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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4 - 105-111

105화. 제 3 사도 악몽을 비추는 거울 아라크네 (2)

"크윽."

너무도 당황스러운 일이었지만,

-[광신의 광검 : 공간 절단]

-[역장 외골격 : 반사 장갑]

-[자아 세뇌 : 전투 집중]

-우우웅!

멍 때릴 틈새가 없었기에, 다급히 전투 태세들을 한 층 강화했다.

1 페이즈는 애초에 기믹에 가까운 장치였지 위험한 패턴이 아니었는데.

심각한 상황일까?

회귀하며 떨어진 능력치를 감안한다면, 과거의 그를 이길 수 있을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아냐."

이건,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추측.

거울 정령이 정말로 그의 전투술 자체를 습득했는지는 모르는 일.

원래 거울 정령의 존재 의의는 과거를 투영해 플레이어를 유혹하거나 정신적인 공격을 하는 것이다.

즉, 애초에 힘으로 플레이어를 압도하는 종류의 패턴이 아니다.

그렇다면 저것 또한 그런 방식으로 공격하지는 않을 가능성이 크다.

침착하게 판단하자.

다른 공격대원들은 이미 순식간에 거울 정령을 처치하고 깨어났을 터.

시간을 오래 끌 수는 없다.

그러다가 2 페이즈가 그가 깨어나기도 전에 시작된다면 큰 일이니까.

그렇다면 다소 무리를 하더라도, 공격적으로 나가야겠다. 놈이 정신적인 공격을 시작할 때, 곧바로 최대한의 공격으로 즉살시키는 전략으로.

-우웅!

-우우웅!

"···."

빠르게 생각을 정리한 한우현은 온 몸에 힘을 준 채, 그 형상을 노려보았다.

놈이 무슨 행동을 취하건 빠르게 처리하고.

너무 늦지 않게 나가리라는 다짐을 새기며.

"자, 와라."

방패와 검, 갑옷 전체에 포스의 보호막을 강력히 두른 채.

-콰앙!

회색 천을 전신에 칭칭 동여맨 채, 거울면을 칼과 방패로 두들기는 불길한 형상과 눈을 마주쳤다.

-쩌적!

-쩌저적!

그리고 서서히 거울면이 서서히 갈라졌고.

-째-쨍그라아앙-!!

-쿠구궁!

마침내 회색의 성기사가 그 비춰지는 벽을 깨고 그의 앞으로 튀어나왔다.

-시잉!

-시잉!

그것의 등 뒤로 두 개의 팔이 더 튀어나오며, 또 다른 방패와 검을 들어 올렸다. 무수한 공격을 동시에 받아내기 위해 개조한 관절들을 삐걱대며.

-쾅!

-쾅!

곧이어 엉덩이 근방에서 두 개의 약간 작은 다리가 튀어나오며, 무겁기 짝이 없는 성기사의 신체를 지탱했다. 역관절 형상으로 이족보행이라는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게 하는 신체 조형.

[응급 신체 대사]의 궁극 형태, [변형 신체 대사]였다.

-끄드득!

-끄드득!

마지막으로 무수한 입체적 각도를 인지하고 가늠하기 위해 발생시킨 여럿의 시신경과 안구.

-번쩍.

-번쩍.

어깨, 정수리, 옆머리에 달린 십 수 개의 눈마저 연이어 뜬 기괴한 기사, 아니 괴물이.

"한, 우현. 아, 서."

그와 똑같지만, 목이 쉰 듯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후."

익숙한 모습이지만, 참으로 보기 역겨운 형상.

그러나 그 모습을 보면서도 한우현은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다행히 형상도 흐릿하고, 느껴지는 포스의 기운도 그리 강하지 않았으니까.

보이는 것과 달리, 전투력을 그대로 모사한 것은 아닌 모양.

-웅.

초월적인 인지 능력으로 순식간에 놈의 견적을 내 보았다.

"좋, 아 보, 이는구나."

포스 파장으로 보아 능력치 자체는 높다.

하지만, 압도적인 격차는 아니다.

거울 정령 특유의 불안정한 물성은 전투에 적합한 성질이 아니니까.

즉 만만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이 정도면 압도적인 격차는 아닌 수준.

"행, 복한가? 지금 이 순, 간이?"

"닥쳐!"

-쐐애액!

그렇기에 순식간에 접근하며 검과 방패를 위와 아래로 빠르게 휘둘렀다.

저건 기믹에 불과하다. 아무런 의식도, 의미도 없는 넋두리.

-채앵!

-콰과광!

"하. 하하. 하."

똑같은 검방술로 막은 채, 회색의 성기사가 비웃음을 흘렸다.

-채앵!

-콰광!

-콰과과광!

다시금 검과 방패가 위로, 아래로, 옆으로, 대각선으로 맞부딪혔다.

"의심, 해 본 적은 없, 나? 너무도 쉽, 게 얻은 기회가?

"···이 새끼가."

무시하려고 했지만.

"지금 이, 게 최선이었, 을까? 더 잘 할 수 있, 지 않았을까?"

그의 열등감을 투영한 듯, 비수와 같은 말들.

"닥쳐라!"

"네가 그, 토록 원하던 기, 회. 과연 진, 짜였을까."

"꿈에 불과한 건 너야!"

도저히 무시할 수 없었기에, 대답을 내뱉으면서도 공격을 휘몰아쳤다.

-콰아앙!

-[절대 방어]

-[절대 방어]

"이 모든 게 꿈, 이라면 어, 떨까. 후회하지 않, 겠나?"

"그런 건 없어!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우우웅!

-우우웅!

부딪히는 초월급 스킬들의 반동들 사이에서, 한우현은 외쳤다.

"후회, 하지 않는다, 고."

"모든 것이 잘 되고 있다. 넌 그림자에 불과해."

"흐."

회색의 한우현이 무표정을 거두고.

"흐흐."

입이 찢어져라 웃었다.

"그렇, 다면."

-콰앙!

-콰과광!

서서히 거울처럼 쪼개지며 금이 가기 시작한 투영체.

"라, 일리 그, 레인저를 살리지 못, 한 것도?"

"···."

-우뚝.

순간.

아주 잠깐.

한우현은 휘두르는 검방술을 멈췄다.

"이."

그의 얼굴에 감정이 사라졌다. 시린 듯한 무감의 표정.

-촤라라락!

-[위상가변칙]

-[상대성흐름]

-[상 전이]

-[힘의 순환]

무수한 [물리 왜곡술]이 얽혔다. 현재의 포스 수치로는 구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히.

-[광신의 광검 : 다중 차원 절리]

검 끝에 무수한 차원의 영역이 [다층적]으로 서리며 [중첩]되었다.

"개."

-쑤와아아아악!

공간과 시간의 연속체가 검을 중심으로 찢어지며 기괴한 중력파와 탄성파를 내뿜었고.

-으르-어어엉!

-아으-쯔어엉!

무수한 검과 방패의 난도질이 회색의 투영체에게 작렬했다.

"자식이-!!!"

-쩌저저적!

-째앵-그라아앙!

곧이어 마치 방금까지의 대치는 WWE에 불과했다는 듯.

-콰자장!

-쨍그랑!

초월적인 위력의 물리력이 작렬했고..

-까라랑!

-카라랑!

순식간에 거울 정령이 수많은 유리 조각으로 산산조각났다.

"하, 하하, 하하하···."

하지만 아직 그 생명이 남아 있는 듯, 입이 위치했던 위치의 파편이 비웃음을 흘렸다.

"넌 또 다시 실패할 것이야, 한우···."

-콰자작!

"난, 실패하지 않아."

마지막 파편마저 발로 밟아 부순 한우현이 광기에 찬 눈빛을 드러냈다.

"이번에는, 절대로···."

그 검과 방패의 끝이 희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 * * *

무수한 은빛의 거미줄 고치에 둘러싸인 열 명의 플레이어들.

"이런 씨발, 뭐야? 왜 저래?"

"왜 안 일어난다?"

그 안에서 최윤과 장즈하오가 눈살을 찌푸리며 초조하게 중얼거렸다.

"···."

모두가 일어난 채 기다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눈을 감은 채 쓰러져 있는 한우현을 바라보며.

"이런 상황은 전혀 상정하지 않았다요."

"맥도 길드장이 잠들어서 비활성화됐고···."

"고, 곧 보스 일어날 거 같은데. 어떡해요?"

-쿠웅!

-짜라라락!

-쯔라라락!

엘리쟈와 시호리도 고치 아래에 본격적으로 펼쳐지기 시작한 거미줄을 보며 불안하게 중얼거렸다.

"애초에 게임에서는 한 명이 늦게 잡아도 그냥 동시에 일어나잖아."

"야 나유나! 네가 가장 가깝잖아! 뭐라도 해 봐!"

"마, 맞아요오···! 저희는 너무 멀어서 제대로 보이지도 않아요···!"

라니아와 홍세희의 재촉에 나유나가 눈을 질끔 감고 외쳤다.

"으으··· 이미 몇 번이나 했는데 안 된다니까! 그래도 다시··· [용맥 분출]!"

-후우욱!

순식간에 무수한 자연의 기운이 거대한 용처럼 일어나며, 나유나의 앞에 있는 유리 고치를 강타했고.

-콰앙!

"···안 돼. 이거 파괴 불가야."

"제 스킬도, 모두 전해지지 않습니다."

한우현이 갇힌 고치의 양 옆에 매달린 라일리와 나유나가 대화를 나눴다.

"씨발, 대기실 판정이라는 건가?"

"···후회, 않아···."

"어, 어! 일어난다!"

"···아닙니다. 잠꼬대에요."

"···이 씨발 진짜. 자신 있게 들어가 놓고 뭐하자는 거야···."

그의 목소리에 둘 모두 순간 흠칫했다가.

"···이번에는···."

"···라일리···."

"···?!"

"···!!?"

순간 나유나와 라일리의 얼굴에 당황이 떠올랐다.

"뭐야, 왜 네 이름을 불러?"

"그, 그렇게 말해도 저도 모릅니다만."

"···미안···."

"···설마 꿈에 나온 건 아니겠지?"

"예? 제, 제가 왜 길드장의 꿈에 나옵니까? 이상한 의심을 하십니다!"

"하긴, 자기 과거가 나오는데··· 그럼 뭐야."

기분 나쁘다는 듯 이마를 찡그린 나유나가 다시금 한우현을 내려다보았다.

"···과거?"

그리고선 이상하다는 듯 한 마디를 중얼거렸고.

"과거에 뭐가."

"···이번에는, 절대로."

"어, 엇!"

멍하니 눈을 뜬 한우현과, 그 시선을 마주쳤다.

"이, 일어났다!"

"길드 마스터!"

"상황이 급합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지?"

"시작 직전이에요!

-[신경 조작술 : 자아 세뇌 - 각성]

-[응급 신체 대사 : 전투 마약 분비 : 각성제]

서둘러 흐릿한 정신을 강제로 띄운 한우현은 표정을 굳히고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끼리릭···

-끼리릭···

그리고선 서서히 다리를 움직이며, 거대한 거미집 위에 그 몸체를 올리는 괴물을 인지했다.

"다행히 늦지 않았군. 미안하다."

-콰작!

-콰자작!

깨어난 플레이어의 의식을 인지한 듯.

서서히 모두가 갇힌 고치에 균열이 가해지는 걸 보며 한우현은 중얼거렸다.

"아니, 그냥 회색 일반인 하나 잡는데 뭐 이리 오래 걸렸어?!"

"진짜 길드장 없이 레이드 시작하는 줄 알았다고!"

"미안하다. 상정하지 못한 요소가 있었다."

"···뭘 봤습니까, 길드장?"

"맞아, 뭘 본 거야? 우리랑 다른 거 본 거 같은데?"

"다음에, 다음에 말하지."

"···."

잔뜩 찌푸린 표정을 한 나유나와 라일리의 의문을 대충 넘긴 채, 검과 방패를 들어 자세를 잡았다.

-척.

-척.

순간 분노한 나머지 꿈 속에서 고도의 [현실 재조정 해석] 기술인 [다중 차원 절리]를 사용해 버렸는데, 다행히 현실에 그 부작용의 여파가 있진 않은 모양.

송과체에 별 다른 여파의 흔적은 없었다.

팔로 이어지는 포스의 신경계 흐름도 멀쩡했다.

그럼 이제, 공격대장의 일을 할 때였다.

"모두들 미안하다. 하지만 시간이 없으니, 사과는 다음에 하지."

"아오, 빨리 지시나 해!

"어떻게, 어떻게 시작하면 돼!"

"자세는, 모두 준비 되었나?"

"길드장 빼면 준비는 다 됐어!"

"우리도!"

"좋아! 모두 [중심 균형술]을 활성화 할 준비를 해라!"

-쩌저적!

-쩌적!

전신에 [질량]과 [중심]을 조정하는 포스의 기운을 두른 채, 한우현은 외쳤다.

"곧이다! 맥, 브리핑 시작해라!"

"브리핑 온라인. 제 3 사도의 2 페이즈, 시작됩니다."

"은폐하고, 패턴 분석 시작해라!"

-확인.

다시금 인벤토리에서 튀어나온 맥을 급히 준비시키고.

-째앵-그라아앙!

모두가 깨진 고치에서 추락했다.

저 아래의 거울 거미집 위로.

"내려간다!"

"으윽, 높잖아!"

"[입체 기동술]로 속도를 조절해라!"

-째앵!

-째앵!

-째앵!

마침내, 공격대원들이 하나 둘씩.

-째앵!

-째앵!

-째앵!

무수한 유리와 거울을 얇게 뽑아낸 듯한 거미줄 위에 올라앉았고.

"이런, 제 무도회장에 손님들이 오셨군요."

그 가운데서 유려하게 길고 얇은 양 손의 손가락들을 마주 잡은, 거대한 여인이 미소를 지었다.

-까라락.

-까라락.

-까라락.

하체는 거대한 거미요, 상체는 아름다운 여성의 형상을 한 반인반주半人半蛛의 모습.

-[제 3 사도 악몽을 비추는 거울 아라크네]

-[레벨 : 220]

-[포스 : 4000]

"그런데··· 초대도 없이 들어오셨는데, 손님이 맞긴 한 건가요?"

-촤아악!

그녀의 섬뜩한 경고와 함께, 허공에서 무수한 거미의 [눈]이 거울 너머로 나타났고.

-쩌억!

-쩌억!

-쩌억!

마찬가지로 허공에 뜬 채 공전하던 거울들의 표면이 일렁이며, 날카로운 거미 다리가 돋아났다.

"흡!"

당연히 그 모든 패턴들을 기다려 줄 생각이 전혀 없었기에.

-쿠콰쾅!

-쐐애애액!

한우현은 힘껏 발과 종아리에 힘을 준 채, 유리 거미줄들을 밟고 제일 먼저 도약했고.

-쑤와아아악!

순식간에 아라크네의 바로 앞으로 돌진했다.

-파바바방!

"으음?!"

그 뒤로 무수한 소닉 붐의 여파가 작렬하자, 나른하던 아라크네의 얼굴에 경악이 떠올랐다.

"무, 스은!"

-콰과광!

-카아앙!

"크윽!"

아슬아슬하게 엑스 자로 거울이 빛나는 다리를 들어올려 검격을 받아낸 아라크네를 바라보며.

"손님들이, 허락을 받아야 식당에 오나?!"

"여긴 식당이 아니라, 무도회장···."

"그걸 왜 네가 정하지?"

-쑤와아악!

-챙!

"무슨 헛소리입니까!"

"이제부터 여긴 식당이다!"

-챙!

-채애앵!

주의를 끌기 위해 아무 말을 내뱉고선 초월적인 속도로, 검과 방패를 폭풍처럼 휘둘렀다.

-시작이다! 각자 거미줄 공간을 오가면서 틈 날 때마다 공격하도록!

-아오, 진짜 개 어지럽네!

-게임에서는 그냥 발판이었는데 현실에선 뭐 이리 빈 틈이 많아!

-낙사하면 부활도 못 해! 무조건 튼튼해 보이는 거미줄 위로만 다녀!

-보스 룸 전체를 둘러싼 [푸른 거울]은 깨뜨리지 말도록 주의해! 해당 거울에만 비치는 공격도 날아오니까!

-거울 공격은 제가 브리핑하겠습니다. 모두 최선 공격 루트로 움직이십시오!

-알겠어!

-확인!

순식간에 맥과 함께 지시를 내리며 한우현은 보스를 도발했다.

"그러니 잘 대접하도록!"

"큭! 대접이라니, 불청객들한테 무슨!"

"너야말로 손님한테 음식도 내놓지 않나?"

-콰과광!

-콰앙!

다시금 휘둘러지는 두 개의 거미 다리를 각각 검과 방패로 쳐내며.

-가장 위험한 건 [거울 너머의 거미]다! 다리가 소환되는 것 같으면 즉시 피하도록!

-시하이옌, 나유나! 균형을 잃는 공격대원이 있으면 집중적으로 마크해서 도와줘라!

-[강제 순간이동]은 어차피 대처할 수 없는 패턴이니 언제나 갑자기 바닥이 없어질 수 있다고 생각해라! [중심 균형술]과 [입체 기동술]만 잘 준비해 놓으면 어렵지 않아!

"음식을, 왜 여기서 찾습니까!"

"그럼 진상을 좀 부려야겠는데!"

"미친 인간이!"

-콰광!

-콰과광!

표독스럽게 입술을 깨문 아라크네와 계속해서 공방을 주고받았다.

-장즈하오, 엘리쟈, 라니아! 전방에서 나타나는 거울들을 집중적으로 파괴해라!

-최윤, 라일리! [거미안]에서 나오는 거미줄 광선은 어차피 모두 피하기 어려우니 회피보다는 치유 위주로 대처하도록!

"너, 이 놈들··· 크윽!"

다른 공격대원들에게 눈을 돌리려 하는 거미 여왕.

-쩌엉!

동시에, 거울 안에서 거대한 눈이 빛나며 [악몽]의 정신 공격을 준비한다.

-우웅!

아무리 정신 방벽을 활성화 해 두었다 해도, 직격한다면 충분히 타격을 입을 만한 포스의 전조.

-콰아아악!

당연히 그렇게 둘 수 없었으므로.

-쿠웅!

즉시 방패로 얼굴을 후려쳐, 아래의 거미집으로 처박았다.

"어딜!"

"으윽?!"

-콰아아앙!

"주문 안 받나?!"

"이, 성가신 것!"

주위 모든 공간을 [무궁의 존재감]으로 흐드러뜨린 채로.

-콰앙!

-콰과광!

끊임없이 그녀의 얼굴을 후려치며, 속으로는 생각했다.

제 3 사도, 악몽을 비추는 거울 아라크네는 능력 자체는 2 사도보다 당연히 강하지만.

대처 자체는 그보다 훨씬 쉽다고.

하긴, 이 놈은 교활한 2 사도와 달리 성질이 폭급하고 본능이 괴물에 가까우니까.

"잠, 들어라!"

"어딜!"

"커흐억!

-콰앙!

-끄드드득!

-까드드득!

다리 끝에서 일제히 유리의 빛을 내며 거울을 소환하려던 것을, 강제로 부딪혀 [운동정역법]으로 짓뭉개버렸다.

다른 대원들에게 패턴을 가하는 걸 모조리 차단하는 게, 메인 탱커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니까.

"이, 노옴!"

"잠은 너나 자라!"

-촤라라락!

-촤라라락!

짜증에 가득 찬 표정으로 반 쯤 뭉개진 세 개의 다리를 흔들며, 아라크네가 다시금 무수한 유리 거미줄들을 소환해 흩뿌렸다.

-시잉!

-시잉!

날카로운 빛을 뽐내며 사방 팔방으로 파공성을 내며 날아가는 거미줄들.

"식당 청소가 필요해 보이는군! 도와주지!"

"여긴 내 집이다! 이 버러지들아!"

-절삭력이 매우 크니 주의하도록! 가능한 한 스킬들로 끊어내되, 날아오는 것들은 피해라!

-네!

-확인!

-부상당하면 가능하면 엘릭서로, 여의치 않을 때에만 치유를 해라!

-걱정 마십시오! 아직 여유롭습니다!

다시금 지시를 내리고선, 춤추듯이 유리 실을 휘두르는 아라크네의 상반신을 찢어발길 기세로 방패를 내리찍었다.

-쿠아아아!

"큭!"

그 기세가 심상찮은 듯, 그녀가 몸을 수그리며 거미줄을 끊어냈고.

-콰자작!

황급히 그녀를 둘러싼 거울 보호막들을 무더기로 깨뜨려내렸다.

"너어, 처 죽여 버리겠어!"

"바라던 바다!"

마침내 완전히 분노에 물든 아라크네의 얼굴을 보며, 한우현은 미소지었다.

"죽어라!"

-콰지직!

다행히, 이번에도 그다지 깊이 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아서.

실제로 인 게임 설정상 거미 괴물 출신이었다가, 마왕에게 간택받아 그 지능과 능력이 크게 향상된 배경 스토리를 가지고 있었기에.

근본이 야수에 가까워, 소통 정도는 가능해도 조금만 도발해주면 눈깔이 뒤집혀 날뛰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죽어라, 죽어라아!"

-우웅!

-우웅!

-우웅!

허공에서 번져나가는 흐릿한 거울의 표면과 함께 그 너머로 비춰지는 무수한 거미의 다리들.

"그래, 날- 봐라아-!"

그 모든 것들이 더 이상 공격대원이 아닌 스스로만을 향하는 것을 확인한 한우현이 울부짖었다.

"처, 죽여!"

동시에 한우현의 분노와 증오와 광기라는 감정이, [무궁의 존재감]과 [빛의 광기]라는 도발기를 타고.

"버리겠어!"

야수의 본능을 따르는 보스의 송과체로 쑤셔박혔다.

106화. 제 3 사도 악몽을 비추는 거울 아라크네 (3)

-취이잉!

-쯔어어엉!

-후웅-웅-웅웅웅!

작렬하는 스킬들과, 보스 패턴들의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회피하고선.

"젠장, 어지럽네!"

최윤이 막 불평하며 착지한 순간.

-쨍그랑!

"조심!"

"엇···!"

-시리리링!

-시리링!

깨지는 거미줄 사이로 비틀거리는 그에게, 라일리가 손을 내뻗으며 무수한 포스의 줄기체들을 쏘아보냈다.

-[역장 외골격 : 보호 장갑]

-타닥!

무너진 자세를 새로이 생겨난 하얀 빛의 장판들이 받쳐주었다.

"큭, 감사!"

"치유가 끊겼습니다! 계속합니다!"

최윤의 감사를 제대로 듣지도 않은 채, 라일리가 초월적인 속도로 눈동자를 굴렸다.

-엘리쟈, 왼쪽으로 가세요!

-라니아, 위로! 거울이 생성됩니다!

-홍세희! 근방에 거울이 생성됩니다! 깨뜨려 주십시오!

부 공격대장인 그녀가 빠르게 전하는 전음들.

-[거미안] 우측 상방 1시 방향 1체 활성화.

-[거미거울] 좌측 하방 3시 방향 2체 활성화. 주의하십시오.

-[거미 거울] 우측 후방 7시 방향 2체 활성화. 곧바로 공격이 들어옵니다.

동시에 무수히 많은 주요 패턴들을 끊임없이, 각 공격대원들에게 맞춰서 알리는 맥.

-이 쪽, 다음은 저쪽, 공격!

-씨발, 피하기도 바쁘네!

-그래도 딜링도 꾸준히 해!

-맞아, 오히려 2 사도보다는 할 만 해!

-젠장, 거미줄이 너무 흔들거려서 균형을 못 잡겠어!

-천천히 해! 길드장이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고 했어!

-안전하게 가!

그것들이 너무도 많았기에, 공격보다는 회피 위주로 작전을 재편성했음에도.

-촤악!

"큭!"

"아악! 내 다리!"

"에, [엘릭서]!"

압도적인 규모의 [거미안]과 [거미다리]의 공격을 전부 피할 수는 없었다.

-다리 잘렸으면 팔로 움직여! 포스로 날아!

-씹, 그러고 있거든! 재생이 느려서 그렇지!

끊임없는 움직임 속에서, 보스가 한우현에 얽매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속출하는 부상자들.

"[치유]!"

"[절대 선의]!"

하지만 어떻게든 목숨만 건지면 곧바로 조치를 취할 수 있기에.

아슬아슬하게 머리의 부상만 피하며 온 몸에서 피와 살의 조각들을 흘리며 어떻게든 움직이고.

-계속 움직이십시오!

-부상은 신경쓰지 마!

-우리가 뒤에 있다!

최윤과 라일리의 격려 속에서, 모두들 이를 악물고 회피와 공격에 전념했다.

-[절대 선의]

-[치유]

-[정화]

-촤하악!

-촤하악!

무수한 인지와 연산으로 그들에게 포스를 엮고 전달하며 비과학적인 [치유]를 행하지만.

-쩌억!

공격이 너무도 많고.

-쩌억!

-쩌어억!

단 둘이 모두 대비하기에는 부족하다.

"윽!"

황급히 솟구치는 거미 다리를 피해 다음 거미줄로 뛰어오르며, 라일리가 최윤한테 고개를 젖혔다.

"재사용 대기 시간! 부족합니다! 최윤!"

"알았어!"

이제는 서브 힐러로 그 자리를 바꾸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 능력이 바뀌는 것은 아니었으므로.

-[빛의 보호]

-[빛의 보호]

-몸으로 뚫어! 보호막 둘렀다!

-씨발! 간다!

-좋아! 잘 했어! 다시 공격 시작해!

-쿠과광!

"큭!"

어느 정도 여유를 얻은 최윤 또한 다시금 거미 다리를 피해 다음 거미집으로 도약하고.

-이 새끼들아! 빨리 피해!

-젠장, 다리가 뭐 이리 계속 튀어나와!

-[거울]에 비치는 비가시 공격 표시합니다. 시야 확보···.

-젠장, 못 피한다! 도와줘!

-보호막 걸었습니다!

-가, 감사!

모두가 다시금 공격에 집중하며, 한우현과 아라크네의 중심지로 너무도 강렬한 스킬들의 폭격을 이어나갔다.

-쿠과광!

-콰과과광!

결코 여유로운 레이드의 진행은 아니었다.

-콰앙!

-콰과과광!

-콰아아아아!

하지만 김재승과 차정훈의 사건으로 경각심을 일깨운 한우현이 작전 방향성을 보다 안정성 위주로 재편하고.

다행히, 힐러가 두 명으로 늘어나며 대폭 안정성이 늘어났는지.

-거기 거울 생긴다!

-내가 처리한다!

-유리 거미 소환수! 위에서 떨어져!

-제가 처치할게요! 구름 폭발로···

-시호리 좋아!

-공격이 약해졌다! 아라크네의 반응이 다시 빨라진다!

-씹! 다시 딜!

-딜 집중!

전보다는 다들, 당황하지 않고 능숙해진 모습들이었다.

-공격 집중!

-지금 약점 드러났다! 뒤통수 때리러 접근하겠다!

-나, 나도오!

-좋다! 장즈하오, 홍세희! 빠르게 치고 빠져라!

"이이익!"

-쩌엉!

치밀한 연계의 한 가운데, 순간 온 몸을 굳히며 은빛으로 정지하는 아라크네.

-모두 멈춰! 반사다!

-반사 패턴 감지. 정지하십시오.

한우현과 맥이 황급히 명령을 내림과 함께, 모두가 그를 확인하고 스킬들을 능숙하게 통제했다.

-우웅!

-우우우우웅!

"정지!"

"정지!"

-스르륵!

"다시 투사!"

"확인, 투사!"

"이, 사갈들이! 벌레 같은 것들!"

"벌레는 너겠지!"

그리고선 다시 진행되는 레이드.

-콰앙!

-콰과광!

"크아아악!"

"잘 하고 있다!"

완전히 눈이 돌아가 한우현과 날카로이 공방을 이어나가는 아라크네.

"진짜, 대단하네!"

-쨍그랑!

그 틈새로 거울 하나를 박살내고 전신에 분홍빛을 두른 채 날아오르며, 라니아가 중얼거렸다.

-힐러 겨우 하나 추가로 이렇게 편해진다고?

-이 새끼가! 내가 그동안 얼마나 고생했는데!

-아니, 누가 니가 못했대냐?

-잡담하지 마십시오! 반사 패턴입니다!

라일리의 지시에 순간 모두가 얼굴에 긴장을 띄우며, 행동을 멈췄다.

-좋아, 잘 경고했다!

-[축복] 재 확인합니다!

-0.5초간 재정비 후 다시 이동!

"이이, 약삭 빠른 것들!"

거미 다리를 마구잡이로 휘두르다가 갑작스레 온 몸에 은빛 광택을 띄운 아라크네가 분노한 듯 외쳤다.

-우우우웅!

동시에, 온 몸에 은빛의 기운을 모았다.

"너무 뻔하다!"

그를 최대한 기분나빠 보이도록 비웃은 한우현이 다시금 검을 휘둘렀다.

-[광신의 광검 : 공간 절단]

-쉬이이잉!

첫 입장과 함께 썼던 [다중 차원 절리]보단 약하지만, 상시로 탱커가 쓰기에는 충분히 위협적인 검기로.

···꿈 속이라 다행히 후유증이 없긴 했지만, 아무리 무의식 중이라 해도 [현실 재조정 해석]의 파생기인 [다중 차원 절리]를 사용해버리다니.

역시 그는 불완전하다. 더 노력하고, 더 마음을 가라앉혀야 한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피도, 눈물도, 그 어떤 것도 흘리지 않는 초인이 되어야 한다.

"그러니 음식이나 내 놓으라고, 이 사장 새끼야!"

"개소리 집어쳐어! 여긴 내 무도회장이다아아아!!!"

아라크네가 도저히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 전신의 유리 동체를 부르르 떨며.

-찌이이잉!

무수한 진동파를 주위에 울렸다.

-쩌적!

-쩌어억!

"크윽!"

"어, 어어! 다 깨진다!"

"버텨라!"

-허공에서 버텨!

-발악기다! 조금만 있으면 다시 바닥 생겨!

-젠장, 그 전에 즉사기잖아!

-[아르키메데스의 거울] 어디로 나오는 거지?

너무도 강한 포스를 담은 충격파로, [무궁의 존재감]부터 공격대원들, 아라크네와 한우현까지.

-째앵!

-쩌저적!

모두가 밟고 있던 유리의 거미집들이 모조리 깨져나가고.

-쨍그랑!

-쨍쨍그랑!

-후와아악!

"오너라아아-!"

공간 전체에 존재하던 모든 유리와 거울들이, 모조리 아라크네를 중심으로 빨려들어가며 뭉쳤다.

"라니아, 엘리쟈!"

그 빈 자리에서 떨어져 내리며, 한우현은 두 마법소녀를 호출했다.

3 페이즈에 들어가기 직전, 마지막으로 쓰는 발악.

거대한 [아르키메데스의 거울]을 소환해 무수한 무지갯빛의 즉사 광선으로 공간 전체를 쓸어버리고선 딜링 타임 리미트를 거는 패턴.

"감싸라!"

"알았어! 다들 힘 풀어!"

"간다요!"

게임에서와 비슷하게 구현된 패턴이었기에, 당연히 대비하고 있었다.

-쓔와아악!

-촤락!

가장 먼저 라니아가 분홍빛 리본들을 구현하며 마치 미끄럼틀을 타듯이 공격대원들을 낚아챘다.

-츠와아악!

-탁!

-타다닥!

뒤이어 엘리쟈가 푸른 리본들과 악보들을 구현하며 떨어지는 공격대원들을 마저 받아냈다.

"하나, 둘··· 모두 착지 완료!"

"움직인다!"

"위치 확인. [아르키메데스의 거울] 각도 연산합니다."

"죽어라, 죽어라, 죽어라···!"

-우우웅!

허공에서 거대한 거울을 빚어내며 저주를 내뱉는 아라크네를 보며.

"나유나, [강 타기] 준비."

"오케이!"

몇 번이고 부상당했지만 다행히 빠르게 치유를 마친 듯 말끔해진 상태의 나유나를 보며 지시해 주었다.

"경로 확보. 다음 순서로 소용돌이를 그리십시오."

"개, 개 복잡하잖아···!"

"서둘러라."

"말 안 해도 알아앗···!"

진땀을 흘리던 나유나가 잠깐 동안 눈을 감았다가.

-[수맥 분출]

-[강 타기]

-촤하하학!

-[강 타기]

-촤하하학!

주변부로 크게 지팡이를 휘두르며, 엄청난 양의 물줄기를 허공에 쏟아냈다.

"모두 올라타!"

"위로 갑니다!"

"죽어, 라아아아아-!!!"

모두가 아슬아슬하게, 라니아와 엘리쟈의 흐릿하게 [현실을 왜곡하는 에너지체]에 둘러싸인 채.

-파아아아아앗!

-파아아아앗!

공간 전체를 지우개로 지우는 듯한 무지개 광선을 피해, 강의 흐름을 타고 움직였다.

"라니아!"

"후우··· 흐압!"

그의 지시에 계란 후라이가 머리장식이 구겨질 정도로 인상을 쓴 마법소녀가 주위의 에너지를 강력히 그러모았다.

"흘러라, 흘러라, 흘러라···!"

-이이이이···

-히이이이···

-기이이이···

요리조리 도망다녔지만 점차 좁아지는 안전지대.

"엘리쟈!"

"이야아압!"

마찬가지로 아이돌 복장의 마법소녀가 주위에 푸른 음표와 반짝이를 흩날리며.

-치이잉···

-피이잉···

-티이잉···

주위의 시공간을 [비현실적으로 아름답게] 왜곡했다.

"내 손 잡아!"

어느 정도 포스가 [비현실 속성]을 담을 정도로 응집되었음을 확인한 한우현은 둘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절대 방어]

동시에 방어의 기운을, 강을 타고 흐르는 공격대원 모두에게 거대하게 씌운다.

"하!"

-[역장 외골격 : 왜곡 장갑]

곧이어 [마법소녀] 직업군만의 특권.

꿈과 현실을 넘나드는 환상 구현의 속성을 방어막 전체에 뒤섞는다.

기본적으로 모든 공격에 [환상] 속성이 있는 아라크네의 맵 전체 즉사기를 버티기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

-파아앗!

-파아아아앗!

"그대로 힘 줘라!"

모든 준비를 마치자마자 전 영역을 덮어쓰는 무지개 광선을 보며, 한우현이 외쳤다.

-파아아아앗!

순간, 초월적인 광량이 모두를 뒤덮었다.

"윽, 으윽, 으아압···!"

"아으, 어지럽다요···!"

"버텨! 1분이면 된다!"

"[정화]! 돕겠습니다!"

"정신들 차려!"

그 뒤에서 최윤과 라일리가 무수한 [정신 회복] 계열 스킬들을 한껏 끌어올린 채 둘을 보조했고.

-[어둠의 안개]

"으, 으흣, 아프다아···!"

빛을 흡수하는 안개를 그 주위로 퍼뜨린 시하이옌.

-[수호의 부적 : 천라지망]

"위력이 줄어들고 있어요! 거의 끝나가요!"

무수한 부적들을 띄운 채 끊임없이 손에서 포스의 조율을 흩날리는 시호리.

-파아아앗···!

"좋아, 한 번 더 강조한다!"

점차 줄어드는 빛을 느끼며, 한우현이 외쳤다.

"더 이상 안 피해도 된다! 딜만 해!"

"주어진 시간 안에 최대한의 피해만 입히면 됩니다. 다들 이미 아시는 그대로 하십시오."

"제한 시간 안에 못 깨뜨리면 레이드 실패야!"

"확인! 갑니다!"

"알았어!"

"자리 잡고!"

"말뚝 딜!"

이제 더 이상 보스가 그들의 말을 듣지 못하기에, [전음]을 유지할 필요가 없어 말로 전달했다.

-파앗!

곧바로 빛이 꺼지자마자.

"가라!"

한우현의 한 마디를 시작으로, 모두가 전신에 강력한 [운동력]의 포스를 실은 채.

-쐐애액!

-쒸이이익!

-후우욱!

그 중앙에서 온 몸을 둥그런 거울의 알 안에 말아버린 아라크네에게 돌진했다.

"[최후의 반사]까지 예상 시간은?"

"5분, 정도!"

-콰과광!

쌍도끼를 마구잡이로 휘두르며 장즈하오가 외쳤다.

"충분해!"

-[광신의 광검 : 공간 절단]

검과 방패에 검기를 두른 한우현이 화답했다.

"깨져라!"

"깨진다요!"

그 뒤에서 비눗방울과 나비조각들을 흩날리며 라니아와 엘리쟈가 거울 보호막을 필사적으로 약화시켰다.

"1분 지났어!"

"궁극기 충전! 딜러들!"

"간다!"

눈을 빛내며 나유나와 홍세희가 허공에서 몸을 내리찍었다.

"흐아아아!"

-[일참백단]

-촤악!

-촤악!

-촤악!

[암살자]의 궁극기를 발동한 홍세희가 먼저 주위 공간이 아지러질 정도의 속도로 수 백번의 검격을 난자했고.

-[초롱초롱 피어나라]

-콰하학!

-콰학!

-콰과과곽!

[풍수사]의 궁극기를 발동한 나유나가 갈라진 거울들의 틈새로 무수한 포스의 자연지기와 폭풍을 발산해 불어넣었다.

-꾸드득!

-그드득!

너무도 큰 충격량의 폭력들.

"아으, 아그, 그아악?!"

그로 인해 거울의 알이 불안정하게 뒤흔들리자, 마침내 목소리를 내는 아라크네.

"주, 죽어, 죽어라아···!!"

이대로면 발악조차 못 하리라 직감한 듯, 다급히 중얼거리며 몸 전체에 빛을 모으려 했다.

-쿠구궁!

"에너지 분석. [최후의 반사] 패턴입니다."

"뭐야, 왜 벌써?!"

"아, 아직 시간 있는데?!"

"괜찮아! 장즈하오!"

궁극기가 아직 남아있는 유일한 근접 딜러를 바라보며, 한우현이 외쳤다.

"지금이다!

"마무리, 하겠다!"

-[이 전쟁을 오딘께 바친다]

그의 눈이 잔악한 광기에 물들임과 동시에.

-콰과과-과과광!

-[운동정역법 : 물리폭발]

엄청난 위력의 도끼가, 아라크네를 내리찍었고.

-쩌어엉!

또 내리찍었고.

-쩌엉!

-쯔거거겅!

-콰아앙!

무수한 속도로 으깨버릴 듯이 내리찍었다.

그 뿐 아니다.

"하!"

"모두 힘 모아!"

"마지막이다!"

-쩍!

-쩌적!

-쩌어어-어어엉!

라일리, 시호리, 최윤, 한우현, 시하이옌, 라니아, 홍세희, 나유나, 엘리쟈까지.

-파바바박!

-쩌억!

-콰아아앙!

모두가 그를 중심으로 무수한 공격을, 최대한의 힘으로 둘러싼 채 무자비하게 발산했다.

-끄가가각!

그리고 마침내 큼직하게 부서져나간 거울 구체 안으로.

"아, 아안 돼애···!"

"돼!"

한우현이 크게 방패의 끝날을 휘둘렀다.

-콰자작!

유리와 거울, 벌레의 내장과 같은 파편이.

-콰작!

튀고, 으깨지고, 흘렀고.

-콰자자작!

마침내, 어떤 반응도 아라크네에게서 나오지 않음을 확인하고 나서야.

"휴."

유리와 거울의 액체로 범벅이 된 방패를 내린 한우현이, 씨익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제 3 사도 악몽을 비추는 거울 아라크네를 격파하셨습니다!]

[최초 격파! 진정한 대적자에게 추가 보상이 주어집니다!]

계획대로, 순조로운.

아주 훌륭한 마무리였다.

107화. 지금 우리 세상은···?

"흐음."

구릿빛 피부의 호쾌해 보이는 인상의 미남이 이마를 찌푸렸다.

"이거, 확실한 정보겠지?"

"예, 호세 하부장님."

"그냥 호세라고 해. 익숙해지질 않는 칭호란 말이야···."

-지잉.

-지잉.

한우현이 모든 길드 지부에 임의로 내려 준 맥의 열화판.

-지잉.

-지잉.

길드 관리 시스템 컴퓨터에서, 무수한 홀로그램들이 동남아시아 지부 필리핀 지점의 중앙 집무실에 나타났다.

-경찰청장 : 다수의 플레이어 인적 정보를 빼돌려 접촉하고 있는 것이 의심됨.

-검찰청장 : 플레이어 범죄 일부를 은닉하는 정황 포착. 자세한 것은 추적 중.

-네그로스 옥시당탈 구역 : 비 가입 플레이어들의 이동 정황 포착.

-소르소곤, 남아구산 구역 : 비 가입 플레이어들의 훈련 정황 포착.

-루손 구역 : 대규모 탈법적 자금 유동 의심. 가장 최근에 100여 명의 규모로 추정되는 포스 파동과 영역 선포기 감지.

동시에, 필리핀 각 섬 대구역들의 지배자. 그 가주들의 얼굴과 동선이 나타났다.

"마르코스Marcos에, 락손Lacson, 아퀴노Aquino까지. 증거는 없지만 아퀴노가 함께했다면 코황코Cojuangco도 당연히 엮였겠지."

"어, 어쩌죠? 이게 사실이라면 솔직히 저희가 대응하기에는 너무 큰 사안인데."

"흐음."

"기다릴까요? 오늘이 레이드라고 하니, 늦어도 모레까지는 엘리쟈가 돌아올 텐데 그때."

"···아냐. 잠시만 기다려 봐. 이 정보, 언제 나온 거지?"

"확실치 않습니다. 애초에 일주일 전, 꼬리를 잡은 것에 한국 길드 정보부에서 지원을 해 줘 방금 종합 분석이 나온 것이라."

"하, 젠장··· 역시 만만하지 않네. 그러니 귀족들이겠지만."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인 채 호세는 생각에 잠겼다.

필리핀 북부의 지역 유지 가문인 마르코스.

마닐라, 안티케, 키비테 지역 유지 가문인 락손.

소르소곤, 남아구산 지역 유지 가문인 아퀴노.

타를라크 지역 유지 가문인 코황코.

서로 사이가 좋지만은 못한 대귀족들일진데, 길드의 행보가 너무나도 패권적이었던 것일까.

순식간에 필리핀 하부가 그들의 권력과 지배 구조를 강제로 '정상화' 해 버리자, 마음이 급해졌었나 보다.

"넌 어떻게 생각하지, 무티야?"

"네? 저, 저요? 전 이런 건 잘 모르는데."

"누군 정치가인 줄 알아? 나도 작년까지는 엘리쟈 유튜브 편집자였거든?"

"어, 음··· 그냥 화교 가문들의 제안대로 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헨리랑 조지를 말하는 거지. 그게 합리적이기는 한데···."

"싱가포르 하부장이 강력히 경고했는지, 화교 계열 재벌들은 저희한테 굉장히 협조적이지 않습니까? 로페즈도 언론 작업을 도와주겠다고 하고···."

"···."

일견 그럴 듯 하다고 느꼈는지, 잠시 호세가 눈을 감았다가.

"···아냐, 마음에 안 들어."

크게 뜨며, 이를 갈았다.

"어차피 이 놈이고, 저 놈이고 자기 잇속만 챙기기에 여념이 없는 쓰레기들. 제안이라는 것도, 결국 우릴 어떻게든 통제하려는 수작이지."

-으드득!

그 전신에 상어 정령의 형상이 떠오르며, 희미한 바다 냄새가 피어올랐다.

"엘리쟈는 너무 물러. 말로는 우리가 새로운 왕이라고 하지만, 세세한 부분에는 별 관심이 없으니까."

"···세게 나가실 작정이십니까?"

"세게가 아니야. 정상적인 대처를 하는 거지."

-드르륵.

두 눈에 푸른 파도의 기운을 담은 채, 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필리핀 길드원들, 모두 모아."

"저, 지금 당장은 여기저기 범죄랑 테러 관리때문에 모두 모으기가."

"응우옌한테도 지원 요청해. 인도네시아는 우리보다 훨씬 더 잔악하게 진압했으니, 이번에 그 노하우를 배워야겠어."

"···엘리쟈가 나중에 뭐라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만."

그 말에 잠시, 호세의 눈빛이 흔들렸다가.

-꽈악.

다시금 분노를 담았다.

"아니, 이게 맞아. 어차피 총 길드장은 우리 외의 어떠한 플레이어 집단도 허용되지 않는다고 했지."

"애초에 중국이나 미국에 비하면, 필리핀의 귀족이래봤자 세계적으로는 아무 영향력도 없어. 우리는 학습된 무기력에 짓눌려 있는 거야."

사탕수수 농장의 농민가 출신으로, 한없는 빚에 시달린 끝에 홀로 남은 고아.

"이미 세상은 뒤바뀌었는데, 그 돼지들한테 너무 길게 끌려다녔어. 그러니 이번 기회에, 이 썩어빠진 나라를···."

레벨 291 파도꾼 호세 레예즈가.

"정상화하겠어."

저 멀리 펼쳐진 마닐라 시티의 전경을 바라보았다.

* * * *

미국.

국방부 지하, 새로이 확장 설립된 모든 영역 이상현상 조사국의 연구 본부.

-치지직!

-치지직!

"어떻습니까?"

"호오, 놀랍군요. 확실히 포스는 물리 법칙을 무시하는 특징을 띱니다만, 디펜시움의 경우에는···."

"그 뿐만이 아닙니다. 이 입자 구조체들의 특징을 보면, 금속이면서도 특이하게 탄소 나노 튜브의···."

"이게 이론적으로 설명이 가능한···."

-치지직!

-치지직!

그 광대한 실험실에서, 무수한 실험복과 작업복을 입은 기술자와 연구자들이.

"이건 한국 길드와 미래 그룹 연구부에서 보내온 새로운 예상 물질 분자 공식입니다."

"···이게 말이나 되는 모양새입니까? 반데르발스 힘을 완전히 무시하는 형상인데."

"그런 물질이 한 두개여야 말이지요. 게다가···."

토론에 토론을 거듭하며, 표본들을 관찰하고 분석 결과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잘 되어 가나 보군."

그리고 그 상층부에서, 전경을 바라보며 늙수그레한 백인 남성이 중얼거렸다.

"이 정도로 지원을 받았는데, 당연히 잘 되어야지."

"멜린다, 연구란 게 돈만 집어넣는다고 결과가 툭툭 튀어나오는 게 아닌 건 알잖아."

현장조사부장으로서 신물질 재료 공학에도 본격적으로 참여를 시작한 어거스틴 커크패트릭이 기묘하다는 듯 보고서들을 넘겼다.

"불과 한 달 만에 개발된 디펜시움은 그렇다치고, 오펜시움, 리액티움, 에테리움··· 금속 뿐 아니라 세라믹, 플라스틱, 탄소 화합물까지. 아무리 봐도 말이 안 돼."

"말이 안 되기는. 유진이 말한 시나리오를 잊었어?"

"그 오타쿠 놈, 솔직히 발표한다는 걸 난 말리고 싶었는데···."

-스윽.

어거스틴이 샘플로 막 나온 디펜시움을 손 끝으로 쓰다듬었다.

"정말로 그게 맞는 걸까. 조사국 부장이지만, 너무 비현실적이란 말이야."

"너 말고도 의심하는 사람은 많아, 커크패트릭. 하지만 어쩌겠어?"

어깨를 으쓱한 조사국장 멜린다가 경탄어린 눈빛으로 TOP Secret 이라 표시된 문서를 펼쳤다.

-스킬 연구 자료 [길드 연구부]

-경고 : 향후 조사국의 연구 결과에 따라 길드의 협력 단계는 조정될 수 있음. 최선의 결과를 기대하겠음.

"그 시나리오대로라면 모든 것이 명료하게 설명되는 것을."

"하, 시나리오··· 내가 의심하는 건, 그 너머야."

-결코 길드가 미국에만 예외적으로 베푸는 호의를 저버리지 말기를.

-총 길드장 한우현.

-탁!

기밀 문서를 덮으며 그가 중얼거렸다.

"그리도 절박하게 미친 듯이 내달리는 그가, 처참히 실패했었다면···."

미심쩍다는 듯.

"이번이라고 성공한다는 보장은 어디 있냐는 말인가?"

떨리는 한 마디를 내뱉으며.

* * * *

여기저기 고수 내음이 풍기는, 쌀국수Pho 식당 골목의 한 중간.

"씨발, 저 놈들이 먼저 시비 털었다고!"

"맞아, 우린 잘못 없어!"

"저 놈들만 잡···."

"아가리 안 닥쳐!"

검게 탄 금발의 남자가 버럭 소리를 지르며.

-콰하하!

쓰려져 비틀대던 플레이어들에게 녹빛 안개를 가시처럼 내뿜었다.

"악, 아아악!"

"아, 아파! 아파아아!"

"아파? 아프다고? 그럼 처 가만히 있어! 이게 대체 몇 번째냐?!"

"보스, 또 테러입니다!"

"또? 어디야?"

"호치민입니다!"

"아, 씨발 진짜··· 이 무능한 새끼들이."

베트남 하부장, 쩐 응 호우가 눈살을 있는 대로 찌푸리며 쓰러진 놈들을 노려보았다.

총 플레이어 인구 수는 적지만, 그에 비해 너무도 자주 일어나는 테러와 갈등.

그로 인해 하부장인 그가 매일 매일 테러 진압에 직접 움직여야 할 정도로 바쁠 지경이었다.

···그냥 다, 죽여버릴까?

"흐음."

순간 그의 눈빛에 살심이 피어올랐다.

'그래도 우리 고국 아니냐.'

'부탁한다, 응 호우.'

"···하아, 씨발."

-스윽.

잠시 올렸던 지팡이를 내려놓은 쩐 응 호우는 푸욱 한숨을 내쉬며.

-뭉게.

-뭉게.

[해독]의 효과를 가진 연기를 생성했다.

"이봐, 너희들."

"어, 어?"

"효과가··· 풀렸어?"

"분노는 이해한다. 당장 나부터도 남베트남 출신이니까."

"씨발, 도망친 새끼가 뭘 알아!"

"···."

대답할 말이 없었기에, 그는 성큼성큼 걸어가.

-콰악!

"켁, 케엑?!"

그의 목을 잡고 들어올렸다.

"모르지. 네 말대로, 난 이제 베트남 사람이 아니니까."

그리고 서늘하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이렇게 너희들 마음대로 테러하고 다닌다고 좋아질 게 아무 것도 없다는 건 잘 안다."

"윽, 켁!"

-척!

-치익!

-치이익!

독술사의 온 몸에서, 무수한 효과를 지닌 독의 구름이 진하게 뭉쳤다.

"길드 지침으로, 너희는 모두 즉결 처분이 가능하다. 그럼에도 내가 너희를 살려두는 것은, 오직 동향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자비일 뿐이고."

"···."

"···."

"···."

그의 뒤에 있던 베트남 하부의 길드원들과, 체포된 빌런 플레이어들 모두가 침묵했다.

"두 번의 기회는 없다. 복종하거나, 죽거나. 어쩔 테냐?"

이 나라 전체가 혐오스럽다는 듯, 쩐 응 호우가 가라앉은 목소리를 냈다.

* * * *

중국.

베이징 시 둥청구.

전 대륙의 공공 안전을 감시하는 기관인 중화인민공화국 공안부中华人民共和国 公安部의 지하 10층.

"···지금 리하오란은···."

"···공청단은 이미 완전히···."

"···태자당 절반이 날아간···."

"···주석은 대체···."

그 안에서, 수십 명의 사람들이 둘러앉은 채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쿵!

"···."

"···."

"···."

그리고 그 얘기는, 한 명이 들어옴과 동시에 멎게 되었다.

"모두 기립···."

"그만. 절차는 생략하고 본론에 들어가지."

주석이 굳은 목소리로 그를 제지했다.

"국가 위기 상황이니까. 지금 온 게 누구 누구지?"

"예! 국무원 총리, 부주석, 상무위원, 각 성별 서기···."

"보이지 않는 놈들도 많군. 왜지?"

"···최근 사고사가 늘었습니다."

"사고, 사고라. 이 사탄의 혈육 놈들···."

"···연락이 끊긴 이들도 많고요."

"버러지 같은 칭화대 새끼들, 내가 얼마나 잘 해 주었는데··· 하여간 끈도 없는 것들을 귀히 쓰는 것이 아니었어."

물론 맞는 말은 전혀 아니었다.

제대로 된 꽌시를 형성하지 못한 밑바닥 출신 엘리트들은 실무진 수준까지만 올라갈 수 있었을 뿐.

공산장 중앙에서 제대로 그 뜻을 펼칠 수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주석 스스로 생각하기에는 그 정도만 해도 충분히 주제 이상으로 키워 주었다고 느꼈으니, 이것은 관점의 차이리라.

"대충 파악된 것만 해도 우리 친구들이 절반은 날아갔군 그래."

"···명목이 없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도저히 대처가 불가능합니다!"

"대 놓고 암살에다가 별 이유도 없이 감사와 처벌을 해 대도 도저히 막을 방도가 없으니···!"

"···빌어먹을."

비록 부패하기는 했지만, 13억 인민의 위에 군림했던 것이 현 주석.

당연히 멍청한 인물은 아니었기에, 저 내뱉는 말들이 정말로 변명이 아니라 항거 불가능한 재앙의 증명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됐어. 할 수 있는 걸 해야지, 할 수 없는 것만 바라봐서 어쩌나? 당 서기, 그 부분에 대한 보고나 해라."

"예, 예! 다만 정말로, 그리 할지···?"

"지금 검은 토끼고 흰 토끼고 가리게 생겼나?"

그가 짜증난 목소리로 서기에게 으르렁댔다.

"예, 그렇다면··· 다만 싱싱한 뇌의 공급은 슬슬 한계입니다. 사형수도 다 떨어져가고 한계가."

"부족해? 한계? 그럼 만들어!"

"마, 만들라고요?!"

"그래! 농민공이건 헤이호 놈들이건 아무렇게나 잡아와서 밀어넣건! 모든 수단을 다 털어!"

주석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

"···."

"···."

모두가 이미 그 두려움을 상기받을 정도로 크게.

"후앙푸셴 그 놈에게 최대한의, 모든 지원을 약속해. 플레이어건, 비플레이어건. 송과체는 무제한으로 넣어 줄 테니!"

-스윽.

곧이어 끔찍하게 해체된 뇌와 연금술 아이템, 으깨지고 굳어진 환단의 사진들을 보며.

"···플레이어를 만드는 방법만 알아낸다면, 공산당의 최고 요직에 앉혀 주겠다고!"

"···예!"

"예!"

"예!"

태자당 산하 주석파.

주요 당원들 모두가 불안에 가득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 * * *

"신행이시여, 모든 준비가 끝마쳤나이다."

"그래, 고행의 길을 걷느라 고생이 많구나."

"정상화를 위해선 당연한 일입니다."

-탁.

안대를 낀 아랍계 남성이 자비로이 웃음지으며 대답한 남성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우리의 모든 행동이, 미륵 정토의 밑거름이 될 것이리라."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동시에 그의 뒤, 앞, 옆에 위치한 무수한 플레이어들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승복을 입고선 합장을 올렸다.

"자, 들어라! 수행자들이여!"

뒤틀린 불도의 길을 걷는 친우들이 영광스럽다는 듯, 그가 목소리를 높였다.

"곧 우리는 거짓된 신을 파는 갈등의 주범들을 정상화할 것이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예루살렘의 정상화는, 이 세상에 그들이 믿는 신은 없으며! 오직 마음의 수련으로 도달하는 진리만이 진정한 길임을 모두에게 알리는 시작이 될 것이다!"

"미륵이여!"

"미륵이여!"

"미륵이여!"

한 때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الدولة الإسلامية의 충실한 신도였던 이들.

그러나 지금은 모두가 하나하나, 스킬과 정신적인 고문을 조합해 세뇌되고 사역당하는 사람들.

"극락정토를 향해, 움직일 때다!"

"아-옴!"

"오-옴!"

"우-옴!"

그들 모두가 기도하듯이 절을 하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는 것을 내려다보며, 신행 알 마흐무트는 생각했다.

···예루살렘이 종교적으로 의미가 큰 곳이기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위치가 중동인 만큼 유럽 불신자들의 이목을 끌기에는 부족할지도 모르겠다.

바티칸은 조금 더 아껴 놓고 싶으니··· 적당한 다른 유럽의 대도시.

그래, 파리 정도면 적당히 더해서.

좋은 '부처님의 손바닥'이 될 수 있지 않을까.

108화. 꿈빛 거울 (1)

-휘리릭!

모두가 안전히 [보상 공간]으로 이동한 직후.

"휘유, 이번엔 진짜 죽는 줄 알았네."

"와, 나 그 놈이 [최후의 반사] 쓰려고 한다는 브리핑 듣고 진짜 간담이 서늘했어."

"진짜 간발의 차이였다요!"

"맞다. 아슬아슬했어."

여유로운 말투로, 호들갑을 떠는 공격대원들을 진정시켜 주었다.

"하지만 정말 모두들 잘 해 줬다. 이번에는 진짜로 완벽했어."

"저, 정말요?!"

"그래, 특히 시호리. 시키지도 않았는데 서포팅부터 딜까지 완벽하더군."

"감사합니다아···!"

뒤이어 헤실거리던 시호리를 치하해주고선 눈을 돌렸다.

"그리고 라일리 그레인저. 완벽이란 말도 모자라겠어."

"훈련대로 했을 뿐입니다."

"···그래."

절로 올라가려는 입술 끝을 억지로 내리눌렀다.

역시, 그녀는 대단했다.

부 공격대장으로 임명했을 때에만 해도 다른 공격대원들 모두가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갑자기? 그 정도라고? 라는 반응을 보였건만.

한우현에 필적하는 수준의 보조 지휘 능력을 곧바로 보여주다니.

마음 같아서는 지금 이 자리에서 몇 시간이고 칭찬을 해 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은 지나치게 부담스러운 일.

자연스러운 치하로 넘어가야지.

"둘 뿐 아니다. 엘리쟈, 라니아. [꿈] 구현이 연습한 이상으로 훌륭한 운용이었어. 덕분에 아무 부상 없이 모두들 3 페이즈에 진입할 수 있었고."

"이게 나야."

"다 우현 덕분이다요! 윽!"

갑작스레 치대려고 하는 엘리쟈를 밀어내며 다른 이들에게 눈길을 돌렸다.

"장즈하오, 홍세희, 나유나도 마지막에 아주 훌륭한 결정타였어. 솔직히 조금 위험했었는데, 모두들 덕분에 안전하게 넘어갈 수 있었다."

역시 맞는 말이었다.

마지막 순간 그의 예상보다 더욱 빨리 아라크네가 자폭을 하려 했는데.

"그래, 내가 다 했다니까!"

"···그런 걸로 하지."

"흐헤헿."

압도적인 포스의 폭력으로 그 시도를 효과적으로 짓뭉개버렸으니까.

"시하이옌, 최윤도. 적재적소에 알맞게 스킬들을 씌워줬고."

"어휴, 그럼 휴가나 좀 줘. 겨우 일주일 만에 이게 뭐야?"

"그, 그건 나도요. 훈련 받는 건 좋지만 북경에서 마라탕 좀 먹고 싶어서."

"뭐야, 너 마라엽떡단이었냐?"

"···엽떡이요? 그게 뭐죠?"

"음, 하긴 이번에는 너무 일정이 촉박하긴 했지."

잠깐 다음 보스까지의 여유를 생각한 한우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기초 훈련도 어느 정도 되었고, 전투도 무르익은 듯 하니까··· 이번에는 2주 정도는 쉬어도 될 듯 하군."

"어, 정말이다?"

"만세에!"

"근데 그래도 돼?"

"뭐, 사실 보스 자체에 대한 적응 훈련보다는 지금까지는 전투에 대한 훈련이었으니까."

기왕이면 최소 3주의 훈련 기간은 가지고 싶었지만, 언제나 몰아칠 수만은 없는 법.

"나도 정리할 다른 일들이 많으니, 조금 여유를 가지자고."

그리고선 웃으며 덧붙였다.

"물론 그만큼 훈련 일정은 좀 빡세지겠지만, 그게 낫겠지?"

"···아으."

"저, 전 좋아요!"

"미친 년, 얼굴 붉히지 말라고···."

"흥, 넌 그 맛을 몰라서 그래."

"미친 소리."

"할 일? 길드 회의 때 말한 그런 건가?"

"그래, 라니아 너도 좀 따라오고."

"···하아, 재무부··· 알았어."

-부욱!

이미 여러 번 했듯이, 보상 상자를 가볍게 긁어 주었다.

-[···]

-[반짝반짝···]

-[초롱초롱···]

-[···]

무의미한 아이템들을 지나.

-[꿈빛 거울]

인벤토리 창의 한 구석에, 화려한 거미 문양이 새겨진 거울이 나타났다.

"···."

그를 보며 살짝 입 끝을 비틀고선.

"그럼, 이만 쉬러 가 보자고."

한우현은 뒤를 돌며 미소를 지었다.

"다시 한 번 모두들 수고가 많았고, 내일 하루는 푹 쉬도록.

* * * *

"···."

모두들 집으로 돌아간, 적막한 집무실.

-번쩍.

아주 거대하고도 화려한 거울을 앞에 둔 채.

"···하아."

한우현은 한숨을 내뱉었다.

"정말 커다란 쓰레기군요."

"동감이다."

맥의 비웃음에 동조하며 한우현이 턱을 굈다.

"꿈빛 거울···."

동시에 그 앞으로 다시금 아이템 정보창을 띄워 확인했다.

-[꿈빛 거울]

-[아이템 종류 : 설치 아이템]

-[아이템 효과 : 활성화한 거울의 앞에서 소유주가 잠 들 때마다, 일반적인 수면 대신 자각몽Lucid Dream을 활성화할 수 있습니다. 자각몽의 규모와 정밀도는 소유주의 정신력에 비례합니다. 인접하여 잠든 다른 플레이어 또한 초대할 수 있습니다.]

꿈이라는 광대한 세계를 자유자재로 조정할 수 있다는.

정말이지 대단한 효과의.

"뭐 이딴 걸 보상이라고 준 거지?"

···아무 짝에도 쓰잘데기가 없는 물건.

"제작자의 악의가 아니겠습니까?"

"이건 정말로 그게 아니면 설명이 안 돼."

한우현이 거울에 비친 잘생긴 성기사의 모습을 감상하며 고심에 빠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당장에는 쓸모가 없어. 플레이어 스킬이나 포스는커녕, 전투적인 활용에 쓸 가능성이 없으니까."

"꿈을 분석할 수 있으니,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한테 연구하라고 던져 줄 수는 있겠습니다."

"수면 의학? 뭐 버리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젠장."

-힐끔.

보기만 해도 짜증이 나 고개를 흔들며, 집무실 한 구석에 가져다 놓은 침대로 시선을 돌렸다.

길드 업무가 정말로 지나칠 만치 많았기에, 집에 갈 틈새가 없어 가져다 놓은 물건.

그마저도 요즘은 쪽잠을 자는 일이 많아 그다지 쓸 일이 없긴 했다.

이번에는 오래간만에 사용할 예정이다만.

···의미가 있을지.

"굳이 시험해 볼 필요성까지 있을까?"

"회귀 전, 미국의 연구진들과 전 소유주셨던 라일리 그레인저가 별 다른 쓸모를 찾지 못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 그러니까 말이야."

"하지만, 정말로 재미난 꿈을 꾸고 공유해 주는 것이 다라고 추정되지는 않습니다."

"···흐음."

-삑.

-삑.

-삑.

맥이 전신에서 포스 회로도를 활성화시켰다.

"비록 저는 중복된 두 아이템이 융합되어서 생긴 만큼 규격 외의 존재라고는 하나, 저는 세계 제일의 초 인공지능입니다."

-치이잉!

그리고선 자그마한 악마와 천사가 새겨진 상자의 형상을 홀로그램으로 띄웠다.

"[마천의 영혼 성물함] 또한 마찬가지. [극한 레벨 승급의 비약]이 약 10개밖에 남지 않은 현재, 소비재라고는 해도 유일하게 새로운 플레이어를 만들 수 있는 아이템입니다."

"뭔가 그만한 수준의 잠재력이, 있긴 할 확률이 높긴 하다는 것인가···."

"애초에 과거의 라일리 그레인저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 제대로 된 수면을 취한 적이 없습니다. 너무도 바빴었으니까요. 따라서 자각몽 또한 불안정했고요."

"···라일리."

"마스터, 과거를 생각하지 마십시오."

음울한 과거로 빠지려던 생각을 차가운 기계음이 끊어주었다.

"···네 말이 맞아. 시험 정도는 해 봐야지. 그래도 최초 보상이니까."

"오늘은 일찍 주무시길 권고드립니다. 쌓인 피로도 풀 겸 해서 말입니다."

"어떻게든 쓸모를 찾아보자고. [캐릭터 프리셋], [휴식용]."

-파앗!

눈을 감았다 뜬 한우현은 부드러운 재질의 목욕 가운 차림이 된 것을 확인하고.

"그럼 너도 들어가 있도록."

"네, 잠시 후에 뵙겠습니다."

-스르륵

그대로 눈을 감고 침대 위에 누운 채, 의식적으로 [잠]을 떠올렸다.

20년간 전 세계를 떠돌며, 언제나 미치광이 빌런 플레이어와 보스 몬스터들을 경계하며 졸다가 깨기를 반복했었다.

"잠, 이라···."

언젠가부터는 아예 잠이란 것 자체를 아예 자지 않았다. 포스에 뇌를 중독시켜 기계처럼 움직였다. 세상의 모든 것을 처 죽여버리겠다는 기세로.

-스르륵.

-스르륵.

이제는, 의식하여 전신의 감각 신경들을 섬세히 닫고.

-스르륵.

-스르륵.

인위적으로 각성 상태를 유지하는 대뇌의 각 영역들을 하나하나 재우지 않는다면.

-스르륵.

-스르륵.

잠들기 어려울 정도로, 몸이 적응해버린 상태.

"하아···."

노곤함 속에서 깊은 피로를 느끼며.

-[당신은··· 습니다···]

-[자각몽을··· 습니까···]

"그래···."

멍하니 중얼거렸고.

-[···초대···]

-[···]

-[···]

"그래···."

흐려지는 정신 속에서, 무심코 되뇌였다.

깊이.

아주 깊은 곳으로.

빠져드는 기분이 들었다.

한참이나.

한참이나.

한참이나···.

-휘이잉···

-휘이잉···!

-휘이잉!

"아."

잠깐 졸았다고 생각한 순간.

-쐐애앵!

-쒸이이잉!

"···좆 같군."

한우현은, 스스로가 무수한 모래바람이 휘몰아치는 한 가운데 서 있음을 자각했다.

작렬하는 햇빛과, 시릴 정도의 차가운 빛을 내는 달빛을 맞으며.

10%의 희박한 산소 농도와 수분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메마른 대지 그리고 바람.

-쿠릉!

-쿠르르릉!

저 멀리서는 찢어진 지각과 맨틀이 울컥이는 인위적인 협곡들이 보이는.

-후우웅!

-후웅!

죽음의 행성, 지구.

"···이제는 적응할 때도 되었는데, 아직은 이게 익숙하단 건가. 다시, 지금의 모습대로···."

팔과 다리가 두 쌍씩 붙어있는 스스로의 신체를 인식하며, 한 번 여덟 개의 눈을 감았다가 떴다.

-깜빡.

순식간에 거미 인간 같은 상태에서 평범한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온 한우현은 입을 열었다.

"하긴, 무의식의 반영이라면 당연한 거니··· 맥!"

해야 할 일을 시작할 시간이었다.

-삐비빅!

순식간에 모습을 드러낸 맥이 주위 환경을 무수한 포스의 감지장으로 스캔했다.

"활성화 완료. 회귀 전과 같이, 마스터의 소유인 저는 자각몽 속에서도 소환이 가능한 모양입니다."

"기상 후에도 정보가 남아있겠나?"

"실제로 라일리 그레인저의 자각몽 구현 기록이 남아있으므로, 현재 꿈 속의 정보도 기록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좋아, 그럼···."

-휘이잉!

-쒸이잉!

"일단 이 좆 같은 환경부터 바꿔야겠어."

눈을 감은 한우현은 잠깐의 고민에 빠졌다.

이미 그의 심상엔 끔찍하게 뒤틀린 미래의 지구가 너무도 강력히 틀어박혀져 있다.

무엇을 상상해도, 저만치 자연스러울 것 같지가 않았다.

"마스터."

"길드 스피어가 가장 나으려나···."

"마스터, 경계하십시오."

"시간은 많다. 방해하지 마라."

"마스터, 그게 아닙니다."

"뭐?"

전투 태세를 취한 맥의 포스 파장을 느끼며, 한우현이 인상을 찌푸렸다.

"마스터의 통제 하에 있지 않은 생명체가 느껴집니다."

"자세히 탐지해 봐라."

"주위 공간이 왜곡되고 비정형적이어서 정확히 감지할 수는 없지만, 둘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뭐? 둘이나?"

설마 보스 몬스터?

무의식적으로 미래의 괴물들을 상상한 것인가?

"없애 보지. 잠시···."

아주 빠르게, 깨끗한 세계를 상상했다.

그 자신 외의 어떤 존재도 없는 멸망한 세상을.

-파앗.

0.01초도 되지 않는 시간이 지나가며, 한우현은 그가 꿈 속의 세상을 덮어썼음을 느꼈다.

"좋아. 이제 없겠지?"

"···접근 중입니다. 각각 북쪽, 남쪽입니다."

"뭐?"

-척!

상황의 심각성을 느낀 한우현이 빠르게 전투 자세를 취했다.

"더 정확히는 알 수 없나?"

"시공간이 무의식으로 왜곡되어 자세한 탐지가 불가능합니다. 조금씩 안정화되고 있긴 합니다만···."

"첫 사용이라 아직 자각몽의 구현이 불완전하다는 건가."

고개를 끄덕이고선 한우현은 [적들과 그 자신]이라는 구도를 마음 속 깊이 가라앉혔다.

"흐읍!"

그리고, 세상을 다시금 덮어씌웠다.

확인하고 처리하려면, 순식간에 모아버려야 하니까.

"꺄, 꺄아아악?!"

곧이어 눈앞에 나타난 인영을 향해 크게 방패를 휘두르며-

···여자?

"자, 잠깐마아아안!"

"멈추세요, 길드 마스터!"

순간 든 의문을 해소해 주듯이, 그의 뒤편에서 마찬가지로 당황한 듯 맑은 목소리가 울렸다.

"···너희가 왜?"

-휘익!

갑작스럽게 멈춘 반동으로 인해, 검 주위로 휘몰아치는 바람.

-서걱···!

눈을 질끈 감은 나유나의 머리카락이 아슬아슬하게 잘렸다.

"으, 으으··· 머, 멈춘 거야?"

"···그래."

-척.

한우현이 어처구니 없다는 듯 검을 내리며 중얼거렸다.

"어떻게 들어온 거냐? 내 통제에 들지 않는다면··· 설마."

그리고 헛웃음을 흘렸다.

"알겠군. 아무래도 나도 처음 쓰는 물건이라, 무의식적으로 들여보냈던 건가."

"···."

"···."

"둘 모두, 길드 건물 안에서 몰래 잠들었던 거냐?"

"···아, 아하하, 그, 그게."

"···크, 크흠."

나유나가 어색하게 웃었고.

라일리 또한 고개를 돌리고 헛기침을 했다.

109화. 꿈빛 거울 (2)

텅 빈 집무실, 그 바로 아래 층의 안.

-스르륵···

그 안에서 무지갯빛 기운이 투명하게 소용돌이치며.

-사박.

-사박.

아주 흐릿하게, 누군가가 희미한 소음을 내고 있었다.

-사박.

마치,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겠다는 듯.

-사박.

조심스레.

"누구십니까?"

"···?!"

"야밤에 길드 건물에서 이렇게 조심스레··· 분명 길드장이 오늘은 전 길드원에게 조기 퇴근을 명령했는데요. 수상합니다. 정체를 밝히시죠."

그렇기에, 갑작스레 그 앞에서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렸을 때.

-우우웅!

당황한 듯 그 기운의 장막이 흔들리며 한복 차림의 여자가 모습을 드러냈고.

"[빛의 권능 : 마법···]

"···자, 잠깐만!"

"역시."

흰색 법복을 입은 채, 정갈한 자세로 앉아 있던 여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셉터를 내렸다.

"그럴 거라고 생각하긴 했었습니다."

"···뭐? 예상했었다고?"

"오늘 퇴근 전, [꿈빛 거울]을 굉장히 의미심장하게 보셨잖습니까?"

"읏."

"길드장이 오늘 바로 써 본다고 했을 때, 생각이 굉장히 많아 보이셨습니다."

"···서, 설마 다른 애들한테."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지금도 저 혼자 아닙니까?"

"으으."

입술을 깨문 나유나가 그녀를 노려보았다.

"···아니지, 잠깐만."

그러다가 문득 깨달은 듯.

"그러는 너야말로 여기서 뭘 하는 거야?"

"···."

"지금 너도 간부 숙소에 있어야 하는 거 아냐?"

"음, 큼."

그 말에는 라일리 또한 민망하다는 듯 한 번 헛기침을 했고.

"뭐야. 설마?"

"뭐, 맞습니다."

-척.

셉터를 허리춤에 끼워넣은 라일리가 고개를 올려 천장을 쳐다보았다.

"저 또한, 그게 기억에 남아서요. 궁금해졌기 때문입니다."

"하, 아닌 척 하더니만 역시 불여시였어."

"···불여시가 무엇입니까?"

"···모르면 됐어."

"좋은 뜻은 아닌 거 같군요. 나유나 씨는 왜 전부터 저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으신지 모르겠습니다."

"그걸 몰라서 물어?"

"예, 모르겠습니다. 제가 잘못을 한 게 있습니까? 만약 있다면 알려주시지요."

"···이이익, 됐어!"

괜스레 짜증을 부리고선 나유나가 라일리와 눈을 맞부딪혔다.

"별 이유가 없으신 듯 하다면 굳이 싸울 필요가 있습니까?"

"아니, 이유가 없다는 게 아니라··· 아무튼!"

살짝 얼굴을 붉힌 그녀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너, 너도 그거 궁금해서 온 거잖아!"

"···그렇긴 합니다만?"

"나도 궁금하거든. 길드장은 숨기는 게 너무 많으니까, 대체 어떻게 그 폐인이 그렇게 변했는지··· 속에 뭐가 들어있는지."

-척.

나유나가 마뜩찮은 듯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손을 내밀었다.

"그러니까 어차피 목적이 같다면, 굳이 여기서 서로 소란을 피울 필요는 없겠지?"

"흐음··· 제가 지금 길드 마스터를 부른다면요?"

"너도 몰래 왔는데, 그럴 것 같지는 않은데?"

라일리가 그 불퉁한 말에 살짝 웃음을 지었다.

"눈치가 빠르시군요."

"무엇보다 지금 너한테 꺼지라고 해도, 당연히 순순히 갈 리가 없으니까."

-척.

곧이어 그 손을 라일리 또한 내밀어 잡았다.

"어차피 지금 싸울 수도 없으니, 잠깐만 협력하는 거야."

"좋습니다. 같이 꿈, 꿔 볼까요."

-촤악!

미리 준비해 놓은 침낭을 펼친 나유나가 팡팡 침낭을 두드려 평탄하게 만들었다.

"그래 한 번 봐 보자고. 대체 길드장의 속내에 뭐가 들어있나."

"동감입니다."

라일리 또한 베개를 머리에 받치며 중얼거렸다.

대체 어떤 과거가.

어떤 비밀이, 숨어있을지.

조금이라도 틈새를 볼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

"···."

둘 모두, 눈을 감았다.

* * * *

"···그렇게 된 거야."

"하아, 나유나··· 내가 경고하지는 않았지만, 이런 정신 계열 아이템의 사용 도중에. 심지어 보스 최초 보상이라는 강력한 물건의 최초 시연에 끼어드는 건 바람직한 행동이 아니다."

한우현이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사람들과 쓸 수도 있었지만 내가 먼저 쓴 것도 그 위험성을 확인해 보기 위해서였는데."

어처구니 없다는 듯, 그의 눈이 라일리와 나유나에게 향했다.

"실제로 원래대로라면 내 초대를 받지 못한 너희는 그냥 잠들었어야 하지만, 처음 사용하며 자각몽의 확장에 미숙한 탓에 그냥 둘 모두 받아들여버렸고."

이 또한 예상한 부작용이기는 했다.

회귀 전, 라일리 그레인저 또한 사용하는 과정에서 주위 플레이어들을 강제로 끌어들여버리는 실수를 자주 범했었으니까.

꿈이라는 뇌의 무의식을 다루는 것은, 플레이어 신경학과 정신학을 통달한 한우현의 입장에서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때문에 오늘 밤 모든 길드원에게 퇴거 조치를 취한 것이고.

"라일리 그레인저, 너··· 아니, 당신도. 이런 짓을 하면 말렸어야지, 같이 따라오다니?"

"음, 으음··· 할 말이 없습니다."

더욱 어처구니 없는 것은 라일리가 그 행동에 찬동했다는 것.

아니, 애초에 나유나가 이유 없이 그녀에게 계속 짜증을 부리는 것을 내내 무시하며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아 보이는 모습이었는데.

이럴 때는 왜 또 죽이 맞았단 말인가?

"하아··· 아무튼, 이미 들어온 것 쫓아내기도 그러니."

다시금 한숨을 내쉬며 둘을 보았다.

"적당히 권한을 줄 테니까, 한 번 시험이라도 해 보도록."

"권한이요?"

"그래, 이렇게···."

의식적으로 그 둘에게 이 세계를 만드는 '권한'을 공유한다는 감각을 '결정'했다.

다행히 효과가 즉각적으로 발휘된 듯.

"오, 오오··· 신기한데?"

"···마치 세상을 주무르는 느낌입니다."

둘 모두 곧바로 그 감각을 받아들였다.

"함부로 남용하진 마라. 나도 한계가 어느 정도인지, 원리가 어떤지 모르니까."

그를 보며 경고를 확실히 하고선 눈을 감았다.

"이제 방해들 하지 말고, 저 멀리서 있도록."

"···알겠습니다."

"하여간 정말 목석이야."

-치잉!

방해받고 싶지 않았기에 그 말을 무시하고선.

-치잉!

강대한 크기의 [공간차단선]을 그어 완전히 공간을 격리했다.

"그냥 내보내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아냐. 쓴 소리를 하기는 했어도 둘 모두 어차피 초대할 생각이긴 했으니···. 그리고 기왕 들어왔으니, 라일리에게 도움을 받을 수도 있겠고."

"자각몽인만큼 치유도 스스로 할 수 있습니다만."

"그 이상의 과격한 시도까지 해 본다는 뜻이다."

"권고하진 않습니다. 꿈 속이라 해도 자해와 자살은···"

"그런 건 이미 익숙해."

-···!

-···?

둘의 대화를 뒤로 하고, 벽 너머에서 황당하다는 듯 콩콩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저 둘에게 그런 모습을 보여도 되겠습니까?"

"뭐 별 거라고. 기왕 이렇게 된 거, 지금의 라일리와 나유나가 어떤 식으로 [꿈빛 거울]을 쓸 수 있을지 보는 것도 좋겠지."

"하긴, 변수를 차단하기보다는 변수를 활용하는 것이 마스터의 방식이었지요. 둘의 자각몽 구현 또한 데이터에 기록하겠습니다."

"좋아, 할 일이나 하자고. [전이의 토템]."

-쿠웅!

한우현의 눈 앞에, 사람 절반만한 크기의 큼직한 토템이 허공에서 떨어져 박혔다.

"제대로 살펴 보지. 네 분석대로, 이것만 제대로 쓸 수 있다면 [마천의 영혼 성물함]도 제대로 확장이 가능할 테니까."

"반복하여 말씀드리지만, 너무 무리하지는 마십시오. [자각몽]이 어느 정도의 구현 효과를 지닐지는 아직 미지수입니다."

"애초에 많이 기대하지도 않아. 제대로 아이템 효과를 발휘하고 내가 적응만 할 수 있어도, 목표는 초과 달성이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분석 개시. [애널라이징 온라인]···."

"보자. 네 원리가 대체 뭐냐?"

무수한 렌즈를 회전시키며 확장시킨 맥과 함께.

-웅-웅웅-웅웅웅-!

한우현 또한 전신의 신경계를 공명시키며, 송과체와 토템을 '연결' 시켰다.

치명적인 부작용이 나타난다 해도, 이 곳은 꿈이니까.

위험한 물건이라도 거침 없이 시도를 해 보기 위해서.

* * * *

-콰아앙!

거대한 바람과 햇빛의 기운이 소용돌이치며, 푸른 에너지 장벽에 부딪혔다.

"으이앗! 길드자앙!"

"···아예 안 들리는 것 같습니다만."

"···이게 다 너 때문이야!"

"예? 왜 저 때문입니까?"

"몰라!"

씩씩 댄 나유나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으으, 생각처럼 되는 게 없네··· 단 둘이라면 달랐을까···."

"우리가 너무 쉽게 생각했을지도 모르지요."

라일리가 고개를 저으며 황폐한 세상을 바라보았다.

"애초에 꿈 속에서 제 이름을 불렀다고, 이 자각몽에서도 과거와 관련된 내용을 볼 수 있다는 보장은 없으니까요."

"···하긴 그것도 그렇긴 해."

"오히려, 예상치 못한 이상한 걸 보지 않았습니까?"

"이상한 거···."

그 말에 나유나가 얼굴을 굳히며 생각에 잠겼다. 거대하게 찢어진 촉수들의 잔해.

"···일단 모습이 게임에서의 도트 그래픽과는 많이 달랐지만, 그건 분명."

"4 사도··· 같긴 해."

"저도 보았습니다. 5 사도로 추정되는 갑옷을 입은 시체를."

라일리 또한, 사막을 내달리며 보았던 무수한 검날들과 갑옷 조각을 떠올렸다.

"진짜 하루 종일 사도들에 대한 생각만 하고 사는 건가? 뭔 꿈에서도 그런 것들이."

"···글쎄요, 생각만 하고 살았다기에는···."

잠시 그녀의 입이 닫혔다가 열렸다.

"시체가 있는 건,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맞아, 게임에서 보스는 시체 따윈 남지도 않는데···."

"···."

"···."

둘 모두, 의문에 빠졌다.

산산이 부서지고도 난자당한 괴물들의 흔적.

그것은 무의식 중에 걱정하고 대비한 괴물들에 대한 상상이라기보다는···

마치, 몇 번이고 싸워서 죽여본 것들에 대한 기록을 보는 것 같았기에.

"혹시, 정말로···."

그리고 마침내 라일리가 고심 끝에 입을 열려던 순간.

"···?!"

거대한 모래바람이, 위협적인 모양새로 그들을 향해 쇄도하는 것을 목도했다.

-휘우우웅!

꿈 속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비상식적이고도 뜬금없는 접근.

"잠깐···!"

순간 놀란 라일리가 손을 내뻗음과 동시에.

-파앗!

-촤라락!

-처저저적!

모래바람이 순식간에 소멸하고선, 그녀의 주위로 거대한 단풍나무가 나타났다.

"뭐, 뭐야! 어떻게 한 거야?! 난 움직여라, 움직여라 하다가 갑자기 툭 튀어나오는 바람만 만들었는데···."

"···당신이 만든 것이었습니까."

헛웃음을 짓고선 라일리가 위로 고개를 올렸다.

"그냥 뭐라도 생겨나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나유나도 힘을 주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생겨난다는 생각으로 해 보십시오."

"생겨나라는 느낌으로··· 알았어. 근데 이건."

흩날리는 붉은 나뭇잎들을 보며, 나유나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로그인 화면이잖아?"

"예. 제가 첫 캐릭터를 생성하던 기억입니다."

라일리가 재밌다는 듯 흩날리는 단풍잎을 잡았다.

"별 생각 없이 만든 것인데, 강렬한 기억이나 추억이 튀어나온 것 같습니다."

"강렬한 추억? 좋아, 그럼 나도!"

-파앗!

나유나의 주위로 너저분한 자취방의 풍경이, 마치 어거지로 잘라붙인 듯 주위의 공간에 갑작스레 덧붙여졌다.

"···혹시 이 방이."

"으아악!"

-스바박!

그녀가 경악하며 서둘러 그 광경을 지웠다.

"아, 아무튼 원리는 알았어! 본인이 생각하기에 가장 편한 장소가 나오는 거 같은데···!"

"···가장 편한··· 아니, 편한 장소요?"

그 말에 라일리가 수긍하려다가, 곧바로 표정을 바꿔 의구심을 띄웠다.

-스바박!

단풍나무를 지우며, 고개를 들어올렸다.

"이게요?"

"···어라."

나유나 또한 그 의문에 말문이 막힌 듯, 입을 닫았다.

-휘이잉!

-씨이잉!

무수한 폐허가 된 건물들이 파묻힌 사막.

-으오오오···!

-그오오오···!

정체를 알 수 없는 비명과 울음 소리가 간간이 저 멀리서 흐릿하게 나오는 광경.

누가 봐도 세기 말,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내보이는 듯한 환경이었으니까.

"···이집트 여행이라도 했었나?"

"글쎄요, 피라미드라면 모를까 저런 폐허는 없을 거 같습니다만."

고심에 빠진 듯, 라일리가 잠시 눈을 감았다.

"···정말로, 당신은."

"당신은? 뭐야, 뭔가 아는 거야?"

"···아니, 아닙니다."

나유나의 의심스러운 시선에 고개를 내저은 라일리는 생각을 멈췄다.

아무리 모든 영역 이상현상 조사국이 초월적인 집단이라고는 해도.

솔직히 그녀가 생각하기에는, 회귀자 시나리오는 너무나도 낯설었으니까.

겨우 꿈 속에서 게임 보스들의 시체가 나온 것을 근거로 말하기에는 부족했다.

그녀 자신조차 아직 확신이 없는 데다가, 대외 기밀인 것을 함부로 말하고 다니기도 저어되었고.

애초에 그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하지만, 만약 진짜라면.

"야! 라일리!"

"아, 네!"

거기까지 생각을 멈추고선 눈을 떴다.

아직은, 자세히 파고들기에는 근거가 너무나도 부족하다.

애초에 유진 킴 또한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라고 했지, 확정적이라고는 하지 않았으니까.

그녀가 생각할 일이 아닐 것이다. 나중에, 나중에 생각해 보자.

"저기, 에너지 벽 열렸어!"

"엇, 정말입니까?!"

생각을 정리한 라일리는 서둘러 일어났다.

-라일리 그레인저, 나유나. 이 쪽으로 오십시오.

동시에 머리 속을 울리는 [전음].

"갑자기 뭐야?"

"···안 좋은 일은 아니겠죠?"

"꿈 속인데 안 좋을 게 뭐 있어!"

둘 모두 초월적인 플레이어의 신체 능력으로, 빠르게 도약했고.

-쉬익!

-쐐애액!

순식간에 아까의 한우현이 있던 자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잠깐, 무슨 일입니까?!"

"뭐야, 이거 왜 이래!"

그리고 둘 모두, 순식간에 안색이 사색이 되었다.

"···아, 왔···나··· 난, 괜찮아···."

-끼리릭···

-끼리릭···

몸의 절반 정도가 붕괴되는 기계 부품들로 대체된, 성기사 형상의 로봇이.

-까락···까라락···

-까라라락···

힘겹게 눈과 혀를 움직이고 있었으니까.

"라일리··· 부탁한다···."

"서둘러 주십시오. 현재 [자각몽]의 구현이 불완전해지고 있습니다."

-우르릉!

맥의 경고를 증빙하듯 저 멀리서, 하늘이 붕괴되듯이 서서히 흔들리는 것을 보며.

"[절대 선의]! 정화하면 되는 것입니까?"

"더, 더··· 회복시켜 줘라···."

-스르륵···

-스르륵···

다행히 효과가 좋았던 듯, 빠르게 제 모습이 돌아오는 한우현을 보며.

-스르륵···

"좋, 아··· 고맙다, 라일리."

"나, 난 뭐 도울 거 없어?!"

"더우니 옆에서··· 강물 기운이나 흘려···."

"···나, 쓸모 없구나···."

둘 모두 다행이라는 듯 가슴을 쓸어내렸다.

"대체 무슨 일입니까? 그 기괴한 모습은."

"휴···. 잠시 시험한 것일 뿐이다. 이거, 송과체의 붕괴라 엘릭서도 먹히지 않아서 말이야. 고맙다."

"아니, 그게 무슨···."

-탁탁.

겨우 모양새를 회복한 한우현이 머리가 아프다는 듯 관자놀이를 쓸어내리며 옆에 박힌 [전이의 토템]을 주먹으로 두드렸다.

"괜찮아. 예상한 부작용이었어. 조금 심했을 뿐이지."

"···그런 걸 써도 됩니까? 방금 파악하기에는, 뇌가 거의 비가역적으로 손상되기 직전이었습니다만."

"마, 맞아! 그거 카즈키가 쓰던 거 아냐?! 완전 괴물이었잖아!"

"[꿈]이니까 괜찮다. 설령 여기서 내가 죽는다 해도 그냥 잠에서 깰 뿐이야."

"그, 그래도오···."

"그리고 가능성을 봤거든."

둘의 걱정 어린 얼굴을 넘긴 채 한우현이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전자기인] 클래스 판정을 받는 맥에게서 직업을 전이받은 상태로, 자세히 들여다 본 [전이의 토템]의 원리.

이거, 현실에서 쓰기에는 무리더라도.

부작용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을 조성하는 [꿈빛 거울]과 함께라면···

예상보다 잘 쓸 수 있다는 예측이.

완전히 새로운 영역을 개척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결론이 나왔기에.

"둘 모두, 잠깐 협조 부탁하지. 위험한 일은 아니다."

"그건, 저희에게만 해당되는 말입니까?"

라일리가 깊은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아니면 길드장에게도 해당되는 말입니까?"

"···."

잠깐 동안 정적이 흘렀다.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합니까? 다른 직업군이 될 수 있다니 분명 엄청난 물건이지만."

"해야 한다."

"···위험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마, 맞아. 길드장이 그 카즈키처럼 되면 어떡해? 나 그러면."

"걱정 마라."

한우현이 잠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별 거 아니야. 이 까짓 것."

-스윽.

왠지 모를 걱정과 불안에 잠긴 듯한 나유나와 라일리 그레인저를, 무감해 보이려고 애쓰며 내려다보았다.

"···잠깐 아플 뿐이니까."

이번에는 반드시.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리라.

110화. 제국사냥꾼

[꿈빛 거울]의 첫 사용을 마친 다음 날 아침.

-스륵.

-스륵.

"생각만큼 피곤하진 않은데."

"실제로 과거의 라일리 그레인저 또한 제어가 어려울 뿐, 일어났을 때의 컨디션은 평소와 그리 다르지 않다고 했었으니까요."

"확실히 그건 그래."

늘 하던 업무 서류와 전 세계 길드의 현황을 빠르게 확인하며 한우현은 중얼거렸다.

"라일리가 재능이 없었던 건 아니야. 시간이 없었던 거지."

"제가 보기에는 마스터께서 실제로 꿈의 제어 자체에도 재능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만."

"그럴 리가. 내가 앞서는 건 경험 뿐이지···."

피식 웃고선 서류를 밀어 치웠다. 대충 이걸로 오전 업무는 끝났다.

"중국 쪽은 아직인가?"

"조금 늦습니다만, 아마 곧 연락이 올 듯 합니다."

"그래, 잠깐 쉬어둬야지···."

-치익!

창문을 열어 바람을 통기시키며 한우현은 찻주전자를 꺼냈다.

-탁, 탁.

그리고 포장된 보이차 덩이 한 움큼을 섬세하게 털어 떼어냈다.

-치이잉···.

고력 만송 보이차. 정품은 돈이 있어도 구하기 힘든 물건인데, 이번에 리하오란이 주석파 일부를 숙청하며 압류했다고선 보내준 물건이었다.

-보글, 보글.

극도로 유려한 포스의 운용으로 그 향을 열과 압력을 담아 우려낸 한우현은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꽤 괜찮은데."

원 주인인 공산당 간부도 차에 대해 잘 아는 놈이었던 듯, 숙성 보관을 잘 해 놓은 모양이다.

이거, 그냥 죽이기 아까운데.

한국에 보내서 길드의 차 관리자로 쓸까? 한국어는 배울 때까지 두들겨 패면 그만이고···.

-덜컥!

그 쓰잘데기 없는 잡생각을, 열리는 문소리가 끊어주었다.

"난 휴식도 없나, 참. 오랜만에 평화로운 시간이었는데."

"할 일을 해야지, 재무부장. 그리고 이준범, 별 일 없었지?"

"하하, 아주 바빴지요··· 그래도 나름 재밌는 시간이었습니다."

어느덧 한국을 넘어, 전 세계의 경제에 영향력을 미치는 길드 재무부의 수장들.

"양주은, 임수호. 최근 고생들이 많을 것 같은데 어떻지?"

"···솔직히 죽겠습니다."

"애초에 저희는 정치랑 맞지 않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 정도에요···."

"그러게, 그냥 재무부 일이나 할 걸···."

시민당과 공화당에 심어 놓은 핵심 끄나풀.

뒤따라 들어온 퀭한 인상의 두 플레이어들도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말했듯, 너희는 그저 당 내에서 세력을 만드는 것에만 집중하면 된다. 그 외에 다른 어려운 일은 구태여 벌일 필요 없어."

"아니, 탄핵 정국에 그 짓을 하는 것만 해도 보통이 아니라구요···."

"애초에 대체 무슨 짓을 하셨길래 탄핵이 2주 만에 진행되는 겁니까?"

"내가 그만큼 너희한테 떠먹여서 다 해 준다는 거지."

구태여 어떤 식으로 협박을 했는지까지 말해 줄 필요는 없었으므로, 대충 그 의문을 넘겼다.

"재무부는 이걸로 다 왔는데, 아직인가?"

"막 통신이 왔습니다. 화상 통화를 시작할까요?"

"아, 그래. 다들 집중하도록."

-치잉!

맥이 비추는 화면을 바라보았다.

"그래, 양위엔신. 오랜만이군."

"(바, 반갑습니다, 총 길드장님.)"

"통역은 이 쪽에서 AI로 자막을 달고 있으니 편하게 말하도록."

"(배,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긴장한 듯 한 지뢰계 패션의 여자와 눈을 마주치며, 보이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래, 구체적으로 뭐가 문제지?"

"(영국 금융계가, 슬슬 반기를 드는 것 같습니다.)"

"영국이라."

"···시작부터 거물이 뒤에 있었군요."

이준범의 긴장 어린 목소리를 뒤로 하고선, 그녀가 어물거리며 수십 개의 통계 자료들을 올렸다.

"(말씀드린대로 중국 전역의 자본은 반 이상이 이제 통제에 들어왔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유럽 지역에 대한 공격적인 투자에 들어갔는데···)"

"반항하는 거야 당연하지. 자기들 밑천을 졸부 새끼들이 날름 삼키겠다고 하니."

"(그런데 그 정도가 예상보다 심합니다. 원래 독일부터 시작해서 경영에 참여하지 않는, 이익 배당주 위주로만 어느 정도 협약을 맺었습니다만.)"

-팟.

-팟.

-팟.

중국 지부 재무부장, 양위엔신.

그녀가 다시금 프랑스, 독일, 영국의 증권 거래소와 은행들에 대한 자료들을 띄웠다.

"(일주일 전부터 돌연 대부분의 회사와 증권가 측에서 저희의 투자를 거절했습니다.)"

"흐음, 일주일 전이라. 별 다른 정보는 더 없나?"

"(예, 아무래도 중국 정보부는 러시아와 중앙아시아까지만 영향력이 미치다 보니···.)"

"하긴 지금 같은 상황에서 유럽 놈들도 바보가 아닐 테니, 중화인민공화국 국가안전부中华人民共和国 国家安全部의 첩보 활동에도 한계가 있겠지."

"(맞습니다, 안 그래도 플레이어들이 사실상 없는 지역이라 중국 뿐 아니라 길드의 영향력 투사에도 한계가 있었고요.)

"영국이 범인이라고 추정한 이유는?"

"(EU 측과의 반목이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독일계와 영국계 위주다 보니, 그 외에는 별 다른 큰 중심이 없다는 것도 근거였고요.)"

-파앗.

-파앗.

-파앗.

푸른 바탕에 떠오른 별들의 원을 보며 한우현이 무수한 그래프들을 빠르게 해석했다.

"그럴 듯 하군. 오히려 이 틈을 영국 금융계에게 온 기회로 삼겠다는 건가?"

"(애초에 영국과 독일의 재계 관계는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으니, 그런 것 같습니다.)"

"왤까요? 당초 우리의 투자 계획은 장기적으로는 길드에 이득이라도,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유럽 기업들한테는 단 비였을텐데요."

"(네, 그래서 현재 경제적 경직성이 강한 EU와 독일의 금융계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이준범의 지적에 악마 곰돌이 인형을 흔들며 양위엔신이 백인 남성들의 진과 그들의 동향에 대한 짤막한 모식도를 띄웠다.

"(HSBC, 홍콩 상하이 은행 쪽 꽌시에 의하면 로이즈(Lloyds), 바클리스(Barclays), 스탠다드차타드(Standard Chartered), RBS가 합심해 유럽 각국 정부를 압박했다고 합니다.)"

"HSBC··· 만만한 놈들은 아니군."

한우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에 잠겼다.

홍콩 상하이 은행Hongkong and Shanghai Banking Corporation.

이름만 들어서는 당연히 중국계로 보이지만, 실은 과거 영국이 식민지 운영 당시 금융계의 첨병으로 썼던 금융 기업.

즉, 대영제국을 상징하는 금융가의 수좌였다.

지금은 미국에 밀렸다고는 하나, 여전히 세계 4위의 영향력을 자랑하는 명실상부한 유럽 자본계의 심장.

"브렉시트 이후 공격적인 전략을 펼치고 있다더니, 눈에 거슬렸나 보군."

"(조건을 훨씬 더 후하게 쳐서 다시금 계획을 공사하긴 했지만, 처음 길드장이 요청했던 것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해요.)"

"이건 아무래도 전문가의 조언이 필요하겠어. 맥, 첸은 언제쯤 오는 거지?"

"가족과의 만남이 길어지는 듯 합니다. 한 번 더 호출을···."

"(그럴 필요 없어.)"

보랏빛 장발을 한 남자가 싱가포르 표준화어新加坡標準華語로 대답하며 나타났다.

"(사과하지. 오늘 막, 그룹 전체에 대한 상속 지분을 확인받는 과정이었거든.)"

"괜찮다, 그리 늦진 않았으니까."

"(대충 상황은 들었어. 동유럽과 독일 쪽까지 공격적 투자는 마무리 단계였는데, 서유럽 쪽에서 제동을 걸었다며?)"

"정확히는 영국으로 추정된다."

"(아, 그 제국 주의자들··· 만만한 것들은 아니지.)

첸이 질척하게 비웃으며 빠르게 그래프들과 보고서들을 확인했다.

"(으음, 일부는 지금은 확언할 수 없지만··· 내 생각에 몇몇 부분은 의외로 쉽게 해결될 수 있을 거 같은데.)"

"호오?"

"(어떻게 말이죠?)"

"(결국 유럽 놈들도 이해관계에 따라 같이 움직일 뿐이지, 원 팀은 절대 아니란 말이야···)"

"독일은 이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관여를 통해 꽤나 많은 당근을 물려줬으니 됐고. 뭘 말하는 지 알 거 같군."

"(역시 길드장은 똑똑해.)"

첸이 씨익 웃은 채 한 명의 사진을 띄웠다.

"(프랑스 신임 대통령이 배가 좀 많이 고픈 상태다 이거야.)"

"배고픔이라, 그거 뿐이라면 별 문제는 없겠군."

한우현 또한 그에 대응하듯, 하나의 [금괴]를 손에 꺼내 들었다.

세 달 간 줄어들기는 커녕, 압도적인 길드의 무력 개입과 정경 유착으로 오히려 두 배 가까이 불어난 궁극의 기초 자산.

"(영국 은행이 아무리 전 세계 최대의 금 보유장이라지만···.)"

"그래 봤자 당장 가용 가능한 수준의 현금에는 한계가 있지."

피식 웃은 한우현이 금괴를 주물러, 넓게 늘렸다.

"금괴 500톤. 그 중 300톤을, 홍콩과 싱가포르에게 자유롭게 유용할 수 있도록 해 주겠다."

"(호오, 그 정도라고?)"

"(···분명 엄청난 양이지만, 영국 은행에 맞서기에는 조금.)"

"길드장,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황금은 아직 공격적으로 사용하기에는 보유량이."

"말을 끝까지 들어라, 다들."

살짝 아쉬운 듯 말꼬리를 흐리는 이들을 보며, 한우현이 한 마디를 더했다.

"미국 재무부에서 우리에게 이번 분기, 1500조원. 그러니까 1조 달러를 투자해 주기로 했거든."

"···뭐? 아니, 잠깐만. 투자 자체는 알고 있었지만."

라니아가 경악한 듯 잠시 숨을 멈췄다.

"그, 그 투자라는 게. 우리 맘대로 이렇게 쓸 수 있는 돈이었어?"

"당연하지. 애초에 미국 정부가 우리의 뭘 믿고 이렇게 돈을 쏟아주는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띠링.

-띠링.

-띠링.

유럽 각국의 수장들과 은행들의 문양을 바라보며.

"미국이 돈이 많은 건 사실이지만, 우리가 힘이 세다는 이유로 달러를 뿌려주는 호구는 아니야."

한우현이 같잖다는 듯 비웃었다.

"우리는 유럽 연합 전역의 경제적 구조를, 우리를 통해 미국에 종속시키는 역할을 맡게 된 거다."

"···그게 가능합니까?"

"(불가능할 게 뭐가 있나?)"

첸이 화면 너머로 놀란 이준범의 반응을 보며 무심하게 중얼거렸다.

"(이 세상을 이루는 기본 법칙이 바로 돈과 무력인데, 우린 둘 모두를 갖췄지.)"

"(마, 맞아요. 솔직히 시간이 좀 걸릴 뿐··· 미국의 도움이 없다 해도, 저희끼리만도 하려면 할 수는 있어요.)"

"···할 수 있다는 것과, 그를 실제로 진행시키는 것은 다른 영역입니다."

헛기침을 한 이준범이 아리송하다는 눈빛으로 미 재무부의 지원금 집행 내역을 바라보았다.

"저는 당연히 플레이어들의 통제와, 스킬 기술 연구, 개발 협업에 대한 집중 감사를 생각했었습니다만··· 길드장의 말대로라면, 미국은 길드를 통제하려는 생각 자체가 없는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흐음."

꽤나 날카로운 지적이었다.

실제로, 한우현의 입장에서도 그 부분은 다소 이상할 정도였으니까.

미국은 분명 전 세계에서 가장 유능한 국가이자 천재들의 요람이었지만.

그렇다 해도 결국은 기득권자들.

길드가 아무리 항거 불능의 무력 집단이라 해도, 이 정도로 협조해준다는 것은 예상 외기는 했다.

"글쎄, 어렵게 생각할 게 있을까."

"···하긴, 미국 대외전략부의 생각을 저희가 읽을 수는 없겠지만요."

"(그건 공감이야. 뭐, 그냥 길드장이 늘 그랬던 것처럼 미국을 잘 구워삶았다고만 생각했지만.)"

"(저, 전 미국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지라···.)"

물론 짚이는 것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유진 킴.

그리 많은 대화를 나누지도 않았지만, 잠깐의 대담으로도 마치 모든 것을 꿰뚫리는 듯한 느낌.

···솔직히 전혀 찝찝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는 정말로 세상을 위해 그 천재적인 통찰력을 발휘하는 인물이었으므로, 믿고 내버려 두었다.

아마 이 정도로 긴밀한 미국과 길드의 협력 또한, 그가 여러 면에서 부통령과 장관들을 설득했기에 나온 결과였겠지.

역시, 그가 아무리 회귀 전의 지식을 바탕으로 노력하고 성과를 낸다고 해도.

'진짜 천재'에 비할 수는 없었다.

-짝짝!

"이야기가 잠시 다른 데로 샜지만, 다들 너무 걱정하진 말도록."

한우현이 미소지었다.

"당분간 미국은 계속 우리한테 협조적일 예정이고, 유럽 경제권 장악 또한 이미 얘기가 다 된 부분이니까."

"(흠, 좋아. 그렇다면 자금 집행 계획은 적당히 내가 손을 보지.)"

"(저도 공산당 예산 집행 쪽을 더 공격적으로 바꿔보지요.)"

"그리고 앉아서 명령만 내리기에는 시간이 없으니."

-척.

한우현이 의자 뒤로 등을 뉘이며 중얼거렸다.

"아직 뒤바뀐 세상을 실감하지 못하는 외국 놈들한테, 직접 가르침을 줄 필요도 있겠어."

서쪽을 바라보며.

"플레이어가 없는 곳이라도, 세계적 영향력을 감안한다면 어차피 유럽 지부도 설치해야 하니까···."

"비행기 편을 알아볼까요?"

"그래. 라니아, 너도."

재무부장도 손가락으로 가리켜 주었다.

"어? 난 왜?"

"길드 전체의 자금 집행과 투자를 맡은 게 넌데. 당연히 따라와야지."

"···네이 네이."

"좋게 생각해라. 네가 바지사장이 아니라, 정말로 역할을 잘 하고 있단 뜻이니까."

"솔직히 그렇게 어거지로 뇌 개조하면 아무라도 할 수 있을 거 같지만, 뭐 알았어."

"독일 총리부터 만나서 직접 담판을 짓지. 그 네오 나치 친구도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니 정식 임명식을 해 주고."

"알겠습니다. 독일-프랑스-영국 순으로 일정을 짜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한우현이 순서대로 양위엔신, 첸, 이준범, 양주은, 임수호를 쳐다보았다.

"나 없는 사이, 잘 하고 있도록."

세계 3대 경제 블록.

그 중 하나인 동아시아 일대를 완벽히 잠식했으니.

이제, 다음 블록인 유럽 연합을 '정상화' 할 때였다.

111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