않도록 하는 것도 가능했을 터.

하지만 헨리가 추측하기로, 이 마법사들이 할 수 있는 건 교관들이 '방송'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도록 해 둔 게 전부였다.

결국 헨리는 곧 찾아올 루소의 제안을 거절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였다.

"제가 뭐라고 말씀드려야 교관님께 불쾌감을 드리지 않고 거절할 수 있을지...."

애초에 상상조차 해 본 적 없던 상황.

스스로의 모습을 꾸며 내는 것엔 누구보다도 자신이 있었으나, 이런 경우엔 헨리로서도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판단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헨리에겐 고민할 시간이 많지 않았다.

"이런, 오셨습니다."

방문자를 알리는 소리가 연무장을 채웠다.

다행히 내부의 소리는 외부로 흘러나가지 않는 구조였고, 그래서 헨리도 마음껏 방송을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헨리의 당황한 기색을, 수석 교관 루소는 조금 다른 의미로 받아들였다.

'역시 불편했던 모양이군.'

자그마치 교관의 개인 연무장이다.

누구에게나 괄시 받던 헨리의 입장에선 사용하기가 부담스러웠을 터.

"중요한 순간을 방해한 게 아니라면 좋겠군."

루소는 진심으로 사과했다.

기사의 입장에서 '깨달음'을 얻는 순간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

설령 헨리가 그런 단계에 이르지 않았더라도, 최근 급격히 재능을 깨우친 걸 생각하면 우려할 만한 일이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겠지. 우선 축하하마. 선택을 굽히지 않겠다는 네 판단이 옳았다. 내 어설픈 조언을 따랐다면 이런 순간을 만끽하지 못했을 테니."

"늘 감사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시간 뺏을 생각은 없으니, 바로 본론으로 넘어가지."

꿀꺽. 헨리가 침을 삼켰다.

"오늘부터 언제든 이 연무장을 사용해도 좋다. 교관으로서 말하기엔 부끄러우나, 나는 최근 몇 년간 개인 수련을 행한 적이 없었다. 사실상 빈 공간이란 말이지."

그야말로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교관의 연무장을 자유롭게 사용하라니!

허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루소는 또 다른 말을 꺼내놓았다.

"또 학장께서 말씀하셨던 바, 모든 재능 있는 수련생에겐 반드시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하셨다. 설령 그 때가 조금 늦었을지라도 말이야."

헨리가 바짝 긴장했다.

저 뒤에 나올 말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아서였다.

"교관님, 정말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저는...."

"말을 끊지 말도록, 헨리 카밀턴 수련생. 아쉽게도 자네는 올해의 마지막 시험을 놓쳤지. 하지만 알다시피, 기회는 아직 남았어."

"...예."

"또한 그 시험 내용을 유출하는 것은 교관으로서 용납될 수 없는 행동이겠지?"

"그렇습니다."

"하지만 곤란한 일이야. 조금 전 말한 것처럼, 학장께선 재능 있는 수련생들에게 반드시 기회를 주라고 하셨으니."

[아니 잠깐만ㅋㅋㅋㅋㅋ]

[제자 삼겠다는게 아닌것같은데?ㅋㅋㅋㅋ]

[아니 무슨ㅋㅋㅋㅋ]

시청자들이 폭소하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루소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눈치 챈 듯 보였다.

사실, 그건 헨리도 마찬가지였다.

"두 가지 대원칙이 상충할 땐 수석 교관으로서 재량을 발휘해도 되는 일이라고 판단했다."

"...."

"물론 알려 주겠다는 말은 아니야. 단지 그런 것이지. 내가 헨리 네 입장이었다면, 나는 이런 식으로 훈련했으리라고."

수석 교관 루소.

한결같이 진짜 기사의 모습을 보이던 그는, 전혀 예상치 못하게도 지금 헨리에게 다음 시험의 주요 평가 항목을 알리려 들고 있었다.

***

"이래도 되는 건지."

루소는 허공을 보며 중얼거렸다.

헨리가 재능을 깨우친 건 분명 반가운 일이다.

노력이 보답 받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고, 헨리를 증거 삼아 루소도 다시 검을 쥐고자 하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하지만 시험 내용을 흘린 것은, 흠."

괜히 심경이 복잡했다.

후회해도 소용은 없을 터.

이건 단지 검증.

자신이 저지른 행동이 옳았는가를 되새기는 과정이었다.

"기사로서는 옳은 일이었다. 아카데미의 교관으로선 그리 자랑스러운 일은 아니겠지."

하지만 지금 루소의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헨리 카밀턴의 노력을 폄훼하던 이들의 얼굴을 떠올리고, 제 발로 나갔으면 좋겠다고 투덜거리던 학장의 얼굴을 떠올렸다.

이 아카데미의 주인이란 자는 오로지 성과에만 목숨을 건 사람이었다.

'헨리의 모습을 보고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하군.'

자존심을 세울지도 모른다.

성과는 중요하지만, 어설픈 성과라면 차라리 자존심을 지키는 쪽을 택할 테니까.

하지만 조금 전 루소는 직접 확인하지 않았던가.

헨리의 '재능'은, 결코 평범한 것이 아님을.

'그런 원석을 진흙탕에 처박아뒀었다니.'

루소는 조소했다. 저 생각은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안타깝게 생각했고, 조롱하는 이들에겐 분노하기도 했다. 그러나 루소가 한 건 거기까지였다.

'나 역시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

그저 지켜볼 뿐이었다.

헨리 홀로 살아남고자 발버둥 치는 모습을.

정말 부끄럽게도, 헨리는 그 사실마저 고맙게 여겨 주는 모양이었지만.

'그런 주제에 감히 가르칠 생각을 할 수 있을 리가.'

조금 전, 헨리에게 말을 꺼냈을 때.

헨리는 루소의 말을 끊으며 무언가 양해를 구하려 했었다. 그건, 루소도 알았다. 그 내용을 듣기 두려워 말하지 못하도록 했던 것이었고.

저는 가르침을 받을 수 없습니다.

헨리의 시선엔 그런 감정이 드러났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다."

뒤늦게나마 조그마한 도움을 베푸는 것.

그리고 그 사실에 아무런 생색도 내지 않는 것.

그게 바로, 루소가 알렉스에게 말했던 '교관으로서 해야 할 일'이었다.

혹시라도.

헨리가 먼저 도움을 요청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

해진 후의 아카데미는 어두웠다.

중간 중간 밝혀진 빛은 있었으나, 기본적으로 아카데미의 빛은 대부분 마법 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사용하는 사람이 없다면, 불은 켜지지 않는다.

그러나 수석 교관 루소의 연무장은 여전히 대낮처럼 밝은 빛을 뿌려대고 있었다.

그 안에서, 헨리 카밀턴은 시청자들에게 방금 일어난 일을 설명하고 있었다.

"직접적으로 알려 주신 건 아닙니다. 외부에 알려진다면... 솔직히 좋은 반응은 아니겠습니다만."

루소는 헨리에게 '훈련의 방향'을 제시했다.

특정 훈련에 힘을 싣고, 특정 훈련은 조금 뒤로 미뤄도 괜찮을 거란 식으로.

그러니까 그건, 사실상의 족집게 강의나 마찬가지였다.

[그게 알려준거잖아요ㅋㅋㅋㅋ]

[그럼 알려준대로 준비하면 되는거?]

[너무 치사한거 아님?ㅋㅋㅋㅋ]

헨리의 얼굴이 붉어졌다. 아까 자신에게 훈련 방향을 제시하던 루소도 이런 얼굴이었다. 두 사람 모두 말하고, 들으며 천장과 바닥만 바라보았으니까.

그러나 이유는 조금 달랐다.

루소는 스스로의 행동을 부끄럽게 여겨서였다.

헨리는 이 사실이 혹시나 외부에 드러나지 않을까 걱정스러워서였고.

'자존심 따윈 내려놓은 지 오래야.'

헨리에게 남은 동기는 오로지 하나.

어떤 일을 겪더라도 반드시 기사가 되어야만 한다는, 그래서 가문을 물려받아야 한다는 사실 하나뿐이었으니까.

"다른 수련생이라면 권해 주신 방식으로 성과를 낼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조금 다릅니다."

헨리 자신에겐 마나의 재능이 없었고, 루소가 제시한 코스는 방법을 안다고 수행할 수 있는 종류가 아니었다.

다행히 '구독'을 통해 마나를 쌓는 것 자체는 가능했지만, 다른 부분은 오로지 [재능의 구슬]을 사용해야만 하는 게 헨리의 현주소 아니던가.

[그럼 안다고 되는게 아니었네ㅋㅋㅋ]

[지금 줘도 못먹는 상황인거임??]

[너무아까운데ㅋㅋㅋ]

[일부러 저런건 아니죠? 기사님 상황 알고]

"루소 교관님께선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이 아카데미에서 제가 유일하게 믿고 따르던 분이니까요. 기사 외의 진로를 진지하게 조언해 주셨던 것도, 교관님을 포함해 두 분뿐이셨습니다."

[한명은 누군데요?]

"알렉스 교관님이십니다. 어쩌면 저도 마법사님들을 뵙지 못했다면 생각을 바꾸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루소의 연무장에서, 헨리 카밀턴은 시청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건 헨리에게 있어 정말 엄청난 사건이었으니까.

마나를 느낄 수 있던 것보다도, 수석 교관의 개인 연무장을 멋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 일개 수련생에겐 더더욱 충격적인 것이었다.

[진짜 조력자였나보네ㅋㅋ]

[이제 계속 여기서 수련하실 거에요?]

"예, 교관님의 호의를 거절할 순 없으니까요. 또 이곳에서 수련한다면 더욱 뛰어난 성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겁니다."

명색이 교관의 공간이다.

일반 수련생, 특히나 C반 이하의 수련생들을 위한 연무장과는 그 시설부터 달랐다.

이곳의 마나는 마나 연공실에 준할 정도였고, 배치된 도구는 하나 같이 최상품.

특히 이곳엔 진검을 비롯한 실전용 무기들도 몇 자루나 배치되어 있었다.

[기사라고 검만 쓰는건 아닌가보네ㅋㅋ]

[솔직히 검보다 랜스가 어울리는디 기사는]

[근데 왜 다 검으로 배움?]

[여기 세계관이 좀 다른거 아니에요?]

'마법사님들도 생각보단 자세히 아시는구나.'

채팅창 속 마법사들의 대화는 일찍이 헨리도 배웠던 부분이었다.

기사의 무기는 검이 전부가 아니다.

개중엔 취향에 따라 창을 쓰는 경우도 있었고, 심지어 도끼와 같은 무기도 간혹 있을 정도였다.

자신의 손에 맞는 무기를 선택하는 것이야말로 무기술 수련의 첫 단계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가장 보편적으로 쓰이는 무기는 검입니다. 지금 보시면...."

슬쩍.

헨리가 적당한 길이의 롱소드를 한 자루 집었다.

정신을 집중했다.

마나가 전신을 타고 맹렬히 돌았다. 이내 팔을 타고, 검에 실리기 시작했다.

위태롭게 흔들리는 기운이 검 끝으로부터 길게 뻗어 나왔다.

"이게 바로 가장 많은 기사들이 검을 사용하는 이유입니다."

BJ소드마스터

14화. 패키지(1)

[ㅋㅋ뭔가 더 세진것같은데??]

[스킬 배우고 달라진거같음. 숙련도가 부족했던 건가?]

[와 근데 저거 유지만 가능하면 창보다 더 길어지겠는데?]

"정확히 보셨습니다."

시청자들의 의문은 온당했다.

다양한 무기류 사이에서 검이 가장 큰 사랑을 받는 확실한 이유가 있었으니까.

창의 장점은 압도적인 사거리에서 나온다.

상대의 검이 사정권에 들기도 전에 찌르기로 선공을 가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검에 마나를 싣는다면?

그 차이를 단번에 극복하고도 남을 정도다.

"또한 창은 너무 길고, 그렇다 보니 실을 수 있는 마나의 형태가 제한적입니다. 하지만 검의 경우엔 가령 이런 식으로."

마나의 형태가 바뀌기 시작했다. 여전히 불안했으나, 꿈틀거리던 마나의 형태는 흡사 도끼날 같은 상태에 이르렀다.

"활용할... 아, 이런. 죄송합니다. 아직 숙련도가 부족해서. 아무튼 이런 식으로도 활용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검이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이죠."

도끼날 형태를 오래 유지하기엔 아직 헨리의 능력이 부족했다.

다행히 시청자들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헨리가 그들 앞에서 처음으로 진검을 잡은 것이었으니까.

사실 루소의 조언은 큰 도움이 되지 못했으나, 이 연무장만큼은 지금 헨리에게 매우 필요한 것들 중 하나였다.

물론 그 이유는 자유로운 훈련보단, 지금처럼 타인을 신경 쓰지 않고 방송에 매진할 수 있기 때문이었지만.

[구독 3차 추가 보상이 지급됩니다!]

* 무기 숙련도 시스템이 개방됩니다.

* 실시간으로 무기술의 숙련도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사용하는 무기의 품질, 종류, 상황에 따라서 숙련도 보너스가 주어집니다.

[검술]

*숙련도 : 3레벨, 43%

*숙련도 100% 달성 시 4레벨로 성장합니다.

[창술]

* 숙련도 : 1레벨, 12%

* 숙련도 100% 달성 시 2레벨로 성장합니다.

...

['수석 교관용 수련검'을 착용했습니다.]

[숙련도 보너스가 33% 증가합니다.]

구독자 100명을 채웠을 때 추가된 내용이었다.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건진 알 수 없었지만, 그 내용을 파악하는 덴 어려움이 없었다.

"이곳에선 검술 숙련도를 올리는 데 집중하겠습니다. 숙련도 보너스가 자그마치 33퍼센트나 주어지는군요."

[ㅋㅋㅋㅋㅋㅋㅋ 뭐야 컨셉깨진거임???]

[숙련도 보너스ㅋㅋㅋㅋㅋㅋ]

[와 저분이 이런말하니까 왤케어색하냐???ㅋㅋㅋㅋㅋㅋ]

"대마법사님께서 주신...."

[또마법사님 감사합니다!!!]

[편-안ㅋㅋㅋㅋ 이제야 좀 겜하는것같네 ㅋㅋㅋ]

굳이 다 말 할 필요도 없었다.

이들 역시 대마법사의 존재는 알고 있었으니까.

물론 그렇다기엔 다소 예의 없는 언행이 섞여 있었으나, 그건 마법사들 사이의 규칙일 터.

"지금 제 검술 숙련도는 3레벨, 43퍼센트입니다. 그리고 대마법사님께서 주신 선물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후원 상점을 제외한 시스템 이미지를 시청자와 공유할 수 있습니다!]

"여기, 이렇게. 보이십니까?"

[진짜 너무 행복하다]

[이런게 ㄹㅇ소확행이지ㅋㅋㅋ]

[사실 스킬창같은거 이제 개발 완료된거 아님?ㅋㅋㅋ]

<'루갈갈'님이 5,000원 후원!>

<"편-안ㅋㅋ">

[기사님!!! 공지에 설정 추가해둘게요!!!]

이제 시청자들은 헨리의 무기술 숙련도 현황을 함께 볼 수 있었다.

성장 상태를 시청자들과 공유할 수 있도록 대마법사가 배려해 준 것이었다.

"이제...."

시계는 이제 오후 여덟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루소의 등장으로 미뤄졌던 훈련을 마무리해야 했다.

"아홉 시까진 검술 수련을 진행할 생각입니다. 하지만 마법사님들께서 특별히 원하시는 게 있으시다면 그쪽을 우선으로 진행하겠습니다."

[ㄴㄴ없음]

[역시 진검 잡으니까 느낌이 다르네ㅋㅋ]

[뽑을 때 소리도 그때그때 다른듯. 사운드에 힘좀 썻나봄ㅋㅋ]

시청자들은 진검으로 펼치는 쇼를 원하고 있었다.

말없이, 헨리는 마나를 끌어올렸다.

***

오후 아홉 시.

"감사합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짧은 인사를 마지막으로, 헨리는 방송을 종료했다.

오늘도 여지없이 온몸은 땀으로 범벅이었다.

하지만 상쾌했다. 헨리는 검과 방어구를 손질하고, 기름칠까지 마친 후에 원래 자리로 돌려놓았다.

「원한다면 이곳에서 더 수련해도 좋다. 그 정도는 수석 교관의 권한으로도 충분하겠지.」

루소의 호의 덕분에 행동엔 여유가 있었다.

비록 이곳 연무장에서의 활동으로 한정되긴 했으나, 이제 헨리는 일찌감치 숙소로 돌아갈 필요가 없었으니까.

깔끔하게 정리를 마친 헨리가 바닥에 앉았다.

창밖의 밤하늘을 가만히 올려보았다.

'어색하네.'

원래라면 숙소에서 잠자리를 준비하고, 하루를 천천히 돌이켰을 시간.

아직까진 지금 놓인 상황이 어색하기만 했다.

'그래도 오늘은 성과가 있었지.'

사실 오늘을 포함해 며칠 만에 올린 성과라는 게 무색할 정도였다.

도합 130여 명의 구독자.

그 보상으로 주어진 '숙련도 기능'을 제대로 활용할 여건까지 확보한 게 현 상황이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건 이거지.'

바로 후원금. 또한 그것으로 후원 상점에서 구매할 수 있는 물품이 핵심이었다.

[보유 후원금 : 367,000원]

벌써 목표했던 물건 값의 절반이상을 모았다.

그리고 아까 루소가 흘리듯 얘기해줬던 시험 내용들.

그 모두는, 그 재능의 구슬보따리를 구매하는 순간 단번에 최고점을 얻어낼 수 있는 종류였다.

'잘만 하면 다음 단계... 아니, 그다음 단계 시험까지도 넘볼 수 있겠어.'

당연히 재시험의 수준은 해당 수련생의 마지막 시험 성적과 비슷하게 준비되었다.

만약 거기서 놀라울 정도의 성과를 낸다면?

자연히 다음 단계의 시험을 치를 수 있게 된다.

'반드시, 내일까지 충분한 후원금을 모은다. 어떤 수를 써서건.'

목표는 43만9천 원.

그리고 오늘의 일로 미루어봤을 때, 그건 충분히 모으고도 남을 만한 액수였다.

***

루소에게서 연무장을 제공받은 다음 날.

헨리는 아침이 밝자마자 루소의 개인 연무장으로 향했고, 늘 그렇듯 검을 잡고 휘두르기 시작했다.

평소와 다름없는 시작.

하지만 그런 헨리를 둘러싼 환경은 상당한 변화를 거쳐 낸 상태였다.

검술 '숙련도'가 상승하는 게 두 눈에 뻔히 보였고, '홍보 배너'를 통해 늘어난 시청자가 우르르 들어와 채팅을 올려 대고 있었으니까.

그 덕분에.

[보유 후원금 : 440,000원]

고작 오후 세 시쯤 되었을 때, 헨리는 목표했던 후원금을 가득 채울 수 있었다.

'드디어.'

기쁨의 환호라도 내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헨리는 참았다.

당장이라도 구매하고 싶다는 욕구를 억누르고, 늦은 저녁이 되었을 때 모두의 앞에서 공개할 생각이었다.

그때가 가장 많은 시청자들이 활동하는 시간이었고, 헨리가 실시간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야말로 시청자들의 가장 큰 즐거움이었으니까.

'...또 후원 상점을 이용했다고 말한다면 추가 후원금까지 발생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그리 생각하고, 헨리는 어깨를 으쓱했다.

'기사로선 부끄러운 일이겠지만 말이야.'

이건 광대나 지닐 법한 사고방식이었다. 놀라운 쇼를 보이고, 동전 몇 닢을 바라는 것이 광대였으니까.

그들을 천하다 여긴 적은 없었으나, 적어도 기사로서 지녀야 할 가치관과는 꽤나 차이가 있는 건 분명했다.

하지만 헨리는 개의치 않았다.

'자존심은 버린다. 명예 역시. 어쭙잖은 고집으로 주어진 기회를 놓치는 것만큼 멍청한 일도 없지.'

헨리는 스스로를 설득했다.

기사 수련생으로서의 명예와, 기사가 되어야만 하는 절실함을 각각 저울에 올렸다.

결과는 명백했다.

'루소 교관님조차 처음부터 이런 도움을 주셨던 건 아니었으니까.'

루소 역시 헨리를 단지 안타깝게 봤을 뿐이었다.

헨리가 마나를 느꼈고, 그 성장이 비정상적으로 빠르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구체적인 도움을 내민 것이고.

'내가 무언가 보여야만 그에 상응하는 무언가를 받을 수 있는 게 현실이야. 기사 수련생으로서도, 방송 화면 속의 헨리 카밀턴으로서도.'

설렘 탓인지 시간은 느리게 흘렀다.

두근거리는 감정을 감춘 채 헨리는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스케줄을 소화했다.

'구매는 오후 일곱 시쯤 하면 되겠지.'

경험에서 비롯된 결론이었다.

시청자들의 채팅에서 여유가 느껴지는 때였으니까.

또한 대마법사에 의해 방송이 강제로 종료될 때까지, 어느 정도의 여유가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그 전까진.

스릉.

'검술 훈련이라도 하고 있어야겠어. 숙련도라는 게 생긴 이후론 단순한 수련도 즐겁게 지켜보는 것 같으니까.'

루소의 검을 집어 들었다.

수석 교관을 위해 마련된 수련검은 선뜻한 예기를 흘렸다. 날카로운, 마치 상대가 무엇이건 벨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이 헨리의 마음속에 자라났다.

'이것도 많이 나아졌어.'

처음 이 검을 쥐었을 땐, 이유 모를 긴장감 탓에 식은땀마저 송글송글 맺혔을 정도였다.

다행히 헨리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무기의 품질이 과하게 훌륭합니다.]

[숙련도가 부족합니다.]

처음 이 검을 쥐었을 때 마주했던 메시지였다.

거기에다가 추가로.

[움직임이 둔화됩니다.]

[공격 실패율이 증가합니다.]

['검을 놓칠 확률'이 발생...]

...

구체적인 페널티까지도.

한 마디로 수준에 맞지 않은 검이라는 의미였다.

그런 만큼 숙련도가 상승하며, 점차 그 부담감이 줄어드는 것일 터.

[검술]

* 숙련도 : 4레벨, 17%

* 숙련도 100% 달성 시 5레벨로 성장합니다.

* 무기의 품질이 뛰어납니다. 추가 숙련도가 주어집니다.

* 훈련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입니다. 추가 숙련도가 주어집니다.

성과는 구체적이고 빠른 속도로 나고 있었다.

문구 내용으로 미루어볼 때, 루소의 연무장과 훈련검을 이용하는 게 실력 증진에 도움이 된다는 의미였다.

'아쉬운 건 이게 얼마만큼의 효율인지 알 수 없다는 거지.'

처음 이 검을 잡았을 때의 숙련도가 3레벨이었다.

숫자가 오르니 성장했단 건 알겠지만, 정확히 얼마나 실력이 늘어난 건진 알 수 없는 상황.

'또 확실한 건 이 숙련도가 얼마나 높아지건, 재능의 구슬이랑은 비교도 안 될 거란 거지.'

이미 순환의 구슬을 먹는 것만으로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 어떤 훈련도, 후원금으로 구매할 수 있는 구슬보다 의미가 없단 사실을.

'이젠 써 봐도 되겠지.'

헨리가 확연히 활발해진 채팅창을 확인했다.

시간은 일찌감치 정해 뒀던 오후 일곱 시.

"검술 수련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의 방송이 끝나기 전에 마법사님들께 보여 드려야 할 것이 있어서요."

헨리는 상황을 정리하며 마법사들의 주의를 모았다.

적당히 분위기를 잡았다.

마치 몰래 선물이라도 준비한 것처럼 기대하는 얼굴로.

물론 방송적인 면에서, 시청자들은 헨리의 머리 위에 있었다.

[기사님 왤케 신나셨어요ㅋㅋㅋㅋ]

[글고보니까 레벨업하실때 되지 않았음?]

[아ㅋㅋㅋ 후원상점ㅋㅋㅋㅋ]

[슬슬 돈쓰실 때 되긴 했죠ㅋㅋㅋㅋㅋ 요즘 후원도 엄청 터지던데ㅋㅋㅋㅋ]

"...정확히 보셨습니다."

헨리는 인정하고 말았다.

나름대로 머리를 쓴 것이었으나, 이쪽에서만큼은 자신이 마법사들을 따라갈 수 없었다.

[이번엔 뭐사세요? 저번게 순환이었나?]

[그때 1레벨이었죠? 2레벨 사시는거?]

"아닙니다. 2레벨 구슬도 존재하지만, 당장 제게 필요한 건 마나를 순환시키는 능력만이 아니니까요."

아쉽게도 후원 상점의 물품은 시청자들과 공유할 수 없었다.

시청자들에게 보여 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직접 구매한 후 보여주는 것뿐.

"제가 구매하기로 결정한 건 1레벨 구슬의 묶음 상품입니다."

[창렬겜 돌았냐고ㅋㅋㅋㅋㅋㅋ]

[묶음상품ㅋㅋㅋㅋ]

[패키지도있네ㅋㅋㅋㅋㅋㅋ]

[1레벨 재능의 구슬 보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정말 439,000원에 구매하시겠습니까?]

값비싼 물품인 만큼 사전 경고까지 이뤄졌다.

그리고 툭.

손에 들린 주먹만 한 보따리를 들어 보이며, 헨리는 한없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모두 다섯 가지 맛이라는군요. 바로 먹어 보겠습니다."

BJ소드마스터

15화. 패키지(2)

마나를 다루는 기사.

그들이 마나를 활용하는 방식은 단순히 검에 마나를 두른다거나 하는 것뿐이 아니었다.

수많은 활용법이 있었으나, 발라란 왕립 기사 아카데미에선 크게 여섯 가지 틀로 마나의 활용법을 분류해 두었다.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순환]이었다.

일단 체내에 마나가 다닐 수 있는 길을 뚫고, 얼마나 원활히 움직일 수 있느냐에 따라 이후 모든 기술의 효과가 달라졌으니까.

그다음 단계라 일컫는 것이 바로 [유지]와 [집중]이었다.

방식은 간단했다.

말 그대로 무언가에 마나를 덧씌운 채 활용하는 것이 [유지]이고, 필요시 하나의 점에 마나를 밀집시키는 것이 [집중]이었다.

가령 적의 공격을 견뎌야 할 땐 갑옷 전체에 마나를 두른 채 버텨야겠지만, 결정적인 타격의 기회에선 오로지 검에만 마나를 실을 수 있어야 했으니까.

그다음은?

[결속]과 [방출]이었다.

이제 이 단계부턴 기본기를 벗어났다고 할 수 있었다.

마나를 통해 대상을 떨어지지 않도록 한다거나, 필요한 경우 마나를 덩어리째 허공으로 날려 보내거나 하는 게 바로 두 가지 기술이었다.

[변형]은 당연하게도 가장 까다로운 기술이었고.

앞의 기술을 숨 쉬듯 사용할 수 있는 기사들도 [변형]만큼은 까다로워하는 경우가 많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은, 발라란 왕립 아카데미의 수련생 헨리 카밀턴에겐 적용되지 않는 일이었다.

'어이가 없군.'

그게 헨리의 첫 감상이었다.

[순환]의 재능을 제외한 다섯 개의 구슬.

헨리는 그 모두를 입에 동시에 털어 넣었고, 이내 다섯 개의 맛이 함께 느껴지는 경험을 해야만 했다.

짜고, 쓰고, 시고, 맵고, 떫은.

그 묘하디 묘한 맛의 파도 끝에, 헨리는 그 모든 재능을 단번에 얻어낼 수 있었다.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맥락 없는 한 마디.

흥미진진하게 지켜보는 마법사들에게 그리 말하고, 헨리는 곧바로 시연에 들어갔다.

"마법사님들께서 보실 순 없겠으나, 지금 마나는 제 전신을 타고 맹렬히 돌고 있습니다."

처음은 [순환].

장치를 예열하듯, 몸속에 생긴 길을 통해 마나를 두어 바퀴 돌렸다.

"그리고 지금 보시는 것이."

헨리가 검을 치켜들었다.

우우웅.

푸르스름한 마나의 막이 검을 둘러싸더니, 이내 전신의 갑옷으로 번져갔다.

"[유지]입니다. 수준이 얕아 두께 역시 얇군요.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마나를 사용할 수 없는 상대와는 압도적인 전투를 벌일 수 있을 겁니다."

압도적인 전투.

이건 과장된 표현이 아니었다.

마나가 실리지 않은 검은 이 위에 흠집 하나 낼 수 없었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드래곤볼인가??]

[이러다가 나중엔 날아다니기라도 하는거 아님??ㅋㅋㅋㅋ 마나를 두르면 이런 것도 할 수 있습니다 하면서ㅋㅋㅋ]

[ㄹㅇㅋㅋㅋㅋㅋ]

무어라 채팅이 올라오는 게 보였으나, 헨리는 그에 집중할 수 있는 정신 상태가 아니었다.

압도적인 희열이 전신을 가득 채우고 있었으니까.

이어 몸을 둘러싼 마나가 박동하듯 꿈틀거렸다.

"이것이 바로, [집중]입니다."

갑옷 위의 빛이 꺼졌다.

사라진 게 아니었다.

치켜든 롱소드.

푸르스름한 정도에 불과했던 검은, 이제 진한 푸른색으로 맹렬한 빛을 토해 내고 있었으니까.

"지금은 검에만 마나를 집중시켰으나, 치명적인 공격을 방어해야 할 때라면 제 갑옷에서 이런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겠죠. 능숙한 기사라면 모든 공방에서 쉼 없이 마나의 위치를 움직인다고 들었습니다."

아직 헨리에겐 꿈의 경지였다.

아니, 애초에 이 상황조차 헨리에게 있어선 꿈꾸던 순간 아니던가.

"...이어서."

이제 다음으로 넘어가야 할 차례였다.

희열의 정도는 점차 강해지고 있었다.

수년 간 바라 왔던 꿈을 마침내 이뤘고, 이보다 높은 곳에 이르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해진 상황이었으니까.

"또한 [결속]은...."

하지만.

"...교관님께서 오셨군요."

헨리는 강제로 가슴 속 불꽃을 꺼트려야만 했다.

방문자를 알리는 소리가 귀를 때리고 있었으니까.

현재 시간은 오후 7시 30분.

수석 교관 루소가 걱정되는 마음에 찾아온 것일 터.

[아 타이밍ㅋㅋㅋㅋ]

[왜 하필 지금인데!!!!]

[변형이 젤궁금했는데ㅋㅋㅋ 아ㅋㅋ]

열기가 식으며 마음의 여유도 살짝이지만 돌아왔다.

헨리는 그제야 채팅을 읽을 수 있었다.

'반응이 괜찮아.'

루소가 방문했다는 사실보다도 중요한 게 바로 이 마법사들의 반응이었다.

이들 덕분에 재능을 얻었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도 반드시 이들의 도움이 필요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 해도.

"잠시 채팅을 읽지 못할 것 같습니다. 미리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당장 찾아온 상황을 해결하는 게 순서였다.

수석 교관 루소.

이 장소를 빌려준 인물이자, 이 아카데미에서 헨리의 재능을 누구보다도 빨리 발견한 사람.

당장 그에게 얻을 가르침이 없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미 느끼지 않았던가.

아카데미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건 실력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곧 늘 그렇듯 무뚝뚝한 얼굴의 루소가 걸어 들어왔다.

"교관님."

"방해가 되었다면 사과하지."

"그렇지 않습니다."

루소는 어딘가 불편한 표정이었다.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지만, 차마 할 수 없는 그런 얼굴.

헨리는 선수를 치기로 했다.

"교관님께서 조언해 주신 대로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제 눈높이에 맞춰 주신 덕분에 이해하는 것에도 무리가 없었고요."

"네가 이론에 강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다행히 실전에 적용하는 데에도 능력이 충분했던 모양이군."

"신경 써 주신 덕분입니다."

루소는 다시 말이 없었다.

물론 하고 싶은 말은 많았다.

당장 내일이 시험이었으니까.

훈련의 성과가 얼마나 있었는지, 고작 하루 이틀로는 시간이 부족하지 않았는지, 당장 내일 있을 시험을 위해선 지금이라도 쉬어야 하는 게 아닌지.

하지만 그 모든 궁금증은 결국 오지랖이었다.

이전까지의 자신은 헨리에게 저런 질문을 건넨 적이 없었으니까.

그러나 다행히.

"음."

루소는 적절한 대화거리를 찾아낼 수 있었다.

"그 검은... 사용하기에 불편하진 않았나?"

헨리의 손에 들린 수련검.

저건 루소의 연무장에서도 나름 상등품에 속하는 물건이었다.

갓 벼려 낸 듯한 예기 탓에 검술에 조예가 없는 이라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목 뒤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많이 익숙해졌습니다."

역시.

헨리 카밀턴은 마나를 다루지 못했을 뿐, 검술 실력 자체는 몹시 뛰어난 수련생이었다.

"훌륭하군. 하지만 시험을 치를 때까진 검을 바꿔 드는 편을 권하마. 마나를 싣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고, 무기의 수준은 그 과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아, 그."

헨리가 순간 멈칫했다.

눈동자만 움직여 바라본 채팅창엔 헨리의 마음과 같은 내용이 올라오고 있었다.

[이미 성공한거 아니에요??]

[현질로 커버한거 아니었음?ㅋㅋㅋㅋ]

[무기 급 낮추면 수준이 더 올라가는건가??]

"혹시 마나를 싣기까지의 과정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한 번의 경험을 얻기까지가 괴로울 거다. 그 이후는 단지 훈련량에 따르겠으나... 왜 그러지?"

루소가 갸웃했다.

헨리의 표정이 무언가 어색했으니까.

"그, 사실...."

"...."

"이미 성공했습니다, 교관님."

"그래, 시도하는 건... 성공했다고?"

"예."

루소의 눈이 커졌다. 헨리의 덤덤한 대답을 들은 직후, 자신의 수련검과 헨리의 얼굴을 번갈아가며 바라보았다.

"마나를 싣는 데 성공했단 말이냐? 그 검에?"

"...예."

루소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헨리가 천재라는 건 알고 있었다.

단 하루 만에 전신의 길을 뚫어냈을 정도로.

하지만 길을 뚫는 것과, 검에 마나를 싣는 것 사이엔 하늘과 땅만큼의 간격이 있다.

"보여 줄 수 있겠나?"

"예."

대답과 거의 동시에.

루소는 헨리의 검을 가득 둘러싼, 충만한 마나를 보고 말았다.

그러니까, 정확히 검만 둘러싼 마나를.

"...의도한 건가?"

"예."

"하면, 검 외의 부위는?"

"할 수 있습니다."

검의 마나가 옅게 퍼졌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골고루 퍼진 마나의 벽에 루소는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고작 천재가 아니었군.'

이건 고작 천재라 불릴 수준의 재능이 아니었다.

역사적으로 이름을 널리 떨쳤던 기사들.

그들과 비견해도 부족할 정도였으니까.

'3년간 재능이 발현되지 못했다는 게 마음에 걸리지만... 그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겠지.'

마나를 느낀 지 고작 하루 만에 길을 뚫었다.

그러더니 다음 날엔 [유지]와 [집중]까지 물 흐르듯 해내고 있었다.

물론 수준 자체는 낮다.

하지만 그건 결국 물리적인 훈련량으로 성장시킬 수 있는 것 아니던가.

'단 한 번의 경험. 그 벽을 넘어서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밤낮없이 수련에 매진하던가.'

루소 역시 그중 하나였고, 이곳의 수련생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헨리는?

단번에 그 벽을 넘어선 채 루소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눈으로 말이지.'

모를 수밖에 없었다.

발이라도 담갔던 이라면 지금 벌어진 일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 알 수 있을 터.

하지만 헨리는?

고립된 채, 오로지 홀로 고된 길을 걸어왔으니까.

"...마나 활용법의 여섯 가지 길을 알고 있나?"

"알고 있습니다. 순환, 집중, 유지, 결속, 방출... 마지막이 변형입니다."

"그게 마나 활용의 총체라곤 할 수 없다. 하지만 근간임은 분명하지. 그 외의 모든 것은, 그 여섯 가지 기술에서 출발한다."

"예."

"너는 지금 순환과 집중, 그리고 유지를 보였다. 놀라운 일이야, 헨리. 실감이 나지 않겠지만, 지금 너는 이 아카데미의 어떤 수련생보다도 뛰어난 재능을 지니고 있다."

"교관님."

"말하도록."

"사실 아직 보여드릴 것이 남았습니다."

설명하던 루소가 헨리의 눈을 마주보았다.

"아직 남았다고?"

"예."

"...그것부터 보는 게 순서겠군."

애써 당황을 숨겼다. 태연을 가장한 루소의 앞에서, 헨리는 차분히 검을 들었다.

마나를 두른 검.

그 손잡이를 잡은 손을, 헨리가 쫘악 펼쳤다.

"...결속."

그리 중얼거리는 게 루소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마나로 기사와 대상을 잇는, 까다로운 기술이 지금 헨리가 펼친 것이었으니까.

심지어.

검과 손바닥의 거리가 살짝 벌어졌다.

"방출까지...."

결속보다도 까다로운 기술이었다.

이걸 자유자재로 다룰 수만 있다면 이론상 수십의 적을 상대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일 정도로.

또 다음 순간.

"...."

루소는 헨리의 검날이 휘어졌다는 걸 보고야 말았다.

이것이 바로 변형.

조악한 형태였으나, 일단 이걸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헨리는 '재능 있는 기사'의 반열에 올랐다는 평가를 받을 터였다.

물론, 그나마도 최소한 수년간의 뼈를 깎는 노력이 수반되었을 때의 이야기였고.

'천재... 천재라.'

이제 루소는 무슨 말을 건네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나름대로 조언 아닌 조언을 해주려 찾아왔으나, 지금 헨리가 보이는 모습은 그의 상상을 벗어난 수준이었으니까.

하지만 할 말을 잃은 루소와 달리.

헨리 카밀턴은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교관님."

"...그래."

"교관님께서 그렇게 놀라실 정도라면, 아카데미의 다른 분들께선 고작 이 정도로 끝나지 않겠군요."

"그럴 거다."

루소는 부정하지 않았다.

수많은 이들의 시기와 질투를 살 테고, 전에 없던 관심이 헨리 카밀턴이라는 수련생에게 쏠릴 테니까.

아마 이전까지 헨리를 혐오하다시피 하던 학장 역시 그사이에 끼어 있을 터였다.

'문제의 종류가 달라졌어.'

이전까지 헨리는 '살아남는' 것에만 신경 쓰면 되는 입장이었다.

부족한 능력으로나마 버티기 위해 가능한 모든 노력을 쏟아 부어야 했을 정도로.

그러나 지금부턴.

급부상한 천재에게 쏟아질 날카로운 관심을 빗겨 내는 게 급선무였다.

"너는 천재다, 헨리."

"지금 교관님의 말씀을 듣고 확신을 얻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어설픈 겸손은 필요하지 않았다.

아니, 사실 이 정도 반응이면 겸손하기 그지없다.

또한.

자고로 천재란 존재는, 무엇이라도 돕고 싶다는 교육자의 열망을 자극하기 마련이었다.

"교관님께 드리고 싶은 부탁이 있습니다."

BJ소드마스터

16화. 1단계 재능

부탁을 들어달라는 헨리의 한 마디.

그에 루소는 귀신에라도 홀린 듯 고개부터 끄덕였다.

"무엇이건 도와주마. 내 힘이 닿기만 한다면."

이건 처음부터 정해진 대답이었다.

그 누가 여기서 싫다는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루소는 눈앞에서 개화한 재능의 싹에 흡사 죄의식 비슷한 것마저 느끼는 참이었다.

또한, 이런 흐름에서 나올 '부탁'이란 뻔했고.

'기사로서 가르침을 청하는 것이겠지.'

단순히 교관과 수련생의 관계가 아닌, 조금 더 직접적인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맺길 원하는 게 분명했다.

"...감사합니다."

"감사를 들을 일은 아니다."

"제가 이곳에서...."

헨리가 입을 열었다.

그 무거운 분위기에 루소는 가만히 귀만 기울였다.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분이 바로 루소 교관님이십니다. 저를 오롯이, 있는 그대로 보아 주신 유일한 분이시니까요."

"내겐 그런 말을 들을 자격이 없다."

"교관님께선 그리 생각하실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제겐 그렇습니다. 그렇기에 교관님께만큼은 제가 얻은 것들을 모두 보여 드리고 싶습니다."

"얻은 것이라면."

"깨달음입니다. 마나가 무엇인지, 또한 그 마나를 다루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인지. 여태껏 이곳에서 지내오며 제가 무엇을 놓쳤고, 무엇 때문에 길을 찾지 못했던 것인지까지."

"...."

"다행히 두터운 벽을 넘을 수 있었습니다. 그 벽 너머엔 지금까지 느낄 수 없던 것들이 있더군요. 동시에 완벽한 확신은 없었으나, 다른 수련생들에 비해 급격히 빠른 성취를 얻은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너라면 견딜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수련에만 집중하고 싶습니다. 과한 관심에 취하고 싶진 않습니다."

이젠 부탁이 나올 타이밍이었다.

루소는 긴장한 채 헨리를 바라보았고, 헨리는 예상대로의 행동을 보여주었다.

"부탁드립니다, 교관님. 제 성취는 교관님의 가르침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어야 합니다."

"...나로부터?"

"재능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던 수련생을 불쌍히 여겼고, 교육자로서 베푼 가르침이 쌓인 끝에 이리 빛을 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수석교관이 직접 가르침을 사사했다면 이 결과도 그리 놀라운 것만은 아닐 테니까요."

루소는 잠시 생각해 보았다.

헨리가 의미하는 바는 명백했다.

재능을 감추고 싶다.

그 이유는 수련에 매진하기 위해서.

"...벌써 넘어야 할 벽을 만난 모양이군."

"예."

루소는 그리 생각했다.

혹자는 벽을 넘는 것이 가장 괴로운 일이라 평하지만, 그것도 일단 그 벽을 '만난' 후에야 추구할 수 있는 일이었다.

자신의 한계를 모른다면 성장의 여지조차 없었으니까.

그런데 고작 하루 만에 벽을 넘고, 다시 하루 뒤엔 나아가야 할 방향까지 잡았다니.

'가히 괴물 같은 재능이다.'

루소는 마른 침을 삼켰다.

오랜 시간 웅크려 있던 헨리는 누구보다도 날카로운 발톱을 품고 있었다.

다른 수련생이 이러한 재능을 발견했다면?

당장 기세등등해진 채로 온갖 특혜를 누리기 바빴을 터.

그러나 헨리는 이미 다음 목표를 찾았고, 심지어 외부의 시선으로부터 자신을 감추기까지 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하마. 하지만 알렉스에겐 통하지 않을 거다. 내 입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위치이니까."

수석 교관 알렉스.

그 역시 루소만큼은 아니지만, 재능 없는 헨리에게 관심을 가져다준 인물이었다.

비록 동정이라곤 하나 그 당시의 헨리에겐 그마저도 달가운 감정이었고.

'그리고... 사실 싫다고 거부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도 하지.'

어차피 안 될 거라면, 차라리 시원하게 받아들이는 편이 낫다는 걸 헨리는 알고 있었다.

"알렉스 교관님은 괜찮습니다. 그럼 내일 시험이 끝난 직후 이곳으로 돌아오겠습니다."

"나는 그 앞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되겠군."

"감사합니다."

쇼가 필요하단 뜻이었다.

무능한 제자를 포기하지 않은 스승.

그런 스승 아래서 끝내 꽃을 피워 낸 제자.

모두가 보는 앞에서, 두 사람은 자신의 역할을 소화하기로 합의했다.

그리고.

대화가 멎었다.

"...."

"...."

어색한 침묵을 깬 사람은 루소였다.

"그리고? 그것뿐인가?"

"예? 아, 저것만으로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 이상 교관님께 폐를 끼칠 순 없으니까요."

"...네 뜻이 그렇다면."

헨리가 고개를 끄덕이고, 루소도 마찬가지였다.

누가 봐도 어색한 순간이었으나 두 사람은 의식적으로 그런 언급을 피했다.

짧은 한숨.

흡사 체념한 듯한 눈빛으로, 루소는 다른 주제를 꺼냈다.

"어쨌거나 그 상태라면 시험을 통과하는 것쯤은 쉽겠군. 특별한 계획이 있나?"

"너무 눈에 띄지 않는 선에서 합격하겠습니다."

"반 등급은 올려 두는 편이 나을 텐데."

"지금으로선 C반까지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제 뜻대로 되는 일은 아니겠지만."

아니, 헨리 뜻대로 될 게 분명했다.

이게 고작 며칠간의 변화가 아닌, 그간 꾸준히 노력해 온 결과라면?

C반이 마지노선이었다.

그렇다고 그 아래로 내려 보낼 심사관 역시 없을 테고.

충분한 가능성을 품은 인재.

하지만 아직 확연히 실력이 드러나지 않은 수련생들이 머무는 곳이 바로 C반이었다.

"...너무 늦지 않게 들어가도록. 시험을 치르기 전엔 맑은 정신만큼 중요한 게 없으니."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그럼... 흠.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부르도록."

"감사합니다."

헨리가 고개를 깊게 숙였고, 루소는 무언가 미련이 남는다는 듯 묘한 기색으로 돌아섰다.

달칵. 쿵.

문이 열리고, 닫혔다.

루소가 완전히 떠난 걸 확인한 직후.

그제야 헨리는 한숨처럼 한 마디를 꺼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드디어ㅋㅋㅋㅋ]

[저거 가르치고싶어서 그런거 맞죠?]

[그런듯ㅋㅋ 너무 티났음ㅋㅋㅋ]

[루소 쟤도 완전 정통파 기사 아니에요?? 매사에 진지한 그런 캐릭터]

"예, 루소 교관님은 그런 분이십니다. 또한 저도 마법사님들과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루소와 대화를 나누는 도중에도 채팅창은 바쁘게 올라가고 있었다.

그곳에 올라오던 채팅은?

당연히 헨리의 마음과 정확히 같았다.

조금 전, 구슬을 섭취함으로써 얻은 재능은 그야말로 엄청났다.

스승으로서의 루소를 자극하고도 남을 정도로.

헨리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어쩔 수 없는 판단이었다.

"...아쉽지만 저는 교관님께 얻을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마이너스다.

헨리의 재능은 어디까지나 후원 상점을 통해 얻은 것들이니까.

방송을 진행하지 못한다면?

그 얼마나 주옥같은 가르침이건, 헨리로선 조금의 성장도 이뤄 내지 못할 터.

[근데 생각보다 쉽게 들어주네ㅋㅋ]

[힘숨찐 'ON']

[수석교관이면 어디까지 커버돼요???]

[아예 학창처럼 급 높아지는거 아니면 다 커버 가능하지않나??]

"아카데미에서 루소 교관님의 입지는 몹시 높습니다.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적당한 위치의 인물은 제게 개입하기 힘들 겁니다."

[근데 힘은 굳이 숨겨야돼요??]

[C반이면 그 고급 숙소는 못가네ㅋㅋ 좀 아까운듯]

[걍 지원 빵빵하게 받는게 낫지않나요? 스펙업 엄청 될거같은디ㅋㅋ;]

"아쉽게도 이곳은 실력만으로 가치가 결정되는 곳이 아닙니다. 저도 처음 입학했을 땐 그리 생각했지만, 저를 과하게 드러냈다간 제게서 위협을 느끼는 이들이 분명 생길 겁니다."

밀려드는 질문에 헨리는 차분히 대답했다.

이곳은 분명 기사 아카데미지만, 이곳의 수련생이 모두 정말 기사를 꿈꾸는 건 아니었다.

성공적으로 졸업하는 순간 얻는 건 기사라는 신분만이 아니었으니까.

고된 과정을 겪어 냈다는 명예.

기사의 국가에서 당당히 귀족의 자격을 얻어 냈다는 명분.

그런 것들을 노리고 아카데미에서 4년이라는 시간을 투자하는 고위 귀족들도 상당수였다.

그들은 졸업하는 순간 기사의 '주인'이 되면 되었지, 결코 타 귀족의 아래로 들어갈 입장이 아니었다.

"물론 언젠가는."

헨리가 덤덤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지닌 걸 모두 드러낼 순간이 올 겁니다. 다만 그땐 누구도 제게 함부로 덤벼들 수 없는 순간이어야겠죠. 경계는 하되, 쉽사리 적대하기엔 까다로운 위치. 그게 현재 제가 품은 목표입니다."

과정이 순조로울 거라곤 기대하지 않았다.

루소에게 도움을 청한 것도 단지 약간의 여유라도 더 벌고자 함이었다.

그리고 헨리에게 필요한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이게 고작 1단계 재능이었지.'

1단계 구슬보따리를 구매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해야 사나흘 정도였다.

물론 2레벨 구슬의 값은 1레벨의 3, 4배에 이른다.

하지만 그게 뭐 어떻단 말인가.

일단 구매하기만 하면 무엇보다 확실한 성장을 보장하는 물건인데.

'게다가 성장의 정도도 엄청나지. 루소 교관님 같은 분이 눈을 부릅뜰 만큼.'

어쩌면.

지금 헨리 자신의 목표는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

루소는 숙소로 들어섰다.

불을 켜고, 자신에게 주어진 공간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혼자 머물기엔 과하게 넓은 감이 있는 장소였다.

장소에서 풍기는 품격 역시 그러했고.

도합 2층으로 이루어진 루소의 숙소는 온통 '학장의 배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내게 그만큼의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겠지.'

루소가 아는 학장은 그런 인간이었다.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은 학장 자신에게 얼마나 도움 되는가, 단 하나였다.

이건 즉, 루소가 이 아카데미에서 가장 뛰어난 교관임을 증명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쿵.

루소는 테이블에 머리를 박았다. 그 상태로 고동빛 술을 유리잔에 채웠다.

"어째서 부탁하지 않는 거지?"

헨리는 말했다.

더는 폐를 끼칠 수 없다고.

"그게 어떻게 폐란 말이야."

헨리의 앞에선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던 내용이었다.

스승이 되어 달라고.

더 빨리 성장할 수 있도록 가르침을 달라고.

그 한 마디가 헨리의 입에서 나오기만을 기다렸었다.

아니, 오히려 내놓으라고 해도 루소는 얼마든지 헨리를 받들어 모실 자신이 있었다.

그 순간.

찬란한 재능이 세상에 드러난 순간부턴 교관인 루소보다 헨리가 위에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한 마디면 되잖아! 가르쳐 달라고! 아카데미의 꼭대기에서 봐 온 것들을 나눠달라고! 어째서!"

쿵! 쿵! 쿵!

"가르칠 기회를 주겠다는 태도여도 좋아! 언젠가 들일 제자를 위해서 그간 받은 봉급도 다 모아 뒀단 말이다! 귀하다는 영약은 발품을 팔아서라도 구해 뒀어! 드디어 그것들을 쓸 곳이 생겼다고 기대했는데!"

왜 자신이 여태까지 고고한 학처럼 지내 왔던가.

교관과 수련생 이상의 관계를 맺지 않았던 게 무엇을 위해서였던가.

단지 한 명.

찬란하게 빛나는,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어도 아깝지 않을 재능을 기다려 왔던 것이었다.

마침내 찾았다고 생각했으나, 헨리는 루소의 도움을 거부했다.

꼴깍꼴깍.

독한 술을 단번에 들이켜고, 다시 이마를 박았다.

몇 번이고 박아 댔음에도 통증은 느껴지지도 않았다.

그보단 가슴을 채운 아쉬움이 훨씬 컸다.

그러다 번쩍.

루소가 눈을 크게 떴다.

"아니, 아직 끝난 건 아니야."

안타까워 미칠 지경인 게 사실이다.

그러나 정말 다행스럽게도, 헨리와 루소 자신의 관계는 끊어진 게 아니었다.

적어도 루소의 기준으론 '충분한 여지'를 남겨 뒀으니까.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하라고 했었지. 내가 오늘 한 일 중 가장 잘한 일이었어. 아무리 헨리가 뛰어나도, 실력만으로 이 아카데미에서 자기 자리를 찾긴 쉽지 않지."

그건 헨리도 알고 있는 부분이었다.

거기서 재차 울컥.

"그 재능에, 머리마저 그리 영특한... 아니, 아니지."

지금 해야 할 건 감정에 사로잡히는 게 아니었다.

'분명 도움이 필요한 순간이 올 거야. 시간은 많다. 헨리는 이제 정상적으로 1학년 수업을 받는 입장일 뿐이야.'

애써 들끓는 감정을 가라앉히고, 루소는 냉정하게 생각했다.

충분히 납득 가능한 생각이었다.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고.

그렇다면 루소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언제든 도움 요청에 호응할 수 있도록 준비해 두는 것이겠지. 철저히 준비해 두마, 헨리. 네가 언제라도 이 스승의 품에 기대어 쉴 수 있도록.'

이제 루소의 가슴을 채운 건 설렘이었다.

매일같이 정해진 시각에 침대에 눕는 이가 루소였으나, 오늘만큼은 차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BJ소드마스터

17화. 베인 티모시(1)

발라란 왕립 아카데미.

일주일간의 짧은 방학이 끝나고, 아침을 맞은 교정은 어디 할 것 없이 분주했다.

아무리 정기적으로 시행되는 것이라지만 시험은 시험.

특히나 매년 치러지는 13회의 시험 중, 이번 시험은 '반드시 참여해야 하는' 세 가지 시험 중 하나였다.

1, 2학기의 첫날.

또한 2학기의 마지막 날.

도합 세 번의 시험은 모든 수련생이 의무적으로 참여해야 했고, 그 외엔 희망자만 치르는 게 가능했다.

즉 이번엔 등급이 '내려가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는 것이었다.

자칫 실수했다간 작년에 이뤄 놓은 것들이 물거품으로 돌아갈지도 모르는 상황.

당연히 걱정스러운 얼굴도 상당수 보였으나, 오히려 더 나은 결과를 얻어 낼 수도 있는 만큼 기운 넘치는 수련생들 역시 상당수였다.

특히.

짧은 방학 사이에 무언가 확실한 성과를 거둔 이들은 유독 들뜬 상태였다.

"다들 활기차니 보기 좋군. 아직 올라갈 곳이 남았다는 건 행복한 일이지."

수석 교관 알렉스는 학기가 시작하자마자 마주한 모습에 히죽 웃으며 말했다.

한때 과거엔 기사를 꿈꾸던 그였으나,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교관이 된 이후부턴 이런 활기가 가장 반갑게 느껴졌다.

"그렇지 않아? 나도 이 녀석들처럼 올라갈 곳이 남았다면 좋겠어. 그럼 조금 더 가열차게 살 수 있을 텐데."

"자네 말이 옳아."

"간밤에 일이 좀 있었나 보군. 많이 피곤해 보여."

"동의하네."

"...내 말 듣고 있어?"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하네."

"...."

알렉스는 제 옆에 자리한 친구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수석 교관 루소.

이 아카데미에서 가장 뛰어난 기사 중 한 명은 지금 거의 초췌해진 얼굴로 영혼 없는 대답만 반복하고 있었다.

루소의 시선은 어딘가 한 곳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 끝을 따라가 본 후에야, 알렉스는 대략적인 정황을 파악했다.

"헨리로군."

"그래, 그 말이... 음? 헨리라고?"

"헨리 카밀턴 말이야. 그리 뛰어나던가? 이곳에서 가장 뛰어난 교관이 잠까지 설치게 할 만큼."

"...목소리를 낮춰 주게."

"지금 나는 거의 속삭이다시피 하고 있어. 정신 좀 차려, 이 친구야.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질문한 순간.

알렉스는 루소의 눈빛이 거의 반짝이다시피 하는 걸 놓치지 않았다.

"자네니까 하는 말이네만."

"그래."

"무엇을 생각하건 그보다 뛰어날 걸세."

"상식 밖의 천재라도 된단 건가?"

"자네 제자 있지? 로론인가, 로란인가 하는 녀석."

"로렌이야. 설마 로렌과 비교할 생각은 아니겠지? 그 녀석은 진짜 천재라고. 내가 괜히 애지중지하며 키우는 게 아니야."

알렉스의 주장은 합리적이었다.

로렌은 고작 2학년에 B반에 들어선 천재 중의 천재였으니까.

아카데미의 백 년 역사 아래, 로렌 수준의 두각을 드러낸 학생은 백 명도 되지 않았다.

"왜 아니겠나."

그러나 루소는 이제 실실 웃기까지 하고 있었다.

어째선지 묘한 웃음이었다.

기쁜 듯 보이지만, 한없는 아쉬움이 담긴.

게다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어진 루소의 말에, 알렉스는 어처구니없는 나머지 입을 쩍 벌렸다.

"내기라도 해 볼 텐가? 자네 제자와 헨리. 어느 쪽이 더 뛰어난 재능을 품고 있는지."

***

시험장 구석진 곳.

바짝 긴장한 채 마지막 수련에 매진하는 이들과 달리, 헨리는 최대한 목소리를 죽인 채 방송을 진행하고 있었다.

"A반을 제외한 모든 수련생은 시험을 치러야만 합니다. A반의 경우엔... 사실 요행으로 올라갈 수 있는 자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럼 걔네는 시험 안쳐요?]

"치르지 않습니다. 신분은 아카데미의 수련생이지만, 사실 A반은 이미 졸업 이후를 대비하는 상태입니다."

더 이상의 검증은 필요하지 않다.

그 판단을 받아 낸 이들만이 A반에 들 수 있었다.

그 순간부턴 아카데미에서 지급되는 모든 지원을 받을 수 있었으며, 그 지원이란 단순히 물품이나 수련 환경 따위에 그치지 않았다.

"영향력 있는 귀족을 만나거나... 물론 학장님을 비롯한 아카데미 인사의 인맥들이겠습니다. 혹은 이곳에서 '친구'로 지냈던 가문과 접점을 만드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결국 실력이 뛰어나도, 배경이 없는 기사라면 고위 귀족의 간택을 받아야만 하는 게 현실이었으니까.

전쟁이라도 벌어진 상황이라면 모를까, 현 시국에선 그들이 국왕에게 인정받을 만한 공을 세울 기회가 없었다.

[근데 기사님은 좀 다르신거 아님?]

[루소도 환장했잖아요ㅋㅋ 진짜 천재니 뭐니 하면서]

"그건... 맞습니다. 정말 압도적인 실력이 있다면 역으로 귀족을 선택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리고 저는 카밀턴 자작가를 이어받을... 아무래도 방송은 조금 뒤에 진행해야겠군요."

불쾌하고 노골적인 시선이 느껴졌다.

이전에도 시선은 계속해서 있었으나, 그건 단순히 '열등생'에 대한 순간의 흥미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번 건?

기척을 숨길 생각도 없고, 넘치는 관심을 기꺼이 드러내는 시선이었다.

또한 헨리에게 꽤 익숙하게 느껴지는 시선이기도 했고.

'이걸 어떻게 받아야 한다?'

"오, 헨리!"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먼 곳에서부터 성큼성큼 걸어오기 시작했다.

백금발에 녹색 눈동자를 지닌 수련생이었다.

베인 티모시.

명망 있는 티모시 후작가의 장남이자, 아카데미의 2학년 수련생. 또한 C반에 소속된, 나름의 재능을 인정받은 경우이기도 했다.

"아침부터 너를 만나게 될 줄이야. 설마 시험을 치르러 올 줄은 몰랐는걸? 친다고 바뀌는 게 있겠어?"

오자마자 쾌활하게 인사를 건네는 베인.

평소처럼 노골적이고, 평소처럼 유치했다.

이럴 때마다 헨리는 무시하는 것으로 대응했으나, 오늘은 상황이 좀 달랐다.

'어떻게 받아야, 최대한 흥미로운 상황을 그려 낼 수 있을까.'

이미 채팅창은 바쁘게 올라가고 있었다.

마법사들이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 상황이었다.

진심으로 분노한 이들은 보이지 않았으나, 일단 헨리가 어떻게 대응할지에 강한 호기심을 느끼는 게 분명했다.

"아, 미안. 듣긴 들었다. 올해가 마지막이라며? 포기하지 못하는 것도 이해는 해. 그대로 가만히 있다간 완전히 추락할 테니까. 밑바닥 아래 또 바닥이 있을 줄이야."

크으.

정말 무서운 일이라는 듯 베인이 몸을 떨었다.

"걱정 마, 친구. 네가 나보다 먼저 입학하긴 했지만, 그래도 우린 친구잖아? 일할 곳은 내가 마련해줄 수 있을 거야."

힐끔힐끔.

주변 수련생들이 조심스레 눈길을 보내 오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길진 않았다.

늘 있었던 일이고, 이런 상황에 관심을 갖기엔 당장 목전에 둔 시험이 훨씬 급했으니까.

"마음 같아선 우리 가문의 기사로 써 주고 싶지만, 아쉽게도 우리 헨리는 졸업을 못 할 것 같고... 다른 자리라도 괜찮지? 가령 후원 청소 담당이라든가."

"자신 있어 보여서 다행이네."

"이야, 헨리가 내 말에 반응해 주다니. 이게 얼마만이야? 그보다 자신이라니? 무슨 자신?"

베인의 웃음이 진해졌다.

재밌는 장난감을 발견했다는 듯한 웃음이었다.

헨리는 항상 그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고, 반응이 없는 '장난'은 재미가 반감되기 마련이니까.

"시험에서 성과를 낼 자신이겠지."

"오, 그야 당연하지. 나는 이미 끝났어. 마지막 시험 성적이 뛰어난 수련생부터 시험을 치르는 거니까."

"결과는?"

"C반 유지. 정해진 결과잖아?"

베인이 콧대를 세웠다.

2학년에 C반이라면 자랑할 만한 일이긴 했으나 눈앞의 상대가 헨리이기에 더더욱 자신감이 넘쳤다.

"너는 마지막이겠지, 헨리?"

"그래."

"힘내라고. 자리는 언제든 비워 둘 테니."

탁탁. 베인이 헨리의 어깨를 두드렸다.

힘내라는 듯, 손끝 가득 조롱을 담은 채.

그리고 헨리는 지금이 바로 타이밍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다 따라잡히기라도 하면 정말 창피하겠어."

"그래 따라... 뭐라고?"

"따라잡히기라도 하면 창피해서 아카데미 다니겠냐고. 그 헨리 카밀턴이랑 동급이라는 소리를 들어 가면서 말이야."

덤덤하지만 빠른 말투였다.

그리 공격적이진 않았고, 상대를 깎아내리려는 기색도 그다지 드러나지 않는.

하지만 중요한 건 내용이었다.

'당황스럽겠지.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벙 찐 베인만큼이나 헨리 스스로도 생소하게 느껴지는 상황.

이건 사실상 개구리가 뱀에게 이를 드러낸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런데 어쩌겠어? 이 판단이 옳았는데.'

언뜻 보기에 헨리의 시선은 베인을 향하고 있었지만, 인간의 시야는 꽤나 넓은 편이었다.

채팅창까지 한눈에 들어오고도 남을 만큼.

[아 예상밖이라 너무좋은데ㅋㅋㅋ]

[ㅋㅋ기사님 왜 갑자기 전진기어임?]

[얘도 걍 엑스트라1인거 아님? 싸워서 이길수 있는거죠?]

<'duud'님이 1,000원 후원!>

<"시원하게 쥐어박으면 3천원!!">

시청자들의 반응이 좋았다.

사람 수는 같았으나, 올라오는 채팅은 직전의 두 배에 이를 정도로.

분명 베인에게 어떤 방법으로건 이기는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이었다.

'아쉽게도 쥐어박을 순 없지만.'

일단 이를 드러낸 건 현명한 선택이었고, 이어질 선택지에 따라 추가로 호응을 끌어내는 것도 가능해 보였다.

"헨리, 혹시 뭐 잘못 먹었어? 아니면 너무 긴장해서 그런 거야?"

"같은 말을 또 해야 하다니."

"아냐. 들었지. 들어서 묻는 거야. 그러니까 내가 따라잡힌단 말이지? 네게?"

베인은 검지로 스스로를 가리켰다가, 다시 헨리를 가리켰다.

헨리는 불쌍한 사람을 본다는 듯 혀를 차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짧은 문장을 이제야 이해했다니. 기사의 소양은 단지 검을 매섭게 휘두르는 것만이 아닐 텐데."

"...이상하네. 머리가 돌아 버린 게 아니고서야 이런 말을 꺼낼 친구는 아닌데. 체념인가? 당장이라도 그만 두고 나가려고?"

"관점의 차이겠지. 아는 만큼 보이는 거야."

베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이 상황을 받아들인 것이다.

지난 시간동안 끊임없이 쥐어터지기만 하던 헨리가, 베인 티모시 자신에게 이를 드러냈다는 상황을.

"내가 아는 바로는 이래. 네가 나를 자극했고, 나는 거기 맞춰서 행동하면 되는 거겠지. 시험 끝나고 올래? 아니면 내가 갈까?"

신났다는 듯한 기색.

도발에 대한 분노는 찾아볼 수조차 없었다.

자고로 도발이란 것도 상대의 급이 되어야 제대로 먹혀드는 법이니까.

하지만 헨리의 도발은 끝난 게 아니었다.

"괜찮은 제안이야. 정리해야 할 게 있으니 내가 가는 편이 낫겠지. 장소는?"

"...유감스럽게도 돌아 버린 거였네. 포기한 게 아니었어. 내 소중한 친구가 정신이 나가 버리다니."

"내빼지 말고. 형태는? 공식적인 결투?"

이제 헨리는 거의 속삭이다시피 하고 있었다.

작은, 주변에선 제대로 들리지 않을 목소리여야만 했으니까.

어차피 이건 베인 입장에서도 그리 명예로운 일이 아니다.

헨리 역시 마찬가지.

지금부터 벌어질 일은 외부에 드러나서 좋을 게 없었다.

"아, 그건 곤란해. 헨리 너야 잃을 게 없겠지만, 나는 다르거든."

"그럼 비공식적인 쪽으로 하지. 어디 가서 기다리건, 아니면 내 시험이 끝난 후에 함께 가도 좋고. 좋을 대로 해. 늘 그렇듯 부하들도 몇 명 낀 채로 말이야."

"...하."

결국 베인은 헛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의 입장에선 너무 어이없는 상황이었으니까.

"네 마구간 뒤에서 기다리지. 내뺄 생각은 않는 게 좋을 거야. 이제 봐줄 생각은 완전히 사라졌거든."

"그러시든지. 조금 뒤에 보자고."

베인이 멀어졌다.

그 뒤통수엔 여전히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기색이 걸려 있었다.

그러나 헨리는, 이미 그의 기분 따위엔 관심조차 없었다.

[캬ㅋㅋㅋ 벌써 넴드전이에요??]

[넴드는 맞음? 이번 이벤트 이기면 뭐줌?]

[아니 대사 퀄리티가 너무좋은데ㅋㅋ 내가 다 줘패고싶게 하네ㅋㅋㅋㅋ]

[이길수 있는건 맞죠?]

'어떻게 정리해야 할까.'

이길 수 있을지를 걱정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이겨야 이 시청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을지가 중요한 거였으니까.

그리고 잠시 후.

"헨리 카밀턴. 안으로."

시험관의 호명에, 헨리는 시험장으로 들어섰다.

BJ소드마스터

18화. 베인 티모시(2)

발라란 왕립 아카데미의 설립 초기부터, 이곳에서의 시험은 모두에게 공개된 형태를 띠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서.

특정 교육자의 총애를 받고, 그 덕분에 이득을 본다거나 하는 경우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참관인 허가를 받을 수 있는 건 오로지 아카데미의 구성원뿐이었다.

교관부터 수련생까지.

이곳에 소속되어 있기만 하다면 누구라도 시험을 치르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헨리 카밀턴'이 시험을 치르는 장소엔, 고작해야 열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만큼의 참관인만이 있을 뿐이었다.

'당연한 거지. 기대가 안 될 테니까.'

시험관 하나.

루소와 알렉스가 정면에 있었고, 흥미로운 구경거리라는 듯 턱을 괸 채 지켜보는 수련생이 두엇이었다.

아마 베인 티모시가 있었다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졌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그의 추종자들까지 약속 장소로 떠나 버린 상황.

"헨리 카밀턴."

"예."

"F반의 진급 조건은 한 가지다. 마나의 사용이 가능할 것."

"숙지했습니다."

"그럼 시작하도록."

시험관은 피곤한 얼굴로 말했다.

성의 없는 목소리와 태도였다.

시험을 치르는 헨리의 얼굴조차 제대로 쳐다보지 않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 직후.

"...음?"

벌어진 상황에, 시험관은 의외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헨리의 전신에서 안개처럼 흘러나오는 마나.

이건 곧 [순환]시킬 줄 안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시험관의 감탄은 거기까지.

헨리였기에 방금처럼 신기하다는 정도의 반응이라도 보인 것일 뿐, 사실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니었으니까.

시험관은 재차 성의 없는 손놀림으로 평가서 위에 무언가를 적어 내려갔다.

"분명한 마나로군. 흠, 축하한다. E반에 편성하도록 하지."

"아직 보여 드릴 게 남았습니다."

"...남았다고?"

시선이 다시 헨리에게로 돌아왔다.

이번엔 좀 흥미가 생긴 눈치였다.

탁.

펜을 내려놓고, 시험관이 턱짓했다.

"좋아, 해 보도록. D반에 편성되기 위한 자격은 다음과 같다. [유지]와 [집중]의 숙련도가 일정 이상일 것."

사실 이쯤은 되어야 '진짜' 시험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나마도 1, 2학년들에게나 해당되는 사항이었고.

하지만 상대는 그 '헨리 카밀턴'이었고, 시험관의 눈에 걸린 흥미 역시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호오."

헨리는 그 기대를 배신하지 않았다.

시험관의 자세가 바뀌었다.

관심 없다는 듯 뒤로 기울었던 상체를 당기고, 대충 책상에 걸쳐 놓았던 오른손은 턱을 쓸고 있었다.

이제 헨리는 [유지]에서 [집중]으로 넘어간 상태였다.

잠시간 더 지켜본 이후, 시험관은 손을 들었다.

"그만. 충분하다."

"예."

"마나의 운용이 더없이 깔끔하군. 손실률이 극도로 적어. 내가 듣기론... 저번 시험까지만 해도 마나를 다룰 수 없었다고 들었는데. 맞나?"

"느끼곤 있었습니다. 활용할 방법을 찾지 못했던 것뿐입니다."

"느끼곤 있었다라."

물론 거짓말이었다.

헨리는 마나가 무엇인지 감조차 잡지 못한 상태였으니까.

하지만 수석 교관 루소를 스승으로 둔 채, 그간 스스로를 다듬어 왔다는 식으로 말하려면 지금부터 밑밥을 뿌려 둬야만 했다.

"여하튼 축하할 일이겠지. D반에 편성하겠다."

"시험관님."

"말하게."

"아직 남았습니다."

이제 시험관은 단순히 놀란 수준이 아니었다.

본능적인 위화감에 눈살을 찌푸리기까지 한 상태였으니까.

"아직 남았다?"

"예."

"...긴 말 할 것 없겠지. 해 보도록. C반으로 편성되기 위한 자격 조건은 알고 있을 테고."

"예, 알고 있습니다."

[순환], [유지], [집중], [결속], [방출], [변형]의 여섯 가지.

뛰어난 기사가 되기 위한 필수 소양이었고, 그것들을 모두 갖춘 수련생들만이 C반에 편성될 수 있었다.

그 이상은?

단순한 기술 외의 무언가가 있어야 하는 거고.

'여기까지만 해야겠지.'

물론 그 이상의 무언가도 쥐어짠다면 가능할지 몰랐다.

'재능의 구슬'은 헨리에게 어마어마한 숙련도를 선물했으니까.

깔끔함을 중심으로 어필한다면 안 될 것도 없었으나, 그건 분명 욕심일 터였다.

"결속. 방출. 흠잡을 곳 없어. 자네가 정말 '그' 헨리 카밀턴인가?"

"맞습니다."

이어진 증명에 시험관은 혀를 내둘렀다.

그는 황실 소속이었고, 아카데미의 시험이 있을 때만 이곳을 방문했다.

그렇기에 헨리 카밀턴의 소문만 스치듯 들은 게 다였다.

하지만 지금 보이는 모습은 그가 들었던 것들과는 너무 다르지 않은가.

"헛소문을 맹신하고 있었군. 이제 변형이 남았네. 할 수 있겠는가?"

"하겠습니다."

시험관의 태도가 확연히 호의적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훌륭해."

헨리의 손에 들린 건 명백히 '휘어진' 마나의 검이었고, 시험관은 놀랍다는 듯 손뼉까지 치고 있었다.

"자네처럼 기본기가 탄탄한 수련생은 찾기 힘들어. 참으로 인상적이었네. 혹시 아직도 무언가 남았는가?"

"죄송합니다. 아직 수련이 부족합니다."

"아쉽군. 무슨 사정이 있었는진 모르겠지만, 지금 그 자세를 잊지 않도록 하게. 착실한 기본기만큼 자네의 기사 생활에 도움이 되는 것은 없으니."

"예."

"자네는 올해부터 C반의 구성원이야. 본격적인 궤도에 오른 것을 축하하네, 헨리 카밀턴."

항상 냉정하려 애쓰던 헨리였으나, 이번엔 그도 요동치는 감정에 휩싸이고 말았다.

결과 자체는 예정되어 있었다.

단지 얻은 능력을 보이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저 한 마디.

궤도에 오른 것을 축하한다는 말을 들으니 본격적으로 바뀐 위치가 실감이 난 탓이었다.

'감흥에 빠지긴 이르지.'

애써 정신을 다잡았다.

시험관에게 예를 갖추고 헨리는 시험장을 벗어났다.

방금 치른 시험은 헨리에게 있어 '보상'이었고, 지금부터 베인을 패러 가는 것이야말로 '업무'였으니까.

'소중한 후원을 받으려면, 나도 그만큼 무언가를 보여 줘야겠지.'

베인 티모시.

후작가 망나니와의 약속 장소로 헨리는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헨리가 시험장을 벗어난 직후.

두 명의 교관도 그곳을 빠져나왔다.

루소와 알렉스.

헨리의 시험을 참관한 두 사람은 확연히 상반된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그럴 줄 알았다는 쪽이 루소.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쪽이 알렉스였다.

말없이 걸어 나와 교정 벤치에 앉은 후에야 알렉스는 자신의 오랜 친구를 바라보았다.

"루소."

"정확히 이틀이 걸렸네. 저렇게 되기까지."

덤덤한 선고에 알렉스는 헛바람을 내쉬었다.

"...대체 무슨 비법을 숨겨 뒀던 거야? 어떻게 키운 거지? 설마 저게 헨리가 천재라서 벌어진 일이라고 할 생각은 아니겠지?"

"왜 아니겠나."

"미치겠군. 자네와 가장 친한 입장이라고 생각했는데."

"진심일세. 내가 내기를 거는 건 반드시 이기리라는 확신이 있을 때뿐이야."

"그래, 루소 자네는 그런 인간이었어. 그러면 정말... 대체 저 재능이 3년이나 썩었던 이유는 뭐야? 헨리가 말해 주던가?"

"계기가 부족했을 뿐이겠지."

"듣지 못한 거군?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맺은 게 아니었어?"

"...아직이네. 묻지 않았고."

"어째서? 자네도 궁금하잖아?"

"이유가 있을 테니까. 헨리는 그런 녀석이네. 필요한 때가 되면 먼저 손을 뻗을 테지. 내겐 기다리는 것 이상의 무언가를 할 자격이 없어."

알렉스는 멍한 눈으로 고개만 끄덕였다.

루소의 마음을 알 것도 같았으니까.

그때 루소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녁에 자네 숙소로 가도록 하지. 이곳은 듣는 귀가 너무 많아."

"지금은 어딜 가는데?"

"헨리에게 볼일이 있는 것 같아서 말이야. 도움이 필요한 순간에 옆에 있어야만 진정한 스승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당최 무슨 소린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확실한 건, 지금 멀어져가는 루소의 뒷모습이 정말 들뜬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이었다.

"천재란 말이지. 3년간 몸을 웅크렸던 천재."

결국 알렉스가 할 수 있는 건, 조용히 되뇌는 것뿐이었다.

***

헨리의 숙소.

말이 숙소지, 사실상 다른 수련생들은 이곳을 '마구간'이라고 부르곤 했다.

헨리는?

당연히 마구간에서 잠을 청해야 할 만큼 무능력한 인간이라며 우스갯소리를 하곤 했고.

그 뒤쪽에서, 베인 티모시는 자신의 패거리들과 시시덕거리며 헨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분명 시간낭비일 테지만, 이런 식의 낭비라면 얼마든지 환영이었다.

베인이 입학하고 지난 2년간.

몇 번이고 자극했음에도, 헨리는 단 한 번도 그에게 반응해 주지 않았다.

오로지 철저한 무시.

그 탓에 시비를 거는 것도 어느 순간부턴 시들해졌고, 오늘 장난을 걸었던 때도 별다른 기대가 없었던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드디어 반응을 해 줬단 말이지. 그 헨리 카밀턴이. 진짜 조만간 나갈 때가 오겠다 싶으니 정신이 나가 버린 거야."

"그 자식이 정말 덤빌까? 베인 네게?"

"모르는 일이지.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들이박을 수도 있고... 아마 곧 후회할 테지만. 대련 때 두들겨 맞던 거랑은 느낌이 많이 다를 텐데."

헨리는 '마나를 다룬다'는 게 얼마나 큰 차이인지 알지 못하는 게 분명했다.

아니, 어쩌면 한 방쯤은 먹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고.

어차피 아카데미를 떠나야 하는 입장이라면 악에 받쳐 덤벼드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맞아 줄 생각은 없지만.'

베인은 결코 봐줄 생각이 없었다.

"저기 온다. 정말 혼자 오는데?"

"그럴 수밖에. 도움을 청할 곳도 없을 텐데."

베인이 실실 웃으며 한 발짝 나섰다.

이쪽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오는 헨리의 모습이 보였다.

목검 한 자루도 없는 맨손.

심지어 상황을 말려 줄 사람조차 아무도 없는 상태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었다.

'혹시 모르지. 귀라도 물어뜯을 생각일지도.'

히죽, 웃으며 베인이 손을 크게 흔들었다.

곧 헨리가 코앞까지 다가왔다.

건조한, 두려움이라곤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얼굴이었다.

"정말 왔네?"

"온다고 했으니까. 구경꾼은 왜 이리 많아? 괜찮겠어? 나야 상관없지만, 명망 있으신 후작가의 자제분께선 곤란할지도 모르는데."

"말장난이나 할 생각은 아니겠지?"

"설마. 그보다 너희... 열 명쯤 되는군. 너희 중에 C반에 소속된 친구가 있나? 베인 외에 말이야."

이건 헨리에게 있어 아주 중요한 문제였다.

만약 있다면?

[C반 두명이면 못이기는거 아님?ㅋㅋㅋㅋ]

[그럼 바로 튀실거래요ㅋㅋㅋㅋ]

[아ㅋㅋ 너무 현명하고ㅋㅋ]

물러나는 것 역시, 시청자들은 나쁘지 않은 판단이라고 생각하는 게 분명했으니까.

'알다가도 모르겠단 말이지.'

어쨌든 중요한 건, 이 전력을 헨리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가였다.

"있어?"

"아니, 없지. 나 혼자야."

베인 티모시가 실실 웃으며 대답했다.

C반에 오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곳의 대부분은 그 아래서 머물고 있었고, 오로지 베인만이 간신히 턱걸이로 들어간 상태였으니까.

"그래, 그럼."

더 고민할 것도 없었다.

속전속결.

찰나 마나를 한 바퀴 돌리고, 헨리의 오른발이 땅을 박찼다.

베인이 반응할 틈도 없었다.

빡!

마나가 실린 주먹이 복부를 가격했고, 반사적으로 녀석의 상체가 앞으로 굽었다.

거기서 한 방 더.

허벅지를 걷어차이며 베인은 그만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정적.

베인도, 주위를 둘러싼 패거리도 황망하기 그지없는 눈으로 지금 벌어진 상황을 이해하려 애쓰고 있었다.

먼저 입을 연 건 헨리였다.

"얼굴은 안 때린다. 급소도 안 건드릴 거야."

"너, 너 이 새끼! 무슨...."

빡!

베인은 재차 입을 닫아야 했다.

헨리는 격투술에도 일가견이 있었고, 유독 아플 만한 곳만 골라서 치고 있었으니까.

"말할 땐 듣자. 아무튼... 아, 너희들도 덤빌 거지?"

패거리들이 주춤거렸다.

당장 벌어진 상황을 보았고, 그럼에도 베인에게 찍혀선 곤란한 입장들이었으니까.

헨리는 기꺼이 그들 입장을 생각해 주기로 했다.

"마나부터 둘러. 없이 맞으면 뼈 부러진다. 베인 너는 잠깐 기다리고. 괜히 나중에 비겁했네, 어쩌네 떠들지 말고 회복하면 다시 해."

"네가 먼저 친 건 사실인...."

"마나부터 둘렀길래 바로 시작하잔 뜻인 줄 알았지. 그것도 반응 못 할 줄이야."

쯧. 혀를 차고, 헨리는 패거리 쪽을 바라보았다.

"시작하자. 안 올 거면 내가 가고."

BJ소드마스터

19화. 베인 티모시(3)

베인은 지금 벌어진 상황을 믿을 수 없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이던가.

2년 만에 C반에 진입할 만큼 촉망받는 수련생이었고, 티모시 후작가라는 배경까지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거의 모든 수련생보다 우위에 있는 사람이 바로 베인 자신이란 뜻이었다.

사실 기사로서의 재능은 부차적인 문제였다.

후작가의 장남이란 사실만으로도 학년과 수준을 막론하고 찾아와 고개를 숙이곤 했었으니까.

이유?

간단했다.

추후 후작가를 물려받을 자신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기사가 된다고 해도, 어느 가문에 소속되었느냐에 따라 그 위치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었다.

'그런데.'

베인은 멀어지는 헨리의 뒷모습을 빤히 바라보았다.

'저딴 자식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고?'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헨리 카밀턴이 어떤 인간이던가.

베인 자신이 모두의 '우위'에 있는 입장인 것처럼, 헨리는 역으로 가장 밑바닥에 있던 수련생이었다.

그것도 자그마치 3년 동안이나.

'내가 자기를 가만 둘 거라 생각하는 건가?'

믿을 수 없었지만, 베인이 밀린 건 사실이었다.

사실상 부하들까지 함께 싸웠음에도.

하지만 백 번 양보해서 거기까진 그렇다 치더라도, 지금 저 태도는 보복하더라도 두려울 게 없다는 태도 아닌가.

"윽."

전신이 곤봉 따위로 다져진 기분이었다.

옆구리를 움켜쥔 채 일어나자 부하들이 불안한 눈빛으로 이쪽을 바라보았다.

"베, 베인...."

"뭐 해. 안 일어나?"

"어, 일어날... 일어날게."

"...베인 너는 괜찮아?"

"괜찮다니. 뭐가?"

베인의 질문에 부하들은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의도를 모르겠으니까.

어설프게 눈치만 보는 그들에게 베인은 명쾌한 답을 주었다.

"친한 친구들끼리 장난 좀 칠 수도 있는 거잖아? 설마 그것 때문에 앓는 소리나 하려는 건 아니지?"

"그, 그야 물론...."

"정리하고 가. 나는 먼저 간다. 다음 장난 준비하려면 필요한 게 많... 어욱."

다음 장난.

그 한 마디에 부하들은 상황을 파악했다.

갚아 주겠다는.

다만 조금 더, 이번과 다르게 확실한 방법을 준비하겠다는 뜻일 터였다.

헨리가 정말 성장했다고 해도, 베인은 명실상부한 고위 귀족가 소속이었으니까.

'감히 날 봐줘?'

끙끙대는 와중에도 베인은 방금 벌어졌던 일들을 복기하고 있었다.

첫 타격을 허용하고 넘어졌을 때.

C반에 들지 못한 찌꺼기들을 한 방에 한 놈씩 눕히고, 다시 자신을 패기 시작했을 때.

'분명히 대충 패고 있었어.'

헨리 카밀턴은 자신을 꺾은 것에서 그치지 않고, 적당히 패는 시늉만 하고 있었다.

심지어 분노한 것도 아니었다.

단지 누군가에게 보여 주기 위해 때리는 시늉이나 했단 표현이 적당할 정도로.

차라리 분노를 담아 친 거였다면 어이는 없어도 납득은 됐을 터.

아니, 애초에 베인은 헨리가 성장했건 어쩌건 관심이 없었다.

결국 자신이 끝내 목표하는 건 기사가 되는 게 아니었으니까.

간혹 아카데미에선 비상식적인 상황들이 발생하기 마련이고, 대귀족의 입장에서 그러한 것들은 오히려 고마운 일이었다.

그들을 도구로 써먹을 수 있는 입장이니까.

'이번 일도 작은 해프닝으로 넘길 수 있었지. 그런 식으로 날 대하지만 않았다면.'

애초에 베인은 이곳에서의 삶에 그리 몰입한 상태가 아니었다.

지금처럼 신분을 떠나서 또래와 어울릴 수 있는 것도 이곳이 마지막일 테니까.

좀 묘한 일이긴 하지만.

그는 아카데미 수련생 베인 티모시와 후작가의 장남 베인 티모시를 완전히 다른 인간처럼 여기고 있었다.

그럼에도 헨리는 그런 베인의 역린을 건드림으로써 그 경계를 무너뜨려버린 것이다.

'...어디 이번에도 날 그리 무시할 수 있나 보자고.'

여전히 오른쪽 옆구리에 손을 얹은 채, 베인은 헨리의 숙소를 떠났다.

***

'역시 대단해.'

수석 교관 루소는 이번에도 감탄을 참을 수 없었다.

먼 곳.

눈에 마나를 싣지 않았다면 볼 수 없을 거리에서 헨리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지켜보았으니까.

여차하면 달려들 준비를 마친 상태였으나, 상황이 끝날 때까지 우려하던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런 놀라운 숙련도라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속도였다.

하루 만에 마나를 느끼고, [순환]시켰다.

또 다음 날엔 여섯 가지의 기초 소양을 모두 익혀 냈다.

거기까지만 해도 이미 아카데미가 뒤집힐 만한 성과인데, 방금 헨리가 보여 준 마나 운용은 숙련된 기사와도 별반 차이가 없을 정도였다.

'믿을 수가 없군. 믿을 수가 없어.'

루소가 할 수 있는 건 그런 생각뿐이었다.

물론 '응용'의 영역에선 아직 부족한 게 사실이었다.

그러나 같은 '집중'이라고 해도, 속도나 정확도에 따라 실력이 갈리는 법.

그리고 루소가 판단하기로 방금 헨리가 보인 건 최소 5년은 수련해야만 얻을 수 있는 능숙함이었다.

'저기에 약간의 경험이 더해지고, 기술을 받쳐 줄 만큼의 넉넉한 마나... 그리고 그것들을 펼칠 수 있는 무기술만 주어진다면.'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재능.

이미 그렇게 생각하던 루소였으나, 그 생각보다도 헨리의 재능은 뛰어났다.

'안전장치는 하나 해 두는 편이 낫겠지.'

감탄을 멈춘 루소가 현실로 돌아왔다.

베인 티모시.

조금 전까지 신나게 두들겨 맞던 녀석은 분을 참을 수 없다는 듯 입술을 씹어 대고 있었다.

'위험한 눈이야.'

루소는 그리 생각했다.

지금까지 베인이 아카데미에서 보여 온 모습도 알았고, 지금 저 상태가 그 모습과는 다르다는 것 역시.

저건 단순히 헨리에게 맞았다고 열 받은 게 아니었다.

마치 심한 모욕이라도 당한 사람과 비슷한 상태였으니까.

'너무 과한 상황은 벌어지지 않도록... 아니지. 흠, 오히려 이게 기회가 될 수도 있겠어.'

베인 역시 고작 수련생에 불과하다.

수련생이 어떤 수를 꾸미건 수석 교관인 루소에겐 문제가 되지 않을 터.

'기다려야겠군. 놓치지 않도록 지켜보기만 하면서 말이야.'

***

베인이 이를 갈고, 루소가 꿈에 부푼 그때.

'역시 괜찮은 판단이었어. 좋아.'

헨리는 오늘 거둔 성과에 크게 만족하고 있었다.

베인을 꺾어서?

C반으로 편성되어서?

당연히 그런 이유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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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어난 구독자와 후원금.

그리고 마법사들의 취향을 알게 되었다는 생각에서였다.

어차피 다른 것들은 처음부터 결정 난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허나 베인을 도발하고, 이겼을 때의 반응은 헨리로서도 확신하기 힘든 부분이었다.

'내게 분명한 호의가 있고, 어쩌면 나라는 인간에 몰입해서 지켜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어. 그러면서도 사건은 흥미로워야 하고....'

상당히 묘한 구조였다.

어느 한 가지 기준만으론 짐작할 수 없는, 복합적인 반응이 흘러나왔으니까.

단순히 사람이 많아서 다양한 게 아니었다.

이건 아마 '방송'이 가지는 특수성에서 나온 현상일 터.

'대충은 알겠군. 아직도 확실한 건 아니지만.'

애초에 마법사들은 헨리가 알던 인간들과는 궤가 다른 이들이었다.

이해하려 애는 써야겠지만, 섣불리 속단할 수는 없는 일.

지금처럼 꾸준히 무언가를 시도하며 결과를 직접 마주하는 게 가장 깔끔할 터였다.

"헨리 카밀턴."

그때 자신을 찾는 소리에 헨리가 일어났다.

"예."

"안으로 들어오세요."

고대하던 부름이었다.

지금 헨리가 있는 곳은 발라란 왕립 아카데미의 본관.

이곳에서 가장 '높은' 사람들이 있는 곳이었고, 지금 헨리를 부른 사람이야말로 아카데미 내에선 국왕이나 다를 바 없는 이였다.

달칵.

조심스레 들어선 헨리가 문을 닫고 정면을 바라보았다.

"반가워요, 헨리 카밀턴. 우리가 이렇게 보는 건 처음이죠?"

"그렇습니다, 학장님."

학장 베르사유 버겐트.

톡 치면 굴러갈 것 같은 풍만한 체형에, 꼬불거리는 흰색 가발을 얹은 중년 남자가 바로 헨리를 찾은 것이었다.

"시험관께 보고를 받았어요. C반에 새로 편성되었다고요?"

"예."

"원래는 소속된 반이 없었네요. 역대 아카데미 수련생 중 유일하게."

"...그렇습니다."

"그래서 나는 새로 헨리 수련생을 위한 건물을 지어야만 했고요. 혹시 그 작업에 돈이 얼마나 들어갔는지 짐작하겠어요?"

"잘... 모르겠습니다."

알 수 있을 리가 없다.

건축에는 문외한이거니와, 애초에 알고 싶지도 않은 부분이었으니까.

'...수전노라더니, 설마 정말 아까워서 이러는 거야?'

단순히 아니꼽게 본다기엔 저 표정은 정말 안타까워 미치겠다는 느낌 아닌가.

하지만 학장의 생각을 알 수 없다는 것과는 별개로, 헨리는 이미 한 가지 확신을 얻은 상태였다.

'이건, 흥미로운 상황이야.'

[스트리밍이 시작되었습니다.]

당연히 흥미롭다는 건 헨리의 기준이 아니었다.

오로지 시청자들의 입장에서 생각한 것뿐.

삽시간에 몇 명의 마법사들이 입장하고, 채팅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헨리 카밀턴 수련생?"

"예, 학장님."

"나와 대화할 땐 대화에만 집중하도록 해요."

"죄송합니다."

"무슨 생각을 했던 거죠?"

"학장님의 은혜를 몰랐던 사실이 부끄러웠습니다. 뒤늦게나마 말씀하신 바를 계산해 보려 했으나... 역시 가늠하기 어려웠습니다. 죄송합니다."

평소의 헨리라면 하지 않았을 말이 줄줄 흘러나왔다.

예전이었다면 건조한 사과만 꺼내 놓았을 터.

하지만 지금은 '시청자'들이 헨리를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었고, 이 역시 헨리가 판단하기로 몇 안 되는 '흥미로운' 모습이었다.

"자그마치 60골드가 들어갔어요. 오로지 헨리 카밀턴 수련생 한 사람을 위해서. 이 아카데미에서 그런 특혜를 받은 사람은 헨리뿐이에요."

"감사합니다. 학장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 덕분에 제 부족함을 절절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 특단의 조치가 없었다면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없었을 겁니다."

당연히 헛소리다.

그게 그렇게 아까웠다면 안 지었으면 되는 것 아닌가.

막말로 하위권 기숙사의 구석 방이라도 내어줬으면 들지 않았을 돈인데.

물론, 헨리는 그 태도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ㅋㅋㅋㅋㅋㅋ뭔데?]

[학장이 무슨 프랑스 귀족처럼 생겼네]

[지금 돈아깝다고 그런거에요? 창고 지어준거?]

시청자들은 정확히 맥락을 짚었다.

창고라는 표현 역시 정확했다.

마치 학장의 말에 감명 받았다는 듯, 헨리는 느리게 고개를 끄덕여 긍정을 표했다.

[의사소통 개웃기네ㅋㅋㅋ]

[지금 채팅보고 고개 끄덕거린거 맞죠??]

"다행히 고마움을 아는 수련생인 것 같아 이 학장은 정말 다행스러울 따름이에요. 항상 염두에 두도록 하세요. C반의 기숙사는 헨리가 사용하던 곳보다 훨씬 많은 돈이 들어간 곳이라는 걸요."

"시설물 하나하나를 제 몸처럼 아끼며 사용하겠습니다. 저 개인의 성장만큼이나 후학들에게 말끔한 환경을 남겨 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곳에 들어갈 돈을 아낀다면, 더욱 유용한 곳에 투자할 수 있을 테니까요."

"내가 헨리 카밀턴 수련생을 지금까지 잘못 생각하고 있었군요. 훌륭해요."

학장은 손뼉까지 치고 있었다.

'날 싫어하던 이유가 설마 돈이 더 들어가서 그런 거였어?'

헨리도 학장이 자신을 눈엣가시처럼 여긴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단순히 수련의 성과를 내지 못해서라고 생각했으나, 지금 보이는 모습대로라면 정말 돈 때문이었을지도 모르는 일.

'아니, 거의 확실해. F에서 C까지 한 번에 올라왔단 것엔 관심도 없어 보이잖아.'

생각해 보니 그랬다.

루소만큼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시험관이 보였던 것만큼은 놀라 줘야 하는 게 정상 아니던가.

학장은 헨리가 3년간 마나 한 번 사용하지 못했다는 걸 알고 있을 텐데.

그러나.

"...이걸 받아 가도록 해요. 그 마음 변치 않도록 노력하는 것도 잊지 말고요."

"감사합니다."

헨리는 작은 카드 한 장을 건네받았다.

네모난 카드 모양의 출입증을 소지해야만 C반 기숙사에 입장할 수 있었다.

무슨 복잡한 마법이 걸려 있다곤 들었으나, 헨리가 아는 건 거기까지였고.

그러나 그게 정확히 얼마만큼의 가치인지 헨리는 곧바로 알 수 있었다.

"잃어버렸을 땐 200골드를 배상해야 할 거예요. 이걸 만들기 위해 얼마나 비싼 마법사를 고용했는지...."

BJ소드마스터

20화. 오스틴

출입용 카드에만 200골드를 투자했다던 학장의 말은 농담이 아니었다.

내부 시설이 망가질까 걱정하던 노파심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완전히 다른 세상이네.'

기숙사 내부로 들어섰을 때.

헨리가 가장 먼저 한 생각은 그것이었다.

심지어 마법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냥 다른 동넨데?]

[아니 빈부격차 뭔데ㅋㅋ]

[이게 다 공짜로 쓸수있는거에요?]

그들 역시 같은 인간은 인간이었다.

이 광경에서 같은 의문을 느꼈으니까.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그런 것 같긴 한데...."

내부를 돌아다니던 헨리는 식당에 도착했다.

고급스러운 식기에, 정갈하게 정리된 음식들.

언제든 자유롭게 마실 수 있도록 세팅된 음료들은 누군가 집어 갈 때마다 자동으로 그 양이 채워지고 있었다.

'마법사들을 갈아 넣었군.'

헨리는 반사적으로 그리 생각했다.

이 기숙사를 짓는 과정엔 수많은 마법사들이, 그것도 꽤 수준 높은 이들이 동원되었을 거라고.

'그러니까 이 카드만 200골드란 거겠지. 학장 성격상 거짓말은 아닐 테고. 그런데.'

헨리가 조심스레 채팅창을 살폈다.

'이 마법사들은 느끼는 게 없는 건가? 보통 이런 상황에선 시끄럽게 떠들어 대는 게 대부분일 텐데.'

이 마법의 수준은 어떻고, 나도 저 마법을 알고, 이런 실력이라면 최소 어느 정도 이상이고.

스스로의 실력과 비교하거나, 혹은 자신이 아는 누군가와 비교하는 상황이 헨리의 예상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 마법사들의 반응은 그저 감탄하거나, 우습다는 듯 구는 게 전부였다.

'직업적 특성이겠지.'

어차피 깊게 생각할 것도 없었다.

마법사와 기사는 살아가는 방식이 정반대라도 이상할 게 없는 관계였으니까.

주어진 컨텐츠부터 확실히 소화하자.

결론내린 헨리는 기숙사 내부를 바쁘게 돌아다녔다.

간혹 아는 얼굴을 만날 때도 있었으나, 베인 때와 달리 노골적으로 시비를 걸어 오는 경우는 없었다.

단지 많이 놀란 표정이나 지었을 뿐.

일단 이곳에 들어와 있단 건, 그 자격을 증명했단 것이었으니까.

"아마 오늘 저녁만 되어도 제 이야기로 기숙사가 떠들썩해질 겁니다. 룸메이트가 제게 관심 없는 친구이길 바라야겠군요."

아마 그럴 가능성은 낮을 테지만.

하지만 헨리 자신에게 관심이 많다면?

그건 그것대로 '컨텐츠' 삼을 수 있을 터였다.

이미 헨리의 사고방식은 방송을 중심으로 돌아가기 시작한 지 오래였다.

한 시간 정도.

헨리는 기숙사 내부 시설을 시청자들에게 소개했다.

사실 그렇게까지 특별한 건 없었다.

단지 모든 면에서 기존 숙소보다 뛰어나다는 게 핵심 포인트.

거기에 적당히 놀라는 듯한 모습을 양념으로 얹었고, 슬슬 적당히 마무리되어 가는 분위기였다.

"이제 마지막입니다. 제가... 당분간 쓰게 될 공간이군요. 혼자 쓰는 게 아니란 사실은 아쉽습니다."

[당분간이면 금방 올라가겠단 뜻이죠?]

[B반 딱대ㅋㅋ 아ㅋㅋ]

딱 대긴 뭘 대라는 걸까.

헨리는 적당히 웃어 주며 문을 열었다.

"아직 룸메이트는 오지 않았군요. 여기까지 진행해도 괜찮겠습니다."

***

F반에서 C반으로.

소속된 그룹이 바뀌었다는 건, 헨리 카밀턴을 둘러싼 환경이 완전히 뒤집혔다는 것과 같았다.

애초에 한 단계만 올라도 확연한 차이가 생기는 곳이 바로 이 왕립아카데미였다.

그러나 헨리가 올라간 건 자그마치 세 칸.

그로 인해서 발생한 변화는 단순히 숙소의 퀄리티가 올라갔다는 것뿐만이 아니었다.

'죄다 바뀌었군.'

수업 환경.

이용할 수 있는 시설물의 차이.

수련생들의 의사에 따라 신청할 수 있는 '특별 수업'과, 결정적으로 교관을 비롯한 교육자들의 시선까지.

일단 C반부턴 '뛰어난 기사'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입증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었다.

그곳부턴 언제, 누가 갑자기 잠재력을 드러낼지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시험을 치른 저녁.

헨리의 예상대로, 아카데미는 갑자기 급부상한 헨리 카밀턴을 놓고 대화가 오가는 중이었다.

"무언가 부정한 수를 쓴 게 틀림없습니다! 교관께선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부정한 수라니... 우리가 마법사들도 아니고, 무슨."

"혹시 모르는 일이란 말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십시오, 상식적으로."

"재능이란 게 상식의 영역에 있는 것이었소? 그리고 이미 보시지 않았습니까. 루소 수석 교관께서 함께 있는 모습을."

"설마 수석 교관님의 제자란 말씀을 하시려는 겁니까? 저는 그 두 사람이 연무장에 함께 있는 걸 오늘 처음 보았습니다!"

관심이 쏠리면 견해의 차이가 발생하기 마련.

헨리를 안 좋게 보던 이들과, 딱히 큰 관심은 없던 이들이 사방에서 투덕거렸다.

교관뿐만 아니라 수련생들도 마찬가지.

무언가 착오가 있었던 게 아니냐는 의문부터, 납득할 수 없다며 씨근거리는 이들도 있었다.

특히 헨리와 좋지 않은 관계였던 이들은 더더욱 그랬다.

"갚아 주겠다며 찾아오는 건 아니겠지?"

"...그럴지도 모르지. 갑자기 C반이라니!"

"일부러 숨겼던 거야? 일주일 만에 그렇게 바뀐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

갑자기 성장한 헨리가 보복하려 들지도 모른다는 걱정 때문이었다.

직접 찾아와서 패거나 하는 게 아니더라도, 아카데미는 기본적으로 어떤 일에서건 '뛰어난' 수련생을 우선해서 챙겼으니까.

헨리가 마음만 먹는다면 그들에게 직접적인 불이익을 가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걱정과 달리.

헨리는 이미 그런 쪽엔 관심조차 두지 않은 상태였다.

'시끌시끌하네.'

기숙사 안에 있어도 느낄 수 있었다.

헨리 카밀턴이란 존재가 전에 없던 관심을 받고 있다는 것쯤은.

그러나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여기도 잠시 거쳐 가는 곳일 뿐이야.'

F반이네, C반이네 하는 것도 아카데미를 졸업하는 순간부터 의미를 잃는 것이다.

당장에 동기부여야 될 테지만, 진짜 기사가 된 이후엔 인생에 별다른 영향도 없는 그런 것.

재능이 없을 적에야 모르겠으나, 지금부터 헨리에게 중요해진 건 아카데미 이후 자신이 얻어내야 할 입지였다.

[후원 상점]

[2레벨 재능의 구슬(순환) : 378,000원]

'이걸 사야겠지.'

이미 1레벨 재능은 모두 구매한 상황.

다음 목표는 애초에 정해진 거나 다름없었다.

'그것도 가급적이면... 묶음으로.'

[2레벨 재능의 구슬보따리 : 1,880,000원]

자그마치 188만 원.

어마어마한 금액이었다.

그러나 그렇게까지 비현실적인 건 아닌 금액.

모을 때까지 시간이 좀 걸릴 테지만, 묶음으로 사는 편이 훨씬 저렴하다는 건 이미 느꼈던 바였다.

'마나와 관련된 수업은 의미가 없어. 검술 수업 같은 것도... 흠, 글쎄. 의미가 있을까?'

앞으로 취해야 할 태도를 고민하는 것이었다.

기본적으로 성실한 모습을 보이긴 해야겠지만, 수업이 중심이 되어선 안 될 테니까.

'검술 자체는 도움이 될 테지만, 그때 본 게 있으니까.'

헨리에게 주어진 건 후원 상점만이 아니었다.

연무장에서 훈련하며 보지 않았던가.

검술 숙련도.

그게 정확히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파악하지 못했지만, 분명 어마어마한 효과를 지녔을 터였다.

'가급적 개인 시간이 많은 쪽으로. 이렇게 짜면....'

헨리는 대충 시간표를 작성해 보았다.

반드시 들어야 하는 수업은 듣되, 그 외엔 최소한의 스케줄만 채운 상태로.

마침 수석 교관 루소가 스승이라는 루머도 돌고 있으니 그 핑계론 아주 적당할 터였다.

그러던 때였다.

달칵.

숙소 문이 열리는 소리에 헨리가 고개를 들었다.

"오."

다짜고짜 들리는 감탄사.

검은 머리를 단정히 다듬어 둔 소년이 놀랍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너 그 녀석이지? 헨리 카밀턴."

"맞아."

"이야, 그렇잖아도 시끌벅적하던데. 그 주인공이 내 방에 있단 말이지? 내일부턴 귀찮아지겠는걸?"

"우리 방이지."

"아, 그래. 우리 방. 표현이 입에 익었어. 난 꽤 오래 혼자 있었거든. 룸메이트가 다들 버티지 못하고 나가는 바람에."

위협인가. 순간 그리 생각했다가, 헨리는 아니란 걸 깨달을 수 있었다.

"너무 시끄럽다지 뭐야. 말이 많은 건 좋은 건데. 나는 좋은 친구가 되기 위해 깊은 교감만큼 훌륭한 수단이 없다고 생각하거든."

"...깊은 교감?"

"내 이름은 안 물어봐? 앞으로 매일같이 얼굴 마주칠 사이인데. 아침에 눈 떠서, 훈련장에서, 식사할 때, 자기 전까지. 아마 이 아카데미를 졸업할 때까지 가장 많이 볼 얼굴이 나 아닐까?"

"...."

"오스틴이야. 재능이 보인다면서 아버지가 억지로 집어넣다시피 했지. 지금 생각하면 참 고마운 일이지만, 처음엔 얼마나 하기 싫었는지. 물론 반드시 어딘가에 소속되어야 하는 게 아니란 걸 알고 나선 잘도 따랐지만."

정말 말이 많다.

헨리는 아까 한 말이 농담이 아니란 걸 깨닫고 말았다.

C반의 구성원은 그리 많지 않고, 이 기숙사엔 빈 방이 많았으니까.

규정상 두 명이 한 방을 써야하는 것일 뿐, 특별한 사유를 놓고 요청한다면 얼마든지 들어줄 수 있는 것이었다.

"벌써 질렸다는 얼굴이군. 드디어 한 명의 친구가 생기나 했더니... 유감스럽기 그지없어. 잘 가, 헨리 카밀턴. 짧지만 반가웠다. 잊지 못할 거야."

"말만 많은 게 아니라 상태도 좀 이상해."

"그런 이야기도 들었었지. 과하게 들떴다던가? 하지만 어쩌겠어? 사는 게 이렇게 즐거운데. 우울하게 사는 것만큼 슬픈 일도 없다고 생각하는... 이런, 내가 더 싫어지겠어."

오스틴이라 밝힌 소년이 시원하게 웃었다.

헨리가 자신을 싫어할 거라 생각하면서도 개의치 않는 듯한 태도.

여기서, 헨리는 확신을 얻었다.

"아니, 그런 태도 좋지. 좋아서 하는 말이야."

"유감인... 좋다고?"

"말 많고, 상태 이상하고, 내게 큰 관심 없고."

"나는 친구에게 아주 많은 관심을...."

"그 관심 말고. 내 재능이라든가, 어떻게 C반에 올 수 있었던 거냐든가... 그러니까 네가 이득을 보기 위한 관심 말이야."

"오, 그런 건 전혀 없지. 이득만 쫓기엔 삶이 너무 짧아. 나는 졸업한 후에도 방랑 기사가 될 생각이거든. 죽기 전에 세상을 다 둘러보려면 그것만 한 게 없으니까."

"아주 훌륭해."

헨리는 진심으로 그렇게 말했다.

기사로서의 성장에 집중해야 하는 환경이라면?

이렇게 골치 아픈 룸메이트도 없을 터.

하지만 지금 헨리에게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이던가.

"나는 믿고 있었어. 언젠가 나와 정말 잘 맞는 친구를 만나게 될 거라고."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보다 오스틴. 세계를 돌아다니는 게 네 꿈이라면, 이미 가 볼 만한 곳들도 정리해뒀겠지?"

순간 오스틴의 눈이 커졌다. 이유는 간단했다. 자신의 관심사를 이해하고, 관심을 가져 준 것이었으니까.

"물론이지! 그뿐이겠어? 우선 큰 지역으로 분류하고, 그 안에서도 꼭 들러야 할 곳들은 다 적어 뒀지. 특징까지도 말이야! 신경 쓴 부분은 음식과...."

장황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여태껏 들어 왔던 룸메이트들은 여기까지 버티지도 못했으나, 헨리만큼은 정말 흥미롭다는 듯 눈을 빛내며 듣고 있었다.

'마법사들이 좋아하겠는데?'

이건 분명했다.

고작 헨리가 운동하는 모습만 보고서도 즐거움을 느끼던 게 그들이었다.

마탑에 박힌 채 끊임없이 연구와 수련에만 몰두하는 직업이 바로 마법사였고, 그런 만큼 헨리의 삭막한 이야기에도 관심을 가졌었으니까.

하물며 오스틴의 이런, 생생하기까지 한 이야기라면?

단지 들려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컨텐츠'가 될 수 있을 터.

심지어 오스틴이 할 수 있는 건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또 그곳에서 파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는 곳도 상당수거든. 그때를 대비해서 요리 실력도 갈고닦았지. 가급적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를 활용할 수 있도록!"

잡다한 상식에, 보는 눈이 즐거운 요리, 거기에 어딘가 나사가 빠진 듯한 분위기까지.

"진심으로 훌륭해, 오스틴. 우린 정말 친한 친구가 될 수 있을 거야."

"나 역시...."

"일단 수업 시간표부터 맞출까?"

활짝 웃는 헨리의 권유에, 오스틴은 그만 감동받고 말았다.

BJ소드마스터

21화. 동영상(1)

C반 수련생들의 스케줄은 대부분 비슷했다.

물론 모든 과목이 강제인 건 아니다.

일부는 수업 참여 여부를 선택할 수 있었으나, 사실상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다 듣는 경우가 많았다.

어쨌든 기사로서의 성장에 도움은 될 테니까.

또한 모든 시험이 절대평가라곤 하나, 그렇다고 경쟁의 요소가 없는 것도 아니었고.

'역사학처럼 성장에 불필요하다고 판단할 과목들은 강제로 듣도록 해 뒀고. 대부분 교수들이 지도하는 수업이야.'

오스틴과 함께 시간표를 재편성하며 헨리가 파악한 구조는 그러했다.

그리고 의외로 오스틴은 대부분의 수업을 빼먹지 않고 듣는 편이었다.

"강해지면 갈 수 있는 곳이 늘어나거든. 강해지는 것 자체가 목적은 아니지만, 그만큼 내 선택의 폭이 넓어지는 거잖아?"

명쾌한 이유였고, 덕분에 헨리도 비슷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귀찮지만, 이편이 낫지. 무작정 방송 시간이 많다고 이득을 보는 건 아닌 것 같았으니까.'

이것도 며칠간 방송에 적응하며 느낀 사실이었다.

시청자들은 '양질의 컨텐츠'를 원하는 거지, 무작정 헨리의 얼굴을 오래 비춘다고 만족하는 게 아니었다.

마법사들에게도 그들의 삶이 있었고, 짧은 휴식 사이에 만족할 만한 무언가를 겪고자 하는 것이었으니까.

'그럼 방송을 켤 만한 수업은, 대충 이런 것들이겠는데.'

헨리가 대충 목록을 뽑아 보았다.

지루한 것들은 빼고, 마법사들이 흥미를 느낄 만한 것들로만.

특히 헨리 스스로가 활약할 수 있는 것들은 빠짐없이 목록에 포함시켰다.

가령 지금처럼.

"...새로운 얼굴이 늘었군. 환영한다. 진도에 뒤쳐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거야."

교관 파이크가 지도하는, [실전 마나운용의 효율] 같은 과목이 그런 경우였다.

***

교관 파이크는 이번 '헨리 카밀턴' 사건에서 가장 놀라고, 떨떠름했던 사람 중 하나였다.

마나 수련을 담당하는 교관이기에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

헨리 카밀턴에겐 일말의 재능도 없었고, 그건 후천적으로 갈고닦는 게 불가능한 수준이었다는 사실을.

하지만 그런 판단을 비웃기라도 하듯, 헨리는 뜬금없이 시험관에게 C반으로 편성하겠다는 결과를 얻어냈다.

'말도 안 돼!'

지금까지 쌓아 온 상식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재능의 벽이 얼마나 두터운진 파이크 본인이 뼈저리게 느끼지 않았던가.

결국 그는 기사들 사이에서 낙오한 신세가 되었고, 끝내는 아카데미의 교관이라는 패배자들의 일원이 되어야만 했다.

'루소가 가르쳤다고? 고작 그런 걸로 될 일이었다면 모두 기사가 되고도 남았겠지!'

분명 무언가 착오가 있었으리라.

아니, 반드시 그래야만 했다.

그렇지 않다면 치미는 박탈감을 감당할 수 없었으니까.

사실 파이크도 처음부터 헨리와 이런 관계였던 건 아니었다.

헨리가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아직까진 남들보다 좀 '뒤쳐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을 즈음까진 괜찮았으니까.

마치 스스로의 과거를 보는 것 같은 기분에, 파이크는 간혹 따뜻한 격려의 말까지 건네기도 했었다.

그러나 헨리에게서 돌아온 반응은 그의 기대와 달랐다.

감사하다는 반응은 보였으나, 그 눈빛에 드러났던 건 분명한 자신감이었다.

분명 나는 언젠가 올라설 수 있으리라는.

'제깟 놈이 날 무시했지. 고작 교관 따위가 미래의 기사에게 훈계를 하느냐는 눈빛이었어.'

그게 파이크에겐 '무시'로 다가왔었다.

언젠가 기사가 될 사람에게 감히 교관 따위가 훈계하느냐는 눈빛.

당연히 헨리는 그런 생각이 없었으나, 깊게 뿌리내린 열등감은 그의 사고를 마비시킨 지 오래였다.

'고작해야 몰락 귀족 나부랭이가! 기사가 되지 못한다면 그나마도 물려받지 못하는 주제에!'

부정적인 감정은 시간이 흐르며 점차 덩치를 불려 갔다.

밑바닥에서 허우적거리는 헨리의 모습.

처음 연민을 느꼈던 그 꼴에서, 이제 파이크는 우월감과 통쾌함마저 느끼던 게 사실이었고.

이제 올해를 마지막으로 볼 일이 없다고 생각하니 기쁘기까지 하던 파이크였으나, 헨리는 그의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단번에 치고 올라와 버린 것이었다.

'영약이라도 먹었을 테지. 아니, 아니야. 고작 그런 방법으로 해결할 순 없어. 일시적으로 마나의 양을 증폭시켜 주는... 그런 게 분명해.'

파이크는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을 이해하고자 나름의 가정을 세운 상태였다.

헨리는 '일시적으로' 마나의 양을 증폭시켜 주는 무언가를 사용했고, 그 지속 시간이 끝나기 전에 시험을 마친 게 분명하다고.

사실 가능한 일이었다.

이제 마지막 1년만이 남은 상황.

헨리에게나, 그 아버지인 카밀턴 자작에게나 더는 물러날 곳이 없었을 테니까.

'기술은... 루소, 그 자식이 최소한의 무언가를 가르쳤던 것일 테고. 순간적으로 늘어난 마나를 활용할 수 있도록.'

이건 또 말이 안 되는 가정이었으나, 파이크는 마침내 답을 얻었다고 확신했다.

그렇다면?

그 비밀을 폭로하고, 헨리가 원래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도록 한다는 게 파이크의 선택이었다.

"...오늘은 타격 훈련을 진행하겠다."

여전히 저 얼굴이군.

말하면서도 파이크의 시선은 헨리에게만 고정되어 있었다.

여전히 건조한,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에도 그리 기쁘지 않다는 듯한 태도.

이래서 저 헨리 카밀턴이 더 싫을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어떤 상황이건, 전투에서 [집중]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다는 건 모두 알고 있겠지. 너희의 오늘 목표는 이 목각인형을 부러뜨리는 것이다."

파이크의 곁엔 인간 형태를 본뜬 나무 조각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그것만 봤을 땐 단순한 인형.

하지만 그 위론 붉은 점들이 위치를 옮겨 가며 빠르게 점멸하고 있었다.

"마나를 집중시킨 검이 이 타격점을 공격해야만 부러뜨릴 수 있을 거다. 충분한 양의 마나만 두른다면 맨손으로도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건 가혹한 요구이겠지. 그러니 오늘은 진검을 사용한다."

C반의 수련생들은 모두 여섯 가지 기초 소양을 다룰 수 있는 이들이었다.

당연히 [집중]과 [변형]을 응용한다면 이론상으론 맨손 위에도 칼날 같은 마나를 두를 수 있다.

하지만 단지 '사용할 수 있다'는 수준에선 터무니없는 이야기.

무기에 싣는 마나는 기존 형태에서 큰 차이가 벌어지지 않고, 그런 만큼 진검을 사용함으로써 비교적 날카로운 오러를 실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갓 기술을 익힌 녀석에겐 진검만큼 다루기 힘든 무기도 없지.'

이것 역시 파이크의 의도가 담긴 처사였다.

검에 마나를 싣기 쉽다는 건, 어디까지나 검을 손처럼 다룰 수 있을 만큼 익숙해진 사람들의 이야기였으니까.

물론 헨리의 검술이 뛰어나단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단순히 휘두르는 것과, 마나를 실은 채 휘두르는 건 완전히 다른 이야기였다.

당연히 그건 헨리도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어떻게 할까.'

헨리가 고민했다.

성공하는 것쯤은 쉬운 일이다. 저 파이크의 낯짝이 멍해지는 꼴을 보는 것도 나름 즐거울 터.

하지만 기존에 헨리가 세웠던 계획은 차츰, 누가 보기에 '정말 빠르게 성장한다'고 느낄 정도로만 실력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사실 내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관건은 시청자들이 원하는 방향.

잠시 올라오는 채팅을 확인하고, 헨리는 결론을 얻었다.

'해야겠네.'

"첫 수업부터 이렇게 힘든 과제라니. 파이크 교관님도 네게 기대가 상당하신 모양인데? 괜히 천재라고 떠들어 댄 게 아니었구나?"

"글쎄. 일단 다들 너랑 비슷하게 생각하는 건 확실해 보이네."

대충 오스틴의 말을 받으며 헨리는 주위를 의식했다.

파이크의 시선은 노골적이었고, 마침 어제 거하게 소문이 돌았던 참.

어지간한 수련생들은 모두 이 상황이 벌어진 이유가 헨리란 걸 파악한 상태였다.

'졸지에 관심 없던 녀석들까지 나만 보고 있지만... 어쩔 수 없지.'

[저게 돼요? 너무 빠른거 아님?]

[아ㅋㅋ 목각인형 딱대~!~!]

[파이크 그때 걔네ㅋㅋㅋ 컨셉충ㅋㅋ]

[이거 잡을거죠? 잡을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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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팅창에선 더없이 격한 반응이 올라오고 있었다.

일전 파이크가 한 번 보였던 모습이 직격타였다.

심지어 베인을 상대할 때보다도 채팅이 많을 정도였으니, 선택지는 결정된 셈이었다.

까딱까딱.

헨리가 오스틴에게 손짓했다.

"어, 친구. 왜?"

"나는 여기 있는 사람들이 다 놀라게 할 거야. 정확히 어느 정도로 놀라게 해야 할까?"

"...어?"

오스틴이 당황했다.

너무 뜬금없는 질문이었으니까.

하지만 헨리의 질문은 애초에 오스틴이 들으라고 한 게 아니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금 저희한테 말씀하시는거 맞죠??ㅋㅋㅋ]

[개웃기네ㅋㅋㅋㅋㅋㅋ]

[아니 친구 너무 삭막하게 이용하는거 아님?ㅋㅋㅋㅋㅋ]

"혹시 이런 질문이 불편한가?"

"아? 아, 전혀. 단지 놀랐을 뿐이야. 후, 이런 패기라니. 헛소문이 아니었어. 아무튼 얼마나 놀라게 해야 하느냐라...."

"정확히 어떤 반응이 나와야 그걸 놀랐다고 할 수 있는 거겠어?"

"음, 다들 탄성을 낸다거나, 할 말을 잃는다거나... 그런 거 아닐까?"

[저거면 ㅇㅈ해드림]

[대충 놀란거 있잖아요ㅋㅋㅋㅋ]

[아니 저희 그렇게 빡빡하진 않은데ㅋㅋㅋㅋ]

"그렇지. 그 정도면 충분하겠어. 하지만 단지 놀라는 수준이 아니라, 정말 크게 놀란다면 어떨까?"

"어... 정말 크게? 이게 혹시 그렇게 중요한 문제인가? 그 막, 얼마나 크게 놀랐느냐에 따라서 이후 헨리 네 움직임이 정해진다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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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 그거면 되겠어."

"됐다고? 뭐가?"

"오스틴 네 덕에 어떻게 해야 할지 정했단 거지. 고마워, 친구."

"어, 음, 도움이 됐다니 다행이지만...."

"그냥 도움도 아니고 정말 큰 도움이지. 진심이야."

오스틴은 여전히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를 뒤로하고 헨리가 앞으로 나섰다.

이미 몇 명은 파이크의 지도 아래 목각인형을 두드리고 있었다.

부러뜨린 사람은?

당연히 없었고.

하물며 제대로 타격점을 가격한 수조차 얼마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파이크 교관님."

"그래, 헨리 카밀턴. 먼저 축하한다. 이곳에서 네 얼굴을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감사합니다. 신경 써 주신 덕분입니다."

파이크의 눈가가 움찔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파이크는 시선이 많을 땐 감정을 잘 숨기는 편이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버티는 건 쉽지 않을 거다. 하물며 단번에 세 단계를 건너뛴 네 입장이라면 더욱 그렇겠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내가 종합 평가에 긍정적인 내용을 쓸 수 있다면 좋겠군. 바로 시도할 테냐?"

"예."

거침없는 태도.

마음에 안 들었지만, 파이크는 그 태도가 무너지리라 기대하며 턱짓했다.

헨리가 곁의 검을 한 자루 집었다.

몸 위로 일렁이는 마나를 보니, 일단 정말 사용할 수는 있게 된 모양.

'하지만 저건 안 될 거다. 당장 이곳에서 저걸 해 낼 수 있는 녀석은 한손에 꼽을 정도니까.'

그 한손에 꼽는다는 수련생마저도 이미 C반에서 1년을 보낸 몇몇이었다.

처음 올라왔다면?

애초에 불가능에 가까운 요구.

'...집중까지. 또 영약이라도 마시고 온 건가? 마나 운용이 생각보다 깔끔한... 아니, 그래도 해 낼 리가 없지. 이건 불가능해.'

헨리의 검이 푸르스름하게 빛났다.

깔끔하게 실린 마나는 마치 검이 원래 그런 빛깔인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적은 양의 마나를, 마치 날 위에 도포하듯 효율적으로 두른 것이다.

다음 순간.

"...!"

파이크의 눈이 커졌다. 애써 감정을 추슬렀다. 한 번, 두 번까지. 여기까진 우연일 수도 있는 거였으니까.

단지 우연히 뻗은 검이, 우연히 그 자리에 온 타격점을 건드린 것뿐이라 기대할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그 이상부턴, 결코 우연이라 치부할 수 없는 일이었다.

심지어.

'말도 안 돼.'

쩌적.

모두가 볼 수 있을 만큼.

선명한 균열까지 생겨 버린 상황이라면 더더욱.

그러나 그때 헨리는.

그들과는 다른 내용 때문에 놀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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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또 뭔데?'

BJ소드마스터

22화. 동영상(2)

본격적인 수업 첫 날.

헨리는 마치 도장 깨기라도 하듯 매 수업 때마다 사람들이 놀랄 만한 결과를 쏟아냈다.

"방출과 결속 사이의 간격을 최대한 줄이는 게 오늘 수업의 과제인... 훌륭하군."

"가장 먼저 인형을 부순 건 헨리 카밀턴이다. 열외하도록."

"흠 잡을 곳이 없네. 다른 녀석들도 집중해서 보도록 해. 헨리가 한 걸 봤겠지만, 순환이 육체의 움직임에 미치는 영향은...."

만년 열등생은 더 이상 그 자리에 없었다.

벌써 3년째 C반에서 머물러 온 수련생조차도 숙련도에서만은 헨리를 따라갈 수 없을 정도였으니까.

"세상에, 그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쟤가 정말 그랬다고? 헛간? 우리 아카데미에 그런 게 있었어?"

"그랬단 말이지... 아, 루소 수석교관님?"

"아버지께 말씀드려야겠군. 그리 대단한 분이 아카데미에서 썩고 계셨다니."

소문은 급속도로 퍼졌다.

헨리를 아는 사람은 많았지만, 가까운 곳에서 지켜보던 사람은 몇 없었다.

특히나 차이가 현격했던 C반의 수련생들은 더욱 그랬다.

"원래 소문은 과장되는 법이니까. 평가가 완전히 잘못되었던 거겠지. 마나조차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단번에 여기까지 온다는 건 불가능해."

"그 머저리들의 눈엔 비슷한 수준만 보였을 테니까. 아마 다른 이유로 따로 빠져 있었던 거겠지."

단지 소문으로만 접해 왔었기에, 이들에게 헨리는 '무언가 사정이 있었던'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겸사겸사 수석 교관 루소의 입지도 가파르게 상승했고.

어쨌건 소문이 돌았다는 건, 설령 과장되었더라도 어느 정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거니까.

그러나 그들과 달리.

바로 옆에서 헨리를 지켜봐 왔던 이들은 지금 벌어진 상황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지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특히 파이크를 비롯해, 하위권 클래스의 수업까지 함께 진행하던 교관들이 딱 그런 경우였다.

"확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모여 학장님께 건의한다면...."

"어떤 확인을 말씀하시는 거죠? 첫 수업부터 수련용 인형을 모두 부순 수련생의 실력을 말인가요?"

"실력은 검증되었으나, 그 실력을 얻어 낸 방법 말입니다. 수상하지 않습니까?"

"...놀라울 뿐이죠. 세상에 그런 방법은 없어요. 공작가의 구성원도 우리 아카데미에서 수업을 받는 게 현실이에요. 파이크 교관님의 말씀대로라면 그런 일은 없어야겠죠."

"분명 우리가 모르는...."

"저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더는 헨리 카밀턴을 주제로 대화하고 싶지 않네요."

그러나 같은 기분을 느꼈다고 해서, 그에 보이는 반응도 같은 건 아니었다.

대부분의 교관은 벌어진 상황에 순응했다.

격한 거부감을 느끼는 건 오로지 파이크 한 명뿐이었다.

나머지는 관심을 껐거나, 어느 정도의 흥미만 가진 채 헨리를 지켜볼 뿐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상황을.

"그렇게 되었다. 헨리 네가 걱정할 일은 없을 것 같군."

"감사합니다."

헨리 카밀턴은 수석교관 루소로부터 전해들을 수 있었다.

헨리를 바라보는 루소의 눈은 차분했다.

걱정과 달리 헨리는 처음부터 자신의 존재를 확실히 각인시켰다.

'어차피 이 재능은 숨길 수 있는 게 아니야.'

어설프게 숨기는 것보단 적당히 드러내는 게 낫다.

오히려 그편이 견제를 받더라도, '감당 가능한' 견제를 받는 정도로 테니까.

"...내 개인 연무장은 계속 사용해도 좋다. 또 필요한 게 있다면 언제든 요청하도록."

"감사합니다."

그렇다고 루소가 할 수 있는 일의 범위가 바뀐 건 아니었다.

떡하니 연무장만 내어준 채 그가 돌아갔고, 헨리는 고마운 마음으로 그 호의를 받아들였다.

"아, 드디어."

혼자 있을 수 있게 되었다.

곁에 붙은 채 쉴 새 없이 떠들어대던 오스틴도 없고, 관심의 눈길을 보내오던 다른 수련생도 없었다.

교관?

그들 역시 감히 루소의 연무장엔 접근할 수 없었고.

'이제야 좀 살펴볼 수 있겠군.'

허겁지겁.

헨리는 우선 연무장 내부를 적당히 꾸며두었다.

검을 곁에 세워 두고, 방금 벗었다는 것처럼 갑옷까지 내려 둔 상태.

설령 도중에 누군가 오더라도 어색한 분위기를 풍기지 않기 위해서.

그런 다음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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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는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던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동영상? 동영상 시청? 업로드는 뭐지? 광고는 또....'

새로운 정보들이 쏟아졌다.

다행히 이번에도 대마법사는 충분한 설명을 덧붙여 놓았으나, 그럼에도 헨리는 이해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을 투자해야만 했다.

'이런 게 있다니!'

개념이 너무 새로웠으니까.

상대가 '마법사'이기에 그나마 받아들일 수 있었을 뿐, 다른 곳에서 봤다면 이런 게 어디 있냐며 웃어넘길 만한 그런 것이었다.

'내 모습을 기록으로 남겨 뒀다고? 과연... 대마법사. 대단한 사람이야. 이런 일까지 가능하다니.'

그래도 대충 이해하고 나니 그리 어려운 개념은 아니었다.

다만 그런 게 '진짜 있다'는 게 놀라웠던 것뿐.

'내 기록을 누군가 보는 게 조회이고, 그 개수에 따라 별도의 정산금이 지급된다... 후원이랑은 조금 다른 개념이로군.'

후원은 개인에 따라 편차가 심했다.

당장 며칠간의 경험에만 미루어보더라도.

몇몇 마법사는 헨리의 머릿속에 남을 정도로 툭하면 후원금을 보내오곤 했었으니까.

하지만 그 일부 외엔 후원 없이 헨리를 지켜보고만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경우에 내가 얻을 이득은 없지만, 이거라면 말이 좀 달라지겠어. 오히려 방송에 목을 맬 필요가 없게 되겠지.'

물론 어디까지나 잘됐을 때의 경우다.

[정산 받은 금액 : 137,888원]

당장 받은 14만 원 정도의 정산금만 봐도 그랬다.

액수 자체에서 후원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으니까.

'그러면.'

헨리의 시선이 곁으로 돌아갔다.

구조를 확인했으니, 조금 더 구체적인 상황을 파악해 볼 시간이었다.

[현재 등록된 영상 : 4]

도합 네 개의 '동영상'이 올라가 있었다.

'이게 썸네일이라고 했던가.'

썸네일.

등록된 동영상을 클릭하기 전, 이게 어떤 내용인지 유추할 수 있는 이미지였다.

하지만 그곳엔 그림만 있는 게 아니었다.

헨리가 모르는, 하지만 어째선지 읽을 수 있는 '문자'도 함께 적혀 있었다.

'프로 컨셉충, 진짜 컨셉충을 만나다... 무슨 의미지? 이번엔 맨손으로 엑스트라 참교육시키기... 이건 또 뭐야.'

이해하기 힘든 문장이었다.

단어 하나하나의 뜻은 대충 파악했으나, 그것들이 이런 식으로 문장을 이루니 난이도가 대폭 상승해 버린 것이다.

이럴 땐 직접 보는 것 만한 방법이 없었다.

"이렇게 건들면... 됐다. 나오네."

헨리가 '동영상'을 '재생'시켰다.

아직도 생소한 기분.

그러나 눈앞에서 펼쳐지는 장면은 분명 헨리 자신의 것이었다.

'이런 식인가. 아, 엑스트라는 베인을 말하는 거였어. 컨셉충은... 파이크고. 그럼 나도 컨셉충이란 건가?'

헨리가 고개를 갸웃했다.

분명 컨셉충이란 건 '그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을 일컫는 표현 아니던가.

'내가 잘못 알고 있었나보네.'

호의적인 마법사들이 헨리 자신에게 그런 표현을 쓸 리는 없었다.

헨리는 곧 네 개의 영상을 모두 확인했다.

감상은?

그야말로 만족, 또 만족이었다.

'매니저를 정말 잘 뽑았어.'

이젠 헨리도 시청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대략적으로나마 파악한 상황.

그들의 시선에서 보았을 때, 이 영상들은 그야말로 흥미로운 것들로만 가득 채운 것들이었다.

'이걸 도와준 게 분명... 불꽃솔로. 그 사람이었지.'

독특한 이름이었고, 매번 방송을 진행할 때마다 '매니저 채팅'으로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사람.

포포리쟝도 충분히 잘 도와주곤 있었으나, 헨리는 분명 불꽃솔로가 더 뛰어난 마법사라고 확신했다.

'조언을 좀 구해 보도록 할까.'

헨리 스스로 판단을 내리기엔 너무나도 낯선 분야였다.

이럴 땐 전문가의 손을 빌리는 편이 낫다.

심지어 그 전문가는 헨리에게 긍정적인 감정을 품고 있었으니까.

'그럼 어느 정도 윤곽은 잡을 수 있겠지. 내가 앞으로 어떤 방향을 추구해야 하는지. 또 이 매니저들이 어떤 식으로 채널을 운영할 건지.'

맡기는 건 좋다.

도움을 받는 것도 좋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관심을 꺼 버리는 것만큼은 절대 해선 안 될 일이었다.

***

헨리에게 중요한 건 방송과 동영상 수익만이 아니었다.

물론 188만 원 상당의 구슬보따리를 구매하는 것도 중요했지만, 기사로서의 소양은 마나를 다루는 기술만이 아니었으니까.

[검술]

* 숙련도 : 5레벨, 94%

* 숙련도 100% 달성 시 6레벨로 성장합니다.

* 무기의 품질이 뛰어납니다. 추가 숙련도가 주어집니다.

* 훈련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입니다. 추가 숙련도가 주어집니다.

검술 숙련도.

헨리는 방송 컨텐츠가 아닐 때조차 꾸준히 루소의 연무장에서 검을 잡고 휘둘렀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중요한 요소였어. 이것 덕분에 이번 수업에서의 일도 가능했던 거야.'

파이크가 툭 꺼내 놓은 수련용 인형.

그 타격점을 치기 위해서 [집중]이 필요한 건 사실이지만, 그를 뒷받침할 검술 역시 반드시 따라 줘야만 했다.

그리고 그때의 헨리는,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실력이 늘었음을 체감하고 있었다.

'예전이라면 그걸 다 못 쳤을 테니까.'

그게 바로 검술 숙련도의 효과.

또한 훈련의 성과는 정직하게 나타났다.

"드디어 숙련도가 6레벨에 이르렀습니다. 제 기대보단 성장 속도가 빠르게 느껴지는군요."

찰나간 검에서 빛이 번뜩이는가 싶더니, 헨리의 검술 숙련도가 6레벨로 성장했다.

이렇게 보면 시청자로서는 단순한 숫자 놀음처럼 느껴질 터였다.

하지만 직접 휘두르는 입장에선 그 숫자 하나의 차이가 엄청나단 걸 실감할 수 있을 정도였다.

[진짜 희한하네요ㅋㅋ 저렇게 말하는데도 컨셉이 안깨진다는게ㅋㅋㅋ]

[레벨에 스킬에 숙련도에 다 말하는데도 컨셉이 안깨짐ㅋㅋ 왜냐?? 또마법사가 있으니까~]

[기승전 또마법사ㅋㅋㅋㅋ]

"모두 시청자님들 덕분입니다. 구독과 좋아요 항상 감사드리며, 새로운 영상이 업로드되었으니 못 보신 분들은 한 번씩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제 불편한 채팅은 무시하기까지ㅋㅋㅋ]

[아~~ 우리 기사님 프로 방송인 다됐네 진짜ㅋㅋㅋㅋ]

[영상 업로드는 직접 하시는 건가요?]

[M : 영상 업로드는 채널 매니저 '불꽃솔로'님이 고생해주시고 계십니다!!!]

[편집 기똥차게 하시던데ㅋㅋ 월급은 있어요?]

[M : 무급... 입니다... 방송때... 저 언급... 하지말아주세요... 관심... 싫읍니다...]

알아서 대화를 주고받는 모습.

이건 잠깐의 여유가 주어지는 흐름이었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블라인드 상태가 되었습니다.]

화면을 검게 만들었다.

이제부턴 헨리의 목소리가 시청자들에게 전해지지 않을 터.

하지만 헨리의 목적은 따로 있었다.

[매니저 채팅이 개방되었습니다.]

[매니저들의 블라인드가 해제됩니다.]

"매니저님들."

[M : 어? 무슨일이세요???]

[M : 부르셨... 습니까...]

"기사 수련생으로서 드리기 부끄러운 말씀이지만, 두 분의 조언이 필요합니다. 저를 좀 도와주시겠습니까?"

헨리는 처음부터 솔직히 말하기로 했다.

어차피 이 마법사들에게 무언가를 숨긴다는 건 의미 없는 일이었으니까.

불꽃솔로와 포포리쟝.

두 사람은 헨리의 진솔한 이야기에 나름의 반응을 보였다.

[M : 컨셉... 정말... 어마어마하시네요... 존중해드리겠습니다...]

[M : 저도!!! 저도 존중!!! 평화!!! 애정!!!]

[M : 저는 생각 정리부터 해볼게요!!!]

[M : 진짜 그 동네 기사라고 생각하고... 개인적으로 조언을... 좀 드리자면...]

먼저 시작한 건 불꽃솔로였다.

그는 나름의 짬밥으로 흥미로운 충고들을 연달아 내놓았다.

관건은 어떤 상황에서 '흥미로운 동영상'을 뽑아낼 수 있는가였다.

지금 그가 맡은 업무가 그것이었으니까.

헨리는 이해가 빨랐고, 삽시간에 불꽃솔로가 말하는 포인트를 캐치했다.

"확실히 이해했습니다. 제가 모든 상황을 휘어잡아야만 하는 거군요."

BJ소드마스터

23화. 웁웁(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