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카맣게 눈앞을 가리던 장막 같은 눈꺼풀이 아침이 되자 붉게 눈을 쑤셨다. 벽시계를 보니 시침이 숫자 9에 가 있고 분침은 겨우 1을 가리키고 있었다. 낭패다. 저 시계는 1시간 빠르기에 지금은 8시이고, 앞으로 기억 조각을 전달받으려면 1시간이나 남았다는 뜻이다. 멜루시네는 다시 낮잠이라도 잘까 고민하다 몸을 일으켜 빈 커피 잔을 들고 거실로 다시 돌아갔다.
멜루시네의 하루는 길다. 무섭도록 길고, 무료하고, 또 길다. 그보다 하루를 1시간 더 일찍 끝마치는 시계를 바라보며 항상 부러움을 느낄 정도로. 기억 조각들은 그의 하루를 유일하게 빨리 가도록 만드는 것들이었다. 솔직히 멜루시네에게 기억을 되찾는 것은 별 의미가 없었지만, 그것이 그에게 부여하는 짧은 하루가 그가 그것에 집착하도록 만들었다. 멜루시네의 하루는 그렇게 어그러진 루틴을 억지로 끌고 최대한 빠르게, 최대한 짧게 끝나갔다.
-덜그럭, 치익.. 딸깍, 딸깍, 딸깍...
낡은 물건이 흔히 내는 소리를 온몸에서 발산해 내는 수신기를 바라보다 멜루시네는 거실에 엎드린 채로 전원 버튼만 계속 누르며 의미 없이 시간을 보냈다. 기억 조각이 발송되어야지만 전원 버튼에 빨간 불이 들어오고 그제서야 작동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멜루시네는 지루했고, 수신기는 잠잠했다. 시계는, 아직도 겨우 9시 1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