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0화
백두산 대전(1)
로마노프 가문은 두만강을 천천히 거슬러 올라갔다.
유진이 길목 곳곳에 배치한 언데드 군대가 있었지만, 진격을 늦추진 못했다.
-나를 놓아다오.
-이 더러운 인간들.
최상급 정령 둘과 룬 문자를 활성화시킨 와르그.
인간사냥꾼 잔존 세력의 조력을 받아 몰고 다니는 괴물 군집까지.
송명석이 룬 문자의 빈틈을 발견했다곤 하나, 강령술 본연의 위력을 내지 못하니 물량에서 밀렸다.
두만강 상류 곳곳에 만 단위의 언데드들을 세워 놨지만 10분도 안 되어서 전멸하기 일쑤.
그럼에도.
유진은 언데드 군대를 만 단위로 쪼개서 로마노프 가문의 길을 막아섰다.
"왜 그러는지 짐작은 가느냐?"
"시간을 끌려는 것이겠지요."
"너무 노골적이라서 숨겨진 수가 없는지 궁금할 정도다."
드미트리는 지루하다는 듯 하품을 했다.
이제 와서 병력을 분산시킨다?
중급과 하급 위주로 편성된 언데드 1만쯤이야, 최상급 정령 둘 선에서 정리가 가능했다.
괴물 군집과 로마노프 가문 지상군의 진격 속도가 조금 더뎌지지만.
고작해야 10분 정도?
전황을 바꿀 정도는 아니었다.
한두 시간을 끈다고 해서 전황을 극적으로 바꿀 수 있을까.
"언데드 대군이 아군의 뒤를 밟고 있습니다."
"100만 정도였나?"
"132만입니다."
"사소한 숫자는 떼자고."
대부분이 중, 하급 언데드.
공중항모의 털끝도 건드리지 못하는 허섭스레기들이다.
로마노프 가문 전력에는 지상군도 있지만.
여차하면 마법사들만 실어서 날아가버려도 그만이다.
저벅- 저벅-.
"가주님 백두산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무슨 꿍꿍인지, 직접 물어보면 되겠군."
유진을 죽일 생각은 없다.
전직 방법조차 밝혀지지 않은 네크로맨서.
그 힘을 무슨 수로 얻었으며.
단기간에 이렇게까지 강해지고 세력도 불릴 수 있었는지.
힘의 비밀을 모조리 파헤칠 때까지는 죽일 수 없었다.
"날개를 꺾어주는 정도로 해둘까."
새장에 묶어두고.
두 날개를 부러트리고.
네크로맨시 연구원으로 두고 식사만 꾸준히 챙겨줘도 되지 않겠나.
로마노프 가문 소속이 되어 영예를 누릴 테니.
본인도 손해는 아닐 것이다.
"마력 수치가 낮습니다."
"반대로 영력 수치는 비정상적으로 증폭."
"산 근처에서는 마법의 위력이 30% 감소할 것으로 보입니다."
항모 브릿지에서 실시간으로 들어오는 보고.
드미트리는 갑판으로 나갔다.
축축한 공기가 뺨에 들러붙는다.
불쾌한 감각이다.
"흠."
짧게 헛기침을 내뱉은 드미트리가 손을 앞으로 펼쳤다.
가벼운 동작에 어울리지 않는 강대한 마력이 손바닥 앞에 재배열되었다.
"웨더 폴."
하늘을 덮은 구름이 걷혀진다.
분해되듯 녹아내리는 구름자락 사이로 쏟아지는 햇볕.
백두산 근처에 감도는 충만한 영력이 크게 출렁거리고, 봉우리에서 피어난 안개가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사용자의 의지대로 날씨를 바꾸는 8성급 마법이 전장의 환경을 바꾸었다.
날씨 조작 마법.
언뜻 들어보면 8성이나 될 만한 주문이냐는 궁금증이 들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날씨 조작의 진가는 사용자에게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하늘을 쾌청하게 만들면 불 마법의 효과가 50% 올라가고.
비를 내리면 물 계통 마법이 강해지는 등.
대단위 조작으로 원하는 전장을 만들어낼 수 있다.
범위, 그리고 이적의 영향력에 비해 마력 소모는 크지 않은 편.
드미트리의 마력이 백두산에 드리운 안개를 밀어내면서 안에 숨어 있던 망자들의 모습이 드러났다.
"승리의 천둥포. 장전."
"총 7문, 마력 충전 100%입니다."
영국에서 수입한 퀸 엘리자베스급 공중항모는 다른 항모보다 크기가 더 컸다.
규격이 큰 천둥포도 두 문이나 적재할 수 있을 만큼.
"발사."
드미트리의 지시가 떨어지기 무섭게 일곱 개의 포문에서 시퍼런 빛이 솟구쳤다.
뇌 속성의 마력은 섬전 같은 속도로 언데드 군집과 충돌하더니, 닿은 것들을 모조리 태워서 가루로 만들었다.
상급 언데드인 데스 나이트도 저항할 수 없었다.
모든 것을 잘라낸다는 암흑 강기조차.
압도적인 출력 앞에서는 검은 광채를 유지하지 못하고 파묻혀버렸다.
천둥포를 한 번 토해내니 상급 언데드 10구를 포함하여 망자 수만이 가루가 되었다.
우우웅-.
공중항모에서 번개가 쏟아지자, 죽음의 요새도 전진을 시작했다.
요새 입구에서 팔짱을 낀 채 선 유진.
"천유진, 포착했습니다."
"천둥포 재장전에는 얼마나 걸리나?"
"각 항모마다 마력 집속률과 엔진 과열 정도가 다릅니다. 일제 사격까지는 10분 정도가 걸리지 않을지."
"자율사격으로 이행한다. 구태여 화력을 집중시킬 필요는 없을 터."
"알겠습니다."
"배를 전진시켜라."
웨더 폴로 날씨를 개변했음에도.
백두산에 스며든 영력이 원체 많다 보니 천둥포의 위력이 꽤 감소했다.
제 위력을 냈으면 밀집한 언데드를 두 배는 부술 수 있었을 것이다.
"거리를 좁히면 본 드래곤들이 나올 것이다. 요격 준비를 해라."
죽음의 요새에 머무는 게 본 드래곤의 개량형인 [블러드 드래곤]인지는 몰랐다.
뭐, 개량형인지 아닌지가 중요한 것도 아니었고.
적이 공중항모에 대항할 수단을 아직 꺼내지 않았으니.
유진도 발견했겠다, 초전에 잡아버리면 바로 승부를 낼 수 있다.
"방어 결계에 소모되는 마력도 천둥포에 투입하면 충전 속도를 올릴 수 있습니다."
니콜라이가 부관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후방에 언데드 대군을 집결시킨 건 아군을 조급하게 만들기 위함일지도 모릅니다."
"일리 있다. 급할 이유가 없으니 결계를 유지하며 천둥포를 충전하라."
몰아세우는 건 로마노프 가문이지.
유진이 아니었다.
공중항모 6척이 천천히 나아가고.
키메라 부대를 포함한 지상군도 행군 속도를 맞춰 전진했다.
그 순간.
공기를 찢는 것 같은 폭음이 터져 나왔다.
"고 마력 반응!"
"위치는 백두산 산 중턱입니다."
웨더 폴로도 완전히 몰아내지 못했던 안개.
그 자락에 몸을 숨기고 있던 탈로스와 언데드 사이클롭스가 포격을 개시했다.
*
신준석이 기초를 다졌고.
육룡이 무장을 개수해서 강화한 전투 골렘들이 드디어 실전에 투입되었다.
성능 테스트로 몬스터들을 상대한 적은 있지만.
이만한 대규모 전장에서 활약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위이이잉-.
골렘의 핵이 연거푸 회전하면서 마력을 뿜어낸다.
마력 회로를 타고 전해진 고밀도의 에너지가 포신에 집약되었고.
"발사해라."
신준석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각을 올려서 발사했다.
장거리용 자주포를 대공포로 활용했다는 무훈은 2차 세계대전 때나 찾을 수 있는 이야기.
임기응변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유진은 로마노프 가문과 전쟁을 벌일 때부터 이 활용 방법을 떠올렸었다.
[크크크. 표적이 크니 맞추기 쉬워.]
리치 육룡이 턱뼈를 달싹이며 즐거워했다.
사거리는 15킬로미터.
기존의 자주포에 비해 사거리가 1/2에 조금 못 미치지만.
초장거리 사격에도 마력이 흩어지지 않고 집속시킬 수 있으니 장점이 훨씬 많았다.
[승리의 천둥포]와 비등한 사거리.
천둥포가 로마노프 가문의 최신 병기인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발전 속도였다.
물리 + 마력의 포탄이 공중항모에 직격했다.
쩌어엉!
방어 결계가 포탄들을 튕겨냈다.
천둥포 발동 직후라서 출력이 떨어졌어도.
피격되는 포탄 수가 20% 정도라서 아슬아슬하게 방어가 가능했다.
"자신을 미끼로 던지다니. 과감한지고."
드미트리는 메마른 웃음을 지었다.
이로써 확실해졌다.
로마노프 가문과의 전쟁에서 이길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
유진은 전력을 다해 그들을 쓰러트리고자 했다.
'가능하면 포획하려 했는데. 귀찮게 되었군.'
어쩔 수 없나.
사로잡는 게 어렵다면 죽인 후에 몸에서 기억을 물어보는 수밖에.
드미트리는 오딘의 계약자다.
과거 9일 동안 스스로를 죽여서 깨달음을 얻은 신왕처럼.
죽은 자에게서 원하는 정보를 빼내는 것쯤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다만.
그 과정에서 데이터 손실이 발생하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고.
유진을 죽이는 것보단 살려놓고 네크로맨시 연구를 시키는 것이 더욱 효율적이라고 생각해서 죽인다는 선택지를 두지 않았다.
그렇지만.
배수의 진을 치고 스스로의 목숨마저 판돈으로 걸어 공중항모를 끌어들인 태도를 보면.
살려두기는 어려워 보였다.
"피해는 경미합니다."
"다만 방어 결계를 유지하려면 천둥포 사용이 어렵습니다."
괜찮다.
공중항모 본체에 피해가 가지 않았으니.
"지상군을 전진시켜라."
"예."
"제2 마법 병단도 투입 준비."
"그 말을 기다렸다고."
소피아가 흉흉한 살기를 드러냈다.
*
"조금 더 끌어들였으면 좋았을 텐데."
"이 정도가 최선이다."
유진은 크게 아쉬워하지 않았다.
전투 골렘으로 공중항모의 천둥포를 봉쇄했으면 선방한 거지.
지상에서는 본격적으로 피 튀기는 전쟁이 벌어졌다.
"키르르르."
사마귀 같은 갈고리 낫을 팔에 달아놓은 괴물.
키메라들은 선두에 서서 오러 블레이트를 흩뿌렸다.
백두산에 배치해놓은 언데드는 모두 정예급.
최소 중급 언데드요, 암흑 투기를 펼칠 수 있었다.
문제는 오러 블레이드 앞에선 암흑 투기도 힘을 쓰지 못한다는 건데.
-으우우우.
듀라한이나 스켈레톤 나이트 같은 언데드들이 파도 앞 모래처럼 휩쓸려나간다.
'키메라 숫자가 상당하군.'
100기가 넘는 키메라.
초기 형태에서 조금 발전된 버전이라.
마법왕이 직접 손을 본 모양이다.
〔데스 나이트 기사단을 투입해야 하지 않겠느뇨?〕
'아직.'
〔가만히 두면 그대의 언데드 군대가 모두 휩쓸려 나갈 것이다.〕
'나도 알아요.'
키메라들 말고는 아직 패를 하나도 꺼내지 않았다.
마법 병단은 아직 공중항모에서 나오지 않았고.
지상에 있는 마법사들도 괴물 군집 뒤에서 마력을 보존하고 있다.
여기서 데스 나이트들을 꺼내면 좋은 먹이가 되겠지.
〔그럼 가만히 당하고 있겠냐는 말이더냐.〕
'저 놈들 상대할 언데드는 이미 준비해두었어.'
괴물 군집에게 깔려서 진압당하지 않을 정도의 덩치.
동시에.
키메라를 저지할 수 있는 전투능력까지.
공교롭게도, 네크로폴리스에는 두 가지를 모두 채울 수 있는 언데드가 있었다.
[그우우우우!]
기괴한 외침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언데드.
오우거 같은 대형종의 사체를 개조해서 만든 거대 언데드, 브루탈이 철갑을 뒤집어 쓴 채 전장으로 돌진했다.
291화
백두산 대전(2)
키메라보다 두 배 이상 큰 덩치.
가시처럼 날카로운 돌기에 철갑을 덧댄 괴물, 브루탈이 100구 넘게 전장에 투입되었다.
돌기에 아른거리는 암흑 투기.
브루탈은 암흑 투기를 펼칠 수 없었지만, 이번에 육룡의 개수를 받으며 넘쳐나는 영력을 방출할 수 있게 되었다.
"키르르르륵."
서걱-.
암흑 투기를 둘렀어도 결과는 동일했다.
듀라한이나 스켈레톤 나이트처럼 암흑 투기를 부릴 줄 아는 언데드들도 키메라 앞에선 10초도 버티지 못했다.
네 팔에 달린 낫에서 방출되는 오러 블레이드.
키메라의 근접 박투 실력은 진정한 7성 무투계 헌터에 비하진 못했으나.
압도적인 출력으로 적을 압박했다.
키메라의 장점은.
브루탈 역시 공유하는 부분이었다.
-그루아아아아!
기교 같은 건 모른다.
오로지.
압도적인 신체 스펙으로 적을 짓뭉개버리는 망자.
대형종 시체를 기반 삼아 만들어서 체고만 7미터요, 육룡이 추가 개수를 거치면서 9미터까지 커졌다.
오러 블레이드가 돌기를 베고 몸뚱이에 기다란 검상을 남겨도.
덩치가 원체 크다 보니 티가 크게 나지 않았다.
브루탈은 키메라가 오러 블레이드를 펼치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격하게 끌어안았다.
우지직!
살이 뭉개지고 뼈가 산산조각 나는 소리가 나더니 녹색 피가 땅바닥에 흘렀다.
"키르르...."
F = MA
힘은 질량과 속도의 총합이다.
무엇이든 베어내는 권능, 오러 블레이드도 모든 물질을 동일한 시간에 잘라내진 못한다.
더 견고한 것을 베려면.
그만큼 시간이 필요했다.
벽을 넘어 7성에 도달한 존재라면 오러 블레이드의 강점과 약점을 이해하고 최적화된 전투를 이끌어갔을 터.
키메라는 주입 받은 지식대로 팔을 휘두르는 게 고작이었다.
브루탈처럼 오러 블레이드에도 어느 정도 버틸 수 있고 힘 차이가 큰 상대라면.
괴력을 발휘할 거리를 주지 않는 것이 공략법이지만 키메라에게 그만한 지식이 있을 리 없었다.
교환비율은 거의 1대1.
마법왕이 직접 조율해서 만든 키메라 무리 중 10마리가 잘 다져진 고깃덩어리로 화했다.
"거리를 벌려라."
지상군을 담당하는 건 로마노프 가문의 4인자.
게오르그는 와르그들에게 몬스터를 더욱 몰라고 지시하며 동시에 키메라를 뒤로 물렸다.
이번 전쟁에 투입된 숫자는 100마리.
그 중 1/10을 너무 쉽게 잃어버렸다.
주력은 공중항모의 마법사들이지만.
지상군도 블랙 컴퍼니를 압박할 수단 중 하나다.
손실은 예상했지만.
허무하게 잃어서는 면목이 서지 않았다.
-이번만 싸우면.
-자유로운 몸으로 풀어준다고 하였다.
강과 땅이 들썩이고.
송명석이 보고했던 최상급 정령 둘이 자연과 일체화되어서 브루탈들의 발을 묶어놓았다.
"카아악! 칵!"
양치기 개처럼 몬스터들을 모는 와르그들.
몬스터들은 최상급 정령 둘이 붙들어놓은 브루탈들을 무시하고 백두산으로 달려갔다.
송명석이 블랙 위저드들을 동원해서 수를 줄여놓았음에도.
최소 3성 이상인 괴물 수만이 저지선을 뚫고 순식간에 네크로폴리스 영역 안으로 들어왔다.
[일제 사격.]
산자락에 자리를 잡은 건 탈로스만이 아니다.
대형 언데드인 사이클롭스.
초중전차에서 뜯어온 철갑과 포대, 이후에는 육룡의 조력으로 추가 개수를 마친 대형 언데드 무리가 광선을 내뿜고.
백두산 여기저기에 설치해놓은 방어 포탑들이 뼈나 영력을 방출해서 괴물들을 쓰러트렸다.
[별 것 아니군요. 모두 제가 파악해놓은 대로입니다.]
백두산 수비를 맡은 송명석이 히죽거렸다.
[모두 터트려버리십시오.]
[시체 폭발.]
쿠앙! 콰아아앙!
산자락 방어에 투입된 블랙 위저드들은 쓰러진 몬스터의 사체를 모조리 터트렸다.
연쇄 폭발과 방어 포탑의 사격, 그리고 사이클롭스의 광선 세례까지.
조승철이 유진의 지시를 받아 구축해놓은 방어선은 일체의 흔들림 없이 몬스터들을 격퇴했다.
[너무 쉽군요. 이게 7대 명가의 저력입니까?]
한껏 도취된 송명석의 사념이 울려 퍼지자 유진이 미간을 찌푸렸다.
"안 해도 될 소리를 하는군."
해치웠나, 라는 말이랑 다를 게 뭔가.
그 투덜거림이 닿기도 전에.
쓰러진 몬스터들 사이에서 붉은 룬 문자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연결의 룬]
[제물의 룬]
[간이 차원문 형성]
폭발시킨 시체의 피와 살점, 그리고 뼈가 녹아내린다.
룬 문자가 빚어낸 파장은 살육당한 괴물들을 집어삼키면서 더더욱 거세졌다.
〔필리핀이란 땅에서 본 문자로구나.〕
'하나가 더 있어.'
연결과 제물.
과연, 몬스터들 사이에도 룬 문자를 박아놓았을 줄은 예상 못했다.
수만이나 되는 몬스터들의 사체를 제물로 바쳐.
암흑계와 연결되는 간이 차원문을 연다.
사탄교 신자들이 악마의 힘을 빌리는 것과 흡사한 메커니즘.
차이점이 있다면.
사탄교에서는 그 막대한 암흑 마력을 몸에 받아들여 마인이 되거나 경지를 넘어서는데 썼고.
로마노프 가문은 암흑계로 향하는 문을 열어 이계의 괴물들을 불러낸다는 것이다.
코끼리를 3배 정도 확대해놓은 듯 한 같은 헬 무마스.
길이만 20미터가 넘어가는 거대 뱀 스키아.
드레이크보다 조금 작은 크기의 박쥐, 헬 뱃 등.
암흑계의 거친 환경에서 살아가는 마수들이 간이 차원문을 통해 백두산 언저리에 소환되었다.
[이, 이럴 수가.]
어휴.
그렇게 될 줄 알았지.
〔미물들로 전선을 확장시킨 후에 제물로 바치는 것까지 예측했느냐?〕
'그건 몰랐어. 회귀 전에는 그런 짓 안 했으니까.'
〔한데 어이하여 확신했느뇨.〕
'로마노프 가문이 대책 없이 들이댔겠어?'
와르그는 영수.
오딘이 수호성으로 비호한다고 해도, 상당한 자원을 소모해야 불러낼 수 있다.
영수 여럿을 소환해놓고 몬스터 몰이에만 써먹는다?
별개의 노림수가 있다고 봐야겠지.
최상급 정령 둘이 브루탈 무리의 발을 묶어두었고.
전선을 돌파한 몬스터들은 고스란히 마수 소환의 제물로 치환되었다.
각 개체가 3층 건물 크기를 넘어섰고.
신체 스펙은 7성 무투계 헌터보다도 뛰어난 괴물들이 무혈로 입성한 거나 마찬가지인 상황이다.
"언데드들을 풀어라."
아쉽지만.
이쪽 패를 하나 먼저 까는 수밖에.
백두산에 배치해놓은 무수한 숫자의 언데드들.
중급 이하로 100만이 넘는 군세가 일제히 산자락을 타며 아래로 하강, 마수들에게 돌진했다.
*
키메라와 마수.
지상군 전력의 반 이상을 드러냄으로써.
네크로폴리스가 뿜어내는 안개 너머의 병력도 전면에 나타났다.
"폭격을 실시한다."
그에 대응하듯 공중항모에서는 철갑의 마도 병기 기간트를 방출.
수십이나 되는 철의 거인이 언데드 대군의 머리 위로 하강하면서 마법을 전개했다.
어디를 봐도 망자들이 있었으니.
대충 좌표를 지정한 후에 마법을 사용해도 될 정도였다.
폭격의 정밀성보단 화력에 집중한 투사 공격에 진격을 개시한 언데드 군대의 1/10이 폭격 개시 후 1분 만에 소멸되었다.
[빌어먹을, 입니다.]
뭘.
벌써부터 좌절하기는.
중급 이하 언데드들은 전선 유지용으로 준비해두었다.
로마노프 가문이 공중항모를 개발한 시점에서 지상전으로 승부를 낼 수 없다고 생각했으니.
오히려.
적절한 시기에 병력을 투입하게끔 상황을 유도했으니 반쯤은 성공했다고 봐야지.
'송명석을 지휘 쪽으로 계속 키워놓기를 잘했어.'
개인 무력도 뛰어나지만.
상황을 파악하고 적절한 판단을 내린 덕에 계획보다 수월하게 풀려가고 있었다.
저 놈의 자만심만 빼면 참 좋을 텐데 말이야.
"블러드 드래곤을 투입해라."
[콰루루루!]
"주인. 나도 같이 가?"
"아. 파프너는 대기. 남은 블러드 드래곤들도 적당히 거리를 두고 견제해. 깊이 들어가면 바로 소멸할 거다."
죽음의 요새에 머무르던 블러드 드래곤 7구가 날개를 펼치면서 날아올랐다.
재구성으로 빈약했던 맷집 페널티가 사라지고.
관련 특성까지 꽉꽉 채워 넣어서 8성 절정의 무력을 보유한 최상급 언데드들이 공중항모를 노렸다.
갑판 위에 올라선 기간트들이 블러드 드래곤을 겨누었다.
[타깃 온]
[디맨션 픽스]
[디스 트랜슬레이트]
대상 좌표 고정.
회피 불가.
차원도약 불가 등.
공격이 빗나가지 않게끔, 공중항모에 설치된 보조 마법들은 블러드 드래곤들을 대상으로 지목했다.
직접 공격 수단인 [승리의 천둥포]는 방어 결계를 전개하느라 펼칠 수 없지만.
공중항모의 역할은 애초부터 직접 공격하는 게 아닌, 기간트와 마법사들을 나르는 이동수단이었다.
[플레임 헬]
[엘메키아 플레어]
[엘메키아 베일]
....
산자락을 몇 초도 안 되어서 펄펄 끓는 마그마로 만들 만한 화력.
거기에.
마법왕이 직접 개수해서 만든 신성 화염 마법인 엘메키아 베일과 플레어가 빗발쳤다.
[귀찮게 되었군.]
차르르릉!
사슬로 연결된 두 자루 도끼가 허공에서 춤을 추었다.
암흑 강기와 충돌한 마법이 허공에서 퍼퍼펑, 하고 터져 나가고.
거품같이 생긴 암흑 강기들은 빗맞을 리 없는 마법의 궤도에 스리슬쩍 끼어들더니 폭발을 일으켜서 힘을 소진시켰다.
일룡과 이룡.
블러드 드래곤에 탑승한 둠 나이트들은 마법 포격을 대부분 쳐냈다.
"역시 드래곤에는 라이더가 필수지."
유진이 흐뭇하게 웃었다.
고 스펙에 화력이 강력하지만, 그에 비해 맷집은 모자란 블러드 드래곤.
드래곤 라이더로 탑승시킨 둠 나이트와 데스 나이트들이 소소한 견제를 막아주면 방해 없이 화력을 발휘할 수 있다.
"소피아. 아무래도 그대가 저들을 막아주어야 될 것 같구려."
지상으로 투입되기를 기다리던 소피아는 마법왕의 지시에 반문하지 않고 부유 마법을 사용했다.
둥실 떠오른 기간트들이 블러드 드래곤들에게 날아들었다.
수 톤이나 되는 기간트의 무게.
비행 주문을 걸어도 빠른 속도로 이동하지는 못했다.
대척점에 선 블러드 드래곤들은 생전보다 더 빠른 속도로 이동할 수 있으니.
쫓는 건 어려워 보였다.
「너희도 그렇게 생각하겠지?」
소피아는 고유 능력을 전개했다.
[고유 특성 - 공간]
[해방 - 웨이트 그래비티 x 10]
노 딜레이로 전개되는 마법.
7성급의 가중(價重) 주문에 휘말린 블러드 드래곤이 휘청거렸다.
주문 자체는 이미 전개되었고.
실체가 없어 암흑 강기로도 파훼하기 어려우니 블러드 드래곤들의 움직임에 제약이 걸렸다.
[경고했던대로군.]
[꽤 재미있는 적 아니겠습니까.]
일룡과 이룡의 사념에서 강렬한 투기가 전해졌다.
292화
백두산 대전(3)
로마노프 가문의 2인자.
소피아 안드레예비치 로마노프의 능력은 [공간]이다.
드미트리가 선사한 룬 문자의 보정 덕에 불완전하지만 8성의 영역에 도달할 수 있었고.
본신의 마력에 더해 무수한 장비들을 착용해서 총량을 늘렸고.
그렇게까지 해서 확보한 마력은 모두 아공간 확장에 투입, 무수한 마법과 각종 병기들을 축적해놓았다.
[그래비티 바인드]
원래는 공간을 지정하여 발동하는 주문이지만.
드미트리가 제작해준 특제 스크롤로 발동 직전에 보관, 원하는 위치에서 방출하면 곧바로 전개되었다.
촤하학!
피막 위에 드리운 피가 거세게 출렁거린다.
블러드 드래곤의 모체인 드레이크는 강력한 항마력을 지닌 괴물.
아룡 중에서는 가장 진룡에 가까운 용족이다.
본 드래곤이 되면서 생전 능력을 상당 부분 잃어버렸지만.
블러드 골렘의 보정과 유진의 조정에 힘입어 외부의 간섭에 저항할 힘을 다시 획득했다.
중력 그물이 1초도 안 되어서 찢겨 나갔지만 소피아는 당황하지 않았다.
그녀가 이번 전쟁을 위해 준비한 것은 많았다.
[공간 – 방출]
[프로메테우스의 사슬(위)]
종전 후 카리만리스 가문에 엄청난 재물을 바치면서 얻은 성유물.
원본에 비해 열화된 사슬이지만, 고신 프로메테우스를 포박시킨 강력한 신물의 염을 일부나마 담아냈다.
아공간에서 사출된 사슬에는 미리 '사이코키네시스' 주문을 새겨놓았으니.
마력을 부여함으로써 묵직한 사슬이 그녀의 의지에 따라 허공을 가로지르며 블러드 드래곤을 잡았다.
[잔재주를.]
쩌어엉!
암흑 강기를 품은 도끼가 반월을 그리며 날아갔지만 강한 반탄력과 함께 튕겨났다.
사슬을 당겨 회수한 일룡이 안광을 누그러트렸다.
[꽤 단단한가 봅니다?]
[쉽지 않군. 재밌겠어.]
오러 블레이드를 두르지 않은 쇳덩어리가 암흑 강기를 튕겨내다니.
기분이 나쁘기보다 호승심이 먼저 샘솟았다.
추가로 발출된 사슬이 블러드 드래곤 2구의 발을 묶었다.
「죽다 만 것들이. 모두 떨어트려줄게.」
[공간 – 해방]
[자작나무창 x 25]
북유럽에서 가장 흔한 나무.
과거 바이킹들은 전쟁을 선포할 때 자작나무로 만든 창을 적진에 던졌다.
바이킹들이 숭배하는 신, 오딘의 궁니르를 기리기 위한 의식이었다.
그 기원대로.
룬으로 벼려낸 자작나무창은 목표를 맞추는 능력이 부여되었다.
소피아는 창 뒷부분에 [투척]의 룬을 새긴 채로 아공간에 보관해놓았다.
공간 너머로 해방하는 순간.
사용자가 지정한 타깃을 향해 매서운 속도로 날아들게끔.
강력한 마법 무장은 오러 블레이드에 준하는 위력을 보유했다.
[콰루루루!]
[쳐내지 마라. 내가 할 터이니.]
빙그르르-.
사슬로 연결된 도끼 두 자루가 허공에서 춤을 추었다.
퍼펑! 창을 쳐낼 때마다 암흑 강기가 크게 소모되었다가 회복되기를 반복했다.
[보통 무기가 아니다.]
가볍게 흘려내자니 쳐내자마자 궤도를 다시 틀어 블러드 드래곤을 노린다.
궁니르의 격을 흉내 낸 모조품이지만.
창대에 불어넣은 격이 소모될 때까지는 계속해서 방향을 바꾸며 타깃을 향해 나아갔다.
완벽하게 쳐내려면 암흑 강기로 창에 깃든 격과 힘을 소진시켜야 했다.
무영창으로 이만한 공격을 퍼붓는다고?
숫제 마법사가 아니라 무투계 헌터와 맞붙는 기분이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은 사슬로 이어져 있으니 영력을 계속 불어넣을 수 있는 것.
둠 나이트가 되면서 생전보다 보유 마력(영력) 양도 늘어나서 어떻게든 유지가 가능했다.
「해볼 만하다고 생각해?」
[공간 – 해방]
[자작나무창 x 32]
[빌어먹을.]
뭐 이런 작자가 다 있나.
유진과는 다른 방식의 무지막지한 화력 투사에 일룡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도끼에 암흑 강기를 불어넣으며 다시 대응하려는 찰나.
[스트라토스 샷]
[암흑 투기]
땅에서 솟구친 검은 광채가 창 두 자루를 튕겨냈다.
[시부럴. 10킬로미터 거리를 저격하라고?]
활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커다란 병기.
발리스타로 보일 법한 커다란 활에 시위를 매긴 메이 샤오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원거리 공격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그녀의 능력.
탈로스나 사이클롭스도 그녀의 저격 솜씨에는 미치지 못했다.
[메이 샤오인가.]
[그녀의 도움을 이런 식으로 받을 줄 몰랐습니다.]
[이렇게나 유능한 인재인 줄 알았으면 만주 관리에 국한두지 않았을 터인데.]
일룡은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현재 언데드 군대의 중심 축을 담당한 망자들 중 다수는 구룡방 출신이 많았다.
상급으로 제작할 만한 실력자들이 다수 포진해있었으니.
이젠 사이좋게 유진을 섬기는 몸이 되어버렸지만 말이다.
투쾅!
연이은 저격에 창들이 힘을 잃고 떨어졌다.
암흑 강기를 펼치지 않아도 충분했다.
초장거리 사격에 들어간 힘이 원체 대단하다보니 소피아의 마법 무장을 차례차례 무력화했다.
「재미있는 걸 많이 준비해두었네?」
끊임없이 열리는 차원 너머의 공간에서 미리 준비해놓은 마법들이 솟구쳤다.
소피아 휘하 제2 마법 병단의 헌터들도 기간트의 출력을 십분 활용하여 강력한 마법들을 쏟아부었다.
[포이즌 브레스]
[프로스트 브레스]
블러드 드래곤들도 아가리를 벌리고 본격적으로 대응을 시작했으니.
이윽고 하늘은 무수한 기파가 충돌하는 각축전으로 변했다.
*
지상과 공중을 아우르는 거대한 전장.
허공 위에 떠 있는 죽음의 요새 위에서.
유진은 턱을 만지작거렸다.
"문제라도 있어?"
"다음에 무슨 수를 두어야 할까."
객관적인 전력은 로마노프 가문이 블랙 컴퍼니를 앞섰다.
백두산 요새화를 마치고.
상급 언데드들을 일일이 개조해도.
주 전력은 로마노프 가문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가문의 힘이 아닌, 몬스터들과 최상급 정령 소수로 길을 열어서 백두산 방어 체계를 뚫으려는 것만 봐도 그렇다.
"본격적으로 움직인 건 제2 마법 병단과 소피아뿐이야."
로마노프 가문은 간을 보고 있다.
여유가 있단 말.
곤란하다.
서로 패를 교환해야 대화가 성립되지.
공격하는 입장인데도 이쪽 반응을 보고 행동하시겠다?
"주인. 그냥 원하는 대로 해줘."
"원하는 대로?"
"로마노프 가문은 여력이 있잖아. 공세로 전환해서 급한 모습을 보여주라고."
"급한 모습이라."
어.
그거 좀 괜찮겠군.
유진은 손가락을 까딱였다.
"이신우. 가서 적들 좀 쑤시고 와줘라."
[...존명.]
둠 나이트 이신우는 고삐를 쥐었다.
히히히힝-!
말의 외침이 산자락 여기저기서 울려 퍼지고.
이신우를 필두로 한 데스 나이트들이 허공으로 둥실 떠올랐다.
팬텀스티드.
혼령에 말 시체를 겹쳐서 제작한 유령 / 언데드 양쪽에 발을 걸치고 있는 망자들이었다.
데스 나이트 하면 모름지기 유령 말이지.
그 숫자는 150구.
세간에 알려진 것의 배 이상이나 되는 데스 나이트들이 유령마에 타고 날아오르는 모습은 공포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상대가 로마노프 가문만 아니었다면.
[퀸 엘리자베스급 공중항모. 기간트 01. 발진합니다.]
[쿠즈네초프급 공중항모. 기간트 04. 발진합니다.]
....
여력을 남겨두었던 로마노프 가문에서는 기간트를 일제히 발진시켰다.
철로 빚은 거인들이 마법의 힘으로 둥실 떠오르더니 전방에서 몰려드는 데스 나이트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디스인티그레이트]
[크림슨 레이]
[랜스 오브 라이트닝]
사거리가 최대 1킬로미터에 미치지 못하는 주문들이지만.
기간트 내부에 설치된 마법진들이 재배열된 마력 구조에 간섭해서 피격 거리를 월등하게 늘려주었다.
방출 속도가 빠른 주문 위주로 쏟아 부은 덕에 데스 나이트 군대는 제대로 검을 휘둘러보기도 전에 암흑 강기로 마법을 쳐내야했다.
"섣불렀군요."
"그렇구나."
배다른 형제는 그 풍경을 보며 가볍게 평했다.
상급 언데드인 데스 나이트가 150구나 되는 것도 놀라웠고.
유령마를 줘서 공중전에 대비한 것도 예상을 벗어난 준비였다.
그렇지만.
비장의 수를 공개하기에는 너무 빨랐다.
로마노프 가문의 주력은 아직 꺼내지도 않았건만.
백두산을 끼고 만든 방어선이 무너지지 않을까 조바심이라도 느낀 것일까.
"천유진은?"
"아직 그 요새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더 숨겨놓은 수단은 없어 보이니. 슬슬 전선을 밀어도 되겠어."
공중항모 여섯 척은 드미트리의 지시에 따라 천천히 전진을 시작했다.
쾅! 쾅!
탈로스들의 사격에 방어 결계가 흔들렸지만, 결정적이진 않았다.
오히려.
포격 중인 곳과 가까워지니 아군의 전력을 투사하기도 더 편리해졌다.
"제3 마법 병단을 보내지."
"알겠습니다."
"동생은 남게."
"그럼 지휘는 옐레나에게 일임하겠습니다."
백두산 수비 병력은 간이 차원문으로 소환한 마수들에게 발이 묶여있다.
강습으로 탈로스들을 파괴하면.
로마노프 가문을 저지할 원거리 화력지원이 사라진다.
[컥!]
데스 나이트 하나가 지면으로 추락했다.
유령마의 내구력은 중급 언데드 수준.
마법에 실린 힘을 제대로 흘려내지 못하면 여파에 휘말린 말이 소멸해버린다.
지상에서 1킬로미터 이상 높이. 상급 언데드여도 꽤 큰 충격을 받아서 바로 움직일 수 없을 정도다.
[...흠.]
지휘를 맡은 이신우가 신음을 내뱉었다.
데스 나이트들은 분전했지만, 공중항모에 접근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쏟아지는 마법 공격 사이로 파고들었다간 뼈 하나 남기지 못하고 소멸될 게 분명했고.
천천히 접근하자니 힘 소모가 컸다.
[아군 피해가 누적되고 있습니다.]
"돌파할 가능성은?"
[어렵습니다.]
생전과 달리 끓어오르는 분노 대신 냉정함을 찾게 된 이신우의 판단.
유진 역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전선을 물러라."
[예.]
"무너진 진형을 다시 짜겠다."
산자락에서 탈로스를 지휘하던 신준석과 육룡.
전선 지휘를 맡은 송명석.
그리고 영지 운영 총괄인 조승철에게도 같은 지시가 내려졌다.
중급 이하 언데드와 탈로스는 그 자리에서 대기.
상급 언데드들은 모두 백두산 후방으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뭔가를 보여주나 했더니. 시시하군."
후퇴하는 데스 나이트 무리를 본 드미트리의 눈동자 위로 경멸이 섞였다.
"우선 백두산을 점거하자꾸나. 그럼 적의 뒤를 점하기 훨씬 쉬울 터."
블러드 드래곤들은 소피아에게 맡긴 채, 공중항모들이 앞으로 나아갔다.
마침내.
백두산 천지 위에 진한 음영이 드리우는 순간.
"역시 네 말 듣기를 잘했어."
흐흐흐흐.
유진은 스산한 웃음을 흘렸다.
293화
천지 대폭발
블랙 컴퍼니가 만전의 상태로 로마노프 가문을 맞이하면.
승률이 얼마나 될까.
'높게 잡으면 20%?'
마법왕 드미트리를 제외했을 때의 수치다.
상급 언데드들을 붕어빵처럼 찍어내고.
갖가지 수단으로 마법 무장들을 파훼하거나 무력화했을 때의 가정이다.
〔하면 묻자꾸나. 이길 가능성이 희박한데 왜 선제공격을 가한 게냐?〕
'전면전으로 가야 조금이라도 승산을 높일 수 있으니.'
회귀 전처럼 로마노프 가문이 기습하고자 하면 모르고 맞아야 한다.
로마노프 가문 정예의 진군 루트를 한정 짓고.
완벽한 함정을 파야 승산이 올라간다.
신준석에게 부탁한 것도 그 '함정'의 제작이었다.
"미치셨습니까?"
"난 지극히 정상이다만."
"동업자님이랑 가장 어울리지 않는 말이거든요."
"그래서 할 수 있어. 없어."
"노력해보겠습니다."
진즉에 그래야지.
신준석에게 주문한 일은 간단했다.
휴화산인 백두산을 과부하시켜서 폭발시키는 것.
어때요.
참 쉽죠?
"근데 동업자님. 그거 아십니까."
"한반도 멸종 시나리오에서 제일 가능성 높은 게 백두산 폭발이라는 거?"
"아는 사람이 그래요!?"
"로마노프 가문을 상대하려면 그 정도는 준비해야지."
폭발에 휘말리는 정도로는 안 된다.
과장 더하지 않고 진짜로 발밑에서 터트려줘야지.
백두산 폭발로 로마노프 가문에게 유의미한 피해를 입힐 수 있다.
육룡까지 붙여줘서 진행한 일의 전말이었다.
그 신호탄은 백두산을 지키는 병력들을 물리는 것.
미리 설치해놓은 공간이동 마법진으로 이동한 신준석과 육룡은 백두산의 지맥이 흐르는 곳으로 이동했다.
"하. 이건 미친 짓이야."
[그래서 안 할 건가?]
"한반도가 초토화될지도 모른다고."
[둘이 머리를 맞대어 만든 최고의 걸작을 보지 않으시겠다?]
"...그건 못 참지."
유진의 지시.
또한.
연금술사가 벌일 수 있는 최대의 이적을 보고 싶다는 욕망.
신준석은 그 유혹에 못 이기는 척 몸을 맡겼다.
[연금술식]
[오버드라이브]
[강제 활성]
[마나 오버로드]
....
백두산 지하에 흐르는 어마어마한 마력의 흐흐름.
신준석과 육룡이 설치한 마법진들은 잠자고 있는 거력을 일깨웠다.
구궁- 구구궁-.
처음에는 작은 잠꼬대였다.
미세한 진동.
땅이 슬쩍 흔들렸지만 그뿐이었다.
[연금술사. 실수한 거 아니냐?]
"기다려봐라. 내 계산은 완벽해."
동업자인 유진도 무조건적으로 신뢰하는 실력이다.
손을 비빈 신준석은 입으로 숫자를 세었다.
"1, 2, 3...."
[큭. 얼마나 세야 터지냐.]
"1분."
50초가 지나도 미동 하나 없는 땅.
육룡이 조소하려는 순간.
쩌적-.
무언가가 쪼개지는 섬뜩한 소리가 땅 여기저기서 나더니.
갈라진 틈 사이에서 피처럼 새빨간 마그마가 솟구치기 시작했다.
천지 대폭발.
유진이 백두산을 전장으로 삼았을 때부터 줄곧 생각해온 안배이자 비장의 무기.
인세에 다시 보기 힘든 대재앙이 로마노프 가문의 발밑에서 터지기 시작했다.
*
하늘과 땅을 뒤흔드는 굉음이 백두산의 분화구인 천지에서 터져 나왔다.
처음 이변을 알아챈 것은 마법왕 드미트리였다.
아홉 번째 성위를 완성시킨 초월자.
저 뭇별 위에 제 이름을 기록할 만큼의 영격을 쌓아올린 마법왕조차 모골이 송연해질 정도의 막대한 힘이.
갑판 아래에서 들끓고 있었다.
"고, 고, 고 에너지 반응!!!"
"측정 불가!"
"형님. 이건 대체!"
한 발 늦게 막대한 에너지 반응을 인식한 마법사들이 비명을 지르고.
공적인 자리에서는 언제나 가주라고 존대를 붙이던 니콜라이조차 당황해서 드미트리에게 형이라고 불렀다.
항모 아래에서 느껴지는 마력은 그만큼 위협적이었으며.
기운을 인지하는 것만으로 정신이 아득해지는 강력한 폭력이었다.
"화산이 폭발했다.
"미친. 미쳤어. 미쳤습니다. 하필 이 타이밍에 화산이 활동을 재개했다고요?!"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니콜라이조차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공중항모의 출력을 모두 방어로 전환. 기간트는 모두 회수. 마법계는 추가 마력 주입 및 방어 마법 전개."
"늦었습니다! 제1파가 옵니다!"
천지의 물을 모조리 증발시킨 용암이 중력을 거스르며 하늘 위로 솟구친다.
막 천지를 지나가던 공중항모들.
데스 나이트들을 쫓던 기간트들은 시뻘건 대지의 혈액을 그대로 뒤집어썼다.
[크리스탈 월]
[앱솔루트 배리어]
[퍼펙트 제로 필드]
빙결 마법과 절대방어 등.
용암에 맞서기에 적합한 마법들을 전개했으나.
붉은 파도에서 형체를 유지하는 게 고작이었다.
[룬 마법]
[6중 결합]
[글리팅스 바라]
다중 속성을 엮어내어 극한까지 방어력을 올린 비술.
드미트리는 편법으로 무영창에 가까운 속도로 마법을 전개, 용암이 공중항모 선단에 침입하는 것을 막아냈다.
"대미지 컨트롤 개시."
"우현 45도! 이 자리를 이탈한다!"
"워프는 불가능합니다. 마력 소모가 큽니다."
쿠아아아앙!
로마노프 가문이라면 듣고 싶지 않았을 두 번째 굉음.
첫 폭발은 시작점에 불과하다는 듯이.
훨씬 더 진한 마력을 함유한 용암이 솟구치면서 매캐한 연기가 일대를 시커멓게 물들였다.
본래는 화산 폭발과 함께 사방으로 흩어져서 지진을 비롯한 갖가지 재앙이 연쇄적으로 일어나야 했지만.
그 막대한 에너지는 새지 않고 로마노프 가문이 위치한 하늘을 향해 우직하게 방출되었다.
"천유진."
낮게 가라앉은 음성이 드미트리의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왔다.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아군의 피해를 줄이려면 자신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야 했다.
"기간트 01, 03, 07, 08 로스트!"
"다른 배에 적재한 기간트들도 신호가 끊어지고 있습니다!"
"출력을 워프 엔진으로 돌리고 이탈하는 건?"
"화산에서 솟구치는 마력이 너무 강해서 죄표가 일그러집니다. 워프를 시도했다간...."
회피는 불가.
위험성이 너무 컸다.
"니콜라이. 수습은 맡기겠다."
드미트리가 손짓하니 강대한 마력이 꿈틀댄다.
방금 전, 6중 결합을 급히 전개하느라 가벼운 내상을 입었지만 쉴 순 없다.
백두산 아래에서 끓어오르는 마력은 아직도 넘쳐났다.
막아낸 것은 극히 일부.
당장 자리에서 이탈할 순 없으니 버텨내야 한다.
[룬 마법]
[6중 결합]
[울티마 폴리머제이션]
[드래곤 스케일]
1차 파동을 막아낸 후.
충분히 시간을 들여 전개한 초월융합 마법, 드래곤 스케일로 방어를 견고하게 굳혔다.
'놈은 위험하다.'
생포하는 것은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9성 궁극 마법에 준하는 재앙을 아무렇지 않게 일으키는 상대.
붙잡는다고 해서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을까?
아니.
무리였다.
'천유진을 죽이고 그 몸에서 지식을 추출하는 수밖에.'
드미트리는 연달아 솟구치는 용암을 막아내며 생각을 굳혔다.
*
"세계가 망한다면 이런 느낌이려나."
파프너는 고저 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담대한 그녀조차.
백두산이 폭발하는 광경을 목도하니 평온힘을 유지할 수 없었다.
"동업자 양반은 잘 피난헸나?"
-그렇다.
육룡의 라이프 포스 베슬을 쥐고 심령에 직접 물어보았다.
백두산에서 솟구치는 마력이 원체 강렬하다보니 통신 마법도 먹통.
제때 벗어나지 않았으면 땅 아래에 파묻혔을 터.
"좋아. 거기서 대기하도록."
신준석은 충분히 제 역할을 해주었다.
"근데 주인. 너무 과격한 거 아니야?"
"상대가 상대잖아."
"한반도 멸망 시나리오에서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게 백두산 폭발이잖아."
"어. 그렇지."
"너무 태연하게 말하지 마. 이거 엄청난 민폐라고."
"마법왕이 잘 막아주고 있잖아."
9성 마법에 준하는 화산 폭발의 마력.
공간이동?
무리지.
직접 맞아가면서 자리를 이탈해야 하는데.
쉬운 일이 아니다.
"아무 대책 없이 터트린 건 아니야."
"진짜로?"
"날 의심하다니."
"어떤 미친놈이 백두산 터트릴 생각을 하겠어."
"화산 폭발로 빚어지는 에너지는 대부분 위로 향하게 조정해두었다."
백두산 급 화산이 터졌는데 지진이 생각보다 덜하잖아.
자연적인 폭발이었으면 진도 9.0 지진이 일어나서 땅을 모두 헤집어버렸을 걸.
위로 방출시키지 못한 일부 마력이 스며든 것만으로도 재난 영화 한 편 나올 정도이긴 하다만.
"이래서야 지상의 아군도 전멸하겠어."
"그거 생각하고 배치한 거다."
지상에 배치한 상급 언데드들은 모두 [데스 게이트]로 빼돌렸다.
로마노프 본대를 끌어들이려고 투입한 데스 나이트 기사단도 후퇴시켜서 최대한 온존시켰고.
일부는 폭발에 휘말려서 뼛조각 하나 찾지 못할 신세가 되었지만.
천지 바로 위에 있던 로마노프 가문 본대만큼의 피해는 아니다.
〔아군의 희생을 전제로 하다니. 고약한 전술이로구나.〕
대부분은 이미 숨을 거둔 망자들이라고.
전투 골렘 탈로스는 좀 아까웠다.
그래도.
떡밥이 커야 로마노프 가문도 물지 않겠나.
유진조차 판돈으로 올려놓았으니.
넘실거리는 용암은 아래로 흐르면서 지상에 발 붙인 것들을 모조리 쓸고 지나갔다.
당분간은 생기 하나 찾을 수 없는 땅으로 변모하겠어.
백두산이 몇 번이나 용얌을 내뿜은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공중항모들은 천지 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용암과의 사투를 벌였다.
[해치운 겁니까?]
"야잇."
그런 말 좀 하지 말라니까.
유진이 성을 내려고 할 때.
부글거리는 용암 사이에서 웅혼한 진동음이 울려 퍼졌다.
시커먼 연기를 뚫고 나타난 건 공중항모들이었다.
"내 이럴 줄 알았지."
아주 부활하라고 고사를 지내지 그러세요.
공중항모 선단의 상태는 딱 봐도 안 좋았다.
들러붙었다가 식은 용암이 여기저기에 덕지덕지 붙어있고.
곳곳은 시커멓게 그을었으며.
폭발 진원지에서 제법 거리를 벌렸는데도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항행이 겨우 가능한 수준이지 않을까.
그 앞에는.
산발된 머리의 사내가 눈가에 핏대를 세운 채 허공에 떠 있었다.
흐트러진 모습은 처음 보는구먼.
마법왕.
"두 번째로구먼. 성자여."
"그러게 말이야."
"예를 갖추지 않는 게 자네의 본 모습인가보군."
"죽거나 죽일 사이끼리 뭔 예야. 낯간지럽게."
"그도 맞는 말이군. 껄껄껄."
메마른 음성이 고막에 직접 들어왔다.
"자랑스럽게 여겨도 좋네. 우리 로마노프 가문을 이토록 애먹게 한 것은 자네가 최초라네."
"이왕이면 마지막이 되도록 노력해야겠어."
"마지막이라."
"여기서 로마노프 가문이 패배하면 더 애먹을 일도 없어지잖아?"
"그 발언에 걸맞은 실력이 있기를 바라지."
펄럭-.
망토가 거세게 펄럭인다.
숨 막히는 마력의 폭풍.
회귀 전에 비해 기세가 모자란다 뿐이지, 현 시대에도 '왕'이라는 칭호에 걸맞은 힘을 자유자재로 다루었다.
한번 해보자고.
회귀하고 나서 늘 바라왔던 순간.
손에 힘을 꽉 쥐었다.
294화
합체
드미트리 안드레예비치 로마노프.
전생과 현생을 통틀어 다시 없을 최악의 상대를 또 한번 적으로 마주했다.
이 순간이 오기까지.
유진은 회귀한 직후부터 하루도 허투루 사용하지 않고 결전을 대비했다.
'이제부터가 진짜다.'
비장의 수단인 백두산 폭발.
효과는 확실했다.
인위적으로 화산 에너지의 방향을 조종해서 대부분을 로마노프 가문에게 유도.
때 아닌 용암 샤워를 하게 된 로마노프 가문이 방어막을 최대로 전개해준 덕에 피해가 한반도 전역으로 퍼지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지맥에 퍼져 나간 힘으로 인해 국소규모의 지진이 일어나기도 했으나.
화산 폭발로 인한 한반도 멸망 시나리오에 비하면 양반이지.
자.
그럼 아군 피해부터 살펴보자고.
블랙 컴퍼니 측 피해
-탈로스 53기 전부 완파.
-중, 하급 언데드 132만 괴멸.
-데스 나이트 150구 14구 소멸.
-블랙 위저드 82구 중 4 소멸.
-사이클롭스 72구 10구 소멸.
-브루탈 109구 중 104구 소멸.
-백두산 인근 네크로폴리스 및 방어라인 소멸.
예상대로 탈로스는 모두 파괴되었다.
백두산 전역이 들썩이고.
치솟았던 용암이 낙하하면서 대지를 모두 훑고 지나갔는데 멀쩡하길 바라면 도둑놈 아니겠나.
공중항모의 기간트들을 끄집어내는 미끼였던 지상 병력도 전멸.
사이클롭스와 메이 샤오 등 원거리 특화 망자들은 미리 설치해둔 데스 게이트로 이동시켰다.
키메라를 맡고 있던 브루탈들은 빼내기가 불가능했으니 과감하게 포기했고.
중, 하급 언데드들을 모두 잃었지만 결정적인 피해는 입지 않았다.
전장의 판도를 좌우하는 것은 상급 병종의 존재 유무.
현대 전쟁과는 달리, 절대자 한 명이 대전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게 헌터끼리의 싸움이다.
그러면 상대 측은 어떨까.
로마노프 가문 측 피해
-제1 마법 병단 72% 전투 불능.
-제2 마법 병단 34% 전투 불능.
-제3 마법 병단 전멸.
-로마노프 지상군 전멸.
-공중항모 6척 대파.
블러드 드래곤 무리와 격돌 중인 제2 마법 병단을 빼면 궤멸적인 피해를 입었다.
생존자가 30% 정도 남은 제1 마법 병단이 그나마 역할을 해줄 수 있겠나 싶겠지만.
현대전에서 50% 이상이 전사하면 사실상 전멸 판정을 붙인다는 걸 생각하면.
로마노프 가문 본대는 이미 패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저 한 사람을 빼면.
'마법왕의 존재만으로 전황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9성 초월자.
손짓 하나로 인근의 지형을 자유자재로 바꾸며.
마음만 먹으면 세계조차 멸할 수 있는 강자.
또한.
오딘의 대리인으로 낙점되어 성좌의 자리를 약속받은 화신이다.
마력에 기반을 둔 모든 공격을 90% 경감하는 아우라.
룬 마법의 창시자가 전수해준 강대한 마법.
솔직하게 말하면.
블랙 컴퍼니 전원이 달려들어도 저 양반 하나 당해내지 못했다.
"8성이라. 정말 각성한 지 3년 밖에 안 된 게 사실인가?"
"바로 꿰뚫어보기는."
"본인의 생각보다 더욱 위험한 자였구나. 살려두지 않는 것이 정답이었어."
"내 목숨 맡겨놓고 가기라도 하셨나봅니다?"
대여한 물건 찾아가듯 말하지 말라고.
"그 눈부신 재능은 대단하나 여기까지다."
드미트리는 단어 하나하나에 강렬한 의념을 담았다.
"내가 이곳에 왔으니."
"...."
"내가 그대의 죽음이요. 운명이다."
"혀 겁나게 기네. 오그라들게 그게 뭐야."
러시아 문학이 팍팍한 게 맞아?
손발 좀 펴주세요.
"교양이라고는 눈꼽 만큼도 찾아볼 수 없군. 천박한지고."
드미트리는 옛 러시아 제국의 후예.
꼴에 황족이라고 무게 잡는 거다.
〔웬일로 저런 말을 모두 들어주는구나.〕
'왜. 제 입으로 떠들어주니 시간도 벌고 얼마나 좋아?'
〔그대의 대적자인 작은 인간도 시간이 필요해서 저렇게 나선 것 같다만.〕
'화산 폭발의 피해를 수습하려면 그래야겠지.'
크로노스의 지적은 예리했다.
마법왕이 전면에 나서고 있을 때.
니콜라이는 화산 폭발에서 가장 많이 노출된 퀸 엘리자베스급 항모 대신 쿠즈네초프급 공중항모를 기함 삼아 피해를 수습하고 있었다.
"남은 기간트는 모두 수습했습니까?"
"신호가 살아있는 이들은 절반가량 수습했습니다!"
"한 명이라도 더 구하십시오. 마력 엔진은 어떻습니까."
"안정화까지는 1시간 정도 걸립니다."
"...이래선 지휘계통이 성립되지를 않아."
화산에서 솟구친 어마어마한 마력 때문에 재밍이 발생했다.
통신 마법은 불통.
소피아가 이끄는 제2 마법 병단은 건재하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제가 기간트로 이동해서 제2 마법 병단을 호출하겠습니다."
"아닙니다. 그대로 두십시오."
블러드 드래곤의 기동력은 쇳덩어리인 기간트를 상회한다.
차라리 전장 후방에서 발이 묶여 있는 편이 나았다.
"옐레나. 피해 복구 방침은 세웠으니 나머지를 부탁합니다."
"니콜라이 님께서는 어디로 가시려고요."
"제1 마법 병단 수습이 끝나면 죽음의 요새를 공략할 겁니다."
드미트리도 만전은 아니었다.
갑자기 폭발한 화산 에너지를 막아내려고 급히 마법을 전개했고.
그 과정에서 내상을 입었다.
[아우라]를 보유한 화신체였기에, 용암을 뒤집어써도 방어 마법을 전개하면 피해 하나 입지 않았겠으나.
공중항모 6척을 보호하려고 무리하게 마법을 펼친 탓이었다.
"가주님께서 패배하실 리 없어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만. 상대는 천유진입니다. 어떤 기상천외한 수단을 준비했을지 모릅니다."
니콜라이는 최악의 경우를 가정했다.
블랙 컴퍼니 견제에 시큰둥했던 천무문의 문주.
만약에.
무왕 창 우페이가 블랙 컴퍼니와 선을 대고 있다면?
드미트리가 부상을 입은 상태라면 무왕과 겨루었을 때 100% 이긴다고 자신할 수 없다.
그렇기에.
다른 변수가 끼어들기 전에 블랙 컴퍼니를 무너트려야 했다.
"적도 남은 병력이 많지 않습니다."
강력한 원호 사격 능력을 가진 전투 골렘들은 전멸했다.
제1 마법 병단의 기간트를 빠르게 수리하고 전장을 우회하면.
네크로폴리스를 무너트려 언데드 버프 효과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블랙 컴퍼니 측에 승산은 없을 터.
"데스 나이트들은 어떻게 하시려고요?"
"괜찮습니다. 아직 수단은 남아있으니까요."
니콜라이는 현장 수습과 출진 준비를 동시에 진행했다.
그 상황을 모두 알진 못해도.
어느 정도 짐작한 크로노스가 대소를 터트렸다.
〔시간을 그리 주어도 되겠느냐?〕
유진은 조소를 내비쳤다.
'왜. 우리도 시간 끌면 좋거든?'
슬슬 올 때가 되었는데.
[콰루루루루!!]
저 멀리서.
시커먼 기류를 휘감은 언데드가 날개를 퍼덕이며 전장을 향해 날아오기 시작했다.
9성이라는 전인미답의 경지에 도달한 마법사조차 고개를 돌려서 바라볼 만큼의 존재감.
용의 계곡의 수호자이자, 강제로 위계가 고정되어버린 괴물.
정패룡을 되살려서 만든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최초의 언데드, 명해룡이었다.
*
유진은 소매로 이마를 훔쳤다.
'타이밍 맞추느라 큰일 나는 줄 알았네.'
아슬아슬했다.
9성 마법사를 상대하려면 이쪽도 아홉 번째 위계를 완성시킨 하수인이 필요했다.
그렇다고 해서.
명해룡 혼자 드미트리를 상대하는 건 불가능했다.
신왕 오딘의 화신체이자 9성에 도달한 지 10년이 넘은 게 마법왕이다.
전투경험.
능력.
상황대처.
어느 것 하나 명해룡이 드미트리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그러니.
[폴리모프]
[우리가 나설 차례란 거지?]
본신으로 돌아온 파프너가 홰를 치며 날아올랐다.
유진은 죽음의 요새에 대기 중인 언데드들에게 손을 까딱였다.
"뼈를 풀어라."
언데드들의 손에 쥐어진 주머니.
미스터 블랙이 전 세계를 뒤져서 공수해온 아공간 주머니 수십 개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그걸 아래쪽으로 쏟아내니.
내부에 쟁여놓은 뼈들이 땅으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최소 1톤에서 10톤까지 보관 가능한 아공간 주머니들.
용량은 제각각이지만, 미리 가공해놓은 뼈를 한계까지 채워 넣었다.
쏟아지는 뼈들의 무게를 합하면 수천 톤이나 되었다.
"피와 원념을 써먹을 수 있는 건 당신네들만이 아니야."
[지박의 제물을 사용합니다.]
[피의 낙인을 사용합니다.]
[본 컨트롤을 사용합니다.]
[골렘 연성을 사용합니다.]
여기까지는 종래에 사용했던 지박거인 제작 방식과 동일하다.
유진은 거기에 추가 과정을 한 가지 덧입혔다.
"이리로 와라. 명해룡."
[크라라라라!]
지박거인의 중심은 유진이 아니었다.
온전한 의미로써의 본 드래곤이자, 코어 넷을 보유하여 강력한 힘을 지닌 반룡.
명해룡이 [지박거인]의 중심이 되어줄 것이다.
[저주 술식]
[포제션을 사용합니다.]
빙의.
혼백을 다른 육신에 이동시켜서 조종하는 저주다.
유령 계열 몬스터들이 보유한 스킬이지만, 저주 술식으로도 있어 사용이 가능했다.
'이 경우는 조금 다르지.'
명해룡의 혼백을 눌러서 육체 제어 권한을 뺏는 게 아니다.
컴퓨터로 치면 듀얼 코어인 셈.
[지박거인]으로 서로의 혼백을 공유하는 것이다.
〔무언가를 준비하나 했더니 참으로 사특한 술수를 준비하였구나.〕
상대는 마법왕이라고.
전생에도 9성 대 9성으로 맞붙었을 때 이길 수 없었다.
근데 지금은 8성밖에(?) 안 되잖니.
변칙으로라도.
회귀 전의 경지 이상을 밟아야 했다.
그나마 8성이 되었으니 이런 시도도 할 수 있는 법.
포제션을 해제하면 어떤 식으로든 후유증이 찾아오겠지만, 지금은 그런 상황을 고려할 여유가 없다.
촤라라라락!
수천 톤이나 되는 뼈들이 명해룡에게 달라붙는다.
50미터 크기의 명해룡이 크기를 더욱 불려가더니 두 배 이상으로 커졌다
미리 가공해놓은 뼈들은 원래부터 명해룡의 몸뚱이였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영력을 회전시켰다.
"이제."
[이제.]
"우리는."
[우리는.]
"하나다."
[하나다.]
유진의 목소리와 명해룡의 사념이 겹쳐지더니 한 음성으로 들렸다.
"정말이지. 자네는 생각의 틀을 깨는 데 선수구먼."
드미트리는 그 어떤 네크로맨서도 해내지 못한 위업을 목도하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295화
각자의 승부처
빙의란, 살아있는 육체에 하는 것이 기본이다.
명해룡에게 빙의하는 것은 언어도단.
그 불가능한 개념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몇 가지 사전 작업이 필요했다.
-짐의 성유물을 이런 식으로 응용하다니.
죽음을 거스르는 영역의 주관자.
크로노스의 기운을 불어넣은 [죽음의 낫]으로 생과 사의 경계를 뒤집고.
몇몇 저주를 보조로 사용해서 빙의 과정에서 손실이 없게 세심하게 조정했다.
그럼에도.
빙의를 푸는 순간 엄청난 리바운드가 들이닥치겠지.
어쩔 수 없다.
마법왕과 대적할 수단은 이것뿐이었다.
용의 계곡에서 명해룡을 제작하지 않았으면 지박거인의 출력을 올려서 최대한 크게 만들 생각이었는데.
더 좋은 패가 손에 들어와서 다행이다.
'명해룡. 육신의 제어는 맡기겠다.'
인간에게 없는 부위인 날개와 꼬리.
용인 -> 진룡으로 종족을 바꾼 파프너도 처음에 얼마나 고생했던가.
그 감각에 적응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유진이 생각하면 명해룡이 그에 따라 육신을 조정했다.
촤아아악!
100미터 넘게 커진 명해룡은 날개를 활짝 펴고 정면으로 돌진했다.
날갯짓만으로 태풍에 버금가는 자연재해가 일어나고.
명해룡 + 지박거인이 내뿜는 영력은 근처의 환경을 일그러트릴 만큼 농도가 진했다.
"정면이라. 얕보인 모양이구먼."
[룬 마법]
[6중 결합]
[디맨션 디스토션]
유리가 깨어지는 것처럼 하늘 일부가 산산조각 났다.
명해룡과 합일을 이룬 유진은 회피할 틈도 없이 깨어지는 하늘에 쑥 들어가버렸고.
여러 조각으로 갈라진 풍경에 갇힌 거대한 용의 몸뚱이 여기저기서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차원의 틈새에 상대를 가두고 [중력]과 [분해], [소멸], [상실] 주문으로 수십 조각 내버렸다.
"면적을 키운 것이 오히려 실수였다."
강대한 마력을 얻기 위한 고육지책.
드미트리의 눈에는 타격할 부위가 넓어지는 것으로 비쳐졌다.
본연의 성위보다 더 높은 마력을 가지면 무엇하는가.
결국 변칙으로 올린 성위는 반푼이일 뿐.
늘어난 힘도 제대로 못 쓰고 허무하게 사로잡히지 않았던가.
일격에 소멸시키진 못해도 결정적인 피해는 입힐 터.
차원의 틈새에 유폐되어 존재가 수십 조각으로 쪼갰으니 승부는 났다고 여겼다.
'잘 됐구나. 이렇게 되면 포획할 수도 있을 터이니.'
드미트리가 느긋하게 손을 움직이며 다음 마법을 준비하고 있을 때.
수십 갈래로 쪼개진 하늘의 균열이 달라붙으면서 원래의 풍경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쩌저적-.
본 모습을 되찾은 하늘이 반으로 갈라지고.
시커먼 공간을 비집고 튀어나온 유진(명해룡)이 콰루루루! 하고 괴성을 질렀다.
[왜 포효를 내뱉는 거야.]
막상 소리를 지른 유진은 불평을 내뱉었다.
빙의해서 동화된 명해룡의 본능대로 몸이 제멋대로 움직인 것.
"어떻게 차원을 가른 건가?"
[안 알려줌.]
맛집 사장님한테 비법 알려주라고 해봐야.
예, 알겠습니다 하고 알려주겠니.
6중 중첩 주문.
회귀 전에도 저 마법에 걸려든 본 드래곤이 두 동강 나버렸었지.
유진도 익히 경계하고 있었다.
정면으로 달려들면 저 주문을 사용할 줄 알았고.
빙의와 [지박거인]으로 확장된 육신에서 발현시킨 [역천의 가호]로 수 겹 덧대어진 마법을 차근차근 해체했다.
-짐의 가호가 아니었으면 어찌 하려고 했느뇨.
'이 타이밍에 생색 내기?'
눈앞의 적에 집중하자고.
마법왕은 한눈 팔면서 상대할 만큼 만만한 적이 아니었다.
-그리 떠들 시간에 감사의 표현을...
'집중합니다. 지방 방송 끝.'
크로노스의 사념을 밀어내고 있을 때.
시커먼 구체가 눈앞에 들이닥쳤다.
[블랙 헬리오스]
검은 태양.
신성과 마력이라는 상반된 기운을 지닌 시커먼 구체가 명해룡의 영력을 흡수하고는 제 힘을 불려나간다.
엘메키아 플레임처럼 대 언데드용으로 개발한 주문.
[이쪽도 있다는 걸 잊지 말아줄래?]
[원시 마법]
[죽음의 위상]
[사룡의 비행]
수직으로 하강하는 시커먼 점.
본 모습으로 돌아온 파프너의 전신에서 맺힌 마법진이 시커먼 광선 다발을 쏟아냈다.
영력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룬 마법과 비등한 격을 지닌 원시 마법이었다.
의념을 불어넣어서 전개하기에 검은 태양도 모체가 되는 영력에 간섭하지 못했다.
"원시 마법?"
드미트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고대 진룡들만 사용한다는 마법.
실전된 지 오래라서 연구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
그 마법이 왜 여기서 나타난 것인가.
끓어오르는 학구열을 꾹 내리고는 마력을 재배열했다.
[룬 마법]
[5중 결합]
[레이피티라]
천상의 섬광.
여러 마법과 룬 문자를 결합하여 재현해낸 신대의 번개가 하늘 위에서 뚝 떨어진다.
구름이 반으로 갈라지고.
번개 줄기가 내포한 열이 어찌나 강한지 주변의 수분이 쫙 말라버렸다.
[맞으면 아프겠는데.]
파프너는 깍지를 끼며 앞으로 손을 내밀었다.
회피 불가의 공격.
마법왕이 빚어낸 신대의 벼락은 대상에게 반드시 명중한다는 성질이 깃들어있다.
본능적으로 그 사실을 간파한 파프너는 정면으로 받아칠 준비를 했다.
[원시 마법]
[사룡의 역린]
[케넥 전투술]
[10장 - 구결집합권]
영력에 기반을 두었지만 다른 방식으로 구현된 힘.
파프너는 '의념'을 매개 삼아 원시 마법과 오러 블레이드가 반발하지 않고 섞이게 해서 방출했다.
수직 낙하하는 번개와 승천하듯 올라가는 시커먼 영력이 중간지점에서 격돌.
콰르르르릉!
천지를 울리는 전능의 힘은 부정한 것을 쪼개고 태우며 앞으로 나아가려 했고.
오래 전에 사멸되었다고 알려진 고대 용족의 힘은 빛마저도 삼키려는 듯 거세게 반발하며 번개를 집어삼켰다.
두 힘이 부딪치는 순간은 짧았지만.
불과 5초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무수한 충돌이 있었고.
쩌엉, 큰 반발력과 함께 시커먼 용이 땅 아래로 처박혔다.
[쓰으읍. 온몸이 지릿지릿하네.]
"상처 하나 없다니. 자네도 대단하구먼."
제압할 생각으로 펼친 마법이다.
일격으로 죽이진 못해도.
큰 충격을 받았어야 하는데 파프너는 너무나도 멀쩡했다.
"강제로 영력을 응축시켜서 폭발. 내 마력을 흩어버려서 일대에 퍼지게 하고 충격파에 몸을 맡겨 이탈한다, 라."
[와. 그걸 어떻게 알았대.]
발가벗겨지는 기분에 파프너가 혀를 내둘렀다.
한 끗이 모자라는 파워.
충격파를 발산해서 마법의 결합에 간섭하고.
그 흐름에 맡겨서 해체되는 마력 범위에서 이탈했다.
땅에 처박히는 꼴이 되었지만 피해는 최소화할 수 있었다.
촤아아악!
시커먼 구체가 반으로 쪼개지면서 유진이 빛살같은 속도로 돌진했다.
[나를 두고 한눈 팔 여유가 있나?]
"카리만리스 가문의 아해도 이리 저돌적이진 않았건만. 오래간만에 피가 끓는 기분이구먼."
유진의 발톱이 닿기 직전에 드미트리의 신형이 푹 꺼졌다.
공간 이동.
블링크보다 훨씬 고등한 마법으로 수백 미터를 순식간에 뛰어넘었다.
[비싸게 구네.]
유진은 투덜거렸다.
마법사와의 전투는 '거리'의 싸움.
겨우 좁혔다 싶었더니 순식간에 멀어져버렸다.
가까스로 좁혀도 온갖 방어 마법과 요격 수단이 마련되어 있을 터.
[아우라]를 믿고 그 자리에서 버텨도 될 것을.
방심 좀 해주면 안 되겠니?
*
세계 최강의 마법사가 본심을 발휘하고 있을 때.
화산 뒤쪽에서도 전투가 이어지고 있었다.
소피아는 기간트의 보조 기능을 대부분 방어에 돌려놓고 [공간] 능력으로 맹공을 퍼부었다.
[프로메테우스의 사슬(위)]
블러드 드래곤들의 기동력을 묶고 차근차근 내구력을 갉아먹었다.
일룡과 이룡이 각자의 병장기를 사용해서 최대한 공세를 쳐냈지만 모두 파훼하지는 못했다.
전쟁 직전에 유진이 개수를 하지 않았으면 한 둘 정도는 진즉에 파괴되었을 상황.
[곤란하군.]
일룡은 도끼를 회수하면서 중얼거렸다.
공중전은 그의 특기가 아니었다.
암흑 투기를 발판 삼으면 어느 정도 기동이 가능하지만.
가성비가 나쁘고 집중력 소모도 높아서 소피아를 대적할 정도는 아니다.
[어떻게 하겠습니까?]
[빌어먹을 주인. 최강 전력을 순순히 맡겼을 때 이상하다 생각했어야 했다.]
팽그르르르-.
다시 한번 회전하는 도끼에서 암흑 강기가 솟구쳤다.
360도로 쏘아지는 마법 폭격.
공간 능력으로 허공에 임계 상태인 스크롤을 해방, 블러드 드래곤을 집요하게 노렸다.
-우리의 역할은 죽다 만 용들을 사냥하는 것이다. 당황하지 말고 임무에만 집중해.
소피아는 [공간] 특성으로 블러드 드래곤들을 견제하며 지휘에도 힘을 썼다.
백두산 대폭발.
전대미문의 사태에 로마노프 가문 정예 중 반 이상이 휩쓸려나갔다.
그나마 피해가 적은 건 블러드 드래곤 격퇴에 투입된 제2 마법 병단뿐.
-가주를 믿어라. 우리에게 내려진 명령을 수행한 후에 합류해도 늦지 않아.
제2 마법 병단을 확 휘어잡은 소피아의 명령.
마법사들은 눈앞의 적에게 집중했다.
'여기서 지원을 차단하기만 해도 우리의 승리...?'
[토네이도 실드]
등 뒤에서 느껴지는 살기.
육안으로 적을 확인하기 전에 본능적으로 아공간에 보관해놓은 방어 마법을 전개했다.
[포이즌 브레스]
치이이익!
바람이 독기 대부분을 걷어냈지만, 일부가 갑주에 묻어서 기능을 저하시켰다.
소피아는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
그녀의 전투력은 [공간]에 넣어놓은 무수한 병기와 마법 스크롤에 기반하고 있다.
굳이 기간트에 탑승한 것은 방어력을 올리기 위함.
이 정도 냉기면 치명적인 수준도 아니고.
회복 프로토콜을 가동하고 반격에 나서면 된다.
'외부에서의 공격이라. 누구지?'
별동대를 둘 만큼 여유를 두었단 말인가.
쿵- 쿵-.
지축을 뒤흔드는 커다란 발소리.
아홉 머리 달린 커다란 용, 히드라가 전장을 향해 뛰어오고 있었다.
[공간]
[방출 – 플레임 헬 X 25]
[방출 – 헤븐즈 저지먼트 X 10]
-너는 막아줄 둠 나이트도 없잖니?
별동대랍시고 따로 움직인 것을 후회하게 될 거다.
아공간에서 방출된 하얀 불꽃과 신성의 빛이 내리꽂힐 때.
히드라의 머리 위에서 공간 일부가 일그러졌다.
296화
각자의 승부처(2)
히드라의 머리 위로 쏟아지는 섬광.
미리 준비해놓은 마법 스크롤로 발동하는 주문이라 재배열 과정도 필요하지 않았다.
좌표만 입력하면 완성 직전 마법을 즉시 해방.
대상 지목 과정에서 소소한 작업을 해야 하지만.
강력한 마법이 곧바로 전개되는 건 엄청난 위협이었다.
[공간]
[해방 - 디스펠]
디스펠.
재배열 과정의 마법에 관여해서 마력 구조를 흩트리는 주문이다.
[역천의 가호]에 비해서는 활용도가 제한적이고.
이미 완성된 마법에는 간섭이 불가능해서 실용도가 높지 않다고 알려졌지만.
소피아와 마찬가지로 [공간] 특성을 지닌 이성민한테는 이야기가 조금 달랐다.
[공간]과 맞대어지는 [공간].
막 완성되어가는 마법 상당수가 방해 입자에 휘말리면서 파지직- 스파크를 튀며 빛을 잃었다.
「음?」
소피아의 눈썹이 역팔자로 휘었다.
묘한 불쾌감에 시선을 아래로 내리니, 미리 준비해놓은 스크롤 중 70% 가까이가 무력화되었다.
어떻게 된 일일까.
[공간]에서 꺼낸 마법이 발현되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는데.
상쇄?
디스펠?
무슨 수작을 부린 건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방해공작에도 무효화되지 않은 마법 일부가 쏟아졌다.
[포이즌 브레스]
히드라의 독액에 맞아서 빛을 잃어가는 섬광.
신화 원전에 비할 바는 아니어도.
독액에 깃든 힘은 어지간한 마법들을 변질시키고 소멸할 정도였다.
"크라라라라!"
히드라가 포효했다.
이 순간을 위해 얼마나 기다렸던가.
백두산 대전이 일어나기 전부터 산맥을 타고 천천히 북상했다.
히드라의 덩치는 원체 크다 보니 로마노프 가문의 정보망에 걸리지 않고 움직이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위치를 잡은 후에도 고난은 계속되었다.
며칠 동안 제자리에서 대기하는 건 얼마나 지루한 일이던가.
뽀시래기 팀은 자리를 이탈하려는 히드라를 말리느라 진땀을 흘렸다.
"그래도 용케 안 걸렸어."
"형이 언데드들로 시선을 끌어주었잖아."
로마노프 가문이 진격을 시작하자마자 우회해서 뒤를 쫓은 100만 대군.
대부분 하급으로 편성되어 있어서 숫자만 많을 뿐, 전황을 뒤집을 정도는 아니었다.
로마노프 가문 본대도 언데드들이 움직이는 것을 체크하기만 했지.
강을 따라 움직인 지상군도 뒤를 잡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움직이지 않았던가.
"나무를 숨기려면 숲으로 가라고 했지."
강민영은 코를 으쓱 세웠다.
전장 후방에 히드라를 숨기자는 건 그녀의 아이디어였다.
백두산 폭발 직후에 혼란해진 전장.
후방에서 로마노프 가문을 압박하는 카드로 히드라를 준비한 것이다.
"그런데 로마노프 2인자가 있을 줄은 몰랐슴다."
"형이 있을 거라고 했잖아."
"으으으. 위장 쓰려."
이성민은 손으로 가슴팍을 만지작거렸다.
제2 마법 병단의 지휘관.
소피아와 그의 능력은 동일했다.
고유 특성 [공간].
아공간에 물건을 저장해놓거나, 좌표를 지정해서 꺼내는 능력이다.
-정석적으로는 못 이겨. 절대로.
유진은 마치 소피아의 전투 방식을 직접 보기라도 한 것처럼 자세하게 설명해주었다.
아공간에 무수한 아티팩트와 마법을 쟁여두고 상황에 맞춰 꺼내는 스타일.
과거 유진이 자신에게 알려주었던 것과 같았다.
동일한 방식으로는.
소피아를 이길 수 없다.
마법 명가 로마노프에서 제작한 스크롤은 세계 제일 수준.
암상의 재력으로도 로마노프 가문의 마법 제작 수준을 따라잡기는 불가능했다.
그렇기에.
유진은 비장의 수단을 알려주었다.
아공간을 모두 비우고.
[디스펠] 주문이나 마력 결집 방해용 촉매인 [시간의 모래]를 가득 담아둘 것.
적이 소피아일 땐 무조건 [공간] 범위 안으로 들어가서 상대가 아공간을 열 때마다 겹쳐서 여는 것.
-다른 적을 만나면? 민호랑 민영이한테 부탁해야지.
태연한 유진의 대답에 웃음도 안 나왔지만.
지금 보니 정답이었다.
"음. 근데 저걸 어떻게 끄집어내리지?"
[우리한테 맡겨라.]
대답한 것은 일룡이었다.
차르르릉!
사슬에 새긴 마법진이 암흑 강기에 의해 파훼되었다.
반격하는 와중에 화풀이하듯 사슬을 두드린 진짜 이유였다.
[모두 떨어트려라.]
[콰우우우!]
블러드 드래곤은 사슬을 앞발로 쥐더니 크게 휘둘렀다.
기동력이 떨어지는 기간트들은 태앵! 프로메테우스의 사슬을 회피하지 못하고 아래로 추락, 쿵- 땅에 처박혔다.
「거리를 벌려라. 피해 상황은?」
「타격은 크지 않습니다. 전투 속행 가능합니다.」
암흑 강기나 오러 블레이드를 주입한 것도 아니었다.
블러드 드래곤의 힘이 투영된 사슬이어서 바닥에 내팽개쳐졌지만 소리에 비해 큰 피해는 없었다.
프로메테우스의 사슬을 휘둘러서 쳐낸 숫자는 30% 정도.
일부는 다시 날아오르려고 마법을 발동시켰다.
[동조]
[염력]
[다중 사격]
공중에 떠오른 석궁 50개.
환영마법으로 본 미래의 자신과 겨루면서 역량이 상승한 강민영은 기량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었다.
석궁도 모두 유니크 등급.
이번 전쟁을 위해 암상에서 구해준 고성능 장비들이다.
마력 소모가 심해서 모든 화살에 오러를 부여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각 화살마다 속성을 담아내어 기간트의 움직임을 훼방하는 정도야 가능했다.
팅! 티티팅!
날아드는 화살에 막 비행을 시작한 기간트의 움직임이 둔해졌고.
"크라라라라!"
히드라가 기간트를 낚아챘다.
콰지직- 마법으로 강화한 철판이 종이처럼 찌그러지더니 순식간에 모습을 감춰버렸다.
「전장으로 복귀할 수 없습니다.」
「일단 훼방꾼부터 쓰러트리겠습니다.」
마법사들은 공격 대상을 뽀시래기 팀으로 바꾸었다.
[일렉트릭 쇼크]
[스톰 블레이드]
[크림슨 레이]
높은 수준의 마법들이 쏘아지졌지만 대부분은 히드라에게 부딪쳐서 힘을 잃었다.
덩치가 원체 커서 서있기만 해도 좋은 방패가 되었다.
일부 공격이 히드라를 스쳐서 뽀시래기 팀에게로 향하기도 했다.
[미네르바의 올빼미의 가호 - Lv 2]
[고유 특성 - 이동요새]
[오러]
쩌엉!
환한 빛에 삼켜진 마법들.
강민호는 후, 짧게 신음을 내뱉었다.
"방어는 나랑 이 친구한테 맡겨."
"크라라라. 아프다. 인간."
"네 주인이 시킨 일이야. 참고 해주지 않을래?"
"크라라. 알겠다."
중앙 머리는 강민호의 말에 순순히 따랐다.
블러드 드래곤에 이어 히드라와 뽀시래기 팀의 합류.
제2 마법 병단은 수렁에 빠진 느낌을 받았다.
*
전장 후방에서 나타난 변수를 알지 못한 채.
니콜라이는 기간트에 탑승했다.
「하강한 후 지상으로 이동. 단번에 적의 의표를 찌릅니다.」
시커먼 연기로 뒤덮인 전장.
백두산에서 뿜어져 나오는 어마어마한 마력 때문에 통신도 원활하지 않다.
아군이 소통이 안 된다면 적도 마찬가지일 터.
분화구에서 솟구친 용암은 지면을 뒤덮어버렸으니, 지상군이 남아있을 리 없다.
시야가 가려진 틈을 노려서 천천히 이동한 후에 급상승해서 죽음의 요새를 노리면 승산이 있었다.
「차라리 데스 나이트들을 돌파하는 건 어떻습니까?」
「그도 괜찮습니다만. 시간이 끌립니다. 적이 의도를 알아채면 어떤 식으로 행동할지도 알 수 없고요.」
니콜라이는 부드러운 말투로 제1 마법 병단 생존자에게 설명했다.
그가 맡았던 제3 마법 병단은 용암에 파묻혀버렸다.
지금 동원 가능한 병력은 제1 마법 병단의 생존자들뿐이다.
이들에게 직접 지시할 수 있는 건 가주뿐.
권한을 위임받았으면 모를까.
지금처럼 드미트리가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을 때에는 일방적으로 명령을 내릴 수 없었다.
「알겠습니다.」
다행히 제1 마법 병단 부단장은 큰 반발 없이 니콜라이의 의견에 따랐다.
기간트 수십 기가 지상으로 천천히 하강했다.
철퍽, 아직 식지 않은 용암이 밟혔지만 기간트의 장갑을 녹이지는 못했다.
「여기서부터는 속도를 올리겠습니다.」
[마나 부스터]
등 뒤에 달린 엔진에서 푸른 입자가 방출되었다.
지상에서 살짝 떨어진 채로 호버크래프트처럼 빠르게 이동하는 기간트 무리.
백두산 전역이 원체 넓다 보니 이동 시간만 꽤 많이 소요되었다.
분화구에서 쉼 없이 솟아나는 연기에 몸을 가린 채 죽음의 요새 근처까지 다가가는데 성공.
손을 들며 지시하려는 순간.
[너희는 못 지나간다.]
굵은 사념이 기간트 무리의 귓가에 아른거렸다.
켄타우로스처럼 생긴 언데드.
차이점이 있다면 용족의 머리를 하반신에 달아두었고.
위는 사람과 흡사하게 생겼는데 완전무장을 갖추었다는 것이다.
용기병을 개조해서 만든 상급 언데드, 불멸자가 은밀 기동 중인 니콜라이를 맞이했다.
불멸자의 등 위에는 간이 탑승석으로 만들어놓은 철장 안에 블랙 위저드가 탑승해 있었다.
100기에 가까운 상급 언데드의 등장.
이들은 '천지 대폭발' 작전을 사용한 뒤에도 지상군이 남아있을 때를 대비해서 준비해놓은 병력이었다.
「정말이지. 천유진이란 분, 지긋지긋하군요.」
니콜라이는 드물게 감정을 드러냈다.
이만한 전력을 숨겨두었다고?
백두산을 터트리질 않나.
블러드 드래곤들로 제2 마법 병단의 발을 묶어두고.
그 자신은 본 드래곤과 합체해서 마법왕과 자웅을 겨루고 있다.
제1 마법 병단 생존자들을 규합한 후에 다시 한번 공세를 가하려고 하니, 이젠 숨겨놓은 언데드까지 나왔다.
이건 마치....
「우리 가문의 저력을 잘 알고 있는 사람 같군요.」
「정보가 새었단 말씀입니까?」
「아뇨. 그렇지는 않습니다.
로마노프 가문에서 중요 전력으로 인정받는 마법사들은 모두 비밀의 서약을 한다.
이런 환경에서는 스파이가 있어도 정보를 흘리기도 어려웠고.
유진은 제 머릿속으로 로마노프 가문이 어떤 식으로 반응할지 일일이 계획을 세우고 준비해놓은 것이다.
아래에서 벌어진 소란을 알아챈 데스 나이트들까지 속속들이 합류했다.
최악의 상황.
니콜라이는 한숨을 길게 쉬었다.
「정보가 어느 경로로 샜는지 중요한 건 아닙니다.」
대적을 앞에 두고 스파이 색출에 열을 올릴 순 없었다.
일단.
눈앞의 언데드들을 모조리 파괴해야 다음 행동을 할 수 있다.
「모두 소멸시키십시오. 죽음의 요새 공략은 그 뒤에 하겠습니다.」
「예.」
제1 마법 병단 생존자들은 기간트의 보조를 받아 위력적인 마법을 사방에 흩뿌리기 시작했다.
297화
후긴과 무닌
로마노프 가문 본대가 몇 갈래로 나누어져서 블랙 컴퍼니와 충돌하고 있을 때.
유진은 모든 정신을 눈앞의 대적에게 집중했다.
[미티어 스톰]
성층권 위에서 떨어지는 유성의 비.
우산 따위로 막을 수 없는 종말의 폭풍이 머리 위로 떨어진다.
궁극 마법인 [미티어 폴]은 커다란 운석을 하나 낙하시켜서 최소 경기도 크기의 땅을 지워버릴 만한 위력을 지녔지만.
약식으로 펼친 유성우에는 그만한 위력이 실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피격 면적이 큰 명해룡한테는 커다란 위협인 건 마찬가지였다.
이미 물리력까지 지닌 유성은 [역천의 가호]로도 지워낼 수 없으니.
[원시 마법]
[시초의 끝]
쿠아아앙! 쾅! 콰앙!
[불에는 불. 유성에는 유성이지.]
땅으로 내려오기 전에 충돌한 유성들이 상쇄되었다.
파괴력은 드미트리의 미티어 스톰이 한 수 위.
순수한 마법의 기교와 깊이만 놓고 보면 파프너가 맞불로 내지른 원시 마법이 한 수 모자랐다.
원시 마법이란 특수성을 고려해도 말이다.
매개체가 '유성'만 아니었으면.
일방적으로 밀리는 게 파프너였을 터.
콰앙!
"재미있는 일을 저질렀구먼."
드미트리는 혀를 찼다.
궁극 마법을 살짝 간소화해서 펼쳤는데 같은 성질을 공유하는 주문으로 상쇄시켜버렸다.
유성끼리 충돌해서 폭발.
위력은 그의 주문이 높았음에도, 매개체인 돌이 부서지면서 파괴력 대부분이 전장에 닿지 못하고 저 하늘 위에서 소진되어버렸다.
"저 용은 해로운 존재다."
[파워 워드 킬]
드미트리의 손가락이 파프너를 가리키는 순간.
심장이 쥐어 짜이는 것 같은 고통에 눈이 부릅 떠졌다.
[의념으로 풀어내라.]
[읏, 으읏.]
가슴팍을 어루만지던 파프너는 유진의 조언대로 영력을 움직였다.
심장을 옥죄던 기운이 눈 녹듯이 사그라진다.
"이것도 풀었다?"
드미트리는 미간을 찌푸렸다.
파워 워드 킬은 주문 시전자보다 성위가 낮은 대상에게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대상이 용족이니 단번에 죽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렇게까지 쉽게 해제할 만한 주문은 아니었다.
파프너를 잠깐 동안 싸움에서 배제한 후에 유진에게 화력을 집중하려고 했지만.
모든 것이 드미트리의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
[이제는 우리 차례지?]
명해룡과 하나 된 유진이 홰를 치며 돌진했다.
[역천의 가호 – Lv 1]
[오러 블레이드]
희끄무레한 오러 블레이드를 전신에 발출.
마법왕이 공중에 뿌려놓은 마법을 무식하게 받아냈다.
"저 덩치로 오러 블레이드를 전신에 구현하다니."
황당했다.
저 오러 블레이드는 명해룡의 능력이 아니다.
합일을 이룬 유진이 막대한 영력을 기반 삼아 일으킨 것이다.
마법 분야를 통달해서 각성 3년 만에 8성에 도달한 게 아니었나?
선명한 오러 블레이드를 보면 상식이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다.
초음속으로 날아오는 거체.
어지간한 방어 마법은 저 오러 블레이드에 닿는 순간 제 형태를 잃어버릴 것이다.
[룬 마법]
[5중 결합]
[비프로스트]
공격과 이동을 겸하는 복합 마법.
일곱 빛깔이 뒤섞이면서 만들어진 광채가 미꾸라지처럼 움직이며 유진과의 거리를 벌렸다.
[지박거인]으로 몸집을 두 배 이상 불린 명해룡의 앞발이 무지개 광채를 아슬아슬하게 잡았다.
카가가가각!
오러 블레이드가 깎여나간다.
명해룡의 육신이 무너지는 것은 면했지만, 술법 일부가 무너질 뻔했다.
비프로스트는 강력한 공격기이기도 했다.
마법사가 근접전에서 약하단 고정관념을 무너트리는 이동기.
앞발로 쥐는 순간 엄청난 반탄력과 함께 지박거인의 개념을 뒤흔들었다.
[그렇게 나온단 말이지?]
이번에는 반대쪽 앞발을 크게 휘둘렀다.
파지직! 비프로스트가 내뿜는 일곱 색 빛이 옅어졌다.
"흠. 그 짧은 순간에 주문을 개선하다니."
[약점은 한 번 보여주는 걸로 족하잖아.]
충격 대부분을 완화했지만 비프로스트에 휘감긴 마법왕의 신형이 땅으로 떨어졌다.
"이것이 내 도주경로다."
[쯧.]
비프로스트에 머무는 드미트리를 해치울 심산이었는데.
힘이 애매하게 강했다.
차라리 잡아버리던지 치명상을 입힐 수 있으면 좋았건만.
드미트리는 앞발에 실린 힘에 저항하지 않고 몸에 오는 충격만을 흡수해서 거리를 확 벌렸다.
[룬 마법]
[4중 결합]
[유피텔 선더]
무수한 작은 번개를 담아낸 뇌전 구체가 둥실 떠오르더니 증폭을 거듭하며 확산되기 시작했다.
제우스의 다른 이름인 유피테르.
카리만리스 가문과 이권 다툼을 벌일 때 가호를 목격한 후에 룬 마법으로 이적을 재현한 번개였다.
콰릉! 콰르르릉!
연이어 폭발하며 주입한 마력의 몇 배를 상회하는 번개 폭풍이 휘몰아친다.
[제우스의 가호를 흉내 낸 마법이라. 악취미 한번 심하네.]
타인의 능력을 베껴 오는 것도 아니고.
쇄애애액!
몸을 옭아매는 뇌전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역천의 가호 Lv 1]
닿는 것을 받아들여서 분석하고 재구성하는 역천의 가호.
지박거인으로 동화한 명해룡의 육신에 타격이 조금씩 쌓였지만, 가호로 받아들인 마력을 재분배해서 충격을 바로 해소했다.
"무식하구나."
아름다움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단순한 투로.
직선 코스로 날아오는 게 전부이지만 드미트리의 입장에서는 가장 골치가 아팠다.
네 개의 코어를 안착시켜서 9성 출력을 지니게 된 명해룡.
그 몸뚱이와 하나 된 유진은 압도적인 영력 양을 오로지 돌진에만 사용했다.
마법의 신비?
개나 주라지.
정면으로 받아내면서 [역천의 가호]로 풀어내고 재해석 및 부서진 신체를 복구한다.
피해를 입자마자 거의 동시에 회복되니 타격하는 의미가 퇴색되었다.
[이쪽도 있다고.]
거리를 벌린 채로 견제하는 파프너도 귀찮긴 마찬가지였다.
1분이라도 전력을 다하면 8성급 진룡을 행동 불능에 빠트릴 수 있다.
그렇지만 언데드에게 빙의한 유진이 가만히 있지 않겠지.
"어쩔 수 없구나."
드미트리는 양손에 끼고 있던 장갑을 벗었다.
손등에 새긴 문신.
눈 모양의 그림에서 번쩍- 음험한 빛이 새어나왔다.
[지혜의 탐구자의 가호 - Lv 5]
[후긴&무닌 소환]
두 손등의 문신이 검은 피처럼 철철 흘러내리더니 아래로 추락했다.
떨어진 시커먼 액체는 각각 소년과 소녀의 모습으로 변했다.
등 뒤에 붙은 시커먼 날개가 요사스러운 빛을 흩뿌렸고.
남녀는 빙그레 웃은 후에 입을 떼었다.
""뭘 원해?""
유진이 합일을 할 때처럼 겹쳐지는 음색.
두 아이는 한 몸이라도 된 것처럼 같은 제스처를 취했다.
"저들의 발을 잡아주시오."
"뭘 줄 거야?"
"왼쪽 눈을 오딘께 진상하지."
"좋아. 거래 성립."
푸아아악!
말을 꺼내자마자 드미트리의 왼눈이 뽑혀 나오고 피가 솟구쳤다.
〔이건 무슨 짓이더냐.〕
산전수전 겪어봤다고 자부하시는 크로노스도 눈앞의 참상에는 당황한 모양이다.
'후긴과 무닌은 오딘의 전령이다.'
눈 하나를 매개체로 신수 둘을 불러내면 이득이지.
마법왕 드미트리가 화신이라 가능한 이적이다.
그나저나.
전생에도 본 녀석들을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는군.
[신수들부터 처리한다.]
[알았어.]
파프너는 유진의 지시에 되묻지 않았다.
그럴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너희. 냄새나."
"그냥 우리가 죽이자."
후긴과 무긴은 익살맞게 웃으면서 날아들었다.
*
후긴의 손에 들린 활이 주홍빛을 흩뿌린다.
[빛나는 화염의 룬 활]
오딘이 하사한 천상의 룬 어를 벼려내어 만든 개념 무장.
헌터 식 표현으로 분류하면 '신화 등급' 아티팩트다.
시위를 당기니 검게 물든 하늘이 순간적으로 환해졌고.
태양이 이 땅에 강림한 것이 아닐까 싶을 만큼 강한 빛이 유진의 코앞에 들이닥쳤다.
회피 불가의 공격.
괜찮다.
여태 그리 했듯, 몸으로 우직하게 받아내면서 [역천의 가호]로 충격을 흡수 및 재분배했다.
"어? 안 통하네."
"끌끌. 그러니 발을 잡아달라고 하지 않았소?"
"이거는 어때."
[파괴의 룬 주먹]
안쪽으로 파고든 무닌은 주먹 쥔 손을 살짝 틀었다.
손에 낀 파괴의 장갑이 강대한 힘을 해방.
마력에서 물리력으로 치환된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명해룡의 복부를 가격했다.
피해는 크지 않았다.
명해룡의 육신은 초월자로서 완성되었다.
마력을 싹 물리력으로 치환함으로써 엄청난 힘을 얻었지만.
쭉 밀려난 것에 비해서 타격은 거의 입지 않았다.
[물방울의 룬 팔찌]
여러 물방울을 엮어서 만든 팔찌가 명해룡(유진)에게 달라붙는다.
움직임이 둔해진다.
생물로 치면 피 역할을 하는 영력의 흐름이 눈에 띠게 느려지고.
관절 하나하나가 삐걱거렸다.
[괜찮아. 주인?]
[뭐, 아직까지는.]
후긴과 무닌은 신수치곤 전투력이 강하지 않다.
어디까지나 히드라 같은 괴수와 비교했을 때의 이야기지만.
룬 문자를 벼려서 만든 무기들을 번갈아가면서 사용하는데, 직접적으로 파괴와 관련된 무기는 많지 않았다.
얼마 안 되는 병기인 룬 활은 보기좋게 막혀버렸고.
문제는 시시때때로 바꾸는 룬 병기들의 변수 창출 능력이다.
[이 정도인가.]
전생에도 경험해본 적 있는 번거로운 능력들.
[역천의 가호 Lv 2를 사용합니다.]
술자를 중심으로 퍼진 역장이 후긴과 무닌의 능력에 간섭한다.
몸에 다닥다닥 붙은 물방울들이 펑- 펑- 하고 터져나갔고.
주먹을 다시 말아 쥐고 있던 무닌의 손이 확 펴졌다.
"그래서 말했잖소. 잡아두기만 하라고."
여유를 되찾은 드미트리가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태연하게 마법을 전개했다.
[룬 마법]
[7중 결합]
[궁극마법]
[바레티르 스피어]
봐라.
룬 문자를 7중으로 결합할 만한 시간이 생겼잖아.
파지지지직!
하늘의 분노를 그대로 형상화한 번개가 머리 위에 아른거린다.
일그러지는 풍경.
오딘의 성유물 [궁니르]를 마법으로 구현한 강력한 마법이 정수리를 노리고 있다.
다중 속성에 명중 보정, 그리고 공간 왜곡까지.
회피는 불가능하고.
이번에는 [역천의 가호]로 분해해서 흡수하기도 어려워 보였다.
파프너도 무긴&후긴의 연계에 발이 묶인 건 마찬가지.
"자. 한번 몸으로 겪어보게."
하늘에서 떨어지는 심판 앞에서.
유진은 입을 크게 벌렸다.
298화
손발 자르기
유진이 드미트리를 상대로 분전하고 있을 때.
다른 곳에서는 그가 안배해놓은 것들이 하나둘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이 상황에 와서 전력에 여유를 두다니. 믿기지가 않는군요.」
니콜라이는 한탄하듯 중얼거렸다.
죽음의 요새로 향하는 길을 틀어막은 불멸자 100기.
최형태가 외친 사념에 자극을 받은 데스 나이트들도 아래로 하강했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
공중항모로 돌아가려면 지상에 있는 불멸자들과 블랙 위저드의 공세를 떨쳐내야 하고.
팬텀스티드에 탑승한 데스 나이트들까지 따돌려야 한다.
[들어올 땐 마음대로지만.]
[나갈 땐 아니다.]
최형태와 짝을 맞추어 말하는 이신우.
제1 마법 병단은 로마노프 가문 정예 중 정예다.
기간트의 보조가 더해지면 1인이 7성 이상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강자들.
30% 남짓한 인원으로도 언데드 군대와 일전을 벌일 만한 능력이 있었다.
...굳이 과거형으로 언급한 것은 만전의 상태였을 때를 가정했을 때의 이야기여서다.
화산 폭발의 중심에 휘말려버린 제1 마법 병단.
결원도 많지만.
어마어마한 마력 폭발에서 버텨내느라 마력을 상당히 소모했고.
기간트도 제 성능을 발휘하지 못했다.
강대한 적 앞에서 알몸으로 서 있는 거나 마찬가지.
이길 확률은 0%에 가까웠다.
「미안합니다. 내 오판으로 당신들을 사지에 내몰았군요.」
「자책하지 않아도 됩니다. 니콜라이 고문의 제안에 따른 것은 우리요.」
가주가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는데 두 발 뻗고 쉴 수는 없다.
「저 망자들을 모조리 쳐죽이고 가주께 돌아가면 되지 않겠소?」
「부단장님. 우리 몫은 남겨주쇼.」
「게으른 놈들. 뒤쳐지면 너희가 해치울 것까지 내가 모두 쓰러트릴 거다.」
껄껄거리며 웃는 제1 마법 병단 소속 마법사들.
니콜라이의 입가가 굳었다.
「...살아서 돌아갑시다.」
니콜라이는 드미트리가 새겨준 룬 문자를 해방했다.
일시적으로 한계를 벗어나게 해주는 초월의 룬.
그 대가는 무겁지만.
지금의 상황을 타개하려면 무엇이라도 내놓을 수 있었다.
니콜라이를 중심으로 강한 마력 폭풍이 몰아치자 둠 나이트 하나가 팬텀스티드를 밟고 도약해서 아래로 떨어졌다.
[광폭화]
아라한 길드 마스터 이신우.
죽기 직전 8성의 경지에 도달했고.
유진에게 죽은 뒤에는 몇 번의 재조정 끝에 분노를 제 의지대로 휘두르는 수준에 이르렀다.
정확히 말하면.
이신우의 의지보다 주인인 유진의 뜻대로라고 해야겠지만 말이다.
핏빛을 띤 암흑 강기가 푸른 회오리를 반으로 갈랐다.
[타깃 온]
[스톰브링거]
잘려나간 푸른 입자 사이에서 솟아난 초록색 검이 이신우의 주먹과 충돌했다.
핏빛 암흑 강기와 충돌한 칼날이 깎여나가면서 극한까지 압축해놓은 바람이 사방으로 나부낀다.
일대에 깔려 있는 화산재와 연기를 모두 날려버릴 만큼의 강풍.
니콜라이는 검신이 두동강 나기 전에 칼을 구성한 바람을 충돌시켰다.
파아아앙!
암흑 강기는 뚫어내지 못했찌만.
그 발원지인 이신우는 전신에 기운을 두르지 않았다.
강풍에 밀려나서 수십 미터 위로 붕 떠오른 이신우가 지면에 착지했다.
붉게 물들었던 안광이 푸른 색으로 돌아왔다.
[제법이군. 바람 자체를 터트려서 밀어내다니.]
「이렇게 재회하게 되니 안타깝게 되었습니다. 이신우 길드장님.」
아라한을 반석 위에 올리고자 노력했던 이신우.
그와 손을 잡고 동아시아 내 영향력을 넓히려고 했던 니콜라이.
두 사람이 재회하게 된 상황은 너무나도 아이러니했다.
「내 참. 휴대전화 전원을 끄고 켜듯이 분노 조절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주인을 섬기면서 가능해진 일이다.]
「철천지원수를 잘도 주인이라고 부르시는군요.」
[내 의지로는 배반도 못한다. 그런 꾀임은 의미가 없어.]
「아쉽군요. 협상의 여지가 있으면 좋았으련만.」
[너도 곧 같은 신세가 될 것이다.]
「가문의 명예를 걸고 쉽게 당하진 않을 겁니다.」
살아서 돌아갈 가능성은 없다.
그렇다고 해도.
가문의 이름에 어울리는 당당한 모습으로 최후까지 싸우리라.
[되살아나고 나서 처음으로 흥미가 생기는군.]
이신우의 푸른 안광이 서서히 붉어지기 시작했다.
[죽지도 못하는 몸이 된 후에도 긍지라는 것을 지킬 수 있을지.]
유진에게 모든 안배가 무너지고.
강제로 되살려져서 원수의 손발이 되어 봉사하는 신세가 되었다.
전직 초월자의 강력한 언데드 장악력 때문에 반기를 품을 생각은 하지 못했지만.
생전과 달리 모든 일에 흥미를 잃고 주어진 일만 기계적으로 수행했다.
[이번에는 조금 즐길 수 있을 것 같아.]
번쩍!
억눌러놓은 분노가 정신을 지배하면서 이신우의 기세도 확 바뀌었다.
마법왕이 하사한 능력으로 초월의 영역에 한 발 걸친 니콜라이조차 무시하기 어려운 강렬한 암흑 강기.
로마노프 가문 별동대의 운명에 암운이 드리웠다.
*
"크라라라. 맛있다."
또 한 명의 마법사가 히드라의 식사로 전락했다.
오러도 튕겨낼 수 있는 기간트의 장갑도.
촘촘하게 나 있는 히드라의 이빨 앞에서는 종이와 다를 게 없었다.
「이 괴물!!!」
[화염 마법]
[크림슨 헬]
지면에 생성된 마법진이 커다란 불기둥을 뿜어냈다.
7성급 극대 마법.
공기와 땅에 충만한 화산의 마력 덕에 파괴력도 발군이었다.
돌을 순식간에 기화시켜버릴 만한 열기가 히드라의 몸통을 훑고 지나가니 비늘도 녹아내렸다.
「공격이 통한다! 7성 이상 화염 마법으로 타격하면 된다.」
"크라라라라!"
돌아오는 것은 분노한 히드라의 살기.
쩍 벌어진 입이 시시각각 다가오는 것을 보고 준비한 마법을 전개했다.
[블링크]
단거리 도약으로 자리를 이탈한 마법사.
방금 전까지 서 있던 곳을 히드라의 머리 중 하나가 콱 물었다.
「피하면 돼. 모두 반격 개....」
콰직!
"크라라라. 뻔하다. 인간."
중앙 머리는 공간 왜곡 현상을 인지하자마자 이동 방향을 읽어냈다.
블링크 직후에는 무방비상태가 되니.
연속 공격에 속절없이 당하는 마법사가 늘어났다.
「히드라가 공간 도약을 무슨 수로 알아챈 거지?」
「블링크로는 안 된다. 장거리 도약을 해야 해.」
「마력 과포화로 좌표 지정이 어려워.」
「염병할. 그냥 먹히는 것보단 뭐든 하는 게 낫잖아!」
부유 마법으로 이탈하기는 어려웠다.
공중을 누비고 있는 빌어먹을 석궁들!
같은 무게의 황금보다 비싼 기간트를 입고 있는 마법사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화살 한 발 당 아파트 한 채 값을 넘어서는 공격을 마구 퍼붓는 민영의 공세 때문에 비행도 마음대로 하기 어려웠다.
위에서는 블러드 드래곤들이 날뛰고 있고.
병단장 소피아는 동일한 능력에 막혀서 제 화력을 내지 못했으니.
「너! 대체 뭐야!!」
"이성민임다."
「누가 이름 물어봤어?」
"엑! 궁금하신 거 아니었슴까?"
꽉 말아 쥔 소피아의 오른손이 파르르 떨렸다.
[공간] 능력을 겹쳐서 마법 전개를 방해하는 수라니.
그녀의 장기를 꿰뚫은 것 같은 맞춤형 대응에 대응 수단을 찾을 수 없었다.
저 발칙한 [공간] 능력자를 죽이자니 히드라와 탱킹 담당 무투계 헌터 때문에 접근하기도 어려웠고.
요격하자니 마법이 상쇄되는 탓에 제 위력이 나오지 않았다.
'거리를 벌려야 해.'
이성민과 떨어지기만 하면 된다.
블러드 드래곤들만 파괴하면 공중항모를 타격할 수단이 없어진다.
추락해버린 병단 마법사들을 구출하긴 어렵겠지만.
희생을 감수해야 할 정도로 전황이 나빠졌다.
"도망치지 마십쇼! 맞서 싸우란 말임다!"
이성민은 멀어지는 소피아를 보며 발을 동동 굴렀다.
모든 아이템을 소피아 대응으로 세팅해놓았다.
전담마크 외에는 할 일이 없는 상황.
유진이 맡긴 역할의 무게가 얼마나 중한지, 전장을 보니 더욱 크게 느껴졌다.
차르르릉-!
[잡아라. 애송이.]
도끼 하나를 아래로 쭉 던진 일룡.
눈앞에 아른거리는 흉기를 본 이성민이 멀뚱거렸다.
"이건 뭠까?"
[로마노프 2인자를 전담하는 게 역할 아닌가.]
"그건 맞지 말임다."
[두 발로 뛰는 것보다는 여기에 타는 게 낫겠지.]
"제가 잡으면 당겨주겠단 말임까? 에이. 농담이 심하심다."
일룡은 묵묵부답 도끼를 살짝 흔들었다.
"정말임까?!"
[시간 없다.]
못해도 수백 미터 높이를 당긴다니.
어떤 놀이 공원에서도 이만큼 파격적인 스릴을 주지는 못하리라.
이성민은 심호흡을 크게 내뱉은 후에 도끼를 잡았다.
"그럼 천천히 부탁드립...."
[적이 온다.]
차르르르릉-!
"니드아아아아악!!!!"
화산 폭발에 버금가는 기세로 맹렬하게 솟구치는 이성민.
미끼를 덥썩 잡은 물고기 같았다.
"괜찮겠지?"
"아마도."
쌍둥이는 태연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둘로 양단되어버린 제2 마법 병단.
화력은 반 이하로 줄어들고.
반면 적의 공세는 훨씬 더 격렬해졌다.
[콰루루루!]
프로스트 브레스가 기간트 하나를 통째로 얼려버렸다.
8성 끝자락의 스펙인 블러드 드래곤.
네크로폴리스 덕에 능력치 추가 상승 혜택까지 받아서 한 방 한 방이 치명적이었다.
소피아는 마법 상쇄 때문에 낼 수 있는 화력이 눈에 띠게 감소했고.
다른 마법사들도 기간트의 능력을 십분 활용해서 대항했지만 머지 않아 한계가 드러났다.
「끄아아악!」
로마노프 가문에서 공들여 육성한 마법사들이 하나씩 사냥당했다.
전선을 이탈하는 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기동력에서는 블러드 드래곤이 우위.
공간 이동 마법은 좌표가 불안정해서 쓰기 어려웠고.
진형까지 무너진 마당에서 소피아도 병단 지휘에 신경 쓰지 못해서 더욱 붕괴가 가속화되었다.
[공간]
[해방 – 플레임 티폰 X 10]
[공간]
[해방 – 디스펠 X 32]
[해방 – 시간의 모래 300kg]
이성민은 연신 막 발현되려는 마법에 찬물을 끼얹었으니.
「으아아아아!!!!」
신경질적인 소피아의 비명이 혼란에 빠진 제2 마법 병단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었다.
각자의 싸움에서.
블랙 컴퍼니가 준비한 안배에 의해.
로마노프 가문 최정예 마법사들은 제 실력을 모두 내지 못한 채 하나둘씩 목숨을 잃어갔다.
299화
종지부
[네 수족들이 잘려나가는 걸 보는 기분은 어때?]
유진은 킬킬거렸다.
오딘의 화신체는 마법왕 드미트리 뿐.
남은 이들은 [아우라] 같은 능력을 지니지 못했다.
칼이 박히면 아프고.
마법에 노출되면 피부가 타버린단 말이지.
"그들의 핏값은 가볍지 않다. 자네의 하찮은 사역마들에 비할 바가 안 되지."
마법왕의 음색에는 노기가 깔려 있었다.
직계 혈육과 방계, 그리고 재능 있는 자들을 선별해서 육성해낸 가문의 기둥이 뿌리 뽑혀 나갔다.
그럼에도.
눈동자 한가운데에는 불꽃 한가운데에서도 녹지 않는 얼음이 자리잡고 있었다.
'도발해도 효과가 없군.'
쩝.
백두산 대전에서 승리하려면 대마를 잡아야 한다.
마법왕을 쓰러트리지 못하면.
남은 로마노프 가문 휘하 사람들을 모조리 도륙해도.
유진과 블랙 컴퍼니의 패배였다.
"네크로맨서이자 성자인 자가 육박전을 고집하는군."
[누구 좋으라고 마법전을 해.]
전생에도 못 이겼거든?
네크로맨시는 순수 마법보다 하수인 제작이나 보조에 특화되어 있다.
1대1로는 [아우라]가 아니어도 마법왕을 넘기 어렵다.
버티는 것 정도는 가능했지.
참.
아이러니하군.
회귀 전에도 파프너와 호흡을 맞추어 드미트리와 싸웠었다.
데스 나이트와 둠 나이트조차 초월한 존재.
[흑암의 반지]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은 이형의 망자인 헬 나이트가 되어서.
두 번째 삶에서는 입장이 많이 달라졌지만.
수미상관이라도 되는 건지 원.
"흠. 자넨 마치 본인을 겪어본 것처럼 말하는구먼."
[천하의 마법왕을 상대하려고 하는데 준비 하나 안 했을까.]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니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영업 비밀 안 알려드린다고.
유진은 대꾸하지 않고 묵묵히 날개를 퍼덕이며 재차 돌진했다.
.
"마력 재배열에 간섭하는 성좌의 능력도 그렇다네. 마법사를 겨냥한 느낌에 아우라까지 무효화하니. 마음을 놓을 수가 없구먼."
[감상평은 저승에서 하시지 그래.]
"껄껄. 젊은이의 패기는 보기 좋으나 그럴 능력이 있는지는 모르겠네."
전생의 나이까지 합치면 비슷할 거다.
이 겉늙은이야.
[룬 마법]
[7중 결합]
[블랙홀]
중력의 소용돌이.
온갖 중력 관련 마법들을 결합해서 원래 주문의 수십 배에 달하는 위력을 지니게 된 시커먼 구멍이 명해룡을 끌어들였다.
[역천의 가호 Lv 1을 사용합니다.]
[역천의 가호 Lv 2를 사용합니다.]
[오러 블레이드를 사용합니다.]
가호를 동시에 발동.
몸에 직접적으로 닿는 중력의 그물은 받아들여서 해체하고.
크로노스가 부여한 능력을 광역으로 펼쳐서 마법의 구조에 관여해서 점진적으로 해체했다.
역천의 가호로 만들어낸 작은 틈.
오러 블레이드는 흉포한 기세로 중력의 소용돌이를 찢어발겼다.
"정말이지. 아름다움은 찾아볼 수 없는 무식한 방법이다."
혀를 차면서도 드미트리는 미리 준비해놓은 마법을 연거푸 해방했다.
거리를 좁히려는 자와 벌리려는 자의 싸움.
[디맨션 브레이크]
[스톰 가스트]
차원 일부가 도려내지고.
거절의 힘을 담아낸 우박이 명해룡의 전신을 두들긴다.
힘의 편린만으로 도시가 초토화 될 만큼의 에너지가 발산되었고.
유진은 묵묵히 가호와 오러 블레이드만을 전개해서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려 했다.
"화신. 죽으면 오딘한테 혼나."
"그러니까 안 돼."
후긴과 무닌이 룬 문자가 새겨진 무구를 휘둘렀다.
[원시 마법]
[사룡의 비행]
룬 병기의 파장을 상쇄하는 시커먼 광선.
현대 마법이나 네크로맨시는 룬 마법보다 상성에서 뒤쳐졌지만.
의념이 곧 힘인 원시 마법은 오딘의 신수들이 펼치는 룬 문자에도 불이익을 받지 않고 제 위력으로 밀쳐냈다.
[너희는 나랑 놀자.]
신수 대 진룡.
후긴과 무닌은 현계의 페널티로 온전한 힘을 낼 수 없고.
파프너도 진룡이라곤 해도 온전하게 채워지지 않은 미숙아 신세다 보니 좋은 맞수가 되었다.
콰앙! 쾅!
천지가 뒤집히는 격렬한 전투.
끊임없이 이어지는 소모전에 지상과 하늘이 비명을 질렀다.
크로노스가 맥 빠진 목소리로 물었다.
〔언제까지 이런 지리멸렬한 싸움을 벌이려는 게냐.〕
'이게 최선인데요?
〔참으로 졸전이로다. 오딘의 계약자를 보라. 삼라만상의 이치를 비틀어서 이적을 행하지 않느냐.〕
'부러우면 성좌 나리도 저쪽으로 붙으시던가.'
〔고얀 것. 말본새 하곤.〕
'나도 그냥 부딪치는 거 아니거든요?'
역천의 가호는 만능 디스펠 능력이 아니다.
마력 구조를 일일이 읽어내어 해체하는 것.
꼬여버린 실을 풀어줘야 한다.
유진의 마법 이해도가 높지 않았으면 마법왕이 전개한 주문을 일일이 없애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지박거인이란 주문을 사용했을 땐 마법을 사용할 수 없구나.〕
참 일찍도 알아주신다.
지금은 쓸 생각도 없고 말이야.
드미트리와의 전투는 회귀 전과 다른 양상이었다.
전생에는 박하늘 씨가 전위.
유진이 후위를 맡았다.
마법전에서는 [아우라]를 빼도 드미트리가 우위.
유효한 타격을 입힐 수 있는 건 망자 된 몸으로 초월의 경지에 도달한 박하늘 씨 뿐이었다.
오러 블레이드보다도 더 윗 단계의 힘인 오러 파이어.
헬 나이트 버전으로는 암흑 강염이라고 하던데.
어쨌든 암흑 강염은 90% 경감된 위력으로도 드미트리를 해할 정도의 위력을 지녔으니.
이번에는 반대였다.
'내가 다가가고. 파프너가 후긴과 무닌을 견제한다.'
[역천의 가호]는 [아우라]를 무효화할 수 있다.
최후 결전을 준비하는 와중에 파프너와 손속을 겨루며 오러 블레이드까지 준비한 이유다.
물론.
유진이 펼치는 오러 블레이드는 반쪽짜리다.
무에 대한 깊이가 모자라지만 영력 응용에서의 깨달음을 끼워 넣은 불완전한 형태.
그럼에도.
[아우라]만 무효화하면 마법왕을 찢어발길 장도는 되었다.
명해룡의 압도적인 마력을 바탕으로 전개하는 거라 위력은 어지간한 둠 나이트의 암흑 강기와 맞먹었으니.
힘으로 안 된다고요?
그럼 더 많은 힘을 써보면 된다.
마법왕도 유진이 두르고 있는 오러 블레이드의 위험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
'화산 폭발을 막아낼 때 무리했나.'
드미트리는 미간을 찌푸렸다.
연거푸 마력을 재배열하고.
룬 문자로 엮어내어 위력을 증폭, 마력 소모와 시전 속도에 비해 월등한 효과를 지닌 마법을 쉼 없이 전개했다.
마력 총량에서는 명해룡과 합일을 마친 유진이 한 수 위.
거기에.
피해를 입혀도 [역천의 가호]로 충격 일부를 영력으로 치환해서 소모전에서도 그가 한 수 위였다.
이 상황을 타개하는 방법은 하나 뿐.
명해룡과 빙의 상태를 무너트리던지.
아니면 피해를 복구하지도 못하게 일격으로 반 이상을 부숴야 한다.
'소모전으로 가서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없을 줄이야.'
9성의 초월자.
어마어마한 마력 스탯은 물론이요.
오딘의 후원을 받아서 마음만 먹으면 세계를 멸할 수도 있는 힘을 지녔다.
그 막대한 힘으로도.
유진과의 승부에서 감히 앞선다고 말할 수 없었다.
마치 자신의 약점을 모조리 꿰뚫어보기라도 하는 것 같은 움직임.
그렇지만.
마지막에 승리하는 것은 자신이라고 굳게 믿었다.
*
[영혼이 혼탁해집니다.]
[성유물이 정신을 보호합니다. 혼의 타락이 저지됩니다.]
큭.
유진은 신음을 삼켰다.
소모전은 그에게도 큰 부담이었다.
용의 계곡의 수호자.
정패룡을 기반 삼아 만든 본 드래곤을 초월한 망자.
엘드리치 드래곤과는 다른 의미로 용에 근접해있는 괴물이다.
산 자인 유진이 죽은 몸에 빙의하는 것부터가 변수였고.
파장도 완전히 맞지 않아 명해룡과 링크 상태를 유지하려고 혼백의 파장을 틈틈이 조정해주어야 했다.
연동시킨 네 코어 덕에 영력은 넘쳐났지만.
그 힘을 다루는 유진의 정신력은 영원하지 않았다.
'누가 먼저 한계를 드러내느냐의 끈기 싸움.'
마법왕은 알지 못한다.
유진을 떠보듯이 찔러봤지만.
모종의 아티팩트나 성좌의 능력으로 예지 같은 걸 했다고 생각할 뿐.
'회귀'라는 이적으로 한 번 싸워본 상대이기에 허실을 알고 있다는 사실은 절대 알 수 없었다.
시간을 되돌리는 이적은 뭇 별 위에 이름을 기록한 성좌들조차 해낼 수 없는 일이다.
마법왕이 섬기는 아스가르드의 신왕 오딘조차!
그러니.
정보 차이에서 오는 불균형을 알아채지는 못할 것이다.
숨통이 끊어지는 순간까지도.
"후긴, 무닌. 그대들의 힘이 필요하구나."
마법왕의 손짓에 파프너와 대적하고 있던 두 아이가 앞으로 소환되었다.
"그거는 좀 아픈데."
"어쩔 수 없지. 그 분의 대리인이잖아."
후긴과 무닌은 손을 잡았다.
마주잡은 곳에서 새어나온 성광은 화산이 뿜어내는 매캐한 연기를 모조리 찢어발겼다.
오딘이 지닌 수많은 이명 중 하나인 '사냥의 신'.
사냥감을 관찰하고 알려주는 게 후긴과 무닌의 주요 업무다.
그 성질을 이용하면.
사냥에서 반드시 목표물을 맞춘다는 오딘의 성유물, 궁니르도 불러낼 수 있다.
성스럽기까지 한 빛무리에서 창날이 튀어나왔다.
흐릿해지는 두 아이의 모습.
소피아가 다룬 [물푸레나무창] 같은 위작이 아닌, 오딘이 아끼는 애병을 하계에 강림시켰으니 그 반동을 고스란히 감당해야 했다.
"우리 역할."
"끝이야."
화아악!
후긴과 무닌이 검은 깃털을 흩뿌리며 사라지고.
빛 사이를 비집고 나온 창날이 명해룡의 가슴팍을 노리고는 투콱, 맹렬한 기세로 쏘아졌다.
9성 궁극마법에 필적하는 위력.
후긴과 무닌도 강력한 신수였지만.
현세에 강림하면서 능력치가 하락된 것과 달리, 온전한 힘을 실어낸 창이 쏘아지는 것만으로 태풍이 몰아치고 지진까지 일어났다.
피할 순 없다.
궁니르의 특징은 반드시 맞추는 것.
[주인!!!]
파프너가 소리쳤다.
이건 위험하다.
죽음을 선고받은 거나 마찬가지다.
[걱정 마.]
네 개의 코어가 위이이이잉! 폭발적으로 영력을 내보냈다.
"아직도 힘에 여력을 두었다는 게냐."
[너무 대단한 몸이라서 나도 부담되거든.]
"허."
100미터가 넘는 거구에서 뿜어내는 오러 블레이드가 한 점으로 모 인다.
너무 엄청난 출력이다보니 손실되는 영력이 반 이상이지만.
괜찮다.
손실까지 고려해서 일으킨 최대 출력이니.
궁니르가 한 점으로 모은 오러 블레이드와 충돌하는 순간, 소리도 나지 않았다.
모든 것이 지워져버렸다.
바람 한 점.
진동 하나 없이.
유진의 기운만을 소멸시켰다.
단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은 물밀듯이 밀려오는 영력의 파도를 헤쳐가지 못해서였다.
"신왕의 창도 버텨낼 정도라니. 대단하군."
그 정도면 됐다.
궁니르를 불러내도 유진을 쓰러트리지 못할 건 알고 있었다.
드미트리는 천천히 마력을 재배열했다.
망막 위로 떠오르는 룬 문자.
신왕의 대리자가 되면서 하사받은 [오딘의 눈]이 초월자조차 다룰 수 없는 10성의 힘을 엿보았다.
마력보다 한층 고차원의 힘인 신력.
삼라만상의 이치를 꿰뚫어보고 섭리도 주물럭거릴 수 있는 9성 마법사조차.
이 힘을 다루기 위해서는 오딘의 조력이 필요했다.
[절대주언(絶代呪言)]
[9중 룬어 결합]
[트렌센던트 매직 - 로드 오브 버밀리온]
아홉 왕국에서 빚어낸 순수한 파괴의 힘을 집약시킨 초월 마법이다.
얽히고설키면서 증대되어가는 신력.
한반도를 넘어 만주, 그리고 극동 공화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전역을 일거에 소멸시킬 정도의 에너지가 굉음을 내며 꿈틀거린다.
'허 참.'
얄궂었다.
하필 저 주문이라니.
전생에서 '회귀'라는 이적을 가능하게 만든 주문이다.
당시 유진은 초월 마법을 크로노스의 회중시계의 발동 원료로 역이용했었다.
지금은 상황이 좀 다르지.
[암흑마재생]
[월식의 술]
[초월기 - 데스 필드]
〔언제 마법을 준비해둔 게냐? 아니. 그것보다 할 수는 있던 것이더냐!〕
'안 된다고 말하진 않았거든요?'
명해룡을 매개체 삼아 만든 지박거인.
그 막대한 영력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데.
마법이라고 안 되겠나.
다만.
이제까지 닥치고 돌격만 한 것은 이 순간을 위함이었다.
마법왕이 비장의 수단을 꺼낼 때.
가장 아프게 때리기 위해서.
드미트리가 빚어낸 초월 마법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회귀 전보다 느린 발동속도.
숙련도 차이도 있을 거고, 마력 소모도 그만큼 컸다.
백두산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 속성 마력의 영향도 받았을 거고.
어느 쪽이 되었든.
네 코어를 회전시켜서 미리 저장해놓은 마법을 발동시키는 유진보다는 한 수 느리다는 것이다.
증폭되어가던 신력을 향해 솟구치는 검은 장막.
언데드 제작 광역기와 동일한 이름의 술법이지만, 효과는 아예 달랐다.
유, 무형을 가리지 않고 '죽음'을 선고해버리는 주문.
주술과 네크로맨시, 그리고 저주까지 더해서 만든 궁극 마법이 스파크를 일으키고 있는 하늘을 시커멓게 물들였다.
"커헉!"
드미트리의 입에서 왈칵 피가 솟구쳤다.
초월 마법 로드 오브 버밀리온이 완성되기 직전.
데스 필드가 퍼져나가면서 주문의 리바운드가 고스란히 와버렸다.
궁니르를 버텨내면서 궁극 마법까지 준비해놨다고?
"말도 안 돼!"
[응. 돼.]
이 순간을 위해.
전생과 현생을 모조리 갈아 넣었다.
드미트리는 어떻게든 초월 마법을 수습해서 유진의 머리 위에 떨어트리려 노력했다.
그렇지만.
유진이 한 수 더 빨랐다.
궁니르의 체류 시간이 끝나자마자 직선거리로 비행.
한 점으로 모은 오러 블레이드로 드미트리의 심장을 꿰뚫었다.
"내, 내가... 고작 이런 곳에서...."
[함께해서 더러웠고 다시는 보지 말자.]
9성의 절대자.
전 세계를 쥐락펴락했던 7대 가문의 가주.
시스템이 인정한 '왕'.
마법왕 드미트리의 최후는 화려한 위명에 어울리지 않게 허무했다.
300화
이야기의 끝
[로마노프 가문, 블랙 컴퍼니에 선전포고!]
[극동 공화국의 갈등. 정면충돌로 이어지나?]
[경고는 없다. 로마노프의 선언.]
백두산 대전이 일어나기 직전.
로마노프 가문에서는 엠바고를 해제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만이 아닌, 전 세계 각지에서 나온 선전포고 기사.
극동 공화국에서 벌어진 충돌이 국지적인 일이라고만 여겼던 대부분의 사람은 놀라서 비명을 질렀다.
"마법왕이 직접?!"
"세상에. 이제 한국은 어떻게 되는 거지?"
"로마노프 가문에 동아시아에 진출하면 세력구도가 어떻게 되는 거야."
최근 두각을 드러낸 블랙 컴퍼니.
성자이면서 망자를 부리는 유진은 해양 루트를 중심으로 여러 지역에 거점을 마련해서 양지와 음지 모두 영향력을 빠르게 키워가고 있었다.
그렇지만.
7대 명가 중 선두를 달리는 로마노프에 비해서는 무게감이 부족했다.
이미 상황을 짐작하고 있던 다른 7대 명가들은 정보원들을 한반도 북부에 파견해서 상황을 읽어내려 했다.
그렇지만 사태 파악은 쉽지 않았다.
마담이 부리는 진혈의 뱀파이어들은 다른 가문들의 개입을 철저하게 차단했다.
전투원들을 이끌고 왔으면 상황이 달라졌겠지만.
니콜라이가 전 세계를 순회하며 극동 공화국 사태를 빌미 삼아 한반도를 징치할 것을 말한 탓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순 없었다.
"정말이지. 사람을 험하게 부리는 분이라니까요."
마담은 길게 푸념했다.
정보 통제를 한 근본적인 이유는 따로 있었는데.
로마노프 가문이 용병을 고용해서 무방비한 옆구리를 노리지 않을까 하는 우려였다.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졌으면 마담 휘하 뱀파이어들이 나서서 막아달라는 부탁을 받아서 정보 통제까지 나서게 되었다.
그 때문에 주전장에는 접근도 하지 못했고.
화산이 폭발하기 직전까지는 어떤 상황인지 하나도 몰랐다.
쿠아아아아앙!!!
느닷없는 로마노프 가문의 선전포고에 놀라고 있을 때.
한반도 이북에서 발생한 이변, 백두산 폭발은 사람들의 혼란을 마구 부추겼다.
[한반도 멸망 시나리오? 백두산 폭발!]
[백두산이 폭발할 가능성? 전조가 없었다는 전문가의 발언]
[대량의 마력 감지. 인위적인 폭발?]
[백두산에서 무슨 일이?]
이북에서 피어오른 엄청난 양의 연기와 지진.
신준석과 육룡이 철저하게 계산해서 화산 폭발에서 발생하는 마력을 대부분 위로 보냈지만.
미세한 힘이 샌 것만으로 이북 일대는 지진으로 몸살을 앓았고.
서울도 여진의 영향을 받았다.
"로마노프 가문이 벌린 일일까?"
"이러다 진짜 우리나라 망하는 건 아닐지."
"아. 그럼 이렇게 있는 게 맞냐?"
혼란으로 치닫는 사회를 안정시킨 건 불사조 길드였다.
미리 유진에게 언질을 받은 김영수 길드장은 무장시킨 헌터들과 미리 고용해놓은 용병들을 동원해서 서울의 질서를 지켰다.
"서울은 안전합니다."
"별 일 없이 모두 끝날 테니 모두 안심하세요."
성천 그룹과 대한제약은 이 사태를 대비해서 알음알음 정부에 로비를 해놓았고.
기름칠해놓은 언론들이 긍정적인 기사를 쏟아내면서 사회가 공황 상태에 빠지는 것을 최대한 억제했다.
그로부터 얼마 후.
[로마노프 가문, 백두산에서 패배하다.]
[마법왕 생사 여부는?]
[블랙 컴퍼니. 로마노프 가문과의 일전 피할 수 없지만 승리했다고 밝혀....]
7대 명가 중 제일을 다투는 가문.
로마노프 가문의 패배 소식은 전 세계를 뜨겁게 달구었다.
가문의 수장인 드미트리가 누구던가?
전 세계에서 최초로 아홉 번째 성위를 달성한 초월자요.
시스템이 '왕'이라고 인정한 헌터다.
창 우페이가 두 번째로 초월의 영역에 도달하면서 유일한 9성이라곤 할 수 없지만.
마법을 과학에 접목시켜서 실생활은 물론이요. 군사 영역까지 적용해서 일곱 가문 중에서도 제일이라고 공공연히 언급되는 세력이다.
"로마노프 가문이 졌다고?"
"그럼 블랙 컴퍼니가 새로운 7대 명가로 들어오는 건가."
"마법왕은 어떻게 되었는데?!"
백두산 폭발로부터 이틀 뒤.
니콜라이 안드레예비치 로마노프는 핏기 하나 없는 얼굴로 기자들 앞에 섰다.
부목을 댄 팔과 다리.
이마에도 붕대를 매고 있어서 기자회견보다는 병실이 어울리는 모습이었지만, 나설 수 있는 사람은 자신뿐이니 이를 악물었다.
"이런 모습으로 기자회견을 하게 되어 먼저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블랙 컴퍼니와 무슨 이유로 충돌하신 겁니까?"
"마법왕의 신변에 문제가 생겼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로마노프 가문은 블랙 컴퍼니에게 패배한 것이 사실입니까?"
늘 로마노프 가문에서 주는 먹이를 받아먹기에 바빴던 언론.
이제는 흉포한 이를 드러내며 가문까지 뜯어먹으려 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병색이 완연한 상태에서도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
"블랙 컴퍼니하고는 사소한 오해가 있었는데 크게 비화되었을 뿐입니다."
"전면전을 선포하셨을 때하고는 말씀이 다릅니다만."
"오해가 풀렸으니까요."
"그럼 마법왕께서는 어떻게 되신 겁니까?"
"가주님께서는 부상을 크게 입으셔서 요양 중이십니다."
"전쟁 이후 두문불출하신다는데요. 혹시..."
"기자님께서는 제 입으로 가주님께서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으신 겁니까?"
"아, 아닙니다."
니콜라이는 힘 없이 미소를 지었다.
"농담입니다. 가주님께선 부상도 큰 데다 블랙 컴퍼니와의 오해로 빚어진 사태에 책임을 질 겸 향후 5년은 대외활동에 나서지 않기로 약조했습니다."
"블랙 컴퍼니의 조건을 그대로 수용하셨다는 말씀이군요."
"그렇습니다."
사실상 5년 간 봉문을 하겠다는 선언.
그 말로써.
이번 전쟁에서 승자와 패자가 확실해지는 순간이었다.
*
니콜라이의 기자회견을 보던 유진은 TV를 껐다.
〔괜찮겠느냐?〕
'뭐가.'
〔그대의 대적자를 쓰러트린 일을 공표하지 않아도 되겠느냐는 말이니라.〕
'다른 7대 명가까지 자극할 필요는 없잖아.'
세간에 알려진 것과 달리.
마법왕은 죽었다.
화근을 남겨둘 순 없지.
이번에는 정보의 불균형과 갖가지 안배 덕에 승리했다.
다음에 같은 수가 통하리란 보장은 없다.
상대방은 마법왕.
전 세계 최초로 시스템에서 왕이라고 인정받은 강력한 헌터이자, 오딘의 계약자다.
그러니.
기회가 났을 때 반드시 죽여야 했다.
〔밝혔을 때 얻어지는 명예와 위명, 그리고 격이 있지 않겠느뇨.〕
'그야 그렇지. 서로 비등한 승부였다는 거랑 완벽하게 이긴 건 차이가 크니까.'
대외적으로는 유진도 이번 전쟁의 여파로 큰 부상을 입어 두문불출하는 상황이다.
반쯤은 사실이기도 하고.
명해룡에게 빙의한 후유증은 지금도 유진을 좀먹고 있다.
[정체성이 흔들립니다.]
[정신 오염 Lv 74]
혼백의 오염.
성유물까지 동원했어도 영체에 새겨진 상흔을 치유하진 못했다.
최소 한 달.
길면 1년까지는 고생해야 한다.
영력 재배열 속도 감소는 기본이고.
이따금 보이는 환각이나 환청이 정신을 두드리니.
참 환장할 노릇이다.
'성위 하락 페널티도 반년인가.'
변칙으로 초월의 영역에 발을 담갔다.
전생에 도달했던 경지라지만.
현 시점에서는 혼백에 쌓은 격이 모자라니, 당연히 탈이 날 수밖에.
6개월 동안은 성위가 한 단계 하락한 채로 지내야 한다.
그래도 말이야.
개똥밭에서 구르더라도 이승이 낫더라고.
한 번 죽어보니 확언할 수 있다.
〔엄밀히 말하면 생과 사의 경계에 섰을 때 과거로 돌아온 것 아니더냐.〕
'대충 넘어갑시다. 엄청 깐깐하시네.'
마법왕의 죽음을 함구하는 이유는 한 가지 더 있다.
7대 명가에서 퇴출되고 무수한 이권을 놓칠까 염려한 로마노프 가문은 유진에게 거래를 신청했다.
〔형님의 죽음을 밝히지 말아주시면 원하는 바를 모두 들어드리겠습니다.〕
가문 정예를 몰살하고.
경외하는 가문의 수장이자 사적으로는 형을 죽인 자에게.
니콜라이는 머리를 숙이고 간청했다.
〔한데 왜 자비를 베푼 게냐?〕
'다 목 따버리라는 이야기로 들리는데.'
〔그대에게는 충분히 그럴 힘과 능력이 있었도다.〕
마법왕 드미트리를 쓰러트렸을 때.
지상으로 빠져나온 제1 마법 병단 잔존 세력은 대부분 쓰러졌고.
소피아와 제2 마법 병단도 괴멸 직전이었다.
유진이 마법왕의 죽음을 알리지 않았어도 모조리 백두산에 매장할 수 있었을 터.
'그럼 너무 경계를 받잖아.'
마법왕의 죽음을 밝히지 않은 이유와 동일하다.
'우리 계약 잊어버리셨수?'
폐위된 티탄의 왕.
크로노스와 계약할 때 조건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낙성좌가 된 크로노스의 별빛을 되찾아주는 것이요.
두 번째는....
〔패륜아에게 복수하는 것을 말하는 게냐.〕
'로마노프한테 깨갱했던 카리만리스잖아. 완전히 밀어버렸으면 우리랑 대립 각을 바로 세울 걸?'
지금은 약체화된 로마노프 가문과 투닥거리게 놔두자.
성좌 나리의 한을 풀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전력을 회복하고.
영토까지 넓힌 후에 일거에 정복하면 카리만리스 가문의 후원자인 제우스에게 빅엿을 선사할 수 있다.
〔과연. 많은 것을 염두에 둔 결정이로구나.〕
크로노스는 작게 중얼거리며 납득했다.
후아.
피곤하다. 피곤해.
드미트리를 쓰러트린 뒤에도 태평하게 쉴 틈은 없었다.
우선은 백두산 폭발에 대한 책임을 져야 했다.
신준석과 육룡이 여러 수단을 사용해서 한반도에 피해가 가는 것을 최소한으로 했다지만.
피해가 0은 아니었고.
인적, 물적 피해와 더불어 사회의 혼란까지 야기했다.
"당시 전쟁이 너무 격돌해서 백두산이 자극을 받아 폭발로 이어졌습니다."
이게 블랙 컴퍼니에서 내놓은 공식 입장이다.
로마노프 이겨먹겠다고 백두산을 터트렸다고는 말 못 하지.
그럼 영원히 살 정도로 욕 처먹을걸?
아무튼 우연임.
다행히 사망자는 없어서 중, 경상을 입은 사람들에게는 치료비를 듬뿍 쥐여 주었고.
물적 피해에 대해서도 2배 가까운 보상금을 전달했다.
헌터협회하고도 조율할 부분이 있었고.
대외적인 활동까지 하면 아주 숨 돌릴 틈이 없이 움직였다.
전쟁을 마무리하고 사태 수습까지 걸린 시간만 약 1달.
이제 숨 좀 돌리겠다 싶어서 의자에 몸을 파묻었다.
〔하면 그대의 목표는 이제 달성한 셈이로구나.〕
'그렇지? 성좌 나리 복수는 시간만 있으면 충분히 할 것 같고.'
〔앞으로 목표는 무엇으로 삼으려느냐?〕
글쎄.
목표라.
딱히 생각해본 적은 없다.
전생에서 로마노프 가문과 대립각을 세우고 충돌을 대비한 게 5년.
회귀 후 3년까지 더하면 8년 동안은 한 목표만 바라보고 직진한 셈이다.
7대 명가 중 제일?
세계 정복?
그런 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로마노프 가문 정예 마법사들의 시체 중 멀쩡한 것만 건져냈는데도 피해 상당 부분을 메울 수 있었다.
특히 마법계 언데드는 적합도가 맞는 몸뚱이를 찾기가 어려워서 더 이득 본 느낌이고.
'음. 그럼 부모나 찾아볼까.'
전생과 현생의 복수를 이루게 해준 물건.
[크로노스의 회중시계]는 얼굴도 모르는 부모가 맡기고 간 물건이다.
고장나서 제 성능을 알 방법이 없었겠지만.
보통 기원이 아닌 물건을 아이에게 맡길 만한 사람들이라면 평범한 사람은 아니겠지?
〔그 부분에 대해 할 말이 있느니라.〕
'제발 성좌 나리가 내 부모님란 이야기만 하지 말아줘.'
〔어이하여 그런 끔찍한 생각을 하였느뇨.〕
'말이 심하네. 끔찍하다니.'
유진은 턱을 만지작거렸다.
'질문하는 타이밍도 그렇고. 평범한 사람이 성유물을 가지고 있을 리 없어서 말이야.'
〔크하하하핫. 그 추론은 틀렸느니라.〕
'그럼 뭔데요?
〔짐의 회중시계는 비장의 수단이니라.〕
예언은 반드시 실현된다.
자식들을 삼키면서도.
크로노스는 언젠가 모든 것을 잃어버릴 날이 오리라고 생각했다.
그 순간을 대비해서 만든 게 회중시계다.
〔찬란한 별빛을 되찾아줄 가능성이 높은 필멸자에게 인도되게끔 말이지.〕
'뭐 그럼 운명 비슷한 거라고?'
유진은 미간을 찌푸렸다.
누군 개처럼 고생해서 인생 목표를 이루었다 했더니.
면전에서 운명 운운하면 기분이 좀 그렇잖아.
〔그건 아니니라. 짐의 기원은 예언과 관련이 없으니. 어디까지나 가능성을 찾은 것뿐이니라.〕
크로노스는 담담하게 말했다.
성유물이 무슨 인물을 찾아올지.
어떤 상황에서 만나게 될지.
마지막으로.
정말로 크로노스는 신성을 되찾을 수 있을지.
어느 것 하나 확실하지 않은 미래에 베팅을 걸었다.
〔계약자가 이루어낸 성과는 오롯이 스스로의 힘으로 일군 것이니 의심치 말지어다.〕
'이 이야기를 지금에서야 하는 건?'
〔그대를 저버린 부모에게 어떤 사연이 있겠지. 하나,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단 것이니라.〕
맥 빠지는 소리 하기는.
유진은 쳇, 하고 혀를 찼다.
〔하면 짐이 그대에게 새 목표를 하사하고 싶구나.〕
'들어보기는 할게.'
〔그대가 열어준 죽음을 거스르는 영역은 사실상 방치된 상황이니라.〕
'방치, 라.'
누구도 주관한 적 없었던 전인미답의 영역.
크로노스의 성질을 이용해서 해당 성질의 주관자가 되게 했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의 전공 영역은 아니라서 썩 관리가 잘 되는 편은 아니란다.
〔짐의 영역을 가꾸는 정원사가 되어줄 수 있느냐.〕
'파트너라면서 이젠 갑을 관계로 바뀌는 거야?'
〔짐은 그대를 동등한 자로 인정하겠노라. 그대가 언젠가 뭇 별 위에 이름을 새기면 짐의 보좌 우편에 그대의 자리를 두마.〕
호오.
그건 좀 마음에 드는군.
'성좌라. 나도 그 영역에 도달할 수 있는 건가?'
〔짐이 그대를 이끌어주겠다.〕
'계약성립이다.'
혼백에 새겨지는 맹약의 흔적.
새 목표에 만족해서 히죽거리고 있을 때.
"주인. 들어간다?"
콰아앙!
"문 뜯기겠다."
"어두침침한 곳에서 언제까지 있을 거야."
"난 환자라고."
"정신이 아프다며. 이런 곳에서 혼자 있으면 더 심해질 걸."
생전의 모습으로 변한 파프너가 싱그러운 웃음을 지었다.
가느다란 손이 유진의 팔을 슬쩍 잡았다.
"바람이나 쐬러 가자."
전생과 현생의 파트너.
또한.
비밀을 공유하고 있는 신뢰할 수 있는 존재.
"그럴까."
유진은 못 이기는 척 파프너의 손에 끌려서 일어났다.
*
작가 후기
안녕하세요. 글수저입니다.
댓글이 아니라 지문으로 인사를 드리는 건 처음이네요.
어째 댓글로 인사를 남길 땐 늘 아프거나 아이가 아프거나 해서 육아의 간접체험을 해드리게 한 것 같습니다만 ^^;;
이 작품은 네크로맨서와 성직자를 같이 쓰고 싶다, 라는 아이디어로 시작한 글이었습니다.
즐거운 부분도, 아쉬운 부분도 있었지만 엔딩만큼은 글을 시작하면서 생각했던 대로 끝낼 수 있게 되어 그 부분만큼은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해소하지 못한 떡밥이나 다루지 못한 사이드 스토리도 있지만 남은 공백은 여백의 미로 남겨볼까 합니다.
마지막으로 옆에서 늘 응원해준 아내와 힘이 되어주는 아이, 작품 교정과 피드백으로 물심양면 도와주신 최하림 피디님, 그리고 작품을 봐주신 독자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지금까지 '네크로맨시로 레벨업하는 성자님'을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