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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6 - 6

공식적으로, 제국에서 두 번째로 고귀한 핏줄을 지닌 공작가의 등장에 역무원을 비롯한 모든 승객이 예를 갖추어 허리를 굽혔다.

그 속에서 아케인으로 향하는 기차를 모는 기관사가 직접 걸어 나와 요넬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공자를 모실 기회를 얻게 되어 영광입니다. 공작 각하."

고개를 끄덕인 요넬이 고개를 돌렸다.

칭얼거리다 잠이든 아이린을 안고 있던 아더가 그런 요넬을 마주 본다.

그 시선에 요넬이 머뭇거리며 입술을 달싹일 때였다.

아더가 방긋 웃는다.

"도착하면 연락할게요, 어머니."

"…."

"잠들 때도 연락할게요. 뭘 했는지 매일 같이 연락드릴게요. 그리고 방학이 되면 놀러 올게요."

그의 대답에 요넬의 달싹이던 입술이 다물어진다.

그 후 흘러내리려는 눈물을 애써 참으며 아더를 껴안았다.

"기다리고 있으마. 이번 이별이 마지막은 아니니깐."

"네."

"보내주는 영약들 잘 먹고, 공부 열심히 하고."

"그럼요. 좋은 영약 많이 보내주세요."

"어련히 내가 안 좋을 거 보내줄까? 걱정 말거라."

아더가 참지 않고서 미소 지었다.

"세상에서 제일 좋은 걸로 보내주세요, 어머니."

이 말과 함께 요넬이 아이린을 건네받았고, 바이에른 가신들이 눈물을 훔치며 아더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 인사와 함께 아더는 vip석으로 올라섰다.

뿌우우우-!!!

울려 퍼지는 경적과 함께 매캐한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기차가 출발한다는 신호였다.

창가에 기대어 꿈쩍도 하지 않는 요넬과 바이에른 가신들을 바라보던 아더가 속삭였다.

'금방 만나러 올게요, 어머니.'

그 후 기차가 출발하고 요넬의 모습이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였다.

맞은 편에 앉아있던 안나가 조심스레 질문해 왔다.

"저 공자님? 자리를 비켜드릴까요?"

"응? 왜?"

"…그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실 것 같아서···."

말을 흐리는 그녀의 모습에 아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럼 커피나 한 잔 가져다줄래?"

"샷 다섯 개 추가해서 말이죠?"

"오늘은 특별히 세 개 더 추가해 줘."

안나가 작게 입을 벌린다.

'커피에 샷 8개를 넣어서 마실 수가···. 있나?'

의문도 잠시 안나는 곧 고개를 저었다.

이런 일이 한두 번도 아니고, 지금은 최대한 소공자님을 배려해야 했다.

가족을 떠나 타지로 향하는 것은 귀족이건 평민이건 누구에게나 힘든 일이니깐.

여기까지 생각한 안나가 종종걸음으로 방을 빠져나갔고, 혼자 남게 된 아더가 상념에 빠졌다.

상념 속에서 아더는 아케인으로 가는 목적을 자연스레 떠올렸다.

'일단 아케인으로 가면···. 양복점에 들러야겠네. 그다음에 뒷세계에 들어선 뒤, 최대한 빠르고 효율적이게 좋은 혈통들을 수집해야겠어.'

아케인으로 향하는 가장 큰 이유는 공작가의 주인이 되기 위한 자격 증명도 있지만, 역시나 혈통 수집이 가장 컸으니까.

비정상적인 크기를 자랑하는 아케인은 온갖 능력자들이 있었고, 희귀한 혈통을 지닌 자들도 대륙에서 가장 많이 모여 있었다.

좋은 혈통을 원하는 아더에게는 메리트가 가장 큰 장소.

그 기회를 아더는 놓칠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아케인에 거주 중인 원수들의 목도 잘라내고.'

물론 복수에 나서기까지는 아마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그 시간을 아케인은 단축시켜 줄 것이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아더가 고개를 들었을 때였다.

흰 수염을 가슴팍까지 기른 노인 한 명이 앞에 앉아 차를 들이켜고 있었다.

"안녕하시오?"

"안녕하세요?"

당돌한 인사에 노인이 웃음을 터트렸다.

"당황하지 않는군? 허락 없이 들어왔는데. 혹시 날 아시오?"

"아뇨? 오늘 처음 뵙는 것 같네요."

"그런데 왜 그리 친숙하게 인사를 건네시오?"

질문에 아더가 눈을 끔뻑였다.

"음···. 당황해서 좋을 게 없어서요? 일단은 그렇습니다."

대답에 노인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사이 감각을 일깨운 아더가 중얼거렸다.

'뭐지? 안나하고 밖의 기사분들이 잠들어 있네?'

안나는 그렇다 치더라도, 밖을 지키는 기사의 수준은 5서클.

검기를 방출할 수 있는 수준 높은 기사였다.

그런 기사가 갑자기 잠이 와서 쓰러질 리는 없었고, 아더는 자연스레 시선을 돌려 눈앞의 노인을 바라보았다.

"음···. 실례가 안 된다면 누군지 물어봐도 될까요?"

"나 말이오?"

"네."

"난 흰 수염이라고 하오."

"흰 수염이요?"

"별칭이지. 들어보셨소?"

아더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처음 들어보네요. 그것보다 정말 이름이 흰 수염이에요?"

"별칭이라 하지 않았소? 흠···. 그럼 이건 어떻소. 난 [하늘섬] 소속이오."

아더가 또 한 번 고개를 저으려다 멈칫한다.

하늘섬.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조직의 이름이었다.

'아니 들어 본 게 아니라, 알고 있네. 최악의 범죄자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조직. 그래서 괴담이라고 불리는 비밀스러운 단체.'

그들의 정체도 정확한 숫자도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그래서 전설이라 불렸고, 괴담으로만 전해지는 비밀스러운 단체였다.

여기까지 생각한 아더는 눈을 치켜떴다.

"범죄자신가요?"

"범죄자? 흐음···. 뭐 그렇게도 볼 수 있겠군. 죄를 좀 짓긴 했으니깐."

"왜 절 찾아오신 거죠?"

이 말에 하늘섬 소속 흑마법사.

흰 수염이 입꼬리를 말아 올린다.

"혹시 프라킬이라고 아시오?"

질문에 아더가 눈을 끔뻑인다.

그리고 뒤늦은 탄성을 내질렀다.

"흑마법사 프라킬 씨를 말하는 건가요?"

"맞소. 흑마법사라 불리기 애매한 녀석이긴 하지만, 그 문턱은 걸쳐 있던 놈이지."

"그분은 왜요?"

흰 수염이 쓰고 있던 중절모를 들어 올린다.

동시에 아더의 눈이 치켜떠졌다.

놀랍게도 눈앞의 노인의 안구에는 눈이 없었다.

그 탓에 아더가 눈을 끔뻑이는 사이, 흰 수염이 중얼거린다.

"날 피해서 수도로 도망친 놈이 갑자기 죽어 있더군. 어디 가서 칼 맞고 죽을 놈이 아니라 궁금해서 흔적을 찾기 시작했는데, 이쪽으로 이어지지 뭐겠소?"

이 말과 함께 텅 빈 안구에서 불꽃이 일렁인다.

그 기이한 변화를 지켜보던 아더가 머리를 긁적였다.

"안 죽였다 하면 믿어 주시나요?"

흰 수염이 웃음을 터트린다.

"퍽이나 믿어주겠소. 바이에른의 작은 천사여天使."

제20화

"바이에른의 작은 천사요?"

"그쪽 핏줄을 타고 올라가면 천사가 있지. 혹시 몰랐는가?"

아더가 고민하다 대답했다.

"아뇨.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전설 아닌가요?"

"전설이 때로 맞을 때도 있지. 하지만 나도 정확히 아는 건 아니네. 워낙 오래된 이야기이기도 하고, 천사라는 건 기본적으로 인간과 결혼할 수 없거든."

설명에 아더가 탄성을 터트렸다.

'흰 수염 이 사람… 천사에 관해 알고 있는 건가?'

눈앞의 노인이 하늘섬 소속이 맞다면 정말 알지도 몰랐다.

그만큼 하늘섬이란 단체는 은밀하고 신비스러운 단체였으니깐.

그 때 흰 수염이 다시 입을 연다.

"자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 보지. 내가 자네를 죽일 거라 생각하는가?"

정신을 차린 아더가 대답했다.

"음···. 보통은 그러지 않을까요?"

"왜?"

아더는 솔직히 대답했다.

"제자를 죽였으니깐요?"

흰 수염이 웃음을 터트렸다.

"프라킬 그놈은 내 제자가 아니야."

"네?"

"제법 독특한 피를 가져 거두어들인 놈 중 한 명이지. 음···. 그래. 그냥 물건이야. 희귀한 수집품 같은 거지."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희귀한 골동품을 모으는 사람은 들어봤어도, 희귀한 피를 가진 인간을 수집하는 사람은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허나 깊이 생각하지 않고서 다음 질문을 던졌다.

"그럼 절 죽이지 않을 건가요?"

흰 수염이 차를 들이켰다.

"글쎄···. 고민 중이야. 이 자리에서 자네를 죽여야 할지, 아니면 살려야 할지. 죽이자니 뒷감당이 귀찮아질 테고, 살리자니 뭔가 찝찝하거든···. 난 여태 내 물건을 건든 놈들을 용서한 적이 없어서 말이야."

대답과 함께 침묵이 내려앉는다.

흰 수염은 아더를 살피며 차를 들이켰고, 아더는 운철검을 만지작거렸다.

'죽인다는 대답이 나오면 반격을 해야 하는데, 어떤 식으로 해야 할까?'

곧바로 경동맥을 찌른다면 승산이 있을까?

아니면 마법을 쓰지 못하게 일단 두 팔부터 잘라 놓고 시작해야 하나?

거듭되는 고민에 아더는 고개를 저었다.

그 어떤 가정도 눈앞의 노인을 죽일 수 있다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

'그만큼 강하단 소린데 곤란하네···. 하필 이럴 때에 마주치다니.'

아더가 계속해서 최선의 수를 찾을 때였다.

흰 수염이 침묵을 깨며 입을 열었다.

"결정했네. 살려 주지."

"…오. 진짜요?"

"애초에 자네를 죽이러 온 게 아니거든. 아무리 나라도 바이에른 가문의 아이를 죽이는 건 리스크가 크거든."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왜 찾아오신 건데요?"

"궁금하잖아. 나도 찾기 힘들게 꽁꽁 숨은 프라킬을 찾아 죽인 놈의 얼굴이."

흰 수염의 대답에 아더가 이해했다는 듯, 탄성을 터트렸다.

"하긴 그렇긴 하겠네요. 궁금한 건 해결해야죠."

"오… 궁금함의 미학을 아는군. 그럼 한 가지 질문을 좀 해도 되나?"

"어떤 건데요?"

"프라킬은 왜 죽였나? 딱히 죽일 이유가 없어 보이는데."

아더가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그쪽이 절 먼저 죽이려 했거든요. 그래서 먼저 선수를 좀 쳤어요."

흰 수염이 눈을 끔뻑였다.

"프라킬이? 그놈이 아무리 정신머리가 나갔어도, 바이에른 쪽 사람을 건들 머저리는 아닌데?"

아더가 어깨를 으쓱였다.

"지금은 아닌데, 나중에 절 죽이실 거였거든요."

"…내가 이해가 안 돼서 그러는데, 건드릴 예정이라 죽였다. 지금 이 말을 하는 건가?"

"네."

"그것참 독특하군···. 자네는 그걸 어떻게 알았나?"

"그건 비밀입니다."

흰 수염이 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비밀? 허허… 참 오랜만에 들어보는 단어로군."

그 후 내려앉은 침묵 속에서 흰 수염이 제 수염을 매만졌다.

그렇게 가슴팍까지 기른 수염을 한참이나 매만지던 그는 벗어두었던 중절모를 불쑥 집어 들었다.

그 모습에 아더가 조심스레 질문했다.

"가시는 건가요?"

"그럼 가야지. 5서클 기사를 잠재워 놓는 것도 한계가 있고, 다음 정차역이 내 목적지거든."

"이런···. 이별이군요. 만나서 반가웠어요, 흰 수염."

"표정은 안 그래 보이는데?"

"아니에요. 흑마법사하고는 대화가 안 통할 줄 알았는데, 흰 수염 님은 대화가 통해서 신기했거든요."

"이런, 흑마법사에 너무 편견을 가지고 보지 말게나. 나도 재밌었네. 귀족하고 이런 식으로 대화하는 건 꽤 오랜만이거든."

흰 수염이 지팡이를 두들긴다.

그 순간 닫혀 있던 문이 열리고, 눈을 뜬 채로 기절한 안나가 보였다.

흰 수염이 다시 한번 입을 연다.

"잠재워 놓은 것뿐이네. 그리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건 그렇고···. 자네 아케인으로 갈 건가?"

아더가 시선을 돌리며 대답했다.

"네."

"귀족가의 자제가 아케인으로 가는 거면 대학에 입학하려는 모양이군."

"맞아요."

흰 수염이 검은 카드 한 장을 불쑥 내민다.

"날 다시 보고 싶거든. 검은 종탑으로 가서 이 카드를 내밀게. 안내인이 마중 나갈 거야."

카드를 받아든 아더는 눈을 끔뻑였다.

"어···. 선물인가요?"

"선물이네. 오랜만에 재밌는 대화를 나눈 값이지."

흰 수염이 몸을 돌린다.

"그럼 진짜 이별이군. 아케인, 이 미친 도시에 온 걸 환영하네. 공자."

* * *