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관사 (2)
"이번엔 분대를 짜서 행동한다."
관사로 향할 때는 모든 부대원을 이끌고 가지는 않기로 했다.
100명이 넘는 인원이 같이 움직이는 건 힘들다는 판단.
"길드 메시지가 가능한 각 조장이 10명씩의 부대원을 이끌고 이동한다."
"가급적 고레벨 병사들 위주로 편성을 해야겠군."
"분대는, 세 개면 되겠지."
"세 분대?"
내 말에 조장들이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서수혁 상병."
"예. 상병, 서수혁."
"너는 사수들과 함께 이곳을 지키고 있어다오."
"...음."
명령을 들은 서수혁 상병은 살짝 고민하는 듯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소음 때문입니까."
"아쉽지만, 그래."
현시점에서 우리 부대 최고의 화력은 사수들의 총알이다.
사수들의 총알은 마법사들과 비교해도 더 강한 수준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번 전투에서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일단 총알이 거의 다 고갈되었어.'
그들의 총알은 아끼고 아껴야 하는 상황이다.
모든 전투에 포함시키기에는 사정이 좋지 않다.
또한 총성으로 인해 오히려 적들을 끌어모을 수가 있다.
마법사들과 달리, 사수들의 총기는 화력을 조절해 소음을 줄일 수도 없으니.
탁 트인 장소에서의 방어 임무라면 역할을 다 할 수 있겠지.
하지만 새로운 장소를 탐색하는 임무에서는 걸맞지 않다.
내 대답을 들은 서수혁 상병은 잠시 턱을 괴고 고민하는 듯하더니.
"합리적인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어차피 누군가는 생존자들을 지키면서 대기해야 할 테니. 그런 임무에는 제가 제격이겠죠."
"이해해 줘서 고맙다."
"고마워할 건 없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그게 효율적이었을 뿐이니. 잘 다녀오십쇼."
다행히 서수혁 상병도 별 불만은 없어 보였다.
전투에서 빠진다는 것에 안도하는 느낌은 아니다.
그저 그게 합리적이니 불만 없다는 깔끔한 태도.
'내가 명령만 합리적으로 내리면 잘 따라 준다는 거니까. 편하긴 하네.'
어찌 됐든 그렇게 결정이 났으니.
나와 이민재 병장, 그리고 전광일 상병.
이렇게 3명은, 각자의 분대를 만들었다.
"저는 이쪽에 끼는 게 맞겠네요."
또 한 명의 조장.
이상아의 경우에는, 이번에는 내 조에 포함되어 활동하기로 했다.
조장으로 임명되기는 했지만.
부대에 합류한 기간이 짧아 부대원들과의 관계도 그렇게 형성되지 않은 타이밍.
지휘에는 걸맞지 않다.
'대신. 우리 부대에 몇 안 되는 멸망한 도시에서 생존해 온 사람이지.'
그녀의 강점은 지휘가 아닌 지상에서의 생존 능력.
어쩌면 우리 부대의 그 누구보다도 그녀 쪽이 뛰어날지도 모른다.
'그 생존지식과 노하우를 썩힐 수야 있나.'
내 조에 포함된 이상아 조장 외에도.
이민재 병장, 전광일 상병의 조에도 생존자 출신이 한 명씩 포함되었다.
"범죄자들을 믿어도 되는지...."
"지금은 개과천선 시켰으니까 한 번만 믿어 봐. 니들도 사고 치지 말고."
"헤헤, 맡겨만 주십쇼."
"일 끝나고 간식만 만들어 주시면 뭐든 다 하겠습죠."
지금은 '영구 막내'가 되어 버린 범죄자 출신 녀석들.
김 중위와 같은 조치를 한 덕에 나에 대한 충성심은 최대치다.
이상아와 마찬가지로 지상의 정보도 잘 알고 있을 테니.
그 생존 지식으로 도움을 줄 수 있겠지.
* * *
"그럼. 먼저 가 있으마."
"관사 근처에서 만납시다!"
각자의 분대 구성이 끝나고, 필요한 물자들 점검이 끝난 뒤.
이민재 병장과 전광일 상병의 분대가 먼저 출발했다.
30명 정도 되는 인원이 다 같이 움직이면 지나치게 눈에 띄니까.
각기 다른 경로로 이동해, 관사 앞에서 만날 계획.
"우리도 슬슬 출발하자."
다른 두 분대가 시야에서 사라진 뒤.
우리 분대 역시 이동을 개시했다.
사람이 잘 오가지 않는 낡은 샛길.
군장을 멘 군인들이 기척을 숨기고 조용한 행군을 시작했다.
관사가 비교적 가깝다고 하나.
어디까지나 차를 타고 이동할 때의 이야기다.
걸어서 이동하려면 시간이 꽤 걸릴 수밖에 없다.
'그동안 걷기만 하기도 뭐 하고.'
나는 작은 목소리로 내 뒤를 걷고 있는 이상아에게 말을 걸었다.
"이상아 조장."
"네?"
"지난번에 들었던 얘기로는, 생존자들은 주로 도시에서 활동했다고 한 것 같은데."
아까 병사의 입에서 나온 도시의 풍경을 듣고 가장 먼저 떠올랐던 의문.
"어떻게. 아니, 왜 거기서 활동한 거지?"
생존자들은 주로 도시 근처에서 활동했다.
저런 도시에서 어떻게.
왜?
"굳이 말하면 선택지가 없었던 거죠."
어깨를 으쓱이며 말하는 상아.
이유는 의외로 간단한 것이었다.
"식량을 구할 수 있는 곳을 찾다 보니. 그나마 사람들이 많이 활동하던 장소에 식량이 많더라구요."
"흠."
"괴물이나 좀비도 그렇지만. 굶주림도 만만치 않게 무섭거든요."
식량은 기본적으로 수요가 있는 곳에 모여 있기 마련이다.
문명이 무너져 버린 사회에서 식량을 얻기 위해.
저 마경 같은 도시에서 생존 투쟁을 벌여야만 했다는 것.
"부대에 합류하고 굶은 날이 없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그전까진 식량을 얻기 위해 매일같이 목숨을 걸어야 했거든요. 사실 굶는 날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저런 도시에서 어떻게 돌아다니고, 식량을 구한 거야?"
"군단장님들은 저 빼곡한 건물들이 시야를 가리고 화력을 제한하는 페널티라고 말했지만, 저희한테는 아니거든요."
그녀는 고개를 돌려 주변을 슥 훑으며 말했다.
"이렇게 뻥 뚫려 있는 개활지보다는 몸을 숨길 수 있는 건물이 많은 도시가 나아요."
"왜지?"
"숨어 다니면서 활동할 수도 있고. 상대할 수 없는 괴물에게 발각당하더라도 건물들을 장애물 삼아서 도망칠 변수를 만들 수도 있으니까요. 개활지에서는 괴물의 추격을 떨쳐 내지 못해 죽을 뿐이겠죠."
과연.
우리에겐 페널티로 작용하는 환경이 생존자들에게 있어서는 오히려 장점이라는 건가.
그렇다는 건.
"아직도 도시 안에 사람들이 남아 있을 확률이 높으려나?"
"아마도요? 저 때도 다른 생존자들과 조우하는 일은 꽤 있었으니까요. 아직도 어딘가에 숨어 지내는 사람들이 많지 않을까요."
그 얘기를 듣고 나니 고민이 깊어진다.
우리가 지상에 내려오길 결정한 이유는 지상에서 물자를 확보하고 세력을 키우기 위함.
이상아의 그룹이 우리 부대에 합류한 것처럼 언젠가는 생존자들을 통해 부대를 키워야 할 것이다.
하지만 무작정 생존자들을 합류시키면 저 범죄자 같은 이들이 섞여 들어올 수도 있고.
뭣보다 생존자들을 찾아 저 도시에 진입하는 것 자체가 난이도 있는 일.
'머리가 아프구만.'
내가 그렇게 고민하고 있을 때.
팍!
누군가가 내 팔을 붙잡았다.
"잠깐만요."
뒤에서 걷고 있던 이상아.
그녀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무슨 일이지?"
"쉿, 조용히."
입가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며 작은 목소리로 말하는 그녀.
나는 목소리를 죽인 채, 슬쩍 주변을 살폈다.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주변 부대원들 역시 주변을 살피고 있으나 보이는 건 없는 모양.
난 의아함을 담아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들리세요?"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대체 무슨."
"보는 게 아니라. 들어야 해요. 집중해 보세요. 들리는 게 있을 테니까."
들어야 한다고?
나는 그녀의 말대로, 숨을 죽이고 귀에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했다.
그러자.
작게 들려오는 소리가 하나 있었다.
커어... 커어....
'거친 숨소리, 인가?'
병사들이 내는 소리는 아니었다.
이상아를 바라보자.
그녀는 소리 없이 입술을 움직였다.
그녀가 전하는 메시지는 간단했다.
'좀비.'
그녀는 우리에게 가만있으라는 듯한 제스처를 보인 뒤 어디론가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 손에는 언제 꺼냈는지 모를 커다란 재봉 가위가 들려 있었다.
커어....
아무것도 없는 주변에 작게 들려오는 소리.
그 소리를 따라 움직이는 이상아.
그녀가 도착한 곳에 있는 것은 작은 하수도였다.
일반적으로 도로 옆에 나 있는 평범한 하수도.
그런데 가려진 하수구 안쪽에.
무언가가 있었다.
그 순간.
카악-!
짐승의 괴성이 울려 퍼지고.
서걱.
동시에, 이상아의 재봉 가위가 움직였다.
그녀의 가위질에, 울려 퍼지려던 괴성은 단말마에 그치고 말았다.
"됐어요."
스윽, 하고 식은땀을 닦으며 말하는 이상아.
익숙한 일을 끝낸 듯 헝겊을 꺼내 가위에 묻은 피를 닦는 모습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웠다.
"무슨 일이었던 거야?"
그녀에게 있어서는 익숙한 일일지 모르나 우리에겐 아니다.
방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음. 좀비에 대해 잘 모르신다고 했으니, 확실하게 설명을 하고 넘어가야겠네요."
이상아는 침착하게 설명을 시작했다.
"대부분의 좀비는 괴물에 비해 약해요. 잘 쳐줘 봐야 성인 남성 수준? 저도 좀비를 잡고 각성했을 정도니까요."
설명을 이어 가던 그녀는, 그녀가 가위를 박아 넣었던 하수도 블록에 손을 가져다 댔다.
"하지만 생존자들은 좀비를 결코 무시하지 못해요."
끼익.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들어 올려지는 하수도 블록.
그 안에는.
흐르는 물에 살이 퉁퉁 불어 오른 시체 한 구가 들어 있었다.
"이런 점 때문이죠."
"이건 대체...."
"인간의 생활습관이 남아 있는 좀비들도 많지만, 이렇게 알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좀비들이 많아요."
도로 외곽의 하수도에 기어들어 가 있는 좀비라니.
확실히 예상하기 힘들긴 하다.
"괴물들과 비교해도 더 질이 나쁜 부분도 있을 정도죠."
"만약 우리가 눈치채지 못하고 지나갔다면 어떻게 되는 거지?"
"좀비들은 기본적으로 인간에게 적대적이에요. 운 좋게 멀리 돌아서 갔으면 몰라도, 눈치채지 못하고 이 위에 발을 올린 순간, 공격당했을걸요."
등에 식은땀이 흐른다.
말이 좀비지 이건.
'부비트랩 같은 거잖아?'
부대원들이 각성을 하며 강해졌다고 해도, 발밑에서부터 공격해 오는 걸 간파하긴 힘들겠지.
"이 녀석들의 위험성은 그게 다가 아니에요. 좀비들한테 한 번이라도 물리는 순간, 물린 부위를 중심으로 몸이 천천히 썩어 가요."
"...."
"그런 사람들은 종국에는 온몸이 썩은 상태로 사망하고, 또 다른 좀비가 되는 거죠."
"물리면 죽을 수밖에 없는 건가?"
"꼭 그렇지만은 않지만. 물린 부위를 절단해 내야 해요. 그리고 이런 세상에서 신체 일부를 잃는다는 건, 죽음하고 별반 다를 게 없더라구요."
마지막 말을 할 때 유독 표정이 어두워지는 그녀.
그렇게 신체를 절단한 동료라도 있었던 걸까.
"그러면 대처법은 없는 건가? 이 녀석처럼 철저하게 숨어 있어서야 알아챌 방법이...."
"방금 들으셨잖아요? 이 녀석들 숨소리."
아.
"좀비들은 기본적으로 숨소리가 거칠어요. 각성자들의 청력으로 집중하면, 조용한 환경에서는 충분히 간파할 수 있죠."
"과연."
유일한 방법은 청각이라.
어이가 없지만, 방법이 있기라도 한 게 어딘가.
아무것도 모르고 기습당하는 것보단 낫겠지.
"조심하세요. 차라리 괴물에게 죽는 게 낫지. 좀비들에게 물린 사람들은 절대 곱게 죽지 못하거든요."
새삼 산 위에 좀비가 나타나지 않았던 게 얼마나 행운이었는지 체감된다.
부대를 습격한 리자드들도 충분하고 넘칠 정도로 강력한 적이었다.
거기에 더해 죽은 부대원들이 저런 좀비로 변했다고 생각하면 정말이지.
좀비들이 까다롭다고 고민만 하고 앉아 있을 수도 없다.
뭔가 대책을 마련하긴 해야 할 터.
'흠.'
슬쩍 손을 등 뒤로 가져가, 메고 있는 군장 가방을 만졌다.
묵직하고.
약간은 서늘한 감촉.
'이게 그 대책이 될 수 있을지도.'
그렇게 좀비와의 조우가 끝난 뒤.
우리는 다시금 관사를 향해 이동을 개시했다.
중간에 비슷하게 숨어 있는 좀비와 조우하게 됐지만.
이번에는 부대원들도 소리에 집중하고 있던 터라.
카아....
서걱.
악.
"그래도 집중하니 들리긴 하는군."
"잘하셨어요."
어떻게든 처리할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저기 관사가 보입니다!"
우리 부대의 관사에 도착했다.
* * *
"영준이 왔냐."
"뭐야, 내가 꼴찌야?"
"저희도 방금 도착한 참입니다."
각기 다른 루트를 통해 이동한 세 분대.
우리는 관사 앞의 공터에서 합류했다.
"안쪽은 어떤 것 같아?"
"아직은 조용하다."
민재 형의 대답을 들은 나는 눈앞의 관사 건물들을 바라보았다.
관사는 기본적으로 간부들을 위한 거주 공간이다.
우리 부대 간부 약 100여 명 중 절반 이상인 60여 명이 관사에서 생활한다.
특히 우리 부대는 격오지 부대.
부대에서 나가고 들어가는 것이 힘든 위치에 있다 보니 편의를 위해 휴가 전후의 병사들은 관사에서 대기한다.
그 병사들까지 생각한다면.
주말이라 관사에 있지 않을 걸 고려해도 꽤 많은 이들이 관사에 머무르고 있었을 터.
하지만 지금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조용하다.
모두 안전하게 피신했다면 다행이지만.
'그럴 가능성은 낮겠지.'
이미 각오는 해 둔 상태.
나는 민재 형과 광일이를 보며 물었다.
"좀비에 대한 거 들었지?"
"예. 오는 길에 몇 마리 사냥하기도 했습니다."
"나도 막내한테 대충은 들었다. 소리에 집중해야 한다고 했지?"
"좋아."
다른 부대원들도 좀비의 상대법은 알고 있는 듯하니.
오래 시간을 끌 필요도 없겠지.
나는 부대원들을 향해 명령했다.
"진입하자."
"...예!"
전투에 앞서 다소 긴장한 병사들.
그들을 이끌고 가장 외곽의 관사 건물에 접근한다.
"연다. 적들의 위치는 소리로 감지하는 거 잊지 말고."
"예!"
끼이익....
관사의 문을 열고 안으로 진입한 순간.
커어어....
주변에서 익숙한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여기까진 예상한 대로였으나.
문제는.
커어어....
카학....
크흐. 칵....
"...하, 방음 엄청 안 되는구만."
들려오는 소리가 한두 개가 아니라는 것.
부대원들이 머무르는 관사 건물.
그 안은 수십의 거친 숨소리들로 가득 차 있었다.
31화 관사 (3)
"...하, 방음 엄청 안 되는구만."
건물 안에 들어서자, 사방에서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어디에 숨어 있을지 모르는 좀비의 위치를 파악할 방법은 소리뿐이다.
'이래서야 소리로 파악하는 건 불가능해.'
건물 전체가 좀비로 들어찬 것일까.
사방에서 들려오는 거친 숨소리.
각성자들의 감각이 일반인보다 예민하다 한들, 이 안에서 숨어 있는 좀비의 위치를 파악하기는 어렵다.
'불안하다.'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대로 들어가는 건 위험하다고.
결정을 내린 나는 뒤를 보고 명령을 내렸다.
"일단 후퇴...."
그때였다.
"신 병장님!"
뒤돌아 건물 밖으로 나가려던 나를 향해, 병사들이 달려드는 것이 보인다.
잠깐 당황했으나.
나를 공격하려는 의도가 아니란 것은 금방 알 수 있었다.
커어....
내 머리 위.
그곳에서 거친 숨소리 하나가 뚜렷하게 들려오고 있었으니까.
'제기랄!'
낡은 건물의 천장을 지나는 수도관.
그곳에 보이지 않게 올라가 있던 좀비가 나를 덮치며 떨어져 내려오고 있었다.
황급히 손을 들어 머리 위쪽을 보호했다.
"카아아아악!!!"
"큭!"
콱!
다행히도 반응이 늦지는 않았다.
오른팔의 군복 위로 좀비의 이가 박혀 든 것이 느껴졌다.
'그냥 군복이 아니라, 총알도 몇 발은 버틸 수 있는 군복.'
잘 쳐줘 봐야 성인 남성 수준이라는 좀비.
아무리 강하게 깨문다고 한들, 썩어 가는 이빨 따위로는 리자드 가죽으로 만들어진 군복을 뚫을 수는 없다.
'군복이 보호해 주지 않는 부위를 물렸으면 끝장이었어.'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끼며, 내 팔을 문 좀비 녀석을 관찰한다.
군복을 뚫을 수 없다는 걸 깨달은 것일까.
다른 곳을 물려는 듯 움찔거리는 모습.
'어딜!'
다음 행동은 내가 더 빨랐다.
팔을 크게 휘둘러 녀석을 바닥에 내던져 버린다.
쾅!
카악!
바닥에 건물 바닥에 내쳐진 좀비.
카아아아아악!
고통도 느끼지 않는 것인지 곧바로 일어나 나에게 달려들려 했으나.
콰직!
강하게 내리친 군홧발에 좀비의 머리통이 터져 나갔다.
'전투직은 아니지만 나도 각성자니까.'
군화 신은 발로 강하게 내리치면 뼈를 깨트릴 정도는 된다.
"신 병장님!"
"괜찮으십니까!?"
"보면 알잖냐. 멀쩡해."
기습을 제외하면 전투력 자체는 별것 없는 좀비들.
다소 위험하긴 했지만, 다행히 물리진 않았다.
'하지만 안심하긴 이르단 말이지.'
카아아악.
크르륵.
방금의 전투 소리가 녀석들을 자극한 것일까.
안쪽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병사들이 나를 바라봤다.
이대로 진입해도 되는지 묻는 듯한 눈빛
나는 잠시 고민한 뒤, 결정을 내리고 말했다.
"일단은 빠진다."
* * *
"저희 부서 박 하사님이었습니다."
관사 건물에서 후퇴해 공터의 끝까지 퇴각한 뒤.
광일이 녀석이 꺼낸 말이었다.
방금 진입한 관사 건물에서 나를 덮친 좀비를 말하는 거겠지.
박 하사님이라.
"너랑 친했던 분인 걸로 기억하는데, 미안하다."
전광일 상병은 시설반의 에이스였다.
병사는 물론 간부들과도 두루두루 친했었지.
박 하사는 그나마 젊은 편이기도 해서 병사들과 더 친하게 지냈던 거로 기억한다.
"아닙니다."
광일이 녀석은 잠깐 움찔하는 듯하더니, 이내 고개를 휘휘 저으며 말했다.
"박 하사님도 저런 꼴로 살아 있길 바라진 않으셨을 겁니다."
광일이 녀석이 그나마 긍정적으로 대답을 해 줬으나.
그것과 별개로 병사들의 분위기는 꽤 가라앉은 상태였다.
운전병들이 좀비가 된 모습을 봤을 때도 그랬지.
알고 지내던 사람이 좀비가 되어있는 걸 보는 것은 기분이 썩 좋은 일은 아니거든.
그러고 보니 병사들에게 '안심', '편안' 등의 요리를 먹이지 않은 지도 꽤 됐다.
나중에 안정적인 상황이 되면 멘탈 치료를 위한 요리를 다시 만들어야지.
"일단 전원 휴식. 그리고 조장들. 잠깐 이쪽으로."
"예?"
"회의 좀 하자."
나는 조장급 인원만을 따로 빼 구석으로 이동했다.
병사들과 어느 정도 떨어지고 난 뒤.
"관사에 오자고 한 거 말입니다."
내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전광일 상병이 먼저 입을 열었다.
"어."
"우리 부대원들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하려 하신 거 맞습니까?"
"맞아."
"으음."
내 대답을 들은 광일이는 고개를 돌려 휴식 중인 병사들을 슬쩍 엿보았다.
"굳이 확인해야만 했던 겁니까? 병사들 사기가 영 좋지는 않은 것 같은데요. 차라리 다른 곳을 조사하러 가는 게 낫지 않았을지."
병사들의 눈치를 계속해서 살피며 말하는 녀석.
"네 말도 맞아. 사실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고. 하지만... 그래도 관사에 들러야 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했거든."
"이유가 뭡니까?"
"멘탈 관리."
"예?"
광일이를 비롯한 조장들의 얼굴에 의아함이 번졌다.
"이상하지?"
"그.... 솔직히 말하면 그렇습니다."
당장 병사들이 우울해하는 모습을 보면 내 목적이 멘탈 관리라고는 생각하기 힘드니까.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지금의 저 모습은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것.
"만약에 말이야. 여기에 살아남은 부대원들이 있었으면 어떨 거 같아?"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 관사에 살아남은 부대원들이 있었고, 우리가 그들을 구할 수 있었다면?"
우리가 관사를 그냥 두고 지나갔다가.
훗날 관사를 찾았을 때, 최근까지 살아 있던 부대원이 있었다는 흔적을 발견하기라도 한다면.
'그때는 죄책감까지 더해지고 말겠지.'
구할 수 있는 부대원을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
그리고 죄책감은 단순한 우울함보다도 오래간다.
생존자가 없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안다고는 해도 확인을 해야만 했던 이유였다.
"관사를 방문해 생존자가 있는지 확인했다는 것. 그게 가지는 의미는 생각보다 크다고 보거든."
"아아...."
설명이 끝나자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이는 광일이.
"의외로 생각이 깊으시네요...?"
"으음. 나도 거점으로써의 이점만 생각했지, 거기까지 생각해 본 적은 없었는데... 듣고 보니 확실히 맞는 말 같군."
나를 다시 봤다는 듯 지켜보는 이상아와 생각에 빠진 듯한 민재 형.
어찌 됐든 다들 내 판단을 이해한 것 같았다.
"그럼. 이제부터는 어떻게 할 생각이냐?"
민재 형이 팔짱을 끼며 질문했다.
의도가 뭐가 됐든 관사 공략으로 목표를 잡은 것이 사실.
문제는 지금부터란 말이지.
"다들 보내 드려야지."
같은 부대에서 한솥밥 먹던 이들이다.
저렇게 망자가 되어 돌아다니게 둘 수는 없지.
"말은 쉽다만, 생각보다 어려울 것 같은데?"
슬쩍 뒤돌아 관사 건물들을 보는 이민재 병장.
"저 건물들. 어디서 적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던전이나 다름없더군."
"그렇지."
"평지에서 몰려오는 좀비들이라면 수백 마리도 상대할 수 있을 것 같다만. 좁은 건물에, 어디 숨어 있을지 모르는 좀비들? 보통 어려운 게 아닐걸."
소리를 통해 좀비의 위치를 파악하기도 어렵다.
나는 이상아를 보며 물었다.
"생존자들의 노하우는 없나? 새로운 건물에 진입할 때 주의하는 부분이라든가."
"평소보다 더 조심한다... 정도밖에 없네요. 정보가 없는 건물이나 지역에 진입하는 건 언제나 위험한 도전이었어요."
우리는 전투력으로 따지면 그녀가 이끌던 생존자 그룹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할 터.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전면전의 경우다.
숨어 있는 좀비에게 기습당해 어디 한 곳 물리면 죽는 건 각성자라도 마찬가지.
"아예 마법사들을 다 끌고 와서 최대 화력으로 마법을 쏟아 버릴까? 숨어 있는 좀비들 박멸도 어렵진 않을걸."
"관사까지 다 무너트리실 셈입니까?"
"농담이다."
아연해하는 전광일 상병의 반응에 피식 웃는 이민재 병장.
관사까지 다 무너트린다라.
"그 방법도 고려는 해야겠지."
"예?"
소음이 문제가 되긴 하겠지만.
정 공략이 어렵다 싶으면 좀비가 된 부대원들을 보내 주기 위해서 고려해 볼 만한 선택지다.
"진심이십니까?"
"진심이긴 한데. 어디까지나 플랜 B지."
슬쩍 고개를 올려 하늘을 쳐다본다.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손목시계를 슬쩍 보니, 슬슬 점심인 것 같다.
플랜 A를 시도하기 가장 좋은 시간.
"밥부터 먹자."
* * *
관사 외곽의 공터.
주변이 안전하단 것을 어느 정도 확인한 뒤 가져온 군장 가방을 열었다.
"어디 보자...."
군장 가방에서 나온 것은 침낭이나 보호의 같은 게 아니었다.
낡은 부르스타.
깊이가 있는 편인 프라이팬.
그리고, 종이 포일에 싸인 커다란 고깃덩어리들.
"어, 그거 고기입니까?"
"어. 가장 좋은 부위들로 엄선해 가져왔지."
"오오...!"
처져 있던 부대원들 사이에 약간의 활기가 돈다.
"광일이랑 다른 애들이 챙겨 준 고기니까. 걔들한테 감사해."
"아, 헤헤... 뭘 감사까지야."
광일이 녀석이 머쓱한 듯 머리를 긁적인다.
산맥을 내려오며 사냥한 몬스터들의 고기.
애들이 열심히 챙겨 주지 않았다면 쓰지도 못했을 테지.
"으음."
하지만 이민재 병장은 애매한 반응이었다.
"능력치를 올린다고 어떻게 되는 게 아닐 텐데?"
예전이라면 뜬금없이 '밥부터 먹자' 하면 뭔 소리냐는 얘기부터 했을 부대원들.
하지만 슬슬 내가 하는 밥이 그냥 영양 보충이 아니란 것에 다들 익숙해졌다.
'물론 그래 봐야 능력치를 올리거나 감정을 바꾸는 정도가 한계였지.'
민재 형의 말대로다.
애초에 전투력이 모자란 게 아니니.
능력치 버프 정도로는 지금 상황에 도움이 되긴 힘들겠지.
"뭐. 잠깐만 기다려 봐."
나는 가방에 든 고깃덩이들을 유심히 살폈다.
빙결 계열 마법사들이 만들어 준 아이스팩과 함께 종이 포일에 감겨 있는 고기들.
그중에 내가 찾던 물건이 하나 있다.
"찾았다."
[엿듣는 알라우르의 귓살]
[재료 등급 : 중]
[신선도 : 상]
알라우르는 산맥을 내려오며 마주쳤던 몬스터 중에 하나다.
기괴할 정도로 큰 귀를 가진 여우 같은 모습의 괴물이었지.
"화염 계열 마법사 있나?"
"예, 일병 손병문."
"여기 땔감에 불 좀 붙여 주라."
"아. 옙."
화륵.
아무래도 야전에 제대로 된 장비도 없다 보니 화려한 요리를 하긴 좀 어렵고.
그냥 그대로 구워서 줄 생각이다.
마력이 깃들어서 그런가.
몬스터들의 고기는 그냥 고기로 쳐도 상당히 맛있거든.
치이이익....
달궈진 프라이팬에 커다란 고기를 통째로 얹는다.
기분 좋은 소리와 함께 고기가 익어 간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내가 가진 스킬에 대해 생각했다.
[요리사의 눈]
대상의 손질법과 추천 조리법을 알려 주는 스킬.
덕분에 몬스터에 대한 [손질법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이름과 달리.
'손질법만 알려 주는 건 또 아니거든.'
[엿듣는 알라우르의 손질법]
[알라우르의 큰 귀는 천적과 사냥감의 위치를 파악하게 해 주는 기관으로, 주요 혈관이 지나는 장소라 약점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이 부분을 잘라내면 쉽게 피를 빼낼 수 있으며....]
분명 손질법을 알려 주는 건 맞다만.
은근슬쩍 그 몬스터의 특성이 조금씩 섞여 나온단 말이지?
'큰 귀. 천적과 사냥감의 위치를 파악해 주는 기관....'
덕분에, 약점이 아닌 몬스터의 특성 자체가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그게 이 고기를 고른 이유기도 하고.
'저 손질법과 조리법. 누가 쓴건지는 모르겠지만.'
여러모로 도움이 많이 된다.
이윽고.
[하급 요리사의 침착한 감정의 잘 구워진 알라우르 귓살 구이]
[신선도가 높은 재료로 만든 요리입니다. 요리의 효과가 소폭 상승합니다.]
[마력이 담긴 재료로 만든 요리입니다. 요리의 효과가 상승합니다.]
.
.
.
요리가 완성되었다.
"다들 찬합 들고 줄 서."
"옙!"
사실 배식이랄 건 없고.
완성된 커다란 고깃덩이를 적당한 사이즈로 잘라 나눠 주는 정도다.
고기뿐이라 배불리 먹지도 못할 테지만, 병사들은 상관없다는 태도였다.
"와, 식감이 항정살 같슴다."
"크, 밥이랑 쌈이 같이 있어야 했는데."
밥이랑 쌈이라.
탄수화물과 채소도 가급적 빨리 확보하긴 해야겠지.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배식이 끝난 뒤.
병사들이 오순도순 앉아 고기를 씹는 것을 보며 나 역시 고기를 한 점 베어 물었다.
내가 예상한 대로라면.
분명 그 메시지가 나올 터.
[모든 능력치가 5 상승합니다.]
[요리에 깃든 마력이 영향을 줍니다.]
[요리에 담긴 '엿듣는 알라우르'의 마력이 몸 안에 스며듭니다.]
"어, 다들 상태창 열어 봐."
"무슨 일인데 그래?"
"뭔가. 이상한 특성이-"
"자, 잠깐."
예상이 완벽하게 적중했다.
웃음이 새어 나오는 걸 참기 어려웠다.
"왜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그래?"
"무슨 소리야. 소리는 네가...."
[일시적으로, 특성 - '예민한 청각(열화)'을 획득합니다.]
'계획대로.'
32화 관사 (4)
끼이익.
오래된 관사 건물의 유리문이 열리며 기분 나쁜 마찰음이 퍼진다.
관사의 거주민들이 외부인의 진입을 감지한 것일까.
크륵....
카하악.
거친 숨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어지간히 청력이 좋은 사람이라도 이 안에서 각각의 소리의 진원지를 파악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겠지.
하지만.
"거기냐!"
인간을 초월한 괴물의 청력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앞장서 진입한 병사가 입구 근처의 장롱을 향해 칼을 꽂아 넣었다.
그러자.
터억.
장롱 안에 몸을 기괴하게 구겨 넣고 있던 좀비.
휴가 복귀 예정이었던 후임의 시체가 반토막 난 채 쓰러졌다.
반 토막 난 상체로도 날뛰려 들던 좀비의 머리통에 병사가 칼을 꽂아 넣는다.
사방에서 울리는 소리 안에서 적의 위치를 정확히 감지할 수 있었던 이유.
그건 바로 이 특성 덕분이다.
[특성 : 예민한 청각(열화)]
[일부 종족만이 타고나는 극도로 예민한 청각입니다. 수 킬로 떨어진 곳에서 나는 작은 소리도, 전쟁통에서 들려오는 개미의 발자국 소리도. 이만큼 예민한 귀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다만, 열화된 탓에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일부 종족만이 타고나는 청각.
당연히 원래 가지고 있던 특성은 아니다.
내가 만든 요리.
[하급 요리사의 침착한 감정의 잘 구워진 알라우르 귓살 구이]의 효과.
'리자드 고기로 요리를 만들었을 때. 혹시나 했었지.'
리자드 고기로 만든 요리를 먹었을 때 나타난 문구
[요리에 담긴 '강철 리자드'의 마력이 몸 안에 스며듭니다. 물리 저항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마력이 포함된 요리.
요리의 성능이 올라가는 건 이해가 간다.
그런데 뜬금없이 물리 저항력이 대폭 상승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리자드들의 단단한 비늘. 그리고 가죽이지.'
내가 세운 가설은 이랬다.
어쩌면 그 비늘과 가죽은 리자드들의 마력으로 인해 그렇게 강화된 것이 아닐까.
그리고 괴물의 고기로 요리를 하면 마력의 영향이 그대로 요리에 남아, 먹는 자에게 물리 저항력을 제공한 것이라면.
'그렇다면. 다른 특성을 가진 몬스터는 어떨까.'
반쯤은 도박수다.
마력으로 인한 영향이 정확히 어떻게 나타나는지 정확히 파악한 것도 아니고.
내 가설이 맞다고 한들 어떤 특성이 요리에 반영될지도 알 수 없었으니까.
그나마 내 가설을 증명하기 위한 방법이 있다면 하나.
'특성이 대놓고 명백한 몬스터들이라면. 뭘 얻게 될지 예상할 수 있거든.'
엿듣는 알라우르.
외견도 그렇고 요리사의 눈으로 알게 된 특징도 그렇고.
'대놓고 청력에 스탯이 몰빵된 괴물.'
내 가설이 맞다면.
알라우르의 요리를 통해 청력에 관련된 버프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예상은 귀신같이 적중.
일시적으로 '예민한 청각(열화)'이라는 특성을 획득하는 데 성공한 것.
문제는 특성에 붙은 (열화)라는 단어다.
대체 어떤 부작용이 있는 건가 하는 부분인데.
"대단합니다!"
좀비를 끝장낸 병사가 눈을 반짝거리며 나를 보고 말했다.
"소리만으로 적의 위치를 정확히 알 것 같아요! 이런 게 요리를 먹은 것만으로 가능하다니...!"
내 요리의 효과에 감탄하는 병사.
고맙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하다.
뿌듯하긴 한데.
"끄아악-"
"조, 조용히 말해. 인마."
다른 몬스터의 마력과 특성을 억지로 끌어 온 탓에 붙은 것으로 보이는 (열화)라는 문구.
부작용은 단순했다.
"귀 깨지겠다, 제기랄."
"아앗. 죄, 죄송함다."
귀가 정말 깨질 듯이 아팠다.
청각이 예민해진 건 좋은데.
예민해진 청각에 맞춰 뇌 기능까지 최적화되는 것은 아닌 모양.
'세상이. 소리로 가득 찬 것 같아.'
본래라면 인지도 못 했을 작은 소리가 들리는 만큼.
평소에 평범하게 들렸을 목소리들은, 마치 천둥소리처럼 크게 울려 퍼졌다.
'그나마 약간 괴로운 정도라서 다행인가.'
열화라고 해서 그 특성의 효과가 줄어들면 어쩌나 했다만.
다행히, 효과에는 전혀 영향이 없었다.
서로 입을 다문 나와 부대원들.
우리는 눈을 마주친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본격적인 관사 토벌전.
아니.
청소의 시작이었다.
* * *
-카아아악!
"시끄럽습니다, 장 중사님!"
콰직.
예민한 청각을 통해 좀비들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게 되자.
애초에 전투력으로는 별 볼 일 없는 좀비들을 처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못해 간단한 일이었다.
그렇게 몇 채의 건물의 청소가 끝났을까.
나와 분대원들은 다음 건물을 청소하기 위해 이동했다.
그런데 다음 건물 앞에 이미 모여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영준이 왔냐."
"신 병장님 쪽도 속도는 비슷했나 보군요."
다른 두 분대.
우리는 분대별로 나뉘어 각자 다른 방향에서 시작해 건물을 청소하기로 합의했었다.
그런데 여기에 세 분대가 모두 모여 있다는 건.
"이게 마지막 건물이란 건가?"
"그런 것 같슴다."
마지막 건물.
다른 관사 건물과 비교해서 묘하게 최신식 건물 느낌이 나는 곳.
이곳은 간부용.
그중에서도 부사관이 아닌 장교들을 위한 숙소였다.
"그럼 진입하겠습니다."
작은 목소리로 말하고 진입하는 병사들.
이미 몇 개의 건물을 아무런 어려움 없이 청소한 상태.
망설일 것도 없었다.
카아악....
콰직.
옛 부대원들의 목을 베며 건물의 1층부터 청소를 시작했다.
청소는 빠르게 진행되어 마지막 3층까지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3층에 도착한 나는 분대원들과 함께 다음 문을 열었다.
안쪽에서는 익숙한 거친 숨소리가 하나 들려오고 있었다.
또 다른 간부의 좀비겠거니 하고 문을 열었던 나는.
안쪽을 보고 잠깐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케에엑....
방 안에 있던 것은 지금까지 베어 온 것들과 같은 좀비.
하지만 한 가지 차이가 있다.
"대대장님."
그 좀비가, 우리 부대의 대대장.
곽한중 소령이었다는 것.
'대대장님.... 그러고 보니 애들 공부 때문에 가족은 다 서울에 있고, 혼자 부대 관사에서 기러기 아빠 생활 중이라고 했던가.'
군 생활 중 지나치듯 들었던 이야기가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누레진 민소매를 입고, 침을 줄줄 흘리고 있는 추레한 모습의 대대장.
그 모습을 보니 온갖 생각이 들었다.
본래라면 우리 부대를 지휘하고 있었을 사람.
우유부단한 김 중위와는 다르다.
병사들도 짜증 날 때가 있을지언정 지휘관으로서의 능력은 모두가 인정했었다.
내 자리에 있었어야 할 사람이, 지금은 이 꼴이라니.
"제가 처리하겠습니-"
"아니."
분대원이 별생각 없이 처리하려 나서는 것을 손을 뻗어 제지했다.
별 이유는 없고.
"내가 한다."
423대대의 지휘관을 베는 일.
강철 군단의 길드장인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스릉.
왼손에는 식칼을 꺼내 들고 대대장의 좀비 앞으로 다가갔다.
오른손은 손날을 펴고 이마 부근에 비스듬하게 가져다 댄다.
그리고 허리를 꼿꼿이 편 채 입을 열었다.
"충성."
대대장께 대하여 경례.
"병장 신영준. 잠시, 실례해도 되겠습니까."
"케에에에...?"
내 목소리를 듣고.
곽한중 소령의 반 쯤 뭉개진 얼굴이 나를 향해 기울어진다.
"케엑!!!"
"그러면, 허가하신 거로 알고."
"...케에에에에에엑!!!"
"실례 좀 하겠습니다."
괴성을 지르며 달려드는 곽한중 소령.
나는 그 목 앞에 식칼을 비스듬히 가져다 대었다.
[하급 단도 숙련]
그걸로 충분했다.
서걱-
썩어 버린 대대장의 머리가 방바닥에 떨어진다.
쓰러진 몸뚱어리는 더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후우.'
묘하게 심경이 복잡해진다.
주머니에서 헝겊을 꺼내 식칼에 묻은 썩은 피를 닦아 내고 있자니.
등 뒤에서 묘한 시선이 느껴졌다.
"...."
뒤를 돌아보자.
언제 모인 건지 모를 병사들이 문 앞에 서 있었다.
나와 대대장의 시체를 바라보고 있는 이들.
'음.'
대대장님을 직접 보내 드리는 건, 뭐라고 해야 하나.
나만의 작은 의식 같은 거였다.
지켜보던 병사들도 이 행동의 의미를 대충 짐작한 걸까.
굳은 표정으로 나를 지켜보고 있는 이들.
나는 그들을 향해 명령을 내리기로 했다.
이 부대의 명백한 지휘관으로서.
"전투 끝났다. 정리하자."
"예!"
* * *
관사의 좀비 청소는 그렇게 마무리됐다.
하지만 아직 뒤처리가 남아 있었다.
'일단 알라우르 고기에 [침착한 감정의 소스]를 담긴 했지만. 그래도 안 좋은 기분은 오래 남으니까.'
좀비들 중에는 부대원들이 생전 친하게 지내던 이들도 대다수.
그냥 넘어가면 뒷맛이 영 좋지 않겠지.
나는 부대원들을 향해 명령했다.
"죽은 부대원들 시체는 관사 공터 중앙에 모아 주고. 군번줄도 따로 회수 부탁한다."
"알겠습니다."
"굳이 한곳에 모으는 건 이유가 있는 겁니까?"
병사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장례식은 치러 줘야지."
병사들과 함께 시체를 모으고 군번줄을 회수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작업 시작 전에 길드 메시지를 보내 농가에서 대기 중인 서수혁에게도 연락했다.
모든 시체와 군번줄의 회수가 끝났을 때쯤.
전 부대원과 생존자들이 관사에 모였다.
"불, 붙이겠습니다."
"부탁한다."
화륵.
한곳에 모은 시체들이 불타오른다.
예법에 맞춰 장례를 해 줄 만한 여유도, 제대로 된 예법을 아는 사람도 없으니.
장례는 약식으로 치러졌다.
"곽한중 소령. 최재혁 대위. 안경수 중위-"
불타는 시체들의 앞에 선 나는 군번줄에 적힌 이름들을 하나하나 읊었다.
"-장문형 이병."
마지막 이름을 말한 뒤.
"이들은 모두 훌륭한 군인이었습니다."
약식으로 치러진 장례가 끝났다.
뒤를 돌아 장례에 임하던 부대원들을 바라봤다.
친한 이가 죽기라도 했는지 눈시울이 붉어진 병사도 많았다.
그걸 바라보는 생존자들 역시 남 얘기가 아니라 생각해서인지 굳어진 얼굴.
짝!
손뼉을 쳐 부대원들의 시선을 내게 집중시킨 뒤.
큰 목소리로 말했다.
"장례도 치렀으니 다들 좋은 곳으로 갔을 거다. 더는 미련 두지 마."
죽은 이들한테는 미안한 말이지만.
이들에 대해 더 신경 쓰고 있을 여유는 없다.
"앞으로는 살아남은 우리한테만 집중한다. 알겠나!"
"...예!"
많이 슬픈 병사도 있겠지만 다들 내 말뜻을 잘 이해한 모양.
처져 있던 분위기의 병사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우렁차게 대답했다.
어쩌면 휴가 나간 몇 명은 살아 있을지도 모르겠다만.
그 만약의 경우를 제외하면 우리가 423대대의 마지막 생존자들이다.
우리만 살아남으면 부대 명맥이 끊기진 않는단 거지.
"바로 일 시작하자. 관사가 꽤 지저분하더라고. 일단 청소부터 하는 거로 하고. 아, 좀비 청소가 아니라 진짜 청소다."
"큭큭. 저희도 압니다."
"아, 그리고 관사 근처에 냇물 하나 있었지? 몇 명은 안쪽에서 페트병 몇 개 꺼내다 물 좀 조달해 줘. 또-."
장례를 통해 죽은 이들에 대한 미련을 깔끔하게 정리한 뒤.
관사를 임시 본거지로 삼기 위한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언제 슬펐냐는 듯 바쁘게 일을 시작하는 부대원들.
"쓰레기는 모아 두면 나중에 태워서-."
"대단하네요."
"응?"
그렇게 이거저거 명령을 내리고 있자니.
어느새 다가온 이상아가 말을 걸었다.
"대단하다니?"
"저도 나름 생존자 그룹을 이끌어 본 입장이라서요.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 건지. 경외감이 들 정도인데요?"
아.
설마 병사들을 이끄는 모습을 보고 하는 말인가.
"안 해 본 짓 하느라 오그라들어 죽을 것 같은데. 무슨."
"안 해 본 일을 이렇게 잘하면 재능이 있다는 거 아닐까요?"
"진짜로 부끄러우니까. 그만하자고."
장례 같은 것도 진짜로 쪽팔렸다.
해야 하는 일이니까 한 거지.
내 심정이 어땠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듯 말을 잇는 그녀.
"요리의 효과도 그렇고. 우리 생존자 그룹을 이끄는 게 당신 같은 사람이었으면 좋았을 텐데요."
그런데 그 내용이 조금 어두웠다.
"그러면 죽는 사람들도 없었을 텐데 말이죠."
"명령한 거 벌써 잊었나?"
"네?"
나는 슬쩍 턱을 움직여 공터의 한쪽 구석을 가리켰다.
그녀가 이끌던 생존자들이 관사를 청소하고 있었다.
"살아남은 사람들한테만 집중해. 과거에 누가 죽었든. 살아서 우리 부대원이 되었으니까. 부대원으로서 잘할 생각을 먼저 해라."
"...예. 미안해요."
"미안할 건 없고. 대신."
그녀에게 내가 쥐고 있던 물건을 슬쩍 넘겨준다.
커다란 물통이었다.
"저쪽에 냇가 있거든? 거기서 물 좀 떠 와. 이상아 조장."
"...넵."
이제 내 부대원이니까.
열심히 일해 줘야지 않겠냐.
33화 튀기면 다 맛있어. (1)
관사의 청소가 어느 정도 끝난 뒤.
이곳을 임시 거점으로 만드는 작업도 마무리 단계에 들어갔다.
"여기도 불 마법 부탁해!"
"옙!"
공터 곳곳에 근처에서 베어 온 나무들로 횃불을 세운다.
관사의 근처는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이다.
횃불을 통해 밤에도 주변을 밝히자.
"부대랑 얼추 비슷해졌군요."
"부대에 비하면 약간 모자라지만, 이 정도도 감지덕지야."
부대와 비슷한 방어 환경.
아군 마법사와 사수들이 적을 요격하기에 충분한 거리가 확보되었다.
"그러면. 바로 경비 시작하겠습니다."
"오냐. 잘 부탁한다."
원거리 계열 각성자 몇몇이 관사의 옥상에 올라갔다.
저들은 저곳에서 주변을 관찰하고 접근하는 괴물이나 좀비들을 요격할 것이다.
몇몇 병사들이 그렇게 옥상으로 근무를 나간 뒤.
"나머지는 잠깐 관사 중앙으로."
관사 건물들의 한가운데에는 휴식용으로 둔 듯한 작은 정자가 있었다.
그 근처에 나머지 병사들과 생존자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모든 부대원이 자리에 앉은 뒤.
회의가 시작되었다.
"일단 어떻게든 지상에 내려오는 작전은 성공했다. 다들 수고 많았어. 박수."
"와아."
다분히 의례적인 '와아'와 작은 박수가 나온다.
"맘 같아선 부대 떠나기 전에 한 것처럼 파티라도 열고 싶다만."
"어?"
"설마. 각입니까?"
"안타깝게도 아직 우리가 여유가 있지는 않다!"
"으아."
아쉬워하는 병사들.
나도 좀 놀고먹고 하고 싶긴 하다만.
진짜 여유가 없거든.
그런 건 다음 기회로 미루고.
"중요한 건 이제부터인데."
병사들을 한곳에 모아 회의를 연 이유.
"우리 길드의 다음 행선지를 정해야 해. 부대원 전원의 의견을 듣고자 한다."
"여기서부터는 내가 설명하마."
내 말이 끝나자 옆에 있던 민재 형이 앞으로 나섰다.
그의 손에는 작은 화이트보드 알림판이 들려 있었다.
관사 중앙 복도에 걸려 있던 것을 떼 온 모양.
"다들 알다시피 우리가 지상에 내려온 건 세력을 키우기 위함이지. 하지만 당장은 세력을 키우긴커녕 우리가 살기 위한 자원도 모자라."
말하면서 들고 있던 화이트보드를 병사들을 향해 보여 주는 민재 형.
"여기 적힌 게 당장 우리한테 필요한 리스트다."
화이트보드에 적힌 것은 간단했다.
[1. 식량]
[2. 기름]
[3. 총알]
[4. 기타 등등]
"질문 있습니다."
"말해."
화이트보드를 본 병사 중 한 명이 손을 들었다.
"식량이 적다는 게 무슨 소립니까? 우리, 고기는 엄청나게 확보한 거 아닙니까?"
녀석의 말대로.
산에서 내려오며 사냥한 몬스터들의 사체를 왕창 주워 얼려 둔 덕에 육류는 문제가 없다.
사실 나는 고기만 요리해도 편하긴 한데.
"나야 문제가 없지만. 너희가 문제일걸?"
"예?"
"암만 고기가 좋아도 그렇지. 고기만 먹으면 물리잖냐."
"아."
반은 농담이지만.
사실 반은 진담이기도 하단 말이지.
다양한 맛의 메뉴는 꽤 중요한 요소라서.
"사실 맛도 맛이다만. 그보다 중요한 게 영양소 문제야."
인간에게는 필요한 '필수 영양소'라는 것이 있다.
요리를 통해 섭취할 수 있는 온갖 다양한 영양소들.
"고기밖에 없어서야. 우리 몸에는 단백질하고 지방밖에 보충되지 않고 있는 셈이다."
각성자들의 몸에 생겨난 마력이란 게 얼마나 대단한 힘인지는 모르겠다만.
과연 기초 영양 밸런스가 완전히 무너진 뒤에도 건강을 지켜 줄 수 있는 계열의 힘일지는 미지수.
"한 달 정도는 고기만 먹는다고 문제가 생기진 않겠지만. 그보다 길어지면 어떤 일이 생길지 몰라. 정확히 말하면 식량이 아니라 다양한 영양소의 확보가 문제랄까."
"으음. 그렇군요."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고민해야 할 사안이지."
1번인 식량은 그렇다.
2번은 차량을 움직이기 위한 기름과 발전기를 돌려 전기를 만들기 위한 기름.
3번은 우리 부대 최대 화력인 사수들의 총알 수급 문제.
사실 뭐 하나 빠짐없이 중요한 부분이다만.
"의견 있습니다!"
"오."
그때.
한 병사가 손을 들었다.
"패기 좋아. 어떤 의견이냐?"
"저는 4번을 강력 추천합니다!"
"4번?"
나는 고개를 돌려 민재 형이 들고 있는 화이트보드를 보았다.
보드에 적혀 있는 4번은 이거다.
[4. 기타 등등]
"어... 기타 등등을 추천하고 싶다는 의미니?"
"아뇨. 정확히는 기타 등등이 아닙니다만."
열의에 찬 목소리로 말하는 병사.
"자재를 확보해야 한다고! 아주 강력하게 건의 드리는 바입니다."
그의 이름은 이공우 상병.
우리 부대의 공병 각성자였다.
"자재 확보라."
"예. 무조건 도움 될 거라 확신합니다."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이공우 상병.
그의 말을 듣고 생각했다.
'확실히. 산맥을 내려올 때도 자재 확보에 대해서는 생각했었지.'
부대를 떠나 지상으로 내려올 때.
우리는 차량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려 했다.
물자를 담는 것은 물론 바리케이드의 역할까지 기대했으나.
'어림도 없었지.'
바리케이드는 무슨.
괴물들의 공격에 일반 차들은 종잇장처럼 찢겨 나갔다.
그때 이공우 상병이 했던 말이 있다.
'자재만 있다면 어떻게든 할 수 있었을 텐데.'
라고.
"네 직업이 공병이랬나."
"예."
"자재를 확보하자는 말은 그것과 연계된 거겠지. 자세하게 설명해 봐."
내 허가가 떨어지자 한껏 흥분한 이공우 상병이 말을 이었다.
"말씀하신 내용들. 물론 전부 중요한 것 맞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당장 필요하냐의 여부가 아닙니다. 그보단."
이공우 상병은 단호하게 말했다.
"가능하냐의 여부지요."
"흠."
"식량이나, 기름 등의 확보. 물론 좋습니다만, 우리는 지상에 대해 너무 모릅니다."
그 말은 확실히 틀리지는 않았다.
생존자들이 우리 그룹에 섞여 있다고는 하나.
그들 역시 지상에 완전히 적응하지 못해 우리 부대를 찾아 도망쳐 온 이들이었으니.
"그러니. 가장 먼저 안전하게 지상을 활보할 방법을 마련하는게 필수다, 이겁니다."
"그게 자재 확보라는건가?"
"예. 제 직업, 공병은 공병이라는 이름을 쓰고는 있습니다만. 하지만 현대전의 공병과는 의미가 좀 다릅니다."
내가 아는 현대 공병의 주 역할은 장애물의 제거나 설치.
그 외에는 부대 시설들의 유지 보수 정도.
"그런 역할도 당연히 수행할 수 있습니다만, 거기에 중세의 공병 개념이 추가되었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중세의 공병이라니?"
"전쟁 병기의 제작, 그리고 개조 등이죠."
뭔가 거창한 단어가 나왔다.
전쟁 병기라니.
"중세의 전쟁에서 사용되던 발리스타나 투석기 같은 거 있잖습니까. 그런 걸 현지에서 만들고 개조하는 것 역시 공병의 역할이었죠."
"...공성 병기를 만들 수 있다고."
"지금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자재만 갖춰지면 충분히 가능할겁니다."
다소 허무맹랑한 얘기처럼 들리지만.
이공우 상병은 자신이 있는 모양.
"이번 관사 공략전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공우 상병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잘 풀린거 아니였나?'
내 요리를 통해 관사 공략은 무난하게 성공했다.
딱히 거기서 문제로 여길 만한 건....
"이번 관사 공략전. 거기에 나선 건 세 분대뿐이었죠."
아.
그렇긴 하다.
괴물과 좀비의 시선을 피하면서 조심스럽게 활동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활동 인원 자체를 소수로 제한했었지.
"제대로 생각해 보면 전 병력이 관사에 돌입하는 게 가장 이상적인 선택이었을 겁니다. 이번에는 문제가 없었으니 다행입니다만. 생각해 보면 관사에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일이니까요."
"전 병력이 한 번에 이동하는 게 어디 쉽냐."
"차량을 동원한다면 안 될 것도 없지 않겠습니까."
차량에 병력을 태워서 이동한다고?
그 말에 이민재 병장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불가능해. 괴물이나 좀비들한테 습격당하면 차량은 종잇장처럼 찢겨 나갈 거다. 그럴 바에야 부대원들이 미리 길을 닦아 두는 게-."
"바로 그 점입니다!"
민재 형은 반박할 생각으로 한 말이었으나.
이공우 상병은 오히려 민재 형의 말에 동의하고 나섰다.
"차량을 사용할 수 없으니 인간들이 맨몸으로 길을 닦아 놔야 하는 상황. 으으음...! 비효율의 극치!!!"
"어, 어어."
상당히 흥분한 듯 목소리가 올라가는 이공우 상병.
"그리고 이건 괴물들이 문제가 아닙니다!"
팍!
녀석은 손가락으로 관사 구석에 주차된 차량들을 가리켰다.
"괴물들한테 속수무책으로 당해 버리는 저 나약한 차량들이 문제죠!"
"...."
이 자식.
꽤 스파르타식 마인드네.
"차량이 괴물의 공격을 버텨 낼 수 있다면. 조심스럽게 이동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의 활동도 압도적으로 편해질 테죠."
"너희가 그런 차량을 만들 수 있다. 이거냐?"
"옙! 충분한 자재와 시간만 주어진다면, 얼마든지!"
상당히 흥분했는지 열변을 토하는 이공우 상병.
"자재만 주십쇼! 뭔가 보여 드리겠습니다!"
...다 좋은데.
텐션이 너무 높아서 조금 따라가기 힘들다.
"그, 이공우 상병님. 너무 열의가 넘치시는 것 같슴다."
"앗. 크음. 너무 흥분했나?"
"아니라고 해 주고 싶은데. 좀 그러긴 했슴다. 진정하십쇼."
"미, 미안하다."
나만 부담스러운 게 아니었는지.
옆에 있는 다른 병사에게 지적받자 급격하게 흥분을 가라앉히는 이공우 상병.
조금 민망해하는 녀석을 보며 생각했다.
열정이 넘치는 게 문제긴 했다만.
'틀린 말은 아니긴 하지.'
자재 확보는 필수적인 일은 아니라 생각해서 내심 뒤로 미뤄 둔 일.
하지만.
내가 대충이나마 파악한 이 '게임'의 특징 중 하나가 마음에 걸렸다.
'생산직이 생각보다 강하단 말이지?'
요리사인 나는 물론.
재봉사인 이상아가 만든 장비 역시 엄청난 방어력과 능력치를 제공한다.
이게 단순히 '요리사', '재봉사'가 사기인 게 아니라.
'생산직'이 사기인 것이라면?
공병.
이 녀석들 역시 상당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 되겠지.
생각을 정리한 나는 이공우 상병을 바라보고 말했다.
"공우야."
"예!"
"정말 자신 있는 거 맞냐."
부대의 중대사를 정하는 일.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건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이지만."
"옙."
"그냥 너희 능력을 써 보고 싶다든가. 그런 가벼운 마음으로 말한 거라면 기각할 수밖에 없어."
진지하게 질문하자, 그전까지 흥분해 있던 이공우 상병의 얼굴에 긴장이 서렸다.
"이게 다른 활동보다 중요하다는. 그런 확신은 있는 거겠지?"
"예."
그럼에도 대답에는 자신감이 있었다.
"자재만 확보된다면. 앞으로 지상에서 이뤄질 활동들을 훨씬 쉽게 해 줄 물건들을 만들 수 있습니다. 다른 공병들과 짠 아이디어 도안도 꽤 많습니다. 필요하시다면 당장이라도. 보여드릴 수-"
"굳이 보여 줄 필요는 없고. 네가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면 됐다."
총알이니 기름이니 식량이니, 다른 것들도 물론 중요하긴 하다만.
그걸 얻는 과정을 쉽게 만들어 줄 수 있다면.
그쪽을 우선해도 나쁘진 않겠지.
"일단 묻겠는데. 이의 있는 사람 있나?"
조용했다.
다들 이의는 없는 모양.
"그럼 결정됐네."
우리 부대의 다음 목표가 결정되었다.
* * *
목표가 정해지긴 했다만.
당장 실행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제 막 관사 탈환에 성공한 참.
임시로 사용할 거점인 만큼 여러모로 정비할 구석도 많이 남아 있으니까.
"그럼 자세한 얘기는 내일부터 하는 거로 하고. 다들 들어가자. 오늘 수고 많았다."
"예. 수고하셨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관사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다.
이유가 좀 그렇긴 해도 빈방이 많이 생긴 관사.
덕분에 부대에서도 못 누린 1인 1실을 누릴 수 있었다.
그래 봐야 전기도 안 들어오는 건물이긴 하다만.
그리고.
다음 날 새벽.
끼이익....
"하암...."
나는 관사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아직 해도 뜨지 않아 어둑어둑한 하늘이 보였다.
이 시간부터 나온 건 내가 워낙 성실해서....
는 전혀 아니고.
그냥 취사병의 직업병 같은 거다.
"쯧. 새벽 4시만 되면 저절로 눈이 떠진단 말이지."
그래도 이왕 빨리 깨 버린 것.
앞서 말한 '여러모로 정비할 구석' 중 하나를 해결할까 싶어서 밖으로 나온 것이다.
"읏차."
무거운 쇳덩어리 몇 개를 공터의 중앙으로 가져다 놓는다.
예전이었다면 두세 명은 붙어서 옮겼던 물건들.
각성을 거친 지금은 혼자서도 거뜬했다.
"어디 보자."
공터 바닥에 모아 놓은 물건들을 바라본다.
커다란 가마솥.
대형 불판.
그리고 불판과 가마솥을 얹기 위한 받침까지.
"요리용은 이 정도면 됐고. 테이블은 나중에 애들한테 부탁해야겠네."
내가 만들고 있는 것의 정체는 간단하다.
'간이 식당.'
일단 임시 거점이 생긴 셈이니까.
식당도 있어야 하지 않겠어.
'관사의 주방을 쓸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안 되는 걸 붙잡고 있을 수도 없으니 뭐.'
전기, 수도, 가스까지 전부 끊긴 상황.
관사의 주방은 모양만 그럴싸할 뿐 주방으로써의 역할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직접 만드는 수밖에.
혹시 몰라 부대에서 사용하던 야전 조리용 장비들은 모두 차량에 실어 놨었다.
사실 거창한 이름과 달리 커다란 가마솥과 불판 정도가 전부.
꽤 열악하긴 하다만.
"또 기본적인 요리를 하는 데는 문제가 없단 말이지?"
부대에서도 훈련할 때는 주로 이거로 요리를 하고 그랬다.
당장 주방 시설은 이 정도면 됐겠지.
'그럼. 일단 아침 식사 준비부터 할까.'
식사 준비의 1단계.
재료 준비다.
공터에 주차된 트레일러 중 하나를 열었다.
안쪽에는 살얼음이 낀 몬스터의 사체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이전의 나였다면 꽤 기겁했을 비주얼이다만.
이제는 익숙해진 탓에 그냥 식재료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요리사의 눈]
"이건 쓸모가 있을 것 같으니까 두고. 흠. 이거 괜찮네."
스킬을 사용해 트레일러에 쌓여 있는 몬스터들의 손질법과 특성을 파악.
혹시라도 쓸 만한 특성이 있는 괴물들은 일단 아껴 두고.
특성이 그다지 뚜렷하지 않은 것들을 선별해 밖으로 꺼냈다.
[붉은 캉갈 손질법의 깨달음]
슥슥.
머릿속에 떠오른 손질법에 따라 고기들을 손질한다.
순식간에 뼈와 살이 분리되는 몬스터들.
그중에서도 뼈와 가죽은 재봉사가 사용할 구석이 있을 것 같아 따로 빼 뒀다.
고기에서도 영 사용하기 애매한 부위나 지방 등의 부위 역시 따로 분류.
그러자 남은 것은 살코기뿐이었다.
적당한 크기로 자른 고기들에 소금과 후추를 넉넉하게 뿌려 준다.
아직 완전히 해동되지 않은 고기들.
천천히 녹으면서 안에 간이 스며들 테지.
'재료는 이 정도면 됐고.'
화로 겸 받침대 위에 불판을 올린 뒤.
아래에는 주변에서 대충 주워 온 장작들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다.
관사에 붙어 있던 종이 몇 개를 뜯어 와 라이터로 불을 붙여 장작 안으로 던져 넣었다.
새벽의 습기에 살짝 젖어 있는 장작들.
쉽게 불이 붙지 않을 것 같아 걱정이었는데.
"오."
걱정이 무색하게도 금세 연기를 내뿜으며 타오르기 시작했다.
"운이 좋구만."
준비가 얼추 끝나자 슬슬 아침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어, 신 병장님. 뭐 하십니까."
"아침 식사 준비."
취사병이 아닌 보통의 병사들이 활동을 시작하는 시간.
몇몇 병사들이 눈을 뜨고 관사 밖으로 얼굴을 비추기 시작했다.
"예? 한동안 식사는 육포로 때우는 거 아니었습니까?"
"그럴까 했는데. 그래도 직접 요리해 주는 게 마음이 편하겠다 싶더라고."
"와, 신 병장님...."
"감동임다."
"징그럽다 이것들아. 마침 잘됐네. 관사 창고에 테이블이랑 천막 같은 거 있었지? 애들이랑 그것 좀 꺼내 줘라."
"옙!"
병사들이 천막과 테이블 등을 가져오는 사이.
나는 달궈진 불판에 고기들을 올려 굽기 시작했다.
치이익....
고기 굽는 소리와 냄새가 울려 퍼지기 시작한다.
관사에서 쉬고 있던 사람들도 하나둘씩 냄새를 맡고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이야. 아침부터 고기입니까?"
"응. 고기가 의외로 아침 식사에도 괜찮은 법이거든."
"오오. 과연 요리사."
병사 대부분이 공터로 나오고.
"테이블이랑 의자, 다 깔았습니다!"
"수고 많았스."
식사를 위한 자리도 모두 마련되었을 때쯤.
[요리가 완성되었습니다.]
[하급 요리사의 안정감이 담긴...]
첫 번째 고기가 완성되었다.
"다들 줄 서. 배식은 선착순이다."
"예!"
"아, 몇 개는 근무 서고 있는 애들용으로 빼둘 테니까. 먼저 식사 끝낸 애들은 이것 좀 가져다주고."
다 구워진 고기를 가져가는 녀석들을 보며 다음 고기를 계속해서 굽는다.
그러던 와중에 묘한 시선이 느껴졌다.
시선이 느껴진 곳을 보니 몇몇 병사가 고기는 안 먹고 내 눈치를 보고 있었다.
"왜 안 먹어? 아. 혹시 아침밥 안 먹는 스타일이냐? 고기가 너무 헤비한가?"
"아니, 그게 아니라."
메뉴에 불만이 있는 건가 싶었는데 그건 아닌 모양.
"신 병장님이 일하시는데 저희가 먼저 먹어도 되나 싶어서요. 그래도 최선임이신데...."
"아. 난 또 뭐라고."
이놈의 군대 문화.
"난 구우면서 간이 잘됐나 볼 겸 하나씩 주워 먹고 있으니까. 신경 쓰지 말고 먹어."
"그래도."
"사실 이렇게 주워 먹는 게 가장 맛있기도 하거든."
"그, 그렇습니까?"
그제야 식사를 시작하는 녀석들.
그래도 맛있게 식사 중인 병사들을 보니 내심 흐뭇해진다.
한동안 재료 부족을 이유로 '안정감' 등의 요리를 배식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애들 멘탈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었지.
재료가 고기뿐이라곤 해도.
이렇게 식사를 재개할 수 있게 되었으니 조금은 안심해도 되겠지.
'그럼. 아침 식사는 이 정도면 됐고.'
사실.
새벽부터 나와서 고생한 것은 부대원들의 아침 식사 때문만은 아니었다.
'지금부터 할 일이 진짜 목적에 가깝지.'
나는 고기를 굽던 불판을 들어 옆으로 치운 뒤.
불타는 장작 위에 가마솥을 가져다 올려놨다.
어제 병사들이 냇가에서 떠온 물을 가마솥 안에 살짝 부어 준다.
"어, 벌써 점심 준비하시는 겁니까."
"응? 그런 건 아니고."
그 모습을 본 몇몇 병사들이 흥미로운 듯 말을 걸어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물이 살짝 잠긴 가마솥.
그 안에, 미리 따로 빼 뒀던 괴물들의 지방을 투척했다.
지방 덩어리.
즉 비계다.
'식재료라는 게, 고기만 말하는 건 아니니까.'
비계만 먹는 건 아무래도 좀 그렇지만.
그래도 버리긴 아깝잖냐.
마침, 부대에 조금 남아 있던 것을 다 소진해 버린 재료가 하나 있었다.
요리에서 치트키라고 불리는 재료가.
나는 물에 잠긴 괴물들의 비계를 계속해서 저어 주었다.
비곗덩어리들이 시간이 지나며 갈색으로 변해 간다.
그에 따라 물의 색도 조금씩 변화했다.
정확히는 물이 아닌 다른 게 주가 되었겠지만.
그렇게 몇십 분가량을 저어 준 뒤.
이 정도면 충분하다 생각한 나는 가마솥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안에 있던 비곗덩어리들은 모두 꺼내서 따로 보관한 뒤.
관사에서 구한 유리병들을 가져왔다.
그리고 솥을 기울여 내용물들을 유리병 안에 조금씩 따랐다.
'크, 냄새 죽이고.'
몇 개의 병에 가득 채워진 노란색의 액체.
그 병을 바라보자 [식재료 감별]이 발동했다.
[혼재된 마력의 동물성 기름]
[다양한 종류의 마력이 혼재된 동물성 기름입니다.]
[요리에 사용 시, 요리에 걸맞은 마력으로 변화합니다.]
뭘 튀겨도 맛있어진다는 요리계의 사기 재료.
기름의 완성이다.
34화 튀기면 다 맛있어. (2)
[혼합된 마력의 동물성 기름]
기름.
현대의 주방에서 사용하는 것은 주로 식물성 기름이다.
하지만 과거에서는 오히려 동물성 기름을 자주 썼다고 한다.
특히 돼지기름은 라드유라고 해서, 여전히 중식에서 가장 중요한 재료 중에 하나.
그리고 그 동물성 기름을 만드는 법은 간단하다.
그냥 비계를 녹여서 기름을 쭉쭉 뽑아내면 되거든.
'사실 나도 자세하게는 모르고 있던 거라. 잘될지 어떨지 긴가민가했지만.'
결과물을 보니 잘된 것 같다.
기름에 튀기면 신발도 맛있어진다고 하던가.
그만큼 요리에 있어서 치트키로 여겨지는 재료.
내 직업은 요리사.
무언가 문제가 생겼을 때는 요리를 통해 해결법을 찾아야만 한다.
그리고 요리로 해답을 찾아야 할 때.
기름이 있어 주면 꽤 든든하단 말이지.
"내가 할 수 있는 준비는 이 정도인가."
식사를 마친 다른 병사들도 각자의 준비를 하고 있을 터.
그 준비가 끝나는 대로.
자재 확보를 위한 임무가 시작될 것이다.
* * *
"그,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회의 시간.
조장들 사이에 낀 이공우 상병이 쭈뼛거리며 군사 지도의 한 구석을 가리켰다.
"여기. 보이십니까?"
"어. 관사에서도 가까운 곳이네."
"맞습니다. 여기에 꽤 큰 철물 창고가 있습니다."
"오호."
대책 없이 자재를 갖춰야 한다고 주장한 건 아니었던 듯.
이공우 상병은 자재를 확보할 수 있는 위치도 이미 파악해 둔 모양이었다.
"이런 건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그러게요. 현지인인 저도 이런 곳에 창고가 있다는 건 몰랐는데."
"크흠. 가끔 부대에서 급하게 자재가 필요할 때가 있지 않습니까. 그럴 때면 지상에 내려가서 사 올 때가 있었거든요. 군내의 작은 철물점보다 이쪽이 더 가깝기도 해서, 여기를 자주 애용했었죠."
과연.
취사병인 나도 가끔 모자란 조미료 등이 있으면 운전병들에게 부탁해 사 오곤 했다.
공병들도 비슷한 경우가 있었던 거겠지.
"꽤 넓은 창고라 어지간한 자재들은 다 구할 수 있을 겁니다. 괴물들이 나타난 날은 주말이었으니, 안에 좀비가 있을 가능성도 적을 테구요."
관사와 가까운 위치.
번화가와 거리가 먼 만큼 좀비들의 숫자도 적을 터.
공략하기에는 최적의 환경인 셈이다.
"짜식. 생각 많이 했네."
"하, 하하."
멋쩍게 웃는 이공우 상병.
이 일을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전 분대원, 준비 완료다."
이번 작전에는 이전에 관사 공략에 참여한 인원이 그대로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자, 잘 부탁합니다."
"오냐."
차이점이 있다면 분대마다 공병이 한 명씩 끼었다는 것.
그리고.
부르릉....
공병 한 명이 탑승한 차량이 추가되었다는 것.
"차량이라."
"역시 걱정되는군요."
"걱정되는 건 나도 마찬가지지만. 어쩔 수 없지."
괴물들을 상대로는 무력하게 뜯겨 나가는 차량.
그런 주제에 배기음은 커서 어그로는 제대로 끈다.
본래라면 길을 어느 정도 안정화하기 전에는 사용하지 않았을 테지만.
"물자를 옮기는 임무니까."
전 분대원들이 자재를 양손 가득 들고 옮길 게 아니고서야.
확보한 자재를 옮기기 위해선 차량이 필수적이다 보니, 어쩔 수가 없다.
"차량 소음은 어떻게 할 수 없겠지만. 최대한 조심스럽게 이동한다."
"예."
"가자."
분대원들은 이동을 개시했다.
나름대로 다들 소리를 죽이고 기척을 없애기 위해 노력했다만.
커다란 차량과 함께 이동하는 일.
"70도 방향에서, 옵니다."
도처에 넘쳐 나는 괴물들.
그 시선을 피할 수는 없었다.
"어쩔 수 없지. 최대한 전투 소음도 자제해. 김 중위님."
"어어. 다들 전투태세로."
[지휘 명령 - 전투태세가 울려 퍼집니다.]
괴물들과의 짧은 교전이 몇 차례씩 이어졌다.
"크윽...!"
"부상자는 뒤로 빠져!"
"빈 진형은 내가 메운다."
최대한 전투의 소음을 줄인 덕에.
많은 무리에게 포위당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이쪽도 큰 소리를 동반하는 마법같은건 사용을 자제해야 하니.'
부상자도 조금씩은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전투가 진행되는 것을 보며.
조금 의아한 생각도 들었다.
'좀비하고 괴물들은 서로를 공격하진 않는건가.'
심지어 괴물들 끼리는 서로를 공격하는 경우도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좀비는 괴물의 공격을 받지 않았다.
마치.
'독이 든 먹이를 피하는 것 처럼.'
* * *
"저기, 창고가 보입니다!"
병사 중 한 명이 정면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 소리에 정면을 바라본 나는 진심으로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진짜 큰데?"
엄청나게 거대한 창고 건물들.
주변에서 가장 큰 철물 창고라더니.
과연 그 말대로, 동네 철물점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규모였다.
"사건이 터진 날은 주말이었으니 출근한 직원들도 없을 거고. 안쪽은 비어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그렇다면.
좀비가 튀어나올 걱정은 조금은 덜하다고 봐도 되겠지.
"공병들은 필요한 물자들을 병사들한테 알려주고. 나머지는 공병들 지시 위주로 필요한 자재만 털고 이동한다."
"알겠습니다!"
"드가자!"
쿠구궁-
전사 계열 각성자들이 창고의 문으로 다가가 커다란 문을 열었다.
잠겨 있지는 않았던 것인지, 육중한 소리를 내며 열리는 문.
그런데.
"...?"
"뭐야, 이거."
그렇게 열린 창고.
그 안 쪽의 풍경이, 뭔가 조금 이상했다.
평범한 철물점이라면.
수없이 많은 선반들과, 그 위에 쌓여있는 철물들이 보이는게 정상이였겠으나.
"지진이라도 났나...?"
선반들은 여기저기 쓰러져 있고.
우리가 찾으러 온 철물 자재들은 바닥에 무질서하게 널브러져 있었다.
말 그대로.
지진이라도 난건가 싶은 풍경.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알 필요도 없다.
정리가 안 되어 있는 만큼 조금 귀찮아지긴 하겠지만 그것뿐.
어떻게든 자재를 챙겨서 떠나기만 하면 되는 일이다.
"공병들은 필요한 자재들만 말해 줘. 나머지는 공병들 지시 따라서 자재들을 차량으로 옮긴다."
"예!"
내 명령에 병사들이 행동을 개시했다.
공병들의 지시에 따라 몇 개의 철판을 주웠을 때였다.
구우우우우웅....
"...?"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창고 안에 울려 퍼졌다.
"무슨 소리지?"
"다들 경계해라!"
갑작스러운 현상.
병사들은 물자 수거를 멈추고 태세를 정비했다.
그리고 얼마 뒤.
찰그락....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철물 자재들.
그것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뭐, 뭐야 이거."
"다들 조심해!"
몇몇 병사들이 당황하며 중얼거린다.
창고 중앙에 검은색 기운이 일렁이는가 싶더니.
그 기운에 닿은 철물들이 허공으로 떠올라 한곳으로 모여들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뭐긴 뭐겠어."
이내 하나의 형체를 이루는 철물들.
"몬스터다."
어쩐지 일이 좀 쉽게 풀리나 했다.
그럴 리가 없지.
'강철로 된... 곰, 인가?'
고오오-
검은 그림자와 철물이 엮여져 만들어진 형태는.
마치 거대한 곰을 연상케 하는 모습이었다.
검은 아지랑이가 일렁이는, 강철의 짐승.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크기.
그 덩치에서 오는 위압감 또한 장난이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도 나름 산전수전을 다 겪어 왔단 말이지.
"김 중위!"
"전원, 전투태세로!"
[지휘 명령 - 전투태세가 울려 퍼집니다.]
김 중위를 부르자 대기 중이던 김 중위가 즉각적으로 버프를 흩뿌린다.
모든 병사가 우리 길드만의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각자의 주머니에서 하나의 육포를 꺼내 입에 무는 병사들.
[음식을 섭취하였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마력이 담긴 요리입니다. 모든 저항력이-.]
산맥에서 몰려오는 괴물들을 상대로도 버틸 수 있었던 원동력.
여러 버프가 시너지를 일으키며 더욱 큰 상승효과를 불러왔다.
"하하하! 귀여운 철쪼가리로군!"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능력치.
'용기'가 담긴 요리를 먹음으로써, 병사들의 사기도 하늘을 찔렀다.
"어쩌다 여기 자리 잡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잠깐 비켜 줘야겠다! 끼요오옷!"
버프를 몸에 두른 병사 하나가 기세등등하게 괴물을 향해 달려든다.
거대한 슬레지해머를 든 전사조 각성자.
바위도 쉽게 부수는 그 일격을 거대한 괴물을 향해 내리쳤다.
그런데.
깡-
울려 퍼지는 소리는 기대했던 것과는 달랐다.
부서지는 소리라기보단 튕겨 나가는 듯한 소리.
"어?"
괴물을 짓이길 것이라 기대했던 공격은 통하지 않았다.
반대로.
강하게 휘두른 만큼, 강하게 튕겨져 나오는 슬레지해머.
"이게 무슨- 컥!"
-고오오오!!!
당황하며 중얼거리는 병사를 철물로 된 거대한 앞발이 후려쳤다.
쿵!
"한일아!"
얼마나 강한 충격이었는지 창고 벽까지 날아가 박히는 병사.
반면 저 괴물은 아무런 피해가 없는 듯한 모습이었다.
"한일이가 당했다!"
"다들 조심해! 생각보다 강하다!"
먼저 공격을 한 병사가 곧바로 당한 상황.
나머지 병사들은 최대한 침착하게 수비 진형으로 진형을 바꾸었다.
선제공격보다는 수비하며 적의 빈틈을 노리기 위한 진형.
괴물을 둘러싼 병사들이 교전을 개시했다.
"크어어어어어!"
쿠웅!
"큭!"
거대한 앞발이 내 앞을 스치고 지나간다.
풍압만으로도 몸이 살짝 뜰 뻔했을 정도.
'미친.'
이 괴물.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강하잖아.
"그렇다고 공략법이 없는 건 아니지."
방패를 든 병사들이 주도하며 괴물을 상대로 시간을 끄는 사이.
살짝 뒤로 빠진 나는 들고 다니던 전투식량 주머니를 열었다.
[하급 요리사의 나른한 감정의 붉은 캉갈 육포]
내가 꺼낸 전투식량이다.
그 안에 담긴 것은 '나른함'.
'산맥을 내려오며 이 효과는 톡톡히 봤지.'
살기에 가득 차 있던 몬스터들의 기세가 순식간에 누그러드는 기적.
아무리 강한 괴물이라고 해도.
기세를 잃어버린다면 상대하기는 어렵지 않을 터!
그런 기대를 가지고 육포를 던졌다.
내 예상대로라면.
저 녀석 또한, 눈 앞의 더 맛있는 먹잇감에 집중할-
탁.
'어?'
순간적으로 내 눈을 의심했다.
내 요리에는 관심도 없다는 듯.
앞발을 휘둘러 요리를 쳐 내는 녀석.
-고오오오오오!!!
철갑을 두른 괴물은 내 요리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계속해서 병사들을 향해 발을 휘둘러 댔다.
그동안.
내가 만든 요리는 창고 구석에 버려진 채.
전투로 인해 날리는 흙먼지를 그대로 뒤집어쓰고 있었다.
"...뭐야."
내 요리를 쳐 낸 괴물.
그걸 보고 내가 처음 느낀 감정은.
당혹감 따위가 아니었다.
바닥에 떨어진 육포를 보며 느낀 것은.
조금은 다른 감정.
그래.
굳이 말하자면.
'내가 만든 요리를... 버려?'
분노.
자존심이 상했다.
"이 새끼가...."
빠직.
머리에 혈류가 몰리는 것이 느껴졌다.
맘 같아선 칼을 뽑아 들고 저 녀석을 활어회로 만들어 버리고 싶었으나.
안타깝게도.
그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신 병장님!"
"저 녀석, 너무 단단합니다!"
"아."
정신을 차리고 보니.
거대한 강철 곰과 고군분투하며 싸우고 있는 부대원들이 보인다.
이쪽도 나름 장비와 요리, 김 중위의 버프 등으로 무장한 상태.
제대로 된 수비 진형을 취한 뒤에는 큰 부상을 당한 사람은 없어 보였다.
다만....
-그워어어어어어어!!!
"쯧."
그건 괴성을 지르는 괴물 역시 마찬가지.
몸을 두른 철갑에는 약간의 흠집만 났을 뿐이었다.
실질적인 피해는 거의 없다고 봐야겠지.
'이대로 전투를 이어 가 봐야 변할 건 없다.'
분노를 가라앉히고 냉정하게 판단한 결과.
나는 김 중위를 향해 소리쳤다.
"일단 후퇴한다! 김 중위님!"
"뒤를 공격당하지 않게 조금씩 후퇴해라!"
[지휘 명령 - 퇴각이 울려 퍼집니다.]
[효과 대상자들의 전투 이탈 행위에 보너스가 부가됩니다.]
"다들 후퇴하랍니다!"
"최대한 안전하게 뒤로 빠져!"
퇴각 명령이 떨어지자.
부대원들은 뒤를 공격당하지 않도록 최대한 안전하게 후퇴를 개시했다.
김 중위의 버프 덕분에 후퇴는 문제없이 이루어졌다.
혹시라도 녀석이 창고 밖까지 추격해 온다면 문제가 커질 수도 있었으나.
"...?"
"쫓아오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걱정과는 달리.
녀석은 창고를 벗어나 도망치는 우리를 멀리서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왜지?"
"글쎄다. 영역을 확실하게 지키는 부류의 괴물인 건지도."
어찌 됐든 우리의 안전은 확보된 셈.
하지만.
마음은 여전히 불편했다.
'내 요리를 거부하다니. 그딴 식으로 쳐 내 버리다니.'
나는 기껏해야 취사병.
지금까지 요리에 자부심을 느낀 적은 딱히 없었다.
병사들이 요리를 남기는 모습을 봐도, 그저 그러려니 하고 넘겼을 뿐이었다만.
'후회할 거다.'
이제는 아니었다.
35화 튀기면 다 맛있어. (3)
* * *
"부상자, 이쪽으로!"
"한일이가 많이 다쳤다. 녀석 먼저 치료해 줘."
"옙!"
창고 밖으로 나온 우리는 일단 근처의 안전한 장소까지 후퇴했다.
두 힐러가 부상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달려들었다.
그사이.
다른 부대원들은 바닥에 주저앉아 잠시 숨을 돌렸다.
"어떻게 할 거냐."
나 역시 잠시 숨을 돌리고 있자니.
이민재 병장이 나를 찾아와 물었다.
"생각 이상으로 강한 몬스터다."
우리가 빠져나온 창고 쪽을 바라보며 말하는 민재 형.
"확실히, 현 전력으로 토벌은 어려울 것 같군요."
광일이 녀석도 민재 형의 말을 거들고 나섰다.
"나는 후퇴를 제안하지."
"후퇴라."
"자재 확보는 앞으로의 작전을 수월하게 하기 위함이지. 당장 필수적인 일은 아니야. 피해를 감수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후퇴를 제안하는 민재 형.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다.
"군단장님의 눈은 어땠어요? 그. 적을 지켜보면 약점이나 특성을 알아낼 수 있다고."
"영준이가 굳이 말하지 않은 걸 보면 스킬이 작동하지 않은 것 아닌가?"
"아니. 작동하긴 했어."
그녀의 말대로.
내 스킬 [요리사의 눈]은 대상의 손질법과 특성 일부를 알려 준다.
이 스킬로 많은 몬스터들의 약점을 알아냈었지.
"저 녀석도. 어떤 종류의 몬스터인지 다 파악했고."
"정말요? 그러면 그 정보를 이용해서 다시 공략에 들어가면-."
"나도 그러고 싶다만. 이번에는 좀 힘들 것 같네."
"네?"
스킬은 확실히 발동했다.
하지만 그렇게 얻은 정보라는 게.
[하급 요리 비결 - '맥 손질법의 깨달음']
[맥은 단단한 성질의 물건을 몸에 둘러 연약한 본체를 보호하는 종류의 생명체다.]
[그 손질법은 매우 쉬운 편으로, 우선 껍질을 제거한 뒤에 안쪽의 살을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르기만 하면-.]
이렇단 말이지.
괴물의 이름은 '맥'.
본체는 연약한 대신 주변의 물건들을 둘러 자신을 보호하는 몬스터라고.
'소라게 비슷한 거겠지.'
아마도 그 검은 기운 쪽이 본체.
주변에 돌아다니던 철물로 거대한 곰의 형태를 취했을 뿐.
본체는 연약하기 그지없다는 것이다.
문제는 녀석의 약점.
손질법이 어떻게 되느냐 하는 것인데....
"어떻게든 껍질을 제거한 뒤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르라네."
"...."
얘기를 들은 병사들이 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버프를 두른 부대원들이 아무런 피해도 주지도 못한 괴물이다.
껍질.
즉 몸을 두른 강철을 제거하라고 해도 말이지.
"그건 약점도 뭣도 아닌 거 아닙니까?"
"그렇지?"
그럴 힘이 있었으면 고생하겠냐고.
몸을 두른 껍질들을 제거할 수 있을 정도면 그냥 때려죽이고도 남았지.
'내 능력들에 대해 착각하면 안 되는 부분이 이거란 말이지....'
요리사의 눈은 식재료의 손질법을 알려 주는 스킬이다.
정확히 말하면, 공략법이나 약점을 알려주는 게 아니란 말이지.
대부분의 경우 손질법과 약점은 일치하는 경우가 많았다.
덕분에 지금까지는 약점을 파악하는 용도로 잘 사용해 왔다만.
"아닌 경우도 드물게 있다는 거지."
"그럼 역시 후퇴가 답일까요...?"
다른 조장들은 모두 후퇴 쪽으로 무게를 두는 분위기였다.
아까 민재 형의 말대로.
자재 확보가 필수는 아니다.
이번 작전에 투입한 비용도 많지는 않고.
게다가 철물 창고는 다른 곳에도 있지 않겠는가.
후퇴 쪽이 올바른 선택이겠지.
하지만....
내 발목을 붙잡는 점이 하나.
'이대로는 분해서라도 못 돌아가지.'
게다가.
한 가지 신경 쓰이는 점이 있었다.
"저 녀석. 처음에는 그냥 철 쪼가리로 이루어진 괴물인가 했단 말이지."
"네?"
"왜 골렘이라든가? 그런 거 있잖아."
괴물이라고 모두 생명체일 필요는 없다.
철로 된 기계라든가.
그런 괴물도 있을 수 있겠지.
"그래서 내 요리를 쳐 낸 걸까 했고."
그런 괴물이라면 내가 던진 고기를 먹지 않은 것도 이해할 수 있다.
애초에 음식을 섭취할 필요가 없는 몬스터라면.
요리가 안 통해도 어쩔 수 없는 일.
하지만 아니었다.
"내 스킬로 본 설명을 보면 일단은 유기체가 맞는 것 같단 말이지. 그렇다면 뭘 먹기는 해야 할 텐데, 내 요리를 거절한 이유가 뭘까."
사실.
이게 내가 후퇴를 망설이는 가장 큰 이유기도 하다.
내 요리를 거부한 괴물.
그 이유라도 알고 넘어가야 속이 풀릴 것 같단 말이지.
그때였다.
"뭘 먹기는 해야 한다...."
"응?"
내 말을 들은 이공우 상병.
그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공우야? 뭐 짐작 가는 거라도 있어?"
"예? 아. 사실 별거 아닙니다만."
"뭐든 좋으니까 말해 봐. 도움이 안 되는 정보라도 상관없으니까."
내가 재촉하자.
"그... 저 안에 널브러져 있던 철물들 있잖습니까."
그제서야 조심스럽게 입을 여는 이공우 상병.
"그중 몇 개에, 마치 무언가가 갉아 먹은 것 같은 흔적이 있었거든요."
"갉아 먹은 흔적이라고?"
"예. 멀쩡한 철물들 몇 개가 조금씩 깎여 나가 있었다고 할까요."
이공우 상병의 말을 들은 이민재 병장이 말했다.
"녹을 잘못 봤다던가 그럴 가능성은?"
"으음, 아마 아닐 겁니다. 공병들은 기본적으로 자재 감별이라는 특성이 있거든요. 그 특성으로 봤을 때 절대 일반적으로 생기는 흔적은 아닙니다."
"정말이라면 신기하긴 한데."
"별 도움은 안 될 것 같죠?"
다른 사람들은 큰 도움이 되는 의견은 아니라는 듯한 태도.
심지어 말을 꺼낸 이공우 상병 역시 그렇게 생각하는 듯했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갉아 먹은 듯한 흔적.
"그거였나."
"예?"
"아무래도 내가 터무니없는 착각을 하고 있었나 보다."
애초에 저 녀석은 인간이 아니라 괴물.
그렇다면.
고기가 주식이 아닐 가능성도 염두에 뒀어야지...!
'철을 먹는 거다.'
채식주의자에게 고기 요리를 대접해 놓고 안 먹었다고 화낸 꼴.
명색이 요리사라는 녀석이 이런 기본적인 것도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니.
'그래 놓고 내 요리를 버렸다고 짜증이나 냈으니.'
지금 생각해 보면 적반하장도 이런 적반하장이 없다.
확신한 나는 쉬고 있는 병사들을 향해 외쳤다.
"홍수야! 거기 있냐!"
"예, 일병 장홍수!"
내가 부른 병사.
장홍수 일병의 직업은 '화염 마법사'.
"여기, 불 좀 붙여 줄 수 있겠냐."
"예...? 아. 옙. 알겠습니다."
녀석의 도움으로 바닥에 작은 불을 지핀 뒤.
군장 가방을 열어 작은 웍 하나를 꺼내 그 위에 올렸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가방에서 한 가지 물건을 더 꺼냈다.
노란색 액체가 담긴 작은 유리병.
그 내용물을....
기름으로 달궈진 웍 위에 뿌렸다.
"영준아?"
"뭐 하시려는 겁니까...?"
내 갑작스러운 행동에 당황하며 묻는 사람들.
나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왜, 신발도 튀기면 맛있다고 하잖아."
그렇다면.
"철판때기도, 튀기면 맛있지 않을까?"
"...그거 맞습니까?"
"어. 글쎄?"
어이없다는 듯 되묻는 병사들.
나도 이게 맞는지 아닌진 모르겠다.
튀긴 철판 같은 걸 먹어 본 적이 있어야지.
어디까지나 '잘하면 되지 않을까?' 싶은 것뿐.
"잘될지 어떨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당장 전투로 해결하기 힘든 괴물이잖아?"
"그건 그렇죠."
"그럼 후퇴하기 전에 뭐라도 해 봐야지. 어차피 밑져야 본전이잖냐."
"어어... 그것도 그렇긴 하네요?"
이윽고.
자리에 모인 모든 병사가 내 요리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음. 문제는 재료인데."
"아, 그거라면."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괴물이 나타난 것은 내가 자재 회수 명령을 내린 후였다.
"여기 있습니다."
"바닥에 굴러다니던 거라 좀 더럽습니다만."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바닥에 굴러다니던 물건들을 주운 병사들이 있었다.
그중에서 비교적 상태가 좋은 물건을 하나 골라 깨끗하게 씻어 냈다.
'어디 보자. 온도는 이 정도면 됐고.'
그사이에 장홍수 일병은 계속해서 기름의 열을 올려 주고 있었다.
재료가 탈 걱정은 없으니 적당히 온도가 오르기만 해도 되겠지.
조심스럽게.
잘 닦은 철판을 기름 속에 집어넣었다.
퐁.
기름에 요리를 집어넣으면 으레 들리기 마련인 튀김 소리는 없었다.
튀김가루도 안 입히고 냅다 집어넣은 거니까.
'사실 튀김이라고 하기도 애매한가?'
그렇다고 튀김가루를 입히자니.
고기도 안 먹는 괴물이 빵가루 같은 것에 매력을 느끼기나 할까 싶단 말이지.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요리'로써의 구색을 최대한 갖추는 것 정도.
당연히 성공 가능성이 크지는 않겠지.
하지만 어디까지나 밑져야 본전.
시도해 볼 가치는 분명히 있다.
"...."
침묵 속.
기름을 둥둥 떠다니는 철판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그렇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까.
"이 정도면 됐겠지."
기름 속에 집게를 집어넣어 철판을 꺼냈다.
기름에 푹 절인 철판.
그리고 그 위에 손가락을 살짝 비벼 준다.
철판 위에 '특별 소스'가 뿌려졌다.
"일단은 이걸로 완성...이긴 한데."
"으음."
"바뀐 게 없어 보입니다만."
완성된 철판 튀김.
하지만 겉으로 봤을 때는 조금 더 광택이 더해졌을 뿐.
그저 기름 먹인 철판에 불과해 보였다.
"실패...입니까?"
"어쩔 수 없지 뭐."
"군청 근처에도 철물점이 하나 있어요. 위험하긴 해도 나중에 그쪽을 통해서라도-."
다들 실패를 점치고 있었을 때.
띠링.
"아니."
"예?"
익숙한 소리와 함께.
내 눈앞에 나타나는 문구들.
[요리가 완성되었습니다.]
[하급 요리사의 패배감이 담긴 기름 철판 튀김]
[혼합된 마력이 섞여들어 더욱 깊은 맛을 내게 된 합금 요리입니다.]
[간단하게 만들어진 요리입니다. 효과가 소폭 감소합니다.]
씨익.
"성공이다."
"...!"
눈앞을 가득 메우는 메시지.
완성된 요리에 대한 정보가 머릿속으로 흘러들어 온다.
내가 만든 요리답게 잡다한 버프들도 포함되었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고.
중요한 것은 하나.
이 기름진 철판이 요리로써 인정받았다는 것!
[기존 요리의 개념을 넘어선 요리입니다.]
그런데.
메시지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인강종 최초로, 요리의 새 지평을 발견하였습니다!]
[많은 요리사들이 깨닫지 못하는, 요리사의 한계가 있습니다.]
[그건 바로, 재료의 한계!]
[아무리 뛰어난 요리사라고 한들. 먹을 수 없다고 여겨지는 재료로 요리를 시도하는 경우는 극히 드문 법.]
[끝없이 펼쳐진 요리의 가능성이, 작은 편견으로 인해 빛을 잃은 셈입니다.]
[수많은 훌륭한 요리사들이, 그 한계에 얽매여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못한 채 좌절하고는 했습니다만.]
[당신은 아닙니다.]
[앞서가는 자를 위한 보상이 주어집니다.]
[보상 : 식재료의 한계가 사라집니다.]
'...?'
뭔가 거창한 메시지가 나온 것 같은데.
그에 반해 보상이란 건 한 줄.
'한계가 사라진다는 게 무슨?'
그 보상의 의미를 확인해 보려던 찰나.
"맙소사...."
누군가가 감탄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보인 것은 이공우 상병.
그가 내가 들고 있는 철판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이공우 상병님?"
"뭔가 달라진 게 느껴지시는 겁니까?"
"응? 아, 어어."
그의 감탄을 들은 건 나뿐만이 아니었는지.
몇몇 병사들이 이공우 상병에게 질문을 던졌다.
넋 놓고 철판을 바라보다가 그제야 정신을 차린 녀석이 대답했다.
"그. 아까도 말했지만, 우리 공병들은 '자재 감별'이라는 특성이 있습니다."
자재 감별이라.
아마 내가 가진 '식재료 감별'과 비슷한 특성이겠지.
식재료에 한정해 감별이 가능한 나와 비슷하게 녀석은 자재들의 감별이 가능할 것이다.
"그걸로 봤을 때, 저 철판."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을 잇는 이공우 상병.
"기름에 들어가기 전의 철판이랑 아예 다른 물건이나 다름없는 것 같습니다."
"아예 다른 물건이라니."
그 대답을 들은 병사들의 표정도 아연해졌다.
그들의 시선이 내 손에 들린 철판을 향했다.
겉으로 봤을 땐 그냥 좀 반질반질해진 철판인데 말이지.
'잠깐.'
그렇다면 설마?
"그럼 더 튼튼한 철판이 된 거냐?"
만약 그렇다면.
이 능력으로 모든 자재를 강화해서-.
"예? 아뇨."
"아."
"자재로서의 효율은 오히려 떨어진 것 같습니다. 도저히 못 쓸 수준인데요."
"그, 그러냐."
혹시 내 요리로 철판을 강화할 수 있는 건가 했는데.
기대와 달리 그런 건 불가능한 모양.
"그러냐 하고 넘어갈 일이 아닙니다! 기름에 넣었다 뺀 것만으로 물질이 변한다니? 이건 정말 기적이라고밖에 할 말이 없는 일이란 말입니다! 아마 신 병장님의 직업이 직업이라 가능한 일이겠지만, 정말이지...."
녀석이 놀란 것은 어디까지나 그 부분이었던 모양.
흥분한 녀석은 횡설수설하며 이게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일인지 설명하기 시작했다.
물론 내 입장에서는 도움 안 되는 얘기.
녀석의 말을 한 귀로 흘리며 생각했다.
'요리로 장난치면 안 된단 건가.'
요리는 어디까지나 요리.
다른 용도로 장난질은 할 수 없다는 거겠지.
"뭐. 상관없나?"
애초에 그런 부분을 바라고 한 요리도 아니고.
요리로서의 역할만 잘하면 그걸로 그만.
나는 완성된 요리를 병사들에게 넘기며 말했다.
"이걸 괴물한테 먹이면 될 거다."
"저번에 보여 주셨던 그 디버프 음식인 겁니까?"
참고로.
대부분의 병사는 아직 내 요리가 감정을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공개적으로 밝혀져서 좋을 게 없는 능력이다 보니.
덕분에 병사들은 묘한 오해를 하고 있었다.
산맥을 내려올 때 몬스터들에게 먹인 요리.
그걸 디버프를 주는 요리 정도로 이해하고 있는 것.
"사실 음식이라고 해도 되는 건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음식 맞아. 그. 디버프 음식인 것도 맞고."
대충 결과물은 비슷하니 오해는 그대로 두기로 했다.
어찌 됐든 요리는 완성되었다.
그러니.
"작전. 시작하자."
* * *
저벅....
우리는 다시 창고 안으로 발을 옮겼다.
다만 이번에는 직전과 달리 소수 인원.
나를 제외한 대부분이 방어력이 특출한 방패 계열의 전사들이었다.
어차피 요격은 불가능할 것이라 판단.
수비 능력이 뛰어난 전사들만 만약을 대비해 따라와 준 것이다.
"이건."
"원상 복귀됐군요."
창고에 재진입하자마자 보인 것은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철물들.
처음 왔을 때와는 배치만 다를 뿐 엉망으로 뿌려져 있다는 점에서는 동일했다.
"처음 왔을 때 왜 이렇게 엉망이 되어 있었나 했더니."
적을 발견했을 때 자재들을 모아 거대한 형태를 이루는 괴물.
하지만 저 형태 자체가 힘을 소모하기라도 하는 걸까.
적을 격퇴한 뒤에는 모였던 자재들은 아무렇게나 흩뿌려지는 모양.
우리는 입구 근처에 서서 창고 안쪽을 자세하게 살폈다.
"녀석의 본체는?"
"으음. 안 보이는군요."
찾아야 하는 것은 녀석의 본체.
철물들을 움직였던 그 검은 그림자.
하지만 저 어딘가에 파묻혀서 숨어 있는 것일까.
아무리 살펴봐도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쯧. 우리가 조금만 더 접근하면 그때서야 모습을 보이려나."
"아까 같은 거대 괴물의 형태를 취하면서겠지만요."
가급적이면 이 상태에서 위치를 파악하고 싶었다만.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다.
"그럼 어쩔 수 없나."
나는 당당하게 발을 옮겼다.
창고 안쪽으로 몇 걸음을 더 들어가자.
구우우....
'왔다!'
이미 한 번 들었던 진동음이 들려왔다.
아무래도 이 소리는 자재들이 진동하면서 나는 소리인 모양.
소리와 함께 창고 곳곳에 퍼져 나가는 검은 그림자.
허공을 부유하는 철물들을 경계하며 전사들이 방패를 들고 나섰다.
"다들 조심해!"
"실패하더라도 신 병장님만은 지켜야 한다."
나를 보호하듯 경계 태세를 취하는 전사들.
보호받는 입장에서는 꽤나 든든한 모습이었다.
나는 그 보호 속에서 검은 그림자를 유심히 바라봤다.
특히나 시선을 준 곳은 그림자의 중심부였다.
그림자들이 뭉쳐 가장 짙어진 공간.
외적에게서 보호하려는 듯 가장 먼저 철물들이 둘러싸고 있는 곳이 있었다.
'저기인가.'
아마도 저곳이 녀석의 본체가 있는 장소.
거대한 괴물의 형태가 거의 완성되어 가는 것을 바라보며.
나는 들고 온 철판을 매만졌다.
기름기로 반들거리는 철판.
아직도 열기가 남아 뜨거웠다.
화염 친화 특성이 없었다면 내 손에도 문제가 생겼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이렇게 뜨거운 상태로 가져온 이유는 하나.
'따뜻할 때 먹어야지 맛있을테니까.'
철판을 쥔 손은 오른쪽.
오른손을 뒤로 쭉 빼며 ㄴ자를 만들었다.
왼손은 앞을 향해 쭉 뻗는다.
야구 같은 걸 해 본 적 없는 내가 유일하게 알고 있는 투척 자세.
수류탄 투척 자세였다.
'투척!'
훈련과는 달리.
이번 목표는 호 안이 아닌, 녀석의 본체 근처.
번들거리는 철판이 허공을 가른다.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저번에는 가차 없이 쳐 냈지?'
덕분에 자존심에 상처가 제대로 나 버렸다.
하지만 이번은 그때와 다르다.
녀석의 본체 주변으로 떨어지는 철판.
그곳을 향해 검은 그림자가 향했다.
그리고.
착.
철판에 달라붙는 그림자.
철판은 그림자를 따라 본체가 있으리라 추정되는 곳으로 빨려들어 갔다.
"됐다!"
그 모습을 확인한 나는 병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튀어!"
"후퇴, 후퇴!"
"임무 성공했답니다, 다들 후퇴!"
목표는 달성했다.
망설임 없이 뒤돌아 도망치는 나와 병사들.
슬쩍 뒤를 돌아보니 그런 우리를 넋 놓고 지켜보는 괴물의 모습이 보였다.
약간 어이없어하는 듯한 느낌이 드는 건 과연 기분 탓일까.
'너랑 싸워 주겠냐?'
병사들은 모두 만약에 대비해 데려온 것일 뿐.
전투는 애초에 작전에 없었거든.
완전한 형태를 이룬 괴물이 우리에게 덤벼들기도 전에.
우리는 퇴각을 완료했다.
창고를 떠나지 않은 채 멀리서 나와 병사들을 지켜보고 있는 괴물의 모습이 보였다.
녀석이 우리를 추격하지 않으리란 것은 이미 알고 있던 사실.
'이유도 어느 정도 짐작은 가.'
녀석은 아마도 창고의 철물들을 먹는 생명체.
창고의 철물들이 몸을 보호하는 도구임과 동시에 식량이나 다름없다.
'철물이 넘쳐 나는 창고야말로 녀석에게 있어서는 최고의 보금자리인 셈.'
자리를 비웠을 때 누군가 식량을 털어 갈 가능성도 있을 테니.
굳이 도망가는 침입자를 추격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녀석에게 인간은 먹을 수도 없는 쓸모없는 존재일 테니.
"어떻게든 따돌리긴 했군요."
"잘됐으면 좋겠습니다만."
괴물의 영역에서 완전히 벗어나고 난 뒤에 병사들이 말했다.
작전이 잘될지 어떨지 우려스러워하는 병사들.
괴물한테 내가 만든 요리를 전달하는 데는 성공했다만.
결국은 녀석이 먹어서 효과가 제대로 발동해야만 작전이 성공할 수 있으니.
걱정도 이해는 간다만.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잘될 거다."
"예?"
불안해하는 병사들과 달리.
나는 잘될 거라고 확신했다.
"잘될 거라니."
"어떻게 그렇게 확신을 가지고 말씀하실 수 있는 겁니까?"
"응? 그야...."
병사들의 질문에.
내가 해 줄 답변은 간단했다.
성공할 거라는 믿음이 있으니까.
"누가 만든 요린데."
"아."
당연히 잘되겠지.
* * *
그리고.
내 믿음은 틀리지 않았다.
"끼잉... 끼이잉...."
뭐야.
이렇게 보니까.
"꽤 귀엽잖아?"
36화 튀기면 다 맛있어. (4)
내 철판 요리를 괴물에게 던진 뒤.
우리는 약간의 텀을 두고 창고로 다시 진입했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철판들 사이.
끼이잉....
검은색 덩어리 같은 생명체가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그리고 작게 들려오는 소리.
까드득.
까득.
콰삭.
"이 소리는...."
"먹고 있는 거다."
그것도 꽤 신나게.
그리고 내 요리를 입에 담은 이상.
그 안에 담긴 소스.
그 효과를 피해 갈 수는 없을 터.
저벅....
내가 한 걸음 더 다가가자.
움찔.
우리의 접근을 눈치챘는지.
살짝 움찔하는 녀석.
중요한 것은 그다음의 반응이었다.
키이이익...!
화들짝 놀라며 구석으로 도망치는 녀석.
"도망치지 못하게 막아!"
나와 부대원들은 산개하며 녀석이 탈출하지 못하게 저지했다.
결국 창고의 구석으로 몰린 괴물.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어지자.
끼이잉....
몸을 웅크리고 벌벌 떠는 녀석.
뭐야.
이렇게 보니까.
"꽤 귀엽잖아?"
"그러게 말입니다."
각종 철갑을 두른 강철의 괴수였던 직전과는 달리.
지금의 모습은, 마치 검은색의 작은 솜뭉치 처럼 생겼다.
쪼그마한 다리가 네 개 달렸다는 점을 제외하면, 정말로 검정 솜이라고 생각하게 될 정도.
"그나저나 대단하군요."
"그렇게 강력하던 괴물이 이렇게 벌벌 떠는 모습이라니."
"이게, 신 병장님의 요리의 효과...."
내가 녀석에게 먹인 요리의 효과는 '패배감'.
'아마 이 녀석이 지금이라도 싸우려고 군다면. 우리 모두를 박살 낼 수 있을지도 모르지.'
그 정도로 강력한 괴물이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전의를 가지고 있을 때나 가능한 일.
지금 이 녀석은.
패배감에 짓눌려, 두려움에 벌벌 떠는 약자에 불과하다.
스릉.
"안 아프게 보내 주마."
나는 식칼을 꺼내 들었다.
녀석의 손질법은 '먹기 좋은 사이즈로 자르기.'
본체는 약점이랄 것도 없는 연약한 생명체라는 뜻이다.
이 칼로 저 목을 베기만 하면-
"잠시만요!"
그때였다.
이공우 상병이 칼을 휘두르려던 내 손을 붙잡았다.
"무슨 일이야?"
나는 살짝 표정을 찡그린 채 물었다.
내 요리의 효과는 영원하지 않다.
저 녀석에게 적용된 '패배감'이 유지되는 동안 처리해야 한다는 것.
언제 녀석이 다시 날뛸지 모르는 상황.
당장 처리해도 모자랄 마당에 말리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혹시라도 저항하지 않는 괴물을 죽이는 게 꺼려진다든가 그런 얘기라면-."
"그런 거 아닙니다. 이것 좀 봐 주십쇼."
"뭐?"
그렇게 말하면서 무언가를 들어 올리는 이공우 상병.
그 손에 들려 있는 것은 철판이었다.
바닥에 흩뿌려져 있던 흔한 철판 중 하나.
"이거 뭐 어쨌다고-"
그런데.
그 철판을 유심히 바라본 순간.
[식재료 감별]
'어?'
특성이 발동했다.
[마력으로 강화된 맥의 철판]
[특별한 마력으로 인해 강화된 철판입니다.]
[재료의 질은 높으나 위생과 청결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요리 재료로는 권하지 않습니다.]
...?
'뭐야.'
순간 잘못 본 건가 했다.
발동한 것은 분명 [식재료 감별].
하지만 그 특성이 감별하고 있는 것은 철판이었다.
문제는.
'이 특성이, 왜.'
지금 발동한 거지...?
"아. 보라고 해도 모르시겠군요. [자재 감별] 특성을 가지고 있는건 공병들 뿐이었으니."
그래.
원래라면, 난 요리 재료도 아닌 저 철판의 효과는 보지 못하는 게 정상이다.
갑자기 발동한 특성에 당황하는 사이.
이공우 상병이 먼저 말을 꺼냈다.
"이 철판, 평범한 철판이 아닙니다."
평범한 철판이 아니라는 말.
설마 내가 본 것과 같은 건가.
"이공우 상병님?"
"평범한 철판이 아니라는 건 무슨 소리입니까?"
"저 괴물의 마력으로 강화된 상태라는 거야."
역시.
내가 시스템 메시지를 통해 확인한 것과 같다.
"저번 전투 때도 사실 조금 의아했거든. 아무리 두꺼운 철판이라고 해도, 각성한 전사들의 공격에 기스만 나고 끝난다는 건 말이 안 돼. 심지어 저 괴물이 두르고 있던 철판들은 그리 두껍지도 않았거든."
"이 녀석이 철판들을 강화해서 그랬다는 겁니까?"
"그래. 그리고 이게 더 중요한데."
손가락으로 벌벌 떨고 있는 괴물을 가리키는 이공우 상병.
"저 녀석에게서 떨어져 나온 지금, 여전히 강화가 유지되고 있다는 거야."
"그 뜻은 설마."
"이 강화된 철판을 우리도 이용할 수 있을지도 몰라."
과연.
대충은 이해했다.
녀석이 하고 싶은 말도 예상이 된다.
"신 병장님."
"그래."
"이 녀석. 살려 보면 안 되겠습니까?"
역시나.
"괴물을 살려 두자는 말입니까?"
"에이, 그건 좀."
그 얘기를 들은 다른 병사들은 모두 부정적인 반응이었다.
괴물이 괜히 괴물이겠는가.
지금은 내 능력으로 저렇게 겁에 떨고 있다만.
요리의 효과가 사라지는 순간 다시 우리를 죽이려 들지도 모르는 일.
아니, 높은 확률로 그러겠지.
깔끔하게 처리하는 편이 후환이 없을 터.
하지만....
"어떻게든 살려 두기만 한다면. 저 특성을 활용해서 엄청난 물건들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도 몰라요. 이런 기회를 그냥 날리는 건 너무 아깝지 않습니까."
"흐음."
강화된 자재들을 얻었을 때의 이득.
그것도 포기하기 힘들단 말이지?
나는 슬쩍 고개를 돌려 괴물을 바라봤다.
검은색 새끼 곰하고 비슷하게 생긴 녀석.
그 몸 근처에는 검은 기운이 일렁거리고 있었다.
주변의 물건을 붙잡고 조종하던 기운.
'가만.'
나는 주머니에서 헝겊 하나를 꺼냈다.
칼에 묻은 피를 닦아 낼 때 쓰던 물건.
그걸 녀석 주위에 일렁이는 검은 기운에 가져다 대 보았다.
"안 붙네?"
철들이 검은 기운에 달라붙었던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주변의 물건들을 모두 조종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철물류밖에 조종할 수 없는 건가."
그렇다면.
"얘들아."
"예?"
"가방 좀 가져다줄 수 있나? 지퍼나 버클같이 쇠붙이가 안 붙은 거."
"아... 하나 있을 겁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쇼."
곧 병사 한 명이 가방 하나를 들고 왔다.
"가방이라기보단 주머니라고 하는 게 맞을 것 같긴 합니다만."
"괜찮네. 이걸로 되겠어."
병사가 들고 온 것은 말 그대로 주머니였다.
주머니 자체도 천이고 입구는 줄로 조인 뒤 묶는 형태.
사각.
나는 줄의 양 끝부분에 붙어 있던 쇠붙이만 잘라 낸 뒤.
"집어넣자."
주머니의 입구를 크게 연 뒤.
괴물에게 다가갔다.
"앗, 도망치려 한다!"
"어어!"
"가만히 있어!"
도망치려는 녀석을 병사들과 합심해 붙잡은 뒤.
우여곡절 끝에 주머니 안에 넣는 데 성공했다.
케에엥....
"뭔가 동물 학대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좀 찔리는데요."
"죽이는 것보단 낫잖냐."
거부감은 있는 것 같지만 짙은 패배감 때문인지 격렬하게 저항하지는 않는 괴물.
꽈악....
입구의 줄을 팽팽하게 조이자 검은 기운도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하는 듯했다.
그리고 남아 있는 건,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수많은 철재.
"세상에. 이렇게 많이...!"
그 철재들을 둘러보며 감탄하는 이공우 상병.
나와 눈이 마주친 그가 볼을 긁적이며 말했다.
"아. 제가 또 조금 오버했나 봅니다."
"응
"신 병장님은 모르실 겁니다. 제 눈에 저것들이 어떻게 보이는지...."
다시금 바닥에 깔린 자재들을 보며 눈을 반짝이는 녀석.
하지만 글쎄다.
내가 모를 거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좀 생각이 다르다.
'나도 알 것 같은데.'
[식재료 감별]
[맥의 마력으로 강화된 너트]
[맥의 마력으로 강화된 몽키스패너]
[맥의 마력으로...]
.
.
.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게도 저 물건들의 정보가 상세하게 보인다.
철물 창고를 찾았을 때 원했던 것은 평범한 자재들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발견한 것은 마력으로 강화된 물건들.
전체의 90% 가까이가 괴물의 마력으로 인해 강화된 상태였다.
즉.
'보물덩어리들.'
기대한 것을 아득히 뛰어넘는 보상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