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EX급 빌런이 악인을 너무 잘 죽임 97화
파밀리아 (4)
이전석의 신형이 순식간에 공기를 꿰뚫고 날아왔다.
안드레는 그에게서부터 말로 포현 못할 이질적인 감각을 느꼈다.
그의 몸을 둘러싼 검붉은 기운에 심장박동이 더욱 거세졌다.
본능이 말한다.
눈앞의 존재는 말 그대로 격이 다름을.
'이게 벽을 넘은 자란 말인가?'
신격.
일반적인 격과는 차원이 다르다.
양이나 질부터, 영혼을 찌르고 들어오는 듯한 느낌까지.
'확실히 그 아이가 눈이 돌아갈 만하군.'
스텔라는 회의에서 큰 목소리로 이전석에 대해 발언했다.
그녀는 무언가에 한 번 꽂히면 광적인 집념을 보이곤 했는데, 특히나 이번에는 그런 경향이 더 강했던 것이다.
안드레가 이전석에게 흥미를 보인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종으로서의 벽을 어떻게 넘었는지는 둘째 치더라도, 자신의 손녀가 그렇게까지 집착을 보이는 건 처음 있는 일인지라 자연스레 관심이 갔다.
그리고 지금, 신격을 해방한 그를 본 순간 확신했다.
'강하다.'
S급이나 SS급···.
그런 걸로 매길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카앙-!
건틀릿이 단도의 날을 막아선다.
불꽃이 튀며 건틀릿이 진동했다.
'너희도 느낀 게냐?'
론과 아즐리.
젊었을 적 우연히 S급 던전에서 구한 쌍둥이 무기.
이들은 에고를 지닌 무구로서, 공격력을 극단적으로 높여준다는 심플하기 그지없는 효과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그들이 이전석의 불길한 기운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안드레는 자신의 마나를 건틀릿에 흘려보내 그 둘을 안정시켰다.
곧 진동이 줄어들기 시작한다.
동시에 안드레가 발을 내딛었다.
왼팔을 작게 움직여 단도를 흘려내고, 오른손으론 그대로 이전석의 복부를 노린다.
그때.
"음?!"
안드레의 전신을 푸른 실이 옭아맸다.
마나로 만들어낸 족쇄였다.
그러나 의미 없는 구속이기도 했다.
안드레가 전신에 마나를 흘려보냈다.
굳이 힘을 쓸 필요는 없었다.
콰앙-!
파쇄.
마나에 마나가 부딪혀 박살 난다.
파훼보단 조금 더 과격한 방식으로, 상대에 비해 압도적인 마나량을 지니고 있을 때 가능한 방식이었다.
"고작 1초를 벌었군."
안드레는 다시 오른손에 박차를 가했다.
그의 팔이 주홍빛 불꽃으로 맹렬하게 타오르며 사방에 열기를 퍼트렸다.
그때.
"그 1초를 원했습니다."
이전석이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었다.
직후 이전석의 신형이 비틀어졌다.
아지랑이처럼 사라지는 모습.
기척마저 희미해진 것이, 마치 세상에서 완전히 모습이 지워진 듯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안드레의 대처는 빨랐다.
사방으로 마나를 퍼트려 사라진 이전석의 기척을 잡아낸 것이다.
'뒤로군!'
그가 재빨리 몸을 돌렸다.
그런데.
'소환수?'
그곳에 있던 건 이전석이 아닌 데스 나이트 로드였다.
이 불길한 모습은 TV에서 봐서 알고 있었다.
녀석이 방패를 앞 새운 채 검을 휘둘러 온다.
S급을 상회하는 힘이라곤 하나 안드레에게 비할 바는 아니었다.
문제는 데스가 공격을 감행함과 동시에 등 뒤에서 이전석이 모습을 드러냈다는 사실이었다.
일전 인형사이던 윤진을 상대하며 사용했던 것과 비슷한 수법.
"절개."
이전석이 발을 쿵- 내딛으며 단도를 위에서 아래로 내리그었다.
이전과는 감히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위압감이 전신을 내달렸다.
"······이거 한 방 먹었군."
그런데 어째서일까.
안드레는 천장과 바닥을 긁으며 다가오는 참격을 보고도 즐겁다는 듯 웃음을 흘렸다.
그가 왼손으로 데스의 검을 잡았다.
그리고 오른손.
자신을 향해 밀어닥치는 초승달 모양의 참격을 물건 잡듯 낚아챈다.
마취 검이라도 쥐는 듯한 모양새다.
안드레는 왼손에 쥔 검과 함께 데스를 자신에게 끌어당기며, 오른손에 쥔 절개의 참격을 그대로 데스를 향해 휘둘렀다
직후.
콰과광-!
굉음이 울렸다.
천장과 벽이 뜯겨져 나가고, 주홍색 불꽃이 갈라진 데스의 몸을 완전히 불태웠다.
회색 재가 바람을 타고 흩날린다.
그 사이로 스며드는 태양빛.
"이거 참···."
이전석은 작게 헛웃음을 흘렸다.
참격을 손에 쥐고 휘두르다니.
법칙을 무시하고 있지 않은가.
물론 격이나 마나를 이용한다면 불가능할 것도 없다.
그럼에도 절개급의 공격을 저리 손쉽게 잡아채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됐다.
애초에 천보 - 구형을 섞지 않은, 혈격조차 없는 절반뿐인 절개지만···.
격, 레벨, 수준.
그런 것들이 차원이 다르다.
과연 권좌라고 해야 할까.
'아직은 순수한 힘만으로 상대할 정도는 아니로군.'
그야 당연하다.
지금까지 수많은 강자를 죽였다.
개벽연합의 브랜던,
화산의 최신과 최원율.
그들의 공통점은 이전석보다 뛰어난 강자라는 것이었고, 또 한 가지는 특별한 술수나 요행을 통해 죽였다는 사실이었다.
즉, 특별한 술수나 요행이 아니었다면 결코 상대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것들도 엄연한 승리지만 이전석은 거기서 만족할 생각이 없었다.
세상에 강대한 적은 수도 없이 많다.
앞으로 나타날 재앙은 어떠한가.
사람들은 칠대 재앙이라 부르곤 하지만, 그것은 앞으로 구대 재앙과 삼대 역병으로 나뉘어 불리게 된다.
총 열셋에 해당하는 규격 외 괴물이 세상에 등장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명계에서 자신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것까지 생각하면······.
'힘이 필요해.'
그 누구보다 강한 힘이.
"자네는 싸움을 즐기는 성격은 아닌 모양일세. 그런데도 아주 강한 힘을 원하고 있어."
문득, 안드레가 그리 말했다.
성화의 효과로 이전석의 감정을 읽어낸 걸까.
정답이었다.
"세상에 지랄맞은 놈들이 워낙 많아서 말이죠. 당장에 화산만 해도 그랬고···."
"허허, 맞는 말일세. 요즘 세상에는 빌어먹을 것들이 샐 수 없이 널려 있지."
"그것 말고는 또 보신 게 있으십니까?"
또 본 게 있느냐.
성화를 통해 느낀 이전석의 감정이 달리 있냐는 말이었다.
그에 안드레는 잠시 고민하는 듯했다.
"글쎄···. 아직 많은 걸 읽지는 못했네. 허나 적어도 자네가 다음 일격을 마지막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만은 느꼈지."
"그렇군요."
이전석이 심드렁하게 대답하며 재차 자세를 잡았다.
겉으로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안드레의 말 대로였다.
이전석은 다음 일격으로 이 싸움을 끝내고자 했다.
압도적 강자와의 싸움에서 시간을 끄는 건 무의미한 짓이다.
누군가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는 대련이라면 더욱 그렇다.
안드레는 조금 더 이전석과 어울리고 싶어 하는 모양이지만, 굳이 이전석이 그의 감정에 맞춰줄 이유는 없었다.
마냥 싸움을 즐길 여유나 시간도 없고···.
어차피 광폭화와 짐승화도 거의 끝나가고 있다.
더 이상의 장기전은 이전석에게 불리했다.
그러니.
'지금 내가 사용 가능한 최대한의 일격을 사용한다.'
툭-.
이전석이 발을 앞으로 내딛었다.
그의 몸으로부터 마나가 발아해 사방에 술식을 새겼다.
청색으로 이루어진 막이 이전석과 안드레를 둘러싼다.
'삼연성(三聯星.)'
세 개의 결계를 하나로 압축시켜 엮어낸 결계.
증폭과 강화, 그리고 융화.
앞선 두 가지의 효과가 융화를 통해 뒤섞여 더욱 비대해진다.
그리하여 이전석의 신격이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해져 사무실 전체를 검붉게 물들였다.
'이거, 가만 내버려두면 안 되겠군.'
안드레가 두 눈을 날카롭게 떴다.
신격이라는 것은 권좌인 그가 보기에도 무척이나 이질적이어서, 압도적인 강함의 차이가 있음에도 본능적으로 영혼이 움츠러들고 말았다.
화륵-.
이윽고 안드레의 전신이 주홍색 불꽃으로 타올랐다.
그것에 격이 뒤섞여 이전석의 신격에 대항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전신의 불꽃이 오른손에 모여 한 점으로 집중되기 시작한다.
이전석의 신격이 커진 건 아마 결계의 영향일 테니, 그걸 완전히 부숴버릴 심산이었다.
그런데.
"······."
돌연 허공에 데스가 나타났다.
바람을 타고 몰려든 회색 재가 점토처럼 모여 굳어지더니 언데드의 형상을 취한다.
격을 지닌 언데드는 이처럼 육체가 사라져도 끊임없이 재생하곤 했다.
사실상 불로불사나 마찬가지인 존재.
그렇게 되살아난 데스가 안드레의 앞을 가로막았다.
"주인을 지키려는 것이냐?"
"······."
데스는 여전히 침묵을 지켰다.
대신이라는 듯 황금빛 동공이 번뜩였다.
쾅-!
동시에 새까만 검을 아무렇게나 내버린다.
그리고 왼손의 방패를 앞으로 치켜들었다.
안드레에게 자신의 공격은 무의미하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그 모습에 안드레게 히죽 미소를 지었다.
"허면 막아 보게나."
이내 그가 오른손을 내찌르려던 순간-.
"왕을 위하여!"
등 뒤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스켈레톤 워리어.
두터운 뼈 갑옷을 입은 언데드가 검과 같은 뼈를 뽑아들며 달려들고 있었다.
빠르진 않다.
매섭지도, 위협적이지도 않다.
탁-.
안드레는 자신에게 달려드는 스켈레톤의 머리를 붙잡았다.
직후.
화륵-.
불꽃이 그대로 스켈레톤의 머리를 불태웠다.
역상성.
스켈레톤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재가 되어 바스러졌다.
그럼에도 주인에 대한 충성을 다하고자 한 것일까.
무너지는 뼈들이 발광하며 폭발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성가시군.'
세상에 소환수를 다루는 헌터를 몇몇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지능적인 연계를 하는 상황은 겪어본 바가 없어 영 성가시기 그지없었다.
안드레는 어쩔 수 없이 오른손에 모았던 성화를 일부 풀어내 더욱 강한 화력으로 스켈레톤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그러자 빠르게 재가 되어 사라지는 스켈.
폭발의 조짐조차 불꽃 속에서 한줌의 재가 되어 흩날린다.
그러나.
'문제는······.'
그 소환수를 다루는 주인이었다.
척-.
데스가 정자세로 방패를 치우며 옆으로 물러난다.
'그새 준비를 마쳤는가.'
두 소환수를 통해 시간을 벌고, 자신이 가진 모든 힘을 오직 단도 한 자루에 쏟아 부었다.
어느새 사방을 뒤덮었던 신격이 이전석이 든 단도의 날을 코팅하듯 휘감고 있던 것이다.
"죄송하지만 제가 하수인만큼 봐 드리진 않겠습니다."
"허허."
안드레가 옅게 웃음을 흘렸다.
"자네도 정도가 없는 건 똑같구먼. 그만한 일격을 퍼부우면 건물이 나마나질 않을 걸세."
과연 그의 말 대로였다.
이전석이 손에 든 작은 단도.
그것에 모여든 힘은 이전 사용한 절개와 비할 바가 아니었다.
권좌인 자신조차 긴장을 머금게 만들 정도의 막대한 에너지.
그것이 회색의 단도를 중심으로 휘몰아치며 용솟음치고 있었다.
"권좌를 상대로 힘을 아끼는 것부터가 예의가 아니죠."
그에 이전석이 어깨를 으쓱이며 대꾸했다.
안드레는 몇 번째인지 모를 웃음을 흘렸다.
이전석의 말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기에.
"허면 나 또한 가능한 최고의 일격으로 상대해 주겠네."
직후.
성화의 열기가 안드레의 오른손을 중심으로 맹렬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나선(螺線).
불꽃의 구가 서로 뒤얽히며 뒤섞인다.
'과연 파괴의 화신답군.'
이전석이 옅게 긴장을 머금었다.
주먹에서 느껴지는 기세가 마치 태양 그 자체를 연상케 했다.
하지만-.
'조금 부족하군.'
스켈 덕분에 오른손에 모였어야 할 성화의 힘이 일부 빠져나갔기 때문이리라.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오히려 잘 됐다.
여기서 더 강해졌다면 아무리 이전석이라도 상대하기 꺼려졌을 것이므로.
'······마냥 져줄 생각은 없어.'
이전석이 단도를 치켜들었다.
신격을 머금은 단도는 금방이라도 부서져 버릴 것처럼 떨리고 있었다.
'진혈도법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어.'
자하신공도 불완전하다.
최은하에게 구결을 알아내라고 말해두긴 했지만, 지금 당장 그것들을 하나로 모으긴 힘들 거다.
다만.
'절개는 스승님이 만들긴 하셨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매화검법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야.'
그러니 미숙하게나마 진혈도법과 섞일 수 있을 거다.
두 가지 모두 매화로부터 파생된 무학이었으니까.
툭-.
이전석이 한 발 더 내딛었다.
천보 - 구형.
파형의 위력을 극대화시킨다.
절개의 준비작업.
그러나 일반적인 절개와 달리 자세는 진혈도법을 자아내고 있다.
동시에 신격이 정전기처럼 전신을 내달렸다.
이전석은 더 망설이지 않았다.
쿠구궁-!
그가 내딛은 발치를 주변으로 바닥이 무너져 내렸다.
차락-.
코트가 저 스스로 펄럭이며 이전석을 공주에 매달았다.
그리고.
"오게나!"
안드레가 큰 소리로 외쳤다.
이전석이 단도를 휘둘렀다.
순간, 대기가 뒤틀렸다.
단순 착각 따위가 아니다.
단도의 주변이 아지랑이처럼 일그러졌다.
━━.
고막을 찢을 듯한 괴음이 바람처럼 지나가고-.
"절개."
힘이라는 개념의 폭류가 단도의 날을 깨부수며 나아갔다.
※ ※ ※
스텔라가 안드레에게 다가갔다.
스텔라는 그와 성이 다르지만 그의 손에 길러진 하나뿐인 손녀였다.
"그래서 이렇게 됐다는 거야?"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안드레를 따졌다.
이내 슬쩍 주변을 둘러봤다.
길드 건물.
정확히는, 빌딩의 최상층이 모조리 날아가 있다.
20층 가량의 높이가 완전히 붕괴되고 만 것이다.
거대한 검상과 곳곳에서 풍겨오는 짙은 탄내.
"내가 밑층 사람들을 대피시켰기에 망정이지···."
"뭐라 할 말이 없구나."
허허.
안드레가 속 편히 웃으며 답했다.
전혀 반성하는 눈치가 아니다.
그에 스텔라는 몇 번째인지 모를 한숨을 내쉬었다.
옛날부터 그랬다.
안드레는 주름이 자글자글한 노인이 되고서도 저 성깔을 버리지 못해 종종 일을 저지르곤 했다.
"상처는 좀 어때?"
스텔라가 안드레의 팔을 바라보며 물었다.
손등으로부터 팔을 일자로 가로지른 검상.
"괜찮다."
"괜찮기는. 포션으로도 치유가 안 되잖아."
그렇다.
이전석의 절개로부터 비롯된 상처는 이상하게도 최상급 포션을 마셨음에도 상처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의사 말을 들어 보니 세포 자체가 파괴된 모양이야."
안드레가 떨리는 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스텔라가 눈살을 찌푸렸다.
세포 자체를 파괴하다니.
이러면···.
"그거, 치료 가능한 거야?"
스텔라가 걱정 어린 어투로 물었다.
상처가 아물지 않으면 감염을 막기 위해 아예 팔을 절단하는 게 유일한 치료법일 수 있으므로.
그러나.
"격을 팔에 집중하면 미세하게 상처가 아물기는 하더구나."
그 말 대로였다.
정말 미세하긴 하지만 아물어가는 게 보였다.
문제는 그게 정말 미미하다는 것이었다.
다행히 피는 흐르고 있지 않긴 하지만···.
━자칫 잘못했으면 그대로 팔이 잘렸을 게다.
싸움이 막 끝났을 때.
안드레의 말을 들은 스텔라는 내심 기겁했다.
안드레는 권좌의 일각이며, 그중에서도 상위권의 실력을 가진 헌터였으니까.
그 검성과 라이벌로 거론될 정도다.
적어도 스텔라 자신보다는 훨씬 강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런 그의 팔을 자를 뻔했다고?
놀라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다.
"앞으로는 이런 건 좀 자제해. 심장 떨리니까."
"걱정해주는 거냐?"
"흥."
스텔라가 부끄러운 듯 고개를 돌렸다.
권좌인 그녀도 할아버지 앞에선 여전히 어리숙한 손녀일 뿐이었다.
그때.
"스텔라님."
멀리서 이전석이 다가왔다.
그도 안드레에게 입은 상처를 의료진들에게 치료를 받고 오는 길이었다.
다만 안드레처럼 부상이 심하지는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비슷하다고 해야 될까.
용포와도 같은 코트.
그것이 파도처럼 펄럭이며 안드레의 일격을 미세하게 비껴낸 것이다.
덕분에 자칫 몸의 절반이 불에 탔을지도 모르는 부상을, 고작해야 팔 하나로 끝낼 수 있었다.
물론 지금은 포션으로 치유 받은 덕분에 그조차 완전히 사라진 뒤였다.
반면 안드레는 아직도 상처가 그대로 남아 있으니, 미세하게나마 일전의 승부는 이전석이 이겼다고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면 할수록 어이가 없다.
권좌- 그중 상위권이라 알려진 화염과 겨뤄 이겼다고?
물론 진심으로 서로를 죽이고자 한 결투가 아니긴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황당하고, 당혹스러울 따름이다.
'저번에 봤던 그 모습보단 한참 못 미치지만······.'
스텔라가 이전석을 지긋이 쳐다봤다.
'그 모습'이었을 때보다 약하지만, 처음 그를 만났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졌다.
다르다.
그리고 달라지고 있다.
이전석은 매순간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었고, 스텔라는 그 사실이 못내 소름이 끼쳤다.
과연 그가 사람이 맞나 싶기도 했다.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이른 나이에 권좌가 된 스텔라 자신조차 이러진 못했기에.
"너······."
"잠시 만요."
스텔라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으나, 이전석은 그녀를 뒤로한 채 안드레를 바라봤다.
"일단 정산부터 하죠."
"정산?"
"자신이 벌인 잘못에 대한 책임은 져야 한다고 하셨죠?"
이전석이 희미하게 미소 짓는다.
그는 이번 일을 그냥 넘어갈 생각이 없었다.
따지고 보면 치명상을 입었을 지도 모른다.
전신이 성화에 불살라져 죽었을 수도 있는 일.
안드레쯤 되면 그 정도야 얼마든지 조율할 수 있겠지만, 중요한 건 그렇게 됐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었다.
"돈만으로는 보상이 아쉬울 것 같습니다만······."
"욕심이 없는 것 같으면서도 이득은 확실히 챙기는 타입이군."
"챙길 수 있는 걸 마다하지 않는 성격이라고 해주시죠."
"허허, 그러도록 하세."
허면.
"무얼 바라는가?"
나지막한 안드레의 물음.
이전석이 사뭇 진지해진 어투로 본론을 꺼냈다.
"대한민국 정부에서 지원을 요청한 칠대 재앙 고의 토벌."
거기까지 말한 이전석이 스텔라를 흘겨보며 말을 이었다.
"파밀리아 길드··· 정확히는 스텔라님의 주도 아래 진행되는 그 작전에 제가 중심이 돼서 참여하고 싶습니다."
"그냥 참여하는 것도 아니고 중심이 되게 해 달라······."
안드레가 흥미로운 눈빛으로 이전석을 쳐다봤다.
이전석은 안드레를 이어 스텔라에게 물었다.
"스텔라님은 제가 벽에 대해 알려주는 대신,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것에 한 해 무엇이든 들어준다 하셨죠?"
"너, 설마······."
스텔라가 무심코 눈살을 찌푸렸다.
이전석이 무얼 원하는지 깨달은 것이다.
"죄송하지만 고는 제가 가져가겠습니다."
회귀한 EX급 빌런이 악인을 너무 잘 죽임 98화
부화 (1)
칠대 재앙 고.
놈의 마석- 아니, 코어는 아주 특별한 성질을 지니고 있다.
정확히는 모든 재앙급 몬스터의 코어가 대체로 그러하다.
SSS급쯤 되는 마석이라면 그것은 이미 존재 자체가 전략병기나 마찬가지였으며, 잘만 이용한다면 드래드노트의 코어 이상으로 막대한 힘을 얻을 수도 있었다.
처음에는 드래곤의 알을 이용하고자 했다.
그래서 빠르게 강해질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적단도와 합쳐졌다.
다음에 얻은 드래드노트의 코어 또한 마찬가지였다.
영약은 영약대로 사용하지 못한 채 다른 무언가가 되고 말았으니······.
덕분일까.
이전석은 생각했다.
'이대로는 안 돼.'
강해지는 속도가 너무 느리다.
물론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지금의 이전석도 매우 빠른 편이었지만, 정작 이전석 자신 그조차 부족함을 느끼고 있었다.
이미 정상에 한 번 올랐기 때문일까.
강함에 대한 열망이 솟구쳐 올라왔다.
그렇다고 던전에서 레벨을 올리기엔 너무 느리고, 아스트로는 입장횟수가 정해져 있다.
극도로 신중하게 사용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때.
이전석의 눈에 칠대 재앙 고가 들어왔다.
놈을 죽여 코어를 취한다면······.
'지금보다 훨씬 강해질 거다.'
뿐이랴.
고를 토벌했을 때의 보상도 존재했다.
무려 SSS급의 몬스터다.
꽤 수준 높은 보상이 들어오겠지.
하물며 놈을 죽이면서 들어오게 될 선업은 어떠한가?
중국을 멸망시키고, 이제는 한국마저 위협하는 재앙.
그걸 죽이면 어마무시한 선업이 들어올 터.
당연하게도 이전석은 그걸 놓칠 생각이 없었다.
"죄송하지만 고는 제가 가져가겠습니다."
그가 스텔라를 바라보며 선언하듯 말했다.
스텔라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반문하였다.
"고의 등급을 알고나 하는 말이야?"
"SSS급이죠."
너무나도 단호한 대답 덕분일까.
스텔라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에게 망설임 따윈 없었다.
결심은 곤고해 보였고, 어떻게든 고를 죽이고자 하는 의지가 보였다.
"중국을 멸망시킨 칠대 재앙 중 하나. 극독을 머금은 몬스터로, 전설 속 베헤모스와 비슷한 외형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죠."
"지금 그런 걸 묻는 게 아니잖아."
작게 한숨을 내쉬는 스텔라.
"지금 네 실력으로 고는 죽일 수 없어."
"글쎄요. 그거야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일이죠."
"알아."
모를 리가 없다.
한때 권좌의 이름을 얻고 고에게 도전했으나 철저하게 패배한 그녀다.
당시 그녀는 고에게 상처 하나 주지 못하고 완벽한 패퇴를 맞이했다.
비록 지금보다 한참 떨어지던 시기라곤 하나, 권좌급의 강자조차 허무하게 무릎 꿇을 수밖에 없었다.
칠대 재앙 고.
놈은 그런 존재였다.
살아 숨 쉬는 것만으로 재앙이 되는 괴물이었고, 그렇기에 인류는 그들을 칠대 재앙이라며 경외하곤 했다.
"개죽음이 될 거야."
스텔라는 부정적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세상 그 누가 이 자리에 있더라도 그녀와 비슷한 반응을 보이리라.
그러나.
"스텔라님도 헌터라면 아시겠죠. 몬스터를 죽이는 방법은 비단 힘으로 찍어 누르는 것뿐만이 아니라는 걸."
"······."
이전석은 여전히 태연하기만 했다.
어째서일까.
그는 마치, 고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것처럼 말을 이었다.
"본래 헌터란 몬스터를 사냥하는 존재입니다. 전사나 기사와 같이 힘겨루기를 하는 이들이 아니죠. 가능한 모든 수단을 사용해 몬스터의 약점을 파악하고 철저하게 그 부분을 파고들어 사냥하는 게 저희의 본질입니다."
맞는 말이다.
처음 세상에 던전과 몬스터가 나타났을 적부터 그랬다.
헌터란, 몬스터를 사냥하는 이들을 칭하는 단어였다.
몬스터의 약점을 파악하고, 그에 걸맞은 도구를 사용하며, 철저하게 싸움이 아닌 사냥에만 의의를 둔다.
하지만 그 말은 마치···.
"고의 약점을 알고 있다는 소리야?"
스텔라의 나지막한 의문.
이전석이 고개를 끄덕인다.
"예. 고를 공략할 방법이 있습니다."
스텔라는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딱히 거짓말을 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이전석은 정말 고의 공략법을 알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 사실을 도무지 믿기가 어려웠다.
"그건 흥미로운 소리로군."
그때.
상처의 재생을 끝낸 안드레가 뒤늦게 입을 열었다.
"스텔라가 한국 정부의 지원을 받아 고의 토벌을 계획하긴 했지만, 우리로서도 고는 승리를 확신할 수 없는 괴물일세."
꽉-.
근처에 있던 천으로 피투성이의 팔을 붕대마냥 휘감는 안드레.
이내 그가 스텔라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해서,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철저하게 패퇴하더라도 도망칠 수단만은 남겨뒀지. 내가 허락하긴 했어도 손녀를 개죽음당하게 둘 생각은 없어서 말이네."
허나.
"놈을 확실하게 죽일 공략법이 있다면 이야기가 다르지."
잔해 위에 앉아 있던 안드레가 몸을 일으켰다.
그는 마치 이전석에게 고의 토벌을 맡기려는 듯 보였다.
적어도 이전석의 이야기에 관심이 있는 건 분명했다.
덕분일까.
스텔라는 묘한 감정이 들었다.
자신의 부모님을 죽였던 고.
녀석을 직접 제 손으로 죽여 복수하고자 했다.
그런 결심을 어린 시절부터 마음 속에 품었다.
헌데 이제와 다른 사람에게 그 복수를 떠맡기려 하는 조부를 보니 마음이 심숭생숭하기만 했다.
그녀의 생각이 표정으로 고스란히 드러났기 때문일까.
"스텔라."
손녀의 마땅찮은 표정을 본 안드레가 나지막이 말했다.
"복수를 하려는 건 좋다. 허나 복수가 정녕 네 손으로 해야만 복수인 것이냐? 확실한 해답이 있다면 그것에 의지하는 것도 미덕이란다."
"······."
스텔라가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깊은 고민에 빠진 듯한 눈치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그녀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알았어··· 알았다고."
포기했지만 포기하지 않는 눈치.
복수의 방법이 하나가 아니라는 안드레의 말을 수긍하고 받아들인 것 같았다.
애초에 그녀에겐 거절 같은 선택지는 없었다.
그에겐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부탁을 들어주겠다 약속했으니.
딱히 계약을 나눈 것도 아니고 구두뿐인 약속이지만, 안드레가 보는 앞에서 그 약속을 어길 수는 없었다.
안드레가 가장 싫어하고 혐오하는 것.
그건 약속의 무책임한 파기였기 때문이다.
'···설마 그걸 알고?'
스텔라가 이전석을 쳐다봤다.
싱긋 웃고 있는 표정은 도무지 감정을 읽어낼 수가 없었다.
미국에 온 건 파밀리아와의 관계 때문이 아니라-.
'할배가 보는 앞에서, 내가 약속을 못 어기게 만들려고?'
스텔라는 내심 소름이 끼쳤다.
확신은 없고 증거도 없다.
그러나 이전석의 무미건조한 눈동자가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대체······.'
뭐하는 녀석일까.
처음에는 그저 재능 있는 원석이라고만 여겼다.
이제는 아니었다.
이건 원석도, 다 만들어진 보석도 아니다.
그와는 전혀 다른 무언가였다.
권좌조차 꺼림칙하게 만드는 이물질.
인간으로서의 본능적인 두려움과 마법사로서의 흥미가 이전석을 향했다.
물론 그건 아주 잠깐일 뿐이었다.
스텔라는 애써 감정을 억눌렀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기에.
"······그래서, 그 공략법이라는 건 확실한 거야?"
"스텔라님께서 조금 도와주신다면야."
이전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공략에 대해 말씀드리기 전에, 우선 스텔라님과 안드레님께 확인부터 받고 싶습니다. 고 토벌전을 전적으로 제게 맡기겠다고."
"그거라면 나야 상관은 없네. 다만 그렇게 되면 작전에 참가할 예정인 다른 헌터들의 반발이 있을 지도 모르네만······."
"그 정도는 제가 감당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마음대로 하게나. 우리 손녀가 그런 약속까지 했으니··· 할애비 된 입장에서 외면하면 예의가 아니겠지."
넉살 좋게 웃으며 말하는 안드레.
스텔라를 들먹이긴 했지만 그로서도 이전석은 꽤나 마음에 드는 사람이었다.
생각이나 가치관부터 하는 행동이 그러했다.
시원하고 거침이 없는 언행은 안드레가 좋아하는 타입 중 한 명이었다.
애시당초 그 자신부터가 그러하기 때문일까.
"스텔라, 너는 괜찮느냐?"
"괜찮아야지."
뒤늦은 안드레의 물음에 스텔라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럼 일단 고의 약점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출처는 확실한 거겠지?"
"예."
스텔라의 말.
이전석이 고개를 끄덕인다.
출저가 확실하냐고?
당연히 그럴 수밖에.
이 방법은 전생에서 수많은 헌터들의 희생을 대가로 알아낸 고의 유일한 약점이자 공략수단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전석이 고에 대해 입을 열기 시작하는데······.
"······너 지금 제정신이야?"
"허허······."
스텔라가 어이가 없다는 듯 묻고, 안드레는 황당함이 뒤섞인 웃음을 흘렸다.
이전석의 입에서 흘러나온 건 그만큼 충격적인 것이었다.
※ ※ ※
스텔라가 아공간에서 지팡이를 꺼내 들었다.
툭-.
그것으로 바닥을 친다.
직후.
마나의 파동이 사방팔방 뻗어나갔다.
"리트렉션. 곱하기 10."
스텔라는 바로 마법을 발동했다.
리트렉션.
흔히 복구마법이라 불리우는 것.
그것이 형형색색의 마법진 형태로 허공을 장식한다.
뒤이어 마법진에서 흘러나온 마나가 실처럼 바닥에 흩뿌려진 잔해를 주워 담고 마치 퍼즐처럼 조립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5분가량이 지났을 무렵.
무너졌던 빌딩의 최상층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렇게 창문의 커튼마저 본래 모습을 되찾은 후.
"그놈은 미쳤어."
스텔라가 지팡이를 도로 아공간에 수납하며 말했다.
그에 안드레가 작게 수긍했다.
"확실히 제정신이 아닌 생각이었지."
그는는 이전석과의 대전으로 상처 입은 건틀릿을 살피고 있었다.
다행히 그것은 자가회복 기능을 지니고 있었고, 마나를 주입시키자 얼마 지나지 않아 건물처럼 원래대로 되돌아왔다.
"그래그래, 많이 아팠느냐?"
마치 애완동물 달래듯 건틀릿에게 말을 거는 안드레의 모습은 어딘가 기괴하게 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할배는 정말 그 말을 믿는 거야?"
소파에 앉은 스텔라가 다리를 꼰 채 물었다.
예의라곤 찾아볼 수도 없는 언행이지만, 안드레는 딱히 그것을 지적할 생각이 없었다.
거친 행동과 말투는 스텔라가 어렸을 적부터 슬럼가에서 자라온 영향이었기 때문이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하였던가.
이제와 교정한들 의미 없는 일인 셈이다.
애당초 보기에 좋지 않다고 마냥 가족의 성격을 부정한다면 무릇 존경받는 웃어른이 될 수 있겠는가.
"자살 행위가 될 수도 있어."
방금 전 이전석이 고의 약점이라며 내뱉었던 말.
스텔라는 그게 영 믿음직스럽지 못한 듯했다.
그만큼 이전석이 내뱉은 것이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리라.
그도 그럴 게 고의 극독을 정면으로 받아들이는 게 녀석의 약점이자 공략의 전제조건이라니······.
"미친 짓임은 분명하나 그 아이가 스스로 죽을 짓을 할 것 같지는 않구나. 적어도 싸우면서 성화를 통해 느낀 감정에 자살희망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어."
"그럼 정말······."
"그래, 그게 고의 공략법이라는 것이겠지."
하아.
스텔라가 옅게 한숨을 쉬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질 않았다.
"우리 둘 다 그 아이에게 놀아났구나."
안드레가 옅게 웃으면서 건틀릿을 책상 위에 올려놨다.
론과 아즐리.
두 에고가 옅게 진동하며 감정을 보내왔다.
그들조차 안드레에겐 소중한 자식과 같았다.
"그는 분명 나와의 면담을 위해 미국을 찾았어. 허나 우리와의 관계에 그다지 중점을 두지 않고 있었지. 친우가 되면 좋지만 안 되도 별 상관없다는 눈치였어. 오히려 그는 나와 너의 관계를 이용했고, 그렇게 자신의 제안을 결코 거절할 수 없도록 만든 게야. 스텔라 네가 고 때문에 약속을 어길지도 모르는 만약의 가능성을 철저히 배제한 것이지."
스텔라가 품었던 생각을 안드레 또한 고스란히 입에 담았다.
비단 그뿐만이 아니었다.
"몇 분 되지 않는 짧은 대련으로 그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심어뒀어."
권좌들 중에서도 나름 강하다 알려진 안드레와도 잠깐이나마 대등하게 겨룰 정도의 힘.
그와 더불어 스텔라의 지원, 그리고 확실한 공략법이 있다면 고를 죽이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일지도 몰랐다.
"머리가 좋은 아이야."
그만큼 이전석에겐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을 적절히 활용할 줄 아는 능력이 있었다.
"밑 헌터들의 반발에 어떻게 대처할지 궁금해지는구나."
안드레가 태평한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스텔라는 아무런 말 없이 창밖을 봤다.
복잡한 감정이 가슴 한 편에 자리했다.
생각해 보면 이전석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랬다.
그는 어딘가 이상하고 신비한 구석이 있는 남자였다.
그래서 늘 자신의 마음을 흔들어 놓곤 했다.
좋든 나쁘든, 다양한 방향으로 말이다.
"해서, 벽은 넘을 수 있을 것 같더냐?"
안드레가 나지막이 스텔라에게 물어왔다.
이전석이 길드를 떠나기 전, 오직 스텔라에게만 말해준 어떤 정보 때문이었다.
━일반적인 방법으로 신격을 얻는 걸 불가능합니다. 자세히 말씀드릴 순 없지만, 단순히 레벨을 올리거나 깨달음을 얻어 격을 강화하거나··· 그런 방식으론 벽을 넘을 수 없을 겁니다.
그는 벽에 대해 그리 설명했다.
━누군가 그럴 수 없도록 장치를 해놨거든요.
━장치라고?
━가령 거대한 벽 앞에 그와 비슷한 크기의 문을 세우고, 자물쇠로 잠가 놨다고 비유할 수 있겠군요.
━문을 세우고 자물쇠를 잠가? 지금 그게 무슨 소리야? 인간이 신이 될 수 없게 누군가 막고 있다는 거야, 그럼?
━글쎄요, 그것까진 저야 모르죠.
━그럼 대체······.
━물론 그렇다고 벽을 넘는 게 아주 불가능한 건 아닙니다. 실제로 제가 벽을 넘어 신격을 얻었으니까요. 제 경험으로 판단하건대 스텔라님께 드릴 조언이 있다면······.
잠시 입을 다문 이전석은 이내 의미심장한 한 마디를 내뱉었다.
━벽을 넘기 위해선 일단 원점으로 되돌아갈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원점.
그게 대체 무슨 말일까.
━한 가지 더 힌트를 드리자면, 신은 무언가에 얽매이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 사실을 기억하세요.
이전석은 오직 그 말만을 남기곤 자리를 떴다.
그는 파밀리아에서 마련해준 별장에 묵기로 했다.
고 토벌전이 개시되는 며칠 후, 스텔라와 함께 텔레포트로 북한 국경선으로 향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전석이 사라진 길드 최상층.
'대체 뭔 말이야 진짜.'
스텔라가 표정을 찌푸리며 머리를 긁었다.
그가 준 조언이 무슨 의미인지 알 겨를이 없었다.
마치 넌센스 문제라도 풀이하는 것 같다.
원점, 신, 문.
알 수 없는 세 가지 단어.
'누군가 문을 닫았다.'
인간이 벽을 넘을 수 없도록.
그렇다면 누가?
엘프? 드워프? 그도 아니면 마족?
'아니, 아니야. 그들도 벽을 넘지 못해서 허덕이고 있잖아. 벽을 넘지도 못한 놈들이 어떻게 다른 존재의 벽에 문을 세울 수 있겠어.'
생각을 반복하던 스텔라는 답답함에 목이 막혀오는 듯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이었다.
[시스템이 복구되었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푸른색의 창이 눈앞에 나타났다.
※ ※ ※
미국 동부에 위치한 수도권 지역 워싱턴 D.C.
그곳에서도 가장 동쪽에 위치한 곳에 파밀리아 길드의 별장이 있었다.
"당분간 이곳에서 쉬고 계시면 됩니다."
무려 포탈 게이트를 통해 그곳까지 이동한 이전석은, 파밀리아 소속 헌터의 안내를 받으며 저택에 들어왔다.
'꽤 크군.'
협회 측에서 지어준 집보다는 작지만, 그 못지않게 보안도 강해 보였다.
"그럼 무슨 일이 있으시다면 방에 있는 벨을 울리시길. 저택의 시중들이 바로 찾아뵐 겁니다."
헌터가 고개를 숙이며 물러났다.
저택에는 이전석을 제외하곤 파밀리아에 소속된 일반 길드원들이 수십 명가량 있었다.
그들이 평소 저택을 관리하며 손님을 맞이하는 듯했다.
이윽고 이전석은 시중들이 지정해 준 방으로 들어갔다.
안내인의 말대로 방- 정확히는 침대 옆 탁상에는 금색 벨이 놓여 있었다.
최승철의 별택에 있던 것과 비슷한 종류의 아이템이다.
저걸 누르면 즉시 저택의 시중들이 이전석을 위해 달려올 것이다.
뭐, 그럴 일은 웬만해선 없겠지만···.
"고맙군. 어떻게 허점을 감추며 대답해 줘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꽤 도움이 됐어."
이전석이 만년필과 촛불이 놓인 책상에 앉으며 말했다.
그의 대답에 허공에 나타난 불투명한 황룡이 클클 웃었다.
━계약자에게 도움을 주는 건 당연한 일 아니겠느냐.
황룡, 그리고 이전석의 말 대로였다.
자기 자신조차 모르는 신격의 획득법.
그걸 어떻게 잘 버무려 말할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황룡이 약간의 도움이 되어 준 것이다.
'원점으로 되돌아가라.'
스텔라의 머리가 비상하고 총명하다면, 그런 식의 애매모호한 조언만으로도 스스로 어떠한 결론에 다다라 깨달음을 얻게 될 것이라고 황룡은 말했다.
━물론 그 깨달음이 그대처럼 진정 벽을 넘어서는 것으로 이어질지는 그 아해에게 달린 일이겠다만.
황룡이 빙글 허공을 회전하며 말했다.
예전부터 느낀 거지만 황룡은 의외로 가만있는 법이 없었다.
매번 그를 볼 때면 뱀처럼 허공을 유영하고 있던 것이다.
━해서, 그게 그 아해의 오리지날 마법인 것이냐?
문득 황룡이 그리 물어왔다.
그의 시선이 이전석의 손아귀로 향해 있었다.
그 손에 쥐어진 건 회색의 책 한 권이었다.
제목조차 적혀 있지 않은, 오래되고 낡은 책.
다름 아닌 '별' 마법의 모든 것- 즉, 스텔라의 오리지날이 기록되어 있는 비법서였다.
이전석이 벽에 대해 알려준 것과 마찬가지로, 스텔라는 자신의 오리지날 마법에 대한 비법서를 그에게 건네준 것.
"맞아. 이게 '별의 기록'이지."
이전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별의 기록.
스텔라가 슬럼가에서 만난 스승에게 전수받은 오리지날 마법이며, 그녀가 스스로의 이름을 '스텔라'라고 짓게 된 결정적인 계기.
이전석은 조심스레 책을 펼쳐 보았다.
벌레 기어가듯 작은 글자로 빼곡하게 적힌 책에는 어떤 한 극대마법의 술식이 기록되어 있었다.
그것을 본 이전석이 눈살을 찌푸렸다.
'······생각보다 훨씬 난해하군.'
마법에 대해 뛰어난 이해력과 관찰력을 지닌 이전석조차 무심코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술식이 복잡기괴했다.
물론 천천히 읽고 있노라면 이해 못 할 영역은 아니지만···.
'마법의 기본 전제조건부터가 10서클이야.'
즉, 당장 마법을 이해해 봤자 의미가 없었다.
그렇다고 바로 서클을 만들랴?
하려면 할 수야 있지만, 지금 서클을 만드는 건 시기상조였다.
지금 이전석이 가진 마나론 7서클까지밖에 올리지 못할 거다.
'10서클 너머를 바라보기 위해선 단번에 10서클을 달성할 필요가 있어.'
그러기 위해 필요한 막대한 마나는 아직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고의 핵- 코어를 취하면 그 부분도 해결이 되겠으나 적어도 지금은 아니었다.
'일단 보류해 둬야겠군.'
이전석은 책을 도로 덮곤 아공간에 집어 넣었다.
그때.
[시스템이 복구되었습니다.]
띠링-.
푸른 창이 눈앞에 나타났다.
마치 버그라도 걸린 것처럼 시야에 노이즈가 낀 건 바로 그때였다.
띠리리리링-!!
시스템의 파도가 눈앞을 휩쓸었다.
회귀한 EX급 빌런이 악인을 너무 잘 죽임 99화
부화 (2)
[레벨업 하셨습니다!]
[레벨업 하셨습니다!]
[레벨업 하셨습니다!]
[레벨업······.]
무수히 올라가는 레벨.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당신의 영혼이 성장합니다.]
[스탯이 일부 증가합니다.]
[신격이 대폭 상승합니다.]
[곧 당신의 권능이 발아합니다.]
깨달음을 통해 스탯과 신격은 물론, 권능이란 정체 모를 것까지 나타났다.
시스템이 복구되며 밀려 나온 창은 비단 이뿐만이 아니었다.
[악인을 죽였습니다.]
[악인을 죽였습니다.]
[악인을 죽였습니다.]
[선업이 '5,700,000'만큼 증가합니다.]
[악업이 큰 폭으로 하락합니다.]
[이제부터 상태창에 악업이 자세히 표시됩니다.]
[생명을 갈취하셨습니다.]
[랜덤으로 특성 하나를 획득합니다.]
[역성(SSS)을 습득합니다!]
[영혼강화(SS)를 습득합니다!]
[비상(S+)을 습득합니다.]
특성 또한 고 등급의 것을 한 번에 세 개나 획득했다.
역성은 최원율, 영혼강화는 최승철, 그리고 비상은 화산 알현실에서 죽인 이름 모를 검수의 것이겠지.
그리고···.
[사방신 황룡의 계약자가 되었습니다.]
[당신의 위업이 삼계육도에 널리 떨쳐지며, 신격이 일부 상승합니다.]
[검은 까마귀의 깃털이 황룡의 영향을 받아 '흑황룡포(黑黃龍袍)'로 진화하였습니다.]
'······흑황룡포라.'
이전석이 시스템을 되짚었다.
꽤나 그럴싸한 이름이었다.
효과 또한 그 이름에 걸맞게 어마무시 했다.
━
흑황룡포
등급 : SSS-
효과 : 검은 까마귀의 깃털에 황룡이 깃들며 탄생한 방어구. 착용 시 근력과 민첩이 +80만큼 상승하며, 체력과 마나가 +50만큼 증가한다.
또한 황룡의 힘을 일부 건네받아 신격을 영구적으로 +10만큼 획득하며, 사용자에게 초재생과 만병 및 만독불침을 부여한다. 추가로 은밀과 관련된 특성의 효과가 대폭 상승한다.
*해당 아이템은 파손 시 자가 재생합니다.
*불완전한 계약으로 탄생한 아이템입니다. 황룡과의 계약이 완전해질 시 추가 효과가 개방됩니다.
━
'······미쳤군.'
과연 SSS급 아이템이라고 해야 할까?
근력과 민첩이 각각 80씩 오르며, 체력과 마나는 50이나 올랐다.
흡사 130레벨을 올린 것과 똑같은 효과다.
보통은 S급이라 해도 스탯 한 두개만을 50보다 낮게 올려주는 게 전부인데, 흑황룡포는 SSS급이란 이름에 걸맞게 스탯 상승량이 매우 뛰어났다.
하물며 신격은 어떠한가?
비록 10에 불과하다곤 하나, 고작 아이템을 착용하는 것만으로 신격이 영구적으로 상승했다.
게다가.
'어쩐지 상처가 비정상적으로 회복되더라니······.'
아무래도 초재생의 효과인 듯싶었다.
다만 이전석이 전생에 획득했던 초재생이란 특성과는 결이 조금 달랐다.
정확히는 수준이 떨어진다고 해야 할까.
'절단된 사지가 재생되는 수준은 아니야.'
그저 상처의 치유속도를 극단적으로 끌어올린 것에 불과한 효과였다.
물론 그 속도가 원체 비정상적인지라 재생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화상을 치료받기 위해 파밀리아의 의무실로 찾아갔지만, 정작 의무실에 도착하기도 전에 화상이 치료돼 그대로 다시 돌아갔을 정도이니 말이다.
'······상시로 상급 포션을 입에 물고 다니는 격이로군.'
게다가 어떠한 병과 독에 걸리지 않는 것부터, 은밀관련 효과까지 그대로 남아 있다.
상태창에 표시되진 않았지만 중력을 무시하고 비행하는 능력도 있었다.
다른 SSS급인 성검에 비해 조금 뒤떨어지는 감이 없잖아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히 괜찮아.'
그리고.
━
* 황룡과의 계약이 완전해질 시 추가 효과가 개방됩니다.
━
'완전한 계약이라.'
다른 SSS급에 비해 효과가 뒤떨어져 보이는 이유는 아무래도 이것 때문인 듯싶었다.
애당초 흑황룡포 자체가 완벽한 상태가 아닌 것이다.
그게 궁금하기도 했지만.
'관두자.'
완벽한 계약을 하면?
아마 이전석은 반강제적으로 황룡의 소망을 이루어줘야 할 거다.
반대로 지금은 불완전한 계약이기에 그것에 강제성은 없다.
천계와 싸우는 걸 대가로 좋을지 나쁠지 모르는 추가효과를 기대한다?
논외였다.
고려할 가치조차 없다.
'그보다······.'
이전석은 이내 자신의 상태창을 펼쳤다.
흑황룡포 이상으로 궁금했던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
Lv. 115
[근력 - 140] [민첩 - 220]
[체력 - 95] [마나 - 150]
[행운 - 30] [신격 - 55]
스탯 포인트 - 15
선업 - 6,490,050
악업 - 999,999,999,998
권능
└━━━
보유특성
└천살성(EX+), 영원의 낙인, 업상점, 아이리스의 입장권
└마나조율(S), 결계특화(S), 절대자의 기백(SS), 백귀야행(SS), 짐승화(A), 은신(A), 발화(B). 망자들의 왕(B), 광폭화(B), 대기만성(SS+), 마도술(SSS), 아이리스의 입장권(4), 손톱증강(A+), 독 흡수(B), 바람의 길(S+), 영혼강화(SS), 비상(S+).
└천보, 절개(格), 진혈도법, 자하신공.
(더보기)
━
이전보다 몰라보게 달라진 상태창.
'······악업이 9천 억이나 된다고?'
악업 수치를 확인한 이전석은 내심 놀라고 말았다.
시스템이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많다는 건 알았지만, 그게 억- 그것도 천 단위일 거라곤 차마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것도 그나마 줄어든 거지, 기존에는 조 단위였다는 게 된다.
'참···.'
자신이 지은 죄가 그리도 많다는 사실에 새삼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하긴 수십억의 사람을 태반 죽이고, 저승에서도 수많은 저승사자를 도륙 냈다.
시왕이 나서고서야 그의 살육은 멈췄으며 그 끝에 결국 무간에 떨어졌다.
그 사실을 고려하면 악억이 이만큼 쌓이는 것도 당연한 노릇일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만큼 선업도 많이 얻었으니.
악업에 비하면 초라하지만, 최원율을 잡음으로서 무려 5백만이 넘는 선업을 보상으로 받았다.
'업상점은··· 고민 좀 해봐야겠군.'
악업이 이렇게 많다는 걸 안 이상 선업을 사용하는 것도 꺼려졌다.
'지금쯤이면 난리가 났겠군.'
상태창을 눈앞에서 치운 이전석.
그가 창밖을 바라봤다.
휴대폰으로 헌터와 관련된 아무 커뮤니티에 들어가자···.
━
└다시 시스템이 나타났어!
└상태창도 정상적으로 나옴!
└ㄹㅇ?
└와 ㅅㅂ 진짜네;
└이대로 능력이랑 같이 사라지는 거 아닐까 싶어서 엄청 초조했는데··· 진짜 다행이다
└내 인생 역대급으로 식겁했던 순간이야.
━
시스템과 관련된 글들이 줄줄이 올라오고 있었다.
다들 시스템이 다시 돌아온 것에 대해 적잖이 놀란 눈치였다.
툭-.
이전석은 휴대폰을 책상 위에 내려놨다.
━시스템이 사라졌었나?
뒤에서 황룡의 말이 들려왔다.
그도 휴대폰 내용을 들여다 본 모양.
━이상하군. 그건 갑자기 사라지거나 할 존재가 아닐 텐데······.
순간 이전석은 그의 말에 흥미가 동했다.
마치 시스템에 대해 무언가 알고 있는 듯한 어투 덕분이었다.
그래서 이전석은 스텔라가 건네준 비법서조차 뒤로한 채 황룡에게 무어라 말을 꺼내려 했지만.
[혼백룡의 알이 잠에서 깨어납니다.]
이번에도 시스템이 그를 가로막았다.
[드래드노트의 힘을 완전히 체화했습니다.]
[최소 부화등급이 EX+로 상승하였습니다.]
[성장도가 100%를 달성하였습니다.]
순식간에 끝으로 치 닫은 부화등급과 성장도.
[혼백룡의 알이 부화합니다.]
직후.
이전석은 아공간에 휘몰아치는 거대한 마나를 느꼈다.
파도, 소용돌이, 혹은 폭류.
그만한 수준의 마나가 아공간과 현실의 경계를 허물고 바깥으로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는 곧장 아공간에서 혼백룡의 알을 꺼냈다.
검붉은 색이 아름답게 조화된 알의 표면이, 마치 물이 흐르는 것처럼 일렁이고 있다.
그 기묘함과 동시에 사방으로 마나가 뻗쳐 나왔다.
마기라 표현해도 이상할 게 없을 정도의 폭류.
━드래곤의 알인가? 아니, 조금 다르군···. 드래곤이긴 하지만 무언가가 달라. 심히 이질적인 존재로다.
황룡이 그것을 쳐다보더니 작게 중얼거렸다.
━한데, 위험하군.
"동감이다."
갑작스런 황룡의 말에 이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방에 꽉 들어찬 걸로도 모자라, 유리창을 통과해 저택 밖으로 폭발하듯 흘러 나가는 마나 덕분이었다.
'이 정도면 일반인은커녕 각성자한테까지 영향을 미칠 확률이 높아.'
이전석은 재빨리 자신의 마나를 사방에 펼쳤다.
그러곤 알이 흘리는 마나를 가두기 위해 결계를 형성했다.
정확히 방만을 둘러싼 정사각형의 푸른 결계.
마나가 그 안에 갇혀 난폭한 짐승처럼 요동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행운이 발동합니다.]
[혼백룡의 알이 자신의 마나를 갈무리합니다.]
방을 가득 채우고 있던 마나가 천천히, 다시금 알에게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마나의 손실이 최소화됩니다.]
[최대 부화등급이 EX++로 상승합니다.]
'미친.'
그저 괜한 소란을 막기 위한 행동이었을 뿐이다.
그런데 최대 부화등급이 더욱 상승했다.
EX++.
작금의 천살성보다 더 높은 등급이었다.
물론 최소가 아닌 최대인지라 무조건 EX++로 부화한다는 장담은 없었다.
두근, 두근-.
알의 표면이 심장이 박동 치듯 흔들린다.
이전석은 긴장 어린 표정으로 그것을 바라봤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쩍-.
알 표면에 금이 새겨졌다.
금으로부터 격이 흘러나왔다.
아직 부화하지 않은 유체임에도, 그것은 여느 S급들과 같은 힘을 품고 있었다.
아니.
'점점 커지는군.'
금이 커지면 커질수록, 그 틈으로 새어 나오는 격의 양이 평범한 S급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래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전석은 자신이 펼친 결계가 진동하고 있음을 느꼈다.
알에서 흘러나오는 격에 결계가 버티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 대로면 깨질지도 모르겠어.'
이전석은 삼연성의 결계를 사용했다.
강화와 증폭과 융화.
그 효과를 사용해 기존의 결계를 강화한다.'
직후, 진동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반면 알의 흔들림은 더욱 커지고 있었다.
쩌적-.
툭-.
금으로부터 균열이 일고 껍질이 떨어졌다.
그리고 얼마나 더 시간이 지났을까.
콰앙-!!
막대한 양의 격이 터져 나오며 알이 산산조각 났다.
바닥에 떨어진 껍질마저 부서져 재가 되고, 소용돌이치는격 속에서 무언가가 새빨간 동공을 번뜩였다.
뒤이어 떠오르는 시스템.
[축하드립니다!]
[혼백룡이 부화하였습니다!]
드디어 순백룡과 적단도과 결합한 혼백룡이 태어났다.
그런데······.
"······?"
이전석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건 황룡도 마찬가지였다.
━이건······ 정말 드래곤이 맞는 것이냐?
그가 조심스레 의문을 내뱉었다.
이전석은 굳이 대답하지 않았지만, 그와 똑같은 생각을 품고 있었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알을 깨며 튀어나온 혼백룡은 드래곤이라 부르기조차 애매한, 정체모를 괴생명체였기 때문이다.
물컹-.
마치 물결치듯 흔들리는 몸.
손으로 찌르니 숙, 하고 들어간다.
댕그란 눈동자가 껌벅거렸다.
그것이 책상에서 통통 뛰어댔다.
그때마다 등(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에 달린 손톱만한 날개가 파닥였다.
날개의 크기 덕분일까, 아직은 유체이기 덕분일까.
암만 날개를 퍼덕여도 날지 못하고 제 자리를 점프하고 있을 뿐이지만···.
━슬라임이로군.
"슬라임이네."
이전석과 황룡이 동시에 같은 결론을 내렸다.
그 말대로 알을 깨고 나온 혼백룡은 한 쌍의 작은 날개와 새까만 몸체에 붉은 눈을 가진 슬라임이었다.
그것도 주먹 안에 쏙 들어올 정도로 작은 슬라임 말이다.
회귀한 EX급 빌런이 악인을 너무 잘 죽임 100화
부화 (3)
━
혼백룡 Lv. 1
등급 : F(EX++)
[근력 - 1] [민첩 - 1]
[체력 - 1] [마나 - 10]
[격 - 10]
보유특성
└무기화, 브레스, 피어, 발화, 혈격
순백룡과 적단도가 합쳐져 탄생한 드래곤. 아직은 유체이다. 때문에 제 힘을 모두 발휘하지 못하며, 대부분의 능력이 봉인되어 있다.
━
"음······."
슬라임- 아니, 혼백룡의 상태창을 본 이전석이 감탄인지 침음인지 모를 애매모호한 소리를 냈다.
EX++급으로 부화한 건 좋은데, 그걸 제외한 모든 게 평범 이하였기 때문이다.
애초에 생긴 것부터가 정상적이지 않은 마당에 스탯이 높기를 기대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이건 좀 심각하군.'
태반의 스탯이 1인데다, 그나마 높다고 할 수 있는 마나와 신격조차 10에 불과하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성장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고, 그 끝이 무려 EX++급이라는 사실이었다.
비록 지금은 작은 슬라임에 불과할지언정 미래를 본다면 그 어떤 무기나 생명보다 강해질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물컹-.
혼백룡이 이전석의 손아귀에서 이리저리 몸을 움직여댔다.
마치 강아지가 주인에게 머리를 들이대는 것 같은 모습이다.
그런 친밀한 감정이 알이었을 적과 똑같이 영혼을 통해 전해져왔다.
그러면서 땡그란 눈에 작은 날개가 파닥이는 걸 보고 있자니···.
'귀엽긴 하군.'
그야말로 무해 그 자체인 생물이다.
다만.
물컹-!
혼백룡이 돌연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그곳에는 정확히 황룡이 위치해 있었다.
'설마 볼 수 있는 건가?'
황룡은 영체다.
정확히는 정신체라 보는 게 옳을 것이다.
이전석에게만 보이는 잔류 사념 말이다.
보통이라면 보일 리가 없는데, 혼백룡은 그런 황룡을 똑바로 직시하는 것처럼 보였다.
문제는 황룡을 바라보는 눈빛이 이전석을 향하는 것과 달리 적대적이라는 사실이었다.
격이 살의를 머금은 채 황룡을 노리고 있다.
동그랗던 눈동자까지 날카로워지고(그조차 귀엽게만 느껴졌지만), 날개는 쉴 새 없이 파닥거렸다.
영혼을 타고 전해져온 감정은 다름 아닌 '질투'였다.
"내 옆에 다른 용이 있다고 질투하는 거냐?"
이전석의 말에 혼백룡이 날개를 파닥이며 껑충 뛰어올랐다.
마치 긍정이라도 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용과 드래곤은 태고 시절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지.
문득 황룡이 그런 말을 내뱉었다.
━당연한 반응이니라. 짐이라 하더라도 성체의 드래곤이 눈앞에 있었다면 바로 목을 물어뜯었을 것이야.
물컹-···?!
물어뜯는다는 말 덕분일까.
혼백룡이 깜짝 놀란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얼굴을 이전석의 손바닥에 파묻었다.
희미하게 떨리는 날개.
이전석은 내심 어이가 없었다.
지금 이걸 숨는다고 숨은 걸까?
━뭘, 막 태어난 아이까지 물어 죽일 정도로 드래곤을 싫어하진 않으니 안심하거라.
뒤늦은 황룡의 말에 혼백룡이 서서히 고개를 들어 시선을 그에게로 향했다.
마치 '정말···?'이라고 묻는 듯한 눈치다.
황룡은 그 물음에 대답하기는커녕, 창밖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내.
━그 녀석이 싫어하는 모양이니 짐은 잠시 이국의 문화나 둘러보고 오도록 하지.
그리 말하며 창을 통과해 밖으로 날아갔다.
황룡은 종종 이런 식으로 이전석에게서 벗어나 세상을 하염없이 방황하며 돌아다니곤 했다.
물론 계약으로 묶인 관계인지라 5키로 너머론 못 벗어나는 모양이지만.
아무튼.
물컹-!
황룡이 사라지자 혼백룡이 다시 기운을 차린 듯 날개를 퍼덕였다.
"말은 못 하는 거냐?"
이전석이 나지막한 어투로 물었다.
드래곤은 종을 가리지 않고 지능이 매우 뛰어난 편이며, 그들은 어렸을 적부터 인간의 언어를 구사하곤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줄곧 말은커녕 울음소리조차 없는 게 의아할 따름이었다.
혼백룡이 그런 이전석을 빤히 쳐다봤다.
녀석이 동그란 눈을 깜빡였다.
그러더니···.
"크앙!"
포효했다.
[혼백룡의 피어를 발동합니다.]
음, 아니···.
'앙증맞군.'
포효··· 정확히는 피어지만, 울음소리가 꽤나 귀여웠다.
"크앙!"
이전석이 못 들었다고 생각한 걸까?
녀석이 다시 울부짖었다.
그 모습이 귀여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전석은 녀석을 쓰다듬듯 조물거렸다.
물컹하고 서늘한 몸이 옛날 아이들이 가지고 놀던 장난감 같아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았다.
녀석도 그리 나쁜 기분은 아닌지 이전석의 손길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그 상태로 다시 상태창을 바라봤다.
'브레스나 피어, 드래곤과 관련된 특성에 혈격이랑 발화도 그대로 가지고 있군.'
그리고.
'무기화도 있고.'
무기화.
가장 흥미가 동하는 특성 중 하나였다.
이걸 사용하면 무기로 변하는 걸까?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전석이 무기화에 대해 생각하고 있자니, 그 생각을 읽은 듯 혼백룡이 특성을 사용한 것이다.
[혼백룡이 무기화를 사용합니다.]
직후.
동그라며 물컹거리던 몸이 일자로 퍼졌다.
형태가 변화하고 색이 바뀌었다.
이내 혼백룡은 딱딱하게 굳어 단도가 되었다.
적단도와 비슷한 모양.
그러나 칼날의 색은 저 자신처럼 검붉다.
서걱-.
이전석은 본능적으로 단도로 손바닥을 그었다.
그러자 적단도를 사용했을 때와 비슷한 현상이 일어났다.
단도로 변한 혼백룡이 이전석의 피를 흡수한 것이다.
완전히 새빨개진 단도.
"혈격."
그것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긋는다.
직후.
콰앙-!
정확히 이전석의 피를 흡수한 것만큼의 참격이 허공을 새빨갛게 물들였다.
결계 덕분에 방에 피해는 달리 없었다.
'오랜만이군.'
이 묵직한 감각.
얼마 만이던가.
아스트로에 들어갔던 이전석에겐 일 년도 더 넘은 시간이었고, 그렇기에 더 그립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그리운 건 비단 그뿐만이 아니었다.
"발화."
혼백룡이 먹어 더 사용하지 못했던 특성.
그것을 사용해 불을 지폈다.
화륵-.
새빨간 날을 타고 불꽃이 타올랐다.
이제는 완전히 흑색으로 변해버린 불꽃은, 불길함을 그대로 형상화한 듯한 모습을 자아냈다.
이전석이 그 불길 위에 손을 얹었다.
그러자 손바닥이 인두로 지져지는 것 같은 통증이 느껴졌다.
고통에 아무런 감각도 느끼지 못하던 이전석이다.
그런 그가 드물게 발화로부터 고통이란 감각을 또렷이 느끼고 있었다.
만약 다른 사람이 이 불에 그을리면 어떻게 될까.
'······전투 중 빈틈을 만들어내는데 유용하겠군.'
웬만큼 고통에 내성이 없는 사람이라면 불꽃에 스치는 것만으로도 꽤 고통스러워하리라.
'피어는 아까 봤고, 브레스를 시험해 보고 싶은데···.'
이전석이 주변을 둘러봤다.
결계가 방을 감싸고 있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드래곤의 브레스를 사용하긴 조금 애매했다.
아직 레벨이 낮다곤 하나 엄연히 드래곤이었으니까.
딸랑-.
이전석은 방의 벨을 울려 시종을 불렀다.
물어보니 지하에 연무장이 있다고 했다.
그곳까지 안내받은 뒤 다시 혼백룡을 꺼내 들었다.
단도의 형태를 한 그것을 앞으로 내민 뒤.
"브레스."
발화를 사용했던 것과 비슷한 감각으로, 마치 자기 자신의 특성을 사용하듯 혼백룡의 브레스를 이끌어냈다.
단도의 날 끝.
그곳에 새까만 불꽃이 구 형태로 모여든다.
그리고.
콰앙-!
부채꼴 형태의 불꽃이 전방을 휩쓸었다.
전형적인 드래곤의 브레스.
그것이 연무장을 새까맣게 그을린다.
레벨과 등급이 낮은 덕분일까.
그리 위협적인 수준은 아니지만.
'발화를 이용한 브레스인가?'
새까만 브레스를 보면 그럴 확률이 높아 보였다.
그렇다면 이건 이것대로 이용할 가치가 있을 터.
이전석은 다시 단도를 치켜 들었다.
'이번에는 전방위가 아니라······.'
재차 브레스를 사용해 날 끝으로 불꽃을 모으는 이전석.
금방이라도 터질 듯 요동치는 불꽃을 세심히 제어한다.
그리고.
━━.
빛이 점멸했다.
콰과광-!
소리가 1초 늦게 찾아오고, 마치 빔과 같이 일직선으로 뻗어나간 브레스가 마석으로 이루어졌을 터인 벽을 그대로 관통했다.
"허."
이전석은 무심코 헛웃음을 내뱉었다.
그만큼 어마무시한 위력이었다.
소닉붐이 발생하며 소리가 뒤늦게 찾아오다니.
전방위의 브레스는 위력이 낮지만 범위가 넓었고, 일직선의 브레스는 범위가 작은 대신 위력이 극단적으로 치솟았다.
'둘 다 활용범위가 많겠어.'
이전석은 단도를 내렸다.
직후 단도가 다시 슬라임 모양으로 변해 이전석의 손 위에 안착했다.
녀석이 이전석을 빤히 올려다봤다.
날개를 파닥이며 뛰어오르는 모습이, 마치 잘했냐고 되묻는 어린아이 같았다.
이전석은 엄지로 작게 쓰다듬으며 대답을 대신했다.
그러자 녀석이 손가락에 얼굴을 비벼댔다.
생각보다 애교가 많았다.
정말 반려동물이라도 생긴 기분.
물론 굳이 따지고 보면 반려동물이 맞기는 했다.
생김새가 이상해서 그렇지.
'이번에 얻은 특성은 세 개.'
이전석이 뒤이어 자신의 상태창을 바라봤다.
정확히는 보유특성에 추가된 것들을 말이다.
역성, 영혼강화, 비상.
그중 최원율의 특성인 역성의 상태창을 눈앞에 펼친다.
━
역성
등급 : SSS
효과 : 하늘을 거슬러 타인의 특성효과를 흡수한다. 흡수하는 상대와의 격차가 압도적일시 역성을 시도할 수 없으며, 한 번 시도할 때마다 성공여부와 관계없이 5년의 재사용 시간을 가진다. 또한 해당 특성의 사용자는 하늘을 거스른 대가로 사후 지옥에 떨어지게 된다.
━
'흡수하는 상대와의 격차가 압도적일시 역성을 시도할 수 없다···. 주어가 없군.'
그렇다.
명백한 주어가 없었다.
압도적인 격차의 범위.
그것이 어디까지인가.
선택지는 두 가지.
자신보다 압도적으로 강하거나, 아니면 눈에 띄게 약하거나.
보통은 그 두 가지 중 하나일 테지만, 시스템의 특징을 고려하면 이럴 경우 대게 정답은 심플했다.
'둘 다.'
즉, 자신보다 명백히 강하거나 약한 사람의 특성은 빼앗을 수 없다.
헌터들의 기준, 그리고 최원율의 경우를 고려하면···.
'역성을 시도하기 위해선 최소한 '급'은 맞아야 한다는 의미겠지.'
최원율은 연선화보다 약했지만 SSS라는 급은 맞았다.
똑같이 하늘에 닿았고, 그래서 역성을 시도할 수 있었던 것이리라.
아마 그 때문에 최원율도 폐관에 들어간 걸 테고.
다만 역성의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5년이란 쿨타임은 둘째치더라도······.
'이걸 쓰면 사후 지옥에 떨어진다고?'
난생처음 보는 말도 안 되는 디메리트에 이전석은 내심 어이가 없어졌다.
만약 이게 정말이라면?
지금쯤 최원율은 지옥에 있겠지.
'고려할 만한 가치도 없는 쓰레기 특성이로군.'
최원율이야 유용하게 사용했을 지도 모른다.
애당초 특성을 빼앗는다는 것 자체가 무한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과 같고, 지옥이라는 말은 저승을 모르는 그에겐 별로 와 닿지 않는 단어였을 테니.
하지만 지옥을 뼈저리게 겪어본 이전석이라면 다르다.
'소환수에게 줘도 되겠지만, 양도할 수 있는 특성은 한정되어 있어.'
이런 걸 넘겨줄 바엔 적당한 빌런을 하나 잡아 죽이고, 그렇게 얻은 특성을 양도하는 게 훨 나았다.
유일하게 장점이라면 '죽이지 않고' 특성을 빼앗을 수 있다는 건데······.
글쎄.
굳이 그거 하나만 보고 이 특성을 소환수에게 줘야 할 이유가 있을까?
죽일 수 없는 사람의 특성을 반드시 가져야 할 경우가 온다면 또 모르겠지만.
'일단은 보류.'
이전석은 역성의 상태창을 눈앞에서 치워버렸다.
그리고 다른 두 개의 특성을 살펴봤다.
영혼강화와 비상.
전자는 SS급 특성으로, 영혼 자체를 강화해 격을 증폭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후자는 단어에서 예상한 것과 달리, 삼매(三昧) 상태에 드는 특성이었다.
삼매경(三昧境).
다시 말 해 초집중 상태가 되는 것이다.
무아지경의 하위호환 격 되는 능력.
잘 보니 비상 옆에 非想라는 한자가 적혀 있다.
━
삼매경에 들었을 시 모든 수련 경험치가 대폭 상승한다. 단, 도중 방해를 받을 시 낮은 확률로 백치가 된다.
━
'······애매하군.'
수련에 대한 효율이 오르는 건 좋다.
그것도 대폭이란 단어까지 붙었으니.
이걸 사용한 상황에서 깨달음이라도 얻는다면 큰 폭의 성장을 꾀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도중 방해를 받으면 낮은 확률로 백치가 된다는 점이었다.
무협지 속의 단어를 인용하자면 주화입마에 빠진다고도 할 수 있으리라.
실로 애매하기 짝이 없다.
아무리 가능성이 낮을지언정 그럴 확률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였다.
반면.
[영혼강화를 사용합니다.]
이전석은 그나마 당장에 쓸 만해 보이던 영혼강화를 시험해 보았다.
그러자 영혼 속에 자리한 신격이 이전보다 월등히 비대해졌다.
비단 그뿐만이 아니다.
'살의가······.'
마치 살성이 고개를 내민 듯 농밀한 수준의 살기가 이전석을 중심으로 용솟음쳤다.
콰과과광-!
그것은 이미 감정의 영역을 넘어서 있었다.
명백한 물리력을 가진 채, 연무장의 바닥과 벽- 그리고 천장을 믹서기 처럼 갈아버렸다.
이 정도면 정신이 서서히 살성에 물들어도 이상할 게 없건만.
'다행히 제어되는군.'
살성은 여전히 심상 깊은 곳에서 고개를 내리 깔고만 있을 뿐이다.
영원의 낙인 덕분일까.
비단 그뿐만은 아니었다.
영혼강화를 사용하여 강화된 건 비단 살의뿐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정신적인 부분도 강화되어 이전석 스스로가 이만한 살의를 자유롭게 조절할 수가 있게 되었다.
다만.
'체력소모가 심해.'
강화되었던 영혼이 순식간에 원래대로 돌아오며 살의의 폭풍 또한 감쪽같이 사라진다.
이전석은 심장이 쉴 새 없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광폭화나 짐승화보다 훨씬 큰 부담과 짧은 지속시간.
'말 그대로 필살이로군.'
방금 그 신격과 살의를 그대로 안드레에게 사용했던 절개에 뒤섞으면 어떻게 될까?
발화와 브레스, 그리고 천보를 함께 사용하면?
"······."
이전석은 왠지 모를 번뜩임에 즉시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았다.
무아지경은 아니다.
깨달음조차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이 감각을 그저 흘러가는 시간처럼 내버려두기가 아까웠다.
"후우···."
옅게 흘러나오는 숨결.
두근-.
심장박동이 귓가를 메아리친다.
시끄럽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전석은 즉시 숨과 심장박동을 죽였다.
신격을 얻은 고위급 각성자다.
조금 숨을 쉬지 않고 심장이 뛰지 않는다고 한들 죽지는 않는다.
그 정도는 이전석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그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고 들리지도 않는 적막 속에서 침묵과도 같은 생각 속에 파묻혀 들어갔다.
그리고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 여드레가 지났다.
[파밀리아 길드 주관 고 토벌전, 흑영 참전?]
[흑영, 이번에도 대한민국을 구하나···.]
[러시아의 아나시아 길드 "고는 우리가 토벌할 것"]
[혼돈의 중심이 된 북한. 전문가들은 제 3차 세계대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흑영 아나시아와 파밀리아를 제치고 '고 토벌' 선언?]
회귀한 EX급 빌런이 악인을 너무 잘 죽임 101화
신성 (1)
벤자민은 파밀리아 소속 길드원이다.
각성자가 아닌 민간인에 불과한 그는 별택의 주방장으로, 수십 명의 요리사를 거느리며 손님에게 맛나고 뛰어난 음식을 대접하곤 했다.
하지만 최근 별택에 묵게 된 손님은 어째서인지 아침과 점심은 물론이고 저녁 한 번을 요구하지 않았다.
애써 음식을 준비해 차려놔도 식당에 찾아오질 않으니······.
"손님분께선 아직도 연무장에 계신가?"
"예. 첫날에 연무장을 찾으신 뒤로 한 번도 밖으로 나오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으음···."
말 그대로 이런 실정이다.
손님- 이전석은 연무장에서 살다시피 했다.
'헌터라도 음식을 먹지 않으면 배가 고플 텐데.'
S급쯤 되면 한 달간 굶어도 죽지 않는다.
그렇다고 공복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식탐은 여전히 존재하며, 먹지 않으면 배가 고프다.
그건 생리현상 또한 마찬가지였다.
뭐, 먹질 않으니 나올 것도 없겠다만···.
'그래도 이상해.'
너무 안 나온다.
기본적으로 연무장에는 CCTV가 존재하지 않았다.
이유라면 다름이 아니다.
헌터에게 있어 전투방식이나 특성이 노출되는 건 곧 약점이 드러나는 것과 매한가지였기 때문이다.
비단 파밀리아의 별택만이 아니라도, 그 비밀을 지키기 위해 CCTV나 별도의 감시 장치가 없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당연히 별택의 시중들 또한 손님에게 결례가 될 수 있기에 굳이 먼저 연무장을 찾거나 하진 않았다.
하지만 손님이 이렇게까지 소식이 없다면 이야기는 달랐다.
"오늘로 며칠째지?"
"여드레째입니다."
주방장이던 벤자민의 물음에 함께 별택에서 일하던 리암이 답했다.
리암은 벤자민의 비서이자 별택의 부관리자였다.
그가 부관리자라는 건 당연히도 벤자민이 별택의 총괄자임을 의미했다.
주방장 겸 최고 관리자 말이다.
"흐음···.
벤자민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곧 결정을 내린 듯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한 번 내려가 봐야겠어."
"그래도 되겠습니까?"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안 나오는 건 이상해. 무슨 일이 있는 게 분명하다."
"만약 아무 일도 없던 거라면···."
"오히려 다행이지."
벤자민은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벤자민.
그는 이 안즈라 별택의 총책임자였고, 손님의 안위를 철저하게 지킬 필요가 있었다.
헌데 그런 손님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여드레째 연무장에 틀어박혀 밥도 안 먹고 얼굴 한 번 비치질 않고 있으니.
만약을 위해서라도 한 번 상황을 확인해 볼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벤자민은 리암을 데리고 별택 지하로 내려갔다.
원형으로 이어진 계단을 내려가자 두꺼운 철문이 나타났다.
보통 S급 이상의 헌터들이 주로 사용하는 연무장인 만큼 벽의 두께는 10m를 넘어갔고, 몇 차례의 인증절차와 철문을 넘고서야 내부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이건······."
벤자민이 얼굴을 찌푸렸다.
연무장에는 손님- 이전석이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그것도 바닥이 아닌 공중에서 말이다.
허공에 떠올라 있는 이전석의 몸.
가부좌를 튼 그의 몸을 오색의 찬란한 빛이 감돌고 있다.
무심코 입을 벌리고 멍하니 바라볼 만큼 아름다운 광경.
"오기조원······."
순간.
옆에 있던 리암이 그리 중얼거렸다.
그에 벤자민이 나지막이 물었으나.
"자네, 이게 뭔지 아나?"
리암은 고개를 저었다.
"아는 건 아니고··· 예전에 읽은 무협소설에서 이것과 비슷한 현상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게 오기조원이라고?"
"네, 그렇습니다만······."
벤자민이 입을 다문 채 이전석을 바라봤다.
그는 공중에 떠오른 채 내려올 기미가 없었다.
무사하다는 걸 확인했다.
저게 뭔지는 모르지만, 이상이 없다는 것도 알겠다.
식사를 하지 않아도 헌터는 죽지 않으니까.
본인이 괜찮으면 굳이 그들이 상관할 바는 아니었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안전을 확인했으니 이젠 물러나야 할 텐데···.
벤자민은 물론, 리암조차 이전석에게서 좀처럼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띠와 같은 형태로 이전석을 휘감은 오색의 기운.
그것이 밤하늘에 내리운 오로라처럼 어지러이 빛나며 신성한 기운을 자아낸다.
그렇다.
신성하다.
마치 신을 마주한 듯한 감각.
무릎 꿇고 싶다.
경배하고 싶다.
두려움, 존경, 동경.
경외심이 가슴 깊이 우러러 올라온다.
이윽고 벤자민과 리암의 무릎이 아래로 내려가려 할 때.
화악-!
오색의 띠가 안개처럼 흩어지며 사라져 버렸다.
직후.
탁-.
이전석이 바닥에 내려섰다.
그는 주변에 사람이 있음을 눈치채곤 그들을 돌아봤다.
"헉!"
"······!"
그제야 정신을 차린 벤자민과 리암.
두 사람이 깜짝 놀라듯 눈을 깜박인다.
아주 잠깐이지만 숨이 턱 막혔다.
무기질적이며 이질적인 흑색 눈동자에 도무지 눈을 땔 수가 없었다.
신비하고 신묘한 그 눈빛은 절로 그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무슨 일입니까?"
이전석이 뒤늦게 그들에게 물었다.
벤자민은 애써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답했다.
"아, 아뇨···. 아닙니다. 그저 손님분께서 여드레간 아무런 식사도 취하지 않으셔서 잠시 찾아뵈었습니다."
그에 이전석이 얼굴을 찌푸렸다.
여드레?
'벌써 여드레나 지났다고?'
잠시 눈을 감고 난잡하게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들을 정리했을 뿐이다.
'설마 무아지경?'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으나 이전석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저번에 들었던 무아지경과는 느낌이 명백하게 달랐기 때문이다.
띠링-!
그때.
[축하드립니다.]
[당신의 신격이 보다 완전해졌습니다.]
눈앞에 시스템이 떠올랐다.
[신성(神聖)이 형성되기 시작합니다.]
[이후 당신이 걸어갈 행적에 따라 당신의 신명과 권능이 결정됩니다.]
'신성······.'
이전석이 시스템을 빤히 쳐다봤다.
왜 갑자기 이런 게 나타났는지 알 겨를이 없었다.
생각을 정리하고, 새로운 도법을 창안했다.
정확히는··· 중구난방 하던 것을 하나로 엮었다.
절개, 발화, 브레스, 천보, 마도술 등등.
그리하여 진혈도법의 오의라 부를 만한 것을 만들었지만, 정작 기틀이 되는 식이 하나밖에 되지 않아 불완전한 오의가 되고 말았다.
그런데 그것을 완성한 직후.
대뜸 신성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단다.
하물며 자신을 바라보는 저들의 눈.
지금까지 겪었던 것들과는 다르다.
악의도 선의도, 그렇다고 중립적인 무언가도 아닌, 마치 신을 바라보는 듯한 시선.
신앙심이 서서히 싹트고 있는 게 보였다.
※ ※ ※
잠시 후.
이전석은 간단한 식사를 마치곤 별택을 나왔다.
그런데.
'몸이 가벼워졌나?'
발걸음이 묘하게 부드럽게 느껴졌다.
바람을 밟듯 가볍고, 또한 재빠르다.
여드레 동안 대체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겠지만 그리 나쁜 변화는 아니었다.
좋으면 좋았지 나쁠 리가 없다.
줄곧 컨디션이 좋고 머리가 맑았기 때문이다.
영원의 낙인으로 변할 리 없는 정신상태가 변화한 것이다.
그것도 아주 좋은 쪽으로.
몰캉-.
문득.
아공간 속에서 움직임이 전해졌다.
범인은 다름 아닌 혼백룡이었다.
아직은 유체- 슬라임에 불과한 것.
놈은 어째서인지 이전석의 아공간을 제 집처럼 드나들 수 있었고, 지금은 그곳에 마치 레어라도 만든 것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근본은 짐과 같은 용종이라는 것이겠지.
황룡이 이전석 주변을 맴돌며 말했다.
몰캉-!
아공간 내부에서도 외부를 느낄 수 있는 걸까.
황룡의 등장에 혼백룡의 살의를 보내왔다.
━이거, 제대로 미움받은 모양이로구나.
클클-.
황룡이 같잖은 듯, 한편으로는 귀여움이 묻어난 웃음을 흘렸다.
━계약자여, 우리 용종은 이름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정하고 깨닫게 되느니라. 형체조차 제대로 유지하지 못하는 저것이 훗날 어떤 존재가 될지는 모르겠으나, 이름은 신중히 지어주도록 하거라. 그대와 같은 초월자가 악의를 지닌 채 이름을 준다면 자칫 마룡(魔龍)이 될 수도 있으니.
황룡은 거기까지 말하곤 하늘 높이 승천했다.
구름과 구름 사이를 유영하며, 마치 수영이라도 하는 것처럼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
화산에 갇혀 있던 나날이 적잖이도 답답하게 느껴진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이름이라.'
이전석은 혼백룡에 대해 생각했다.
확실히 혼백룡은 종으로서의 이름일 뿐이지, 개체로서의 존재를 정의 짓는 명칭은 아니었다.
하지만.
'몰캉, 말캉, 말랑··· 음, 딱히 떠오르는 게 없군.'
슬라임 같은 귀여운 외형 때문인지 마땅히 생각나는 이름이 없었다.
그렇다고 정말 말랑이라고 지어주면 성체가 되고 나서도 저 모습일 것 같아 우려가 됐다.
이전석은 어쩔 수 없이 이름 짓기는 나중으로 미루기로 했다.
때마침 눈앞에 텔레포트의 현상이 발생하며 스텔라가 나타나기도 했으니.
"준비는 다 됐어?"
별빛이 흐르는 듯한 망토와 고깔모자를 쓴 스텔라.
제대로 싸울 준비를 맞춘 그녀가 이전석에게 물었다.
이전석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고.
"그럼 일단 작전본부로 이동할게. 자세한 이야기는 거기 가서 나누자고."
툭-.
스텔라가 한 손에 쥐고 있던 지팡이로 바닥을 두드렸다.
직후 그녀로부터 터져 나온 마나가 두 사람을 휘감았다.
일전에도 느껴본 적 있는 감각.
텔레포트가 이전석을 공간 너머의 공간으로 이끈다.
"참, 그리고 작전에 참여하는 다른 헌터들은 널 그리 반가워하지 않을 거야. 영웅이라고 불리는 거에 질투하는 모지리가 있을지도 모르고. 게다가······."
"그거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응?"
"그런 모지리들을 다루는 법은 잘 알고 있거든요."
이전석이 씨익 웃었다.
왜일까.
스텔라는 꺼림칙한 기분을 느꼈다.
그 직후, 시야가 완전히 바뀌었다.
스텔라가 말한 작전본부.
이제는 멸망해 사라진 중국과 북한의 국경지대에 도달한 것이다.
그곳에서 이전석은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무와 풀이 무성하게 자라난 숲.
그 한 가운데 작은 공토가 자리해 있다.
과연 작전초소라는 말 답게 천막이 곳곳에 세워져 있으며, 중앙에는 텐트보다 커다라며 온갖 복잡한 기계들이 놓인 천막이 있었다.
거대한 모니터 여러 개와 기다란 테이블, 그리고 파밀리아를 상징하는 깃발이 천막 위에서 펄럭였다.
"임시 작전본부야."
스텔라가 그곳을 향해 다가가며 설명했다.
순간 천막에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이전석과 스텔라를 바라보았다.
"저건······."
"흑영이잖아?"
"온다는 건 알았지만···."
"스텔라님이 아니라 저 새파란 녀석이 작전을 지휘한다고?"
"쯧."
곳곳에서 불만 어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당연했다.
비록 세간에서 영웅이라고 불리고 있다지만, 이전석은 아직 각성한지 반년도 안 된 애송이였으니까.
적어도 저들이 보기엔 그랬다.
하물며 얼굴도 모르는 외인이 자신들의 목숨을 지휘한다고 하면 누구라도 거부감이 들 수밖에 없을 터였다.
특히 친우라는 등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중요시 여기는 파밀리아라면 더더욱.
"어떻게 할래?"
사방에서 날아오는 적의 어린 시선.
개중에는 살기도 희미하게 느껴진다.
'보통이라면 이런 것들쯤이야 힘으로 억누르면 그만이지만···.'
아쉽게도 이전석으로선 그게 불가능했다.
이곳에는 SS급의 강자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말로 풀어가랴?
글쎄.
그것도 스텔라가 보기엔 무리가 있었다.
파밀리아는 내부의 결속이 단단한 만큼 외부인을 배척하는 경향이 강했기 때문이다.
스텔라가 힐끗 이전석을 바라봤다.
이전석은 딱히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이라는 듯 홀로 천막을 향해 걸어갔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주변을 감돌았다.
중앙천막이 아닌, 다른 곳에서도 이상을 느끼고 밖으로 나와 이전석을 바라보았다.
그 가운데.
"하나같이 머저리들뿐이네. 자기 주제도 모르는 건 너희의 보스가 그렇기 때문인가?"
대뜸, 이전석이 폭탄 발언을 내뱉었다.
회귀한 EX급 빌런이 악인을 너무 잘 죽임 102화
신성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