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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3 - 160-170

160화 괴조 - [1]

중국에서 리슈란이 온 다음 날, 국안부는 일본에서 베헤모스보다 몇 단계 체급이 낮은 거대괴수가 오고 있음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중국에서 S급 각성자를 데려온 건 그 괴수를 견제하기 위함이라고도.

예의 발표 이후 환율이 뛰고 국내 증시가 얼어붙는 등 악영향이 여럿 있었지만, 의외로 일반 국민들은 이 상황을 다들 무덤덤하게 넘어가는 분위기였다.

이미 한 차례 베헤모스 사태를 겪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말 잘 듣기로 소문난 중국산 S급이 왔으니 이번엔 뭔가 다르리라 기대해서일지도 모른다. 혹은 이젠 더 걱정할 기력조차 없는 것일지도.

이 와중에 오직 헌터들만이 현 상황을 심각하게 여기는 듯했다. 그중에서도 격하게 난동부린 바 있는 헌터들이 주로 분노와 불안감을 표시했다.

Ⓐ 5my지저스 : 수도꼭지 단단히 잠가두면 집에 물 능력자 침입 못 하는 거 맞나??

물론, 이 와중에 가장 격하게 반응하는 것은 우리의 경애하는 협회장 동지였다.

Ⓐ Dragon : 난 몇 달 전부터 이 상황을 예견했지. 중공에서 개입하기 전에 적당한 핑계 생겼을 때 특무대와 결전을 벌여 세를 꺾든 싹 다 죽여버리든 해야 했고

Ⓐ Dragon : 그런데 중국이 그리 무서운지 아니면 정부에서 따로 뒷돈이라도 받았는지 몰라도 예전부터 특무대 혐오하던 인간이 갑자기 특무대원을 보호해야 한다며 나 막아설 줄은 전혀 몰랐네

Ⓐ Dragon : 이제 특무대 설치면 어떻게 막을 거냐? 헌터들이 특무대 상대로 반항이라도 했다간 국내 헌터들보다 더 센 짱깨 S급이 지원하러 달려올 텐데?

최용이 올린 글을 보자마자 한숨이 절로 나왔다. 뭐 이런 말이 안 통하는 작자가 다 있나?

그날의 충돌 이후, 난 최용에게 화해하자는 제스처를 여러 번 보냈다. 헌트웹에 해당 사건에 내 잘못이 있음을 인정하는 글을 공개적으로 올렸으며, 이후로도 최용이 협회장으로서 행동할 때 계속 지지하리란 의사 또한 밝힌 바였다. 최용과 따로 대화하기 위해 전화를 몇 번이나 걸기도 했다.

그런데 전화는 받지 않고, 내가 보내는 화해 의사는 모조리 무시한 채 저따위로 나올 줄은 미처 몰랐다.

저러는 게 최용 저 친구에게 정치적 이득이 있어서일까? 그건 절대 아니다. 국내 2위 헌터인 나와 갈라서는 것이 저 친구의 권위에 무슨 도움이 된다고 나와 척진단 말인가?

아무리 봐도 단순히 내가 자신에게 망신을 줬단 이유로, 악감정이 풀리질 않아서 저따위로 구는 모양인데······.

그렇다면 최용이 지금까지 특무대와 적대하고 헌터 파업을 사주했던 일도 모두 감정대로 굴었을 뿐일까?

최용은 언제나 혐오감과 피해의식대로 행동했을 뿐인데, 내 멋대로 방식이 과격할 뿐 각성자들을 위한 일이라며 좋게 보고 따랐을 뿐일까?

솔직히 말하자면 실망스럽다.

지금까지의 내 행동에 회한이 들 지경이다. 환각 속 나든 지금의 나든, 저따위 저열한 인간을 리더랍시고 떠받들었던 건가 하는 회한이다.

물론 실망했다고 해서 내가 뒤늦게나마 최용을 비난하거나 절연을 선언하진 않았다.

중국에서의 위협이 현실로 닥친 마당 아닌가. 국내 각성자 사회에 분열을 일으킬 수는 없다.

난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최용에게 다시 한번 전화를 걸어봤고, 헌트웹엔 '어쩌면 내가 실수했을 수도 있다'는 뉘앙스의 글을 올렸다.

이대로면 협회장 노릇을 못 하게 될 수 있는 최용의 권위회복을 도와 현 갈등을 봉합하기 위한 나름의 노력이었는데, 정작 최용은 반응도 하지 않고 다른 유저들만 혀를 찰 뿐이었다.

Ⓐ syberMagneto : 우으······. 김극은 왜 저리 최용 저 정신적 고아 싸고도는 거야? 특무대 본부 앞에서도 최용이 주먹질하니까 김극은 제대로 반격 안 하고 방어만 하던데, 사매 답답해서 화가 나 으아아앙ㅠ

익명 : 김극 저 양반이 원래 저렇잖아. 나이토 상만 해도 모두한테 욕먹는 중에 김극 혼자 열심히 감싸드만

익명 : 나이토 상 생각하니 새삼 열받네······.

Ⓐ syberMagneto : 우으······ 나이토 상 그놈 얘기는 또 왜 나오니 비각성 쓰레기야? 가스실 같이 들어갈 동족이 줄어서 화 난 거면 그냥 엄마랑 손잡고 가스실 들어가면 돼 ㅜ

익명 : 나이토 상 그놈이 거금 받고 배 째란 식으로 나오고 있으니까 화나는 거야. 그놈은 받은 돈 언제 토해내냐?

Ⓐ syberMagneto : 이미 받은 돈을 왜 반환해? 사매도 나이토 상 너무 싫은데 받은 돈 토해내란 얘긴 안 해 비각성 쓰레기야 ㅠ

Ⓐ syberMagneto : 제대로 활동하는 중인 헌터한테 받은 돈 토해내란 말이 얼마나 잔인하고 어이없는 말인지 몰라?

익명 : 그래도 나이토 상은 받은 돈 토해내야지

익명 : 경상도에서 나이토 상에게 A급 헌터나 받을 계약금을 안겨준 건 단순히 사냥 열심히 하라고 준 게 아냐. 김극이 인천 탈환 프로젝트 진행하는 중에 나이토 상이 방송으로 지역복구 되는 과정을 홍보해준 성과가 뛰어났으니까 그 홍보 효과를 노리고 초빙한 건데, 그놈 각성자인 게 밝혀지면서 인기 나락 간 이후론 아무런 홍보 효과가 없게 됐잖아?

익명 : 그리고 나이토 상 논란 이후론 그놈 나온 자동차 광고도 더 내보낼 수 없게 되면서 돈 날린 회사도 출혈이 크거든?

익명 : 이 지경에 나이토 상이 받은 돈 내놓으라고 소송당하지 않는 것은 김극이 대놓고 싸고도는 까닭이야

Ⓐ syberMagneto : 김극이 싸고 도는 게 왜?

익명 : 나이토 상한테 돈 내놓으라고 소송이라도 걸었다간 바로 김극이 공간이동으로 달려가서 지원할 게 분명하니까. 김극 무서워서 소송을 걸 수 있겠나?

두 명의 설전을 보며 나는 혀를 찼다.

나이토 상, 이 친구 얘기가 아직도 거론될 줄이야? 저번 논란 이후로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이런 반응인 걸 보면 나이토 상이 모두에게 단단히 찍혔음을 알 만했다.

말이 나온 김에 나이토 상의 유튜브 채널에 들어가 봤다.

논란 이후 중단됐던 나이토 상의 방송은 얼마 전부터 재개 중이었는데, 영상의 조회수가 확 줄어든 것이 눈에 보였을뿐더러 기껏 달린 댓글도 욕설이 절반이어서 내가 다 답답해질 지경이었다.

이 와중에 나이토 상은 이젠 수익도 제대로 생기지 않을 유튜버 노릇은 왜 계속하는 걸까?

물어볼 기회가 얼마 지나지 않아 생겼다.

며칠 뒤, 국안부에서 날 경상도로 불렀기 때문이다. 나라가 또 한 번 초토화되거나 최소한 사람이 잔뜩 죽게 될지 모를 위기 상황이란 말과 함께.

*******

거대한 군집을 이룬 메뚜기 떼가 농작물에 막대한 피해를 주는 것은 유명한 일이다. 소위 황충이라 불리는 이런 메뚜기 떼는 먹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먹어 치우고 지나가며 드넓은 지역을 휩쓸어서는 기근마저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메뚜기보단 덜 유명하지만, 떼를 이룬 일부 조류종 또한 비슷한 피해를 입힐 수 있다.

국안부 공무원의 말에 따르면, 소월에서 넘어온 괴조(怪鳥)들이 딱 그런 조류종이다. 일본에서 주로 활동하는 괴수들인 만큼 일본에서 붙여준 이름인 카이쵸(かいちょう)가 정식 명칭인데, 한국에선 그냥 괴조라 부른다고도.

"일본에서 괴상하게 생긴 새들이 한반도로 넘어온 건 아시죠? 지금까지 몇 마리쯤 보셨을 겁니다."

공무원의 말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집 근처에도 몇 마리 있던데."

"그렇듯 몇 마리 몰려다니는 수준으론 딱히 심각한 피해까진 없는 놈들이에요. 개체 하나하나는 크고 강하지 않은 놈들이니 말입니다. 기껏해야 아기나 길고양이를 공격해 잡아먹거나 텃밭을 망쳐버리는 정도죠.

문제는 이놈들이 제대로 군집을 이루면 수십억 마리가 한꺼번에 한 지역을 휩쓸어버린단 겁니다. 일본에선 이놈들이 데스클로보다도 더 큰 악명을 떨친 놈들인데······."

데스클로보다 악명 높단 말에 긴장감이 절로 들었다. 별별 괴수를 다 상대해본 나조차 여전히 데스클로들 앞에선 긴장해야 하는 마당인데 어찌 그럴 수 있나?

이어진 공무원의 말에 따르면, 괴조들의 특성은 이랬다.

앞서 말했듯 놈들은 떼려 몰려다니며 농작물을 초토화하는데, 살충제 따위가 통하는 메뚜기 떼와 달리 이놈들은 비교적 크므로 그런 식으로 제거하기가 쉽지 않다.

또한 놈들은 소가죽마저 찢을 만큼 날카로운 발톱을 지녔기에 여럿이 모이면 대형동물까지 사냥할 수 있으며, 이 사냥 가능한 대형동물엔 당연히 인간이 포함된다.

놈들은 각 개체의 지능이 앵무새 수준으로 높다. 그렇듯 지성이 있는 만큼 각성할 수 있다.

심지어 놈들은 각성하기 위한 조건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있기도 하다.

놈들은 평소 날카로운 발톱으로 각 개체끼리 서로 '대련' 비슷한 행위를 하여 역장 날붙이 능력에 각성하거나, 날갯짓하지 않고 바닥으로 떨어져 내려 풍정 능력에 각성하는 식으로 각성을 위한 트리거 행동을 의도적으로 반복하는 게 관찰된다.

그런 이유로 괴조 군집에는 각성체의 비율이 유의미하게 높다. 몸이 단단한 각성자 헌터인들 괴조 떼를 상대하며 안심할 수 없는 이유다. 평범한 새의 발톱이려니 하고 안심하다간 역장 날붙이에 뇌가 헤집어질 수도 있으니까.

또한 놈들에겐 날개가 있는 데다 게이트를 열 수 있는 정령 각성체가 무리에 여럿 있으므로, 비행하여 먼 거리를 이동하거나 게이트 안에서 다 같이 이동하는 식으로 대규모 이동 또한 활발하다. 놈들이 어디로 이동할지 몰라 국제기구에서 직접 놈들의 이동 경로를 유심히 살펴야 했다······.

"베헤모스의 부름 이후로 괴조들이 일본 열도에서 자취를 감추더니, 현재 한반도로 넘어오는 게 게이트 안에서 목격됐단 겁니다. 수십억 마리가 한꺼번에요."

공무원의 비장한 말에 내가 물었다.

"지금까지 일본에서 대응하던 대로 대응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기도 쉽지 않습니다. 일본에도 뭐 대단한 대응법이 있는 게 아니라서요. 기껏해야 밭에 폭약을 심어두고 놈들이 몰려왔을 때 터뜨리는 식으로 겨우 대응했다는데요.

번식은 고향인 소월로 넘어가서 하는지 서식지를 근절하기도 쉽지 않고. 무엇보다 지금은 여러 군집으로 나뉘어있던 놈들이 한 떼를 이루어 오는 거라 유례없는 상황이라고······"

결국 마땅한 대응책이 없지만, 현재 놈들이 당도할 예정인 경상도에서 날뛰게 내버려 두었다간 한해 농사를 모조리 망칠 게 분명하다고 했다. 가용한 방법은 모조리 동원해야 할 상황이며 당연히 헌터들 또한 불렀다고.

"사실 김극 헌터께선 서울 및 인천과 계약하신 만큼 경상도에서 일하도록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일찍이 경상도에서 공 세운 적이 있으셔서 제안을······. 이번 일에 나서주실 의향이 있습니까?"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공무원이 한숨 쉬었다.

"김극 씨라면 거절하지 않을 거라 예상하긴 했는데, 그래도 감사합니다. 진심으로요. 하여간······ 첩첩산중이군요. 이 작은 땅에 재앙이 꼬리를 물고 오고 있어요. 대체 나라가 어찌 되려고 이런 일이 자꾸?"

연신 한탄하는 공무원에게 내가 물어보았다.

"나 말고 또 누구누구 헌터가 지원하러 온답니까?"

"우선 석장실 씨랑 백담비 씨, 그리고······"

"강준치는요?"

"안 온답니다."

"최용은요? 그 친구 화력이 어마어마하니까 이번 일에 큰 도움이 될 텐데. 원래 경상도에서 헌터 하던 친구니까 나름 애향심이 있을 수도 있고······"

공무원이 또다시 고개를 가로젓자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최용이 인성이야 어쨌건 헌터 일은 열심히 하는 친구였는데 왜 오지 않는단 말인가? 공을 세워서 돋보일 기회인데 대체 뭐가 맘에 들지 않아서?

복잡한 심경으로 도청 건물을 나섰을 때였다.

나는 마침 건물에 들어오고 있던 내 절친을 보고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오, 나이토 상? 곤니치와!"

161화 괴조 - [2]

내 활기찬 인사에 나이토 상과 그 주변 사람들은 당황한 기색이었다. 다들 어색한 표정으로 내 인사를 받았다.

"김극 씨? 어, 음. 안녕하십니까······?"

그들의 이유 모를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내가 다가가 말을 걸었다.

"여기서 또 보네! 괴조 관련으로 일하고 계신 거 맞죠?"

여전히 어색한 표정으로, 나이토 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예."

"그러고 보니 일본에 있을 때 괴조 좀 잡아보셨나? 그때 경험 살려서 이것저것 조언해주고 작전에도 참여하고 뭐 그러는 거예요?"

"자문씩이나 해줄 능력은 못 되지만 뭐, 대충 보고 들은 것들 공무원분들한테 전해주긴 했습니다. 이번 작전에야 당연히 참여해야겠고요."

"오······."

내가 장하다는 의미로 감탄사를 흘렸더니 나이토 상은 쓰게 웃었다.

"돈값 하려면 죽어라 일해야겠지요. 물론 이미 받은 돈만큼 일하려면 내 몸이 열 개라도 불가능하겠지만······."

자책하는 나이토 상 옆에 카메라맨이 멀뚱히 서 있었다. 그를 보며 내가 물었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부터 방송 재개했던데. 방송 계속하는 걸 보니 유튜버 노릇이 즐겁긴 한가 봐요?"

"아, 그게. 경기도랑 맺은 계약에 방송으로 지역홍보랑 지역복구 홍보 꾸준히 해야 한다는 게 포함돼있어서요. 방송하기 싫어도 안 할 수가······."

"아."

내가 난처해하는 가운데 나이토 상은 계속 자조적으로 중얼거렸다.

"저번에 김극 씨가 고블린 군대 상대할 때 방송 조회수는 유독 폭발적이어서 역대급이었는데, 그 다음 방송 조회수는 처참하게 내려가서 더욱 비교가 되더군요······. 그래서 말인데, 김극 씨."

"예?"

"혹시······ 방송 딱 한 번만 더 나와주실 수 없겠습니까?"

이건 또 의외의 제안이었다.

"방송 또 나와달라니, 왜요?"

"김극 씨가 나와주면 조회수 다시 폭증하지 않을까 싶어서요. 김극 씨가 인천 탈환 프로젝트 진행할 적보다 훨씬 유명인사가 되셨기도 하고, 김극 씨가 나온 방송들은 실제로 조회수가 유독 높기도 하니까······."

친한 사람한테 선뜻 하는 제안이 아니라 친하지도 않은 사람에게 민망함을 무릅쓰고 하는 제안임을 그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더 민망해지기 전에 내가 빠르게 대답했다.

"뭐, 그럽시다."

그리하여 예의 방송을 그 자리에서 시작했다.

"이야, 방송 제목에 김극 씨 이름 넣으니 조회수 확 오르네요? 김극 효과 끝내주네 정말······!"

카메라맨이 감탄하는 가운데 나는 방송 시청자들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나이토 상이 골라서 읽어주는 질문에 대답했다.

Q. 김극 헌터 출동 횟수가 독보적인 걸 넘어선 수준이다. 혼자서만 매일 여러 번 출동하던데. 천문학적인 계약금 받고도 일주일에 한 번 출동할까 말까이기에 비교가 되는 다른 헌터들한테 한 말씀 해준다면?

"나는 최고 수준의 신체강화자라 피로회복이 빠른 데다 기동성 끝내주는 공간이동자인 덕에 여기저기 옮겨다닐 수 있어서 그런 짓이 가능한 거고, 다른 헌터 분들은 굳이 절 따라 하도록 강요할 이유가 없습니다."

Q. 김극 헌터께서 혼자 다른 A급 헌터 백 명 몫 넘게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심지어 고위험 괴수들이 나타나면 바로 맡으러 나서주기 때문에 실제 기여는 그보다도 훨씬 크다던데.

덕분에 김극 헌터가 인천을 탈환한 데 이어 서울까지 정상화하기 직전이라 알고 있다. 다음에는 경기도에도 와서 일해줄 수 없나?

"경기도가 인천의 속방임을 받아들이고 인천 영토에 포함된다면 기꺼이 그리하겠습니다. 인천 만세."

Q. 요새 한국에선 헌터들한테 외국 수준으로 돈을 주지 못하는 형편이라던데. 김극 헌터도 올해 계약 끝나면 외국 갈 계획인가?

"인천을 버리고 외국엘 왜 갑니까? 차라리 소월에 가면 모를까."

Q. 김극 헌터는 앞으로도 인천이랑만 계약하겠다더니 서울과도 계약해선 요샌 인천보다 서울에서 더 일하는 중인데. 이건 인천을 버린 게 아닌가?

"제가 서울에서 더 많이 일한다고 해서 인천을 버린 게 아닙니다. 제가 있는 곳이 곧 인천인 만큼 서울이 인천의 식민지로 거듭났음을 증명하는 중이니 제 충심을 의심하지 마세요. 인천 만세."

아무래도 나이토 상이 악질적인 질문들을 걸러내서 저런 유쾌한 질문에만 대답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사실을 알아도 기분이 좋긴 했다. 지금까지 노력한 걸 다들 알아주는 기분······.

덕분에 더없이 즐거운 기분으로 인터뷰를 마친 뒤였다.

방송마저 끝났을 때 나이토 상이 밝은 얼굴로 내게 감사 인사를 건네왔다.

"정말 감사합니다, 김극 씨! 딱 봐도 조회수 확 오른 게 정말······"

"굳이 방송 조회수 높여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이미 돈도 많이 버신 분이잖아요. 뭐하러 방송 수익까지······"

문득 생각난 것을 묻고서 또다시 말실수했음을 깨달았다.

나이토 상이 이렇게 대답했기 때문이다.

"방송 수익이 중요해서가 아니라, 이렇게 조회수가 안 나와서야 지역홍보며 지역복구 홍보가 될 리 없으니 민망해서요. 그래서 김극 씨한테 폐를······."

인터넷 방송인으로서 충실 하려는 게 아니라 헌터로서 충실 하려는 것임을 다시 한번 알 수 있었다. 지자체와 맺은 계약에 부응하려던 모양이지.

내가 머리를 긁적이며 제안했다.

"조회수 복구가 그리 중하고 저 나올 때 조회수 잘 나오면······ 당분간 같이 다닐래요? 저 오늘부터 경상도에서 헌터 일 시작해야 할 것 같은데 그거 도우시며 방송 촬영하면 좋을 것 같은데."

"아직 괴조들은 경상도에 닿지 않았는데, 벌써 일하셔야 한다고요?"

"그놈의 새대가리들이 게이트 열었을 때, 게이트에서 괴조들만 나올 게 아니라 데스클로며 오거며 다 튀어나올 것 아닙니까? 그때 같이 못 튀어 나오게 미리 치워놔야죠."

"미리 치운다뇨? 아, 인천 탈환 프로젝트 할 때처럼 게이트 안에 있는 걸 끄집어내서······. 하여간 대단하십니다. "

"부럽죠?"

농담처럼 던진 질문에 진지한 대답이 돌아왔다.

"예.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부러워 미치겠네요······."

"아, 과시하려던 게 아니라!"

"저도 질투하려던 게 아닙니다. 난 보잘것없는 각성자인데 그쪽은 대단한 각성자라서 부럽다, 뭐 이런 말 하려던 게 아니에요."

"그럼 뭡니까?"

내 물음에 나이토 상이 우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도 김극 씨처럼 대단한 공 세우고 싶어 미치겠습니다. 왜 그래야 하는지는 이미 아실 테고······"

확실히 그 이유를 직접 말하지 않아도 알 만했다.

각성자임이 밝혀져서 명예가 처참하게 실추된 지금, 명예 회복을 위해 공을 세우고 싶단 것이리라. 영웅적인 공을 세워서 영웅으로 거듭나야 이 모든 불명예를 씻을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그 명예 회복을 도울 방법은······. 마땅히 생각나는 게 없다. 나이토 상 본인이 어떻게든 활약하는 수밖에.

*******

그렇게 이틀이 흘렀다.

내가 나이토 상과 그 팀원들을 데리고 다니며 게이트 안에서 괴수들을 끄집어내 제거하는 동안 정부도 멀뚱히 응원만 하고 있지는 않았다.

관과 군이 협력해서 신속하게 주민들을 소개했고, 그 빈 자리에 군인들을 채웠으며, 온갖 군사 장비들을 각 장소에 옮겼다. 곧 펼쳐질 상황에 다들 필사적으로 대비를 했다.

그날 오후, 게이트를 열고 그 안에 들어가 괴조 군집의 움직임을 관찰하던 석장실에게서 연락이 왔다.

괴조들이 곧 경상도에 닿을 것 같단 연락이었다. 슬슬 싸울 준비를 하라는······.

그리고 나는 마지막으로 최용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제라도 작전에 참여하라 권하기 위해서였다.

인성이 얼마나 고약하건 지도력이 얼마나 의심받건 간에, 헌터들의 위상은 얼마나 잘 싸우고 얼마나 강한지가 중요한 것 아닌가?

그리고 이번 작전에서 최용은 나보다 훨씬 크게 활약할 여지가 컸다. 용의 불꽃이면 떼로 몰려다니는 괴조들을 깡그리 태워버릴 수 있을 테니 그야말로 S급 못지않은 활약을 할 수 있을 것 아닌가. 그리 활약하면 실추된 위엄을 회복하기에도 큰 도움이 될 터였다.

그렇듯 단순히 헌터로서 위기 상황에 본분을 다해야 한다는 정신론이 중요한 게 아니라, 작전에 참여함으로써 얻을 개인적인 이득이 상당할 텐데도 작전에 참여하지 않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끝내 최용이 전화를 받지 않았기에 문자 메시지로 예의 내용을 간추려 경상도에 올 것을 전했다. 그래도 대답이 오지 않자 그제야 포기했고.

그리고 저녁 무렵, 게이트가 열렸다.

******

게이트가 열리면 그 안에서 빠져나온 감정에 현기증이며 불쾌감을 느끼기 마련이지만, 이제는 익숙해지다 못해 담담해졌다.

사방에 여기저기 열린 게이트들을 보았다.

게이트들은 마구잡이로, 동시다발적으로 열렸다.

이 와중에 텅 빈 하늘에 열린 게이트는 많지 않았다. 대부분의 게이트는 아파트 건물 사이, 아니면 상가 건물 사이에 열렸다. 그런 장소에 게이트를 열면 포격할 각도가 나오지 않아 게이트에서 나오자마자 공격받을 가능성이 줄어든다는 것을 학습한 게 분명했다.

그래서 내가 가장 먼저 한 것은, 게이트가 열린 근처 건물에 군인들을 옮기는 것이었다.

아파트 11층 베란다로, 군인 셋과 함께 공간이동 했다.

방독면과 생화학무기를 장비한 군인들이었다. 그들은 아파트 옆에 열린 게이트를 향해 각자 든 무기를 겨누었다.

이로써 게이트 안에서 괴조들은 쏟아져나오기 무섭게 치명적인 공격에 노출될 것이다.

"행복아파트 11층 배치 완료라고 알림······"

격전이 예상되는 가운데, 서로 힘내자고 응원이라도 할 여유는 없었다. 여기저기 열린 게이트가 너무 많았고 옮겨야 할 군인들도 너무 많았으니까.

공간이동을 거듭하며 군인들을 게이트 근처에 옮겼다. 신경계가 과부화 되어 온몸이 뜨거워지고 머리가 어지러워질 만치 그런 작업을 반복했다.

온몸이 너무 과열돼서 더는 걷지도 못할 지경이 되어서야 공간이동을 중단했다.

"괜찮아요?"

백담비가 내 등에 손을 올려 체온을 낮춰주는 중에 고개를 끄덕였다.

말없이 고개를 돌려 도시의 상황을 보았다. 군인들이 고함지르고 있었다.

"나왔다! 씨, 나왔다!"

군사용 조명이 도시 구석구석을 밝히는 가운데, 마침내 열린 게이트에서 쏟아져나오는 괴조들을 보았다.

생명체들이 빠져나온다기보단 어떤 검고 유동적인 덩어리들이 빠져나오는 것 같았다. 수십억 마리 괴조들의 일부였다······.

그리고 내가 무리한 보람이 있어서, 군인들의 화염방사기며 생화학무기 등이 괴조들을 나오는 족족 덩어리째로 추락시켰다.

그러나 사전에 발견하지 못했던 게이트가 상당했다.

도시의 곳곳에서, 시커먼 연기들이 위로 솟구쳤다.

물론, 연기가 아니었다. 떼를 이룬 괴조들이 곳곳에서 솟구치는 것이었다.

그리고 괴조들이 뭉쳐있던 하늘에, 뭔가가 발사되어 폭발했다.

딱 보기에도 소이탄 같았다. 시뻘건 화염이 요란하게 확산하며 거대한 규모였던 괴조 군집을 송두리째 삼켜버렸다.

얼핏 보기엔 인류 무기의 승리 같았지만, 그 결과는 그리 속 시원하진 않았다.

온몸이 불에 휩싸이는 것은 화정 능력의 각성 트리거다.

대부분의 괴조들은 불에 삼켜져 불타 죽었지만, 그 모두가 불타 죽지는 않았다.

일부는 살아남았다. 살아남았을 뿐만 아니라 더 끔찍하고 죽이기 어려운 존재로 거듭나버렸다.

2,000°C의 고열 속에서, 육체가 모조리 불타버린 채 살아있는 화염으로 거듭난 개체들이 화려하게 생존을 신고했다.

트리거를 만족하고, 각성하여 화염 정령으로 거듭난 괴조들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어둠 속에서 놈들의 변화와 움직임은 끔찍할 만치 선명했다.

보고 있자니 탄식이 절로 나오는 장면이지만, 그래도 군인들은 계속해서 도시의 하늘에 소이탄의 불꽃을 피워냈다. 이미 다 결과를 예상하고서 하는 일이었다. 이런 식으로라도 수를 줄이지 않으면 아예 대응할 수가 없다.

이 와중에 화염 속에서 몸뚱이를 지니고 멀쩡히 빠져나오는 괴조들도 있었는데, 놈들은 분명 역장체들일 것이었다.

"미친······"

그리고 헌터들이 움직였다.

화염 속에서 살아나온 괴조들을 향해 수십 줄기 황금빛 선이 가 닿았다. A급 헌터들의 헌터 라이플 세례였다.

그리고 바이크 배기음이 울렸다. 나이토 상, 그가 은빛 바이크를 탄 채 도시의 한 가운데로 질주하고 있었다.

정확히 뭘 하려는 건진 모르겠지만 가장 위험한 현장으로 뛰어들려는 것 같았다. 명예 회복을 위해 공 세우고 싶어 안달이 났다더니, 가장 위험한 장소로 향하려는 걸까?

말릴 수는 없다. 이제 나도 비슷한 짓을 해야 하니까. 그것도 여러 번, 쉬지 않고 거듭해서.

"더 쉬어야 하지 않아요?"

백담비가 말렸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공간이동 했다.

162화 괴조 - [3]

웬 건물 안에 이동하니 폭약이 쌓여있었다. 나 쓰도록 군에서 미리 쌓아둔 폭약들.

내가 공간이동으로 옮길 수 있는 최대한의 양을 챙긴 뒤, 정신적 그물망으로 현 상황을 살폈다.

그러자니 욕설이 흘러나왔다. 이런 젠장······.

이곳저곳이 아비규환이었다. 여전히 여기저기 열린 게이트에선 괴조들이 폭발하듯 쏟아져 나오는 가운데, 새로이 열리는 게이트 또한 한둘이 아니었다.

그리고 게이트에서 빠져나온 지 꽤 되어서는 주변 상황을 파악하게 된 괴조들은?

놈들은 이제 본격적인 먹이 사냥을 시작하고 있었다.

괴조들이 사방으로 확산했다. 그러고는 도시 근처 논밭의 벼 낱알을 쪼아먹거나, 각 위치에 고립된 군인들을 발톱으로 찢어대고 있었다.

괴조들에게 당했는지 이미 군인 여럿이 죽었다. 죽은 군인의 시체가 가려질 만치 모여든 괴조들이 그 살점을 마구 쪼아대고 있었고.

이 지경에 쉴 여유는 없다. 정말로.

나는 심호흡 한 다음 연달아 공간이동 했다. 게이트에서 빠져나온 지 오래되지 않았는지 구름처럼 모여있던 괴조 위에 이동하여 가진 폭약을 터뜨렸다.

그 폭발이 나마저 덮치기 전에 재빨리 공간이동 했다. 그래서 방금 내가 일으킨 폭발은 꽤 멀리서 관측하게 되었고.

또 한 무리 괴조들 위에도 폭약을 터뜨린 다음, 앞서 정신적 그물망으로 위치를 파악해두었던 고립된 군인들 옆에 공간이동 했다.

"악, 악!"

괴조들에게 입고 있던 방호복이 찢어진 채 살점마저 뜯겨 나가고 있던 군인 둘과 함께 공간이동 했다. 그 둘을 폭약이 쌓인 곳으로 옮겼다.

군인들의 몸에 붙어있던 괴조들도 함께 옮겨졌다. 내가 놈들을 한 마리 한 마리 잡아서 전부 목을 꺾어 죽이자니, 군인 한 명은 아파 죽겠는지 신음할 뿐이었고 나머지 한 명은 겨우 상황 파악이 되는지 헐떡거리며 내게 감사 인사를 했다.

"감사······"

그 의기를 보니 인천 사람이 분명했으므로 씩 웃으며 짧게 인사했다.

"인천 만세."

그러곤 다시 폭약을 들고 공간이동 했다. 여러 괴조 무리 위로 이동하여 폭약을 터뜨리길 반복했다.

그러다가 가장 큰 규모로 뭉쳐있던 군집 위로 공간이동 했을 때였다. 어?

그곳의 괴조들은, 내가 공간이동 한 동시에 내게 날아들었다.

내가 공간이동으로 여기저기 다니며 동족들을 폭사시키는 장면을 어느 개체가 목격하고 위기감을 느꼈던 걸까? 내 존재를 모두에게 경고했던 것이고?

"이런 씨발."

순식간에 내 시야가 괴조들의 몸뚱이로 가려졌다. 그리고 내게 달라붙은 괴조들이 내 몸을 부리로 쪼고 발톱으로 찢으려 할 때, 나는 위기감을 느꼈다.

왜냐하면 그중에 역장 날붙이 개체가 섞여서는 실제 내 가죽과 살을 찢어댔기 때문에. 그렇듯 살이 찢겨나가는 중에도 너무 많은 놈들이 내게 달라붙어 접촉한 질량이 확 늘어나서는 공간이동 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이때 내 대응은, 폭약이었다.

우악스럽게 터뜨린 폭약이 바로 내 손 위에서 폭발했다. 가지고 있던 모든 폭약을 터뜨렸기에 역장이 거의 깨질 뻔했다.

귀가 먹먹해지는 폭발과 함께 괴조들의 구워졌거나 덜 구워진 살점이 사방으로 터져나갔다.

내 시야가 온통 놈들의 피와 깃털로 가득 찬 가운데, 나는 겨우 공간이동 하여 그 장소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다시 폭약들이 쌓인 건물 안으로 공간이동 하니, 내가 앞서 구출하여 데려온 군인들이 기겁한 얼굴로 물어왔다.

"괜찮아요?"

내가 지금 피범벅인 꼴을 보고 기겁한 걸까?

"괜찮아요, 괜찮아."

대충 대답한 다음 허리에 차고 있던 생수통의 칼로리 드링크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몸이 회복되는 중에도 정신적 그물망을 뻗어 상황을 살폈다. 이대로 내버려 두면 죽을 것 같은 군인 셋을 발견하여 또다시 공간이동으로 구출해온 뒤, 금방이라도 사방으로 퍼져나갈 것 같은 괴조 무리 위에 부랴부랴 폭약을 터뜨리고서야 다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그런 식으로 얼마나 오래 움직였는지 모르겠다. 체감상으론 약 두 시간쯤 지났을까?

그제야 게이트에서 모든 괴조가 빠져나왔다. 그 말은 이대로면 상황이 더욱 심각해질 수 있음을 의미했다.

이제 괴조들은 한데 뭉쳐있는 게 아니라 사방으로 흩어져서 각자의 식탐을 채우고 있었다. 사방의 논밭이며 미처 옮기지 못한 가축들을 초토화하고 있었다. 총알로건 폭약으로건 저 모두를 일일이 잡아 죽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니까, 드디어 내 라운드걸이 나설 차례임을 알 만했다.

「백담비 씨? 지금입니다!」

날카로운 무전이 들려오더니, 여름이라 습기 찼던 주변이 건조해지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추위마저 느껴지기 시작했을 때였다.

아······.

추위와 함께 휘날리는 새하얀 눈들을 보았다.

시야를 뒤덮은 눈보라. 소도시 하나를 감쌀 규모의······.

비교적 외곽에 있었던 듯, 눈보라가 몰아치자마자 눈보라를 벗어나 버린 괴조들도 있었지만 놈들은 가장 먼저 사냥당했다. 내 라운드걸의 흉악한 시야에 닿았기 때문이다.

눈보라를 빠져나와 다 함께 날아가던 괴조들이 불현듯 날갯짓을 멈췄다.

괴조 여럿이 동시에, 더러운 진눈깨비처럼 흐느적거리며 추락했다.

정령 능력자들이 생물의 신체 내부에 가할 수 있는 능력 사용이 분명했다. 아마도 저 괴조들은 신체 장기 어딘가가 얼어붙어 즉사했을 것이다.

원래 새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는 생물에겐 능력을 쓰기 어렵거니와 한꺼번에 여러 대상을 상대로 그러기도 어렵다고 알고 있는데, 백담비의 경우엔 그 모든 게 가능한 모양이다.

미처 다 죽이지 못한 괴조들도 백담비의 다음 능력 행사에 당한 듯 다 함께 떨어져 내렸다.

보면 볼수록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이건 단순히 능력의 강약이 중요한 게 아니라 능력 컨트롤의 문제다. 국내 능력자 중에서는 강준치 정도가 그녀 정도로 능력의 세세한 컨트롤에 익숙할 것이다.

물론 감탄만 계속하고 있을 수는 없다. 이대로 사냥이 끝난 게 아니니까.

눈보라 속에서 괴조들이 단번에 얼어 죽진 않을 것이다. 여름에 그 정도로 온도를 떨어뜨리긴 불가능한 일이요, 자칫하면 군인들도 얼어 죽을 수 있으니 백담비가 알아서 능력을 조절한 바였다.

그러나 눈보라 속, 견디기 어려운 추위에서 시야가 구분되지 않아 멀리 이동할 수 없는 상황에 괴조들의 행동을 예상할 수 있었다.

지금 눈보라 속 괴조들의 행동은, 각자 행동을 그만두고 다시 한데 뭉치는 것이었다. 수많은 무리가 달라붙어 서로의 체온의 체온을 보존하려는 선택이다. 일본에서 전해준 놈들의 습성 중 하나요, 일찍이 토벌 작전을 짤 때 백담비를 포함하며 고려한 사실 중 하나였다.

그리고 나는 뭉쳐있을 놈들 사이에 터뜨리기 위해 폭약을 짊어졌다.

눈보라가 끝나기 전에 최대한 많은 놈들을 죽여야 할 것이다.

*******

눈보라는 약 한 시간쯤 지속된 끝에 그쳤다. 그 후에도 살아남은 괴조들이 끔찍하게 많았다.

이후로도 쉴 새 없이 계속된 괴조 사냥은, 새벽이 지나 동이 터서야 겨우 끝났다.

"끝났나?"

"끝났어. 만세―"

만세 합창을 외치는 헌터며 군인들의 목소리에도 힘이 전혀 없었다.

하기야 피로마저 잊고 기뻐하기엔 썩 통쾌한 승리가 아니었다.

주변을 보면 온통 지저분한 괴조 시체에 깃털뿐이요, 때아닌 눈보라로 인한 냉해에 주변 논밭은 망가지고 말았다.

또한 모든 괴조들을 소탕하진 못했으므로 살아남은 괴조들은 한반도 각지로 퍼져 번식할 것이요, 일본에서 그랬듯 온갖 문제를 일으킬 것이다.

사람이 여럿 죽고 물적 피해가 심각한 가운데 얻은 것은 없다. 자연재해를 겪었을 때면 늘 그렇듯 잃은 것만 가득할 뿐이다.

지금 이 상황엔 헌터인 나도 얻은 게 적긴 마찬가지다. 내 수준에 저런 자잘한 놈들을 해치운들 얻는 것은 많지 않거니와 이미 천문학적인 계약금을 받은 내 입장엔 이번에 받은 출동비도 많지 않았으니까.

이 와중에 헌터로서 얻는 게 있다면 명예뿐······.

영웅적인 명예를 원했던 나이토 상은 이 상황에 원하던 명예를 얻었을까? 모르겠다.

잠시 쉬던 중에 헌터 둘의 대화가 들려왔다.

"중국에서 S급 왔다더니 그년은 뭐 하고 자빠졌냐. 그년 이미 한국 온 거 아니었냐?"

"이 사태에 그 여자도 일했다는데?"

"뭐? 어디서."

"해안 쪽에 날아오는 괴조들을 그 여자가 담당해서 몰살했다던데······."

그들의 말을 듣고서 나는 스마트폰을 켰다.

그리고 자료를 찾아보니 과연, 중국의 S급 능력자가 이 상황에 뭘 했는지 알 수 있었다.

게이트 안이 아니라 바깥에서, 직접 비행하여 바다를 건너오던 괴조 군집이 있었던 모양이다.

동영상 속에 괴조들의 움직임이 보였다. 게이트를 넘어 도시에 침투해온 놈들만큼의 규모는 결코 아니었지만, 그래도 하늘의 일부를 덮을 만치 그 수가 상당했다.

그리고 경상도 해안으로 날아오는 놈들을 향해, 한 여자가 손을 뻗었다.

중국의 S급 각성자, 리슈란······.

그녀의 손짓에 따라 바다가 움직여, 삼백 미터는 될 법한 해일이 솟아났다. 거대한 지진이 일어나야 볼 수 있을 법한 초자연적인 해일이었다.

그것이 평범한 해일과 다른 점은, 해안에서 내륙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그 반대였단 점이었다.

거대한 해일이 해안으로 다가오던 괴조 군집을 삼켰다.

그리하여 바닷물에 빠져버린 괴조들에겐 헤엄쳐 빠져나올 기회도 없었다. 놈들을 한 차례 삼켜버린 해일은 이내 소용돌이로 변했으니까. 소용돌이 속에서 괴조들은 바닷물 깊은 곳으로 가라앉았을 터였다.

그 와중에도 해일에 닿지 않아 살아남았던 괴조들은, 해일이었다가 소용돌이였다가 이제 용오름으로 화한 바닷물에 붙잡혔다.

그리고 용오름을 피해 달아나던 괴조들마저 용서받지 못했다. 용오름에서 빠져나온 가늘고 빠른 물줄기(수압 커터로 추정되는)가 달아나던 괴조들을 하나하나 격추당하기 시작했다.

수두룩한 괴조들이 그리 바다에 떨어지면서 바닷물에 피가 고이기 시작했다. 이로써 바다에 양분이 환원될 것이다······.

그 모든 장면을 보면서 생각했다. 이 여자도 괴수 사냥을 돕긴 돕는구나.

갑자기 내적 친밀감이 싹틀 뻔했다. 이 여자가 무고한 얼음 능력자 셋을 죽이고서 그 힘을 얻었단 사실을 떠올리고서야 겨우 그녀에 대한 적개심을 다시 일깨울 수 있었다.

"와, 개쩌네······ 해안에선 이미 일 끝난 거 같은데 여기 도우러 안 오나?"

"해안에서 더 올지 모르니까 대기 중이라던데? 물 없인 저 정도 규모로 능력 사용 불가능한 모양이고."

물론, S급 각성자의 능력이 얼마나 우월하건 간에 나는 나대로 할 일을 계속해야 했다.

"게이트 안에 들어가 본 사람? 게이트 안에서 활동할 수 있는 사람 모여!"

내 외침에 한 헌터가 어이가 없다는 듯 물어왔다.

"김극 씨, 안 쉬어요?"

헛소리. 몇 번이고 말하는 것 같지만, 쉴 틈이 없다.

게이트 안에 도로 숨어들었을 괴조들, 그중에서 고위험 개체들을 해치워야 했다. 놈들이 멀리 움직이기 전에, 지금 한곳에 모여있을 때 빨리.

내가 계속 외치자 내 주변에 헌터들이 모여들었다.

그중에는 피범벅인 석장실도 있었는데, 녀석도 종일 고생한 게 분명했지만 내게 좀 쉬자며 너스레를 떨지도, 친한 척을 하지도 않았다. 피곤해서인지 아니면 이제 나와 말 섞는 게 어색해서인지는 알 수 없었다.

석장실은 그저 내 요구에 따라 묵묵히 게이트를 열어줬을 뿐이다.

그가 열어준 게이트 안에 나와 헌터들이 들어갔다. 그리고 사방으로 흩어졌다가 돌아온 헌터들이 내게 사냥감들의 위치를 알렸다.

「김극햄, 여기요! 이쪽으로!」

그로부터 또 반나절이 지나서야 내 사냥이 끝났다.

"김극 씨 오늘도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렇게 큰 도움 주셔서 감사드리고······"

현장에 나와 있던 국안부 장관이며 다른 공무원들의 인사 겸 감사를 받으며, 나는 비로소 사냥을 마치고 귀가했다.

*******

이 정도로 지친 것은 오랜만이었다. 침대에 누운 지 열 시간쯤 지나고서야 눈을 떴다.

대충 생라면을 몇 봉지 씹어 어제 잃은 칼로리만 보충한 뒤, 정신 또한 회복하기 위해 헌트웹을 켰을 때였다.

익명 : 최용 이 도마뱀 새끼 탄핵해야 하면 추천 좀

Ⓐ 5my지저스 : 최용 이 새낀 진짜 등신이냐? 힘도 밀리고 인심도 다 잃어놓고선 왜 자꾸 김극햄 물어뜯으려는 거냐?

맨 위에 올라온 글들만 봐도 최용이 또 헛소리했음을 알 만했다.

그리고 최용이 최근 올린 글을 찾아본 나는 처음엔 눈살을 찌푸렸다가, 그 글을 읽어내리며 울컥했다.

최용, 이 역겨운 놈이 보자 보자 하니까 진짜.

163화 괴조 - [4]

Ⓐ Dragon : 김극 정부에 아양 떠는 거 역겹네······.

중국에서 S급 오니까 아주 그냥 공노비가 다 됐는데?

김극 이 새끼, 서울이랑 인천과 계약해놓고 경상도 사태에 왜 쫄래쫄래 불려가냐?

베헤모스 사태에서 서울이랑 계약 맺지 않은 지방 헌터며 외노자까지 죄다 부른 탓에 헌터 절반 죽은 거 벌써 잊었나? 그것만 봐도 계약 맺지 않은 지역에서 부르면 무조건 거부해야 하는데

업계 정상급이 정부에서 부른다고 대뜸 가? 정부에서 헌터 부르면 무조건 출동해야 한다는 분위기 조성하려는 거지 이거?

이번에 경상도랑 계약 맺은 적 없으면서 출동한 공노비 새끼들, 싹 다 명단 작성해서 조져야 하는 거 아니냐?

말도 안 되는 비난이었다. 내가 출동비를 받지 않고 나선 것이 아니요, 계약한 지역에서만 출동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는 것도 아닌데 어째서 저따위 비난을 한단 말인가?

그 아래로도 내 행적에 대한 비난이 계속됐다.

최용은 내가 인천의 괴수들을 모조리 제거하여 인천 헌터들 일거리를 확 줄이더니 이젠 서울에서도 그러고 있다고, 자기 명성과 돈벌이를 위해 다른 헌터들의 몫을 줄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나 혼자 서울에 출현하는 괴수의 30%쯤 제거하고 있기에 다른 헌터들의 몸값이 20%쯤 줄었으리란 것이다(뭔 근거로 그리 계산했는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그냥 그리 주장했을 뿐이다).

심지어 얼마 전 내 재산의 절반을 기부한 것도 문제 삼았는데, 사실상 자국에 헌터 몸값 디스카운트 해준 셈 아니냐고 따졌다. 헌터들에게 피땀 흘려 번 돈을 나라에 환원해야 한단 분위기를 조성한 셈이니 그 또한 역겨운 일이었다고도.

그야말로 내 모든 행동이 끝내주게 애국적이어선 나라에 충성 맹세를 한 셈이란 것이었다.

Ⓐ Dragon : 집에서 김극 행적 곰곰 생각해보니까 그제야 그놈 실체가 파악되더라. 국안부 프락치였던 걸 못 알아보다가 겨우 깨달은 거지

지금까지 동지라 생각했던 내가 병신이지, 병신이야~

덜덜 떨리는 손으로 스크롤을 내려보니, 다행히도 댓글 반응이 그 비난에 동참하진 않았다.

익명 : 김극이 예전부터 뭔 사태 터지기만 하면 바로 출동하지 않았나? 서울 게이트 사태에 대뜸 나서기도 하고 경상도 아인종 군대 사태에도 나서기도 하고 원래 그랬는데.

익명 : 애초에 뭘 따져서 출동하는 사람이 아니잖아. 짱깨 S급 나타난 후로 아양 떨려고 출동했단 게 대체 뭔 헛소리지?

Ⓐ syberMagneto : 우으······ 최용 엄마 뼛가루 사매가 실수로 변기에 흘려버렸어······ 그랬는데 별로 안 미안해서 사매 안 울어 ㅗ

Ⓐ 돌머리청년 : 선 넘네······?

익명 : 헌터가 기본적으로 개인사업자인데 언제부터 출동하는 것도 맘대로 못 하게 됐냐 ㅋㅋ

보다시피 옹호하는 댓글이라곤 찾아보기 어려웠다. 최용을 버러지 취급하는 댓글만 가득했을 뿐이다.

이걸 보니 최용 이놈이 인심을 잃어도 심각하게 잃었다. 이따위 선동하는 글을 올린들 지지의견이 전혀 달리질 않는 것이다.

이렇듯 지지자가 전혀 없는 수준이라면 이건 정치질이라 불러주기도 민망하다. 그저 인터넷 찌질이가 모두를 화나게 하려고 올린 똥 같은 글이라 봐야 한다.

대다수가 내 편임을 확인해서 기분이 한결 나아졌지만, 그래도 역시······. 불쾌했다.

최용은 내가 헌터로서 주변에 기여한 모든 일을 비난하고 있었다. 업계 이익을 위해서는 헌터들이 딱 돈 받은 만큼만 일해야 하며, 지나치게 열심히 하거나 벌어들인 돈을 기부라도 했다간 모두의 이익을 해치는 배반 행위라 말하고 있었다.

헌터 협회장으로서 어찌 그따위 주장을 할 수 있나?

유명 스포츠 선수들도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인 뒤, 이젠 돈이 충분하다며 경기를 대충 뛰거나 은퇴해버리는 게 아니라 계속해서 경기를 뛴다. 사이영상이니 발롱도르 상이니 하는 명예를 탐내기도 하고, 어떤 기록을 이루고자 애쓰기도 하며, 말년에는 고향 팀에 돌아가 자기 경력에 비해 푼돈을 받고 경기에서 나서기도 한다.

사람은 원래 금전적 욕구가 충족되면 정신적 욕구를 충족하길 원하는 법이니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지금 최용은, 헌터들은 결국 돈만 보고 일해야 한다며 주장하는 것 아닌가.

내 헌터로서의 업적이며 성과, 자부심을 모조리 쓸데없는 일이라 폄하하는 셈이었다. 이것이 날 화나게 했다.

키보드에 손가락을 가져가 반박하려다 그만두었다. 이따위 글에 반응하는 것 자체가 내 격을 떨어뜨릴 것 같았기 때문에. 내가 반박할 필요도 없이 사람들의 반응도 최용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이상, 상대하는 시간이 아까웠다.

상해버린 기분을 좋게 하길 원했다. 그런 이유로 헌트웹의 다른 글들을 찾아보던 중이었다.

익명 : (속보) 나이토 상 뉴스 떴네?

내 절친이 또 뉴스에?

반사적으로 그 글을 클릭했다. 혹시 지자체나 광고 준 기업에 소송당했단 내용인 줄 알고 걱정했지만 아니었다.

오······.

나이토 상의 활약에 관련된 뉴스였다. 이번 괴조 사태 관련 뉴스이기도 했다.

영상 속 괴조로 가득 찬 도로에서, 나이토 상이 바이크를 타고 질주했다. 자막에 따르면 지원 요청을 받고 가는 것이었다.

곧이어 나이토 상은 고립된 채 괴조들과 사투를 벌이고 있던 군인들에게 가 닿았다. 나이토 상이 그 둘을 구했다.

나이토 상은 군인 둘을 뒷좌석에 태우고는 내달리다가, 곧이어 다른 구역에서 자신도 태워달라며 울부짖는 군인을 발견했다.

물론 바이크는 다인용 탈것이 아니다. 무리해서 더 태울 자리도 없어 보였고.

그래서 나이토 상은 어떻게 했나?

나이토 상은, 바이크를 달려온 군인에게 양보했다.

군인들에게 알아서 운전해 가라며 자신은 내리더니, 군인들이 탄 바이크가 떠나간 가운데 서양 중세식 롱소드 한 자루를 칼집에서 뽑아 들었다. 칼 한 자루 지닌 채 괴수들 사이에 고립된 셈이었다.

결국 괴조들이 나이토 상을 사냥감으로 삼았다. 나이토 상이 자신에게 쇄도하는 괴조들에게 칼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이토 상은 결국 살아남은 듯, 영상은 응급실에 누워있는 나이토 상을 비추는 것으로 끝났다.

아, 나이토 상에게 구출된 군인들의 인터뷰가 따로 있긴 했다.

「바이크 양보하면서 자신은 각성자라 괜찮다고 말하더군요. 당시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는데, 뼈가 보일 몰골로 비틀비틀 돌아오신 거 보니 너무 미안하고 죄송하더라고요. 이대로 죽으면 어쩌나 싶어서 잠도 제대로 못 잤고······」

그 뉴스를 보고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영웅적으로 굴고 싶다더니 기어이 성공한 모양이라고.

주목받으려고 일부러 위험을 자초한 건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그건 아닌 것 같았다. 나이토 상 저 친구는 예전부터 저랬지 않은가? 팀원들을 위해 바이크를 몰아 역장체를 유인하질 않나, 심지어 웬 버스만 한 멧돼지 괴수까지 유인했던 것을 기억했다.

각성한 능력상 살아남을 확률이 비교적 큰 만큼, 다른 동료들을 위해 자신이 위험을 무릅쓰는 일을 예전부터 반복해온 셈이다. 그래서 내가 나이토 상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각성자임을 간파한 동시에 좋게 봐온 것이기도 하다······.

바로 나이토 상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그가 받았다.

나는 희열에 찬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이제 계약금이며 광고비 반환하란 소리 쏙 들어가겠네요? 헌터 활동이며 방송도 맘 편히 계속하시면 되겠고!"

그러나 어째서일까. 나이토 상은 우물쭈물 말을 흐렸다.

「그게······」

"그게, 뭐요?"

조금 뜸 들인 끝에 나이토 상이 대답했다.

「이따 방송 틀 건데, 그때 보시면 아실 겁니다」

다쳐서 입원한 중에도 방송을 하려는 모양이었다. 과연 내 절친, 성실하기 그지없다.

그 말대로 방송 시간을 기다렸다가 시작된 나이토 상의 방송을 보았다.

확실히 뉴스를 탄 효과가 큰 듯했다. 방송 조회수가 순식간에 오르는 게 아닌가.

러브크래 : 나이토 상 너무 멋졌어요!

김진111 : 나이토 상 그는 영웅이야! 나이토 상 그는 영웅이야!

익명195 : 나이토 상 좋아죽겠네~ 이미지 회복해선 사기쳐서 번 돈 꿀꺽할 수 있게 됐고

채팅창을 보니 원래 팬이었던 듯 환호하는 반응이 2/3, 사기쳐놓고 세탁 성공했다며 빈정거리는 반응이 1/3쯤 되었다.

그리고 화면 속 나이토 상이 입을 열었다.

「제가 이번 일로 이미지 세탁해선 받은 돈 고이 간직할까 봐 걱정하는 분들 계시지요? 그런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말에 나는 두 눈을 부릅떴다.

「올해 받은 돈들, 반납할 겁니다. 경상도와의 헌터 계약금이든 광고비든 모두요」

이 순간 채팅창에 물음표가 가득 찬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내 머릿속도 채팅창과 비슷한 상황에 나이토 상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일본으로 돌아갈 겁니다. 헌터 일이든 방송인 일이든 이제 은퇴할 것을 발표합니다. 지금까지 방송 지켜봐 주신 분들, 제 헌터 활동을 응원해주신 분들께 진심 어린 감사와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거기까지 말하고서 방송이 중단되었다.

다시 한번 물음표가 도배되는 가운데 나는 공간이동 했다.

*******

나이토 상을 만나자마자 내가 물었다.

"미쳤어요?"

"아뇨, 뭐······"

"아니면 사람들 반응 떠보려고 헛소리한 겁니까? 그러다 역풍이 불 수도······."

내 걱정에 나이토 상이 대답했다.

"아뇨, 맘에도 없는 소리 한 게 아닙니다. 올해 받은 돈은 반납할 거고 헌터와 방송은 은퇴할 거예요."

어처구니가 없어진 내가 따졌다.

"이미지 회복하려고 영웅적인 활약 할 기회 노렸다며? 기어이 활약 해놓고 왜!"

"이러려고 명예 회복하고 싶었던 거예요."

"받은 돈 돌려주고 헌터 일 그만두기 위해 이미지 회복하고 싶었다고요?"

내 물음에 나이토 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 사기꾼이 맞아요."

"예?"

"처음 신경가속 능력에 각성했을 때 기분 끝내줬어요. 이 능력이면 프로게이머를 하든 뭘 하든 떼돈 벌겠지 싶더군요. 그런데 스포츠 계열은 각성자의 참여가 불가능한 데다 각성 여부 검사가 까다롭단 사실을 알게 되어서는 포기했죠. 초인적인 반응속도를 살려 헌터 일이나 하기로 했고요.

그런데 신경가속 하나만으론 A급 수준의 돈을 주지 않았습니다. 고위험 괴수들을 못 잡는단 이유로 제대로 된 각성자 대우를 해주지 않은 거죠."

"그래서······"

"예, 그래서 차라리 비각성자 행세를 한 거죠. 비각성자가 활약하는 게 몇 배는 더 대단해 보일 테니까. 배트맨이든 퍼니셔든 성공사례가 꽤 있지 않습니까?

그야말로 작정하고 속인 겁니다. 정령이라 다 알고 계실 백담비 씨가 저 물끄러미 바라볼 때마다 얼마나 긴장하고 속이 졸아들었는지 몰라요."

나이토 상이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그러곤 계속 말했다.

"덕분에 유명해져선 돈도 많이 벌었죠. 방송인으로서든 헌터로서든 간에요. 평생 쓸 돈은 진작에 다 벌었습니다. 그리고 헌터 일은 언제 죽을지 모를 위험한 일이니 슬슬 그만둬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헌터 일 계속하셨지."

"예. 돈은 이미 충분했지만······. 아시다시피 이 일이 돈만 보고 하는 일이 아니잖습니까? 헌터로서 여러 성과를 이뤄가며 보람을 느꼈습니다. 사람들한테 응원받고 칭찬도 받으면서 자부심이 생겼고요."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했다. 헌터 일에 돈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믿는 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그러다가 사기 친 게 걸렸죠."

내가 입 다문 가운데, 나이토 상이 어색하게 웃으며 계속 말했다.

"기분이 끔찍했어요. 고소당할지 모른단 스트레스도 물론 있었지만, 그보단 지금까지 이뤄온 성과가 다 사기꾼의 행동으로 전락할지 모른단 게 더욱 끔찍했습니다."

"그래서 명예 회복을 노린 겁니까?"

"예. 받은 돈값을 못 하게 된 이상 돈을 반납해야 한단 생각은 예전부터 하긴 했습니다. 그랬다간 사기꾼임을 인정한다고 모두에게 공표하는 셈이라 정말 그럴 엄두는 나지 않았고······.

김극 씨 덕에 돈 돌려달란 압박이 없었던 걸 알고 있습니다. 덕분에 사기꾼이 아니라 다시 헌터 취급받을 때 자발적으로 반납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럴 기회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김극 씨."

나이토 상이 고개를 숙였고 나는 혀를 찼다.

"지금 나한테 고마워할 게 아니라, 이미지 회복할 기회가 생겼으면 일 계속해야죠. 헌터든 방송이든 왜 그만두겠단 겁니까?"

"이미 사기 쳤다 걸린 놈이 뭔 염치로 계속 일하겠습니까? 손뼉 칠 때 떠나야죠. 떠날 기회만 노리고 있었습니다."

"좋게 헤어질 기회를요?"

내 물음에 나이토 상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사기꾼이나 여러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 각성자가 아니라, 헌터로서 은퇴하고 싶었어요. 제가 떳떳한 놈은 아니지만, 그래도 좋게 기억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기회가 생겼으니······,"

"생겼으니?"

나이토 상이 씩 웃었다. 나는 그 웃는 얼굴을 멀거니 쳐다보았다.

"떠날 겁니다. 제가 있어야 할 곳으로요. 여기 남아 계속 지저분하게 구는 게 아니라, 깨끗하게 떠날 겁니다."

속이 시원해 보이는 웃음이었다. 지금까지 억지로 짓고 있던 어색한 웃음이 아닌, 진짜 웃음.

나이토 상이 다시금 고개를 숙이며 내게 인사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김극 씨. 이렇게까지 도와주실 줄은 상상도 못 했고 기대도 안 했는데, 덕분에 일이 잘 풀렸어요."

그러더니 어색한 손길로 나이토 상이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마주 잡고 흔들었다.

며칠 뒤, 나이토 상은 자기가 발표한 내용을 지켰다. 경상도와 광고를 준 기업에 받은 돈을 공식적으로 반납했고, 정식으로 은퇴 공지를 올렸으며, 일본행 비행기표를 끊었다.

공항 가는 나이토 상의 마지막 길을 나와 그의 팀원들, 그리고 그 카메라맨이 배웅했다.

그렇게 내 절친이 한국을 떠났다.

*******

나이토 상이 떠난 뒤, 나이토 상이 각성자인 게 밝혀졌단 이유로 그의 계정에서 뱃지를 압수했던 헌트웹 운영진은 그에게 Ⓑ 뱃지를 돌려줬다. 사람들의 반응도 크게 나쁘진 않았고.

Ⓐ syberMagneto : 우으, 지가 싼 똥 치우고 떠난 거니 뭐······.

이후로도 올라온 반응들을 내 일인 양 감상하던 중이었다.

최용이 글 하나를 또 올렸는데, 내가 헌터들 파업을 중단시켰다며 비난하는 글이었다. 내용은 읽기도 싫어서 대충 스크롤을 내려 댓글이나 볼 때였다.

최용을 향한 욕들 사이에, 이상한 내용의 댓글을 하나 발견했다.

익명 : 최용 협회장님? 저 협회 직원입니다.

키배는 그만 뜨고 협회 나와서 일하셔야죠.

다쳤다며 장기휴가 내시더니, 휴가 기간 진작 끝났는데 왜 아직도 출근 안 하시는 겁니까? 문자랑 전화로 연락드려도 전혀 응답을 안 하셔서 여기 연락 남깁니다

*******

164화 헌터 협회장 - [1]

한 댓글을 시작으로, 요새 최용을 보거나 그 목소리를 들은 사람이 없다는 증언이 하나둘씩 헌트웹에 올라왔다. 최용이 요새 협회에 출근하지 않았던 것은 물론 사냥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단 증언도 함께.

이쯤 되니 헌터들 사이에 음모론이 떠돌기 시작했다.

요새 헌트웹에서 나를 헐뜯던 계정은, 국정원 요원인지 특무대원지 몰라도 하여튼 최용 본인이 아니란 것이었다.

Ⓐ 5my지저스 : 하기야 저번부터 쭉 이상하긴 했어.

익명 : 뭐가?

Ⓐ 5my지저스 : 최용이 그리 김극햄 물어뜯는 거 말이야. 김극햄이 아무리 공개적으로 굽혀줘도 최용은 싹 다 무시하고 무슨 부모 원수라도 대하는 것처럼 굴었는데······. 사실 그럴 이유가 없었거든?

당시 특무대 본부 앞에 가본 사람이면 알겠지만, 당시 김극햄이 최용한테 그 정도로 굴욕을 주진 않았단 말이지. 최용이 하도 김극햄 물어뜯으니까 그때 김극햄이 최용 두들겨 패기라도 한 줄 아는 사람이 많은데 절대 아니야.

당시 김극햄이 한 거라곤 최용 날아오르려니 잡아당긴 거랑 최용이 빡쳐서 주먹질하니까 그 주먹 쳐낸 게 전부거든? 아무리 속이 좁아도 그 정도 일로 김극햄이랑 척지는 건 좀······.

ㄴ Ⓐ 러그소라게 : 확실히 김극 형이 애기버섯 컨셉까지 버려가면서 화해하려고 했는데 씹고 계속 짖어댄 건 말이 안 되긴 하네

ㄴ 익명 : 최용은 그 정도 일로 척질 만큼 속 좁은 새끼 맞는데 뭔 소리지?

Ⓐ GangStar☆ : 하기야 예전 작성글 검색해보면 최용 저 인간 김극 빠돌이 중 하나였는데 갑자기 너무 적대적으로 돌아섰네? 여러모로 이해가 안 되긴 하다

ㄴ 익명 : 원래 돌아선 팬이 더 격렬한 법이니 정상 같은데

보다시피 그날 이후 최용의 행동이 비정상적이었단 의견이 많았다. 그럴 만했다는 의견도 많았지만 하여튼.

익명 : 그래서 지금까지 글 싸지른 게 최용 본인이 아니라면, 대체 뭘 말하고 싶은 거냐?

지금까지 최용 계정으로 글 쓴 게 딴 놈이면 뭐냐?

최용 본인은 진작 죽기라도 했다고? 특무대에 담가져서?

저 사람은 빈정거리듯 그리 물었지만, 실제로 그럴 가능성을 의심하는 의견이 꽤 많았다. 나마저도 그럴지 모른단 생각이 들어 불안해졌고.

나라에서 최용을 암살할 이유······. 많아도 너무 많지 않은가?

최용은 나마저도 온건파로 보이게 할 만큼 극단적인 극렬분자였다. 그는 정부의 정책에 부정적인 걸 넘어 툭하면 파업이나 폭동 따윌 일으키려 했으며, 방송국 습격 당시엔 언론인들의 손목을 자르거나 공중파 방송국 건물을 녹여 버리는 극단적인 짓까지 저질렀다.

예전에는 헌터들을 이끌고 국회의사당 앞에 쳐들어갔거니와 얼마 전에는 정부 기관인 특무대 본부를 습격하려 시도까지 했으니, 그야말로 나라에서 일 순위로 없애야 할 위협이었던 셈이다.

이 와중에 최용은 암살하기도 쉽다. 나나 강준치를 암살하려거든 역장 날붙이 능력자가 반쯤 필수겠지만, 최용을 죽이려거든 특무대원까지 필요하지 않다.

최용을 죽이려거든 그냥 삐죽한 칼 한 자루나 품에 숨길 총 한 자루면 된다. 변신 능력자는 변신하기 전엔 평범한 사람과 크게 다를 바가 없으니까. 변신 전 습격에 무력해도 너무 무력하다. 괜히 살아남은 괴수 중에 변신 능력을 지닌 개체가 드문 게 아니다······.

이 와중에 최용을 나라에서 지금까지 내버려 둔 이유는, 그 남자의 존재가 용납되어서가 아니라 정말 암살했다간 후환을 감당하기 어려운 까닭이었으리라.

최용은 다수 각성자들의 지지를 받는 헌터 협회장이었으니까. 그가 살해당했을 때 들고 일어날 각성자가 한둘이 아니었다. 무턱대고 암살할 수는 없다.

그러니 최용이 강준만을 살해하려다 내게 저지당하곤 헌터들 모두에게 비난당했던 당시 상황은, 정부 입장엔 최용을 제거할 좋은 기회로 보였을지 모른다. 그 지지자가 사라졌을 때 제거한다면 들고 일어날 각성자가 많지 않을 테니까.

그 계정을 도용해 최용인 척 글을 작성해선 얼마 남아있지 않았던 지지마저 없애버린다면 그 효과는 더욱 확실하리라.

정부 기관에서 정말 그리 계산했다면, 그 의도는 어느 정도 들어맞았다.

Ⓐ IlIllIlllI : 최용이 암살당했으면 뭐 문제 있나?

그 미친 새끼 솔직히 죽을 만했잖아. 그 새끼가 언론인들 손목 자르곤 헌트웹에 올려서 공포 분위기 조성할 때도 무서워서 뭐라 못 말했던 거지. 보면서 이래도 되나? 막 이런 생각이 들었는데

게다가 강준만 상대론 살인미수까지 저질렀드만. 김극이 그때 저지 안 했으면 그 새끼 살인범 되었을 거잖아. 그딴 중범죄자 새끼가 지금까지 수배도 안 됐던 게 오히려 신기한 일 아니냐?

ㄴ Ⓐ GangStar☆ : 신기한 일까진 아니지. 수배해봤자 잡아넣지도 못할 건데, 나라 체면 깎이게 처벌도 못 할 거면서 수배할 이유가 있나

ㄴ 익명 : 그래서 재판도 안 하고 걍 제낀 건가?

ㄴ 익명 : 나라에서 암살단이라도 운영한다고 믿는 게 개그긴 한데, 정말 그랬어도 이해가 되긴 하네 ㅋ

Ⓐ syberMagneto : 우으······. 갑자기 처음 보는 A 배지 계정이며 익명 찌꺼기들이 왜 이렇게 많아?

보라, 최용이 죽었을지 모른다고 의심하는 이들마저 딱히 최용의 죽음에 분개하거나 슬퍼하진 않고 있다.

최용이 인심을 잃어도 너무 크게 잃은 탓이다. 강준만을 태워죽이려던 일이 특히 모두의 반감을 샀다. 전직 헌터를 죽이려 했던 만큼 본인이 어떤 식으로 죽어도 싸단 반응이 많을 정도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 느끼느냐면······ 당연히, 그가 이런 식으로 죽어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재판도 없이 각성자를 살해하다니? 특무대원들이 김석희를 즉결처형하려 들 때도 생각한 것이지만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그저 역겹다.

평소엔 법치를 근거로 법을 따를 이득이 없는 각성자들마저 그 테두리 안에 가두려 들던 나라에서, 각성자들을 상대로 자신들이 세운 그 법을 준수하지 않는단 말인가?

나라에선 얼음 능력자들에게 무죄추정 원칙을 적용하지 않는다. 강력한 각성자가 범죄를 저지르면 재판받을 권리마저 인정하지 않고 살해하려 든다.

초상범죄엔 증거가 잘 남지 않는다느니, 강력한 각성자는 잡아 가둘 수가 없다느니, 각성자 범죄자를 법으로 처벌하는 건 현실적인 방법이 아니라느니 하는 건 내가 신경 쓸 문제가 아니다. 자기네 사정을 이유로 자기네가 세운 기준을 휙휙 바꾸는 것을 보며 혐오감을 느낄 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최용이 정부에 살해당했을지 모른다 생각하니 김형만 씨가 떠오른다.

참수되어 죽은 그 아저씨 말이다. 그 아저씨가 정확히 어떻게 죽었는지는 두 기억이 뒤섞인 탓에 이제 제대로 떠올리기 어렵지만······ 어느 식으로건 나라가 죽게 했음은 확실히 기억하고 있다.

거기까지 생각하면 절로 이런 생각이 든다. '김형만 아저씨에 이어 최용마저도?'

다시 말하지만,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

즉시 공간이동 하여 최용의 집에 찾아갔다.

노크도 하지 않고 그 안에 침투하니, 그저 휑했다. 인기척이라곤 전혀 없었고 최근 생활한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내가 찾으려던 살인의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이불에 피가 묻어있지도, 뭔가 부서져서 나뒹굴고 있지도 않았다.

물론, 나라에서 흔적을 지우려거든 진작 지웠을 것이다. 설령 흔적이 남아있더라도 이런 일에 문외한인 내가 알아볼 수도 없을 테고······.

그리고 짐 싼 흔적이 보였다. 가방들이 구석에 잔뜩 쌓여있었고, 옷이며 칫솔에 비누 따위가 서랍에서 끄집어내진 듯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었다.

물론 이 역시 나라에서 상황을 조작하려거든 얼마든지 그럴 수 있었을 것이다.

이후로 나는 협회에 찾아갔고 아는 사람에게 연락을 돌리기도 했지만, 별다른 소득은 얻지 못했다. 그저 머릿속 혼란만 커졌을 뿐이다.

*******

반나절쯤 지나 헌트웹에 새 글이 올라왔다. 그 역시 최용에 관한 글이었다.

익명 : 최용 그 새끼, 뒤진 게 아니라 고소돼선 도주한 것 같다는데?

첨부된 기사 링크를 눌러보니 정말 최용이 고소를 당했다는 내용이었다.

일찍이 최용이 건물을 녹여 버린 방송국에서 배상을 요구했다고 한다. 배상할 생각이 없었던 최용은 협회엔 휴가를 내고는 몰래 도주한 것 같다고.

뭐, 아예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니다. 요새 치솟은 건물값을 생각하면 최용이 헌터로서 벌어들인 돈으로도 그 피해를 배상하긴 어려웠을 테니까.

심지어 당시는 최용이 헌터들을 통한 단체행동을 한 번 실패한 마당이었다. 최용은 고소를 철회시키기 위해 또다시 헌터들을 동원한들 자길 도우러 올 사람이 없으리라 판단하고는 아예 외국으로 도피해버렸을지 모른다. 이후론 한국과 이 상황을 초래한 나에 대한 미움을 담아 헌트웹에 똥글이나 싸질렀을 수도 있고.

하지만 역시 저 기사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일이다. 사람을 죽여놓고 어디론가 떠난 척 꾸미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닐 테니까.

익명 : 그래서 최용은 죽은 거야 튄 거야?

ㄴ 익명 : 모르지······.

나에게나 다른 헌터들에게나, 최용이 암살당했으리란 의심은 여전히 남아있다.

만약 나라에서 최용을 살해했다면, 그들이 의도한 바가 바로 이것이었으리라.

모호함······.

최용이 정말 죽었는지 확실하지 않으므로 헌터들이 들고 일어나긴 어렵게 하면서, 그가 죽었을지 모른단 정황들을 은근히 남겨서는 헌터들에게 경고하는 것이다.

너도 저따위로 굴면 제거될지 모른다고. 최용처럼 강대하고 영향력 있는 헌터마저 나라에서 마음만 먹으면 아무도 모르는 사이 허무하게 사라지는데 너인들 예외가 아니라며 암시하고 싶은 것이다.

중국에서 데려온 S급 각성자가 나라의 행동에 자신감을 주었으리라. 혹시라도 헌터들이 들고 일어났을 때, 무력하게 당하는 게 아니라 얼마든지 대응할 수 있으리란 자신감. 그 자신감이 영 터무니없지 않다는 게 날 화나게 한다.

그래서 최용은 죽었나, 살았나?

모르겠다.

최용이 어떤 상황인지 알아낼 방법이 있나?

모르겠다. 내가 흥신소에 의뢰하고 한국에서 영업하는 줄도 몰랐던 탐정에게도 찾아가 의뢰하긴 했는데, 이게 정말 소용이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긴 뭐해서 일단 뭐라도 했을 뿐이다.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 나는 더 뭘 해야 하나?

이 역시 모르겠다.

도무지 똑바로 알 수 있는 게 없다. 정확한 사실이든, 이 상황에 대한 대처할 방법이든 간에.

나를 포함해 헌터들 모두가 혼란스러워하던 가운데, 온갖 음모론이 떠올랐다 사라지던 헌트웹의 화제가 바뀌었다.

Ⓐ IlIllIlllI : 최용 그 도마뱀 새끼는 뒤졌는지 튀었는지 알 바 아니고······.

최용 이제 없으면 협회장 자리 공석이네.

그럼 새 협회장은 누구 뽑아야 하나?

이 갑작스러운 화제 전환보다 더욱 당황스러웠던 것은, 곧이어 내 이름이 마구 거론되기 시작했단 점이었다.

Ⓐ 5my지저스 : 새 협회장이면 김극햄이지 당연히

Ⓐ 이해경 : 김극 오빠 말고 달리 후보가 있나?

익명 : 강준치가 선거공약으로 나라 뒤집어 엎어주겠다고 공언하지 않는 이상 무조건 김극임

ㄴ Ⓢ Kang : 나 강준친데 그런 공약 안 걸 거니까 그냥 김극 뽑아라 ㅇㅇ

이후로도 내 이름이 계속 언급되었다. 협회장 선거 당시 내가 강준치를 데리러 소월로 떠나있던 탓에 최용이 뽑혔을 뿐 그때 내가 한국에 남아있었다면 지금 협회장도 김극이었으리란 주장마저 계속 반복되었고.

당황스러웠다. 정말로.

165화 헌터 협회장 - [2]

Ⓐ 직박구리 : 확실히 뒤지기 싫으면 각성자 징집 멈추라고 윽박질렀던 강준치를 제외하면 김극만큼 한국 각성자랑 헌터들 인권에 기여한 사람이 또 없지

Ⓐ 5my지저스 : 베헤모스 사태 때 헌터들 보상금 똑바로 주라고 김극햄이 일갈한 거 다들 기억나나? 특무대 반쯤 조져놓은 것도 김극햄이고 버스 시위 주도한 것도 김극햄인 거 다들 알지?

Ⓐ 5my지저스 : 최용은 김극햄이 이미 다 가꿔놓은 환경에서 설쳤을 뿐이야. 김극햄 안 뽑으면 그 새끼 예비 특무대원이다 진짜

익명 : 김극팀 짐꾼들이 하는 일은 쥐뿔도 없는데 복지는 가장 빵빵하게 받는 거 보면 비각성자 헌터들도 김극 협회장 되길 기원해야

이후로도 내 이름이 계속 언급되는 가운데, 나는 좋아해야 하는지 싫어해야 하는지 긴가민가하다가 이내 싫어하기로 마음먹었다.

왜냐하면 화제가 전환되며 최용의 생사는 사람들의 관심사에서 밀려나 버렸기 때문에. 그리고 나는 저들의 바람대로 협회장 노릇을 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이후로도 헌트웹을 보던 중에 전화가 걸려왔다.

「김극햄! 지금 헌트웹 보고 있어요?」

어째서인지 몰라도 들뜬 목소리, 정진영 형이었다.

"그러고 있는데······"

「지금 헌트웹에 협회장 얘기 나오는 거 알죠! 협회장 후보로 형 이름이 쭉 언급되고 있는 것도요!」

"예, 뭐."

「협회장 선거 나설 거죠?」

정진영의 물음에 나는 즉시 대답했다.

"힘들죠."

「아니, 왜요?」

"요새도 바빠 죽겠구만 뭔 수로 딴 일을 해? 헌터 아카데미 가는 거나 던파 하는 것도 짜투리 시간에 겨우겨우 하는 거지. 협회장 일을 할 시간이 어딨어요?"

「아니, 그래도! 김극햄 말고 협회장 할 사람이 또 어디 있어요?」

그게 바로 문제였다. 최용이 사라진 지금, 나 말고 각성자들을 위해 총대를 메고 무언가를 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여명 길드 멤버였던 석장실? 간첩 경력이 있어서는 정부에 약점이 잡힌 그 친구가 협회장이 되어봤자 좋은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나이가 많은 정진영 형? 그나마 낫지만, 이 형이 협회장을 해먹을 만큼 헌터들 사이에서 위명이 자자하지는 않거니와 이 형이 헌트웹에 작성한 비각성 쓰레기 운운하는 글들이 퍼진다면 헌터 협회의 명예가 실추되고 말 것이다.

그 밖에 떠오르는 인물은······. 딱히 없었다.

새삼 최용의 존재가 얼마나 필요했는지 체감되었다. 그 행동이 얼마나 과격했건 간에 자기네 집단을 위해 나서서 뭔가를 할 사람은 귀중한 것이다.

심지어 최용이 암살 당했다고 추정되는 마당에 최용의 절반만큼이라도 나설 만한 사람이 있을까? 아마도 없을 것이다. 나 말고는 전혀.

그렇다면 이 상황에 모두의 대표가 될 사람은, 나를 제외하면 역시 단 한 명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한국 각성자들의 왕, 오직 그밖에는······.

정진영과의 통화를 종료한 뒤, 나는 즉시 강준치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강준치에게 정진영이 내게 했던 말을 했다.

"강준치, 협회장 할 생각 없냐?"

그리고 젠장, 강준치도 내가 정진영에게 했던 말을 했다.

「내가 왜?」

"정부를 주눅 들게 할 대표가 필요하니까."

중국산 S급을 빌려와 기세가 등등해진 정부를 위압하려거든 강준치, 그의 존재가 필수적일 것이다.

나는 그 점을 들먹이며 설득했다. 강준치는 나서서 뭔가 과격한 일을 할 필요도 없다고. 그저 협회장 자리에서 평범하게 서류에 도장을 찍고 행사장에 얼굴을 비치기만 반복해도 정부에선 알아서 위축될 것이라고 설득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었다.

「김극 네가 해. 내가 전폭적으로 밀어줄게」

"최용 일이 충격이지 않아?"

내가 그리 물었더니 조금 뜸 들인 끝에 대답이 돌아왔다.

「물론 충격이지. 최용 그 깡패 새끼 죽을 짓 했다고는 생각하지만 그래도 역시······. 정말 정부에 담가진 거 보니까 충격이 크네」

"최용이 암살당했다고 확신하나 봐?"

「당연하지 그럼. 딱 봐도 특무대에서 죽일 각만 노리고 있다가 딴 헌터들이랑 사이 틀어지니까 기회다 싶어서 대뜸 멱 따버린 거 아니냐?」

나와 같은 의견인 듯했다. 그런데도 나와 다른 결론을 내린 모양이었고.

내가 물었다.

"그러니까 더는 그딴 짓 못 하게 압박해야 한다고 생각이 들지 않나? 최용 다음 차례가 자신이 되기 전에, 정부에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고 경고를 보내야겠단 맘이 들지 않아?"

「그런 맘이 들긴 하는데, 협회장 자리에 앉으면 최용 다음 차례가 바로 내가 돼버리는 거 아니냐?」

"뭐?"

「괜히 설치면 내 순번이 더 빨라지는 거 아니냐구? 애초에 나 평범한 사무작업이든 행사장에 얼굴 비치는 일이든 할 맘 없거든?」

그 말을 끝으로 통화가 종료되었을 때, 나는 한숨 쉬었지만 새삼 실망하지는 않았다. 예상한 일이었으니까. 혹시나 하고 권유했을 뿐이었다.

그렇다면 정말 내가 협회장을 해야 하는 걸까?

여러모로 고민이 드는 가운데 내 집 문이 열렸다. 내 집 열쇠를 가진 것은 박미형 씨를 제외하면 한 명뿐이므로 누구인지 바로 알아차렸다.

"담비 씨?"

"예, 저예요."

내 집에 들어온 백담비가 내 옆에 앉았다. 그녀가 복잡한 얼굴로 물었다.

"최용, 살아있을까요?"

"걱정돼요?"

"예. 내가 저번 그 일로 그 인간 좋아하진 않지만, 그래도 살아있어야지 싶네요."

최용이 정말 죽었다면 자신이 헌트웹에서 고인한테 패드립 친 게 되니까 걱정하는 모양이군. 살아있는 사람에게도 패드립을 치면 안 된다는 것을 배운 적이 없는 걸까?

"그런데 최용 암살설은 헌트웹에만 도는 화제인데 그거 어떻게 알았어요? 헌트웹 안 한다고 하시지 않았나?"

"아, 그게······."

평소처럼 내 라운드걸을 괴롭히던 중에 전화벨이 울렸다. 받아보니 모르는 목소리였다.

「저기, 김극 씨 되십니까?」

"인천 만세. 김극 맞는데 누굽니까?"

「아마 제 이름 모르실 겁니다! 이석규라 하는데, 헌터 협회장 관련해서 연락드렸습니다. 혹시 협회장 선거 나서실 건가요?」

"아뇨. 왜요?"

「아, 그렇다면 따로 생각하시는 후보가 있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이후로도 오 분쯤 통화한 뒤에 나는 표정을 와락 일그러뜨린 채 전화를 끊었다.

백담비가 내 표정을 보고 물었다.

"뭔 전화였어요?"

"모르는 사람인데 지 헌터 협회장 되고 싶으니 밀어달래요. 지가 협회장 되면 날 상왕으로 모셔주겠다나?"

"지금 상황에 할 법한 전화네. 딱히 나쁜 제안은 아닌 것 같은데 표정은 왜 그렇고요?"

"헌터로서 경력 물어보니 대답을 못 하잖아요. 보니까 데스클로 한 마리 잡아본 적 없는 놈이 헌터 협회장 하겠단 건데 내가 어떻게 밀어줘?"

그러나 이런 전화는 한 번만 걸려온 게 아니었다.

불쾌하고도 역겹게도, 이후로도 그 비슷한 전화가 여러 차례 걸려와 나를 화나게 했다.

전화를 건 사람들은 죄다 내게 이런 질문을 했다. 협회장 할 맘 있느냐? 그럴 맘 없으면 나 밀어줄 수 있겠느냐?

이때 헌터임을 자처하는 누군가가 그런 질문을 했다면 설령 친하지 않은 사이여도 진지하게 밀어줄지 말지를 고려해봤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헌터 협회장 선거가 아니라 어디 국회의원 선거에 나와야 할 법한 전문 정치인들만 내게 전화를 걸었단 점이 날 화나게 했다.

"아, 진짜······."

내가 투덜거리며 전화를 무음으로 설정하니 백담비가 말을 받았다.

"짜증 나도 이해되는 상황이긴 하네요."

"이해되긴 뭐가요?"

"왜, 지금 협회장 노릇이 어지간한 의원 자리보다 대단해 보일 거 아니에요? 김극 씨가 지지해줘야 협회장 당선될 수 있을 테고요."

하기야 그 말이 맞다. 우리의 엘마야캐요님, 그러니까 김형만 씨가 협회장을 하기로 했을 때만 해도 헌터 협회장은 조별 과제 조장 정도의 위상에 불과했다. 누군가가 하긴 해야 하는데, 해봤자 메리트는 딱히 없는 그런 자리 말이다.

그러나 최용이 취임한 이후로는?

최용이 휘두른 힘과 권한은 실로 막강한 것이었다. 그에겐 걸어 다니는 전차들을 거느린 채 수도에 있는 방송국들을 쑥대밭으로 만들 권력이 있었고 그러고도 기소조차 되지 않을 위상이 있었다.

진담 반 농담 반으로 이제 쿠데타를 일으키고 싶으면 수도에 있는 사단장들이 아니라 헌터 협회장을 포섭하는 게 더 확실하단 말이 있을 정도다.

그리고 힘에는 지위며 금전 따위가 딸려오기 마련이라, 현재 헌터 협회장은 민간단체장임에도 그 위상이 어지간한 주요 국가기관의 장 못지않은 수준이었다.

"더 나아가 협회장 당선되고도 김극 씨 지지를 받아야 최용처럼 막강한 권한을 휘두를 수 있을 거라 계산하지 않을까요?"

"확실히 제가 누구 지지할지 정하는 게 중요할 것 같긴 하네요."

"그런데 그럴 거면 차라리 김극 씨가 직접 협회장 하시는 게······?"

그 말에 어이가 없어서 내가 물었다.

"아니, 제가 얼마나 바쁜지 아시면서 그런 말씀을 해요?"

"그래도 할 가치가 있긴 있을 거예요. 왜, 이대로면 최용 어찌 된 건지 똑바로 밝혀지지 않고 흐지부지 묻힐 것 같은데······. 김극 씨가 지휘봉 잡으면 제대로 진상규명 요구도 할 수 있을 것 아니에요?"

그 말은 확실히 흘려넘길 수 없는 무언가였다.

이대로면 최용의 일은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채 조용히 지나가 버릴 것이다. 내가 아무리 깽판을 친들 나 혼자선 제대로 된 증거수집조차 어려운 만큼, 제대로 된 진실을 밝혀내려면 단체의 지원이 필수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내가 협회장 일을 하려거든 헌터 일에 쓰는 시간을 대폭 줄여야 가능할 것이다.

정말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건가?

내 안에서 테러리스트 김극은 '당연히 그렇게까지 해야 한다'고 부르짖는 가운데, 헌터 김극도 떨떠름하게 입 다물고 있을 뿐이었다. 하기야 동료 헌터가 암살당했을지 모를 상황 아닌가. 헌터 김극인들 헌터 일에만 집중하라고 주장할 순 없다.

고민이 거듭되는 중이었다.

헌트웹 메시지가 왔길래 봤더니 석장실이었다.

Ⓐ 돌머리청년 : 김극 형, 잠시 만날 수 있을까?

Ⓐ BabyBerserker : 혹시 협회장 관련이에양?

Ⓐ 돌머리청년 : 어, 맞아. 혹시 괜찮으면······.

석장실, 이 친구가 저번에 신입들이 파업할 때 내가 연락을 받고 도우러 와줬음을 기억했다. 그 빚을 지울 겸 만나기로 약속했다.

*******

난 석장실이 자기가 협회장이 되고 싶으니 도와달라 부탁하려는 줄 알았다. 그리 부탁한다면 제대로 고민해볼 생각이었다.

석장실이 저지른 짓과 그 약점에도 불구하고, 예전에 환각에서 확인했듯 각성자들을 위해 활동할 만한 친구임은 분명하니까.

그리고 약속장소에 찾아갔을 때, 석장실은 혼자 있지 않았다. 그는 익숙한 얼굴들과 함께였다.

"아니, 뭐요?"

나는 이전 국안부 장관 류지선과 새 국안부 장관을 번갈아 쳐다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곤 석장실을 노려볼 때였다.

새 국안부 장관이 특유의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아이고, 김극 씨! 잘 와줬어요! 어서 앉아요, 어서 앉아, 응?"

그러나 내가 바로 앉지 않고 팔짱을 끼고 있으니, 국안부 장관은 여전히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물었다.

"이런 방식으로 불러서 불편하시죠?"

"그럼 낚여서 왔는데 편하겠나?"

"그래도 불편함을 감수하실 가치가 있을 겁니다. 괜찮은 제안을 드리려고 이 자리에 모셨으니······. 참고 앉아 보세요. 어서요."

166화 헌터 협회장 - [3]

불쾌했지만 일단 앉았다. 이 기회에 나도 묻고 싶은 게 있었기 때문이다.

"최용, 그쪽에서 죽였나?"

"모릅니다."

"사람 이런 식으로 불러놓고 발뺌이야?"

"다시 말씀드리지만, 정말 모릅니다. 적어도 제가 지시해서 벌어진 일은 아니에요. 한희석 그놈한테 물어보셔야······. 저도 하나 질문해도 되겠습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거리지 않았지만 국안부 장관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살짝 웃더니 빠르게 화제를 전화했다.

"김극 씨, 협회장 되실 맘 있습니까?"

"모르겠는데?"

내 시건방진 대답에도 국안부 장관은 불쾌한 티를 내지 않았다. 그저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아직 맘을 정하지 않으셨단 전제로 제안을 하지요. 김극 씨? 협회장이 되신다면 나라에서 적극 편의를 봐 드리겠습니다. 협회장이 되시지 않아도 마찬가지로 적극 편의를 봐 드릴 것이고요."

"뭔 소리래?"

"그러니까, 김극 씨가 협회장이 되신다면 하고 싶은 일이 있을 것 아닙니까? 단순히 협회장 연봉 받으려고 협회장을 하실 게 아니라, 헌터들 대우 향상이라든가 특무대 저지라든가, 뭐 그런 식으로 헌터들을 위해 추구하는 바가 있으셔서 협회장을 하실 것 아니겠느냔 말입니다."

"그래서."

"협회장이 되신다면 그 일을 저희가 돕겠습니다. 협회장으로서 나라에 뭔 요구를 할 때 국안부에서 일 순위로 고려할 겁니다. 헌터들과 특무대 사이에 마찰이 있을 때도 김극 씨가 협회장으로서 일갈하시면 저희가 먼저 숙여드리겠습니다."

저 말만 들으면 내가 협회장 자리에 앉는 게 저들의 바람인 것 같다.

왜 그런 제안을 하는지 알 수 없었던 내가 물었다.

"자꾸 내가 뭘 하든 편의를 봐주겠단 걸 강조하는데······ 왜 자꾸 그런 말을 하는 건데?"

"지금부터 바뀔 나라의 정책에 어울려줄 파트너가 필요하니까요."

내가 한쪽 눈을 치켜올렸다.

"파트너? 나라의 바뀔 정책에 어울려줄?"

"맞습니다. 중국에서 강력한 각성자를 데려와선 예전처럼 철저하게 자기네를 통제하려 들지 모른다고 국내 각성자들이 걱정하고 있더군요.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이미 실패한 방식을 또 쓸 순 없어요.

대통령이랑 한희석 같은 사람들은 중국에서 각성자들을 철저히 통제한 덕에 각성자들 장악에 성공했다고 여기는 모양인데······. 내 보기엔 순서가 반대입니다. 그건 전제부터 글러 먹은 계산이에요.

중국에선 먼저 각성자들 장악에 성공했으니까 각성자들을 철저히 통제할 수 있는 거죠. S급 소방관이 충성선언 한 덕에 다른 강력한 각성자들도 당에 충성시킬 수 있었고, 강력한 각성자들의 충성을 기반으로 자잘한 각성자들마저 통제할 수 있게 된 것 아니겠습니까?

아무리 봐도 강준치며 김극 씨를 비롯한 강력한 각성자들이 죄다 정부에 반감을 지닌 국내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방식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자꾸 중국에서 하듯 찍어누르려 드니까 반발이 거세져선 최용 같은 작자가 탄생하게 되는 거죠."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상황은, 서로 적당히 으르렁대는 겁니다. 나라에선 통제하려 들고, 각성자들은 반발하지만, 서로 선을 넘진 않으면서 적정선을 유지하는······.

크기와 재질이 다른 톱니바퀴가 서로 마찰하며 겨우겨우 돌아가는 셈이 되겠지만, 그런 게 바로 민주주의 체제 아니겠습니까?"

장관이 살짝 웃더니 날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선을 넘지 않으면서 각성자들 입장을 대변하는 역할을 바로 김극 씨가 맡아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서로 짜고 치는 연극이라도 하자고?"

"김극 씨는 우리 쪽에 장단 맞춰주려 애쓸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시면 돼요. 다만 나라에서도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고 각성자들을 존중하고 있음을 협회장으로서 고려해주시고 행동할 때마다 수위 조절을 해주시기만 하면······."

그러니까 국회의원을 납치 협박하는 짓만 또 안 해주시면 감사하겠다고 국안부 장관이 농담처럼 덧붙일 때였다.

내가 물었다.

"내가 협회장 안 하겠다면?"

"협회장이 되지 않으셔도 그건 그것대로 좋습니다. 저희가 준비한 후보를 협회장직에 앉히면 되니까요. 그렇듯 협회장에 출마를 안 하시면 일종의 양보를 하신 걸로 이해하고 마찬가지로 편의를 봐 드리겠습니다."

결국 내가 협회장이 되든 말든 내 편의를 봐주겠단 소리였다. 이상할 정도로 내게 유리한 제안이기도 했다.

이후로는 별 영양가 있는 대화를 하지 않았다.

국안부 장관은 저번 괴조 사태에 정말 수고가 많았다느니, 김극 씨 같은 헌터들 덕분에 나라가 유지된다느니 말하기 시작했다.

베헤모스 사태에서도 내 헌신이 아니었으면 진작 나라가 초토화되지 않았겠느냐고, 정말 나 정도 영웅이며 애국자가 또 없다고도 말했다.

나중에 외국으로 떠나는 걸 막지는 않겠지만 가능하다면 한국에 남아달라는 말을 끝으로 그와의 만남이 끝났다.

결국 처음부터 끝까지, 나 듣기 좋은 소리만 쭉 한 셈이었다.

화내기도, 그렇다고 기뻐하기도 뭐한 가운데 방을 나왔더니 석장실이 보였다. 녀석이 안절부절못하는 표정으로 날 기다리고 있었다.

"높으신 분들이랑 연락 끊었다고 하지 않았냐?"

내가 쏘아붙이니 석장실이 고개를 숙였다.

"미안해, 정말."

"그래서, 저놈들이 시킨다고 날 왜 부른 거냐? 시키는 대로 안 하면 네가 프락치 짓 한 거 까발리기도 한대?"

제 과거를 들먹이는 말에 석장실이 움찔하더니 대답했다.

"그런 게 아니라, 필요한 자리라고 생각해서 협조했어. 최용이 암살당했단 소문이 도는 중에 김극 형이 뭔 과격한 행동을 할지 모르니까. 그러기 전에 만날 수 있게 자리 좀 마련해줄 수 없냐길래······."

뭘 걱정했는진 알 만했다. 그걸 알아도 짜증 나기는 마찬가지였고.

"계속 그런 식으로 굴 거냐?"

"뭐?"

"이대로도 쭉 정부 따까리처럼 굴 거냐고. 나라에서 각성자들 통제하려 들면 함께하고, 나라에서 말 안 듣는 각성자들 조지려 들면 함께 할 거야?"

내 물음에 석장실이 고개를 황급히 가로저었다.

"아냐, 아냐! 그런 일 생기면 내가 앞장서서 막을 거야. 설령 내가 저지른 죄 밝혀지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나는 가늘게 뜬 눈으로 석장실을 바라보았다. 환각 속에서 녀석이 각성자들을 위해 헌신한 것을 보지 못했다면 순 개소리로만 들었을 것이다.

나는 그를 노려보다 말고 한숨 쉬었다. 그리고 말했다.

"그럴 거면 편을 미리 정해. 계속 어중간하게 굴지 말고."

"난······"

"일 다 터지고서야 편 정하면 그땐 진짜 박쥐 새끼가 된단 말이야. 내 말 알아듣겠냐?"

석장실이 고개를 푹 숙인 가운데 나는 공간이동 했다.

복잡한 심경으로 집에 돌아왔다.

*******

집에서 TV를 켜보니 뉴스가 방송 중이었다.

각성자 관련 뉴스였다.

다름 아닌 중국의 S급이 뉴스의 주인공이었다.

뉴스에서 말하길 중국에서 소방관 일을 하다 불에 휩싸여 화정 능력에 각성했기로 유명한 S급, 훠선이 흉악 범죄를 저질렀다고 한다.

슈퍼히어로 이미지가 있는 바로 그 훠선이, 아동 성매매를 했을 뿐만 아니라 아동을 태워죽였다고.

훠선은 자기 호텔 방에 10살 여아를 데려왔는데, 성매매 신고를 받고 공안이 출동하니 훠선은 아동 성매매 증거를 없애기 위해 자신의 능력으로 여아를 불태워 재로 만들어버린 다음 진공청소기로 빨아들여 그 애가 존재했던 흔적을 지워버렸단 것이다.

간략한 요약만 들어도 끔찍한 걸 넘어 엽기적이기까지 한 혐의였다.

TV 속 S급 화정 능력자, 훠선이 붉게 충혈된 눈으로 말했다.

「억울합니다. 이 모든 것은 누명이자 함정······」

뉴스가 끝난 뒤, 나는 방금 본 뉴스를 곱씹었다.

저 뉴스에 무슨 의도가 있나?

훠선은 억울하다고 하소연했지만 사실 그 죄의 유무가 중요한 게 아니다. 훠선쯤 되는 각성자면 저따위 흉악한 범죄를 저질렀어도 나라에서 은폐해야 정상이다.

그러니까 훠선이 정말 그런 죄를 저질렀는지보다는, 왜 중국에서 그 죄를 공개적으로 수사하고 모두에게 알렸는지가 더욱 중요하다.

저것은 어쩌면 훠선이 앞서 대만 침공에 동원되길 거부한 처벌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명예와 영웅적 이미지를 그토록 중시하는 훠선인 만큼, 그 선한 이미지를 없애버리기 위한 작업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더 나아가, S급 각성자가 저지른 흉악 범죄를 대충 은폐하는 게 아니라 공개적으로 죄를 물을 수 있을 만큼 중국의 통제 역량이 대단하다고 과시하기 위한 행위일지 모른다.

한편 내 예언가의 직감이 이 사건 이후로도 중국의 상황은 크게 달라질 게 없음을 알려준다.

결국 이 모든 것은 중국이 자국 각성자들을 얼마나 완벽하게 통제하는지 과시하는 것으로 끝날 것이다. 훠선은 명예를 잃을 뿐 정말 처벌받지는 않을 것이며, 이후로 당의 명령을 거부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그리고 중국에서 일어난 불쾌한 일을 굳이 한국 뉴스에서 보여주는 것에는······.

경고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저렇듯 초인 중의 초인도 죄를 지으면 무사히 넘어갈 수 없는 법인데, 너희 따위가 날뛰고서 그냥 넘어갈 수 없음을 알리기 위한 경고 말이다.

여기서 일차로 불쾌감이 치솟았다.

*******

헌트웹을 켜니 또 화제가 변해있었다. 새로운 협회장 후보에 관한 화제였다.

류지선, 그러니까 전 국안부 장관이 헌터 협회장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헌트웹에 글을 올렸다.

류지선 : 헌터 여러분, 구관이 명관이란 말 들어보셨습니까?

헌터 여러분에겐 익숙할 저 류지선이, 다른 자리에서 여러분에게 봉사하기 위해 헌터 협회장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요새 업계 분위기가 뒤숭숭한 걸 알고 있습니다. 괴수 사냥에만 전념하셔도 모자랄 헌터 여러분이 그런 식으로 맘을 쓰는 게 얼마나 국익에 해로운지도 잘 알고 있지요.

예컨대 최용이 방송국에서 과격한 시위를 할 때 거기 동참한 탓에 함께 고소될지 모른단 걱정을 하는 헌터 분들이 꽤 있다고 아는데요.

일찍이 나랏일을 해본 저 류지선이 여러분의 걱정을 없애 드릴 수 있습니다! 제게 헌터 협회장 일을 맡겨주신다면 책임지고 그 일을 깨끗이 정리할 수 있도록, 아는 사람들에게 십수 번씩 전화를 돌려서라도 여러분의 걱정을 덜어드릴 (······)

예전 국안부 장관이 헌터 협회장에 도전하겠다니? 이것부터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

심지어 그 경력에 걸맞지 않게도 그 발표문의 어휘는 쉬웠으며, 문체는 경박하기까지 했다. 친근해 보이기 위한 수작질일까?

여러모로 황당했다.

그리고 그보다 더 황당한 것은, 이 발표에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헌터들이 꽤 있었단 사실이다.

Ⓐ GangStar☆ : 전직 국안부 장관이 협회장 해 먹겠단 건 국안부에서 헌터 협회 통제하겠단 소리 아니냐? 심지어 자기가 협회장 되면 헌터들 고소 안 당하게 막아주겠단 말은 곧······ 저 양반 안 뽑히면 그때 난리 친 헌터들 나라에서 고소할 거란 협박 아닌가?

익명 : 아무튼 자기 뽑아주면 고소 안 당하게 막아주겠단 말에 끌릴 사람 많겠네. 최용이 그때 손목 자르고 난리 칠 때 동참해선 자기도 고소당하거나 멱 따이는 거 아닌가 걱정하는 사람 많을 테니까 ㅋ

Ⓐ GangStar☆ : 그래도 그렇지 대놓고 정부 측 인사 뽑으면 헌터 협회 마비되는 거 아닌가? 정부에서 또 좆같은 짓거리 해서 헌터들 다 같이 나서야 할 때 협회장이 저런 놈이면 단체행동 나설 수 있긴 해?

Ⓐ IlIllIlllI : 최용처럼 아무 일로나 막 불러내는 것보단 훨 낫지. 저 양반 당선되면 최소한 깡패 짓 같이 하자고 헌터들 막 불러내는 일은 없겠네.

Ⓐ IlIllIlllI : 오히려 김극 뽑았다간 최용 죽음 진상규명 하잔 이유로 또 헌터들 동원해서 피곤하게 하는 거 아닌가······?

보아하니 헌터들 상당수가 이제 최용이 어찌 되었는지엔 관심이 없다. 자신이 최용처럼 고소당할까 봐 걱정하거나 최용이 협회장이던 시절을 지긋지긋해할 뿐이다.

이것도 최용의 업보라 할 만하다. 헌터들을 불법행위에 가담시켜 공범으로 만들어서는 후환을 걱정하게 만든 것도, 헌터들을 짧은 시기에 여러 번 과격행위에 동원하여 단체행동에 질리게 만든 것도 모두 그의 잘못이니까.

이제 일부 헌터들은, 자기네 입장을 덜 대변해주더라도 보다 상식적인 협회장을 바라고 있다.

물론 그렇지 않은 헌터들도 있다.

Ⓐ 5my지저스 : 그래봤자 김극햄이 협회장이다

협회장 김극햄이 나라에서 짱깨산 S급 데려오든 고소를 하든 헌터들이 고분고분하지 않으리란 걸 앞장서서 알려줄 거고. 배신자에 비각성 쓰레기들아

정진영을 비롯한 과격한 헌터들······. 그들은 내가 협회장이 되어 자기네들을 대표해주길 바라고 있다. 최용이 그랬듯 모두를 대신하여 정부를 상대로 으르렁거려주길 원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어떻게 할지 정했다.

*******

167화 헌터 협회장 - [4]

다음 날, 최용의 팀원들이 구속되었다.

그 헌터들은 방송국 습격 당시 최용의 지시를 받아 언론인들의 손목을 자른 장본인들이었다.

그들이 그 짓을 벌일 때는 국내 뉴스에 나오지 않았는데, 정작 그들이 구속되는 과정은 뉴스에 생생히 나왔다. 사회 불안을 초래하더라도 헌터들에게 공포심을 주는 편이 더욱 이롭다고 판단한 걸까?

법의 심판을 받은 것은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당시 방송국 습격에 동참했거나 지방 언론사를 습격했던 일부 헌터들도 무사히 넘어가지 못했다고 한다. 헌트웹에 올라온 글에 따르면, 그들은 집에 공소장이 날아왔거나 특무대의 방문을 받았다고.

이 와중에 누구보다 크게 날뛰었던 일부 헌터들은 기소되거나 특무대의 압박을 전혀 받지 않았다.

예컨대 정진영 형 말이다. 최용과 그 팀원들을 제외하면 정진영 형이 가장 격렬히 날뛰었지 아마?

그 형이 중화기인 헌터 라이플을 들고 건물에 침입한 것부터가 중범죄요, 그가 저지른 기물파손이며 폭행 등은 훌륭한 변호사도 '피고인에게 정신병이 있어서······' 이외 말로 변호할 수 없는 수준임을 기억했다.

그러나 그 형은 아무 일도 없이 넘어갔다.

나라에서 왜 넘어갔는지는 알 만하다. 그 형도 잡아 가두기 곤란할 만큼 강력한 각성자요, 무엇보다 나와 가까운 사이니까.

나라에선 날 배려하여 남들보다 큰 죄를 지었던 정진영 형에게는 죄를 묻지 않고 넘어가 주는 융통성을 발휘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그 융통성에 내가 감사했느냐면, 아니었다.

난 그저 이렇게 생각했을 뿐이다. '처벌하는 기준도 아주 자기네 맘대로군.'

이쯤 되니 장관이 말한 '정부와 각성자가 적당히 치고받는' 상황이 내가 생각하던 것과 다르단 걸 알 수 있었다.

아무래도 장관은, 나나 강준치를 비롯해 강력한 각성자들만 자유롭게 풀어줄 생각인 것 같다.

나 같은 강력한 각성자들이 저지른 죄는 무사히 넘어가 주는 등 여러 특권을 주는 한편, 다른 평범한 각성자들의 무법 행위는 엄격히 통제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내게 협회장이 되길 권한 이유도 알 만하다. 어쩌면 나라에서는 특권을 준 강력한 각성자들을 이용해 나머지 자잘한 각성자들을 통제하길 원했을지도 모르겠다.

학교로 치면 일진에게 오히려 선도부 완장을 채워주는 상황이라 치면 될까?

학교의 교사들 입장에 학생들을 공평하게 대우하고 처벌하는 것은 딱히 중요한 게 아니다. 학교에 잡음이 없이 조용한 게 더 중요하다. 그러니 괜히 건드리면 골치 아플 일진들에겐 이상한 특권까지 줘놓고는 평범한 학생들이나 쥐잡듯 잡으며 통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맘에 들지 않았다. 정말로.

*******

최용을 따라 난동을 부린 헌터들이 하나둘씩 사회적 압박을 받는 상황이다. 지금 헌트웹에 공포 분위기가 조성된 것은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아직 고소당하진 않았지만 저지른 일이 있는 정진영도 불안해진 걸까? 그 형은 요새 툭하면 내게 전화를 걸어 협회장 선거에 나서달라고 설득하려 했다.

「이 상황에 뭔가 할 수 있는 건 김극햄밖에 없잖아요, 예?」

그러나 난 생각해보겠다는 말조차 하지 않았다. 단 한 번도.

그렇듯 내가 협회장 선거에 일언반구 하지 않는 가운데, 기어이 협회에서 협회장 후보들을 받기 시작했다.

등록된 협회장 후보들을 본 헌터들의 반응은 이런 식이었다.

Ⓐ GangStar☆ : 결국 김극 후보로 안 나왔네? 이대로는 정말 전 국안부 장관 뽑히겠는데······?

Ⓐ 5my지저스 : 아······.

익명 : 뭐 이건 이것대로 나쁘지 않지. 이상한 소동 없이 헌터 일만 계속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니까

헌터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아쉬워하는 사람에 실망하는 사람에 안도하는 사람까지.

저 중에서 안도하는 헌터들의 심정은 나도 알고 있다. 나 또한 지난 방송국 습격 이후로는 헌터 일에만 전념하며 마음의 평화 비슷한 것을 느끼지 않았던가?

지난 몇 달, 나는 툭하면 속으로 읊조리던 비각성 찌꺼기 운운도 거의 하지 않았으며 소월 타령도 거의 하지 않았다. 오로지 헌터 김극으로서만 충실했다.

다른 헌터들도 그런 정신적 평화를 누리고 싶어 한단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이 그러길 원한다면, 그러도록 내버려 두리라.

또다시 정진영 형이 내게 전화를 걸었다. 왜 협회장 선거에 나서지 않느냐며 화내고 애원하는 것이었다.

「진짜 왜 가만히 있는 거예요? 대체 왜!」

그렇듯 따져대는 정진영에게 내가 말했다.

"진영이 형. 나 A급 헌터로 막 데뷔했고 형은 팀원 중 하나일 때 기억나요?"

「예? 기억나긴 하는데 그걸 지금 왜······」

"처음엔 나도 딴 A급 헌터들 방식 따라 했잖아요? 팀원들한테 총 들고 화력 지원하게 시켰죠. 나 도와서 데스클로들한테 다 같이 총 쏘게 지시했단 말입니다.

그런데 시간 지나니까 담비 씨 제외한 팀원들은 직접 총 쏘는 게 아니라 내 망치를 챙기거나 헌터 라이플 탄창 교체하는 일이나 하게 된 거 알죠? 나랑 같이 직접 싸울 필요 없도록 역할을 바꾼 셈인데······ 왜 그리 바꿨는지 기억하나?"

「그야 김극 씨는 공간이동 능력자니까······. 다른 팀원들이 그 기동성을 따라갈 수도 없거니와 김극 씨는 괴수들 수에 압도되거나 둘러싸일 일이 없으니 화력 지원이 절실하지도 않았으니까 그랬죠? 그래서 그 얘기를 지금 왜······」

"이번에도 그래요."

「예?」

"그냥 그렇다구."

결국 난 끝까지 후보 목록에 내 이름을 넣지 않았다.

그리고 협회장 선거 당일에도 가만히 있었다. 협회 위원으로서 한 표를 행사할 수 있음에도 선거장에 모습조차 드러내지 않았으며, 그 어떤 의견도 내비치지 않았다.

결국 당선된 것은 전 국안부 장관 류지선이었다.

그리 다 끝나고 나니 현 국안부 장관에게서 문자가 왔다. '양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뭐래."

마치 내가 자기네를 돕기라도 한 것처럼 말하고 있지 않은가. 은근슬쩍 날 한 편으로 취급하는 상황에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이 와중에 헌트웹 반응도 가관이었다. 김극이 갑자기 쫄보가 된 걸 이해해야 한다느니, 중국 S급 앞에서는 분노 조절 잘하게 된다느니 하는 날 향한 조롱들.

뭐, 상관없다. 솔직히 기분 나쁘고 억울하고 부아가 치밀어오르긴 하는데, 그래도 상관없다.

어느 재판을 기다리며 그리 생각했다.

*******

헌터 협회장 선거가 끝난 지 네 시간쯤 뒤, 난 법원 앞에 있었다.

여러 번 와본 곳이었다. 여동생이 교도소에 들어간 뒤, 대한각성연대에 들어간 내가 종일 피켓 들고 후문에 서 있곤 했던 곳이 바로 이 법원이었으니까.

내 여동생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던 이 법원에서는, 지금 한 각성자의 재판이 진행 중이었다.

빙정 능력자, 살인 혐의.

그 얼음 능력자가 일하던 업소의 사장은 그와 말싸움을 벌이고서 그를 해고한 다음 날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물증은 없지만, 정황상 그가 사장을 살해한 것은 확실해 보인다.

물론, 내게 중요한 일은 아니다.

재판이 벌어지는 법정 안으로 공간이동 했다.

근사하게 차려입은 판사, 그리고 검사가 먼저 보였다. 뒤이어 검사석에 마주 앉은 변호사며 피고인 등도 차례차례 내 눈에 담겼다.

증인석은 비어있었다. 그쪽으로 걸어가자니 아직 내 존재를 발견하지 못한 듯 판사가 나불거렸다.

"김지용 씨, 맞습니까? 직업과 주소가······"

그러다 검사가 날 발견한 듯, 그가 눈을 부릅뜨고는 손가락을 들어 판사한테 날 가리켰다.

그제야 판사도 내 존재를 알아챘다. 그가 크게 뜬 눈으로 날 바라보더니 기겁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 뭡니까? 누가 들여보내 줬어요? 당장―"

"닥치고 재판이나 계속해."

나는 그리 중얼거리곤 증언석 의자에 앉았다. 내 무게가 무게인지라 의자가 버티지 못하고 박살났기에 어쩔 수 없이 증인석 테이블에 앉아야 했다.

그래서 내가 의도치 않게 불량스럽게 자리 잡은 가운데, 판사는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한 눈치였다.

"신성한 법정에서 이게 뭔 난동―"

"무죄추정도 안 지키는 것들이 신성한 법정은 지랄."

이쯤 되면 아무리 눈치가 없어도 내가 재판 구경이나 하러 오지 않았음을 이해했을 것이다.

과연 어디론가 연락하는 듯하던 검사도, 판사도 모두 입 다문 가운데 나만 계속 말했다.

"이런 초상 범죄에 물증 없이 유죄 판결 내리는 건 무슨 특별법이 있어서 그럴 수 있는 게 아니라, 위에서 내려온 지침이 있어서 그러는 거라던데······ 맞나?"

피고인, 살인 혐의를 받는 얼음 능력자 청년과 눈을 마주쳤다.

청년이 날 알아본 듯했다. 그가 날 멍하니 쳐다보았고 나는 씩 웃어주었다. 그리고 계속 말했다.

"그렇다면 판사님? 나도 지침 하나 줄게."

"예?"

"나 무식한 새끼라 법률용어 하나도 몰라. 법률용어 중엔 딱 무죄랑 유죄만 알아들을 수 있거든? 그러니까 판사님은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만 해야 돼."

"아까부터 무슨 말을······"

"판사님 입에서 '무죄' 이외 단어가 나오면, 판사님은 실종되는 거야."

그제야 내가 여기 온 목적을 알게 된 걸까? 판사가 동요한 듯 그 눈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피고인이 다시금 날 바라보았다. 그 눈에서는 희망 비슷한 것이 반짝이는 가운데 내가 말을 이었다.

"무죄야. 내 말 알 들었냐? 유죄는 당연히 안 되고 휴정도 안 돼. 무죄가 아니면 실종이야. 검사 새끼랑 판사님 모두."

한창 말하자니 경찰인지 청원 경찰인지 모를 놈이 법정에 난입해왔다.

"너 뭐야!"

놈이 내게 소리 지르며 달려들었다.

뭔 용기로 그랬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딱 보니 비각성 찌꺼기임을 알 만했다. 나이토 상을 보자마자 각성자임을 알아챈 내 안목이니 확실할 것이다.

그리고 그 비각성 찌꺼기는, 이 판사며 검사의 나치 짓거리에 동참하는 공범이기도 했다. 그 나치 졸병의 무릎을 걷어차니 우악스러운 힘에 그 무릎 아래가 뜯겨 나갔다.

비명이 터져 나오기 시작한 그 턱을 붙잡아 다물게 했다. 내가 계속 말했다.

"조용해졌으니 계속 재판해. 십 분 이내로 판결 끝내고, 응? 질질 끌면 성난 김극 할아버지가 망태기에 집어넣고 납치해버린다."

법정에 비린내가 나기 시작했다. 여기 얼음 능력자가 소리마저 얼려버린 듯 침묵 또한 감돌았다. 결국 나만 계속 말했다.

"뭐해? 빨리하라니까. 나 바빠."

정말로 바쁘다. 이십 분 뒤에는 한 신체강화자가 재판을 받을 예정이다. 그는 힘 조절을 못 했는지 시비가 붙은 사람을 때려죽였으며, 특무대가 출동하자 순순히 잡혀서는 재판을 받을 예정이었다.

재판부는 웬 변신 능력자가 그 신체강화자의 모습으로 변신하여 범행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증거를 내놓아야 할 것이다.

얼음 능력자들에게 자신이 무죄라는 증거를 요구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 아닌가. 나도 그 정도 요구쯤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은가?

예의 증거를 내놓지 못하거든 그 재판을 맡은 판사 또한 무죄 판결을 내려야 할 것이며, 무죄로 판결하지 않거든 그곳의 검사와 판사 모두 '실종'될 것이다.

비각성 찌꺼기들이 내 동족을 통제하도록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각성자들이 지킬 필요가 없고 지키겠다고 약속한 적도 없는, 심지어 공정하지도 않은 법에 구속되게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김형만 씨에 이어 최용까지 살해하고서 협상하자는 놈들에게 맞춰주지 않을 것이다. 우리 대표를 살해하고서 관대한 척 굴면 안 된단 사실을 알려줄 것이다.

무법에는 무법으로 대응할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 굳이 다른 헌터들까지 끌어들이진 않을 것이다.

이 모든 일에 협회장 자리는 필요하지 않거니와 그런 자리에 앉아봤자 내 운신의 폭이 줄어들 뿐이다.

나 혼자면 충분하다. 평소 헌터 일을 할 때도 그렇지만 지금도 마찬가지다.

모름지기 소월의 각성자 군주들은 병사를 거느리지 않는 법.

내가 강준치쯤 되는 각성자라면 당당하게 모든 각성자들을 이끌고 행동했을지 모르지만, 내가 그 정도 각성자가 아니란 것쯤은 알고 있다. 중국에서 온 각성자를 상대로 모두에게 승리를 약속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공간이동 하여 여기저기 나타날 때, 특무대든 중국산 각성자든 별 대단한 대응법이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니 계속해서 공간이동 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비각성 찌꺼기들의 피를 봐야 한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할 것이다.

*******

「한국의 유명한 헌터이자 각성자인 김극이 세 차례 재판에 난입해 (······) 현재 한국 정부의 조치에 대한 반발로 보여 (······) 」

요즘 한국 상황에는 외국도 관심이 많았던지라, 법원에 상주하는 외신 기자도 많았던 모양이다.

이번 내 행동이 외국 뉴스에 나오고 있다.

그 뉴스가 헌트웹에도 올라왔다. 그리하여 이번 선거 결과 얘기를 하다 말고 다들 내 얘기를 시작했다.

헌트웹이 내 이름으로 도배되는 가운데, 내가 글 하나를 올렸다.

Ⓐ BabyBerserker : 언니 옵바야들, 모두 주목!!

애기버섯이가 길드를 만들었어양! 당장은 1인 길드예양!

길드 이름은 [여명 길드]고양! 길드장은 이쁜 애기버섯이~!

길드 설립 목적은 레이드나 친목질이 아니고양!

마계 서울의 악한 기운을 받아들여 타락한 판사 아조씨랑 검사 아조씨들을 정화해주는 것이랍니당!

오늘도 못된 판사 아조씨들을 혼쭐내줬어양! 이후로도 판사 아조씨가 나쁜 짓을 하면 애기버섯이한테 도움을 구하세양!

애기버섯이가 얍삐~ 하고 나타나선 언니 옵바야들을 도울게양!

마계 방송국 쳐들어갔던 옵바 아조씨들도 벌벌 떨지만 말고 애기버섯이를 불러양!

애기버섯이가 모두를 도울 테니까양!

그 글에 달린 댓글 수가 올라가는 속도를 보았다.

그 어느 때보다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댓글을 보며 흐뭇해하던 중에 전화가 연결되었다.

전화기 너머 상대방에게 말했다.

"준치."

「어, 김극?」

"저번에 한 제안 유효하냐?"

「뭔 제안?」

"저번에 나한테 너 살던 지하 집 만들어주겠단 제안 했잖아? 공간이동 말곤 아무도 침입 못 할 그런 지하 아지트 만들어주겠다고······ 그거 지금도 가능해?"

솔직히 말하자면 거절당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대놓고 나라에 반기를 든 내게 친한 척하는 것은 자신에게 이롭지 않다고 여길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강준치도 이 상황에 불만을 품고 있기는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하기야 석장실을 프락치 삼아 자신에게 보냈던 전 국안부 장관이 협회장이 된 마당에 당연한 일이었다.

강준치가 즉시 말했다.

「왜 안 되겠냐?」

*******

168화 교룡 - [1]

이후로 석 달이 지났다.

숨 가쁘게 바삐 지낸 석 달이었다. 그 석 달 동안 나는 법정을 마흔네 번 습격했으며 각성자를 기소한 검사들을 실종시켰고 유죄추정의 신념을 지킨 법관 또한 실종시켰다.

실종된 그들은 게이트 너머에 있다.

그들은 내가 강준치를 찾으러 떠났을 적 알게 된 소월의 한 부족에서 비각성 찌꺼기에게 어울리는 새 삶을 시작하고 있을 것이다.

나라에서 먼저 항복해야 그들은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그러지 않으면 거기서 쭉 양으로서 살아야 할 테고.

국회의사당과 거기 드나드는 의원들 또한 내 표적이 되었다.

일찍이 예전에 했던 국회의원 납치 협박을 반복했다. 이번에는 다음 회기에 그놈의 각성자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지 않는다면 너 또한 실종되리란 말과 함께.

한희석은 지금까지 저지른 짓이 있으므로 그놈 역시 실종시키려고 놈을 찾아보았는데, 놈이 자기 집에는커녕 특무대 본부에도 없어서 끝내 찾아내지 못했다. 알고 지내는 특무대원의 말에 따르면 놈이 특무대에도 출근하지 않고 전화로만 지시한 지 꽤 됐다나?

한희석 그놈, 워낙 적이 많은 놈이라 숨어지내는 모양이지. 일단 위치가 노출되기만 하면 그놈 역시 양으로서의 새 삶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그렇듯 3대 여명 길드장으로서의 활동을 하느라 바쁜 중에 헌터 일도 계속했으며, 얼마 전에는 외신 기자와 인터뷰 또한 했다.

그 인터뷰 기사가 헌트웹에 번역되어 올라왔다.

Q. 김극 헌터, 만나서 영광이다. 한국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유명한데 알고 있는지

"애기버섯이의 귀여움은 지구인 모두에게 통하니까 당연한 일입니다."

Q.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지만, 하여간 김극 헌터는 예전부터 해외에서도 유명인이었다. 여러 막강한 괴수를 홀로 쓰러뜨리는 영상에서부터 베헤모스를 상대로 보여준 활약은 물론 각성자로서의 놀라운 성장세까지. 김극 헌터야말로 지구에서 가장 유명한 헌터 중 하나다.

그런데 요새는 김극 헌터가 헌터 활동이 아닌 조금 다른 이유로 유명해지고 있다. 그 사실 또한 알고 있는가?

"테러리스트 김극으로서 말입니까?"

Q. 맞다. 지난 석 달간의 행적에 대해 해명할 수 있는지

"나라에서 우리 대표인 최용을 죽여놓고 나와 잘 지낼 수 있을 거라 믿었다면, 잘못 생각한 겁니다. 얼마나 잘못 생각했는지 내가 지금 알려주는 중이고요."

Q. 확실히 최용의 실종은 한국 정부의 암살이 유력한 상황이다. 그러나 한국 정부에선 최용을 살해한 적이 없다고 밝혔는데 김극 헌터에게 증거가 있는지

"증거요? 그런 거 없는데, 나라에서 유죄추정 원칙을 고수하는 중이니 나도 저놈들이 죽인 셈 치죠 뭐. 싫으면 자기들이 안 죽였단 증거부터 가져오라 합시다."

Q. 설령 한국 정부에서 최용을 제거한 게 사실이더라도, 충분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단 의견도 많은데 이에 대한 의견은?

"나라에선 과격분자인 최용을 죽였으니 이제 다른 헌터들이 모두 얌전해질 거라 생각했을까요? 나라를 위해 마땅히 죽여야 했다고? 그 생각 또한 틀렸음을 알려주겠습니다. 내가 최용 몫까지 과격하게 굴어서 그렇게 해야죠."

Q. 김극 헌터는 지난 석 달간 헌터와 각성자들을 향한 형사재판에 모두 개입하여 제대로 된 재판이 진행되지 못하도록 훼방을 놓았다.

그러나 일찍이 헌터들이 여러 언론사를 습격하여 언론인들을 폭행하고 온갖 기물을 파손한 것은 충분히 기소될 만한 일 같은데, 어째서 그에 대한 재판마저 용납 못 하는지 설명할 수 있나?

"언론사를 습격한 일이라면, 헌터들이 잘한 일입니다."

Q. 잘한 일이라니? 그건 또 어째서인지

"우린 언론인들이 아니라 정부의 나팔수를 두들긴 겁니다. 게이트가 열리더니 국가비상사태란 이유로 나라에서 보도 통제를 시작한 지 벌써 육 년쯤 지났는데 아직도 그놈의 보도 통제가 안 풀린 마당이에요.

그렇듯 정부의 스피커로 전락한 놈들이 정부 지시로 헌터들 음해를 하는데, 입이 틀어막힌 중에 우리에게 직접 쳐들어가서 실력행사 하는 것 말고 무슨 방법이 있었겠습니까?

그리고 내가 민사재판에는 개입 안 합니다. 그때 저지른 기물파손이라면 배상하는 게 맞아요. 그래서 최용이 녹인 건물 말곤 내가 다른 헌터들 몫까지 싹 다 배상했으니 된 거 아닙니까?"

Q. 그때 단순히 재산피해를 끼쳤을 뿐만 아니라 언론인들 손목을 자르기까지 한 줄로 아는데

"사람이 살다 보면 손목이 잘릴 수도 있고 다리 반쪽 뜯겨 나갈 수도 있는 거지 뭐 그리 엄살이랍니까? 이젠 치유 능력자 찾아가면 낫잖아요.

나 헌터 활동할 땐 하반신이 통째로 타버린 적도 있지만 그때 그냥 드링크 빨고 다시 싸우러 갔습니다. 고작 그 정도로 징징거리다니, 목숨 바쳐가며 싸우는 헌터들한테 창피한 줄 알아야 해요."

Q. 지금까지 말을 들어보면 김극 헌터가 무슨 생각으로 반발하고 있는지는 알겠다. 그러나 법이 대놓고 무시되며 입법기관과 사법기관의 권위가 흔들림으로써 나라에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이 모든 게 정말 옳은 일이라 생각하나?

"당연히."

Q. 어째서?

"각성자는 강합니다. 얼마나 강하냐면, 이 세상에 법이 사라져도 멀쩡히 살아남을 수 있을 만큼 강합니다. 소월을 보면 알겠지만 각성자들은 법이 필요 없는 존재예요.

그런데 딱히 공평하지도 않고 우리한테 이롭지도 않으며, 무엇보다 나라에서조차 제대로 지키지 않는 법을 우리가 따라야 할 이유를 전혀 모르겠습니다."

Q. 김극 헌터가 빙정 능력자를 향한 모든 기소에 개입한 이후로 빙정 능력자에 의한 살인 범죄가 유의미하게 증가했다. 이에 대한 의견은?

"그런가요? 유감이네. 하지만 인천에는 변화 없으니 상관없습니다. 인천 만세."

이 기사에 달린 댓글을 감상했다.

Ⓐ 5my지저스 : 김극, 그는 신이야! 김극 그는 신이야!

Ⓐ 5my지저스 : 의심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김극햄!!

익명 : 개쩌네 진짜

익명 : ㄹㅇ 김극 협회장 선거 안 나갈 땐 실망 크게 했는데. 딴 헌터들 안 끌어들이고 혼자서 날뛰려는 걸 줄은 진짜 몰랐잖아

익명 : 헌터들 기소 막아줘서 지 협회장으로서의 권위 세우려던 류지선 나가리~

Ⓐ 러그소라게 : 인터뷰에 은근슬쩍 음해가 섞인 것 같은데, 외신도 김극 곱게 보지 않고 깎아내리고자 시도하는 건가?

ㄴ Ⓐ syberMagneto : 우으······. 내가 저 인터뷰에 동참해서 아는데 저 인간 실제 저렇게 인터뷰한 거 맞아

ㄴ Ⓐ 러그소라게 : 뭣

익명 : 그런데 신기한 게, 왜 아직도 김극 헌터 면허 박탈 안 된 거냐? 보니까 아주 그냥 국회의원이고 판사고 싹 다 건드리는 중인데 최용보다 더하구만 왜 내버려두는 거지?

ㄴ Ⓐ 이해경 : 강준치가 김극 오빠 암살될지 모른다 걱정해서 집 파줬잖아. 그런 식으로 강준치가 김극 오빠 편드니까 쫀 거 아닌가 ㅋ

ㄴ Ⓐ GangStar☆ : 그것도 그런데 김극 헌터 면허 박탈시키고 범죄자로 수배하면 그땐 진짜 감당이 안 되니까 그러지. 김극이 헌터 때려치고 괴수 사냥할 시간에 테러활동 하게 할 이유가 있나? 수배한다고 공간이동 하는 놈 잡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뭐하러

확실히 내가 헌터 일을 계속할 수 있는 것은 의외였다.

헌터 협회장도 정부에서 내려보낸 인사로 바뀐 마당 아닌가. 류지선이 협회장으로서 처음 하는 일이 내 면허 박탈이라 생각했는데 그냥 날 내버려 두더라고.

아직 헌터로서의 내가 한국에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계속 헌터 일을 하게 내버려 두는 건지, 아니면 정말 김석희의 해석대로 내가 헌터에서 테러리스트로 전직하면 그땐 정말 감당이 안 되리라 생각해서 일단 내버려 두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물론 어느 쪽이건 내 할 일을 해야 할 뿐이다.

지금은, 헌터 일을 해야 했다.

스마트폰을 보다 말고 정신을 집중했다. 그리고 저 위로······. 지하 800미터 아래에 있는 내 새 집에서 저 위 지상으로 공간이동 했다.

*******

국안부에서 날 호출한 바였다. 헌터로서 호출에 응해 찾아가니, 국안부 공무원이 내게 말했다.

"진작에 말씀드렸다시피 일본에서 거대괴수가 오는 중입니다. 한반도에 거의 다 당도했고요."

"교룡인가 하는 놈이?"

"예."

교룡(蛟龍)이면 베헤모스보다 몇 단계 체급이 낮다는 그놈이다. 중국에서 S급 각성자를 데려올 핑계가 된 그놈.

그리고 오래 살아온 거대괴수들의 행동거지는 으레 비슷한 걸까? 베헤모스가 그랬듯, 거대괴수들은 막강한 적수에게 길을 가로막히면 왔던 길로 되돌아가는 게 아니라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상대방이 떠나거나 늙어 죽을 때까지 버티기에 나서는 법이라고 했다.

거대괴수들은 이동에도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소모하기 때문에 함부로 돌아갈 수 없어서라는데, 교룡 또한 일본에서 그랬다고.

"리슈란은 지금 교룡의 진로를 가로막으러 떠날 예정입니다. 하지만 리슈란은 일 년 내로 귀국할 예정이므로 놈을 무한히 잡아둘 수 없는 지요. 그러니 국안부에서는 교룡이 반도에 당도하기 전에 먼저 놈을 쓰러뜨릴 계획입니다."

국안부 공무원의 설명에 내가 물었다.

"교룡이 여기 오기 전에 쓰러뜨린다면, 해양에서 놈과 싸우는 겁니까?"

"일단 그럴 예정입니다."

"해양에서 싸운다면 배 위에서 싸워야 한단 소린데······ 너무 불리한 조건이지 않나?"

"그 점에 대해서도 고려해봤지만······"

이후로도 놈을 향한 토벌 작전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설명 들은 뒤, 나는 참전할 것을 약속한 다음 복도를 걸으며 생각했다.

이제 뭘 해야 할까?

오늘은 내가 끼어들 재판 일정이 없었다. 검사들이 헌터나 각성자를 기소하는 족족 내가 실종시키길 반복하니, 그들을 향한 기소 자체가 멈췄다.

그렇다면 오늘은 각성자 차별금지법에 찬성하지 않은 의원을 납치하거나 한희석이나 또 찾아볼까 생각하던 중이었다.

"김극, 맞지?"

옆에서 들려온 여성의 목소리.

고개를 돌렸을 때, 그곳에 중국의 S급 리슈란이 보인 순간 나는 눈을 크게 떴다. 방금 유창한 인천말이 들렸는데 어떻게?

"리슈란?"

"리슈란, 맞아. 아무튼 김극? 너도 교룡 토벌에 참여하기로 한 것 같은데 맞나?"

"그런데?"

리슈란이 역시나 유창한 인천말로 중얼거렸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이때 나는 당장 공간이동으로 자리를 벗어나야 할 필요까진 느끼지 못했다. 이 여자의 능력 특성상, 이런 공간에서 낼 수 있는 화력은 날 단숨에 죽일 정도는 아니라고 알고 있다. 작정하고 싸운다면 내가 질 가능성이 크겠지만 그렇다고 공간이동으로 탈출조차 못할 수준은 아닌 셈이다.

"김극? 나 곧 배 타고 떠날 예정인데, 괜찮으면 그 전에 잠시 얘기 좀 하지."

그래서 리슈란이 그리 제안했을 때, 나는 조금 생각해본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169화 교룡 - [2]

리슈란을 따라갔다. 그리하여 둘이서 마주 보게 된 리슈란은, TV에서 본 것처럼 강렬한 인상이었다.

칼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실제로도 안 나올 것이다. 정령이니까) 여자가 말했다.

"교룡 토벌에 참여할 예정이라니 놀랍더군."

"그게 왜 놀랍지?"

"그 거대괴수 토벌에 나도 참여할 예정이니 몸을 사릴 줄 알았지. 나라 상대로 으르렁거리는 마당에 나라에 오려는 거대괴수 막겠다고 나설 것 같지도 않았고."

"이 여자가 이상한 소릴 하네."

"이상한 소리라니?"

"헌터가 뭔 상황이든 괴수는 사냥해야지."

내 말에 리슈란이 날 뻔히 바라보았다. 꽤 오래 그러더니, 그녀가 중얼거렸다.

"듣던 대로 특이하네, 엄청나게. 헌터로서의 자신은 따로, 과격분자로서의 자신은 따로란 건가? 공무원들이 말한 대로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는······."

"공무원들이 날 가지고 뭔 말을 했는데?"

리슈란이 몰라서 묻느냐는 양 설명했다.

"김극? 석 달 전 일로 한국 공무원들이 매우 당황하더군. 국안부 장관도 거의 기절할 것처럼 굴었고."

"장관 그놈이 왜."

"분명 앞으로 잘 지내보잔 제안도 했고 최용의 사망도 자기네와 관련 없다고 해명했는데 갑자기 그리 나올 줄은 몰랐다는 거지. 소위 급발진? 그걸 해서 기겁했다는데. 뭐 이런 미치광이가 다 있나 싶어서 황당했다고도 하고."

"그래서 뭔 말을 하고 싶은 건데?"

내가 물었더니 리슈란이 질문했다.

"지금이라도 굽히고 들어갈 맘 없나?"

"굽히긴 뭘 어떻게 굽혀?"

"납치한 사람들 돌려주고. 다음부턴 이런 짓 안 하겠다고 서약서도 쓰는 거지. 장관 말을 들어보니 그러기만 하면 지금까지 저지른 짓은 대충 묻고 넘어갈 분위기던데."

그 말에 내가 코웃음 쳤다.

"그놈의 각성자 차별금지법부터 만들라고 해. 지금까지 각성자들 박해한 자기네가 나치 새끼들임을 인정하곤 대국민 사과나 하라고 하고."

"각성자 차별이니 박해니 하는데, 힘 있는 우리가 참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

"힘이 있는데 왜 참지?"

"과도기잖아.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쪽이 인내해야지. 달리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나라에서 부당하게 굴었다고 비난하는 게 정말 옳다고 생각해? 가난하고 힘든 시절 부모가 자길 박대했다며 화내는 짓 아닌가."

"나 부모랑 사이 안 좋았는데? 어린 시절에 좆같이 군 대가를 치르게 해줬고."

"정말 그랬으면 잘못한 거지. 지금이라도 뉘우치고 행동을 바로잡아야겠고."

한국 공무원들한테 뭔 부탁을 받았길래 그따위 입에 발린 말을 하느냐고 쏘아붙이려다 말았다.

리슈란의 표정이며 목소리를 보니 진심으로 그리 생각해서 묻고 있다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리기룡도 저랬다. 날 쓰러뜨려야 할 특별한 이유도 없는 주제에, 잔뜩 얻어터져 놓고서도 내게 주먹질하려고 발악하던 그 모습이 눈에 선하다.

하기야 중국 공산당에서 각성자들의 신념과 사상을 보고 특정 인원들을 선별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 선별된 각성자들이 특별히 강력해지도록 돕거나 그 인원들에게 특별한 지위를 주어 다른 각성자들을 통제하게 시킨다는 말도 들어본 적이 있고.

리기룡과 이 여자가 그런 경우인 걸까? 각성자가 정말 국가와 평범한 사람들을 위해 일해야 한다고 믿는 부류인?

리슈란은 계속해서 날 설득하려는 눈치였다.

"김극? 그러는 건 너 개인에게도 손해야."

"손해는 뭔 손해."

"넌 이미 영웅이지. 수많은 공적을 세웠고 베헤모스 사태에선 아예 국가를 구했어. 이후로도 소월로 떠난 강준치를 설득해 데려오거나 수도의 괴수들을 혼자서 대거 소탕하는 등 나마저 감탄할 위업들을 세웠던데······. 이제는 가만히 있기만 해도 칭송받을 마당에 왜 그런 짓들을 하는 거지?"

"칭송 좀 받자고 좆같은 걸 참나?"

"참아야지."

"내가 왜?"

"너나 나나 영생하니까. 우리 모두 어지간한 정치인이 명함도 못 내밀 공적을 여러 차례 세웠고. 앞으로 반세기? 아니, 이십 년만 지나도 기존 지도자들이 물갈이되고 나면 각국의 핵심 인물은 우리가 될걸.

그놈의 각성자 차별금지법이든 뭐든,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네가 직접 주도해서 만들 수도 있어 보이는데······."

이상한 대의가 안 통하니 개인적인 이득을 들어 날 설득하려는 걸까?

나는 또다시 코웃음 쳤다.

"네 나라 소방관 토사구팽당한 거 보고 느껴지는 게 없나? 나라에 반대 목소리 좀 냈다고 곧장 사회적으로 죽이려 드는 거 보고 느끼는 게 없어?

S급 소방관쯤 되면 진짜 화나서 반역하려 들 경우 중국 입장에도 큰일 아닌가. 그럴 위험마저 무릅쓰고 기어이 망신을 주던데, 네 나라에서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를 모르겠냐구?"

"글쎄. 모르겠는데, 그 이유가 뭐지?"

"잘나고 평범하신 비각성자들은 절대 순순히 양보를 안 하니까! 강력한 각성자들에겐 대충 돈만 주고 퉁치려 하지. 권력이며 주도권까지 나누려곤 절대 안 해. 우리가 감히 그런 걸 넘보거나 기어오르면? 나라에선 뭔 피해를 보더라도 찍어누르려 드는 거지!"

"그래서, 결코 타협할 수 없다고?"

"그래!"

물론, 내가 이 여자의 말에 설득되지 않았듯 이 여자 또한 내 말에 갑자기 생각이 바뀌거나 설득된 눈치는 아니었다.

리슈란은 그저 날 멀뚱히 바라보다가 제 갈 길을 가버렸을 뿐이다.

나도 다시 가던 길을 가는 중에 국안부 장관과 마주쳤다. 그가 씩 웃으며 말을 걸어왔다.

"아, 김극 헌터. 이번에 참전한다면서요? 나라에서 또 큰 빚을 지게 됐······"

내가 저지른 일이 있는데도 저리 살갑게 굴고 있다. 저걸 넉살이 좋다고 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딴 계산이 있어서 저런다고 해석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대충 무시하고 내 가던 길을 갔다.

*******

그날 오후, 리슈란이 군함을 타고 떠났다.

이후로 뉴스에서 말하길, 해상에서(정확히는 해당 좌표의 게이트 안에서) 리슈란과 교룡이 마주쳤다.

그리하여 교룡이 멈추긴 멈췄지만, 그런 식으로 길을 막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고 한다. 게이트 안에서는 서로를 해칠 수 없는 만큼 교룡으로선 대충 우회해서 지나가면 그만이니까.

지상에서야 강력한 각성자가 버티고 있으면 괴수들은 그곳이 그 각성자의 영역인 줄 알고 게이트에서 나오길 꺼리지만, 강력한 각성자가 지나가는 길에 모습을 드러낸 정도로는 그 전진을 제대로 멈출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교룡이 가는 방향을 바꾸려 들 때마다 리슈란이 그 앞을 가로막아도 교룡은 조금씩 전진하고 있다는 모양이다.

이대로면 교룡은 며칠 내로 한국에 도착할 예정이요, 그러지 못하게 막아야 하는 만큼 토벌 작전을 앞당겨야 한다는 것을 공무원에게 설명 들었다.

그런 이유로 당분간 사냥 일정을 중단하게 되었다고 성문영에게 말했더니, 성문영은 괴상한 얼굴로 날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 아닌가.

"이럴 때면 내가 비정상인 건지 아니면 형이랑 세상이 비정상인 건지 헷갈려져요. 저번에 형이 법정에서 깽판 쳤단 기사 떴길래 아, 이제 헌터 노릇은 끝이구나 하고 엄마한테도 이제 헌터 은퇴할 거라고 말했는데 형이 다음 날에 멀쩡히 팀 소집해선 괴수 잡으러 가자고 하니 내 정신이 다 혼미해졌다니까?"

"헌터 면허 박탈 안 됐는데 헌터 생활 계속해야지 그럼."

"그건 그렇다 치고요! 지금은 또 나라에서 거대괴수 잡게 부른다고 진짜 잡으러 가겠다고요? 제정신이 아니네, 진짜!"

"왜 자꾸 그래?"

내 물음에 성문영이 기가 찬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니, 딱 봐도 함정 아니에요?"

"함정은 무슨."

"함정 맞죠! 왜, 땅 위에서 형 죽일 방법이 많지 않거든요? S급 절반 수준 각성자여선 미사일로도 죽일 수 없는 사람이 공간이동까지 하니까 기껏 위기상황에 몰아넣어도 단번에 못 죽이면 순식간에 빠져나갈 테고. 강준치랑 친하니까 소식 듣고 강준치가 도우러 올 수도 있고······"

"바다에선 나 죽이기 뭐 쉽나?"

"쉽진 않겠지만 뭐, 땅 위에서 그러기보단 훨씬 쉽겠죠? 해상에선 강준치도 도우러 못 갈 테고, 바다에서 형이 도주하기 위해 공간이동 할 방향 대충 예상되니까 병력 매복시키기도 쉽겠고! 그 중국산 S급이 물 능력자라니까 그년 능력 발휘도 바다에서 가장······!"

"그만."

그 말을 멈추게 한 다음 내가 말했다.

"내가 베헤모스 때도 죽을 뻔했는데, 당시에도 내가 국회의원 납치 협박하며 나라가 나 죽일 이유 잔뜩 만들어둔 상태였거든?"

"아니, 그 짓거리를 훨씬 전부터 했었다고요?"

"그래. 아무튼 그때 병원 실려 가서 나 쉽게 죽일 상황에 국안부에서 나 안 죽였어. 나라의 골칫덩이 없앨 상황에도 안 그랬단 말이지. 왜? 베헤모스가 더 급하니까!"

"적어도 괴수 사냥 중에 장난질 치진 않을 거다?"

"아마도? 이번에도 거대괴수가 포식하러 온다는데, 베헤모스 사태 절반 규모로만 일 터져도 나라 망할 상황에 이상한 장난질을 치겠냐?"

"다 끝나고 장난질 칠 순 있죠. 저번에 베헤모스 죽이고 나서 특무대가 뭔 수작 부렸다고 하지 않았나?"

"그럼 그때 튀면 되지."

성문영이 가늘게 뜬 눈으로 날 쳐다보는 가운데, 옆에서 쿨한 척 커피나 홀짝이고 있던 백담비가 입을 열었다.

"가지 마요. 제가 보기에도 위험할 것 같으니까."

"담비 씨는 또 왜요?"

"진짜 불길하니까 그러죠. 모르는 아저씨가 과자 사주겠다고 꼬드겨도 따라가면 큰일 나는데 저 멀리 바다로 중국산 S급을 왜 따라가요? S급 영혼밥 되고 싶나?"

"걱정 마요, 진짜. 내 예언가의 직감에 따르면······"

"그놈의 직감 맞는 꼴을 본 적이 없는데 왜 자꾸 직감 타령이야!"

백담비가 짜증 낸 순간, 옆 테이블에서 커피를 마시던 중년 여자가 이쪽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음······. 나와 눈을 마주친 중년 여자가 황급히 고개를 돌리더니, 이후로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커피 마시는 일에만 집중하는 게 아닌가.

저 아줌마, 내가 요새 무슨 짓을 했는지 잘 아는 모양이다. 혹시라도 이쪽 심기를 거슬릴까 봐 알아서 몸 사리는 걸 보니. 날 기분 나쁘게 하면 검사며 판사들과 함께 실종될지 모른다고 걱정하는 모양이지?

근처에서 지나가던 시민들을 봐도 비슷한 반응이다. 예전에는 날 알아본 시민들이 사인해달라느니 인천 만세 해달라느니 온갖 친한 척을 해왔는데, 이젠 그러는 사람들이 확 줄었다.

이걸 보면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 내 인식이 어찌 변했는지 알 만한데······.

뭐 상관없다. 여기는 서울이라 그런 거고 인천에선 여전히 내 팬이 가득하니까.

이후로 집에 돌아와서도 그놈의 교룡 토벌에 참여하지 말란 말을 들어야 했다.

정진영 형이 전화를 걸어 날 또 설득하려 드는 게 아닌가.

「김극햄? 고룡인지 구룡인지 잡으러 간다던데 제발 가지 마요!」

"왜요, 그거 함정이라 나 죽을까 봐?"

「그래요!」

"됐어요. 죽으면 죽는 거지 뭘."

내가 이렇게 쉽게 말할 줄은 몰랐는지 정진영의 말문이 막혔다.

통화를 종료한 다음 헌트웹을 보니, 그곳에도 내가 그놈의 거대괴수를 잡으러 간단 소식이 퍼진 모양이었다.

Ⓐ GangStar☆ : 김극 진짜 돌았나?? 울 동네 마법소녀도 그렇고 왜 그렇게 괴수랑 싸우지 못해 안달인 거지?

그밖에 올라온 글들을 보니 다들 이런 식으로 말하고 있다. '김극이 괴수 상대로 몸 사리지 않는 건 잘 아는데, 이번엔 좀······.'

다들 내가 제 발로 함정으로 걸어 들어간다고 여기는 눈치다.

혹시 내가 죽으면 큰일 나는 것 아니냐고 걱정하는 의견도 꽤 보인다. 내가 헌터들을 향한 기소도 막아주고 진행된 재판에선 무죄 판결도 받게 해줬는데, 이 와중에 내가 사라지면 나라에서 뭔 짓을 할지 모른다나?

뭐, 그에 대해선 나도 마땅히 해줄 말이 없다. 상황이 그리되면 강준치가 각성하길 바랄 수밖에.

최용에 이어 나까지 죽으면 나라에서 국내 2, 3위 각성자를 모조리 제거한 셈 아닌가. 그리되면 1위인 강준치가 위기감을 느끼고는 행동 방침을 바꾸지 않을까? 뭐 이렇게 생각할 뿐이다.

그리고 또······.

정진영 형에게 말했듯, 그러다 죽은들 상관없단 것도 나름대로 진심이다.

그놈의 거대괴수와 싸우다 죽는다면 헌터로서 죽게 되는 셈이요, 그건 그것대로 나쁘지 않은 일이다. 정말로.

내면의 테러리스트 김극이 튀어나와 열심히 활동하는 가운데, 마찬가지로 여전히 활동하고 있는 헌터 김극으로서의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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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화 교룡 -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